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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어떻게 보셨습니까
일시 2023년 7월 29일 토요일 오전 11시 장소 Circa 1950
참석 이성곤(사회), 배선애, 최영주, 남명렬
사진 정수연 정리 민규현

이성곤 2023년도 가을호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


립니다. 5월에서 7월 사이 공연된 작품들에 대해 말씀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연극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변화의 조짐들을 느낍니다. 그중 하나가 대중성
에 대한 부분입니다. 큰 주목을 받았던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이하 <통속소설>)
라는 작품도 있었고요. 그 외에 두산아트센터에서 기획한 작품들도 폭발적인 반응
들이 있었습니다. ‘이슈파이팅’을 통해 특정 이슈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 왔던 공연
들과는 또 다른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공연들을 보시면서 선생
님들은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좌담 7
이슈파이팅과 대중성 자신들이 해왔던 게 뭐였는지를 되짚어보고 왜
하는지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찾으려는 태도들
최영주 맞는 것 같아요. 대중성이 확장되면서 상 이 다양한 재공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
대적으로 지금 이곳의 삶에 대한 성찰 내지 화 같아요.
두가 극장에서 약화된 건 분명한 것 같아요. 창 최영주 또 반대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작극 자체가 축소되었고 번역극이라든지 재공 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연극은 드라마보다는 하
연이 많아졌다는 것과도 연결되고요. 조금 단 나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극장에 접목시키는 경
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블랙리스트 이후 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때의 관객들은 젊은 관
자기 검열에 대한, 혹은 보수 정부 하에서의 위 객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들 사이의 소통이 연
축감도 느껴집니다. 그리고 아마도 사회·정치 극 커뮤니티의 담론이 된 거지요, 이제 다른 측
현실의 격변을 겪고 나서, 사회에 대해서 직접 면의 연극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자연
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튼튼한 텍스트, 알려진 스럽게 온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좀 둔탁하지
텍스트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만 안전한 많은 이야기들, 현실보다는 이야기
는 그런 자기 검열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 들을 지금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각이 듭니다.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명렬 그 말씀을 들으니까 갑자기 생각난 게 하 남명렬 아까 이슈파이팅을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
나 있어요. 한참 전인데요, 제 지인이 2003년쯤 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도를 너무
파키스탄에 일이 있어 갔는데 연극하는 사람이 전면에 내세워 주입하려 하면 보는 사람은 자
니까 연극을 관심있게 봤는데요. 코미디였대요. 꾸 뒤로 물러나게 된다는 거예요. 무대를 보며
왜 그럴까 했더니 억압적인 사회 체제 내에서 ‘그래, 동의해. 그런데 좀 부담스럽다’하고 느끼
는 사람들이 그 억압을 잊으려고 그냥 재밌게 게 된다는 거지요. 어떻게 해야 부담스럽지 않
웃고 즐기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얘기를 지만 자신의 의도를 관객에게 환기시킬 수 있
들었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게 아닌가 을까 하는 방법론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봅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 지금 <통속소설> 얘기를 했는데, 무척 재밌
배선애 이 시기의 작품들을 주제로 묶어보려고 는 연극이거든요. 약간 당의정처럼 만들었어요.
아무리 고민해도 묶이는 키워드가 없었어요. 김말봉 선생이 실제로 했던 사회 운동, 여성의
키워드가 발견이 안 되더라고요. 그 이유가 뭘 인권 문제에 당의를 씌워, 전면에 드러내지는
까 생각해봤는데, 지금 이 시기가 뭔가 해야 할 않았지만 공연을 보고 나면 김말봉 선생의 생
것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무 각과 함께하게 되는 것이죠.
기력해지고 뭘 해도 이게 뭐가 되겠어 하는 그 최영주 같은 맥락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하면요. 텔
런 상태. 그러다 보니까 연극으로 뭘 해야 할까, 레비전이라든지 대중 매체를 통해서 우리가 보
연극을 왜 하는 걸까 이런 고민으로 회귀했다 고 있는 하나의 사실들을 은유적인 방식 없이
는 생각이 들어요. 갑자기 경험한 코로나라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반복인 거죠. 연극 무대
재난, 거기에 맞물린 현재 정치 환경 변화, 사회 에서의 담화로 이어지는 좀 더 성숙하고 심오
적 감각의 변화 같은 것들 때문에 전투력이나 한 이야기가 담겨져야 하는데 사회를 통해 그
의욕을 상실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리고 또 연극무대를 통해, 반복되다 보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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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에 대해서 지친 점도 있을 거예요.
이성곤 정리하자면 몇 년 동안의 피로도가 누적
이 된 부분들도 있고,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들
때문에 관망하면서 그동안의 생각들, 작업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그러면서 이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성에 대한 시도들도 같이
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제44회 ‘서울연극제’

