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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조선희

-목차-
Ⅰ. 서론
Ⅱ. 서사와 캐릭터로 유발된 다양한 감성1)
Ⅲ. 미장센을 통한 화면구성의 감성적 효과
Ⅳ. 과잉의 절제와 감성적 여운
Ⅴ. 결론

| 국문초록 |
본고의 목적은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결부된 영화 <봄날은 간다>
의 특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특한 기법을 통한 감성적
지향을 구축하는 비-멜로드라마성, 혹은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분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수단으로서는 감성과 관련된 이론과 영화
이론 모두를 사용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종내에는 이 영화가 갖는
독특한 감성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표출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감성은 영화서사 내부의 흐름과 캐릭터들 상호간의 감성, 또는 이
들로 인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성, 그리고 관객 스스로 유발되는 감
성이 있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주제인 이 영화 내부에서는 개별 캐
릭터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서로 동일할 수도 있고, 다를 수 있
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캐릭터들의 행동과 대사가 영화상에 드러나는

*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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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보고 다양한 감성적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따로 떼어지지 않고 그물망처럼 얽혀있다는 점에 착안하면서, <봄날
은 간다>가 어떻게 감성적 시나리오로 작용하는지를 살피기 위해 노
력했다.
남녀 주인공은 각각 사랑에 관한 다른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사랑
을 성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별의 과정에서 상우가 한 단계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 영상으로 나타나면서 관객에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이
것은 멜로드라마에서 상용되는 클로즈업의 기법이 아니라, 오히려 롱
샷이나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함으로서 더 가능해지며, 바로 이러한 점
이 이 영화가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감성의 자극 과
정이 허진호 감독 특유의 촬영 기법으로 잘 나타나는데 이것 또한 그
가 선택한 연출에 기반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미장센을 활용한 화면
구도와도 연관되었으며 이 기법은 이 영화의 과잉의 절제에 의해 복
합적으로 증폭되는 감성을 형성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기존의 멜로
드라마와 차별되는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추구한다.
결국 <봄날은 간다>는 감성 시스템을 활성화 시키면서도 아이러
니하게도 동시적으로 관객 감성을 제한한다. 영화가 끝나면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해석 가능성을 남기는 독특한 영화가 되는 바, 이것은 관
객감성을 과도하게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이룩된 결과이다. 이런 점이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차
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한데, 그 대신에 영화 전반에 걸쳐 느린 속도의
연출을 시도한 감독의 역량이 부각되기도 한다.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유리창을 이용한 독특한 화면
구도와 색감에서 표출되는 상징적 기법을 활용한 장면으로 이 영화는
관객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 의미를 조직하라고 자극한다. 이 감성
시스템에 활성화되는 과정에 동참하는 관객이라면 이 같은 과정을 거
치면서 오랫동안 감성적 여운을 경험하게 된다.

주제어 : 멜로드라마, 영화의 감성, 변주된 멜로드라마성, <봄날은 간다>, 캐릭터, 연출,
미장센, 클로즈업, 롱 샷, 과잉의 절제 ,감성의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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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봄날은 간다(2001)>1)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는 명대사로
잘 알려진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이다. 이것은 일상의 소소한 사
랑을 다룬 내용으로 연상 여인을 사랑하는 순수한 젊은 남성의 시각
에서 바라본 멜로드라마이다. 허진호 감독은 한결같이 멜로드라마만을
만들어 왔는데, 하나의 장르를 파고들어 그 장르에서 새로운 어법을
발견하여 한국영화사상 매우 드문 창작의 일관성을 보여주며 자신만
의 영화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다고 평가2)받고 있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상우(유지태)와 연상의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는 녹음을 하기 위해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사랑이 깊어
지기 시작하자 감정의 변화에 의한 갈등을 하게 되고 이별을 한다. 영
화는 이렇게 만남과 갈등, 이별 그리고 그것에 대한 깨달음을 감성적
으로 표현한다. 극적인 감정을 고양시키는 이처럼 지극히 멜로적인 성
향을 가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이 영화는 동적 감정을 배
제시키는 아이러니한 경계를 형성하면서 멜로드라마가 갖는 유형에서
벗어나 있기도 하다. 그것은 멜로드라마에서 강조하는 여러 구성적 요
인의 부재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감독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3)
때문에 본고에서는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결부된 <봄날>의 특성을
찾아봄과 동시에 독특한 기법을 통한 감성적 지향을 구축하는 비-멜
로드라마성, 혹은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틀
로서는 감성과 관련한 이론ㆍ영화적 이론을 사용할 것이며 이것을 통
해 종내에는 이 영화가 갖는 독특한 감성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표출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감성은 영화서사 내부의 흐름과 캐릭터들
상호간의 감성, 또는 이들로 인해 관객에게 전달되거나 관객 스스로

1) 이하 <봄날>로 표시한다.
2) 김영진, 현대 한국영화의 작가적 경향 , 중앙대박사논문, 2006, 96쪽.
3) 감독의 시점이 상우에게 치우쳐 있어 남성적 멜로드라마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허
진호는 한 인터뷰에서 은수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며, 은수의 시각도 보여주려 했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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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되는 감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따로 떼어지지 않고 그
물망처럼 얽혀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장을 달리하여 언술하지는 않는
데, 한 장에서 이들이 한꺼번에 다뤄지므로 다소 혼란이 발생할 수 있
다는 점을 밝힌다.
마찬가지로 허진호 감독이 선택한 연출에 기반한 미장센
(mise-en-scène)과 과잉의 절제를 살펴볼 것이데, 이를 통해 관객에
게 유발되는 복합적으로 증폭되는 감성이 있을 것이라 전제하며 변주
된 멜로드라마성과 영화적 감성을 통합시켜 볼 것이다.

