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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V & RADIO

WRITERS JOURNAL 02
2019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하루에 10억 시간, 이제는 방송 말고 유튜브! | 이선희
사용자 우선주의 콘텐츠 유통혁명의 승리 | 신동희
나도 ‘인기 유튜버’ 한번 돼볼까? | 이창균
혁명의 미래: 유튜브는 방송을 대체할 것인가? | 노광우

여기 이 作家
<TV유치원> <뽀뽀뽀> 안영은 작가 <TV유치원> <뽀뽀뽀> 안영은 작가
04 여기 이 作家
어린이와 어른이 사이를
마법의 가루로 날아다니다
<TV유치원> <뽀뽀뽀>의 안영은 작가
글 김명호
KOREA TV & RADIO
WRITERS JOURNAL 02 10 作家 in 作家 Ⅰ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발행일 2019년 2월 5일 | 등록번호-영등포,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한희정 작가
라 00494 | 등록일자 2016년 10월 24일 글 김선미
≪방송작가≫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
강령 및 실천 요강을 준수합니다.≪방송작가≫
14 作家 in 作家 Ⅱ
운칠기삼, 이제는 실력으로 말할 때
에 게재된 필자의 의견은 본 협회의 공식 의사
라디오드라마 <KBS무대> 이진우 작가
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방송작가≫
글 김윤양
에 게재된 글과 사진은 동의 없이 무단 복제할
수 없습니다. 18 방송작가가 만난 사람들
작가 김중만 자유를 향한 여정
글 김주영

여기 이 作家
<TV유치원> <뽀뽀뽀>
안영은 작가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28
28 하루에 10억 시간, 이제는 방송 말고 유튜브!
글 이선희

32 사용자 우선주의 콘텐츠 유통혁명의 승리


글 신동희

36 나도 ‘인기 유튜버’ 한번 돼볼까?


글 이창균

40 혁명의 미래: 유튜브는 방송을 대체할 것인가?


글 노광우
時代共感
66 시인 이정록의 강 건너 풀빛
가난한 이름
글 이정록

68 한창욱의 이렇게 읽는 영화
초과하는 에너지들 영화 <레토>

44
글 한창욱

70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들


옷장 앞에서 투덜거리는 아내의 위대함에 대해서
글 이장주

44 방송유감 72 해외통신 – 영국
우리는 왜 그들의 일상을 이렇게 정치드라마 전성시대
자세히 알아야 할까 뜨거운 화두를 건드린 드라마
글 이종임 <브렉시트: 무례한 전쟁>
글 김수정
48 저작권 칼럼
삼고무 논란 75 생명보험상식
글 홍승기 보장성? 저축성? 종신? 헷갈리는 보험 용어들
글 생명보험협회 홍보부
52 방송작가 반세기
소리에 빠지다
글 유수호

76
56 연출노트
용기로 가능했던 모든 것들
JTBC <SKY 캐슬>
글 조현탁

60 프로그램 집필기
일상에 지친 당신들을 위로할 76 作家共感 Ⅰ
위大한 언니들의 푸드테라pick! 나만 아는, 아버지의 두 여자
<밥블레스유> 제작기 글 조수연
글 정다운
78 作家共感 Ⅱ
64 저작권 상식 비폭력 대화 랜드
유명 드라마 속 캐릭터를 이용한 글 한영란
광고와 퍼블리시티권
80 作家共感 Ⅲ
재택근무, 너 참 어렵다?
글 이모민

82 협회소식
2019년도 정기총회, 2월 26일 개최

84 편집자의 말
대중 없는 시대
여기 이 作家

어린이와 어른이 사이를


마법의 가루로 날아다니다
<TV유치원> <뽀뽀뽀>의 안영은 작가

글. 김명호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협조. 마호가니 여의도점

어린 시절 제일 많이 꾸었던 꿈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못지


않게 많이 꾸었던 꿈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떨어지는 꿈도, 날
아다니는 꿈도 꾸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웬디가 피터 팬의 손을 잡고 더 이상 날지 못하는 안타까
운 작별 같던 그때는….
어린이 프로그램과 동화작가로 20년 넘게 살아온 작가 안영은은 여전히 그런 꿈을 꾸고 있을까, 궁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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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어린이 프로그램만 고집하신 이유가 뭔가요?

제 평생 꿈이 두 가지였어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소아과 의사가 꿈이었는데 제가 문과 쪽에 소질이 있는 걸 알고부터는


<뽀뽀뽀> 작가되는 게 꿈이었죠. 대학 때 아르바이트로 MBC <퀴즈 아카데미> 문제 출제를 했었는데, 옆 스튜디오가 <뽀뽀
뽀>였어요. 아 그럼 다음에 <뽀뽀뽀>하면 되겠다 했는데 두 팀이 별로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러다 <TV유치원>에 인연이 돼
서 13년을 했는데, 어느 순간 샐러리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새로운 게 없는…. 그래서 과감히 접고 한동안 외부
프로젝트를 많이 했어요. <뽀로로>, <뽀로뽀로뽀로로>… 그 사이 <뽀뽀뽀>에서 여러 차례 러브콜이 왔었는데 그게 왠지 <TV
유치원>에 의리가 없는 것 같아 몇 차례 고사하다, 이 정도 거절했으면 의리를 지킨 게 아닌가 싶을 때쯤 <뽀뽀뽀>로 갔죠.

어린이 프로그램의 어떤 점이 그렇게 재미있으셨나요?

제가 형제가 많은 굉장히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다른 형제들은 다들 운동권에 비판적이고 이성적이고 냉철한 스타일
인데 저만 그런 성향이 아니었던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그 다복한 시절을 더 오래 누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출판
동화 작가도 하고 있는데 그걸 하면서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심리 치료, 힐링이 되더라고요. 제가 저를 보면 어른으로서 이
프로그램을 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로서 하고 있더라고요, 완전 이기적인 거죠.

지난여름에 아이들 10여 명을 데리고 촬영할 일이 있었는데, 영혼이 털리는 기분이었어요. 자는 놈, 똥 마렵다는
놈, 배고프다는 놈 지들끼리 싸우다 우는 놈… 두 번은 못하겠다 싶던데, 아이들과의 작업이 힘들진 않으셨나요?

아이들은 가까이 있으면 불에 데요. 저도 사실 아이들하고 오래 하는 건 안 하려고 하는 게, 아이들이 너무 힘들잖아요. 옛날


에는 쥐어짜듯이 잘할 때까지 한다, 그런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게 불편했어요. 아이들이 즐겁지 않은 거잖아요. 저는 아이들
이 보고 재밌어했으면 하는 콘텐츠를 하는 사람이에요. 어린이랑 내가 그 프로그램을 하는데,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고 그걸
보는 아이들도 만족스럽지 않은 그런 작업은 제가 불편해요.

거의 20년을 하셨으니까 재밌는 에피소드나 황당한 사건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성인 연기자가 탈 인형을 쓰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코너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쉬는 시간이나 그럴 때 연기자가 탈을 벗


으면 아이들이 실망하고 놀랄까 봐 탈을 못 벗게 했거든요. 그런데 애들이 막 붙잡고 늘어지고 하니까 연기자 분은 아주 죽
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아이들한테 ‘니들이 이렇게 콩콩이 힘들게 하면 콩콩이 아파서 쓰러진다’ 했는데 애들이 그 얘길 듣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거예요. 사실 가끔은 ‘아이들하고 촬영하는 거 힘들어’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저 아이들에게 상처
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랐어요.

이력 중에 특이해서 제 시선을 끈 게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였어요.

언젠가는 동화를 써야지 하다가 TV 프로그램을 하느라고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건강검진을 했는데 약간의 문제
를 발견한 거예요. 사실 건강상 큰 문제는 아니었는데 저에겐 좀 엄청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픈
시기에 그걸 쓰게 된 거죠. 거의 처음 쓴 작품이었는데, 제가 방송작가다 보니까 여러 가지 다양한 분야를 취합하는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다른 말로 융합인데, 그게 방송작가들이 잘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많은 프로젝트를 하고 해마다 콘셉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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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들을 하다 보니 그걸 잘 얽으면 굉장히 창의적인 백화점이 되는 거죠. <세상에서 제일 큰 케이크>를 쓰면서 다양한 분
야와 장르를 잘 얽는 기술을 터득했어요. 사실 그 책은 그냥 수학 학습 그림책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던 스토리텔링에
맞춰가지고 수학이라는 개념에 물리, 건축, 요리, 과학을 접목한 거예요. 그리고 다 알고 있겠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먹는
걸 엄청 좋아하잖아요. 사실 그게 저랑 잘 통하더라고요. 그런 걸 잘 얽은 거죠. 덕분에 그걸로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았는데 저도 깜짝 놀랐어요. 건강 때문에 굉장히 슬퍼하고 있을 때 그냥 운명 같이 제게 준 선물? 그런 느낌이었어요.

책을 쓸 때와 방송을 쓸 때의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둘 다 엄청 재밌는데, 방송은 그때그때 트렌드를 바로 소화하고 딱 ‘Right Now!’에 충실하다면 동화책은 흐름을 생각하기
전에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인 것 같아요. 방송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기호, taste, trend, keyword, 재미 그런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은 맞는데 동화는 내 안의 것에만 집중해도 가치가 생기더라고요.
방송은 경제 플러스 뭔가가 더 있어야 하고, 책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집중해도 상품 가치가 생겨요.

역대 뽀미 언니들에게 관심이 많잖아요. 같이 작업한 뽀미 언니들은 누구였나요?

KBS는 하나 언니, MBC에서는 뽀미 언니인데, MBC는 제작비가 많지 않다보니까 아나운서랑 매칭해줘서 유재석 씨 부인인
나경은 아나운서와 작업했어요. KBS에서는 하도 오래해서 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지금은 누구랑 하냐면, 헤이지니라고 유
튜브에서 인형 소개로 유명한 친구예요. 사실 처음엔 헤이지니를 기용하는 데 찬반 의견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
람이 하는 말이 더 힘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작가니까…. 지금 3년째 하고
있는데 어느 때보다 아이들의 반응이나 조회 수가 많고 교육적인 것을 하니까 처음엔 반대하던 어머니들도 이젠 좋아하시
더라고요. 옛날 뽀미 언니나 하나 언니의 이미지는 지금 완전히 바뀌고 있어요. 이제 아이들에게 가르치듯이 말하고 안정된
톤의 사람이 먹히는 시대가 아니고 뭔가 굉장히 아이들처럼 천진하게 같이 웃고 공감하고 그런 사람이 맞는 시대인 것 같아
요. 교육적인 포인트를 좀 낮추고 대신에 한 가지라도 아이들이 정말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필요한 것 같고요, 요즘 아이들은 그런 면에서 정말 달라요.

다양한 문학 중에서 영상 작가가 된 것, 그리고 어린이 프로그램만 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으신지.

우리는 TV 세대잖아요. 한참 TV를 보고 자란 세대니까, 솔직히 저는 작가라는 것에 방점이 있었던 게 아니라 어린이에 방점
이 있었어요. 저는 지금도 매일매일 쓰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철저히 나에 맞춘 직업 선택이었죠. 달라진 거라면 옛날에는
후배들에게 ‘방송작가 하지 마, 그냥 취직해’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방송작가를 해본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
각이 들어요. 어린이 뮤지컬을 쓰는데 그게 매우 잘 되고 있는 이유가 아까 얘기했던 트렌드, 기호, 키워드, 그리고 주고자 하
는 핵심 요소를 잘 압축할 수 있는 기술을 방송 일하면서 배울 수 있거든요. 방송작가는 방송이든, 뮤지컬이든, 애니메이션
이든 무슨 일이든 융합하고 끌어 모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옛날엔 ‘보따리 장사’다, ‘적금도 오래 못 든다’ 그런 부정적
인 생각만 했었는데, 왜 좀 더 긍정적인 것을 더 많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지난번 작가협회 시상식
에서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 작가님이 오프닝에서 하신 말씀이 너무 절절히 좋았어요. “내가 20대 30대에 지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불면의 밤을 지새우지 않았을 텐데, 좀 더 즐겁게 일했을 텐데”라는 말이 되게 와 닿았거든요. 어찌
됐건 우리는 모으는 직업이잖아요, 말모이, 전공모이처럼…. 지금에 와서는 그게 장점으로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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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란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이고, 친구인데 이제 아이들이 자신을 ‘Only 어른’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낯가림이 생
겼다는 그녀는 이제 친구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봐, 못 놀아 줄까 봐 관찰할 때 가장 행복하다면서도 아이가 소름끼치게
좋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놀랐던 것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주부 프로그램에 밀려서 오후 한 시에 방송되고 방송 시간


도 많이 짧아졌더라고요. 어린이 프로그램 작가로서 이렇게 대폭 축소되고 사양화되어 가는 현상에 대해서 한 마
디 하신다면요?

물론 아침 방송보다 시청률이 잘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방송사가 아직 어린이 프로그램을 남겨준 것에 감사해요. 이제 탈출
구를 찾는 게 우리 몫이겠죠. 그리고 또 한편 다행인 것은 이제 유튜브나 1인 방송처럼 거대 방송국이 아니어도 살아남는 방
법이 생긴 거죠. 빌보드 차트에서 30위를 한 ‘아기상어송’ 같은 경우 출판사에서 제작했지만, 세계적인 흥행을 했잖아요. 거
꾸로 말하면 이제 거대 방송국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내가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걸러진 내용을 아
이들 입맛에 맞게 잘 제작하고, 1인 방송이나 그런 것들은 핸드폰으로 찍어 화질이나 오디오는 약해도 아이들 트렌드를 맞
출 수 있고…. 두 가지 길이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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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나 싸이가 아니더라도 빌보드 차트 30위까지 오른 ‘아기상어송’처럼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영원히 필요하고 또 여전히
잘 먹히는데 너무 자본논리에 밀려 소홀히 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녀는 의외로 낙관적이었다.

‘어른이’라고 하잖아요, 친구 딸이 고3이라서 어렸을 때 보던 책을 다 버렸더니 엄청 화내더래요. 자기들은 가끔 그 그림책


을 읽는다는 거죠. “다 커서 그걸 왜 읽니?” 했더니 저걸 읽으면 그걸 읽었던 때의 행복했던 시간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거
예요. 생각해보면 좋은 어린이 프로그램이라는 건 그런 것 같아요. 어른도 끌어들여서 그 음악을 듣고 그걸 할 때만큼은 행
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 어린이와 어른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그런 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엄청 설
레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언제까지나 동심을 잃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피터 팬의 마법 가루가 뿌려진 듯 반짝거리
고 있었다. 그 손을 잡으면 마치 지금이라도 당장 함께 날아갈 수 있을 것처럼….

안영은 作家
주요 집필 작품
2005 EBS <뽀롱뽀롱 뽀로로>
2008~2013 MBC <뽀뽀뽀>
2014~현재 KBS <자동 공부 책상, 위키>
2014~현재 KBS <TV유치원>
2017 EBS <보니하니 공룡 슈퍼>
2018 EBS <보니하니 엉뚱남매 공작소>
2018~현재 KBS <ㅋㄷㅋㄷ 코딩TV>
2018~현재 EBS <엄마 까투리>
2018~현재 EBS <슈퍼 윙스>
2018~현재 EBS <엉뚱남매 요리조리쇼>

저서
2015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

공연
2017 <엄마 까투리 뮤지컬 1>
2018 <엄마 까투리 뮤지컬 2>

주요 수상 경력
1997 KBS <TV유치원-아빠가 좋아> ABU 특별상
2013 재능방송 <미술관 고양이 미야옹> 방송통신위원회 우수작품상
2015 도서 <세상에서 가장 큰 케이크>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
2017 대교방송 <미술관에 간 클래식> 한국콘텐츠진흥원 작품상,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2018 제31회 한국방송작가상 교양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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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家 in 作家 Ⅰ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한희정 작가

글. 사진. 김선미 편집자 장소협조. 고양 소울커피

안 어울리게 결벽증이 있다. 심한 편은 아니고, 엄밀히 말하면 부분적 결벽증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지


뢰밭을 걷듯이 요리조리 피해 걸어야 하는 폭탄 맞은 방에서 일말의 불편함도 없이 주말을 보낼 수 있지
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냄새가 포착되면 영하의 날씨에도 창문을 열고 캔들을 켜고 싱크대에 락스를
퍼붓는다. 내 안의 두 상반되는 성향을 각각 소유한 드라마 속 두 남녀에게 그렇게도 친근함을 느꼈던
이유다. 트라우마로 인해 청결이 목숨보다 중요해진 꽃미남 청소업체 CEO와, 씻는 것도 사치인 팍팍한
현실 속 취업준비생. 아무리 갖다 붙여 보려도 나에겐 그 어느 쪽도 이해가 될 만한 인생의 트라우마 같
은 것은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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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씩 받아보는 꽃 배달.
원고와 씨름을 하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돌려 꽃을 바라볼 때면
위안을 받은 듯 마음이 차분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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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고 작가의 웹툰 원작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연재되는 모든 웹툰 사이트마다 1위를 휩쓸었고, 유료 결제한 독
자 수만 450만 명을 훌쩍 넘는 웹툰계의 인기작을 리메이크 하는 것은 여러모로 한희정 작가에게 큰 도전이었다.

아는 PD님이 원작을 한번 봐달라고 하셨어요. 제목이 워낙 특이하고, 결벽증 남자와 더러운 여자라는 설정이 되게 재밌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결벽증 남자가 사랑 때
문에 치유되어 가는 이야기. 원작이 워낙 인기가 높아서 부담도 되고, 또 사실 제가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에 자신이 없어
서 늘 로코는 안 한다 안 한다 그래왔었는데 그럼에도 이런 로코라면 되게 매력이 있겠다 생각이 들었고 제가 해보겠다고
했어요. 코미디는 원래부터 굉장히 좋아했던 코드고, 막상 해보니 제 안에 로맨스에 대한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이번에(웃음).

원작의 동명 타이틀과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홍보 포스터 속 주인공들. 방영 전부터 리메이크에 대한 기사화


되며 원작과의 싱크로율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극을 끌고 가는 큰 사건이나 새로운 주변 캐
릭터들은 원작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다.

큰 틀과 에피소드 굵직굵직한 것들만 좀 가져오고 아예 다 바꿨어요. 캐릭터도 결벽증 남자와 더러운 여자, 그리고 청소의
요정(청소회사) 멤버들 정도 외에는 다 바꾼 거나 마찬가지고요. 물론 일단 캐릭터가 잡혀있고 에피소드가 풍부하니까 도움
이 많이 되긴 했죠.
웹툰과 드라마가 풀어가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원작에서는 장선결(윤균상 분)과 길오솔(김유정 분)의 로맨
스가 주가 되고 막판에 오솔 부모님의 생사 여부를 밝혀나가는 힘으로 극을 끌고 가는데, 드라마는 그 하나의 선으로 16시
간을 끌고 가기가 어려웠어요. ‘드라마는 갈등이다’라고 배웠거든요. 한 회 한 회 들어가야 할 갈등들이 좀 더 많았고요.

원작의 길오솔은 열아홉에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하면서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다. 깨끗한 걸 보면 쓰러
져버리는데,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더니 집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고 그때 전화를 받고 부모님의 사고 소식을
듣게 되면서 깨끗한 걸 견디지 못하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 현실에 치여 본의 아니게 더러워진(?) 드라마 속 길오
솔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드라마라는 틀에서 로코의 여자주인공이 갖기엔 원작의 설정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6부 동안 연애를 하고 코
믹한 코드로 극을 활기차게 이끌어가야 하는데, 갑자기 부모를 다 잃고 슬퍼하고 부모님이 진짜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좇는
전개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남자주인공 차에 뛰어들기까지 하거든요, 죽으려고. 저는 여주만큼은 좀 밝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여주의 이야기를 많이 바꿨고, 원작과는 다르게 아버지도 만들고 동생도 만들었죠.
최군(송재림 분)은 원작에는 없는 캐릭터인데요. 일단 로맨스의 긴장감을 주기 위해 삼각 구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첫 번째고요. 또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길오솔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처가 있고 장선결도 가족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불결공포증이 생긴 건데, 이런 두 사람
의 상처를 치유해줄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과 의사인 최군을 만들게 된 거죠.

