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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학, 왜 다님? 5
몸들이 만나는 곳으로의 초대 : 대학은 이런 곳이었다 11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현황 20
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31
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39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학내조직 인수인계 : 망해가는 학내조직 살리기 47
사회
우리는 왜 타인과 함께해야 할까?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58
집은 인권이다 65
환경운동, 위기를 직면하다 67
빠순이가 되~ 71
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어 77
안녕 나는 바이 83
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89
문화
괴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 영화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95
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101
단념 107
“타인은 지옥이다” 집담회 112
제 33회 서강청년문학상
시 124
소설 133
수필 148
비평 150
수상소감 및 심사평
후기 158
알립니다 167
1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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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한 영화 ‘괴물’ 리뷰는 이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편집위원이 추천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쓴 글입니다. 글이 진지하지만 귀여워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실 수 있을 거예요. 케이팝 빠순이로서 젊
은 여성 소비자를 부당하게 대우해 온 케이팝 업계에 작은 돌을 던지고자 하는 글은 케이팝을 좋아하신
다면 무척 공감하며 읽으시지 않을까 합니다.
교지서강 편집장
여경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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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대학, 왜 다님?
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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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왜 다님?
김유진
yjkim36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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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쓰기로 결심하고, 참 오랫동안 고민을 했었다. 대학의 기능 상실
을 통렬히 비판해 볼까, 대학의 역사를 펼쳐보아야 하나, 고민의 연속이었다. 며칠을 내리 고민하다
밤을 새워 400장짜리 논문을 읽고 난 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아서 포기를 했다. 그리고 그냥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공부하는 것이 정말 싫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 후에 평가받는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시험
기간이 되기만 하면 평가를 받기도 전에 긴장한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그럼에도, 대학에 나와 꾸준
히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 인문대학, 특히 종교학과에 나와서 ‘이거 배워서 뭐 하지?’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종교학과라고 하면 흔히 목사나 신부/수녀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기독교학과나
신학과의 역할이다. 그러니 종교 부문에서도 취업이 안 되는 종교학과의 지식…. 배워서 뭐 하는가?
사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지식은 어느 정도의 실용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하지
만 취업에 도움 되지 않는 지식은 정말 쓸모없을까? 대학에서 왜 실용적인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느
끼지? 그런데 취업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도 참 고역인데…. 이런 무한 소용돌이에 빠져버린다.
대학이 뭐라고…!
1. 대학의 본질
그러니 학교라는 것의 본질부터 정의해보자. 대학이란 조직의 핵심은 무엇일까?
여기서 대학의 본질은 교사와 학생이 만나서 학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꽤 간단명료하다. 받
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까 대학교의 핵심은 교수와 학생이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교수
와 학생이 학습할 수 있도록 학습의 장을 얼마나 잘, 수준 높게 열어주는가가 대학의 본질이다.
2. 대학의 목적
이념적으로 대학은 진리 탐구를 위한 곳이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다. 대학에 나온 사람을 ‘지성
인’이라고 부르는 말만 봐도 그렇다. 이런 생각은 독일 대학의 이상에서 나왔다. 독일의 관념론적
대학 전통은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의 이상을 반영하였다. 그는 자고로 대학이란 정부
와는 독립적으로 학문과 진리에 봉사하는 기구라고 정의하였다. 고급 전문 직종 양성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에 필요한 인재 양성소가 대학이란 것이다. 후에 발전한 미국식 대학은 고등교육의 대중
화와 산업 발전을 위한 민간 전문 인력 공급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의 이후의 보편적인 대학 모
델이다. 즉, 미국 대학은 공공과 민간을 총괄하여 사회적 진보와 발전의 거점으로 여겨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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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살펴볼 점은 대학은 어느 정도의 직업 교육을 위한 시설이란 점이다. 그 직업의 주체가
공공성을 지닌 직업인지, 민간을 위한 직업인지 정도가 차이점이다. 따라서 대학의 원형은 직업
을 위한 전문교육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다. 유럽의 교육체제
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이 고등학교 과정을 통해 완성되고, 대학 입학 이후는 전
문교육으로 진입한다는 점이다. 대학의 입학 조건이 단순 노동과 인습에서 벗어난 ‘자유인’으로
성취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교육인 것이다. 예시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라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은 대학의 전문교육을 받기 전 선결 조건으로 ‘자유인’의 자격을 입학 조건으로 요구한다.
3.특수한 한국 대학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사학으로 대부분 대학이 출발하였다. 민간 부문에서 활동할 인재를 기르
기 위해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미국 대학과 유사한 제도를 받아들여 설립되었
다. 하지만 대학의 실행을 명시하고 있는 ‘고등교육법’을 살펴보자.
제28조(목적)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47조(목적) 전문대학은 사회 각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재능을
연마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전문직업인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가 말하는 ‘대학’은 ‘전문대학’과는 차별점이 있다. 여기서 정의하는 대학은 직업교육이 아니
라 ‘심오한 학술론과 그 응용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즉, 한국의 대학은 공공부문의 인재를 양성하
고, 정부와 독립적으로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던 독일 대학의 이념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민간 부
문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연구하며 취업을 위해야 한다는 미국식 생각과 제도도 같이 가져왔다.
즉 우리나라 대학의 목적은 민간부문 인재를 기여하기 위함인데, 고등교육법에서는 공공부문 인
재를 위함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니까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브랜드가 다른 느낌이다. 호
환이 어느 정도 되긴 하는데, 실제로 잘 작동되진 않는 그런 것. ‘자아실현은 대학 가서!’라는 외침
과 함께, 진짜로 대학에 와서 자아실현을 하면 다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너,
취업은 안 해?’라는 말과 함께….
서강대는 어떨까?
서강대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서강대의 건학이념이다.
서강대학교는 학문을 탐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정의를 실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랑과 믿음을 갖춘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이를 통하여 인류 문화와 인류 공동체의 발전
에 헌신할 수 있는 참 인재를 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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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성공한 선배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취업 지원팀에서는 유지 취업률 1위 탈환 문자가 온
다. 대학에서 취업의 문제는 간과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학문과 취업이라는 두 가지 이념의
충돌이 조금씩 보인다. 결국 지성인이 되고자 대학에 왔는데, 취업 교육을 받는 학생에게도, 취업이
하고 싶어서 대학에 온 학생에게도 답답한 일이다.
인문대를 예시로 들어보자면, 작년 인문대학에서는 인문대가 1전공인 인문대학부 학생들을 대상
으로 앞서 설명한 프랑스 입학시험 바칼로레아를 벤치마킹한 대회를 열었다. ‘현행 교육시스템 하에
서는 발현되지 못하고 있는 인문대학 학생들의 창의력과 사고력을 발굴하고자 함’이라는 명목하에
논제가 주어졌다. 프랑스 대학의 입학시험을 이미 대학에 들어온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었다는 점
이 나에겐 조금 신기했었다. 바꿔서 생각해 보면 프랑스 대학에서 생활기록부 공모전/ 수능 성적 대
회가 열린 느낌이려나? 그러니까, 서강대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서강대에서 창의성을 갖춘 인재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현행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
는, 내가 느낀 묘한 답답함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그 답답함은 한국의 교육과정과 대학 과정의 괴리에 있다.
취업과 전인격적 교육 모두를 대학 내에서 한 번에 해야 하는 시스템에 의해서. 대학 4년 동안 자기
자신을 찾고, ‘자유인’이 되어도, 취업에 실패해서 대학의 실패자가 된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른 채로
대기업에 취업해도 자아실현을 놓친 실패자가 된다. 묘한 게임이다.
1. 대학은 공동체다
대학본부의 기능은 자치정부의 기능과 유사하다. 즉 자치정부들이 시민의 자유로운 활동에 기인한
소득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도시민 전체를 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시민들의 대외적
활동 - 이를테면 무역과 같은 것을 적극 지원하듯이 대학본부당국도 대학의 구성단위로부터 세금
(overhead)을 걷어 대학 내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학구성단위들의 대외활동-이를테면 산학협동과
같은 것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2006, p. 59)
2. 대학에서 배우는 지식
지식은 사회에 당면한 문제 해결과 동시에 권위 형성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지식은 기존 기득
권 권력의 합리화 역할 뿐만 아니라 기존 권력 체제를 뒤집기 위한 새로운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
해서도 쓰일 수 있다. 따라서 권력의 합리화 기능을 하는 지식은 특정 이론과 권력의 이념을 만든
다. 또한 당연하고 옳다고 받아들이게끔 합리화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이다. 1000년이 넘도록 대
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또한 사회에 일어나는 진보적인 논제를 함께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 운동을 주도하고, 그 사회적 현상의 근거를 설명하였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사회에 존재해
온 대학의 당위에는 이처럼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참여하는 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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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학에서 왜 연대를 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공동체라고 하는지, 왜 정치 참여를 해
야 하는지 의문이라면, 그건 대학은 실제로 공동체라서 그렇다. 이런 활동에 대학의 존재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3. 내가 경험한 대학
내가 경험한 대학도 취업과 학문이라는 이질적인 두 문화가 섞여 있었다. 해당 분야를 연구한 교수님
의 강의를 들으며 양질의 지식을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취업의 정반대에 있는 학과에서 나오는 씁
쓸한 패배감도 함께 경험했던 것 같다. 한 학기 동안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없었던 교양과목의 학점이 잘
나와서 좋아한 경험도 대학에 대한 회의감을 키웠다. 부끄럽게도 지금 내 안에도 두 가지 생각이 함께 공
존한다. 서강대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전인격적 성장, 나도 시켜줘!’와 그저 조금 덜 배워도 스펙이나 쌓아
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싶다는 마음이 엉켰다.
대학은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2년간 대학이라는 사회에 별로 참여하지 못했다. 정의로운 사람
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도, 막상 내가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주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한 탓이
다. 삶의 면역력이 참 취약한 대학생이다. 대학에 참여한다는 일은 매번 추상적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이
런 문제의식을 나눌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도 참 어려운 일이었다. 연대하자고 외치는 교지에 들어온 탓
에 ‘아, 이런 대학생도 있구나’ 싶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그 추
상적인 마음만은 잘 간직하고 있자는 생각이다. 바쁘다 바빠 대학 생활에서 내 삶 챙기기도 벅차지만, 타
인의 삶에 관심 갖지 못했다는 미안함만은 잊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한 대학은 이랬다. 각자
의 답과 삶이 있을 테니 확고한 언어로 말하는 일은 참 힘이 든다. 그럼에도 몇 자 적어 보자면 각자의 속
도대로 잘 살아갈 테니 타인과 함께한다는 방향성만 잃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돌고 돌아 다시 : 대학에 다니는 이유
그래서, 나는 대학 왜 다닐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시험 기간이 되면
손이 떨리고, 공부는 어렵다. 취업을 어떻게 할지 슬슬 생각하고 있고, 방학 동안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 하나 하지 않은 내가 싫어지는 요즘이다. 그래도, 사람이 좋아서 학교에 나갈 예정이다. 인간에
대해 몇십 년간 어렵게 분석해 놓은 인문학이 꽤나 귀엽게 느껴지고, 타인은 지옥이라면서도 타인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교지도 꽤나 깜찍하다. 그래서 대학에 다닌다. 어떤 일을 하는 데 그렇게 거
창한 원동력이 필요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이런 소소한 이유로 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대학에 오려고 하루 4시간씩만 자며 공부했던 고등학
교 때의 내가 보면 기함을 토할 일이지만 말이다. 그랬던 시절의 내가 꽤나 불행했던 까닭일까. 대학
을 크고 위대한 무언가로 생각할수록 나는 작아지는 것 같다. 무한경쟁의 시대 온전한 자의로 대학
에 오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왕 대학에 왔으니, 대학에 다니는 이유 한 개 정도는 스스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조금은 삶에 면역력이 있는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금 불안하긴 해도 지금의 결론이 마음에 든다. 인문학이 재미있어서 학교에 다니고, 사람
이 좋아서 등교한다. 각자의 정답이 있을 텐데, 다들 자기만의 소소한 이유로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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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나는 대학에서 나의 역할을 못생긴 바나나 정도로 정의했다. 무슨 말이냐면, 몇 년 전 바나나 멸
종설이 돌던 때가 있었다. 이는 파나마병이라는 바나나에 생기는 전염병 때문인데 이 곰팡이균으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바나나 멸종위기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유는 바나나 산업에서 재배하기 편리
하고 맛있는 ‘그로 미셸’이라는 단일 품종을 재배했기 때문이었다. 바나나 생산체계의 유전적 다양
성이 부족해서 질병에 취약한 탓이다. 그러니까, 획일화된 지식 생산체계에 학문적 다양성,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위해서 인기 없는 종교학과 같은 소수과(못난 바나나 같은…?)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 비슷하게도 나와 다른 이념, 환경, 생각, 지위, 역할을 가진 모든 사람은 생존 공동체이니, 그 자
리에 버티고 있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1.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2020)
2. 정기오, 『대학이란 무엇인가』, 파주시 한국학술정보(2006)
3. 대학-인문잡지,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 2023년 1월 6일, [133-148]
4. 대학-인문잡지, “학력무관의 세계를 향하여,” 2023년 1월 6일, [17-34]
5. “’바나나 팬데믹’ 공포가 치솟고 있다”, BBC News, https://www.bbc.com/korean/53209214
6. 고등교육법 28조, 4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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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들이 만나는 곳으로의 초대
: 대학은 이런 곳이었다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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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악과 절대 선을 찾아 탓해야 한다는 유혹을 벗어나 보자. 그러면 글을 읽는 당신도 글을 쓴 나
도 이 글을 편집회의 때 읽은 편집위원들도 모두 성 정체성/성 지향성/지정성별/장애 유무/소득분위/
고향/자란 곳/나이/국적이 어디든 체제의 공모자이자 피해자이자 가해자 그리고 또 무언가라는 N중의
레이어로 구성된 몸이 된다. N중의 레이어는 각자의 삶이 나아가는 궤적에 따라 천차만별의 향기를 갖
기에, 타자는 영원히 불가해한 존재가 된다. 타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무의미하고 우리 모두 자폐적
상태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성급한 오류로 빠질 생각은 없다. 다만 서로의 존재를, 특정 마주침을 통
해 인식한 후에 서로를 타자로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반드시 ‘특정 마주침(들)’을 경유해 타자를 바라
보아야 한다. 이 마주침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삶 속에서 타자와 처음 마주하고 그들을 불가해한 주체
로 인식하게 되는 그 순간을 뜻한다. 이 글에서 앞으로 계속 나올 말이니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나’에
게 타자는 나의 몸을 통한 인식을 경유해 존재하기에, 이 마주침은 필연적이다.1 그러나 이 마주침을 경
유하지 않고 마주한 적도 없는 타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위한 매뉴얼’을 파편적으로 주워 삼키게 되면(
이래야 한다는 강박이 드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많은 이들이 한 번쯤 겪는 일이니 자책하지 말자.), 퀴
어이론, 페미니즘, 장애학, 노동이론, 사회과학, 정치윤리, 인문학, 도덕 등은 본뜻과 달리 너무 빠르게
타자의 행위에 윤리적 단죄를 내리는 성문법으로써 쓰이기 쉽다. 아님 ‘너무 시혜적인 나’에 대한 절망
으로 수렴하거나. 그러니 마주침의 순간을 경유하자는 거다. 마주침의 순간을 하나둘 발명하고 지켜가
는 과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 변화를 만들어 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싶다.
초대도 이유가 있어야겠다. 대학에 갓 들어온 학우들의 보편적인 욕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2”
이다. 이 욕구는 동아리 가입 신청서부터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까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 글
에서는 해당 욕구를 ‘사교적 학구열’이라 칭한 후 이를 ‘특정 마주침’의 장소로 초대할 계기로 삼을 것이
다. 초대하고자 하는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그곳은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촉발하며 사교적 학구열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여야 하며, 그 장소가 바로 노학연대라고 주장할 것이다. 지금, 여기 우
리 몸으로 만나는 곳이 서강대학교라는 점이 마침 우리를 묶어주는 유일한 고리이며, 내가 몸으로 감각
하는 공간의 유지를 가능케하는 노동자와의 마주침은 학교를 떠난 후 그 기회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24시간 쏟아지는 연대 및 연명 요청에 때론 숨이 막히기 너무 쉬운 환경이다. 그러니 우선
학교에서 모여 별것 아닌 나의 존재가 연대로 기능한다는 걸 피부로 느껴보자는 거다. 지치지 않도록.
1) 몸과 존재, 세계의 상관관계 이해에 대한 이론서로는 메를로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이 적합하다. 조광제 선생님의 아주 친절한 해설이 있다. 조광제.
(2022).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 : <지각의 현상학>을 중심으로 . 2022년 한국실과교육연구학회 추계학술대회, 3-16. 이 다음에는 조광제. (2001). 메
를로-퐁티의 몸철학으로 본 현대인의 몸. 새한영어영문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새한영어영문학회 2001년도 겨울 워크샵, 88-103. 을 읽으면 좋고,
영어 학술서 읽기에 능숙하다면 국역본보다 영역본을 추천한다.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준 권구윤 선생님에 남몰래 감사인사를 남긴다.
2) 여경민이 말해 줬는데 정말 맞는 말 같다.
12
계기 : 사교적 학구열로서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욕구’
대부분 동질적 또래집단을 이루게 되는 의무교육 및 고등학교 기간과 달리, 대학은 전국구 모집으로
아마 어떤 이들에게는 생에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온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아마 무의식중에 많은 사람들은 양지하고 있을 테다. 이
무의식이 어느 정도 보편적이라는 가정하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는 곧 나와 다른 삶을
배우고 싶다는 학구열이기도 하다. “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라는 물음에 십중팔구 “궁금해서!”
라 간단히 답할 것 같다. 그 간단한 답의 뒤에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모르는 세상을 알고 싶다는,
학생으로서의 욕구. 이를 유념하기 위해 부러 ‘사교적 학구열’이라는 조어를 만들었다.
대학생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동시에,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갈구하는 불안
한 상태이다. 시대가 어떻든 20대면 원래 그렇고 나도 불안하다. 사교적 학구열이 좋은 방향으로 작동
하면 불안한 상태에서 수많은 의사소통을 통해 내린 결론으로 꾸역꾸역 스스로 생의 길을 개척해 간다.
예컨대 내가 운동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었지만 살다 보니 운동을 적어도 지금까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준 수많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과의 특정 마주침들이 내 생에
있었고/있기 때문이다. 운이 정말 좋았다. 그러나 지금 서강의 20대에게는 왠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는 문장에서의 ‘이렇게’를 보여준 사람들의 다양성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꼰대질을 멈추려고 해도, 막
상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너무 불안정해 보이면 뭐라도 너무 말을 걸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니까 양해
부탁한다. 또 아주 많은 실수를 거쳐도 괜찮다는 확신이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공대/자연과
학대의 경우 실험이나 프로젝트 때문에 정말 바쁘다고들 하고,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전공을 작심하고
온 경우가 아니면 CPA(이걸 씨파라고 부르는 줄 근래 알았다), 행정고시, 대기업, 로스쿨 이외 선택지
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살더라.
그러니 “괜찮다, 안 죽는다!”를 감각할 수 있는 곳, 노학연대의 장으로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감각이
나 곳이라는 단어를 택하는 이유는, 얕은 층위의 관념이나 낭만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못 박으려는
목적이다. 위 직업군에 포함되지 않아도 즐겁게 살 수 있는 선택지는 너무나 많다. 활동가로서의 정체
성을 반쯤 갖고도 자기 하고픈 노동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 많다. 요즘같이 연대할 곳은 넘쳐나지만 먹
고 살기 팍팍한 시기에 전업이 아니라 출장 활동가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다. 상기 직업군 이외 선택지
의 존재를 알고 택하는 것과, 모른 채로 몰리는 것은 같은 결과라도 천지 차이다. 참고로 나는 대학 입학
후 첫 소득분위 산정 때 2구간이 떴다. 그래서 계속 벌지 않으면 정말이지 내일 굶어야 했는데, 그 덕에
오히려 나의 어리숙한 때에 학생사회와의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 소득분위 산정이 벌써 9년 전이고 지
금 나는 다행히 괜찮게 산다. 그럼 이번 학기는 얼마 떴나 확인해 봤더니, 올랐다!