Ⅱ. 서사와 캐릭터로 유발된 다양한 감성


감성에 관한 연구는 각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
은 나름대로의 방식과 시각으로 인간의 감성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에는 감성 시스템의 모델을 만들기 위한 인지심리학과 신경심리
학의 연구가 중요하다. 이 연구들은 우리에게 영화 안에 있는 서사 구
조의 감성적 호소를 찾기 위해 기반이 되는 감성의 조직적 설명4)을
제공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인지주의자들의 연구인데, 이들은 ‘감성’
은 단선적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능한 도출 체계에 대한
반응의 그룹5)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룹’과 ‘시스템’이라는 용어는 감

4) 특히 인지주의적 접근은 그간 감성을 사적 영역으로 보고 감성 연구가 막연한 것일 수 있다


는 의견들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연구의 길을 열어준다. 감성의 영역은 무척 체계적인 과정
으로 이루어졌으며, 영화에서의 감성도 ‘시스템’이라는 즉, 체계적 모델을 갖출 수 있다는 점
을 보여준다.
5) 감성 연구는 감성 경험과 감성적 표현을 중요시한다. 감성 경험은 개체에 의해 의식적으로
인식된 주관적 느낌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높은 수준의 인지와 하위 수준의 인지의 과
정이 있다. 전자는 상당히 인간의 영역에 가까운 즉, 고차원적인 감성을 말하는가 하면, 후자
는 생물학적인 반응 등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감성 시스템을 호출하는 보조체계로 인지주의
에서는 6가지를 제시한다. 이 감성 도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보조체계는 안
면 신경과 근육, 음성, 몸의 자세와 골격근, 자율신경계, 의식적 인지, 그리고 비의식적 중추
신경계 등이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
라고 여겨 참고하지 않겠다. Smith, Greg M, F ilm Structure and The Emotion System,
CambridgeUnivPr, 2008, p.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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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근거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즉 감
성은 그물망처럼 서로에게 기대고 있으며, 상호작용하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체계적인 모델을 갖춘다는 접근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지주의에서 말하는 감성은 인간 내부에서 발생하는 감성
의 영역이 자못 상호적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다음 순서는 이런 감성의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달이 되
는지를 찾는 것이다. 이것을 이 장에서는 서사 자체가 관객에게 유발
하는 감성-이를테면 어떠한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통해 관객의 눈물
샘이 자극된다든지-과 서사 내부에 존재하는 캐릭터의 행위나 감성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되어 관객의 감성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살필 것
이다. 즉, 서사와 캐릭터 자체에서 생겨나는 감성이 때로는 관객의 감
성으로 그대로 전이되거나 새로운 감성으로 유발되는 경우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드 탄(Ed Tan)에 따르면, 특정 영화가 우리의 관심을
형성하는 방법을 크게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는 주제 구조라고 부르
는 행동이나 플롯 구조, 캐릭터의 구조(공감, 동정, 감탄을 포함, 그리
고 연민)이다. 여기에서 “주제”는 캐릭터 행동과 동기, 그리고 가능한
서사적 성과에 관한 우리의 기대를 안내하는 시나리오이다. 일반적인
주제는 배신, 자기희생, 그리고 속임수를 포함한다. 플롯 에피소드의
구조에 관한 탄의 상세한 분석은 그에게 관객들이 한 조각의 따로 떼
어진 서사적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모델을 갖게 하고, 감성적 시나리오
의 응집력 안에서 이것을 조립할 수 있게 한다.6)
이것은 멜로드라마를 감상하는 데에도 유용한 지침을 제공한다. 그
가 일컫는 플롯은 서사의 기본구조가 될 터인데, <봄날>의 기본서사
가 멜로드라마가 갖는 주된 주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
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플롯 에피소드로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은수와 상우의 만남-무르익는 사랑-식어가는 사랑-이별-실연으로 인
한 아픔-재회가능성-영원한 이별이 그 축이 된다. 즉, 사랑과 이별의

6) 위의 책,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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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아픔이 멜로드라마의 기본 전제인 주제적
차원에서 부합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지할 점은 이런 플롯
구조 혹은 주제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에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색깔과 형식으로 영화화시키는
것이 이 영화의 진가이다.

