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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논문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미개념에 대한 연구

The study of Arthur Danto's concept of beauty

김 언 정

한양대학교 대학원

2022년 2월
박사학위논문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미개념에 대한 연구

The study of Arthur Danto's concept of beauty

지도교수 이 현 복

이 논문을 철학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합니다.

2022년 2월

한양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김 언 정
차 례

국문요지

Ⅰ. 서론 ..................................................................................................... 1

Ⅱ. 단토의 예술철학 .................................................................................. 9


1. 철학과 예술의 관계 ........................................................................... 11
2. 단토의 예술 정의 .............................................................................. 18
3. 예술계와 예술의 종말 ....................................................................... 27
1) 예술계 ............................................................................................. 27
2) 예술의 종말과 다원주의 .................................................................. 37

Ⅲ. 단토의 예술과 미의 개념 .................................................................... 45


1. 예술과 미에 대한 정의의 변화 .......................................................... 47
1) 단토 예술정의의 단초들 .................................................................. 47
2)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 .................................................................... 60
3) 미의 학대 ......................................................................................... 77
2. 미의 구분 ........................................................................................... 87
1) 미의 세 영역 ................................................................................... 87
2) 내재미 ............................................................................................. 97
3) 미와 숭고 ........................................................................................ 109
4) 예술의 변화시키는 힘 ..................................................................... 116
5) 굴절인자로서의 미 .......................................................................... 123

Ⅳ. 단토의 제3영역의 미 ........................................................................... 134


1. 미화 ................................................................................................... 135
2. 제3영역의 미 ..................................................................................... 144

- i -
Ⅴ. 결론 .................................................................................................... 158

참고문헌 ................................................................................................... 161

Abstract ................................................................................................. 169

- ii -
국문요지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의 미개념에 대한 연구

본 논문의 목적은 미의 가치연구를 통해 행동 미학의 구조를 밝히고 미의


역할을 명료히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예술작품의 미적 특질과 일상적
삶의 미적 태도에 나타나는 미의 역할을 찾고 행동의 미학을 제시한 아서 단
토의 미개념을 검토한다. 미개념에 관한 단토의 핵심 주장은 두 가지이다. 첫
째, 미가 예술작품의 의미에 내재하는 경우 예술적 탁월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둘째, 미는 삶의 양식이자 상징체계로서의 문화가 지닌 광범위한 영역 속에서
논의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이다. 단토의 미개념은 다원화된 현대예술과 대중
문화를 해석하고 향후를 전망하는 데 기여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내재미와 제3영역의 미라는 두 가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미 안
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논증한다.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이후 예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미가 다시 주목되어야 하
는 이유를 제시한다. 또한 미가 일상적 행위에서 행동의 미학이 되는 구조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먼저 논의의 출발점은 오늘날의 미술관이 사회·정치적 변화에 따라 미적으
로 재현한 작품에 무관심해지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일과 의미의 구현을
주된 예술 제작 방식으로 채택한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관람객의 기대를 충족
시키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찾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데 있다.
미는 예술작품 수용자로부터 변화를 이끌어내고 일상적인 행위의 미적 태도에
영향을 준다. 필자는 단토가 화용론적 특질로 논증한 ‘미의 변화시키는 힘’이
이러한 미의 기능을 밝힌 것으로 간주하고 그 논의의 타당성을 고찰한다.
단토는 예술철학 전반기에 예술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일에 주력하
던 것에서 나아가, 후반기 미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미가 예술과 삶에서 변화
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논구한다. 단토의 미학적 성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위예술가들이 예술에서 미를 학대한 것이 사회·정치적 입장에서 비롯
된 일시적인 현상임을 논증하여 현대예술에서 미미해진 미의 입지를 다시 확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이 미를 목표로 해온 오랜 관행적 사고가 미에

- iii -
대한 혼란한 인식을 형성하였을 뿐 미는 예술보다 넓은 범주에 속하며 진, 선
과 같은 보편적 가치라는 점이다. 예술에서의 미는 다양한 미적 특질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미를 예술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전위예술가들이 예술에서
미를 배제하게 만든다. 다음으로는, 단토가 미의 종류를 구분하여 자연미와 예
술미의 특성을 비교적 명료히 하고 예술미의 정신적 측면을 설명하는 논리적
구조를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미의 심미적 특질을 부각시키
면서도 예술미의 의미론적 특질을 이것과 분리한다. 그리고 심미적 미가 예술
작품의 의미를 통해 드러나는 내재미를 제시하여 예술에서 미의 자리를 다시
금 확보한다. 마지막으로는 전통적으로 주요하게 논의되어온 자연미나 예술미
와는 달리, 그 실용적 용도로 인해 가볍게 다루어진 미화를 재조명한 것이다.
그는 ‘제3영역의 미(Third Realm Beauty)’라는 용어로 미화를 문화연구의 관
점에서 재해석하여 예술의 종말 이후의 다원화된 시대를 설명하는 미개념을
제시한다. 필자는 단토가 내재미와 제3영역의 미를 예술과 일상에서 미의 기
능을 설명하는 두 개의 축으로 삼으며, 전통적으로 상존해온 화용론으로 미의
역할을 새롭게 구축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제시한 미개념은 예술의 탁월
성과 가치 있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핵심적 요소이자 변화의 동인이라고 간주
한다. 단토가 재차 강조하였듯이 미는 진과 선처럼 보편성을 지닌 중요한 미
학적 요소이다. 이러한 점은, 단토의 미개념이 예술철학적 논의에 비해 대중문
화나 일상의 삶과 관련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
혹은 이론을 추가적으로 연구해야하는 당위성을 갖는다.
미는 인간이 경험하는 의식에 변화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 이유
는 인간이 감정적인 존재이므로 마음을 움직이는 미적 특질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미가 미적 특질 가운데 무엇보다 강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의식의 변화 및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예술에서 분리된 미의 보편성이 일상과 대중문화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단토의 미개념이 미의 역동성에 주목하고 행동
미학의 윤리적 측면을 조명한다고 생각한다. 미의 변화시키는 힘은 인간이 다
양한 의식적 경험을 추구하면서도 자율성을 지닌 존재이기에 가능하다. 미적
의식은 사람들의 개성과 공동체 정신을 대표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가치를 나
타낼 수 있다. 필자는 미가 예술과 일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가치있는 의식의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 단토 미개념이 어떻게 이를 설명하고 있는지를

- iv -
본 논고를 통해 밝히고자 한다.

주요어 : 미, 미적 특질, 내재미, 제3영역의 미, 굴절인자, 화용론, 행동 미학,


미개념

- v -
Ⅰ. 서론

예술은 실재와 유사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오랜 통념이었다. 미


가 예술을 산출한다고 보는 견해는 18세기 중엽에 완성되었으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 의해 거부된다. 그리고 최근의 예술사조
에서는 미를 통해 예술을 정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 입장
으로 자리 잡았다. 미만이 예술의 특징이 아닐뿐더러 과거처럼 필수불가결한
특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천년 이상 자연세계의 한 속성이었던 미가 근대에
이르러 예술미로 영역을 좁히고, 다시 예술에서도 부차적이게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이후 최근까지의 미술은 다양한 예술실천을 구조화한 이론적 방법론
들1)이 서로 충돌하는 양상을 보였고, ‘어떠한 것도 허용된다.’는 예술 다원주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현대미술의 개방성 속에서 예술가들은 원하는
것을 자의대로 표현하고 작품의 미 혹은 추는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단적으
로, 예술작품이 어떠해야 한다는 특정한 방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2)
예술을 규정하는 하나의 본질이 있다는 전통적 입장은 지워버려야 할 선입견
으로 여겨졌고, ‘예술의 종말’이라는 말이 회자되었다. 그리고 다원주의 시기
의 미술에서는 결코 유효하지 않은 의견이 되었다.
1960년대의 예술에 대한 모든 정의가 그렇듯이 이제 미를 함축하지 않는
미술은 결코 자기모순이 아니며, 오히려 예술에서 미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 창의성을 억압하는 부당한 행위로 여겨진다.3) 20세기 초 만해도 예술 담
론에 당연히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주된 목표이기도 했던 미에 대한 논의는
이른바 진보적 예술과 예술철학의 거센 기세 앞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술은 왜 미에서 멀어졌고 멀어지고자 했는가. 멀어진 미를 그대로

1) 예술작품과 주체의 관계에 주목하는 정신분석학적 접근법, 작품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문맥을 중시


하는 예술사회학적 방법론, 작품의 형성 과정과 의미화 작용처럼 작품의 내재적 구조를 규명하는 형식
주의와 구조주의적 방법론,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며 구조주의를 비판할 목적으로 등장한 후기구조주의
방법론 등을 말한다.
2) Danto, A., After the End of Art: Contemporary Art and the Pale of Histor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p.242 참조. 국역본(이성훈 외 역, 『예술의 종말 이후』, 이성훈 외 옮김, 미
술문화, 2004) 참조.
3) Danto, A., Abuse of Beauty : aesthetics and the concept of art, Paul Carus Lectures; 21st ser.,
Open Court, Illinois, 2003, p.25. 국역본(김한영 역,『미를 욕보이다』, 바다출판사, 2017) 참조.

- 1 -
방치해도 좋을 만큼 지금 여기서의 삶과 예술은 만족스러운가. 그게 아니라,
예술과 삶에서 미를 재고해야 한다면,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그리
고 우리가 미를 다시 요청해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바
로 이러한 문제에 직면, 심도 있게 고찰한 이는 우리 시대의 유력 예술 철학
자이자 비평가인 아서 단토(Arthur C. Danto)일 것이다.
본 논문은 단토가 제시한 미개념을 분석하면서 오늘날 예술이 처한 상황과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이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필자는 이를 위해 다음을
논의할 것이다. 단토가 초기 예술철학에서 예술에 대한 미적 반응이 감각적인
지각의 형태와는 다르다고 보고 예술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정의하는 일에 주
력했던 것과 달리, 후기에서 미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예술과 일상에서 미의
역할을 피력한 대목을 상세히 고찰할 것이다. 오랫동안 예술과 긴밀히 관련된
미가 20세기 이후 예술의 영역에서 배제된 이유를 예술 외적인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찾고, 이에 대한 제반 문제들을 규명한다는 점을 살필 것이다. 그리
고 미가 진이나 선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삶에서 본질적 가치임을 부각시켜,
미의 역할에 관한 유의미한 견해들을 제시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특히
단토가 화용론적 관점에서 인지적이자 감성적 존재인 인간의 심정을 자극하는
미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것들이 과연 그러한지, 그렇다
면 또한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지를 논의할 것이다. 다음으로 단토가 미술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 개념인 ‘제3영역의 미’(The Third Realm Beauty)4)에 초
점을 맞춰 미가 이른바 ‘예술의 종말’ 이후 새로운 예술상황과 일상에서 과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이때 필자는 단토의 미개
념이 보다 명확히 적시된 후기 저서 『미의 학대』(The Abuse of Beauty)5)
에서 제기된 문제를 중심으로, 단토가 예술을 의미론적 관점에서 정의하던 전
반기 태도에 그치지 않고, 미개념으로 나아가게 된 과정과 이유를 선명하게

4) 단토는 “‘제3영역의 미’란 단지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그 결과로 어떤 것이 미를 소유


하게 된 그런 종류의 미, 간단히 말해 미화(beautification)의 영역이다.”라고 쓰고 있으나, 이 영역은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폭넓게 정의되어야 할 용어이다.(Danto, A., The Abuse of Beauty, p.68)
5) 『미의 학대』(The Abuse of Beauty)에서 ‘Abuse’는 남용, 오용, 학대, 욕설 등으로 번역되는데, 국역
은 ‘미를 욕보이다’로, 장민한은 ‘미의 학대’ 또는 ‘미의 남용’으로 번역한다. 단토에 따르면, 이 용어
는 랭보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어 ‘abuse’에 대해 랭보가 사용한 프랑스어
‘injuriée’는 ‘욕설’에 가까우므로, 제목을 직역하면 ‘미에 대한 욕설’이 될 것이다. 필자는 간명하면서
도 원 의미에 가깝다고 보이는 ‘미의 학대’로 옮긴다.(이후, 『미의 학대』로 표기하며, 다른 원서들도
첫 표기 이후 같은 방식을 취한다.)

- 2 -
드러낼 것이다. 또한 그가 예술에서 ‘내재미’와 ‘외재미’를 구분하여 ‘내재미’에
서 미의 철학적인 구조를 발견하는 바 그것이 단토 미개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심개념임을 밝힐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부차적인 미의 종
류로 인식되었던 미화를 ‘제3영역의 미’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부각시킨 의도
를 엿볼 것이다. 또한 그것이 단토가 미개념을 통해 종국에 강조하려는 바를
내포하는 주요개념임을, 그리고 그것은 표준적인 상에 따른 규범미와 도덕적
이상을 담은 내면미가 결합하여 이상미로 드러나는 것임을, 또한 그것은 예술
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 삶으로 확대된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고려해
야하는 개념임을 강조할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미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한 도
구로 소환된 화용론6)이 예술뿐만 아니라 인간의 공유경험 가치 및 도덕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노출할 것이다. 나아가 예술의 틀에서 자유
로워진 미를 인간 삶의 보편적 필연성으로 확대한 단토 주장의 정당성을 검토
할 것이다.
이것을 논제로 삼은 필자의 문제의식은 다음에 있다. 주지하듯이 20세기
중반 이후 예술계가 직면한 예술작품의 지각 및 해석 그리고 비평의 문제에 대한
포스트모던 예술비평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 왔고, 단토의 분석적 예술철학은 이러
한 새로운 국면과 마주친 예술을 나름대로, 아니 적절하게 규정하고자 한 그의 노
력의 일환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의 종말’과 ‘예술계’에 대한 그의 주장은
그 적시성만큼이나 비판도 적지 않게 받았지만, 현대 미술비평에서 단토가 이룬
성과는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철학에서 미에 관한 논의
가 전통으로의 회귀로 보는 경향에 의해 거의 배제되었고, 이로써 예술과 삶에서
기대되는 미의 가치에 대한 논의의 상당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있다는 것 또한 부
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렇지만 단토의 말년 저작들 대부분이 미와 미학7)

6) Danto, A., The Abuse of Beauty, p.ⅹⅴ.


단토의 화용론은 수사학에 속하는 개념으로, 그의 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는 ‘굴절인자’
라는 용어로 화용론을 설명한다. 또한 그는 『미의 학대』 서문에서 의미론적 특질들(예를 들어, 모방)
과 대비된 화용론적 특질에 주목한다. “이 말은 논리실증주의의 전성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찰스 모리
스(Charles Morris)의 기호이론에서 빌린 용어다. 화용론적 속성들이 의도하는 바는 관람자에게 예술
작품이 재현하는 것 앞에서 이런저런 종류의 감정이 들게 하는 것이다. 모리스는...자신이 화용론이라
부르는 것은 이전 시대에는 수사학이라 불렸고, 수사학은 고전시대에 중요한 학과 중 하나였다고 덧붙
인다. 예술작품 속에 묘사된 것을 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의 화용론적 기능이고, 경
외심을 고취하는 것이 숭고의 화용론적 기능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화용론적 속성들은 프레게
(Frege, G.)가 그의 의미론에서 ‘채색(Färbung)’이라 불렀던 것들에 상응한다.”
7)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미(beauty)와 미학(aesthetic), 그리고 미적 특질(the aesthetic quality)에

- 3 -
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이들 저서를 통해, 예술의 종말 이후 지
성적인 것에 치우쳐 감성적인 미학의 측면이 경시되는 미술계의 행보에 대해 그
가 제시한 주장은 결코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리고 동시에, 그 저작들에서
다소 혼란스럽게 제시된 단토의 입장을 명료하게 해명하는 작업은 그의 미 개념
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단토가 의미론적으로 정의한 예
술에 심미적인 미의 형식적 측면을 결합시켜 예술작품 수용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에 주목하고 미의 용도를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미화의 영역에 관한 그
의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제3영역의 미’ 개념이 미와 예술8)에 대한 사유
의 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연구는 두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한편으로, 단토가 그의 전기 주요
저작9)에서 제시한 예술의 정의를 살피면서 후기에 그가 미개념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전향한 것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단토가 예
술과 일상에서 미의 역할을 ‘내재미’와 ‘제3영역의 미’로 설명하면서 화용론인
‘굴절인자(inflectors)’를 주요 도구로 활용한 사실에 주목하고, 미가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하는 단토의 문화적 미학이론과 연관된 그의 후기 저작들을
분석할 것이다. 전기 철학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은 단토가 예술정의 불가론에
맞서 예술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하면서 예술작품의 의미와 해석의 중요성을 제
시한 것에 있다.10) 이러한 인지적 측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후기 미개념에서

대한 용어의 구분을 명료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미에 대해서는 심미적
인 미의 의미로, 미적 특질에 대해서는 미, 추, 숭고, 역겨움 등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의미로, 미학에
대해서는 미와 미적 특질뿐만 아니라 예술을 포함하는 이론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분하여 사용하
고자 한다. 특히 미는 완전한 것과 동일하게 보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미와 구분하여 순전히 심미적
인 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에 한하여 적용하지만 외재적인 시각적 특질 외에도 정신적인 산물 등이 이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포괄하여 사용한다.
8) 본 논문에서 '예술'은 예술의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미술'에 한정된다. '미술'을 영어로 번역할 경우
'painting' 또는 'fine art'로 표기하는데, 동시대미술을 다룰 경우에는 'art'로 번역하는 경우도 적지 않
다. 그러나 단토가 미술을 다루는 예술에 대해 'art'로 표기하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도 미술을 특별히
구분하여 밝힐 필요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는 동시대
미술이 예술장르 간의 해체를 시도하기 때문이며, 예술과 미술의 구분이 어려운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
어 명확한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9) 『일상적인 것의 변용』(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과 『예술의 종말 이후』(After
the End of Art)는 단토가 언급한 자신의 3대 철학서 가운데 두 권이며 예술철학 전반기의 주요저작
이다. 주요한 논문으로는 ‘Artworld’ 가 있다.
10) “나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x가 의미를 구현한다면 x는 미술작품이다’라고 요약되는 두 개의
필요조건을 제시했는데, 이 정의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약함에 있다. 나의 최초의 정의와 나에게 알려
진 60년대에 제시된 다른 모든 정의에서 빠진 것은 미에 대한 언급이다. 그것은 20세기 초반까지만