녹록지 않았던 사회입문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을 길오솔의 험난한 취업기와 뼈를 때
리는 절절한 대사들. 작가도 분명 만만치 않은 맘고생의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 단정 짓게 만들었고 예상은 빗나가
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 협회 교육원에 들어가 기초반부터 창작반까지 쉬는 텀 없이 차곡차곡 단계를 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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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올라간 한희정 작가는 보조작가 생활을 거쳐, KBS 기획반에서의 2년, 2011년 KBS 드라마스페셜 <기쁜 우리
젊은 날>로 일찍이 입봉도 했고 KBS 인턴작가 생활도 했다. 이후 드라마스페셜 <국회의원 정치성 실종사건> 4부
작,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까지. 언뜻 보기엔 비교적 순조롭게 이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 나이에
드라마를 써보겠다고 무작정 100만 원을 들고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던 그에게는 기약 없는 하루하루의 무
게가 너무도 버겁기만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들이 없진 않겠죠. 저 같은 경우 작가 지망생 시절에는 정말로 세상이 왜 내 글을 몰라주나, 나만


안 되는 것 같고, 교육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여의도의 바람은 나한테만 시린 것 같고(웃음). 원래는 시를 너무 좋아해서 고
등학교, 대학교 내내 시를 정말 열심히 썼어요, 늘 백일장을 다니면서…. 그런데 아무래도 시를 써서는 먹고 살기 힘들 것
같고,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교육원 자막광고를 보고 4학년 때부터 드라마 수업을 듣기 시작했
어요. 대구에서 학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기차 타고 서울을 왔다 갔다 한 거죠.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4학년 겨울방
학 때 아예 서울에 올라와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계속 교육원에 다니게 됐어요. 처음 서울 올라올 때 같이 올라온 친구랑 각
각 100만 원씩 내서 무당아줌마가 계시는 200에 20짜리 월셋집에 살았는데요. 단칸방을 박스로 방을 나눠놓고 자는데, 친
구는 구성작가로 바로 일을 시작해서 막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고 있고, 기약도 없이 아르바이트 전전하면서 준비만 하고 있
는 저는 옆에서 잠도 못 자고 미치겠고…. 창작반 갔을 땐 너무 뿌듯하고 그랬는데 막상 과정이 끝나니까 할 게 없는 거예
요. 진짜 세상이 허탈하더라고요. 다 그만두고 손에 아무 든 것도 없이 낙향하려니 그건 또 도저히 못하겠고…. 비교적 빨리
시작을 했으니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때의 저는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취업을 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보듬고, 사랑이 싹트고, 숨어있
던 진실이 밝혀지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치유되고 성장한다. 해피엔딩의 뻔한 공식 같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고 말한다.

드라마는 대리만족을 위해서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단 드라마에서만이라도 좀 행복한 걸 보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제가 쓴 글을 읽고 누군가, 진짜 단 한 명이라도,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으면 저한테는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제 입봉작인 <기쁜 우리 젊은 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518에 대한 현실을 잘 모르고 위에서 시
키는 대로 뉴스를 전하던 아나운서가 각성을 하게 되고, 방송이 거짓을 말했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장면이 있어요. 개인
적으로 되게 좋아했던 장면이에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누군가는 사과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답
답함이 있었거든요. 드라마일지언정 누군가의 입에서 사과를 듣고 싶었는데 그걸 할 수 있다는 게, 드라마를 쓴다는 것에
있어서 너무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했죠. 이번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도 그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고요. 사회적 사건을 끼
고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언젠가는 영화 <A few good men> 같은 드라마를 꼭 써보고 싶어요.

수시로 찾아가 시 이야기를 나눴던 교수님께 드라마 작가가 될 거라고 말했던 날을 기억한다.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너 그
냥 시집 가. 너무 화가 나서, 시집이나 가려고 이렇게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 다닌 줄 아냐고 받아치자 곧 이런 말이 돌아왔
다. 난 네가 사람들한테 치여서 돈 1,2백 때문에 글 포기하는 게 너무 싫어.
“그때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가슴이 짠했죠. 힘들 때마다 교수님 말씀을 떠올려요.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셨지만 뵐 수 있
었다면 이렇게 말씀드릴 것 같아요. 지금 드라마를 쓰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정의하는 끝점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그 어떠한 끝점에 섰을 때도 그가 여전히 드라마를 쓰면서, 드라
마로 인해 행복하기를, 그런 해피엔딩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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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家 in 作家 Ⅱ

운칠기삼, 이제는 실력으로 말할 때


라디오드라마 <KBS무대> 이진우 작가

글. 김윤양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장소협조. 여의도 홍설 카페

과거를 거스르다 보면 정확한 시기보다 사회적 사건들이 먼저 소환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크게 좌절해 잠시 떠났던 시기로 2008년 2월의 남대문 방화사건을,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로는 정확
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답을 들으니 문득 사건을 넘어 한 개인의 삶이 궁금해졌다. 사회적
이슈에 끊임없이 레이더를 세우고 사는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삶도 끊임없이 온에어 되는
한 편의 드라마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 같았다. 돌아보면 자신의 삶은 ‘운칠기삼’이라는 라디오드
라마 <KBS무대>의 이진우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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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20대의 좌절부터 물었다. 초등학교 때 세계동화전집을 읽은 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드라마를 보면서 막연하게 드라마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청년 이진우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케이블
채널 PD로 입사한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제가 입사한 곳은 스포츠 채널이었어요. 메이저리그, 골프, 레이싱 경기를 중계하거나 녹화된 화면을 편집해 방송에 내보내
는 일을 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와는 거리가 있었죠. 그래서 드라마를 제작하는 공중파 방송사 입사를 목표로 다시 시험을
쳤어요. 최종까지 가니까 기대가 되잖아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최종면접, 합숙까지 가서 두 군데서 다 떨어졌어요. 큰 시험
에서 연달아 떨어지고 나니까 굉장히 의기소침해지더라고요. 함께 준비한 다른 친구들은 PD며 기자며 다 입사했는데 나는
어떡하나.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저는 다 그만두고 1년 계획으로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
요. 부모님은 물론이고 주변 친구들까지 다 말렸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 인생에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했거든요.

 정해둔 다음은 없었다. 생각이 많지도 않았다. 그저 드라마가 극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리
듯 길게 보면 더 잘되기 위해 도랑에 빠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자신의 기저에 깔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믿었다.
하긴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일본 외딴 시골 마을에서 신문을 돌리며 절치부심 다음을 기약하기가 쉽지만은 않았
을 터. 그런데 도망치듯 떠난 그곳에 뜻밖의 삶이 있었다.

일본에 갈 때 유학원에 부탁하기를 제가 한국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깡촌에 보내달라고 했거든요. 가봤더니 정말 일


본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 같은 그런 곳이었어요. 저는 거기서 신문을 돌리는 일을 했는데 그 동네에 DVD와 만화책 대여점
이 있었어요. 하루 치 신문 다 돌리고 나면 거기 가서 온갖 드라마와 만화책을 보며 살았어요. 그런데 당시 한국드라마가 엄
청 인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말도 안 되게 시골 아주머니들에게 제가 ‘한국에서 온 욘사마’가 된 거예요. 이분들은 한국청
년을 본 적이 없으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자꾸 저를 불러내는 거죠. ‘이군, 오늘 어디에 가자. 얼른 준비하고
내려와’ 그래서 내려가면 정말 차를 대고 기다리고 계세요. 놀러만 다닌 것도 아니에요. 아주머니들이 한국어 강좌를 만들어
공부하면서 저를 초대해주시기도 하고요. 어떻게 보면 저는 신문 돌리러 간 외국인 노동자인데 그분들은 저를 후한 인심으
로 대해주셨죠. 유키라는 학생은 한국드라마 팬이라며 ‘우리 동네에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편지를 주기도 했어요. 도시는 일
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지만 시골은 격차가 많이 나더라고요. 사람들이 정말 순수했고요, 무엇보다 위안을 많이 받은 건 대
자연이었어요. 굉장히 높은 화산,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만난 사슴과 원숭이, 눈길에 넘어졌을 때 본 하늘의 별똥별…. 1년
계획으로 간 건데 ‘닛꼬에서의 1년’이 제게 용기를 줬어요. 내가 더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하자. 그래서 일본의 영화학
교에 진학했죠. 열심히 공부했고, 외국인 졸업생으로 드물게 졸업작품 연출도 하고요.

 일본에서의 삶을 서둘러 정리한 건 2011년 일본 대지진 때문이었다. 잠시 귀국했던 다음 날, 일본 대지진이 발생


했고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로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에서 터를 잡게 되었다. 현재 이진우 작가는 일본 신문사의
한국지사에서 외신기자로 일하며 드라마를 쓰고 있다. 낮에는 기자로, 밤에는 글 쓰는 작가로 1인 2역. 쉽지 않지
만, 힘들지만은 않단다.

시간이 많다고 글이 더 잘 써지는 건 아니거든요. 딱 6시까지 일하고 매일 밤, 습관처럼 글을 씁니다. 하루 세 장은 꼭 쓰려고


하죠. 게다가 낮 시간에 취재를 다니다 보면 ‘이건 정말 드라마 아이템감이다’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럼 차곡차곡 쟁여놓죠. 단
편적인 아이디어부터 구체적인 아이디어까지 드라마 소재로 쓸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죠. 기자로 2,3년 일하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쌓여서 빨리 써야겠더라고요. 그래서 협회 교육원에 들어가 다시 드라마작법을 배우고 본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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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죠.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드라마를 쓰게 되었고, <KBS무대>를 통해 온에어 되었다. <아내를 죽였습니다>를 비롯


<꽁초는 알고 있다> <터미널> 등 다양한 소재를 반영한 라디오드라마는 신인 드라마 작가라고 믿어지지 않게 사
회 부조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났다.

라디오드라마가 많이 없어졌죠. <KBS무대>는 그야말로 역사 깊은 프로그램인데요. 라디오드라마의 장점이라면 라디오에


서는 모든 게 가능해요. 화성에 간다고 해도 목소리만 ‘화성에 도착했다’ 하면 되니까요. 여러 가지 제약이 적다 보니 라디오
드라마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해볼 수 있겠더라고요. 기자로 취재하며 담아둔 사람 이야기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드라마로 구현되었죠. TV 드라마를 준비 중인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죠.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호기
심’인 것 같아요. 호기심이 강했던 게 작가가 되기 위한 자양분인 것 같아요.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면 기자로서 해야 할 일
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이기 때문에 그보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현상이 빚어진 건지, 사건
뒤에 어떤 삶이 있었는지. 그러다 보니 늘 레이더를 켜놓고 사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것.
그게 최종 목표죠.

 1억 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롯데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비롯 크고 작은 상을 받았고, 얼마 전 협회 교육원 드라마


반을 수료하며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수상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운칠기삼’이라 답하는 이진우 작가. 말리기만
하던 부모님도 이제 아들의 재능을 인정해주시는 눈치고, 오래 세뇌(?)시킨 덕에 아내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며 그
가 내비친 올해 소망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올해 목표는 회사를 그만두는 겁니다. 원래 딱 3년만 하고 글을 쓸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기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아이템
을 많이 만나게 되고, 저녁 글쓰기도 익숙해져서 뜻밖에 기자 생활이 길어졌는데요. 준비 중인 드라마가 편성되면 오롯이
글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상도 좀 받았고, 칭찬도 좀 받았고 그동안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제 진짜를 보
여줄 때가 됐죠. 하늘이 도와주길, 운을 기대하기보다 실력이나 기획으로 보여줘야 하는 단계가 된 거예요. 그야말로 살얼음
판을 걷는 피 말리는 시기가 온 거죠.

취업에 실패하고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넌 20대의 이진우 같은 후배가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고 물었
다. 그는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당장 작가라는 타이틀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분야, 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서 작가 세계와 접점을 찾으며 열심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빌어줘
야겠다. 이진우 작가가 올해 꼭 회사를 관둘 수 있기를.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쓴 이야기를 곧 만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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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가 만난 사람
작가 김중만
자유를 향한 여정

글. 김주영 편집장 사진. 김용철 장소협조. 한미사진미술관

이를테면 최고의 드라마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는 다큐멘터리만 집필하겠다고 한 셈이었


다. 2006년의 어느 날,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줄을 설 정도로 잘 나가던 사진작가 김중만
은 더 이상 상업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그 12년간 수많은 작품을 하
고 대중에게 선보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김중만의 모습은 여전히 레게머리를
한 채, 무릎팍도사 앞에서 거침없이 이야기를 내뱉던 2009년의 모습인 듯하다.
지난 1월, 김중만 작가의 ‘상처 난 나무’라는 이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시
금 그 12년 세월이 궁금했던 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호기심에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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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PE OF MY HEART_2008_150x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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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냐, 그거죠? 제가 상업사진을 7년 정도 찍었는데요, 그 7년간 한 해에 17억 원 정도 벌었던 것 같아요. 많이 벌었
죠. 그만두고 난 직후에는 수입이 20분의 1에서 30분의 1 정도로 줄어서 월세도 못 낼 정도였어요. 사실 돈은 많이 벌었는데
어디 땅 사고 그런 일을 안 하니까…. 하지만 저는 괜찮았어요. 지금 순수사진 찍은 지 10년 정도가 되니까 콜렉터들이 생기
기 시작했어요. 옛날만은 못해도 먹고사는 데는 괜찮아요. 다만 돈을 번다는 점으로 보면 사진 작업을 하도 많이 하니까 아
슬아슬하지만요.

김중만은 1971년, 정부 파견 의사로 의료봉사를 떠났던 아버지를 따라 서아프리카의 오트나와(지금의 부르키나파쇼)로 이


주했다. 1년 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홀로 프랑스로 건너온 김중만은 니스의 국립장식미술학교 서양화과로 진학한다. 우
연히 기숙사 룸메이트의 사진 인화 작업을 도와주다가 사진을 접한 그는 5분 만에 그림 하나가 그려지는 속도감에 매료돼
카메라를 쥐게 됐다. 그렇게 사진작가로 살아온 43년간, 김중만 작가가 상업사진작가로 지낸 것은 2000년부터 2006년까
지 7년간에 불과하다. 나머지 시간 그는 오롯이 자기의 사진을 찍은 작가였다.

 당시엔 왜 상업사진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하셨는지요.

그때 나이도 50대에 들어섰고, 할 만큼 했으니, 내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진을 찍는 기준은 이게 50년 가
느냐 100년을 가느냐 하는 것이에요. 만일 20년 간다고 하면 난 안 찍어. 광고사진은 한 달을 가느냐 두 달을 가느냐의 싸움
이에요. 그 시간에 맞춰서 모든 역량을 다 집어넣어서 예쁘게 만들고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 광고사진이죠. 하지만
순수사진은 그것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시간의 개념을 집어넣고 깊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에요. 깊이란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감성들인데, 사랑과 고독과 외로움과 그리움과, 여러 가지가 그 깊이를 만드는 것이죠.

1975년 스물세 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던 김중만은 1977년에 프랑스 아를국제사진페스티벌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오늘의 사진작가 80인’에도 최연소로 선정됐다.
그리고 지난 12년간, 세계 예술계가 그에게 보내는 찬사는 더욱 커졌다. 2013년에는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이 김중만의
사진을 구입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6년엔 그의 한복 사진
이 한 점당 1억 원에 팔리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미국의 경매회사 소더비 카탈로그에 등재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김중만의 작품이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한 가지는 열심히 작업을 해요. 매일같이 찍어요. 동영상에선 룩만 보여주면 되지만, 사진은 정지된 장면을 포착하
는 것이니까 한 장 속에 모든 디테일이 다 보여요. 그 한 순간, 한 장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해요. 정말 좋은 사진은 보면 그냥
알아요. 제목도 필요 없어요. 베를린에 가면 피터 아이젠만이라고 하는 미국 건축가가 제작한 홀로코스트 기념비가 있어요.
운동장만한 넓이에 설치된 까만 구조물인데, 어떤 것은 1미터, 2미터, 3미터 되고 그렇게 대단히 삐까삐까한 것도 아니야.
내가 베를린에 가서 그 구조물을 3,40분 정도 보는데 앉아서 울었어요. 그냥 이거구나, 이 아픔이구나. 이 사람은 아무 설명
없이 이 미로의 길에서 우리들에게 알려줬구나. 예술은 이렇게 위대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날부터 나는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야 김중만처럼 찍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김중만은 “미치도록 찍으면 된다. 재능은 인내심과 연관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처럼 그는 잠잘 때와 샤워할 때를 빼고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40여 년간 찍은 사진이 8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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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넘는다. 상업사진을 찍던 시기부터 시작해서, 꽃, 아프리카의 동물과 에이즈 걸린 어린이들, 한국의 산수, 한복, 빌딩,
독도 등 지금까지 찍은 주제가 17가지나 된다고 한다. 이번에 전시를 하는 ‘상처 난 나무’ 역시 그중의 하나다.

 ‘상처 난 나무’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0년 어느 날, 중랑천 뚝방길에 서 있는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어요. 2004년부터 나무에게 이야기를 걸기


시작했지요. 찍어도 되겠니. 2008년 4월에야 나무가 허락해주더라고요. 그날부터 3일간 계속 그 나무를 찍었어요. 그러니까
그 나무 옆에 다른 나무들이 자기들도 있다며 말을 걸더라고요. 한 시즌만 찍자 했는데 10년을 찍었어요. 일종의 다큐멘터
리죠. 10년을 기록하는 거니까. 중랑천 뚝방길을 카메라 들고 걸어 다니면서 바람과 변화와 그 나무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
했던 것이니까요.

건축물 폐자재를 내다 버리는 트럭들이 드나들던 뚝방길. 먼지를 뒤집어쓴 채 볼품없이 서 있는 나무가 작가의 눈에 든 이
유는 바로 그 상처 때문이었다.

이 나무들이 다른 곳에 있는 굉장히 건강한 나무였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진 한 장에 들어갈 요소는 두 가지, 슬픔
과 아름다움이에요. 외로움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움에 대한 아름다움. 그게 없으면 사진이 안 돼. 즐거움과 아름다움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가벼워서 오래가지 않아요. 나무는 나에겐 딱 맞는 소재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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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는 한지에 어슴푸레 하게 그려낸 흑백의 나무들이 서 있다. 꺼칠한 허리를 드러낸 나무 등걸은 할아버지의 몸통을
닮았고, 흩날리는 나뭇잎은 여자의 머리칼 같기도 하다. 우리의 삶처럼 슬프고 애잔하다. 분명 수묵화인 듯한데, 엄연한 사
진이다. 분명 나무를 찍었지만 정작 찍은 것은 고독과 슬픔의 아름다움이었다. 사람들은 김중만의 작품이 어떻게 사진일 수
있는가 하며 놀라워한다. 어쩌면 그것은 작가의 삶 속에 각인된 유전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인생 치고 파란만장하
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김중만 작가의 일생은 특히 유난스러웠다.
1970년대에 아프리카를 거쳐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닌 것부터 그렇지만, 두 차례나 추방을 당한 일이나 마약 문제 때문에
구치소며 정신병원 생활을 하다 결국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일 등. 보통 사람들에겐 평생 한 번 일어나기 힘든 일들이 김중
만 작가에겐 수도 없이 생겨났다.

이 전시도 저에겐 매우 슬픈 전시예요. 원래는 이 사진들이 2015년에 파리의 그랑팔레에 걸렸어야 했던 사진이거든요. (그
랑팔레는 파리 정부 산하의 국립박물관으로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세계적 작가들만이 초청될 수 있는 세계 최고 권위를 자
랑하는 전시장이라고 한다.) 그랑팔레에 전시된다는 건 그 작가는 물론이고 국격이 높아지는 일이에요. 1억 원 가치의 작품
도 그랑팔레의 작가가 되면 10억, 20억 원의 가치가 되는 거예요. 제가 사진작가로는 최초이고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거의 처음으로 그것도 최연소 작가로 초청을 받게 됐는데, 그걸 지난 정부에서 반대해서 무산이 된 거예요. 제가 젊어서 이
런저런 일을 겪었어도 언제나 벌떡벌떡 일어났는데, 이건 너무 세더라고요. 극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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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인생의 남은 목표는 어떤 것일까요.

진정한 백수요. 아무 일 안 하고 노는 거. 일을 뭐하러 해요. 한 50억 원만 있으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돈이 없어서 아직


얽매어있네요.

돈이 없어서라고 말은 하지만, 김중만 작가는 오랫동안 작품의 수익금 상당액을 기부해왔다. 베트남에 학교를 짓고 아프리
카 어린이들에게 열일곱 개의 축구 골대를 만들어주었다. 장애인과 어린이들,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서 수시로 수익금 전액
기부를 전제로 전시를 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소장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겠다며 한 점 당 만 원에서 수
십만 원의 가격에 수천 점의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아트 슈퍼마켓 프로젝트다.
백수를 꿈꾼다고 했지만, 그는 아직 아프리카에서 별 사진을 찍고 싶어한다. 고비사막에서 ‘무’를 찍겠다고도 했다. 상업사진
은 하지 않지만 인물 사진으로 보통 사람의 얼굴을 가진 배우 손현주 씨를 찍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한국의 산수를 소재
로 가로세로가 2.5미터에서 5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 크기의 흑백사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는 세계 최고의 작가다.
비록 레게머리는 잘랐지만 예순여섯 살의 나이에도 변함없이 귀걸이와 팔찌, 반지를 끼고, 별과 나비, 천안함과 세월호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를 문신으로 새겨 넣는 작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1년간 아프리카에
서 동물 사진을 찍었을 때라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백수란, 사실 진정한 자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자유란 이런 걸(작품) 걸어놓고 나는 없어지는 거예요. 없어지는 것. 그게 진정한 자유인데. 니들이 뭘 봤든 뭘
하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 내가 가고 싶은데 가서 사진 만들어서 액자도 안 하고 프린트해서 핀으로 벽에
다 박고 가는 것. 그다음 장소로.