3구간으로… 부유하면서 불행한 인생도 많듯, 가난하면서 행복한 인생도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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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나의 가난을 스크린샷으로 증명하는 이유 또한, 내가 이만큼 소수자임을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
라 정말 내가 연대들과 그곳에서의 “특정 마주침(들)”으로 말미암아 이 소득분위에도 앞으로 살아갈 희
망을 얻었다는 당위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그러나 백날 “괜찮아, 안 죽어!”를 들어도 자기 몸으로 감각할 수 없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
다. 많은 시간을 쏟는 건 부담스럽고, 욕먹기는 두렵지만(당연하다) 어떻게든 이타적인 영향력을 끼치
는 공간으로써 학교를 사용하고 싶은 학생들이 참 많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듣는다는 아주 사
소한 행위에조차 당연히 일종의 책임감이 따르며 따라야 하는데, 하물며 학교를 실험실 삼아 재밌는 정
치적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한다면 더 큰 책임감이 따를 것이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게 곧 타자의 윤리적
부담감을 껴안는 것일 때, 동시에 그 부담감을 대신 지는 행위가 곧 나의 디지털데이터를 낱낱이 훑어
그들만 나의 정체성(의 파편)을 아는 상황에서 공격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할 때,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지는 행위는 마치 시간이 정해져 있으나 나만 터질 시간을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는
것과 같아진다. 그러나 바로 그 폭탄(대부분 가능성의 형태로만 존재한다)의 공포로 인해 많은 학생을,
그들을 변화의 계기들로 초대할 순간을 놓치고 있다. 갈등은 항상 새로운 탄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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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할 줄 안다고 강사인지 얼떨떨해 하면서 말이다. 왜 굳이 이 얘길 했더라. 어느 날 센터 팀장
님이 “강사님 저희 오늘 휴강해야 해요.” “왜요?” “OO시에서 체험홈 인건비 전액 삭감한대서요. 일 이미
다 했는데. 장애인과 팀장이랑 계속 얘기해 봤는데 돈 없으면 관두라네요. 시청 앞에서 시위해요. 쌤들
도 나오실래요? 저희 수업도 한 번 받아 보세요.” 하셨다. 내게 대부분의 연대는 ‘운 좋게 내가 할 수 있
어서’가 그 이유이고 그때도 마찬가지라, 강사를 뛰던 형과 함께 갔다. 그냥 시청 앞에 서 있다가, 근처
슈퍼에서 물 좀 사다가 조달했다. 뭐 대단한 쪽수도 아닌 우리를 막아버린 시청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공무원들과 대치하며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 이 현장에선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선생이 된 사람
들과 함께 채증 카메라에 찍혔다. 그 공무원들은 아마 사장과 OO시정연구원 영상제작에 대한 미팅을
할 때에는 시청 사무실에서 대면한 적도 있을 테다. 저들이 악한 것도 내가 선한 것도 아니고 구조가, 또
우리가 마침 처한 위치가 마침 이러해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구나, 싶었다. 한편 센터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장콜을 타고 등장, 대오를 정비하는 데에도 정신없는 와중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곳에 가만
히 서있었는데, 내 존재 자체가 연대가 됐다. 그냥 그 옆에 있으면 된다. 이건 글로 번역이 안 된다. 아
무 말 하지 않아도 아, 내가 저 사람에게 무언가 힘이 되고 있구나 알 수 있다. ‘남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다.’는 내겐 별것 아닌 행위가, 특정 시공간에서 타자에게는 별것이 아니지 않게 변모하는 순간으로서
의 특정 마주침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특정 마주침이 ‘아, 나는 저 사람의 생을 죽었다 깨어나도 완
전히 이해할 수 없겠구나.’라는 서두에 언급한 ‘불가해한 존재로서의 타자’로의 인식으로 이어진다. 나
는 왜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을까?
3) 서강대학교 정문 근처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떡볶이 노점상. 거구장 건물 앞에 있어서 소구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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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괴리는 어마어마하다. 오프라인에서도 각자의 생과 몸의 차이로 인해 그 의사
소통에서 떨어져 나가는 맥락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괴리의 생성이 수반되는데, 하물며 그 매체 환경과
구조 자체가 다른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는 어떻겠나. 이것이 최대한 많은 학생들과 특정 마주침(들)
을 가지려 노력해 보고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들도 기웃거려본 바 나의 결론이다. 이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로서 2023년 우리 학교 정문 앞 소구장이 없어질 뻔한 사건을 공유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학교라는 공간에 우리가 쉬이 인식하는 사람들은 학생,
교직원, 교수진이 있다. 노학연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다. 청소/시설노동자 등 말 그대로 공
간 자체의 유지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우리 학교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무리
고학번이라 하더라도 이들보다 훨씬 근속연수가 딸린다. 그럼 서강대학교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
의 입학과 졸업과 정년퇴임이 일어나는 장소들을 유지해 온 교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우린 모른다. 영영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은 안다. 저들은 우리의 선생이다. 노
년기의 육체노동은 으레 매스컴에서 납작한 이미지, 노인 빈곤이나 성실한 우리네 어르신 정도로 비
춰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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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불쑥 와서 알려주신 것에 가깝다. 한 달 여 지났을까, 운 좋
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 가입된 대학 사업장 청소/시설노동자 분회 간부들과 모일 일
이 있었다. 소속 학교 학생이 온 경우와 아닌 경우의 안색부터가 달라 한 것도 없이 뿌듯하기도 했다.
서울 시내 13개 대학 사업장에서 모인 간부들 중에는 노동조합이 없는 환경에서 조직을 일궈낸 분도
계셨다. 있는 조직 유지도 어려운데 어떻게 만든담.
무지의 지점을 앎에서 비롯하는 기쁨의 선순환 - 새로운 진로에 대한 구체적 상상력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면 좋겠다.’ 혹은 ‘아, 답이 없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지?’ 혹
은 ‘아, 시각의 문제였구나!’로 변모하게 되는 구심점 역할을 노학연대가 할 수 있다고 본다. 연대의
가치와 노동자라는 인식이 있는 노동조합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저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힘이 될 수
있는 존재인지라, 아무것도 모른 채 연락을 드려도 무조건 환대 받는다. 대학생이라는 위치를 사회
를 아주 조금 바꾸는데(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데에) 가장 쉽게 써먹
을 수 있다. 환대가 예정된 장소로 가면, 나의 생각이 왜 편견이었는지, 내가 말로만 연대를 외치면
서 모르는 줄도 몰랐던 지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번외 : 의식의 흐름
학교 근처에 또 새로운 대안교육 공간이 생겼고 배세진 선생님이 알튀세르의 ‘자본을 읽자’ 강독
을 하신다는데, 뭐 그게 학교 안에 먹히기나 하나? 공부해봤자 세상 하나 안 바뀌는 거 아닌가, 그렇
다고 매일 연대만 나간다 쳐도 그게 도움이 되나? 작은 학생 조직을 유지하는 데에도 품이 꽤 든다.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앞선 사람들의 고민을 확인하려고 하면 결국 이론을 들춰보게 된다. 그렇다
고 현재의 연대를 안 할 순 없지, 그럼 나는 왜 연대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대는 뭐지? 뭐 이런 막막한 문제의식들을 가지고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이어
진 호호체육관에서의 퍼실리테이터 경험을 마중물 삼아 노학연대에 대한 글을 쓰겠다 했더니 편집
회의에서 “왜 하필 대학에서 그것도 노학연대가 이어져야 하는가?”에 현재성 있는 답을 달라는 요청
을 받았다. 미친... 내가 그걸 알면 이러고 있겠냐?
따라서 이 글은 저 질문에 최대한 답을 내리고자 하는 시도이자, 또 다른 대안을 가진 사람이 있
다면 아무나 좀 알려 달라, 함께해 달라는 SOS이기도 하다. 여기에서의 답은 고정된 정답이 아니
라, 일종의 전략이다. 우리가 뭘 할 수 없는 것 같다면, 그렇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학교라는 장을 제
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게 너무 골치 아프다면, 함께 배구도 할 수 있
다. 호호체육관5에서!
번외의 번외 : 어쩌라고여?
노학연대 좋다 치자, 어디로 가면 함께해 볼 수 있을까? 학내 노학연대의 물꼬는 85호에 설명했
듯 사회과학대 청소노동자연대 ‘맑음’이 사라진 후, ‘노고지리’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교내 청소/시설
노동자와의 간담회 및 호호체육관 등을 진행한 바 있다. 끊길 뻔했던 서강대학교 내 노학연대의 끈
을 계속 이어가려 노력 중이니, 모집기간이 끝나더라도 냅다 연락을 해 보면 좋다. 의기제 기획단에
서는 농민과 노동자에 헌신했던 열사의 뜻을 이어 매년 5월 열사를 기리는 의기제를 지내고 광주기
행을 떠난다. 매년 똑같은 것만 할 순 없는 노릇이라, 어떤 방식의 의기제가 과연 유효한 정신계승
인가를 고민하며 매년 다른 재학생들이 꾸려나간다. 기획단 모집 기회를 놓쳤더라도 상관없이 일단
연락을 주어도 좋다.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보면 그만이다. 검은 알바트로스의 경우 서울대학
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학’과 함께 세종호텔 연대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학교 밖의 노학연대에 관
심이 있다면 ‘검은 알바트로스’의 문을 두드려 보아도 좋다.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는 일차적으로
는 교내 비건 학식 도입을 위해 세워졌으나, 운동으로서의 비거니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생태주의 등에 관련된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장을 열 수도 있다. 함께 구체적으로 착잡해지자. 책
임감을 조금씩 나눠 갖자.
5) ‘운동으로 운동하자’라는 기치 아래 문화연대와 서강대학교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에서 공동주최한 사업. 주 1회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
과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배구 수업을 수강했다. 2024년부터 연세대학교로 확대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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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교 안의 경우
서강대학교 의기제 기획단(518kimuiki@gmail.com, 교지서강 85호 참조)
서강대학교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instagram.com/nogojiri_sogang)
서강대학교 아나키즘 소모임 검은 알바트로스 (instagram.com/malangchism)
서강대학교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 (instagram.com/sogangvegan)
2) 학교 밖의 경우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 가족구성권연구소, 건강권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경북북부이주노동자센터,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교육공동체 나다, 교육공동체 벗, 교육노
동자현장실천, 권리찾기유니온, 기후위기기독인연대, 난민인권센터, 노동건강연대, 노동당, 노동
중심 사회대전환 전국모임, 노동해방 마중, 노동해방을위한좌파활동가 전국결집, 녹색당, 녹색정
치Lab 그레, 다른세계로길을내는활동가모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마창거제산재추
방운동연합, 문화연대, 민달팽이유니온,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반
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
운동연대, 빈곤사회연대,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성
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
노동사회네트워크,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윤보다
인간을,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연구소 ‘창’, 인권운동사랑방,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위한 정의
기억연대, 장애여성공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환, 정의당,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진
보 3.0, 진보네트워크센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책방토닥토닥, 청소년인권모임 내다, 청소년인
권운동연대 지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
크 걔네,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투명가방끈, 플랫폼C,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한국사이
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항꾸네 틈모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홈리스행동
(2024년 1월 11일 기준)6
참고문헌 및 출처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안천 옮김. (서울:리시올, 2020). (Originally published 2017)
전승민. (2023). 포르셰를 모는 레즈비언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게이에 관하여 : 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 자음과모음,(57), 305-321.
참고수업 및 스터디
서강대학교 2023년도 2학기 오준호 <Media Technology & Art>
서강대학교 2023년도 2학기 조효원 <독일 정치와 제도>
말과활아카데미 2023년도 동계 김내훈 <위선이 위악보다 나은 이유 :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으로 해명하기>
2023년도 동계 권구윤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스터디 : ‘혁명은 피할 수 있다’>
서강대학교 2023년도 동계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방중공부모임
6) “[공지] 2024 체제전환운동포럼 _ 우리의 대안을 조직하자”,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 조직위원회 https://www.gosystemchange.kr/product/
f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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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들의 학습권 현황
[목차]
멀쩡한 사람들
최근 20대의 심리장애 및 자살 비율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멀쩡하지 않은 구조들
구조는 이러한 심리장애 보유자들의 권리와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서강대학교 학칙을 통해 문제 되는 지점을 살펴본다.
스스로 감당한 몫
심리장애를 가진 4명의 인터뷰이의 학교생활을 전한다.
이들은 어떻게 도움을 요청했을까? 혹은 어째서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 지원 현황
현재 교내에서 받을 수 있는 심리장애 관련 지원 사항의 기록.
김지연
jiyean4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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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서강의 자랑인가?
오늘도 학교에 못 갔다. 어제는 아침 수업에 지각을 했다. 레포트를 쓰려면 논문을 읽어야 하는데 글
자가 뒤죽박죽 섞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말 첫 공황을 겪고 나는 처음으로 ‘낙오된’ 느
낌에 휩싸였다. 단단히 고장난 사람. 수업 시간에는 다른 학생의 작은 기침 소리에도 과호흡이 와서 몇
번이고 화장실에 가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학교는 태연하게 굴러갔다.
사이버캠퍼스의 출석란에 녹색 대신 빨간색, 주황색 박스가 채워지며.
입학 시즌이 되면 서강대학교 정문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린다. ‘그대 서강의 자랑이듯, 서강 그대
의 자랑이어라.’ 한국에서 성실함은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칭찬거리로 여겨져 왔으며, 이는 서강대학교
의 가치관과도 결이 같다. 성실. 당신에게 성실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떻게 성실할 수 있는가, 또는 어
째서 성실하지 못한가. 첫 문단의 상황을 타자의 시선에서 다시 읽어보자. 오늘도 학교에 안 나왔다. 지
각은 밥 먹듯이 한다. 지각한 주제에 수업 시간에는 자꾸 화장실에 가고, 부스럭대는 소리에 학생들은
방해받는다. 과제는 미루거나 안 한다. 불성실 그 자체.
해당 기사에서는 이렇게 불성실(하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에게 결여된 ‘성
실함’은 분명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이에 편입되지 못하는 학생들의 실태를 이제는 직면해
야 한다. 왜 이들은 불성실한 학생으로 낙인찍혔을까? 서강대학교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 그리
고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을까?
멀쩡한 사람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2017년~2021년)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료현황 분석 결과, 두 질환
모두 20대 환자가 여성 127.1%, 남성 86.8%로 가장 많이 증가했다. 또한 불안장애 세부 상병별 환자수
10순위를 분석한 결과, ‘상세불명의 불안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
안]’, ‘범불안장애’, ‘기타 명시된 불안장애’가 1~5순위를 유지하며 환자수가 많이 나타났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수많은 20대 청년들은 심리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추후 다시 한 번 서술하겠지만 이는 심리장애를 기타 다른 신체장애에 비해 개인적인 것, 그리고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 때문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경증의 심리장애를 넘어서 자살 또는 자해 시도로 응급실에 방문하는 20대 또한 크게 증가하는 추
세다. 10대, 20대 자살・자해 시도자는 수년간 50~70% 급증했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간관계가 단절되
고, 경기침체로 취업난이 심해진 탓으로 분석된다. 즉, 심리장애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분명히 연결되
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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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들의 고통을 일상에서 목격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심리장애를 가진 사람
들은 본인 또한 자신의 심리장애를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약물 치료, 심리상담 이외에 다른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쉽기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존재하는 각종 복지 및 혜
택을 신청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수면 아래에 어려움을 담아두고 멀쩡한 듯 살아가는
사람들은 갈수록 증가한다. 과연 구조는 이들의 요청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멀쩡하지 않은 구조들
심리장애는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사회구조와 분명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때문에 심리장애
에 대한 이해와 지원 역시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우울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인 변인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소득, 지식, 사회권력 등 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상
태와 관련된 일련의 요인들이 우울에 대한 보호요인 또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공
유됨에 따라, 의학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과학 영역에서도 우울구조에 내재된 사회구조적 메커니즘을 밝
히는 데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Link & Phelan, 1995; Link, Phelan & Tehranifar, 2010).
하지만 현재 서강대학교의 학칙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이해가 결여되
어 있다. 이에 몇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보겠다.
의사 소견상 등교가 불가능함이 명시되어 있고, 등교가 불가능한 날짜가 특정되어 있으면 인정.
정신건강의학과도 위의 조건 만족하면 유고결석 처리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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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신질환 학생의 휴학 (학칙 제 28조(직권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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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점등록 (학칙 시행세칙 제 23조(학점등록))
► 현재 학칙의 많은 부분은 ‘총장의 승인에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총장이 바뀜에 따라 학칙 세부 내용 또한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은 제한적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 학생은 해당 규정에서 배제된다.
1) 사회보장 급여의 신청에 관해서는 수급권자가 반드시 법에 따라 신청을 하여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수급권자의
신청 여부와 관계없이 직권으로 수급자격 여부를 조사한 후 급여를 제공하는 직권주의가 있다. 현재 서강대학교의 학칙은 직접 유고결석계, 의사 소견
서, 진단서 등을 제출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청주의적 방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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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감당한 몫
이렇듯 배제적인 학칙과 정보 부족 안에서 심리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조용히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수면 위로 꺼내고자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과 서담을 통해 ADHD,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의 심리장애를 가진 4명의 인터뷰이를 모집하였으며, 개
인 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을 사용하고 특정인으로 유추할 수 있는 맥락은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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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을 위한 인터뷰이 모집에 가장 먼저 연락을 한 A씨는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쉽게 이
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학우들을 대신해 인터뷰를 자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른바 ‘코로나 시
기’ 동안 심한 우울증2을 겪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2020년도에는 학교 규정의 변화
로 성적이 비교적 후하게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20년 2학기 A씨는 두 과목에서 fa를, 그리고 나머지
과목들 모두에서 fa 경고를 받았다. 우울과 공황3으로 인해 A씨의 생활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수
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된 후 매일 자취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씻고 밥을 먹는 기본적인 생활도 불가능
했다. 심리장애4로 인한 어려움은 대면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으로 전
환되기 전, A씨에게 가장 버거웠던 일은 수많은 학생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대형 강의였다. 공황발작5
으로 화장실과 강의실을 오가던 어느날, 교수는 A씨를 향해 ‘뺀질거린다’고 비난했다. 물론 A씨를 버티
게 한 힘도 존재했다. A씨는 우울증을 앓던 당시 학내 언론사에서 일하며 그나마 일상을 영위할 수 있
었다.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힘들었던 시기를 조금이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시기를 회상하며 A씨는 당
시 활동하던 언론사를 향한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드러냈다. A씨는 정신질환을 향한 인식을 바꾸기 위
해서는 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우울과 공황으로 인해 겪은 학업에서 어려
움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충분히 학교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유고결석 기준이 완화되고, 의사 소견서만으로도 결석이 인정되는 등의 학사 규정과 더불어,
필기지원 등의 학습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A씨는 밝혔다.
2) 주요우울장애는 최소한 2주 동안, 거의 날마다, 하루의 대부분 동안 매우 슬픈 감정(혹은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버림)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3)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즉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장애.
4) 인지, 정서 조절, 행동 등에서 임상적으로 심각한 동요의 특징을 갖는 증상들의 집합.
5)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 곧 죽지 않을까 하는 강렬한 불안.
6) 흔히 ADHD에 동반되는 질환으로는 적대적 반항장애, 품행장애 및 물질관련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 틱장애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학습장애, 언
어장애, 지적장애, 자폐범주장애, 양극성 정동장애, 수면장애, 유뇨증, 성격장애 등이 많이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7) 밤에 잠들기 어려워 불면증을 호소하거나 늦게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워 늦게 일어나거나 일찍 일어나더라도 주간 졸음과 사회적 활동 저
하를 호소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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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은 이력이 있는 C씨는 무기력함이 심해져 강의 출석 및 과제를 수행하
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꼈다. C씨에게는 낮은 성적보다 FA의 문제가 더 컸다. 학사 경고에 대한 생각
에 한 번 매몰되고 나면 ‘학교나 성적이 어떻게 되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
겠는가?’ 등의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학교생활을 할 의지 자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모든 일을 스스
로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FA 처리와 학점 등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C씨는 아직도 정신
건강의학과에 가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고, 그것을 수면위로 꺼내기를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학습 지원
을 요청할 생각을 못 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적경고를 받아 사유란에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적고 학과행정실에 제출했을 때 C씨는 굉장히 수치스럽고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으나, 어딘가에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본인과 다른 학생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안내 게시글, 정보
글 등이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말한 C씨는, 이러한 정보가 후에 학생들에게 심리장
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를 얻기에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C씨
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글이 나처럼 동굴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그 자체가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미 없는 삶은 없고 필요 없는 인생은 없다. 위의 질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
졌고 남들과 비교하며 살지 않으려고 한다. 대기업, 높은 학점, 성공한 인생이 아니더라도 내가 내 삶
에 기쁨을 느끼는 것,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 그것에서 만족감
을 느끼며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각자의 행복을 찾아서 사람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8) 타 신체질환과 달리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병명을 진단서에 기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심리장애를 진단하기까지 오랜 관찰이 필요하
며, 같은 증상이 여러 심리장애에서 나타나기에 하나의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9) 흔히 대학병원이라 불리는 상급병원은 외래진료를 위해서 3,4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액 또한 일반병원에 비해 높게 측정되기 때문
에 상급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후 질병휴학을 신청하기에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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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많다. 나는 오랫동안 나의 증상을 핑계라고 생각해 왔다. 게으르고 까탈스러운 나를 당연히 나 혼
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을 기억하자. 우리는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도움
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이는 등록금을 지불했기 때문도, 장래에 사회에 도움이 될 직업을 가질 대학의
학생이어서도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넓은 집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우리를 말할 자유가 있다.
