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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벙어리 삼룡(이) 의

장면 구조와 각색 의도 연구

1)김남석

<국문개요>
이 논문은 년 조선극장에서 개봉한 나운규의 영화 벙어리 삼룡 을
고찰한 연구로 현재 남아 있는 부분적인 장면과 관련 시나리오 그리고 원작
작품을 비교하여 벙어리 삼룡 의 경과와 구조를 재구하고 이를 고찰하려
는 목적 하에 집필되었다 영화 벙어리 삼룡 은 나도향의 동명 소설 벙어
리 삼룡이 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각색 과정에서 나운규의 의도가 짙게
반영된 작품이었다 이러한 각색 의도를 살피는 연구는 현재로서는 남아 있
는 장면을 재구하여 관련 시나리오 혹은 원작과 비교하는 연구 방법에 의존
할 수밖에 없다 비록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명확한 결론을 추려내기 어려운
상황이 도출될지라도 한국 영화사의 잃어버린 한 대목을 복원하려는 목적을
멈출 수 없다면 이러한 연구 정황 자체를 용납하지 않을 수 없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작품 필름 의 부재와 관련 자료의 부족으로 중단되었던 이러한 연
구를 시행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目次
1. 문제 제기와 연구사 검토
2. 벙어리 삼룡 의 시나리오 분석
2.1. 벙어리 삼룡 의 도입부와 인물 특성
2.2. 군중 씬(mob scene)의 창출과 그 효과
2.3. ‘귀동과
’ ‘삼룡의’ 갈등 심화
2.4. 화재 장면과 군중 씬(scene)의 분리
2.5. ‘아씨의
’ 생사 문제와 ‘삼룡의 ’ 자유 의지
3. 결론을 겸하여 : 원작 소설에서 각색 대본으로의 변화

부경대학교 국문과
1. 문제 제기와 연구사 검토

나운규 감독 각색 주연의 벙어리 삼룡 이 은 년 월 일 조선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조선 의 무성영화였다 벙어리 삼룡 은 류엽 시
인 총지휘 나도향 원작 전 권 분량으로 제작되었으며 나운규프로덕
션 제 회 작품이었다 나운규 벙어리 삼룡 역 를 비롯하여 이금룡 오
생원 역 주삼손 오생원의 아들 귀동 역 류신방 귀동의 아내 역 등이
출연하였고 윤봉춘과 엑스트라 여 명이 출연하였다 특히 이 작
품에서는 당시 조선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대규모 단역 배우들이 출연하
여 군중 씬 을 촬영하였는데 군중을 동원한 화재 장면은 인
구에 오랫동안 회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주목할 만한 특징과 인상을 지니고 있음에도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 에 대한 기존 연구는 매우 소략하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것은 필름이 부재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로 인해 벙어리 삼룡 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구한 논문을 찾기 힘든 형편이며 영화사적 기술 속에
서 주변적으로 언급되는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양적으로도 풍부하
지 않기 때문에 한국 영화사의 온당한 재구와 기술에 저해 요인이 되고
있는 형편이다 일단 기존 연구 중에서 주목할 연구를 중심 대목 으로 이
작품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정리해 보겠다
유현목은 벙어리 삼룡 을 무거운 봉건제도의 구습에 억눌려 온갖 시
달림과 천대를 받으면서도 주인집 며느리를 사랑하게 된다는 머슴의 심
리적 갈등 을 부각한 영화로 평가하고 그럼에도 흥행에 실패한 이유를

벙어리 삼룡 동아일보 년 월 일 면
생 고 도향 나빈 씨의 원작 벙어리 삼룡이 를 보고서 조선일보 년
월 일
고 나도향 원작 벙어리 삼룡 영화화 동아일보 년 월 일 면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 매일신보 년 월 일 면 서광제 조선
영화 소평 벙어리 삼룡 조선일보 년 월 일
명화에 숨은 로맨스 조선일보 년 월 일
예술영화로서 그 차원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종원과 정중헌도 벙어리 삼룡 의 내용을 봉건 지주 밑에서 머슴살이
하는 벙어리가 주인댁 며느리를 사랑한다는 내용 으로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요약에는 전근대적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영화적 의의에 대한 평
가도 곁들여져 있다
이러한 평가에 동조하는 연구자로 이영일을 들 수 있다 이영일 역시
벙어리 삼룡 이 나운규프로덕션의 번째 영화이고 나운규 영화로서는
드물게 문예영화라는 점을 특기했고 구형의 봉건적 지주 밑에서 일하는
머슴 삼룡이 주인댁 며느리를 사랑하는 내용으로 낡은 인습보다도 인간
성과 사랑의 진실성을 그려낸 가작 이라고 평한 바 있다 이러한 평가
들 는 한국영화사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을 생성시켰다
그러니까 나운규의 벙어리 삼룡 은 주인공의 신분이 하인이고 억압 받
는 처지라는 점 때문에 봉건적 인습에 저항하는 영화로 이해되고 또 공
인된 셈이다
사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
은 다소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하겠으나 더욱 주목되는 사안은 이러한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했을 벙어리 삼룡 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과 작품 분석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분석과 평가를 위해
상황이 허락하는 한에서라도 이 작품의 실상을 가급적 세밀하게 재구해
보고 그 의의를 따질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과연 시행했는
가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
로 가급적 관련 연구의 출발점부터 벙어리 삼룡 에 대한 접근을 다시
시도하고자 한다 더구나 벙어리 삼룡 에 대한 연구는 기본적으로 문예
영화의 초기 각색 과정과 그 의미에 대해서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
공하기 때문에 정체된 문예영화 연구의 현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
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현목 한국영화발달사 한진 면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년 현암사 면
2. 벙어리 삼룡 의 시나리오 분석

영화 벙어리 삼룡 의 필름은 남아 있지 않지만 영화의 근간이 되었


던 시나리오는 남아 있다 년 월에 개봉된 벙어리 삼룡 의 경우
년 월에 발행된 별건곤 에 그 시나리오가 수록되어 있다 물론
이 시나리오 형식은 현재 사용되는 시나리오 형식과는 차이를 보이는 것
만은 분명하다 별건곤 수록 시나리오는 당시 유행하던 독 서 물 형
식을 따르고 있고 영화 촬영을 위해 정제된 시나리오라기보다는 영화 대
본의 초기 형태인 시놉시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나리오는 개의 대목으로 분할되어 전재되어 있는데 이러
한 분할은 시나리오의 사건 전개와 장면 구성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
다 즉 전체 서사를 독립된 장면으로 구획하여 사건 의 단위와
전개 흐름 의 필요성을 감안한 설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개의 분재 단락을 일반적으로 시퀀스 로 범주화할 수 있겠다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의 도입부 시퀀스 는 다음과 같다

벙어리 삼룡 이 무식한 그는 부지런하고 진실한 것으로 세상을 대하며


주인 을 섬겨왓다 그러나 그의 주인은 그를 마소와 갓치 치부여 왓다
오생원의 외아들 귀동 이는 부모에게는 응석으로만 자라낫고 동리 노인
에게는 호래자식 친구에게는 놀림감 그러나 벙어리에게는 군주 와 갓치 강