세상의 모든 물리적 관념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돈과 명예라는 자신의 욕심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상태. 작가
김중만은 평생, 그 자유를 향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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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YOU GOING WITH ME_2012_150x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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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SPECIAL THEME

유튜브의 시대다. 취향껏, 필요에 따라 골라볼 수 있는 다채로운 개인방송과 하우투(how to) 영상은 연령을
불문하고 TV 앞에 있던 대중을 유튜브의 세계로 옮겨 들이고 있고, 대중은 콘텐츠 소비 주체에서 제작 주체가
될 수 있는 기회에 열광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열풍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유튜브가 가져온
콘텐츠 시장의 변화는 무엇인지 조명해본다. 유튜브의 질주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과연, 유튜브는 방송을 대
체하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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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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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억 시간, 사용자 우선주의 나도 ‘인기 유튜버’ 혁명의 미래:
이제는 방송 말고 유튜브! 콘텐츠 유통혁명의 승리 한번 돼볼까? 유튜브는 방송을 대체할
이선희 신동희 이창균 것인가?
매일경제신문사 기자 중앙대학교 중앙일보 주간 경제지 노광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이코노미스트> 기자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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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10억 시간,
이제는 방송 말고 유튜브!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코끼리 코가 정말 정말 깁니다.”
동물원 앞에서 한 남자가 어정쩡한 자세로 “코끼리의 코가 정말 정말 길다”며 놀라는 척하고 있다. 영상을 채우기 위
해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다. 지지직거리는 배경음에 묻혀 남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뿌연 저화질의 영
상. 누가 봐도 대충 찍었다. 2005년 4월 23일 유튜브 창업자 자베드 카림이 유튜브에 최초 게시한 동영상 ‘나 동물원 왔
어’(me at the zoo)다. 14년이 지난 현재 누적 조회 수는 6,016만. 6,016만 번이나 전 세계 누군가는 봤다는 얘기다.

이선희
매일경제신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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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사업모델 구축,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나다
허접한 이 영상만 조회 수가 치솟은 게 아니다. 유튜브 플랫폼 전체가 전 세계 91개국에서 매월 19억 명이 시
청하는 최대 동영상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전 세계에서 1분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은 400시간, 하루
유튜브 이용자들의 총 시청시간은 10억 시간에 달한다. 이는 미국 국민의 하루 TV 시청시간 12억 5,000만 시간
에 육박하는 수치로, 올해는 아마 이 수준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디어가 세상의 창”이라는 신문방송
학계의 오랜 명제는 이제는 “빨간 박스(유튜브)가 세상의 창”으로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튜브는 2005년 2월 페이팔에서 퇴사한 자베드 카림, 채드 헐리, 채드 헐리, 스티브 천 등이 공동으로 설립했
다. ‘당신을 방송하세요(Broadcast yourself)’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초기 유튜브 사용자들은 무엇을 방송
할지 몰라 아무거나 올렸다. 주로 스키장에서 넘어지는 장면, 동물원 가기 같은 시시껄렁한 영상이었다. 2006
년 구글이 유튜브를 16억 5,000만 달러(약 1조 8,513억 원)에 전격 인수했을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에서는 구글
이 너무 비싸게 유튜브를 인수했다고 혹평받았다.
그러나 2~3년 뒤 유튜브 혁명은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대중화, 업로드와 다운로드가 용이해진 인터
넷 환경 등 누구나 미디어를 창작하고 소비할 환경이 무르익으면서다. 2008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확산한
스마트폰, 빠른 인터넷 환경은 누구나 어디서든 ‘보고’ 영상을 ‘올리는’ 제반 조건을 형성했다.
로버트 킨슬 유튜브 CBO(Chief Business Officer)가 쓴 ‘유튜브 레볼루션’에 따르면 구글이 유튜브 시청자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사업모델도 주효했다. 구글은 유튜브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서 무료로 콘텐
츠를 제공했다. 콘텐츠 확보를 위해서는 창작자와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파트너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광고 기
반 플랫폼 사업자들이 모든 콘텐츠 제작자와 수익을 나눈다는 시도는 파격이었다. 유튜브 파트너가 되면 그들
이 제작한 영상에 디스플레이(배너) 광고, 동영상 광고가 붙고 거기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얻는다.
킨슬 CBO는 “이렇게 채널 트래픽 발생 수익의 50% 이상을 나눠줌으로써, 일반인들도 콘텐츠 창작에 뛰어들
었고 인맥과 운을 타고난 사람에게만 가능했던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거의 모든 사람이 도전할 수 있는 직군으
로 변화했다”고 했다.

빨간 박스 세상으로 뛰어든 사람들


한국도 유튜브 레볼루션의 중심지다. 싸이를 비롯한 K팝 스타들은 유튜브를 발판으로 뻗어가고 있으며, 뽀로
로 제작사 아이코닉스·핑크퐁 제작사 스마트스터디는 글로벌 교육 콘텐츠 업체로 성장했다.
유튜브는 국내에서도 전 연령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이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11
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상대로 동영상 플레이어 앱 사용시간을 조사한 결과 유튜브는 전 세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앱이었다. 가장 먼저 유튜브 혁명이 닥친 곳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다. 타고난 외모, 연예기획
사와 인맥, 방송사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연예 산업은 이제 일반인 크리에이터로 확장되고 있다. 유튜브에는 참
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스토리만으로 ‘스타’가 된 유튜버들이 넘쳐난다.
이공계 대학원생 정선호 씨는 욕 잘하는 엄마를 방송한 영상으로 구독자 125만 명을 보유한 스타가 됐다. ‘다
뒈져따’ ‘이걸 콱!’ 등 엄마의 찰지고 구수한 표현이 폭발할수록 정 씨의 구독자도 수직상승 한다.
전라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하는 71세 박막례 할머니는 실버 크리에이터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치매 주
의 소견을 들은 할머니를 위해 손녀가 치매 예방차 찍은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면서 할머니의 인생은
달라졌다. 최근에는 구글 본사 초청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고 미국 패션지 <보그>지와 인터뷰 했다.
그 외에 애완동물, 연애, 사투리 등 자신의 삶과 관심사를 솔직하게 풀어낸 일반인 크리에이터들이 수십만, 수
백만 독자들을 보유한 ‘스타’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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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유튜브 레볼루션의 중심지다. 싸이를 비롯한 K팝 스타들은 유튜
브를 발판으로 뻗어가고 있으며, 뽀로로 제작사 아이코닉스·핑크퐁 제
작사 스마트스터디는 글로벌 교육 콘텐츠 업체로 성장했다. 유튜브는
국내에서도 전 연령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이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11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를 상대로
동영상 플레이어 앱 사용시간을 조사한 결과 유튜브는 전 세대에서 가
장 많이 사용한 앱이었다. 가장 먼저 유튜브 혁명이 닥친 곳은 엔터테인
먼트 분야다. 타고난 외모, 연예기획사와 인맥, 방송사 네트워크가 필요
했던 연예 산업은 이제 일반인 크리에이터로 확장되고 있다. 유튜브에
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스토리만으로 ‘스타’가 된 유튜버들이 넘
쳐난다.

한 MCN업체 관계자는 “일반인 크리에이터들 대다수는 초기에는 스마트폰이나 소형 카메라만으로 촬영을 시


작한다. 요즘은 카메라가 성능이 좋아서 스마트폰이나 소형 카메라로 촬영해도 볼 만하다”면서 “자신의 가치,
삶의 철학 등 차별화된 콘텐츠만 있다면 누구든 제작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크리에이터의 주된 수입은 콘텐츠 앞에 붙는 광고다. 그러나 이는 일부일 뿐이다. 유튜브 크리에이터 중 상당
수는 주요 광고업체들의 브랜드 후원으로 혜택을 받는다. 또한 채널 멤버십, 상품 판매, 티켓 판매 등을 통해서
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 BJ 등 크리에이터 230팀이 소속된 콘텐츠 제작사 샌드박스네트워
크 작년 매출은 220억 원으로, 회사 설립 첫해 대비 24배 성장했다.
유튜브로 돈이 몰리면서 이제는 스타들이 지상파 방송사의 TV 프로그램 섭외를 기다리지 않고 아예 유튜브 채
널을 생성해 콘텐츠를 생산한다. GOD 박준형, 에프엑스 엠버, 악동뮤지션 이수현, 개그우먼 강유미 등이 유튜
브 채널에서 활약하고 있다.

소통의 통로가 된 유튜브


유튜브는 연예인의 이미지와 음악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던 팬덤 문화도 바꾸었다. 유튜브의 가장 큰 특징은 상
호작용이다. 유튜버나 연예인들은 유튜브에서 시청자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유튜브와 10대 청소년들의 상호
작용을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대 응답자 중 유튜버가 친구나 가족보다 자신을 잘 이해한다고 응답한 사
람이 40%에 육박했다. 구독자 248만 명을 보유한 BJ 도티는 “팬들과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느낌이 유튜브의
장점”이라고 했다.
CD 판매 하락과 스트리밍 음원 수입으로 성장 정체에 직면한 음악산업은 유튜브를 계기로 되살아났다. K팝은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유튜브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았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한국 최초로 유튜브 누적
조회 수 30억 뷰를 돌파했다.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은 단숨에 구독자 수 1,600만 명을 모았다. 이는 미
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도 이루기 힘든 기록이다.
음악산업은 이제 5원도 안 되는 스트리밍(1회 저작권)이나 일부 팬덤에 의존한 CD 판매에 목매지 않아도 된
다. 영상 광고 수익을 배분하는 유튜브에서 뮤직비디오나 제작 영상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따르면 모든 주요 음반 회사는 물론 수백여 개 저작권 단체, 독립 음악사, 음악 출판사에 제공한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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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시간 유튜브 이용자 하루 시청시간

400시간 1분간 전체 업로드 영상 분량

19억 명 매월 유튜브 시청자

91개국 출시국가

지원 언어 80개 언어, 전체 인터넷 인구 95%가 이용

자료 출처 : 필자 제공

간 유튜브 광고 수입은 전 세계 10억 달러(1조 1,200억 원)에 달한다.


유튜브는 교육도 변화시키고 있다. 각종 하우투(방법을 알려주는) 영상,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은 그 자체가 하
나의 교재다. 모델 한현민은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 속에서 유튜브로 모델 워킹을 배워 꿈을 이뤘다. 김강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감독은 유튜브로 캐릭터 디자인을 공부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인 <사슴꽃> 메인 캐
릭터를 탄생시켰다. <사슴꽃>은 2016년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스페셜 어워드를 수상했다.

유튜브, 일상의 일부가 되다


올해는 가장 변화가 더딘 보수적 영역으로 인식됐던 정치권에서도 유튜브 레볼루션이 시작됐다. 신문과 지상
파 방송사·종편 뉴스에 기댔던 정치권은 직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며 콘텐츠 제작이 나섰다.
이달 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알릴레오와 고칠레오> 방송 3회 만에 구독자 50만 명을 돌파하며 돌풍
을 일으켰다. 이보다 앞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TV홍카콜라> 제작에 뛰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유튜브가 홍보방법으로 중요하게 떠오른 만큼 아이디어를 잘 세워
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다.

“이제 유튜브는 우리 일상의 일부죠. 두려워하기보다 활용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마어마한 기회
가 잠재돼 있는데 누구는 그걸 잡고, 누구는 그걸 지나치죠.”
BJ·유튜브 크리에이터·MCN 업계 매니저 등 콘텐츠 제작 관계자들은 “유튜브는 기회의 플래폼”이라고 강조
했다. 일부는 유튜브가 아이를 망친다며 핸드폰을 빼앗고, 정치권은 유튜브에 가짜뉴스가 넘쳐난다며 콘텐츠
검열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튜브는 10억 시간에 달하는 영상이 매일 올라오며 글로벌
유통되는 유일무일한 플랫폼이라는 사실이다.
때마침 아동용 인기 캐릭터 ‘핑크퐁’과 ‘상어가족’을 만든 스마트스터디가 올해 상장을 추진한다는 뉴스를 접
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짤막한 음악은 작은 스타트업을 교육 한류 대표 기업으로 밀어 올렸다.
유튜브 레볼루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전 세계를 통하는 ‘빨간 상자’에서 기회를 찾을 것인가, 눈을 감을 것인
가. 유튜브 레볼루션이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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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우선주의
콘텐츠 유통혁명의 승리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바야흐로 유튜브 대세 시대이다. 유튜브는 방송사 위주의 미디어 플랫폼 환경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
는 유통혁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채로운 1인 방송과 가공, 편집된 콘텐츠 등으로 제작 주체가 그간의 소수 엘리트에
서 다수의 일반 대중으로 이동하고 있다. 유튜브가 모든 사람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고 콘텐츠의 무한경쟁 시대를
열고 있다. 유튜브는 단순히 콘텐츠 유통에만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제작, 투자 시스템 등 미디어, 영상, 정보 시장의 판
자체를 흔들고 있다.

신동희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 성균관대학교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인터랙션연구소 소장,
한국언론학회, 한국HCI학회, 미디어경영학회, 정보통신정책학회, 한국정보사회학회 이사 역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교환교수 역임(2015~2016)
저서 ≪컴퓨테이셔널 저널리즘≫ ≪인간초연결사회를 살다≫ ≪빅데이털러지≫ ≪인간과 빅데이터의 상호작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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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인기의 비결 - 사용자 최우선 전략
유튜브의 인기는 다른 여타의 일시적 열풍과 달리 오래 지속하고 있다. 일시적 열풍이라고 하기에 그 지속기
간과 인기의 강도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보고 검색 시 포털보다 유튜
브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10대와 2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이고
다른 비슷한 동영상 앱을 사용한 모든 시간을 합해도 유튜브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한다. 유튜브는 동영상 킬
러애플리케이션으로서 단순한 유행적 인기(fad)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고 그 문화는 패러
다임의 생성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이 모바일 메신저가 아닌 유튜브가
되고 있고 검색에서도 네이버나 다음을 능가하는 조짐을 보인다. 유튜브에 업로드된 다양하고 방대한 콘텐츠
는 급속도로 확산하고 재가공되어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유튜브는 사용자
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공간, 사업자에게는 사용자나 다른 사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함으로써 다양
한 관심과 소통의 폭을 넓힐 수 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유튜브의 성공에는 사용자 편의성을 높여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숨어있다. 유튜브는
사용자의 동기, 태도, 행동 등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빅데이터를 통해 그 전략을 도출한다. <유튜브 컬처>의 저
자이자 TED 토크 ‘비디오는 왜 입소문을 탈까(Why Videos Go Viral)’의 케빈 알로카(Kevin Allocca)는 유튜브
의 성공비결은 사용자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의 사용자 부서에서는 유튜브의
인기 있는 비디오 현상을 추적하고 플랫폼의 큐레이션과 커뮤니티 이니셔티브를 관리하여 온라인에서 유행
하는 콘텐츠를 찾고, 둘러보고, 사용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개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한 사용자 연
구를 통해 빅데이터를 형성하고 사용자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동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있다. 즉 유튜브의 성공비결에는 사용자의 데이터로 생성된 알고리즘이 있다. 사용자의 행위에 기반
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어포던스(affordance)를 제공한다.

유튜브의 어포던스는 사용자가 계속해서 유튜브를 사용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어포던스는 유튜브의 사용자
최우선 전략의 결과이다. 동영상을 올리는 사람에게는 광고수익을 배분하고, 시청자에게는 광고를 건너뛰고
볼 수 있는 선택까지 주는 사용자 최우선 정책이다. 네이버나 판도라 동영상은 특수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반
드시 설치해야 하고 광고도 완전히 보아야 하며, 광고수익 배분도 없었다. 국내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은 유튜
브의 성공과 대비된 자사의 부진을 정부규제의 역차별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차이의 핵심적 본질은 사용자의
편익과 권익에 있다. 국내 업체들의 서비스들은 대부분 옛날 영화나 인기 지난 영상을 재생하는 수준으로 자
생력이 거의 없었다. 이런 허약한 시장에 유튜브가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빠르게 사용자층으로 파고
들고 있다. 별도의 로그인도 필요 없고 양질의 좋은 영상도 무료이며 젊은층뿐 아니라 중장년층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유튜브는 사용자 경험 전략의 본질에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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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제작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콘텐
츠와 제작자들이 유튜브에 몰리는 선순환 구조를 추구하고 있다. 양질
의 콘텐츠가 인정받고 보상받아 다시 제작 · 공급되는 선순환 유통구조
를 형성하고 있다. 즉 유튜브는 콘텐츠 제작 주체를 사용자로 보고 있는
것이고 사용자가 콘텐츠 유통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
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는 플랫폼의 고전적 정의를 가장 잘 이해하
고 있고 플랫폼 전략을 가장 정석대로 추진해나가고 있다. 플랫폼에 사
용자가 모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플랫폼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사용자 경험 전략이 가져온 유통구조의 변화


유튜브의 사용자 중심 전략은 유통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간의 다른 동영상 서비스 업체는 플랫폼
과 광고주가 주요한 역학관계였다. 광고주가 서비스 업체에 돈을 주기 때문에 광고주에게 좋은 광고를 올리고
광고주를 위한 편의에 중점을 두었다. 유튜브도 광고가 있지만 사용자가 없다면 광고주도 없다는 자세를 견지
한다. 광고주의 입장보다 사용자의 이익과 편익을 위한 전략은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양질의 좋은 동영상을
자연스레 모으게 하고 그러한 동영상은 광고를 끌어들이는 사용자 중심의 선순환 구조를 구가하고 있다. 유튜
브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지속 성장에 도움이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제작자들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래야 더 많은 콘텐츠와 제작
자들이 유튜브에 몰리는 선순환 구조를 추구하고 있다. 양질의 콘텐츠가 인정받고 보상받아 다시 제작 · 공급
되는 선순환 유통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즉 유튜브는 콘텐츠 제작 주체를 사용자로 보고 있는 것이고 사용자
가 콘텐츠 유통의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는 플랫폼의 고전적 정의
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플랫폼 전략을 가장 정석대로 추진해나가고 있다. 플랫폼에 사용자가 모이지 않는
다면 어떻게 플랫폼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방송 영역의 확대와 분화: 1인 미디어의 확산


과거 영상 콘텐츠의 기본 유통구조는 광고 중심의 수익 구조로 방송 플랫폼이 유지되는 구조였다.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이 나오면서 다양한 수익 창출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 방송뿐만 아니라 전반적 콘텐츠
유통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방송 유통구조의 핵심은 콘텐츠의 제작이었다. 콘텐츠의 제작은 누구나 할 수 없는 많은 자본과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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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드는 방송만의 특권 영역이었다. 그런데 유튜브는 방송 콘텐츠에 더 이상 큰 자본과 돈, 전문성이 필요 없다
는 인식을 널리 보급했다. 유튜브는 콘텐츠 제작을 전문화된 몇몇 기업과 사람들의 영역에서 일반인의 영역으
로 그 범위를 확대 분화시켰다.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은 방송이나 영상제작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
나 만들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배우
고, 즐기며, 공감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방송의 정의까지 바꾸고
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이나 오버 더 톱(OTT: Over The Top) 서비스들은 전
통적 방송 개념을 근간부터 흔들고 있다. 이제는 영상 서비스를 넘어서 검색엔진으로서 자리를 잡으며 사람들
은 포털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검색하고 있다. 방송 개념을 포괄하는 서비스를 하면서 동시에 방송 개념 범위
를 벗어난 정보검색 등 새로운 서비스를 망라하는 킬러 플랫폼으로 변화하고 있다. 유튜브가 동영상 플랫폼,
검색엔진, 소셜 플랫폼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고 그 외연의 확대의 모멘텀이 회사가 아닌 사용자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른 영역으로 확대 진화해 나갈 것을 시사하고 있다.

유튜브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사회 문화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더 오랜 시간이 지속해서라기보다, 사용자들의 참여도와 확산속도가 다른 미디어와 다른 점이다.
물론 유튜브 현상에 부정적인 문제도 많고 전망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영상물
난립 등 콘텐츠 품질의 저하문제나, 사용자 주도의 자율규제 한계, 가짜뉴스 온상, 광고수익 분배의 한계성 등
은 분명 극복해야 할 악순환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유튜브가 1인 미디어 구조, 개인방송 채널 등 방송의 메
커니즘을 바꾸고 콘텐츠 생태계를 변환시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용자가 중심이 된 선순환 구조는 방송
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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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인기 유튜버’
한번 돼볼까?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아직 말도 서툰 8세 어린이가 2017년 6월부터 1년간 2,200만 달러, 한화로 약 247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손에 쥐었
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최근 이같이 전하면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이언(Ryan)을 소개했다. 어느 억만장자의
손자? 복권 당첨자의 아들? 영화 <나 홀로 집에>의 맥컬리 컬킨 같은 폭발적인 인기를 끈 아역 배우? 모두 아니다. 라이
언은 글로벌 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유튜버’다. 더 정확히는 라이언의 가족이 제작을 돕
고 있지만, 매번 영상에 출연해 각종 깜찍하면서도 친절한 언행으로 콘텐츠 인기몰이를 주도한 건 라이언 본인이었다.

이창균
중앙일보 주간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기자
<중앙일보> <이데일리> 산업부/경제기획부 등 역임
저서 ≪2016·17·18·19 경제 대예측≫(이코노미스트 편집부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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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개인에서 스타로
<포브스>에 따르면 라이언은 지난해 가장 돈을 많이 번 유튜브 스타다. 그의 유튜브 채널 ‘라이언 토이스 리뷰
(Ryan Toys Review)’는 1월 16일 현재 웬만한 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은 1,785만여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영
상 하나당 조회 수가 보통 수백만 회에 달한다. 채널 이름처럼 장난감 리뷰가 주요 콘텐츠다. 라이언은 2015년
부터 유튜브에 새 장난감 포장을 뜯은 뒤 조립해서 갖고 노는 영상들의 주인공으로 등장, 전 세계 이용자들을
사로잡았다. 라이언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인기 요인에 대해 “내가 재밌고 웃기기 때문”이라고 자신감 넘치
게 말해 다시 한번 세계인을 웃음 짓게 했다. 아직 미성년자라서 수입을 스스로 쓰진 못하고 있지만, 8세에 이
미 평생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큼 자수성가했다.