비행기에서 창밖을 보면 마치 하얀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 위를 항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뭉게뭉
게 피어있는 빙하 아래, 화창한 바다 아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땅에서 울려 퍼지던 찡그린 얼굴과 웃음
소리는 아득해지고 마치 바둑판처럼, 혹은 초등학교 시절 곧잘 펼쳐보던 세계지도처럼 사람과 사물과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곳을 우리는 세상이라 부른다.
이 글이 단순히 심리장애에 대한 지원을 요하는 글로만 읽히지는 않길 바란다. 심리장애는 하나의
예시일 뿐,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안에서 교류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종
종 함께 바다 속을 헤엄치자. 서로를 발견하고 함께 바다를 누비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위해 늘 최선의 지원을 제공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와 학생생활상담연구소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현재 학내에서 심리장애 관련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서강대학교 심리장애 학생 지원 현황
[장애학생지원센터] (베르크만스 우정원(BW관) 205호/02-705-7800/dasoni@sogang.ac.kr)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관련 교수님과 부서장님들로 구성된(2024년도에는 학생 및 외부 전문가
참여 예정) 운영위원회가 있다. 미등록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에 대해서는 상담을 통해, 운영위원
회 안건으로 올려서, 학생이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현재 ADHD 장애를 가진 외국인 학생
1명, 공황장애 등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는 외국인 학생 1명을 지원하고 있다. 본인이 원할 경우, 교
수님께 학생에 대한 정보와 지원에 대한 총장님 명의의 서한을 보내 드려서, 출석 및 학습에 대한 배
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중간 및 기말 시험에 대해 별도의 공간과 시험시간 1.5배
연장을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본인이 원할 경우, 학교심리상담연구소에 우선적으로 상담을 받
을 수 있도록 연계하고 있다.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정신장애는 신체장애나 발달장애(지적, 자폐성 장애)와는 구별되어
지원해야 하는 영역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정신과적인 상담이나 의뢰를 할 수 있는 지역 병원의
정신과 의사나, 전문가들이 연계되어 학생들과의 전문적인 상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
살예방 및 학습지원 차원에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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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상담
상담자와 1:1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현재 당면한 어려움이나 고민에 대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활동이다. 일상생활의 어려움부터 성격, 대인관계, 학업, 진로 등 자유로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
다. 상담 횟수는 기본 15회를 기준으로 상담자와 조율할 수 있으며, 상담내용과 사적 정보는 비밀로 유
지된다.
-심리검사
표준화된 심리검사를 통해 개인의 성격, 흥미, 적성, 잠재력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심리검사를 실
시한 후, 결과에 대한 검사해석을 받게 된다(1회, 50분). 검사해석을 통해 자신의 이해 수준을 높여
보다 적응적이며 발전적인 대학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집단상담
두 명의 리더와 8~10명 내외의 비슷한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하는 자리이다. 진솔한 대화 속
에서 자신과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서로의 성장을 돕는 활동이다. 집단상담은 주 1회, 2
시간으로 약 8주간 진행되며, 8주 동안 모두 참석이 가능해야 한다.
-위기상담
위기(crisis)에 처해 심각한 불안이나 자해, 자살에 대한 충동이 생길 때 위기에 대한 전문적인 도
움을 받는 과정이다. 서강대학교 학생생활상담연구소에서는 위와 같은 위기상황으로 인한 극심한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 상담소에서 상담전문가에게 신청 당일 단회기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연계병원
◎ 24시간 상담가능 기관
◌ 서울 정신건강 상담전화(Seoul Suicide Prevention Center)
24시간 Hot-Line : 1577-0199 / 온라인 : http://www.suicid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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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전화
24시간 Hot-Line : 1588-9191 / 온라인 : https://www.lifeline.or.kr/
◌ 보건복지부 Call Center
24시간 Hot-Line : (국번없이) 129
◎ 응급입원 가능 기관
◌ 서울특별시 은평병원
02-300-8114 / 온라인: http://ephosp.seoul.go.kr/
◌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1599-1004 / 온라인: https://sev.severance.healthcare
◌ 고양시 화정병원
031-979-7572 / 온라인: http://www.hwajung-hp.co.kr
◎ 서강대학교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 연세멘토정신건강의학과의원
평일 9:30-18:00 / 점심시간 12:30-13:30
02-702-2052 / www.mhealth.co.kr
◎ 외국인 상담 가능기관 (Foreigners Counseling Available)
◌ Seoul Counseling Center : https://seoulcounseling.com/
◌ The MindCare Institute of Korea : http://www.mindcarecenter.co.kr/
◌ Ansan Multicultural Family Service Center : http://mfscen.org 10
<임상심리학>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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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감감 × 2
: 22학번 동갑내기 편집위원 6명의 감정
여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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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감 : 예민하고 소심하고 불안한 인간의 공동체 생활에 대하여
김지연(jiyean4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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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감 : 멍청한 놈들은 모두 죽이고 싶었지만 자살은 죄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김나영(nykim327@sogang.ac.kr)
“으붸뷉?”. 단어도 문장도 아닌 것이,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며 지성이 휘발되는 것 같다. 직
접 발음해 보시라. ‘붸-’에서 입을 벌리고 ‘뷉’을 발음하기 위해 다시 입술을 모았다가 빠르게 닫아버
리는 움직임이 옹졸하고 한심하기에 그지없다. 입술 뻐끔대며 따라하는 자기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면 그 정도는 한층 심해진다. 누군가 멍청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라면 난 주저 않고 그 자리에서 “으
붸뷉?”이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문장을 2023년 내내 입에 달고 살았다(사실 지금도
그렇다).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일이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다
가 내용을 잊어버려서 등등…. 다양한 사유로 저 얄궂은 세 글자는 나의 애착 문장이 되었다.
아무튼, ‘멍청감’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멍청’도 들어본 적 있고, ‘-감’도 들어본 적 있을
텐데 멍청감은 어딘가 이상하고 어색해 보이지 않는가? 당연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내가 만들었다.
사전적 정의로 글을 여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데, 애석하게도 억지로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사전 따위 없어도 대부분 이 멍청감이 어떤 감정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으리라 나
태한 기대를 해본다. 대략 이쯤이면 찾아오는 ‘멍청탈트 붕괴’를 붕괴시키기 위해, 멍청감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편의를 위해 멍청하다고 지칭했지만, 이는 사실 무비판적이고 생각이 짧으
며, 그래서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채인 자신을 실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내가 느낀 멍청감
을 나누며 나보다 똑똑할 누군가에겐 위안을, 나와 비슷할 누군가에겐 공감을 선사하고자 한다.
요즘 나의 SNS 이용 행태를 보며 부쩍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다. 뉴스 기사 본문은 안 읽고 자극적
인 제목만 대충 읽고 넘어간다던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서명운동이나 국민 청원에 동의하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의견에 대해 깊게 고찰하지 않고 쉽게 동의하며 빨간 하트를 남발한다. 아주 귀
얇기가 황희 정승이 따로 없다. 무비판적 소화는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퇴화시킨다. 생각하는 힘
이 없으니, 조금만 복잡해져도 금방 지치고, 지치면 피곤하지 않은 쪽으로 관심을 돌려버리거나(도파민
중독의 삶) 쉽게 누군가를 탓하게 된다(요즘은 주로 용산의 그분). 따라서 책을 읽거나 관련된 강의를 찾아 듣는
것에서 도피한 채, SNS에서 본 남의 생각을 내 생각인 양 말한다. 결국 공부라는 투입이 없으니 온전
히 내 것이라고 부를만한 양질의 산출도 없고, 출처를 모를 당위에 잠식된 피상적인 발언만이 일상
을 유영한다. 생각을 포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적극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지하는 것
만으로 자신이 창피해진다. 사실 우매함의 악마가 꽹과리 신명 나게 치면서 등장하는 하이라이트는
이다음이다. 바로 그런 주제에 말이 많다는 것. 나의 오만함과 전시 욕구는 쥐꼬리만 한 지식을 자랑
하기 위해 내 입을 쉽게 열고, 어렵게 닫는다. 항상 급하게 입 막고 돌아서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멍청감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느
끼는 감정이다. 진짜 멍청한 사람은 본인이 멍청한지도 모른다는 말이 위안이 되긴 하지만 나 역시
이대로 괜찮을 리가 없다. 멍청감이라는 감정에 묶여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태를 어찌 탈피할 수 있
을까? 멍청감을 겸허히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나만 이런가? 나의 어떤 점부터 고쳐야 하지? 왜 이
걸로 스트레스 받아야 하지? 질문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와중에, ‘멍청한 나’라는 자책에서 탈피하지
못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고뇌할 체력은 점점 떨어지고, 태초의 멍청함으로 회귀하게 된다.
다시, “으붸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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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 : 무력이 무능이 되지 않길 바라며
허윤(dorahur931@gmail.com)
이제는 트위터가 아닌 ’엑스‘라고 부르는 어플에 접속하면 다양한 뉴스와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귀여운 고양이, 강아지 사진이 피드에 뜨면 하트 모양 버튼을 누르기도 하고, 맛집 정보가 있으면 캡
처를 해두거나, 인생에 관한 공감되는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스크롤을 하다가
멈칫하게 된 게시물이 있었다. ‘회사 앞 도로에서 분신을 시도했습니다.’ 임금체불 해결을 요구하던
1인 시위자 분이 분신을 시도했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50년 전 전태일 분
신 사건의 자료화면이 아니라, 2023년의 뉴스라는 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이러한 뉴스들이 거의 매
일 쏟아지는 요즘, 나는 분노에 익숙해져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사소한(?) 일들
로 분노하곤 했다면, 이제는 정말 큰 이슈가 아닌 이상 크게 동요하지 않고 ’또 그랬구나. 유감이네‘
라며 넘길 때도 적지 않다. 그냥 넘겨버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면 흠칫 하고 다시 돌아가 무슨 일이
생긴건지 찬찬히 다시 읽어본 적도 몇 번 있다.
이렇듯 내 분노의 끓는점이 높아진 것에 대해 성찰을 해보자면, 나는 무력감의 결과라고 생각한
다. 기후위기 관련 뉴스를 보거나, 정치인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들을 보면 화가 먼저 난다. 하
지만 이내 곧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내가 현상을 바르
게 고치기 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더라도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까? 해
결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인식이 있고, 당사자들에 공감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
라는 사고를 학습한 듯싶다. 무력감의 학습이 무서운 점은 그것이 무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내
가 해봤자 뭐가 달라져‘ 와 같은 생각들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음을 반복함으로써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되새겨야 할 점은 그럼에도 계속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환경이 나를 ‘안하는’ 에
서 ‘못하는’으로 바꾸고 있을 때도 어딘가에 나가서 피켓을 들고, 현장에 나가서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혜화역에도, 방 안에서도, 저 멀리 중동에서도.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치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은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는 방
증이기에 잠시 쉼이 필요하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결국 인류는 더 좋은 것을 향해 점진적으
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다시 한 번 무력감에 맞서는 수밖에 없다. 여러 대
상에 대한 무력감은 실체가 명확하지 않지만 연대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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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감 : 주 5일 노동 옵션, 가격 제시받음, 사용감 있음
장현지(sephia1013@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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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감
#조금 슬픔 주의#
김유진(yjkim3631@naver.com)
안녕하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감감감×2 기획에 조금은 무거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
다. 하지만 도무지 이 말을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 같아 저의 슬픈 고백을 읽으실 여러분에게
먼저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건넵니다.
작년 2023년은 제게 참 버거운 해였습니다. 그해에는 10년간 키웠던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목소리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 글로 적어봅니다. 제가 아는 동생이 죽었습니다.
수능 일주일 전, 보라(가명)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학에
다니고 있던 저는 굉장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구요.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많이 친하
지는 않았던 그 친구의 소식에 아직도 마음이 쿡쿡 찔립니다. 매년 수능 날이 되면 쏟아지는 수험
생 자살 기사 중 하나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 끔찍했습니다. 유서 하나 없이 죽음
을 맞이한 그 심경이 어땠을까, 모르는 만큼 생각도 커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결국 혼자 있는 시간
에 그 친구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하면서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만큼 숨 막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방관자라는 생각에 이끌려
뒤늦게 그 죽음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인사를 나눴었고, 저의 상실은 죄책감
과 함께 왔으니까요. 같은 해에 입시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친구를 죽인 입시 제도에 성공해 입학
했다는 점이 뭐랄까요, 공범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에 이번 교지엔 제 팔자에 없는
(대학에 대한) 학술적인 글을 작성했습니다. 대학이 뭐길래, 그런 고통을 겪었을 보라를 조금 늦게
나마 이해해 보려는 제 속죄이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 몸보다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상실감을 열심히 해체
해 보아도 단순히 슬픔이나 죄책감, 불안으로 환원되지 않는 듯합니다.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많은 논
문과 책을 읽었지만, 죽음이라는 어려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참 막막한 감정입니다. 되
돌릴 수 없는 무(無)를 목격한다는 점에서 참 허무하고 어려운 감정입니다. 다들 그렇게 메꿔지지
않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요.
죽음이 흔한 세상입니다. 길을 가다 압사당하기도, 배를 타다 익사하기도, 집을 뺏겨 죽기도 합니
다. 이렇게 모두가 죽고 죽는 세상에서 상실에 대한 글자만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까 두렵긴 하지만, 혼자 슬퍼할 일 또한 아니라는 생
각이 들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이라, 교지의 조그마한 지면에
보라의 이야기를 싣는 것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소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오래 기억하는 일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타인의 죽음을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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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경감 : 사랑하는 강아지와 친구들을 위한 건배
주보배 (bobaeju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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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방을 돌려달라 :
총학생회 ‘등대’의 엠마오관 B121호 처분에 대한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의 입장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Q
(외부투고, sg.quee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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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가을, 서강퀴어자치연대 춤추는 Q(이하 ‘춤큐’)의 동아리방으로 사용 중이었던 엠마
오관 B121호가 비워졌다는 제보가 있었다. 춤큐 측에서 확인한 결과 동아리방은 모두 비워져 있었
으며, 비밀번호가 초기화된 상태였다.
엠마오관 B121호는 학생회 특별기구가 이용 가능하도록 지정된 두 개의 호실 중 하나이다. 이전
총학생회의 허가 하에 춤큐가 동아리방으로 이용 중이었다. 춤큐는 성소수자 당사자의 아웃팅을 우
려해1 동아리 등록을 하는 대신 성소수자협의회2를 결성하였다. 아웃팅을 방지하기 위해 춤큐 이용
공간임을 호실 입구에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공간은 춤큐가 여러 총학생회와 비대위를 거치
며 꾸준히 이용하고 있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었다. 문제 상황을 인지
한 후 춤큐 측에서는 공간 처분 관련 대응을 시도하였다. 아카이빙을 위해 이를 공개하고자 한다.
다음은 23학년도 총학생회 ‘등대’와 주고받은 이메일의 전문이다.
1) 동아리 등록을 위해서는 회원의 개인 정보가 담긴 명단을 제출해야 한다. 이는 아웃팅의 우려가 있으므로 성소수자 단체가 실행하기 어렵다.
2)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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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따라서 해당 공간의 사용이 크게 활성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해당 공간을 비워 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 사전에 제기되고, 학생들의 개인 물품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충분히 춤추는 Q에
서도 납득이 가능한 제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 총학생회 측에서는 학생들이 사
용하던 공간을 어떠한 논의나 고지도 없이 무단침입하였다는 것에 매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
습니다. 심지어 개인 물품을 회수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모두 폐기가 되었다는 점이 사실이라
면, 이 부분은 춤추는 Q의 활동 여부를 떠나 학내 학생들의 물건을 분실/폐기한 것이므로 학생
개인 측에서도 강경 대응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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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공간을 사용하게 된 이후에 총학생회가 바뀔 때마다, 또는 정기적인 보고 없이 사용하여
결론적으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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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되는데, 그렇다면 더욱 해당 호실에 공지문 등의 안내 조치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진행되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안내 조치가 없었던 것은, 비어 있는 방으로 ‘알고 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그대로 수용
해서 일어난 일인 듯합니다. 사용 중인 공간에 대해 처리하기 위해서는 1) 보다 적극적인 확인
절차와 2) 공간 사용자가 해당 공간에 대한 처리 계획을 인지할 수 있는 조치(안내문 부착 등)가
있어야 합니다. 추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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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공간 이용 주체가 춤큐임이 특정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를 근거로 춤큐에 연락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춤큐 공식 연락처를 통해 온 ‘등대’의 안내는 한 건도 없
었습니다. 물건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교내 성소수자 단체를 연상하지 못한 점은 감수성의 부
족이며, 무관심이기도 합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인 만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다 면밀한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소수자는 다양한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춤큐는 단체 특성상 안전하게
활동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해당 공간의 이용이 불가해지고 보
존하던 자료가 소실된 것은 교내 성소수자와 앨라이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학내 성소
수자와 앨라이가 안전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당 공간을 돌려받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춤큐는 엠마오관 B121호 이용을 요구합니다.
Email: sg.queer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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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투고를 받은 후,
오래 전 춤큐를 떠난 이의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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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내 ‘학생 자치기구 속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모습’이라는 세션이 있다. 이
전 대학의 모습이 궁금한 20학번대 성소수자 학생들은 제16회 성소수자 인권포럼 자료집을 검색해
읽어보길 바란다. 못 찾을 시 무지개행동 홈페이지 하단 연락처로 연락하면 된다. 대학・청년성소수
자모임연대 QUV 를 검색해도 많은 사료들이 나온다. 다시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키는 데에 큰 도움
이 될 것이다. 당시의 학생활동가들은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었다. 그들은 연구모임(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https://www.dawoom-t4c.org/)을 꾸리거나, 소수 정당 내 성소수자위원
회를 꾸리거나,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정책 연구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앞
서 길을 내고 있다.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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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조직 인수인계 : 망해가는 학내조직 살리기
여경민
ykm5819@gmail.com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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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교지의 상황
2022년 교지는 정말 조금만 더 심각했으면 폐간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2020년 이전 교지에 고학
번이 너무 많았던 바람에 저학번 한 명 빼고 모두 졸업하거나 나가버렸다. 교지에 혼자 남은 저학번
이 편집장을 맡으며 사람을 모았으나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만남이 불가능했다. 가장 큰 문제는 모
든 일이 저학번 편집장 한 명에게 몰린 것이었다. 교지 전체 인원은 8명 정도였으나 행정업무, 회의
진행, 중앙운영위원회1 참석 등 일을 편집장이 혼자 다 했다. 사람이 많은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후술하겠지만,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일을 시키느니 내가
하는 게 더 편하다. 내가 2차 방정식 문제를 푸는 건 간단하지만 중학교 1학년 아가에게 인수분해와
근의 공식을 가르쳐서 문제를 풀게 만드는 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지만 반드시 일을 시켜
야 한다. 이건 임원에게도 조직 전체에도 아주 중요하다. 아쉽게도 저학번이 이걸 할 수 있을 만한 배
포와 전략을 가질 가능성은 낮고, 이때 편집장을 맡아준 친구는 본인이 혼자 꾸역꾸역 다 하면서 교
지를 지켜주었다.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어찌 됐든 이때 편집장 외 편집위원들은 교지를 열심히
안 했고 유령회원도 많았다.
교지를 살리기 위해 한울과 경민이 한 것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서 설명할 것이다. 사람들과 대
화하기, 체계 만들기, 타 단위 협력하기, 구성원에게 조직의 우선순위 올리기.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아직 길러지지 않은 독자를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에
대해 서술할 것이다. 각각의 목차는 독립적이므로 시간이 없다면 이 중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된다.