- 4 -
심미적 미를 부각시키면서도 미를 의미 혹은 내면성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후기 미개념에 대한 분석에서는 특히 미의 특성들을 구분
하고 미적 특질의 가치를 조명한 후기의 두 저서 『미의 학대』11)와 『무엇
이 예술인가』12)를 심층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때 필자는 단토가 미와 미적
특질을 다시 논의하는 과정에서 굴절인자를 통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
한 감정 유도인자로서 ‘미’의 역할을 주목한 것에 주안점을 두고 그가 예술과
삶에서 미의 실질적 기능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또한
단토가 이러한 미개념을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삶의 미학으로 확대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필자는 대중문화가 사람들과의 공통 관계에 의해 촉진되며, 사
람들이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이해하고 행동함으로써 보다
창의적이고 공정한 세계를 계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단토의 제3영역의 미는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상호 관계 맺기를 통
해 드러내는 미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가 미를 행동미학에 관련된
것으로 보는 의도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기 두 저서에서 이와 연관
한 사유의 흐름들을 추출하여 강조함으로써 결론을 명료히 할 것이다.13)
단토의 미개념에 대한 선행연구는 그의 전기 예술철학에 관한 연구들에 비
해 그 수가 현저하게 적은 편이다.14) 기존의 전통적 미술사의 담론으로는 이

해도 개념 분석가들의 첫째 필요조건이었다. 미는 1960년대 예술에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예술철학


에서도 사라졌다.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아름답지는 않다고 할 때, 미는 미술 정
의의 일부가 될 수 없다.”, (Danto, A., The Abuse of Beauty, p.25.)
11) 『미의 학대』에서 단토는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적인 정의를 검토하고,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미
와 미화의 관계를 밝히면서 오늘날 예술에서 미학의 역할에 대해 규정한다. 또한 미가 ‘예술의 종말’
이후에는 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관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철학적 모색을 담아
낸다.
12) Danto, A., What Art is,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13. 국역본(김한영 역, 『무엇이
예술인가』, 은행나무, 2015)을 참조. 장민한은 『무엇이 예술인가』(What Art is)를 예술 정의의 문제
를 다루기 위해 출간한 책으로 분류하고 예술과 미를 다룬 『미의 학대』와 구분한다. 그러나 필자는
『무엇이 예술인가』가 그의 후기 미 개념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미 그리고 미학
과 관련한 주요저서로 간주한다.
13) 필자는 논고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기위해 단토의 해당 저서를 벗어난 논의에 대해서는 가능한 언급
하지 않으려 한다. 단토의 대중문화 개념과 깊게 연관된 퍼스(Charler Sanders Peirce)와 듀이(John
Dewey), 그리고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대한 논의는 단토가 자신의 저서에서 간략하게 언급하
는 것에 그치고 있어 단토의 의도를 추측하는데 머물러야하기 때문이다.
14) 단토의 미 개념에 주목한 해외논문으로는 그의 후기저작 『미의 학대』에 언급된 내용을 집중적으
로 검토한 디아뮈드 코스텔로(Diarmuid Costello)의 연구(‘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Vol.44, No.4, Octover 2004,
pp.424-439)와, ‘제3영역의 미’ 개념을 다룬 레베카 파리나스( Rebecca Lee Farinas)의 연구(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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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할 수 없었던 현대의 예술작품들에 대해 의미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과 그
에 따른 해석의 중요성을 제시한 것이 단토였다. 이 때문에 단토는 현대예술
철학과 미술비평의 영역에서 중요한 학자로 인식되면서 다수의 예술관련 논문
들과 저서들에서 참고되고 인용된다. 그러나 단토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196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전반기 예술철학적 성과에 치우쳐 있어, 후기 철
학에 속하는 미개념에 대한 기존 논의는 미흡한 편이다. 그리고 단토가 비교
적 시기적으로 인접한 1990년대부터 미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전반기에 대한
연구들에 비해 미개념이 충분히 검토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또한 미가
현대미술에서 다시 주목받기에는 진부한 주제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 더더욱 논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아가 미술관들에서는 큐레이
터가 작가를 선정하는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술의 주제가 사회·〮
정치적
상황을 다루어야 한다는 인식 또한 지배적이다. 예술계를 잠식한 이러한 분위
기는 미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작품의 시각적 특성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
게 만들었을 것이다. 단토는 이러한 경향과 풍토의 한가운데서 미를 다시 들
고 나온 것이다. 그는 다원화된 예술의 등장과 미디어의 발전에 따른 대중문
화의 확대를 감지하면서, 오늘날 필요로 하는 미의 가치를 직시하고 그 역할

AESTHETIC AGENCY OF POPULAR CULTURE IN THE WRITINGS OF PIERRE BOURDIEU AND


ARTHUR C. DANTO, University of Plymouth, Ph.D,: Research Art History, 2007)가 있어 두 연구자
의 관점을 고찰하여 본 연구와의 관련성을 논한다. 단토의 미개념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장민한의
‘아서 단토의 미술비평에서 미의 역할’(『미학』, 제78집, 2014)과 ‘단토가 예술을 깨어있는 꿈이라고
정의한 이유는?’(『미학』, 제83권, 2017)이 직접적으로 『미의 학대』와 『무엇이 예술인가』를 중심
으로 미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먼저 코스텔로가 집중적으로 들여다 본 『미의 학대』는 필자의 주요
연구자료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가 이 저서에 대해 제기한 핵심 논의점들을 분석하고 논자의 관점과
비교한다. 코스텔로는 단토의 이 후기의 저작이 기존의 노선과 달리 미로 회귀하는 태도를 가진 것으
로 평가한다. 다음으로 제3영역의 미에 대한 파리나스의 논의는 행동의 미학과, 미와 윤리의 상관성을
다루고 있어 본 논문의 핵심 논지에 대한 중요한 관점들을 제시한다. 파리나스는 단토와 부르디외의
문화적 상호-관계성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있어, 단토의 미개념이 지향한 바에 대한 의미 있는 견해
를 보여준다. 국내 연구자인 장민한은 단토가 ‘서사’와 ‘미적 속성’으로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한
다고 보고, 미술비평에서 미의 역할을 분석하여 미술의 해석에서의 역할과 예술적 탁월성과의 관련성
을 살핀다. 또한 예술이 다양한 수사적 장치를 담고 있는 대상이라고 본 단토의 후기 저작에 주목하
여, 다원적인 예술상황에서도 개별 작품의 수사적 장치의 효과를 통해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그 의의를 규명하였다. 또 다른 연구자로는 단토의 '내재미'를 중점적으로 다룬 유성
애, 단토의 『미의 학대』 이후에 집필되어 유작이 된 『무엇이 예술인가』에 토대를 둔 박배형 등이
있다. 이 외에 대부분의 연구는 여전히 단토의 앞선 두 주요 저서인 『일상적인 것의 변용』과 『예술
의 종말 이후』를 토대로 하고 있어, 단토 자신이 현대 예술철학의 제3권으로 지칭하는 『미의 학대』
에 대한 국내 연구는 미흡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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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숙고함으로써 예술과 일상의 삶을 위한 전망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미의
역할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현재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미는 시대를 초
월한 보편적 진리로 자리한다.
본 논문의 예비적 고찰인 2장에서는 분석철학자로 분류되는 단토 철학의 특
징을 파악하고, 후기 연구에서 대두된 미개념과의 비교분석할 수 있도록 그의
예술철학 전반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반기 두 주요저서인 『일상적인
것의 변용』과 『예술의 종말 이후』를 중심으로 예술의 정의인 ‘구현된 의미’
의 성립 타당성과 단토의 미술사에 대한 역사주의 철학의 특징을 살필 것이
다. 이로써 그의 예술철학의 전체적 구조와 특징을 드러내고 그 철학적 토대
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단토의 ‘예술계’, ‘예술의 종말’
및 ‘다원주의’의 의미를 해명하여 미학연구로 넘어가는 틀을 마련할 것이다. 3
장에서는 본 연구의 주요 논제인 단토의 예술과 미에 대한 사유를 그의 저서
『미의 학대』의 흐름에 따라 분석할 것이다. 먼저, 단토가 예술의 개념을 밝
히기 위해 미가 능욕당하게 된 미술사적 흐름을 정리한 부분과 예술에서 미의
자리를 재정립하기 위해 미를 분류하여 그 특징을 논한 의도를 살필 것이다.
그런 다음, 미를 자연미와 예술미로 구분하고, 다시 예술미를 외재적 미와 내
재적 미로 세분하면서 형식과 내용을 상호 대립 또는 결합시킨 의도를 검토할
것이다. 이어지는 미와 숭고에 대한 논의에서, 예술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주
된 이유가 감정을 움직이기 때문임을 밝히고, 숭고와 함께 미가 의식의 경이
를 위한 가장 강력한 굴절인자임을 강조하면서 미의 용도와 가치를 확인할 것
이다. 4장 1절에서는 단토가 미개념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주목한 ‘미
화’ 개념을 집중적으로 해명한다. 이때 미의 분류상 자연미나 예술미에 비해
실용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미화를 단토가 ‘제3영역
의 미’라는 용어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들여다볼 것이다. 여기서 자
연미와 예술미 사이에서 양쪽의 특성을 배태한 미화가 내적이고 외적인 특성
모두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4장 2절에서는 예술에 대한 철학
적 정의를 모색하는 작업에서 미와 일상적인 삶, 즉 대중문화와의 연관성에
관심을 돌리는 단토의 변화된 태도가 문화 활력에 대한 그의 깨달음에서 비롯
된 것임을 보일 것이다. 이때 당시 단토가 몸담았던 뉴욕의 활기찬 문화적 변
화는 주관적 지배 기반에서 벗어나 타인과 더불어 행동하도록 고무시켰고, 미
적 태도는 문화의 활성화에 기여한 상황에서, 단토가 주목한 가치관이 무엇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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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를 명료히 한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단토의 기존 연구에서 간과되거나 보
다 깊게 논의되지 않은 부분들의 중요성을 재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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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단토의 예술철학

이 장에서는 이후에 논할 단토의 미개념에 대한 명료한 이해에 이르고자,


그 토대가 되는 그의 예술철학적 사유와 주요 개념들을 살펴본다. 단토의 예
술철학은 현대예술에서 어떠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
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는 예술작품이 지각 가능한 매체로
이루어졌음에도 지각만으로는 예술의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예술과
비예술, 즉 예술적 표상과 단순표상을 비교하여 예술로 변용된 표상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20세기 초 전위예술가인 마르
셀 뒤샹(Marcel Duchamp)과 1960년대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예로 들어 ‘지각적 식별불가능성(indiscernibility)’의 개념
을 설명한다. 이로써 ‘어떤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이유가 지
각적 성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에 대한 해석에 있음으로, 예술의
정의가 ‘의미의 구현’임을 논증한다.
단토는 당대의 뛰어난 분석철학자로서 언어의 형식적 명증함과 엄밀함을 추
구하는 철학적 태도를 견지했으나, 후반기에 들어 기존의 태도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미개념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후기에 나타난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려
면, 단토 예술철학의 전반적 구조와 특성을 이해하고 철학적 토대를 검토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반기의 주요저서인 『일상적인 것의 변
용』과 『예술의 종말 이후』를 중심으로 단토의 예술 정의인 ‘구현된 의미’의
성립과 미술사에 대한 역사주의 철학의 특징을 살펴본다.15) 또한 그의 개념들
중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예술계’와 ‘예술의 종말’의 의미를 확인해, 전반기의
철학적 사유가 후기의 미 개념을 논하는 것에 이르러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

15) 단토의 주요 저서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초기의 철학 일반에 관한 저서로는 『분석적 역
사철학』(Analytical philosophy of history,1965), 『분석적 지식철학』(Analytical philosophy of
knowledge, 1968), 『분석적 행위철학』(Analytical philosophy of action, 1973) 등이 있다. 이 저서
에서 그는 ‘표상’개념을 통해 역사와 지식, 행위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단토 자신이 3대 예술철학서로
꼽은 것 중 첫 번째는 예술철학을 다루고 있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1981), 두 번째는 서구 미술의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지를 다룬 『예술의 종말 이후』
(After the End of Art, 1997), 마지막 세 번째는 동시대 미술과 미의 문제를 다룬 『미의 학대』
(The Abuse of Beauty, 2003)이다. 그리고 예술의 의미를 정리하면서 미의 가치에 대해 재고한 단토
의 유작 『무엇이 예술인가』(What Art is, 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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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지를 밝힌다.
미술의 고유한 성질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 이론을 비
판하면서 등장한 다양한 포스터모던 이론들은 오늘날의 미술상황을 새롭게 설
명하려 시도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단토는 과거의 재현적 방식에 따르는 예술
형태와는 달리, 오늘날의 미술이 어떤 형태여도 상관없게 된 것을 다원주의
(多元主義, pluralism)라고 규정했다. 또한 모더니즘의 본질주의를 비판하고
다원화되어가는 미술을 설명할 새로운 예술 정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가
1964년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Gallery)에서 전시되고 있던 워홀의 <브릴로
상자(Brillo Box)>를 보았을 때, 수퍼마켓에 있는 브릴로 상자와 같이 일상적
인 것과 구분할 수 없는 예술작품을 어떻게 규정해야하는가를 두고 고민하였
다. 그 결과, 그는 예술의 정의에 대한 방향을 ‘예술작품’과 ‘비예술적 대응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대한 물음에서 찾고자 했다.16) 단토는 『일상적인 것
의 변용』에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후계자들
이 제기한 예술 정의 불가론에 반대하여 예술이 정의 가능하다고 보았다. 워
홀의 <브릴로 상자>와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가 외관상 똑같은 것처럼, 지각
적으로 식별불가능한 문제를 그의 논의의 중심에 놓고 예술작품만이 지니는
고유한 성질을 제시하려고 했다. 단토의 주장은 첫째, 미술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는 예술의 지위와 동일성이 파악될 수 없고, 해석을 통해
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오늘날의 미술은 더 이상 하나의 목표를 추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것은 미술이 추구할 하나의 진정
한 목표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미술작품을 창작하거나 비평할 필요가 없다
는 다원주의적 관점의 주장이다. 단토는 이 두 가지 주장을 내세우면서 오늘
날 미술에 대한 전망과 새로운 방식의 비평을 찾아내고자 한다.
필자는 단토가 예술을 정의해나가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
는 주요개념들을 통해, 종국엔 예술을 존재론적으로 구조화시키고 컨템포러리
아트의 특징을 밝혀낸다고 생각한다. 즉, 단토에서 예술작품은 항상 어떤 무엇
에 관한 것으로 이해되어야함에 따라 감각적 형식 외에도 형식이 지시하는
‘의미’를 자체 내에 포함하는 존재론적 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의미’는 그의
예술에 대한 정의에서 본질적 부분을 이루는 것이며,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16) 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
p.3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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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범적 구조가 된다.

1. 철학과 예술의 관계

단토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 3장 ‘철학과 예술’에서 예술을 철학적으로


인식할 경우, 정의 가능한 것으로 보고 그 근거에 대해 서술한다. 철학자들은
지속적으로 예술을 다루어 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무엇이 예술인지를 묻
는 예술 자체의 자의식이 예술철학으로 나아가 철학과의 긴밀성이 더욱 분명
해졌다. 그러므로 예술 정의의 문제는 철학의 과제 중 하나로 인식되어 예술
은 정의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예술에 대한 정의가 예술의 본질 일부
가 되면서 예술을 정의내리고자 한 철학적 관심은 예술철학이 되었고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소멸시켰다.17)
하지만 20세기 이후 ‘예술’이라는 용어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사용되며, 그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함께 갈래화된다. 예술이 외연적으로는 공통된 특
징을 갖기 어렵게 되자 예술정의 자체를 포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예술이
정의가능하다고 본 단토의 입장과는 달리, 예술의 이러한 상황에 진지하게 주
목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예술의 정의가 정식화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고 판단한다. 그는 예술이라고 불리는 대상들은 기껏해야 친족유사성
(family-resemblance class)’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친족유사성의 범
주는 ‘열려있는’ 것이 된다. 이 개념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비트겐슈타
인주의자들은 예술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며,18) 미, 미적 경험, 예술

17) Ibid, p.57.


