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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x.doi.org/10.18396/ktsa.2019.1.72.

005

이머시브 연극, 관객의 체험을 확장하기

1. 들어가며
2. 이머시브 공연 사례 보기
1) 써드레일 프로젝트의 <덴 쉬 펠>
2)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
3) 링크트 댄스 씨어터의 <리멤버런스>와 어컴플리스 더 쇼의 <어컴플리
스 더 빌리지>
3. 나오며

국문초록
이머시브 연극이 의미하는 몰입은 기본적으로 공간 속 스토리에 몰입
하기이다. 관객이 자신의 감각을 공간과 배우에게 집중시키면서 이야기
에 몰입하게 되는데, 이때 일어나는 사적인 감각적 체험을 쌓아가면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머시브 연극의 특징이다. 이
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써드레일 프로젝트
(Third Rail Projects)’의 <덴 쉬 펠(Then She Fell)>,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를 재해석한 ‘펀치드렁크(Punchdrunk)’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 오
즈의 마법사 에서 이야기를 가져온 ‘어컴플리스 더 쇼(Accomplice the
Show)’의 <어컴플리스 더 빌리지(Accomplice the Village)>, 미국 역사의 한

* 서울변방연극제 대표 프로그래밍 디렉터


부분을 배경은 삼고 있는 ‘링크트 댄스 씨어터(Linked Dance Theatre)’의
<리멤버런스(Remembrance)>를 관극한 필자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머시브
연극의 어떤 요소가 관객의 체험을 극대화하는지를 다룬다. 특히, 시각
과 청각이라는 원거리 감각이 촉각적인 경험을 유발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주제어: 이머시브 연극, 써드레일 프로젝트, 펀치드렁크, 링크트 댄스 씨어터,


어컴플리스 더 쇼

1. 들어가며

이머시브 연극에 관해 설명을 구하면 대개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


이 관객이 배우를 따라다니면서 공연을 관람하고, 극의 내러티브를 관객
스스로 구성하는 공연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이동식 공연이나
장소특정적 공연과 크게 구분되는 점이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면, 게임
처럼 관객이 미션을 하나씩 수행해가는 형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또한,
국내에서 최근 몇 년간, 이머시브 연극으로 발표된 공연이 몇 개 있었지
만, 아직 적절한 사례가 될법하지는 않다는 말도 덧붙인다.
무엇을 이머시브 연극이라고 하는지 호기심이 가시지 않아 올해 9월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서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이머시브 연극을 올
리는 팀이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단체로 써드레일 프로젝트(Third Rail
Projects)와 펀치드렁크(Punchdrunk)가 있다. 뉴욕에 동행했던 프로듀서 이
희진은 두 단체가 만든 공연 이외의 작품들 목록을 수시로 작성하곤 했
는데, 단체의 특징을 설명할 때, 두 단체에서 나온 팀이라는 말을 자주
언급했다. 원래 팀에서 독립하거나, 병행하는 일이 이곳 뉴욕에서는 흔
한 경우인 것 같았다. 실제로 써드레일 프로젝트의 브루클린 공연 <덴
쉬 펠(Then She Fell)>에서 보았던 배우 레베카 모린(Rebekah Morin)을 다