라이언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사리 볼 법한, 이웃 같은 남녀노소가 직접 만들거나 출연한 영상만으로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시대가 됐다. 유튜브를 위시한 1인 미디어 전성시대가 가져온 새
로운 풍경이다. 기업으로서 유튜브는 영상 제작자와 광고 수익을 나눠 가지면서 이용자 참여와 플랫폼 성장을
동반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기에 이런 풍경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유튜브에서 ‘DanTDM’이라는 채널로 구독자 약 2,100만 명을 확보, 세계 1위 유튜버가 된 영국인 대니얼 미들


턴도 원래 PC 등으로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그는 2012년부터 지금껏 ‘마인크래프트’ 등 게임
리뷰 영상 3,000개 가까이 올려 호응을 얻고 일약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다. 영상 속 그는 게이머로서 시시
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다각도로 분석을 해준다. 그의 채널을 즐겨 보는 구
독자들은 “게임을 내 옆에서 같이 하는 것 같은 몰입감과 즐거움을 준다”고 평한다. 그는 2017년 1,650만 달러
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추산됐다.

아낌없이 나누는 정보에 매료되는 소비자


유튜브 인기 영상이라고 하면 흔히 전문 제작자가 만든 최신 영화나 드라마 소개 영상, 또는 유명 가수의 뮤직
비디오 등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인기 유튜버들은 이보다 다소 서툰 영상 제작 솜씨를 가졌더라도 친근함
으로 이용자에게 다가선다. 이들의 무기는 나만의 ‘하우투(how to)’ 공유다. ‘내 삶의 관심사’ 가운데 ‘내가 남보
다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것’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신나서 어떤 정보든 아낌이 없이 공유하는’ 전략을 택한
다. 마치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동네 맛집 이야기로 수다를 떨 때처럼 말이다. 이용자는 여기에 매료된다. TV로
는 접할 수 없던, 나를 위한 맞춤형 정보 같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다른 거창한 콘텐츠를 제치고 장난감 리뷰 같은 ‘키즈’, 그리고 ‘게임’, 여기에 먹는 방송을 뜻하는 ‘먹방’까지가
유튜버의 세계를 장악한 3대 콘텐츠 분야로 회자 되는 이유도 그래서다. 대단히 소소한 하우투임에도 수요가
폭발적이다. 실제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집계한, 연간 수입액 추산치 기준 국내 톱 유튜버 중 ‘팜팜토이
즈’ 등 1~2위가 키즈, ‘도티’ 등 3·5·6·8위가 게임, ‘밴쯔(7위)’가 먹방을 주요 콘텐츠로 삼고 있다. <포브스>가
역시 수입액 추산치를 기준으로 집계한 해외 톱 유튜버를 봐도 미들턴 등 1·2·4·5위가 게임, 라이언(8위)이
키즈 콘텐츠로 오늘날의 명성을 얻었다. 이에 유튜버 세계에 새로 진입하려는 지망자들도 이런 3대 콘텐츠 위
주로 제작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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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맞춤형의 연성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
로 무장한 하우투 콘텐츠일수록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기 쉽다는 것이
다. 그리고 키즈·게임·먹방이야말로 이런 관점에서 유튜브를 이용하는
주요 연령층인 10~30대에게 통하기 좋은 대표적인 하우투 콘텐츠 분야
다. 키즈 콘텐츠의 경우 아직 어린 내 아이가 스스로 즐겁게 노는 법 또
는 내 아이와 놀아주는 법을, 게임 콘텐츠는 게임 진행 과정에서부터 엔
딩을 보기까지 유념해야 할 부분 등을, 먹방 콘텐츠는 찾아갈 수 있는
맛집이나 주방에서 참고할 수 있는 조리법 등을 각각 알려준다. 이들 콘
텐츠는 특성상 영상 친화적일 수밖에 없어서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 어
렵다는 측면도 있다.

정보, 그 이상의 재미를 향한 욕구


이는 이용자들이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서 1인 미디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고, 그로써 동시에 ‘재미’
를 만끽하기를 원하는 성향을 지닌 것과 관련이 깊다. 시장조사 업체 엠브레인에 따르면 국내 19~59세 유튜브
이용자 1,000명은 유튜브 이용 이유로 ‘다양한 유형의 영상 콘텐츠가 있어서(48.9%, 이하 모두 중복응답)’를
꼽았다. 이어 ‘영상으로 설명해주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45.9%)’ ‘찾고자 하는 맞춤형 정보가 많아서
(40.8%)’ 등의 순이었다. 여기서 이용자가 찾는 ‘다양한, 맞춤형 정보’란 전문 서적이나 보고서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종혁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유튜브 콘텐츠의 인기는 이용자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곳에서 (유튜버를) 친근하게 영상을 통해 만나고, 편안하게 느껴 빠져드는 데
서 비롯됐다”며 “영상은 TV의 경우에서 보듯이 연성(軟性) 콘텐츠 위주로 인기를 모으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맞춤형의 연성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entertainment)’로 무장한 하우투 콘텐츠일수록 유튜브


에서 인기를 끌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키즈·게임·먹방이야말로 이런 관점에서 유튜브를 이용하는 주요 연
령층인 10~30대에게 통하기 좋은 대표적인 하우투 콘텐츠 분야다. 키즈 콘텐츠의 경우 아직 어린 내 아이가
스스로 즐겁게 노는 법 또는 내 아이와 놀아주는 법을, 게임 콘텐츠는 게임 진행 과정에서부터 엔딩을 보기까
지 유념해야 할 부분 등을, 먹방 콘텐츠는 찾아갈 수 있는 맛집이나 주방에서 참고할 수 있는 조리법 등을 각각
알려준다. 이들 콘텐츠는 특성상 영상 친화적일 수밖에 없어서 다른 매체가 대체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3대 콘텐츠뿐 아니라 화장법을 공유해주는 뷰티 콘텐츠, 반려동물과 노는 법을 소개해주는 동물 콘텐츠가 유


튜브에서 인기를 모으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뷰티 크리에이터’라는 신종 직업명까지 탄생시킨
뷰티 콘텐츠로는 젊은 여성 이용자들이 집중 유입되고 있다. 동물 콘텐츠는 국내에서만 1,000만 반려인 시대
를 맞을 만큼 수요가 최근 급증했다. 그만큼 이용자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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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오션 속 유튜버,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
다만 이렇다 보니 유튜버들이 너도나도 ‘돈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특정 콘텐츠 분야에만 매진하는 ‘쏠림 현상’
도 두드러지고 있어 일부 우려를 자아낸다. 물론 이용자의 채널 선택권이 TV 같은 기성 미디어에서보다 훨씬
풍부하게 보장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튜버들이 비(非)인기 콘텐츠 생산을 기피 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유
튜브의 최대 장점인 콘텐츠 다양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실제 <워싱턴포스트>가 독일의 한 연구진 분석을 인
용한 보도에 따르면 유튜브 내 인기 상위 3%의 채널을 만들 가능성이 큰 콘텐츠 분야는 게임·코미디·엔터테
인먼트·뷰티에 집중됐다. 이와 달리 교육이나 인물, 비영리단체·활동가 소개 등의 콘텐츠 분야에선 그럴 가능
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용자들의 손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유튜브 스타가 되길 꿈꾸며 새로 유튜버 세계에 진입한 초심자들도
상위 n%라는 정해진 ‘레드오션’에 빠져 고전할 수 있는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선발주자가 이미 시장을
장악한 분야일수록 차별화로 성과를 내기도 어려워서다. ICT 업계 한 관계자는 “후발주자로 우후죽순 생겨난
유튜브 채널 다수가 기존 인기 콘텐츠 분야 진입을 시도하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
다”며 “차별화에 실패해 이용자들이 굳이 찾아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대표적인 인기 분
야가 아니더라도 내 일상에서 나만이 짚어볼 수 있는 독창적인 하우투 분야가 있음을 파악하고, 여기에 ‘올인’
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조언했다.

그 말대로 유튜브에서 이용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하우투의 세계는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이왕


유튜버가 돼 보기로 결심했다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되길 지향해보는
것이 어떨까. 바로 지금이 일상 속 나만의 관찰력과 상상력을 총동원할 때다. 나날이 진화 중인 유튜버의 세계
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유튜버 스스로 진화하는 수밖에 없다.

대니엘 미들턴 ‘DanTDM’ 화면 갈무리.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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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미래:
유튜브는 방송을 대체할
것인가?

SPECIAL THEME  유튜브 레볼루션

유튜브가 방송을 대체할 것이냐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 매체와 커뮤니케이션 양식의 역사적 변화 과정에
서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방송은 20세기에 개발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으로 등장했다. 영국의 문화연구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의 양태를 지배적인 문화, 잔존
하는 문화, 새로이 부상하는 문화로 나누었다.

노광우
고려대학교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서던 일리노이대학교 박사
전 뉴욕한국영화제 창립멤버
고려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한림대학교 강사
저서 ≪할리우드 만화영화≫ ≪글로벌 미디어 스포츠≫(공역) ≪드라마의 모든 것≫(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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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각각이 갖는 고유의 영역
지난 세기의 가장 지배적인 매체와 문화 양태는 텔레비전이었다. 인터넷을 바탕으로 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는 새로이 등장하고 그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부상하는 문화양식이다.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전에 각광을 받던
매체와 문화는 라디오와 영화였다. 한때 텔레비전이 등장함에 따라 라디오와 영화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과
위기감이 있었지만, 이후의 역사는 이 세 매체가 각각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주었
다. 콘텐츠의 형식만 고려하면 유튜브와 텔레비전의 관계도 이렇게 구별되는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는 방향으
로 나아갈 수도 있다. 또는 콘텐츠를 유통, 사용하는 플랫폼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유튜브가 텔레비전을 흡수할
수도 있다.
캐나다의 정치경제학자 해럴드 이니스는 매체의 성격을 시간 지향적 매체와 공간 지향적 매체로 구분했다. 20
세기는 텔레비전을 포함,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공간적 제
약을 극복하는 공간 지향성으로 인해 텔레비전은 국가통합을 위한 선전과 교육, 대기업의 광고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 각광받았다. 공간 지향적 매체는 한 지점에서 메시지를 멀리 보낼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정치, 경제, 사
회, 문화적인 중심부의 영향력이 주변부에 미치는 집중화 경향이 강세였다. 텔레비전 방송은 중심부의 송신자
가 일방적으로 전송한 메시지를 주변부의 수신자가 수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케이블 텔레비전의 발전은 수신자의 취향과 관심을 세분화했고 특정 콘텐츠 전문 채널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케이블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지상파 방송국은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으나 케이블이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
비스로 유지되었다.

매체의 변화에 따른 대중의 콘텐츠 소비 방식


사용자가 이용하는 기기를 볼 때 대체로 새로이 개발된 매체는 처음에는 크기가 크고 무겁고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초기에는 개인이 사기에는 어렵기에 기관이 사들이거나 가족 단위로 사게 된다. 이후에는 점차 크기가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가격이 낮아지는 쪽으로 개량되어 개인이 사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영화는
처음 개발될 때 개인이 사용하는 매체와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감상하는 공공 매체 방식이 거의 동시에 나
타났지만, 초창기에는 개별 기기가 지나치게 비싸서 대중이 극장이라는 장소에 모여서 감상하는 방식으로 대
중화되었다. 그 이후에 개발된 텔레비전은 집안에서 보통 거실에 놓였고 중요한 가정용 가전제품으로 인식되
었다. 컴퓨터는 초창기에 연구소에서 주로 사용되었으나 1970년대부터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했다. 인터넷이
상용화되고 스마트폰이 대량으로 보급됨에 따라 비로소 개인이 사용하는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유튜브는 콘
텐츠를 유통하는 채널로 각광받게 되었다.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대중문화와 매체의 특성은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메시지와 콘텐츠를 일방
적으로 전달하고 수신자는 메시지와 콘텐츠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자기 의견을 피드백하는 일차원적
인 방향이었다. 그런데 유튜브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기존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20세기 말에는 인터넷이 등장했고 21세기는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메시
지는 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송신자와 수용자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되거나 다른 수신자와 더불어 공유하는 다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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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대중문화와 매체의 특성은 송신자가
수신자에게 메시지와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수신자는 메시지
와 콘텐츠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자기 의견을 피드백하는 일차원
적인 방향이었다. 그런데 유튜브에 올라오는 콘텐츠들은 기존의 텔레비
전 프로그램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20세기 말에는 인터넷이 등장
했고 21세기는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
고, 메시지는 더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송신자와 수용자
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되거나 다른 수신자와 더
불어 공유하는 다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유튜브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인터넷 이용자들은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신문 등 인쇄 매체의 권위는 흔들리게 되었다. <오마이뉴스>와 <허핑턴포스트>와 같이 온라
인으로만 존재하는 대안적인 저널리즘이 등장하기도 했다.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글
쓰기 능력이 요구되지만, 유튜브는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시청각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환경에서 높아진 수용자의 참여


미국의 문화연구가 헨리 젠킨스는 수용자의 적극적이고 참여적인 성격에 주목한다. 텔레비전과 같은 일방적
인 커뮤니케이션 양식에서 적극적인 수용자는 팬과 팬덤이라는 개념으로 논의되었다. 팬은 단순히 대중문화
에 열광하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문화 소비자로 간주하기도 했었지만, 팬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팬픽션을 쓰
거나 팬매거진을 출판하는 등, 파생적인 대중문화 상품을 제작하고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팬들은 일
종의 공동체처럼 간주하여 팬덤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문화 환경에서는 이러
한 팬들의 적극적인 파생적인 문화활동으로 인해 새로운 문화 콘텐츠가 생산, 유통되는 상황이 되었다. 더 나
아가 온라인상에서 팬과 수용자는 파생적인 콘텐츠만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직접 콘텐츠를 생산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전의 텔레비전 시청자는 단순한 수용자였지만 이제는 콘텐츠의 소비자가 생산자가
될 수도 있게 되었고,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결합한 새로운 단어, 생비자(prosumer)가 등
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텔레비전은 텔레비전 방송국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되
고 유튜브는 생비자가 직접 자기 의견, 지식, 경험을 콘텐츠로 제작해서 자기 채널에 올리는 영역으로 크게 구
분되었다. 아울러 기존의 텔레비전 방송국들도 유튜브에 채널을 개설하여 자기 방송국의 프로그램 일부를 제
공하기도 하는 등 유튜브 환경에 적응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또한, 현재 국내 IPTV 서비스에는 유튜브 채널도
포함되어 있다. 즉, 유튜브와 기존 텔레비전은 상호 침투하고 있다. 그러나 채널을 무한정적으로 개설할 수 있
다는 점에서 유튜브가 텔레비전보다 절대적인 우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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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방식과 공간적 제약에서 우위에 선 유튜브
기존의 방송국들이 유튜브의 한 채널이 될 때 유튜브상에서는 다른 채널들과 경쟁하게 된다. 유튜브는 인터넷
에 바탕을 두고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서 퍼졌다. 정책적으로 제한하지 않는 한, 일상적으로 와이파이가 잡
히는 장소에서 누구든지 쉽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이용할 수 있다. 유튜브와 인터넷 이외에도 스마트폰으
로 다양한 사회·경제활동을 하게 된 상황이 도래했고, 텔레비전 수상기가 필요하지 않은 이들도 생긴다. 이제는
온 가족이 함께 특정 시간대에 가정에 모여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감상하는 패러다임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또한, 유튜브는 검색기능이 있기에 필요한 정보나 의견, 콘텐츠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유튜브는 콘텐츠가
유통되는 통신수단인 동시에 콘텐츠를 저장하고 있는 저장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용자가 자기 관심에 맞는
콘텐츠를 검색해서 개별적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유튜브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때, 개별 채널들은 인
기를 끌 수도 있고 인기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또한, 채널이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없어질 수도 있다. 즉, 개별
유튜브 채널들의 존속 여부는 확실하지 않지만,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서 유튜브는 유지된다.
유튜브는 인터넷이 보급된 지역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국경의 제약을 받지만, 중국
과 같이 정책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 유튜브상의 콘텐츠는 훨씬 수월하게 국경을 초월한다. 2010년대 이후
의 국제적인 케이팝과 한류의 인기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짧은 동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소개
될 수 있었던 유튜브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국내 여행자들의 각종 해외여행 관련 채널들
의 실시간 중계도 가능해진다.
즉, 유튜브는 텔레비전 모니터가 지닌 고정성과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을 스마트폰이라는 휴대기기로 극복했
고, 전파와 케이블이 지닌 공간적 제약을 인터넷으로 극복했다. 유튜브에서 기존의 방송국은 자본과 인력의 규
모 이외 축적된 콘텐츠로 인해 비교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른 개인 채널과 경쟁하는 상황
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나 채널 수,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기존의 텔레비전은
유튜브보다 하위 개념에 놓이게 된다. 당분간은 기존의 텔레비전과 유튜브는 공존할 것이다. 기존의 텔레비전
은 지난 시기 동안 축적한 콘텐츠와 노하우가 있고, 아마추어 생비자들이 만드는 콘텐츠보다는 양질의 콘텐츠
를 제공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아마추어 생비자들은 기본 텔레비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다른 콘텐츠를 개발해
낸다. 그래서 기존의 텔레비전과 유튜브는 야구의 메이저리그와 독립 야구리그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
서 각기 다른 특성을 보여주는 영역으로 공존할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는 텔레비전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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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유감

우리는 왜 그들의 일상을 이렇게


자세히 알아야 할까

이종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강사
KBS 시청자 위원, 언론학 박사
저서 ≪아이돌 연습생의 땀과 눈물≫ ≪문화산업의 노동구조와 아이돌≫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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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의 위기에도 여전히 한창인 리얼리티 예능
미디어 생태계의 빠른 변화로 인해 전통적 미디어라 불리는 텔레비전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지만, 리얼리티 프
로그램 방송은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분 단위, 초 단위로 기록된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시청률 수치
는 낮은 편이지만, 방송 당일 국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오랜 시간
투자를 해야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짧은 영상을 여러 개로 나눠
시청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런 이유로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선호
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또한 모바일 미디어의 대중화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유튜브 등의 플랫폼
을 통해 사적인 공간에서의 생활과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데 시청자들이 익숙하다는 점도 리얼리티 프로그
램 제작이 꾸준히 이어지는 중요한 근거다.
우리는 사진 이미지나 동영상 등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시대에 살고
있다. 특별한 사람들만이 채널 속 등장인물이었던 시대는 끝나고, 지금은 나, 가족 그리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콘텐츠를 만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이 되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끈 이유는 유명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삶, 욕망, 고통, 고민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알게 했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일반인이 연예인이 되는 성공적 데뷔과정을 다루는 이
야기가 큰 관심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사건보다 일상적인 사건이나 상황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인기
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방송의 소재와 주제는 더 다양해졌다. 여행, 메이크업, 음식, 연애, 육아, 교육, 결혼 등 일
상적이거나 세밀한 감정의 교류, 갈등을 다루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플랫폼의 다양성도 방송 콘텐츠의 변화
에 영향을 미쳤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의 독주가 시작되면서 국내 방송사의
고민도 함께 시작되었다.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양한 SNS 플랫폼과 경쟁을 피할 수 없
게 되었다. 그리고 채널 경쟁, 플랫폼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연예인 출연자의 삶을 다루
기 시작했다. 물론 SNS의 인기 크리에이터나 BJ가 출연하는 방송도 제작되는 등 다양한 출연자와 방송 콘텐츠
를 시청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재 방송에서 연예인을 보여주는 방송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왜 우리가 그
들의 삶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아야 하는 것인가.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현실’은 진짜 현실을 구현하기도 하고, 혹은 진짜 현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00년
대부터 제작된 국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처럼 출연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보여주고, 진정한 관계를 쌓아가는 모습에 주목했었다. 이후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주목받으며,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토크쇼처럼 공감과 위로를 전했던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도 했다. 혹은 결혼이나 취업 등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기보다 현재의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욜로’라 명명하며,
욜로족의 삶을 다루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1년 동안 세계여
행을 떠나기도 하고, 셰어 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하는 등 안정적 삶을 준비하기보다 다양한 경험과 체험에 시간
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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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연예인이어야 하는 본질적 의도가 명확한가
현재 방송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세밀하게 출연자의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출연자는 연예인이다. 최근에는 출연자가 연예인 당사자
에서 연예인의 가족·반려견·연예인의 친구 등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재현하거나
사회적 이슈를 제안하는데 연예인을 제외한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미디어는 연예인들의 삶으로 가
득 차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사회변화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실
제로 그런 프로그램이 많이 제작되었다. 세대별, 젠더별 가치관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결혼과 주거문화를 다루기
도 했다. 방송 초반에는 공감 가능한 이야기가 보이는 듯 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연예인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으로 변질되곤 했다. SBS <룸메이트>, MBC <나혼자 산다>, KBS <하숙집 딸들>이 이에 해당된다.
여행 프로그램도 다르지 않다.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기 위해 여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행 리얼
리티 프로그램도 많이 제작되었다. 하지만 왜 시청자가 그들의 여행 과정을 봐야 하는지, 왜 그들은 해외에 거
주하려고 하는지 등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자처한 KBS
<잠시만 빌리지>, 자녀의 해외 여행기를 관찰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tvN <둥지탈출> 등이 이에 해당
된다. 패키지 여행을 떠난 연예인들을 보여주는 JTBC <뭉치면 뜬다>, 저예산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KBS <배틀
트립>, tvN <짠내투어>, 해외 역사탐방을 표방한 MBC <선을 넘는 녀석들>, tvN <알쓸신잡> 등은 역사와 여행,
정보 전달이 가능한 여행 프로그램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E채널 <아빠가 보고 있다>, KBS <볼
빨간 사춘기> <살림하는 남자들>, 채널A <아빠본색>, TV조선 <아내의 맛>, SBS <동상이몽> <미운 우리 새끼>,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등 연예인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여기서 더 나아가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는 연예인과 매니저의 일상생활을 다룬다. 연예인 출연자들은 친구 혹은 가족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거나 여행
을 떠나기도 하는데, 이들이 왜 여행을 떠나는지, 제작 의도가 명확한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스로 미
션을 정해 가족들이 함께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설득력은 담보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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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특별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형되고 있어 자성과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양한 소재에 대한 접근으로 우위를 높여야