18) 단토는 철학적 정의들을 성취하는 어떤 쟁점이 존재하는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철학적 정의들의 개념
문제에 의문을 제기할 방법을 찾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에 유명한 섹션이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트겐슈타인은 게임의 예들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게임’의
정의가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는 ‘바라보고 보라(look and see)’고 요구하며, 우리
가 게임에 응할 때 우리는 모든 게임들과 오로지 그 게임들에 의해서만 공유되는 지배적인 속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게임들은 구성원들이 어떤 것을 공유하지만 절대
모든 속성들을 공유하지는 못하는 일종의 ‘가족’을 형성한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우리 모두가 게
임이 무엇인지 알며, 정의(definition)의 도움 없이도 어떤 것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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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과 같은 미학의 모든 개념들이 친족유사성의 범주에 속하는 열려진 개념으
로 이해된다. 또한 미학자 모리스 와이츠(Morris Weitz)는 예술의 필요충분
기준을 제시하기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예술이론도 실제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고 보면서 예술이 열려있는 개념이라는 점에 견해를 함께한다.
와이츠는 논리학과 수학을 제외하고는 닫힌 개념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특히
그는 예술가가 언제나 이전에 한 번도 창조된 적이 없는 것을 창조하기 때문
에, 예술의 조건이 미리 설정될 수 없다고 말한다. 윌리엄 케닉(William
Kennick) 또한 미학이 예술을 정의하고자 한 노력은 실수라고 간주한다. 케닉
에 의하면, 예를 들어 ‘칼’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있는 이유는 칼이 명확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예술에는 명확한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모든 예술작품에 적용될 수 있을만한 포괄적인 규칙, 표준, 기
준, 규범, 법칙이란 없다고 규정한다. 즉, 모든 예술작품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단일한 속성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타타르키비츠(Władysław Tatarkiewicz)는 『미학의 기본개념사』
(A History of Six Ideas)에서 예술의 정의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철저한 예
술연구에 심각한 장애이기 때문에, 정의를 모색하는 탐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고 주장한다.19) 그에 따르면 예술로 칭해지는 것들이 상이한 동기들로부터 비
롯되며 상이한 욕구들을 충족시켜주는 잡다한 성격을 가진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시대, 국가, 문화에 따라 다른 형식을 취하고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타타르키비츠는 철학자가 예술과 같은 포괄적 개념을 정의내리고자 할 때는
무수한 개념들 모두를 고려해야한 한다고 말한다.20) 이 말은 단토의 예술정의
가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할 수 있도록 단순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중요
한 점은 단토와 타타르키비츠 모두 현대 미학에서 예술정의를 포기하는 분위
기에 맞서 예술을 정의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게임을 추구한다는 것의 요점은 무엇인가? 그의 추종자들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술작품이 동일한 종류라기보다는 가족(family, 동종집단)을 형성하며, 그래서 예술작품들에 공
통적이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속성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시사하는 위와 유사한 추론의 전략을 예
술에 응용했고, 어쨌든 우리 모두는 예술작품이 그 같은 정의의 도움 없이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
다. 이런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결론은 정의들에 대한 오랜 탐구가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이다.”(Danto,
Arthur., Philosophizing Art,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p.70. 이 책은 국역본(정
용도 역, 『철학하는 예술』, 미술문화, 2017, pp.102-103)이 있어 참조함.
19) 타타르키비츠, W.,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개념사』, 미진사, 1992, p.49.
20) Ibid,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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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는 예술정의 불가론을 주장한 케닉의 사고실험을 예로들어, 역으로 예
술의 정의에서 의미가 중요해지는 상황을 설명한다. 뒤샹의 <샘(Fountain)>이
나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같이 일반사물과 식별불가능한 예술작품이 있는
것처럼, 예술정의를 위한 조건에 대해 기존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보는 것
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윌리엄 케닉이 서설하는 다음의 사고실험을 생각해보라. ‘온갖 종류의 물건들-여러 가지 제


목의 그림들 교향악과 무용과 찬송가를 위한 악보들, 기계, 연장, 보트, 집, 조상, 항아리, 시집
과 산문집들, 가구와 옷, 신문, 우표, 꽃, 나무, 돌, 악기 등-이 가득한 아주 큰 창고를 상상해
보라.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그 창고에 들어가 그 안에 들어 있는 예술작품을 죄다 꺼내오라고
명령한다. 미학자들조차 인정하는 일이지만, 그가 어떤 공통분모에 의거한, 만족할 만한 예술의
정의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똑같은 사람에게 창고에 들어가서 유의미한 형식을 가진 오브제나 표현적인 오브
제들을 모두 꺼내오라고 명령했다고 상상해보라. 그는 금방 혼란에 빠질 것이다. 어떤 것을 보
았을 때 그는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알지만, 유의미한 형식을 가진 오브제를 가져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거의 또는 전혀 알 수가 없다.’ ... 왜냐하면 케닉이
묘사한 창고와 완전히 똑같은 창고이지만, 그 창고에 있는 예술작품들과 똑같아 보이는 우리의
창고에 있는 그것의 상대역들은 예술작품이 아니며, 그 창고에 있는 예술작품이 아닌 어떤 것
이든 우리 창고에서는 예술작품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21)

단토는 케닉의 실험에서 보듯이, 예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은 비트겐슈타인의


친족유사성처럼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기존의 예술이 재현적 모방에 따라 미적인 것을
추구하던 규범적 방식과는 다르게, 단지 ‘의미의 구현’만으로도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토는 ‘유의미한 형식’을 지닌 물건을 찾아오라는 케닉의 요
구는 행위자를 충분히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단토는 몇몇 예술작품의 예를 제시하여 친족유사성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를 설명한다. 그것은 뒤샹의 <샘>과 워홀의 <브릴로 상자>처럼, 오늘날의
예술에서는 어떤 지각적 기준도 주어질 수 없는 작품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
한 예술작품들은 기존의 예술개념으로는 일반화와 정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 단토에 의하면,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예술이라는 개념이 올바르게 사
용되는 필요충분한 조건이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그 관계가 예술작

21) 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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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이 속해있는 특별한 관계여야 한다.22)
단토는 이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기에 앞서, 철학과 예술이 ‘실재’와 ‘현상’
의 구별처럼 비인지적이고 개념적이며 내포적(intensional) 구별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이를 위해 그는 플라톤에서부터 시작된 철학에 의한 예술규정의 문
제점을 지적한다. 이 지적이 의도한 바는 예술이 모방적 재현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전복시키고 모방이 ‘의미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주지하듯이 플라톤은 예술이 모방을 통해 그릇된 환상을 제작한다고 규정한
다. 그리고 그 환상은 지식이 아닌 믿음과 억측의 영역에 관계됨으로 참된 지
식이 아니며 오히려 지식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그의 ‘국가’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이처럼 철학의 규정에서, 예술은 오랜 시간 동안 모방된 것
이며 수동적인 대상이었다. 모방에 대한 이와 같은 인식에 대해, 단토는 플라
톤이 예술비판에서 사용한 ‘모방’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오히려 모방
을 통해 비재현적 예술의 개념을 말한다. 즉 소크라테스의 모방은 유사성을
의미하지만, 오늘날은 유사성이나 닮음만으로 모방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다. 그리고 모방은 하나의 표상으로서 은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토는 “친족 유사성의 경우, a는 b를 닮고 b는 c를 닮아도 a가 c를
닮지 않을 수가 있지만, 어쨌거나 유사성 자체는 대칭적(symmetrical) 관계이
며, 대개의 경우 전이적(transitive)이다.”23)라고 한다. 반면에 단토가 의미하
는 모방은 비대칭적, 비전이적, 비반사적이다. 단토는 자신이 여자로 보이기를
원하는 여장남자와 여자가 아님을 사람들이 알고 있더라도 흉내내는 일을 하
는 흉내꾼으로서의 여장남자와의 차이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흉내꾼의 제스처
는 여자들에 관한 것인 반면, 여장남자의 여성스러운 모방은 어떤 의미론적
성격도 갖지 않는다고 하면서, 전자가 의미의 수단에 해당하는 모방임을 말한
다.24) 단토에 따르면, 모방이 내포적(intensional) 개념이며 어떤 것은 모방의
원형인 x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고서도 x의 모방이 될 수 있다. 따라
서 그는 모방이 표상적(representational) 개념이라고 설명한다.25)

“모사물 x는 x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앞에서 언급한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모사물이

22) Ibid, pp.64-65.


23) Ibid, p.66.
24) Ibid, pp.67-68.
25) Ibid, pp.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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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o를 모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그런 대상 o가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고서도 그것
이 o의 모방일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모방은 내포적이다.”26)

다시 말해, 거울이미지는 논리적이고 개념적으로 실물을 필요로 하지만 모방


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방은 대단히 특별한 종류의 유사
물로서 이미지와 다를 뿐만 아니라 그림자나 메아리와도 다르다.27) 단토는 모
방이 ‘의미의 수단’이라고 본다. 우리가 모방을 무엇인가 재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방식에도 외연(外延)을 뜻하거나 의미를 뜻하는 두 가지가 있다. 단토
에 따르면, 때때로 어떤 낱말은 실제로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거나 외연을 갖
지 않는데, 이때 우리는 프레게가 말한 뜻(Sinn)과 지시체(Bedeutung)를 구별
한다. 그리고 모방도 뜻과 지시체를 가지며, 어떤 것을 재현하는 것으로 특징
지을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을 갖는다.28)
단토는 현재와 실재 사이의 거리에서 철학과 예술이 발생한 것으로 본
다.29) 그리고 의미의 담지자로서 사물은 자신의 표상을 충돌시킬 때 진짜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작품들은 실재적이긴 하지만 낱말들과 마찬가지로
실재와 거리를 둘 수 있다. 단토는 이 거리에서 발생하는 공간에서 예술이 철
학적 연관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실재와 현상의 구별은 반드시
관계 개념을 낳는 것은 아닌데, 재현적인 예술의 경우에도 예술이 가리키는
실재적 사물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단순한 실재적 사물이 아니라, 의미론적 내용을 지닌 예술작
품이다. 이미 고대그리스의 형상론에서도 예술과 실재 사이의 거리가 인식되
었고, 예술이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였다. 이는 언어가 실재와 맺는 관
계와 유사하다.
단토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가 지나치게 선명한 논리적 구조를 가지기 때문
에 자연언어가 실재를 전혀 표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지적한다.30)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의미론은 문장들이 그림이 아니면서
도 표상적일 수 있다는 문제에 주목하였는데, 이는 예술철학이 직면한 문제와

26) Ibid, p.77.


27) Ibid, p.82.
28) Ibid, pp.71-72.
29) ibid, p.77.
30) ibid,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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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술은 모방적 재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의미를 통해 표상하는 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의미론적 특질은
구체적인 대상없이 개념만으로도 예술로 인정할 수 있게 한다. 예술과 언어의
유사성은 예술의 철학적 가치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단토는 재현적 특징
의 무엇이 실재적 사물과 예술품을 구별하는가를 밝히면서 예술의 정의에 다
가선다. 즉, 그는 자신의 예술철학에서 ‘표상(representation)’개념을 통해 예
술작품을 분석한다.31) 단토는 예술작품이 표상의 일종이라는 입장으로 접근하
면서, 예술의 역사가 예술에 대한 표상체계의 변화라는 관점으로 예술의 역사
를 설명한다.32) 1964년 <브릴로 상자>를 만나면서 단토는 표상이론을 미술
상황에 대입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말하자면,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특징으로
는 더 이상 예술의 지위, 동일성, 특질의 문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
한 것이다. 이처럼 예술작품에 대한 반응은 감각의 지각적 속성에 의한 것이

31) 장민한, 「아서 단토의 표상으로서의 예술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서울대학교 미학과, 2006,
p.13. 참조.
단토의 예술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토의 철학 일반의 주요 개념인 “표상”과 “표상체계
(system of representation)”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단토는 시대나 장소에 따라 변화하는 표상체계
에 대한 언급 없이는 지식, 행위, 역사 그리고 예술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ibid, p.7) 표상과
표상체계로 개진한 그의 예술철학과 미술사의 철학을 이루는 사유의 기본 구조는 이후 미에 대한 언
급에서도 기초를 이루고 있으므로 간략하게 나마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예술작품도 행위나 역사
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한 사건이나 대상에 대한 표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표상체계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표상은 자신 밖에 그것이 지시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관계없이 어떤 것에 관한
것을 가리킨다. 단토 철학의 기본 과제는 우리가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는 한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바로 그 사실에 의해 그 명제를 믿도록 결과지어질 때 우리는
지식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참인 그 명제는 표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 표상이 외부 세계에서
인과관계로 나타나는 참된 표상이라고 확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닌 표상체계와 합치되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만약 새롭게 나타난 표상과 이전의 표상체계가 합치되지 않는 경우 우리는 그 표상을 수
정하거나 혹은 기존의 표상체계를 그 표상을 수용할 수 있도록 수정한다.(ibid, p.8) 단토의 표상과 표
상체계 개념은 행위와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 행위자가 세계를
표상하는 방식을 알아야 그 행위의 의미 혹은 그 사건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역사적 사건의 의미도 물
리적인 인과관계 외에 그 사건과 관련된 표상체계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식은
우리의 표상을 세계와 일치시키는 문제이고, 행위는 세계를 우리의 표상과 일치시키는 문제이다.(ibid,
p.15) 근대의 철학자들은 저마다 표상의 특성에 대해 각각 다르게 이론화 작업을 했지만 그들은 그
특성을 인간의 보편적인 혹은 객관적인 특성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에 반해 단토는 “표상”개념에 역사적 혹은 지역적 특성을 부여한다. 즉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느냐 혹
은 어떤 언어 체계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다양한 표상을 얻을 수 있다. 단토는 한 사건 혹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표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표상체계”의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근대철학의
전통적인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표상의 보편적인 특성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변화하
는 표상의 상대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ibid, p.16)
32) ibid,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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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작품의 형식이 지시하는 의미를 자체 내 포함하는 존재론적 구조에 대
한 지식을 근거로 가능한 것이다.33) 그러므로 단토에게는 이러한 지식을 위해
서 예술사와 예술이론 등 예술계의 개념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술작품
의 의미론적 문제에 대해서, 그는 지각만으로 알 수 없는 의미의 변화를 반영
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와 예술을 유사한 것으로 보며 비교한다. 역사적 사건의
의미는 그 당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들의 경험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술작품의 의미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지각적 성질만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토는 예술작품의 의미를 해결하기 위해 표상체계에
해당하는 ‘예술계’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동시에 예술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예술에 대한 믿음의 체계가 변화된다. 행위란 단순
한 움직임과 달리 무엇에 관한 것이고, 동시에 바로 그 표상이 실현된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행위를 설명하는 표상들을 확인하
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행위로 지각한다는 것은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
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설명은 행위자의 관점, 즉 행위자의 표상체계를 이해
해야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표상체계는 역사를 지닌다. 왜냐하면 시대마
다 하나의 대상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역사를 서술하는 자는 당시 예술가의 믿음체계를 알고 있
어야 참된 예술사를 서술할 수 있다. 단토가 예술작품의 해석을 역사와 마찬
가지로 본 이유는 예술작품도 표상을 지닌 대상의 일종이라는 데 있다. 말하
자면 1700년대가 아니라 1964년에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가 가능했던
것과 같이, 미술에 대한 특수한 믿음체계에 변화가 발생했다고 이해하기 때문
이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에 와서야 그 이전의 시기와 달리 어떤 대상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체계가 형성되었다고 간주한다. 믿음체
계인 표상체계의 변화는 다원주의라는 예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불러온다.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는 예술개념에 믿음체계의 변화를 가져오고, 단토
가 새로운 예술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33) 조창오, 「단토의 예술존재론」, 『철학연구』, 대한철학회논문집, 제136호, 2015. 11.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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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토의 예술 정의

앞 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술작품도 인간의 행위나 역사처럼 표상을 지닌


대상이다. 단토의 예술 정의는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본질주의
적이지만 하나의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특정한 시점에만 가능하
다는 점에서 역사주의적 입장도 함축한다. 다시 말해, 단토는 예술에 대한 인
식의 변화가 예술의 역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예술은 자기 지식을 획득하면
서 종말에 이르게 되는데, 자기 지식의 획득이란 예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
해 질문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예술 스스로 철학하게 되자 하나의 거
대 내러티브로서의 미술의 역사가 종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예술의 정의가
불가능 혹은 불필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등장하게 된다. 예술 정의 불필요 혹
은 불가론에 대해, 단토는 예술종말론을 토대로 예술의 존재론을 설명한다. 그
에 따르면, 예술의 존재론적 구조는 ‘자기 관계적 반성성’을 의미한다.34) 예술
작품은 감각적 형식과 더불어 형식이 지시하는 의미를 자체 내 포함하는 자기
관계적 존재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은 항상 어떤 무엇에 관한 것이다. 이것
이 예술의 본질적 구조를 형성하며 예술과 비예술을 가르는 규범적 구조가 된
다. 예술작품에 대한 반응은 지각적 속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이 가지
는 존재론적 구조에 대한 지식을 근거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 말은 지각적으
로 식별이 불가능한 두 개의 대상에 대해 하나만 예술작품이라면 무엇이 그
대상을 예술로 만드는가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그 존재
론적 구조란 의미를 지니며 물질적으로 구현된 것이다. 그는 예술작품이 된다
는 것은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무엇에 관함’이어야 한
다. 이것은 예술작품이 주제와 의미론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
다도 이것은 해석을 요구하는 근거가 된다. 둘째는 의미가 예술작품 속에 내
재한 상태에서 물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로써 작품은 무엇에 관한 것인
지를 보여준다. 단적으로, 예술작품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
을 구현하고 있는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단토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그의 예술정의와 관련하여 자주 비교되

34) Ibid, p.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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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조지 디키(George Dickie)의 예술 정의를 언급하면서 자신과의 차이점을
피력한다. 그리고 이 두 학자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은, 단토의 예술작품에 대
한 개념을 보다 명료하게 해준다. 디키는 미의식 또는 미적 감각과 같은 태도
는 예술의 성격을 특징짓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술작품에 고유한 미적
성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우리가 ‘주목하는 것’에 따
라 ‘감상의 후보’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그런데 감상할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서의 지위는 예술계(Artworld)라는 제도적인 것에 의해 수여된다.35)
이에 반해 단토는 예술작품은 단순히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펼친
다. 단토는,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이 단순한 인지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미적 대상이 예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다. 동시에 그러한 인식의 토대가 되는 예술사적 배경과 예술이론의 지식을
통해 그 대상의 미적 특성이 어떤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인가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대상이 예술작품으로서 감상의 후보인가 아닌가
에 대해서는 예술계의 규약이 작용한다고 판단한다. 반면에 디키는 일상적인
지각과 구별되는 예술로서의 미적 지각(aesthetic perception)을 인정하지 않
고, 미적 반응을 단순한 지각의 일종으로 봄으로써, 예술작품의 감상을 예술계
에 의한 주목(attention)의 문제로 간주한다. 단토는 디키의 이러한 입장에 대
해, 미적 반응을 지각적 차원에 한정하는 것은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을
일상사물에 대한 미적 반응과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술 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에는 지각적 측면 외에 의미론적 측면이 함께 작
동한다.
또한 디키는 “만일 우리가 어떤 것을 감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단토는 디키의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예술작품이 감상
의 후보가 되려면 미적이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디
키의 관점은 미적 사물을 단순한 지각의 대상으로 보려했던 앞서의 입장과 모
순적일 뿐만 아니라, 일상적 사물과 예술의 미적 지각의 구분에 있어서도 불
명확함을 나타낸다. 더욱이 이 문제를 불명료하게 만드는 것은, 디키 자신이
예술적 감상 후보로서의 미적임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키는 ‘감상할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단

35) 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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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는 이 말을 감상불가능한 대상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다.36) 다시 말해,
디키는 모든 예술작품이 최소한의 잠재적 가치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
는 것인데, 단토는 이 점을 비판한다. 단토는 예술작품이 미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과 일반 사물에 대
한 미적 반응은 분리될 수 있으며 이러한 분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토는 예술작품의 미학적 성질들은 미 외에도 부정적인 것들까지 포
함하는 것이 맞다고 보면서 심미적 미에 국한하는 듯한 디키의 견해가 내포한
문제점을 분명히 한다.37) 단토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현대 예술작
품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뒤샹의 <샘>은 기성제품인
소변기와 외관상 동일하다 하더라도 의미에서 차이를 갖는다. <샘>이 예술작
품으로 감상될 때는 그것이 예술로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가 구현한 의미이
지 외재적 형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변기인 <샘>의 형태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하더라도 이 작품에 있어서는 미가 감상목적이 아
닌 것이다.
이로써 단토는 디키가 간과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디키가 간과한 것은 그 물음-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볼 수있


듯이 ‘만든다’는 용어에 들어 있는 애매성이다. 그는 어떤 것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강조했는데, 그 과정은 제도적일 수 있겠지만 그는 미적 고찰들을 옹호한 반면에, 무엇
인가가 예술작품이 되었을 때 어떤 성질들이 미적 고찰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소홀히
했다.”38)

단토는 하나의 대상이 예술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데, 이것은 그의 예술 정의를 위한 핵심 근거가 될 것이다. 단토에 따르면, 예
술작품들은 다양한 성질을 지닐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예술작품이 아닌 대
상과 식별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사물과 달리 예술이라
는 작품 안에 포함된 의미론적 성질에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이 의미론적 성
질을 해석할 때 이 해석을 풍부하게 만드는 작품표면의 지각적 미적 특질은
유의미해질 수 있다. 이처럼 단토는 미적 반응이 자연스러운 지각경험에 의해

36) Ibid, p.92.