이성곤 자연스럽게 페스티벌 얘기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은 소위 페스티벌의 계절이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최근 수해 때문
에 안타깝게 지역연극제가 취소되는 사태도 벌
어지기도 했습니다만, 서울에서는 상반기 대표
적인 연극제로 ‘서울연극제’가 있었고, 어느 때
보다도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서울
연극제’에 대한 생각들을 말씀을 해주셨으면
이성곤
좋겠고요. 좀 더 나은 페스티벌이 되기 위한 제
언이나 조언도 좋을 것 같아요.
배선애 저는 올해 ‘서울연극제’를 보면서 새로운
집행부가 뭔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여하고 싶다면 이전 사업운영을 완전
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서울연극제’부터
예술위원회가 꾸려져서 전체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예술위원회 신설의 의도와 목
적은 잘 알겠지만 그것이 이전에 있었던 예술감독제를 온전히 보완한 것인지는 의
문입니다. 예술감독제가 어떤 문제들을 유발했고 연극제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등의 결과가 공유되고 그것을 보완할 대안이 예술위원회였어야 해요. 예술
감독제에서 예술위원회로 바뀐 과정들이 공개되거나 회원들에게 공유되지 못한
것을 보면 ‘우리는 무조건 달라야 해’라는 맹목적 강박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
습니다. 새로움, 공정, 이런 것들은 명분은 되긴 쉽지만 실체는 없거든요. ‘서울연
극제’처럼 오래된 연극제는 그 운영에서 이어나갈 부분, 새로워질 부분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이번 연극제에서는 잘 안 보였어요. 운영상으로는
뭔가 혁신적인 변화를 꾀한 것 같은데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달라진 것은 발견되
지 않고 오히려 방만한 운영이 문제가 되었어요. 이번 ‘서울연극제’에 대해서는 개
별 공식선정 작품보다는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좌담 9
이성곤 방향성과 운영 관련해서 올해 문제의식을 떻게든 한 달 이내에 시작하고 끝나는 걸로 일
갖고 있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요. 부대 프 정을 잡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좀 전
로그램들도 많이 준비했지만 운영에 있어 미숙 에 거론했던 합평회가 아쉽더라고요. 저는 가
한 점들이 많이 보였어요. 가령, 합평회만 하더 보지는 않았지만 당일인가 다음 날인가에 했잖
라도 세 명의 평론가가 한 작품에 대해서 아주 아요. 폐막식 당일 합평회를 하면 깊은 생각을
짧게 단평 형식으로 발제를 했어요. 창작자들 하지 않고 합평회 자리에서 발언을 할 가능성
의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들어보자는 취지였 이 크거든요. 최소한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갖
죠. 한 명의 평론가에 의해서 작품에 대한 평가 고 합평회 자리를 마련해야 되지 않았을까 하
가 결정되는 것을 지양해보자는 의도도 있었을 는 생각이 들어요. 페스티벌의 흥분된 마음보
겁니다. 하지만 정작 창작자들이 합평회에 거 다는 다 끝내놓고 차분하게 뒤를 돌아보는 그
의 오지 않았어요.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런 합평의 자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
창작자들도 1분 스피치 정도에 그쳐 당초 취지 각을 해요.
하고 너무 엇나가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고 최영주 그러니까 결국은 이 시스템이 예술감독을
요. 이후에도 이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 하나의 명함이 아닌 축제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았습니다. 또 연극제에 대한 언론보도도 원활 책임자로 인식해야 하는데, 그 주체의 역할이
하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아 여러 사람의 의견으로 분리되고 나니 시스템
무런 시상을 받지 못한 공연이 세 작품이나 나 자체가 느슨해진 것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이
왔는데, 이것도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건 태도의 수정이나 합의를 통해 개선될 수 있
남명렬 사실 ‘서울연극제’ 운영에 대해서 자꾸 신 는 문제니까 서울연극협회 쪽에서 조금 더 고
경을 쓰면, 제가 전전임 예술감독이기 때문에 민해서 반복되지 않도록, 다음에는 더 좋아지
일부러 삐딱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도록 선택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생각할 가능성이 있어서요, 운영에 대해서는 남명렬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다시 평가해 볼 문제
전혀 신경을 안 쓰고 그냥 작품에만 주목해서 인 것 같아요.
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이 어떻게 되 최영주 그런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드는
는가에 관계없이 조금 아쉽게 생각하는 건 기 생각은, 지금 지도부가 오랫동안 현장 연출가
간이 콤팩트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너무 길 로서 세월을 겪어서인지 창작자 중심의 방향성
었다는 거죠. 거의 두 달, 첫 작품 한 다음에 두 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사실 축제라
번째 작품 할 때 한 열흘 정도 다음 공연과 기 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과 관객이 만나는 부분
간이 떨어져 있었구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연 에 대해 최대의 효과를 내는 선택을 했어야 되
이어서 작품이 올라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 는데, 그걸 창작자 중심의 공평함을 추구하느
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어요. ‘서울연극제’ 한 라 방향성이 모호해진 것 같습니다.
다는데 지금은 공연이 없네? 언제 다음 작품이 남명렬 이런 시스템은 아마 박정의 회장이 있는
야?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연극이 계 동안은 유지할 것 같아요.
속 겹쳐가면서 한 달 이내에 콤팩트하게 연극 최영주 그런데 어느 축제에도 역사성이 있고 그
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너무 길었던 거죠. 대 시스템이 지속되면서 발전되어야지 이렇게 매
관 문제나 뭐 이런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어 번 바뀌면 발전이 없을 텐데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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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렬 시스템에 대해서는 더 얘기할 것은 없는
것 같고, 저는 ‘서울연극제’에서 나름대로 재미
있는 작품들이 꽤 있었다고 생각을 해요. 대상
을 <띨뿌리>가 받았죠.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
게 잘 봤어요. 대상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
을 했어요. 매향리는 벌써 한참 전 얘기잖아요.
국가 폭력에 의해서 주민들이 고통받아왔던 것
들. 그런데 그 얘기를 자칫하면 소위 아까 말씀
하신 이슈파이팅처럼 굉장히 거칠게 외치듯이
얘기할 수 있는데, 그것들을 다른 가족사로 엮
으면서 너무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공감
가게 잘 만들어낸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
요. 일부 사람들이 너무 낡은 방식으로 연극을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던데, 저도 그건 동의
하지만 어쨌든 작품 자체가 수준이 없이 만든
작품은 아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건디 무키 채널 오프닝 멘트>(이하 <버건디
>)가 주목을 전혀 못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 조
금 안타까웠습니다. 유튜브 영상 제작을 소재
남명렬
로 한 희곡이었는데, 저는 이런 측면에서 봤어
요. 지금 우리는 서양에서 대부분 희곡을 수입
하는 거의 100% 수입국이잖아요. 우리나라 희
곡이 수출돼 나가는 건 거의 제로라고 봐도 되거든요. 케이팝K-pop이나 케이-드라
마K-drama가 주목받기는 하지만 문화 전체를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문화의 변방이
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희곡을 서양 사회에서 이거 재
미있는데? 해볼 만한데? 하고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요. 유튜브 제작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으로 벌어지고 있거든요. 유튜브 제작 현장을
소재로 한 이 연극은 다른 나라에 소개돼도 매우 흥미롭게 볼 가능성이 있다고 봅
니다. 잘 번역해서 수출하기에 참 좋은 희곡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성곤 젊은 관객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았어요.
공감대 형성이나 공감 능력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이었고, 그래서 <버건디>에 대한
20대 초중반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과가 의외였어요. 또
흥미롭게 봤던 작품이 <4분 12초>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극이 재공연될 기
회가 사실 많지 않잖아요. 지원 사업만 보더라도 번역극의 경우 재공연에 대한 지
원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는 거죠. <4분 12초>가 이번 연극제를 통해 재공연되면서 많은 관객

좌담 11
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서 얘기하는 태도였거든요. 그런 태도가 연출
남명렬 저도 정말 흥미롭게 봤어요. 초연도 봤고 의 해석인지 배우의 해석인지가 무척 궁금했어
연극제에서도 봤거든요. 초연 때보다 연극제 요. 저는 그게 납득이 안 됐거든요. 제일 의문을
때가 훨씬 더 깊어진 연출, 깊어진 연기가 느껴 많이 가졌던 작품이었어요. 딸의 태도가 왜 그
졌어요. 단 하나 말한다면 시작부터 피치가 너 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 높았어요. 후반에 모든 걸 알게 된 다음의 내 이성곤 전반적으로 <추락Ⅱ>는 ‘납작한’ 공연이
적 갈등이나 표현들이 더 높은 피치로 가야 하 되어버린 것 같아요. 인물들의 개성이나 캐릭
는데, 초반에 높은 피치가 계속 이어지니까 정 터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포인트 없
작 집중해야 하는 후반부가 조금 피곤해지는 는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거예요. 더 집중해야 될 때 집중도가 떨어졌어 남명렬 딸을 연기한 배우가 연기상을 받았죠? 그
요. 완급 조절이 더 잘 됐으면 훨씬 집중도 있는 연기를 설득력 있게 보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 는 생각을 했어요. 어쨌든 연기는 어떤 배우가
다. 곽지숙 배우가 정말 잘했고요. 그만한 에너 연기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작품 안에서 한
지를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배우가 그렇게 많 캐릭터를 연기한 거잖아요. 작품이 설득력 있
지 않을 거예요. 게 만들어졌을 때 그 캐릭터도 설득력을 갖는
이성곤 아쉽게 수상 하지 못했던 작품들에 대해 데, 작품 자체가 설득력 있게 되지 않았는데 거
서도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기에 연기한 사람이 연기상을…. 그럴 수도 있
배선애 <A.I.R 새가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이하 죠, 그 사람이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다면. 근데
<A.I.R>)같은 경우 후반부 공연이 취소가 됐잖아 저는 개인적으로 아쉽게 느껴져요.
요. 그래서 의외로 덜 주목받았다는 느낌이 들 배선애 <추락Ⅱ>는 잘 만든 작품이긴한데, 제 개
었어요. 왜냐하면 작년보다 훨씬 좋아졌거든 인적으로는 마음 붙일 캐릭터가 없었어요. 그
요. 극장이 커지면서 장우재 연출이 하고 싶었 래서 오히려 아버지한테 마음이 갔는데, 원작
던 세계가 구현이 된 느낌이었어요. 이거였구 에서는 그렇게 아버지한테 마음이 가면 안 된
나 하는 느낌이었는데, 후반부 공연이 취소가 다고, 아버지가 굉장히 부도덕한 인물로, 부도
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어요. 덕한 지식인으로 나온대요. 그래서 딸이 왜 저
남명렬 코로나 때문에 그랬죠. 지금 이 시기에 코 러는지 이해가 되게끔 설정되었는데 연극에서
로나에 걸렸다고 공연을 취소하는 게 맞나 하 는 오히려 아버지한테 더 마음이 갔어요.
는 생각을 했어요. 이성곤 아버지를 맡았던 배우가 더 적극적으로
최영주 코로나가 발생하면 공연 취소로 이어지는 캐릭터에 접근한 게 아닐까요.
규정이 있었기에 내린 결정 아닌가요? 남명렬 딸의 결정들이 설득력이 없으니까 아버지
남명렬 그러게요. 연출가의 선택인지 배우의 선택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인 딸을 어떻
인지에 대해서 궁금했던 작품이 하나 있어요. 게든 거기서 끄집어내려고 하는 아버지의 노력
<추락Ⅱ>에서 딸의 태도인데요. 온갖 모진 일을 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보였던 것 같아요.
겪고 수모적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농장에 계속 최영주 의미가 주어진 것이 아니고 현장에서 생
있겠다는 딸의 태도가 왜 그렇게 구현됐는지 성된다는 것, 현장에서 발휘된 배우의 힘이 굉
말이에요. 연극 속에서는 자기 신념에 가득 차 장히 중요하다는 증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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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렬 그 배우 자체는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이
있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일정한 캐릭터를 갖
춘 배역을 한다면 그 배우만큼 집중력 있게 연
기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할 정도
로 꽤 재능 있는 배우라고 느꼈지만 그 작품 속
에서 배우는….

