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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2

학교
대학, 왜 다님? 5
몸들이 만나는 곳으로의 초대 : 대학은 이런 곳이었다 11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현황 20
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31
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39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학내조직 인수인계 : 망해가는 학내조직 살리기 47

사회
우리는 왜 타인과 함께해야 할까?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58
집은 인권이다 65
환경운동, 위기를 직면하다 67
빠순이가 되~ 71
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어 77
안녕 나는 바이 83
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89

문화
괴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 영화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95
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101
단념 107
“타인은 지옥이다” 집담회 112

제 33회 서강청년문학상
시 124
소설 133
수필 148
비평 150
수상소감 및 심사평

후기 158

알립니다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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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새 학기 잘 보내고 계신가요? 2024년 1학기는 웃을 일이 많고 마음 답답하고 무력한 일은 별로 없기


를 바랍니다. 이 교지가 쓰인 2023년 2학기에는 슬프고 화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막막한 일이 많았
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몇 개월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에서 500일이
넘도록 아침마다 지하철 선전전을 지속하고 있지만 정부는 나아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는커녕 폭력적
으로 장애운동 활동가들을 강제퇴거시키고 있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도 여전히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
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업재해로 인해 누군가는 노동하다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날씨는 이상
하게 따뜻했다가 갑자기 너무 춥고 또다시 따뜻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요지경이지만 교지는 데굴데굴 잘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세 명의 새로운 편집위원이 들어오


고 교지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두 편집위원은 86호를 끝으로 교지를 떠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노는 엠티도 다녀오고, 전장연과 함께 미라클모닝을 했다가 체제전환운동포럼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
의 강연을 듣는 엠티도 다녀왔습니다. 개개인의 편집위원들에게는 작년 2학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었
겠지만 교지는 무탈했습니다.

편집위원 중 대학교 2학년이 많았는데요, 고민이 많은 시기인지 개인적인 글이 많습니다. 어떤 친구


는 자신이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정밀검사 후 adhd 판정을 받은 후의 충격과 걱정을 풀어놓았습니다.
자신이 레즈비언인 줄 알았다가 대학교에 와서 남자친구를 사귄 후에 정상성의 달콤함을 맛본 친구도
있고요. 맘에 안 드는 교회와 부모님께 반기를 들고 야심차게 비개신교인으로 살겠다 다짐했다가 삶의
불안과 허무를 마주하고는 종교의 의미를 생각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대학이 무엇이기에 악을 쓰고 대
학에 가는지, 자신은 대학을 왜 다니는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 서강대학교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곳으로 만들까 고민한 편집위원들도 있습니다. 심리


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이 서강대학교에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외국의 학교들과 비교하여 얼마
나 미흡한지, 내 주위 심리장애 학생이 어떻게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분석한 글이 있습니다. 많은 학
생들이 심리장애를 갖고 있지만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요. 타자와 함께하자 말하는 글도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노동자와 학
생 간의 연대를 체험해보라는 초대장에 응하실 분들은 ‘호호체육관’을 추천합니다. 왜 타인과 함께하
지 않으면 안 되는지 이유를 고민하던 저는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를 찾아갔습니다. 이 두 글을
읽고 타자와의 마주침을 경험하고 싶은 분은 학내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에 찾아오시면 아주 반갑
게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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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한 영화 ‘괴물’ 리뷰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편집위원이 추천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쓴 글입니다. 글이 진지하지만 귀여워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실 수 있을 거예요. 케이팝 빠순이로서 젊
은 여성 소비자를 부당하게 대우해 온 케이팝 업계에 작은 돌을 던지고자 하는 글은 케이팝을 좋아하신
다면 무척 공감하며 읽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좋은 글이 더 있으니 직접 찾아가며 읽어보세요. 이번 호에는 청년문학상 수상작과 심사평


도 실려있습니다. 매년 서강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쓴 작품을 지면에 담을 수 있어 기쁩니다. 여전히 문
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마다 흐뭇합니다.

교지를 어떤 사람들이 읽을지 교지 편집위원들은 아주 궁금해한답니다. 여러분도 교지를 읽으시고


이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시다면 독자간담회에 들러주세요.

교지 86호가 만들어지는 데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재미있게, 후기까지 읽어주세요!

교지서강 편집장
여경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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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학, 왜 다님?

몸들이 만나는 곳으로의 초대 : 대학은 이런 곳이었다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현황

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학내조직 인수인계 : 망해가는 학내조직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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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왜 다님?

김유진
yjkim36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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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참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대학의 기능 상실
을 통렬히 비판해 볼까, 대학의 역사를 펼쳐보아야 하나, 고민의 연속이었다. 며칠을 내리 고민하다
밤을 새워 400장짜리 논문을 읽고 난 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아서 포기를 했다. 그리고 그냥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공부하는 것이 정말 싫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 후에 평가받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시험
기간이 되기만 하면 평가를 받기도 전에 긴장한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그럼에도, 대학에 나와 꾸준
히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 인문대학, 특히 종교학과에 나와서 ‘이거 배워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종교학과라고 하면 흔히 목사나 신부/수녀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기독교학과나
신학과의 역할이다. 그러니 종교 부문에서도 취업이 안 되는 종교학과의 지식…. 배워서 뭐 하는가?
사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지식은 어느 정도의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하지
만 취업에 도움 되지 않는 지식은 정말 쓸모없을까? 대학에서 왜 실용적인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느
끼지? 그런데 취업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도 참 고역인데…. 이런 무한 소용돌이에 빠져버린다.

대학이 뭐라고…!
1. 대학의 본질
그러니 학교라는 것의 본질부터 정의해보자. 대학이란 조직의 핵심은 무엇일까?

대학의 핵심역량은 가르치는 교수와 배우는 학생이 서로 일정 기간 만나도록 체계적으로 주선하는


일에서 찾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2006, p. 168). 누군가
가 의도적인 계획하에 교육-학습 단계나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교사와 다양한 수요를 가
진 학습자를 체계적으로 중개하여 교수-학습의 장에서 만나게 해 주는 것이 학교인 것이다. 교육과
정과 교수-학습조직을 통해 체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교사와 학습자를 만나도록 중개하는
것이 학교의 실체이다(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2006, p. 53).

여기서 대학의 본질은 교사와 학생이 만나서 학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꽤 간단명료하다. 받
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까 대학교의 핵심은 교수와 학생이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교수
와 학생이 학습할 수 있도록 학습의 장을 얼마나 잘, 수준 높게 열어주는가가 대학의 본질이다.

2. 대학의 목적
이념적으로 대학은 진리 탐구를 위한 곳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다. 대학에 나온 사람을 ‘지성
인’이라고 부르는 말만 봐도 그렇다. 이런 생각은 독일 대학의 이상에서 나왔다. 독일의 관념론적
대학 전통은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의 이상을 반영하였다. 그는 자고로 대학이란 정부
와는 독립적으로 학문과 진리에 봉사하는 기구라고 정의하였다. 고급 전문 직종 양성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에 필요한 인재 양성소가 대학이란 것이다. 후에 발전한 미국식 대학은 고등교육의 대중
화와 산업 발전을 위한 민간 전문 인력 공급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의 이후의 보편적인 대학 모
델이다. 즉, 미국 대학은 공공과 민간을 총괄하여 사회적 진보와 발전의 거점으로 여겨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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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살펴볼 점은 대학은 어느 정도의 직업 교육을 위한 시설이란 점이다. 그 직업의 주체가
공공성을 지닌 직업인지, 민간을 위한 직업인지 정도가 차이점이다. 따라서 대학의 원형은 직업
을 위한 전문교육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유럽의 교육체제
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이 고등학교 과정을 통해 완성되고, 대학 입학 이후는 전
문교육으로 진입한다는 점이다. 대학의 입학 조건이 단순 노동과 인습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성취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예시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라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은 대학의 전문교육을 받기 전 선결 조건으로 ‘자유인’의 자격을 입학 조건으로 요구한다.

3.특수한 한국 대학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학으로 대부분 대학이 출발하였다. 민간 부문에서 활동할 인재를 기르
기 위해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미국 대학과 유사한 제도를 받아들여 설립되었
다. 하지만 대학의 실행을 명시하고 있는 ‘고등교육법’을 살펴보자.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7조(목적)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말하는 ‘대학’은 ‘전문대학’과는 차별점이 있다. 여기서 정의하는 대학은 직업교육이 아니
라 ‘심오한 학술론과 그 응용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즉, 한국의 대학은 공공부문의 인재를 양성하
고, 정부와 독립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던 독일 대학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민간 부
문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하며 취업을 위해야 한다는 미국식 생각과 제도도 같이 가져왔다.
즉 우리나라 대학의 목적은 민간부문 인재를 기여하기 위함인데, 고등교육법에서는 공공부문 인
재를 위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브랜드가 다른 느낌이다. 호
환이 어느 정도 되긴 하는데, 실제로 잘 작동되진 않는 그런 것. ‘자아실현은 대학 가서!’라는 외침
과 함께, 진짜로 대학에 와서 자아실현을 하면 다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너,
취업은 안 해?’라는 말과 함께….

서강대는 어떨까?
서강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서강대의 건학이념이다.

서강대학교는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정의를 실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랑과 믿음을 갖춘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이를 통하여 인류 문화와 인류 공동체의 발전
에 헌신할 수 있는 참 인재를 양성한다.

서강대의 교육 이념도 비슷한 말을 한다. ‘서강대학교는 학문의 질적 탁월성을 추구해 온 전통을


이어 학문적 우수성과 창의력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한다.’ 서강대학교의 대학 요람을 아무리 뒤져보
아도 교육 목적에는 취업과 관련한 말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캠퍼스 앞에 있는 플랜카드 밑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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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취업 지원팀에서는 유지 취업률 1위 탈환 문자가 온
다. 대학에서 취업의 문제는 간과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학문과 취업이라는 두 가지 이념의
충돌이 조금씩 보인다. 결국 지성인이 되고자 대학에 왔는데, 취업 교육을 받는 학생에게도, 취업이
하고 싶어서 대학에 온 학생에게도 답답한 일이다.
인문대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작년 인문대학에서는 인문대가 1전공인 인문대학부 학생들을 대상
으로 앞서 설명한 프랑스 입학시험 바칼로레아를 벤치마킹한 대회를 열었다. ‘현행 교육시스템 하에
서는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인문대학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발굴하고자 함’이라는 명목하에
논제가 주어졌다. 프랑스 대학의 입학시험을 이미 대학에 들어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었다는 점
이 나에겐 조금 신기했었다. 바꿔서 생각해 보면 프랑스 대학에서 생활기록부 공모전/ 수능 성적 대
회가 열린 느낌이려나? 그러니까, 서강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서강대에서 창의성을 갖춘 인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현행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
는, 내가 느낀 묘한 답답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그 답답함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대학 과정의 괴리에 있다.
취업과 전인격적 교육 모두를 대학 내에서 한 번에 해야 하는 시스템에 의해서. 대학 4년 동안 자기
자신을 찾고, ‘자유인’이 되어도, 취업에 실패해서 대학의 실패자가 된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른 채로
대기업에 취업해도 자아실현을 놓친 실패자가 된다. 묘한 게임이다.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한탄하려고 대학에 관한 글을 작성하진 않았다는 생각이 번뜩 든다. 그럼에도 대학이 중요한 이
유는, 대학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법적으로 대학은 시설로 정의되어 있다. 하지만 사립
대학은 사적 자치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1. 대학은 공동체다

대학본부의 기능은 자치정부의 기능과 유사하다. 즉 자치정부들이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에 기인한
소득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도시민 전체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대외적
활동 - 이를테면 무역과 같은 것을 적극 지원하듯이 대학본부당국도 대학의 구성단위로부터 세금
(overhead)을 걷어 대학 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학구성단위들의 대외활동-이를테면 산학협동과
같은 것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2006, p. 59)

2.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
지식은 사회에 당면한 문제 해결과 동시에 권위 형성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지식은 기존 기득
권 권력의 합리화 역할 뿐만 아니라 기존 권력 체제를 뒤집기 위한 새로운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
해서도 쓰일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의 합리화 기능을 하는 지식은 특정 이론과 권력의 이념을 만든
다. 또한 당연하고 옳다고 받아들이게끔 합리화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이다. 1000년이 넘도록 대
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또한 사회에 일어나는 진보적인 논제를 함께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 운동을 주도하고, 그 사회적 현상의 근거를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사회에 존재해
온 대학의 당위에는 이처럼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참여하는 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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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학에서 왜 연대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공동체라고 하는지, 왜 정치 참여를 해
야 하는지 의문이라면, 그건 대학은 실제로 공동체라서 그렇다. 이런 활동에 대학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3. 내가 경험한 대학
내가 경험한 대학도 취업과 학문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가 섞여 있었다. 해당 분야를 연구한 교수님
의 강의를 들으며 양질의 지식을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취업의 정반대에 있는 학과에서 나오는 씁
쓸한 패배감도 함께 경험했던 것 같다. 한 학기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없었던 교양과목의 학점이 잘
나와서 좋아한 경험도 대학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부끄럽게도 지금 내 안에도 두 가지 생각이 함께 공
존한다. 서강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전인격적 성장, 나도 시켜줘!’와 그저 조금 덜 배워도 스펙이나 쌓아
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엉켰다.
대학은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2년간 대학이라는 사회에 별로 참여하지 못했다. 정의로운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도, 막상 내가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탓이
다. 삶의 면역력이 참 취약한 대학생이다. 대학에 참여한다는 일은 매번 추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이
런 문제의식을 나눌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연대하자고 외치는 교지에 들어온 탓
에 ‘아, 이런 대학생도 있구나’ 싶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그 추
상적인 마음만은 잘 간직하고 있자는 생각이다. 바쁘다 바빠 대학 생활에서 내 삶 챙기기도 벅차지만, 타
인의 삶에 관심 갖지 못했다는 미안함만은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한 대학은 이랬다. 각자
의 답과 삶이 있을 테니 확고한 언어로 말하는 일은 참 힘이 든다. 그럼에도 몇 자 적어 보자면 각자의 속
도대로 잘 살아갈 테니 타인과 함께한다는 방향성만 잃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돌고 돌아 다시 : 대학에 다니는 이유
그래서, 나는 대학 왜 다닐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시험 기간이 되면
손이 떨리고, 공부는 어렵다. 취업을 어떻게 할지 슬슬 생각하고 있고, 방학 동안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 하나 하지 않은 내가 싫어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학교에 나갈 예정이다. 인간에
대해 몇십 년간 어렵게 분석해 놓은 인문학이 꽤나 귀엽게 느껴지고, 타인은 지옥이라면서도 타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교지도 꽤나 깜찍하다. 그래서 대학에 다닌다. 어떤 일을 하는 데 그렇게 거
창한 원동력이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이런 소소한 이유로 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대학에 오려고 하루 4시간씩만 자며 공부했던 고등학
교 때의 내가 보면 기함을 토할 일이지만 말이다. 그랬던 시절의 내가 꽤나 불행했던 까닭일까. 대학
을 크고 위대한 무언가로 생각할수록 나는 작아지는 것 같다. 무한경쟁의 시대 온전한 자의로 대학
에 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왕 대학에 왔으니, 대학에 다니는 이유 한 개 정도는 스스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조금은 삶에 면역력이 있는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긴 해도 지금의 결론이 마음에 든다. 인문학이 재미있어서 학교에 다니고, 사람
이 좋아서 등교한다. 각자의 정답이 있을 텐데, 다들 자기만의 소소한 이유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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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나는 대학에서 나의 역할을 못생긴 바나나 정도로 정의했다. 무슨 말이냐면, 몇 년 전 바나나 멸
종설이 돌던 때가 있었다. 이는 파나마병이라는 바나나에 생기는 전염병 때문인데 이 곰팡이균으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바나나 멸종위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유는 바나나 산업에서 재배하기 편리
하고 맛있는 ‘그로 미셸’이라는 단일 품종을 재배했기 때문이었다. 바나나 생산체계의 유전적 다양
성이 부족해서 질병에 취약한 탓이다. 그러니까, 획일화된 지식 생산체계에 학문적 다양성,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위해서 인기 없는 종교학과 같은 소수과(못난 바나나 같은…?)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 비슷하게도 나와 다른 이념, 환경, 생각, 지위, 역할을 가진 모든 사람은 생존 공동체이니, 그 자
리에 버티고 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교지에게 묻다 : 다들, 대학 왜 다님?>


경민 다양한 실패를 마음 편히 해볼 수 있어서 좋음. 대학만큼 실패가 용인되는 곳은 없으니까.
한울 처음엔 명문대 타이틀 따면 과외로라도 먹고살겠지! 동시에 내가 모르는 줄도 모르는 걸 배우
고 싶었고,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론과 실천과 실험을 연결 짓고자 한 역사들이 있는 줄도 몰
랐는데 알아버려서 대학원도 갈 거 같고 조졌다 진짜. 교수님 미워.
보배 오기 전엔 다들 오니까! 오고 나니까 배우는 게 나랑 맞아서 재밌고 (전생에 나라 구함) 교지
실이라는 공간이 좋아서!
지연 배우는 게 좋음. 그리고 학교가 마포구에 있어서 좋음. 경의선숲길이 좋음.
윤 원래는 취업을 위해서였는데, 다니다 보니까 내가 접하지 못한 세상을 다 한 번씩 들여다보고 싶
어짐.
현지 사실 잘 모르게따. 그런데 다니다 보니 좋다. 또래들과 느슨하게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
이라고 느껴진달까… 영원히 대학생이고 싶음…
필영 희망 편 = 멋진 지성인이 되고…. 플라톤, 비트겐슈타인 뺨치는 학자 되기
절망 편 = 로스쿨 가려면 학사 필요해서
나영 시험 기간에 이 질문이 들어왔다면 아마 지금과 다른, 굉장히 어두운 답이 나왔을 것 같지
만…. 일단 나 같은 경우는 태어났으니까 살아왔던 것처럼 대학도 주어졌으니까 다니고 있다. 그래
서 아직 잘 모른다. 유진이의 글대로 나만의 이유를 찾으면 더 행복하게 다닐 수 있겠지?
찾으러 #가보자고

참고문헌 및 출처
1.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2020)
2. 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파주시 한국학술정보(2006)
3. 대학-인문잡지,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2023년 1월 6일, [133-148]
4. 대학-인문잡지,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2023년 1월 6일, [17-34]
5. “’바나나 팬데믹’ 공포가 치솟고 있다”, BBC News, https://www.bbc.com/korean/53209214
6. 고등교육법 28조, 47조

10
몸들이 만나는 곳으로의 초대
: 대학은 이런 곳이었다

김한울
guuoul000@gmail.com
11
절대 악과 절대 선을 찾아 탓해야 한다는 유혹을 벗어나 보자. 그러면 글을 읽는 당신도 글을 쓴 나
도 이 글을 편집회의 때 읽은 편집위원들도 모두 성 정체성/성 지향성/지정성별/장애 유무/소득분위/
고향/자란 곳/나이/국적이 어디든 체제의 공모자이자 피해자이자 가해자 그리고 또 무언가라는 N중의
레이어로 구성된 몸이 된다. N중의 레이어는 각자의 삶이 나아가는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의 향기를 갖
기에, 타자는 영원히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고 우리 모두 자폐적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성급한 오류로 빠질 생각은 없다. 다만 서로의 존재를, 특정 마주침을 통
해 인식한 후에 서로를 타자로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반드시 ‘특정 마주침(들)’을 경유해 타자를 바라
보아야 한다. 이 마주침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삶 속에서 타자와 처음 마주하고 그들을 불가해한 주체
로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을 뜻한다. 이 글에서 앞으로 계속 나올 말이니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에
게 타자는 나의 몸을 통한 인식을 경유해 존재하기에, 이 마주침은 필연적이다.1 그러나 이 마주침을 경
유하지 않고 마주한 적도 없는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매뉴얼’을 파편적으로 주워 삼키게 되면(
이래야 한다는 강박이 드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많은 이들이 한 번쯤 겪는 일이니 자책하지 말자.), 퀴
어이론, 페미니즘, 장애학, 노동이론, 사회과학, 정치윤리, 인문학, 도덕 등은 본뜻과 달리 너무 빠르게
타자의 행위에 윤리적 단죄를 내리는 성문법으로써 쓰이기 쉽다. 아님 ‘너무 시혜적인 나’에 대한 절망
으로 수렴하거나. 그러니 마주침의 순간을 경유하자는 거다. 마주침의 순간을 하나둘 발명하고 지켜가
는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 변화를 만들어 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싶다.

초대도 이유가 있어야겠다. 대학에 갓 들어온 학우들의 보편적인 욕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2”
이다. 이 욕구는 동아리 가입 신청서부터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까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 글
에서는 해당 욕구를 ‘사교적 학구열’이라 칭한 후 이를 ‘특정 마주침’의 장소로 초대할 계기로 삼을 것이
다. 초대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그곳은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촉발하며 사교적 학구열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여야 하며, 그 장소가 바로 노학연대라고 주장할 것이다. 지금, 여기 우
리 몸으로 만나는 곳이 서강대학교라는 점이 마침 우리를 묶어주는 유일한 고리이며, 내가 몸으로 감각
하는 공간의 유지를 가능케하는 노동자와의 마주침은 학교를 떠난 후 그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24시간 쏟아지는 연대 및 연명 요청에 때론 숨이 막히기 너무 쉬운 환경이다. 그러니 우선
학교에서 모여 별것 아닌 나의 존재가 연대로 기능한다는 걸 피부로 느껴보자는 거다. 지치지 않도록.

노동자가 유지하는 공간의 사용자에서, 이 공간이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 나아가


구조에 대한 고민을 떠올리는 몸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마중물… 노학연대다. 사교적 학구열의 해
소에 노학연대가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가는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대학 밖에서 만날 수 없는 다
양한 사람을 새롭게 마주하기, 무지했던 구체적인 지점을 앎에서 비롯하는 기쁨, 앞의 두 가지로 인해
열리는 새로운 진로 가능성 발견이다. 본격적인 초대장을 쓰기 전에, 초대장을 쓰게 된 경위를 소상히
전하고 싶다.

1) 몸과 존재, 세계의 상관관계 이해에 대한 이론서로는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적합하다. 조광제 선생님의 아주 친절한 해설이 있다. 조광제.
(2022).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 : <지각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 2022년 한국실과교육연구학회 추계학술대회, 3-16. 이 다음에는 조광제. (2001). 메
를로-퐁티의 몸철학으로 본 현대인의 몸. 새한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새한영어영문학회 2001년도 겨울 워크샵, 88-103. 을 읽으면 좋고,
영어 학술서 읽기에 능숙하다면 국역본보다 영역본을 추천한다.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준 권구윤 선생님에 남몰래 감사인사를 남긴다.
2) 여경민이 말해 줬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12
계기 : 사교적 학구열로서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
대부분 동질적 또래집단을 이루게 되는 의무교육 및 고등학교 기간과 달리, 대학은 전국구 모집으로
아마 어떤 이들에게는 생에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온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아마 무의식중에 많은 사람들은 양지하고 있을 테다. 이
무의식이 어느 정도 보편적이라는 가정하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는 곧 나와 다른 삶을
배우고 싶다는 학구열이기도 하다. “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물음에 십중팔구 “궁금해서!”
라 간단히 답할 것 같다. 그 간단한 답의 뒤에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모르는 세상을 알고 싶다는,
학생으로서의 욕구. 이를 유념하기 위해 부러 ‘사교적 학구열’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대학생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갈구하는 불안
한 상태이다. 시대가 어떻든 20대면 원래 그렇고 나도 불안하다. 사교적 학구열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
하면 불안한 상태에서 수많은 의사소통을 통해 내린 결론으로 꾸역꾸역 스스로 생의 길을 개척해 간다.
예컨대 내가 운동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었지만 살다 보니 운동을 적어도 지금까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준 수많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의 특정 마주침들이 내 생에
있었고/있기 때문이다. 운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지금 서강의 20대에게는 왠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는 문장에서의 ‘이렇게’를 보여준 사람들의 다양성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꼰대질을 멈추려고 해도, 막
상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너무 불안정해 보이면 뭐라도 너무 말을 걸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까 양해
부탁한다. 또 아주 많은 실수를 거쳐도 괜찮다는 확신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공대/자연과
학대의 경우 실험이나 프로젝트 때문에 정말 바쁘다고들 하고,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전공을 작심하고
온 경우가 아니면 CPA(이걸 씨파라고 부르는 줄 근래 알았다), 행정고시, 대기업, 로스쿨 이외 선택지
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살더라.

그러니 “괜찮다, 안 죽는다!”를 감각할 수 있는 곳, 노학연대의 장으로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감각이
나 곳이라는 단어를 택하는 이유는, 얕은 층위의 관념이나 낭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못 박으려는
목적이다. 위 직업군에 포함되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선택지는 너무나 많다. 활동가로서의 정체
성을 반쯤 갖고도 자기 하고픈 노동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 많다. 요즘같이 연대할 곳은 넘쳐나지만 먹
고 살기 팍팍한 시기에 전업이 아니라 출장 활동가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다. 상기 직업군 이외 선택지
의 존재를 알고 택하는 것과, 모른 채로 몰리는 것은 같은 결과라도 천지 차이다. 참고로 나는 대학 입학
후 첫 소득분위 산정 때 2구간이 떴다. 그래서 계속 벌지 않으면 정말이지 내일 굶어야 했는데, 그 덕에
오히려 나의 어리숙한 때에 학생사회와의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 소득분위 산정이 벌써 9년 전이고 지
금 나는 다행히 괜찮게 산다. 그럼 이번 학기는 얼마 떴나 확인해 봤더니, 올랐다!

3구간으로… 부유하면서 불행한 인생도 많듯, 가난하면서 행복한 인생도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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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나의 가난을 스크린샷으로 증명하는 이유 또한, 내가 이만큼 소수자임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
라 정말 내가 연대들과 그곳에서의 “특정 마주침(들)”으로 말미암아 이 소득분위에도 앞으로 살아갈 희
망을 얻었다는 당위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그러나 백날 “괜찮아, 안 죽어!”를 들어도 자기 몸으로 감각할 수 없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
다. 많은 시간을 쏟는 건 부담스럽고, 욕먹기는 두렵지만(당연하다) 어떻게든 이타적인 영향력을 끼치
는 공간으로써 학교를 사용하고 싶은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듣는다는 아주 사
소한 행위에조차 당연히 일종의 책임감이 따르며 따라야 하는데, 하물며 학교를 실험실 삼아 재밌는 정
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더 큰 책임감이 따를 것이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게 곧 타자의 윤리적
부담감을 껴안는 것일 때, 동시에 그 부담감을 대신 지는 행위가 곧 나의 디지털데이터를 낱낱이 훑어
그들만 나의 정체성(의 파편)을 아는 상황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할 때,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지는 행위는 마치 시간이 정해져 있으나 나만 터질 시간을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는
것과 같아진다. 그러나 바로 그 폭탄(대부분 가능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의 공포로 인해 많은 학생을,
그들을 변화의 계기들로 초대할 순간을 놓치고 있다. 갈등은 항상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폭탄의 공포를 생성하는 학우들이야말로, 그들의 생에 아직 “특정 마주침”의 기회를 단 한 번도 가지


지 못할 만큼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자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의 아주 뒤늦은 깨
달음이다. 그렇다면 그 폭탄에 대한 공포를 유발한, 실시간 온라인 모바일 플랫폼을 전유할 방법은 없을
까? 예컨대 서로의 일상을 ‘인증’하는 문화를 차용하여 “미라클 모닝으로 전장연 연대 함 가 볼까?” 제안
하는 상상을 한다. 정말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일찍 일어나서 가 보면, 전동 휠체어
를 타고 나를 환대하는 사람들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상상하게 된다. 저 휠체
어를 타고 여기까지 오려면 중형차론 안 될 텐데? 장애인들은 따로 택시가 있나? 그럼 장애인콜택시(이
하 ‘장콜’)을 찾아보게 된다. 그럼 물어볼 수 있다. “장콜 타고 오셨어요? 배차는 잘 돼요?” 돌아오는 답은
이럴 것이다. “그때그때 달라요. 어쩔 땐 삼십 분, 어쩔 땐 한 시간.” 그럼 나와 당신 우리는 지금까지 당
연하게 걷던 거리를 다르게 지각하도록 위치 지어진 누군가의 감각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상도 해 본다. “게(시판)이(용자)야.”라는 말을 타이핑한 사람을 빻았다고 단죄 내리는 대신,


세 글자를 타이핑 후 업로드할 때마다 그 게이와 다른 뜻의 게이가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순전히 타자
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주칠 수 있도록 그 게이의 접속 장소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퍼레이
드 초대장 팝업을 띄우는 확장 프로그램이 탑재된 인터넷 브라우저가 현재 시점 크롬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웹 사이트 개발 규칙이 정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중간 브레이크 : 그래서 연대가 뭔데 맨날 연대, 연대하는데요.


연대는 생각보다 별것이 아니다. 옆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 내 연대 경험을 하나 풀어놓자면, 몇 년
동안 생계를 위해 아는 형이 하는 영상 제작 강의에 보조강사로 뛴 적이 있다. 출강하는 곳 중 하나가
모 장애인자립지원센터였고, 초보 강사로서 때론 쭈뼛대고 때론 빨빨거리며 자막 삽입 방법을 가르치
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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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할 줄 안다고 강사인지 얼떨떨해 하면서 말이다. 왜 굳이 이 얘길 했더라. 어느 날 센터 팀장
님이 “강사님 저희 오늘 휴강해야 해요.” “왜요?” “OO시에서 체험홈 인건비 전액 삭감한대서요. 일 이미
다 했는데. 장애인과 팀장이랑 계속 얘기해 봤는데 돈 없으면 관두라네요. 시청 앞에서 시위해요. 쌤들
도 나오실래요? 저희 수업도 한 번 받아 보세요.” 하셨다. 내게 대부분의 연대는 ‘운 좋게 내가 할 수 있
어서’가 그 이유이고 그때도 마찬가지라, 강사를 뛰던 형과 함께 갔다. 그냥 시청 앞에 서 있다가, 근처
슈퍼에서 물 좀 사다가 조달했다. 뭐 대단한 쪽수도 아닌 우리를 막아버린 시청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공무원들과 대치하며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이 현장에선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선생이 된 사람
들과 함께 채증 카메라에 찍혔다. 그 공무원들은 아마 사장과 OO시정연구원 영상제작에 대한 미팅을
할 때에는 시청 사무실에서 대면한 적도 있을 테다. 저들이 악한 것도 내가 선한 것도 아니고 구조가, 또
우리가 마침 처한 위치가 마침 이러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구나, 싶었다. 한편 센터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장콜을 타고 등장, 대오를 정비하는 데에도 정신없는 와중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곳에 가만
히 서있었는데, 내 존재 자체가 연대가 됐다. 그냥 그 옆에 있으면 된다. 이건 글로 번역이 안 된다. 아
무 말 하지 않아도 아, 내가 저 사람에게 무언가 힘이 되고 있구나 알 수 있다. ‘남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다.’는 내겐 별것 아닌 행위가, 특정 시공간에서 타자에게는 별것이 아니지 않게 변모하는 순간으로서
의 특정 마주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특정 마주침이 ‘아, 나는 저 사람의 생을 죽었다 깨어나도 완
전히 이해할 수 없겠구나.’라는 서두에 언급한 ‘불가해한 존재로서의 타자’로의 인식으로 이어진다. 나
는 왜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까?

‘특정 마주침’ : 계기에서 실천으로 넘어가는 순간


몸으로 그 ‘특정 마주침’을 겪고 난 나는 생각한다. ‘아, 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몰랐구나.’ 지금껏
나는 모를 수 있었으니 구조의 가해자이고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대 해선 안 되나? ‘어떻게든 돕고 싶
다.’ 시혜적인가? 뭐 그럴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고 흐름이고, 마주침을 경유한 타자
마주하기가 중요해지는 순간 또한 여기다. 이 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시혜적일 수도 있고 폭
력적일 수도 있다. 물리적 상해를 가하는 폭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의 Personal Space를 쑥 하고 침
범하는, 그런 친밀함과 딱 붙은 폭력적 면모 말이다. 그 순간은 때때로 마주침의 과정 중 필연적으로 다
가온다. 그랬던 자신을 기억하고 타인을 바라봄으로써 다시 시작하자. 그 순간이 마주침의 순간이다.
이 순간을 기억해야만,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이… 시혜적임과 시혜적이지 않은, 타인을 대상화하고 싶
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고, 또 내가 대상화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시할 수 있다. 그게 어떤 모습
인지 획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당신의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진 아무도 그 어떤 윤리
도 침범할 수 없다. 내 거? 비밀이다.

“지금 여기”의 예시 : 정문 앞 소구장3이 없어질 뻔했다


최근 매체 환경을 일컬어 ‘시공간이 압축됐다.’ 진단하는 글은 이미 너무 많다. 원래 공격이 칭찬보다
훨씬 돌출된 채 빠르게 드러나며 그래서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는 듯 보인다. 실시간 온라인 모바일 환경
에서 공격/수비에 생기는 책임감은 삭제 또는 Ctrl+Z를 쉽게 누를 수 있는 가능성만큼이나 낮아진다.
그래서, 이만큼 서로를 공격하기 쉬운 환경이 됐으니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하 ‘만만투’)으로 살
수밖에 없고 다 망한 건가? 아니다.

3) 서강대학교 정문 근처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떡볶이 노점상. 거구장 건물 앞에 있어서 소구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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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괴리는 어마어마하다. 오프라인에서도 각자의 생과 몸의 차이로 인해 그 의사
소통에서 떨어져 나가는 맥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괴리의 생성이 수반되는데, 하물며 그 매체 환경과
구조 자체가 다른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는 어떻겠나. 이것이 최대한 많은 학생들과 특정 마주침(들)
을 가지려 노력해 보고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들도 기웃거려본 바 나의 결론이다. 이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로서 2023년 우리 학교 정문 앞 소구장이 없어질 뻔한 사건을 공유한다.

사정은 이렇다. 소구장을 운영하는 부부 중 한 분이 수술로 인해 몇 개월 일을 쉬는 사이 소구장 부근


건물에 입주한 가게 대표가 바뀌었고, 소구장이 영업을 재개하자 새로운 대표가 영업방해를 이유로 구
청에 소구장에 대한 민원을 계속 제출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서부노점상연합
(이하 ‘서부노련’)은 마포구청과 노점상 생존권을 두고 오랜 시간 긴밀하게 상생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여 구청도 기존 노점상에 대한 영업권을 보장하기로 결정한 지 오래다. 새 점주님은 이 사실을
모르고 신고를 넣으신 듯하고, 그러니 소구장 사장님뿐만 아니라 민원을 받은 구청 측도 난처한 상황이
었다. 이에 서부노련은 소구장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했고, 노고지리에서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 상황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댓글은 많지 않았지만 내용은 “노점상 불법 아니
냐?”, “다 밀어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던데 실제로는 (대부분 서강대학교 사람일) 500명의 서명이
모였다. 점주는 민원을 철회했고, 소구장은 정상 영업 중이다.

노학연대는 어떻게 사교적 학구열을 해소할 수 있는가?


- 다양한 사람을 새롭게 마주하기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학교라는 공간에 우리가 쉬이 인식하는 사람들은 학생,
교직원, 교수진이 있다. 노학연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 청소/시설노동자 등 말 그대로 공
간 자체의 유지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리
고학번이라 하더라도 이들보다 훨씬 근속연수가 딸린다. 그럼 서강대학교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
의 입학과 졸업과 정년퇴임이 일어나는 장소들을 유지해 온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우린 모른다. 영영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은 안다. 저들은 우리의 선생이다. 노
년기의 육체노동은 으레 매스컴에서 납작한 이미지, 노인 빈곤이나 성실한 우리네 어르신 정도로 비
춰지기 마련이다.

얼마 전 교지편집실로 시설노동자 한 사람이 찾아왔다. 마침 학보실이 닫혀 있고 교지실이 열려


있어 들어왔다며, 혹시 2022년도 학보에서 보도한 시설노동자 휴게공간 현황 기사4를 받을 수 있냐
며 찾아오셨다. 어떻게 아신 거지? 청소노동자의 경우 오랜 조직적 투쟁으로 터무니없이 낮았던 식
대를 높이고, 휴게공간을 제대로 마련하는 등의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설 및 경비노동
자의 경우 휴게 및 샤워시설이 더욱 열악하다. 각주 4번의 기사를 구글에 검색하면 더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다. 고용 형태가 간접고용이기에 우리와 같이 ‘총장과의 대화’를 가질 수도 없는 처지인 상황
에 기댈 곳이 학생뿐이라 다짜고짜 찾아오신 거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전 사람들이 잘
쟁취해 둬 이미 진작 해결된 문제인 줄 알았다.

4) 송민경 “곤자가 노동자들은 보일러실에서 씻고 있다”, 서강학보,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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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불쑥 와서 알려주신 것에 가깝다. 한 달 여 지났을까, 운 좋
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가입된 대학 사업장 청소/시설노동자 분회 간부들과 모일 일
이 있었다. 소속 학교 학생이 온 경우와 아닌 경우의 안색부터가 달라 한 것도 없이 뿌듯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13개 대학 사업장에서 모인 간부들 중에는 노동조합이 없는 환경에서 조직을 일궈낸 분도
계셨다. 있는 조직 유지도 어려운데 어떻게 만든담.

노년기에 일하는 것에 대해 상상해 보자. “젊었을 때 한탕 벌고 늙어서는 놀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한다. 물론 늙어본 적 없는 채 하는 생각이기도 하거니와,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심각한
나라이기도 하니 말이다. 지난 호 교지에서 청소노동자 인터뷰를 한 친구가 전해 준 말을 옮기겠다.
왜 ‘특정 마주침’이 생을 바꿀 수 있는지. 육체노동에 대한 기이한 낭만화와 이상한 동정 사이 구체적
인 상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지. 세상에 대한 답은 영영 내릴 수 없을지라도 어떤 삶의 태도들을 새
로이 알아갈 수 있는지.

노학연대라는 어쩐지 거대해 보이는 말을 빼더라도 그냥 그분들이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 했다.


그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자부심
이 지금도 스스로 벌어서 손주들 용돈도 줄 수 있고 생활도 해결하니, 자식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당당하신 것 같더라 전했다. 또한 청소노동자끼리의 유대감이 되게 끈끈해 보였는데, 다들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라는 상황이 비슷하니 굳이 말 안 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었다. 10년 차도
저연차로 오랜 근속을 자랑하는 사람들, 가족과는 다르지만 가족보다 많이 보는 사이. 그런 이야기
를 들으며 나도 노년에도 일을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겠다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전했다.
청소 노동도 괜찮은 선택지인 것 같고, 노년에 저임금 노동을 하면 불쌍하다는 시선이 있는데, 전혀
그렇게 볼 게 아니라는 걸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전했다. 여기, 매체로 배운
구조적 문제점과 실제로 행한 특정 마주침 사이 괴리를 몸으로 느끼는 순간에서 나의 세상을 재구성
하는 계기가 발생한다. 그 계기가 현재진행형의 역사에서 나의 위치를 결정짓는다.

무지의 지점을 앎에서 비롯하는 기쁨의 선순환 - 새로운 진로에 대한 구체적 상상력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면 좋겠다.’ 혹은 ‘아, 답이 없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지?’ 혹
은 ‘아, 시각의 문제였구나!’로 변모하게 되는 구심점 역할을 노학연대가 할 수 있다고 본다. 연대의
가치와 노동자라는 인식이 있는 노동조합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힘이 될 수
있는 존재인지라, 아무것도 모른 채 연락을 드려도 무조건 환대 받는다. 대학생이라는 위치를 사회
를 아주 조금 바꾸는데(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데에) 가장 쉽게 써먹
을 수 있다. 환대가 예정된 장소로 가면, 나의 생각이 왜 편견이었는지, 내가 말로만 연대를 외치면
서 모르는 줄도 몰랐던 지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노학연대를 지속하다 보면, 학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깨닫는 동시


에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의 ‘어떻게’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변한다. 많이 모여 좌충우돌해야 하는
지점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지금까지의 선배들은 무엇을 잘못해 왔는지도 구체적으로 보인다. 그
때 제대로 된 비판을 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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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착잡해진 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출발해 각지에서 활동하는 어른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시대에 맞게 양상을 바꿔가며 계속 이어
지기에, 그리고 앞으로도 대학이라는 장 안에서 그런 사람들이 안전하게 고민하며 제대로 미래를 상
상할 수 있길 바라기에, 그런 어른들은 그 누구보다 우리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어떤 질문이라도 답
을 잇고자 한다.

번외 : 의식의 흐름
학교 근처에 또 새로운 대안교육 공간이 생겼고 배세진 선생님이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 강독
을 하신다는데, 뭐 그게 학교 안에 먹히기나 하나? 공부해봤자 세상 하나 안 바뀌는 거 아닌가, 그렇
다고 매일 연대만 나간다 쳐도 그게 도움이 되나? 작은 학생 조직을 유지하는 데에도 품이 꽤 든다.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앞선 사람들의 고민을 확인하려고 하면 결국 이론을 들춰보게 된다. 그렇다
고 현재의 연대를 안 할 순 없지, 그럼 나는 왜 연대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는 뭐지? 뭐 이런 막막한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이어
진 호호체육관에서의 퍼실리테이터 경험을 마중물 삼아 노학연대에 대한 글을 쓰겠다 했더니 편집
회의에서 “왜 하필 대학에서 그것도 노학연대가 이어져야 하는가?”에 현재성 있는 답을 달라는 요청
을 받았다. 미친...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
따라서 이 글은 저 질문에 최대한 답을 내리고자 하는 시도이자, 또 다른 대안을 가진 사람이 있
다면 아무나 좀 알려 달라, 함께해 달라는 SOS이기도 하다. 여기에서의 답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
라, 일종의 전략이다. 우리가 뭘 할 수 없는 것 같다면, 그렇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학교라는 장을 제
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게 너무 골치 아프다면, 함께 배구도 할 수 있
다. 호호체육관5에서!