<사진1> <사진2>

<사진3> <사진4>

이 영화는 가족과 공간 의미의 새로운 들여다보기를 기획하고 상


우와 은수의 사랑ㆍ이별 서사에 주요한 인과성을 부여하며, 독립적 에
피소드의 연결 지점 혹은 연장 가능성을 부여한다. 가족 가운데 누군
가 없는 결핍감에서 비롯된 상우의 캐릭터는 이 결핍을 대신할 누군
가를 찾고자 하는 욕망, 사랑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오는 허탈과 좌절
에서 오는 슬픔의 감정의 소산이다. 또한 이러한 감성적 변화가 이 서
사의 큰 맥이기도 하며, 캐릭터의 이러한 감정의 변화가 서사 내부의
감성의 자리를 채우고 이로 인한 관객의 농밀한 감성에도 그 자리를
내어준다.
상우의 가족 구성원은 젊은 시절 두 집 살림을 한 할아버지를 일
찍 여읜 할머니, 마찬가지로 일찍 상처한 아버지, 이혼해서 함께 살아
가는 고모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반려자가 옆에 없다는 공통점이 있
다. 특히 할머니는 치매 증상을 앓고 있으면서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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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을 기억하는 특이성이 있다. 젊은 시절 남편의 모습은 기억하지만
나이든 남편의 사진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는 사랑의 상처와
배신을 느꼈던 과거의 기억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지워버린 것이다. 이
것은 이를테면 시간의 봉합이라 할 법한데 할머니의 증세는 행복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간을 봉합하여 다시 그 시절로 회귀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에 기인한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 바람은 과거의 사건에 묶이게 되는 형
상인데, 이 때문에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매일같이 “수색역”으로 나가는 기다림의 행위를 반복한다. 남편의 생
전 직업이 역장이었기에 찾아가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 ‘역’이 갖는 속
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차의 속성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경
계 공간에 위치한다. 즉 역은 만남을 전제하면서 동시에 그 끝에는 이
별도 이루어지는 양면적 공간이다. 이것은 할머니에게 있어 남편과의
재회 기대와 희망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떠날 것을 준
비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은수와 헤어지고 사랑의 생채기를 안고 사는 손자 상우에게 “버스
와 여자는 잡지 않는 법”이라는 위안의 말을 하는 할머니는 어쩌면
자신 스스로도 떠나간 기차를 잡을 수 없다는, 또는 잡아서도 안 된다
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 중에 놓여있다. 그리고 할머니는 젊은 시
절 입었던 연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집을 떠나 그 길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것은 상우의 사랑 역시도 영원하지도 해피엔딩이지
도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게끔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매개
사건이 된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할머니와 상우는 상당히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 동질감을 가진 인물이자 하나의 공감대로 묶이는 캐릭터로
형상화된다. 즉 할머니는 상우의 분신으로서 종속적 서사 안에 있음에
도 중심 서사에 침투되거나 중첩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중요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 관객은 할머니를 통해 상우를 보고, 상우
의 사랑을 추론한다. 특히 할머니가 치매로서 시간을 ‘봉합’하였 듯 상
우도 은수를 잊는 것으로 사랑을 봉합한다. 이러한 봉합의 증거는 영
화 초중반 물소리를 녹음하는 씬에서 은수의 허밍소리가 들리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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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녹음해 두었던 테이프에 자연 소리를 덧입혀버리는 그의 행위
가 될 것이다.
한편 상우와 상우의 아버지도 <봄날>의 동질적 캐릭터이다. 이것
은 특히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둘의 모습으로 감지 가능하다. 어느
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집 밖을 나가고 그런 할머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족들은 결국 늦은 밤 경찰서에서 보호하던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상우 할머니)에 대한
강한 연민과 죄책감에 식탁 앞에 앉아 소주를 들이키는 아버지를 보
고 상우도 합석하여 술을 마신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복잡한 심
정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고, 상우는 헤어짐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떠난 은수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둘도 닮은꼴 캐
릭터이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는 서사 곳곳에서 유리창의 등장이 잦
다. 이것에 대해서는 미장센과 연관하여 뒷장에서 살피도록 하겠다.
<봄날>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평범한 만남과 이별의 사실적
인 묘사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만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다룬다. 그러므로 만남에서 이별까지 남녀가 겪는 사건과 심리는 우리
의 감정이입이 되기에 충분하다. 감독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격한 감정
의 흔적을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보여주며 주
인공들의 사랑과 이별에 관객들을 몰아넣는다. 에린 헐리(Erin
Hurley)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s)를 활성화시켜 이 관찰된 행동이 뇌에서 똑같이 재현되게 함
으로써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효과7)가 유발되기 때문이다. 관객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간접적 세계를 이 뉴런으로 인해 동일한 감성적
경험을 하게 된다는 논지일 텐데, 한번 쯤 일방적으로 사랑의 상처를
입은 남성(여성일 수도 있다)은 감상을 하는 내내 동일한 체험을 했을
소산이 크다. 달리 말해 이것은 인물과 관객의 동일시의 과정을 수반
하는 매개가 되면서 특히 주인공들의 감정 기복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형국을 이룬다.

&f
7) Erin Hurley, theater eeling, Hampshire; Palgrave Macmillan, 2010, p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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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에 대해 벨라 발라즈(Bela Balazs)8)는 영화에서 카메라는 관
객을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가며, 우리는 모든 것을 영화 속에서 영화
의 캐릭터에 둘러싸인 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때 캐릭터들
은 그들이 느끼는 바를 우리에게 말해 줄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우
리는 그들이 보는 바를 그들이 보는 식으로 보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
은 카메라 속에 있고, 캐릭터의 응시와 동일시한다. 카메라는 관객의
눈으로 보는 그대로이며 여기에 “동일시”라는 심리적 행위가 있다. 상
우의 아픔 또는 은수의 갈등이 관객과 동일시되어 그들이 느끼는 것
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영화의 힘은 곧이어 영화에 대한 감동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러나 주지할 점은 이러한 동일시의 과정은 속도에
있어 아주 느리게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감성적 시나리오를 갖게
한다.
또한 동일시와 공감의 상호 작용을 통해, 관객은 선호도, 계획, 등
장인물의 목표를 건설하려고 시도하고, 이러한 계획과 목표 구현의 가
능성을 평가하려고 한다. 동일시를 통해 등장인물 상태를 시뮬레이션
함에 따라, 우리는 목표 달성 쪽으로 캐릭터의 동기에 관련한 인지적
대본(scripts)을 활성화시킨다. 우리가 그때 그 캐릭터와 공감한다면,
이것은 인지적 대본에 해당하는 감성 경험이 활성화9)되고 있다는 것
이다. 심리학자 그로달(Grodal)의 감성 논의에 의하면 이런 감성의 흐
름(흐름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Flow)은 캐릭터들이 겪는 감성
의 흐름과 관객의 감성 흐름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케
한다. 이것은 영화 비평에서 캐릭터 지향적이면서, 동일시의 과정에
의해 두 지점의 감성(캐릭터, 관객)이 조응하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기도 하다.