‘신진연출가전’

이성곤 그럼 이제 ‘신진연출가전’에 대한 얘기를


짧게 해볼까요.
배선애 ‘신진연출가전’은 이번에 초청 공연 한 편,
경연작 세 편으로 총 네 편이 공연이 됐어요.
‘신진연출가전’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연출가들
이 앞으로 어떻게 활동을 열심히 할 것인가 하
는 전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 것이거
든요. 그런 면에서는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의
지가 모든 작품에서 돋보였어요. 여온 연출의
배선애
<늑대가 부른다>는 디스토피아적 판타지고, 정
민정 연출의 <놓을 수 없는 손>은 지금 우리 현
실의 이야기이긴 한데 반전이 있는 스토리 중
심의 작품이었고, 박한별 연출의 <하붑>은 미국의 모래 태풍이 부는 사막에서의
로드 무비 같은 그런 작품이었는데, 각각의 발상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이걸 조금만 더 다듬으면 굉장히 재미난 작품들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 연출들이 아예 기본이 없거나 이런 연출들이 아니라 각각 자기가 뭘 할 수 있는
지를 스스로 체크하고 있는 느낌이 나서 연극 보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이런 부분
들을 ‘신진연출가전’에서 강조해야 되지 않을까 싶긴 해요. 다만, 대상 수상작이 없
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좀 더 가능성에 집중해서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닌가. 기
존 연극과는 다른 관점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곤 올해에는 선돌극장에서 공연이 되면서 관객층이 넒어졌겠어요?
배선애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객석이 다 차는 작품이 있었고, 비는 작품들이 있었는
데, 그건 결국 단체의 이름과 관련된 거라 작품이나 ‘신진연출가전’과는 거리가 있
다고 봅니다. 연출가협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이
전에 성동문화재단과 함께 할 때는 재단에서 홍보에 열심이었거든요. 이젠 도와주
는 곳이 없으니 오롯이 연출가협회 전담인데 아직은 그 부분의 노하우는 부족한

좌담 13
것 같아요. 디에 있지? 라는 질문이 들더라고요. 작품 하나
하나는 다 재밌었어요. 잘 만들 수밖에 없는 환
경이죠. 제작진도 좋고 배우도 너무 좋으니까
두산인문극장 2023 요. 세 편 각각은 참 재밌는데 이게 인문극장의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 키워드를 놓고 봤을 때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지 모호했어요. 억지로 끼워 맞춰 해석할 수는
이성곤 다음은 ‘두산인문극장 2023’인데요. ‘Age, 있지만 그게 인문극장의 키워드를 선명하게 한
Age, Age 나이, 세대, 시대’ 라는 주제였습니다. 다고 할 수는 없었거든요. 어쨌든 개별 작품들
<댄스네이션>과 <20세기 블루스> <너의 왼손 은 다 훌륭히 재미있었으나 이게 인문극장 키
이 나의 왼손과 그의 왼손을 잡을 때>(이하 <너 워드에 부합한다고 할 때는 물음표 같은 작품
의 왼손>) 이렇게 세 작품이 공연되었는데 어떻 들이었어요.
습니까? 최근 우리 사회는 심한 세대 갈등도 겪 이성곤 세 작품 다 어쨌든 전석 매진이었잖아요.
었고, 또 시대에 대한 고민들과 시대정신을 반 관객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거웠고요.
영하기 위해 이런 주제로 잡은 것 같아요. 선생 최영주 그건 두산아트센터가 그만큼 관객들의 신
님들 보시기에 올해 인문극장의 주제와 공연들 임을 받는다는 거고, 이 프로그램 외에도 과거
이 성공적으로 만났는지, 어떻게 보셨는지 작 에서부터 꾸준히 축적된 하나의 신뢰라고 볼
품별로 얘기해주셔도 되고 전체 아울러서 말씀 수가 있는데 더 나아갔으면 하는 기대를 하는
해주셔도 되고요. 거죠.
최영주 저는 다 못 보고 <20세기 블루스>를 봤어 이성곤 대중 취향적 요소들이 많았어요. 최고들만
요. 두산 공연하면 좀 더 새로운 담화가 생성되 모아 놓는다고 해서 그 조합이 최고의 결과물
기를 기대하는데, 전혀 새롭지 않아서 좀 실망 이 되는 건 아니죠. <댄스네이션>은 동시대 관
했어요. 물론 텍스트는 탄탄하고 공연도 좋았 객들이 만족할 만한 요소와 이슈들을 망라하여
죠. 그런데 시대와 세대의 문제는 과거의 것이 녹여낸 공연 같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공연의
었어요. 세대의 갈등 내지 세대 간의 화해라는 밀도와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약화된 느낌이었
소재는 늘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 시 습니다. <20세기 블루스> 같은 경우 저는 <추
대와 세대의 갈등이 불거지는 지점에서 프로그 락Ⅱ>가 떠올랐어요. 인종 갈등과 미국 사회에
래밍이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서의 계급 갈등, 그런 것들이 베이스가 되어서
배선애 ‘두산인문극장’은 키워드를 진짜 기가 막 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을 형성하고 있는데, 인
히게 잘 뽑거든요. 기획팀이 참 잘하는 일이라 물들을 통해 그 맥락과 배경을 읽어내기가 쉽
고 생각을 하는데 대체로 공연들이 그 키워드 지 않았어요. 얼핏 보면 미국 중산층 여성들의
를 못 따라간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에도 우리 이야기를 왜 우리가 지금 듣고 있어야 하나 하
사회 대표적인 갈등 키워드를 잘 뽑았다는 생 는 단순한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점
각을 했는데, 공연들을 보면 그런 갈등이 도드 에서 <20세기 블루스>는 접근 자체는 좋았지만
라지지 않았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이게 세 편 좀 아쉬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너의 왼손>은
이긴 하지만 세대 갈등이라고 하는 부분, 그다 공연에서 보여준 ‘장난스러움’이 관객들의 허
음에 세기, 나이에 대한 그런 것들이 도대체 어 를 찌르는 위트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가벼