벙어리 삼룡 과 벙어리 삼룡이 는 제목으로 혼용되었다 그러나 나도향의 원작


은 벙어리 삼룡이 로 발표되어 그 이후에 응용되었고 나운규의 시나리오와 영화
는 벙어리 삼룡 으로 대부분 표기되었다 다른 원고와 매체에 따라 이러한 제목이
일관되게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소설을 가리킬 때에는 벙어리 삼룡이
로 영화와 시나리오를 가리킬 때에는 벙어리 삼룡 으로 기록할 것이며 두 장르를
모두 가리켜야 할 상황에서는 벙어리 삼룡 이 로 표기하기로 한다
하고 엄하엿다 귀동이는 동리로 노름을 하러가기 위하야 아버지의 방에 드러가
돈을 훔치려다가 야단을 맛나고 나온다
벙어리를 때리면 다리고 가겟다
성악한 작란꾼들은 귀동이를 이러케 식키엿다 철업는 귀동이는 그 벙어리를
소나 말보다도 더 몹시 때렷다 그러나 근번부터 귀동이와 벙어리를 조롱하고 놀
려주는 것으로 자미잇게 아는 악소년들이 귀동이와 갓치 갈 리가 업섯다
벙어리 삼룡 의 인물 소개와 서사 배경 도입부

나운규는 원작의 중심 설정을 크게 변경하지 않았다 원작이 전제하는


것처럼 애초의 삼룡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하인으로 상전에게 무조건 복
종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반면 오생원의 아들 귀동 은 그 이름처
럼 귀하게 큰 인물로 부모에게는 응석받이이고 동네에서는 예의를 잃은
난봉꾼에 불과했다 마을 또래들은 이러한 귀동과 삼룡을 조롱하고 무시
했으며 심지어는 귀동으로 하여금 삼룡을 때리도록 종용했다 판단력이
부족한 귀동은 하인 삼룡을 마소처럼 다루었고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
해 삼룡에게 심한 폭력을 가하기 일쑤였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주인 귀동 의 처사 모욕과 매질 에 반항하지 않
은 삼룡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윤기정은 이러한 삼룡의 모습을 그리
는 작업에 반대하며 원작부터 반동적 인 색채를 지니고 있던 이 작품이
영화적으로 담보한 폐해가 막대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서광제 역시
이 작품의 실패는 원작의 취택에서 비롯되었으며 벙어리 삼룡을 주인에
게 충직한 하인으로 그려내는 일련의 과정은 긍정적이지 못한 영화화 과
정에 해당하고 그 결과 영화 벙어리 삼룡 은 아무러한 감흥도 주지 못
하는 영화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원작의 설정과 영화의 설정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원작에서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년 월 면


윤기정 영화시평 벙어리 삼룡 비판 년 월
서광제 조선 영화 소평 벙어리 삼룡 조선일보 년 월 일
도 귀동의 폭력은 여전하지만 그로 인해 삼룡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의
분 이 그 실체를 점진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원작은
귀동의 폭력에 의해 심리적 자극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점차 눈
을 뜨는 삼룡의 내면을 그려낸 반면 시나리오는 이러한 구성과 설정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귀동의 폭력은 여전하지만 삼룡의 자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원작 소설에서 삼룡의 내면을 들여다보
는 장치 기술 방식 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과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룬다
윤기정과 서광제는 소위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영화인 연대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삼룡 은 민중의 표상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
화 속에서 삼룡은 의식적 자각을 잃은 우매한 인물로 그려졌다고 판단내
린 것이다 특히 삼룡 이 주인인 오생원을 불길에서 구해내는 행위나 귀
동의 모욕을 감수하는 삼룡의 태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형을 그려내는 일 자체가 영화 제작 상 근본적인 문제
를 함축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원작 자체의 취택에서부터 장면
형상화와 인물 창조 원작의 인물 수용 에 걸쳐 이 작품의 한계가 뚜렷하
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영화평론가 윤기정은 나운규의
연기와 관련하여 대담한 가정을 내놓는다

벙어리 삼룡이 역으로 출연한 나운규는 기대한 것보다는 벙어리 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원작이 펄펄 날뛰어야만 성공할 나 군의 성격을
죽이고 만 것이다 학대받고 굴종하는 벙어리가 아니라 반항하고 날뛰는 벙
어리였다면 나 군 자신으로서 성공하였을는지 모른다 밑줄 인용자

윤기정의 가정은 벙어리 삼룡 이전에 나운규가 선보였던 연기와 캐


릭터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나운규는 활극배우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고 무성영화 시절부터 액션 동작 이 큰 과장된 연기로 관객들의 눈

윤기정 영화시평 벙어리 삼룡 비판 년 월


과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벙어리 삼룡
에서 삼룡은 이러한 이미지나 연기 스타일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캐
릭터가 아니었다 순종하고 수동적인 벙어리 역에서 과장되고 활극적인
연기를 강조하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어야 했으며 더구나 대사
전달력이 없는 벙어리라는 설정으로 인해 미묘한 감정 표출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벙어리 삼룡 은 무성영화여서 대사를 청각적으로 전달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윤기정의 가정은 삼룡이 봉건적 체제에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민중의 각성을 유도할 정도로 강력한 저항을 보이는 연기 스타일을 선보
일 수도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 신념을 은연 중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
니까 나운규가 수동적인 삼룡이 아니라 적극적인 삼룡을 창출할 수 있었
으며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원작의 반동적 색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
는 방편이었다는 무의식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나운규가 배우로서 해야 할 연기를 지적하기보다는 벙어리 삼룡의 캐릭
터가 나아갔어야 할 할 바를 연기의 측면에 전이시켜 평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벙어리 삼룡의 캐릭터가 거칠고 반항적이어야 한
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이에 맞추어 나운규의 연기를 재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 이전 나운규 연기는 주로 활극이나 과장된 액션에 맞
추어져 있었다 이러한 나운규 연기에 대해 평자들의 평가가 칭찬 일색은
아니었으며 윤기정 자신도 부정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윤기정은 나운규의 잘 잇거라 에 대해 어렴푸시 에 남는 것이라고
는 갑싼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억지로 을 맨들려고
애쓴 것 이라고 폄하하면서 이 작품을 보는 이들 우리 이 갑싼 눈물로
써 하고 잇는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어야 한다 고 충고한 바 있다

이순진 식민지시대 조선영화 남성 스타에 대한 연구 영화연구 한국영


화학회 면 심훈 조선영화인 언파레드 동광 년 월
노방초는 윤기정의 견해를 인용하여 이러한 비판을 시행한 바 있다 노방초 국외
자로서 본 오늘까지의 조선영화 별건곤 제 호 년 월 면
이러한 윤기정의 평가를 감안할 때 나운규의 연기 그러니까 과장되고
소영웅적인 연기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나운규
의 연기는 년대 조선의 대중들이 일시적으로 열광했던 과도기적 연
기 법 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이후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각광받거나 연
기법의 모범으로 평가되는 연기 방식이라는 할 수 없다 더구나 나운규는
발성영화가 아닌 무성영화에서 그의 연기 인생 대부분을 보냈다 그로인
해 나운규의 연기는 소리를 몸짓으로 대체하거나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야 할 시기의 연기법으로서의 특징을 강하게 담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벙어리 삼룡 에서 갑자기 이러한 연기를 옹호하거나 요구하며
이전의 연기가 부족했다고 타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되는 견해가 아
닐 수 없다 차라리 나운규의 벙어리 연기가 지닌 진정한 문제점을 지적
하는 것이 타당한 비판이었을 것이며 그것과 별개로 벙어리 삼룡의 캐릭
터에 대해 논구하는 것이 합당한 논리였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내적 논리를 감안할 때 나운규는 조용하고 순종적인 삼
룡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나 연기적 조율이 필요했을 것
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모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기
존의 활극적 연기를 억지로 누그러뜨리는 형태의 연기를 시행했고 이러
한 부자연스러운 억제는 윤기정 같은 평론가의 눈에는 차라리 이전 연기
의 부활이 나았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을 도출시키고 말았다 나운규의
연기가 어떠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더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남아 있는 자
료를 판단하건대 그는 강한 표정과 남성적 카리스마를 강조하는 소영웅
식의 연기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의 장에서 다
시 논의 그렇다고 수동적인 벙어리 상을 완전히 배제하는 식의 연기 변
모를 이루지도 못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벙어리 삼룡 에서 군중 동원 장면은 흥행 성패가 걸린 중대한 기획