8) 벨라 발라즈, 이형식 역, 영화의 이론, 동문선, 2003, 52~53쪽 참조.


9) Smith, Greg M, 앞의 책,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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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사진6>

<사진7> <사진8>

<사진9> <사진10>
우리는 상우와 은수를 통해 이 같은 감성 경험을 하게 된다. 애초
에 이들의 사랑에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 즉 캐릭터들이 목표(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한)에 도달하기 위해 이들 스스로에게서 발생되는 어떤
감성적 “막음”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서사 내부의 감성의 흐름뿐
만 아니라 관객의 감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상우와 은수의 사랑은 이미 시작부터 어긋나 있다. 서로에
대해 갖는 감정은 상우에게 있어서는 가족 안에 부재한 어머니의 존
재를 획득하기 위한 모성에 대한 기대, 은수에게 있어서는 이혼 후 외
로움을 잊기 위한 잠시 기댈 수 있는 존재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우는 평생 가정을 함께 꾸려갈 안정된 존재에 대한 것이
라면, 은수에게 있어 결혼은 판타지에 불과한 허상의 의미이므로 이
둘은 서로 어긋난 사랑을 꿈꾸는 모순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다. 하지만 서사 내부 주인공들이 서로의 사랑 상(像)을 알기 전에 이
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계속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곧 그들 사랑의 전환점이라 할 법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즉 라면을 먹다 불현듯 “아버지가 여자 친구 있음 데려오래”라는 말
을 은수에게 던지는 그 지점에서 “긴장”이라고 불리는 정동의 상태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은수는 상우와 결혼하지 않을 의사를 “김치를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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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지 못 한다”라는 대사로 표현함으로써 지속된 사랑에 감성적 “긴장”
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상우의 말에 은수도 동의하는 반
응을 보였다면 상우는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지만, 결국 그들은 사
소한 것에서부터 충돌을 일으키며 최종 목표가 막히는 “포화”의 양상
에 접어든다. 이 포화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이들의 관계를 표명
하는 것인데, 상우는 여전히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잦은 시도를 하며
“내가 잘할게”라는 대사처럼 마음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서사 내내 반
복한다.
하지만 결국 상우에게도 감성적 긴장과 포화는 찾아온다. 은수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라디오 게스트)와 교제를 시작하고 여행을 가
자 그들을 뒤 따라 갔을 때 그런 감성적 상태가 실현됨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특히 이 포화는 자신의 낡은 갤로퍼 차량에 동승하는 대신,
자신에게 배운 운전 실력으로 산 마티즈 차량을 봤을 때 극에 달한다.
그 차량에 날카로운 열쇠로 흠집을 내는 상우의 행위는 이제 그가 돌
이킬 수 없는 둘의 사랑을 감지한 것이다. 달리 말해 이것은 상우의
감성의 흐름에 긴장이 축적되어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갈 수 있게끔
포화 양상이 됐음을 말한다.
상류의 감성 시스템이 간단한 감성의 상태라면, 하류의 그것은 보
다 복잡한 감성적 반응을 만든다. 즉 동일시와 함께, 이러한 서사적
패턴은 캐릭터와 관객 모두에게 더 큰 감성적 반응을 만들어 낸다. 상
우의 목표가 막힘을 발견하는 관객은 동일시라는 상태로 인해 관객
자신의 감성 시스템도 막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 동인으로
관객은 상우와 함께 슬퍼하고, 서사의 긴장을 유발하는 은수의 배신감
을 원망하게 된다. 멜로드라마 주인공인 수동적 캐릭터 상우로 인해
상우가 “막음”을 발견했을 때 이 광경을 지켜보는 관객 감성의 “막음”
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Ⅲ. 미장센을 통한 화면구성의 감성적 효과


허진호의 영화는 분명 여타의 멜로드라마와는 다른 특별한 정서적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11
반응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그 연원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중요할
텐데, 이러한 스타일은 곧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방식의 촬영
법 즉, 깊이 연출(deep/depth staging, staging in depth)10)에 기인
한다. 연출의 깊이 있는 구성이 더욱 그의 영화를 개성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러한 깊이 연출을 통해 절제와 관조를 기반으로 한 차별
적인 멜로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 이것은 할리우드가 영화의 편집(몽타주 등)에 의존하여 관객
의 집중을 요구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깊이
구성은 상당히 안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연기 공간을 펼쳐놓는 설정
쇼트를 제시하는 역할과 두 행위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역할이다. 이
때 감독은 관객의 주의집중을 이끌기 위해 깊이 구성으로부터 미장센
의 역할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허진호 감독은 감성적 효과를 두기위
해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전심 공간과 후경의 분할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프레임을 구성하는 미장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서사와 캐릭터를 넘어선 화면 구성상의 이점으로 작용하
여 최종적으로 이 영화 특유의 감성적 여운을 형성한다.
영화에서 미장센은 “장면으로 만든다”는 것으로 영화 비평에 있어
이 미장센은 두 쇼트를 어떻게 결합, 혹은 병치 시키는가보다는 쇼트
내의 회화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식을 지칭해 온 것이다. 본
래 연극연출에 있어 무대 위에 배우와 소품을 배치하는 것에서 나온
말로, 이미지의 외곽을 규정하는 틀인 프레임을 채우는 화면구성을 뜻
하는 연출을 이르는 이 미장센은 영상에 담긴 인물이나 사물의 공간
적 배치에 관한 개념이다. 이 공간적 배치나 연출의 효율성을 위해 허