음 날 브롱크스의 다른 한 공연에서 보기도 했다. 그녀는 2010년부터 써


드레일 프로젝트와 함께 하고 있는 창작자이다. 이머시브 연극을 만드는
창작 집단이 계속 늘어나도 괜찮을 정도로 뉴욕에는 이머시브 연극 시
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장르만 후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를 100번이나 본 관객
도 있다고 하니, 시장 형성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이머스(immerse)는 ‘(액체에) 담그다, 파묻다, 가라앉히다’, ‘(~에) 몰입
시키다, 열중하게 하다’. ‘(~에게) 침례를 베풀다’라는 뜻의 동사다. 이머
시브(immersive) 연극이 무엇인지 우리말로 전달해야 할 경우, 동사의 원
뜻을 헤아려 ‘몰입 연극’이나 ‘실감 연극’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도 있지
만, 원래 의미가 전달되기보다 오히려 혼란을 불러올 것을 우려해 최근
에는 이머시브 연극이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추세다. 용어를 정의하
기조차 마땅치 않은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무엇에, 어떻게 몰입하게
하는가?
우선, 극의 내러티브를 살펴보자. 이 글에서 앞으로 다루게 될, 써드레일
프로젝트의 <덴 쉬 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펀치드렁크의 <슬
립 노 모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어컴플리스 더 쇼(Accomplice
the Show)의 <어컴플리스 더 빌리지(Accomplice the Village)>는 오즈의 마법
사 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객은
극의 전개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
람일지라도 극 전개를 따라갈 수 있다. 링크트 댄스 씨어터(Linked Dance
Theatre)의 <리멤버런스(Remembrance)>는 앞의 세 공연처럼 동화에서 모티브
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1960년대를 전후한 미국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공연이다. 필자는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영화
나 드라마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했던 당시 미국의 이미지를 떠올리
며 극을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머시브 연극은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이야기를 축으로 극이 전개되지
만, 배우가 말하는 대사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필요가 없다. 물론, 모든
집중력을 동원해서 들어야 할 만큼 대사가 많지도 않다. 이미 익숙해서
예측 가능한 극 구조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요소로 존재하는 것은 배
우의 말보다는 오히려 배우의 몸이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장면
과 장면 사이를 연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배우의 움직임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은 스토리 자체라기보다, ‘다음으로
방문할 공간은 어디인가?’, ‘어떤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인가?’이다. 이야기
가 진행되는 공간 한가운데로 이미 들어와 있는 관객은 자신의 위치를
이야기 바깥에 놓을 만큼 심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다. 관조적 자세로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라기보다, 배우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인물로서, 배우의 호흡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그 순간을 경험하고 체험
하는 관객이 된다. 이머시브 연극은 눈으로 보는 공연이 아니라, 몸으로
그 순간을 감각하는 공연이다.
프로시니엄이든 블랙박스이든 극장은 시각과 청각에 의존해서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다. 관람을 위해서 관객이 동원하는 시각과 청각은 원거
리에서만 제대로 작동하는 감각이다. 때문에, 대부분 관객은 무대와 거
리를 두고 관조적인 태도로 공연을 바라본다. 이머시브 연극은 관객이
근거리 감각을 이용할 수 있는 몰입 방법을 탐색한다. 예를 들어, 우리
가 어릴 적, 선생님이 칠판에 분필로 정리한 수업을 듣던 때를 기억해
보자. 그때 우리는 눈으로 내용을 보고, 귀로 분필과 칠판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분필이 미끄러져 칠판과 마찰이 일어나는 불편한
순간을 동시에 보고 듣기도 했다. 이때 우리는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경험
을 했다. 이 순간이 바로, 시각과 청각이라는 원거리 감각이 촉각이라는
근거리 감각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머시브 연극에서 이야기를 체험하
는 방식도 이와 유사하다. 이머시브 연극이 주목받는다는 점은 우리를
둘러싼 미적 경험의 형태가 점차 바뀌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치 AR이나
VR 기술 세상 속에 있는 듯한 감각을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선사하는
것이 이머시브 공연일지도 모른다.

2. 이머시브 공연 사례 보기

앞서 언급한 <덴 쉬 펠>, <슬립 노 머어>, <리멤버런스>, <어컴플리스


더 빌리지>를 통해 이머시브 연극이 제공하는 체험 방식을 좀 더 구체
화 시켜보기로 하겠다.