1) 총학생회장과 단과대 및 풍연, 동연, 편협 회장들이 참석하는 회의. 주 1회 열리고 5개 언론사 대학부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참관, 속기록을 남겨 언
론사협의체 내에서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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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사람들과 대화하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굳이 쓴 이유는,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제
목의 ‘대화하기’는 일상적인 대화보다도 ‘저 사람은 왜 ~하지?’라는 물음까지 서로 토까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대화를 뜻한다. 그런 대화는 공격이 아니라 더 나아지기 위한 비판,
모르는 내용을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피상적인 ‘욕 안 하기’, ‘서로 존대어 쓰기’ 같은 일만 하면, 협업이 아니라 분업이 되기 쉽다. 강제로
만들어내는 피드백은 때론 말꼬리 잡기가 되기도 말이다. 예컨대 나의 경우, ‘왜 저렇게 돌려서 이
야기하지?’라고 생각하며 불편해했던 친구가 알고 보니 충청도 토박이였고, 그 친구는 나를 ‘왜 저
렇게 배려 없이 직설적으로 얘기하지?’라고 생각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한층 글 피드백 시간에 상
호 이해가 수월해졌다. 친구 둘이 만나도 이런 대화는 힘든데, 열 명 남짓 모이는 모임에서는 더더
욱 어렵다. 당연히 시간도 품도 많이 들지만 애초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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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화가 첫 번째냐면, 행정업무가 마비되는 이유는 보통 대화 결여이기 때문이다. 대학 안팎
에서 거쳐 온 조직들의 와해 마지노선은 행정업무의 마비였다. ‘너무 힘들고 다 관두고 싶다’를 어
떻게든 ‘OO일까지 OO 문서를 OO에게 대면 제출해야 한다. 나는 그때 OO한 급한 사정이 생겨 갈
수 없는데 혹시 대신해 줄 사람이 있나? 문서 작성이 어렵다면 OO에 O시까지 문서를 출력해 올려
두겠다.’ 정도로 풀어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요청을 했을 때 들어줄 사람이 응답할 사람이 있
다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그런 요청이 가능한 곳은 보통 평소의 대화에서 비롯된 상호 믿음이 존
재한다. 생계가 걸린 일과 교우관계 그사이 애매한 지점에 있는 대학 조직의 경우, 행정업무 마비
전에 담당 학생이 이걸 누구에게 어떻게 도와달라 해야 할지 모르거나, 아니면 네 탓이니 내 탓이
니 하다가 누구 하나 잠수타고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위에 쓴 문단은 그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
이다.
2.2. 체계 만들기
조직에는 반드시 체계가 필요하다. 첫 번째로는 일이 임원진에게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고,
두 번째로는 구성원이 조직에 책임감과 자기효능감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 이유가 의아
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체계는 일을 나누는 규칙이다.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지정
해놓은 것이면서 조직이 구성원에게 가하는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체계가 있을 때 구성원은
임원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할 일을 알 수 있고, 최소한 이정도 일
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이 조직에서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에 신입부원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알아서 찾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에게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 동아리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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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임원진끼리 번갈아 하기로 정한 건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눈치껏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사
실 임원진끼리 대체가능하기 위해서는 임원진의 역량이 어느정도는 비슷해야 한다. 처음부터 이
게 된 것은 아니었다. 22년에는 한울과 경민의 능력과 경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다. 한울
은 휴학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복학했고 경민은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못 가다가 22년 2
학기가 첫 대면 학기였다. 22년 2학기는 한울이 사실상 임원 역할을 혼자 하고 경민은 옆에서 조금
거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한울이 혼자 일을 다 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만 하는 것에 가오가 상한 경
민이 최대한 한울의 일하는 방식을 관찰하고 따라해서 23년에는 나름대로 경민도 대가리의 역할
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이와 함께 한울이 술 처먹고 회의에 불참하는 빈도가 늘었다) 어떻게 배
우는지를 좀 더 구체화해 보자면,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한울이라면 이때 어떻게 할까?
를 떠올려보고 한울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학번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와 술자리를 가
질 때 어느 정도로 격의 없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말로 오디오를 채워야 할지 고민될 때 김한울에
빙의해서 따라하는 것이다. 그렇게 상황을 모면하다 보면 나만의 방식이 생기고 굳이 한울을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못하는 자신을 적당히 못 견디는 것이다. 못하
는 자신을 너무 잘 견디면 잘하는 사람이 계속 일을 혼자 다 하게 되고, 못하는 자신을 너무 못 견
디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기도 전에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건 학내조직이
아니어도 모든 성장에 있어서 중요하다. 이때 배운 ‘못하는 나를 견디기’가 후에 공부와 다른 활동
에서도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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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타 단위 협력하기
사람이 아주 적다면 마찬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단위와 함께 협력해 더 의견 교류가 활발한 장
을 열 수 있다. 일단 임원이 여러 군데 계속 기웃대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김한울의 경우 독점 공
간이 없어 조직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대~충 사회적 의제에 민감한 단위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
다 찾으면 교지실로 꼬셔와서 같이 책 읽는 게 취미였다. 딱 말해서 눈이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
회 의제에 목소리 내는 단위 하나하나 얼마나 귀한데 공간 없어서 사라지는 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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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직의 구조를 탄탄히 하는 것 외에, 구성원이 조직에 대한 애정을 느껴서 조직을 중요
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앞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기’를 참고하길 바란다.
대화하는 것 외에 임원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동아리방에 상주하며 구성원을 일단 많이 보는
것이다. 이때 전제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아리방이 없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우나
일대일로 만나는 수밖에 없다. 이것도 녹록지 않으므로 웬만하면 정동아리 신청을 해서 방을 얻는
것을 추천한다. 임원진이 어떻게든 시간을 내야 한다. 한울은 편집위원들이 교지실에 자주 찾아
와서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커다란 냉장고를 당근에서 18만원에 들여왔다. 그리고 임원진이 사
비로 씨리얼, 두유, 떡, 과자, 컵라면 등을 교지실에 두었다.(임원진이 돈이 없으면 어떻게든 선배
들 돈을 뜯어내야 한다. 선배들은 후배들이 찾으면 기쁜 마음으로 돈을 준다.) 그리고 공통의 학문
적 관심사를 찾아 수업을 같이 듣는 것도 추천한다. 22년 2학기에 ‘여성학고전강독’을 들은 8명의
수강생 중 교지 구성원이 4명이었다. 그래서 이때의 루틴은 2교시에 여성학 수업을 듣고 교지실로
가서 다 같이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생활공동체에 가까웠다. 고맙게도 편집위원 난희는 구운계란
을 한 판 사다 놓았고 포도마을에서 온 이레는 부모님이 농사 지으신 샤인머스켓을 교지실 냉장고
에 넣어뒀으며 지연은 동네 비건 빵집을 털어왔다. 이때 놀기도 많이 놀았다. 이레의 쌉소리 듣기,
생일파티, 술 (많이 말고 자주) 마시기 등등 임원진이 즐길 수 있는 활동들을 하며 놀면 된다. 놀면
서 구성원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을 싫어하는 이는 없고, 말이 없
어 보여도 사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길 원한다. 이 공간에
서는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모두가 동의하지 않아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정
도의 인정은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상을 주면 점점 느슨한 연대가 이어주는 공동체가 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교수학습센터 스터디그룹
3~6명의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이 스터디그룹을 꾸려 신청하면 활동지원금 5만원도 받을 수 있다.
소모임 만들기
정동아리 아니어도 소모임을 만들어서 홍보할 수 있다. 홍보 포스터 만들어서 우정원 2층 학생지원
팀에서 게시물 스티커 발급받아서 포스터를 교내 게시판 곳곳에 붙일 수 있다. 발급이 안 되면 그
냥 냅다 붙이고서 “몇 월 며칠까지 자발적으로 수거하겠다”는 단서조항을 붙이면 근로학생에게 민
폐가 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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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거리제 부스
매 학기 초에 동아리 연합회에서 동아리거리제를 한다. 정동아리가 아니더라도 부스를 신청하여
열 수 있다. 비거니즘 소모임 서리태는 비건 관련 퀴즈를 맞히면 비건 간식과 대나무 칫솔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23년 1학기에 노교지리태(노고지리+교지+서리태)는 인권김밥천국 부스를 열었다.
연사 초청 및 강연 듣기
원하는 연사를 학교에 직접 초청하여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어떻게 연락할지 모르겠으면 메일로 냅
다 “서강대 학생인데요, 선생님의 강연이 듣고 싶습니다!” 하면 따스히 맞아주실 것이다. 단가를 모
르겠으면 “정말 몰라서 여쭙는데 강연료 어느 정도 드려야 하나요?”하고 물어보면 된다. 패기있게 “
무료 강연 가능?” 하고 물어볼 수도 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정 돈이 없으면
이렇게 물어봐도 된다. 대학생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게 가능하다. 서강대 인권실천소모임 노고지리
에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를 J관에 초청하여 다큐멘터리 <출근길, 지하철 탑니
다>의 GV를 열었다.
강의실 대여
동아리방이 없을 때 강의실을 빌려서 영화 모임, 스터디 등을 하는 게 가능하다.
SAINT > 시설 > 시설물 예약 > 신청 또는 대여 원하는 건물 담당 전공 행정실에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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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집은 인권이다
빠순이가 되~
- 젊은 여성 팬은 케이팝 내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 -
안녕 나는 바이
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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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과 함께해야 할까? :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 인터뷰
여경민
ykm5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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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시사기획 창에서 제작한 ‘쪽방촌 계급사회’ 다큐멘터리를 봤다. 이 글의 자료조사를 하던 중
에 보았지만 계획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 어떤 ‘마주침’에 가까웠다. 자본주의와 탈정치에 대한 이
야기를 해보고 싶었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를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반빈곤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튜브에 쪽방촌을 검색해서 조회수가 높은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의 첫 장면에서 건
물과 건물 사이의 비좁은 틈에 난 작은 창문으로 노인이 담배를 폈다. 창으로 햇빛이 거의 들지 않
는지 창틀에는 곰팡이 같은 까만 얼룩이 가득했다. 뒤이어 노인이 사는 한 평 정도 돼 보이는 방과
방에 있는 바퀴벌레, 방치된 음식물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었다. 동자동 쪽방촌의 집주인, 중간 관
리자, 입주민 사이의 위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는 과할 만큼 보는 이의 불쾌감과 동정심을 자극하기
로 작정한 것 같았다.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는 분노와 슬픔만이 존재하는 듯했고 유일한 희망은 주
민들의 해결사를 자처하는 마을 목사인 것 같았다. 영상을 보고 나서 부끄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
다. 내가 강 건너 멀지 않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중산층의 삶밖에 모르고서 책으로만 자본주의를
읽었던 것이, 그런 채로 졸업이 다가온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밖은 영하 10도였다.
1) ‘빈곤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믿음으로 투쟁하는 단체. 빈곤사회연대는 철거민, 노점상, 홈리스, 빈민 대중
들이 함께 모여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조 자체에 저항하는 연대체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개정운동이나 주거권 투쟁 등 빈민들에 대한 차별과 권리 침해
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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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면서 내가 한 운동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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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요리를 해보고 내가 요리를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줄 알고 이런 것들이 끊임
없이 반복되어야 내가 시설에서 나올 것인지 진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가
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시설 밖 삶을 원할 수 있는 거죠. 그럼 시설에서 나와서 사는 삶이 가능
하다는 것을 체험한 거잖아요. 그럼 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도 가능하다는 증거가 돼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탈시설이 효율적이고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선택하고 욕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시작될 때 달성가능한
것이 돼요. 설사 그 과정에서 엎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이걸 원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잇으면 아
직 끝나지 않은 거거든요. 그 이후에 다시 싸울 수 있죠. 대선 한 번 총선 한 번에 그 의제가 꼭 채
택되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주장할 수 있겠죠.
저는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게 진짜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운동을 할 바에야 성공을 해서 대
통령을 하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렇게 강한 사람이 뿅 나타나서 만들어주는 변화는 그게 언제
사라져도 막을 방법이 없고 이상하지 않은 변화인데 만약 사람들이 실제로 힘을 합쳐서 변화를 만
들어내면 어떤 권력자가 나타나도 그것을 함부로 뒤집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활동은 우리가 관
계를 통해서, 집회를 통해서 변화를 만드는 순간을 계속 쌓아나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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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 빈곤이 있다면 그 빈곤을 내가 경험할 때 공적으로 소유된 것들이 나에게 돌아온다
는 게 기본적인 전제예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50% 가까이 돼요. 이 노인 빈곤율이 유지된다면
우리가 노인이 되면 50%의 확률로 빈곤층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50%의 확률로 노인 빈곤층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그 사회
에 살고 있는 나는 노인이 되었을 때 50%의 확률로 빈곤층이 되지 않을 수 있겠죠. 빈곤이 덜 발
생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가난에 처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가난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빈곤이라는 사회
적 뮈협을 조금씩 해체해 나가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것이 반빈곤 사회연대라고 생각합니다.
► 당사자가 아주 명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미묘한 구석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인 조건이 당연히 있기는 해요. 실제 빈곤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사고 싶은 물
건 못 샀으니까 나도 가난하다’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루스 리스터의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의 빈곤을 수레바퀴 모형
으로 제안해요. 예전에는 피라미드 모형으로 주로 접근했는데 이런 위계적인 모형으로는 현대의
빈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수레바퀴 중심에 물질적 핵심, 혹은 ‘용납할 수 없는 곤란’이 있고
바퀴의 둘레 부분은 물질적 곤란에 처한 사람들이 겪는 빈곤의 관계적, 상징적 측면을 나타내요.
관계의 결핍,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다는 대표성의 결핍, 지역사회에 소속되지 못하
는 정체성의 위기 이런 차원인 것이죠. 저는 이런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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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물질적 결핍이라는 핵심을 간과하자는 건 절대 아니고요. 왜냐하면 돈이 없다는 것은 자본
주의 사회에서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의 박탈이거든요. 그렇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열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모두가 빈곤의 당사자라고 말할 수
는 없지만 우리 모두 반빈곤연대의 당사자일 수 있죠. 반빈곤연대를 위한 행동에 나서는 게 반드
시 빈곤 당사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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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하잖아요. 나랑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을 계속 만나보고 이해해보
고 또 나의 기존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도 해보고 이런 게 쌓일수록 더 열린 태도로 살 수 있
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후에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최소한 조금 더 열린 태도로 생각해 볼 수 있
지 않을까 합니다. 연대할 때 1차적으로는 연대를 받는 사람과 연대를 하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 일은 절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답니다. 관계라는 것은 앞으로도 어떻
게든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니 이 사람이 처한 상황에 내가 도움주러 간다고 생각하기보다 이 사람
이 겪고 있는 상황을 내가 함께하러 간다는 마음으로 갈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타인을 너무 겁내지도 말고, 당장 바뀌지 않아도 담담
하게 받아들이면서 타인의 삶을 알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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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인권이다
여경민
ykm58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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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8일 아침 용산대통령집무실 앞에서 용산참사 15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있었다.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철거민 5명과 경찰특
공대 1명이 목숨을 잃었고 23명이 부상당했다. 2007년 서울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을 급하게
추진했고 당시 용산에 살던 세입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났다. 참사 전날, 용산 지역 철거민들
과 전국 15개 재개발지역의 철거민들이 연대하여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점거 농성을 했
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는 집회・시위에 강경 대응을 기조로 삼고
있었다. 참사 전날 당시 현장은 정보관들이 철거민들과 협의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지
만 경찰지휘부는 조기 진압 및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참사 이후 정부는 철거민들에게 책임
을 미루었다. 마땅한 대책 없이 집을 빼앗긴 사람들의 권리를 외치던 철거민들은 참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구속되었다. 무리한 진압을 지시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현 국민의힘 국
회의원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기자회견에서 용산참사 유가족과 연대
단체로 구성된 용산참사 15주기 추모위원회는 김석기 의원의 총선 출마와 윤석열 정부의 재개발・재
건축 규제 완화를 비판했다. 개발 전 전세가격이 5000만원 정도 하는, 세탁소와 소박한 식당이 즐비
하던 마을이 개발 후 전세 20억의 상업지구가 됐다. 신용산역 주변 남일당 건물 자리에는 4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가 들어서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5년 전 용산참사를 촉발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의 책임자다. 그럼에도 아
무런 반성이나 성찰 없이 개발주의를 선동하고 있다. 더욱 빠르게, 더욱 많이 개발하려고 하고 있
다. 실패한 용산정비창 부지의 ‘국제업무기구’ 개발도 재추진하려 하고 있다. 이는 서울 도심 대규모
공공택지를 민간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다. 삶과 생존의 터를 일궈온 선주민을 비롯한 세입자 이주대
책 등 용산참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은 빠른 개발은, 빨리 내쫓기 위한 폭력의 강도만 높인다.
도시 경쟁력을 내세워 자본에 유리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은, 용산을 또다시
투기와 개발의 링으로 몰아넣어 죽음의 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집을 소유하고 있든 아니든, 그곳을 집으로 삼던 사람들의 주거권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집이
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열악한 환경의 쪽방은 선주민에게 거주우선순위를 주어 사람이 살 만한 공
공임대주택으로 개발해야 한다. 재개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여 멀쩡한 집을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민간개발로 때려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가진 자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다. 사람 사는 집을 짓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개발을 반복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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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운동, 위기를 직면하다
부지희
(철학 23, 외부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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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생하는 환경적 재난이 자연적 변화의 결과가 아닌 인류의 산물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화
석연료의 85%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용된 양이며, 이밖에 다른 원인들과 결합해 대기 중에 배출
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2016년에 체결된 파리 기후 협약은 지구
의 온도를 2도 상승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우리의 행성은 2100년까지 기온이 섭씨
4.5도 이상 증가하는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전 지구적 기후 변화는 해수면 상
승과 생물권 파괴, 폭염, 가뭄, 태풍 등의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을 모조리 파괴할 것이며 난민과 사
망자 등 추가적인 시스템상의 문제 역시 불러온다. 이미 인도, 마이애미, 중국과 몽골 등 지구촌 곳
곳에선 분노한 자연에게 삶을 위협받고 있는 거주민들의 소식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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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러브록의 비유처럼, 사람들은 런던 방공호의 시민들과 다르지 않아서 당장 하수도의 나사
를 빼가는 도둑들보다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폭격을 두려워한다. 몇 십년 안에 영토의 절반이 잠긴
다는 사실보다 당장의 GDP수치와 산업 위기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측면
에서, 자연을 착취한 인간의 활동을 ‘원죄’ 따위의 구시대적이고 신화적인 용어에 빗댄 표현은 그다
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슬프게도, 종의 존속을 추구하는 유기체는 그 숙명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없어서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생존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우리의 유전
자를 뜯어 고칠 수 없다면, 환경 운동은 이를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죄의식과 동정심 같은 감정은
어느 정도 힘을 지닐지도 모르나, 이런 감정은 여전히 자연과 인간 사이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고착화시킨다. 환경 운동은 전지한 인간의 위치를 다시 자연 속의 모든 구성원들과 평등한
관계로 끌어내리고, 인류의 생존 본능을 촉진해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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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밖에도 대전 지역은 가뭄로 인한 고통이, 동시에 경기도의 일
부 지역에선 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직접적인 기후 위기 소식
을 접한 사람들은 그제야 행동할 필요를 느낄 것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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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general/article/202210161549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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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가 되~
-젊은 여성 팬은 케이팝 내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
김나영
nykim32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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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사격 중지! 아군이다. 제목에 ‘빠순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여 괜히 뜨끔한 느낌이 들었
거나, 혹은 기분이 상한 독자가 있다면 사과부터 건네겠다. 사실 필자야말로 장장 10년 넘게 아이돌
을 덕질한 빠순이 당사자다(이 글도 현재 모 다인원 아이돌 그룹의 리얼리티 예능을 배경으로 틀어
두고 작성된 글이다). 따라서 이 글은 연예인 좋다고 꺅꺅거리며 난리 피우는 빠순이들을 향해 일침
을 놓으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소비해 왔고, 소비하고, 소비할 빠순
이 당사자로서 이런저런 문제 많은 케이팝 업계를 향해 작은 돌이나마 던져보려는 의도에서 쓰였음
을 밝히고 싶다. 이 글은 케이팝 장내에서 젊은 여성 팬들이 맞닥뜨린 실제 문제 사례를 조명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분석함에 의의를 둔다.