이처럼 우리가 방송을 통해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방송 콘텐츠는 재미뿐만 아니라 정보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추세다. 모바일을 통해, 인터넷
을 통해,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소비되면서, 실시간 검색어, 댓글, 조회 수 등은 시청률을 대체한 인기
측정의 기준이 되고 있다. 결국 방송사들은 채널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쉬운
연예인들의 삶, 라이프스타일, 연예인의 가족, 친구, 주거공간 등을 선택하고 있는 듯하다. 유튜브의 크리에이
터, 아프리카 TV의 BJ, SNS의 인기 게시자인 인플루언서 등 우리는 정보 전달에 능숙한 사람들, 많은 정보를 제
공하는 사람들에 열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방송에서는 연예인 관련 정보 전달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에 살고, 누구를 만나는지, 자녀 교육, 고부간의 갈등, 육아 등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지는지, 성공과 좌절 등 인생의 굴곡사를 촘촘하게 보여주고 있다. JTBC <효리네 민박> <한끼 줍쇼>, tvN <윤
식당>처럼 일반인들의 출연도 중요한 프로그램도 존재하지만, 그 중심에는 유명 연예인이 존재한다. 결국 현재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는 결국 셀러브리티라는 특별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변형되고
있다. 하지만 한발 뒤로 물러나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을 비평할 필요가 있다. 채널 간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
해서는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의 섭외보다는 프리프로덕션에 대한 투자, 다양한 주제를 준비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연예인의 삶만을 쫓아다니는 프로그램만을 제작한다면,
시청자들은 연예인의 삶만 바라보는 헛헛한 프로그램들만을 감상하게 될 것이다. 적은 제작비 투자와 짧은 기
획 기간, 연예인 출연자 등 세 가지 요소만으로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방식
이 지속된다면 프로그램에 공감하지 못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찾아 떠나는 시청자들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클릭 한 번만으로 다양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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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칼럼

삼고무 논란

홍승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
한국방송작가협회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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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무’로 불거진 무용저작권 논쟁
돌아가신 이매방 선생의 ‘삼고무’ 논란으로 무용계가 시끄럽다. 작년 이맘때쯤 국립극장에 의견서를 보냈으니
한 해를 꽉 채운 논쟁이다. 국립극장 L씨 요청으로, 저작권자를 함께 만나기로 하고 시간을 비웠으나 올 필요가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저작권자는 이매방 선생의 사위였다. 처와 장모에게 상속된 저작권을 자신이 양도받아
등록을 마치고, 위협적인 법률 문장으로 국립극장 등 전국의 공연장에 내용증명을 뿌린 직후였다. 내용증명에
서는 “이매방 선생이 창작한 ‘삼고무’ ‘오고무’를 공연(강습회, 연수회)하거나 이를 변형, 각색하고자 하는 경우
에는 저작권자로부터 저작권을 양도받거나 이용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우리 변호사도 함께 나간다
고 했더니 ‘우리끼리 화해할 일을 왜 변호사를 끼우냐’며 화를 냈다던가? L씨는, ‘인감도장을 주기는 하였으나
저작권 양도등록을 하고 그렇게 권리 주장을 할 줄은 몰랐다’고 미망인이 펄쩍 뛰더라고 전했다. 내밀한 사연
이야 알 수 없으나 미망인도 조만간 사위 편을 들 수밖에 없겠거니 짐작했었다.

무용 안무와 창작성의 평가
무용의 창작성은 안무按撫(choreography)에 있다. 연극 연출의 창작성에 대해서는 저작권법 규정이 뒤죽박죽
이지만, 누구도 안무의 창작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같은 공연예술이더라도 대본(text)에 대한 의존성에서 안무
와 연출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연극 연출과는 달리, 무용의 안무는 대본이 없거나 부실하여
거의 온전히 안무가의 머릿속에서 무용수의 동선을 짜고 합合을 이루어내야 한다. 무용 공연에 ‘연출’, ‘협력연
출’이라는 명목으로 연극 연출가를 끌어들이는 풍조에 대해서, 내공 깊은 무용가들은 상상력이 빈곤한 반쪽짜
리 안무가들이 무용의 품격을 해친다고 못마땅해 한다.

우리의 궁중 제례, 서양의 전통 발레의 원형은 저작권 보호대상이 아니다. 전통무용을 바탕으로 창작성 짙은
작품을 만들었다면 저작물이 될 수 있다. 무용평론가 성기숙은 삼고무에 대하여, “이매방의 타고난 천재성과
혹독한 수련기를 거쳐 미학적으로 완성된 개인의 창조적 소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립극장도 삼고무
를 이매방 선생의 창작물로 보자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예술가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가진 태도이다. 이매방
선생은 1984년 “북 하나로 승무를 추다가 1948년 북 세 개짜리를 창작해냈다”고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했다는
데, 그 점을 저작권자는 창작의 근거로 든다. 그런데, 여성국극 스타 임춘앵이 창경원 야외무대에서 이매방 선
생보다 먼저 삼고무를 공연했다는 기록도 있고, ‘이매방 창작론’에 어긋나는 당대 무용가 이흥구, 조영숙의 증
언도 있다(중앙 선데이 2019. 1. 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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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등록의 본질
삼고무의 창작성에 대하여도 할 말이 없지는 않지만 이미 유족 측과 문하생 사이에서 혼전混戰 중이라니 언급
을 자제하겠다. 다만, 무용계와 유족 측의 저작권 등록제도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매방 선생의 사위는, 이매방 선생의 미망인과 딸에게 저작권이 상속되었고 자신이 저작권을 넘겨받았으니
자신이 저작권자라는데 추호도 의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어느 무용평론가는 “창작 근거나 명확하지 않은 오
래된 춤인 것이 문제지만, 이런 문제가 또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앞으로 저작권 등록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
서는 저작권위원회가 섬세한 기준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대체로 적절한 지적이지만, 저작권
등록제도의 오류가 문제를 키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저작권 등록은 특허권 등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발명가의 발명은 특허청에 ‘등록’이 되어야 비로소 권리가
발생한다. 따라서 과연 특허권을 부여할 만한 수준의 발명인지, 그보다 앞선 발명이 없었는지 엄격한 실체심사
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는 권리이다. 남의 작품을 베끼지 않았다면 동시에 똑
같은 작품이 창작되어 각각 저작권을 취득할 수도 있다(독립창작 이론). 저작권의 성격을 ‘모방금지권’으로 보
기 때문이다. 저작권 등록의 효력도 나라마다 통일되어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등록을 하지 않으면 아예 침해
소송을 할 수가 없다(소송요건). 우리나라에서는 등록을 하지 않아도 소송을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등
록을 한 사람은 저작자로 ‘추정’을 받는다. 등록에 의한 추정력은 그리 튼튼한 효력이 아니다. 그가 창작하지 않
았다는 증거를 대면 ‘등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세상에는 저작권 등록제도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라가
더 많다. 저작권법을 세계 최초로 시행하였다고 하는, 창조산업의 메카라고 불리는 영국조차 저작권 등록을 모
른다. 뮤지컬 <Cats>를 창작한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는 영국에서는 등록
을 할 수가 없어서 대서양 건너 미국 저작권청에 저작권 등록을 해두고 있다. 저작권 등록 과정에서 실체심사
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는 것으로 안다. 단, 저작권 등록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허위등록에 대하여 형
사처벌로 대처한다(저작권 허위등록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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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물도 등록되는 데야
저작권 등록 과정이 헐렁하니 음란물도 쉬이 등록이 된다. 음란성 판단과 저작물성 판단을 별개로 보기 때문
이다. 음란물을 등록하였다고 저작권위원장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어떤 의원은 매년 저작
권위원장을 불러 호통을 쳤다. 국가기관이 어떻게 음란물을 등록하느냐는 이유였다. 그럴 듯도 한 주장이다.
그런데, 만일 저작권위원회가 음란성을 이유로 저작권 등록을 거부한다면, 그 순간 저작권위원회는 검열기관
으로 탈바꿈한다. ‘음란성’이야말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무쌍한 불확정개념이다. 저작권위원회가 등록 과
정에서 저작물의 내용을 살피고 혹여 음란물이라는 이유를 들어 저작권 등록을 거부하면 저작권위원회는 ‘거
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으로 시작하여 헌법소송까지 재판에 시달리며 날밤을 새워야 할 것이다. 감히
예술성을 시비하였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도 불이 날 것이다.

안무의 저작권은 역사적으로 사연이 많다. 과거 무보舞譜가 있어야만 저작권 등록을 받아 준 국가도 있었으나
이제 그런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상물, 사진, 안무노트 등 안무를 입증할 소박한 자료를 근거로 저작권 등
록 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저작권위원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등록을 하여야 한다. 삼고무 저작권 논쟁
은 저작권 등록제도의 오류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저작권 등록의 효력을 둘러싸고 무용계의 오해가 빚은 한
판 희비극喜悲劇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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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반세기

소리에 빠지다

유수호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1957 대전KBS 전속 성우, 어린이합창단 지도
1960 서울 MBC-R 어린이 프로그램 고정집필
1963 KBS-R <후라이보이아저씨> <방학일기>
1967 CBS-R / 극동방송 주간드라마 집필
1976 KBS-R 어린이연속극 <아빠의 얼굴>
KBS-TV <애기들차지> <영이의 일기> <부리부리박사>
뮤지컬드라마 <모이자 노래하자> <TV유치원 하나둘셋> 등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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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교육
이야기는 ‘피드백’ 되어, 1940년대로 되돌아간다. 우리 집에는 축음기가 한 대 있었다. 선친의 고향은 충남 공주
인데 함경북도 회령으로 첫 직장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모친을 만나 결혼하여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단다.
그중에 딸이 3살 때부터 무용에 소질이 있었는지 라디오에서 음악 소리만 나면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을 추려
한다. 딸바보인 우리 부친은 할부로 축음기를 사고 SP 음반도 춤추기에 적합한 관현악곡 ‘장난감 교향곡’, ‘숲
속의 대장간’ 등의 묘사음악만을 구입했다. 온 가족은 발레리나를 만난 듯 환호하며 딸을 사랑했다. 그런데 어
느 날 아들과 딸은 급성폐렴으로 생명을 잃는다. 지금 같으면 페니실린 한 병으로 치료되는 걸 그 당시에는 그
흔한 페니실린이 아직 개발되지 않아 참으로 안타깝기만 했다.
부친은 속이 상해 축음기를 다락에 처박아 버렸다. 수년 후 형이 태어나고 나도 세상에 태어났다. 내가 5살쯤
되었을 때 부친은 다락에 넣어둔 축음기를 꺼내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그런데 나는 그 음악 소리에 넋을 잃게
된다. 처음 들어보는 관현악곡, 너무나 매력적이고 자극적이다. 계속 들었다. 또 듣고 또 듣고 또 틀어달라고 성
화다. 아예 다음 날부터는 축음기를 내 머리맡으로 옮겨 새벽 5시만 되면 벌떡 일어나 축음기의 뚜껑을 열고
핸들을 돌려 태엽을 감아 사운드박스를 내려 음악을 듣는다. ‘숲속의 대장간’ 관현악 소리가 조용히 연주된다.
리듬에 따라 화음 연결이 묘하게 바뀌며 ‘안단테’, ‘포르테’의 효과 음악으로 나를 매료시킨다.
수년이 지나 내 나이 8살이 되자 나는 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나의 음악성은 학교에서 드러났다. 학교에 비치된 리드 오르간을 쳐보았다. 나도 모르게 화음을 치고
있다. 이 화음, 저 화음, 이리저리 옮겨가며 화음을 쳐보는 모습을 교사가 보고는 “오르간 쳐 본 일 있느냐고” 묻
는다. 나는 도리질을 하며 또 화음을 친다. 틀림없이 축음기에서 들렸던 그 화음을 기억했다가 치는 것 같았다.

상경
1943년 나는 북한에서 기차를 타고 48시간 만에 서울로 상경한다. 사직동에 자리 잡고 매동초등학교로 전학
했다. 담임은 일본인이다. 나는 구구단도 척척, 특히 음악 시간이면 매번 칭찬을 받는다. 계명을 정확하게 알아
내고 창법 역시 절대음감이라고 극구 칭찬한다. 8·15해방과 더불어 남산초등학교로 전학하고 합창부에 뽑혀
합창 활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는 음악 교사가 4음절의 멜로디를 치고 들은 대로 오선지에 옮겨
적으라는 테스트에 나는 즉시 기보하여 적어내자 음악 교사는 깜짝 놀랐다.
옮겨 적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중3 때에는 ‘코오르위붕겐’ 음악책의 멜로디를 계명으로 척척 분
리, 남도 놀라고 나 스스로도 크게 놀랐다. 그렇다. 이 모든 시너지 효과는 일찍부터 부친의 조기 음악 교육으로
인한 것이라 여겨 이제 고인이 되신 부모님께 뒤늦게나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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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나는 리드오르간 주법을 익혀 열심히 반주 연습을 했다. 틈틈이 오선지에 작곡도 해보았다. 1958년 윤창
국 지휘자와 함께, KBS 대전어린이합창단은 드디어 서울 KBS의 초청으로 서울로 출발하게 된다. 단원들은 마
지막 총연습에 박차를 가한다. 출발 2일 전이라 나는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갑자기 피를 토하며 땅
바닥에 쓰러졌다. 과로로 인한 각혈이다. 중3 때부터 좋지 않았던 지병이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나는 의사의
지시로 정자세로 누워 컵에 얼음을 담아 가슴에 댔다. 신기하게 각혈이 멈춘다. 그러나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다시 각혈을 한다. 정자세로 누운 채 자고, 먹고 생활을 해야 했다.
방송국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합창단은 서울로 떠났다. 다음 날부터 라디오를 통해 우
리 합창단의 노래가 전국에 울려 퍼질 때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 내가 열망했던 드라마도 매력 있
지만 내 노래를 전 국민이 들어주는 순간도 대단한 매력이라고 느꼈다. 100일 만에 나는 다시 일어났다. 기적
을 체험했다. 의사도, 나도 경악 그 자체였다.

기회
1960년 초, 민간 라디오 상업방송 MBC라디오가 탄생해 서울 인사동에 자리 잡게 됐다. 그때 S.O.S가 나에게
전달됐다. 한때 KBS 어린이합창단을 지휘했던 박흥수 PD가 보낸 것이다. 매일 저녁 5시부터 어린이 시간을 시
작했지만 매일 원고를 집필해줄 마땅한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방송부장 배준호 씨와 편성부장 이원희
씨는 나의 음악적, 문학적 재질을 인정한다며 잘해보자고 힘을 보탠다. 나는 <MBC 놀이터>라는 타이틀로 어
린이 성우 ‘이성우’를 비롯한 4명의 학생과 MBC라디오 기성우, 나문희, 김영옥, 최선자, 김석옥, 김지현 등과 함
께 코믹한 화제와 드라마를 엮어 나가기 시작했다. 청취율이 높아지자 동물을 의인화시켜 진행했는데 성우의
성대모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특정한 만화음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그나마 불러모은 애청자를 잃을 것만 같
았다.
나는 AMPEX 녹음기의 속도를 2배속으로 고속화할 수 있음을 착안, 나 스스로 마이크 앞에 앉아 느린 속도로
생쥐 대사를 녹음해 고속으로 재생시켜 봤다. 음색은 만화음인데 도대체 말소리가 빨라 무슨 소린지 알 수 없
다. 나는 다시 아주 천천히 느린 말투로 또박또박 떼어서 생쥐 대사를 녹음했다. 성공이다. 영락없는 생쥐 대사
다. 나는 계속해서 극본의 생쥐 대사를 몽땅 몰아서 베리에이션(variation) 있게 녹음했다. 웃음소리는 높낮이
를 변화시켜, ‘후하핫핫 히히후후 까가각’ 하고 코믹하게 녹음하여 재생시켜 봤다. 아주 훌륭한 만화영화의 생
쥐 대사다. PD와 기술진 모두가 박장대소하며 기뻐했다. 다음 날 생쥐 대사 테이프를 다른 녹음기에 걸고 드라
마 녹음이 시작된다. 성우들의 대사가 시작되고 생쥐의 차례가 오자, 대기시켰던 녹음기를 약간 일찍 재생시켜
오차 없이 연결 사인을 준다. 가끔 1초 정도 생쥐 대사를 미리 눌러, 사람과 생쥐의 대사가 서로 ‘오버랩’ 되게
연출하니 너무 자연스럽다. 성공했다. 이 드라마를 들은 PD와 배준호 부장은 녹음속도 조절로 방송 만화음을
제작한 제1호 인물이라고 격찬해줬다.
그러나 이 복잡한 제작 과정이 만만치가 않아 수십 차례의 NG로 녹음배정시간을 넘겨 대기 중인 다른 PD의
원망 또한 컸다. 백운현 기술팀장은 손수 녹음기 모터 회전축에 메울 보도용 핀을 선반으로 깎아와 협조해 제
작 시간은 조금 단축되기도 했다. 지금 같았으면 디지털 음성변조로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역시 아날로그 시대
의 기술은 무디고 힘들고 답답했다. 자칫 잃을뻔했던 애청자들은 다시 라디오 앞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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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 무디고 힘들고 답답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재치를 더해 인간미 넘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성우지망생의 멘토
시인 박화목 씨가 CBS라디오 방송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시절이다. 종로2가 방송제작실에 갔다가 나에게 주
간 어린이 드라마 집필과 연출 제작 편집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 쾌히 승낙했다.
그 당시 CBS에는 어린이 시간의 편성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상용 PD는 내가 설립한 ‘성우지망 동호회’
가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을 등용하고 또 A급 성우를 가끔 섭외하여 멋진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자고 제안
했다. 그즈음 나는 신당동의 MBC에서 성우연기 지도 및 연출까지 해본 경험을 살려, 78명의 연기 후보자를 데
리고 있었다. 초중고, 그리고 일반, 다양한 인재로 연기력도 훌륭한 수재들이다. 나는 매주 20분짜리 단막극을
부지런히 써 멋진 드라마를 방송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A급 기성 성우 신원균 씨가 섭외되어 우리가 협연, 그
런데 CBS 전속 성우실에서는 볼멘소리가 난다. “뭬야, 전속 성우는 왜 있는데.” 얼마 후 각 방송 전속 성우모집
이 있었는데 우리 회원 전원이 합격해 ‘성우 지망생의 멘토’인 필자는 그만 홀몸이 되고 만다. KBS라디오에서
<후라이보이아저씨>를 집필해달라는 전갈이 왔다.
입으로 “푸드드득” 기관총 소리를 잘 내는 주인공, 곽규석 씨는 나를 만나 반갑다고 악수하자 “앗따따 따거워”
하고 손을 털고 난리다. 정전기의 스파크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즉시 이 상황을 원고지에 옮겨 청취자 모두를
즐겁게 했다. 하는 짓마다 실수투성이인 그의 성급함 그 자체가 코미디이다. 코미디 드라마는 점점 인기상승이다.
한번은 녹음시간 직전에 딸꾹질을 몹시 해 발을 동동 구른다. 나는 급히 식당에 가서 설탕 한 숟가락을 먹으라
고 권했다. 그는 급히 식당 테이블에 놓여 있는 설탕 그릇을 들고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는다. 그런데 다음 순
간, “아구구, 짜거워, 짜거워, 이거 소금이잖아.”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나는 당장 그 상황을 원고지에 옮
겼다. 훌륭한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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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노트

용기로 가능했던 모든 것들
JTBC <SKY 캐슬>

조현탁
JTBC 드라마하우스 PD
MBC 베스트극장 <가리봉 오션스 일레븐>
SBS <대물>
tvN <위기일발 풍년빌라> <후아유>
JTBC <친애하는 당신에게> <하녀들> <마녀보감> <SKY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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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어둡던 어느 날 찾아온 이야기
출발은 유현미 작가님의 전화 한 통에서부터 시작됐다. 십여 년 전 같이 도모했던 기획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는 전화였다.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당시 난 완전히 인생의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그냥 주저앉아 막 울고만 싶은 때… 바로 그때가 그런 마음의 날들이었다. 유 작가님의 청량한
목소리는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SKY 캐슬>은 일사천리로 시작됐다. 시놉시스가 나왔고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 느낀 감흥이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성찰도 담겨있으면서도 또 한편 독
특한 캐릭터 코미디였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 제목처럼… 침이 고였다.