전략으로 인지되었다 그래서 나운규 중심의 제작진은 신변의 안전까지
도외시하고 이 장면의 촬영에 임했다 군중 씬이 그동안 조선에서 산출된
영화들과 벙어리 삼룡 을 차별화하여 이 작품을 더욱 조선영화다운 영
화로 만들 수 있는 필수 요건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러한
군중 씬은 관객의 흥미를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졌고 나아가서
는 리얼리티의 확보와도 연관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지금까지 조사된 바에 의하면 군중들은 크게 두 개의 시퀀스에서 중용
되었다 그 하나는 결말부의 화재 시퀀스 였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논의
할 전개부의 혼인 시퀀스 였다 나운규는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여 잔치집
의 흥겨운 분위기를 핍진하게 묘사하고자 했다 윤기정 효봉 이 혼인집
에 모여드는 군중을 사용한 몇 장면만 은 다소 성공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러한 지적을 통해 혼인 군중 씬이 제한적으로나마 그 효과를 거두었다
고 판단할 수 있겠다

엇저면 저러케 입블까


신랑보아서는 앗가운 걸
신부는 두 살이나 더 먹엇대
아모리 입분들 소용이 잇나 과부집 살림이라 벌서 신랑집에서 오만냥
이나 주엇다는 데
이런 흉 저런 흉 말 만흔 동리사람 입술 끗헤서 귀동 이의 혼인식
은 끗이 낫다 다시 업슬 그희를 어든 동리의 작란 패들은 귀동이
를 잡아 내여 술집으로 끄을고 갓다
자기보다도 신부가 잘 생기고 똑똑하다고 비웃고 조롱하는 술 취한 작란
패의 말에 철업는 귀동이는 신부에게 대한 분한 마음과 증오가 생겻다 그

나운규는 군중 씬의 하나인 화재 장면 을 핍진하게 만들 요량으로 촬영에 임했다


고 술회한 바 있다 대담 삼천리 호 년 월 면
윤기정 영화시평 벙어리 삼룡 비판 년 월
래서 한방에 잇기를 실혀하고 트집과 심술로 안해를 구박하얏스나 온순한
안해는 남모르게 홀로 눈물은 흘릴지언정 일언의 반항이 업섯다 버릇 업시
자라낫고 철업는 귀동이가 안해를 미워하는 것이 결국은 집안의 화기
와 우슴을 쫏차바렷다
혼인 시퀀스 와 군중 장면의 창출 전개부 밑줄 인용자

이 시퀀스에서 우선 주목되는 지점은 앞부분 네 문장으로 결혼식 혼


인식 하객으로 등장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을 옮겨온 대목이다
큰 따옴표로 표기 하객들은 응석받이 귀동이 참한 여인을 재력으로
얻어 신부로 맞이하는 것에 대해 일제히 흉을 보고 있다 동리사람들은
귀동이의 모자란 구석을 비웃고 새신부의 불쌍한 처지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리사람들의 언변과 모습은 군중 씬으로 처리되어야 했
고 그 결과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군중 씬 다음에 오는 귀동의 내면 풍경 아내에 대한 증오심 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그 근거는 생의 논리에서 찾을 수 있다 생은
처음 혼인한 내외가 그다지 일 안부터 싸움질만 하는 원인 즉 각색 상
인시덴트가 좀 더 분명하게 화면으로 표현되지 못 했다고 지적했다
위 시나리오에서 그 부분을 찾으면 동네 사람들의 흉보기 장난 패의
조롱으로 야기된 귀동의 증오 에 해당한다 위의 시퀀스를 통해 혼인날의
흥겨움과 귀동의 편협함이 대비되면서 부부 간의 갈등 요인이 대두되고
장난 패에게 아내에 대한 칭찬을 전해들은 귀동의 내면에 분함 이 파급
되면서 이러한 갈등이 증폭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퀀스에서 귀동의 증오는 그 변화를 시각적으로 드러낼 유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별건곤 수록 시나리오는 인물의 대사를 소설 독물 의 대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현대 시나리오는 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그 형식적 완비를 이루게 되
기 때문에 년대 산출된 대본에서는 대화를 인물 별로 처리하지는 못했다
생 앞의 글 년 월 일
효한 방식을 동반하고 있지 못했다 별다른 시각적 표출 방법 없이 내면
심리를 지시하는 암시적 어구로만 묘사되어 있다 그러니까 군중의 흉은
대사로 장난을 거는 일행은 행동 귀동을 끌고 나가는 을 통해 장면으로
구현될 사건을 동반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 귀동의 내면에 파생되어
야 했을 증오 를 실질적으로 납득시킬 방법이 부재했던 셈이다
결국 집안의 화기와 웃음 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각적 단
서가 부족했다고 해야 한다 생이 인시던트 의 문제를 지적한
까닭은 해당 장면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대본상에는 부재했기 때문이다

안해를 원수와 갓치 녁이는 귀동이는 동리 작란꾼과 더부러 매일과 갓치 술


집으로 소일터를 삼엇다 충실한 삼룡이는 한가한 틈을 타 마루 끗 양지 뚝에
안저서 물를 깍거 인형을 만들면서 어엽부고 온순한 안해를 구박하는 젊은 주
인의 심리를 알어내어기에 정신을 빼앗기여 잘 만드는 칼에 손을 비엿다 다정
한 아씨는 뛰여나려와서 피나는 손가락을 동여주엇다 귀동이가 술이 몹시 취
하야 방천 에 넘어저서 정신을 일헛다는 말을 듯고 삼룡이는 한 다름에
뛰여가 젊은 주인을 등에 업어다가 자리에 누엿다 학대와 천대를 바더가면서
도 그래도 그 젊은 주인을 보배와 갓치 생명과 갓치 위하는 충실한 삼룡이 자
기를 원수와 갓치 미워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지성스러운 안해 그는 기특한 삼
룡이에게 조고마한 주머니 하나를 선물로 주엇다 생후에 처음 가져보는 고흔
주머니가 삼룡이게는 그지 업시 깁벗다 그러나 이 주머니가 화근이 될 줄이야
아내를 미워하는 귀동의 태도 격화 밑줄 인용자

