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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미학 9주차 과제 농경제사회학부 2019-14993 고태영

‘Walter Benjamin-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11~15장 요약문

- 영화관에 입장하여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 그들은 무슨 태도로 영화를 바라볼 것인가?

11장에서 발터 벤야민은 영화라는 매체의 고유한 성질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먼저 연극과 영


화의 대비를 취하는데, 연극의 무대는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반면에 영화는 그러한 장소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후속작업인 편집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상영이 되고, 촬
영에 있어서도 수많은 기계 장치가 투입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연극만이 아니라 회화와 영화를 대비하면서 이에 대한 설명을 구체화하는데, 이때 화가(회
화)와 카메라맨(영화)의 관계를 마법사와 외과의사의 관계로 비유한다. 마법사는 환자와 자연스러
운 거리를 유지하지만, 외과의사는 직접적으로 환자의 내부에 들어가면서 병을 치유한다고 말한
다. 이는 화가가 대상과 거리를 유지한 채 작업을 하는 반면, 카메라맨은 직접 대상의 조직 안으
로 깊숙히 들어가서 실재를 묘사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벤야민은 영화가 기계 장치의 집중
적인 투입으로 인한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어서 12장에서 벤야민은 예술 작품을 접하는 대중의 태도에 관한 논의로 논점을 옮긴다. 이때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이 반동적 태도와 진보적 태도이다. 진보적 태도는 작품을 접함에 있어서
감상적 태도와 비평적 태도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는 영화 감상에서 관중은 진보적
태도를 취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집단 감상의 성격을 지니는 영화 감상의 특징으로 인한 것이라
고 말한다. 그는 다시 한번 회화를 언급하는데, 영화의 감상 방식과 달리 회화는 집단이 동시에
수용하기 어려운 매체라는 점을 언급하며, 만약 회화가 집단 감상의 꿈을 꾼다면 매체의 전통적
인 감상 방식과 갈등을 겪으며 관객은 여전히 전통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13장은 영화의 표현 방식에 대한 특징에 대해 논한다. 여기서 비유 대상으로 언급되는 것은 프
로이트의 심리학이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도입된 이후, 사소한 일상 대화조차 분석을 통해 심층
적인 전망을 열어볼 수 있게 된 것처럼, 영화가 도입되면서 인간은 시각적인 무의식 상태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벤야민은 말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클로즈업과 같은 기법으로, 현실
의 지각 능력으로 계시할 수 없는 것들을 계시할 수 있게 되었고, 고속촬영을 통해 운동의 동인
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등장으로 본래는 분리된 상태에 놓여있던 사진의
예술적 가치와 과학적 이용 가치가 동일하게 인식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 것이다.
14장에서 벤야민은 다다이즘을 언급하며 영화가 도래하기 이전에 영화를 통해서 완전한 충족을
이룰 수 있는 수요를 창출하고자 하는 과제가 예술에 있었으며, 그렇게 나타난 것이 다다이즘이
라고 말한다. 다다이스트들은 그렇게 유혹적인 시각적 환영이나 솔깃한 청각적 현상을 추구하지
않으며, 촉각적 성질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비이용가치에 무게를 두며 격렬한 오락을
보증하는 시위를 통해 하나의 폭탄이 되어 대중들에게 돌진하게 되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
은 영화는 자신의 기술적 구조에 힘입어, 다다이스트들이 보여준 물리적 충격을 감싸고 있던 도
덕적인 충격이라는 포장을 벗겨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15장에서 벤야민은 논의의 초점을 다시 한번 대중에 맞춘다. 그는 대중은 오락을 추구하
매체 미학 9주차 과제 농경제사회학부 2019-14993 고태영

고 예술은 관객으로부터 집중을 요구하지만, 산만한 관객은 예술 작품이 자기 편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말한다. 영화 이전에 대표적으로 이러한 대중의 욕구에 부합했던 양식이 바로 건축물이라
고 그는 덧붙인다. 많은 예술형식들이 등장하고 소멸했지만, 건축물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
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는 건축물의 촉각적 측면은 시각적 측면에 있는 관조에 해당하는 것에 대
립되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촉각적 수용은 주의집중방식이 아니라 익
숙함의 방식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술 복제 시대와 함께 찾아온 인간의 지각 구조의 변화도
더 이상 명상에 의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며, 이는 촉각적 수용의 주도에 따라서 익숙함을 통
해 점차 극복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벤야민은 오락에 빠진 사람도 익숙해질 수 있으며, 하나의 습관의 형태로 오락을 하면서 어떤
과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지각의 새로운 과제는 예술이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락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다. 개인들은 이러한 과제를 회피하지만,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영화만이 이러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영화는 관객이 비평적 태도를 갖게
하는 동시에, 그것이 은밀하게 이루어지게 한다는 점에서 제의적 가치를 밀어낸다고 말한다. 이렇
게 그는 관객을 시험관으로 여기지만, 주의가 산만한 시험관으로 상정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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