14 연극평론 통권 110호 2023 가을


운 말장난에 머물러 버린 듯해서 공감이 어려 남명렬 전훈 연출은 자신이 번역을 했어요. 러시
웠습니다. 아 정서로는 이해가 가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이 보기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혹은
애매한 관계 이런 것들이 있는데, 전훈 연출의
국립극단의 <벚꽃동산>과 미덕은 관계가 명료하다는 거예요. 전훈 연출
전훈 연출의 <벚꽃동산> 의 작품을 보면 관계를 아주 명료하게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어요. 자칫하면 체호프 연극을
이성곤 이제 국립극단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 보면 지루할 수가 있는데 전훈 연출의 체호프
다. <벚꽃동산>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품들은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그런 어
남명렬 <벚꽃동산>은 좋은 무대 환경, 거기에 실 떤 장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 유리로 세트를 했죠. 이성곤 두 작품을 같이 봤으면 풍부하게 얘기를
이성곤 네, 맞습니다. 유리 맞아요. 나눌 수 있었을텐데, 저는 전훈 연출의 작품을
남명렬 유리로 사방을 활용했는데 마치 온실에 못 봐서 국립극단 얘기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
있는 것 같았어요. 처음 무대를 봤을 때 조금 의 니다. 국립극단 공연의 장점은 관계의 명료함
아했어요. <벚꽃동산> 무대를 이렇게 하면 이 과 신선한 해석이 아닐까 합니다. 라네프스카
다음에 어떻게 구성하려고 하는 걸까 하면서 야와 로파힌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 대표적이
봤는데, 어쨌든 그럴 듯하게 보이긴 하더라고 죠. 로파힌은 이 엄청난 벚꽃동산을 결국 소유
요. 무대 디자이너가 너무 자기 목소리만 낸 거 하게 되는데, 왜 그걸 맘껏 즐거워하지 못하는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연출 가. 이 문제를 라네프스카야에 대한 특별한 기
이 받아들인 부분이겠지만 쇠락해가는 한 가정 억과 감정의 코드로 풀어내거든요. 라네프스카
의 얘기를 뭐랄까 ‘부자스럽게’ 표현한 게 아닌 야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고, 벚꽃동산을 소
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유하게 된 대신 더 이상 라네프스카야와 만날
비슷한 시기에 작은 안똔체홉극장에서 전훈 연 수 있는 계기나 기회가 다 사라져 버린 것에서
출의 <벚꽃동산>이 한 열흘 정도 일찍 시작해 오는 양가감정 같은 것들이죠. 반면, 샤를로타
서 같은 날 끝났어요. 저는 둘을 비교하면서 봤 를 너무 기능적으로만 보여줘서 아쉬웠습니다.
는데 무대 전환하기도 힘든 그런 작은 극장인 이 인물이 왜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하며 즐거
데, 거기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네 개의 막을 각 움을 주려고 하는가. 그만큼 아픔이 많고 상처
기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나름대로 열악 가 많은 인물인데, 피상적으로 스케치만 하고
함을 극복하려는 많은 아이디어가 들어있었다 넘어간 느낌이에요. 미묘한 부분들이 명료함
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 다 나름대로 각자의 작 속에서 사라져 갔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품을 잘 구성하긴 했는데 저는 그런 면에서 볼 배선애 저는 로파힌이 너무 세련되었다는 게 아
때 조건의 열악함이 꼭 나쁜 결과를 낳지는 않 쉬웠어요. 이미 첫 장면부터 로파힌이 사겠구
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가 비주얼적으로, 시각적으로도 선명했거든
이성곤 대본은 어떠셨나요? 김광보 연출이 대본 요. 로파힌이 농부 출신에 매맞고 자란 투박한
을 명료하게 정리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 느낌이 났으면 좋겠는데, 이미 영지의 주인 같
데, 전훈 연출의 공연은 어땠습니까? 은 느낌이라서 그거 하나 아쉬웠어요.

좌담 15
남명렬 피르스 역의 박상종 배우가 참 잘했는데 도른 하고 더 나이가 들면 쏘린 하고요. 그래서
힘이 너무 좋았어요. 나이가 들면서 갈매기에 나오는 배역을 하나씩
이성곤 체호프 작품 중 올해 <벚꽃동산>뿐 아니라 하나씩 다 해보고 싶은 욕망이 들어요.
지역 극단에서의 <세자매> 공연도 오르고 했는 이성곤 다 하지는 못하겠지만 실제로 나이에 따
데 늘 이렇게 많이 공연이 되었나요? 라서 배역을 달리해서 <갈매기>에 출연한 배우
배선애 체호프는 항상 많이 공연됩니다. 체호프 4 들도 있죠?
대 비극 포스터가 한꺼번에 걸려 있는 것도 봤 남명렬 저는 두 개를 했어요. 뜨리고린 하고 도른
어요. 그치만 요즘은 부쩍 체호프 공연이 많아 을 했죠. 더 나이가 들면 이제 쏘린을 할 수 있
지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겠다 생각해요.
남명렬 체호프는 관객의 관심보다 사실 만드는 이성곤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사람의 관심이 훨씬 더 커요. 체호프는 연극 예 배선애 김광보 예술감독이 <벚꽃동산>을 선택했
술가들이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을 자꾸만 불러 다는 것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라는 그 타이틀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제일 많 에 맞춰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공연되는 게 셰익스피어와 체호프라면, 셰 이성곤 체호프는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익스피어는 사건 위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 배선애 서울시극단에 있을 때도 체호프는 안 했
기 때문에 한 번 하고 나면 그다음에 다시 도전 고 셰익스피어나 이런 작품을 했어도 그걸 현
하고 싶은 욕망이 좀 덜 생겨요. 그런데 체호프 대적으로 바꿔서 공연을 해왔던 연출이죠. 그
는 하면 할수록 뭔가 새로운 해석들이 자꾸만 런데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서는 <세인트 조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앤>을 하고, 이게 원래 김광보 연출의 취향인데
이성곤 배우로서도 그런가요? 예술감독 임기가 다 되어갈 때 <벚꽃동산>을
남명렬 그렇죠. 배우로서도 그렇고 만드는 연출가 선택했다는 건 안정적인 예술감독으로 마무리
입장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체호프의 작품들은 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아닐까 생각해요.
더 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 같아요. 이성곤 사실 김광보 연출이 예술감독으로 부임했
최영주 저는 체호프 극을 참 어려운 작품이라고 을 때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초반에 소위 후속
봐요. 어렸을 때 읽었던 체호프와 달리 나이 들 세대들의 스타일로 국립극단을 다시 세팅하려
어 삶을 더 살아보고 하니 또 눈에 띄는 부분이 고 했던 것 같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
생기거든요. 더 살아보면 또 달라질 거라는 생 아요. <세인트 조앤>하고 <벚꽃동산>을 하면서
각을 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창작자 임기 말에 조금씩 안정된 공연을 보여주기 시
들의 도전은 양식적인 하나의 선택인 것 같고, 작했는데, 막바지라 아쉬움이 큽니다.
체호프에 대한 태도는 삶에 대한 이해와 성숙 최영주 아직 우리나라에서 예술감독, 특히 공공
도랑 비례하는 것 같아서 이해를 해요. 극장에서 예술감독의 역할이 안착되지 않은 것
남명렬 그리고 배우의 입장에서 <갈매기>를 예로 같아요.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든다면 배우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늙어가잖 변화를 시도하면서, 또 동료를 배려하면서 겸
아요. 젊은 시절에는 꼬스챠를 하고 좀 더 나이 손해야 하는 역할을 떠맡죠. 그런데 예술감독
가 들고 30대가 되면 뜨리고린을 하고, 그 사이 하면 우선 극장의 역사를 전승하고 또 세우는
에 사므라예프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좀 더 가면 주체이고, 그 역사라는 것은 작품을 통해서 만

