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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짜기옵서예」요약발제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장옥정

논문 요약

1.극작가소개

김영수(金永壽, 1911년 6월 27일 ~ 1977년 4월 23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방송 시나리오 작가이다. 서울 출신으로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의 군무원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작품세계는 비극적 세태를 사실적 기법으로

대담하게 묘파한 것이 특징이다. 즉, 민족항일기에는 일본 통치가 빚은 조선 민족의 궁핍을

묘사했고, 광복 직후에는 식민지가 남긴 유산과 그 후유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그의

희곡은 사실주의 내지 자연주의 계열이며, 후기에는 낭만주의적 색채도 띠었다. 특히, 그는

쓰키지소극장에서 관람한 하우프트만이나 고리키의 작품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데다

가난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민족의 궁핍화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환경에 대한 깊은 관심은

그로 하여금 우리 나라 근대연극사에 있어서 가장 뚜렷한 환경극작가(環境劇作家)가 되게

하였다. 대표작으로는 희곡 「혈맥 血脈」·「단층 斷層」·「돼지」와 소설 「파도」 등이 있다.

2.1966년 초연 연출가 소개

임영웅 (1936년 ~ )导演

1948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였다. 1965년 동인극장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의 연출을 처음으로 맡았고 그

이후에는 예그린 가무단의 연출을 맡았다. 1966년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했으며, 1968년 <환절기> 연출을 시작으로 국립극단 작품도 다수

연출하였다. 1969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한국 초연을 연출하였고,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였다. 1969년 한국연극협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2001년 문화관광부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9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출상을 필두로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한민국문화연출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고도를

기다리며>, <환절기>, <달집>, <하늘만큼 먼 나라>, <위기의 여자>, <목소리>


3.「살짜기옵서예」소개

3.1주요인물 소개

애랑은 천하일색 제주 기생인다. 제주에 내려온 정비장과 사랑을 약속하지만 부임기간이

끝나자 애랑을 버리고 떠나렸다.배비장도 정비장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해 골탕을

먹이려한다. 배비장은 목사를 따라 제주로 부임한 새로운 비장인다. 죽은 부인과 의 징표인

'산호동곳'을 간직하며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제주도의 기생 애랑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목사가 여색을 즐긴다. 배비장가 순진, 세상물정모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그을 유혹할 수 있는 기생에게 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방자는 배비장의 몸종가

이고 애랑의 동지인다. 배비장과 내기를 하여 만일 배비장이 애랑을 사랑하게 되면,

배비장은 그에게 말 한 필을 주어야 한다.

3.2줄거리

제주도 어느 바닷가에서 ‘제주목사’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된 ‘정비장’은 옛 연이인 천하일색

제주 기생 ‘애랑’을 떠어놓고 가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애랑’은 돈도 비단도 필요 없으니

정표로 앞니를 하나 빼어주고 가려며 혼쭐을 내준다. 여색을 좋아하는 시임목사는 여다의

섬인 제주에 부임하여 신이 나지만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색을 멀리하는

‘배비장’이 달갑지 않아 ‘배비장'의 지조와 절개를 깨기 위해 ‘비장들’과 ‘방자’와 모의하여

‘애랑’에게 ‘배비장’을 유혹할 것을 명한다. 이에 양반들의 사랑과 지절을 믿지 못하는

‘애랑’은 ‘배비장’의 지절을 꺾고, 그의 상투를 상으로 받기 위해 ‘배비장’에게 접근한다.

‘애랑’의 노랫소리에 수포동 폭포까지 흘러 들어온 ‘배비장’은 ‘애랑’의 목욕하는 모습을

엿보게 되고 그여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된다. ‘배비장’의 죽은 아내가 나타나 ‘애랑’에 대한

‘배비장’의 정을 만류하지만, 그 날 이후 ‘배비장’은 ‘애랑’의 환상에 휩싸이고 고민하다 결국

‘애랑’과의 정을 택한다. ‘배비장’은 ‘방자’에게 ‘애랑’에 대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주는다.

하지만 이미 계략을 짜 놓은 애랑은 친구들을 불러 편지를 돌려보며 배비장을 후릴 계획에

즐겁다. 이런 줄은 모르고 방자의 꼬임에 넘어간 배비장은 깊은 밤에 몰래 애랑에게 가기로

결심한다. 제8장 바다가 보이는 길가. 애랑, 방자, 채봉 등이 인부에게 궤를 지워 나오며

배비장을 골려 줄 마지막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산호동곳의 사연을 방자로부터 들은


애랑은 왜 그런지 배비장에게 참사랑을 느낀 듯 설레인다. 이런 소식을 들은 목사들은

초조하다. 그러나 비장들은 ‘잘 돼 갈 것으로’ 아뢴다. 애랑의 집에서 목사의 일행이 숨어서

구경하는 줄도 모르고 놋 벙거지에 개가죽 두루마기를 입은 배비장은 개구멍으로 기어들어

꿈에도 잊지 못할 애랑을 만나 회포를 풀려 할 때, 애랑의 남편으로 가장한 방자가 집을 부실

듯이 집안에 뛰어든다. 혼비백산한 배비장은 궤 속으로 들어가고 바다가 보이는 길가.