37) Ibid, p.92.
38) Ibid,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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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대상과 예술작품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보면, 예술작품들은 대단히 많은 성질들을 갖고 있고 물리적으로 그


것들과 식별 불가능하지만, 그 자체는 예술작품이 아닌 대상들에 속한 성질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성질들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질들 중에는 미적 성질들이라고 부를 만한
것, 또는 미적으로 경험할 수 있거나 ‘가치 있고 희귀한’ 성질들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러한 성질들에 미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 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알아
야 하며, 따라서 예술인 것과 예술이 아닌 것 간의 구별이 먼저 주어져야만 동일성의 차에 부
합하는 반응의 차이가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아무리 원본과 모방이 식별 불가능하
다 해도 원본에서 그러한 즐거움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모방의 산물들에서 얻는 즐거움은
그것들이 모방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을 처음부터
적시했다.”39)

그는 어떤 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변용되지 않은


물리적 유사물이 갖지 않는, 주목해야 할 어떤 성질들을 ‘갖고 있다’는 것과,
그러한 지식에 따라 우리의 미적 반응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
리고 이 문제는 제도적인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이다”40)라고 주장함으로
써 양자가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단토에 의하면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속성은 그것의 본질일 수 없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에 의해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에 합당한 구조를 이
룬다.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반응은 생득적인 미감과는 다른 ‘믿음의 함수’이
다. 단토는 미적 반응이 예술과 비예술 간에 달라지는 것이 우리가 상이한 성
질들에 반응하는 까닭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예술작품에 대한 미
적 반응은 예술개념을 매개로 하며 어떤 종류의 ‘내면의 빛’을 갖는다.41) 그러
나 예술작품의 내면의 빛이 물리적인 즉 형식적인 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
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으로 구현된 의미가 무엇인가에 따라 예술작품인가 아
닌가가 결정되며 그에 따른 미적 반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토는 물리적으
로 아름답거나 혹은 추하거나 간에 하나의 대상을 훌륭한 예술품으로 인정하
기 위해서는 그것을 먼저 예술작품으로서 지각하는 것이 요구됨을 거듭 강조
한다. 단토는 다음과 같이 예술과 미학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39) Ibid, p.94.


40) Ibid, p.99.
41) Ibid,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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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려는 것은 미학이 예술과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라 미학이 어떤 적합성을 갖기 위해
서는 예술작품과 그 물리적 상대역의 관계가 먼저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득적인
미적 감각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인지적 메커
니즘 자체는 결코 생득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없다.”42)

디키의 예술계가 단토의 예술계와 갖는 차이를 간략화하자면, 디키의 이론은


어떤 것이 “예술계에 의해 인공물에게 수여된 지위”이다. 다시 말해 예술계가
어떤 사물을 예술로서 선언할 때 그것은 예술이 된다.43) 하지만 단토에 따르
면 이것이 예술의 정의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단토는 디키가 어떤
것이 어떻게 예술로서 받아들여지는지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단토가 말하는 예술계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디키의 주장처럼 예술계에 영
향력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유들의 집합에 의존하는 이유의
담론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술계를 형성하는 이유의 담론들은 시대마다 다를
수 있고, 그 이유들이 역사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역사성과 관
련된다. 이처럼 시대마다 예술계가 만들어내는 담론이 달라진다는 점 때문에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달라진다.
단토는 예술작품과 그 물리적 상대역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해석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술에서 해석없는 감상은 있을 수 없으므로, 해석없는 미적 반
응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미적 반응은 “예술의 정의에 무조건적으로 영입
될 수는 없다.”44)고 말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의 철학적 정의에서는 이
‘해석’이 중점적인 계기가 된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해석은 어떻게 결정되는
가. 단토는 예술작품의 ‘해석’이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
라 작품 안에 그 ‘해석’이 들어 있어 작품의 의미를 알려 준다고 설명한다. 이
말은 작가의 의도가 작품 안에 표상적 성질로 내재하고 있어 우리가 그것을
‘해석’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해석’이 작품 속에 어떻게 들어 있는
가? 단토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작품을 W라고 할 때, W는 그 자신의 부분으
로서 물리적 대상 P를 가지고 있다. 전체 W에서 P를 뺀 것은, 인간에게서 신
체를 빼고 남은 영혼과 같다. 단토는 “나의 의미로 해석이란 변용

42) Ibid, p.107.


43) Ibid, p.91.
44) Ibid,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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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igurative)이다. 해석은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변용시킨다.”라고 설명한
다. 또 “대상 O는 오직 해석 I 아래서만 예술작품이고, 이때 I는 O를 하나의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일종의 함수, 즉 I(O)=W이다.45)”라고 정리한다. 이럴 경
우 해석이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라면 해석없이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
는 것이 맞다. 단토에 의하면, 해석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 해석이 어
떤 의의가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토는 작품이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각각의 시대는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는 ‘해석’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한 작
품은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것을 줄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언제든 새로운 방법
론이 등장하여 식자들로 하여금 다른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게 하기 때문이
다. 한 작품의 해석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문화적 상황에, 즉 역사적으로 특
정한 예술이론들이나 아이디어에 구속되어 있다.
그렇다면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단토에 따르면,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그 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에 관한 이론을 제시
하는 것이다.46) 그러므로 작품을 해석하지 않고는 작품의 구조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해석의 차이들에 따라 작품의 구조, 다시 말해 예
술적 동일시의 체계는 중대한 변형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47) 단토는 브뤼겔
의 작품 <이카로스의 추락(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1558)을 예
로 들었다. 언뜻 보아 이 그림은 전면의 밭가는 농부를 중심으로 하고 바다를
배경으로 둔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인다. 작품의 오른쪽 하단에 그려진 다리
한쪽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간과하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는 사람
쯤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다리의 주인공이 이 그림의 제목으로
채택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토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에 맞는 해석을 하고 예술적 동일시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작품을 해석함으로써 예술적 동일시에 준거하지 않고서
는 작품이 어떤 요소들을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의 물음에 합리적으로 답하
기가 어렵다는 것이다.48) 단토는 예술작품을 마침내 존재하게 만드는 것은 해

45) Ibid, p.125.


46) Ibid, p.119.
47) Ibid, p.120. 참조
48) Ibid, p.1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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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라고 단언한다.49)
다음으로는 의미의 ‘해석’에 이어 ‘구현’의 문제로 넘어가 보자. 일상적인 재
현물과 달리 예술작품만이 가진 고유한 재현적 특성은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
가? 일반 재현물은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단순한 재현의 결과물이
다. 이에 비해 예술작품은 작가가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것을 수용자에게 전
달할 수 있도록 재현매체와 재현방식을 필요로 한다. 그 주제와 관련해 무언
가를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매체와 재현방식을 찾는다는 것이다. 단토는 일상
의 재현물과 다른 예술작품의 고유한 재현적 성격은 수사적인 것이라 말한다.
수사적인 것이란 어떤 태도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 예술의 주요임무 중 하나
는 감상자가 세계를 특정한 태도와 시각으로서 보게끔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
고 수사적 형식 중 가장 친숙한 형태가 은유이다.50) 그러나 은유를 이해하려
면 그 재현방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당시의
문화적 틀 내에서 갖게 되는 관계이므로, 그 당시의 예술사적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재현 방식의 또 다른 특징은 스타일 즉 양식이다. 은유가 재현 및 감상
자와 관련된다면 양식은 재현과 작가와 관계된다. 양식은 세계를 재현하면서
도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로 특징지워진다. 양식은 우리가 ‘표현’이라고 부
르는 어떤 총체적 특질을 지시한다.51)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그 시대를 규정하
는 믿음과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 된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의식의 외화이며,
예술가가 본 것뿐만 아니라 그가 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단토는 예술작품이
‘무엇에 관한’ 것이면서도, 그것에 관해 나타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진술
한다. 즉 예술작품은 그 자신 속에 미묘한 자기 지시적 부분을 결합시킨 복잡
한 대상이다. 결국 단토에게는 예술작품만이 지닌 재현적 특성이 예술의 정의
가 된다고 규정한다. 단토는 후에 미개념을 논하면서 예술작품의 재현방식을
크게 부각시킨다. 왜냐하면 구현방식에서 의미에 미가 내재하는 경우를 상정
하고 이것이 감상자로 하여금 감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효과적임을 논증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주목하여 초기에 사용한 ‘수사적’
이라는 용어 대신 ‘화용론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수용자의 감정을 굴절시
키는 기능을 다룬다.

49) Ibid, p.125.


50) 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171.
51) Ibid,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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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예술의 종말 이후, 예술을 다시 정의하는 데 고려될 수 있는 사항
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덧붙이자면, 단토가 예술작품을 존재론적으로 구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물질적 상대역인 수퍼마
켓의 브릴로 상자와 인식론적으로 판별이 불가함으로, 지각적 인식이 아닌 존
재론적 속성을 통해 예술과 비예술을 구분한다. 그는 <브릴로 상자>가 상품포
장용 브릴로 상자와 달리 어떤 무엇에 대한 것이므로, ‘의미’를 자체 내에 포
함하는 ‘자기 관계적’ 존재임을 설명한다. 이것은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형
식이 ‘의미’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미적 경험이 대상의 감각적
형식을 그 대상으로 하는 지각 경험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
토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적’ 경험은 감각적 형식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
는 것이다. 단토는, 기존의 전통적인 미술의 역사가 지닌 내러티브가 종말을
맞았기 때문에 예술은 자기 관계적 반성성이라는 존재론적 속성을 선언하게
되었고, 이러한 구조가 예술작품의 ‘의미’를 중요하게 만들게 되었다고 주장한
다. 여기까지 미적 특질, 재현적 특질, 존재론적 특질에 있어서 예술의 의미와
해석에 방점을 둔 단토의 예술정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단토가 그의 예술철학 후반기에서 미개념을 논할 때에도, 예술에서의 미는
‘의미’에 따라 주목해야할 측면이 달라진다. 그는 여전히 전반기의 예술의 정
의에 해당하는 ‘의미’를 중심에 두고 미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말하자면, 예술
에서는 의미의 해석이 중심이 되며, 미나 미적 특질은 의미에 내재할 경우 예
술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효과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이 미나 미적 특질의 효과가 지닌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이며, 특히 미의 굴절
기능이 중요한 것일 수 있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단토는 이제 예술에 국한
되지 않는 미의 보편적 가치를 중요하게 불러오면서 삶의 미학으로 확대시킨
다. 이것은 분명 이번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예술의 정의에서는 거론되지 않
은 물리적이고 형상적인 미의 효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3장
과 4장에서 본격적으로 검토한다.
단토의 입장에서는 한 대상이 왜 예술작품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즉 그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을 왜 이러한 방식으로 재현했는가를 확인
하는 작업이 바로 비평가의 임무가 된다.52)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전혀

52) Ibid, p.7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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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의미와 구현 방식을 지닌 대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 단토가 말하는
예술계의 임무는 과거처럼 예술의 자격을 제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예술이 되는 이유를 제시하는 데 있다. 이 이유의 담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예술작품을 예술로서 경험하게 만든다. 단토는 오늘날 자신
의 두 가지 조건 이외에 다른 조건을 제시할 수 없는 시기가 도래했다고 보고
이 시기를 다원주의라 명명한다. 60년대 워홀의 <브릴로 상자> 이후, 의미를
구현하는 방식에 제한을 둘 수 있는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 결과적으로 단토는 후기에 미개념을 논할 때에도 예술의 정의에 다른 조
건을 추가하지는 않지만 ‘제3영역의 미’를 통해 사회학적 관점에서 상호 소통
하는 개념을 말하면서 미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킨다. 또한 예술의 정체성에
의미론적 특질과 함께 화용론적 특질을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예술의 변화시
키는 힘의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이 외에도 미는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서
일상생활에 관여하는 것임에 주목한다. 단토는 후기의 예술철학에서 자신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고수하면서도, 전통적으로 예술에서 핵심개념이었던 미가
현대미술에서 배제된 원인을 분석하여 그 오류를 제시한다. 그리고 미의 본래
의 보편적 가치가 재고되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미를 예술보다 큰 범위에
서 논할 수 있는 삶의 미학으로 확장시킨다. 이러한 단토의 미개념은 다원주
의 시대의 예술이 종말을 고하며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로 하여금 대중문화 속에서 삶과 긴밀해진 미의 역할을 새롭게 주목하게 만든
다.
단토의 예술 정의는 미적인 전통 혹은 예술-제도적 특징을 지니지 않는 대
상을 예술작품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상적 사물과 지각적으
로 식별 불가능한 예술작품들에 대해 일상적 사물과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원주의 시대의 적절한 예술이론으로 이해
된다. 필자는 단토의 다원주의 이론이 예술계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지
만, 그가 예술작품의 의미론적 특질을 예술정의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모더니
즘 이후 오늘날의 미술 상황을 적절히 설명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말
년의 단토는 예술을 철학적으로 정의하고자 하던 노력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
라 예술이라는 범주에서도 자유로워진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종말은 기존 미
술사가 갖던 내러티브의 종말이지만, 단토는 그 과정에서 배제되었던 미의 개
념으로 새로운 사유의 장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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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술계와 예술의 종말

1) 예술계

단토는 1964년 『철학저널』에 발표한 ‘예술계’라는 논문을 통해서 현금의


미술계를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예술정의를 철학적으로 밝혀내고자 하였다.
분석철학적 정의 방식으로 논증을 펼친 ‘예술계’는 예술작품이 의미와 해석으
로 존재론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이
다원주의로 나아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어 고찰의 의의가 크다. 또한
부르디외는 단토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입장에서 미학을 이해하였으나, 단토의
전반기 예술철학을 설명하는 ‘예술계’에 대해서는 당시 비판적으로 평가하였
다. 따라서 필자는 이 지점을 검토하여 단토의 예술계에 제기된 주요 논의점
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로써 단토가 작품 해석과 가치판단의 근거로서 특정
서사들로 이루어진 ‘예술계’53)를 언급한 것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마련하고,
그의 예술철학적 구조를 보여주는 것을 본 절의 목적으로 삼았다.
먼저, 단토는 ‘예술계’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비모방적인 예술작품이 모방적
인 작품보다 실재적일 수 있음을 설명한다. 이를 위해 재현적인 미술에서 벗
어나기 시작한 후기인상파의 작품들을 비모방적으로 보고 예술로서의 존재론
을 주장한다. 단토는 기존의 재현적인, 즉 모방적인 예술이 오늘날에는 비모방
적인 것으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실재적인 이유를 반 고흐의 그
림 <감자 먹는 사람들>(1885)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이 작품은 실제 형태를
왜곡한 비모방적 그림이지만, 단순한 모방보다 더 실재성을 갖도록 표현하였
기에 작품으로서 존재론적 승리를 획득한다고 보인다.54) 고흐는 척박한 삶을

53) Danto, Arthur C., ‘The Artworld’, Journal of Philosophy, Vol. 61, No.19, 1964, pp.571-584. 이
글은 번역본(아서 단토 저, 오병남 역, ‘예술계’, 『예술문화연구』, Vol.7, pp.181-205)이 있어 참조.
54) Ibid, p.574.
“명백한 왜곡의 결과인 반 고호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실생활에서의 감자 먹는 사람들의 비복제물
(non-facimile)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감자 먹는 사람들의 (그대로의) 복제가 아닌 한, 반 고호의 그
림은 모방이 아니며, 그 그림의 소재라고 추정되는 대상만큼이나 실물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 같은 실재론을 통하여 예술작품들은 소크라테스의 모방론이 그들 작품을 추방시키
고자 했던 바의 사물들 더미 속으로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즉 그것들은 목수가 만든 것보다 더 실재
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덜 실재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후기인상파 작가들은 존재론적인 승리를
획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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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받아들이는 농부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림 속의 표현
은 부분적으로 왜곡되거나 생략되었을지라도, 인간 존재로서 그들의 순수한
‘있음’은 유감없이 드러나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단토는 아직 재현적 형태
가 남아있었던 후기인상주의 작가의 작품을 사례로 들었지만 오늘날 우리 주
변의 비모방적인 예술작품들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이 실재론
(reality theory)의 입장에서라고 말한다.55) 뒤샹 작품인 <샘(fountain)>이 일
상에서 사용하는 소변기에 붙여진 제목인 것처럼, 현대미술은 어떤 대상을 재
현적으로 모방하지 않지만 충분히 예술로 볼 수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의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 ‘예술적 동일시(artistic
identification)’라는 개념이며 실재성과 상통한다. 단토가 예술작품과 일상적
사물을 외연적으로 구분할 수 없었던 <브릴로 상자>로 부각시킨 예술이론이
‘실재론’이다. 예술작품과 실제사물 간의 근본적 대조 사이에는 실재이론이 존
재한다. 실재론은 모방론(Imitation Theory)에 대립되는 예술이론이다. 그것은
대상의 모방된 이미지가 아닌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각을
말한다.56) 같은 관점에서, 단토는 만화의 한 장면을 따다가 확대해서 그린 로
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의 경우에는 작품의 규모가, 색채 사
용에 매우 능숙했던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경우에는 ‘색채’가 그들 작
품의 본질적인 요소로서 새로운 실체(entity)가 된다고 언급한다. 클래스 올덴
버그(Claes Oldenburg)는 실물침대를 작품으로 만들었는데, 이때 이 작품은
실재론에 따르면 실물이 되도록 의도된 것이다.57) 이를 통해 단토는 비재현적
작품들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게 되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고 나서 비모방적 예술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토대로 이러한 예술을 예
술작품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찰한다. 단토는 현대미술의 추상적인 형태와
닮은 동일한 형태의 두 그림을 예로 들어 비모방적 작품에 다양한 술어가 가
능함을 설명하면서 해석의 문제를 대두시킨다. 그것은 비구상적인 혹은 여러
가지 서사가 주어질 수 있는 대상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여러 가지 술어가 적
용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예술작품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단

55) Ibid, p.574.