16 연극평론 통권 110호 2023 가을


들어지는 거죠. 좀 더 본격적으로 예술감독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서울시극단의
역할에 대한 리서치가 필요한 것 같아요. 리서 라인업을 보고 궁금했어요. 고선웅 예술감독이
치는 이론이 아니고 좋은 사례를 통해서 예술 라고 얘기했을 때 기대하는 바가 있잖아요. 고
감독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의 탐색이 선웅 예술감독이 왜 이 라인업을 설정했을까,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이론 쪽에서 조 예술감독의 지향점이 뭘까? 4월에 우종희 연출
금 제안하며 메꿔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의 <키스>도 그랬고 지금 고선웅 연출의 <겟팅
아웃>도 그렇고 개별 작품들은 대체로 세련됐
어요, 잘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전체 라인업의
서울시극단의 <겟팅아웃>과 국공립극장 지향점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최영주 사실 지금 우리가 얘기를 하는 것에서 모
이성곤 그럼 이어서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으로 부 순되는 점이 뭐냐면, 김광보 연출가의 국립극
임한 고선웅 감독의 첫 연출 <겟팅아웃> 공연 단 예술감독은 자기 색을 보여줘야 된다는 그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런 주장을 하는데요. 초반에는 자기 색을 보여
최영주 우리는 고선웅이라는 연극 예술가를 독특 주려고 했는데 <벚꽃동산>과 같은 안정된 공공
한, 개성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극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냈다는 것을, 작품성으
요. 그래서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공공극장임에 로서 그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
도 불구하고 고선웅의 연출은 뭔가 새로운, 뭔 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울시극단의 고선웅 연
가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극장을 향했어 출가에 대해서는 이 안정적인 연극 자체를 또
요. 그런데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보다, 이 낯설어하곤 해요.
번 공연에 대해서 흥미로웠던 것은 공간의 사 남명렬 지금 막 즉흥적으로 드는 생각인데요, 왜
용 방식이었어요. 2009년도인가에 문삼화 연 긴 연극만 선택을 하죠? <엔젤스 인 아메리카>
출이 <겟팅아웃>을 했을 때랑 비교할 수밖에 도 1, 2부 합치면 거의 10시간 되었죠. <세인트
없었는데, 이번 공연은 굉장히 역동적이었어 조앤>도 엄청 길었죠. 이번에 뭐죠?
요. 텍스트에 대해 익숙하게 알고 있었지만, 알 배선애 <이 불안한 집>이에요.
고 있는 구조는 설명적이고 이야기로 이제 습 남명렬 그것도 300분으로 나와 있더라고요. 5시
득되어 있는 상황인데 이것이 배우들이 무대와 간이에요. 5시 반에 시작을 해요. 생각해 보니
상호작용하며 움직이고 호흡하는 역동성을 띠 까 10시 반에 끝나는 거예요. 상상이 안 돼요.
니까 오래된 텍스트가 굉장히 신나는 역동적 최영주 텍스트가 누구 거죠?
인 공연이 된 것 같아요. 대체로 <겟팅아웃> 공 배선애 지니 해리스 작가인데요. 오레스테스 이야
연에서 과거의 시점은 조명 처리되며 한 공간 기예요.
에서 전개되었는데, 이걸 1층과 2층으로 공간 남명렬 최근 3년 동안 국립극단 연극들 시간이 엄
을 나누고, 2층 공간은 철로 만들고 그 철의 질 청 길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긴 연극을 할
감과 배우의 움직임으로 생기는 소리가 과거의 수 있어 라는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콤
주인공의 거칠고 소외되었던 감성을 직접적으 팩트하게 2시간 이내에 예술적 감을 확 줄 수
로 느끼게 해주었어요. 있는 작품이 없나 싶어요.
배선애 저는 <겟팅아웃>이 굉장히 세련된 작품이 배선애 한 시간 반도 좋고요. (웃음)

좌담 17
최영주

이성곤 나라마다 공연의 호흡이 다른 것 같아요. 유럽이나 영미권에 비해 우리는 좀


짧은 데 익숙해져 있죠.
최영주 긴 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좋은 공연을 보고 싶어요.
남명렬 <이 불안한 집>을 보기 위해서는 하루 연차 써야 돼요.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과 배리어프리 공연

이성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하루 연차 내고 공연을 본다는 건 쉽지 않죠. 알겠습니다.


이어서 국립극장 공연 얘길 해보겠습니다.
최영주 달오름극장 공간에 대관을 통해서 공연이 오르는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한
동안 공공극장에서 하지 않던 역할을 대관 공연들이 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을 했어요. <넓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면 내 마음은 춤춘다> <세일즈맨의 죽음> <우
리 읍내>를 올해 봤어요. 무엇보다 관객층이 일반 서울 시민이 많았다는 게 반가운
거죠. 그들 관객이 연극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는 것도 눈에 띄었고요. <세일즈맨의
죽음>은 박근형 배우의 스타 캐스팅을 통해서 공연을 했는데 새로운 해석은 아니
지만 배우가 갖고 있는 나이듦에 대한, 신체성과 텍스트의 내용이 비극성을 강화
시켰어요.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우리 읍내>예요. 사실은 이게 배리어프리 연극인
지 모르고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라고 하니까 피지컬 시어터라든지 아니면 지

