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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프와 이데올로기 >

김지언
들어가기 전에
“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나 담론은 언제나 ‘다큐멘터리영화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이 질문을 되돌리면서 끝나곤 한다 . 연구나 담론이 다큐멘터리의
존재론에 결박당해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편수의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제작되고 상영되고 회자되고 있다 .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존재하고 자체적 생명력을 가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 그 존재를 규명하고
분류하는 개념과 언어는 출발선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영화를
다루는 학술과 비평의 책임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실험과 도전에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해 주고 , 창작 현장에 미학적 / 양식적 자극을 제공해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변증법적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한다면 , 현재의 다큐멘터리 영화 연구 환경은
안타깝게도 창작 현장이 해놓은 성취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셈이다 .”
우리의 수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 동시대 새로운 양식을 모색 중인
작품들의 정치 . 사회 . 미학적 의미를 ‘각자의 시선으로’ 탐색해 보고자 한다 .
제 15 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9.14-21)
다큐멘터리 전용 스트리밍 플랫폼 VoDA 의 새 버전과 함께
준비한 온라인 기획전은 다큐멘터리 영화의 첫 장면을 다시
찾는 작가전이다 . 그 주인공인 로버트 플래허티는 최초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기념되는 〈북극의 나누크〉 이후 , 존
그리어슨 , F.W. 무르나우 등 영화사의 거장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기념비적이면서도 논쟁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
유능한 탐험가이기도 했던 그는 이후 도래할 다양한
다큐멘터리 양식의 원형을 개척했다 . 양식과 문법이라는
관습화된 꼴을 갖추지 않았던 기록 영화를 개척한 선구자의
궤적을 되짚고 , 그의 작업이 촉발한 논쟁들을 재검토하며
다큐멘터리가 태초에 품은 잠재성을 다시 모색하려 한다 .
‘ 양영희 3 부작’
• 냉전기 탈식민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배제되어온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가족의
경험과 기억이 후속 세대에 전승되는 양상에 관한 사적 다큐멘터리 .
• < 디어 평양 >(2006), < 굿바이 , 평양 >(2011) 이 북송사업으로 인해 평양과 오사카로
이산된 가족구성원들의 일상을 수년간 축적된 홈비디오를 통해 가시화한다면 , <
수프와 이데올로기 >(2022) 는 아라이 카오루와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과정을 담은
전반부와 강정희의 기억을 추적하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
양영희 ( 梁英姬 ) 는 1964 년 일본 오사카 이쿠노구의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 세로 ,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2004 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 그는 현재까지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극영화
< 가족의 나라 >, 소설 『가족의 나라』 , 『도쿄조선대학교
이야기』 , 산문집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를 통해 ,
식민과 냉전의 시대를 지나온 재일조선인 가족의 역사를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꾸준히 기록 , 발표해왔다 .
데뷔작인 < 디어 평양 > 이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그의 영화들은 유수
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수상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
다큐멘터리 3 부작의 끝을 알리는 < 수프와 이데올로기 >
또한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 들꽃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 공개 이후 , < 디어 평양 >, < 굿바이 ,
평양 > 또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상영이 이루어졌다 .
< 디어 평양 >
제주도에서 태어나 15 살에 일본으로 간 감독의 아버지는 오사카에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 조총련계 간부가 된 아버지는 1970 년대에 십
대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냈고 , 감독은 오빠들과 떨어져 홀로 유년기를
지냈다 . 북한에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오빠들을 위해 어머니는 30 여 년간
온갖 생필품들을 비롯해 결혼자금 , 생활비 등을 보냈다 . 아버지의 선택과
신념을 받아들이지 못한 감독은 < 디어 평양 > 에서 그에게 끈질기게
질문하고 결국 아버지는 미약하게나마 스치듯 진심을 털어놓는다 . 그리고
감독은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
여기에 화해 혹은 치유라는 표현을 쓰는 건 ,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이
가족사의 상처를 제 3 자의 시선으로 성의 없이 봉합하는 일이 될 것이다 .
다만 감독은 자신이 처한 이해 불가능한 현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
실패가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자리에 서 보려 애쓴다 .
• < 굿바이 , 평양 >( 선화 , 또 다른 나 ) 에서 감독은 평양 가족들의 자리 , 특히 자신을 똑 닮은 어린 조카
선화의 자리에 서보려 한다 . 둘째 오빠의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선화는 5 살이 되던 해에 엄마를
잃고 , 오빠는 곧 세 번째 결혼을 한다 . 감독은 표면적으로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 억압이나 삶의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밝고 영특하게 자라는 선화에게 애정을 느낀다 . 감독의 카메라는 영화 속 그
어떤 인물보다도 선화에게 다가갈 때 , 가장 활기를 띠고 친밀해지며 거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 선화가
‘수령님’에 대한 시낭송을 할 때조차 , 선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즐거운 시선은 이념의 엄숙하고 딱딱한
무게로부터 자유롭다 .
• < 굿바이 , 평양 > 은 ‘침묵’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 이를테면 “음악과 커피를 사랑했지만 , 북한에
온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큰 오빠의 공허한 얼굴이 카메라에 빗겨가는 순간 , 선화가 감독과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카메라를 꺼달라고 말하는 순간 , 아버지가 감독이 요청한 노래를 부르지 않고 한참을
눈을 감고 있던 순간 ( 감독은 그때 , “ 아버지 무슨 생각 해요 ?” 라고 묻지만 관객은 그의 대답을 듣지
못한다 ), 관객은 말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회한 , 갈등과 같은 마음의 돌기들을 떠올린다 . 비극의
역사를 몸소 살아낸 이들의 복잡하고 아린 속을 관객은 끝내 만질 수 없으며 카메라도 더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 삶이 있고 그 삶을 버티게 했던 신념이 있었고 , 그 신념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삶의 외로운 층위들이 있었고 , 그리고 결국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는 , 지극히 추상적이지만 , 어쩔수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어떤 이들의 삶의 고독한 행로를 그저 무력하게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
감독의 말 1