10) 깊이 연출에 따른 전심 공간deep space의 장면화는 한 장면 내의 사건 전체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설정되는데, 이때 한 화면 안의 모든 영상 면들
이 정초점 상태에 있는가 아닌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렌즈의 초점 안에 들어있는 모든 부분
이 분명한 초점 안에 있게 되는 전심초점deep focus과 전심공간은 구분된다. 전심초점 촬영
기법이 1940~1950년대 주요한 양식상의 선택이 되기 전 영화 역사에서 ‘깊이 있는 무대’ 연
출 전략은 191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물들이 뒤로부터 전경 쪽으로 이동하거나 배경
이나 중경의 인물들을 강조하는 미장센을 통해 깊이감을 착각하도록 만든 것이다. 데이비드
보드웰 외, 주진숙 외 역, 영화예술, 이론과 실천, 1993, 246~248쪽 참조.

212 용봉인문논총
진호 감독은 <봄날>에서 유리창(혹은 창틀)을 이용한 독특한 프레임
을 만든다. 이것으로 인해 영화적 구성을 용이하게 하고, 그 구성을
통한 서사적 의미와 감성의 흐름을 자아낸다.

<사진11> <사진12>

<사진13> <사진14>

<사진15> <사진16>

은수는 비가 내리는 밤에 상우에게 “비가 온다”는 말을 시작으로


전화할 기회를 마련한다(사진11). 사랑이 시작되자 동료들과 술을 마
시자 은수에게 “보고싶다”는 전화를 하게 되고, 이 상황을 지켜보는
동료가 유리창을 통해 상우에게 익살스레 말을 건다(사진12). 서로 떨
어져있어 보자는 은수의 제안 후 차츰 잊기 위한 노력을 하는 상우의
서울 사무실에 어느 날 찾아온 은수를 유리창을 통해 상우의 시점쇼
트로 처리되는 장면이다(사진13). 마찬가지로 비가 오는 마당을 바라
보는 상우의 슬픔은 “미워도 다시 한번” 노래를 처량하게 부르는 그
의 모습이 유리창과 함께 보이게 되고(사진14), 은수가 상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찾아온 다음 해 봄 어느 카페의 유리창 밖으로 카페를
나가 둘이 걷게 될 길의 벚꽃이 미리 제시된다(사진15). 마지막 사진
은 상우와 아버지가 소주를 마시며 밖에 내리는 비를 처량하게 바라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13
보는 장면이며, 의도적으로 창의 틀을 이용해 부자를 담아낸 것이다.
이처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유리창을 매개로 한 화면의 구도
는 서사의 흐름을 매끄럽게 끌고 가는 주요한 미장센으로 작용한다.
또한 유리창 밖의 풍경은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영화에 몰입하
게 되는 효과도 동반한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깊이 연출과 자연스럽
게 접맥하는 부분인데, 한 화면에 여러 서사적 정보를 제공하면서 감
성의 폭을 넓히는 결과물을 배태시킨다.
한편, 영화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특수효과 등의 기술적인 방법
만을 이용해 모든 이미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
에 스미스 그렉(Smith, Greg M)은 영화 비평은 전적으로 등장인물과
플롯에만 뿌리를 두는 감성11)만을 생각해서는 안 됨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음향이나 사운드트랙에 주목하고 있지만, 영화에서 색채라는 매
개도 정서를 표현하는 데 훌륭하고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12)
색채를 통해 영화의 감성을 유발하는 경우, 혹은 주제의 상징성을
동반한 암시의 과정이 생성될 수도 있다. 실제로 색채가 일으키는 여
러 정서적 이미지나 성향은 인물의 의상과 더불어 영화의 미장센과
관련한 또 다른 길을 모색 가능케 한다.

<사진17> <사진18>

11) Smith, Greg M, 앞의 책, p.74.


12) 민병록 외, 영화의 이해, 집문당, 2001, 243쪽.

214 용봉인문논총
<사진19>
<사진20>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특정한 색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어느 정도