1) 써드레일 프로젝트의 <덴 쉬 펠>


써드레일 프로젝트는 자신들을 장소특정적 공연, 이머시브 공연, 실험
적인 공연을 만드는 창작자들로 소개한다. 세 명의 예술감독 자크 모리
스(Zach Morris), 탐 피어슨(Tom Pearson), 제니 윌렛(Jennine Willett)이 이끄
는 단체로, 주로 이 세 사람이 연출, 디자인, 극작, 안무를 맡는다. 2000
년에 뉴욕에서 처음 시작했고, 2010년에 <덴 쉬 펠>을 만들어 지금까지
도 상연 중이다. 현재 브루클린에서 올라가고 있는 공연은 2020년 1월
17일까지로 예정되어 있다. 이 공연은 초연부터 지금까지 총 4000번이
넘는 상연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덴 쉬 펠>은 2013년에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Top Ten Shows of 2012”에 이름을 올렸고, 댄스와 퍼포먼스 부문
에서 여러 상을 받았다.
<덴 쉬 펠>의 초연은 브루클린의 오래된 낡은 병원에서 있었다. 이번
에 보게 된 공연은 175년이나 된 교회가 있는 동네의 주택에서 있었다.
실제 동네 사람들이 앉아있는 계단을 지나 현관에서 옛날 의상을 입은
시중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브루클린의 과거가 실제로도 이랬을지도 모
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연극의 관객은 매회 15명으로, 모두가 한자
리에 모이는 것은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뿐이다. 이후 관객은 5명씩 세
그룹으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따라 건물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장면에
따라, 배우가 안내하는 동선에 따라, 관객은 5명이 함께 있다가, 3명, 2명
이 되기도, 혼자서 배우를 마주하기도 한다. 멀리서 보았던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순간도 있었고, 붉은 여왕의 시중을 드는 캐릭터로서, 앨
리스의 말벗으로서, 장면 속에 있기도 했다.
연극이 있던 건물의 실제 규모는 겉에서 보기에는 총 3층짜리 건물이
었지만, 배우를 따라 이동하면서부터는 방향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았다.
앨리스가 토끼굴 속에 빠진 후, 알 수 없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듯이
공간은 예상치 못한 작은 공간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장면이 바뀌는 과
정에서 공간을 이동할 때 관객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동선은 없었다.
중간에 15명의 관객 중 8명 정도가 모이는 규모가 상당히 큰 장면이 있
었다. 붉은 여왕, 하얀 여왕, 자연스럽게 손님 역할을 하게 되는 관객들
까지 모여서 차를 마시는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면 중 하
나다. 아마도 전체 극 운용 계획에는 같은 장면이 몇 차례 반복되기도
하겠지만, 15명의 관객 중 이 장면을 전혀 보지 못한 관객도 있었다. 공
연이 끝나고 나서는 관객들끼리, 배우와 일대일로 만나는 장면이 몇 개
나 있었는지,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일대일
로 만나는 장면을 이곳에서는 ‘히든 장면’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장면
들을 모두 보기 위해서 공연 관람을 계속하게 된다고 했다.
연극은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옛날 병원에 방문하는 콘셉트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모티브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음 날 연출가 피어슨 과
의 회의 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이어 붙인 이유에 관해 물었다. 앨
리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었지만, 초연을 병원에서 올리게 되자, 병
원 이야기 구조를 하나 덧붙인 것이라고 했다. 피어슨은 이야기를 구성
하면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할지 동시에 생각해나간다고 했다. <덴 쉬
펠>의 공간은 비밀이 숨어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관객들은
공간을 이동하며, 배우를 가까이에서 바라본다. 이들은 원전에 있는 이
야기 이외에도 각자가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덧대고 단서
를 흘린다. 관객이 근거리에서 겪게 되는 가장 큰 심리적 경험은 비밀
공유, 호기심, 엿보기 등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2)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