56) 김동일, 「단토 대 부르디외 : ‘예술계’(artworld) 개념에 대한 두 개의 시선」, 『한국문화사회학회』,
2009, p.124.
57) Danto, Arthur., ‘The Artworld’, Journal of Philosophy, pp.574-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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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히 외형을 통한 판단보다는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는 예술계가 필요함을 논
증한다. 단토는 대립어를 갖는 한 쌍의 술어를 기호로 하는 모형을 제시하여
다원적인 예술의 도래를 논리적으로 도출한다. 해당 논증을 통해 다원주의 예
술의 가능성을 말하면서도 자신이 만든 모형의 종렬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계의 기능이 필요함을 증명하고자 한 것이다.58)
이어서 단토는 어떠한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진술하고자 할 때, ‘예술적 동일
시’인 ‘이다’59)가 요구됨을 설명함으로써 ‘예술계’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를 마
련한다. 그는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실례를 든다. 우선 그는 두 화
가가 각각 <뉴튼 제1법칙>과 <뉴튼 제3법칙>이라 불리는 벽화로 과학도서관
동쪽과 서쪽 벽을 장식했다고 가정한다. 두 그림은 각각 흰색 바탕에 하나의
검은 색 횡선이 그어진 동일한 형태를 하고 있다. 아래의 A와 B의 그림은 똑
같은 형태임에도 서로 다르게 벽화의 내용을 설명한다. 즉 이들이 예술적으로
동일시한 것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매우 다양하게 표현할 수도 있
다. 똑같은 외형의 그림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지 다음의 글에서 알
수 있다.

"B는 자신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래로 압력을 가하는 질량이 위로 압력을 가하는
질량과 만난다. 아래의 질량은 위의 질량과 반대방향으로 똑같은 정도의 힘을 가한다. A는 자
신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간을 지나는 선은 하나의 고립된 미립자의 통로이다. 그
통로는 끝에서 끝으로 진행하면서 끝을 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만약 그 선이 공간 내
에서 끝나거나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곡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윗부분이
끝이나 바닥 끝과 평행하다. 그 이유로는 만일 그 선이 어느 하나에 더 가깝다고 한다면 그 선
을 설명해주는 어떠한 힘이 있어야하기 때문인데, 이는 그 선이 고립된 미립자의 통로라는 사
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60)

58) 이에 대해서는 pp.28-29에서 상세히 설명함.


59) 단토는 그의 글 '예술계'에서 '예술적 동일시'라는 용어가 예술작품에 관한 진술들을 두드러지게 나타
낼 때 사용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 용어는 동일성(identity)이나 혹은 술어의 이다(is)가 아닌 '이다'
와 관련된 용어로 철학적인 목적을 위해 꾸며진 어떤 특별한 의미의 이다도 아니다. 단토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흔히 사용되고 있으며, 어린 아이들에 의해서도 능란하게 구사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어린아이에게 원형과 삼각형을 보여 주면서 어느 쪽이 자기이고 어느 쪽이 그의 누
이인가를 물을 경우, 그 아이가 삼각형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나야’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런 의미에
서의 ‘이다’이다."라고 말하며, 이것에 대한 적절한 용어가 없는 관계로 단토는 '예술적 동일시'의 이다
로 부르고자 한다.(Ibid, p.576)
60) Ibid, pp.57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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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뉴튼의 제1법칙> B. <뉴튼의 제3법칙>

이 설명들은 예술적 동일시로서의 ‘이다’로 말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림들을


어떤 의미로 표현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을 보면 서로 다른 동일시가 이루어져
두 그림은 상호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일상적으
로 일어날 수 있으며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일부가 공통되더라도
결국 상이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는다.61) 그리고 단토는 또 다른 예를 드는
데, 먼저 예술적인 문외한을 가정한 인물을 ‘테스타두라(Testadura)’62)라고
칭한다. 그러면서 테스타두라가 앞서 설명한 두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림들을 그냥 물감덩어리로 본다면 어떠할지 질문한다. 그
런 후에, 같은 것을 보고도 예술적 동일시가 가능하지 않은 경우를 제시한다.
그것은 테스타두라가 예술적 동일시의 이다에 익숙하게 되고 그것을 예술작품
으로 구성(constitute)해 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누구도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것을 할 수 없다면 하나의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63) 이를 통해 현대미술에서 외관만으로 어떤 것을 예술작품
으로 규명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작품의 의미를 규정하는 예술
계의 필요성을 논증한다.
예술계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단토는 검은색과 흰색으로만 된 추상화를 보
고 있는 테스타두라는 그것을 예술품으로 이해하지 못하나 추상화가는 예술작
품으로 보는 이유를 들어 이를 논증한다. 그러면서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의
미와 해석에 의해 동일한 사물이 달라질 수 있음을 부연한다. 그는 자신이 깊
게 영향 받았던 선(Zen)사상을 사례로 가져와 설명한다.64)

61) Ibid, p.578.


62) 단토는 가상의 문외한을 ‘테스타두라(Testadura)’라고 칭하는데, ‘예술계’에서뿐만 아니라 『미의 학
대』 서론에서도 사용한다. 스페인어로 ‘말소(抹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아서 단토 저, 김한영 역,
『미를 욕보이다』, p.37 각주 참조)
63) Danto, Arthur,, ‘The Artworld’, Journal of Philosophy, p.579.
6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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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말해, 이 예술가는 예술론들로 형성된 어떠한 분위기와 최근이나 과거의 회화의 역사로
인해 페인트의 물리성으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에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작품은 이 분위기
(atmosphere)에 속하게 되며, 이 역사(history)의 일부가 된다. 그는 예술적인 동일시를 거부하
는 일을 함으로써 추상을 성취하였고, 그러한 동일시로 인해 우리가 떨어지게 되었던 실재세계
로 돌아갔다. 이때의 방식은 다음과 같이 쓴 주영현(朱景玄)이 취한 방식과 얼마간 유사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30년 동안 선을 연구하기 전에는 나는 산을 산으로 보았고, 물을
물로 보았다. 내가 보다 깊은 지식을 체득하게 되자 나는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
는 것을 보는 경지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평정에 다다를 수 있는 실체
(substance)에 도달하였다. 이제 나는 산을 다시 산이라 보고, 물을 다시 물이라 보기 때문이
다.’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그의 동일시는 이론들과 역사에 논리적으로 의존되어 있
다.... 그러하기에 무엇인가를 예술로 보는 것은 눈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무엇-예술론의 분위
기, 예술사에 대한 지식- 즉, 예술계(artworld)를 요청하는 것이다.”65)

이제 단토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가 외관


상 똑같아 보임에도 왜 하나는 예술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포장상자인지를 설
명할 수 있게 된다.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위대한가 혹은 좋은 예술
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그것이 예술이라고 한다면, 외형상 기성품과 동일한 이
러한 대상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66) 그리고
이를 구분하는 것은 예술이론이라고 답한다. 단토가 예술계 개념을 구체화하
게 된 계기가 되었던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예술작품이라는 판정의 기준을
작품 자체 내에서 찾을 수 없고, 작품 밖의 예술이론에서 찾아야 하는 것임을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다. ‘예술이론’은 예술계의 작동 논리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단토는 ‘예술계와 예술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예술적 이론의 역할’67)
이라고 한다. 단토가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통해 부각시킨 예술이론이란

“1960년대 초에 철학적 태도와 예술적 태도 사이에 존재했을지 모르는 그런 유사성을 상당히 자연스럽
게 이해시켜주는 역사적 설명이 있다. 플럭서스의 일원들은 뉴스쿨 대학원에서 존 케이지(John Cage)
의 실험적 작곡 과정을 들은 동기생들이었고, 스즈키 박사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한 선불교 대학원과
정에서 나온 몇몇 개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들 다 1950년대 말에 진행된 과정이었다. 스즈키 박
사가 체계화한 선(禪)사상은 당시 뉴욕 지식계에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한 1964년의 논문
‘예술계’에서 시작된 나의 사유에는 스즈키 박사의 책에서 얻은 내용은 물론이고 그의 수업 시간에 들
은 이미지들이 간간이 섞여 있다.”
65) Danto, Arthur., ‘The Artworld’, Journal of Philosophy, pp.579-580.
66) Ibid, p.580.
67) 김동일,「단토 대 부르디외 : ‘예술계’(artworld) 개념에 대한 두 개의 시선」,『한국문화사회학회』,
2009,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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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이다. 그것은 대상의 모방된 이미지가 아닌 어떤 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각이다.68)
단토는 예술작품을 가능하게 해주는 이론들 그리고 그들 간의 상호관계에
관하여 철학적인 단순 기호를 활용하여 설명한다. 먼저 F와 non-F를 상호 대
립되는 술어로 본다면, 한 대상인 O에 F와 non-F 중 어느 하나가 의미 있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종류 K에 속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O는
대상으로 볼 수 있고 K는 예술작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단토는 만일 O가
K의 한 원소라면, O는 F이거나 non-F 둘 중 어느 하나이며, 다른 하나를 배
제한다고 본다. 단토는 이 대립어(opposites) 쌍들의 집합을 K에 관련된 술어
들의 집합으로 명시한다.69) 즉 단토는 예술작품임을 설명하는 술어를 철학의
논리적인 방식으로 논증한다. 그는 지금 예술작품들인 K의 집합에서 K에 관
련된 술어에 관심을 두고 설명한다. non-F가 전시기에 걸쳐 예술작품에 대한
술어라고 한다면, 예술작품이면서 동시에 F를 술어로 가지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는 non-F에 해당할 수도 있는 <브릴로 상자>에 대한 술어가 50년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해당하는 어떤 시기까지의
모든 작품들은 G일 수 있으며, 어느 것이 예술작품이면서 동시에 non-G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시기까지는 누구의 머리에도 결코 떠오르지 않을 수 있
다.”70) 단토는 G를 예술작품을 정의하는 특징이라 생각했을지 모르나 non-G
역시도 예술작품에 대한 술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에 따라 현대미술의 다원적인 경향을 다음과 같은 기호의
행렬로 설명할 수 있다. G를 ‘재현적이다(is representational)’라고 하고 F를
‘표현주의적이다(is expressionist)’라고 할 때 ‘+’가 어느 주어진 술어 p를 나
타내고, ‘-’가 대립어인 non-p를 나타내도록 하면 다음과 같은 행렬을 만들
수 있다.
F G
+ +
+ -
- +
- -

68) Ibid, p.124


69) Danto, Arthur C., ‘The Artworld’, Journal of Philosophy, p.582.
70) Ibid,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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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는 실제 사용 중인 어휘들을 이용하여 횡렬들의 양식을 표현한다. 말하자
면, “재현적이면서 표현주의적인 것(예컨대 야수파), 재현적이지만 비표현주의
적인 것(앵그르), 비재현적이지만 표현주의적인 것(추상표현주의), 비재현적이
면서 비표현주의적인 것(하드에지 추상)이다.”71) 이처럼 예술과 관련된 술어
들을 추가할수록 2n의 비율로 사용할 수 있는 양식들의 수도 증가한다. 그리
고 단토는 횡렬의 술어가 늘어나 이용가능한 양식의 기회들이 배가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예술계의 성원들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들의 경험
도 풍부해질 것이라고 한다.72) 따라서 그는 횡렬의 어느 한 성원 즉 하나의
양식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절대적 순수를 주장
했던 모더니즘의 순수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비 순수’ 그림들이 있어
야 순수가 존재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예술적
돌파구를 F나 G에 이은 H와 같이 새로운 모형의 추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제
시함으로써 다원주의 예술의 특징과 의의를 말한다. 이로써 단토는 다원적인
예술 속에서 역사와 예술의 현황을 이해하는 예술계를 정의한다. 그의 길지
않은 논문 속에 논증된 예술계 개념은 철학적 정의방식을 통해 제시되고 있지
만 ‘눈으로 알아볼 수 없는’, ‘분위기’ 등의 모호한 어휘를 사용하고 있어 이
개념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비평이 있다. 그 중 부르디외가 단토 예술계 개념
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73)
단토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상황이 더 이상 기존의 예술론적 본질주의의 제
한된 틀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새롭고 다원화된 사유의 가능성을
‘예술계’라는 개념적 도구로 분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부르디외에 의해 단토의
예술계에 대한 비판적 의견으로 제기된 점은 이 개념이 인식의 해석학적 전제
로서 예술계라는 비실체적인 요소와 함께 사회학적 지평이라는 실체적 요소와
도 결합되어 평가해야 하는 것인데도, 단토는 이러한 실체적 방식을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이다.74) 또한 단토와 디키, 그리고 베커를 중심으로 하는

71) Ibid, p.583.


72) Ibid, pp.583-584.
73) 부르디외의 문화철학과 관련한 개념은 이후 4장에서 ‘제3영역의 미’를 윤리적 태도와 비교하는 부분
에서 다시 논의됨에 따라, 여기서 그의 주요 개념인 ‘아비투스(havitus)’와 ‘장(field)’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74) 단토의 예술계 개념에 대한 부르디외의 관점을 연구한 김동일은, 단토의 예술계가 단순한 인식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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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개념 논의들은 예술계가 갖추어야하는 복합적 구성을 충족시키는 통합
된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디키는 단토의 개념을 ‘사회제
도’(social institution)로 전환하는데, 이 개념은 여전히 불완전하게 전개된다.
또한 예술계 개념에 관한 베커(Howard.S.Becker)의 실체론적 접근은 예술이
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은 사회학적으로 정의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단토와
디키의 분석철학적 시도의 반대편에서 다른 한 편만 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다. 따라서 필자는 부르디외가 예술계 개념은 예술작품을 규정하는 특정한 역
사·사회적 국면에서 나타나는 ‘아비투스(havitus)’와 ‘장(field)’ 사이의 일치효
과라 본 것과 단토의 예술계를 비교한다.
부르디외는 『예술의 규칙』 3부 ‘이해를 이해하기’에서 단토를 직접 언
급하면서 그의 예술계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한다. 부르디외는 단토의 예술계
가 지닌 문제점이 많은 철학자와 언어학자, 기호학자, 예술사가들이 발생시키
는 문제와 유사하며, 자신의 개념인 아비투스와 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75)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구조화된 사회적 습성(structured
social habit)을 말한다. 그는 이것을 성향(disposition), 혹은 ‘실천의 논

해석의 지평이 아니라, 그러한 해석의 지평을 현실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실체적 조건들을 함축하
고 있음에도 이를 그의 예술계 개념에 통합하지 못한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김동일은 예술계의
작동을 보장하는 물적 장치는 분명 예술작품에 관한 해석학적 지평으로서의 예술이론과 결합되어있는
것으로 본다. 즉 특정한 인식은 그러한 인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객관적 조건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
이다. 이 객관적 조건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며, 동시에 사회적 공간의 다른 요소들과 연동한다.
예술계는 예술작품을 둘러싸고 행해지는 의미생산과 공인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이론이
란 결국 예술과 실재에 관한 ‘진술’과 ‘의식’에 해당한다. 이러한 ‘의식’과 ‘진술’로서의 예술이론이 바
로 예술작품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작가, 미술관, 비평가, 언론 등과 같은 실체적 요소들의 작동을 유
발하는 준거틀이 되는 것이다. 김동일은, 예술이론 혹은 예술적 진술 등을 중시하는 단토의 예술계는,
제도적 기구와 및 조직과 같은 실체적 요소와 함께 예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응집조건과 같은 비
실체적인 요소들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토에게 비실체적인 요소는 실체적인 요소에
우선한다. 김동일은 단토가 예술계 개념에 내재된 실체적 요소와 비실체적 요소 간의 모순을 종합하는
데 있어서 실패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단토가 실체적 요소들에 접근할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
문이다. 김동일은 단토가 비실체적 요소들의 존재와 형성에 관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조건의 실체적
요소에 대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이르러 재빨리 분석학적인 언어의 틀 속으로 숨어버린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예술계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실체론적 함의를 동반한 전략적 용어이기 때문에, 단
토의 이론은 철학과 사회학으로 양분된 예술계론의 기존 논의 구조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노출시키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일은 일상의 예술적 변용에 관한 논리적 설명을 시도했던 예술계
이론은 예술작품의 규정에 있어서 작품과 비실체적 요소, 그리고 실체적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종합적
인 설명 구조 속에서 완성되는 종류의 것이어야 하며, 그 완성은 단토와 베커를 벗어나면서도, 그들의
이론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어떤 종합적 관점의 필요성을 제기한다고 본다.
75) Bourdieu, Pierre., 하태환 역, 『예술의 규칙』, 동문선, 1999,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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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logic of practice)로 명명한다.76) 그리고 장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과
맺는 사회적 관계의 체계, 즉 지적 장의 구조 내에서 창작자의 위치들
(positions) 사이의 연결망이다. 부르디외는 예술작품들이 지닌 순수하게 미학
적인 인식의 특수성이 무관심성, 무목적성, 형상적 탁월성, 초연함 등에 있다
고 보는 식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칸트식의 사유에서 기인한 변형들로 간주
한다. 그리고 작품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에 보편적인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
는 태도는 이상적인 전형을 제시할 수 있으나 정확한 관점이 아니라고 본
다.77) 이럴 경우 인식된 대상을 주변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며, 사회학적이고
역사적인 관계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앞서 비판한 이러한
본질적인 분석방법은 그러한 분석을 행하는 한 사회의 교양있는 사람의 주관
적인 경험일 뿐임을 직시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분석하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예술작품이 생산되고 구성되었던 조건들에 대한 분석을 배제한 채 한 특수한
대상을 보편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이 이러한 본질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고자
예술정의의 불필요성을 제시하였다고 판단한다. 또한 단토가 예술정의 불필요
혹은 불가론과 같은 논리적 궁지로부터 벗어나고자 ‘예술계’를 제시한 것에 대
해서도 앞서 언급한 것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78) 다시 말해,
부르디외는 어떤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는 ‘예술계’의 제시가 본질주의적
인 입장을 극복하기에 충분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단토
의 태도가 어떤 경험을 특정한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보편
화함으로써 예술계를 통해 예술작품의 제도적인 사실만을 지적하고 있다고 주
장한다. 그는, 단토가 그러한 제도적 입장에서 하나의 대상을 작품으로 인정하
는 행위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예술계를 제시하면서 간과한 측면이 있다는 점
을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제도 즉 예술 장
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분석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