무서운 몰입도가 빚어낸 캐릭터들


캐스팅의 출발은 한서진부터였다. 처음 논의될 때 한눈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서
울대 의대 입학에 올인하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중해가는 인물이다. 어떤 때는 가장 극악스
러운 얼굴로 달콤한 말들은 내뱉고, 때론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음모를 꾸미는 아주 혐오적인 인물이기도 한
다. 그런데 그녀에게 서서히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런 한서진을 표현하기 위해 애초부터 이철호 미술감독
과 세트 디자인에서 이중 거울로 두 가지 상을 만들고 표현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문제는 누가 이 역할을 연기
할 것인가…였다. 이런 입체적인 한서진을 표현하기 위해 떠오른 인물은… 염정아 씨에게 전화를 했다. 정말
두말없이 흔쾌히 결정해주신 정아 씨에게 새삼 깊은 감사를 표한다. 정말 한서진을 완벽히 표현해냈다. 촬영
전에 나눴던 통화 중에 한서진 캐릭터가 좀 어렵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염정아 씨는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감
독님, 제가 진짜 한서진이 되면 돼요!” “그렇군요…” 하며 태연한 척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정말 한 10m는
튀어 오를 만큼 감동 받고 기뻤다. 현장에서 그녀는 늘 든든한 나의 예술적 동반자였다.

유 작가님은 실은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귀재다. 김주영이라는 단 한 명의 캐릭터 창출로, <SKY 캐슬>은 입시


드라마에서 입시스릴러로 명칭 전환을 이루었다. 대본연습에 나타난 김서형 씨는 그야말로 김주영이었다. 무
심하게 툭툭 대본 리딩을 하는데 기묘한 에너지 발산을 느꼈다.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느낀 그녀는 또 완전히
정반대였다. 아주 소탈하고 편안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다만 완전히 일에만 집중되어있는 엄청난 포텐의 소유

<SKY 캐슬>은 반짝이는 배우들의 앙상블로 자연스러운 밸런스를 완성했다.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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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였다. 연기를 20여 년 해오신 분에게 포텐이란 표현은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준비가 되어있고 차곡차
곡 비밀 금고 안에 숨은 무기를 빼곡히 쌓아오신 분들의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첫 촬영부터 그녀는 대
본의 김주영을 살 떨리게 구현해내기 시작했다. 좀 더 친해졌을 때 가끔 진지하게 그 연기의 은밀한 비밀에 대
해 집요하게 내가 캐묻곤 했지만… 그녀는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그런 센 설정의 캐릭터들은 어
느 순간 질리게 되어있다. 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서형 씨는 달랐다. 뭔가 같은 패턴 안에서도 매회마다
조금씩 진화하면서 스스로 변화시키고 있는 걸 느꼈다. 그런 느낌을 현장에서 촬영할 때는 알 수 없다. 편집실
에서 온전히 보고 있자면 밀려온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말처럼 정말 좋은 연기는 편집실에서만 볼 수 있다는
데… 정말 그런 경험을 했다.

반짝이는 배우들의 앙상블


이런 배우들이 모두 섞여 앙상블을 이루는 것 또한 거대한 과제였다. <SKY 캐슬>에는 정확히 25명의 고정배역
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언젠가 캐스팅 한복판에서 정말 캐스팅을 해도 해도 끝이 없다는 불평이 볼멘소리만
은 아니겠구나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런데 대본을 보면 이 스물다섯 명이 각각의 캐릭터를 가지고 밸런스 있게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얄밉게 저울에 달아 결론 내린 밸런스 말고, 그냥 한순간에 만든 것 같은 자연스러운 밸
런스. 역시 엄청난 배우들의 열연이 각각의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오나라 씨는 촬영 바로 직전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자신의 연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시뮬레이션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순간을 모니터로 보고 있으면
정말 거룩하고 숭고하다. 그리고 액션!이 외쳐지면 노량진 수산시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활어처럼 생생히 살
아 요동친다. 놀라운 광경이다. 윤세아 씨는 완벽한 준비의 달인이다. 그녀가 해온 준비에서 실수를 느낀 적이
없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면 하하호호… 웃고 얘기하고 떠드느라 정신없다. 갓 뜯은 배터리를 장착한 장난감
처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다 촬영만 시작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가끔 나도 넋을 잃고 지켜본다.
그녀의 남편 김병철 씨는 연기 준비 면에서는 더 무지막지하신 분이다. 언제나 조용하다. 현장에 차분하게 존
재한다.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할 뿐이다. 그러나 역시 촬영이 시작되면 밤새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신공의 연

스물다섯 명의 고정배역 배우를 비롯해 촬영감독, 미술감독, 음악감독, 편집기사 등 전체 스태프 모두가 노력과
헌신을 다했기에 <SKY 캐슬> 총 20부작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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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혹은 인간문화재의 퍼포먼스를 펼치신다. 정준호 선배는 지질한 코미디 대사 한마디에 거의 목숨을 걸고
연기하시면서도, 또 오랫동안 길러온 콧수염도 작품 설정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단 1초의 주저도 없이 자르셨
다. 이태란 씨는 혐수임에서 탄산수임, 빛수임까지 온갖 가시밭길을 걸으며 묵묵히 자기 연기를 한 씬 한 씬 해
나가는 과정을 보며… 거창하지만 삶의 태도까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외에도 거론하자면 끝이 없는 배우들
의 열연의 앙상블이 <SKY 캐슬>에는 가득했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모이면 발생하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센
스 고수들의 향연을 고스란히 느꼈다.

나는 사실 <SKY 캐슬>을 시작하기 전에 인생의 나름 많은 암흑기를 거쳐왔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 가장 강


력한 슬럼프 속에 있었다. 마치 소설가가 갑자기 기억, 니은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는 그런 순간 같은… 모든 게
헷갈리고 어떤 것이든 확신이 별로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와 내가 연출한 작품 사이의 무지막
지한 간극을 외면하고 외면하다가 곪아 터진 건지 아니면 40대 중반을 지나면서 그동안 저당 잡힌 뭔가가 일
시에 몰려온 것인지…. 정말 그냥 이유 없이 주저앉아 울고만 싶은 날들이었다. 유 작가님은 나에게 용기를 주
셨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격려와 지지를 끊임없이 보내주셨다. 항상 끝없이 의심 많은 나의 성격에 확실한 진
심의 용기를 주셨다. 덕분에 나는 마음속은 떨고 있지만, 과감한 척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런 기분
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20부 촬영을 다 마친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니 기분만이 아니라 그 용기가 많은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 이루어진 촬영


촬영감독과 촬영 두 달 전부터 쉴새 없이 의논했다. 그때 이미 표정액션으로 배우들의 미묘한 표정에 집중해
서 만들어나갈 계획을 꼼꼼히 짰고, 미술감독과 각각 캐릭터들의 집들을 분리해서 강조하는 계획과 과감하게
반사와 왜곡의 이중유리로 인물의 두 가지 얼굴을 한 샷에서 감정에 따라 담는 작전을 준비했고, 워낙 등장인
물의 겉과 속이 달라서, 절대로 거짓말할 수 없는 뒷모습과 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실망해서 돌아서는 사람
의 뒷모습은 절대로 거짓말할 수 없다.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괜찮은 척 웃고 있는 사람의 표정은 상대
를 속일 수 있어도, 손동작은 묘하게 진심을 남긴다. 악당을 연기한 김서형 씨에게 더 버젓이 카메라 렌즈를 정
면 응시하자고 했고, 악플에 시달리는 이수임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엔딩도 하
지 말자고 편집기사와 굳게 약속했다. 또 스태프들과 하루 15시간만 찍고 일주일에 5일만 촬영할 수 있는 구체
적 전략을 짰다. 타이트 럭셔리를 콘셉트로 인물들의 미술 전략을 준비했고, 아역 배우들을 방송국으로 출근시
켜 함께 대본을 연구했다. 물론 촬영감독도 늘 함께 다녔다. 회의를 마치면 술집으로 향해 촬영감독과 술 마시
며 낮에 한 회의 내용을 또 회의했다. 다른 사람들은 뭔가 세밀한 계획이 있어서 그런 줄 알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냥 용기를 냈을 뿐이다. 그 용기가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오재호 촬영감독은 일생일대의 핸드헬드 샷들을 보여주었고, 오상환 편집기사는 늘 기대 이상의 편집본을 보
여주며 편집실 가는 길이 제일 편안하고 행복한 일이 되게 해주었다. 실제로 전체 20부작 촬영 씬이 1,300씬
정도 되는데 그중 오미트 된 씬은 한두 씬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하게 일할 수 있었다. 김태성 음악감독은 언제
나 최고의 마무리를 선사했고, 이정화 조감독은 배우와 미술에서 항상 기대 이상의 성과물들을 보여줬다. 정진
철 조감독은 수십 명 달하는 배우들의 스케줄을 무리 없이 113회 차 촬영을 마칠 수 있게 해주었다. 너무나 헤
아릴 수 없는 없이 많은 고마운 분들의 헌신으로 일생의 행운이 찾아온 것 같다. 진심으로 모두에게 깊은 감사
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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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집필기

고민 따위 쌈 싸 먹어~!

일상에 지친 당신들을 위로할


위大한 언니들의 푸드테라pick!
<밥블레스유> 제작기

정다운
MBC <전파견문록>
KBS <상상플러스 – 올드앤뉴> <김생민의 영수증>
MBC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 라디오 스타> <일밤> <나 혼자 산다> <판결의 온도>
tvN <현장토크쇼-TAXI>
JTBC <비정상회담> <썰전>
O’live <밥블레스유>
2017 한국방송작가상 예능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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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믿어보시라니까요
정말 재미있다니까요.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 김숙이에요.
이분들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술 한 모금 안 마시고 밥으로만 4차 가는 분들… 네 분이서 밥 먹으며 이야기하
는 것만 찍어도 한 회는 뚝딱인데… 데일리 라디오 DJ가 셋에 이영자 언니 입담은 말할 것도 없고요… <송은
이 김숙의 비밀보장> 안 들어보셨어요? 최화정, 이영자 편 몇 회만 들어봐도 각이 딱 나오는데… 영자언니 휴
게소 먹방 순례도 그 팟캐스트가 오리지널 에피소드잖아요.

구구절절 설명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냥 이 조합 한 번만 믿고 맡겨달라고, 웃음 보장 공감 보장 아무리 이야기


를 해도 기획안을 처음 접한 방송사의 반응들은 무덤덤했다. 게다가 쉬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윗분들은 이
런저런 속마음을 감춘 우려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먹방 이제 너무 지겹지 않나? (이미 <맛있는 녀석들>로 먹방이 피크치고 있잖아…)


또 관찰 리얼리티야? (부모, 자식, 형제, 시어머니, 며느리, 사돈까지! 온 가족도 모자라 이제 가족 같은 매니저까
지 관찰 대열에 합류했는데…)
솔직히 아이돌 하나쯤은 껴야 하는 거 아닌가? (출연자들 평균 나이가 좀 많…)

잘 짜진 포맷 안에서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세팅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오로지 출연자들 케미(?)
에만 의존해 밀어붙인 기획이라 이 조합에 대한 PD의 확신 없이는 아무래도 편성을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심
지어 <비밀보장>의 서브 코너였다가 성공리에 론칭했던 모 프로그램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급하게 종영된 직
후라 상황은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낙담하고 있던 그즈음 평소 팟캐스트의 애청자이자 조연출 시절부
터 언니들과 인연을 이어온 황인영 PD가 이 기획에 관심을 보였다.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냐? 얼른 도장부
터 찍고 시작합시다’라며 선뜻 제작을 추진했고,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진행된
<밥블레스유>는 연출진과 작가진이 정식회의를 시작한 지 꼬옥 30일째가 되던 날 첫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평균 우정 15년의 네 명의 언니들이 종종 만나 밥을 먹던 모임에 카메라만 뻗
쳐 고스란히 현장을 담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거창한 세트를 지을 필요도 없다. 하루는 큰 언니 주방이, 또 다른 날은 오랜 단골집이 우리의 세트가 된다. 코
믹한 설정이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대사도 필요가 없다. 현실 우정이 빚어낸 일상의 수다는 관계를 보듬고
위로를 안기고 고민을 해결하는 공감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언니들이 들려주는 인생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
로 대본이 되고, 완성된 예능의 형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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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블레스유> 같은 경우 일상적이고 사소한 고민을 다루다 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방송을 하
고 있다는 공감을 많이 사게 된다. 주변 친구들이나 가족들의 모니터만 들어봐도 그 친밀도의 깊이가 다르다.
‘웃기다’ ‘재미없다’ 같은 단편적인 평가가 아니라 ‘완전 내 이야기인 줄~!’ ‘같이 울화통이 터졌잖아’ ‘그 사연에
는 나도 울었어’라는 식의 반응이 많다. 사회에서 만난 늘 바른말만 해주는 직장 선배의 느낌보다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나보다 더 흥분해주고, 복수를 함께 결의해주는 내 친언니 같은 든든함이 묘한 연대감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45분간의 신나는 먹부림 쇼가 한바탕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시청자들의 가장
많은 피드백은 ‘나도 저 자리에 껴서 같이 수다 떨고, 맛있게 먹고 싶어요’다. 제작진 역시 시청자가 우리 프로
그램을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교감의 대상으로 봐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고, 힐링 받고 있다.

<밥블레스유>의 가장 큰 매력은 인생 선배들이 무심하게 툭 내뱉는 한 마디가 아닐까? 때론 현자의 가르침처


럼 가슴을 울리고, 때론 유머와 위트로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인생 뭐 있냐,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맛있는 거 먹는 이게 행복이지.”
“나이는 노력 없이 먹는 것. 생색내지 말고 착각하지 말자.”
“결혼은 인생에 한 번, 먹는 건 365일”
“분단된 국가에서 음식 나누는 거 아녀~”

촌철살인 푸드테라pick에 언니들만의 맛 표현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 프로그램만의 관전 포인트다.


“상사의 잔소리엔 잘근잘근 등갈비를! 믿었던 친구의 배신엔 시원한 냉면을!
거절 못 하는 성격엔 칼같이 끊어내라고 ‘손칼국수를!’
“이건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 마치 드라마에 등장한 다니엘 헤니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과도 같아.”
“학교 다닐 때 엄마가 공부 잘하고 착한 애들이랑 놀면 늦게 놀아도 된다고 했다. 이 통새우만두는 엄마가 권
하는 친구 같아. 만두계의 모범생이다.”

언젠가 최화정 언니가 한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엄마, 아빠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든
든하듯이 내 인생에 이 친구들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작가로서도 <밥블레
스유>라는 프로그램을 만난 것, 언니들과 함께한다는 건 내 인생의 행운이다. 좌절의 순간, 영광의 순간마다 함
께한 인생의 굴곡을 모두 버텨온 언니들의 우정에 어디 비할 수 있겠냐만 19년 전 나의 첫 프로그램 연기자였
던 송은이 언니, 나의 첫 메인 프로그램의 MC였던 이영자 언니, 내 결혼식 축가를 빛내준 김숙 언니까지! 아주
손톱만큼 적은 지분이지만 언니들과의 우정에 나도 한 페이지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요즘 제일 신난다.

주도적인 콘텐츠 창작자가 되기까지


3년 전 어느 날, 일이 없던 언니들이 팟캐스트를 시작하며 뭐든 재미난 걸 같이 해보자고 나에게 먼저 손을 내
밀어준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더 이상 방송국에 의해 캐스팅 당하는 ‘을’이 되지 말자고, 당당하게 우리
콘텐츠로 승부 걸자고 도원결의했던 그날로부터 3년 만에 함께 꿈을 이뤄냈다.
제작사가 콘텐츠의 힘만으로 방송국하고 대등한 조건의 계약을 맺고 저작권을 인정받는 좋은 사례가 <밥블레
스유>다. 제작자 송은이로서 밀어붙인 소신의 결과였다. 자기 코너를 짜던 개그맨이었고, 늘 아이디어를 갖고
콘텐츠를 만들던 입장이었기 때문에 제작진의 마음도, 연기자의 마음도 모두 헤아릴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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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설움을 너무 잘 아는 제작자와 함께 일하다 보니 특장점도 많다. 우리가 먼저인 건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지다. 이건 스웨덴 급이야~라고 자랑할 정도로 송은이 대표님의 특급 배려는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제작 환경에 후배 작가들이 자존감을 잃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판을 벌여
주기도 한다. 웬만한 고민 따윈 다 쌈 싸 먹어 버리는 만능 해결사와 함께 일한다는 것, 내 작가 인생 중 가장 자
랑스러운 시간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고, 맛있게 말하는 맛쟁이 언니들과 함께 하는 목요일 밤의 힐링 타임이 오래오래 계
속되길 바란다. 먹고 있으면서도 이거 다음에는 뭘 먹지 고민하는 이 귀여운 언니들의 비장의 메뉴들이 아직
반도 나오지 않았다.

애 보기에 지쳐 진짜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적이 없다는 독


박육아맘!
밤마다 고국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잠드는 해외동포 여러분!
짜증 나는 직장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팍팍 받는 회사원들!
당신의 고민을 밥으로 공감하고 밥으로 위로해드립니다!
밥이 너희를 평온케 하리라, 밥블레스유~!

<밥블레스유>의 가장 큰 매력은 네 명의 인생 선배들


이 무심하게 툭 내뱉는 한 마디에 있다. 웬만한 고민
따윈 다 쌈 싸 먹어 버리는 만능 해결사다.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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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상식

유명 드라마 속 캐릭터를 이용한


광고와 퍼블리시티권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되면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특징적인 대사가 크게 유행하곤 한다. 얼마 전 드라마


<SKY 캐슬>에 큰 관심과 인기가 치솟으면서 주요 배역 연기자의 대사인 “…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를
들이셔야 합니다” 등을 이용한 각종 광고나 홍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나 캐릭터
를 이용한 광고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아니면 해당 드라마의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 판례에서는 간단한 단어의 조합에 불과한 제호라든가 캐릭터 이름 등의 저작물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의 이름 자체를 이용하는 데는 저작권법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나 드
라마에 등장하는 배우 등은 극 중에서 특정한 역할을 맡아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해
당 인물이 쉽게 연상될 수 있는 캐릭터를 제작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에는 퍼블리시티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이란 특정인이 자신의 성명·초상·목소리·이미지·캐릭터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제삼자에게 상업적인 이용을 허락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초상 사용권이라고도 하며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자신의 얼굴이나 이름 등을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대표적
인 퍼블리시티권에 해당한다. 퍼블리시티권의 핵심은 상업적 이용 여부로, 재산 가치를 보호하는 권리라는 점
에서 인격권의 초상권과는 구별된다. 연예, 광고산업이 발달한 미국 등 서구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사례가 많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명문화된 법 규정은 없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
라도 연예, 광고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등을 중심으로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관심
이 크게 증가하고 있고, 실제로 퍼블리시티권 침해와 관련된 소송과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판례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실정법 부재를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사례 등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개그맨 정준하나 배우 이민호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법원이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여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으나, 가수 유이나 싸이가 제기한 소송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드라마나 K-POP 등 한류 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퍼블리시티권의 구체적
인 법률적 근거 마련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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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정록의 이정록 시인
이 시는 꿈속에서 썼으니까 시의 씨앗을 알 수가 없다.
강 건너 풀빛
쓴 게 아니라 탄생한 거다. 열 권 넘게 시를 써오면서 느낀
바는, 좋은 시는 시의 종자가 청천벽력처럼 온다는 거다.

한창욱의 이렇게 한창욱 영화평론가


<레토>는 삶의 어느 시점에 흔들리고 불타오를 수 있는
읽는 영화
감정, 소멸한 듯하면서도 소멸하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그런 감정의 일순간을 바라본다.