번외의 번외 : 어쩌라고여?
노학연대 좋다 치자, 어디로 가면 함께해 볼 수 있을까? 학내 노학연대의 물꼬는 85호에 설명했
듯 사회과학대 청소노동자연대 ‘맑음’이 사라진 후, ‘노고지리’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교내 청소/시설
노동자와의 간담회 및 호호체육관 등을 진행한 바 있다. 끊길 뻔했던 서강대학교 내 노학연대의 끈
을 계속 이어가려 노력 중이니, 모집기간이 끝나더라도 냅다 연락을 해 보면 좋다. 의기제 기획단에
서는 농민과 노동자에 헌신했던 열사의 뜻을 이어 매년 5월 열사를 기리는 의기제를 지내고 광주기
행을 떠난다. 매년 똑같은 것만 할 순 없는 노릇이라, 어떤 방식의 의기제가 과연 유효한 정신계승
인가를 고민하며 매년 다른 재학생들이 꾸려나간다. 기획단 모집 기회를 놓쳤더라도 상관없이 일단
연락을 주어도 좋다.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그만이다. 검은 알바트로스의 경우 서울대학
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함께 세종호텔 연대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학교 밖의 노학연대에 관
심이 있다면 ‘검은 알바트로스’의 문을 두드려 보아도 좋다.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는 일차적으로
는 교내 비건 학식 도입을 위해 세워졌으나, 운동으로서의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생태주의 등에 관련된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장을 열 수도 있다. 함께 구체적으로 착잡해지자. 책
임감을 조금씩 나눠 갖자.

5) ‘운동으로 운동하자’라는 기치 아래 문화연대와 서강대학교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에서 공동주최한 사업. 주 1회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
과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배구 수업을 수강했다. 2024년부터 연세대학교로 확대 예정이다.

18
1) 학교 안의 경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518kimuiki@gmail.com, 교지서강 85호 참조)
서강대학교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instagram.com/nogojiri_sogang)
서강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알바트로스 (instagram.com/malangchism)
서강대학교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 (instagram.com/sogangvegan)

2) 학교 밖의 경우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 가족구성권연구소,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교육공동체 나다, 교육공동체 벗, 교육노
동자현장실천, 권리찾기유니온, 기후위기기독인연대, 난민인권센터,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
중심 사회대전환 전국모임, 노동해방 마중, 노동해방을위한좌파활동가 전국결집, 녹색당, 녹색정
치Lab 그레, 다른세계로길을내는활동가모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마창거제산재추
방운동연합, 문화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반
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
운동연대, 빈곤사회연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성
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
노동사회네트워크,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윤보다
인간을,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 인권운동사랑방,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
기억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환, 정의당,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진
보 3.0, 진보네트워크센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방토닥토닥,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청소년인
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
크 걔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투명가방끈, 플랫폼C,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국사이
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항꾸네 틈모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홈리스행동
(2024년 1월 11일 기준)6

참고문헌 및 출처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안천 옮김. (서울:리시올, 2020). (Originally published 2017)
전승민. (2023). 포르셰를 모는 레즈비언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이에 관하여 :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 자음과모음,(57), 305-321.

참고수업 및 스터디
서강대학교 2023년도 2학기 오준호 <Media Technology & Art>
서강대학교 2023년도 2학기 조효원 <독일 정치와 제도>
말과활아카데미 2023년도 동계 김내훈 <위선이 위악보다 나은 이유 :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으로 해명하기>
2023년도 동계 권구윤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스터디 : ‘혁명은 피할 수 있다’>
서강대학교 2023년도 동계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방중공부모임

6) “[공지]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 _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https://www.gosystemchange.kr/product/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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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현황

[목차]

그대, 서강의 자랑인가?


서강대학교는 심리장애 학생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는가?

멀쩡한 사람들
최근 20대의 심리장애 및 자살 비율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멀쩡하지 않은 구조들
구조는 이러한 심리장애 보유자들의 권리와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서강대학교 학칙을 통해 문제 되는 지점을 살펴본다.

스스로 감당한 몫
심리장애를 가진 4명의 인터뷰이의 학교생활을 전한다.
이들은 어떻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혹은 어째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

서강, 그대의 자랑이 되기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자유를 기억하자.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 지원 현황
현재 교내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장애 관련 지원 사항의 기록.

김지연
jiyean4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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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서강의 자랑인가?
오늘도 학교에 못 갔다. 어제는 아침 수업에 지각을 했다. 레포트를 쓰려면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글
자가 뒤죽박죽 섞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말 첫 공황을 겪고 나는 처음으로 ‘낙오된’ 느
낌에 휩싸였다. 단단히 고장난 사람. 수업 시간에는 다른 학생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과호흡이 와서 몇
번이고 화장실에 가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학교는 태연하게 굴러갔다.
사이버캠퍼스의 출석란에 녹색 대신 빨간색, 주황색 박스가 채워지며.
입학 시즌이 되면 서강대학교 정문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린다.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
의 자랑이어라.’ 한국에서 성실함은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칭찬거리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서강대학교
의 가치관과도 결이 같다. 성실. 당신에게 성실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성실할 수 있는가, 또는 어
째서 성실하지 못한가. 첫 문단의 상황을 타자의 시선에서 다시 읽어보자. 오늘도 학교에 안 나왔다. 지
각은 밥 먹듯이 한다. 지각한 주제에 수업 시간에는 자꾸 화장실에 가고, 부스럭대는 소리에 학생들은
방해받는다. 과제는 미루거나 안 한다. 불성실 그 자체.
해당 기사에서는 이렇게 불성실(하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에게 결여된 ‘성
실함’은 분명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이에 편입되지 못하는 학생들의 실태를 이제는 직면해
야 한다. 왜 이들은 불성실한 학생으로 낙인찍혔을까? 서강대학교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 그리
고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을까?

멀쩡한 사람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2017년~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현황 분석 결과, 두 질환
모두 20대 환자가 여성 127.1%, 남성 86.8%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또한 불안장애 세부 상병별 환자수
10순위를 분석한 결과,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
안]’, ‘범불안장애’, ‘기타 명시된 불안장애’가 1~5순위를 유지하며 환자수가 많이 나타났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수많은 20대 청년들은 심리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추후 다시 한 번 서술하겠지만 이는 심리장애를 기타 다른 신체장애에 비해 개인적인 것, 그리고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경증의 심리장애를 넘어서 자살 또는 자해 시도로 응급실에 방문하는 20대 또한 크게 증가하는 추
세다. 10대, 20대 자살・자해 시도자는 수년간 50~70% 급증했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간관계가 단절되
고, 경기침체로 취업난이 심해진 탓으로 분석된다. 즉, 심리장애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분명히 연결되
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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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들의 고통을 일상에서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심리장애를 가진 사람
들은 본인 또한 자신의 심리장애를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약물 치료, 심리상담 이외에 다른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기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존재하는 각종 복지 및 혜
택을 신청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면 아래에 어려움을 담아두고 멀쩡한 듯 살아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증가한다. 과연 구조는 이들의 요청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멀쩡하지 않은 구조들
심리장애는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구조와 분명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때문에 심리장애
에 대한 이해와 지원 역시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우울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변인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소득, 지식, 사회권력 등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상
태와 관련된 일련의 요인들이 우울에 대한 보호요인 또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공
유됨에 따라, 의학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우울구조에 내재된 사회구조적 메커니즘을 밝
히는 데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Link & Phelan, 1995; Link, Phelan & Tehranifar, 2010).

하지만 현재 서강대학교의 학칙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결여되
어 있다. 이에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겠다.

1) 유고결석 기준 (학칙 시행세칙 제26조)

의사 소견상 등교가 불가능함이 명시되어 있고, 등교가 불가능한 날짜가 특정되어 있으면 인정.
정신건강의학과도 위의 조건 만족하면 유고결석 처리 가능.

► 학칙상으로는 의사 소견상 등교가 불가능함이 명시되어 있으면 유고결석 처리가 가능하다. 하


지만 취재 결과 손가락 부상을 입은 학생이 유고결석계 및 증빙서류를 제출하였지만, 입원이 아닌
일반 진료는 유고결석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은 사례가 존재했다.
심리장애 관련 입원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는 넘어야 하는 큰 장벽이다. 많은 심리장애 보유자들
은 원가족과 갈등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입원만을 유고결석
처리 가능 기준으로 삼는 기준은 심리장애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2) 휴학 (학칙 시행세칙 제25조)

2. 질병으로 인한 때에는 상급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 상급병원은 대부분 서울 지역에 몰려있기에 지방에 거주하는 학생의 경우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를 받는 일은 서울 거주 학생에 비해 어렵다. 또한 정신질환으로 인한 입원의 경우 자리가 나지 않
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보호병동의 경우 병동의 분위기, 사용 가능 물품 등 다양한
사안을 고려하여 타지역의 1, 2차 병원으로 입원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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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신질환 학생의 휴학 (학칙 제 28조(직권휴학))

1. 총장은 정신질환, 건강상 이유 등 기타 특수한 이유로 자신의 건강과 안전이나 또는 타인에게 해


를 끼칠 위험이 있는 자에게 1차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병원치료, 학생생활상담연구소에서
의 지속적인 상담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이를 거부, 기피하거나 증상 지속되는 경우 휴학을
명할 수 있다.

► 정신질환 보유자를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자’로 상정하는 것은 명백한 혐오이다. 또


한 휴학을 명하는 것은 학생의 자율성 보장에 어긋난다.

4) 정신질환 학생의 복학 (학칙 시행세칙 제 8조(복학))

3. 정신질환으로 휴학하여 복학하는 학생은 상급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 상기 서술한 바와 같이 정신질환 학생에 한하여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은 일종의 혐


오로 해석할 수 있으며 상급종합병원에 제한된다는 점 또한 문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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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점등록 (학칙 시행세칙 제 23조(학점등록))

4.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학생이 한 학기 수강신청 최소학점(9학점) 이상을 이수하기가 곤란한 경


우 그 사유가 명시된 증명서류에 의거한 장애인 복지 자문 교수의 추천과 총장의 승인에 의하여 입
한 첫 학기를 제외한 학기에 학점등록을 신청할 수 있다. 장애의 정도는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
표1에 따른다.

► 현재 학칙의 많은 부분은 ‘총장의 승인에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총장이 바뀜에 따라 학칙 세부 내용 또한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제한적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학생은 해당 규정에서 배제된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 1 중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현재 서강대학교의 질환 관련 학칙은 신청주의1에 따른다. 즉, 금전적,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학생만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에는 정상성에서 벗어난 학생들
을 탈락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1) 사회보장 급여의 신청에 관해서는 수급권자가 반드시 법에 따라 신청을 하여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급권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직권으로 수급자격 여부를 조사한 후 급여를 제공하는 직권주의가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의 학칙은 직접 유고결석계, 의사 소견
서, 진단서 등을 제출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청주의적 방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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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감당한 몫
이렇듯 배제적인 학칙과 정보 부족 안에서 심리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조용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꺼내고자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과 서담을 통해 ADHD,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의 심리장애를 가진 4명의 인터뷰이를 모집하였으며, 개
인 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을 사용하고 특정인으로 유추할 수 있는 맥락은 제외하였다.

인터뷰이 모집 공지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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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을 위한 인터뷰이 모집에 가장 먼저 연락을 한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쉽게 이
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학우들을 대신해 인터뷰를 자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른바 ‘코로나 시
기’ 동안 심한 우울증2을 겪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2020년도에는 학교 규정의 변화
로 성적이 비교적 후하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20년 2학기 A씨는 두 과목에서 fa를, 그리고 나머지
과목들 모두에서 fa 경고를 받았다. 우울과 공황3으로 인해 A씨의 생활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수
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후 매일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씻고 밥을 먹는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
했다. 심리장애4로 인한 어려움은 대면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전
환되기 전, A씨에게 가장 버거웠던 일은 수많은 학생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대형 강의였다. 공황발작5
으로 화장실과 강의실을 오가던 어느날, 교수는 A씨를 향해 ‘뺀질거린다’고 비난했다. 물론 A씨를 버티
게 한 힘도 존재했다. A씨는 우울증을 앓던 당시 학내 언론사에서 일하며 그나마 일상을 영위할 수 있
었다.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힘들었던 시기를 조금이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시기를 회상하며 A씨는 당
시 활동하던 언론사를 향한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드러냈다. A씨는 정신질환을 향한 인식을 바꾸기 위
해서는 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우울과 공황으로 인해 겪은 학업에서 어려
움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학교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유고결석 기준이 완화되고, 의사 소견서만으로도 결석이 인정되는 등의 학사 규정과 더불어,
필기지원 등의 학습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A씨는 밝혔다.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B씨는 ADHD와 이에 동반되는 우울, 불안6을 앓고 있다. B씨의 학업에 가장


크게 방해가 된 증상은 수면위상지연증후군7이었다. 약 복용 이후 다른 증상은 완화되었지만, B씨는 대
학에 들어온 지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면 문제로 인해 3교시 이후의 수업만 신청하거나, 오전수업
을 듣기 위해서는 교내 기숙사에서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밝혔다. ADHD로 인한 또 다른 어려움은 긴
호흡의 텍스트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업 시간에 심한 주의력 저하를 겪는 점이다. 현재 교내
대부분의 학생은 수업 중 녹음을 암묵적으로 진행하지만, 이는 엄연히 따지면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
위이다. 이에 B씨는 녹음 지원과 관련된 내용이 강의 계획서의 장애학생지원사항란에 자세히 기재되
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자기증명의 문제 등으로 학생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장벽이 크다는
점에서, 학교에서 선제적으로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지원에 관한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을 제
시하였다. B씨 자신도 정신건강의학과에 찾아가기 전까지는 스스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알지 못해 아무 요청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약물치료를 진행 중인 B
씨는 명상과 글쓰기, 그리고 낭만 찾기라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노력 중이다.

2) 주요우울장애는 최소한 2주 동안, 거의 날마다, 하루의 대부분 동안 매우 슬픈 감정(혹은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버림)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3)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즉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장애.
4) 인지, 정서 조절, 행동 등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동요의 특징을 갖는 증상들의 집합.
5)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 곧 죽지 않을까 하는 강렬한 불안.
6) 흔히 ADHD에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적대적 반항장애, 품행장애 및 물질관련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틱장애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학습장애, 언
어장애, 지적장애, 자폐범주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수면장애, 유뇨증, 성격장애 등이 많이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7) 밤에 잠들기 어려워 불면증을 호소하거나 늦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워 늦게 일어나거나 일찍 일어나더라도 주간 졸음과 사회적 활동 저
하를 호소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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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는 C씨는 무기력함이 심해져 강의 출석 및 과제를 수행하
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꼈다. C씨에게는 낮은 성적보다 FA의 문제가 더 컸다. 학사 경고에 대한 생각
에 한 번 매몰되고 나면 ‘학교나 성적이 어떻게 되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
겠는가?’ 등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할 의지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일을 스스
로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FA 처리와 학점 등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C씨는 아직도 정신
건강의학과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수면위로 꺼내기를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학습 지원
을 요청할 생각을 못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적경고를 받아 사유란에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적고 학과행정실에 제출했을 때 C씨는 굉장히 수치스럽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으나, 어딘가에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본인과 다른 학생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안내 게시글, 정보
글 등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말한 C씨는, 이러한 정보가 후에 학생들에게 심리장
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를 얻기에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C씨
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글이 나처럼 동굴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그 자체가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 없는 삶은 없고 필요 없는 인생은 없다. 위의 질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
졌고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으려고 한다. 대기업, 높은 학점, 성공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내가 내 삶
에 기쁨을 느끼는 것,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 그것에서 만족감
을 느끼며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행복을 찾아서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D씨는 2018년도 정신과 진단서로 유고결석을 요청했지만, 병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아 유고결석 처


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8 D씨는 정신질환을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각은 심리장애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이다. 서강대학교 학칙에 따
르면 잦은 지각은 결국 fa 처리로 이어진다. 학교에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이
해의 부족이 너무나도 큰 장벽이라고 D씨는 설명했다. 학생의 증상과 상황을 포괄적으로 이해해 준다
면 좋겠지만, 학교가 학생의 탈락을 두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1학기에 제적경고를 받은 D씨는 다음 학
기에 질병휴학을 신청했지만 상급병원에서 진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9 결국 3학기까
지 학교에 다닌 후 휴학을 한 D씨는 초과학기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추가적으로 등록금을 내야 하
는 것이다. D씨는 질환에 대해 많은 지원이 가능하거나, 정상범주에 영위할 수 있는 사람만 학교에 다
닐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휴학 관련 학칙이 비장애인 중심적이기에 비정형 인간을 탈락시키고 있으
며, 규정 언어를 고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전까지 무수히 탈락하는 자들을 책임지는 것이 우선이 되
어야 한다고 밝혔다.

서강, 그대의 자랑이 되기를


기사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진행하며 구조적인 문제가 개편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꼈지만, 나 또한
개인적으로는 나의 심리장애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으며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음을 인지하지 못 할

8) 타 신체질환과 달리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병명을 진단서에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심리장애를 진단하기까지 오랜 관찰이 필요하
며, 같은 증상이 여러 심리장애에서 나타나기에 하나의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9) 흔히 대학병원이라 불리는 상급병원은 외래진료를 위해서 3,4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액 또한 일반병원에 비해 높게 측정되기 때문
에 상급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질병휴학을 신청하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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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많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증상을 핑계라고 생각해 왔다. 게으르고 까탈스러운 나를 당연히 나 혼
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도움
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이는 등록금을 지불했기 때문도, 장래에 사회에 도움이 될 직업을 가질 대학의
학생이어서도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넓은 집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우리를 말할 자유가 있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면 마치 하얀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뭉게뭉
게 피어있는 빙하 아래, 화창한 바다 아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땅에서 울려 퍼지던 찡그린 얼굴과 웃음
소리는 아득해지고 마치 바둑판처럼, 혹은 초등학교 시절 곧잘 펼쳐보던 세계지도처럼 사람과 사물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곳을 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이 글이 단순히 심리장애에 대한 지원을 요하는 글로만 읽히지는 않길 바란다. 심리장애는 하나의
예시일 뿐,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안에서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종
종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자.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 바다를 누비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위해 늘 최선의 지원을 제공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와 학생생활상담연구소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현재 학내에서 심리장애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 지원 현황
[장애학생지원센터] (베르크만스 우정원(BW관) 205호/02-705-7800/dasoni@sogang.ac.kr)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관련 교수님과 부서장님들로 구성된(2024년도에는 학생 및 외부 전문가
참여 예정) 운영위원회가 있다. 미등록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에 대해서는 상담을 통해, 운영위원
회 안건으로 올려서, 학생이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현재 ADHD 장애를 가진 외국인 학생
1명, 공황장애 등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학생 1명을 지원하고 있다. 본인이 원할 경우, 교
수님께 학생에 대한 정보와 지원에 대한 총장님 명의의 서한을 보내 드려서, 출석 및 학습에 대한 배
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중간 및 기말 시험에 대해 별도의 공간과 시험시간 1.5배
연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본인이 원할 경우, 학교심리상담연구소에 우선적으로 상담을 받
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있다.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정신장애는 신체장애나 발달장애(지적, 자폐성 장애)와는 구별되어
지원해야 하는 영역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정신과적인 상담이나 의뢰를 할 수 있는 지역 병원의
정신과 의사나, 전문가들이 연계되어 학생들과의 전문적인 상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살예방 및 학습지원 차원에서)”라고 밝혔다.

[학생생활상담연구소] (성이냐시오관 왼편동 1층/02-705-8211/sgcounsel@sogang.ac.kr)


학생생활상담연구소는 개인상담, 심리검사, 집단상담, 각종 프로그램 및 특강, 등을 통해서 학생
들이 자신의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고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목
적으로 설립된 서비스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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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상담
상담자와 1:1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현재 당면한 어려움이나 고민에 대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활동이다. 일상생활의 어려움부터 성격, 대인관계, 학업, 진로 등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
다. 상담 횟수는 기본 15회를 기준으로 상담자와 조율할 수 있으며, 상담내용과 사적 정보는 비밀로 유
지된다.

-심리검사
표준화된 심리검사를 통해 개인의 성격, 흥미, 적성, 잠재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심리검사를 실
시한 후, 결과에 대한 검사해석을 받게 된다(1회, 50분). 검사해석을 통해 자신의 이해 수준을 높여
보다 적응적이며 발전적인 대학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집단상담
두 명의 리더와 8~10명 내외의 비슷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하는 자리이다. 진솔한 대화 속
에서 자신과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 활동이다. 집단상담은 주 1회, 2
시간으로 약 8주간 진행되며, 8주 동안 모두 참석이 가능해야 한다.
-위기상담
위기(crisis)에 처해 심각한 불안이나 자해, 자살에 대한 충동이 생길 때 위기에 대한 전문적인 도
움을 받는 과정이다. 서강대학교 학생생활상담연구소에서는 위와 같은 위기상황으로 인한 극심한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 상담소에서 상담전문가에게 신청 당일 단회기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연계병원
◎ 24시간 상담가능 기관
◌ 서울 정신건강 상담전화(Seoul Suicide Prevention Center)
24시간 Hot-Line : 1577-0199 / 온라인 : http://www.suicide.or.kr/

29
◌ 생명의 전화
24시간 Hot-Line : 1588-9191 / 온라인 : https://www.lifeline.or.kr/
◌ 보건복지부 Call Center
24시간 Hot-Line : (국번없이) 129
◎ 응급입원 가능 기관
◌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02-300-8114 / 온라인: http://ephosp.seoul.go.kr/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1599-1004 / 온라인: https://sev.severance.healthcare
◌ 고양시 화정병원
031-979-7572 / 온라인: http://www.hwajung-hp.co.kr
◎ 서강대학교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 연세멘토정신건강의학과의원
평일 9:30-18:00 / 점심시간 12:30-13:30
02-702-2052 / www.mhealth.co.kr
◎ 외국인 상담 가능기관 (Foreigners Counseling Available)
◌ Seoul Counseling Center : https://seoulcounseling.com/
◌ The MindCare Institute of Korea : http://www.mindcarecenter.co.kr/
◌ Ansan Multicultural Family Service Center : http://mfscen.org 10

[기타 개별 수업 장애학생지원사항 예시]


<수화의 이해>11

<임상심리학>12

10) 서강대학교 학생생활상담연구소 홈페이지 참조


11) 2023-1, 김미원 교수 강의계획서 중
12) 2021-2, 김향숙 교수 강의계획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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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사진 출처 : 농부시장 마르쉐 홈페이지 (www.marcheat.net/season/감/)

편집실에서(지연, 나영, 윤, 현지, 유진, 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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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감감감 제안자의 변

여경민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좋아하시나요? 영화에서는 기쁨, 슬픔, 버럭, 소심, 까칠을 각각 다른 사


람으로 만들어 이들이 주인공 라일리의 행동을 조종하게 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두드러지
는 이는 슬픔이입니다.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슬픔이가 라일리의 상상의 친구 빙봉의 감정을 공감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니 빙봉이 힘을 내어 모험을 마저 떠납니다. 슬픔이 있기에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타인과 연대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슬픔을 피하려 노력하
지만 사실 슬픔은 정말 귀중한 존재입니다. 슬픔이 없었다면 타인과 이어지지 못했을 테니까요.
‘감감감’은 22살 동갑내기 편집위원 5명이 쓴 감정에 대한 짧은 글을 엮은 것입니다. 개방감, 멍청
감, 무력감, 상실감, 생경감 5개의 감정을 다뤘습니다. 멍청감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모습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슬퍼하는 마음이 모두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고 타인을 이해하고 싶어하
는 마음이라고 느꼈습니다. 타인과 관계맺지 않고서는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동시에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러니 자주 슬프고 자주 울음이 터져도 이
해하기로 해요.
경쾌한 글도 있습니다. ‘멍청감’의 첫 단어가 웃기지 않다면 교지 메일을 통해 이전 편집장에게
500원을 요구해도 좋습니다. ‘멍청감’을 읽고 나면 머리가 안 돌아갈 때 나도 모르게 어떤 단어를 읊
조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4일의 설 연휴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한 안타까운 편집위원이 ‘생활감’을 써 주었습니다. 왜
어떤 노동자는 명절에 일을 해야 할까요? 어떤 이들이 명절에 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을 나눌까요? 우리는 왜 누군가는 명절에 쉬지 못하냐고 따져 묻지 않을까요? ‘생활감’을 읽고 더 많
은 의문이 들면 좋겠습니다.
‘감감감’의 원형은 교지서강 2013년 여름호에 있는 ‘22살 동갑내기 편집위원들이 감지하는 ‘오늘’
의 감감감’입니다. 작년 1학기 때, 교지에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섹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고
민을 하던 중 예전 교지를 보고 ‘이거다!’싶어서 제안했습니다. 제안할 때는 편집위원들이 22살이 아
니었는데 어느덧 22살이 되었네요. 가볍진 않지만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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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감 : 예민하고 소심하고 불안한 인간의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김지연(jiyean418@naver.com)

어느 날부터 교지가 버거웠다. 버겁다기보다는 질렸다, 혹은 진이 빠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목요


일 5시 50분쯤 우정원 교지편집실 문 앞에 서면, 끝내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던 날도 있
었다. 사람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함께 교지를 만드는 친구들에게 애정과 친근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교지실 공간 자체도 문제는 아니었다. (겨울엔 난방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매우 춥지
만) 교지실은 나름 아늑하고 차분하다. 가끔은 건너편 방의 풍물패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개강
시즌이면 창밖의 테니스장에서 오고 가는 함성과 함께 코가 찡해지는 봄바람이 살랑이며 교지실 안
으로 들어온다. 더 자세히 묘사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교지실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어떤 날엔 사소한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내가 싫었고, 어떤 날엔 할 말이
있어도 목이 꽉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내가 싫었다. 또 어떤 날엔 문 닫히는 소리, 풍물패의 악
기 소리, 테니스장의 함성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내가 싫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싫
은 나를 인정하지도, 남에게 알리지도 못하는 내가 싫었을 것이다. 예민하고 소심하고 불안한 사람
의 마음은 꽁꽁 얽힌 실타래와도 같다. 뾰족하고 얇은 바늘로도 풀기 어려운 단단한 실타래 말이다.
그래서 자기도 자기의 마음을 모른다. 그래서 알리지 못한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지 안에서 생
활하며 나의 실타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까지 숨기고 어디서부터 알려야 하는지. 나는 종종 사람
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하지만, 이는 결코 상대의 잘못이 아님을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지난 2
년은 그렇게 흘렀던 듯하다.
개방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이번 호를 준비하며 진행한 인터뷰였다. 네 명의 인터뷰이와
대화하며 나는 처음으로 나를 개방했다. (물론 인터뷰 상황에서는 인터뷰어가 최대한 말을 줄이고
좋은 답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심리장애라는 주제를 다룬 만큼 어느 정도의 자기개방을
통해 라포를 형성하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개방은 허무할 정도로 별 게 아니었다. 내 안
에서는 분명 요동치고, 독보적이고, 부끄러웠던 말들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보편적인 일상이 되었
다. 꼭 상대의 공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말은 마음 안에 있을 때와 밖에 있을 때 그 성질이 크게
변하는 듯하다. 저는 이런 일이 있었거든요, 저는 사실 이런 걸 못 해요, 저는 다른 생각을 했어요,
등과 같은 말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느낄 수 있다시피 극히 보통의 것이지만 마음속에서는 얽히고
설켜 또 하나의 실타래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러한 실타래가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변모하기도 한
다.) 여러 과정을 거치며 지난겨울 내 삶에서의 가장 큰 키워드는 ‘개방’이 되었다.
물론 나를 개방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보면 나를
모조리 숨기고 세상을 모르는 체하고 싶어진다. 나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싶은 마음. 그러니까
이 복잡하고 종종 잔인하고도 무심한 세상에 편입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말
하는 자의 여유를 비난하기에 급급하니 아름다운 마음을 결코 개방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세상
은 나의 실타래가 어떻든 간에 어기적어기적 굴러간다. 그러나 이는 결코 나를 숨길 변명거리가 되
지 못한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누군가는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쌍하고 그런 자신을 사랑하겠지.
누군가는 소리를 내겠지만 맑고 넓게 퍼지지만은 않을 테다. 누군가는 실망하겠지. 그러나 말하고
외치길 바란다. 불쌍하고 작고 한심한 말조차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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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감 : 멍청한 놈들은 모두 죽이고 싶었지만 자살은 죄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김나영(nykim327@sogang.ac.kr)

“으붸뷉?”. 단어도 문장도 아닌 것이,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며 지성이 휘발되는 것 같다. 직
접 발음해 보시라. ‘붸-’에서 입을 벌리고 ‘뷉’을 발음하기 위해 다시 입술을 모았다가 빠르게 닫아버
리는 움직임이 옹졸하고 한심하기에 그지없다. 입술 뻐끔대며 따라하는 자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면 그 정도는 한층 심해진다. 누군가 멍청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라면 난 주저 않고 그 자리에서 “으
붸뷉?”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문장을 2023년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일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
가 내용을 잊어버려서 등등…. 다양한 사유로 저 얄궂은 세 글자는 나의 애착 문장이 되었다.
아무튼, ‘멍청감’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멍청’도 들어본 적 있고, ‘-감’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멍청감은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해 보이지 않는가? 당연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내가 만들었다.
사전적 정의로 글을 여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애석하게도 억지로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사전 따위 없어도 대부분 이 멍청감이 어떤 감정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나
태한 기대를 해본다. 대략 이쯤이면 찾아오는 ‘멍청탈트 붕괴’를 붕괴시키기 위해, 멍청감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편의를 위해 멍청하다고 지칭했지만, 이는 사실 무비판적이고 생각이 짧으
며, 그래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채인 자신을 실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내가 느낀 멍청감
을 나누며 나보다 똑똑할 누군가에겐 위안을, 나와 비슷할 누군가에겐 공감을 선사하고자 한다.
요즘 나의 SNS 이용 행태를 보며 부쩍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다. 뉴스 기사 본문은 안 읽고 자극적
인 제목만 대충 읽고 넘어간다던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서명운동이나 국민 청원에 동의하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의견에 대해 깊게 고찰하지 않고 쉽게 동의하며 빨간 하트를 남발한다. 아주 귀
얇기가 황희 정승이 따로 없다. 무비판적 소화는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퇴화시킨다. 생각하는 힘
이 없으니, 조금만 복잡해져도 금방 지치고, 지치면 피곤하지 않은 쪽으로 관심을 돌려버리거나(도파민
중독의 삶) 쉽게 누군가를 탓하게 된다(요즘은 주로 용산의 그분). 따라서 책을 읽거나 관련된 강의를 찾아 듣는
것에서 도피한 채, SNS에서 본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양 말한다. 결국 공부라는 투입이 없으니 온전
히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양질의 산출도 없고, 출처를 모를 당위에 잠식된 피상적인 발언만이 일상
을 유영한다.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지하는 것
만으로 자신이 창피해진다. 사실 우매함의 악마가 꽹과리 신명 나게 치면서 등장하는 하이라이트는
이다음이다. 바로 그런 주제에 말이 많다는 것. 나의 오만함과 전시 욕구는 쥐꼬리만 한 지식을 자랑
하기 위해 내 입을 쉽게 열고, 어렵게 닫는다. 항상 급하게 입 막고 돌아서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멍청감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느
끼는 감정이다. 진짜 멍청한 사람은 본인이 멍청한지도 모른다는 말이 위안이 되긴 하지만 나 역시
이대로 괜찮을 리가 없다. 멍청감이라는 감정에 묶여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태를 어찌 탈피할 수 있
을까? 멍청감을 겸허히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나만 이런가? 나의 어떤 점부터 고쳐야 하지? 왜 이
걸로 스트레스 받아야 하지?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멍청한 나’라는 자책에서 탈피하지
못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고뇌할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태초의 멍청함으로 회귀하게 된다.
다시, “으붸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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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 : 무력이 무능이 되지 않길 바라며

허윤(dorahur931@gmail.com)

이제는 트위터가 아닌 ’엑스‘라고 부르는 어플에 접속하면 다양한 뉴스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귀여운 고양이, 강아지 사진이 피드에 뜨면 하트 모양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맛집 정보가 있으면 캡
처를 해두거나, 인생에 관한 공감되는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스크롤을 하다가
멈칫하게 된 게시물이 있었다. ‘회사 앞 도로에서 분신을 시도했습니다.’ 임금체불 해결을 요구하던
1인 시위자 분이 분신을 시도했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50년 전 전태일 분
신 사건의 자료화면이 아니라, 2023년의 뉴스라는 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이러한 뉴스들이 거의 매
일 쏟아지는 요즘, 나는 분노에 익숙해져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사소한(?) 일들
로 분노하곤 했다면, 이제는 정말 큰 이슈가 아닌 이상 크게 동요하지 않고 ’또 그랬구나. 유감이네‘
라며 넘길 때도 적지 않다. 그냥 넘겨버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 흠칫 하고 다시 돌아가 무슨 일이
생긴건지 찬찬히 다시 읽어본 적도 몇 번 있다.
이렇듯 내 분노의 끓는점이 높아진 것에 대해 성찰을 해보자면, 나는 무력감의 결과라고 생각한
다. 기후위기 관련 뉴스를 보거나, 정치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들을 보면 화가 먼저 난다. 하
지만 이내 곧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현상을 바르
게 고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더라도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까? 해
결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인식이 있고, 당사자들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
라는 사고를 학습한 듯싶다. 무력감의 학습이 무서운 점은 그것이 무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
가 해봤자 뭐가 달라져‘ 와 같은 생각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음을 반복함으로써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되새겨야 할 점은 그럼에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 나를 ‘안하는’ 에
서 ‘못하는’으로 바꾸고 있을 때도 어딘가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현장에 나가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혜화역에도, 방 안에서도, 저 멀리 중동에서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치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은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는 방
증이기에 잠시 쉼이 필요하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결국 인류는 더 좋은 것을 향해 점진적으
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다시 한 번 무력감에 맞서는 수밖에 없다. 여러 대
상에 대한 무력감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지만 연대는 명확하다.

35
생활감 : 주 5일 노동 옵션, 가격 제시받음, 사용감 있음

장현지(sephia1013@sogang.ac.kr)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분들 모두 설 잘 보내셨을지……. 미리 밝혀두자면 필자는 이번 설에 본가


에 다녀오지 못했다. 이유는 별거 없고 알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 알바 일정과 설 연휴가
아주 멋드러지게 맞아떨어졌다.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 주 5일 일하는 나와, 금토일월이라는
설 연휴의 멋진 콜라보…. 그 결과로 설 연휴를 꽉 채워 노동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눈물은 나지 않
았는데 조금 서글프긴 했다. 오직 위안이 되는 것은 어플에 찍히는 근무시간뿐…. 연휴 당일에 일했
으니 시급을 1.5배로 쳐주겠지. 그러니까 다음 월급날의 필자는 조금 더 기쁠 수도 있겠다. 연휴 내
내 일하게 된 우울함과 시급 1.5배의 달콤함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명절에 못 내려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저번 추석에도 필자는 본가에 내려가지 못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주말 알바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거기는 부부 사장님이 운영
하시는 작은 편의점이었어서, 시급 1.5배가 뭐람. 추석과 새해 첫날에도 평소와 같은 최저시급을 받
으며 포스 앞에 서 있었다.
뭐……. 생각해 보면 남들 쉴 때 일했다는 게 그리 서글플 일인가 싶기도 하다. 명절에 쉬는 사람
들이 있으면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 음, 타당한 말이다. 명절에 다 쉬면 계산은 누가 하고, 산불은 누
가 끄고, 배달은 누가 하고, 버스는 누가 운전하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하겠지. 맞는
말, 인정. 그러나 이 대목을 읽고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되지 않게 남들 다 쉴 때 쉴 수 있는 직장을
구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명절에 일한 노동자로서 그건 좀. 아니 좀.
물론 필자도 명절에 따박따박 쉴 수 있는 직장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나. 당연히 있다.
자랑할 수 있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서, 추울 때 따뜻하게, 더울 때 시원하게 책상에서 머리 굴리는
화이트-칼라 직장인이 되고 싶은 마음. 정말로 차고 넘치게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학
창시절에 지겹도록 학습한 ‘공부 못 하면 저런 일 한다’라는 저주적 사고방식을 슬슬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명절에 못 쉬는 직업이라는 것을 개인적 선택의 잘못으로 보고, ‘저렇게 되지 않
으려면’ ‘공부를 잘 하고’ ‘스펙을 잘 쌓아서’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는 사고의 흐름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시선에서는 어찌 됐든, 블루칼라 노동자(거창하게 말했지만
청소노동자, 택배 기사, 콜센터 직원들, 이외 많은 생산직과 서비스직군…)는 합당한 능력을 갖추지
못해 ‘고급’ 직업군에서 밀려난 사람들로 단정지어진다. 이렇게 되면 노동 중에 합당한 휴식을 취하
지 못하는 것도, 과로로 죽거나 다치는 것도 결국 구조의 결함을 가리키지 못한다. 그 몫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 된다. 그러니까 네가 공부 못 하고 스펙 없어서 그런 거지. 누가 그런 일 하랬나? 하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다. 다 책상 앞에서 머리 굴리려고 하면 일상은 누가 굴리지? 택배는 누가


배달하고 버스는 누가 운전하며, 물건 계산은 누가 하나. 도로는 누가 정비하고 눈은 누가 치우지?
이렇게나 일상의 핵심적 요소이면서도 ‘공부 못 하면 저런 일 한다’라는 문장에서 ‘저런 일’이라고 폄
하당하는 이 상황이 너무 모순적이지 않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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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
#조금 슬픔 주의#

김유진(yjkim3631@naver.com)

안녕하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감감감×2 기획에 조금은 무거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
다. 하지만 도무지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아 저의 슬픈 고백을 읽으실 여러분에게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건넵니다.
작년 2023년은 제게 참 버거운 해였습니다. 그해에는 10년간 키웠던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목소리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 글로 적어봅니다. 제가 아는 동생이 죽었습니다.
수능 일주일 전, 보라(가명)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학에
다니고 있던 저는 굉장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구요.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많이 친하
지는 않았던 그 친구의 소식에 아직도 마음이 쿡쿡 찔립니다. 매년 수능 날이 되면 쏟아지는 수험
생 자살 기사 중 하나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 끔찍했습니다. 유서 하나 없이 죽음
을 맞이한 그 심경이 어땠을까, 모르는 만큼 생각도 커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결국 혼자 있는 시간
에 그 친구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하면서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만큼 숨 막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방관자라는 생각에 이끌려
뒤늦게 그 죽음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인사를 나눴었고, 저의 상실은 죄책감
과 함께 왔으니까요. 같은 해에 입시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친구를 죽인 입시 제도에 성공해 입학
했다는 점이 뭐랄까요, 공범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에 이번 교지엔 제 팔자에 없는
(대학에 대한) 학술적인 글을 작성했습니다. 대학이 뭐길래, 그런 고통을 겪었을 보라를 조금 늦게
나마 이해해 보려는 제 속죄이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 몸보다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상실감을 열심히 해체
해 보아도 단순히 슬픔이나 죄책감, 불안으로 환원되지 않는 듯합니다.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많은 논
문과 책을 읽었지만, 죽음이라는 어려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참 막막한 감정입니다. 되
돌릴 수 없는 무(無)를 목격한다는 점에서 참 허무하고 어려운 감정입니다. 다들 그렇게 메꿔지지
않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요.
죽음이 흔한 세상입니다. 길을 가다 압사당하기도, 배를 타다 익사하기도, 집을 뺏겨 죽기도 합니
다. 이렇게 모두가 죽고 죽는 세상에서 상실에 대한 글자만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까 두렵긴 하지만, 혼자 슬퍼할 일 또한 아니라는 생
각이 들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이라, 교지의 조그마한 지면에
보라의 이야기를 싣는 것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소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오래 기억하는 일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타인의 죽음을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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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감 : 사랑하는 강아지와 친구들을 위한 건배

주보배 (bobaeju2003@naver.com)

키우는 강아지가 올해로 열 살이 됐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부터 가족처럼 함께 자란 귀여운 말티푸가 눈 깜짝할 새 장성하여
이제는 어엿한 노견의 나이가 되었네요. 상투적인 표현일진 몰라도, 여전히 제 눈에는 천성이 겁이
많아 금방 소파 아래로 몸을 숨기던 1개월 아기 강아지 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더불어 이 글을 쓰는 계절은 24년의 겨울이고, 저는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두 살이 되었습니다.
올해 겨울이 예년보다 온화하다고는 하나, 저에게는 역시 다소 힘들게 다가오는 시기로 느껴집니
다. 물론 온도나 습도, 미끄러운 바닥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는 예전부터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이었는데요. 여름이나 겨울처럼 계절이 크게 바뀌는 시
기에는 평소보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외부 자극에도 과민해지곤 했습니다. 계절성 우울증
이 의심되는 징후이긴 하나, 또 그렇지는 않았고요.
환절기마다 돌아오는 이 이상한 현상의 원인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감각은 똑같은데, 상황은 똑같지 않아서.’ 뭔가 어려운 말처럼 적어놨지만, 간단히 말해서 올해 겨
울에 제 피부가 느끼는 차가움은 작년 겨울과 똑같이 차가운데, 올해 제가 겪고 있는 상황은 작년과
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변화가 무섭고 힘들다는 뜻인데요. 작년 겨울에는 이 추위
를 아홉 살 강아지와 함께했는데 올해는 열 살 강아지와 함께하고, 강아지에 대한 제 사랑은 똑같은
데 아이는 계속 변화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힘들게 합니다. 모든 변화는 이별을 담
보하니까요.
올해 경민이와 한울이가 교지를 떠납니다. 23년 봄 쭈뼛쭈뼛 교지실에 들어서며, ‘세상에 교지에
는 다 이런 사람들만 있나?’ 싶었던, 저에게 있어 교지 그 자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교지실에 가끔
만 들리겠다고 하네요. 최고最高의 선배였던 사람들이 가고, 이젠 학번상으로 제가 교지 최고最古
선배입니다. 올봄에는 작년 저 같았던 쭈뼛쭈뼛 후배가 새로 들어오겠지요?
새로움을 기대하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에게는 언제나 그랬듯이 떠나가는 사람
과 상황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큰 것 같습니다. 예쁜 눈을 빛내며 저를 바라보는 열 살의 강아지,
교지실에서 함께 죽자사자 마감을 하던 저번 주의 경민이와 한울이가 저는 곁에 있음에도 벌써 그
립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떠나가는 듯 지나가는 것이고,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간다면 언
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을 또한 잊으면 안 되겠지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제목을 공포감이나 향수감이 아닌 생경감으로 짓습니다. 잠깐은 싫을 것이고
한참은 그립겠지만, 이런 감정을 느끼며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싫지 않습니다. 제가
알던 시간에서, 알던 공간에서 떠나가고 각자의 길을 새로 걸어갈 이들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큰 갈
채와 축복을 보냅니다. 막상 그날이 온다면 저는 또 저답게 울어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땐 그러려
니 하시고 눈물 잔뜩 받아 가세요.