76) Bourdieu, Pierre., translated by Richard Nice, the logic of practice, Polity Press, 1990, p.53.
“‘아비투스’는 지속가능하고(durable), 변형가능한 성향(transposable disposition)이며, 구조들의 구조
화(structuring structures) 기능을 수행하도록 예정된(predispose) 구조화된 구조이다. 즉, 목표를 획
득하기 위해 필요한 작동에 대한 습득을 표현하거나 목표들에 대한 의식적인 지향을 의식하지 않고서
도 그들의 산출에 객관적으로 적응될 수 있는 재현과 실천을 조직하고 발생시키는 원칙이다.”
77) Bourdieu, Pierre., 하태환 역, 『예술의 규칙』, p.373.
78) Ibid,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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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부르디외는, 어떤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분석하는 사람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경험의 현상학적인 분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경험
자체가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분석가는 흔히 자신의 역사적 상황을 망각
하고 자신의 경험을 보편화하기 쉽다.
부르디외는 예술작품과 미학적 경험에 대한 반역사적 분석이 보여주는 것을
하나의 제도라고 보는데, 이럴 경우 단토의 예술계는 이러한 제도적 성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르디외는 단토가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워홀의 <브릴로 상
자>를 보았을 때를 이와 연결하여 설명한다. 단토는 그 작품을 권위 있는 전
시장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는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리자면 장에 의해 수여된
가치를 단토가 알아보면서 즉각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된 것이다.79) 이것
은 상호 존립을 가능하게 하는 아비투스와 예술의 장이 만난 것이다.80) 결론
적으로 부르디외는 미학적 판단의 특수성에 대한 질문은, 각각의 예술작품이
지닌 미적 성향의 구성조건들의 사회학과 연결된 장의 사회적 역사 속에서만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토의 예술계에 대한 부르디외의 평가 외에도, 예술계에 대한 비판적 견해
들은 예술계가 사회적 지평과 관련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는 관점이 지배적이
다. 그러나 단토의 미개념을 고찰하는 본 논문에서는 예술계를 비판적으로 분
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다만 ‘구현된 의미’라는 단토의 예술정의는
‘생산된 의미의 유포와 소통’을 통해서만 의미생산이 완성되나 그의 ‘예술계’
에서는 이러한 소통의 객관적인 조건에 대한 언급이 미흡하다는 데에는 동의
한다.

79) 부르디외는 예술작품이 역사적인 두 제도를 갖는다고 본다. 하나는 사물들이 지닌 자율적인 세계인
예술의 장이며,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두뇌에서 장이 발명되었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성향들이다.
80) Bourdieu, Pierre., 하태환 역, 『예술의 규칙』,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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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술의 종말과 다원주의

단토는 서구미술사에서 예술에 대한 믿음체계의 변화를 분석하여 예술의 종


말을 주장한다. '예술의 종말'이라는 테제는 철학적으로 미술사를 해석하고자
한 것이며, 20세기에 들어와 다양한 운동들로 격발했던 모던 미술을 이해하고
자 한 노력의 결과이다. 단토에 의하면, 이제 무엇이든지 예술작품의 외양이
될 수 있게 되면서 지금까지의 예술작품에 속한 속성들은 의미없어지고 해당
하던 미술사도 종말을 고하였다. 이는 일정 부류의 예술작품에만 의존하던 예
술개념이 사라짐으로써 예술적 편견으로부터도 해방된 것이다. 또한 단토는
예술이 취해야 할 특정한 역사적 방향 같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다원
주의 시대로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예술의 종말과 그 이후에 나타난 다원주의
는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미술사적 특징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번 항에서는
단토 예술사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고 그의 미개념이 다원주의 시대에 적합
한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논하기 위해 그 토대가 되는 개념들을 파
악하고자 한다.
먼저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자. 서구유럽의 전통에서 시각예술은
오랫동안 모방 패러다임 속에 머무르나, 모더니즘 시기에 이르러 모방적 재현
에서 벗어난다. 이처럼 모방에서 벗어나자 예술이란 실제로 무엇인가라는 철
학적 물음이 제기된다. 그리고 미술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려는 움직임은 예술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무엇이 예술을 예술이게 만드는가에 대
한 이 질문은 미와 예술을 동일시해 온 사유에서 벗어나 미를 예술의 개념에
서 분리한다. 그리고, 추상미술처럼 식별가능한 구상적 형태가 없이도 예술작
품이 될 수 있도록 한다. 한발 더 나아가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작품
자체를 예술가가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예술작품만이
갖는 속성은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지 물을 수 있다. 단토는 예술 개념이 바로
이러한 반성적 의식의 층위로 옮겨간 것을 철학적 인식에 이른 것으로 간주한
다. 그러면서 이전 미술사의 거대 내러티브가 종말을 고했다고 본다.
그런데 예술의 종말이 끝이 아니라 이후 새로운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라면, 그러한 예술은 어떤 형태를 갖는가. 단토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로 본다. 이것은 전통적인 미술의 거대서사 이후에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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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가능했듯이, 모던의 서사가 종말을 고한 후 컨템포러리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린버거(Clement Greenberg)는 자신의 모더니즘
회화론에서 특정한 부류의 예술작품들에 한정하여 예술로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종류의 예술을 허용하지 않는 불관용의 태도이다. 반면에 ‘예술의
종말’ 이후 컨템포러리가 갖는 다원주의는 동일한 개념이 다양하게 구현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는 예술들 간의 편견
을 해소한다. 이번 항에서 논의될 내용과 관련된 단토의 책 『예술의 종말 이
후』(1997)는 컨템포러리 미술과 모던 미술을 구별하는 방식을 다룬다.81) 이
책은 예술을 철학적으로 정의한 『일상적인 것의 변용』(1981) 이후에 쓰여
진 것으로, 단토의 주요 예술철학 3권 중 두 번째 책이며 미술사의 철학을 논
한다. 또한 이 책은 모던이스트들이 초현실주의와 같은 특정한 예술전통과 실
천들을 “역사의 경계 밖”에 두는 거대서사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82) 그러므로 단토의 중기 예술철학에 해당하는 이 사유로부터, 그가
초반에 제기한 ‘예술계’의 객관적 구조가 이제는 급진적인 다원주의에 의해 정
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말기에 제기한 미 개념들은 다원주의
미술과 문화적 관점에 연결된다. 이처럼 단토는 역사철학과 예술철학을 연결
시키는 사유를 예술의 종말 개념을 통해서 전개한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한스 벨팅83)이 후기로마시대로
부터 1400년경까지의 신앙이미지(devotional image)를 ‘예술시대 이전의 이
미지’84)로 칭한 것을 가져와 활용한다. 그는 벨팅의 시대구분에 착안하여, 예
술의 시대 이전을 설정할 수 있다면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에 관해서도 고
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예술의 종말’이 주는
강렬한 어감으로 인해 선입견을 갖는다. 이러한 관점은, 단토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종말이 아니라, 회화의 죽음으로 인식하게 한다. 실제로
80년대 로버트 라이먼(Robert Ryman)의 전면 백색회화와 다니엘 뷔랑

81) 단토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 책이 미술사의 철학, 내러티브의 구조, 예술의 종말, 그리고 예술비평의
원리를 논하는데 바쳐졌다고 밝히고 있다.(Danto, Arther., After the End of Art, p.ⅺⅴ.) 그리고
1995년 6주에 걸쳐 진행된 멜론강연의 내용을 토대로 책이 구성되었다.
82) 단토는 그린버거가 초현실주의 미술은 모더니즘의 일부가 아니라고 가정하고서 자신의 서사 속에서
배제했던 것을 거대서사의 문제점으로 『예술의 종말』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83) 예술 사회학자 한스 밸팅은 아서 단토와 거의 같은 시기인 1983년도에 『예술사의 종말 이후(The
End of the History of Art)』(1987)에서 예술의 ‘종말론’을 언급한다.
84) Danto, Arther., After the End of Art,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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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Buren)의 단색조 줄무늬 회화를 본 사람들은, 이런 선진적
(advanced) 회화가 내적인 소진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 같다며 ‘회화의 죽음’
을 거론하였다85). 그러나 단토는 미술이 여전히 활기찼고 내적 소진의 징후는
없었으며 오히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
서 그가 사용한 ‘종말’이 예술의 죽음과는 상관없음을 강조한다. 즉 그가 의미
하는 예술의 종말은 하나의 미술실천 복합체(complex of practices)가 어떻
게 다른 복합체에 자리를 내어주었는가에 관한 것이므로 ‘회화의 죽음’을 의미
하지 않는다.86)
만일 예술의 종말이 예술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내러티브의 종말이며 이
로부터 새로운 예술이 시작된다면, 예술의 보편적 본질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되
는가.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평론가 조르조 바자리(Giorgio Vasari)는 모방적
재현으로 예술의 본질을 제시했으며 그것의 가치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사진기
의 발명으로 이 본질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평론가 그린
버그 또한 예술의 '순수한 유일성'의 가치를 믿어왔으나, 워홀의 <브릴로 상자>에
의해서 미술사의 철학적인 전환을 받아들여야 했다. 단토는 이제 무엇이든 예술작
품이 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예술이 하나의 본질이나 개념에 갇히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20세기 이후의 미술을 볼 때, 르네상스로부터 모던 시기에 이
르기까지 예술의 본질을 발견하고 예술의 보편적인 개념을 규정하려던 시도가 성
공하지 못했다고 보여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박이문의 글에서처
럼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을 추종한 와이츠(Morris Weitz), 그리고 최근에는
해체주의자 데리다(Jacques Derrida) 등의 주장대로 그런 본질의 부재 혹은 그런
개념규정의 논리적 불가능성에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87) 그러나 단토는 비트
겐슈타인주의자들의 예술정의 불가론에 맞서 예술은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수의 예술이론가들 또한 예술의 불변하는 본질, 예술의 보편적 정의를
전제하지 않고는 예술의 역사는 물론 그 아무것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는 담론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단토는 예술이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장구한 세
월 동안 존재해 온 이상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보편적인 본질이 존재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85) Ibid, p.4.


86) Ibid, p.4.
87) 박이문,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미술사”, 『미술사학보』,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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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아트와 컨템포러리 아트 사이의 첨예한 차이가 인식된 건 1970년대 중
반부터였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슬로건이나 로고없이 부지불식간에 시작되었
다는 점이 특징이다. 1900년대 초 반항적인 전위예술의 움직임과 달리 컨템
포러리 아트는 과거의 미술에 대항하는 지침서라고 할 만한 것도, 과거로부터
의 해방을 성취한다는 인식이나, 그것이 모던아트와는 일반적으로 다른 미술
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술시대의 예술을 대표
하는 두 비평가인 바자리와 그린버그는 각각 자신이 선언한 예술의 본질을 전
제로 두고, 예술의 역사가 그 본질의 실현을 향한 진보의 과정에 있다고 믿었
다. 단토는 이러한 그들의 태도 때문에 예술시대의 예술과 미술사가, 예술의
본질과 정체성을 발견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평가했다. 단토는 <브릴로 상자>
에서처럼, 예술의 본질은 지각적으로 식별불가능한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
을 설명함으로써, 기존의 본질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즉 동
시대에 이르러서는 예술이 지각적 인식이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사
유의 대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오히려 컨템포러리 아트는 과거의 미술을 현재
의 용도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차용하는데, 이러한 차용이 중요한 특징으로
새롭게 떠오른다. 컨템포러리의 정신에 대한 기본적 자각은 살아있는 예술적
선택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테제를 제안 혹은 지지하려는 목적으로
대상들을 배열하여 일종의 콜라주라 할 만한 예술형식이 생겨나게 하였다. 단
토에 따르면, 이러한 전시를 하는 “미술관에서는 모든 미술이 합당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거나 그 미술이 어떠한 것으로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선험적 기
준이 없으며, 그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모두 다 들어맞아야 하는 내러티브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관들은 ‘미술가가 제공하는 것 외에는 서로 역사적이거
나 혹은 형식적 연관관계가 없는 대상들로 이루어진 전시회를 조직’하여 역사
이후(post-historical)의 예술 시기를 정의하는 태도를 보인다.88) 즉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므로 모던과 컨템포러리의 구분은 의식의 출현, 다시 말해 어떤 식의
자아의식의 징조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에서 역사의 구분은 고대,
중세, 모던이다. ‘모던’ 철학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한다.89) 데카르트가 취했

88) Danto, Arther., After the End of Art, pp.5-6.


89) 미학의 가능성에 대한 데카르트의 의심은 근대미학에 본질적인 변화의 토대를 제공하였다. 그는 아름
다움에 대한 확실한 앎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의심한다. 데카르트의 예술 개념은 고대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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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특정한 내적 전회는 사유하는 자아이다. “사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하
는가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마음(mind)을 지닌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들 사물들을 어떻게 사유할 수밖에 없느냐하는 것”이다.90)
데카르트와 모던 철학 일반은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외부로 작업하면서 우주에
관한 철학적 지도를 그렸으며, 이 지도의 모체는 인간의 사고구조였다. 단토는
데카르트의 업적이 사고의 구조를 의식으로 끌고 들어와 그 구조를 비판적으
로 검토할 수 있게 한 것으로 간주한다.
세계가 사고에 의해 정의된 이상, 세계와 우리는 서로의 이미지 속에서 만
들어진다. 고대에는 이러한 주체의 특징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객관적 세
계를 기술하는 데만 주력한다. 그것은 자아시대 이전의 자아이다. 미술의 역사
에서도 마찬가지로 모더니즘 미술은 자연의 창이 아니라 “재현의 ‘조건들’이
핵심적”91)이게 되며, 미술은 미술 그 자체가 주제가 된다. 그린버그는, “칸트
는 비판의 방법 그 자체를 비판한 최초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나는 칸트가 최
초의 진정한 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의 모더니스트적 사고의 모델
로 칸트를 택한다.92) 그린버그는 재현의 수단을 재현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모방적 재현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
며, 회화에서 일종의 불연속적인 것의 등장이자 의식의 새로운 단계로의 상승
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러나 모더니즘 미술은 다양한 미술 현상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태도를 보인다. 모더니즘은 초현실주의를 진짜 예술이 아니라
고 판단하는데, 그것은 모더니즘식 내러티브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토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편파적인 입장을 비판한다. 단토의 ‘예술의 종말’이 의도하
는 것 중 일부는 경계 밖에 놓여있던 것에 예술의 자격을 부여하는 일이다.93)
컨템포러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예술계 현상을 나타내는 단순한 시간적 용
어가 아니다. 그것은 모던 아트가 갖지 않았던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사의 전체 역사 동안 이전에는 본 적이 없던 제작구조

스인들의 테크네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미를 즐거움과 연결짓는데, 즐거움은


감각적 지각이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즐거움은 나의 감각과 내가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대상
사이의 특정한 비율에서 온다. 그는 미와 즐거움이 어떤 비율에 있다고 본다.
90) Danto, Arther., After the End of Art, p.6.
91) Ibid, p.7.
92) Ibid, p.7.
93) Ibid,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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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에서 만들어진 미술을 의미한다. 즉 컨템포러리 예술이란 “한 시기라기보다
예술을 지배했던 어떤 지배적 내러티브의 시기들과 같은 것이 더 이상 존재하
지 않게 된 후에 일어나고 있는 것, 그리고 예술 제작의 한 양식이라기보다는
여러 양식을 사용하는 하나의 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94)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컨템포러리가 하나의 양식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컨템포러리 아트는 한 양식에 의한 통일성이 없고 하나의 규준으로
고양될 수 없으며 한 방향의 내러티브의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단토는 ‘역사
이후의 미술’이라 부른다. 그는 컨템포러리 한 것은 정보의 무질서한 시기, 완
전한 미학적 엔트로피의 상태이며 오늘날 더 이상 역사의 울타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1962년 추상표현주의가 종말을 표시한
후에도, 색면회화, 하드에지추상, 프랑스 신사실주의, 팝, 옵, 미니멀리즘, 아르
떼 포베라, 새로운 조각들, 개념미술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는 거대한 격변의
시기였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단일한 내러티브가 아닌 거대한 실험적 다
작이 규준으로 자리잡은 시기였다.