이장주 심리학 박사
내 마음이
사람들은 경험 총량이 계산기처럼 누적되어 최종 판단
내 마음대로
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경험과 마지막 경험
되지 않는 이유들
이 최종 판단과 미래 계획에 더 큰 영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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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共感
시인 이정록의 강 건너 풀빛

가난한
이름
이정록 시인
現 만해문예학교장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동심언어사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어머니학교≫ ≪정말≫ ≪의자≫
산문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 ≪시인의 서랍≫
동화책 ≪대단한 단추들≫ ≪미술왕≫ ≪십 원짜리 똥탑≫ ≪귀신골 송사리≫
동시집 ≪지구의 맛≫ ≪저 많이 컸죠≫ ≪콧구멍만 바쁘다≫ 청소년시집 ≪까짓것≫
그림책 ≪달팽이 학교≫ ≪똥방패≫
박재삼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김달진문학상, 김수영문학상 수상

물소리를 꿈꾸다 / 이정록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
고치의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
나는 그 소리를 숨차게 쟁이며
분꽃 씨처럼 늙어갈 것이다
고치 속이, 눈부신 하늘인 양
맘껏 날아다니다 멍이 드는 날갯죽지
세찬 바람에 가지를 휘몰아
제 몸을 후려치는 그의 종아리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 얼음장 밑 송사리들
버드나무의 실뿌리를 젖인 듯 머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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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마다 결이 환해지는 버드나무
촬촬, 물소리로 올 수 있다면
날개를 달아도 되나요? 슬몃 투정도 부리며
버드나무와 한 살림을 차리고 싶다
물오른 수컷이 되고 싶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문학과지성사)

새벽에 일어났는데, 시 한 편이 줄줄 풀려나왔다. 넣고 뺄 문장이 없었다. <물소리를 꿈꾸다>라고 제목을 얹었


다. 창밖이 희부연했다. 시가 아침 해를 끌어올린 듯했다. 시를 쓰자마자 직감했다. 이걸 세상에 발표하면 질투
라는 화투장이 마구 날아오리라는 걸 말이다. 우쭐거림이 천정을 찔렀다. 고마워라. 이 시는 꿈속에서 썼으니
까 시의 씨앗을 알 수가 없다. 쓴 게 아니라 탄생한 거다. 물론 욕망이 들끓어서 마지막 한 문장과 비유를 덧댔
지만, 얼개는 선물처럼 다가온 시다. 욕심을 부린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 덧댐마저도 이 시의 얼굴이다. 욕
심을 덜어내라.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 글쓰기의 거울로 삼는다.
열 권 넘게 시를 써오면서 느낀 바는, 좋은 시는 시의 종자가 청천벽력처럼 온다는 거다.
시를 출력해서 홍성 남당리 바닷가로 갔다. 서산에 사는 유용주 시인과 중간쯤에서 만나기로 한 거다. 둘은 바
다가 보이는 ‘꽃동산횟집’ 서쪽 방에 앉아 연거푸 낭송했다. 한번 낭송을 할 때마다 맥주 컵으로 소주를 들이켰
다. 취할수록 시가 더 좋아졌다. 대여섯 잔이 들어가자 불후의 명시가 되었다. 당연히 다음날까지 낭송은 계속
되었다. 둘 다 시를 외울 지경이었다. 나중에는 “물오른 수컷이 되고 싶다”라는 행을 재첩再疊으로 읽으며 눈물
범벅으로 낄낄거렸다. 변방에 사는 가난한 시인들의 외로운 축제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헤어질 때면
그 좋던 시도 걸레처럼 변하였건만, 이 시는 다행히 아침까지 좋았다. 아니, 나쁘면 아니 됐다. 술값이 이미 원
고료의 열 배쯤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서 청탁이 왔다. 주간 정진규 시인이 친
필로 옮겨서 표지에 올려주셨다. 그 일로 문단에서 나는 ‘물오른 수컷’이 되었다. 시의 한 문장을 뽑아서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를 출간했다. 출판사에서 책이 한 상자 내려왔다. 슬며시 식탁에 올려놓았다.
“새 시집이 나왔어. 축하주 한잔해야지.”
아내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고!”, “제목만 봐도 빤하지 뭐.”,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가 어때서?”
“이름이 왜 그렇게 가난해? 한 글자만 바꾸면 좀 좋아. 남의 집살이가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세주고 싶다’라고,
한 글자만 바꾸면 얼마나 희망적이야.”
나는 식은 김치찌개에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불후의 명작은 금방 썩은 초가집 처마에서 비를 긋는 강아지 꼴
이 되었다.
“다음부터는 이름을 갑부로 지을게.”
이 일이 있은 지 스무 해가 지났건만, 책을 낸 뒤에야 깜짝 놀란다. 더 낮고, 춥고, 외로운 이름표를 달고 나오기
때문이다.≪제비꽃 여인숙≫ ≪의자≫ ≪시인의 서랍≫ ≪콧구멍만 바쁘다≫ ≪십 원짜리 똥탑≫ ≪시가
안 써지면 나는 시내버스를 탄다≫그간 내 약력에 오른 책의 이름이다.
“도대체 우등버스도 있고 비행기도 있는데, 시내버스가 뭐야? 책 한 권에 등장하는 것들을 다 팔아도 오백만 원
이 안 될 걸.”
나는 또 ‘아차!’ 멍하니 창밖을 내다본다. ‘다음에는 천만 원짜리 이름을 짓자!’ 속으로 ≪황금잔치≫란 유치한
이름을 떠올려본다. 홀로 먼 하늘을 헤엄치는 ‘물오른 수컷’이 된다. 천 원짜리처럼 노을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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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共感
한창욱의 이렇게 읽는 영화

초과하는 에너지들
영화 <레토>

한창욱 영화평론가
영화비평지 <필로> 기고
저서 ≪책으로 다시 살다≫(북바이북, 2015) 공저
≪당신은 가고 나는 여기≫(어른의시간, 2015) 공저
≪스탠리큐브릭≫(리디북스, 전자책 출간)
≪이젠, 함께 쓰기다≫(북바이북, 2016) 공저

2018년 하반기에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금 이 순간 천만 관객을 바라본다.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


키며 얼마 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작품상마저 품에 안았다. 하지만 많은 이가 말하듯 이 영화는 다소 심
심하고 진부한 구석이 있다. 촘촘하게 짜인 완성도나 신선한 측면을 보여주기보다는 지극히 관습적 방식을 구
사하며 음악과 캐릭터 구축만으로 흥미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신드롬을 타고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헤미안 랩소디> 패러디가 양산되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음악 영화가 찾아왔다. 흥행 면에서는 상대가 안 되지만, 단언컨대 이 영화는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갑절은
훌륭한 음악 ‘영화’다. 러시아에서 날아온,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름인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1980
년대 소련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린 록밴드 ‘키노(Kino)’를 이끌었다. 키노는 소련의 개방정책과 맞물려 왕성한
해외 활동까지 하며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런 빅토르 최를 한국의 유태오 배우가 특유의 분위기로 새롭게
재현하였다.
<레토>는 전기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어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전기가 아니라 그 시대 청춘의 ‘어떤’ 기
운들을 담는다. KGB에 의해 음악이 검열당하고 감시당해야 하는 시대에 누구도 막아서지 못했던 기운들을 새
겨 넣는 것이다. ‘여름’이란 의미의 제목 <레토>는 그런 기운을 대변한다. <레토>는 영화 초반부에 빅토르 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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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배이자 멘토이면서 록스타인 마이크가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기도 한
다. <레토>는 키노의 일대기를 다루기보다 1980년대 초반 구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키노가 탄생하는 시점에 주
목하는데, 마치 여름의 기운처럼 뜨거운 기운이 가득했던 어떤 시기, 어떤 공기를 그려내려는 것이다. 그것은
삶 혹은 음악 커리어의 절정이라기보다는 잠시 스쳐 가는 어떤 순간들이며,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발
광하던 어떤 시점을 포착하는 일이다.
그래서 <레토>는 신화를 구축하려 하지 않는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철저히 신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과는
다른 태도로 음악과 음악가에 접근한다. <레토>는 신화가 만들어지려는 순간에 어김없이 그것을 허문다. 때때
로 이 영화는 ‘제4의 벽’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제4의 벽’이란 연극에서 객석을 향한 가상의 벽을 가리
키는 말이다. 영화에서도 스크린이라는 ‘제4의 벽’이 존재한다. <레토>는 이 벽을 넘어 뜬금없이 말을 걸거나
화면 안의 사건을 두고 ‘이건 없던 일’이라고 전한다. 실재를 포착할 수 없고 재현할 뿐인 영화가 스스로 허구
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실재가 아니라 어떤 재현일 뿐이라고 선언하려는 듯이 보
인다.
그 선언은 어떤 목적으로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은 우리가 그 선언의 순간에 주목해보기를 요청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종종 뮤지컬처럼 사용되면서 매우 놀라운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우리 귀에도 익숙한
유명 팝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갑자기 2D 그래픽 선과 그림들이 나타나 스크린 이곳저곳을 활보한다. 그리
고 그 장면에 자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노래를 부른다. 밴드와 상관없는 사람마저도 그 순간 노래와 접촉
하며 합동 공연에 참여한다. 마치 그 선과 그림, 사람들은 스크린을 초과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물리적으
로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우리가 줄곧 보아왔던 화면비를 넘어서 생성되고 운동하며 사
라진다. 그동안 이야기가 진행되었던 화면비가 내러티브 화면이라고 칭한다면, 그래픽 선들은 마치 이 내러티
브를 뚫고 나오려는 듯이 활동한다. 그 활동과 함께 음악 또한 내러티브 내부에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초과하여 다른 곳으로 넘어가려 한다. <레토>는 세계 내에 이미 잠재한 음악을 다시 세
계로 불러오면서 청중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로 위치시킨다. 거기서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이으며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레토>는 음악뿐이 아니라 ‘영화’ 또한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한다. 밴드명 ‘키노’는 ‘영화’라는 뜻이다. 빅토르
최가 영화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신없이 떠드는 와중에 옆에 있던 영화관에서 그 이
름을 따왔을 뿐이다. <레토>에서 ‘영화’는 우연한 마주침 그 자체이자, 그 마주침을 갈구하며 쳐다보는 창과 같
다. <레토>는 그 창을 넘어서는 순간을 담아내려 하고, 그 순간을 갈망한다. 이는 빅토르와 마이크가 처음 만나
는 장면에서도 아름답게 제시된다. 카메라는 빅토르를 따라 트래킹하며 닫히고 경계 그어진 세계에서 열린 세
계로 나가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렇게 또 다른 세계를 향한 열망과 애정이 영화 곳곳에 새겨진다.
초과하며 넘어서는 것, 그리고 우연한 만남과 변화들. <레토>는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 속에서 빅토르 최의 연
애 이야기는 단순한 갈등을 넘어선다. 그것은 극적으로 거대하게 불타오르기보다 한순간의 불장난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레토>는 삶의 어느 시점에 흔들리고 불타오를 수 있는 감정, 소멸한 듯하면서도 소멸하지
않고 다시 찾아오는 그런 감정의 일순간을 바라본다. 그것이 곧 음악 혹은 영화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무언가
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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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共感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들

옷장 앞에서 투덜거리는
아내의 위대함에
대해서
이장주 심리학 박사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게임문화재단 이사
前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강의전담 교수
<주간경향> <게임톡> <인벤> <엔씨소프트 블로그> 등 정기 기고
저서 ≪여자와 남자는 왜 늘 평행선인걸까?≫ ≪십대를 위한 미래과학콘서트≫ ≪사회심리학≫ 외 다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나름 다부진 각오로 알람을 맞춥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원고를 쓰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깨어난 시간은 7시가 넘어서였습니다. 알람이 고장 난 것도 아닌데, 그 알람을 무시하는 일은 하루도
지나지 않은 각오를 무색하게 합니다. 사실 이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내는 늘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옷장은 늘 가득한데 말이지요. 그래서 큰마음 먹고 새 옷을 사 오면,
당분간 잘 입다가 얼마 가지 않아 똑같은 말은 하곤 합니다. 입을 옷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
는 저는 참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매번 새로 산 옷들은 옷장에 가득한 옷들과 스타일이나 모양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면서도 매번 비슷한 옷을 사고, 입을 옷이 없다는 말을 20년 가까이 듣고 있습니다. 아마 큰일
이 없다면 평생 반복될 겁니다.

지키지 못할 알람 맞추기나 매번 똑같은 옷을 사면서 불만족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


고 있는 심리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비합리적인 계획과 행동은 행동경제학자들
이 가장 관심을 두는 현상이지요. 그 대표적인 학자는 카네만(Kahneman)이란 분입니다. ‘경험하는 나’와 ‘기
억(판단)하는 나’는 서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그는 2002년에 심리학자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
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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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갑돌이와 갑식이가 그 마을에서 제일 예쁜 꽃분이의 마음을 얻으려고 경쟁을 한다 칩
시다. 둘은 친구이기 때문에 공정하게 경쟁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3달 동안 데이트 비용으로 똑같이 100만
원을 들여 노력한 후 꽃분이의 최종 선택을 받기로 말이지요. 갑돌이의 전략은 초지일관이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을 표현하고자 33만 원씩 매달 동일하게 사용하여 일편단심을 보여주기로 했지요.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앞으로 변치 않는 사랑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갑식이의 전략은 달랐습
니다. 첫 달 10만 원을 사용하여 가볍게 내가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정도만 전달했습니다. 두 번째 달에는 그보
다 좀 더 많은 20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진짜로 마음이 있다니까? 그리고 마지막 달에 남은 70만
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진짜 진짜 나는 너를 이따만큼 좋아해!!

결과는 어땠을까요? 둘에 대한 꽃분이의 마음이 비슷했다면 아마 갑식이의 완승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매번


동일한 패턴으로 사용한 갑돌이의 100만 원은 꽃분이의 기억에 크게 남지 않습니다. 반면 갑식이의 100만 원
은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됩니다. 왜냐면 사람의 기억은 경험의 총량이 아니라 가장 강렬했던 기억(peak)과 가
장 마지막 기억(end)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네만의 이런 현상을 ‘절정-종결 법칙(peak-end rule)’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즉 사람들은 경험 총량이 계산기처럼 누적되어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
장 강렬했던 경험과 마지막 경험이 최종 판단과 미래 계획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절정-종결 법칙은 왜 나쁜 남자가 인기가 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인기 있는 나쁜 남자는


초지일관 나쁜 짓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처음에는 나쁜 짓을 합니다만, 예상치 않은 호의를 보여줍니다. 그러
다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아주 큰 선물을 줍니다. 아주 임팩트있게 말입니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마음을 얻게
되지요. 그렇게 결말이 나면 처음 했던 나쁜 짓들은 나쁜 짓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독특한 매력으로 남게 됩
니다.

이런 현상은 드라마 여주인공이 속물이어서가 아닙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


반적인 생각의 패턴입니다. 사실 나쁜 남자의 못된 짓은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 줍니다. 낮추어진 기
대치는 조그만 호의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이지요. 어두운 밤이 작은 촛불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보다 훨씬 적은 돈이지만 뜻밖의 보너스는 기쁜 선물로 인식되지요.
둘 다 내가 일해서 생긴 것을 돌려받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초지일관이나 초심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보통 처음보다 나빠진 경우에 하는 말이지요. 현실에서 별문제 없이


초심을 지키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사람이나 답답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누군가의 변함없
는 노력을 폄하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저에게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떠
올랐습니다. 옷장 앞에서 투덜거렸던 아내 말입니다. 그렇게 초지일관 투덜거림이 일상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만든 숨은 힘이었던 겁니다. 혹시 독자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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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 – 영국

정치드라마 전성시대
뜨거운 화두를 건드린 드라마 <브렉시트: 무례한 전쟁>

UNITED 김수정

KINGDOM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작가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다양한 글쓰기와 방송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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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정치를 TV로 불러들이는 일은 일반적으로 위험하다. 몇 세대가 지난 사건이나 이야기는 그나마 사정이 낫
겠지만 아직 평가가 끝나지 않은, 혹은 한창 진행 중인 정치 사건을 미디어로 끌어오는 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이며 따라서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풍자와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정
치드라마는 눈길을 확 끌어 화제는 될 수 있지만 본 작품이 흥행에서 성공하기는 쉽지 않으니 잘해야 본전이
고 대다수는 망하기에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참으로 용감무쌍한 정치드라마 한 편이 있다. 2019년 1월 현재,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화
제를 몰고 온 드라마. 영국의 공중파방송 채널인 채널 4(Channel 4)와 미국의 HBO가 손을 잡고 제작한 <브렉
시트: 무례한 전쟁(Brexit: The Uncivil War)>이 바로 그것이다. 2016년 6월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깜짝 뒤집었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브렉시트’를 소재로 만든 드라마라니. 주인공은 브렉시
트를 이끌어낸 정치가 도미닉 커밍스(Dominic Cummings)인데, 거기에 우리 귀에도 익숙한 보리스 존슨이나
나이젤 파라지 같은 현실 정치가들이 드라마 전면에서 이야기를 이끈다. 게다가 주인공 커밍스 역은 무려 셜
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다! 당연히 이 드라마는 제작을 발표한 작년 여름부터 큰 화
제를 모았으며 2019년 1월 드디어 그 베일을 벗었다.

이 드라마는 ‘브렉시트’라는 특정한 정치적 사건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역사적인 접근이나 친절한 설
명도 없다. 아니 어쩌면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국민투표 결정이 2년 반 이상이 지났지만, 영국과
EU는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며 영국 의회 안에서도, 정치권 안팎에서도, 언론이나 학계에
서도 아직까지 다양한 의견과 평가가 엇갈린다. 오늘, 다시 재투표를 하자는 거리 시위가 언론을 도배하면, 다
음날 노딜 브렉시트의 위험성이 집중 보도되는 식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한마디로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극단적인 불확실한 상황. 이런 배경 속에서 드라마는 2016년 국민투표 상황에
만 초점을 맞춘다. 잔류파들에게는 아직도 역적으로 불리고 있는 커밍스의 캠페인이 왜 어떻게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는지, 영국 정치의 핵심적 인물들은 당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결론적으로 브렉시트라는 결과가
거짓 뉴스 및 검증되지 않고 남발된 공약, 선거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지극히 드라마적으로 보
여주었다. 그리고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헷갈린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
구인가. 어느 지점까지 믿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 브렉시트라는 영국의 운명을 가르는 이 사건의
결과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소재가 소재인 만큼, 드라마의 후폭풍도 거세다. 호평과 악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속에서 모두가 칭송하는
지점은 컴버배치를 비롯한 연기자들의 빼어난 연기, 흠잡기 힘든 호연이다. 하지만 이 지점을 제외한 나머지
평가는 비교적 인색한 것 같다. 캠버배치의 유명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세간에서 가장 핫한 사건을 다루면
서 사건 자체보다는 위인전처럼 주인공 1인의 기인적 측면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평. 왜곡되거나 과장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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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 너무 많다는 비판. 게다가 드라마를 보고 나니 영국의 현실과 미래가 더욱 우울하고 비관적으로 느껴진
다는 시청자 게시판의 하소연까지. 어쩌면 현실 정치드라마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브렉
시트’라는 소재는 과도하게 압도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너무 무리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큰 의미를 지닌다. 가짜뉴스와 허위 사실이 얼마나 인간의 감정에 쉽
게 파고드는지. 사실에 대한 검증 과정이 없는 몇몇 선동만으로도 대중들은 얼마나 빠르게 바뀔 수 있는지. 브
렉시트 투표 과정을 거치며 지난 2년 반 동안 어쩌면 필요 없었을 진통을 겪으면서 영국 사회가, 영국에서 살
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분노하고 양분되었는지에 대해 아프지만 깊은 울림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 소재 방송의 서막이 열리다


공교롭게도 이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와 맞물려 현실 정치인과 유명 작가가 대놓고 시비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
했다. 보수당의 국회의원인 아나 수브리(Anna Soubry)가 국회 앞에서 BBC 생방송 인터뷰하는 중, 근처에서
시위 중이던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수브리 의원의 인터뷰를 방해했다. 그녀를 ‘거짓말쟁이’, ‘배신자’, ‘쓰레기’
로 부르며 심지어 금기어인 ‘나치’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인 오언 존스(Owen
Jones)도 비슷한 언어 테러를 당했다. 인터뷰를 위해 국회 앞으로 지나가던 중 시위대가 둘러싸고 쫓아오며
위협을 가한 거였다. 물리적인 폭행은 아니었지만 명백한 언어폭력이었으며 테러였다. 어쩌면 드라마 <브렉
시트: 무례한 전쟁>이 포착해내고 주술처럼 예고한 상황 그대로였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모두 적이
되는 상황, 브렉시트가 가져온 적대적이고 반민주주의적 혼란의 단면이 실제 상황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 화제의 드라마를 필두로 올해 영국방송의 화두는 두말할 필요 없이 브렉시트이다. 다큐멘터리와 르포는 물


론, 수많은 드라마가 ‘브렉시트’라는 소재로 준비되고 있단다. 브렉시트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불거진 계급
과 계층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기획 중이라고 한다. 하긴 현재, 영국의 현실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
틱한 상황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겠다. 정치 소재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를 열고 있는 영국방
송. 다음에 선보일 정치드라마 화제작은 과연 어떤 이야기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극단적인 불확실한 상황. <브렉시트: 무례한 전쟁>은 브렉시트라는 결과가 거


짓 뉴스 및 검증되지 않고 남발된 공약, 선거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지극히 드라마적으
로 보여주었다. 사진 출처 :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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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상식 글. 생명보험협회 홍보부

보장성? 저축성? 종신? 헷갈리는 보험 용어들

보장성이나 저축성, 저해지환급형 같은 용어들…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어렴풋이 ‘이런 거 아니겠어?’라는 짐작은 가
지만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한 용어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보장성 보험
생명보험상품은 일반적으로 보장성 보험과 저축성 보험으로 구분합니다. 보장성 보험은 보험의 본래 기능인 위험 보장에
중점을 둔 상품을 말합니다. 보험기간 중의 사망이나 질병, 각종 재해 시 큰 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축성 보험
위험 보장 기능보다는 저축 및 투자 기능을 강화한 상품입니다. 중·장기간에 목돈을 마련하거나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습니다.

종신보험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중에 사망했을 때 보험금이 지급되는 보험을 사망보험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망보험은 보험기간을
미리 정해 놓고 피보험자가 보험기간 내에 사망하였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정기보험과 일정한 기간을 정하지 않고 피보
험자가 어느 때 사망하더라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종신보험으로 나누어집니다.

만기환급형 보험
보장성 보험에서 만기까지 생존했을 경우, 이미 납입한 보험료를 환급해주는 보험을 말합니다. 반면에 생존 시 지급되는 것
이 전혀 없는 것을 순수보장성 보험이라고 말합니다.