잘 가고, 건강하고,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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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2023년 9월 12일 자 사진. (구지혜 제공)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Q
(외부투고, sg.quee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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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가을,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이하 ‘춤큐’)의 동아리방으로 사용 중이었던 엠마
오관 B121호가 비워졌다는 제보가 있었다. 춤큐 측에서 확인한 결과 동아리방은 모두 비워져 있었
으며, 비밀번호가 초기화된 상태였다.
엠마오관 B121호는 학생회 특별기구가 이용 가능하도록 지정된 두 개의 호실 중 하나이다. 이전
총학생회의 허가 하에 춤큐가 동아리방으로 이용 중이었다. 춤큐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아웃팅을 우
려해1 동아리 등록을 하는 대신 성소수자협의회2를 결성하였다. 아웃팅을 방지하기 위해 춤큐 이용
공간임을 호실 입구에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은 춤큐가 여러 총학생회와 비대위를 거치
며 꾸준히 이용하고 있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다. 문제 상황을 인지
한 후 춤큐 측에서는 공간 처분 관련 대응을 시도하였다. 아카이빙을 위해 이를 공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23학년도 총학생회 ‘등대’와 주고받은 이메일의 전문이다.

발신자: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


수신자: 서강대학교 제50대 총학생회 등대
제목: 엠마오관 E121호 내에 있는 학생 개인 물품 무단 처분의 건

1. 귀 학생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올해 9월 11일(월)에 춤추는 Q 회원 두 명이 엠마오관 E121호에 들어가려다, 비밀번호가 바


뀌어 있고 물건이 모두 비워져 있음을 확인하여 제보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학생지원팀에 문의
한 결과, 학생지원팀에서 총학생회에 문의하겠다고 전달받았고 9월 12일(화)에 총학생회가 “춤
추는 Q는 활동 중인 단체가 아니고, 동방 내에 있는 물건들이 오래되어 보이는 관계로 모두 폐
기했다.”라고 입장을 밝혔음을 전달받았습니다. 이 점에 강하게 유감을 표시하고, 대책을 요구
하고자 이렇게 연락을 드립니다.

3. 춤추는 Q가 E121호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학생회 소속이었던 기존 춤


추는 Q 회원이 이 공간을 학생회가 쓰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춤추는 Q가 쓸 수 있도록 개방하였
고, 그 후로 춤추는 Q가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로서 이 공간을 사용하였습니다. 성소수자
협의회(성소협)는 이후 활성화된 조직이며, 성소협의 활성화 여부와 해당 공간의 사용이 연관되
어 있던 적은 없었습니다(예시: 2019년 3월~2019년 10월까지 성소협이 비활성화된 상태로 ‘서
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로 활동하였으나, 지속적으로 해당 공간을 춤추는 Q 회원들이 문제없
이 사용). 코로나19의 창궐 이후로 춤추는 Q는 휴면에 돌입했으나, 지속적으로 회원들이 소통
하는 네트워킹 창구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2022년부터 다시 E121호를 회원들이 이야기하고 개
인 물건을 두기도 하는 등 춤추는 Q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2023년까지도 계속
되고 있었으며, 9월 11일의 제보 또한 지속적으로 해당 공간을 사용하던 회원들에 의해 접수되
었습니다.

1) 동아리 등록을 위해서는 회원의 개인 정보가 담긴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아웃팅의 우려가 있으므로 성소수자 단체가 실행하기 어렵다.
2)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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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따라서 해당 공간의 사용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공간을 비워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 사전에 제기되고, 학생들의 개인 물품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충분히 춤추는 Q에
서도 납득이 가능한 제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 총학생회 측에서는 학생들이 사
용하던 공간을 어떠한 논의나 고지도 없이 무단침입하였다는 것에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
습니다. 심지어 개인 물품을 회수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모두 폐기가 되었다는 점이 사실이라
면, 이 부분은 춤추는 Q의 활동 여부를 떠나 학내 학생들의 물건을 분실/폐기한 것이므로 학생
개인 측에서도 강경 대응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5. 고로 총학생회 측에게 1. 해당 공간 처리에 대한 사전 고지의 부재와 해당 공간 내 물품 무단


처분에 대한 사과 2. 해당 공간 내에 있던 학생 개인 물품의 소재 확인. 3. 개인 물품들 분실/폐
기하였을 시 이에 상응하는 책임으로 해당 공간을 춤추는 Q에 반환 혹은 그에 준하는 차선책 제
시를 요청합니다. 해당 요청에 대한 회신은 9월 22일(금)까지 부탁드리며, 해당일까지 회신 불
가할 시 그에 대한 사유와 회신 가능한 날짜를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발신자: 서강대학교 제50대 총학생회 등대


수신자: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

안녕하세요, 첨부해주신 내용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먼저 엠마오관 해당 호실에 대한 청소를 진행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 5월 22일 학생지원팀을 통해서 엠마오관 B114호와 121호가 현재 총학생회 특별 기구 공간


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과거 맑음과 여학생회 공간으로 썼었고 지금은 사용 주체가 없이 버려져
있는 공간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후 6월 5일에 마스터키를 받아 직접 확인해 보니 121호
에는 물건이 쌓여있고 방치된 채로 있었습니다. 전대 비상대책위원회, 21년도 SIGN 학생회 측
에 물어보니 본인들도 전달받은 내용은 없고 비어있는 방으로 알고 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확
인한 당일 해당 호실들의 비밀번호를 바꾼 후, 8월 말 청소를 진행하였습니다.

해당 공간의 비밀번호를 바꾸고도 약 3달간 연락이 없었던 점, 전대 비상대책위원회, 총학생회


측에 들은 내용으로 몇 년간 방치된 물건이라고 판단하여 해당 물건들은 전부 폐기 처리하였습
니다. 따로 보관하고 있는 물품은 없습니다.

또한 해당 공간은 총학생회 특별 기구 명목의 공간입니다. 춤추는 Q는 총학생회 산하의 특별자


치기구가 아니므로 공간 사용에 대한 권한이 춤추는 Q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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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공간을 사용하게 된 이후에 총학생회가 바뀔 때마다, 또는 정기적인 보고 없이 사용하여
결론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해당 공간을 사용하고 싶으시다면 특별자치기구로의 정식적인 절차를 밟고 전체학생대표자회


의에서의 의결 절차를 밟은 이후 사용을 부탁드립니다.

추가로 논의가 필요한 사항 있으면 회신 부탁드립니다.

위와 같은 답변에 춤큐는 추가 대응을 하고자 하였으나, 운영진의 건강 문제와 춤큐 운영 인력 부


족으로 인하여 대응이 늦어졌다. 다음은 2024년 1월에 작성 완료한 회신이다.

발신자: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


수신자: 서강대학교 제50대 총학생회 등대

해당 내용에 대한 저희 측 최종 입장문 첨부합니다. 현 상황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추후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생회 측이 보다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논의의 건

안녕하세요,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이하 ‘춤큐’)입니다.


엠마오관 B121호 처분 건에 대해 9월 15일 자로 처음 문의하였고, 그에 대해 9월 27일에 답신하
신 내용을 바탕으로 추가 논의를 위한 회신을 드립니다.

주신 답변에 대해 몇 가지를 추가로 짚어보고자 합니다.


1. 학생지원팀에서 버려진 공간 같다는 연락을 받으신 후 마스터키로 해당 호실을 방문하였더
니 ‘물건이 쌓여있고 방치된 채로’ 있었다고 하셨는데, 이러한 판단은 다소 모호하고 자의적입니
다. 물건이 쌓여있는 모습으로 방치되었다고 판단하는 것과 실제로 방치된 공간임은 다릅니다.
물건이 놓인 모습을 보고 방치되었다고 판단하기까지 그 공간의 사용 주체가 정말로 있는가에
대한 이차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해당 호실에 확인 가능한 공지문이 게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호실 사용자들은 어떠한 공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호실 내부의 물건을 직
접 처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전대 비상대책위원회와 21년도 SIGN 총학생회 측에 문의하신 것에 대한 답변이 ‘본인들도 전달


받은 내용은 없고’라고 한 것을 보아 해당 공간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사용 중이었던 공간에 대해 관리주체 측에서도 사용 여부가 파악되지 않았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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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는데, 그렇다면 더욱 해당 호실에 공지문 등의 안내 조치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안내 조치가 없었던 것은, 비어 있는 방으로 ‘알고 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그대로 수용
해서 일어난 일인 듯합니다. 사용 중인 공간에 대해 처리하기 위해서는 1) 보다 적극적인 확인
절차와 2) 공간 사용자가 해당 공간에 대한 처리 계획을 인지할 수 있는 조치(안내문 부착 등)가
있어야 합니다. 추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2. 보내주신 답변과 춤큐 구성원의 말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을 때, 5월 22일 학생지원팀을 통


해 총학생회 ‘등대’ (이하 ‘등대’)측이 공간에 대해 연락받았고, 6월 5일에 마스터키를 통해 공간
을 확인하였습니다. 춤큐 이용자 측은 6월 말에서 7월 초에 해당 공간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합
니다. 춤큐 측에서 최초로 비밀번호가 바뀐 것을 인지한 것은 9월 4일로, 호실 문이 열려 있어
공간 내 물품들이 분실되었음을 인지한 날짜는 9월 11일입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해
당 공간의 비밀번호를 바꾸고도 약 3달간 연락이 없었던 점’이라는 진술이 사실로 파악되지 않
습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간 처분에 대한 확인 가능한 공지가 없어 비밀번호를 변경한 주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춤


큐 측에서 최초로 문의한 주체는 학생지원팀입니다. 학생지원팀에 문의한 결과, 해당 공간의 권
한이 학생회에 있다는 답변을 들은 뒤 ‘등대’ 측으로 메일을 보내드린 것이고, 그것이 9월 15일
자 문의 메일입니다. 비밀번호 변경 건에 대해 ‘등대’ 측으로 연락이 오거나 오지 않음(그리고 그
기간)을 근거로 ‘몇 년 방치된 물건이라고 판단’한 것은 합리에 근거한 판단이 아닌 것으로 보입
니다. 일차적으로 해당 호실에 대한 공지가 일절 없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물건을 처
분한 주체 역시 파악이 불가합니다. 이에 춤큐가 먼저 연락하지 않았음이 해당 호실 내의 물건
처분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차적으로 해당 공간은 실제로 몇 년간 방치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역시 해당 호실 내 물건 처분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 어렵습니다. 방학 중에 춤큐
이용자가 해당 호실을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3. 해당 호실 내의 물건은 국내 성소수자 연구 사료 및 구술사 자료, 문화사 자료 등 귀중한 사


료입니다. ‘방치되어 보인다’는 자의적인 해석으로 물건을 폐기처분한 판단에 비해, 그 자료의
가치는 훨씬 높습니다. 이러한 무게가 인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폐기한 사실을 재차 여쭈었
던 것은, 자료의 소실 여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자료의 보존 상태가 최
상이 아닌 것과 자료 자체가 소실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방치되어 보인다는 개인의 판
단이 자료의 폐기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총학생회인 ‘등대’는 학생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에 교내 성소수자도 함께 대표하고 있습니다.
같은 학우로서 교내 성소수자를 둘러싼 문제점에 공감해주시기 바라며, 존중과 연대를 바탕으
로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폐기된 물건의 상당수에는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
는 Q’라고 기재되어 있거나 춤큐 로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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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공간 이용 주체가 춤큐임이 특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근거로 춤큐에 연락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춤큐 공식 연락처를 통해 온 ‘등대’의 안내는 한 건도 없
었습니다. 물건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교내 성소수자 단체를 연상하지 못한 점은 감수성의 부
족이며, 무관심이기도 합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인 만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4. 춤큐는 성소수자협의회(이하 ‘성소협’)로서 총학생회 산하 기구가 맞습니다. 이에 따라 해당


공간의 사용을 박탈할 만큼의 부당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또한 엠마오관 B121호는 춤큐
가 성소협 인준 이전부터 총학생회의 허가 하에 사용하고 있었던 공간입니다. 성소협이 인준
된 이후에도 그 이전과 같이 춤큐 회원들이 이용하였습니다. 2019년 성소협을 재활성화하였을
때도 총학생회는 성소협이 춤큐와 교내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단위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춤
큐 회원이 해당 공간을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 점이 인수인계되지 않았다는 것
은 당시 총학생회 측의 불찰이며, 이에 따른 총학생회 ‘등대’의 판단의 책임은 ‘등대’와 이전 총
학생회에 있습니다.

성소수자는 다양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춤큐는 단체 특성상 안전하게
활동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해당 공간의 이용이 불가해지고 보
존하던 자료가 소실된 것은 교내 성소수자와 앨라이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학내 성소
수자와 앨라이가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당 공간을 돌려받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춤큐는 엠마오관 B121호 이용을 요구합니다.

총학생회 ‘등대’의 행정 처리는 위에 밝힌 것과 같이 교내 성소수자에게 큰 위협이다.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지 않는 더 나은 학생 사회가 되길 바라며,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운영에 관심을
가져 줄 구성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Email: sg.quee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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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투고를 받은 후,
오래 전 춤큐를 떠난 이의 사족

총학의 스탠스를 따질 것도 없다. 투표율 1/3 넘기려고 온갖 수를 다 써야 하는데 무슨…. 부득이하


게 특정 방을 비워야 한다면, 해당 방 및 주체 이름(예) E121, 춤추는큐(2013~2023))을 적어 동문회
관(아루페관) 5층 기록보존소(02-705-8258, sgarchives@sogang.ac.kr)에 연락 후 기증하면 된다. 이
전 총학 및 동연 측에서도 이 방법을 정말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족 남긴다. 앞선 글에서 짚
었듯 우리의 산출물은 소유 주체와 상관없이 모두 국내 학생자치의 사료(史料)이니까.

본디 총학생회는 ‘학생 자치공간 확대’ 등 복지가 아닌 학내 자치에 좀 더 중점을 둘 수 있는 환경이었


다. 성소수자 활동가이자 학생회에서 직접 일하는 학생 또한 존재했다. 연결돼 있었기에, 아우팅 우
려가 있는 명단 제출 없이도 합의를 통해 해당 방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테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기
계적 평등이 시대정신으로 보이는 현 세태, 정파의 ‘정’ 자도 꺼냈다가는 큰일날 듯 구는 상황 속에서
그런 합의가 쉽사리 될 리 있나 싶다. 그러려면 이전보다도 훨씬 강한 힘과 오랜 토론이 필요하다. 매
학기 인준이 필요한 특별자치기구가 아닌, 단과대 격인 협의회가 됐음에도 대표자가 궐위였다는 점
이 가장 약점인데 그 자리를 메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 우리 모두의 실패이다. 그럼에도 쉽사리
커밍아웃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학생회 인수인계에 지속
됐다면 좋았겠지만, 성소수자는 무슨 모든 특기구가 인력 부족으로 없어진 마당에 그런 고려를 할 시
간이 있었겠나 싶다.

E121을 비우고 마련한 공간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라는 점에서 ‘아, 서강대... 학생자치공간 수가 적


으니 뭘 좀 해 보려는 학생끼리 싸우게 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애당초 엠마오관과 우정원 내
학생자치공간이 너무 적다. 특히 엠마오관의 경우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단위가 생기면, 평가 지표에
따라 매 학기 그 동아리의 등급을 매기고 낮은 등급부터 새 동아리에 공간을 내어주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저 상황 자체가 문제다. 동아리연합회나 총학생회의 도덕적
자질이 아니라, 학생‘자치’공간마저 성과지표에 좌우돼야 하는 그 상황 자체. 엠마오관 1층 뚜껑에 컨
테이너를 까는 상상도 한다. 왜 우리끼리 괄시해야 하지?

타 대학 소식도 좀 들었다. 서울대학교 교지는 2012년경 폐간하였으나, 성소수자 동아리는 지금까지


도 소수지만 즐겁게 지낸다 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의 경우 학내 소수자인권단체들의 연대체에서 힘
을 모아 2024학년도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로 출마 후 당선, 대신 남겨진 단체들은 인력이 부족해지
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맑음’이나 ‘단비’도 결
국, 사람이 점점 떠나갔고 책임질 사람이 없어 멸종한 것이다. ‘춤추는큐’ 또한 다르지 않다. 하필이
면 그 시점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그 시기에 남아 하필이면 그 모든 책임감과 죄책감을 떠안게 된
것이다.

45
제16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내 ‘학생 자치기구 속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모습’이라는 세션이 있다. 이
전 대학의 모습이 궁금한 20학번대 성소수자 학생들은 제16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자료집을 검색해
읽어보길 바란다. 못 찾을 시 무지개행동 홈페이지 하단 연락처로 연락하면 된다. 대학・청년성소수
자모임연대 QUV 를 검색해도 많은 사료들이 나온다. 다시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키는 데에 큰 도움
이 될 것이다. 당시의 학생활동가들은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었다. 그들은 연구모임(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https://www.dawoom-t4c.org/)을 꾸리거나, 소수 정당 내 성소수자위원
회를 꾸리거나,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정책 연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앞
서 길을 내고 있다.

2018 OR 자료집으로 춤추는큐를 처음 접했을 텐데, 온갖 내적인 일로 정신없는 춤추는큐를 갑자기


떠맡아 살려보려 애쓴 춤추는큐의 마지막 운영진, 비대면 학기를 지나 다시 총학생회를 부활시켜 애
쓴 ‘등대’ 모두의 앞날이 다 무탈하길 바란다는 비겁한 응원 전한다.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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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조직 인수인계 : 망해가는 학내조직 살리기

이 글은 2022년 7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교지 임원진


을 맡은 커뮤17 김한울과 미엔20 여경민이 교지를
운영한 기록이다. 학내 언론사 임원 맡은 게 뭐 그리
특별하다고 교지에 글까지 쓰나?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
겠다. 2022년 1학기 교지는 최소한의 유지는 되고 있었
으나 거의 쓰러져가는 중이었고 22년 여름 우연히 한울
과 경민이 같은 타이밍에 교지를 살려보고자 했다. 사람
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학교에서
학내조직이 생기고 없어지는 건 빈번히 있는
일이지만 참 아쉽다.

선배들이 쌓아놓은 조직 구성, 일하는 체계, 선후배 간 네


트워크, ‘이렇게 하면 더 잘 되더라’ 하는 노하우들이 싹
사라지고 비슷한 조직이 생기면 그 학생들은
아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서 또다시 선배들과
비슷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없어지기 직전의
학내조직을 살리는 건 선배들의 유산을 보존하고
후대에 넘긴다는 점에서 해볼 만한 일이다.

요약하자면 이 글은 선배가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가


조금이나마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꼰대질이다.
학교에서 사람을 모아서 학교나 사회의 무언가를
바꿔보고자 하거나, 나와 같은 관심사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학생들이 이 글을 보았으면 한다.
이 글을 보고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든
‘쟤네는 왜 저렇게 했지? 나라면 이렇게 하겠는데’ 든
알아가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여경민
ykm5819@gmail.com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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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교지의 상황
2022년 교지는 정말 조금만 더 심각했으면 폐간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2020년 이전 교지에 고학
번이 너무 많았던 바람에 저학번 한 명 빼고 모두 졸업하거나 나가버렸다. 교지에 혼자 남은 저학번
이 편집장을 맡으며 사람을 모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만남이 불가능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모
든 일이 저학번 편집장 한 명에게 몰린 것이었다. 교지 전체 인원은 8명 정도였으나 행정업무, 회의
진행, 중앙운영위원회1 참석 등 일을 편집장이 혼자 다 했다.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후술하겠지만,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일을 시키느니 내가
하는 게 더 편하다. 내가 2차 방정식 문제를 푸는 건 간단하지만 중학교 1학년 아가에게 인수분해와
근의 공식을 가르쳐서 문제를 풀게 만드는 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반드시 일을 시켜
야 한다. 이건 임원에게도 조직 전체에도 아주 중요하다. 아쉽게도 저학번이 이걸 할 수 있을 만한 배
포와 전략을 가질 가능성은 낮고, 이때 편집장을 맡아준 친구는 본인이 혼자 꾸역꾸역 다 하면서 교
지를 지켜주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어찌 됐든 이때 편집장 외 편집위원들은 교지를 열심히
안 했고 유령회원도 많았다.

떠난 이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내조직에 고학번만 너무 많다면 반드시 저학번을 더


뽑아야 한다. 지원자가 없으면 알음알음 지인의 지인이라도 누군가를 데려와야 한다. 저학번 혼자 남
으면 외롭고 재미도 없어진 나머지 저학번마저 떠나서 조직이 없어지든가, 온갖 부담감과 책임감에
짓눌리면서 괴롭게 조직을 이어가든가 둘 중 하나다. 혼자 남겨둬도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기대는 절
대 하지 말길 바란다. 본인이 20대 초반에 그게 가능했는지를 돌아보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2. 교지를 살리기 위한 전략들


교지를 살린다 함에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교지가 폐간되지 않는 것이
었다. 한울과 경민과 교지에 애정을 갖고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준 편집위원들이 그랬듯 교지라는 공
동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페미니즘, 노동, 장애, 기
후 등의 사회의제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부담스러워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곳, 각자의 글을 모두가 함께 고민해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교지가 오래오래 학교에 있
어주길 바랐다. 학생사회의 탈정치화 현상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00년대 교지들을 쭉 살펴보면 그 현
상을 문제시했던 사람들이 모두 교지와 대충 인원이 한두 사람 겹쳤다. 그래서 생활도서관 준비모임
‘단비’, 성소수자자치연대 ‘춤추는큐’, 여성주의학회 ‘담다디’, 사회과학대 청소노동자연대 ‘맑음’ 모두
지금은 사라진 단체들의 기록이 지면 한쪽에 역사로 남았다. 교지가 남았기에 우리도 그 기록을 참고
할 수 있었다.

교지를 살리기 위해 한울과 경민이 한 것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설명할 것이다. 사람들과 대
화하기, 체계 만들기, 타 단위 협력하기, 구성원에게 조직의 우선순위 올리기.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아직 길러지지 않은 독자를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각각의 목차는 독립적이므로 시간이 없다면 이 중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된다.

1)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및 풍연, 동연, 편협 회장들이 참석하는 회의. 주 1회 열리고 5개 언론사 대학부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참관, 속기록을 남겨 언
론사협의체 내에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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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람들과 대화하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굳이 쓴 이유는,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제
목의 ‘대화하기’는 일상적인 대화보다도 ‘저 사람은 왜 ~하지?’라는 물음까지 서로 토까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대화를 뜻한다. 그런 대화는 공격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한 비판,
모르는 내용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피상적인 ‘욕 안 하기’, ‘서로 존대어 쓰기’ 같은 일만 하면, 협업이 아니라 분업이 되기 쉽다. 강제로
만들어내는 피드백은 때론 말꼬리 잡기가 되기도 말이다. 예컨대 나의 경우, ‘왜 저렇게 돌려서 이
야기하지?’라고 생각하며 불편해했던 친구가 알고 보니 충청도 토박이였고, 그 친구는 나를 ‘왜 저
렇게 배려 없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지?’라고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한층 글 피드백 시간에 상
호 이해가 수월해졌다. 친구 둘이 만나도 이런 대화는 힘든데, 열 명 남짓 모이는 모임에서는 더더
욱 어렵다. 당연히 시간도 품도 많이 들지만 애초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일차적으로, 피드백이든 의견이든 회의 때 발언은 무조건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하게 강제한다.


서로의 성원권을 피상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도록, 남들도 다 하니까 나도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
도록 말이다. 순전히 실용적 목적으로, 큰 축의 양 극단에 너무 말을 안 하는 사람과 자기만 말하는
사람을 두고 처세술마냥 서술할 예정이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전략을 섞어서 쓰면
된다. 밑에 쓴 내용 모두 한 줄로 요약하면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내 얘기
를 하고 싶다면 전략적으로라도 남의 이야기를 먼저 묻고 들은 후에, 그와 유관한 지점의 내 이야
기를 해야 한다.’ 이다. 그리고 보통 이렇게 하면 저절로 내 얘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너무 말을 안 하는 사람은 말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게 하면 된다. 내가 무슨 인간관계론 쓴 카네


기도 아니고… 다 알진 못하니 경험에 기반해 서술하겠다. 예컨대 나의 경우, 학교 밖의 어떤 자조
모임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모임에 온 어떤 사람은 대화가 고파서 왔을 텐데도, 말소리 자체도 정
말 작고 본인의 차례가 오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도 고민하다가 그 사람만큼 작은 목
소리로, 아주 사소한 것부터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오셨는지, 모임은 어떻게 아셨는지, 말을
하는게 무서운지 아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싫은지 등. 보통 이런 자리에서는 돌아가며 말을 하
도록 권장하는데, “제가 대신 말씀해 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말씀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어보았
다. 처음엔 내가 이야기를 했지만, 3바퀴쯤 돌면 점차 본인이 말하기 시작했다. 반면 자신의 의견
이 총 대화 시간 중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지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
다. 자기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다. “나는 남 얘기 관심이 없어.”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남 얘기에 억지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면 된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
이 모여있을 때 “네 얘기가 궁금하지 않다.”고 해 버리면 너무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 경민은
이 지점을 계속 신경 쓰면 모임 운영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 되므로 넘어가야 한다는 쪽이다. 한
울도 동감한다. 그치만 어차피 뭐… 학생 모임인데 그럴 수도 있지. 이 경우 사회자 격인 사람이 어
떻게든 말을 끊고 다른 사람의 의견으로 넘어가자고 구체적으로 사람을 짚어 제시하여 간접적으로
제지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난 후 따로 만나 못다 한 한풀이를 들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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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화가 첫 번째냐면, 행정업무가 마비되는 이유는 보통 대화 결여이기 때문이다. 대학 안팎
에서 거쳐 온 조직들의 와해 마지노선은 행정업무의 마비였다. ‘너무 힘들고 다 관두고 싶다’를 어
떻게든 ‘OO일까지 OO 문서를 OO에게 대면 제출해야 한다. 나는 그때 OO한 급한 사정이 생겨 갈
수 없는데 혹시 대신해 줄 사람이 있나? 문서 작성이 어렵다면 OO에 O시까지 문서를 출력해 올려
두겠다.’ 정도로 풀어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요청을 했을 때 들어줄 사람이 응답할 사람이 있
다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그런 요청이 가능한 곳은 보통 평소의 대화에서 비롯된 상호 믿음이 존
재한다. 생계가 걸린 일과 교우관계 그사이 애매한 지점에 있는 대학 조직의 경우, 행정업무 마비
전에 담당 학생이 이걸 누구에게 어떻게 도와달라 해야 할지 모르거나, 아니면 네 탓이니 내 탓이
니 하다가 누구 하나 잠수타고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위에 쓴 문단은 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
이다.

2.2. 체계 만들기
조직에는 반드시 체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로는 일이 임원진에게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구성원이 조직에 책임감과 자기효능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이유가 의아
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체계는 일을 나누는 규칙이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지정
해놓은 것이면서 조직이 구성원에게 가하는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체계가 있을 때 구성원은
임원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할 일을 알 수 있고, 최소한 이정도 일
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이 조직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에 신입부원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알아서 찾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 동아리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체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도 일을 잘 나눌 수 있는 체계를 만들지는 못했다. 임원진이 조금


더 부지런히 일을 나눴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일이 소수의 인원에게 어느정도는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임원진이 그걸 감수해야 하다. 지나치게 절차상 민주적 조직 운
영을 추구하여 의사결정과정에 모든 구성원을 포함한다면 무엇 하나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중요한 일은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만 사소한 일은 임원진끼리 결정한 후 통보하거나,
임원진이 상의하여 선택지를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시도때도 없이 울리는 단톡방 알림
음에 구성원까지 피곤함을 느낀다.

체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임원진끼리 일을 나누는 것과 임원진이 부원에게 일을


주는 것. 임원진의 역할을 나누는 일은 교지 특성상 거의 없었다. 발행 주기가 짧은 타 언론사는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에 국장과 여러 명의 간부들이 역할을 명확하게 나누고 서로의 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교지는 긴 발행주기 덕에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편집장과 부편집장의 역할을 명확히 나
누지 않고 대충 ‘교지 운영 전반’으로 퉁쳐서 같이 했다. 편집장과 부편집장의 역할이 같기 때문에
한 명이 술 처먹고 자느라 회의에 불참하면 다른 한 명이 커버 치는 게 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한
울과 경민 모두 인간과 어울리는 것을 피곤해하기 때문에 엠티에 가는 것처럼 체력 소모가 심할 때
는 번갈아가면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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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임원진끼리 번갈아 하기로 정한 건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눈치껏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사
실 임원진끼리 대체가능하기 위해서는 임원진의 역량이 어느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
게 된 것은 아니었다. 22년에는 한울과 경민의 능력과 경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한울
은 휴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복학했고 경민은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못 가다가 22년 2
학기가 첫 대면 학기였다. 22년 2학기는 한울이 사실상 임원 역할을 혼자 하고 경민은 옆에서 조금
거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한울이 혼자 일을 다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하는 것에 가오가 상한 경
민이 최대한 한울의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따라해서 23년에는 나름대로 경민도 대가리의 역할
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이와 함께 한울이 술 처먹고 회의에 불참하는 빈도가 늘었다) 어떻게 배
우는지를 좀 더 구체화해 보자면,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한울이라면 이때 어떻게 할까?
를 떠올려보고 한울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학번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와 술자리를 가
질 때 어느 정도로 격의 없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말로 오디오를 채워야 할지 고민될 때 김한울에
빙의해서 따라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모면하다 보면 나만의 방식이 생기고 굳이 한울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못하는 자신을 적당히 못 견디는 것이다. 못하
는 자신을 너무 잘 견디면 잘하는 사람이 계속 일을 혼자 다 하게 되고, 못하는 자신을 너무 못 견
디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기도 전에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건 학내조직이
아니어도 모든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때 배운 ‘못하는 나를 견디기’가 후에 공부와 다른 활동
에서도 도움이 됐다.

조직마다 일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임원이 부원에게 일을 주는 것을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그


래서 사례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부원의 성격에 따라 일의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것 말고
알려주면 할 수 있는 단순한 일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지원팀에서 게시물 스티커 받아와서
홍보 포스터를 교내 게시판 곳곳에 붙이기’의 경우 가르쳐주면 부원이 할 수 있다. 학술적인 세미
나 기획 및 진행은 창의력, 지식, 사회성이 필요하지만 포스터 붙이기 같은 단순 업무는 어느 부원
이든 부담없이 시킬 수 있다. 아무리 단순한 업무여도 안 해본 일을 자기가 책임지고 하는 것에 부
원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이때는 부원이 실수해도 정말 괜찮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임원진이 함
께 책임져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부원의 두려움을 헤아려주면 좋다. 두 번째로 같은 일을 모두에게
시키는 것도 좋다. 교지에서는 신입 편집위원을 제외한 기존 편집위원이 모두 돌아가며 글 스터디
기획 및 진행을 맡았다. 모두에게 돌아가며 시키는 게 좋은 이유는 그중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
는 사람도 있을 텐데, 잘하는 사람을 보고는 배울 수 있고 못하는 사람을 보고는 ‘나도 못해도 괜찮
다’고 안심하고 더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교지 글 스터디 기획과 진행은 모두
다 잘했다! 임원인 경민이 가장 못했다…) 세 번째로 단기 행사는 부원 한 명을 책임자로 지정하여
믿고 맡길 수 있다. 교지의 경우 청년문학상이었다. 단기라 하더라도 행사는 일이 많다. 여러 일
중 혼자 해낼 수 있는 일과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분리해서 알려주었다. 심사평 요청
메일 발송 및 답신은 연락에 관한 것이므로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출품작 취합은 시/소설/
수필/비평이라는 분야가 나뉘어 있기에, 취합의 매뉴얼만 명확히 서 있으면 사람을 나눠 일을 시
켜보는 경험을 배울 수도 있다. 단톡방에 ‘도와줘!’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이때 임원진이 할
일은 도움을 요청하면 반드시 한 명은 응답할 것이라는 밑밥을 단단히 깔아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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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타 단위 협력하기
사람이 아주 적다면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단위와 함께 협력해 더 의견 교류가 활발한 장
을 열 수 있다. 일단 임원이 여러 군데 계속 기웃대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김한울의 경우 독점 공
간이 없어 조직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대~충 사회적 의제에 민감한 단위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
다 찾으면 교지실로 꼬셔와서 같이 책 읽는 게 취미였다. 딱 말해서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
회 의제에 목소리 내는 단위 하나하나 얼마나 귀한데 공간 없어서 사라지는 게 말이 되나.

하여튼, 타 단위 협력의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있다고 믿을 것’이다.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이 분명 있다고 믿을 것. 에타, 서담 보고 지레짐작하지 말고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행동력 있
는 학생이 있으리라 믿고 시작하면 된다. 서로 친구가 아닐지라도, 그냥 모임을 굴리는 데에 공통
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에서 오는 동지의식 같은 게 조금 있잖나? 실제 예시를 들어 설명하겠
다. 막 대면학기가 시작됐을 무렵이었나,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와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의
4주차짜리 독서모임이 있었다. 둘 다 독서모임을 열고는 싶은데 사람이 없어서 곤란해하는 처지였
다. 인권과 비거니즘은 따로따로일 리가 없는데, 생태-사회주의도 있고, 공장식 축산과 공장 노동
자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교차점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럼 2주차, 2주차를 합쳐서 해 보자 권유해
서 합쳤다. 그럼 적어도 노고지리 하나 서리태 하나 제안한 나 하나 총 세 명이 모이니까. 결론적
으로는 점차 사람이 불어 마칠 때쯤에는 6~7명이 됐다. 도저히 못 찾겠다면 구글에 검색해 보면 된
다. 만약 그런 사람이 없을지라도 페이스북 등에 이런 짓을 많이 해 봤던 선배들의 기록이 있다. “
서강대학교 청소노동자” 이런 식으로, 학교 이름 옆에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보면 된다. 그 과정에
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와 다른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의 차이,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의제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게 아니려면 독서모임 책은 어떻게 선정
해야 할까 등을 고려해 볼 기회를 얻는 건 덤이다.

2.4. 구성원에게 조직의 우선순위 올리기


구성원에게 조직의 우선순위를 올리는 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 조직의 활동을
등한시하지 않고 하도록 만드는 것, 두 번째로 조직에 애정을 갖게 하는 것. 바쁜 대학생이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늘 벌여놓은 일 중 몇 개는 놓아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구성원이 조직의 활동
을 등한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활동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한다. 최소한 이건 해야 한
다! 하는 것들 말이다. 조직이 너무 산발적이고 즉흥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면 구성원도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으붸뷉?하다가 흐지부지된다. 매일 연대 요청을 단톡방에 올리면 구성원이
단톡방 알림을 끄거나 나가버릴 수 있다. 조직 구성원이 참여로써 효용감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체
계적인 사업이 필요하다. 교지의 장점은 활동의 마지노선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편집회의에 종종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구성원이 교지에 글을 최소한 하나는 실어야 한다. 최종 원고를 인쇄소
에 시간 맞춰 못 보내면 큰일난다. 글을 쓰는 것 외의 모든 활동은 모두 편집위원 자율이다. 교지에
애정이 있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 (임원진이 일을 시키면)한다. 자발적으로 일을 찾아서 할 것이
라는 기대는 하지 말길 바란다. 구성원은 임원진의 생각보다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한
번 알려준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 꼭 구성원을 지정해서 일을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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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직의 구조를 탄탄히 하는 것 외에, 구성원이 조직에 대한 애정을 느껴서 조직을 중요
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앞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기’를 참고하길 바란다.
대화하는 것 외에 임원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동아리방에 상주하며 구성원을 일단 많이 보는
것이다. 이때 전제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아리방이 없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우나
일대일로 만나는 수밖에 없다. 이것도 녹록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정동아리 신청을 해서 방을 얻는
것을 추천한다. 임원진이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한다. 한울은 편집위원들이 교지실에 자주 찾아
와서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커다란 냉장고를 당근에서 18만원에 들여왔다. 그리고 임원진이 사
비로 씨리얼, 두유, 떡, 과자, 컵라면 등을 교지실에 두었다.(임원진이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선배
들 돈을 뜯어내야 한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찾으면 기쁜 마음으로 돈을 준다.) 그리고 공통의 학문
적 관심사를 찾아 수업을 같이 듣는 것도 추천한다. 22년 2학기에 ‘여성학고전강독’을 들은 8명의
수강생 중 교지 구성원이 4명이었다. 그래서 이때의 루틴은 2교시에 여성학 수업을 듣고 교지실로
가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생활공동체에 가까웠다. 고맙게도 편집위원 난희는 구운계란
을 한 판 사다 놓았고 포도마을에서 온 이레는 부모님이 농사 지으신 샤인머스켓을 교지실 냉장고
에 넣어뒀으며 지연은 동네 비건 빵집을 털어왔다. 이때 놀기도 많이 놀았다. 이레의 쌉소리 듣기,
생일파티, 술 (많이 말고 자주) 마시기 등등 임원진이 즐길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며 놀면 된다. 놀면
서 구성원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는 없고, 말이 없
어 보여도 사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이 공간에
서는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아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
도의 인정은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면 점점 느슨한 연대가 이어주는 공동체가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2.5.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


다음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의 예시이다.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기 어려울 수
있고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면 알기 어렵기 때문에 기록해 두고자 한다. 학교에서 무언가 일을 벌
일 때의 전제는 학교는 학생이 하고 싶다고 하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님이든 교직원이든
학교 청소/시설 노동자든 도움을 요청하면 그들은 기특해하면서 해준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도와달라고 하고 적극성을 보이면 뭐든 된다.

교수학습센터 스터디그룹
3~6명의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이 스터디그룹을 꾸려 신청하면 활동지원금 5만원도 받을 수 있다.

소모임 만들기
정동아리 아니어도 소모임을 만들어서 홍보할 수 있다. 홍보 포스터 만들어서 우정원 2층 학생지원
팀에서 게시물 스티커 발급받아서 포스터를 교내 게시판 곳곳에 붙일 수 있다. 발급이 안 되면 그
냥 냅다 붙이고서 “몇 월 며칠까지 자발적으로 수거하겠다”는 단서조항을 붙이면 근로학생에게 민
폐가 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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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거리제 부스
매 학기 초에 동아리 연합회에서 동아리거리제를 한다. 정동아리가 아니더라도 부스를 신청하여
열 수 있다.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는 비건 관련 퀴즈를 맞히면 비건 간식과 대나무 칫솔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23년 1학기에 노교지리태(노고지리+교지+서리태)는 인권김밥천국 부스를 열었다.

김의기기념사업회 사회적 가치 프로젝트(www.kimuigi.org)


서강대학교 학부 재・휴학생이 개인 혹은 팀을 꾸려 사회적 가치 실현과 확장에 관련된 활동을 하면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사회적 가치 프로젝트 운영 중 공간이 필요하다면 아루페관
2층에 있는 김의기사업회 사무실도 빌려쓸 수 있다.

연사 초청 및 강연 듣기
원하는 연사를 학교에 직접 초청하여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연락할지 모르겠으면 메일로 냅
다 “서강대 학생인데요, 선생님의 강연이 듣고 싶습니다!” 하면 따스히 맞아주실 것이다. 단가를 모
르겠으면 “정말 몰라서 여쭙는데 강연료 어느 정도 드려야 하나요?”하고 물어보면 된다. 패기있게 “
무료 강연 가능?” 하고 물어볼 수도 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정 돈이 없으면
이렇게 물어봐도 된다. 대학생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하다. 서강대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를 J관에 초청하여 다큐멘터리 <출근길, 지하철 탑니
다>의 GV를 열었다.

강의실 대여
동아리방이 없을 때 강의실을 빌려서 영화 모임, 스터디 등을 하는 게 가능하다.
SAINT > 시설 > 시설물 예약 > 신청 또는 대여 원하는 건물 담당 전공 행정실에 문의

강아지 (강의실 아지테이션)


홍보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관련 수업을 돌면서 수업 전에 홍보할 수 있다. 교지에서는 청년문
학상 홍보를 학교의 문학, 미디어 관련 수업들을 돌면서 했다. 교수님께 메일로 “수업 전 3분 정도
홍보 가능할까요?”하고 물어본 후에 홍보하면 된다.

인성교육센터 김민회 신부님께 헬프 요청


학교에서 하고 싶은 활동이 있는데 지금까지 활동을 직접 꾸린 게 없어서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
다 하면 일단 교목처의 김민회 신부님께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보길 바란다. 학생단체와 일을 많
이 해보셨고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최대한 도와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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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리는 왜 타인과 함께해야 할까?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집은 인권이다

환경운동, 위기를 직면하다

빠순이가 되~
- 젊은 여성 팬은 케이팝 내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 -

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어

안녕 나는 바이

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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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과 함께해야 할까?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사진 출처 : 최인기. “빈곤철폐의 날, 가난한 나의 목소리를 들고서”, 2019.10.13, 비마이너

여경민
ykm5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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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사기획 창에서 제작한 ‘쪽방촌 계급사회’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 글의 자료조사를 하던 중
에 보았지만 계획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 어떤 ‘마주침’에 가까웠다. 자본주의와 탈정치에 대한 이
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를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반빈곤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튜브에 쪽방촌을 검색해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의 첫 장면에서 건
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에 난 작은 창문으로 노인이 담배를 폈다. 창으로 햇빛이 거의 들지 않
는지 창틀에는 곰팡이 같은 까만 얼룩이 가득했다. 뒤이어 노인이 사는 한 평 정도 돼 보이는 방과
방에 있는 바퀴벌레, 방치된 음식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었다. 동자동 쪽방촌의 집주인, 중간 관
리자, 입주민 사이의 위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과할 만큼 보는 이의 불쾌감과 동정심을 자극하기
로 작정한 것 같았다.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존재하는 듯했고 유일한 희망은 주
민들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마을 목사인 것 같았다. 영상을 보고 나서 부끄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
다. 내가 강 건너 멀지 않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중산층의 삶밖에 모르고서 책으로만 자본주의를
읽었던 것이, 그런 채로 졸업이 다가온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밖은 영하 10도였다.