반면 아내를 증오하는 귀동의 심리 태도 는 더욱 강화되어야 했다 귀

원작 소설에서 이 대목은 신랑과 가족들의 다툼으로 표현되었다 신방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신랑을 설득하면서 가족들과 아들 신랑 의 마찰이 본격화되었고 이러한
마찰을 시집 온 아내 신부 탓으로 돌리면서 신랑의 욕설과 매질은 더욱 커졌다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한국장편문학대계 성음사 면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동은 아내를 멀리하지만 아내는 이러한 귀동을 원망하지 않고 있다 삼
룡의 충성심도 변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귀동을 주인으로 여기고 그
의 충실한 종이 되어 젊은 주인을 돌보는 일에 열중한다 이처럼 아내와
삼룡은 선 순종 의 화신이고 충실한 심성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귀동을
대하는 아내나 삼룡의 태도는 변함이 없는데 이러한 단선적인 캐릭터 창
출에 대해 서광제는 벙어리 삼룡은 인간이 아니었다 고 단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이지와 감정을 잊어버렸 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
의 심성을 그린 캐릭터로 삼룡을 간주할 수 없다는 견해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광제의 견해는 재고를 요한다 삼룡이 처음에는 귀동
에게 변하지 않은 마음을 품고 일관되게 행동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에서
삼룡은 귀동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광제는 영화
초반의 설정에 지나치게 침윤한 나머지 삼룡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려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삼룡이 오생원에 대해서는 견마지로를
다하는 점에 대해서는 서광제의 지적을 돌아볼 필요는 있겠다
나운규는 결말부에 나타날 삼룡의 변화를 납득시키기 위해서 플롯 상
에서 주머니 를 주목하도록 종용한다 주머니가 아내에게서 삼룡에게 전
달되도록 플롯을 조정하여 남편 귀동이 두 사람을 오해하고 두 사람을
더욱 못살게 괴롭히는 설정을 만들어내었다 생의 지적대로 귀동이 아
내를 미워하는 최초 원인은 불분명하다고 해야겠지만 작품의 중반을 넘
어서면서 감독은 아내의 친절을 불미스러운 관계로 착각한 귀동의 오해
로 그 원인을 대체하는 서사적 설정을 마련하기는 한다 그러니까 귀동
아내 벙어리 삼룡의 삼각관계를 설정하여 귀동과 대결하는 삼룡의 서사
적 위치를 지정한 셈이다
이러한 설정에 대해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평론가들은 그 가치를 폄하
했고 불분명하고 무목적적인 플롯이라는 견해를 교정하는 근거로 간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벙어리 삼룡 같은 세상일에 무지한 캐릭터에서 이러

서광제 조선 영화 소평 벙어리 삼룡 조선일보 년 월 일


한 오해와 착각은 갈등의 시발점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는 있다고 보아야
한다 벙어리 삼룡이 주인아씨의 친절에 감동하고 그러한 친절을 무시하
고 격하시키는 주인 귀동에 대해 의분을 쌓아나갈 계기와 명분이 필요했
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삼룡의 계급적 속성을 무시하고 강한 살의와 적
대감 그리고 아씨에 대한 사랑을 갑작스럽게 표출하기에는 그 삼룡이 속
한 사회적 위치가 극히 미약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동을 주인으로 섬기는 삼룡에 비해 귀동은 삼룡을 미물로 간주하고


괴롭히는 억압자의 형상을 띠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벙어리 삼룡 의
영화화면 중에는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도록 하는 화면이 남아
있다 남아 있는 화면과 관련 시나리오 대목을 비교하여 살펴볼 수 있다

삼룡이는 주인아씨가 준 주머니를 차고 단이


며 자랑을 하엿다 말거리를 작만하려는 동리의
녀편네 온 동리가 수군거리기 시작하얏다 이
말을 드른 귀동이는 노기가 불갓치 닐고 분함을
참지 못하야 삼룡이를 죽도록 따리고 주머니를
빼아슨 후 안해를 두드리며 사실을 자백하라고
맛치 큰 죄인을 달으는 것 갓치 하엿다 그러나
삼룡이는 무슨 까닭인지 알어내기가 어려웟고
구박을 당하는 주인아씨가 불상하고 가엽슬뿐
이엿다 귀동이의 횡폭 한 짓을 보고 잇든
삼룡이는 참다 못하야 긔절한 주인아씨를 빼아
서 안고 나와 겨우 그 당장은 모면은 식엿다
귀동이가 안해를 의심하는 도 는 놉핫다 그
날부터 삼룡이는 내정 에 그림자도 못 빗
치도록 엄한 분부가 나렷다 밑줄 인용자
아내와 삼룡을 의심하고 폭행하는 귀동 삼룡을 괴롭히는 귀동

우편 화면에는 툇마루가 인상적인 가정집이 배경으로 나타나고 섬돌


아래 삼룡 나운규 분 이 쓰러져 있다 그 앞에는 권위적인 몸짓으로 삼룡
을 무시하듯 내려다보는 젊은 남자 귀동 이 서 있다 삼룡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손을 뻗어 주인의 발을 잡고 있다 발을 잡는 필사적
인 행동은 젊은 주인 에게 간절하게 애원하는 삼룡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삼룡은 주인으로 하여금 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은연중
에 제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삼룡이 제지하려는 주인의 다
음 행동은 주인아씨 귀동의 처 에 대한 폭력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신은 주인의 폭력에 쓰러졌지만 주인아씨마저 쓰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충직함이 주인의 발 목 을 잡고 애원하게 만든 것이다
시나리오 상에서 이와 유사한 대목을 찾아보면 마을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아내와 삼룡을 문초하는 대목이 근사하다고 하겠다 좌편에 인용된
시나리오의 밑줄 친 부분은 위 우편 화면에 대응하는 대목이라고 할 것
이다 소문을 듣고 화가 난 귀동의 매질에 삼룡은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
하지만 귀동이 주인아씨 귀동의 처 를 때리려고 하는 행동을 끝까지 만
류하려 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 당시 동대문에 만들었다는 세트와 화면의 배경으로 보이는
집도 이러한 관찰을 뒷받침한다 목조로 세트가 축조되었다는 진술도 일
치하고 내정으로 보이는 구도도 대체로 부합한다 그러니까 삼룡은 내정
을 가로막고 쓰러져 아씨에게 가하려는 귀동의 폭력을 가로막는 상징적
보호 행위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이러한 화면 속의 구도는 권력자의 형상과 희생자의 피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면 내에서 사회적 신분이 높은 귀동은 화려한 복장을 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반면 바닥에 쓰러진 삼룡은 기운 옷을 입고 허름한 신
발을 신은 채 주인의 발목을 잡고 간청하고 있는 약자의 행색이다 카메
라는 약간 부감 으로 쓰러진 삼룡의 전신을 포착하고
있고 매몰차게 등을 돌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귀동의 자세를 상대적으
로 강력하게 보이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러한 부감의 카메라 각도가 쓰러
진 상대를 작고 미약하게 보이는 효과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벙어리 삼룡 에서 위 우측 화면은 신분의 고하와 폭력의 유무를 보여
주는 상징적 구도를 담아내고 있다 게다가 이 화면은 귀동과 삼룡의 갈
등이 증폭되는 기로에 선 장면으로 여겨지며 결말에서 삼룡이 귀동을 배
척하는 심리의 변화의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다 이러한 측면에
서 갈등의 핵심이자 결말의 배경이 되는 화면으로 시나리오의 위기를 형
상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벙어리 삼룡 은 그때까지 조선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군중


씬과 화재 장면으로 화제를 낳은 작품이었다 비록 흥행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과감한 영화적 시도는 당시 조선 영화계와 관객들을 주목하도
록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화재 장면은 여러모로 논란이 되는 장면이었다

내여쫏긴 삼룡이는 잘 곳도 업고 먹을 것도
업섯다 그러나 오즉 염려되는 것은 불상한 아
씨 하나뿐이엿다 굼주린 배를 안고 종일토록
돌아단엿스나 원통하게도 학대를 당하는 아씨