펀치드렁크도 써드레일 프로젝트처럼 2000년에 시작한 단체다. 영국에
근거지를 두고 있고, 현재 세계 곳곳에서 <슬립 노 모어>를 올릴 수 있
는 여러 장소를 개척 중이다. 펠릭스 바렛(Felix Barrett)과 맥신 도일
(Maxine Doyle)이 공동연출을 맡고 있는 단체로, 고전 텍스트와 피지컬
퍼포먼스의 혼합, 뛰어난 공간 연출과 예기치 못한 공간 선정 등으로 정
평이 나 있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하는 <슬립 노 모어>는 2003년에
런던의 비포이(Beafoy) 빌딩에서 초연을 올린 후, 2010년 미국으로 건너
와 보스턴 근교 브루클라인에 있는 올드 링컨 스쿨(Old Lincoln School)에
서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뉴욕 맨하탄 브로드웨이 근처에 가
상 공간 매키트릭 호텔(The Mckittrick Hotel)을 세우고 장기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 인터넷에서 <슬립 노 모어>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검색을 해
본다면, ‘mckittrickhotel.com’이라는 주소를 찾을 수 있다. 호텔 홈페이지에
는 ‘Sleep No More’라는 카테고리 이외에도 ‘The Club Bar’와 ‘Manderley
Bar’가 있다. 보통 호텔이 운영되는 것과 똑같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음료도 사서 마실 수 있고, 종종 가수가 공
연하는 쇼도 열린다. <슬립 노 모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관객은
실제 호텔을 방문한 사람의 일부가 된다.
건물에는 큰 홀을 포함해 총 90개가 넘는 실내 공간이 있다. 연극을
보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주요 장면을 멀리서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보고 싶은 관객은 중앙 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층에서 한 곳을 점하고
천천히 움직이면서 관람할 수 있다. ‘히든 장면’ 속에서 배우와 일대일로
만나는 순간을 꼭 경험해 보고 싶은 관객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빠릿빠
릿하게 배우를 쫓아다녀야 한다. 혹시, 배우를 쫓다 놓칠지라도 다른 배
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거나, 본인이 스스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슬립 노 모어>는 관객에 따라서 보기 방식이 무한한 연극이
다. 원본 희곡이라는 설정된 상황이 이미 있지만, 연극을 보기 위해서는
관객 스스로가 능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체험 그
자체는 전체 극 구성을 떠나서 관객 자신만의 내러티브로 구축된다. 이
머시브 연극의 매체적 특징은 관객의 적극적인 수행에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배우를 따라다니기보다, 한 공간에 오래 머물며 공간이
뿜어내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배우의 의상뿐만
아니라, 작은 소품부터 대도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미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마녀들이 처음 맥베스와 만났을 것 같은 황량한 공간을 지
나던 순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그 장면 자체는 놓쳤지만, 황량함이
감도는 그 공간을 방문하는 순간에 이곳이 마녀의 공간임을 직감했다.
<덴 쉬 펠>의 공간이 건물 전체의 깊이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공간들이 연속된 미로 같은 곳이었다면, <슬립 노 모어>의 공간은 이야
기가 발생하는 바로 그 장소의 폭과 너비의 끝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
로 뻗어 나간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곳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숭고함이라
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이런 분위기를
경험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머시브 연극만의 특징이다.

3) 링크트 댄스 씨어터의 <리멤버런스>와 어컴플리스 더 쇼의 <어컴


플리스 더 빌리지>
<덴 쉬 펠>과 <슬립 노 모어>가 공간 이미지를 촉각적인 감각으로 바
꿔서 경험하게 해주었던 공연인 것에 반해서 <리멤버런스>와 <어컴플리
스 더 빌리지>는 장소특정적인 맥락이 더 강조된 공연이었다.
링크트 댄스 씨어터의 <리멤버런스>를 소개하는 안내 문구에는 ‘이머
시브 연극, 장소특정적 공연, 무용’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공연을 보
자면, 부분적으로 장르적 특징들을 모두 취하고 있다. <리멤버런스>는
맨하탄 옆에 있는 작은 섬인 가버너스 아일랜드(Governor’s Island)에서 선
보였다. 영국 식민지 통치 시절에 영국에서 파견된 주지사가 거주했던
곳으로, 어릴 적 미국 영화에서 보던 오래된 집들이 아직도 여러 채 남
아있어 문화유산 같은 느낌을 준다. 현재 이곳은 5월부터 9월까지 주말