죄책감과 부채감을 느끼다가 이 글을 기획했다. 2023년 한 해 동안 자본주의를 몰아내기 위한 투


쟁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고,
입으로는 자본주의 반대한다고 하지만 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공모하길 행했다는 나의 이중성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비겁한 고민을 했다. 내가 우연히 쥘 수 있었던 특권을 유지하기만 하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안락한 삶이 이어지지 않을까. 왜 연대해야 할까? 꿘수저(운동권 부모의 자녀)
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입된 당위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빈곤
사회연대1의 김윤영 활동가를 만났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에서 ‘보수적인 고등학생’이었다가 대학교에서 페미니즘 세미


나와 각종 투쟁 현장을 접하면서 큰 변화를 겪으셨다는 걸 봤어요. 투쟁 현장에 처음 발을 내딛기
가 쉽지 않잖아요. 그때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 저는 사실 그게 그렇게 큰일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학교에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 항의하기 위해서 언제 어디에 모일 거다. 이
런 대자보를 보면 나도 이 얘기에 동의하는데 왜 이 사람들은 무언가를 그래서 하고 나는 안 하지
이런 질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혼자라도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는 내가 평생 운동
에 투신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 실천하는 게 맞고 할 수 있
는 것부터 해보자는 작고 가벼운 마음으로 연대 현장에 갔었어요. 큰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1) ‘빈곤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투쟁하는 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빈민 대중
들이 함께 모여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에 저항하는 연대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개정운동이나 주거권 투쟁 등 빈민들에 대한 차별과 권리 침해
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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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면서 내가 한 운동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 아니요. 정책을 우리가 실제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이전에는 전혀 인정받지 못 하던 이야기나


목소리가 주목받기도 할 때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 변화가 활동가 개개인들의 활동을 통해서 만
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에 변화에 대한 욕구가 이미 있고 그 욕구를 주목하게 만
들고자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여러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이 없었어도 변화는 일어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활동가가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주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에 그렇게 생
각했으면 저는 활동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 무겁고 어렵잖아요.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세상
이 바뀌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변화를 어떻게 잘 맞이할까 고민하는 게 활동가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했던 주장이 먹히지 않는다고 과하게 무력감에 젖어들 필요도 없고요. 활동가들의 주장이 옳지만
당장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얘기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무력할 이유도 없고 그리
고 만약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게 자신의 성과라고 생각해서는 더더욱 안 되죠. 활동을 하면
서 느끼는 무력감도 보람도 완전히 제 것이 아니니까 너무 무력감에 빠져있지 않으려고 해요. 그
렇지만 우리가 계속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위한 활동을 해왔는데 또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한
사람이 주검이 되는 일을 겪으면 당연히 무력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죠. 그 감정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서는 동료도 필요하고 그것을 또다른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요.

저랑 같이 교지 하는 한울이 선생님이랑 저녁 먹으면서 “집회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인지 회의감이


든다.”고 얘기했을 때, 선생님께서 당장 바꾸는 것보다도 그곳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
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답해주셨다고 들었어요.

► 한울에게 그런 얘기를 했군요. 그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틀린 얘기는 아니네요. 전국장애인차


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님이 이런 얘기 자주 하세요. 누군가 대표님께 운동 좀 세련되게 해라, 인
플루언서를 활용한다든지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든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거둘 수
있는 방식으로 운동해야지 이런 얘기를 했나봐요. 그런데 박경석 대표님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항상 얘기하세요. 사람이 사람을 실제로 만나서 만들 수 있는 관계가 힘의 뿌리인 거죠.
그래서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생각이 변해야 해요. 생각이 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처한 처지나 그 사람의 요구가 달라지는 경험들이 쌓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해요. 여기에서부터 변화의 뿌리가 서서히 만들어지는 것이지 좋은
주장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것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시설에 나가서 살고 싶냐고 물으면 아무도 나가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나가서 사는 게 선택지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나가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게 진짜 선택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죠. 시설 밖 삶이 무엇인지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고 나서야 시설에서 나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거잖아요. 그럼 시설
을 나가서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면 뭘 해야 할까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거죠. 시설 밖 사람들
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보고, 시설에서 시간 되면 주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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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요리를 해보고 내가 요리를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알고 이런 것들이 끊임
없이 반복되어야 내가 시설에서 나올 것인지 진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가
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시설 밖 삶을 원할 수 있는 거죠. 그럼 시설에서 나와서 사는 삶이 가능
하다는 것을 체험한 거잖아요. 그럼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도 가능하다는 증거가 돼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탈시설이 효율적이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시작될 때 달성가능한
것이 돼요. 설사 그 과정에서 엎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이걸 원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으면 아
직 끝나지 않은 거거든요. 그 이후에 다시 싸울 수 있죠. 대선 한 번 총선 한 번에 그 의제가 꼭 채
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주장할 수 있겠죠.
저는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게 진짜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운동을 할 바에야 성공을 해서 대
통령을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렇게 강한 사람이 뿅 나타나서 만들어주는 변화는 그게 언제
사라져도 막을 방법이 없고 이상하지 않은 변화인데 만약 사람들이 실제로 힘을 합쳐서 변화를 만
들어내면 어떤 권력자가 나타나도 그것을 함부로 뒤집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활동은 우리가 관
계를 통해서, 집회를 통해서 변화를 만드는 순간을 계속 쌓아나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문제를 겪지 않는 사람들에게 반빈곤 운동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 반빈곤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 빈곤문제에 대해 아주 보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 안정을 위해 복지제도가 필


요하다고 얘기해요. 그런데 이건 너무나 빈곤한 사람들의 문제를 타자화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차별적이죠.

사회연대적 관점에서 빈곤 문제를 생각한다면, 이 사회에 누군가 가난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


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상태라고 생각하면 설사 내가 그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할지
라도 이것은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래서 이
것을 다같이 거부하고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권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다라고 생각하는
게 반빈곤연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연대의 방식이 ‘나의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라기보다 ‘가
난한 사람에게도 권리가 있을 때 우리 모두가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라는 증거다’라는 것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코로나 때 누구나 백신을 맞을 수 없고 소득 상위 10%만 백신을 주겠다고 했으면 어


땠을까요? 집이나 고급의 교육은 앞서 말한 방식으로 분배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생존과 떨어
져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요. 실제로 많은 나라들에서는 이렇게 무상의 백신 정책을 사용하지
않기도 했을 거예요. 백신을 충분히 수급하지 못해서 고위층만 먼저 맞는 일들이 왜 없었겠어요?
어느 나라에서는 분명히 있었을 일이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게 그
래도 상식으로 있었던 거잖아요. 이 상식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 필요해요. 특히 생존에 관련된
필수적이고 공적으로 소유해야 마땅한 것들의 범위가 충분히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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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 빈곤이 있다면 그 빈곤을 내가 경험할 때 공적으로 소유된 것들이 나에게 돌아온다
는 게 기본적인 전제예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50% 가까이 돼요. 이 노인 빈곤율이 유지된다면
우리가 노인이 되면 50%의 확률로 빈곤층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50%의 확률로 노인 빈곤층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그 사회
에 살고 있는 나는 노인이 되었을 때 50%의 확률로 빈곤층이 되지 않을 수 있겠죠. 빈곤이 덜 발
생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가난에 처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가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빈곤이라는 사회
적 뮈협을 조금씩 해체해 나가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것이 반빈곤 사회연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내가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피할 수 없고 확률적


으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발생하는 문제예요.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모두가 악다구니를 쓰는 거잖
아요. 더 많은 경쟁을 통해서 이 경쟁을 합리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그만큼 빈곤을 발생시키지 않
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짜로 합리적이라서 운동하는 거예요.
충분히 나눌 수 있는데 그만큼 독식하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엄청 경쟁을 해서 소수가 거의 모든
것을 독점하고 언제나 고정적으로 빈곤층을 만드는 사회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 중간에 있는 사
람들은 가난에 처할 위험부담을 자기가 다 끌어안고 살아요. 예를 들어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면서 엄청나게 많은 대출을 받는다든지, 실제로 성취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데
막대한 사교육비를 지출한다든지 이런 걸 그냥 개인의 투자라고 이름 붙이잖아요. 그리고 가족들
에게 돌봄을 다 맡겨놔요. 돈 많은 가족들은 시장에서 저렴한 여성 노동력 혹은 이주민 노동력을
통해 구입해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 누군가 함께 아프기 시작하면서 돌봄 위기와 노동의
위기가 같이 오죠. 그러다 잘못되면 그 사람은 가난해지거든요. 그런데 가난을 감당하는 사람들
은 가난의 발생을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보고 우리 사회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기본적 돌봄이나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사회면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변화하면 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데 왜 변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데. 규칙을 바꾸면 되는 거잖아요.

빈곤 문제에서 당사자를 명확히 가릴 수 있을까요?


빈곤 문제뿐만 아니라 어떤 사회의제든 정말 당사자를 명확히 가르는 게 되나 하는 의문이 들어요.

► 당사자가 아주 명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묘한 구석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인 조건이 당연히 있기는 해요. 실제 빈곤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사고 싶은 물
건 못 샀으니까 나도 가난하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루스 리스터의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의 빈곤을 수레바퀴 모형
으로 제안해요. 예전에는 피라미드 모형으로 주로 접근했는데 이런 위계적인 모형으로는 현대의
빈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수레바퀴 중심에 물질적 핵심, 혹은 ‘용납할 수 없는 곤란’이 있고
바퀴의 둘레 부분은 물질적 곤란에 처한 사람들이 겪는 빈곤의 관계적, 상징적 측면을 나타내요.
관계의 결핍,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다는 대표성의 결핍, 지역사회에 소속되지 못하
는 정체성의 위기 이런 차원인 것이죠. 저는 이런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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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물질적 결핍이라는 핵심을 간과하자는 건 절대 아니고요. 왜냐하면 돈이 없다는 것은 자본
주의 사회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의 박탈이거든요. 그렇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빈곤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우리 모두 반빈곤연대의 당사자일 수 있죠. 반빈곤연대를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게 반드
시 빈곤 당사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죠.

반빈곤운동이 결국에는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운동이잖아요.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 복지를 강화한다고 빈곤 없는 세상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을 발생시키는 우리 사회의


고리를 끊어내어야만 빈곤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고리를 끊는 과정이 체제전환의 문제
의식이랑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빈곤의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저는 되게 우려스러워


요. 고시원이나 쪽방 월세가 주거급여 오르는 만큼 올라요. 정부가 거의 무이자로 전세 대출을 시
행하니까 그 한도 선에 맞춰서 전세 보증금이 다 올라버렸단 말이에요. 그렇게 시장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면 오히려 시장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훨씬 증폭될 수 있다
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단편적인 제도 하나나 복지제도의 개선 같은 것들로 빈곤 문제 해결은
절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이 제도들이 필요 없거나 요구해선 안 된다는 게 아니
라, 당면한 제도들을 계속 요구하고 우리의 설 자리를 넓혀가는 동시에 이 세계가 굴러가는 질서,
체제 자체에 대해서도 계속 의심하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체제 전환을 많이들 말하는 이유는 현재의 체제에 다들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데 다들


명료한 대안이 없는 거죠. 이제 그 내용을 채워야 해요. 내용을 채운다는 게 없었던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니고, 기존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주장들과 운동들을 하나의 체제 전환의 문제의식과 실
천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 같아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겪었던 실패가 있기 때문
에 공산주의가 다 끝난 시도처럼 보이지만 또 그렇지는 않잖아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했
던 실험이 있고 효과적이었던 부분, 실패했던 부분을 잘 보면서 대안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겠죠.
예를 들어 모성권을 위한 휴직 제도는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 처음 시작했던 것인데 지금은
복지제도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도 이미 들어와있잖아요. 그래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잘 해
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연대의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빈곤사회연대에서 여름마다 진행하는 반빈곤 현장 활동도


있고 집회나 강연에 관심있는 주제들이 있으면 참여하는 것도 있고요.방식은 너무나 다양해서 어
떤 것부터 시작하라거나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하긴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나랑 다른 상황에 있
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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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하잖아요. 나랑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을 계속 만나보고 이해해보
고 또 나의 기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도 해보고 이런 게 쌓일수록 더 열린 태도로 살 수 있
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최소한 조금 더 열린 태도로 생각해 볼 수 있
지 않을까 합니다. 연대할 때 1차적으로는 연대를 받는 사람과 연대를 하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일은 절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답니다. 관계라는 것은 앞으로도 어떻
게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사람이 처한 상황에 내가 도움주러 간다고 생각하기보다 이 사람
이 겪고 있는 상황을 내가 함께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갈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 후에 내 머릿속을 굴러다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불완전하게나마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연대할 때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이 종종 신경쓰일 때가 있었다. 전장연 지하철 선전전에 연대
하러 갔을 때도, ‘사실 나는 장애인의 삶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장애인 친구나 가족도 없는데 내가
마치 장애인의 삶을 안다는듯이 피켓을 들고 서있어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여성
페미니스트들이 남페미를 향해 “네가 뭘 안다고 페미하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장애운동
을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만 할 이유는 없다. 시스젠더 남성이 페미니스트라고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고, 반빈곤연대의 당사자가 빈곤 당사자일 이유도 없다. 연대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 당사자이다.

한울이 김윤영 활동가에게 했던, “집회에 가는 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질문은 나도 곧잘 했던 생


각이다. 김윤영 활동가를 만나기 2주 전 용산참사 15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교지 편집위원 둘과
함께 취재하러 갔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용산업무지구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
난 용산 지역 철거민들과 그에 연대하는 타 지역 철거민들 5명, 대치 중이던 경찰 1명이 화재로 인
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이때 무리한 진압을 지시한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은 이번에도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까지 되지 않고 있으며
세입자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는 재개발재건축은 규제가 완화됐다. 그러나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
다. 2009년 이후 유가족과 살아남은 철거민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은 15년째 싸우고 있다. 이들이,
연대하는 우리가 투쟁하길 멈추지 않는다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타인을 너무 겁내지도 말고, 당장 바뀌지 않아도 담담
하게 받아들이면서 타인의 삶을 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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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권이다

사진 출처 : 한겨레신문 김명진 기자 ‘철거진 참사 부른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

여경민
ykm5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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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8일 아침 용산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용산참사 15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철거민 5명과 경찰특
공대 1명이 목숨을 잃었고 23명이 부상당했다. 2007년 서울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급하게
추진했고 당시 용산에 살던 세입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참사 전날, 용산 지역 철거민들
과 전국 15개 재개발지역의 철거민들이 연대하여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점거 농성을 했
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는 집회・시위에 강경 대응을 기조로 삼고
있었다. 참사 전날 당시 현장은 정보관들이 철거민들과 협의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지
만 경찰지휘부는 조기 진압 및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철거민들에게 책임
을 미루었다. 마땅한 대책 없이 집을 빼앗긴 사람들의 권리를 외치던 철거민들은 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속되었다. 무리한 진압을 지시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현 국민의힘 국
회의원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용산참사 유가족과 연대
단체로 구성된 용산참사 15주기 추모위원회는 김석기 의원의 총선 출마와 윤석열 정부의 재개발・재
건축 규제 완화를 비판했다. 개발 전 전세가격이 5000만원 정도 하는, 세탁소와 소박한 식당이 즐비
하던 마을이 개발 후 전세 20억의 상업지구가 됐다. 신용산역 주변 남일당 건물 자리에는 4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5년 전 용산참사를 촉발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책임자다. 그럼에도 아
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개발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더욱 빠르게, 더욱 많이 개발하려고 하고 있
다. 실패한 용산정비창 부지의 ‘국제업무기구’ 개발도 재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는 서울 도심 대규모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삶과 생존의 터를 일궈온 선주민을 비롯한 세입자 이주대
책 등 용산참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은 빠른 개발은, 빨리 내쫓기 위한 폭력의 강도만 높인다.
도시 경쟁력을 내세워 자본에 유리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용산을 또다시
투기와 개발의 링으로 몰아넣어 죽음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을 소유하고 있든 아니든, 그곳을 집으로 삼던 사람들의 주거권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집이
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열악한 환경의 쪽방은 선주민에게 거주우선순위를 주어 사람이 살 만한 공
공임대주택으로 개발해야 한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여 멀쩡한 집을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민간개발로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가진 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다. 사람 사는 집을 짓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개발을 반복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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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운동, 위기를 직면하다

Illustration: Rebecca Zisser/Axios

부지희
(철학 23, 외부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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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생하는 환경적 재난이 자연적 변화의 결과가 아닌 인류의 산물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화
석연료의 85%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용된 양이며, 이밖에 다른 원인들과 결합해 대기 중에 배출
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2016년에 체결된 파리 기후 협약은 지구
의 온도를 2도 상승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우리의 행성은 2100년까지 기온이 섭씨
4.5도 이상 증가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전 지구적 기후 변화는 해수면 상
승과 생물권 파괴, 폭염, 가뭄, 태풍 등의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며 난민과 사
망자 등 추가적인 시스템상의 문제 역시 불러온다. 이미 인도, 마이애미, 중국과 몽골 등 지구촌 곳
곳에선 분노한 자연에게 삶을 위협받고 있는 거주민들의 소식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환경 운동은 위 같은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기존 사회와 질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과 대안책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문제의식을 느낀 시민 누구나 환경운동에 참여
할 수 있으며, 일부 권위가 있거나 유명세를 지닌 학자나 연예인, 정치인 등이 그 운동의 중심이 되
기도 한다. 『생태의 시대』의 저자 요아힘 라트카우는 냉전 이후 탈긴장 시대가 도래함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환경 의식이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최초로 달 궤도에서 찍은 지구 사진은 하나의 행성
단일체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렸으며, 베트남 전쟁 중의 생태계 파괴, 인구 과잉으로 인한 불안 등
1970년을 기점으로 환경은 국제 사회의 중요 의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저자는 1970년 전후를 ‘생태
혁명’으로 칭하고, 이후 환경운동의 역사를 ‘생태의 시대’라 이른다. 이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사그
라든 이후 환경 담론이 새롭게 문화 속에서 부상했다고 분석한 『가이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의 관
점과도 유사하다.

지금도 환경 운동은 사회・문화・경제적인 맥락 속에서 다양하게 의미를 구성하며 시대에 따라 변


화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종류의 환경 운동이라도 실존하는 위협을 가시화하고 담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는 점에서 그것은 미래 지구를 위한 전인류적 협력에 기여하는 가치를 지닌
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의 환경 운동은 내, 외부적인 한계와 도전을 직면한 상태다. 외부적으로
는 반(反)환경운동, 내부적으로는 기존 환경운동 방식의 문제점과 모순적인 극단주의 환경운동 그
리고 공포마케팅의 폐해가 환경 운동의 가치를 위협한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반(反)환경주의는 거짓 이론이나 포퓰리즘의 형태로 환경운동의 외부적인 위협으로써 직


접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민중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즘은 선량한 시민과 엘리트 집단을 이원
적으로 구분하고 다수인 전자가 소수인 후자의 이데올로기에 속고 있다고 선동한다. 환경운동 역
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은 환경주의자들이 지구의 자정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거나, 혹은 기
후 재난이 인간 활동의 결과가 아닌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라거나, 때로는 재해에 관한 뉴스 자체
가 가짜라는 논리를 펼친다. 대표적으로 파리협정에서 탈퇴한 트럼프 정부와 ‘기후 히스테리가 노동
자들의 입에서 소시지를 빼앗을 것’이라 주장하는 핀란드의 포퓰리스트 정당이 그 예다. 잘츠부르크
대학의 정치학 교수 로버트 휴버는 포퓰리즘적 태도, 기후 회의주의, 기후 및 환경에 대한 정책 지원
의 감소가 상호 연관적임을 데이터로 밝혀낸 바 있다. 그는 기후와 환경 정치의 본질은 추상적이고
과학적이며, 탈물질주의적 문제의 대표적인 예이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이 이를 쉽게 시민들의 일
상적인 필요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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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브록의 비유처럼, 사람들은 런던 방공호의 시민들과 다르지 않아서 당장 하수도의 나사
를 빼가는 도둑들보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폭격을 두려워한다. 몇 십년 안에 영토의 절반이 잠긴
다는 사실보다 당장의 GDP수치와 산업 위기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측면
에서, 자연을 착취한 인간의 활동을 ‘원죄’ 따위의 구시대적이고 신화적인 용어에 빗댄 표현은 그다
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슬프게도, 종의 존속을 추구하는 유기체는 그 숙명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없어서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생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의 유전
자를 뜯어 고칠 수 없다면, 환경 운동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죄의식과 동정심 같은 감정은
어느 정도 힘을 지닐지도 모르나, 이런 감정은 여전히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환경 운동은 전지한 인간의 위치를 다시 자연 속의 모든 구성원들과 평등한
관계로 끌어내리고, 인류의 생존 본능을 촉진해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더욱 공포스럽고 단호한 경고를 드러내보이는 방식만으로 대중의 참여를 독


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은 사람들의 실천을 이끌어 내기 위해선 구체적인 해
결책 또한 동등한 비율로 제시되어야 함을 간과한다. 역사적으로 공포로 유발된 동기가 끝내 허무
주의나 프로파간다로 흘러 더 큰 악을 발생시키는 사례가 얼마나 많았는가. 반복되는 환경에 대한
희망 없는 경고는 오히려 대중에게 허무감을 느끼게 하고 문제의식을 둔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는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이들도 사태의 악화되는 측면만을 목격하면 자신의 활동이 무용하다 느끼고
무기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래의 환경운동은 극단적이고 모순적인 일부 환경운동을 배격하지 못했다. ‘에코


파시스트’라는 멸칭으로 비판 받는 극단주의 환경운동가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환경주의에 대한 부
정적인 인식을 형성했으며 이는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운동까지 위축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대표적
으로 영국의 환경 운동 단체 ‘Just Stop Oil’은 명화에 오물을 끼얹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 비합리적
인 방식을 사용한다. 심지어는 건축물이나 매장에 페인트나 꽃가루를 뿌리기도 하는데, 이런 식으
로 자원을 낭비하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행위가 과연 환경운동의 정의에는 부합하는 것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한다. 환경주의자들은 계몽의식에서 비롯된 과격한 운동을 경계해야
하며, 내부에서도 그들에 대한 지속적인 반대와 제재의 목소리를 내어 환경 문제의 논점이 흐려지
는 것을 막아야 한다.

환경운동이 반환경주의자들로부터 담론을 지켜나가고 유의미한 결과로 나아가기 위해선 앞서 언


급된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환경운동은 공적인 목적을 지녔지만 인간의 행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프로모션(promotion)의 성격을 지닌다. 대중을 계몽시킨다는 선민의식에 도취
하는 대신 그들의 입장에서 마음을 움직이고 효과적으로 설득력을 획득해야 한다. 따라서 우선, 시
민들에게 환경 운동이 자신들과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인식시키는 절차가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직면한 위기를 두려워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당위성과 경각심을
유발하는 방법에서는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가 어떻게 지금 바로 나
의 터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강조하는 것이다. 봄철에 아름답게 꽃을 피워야 하는 벚나무가 해
가 지날수록 시들해지고 색을 잃어가는 모습이 고온다습해진 기후변화로 인해 병들고 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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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밖에도 대전 지역은 가뭄로 인한 고통이, 동시에 경기도의 일
부 지역에선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직접적인 기후 위기 소식
을 접한 사람들은 그제야 행동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환경 문제가 당장 체감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


다. ‘도둑들이 하수도의 나사를 빼간다’라고 알렸을 때 ‘경찰과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 라며 특정 집
단의 책임과 몫으로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정의로운 시민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며 낙담하고 돌아서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 환경 문제의 당사자이고 우리의 행동이 확실히 이
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면 그들은 액션을 취할 것이다. 효과적인 환경운
동은 나아가 대중이 포퓰리즘에 선동되는 것 또한 방지할 수 있다. 인류의 노력은 정말 효과가 없
는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을 우리는 이미 오존층이 수복되는 과정에서 확인한 바 있다. 1987년 세
계 각국이 ‘몬트리올 의정서’를 통해 오존을 파괴하는 CFC기체를 전면 금지한 이후, 2006년까지 줄
어들던 오존층은 회복세를 보여 그간 손상된 오존층이 2040년까지 대부분 회복될 전망을 보이고 있
다. 국제적인 공조와 확실한 정치적 행동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희망적인 사례
다. 『2050 거주불능 지구』의 저자 데이비드 윌러스는 “기후변화의 파괴력 앞에서 우리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역시 착각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지구 위 인간은 ‘충분히 하지 않아
도 될 일’을 삼가기만 해도 지구와 인류의 지속에 기여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소비와 자원의 낭비
를 피하고, 잔반을 줄이는 일 등 말이다. 여기에 더해 정치적인 차원의 움직임, 즉 유권 행사와 서명
운동, 집회와 보이콧 등의 활동까지 모아진다면 반환경주의적인 정치인들도 더 이상 거대한 요구
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환경운동은 이를 효과적으로 독려하는 방향으로 나아
가야 한다.

참고문헌 및 출처
데이비드 월러스, 김재경 번역, 『2050 거주불능 지구』, 추수밭, 2021.
김선미. “세계화에 따른 한국 환경운동의 변화 - 기후변화 의제를 중심으로.” 담론201, vol. 11, no. 4, 2009, 119-147.
요아힘 라트카우, 김재경 번역, 『생태의 시대』, 열린책들, 2022, p225~230.
박성준, “역사 속 세계 환경운동 거대한 흐름 조명
”, <세계일보>, 2022.05.28., https://m.segye.com/view/20220527515687
제임스 러브록, 홍욱희 번역, 『가이아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갈라파고스, 2023,
Landry, N., Gifford, R., Milfont, T. L., Weeks, A., & Arnocky, S., Learned helplessness moder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en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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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성, “”이상기후로 내년 아름다운 벚꽃 기대하기 어렵다”, <경남도민신문>, 2023.10.17.,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
html?idxno=369246#0BNb
박용하, “명화에 수프 뿌리고, 상점서 우유 테러… 환경운동은 왜 거칠어졌나”, <경향신문>, 2022.10.16., https://m.khan.co.kr/world/
world-general/article/202210161549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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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가 되~
-젊은 여성 팬은 케이팝 내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

김나영
nykim32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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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사격 중지! 아군이다. 제목에 ‘빠순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여 괜히 뜨끔한 느낌이 들었
거나, 혹은 기분이 상한 독자가 있다면 사과부터 건네겠다. 사실 필자야말로 장장 10년 넘게 아이돌
을 덕질한 빠순이 당사자다(이 글도 현재 모 다인원 아이돌 그룹의 리얼리티 예능을 배경으로 틀어
두고 작성된 글이다). 따라서 이 글은 연예인 좋다고 꺅꺅거리며 난리 피우는 빠순이들을 향해 일침
을 놓으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소비해 왔고, 소비하고, 소비할 빠순
이 당사자로서 이런저런 문제 많은 케이팝 업계를 향해 작은 돌이나마 던져보려는 의도에서 쓰였음
을 밝히고 싶다. 이 글은 케이팝 장내에서 젊은 여성 팬들이 맞닥뜨린 실제 문제 사례를 조명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분석함에 의의를 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알고 싶다면 고개를 들어 더현대 서울을 보게 하라는


말이 있다. 2022년 더현대 서울 팝업스토어 매출 1위는 남자 아이돌 그룹 ‘제로베이스원’의 굿즈 팝
업으로, 13억 5000만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제로베이스원의 팬 대부분은 여성이며(전체의 97.4%),
10대~30대가 9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즉, 13억 5천만 원은 모두 10대~30대 여성의 지갑에서 나
온 것이다. 또한 전국 15~39세 남녀 중 케이팝 아이돌 팬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2021 케이팝 팬
덤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여성이 71%로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케이팝 산업에서 젊
은 여성 팬이 압도적인 구매력을 지님은 꾸준히 증명됐던 사실이다.

다양한 문화산업 중에서도 케이팝은 (과장 좀 보태) 젊은 여성 소비자들에 의해 굴러가는 사업처


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팬덤 문화의 주축이자 대부분을 구성하는 젊은 여성 팬
들은 오직 ‘젊은’ (말이 좋아 젊은이지, ‘어리다’에 가깝다) +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덕질에서 평화
와 기쁨을 얻기는커녕 여러 가지 곤욕을 치른다.

이건 아니지예
2023년 말, X에 올라온 한 영상을 두고 각종 커뮤니티와 뉴스 플랫폼에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영
상은 모 남자 아이돌 그룹이 팬들과 경호원에 둘러싸여 공항을 빠져나가던 출입국 현장 영상이었으
며, 문제가 되었던 지점은 경호원의 과잉 진압 행동이었다. 한 여성 팬이 카메라를 들고 멤버를 촬영
하려 하자 경호원이 그를 거세게 밀어버렸고, 팬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며 바닥과 충돌했다(글로 읽
는 것보다 실제 영상을 보는 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에 영상 속 팬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전치 4주의 신체적 피해를 보았으며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각종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자, 소속사는 피해자에게 별도의 사과와
사후 케어를 제공하는 중이라는 공지를 뒤늦게 발표했다.

케이팝 아티스트 경호 업체의 과잉 경호 논란은 과연 이번이 처음일까? 차라리 이번이 처음이었


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영상 속 경호원은 팬들의 눈에 부러 점멸하는 손전등을 쏘거나, 팬에게
무차별적으로 손찌검을 하는 등 과거부터 경호가 아닌 폭력 수준의 행동을 일삼아왔다. 영상 속 경
호원 개인의 근무 태도 문제 때문일까? 이하 동문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과잉
경호 문제는 과거부터 참 꾸준했고, 다양했다.

72
타 그룹의 경우, 밀쳐진 팬이 늑골 골절 등 전치 5개월 판정을 받아 가해 경호원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경호원의 도 넘은 경호를 아이돌이 직접 제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명 ‘붙수니’라고 불리는, 공항에서 아티스트에게 접근하여 사진을 찍는 팬들이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한 팬들은 아이돌과 스태프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항의 질서를 해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경호를 넘어선 명백한 폭행 행위를 가볍게 정당화할 근거가 되
는가? 경호원의 임무는 팬을 4개월 동안 병원 신세 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티스트
를 보호하고 현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경호를 위한 행위라고 항변하여도 기본적으로 사람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명백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며, 목적 달성을 위해 과격하고 잘못된 수단
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상식이다.

마찬가지로 2023년, 모 팬덤을 단체로 분노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정말 애석하게도 그 팬덤이


내 팬덤이다. 사건은 일본 콘서트가 끝난 후 몇몇 팬들의 폭로로 시작됐다. 콘서트 시작 전 스태프가
따로 불러내 불쾌할 수준으로 몸을 더듬으며 소지품을 확인하거나, 공연 중 휴대전화를 켰다는 이
유로 공연 촬영을 의심받아 강제로 쫓겨나 으슥한 곳에서 수색당했다는 후기 등이 속속들이 쏟아졌
다. 피해 당사자인 팬들은 아무리 동성 스태프였다고 해도 일반적인 신체 수색이 아니라 성추행에
가까운 수준이었다며 불쾌감과 분노를 표현했으나, 회사 측에선 어떠한 입장문도 발표하지 않았다.

또 같은 질문을 던지겠다. 케이팝 행사 관련 업체의 과도한 신체 수색 논란은 이번이 처음일까?


대답은 모두가 알 것이다. 비슷한 시기, 모 아이돌의 팬 사인회 주최 측은 현장에 있던 100명의 팬을
대상으로 “녹음기 소지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사전 예고 없이 무작위 신체 수색을 실시했다. 그 과
정에서 팬들에게 옷을 들추라고 요구하거나 속옷 구석구석까지 서슴없이 만졌다. 당시 검사를 당했
던 팬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골이라고 해야 하나요? 거기를 눌러보고 (속옷) 컵 아래쪽을 눌러보고.
팔뚝 쪽도 꽉 잡아서 보고. 아예 그냥 속옷 자체를 눌렀어요.”라고 말했다. 2016년, 2019년에도 다
른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입장 과정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다. 종이 아까우니 모든 사건을 자세
히 서술하진 않겠다.

과잉 경호와 마찬가지로, 동의 과정 없이 진행되거나 스태프의 압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신체


검사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타인의 신체를 함부로 뒤지는 일은 경찰도 압수 수색 영장이 없으면 취
하지 못하는 조치다. 케이팝 팬들을 대상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과도한 신체 수색 행위는 피해자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수준의 인권 침해이다. 그런 의미에서 트로트 가수 임영웅
의 콘서트는 케이팝 팬이 업계 내에서 어떤 존재로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임영
웅 씨가 트로트 가수인 만큼 그의 콘서트 관람객은 대부분 중장년 혹은 노년 여성 팬들이었고, 공연
대행 업체는 그들을 위해 기존 아이돌 콘서트와 다른 팬서비스를 제공했다. 소지품, 신체 검사는 당
연히 시행되지 않았으며, 공연장 내 자리 안내 및 공연 중도 입‧퇴장 도움, 야외에 설치된 난로, 무
엇보다 기본적으로 친절한 스태프들의 태도 등 팬덤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가득했다. 이로써 공
연 대행사, 시큐리티 업체 등 관련 회사들은 이러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케이팝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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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대상으로는 제공하지 ‘않는’ 것이 명백해졌다.

과잉 경호, 신체 수색과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 문제 외에도 폭염주의보에 땡볕 아래 줄 세우기,


불합리한 가격 책정, 불만 사항에 대한 불성실한 피드백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가 존재한다.저지
른 업계에 거부감을 느끼는 대상은 역시 모두 젊은 여성이다. 그리고 임영웅 콘서트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는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뿐 아니라 ‘젊은’ 여성이라 겪게 되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누가 빠순이 소리를 내었어?


이런 문제는 도대체 왜 발생할까? 본격적으로 빠순이의 소신 발언 및 의견 피력 단계로 들어가겠
다. 필자는 케이팝 산업의 기업체들(소속사, 공연 대행 업체 등)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그들은 특
정 대상에 열광하는 젊은 여성을 과거부터 꾸준히 단순히 빠순이로 취급하고, 그에 따른 전략과 태
도를 고수해 왔다. 실제로 모든 케이팝 팬이 흔히들 생각하는 우매한 빠순이일까? 초기의 아이돌 팬
덤은 ‘오빠+순이’의 줄임말인 ‘빠순이’의 정의 그대로 철없고 다소 극성인 오빠 부대로 여겨졌다. 따
라서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신세대의 모습인 동시에 조롱과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
간이 지나고 케이팝 문화의 양상이 점점 변화하며 젊은 여성 팬들은 단순히 과거의 ‘빠순이’가 아니
라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팬덤’이라는 지위를 새로이 얻었다. 거대한 팬덤에 속한 개인들은
적극적인 소비 주체이며, 대중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다양성을 부여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는 인문
학 교수이자 미디어 비교연구 권위자인 헨리 젠킨슨(Henry Jenkins, 1958~)의 이론에서 잘 드러난
다. 그는 팬을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 창작자이자 의미의 조작자라고 여겼다. 팬들은 더
이상 무지성‧무조건적 소비자가 아니며, 정보를 자신의 관심과 이해에 맞게 재창조하며 제작자와
상호작용하는 존재다. 젠킨슨의 관점에 따르면 케이팝 팬덤의 환경친화적 소비를 위한 움직임, 좋
아하는 아이돌의 창작물에 대한 인권 감수성 제고, 다양한 팬덤 참여 문화의 주체적 형성 등 성숙해
진 팬덤을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빠순이’가 ‘팬덤’이 되기까지, 사회적으로 인식이 변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다양한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앞선 문제들을 조명해 봤을 때, 케이팝 산업 구조에서 팬들과 대척점에 있
어 보이는 기업체와 업계 관계자 대다수는 아직도 젊은 여성 팬을 단순히 ‘빠순이’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즉, 팬덤의 정의와 위치, 역할, 권한 등에 대한 팬 당사자들의 인식과 사회적 인식은 변했
지만, 케이팝 업계의 기득권은 그 변화를 좇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팬들 돈을 수월하게 가져
가기 위한 상품 마케팅, 팬 마케팅 분야는 예외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여태까지 실컷
내 입으로 빠순이란 단어를 남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조적 발언이며, 기업체가 생
각하는 ‘빠순이’ 속에 담긴 모멸적 뉘앙스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를 것이
다. 무지몽매한 빠순이로 전락 당한 필자와 함께, 지금부터 케이팝 업계 속 기업체가 생각하는 전형
적인 ‘빠순이’의 이미지와 속성을 들여다 봄으로써 젊은 여성이 문화산업 내에서 어떤 존재로 해석
되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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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를 이렇게 볼 수도 있는거임? 기업도?
빠순이의 속성 하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애버크롬비 & 롱허스트는 소비자가 자발적 커
뮤니티를 선택하는 데 매체가 얼마나, 또는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따라 소비자, 애호가, 열광자, 광
신자, 적극적 생산자로 구분했다(N. Abercrombie & B. Longhurst, 「Audiences: A Sociological
Theory of Performance and Imagination」, 1998). 앞서 언급했던 ‘철없고 다소 극성인 오빠 부대’
라는 구시대적 빠순이의 정의에 따르면, 젊은 여성 팬들은 열광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매우 전문적
으로 스타나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매체 사용량이 많으며 팬클럽 등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욕
구 가 있다. 결정적으로, “밥은 굶어도 공연은 봐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기
꺼이 감수하며 움직인다. 빠순이가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근본적 동기는 무엇인가? 아티스트를 향
한 애정이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동기로 삼기 때문에 빠순이는 쉽게 비이성적, 비합리적 존
재로 여겨진다.

빠순이의 속성 둘, 사랑하니까 참는다. 첫 번째 속성과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다. 팬은 아티스트


를 향한 애정을 원동력으로 움직이고, 케이팝 업계에서 아티스트는 곧 상품이다. 아티스트는 막대
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갖는 문화상품이며, 사회적 권력자의 위치에서 팬을 움직이고 파생 상품을
생산한다. 특히 아이돌(idol)의 경우, 우상이라는 유래 그대로 팬에게 우상화되며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케이팝 업계에서 불매가 유독 어려운 이유 또한 이곳에서 기인한다. 아티스트를 향한 애
정의 크기를 너무나 잘 아는 기업들은 아티스트를 ‘팬들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혹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문화상품’으로서 기용한다. 팬들은 사랑하는 사람 자체가 상품이라는 케이팝 업
계의 특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 사람(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흠집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따라서 회사를 향해 온갖 욕을 퍼부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불매보다는 불티나게 매입하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빠순이의 속성 셋, 위협적이지 않은 ATM이다. 이 세 번째 속성은 앞의 두 속성을 전제로 한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기에 케이팝 업계에서 문제 되는 구조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안다고
해도 감수하게 된다. 또한 대부분 어린 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인 실정이니 소비할 돈은
들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힘과 권력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회사의 입장에서 빠순이 개개
인은 회사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힐 만한 법적인 제재를 할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부당한 일을 날
카롭게 꼬집으며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저항하는 존재도 아니다. 설령 저항하더라도 버티고 있으면
논란은 잠잠해지거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식의 입장문만 내놓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공연장 앞에 와글와글 모여있는 팬들을 본다면, ‘돈 짭짤하게 들고 있는 멍청한 어린
여자들’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빠순이가 이렇게 해석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로선 젊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고
정관념에서 기인한다는 형식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논의할 때, 모
계 중심성(Matrifocality)과 모계제(Matriarchy)는 흔히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른 의
미로, 모계 중심성의 사회는 여성이 자녀의 중심인물이자 부양자인 가족 구조를 의미하며 모계제 사
회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혹은 남성보다 지배적으로) 권력과 리더십을 차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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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중심성 사회에서 여성은 어디까지나 가족을 위한 보호자, 헌신자의 역할이거나 그 역할을 기
대받는다. 모계 중심성 사회는 다른 말로 여성 중심 사회라고 지칭되나, 이 사회 내에서 여성은 어디
까지나 가정, 소비,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지 권력의 중심이거나 정치‧경제적 의사결정자가 아니
다. 따라서 일각에선 결국 남성 우월주의 사회라고 칭하기도 한다. 모계 중심성 사회에는 ‘남자는 벌
고 여자는 쓴다’는 분리 영역 사회 관점이 만연하며, 이러한 성별 이분법 관점을 기반으로 한 남녀 임
금 차이가 크다. 따라서 여성들은 직장 내 유리천장과 같이,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
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기반으로, 젊은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어리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두 번의 포인트에서 사회적 위치를 격하당한다. 즉, 케이팝 산업체들은 젊은 여
성이 큰 구매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권력이 없는 상대적 약자라는 지점을 아주 잘
이용하는 것이다.

나아가며
기본적으로 인간은 감성과 경험을 위해 쾌락적 상품을 추구하고, 특히 문화상품의 소비는 이 쾌
락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성향이 강하다. 문화상품을 소비할 땐 효용적 동기보다 상징적 가치와 감
정적 욕구가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Hirschman, & Holbrook, 「Hedonic consumption: emerging
concepts, methods and propositions」, 1982). 따라서 문화상품은 정서 및 사회적 의미의 표시이다.
그러나 젊은 여성 팬들은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빠순이’로 전락하기 때문에, 이 정서 및 사
회적 의미 표시 과정을 존중받지 못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소비자 권리의 수준을 넘
어서, 그냥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받지 않아야 할 대우를 받는다. 폭력에 가까운 과잉 경호 사태나 성
추행에 가까운 신체 수색 등을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내 인권, 내 친구 인권 뚝뚝 떨어지는 걸 지켜보게 되는 게 당연한가?
이 글의 요는 빠순이를 잘못 없고 고결한 덕질을 하는 존재로 두둔하고 무조건 업계 탓을 하기 위
함이 아니다. 물론 건강하지 못한 팬 문화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점(환경오염, 아티스트 사생활 침
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주 소비층이 젊은 여성인 케이팝 장에서 유독 기형적인 산업 구조나,
어느 장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 나타나는 작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이 배후에
업계의 젊은 여성 팬덤의 존재에 대한 뒤처진 인식, 근본적으로 젊은 여성이 겪는 구조적 차별 등 다
양한 이유가 존재함을 분석하려는 시도였다. 젊은 여성의 소비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격하되는가?
우리 사회는 젊은 여성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다들 빠순이라는 단어를
마주칠 때마다 한 번씩 나름의 추론을 해보길 바란다.
케이팝 산업 내 상호작용의 주축이자 능동적 향유자인 팬덤은 애정을 볼모로 빠순이가 된다. 탈
케(탈-케이팝)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이
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 여성을 향한 구조적 한계를 사회 전체가 탈피
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요, 케이팝 업계와 팬덤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팬들은 부당한 침해 행동에
대해 다양한 창구를 통해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필요하다면(그리고 가능하다면) 불매운동처럼
강력한 의견 피력 수단도 고려해야 한다. 케이팝 업계는 젊은 여성 팬들을 ‘빠순이’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스타 뒤에 숨거나, 생산자‧제공자라는
위치에 취해서 비인도적인 만행을 저지르지 말라. 한 명의 케이팝 팬으로서, 행복하고 윤택한 덕질
라이프를 위해 건강한 케이팝 문화가 도래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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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어

사진 출처 : http://m.todaysppc.com/renewal/view.php?id=free&no=155664

허윤
dorahur9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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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자=종교인?>

무신론자와 비종교인은 같은 말일까? 신이 없다고 믿기에 종교를 가지지 않는 것은 나름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유신론자와 비종교인은 다른 말일까?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
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꼭 유신론자라고 해서 특정 종교를 가진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후자의 경우다. 친가는 불교, 외가는 가톨릭, 우리 집은 개신교. 종교 대통합과도 같아보이는 환경
에서 자란 나는 애석하게도 종교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개신교가 나의 모태신앙이었
고 내가 기억하는 한 아마 4살부터 교회 영유아반을 다니기 시작했다. 만약 개신교를 나의 종교로
삼았다면 지금쯤 이 글을 쓰는 대신 일주일짜리 성경수련캠프에 참가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나의 종교 일대기와 내가 왜 한국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
해 다뤄보고자 한다. 아마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개신교가 싫은 게 아니라 한국 문화를 싫어하
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 고민을 담은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과연 나는 개신
교 자체를 싫어하는 건지, 아니면 ‘한국’ 개신교를 싫어하는 건지. 혹은 그냥 내가 다니는 교회의 문
제1일지.(‘다니는’ 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직도 영유아 때 다니던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개신교를 거부하는 이유가 셋 중에 하나가 있더라도 종교를 꼭 가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나름
의 결론을 담았다.