죠셉 보그스 이용관 역 영화보기와 영화읽기 제 문학사 면


가 잇는 곳에서 더 멀리는 갈 수가 업섯다 귀
동이의 발길에 화로 가 업흐러저서 집에
는 불이 붓기 시작하엿다 집안에는 아모도 업
다 술 취해 잠자는 귀동이 부자와 죽기를 결심
하고 불속에 안저 잇는 오생원의 며누리 외에
는 화염은 충천 하고 동리는 수라장
이 되엿다 그러나 불속에서 잠들어 몰으
고 죽기를 결심하는 세 을 구해내랴는 사
람은 하나도 업섯다 타오르는 불길을 이
는 보앗다 밋친 듯이 뛰여들어 을 해
냇다 밑줄 인용자

화재 속으로 뛰어드는 삼룡 결말부 삼룡을 만류하는 사람들

좌편 시나리오에서 밑줄 친 대목은 우측 화면과 상통하는 대목으로 판


단된다 우측 화면에서 삼룡은 오생원의 집 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이를 만류하고 있다 화면에는 불이 난 흔적
이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아 화재 상황에 전반적으로 부합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불이 난 장면을 별도로 촬영했다는 당시 증언 회
고 을 참조하면 오생원의 집으로 들어가는 삼룡의 행동을 만류하는 군
중 장면과 화재 장면을 분리해서 촬영했다고 이해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삼룡이나 오생원 집 가족을 제외한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우측 화면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벙어리 삼룡 은 화재 장면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지만 촬영 준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이 화면에서 삼룡의 뒤편으로 보이는 집은 귀동에게 매를 맞던 내정과 다른 경관
을 보여준다 그 외관을 고려하고 다른 남자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외채 사랑
채 의 모습으로 판단된다
대담 삼천리 호 년 월 면
비와 실제 실행 사이에서 다양한 미숙함을 숨길 수 없었다 조선 영화계
자체가 이 낯선 시도에 대한 노하우나 심리적 준비가 부족했다고 해야
한다 나운규와 유신방의 몸에 불이 붙어 생명의 위협까지 초래했다는
위험 이외에도 엑스트라를 많이 쓴 것을 자랑시키기 위하여 불이 나서
남들이 야단인데 이나 되는 중늙은이들이 천천한 보조 로 걸어
가는 것을 길다랗게 삽입한 장면의 부조화도 이러한 미숙함에 포함된

화재 장면과 군중 장면의 결합에 대해 지적한 다른 평가를 보면 불난
데 뛰어가는 군중과 한 군데로 모여든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는 어색하였
다 는 지적이 나타난다 윤기정의 경우에는 군중을 촬영한 씬과 화재
장면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부조화가 특히 눈에 들어왔던 셈이다 그러니
까 화재 장면과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군중 씬이 지나친 비
중으로 함께 편집된 것이다
그렇다면 위 장면 우편 화면 이 군중들의 장면으로 포착되지 못하고
삼룡과 두 명의 마을 사람들이 다인 쇼트 화면 좌측에 엎드린 사람까지
포함하면 네 명 로 촬영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체적인 촬영 계
획상으로는 대규모의 군중을 동원하여 화재 사건의 핍진성을 높이려고
했지만 어떠한 경우에는 군중과 상황이 분리되면서 더욱 어색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군중 씬에 도전한 첫 번째 실험자 나운규
에게는 불가피한 과정이기도 했다
현재 남아 있는 화면에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삼룡과 이를 제지하는 사
람들 마을 사람들 의 행동이 정확하게 포착되어 있다 그리고 삼룡의 좌
측 그러니까 화면의 좌측 하단에는 사람의 옷자락으로 보이는 하얀 물체
가 포착되어 있다 정황으로 볼 때 사람이 쓰러져 있거나 웅크리고 있는
정경으로 판단되는데 화재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거나 구출되어 나온 사
람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에 일치하는 사람은 오생원 이다 만일 웅크

서광제 조선 영화 소평 벙어리 삼룡 조선일보 년 월 일


윤기정 영화시평 벙어리 삼룡 비판 년 월
린 인물을 오생원으로 간주한다면 위의 화면은 오생원을 구해내고 다시
불길로 들어가는 장면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삼룡의 다급한 표
정에서 다시 불길로 들어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담겨 있게 된다 그 이
유는 그때까지 불길 속에 갇혀 있는 한 여인 때문이었다
이 화면이 어떠한 경로로 세상에 남아 있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
되지 않았으나 삼룡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씬이라는 사실에 입각하면 적
지 않은 의미를 파생시키는 자료라고 하겠다 그러니 이 화면을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겠다 이를 위해 당시 촬영 상황을 되짚어 보자

온 가옥이 타는 모양은 연막을 사용해서 만들었지요 그런데 그때 혼난


일이 있었지요 집을 짓되 종이와 헝겊으로만 형 을 만들면 너무 빨리
불에 타버릴까 저어하여 그 뒤에다가 두 치 널판짱을 대이고 그리고 석유
한 통을 사다가 모두 골고루 뿌렸지요 아무쪼록 오래오래 두고 골고루 붙
으라고 그뿐더러 그 장면만은 아주 핍진하게 만들 생각으로 내 몸에 실지
로 불이 달리는 것을 박으려고 그래서 솜옷을 지어 입은 그 위에다가 나도
석유를 잔뜩 쳤지요 그런데 그 장면은 안방에서 이 불난리에 울며 부르짖
는 여자를 내가 뛰어 들어가서 구해 가지고 옆구리에 끼고 달려 나오는 대
목인데 이걸 좀 보세요 글쎄 불을 붙였더니 예상과 어그러져 아주 일시에
화약이 폭발하듯 탁 붙겠지요 내 전신에도 빨간 불길이 붙었고 나는 크게
화상을 당했지요 그 여자도 머리가 타고 젖가슴이 타고 야단났지요

세트에 실제로 화재를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나무와 석유가 어


울리면서 촬영장에서의 화재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순식
간에 번져간 불로 인해 나운규와 유신방을 부상을 입었고 촬영장은 아수
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화재 장면 촬영 시 혼잡하고 위험했던 상황
으로 인해 화재가 일어난 집 내부를 계획대로 촬영할 수는 없었을 것으

대담 삼천리 호 년 월 면
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발견된 자료에도 화재를 외부에서 촬영했다는 점
에 대해서는 일정한 언급이 있지만 실제로 일어난 화재 상황을 내부에서
촬영했다는 기술은 찾기 힘들다 그러니까 당시 나운규는 불난 집을 보여
주는 마스터 쇼트 가 아니면 불로 뛰어들기 직전의 삼
룡의 모습을 그려내는 선에서 실제 촬영을 마무리해야 했을 것이다 좌편
의 시나리오 내용과는 별개로 남아 있는 화면 우편 은 그러한 속사정을
담고 있다고 해야 한다