유사함을 보인다. 가장 강하게 인식되는 색은 붉은 색인데 이것은 정
열, 흥분, 피, 혁명, 정력적인 활동 등을 연상시킨다. 반면 녹색 계통의
색은 안정된 이미지를 준다. 평화, 안전, 휴식, 성장, 이상, 신선함 등
이 이 계통의 색이 흔히 가져다주는 감정이다.13) 이러한 의미를 가진
색을 사용하여 <봄날>은 상징적 의미와 암시적 효과를 양산한다. 강
릉 터미널에서 라디오에 쓸 소리 채집을 위해 상우를 기다리는 은수
의 옷차림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업무상 처음 만날 이들의 전개 방향이 은수의 목도리 색에 있다.
즉, 붉은색의 감정적 혹은 정서적 기능인 ‘정열, 정력적 활동’이라는
것에 주목해 볼 때 서울과 강릉이라는 물리적 거리감으로 서로 만날
기회가 적은 이들에게 첫 만남이 지속적이고 특별할 수 있다는 은유
성이 될 수 있다. 특히 붉은 색은 터미널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대조적
으로 은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상우에게 강한 이미지로 작용할 것이
며, 이후 은수에 대해 가질 감정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사진17).
더불어서 이렇게 떠난 대나무 소리 채집도 그 의미의 연장선이라
할 법하다. 녹색 계통의 이미지를 생각해 볼 때, 일견 무관심의 상태
였던 이들의 관계에 ‘신선함’의 상태로의 변모를 가져다준다. 멀찌감치
떨어져 각자 할 일을 하던 주인공들에게 대나무의 녹색 빛은 마음의
신선함과 ‘휴식’의 기회를 제공하고, 특히 한번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은수에게는 상우가 입고 있는 카키색(녹색 계열)의 옷 색깔에서
도 휴식과 안정의 기운을 느낄 것이다. 대나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겨울의 밝은 햇살 쇼트와 이것을 지켜보는 두 남녀의 이미지는 서사
적 전개 상 긍정적 관계에 대한 암시적ㆍ환유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13) 민병록 외, 앞의 책, 같은 쪽.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15


이처럼 색깔로 이들의 관계를 암시하는 섬세한 감독의 주의가 관객의
주의와 의미 조합을 가능케 한다.

Ⅳ. 과잉의 절제와 감성적 여운


통상 한국 멜로드라마가 거론될 때에 장르상의 특성으로 ‘신파성’이
나 ‘여성성’이라는 개념이 늘 따라다닌다. 즉, 여성은 기본적으로 슬픈
운명 속에 자리하고, 남성이나 자식에게 사랑과 복종을 해야 하며, 그
에 따라 희생을 요구당하는 구조로 멜로드라마는 관습화되었다. 또한
이런 멜로드라마를 보는 관객은 이러한 캐릭터와 그의 갈등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고조가 바로 멜로드라마 장르의 특성이
다.
그런가하면 벤 싱어(Ben Singer)는 멜로드라마와 ‘과잉’의 연관성
에 주목한다. 감정과잉은 멜로드라마에서 배우의 과장연기를 통해 전
달되고 훌륭한 할리우드 멜로드라마가 관객을 울게 만들거나, 강렬한
감정, 강력한 파토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14) 과잉의 중요성은
여러 영화학자들이 제시하는 멜로드라마의 핵심 개념에 해당한다.
그러나 <봄날>은 통속적 멜로드라마가 택하는 감정의 과잉을 과
감히 버린다. 때문에 최루성 영화에서 비껴가게 되고 대신에 간접적ㆍ
우회적 방식으로 관객의 감성을 이끌어 낸다. 이를테면 클로즈업을 최
대한 배제하면서 롱쇼트로 연출하거나 피사체의 움직임을 느리게 관
찰하며 이동을 절제하는 롱테이크로 인물을 처리하는 기법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인물과 카메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으며, 오히려 둘
사이의 거리감만큼 관객들 또한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과잉은 기본적
으로 인물과 관객의 정서적 거리감의 근접함인 것에 비해 <봄날>의
정서적 거리감 유지는 상당하다. 이 때문에 관객은 영화에 다가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화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 넓게 펼쳐진 영상의 정

14) 벤 싱어, 이위정 역, 멜로드라마와 모더니티, 문학동네, 2009, 66~67쪽.

216 용봉인문논총
보를 통해 감독이 말하려는 핵심을 간파하기 위한 관객의 주의는 고
도로 응집되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스크린의 공간은 작아지거나 커지지 않는다. 그 시야가
항상 동일한 크기를 보이는 것으로서 시각적 공간의 크기는 변함없이
그대로인 채 카메라가 대상에 근접함에 따라 디테일이 확대된다. 그
결과로서 스크린에 보이는 대상의 일부는 쇼트의 가장자리에 의해 잘
리는 것처럼 보일 텐데, 그것이 바로 영화에서 말하는 클로즈업의 특
징 중 하나이다. 이 클로즈업은 그리피스(D.W Griffith)가 할리우드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쇼트로서 처음 관객들이 이러한 장면을
보았을 때는 머릿속에 큰 혼란이 오면서 스크린에 그 확대된 인간의
눈, 머리, 팔 등을 바라보며 혐오감이나 공포감15)을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클로즈업은 관객이나 독자에게 정신적으로 큰 파급효과를 주
는 매우 용이한 수단이다.

<사진21> <사진22>

<사진23>

통상 멜로드라마에서는 인물의 표정 변화에서 상황을 짐작하고 그


의 감정의 폭발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위에서 밝혔듯 클로즈업은

15) 유리 로트만, 박현섭 역, 영화기호학, 민음사, 1997, 59~60쪽 참조.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17