<나의 종교 일대기>

먼저 나의 종교 일대기를 쭉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개신교 모태신앙2 → 중학교 2학년 즈음 스


스로 개신교 신자가 아니라고 판단 → 미션스쿨 고등학교 진학 → 불교 체험 → 현재 무교지만 교회를
다님. 이와 같이 터키 아이스크림처럼 개신교를 믿었다, 안 믿었다를 반복하던 나는 무교라고 결론
을 내렸으나 집안의 평화를 위해 매주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나가고 있다. 아마 목사님은 나를 매
우 인상적인 신자로 기억할 것이다. 매주 꾸준히 나와서 꾸준히 설교 중에 졸기 때문이다. (그와중
에 열심히 설교하시는 목사님께 죄송해서 계속 고개를 들려고는 한다.)
앞서 말했듯이 내 친가, 엄밀히 말하자면 친할머니께서는 독실한 불교인이심과 동시에 개신교
를 적대시하신다. 친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흥선대원군의 환생 같다. ‘예수쟁이’라 칭하며 명확
한 이유없이 개신교를 싫어하시는데, 마음 속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신 척화비를 새겨넣
으신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와도 같은 내 아버지의 개신교 신앙이
더 굳건한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박해 속에서 더 단단해져 결국 국교로 지정된 기독교 역
사와도 같달까. 새벽 기도회를 매번 빠짐없이 참석해서 수료패도 받고, 십일조를 매달 내며, 여러
가지 사역 봉사도 하는 아버지를 두고 내 이모는 예수님의 숨겨진 제자가 아니냐고 하셨었다. 아버
지를 따라 어릴 때 뭣모르고 다니던 교회에서 나는 자연스레 개신교 세계관을 내면화했다. 어느 정
도였냐면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이야기를 초등학교 친구에게도 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하나님 같은 건 없어!’라고 하자
나는 씩씩거리며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었다.

1) 내가 현재까지도 다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으로, 보수적인 편이다.


2) 모태신앙이란, 태어나기 전부터 종교를 가진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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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개신교 교리를 강요한 것과 다름이 없어서 꽤나 미안하다.) 교회에
서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전도 주간에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찬양팀, 댄스팀 등 여러
활동에 꼭 참가했었다. 텍스트만 보면 예수님의 성실한 어린 양 같아보이겠지만 난 항상 의무감에
저 활동들을 했었다. 왠지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건 별
로 와닿지 않는데도 그런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이단이 되는 것만 같아서 그냥 찝찝한 채로 여러
의심들은 묵혀둔 채 살아왔다. 나는 일요일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내가 정하지도 않은
하나님과의 자동 선약으로 인해 항상 10시, 혹은 9시까지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여담으로
다른 교지 부원이 알아챈 사실인데, 개신교 신자였던 사람들은 꼭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한다고 한
다. 개신교 신자가 아님에도 그 관성이 남아있는 걸까.)
하나님의 선한 어린 양이라기보다는 게으른 어린 양으로서의 신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사춘기
를 겪으며 문득 내게 한 번도 종교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확
히는 만화책을 보다가 깨달았다. 내 친오빠는 <보물찾기> 만화 시리즈를 매우 좋아했기에 우리 집
에는 그 전권 시리즈가 있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갑자기 옛 추억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되
새겨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때의 나는 <이스라엘에서 보물 찾기>를 읽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스라엘 편에 등장하는 레나는 유대교 전통 성인식을 치르러 가기 전 자기에게는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3며 도망가는 인물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펼친 보물찾기 만화에서 갑작스런
큰 깨달음을 얻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유대교 가족으로부터 도망간 레나를 보며 개신교 신
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개신교를 선택하지 않는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사
실을 가족에게는 비밀로 부쳤는데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무서워서였다. 개신교가 아닌 나는 부모님
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수강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1학점짜리 교양 수업처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신앙심 없는 개
신교 신자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날들이었다. 나는 미션스쿨에 진학했다.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겠지만 황당하게도 실화이다. 내막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자사고 진학을 목표하던 나는 가고자
하는 학교에 진학할 성적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동네 일반고를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고등학
교 지망을 적어 제출했다. 부모님께서는 많이 실망하셨었고 나도 중학교 3년 내내 목표하던 바를
포기하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이후에 아버지께서는 자사고이면서 미션스쿨인 고등학교를
추천하셨고, 나는 어차피 성적이 안될 것이라며 일반고로 진학하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였다. (선언
은 했지만 미션스쿨 진학 논쟁은 몇 날 며칠 이어졌다.)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하나님의 품으로 보
내고자 하신 의지가 너무 강하셨던걸까, 원서 마감 날 내게 말도 없이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서 1지
망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변경하셨다. 아직도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가 생생하
다.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들의 수다 속에서 선생님의 부름에 나간 나는 그때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션스쿨에 지원했음알게 됐다. 선생님께서 “그래 00아, 00고 지원한다며?”라고 하시자 나
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라고 답하면 선생님께서 당황해하실까봐 나
는 눈치껏 “아~~! 네네 ㅎㅎ 그렇게 됐어요^^” 라고 답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웃긴 이야기
처럼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3) 종교학과 친구의 말에 따르면, ‘종교를 선택’ 한다는 개념이 한국에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서양권에서 개신교인으로 태
어나면 그냥 평생 개신교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셈이다. 모태신앙으로 개신교도인이 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 같
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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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나는 ‘개신교는 아니지만 미션스쿨은 다니는’ 사람이 됐다. 물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매주 수요일 채플을 대강당에서 드리고, 매일 아침 찬양과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아침 조회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개신교가 아니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나 절대적인 힘이 필요한 순간에는 염치 없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중간고사를 볼 때
라던가, 수능을 볼 때라던가..원래 사람은 간절해지는 순간에 초월적 존재에게 자기 자신을 의탁하
고 싶어지지 않는가. 대학에 진학하고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무신론인 점이 좋았었고(대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내가 이후 무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매주
가야 할 예배가 없다는 점도 좋았다. 108배를 해보고도 싶어서 우리 집 근처의 절에 냅다 찾아가
스님께 108배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절하는 법도 배워왔다. (일요일에 교회 예배를 드리고 집
오는 길에 바로 절에 108배를 하러 가서 아버지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불교 교리도 찾아보고 나름의 일일체험도 했지만 왠지 내 입맛에 맞게 종교 쇼핑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바구니에 몇 가지 담아두기만 하고 구매를 안하는 내 자신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속물적인 자세로 종교를 바라봐도 되는 걸까? 내게 종교인이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그 교리를 내면화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는 것인데, 내 신앙생활은 왠
지 마라탕 옵션 추가 같다. 예배는 주기적으로 드리지 않기 옵션 추가. 헌금 강요 안하기 추가. 동
성애 혐오 금지 옵션 추가. 배달팁은 없다. 애초에 이런 마라탕을 배달해주는 집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냥 내 양심에 따라 사는 건 어떤가? 아니 근데 내 양심이 이미 글러먹었을 수도 있잖아! 하
지만 이내 곧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피곤해! 그냥 무교로 살면 안돼??!!

<유교인지 개신교인지..>

내가 계속 터키 아이스크림처럼 개신교를 믿었다가 안 믿었다가를 반복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크게는 혐오적 설교와 자본주의와의 결탁으로 나눌 수 있겠다. 최근 경기도 수원 영광제일교회의
목회자였던 이동환 목사의 종교 재판이 큰 화제였다. 그는 한겨례와의 인터뷰에서 “교회에서 성소
수자 혐오적인 설교를 듣고 견디지 못해 교회를 떠났거나, 차마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 교회는 지옥
일 것” 이라고 말했다.
혐오적 설교는 거의 매주 듣는다. 2주 전에 내가 들은 설교만 해도 그렇다. “동성애가 판치는 세
상에서 우리 자녀들을 살게 둬도 되겠습니까!”. 여기저기서 들리는 “아멘!”. 그리고 허공만을 바라보
는 나. 이런 레파토리는 몇년째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소수자의 편에 섰던 예수와는 아예 다른
행보를 걷는 교회들을 보며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커져갔다. 결국 개신교 교리는 내 신념
위에 서지 못했고, 나는 용기 내어 가족 식사 자리에서 말해버렸다. “이런 이슈에(동성애 관련) 반
대하는 게 기독교인이라면, 난 이제 기독교인 못해.” 결과는 부모님의 다물어지지 않는 입과 싸한
분위기였지만..동성애 이슈보다는 이혼 이슈가 더 큰 화두이던 시절에 목사들은 이혼하면 안된다,
가정의 해체는 옳지 않다 등의 설교를 펼쳤었다.

4)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제 2회 인천 퀴어퍼레이드에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처분받은 바 있다. 최근 동성애를 옹호했다는 이유
로 출교라는 최고 수위 징계도 받았다.
5) 채윤태, 성소수자 축복했다가 쫓겨난 이동환 목사 “예수님이었다면…”, 한겨례, 2023-12-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
en/1120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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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준 한 해 이혼 건수가 9만 3천 건인 지금(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 2천건이다), 설교에
서 가정의 해체는 찾기 어렵다. 대신 그 대상이 동성애 혐오로 옮겨졌다. ‘사랑’을 강조하면서 선택
적으로 사랑하고 배제하는 모순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서울시 학
생 인권조례를 폐지를 주장하는 서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학생 인권 조례에서 학생들의 성적 지
향성 및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하면 안된다는 항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홍보 판넬의 슬로건은 ’다음세대를 지켜주세요!‘였다. 그들이 지킬 다음 세대는 이성애자이며 하나
님의 믿는 자녀들만 포함하는 것 같았다.
혐오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결탁해 변질된 개신교도 나의 불만에 한몫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다
닌 교회는 대형교회로, 2014년 기준 연간 헌금액이 약 6백억원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신자가 많으니 당연히 헌금액도 많을 것이다. 다만 헌금을
강조하는 기조가 맘에 들지 않을 뿐이다. 작년에 수강한 종교와 세계문화 강의에 의하면 교회는 초
기에 신분제 철폐 및 재산 공유의 커뮤니티로, 공산주의의 원형과도 유사하다. 종교집단을 운영함
에 있어서 자본은 필수적이지만, 자본주의 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에서 종교의 본질이 변색됨을 느
낀다.
종교집단이라기보다는 극우정치집단처럼 보이는 교회들의 문제점을 꼽다보니 그냥 한국 사회
의 축소판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질만능주의적 사회 풍조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
힌 사회.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화가 혹은 작가 등의 직업을 작성하지 않는 이유로 ‘돈이
안되니까..’라고 답하는 뉴스를 접했었다. 매일 꿈이 바뀌는 나이에 돈벌이를 걱정하게 만든 사회
가 부끄러웠다. 한편, 아직도 방송에서는 동성애 찬반을 가지고 논의한다.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알게 뭐람. 반대한다고 하면 성소수자들이 ‘예, 안 할게요. 헤테로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게 되나? 자기 주변에는 대놓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느낄 수 있다.하지
만 아직 우리 주변에는 오래된 디퓨저마냥 은은하게 혐오가 퍼져있다. 2019년 서강대학교 총학생
회는 퀴어퍼레이드에 연대성명을 보내는 것을 거부. 이런 사례들을 접하고 성찰한 결과, 사실 내가
거부하는 것은 개신교가 아니라 한국 문화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그럼 한국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의 신자가 되는 건 어떤가? 요즘은 퀴어 프렌들
리한 교단도 생겨나고 있으니까, 위에서 토로한 불만들은 다니는 교회를 옮기면 해소되는 문제 같
아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퀴어 프렌들리한 교단에는 큰 관심이 없다. 퀴어 프렌들리하다고 하
더라도, 개신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데, 우리끼리 퀴
어 프렌들리를 외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본질도 결국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기에 시간을 두고 차차 변화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마라탕 옵션 추가로 돌아가게 된다. 불교도 아니야, 기독교(개신교 및 천주교 포함)도 아니야, 그럼
무교로 살아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나도 날 모르겠다 이젠>

단순 무교로 살기가 애매한 것은 바로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


어. ‘구원’이라는 큰 과제가 나를 기다린다. 개신교 교리에서의 ‘구원’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롯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도 많은 죄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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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 우리는 최후의 날에 죄에 대한 심판을 받기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6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살면서 죄를 짓는 것은 불가피하다. ‘죄’라고 명명하는 것
은 너무 ex-개신교도적 표현이려나. 하여간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잘못을 하
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는 아직 내가 스스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나 혼자 뉘우친다고 해도
그 잘못이 순수하게 100퍼센트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절대적 존재에게 뉘우침을 인정받
고 싶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그냥 안 믿으면 되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
릴 때부터 기독교적 세계관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큰 존재가 나를 감시하는 것만 같
은 기분은 떨칠래야 떨칠 수 없다. 그리고 ‘그분’께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죄의 청산이 완벽히 되지
않는 기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신교를 믿고 싶지 않음과 구원받고자 하는 소망이 충돌해 나의 머
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내 맘을 모르겠다. 혐오적 종교가 싫
은 것은 확실해, 그렇다고 무신론 기반의 종교는 안 맞아, 유신론자이지만 개신교도적 구원은 필요
해. 너무 복잡해서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마음이 훅훅 바뀌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
리자면,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종교적 인간이다.(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특정 종교에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내 자아를 풍족하게 해줄 영성 혹은 인간을 초월하는 무언가는 필요한 것이
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그 기준이 꼭 기존 종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세계를 관장하는 어떤 존재가 있겠거니~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준에 맞게 도덕적
으로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 그냥 모르겠고, 착하게 살게요’ 와는 약간
다른 종류의 결론이다. 착하게 살되, 끊임없이 그 기준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것도 성숙한 인간으로
향하는 길 아닐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 크게 머리 싸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방증이니까.

6) 복음은 좋은 소식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세계관에서의 복음은 ‘예수를 믿는 것’, 혹은 ‘예수를 믿고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것’ 등 여러가지 해석이 존
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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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바이

알바트로스너마저
rsp0t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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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바이입니다. 풀 네임으로는 바이-섹슈얼. 그 말인즉슨, 여자도 좋
아할 수 있고 남자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대뜸 첫 문
장부터 생면부지의 사람이 커밍아웃을 한 탓에 적잖이 놀라신 분들도 있겠네요. 저도 이런 적은 처
음이라 기분이 좀 신선하긴 합니다.
일단은 계속 말해 볼까요? 그래서 저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고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빈도로 따지면 고등학교 때까진 여자친구를, 대학교에 와서는 남자친구를 더 많이 사귀
었던 것 같네요.

사실 저는 대학교에 오기 전까지 스스로를 레즈라고 생각했어요. 환경 탓도 있긴 했죠. 저는 여


중 여고 루트를 타며 새싹 레즈로서의 면모를 착실히 키워왔거든요. 공학을 나오신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겠는데, 사실 여학교에서 ‘레즈’라는 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존재입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새싹 레즈‘ 아이들이 착실히 초보 레즈로서의 길을 밟아나가는 시기거든요. 그냥 자연스럽게 짝사
랑을 하고, 그러다 잘 되면 학교에서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하고, 레즈 커넥션을 통해 소개받은 옆 여
학교 애랑 눈이 맞아서 사귀기도 하고. 공공연히는 아니어도 알음알음... 그런 일이 보편적으로 일
어납니다. 이 사회가 여자들의 우정에 좀 더 관대한 경향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도 그
관대함에 넙죽 올라타서 여자친구를 사귀었죠.
그리고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그게 꼭 특별한 일도 아니었어요. 너무 친해보이는 친구 둘이 있
었는데 알고 봤더니 사귀는 사이였다던가, 베프 가라사대 ‘나 여자친구가 생겼다’던가,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거든요. 학교의 다른 아이들도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도 않았고요(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만). 레즈라는 걸 모르는 친구들도 그냥 ’쟤네 사귄다던데‘ 할 정도의 교내 공식 커플
도 있었고, 선후배 스캔들도 잦았고… …그랬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이게 참 놀라운 일이었네요.

하여튼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저는 자연스럽게 여자를 좋아하게 됐고, 어쩌다 정말 사귀게 되기


도 하고, 울면서 헤어져보기도 하고… … ….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 같은 사랑을 하
다가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
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이 휘
리릭. 도합 6년의 시간은 차곡차곡 포개져 제 밑에 놓여 있었고, 저는 대학교 입학이라는 빅-이벤
트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빅-이벤트를 앞두고 제가 다짐한 것은 단 한 가지. ‘절대로 남자친구를 만들지 않으


리’. 좀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는데, 그때의 저는 정말 결연했습니다. 앞서 이 사회는 여자들의 우
정에 좀 더 관대한 것 같다고 서술한 바 있는데요. 사실 전 한국 사회가 여자들의 사랑을 ‘유별난 우
정’이라며 웃고 넘겨버리는 걸 꽤 많이 봐왔습니다. 특히 미성년자, 여학생들의 사랑은 정말 진지
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근거가 되는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학교라 ‘남자가 없어서’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한 거다.


2 여학교에 다니면 그럴 수 있다. 그거 다 한때고, 대학에 가면 치료된다.
* (경우에 따라 추가될 수 있지만 대강 이 두 가지 선에서 정리됩니다. 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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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레퍼토리에서 저는 ‘남자를 몰라서’, ‘유별난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결
국 대학에 가면 치료될’ 어리바리한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게 너무 싫었어요. 아무리 생
각해봐도 저는 ‘남자를 몰라서’ 여자를 좋아한 게 아니었거든요. 또, 이게 무슨 병도 아닐진데 대학
에 가면 다 치료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짜증났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이라는 빅-이벤트를 앞둔 저는, 스스로의 인생으로 그 명제를 부정하겠다고 결
심하게 됐던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하게 들리는데, 풀어 말하자면 ‘계속 이러면 어쩔 건
데’라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여자만 사랑하겠음>이라는 피의 맹세를 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부터인데요. 저는 대학을 입학한 후 초가을 즈음에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


습니다.

제가 드라마 작가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말도 안 되는 전개라며 욕도 먹어보고, 그 덕에 정신


차리고 좀 더 납득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도 있었을 텐데요. 현실은 결국 드라마보다 더 얼토당
토 않고 개연성은 개나 준 장르더라고요. 저는 스스로도 명쾌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어느새 사랑
에 빠져 있었고, 어찌저찌 연애까지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남자랑 하는 첫 연애. 그건 제게 있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싫어하던 ‘그거 다 한


때다’ 라는 말의 산증인이 된 셈이었으니까요. 정말로 내가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건가? 여학
교에 다녀서 그랬던 건가? 분명 전 여친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건만,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생기고
나니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과장 좀 보태면 인생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래
서 저는 연애 내내 머리를 싸매게 되었습니다. 이유 모를 죄책감과 당황스러움, 애정 사이에서 이
루어지는 끝없는 줄다리기.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잡고 있는 셋 중에서 혼자 체급이 다른 ‘죄책감’
이라는 떡대 녀석. 정말로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건 맞았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러웠습니다.
까딱 중심을 잃으면 죄책감에서 허우적대기 일쑤였으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편으로 남자와의 첫 연애는 매우 달콤하기도 했습니다. ‘죽을 때


까지 여자만 만나겠소’ 하고 선언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생각하실까요? 하지만 정말
로 그랬습니다. 달긴 달았습니다. 처음 맛본 ‘정상성’이라는 열매가요. 너무 달아서 이걸 먹기 전으
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초콜릿의 맛을 알아버린 36개월 아기 같았다고
하면 좀 감이 오실까요. 그 맛을 알았는데 어떻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에겐 첫 연애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꼭 저 같은 바이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성소수자가 아니더라도 다들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상성이란 열매는 정말 얼마나 달콤한가요, 그리고 또 얼마나 뿌리치기 힘든가요. 제가 좋아하는
‘들개이빨’ 작가님의 만화,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에는 그런 씬이 나옵니다. 인생 최초 ‘
마름’ 기준의 몸무게에 진입하니까, 프리사이즈라는 말로 나를 속이던 세상이 거짓말처럼 관대해
졌다. * ‘시판되는 모든 프리한 것들이 몸에 착착 감겼다. 이 자유로운 감옥의 죄수가 된 게 뛸 듯이 기뻤던 나
는 닥치는 대로 죄수복을 사들였다.’ 저는 이 씬이 정상성에 관한 적확한 묘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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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카리나, 전지현, 차은우, 강동원 [기타 등등…]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한국의 외모지상
주의를 지긋지긋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외모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유토피아
적 세계를 꿈꿀 수도 있겠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며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정말 이골이 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당신
을 카리나로 만들어주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누가 진심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요? 누가 ‘정말정말
싫습니다’ 할 수 있을까요? 정상성이라는 자유롭고 달콤한 감옥. 거기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이
제까지 나를 부정하던 것들 모두가 나를 환대하는 경험. 그게 얼마나 달콤한가요? 그러면 뭐… ….
수감될 수만 있다면 수감되어야지요. 제 문제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정상성이라는 감옥
에 학을 떼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느껴보는 이 기쁨을 놓치기 싫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은 싫었
는데 탈옥할 마음은 없는 죄수였다는 얘기입니다.
*들개이빨 작가의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38화 작중 대사.

부모님에게 ‘나 만나는 사람 생겼어’ 하며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 친구들이랑 만났을 때


에 자연스럽게 연애 얘기를 토픽으로 꺼낼 수 있는 것, 경의선 숲길에서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할
수 있는 것. 그런 특권이 너무 좋았습니다. 레즈라는 정체성으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자유, 안정
감, 소속감. 그런 것들을 ‘헤테로’라는 정상 범주에서는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쩌면 나 이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연애, 결혼, 출산, 그런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스텝들을 하나씩 밟아 올라갈 수 있는 거
아닐까. ‘문제 없음, 모난 데 없음, 아주 정상임’이라는 소견서를 펄럭이며 여자라곤 만나본 적 없는
척, ‘레즈가 뭐예염?’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때의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네, 건방지게도요. 그런데 또 저는 완전히 행복한


죄수가 될 수는 없더라고요. 이때까지 쌓아온 반골 기질은 어쩔 수 없는 거였습니다. 가녀리고 애
교 많은, 너무 척척 다 해내지는 않으면서도 가끔은 귀엽게 질투하기도 하고, 어쩌다 화장기 없는
모습을 보이면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 그래야 네가 날 더
좋아하게 될걸’, *‘말 안해도 알아주면 안 돼?’ *‘몰라몰라 내 맘을 전혀 몰라’ 하다가, 결국 *‘오빠를
사랑해’ 할 수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차례대로 트와이스 ‘cheer up’, 레드벨벳 ‘빨간 맛’, 소녀시대 ‘Oh’
를 흥얼거리며 읽어주세요.)
물론 꼭 이런 여자친구가 될 필요는 없죠. 그러나 이십 몇 년간 접해온 미디어의 영향은 실로 대
단한 것이어서요, 저는 이런 이상적인 여자친구의 모습을 연기하지 못할 때마다 기분이 복잡해지
고는 했습니다. 기껏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이상적인 보통 여자친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위
화감을 느끼는 저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됐고, 한편으로는 그런 꾸며낸 모습을 좋아해 주는 남자친구
의 반응이 거북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게 이해가 되지 않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애를 하는 내내 제가 어땠을지는 대강 예상이 가시지요. 반골 기질을 꺼내서 낱낱이 보여주고 싶
은 마음과, 여전히 귀엽고 좋은 보통 여자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 그 사이에서 하루하루 갈등하는
것이 저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일 년 조금 되지 않아,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인 이별을 맞이하며 마무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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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동안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이별은 너무 수수한 형태로 찾아오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러한 여느 연인들 같은 결말을 맞이하며, 술도 마시고 울어도 보며 또 아주 평균적인 방법으로 실
연의 슬픔을 치료하려다가… … 아주 *이반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반 :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은어.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말에서 파생됨.

‘다음에는 꼭 여자를 만나야지.’


레즈 협회 여러분께서 여자를 남자의 대체품으로 보는 것이냐 물으시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법으로 느껴졌습니다. 남녀 연애라는 것에 따라오는
정상성은 너무너무 달았지만, 그에 수반되는 고통과 자괴감을 더는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일한 도피처가 여자를 사랑하겠다는 결심이더라고요.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예전 고등
학생 때처럼 어떤 역할이나 의무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나 그대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
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명대사를 아실까요.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만화가들이란 정말로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을까요.
레즈로 살다 남자를 만나고, 다시 여자들에게 도망쳐온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더라고요. 정말로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남자친구를 사귀고 돌아온 저는 ‘바이’라는 이름표를 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 레즈 커뮤니티에서도 다시 머리를 싸매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순간부터 저는 순수 혈통 레즈가
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엔 남자들에게 돌아갈 것들’, ‘장난삼아 여자 사랑한다고 하는 것
들’ 이라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마저도 그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요. 레즈라는 정체
성을 굳게 지니고 있을 때에도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으니까요.

네, 이렇게 되니까 정말 머리가 멍하더라고요. 그 누구도 맘 편하게 좋아할 수 없게 된 상황이 아


주아주 절망적이었습니다. 저는 이러면서도 결국 누구를 사랑하고 싶긴 했거든요. 외로웠습니다.
사랑 그게 다 뭐다냐 싶으면서도 결국은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도 저도
다 싫어져서는 머리 깎고 어디 절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냥 누구를 만나든지 생각
없이 살면 아무 문제 없을 텐데, 자꾸 괜한 고민을 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저 자신이 정말 밉기도
했습니다. 막말로 그냥 귀여운 보통 여자친구로 살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일이 뭐가 있겠나요.
그게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그게 정말 잘 안 되더라고요. 저도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만약 명확한 사유를 아시거나,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다면 교지서강 제작진 쪽으
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공일공, 어쩌구. 저쩌구.

음, 그렇습니다. 끝에 와서야 고백하는 건데요, 이 글은 대단한 통찰과 인생 경험을 담아내고자


쓰여진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최대한 숨김 없
이, 최대한 진솔하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글이 아주 지리멸렬해졌다는 기분도 드는데요, 제
감정이 실제로도 지리멸렬하기 때문에 뭐 어떤가 싶습니다. 소기의 성과는 거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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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 글에는 해피 엔딩도 새드 엔딩도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르겠거든요. 여자도 좋아
해 봤고 남자도 좋아해 봤으니 스스로를 바이라고 정의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없잖아요. 시
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어쩌면 저는 범성애자일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아주 나중에 무성애자로
정체화할 수도 있겠고요. 아무튼 지금은 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고민 없이 누군가의 애교 많은 여
자친구가 되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다시금 ‘여자만 만나겠소’ 하는 피의 맹세를 하고 싶기도 하고
요. 아무나 만나고 싶다가도 아무도 만나기 싫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결국 이렇게 ‘결론 없음’이라는 엔딩으로 끝날 글을 왜 쓰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누군가에게, 또 저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레즈든 게이든 바이든 트랜스젠더든
논바이너리든 에이섹슈얼이든 퀘스처너리든 대관절 뭐든. 그리고 꼭 성적 지향의 문제가 아니더라
도. 모든 사람에게는 정상성의 달콤함에 흔들리는 시기가 꼭 온다고 생각해요. ‘아무 생각 없이 보
편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날은 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요, 가끔은 힘들고 외롭잖
아요. 내가 어디서는 유독 튀고 이상한,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요.
그런데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앞에서 정상성의 달콤함에 ‘흔들린다’는 표
현을 썼지만, 부디 여러분은 이러한 과정을 흔들린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달콤한
걸 좋아하는 게 뭐가 나빠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방황하고 실패하고 자책하는 게 뭐가 나쁠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세상엔 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요. 그리고 이 글을 통해서 이루고 싶은 작은 욕심도 있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방황할 때에, 잠깐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세상엔 평생 레즈로 살겠다고 다짐했다가, 남친을 사
귀고서는 여자친구 노릇을 못하겠다며 내가 바이인 건 맞는 건가 하는 사람도 있었지’ 하고요. 그
러한 과정을 통해 저보다는 덜 괴로워했으면 좋겠습니다. 괴로워하되 너무 괴로워하지는 말고, 방
황하되 그 여정에서 자기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고, 모르되 그것에 너무 고통받지는 말길. 그러면서
결국 인생의 엔딩 크레딧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음’이라는 열한 글자를 새겨넣을 수 있기를 진
심으로 바랍니다.

추신. 이렇게 말하는 저도 하루에 열두 번 갈대같이 흔들리고 산짐승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있긴 한


데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겠지 생각하면 조금 덜 외로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보 같고 모순되고 이상한 건 나뿐만
이 아니라는 걸 항상 떠올리면서, 우리 행복하자고요. 네? 행복해지자고요! 인생 짧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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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에드바르 뭉크 <태양>

주보배
bobaeju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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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울증이 아니라

스물한 살의 겨울. 나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두꺼운 뇌파검사 결과 파일을 손에 들고, 4호선
열차에 서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열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삼각지역에 나를 뱉어주기만
기다렸다. 삼각지역에 내렸다면 그다음은 대흥, 그다음은 서강대 후문, 그다음은 회의 시간에 맞춰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좁은 개찰구 사이를 지나가고 싶지가 않았
다. 그렇다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지도, 회의고 뭐고 집에 확 돌아가 버리고 싶지도 않
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결과 파일을 다시 천천히 뜯어 살펴보았다. 지나치게 빨갛게 익어있는
뇌파 사진, 이리저리 극단적으로 포진되어 있는 수치값들, 백분위 10% 14%, 못 알아듣겠지만 아무
튼 뭔가 좀 많이 잘못된 것만 같은 정상에서부터의 거리. ‘ADHD, 소견, 완전 있음.’

잠깐잠깐. 이 청승맞고 암울한 글 슬슬 덮어버리고 싶어졌다면 사과하겠다. 당연히, 어떤 정신


질환이나 정신 장애 판정을 받았다 해서 모든 사람이 나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졌단 식
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ADHD든 우울증이든 조현병이든 어떠한 스펙트럼이든, 절대 당신
의 하늘이 무너질 필요는 없다. 다만 각자의 이유로 무너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는 나의 경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ADHD 진단을 받은 후로 나의 일상에는 꽤나 큰 균열이 새로 생겨났다. 원래 있던 균열을 좀 때


우고 고쳐보려고 ADHD 검사를 받았던 건데, 내 손이 닿는 모든 곳에서부터 새로운 금이 갈라지기
시작할 때의 기분이란 대단하다. 불안을 막아준다던 ADHD 약은 내 불안을 더욱 치솟게 했고1, 주
기적으로 정신과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나는 진단 전보다도 훨씬 우울해했
다. 학기 내내 앞자리에서 집중하던 수업의 최종 리포트를 지각 제출했을 때, 늘 잘 보이고 싶던 교
수님께 대놓고 과제 독촉을 받았을 때, 편하던 공간과 사랑하던 사람들 곁에서도 가고 싶고 자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때에, 그때서야 정말, 뭔가, 제대로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쯤에서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던 사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성인 ADHD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법’이나 ‘ADHD에 관해 우리가 몰랐던
109가지 진실’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 글은 ADHD 진단 뒤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
문인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힘들어하지?’에 대한 지금까지의 고민이자 나름의 대답이다.

정신과에서 어떤 진단명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사람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내가


무너졌던 이유는 ADHD였기 때문이 아니라, ‘우울증이 아닌’ ADHD인이었기 때문이었다.

1) 산만하고 가만히 못 있는다는 ADHD인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ADHD 치료제가 모두 안정제일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진단 전 내 생
각이 그랬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ADHD 치료제는 반대로 중추신경 자극제라서 오용하거나 다른 조건과 맞지 않을 시 오히려 불안이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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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울하다고 느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때때로 느끼는 어떤 감각들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했고 편안히 수용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리고 그 ‘우울함’에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보려 더 일찍 병원에 찾아가 본 적도 있었다. 당시에 내가 받은 진단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불리는 우울증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그때, 나는 쉬이 진단명을 명확히 해주지 않으시는
선생님을 피해 웃돈을 얹어 진단서를 떼어가며 그 이름을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불안 반응 및 경
도 우울에피소드’. 인터넷에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아무튼 우울증 맞단다. 그걸 알게 됐을 때 일순
느꼈던 안도감과 충족감이 있었다.

병이라는데 가슴이 놓이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내과 검진을 받고서 의사에
게 ‘아무 이상 없지 않으시네요. 심근경색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
데.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에 분명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나의 괴로움에 드
디어 눈에 보이는 핑곗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차
갑게 인정해 주는 증명문서 한 장이 필요했다.

역시, 이런 이상하고 음침했던 기분에 대해 고찰하는 건 집어치우고 싶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처방과 상담으로 완전히 치료되어 과거의 슬픔과 괴로움을 딛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상 성인으로
서의 탄탄대로를 걸어갔다. 이야기 끝.

그리고 유튜브도 찍고, 어디 강단에 서서 강연도 하고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리 편하게


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내가 처방 약에 대해 어떠한 ‘약효’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꾸준한 복
용이 필요하다는 약물 치료의 제1원칙을 감안하였을 때도 그랬다. 시간이 지나도 일상과 감각들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스트레스를 더 느끼면 느꼈지, 이전보다 나
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질 않으니 도대체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게다가 당시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정신질환이나 정신과에 대한 가시화와 일상화가 일정 부


분 성공하여 이전 시대처럼 ‘정신병은 허상이다. 의지와 기개로 이겨내자!’ 하는 식의 하면 된다 논
리야 줄었었지만, 반대급부로 ‘정신병은 감기처럼 약만 먹으면 바로 낫는 거 아니냐’는 식의 현대의
학 만세 논리가 떠오르던 시기였다. 바로 그 현대의학이 들지 않았던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나중 가선 솔직히 화까지 났다. 그보다 더 나중에 가서는 모든 담론에 고개
를 끄덕이며 현대의학의 신이 나를 버리셨나 정도의 숙명론적 태도로 스스로를 보호하긴 했지만,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채로 나는 다른 내 할 일을 했다.

나는 왜 약을 먹어도 좋아지지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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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이 지나 우울증이 아닌 ADHD 진단을 받았다. 우연찮게 시작한 상담에서 몰랐던
지식을 새로 배우며 내가 힘들어하던 익숙한 감각은 우울보다는 불안에 가까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2 진단명이 달라지고, 처방 약이 달라졌다. 이제 내 괴로움을 증명해 주는 이름은 우울증이
아니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였다. 새롭게 떨어진 이름을 받아 들고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우
울증 진단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건 안도감도, 기쁨도 아닌, ‘부끄러움’에 가까웠다.

내 진단명이 우스워 보였다. 그래서 마치 ‘오는 길에 빙판길에서 웃긴 포즈로 미끄러진 거 있지!’


정도의 톤으로 지인들에게 나의 ADHD 진단 소식을 가볍게 전하고 다녔다. 내가 농담처럼 말을
꺼내자 지인들도 무겁지 않게 받아주려 노력했다. 나도 요새 집중 안 돼. ADHD 검사 좀 받아볼까
봐. 현대인들 검사를 안 해서 그렇지 다 사실은 ADHD 환자들이야. 나를 위해 해준 말에 되레 나
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울증을 고백하는 일은 그 공간의 웃음을 멈추게 할지는 몰라도, 단어가
가져다주는 암울함만큼의 무게가 있었다. 반대로 ADHD는 웃으며 꺼낼 수 있을지 몰라도 꼭 ‘별거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괴로웠던 모든 시간들이, 단순히 내가 ‘산만하고’ ‘집중 못 하는’ 사
람이라 그랬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물론 그전까지 나도 그랬다. 가시화가 된 만큼 집중이 안 되
는 상황엔 쉽게 남 앞에서 ‘ADHD인가?’를 입 밖으로 꺼냈고, 입 밖으로 꺼내기 쉬운 이름이었기에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결정까지 빠르게 다다를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비로소 당사자가 되었
을 때,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까지 단단히 깔려있는 편견에 대처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
의 일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증상들을 단순히 ‘ADHD라 집중 안 됨’ 정도로 일축할 수는 없다. 나는


ADHD가 맞지만 일상이나 학업에서 집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성인이 되
고 나서야, 주변에 ADHD를 겪는 가까운 지인이 생기고 나서야, 내가 몰랐던 ADHD의 특징들을
새로 알고 나서야, 그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나서야 비로소 ADHD일 수도 있겠다는 지각 자체가
가능했다.

나의 경우는 주변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했다. 버스에서는 사람들의 소음과 침묵, 모든 종류의 자


극들이 불안으로 다가왔고, 관계 속의 사소한 자극에도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꽉 채운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이 글을 실제로 쓰고 다듬는 과정에서, 나는


내 주변, 그리고 내 지인들의 주변에 있는 ADHD인들의 다양한 증상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
다. 원래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들어보았다. 나 말고도, 정말 ‘ADHD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2) 우울과 불안은 상호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개념이며 의미 해석에 대해 단일한 정의는 없으나, 불안은 정서 반응인 우울에 비해 신체가 느낄 수 있는 감
각의 반응으로 드러난다. 무기력함이나 자살 사고와 같은 우울증의 주요 증상과 호흡이 가빠지거나 두통이 오는 불안장애의 주요 증상을 비교하여 생각
하면 좋다. 물론, 우울과 불안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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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이 체감되자 더 이상 스스로를 비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조소
하는 일이 남의 괴로움 역시 깎아내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3. 증명 지옥지옥지옥지옥

내 진단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문제 해결이 아닐까. 나는 ADHD의 이름을 받아들이기로 했


다. 이제 내 괴로움을 증명해 주는 이름은 우울증이 아니라 ADHD로 새로고침 됐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

너무 쉬운 트릭인가.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겠다. 다시 한번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정리해 보자


면, 우울증인 줄 알았고, 그런데 ADHD였고, 그래서 내 괴로움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슬펐다.
ADHD를 핑계 대는 괴로움보다 우울증을 핑계 대는 괴로움이 더 인정받을 만해 보였고, 더 나아
가서 우울증이어야만 힘들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지배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나는 예상
하고 있던 우울증 외에 어떤 진단이 나왔어도 비슷한 혼란을 겪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의 무너짐의
이유는 진단명에 있지 않았고, 괴로움을 증명받아야만 한다는 굳은 강박에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조금이나마 극복된 사고이기에 젊은 날 성찰하듯 되돌아볼 수 있음을


감사하긴 하나, 제발 좀 증명해달라며 진단서를 떼어대던 그때의 나를 욕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증명하고 증명받으며 살아간다. 성실함을 알리기 위해 출석을 증명해야 하고, 입시를 위해선 성적
을 증명해야 하며, 남들한테 잘살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 괜찮은 데서 괜찮게 찍은 SNS용 증명사진
한 장 정도는 필요한 시대다. 그러나 내면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에까지 자기 증명의 늪에 빠져 다른
대처는 하지 못한 채로 끝없이 ‘힘들어도 되는 이유’를 찾는 데에만 몰두한다면, 우리 몸은 망가지
고 정신은 지쳐간다.

나는 내 삶의 방관자가 아니다. 교훈의 뜨거움과 냉소의 차가움을 모두 걷어낸 뒤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명쾌한 답이 되기를 바라고 쓰기보다, 혹여라도
지금 스스로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한 속도로 파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멈춰주시길 간절
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길었던 글을 정리해 보려 한다.

차갑게 나를 인정해 주던 증명 문서를 피날레처럼 내던져버리고, 이걸 읽는 당신도 항상 건강하


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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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괴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


영화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단념

“타인은 지옥이다” 집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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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

영화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윤필영
sgfeel2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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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물에서 괴물 찾기

사오리 입장에서의 괴물
영화는 어둑한 밤 한 어린아이의 신나는 발걸음을 따라, 휘슬 소리에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로
번지며 시작합니다. 주인공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는 아파트 창문에서 걸스바 건물의 화마를 잠
재우는 소방관들을 향해 늦은 밤 시간을 개의치 않고 힘차게 응원합니다. “간바레!” 아들 미나토
의 만류에도 당차게 외칠 뿐이죠.

사오리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 미나토를 열심히 케어하는 멋진 싱글맘입니다. 미나토는 영


문 모를 말과 행동으로 그녀를 혼란스럽게만 합니다. 돼지의 뇌를 이식한 사람이 사람이냐는 질
문, 물통에 흙을 담아오는 아이, 신발 한 짝은 없고, 난데없이 머리를 잘라버리는 모습까지. 하지
만 사오리는 그런 아들 앞에서 초조함과 불안함을 내비치지 않고, 아들이 자신을 상처 입힌 괴
물로 호리 선생을 지목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 없이 학교로 찾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머니상
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눈에 미나토의 학교는 그저 괴물 던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를 상처 입히고


도 무미건조한 사과와 대답만을 반복하는 책임자들과 담임이라는 작자.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
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표정 하나, 언동 한 번에도 생동감은 느껴지지 않는 죽은 인간들이라
고. 역겨울 정도로. 담임인 호리는 미나토가 같은 반 친구 요리를 괴롭히는 주범이라고 말합니
다. 그럴 리 없고, 아니었습니다. 요리는 조금 특이한 아이 같았지만,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 앞에
서 담임의 아동학대를 증언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담임의 아동학대는 인정받아 학교에서 사라
진 줄 알았더니 어느날 미나토가 학교에 찾아온 담임을 피하다 계단에서 굴렀다는 소식을 듣습
니다. 태풍 부는 어느 날엔 아들이 사라졌고, 태풍을 뚫고 호리가 찾아옵니다.

그저 미나토가 평화롭게 그저 평범하게 자라서 가족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당연하게 누리길


바랐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토록 삶은 태풍 속이란 말인가요?