동안에만 대중들에게 개방된다. 연극을 보기 위해 한 집을 방문했다. 관


객이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하는 콘셉트이다. 집안에
들어온 모든 관객이 할머니의 지인이 돼서 서로 안부를 묻고 옛이야기
를 나누고 단체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관객의 방문부터 사진을 찍는 설
정까지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사진을 찍는 위치뿐
이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린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상태를 관객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되면, 이후 2층에서 2
부에 해당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관객들은 집 곳곳에 있는 여러 개의 방
에서 할머니의 파편화된 과거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긴 대사는 없지
만, 놓여있는 대도구, 소도구, 의상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할머니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가버너스 아일랜드 자체를 극의 배
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장소특정적 연극의 측면을, 할머니의 기억의
파편을 찾기 위해 관객이 직접 공간을 탐색하고 상황에 빠져든다는 점
에서 이머시브 연극의 특징을, 장면과 장면 사이를 할머니와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상징하는 배우 두 명의 움직임으로 채워 넣고 있는 점에서
무용 공연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는 공연이다.
어컴플리스 더 쇼는 뉴욕에서 오랫동안 이머시브 작업을 진행하고 있
는 단체다. 이머시브라고 하지만 링크트 댄스 씨어터처럼 장소특정적인
요소 또한 있는 작업이다. <어컴플리스 더 빌리지>는 <오즈의 마법사>를
모티브로 삼고서, 도로시가 여러 장소를 거쳐 집을 찾아가듯이 주변 공
원과 상점을 지나면서 미션을 하나씩 풀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8명
정도의 관객이 서점 앞에서 배우를 기다리는 것으로 공연이 시작된다.
잃어버린 강아지 토토를 찾아 헤매고 있는 배우를 만나고 그에게서 문
제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는 가방을 받는다. 단서를 찾아서 이동하
다 보면, 커피숍, 체스 두는 가게, 어느 주택가 등 뉴욕의 한 동네를 누
비고 다니게 된다. 마지막 장소는 이 공연을 만든 연출가가 운영하는 카
페이다. 그곳에서 토토를 납치했던 사람과 도로시를 만나게 되는 구조로
공연이 진행된다.
연출가는 이곳에서 15년 넘게 이 연극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공연의
구조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예전에는 지역의 다양한 이민자 커뮤
니티들과 더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이 연극은 ‘이머시브, 산책,
모험’ 연극이라는 여러 수식어로 설명이 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경우,
모험보다는 산책에 초점을 맞추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지역을 관찰
할 수 있었더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 모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
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자신과 장소의 위치를 계속해서 가늠해봐야 하는
장소특정적 요소가 더 많았더라면 뉴욕 한 동네의 구석구석을 좀 더 나
의 것으로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3. 나오며

자본주의의 심장으로 상징되는 뉴욕에서,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이


머시브 연극을 7개 정도를 보고 나니, ‘이 장르의 연극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어야만 만들 수 있
는 장르라는 상업적인 차원으로만 놓고 생각하기에는, 또 창작자들이 만
들어놓은 탐색 과정을 관객이 그저 수동적으로 따라가도록 루트를 만들
어 놓았다라고만 생각하기에는, 해소되지 못하는 지점들이 있다. 관객으
로서,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미적인 방식으로 공간을 체험할 수 있었
다는 점이 다른 문젯거리들을 사소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도 했다. 5G를
상용화할 것인가가 화두인 현실에서, 예술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경험할
것인지를 관객 스스로가 찾고자 하는 욕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작품에서 숭고미를 찾고, 아우라를 원하고, 푼
크툼의 순간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은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장 상업적인 도시에서 가장 상업적인 공연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참고 공연

<Then She Fell>(Third Rail Projects, The Kingsland Ward-195 Maujer Street,
Brooklyn, 2019.09.05.)
<Remenbrance>(Linked Dance Theatre, Governor’s Island, 2019.09.07.)
<Accomplice the Village>(Accomplice the Show, 그리니치 지역 일대, 2019.09.08.)
<Sleep No More>(Punchdrunk, The McKittrick Hotel-530 West 27th Street, New York,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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