“60년대는 이 시기가 진행되던 중에, 양식들의 격발기였고, 그들 양식이 서로 다투는 과정


속에서 내가 ‘단순한 실물(mere real thing)’이라고 지시한 것과 미술작품이 정반대의 방향에
있게 하는 특별한 방식이란 없다는 사실을 최초로 신사실주의와 팝을 통해 점차 분명하게 되었
다는 생각이 내게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예술의 종말’을 말할 수 있었던 토대가 된
다.”95)

단토에게 이것은 외관에 관한 한 무엇이라도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한다면 감각경험으로부
터 사고(thought)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철학으로 이동해야
함을 말한다.96) 컨템포러리 아트의 경향을 설명하기 위한 철학적 접근과 그에
따른 철학적 정의는 ‘의미’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고, 의미는 외형적 제한성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갖는다.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시기까지의 ‘예술시대의 예술’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통해서 단토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은,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예술작품들

94) Ibid, p.10.


95) Ibid, p.13.
96) Ibid,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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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일관되게 적용되어 작품들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의 본질을 발견
하고 예술개념을 정의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토가 예술에 관한
담론을 철학적으로 가능한 논리구조 속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예술담론에 보편적으로 깔려있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특정
한 예술에 갇힌 잘못된 예술의 본질, 개념, 정체성의 규정에 있다. 단토는 예
술의 종말 이전과 이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예술의 명확하고도 보편적인
개념규정 없이 어떻게 예술작품을 비예술작품으로부터 구별할 수 있는지를 고
민한 것이다. 또한 그러한 구별이 전제되지 않고는 예술작품의 해석, 감상, 평
가, 그리고 역사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가능할지를 질문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현상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어떤 본질과 원칙으로
설명하려 한 것이다. 예술에 대한 철학적 담론의 궁극적 의도는 예술의 본질
을 찾아내는 일,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예술의 개념을 규정하는 작업이
다.
예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은 철학적 자기반성으로의 상승 이후에 온 것이다.
단토는 70년대에 이르러 미술자체에 관한 철학적 사고에 주목하던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미술이 자기의식을 일별 한 후 예술의 역사가 끝났다고 본다. 그
에 따르면 이제 “미술의 역사가 스스로 짊어졌던 짐을 철학자들의 손으로 넘
겨 운반하도록 하였다.”97) 미술의 종말 이후 역사의 짐으로부터 해방된 미술
가들은 그들이 바라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이 바라는 어떤 목적으로든, 혹은
아무런 목적 없이도 자유롭게 예술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컨템포러리
아트의 증표이다. 그러므로 모더니즘과는 대조적으로 컨템포러리 양식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후』의 초입부에서 확실히 60년대 이후 거대 내러
티브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모더니즘의 틀과 대조되는 미술의
등장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는 예술의 종말을 말한 후에 새로운 미술의
주요 특징을 설명한다. 그것에 해당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는 ‘구현된 의미’에서
그 예술적 당위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단토는 여기까지도 미에 대한 언급을
본격적으로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가 천착한 것은 당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
던 예술계의 현상으로, 이것을 이해하는데 주력하였다. 필자는 단토의 『미의

97) Danto, Arther., After the End of Art,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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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가 이러한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 이후, 숙고할 충분한 시간을 보낸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본다. 예술의 종말은 1970년대 이래 20세기 말까지의 현
상에 대한 단토 식의 결론이며 예술사적 철학의 관점으로 이해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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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단토의 예술과 미의 개념

이번 장에서는 『미의 학대』에서 단토가 제시한 예술과 미, 그리고 미적


특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명료한 인식으로부터 그의 미개념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고자 한다. 미와 예술은 미학의 주요개념으로, 두 개념에 대한 정의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 단토가 생각하는 주요한 전환점과 특성이 무엇인지를 이
해함으로써 단토의 사유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두 개념에 대한 커다란 변화
의 시기였던 20세기 초에서 중반까지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단토가 예술과 미를 활용하는 방식과
상호 관계 맺는 구조를 우선적으로 규명하겠다.
단토는 예술철학적 경력의 대부분에 걸쳐 예술개념을 고찰하고 새롭게 정의
하는 데 집중했다. 왜냐하면 예술이 미의 산물이라거나 자연의 모방이라는 전
통적인 정의는 20세기로 전환될 무렵부터 더 이상 적합한 것으로 인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통상 예술이라 칭하는 영역 전체를 포괄하는 한 가지
정의란 성취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예술정의 불가론
이나 불필요설은 지속적으로 예술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계의 입장에서
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철학적 태도였다. 그러므로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용인
할 수 있는 적절한 예술정의가 필요했고, 이에 단토는 넓고도 잡다한 영역 전
체를 포괄하는 예술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면서 이를 논증하는
문제에 천착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단토는 그의 경력 말기에서야
미의 개념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로, 20세기 초부터 최근
에 이르기까지 예술에서 미를 중요하게 보지 않으려는 태도가 우세했는데, 이
는 비단 단토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1, 2차 대전이라는 고통스
러운 경험을 공유한 서구 유럽의 예술 및 철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미의 배
제는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현대예술에 나타난 지배적인 분위기였다. 또한
1960년대 이기심에 기반을 둔 미국사회 경제 구조와 기성 행동양식들에 대한
젊은 세대들과 예술가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무렵은 비극적인
베트남전쟁으로 5만7천명 이상의 미국 청년들과 3백만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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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되었던 시기였다. 이를 통해 인간 사회가 품은 광기가 백일하에 드러난
시기이기도 했다. 단토는 전반기의 예술철학에서 미를 분석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언급하며, 미를 논하기 어려운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했던 자신의 태도를 인정하였다.98) 두 번째, 미에 주목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예술정의의 특성 때문이다. 모더니즘은 해당 이
론에서 벗어나는 예술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성을 보였다. 이 점을 비판한
단토에게는 자신의 예술정의가 모든 종류의 예술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했다.
따라서 정의 조건은 간명한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미나 미적 특질
과 같은 특정 예술이론이 동반되는 조건을 자신의 예술 정의에 추가할 수 없
었다.
물론 미를 예술에서 분리하고 의식적 인간활동으로서의 예술을 의미론적 입
장에서 철학적으로 사유하던 당시의 경향이, 예술철학에는 ‘지리멸렬했던 미학
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강한 움직임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99) 예술뿐만 아니
라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가 요구되는 시기였고, 예술이 맞고 있던 변화에도
전통으로부터의 탈피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단토의 차
별성으로 인정해야하는 부분은, 현대예술이 전통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미를 현재에 이르러 다시 논해야 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필
자는 단토가 20세기 이후 예술에서 미가 배제되었던 역사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시금 예술과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시도하였다고 본다. 특히 그
가 미개념을 새롭게 다룬 것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적절한 주목이었다
고 생각된다. 실제로 미는 진, 선과 함께 유럽사상사에서 지고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어온 보편개념이다. 그리고 20세기 초반 혼란스러운
정치적 입장에서 형성된 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덮개로 가릴 수 없는 빛
나는 진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단토는 미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가치를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회복시키고자 하며, 자신의 주요 미개념으로
다루고 있는 내재미와 제3영역의 미를 통해 굴절인자로서의 미의 가치를 재

98)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ⅹⅸ.


“내가 나 자신의 역사적 순간에 속한 존재라면, 바로 그것이 왜 내가 이 문제에 답을 구하려는 시도는
물론이고 이 문제를 제기조차 않았고 그래서 예술을 분석할 때 미나 그 비슷한 것들의 역할을 거의
고찰하지 않았는지 설명해준다. 나의 예술철학이 시작된 역사적 환경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를 설명할
것이다.”
99) Ibid, p.ⅹ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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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한다. 이때 특히 미화의 개념을 재해석한 제3영역의 미는 다수의 사람들
에게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표준적인 상인 규범미가 이상적인 내면의 아름다움
과 결합될 때 이상미로 드러나는 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움은 어떤 것
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점이 단토가 미개념을 주목하
면서 내놓은 주요성과라고 생각한다.

1. 예술과 미에 대한 정의의 변화

1) 단토 예술정의의 단초들

미개념은 예술개념에 비해 범주가 넓지만, 예술과의 긴밀한 관련성 속에서


논의된다. 특히 전통적으로 이해해왔던 예술의 개념이 20세기 이후 획기적인
전환을 맞는 과정에서 미개념에 대한 인식 또한 크게 변화한다. 이에 1절에서
는 먼저 예술의 정의에 어떠한 지각 변화가 일어났으며, 그와 관련하여 미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형성된 이유와 그 과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먼저 단
토의 예술 개념의 단초들을 검토한다. 다양한 사회. 정치적인 현상들은 예술적
사유에 영향을 끼친다. 예술을 미의 소산이나 자연의 모방으로 보던 기존의
예술개념으로는 현대예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단토의 예술철학 역시 당시
예술계의 전반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정의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그가 예술철학을 시작했던 1960년대 미국 뉴욕의 예술 경향이
그로 하여금 어떠한 방식으로 예술을 정의하게 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
다.
무엇보다도 단토는 예술과 철학의 긴밀성 속에서 예술을 정의한다. 이는 당
시의 선도적 예술이 보여준 지배적 분위기였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단토는
‘예술의 종말’, ‘예술계’, ‘다원주의’ 등의 개념으로 그의 예술철학을 논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예술개념이 와해되고 예술이 철학과의 긴밀한 관련을 맺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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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환경적인 토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어서 단토가 정의하려 한 예술개
념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가 예술과 분리되는
구조적 근거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술이 의미론적 특질에 주목함으로써, 미는
예술과 분리되고 예술의 주된 목적으로서의 자리를 내어놓게 된다. 하지만 단
토는 이후 미의 배제 원인을 재검토하고 그것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함으로
써 시대적 상황에 맞는 새로운 미개념을 구축한다.
그럼 단토가 자신의 예술정의를 성립시키는 데 단초가 되었다고 즐겨 인용
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단토는 특별히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조우하고 전통
적인 예술개념으로는 더 이상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
다. 따라서 그는 수퍼마켓에서 만날 수 있는 브릴로 상자처럼 일상의 사물과
지각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예술작품에 대해 그것을 예술로 규정하는 기준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질문한다. 현대미술이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들에 대해서는
단토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철학자들 역시 유사한 질문들을 제기하였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주의자들이 예술정의의 불가능성과 불필요성마저 언급하던
상황이었다.100) 단토는 이러한 예술정의 위기론에 맞서 현대미술의 개방성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철학적 정의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 정의는 반례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반적이어야 한다. 내가 그런 조


건을 충족시키는 공식에 도달했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정의가 처음부터 나의
예술철학을 지배한 큰 과제였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 1960년대 중반의 예술을 다룸으
로써 가능해진 과제이기도 했다. 예술개념에 속해 있다고 느껴졌던 많은 것들이 마침
고려의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와 모방뿐 아니라 예술 활동에
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거의 모든 것들이 효력을 잃은 시기였다. 예술의 정의는
이전의 담론에서 예술 개념으로 여겼던 것들이 무너져 내린 황량한 폐허 위에 다시
세워져야 했다.”101)

단토가 자신만의 예술에 대한 정의에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미나 모방과

100) 단토가 예술을 철학적으로 정의하고자 했던 배경에는 예술정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과 불필요하다
는 입장이 있었다. “내가 예술을 정의하는 프로젝트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예술철학은 두 개의
주요한 명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정의는 불가능하다는 명제와, 그런 정의는 불필요하다는 명제였
다. 후자는 대체로 전자에 대한 비트겐슈타인 학파의 반응이었다.”(Ibid, p.ⅺⅹ) 이러한 견해에 대해
단토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계자들이 아직 다원주의가 의식에 각인되기 전이 었기 때문으로 본다.
101) Ibid, p.ⅹ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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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존의 예술개념이 와해된 1960년대 중반 뉴욕의 예술을 지켜봄으로써
가능했다. 일상적인 사물과 예술작품을 구분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어떤
대상이 예술인가 아닌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사물
이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면 예술로서의 의미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처
럼 예술작품의 지성적이고 의미론적인 관점을 생각해볼 때 철학적 사유와의
연관성을 고려할 수 있는데, 단토는 당시 예술과 철학사이의 긴밀성에 주목하
였다. 1990년대의 뉴욕에서는 예술가들이 철학강의를 듣고 철학적 사유를 자
신의 예술에 실험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현
재의 예술가들에게도 철학적 사유의 반영은 지속되고 있는 창작방식의 하나이
다. 단토는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갈래였던 예
술작품들로부터 예술철학적 사유를 시작했음을 밝혔다.102) 바로 플럭서스
(Fluxus) 운동을 말한다. 1950년대 말 진행된 플럭서스 운동의 일원들은 뉴
스쿨 대학원에서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의 실험적 작곡과정을 들은
동기생이라는 것과 컬럼비아대학 선불교 대학원 과정에서 스즈키 박사가 체계
화한 선(禪)사상 강의를 수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위적인 예술을 이끌었
다.
그러나 철학과 예술의 긴밀한 관계와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에는 관
심을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대체로 의미를 담아내는 자신들의 예술행위
와 거리가 있다고 생각된 미학에는 냉소적이었던 것이다. 단토는 『미의 학
대』의 서론을 시작하는 문구로 “미학이 예술을 위한 것이라면 조류학은 새를
위한 것이다.”라는 바넷 뉴먼의 언급을 인용한다.103) 이 말은 미학이 예술창
작에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어하는 미학자들을 비웃기 위한 것이다. 새들이
조류학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어불성설인 것처럼 예술가가 미학으로
부터 자신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미학이
과거와 달리 예술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해준다. 철학분야에서도
미학은 시시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태도였기에 신중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미학은 ‘철학과 예술사이의 일종의 무인지대에서 활기를 잃은’

102) Ibid, p.ⅰⅹ.


103) Ibid, p.2. 이 말은 뉴먼이 1952년 ‘미학과 예술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하였을 때,
수전 K.랭어(Susan K. Langer)가 예술가들은 미학자들에게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어투의 말이 다소
건방지다고 여기고, 조류학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새를 위한”것이 아니듯 예술가가 하는 일은
“미학을 위한” 것이 아님을 조롱 투로 받아친 것이라고 단토는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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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였다.104) 1960년대에 단토 역시 추상표현주의와 같은 직접 경험 형태로
서의 미학에는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미학이 예술작품을 정의하기에는 역부
족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미학은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수퍼마켓의 브릴
로 상자가 똑같이 생겼으면서도 하나는 예술작품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닌 것
을 설명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토는 미술비평가이기 이전에 뛰어난 분석
철학자로서 과거에는 전혀 예술작품이 될 수 없었던 어떤 사물이 특정한 역사
적 순간에는 예술이 되는 이유를 묻는다.105) 즉 역사적 상황이 어떤 대상의
예술적 지위에 관여하는가하는 문제에 집중한 것이다. 이처럼 철학과의 깊은
연관성 속에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리고
표상 체계에 해당하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표상인 예술작품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역사에 속하더라도 예술로 정의할 수 있어야 그것
을 하나의 정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찰의 결과, 단토는 어떤
것이 의미를 구현한다면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간명한 개념을 도출한다. 이
는 다양한 역사적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예술의 존재를 말해줄 수 있는
정의라고 본다. 그러나 그는 당시로서는 미와 미적특질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상태였다.106) 미를 대하는 이러한 경향은 단토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성이 아니
라 예술계의 전반적인 흐름이었으며,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을 뿐
만 아니라 일반화되어 갔다. 그리고 이제는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다원주의 시대로 진입하였다. 우리는 예술을 모방적 재현으로 보던 시대에서
멀리 떠나왔다. 그래서 단토는 예술이 미를 목표로 하던 이전 미술사의 거대
서사가 끝났다는 의미로 ‘예술의 종말’을 제기하였다. 결과적으로 단토는 다원

104) Ibid, p.2.


105) Ibid, pp.3-4 참조.
106) 단토는 그의 미학적 발전을 ‘미적 관념으로서 내재된 의미’에서 설명한다. "나는 예술에 있어서 미
학의 중요성에 대해 상당히 냉담했다. 예술철학의 주요 저작인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나는 예술
의 철학적 정의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 즉 예술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의미를 갖는다는 것
과 예술은 그 의미를 구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예술비평이 다루는 것이다. 나는 예술 작
품을 구현된 의미로 부르면서 이것을 요약했다. 나의 최근 저서 『미의 학대』에서 나는 미학이 전통
적으로 인식되어온 것보다 더 넓다는 오스틴의 발견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세 번째 필요 조건, 즉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미적 자질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예를 들어, 그룬
지(grunge) 같은 미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룬지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것이다. 나는 예술이 어떤 미
적 자질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품은 채 책을 끝냈다. 그러나 나는 α가 적용될 수 있는 어떤
미학적 술어를 의미할 때, 내적 아름다움과 외적 아름다움 사이의, 그리고 일반화에 의해, 내적 그리
고 외적 α 사이의 구별을 강조할 가치가 있었다."(Danto, Arther., ‘Embodied Meanings, Isotypes,
and Aesthetical Ideas’, Aesthetic, Volum 65, Issue 1, winter 2007,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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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자체가 확립된 이후, 즉 그가 말하는 예술의 종말 이후에야 역사를 초월
한 예술철학을 논할 수 있었으며 모든 역사적 순간에 유효한 예술철학을 꿈꿀
수 있었다.107)
단토는 그가 발견한 미개념을 전개시키기 위해 『미의 학대』에서 먼저 예
술의 개념이 오늘날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에 대해 관련된 주요철학자 및 예
술가의 관점을 제시하고 이를 검토한다. 그는 이 책에서 동시대 예술에 대해
철학적 정의를 시도한 첫 번째 철학자로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를 언급한다. 단토는, 예술에 있어서 어떤 것도 더 이
상 자명하지 않다고 본 아도르노의 통찰에 깊은 공감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예술의 종말에 대한 아도르노의 의미와 자신의 의미가 다르다는 점을 지
적 한다.108) 아도르노는 현대사회의 사물화된 문화사업의 실증주의적 동일화
를 예술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유토피아를 희망하는 예술은 그 과
정에서 이율배반에 빠지게 된다. 유토피아가 실현되면 예술이 현실에서 제거
해야 할 것이 더 이상 없게 되면서 예술은 종말에 이른다.109) 이러한 아도르
노의 출구없는 종말과 달리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던 서
구 미술사의 거대 내러티브의 종말로, 종말 이후에야 비로소 다원주의에 따른

107)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ⅹⅹ.