개인사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지만 감독은 어느 장면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 많은 장면을 직접 촬영했고 ,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돌봐야 할 때는 따로 촬영감독을 대동했다 .

“ 반은 딸로서 가족을 찍고 , 반은 감독으로서 주인공 캐릭터로


괜찮을지 봅니다 . 처음에는 ‘어머니 얘기만으로는 장편 다큐로 찍기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 12 세 연상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특이한
일본인 ( 남편 ) 이 나타났을 때 ‘스토리가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
웃음 ).”

( 백승찬 , < 양영희 감독 “왜 이런 집의 딸일까…부정하고 싶은 정체성 , 정면으로


마주쳐야 했다” >, 경향신문 , 2021.09.08)
감독의 말 2
‘ 피사체를 대하는 윤리’는 다큐멘터리 역사의 오래되고 중요한
화두다 .

“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하는 분들 중에 스스로 사회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더군요 . 솔직히 소름 돋았습니다 .
다큐멘터리에는 배우 아닌 사람이 등장하고 , 그들은 돈도 안 받아
요 . 영화가 끝나도 그 사람들은 계속 삶을 삽니다 . 영화로 인해
여러 평가를 들을 텐데 그중에는 듣기 싫은 소리도 있잖아요 .
인물들의 보석 같은 말들도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에서
나온 겁니다 . 그 삶과 말을 모아 결과가 좋으면 상은 감독이 받아요 .
그게 참 뻔뻔하다는 자각이 다큐 감독에게 있어야 합니다 . 설령
범죄자를 찍을 때도 그 삶에 대한 최소한의 경의가 있어야죠 . 내
아버지 , 어머니의 사상은 틀리지만 , 난 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경의를 버리지 않습니다 .”

( 백승찬 , < 양영희 감독 “왜 이런 집의 딸일까…부정하고 싶은 정체성 , 정면으로


마주쳐야 했다” >, 경향신문 , 20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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