출어의 노래가 들리는 바닷가로 궤를 메고 나온 방자 일행은 궤 속에 업귀신이 들었다며

바닷물에 던지겠다고 엄포를 놓고 궤 속의 배비장은 후회와 절망에 빠져든다. 방자 일행은

목사와 각 비장들, 그리고 기생, 동리 사람들까지 있는 동헌 마당으로 궤를 가져다 놓고

파도소리며 노젓는 소리 등을 낸다. 바다 한 가운데서 어선에 의해 구출된다고 생각한

배비장은 궤 문이 열리자 눈을 꼭 감고 헤엄을 쳐 나온다. 보다 못해 주위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배비장의 품 속으로 뛰어드는 애랑, 비로소 참사랑을 느낀 것이다. 두 사람의

행복을 비는 멋쟁이 목사와 전원의 환호 속에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3.3 작품소개

「살짜기옵서예」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당시 작가 김영수가 각색해 대본을 만들고

작곡가 최창권이 작곡을 했다. 예그린 악단에서 1966년에 초연한 대한민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1966년 10월 26일 시민회관에서 <살짜기 옵서예>가 막을 올려 29일까지 공연하게

된다. 이 뮤지컬은 엄청난 성황을 이루어, 마지막 날에는 입장권이 매진되어 개막 3시간

전엔 5배 비싼 가격으로 암표가 거래될 정도였다. 이 공연은 3백만원의 제작비, 출연자

300명이라는 한국 무대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웠고, 관객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적 뮤지컬의 토질이 발견됐으며, 2주 이상 롱런하여 성공, 단 7회

공연으로 총 1만 6천명의 관객들을 동원했는 것을 기록한다.

4.논평

“배비장전을 뮤지컬로 꾸민 예그린의 재기출연은 뮤지컬 코미디를 한국에 정착시키려는

극단의 오랜 숙원을 다른 측면에서 앞질러 실현 시킨 무대였다” -<동아일보>


“템포가 빨리 12장의 무대가 어느새 끝났는지 몰랐다... 고전을 이런 감상으로 다룬다면

뮤지컬은 앞날이 있을 것 겉다. 예그린 이 공연을 통해 우리 고전을 현대화하는 가능성을

개척해 놓았다.” -<경향신문>

총평

고전소설〈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이지만 두 작품의 중심과

취지는 다르다. 소설〈배비장전〉은 한국풍자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 풍자는

배비장에 대한 풍자가 중심인다. 이 작품은 양반의 허세와 위선을 폭로한다. 가식만을

내세우는 형식주의적인 양반의 인습을 코믹하고도 사실적으로 풍자한다. 원작에서

배비장은 양반의 풍자 대상이자 기생의 풍자 대상이었다. 제주도 부임 첫날, 남들은 기생과

어울리고 노는데, 배 비장은 혼자 ‘대대로 바람을 안 피우는 집안의 남자’라고 깨끗한

척한다. 이에 제주 목사와 동료 비장들은 배 비장을 관료 문화에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로

본다. 반면에 기생 애랑은 배비장이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하는 위선을

미워한다. 이처럼 배비장은 정직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해서 위아래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다. 이야기의 결말에, 배비장의 알몸으로 헤엄치는 모습을 모든 사람들 앞에 보이게

됨으로써 그의 위선은 여지없이 폭로되고 위신은 끝없이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뮤지컬은

기생 애랑과 배비장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배비장 이미지도 위선에서 숭정과 지조 있는

성격으로 바꿨다. 애랑도 진실한 사랑을 꿈꾸는 천하일색이 된다. 줄거리도 애랑으로

바뀌어 배비장이 다른 고위 관리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실컷 놀고 나서 그녀를

떠난다. 배비장은 그런 배신자가 아닐 줄 알는다.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애랑은 점점

마음을 열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하는 해피엔딩인다. 뮤지컬〈배비장전〉의

성공 요인은 스토리의 간결성과 친밀성 , 코믹하고 아름다운 한국적 색채, 쉽게 부를 수

있는 선률과 한국의 색채가 서구식 표현으로 조화가 된 점, 그리고 스타의 적절한 기용 등을

들 수 있을 것으로 포함된다.

토론거리

1.한국 뮤지컬이 '스타 카스 흥행'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즉,어느 스타가 주연으로

나오느냐가 흥행 성공에 큰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1대 애랑 이 역은 스타 패티김가 맡았다.


패티김은 전설적인 디바로, 한국 현대 대중가요사에서 숱한 '최초'와 '최고'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며 196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이자 디너쇼의 여왕인다. 애랑의 캐릭터

포지셔닝은 천상의 노래와 천하의 절색 미인인다. 이 뮤지컬이 재연되면 그 역할은 누가

맡는 게 좋을?

2.뮤지컬「살짜기옵서예」을 다시 각색하라고 하면 여전히 애랑과 배비장 둘 사이의 사랑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양반에 대한 원작 소설의 아이러니를 따를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상업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떤 각색이 더 좋은까?

3.애랑은 왜 배비장의 상투를 상으로 원하까? 상투의 의미가 무엇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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