이건 아니지예
2023년 말, X에 올라온 한 영상을 두고 각종 커뮤니티와 뉴스 플랫폼에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영
상은 모 남자 아이돌 그룹이 팬들과 경호원에 둘러싸여 공항을 빠져나가던 출입국 현장 영상이었으
며, 문제가 되었던 지점은 경호원의 과잉 진압 행동이었다. 한 여성 팬이 카메라를 들고 멤버를 촬영
하려 하자 경호원이 그를 거세게 밀어버렸고, 팬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며 바닥과 충돌했다(글로 읽
는 것보다 실제 영상을 보는 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후에 영상 속 팬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전치 4주의 신체적 피해를 보았으며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각종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자, 소속사는 피해자에게 별도의 사과와
사후 케어를 제공하는 중이라는 공지를 뒤늦게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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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그룹의 경우, 밀쳐진 팬이 늑골 골절 등 전치 5개월 판정을 받아 가해 경호원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다. 경호원의 도 넘은 경호를 아이돌이 직접 제재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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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대상으로는 제공하지 ‘않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처럼 ‘빠순이’가 ‘팬덤’이 되기까지, 사회적으로 인식이 변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다양한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앞선 문제들을 조명해 봤을 때, 케이팝 산업 구조에서 팬들과 대척점에 있
어 보이는 기업체와 업계 관계자 대다수는 아직도 젊은 여성 팬을 단순히 ‘빠순이’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즉, 팬덤의 정의와 위치, 역할, 권한 등에 대한 팬 당사자들의 인식과 사회적 인식은 변했
지만, 케이팝 업계의 기득권은 그 변화를 좇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팬들 돈을 수월하게 가져
가기 위한 상품 마케팅, 팬 마케팅 분야는 예외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여태까지 실컷
내 입으로 빠순이란 단어를 남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자조적 발언이며, 기업체가 생
각하는 ‘빠순이’ 속에 담긴 모멸적 뉘앙스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다 보면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를 것이
다. 무지몽매한 빠순이로 전락 당한 필자와 함께, 지금부터 케이팝 업계 속 기업체가 생각하는 전형
적인 ‘빠순이’의 이미지와 속성을 들여다 봄으로써 젊은 여성이 문화산업 내에서 어떤 존재로 해석
되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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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순이를 이렇게 볼 수도 있는거임? 기업도?
빠순이의 속성 하나,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다. 애버크롬비 & 롱허스트는 소비자가 자발적 커
뮤니티를 선택하는 데 매체가 얼마나, 또는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따라 소비자, 애호가, 열광자, 광
신자, 적극적 생산자로 구분했다(N. Abercrombie & B. Longhurst, 「Audiences: A Sociological
Theory of Performance and Imagination」, 1998). 앞서 언급했던 ‘철없고 다소 극성인 오빠 부대’
라는 구시대적 빠순이의 정의에 따르면, 젊은 여성 팬들은 열광자에 해당한다. 이들은 매우 전문적
으로 스타나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매체 사용량이 많으며 팬클럽 등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욕
구 가 있다. 결정적으로, “밥은 굶어도 공연은 봐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기
꺼이 감수하며 움직인다. 빠순이가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근본적 동기는 무엇인가? 아티스트를 향
한 애정이다. 사랑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동기로 삼기 때문에 빠순이는 쉽게 비이성적, 비합리적 존
재로 여겨진다.
빠순이가 이렇게 해석되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로선 젊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고
정관념에서 기인한다는 형식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논의할 때, 모
계 중심성(Matrifocality)과 모계제(Matriarchy)는 흔히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둘은 엄연히 다른 의
미로, 모계 중심성의 사회는 여성이 자녀의 중심인물이자 부양자인 가족 구조를 의미하며 모계제 사
회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혹은 남성보다 지배적으로) 권력과 리더십을 차지하는 사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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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중심성 사회에서 여성은 어디까지나 가족을 위한 보호자, 헌신자의 역할이거나 그 역할을 기
대받는다. 모계 중심성 사회는 다른 말로 여성 중심 사회라고 지칭되나, 이 사회 내에서 여성은 어디
까지나 가정, 소비,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지 권력의 중심이거나 정치‧경제적 의사결정자가 아니
다. 따라서 일각에선 결국 남성 우월주의 사회라고 칭하기도 한다. 모계 중심성 사회에는 ‘남자는 벌
고 여자는 쓴다’는 분리 영역 사회 관점이 만연하며, 이러한 성별 이분법 관점을 기반으로 한 남녀 임
금 차이가 크다. 따라서 여성들은 직장 내 유리천장과 같이,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
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를 기반으로, 젊은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어리기
때문에 이차적으로 두 번의 포인트에서 사회적 위치를 격하당한다. 즉, 케이팝 산업체들은 젊은 여
성이 큰 구매력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권력이 없는 상대적 약자라는 지점을 아주 잘
이용하는 것이다.
나아가며
기본적으로 인간은 감성과 경험을 위해 쾌락적 상품을 추구하고, 특히 문화상품의 소비는 이 쾌
락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성향이 강하다. 문화상품을 소비할 땐 효용적 동기보다 상징적 가치와 감
정적 욕구가 직‧간접적 원인이 된다(Hirschman, & Holbrook, 「Hedonic consumption: emerging
concepts, methods and propositions」, 1982). 따라서 문화상품은 정서 및 사회적 의미의 표시이다.
그러나 젊은 여성 팬들은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빠순이’로 전락하기 때문에, 이 정서 및 사
회적 의미 표시 과정을 존중받지 못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소비자 권리의 수준을 넘
어서, 그냥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받지 않아야 할 대우를 받는다. 폭력에 가까운 과잉 경호 사태나 성
추행에 가까운 신체 수색 등을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내 인권, 내 친구 인권 뚝뚝 떨어지는 걸 지켜보게 되는 게 당연한가?
이 글의 요는 빠순이를 잘못 없고 고결한 덕질을 하는 존재로 두둔하고 무조건 업계 탓을 하기 위
함이 아니다. 물론 건강하지 못한 팬 문화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점(환경오염, 아티스트 사생활 침
해)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주 소비층이 젊은 여성인 케이팝 장에서 유독 기형적인 산업 구조나,
어느 장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 나타나는 작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알리고, 이 배후에
업계의 젊은 여성 팬덤의 존재에 대한 뒤처진 인식, 근본적으로 젊은 여성이 겪는 구조적 차별 등 다
양한 이유가 존재함을 분석하려는 시도였다. 젊은 여성의 소비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격하되는가?
우리 사회는 젊은 여성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가? 다들 빠순이라는 단어를
마주칠 때마다 한 번씩 나름의 추론을 해보길 바란다.
케이팝 산업 내 상호작용의 주축이자 능동적 향유자인 팬덤은 애정을 볼모로 빠순이가 된다. 탈
케(탈-케이팝)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이
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 여성을 향한 구조적 한계를 사회 전체가 탈피
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요, 케이팝 업계와 팬덤 모두 노력이 필요하다. 팬들은 부당한 침해 행동에
대해 다양한 창구를 통해 더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필요하다면(그리고 가능하다면) 불매운동처럼
강력한 의견 피력 수단도 고려해야 한다. 케이팝 업계는 젊은 여성 팬들을 ‘빠순이’로 보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마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고 스타 뒤에 숨거나, 생산자‧제공자라는
위치에 취해서 비인도적인 만행을 저지르지 말라. 한 명의 케이팝 팬으로서, 행복하고 윤택한 덕질
라이프를 위해 건강한 케이팝 문화가 도래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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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는 싫지만 구원은 받고 싶어
사진 출처 : http://m.todaysppc.com/renewal/view.php?id=free&no=155664
허윤
dorahur9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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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자=종교인?>
<나의 종교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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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친구에게 개신교 교리를 강요한 것과 다름이 없어서 꽤나 미안하다.) 교회에
서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전도 주간에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가기도 하고, 찬양팀, 댄스팀 등 여러
활동에 꼭 참가했었다. 텍스트만 보면 예수님의 성실한 어린 양 같아보이겠지만 난 항상 의무감에
저 활동들을 했었다. 왠지 교회를 열심히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 건 별
로 와닿지 않는데도 그런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이단이 되는 것만 같아서 그냥 찝찝한 채로 여러
의심들은 묵혀둔 채 살아왔다. 나는 일요일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내가 정하지도 않은
하나님과의 자동 선약으로 인해 항상 10시, 혹은 9시까지 꼭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여담으로
다른 교지 부원이 알아챈 사실인데, 개신교 신자였던 사람들은 꼭 예배를 ‘드린다’고 표현한다고 한
다. 개신교 신자가 아님에도 그 관성이 남아있는 걸까.)
하나님의 선한 어린 양이라기보다는 게으른 어린 양으로서의 신앙 생활을 이어가던 중 사춘기
를 겪으며 문득 내게 한 번도 종교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확
히는 만화책을 보다가 깨달았다. 내 친오빠는 <보물찾기> 만화 시리즈를 매우 좋아했기에 우리 집
에는 그 전권 시리즈가 있었다.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갑자기 옛 추억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되
새겨보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데, 그 때의 나는 <이스라엘에서 보물 찾기>를 읽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스라엘 편에 등장하는 레나는 유대교 전통 성인식을 치르러 가기 전 자기에게는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3며 도망가는 인물이다. 그냥 별 생각없이 펼친 보물찾기 만화에서 갑작스런
큰 깨달음을 얻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유대교 가족으로부터 도망간 레나를 보며 개신교 신
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개신교를 선택하지 않는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 사
실을 가족에게는 비밀로 부쳤는데 아버지한테 혼날까봐 무서워서였다. 개신교가 아닌 나는 부모님
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수강해야만 졸업할 수 있는 1학점짜리 교양 수업처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신앙심 없는 개
신교 신자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나날들이었다. 나는 미션스쿨에 진학했다. 이게 무슨 전개인가
싶겠지만 황당하게도 실화이다. 내막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자사고 진학을 목표하던 나는 가고자
하는 학교에 진학할 성적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동네 일반고를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고등학
교 지망을 적어 제출했다. 부모님께서는 많이 실망하셨었고 나도 중학교 3년 내내 목표하던 바를
포기하는 것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다. 이후에 아버지께서는 자사고이면서 미션스쿨인 고등학교를
추천하셨고, 나는 어차피 성적이 안될 것이라며 일반고로 진학하겠다고 선언을 한 상태였다. (선언
은 했지만 미션스쿨 진학 논쟁은 몇 날 며칠 이어졌다.)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하나님의 품으로 보
내고자 하신 의지가 너무 강하셨던걸까, 원서 마감 날 내게 말도 없이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서 1지
망 고등학교를 미션스쿨로 변경하셨다. 아직도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목소리가 생생하
다. 졸업을 앞둔 중학교 3학년들의 수다 속에서 선생님의 부름에 나간 나는 그때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션스쿨에 지원했음알게 됐다. 선생님께서 “그래 00아, 00고 지원한다며?”라고 하시자 나
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음을 느낄 수 있었다. “네?!!”라고 답하면 선생님께서 당황해하실까봐 나
는 눈치껏 “아~~! 네네 ㅎㅎ 그렇게 됐어요^^” 라고 답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 웃긴 이야기
처럼 들려주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3) 종교학과 친구의 말에 따르면, ‘종교를 선택’ 한다는 개념이 한국에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서양권에서 개신교인으로 태
어나면 그냥 평생 개신교인으로 살아가야하는 셈이다. 모태신앙으로 개신교도인이 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 같
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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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나는 ‘개신교는 아니지만 미션스쿨은 다니는’ 사람이 됐다. 물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신앙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매주 수요일 채플을 대강당에서 드리고, 매일 아침 찬양과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아침 조회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되겠다.) 개신교가 아니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으나 절대적인 힘이 필요한 순간에는 염치 없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중간고사를 볼 때
라던가, 수능을 볼 때라던가..원래 사람은 간절해지는 순간에 초월적 존재에게 자기 자신을 의탁하
고 싶어지지 않는가. 대학에 진학하고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무신론인 점이 좋았었고(대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내가 이후 무신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매주
가야 할 예배가 없다는 점도 좋았다. 108배를 해보고도 싶어서 우리 집 근처의 절에 냅다 찾아가
스님께 108배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절하는 법도 배워왔다. (일요일에 교회 예배를 드리고 집
오는 길에 바로 절에 108배를 하러 가서 아버지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불교 교리도 찾아보고 나름의 일일체험도 했지만 왠지 내 입맛에 맞게 종교 쇼핑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장바구니에 몇 가지 담아두기만 하고 구매를 안하는 내 자신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속물적인 자세로 종교를 바라봐도 되는 걸까? 내게 종교인이라는 것은 성인(聖人)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진심으로 그 교리를 내면화하고 그에 따라 생활하는 것인데, 내 신앙생활은 왠
지 마라탕 옵션 추가 같다. 예배는 주기적으로 드리지 않기 옵션 추가. 헌금 강요 안하기 추가. 동
성애 혐오 금지 옵션 추가. 배달팁은 없다. 애초에 이런 마라탕을 배달해주는 집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 그냥 내 양심에 따라 사는 건 어떤가? 아니 근데 내 양심이 이미 글러먹었을 수도 있잖아! 하
지만 이내 곧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피곤해! 그냥 무교로 살면 안돼??!!
<유교인지 개신교인지..>
4)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제 2회 인천 퀴어퍼레이드에서 축복식을 집례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처분받은 바 있다. 최근 동성애를 옹호했다는 이유
로 출교라는 최고 수위 징계도 받았다.
5) 채윤태, 성소수자 축복했다가 쫓겨난 이동환 목사 “예수님이었다면…”, 한겨례, 2023-12-12,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
en/11200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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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기준 한 해 이혼 건수가 9만 3천 건인 지금(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 2천건이다), 설교에
서 가정의 해체는 찾기 어렵다. 대신 그 대상이 동성애 혐오로 옮겨졌다. ‘사랑’을 강조하면서 선택
적으로 사랑하고 배제하는 모순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서울시 학
생 인권조례를 폐지를 주장하는 서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학생 인권 조례에서 학생들의 성적 지
향성 및 성별 정체성으로 차별하면 안된다는 항목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당시
홍보 판넬의 슬로건은 ’다음세대를 지켜주세요!‘였다. 그들이 지킬 다음 세대는 이성애자이며 하나
님의 믿는 자녀들만 포함하는 것 같았다.
혐오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결탁해 변질된 개신교도 나의 불만에 한몫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다
닌 교회는 대형교회로, 2014년 기준 연간 헌금액이 약 6백억원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헌금을 많이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신자가 많으니 당연히 헌금액도 많을 것이다. 다만 헌금을
강조하는 기조가 맘에 들지 않을 뿐이다. 작년에 수강한 종교와 세계문화 강의에 의하면 교회는 초
기에 신분제 철폐 및 재산 공유의 커뮤니티로, 공산주의의 원형과도 유사하다. 종교집단을 운영함
에 있어서 자본은 필수적이지만, 자본주의 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에서 종교의 본질이 변색됨을 느
낀다.
종교집단이라기보다는 극우정치집단처럼 보이는 교회들의 문제점을 꼽다보니 그냥 한국 사회
의 축소판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질만능주의적 사회 풍조와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
힌 사회. 초등학교 아이들이 장래희망에 화가 혹은 작가 등의 직업을 작성하지 않는 이유로 ‘돈이
안되니까..’라고 답하는 뉴스를 접했었다. 매일 꿈이 바뀌는 나이에 돈벌이를 걱정하게 만든 사회
가 부끄러웠다. 한편, 아직도 방송에서는 동성애 찬반을 가지고 논의한다.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동성애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알게 뭐람. 반대한다고 하면 성소수자들이 ‘예, 안 할게요. 헤테로가
되겠습니다.’ 라고 하게 되나? 자기 주변에는 대놓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느낄 수 있다.하지
만 아직 우리 주변에는 오래된 디퓨저마냥 은은하게 혐오가 퍼져있다. 2019년 서강대학교 총학생
회는 퀴어퍼레이드에 연대성명을 보내는 것을 거부. 이런 사례들을 접하고 성찰한 결과, 사실 내가
거부하는 것은 개신교가 아니라 한국 문화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그럼 한국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교회의 신자가 되는 건 어떤가? 요즘은 퀴어 프렌들
리한 교단도 생겨나고 있으니까, 위에서 토로한 불만들은 다니는 교회를 옮기면 해소되는 문제 같
아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퀴어 프렌들리한 교단에는 큰 관심이 없다. 퀴어 프렌들리하다고 하
더라도, 개신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데, 우리끼리 퀴
어 프렌들리를 외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본질도 결국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기에 시간을 두고 차차 변화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마라탕 옵션 추가로 돌아가게 된다. 불교도 아니야, 기독교(개신교 및 천주교 포함)도 아니야, 그럼
무교로 살아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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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 우리는 최후의 날에 죄에 대한 심판을 받기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6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살면서 죄를 짓는 것은 불가피하다. ‘죄’라고 명명하는 것
은 너무 ex-개신교도적 표현이려나. 하여간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잘못을 하
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는 아직 내가 스스로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나 혼자 뉘우친다고 해도
그 잘못이 순수하게 100퍼센트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절대적 존재에게 뉘우침을 인정받
고 싶은 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그냥 안 믿으면 되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어
릴 때부터 기독교적 세계관에 살아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어떤 큰 존재가 나를 감시하는 것만 같
은 기분은 떨칠래야 떨칠 수 없다. 그리고 ‘그분’께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죄의 청산이 완벽히 되지
않는 기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개신교를 믿고 싶지 않음과 구원받고자 하는 소망이 충돌해 나의 머
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나는 내 맘을 모르겠다. 혐오적 종교가 싫
은 것은 확실해, 그렇다고 무신론 기반의 종교는 안 맞아, 유신론자이지만 개신교도적 구원은 필요
해. 너무 복잡해서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도 마음이 훅훅 바뀌었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
리자면,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종교적 인간이다.(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특정 종교에
얽매이고 싶지 않지만, 내 자아를 풍족하게 해줄 영성 혹은 인간을 초월하는 무언가는 필요한 것이
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그 기준이 꼭 기존 종교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세계를 관장하는 어떤 존재가 있겠거니~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준에 맞게 도덕적
으로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 그냥 모르겠고, 착하게 살게요’ 와는 약간
다른 종류의 결론이다. 착하게 살되, 끊임없이 그 기준을 의심하고 성찰하는 것도 성숙한 인간으로
향하는 길 아닐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 크게 머리 싸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방증이니까.
6) 복음은 좋은 소식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세계관에서의 복음은 ‘예수를 믿는 것’, 혹은 ‘예수를 믿고 그와 같이 행동하는 것’ 등 여러가지 해석이 존
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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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바이
알바트로스너마저
rsp0t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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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바이입니다. 풀 네임으로는 바이-섹슈얼. 그 말인즉슨, 여자도 좋
아할 수 있고 남자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대뜸 첫 문
장부터 생면부지의 사람이 커밍아웃을 한 탓에 적잖이 놀라신 분들도 있겠네요. 저도 이런 적은 처
음이라 기분이 좀 신선하긴 합니다.
일단은 계속 말해 볼까요? 그래서 저는 여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고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빈도로 따지면 고등학교 때까진 여자친구를, 대학교에 와서는 남자친구를 더 많이 사귀
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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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레퍼토리에서 저는 ‘남자를 몰라서’, ‘유별난 우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결
국 대학에 가면 치료될’ 어리바리한 여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게 너무 싫었어요. 아무리 생
각해봐도 저는 ‘남자를 몰라서’ 여자를 좋아한 게 아니었거든요. 또, 이게 무슨 병도 아닐진데 대학
에 가면 다 치료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짜증났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이라는 빅-이벤트를 앞둔 저는, 스스로의 인생으로 그 명제를 부정하겠다고 결
심하게 됐던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뭔가 거창하게 들리는데, 풀어 말하자면 ‘계속 이러면 어쩔 건
데’라는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여자만 사랑하겠음>이라는 피의 맹세를 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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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카리나, 전지현, 차은우, 강동원 [기타 등등…]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한국의 외모지상
주의를 지긋지긋하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외모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 유토피아
적 세계를 꿈꿀 수도 있겠죠.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며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정말 이골이 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당신
을 카리나로 만들어주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 누가 진심으로 거절할 수 있을까요? 누가 ‘정말정말
싫습니다’ 할 수 있을까요? 정상성이라는 자유롭고 달콤한 감옥. 거기에 들어가기만 했는데도, 이
제까지 나를 부정하던 것들 모두가 나를 환대하는 경험. 그게 얼마나 달콤한가요? 그러면 뭐… ….
수감될 수만 있다면 수감되어야지요. 제 문제가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정상성이라는 감옥
에 학을 떼면서도, 한편으로는 처음 느껴보는 이 기쁨을 놓치기 싫었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은 싫었
는데 탈옥할 마음은 없는 죄수였다는 얘기입니다.