나도향의 원작 소설 벙어리 삼룡 에 대한 해석 중에는 심각하게 엇갈


리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 부분은 소설의 가장 마지막 대목에 걸쳐 있다
구체적으로 논란이 되는 구절은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내려 놀 때는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는 서술이다
이 서술에 대해 평자들 대부분은 삼룡이 아씨를 구하고 죽은 것으로 해
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에서의 그 를
삼룡 으로 보는 해석이다
하지만 몇몇 접근에서는 삼룡과 아씨가 함께 죽은 것으로 결론짓는 경
우도 있다 이러한 해석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는 목숨이 끊어진 뒤
였다 에서의 그 를 아씨 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먼저 기
술된 그 색시 를 그 녀 로 다시 지칭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측면도 내장하고 있다 왜냐
하면 이 문장을 그러한 해석으로 풀면 그 색시 를 내려놀 때는 그 색시

마스터 쇼트는 씬 전체가 파악될 수 있도록 가급적 시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전체를 화면 안에 담으려는 의도를 담은 쇼트를 뜻한다
나운규는 연막 으로 외관 촬영 계획을 세웠다고 회고한 바 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권 지식산업사 면 김정희 나도향 소설에 나타
난 전망과 서술의 신뢰성 고찰 벙어리 삼룡이 를 중심으로 한민족어문학
호 한민족어문학회 면
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라는 식의 진술이 되는데 이러한 진술은
매우 어색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작에서 화재 대목을 보면 그 는 일관되게 벙어리 삼룡 을 지칭
하고 있고 주인아씨를 지시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색시 로 표기하고 있
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률적인 지칭 방식 그 삼룡 을
어기고 해당 문장에서만 그 가 색시 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되었다는
식의 해석도 그다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가 그녀 라는 해석을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원작의 텍스트는
두 사람의 죽음을 사려 깊게 암시하고 있기는 하다 원작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자 두 사람이 산화하는 대목을 인용 범위를 넓혀서 다시 옮겨 보
겠다

그는 색시를 안았다 그리고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나갈 곳이 없었다 그


는 하는 수 없이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몸이 자유롭지 못
한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느끼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
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 하였다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내려 놀 때는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
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
다 밑줄 인용자

삼룡은 불길에 죽으려고 작정한 색시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안고 길을


찾고 있지만 쉽사리 나갈 수 있는 곳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생원
집을 에워싸듯 방화가 일어난 까닭이며 이미 불길이 거세져서 탈출로가
봉쇄된 까닭이다 외부에서 일어난 불은 내부로 옮겨 오고 있는 상황이었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한국장편문학대계 성음사 면


고 위 인용 텍스트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 듯 삼룡의 탈출 가능성
을 희박하게 기술하고 있다 더구나 삼룡은 색시를 찾기 위해 집 여기저
기를 돌아다니다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
다 머리와 왼팔에 부상을 입었고 점차 몸이 움직이지 않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텍스트의 상황에서 색시를 완전하게 구해내고 삼룡만 죽었다
는 해석은 현실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무리한 해석보다는 두 사람
이 결국 화마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집안 어딘가에서 불타 죽을 수밖
에 없었다고 보는 편이 온당한 해석일 것이다 그러니 불에 갇혀 탈출을
포기하고 색시를 내려놓을 때 그는 죽어가고 있었고 곧 색시 역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정황은 애초 삼룡이 불을 지르려고 할 때부터 계획된
것이기도 하다 오생원 아들로 대변되는 지배자들의 횡포에 격심하게 분
노한 삼룡은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
을 알았다 고 결심하고 방화를 실행했는데 없애야 할 모든 것 에는 절개
를 잃은 여자로 치부되어 오갈 곳 없게 된 색시 처지 도 포함될 수 있다
무지에서 각성한 삼룡은 자신이 사모하는 여인이 더 이상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처지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 역시 그녀 옆에서 죽기를 희
망했다고 볼 여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측면에서 보면 그는 방화
의 끝에서 자신과 여인 그리고 부당한 주인이 함께 산화되기를 바랐는지
도 모른다 이 대목을 각색한 시나리오의 대목은 다음과 같다

불길은 더욱 맹열하여젓다 불상한 아씨를 겨우 구해 내엿스나 삼룡이는 인


정만코 온순한 아씨 자기를 늘 위해주든 그 아씨의 은혜를 목숨으로 갑펏다
밑줄 인용자

아씨 를 구하지만 자신 을 구하지는 못하는 시나리오의 삼룡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에서는 이 마지막 장면을 일반적인 시각으로
해석했다 삼룡이 아씨를 구하기는 하지만 자신을 구하지는 못하는 결말
을 따른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을 돌봐주고 따뜻하게 대우해 준 은혜를
기억하고 목숨을 바쳐 구해내는 결말을 선택한 셈이다
이러한 결말은 말도 못하는 벙어리인 삼룡의 비통한 일생을 눈물겨운
동정으로 묘사 해내는 이 영화의 창작 의도를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삼룡의 애절한 죽음은 그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비참하게 보이도록 유도
하여 관객들의 정서적 몰입을 자극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었
다 그래서 윤기정이나 서광제는 이러한 삼룡의 캐릭터 의도된 작위성 에
대해 비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은 이러한 감성
적 몰입을 중시하는 결말을 선택했다 벙어리 삼룡은 이성적 비판의식을
지닌 이들의 행동에 걸맞은 인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정서
적인 대중들의 반응을 염두에 둔 인물로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삼룡의 변화는 원작의 다음 대목을 비교하면 그 차이를 분명하
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란 것을 알았다 그는 모


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밤은 깊었는데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개 짖는 소리뿐이 들린
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있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
려고 준비하여 놓았는지 집 가장자리로 쭉 돌아가며 흩어 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붙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며는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
다 불은 마치 피 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먹은 요마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 버리었다 이와 같은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 가
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낮에 이 집을 쫓겨난 삼
룡이다 밑줄 인용자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앞의 글 년 월 일
나도향의 원작에서 벙어리 삼룡은 의식적 각성을 먼저 이루고 난 이후
그 결과로서 방화를 결행했다 오생원의 집에서 쫓겨난 삼룡은 이전까지
자신을 얽어매고 있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원수로 오생원 일가를 대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러한 일가에 대한 보복이자 반항으로 방화를 계
획하고 저질렀다 그러니까 각성이 선행했기 때문에 행동으로서 방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삼룡의 결행이 다분히 의도적이
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삼룡의 각성과 그 결과로써의 결행 선후 인과 관계
은 시나리오 의 설정 에 의미 있게 반영되지 않았다 자연히 방화는 삼룡
의 선택일 수 없었고 삼룡은 우연히 일어난 화재를 틈타 위기에 처한 아
씨를 구하는 인물로만 변경 제시될 따름이다 그러니까 삼룡의 변화를 통
해 현시되어야 할 민중의 의식적 각성 역시 소략하거 소거될 수밖에 없
었으며 원작에서 주체적 저항의 불길로 타올랐던 방화라는 상징적 의미
가 아예 탈색되고 만다 삼룡이라는 캐릭터는 비판적 이성을 회복해야 할
민중의 표상이 아니라 과도한 정서적 몰입 그것도 감상적인 영웅 행위의
실현 에 유도하는 정념의 화신으로 국한되고 말았다 년대 당대 평가
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각색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시나리오의 이러한 각색 방향은 벙어리 삼룡 의 의의와 가치를 상당
부분 훼손시켰다 원작은 화자를 통해 삼룡의 행동을 암시하고 그 의미를
상기하도록 유도했지만 이러한 원작에 대한 분명하지 못한 이해로 인해
시나리오는 그 저의를 잃어버리고 이 영화를 단순한 연애물로 격하시키
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지켜 본 윤기정이나 서광제는 이러한
해석을 묵과할 수 없어 이 지점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남겼다 사실 그들
도 원작 소설 벙어리 삼룡이 에 대해서는 적확한 이해에 도달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민중적 자각의 생략 소거 문제를 원작 차원의 문제로
돌리고 말았다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한국장편문학대계 면