호리 입장에서의 괴물
호리는 아이들에게 관심도 많고, 꿈도 심어주고자 하는 신임 교사입니다. 학교를 마친 후에
도,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중에도, 아이들이 보이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며 걱정하는 참 선
생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죠. 책의 오탈자를 찾아내서 문의하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도 있고, 웃
는 모습은 좀 어색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부모 가정인 미나토도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왕따를 당하는 요리의 가정에도
찾아가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려 하고, 되려 자신의 아이를 병자 취급하는 아버지에게 요
리는 좋은 아이라며 옹호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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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동학대범이 되었습니다. 교실 내 난동을 중재하려다 미나토의 코를 쳤지만 절대 의
도하지도 않았고, 사과했다. 그런데도 아동학대범이라 말합니다. 학교도 사오리도 그의 이야기
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니 알고 있음에도 그를 옥상 끝으로 몰아세웁니다. 기자,
여자친구도 생전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세상이 그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
다. 미나토를 찾아갑니다. 미나토도 호리의 결백함을 알고 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커져 버
렸습니다.

그는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모든 게 완벽하진 않아도 그저 불어오는 바닷


바람처럼 살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아이들 입장에서의 괴물
미나토는 평범한 어디에나 있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엄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춘기 소년이죠. 교실을 청소하다가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동급생
호시카와 요리와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요리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늘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자신의 뇌는 돼지의 뇌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요리, 과
자를 나눠주면서도 과자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니, 병이 옮지 않는다는 요리, 미나토의 머리
를 쓰다듬으며 돼지 울음소리를 내어보는 요리. 미나토는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요리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래
서 학교 안에선 자신이 요리와 친구임을 숨깁니다. 요리는 그런 미나토를 흔쾌히 이해해 줍니다.

곧 있으면 우주는 빅 크런치로 멸망해 세상의 모든 것이 회귀해 재탄생할 것이라 이야기하는


요리. 미나토는 그런 요리의 얘기를 거부하기보다 귀 기울입니다. 그런 미나토를 요리는 자신의
비밀 장소인 폐터널 속 전철로 초대하고 이곳은 둘만의 아지트가 됩니다. 이곳에선 둘 다 자유롭
습니다. 요리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인간 피라미드를 지탱하지 못해 남자답지 못하다고 핀잔주
는 담임선생님도, 다른 여자와 캠핑하러 가서 죽어버린 아빠에게 일상 보고를 하라는 엄마도 없
습니다.

학교는 이 둘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여전히 요리를 괴롭힙니다. 그렇지만 요리는 아랑곳하


지 않습니다. 책상이 더럽혀져도 묵묵히 치울 뿐이고, 화장실에 갇혀도 누군가 구해줄 것을 밝게
기다립니다. 등굣길에 아이들에게 밀쳐 넘어져도, 왜 그러냐는 호리의 물음에, 신발이 벗겨져 그
렇다고 답할 뿐 고자질하지도 않습니다.

어느 날 요리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할머니가 있는 댁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미나토는 처음엔 수긍하는 듯하지만 이내 요리가 떠나는 게 싫다 고 말
하며 요리를 붙잡습니다. 요리는 그런 미나토를 안아주며, 둘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흐릅니다. 자
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미나토는 요리를 밀쳐내고 도망쳐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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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학교에서도 요리를 감싸다 싸움을 일으키고 사고를 치는 등 스스로 요리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된 미나토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요리의 말처럼 자신의 뇌도 돼지
의 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통적인 남녀 한 쌍의 가족 형태를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남
자다움을 강조하는 호리 선생에게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이 생깁니다.

태풍이 오는 날, 미나토는 빅 크런치가 도래한다고 생각해 요리를 찾아가 자신들의 비밀기지로


가게 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 전철에서 걸어 나오는 두 아이. 폐선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황
홀한 햇살은 두 아이를 축복하듯이 내리쬡니다. 다시 태어난 거냐는 요리의 질문에 미나토는 그
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에 다행이라며 미소 짓는 요리와 함께 미
나토도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2. 怪物はだれだ?(괴물은 누구게?)

영화는 같은 사건을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꿔가면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를 통해 영


화 속 인물 3명의 행동과 판단이 합리적이고 최선이었다고 어필하죠. 더 나아가, 관객이 한 인물의
마음에 동조하여 인물의 시점에서 괴물을 찾게 유도합니다. 2장과 3장을 거듭하여, 사오리, 호리,
미나토라는 주요 인물들의 입장을 모두 체험하고 난 뒤에야 관객은 한 인물에 대입하여 평가한 다
른 인물들의 모습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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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미나토는 폐터널 속 아지트에서 ‘괴물은 누구게?’라는 게임을 합니다. 동물 카드를 이마에
붙이고 카드를 본 상대방의 설명만을 듣고 동물을 맞추면 되는 것인데, 맞추지 못하면, 그 존재는 괴
물이 되는 것이죠. 이 게임은 어쩌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1장의 엄마 사오리 파트까지만 보면, 호리 선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은 정말 괴물입니다. 학


교폭력과 아동학대에 무미건조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썩어빠진 행정을 여실히 보여주죠. 중간 중간
엄마의 통제나 예상 밖의 이상행동을 하는 미나토가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2장의 호리 선생님 파트를 보게 되면, 1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호리 선생님은 그다지 괴물이
아닙니다. 조금 미성숙한 어른이긴 해도 아이들과 가까이서 나름의 노력을 하는 신임 교사이지, 아
동학대범이라기엔 지나친 비약이 있죠.

3장의 미나토 시점(다들 미나토 시점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제 글에서만큼은 미나토와 요리 두 아


이들의 입장이라고 하고 싶어요.)에 이르러서는 불륜을 저지르다 죽은 아빠를 닮아 정통적 가족상
을 꾸리길 바라는 사오리도, 남자답기를 강요하는 호리 선생님도, 요리를 괴롭히는 반 아이들과 요
리의 아빠도 괴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혼란을 겪는 미
나토 본인도, 아빠와 친구들에 의해 괴물로 취급받는 요리 본인도 스스로를 괴물로 생각하고 있었
을 테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각 장에 맞춰 눈에 불을 켜고 괴물을 찾고 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아 괴물은 나였나?’ 하고 말이죠.

3. 괴물이 판치는 평범한 세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괴물 같은 인간’들을 마주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인간적 감정


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 않는 교장,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교 직원들,
아무렇지 않게 정상성을 주입하는 엄마 사오리, 남성성을 강요하는 담임교사 호리 같은 캐릭터도
있겠죠. 가볍게는 괴물 같은 두뇌나 힘을 가진 사람일 수 있고,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듯한 주변인
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괴물이 본인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수 있다고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집이나 초등학교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친숙한 장소인 점은 괴물이라는 존재가
특별히 극단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존재가 아닌 일상적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괴물이라는 것은 특
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일상적 표현입니다. 우리는 모두 앞서 살펴 본 것
처럼 어떤 상황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괴물이 될 수 있습니
다. 이는 우리가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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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러한 ‘괴물성’은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고 제거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다양
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특별히 전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존재가 아닌, 일상적인 존재라는 점에
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이러한 ‘괴물성’은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고 제거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특별히 전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존재가 아닌, 일상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비
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4. 기꺼이 괴물이 된, 괴물이 될 사람들에게

정말 매일을 버티며 살기에도 벅찬 세상일지 모르겠습니다. 학업과 취업, 꿈과 현실, 일과 쉼 사


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고뇌하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고, 평범과 정상성에 도달
할 수 있다고들 하네요. 어쩌면 적당히 만족스러운 지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도 투쟁해야만 합
니다. 남들을, 어제의 나를 이겨내기 위해서 괴물을 자처해야 하고 괴물로서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
나도 많을 테죠. 저는 이번 영화가 ‘인간은 모두 괴물이고, 그 괴물은 단편적이지 않은 복잡성을 지
닌다.’에서 나아가 그럼에도 살아주기를 바라는 조금은 무책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미래
가 기다린다거나, 무작정 나아진다거나 그런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소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
상엔 화재도 나고, 태풍도 여전히 불어옵니다. 영화의 끝에서, 화목한 가정의 아이로, 왕따당하지 않
는 평범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그저 뛰어나간 것처럼, 다시 태어나지 않음에 ‘다행이네’라
고 미소 지은 아이들처럼 그저 무책임하게 하루만, 한 걸음만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요? 누구도 신
경 쓰지 않고, 누구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 무책임한 하루에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내가 괴물처
럼 비추어질지 두려워 마세요. 우리는 모두 괴물이고 괴물이 된, 괴물이 될 당신을 적어도 저는, 그
리고 이 영화는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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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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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싫어하고 왁자지껄 술자리 질색하는 교지 편집위원들끼리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왜 굳이 여기로 갔더라? 일단 하나하나 전부 더럽게 까다로운 예술충들이라 상영작의 퀄리티가 전
반적으로 나쁘지 않아야 했다. 농담이고, 나름대로 기준들이 있었다. 너무 멀어 혼자 갈 엄두를 못
낼 것 같고,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곳, 티켓값이 비싸지 않은 곳, 모두의 본가(
경기도, 경상도, 서울, 전라도, 충청도)와 최대한 먼 곳, 자차 없이 숙소-영화제 장소-바다 이동이 가
능할 것 정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상영작 전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외 상영이므로 무료다. 결
론부터 말하면 대만족이었으니 다른 단위 분들에게도 MT 장소로 추천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대
한 감상보다는 영화제 전반의 분위기 위주로 서술할 예정이다.

1990년대 국내 태동했던 씨네마떼끄 운동이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이미 오래됐다. 더군


다나 많은 독립영화제가 새로 생기기는커녕 사라지고 있는 요즘, 서울 상황도 썩 좋지 않을 텐데 어
떻게 강릉에서 25회째 영화제를 이어오며 전국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을까. 어떻게 버틴 걸
까, 어떻게 사람들을 모았을까… 우선 정동진독립영화제 소개를 보자.

올해로 25회를 맞이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강릉씨네마떼끄 주최로


매년 8월 첫째 주, 강릉 정동초등학교에서 열리는 독립영화의 여름 축제입니다.
1999년, (사)한국독립영화협회와 기획해 대안·독립·낭만의 영화제로 탄생된 정동진독립영화제는 관
객과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독립영화를 상영합니다. 또한 관객과 함께하는 개막식,
감독과 배우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 재미있게 본 영화에 동전으로 투
표하는 관객상인 땡그랑동전상 등 관객친화형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1

1)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2023년 7월 18일 수정, 2024년 1월 28일 접속, http://jiff.kr/about-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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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설명과 더불어 본 영화제의 사업 목표는 독립영화의 저변 확대 및 지역 영상문화 활성화라고 적
혀있다. 이마리오 감독이라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겸 활동가가
있다. 오랫동안 강릉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강릉미디어센터에서 워크숍을 열기도 해 왔다. 센터
를 기반으로 많은 강릉시민들을 영상제작자로 키워냈다. 예전에 “미디어로 행동하라”라고 서울이 아닌
지역들, 예컨대 제주 강정마을 미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삼척 석탄발
전소 설립 반대 투쟁 같은 현장에 영상, 소리(굳이 소리라고 하는 이유는 음악뿐 아니라 구술사를 기반
으로 한 팟캐스트 제작도 동반하기 때문이다)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일주일을 살며
창작하는 캠프가 있었다. 나는 2015년인가 딱 한 번 가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여튼 잊고 살다가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오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듣기로는 아직도 영화제 스태프들 점심 식사 배급을
맡고 계신다고 한다. 왜 갑자기 이마리오 감독 이야기를 하였는가, 비단 이 감독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
가들의 오랜 노력으로 정동진독립영화제 같은 행사가 아직까지 이어져 왔음을 유념해 보자는 취지다.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 술 마시며 시끄럽게 보시고, 단 영화 대사보다만 작게

반가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오프닝과 함께 막을 열었다.

2) 이마리오 감독과 ‘독립영화 도시’ 강릉의 이야기는 다음 인터뷰를 참고. “[ACT! 105호 인터뷰] 독립영화 도시 강릉, 독립영화의 집 인디하우스 - 이
마리오(감독, 미디어협동조합 이와 대표),”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2017년 8월 29일 수정, 2024년 1월 28일 접속, https://actmediact.
tistory.com/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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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운동장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돼 모기 기피제를 잔뜩 샀는데, 운동장 양옆
에서 쑥을 한가득 모아 줄곧 태워주어 모기는 한 마리도 물리지 않았다.

목줄 착용만 하면 반려견 동반 입장도 가능, 우리 돗자리 바로 앞에도 아주 귀여운 개가 주인 옆에 앉


아있었는데, 개 주인이 류미례 감독이었다. 차마 아는 척은 못 하고 우리끼리 조용히 호들갑을 떨었다.
영화제 현장에 입장하자마자 바로 강릉 지역 양조장 생맥주를 판매하는 부스가 있다. 진짜 너무하다.
아이들이 뛰놀던 신성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맥주라니 너무 맛있었다. 항상 생맥주 줄이 가장 길었는
데, 내 앞에 이슬아 작가가 서 있길래 또 역시 아는 척은 못 하고 친구랑 조용히 호들갑을 떨었다. 맥주
줄 바로 옆 분리수거장에 계속 스태프들이 상주하며 관객들의 분리수거를 돕는 점이 참 좋았다. 굿즈
판매 등에 더 힘을 주고, 분리수거장은 그냥 엉망진창 쌓이도록 내버려둔 후 스태프들이 한 번에 짬처
리해서 버리는 게 예사일 텐데 말이다.
그 옆에서 관객들에 영화제 피드백 요청을 하는 스태프도 있었는데, 피드백을 제출하면 대나무 칫솔
1개를 주었다. 여러 디테일에서 영화제가 지향하는 바가 보였다. 굿즈 판매처에서 눈에 띄었던 건, 재
고로 남은 지난 영화제들 티셔츠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점이었다. 다들 근처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다
해가 지면 영화를 보러 오는데, 대책 없이 왔다가 하루 더 묵는 사람들이나 계획 없이 바다에 빠진 사
람들에게 딱 좋은 옵션이었다. 맞은 편에서는 땡그랑 동전 영화상이라고, 액수 상관 없이 상영작 중 가
장 좋았던 작품에 동전을 넣는 곳이 마련돼 있다. 땡그랑 동전상 옆에는 ‘느린 우체통’이 있었다. 영화
제 엽서를 구매해 작성 후 우체통에 넣으면 1년 뒤 해당 주소로 편지를 발송해 준다. 그때 깨어 있던 4
명이 같이 엽서를 써서 교지실로 보냈다. 그때 난 없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지.
옆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애니메이션 지원사업 폐지 반대 연명 QR코드가 놓여있고, 영화제 스태프들
이 지나다니는 관람객들에 연명 참여를 부탁하고 있었다. 육성해도 모자랄 망정 왜 자꾸 없애는지. 맥
주 사러 온 사람들이 연명도 했다. 운동장에 미리 깔아둔 의자 옆에 텐트, 모기장, 돗자리도 모자라 등
나무 벤치까지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그런데 또 돌아다닐 만한 동선은 충분히 확보가 돼 신기할 노릇
이었다. 덕분에 영화공동체를 떠나 노고지리를 열심히 하는, 영화제 스태프 친구와 밖에서 담배 맘껏
필 수 있었다. 마을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분이 경광봉을 들고 교통 정리를 하며 꽁초 아무데나 버리지
말라 소리 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예예 당연하죠” 하고 조신하게 분리수거 일반쓰레기통에 버리
고 들어가 영화를 마저 보는데, 코미디 영화일 때는 다 같이 소리내어 웃고 또 좋은 영화가 끝나면 다
같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순간들이 꿈결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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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영화도 시끄럽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지! 영화가 끝나고 MC가 제각기 수줍어하는 감독들
을 하나하나 올려 짓궂은 질문을 건네기도 했는데, 스크린 위에는 어디서나 읽을 수 있게 큼지막한 실
시간 자막이, 옆에는 조금 작지만 역시 큰 화면에 수어 통역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야외 상영의
단점이라면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건데, 자막 덕에 이해가 쉬웠다. 물론 이맘때쯤 나는 취해서 자
막을 잘 읽지는 못 했던 것 같다.

이스트씨네 - 영화, 커피, 책


정동진초등학교에서 도보 8분 거리, 바닷가 바로 옆에 이스트씨네(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헌화로
973)라는 작은 서점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영화에 대한 서적 위주로 판매하나 영화 시나리
오집이나 이론서 이외에도 사상서, 소설 및 산문집 등도 판매한다. 일출 시각에 문을 열고, 트위터 계
정(twitter.com/eastcine_books)에 매일 일출 사진을 올린다. 솔직히 교지 친구들 전부 서점에 넣어두
면 알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 구경하겠지? 그럼 나는 밖에서 줄담배나 피워야겠다 하는 생각이
었는데, 막상 들어가니 눈 돌아가서 그럴 시간 없었다. 찾아보니 서점 사장님 부부 또한 서울에서 서점
을 운영하다가, 정동진영화제를 통해 이곳에 처음 방문한 후 서점을 개업하며 정착하셨다고 하더라.
계속 돈을 써야만 살 수 있는 서울이 질려 조금 벌고 조금 써도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오셨다고. 서점
은 영화제 기간에는 매일 북적거리기에 오래 있기는 어렵지만 다들 오랫동안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
가 한 권씩 사서 나왔다.

한쪽 벽에는 정동진독립영화제 관련 브로슈어들뿐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간한 한국 영


화 포스터 분석 및 레터링 모음집 등 귀한 자료들이 있었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읽으면서 우와,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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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친구한테 “이거 영자원 가면 구할 수 있나?” 내뱉었는데 갑자기 뒤에 계시던 분이 “저 거기서 일
하는데요. 영자원 가셔도 아마 있고요. 홈페이지 가셔도 있어요.” 하고 답해주셨다. 진짜 있었다! 구글
에 ‘아카이브 프리즘 #10’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영화제 온 사람들이라는 아주 느슨한 친밀감이 영화
제 기간 그 동네를 감싸는 듯 했다.

숙박할 돈이 넉넉했다면 사흘 내내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사라지는 것들을 마냥 바라


만 보며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모습
이 좋았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아주 가끔 나갔던 투쟁 현장에서 만나기만 했는데, 그게 아니라 나른하
게 즐길 수 있는 현장이라 너무 귀했다. 일개 관람객으로 감상에 젖어서 술만 많이 마셨다. 다음번 영
화제 때엔 개 데려온 관람객이 화장실 가면서 나에게 개 한 번만 봐달라 부탁하면 소원이 없겠다. 너
무 귀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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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념

채성준
(철학18, 외부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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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하지 말 걸 그랬다. 나는 사실 글이라는 것을 쓸 줄 모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을
쓴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연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써 내려갔었던 적이 있을 뿐이다. 학점을
따내기 위해서 논리와 형식, 그리고 신뢰성 있는 정보와 생각들을 짜집기해서 한 편의 보고서로 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쓴 글은 정념으로 가득 찬 텍스트 덩어리였다. 나는 그러한 덩어리
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배설’과 같은 것으로 본다.

글을 배설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나에게 글이란 일종의 경고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감정에 무


딘 사람이다.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항상 뒤늦게 눈치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화재를 알리는 경보음과 같다.

작문은 나에게 일종의 경고다. 글이 쓰고 싶어진다는 것은 대개 나의 정념이 가득 차 흘러넘치


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위험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떠올
린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와 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약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다. 약을 먹는다고 특별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
할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슴속에 언제든 쏟아질 것만 같은
눈물 한 덩이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각자의 예
민과 그 감각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질이 예
민하다거나 우울하다거나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의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나의 일상을 살아낼 수밖에 없다.

날마다 반복되는 삶을 모아 일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쉽게 표현하면 최근 내가 지내온 날들과


지내고 있는 날들, 그리고 앞으로 지내게 될 날들이 곧 일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온한 일상
에 조금만 의식적으로 개입해 보면, ‘일상’이라는 말만큼 부조리한 말도 없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다니. 마치 니체가 주창한 영원회귀사상 같다. 불행한 일생을 보냈더라도, 우리는
다음 생에서 이와 같은 삶을 그대로 경험한다. 이러한 회귀는 영원히 반복된다.

인생의 대부분은 행복이라고 부르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들리는 소식은 대개 긍정적인 소식이
아닌 부정적인 뉴스들이다. 우리의 감정은 대개 행복보다는 고통과 슬픔에 가깝다. 다만 사람마다
무디고 예민한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다. 이전에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게 들려오는 것 중 대
부분은 나쁘고 극히 일부만이 좋다는 것이다. 특별히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거나 거창한 비관
주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단념해 나가는 것 같다는 김기림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매년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것을 다짐하고 동시에 기존의 것들을 단념해 나간다. 작년의 자신을 단념하고 내년
의 자신은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멋들어지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인
가를 포기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행위는 다른 무엇인가를 단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렇게 보면 인생을 B와 D 사이의 C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이 단념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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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념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다른 삶을 단념하고 결혼을 택한 이들은
가정이라는 선택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사회의 제도와 문화로서 마땅한가를 논하기 이전에, 그것
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도달하
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시간들도 단념해 나가는 시간이다. 나의 욕구와 다
른 충동을 계속해서 단념해 나갈 때 나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기질적으로 충동적인 사람에게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을 단념해야 한


다는 것은 극도로 잔인한 현실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위해서 최소 몇 년 동안 매 순간 단
념해야 하는 현실은 괴롭다 못해 부조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들의 고통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우리는 그 길고 긴 단념의 시간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CPA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노무사
를, 누군가는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를, 누군가는 세무사를 준비한다. 이렇게 몇 년이 걸리는 시험
이 아닌 학부에서 매 학기마다 마주하는 일상적인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그렇다. 이 또한 단념의
시간이며 우리는 그 순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로 그 기간을 시작한다.

최소 일 년의 기간을 요구하는 시험 준비의 시작은 약간의 설렘 또한 담고 있다. 희미하게나마


보이는 합격이라는 기대는 우리가 그 길을 선택하고 다른 것들을 단념한 이유가 된다. 대부분은 이
러한 마음가짐으로 고시를 시작할 것이다. 나는 저것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대한 최소
한의 믿음. 그것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기나긴 단념의 시간을 시작한다. 이때 그 단념의 출발점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
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욕망이
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안함으로 인해 단념한다. 주어진 시간과 돈을 사용했는데도 시험을 통과하
지 못한다면 나의 미래는 더 곤란해질 것이라는 불안함이 사람을 움직인다. 다른 누군가는 강력한
욕망으로 단념한다. 목표를 향한 가장 큰 욕망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욕망을 삼켜버린다. 그렇
게 목표라고 부르는 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단념한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이 두 가지 모두에
의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념해 나가는 시간은 결코 쉽지 않다. 휴식을 단념하기 위해선 휴식을 알고 있어야 한
다. 내가 모르는 것은 당최 단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단념은 내 삶의 일부를 이루었던 것들
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다고 그 시간이 모두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을 잊어버린다. 그러한 일들은 단념할 수조차 없
다. 나의 일부를 이루는 것들은 내가 스스로 내 자신이라고 인정해 받아들인 것들이다. 다르게 말
하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 자신을 이루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로 태어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는 불가피하게 무엇인가를 사랑
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 또한 무엇인가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까지 치닫는 이유는 나의 존재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
는 것들이 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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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이다. 고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
나큰 문제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빈번히 나를 죽이려 든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상의 행복은 내가 그것들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다. 내가 계속 그것들을 찾


고 욕망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내가 해야만 하는 것들에서 나를 멀어지게 만든다. 나의
단념을 실패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내가 실패하게 만든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것에 닿지 못하게 된다. ‘단념하지’ 못하고 ‘단념하게’ 된다. 주체적으로 단념하지 못하고 단념
당하는 삶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단념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단념할 것이냐, 단념 당할 것이냐 사이에


서 매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신자유주의적인 끊임없는 자기 발전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피투성을 지닌 존재로서 각 개인은 끊임없이 단념이라는 현실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어쨌든 자신의 일부를 계속해서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단념이라는 것은 나를 깎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단념해 나가는 것은 지쳐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단념을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자책하지 말자. 스스로를 포기
해 나가기만 하는 삶은 본래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건 당연하지 않다.

또 우리가 단념해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다. 다른 것들을 포기하더라도, 적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들 것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도 있다. 슬퍼하지 않는 방


법이 있다. 그 모든 방법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기대하고, 사랑하고, 기뻐하지 않으면 된다. 우리
는 손쉽게 우리를 깊은 구렁으로 끌어당기는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포기하게 된다. 이를 깨닫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만, 적어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단념의 일부다. 그러한 생각은 우리가 타인에게 덜 상처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단념이 단지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속세에 통달한 한 명의 범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인생은 원래 별거 없고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런 이들에게 은근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들의 사고가 제한적이라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떠올려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은 사랑에서 온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잃을 때 슬퍼하고, 사랑하는 것이 좌절되었


을 때 실망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끝없이 무엇인가를 사랑하려고 한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새로운 의미에 애착을 가진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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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슬퍼한다.

우리는 단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나는 언제나 단념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
는다. 사랑은 역설적으로 자해와 같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에 나를 무방비하게 내어주는 것
이다. 성경의 예수가 그러했고, 로미오가 그러했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당신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취약하게 만드는 것


들은 무엇인가. 내가 결코 단념할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곧 나를 이루는 것이며, 이를
잃는 것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단념하고 단념해도 더 이상 단념할 수 없는 것이 곧 내
가 사랑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의 손에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
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거나 단념하는 것.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서 말


해왔듯 우리는 결국 무엇인가를 단념하거나 단념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단념이라
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나를 죽일 수 있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하지만 반드시 단념할 필요는 없다. 반드시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도 된다. 그것 또한 단념해버
리면 된다. 결국 내가 단념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소득, 업무의 자율성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인정들도 모두
쓸데없이 단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맹렬하게 달려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들 또한
사실은 아직 단념하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속임수에서 단념하는 법
을 배우는 것 또한 필요하다. 때로는 단념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어설픈 단념으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얼음판과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렇게 보면 단념이라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불행한 삶의 끝에서 그러한 삶이 영원히 그 모습 그대로 반복된다고 믿었던 니체는 죽기 직전


이렇게 말한다. “Aber, noch einmal! (그래도 다시 한번!)” 죽음과 같은 마음의 고통 속에서도 니
체는 그래도 다시 한번을 외친다. 고통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는 “그래도 다시 한번!”을 끊임없
이 외쳐야만 한다. 그것은 어떠한 비장한 각오도, 뛰어난 성찰도 아니다. 단지 그는 알았을 뿐이다.
단념해 나가며 살아가는 방법을.

니체의 마지막 말에 작은 각주를 달고 싶다. “단념은 나의 힘.”

완벽하고 멋들어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또한 이쯤에서 단념하기로 한다.

111
집담회
“타인은 지옥이다”

교지서강 편집위원 일부
(경민, 보배, 유진, 지연, 현지)
112
‘타인은 지옥이다.’ 각종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말은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 장 폴 사르
트르가 희곡 “닫힌 방”에서 한 말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타인의 잣대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며 그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남의 눈치
만 보고,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이 사르트르에게는 ‘지옥’이라는 것이다.1
말 그대로 ‘사람에게 치이며’ 산다는 요즘, 우리는 타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곤 한다. 타인
은 정말 지옥일까? 편집위원 각자에게 타인이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타인은 지옥일까?

보배 우리 어쩌다가 이 주제를 기획하게 됐지?

경민 우리가 교지실에서 늘 사람 싫다는 얘기를 진짜 많이 하잖아. 근데 사실 깊이 들어가 보


면 진짜 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 정말 사람을 싫어했다면 교지에도
들어오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일단 ‘사람이 싫다’, 혹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할 때 그 타
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각자 얘기해 보자.

현지 근데 그럼 반대로 지옥이 아닌 타인도 있어? 각자에게?

지연 나는 있어. 나는 지옥으로까지 느낀 사람은 없어서 타인이 나한테 지옥은 아닌 것 같고,


다만 대하기에 까다로운 대상이 사람인 것 같아. 나한테 있어서 타인은 뭐랄까, 함께 해
야 하지만 까다롭고 어려운 존재인 것 같아.

보배 난 개인적으로 사람 좋아하는 것 같아. 아마도. 사르트르가 왜 타인을 지옥이라고 했는


지 그 철학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난 타인을 모르기 때문에 지옥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난 모르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타인이 매력적이기도 해. 나한테 타인은 항상 불안한
존재인 것 같아. 몰라서 불안한 거야. 몰라서 끌리는데 그 모르는 부분에 뭐가 있을지 모
르니까 불안한 거야.

현지 나 진짜 동의. 그런 것 같아.

보배 공감의 따봉.

현지 따봉. 나도 사람을 지옥이라고까지는 생각 안 하는 것 같아. 어릴 때는 사람 싫다는 생각


을 진짜 많이 했는데, 클수록 ‘그래도 사람 좋구나.’를 많이 느끼게 된 것 같고 지옥이라고
해도 그 지옥이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아. <신과 함께>에서도 보면 사람을 불에 넣고

1) “타인은 지옥이다", The Psychology Times, 2023년 1월 11일, http://psytimes.co.kr/m/view.php?idx=5420&m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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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는 지옥도 있고 ‘이건 좀 할 만한데?’하는 지옥도 있잖아. 타인도 한 종류의 지옥이 아
니라 어떤 사람은 나에게 열탕 지옥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진짜 나태지옥 같
은, 할 만한 지옥일 수도 있는 것 같아.

유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불안 요소처럼 느껴지거든. 이 사람이 내 행동이나 말에 대해


서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떻게 반응을 할지가 너무 무서울 때가 되게 많아. 나는 그래서
상대가 나한테 기대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나도 상대한테 기대를 안 하려고 노력해. 난 누
가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지옥을 형성한다고 생각해.

경민 나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타인이 지옥이 돼. 내가 지옥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지.

보배 낭만적이야.

경민 그러니까 나는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이 싫어져. 좋으니까 싫어. 좋지 않으면 싫지도 않


아. 가까워질수록 이 사람이 좋아지고 동시에 이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고 그러면
내가 이 사람에 대해서 싫어하는 점들이 눈에 보이고…근데 싫어하는 점이 되게 애매한
게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이유가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거든. 모
든 것이 동시에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해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지옥이 되는 것 같아.

지연 결국에는 타인이 지옥인 게 아니라 그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지옥 같은 게 아닐


까.

현지 이게 맞는 것 같아.

보배 상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

유진 맞아. 그냥 존재할 뿐이지

보배 어머.

현지 그러면 ‘나는 지옥이다.’ 네.

지연 내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도 않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도 다들 있을 테니까.

경민 근데 나 빼고는 다들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지옥, 그러니까 불안하다고 느끼잖아. 왜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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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가깝고 호감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지의 타인의 영역이 있으니까 더 친해지
기가 무서운 부분들이 있지.

지연 나는 두 개가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예측 불가능함 때문에 지옥이라


고 느끼는 것 같아. 그러니까 아무리 일회성적인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어서 상대의 목소리의 톤이나 몸짓 같은 것들이 되게 크게 다가오거든.
친해지고 나서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는 글쎄, 나는 실망하는 것보다는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모르는 사람일 때는 딱히 그런
부분에 대한 우려가 없는데 한 번 가까워지고 관계를 맺고 나면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더 개방을 안 하게 되고. 오히려 모르는 사람한테는 다
말을 할 수 있거든.

현지 그렇구나. 난 반대인데. 나는 친해졌다는 기준이 ‘나를 얼만큼 개방할 수 있는가?’인 것 같


아.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내가 상대랑 친해졌다고 느끼기까지 시간이 엄청 필요한 편이
야.

경민 지연이처럼 개방 안 하는 친구 어때?

현지 이게 타인이 지옥인 주요 이유인 듯.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잖아.

유진 맞아.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도 다 다르고.


나도 지연이랑 진짜 비슷한 게 그 미지의 사람한테서 오는 공포랑,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나도 내 본모습을 말해주는 게 너무 꺼려진단 말이야.
그 이유를 생각을 해봤는데 친할수록 뭔가 내 인생에 관여하는 부분도 많아지고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잖아. 근데 그 중요한 사람이 언제든지 나한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난 너무 힘들어. 그래서 나는 아무리 친해도 내 인생에 관여하거나 비중이 커지
면 내가 의도적으로 끊으려고 하더라고.

경민 글쎄 나는 상처받을 걸 걱정한다기보단 내가 저 사람에게 상처를 줄 걸 계속 걱정하게 되


는 것 같아.

보배 포식자이시죠.

경민 근데 이건 각자의 삶에서 축적된 경험일 것 같아.


상처받은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면 상처받을 걸 걱정하게 되고, 상처 준 게 더 많은 사람
이면 상처 줄 걱정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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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처 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경민 근데 우리 다들 상처를 받기도 하고 받는 동시에 주잖아. 그 상처를 안 받고 안 주면 그건


그냥 모르는 사람인 거지. 근데 그렇게 계속 끊임없이 상처받고 상처를 줄 위험을 감수하
면서도 타인을 원하잖아. 왜 그러는 걸까? 인간은.

보배 그런 식으로 진화해 왔잖아. 그게 생존에 유리하고

경민 그렇지. 근데 지금은 타인과 굳이 가깝게 지내지 않아도 나의 생존에는 별로 위험이 없


는 사회잖아.

지연 어릴 때 자라면서 아무리 부모가 완벽한 사람이었어도 채워주지 못한 부분 있잖아. 그러


니까 아무리 부모가 완벽한 양육을 했다고 하더라도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없고 조금
씩은 구멍이 생기잖아. 그 구멍을 성인이 된 이후에 내가 스스로 채우든 아니면 다른 사
람을 통해서 채우든 결핍을 채우려는 건 당연한 욕구인 것 같아.

보배 넌 스스로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고 생각해?

지연 나는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너무 알고 싶어. 상대에게 개방을 안 한다고는 했지만 정


말 내 마음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저 사람도 나를 그만큼 궁금해해 주고 알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거든. 근데 그게 안 될 것 같으니까, 마음을 딱 닫아버
려. 그게 나의 결핍이라고 생각해.

보배 나도 그 점은 지연이랑 비슷한 게 나도 완전 불안형이거든. 그래서 관계에 대한 욕구는


많은데 기대하는 바는 없는 거야. 결국에 영원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세. 타인과
의 관계에 있어서 어차피 언젠가는 멀어지고 헤어진다는 거.

현지 나는 내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그


러니까 이 사람이 나에게 소중하고 너무 친한 사이가 됐을 때, 내가 이 사람한테서 실망
할 점을 찾아서 실망하고 사이가 멀어지고 우리 관계가 없었던 게 되고 이게 너무 싫은 거
야. 그래서 친해지기 전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실망할 점이 있는지 없는지 계
속 검증하려고 하는 것 같아.

경민 나는 상대가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날 좋아해 주는 게 싫었어. 그 친구의 사랑에 보답해


주고 싶어. 하지만 난 여력이 되지 않아. 나는 그 정도로 다른 누군가를 그 정도로 좋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 같거든. 그래서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걸 배
려라고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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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다들 진짜 타인한테서 자기를 보는구나.

유진 그러게. 다 자기 같을 거라 생각하고 자기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지연 그게 불안 요소가 제일 없기 때문이겠지.

갈등. 말해, 말아?

보배 나는 남이 나한테 지적거리를 가져오면 그 자체가 너무 스트레스거든. 그때부터 내 행동


을 다 검열하게 돼서.

지연 나는 말을 안 해주는 게 더 싫어.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게 다 보이면 스트레


스받아. 물론 나도 말은 잘 못하지만.

보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요구나 바람이 거절되는 경험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지금도 거절당
하는 게 너무 싫어. 그냥 다 나를 수용해 줬으면 좋겠어.

유진 사회화를 부모님이랑 제일 먼저 하니까 부모님과 관계 맺는 방식이 계속 간대. 물론 노력


으로 바꿀 수 있지만. 난 사랑은 통제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어서 가까워지는 게 무서
워. 통제하는 게.

보배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인생은 유년의 상처를 치료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어.

유진 경민이는 뭐가 더 좋아? 말해주는 게 좋아, 아니면 말 안 하는 게 더 배려라고 생각해?

경민 난 일단 내가 말하고 상대한테 물어봐. 너 불만 있어?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이 익숙해.

현지 사람 참 다르다. 배려의 방식이 다른 게 진짜 지옥이라니까.

유진 나도 보배처럼 갈등 상황 직면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컸거든. 근데 나는 우리 언니


랑 엄청 친하게 지냈는데 언니가 경민이 같았어. 내가 고칠 점을 다 말해줬어. 그래서 처
음에는 너무 힘들다가 나중에는 내 행동에 대해서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된 사람이 됐지.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는 것 같아.

경민 역시 나 같은 언니가 좋네.

현지 나는 보배랑 진짜 비슷한 게, 나도 느끼는 대로 다 말해 준 친구들이 몇 명 있거든. 그 친


구의 의도도 알겠고 고마운 일이라는 걸 알겠는데 내가 진짜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

117
지지 않는 거야. 선의로 100%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거야. 왜냐하면 나는 굳이 말하지 않
는 방식으로 상대를 배려 하는데 상대는 그게 배려가 아니고 오히려 나쁜 거니까.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느낌. 나는 불편하더라도 참고 말을 안 하는데 얘는 왜 나
한테 말을 하지? 그 부분에 대해서 가끔 억울할 때가 있는 것 같아.

겅민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 그냥 계속 스트레스 받은 채로 그 관계를 유지하는 거야?

보배 그래서 나만의 약속이, 내 안에서 해결하고 넘어가기로 생각했으면 끝까지 상대한테 말


하지 않는다는 거야. 말하고 나면 그때부터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돼. 책임을 타인한테
전가하는 느낌이야.

유진 나도 진짜 그랬었거든. 근데 나는 표정을 못 숨기더라고. 나도 평생 안 좋은 얘기를 한 번


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기분 안 나쁘게 말하는 방법을 모르겠어. 요즘에는 그래서 그 방
법을 알아보는 단계인 것 같아.

경민 근데 나는 오히려 기분 안 나쁘게 말하려고 하는 게 더 기분 나쁠 때가 있던데.

현지 쿠션어?

경민 어차피 의도를 보면 그냥 나한테 불만 있고 뭔가를 고치라고 하는 얘기인데 뭘 이렇게 아


닌 것처럼 포장을 하나, 마치 자기 의도는 그게 아닌 것처럼.

보배 그게 그렇게 들리는구나.

지연 그냥 좀 좋게 말해주고 싶을 수도 있잖아.

보배 네가 상처를 안 받게 하고 싶으니까

경민 그게 나를 위한 게 아니라 ‘착한 자신’을 위한 걸로 느껴져.

보배 교지에서 한때 쿠션어 쓰지 말자는 말이 나왔잖아. 근데 나랑 현지는 쿠션 까는 게 배려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거든. 나는 개인적으로 솔직한 게 항상 착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현지 나도.

보배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할 말 다 하는 게 착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쿠션 깔고 약간 돌


려서 얘기하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게 보여서 신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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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사람이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상대를 잘 알
고 나면 이게 그냥 배려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하잖아. 쿠션어도 설명을 듣고 나니까
가식이 아니라 배려라는 게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모르니까.

예민한 나를 데리고 살아가기

현지 나는 내가 스스로 예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딱히 없어. 근데 나는 덤덤하다기보다는 약


간 둔해. 특히 감각에 있어서.

경민 감각이 덤덤한 거랑 별개로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는 어때?

현지 사실 그건 좀 예민한 듯. (웃음)

지연 안 되겠는데?

현지 근데 남들이 얼마나 예민한지 모르겠어.

경민 그것도 상대적인 거니까.

현지 다들 언제 예민하다고 느껴?

유진 나는 남의 감정이 확 들어오거든. 그래서 누가 슬프면 나도 같이 울어. 그러다 보니까 계


속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 같아. 저 사람은 어떤 기분이고 감정인지. 그래서 사람이 있을
때 잘 지치고 신체가 예민하면 어쩔 수 없이 정신도 같이 예민해지는 것 같아.

현지 그건 맞아. 진짜 맞아. 맞아 맞아 맞아.

유진 특히 청각이 진짜 심한 것 같아. 나는 <토이 스토리>를 우디 목소리가 힘들어서 못 봤어.


보다가 짜증이 나는 거야. 우디 목소리 기억도 안 나. 너무 싫어!

현지 방정 맞긴 해.

지연 나도 청각과민 때문에 약도 먹고 있거든. 약을 안 먹으면 밖에 잘 못 나가. 너무 시끄러워


서. 그런 예민함에서 오는 피로가 있는 것 같아.

경민 예민함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 하나는 타인의 상태에 대해서 인지하는 예민함, 두 번


째는 타인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나의 반응에 대한 예민함. 그러니까 이렇게 인지와 반응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 나는 인지는 잘하는데 반응은 크지 않은 것 같거든.

119
현지 난 궁금한 게 유진이랑 지연이는 많이 예민하잖아. 그럼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서도 엄청
예민한 편이야?

지연 그래서 나는 한때 사람 눈을 못 봤어 눈을 마주치면 내가 뭔가를 자꾸 느끼려고 해서. 상


대의 마음을 맞추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계속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것 같아.

유진 나도 상대한테 집중할 때가 많아. 부모님이 되게 회피적인 성격이라 내가 파악해야 처신


을 할 수 있거든. 나는 좀 학습된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사람들 기분을 살피는 게.
그리고 또 어쩔 수 없이 상대의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아.

경민 그 능력이 아예 없어야 하는데.

유진 그러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재밌게 놀아야 하는데.

경민 보배나 현지는 그럴 때 없어? 상대방의 의도가 너무 잘 보일 때.

보배 나는 타인이 나한테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면 잘 캐치하지 못해. 근데 난 이 점은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내가 타인의 감정에 너무 영향을 잘 받으니까. 근데 문제는
상대가 뭔가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진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의 방향으로
만 상상이 되는 거야. 얘가 나한테 이제 정이 떨어졌나, 얘가 나랑 이제 손절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런 완전 최악의 길로.

경민 아예 잘 보이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게 아니니까.

보배 맞아.

경민 현지도 그래?

현지 나 보배랑 되게 비슷해. 그래서 눈치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 사람마다 그런 부분에 있


어서 결이 다른 것 같아.

나를 닮은 사람

현지 나는 나랑 닮은 사람이 너무 좋거든. 나랑 비슷한 사람은 이해가 되니까 상처받을 일도


훨씬 적고. 왜냐하면 서로 상처받는 부분이 똑같기 때문에 그걸 조심하니까. 너희들도 자
기랑 비슷한 사람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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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나도 상대를 새로 알아야 하는 그 단계가 약간 피로하게 느껴져서 비슷한 사람이 좋아.

보배 나는 비슷한 사람도 좋고 다른 사람도 좋은데 다만 다른 사람한테 느끼는 끌림이 더 크


긴 해. 왜냐하면 어쩌면 나랑 이렇게 다른 생각을 얘는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난 하
거든.