*들개이빨 작가의 <부르다가 내가 죽을 여자뮤지션> 38화 작중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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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그동안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이별은 너무 수수한 형태로 찾아오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러한 여느 연인들 같은 결말을 맞이하며, 술도 마시고 울어도 보며 또 아주 평균적인 방법으로 실
연의 슬픔을 치료하려다가… … 아주 *이반적인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반 :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은어. ‘일반적이지 않다’라는 말에서 파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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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이 글에는 해피 엔딩도 새드 엔딩도 없습니다. 저는 아직도 모르겠거든요. 여자도 좋아
해 봤고 남자도 좋아해 봤으니 스스로를 바이라고 정의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한 건 없잖아요. 시
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어쩌면 저는 범성애자일 수도 있겠고요. 아니면 아주 나중에 무성애자로
정체화할 수도 있겠고요. 아무튼 지금은 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고민 없이 누군가의 애교 많은 여
자친구가 되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다시금 ‘여자만 만나겠소’ 하는 피의 맹세를 하고 싶기도 하고
요. 아무나 만나고 싶다가도 아무도 만나기 싫어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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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우울증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에드바르 뭉크 <태양>
주보배
bobaeju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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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울증이 아니라
스물한 살의 겨울. 나는 ADHD 진단을 받았다. 두꺼운 뇌파검사 결과 파일을 손에 들고, 4호선
열차에 서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이 열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삼각지역에 나를 뱉어주기만
기다렸다. 삼각지역에 내렸다면 그다음은 대흥, 그다음은 서강대 후문, 그다음은 회의 시간에 맞춰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에게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좁은 개찰구 사이를 지나가고 싶지가 않았
다. 그렇다고 그냥 그곳에 주저앉아버리고 싶지도, 회의고 뭐고 집에 확 돌아가 버리고 싶지도 않
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결과 파일을 다시 천천히 뜯어 살펴보았다. 지나치게 빨갛게 익어있는
뇌파 사진, 이리저리 극단적으로 포진되어 있는 수치값들, 백분위 10% 14%, 못 알아듣겠지만 아무
튼 뭔가 좀 많이 잘못된 것만 같은 정상에서부터의 거리. ‘ADHD, 소견, 완전 있음.’
1) 산만하고 가만히 못 있는다는 ADHD인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ADHD 치료제가 모두 안정제일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진단 전 내 생
각이 그랬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ADHD 치료제는 반대로 중추신경 자극제라서 오용하거나 다른 조건과 맞지 않을 시 오히려 불안이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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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옛날 이야기를 해보자
병이라는데 가슴이 놓이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내과 검진을 받고서 의사에
게 ‘아무 이상 없지 않으시네요. 심근경색이십니다.’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
데.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에 분명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나의 괴로움에 드
디어 눈에 보이는 핑곗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에게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차
갑게 인정해 주는 증명문서 한 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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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이 지나 우울증이 아닌 ADHD 진단을 받았다. 우연찮게 시작한 상담에서 몰랐던
지식을 새로 배우며 내가 힘들어하던 익숙한 감각은 우울보다는 불안에 가까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2 진단명이 달라지고, 처방 약이 달라졌다. 이제 내 괴로움을 증명해 주는 이름은 우울증이
아니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였다. 새롭게 떨어진 이름을 받아 들고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우
울증 진단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건 안도감도, 기쁨도 아닌, ‘부끄러움’에 가까웠다.
2) 우울과 불안은 상호적으로 긴밀히 연결된 개념이며 의미 해석에 대해 단일한 정의는 없으나, 불안은 정서 반응인 우울에 비해 신체가 느낄 수 있는 감
각의 반응으로 드러난다. 무기력함이나 자살 사고와 같은 우울증의 주요 증상과 호흡이 가빠지거나 두통이 오는 불안장애의 주요 증상을 비교하여 생각
하면 좋다. 물론, 우울과 불안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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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이 체감되자 더 이상 스스로를 비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나의 괴로움을 무시하고 조소
하는 일이 남의 괴로움 역시 깎아내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3. 증명 지옥지옥지옥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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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단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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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필요한 당신에게 :
영화 ‘괴물’ 리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作
윤필영
sgfeel27@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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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물에서 괴물 찾기
사오리 입장에서의 괴물
영화는 어둑한 밤 한 어린아이의 신나는 발걸음을 따라, 휘슬 소리에서 소방차 사이렌 소리로
번지며 시작합니다. 주인공 미나토의 엄마 사오리는 아파트 창문에서 걸스바 건물의 화마를 잠
재우는 소방관들을 향해 늦은 밤 시간을 개의치 않고 힘차게 응원합니다. “간바레!” 아들 미나토
의 만류에도 당차게 외칠 뿐이죠.
호리 입장에서의 괴물
호리는 아이들에게 관심도 많고, 꿈도 심어주고자 하는 신임 교사입니다. 학교를 마친 후에
도,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중에도, 아이들이 보이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며 걱정하는 참 선
생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죠. 책의 오탈자를 찾아내서 문의하는 조금은 독특한 취미도 있고, 웃
는 모습은 좀 어색하지만,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부모 가정인 미나토도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바라보고, 왕따를 당하는 요리의 가정에도
찾아가 학부모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려 하고, 되려 자신의 아이를 병자 취급하는 아버지에게 요
리는 좋은 아이라며 옹호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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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동학대범이 되었습니다. 교실 내 난동을 중재하려다 미나토의 코를 쳤지만 절대 의
도하지도 않았고, 사과했다. 그런데도 아동학대범이라 말합니다. 학교도 사오리도 그의 이야기
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니 알고 있음에도 그를 옥상 끝으로 몰아세웁니다. 기자,
여자친구도 생전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세상이 그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되었습니
다. 미나토를 찾아갑니다. 미나토도 호리의 결백함을 알고 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커져 버
렸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의 괴물
미나토는 평범한 어디에나 있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엄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춘기 소년이죠. 교실을 청소하다가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동급생
호시카와 요리와 대화하게 되었습니다. 요리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늘 밝은 얼굴이었습니다. 자신의 뇌는 돼지의 뇌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요리, 과
자를 나눠주면서도 과자 자체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니, 병이 옮지 않는다는 요리, 미나토의 머리
를 쓰다듬으며 돼지 울음소리를 내어보는 요리. 미나토는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요리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래
서 학교 안에선 자신이 요리와 친구임을 숨깁니다. 요리는 그런 미나토를 흔쾌히 이해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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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학교에서도 요리를 감싸다 싸움을 일으키고 사고를 치는 등 스스로 요리를 사랑하는 것을
깨닫게 된 미나토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요리의 말처럼 자신의 뇌도 돼지
의 뇌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통적인 남녀 한 쌍의 가족 형태를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남
자다움을 강조하는 호리 선생에게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이 생깁니다.
2. 怪物はだれだ?(괴물은 누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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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미나토는 폐터널 속 아지트에서 ‘괴물은 누구게?’라는 게임을 합니다. 동물 카드를 이마에
붙이고 카드를 본 상대방의 설명만을 듣고 동물을 맞추면 되는 것인데, 맞추지 못하면, 그 존재는 괴
물이 되는 것이죠. 이 게임은 어쩌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2장의 호리 선생님 파트를 보게 되면, 1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호리 선생님은 그다지 괴물이
아닙니다. 조금 미성숙한 어른이긴 해도 아이들과 가까이서 나름의 노력을 하는 신임 교사이지, 아
동학대범이라기엔 지나친 비약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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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러한 ‘괴물성’은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고 제거할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우리의 다양
성과 복잡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가 특별히 전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존재가 아닌, 일상적인 존재라는 점에
서 비롯되는 것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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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독립영화제 만수무강해!
김한울
guuoul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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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싫어하고 왁자지껄 술자리 질색하는 교지 편집위원들끼리 정동진독립영화제에 다녀왔다.
왜 굳이 여기로 갔더라? 일단 하나하나 전부 더럽게 까다로운 예술충들이라 상영작의 퀄리티가 전
반적으로 나쁘지 않아야 했다. 농담이고, 나름대로 기준들이 있었다. 너무 멀어 혼자 갈 엄두를 못
낼 것 같고,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곳, 티켓값이 비싸지 않은 곳, 모두의 본가(
경기도, 경상도, 서울, 전라도, 충청도)와 최대한 먼 곳, 자차 없이 숙소-영화제 장소-바다 이동이 가
능할 것 정도.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상영작 전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야외 상영이므로 무료다. 결
론부터 말하면 대만족이었으니 다른 단위 분들에게도 MT 장소로 추천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에 대
한 감상보다는 영화제 전반의 분위기 위주로 서술할 예정이다.
1)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제25회 정동진독립영화제, 2023년 7월 18일 수정, 2024년 1월 28일 접속, http://jiff.kr/about-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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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설명과 더불어 본 영화제의 사업 목표는 독립영화의 저변 확대 및 지역 영상문화 활성화라고 적
혀있다. 이마리오 감독이라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 겸 활동가가
있다. 오랫동안 강릉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강릉미디어센터에서 워크숍을 열기도 해 왔다. 센터
를 기반으로 많은 강릉시민들을 영상제작자로 키워냈다. 예전에 “미디어로 행동하라”라고 서울이 아닌
지역들, 예컨대 제주 강정마을 미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나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삼척 석탄발
전소 설립 반대 투쟁 같은 현장에 영상, 소리(굳이 소리라고 하는 이유는 음악뿐 아니라 구술사를 기반
으로 한 팟캐스트 제작도 동반하기 때문이다)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일주일을 살며
창작하는 캠프가 있었다. 나는 2015년인가 딱 한 번 가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여튼 잊고 살다가
정동진독립영화제에 오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듣기로는 아직도 영화제 스태프들 점심 식사 배급을
맡고 계신다고 한다. 왜 갑자기 이마리오 감독 이야기를 하였는가, 비단 이 감독뿐만 아니라 이런 활동
가들의 오랜 노력으로 정동진독립영화제 같은 행사가 아직까지 이어져 왔음을 유념해 보자는 취지다.
2) 이마리오 감독과 ‘독립영화 도시’ 강릉의 이야기는 다음 인터뷰를 참고. “[ACT! 105호 인터뷰] 독립영화 도시 강릉, 독립영화의 집 인디하우스 - 이
마리오(감독, 미디어협동조합 이와 대표),”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2017년 8월 29일 수정, 2024년 1월 28일 접속, https://actmediact.
tistory.com/1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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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운동장에서 오랫동안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걱정이 돼 모기 기피제를 잔뜩 샀는데, 운동장 양옆
에서 쑥을 한가득 모아 줄곧 태워주어 모기는 한 마리도 물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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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영화도 시끄럽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야지! 영화가 끝나고 MC가 제각기 수줍어하는 감독들
을 하나하나 올려 짓궂은 질문을 건네기도 했는데, 스크린 위에는 어디서나 읽을 수 있게 큼지막한 실
시간 자막이, 옆에는 조금 작지만 역시 큰 화면에 수어 통역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야외 상영의
단점이라면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건데, 자막 덕에 이해가 쉬웠다. 물론 이맘때쯤 나는 취해서 자
막을 잘 읽지는 못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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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가, 친구한테 “이거 영자원 가면 구할 수 있나?” 내뱉었는데 갑자기 뒤에 계시던 분이 “저 거기서 일
하는데요. 영자원 가셔도 아마 있고요. 홈페이지 가셔도 있어요.” 하고 답해주셨다. 진짜 있었다! 구글
에 ‘아카이브 프리즘 #10’이라고 검색하면 나온다. 영화제 온 사람들이라는 아주 느슨한 친밀감이 영화
제 기간 그 동네를 감싸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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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념
채성준
(철학18, 외부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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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하지 말 걸 그랬다. 나는 사실 글이라는 것을 쓸 줄 모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글을
쓴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연대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써 내려갔었던 적이 있을 뿐이다. 학점을
따내기 위해서 논리와 형식, 그리고 신뢰성 있는 정보와 생각들을 짜집기해서 한 편의 보고서로 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쓴 글은 정념으로 가득 찬 텍스트 덩어리였다. 나는 그러한 덩어리
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배설’과 같은 것으로 본다.
인생의 대부분은 행복이라고 부르기가 힘들다. 우리에게 들리는 소식은 대개 긍정적인 소식이
아닌 부정적인 뉴스들이다. 우리의 감정은 대개 행복보다는 고통과 슬픔에 가깝다. 다만 사람마다
무디고 예민한 정도가 다를 수는 있겠다. 이전에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게 들려오는 것 중 대
부분은 나쁘고 극히 일부만이 좋다는 것이다. 특별히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거나 거창한 비관
주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삶의 대부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단념해 나가는 것 같다는 김기림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매년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것을 다짐하고 동시에 기존의 것들을 단념해 나간다. 작년의 자신을 단념하고 내년
의 자신은 달라지기를 소망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멋들어지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인
가를 포기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행위는 다른 무엇인가를 단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렇게 보면 인생을 B와 D 사이의 C라고 말하는 것은 곧 인생이 단념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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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념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다른 삶을 단념하고 결혼을 택한 이들은
가정이라는 선택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사회의 제도와 문화로서 마땅한가를 논하기 이전에, 그것
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신이 도달하
고 싶은 목표를 설정하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는 시간들도 단념해 나가는 시간이다. 나의 욕구와 다
른 충동을 계속해서 단념해 나갈 때 나는 무엇인가를 이룰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기나긴 단념의 시간을 시작한다. 이때 그 단념의 출발점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
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이고 하나는 욕망이
다. 그래서 누군가는 불안함으로 인해 단념한다. 주어진 시간과 돈을 사용했는데도 시험을 통과하
지 못한다면 나의 미래는 더 곤란해질 것이라는 불안함이 사람을 움직인다. 다른 누군가는 강력한
욕망으로 단념한다. 목표를 향한 가장 큰 욕망이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욕망을 삼켜버린다. 그렇
게 목표라고 부르는 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단념한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이 두 가지 모두에
의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념해 나가는 시간은 결코 쉽지 않다. 휴식을 단념하기 위해선 휴식을 알고 있어야 한
다. 내가 모르는 것은 당최 단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즉, 단념은 내 삶의 일부를 이루었던 것들
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다고 그 시간이 모두 내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때론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을 잊어버린다. 그러한 일들은 단념할 수조차 없
다. 나의 일부를 이루는 것들은 내가 스스로 내 자신이라고 인정해 받아들인 것들이다. 다르게 말
하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곧 나 자신을 이루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로 태어나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우리는 불가피하게 무엇인가를 사랑
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 또한 무엇인가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까지 치닫는 이유는 나의 존재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
는 것들이 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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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존재를 이루는 것들이다. 고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크
나큰 문제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빈번히 나를 죽이려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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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되지 못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슬퍼한다.
우리는 단념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나는 언제나 단념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사랑함으로써 스스로를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
는다. 사랑은 역설적으로 자해와 같다. 내가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에 나를 무방비하게 내어주는 것
이다. 성경의 예수가 그러했고, 로미오가 그러했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당신이 그렇다.
하지만 반드시 단념할 필요는 없다. 반드시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도 된다. 그것 또한 단념해버
리면 된다. 결국 내가 단념할 수 없는 것은 마지막이 되어서야 알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인 소득, 업무의 자율성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인정들도 모두
쓸데없이 단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맹렬하게 달려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들 또한
사실은 아직 단념하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속임수에서 단념하는 법
을 배우는 것 또한 필요하다. 때로는 단념하는 것을 단념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어설픈 단념으로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얼음판과 같은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렇게 보면 단념이라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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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타인은 지옥이다”
교지서강 편집위원 일부
(경민, 보배, 유진, 지연, 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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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지옥이다.’ 각종 매체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 말은 실존주의의 대표적 사상가 장 폴 사르
트르가 희곡 “닫힌 방”에서 한 말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타인의 잣대로 자기 자신을 판단하며 그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남의 눈치
만 보고,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삶이 사르트르에게는 ‘지옥’이라는 것이다.1
말 그대로 ‘사람에게 치이며’ 산다는 요즘, 우리는 타인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곤 한다. 타인
은 정말 지옥일까? 편집위원 각자에게 타인이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타인은 지옥일까?
현지 나 진짜 동의. 그런 것 같아.
보배 공감의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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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는 지옥도 있고 ‘이건 좀 할 만한데?’하는 지옥도 있잖아. 타인도 한 종류의 지옥이 아
니라 어떤 사람은 나에게 열탕 지옥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에게 진짜 나태지옥 같
은, 할 만한 지옥일 수도 있는 것 같아.
보배 낭만적이야.
현지 이게 맞는 것 같아.
보배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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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가깝고 호감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지의 타인의 영역이 있으니까 더 친해지
기가 무서운 부분들이 있지.
경민 지연이처럼 개방 안 하는 친구 어때?
보배 포식자이시죠.
115
우리는 상처 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116
보배 다들 진짜 타인한테서 자기를 보는구나.
지연 그게 불안 요소가 제일 없기 때문이겠지.
보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요구나 바람이 거절되는 경험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지금도 거절당
하는 게 너무 싫어. 그냥 다 나를 수용해 줬으면 좋겠어.
경민 역시 나 같은 언니가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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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거야. 선의로 100%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거야. 왜냐하면 나는 굳이 말하지 않
는 방식으로 상대를 배려 하는데 상대는 그게 배려가 아니고 오히려 나쁜 거니까.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느낌. 나는 불편하더라도 참고 말을 안 하는데 얘는 왜 나
한테 말을 하지? 그 부분에 대해서 가끔 억울할 때가 있는 것 같아.
현지 쿠션어?
보배 그게 그렇게 들리는구나.
지연 그냥 좀 좋게 말해주고 싶을 수도 있잖아.
보배 네가 상처를 안 받게 하고 싶으니까
현지 나도.
118
유진 그런 의미에서 모르는 사람이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상대를 잘 알
고 나면 이게 그냥 배려해서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하잖아. 쿠션어도 설명을 듣고 나니까
가식이 아니라 배려라는 게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모르니까.
현지 사실 그건 좀 예민한 듯. (웃음)
지연 안 되겠는데?
현지 다들 언제 예민하다고 느껴?
현지 방정 맞긴 해.
119
현지 난 궁금한 게 유진이랑 지연이는 많이 예민하잖아. 그럼 상대방의 반응에 대해서도 엄청
예민한 편이야?
보배 맞아.
경민 현지도 그래?
나를 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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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나도 상대를 새로 알아야 하는 그 단계가 약간 피로하게 느껴져서 비슷한 사람이 좋아.
현지 나는 꽤 있는 것 같아.
보배 지연이는 어때?
경민 그것도 맞아.
현지 맞아 나만 이런 게 아니네 이런 것도 있고.
고슴도치를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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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몰라. 외로워.
유진 외로워.
경민 현지는 어때?
지연 왜 같이 살아야 할까?
보배 같이 살고 싶어?