하지만 원작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한다면 벙어리 삼
룡 은 문예영화로의 각색 과정에서 작가의 의미 있는 전언을 일부 망실
하고 각색자의 해석에 치우친 영화로 남았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 것이
다 엄격하게 말할 때 각색자의 의도가 반드시 원작자의 의도를 따라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각색 과정에서 간과한 해석이 작품 해석의
본질을 파괴하거나 훼손했다면 정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나운규의 각색 작업 은 벙어리 삼룡 의 심층적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며 현재 남아 있는 시나리오 두
장의 사진까지 포함 는 이러한 약점을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3. 결론을 겸하여 : 원작 소설에서 각색 대본으로의 변화

영화 벙어리 삼룡 에 나타난 각색의 문제를 더욱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일단 소설 벙어리 삼룡이 는 인칭 화자가 벙어리 삼룡의 사연과
죽음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언뜻 보면 전지적 작가가 사건 전
반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작품 내 화자는 대 중반의 나이로
삼룡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소개하는 제한적 시점의 나 이다 이 나 라
로 인해 삼룡은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정희는 이러한 화자 나 를 중
심으로 소설 벙어리 삼룡이 의 해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삼룡은 자신의 굴레가 온전히 자신에게 속함을 인지하고 있다 삼룡의 비


극은 태생으로 인한 것으로 나 라는 서술자의 의식 속에는 삼룡의 신분과
장애가 불가항력적인 천형이라는 보편적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일제의 압박과 핍박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좌절과
절망을 반영하고 있다

김정희 나도향 소설에 나타난 전망과 서술의 신뢰성 고찰 벙어리 삼룡이 를


중심으로 한민족어문학 호 면
이러한 해석은 소설 벙어리 삼룡 에 대한 기존 인식 보편적 견해 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동시에 영화 벙어리 삼룡 년 나운규 감독 에
대한 평가와도 상통하는 바가 있다 연구사 검토를 통해 이미 정리했듯
영화 벙어리 삼룡 에 대한 기존 영화사적 기술이 수용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니 논점은 이 영화사적 서술이 지니는 타당성에 맞추어져야 할 것
이다 적어도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에서 이러한 기존 서술에 대한 문제
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에 비록 필름은 남아 있지 않아 영화상으로는 불
가능하다고 해도 이러한 평가는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
니까 나운규가 이 영화를 통해 구현하려고 한 궁극적 의도 벙어리 삼룡
을 통해 일제의 압박과 핍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조선인의 현실을 그려내
고자 했다는 견해 는 불길로 휩싸이는 오생원의 집에서 검증될 수 있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있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


려고 준비하여 놓았는지 집 가장자리로 쭉 돌아가며 흩어 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붙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며는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
다 불은 마치 피 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먹은 요마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 버리었다

위 인용문에서 밑줄 친 부분만 다시 옮겨 보았다 이 대목은 오생원의


집이 화염에 휩싸이는 정황을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목을 해석할
때 불을 미리 놓으려고 준비하여 놓은 주체를 벙어리 삼룡으로 이해하
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오생원 집에서
발화한 불을 특정인의 방화로 단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관련 대목을 묘사
할 때 그 불에 담긴 의미를 고의성 으로 몰아가고자 하는 서술자의 의도
가 짙게 담겨 있다고 해석되어 왔다
전술한 대로 소설 벙어리 삼룡 이 은 나 라는 관찰자 서술자 에 의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한국장편문학대계 면


해 관련 사연이 전달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불 에 대한 이러한
해석 역시 나 를 거쳐 독자에게 전달되는 방법과 수순을 밟고 있다 창작
자 나도향은 매개자로서 내포 화자 격 나 를 내세워 삼룡에게 방화 의혹
을 투영시킬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외부의 불과 벙어리 삼룡의 내면에 존
재하는 심리적 불 길 과의 연관성을 상정할 수 있었다
가령 위의 인용 대목에서 피 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먹은 요마 를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불길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매질에 피를 흘리고
살점이 떨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쫓겨난 삼룡의 육체와 참담한 심정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해 삼룡의 내면에서 복수
와 혁명의 불길이 저절로 솟아오른 형상을 소설에서는 문자로 최대한 비
유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 대목에 대한 해석이 급격하게 변화한다 각색자
이자 연출자인 나운규는 이 대목에서 방화의 주체를 삼룡 이 아닌 귀동
으로 변모시켰다 이러한 변화는 작품 해석에 대한 현격한 차이를 유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화재 방화 에 투영될 수 있는 누군가의 숨겨진
의도가 텍스트에서 말살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 없이 화
재 불길 의 고의성이 사라지고 우연적 설정 위험 만 남았다면 적어도 해
당 시나리오는 원작의 방화 불길 가 함축했던 의미 망 를 제대로 살려내
지 못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귀동이의 발길에 화로 가 업흐러저서 집에는 불이 붓기 시작하엿다


집안에는 아모도 업다 술 취해 잠자는 귀동이 부자와 죽기를 결심하고 불
속에 안저 잇는 오생원의 며누리 외에는 밑줄

삼룡이 방화의 주체가 되지 못한 이유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따져볼

흥미롭게도 화재로 내면의 의지를 강화하여 드러내는 인물은 오생원의 며느리이


다 그녀는 화재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죽겠다는 결심을 시행하고 있다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수 있다 가장 외적인 이유는 검열 일 것이다 삼룡의 방화는 위험한 행
동으로 간주될 여지가 크고 이를 경계하는 당국의 검열을 통과하기 어렵
다는 자체 검증 논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 또한 삼룡이 불을 지르는 연기
촬영 자체가 지니는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벙어리 삼룡 에서 화재
장면은 이 영화를 둘러싼 숱한 화제를 양산할 정도로 위험천만하게 노출
되었고 실제로 나운규와 유신방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내적 맥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벙어리 삼룡은 순수한 사랑
을 지향했지만 그의 의식이 계급적 혁명 지배 계급에 대한 반항 을 염두
에 둔 결정적인 인식 변화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서광제나 윤기정
이 제기한 비판은 이러한 측면에서는 그 속뜻이 상통한다 영화 벙어리
삼룡 은 외형적으로는 원작 벙어리 삼룡 과 흡사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작품의 중요한 의의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지배 계급 대 피지배 계급의 투쟁이라는 프롤레타리아적 관
점을 차치하고라도 조선의 신분 계층 제도 이 남겨 놓은 봉건 사회 체제
와 인습에 대한 민중의 저항 항의 이라는 의의도 한결 미약해진 것이 사
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화가 아닌 우연히 일어난 화재로 처리한 점에
서 원작의 심도와 파급력이 한결 단순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삼룡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는 나운규의 각색
시나리오가 그 정점을 구가할 수 있을까 벙어리 삼룡 의 시나리오가
사회 비판적 전언 을 상당 부분 격감시키는 방향으로 각색되었다고 해
서 벙어리 삼룡의 낭만적 사랑 까지 그 의의를 퇴색시킬 수는 없을 것
이다
이러한 입장에 동의한다면 핵심 논점은 각색 작업이 삼룡의 지고지순
한 심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시나
리오 상에서 이러한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시퀀스가 있기는 하다