18 연극평론 통권 110호 2023 가을


난번에 <템페스트>에 이어 전통에 대한 탐색이 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루어지나 하고 예상했었죠. 사전 지식 없이 배선애 저는 이게 질문이에요. 국립극‘장’에서 왜
관극을 한 것인데, 배리어프리라는, 장애인을 이런 무장애, 비장애 이런 작품들을 왜 연극으
등장시켜서 텍스트 중심의 공연을 본다는 것이 로 만드는가. 그러니까 작년에 <틴에이지 딕>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어요. 갑갑했어요. 무슨 하고 올해 <우리 읍내> 이건 국립극‘장’에서 제
장애인 단체 쪽의 지원을 받았나보다 하고 생 작을 했거든요. 극단이 아니라 극장에서 제작
각한 거죠.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 그야말로 배 을 하는데 왜 이런 배리어프리 관련된 작업들
리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을 다른 장르가 아닌 연극으로 하는지, 그리고
했어요. 그래서 이런 연극도 이렇게 진지하고 이렇게 연극을 제작하는 기획팀과 주체가 어디
재미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색다른 경험을 한 거 인지. 국립극장에는 수많은 단체가 있잖아요.
예요. 결국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장애, 비장애 근데 국립극단은 나와 있잖아요. 연극은 국립
에 대한 배리어가 진짜 없어지는 독특한 경험 극장 밖에 있더라도 국립극단이 기획하고 제작
을 해서 사다리의 의도는 바로 여기 있었구나,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특히 국립극장에서 공연
<우리 읍내>는 하나의 방법이고 수단이었고 이 하는 작품이라면 더욱 더. 저는 그것이 계속 궁
걸 한번 보여주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금합니다. 국립극단이 있음에도 국립극장에서
요. 그리고 중견 극단에서 이런 선택을 한 것에 연극을 기획하고 공연하는 이유요.
굉장히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이 극단이 최영주 사다리와의 대화에서 선택했다고 얘기를
<굴레방다리의 소극>이라는 공연도 한 적이 있 하더라고요.
는데, 그 공연은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대중 친 이성곤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이라는 기획을 만
화적인 공연을 했어요. 그 소극적인 제스처라 들었잖아요. 거기에서 지금 이 작품들을 공연
든지 희극적인 성격이 극단 안에 있다가 <우리 하고 있거든요.
읍내>에서도 드러났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배선애 그러니까요. 그래서 창극단은 창극을 올리
이성곤 사실 배리어프리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고, 오페라단은 오페라를 올리고, 무용단은 무
나라가 별로 없어요. 일본에서도 베리어프리라 용을 올려요. 그런데 국립극단이 있는데 왜 국
는 말을 썼다가 최근에는 쓰지 않아요. 왜냐하 립극장이 연극을 만들까요? 국립극단이 있는
면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다 장애를 가지고 있 데.
거든요. 연극이 인간과 세상을 반영하는 것이 최영주 물어봤더니 ‘국립극장은 연극도 합니다’
라면 장애도 자연스럽게 연극이 만들어내는 세 그러더라고요. 달오름극장에서 이렇게 연극을
계의 한 부분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거죠. 다행 하면서, 달오름극장을 연극의 터전으로 삼았으
스럽게도 초기에는 배리어프리가 운동적 차원 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해요. 국립극단이 다시
에서 의식적으로 공연에 도입되었다면, 최근에 들어와 완전히 안착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국
는 공연의 구성요소로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 립극장과 연계성을 갖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
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했던 <추락Ⅱ> 각을 해요. 좀 더 이야기하자면, <우리 읍내>에
에서도 수어 통역사를 캐릭터화 했었고요. 국 서의 긍정적인 측면은 배리어프리라는 것을 이
립극장의 <우리 읍내>에서도 청각장애인 배우 슈로 내세워 한 것이 아니라, 작품성으로 설득
가 수어로 소통하면서 자기 캐릭터를 다져나가 을 했다는 점이예요. 또 번안을 굉장히 한국적

좌담 19
으로 잘했어요. 정말 아주 뛰어났어요. 하나의 를 해봤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이 불안한 집>
사례로 꼽을 만큼. 도 배리어프리를 하는 공연 날짜를 지정해놨어
이성곤 최근 배리어프리가 이슈화되면서 아이러 요. 한 3일인가 있어요. 저는 그게 옳다고 봐요.
니컬하게도 장애인 극단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 이성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배우들의 외부
활동이 많아지면서 정작 소속 극단의 공연에
출연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거죠. 배리 재공연 작품들
어프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
하고 정작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 극 이성곤 최근에 재공연이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
단들은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성북동 비둘기의 <메디
거죠. 어떤 이슈가 가지고 있는 운동성의 명과 아 온 미디어>, 극단 골목길의 <처음처럼: 사랑
암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은 살인이 아니다>(이하 <처음처럼>), 앤드씨어
최영주 장애에 대해 자유로워지는 것도 공연 의 터의 <유원>, 극단 파수꾼의 <아이히만, 암흑이
도에 속하지요. 이번에 사다리 공연을 통해서 시작하는 곳에서>(이하 <아이히만>) 등등의 작품
새롭게 느낀 것은 수어가 있고 또 다른 신체 움 들이 재공연 됐어요. <육쌍둥이>도 재공연 됐고
직임이 있고 하니까 그게 하나의 양식으로 구 요. 이 재공연들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이나 의
축된 점이에요. 그런데 이런 것이 불편하다고 미들을 좀 짚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느꼈다면 그런 공연은 사다리의 단계까지 못간 배선애 이 재공연이 단순하게 최근에 했던 걸 다
거죠. 시 한 번 올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북동 비둘
남명렬 저는 우리가 이렇게 만드는데 그럼 그 배 기도 그렇고 골목길도 그렇고 예전에 해왔던
리어를 가진 사람들이 그걸 봤을 때는 어떻게 작업들, 본인의 작업들, 초기의 어떤 작품들을
느낄까에 대해서 궁금해요. 지금 감각에 맞춰서 새로 올리는 그런 느낌이
최영주 굉장히 많이 왔었어요. 많이 왔고 반응도 어서 다른 일반적인 재공연 하고는 조금 다른
굉장히 뜨거웠어요.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메디아 온 미디
남명렬 다행스러운 얘기지만 만약에 배리어를 가 어> 같은 경우는 성북동 비둘기의 주요 레퍼토
진 사람들한테 이렇게 배려를 하고 있다는 걸 리라서 별 기대 없이 가서 봤는데, 이건 2023년
자꾸 보여주고 있는 것을 실제로 배리어를 가 버전이더라고요. 본인들 스스로를 초기부터 다
진 사람들이 봤을 때 정말 그렇게 느낄까요? 내 시 한 번 점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 배려받고 있다고 느낄까 아니면 우리가 약 또 골목길에서도 <처음처럼>이라는 그 옛날 작
한 너희들의 존재를 이렇게 시혜하고 있다고 품을 다시 들고 나온 것도 극단 자체, 연극 만드
느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돼요. 는 제작진 자체가 내가 어떻게 해왔는지 성찰
이성곤 그것에 대한 모니터링은 별로 없죠. 하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남명렬 왜냐하면 조사할 수 있는 모집단이 너무 래서 결과가 좋든 나쁘든 평가와는 별개로, 새
적어서요. 실제로 그렇게 배리어프리 공연을 로운 어떤 것들을 계속 추구하고 만들어내고
하는데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과연 전회 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해왔던 작업들, 그 단체
에 걸쳐서 몇 분이 오시는지 그것도 한번 조사 가 걸어왔던 그 길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정체

20 연극평론 통권 110호 2023 가을


성이 뭐였지 하고 한번 살펴보는 ‘온고지신’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굉장히 성공적인
태도가 저는 긍정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데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김말봉이라는 사람이
그래서 과거의 관객도 다시 한 번 환기가 되고 이런 소설을 썼다 그 지점에 머무르는 거예요.
새로운 관객들도 확인이 되는 그런 자리라는 좀 더 날카롭게 동시대적인 측면에서 이 사람
생각이 들었어요. 에 대한 인물적인 평가라든지 이것이 조금 더
이성곤 재공연이라고 해서 단순 ‘리플레이’하는 갔으면 굉장히 흡족했을 것 같은 그런 아쉬움
게 아니라 거의 창작에 가까울 정도로 새로 만 은 조금 있어요.
들고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즉각반응의 <육쌍
둥이>는 초창기에 공연을 못 봐서 영상으로 봤
거든요. 그러고 나서 이번 공연을 봤는데 완전 마곡시대, LG아트센터
히 다른 작품이었어요, 놀라울 정도로요. <통속
소설>은 초연과 비교하여 어떠셨나요? 이성곤 그럼 이제 다음 얘기를 진행하겠습니다.
배선애 초연과 재공연이 딱 1년 간격으로 진행이 LG아트센터가 마곡으로 옮기고 1년 라인업을
됐는데, 극장이 바뀌고 스태프가 붙어서 작품 구성했고, 지금 한창 공연이 되고 있습니다. 이
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최영주 어떤 스태프가 붙었어요? 최영주 <파우스트>랑 <차차차원이 다다른 차원>
배선애 무대, 음악 다 붙었어요. 초연 때는 없었어 (이하 <차차차>)를 봤는데요. LG아트센터에 대