보배 신이야? (웃음)
122
유진 진짜 너무 뻔한 얘기인데 소통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내가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상했고 어떤 부분이 짜증 나는지 하나하나 얘기해 보면 다 다
르거든. 어이없을 정도로. 그래서 계속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지 맞아. 정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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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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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제
상실에게서 상실되고 싶어
온 세상에 부지런히 심긴 가로수를 따라
걷고 걸어서 머리카락을 길렀지
턱밑에서 찰랑여, 끝내
무너지기 위하여 선 가로수와
누운 아스팔트
거리는 재개되고, 한편
정지한 표정들 너머로
세계가 종종 지연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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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
슬픈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할 일 목록을 어제의 마트 영수증보다 길게 늘여 적으면
냉담한 질서의 어법으로 생포된 슬픔들은 지느러미를 거두고
쇼윈도에 진열된 초밥처럼 반듯해졌지
할 일은 할 일 목록 적기
다과회를 위한 솜사탕 기계 들여놓고
마들렌과 휘낭시에를 헷갈리기
(가장 좋아하는 건, 레몬 맛)
내밀한 취향을 간직하기
비밀을 잊기
시 낭독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때 지난 일기 찾아 읽고
너를 깨워 함께 은하로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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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목록은 자꾸자꾸 길어져
팽창하는 은하 속에 잊어야 할 비밀만 늘고, 이를테면 레몬 맛의 솜사탕,
온 세상이 미중력의 기분으로 진입하면 우리가 지어 올린
다과회장도 낭독회장도 죄다 곤두박질쳐, 저 우주로
오늘도 열차는 오지 않고
꿈속의 너는 명료한 표정으로 발각되어 있어
영영 잡히지 않을 술래잡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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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떼 목장
그대 꿈에서 나를 보나요
태양과 눈 맞추고 태양에게 입맞추는 역사는 아무래도 불가능해서 결국 언제까지고 꿈입니다 그러니까
꿈에서 봐요 우리는
꿈에서 만나요
128
벽
언덕 위의 방은 외딴 세계
메마른 벽지를 함뿍 적시며 숨쉬던 나는
그 여름 생기 넘치는 장마통에 녹빛으로 피어난
한철 화초였습니다
밤이 내리면
귓전으로 무수히 피어오던 이야기들이
무심하게 돌아누운 저편으로 시들고
도드라진 뼈마디를 점자처럼 훑던 지문이
날숨마다 금세 닳아버리는데
다시 한밤의 랑데부가
썩은 동아줄처럼 내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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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사평
130
과한 수사가 오히려 의미를 감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로」 (외 2편)나 「멈추지 않고 쏟아내는 구
역질 같은 사람아」 (외 4편)는 장황한 서술이 시적 긴장을 느슨하게 합니다. 호흡이 긴 것과 산문화
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월」(외 4편)은 시적 언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느껴지
지만 과한 수사를 경계할 필요가 있고, 「사석지훈가」 (외 5편)는 사변적 언어가 익숙한 경구로 전환
되는 지점을 경계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정에 빠지지 말고 감정의 바깥에서 감정을 냉철하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마음
이 떠나는 길」 (외 2편)이나 「가을에 들어서며」(외 4편)는 슬픔에 매몰되지 말고 슬픔을 성찰할 필
요가 있습니다. 「사랑을 주세요」 (외 2편)이나 「우리 사랑은 영원하다치자」(외 3편)는 감상성과 통
속성을 경계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슬픔을 오래 가라앉혀 맑은 언어를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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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상소감
김주하(국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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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133
1
134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량 스크린에 띵동 하는 청량한 소리가 나더니 금방 핸드폰으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대충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 인간 때문에 이게 뭔 일이람. 나는 문득 걱정이 들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사람
은 어지간히 대단한 일을 저지를 위인은 못 되었다. 끽해야 용돈 몇 푼 빼낸 거겠지, 다 알아.
나는 차에서 내려 주유를 하며 이런 생각으로 자기 위안을 하였다. 어쩌면 내 일상을 도륙해버릴
사건이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서였다. 주유기 화면에 리터 수를 나타낸 숫자가 점점 올라
갔다. 나는 어스름하니 무심하게 주황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자니 문득 못 피운 담
배 생각이 나 차 문을 열어 담배를 꺼내 피웠다. 머릿속에 잡념이 사라지자, 괜히 그 빈 자리에 담배
연기가 주유소 기름과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켜 폭발해버리고야 마는 터무니없는 영상이 그려졌다.
주유기 화면에 나타난 금액이 어느 정도 올라가자 불현듯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주유가 멈췄다. 좀
전의 영상에 한참 몰두해있던 나는 정말 주유소가 터져버린 줄 알고 놀라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
렸다. 하지만 주변은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오래된 주유소뿐이었다. 보는 눈은 없었지만 민망함
에 얼른 주유건을 빼내고 차에 들어가 앉았다.
차 안에서는 마침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형사라는 남자가 나를 재촉하려 벌
써 전화를 했나 싶었지만. 번호를 보니 그는 아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주유소를 나오며 전
화를 받았다. 내가 새어나가는 발음으로,
“여보세요?”
하자 전화 반대편의 음성은 기다렸다는 듯 매우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당신의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나는 당최 무슨 말인가 싶어 다시,
“여보세요?”
하고 되물었으나, 전화 속 남자는 일관되게 낮은 목소리와 어눌한 말투로 자기 말을 이어나갔다.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아이가 많이 다쳤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다시 한번 제 말을 잘 들으십
시오. 지금 제가 불러드리는 계좌로 천 만원을 입금하십시오. 이해하셨습니까? 아이가 많이 다쳤습
니다.”
그는 숫자 몇 자리를 불러주더니 아이가 많이 다쳤다는 말을 한 번 더 남기고는 전화를 끊어버렸
다. 그리고 조금 뒤, ‘우리 아들’로 저장된 연락처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메시지 함에는 아이가
학교에 입고 간 옷가지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사진이 있었다.
허벅다리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물고 있던 담배가 다리에 떨어져 남아있던 담뱃불이 바지
에 구멍을 낸 것이었다. 나는 섬뜩함에 구역질이 나 어서 차를 세워둘 곳을 찾았으나 차들이 뒤엉킨
고속도로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지러울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형사, 형사님, 우리 애가 유괴를 당했나 봐요. 형사님, 들려요? 제 말 들려요?”
135
2
“형!”
김의 목소리다. 김이 굉장히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나는 일단 그를 무시하기로 했다. 업무 중에
는 서로 방해되지 않게 말을 섞지 말자는 약속도 있었고, 더군다나 지금은 일의 성패가 달린 아슬아
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형, 내 말 안 들려요?”
나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는 눈치를 주었지만, 당최 그는 단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짜증 나는
놈.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사실은 화가 난 이유가 김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은 먼저부
터 타오르던 화에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내 화를 돋운 쪽은 재수 없이 사기꾼에 농락당한 쪽이었다. 물론, 내가 사기꾼에 넘어갔다
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속는 쪽이라기보다는 속이는 쪽에 가깝다. 나는 지금 나의 미끼를 문 물고
기가 반대로 몸집이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있는 희한한 상황에 놓였다.
“경찰 하나쯤은 보내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위치 추적도 안 돼요? 설마!”
여자가 쏘아붙였다. 그녀는 자기 아들이 유괴당했으니 나더러 조치를 취해 달라며 아우성이었
다. 일개 형사한테 무슨 전능한 힘이라도 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 거기다 나는 형사도 아닌걸. 안타
깝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내게는 권한이 없으니 당장 놓인 남편 건부터 해결하자’라는 말뿐
이었다.
이 말이 매정하게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편이 백번 옳다면 옳았지 그르지는 않았다. 나와
그녀가 모두 이득을 볼 방법은 그뿐이었다. 그녀의 아이를 유괴했다는 유괴범은 분명 가짜일 것이
기 때문이다. 그 사기꾼은 그렇게 말로만 위협을 주고 간편하게 돈을 따내려는 속셈일 것이다. 내게
는 감이 있다. 더군다나 그것은 나와 친구들이 이전까지 사용했던 수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유괴범이 가짜라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게서 신뢰를 버렸는
지 따로 경찰서에 전화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그녀를 말릴 묘안을 찾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
렸다. 지금껏 내가 보아온, 말해온 무수한 단어들을 전부 모아 가장 적합한 말 한마디로 하나하나 정
렬해보았다. 그런데도 도통 날카로운 묘수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끝에 나는 그만 포기하기로 하였다. 쉽게 생각하자.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물고기에 집착하는
것보다야 깔끔히 낚싯줄을 끊어버리고 다른 물고기를 찾는 편이 낫다. 이것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나름의 철학이었다. 나는 여자가 경찰에 전화하겠다고 전화를 끊으면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었다.
“아, 이 형!”
김은 생각에 잠겨 오래 대답 없는 내게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달려왔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발
길질하고자 했으나, 그랬다간 김의 비명과 함께 여자가 이상함을 눈치 차리리라 생각하여 관뒀다.
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무리를 원했다. 의심을 살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내가 김에게 조용히 입 모양으로 입을 좀 닥치는 게 어떠하겠느냐고 전하자 김은 당황한 표정으
로 멍청히 서 있었다. 세모나게 오므라든 입을 보아하니 무언가 할 말이 간절한 듯 보였다. 나는 데
스크를 뒤져 노트와 펜을 김에게 건넸다. 내가 한 손으로 펜 쓰는 시늉을 보이자 김은 그때에서야
펜을 들고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셔 형사마 메 물고 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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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 내게 글씨를 보여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날려쓴 글씨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나는 노
트를 낚아채 다른 페이지를 펴 글씨를 똑바로 쓰라고 적어 건넸다.
여자는 경찰팀을 보내달라며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이에 질세라 나 또한 같은 답을 반복하였다.
알아서 떠나라는 의미였다. 그녀는 곧 감정이 북받쳤는지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이제 끝나
가는군. 나는 침묵을 지킨 채 나른한 기분으로 흘긋 김을 보았다. 이 덜떨어진 인간은 펜이 부러지
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노트에 꾹꾹 눌러 글을 적고 있었다.
“됐어요. 경찰에 전화할래요.”
여자는 얼마 안 있어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좋아, 나름 깔끔하게 끝났다. 나는 도
리어 후련한 마음으로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통화 종료음을 만끽하였다. 물고기야 또 낚으면 되지.
나는 느긋이 앉아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김이 그리도 난리였는지 궁금하여 그의 노트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노트에는 뜻밖의 말이 적혀 있었다.
‘서 형사가 떼 몰고 온답니다.’
서 형사라, 이 인간은 끝까지 내 기분을 잡치게 하는군. 나는 어이가 없어 실실 웃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서 형사, 서 형사가 나를 잡으러 온다. 그는 예부터 나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내
발자국이 남은 곳이면 남은 곳마다 찾아와 말썽을 피웠다. 이제껏 서 형사 하나면 어찌어찌 그 정도
로 끝났다. 그런데 오늘은 자기 일당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드디어 간 보기는 끝났다는 거지!
편안했던 마음속에서 문득 짜증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속이 메스껍다. 이게 웬 날벼락이람. 나는
책상에 어질러있던 담뱃갑을 챙겨 창문 쪽으로 걸었다. 손바닥만 한 창문 밖으로 무성한 풀뿐인 공
터가 펼쳐졌고 하늘에는 창백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담배 세 개비를 꺼내 한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꺼낼 양으로 바지 주머니를 뒤졌으나, 구겨진 영수증 쪼가리밖에 나오지를 않아 김에게
부싯돌 딸깍이는 시늉을 해 보이며 라이터를 좀 부탁했다. 그는 말없이 라이터를 가져다주었다.
“누가 얘기한 거야.”
나는 김에게 다그치듯 물었다. 그리고 담배 하나하나에 불을 붙이고 많은 양의 니코틴을 한숨에
들이마셨다. 가스가 제 몸을 들이밀고 목구멍을 몇 번이고 훑자 목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
갔다. 곧장 화포 같은 기침이 나왔다.
“뭐를요?”
김이 물었다. 담배 두 개비가 입에서 떨어져 힘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떨어진 것들을 주우
려 몸을 수그리는 탓에 윗배가 당겨와 토할 것처럼 기침했다. 사포로 목을 간 것만 같다.
“서 형사 온다는 얘기 말이야.”
나는 주저앉은 채로 겨우 기침을 추스르고는 반쯤 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수중에 부유하는 짜
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열심히 심호흡도 해야만 했다.
“황 형. 서 형사가 떼 몰고 오니 조심하라는 말만 남기고 바로 끊었어요.”
“황 형?”
나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황 형은 내게 지금의 일자리를 준 일종의 직장 상사였다.
“황 형이 정확히 뭐라던?”
김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는 은근한 완벽주의가 있었다. 그는 아마 황 형이 말했던 사소
한 말 하나, 뉘앙스에 작은 차이가 있는 어조 하나까지도 기억해내려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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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그의 행태가 짜증이 나 불쑥 일어나며 성을 냈다.
“왜 말을 못 해, 무슨 못 할 말이라도 했던?”
“그게...”
김은 당황한 듯 눈알을 굴리며 말끝을 흘렸다. 문득 불안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짐승 같은 직감
에서 비롯한 사나운 불안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아 내리칠 듯한 기세로 그에게 달려가
다그쳤다.
“황 형이 뭐랬어?”
니코틴이 지나간 입안의 냄새가 무척 고약했다. 김이 얼굴을 찡그리고 슬쩍 코를 막는 시늉을 했
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는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했냐니까. 내 말 안 들려?”
나는 답답함에 소리를 쳤다. 목과 윗배에 불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나는 자세를 구부리고 기침을
콜록거리며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김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자신의 사무실을 이리저
리 서성이며 내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서 형사가 떼 몰고 오니 처신 잘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도망가지는 말라고. 너희가 도망가면 다
음 차례는 나라고. 이미 물에 빠진 쥐새끼 신세라고. 그러니까 처신 잘 하라고요.”
“물에 빠진 쥐새끼는 누굴 더러 말하는 거야?”
나는 강박적으로 오른쪽 집게손가락 손톱으로 엄지손가락을 긁으며 따졌다. 어찌나 세게 긁었는
지 금방 살갗이 벗겨졌다.
“그건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얘기를 들은 건 너잖아.”
“정말 몰라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의자를 힘껏 발로 찼다. 바퀴 달린 의자는 돌돌 굴러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그러니까 황 형 말은, 우린 물에 빠진 쥐새끼에 불과하니까 반항 말고 순순히 서 형사나 따라가
라 이거야?”
하고 황 형에게 전화를 걸려 했으나, 엄지손가락에 흐르는 피 때문에 조작이 힘들었다.
“물 좀 줘 봐.”
“수도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들 모르겠어? 먹다 남은 생수통이라도 달라고.”
그는 마지못해 내게 생수통을 건넸다. 그가 먹던 물통이라 께름칙하긴 했지만, 그런 거에나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생수로 깨끗이 피를 씻어내고 황 형의 번호와 통화 버튼을 차례로 눌렀다.
받아라, 빌어먹을 놈.
그의 통화 연결음은 그레이스 창의 맘보 노래였다. 이 유쾌한 노래는 나를 조롱하는 듯 끝날 기미
를 보이지 않다가 어느 틈에 노래의 첫 부분으로 되돌아가더니, 음성 사서함을 이용하겠느냐는 음
성이 나를 반겼다. 다시 전화를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볼일이라도 보러 갔나 하여 한 십 분쯤
기다렸을까,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보니 이번에는 없는 전화번호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욕지거
리를 내뱉으며 휴대전화를 내던졌다.
138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나는 절망감에 머리를 감싸 안고 데스크에 얼굴을 묻었다. 다리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오늘 온댔으니 12시 전에는 오겠죠?”
“그렇겠지.”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봤다. 조그마한 달만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또 엄지손가락을 긁
어댔다.
“변호사라도 미리 구하고 있어야 할까요? 방 형이라면...”
“말도 마. 방 형도 황 형이랑 한패일 거야.”
“황 형이 이번 일 끝나면 해외라도 나가서 쉬라고 했어요. 휴식이 필요할 거라고.”
나는 비웃었다. 휴식? 그 새까만 속셈을 진즉 알아챘어야 했어. 진즉 알아채고 중국이나 어디 멀
리 유럽으로 날아가 기술로 돈이나 버는 건데, 나는 생각했다.
멀리서 무뢰한들이 오토바이라도 떼로 끌고 지나가는지 난폭한 모터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내게
는 그 소리가 왠지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로 들렸다. 문득 자기연민이 들었다. 늦기 전에 비행기를
타야만 했어. 대학 졸업하고 아빠 졸라서 유학이라도 가는 거였는데, 내 비루한 운명은 이 지긋지긋
한 땅에 붙잡혀버렸다!
“어떡할 거에요?”
김이 물었다. 그러게, 어떻게 하지.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서 형사니 황 형이니 아무래도
좋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생각뿐이었다.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계속
중얼댔다. 비행기와 외국. 외국과 삶. 삶과 시작. 시작과 끝...
그러자 문득 실낱같은 희망이 떠올랐다. 나는 갑자기 수면 위로 떠 오른 그 희망이 채 가라앉기
전에 얼른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외국으로 뜨자!”
“외국? 어디로요?”
나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김에게 말했다.
“어디든 좋아. 당장 공항으로 가자. 가서 제일 먼저 오는 비행기 표 끊어서 거기로 날자고. 아님,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끊어도 괜찮지. 그 정도 고민할 시간쯤은 있을 거야.”
“가서는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해? 그럼 여기서는 어떻게 하지?”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손발까지 떨며 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
는 쓸모가 있어 보이는 자질구레한 사물들과 개인정보가 담긴 물품들이 주로 가방에 담겼다. 김은
멀뚱히 서 있다가 고개를 젓더니 나를 따라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 사무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긴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결국 어릴 적에 엄마와 함께 본 퇴폐적인 느와르 영화 하나를 참고하기로 했다. 영
화 속에서는 범죄자 일당들이 증거 인멸을 위해 사건에 연루된 말단 조직원들과 함께 자신들의 거
처를 몽땅 불살라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나의 계획에 희열을 느꼈다.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김에게
확신에 차 말했다.
“타는 것들은 다 끌어모아서 내 책상 위에 쌓아놔. 여길 통으로 태워버리자.”
139
“태운다고요?”
김은 무슨 말이냐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다소 미적지근한 그의 반응을 뒤로한 채 가방
을 문밖에 던져 놓고 사무실 안에 있는 땔감이란 땔감을 전부 데스크 위에 산처럼 쌓아 올렸다. 그
곳에는 종이 서류는 물론이요 플라스틱병이며 음식물 쓰레기도 있었다. 한 두어 번 쌓아 올리자 데
스크 가득 땔감이 쌓여 괴상한 풍경을 이루었다.
“여자가 경찰에 내 얘기를 했을지도 몰라.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암. 그럼 외국으로 뜬다 해도 잡히
는 건 시간 문제야. 그러니 싹 태워버리는 게 이치에 맞아.”
“그래도…”
“박 형 몰라? 박 형이 그래서 잡혔지. 멍청이같이 자기 흔적을 훌훌 남기고 다녀서 말이야.”
김은 제 나름대로 자기 짐을 싸느라 분주했지만,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는지 나를 의심스러운 눈
초리로 바라보며 땔감 모으는 일을 돕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괜히 괘씸하기 짝이 없게도,
“저는 손 안 댄 거예요. 아시겠죠?”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 땔감으로 쓸 만한 것들이 바닥났을 때 즈음, 내 데스크와 그 주변부는 이미 갖은 쓰레기
들로 가득했다.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김은 내가 라이터를 꺼내 들은 것을 보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듯 조용히 문밖을 나
섰다.
“아무렴 형 마음대로 하고 차로 와요. 차 어딨는지 아시죠?”
“알지, 알아. 잔소리 말고 차에 시동이나 걸어 놔. 불 피워 놓고 바로 뛰쳐나가게.”
김은 뭐라 중얼거리며 나갔지만, 발음이 뭉개져 들리지 않았다. 그가 나가자 사무실에 정적이 찾
아왔다. 덜덜거리는 소리뿐, 바람일랑 제대로 나지 않는 선풍기만이 침묵에 바삐 대항할 뿐이다. 이
제 끝이로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나는 조금 뒤면 한 줌 재로 돌아가 버릴 이 공간에 잠시 묵념을 하고서 라이터의 부싯돌을 비볐
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무리 비벼도 불이 나오지 않았다.
액땜 하나 제대로 하는군.
나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어제저녁에 쓰고 버려놓았던 가스버너를 찾아 불을 내었다. 아
직 가스가 남아있었다. 나는 땔감에서 성냥 역할을 할 종이 하나를 골라 거기에 불을 붙였다. 그 종
이는 어떤 직장인 중년 남성의 신상과 특이사항이 적힌 서류였다. 충분히 종이에 불이 붙자 나는 내
손에 불꽃이 옮겨붙기 전에 서둘러 데스크에 종이를 던지고 가방을 둘러맨 채 건물을 뛰쳐나왔다.
주변이 가로등이나 불 켜진 다른 건물도 없는 완전한 허허벌판인 터에 가뜩이나 새까만 김의 차
를 찾는 데 꽤 애를 먹었다. 내가 그의 차를 찾지 못하고 오래 방황을 하자 김이 클랙슨을 울렸다.
나는 끙, 하며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는 오래 안 씻은 사내들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나는 보란 듯
이 코를 막았다.
“인천 공항으로 가자. 그리고 방향제도 좀 뿌리고.”
차가 출발하자 의자가 흔들리며 불쾌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편하게 앉기 위해 가방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혹시 깜빡한 것은 없나 가방을 뒤졌다. 김은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는 주
변을 뒤적이며 방향제를 찾았다. 차는 헤드라이트에 의지한 채 깜깜한 칠흑을 달리고 있었다. 오랜
만에 오래 달린 데다가 무얼 먹은 지도 오래된 탓에 당이라도 떨어졌는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
140
속을 차근차근 뒤지던 나는 문득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잠시만 있어 봐. 잠시만, 여권은 네가 챙겼지?”
나는 속으로 간절히 김이 네, 하고 대답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멍청하기 짝이 없는 김은 눈
을 휘둥그레 뜨며,
“누구 여권이요?”
“너랑 나 말고 누구 더 있나?”
“제 여권은 있어요.”