인물의 감정에 다가가고 상태를 인지하기 위해 필수적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클로즈업의 절제를 통해 인물 감정의 과잉을 절
감하거나 배제시킨다. 오히려 <봄날>은 <사진22,23>처럼 더욱 근접
한 프레이밍 속에서 주의집중을 통제하기 위해 카메라맨이 배경의 초
점을 흐리게 함으로써 주요 인물을 강조하는 길을 택한다. 그러한 선
택적 초점은 대개의 경우 조리개를 더 넓게 여는 것에 의해, 그리고
더 긴 렌즈로 촬영하는 것에 의해 성취16)된다. 달리 말해 전면에 위
치한 인물은 초점화 되어 관객에게 전경화 되지만, 후면에 위치한 여
타의 배경들은 탈초점화되어 흐릿한 영상 속에 남게 된다.
겨울에 만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주인공들이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영상으로 나타난다. 연분홍 벚꽃
이 핀 가로수 길을 걸으며 은수는 상우에게 다시 만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상우는 이제 시련의 아픔을 극복한 성숙의 여로에 접어들었다.
그는 이제 은수의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에 이끌리지 않는다. 이것
을 감독은 롱샷으로 잡는다. 카페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걷는 상우
를 쫓아가느라 더 빠르게 걷는 은수가 길을 힘들게 따라오는 장면부
터 그들의 관계변화가 암시되어 있다. 이것은 이를테면 남녀의 관계가
전복된 서사 내의 변화일 것이다. 사랑이 무르익었을 때 적극적인 은
수와는 대조적으로 상우는 대체로 소극적이고 부드러운 성격을 인물
유형이었다. 이런 이유로 상우는 은수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성향을 띠었다면, 영화 후반부에 나타나는 이 벚꽃 길의 걸음의
의미는 상우의 태도 변화를 인식하게 한다.
반대로 은수는 첫 만남에서 종이에 손이 베게 되는데, 이때 “손을
심장위로 올리”라는 과거의 상우의 말대로 헤어진 후 같은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리는 행위를 한다. 이러한 습관적 행위로 인해
그녀는 불현듯 상우가 그리워지고 다시 찾아가 재회의 뜻을 밝힌 것
이다. 그러나 늘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던 상우는 거절의 의사를 밝
히게 된다. 이러한 주인공의 관계가 드러나도록 롱샷의 기법을 통해

16) 데이비드 보드웰, 김숙 외 역, 영화 스타일의 역사, 한울, 2002, 266~267쪽 참조.

218 용봉인문논총
그들 관계의 역전을 관객들은 느끼게 된다. 만약 클로즈업의 촬영기법
이 있었다면 관객들은 이 씬에서 재회 불가능성을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우의 심리가 얼굴표면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표정을 클로즈업이 아니라 롱샷이나 미디엄샷으로
처리하여 실루엣으로 심정을 읽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클로즈업은 카메라가 인물의 지각을 대신하여 어떤 대상을 의도적
으로 확대한다는 점에서 대상에 대한 그 인물의 의식을 드러내는 하
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럼으로 관객이나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
게 인물의 표정에 집중되고, 감정이나 느낌이 세부적으로 드러나기 때
문이다. 그러나 그간 영화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알고 있다. 뒷모습
을 보이는 상우의 표정, 혹은 카메라가 친절하게 보여주지 않는 그의
복잡한 심정을 말이다.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과도기의 그에게
단호하게 거절한 후에 찾아오는 쓸쓸한 감정의 깊이를 클로즈업이 아
니더라도 충분히 간접 전달되는 것이다. 관객들에게 감정적 동일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하는 통상적 멜로드라마와는
분명 다르다.
상우와 은수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둘을 각각 클로즈업-컷
-클로즈업으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
는다. 이로서 연기하는 배우들은 대사를 끝내고 컷 사인이 나는 것이
아니므로 실제로 뚜렷한 대사보다 그때그때의 감정과 애드리브가 많
이 들어가도록 요구받았다고 한다. 카메라가 한번 앵글을 잡으면 좀처
럼 움직이지 않고 오랜 시간 한 자리에 고정되어 그 상황 안에서 우
러나올 수 있는 감정을 담아내려는 감독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카메라 이동과 편집을 자제함으로써 관객들에게 다소 지루
함을 안겨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얻는 효과도 상당하다. 관객의 시
점을 단절 없이 유지시키며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며 비슷한 장면
안에서 변화된 주인공의 상황이나 심리를 잘 인지하게 한다. 상우의
소극성과 우유부단함이 사라지고 훨씬 성숙하고 자립적인 변화일로나,
은수의 상우에 대한 위험하고 즉흥적인 행위에 대한 응분의 결과물이
라는 정보를 관객은 영상으로써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벚꽃 씬은 이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19
영화에서 독특한 기법이면서 관객에게 색다른 감성경험과 상징체험을
하게 한다.

<사진17> <사진18>

<사진17>

<봄날>은 사랑하는 은수가 떠난 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해


심리적 추락을 경험하고 마침내는 마음의 균형과 안식을 얻어가는 상
우의 심리적 과정을 그린다. 대단히 시각적 상징성을 띠는 마지막 씬
은 강풍으로 흩날리는 황금 보리밭 사이를 당당하게 헤쳐 나가고 그
보리밭의 한복판에서 소리를 담아낸다. 처음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
담히 소리를 담아내지만 곧이어 해맑은 미소를 띠게 되는 것으로 영
화의 막이 내린다. 그에게 있어 정신적 상처의 과정을 겪은 후 이르게
되는 심리적 안정과 성장은 영화의 정제된 미의식으로까지 승화된다.
더불어 이 마지막 씬은 관객에게 더 많은 감성의 진행을 유도한다.
상우가 한동안 그만 두었던 녹음 작업을 위해 마이크를 들고 바람 부
는 보리밭 복판으로 걸어가면서 관객에게 의미심장한 장면으로 기억
된다. 황금빛 보리밭을 배경으로 하여 음향 효과인 바람 소리가 ‘쏴쏴’
들리는 이 장면은 상우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은수에 대한 감정을 어
떻게 매듭지을 지를 궁금하게 한다. 그런데 감독은 이러한 상황조차도
롱샷으로 처리하여 상우의 심리와 판단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
는다. 계속해서 상우의 복잡한 감정이 물리적 거리감처럼 멀리에서 진