요. 배우들이 알아서 하고 그러니까 뭔가 가내 한 연극 관객의 기대가 있는데요. 그것은 창작


수공업 같은 느낌이 초연 때의 느낌이었거든 을 하든지 아니면 해외 연극을 소개를 하든지
요. 근데 이번에는 무대감독부터 무대디자인,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것이 그동안 LG아트센터
음악 이게 다 들어왔어요. 그리고 더튠이라는 의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
뮤지션들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 남명렬 선생님 했던 것은 극장이 지닌 자본력이라든지 기획력
이 합류하시고 배우 두 분 바뀌고. 이런 기본 제 이 밑받침이 돼서 그런 연극사적인 기능을 개
작 세팅이 달라지게 돼서 작품이 달라졌어요. 별 극장이 담당했다고 봐요. 이사를 하면서 극
최영주 저는 이 <통속소설> 작품에서 김말봉이라 장은 굉장히 멋있어졌는데 극장이 29년 동안
는 알지 못한 과거의 작가를 불러들이고, 텍스 해온 역할에는 미흡하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
트를 소개하면서 그 텍스트가 가지고 태어난 요. 또 극장이 대중성으로 굉장히 많이 넘어온
문화적인 하나의 음악이라든지 시각적인 요소 것 같아요. <파우스트> 같은 경우는 잘 알려져
들이 같이 종합되어서 보이는 점이 굉장히 흥 있는 고전이기 때문에, 고전을 한다는 것은 이
미로웠는데요. 이 텍스트를 구성한 거잖아요, 제 연출가의 형식적인 미학을 관객과 소통한다
연출가가. 장면 구성을 흥미롭게, 재미있게 만 는 그런 의미 외에도 동시대와 어떻게 다리를
들어서 선생님이 얘기하신 대중성의 측면에서 놓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잘 만들어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보는데요. 그럼에도 불 서 화려하게,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는 그 지
구하고 과거의 인물을 현재에 불러들였을 때 점에 머무르고 있어요. 지금의 시점에서 동시
그 사람의 사실적인 것 외에 하나의 관점을 통 대와 연계하여 본다면 파우스트라는 노학자가
해서 이 사람에 대한 해석이 있어야 되지 않나 그레첸이라는 젊은 여자를 취한 것은 거의 성

좌담 21
폭력이죠. 텍스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굉장히 크고 그 텍스트를 다시 볼 수
있는 사회 현실이 굉장히 급박한데 현사회의 문제와 고전의 다리 놓기가 없는 상
태에서 스펙터클만 가지고 관객과 만나고자 한다는 것은 LG아트센터의 역할이 굉
장히 소극적이거나 퇴화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해요. <차차차
>도 공간의 실험을 표방했는데, 공간 이동 외에 내용이 너무 빈약했어요. 잠시 어
느 순간 세월호의 이야기가 떠올라 울컥했던 적이 있었는데, 너무 양식적으로 흘
렀어요. 관객을 같이 참여시켜서 춤추는 것 이런 것은 이미 익히 반복되어서 새롭
지는 않은 거구요. 공간 실험은 그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고 발견하는 데 있지, 이동
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LG아트센터가 이제까지의 관객이 기억하는 극장의
역사성을 되돌아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배선애 어쨌든 극장이 2개가 됐잖아요. LG가 마곡으로 가면서 <차차차> 같은 공연이
가능해졌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면에서는 극장이 2개인 장점이 있고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파우스트> 같은 경우에는 저는 선생님 생각에 동
의해요. 해석보다는 스펙터클이 강조되어 있었어요.
최영주 양정웅 연출의 연극에는 문화상호적인 공연 양식과 글로벌한 연극의 두 방향
이 있어요. 이제 전자를 버리고 글로벌한 연극으로 방향을 튼 것 같아요. 글로벌 연
극으로 넘어가는 그 첫 시점에서 했던 공연이 <페르귄트>였는데, 그게 굉장히 성
공적이었어요.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이후로 계속 방향을 못 찾는 것이 아닌
가, 글로벌 연극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고전은 동
시대성의 측면에서 탐색되어야 하고 그것은 내용과 양식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
야 해요. 내용을 바꾸고 번안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장센으로 언어의
의미를 보완하거나 넘어서서 동시대 관객과 소통해야 하는 거죠.

<유원> <싸움의 기술, ‘졸卒’>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


<이것은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모두에게>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외

이성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본 개별 작품들에 대한 얘기


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영주 앤드씨어터의 <유원>을 재미있게 봤어요. 이게 ‘영어덜트 소설 연극 만들기’
라는 목표로 주인공의 성장 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어요. 전윤환 연출의 하나의 변
신이죠. 전윤환 연출이 다큐라든지 장소특정 공연들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텍스트를 갖고 있는 연극도 잘 하는구나 하는 그런 발견의 기쁨이 있었어요. 그런
데 영어덜트 하면 성장이 이루어지는 소재가 되어야 하는데 예외적인 하나의 사
건을 배경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공감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내 이야기로서 느끼
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예외적인 상황에서의 성장이라는 것은 사실

22 연극평론 통권 110호 2023 가을


자아를 찾아간다는 정답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전윤환 연출가에 대한
반가운 마음이 있었던 한편, 공연에 대한 환희는 그다지 크지 않았어요. 그 점에서
는 오히려 이전의 소박하고 투박하게 빈 곳을 보여주면서 했던 공연들에서 환희를
느꼈다는, 조금 이상한 경험을 했어요.
이성곤 배선애 선생님은 어떻게 보셨어요?
배선애 저는 전윤환의 재발견.
이성곤 제가 어느 비평문에서 쓴 제목과 같네요. (웃음)
배선애 그래요? (웃음) 저는 작품을 너무 잘 따라갔던 이유가 그 주인공 배우가 너무
잘했어요. 연기가 좋았어요. 그 연기 때문에 잘 따라가게 되어서 전윤환 연출이 드
라마를 잘 만드는구나 재발견을 했어요. 그리고 배우가 정말 열심히 연기를 해서
관객을 끌고 가는구나 이러면서 봤습니다.
최영주 주인공은 심리적인 연기를 했고 그 친구는 굉장히 외면적인, 그래서 조금 결
이 다른 연기를 보여줬어요.
이성곤 다음으로 또 관심 있게 보신 작품이 뭐가 있을까요? <싸움의 기술, ‘졸’>은 어
떻게 보셨나요?
배선애 김풍년 연출은 오브제의 ‘대마왕’이에요. 이번엔 무대 천정에 매달린 수많은
줄자를 활용해서 다양한 이미지와 서사를 표현했어요. 무대는 기본적으로 장기판
인데, 그래서 장기판에서 가장 하찮은 ‘졸’의 기술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어요. 노인
들, 장기. 이미 잊힌 존재들을 무대로 불러오면서 그 역사와 맥락을 통해 진짜 싸움
의 기술이 뭔가를 이야기했어요. 배우들의 움직임과 합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
는지, 땀방울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장기처럼 잊힌 놀이를 주목한 또 다른 작품이
이철희 연출의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이하 <윷놀이>)인데, 작
년에 <맹진사댁 경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맹>으로 서울예술상도 받았잖아요.
이번엔 윤조병 선생님의 <윷놀이>라는 아주 짧은 작품을 선택했어요. 핵심이 윷놀
이라 그것을 연극으로 만든 장면의 아이디어가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작품 앞뒤에
장례식처럼 구음과 동선을 넣어서 인생이 한 판 윷놀이라는 연출의 시각이 강조된
특징도 있고요. 저는 그저 놀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 부분입니다만. 어쨌든 장
기, 윷놀이 같이 잊히고 사라진 것들에 대해 연극적 환기를 시켰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 모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최영주 <아이히만> 공연을 봤어요.
배선애 <아이히만>을 저는 작년 산울림소극장에서 초연을 봤거든요. 보고 나올 때
지적으로 굉장히 포만감을 느꼈던 작품이었어요. 이런 지적인 작품이 너무 오랜만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최영주 한나 아렌트는 악을 굉장히 분명하게 규정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 글은
악이라는 것은 모호하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한나 아렌트를 소재로 만든 희곡이라
서 그랬는지, 공연을 통해 아이히만의 입장을 굉장히 많이 대변해준다는 느낌을