“네 여권 말고, 내 여권은?”
“형 여권이요? 형이 챙긴 거 아니에요?”
“내가 너한테 맡겨 놨었잖아. 옛날에 말이야, 몰라?”
잠깐의 정적. 김은 입도 벙긋하지 않고 가만히 두 손으로 핸들을 쥐고만 있었다. 차는 무작정 달
렸다. 어찌나 빠르던지, 김이 흘깃 차창을 보지만 않았어도 곧바로 앞에 나타난 가로등에 차가 두
동강 날 뻔하였다. 급히 핸들을 돌리다가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난 김은 또다시 눈을 올빼미
처럼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옛날에, 뭐라고요?”
“썩을. 차 세워, 당장!”
나는 김의 대답을 듣기도, 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문을 열고 뛰쳐 내렸다. 그 바람에 땅바닥에 네
댓 번을 굴렀다. 몸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니 바깥은 차 안에서 본 것보다 훨씬 어두웠다. 나는
동물적인 귀소본능에 의지해 건물을 향해 냅다 내달렸다.
“여기 가만히 서 있어, 알겠어?”
나는 그새 멀리 떨어진 김에게 당부하며 뻣뻣하게 굳은 두 다리를 힘껏 움직였다. 다리가 좀처럼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으나 나는 그간 비축해둔 지방을 열렬히 태우며 그 낡은 폐건물이 벌써
불길에 뒤집어 싸여 있지 않기를 하늘에 간절히 빌며 달렸다.
얼마 있지 않아 매캐한 연기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달리자 희미하게 건물의 윤곽이
드러났고, 더 달려가 보니 다행히도 건물은 아직 건재했다.
하늘이 날 돕는다.
나는 나의 소망을 들어준 하늘에 감사를 표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사무실은 4층에 있었기에 떨리
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잠시 숨을 고르고 혹 불길이 밑에 층까지 번지지는 않았을까 신중히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아직 사무실 바깥까지는 불길이 번지지 않은 듯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은 불길이 매섭게 이글거렸다. 새빨간 불길에 가려 사무실 안 사물들이 흔
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용광로의 모습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불길에 뛰어드는 소
방대원의 심정으로 옷 소매로 입과 코를 막은 채 살금살금 기어들어 갔다.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검붉은 연기는 물론이고 작열하는 열기로 인해 걸음 한 번 딛기 쉽지 않았
다. 그러나 좁은 사무실의 특성상 몇 걸음 정도를 가니 굳게 닫힌 김의 사무실 문이 드러났다. 문손
잡이가 불판같이 뜨끈뜨끈했다. 나는 잠시 숨을 참으며 코를 막았던 옷소매로 손을 감싸고 손잡이
를 돌렸다.
김의 사무실까지는 아직 불길이 도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뜨겁고 울렁이는 바깥과는 다르게 이
곳은 시원했고 사무실의 하얀 벽지가 제빛을 발하고 있었다.
141
나는 문을 닫고 곧장 김의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사생활을 철저히 지키던 김에게는 안됐지
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여권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문득 김에게
원망이 들었다. 김이 내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않았어도 이 고생은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서였
다. 멍청하게 그에게 여권을 맡긴 나 자신에게도 원망이 들었다.
나는 그런 감정은 공항에나 가서 맘껏 음미하기로 하고 여권을 주머니에 넣으며 문을 열었다. 그
러나 어쩐 일인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문이 밖에서 잠겼나 싶어 나는 문을 힘껏 발로 찰 준비를 했
다.
하나와 둘과 셋을 세고 묵직한 기합을 넣으며 내가 막 문 앞에 발을 들이밀려는 순간, 눈앞에 어
떤 빛이 번쩍하였다. 그와 동시에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느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게 밀려들
었다. 공기가 위로 솟구쳐 올랐고 그 찰나의 무중력은 내 심신을 종이 쪼가리처럼 구길 기세로 나를
압박해왔다.
이 빌어먹을 것이 이제는 나마저 집어삼키려 하는구나!
이에 질세라 나는 최후의 일 초라도 그 불가항력을 똑똑히 목격할 양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
나 이 무자비한 힘은 결코 마지막까지도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
을 때부터 가진 제 알몸을 무엇이 그리도 부끄러운지 꽁꽁 숨긴 채 불꽃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것
이다.
나는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그것이 나의 의지부터 차례로 나를 창백한 재로 만들어간 것이었다.
“이거 원래 방화사건이었습니까?”
사건 현장에 다다른 강 순경이 난처한 기색으로 함께 도착한 서 형사에게 물었다. 그는 매캐한 연
기가 불쾌하여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글쎄다.”
지은 지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이 기세 좋게 타오르며 해 떨어진 공터를 밝혀주었다. 집채만
한 불꽃 주위로 크고 작은 하루살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뒤이어 도착한 경찰들은 차창과 헤
드라이트에 매섭게 덤벼드는 나방들 때문에 멀리서부터 와이퍼를 작동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날벌
레 흔적으로 얼룩진 차에서 내려 시뻘겋게 불타는 현장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난처
한 기색으로 물었다.
“이거 원래 방화사건이었습니까?”
서 형사는 팔짱을 꼈다. 여유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무언가에 골몰했다는 의미에서였다. 또한, 평
정심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불꽃의 열기로 인해 그는 보이지 않게 비 내리듯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다.”
서 형사가 땀으로 미끈거리는 뒷목을 주무르며 말했다. 시원한 맥주와 차가운 물로 하는 샤워가
간절한 그였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긴급통화 기능을 향해 열
심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런데 이거 하나만은 알겠군.”
142
“뭐 말입니까?”
강 순경이 휘날리는 재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경찰대원들은 알아서 각자 차량으로 돌아가 대
기하고 있었다. 서 형사의 회색 스타렉스를 뒤이은 차들에서 새까만 눈동자들이 일사불란하게 깜빡
였다, 서 형사는 휴대전화로 날아든 날벌레를 땅바닥으로 튕겨내고는 키패드를 가볍게 두들겨 숫자
119를 입력했다.
“이곳에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소방대원들이라는 거야.”
그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신음이 몇 초 흐르더니 곧 소방대원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이
름과 직함을 댔다. 그리고 그는 임무를 다했다는 듯 강 순경과 스타렉스로 돌아가 앉았다. 미동 않
는 차량 주변을 날벌레들이 둘러싸 그들은 와이퍼를 다시 작동시켜야만 했다. 차창을 좌우로 쓸어
내리는 와이퍼 사이로 그칠 줄 모르는 불꽃이 하늘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143
소설 심사평
「적색 인간」, 「실험체 555」, 「히카루(빛난다)」, 「201호」는 최근 드라마나 영화, 심지어 유튜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우고 있는 스릴러와 호러, 판타지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소설이다. 우
선 「적색 인간」은 범죄적 충동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결국 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적색 인간’이 되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는 서사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나가 삶의 궤도를 이탈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 다소 설득력이 없고 ‘폐가에서 주운 라이터’에 ‘나’의 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조종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서사적 설명이 부족하다. 그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주인공의 몰락에 몰입하거나
공감하기 어렵다. 이렇듯 소설의 주인공이 도덕적 결함을 갖춘 악당으로 설정해 이야기를 끌고 갈
경우, 악당인 주인공이 처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메인이 되거나 아니면 악당이 지
금까지는 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로서 매력을 갖추거나 해야 하는데 이 소설 속 악당은 미
스터리한 힘에 지배받는 수동적 존재로만 그려져 그 매력이 반감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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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빛난다)」는 주인공 ‘히카루’가 유명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이 죽은 사고 매물에 거주
하며 ‘귀신이 사는 집에 사는 모델’ 컨셉으로 브이로그를 찍어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주인집 남자의
스토킹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스로를 위
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셀피 관종’의 삶을 통해 sns 속 인플루언서가 처한 딜
레마적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
만 너무 앞서 다른 소설적 요소들에 대한 고려나 이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장 또한 몰입을 방해할 만큼 어색한 비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컨대 “보내져 오는 메시지들도 점
점 많아져 다 확인해주지 못할 정도다.”와 같은 문장이 그렇다. 게다가 주인공이 엄마나 매니저 등
과 나누는 대화 또한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것으로 채워져 서사적 진행을 방해할 정도다.
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 심지어 구두점까지도 때로는 소설적 현실을 완성하기 위한 필요충분조
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실험체 555」는 응모작들 중 가장 가독성 있는 소설로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설
이다. 특히 이 소설은 실험 주체가 실험 대상, 즉 쥐라는 피실험체가 되는 경험을 통해 인간이 다른
비인간 존재와 맺는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퀸의 「보헤미안 랩소
디」가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좀더 풍부한 독서 경험을 유도한다. 문제는 이 소설의 메인 서사를 감
싸는 액자 바깥의 이야기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심리학과 학생 한 모 양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같았던 쥐’가 결국 평범한 쥐로 돌아가 사망하게 된다는 결말을 제시한 후 이에 대한 작가적 해
석을 덧붙인다. 그것은 바로 높은 지능의 유기체도 괘락 중추 자극에 중독되면 지성을 잃을 수도 있
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주제의식의 등장이 다소 갑작스럽고 메인 서사의 스토리와는 다소 동
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의 주제가 인간과 쥐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탈인간중심 서사인지, 아니면 도파민 중독에 빠진 현대인들에 대한 경고인지 모호해져버
렸다. 하나의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작가만의 에너지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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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엄마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고 본래적 자기를 찾아 떠난 상황과 어린 두 딸을 포기한 채 미국에
서 재혼한 엄마가 10년만에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돌보지 못한 딸의 죽음에 오열하는 상황은
소설 속에서 서로 충돌할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아가 이러한 이야기를 통
해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아 찾기인지, 가정폭력에 대한 고발인지, 애틋한 모
정인지, 성숙한 딸의 엄마 사랑인지 모호하다.
「노을이 진다」와 「불꽃」은 둘 다 문제적 상황을 제시하고 그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
(없)는가라는 기본적인 서사문법에 충실한 소설이다. 특히 단편소설은 분량의 제한을 받는다는 그 단
소적(短小的) 특성상 사건이나 상황, 주제의식 등의 단일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 두 편의 소설은 바
로 이러한 단편소설 양식의 기본에 충실한 소설이다. 「노을이 진다」는 치매를 앓는 엄마와 그런 엄마
를 돌보는 딸의 상황을 다소 감상적인 톤으로 서술하는 소설이다. 치매를 앓는 엄마를 돌보면서도 자
신의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딸의 초조한 상황과 치매 때문에 점점 변해가는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안
타까운 마음이 자연스러운 서사적 흐름 속에서 잘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모녀가 처한 상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어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예컨대 딸과 엄마의 나이라든가, 딸이 처
한 상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취업 준비를 하는지 등등) 등에 대해 흐릿하고 모호
하게 전달되어 이들이 처한 정서적, 현실적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거기에다가 결말 부분의
정서적 점강(漸降)을 위해 동원된 ‘노을이 진다’라는 문장은 어떤 반전이나 환기의 역할도 하지 못한
채 다소 감상적으로 덧붙여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는 아마도 ‘삶의 순간에 전체를 포착한다’고 흔히
얘기되는 소설의 소실점이 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꽃」은 무엇보다 배제라는 단편소설의 미학을 통해 하나의 장면을 소설의 소실점으로 확보하고
자 하는 소설 형식에 대한 고민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특히 단편소설은 삶의 일면을 통해 일시적이나
마 삶 전체를 포착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진 장르다. 그래서 삶의 전체적인 형상을 제시
하기보다는 삶을 축소해 순간에 집중하게 해야 한다. 「불꽃」은 비록 서사적 전개가 다소 매끄럽게 전
개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배제의 양식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소설에는 세 개의
시점이 존재하는데,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을 묶고 연결해주는 것은 바로 보이스피싱 범죄다. 즉 보
이스피싱 상황에 노출된 피해자의 시점에서 시작된 소설은 그 다음 장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 남성
의 시점으로 이어진 뒤 결말 부분에서 화재 현장에 도착한 형사의 시점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인물들 간의 대립과 갈등, 즉 속는 자와 속이는 자 혹은 도망가는 자와 추적하는 자 간의 긴장
은 다급한 도주 과정에서 무리하게 저지른 방화로 인해 조직원 남성이 사망하는 화재 장면에서 갑작
스럽게 종결된다. 그럴 때 일상 속에 흐트러져 있던 감정과 에피소드, 갈등들은 화재 장면이라는 소실
점으로 모여들었다가 종결됨으로써 서사적 완결을 이룬다. 이번 심사에서 「노을이 진다」와 이 작품
을 갖고 끝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불꽃」은 당선작으로 결정한 것은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
민이 가장 치열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장르는 삶의 부분들을 가공하고 편집해서 만든 인
공물이다. 요즘 소설들에는 이러한 장르적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당선작인
「불꽃」은 지금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장르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는 점에
서 귀하다. 당선을 축하한다.
문학평론가 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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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상소감
홍태화(사회과학부 23)
147
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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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심사평
「어떤 기억은 사진보다 영원하다」는 일상적 삶에서 얻은 깨달음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을 지속시키는 것이 순간을 망친다는 깨달음으로 끝맺음하기보다는 그
이상을 서술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건네는 감정과 받는 감정」은 감정의 교류에 대해 지금 서술된
것보다 더 나아간 지점까지 서술되면 좋겠고, 「겁도 없이 난 꿈을 꾸었다.」는 꿈과 현실에 관한 우울
한 토로에서 멈추지 말고 그 이상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회색의 808호에 덧칠하기」는 A와 집
의 대화라는 형식은 신선하지만 상투적 내용으로 귀결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 어린 아이의 노
래」 역시 소년의 성장 과정을 음악적 형식을 차용하여 서술한 점은 신선하지만 형식과 내용이 유기적
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동생에게, 그리고 20,30년 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현재의 ‘나’가
전해주고 싶은 교훈을 너무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읽는 나에게」역시 글과
문학에 대한 꿈을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둘 다 현재의 감정을 넘어서는 사유와 더불어 문학적
서술을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관계 3부작」은 내용에 비해 제목이 과도하고, 내용이 추상적입니다.
문학어는 구체어라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문학평론가 박슬기(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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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33회 서강청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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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재율은 본인이 무너뜨려 놓은 생사의 경계 속에서 생을 반드시 건져내야 하는 임무를
갖게 되는데, 그는 이 임무를 아주 근사하게 해결해 내고 있다. 바로 타자의 경유를 통한 자아의 인
식이다. 마찬가지로 시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그날 밤 꿈속에서 나는
물가에 발을 넣어 보았다
무언가 스치면
「물고기의 마음」 中
옷장 안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나는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축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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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법을 모른 채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면 모두 필연적으로 죽었을 것이다. 즉, 이 행위는 학습
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그저 당연히 우리에게 전제처럼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당연
히 주어져 있는 것은 숨쉬기 이외에도 다양한데, 이 당연한 것들은 시인 특유의 담담한 어조를 통해
여러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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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것처럼 레몬을 생각하면 입안에 침이 고였고, 어떤 처음은 살면서 절대 잊을 수 없다고 생
각했다.” 「레몬과 회개」 中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믿고, 감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정재율 시인이 바라보는 삶에는 특별하
거나 거창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일상은 말 그대로 특별하지 않기에 일상인 것이며, 그렇
기에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다시 죽음과 슬픔으로 돌아와보자.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슬픔이었던 ‘잔
존하는 슬픔’은 시인의 세계 속에서 이제 생과 뒤섞인 사로 나타나며 어떤 방식으로도 소중히 추억
될 삶의 한 조각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사별한 것들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이따금 다시 펼칠 때마다, 시인 내면의 아주 깊숙이 자리한
일기를 몰래 엿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때 내게 찾아오는 슬픔은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니라,
되려 시인의 슬픔을 읽어내며 발생한 부차적 감정이라고 명명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읽어내기’와 ‘이겨내기’는 발음이 유사하고, 타자의 슬픔을 읽어내는 일은 나의 슬픔을 이겨내는 데
에 도움이 되어주곤 했다. 나는 이제 우리에겐 읽어내기에 이겨낼 수 있는 반가운 슬픔들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슬픔이여, 안녕. 나는 이제 슬픔이 아닌 이 생각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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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 (철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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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편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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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심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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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종교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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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울 (커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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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민 (미엔 20)
교지를 이제서야 떠납니다. 교지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아쉬운 걸 보니 진심은 아니
었던 것 같아요. 떠날 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교지가 좋습니다. 교지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저는 서강
대에 지금만큼 애정을 갖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학교에 관심도 없었거든요.
교지 임원을 하면서부터 서강대에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교지를 하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내 영역이 확실했는데, 교지를 하면서 처
음으로 내 영역을 허물고 받은 것보다 더 주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보았습니다. 22년 여름방학 때
한울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뭐 사올 것 있어?”라고 물어보고는 자기 돈으로 제 것을 사주고 생색
도 안 내서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이랑은 n빵이 기본이었는데 한울이는 당연하다는듯
사줬거든요. 지금은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교지 안에서 배운 가장 귀한 것을 따지자면
이것이라고 생각해요. 손익계산에 무뎌진 것. 교지가 아니었다면 정말 배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교지를 하면서 배운 것 또 하나는 “대학은 하고자 하면 모두가 도와준다”입니다. 대학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참 많은데 대학에 처음 들어오면 대학 안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는지 상상하기 어려워요.
교지에서 다양한 것들을 해보면서 대학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그걸 하기 위해 어디에 도움을 요청
해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제가 뭘 해보려고 한다고 연락하면 모두가 환영
하면서 본인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도와주더라고요. 학생들, 교수님들, 교직원분들, 청소노
동자선생님들, 학교 밖 사람들까지 모두가요. 대학생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이걸 교지
에서 배운 덕에 학교 안 다른 곳에서도 할까 말까 하면 일단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 대학에서만큼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뭐든 시도하길 바라요. 얼마 전에 친구가 저에게
교지 임원을 하고 나서부터 많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교지 스터디 마지막 주제로 ‘나를 키운 8할’
이라는 주제를 가져왔는데, 저를 키운 2할은 교지인 것 같습니다.
교지에서 더 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습니다. 교지 안에서 교지 편집위원들과 함께 웃고 이야기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편집장의 게으름 이슈로 많이 연대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
르지만)교지는 언론사입니다. 언론은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퍼뜨리는 곳이므로 더 부지런히 타
인과 함께하러 다녔어야 한다는 미련이 남네요.
교지를 하는 동안 교지 본문에 쓴 것과 같은 고민이 늘 있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컴퓨터공학 복
수전공을 시작했으나 제가 엔지니어의 길을 가는 것이 찝찝했습니다. 적성에 안 맞는 것은 아니었
는데도 엔지니어는 뭔가 제 팔자에 없는 직업 같았어요. 아무래도 교지 탓인 것 같습니다. 교지에서
생각하고 행하던 것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는데 컴퓨터 공부는 오로지 제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노동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실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대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교지실이 너무너무 그리울 거예요. 바
깥에서 성실하던 친구들도 교지에만 들어오면 마법처럼 게을러져서 참 편안하고 느긋해졌는데요
이런 공간을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교지에서 함께했던 친구들, 교지를 스쳐지나간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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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영 (아텍 23)
좋은 각본이 대단한 감독과 훌륭한 배우들에 의해, 또 감미로운 음악까지 더 해져 탄생한 귀중한
작품이라 소개는 하고 싶은데, 내가 과연 잘 담아낼 수 있을까? ‘내가 감히?’라는 생각을 넘치게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쓰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썼습니다. 미숙한 글이지만 후회는 없고, 즐거웠던 것 같
습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서 영화를 수도 없이 봤거든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하기엔 충
분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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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지 (국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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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배 (미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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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 (경영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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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합 고
려
서
강
서
울
아나키즘 대 대 대
학 학 학
소모임 교 교 교
2024.03.16 OT
이후 매주 토요일 오후 진행
사회적 1 아나키즘의 기초 1
국가 없는 사회주의
2 아나키즘의 기초 2
아나키즘 상호부조ㆍ조합주의ㆍ광주항쟁
3 자본주의와 아나키즘
빵의 쟁취ㆍ파리코뮌
개론 4 억압적 체제와 아나키즘
민족주의ㆍ제국주의ㆍ성억압
6 아나키즘 조직론 2
아나키즘적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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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메이데이 집회 참여, 5월 광주 항쟁 기념 광주 순례, 6월
퀴어 퍼레이드 연대, 투쟁 현장 연대 활동 등, 학습을 동반한 실천
주차별 교재 독서 후 참가자 주도 발제 진행
서울 시내(세부 장소 추후 개별 공지)에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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