유진 나도 원래 진짜 나 같은 사람만 만났었거든. 근데 다른 사람도 되게 재밌는 것 같아. 어떻


게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지 하는 생각도 들고. 나 같은 사람이 너무 편한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람이 좀 더 신기하고 알고 싶기도 한 것 같아.

경민 근데 본인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아?

현지 나는 꽤 있는 것 같아.

경민 나도 나 같은 사람 보고 싶다. 근데 우리 엄마가 나 같은데 나 엄마 좋아해서 나는 나 같


은 사람 좋아.

보배 지연이는 어때?

지연 있다고 느껴. 내 주변에는 나랑 완전히 비슷하진 않더라도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은 꽤


있어. 그래서 만나면 편하고 그 시간 동안 힐링 된다고 느끼고 소중해.

경민 너무 신기하다.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다들 그런가?

지연 근데 그건 약간 자기애에서 비롯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경민 그것도 맞아.

유진 비슷하면 뭔가 나 전체를 긍정 받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현지 맞아 나만 이런 게 아니네 이런 것도 있고.

지연 내가 어떤 반응을 하고 말을 하든 이게 상대에게 적어도 잘못된 걸로 인식되지 않을 거라


는 그 안정감.

고슴도치를 안아주세요

보배 타인과 왜 같이 살아야 할까?

121
현지 몰라. 외로워.

유진 외로워.

보배 나는 오늘은 ‘타인은 지옥이다’ 집담회다 보니까 안 좋은 이야기만 했는데 사실 사람들이


너무 좋거든. 누구나 다 어떤 점은 이상한데 또 어떤 점은 너무 사랑스러운 부분이 있는
거야. 그런 사랑스러운 점이 좋아. 같이 살고 싶어

지연 나도 보배랑 진짜 비슷해. 어떤 사람이든 유형으로 보지 말고 개인으로 보면 누구든 사


랑스러운 면이 있다고 생각해. 그걸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근데 어쨌든 그걸 알기 위해
서는 내가 먼저 나를 오픈하고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하더라고. 그걸 요즘 조금씩 알고 있
는 것 같아.

경민 현지는 어때?

현지 잘은 모르겠는데…외롭지 않아요? 외로워. 고슴도치의 딜레마 아세요? 고슴도치가 가시


가 있잖아. 그래서 누군가를 안으려면 그 가시에 찔러야 해. 근데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
워. 그래서 타인이랑 같이 있으려면 그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타인을 안아야
해. 이 집담회 자체가 약간 그런 얘기 같아서 갑자기 생각이 났어.

지연 왜 같이 살아야 할까?

보배 같이 살고 싶어?

유진 나는 사람이 새로워서 같이 살고 싶어. 나랑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게


너무 재밌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알면 알수록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되더라고. 나에
게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면이 상대에게도 있는데 그렇게 꼴 보기 싫지 않고 귀엽고, 나
도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볼수록 나 자신을 계속 긍정하
게 돼.

경민 나는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좋은 사람 있으면 같이 살면 좋지. 그냥 나에


게 인간은 약간 콘텐츠거든.

보배 신이야? (웃음)

경민 난 가장 중요한 건 갈등 해결인 것 같은데 아까 갈등에 대해서 많이 대화했잖아.


그럼 결국 어떻게 갈등을 해결해야 할까? 해결을 안 할 수는 없잖아.

122
유진 진짜 너무 뻔한 얘기인데 소통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내가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상했고 어떤 부분이 짜증 나는지 하나하나 얘기해 보면 다 다
르거든. 어이없을 정도로. 그래서 계속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배 나는 소통이 당연히 중요하긴 한데 그건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타인이


바뀔 때마다 계속 맞춰가는 그 주제가 달라지잖아.
그래서 나는 소통보다 나 자신이랑 화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타인이랑 관계를 유
지할 때 결국에 자신이 바뀌어야 하는 것 같아. 소통도 결국 내가 하는 거니까

현지 나는 타인의 다른 점을 100% 공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근데 대신에 그 메커니즘을 알


면, 그러니까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는지를 알면 마음으로 다 공감을 하지 못하더라
도 이유는 알 수 있잖아. 난 그걸 알고 나면 명료해지고 이해가 되거든.
그러다 보면 갈등이 생길 일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 같아.

지연 나도 결국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관계도 노


력이라고 생각하거든. 아무리 잘 맞는 사람이라도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그 관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해. 상대가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도 애
정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결국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

경민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 둘 다 의지가 있으면 그 관계는 안 끊어지는데 한 명이라도


의지가 없으면 끊어지는 거지.

현지 맞아. 정말 그래.

집담회를 통해 우리는 ‘나’와 ‘타인’은 분명히 다르며,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지점 또한 분명히


존재하고, 서로를 향한 배려가 자칫 침범 또는 무례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해
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인은 ( )이다.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을 찾아 떠나는 당신의 여정을 응원한다.

123
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124
거리제

어느덧 매미들은 잠잠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여름은 가고
소리 없이 드리운 권태 아래서
명랑한 애인의 문자 메시지는 영 수신되지 않고

상실에게서 상실되고 싶어
온 세상에 부지런히 심긴 가로수를 따라
걷고 걸어서 머리카락을 길렀지

점멸하는 신호등의 채근과


잠자코 누워 횡단을 기다리는 줄무늬와
술래가 돌아본 것처럼 일시에 정지한
아이들의 표정을 지나치면서

온 지구를 일곱 바퀴쯤 돌고 싶었어


걷고 걸어서 소실점으로 소실될 때까지
권태를 잊고 상실로부터 상실되어
기후처럼 명료하게 그쳐버릴 때까지

거리는 둥근 발꿈치를 따라 행보하는 초침,


쏘아올린 축포가 소리 없이 낮달 옆으로 나란히 걸리고
터져나온 환호성 너머로 유예된 시간들이 범람해올 때

턱밑에서 찰랑여, 끝내
무너지기 위하여 선 가로수와
누운 아스팔트

거리는 재개되고, 한편
정지한 표정들 너머로
세계가 종종 지연되었지

125
술래잡기

눈을 뜨면 먼 은하에 빛보다 먼저 도달하고 있었어


수백만 광년을 겨울잠처럼 숨죽였을
신화들을 그러모아 꿈을 꾸는 너의 머리맡으로
폭 엎지르고픈 못된 마음에

슬픈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할 일 목록을 어제의 마트 영수증보다 길게 늘여 적으면
냉담한 질서의 어법으로 생포된 슬픔들은 지느러미를 거두고
쇼윈도에 진열된 초밥처럼 반듯해졌지

할 일은 할 일 목록 적기
다과회를 위한 솜사탕 기계 들여놓고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헷갈리기
(가장 좋아하는 건, 레몬 맛)
내밀한 취향을 간직하기
비밀을 잊기
시 낭독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때 지난 일기 찾아 읽고
너를 깨워 함께 은하로 떠나기

그래 우리 이대로 영영 여기 가두어진 채라면,


조금도 나아지는 법은 없어 함께 저 먼 시간의 은하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해 내 말 들려? 어깨를 붙잡고 암만 흔들어 봐도
너는 한물간 고고학자처럼 땅바닥에 들러붙어
요원한 이야기만을 찾아 헤맬 뿐

열차는 지하로 지상으로, 온 세상을 빙빙 돌고


그건 열차의 탓도, 열차를 기다리는 나의 탓도 아니고 다만
지구가 둥근 탓이라고 할까 아님
지구가 무서운 속도로 빙빙 돌아가는 탓이라고 할까
그 속전속결의 구심력과 원심력의 자장 아래 퇴적하는
우리 사이 한 줌 총총한 이야기를 빙빙 돌려 감아
기나긴 신화로 수백만 년이고 전송(傳誦)하고픈 마음은 위배일까

126
할 일 목록은 자꾸자꾸 길어져
팽창하는 은하 속에 잊어야 할 비밀만 늘고, 이를테면 레몬 맛의 솜사탕,
온 세상이 미중력의 기분으로 진입하면 우리가 지어 올린
다과회장도 낭독회장도 죄다 곤두박질쳐, 저 우주로

이제 못다한 고백일랑 삼켜버리고


열까지 세고 뒤를 돌아볼 시간

오늘도 열차는 오지 않고
꿈속의 너는 명료한 표정으로 발각되어 있어
영영 잡히지 않을 술래잡기 속에서

127
슬픔 떼 목장

그대 꿈에서 나를 보나요

어쩌면 처음 만나는 사이처럼 눈빛과 미소가 야릇하게 얽어지나요 작열하는 태양과 슬픈 눈을 마


주 볼 수 있게 되나요 그토록 바라오던

왜 태양과는 달처럼 눈을 맞출 수 없나요

순간은 순간이고 그댄 순간을 가축처럼 묶어두는 밧줄


불안해하며 꼭 쥐고 있나요
목장을 가로지르는 양떼들 볕을 가르며 몰려오는 먹구름 나는 자꾸만 더 푹신하게 뭉그러지는 불
안 속으로

그대의 언어는 슬픈 눈빛과 슬픈 미소만으로 정갈하게 짜인 슬픔의 역사


나는 그 안에서 태양보다 오래된 그대 슬픔과 눈을 맞추는 무구(無垢)

꿈에서 봐요 꿈에서 만나요 이 따위로 적어도 여전히 고백이라면, 차마 놓을 수는 없어서 빙빙 돌려


묶은 밧줄이 이윽고 파수 같은 말뚝들 위로 죄다 늘어박힌다면
그 슬픔을 나만의 목장에 가둬두고 사육하게 되나요 그래도 되나요

필패의 예감으로 어여삐 단장하고


차근차근 엮어온 불능의 날개까지도
양떼들의 몽상 위로 푹신하게 추락하는 꿈,

태양과 눈 맞추고 태양에게 입맞추는 역사는 아무래도 불가능해서 결국 언제까지고 꿈입니다 그러니까

꿈에서 봐요 우리는
꿈에서 만나요

128

잠든 그대를 두고 돌아오는 휴일의 아침은


무너지는 볕과 소음 속에 건조하게 빛나고
터져나오지 못해 식어가는 웃음처럼 시시하구나

언덕 위의 방은 외딴 세계
메마른 벽지를 함뿍 적시며 숨쉬던 나는
그 여름 생기 넘치는 장마통에 녹빛으로 피어난
한철 화초였습니다

그대는 내 몸속 가득 기어다니는 먼지들을


말끔히 소탕하는 청정의 세계
들어 봐요 느껴 봐요 읽히지 못한 활자들이
단칸짜리 서재 속에서 잔뜩 속살거려요
기구한 신세가 꼭 나같이 가엾잖아요

한밤의 랑데부가 썩은 동아줄처럼 내려도

맞댄 두 손바닥 사이를 자장(磁場)처럼 흐르는 정념과


아찔한 현기(眩氣) 속을 또렷이 파고드는 잔인한 볕살과
진심만은 야속히 밀어내며 다가드는 오후 다섯 시의 그림자

밤이 내리면
귓전으로 무수히 피어오던 이야기들이
무심하게 돌아누운 저편으로 시들고
도드라진 뼈마디를 점자처럼 훑던 지문이
날숨마다 금세 닳아버리는데

왜 조금도 슬퍼하는 이가 없을까


나는 울지 않는 대신에
떠나오고 싶은 과거를 힘껏 끌어안고 달렸습니다

다시 한밤의 랑데부가
썩은 동아줄처럼 내려도

129
시 심사평

아주 오래된 견해이긴 하지만, 문학이 일상과 세계를 낯설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은 여전


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는 익숙한 세계가 잠시 깨지는 찰나의 순간을 명료한 언어로
포착하는 ‘순간의 장르’이며, 이 순간의 포착이 세계에 영구한 균열을 냄으로써 우리의 세계는 이전
의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세계로 인식됩니다. 따라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나
와 내 주변의 사물을 바라보는 낯설고 새로운 시선, 즉 날카로운 인식이 필요합니다. 올해의 서강청
년문학상에 투고한 33인의 응모자들에게 시선과 생각을 벼리는 일은 언어를 고르고 단어를 배열하
는 시작(詩作)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실 모든 언어가 시가 될 수 있고, 모
든 감정과 경험은 시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직설적 토로나 일방적 호소에 그치거
나 어디서 본 듯한 경구의 나열에 그친다면 좋은 시가 되기 어렵습니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사유에
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고민 끝에 「술래잡기」를 수상작으로 선정합니다. 자기만의 어법을 찾기 위해 오래 고심하고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특히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병치하면서 만들어내는 풍경이 좋고, “할 일 목록
을 어제의 마트 영수증보다 길게 늘여 적으면/냉담한 질서의 어법으로 생포된 슬픔들”과 같은 구절
은 일상을 단번에 다른 세계로 치환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과도한 수사는 오히려 여운을 삭제시
킨다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에르난의 조우」와 「퇴화의 역사」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거듭
하게 했습니다. 「에르난의 조우」 는 사변을 시적 언어로 전환하는 데 익숙하고 호흡이 긴 시임에도
언어가 상당히 정련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멸종된 시간을 모아다/폭죽 놀이를 하고 싶어”
구절처럼 빛나는 지점들이 있지만, 다소 노회한 작법이 시적 의도를 가리고 언어 유희에 그치는 부
분이 많습니다. 조금 더 비워내면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퇴화의 역사」는 신화적 세계를 그려내는
언어가 인상적이며, 사유를 이미지화하는 점이 좋습니다. 다만 군데군데 기시감이 느껴지므로 조금
더 자기만의 어법을 정련하면 좋겠습니다. 나머지 작품에 대해 짧은 평을 남깁니다.

시를 완성하기 위한 최종적 한 구절이 아쉬운 작품들이 있습니다. 「동경」 (외 2편)은 슈크림빵과


너와의 시간을 연결시키는 점이 좋고, 「부작용」 (외 2편)은 술과 시를 연결시키는 지점이 좋지만 시
상을 집결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레슬러」 (외 2편) 또한 단단한 언어로 만들어내는 박력이 상당
히 좋습니다만, 시를 완결시키는 최종적 언어가 필요해 보입니다.

주변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묘사가 돋보이지만 그 너머까지 보여주면 좋겠다싶은 작품들도 있습


니다. 「어시장」(외 3편)은 시장을 폭력의 장으로 포착하는 점이 좋고, 「앙코르」(외 2편)은 현실 문
명의 세계가 신화적 자연의 세계로 변환되는 지점이, 「숭고한 무관심」(외 2편)은 삶의 표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감정적 배후를 발견하는 점이 좋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삶과 현실의 이면에 좀
더 천착하면 좋겠습니다.

시적 언어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구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침대」(외 4편)은 상상을 언어


화할 때 조금 더 담담해지면 좋겠습니다. 「Doloroso」(외 2편)나 「여름의 이름」(외 4편)은 다소

130
과한 수사가 오히려 의미를 감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로」 (외 2편)나 「멈추지 않고 쏟아내는 구
역질 같은 사람아」 (외 4편)는 장황한 서술이 시적 긴장을 느슨하게 합니다. 호흡이 긴 것과 산문화
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월」(외 4편)은 시적 언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느껴지
지만 과한 수사를 경계할 필요가 있고, 「사석지훈가」 (외 5편)는 사변적 언어가 익숙한 경구로 전환
되는 지점을 경계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어의 정제는 언어를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언어를 찾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시발점」(외 3편)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어서 시적 고민이 단순화되고 있습니다. 「
여름이 기억하는 순간」(외 2편)나 「그림자 밟기」(외 2편)는 비유의 의도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습
니다. 「나이테」(외 2편)는 평이한 비유가, 「귀양」(외 3편)은 다소 식상해진 어법이 시적 고민의 진
지함을 가리고 있습니다. 「첫눈」(외 13편)이나 「어느 몽상가의 저녁식사」(외 3편), 「나의 가장 일
찍 지니인 것」(외 2편), 「이제서야」(외 2편)는 일반적 비유없이 시적 진술을 구성해 보면서 자기만
의 어법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역은 DDP역입니다」 (외 4편)는 묘사의 단순성을, 「서향」
(외 2편)은 언어의 단순성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심해서 고른 언어가 결국 무엇을 그려내는
지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빠지지 말고 감정의 바깥에서 감정을 냉철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마음
이 떠나는 길」 (외 2편)이나 「가을에 들어서며」(외 4편)는 슬픔에 매몰되지 말고 슬픔을 성찰할 필
요가 있습니다. 「사랑을 주세요」 (외 2편)이나 「우리 사랑은 영원하다치자」(외 3편)는 감상성과 통
속성을 경계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슬픔을 오래 가라앉혀 맑은 언어를 얻기를 바랍니다.

문학평론가 박슬기 (국어국문학과)

131
시 수상소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이런 망연함으로 살아온 지도 너무 오래입니다.


그러나 틀림없이, 저의 영혼과 시작(詩作)은 긴밀히 결부되어 있습니다. 마치 태곳적부터 그래 온
것만 같습니다.

저는 좋은 것이 오기를 내내 기다리는 사람, 왔다면 줄곧 머무르기를 내심으로 바라는 사람, 그러


다 떠난다면 붙잡을 염도 없이 그대로 보내고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쓰는 시 역시 어디로도 가
닿지 않을 황막한 고백이었습니다. 무용(無用)한 언어들이 퇴적해갈수록 더더욱 쓸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던 나날, 오래도록 길고 지루한 순례를 지내듯 시를 써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배워갔
습니다. 응모 무렵에는 비로소 무정한 마음으로 시와 밀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퍽 생경했습니다.

외따로운 은신처였던 시는 도리어 사랑을 알게 했습니다. 시를, 문학을 사랑하는 일은 곧 삶을,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매한가지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 무엇이라도 포기해버리는
대신, 포기하려 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앞으로도 줄곧 시를 써나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시는 인간이 불가능을 말하는 가


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약한 성정을 버려두지 못하고 움켰던 펜으로 이
토록 불가능한 다짐을 굳히기까지, 저와 함께 울고 웃으며 각자가 하나의 시이자 삶이었던 모든 존
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기분입니다. 오래도 걸렸습니다.

김주하(국문 21)

132
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133
1

나는 그이를 잘 모른다. 기나긴 고민 끝에 찾아낸 표현이다. 나는 그이를 모른다기보다는 잘 모른


다. 그렇기에 나는 자신을 검찰청 형사라고 소개하는 남자에게,
“저는 그이를 잘 몰라요. 한 달 전쯤에 터키에 출장을 갔다는 것 말고는 말이에요.”
하고 말해주었다. 남자는 말 없이 뜸을 들였다. 나는 문득 불안이 떠올랐다. 그가 혹시 내 말을
‘그에 대해 잘 모른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 달 전쯤에 그 사람이 터키로 출장 갔다는 것 정도는 안
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까. 후자의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그는 내게서 다른 정보를 얻
어내기 위해 고도의 추궁을 가할 것이었다.
“어머님께서 아무리 남편분을 잘 모르신다고 말씀하신들, 저는 이 건에 대해 어머님께 협조할 것
을 부탁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건은 분명히 금융범죄 사건이고, 어머님께서도 연루
되었으니까요. 이해하셨습니까?”
남자는 부탁을 한다기엔 다소 사무적인 날이 선 목소리였다.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듯했다. 하
긴, 형사라는데. 나는 생각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생각은 했지. 그이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통 말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나 몰래 무슨 일을 꾸미기란 어렵지 않은 일
이었을 거야.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 남들 앞에서는 솔직한 척 너스레를 떨지만, 막상 면
대면을 해 보면 쉽사리 자기 얘기 하나 안 하는 인간.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콘솔박스를 뒤져 담배를 찾았다. 금단현상으로 손
이 저리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가 수없이 지나다니는 고속도로 앞을 주시하며 선뜻 다른 일을
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단념하고 형사라는 남자의 말이나 라디오 듣듯 듣기로 하였다. 그
는 하여간 전문용어에 비밀수사이니 남편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말라는 둥 가끔은 강압적인 어조
를 섞어가며 내 대답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어머님 남편분께서는 공금횡령 건으로 해외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님의 통장이 사용된 것이 발견되어 현재 어머님께서는 피의자 신분에 있습니다. 일단
협조 수사를 진행할 텐데 어머님께서 피의자 신분에서 제외될 만하다고 판단되면 경찰에 출두하실
필요도 없어지고요, 혹시 본인은 삼보은행에 통장을 가지고 계십니까?”
“정기예금 조금 들어있어요.”
“그렇다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삼보은행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부차적인 피해 예방 차원에서
금융감독원의 가상계좌에 옮겨놓으셔야 합니다.”
수사관이라는 남자는 이번만큼은 부드러운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돈과 관련된 이야기라서 그런
가 싶었다. 나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핸들을 꺾어 오른쪽 갈림길에 난 주유소로 향했다.
차량 스크린에서 기름이 부족하다며 귀찮게 아우성을 치는 탓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죠?”
“저희가 지금 검찰청 첨단수사팀 주소를 하나 보내드릴 텐데요, 계좌 이동 진행하시는 동안은 전
화통화가 일체 불가하니 잠깐 전화를 끊어두시는 건 허락해드리겠습니다. 혹시 진행하시다가 궁금
하신 사안 있으시면 저희 팀에 다시 전화 주세요.”

134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량 스크린에 띵동 하는 청량한 소리가 나더니 금방 핸드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대충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인간 때문에 이게 뭔 일이람. 나는 문득 걱정이 들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사람
은 어지간히 대단한 일을 저지를 위인은 못 되었다. 끽해야 용돈 몇 푼 빼낸 거겠지, 다 알아.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유를 하며 이런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하였다. 어쩌면 내 일상을 도륙해버릴
사건이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서였다. 주유기 화면에 리터 수를 나타낸 숫자가 점점 올라
갔다. 나는 어스름하니 무심하게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자니 문득 못 피운 담
배 생각이 나 차 문을 열어 담배를 꺼내 피웠다.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자, 괜히 그 빈 자리에 담배
연기가 주유소 기름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폭발해버리고야 마는 터무니없는 영상이 그려졌다.
주유기 화면에 나타난 금액이 어느 정도 올라가자 불현듯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주유가 멈췄다. 좀
전의 영상에 한참 몰두해있던 나는 정말 주유소가 터져버린 줄 알고 놀라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하지만 주변은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오래된 주유소뿐이었다. 보는 눈은 없었지만 민망함
에 얼른 주유건을 빼내고 차에 들어가 앉았다.
차 안에서는 마침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형사라는 남자가 나를 재촉하려 벌
써 전화를 했나 싶었지만. 번호를 보니 그는 아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주유소를 나오며 전
화를 받았다. 내가 새어나가는 발음으로,
“여보세요?”
하자 전화 반대편의 음성은 기다렸다는 듯 매우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나는 당최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여보세요?”
하고 되물었으나, 전화 속 남자는 일관되게 낮은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로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아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다시 한번 제 말을 잘 들으십
시오. 지금 제가 불러드리는 계좌로 천 만원을 입금하십시오. 이해하셨습니까? 아이가 많이 다쳤습
니다.”
그는 숫자 몇 자리를 불러주더니 아이가 많이 다쳤다는 말을 한 번 더 남기고는 전화를 끊어버렸
다. 그리고 조금 뒤, ‘우리 아들’로 저장된 연락처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메시지 함에는 아이가
학교에 입고 간 옷가지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사진이 있었다.
허벅다리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물고 있던 담배가 다리에 떨어져 남아있던 담뱃불이 바지
에 구멍을 낸 것이었다. 나는 섬뜩함에 구역질이 나 어서 차를 세워둘 곳을 찾았으나 차들이 뒤엉킨
고속도로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형사, 형사님, 우리 애가 유괴를 당했나 봐요. 형사님, 들려요? 제 말 들려요?”

135
2

“형!”
김의 목소리다. 김이 굉장히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일단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업무 중에
는 서로 방해되지 않게 말을 섞지 말자는 약속도 있었고, 더군다나 지금은 일의 성패가 달린 아슬아
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형, 내 말 안 들려요?”
나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었지만, 당최 그는 단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짜증 나는
놈.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사실은 화가 난 이유가 김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은 먼저부
터 타오르던 화에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내 화를 돋운 쪽은 재수 없이 사기꾼에 농락당한 쪽이었다. 물론, 내가 사기꾼에 넘어갔다
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속는 쪽이라기보다는 속이는 쪽에 가깝다. 나는 지금 나의 미끼를 문 물고
기가 반대로 몸집이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희한한 상황에 놓였다.
“경찰 하나쯤은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위치 추적도 안 돼요? 설마!”
여자가 쏘아붙였다. 그녀는 자기 아들이 유괴당했으니 나더러 조치를 취해 달라며 아우성이었
다. 일개 형사한테 무슨 전능한 힘이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 거기다 나는 형사도 아닌걸. 안타
깝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내게는 권한이 없으니 당장 놓인 남편 건부터 해결하자’라는 말뿐
이었다.
이 말이 매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편이 백번 옳다면 옳았지 그르지는 않았다. 나와
그녀가 모두 이득을 볼 방법은 그뿐이었다. 그녀의 아이를 유괴했다는 유괴범은 분명 가짜일 것이
기 때문이다. 그 사기꾼은 그렇게 말로만 위협을 주고 간편하게 돈을 따내려는 속셈일 것이다. 내게
는 감이 있다. 더군다나 그것은 나와 친구들이 이전까지 사용했던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유괴범이 가짜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서 신뢰를 버렸는
지 따로 경찰서에 전화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릴 묘안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
렸다. 지금껏 내가 보아온, 말해온 무수한 단어들을 전부 모아 가장 적합한 말 한마디로 하나하나 정
렬해보았다. 그런데도 도통 날카로운 묘수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끝에 나는 그만 포기하기로 하였다. 쉽게 생각하자.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물고기에 집착하는
것보다야 깔끔히 낚싯줄을 끊어버리고 다른 물고기를 찾는 편이 낫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나름의 철학이었다. 나는 여자가 경찰에 전화하겠다고 전화를 끊으면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었다.
“아, 이 형!”
김은 생각에 잠겨 오래 대답 없는 내게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달려왔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발
길질하고자 했으나, 그랬다간 김의 비명과 함께 여자가 이상함을 눈치 차리리라 생각하여 관뒀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무리를 원했다. 의심을 살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가 김에게 조용히 입 모양으로 입을 좀 닥치는 게 어떠하겠느냐고 전하자 김은 당황한 표정으
로 멍청히 서 있었다. 세모나게 오므라든 입을 보아하니 무언가 할 말이 간절한 듯 보였다. 나는 데
스크를 뒤져 노트와 펜을 김에게 건넸다. 내가 한 손으로 펜 쓰는 시늉을 보이자 김은 그때에서야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셔 형사마 메 물고 온답니다.’

136
김은 내게 글씨를 보여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날려쓴 글씨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나는 노
트를 낚아채 다른 페이지를 펴 글씨를 똑바로 쓰라고 적어 건넸다.
여자는 경찰팀을 보내달라며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같은 답을 반복하였다.
알아서 떠나라는 의미였다. 그녀는 곧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이제 끝나
가는군. 나는 침묵을 지킨 채 나른한 기분으로 흘긋 김을 보았다. 이 덜떨어진 인간은 펜이 부러지
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노트에 꾹꾹 눌러 글을 적고 있었다.
“됐어요. 경찰에 전화할래요.”
여자는 얼마 안 있어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좋아, 나름 깔끔하게 끝났다. 나는 도
리어 후련한 마음으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통화 종료음을 만끽하였다. 물고기야 또 낚으면 되지.
나는 느긋이 앉아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김이 그리도 난리였는지 궁금하여 그의 노트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노트에는 뜻밖의 말이 적혀 있었다.
‘서 형사가 떼 몰고 온답니다.’
서 형사라, 이 인간은 끝까지 내 기분을 잡치게 하는군. 나는 어이가 없어 실실 웃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서 형사, 서 형사가 나를 잡으러 온다. 그는 예부터 나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내
발자국이 남은 곳이면 남은 곳마다 찾아와 말썽을 피웠다. 이제껏 서 형사 하나면 어찌어찌 그 정도
로 끝났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 일당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드디어 간 보기는 끝났다는 거지!
편안했던 마음속에서 문득 짜증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속이 메스껍다. 이게 웬 날벼락이람. 나는
책상에 어질러있던 담뱃갑을 챙겨 창문 쪽으로 걸었다.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무성한 풀뿐인 공
터가 펼쳐졌고 하늘에는 창백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담배 세 개비를 꺼내 한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낼 양으로 바지 주머니를 뒤졌으나, 구겨진 영수증 쪼가리밖에 나오지를 않아 김에게
부싯돌 딸깍이는 시늉을 해 보이며 라이터를 좀 부탁했다. 그는 말없이 라이터를 가져다주었다.
“누가 얘기한 거야.”
나는 김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그리고 담배 하나하나에 불을 붙이고 많은 양의 니코틴을 한숨에
들이마셨다. 가스가 제 몸을 들이밀고 목구멍을 몇 번이고 훑자 목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갔다. 곧장 화포 같은 기침이 나왔다.
“뭐를요?”
김이 물었다. 담배 두 개비가 입에서 떨어져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떨어진 것들을 주우
려 몸을 수그리는 탓에 윗배가 당겨와 토할 것처럼 기침했다. 사포로 목을 간 것만 같다.
“서 형사 온다는 얘기 말이야.”
나는 주저앉은 채로 겨우 기침을 추스르고는 반쯤 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수중에 부유하는 짜
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열심히 심호흡도 해야만 했다.
“황 형. 서 형사가 떼 몰고 오니 조심하라는 말만 남기고 바로 끊었어요.”
“황 형?”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황 형은 내게 지금의 일자리를 준 일종의 직장 상사였다.
“황 형이 정확히 뭐라던?”
김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는 은근한 완벽주의가 있었다. 그는 아마 황 형이 말했던 사소
한 말 하나, 뉘앙스에 작은 차이가 있는 어조 하나까지도 기억해내려 했을 것이다.

137
나는 그런 그의 행태가 짜증이 나 불쑥 일어나며 성을 냈다.
“왜 말을 못 해, 무슨 못 할 말이라도 했던?”
“그게...”
김은 당황한 듯 눈알을 굴리며 말끝을 흘렸다. 문득 불안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짐승 같은 직감
에서 비롯한 사나운 불안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아 내리칠 듯한 기세로 그에게 달려가
다그쳤다.
“황 형이 뭐랬어?”
니코틴이 지나간 입안의 냄새가 무척 고약했다. 김이 얼굴을 찡그리고 슬쩍 코를 막는 시늉을 했
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는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했냐니까. 내 말 안 들려?”
나는 답답함에 소리를 쳤다. 목과 윗배에 불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자세를 구부리고 기침을
콜록거리며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김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자신의 사무실을 이리저
리 서성이며 내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 형사가 떼 몰고 오니 처신 잘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망가지는 말라고. 너희가 도망가면 다
음 차례는 나라고. 이미 물에 빠진 쥐새끼 신세라고. 그러니까 처신 잘 하라고요.”
“물에 빠진 쥐새끼는 누굴 더러 말하는 거야?”
나는 강박적으로 오른쪽 집게손가락 손톱으로 엄지손가락을 긁으며 따졌다. 어찌나 세게 긁었는
지 금방 살갗이 벗겨졌다.
“그건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얘기를 들은 건 너잖아.”
“정말 몰라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자를 힘껏 발로 찼다. 바퀴 달린 의자는 돌돌 굴러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그러니까 황 형 말은, 우린 물에 빠진 쥐새끼에 불과하니까 반항 말고 순순히 서 형사나 따라가
라 이거야?”
하고 황 형에게 전화를 걸려 했으나, 엄지손가락에 흐르는 피 때문에 조작이 힘들었다.
“물 좀 줘 봐.”
“수도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들 모르겠어? 먹다 남은 생수통이라도 달라고.”
그는 마지못해 내게 생수통을 건넸다. 그가 먹던 물통이라 께름칙하긴 했지만, 그런 거에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생수로 깨끗이 피를 씻어내고 황 형의 번호와 통화 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받아라, 빌어먹을 놈.
그의 통화 연결음은 그레이스 창의 맘보 노래였다. 이 유쾌한 노래는 나를 조롱하는 듯 끝날 기미
를 보이지 않다가 어느 틈에 노래의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더니, 음성 사서함을 이용하겠느냐는 음
성이 나를 반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볼일이라도 보러 갔나 하여 한 십 분쯤
기다렸을까,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보니 이번에는 없는 전화번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욕지거
리를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내던졌다.

138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나는 절망감에 머리를 감싸 안고 데스크에 얼굴을 묻었다. 다리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오늘 온댔으니 12시 전에는 오겠죠?”
“그렇겠지.”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봤다. 조그마한 달만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또 엄지손가락을 긁
어댔다.
“변호사라도 미리 구하고 있어야 할까요? 방 형이라면...”
“말도 마. 방 형도 황 형이랑 한패일 거야.”
“황 형이 이번 일 끝나면 해외라도 나가서 쉬라고 했어요. 휴식이 필요할 거라고.”
나는 비웃었다. 휴식? 그 새까만 속셈을 진즉 알아챘어야 했어. 진즉 알아채고 중국이나 어디 멀
리 유럽으로 날아가 기술로 돈이나 버는 건데, 나는 생각했다.
멀리서 무뢰한들이 오토바이라도 떼로 끌고 지나가는지 난폭한 모터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내게
는 그 소리가 왠지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로 들렸다. 문득 자기연민이 들었다. 늦기 전에 비행기를
타야만 했어. 대학 졸업하고 아빠 졸라서 유학이라도 가는 거였는데, 내 비루한 운명은 이 지긋지긋
한 땅에 붙잡혀버렸다!
“어떡할 거에요?”
김이 물었다. 그러게, 어떻게 하지.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서 형사니 황 형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생각뿐이었다.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댔다. 비행기와 외국. 외국과 삶. 삶과 시작. 시작과 끝...
그러자 문득 실낱같은 희망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수면 위로 떠 오른 그 희망이 채 가라앉기
전에 얼른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외국으로 뜨자!”
“외국? 어디로요?”
나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김에게 말했다.
“어디든 좋아. 당장 공항으로 가자. 가서 제일 먼저 오는 비행기 표 끊어서 거기로 날자고. 아님,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끊어도 괜찮지. 그 정도 고민할 시간쯤은 있을 거야.”
“가서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해? 그럼 여기서는 어떻게 하지?”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손발까지 떨며 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
는 쓸모가 있어 보이는 자질구레한 사물들과 개인정보가 담긴 물품들이 주로 가방에 담겼다. 김은
멀뚱히 서 있다가 고개를 젓더니 나를 따라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 사무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긴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어릴 적에 엄마와 함께 본 퇴폐적인 느와르 영화 하나를 참고하기로 했다. 영
화 속에서는 범죄자 일당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사건에 연루된 말단 조직원들과 함께 자신들의 거
처를 몽땅 불살라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나의 계획에 희열을 느꼈다.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김에게
확신에 차 말했다.
“타는 것들은 다 끌어모아서 내 책상 위에 쌓아놔. 여길 통으로 태워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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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운다고요?”
김은 무슨 말이냐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다소 미적지근한 그의 반응을 뒤로한 채 가방
을 문밖에 던져 놓고 사무실 안에 있는 땔감이란 땔감을 전부 데스크 위에 산처럼 쌓아 올렸다. 그
곳에는 종이 서류는 물론이요 플라스틱병이며 음식물 쓰레기도 있었다. 한 두어 번 쌓아 올리자 데
스크 가득 땔감이 쌓여 괴상한 풍경을 이루었다.
“여자가 경찰에 내 얘기를 했을지도 몰라.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암. 그럼 외국으로 뜬다 해도 잡히
는 건 시간 문제야. 그러니 싹 태워버리는 게 이치에 맞아.”
“그래도…”
“박 형 몰라? 박 형이 그래서 잡혔지. 멍청이같이 자기 흔적을 훌훌 남기고 다녀서 말이야.”
김은 제 나름대로 자기 짐을 싸느라 분주했지만,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지 나를 의심스러운 눈
초리로 바라보며 땔감 모으는 일을 돕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괜히 괘씸하기 짝이 없게도,
“저는 손 안 댄 거예요. 아시겠죠?”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땔감으로 쓸 만한 것들이 바닥났을 때 즈음, 내 데스크와 그 주변부는 이미 갖은 쓰레기
들로 가득했다.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김은 내가 라이터를 꺼내 들은 것을 보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 조용히 문밖을 나
섰다.
“아무렴 형 마음대로 하고 차로 와요. 차 어딨는지 아시죠?”
“알지, 알아. 잔소리 말고 차에 시동이나 걸어 놔. 불 피워 놓고 바로 뛰쳐나가게.”
김은 뭐라 중얼거리며 나갔지만, 발음이 뭉개져 들리지 않았다. 그가 나가자 사무실에 정적이 찾
아왔다. 덜덜거리는 소리뿐, 바람일랑 제대로 나지 않는 선풍기만이 침묵에 바삐 대항할 뿐이다. 이
제 끝이로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나는 조금 뒤면 한 줌 재로 돌아가 버릴 이 공간에 잠시 묵념을 하고서 라이터의 부싯돌을 비볐
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무리 비벼도 불이 나오지 않았다.
액땜 하나 제대로 하는군.
나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제저녁에 쓰고 버려놓았던 가스버너를 찾아 불을 내었다. 아
직 가스가 남아있었다. 나는 땔감에서 성냥 역할을 할 종이 하나를 골라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 종
이는 어떤 직장인 중년 남성의 신상과 특이사항이 적힌 서류였다. 충분히 종이에 불이 붙자 나는 내
손에 불꽃이 옮겨붙기 전에 서둘러 데스크에 종이를 던지고 가방을 둘러맨 채 건물을 뛰쳐나왔다.
주변이 가로등이나 불 켜진 다른 건물도 없는 완전한 허허벌판인 터에 가뜩이나 새까만 김의 차
를 찾는 데 꽤 애를 먹었다. 내가 그의 차를 찾지 못하고 오래 방황을 하자 김이 클랙슨을 울렸다.
나는 끙, 하며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는 오래 안 씻은 사내들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나는 보란 듯
이 코를 막았다.
“인천 공항으로 가자. 그리고 방향제도 좀 뿌리고.”
차가 출발하자 의자가 흔들리며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편하게 앉기 위해 가방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혹시 깜빡한 것은 없나 가방을 뒤졌다. 김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는 주
변을 뒤적이며 방향제를 찾았다. 차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한 채 깜깜한 칠흑을 달리고 있었다. 오랜
만에 오래 달린 데다가 무얼 먹은 지도 오래된 탓에 당이라도 떨어졌는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

140
속을 차근차근 뒤지던 나는 문득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잠시만 있어 봐. 잠시만, 여권은 네가 챙겼지?”
나는 속으로 간절히 김이 네, 하고 대답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김은 눈
을 휘둥그레 뜨며,
“누구 여권이요?”
“너랑 나 말고 누구 더 있나?”
“제 여권은 있어요.”
“네 여권 말고, 내 여권은?”
“형 여권이요? 형이 챙긴 거 아니에요?”
“내가 너한테 맡겨 놨었잖아. 옛날에 말이야, 몰라?”
잠깐의 정적. 김은 입도 벙긋하지 않고 가만히 두 손으로 핸들을 쥐고만 있었다. 차는 무작정 달
렸다. 어찌나 빠르던지, 김이 흘깃 차창을 보지만 않았어도 곧바로 앞에 나타난 가로등에 차가 두
동강 날 뻔하였다. 급히 핸들을 돌리다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난 김은 또다시 눈을 올빼미
처럼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옛날에, 뭐라고요?”
“썩을. 차 세워, 당장!”
나는 김의 대답을 듣기도, 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 내렸다. 그 바람에 땅바닥에 네
댓 번을 굴렀다. 몸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깥은 차 안에서 본 것보다 훨씬 어두웠다. 나는
동물적인 귀소본능에 의지해 건물을 향해 냅다 내달렸다.
“여기 가만히 서 있어, 알겠어?”
나는 그새 멀리 떨어진 김에게 당부하며 뻣뻣하게 굳은 두 다리를 힘껏 움직였다. 다리가 좀처럼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으나 나는 그간 비축해둔 지방을 열렬히 태우며 그 낡은 폐건물이 벌써
불길에 뒤집어 싸여 있지 않기를 하늘에 간절히 빌며 달렸다.
얼마 있지 않아 매캐한 연기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달리자 희미하게 건물의 윤곽이
드러났고, 더 달려가 보니 다행히도 건물은 아직 건재했다.
하늘이 날 돕는다.
나는 나의 소망을 들어준 하늘에 감사를 표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사무실은 4층에 있었기에 떨리
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잠시 숨을 고르고 혹 불길이 밑에 층까지 번지지는 않았을까 신중히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아직 사무실 바깥까지는 불길이 번지지 않은 듯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은 불길이 매섭게 이글거렸다. 새빨간 불길에 가려 사무실 안 사물들이 흔
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용광로의 모습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불길에 뛰어드는 소
방대원의 심정으로 옷 소매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살금살금 기어들어 갔다.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검붉은 연기는 물론이고 작열하는 열기로 인해 걸음 한 번 딛기 쉽지 않았
다. 그러나 좁은 사무실의 특성상 몇 걸음 정도를 가니 굳게 닫힌 김의 사무실 문이 드러났다. 문손
잡이가 불판같이 뜨끈뜨끈했다. 나는 잠시 숨을 참으며 코를 막았던 옷소매로 손을 감싸고 손잡이
를 돌렸다.
김의 사무실까지는 아직 불길이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뜨겁고 울렁이는 바깥과는 다르게 이
곳은 시원했고 사무실의 하얀 벽지가 제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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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을 닫고 곧장 김의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던 김에게는 안됐지
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여권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김에게
원망이 들었다. 김이 내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않았어도 이 고생은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서였
다. 멍청하게 그에게 여권을 맡긴 나 자신에게도 원망이 들었다.
나는 그런 감정은 공항에나 가서 맘껏 음미하기로 하고 여권을 주머니에 넣으며 문을 열었다. 그
러나 어쩐 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이 밖에서 잠겼나 싶어 나는 문을 힘껏 발로 찰 준비를 했
다.
하나와 둘과 셋을 세고 묵직한 기합을 넣으며 내가 막 문 앞에 발을 들이밀려는 순간, 눈앞에 어
떤 빛이 번쩍하였다. 그와 동시에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게 밀려들
었다. 공기가 위로 솟구쳐 올랐고 그 찰나의 무중력은 내 심신을 종이 쪼가리처럼 구길 기세로 나를
압박해왔다.
이 빌어먹을 것이 이제는 나마저 집어삼키려 하는구나!
이에 질세라 나는 최후의 일 초라도 그 불가항력을 똑똑히 목격할 양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
나 이 무자비한 힘은 결코 마지막까지도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
을 때부터 가진 제 알몸을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꽁꽁 숨긴 채 불꽃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것
이다.
나는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그것이 나의 의지부터 차례로 나를 창백한 재로 만들어간 것이었다.