220 용봉인문논총
행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무표정했던 상우의 표정이 미디엄 샷
으로 처리된다. 그러다가 순간 오묘한 미소를 띠는 장면에서 컷이 되
고 영화는 결말을 맞이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도 영화는 관객의 감성적 공간을 시원하게 해소
해 주지 않는다. 이런 점은 열린 결말로 인해 상우의 감정의 끝이 어
떻게 해결된 것인지는 여전히 관객의 적극적 해석으로 가능해지는 것
이며, 이것은 곧 <봄날>의 절제된 영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멜로드
라마의 과잉적 요소는 관객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데 반해, 이 영화는 그러한 요소를 최대한 자제하면서 최소
한의 말을 할 뿐이다. 이러한 정제된 감성, 또는 간접적 감성 요소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데, 급변하는 감
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신 오히려 서사에 대해, 시각적 이미지와 연
루된 산재한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는 묘미를 준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여느 멜로드라마와 차별화될 수밖에 없는 결
정적 단서로 소용하는 것이다.

Ⅴ. 결론
영화는 이미지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 그만큼 시각적 효
과가 두드러지는 장르임에 분명하다. 여기에 멜로드라마는 관객의 감
성을 자극하고, 그 안에서 감성 경험을 용이하게 할 수 있기에 여타
장르보다 감성과 더 밀접하게 맞닿아 있음은 자명하다.
이에 본고는 <봄날> 분석을 통해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찾아보면
서 그 안에서 변주된 차별성을 의미화 시키는 데 천착했다. 멜로드라
마적 요소에 근접하여 서사의 내용적 측면과 캐릭터로 인한 감성 유
발을 분석해 보았다. 반면 변주적 요소로는 미장센에 따른 서사적 정
보의 다양화와 그에 따른 기술적 연출에서 생성되는 풍부한 감성과의
연계성을 살펴보았다. 또한 이것은 다시 과잉을 배제한 감성의 절제와
도 연결되는 지점이라 할 만한다.
결국 <봄날>은 감성 시스템을 활성화 시키는 동시에 배타적으로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21


감성을 배제하며 지속적 해석 가능성을 남기는 독특한 영화이다. 관객
감성을 과도하게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과감히 삭
제했다는 데에 그 차별성이 있으며, 대신에 느린 속도감으로 깊이연출
을 시도한 감독의 역량이 부각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화면 구도와 상징적 기법을 활용한 씬
은 관객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 의미를 조직하라고 자극한다. 이러
한 과정을 통해 관객은 오랫동안 감성적 여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
다.

222 용봉인문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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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23


<Abstract>
A Study on Film One ine pring Day f S
-Focusing on filmic emotion and various melodrama
feature
Jo, Seon-Hui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looking up the characteristics


of melodrama element associated with the Film One fine Spring
Day. In addition, the objective of the study is to analyze using
a unique technique to build emotionally oriented non-melodrama
feature, or various melodrama feature. This study have used
both emotion theory and film theory for analysis. As a result,
the objective of the study of this film is to express the unique
emotional effect.
Emotion of the film narrative flow and character of the
internal mutual sensitivity, or because of their sensitivity to be
delivered to the audience and the audience is self-induced
emotions. This film is the subject of men and women of love
and farewell. But the individual characters in the movie inside
may be identical to each other and feeling each other, on the
other hand, can vary. Likewise, the audience on the characters'
actions and dialogue are exposed film to see that you can
experience various emotions. But these things aside as a tangle
nets that do not have to worry that. Through this process, the
study One fine Spring Day. In this scenario, how emotional I
have tried to oversee what works.

224 용봉인문논총
Protagonists in the love they draw a different picture of love
because These two did not fulfill. Sang-Woo is also in the film
through the farewell process of further growth in this image
appears and the audience was impressed. Close up shot of the
film technique, but rather a long shot and long take technique
was used. Just this point that this movie is one reason why
sensitivity to stimuli. Process of emotional stimuli Director Huh
Jinho's unique shooting technique appears well. Because it is
selected by the Director Huh Jinho is deep staging. It also was
association with the composition screen utilizing the
mise-en-scène. In addition, this technique for resection of the
film's excess emotions are amplified by the combination is
formed. In addition, the technique of resection of the excess of
the film pursuing but also to form a amplified composite
emotions. Thus, the film that set it apart from conventional
melodrama has various melodrama feature.
f S
Eventually One ine pring Day activate the system while
still at the same time the sensitivity limits the audience
sensibilities. After the film, it continued leaves the possibility of
interpretation is a unique film. For excessive sensitivity of the
audience, the various elements needed to drastically amplify the
deleted. This is very different from other films. Instead, the
film with deep staging try to slow speeds. This is also the
capacity of director, the film can not see a light point is right
here. And a unique screen compositions and symbolic methods
utilizing scene is. This is to stimulate that more active
audience Organizes the film's meaning. The audience goes
through this process will experience a long emotional aftertaste.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감성 연구 - 변주된 멜로드라마적 감성을 중심으로 225


Keywords : melodrama, filmic emotion, various melodrama feature, One fine Spring Day,
character, staging, mise-en-scène, Close up shot, long shot, resection of the
excess, emotion experience

이 논문은 2011년 6월 30일 투고되어 2011년 7월 31일 심사 완료하였으며,


2011년 8월 10일 게재 확정되었음.

226 용봉인문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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