좌담 23
받았어요. 그점에서 제목이 ‘아이히만’이라는 서 따뜻하고 몽글몽글하게 봤습니다. 퀴어 커
것을 상기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은 플이 부부가 되고 이별하고 다시 만나는 삶의
관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아 궤적을 그리는데, 과거와 현재가 계속 교차하
렌트의 대사 중,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듯한데, 는 구성이 인상적이었어요. 퀴어들의 삶과 사
“그것을 찾는 것, 행동하지 않는 것은 그것은 범 랑도 평범하다는 것을 배우들의 유쾌한 에너지
죄다”와 같은 대사는 좀 더 강조되야 하지 않았 로 잘 보여줬어요. 요 근래 인상적이었던 작품
나 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의미 해석의 포인트 은 <모두에게>라는 작품이었어요. 송김경화 연
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관객으로 이 엄청난 문 출이 쓰고 연출하고 출연까지 했어요. 송김경
제에서 아이히만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것은 굉 화 연출이 직접 출연한 건 처음 봐서 신선했습
장히 독특하고 이상한 경험이에요. 니다. 가출 청소년들의 주거문제를 화두로 삼
배선애 그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극으로 꾸 았는데 ‘모두’라는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구
며낸 거고 실제로 아이히만과 아렌트는 대화 성을 취해서 오히려 더 존재감을 키운 효과가
를 한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아렌트가 어쨌든 있었어요. 문제 제기하는 방식이 매우 연극적
아이히만을 관찰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렌트 이어서 흥미로웠던 작품입니다.
의 주장 이런 것들이 사실은 맨 뒷부분 독백이 이성곤 마지막으로 최근 문삼화 연출의 작품으로
나 이런 데에 들어가 있는 거고요. 『예루살렘의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는 단어가 배선애 문삼화 연출이 서울시극단 예술감독 이후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관객과 같이 함께 가는 에 굉장히 적극적인 연출 행보를 보여주고 있
작업이라서 아이히만의 대사를 보면 열 받을 어요. 작품에도 자신의 특색을 입히고 있어서
때가 꽤 있거든요, 관객도. 그래서 그 맥락이 관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란누란>은 초
객이 같이 공감하게끔 ‘악이라는 게 특별하지 연으로 산수유 류주연 연출의 공연, 그리고 이
않아, 악이라는 거 봐, 이 사람의 논리를 봐, 우 번 <누란누란>을 봤는데, 정말 자기 색이 강한
리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잖아’ 이런 작품이었어요. 이 작품이 교수들의, 지식인들
것들을 쭉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의 가식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어서 대사들
최영주 그 거리감을 갖고 공연이 보여지고 감상 이 진지해요. 그런데 그것을 굉장히 유희적으
을 하게 했어야 하는데 계속 쫓아가게 만드는 로 풀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런 인간 유형은 어
그 지점이 제 스스로 의아한 거예요. 디나 있구나 하는 유형적인 인간으로 보였고,
배선애 그랬군요. 김수현 배우가 아이히만을 정말 객관화도 잘 이루어졌어요. 자기 색깔을 적극
너무 아이히만처럼 해요. 적으로 입히면서 하고 싶은 거 하는구나, 극단
최영주 공연이 끝나면서 든 또 하나의 생각은 우 대표나 예술감독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자기
리나라는 이런 문제가 더 많은데 왜 우리는 이 작업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
런 얘기를 못 하고 있는 거죠. 그게 사실은 가장 에 이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역시 본인의
뼈저렸어요. 해석을 넣어서 베르나르다 집안의 비극이 무엇
이성곤 알겠습니다. 그다음 <이것은 사랑이야기 인지를 보편적으로 확장해서 보여줬어요. 어떤
가 아니다> 보셨나요? 무게 이런 것들을 다 덜어내고 자신이 하고 싶
배선애 네. 제목과 달리 사랑이야기였어요. 그래 어 하는 색깔들, 그런 걸 보여주는 게 작품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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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다르게 해석하는 그런 관점들로 표현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분이 앞으로도 궁금하고 기대되는 부분이에요. 수많은 전직 예술감독들 중에 가
장 적극적으로 연출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최영주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전반은 굉장히 분명했는데 후반이 모호해서 이게 해
석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사실은 했어요. 막내가 엄마가 그 애인을 죽이
지 않았는데 죽였다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막내가 자살을 하면서
다시 이 집안이 정말 상가의 분위기로 빠져야 하는데, 그래서 인물들이 막 꿈을 꾸
고 희망적이었다가 다시 상가로 되는 것이 기억 속의 텍스트인데요. 독자적인 해
석을 했어요. 생략한 채 사진 속으로 들어가서 집안의 과거사로 남은 거고 현대의
젊은이들이 사진을 보는 것으로 재해석을 했지요. 그러면서 텍스트가 현대적인 관
점은 갖게 되기는 했는데, 텍스트의 비극성은 굉장히 반감됐어요. 왜 이런 해석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배선애 이 시기에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왜 해야 되는가 하는 그 질문을 배우들
하고 굉장히 오랫동안 토론을 했대요. 토론을 해서 이게 여성의 문제, 가부장의 문
제로만 한정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최영주 사실 작품은 스페인 작품이에요. 농경사회, 가부장 사회의 전형적인 텍스트
인데 그게 무대에서 완전히 삭제되고 그냥 본능에 대한 얘기만 하니까 텍스트가
축소되죠. 지금 많은 곳에서 고전을 공연하잖아요. 근데 고전이라는 것이 보편성
인데 보편성이라는 것은 지금에도 그 문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생명
력을 지녀요. 고전을 하면서 보편성을 그냥 신뢰하고 그것이 지금은 무슨 의미를
갖고 어떻게 반복되는지에 대한 다리 놓기가 항상 없어요.
배선애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최영주 어려운 부분이죠.
이성곤 알겠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입니다. 10분의 1도 다루지 못할 정
도로 공연이 많았고 이슈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1년 후, 우리가 다시 좌담회를
갖게 될 때 오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서 그 사이 한국 연극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논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 이맘때에 다시 공
연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좌담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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