“이거 원래 방화사건이었습니까?”
사건 현장에 다다른 강 순경이 난처한 기색으로 함께 도착한 서 형사에게 물었다. 그는 매캐한 연
기가 불쾌하여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글쎄다.”
지은 지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 기세 좋게 타오르며 해 떨어진 공터를 밝혀주었다. 집채만
한 불꽃 주위로 크고 작은 하루살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뒤이어 도착한 경찰들은 차창과 헤
드라이트에 매섭게 덤벼드는 나방들 때문에 멀리서부터 와이퍼를 작동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날벌
레 흔적으로 얼룩진 차에서 내려 시뻘겋게 불타는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난처
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거 원래 방화사건이었습니까?”
서 형사는 팔짱을 꼈다. 여유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언가에 골몰했다는 의미에서였다. 또한, 평
정심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불꽃의 열기로 인해 그는 보이지 않게 비 내리듯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다.”
서 형사가 땀으로 미끈거리는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시원한 맥주와 차가운 물로 하는 샤워가
간절한 그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긴급통화 기능을 향해 열
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거 하나만은 알겠군.”

142
“뭐 말입니까?”
강 순경이 휘날리는 재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경찰대원들은 알아서 각자 차량으로 돌아가 대
기하고 있었다. 서 형사의 회색 스타렉스를 뒤이은 차들에서 새까만 눈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깜빡
였다, 서 형사는 휴대전화로 날아든 날벌레를 땅바닥으로 튕겨내고는 키패드를 가볍게 두들겨 숫자
119를 입력했다.
“이곳에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소방대원들이라는 거야.”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신음이 몇 초 흐르더니 곧 소방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이
름과 직함을 댔다. 그리고 그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 강 순경과 스타렉스로 돌아가 앉았다. 미동 않
는 차량 주변을 날벌레들이 둘러싸 그들은 와이퍼를 다시 작동시켜야만 했다. 차창을 좌우로 쓸어
내리는 와이퍼 사이로 그칠 줄 모르는 불꽃이 하늘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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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심사평

2023년 서강청년문학상 소설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11편이다. 이번 응모작들은 동화적이면서


도 우화적인 상상력이 도드라진 작품, 스릴러와 호러, 판타지 등과 같은 장르소설, 부조리한 현실
과 부닥치게 된 청년 세대의 사회비판 의식을 다룬 작품,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중에
서 우선 「별은 어둠 속에서」, 「여름 가리기」, 「만년 이무기」는 우화나 동화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특히 「여름 가리기」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간절기를 ‘뜨거운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우산 만
들기’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아이의 상상 속 놀이 과정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
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쁜 동화가 과연 서강청년문학상에 걸맞은 소설인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
다. 동화를 가장한 소설은 가능하지만 동화가 소설이 될 수는 없다. 두 장르의 차이에 대해 좀더 심
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별은 어둠 속에서」는 입시 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외계 이방
인으로 설정하고 해독되지도 제대로 전달되지도 못하는 외계어 속에 고립시키면서도 종국에는 반
딧불이로 상징되는 작은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다. 일단 이 소설은 주인공이 처해 있
는 소설적 상황이 명확하지 않다. 특히 소설에서 말하는 지구, 외계, 태양 사이의 관계가 상징적 차
원에서건 실제적 차원에서건 간에 분명하게 서술되지 않아 소설적 시공간이 삭제된 채 주인공의 모
호한 내적 독백만이 떠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은 의미가 불분명한 웅얼거림처
럼 읽힌다. 「만년 이무기」는 이무기와 용의 관계에 대해 익히 잘 알려진 내용들을 바탕으로 전개되
고 있어 아무런 서사적 긴장감이나 새로운 독해의 포인트를 찾기 어려운 소설이 되고 말았다.

「적색 인간」, 「실험체 555」, 「히카루(빛난다)」, 「201호」는 최근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유튜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우고 있는 스릴러와 호러, 판타지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설이다. 우
선 「적색 인간」은 범죄적 충동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결국 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적색 인간’이 되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나가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다소 설득력이 없고 ‘폐가에서 주운 라이터’에 ‘나’의 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조종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적 설명이 부족하다. 그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몰락에 몰입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이렇듯 소설의 주인공이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당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끌고 갈
경우, 악당인 주인공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메인이 되거나 아니면 악당이 지
금까지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로서 매력을 갖추거나 해야 하는데 이 소설 속 악당은 미
스터리한 힘에 지배받는 수동적 존재로만 그려져 그 매력이 반감되고 말았다.

「201호」또한 이와 비슷한 인물 설정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떤 빌라 ‘201호’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아동학대를 방임한 빌라 사람들이 아이 울음소리라는 환청에 시달리다가 차
례로 죽게 되는 미스테리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갑작스런 죽음에 처한 빌라 입주민들이 공통적으
로 내뱉는 ‘어쩔 수 없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이 소설의 주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한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 단죄가 너무 손쉽게 이루어져 아무런 서사적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빌라 입주민들 각각이 개성적 인물이라기보다는 비정한 이웃이
라는 덩어리(mess)로 그려져 인물들 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작가의 주제의식만이 너무
도드라져 인물이나 사건이 도구적으로 소모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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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빛난다)」는 주인공 ‘히카루’가 유명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이 죽은 사고 매물에 거주
하며 ‘귀신이 사는 집에 사는 모델’ 컨셉으로 브이로그를 찍어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주인집 남자의
스토킹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스로를 위
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셀피 관종’의 삶을 통해 sns 속 인플루언서가 처한 딜
레마적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
만 너무 앞서 다른 소설적 요소들에 대한 고려나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장 또한 몰입을 방해할 만큼 어색한 비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보내져 오는 메시지들도 점
점 많아져 다 확인해주지 못할 정도다.”와 같은 문장이 그렇다. 게다가 주인공이 엄마나 매니저 등
과 나누는 대화 또한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것으로 채워져 서사적 진행을 방해할 정도다.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 심지어 구두점까지도 때로는 소설적 현실을 완성하기 위한 필요충분조
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실험체 555」는 응모작들 중 가장 가독성 있는 소설로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설
이다. 특히 이 소설은 실험 주체가 실험 대상, 즉 쥐라는 피실험체가 되는 경험을 통해 인간이 다른
비인간 존재와 맺는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퀸의 「보헤미안 랩소
디」가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좀더 풍부한 독서 경험을 유도한다. 문제는 이 소설의 메인 서사를 감
싸는 액자 바깥의 이야기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심리학과 학생 한 모 양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같았던 쥐’가 결국 평범한 쥐로 돌아가 사망하게 된다는 결말을 제시한 후 이에 대한 작가적 해
석을 덧붙인다. 그것은 바로 높은 지능의 유기체도 괘락 중추 자극에 중독되면 지성을 잃을 수도 있
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제의식의 등장이 다소 갑작스럽고 메인 서사의 스토리와는 다소 동
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의 주제가 인간과 쥐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탈인간중심 서사인지, 아니면 도파민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인지 모호해져버
렸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만의 에너지가 필요해 보인다.

「가을꽃」과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는 일단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가


을꽃」은 고등학교 시절 호감을 가지고 있던 여학생이 어쩌면 레즈비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
실을 그 여학생에 대한 회상과 재회를 통해 다루고 있다. 문제는 과거 ‘나’와 ‘그 아이’ 사이의 관계
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아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점(소설에서는 주로 ‘나’가 무슨 책을 읽
는지를 ‘그 아이’가 궁금해한다는 에피소드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자 잘 파악이 되
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소설에 대한 소개를 통해 ‘나’와 ‘그 아이’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뤄졌
다면 좋을 듯 싶다.), 게다가 재회 또한 ‘그 아이’의 미국행을 전달하는 것으로 다소 싱겁게 끝나버렸
다는 점이다. 작가는 ‘나’가 목격한 ‘그 아이’와 다른 여학생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하
는지 좀더 명확하게 작품을 통해 얘기할 필요가 있다.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는 가정폭력에 시달
리던 여성이 남편과 이혼 후 두 딸과 헤어져 미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10년 만에 한국
에 찾아와 딸의 죽음을 확인한 후 ‘내 아이를 찾아주세요’라고 오열하며 괴로워하는 소설이다. 이 소
설은 죽은 딸과 재혼한 엄마가 서로를 가족 내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며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시작한다. 소설에서 딸은 엄마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엄마가 더 이상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엄마가
아닌 ‘은미’라는 한 존재로서의 삶을 시작하기를 바라는 에피소드가 제시된다.

145
그러나 엄마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고 본래적 자기를 찾아 떠난 상황과 어린 두 딸을 포기한 채 미국에
서 재혼한 엄마가 10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돌보지 못한 딸의 죽음에 오열하는 상황은
소설 속에서 서로 충돌할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러한 이야기를 통
해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아 찾기인지,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인지, 애틋한 모
정인지, 성숙한 딸의 엄마 사랑인지 모호하다.

「노을이 진다」와 「불꽃」은 둘 다 문제적 상황을 제시하고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
(없)는가라는 기본적인 서사문법에 충실한 소설이다. 특히 단편소설은 분량의 제한을 받는다는 그 단
소적(短小的) 특성상 사건이나 상황, 주제의식 등의 단일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 두 편의 소설은 바
로 이러한 단편소설 양식의 기본에 충실한 소설이다. 「노을이 진다」는 치매를 앓는 엄마와 그런 엄마
를 돌보는 딸의 상황을 다소 감상적인 톤으로 서술하는 소설이다. 치매를 앓는 엄마를 돌보면서도 자
신의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딸의 초조한 상황과 치매 때문에 점점 변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안
타까운 마음이 자연스러운 서사적 흐름 속에서 잘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모녀가 처한 상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어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예컨대 딸과 엄마의 나이라든가, 딸이 처
한 상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취업 준비를 하는지 등등) 등에 대해 흐릿하고 모호
하게 전달되어 이들이 처한 정서적, 현실적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다가 결말 부분의
정서적 점강(漸降)을 위해 동원된 ‘노을이 진다’라는 문장은 어떤 반전이나 환기의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다소 감상적으로 덧붙여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아마도 ‘삶의 순간에 전체를 포착한다’고 흔히
얘기되는 소설의 소실점이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꽃」은 무엇보다 배제라는 단편소설의 미학을 통해 하나의 장면을 소설의 소실점으로 확보하고
자 하는 소설 형식에 대한 고민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특히 단편소설은 삶의 일면을 통해 일시적이나
마 삶 전체를 포착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진 장르다. 그래서 삶의 전체적인 형상을 제시
하기보다는 삶을 축소해 순간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불꽃」은 비록 서사적 전개가 다소 매끄럽게 전
개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배제의 양식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점이 존재하는데,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을 묶고 연결해주는 것은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다. 즉 보
이스피싱 상황에 노출된 피해자의 시점에서 시작된 소설은 그 다음 장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 남성
의 시점으로 이어진 뒤 결말 부분에서 화재 현장에 도착한 형사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 즉 속는 자와 속이는 자 혹은 도망가는 자와 추적하는 자 간의 긴장
은 다급한 도주 과정에서 무리하게 저지른 방화로 인해 조직원 남성이 사망하는 화재 장면에서 갑작
스럽게 종결된다. 그럴 때 일상 속에 흐트러져 있던 감정과 에피소드, 갈등들은 화재 장면이라는 소실
점으로 모여들었다가 종결됨으로써 서사적 완결을 이룬다. 이번 심사에서 「노을이 진다」와 이 작품
을 갖고 끝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불꽃」은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
민이 가장 치열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삶의 부분들을 가공하고 편집해서 만든 인
공물이다. 요즘 소설들에는 이러한 장르적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당선작인
「불꽃」은 지금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장르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는 점에
서 귀하다. 당선을 축하한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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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상소감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저라는 사람 자체가 걱정과 두려움에 과하게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


인지, 나의 말, 당신의 말, 나의 행동, 당신의 행동, 범위를 넓혀 전지구적인 사안까지 저의 온몸에 불안
을 새깁니다. 하지만 저는 정확히 무엇이 제 자신을 그렇게 불안토록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티
비에서 자전거를 등에 지고 매일 산행에 오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산행 한 번
에 자신이 인생에서 저지른 죄를 하나씩 사해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라도 고난을 짊어져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은 몹시 반짝여, 마치 자신의 죄를 빠짐없이 기억하고, 또 인
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저에게 있어 불안을 해명하는 일입니다. 어쩌
면 자전거를 짊어진 남자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명백히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그러나 산행에 오르
는 그와는 반대로 문장을 써‘내려감’과 함께 저의 내면의 어두컴컴한 막장까지 내려가보는 일일지도 모
르겠습니다.

「불꽃」을 통해 여러분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영광입니다.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운동장 구석에서


끄적이던 소설이 어느새 교지의 한 부분을 채우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꾸려봅니다. 항상 저를 격려해주시는 할머니께 감사를 올리며, 오늘도 문장
앞에 제 자신을 고해하겠습니다.

홍태화(사회과학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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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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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심사평

올해 서강청년문학상 수필 부분 응모작을 읽으면서 수필과 일기는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에 대


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수필이란 일반적으로는 마음 가는대로 쓰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장르
와는 달리 내용도 형식도 정해진 것이 없어서 무엇보다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점에서 어떤
장르보다도 쓰기 쉽지만 동시에 바로 그 점 때문에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쓰는
사람의 사유의 깊이나 사색의 범위가 그 어떤 요소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의 결과보다
는 깨달음의 과정이 더 중요하고, 감정 그 자체보다는 그 감정에 이르게 된 계기가 더 중요합니다. 그
리고 나아가 깨달음의 이후와 감정의 이후도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사유나 사색이 넓어지고 깊어지
기 위해서 밟아야 할 과정이 수필에는 잘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올해의 수필 부
분 당선작은 아쉽게도 선정할 수 없었습니다. 더 나아가야만 하는 지점에서 서술을 멈추고 있어서 글
이 미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편안하게 혹은 쉽게 쓰이는 글은 결코 없습니다.
이 어려움을 넘어서고 그래서 기어코 어떤 완결된 지점까지 도달하려는 글이 올해에는 보이지 않아
서 아쉽습니다.

「어떤 기억은 사진보다 영원하다」는 일상적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을 지속시키는 것이 순간을 망친다는 깨달음으로 끝맺음하기보다는 그
이상을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건네는 감정과 받는 감정」은 감정의 교류에 대해 지금 서술된
것보다 더 나아간 지점까지 서술되면 좋겠고, 「겁도 없이 난 꿈을 꾸었다.」는 꿈과 현실에 관한 우울
한 토로에서 멈추지 말고 그 이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회색의 808호에 덧칠하기」는 A와 집
의 대화라는 형식은 신선하지만 상투적 내용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 어린 아이의 노
래」 역시 소년의 성장 과정을 음악적 형식을 차용하여 서술한 점은 신선하지만 형식과 내용이 유기적
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동생에게, 그리고 20,30년 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현재의 ‘나’가
전해주고 싶은 교훈을 너무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나에게」역시 글과
문학에 대한 꿈을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둘 다 현재의 감정을 넘어서는 사유와 더불어 문학적
서술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관계 3부작」은 내용에 비해 제목이 과도하고, 내용이 추상적입니다.
문학어는 구체어라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문학평론가 박슬기(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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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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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재율은 본인이 무너뜨려 놓은 생사의 경계 속에서 생을 반드시 건져내야 하는 임무를
갖게 되는데, 그는 이 임무를 아주 근사하게 해결해 내고 있다. 바로 타자의 경유를 통한 자아의 인
식이다. 마찬가지로 시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물가에 발을 넣어 보았다

무언가 스치면

그것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함부로 장난치는 것이 아니라고 야단을 맞았다”

「물고기의 마음」 中

살아 있다 보면 살아 있음을 잊는다. 살아 있는 자들에겐 그 살아 있다는 사실이 아주 당연한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살아 있음을 정확히 지각하려면 타자의 ‘생’ 혹은 ‘사’를 통해 나 자신의 ‘
생’을 반추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생과 사가 뒤섞인 세계에서 생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은 세계
속 타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일과 같아진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실상도 알았고, 내가 바야흐로
‘생’인 것도 알게 되었다. 위태로운 세계 속 개인은 언제나 위태롭기 십상이니, 그렇다면 차기 과제
는 내가 ‘생’으로서 계속 무사히 살아가는 방법을 밝히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다음과 같
이 적는다.

“한참 동안 나가질 못해서


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옷장 안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나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축일」 中

시인의 세계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일은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일과 같다. 일찍이 랭보가


사랑을 매 순간 재발명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을 차용해, 이 행위를 ‘생의 재학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세계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우리에겐 생을 매 순간 재학습해야 하는 필요가 생긴
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다시 배워야만 하는가?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이 ‘생의 재학습’의 해석을 「축일」 속 숨쉬기를 배운다고 한 부분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데, 결국 이 개념은 해당 작품으로부터 발생됐을 뿐만 아니라, 그 개념을 일상세계로 가져와 생
각해 봤을 때 우리에게 숨쉬기란 태초부터 체득하고 태어난 굉장히 자연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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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법을 모른 채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면 모두 필연적으로 죽었을 것이다. 즉, 이 행위는 학습
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그저 당연히 우리에게 전제처럼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연
히 주어져 있는 것은 숨쉬기 이외에도 다양한데, 이 당연한 것들은 시인 특유의 담담한 어조를 통해
여러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① 사랑: 생과 사가 섞여 버려도 여전히 사랑은 존재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사람들은 왜 죽은 사람을 좋아할까/ 이미 죽었는데// 참 우리 사랑을 해야 하는데// 내가 먼저 죽어


버렸지 그런데 너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프랑스 영화처럼」 中

혹은 이렇게 단순하고 우연적인 요소로도 아름답게.

“하천을 따라 번져가는 물방울들처럼 우리는 서로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에 빠지기도 했는


데” 「너무 열심히 달려서」 中

② 종교: 죽음과 슬픔 앞에 무너진 개인이 있다면, 그가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는 더 이상 중요


하지 않다. 만약 신을 믿고 있지 않았다면, 그는 바로 그 순간 신을 발명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
게 해서야만 한 개인이 생을 유지할 수 있다면 나는 그를 더 이상 논리적으로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리하여 생과 사가 혼재된 시인의 세계 속에서도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 여전히 가치를 가
진다. 그것이 설령 무신론자의 걱정이 담긴 고해성사일지라도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죽기 전 무엇을 하고 싶냐고 내게 물었다// 마중을 나갈 거야// 눈 내린 성


당 밑으로/ 잠들어 있는 하얀 개들// 꿈속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더 이상 뒤척이지 않고// 만약
천국에 갔는데/ 내가 나빠지면 어떡하지 한참을 생각했다.” 「고해성사」 中

③ 향과 맛: 결국 일상은 오감의 결합체이며, 이러한 감각들의 존재는 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히 시각이지만, 일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후각과 미각이다. 시인은 후각과 미각을 활용해 세계의 해상도를 높이고 있다.

“준비한 찻잔을 꺼냅니다// 멀리까지 퍼져 나간 향을 생각하면서// 냄비 밖으로/ 흘러 넘치는 것들


을 함께하려고” 「어떤 향은 너무 강렬해서 오래 기억에 남게 되는데」 中

“새 학기가 시작되자 너는 내게 사탕을 건네주었다. 신게 진짜 맛있는 거라고, 나는 사탕을 입에 넣


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레몬 향이 교실 가득 퍼져 나갔다. (…) 너는 쓰러졌고, 나는 양호실에 누
운 너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 집으로 가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나를
불러 세웠다. 아주머니는 회개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내게 휴지를 건네주었다. <주님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라고 써진 휴지였다. 휴지 뒤엔 사탕 하나가 붙어 있었다. 레몬이었으면 좋았겠지만
계피였다. 이미 너무 많이 울어 회개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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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것처럼 레몬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였고, 어떤 처음은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
각했다.” 「레몬과 회개」 中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믿고, 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정재율 시인이 바라보는 삶에는 특별하
거나 거창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상은 말 그대로 특별하지 않기에 일상인 것이며, 그렇
기에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다시 죽음과 슬픔으로 돌아와보자.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슬픔이었던 ‘잔
존하는 슬픔’은 시인의 세계 속에서 이제 생과 뒤섞인 사로 나타나며 어떤 방식으로도 소중히 추억
될 삶의 한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사별한 것들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이따금 다시 펼칠 때마다, 시인 내면의 아주 깊숙이 자리한
일기를 몰래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때 내게 찾아오는 슬픔은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라,
되려 시인의 슬픔을 읽어내며 발생한 부차적 감정이라고 명명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읽어내기’와 ‘이겨내기’는 발음이 유사하고, 타자의 슬픔을 읽어내는 일은 나의 슬픔을 이겨내는 데
에 도움이 되어주곤 했다. 나는 이제 우리에겐 읽어내기에 이겨낼 수 있는 반가운 슬픔들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슬픔이여, 안녕. 나는 이제 슬픔이 아닌 이 생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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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철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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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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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심리 22)

안녕하세요. 교지서강 86호 ’빠순이가되~’와 감감감 中 ‘멍청감’을 맡은 김나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마감하다 머리를 싸매고 후기로 도망쳐 왔습니다. 역시 글을 쓰는 일은 항
상 어렵습니다.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경박하게 표현했던 것을 정제된 형상으로 빚는 작업이 부담스
럽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담아놓은 문장이 많아 가라앉으려 할 때 터놓을 수 있는 장소
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실 교지서강에 들어오기 전부터 남몰래 이곳을 동경했습니다. 문구가 강렬한 포스터가 잔뜩 붙
어있고, 어려워 보이는 책이 잔뜩 있는 교지실은 제게 ‘괜찮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잠시 의탁해
도 괜찮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편하게 나눌 수 있으니 괜찮고, 방황하고 고민해도 괜찮다
는 느낌을요. 그리고 그 느낌을 직접 맛보았기에 여기서 ‘존재’의 소중함을 느낍니다. 혼자였으면 부
족했을 저를 이끌어준 교지서강 편집위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교지서강과 함께 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유진 (종교 22)

제 곁에 있는 사람과 환경에 따라 보여지는 성격이 참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다양


한 저를 목격하려고 글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갑니다. 또 그렇게 서로를 거울삼아 서로의 삶의
증인이 되어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그렇게 살아있구나, 그렇게 살아가
고 있구나, 하고요. 저의 글도 다른 편집위원의 글들도 그런 솔직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저희
의 글을 읽으셨으니, 저희 삶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장난이고요.) 저희 글에서 여러
분을 많이 목격하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생각 많고 걱정 많은 사람인지라, 대학에 왜 다녀야 하는지가


제게는 정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저의 케케묵은 고민을, 교지를 핑계로 나눌 수 있어서 정말 고맙
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의 삶에서 각기 다른 고민과 힘듦이 있을 것을 압니다. 읽으시는 여러분들
도 각자 삶에 맞는 답을 잘 찾으실 수 있기를 먼발치에서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에 홀려 언론사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던 교지가 이제는 꽤 애틋


해졌습니다. 비록 한 학기였지만 정말정말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글도 쓰고, 스터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한 계절을 버틸 원동력이 되어준 교지 부원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멋진 곳을 알려준 현지에게도,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끔 해
준 경민 한울 지연 보배 필영 윤 나영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창 감사합니다. 짱.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먼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다음 호는 더 나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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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종교 22)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올겨울은 그다지 춥지 않네요.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정말 기온이 더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그렇게 느껴집니다.
심리장애를 소재로 글을 썼습니다. 저 또한 심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깊은 바다에 빠진 것 같
은 기분이 들 때도,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렁거릴 때도 있어요.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고요,
상담도 성실히 받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비단 저와 네 명의 인터뷰이만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아요. 제 글을 읽으신 분이 계신
다면 감사함과 함께 반가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저는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 거기 있고요. 우리
는 아마도 이어져 있을 거예요. 끝내 만나지 못하더라도요.
늘 글 뒤에서 사람들을 훔쳐보곤 합니다. 아직은 밖으로 나갈 용기가 가득 차지는 않았어요. 마음
이 틀어질 때도 있고요. 그러나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희망이 저를 움직이게 만듭니다.
새해에는 힘듦을 힘듦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음
을 알고 다만 이별은 수북이 쌓여있음을 묵묵히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모두 잘 살아내길 바라요. 삶이 왜 그토록 소중하다고들 하는지 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요.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님을 늘 기억합시다. 아까도 말했듯 이곳에서 제가 당신을 바라
보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명은 당신을 생각합니다.
86호 교지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요. 발
견하고 잘 살아주세요. 살아주세요, 라고 하기에는 분위기와 맞지 않게 절박해 보여서 ‘잘’을 붙였지
만, 물론 잘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건 모두 아시겠지요.
앞으로의 교지도 많이 읽어주세요. 교지에서 만납시다.

끝으로, 늘 함께 하는 교지 친구들 항상 고마워! 데굴데굴 굴러가서 잘 지내.

160
김한울 (커뮤 17)

미치겠군. 교지 너무 재밌다. 항상 떠나고 싶었는데? 막상 떠나려니 너무 아쉽다. 좀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이게 마지막 후긴데 뭐라고 쓰지? 나 연대할 수 있나? 청승 떨어봤자 교지 사람들이랑
은 지면에서 계속 마주칠 것 같다. 외부투고 한 번만 받아달라 조를지도 모른다. 학교에 전하고픈
이야기들은 계속 생길테니까. 비로소 정말 다양한 많은 학생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작금의 대학은
왜 이리 조용한지 또 왜 맥락에 대한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게 됐는지 그리고 정말인지. 학생
회 망했다 욕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책임질 때가 되면 그 사람은 없는지. 현재를 최대한 제대로 이
해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원히 모든걸 알 순 없겠지만.
방중일정으로 교지 친구들과 함께 체제전환운동포럼에 다녀왔다. 과문한 나지만, 학문 장에서 ‘
페!미!니!즘!’ 하지 않는 이유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는 음모론이 아니다.’를 서두에 달지 않고 ‘제
국주의는 신냉전시대에 어떤 발현 양상을 띄는가?’라고 바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서구 제국주
의를 비판하며 서구 열강 국민은 다 죽여야 한다 하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 첫 문장에만 머물
러 있지 말자. 빨리 본론 써야지, 안 그럼 나처럼 열심히 들은 수업 기말 레포트 붙잡고만 있다가 미
제출로 C- 받는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여남 갈라치기를 조장했으니 그만 두고 쉬쉬하며 살자, 남자
는 무조건 여자한테 해로우니 분리돼서 살자 같은 불가능하고 순진한 소리 할 생각 추호도 없다. 이
미 도래한 변화를 되돌릴 순 없다. AI가 발전했다고 초연결시대에 러다이트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
이다. 다만 한 글자라도 줄여 한 부라도 더 뽑아야 하는 아까운 지면에 이 문장을 굳이 쓴 이유는, 많
은 이들을 놓치고 있다는 자각이 뒤늦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자극적이라 드러나기 쉬운 폭력은 비
대한 악마가 아닌 현상으로 바라봐야지, 그러다 해야 할 이야기를 못 하긴 시간이 부족하다.

“실제 학문 장에서 페미니즘 당연하다는 것, 교차성 논의 뭐 그런건 대학 오고 한참 지나야 아는


거고! 신입생 때 검색하면 페미니즘 욕이랑 랟펨 밖에 안 보인다고!” 라는 말을 듣고 아차! 했다. 당
연히 바탕인 거라 안 썼더니 서치에 안 걸렸구나! 근데 SNS는 발화 전후맥락이 소거되기 쉬우니, 마
중물 삼아 배울 곳을 찾기 좋을 뿐, 그런 모자이크 천지에서 다 배울 수 있다 믿으면 안 되는데. 이번
총학 공약 중 ‘청년광장 홈페이지 재활성화’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 모쪼록 잘 실현되기를. 건투를 빈
다. 4월 총선 글이 하나쯤 들어갔어야 하는데 아차 싶다. 학교가 위치한 마포갑은 여야막론 당내 경
선 출마자가 유달리 많은,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교지도 더 자리잡고, 학내 언론사 및 학생
회, 노조와 소수자인권 관련 단위 간 네트워크 재연결이 더욱 정착 및 활성화되어 한 사람이 행정적
으로 많은 일을 겸직하는 사태(지금은 그렇다, 다시 잇느라 정신 없는 즐거운 사태다) 없이 상황이
안정되면 자연히 그런 취재가 학내 지면에 등장하리라 믿는다.
하여간 이번 글이야말로 한 학기동안 마주친, 진짜 짜증나게(농담) 연루된 연대들과 기획들의 압
축이다. 자칫 중언부언하다가 끝났을텐데, 정말이지 사람들 덕에 썼다. 그래도 중언부언이지만 다
시 읽으면 다 엎을 것 같아 쳐다도 보지 않고 다른 친구에 교정을 부탁했다. 혼자 절대 못 썼을 글이
다. 앞으로도 나를 매개체로 써먹을 수 있는 마주침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원하는 대로 운동하는
연구자로 살 수 있을지 자꾸 자문하게 되지만, 그건 일단 살면서 볼 일이다. 못 돼도 다른 방향으로
살겠지. 못 되면 아마 술 탓이겠지. 내가 어떤 부분에서 모자란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었던, 게으
른 주제에 즉흥적인 나를 받아준 모든 친구들에게 고마움 미안함 모두 남긴다. 하트.

161
여경민 (미엔 20)

교지를 이제서야 떠납니다. 교지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아쉬운 걸 보니 진심은 아니
었던 것 같아요. 떠날 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교지가 좋습니다. 교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저는 서강
대에 지금만큼 애정을 갖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학교에 관심도 없었거든요.
교지 임원을 하면서부터 서강대에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교지를 하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내 영역이 확실했는데, 교지를 하면서 처
음으로 내 영역을 허물고 받은 것보다 더 주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보았습니다. 22년 여름방학 때
한울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뭐 사올 것 있어?”라고 물어보고는 자기 돈으로 제 것을 사주고 생색
도 안 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이랑은 n빵이 기본이었는데 한울이는 당연하다는듯
사줬거든요. 지금은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교지 안에서 배운 가장 귀한 것을 따지자면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손익계산에 무뎌진 것. 교지가 아니었다면 정말 배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교지를 하면서 배운 것 또 하나는 “대학은 하고자 하면 모두가 도와준다”입니다. 대학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데 대학에 처음 들어오면 대학 안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워요.
교지에서 다양한 것들을 해보면서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그걸 하기 위해 어디에 도움을 요청
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제가 뭘 해보려고 한다고 연락하면 모두가 환영
하면서 본인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더라고요. 학생들, 교수님들, 교직원분들, 청소노
동자선생님들, 학교 밖 사람들까지 모두가요. 대학생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이걸 교지
에서 배운 덕에 학교 안 다른 곳에서도 할까 말까 하면 일단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대학에서만큼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시도하길 바라요. 얼마 전에 친구가 저에게
교지 임원을 하고 나서부터 많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교지 스터디 마지막 주제로 ‘나를 키운 8할’
이라는 주제를 가져왔는데, 저를 키운 2할은 교지인 것 같습니다.
교지에서 더 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교지 안에서 교지 편집위원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편집장의 게으름 이슈로 많이 연대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
르지만)교지는 언론사입니다. 언론은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퍼뜨리는 곳이므로 더 부지런히 타
인과 함께하러 다녔어야 한다는 미련이 남네요.
교지를 하는 동안 교지 본문에 쓴 것과 같은 고민이 늘 있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컴퓨터공학 복
수전공을 시작했으나 제가 엔지니어의 길을 가는 것이 찝찝했습니다. 적성에 안 맞는 것은 아니었
는데도 엔지니어는 뭔가 제 팔자에 없는 직업 같았어요. 아무래도 교지 탓인 것 같습니다. 교지에서
생각하고 행하던 것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컴퓨터 공부는 오로지 제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노동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실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대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교지실이 너무너무 그리울 거예요. 바
깥에서 성실하던 친구들도 교지에만 들어오면 마법처럼 게을러져서 참 편안하고 느긋해졌는데요
이런 공간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교지에서 함께했던 친구들, 교지를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 안녕!

162
윤필영 (아텍 23)

안녕하세요, 두 번째 후기로 찾아뵙는 이제는 지융미 윤필영에서 아텍 윤필영으로 조금은 성장


한 윤필영입니다. 저번 호에서는 지융미 선거관리위원을 했던 후기를 간략히 썼었는데, 이번엔 문
화면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사실 86호에 쓸 글감은
처음엔 이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는데, 기획안 쓰기 얼마 전 영화를 보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썼습니다.

좋은 각본이 대단한 감독과 훌륭한 배우들에 의해, 또 감미로운 음악까지 더 해져 탄생한 귀중한
작품이라 소개는 하고 싶은데, 내가 과연 잘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감히?’라는 생각을 넘치게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썼습니다. 미숙한 글이지만 후회는 없고, 즐거웠던 것 같
습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수도 없이 봤거든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하기엔 충
분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시사하는 것처럼, 세상은 여러 의미로 괴물 천지입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괴물일


테죠. 어쩌면 스스로 거울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괴물’이라는 영화도, 제 생
각도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결국 모두가 ‘괴물 같은 인간’이라면,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만연한 세상일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주의
를 넘어 이기주의여야 살아남는 시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전 아직 미성숙한 초등학교 5학
년생 정도의 문장력과 상상력으로 ‘이유 없이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을 이유 없이 나눌 수 있는 세
상’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세상 속에서 ‘여전하게’ 함께 살아갈 여러분께 감사
합니다.

1년간 교지에서 많이 배우고, 생각하고, 맘껏 게으름 피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기꺼이 게으름


피울 수 있는 교지의 느긋함과 그럼에도 각자의 생각과 진심을 담아서 글 하나를 마무리해 내는 교
지의 끈기가 정말 좋아요. 아 맞다. 이건 별 건 아니지만서도, 정말 의도한 게 아닌데, 분명 존대하지
않고 반말하겠다고…. 수백 번을 다짐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존대 캐릭터로 남아버린 점은 조
금 죄송스럽네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준 교지 사람들 최고로 감사합니다.

163
장현지 (국문 22)

안녕하세요? 85호에 이어 또 찾아뵙게 되었네요. 처음 만난 분들도, 다시 만난 분들도 모두 모두


반갑습니다. 교지서강의 장현지라고 합니다.

본 글을 쓸 때보다 후기 지면에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네요. 후기만 쓰려고 하면, 왠지 정


제되어 있으면서도 감동적이고, 담백하지만 울림이 있는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카
데미 시상식에 황금 트로피를 들고 올라가 있는 느낌이랄까요. 여러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멋진 말
로 사람들을 글썽이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 안 하시나요. 저는 많이 하는 편인데요… …. 음, 뭐. 여
기는 교지 후기 지면일 뿐이지 아카데미 시상식도 아니고, 여러분들도 시상식 참석자들은 아니니
편하게 이것저것 말해도 되겠죠. 그럼 이제부터 부담을 좀 내려놓고, 하고 싶은 말들을 조금 해보겠
습니다.

2023년, 개인적으로는 탈도 많고 일도 많은 한 해였습니다. 힘에 부치는 순간이 많았고, 가끔은


다 버리고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어찌저찌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건 교지 친구
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울 경민 유진 나영 윤 필영 보배, 저의 소중한 교지 사람들에게 진
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교지 사람들 덕분에 반년을 어떻게든 잘 살아냈다는 기분
이 들어요. 항상 게으르고 얼렁뚱땅 살아가는 저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교지 사람들에게, 후기 지
면을 빌려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85호가 나온 뒤, 신입 부원들도 들어오고 교지 안팎으로 다양한 일들이 있었어요. 흐르는


시간 속에서 교지도, 그리고 저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게 되
는 것도 성장의 과정이겠지요. 올해에는 그러한 변화의 물결을 겁내지 않고 기꺼이 올라타 보려 합
니다. 아니, 올라타는 걸 넘어 기왕이면 서핑까지 해보려 합니다. 교지를 읽어주시는 여러분들도 부
디 그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나 이번 교지에는 특히나 개인이 감각하던 고민과 걱정, 개인적
인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되었기에, 혹여나 나아가기 막막할 때마다 이번 86호를 펼쳐보시면 조금이
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으네요.

사실 저는 올해를 끝으로 교지를 나가려고 했었는데요, 어쩌다 보니 조금 더 눌러앉게 되었습니


다. 인생은 한 치 앞일도 모르는 거라더니 그 말이 참 맞다 싶네요. 어찌 됐든 새해의 물결도 교지에
서,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영차영차 올라타 보려 합니다. 그 영차영차 하는 과정을 87호에서 또 실
어볼 테니, 그때는 또 저를 어여쁜 눈으로 봐주시길. 헤헷.

그럼! 또 87호에서 뵙겠습니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독자 여러분들도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164
주보배 (미엔 22)

교지와 함께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나가네요. 이번에 싣는 글은 교지에서의 제 두 번째 글입니


다. 어리바리 이게 맞나 이게 맞아 싶던 첫 번째 글을 마치고 나서 감격과 감동에 차 써 내려가던 저
번 호의 후기 때와는 또 다른 기분입니다. 사실 그렇게나 열정으로 완성했던 85호 후기는 막상 나중
에 읽어보니 너무 부끄러워서 반년 동안 손도 못 댔었는데, 이번 호 후기를 쓰기 위해 실눈 뜨고 다
시 한번 살펴보니 또 그렇게 못 봐줄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새로운 시작에서만 나올 수 있
는 거짓 없는 진심이라 웃으며 다시 읽었습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꾹꾹 눌러놓던 글이었는데
도요.

이번 호에는 증명을 향한 극복의 과정을 그린 다소 개인적인 글을 실었습니다. 사실 후기를 적는


직전의 직전까지 필명을 쓸까 말까 몇 번이고 고민하였지만, 끝내 이름을 적습니다. 저번 학기에 같
은 글을 실었다면 절대로 본명을 적는 결정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천성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그
렇습니다. 사실 글을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결국 교지에 실을 때엔 이름을 숨길 거라 생각했는데, 그
며칠 사이에 저는 새로운 결정을 했고 또 약간은 새로운 사람이 된 듯 합니다.

변화를 자주 느낍니다. 이상한 교지 안에서요. 사람들도, 쓰는 글의 내용도, 돌아가는 방식도 이


상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지만, 저는 이곳에 있을 때면 낯선 방향을 똑바로 마주하는 힘이 생깁니다.
아주 이상한 힘이요!
그런 교지를 정말 사랑하고, 교지의 글이 오래오래 읽힌다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에는 두 편의 글을 실었는데, 두 편 모두 마지막 문장은 건강하라는 당부와 바람의 인사입


니다. 정말 저는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마지막까지 읽고 계신 독
자분이라면 더더욱이요. 그렇지만 행복을 마주하는 각자의 상황은 다를 것이고, 또 당연하게도 인
생이 언제나 도파민 천국일 수만은 없기에 함부로 행복을 ‘제안’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마음속
으로 늘 여러분의 행복을 바라고, 입 밖으로는 부담을 덜어낸 최소한의 인사를 건네겠습니다. 제 마
음 아시죠?

교지 친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강하고 상냥한 경민이, 공감은 안 해줘도 관심은 거두지 않는 한울이, 독보적인 성실함과 섬세함
을 가진 지연이, 참 자상하고 귀여운 현지, 항상 칭찬을 아끼지 않는 윤이, 사실 교지에서 제일 웃긴
필영이, 따뜻하지만 똑 부러지는 유진이, 지금은 잠시 휴가를 떠난 교지실 마리모 나영이까지, 9명
이 함께 하는 교지라서 늘 즐겁고 지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쪼개 교지의 호흡 긴 길쭉한 글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호에 우리 또 만나


요. 건강하세요!

165
허윤 (경영 23)

교지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제가 언론사에 들어올 줄은 몰랐어요. 비가 오던 어느 날, 교지 전 부


원 언니를 따라 우산을 빌리러 갔다가 휘황찬란한 연대 포스터들과 어딘가 아늑하면서도 음침한 분
위기의 교지실에 저도 모르게 반했습니다. 85호 무한팽창을 2-3번 정도 읽고 난 후 “아! 여기 정말
들어가고 싶다!” 생각했습니다. 대학이라는 교육기관까지 와서 그저 학점만 채우다가 졸업하는 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찾은 느낌이었달까요. CPA시험 합격을 목표로 학교생활을 시작한 제
게 경영학과는 생각보다 제 적성과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하나
도 모르겠어!!”를 외치며 받았던 적성검사에서 경영학과가 적성적합 1위로 나온 웃픈 사연도 있답
니다.

충동성이 짙은 선택이라기엔 그 결과가 너무 행복해서 그저 늦게 합류한 저를 받아준 교지 사람


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교지 사람들과는 거리낌 없이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내가 알지 못하고, 못
했을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나이브함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열망을 어느 정도 채
울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냥 블로그에서 친구들과 여행 간 이야기를 쓰는


제 미천한 어휘력으로 괜히 교지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
들을 부러워도 해보고, 책 좀 많이 읽을 걸..하는 후회도 했습니다. 질투와 후회는 도움되지 않는다
는 걸 알기에 그냥 담담히 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퀴어 혐오적인 제 교회가 싫
어서 시작했던 기획이 유신론과 무신론, 영성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전 지금도 제가 뭘
믿고 살아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감감감을 보셨다면 전 아직도 무력감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저와 같은 고민을 한다는 사실과, 잠시나마 그걸 공유한다는 것만으로 어
느정도 무게감이 덜해지긴 하잖아요.

앞으로 교지에서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습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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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대학연합 고





아나키즘 대 대 대
학 학 학
소모임 교 교 교
2024.03.16 OT
이후 매주 토요일 오후 진행

사회적 1 아나키즘의 기초 1
국가 없는 사회주의

2 아나키즘의 기초 2
아나키즘 상호부조ㆍ조합주의ㆍ광주항쟁

3 자본주의와 아나키즘
빵의 쟁취ㆍ파리코뮌
개론 4 억압적 체제와 아나키즘
민족주의ㆍ제국주의ㆍ성억압

세미나 5 아나키즘 조직론 1


개인주의ㆍ전위조직

6 아나키즘 조직론 2
아나키즘적 조직

신청 QR
5월 1일 메이데이 집회 참여, 5월 광주 항쟁 기념 광주 순례, 6월
퀴어 퍼레이드 연대, 투쟁 현장 연대 활동 등, 학습을 동반한 실천
주차별 교재 독서 후 참가자 주도 발제 진행
서울 시내(세부 장소 추후 개별 공지)에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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