저해지환급형 보험
중도해지를 했을 때 돌려주는 해지환급금이 일반 보험보다 적은 보험을 가리킵니다. 중도해지 시 받는 금액이 적은 만큼 보
험료 또한 기존 일반 보험보다 30~40% 저렴합니다. 최근에는 보험료를 더 낮추기 위해서 해지하면 해지환급금이 없는
무해지환급형 상품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갱신형 상품
보험가입 후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연령과 위험률을 변경하여 보험료를 다시 산정해 유지하는 것을 갱신형 상품이라고 합
니다. 보험회사가 갱신 전에 자동갱신 안내장을 계약자에게 발송하여 안내하면, 가입자가 갱신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갱
신형 상품은 위험률 변동이 너무 커 갱신 시 보험료를 조정함으로써 안정적인 보험계약 운용을 위해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실손의료보험을 비롯한 일부 질병보험과 간병보험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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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두 여자
나만 아는
作家
共感

조수연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KBS <르포 이웃사람들> <KBS무대> <환경스페셜> <대한민국1교시>
<해피선데이> <대한민국경제실록> <혁신의 승부사>
MBC <한국경제 오디세이> <일요토론 이슈를 말하다>
MBN <대한민국 정치비사>
EBS <교과서를 품은 한국사> <코리안 미러클>

『몇 년 만에 찾아간 인천 용현동. 그녀는 커피 두 잔을 끓여 들여와 남편과 내 옆에 한 잔씩 놓고선 방 한쪽에 고개를 박고


앉았다. 잠시 불편하고 서먹한 시간이 흘렀다. 오랜만에 인천에 왔으니 만나볼 친구를 찾으러 가야겠다고 말했다. 위치를 알
려주니 남편이 길잡이를 하겠노라며 앞장섰다. 춘분은 남편 몰래 나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차마 못하겠는
그 표정이, 내겐 그녀의 마지막 표정이었다. 』
1960년 9월 어느 날에 아버지가 쓴 일기의 한 부분이다.
몇 년 만에 찾아간,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이제는 남의 여자가 된 첫사랑 이야기다.

처음 아버지 일기를 훔쳐본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어느 비 오던 여름날, 헛간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나무 박스를 열면서였다.
일기장 몇 권, 1950년대부터 쓴 가계부, 일기, 1970년대 중반에 발행된 <샘터> 몇 권, 헤르만 헤세 시집 등이 있었는데, 가장
호기심을 자극한 건 일기장이었다.
거기에는 아침저녁으로 불붙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처절한 부부싸움 소리,
손바닥만 한 천수답에 국유지 자갈밭에서 몸을 갈 듯 살았던 8가족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
강경상업고등학교 시절 시인 김관식과 같은 반이었는데, 김관식으로부터 육필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
어머니와의 만남과 결혼까지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중매쟁이 할매를 통해서 맞선을 보고, 소위 서너 달 데이트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는데 그 가운데 어느 하루를 영
화 같은 한 장면으로 그려 놓았다.
뚝방길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멀리 시선을 던지고 있었는데 남자(아버지)는 흘깃거리며 여자(어머니)의 자태를 훔쳐보
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는 ‘삘기’를 하나 뽑아 입에 물고 있었는데 그 옆모습이 아주 참했더란다. 아버지는 바로 그 장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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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딱 반해 결혼하셨을 거로 짐작된다. 원래 남녀는 한순간, 한 장면에 쓰러진다. 예컨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지금은 흡연자가 거지 취급받지만) 허공으로 담배 연기 내뿜는 순간 같은 거 말이다.
아버지도 남자였다.

운이 안 따라주었는지 아버지의 삶은 내내 비탈길을 달렸다. 강경상업고등학교를 나오고도 취직을 하지 못해서, 작은 밭에


토마토, 당근을 심어 강경장에 내다 파셨고, 마당 한쪽에 철망을 엮어 사육장을 만든, 양계장이랄 수도 없는 ‘닭치기’를 하셨
다. 그러나 재미 본 건 하나도 없다.
지금 쓰고 계신 자서전에도, 아버지의 청춘은 남는 게 없는 장사였고, 그 이후로도 건질 것도 교훈도 별로 없는 삶의 연속이
었으며 양심 하나 지키며 경우 있게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만 유난스런 시어머니 만나 독한 시집살이에도 곁을 묵묵히 지킨 어머니를 크게 쳐주고 계셨다. 5년째 요양원 신세를 지
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도 보인다.

며칠 전에 불쑥 말했다. “자서전에 첫사랑 춘분 씨 얘기도 쓰실 겁니까?”


아버지는 그걸 어떻게 아느냐면서, 어머니 기분을 고려해서 생각 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내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던, 나는 알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새까맣게 모르는 ‘첫사랑 춘분 씨’를 86세 아버지는 어떻
게 기록하실지 궁금하다.

그리고 듣기도 말하기도 힘겨운 어머니께도 장난처럼 묻고 싶다.


“엄마, 옛날에 아부지한테 춘분이란 여자가 있었는데 알아?”
어머니가 열 받아서 벌떡 일어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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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랜드
作家
共感

한영란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KBS-DMB <김태훈의 프리웨이> <김원준의 매직 인 더 월드>
KBS-R <지식 충전소, 김희수입니다> <장영란의 감성 클럽 오빠>
팟캐스트 <대화만점>

말로 뼈 때린다는 표현이 있다. 2016년 어느 날, 내 최측근은 비폭력 대화 방송을 준비하는 나의 뼈를 이렇게 때렸다. “네가
대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내가 대화 진짜 못하는 두 사람을 아는데, 한 명은 아예 말을 못 하는 사람이고, 나머
지 한 명이 너야.” 나는 곧장 그에게 물리적인 힘을 행사할 뻔했지만 비폭력 대화의 가르침 덕분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병원
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타인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엔 아무 기여도 못 하는 무분별한 대화에 지쳐있다면, 다
른 방식의 대화가 이뤄지는 나라로 떠날 때가 아닐까.

여기,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 새로운 대화의 차원이 존재한다. Nonviolent communication(NVC), 때로는 연민의 대화
(Compassionate Communication)로 불리는 비폭력 대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바로 그곳이다. 거듭 등장하
는 ‘비폭력’이란 단어는 그 유명한 간디가 사용한 것과 같은 뜻을 지녔다. 즉, “우리 마음 안에서 폭력이 가라앉고 자연스러
운 본성인 연민으로 돌아간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말로 상처 입히
며 살아간다. 그 비극을 방지하고,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NVC다.

대화를 바꾸는 것으로 정말 그 모든 게 가능할까? 아니 애초에 대화는 그냥 하는 것인데, 무슨 대화법 공부가 필요하냐고 물
을 수도 있다. NVC를 고안한 미국의 마셜 로젠버그 박사는 ‘인간이 서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까닭이 무
엇이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구체적인 대화 방법, ‘말하기와 듣기’를 고안했다.

절대 간단히 소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시도를 해보자면, NVC에는 4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1. 관찰: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며 말하기. 2. 느낌: 관찰을 하면서 그걸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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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의 상징, 기린.

솔직하게 말하기. 3. 욕구: 자신이 포착한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 말하기. 밥을 지지리도 안 먹는 아이들에게
나는 “너 이거 남기면 간식 못 먹을 줄 알아!” 이렇게 협박을 해대곤 했다. 하지만 앞의 세 가지 요소를 연결해서 말을 하면
이렇게 달라진다. “엄마는 네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기 때문에(욕구) 네가 이렇게 음식을 절반 이상 남기는 걸
보면(관찰) 정말 걱정이 돼(느낌).” 4. 부탁: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한다. 구
체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부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브로콜리 딱 3번만 더 먹어볼까?”)

자칫 딱딱할 것 같지만, 실제 대화 상황에 대입하면 NVC만큼 유용한 지식도 드물다. 비폭력 대화를 알면 알수록 내가 깨닫
게 된 것은 ‘국영수는 몰라도 비폭력 대화의 요소들은 아이들한테 꼭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이었다. NVC의 교과서나 다름없
는 마셜 박사의 책을 정독하면서, 나는 몇 번씩 책을 내려놓고 가슴을 쳐야 했다. 방송을 만들고 출연할 때도 몇 번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니, 이제야 알게 되다니! 감히 ‘비폭력 대화를 알기 전의 인생과 후의 인생이 같을 수 없
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NVC와의 만남은 나와 스태프들에게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나는 나 너는 너로 쪼개진 채 겉으로만 통하는 대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 밑바닥의 욕구와 필요를 돌봐주는 대화가 가능한
나라,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다를지라도 욕구 그 자체의 에너지를 알기에,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함께
머물 수 있는 신기한 나라, 남과의 대화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대화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그곳이 내가 생각하는 ‘비
폭력 대화 랜드’다. 스마트폰 위에서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자꾸 현존에서 미끄러져 나를 잃기 쉬운 하루들, 보이지 않는 에
어팟으로 귀를 막은 듯 연결되지 않는 대화들 앞에,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진지한 궁서체로 초대장을 써서 건네고 싶다.
NVC 랜드에 한 번쯤 놀러 오시라고,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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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너 참 어렵다
作家
共感

?
이모민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KBS <여유만만> <굿모닝 대한민국>
EBS <극한직업>

흔히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물론 재택근무의 장점은 있다.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
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상사도 옆에 없고, 평생 계속될 고민 ‘오늘 점심은 뭘 먹지?’로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된다. 또 희뿌연
미세먼지를 마셔야 하는 불쾌한 출근길도 없으니 요즘 같은 시대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기 수양이 없으면 잘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재택근무다. SNS와 쇼핑몰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는 절제,
일과 일상 그 어느 것에도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중용,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지혜 등이 필
요하다.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불행의 서막이었을까? 35개월, 8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에게, 아 좀 더 자세히 말하면 35개월, 8
개월 개구쟁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에게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한 달에 두 번 녹화 때만 현장에 나오
고 나머지는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는 달콤한 제의였다. 8개월 된 둘째가 두 돌은 지나야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고 당황했지만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로 넘어가려던 참인데 타
이밍 한 번 기가 막히다’며 안도의 미소를 띠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재택근무 라이프(feat. 두 아들)’.
한 달에 두 번 출근으로 집을 비울 땐 친정엄마에게 SOS를 청했다. 손주는 못 봐주겠다며 선을 딱 그었던 친정엄마가 맘을
바꾼 건 일 제의가 들어오기 한두 달 전쯤이었다. 아이들에게 묶여있는 딸이 딱해 보였는지 한 달에 두세 번 아이들을 봐줄
테니 친구들도 만나고 자유시간을 보내라는 거다. 그런데 미련하게도 왜 그게 잘 안 되는지 막상 아이들 놓고 나가려니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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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편치 않고 친정엄마 고생시키는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넘어가고 있던 차였다. 이젠 일하러 간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날 더 힘들게 하는 건 한 달에 두 번 출근 때가 아니라 나머지 재택근무하는 28일이었다. 아무리 자기 수양을 한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두 아들이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섭외는 둘째 낮잠 시간을 이용했다. 섭외할 땐 카리스마 유지(?)
가 중요한데 잠에서 깬 아들이 “엄마!” 하고 부르는 바람에 산통이 깨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두 시간 진득이 해야 하는
인터뷰는 도무지 그 시간이 나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밤에 통화를 했다. 그마저도 아이들이 제때 잠을 자주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 인터뷰 약속을 한 날은 아이들에게 빨리 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얼마 전에는 둘째가 낮잠 자는 사이 인터뷰를 하
고 통화를 마침과 동시에 “으아앙” 하며 일어나는데 그 완벽한 타이밍이 얼마나 고맙던지 잠에서 깨 눈도 못 뜨는 아이에게
뽀뽀세례를 날려줬다. 그러면 원고는 언제 쓰느냐,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서너 시간 이상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새벽뿐, 식구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 나는 노트북 앞에서 외롭고 처절하게 사투를 벌인다.
이렇게 몇 달 해보니 내게 있어 재택근무는 이렇게 정의되었다. ‘육아도, 살림도, 일도, 너 다 해…’ 엄마였다가 작가였다가
아내였다가 종횡무진 변신술을 쓰는데 빠르게 역할 전환이 되면 좋으련만 자꾸 삐걱거린다. 육아만 해도 상당히 큰 정신노
동이며 육체노동인데 여기에 프로그램까지 신경 쓰려니 쉽지가 않다. 하지만 다행히도 창조주가 나를 만드실 때 긍정과 인
내의 세포를 많이 주입하신 덕에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엄마로, 작가로 역할을 해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아직은
조금, 조금 더 크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축복임에 분명하고 3년의 공백이 있는, 그것도 아직 육
아에서 자유롭지 못한 작가를 이해하고 받아준 PD를 만난 것도 행운임이 틀림없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출근길.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이제 제법 의젓하게 손을 흔들어주는 아들내미를 뒤로하고 현관문을 나
서는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수첩과 몇 가지 필기구만 넣은 핸드백이 너무 가볍다.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있는 발걸음이
너무 자유롭다. 사람이 빼곡한 지하철 승강장에 들어섰을 때 감격했다면 너무 유난스러워 보이려나. 출근길은 이제 28일 동
안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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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T R W A N E W S

2019년도 정기총회, 2월 26일 개최 패와 소정의 창작지원금을 전달했다. 최우수작인 이


협회 정기총회가 오는 2월 26일 6시에 여의도 63빌 소라 씨의 <청춘엔딩>은 우리 사회에 큰 슬픔과 고
딩 그랜드볼룸에서 열린다. 민을 던졌던 구의역 청년의 죽음과 같은 무거운 현
이번 정기총회의 주요 안건은 2018년도 한 해 동 실적 화두에 절묘한 상상력을 결합하여 재미와 감동
안 벌인 협회 사업 및 결산을 회원들에게 보고하고, 을 준 작품으로, 무겁지 않되 가볍지도 않게 N포세
2019년도 협회 예산(안)과 사업을 승인받는 것이다. 대들의 현실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수작인
협회 재산목록이 수록된 회계 내역은 협회 홈페이지 이진우 씨의 <간병살인>은 연명치료를 둘러싼 여러
‘업무게시판’을 통해 볼 수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총 가지 문제들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
회 당일 확인할 수 있다. 정기총회는 협회 예·결산을 도 있게 접근한 작품으로, 극적 반전이 설득력 있고
승인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송년회와는 달리 회원 사회적 이슈를 다룬 주제의식도 돋보인다는 평을 얻
의 가족과 지인의 참석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총회 었다. 이번 공모에는 총 8편의 작품이 최종심에 올랐
가 끝난 뒤에는 식사를 함께하며 선·후배 간 친목을 다. 심사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와 작가로서의 가능
다지는 신년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성 등에 중점을 두었고, 얼마나 새롭고 독특한 이야
기를 풀어냈는지도 평가의 척도가 되었다. 교육원은
매년 신인상 수상작을 한 권의 작품집으로 엮어 방
협회 주관 교육원 신인상 공모서 송사와 제작사 등에 배포해 교육생들이 작가로 정식
이소라, 이진우 씨 당선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힘쓰고 있다.
1월 18일 시상식 개최

협회 회원건강검진 3월 30일까지 진행
일반검진과 프리미엄급 정밀검진 중 선택 가능
회원건강검진 신청이 1월 31일 마감됐다. 검진 기간
은 1월 9일부터 3월 30일까지로, 회원들의 바쁜 일정
을 고려해 총 10주가 넘는 넉넉한 기간 동안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회원 복지사업의 하나로 매년
상반기 중에 정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건강
협회 부설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의 2018년도 신인상 검진은 회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회원 수가의 비
공모에서 55기 창작반 이소라 씨가 최우수상을, 55 용으로 검진이 가능하다. 2014년부터는 검진 항목을
기 창작반 이진우 씨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늘려 보다 정밀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프리미엄급
지난 1월 18일에 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정밀검진을 선택할 수 있게 돼 많은 회원들이 혜택
김운경 이사장은 수상자들을 축하하고 격려하며 상 을 누리고 있다. 프리미엄급 정밀검진을 선택할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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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

우 검진 혜택을 2년에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일반검 1696)으로 문의하면 된다. 신입회원 입회신청은 분


진 선택 시에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매년 건강검진을 기별로 1년에 총 4차례(3월, 6월, 9월, 12월)에 걸쳐
받을 수 있다. 받고 있으며, 자세한 등록절차와 입회원서 작성 관
련한 내용은 협회 홈페이지의 입회안내 메뉴를 참고
하면 된다.
2018년도 협회 종합감사 ‘적정’ 판정
지난 1월 30일, 2018년도 협회 종합감사가 실시됐
다. 종합감사는 한 해 동안 협회 재정이 적정하고 투 2019년도 원로회원 복리후생비
명하게 운영되었는지에 대한 자체 심사로, 김동용, 신청 안내
이용자 감사가 면밀하게 운영 내용을 심사해 ‘적정’ 2019년도 원로회원 복리후생비 신청을 받고 있다.
판정을 내렸다. 이 심사결과는 오는 2월 26일에 열리 협회가 지난 2008년부터 회원 복지 사업의 일환으
는 정기총회에서 전체 회원에게 보고된다. 내부감사 로 추진하고 있는 복리후생비는 기초생활이 어려운
는 연간 두 차례 반기별로, 외부감사는 1년에 한 차 만 65세 원로회원을 대상으로 중증 질환에 해당되
례씩 공인회계사를 통해 시행하고 있다. 는 경우에 지급된다. 협회에서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회원 수를 감안하여 4대 중증질병(뇌 질환, 심장 질
환, 간·췌장 질환, 폐 질환)은 발병 후 최초 1회에 한
2019년도 1분기 신입회원 입회서류 해 각각 지급하고, 악성 신생물(암)은 최초 진단 후 5
신청 일정 년간 연 1회에 지급한다. 복리후생비는 기존에 연간
2019년도 1분기 신입회원 입회서류 접수가 시작된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접수 및 지급을 해왔으나,
다. 접수 기간은 3월 4일(월)부터 8일(금) 오후 3시까 원로회원의 복지증진 및 확대를 위해 지난 2016년
지로, 입회원서는 2월 20일부터 협회 홈페이지에서 부터 연중 상시로 신청을 받고 있다.
온라인으로 작성할 수 있다. 작성한 입회원서는 출 자세한 내용은 협회 홈페이지 내부업무 게시판을 참
력해서 접수기간 내에 협회에 방문하여 접수해야 고하거나 경영지원팀(02-784-1696)으로 문의하면
한다. 기타 궁금한 내용은 협회 경영지원팀(02-784-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조사

회원 동정 고현주 회원 1월 1일 시부상 신미경1 회원 1월 7일 모친상 하주원 회원 1월 9일 부친상

조현경1 회원 1월 9일 부친상 박선민 회원 1월 14일 시부상 이주영 회원 1월 15일 부친상

홍진윤 회원 1월 18일 부친상 김순덕 회원 1월 19일 모친상 전현진 회원 1월 26일 시부상

83
편집자의 말

대중 없는 시대

『(김주영 집에서)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빼앗는다는 ‘마왕’을 그냥 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원래 바리톤이 부르는 곡이 아닌 여성 소프라노 버전을 틀었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만큼 김주영
의 악마성을 암시하는데 음악감독이 신경을 쓴 거지. 허당기 가득한 승혜네 집 장면에서 유독 대
편성관현악곡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풍자와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이고, 라크리모사, 차라투스트
라, 볼레로 모두 차 교수네 음악. 무엇보다 경악은 혜나 추락 전에 라벨의 ‘엄마 거위’ 중 환상의 정
원이 깔린 거… 엄마 없는 혜나에게 그 행복한 곡이 깔린 건 죽음을 예고한 거임. 혜나 현실엔 없
는 거니까. 』
드라마 <SKY 캐슬>의 음악 선곡 관련 어떤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음악을 전공한 사람일까? 아니면 방송관계자? 잠시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즘
댓글을 읽다보면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 전문가급 시청자일 거라 잠정 결론을 내렸지요. 터무니
없는 가짜 뉴스나 알바 느낌의 댓글도 많지만, 기사의 틀린 맞춤법을 일일이 교정해 놓는 댓글부
터 잘못된 정보를 비교분석해서 지적하는 댓글까지, 기자보다 더 날카로운 정보를 주는 댓글들도
심심찮아 요즘 댓글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분들이 우리의 시청자라는 것입니다.
처음 방송 일을 시작할 때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대중을 시청자 층이
라고 보고 원고를 써라.” 이제는 바뀌어야 할 말입니다. 고교진학률이 90%가 넘고 대학진학률이
60%가 넘는 데다 학력과 무관하게 시청자 취향은 날로 까다롭고 전문화되고 있습니다. 방송으
로 밥을 벌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죠.
이 고학력의 전문화된 시청자들을 어떻게 유혹하여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더 이상 방송으로
교화될 대중이 없는 시대. 방송을 분석하고 평가할 소비자들에게 어떤 상품을 제공할 것인가.
올해도 그 숙제를 풀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겠습니다.

월간 방송작가 통권 155호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운경 책임 편집위원 | 김주영 편집위원 | 고혜림·곽상원·김명호·


김윤양·박나경 진행 | 김선미 제작지원 | 홍승범 디자인 | 큐라인 02-2279-2209 표지 인물 | 작가 안영은
표지 사진 | 김용철 주소 |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50 금산빌딩 4층 403호 한국방송작가협회
전화 | 02-782-1696, 780-5220 팩스 | 02-783-3711 홈페이지 | www.ktrwa.or.kr 메일 | journal@ktrw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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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사 와 전 통 의 방 송 작 가 명 문

방송작가교육의 메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가장 많은 방송작가 배출!

매년 각 방송사 극본공모 결과 당선 작가의 80~90% 차지

역량 있는 드라마작가, 구성작가, 쇼·코미디작가, 라디오작가 다수 배출

1988년 설립 이래 방송작가 최고의 요람으로 자타 공인

매기 25명 내외의 현역 방송작가 책임 강의



현역 방송작가 첨삭강의

이론과 창작 결합 시스템

기초, 연수, 전문반 등 계단식 교육

작품분석과 개별지도

최상위 창작반은 소수정예 장학금으로

w w w. k t r w a . o r. k r TEL 02-78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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