대담 삼천리 호 년 월 면
충성된 삼룡이는 그 말 내당 출입 금지 인용자 을 드른 뒤브터 먹지도 안코
울엇다 자기의 신세를 생각하고 가엽시도 학대를 밧는 주인아씨의 가련한 신세
를 생각하며 말 못하는 삼룡이는 가슴을 문지르며 얼마나 울엇다
가을바람에 휘돌이는 낙엽 음습하는 황혼은 삼룡이의 마음을 더욱 외롭게
하엿다 떠러진 헌 이불에 싸여서 삼룡이는 꿈을 꾸엇다 추위에 떨고 잇는 자
기를 천사와 가튼 시악시가 만저 주며 위로하여 주는 한편에 살긔 가득한 귀동
이의 눈도 보앗다
삼룡이는 꿈을 깨엿다 침침한 저녁안개를 타고 고민하는 여자의 소리가 들
인다 삼룡이는 뛰여들어갓다 신부는 목매여 죽으랴 한다 벙어리 이는 매
달려 구하랴한다 이것을 아른 귀동이는 쫏차드러갓다 안해와 종놈이 하나는
죽으려고 하나는 살리려 한다 그러나 귀동이는 뭇지 안코 오인하엿다 그래서
죄업는 삼룡이는 그 집에서 아조 쫏겨나고 말엇다 밑줄 인용자

꿈속에서 사랑을 그리는 삼룡

귀동의 매질에서 주인아씨를 구해냈다는 이유로 삼룡은 내당 출입을


금지 당했고 당연히 아씨와 대면할 기회를 공식적으로는 잃어버렸다 그
러자 삼룡은 현실에서 차단당한 염원 사랑 을 꿈에서 보충하고자 한다
그때까지 나운규 시나리오에서 꿈 은 중요한 우회로를 제공하는 형식
적 방편으로 활용되곤 했다 아리랑 에서 사막을 헤매는 환상이 일종의
꿈의 형식을 빌려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감행하지 못하는 발언을 비유적
장치로 삽입할 수 있는 유용한 장치 기법 으로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
례이다
다만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에서 삼룡의 꿈 은 다분히 애정 지향적이
지만 아쉽게도 현실 비판력을 잠재한 비유적 수법으로까지는 발현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삼룡의 사랑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석될 여지가 다분

지상봉절 벙어리 삼룡이 별건곤 호 면


김을한 아리랑 권 조선키네마 작 동아일보 년 월 일 면
하며 그 경쟁자로서 귀동은 연적 이상의 의미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태에
머물고 있다 특히 삼룡이 주인아씨를 자신을 구원하는 대상으로 여길
뿐 당당한 사랑의 상대로 격상시키지 못하는 태도 소극적 자기 인식 는
절절한 연애의 감정마저 상당히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결국 시나리오에서 삼룡의 사랑은 그 정체 실체 역시 모호할 수밖에
없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치면서도 그 감정의 정체를 스스로도 파악하
지 못하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낭만적 사랑의 정점에도 역시 도
달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생은 관람 평을 통해 계급적으로 또는
사랑의 감정으로서도 반항하는 불길이 보여야 할 것인데 화면으로는 몽
롱하게 된 것은 원작을 읽지 못하였으나 스토리를 뚫고 흐르는 주인공의
성격과 사상이 병신이면 병신 머슴이면 머슴으로서의 독특한 감정과 동
작이 있을 것이다 스크린만 통해 가지고는 너무 희미하다 아니할 수 없
다 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이러한 지적은 영화 벙어리 삼룡 뿐만
아니라 그 시초인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한계
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문제점이 영화에서도 해소
되지 않고 여전히 심각한 결함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러한 내외적 평가를 종합할 때 시나리오 벙어리 삼룡 은 삼룡의 낭
만적 사랑을 그려내는 데에도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현실 비판적 시각을 담보한 원작의 진정한 의의를 심화하거나
확대하는 각색 방향 성과 을 선보이지도 못했다 삼룡은 자신의 선택이
담보하는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도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숨지고 말
았으며 의식적 변모를 보이는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당연히 그 사
이에서 매개되어야 할 연애의 정열은 오생원 집에서 솟은 불길에도 불과
하고 끝내 타오르지 못했다 원작에서 삼룡의 죽음이 연인과의 정사
이면서도 동시에 압제자에 대한 저항 행위이고 한층 넓게 해석할 때
세상의 권력과 착취에 대한 혁명의 의미를 전한다고 할 때 영화와 시나

생 앞의 글 년 월 일
리오에서의 죽음 불길 역시 단순하지 않은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을 폭
넓게 담보하고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의미망을 획
득하는 데에 부족함을 드러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원작의 설정이 버젓이 남아 있음에도 영화 벙어리 삼룡 에서
불길은 방화가 아닌 실수로 발생하면서 벙어리 삼룡의 내면에 존재했을
지도 모르는 의분 의 정체를 파묻고 말았다 낭만의 불길 이 아닌 것은
물론이요 혁명의 불길 로도 연결되지 못했으며 스스로 절규하며 세상에
남기는 산화의 잿더미 도 제대로 생성하지 못했다 다소 어정쩡한 결말과
전언을 남기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비록 영화 외적인 요인 가령 검열이나 촬영 미숙 의 영향을 전면 부
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내적인 한계로 이해될 수
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는 벙어리 삼룡 이 처한 실패의 원인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응당 기존에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던 예술적 차원 이 높았
다는 평가는 보류되어야 하며 오히려 원작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을 자초
한 한계로 인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문예영화 각색 측면에서도
년대 조선의 시나리오 작법이 지닌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을 겸하여 말하면 일단 벙어리 삼룡 은 년대 문예영화의 주
목할 시도였지만 그 한계 역시 분명하게 드러낸 사례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그 이유는 원작인 지니는 가치를 수용하고 이를 영화적으로 표현
하는 데에 작가적 개입 정심한 해석 이 분명하게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
이며 원작이 함축한 의미를 보다 심도 있게 구현할 수 있는 정밀한 해석
과 각색 능력이 아직은 십분 발휘되기 어려운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벙어리 삼룡 은 삼룡이라는 인물의 내면과 그가 처한 외적 환경을
충실하게 연결할 수 있는 텍스트로 환골탈태하지는 못했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년대 조선 영화의 부인할 수 없는 한계를 의미하기도 했다
참고문헌

동아일보
매일신보
별건곤
삼천리
조선일보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년 현암사


유현목 한국영화발달사 한진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소도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권 지식산업사
죠셉 보그스 이용관 역 영화보기와 영화읽기 제 문학사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한국장편문학대계 성음사


노방초 국외자 로서 본 오늘까지의 조선영화 별건곤
제 호 년 월
서광제 조선 영화 소평 벙어리 삼룡 조선일보 년 월 일
심훈 조선영화인 언파레드 동광 년 월
윤기정 영화시평 벙어리 삼룡 비판 년 월
김정희 나도향 소설에 나타난 전망과 서술의 신뢰성 고찰 벙어리 삼룡
이 를 중심으로 한민족어문학 호 한민족어문학회
이순진 식민지시대 조선영화 남성 스타에 대한 연구 나운규와 김일해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한국영화학회
A study on the structure and adaptation intention of the scene appeared
in the scenario A Deaf, Sam-ryong(Beong-eoli Samryong)

48)Kim, nam-seok
이 논문은 년 월 일에 접수되어 년 월 일에 심사가 완료되고 년 월
일에 편집회의에서 게재가 확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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