108) Ibid, p.19.
단토는 자신의 ‘예술을 종말’의 뜻을 아도르노와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하고 있
다. “아도르노라면 이 묘사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다만 그에게는 그것이 문화적 절망의 표현인 반
면에 나에게는 단지 예술의 미래 역사가 새로운 물건들을 통해 어떤 새로운 작품을 낳을지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도 마침내 예술을 철학적으로 정의하는 일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놀라운 것들이 나올 수 있겠
지만, 철학적으로는 놀랍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지할 수 있는, 예술의 철학적 정의는 존재하는 어
떤 예술과도 양립해야 한다.”
109) 배용준, ‘변증법적 미학에 있어서 형시과 내용’, 『동서철학연구』, 제63호, 2012.03, p.
117-118(Adorno, T.W., 홍승용 역, 『미학이론』,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10, p.232.에서 재인용)
아도르노는 헤겔의 예술의 내용과 형식의 변증법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겔의 부정의 부정이
라는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서 사회비판이론과 미학이론을 형성하였다. 그의 부정의 철학은 예술을 통
해 가장 자유롭게 표현되었는데, 예술은 본질상 부정성이고 자율적이며 내재적 비판의 기능을 수행하
고 있다. 아도르노는 현대사회의 사물화된 문화사업을 거부하고 예술의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통해 인간을 해방시키는 유토피아를 실현코자 했다. 현대사회와 문화산업의 특징은 동일화로, 대
립된 주체와 객체를 거짓으로 화해시켜 비판과 부정을 없애는 실증주의적 동일성을 말한다. 그는 동일
성에서 벗어나는 길을 예술에서 찾지만 예술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율배반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예술은 유토피아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실현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제
거되어야 할 것을 부정하는 예술은 부정할 것이 없어지면서 예술의 유토피아가 실현되면 예술이 종말
에 이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도르는 예술의 유토피아적 종말을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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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예술의 정의가 가능하다. 단토가 수립하고자 했던 예술의 정의는 어떤
예술과도 양립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예술작품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때 문제는 그렇다면 다원주의시대에 예술작품이라는 지위는 어디에서 나오
는가이다.110) 단토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2장에서 서술하였듯이 예술계와 예
술이론에서 찾고자 한다.
주요 예술론과 관련해 아도르노에 이어서 1940-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
의를 대표했던 평론가 그린버그를 언급할 수 있다. 그린버그는 전통미술의 3
차원적 공간이라는 사실성을 탈피하고 회화의 매체적 특질인 ‘평면성’을 본질
로 하는 미술을 옹호했다. 그의 책 『모더니즘 회화』에서 그린버그는 칸트철
학에 토대를 두고 “예술의 자기비판이란 어떤 예술에 고유한 매체를 그 예술
에 고유하지 않은 성질들로부터 순수하게 만드는데 있었다”고 했다.111) 그린
버그는 평면성을 회화의 고유한 성질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비평의 기준인
‘매체에 대한 존중’은 현대의 담론에서는 더이상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어떤 것도 어떤 방식으로든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상황에서 그
린버그의 모더니즘은 예술을 자체적으로 정의하려고 시도하면서 다양한 미술
운동들을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개념청소’였다고 할 수 있다. 단토는 그린버
그식 모더니즘의 순수함이 이제 선택사항이며 지나간 유행이라고 일갈한
다.112) 모더니즘과 연관이 깊었던 철학자 칸트를 비롯해 미니멀리스트들이 깊
게 영향 받았던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
술에서 철학의 지분은 커졌다. 1960년대에는 전위예술과 철학이 아주 많은
태도를 공유했으며, 단토 역시 해당 시기의 주된 철학적 사유방식을 따랐다.
단토가 책 서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자신의 예술철학적 사유를 위해 당시에,
‘존경할 만한’ 철학으로 인식되었던 과학철학과 언어이론의 특징적인 사유방식
을 모델로 삼았다.113) 분석철학은 실존주의자들의 형이상학과 연관된 ‘고급’철
학의 허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과학적 담론의 기준에 맞추어 그들의
언어를 비판하면서 일상언어의 신성화에 주목하였다. 이는 워홀의 ‘팩토리
(factory)’나 올덴버그의 ‘스토어(store)’에서 보여준 작품들이, 일상적인 물건

110) Danto, Arther.,The Abuse of Beauty, p.18.


111) Ibid, p.19.
112) Ibid, pp.19-20.
113) Ibid, p. p.20, p.ⅹⅶ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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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나 사건들과 관련되어 어떤 문화적 등가를 보고자하는 의도적인 미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단토는 ‘지상을 향한 자발적인 하
강’114)의 특징을 띠었다고 표현하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과의 긴밀한 관련 속에 플럭서스 운동이 전개되었
는데, 1960년대 예술현상들의 특징을 플럭서스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동시
대에 나타나는 예술적 태도와 철학적 태도의 유사성은 플럭서스 운동에 영향
을 주었던 스즈키(스즈키 다이세츠, 鈴木大拙)박사의 선 개념의 반영으로 잘
드러난다. 단토 역시 『예술계』에서 스즈키 박사의 영향을 받았다고 적고 있
다. 이 외에도 존 케이지의 수업을 들은 동기생들이 플럭서스 미술운동의 일
원들이었다. 케이지는 우연성 음악의 개척자이며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했는데,
그의 생각에 공감했던 예술가들은 ‘예술과 삶의 간극 좁히기’에 중점을 두었
다. 이 시기에 뉴욕 안팎에서 일상의 경험을 지배하는 평범한 세계가 예술적
의식의 면에서 부각되었으며, 일종의 변형을 겪기 시작했다. 단토는 예술계의
이러한 움직임은 스즈키의 가르침이 직접 이끌어낸 변화였다고 말한다.

“나는 어떠한 형식적 요구도 예술작품을 지극히 일상적인 물건이나 사건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철학적인 전율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춤이 되
고, 우리가 듣는 모든 것, 심지어 침묵도 음악일 수 있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나무
상자, 동그랗게 만 빨랫줄, 돌돌 만 철망, 벽돌 한 줄로 조각품이 될 수 있었다. 흰색
으로 칠한 단순한 형태가 그림이 될 수도 있었다.”115)

그러므로 단토에게 예술과 삶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태도는 예술을 철학적으


로 정의하려했던 1960년대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이후
미와 삶을 깊게 연관시키는 사유의 전개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시대적 상황이 단토를 미와 미학의 문제로 이끌기에는 일렀다.
철학과 밀접해진 예술은 감각적 지각만으로 예술개념을 분석할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해진다.116) 플럭서스 등의 전위예술 실험에서 보여지듯이 우리가 알

114) Ibid, p.21.


115) Ibid, p.21.
116)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든 영국의 철학자 리처드 월하임(Richard Wollheim)은 1965년 <미니멀
아트>라는 글에서 ‘개념이 있다는 것’은 그 사례를 선별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음을 의미한다는 공인된
철학 모델을 따랐다. 월하임이 제기한 이론을 간략화해보면, 회화 양식을 일반 양식과 개인 양식으로
구분하고, 개인 양식에서 회화의 재현과 표현의 문제를 다루면서 회화의 재현을 인간의 타고난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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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예술의 특징은 사라진다.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작품으로서의 <브릴로
상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브릴로 상자>가 오늘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것의 역사적 설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117) <브릴로 상자>
는 단토가 ‘예술계’에서 언급했듯 근래의 예술사를 내면화하고 상당량의 이론
을 자유로이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역시 그 역사와 이론을 아는 사람을 위
해 제작한 것이다.118) 이처럼 하나의 대상을 예술작품으로 정의하는 방식에서
변화가 이루어진다. 단토는 지각적으로 예술작품임을 식별하기 힘든 대상에
대해 예술로 정의할 수 있는 근거를 외부에서 찾으면서 ‘예술계’의 개념을 설
명한다. 예술개념에 대한 빠른 변화에 이어, 1969년 개념미술의 등장은 물리
적 객체의 필요성마저 의미없게 했다. 그래서 예술의 정의는 기존의 담론에서
예술개념이라 생각했던 것이 무너진 폐허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었다. 단토는
미술가 더글러스 휴블러(Douflas Huebler)가 어떠한 예술행위도 없이 “단지
세계와 접촉하려 할 뿐이며, 세계를 지금과 거의 똑같이 놔두려 하고 있다”는
말을 인용한다. 세계를 발견한 대로 놔두라는 것은 이미 비트겐슈타인도 언급
했던 예술정의 불필요설과 유사한 의미이다. 단토는 이러한 입장이 오늘날 철
학적 태도의 지향점임을 암시한다.119)
그러나 단토는 이제 어떤 개념에도 의존할 수 없게 된 ‘개념 말소의 역사’가

능력인 '-에서 보기'(seeing-in) 능력으로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회화적 재현의 본질을 지각의 관
점에서 다루는데, 회화의 물리적 표면은 재현하는 주제와 분리되지 않고 동시적으로 파악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지각의 이중성으로 회화의 미적-예술적 특성을 감상한다고 보고 회화적 재현을 인간의
자연적인 지각 능력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예술작품의 물리적 속성과 감정 및 정서의 표현과의 관련성
을 해명함으로써 예술작품의 표현적 특성을 예술가 혹은 감상자에게만 전적으로 귀속시키지 않고 작
품의 물리적 속성에 근거한 투사와 상응의 작용으로 설명한다. 월하임의 회화론은 회화에 대한 미적
가치를 강조하는 모더니즘 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정했던 예술가의 주
체적 능력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플럭서스의 작품들을 보면, 윌리엄 케닉의 사고실험에서처
럼 지각적 식별 능력을 전적으로 적합한 것으로 가정하는 예술 개념의 분석들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사고실험은 『일상적인 것의 변용』(pp.57-58)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게임의 집합’
과 비교할 수 있는 윌리엄 케닉의 ‘창고-상대역 실험’을 언급한다. 즉 ‘예술품 가져오기’와 ‘유의미한
형식을 가진 오브제나 표현적인 오브제’ 가져오기라는 두 가지의 요청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예술작품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오늘날의 현대미술에서 예술작품으로 인정되는 것을 지각적으로 인식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케닉의 실험에서 일반인들이 창고의 많은 물건들 중 예술품 가져오기
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으나 유의미한 형식을 가진 오브제나 표현적인 오브제 가져오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17)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24.
118) Ibid, p.24.
119) Ibid,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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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 그는 “예술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례에 적합
하도록 상당히 일반적이고 추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았다.120) 이에 따
라 단토는 “x가 어떤 의미를 구현하면 그것은 예술작품이다”로 요약되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의 예술정의는 동시대 예술을 설명하는 정의의 부재
를 해소하고, 무엇이든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 모두를 포괄하는
정의를 만들기 위해 간명한 문구로 만들어진다. 이처럼 간명해진 단토의 예술
정의는, 모더니즘 예술이 평면성을 그 특질로 내세웠던 것처럼 어떤 하나의
미와 미적 특질을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 밖의
미적 특질을 제외시켜야 함으로 그린버그의 모더니즘처럼 편파성을 띨 수 있
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예술정의에 미가 고려되지 않은 이유는, 20세기 이후
잔혹한 전쟁의 발발과 경제적 변혁 등의 변화에 따라 기존에 미를 대하던 태
도가 예술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위예술이 보여주듯 철학과
의 긴밀성이 커져갔던 것에 반해 미학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예술의 정의는 예술과 미를 선험적으로 연결된 것
으로 보던 기존의 입장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단토의 예술개념에서 미적 특질과의 관련성에 대해 제기된 주된
논의점을 살펴보자. 단토를 내재주의자가 아닌 외재주의자로 보는 코스텔로의
비판은 단토 예술개념의 미적 요소에 대한 논쟁점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단
토는 20세기 이후 예술의 특성으로서 작품 속에 구현된 의미론적 속성을 제
시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의미론적 특질을 강조한 점이 그를 외재주의자로
보는 시각을 만들었다. 먼저 외재주의 반대편에 서 있는 내재주의자의 입장을
확인해 보자면, “어떤 예술작품을 다룰 때 관련된 모든 요소가 그 작품이 존
재하는 모든 순간에 틀림없이 현존한다”는 형식주의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는 차이가 있다. 단토가 언급한 그린버그, 프라이, 벨과 같은 형식주의자들은,
어떤 것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 안에 예술로 내재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 ‘내재주의자들’이다. 이런 경우 미 역
시 예술에 이미 내재할 경우 역사적 상황이 달라진다해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재주의적 관점은 고대에 정립된 미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으로,

120) Ibid,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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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수와 비례의 상호관계 속에 있다고 본 대이론의 객관주의와 닮아있다.
피타고라스학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해 수립된 대이론에서는 미를
아름다운 사물들의 객관적인 한 특징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20세기 모
더니즘적인 사유에 이르기까지 길게 남아 있었다. 반대로 하나의 사물이 어떤
측면에서는 아름답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아름답지 않다고 보는 상대주의가 대
두되었는데, 대이론은 상대주의를 포함하여 미에 대한 다양한 인식상의 도전
으로 인해 오늘날 더 이상 미에 대한 주된 이론이 아니다.
필자의 관점으로는, 코스텔로의 입장은 미에 대한 대이론의 맥락 속에 있으
며 내재주의에 가깝다. 그가 단토를 외재주의로 보는 데에는 이러한 관점이
반영된다. 그러나 단토는 만일 이러한 내재주의자의 관점에 따르게 되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말하자면, 1960년대의 <브릴
로 상자>를 17세기나 19세기로 가져간다면 그 작품의 ‘의미’를 가져갈 수 없
게 된다.121) 그러므로 <브릴로 상자>를 예술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외부적인 요인들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당대의 예술계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하다는 외재주의적 성질을 갖는
다. 철학자로서 단토가 예술의 정의를 연구하기 위해 사용한 구조는 분석철학
의 구조와 흡사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진리조건 분석을 통해 역사적 사
건들의 의미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일종의 외재주
의적 명제”122)로 어떤 사물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그 작품 밖에
있다는 명제이다.
앞서 언급한 논의 외에도 코스텔로는 『미의 학대』에서 단토가 예시로 언

121) Ibid, p.ⅻ.


122) Ibid, p.ⅹⅵ.
코스텔로는 단토의 이 구절로부터 그를 ‘외재주의자’로 칭한다. 코스텔로에 따르면 단토가 언급한 그
린버그, 프라이, 벨과 같은 형식주의자들은 어떤 것의 존재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 안에 예술로 내재
되어 있으며, 따라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 ‘내재주의자들’이다. 코스텔로는 예술로서의 지위는
미적으로 직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와 견해를 달리하는 단토를 ‘외재주의자’라고 칭하는
데, 왜냐하면 단토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일반적인 브릴로 상자 중 하나가 예술작품임을 시각적
으로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 코스텔로는 단토가 미적 직관을
배제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단토는 예술에 대한 정의를 해나갈 때 계기가 되었던 <브릴
로 상자>를 시각적으로는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달리 예술로 분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고 보았다. 그러나 코스텔로는 만일 단토의 그러한 생각이 맞다면 예술과 미학이 무관하다는 것이며,
예술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미학적으로 말하자면, 단지 눈에 띄는 것일 뿐임을 주장한다. 코스텔로는
단토의 미적 이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모더니스트 형식주의에 대해 반발하는 당시 예술계의 흐름을
존중하여 그것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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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뒤샹의 <샘>과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놓고 자신과의 차이점을 비교하
여 문제를 제기한다. 즉 예술과 미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말한다. 단토
는 예술철학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브릴로 상자>가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와 시각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고 한다. 코스텔로는, <브릴로 상자>를 예
술로 만드는 것은 의미이지 시각적인 지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 단토의
입장에 따르자면, 예술과 미가 서로 무관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 점이 문제
라는 것이다. 코스텔로는 단토의 이러한 구별이 미에 대한 일관성 없는 관점
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평한다. 그러므로 “뒤샹의 <샘>이나 워홀의 <브릴로
박스>와 같은 작품들의 경우 우연히 아름다울 뿐이고, 마야 린(Maya Ying
Lin)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와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의
<스페인 공화국을 위한 애가>는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판명된다”고 지
적한다. 그래서 단토가 미개념을 작품에 차등적용하면서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면서 코스텔로는 『미의 학대』가 단토 자신이 과거 예
술철학에서 미적 성질을 가장 많이 학대한 것에 대한 부분적인 소생술이라고
비판한다. 코스텔로에 따르면 단토는 미를 저버린 아방가르드에 동조하면서도,
미가 예술작품의 중요 특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방식을 구별하려
한다. 이처럼 단토의 미에 대한 기준이 불명료하다고 보는 코스텔로는, 단토가
『미의 학대』의 핵심인 내재적인 미와 외재적인 미 의 구분을 조명함으로써
구조화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부연한다. 단토는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다른 상자들 보다 <브릴로 상자>에 더 눈길이 간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브
릴로 상자의 미는 단지 좋은 디자인의 문제이며 물체가 변형되어 작품이 된
것과는 무관하다고 본다.123) 그러나 코스텔로는 시각적으로 더 매력적이기 때
문에 <브릴로 상자>가 작품으로 성공적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브릴로 상자>의 시각적 특성은 그냥 좋은 디자인이라기 보다 예술로서의 의
미나 중요성과 소통할 수 있도록 충분히 오래도록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각적 특성이 이러한 역할을 한다면, 단토가 일반 물
체뿐만 아니라 작품에 대한 그것들의 기여를 배제하는 것은 독단적이라고 평
가한다. 코스텔로는, 단토의 견해에 따르자면 분명히 시각적인 성질은 브릴로

123) Ibid, p.13.


뒤샹의 <샘>이나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개념미술로 ‘구현된 의미’에 방점을 두고 있어 미적인 요소
가 예술작품으로서의 그것들에 외재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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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와 <브릴로 상자>를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석 되기에 이
점을 문제 삼는다. 이 말은 단토가 예술작품인 <브릴로 상자>의 개념적인 부
분 이외의 시각적인 차원의 미적인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그는 이러한 점에서 예술과 미를 구분한 단토의 관점이 오류임을 말한다.
코스텔로는 단토가 예술과 미를 분리하려는 태도가 예술작품을 오독하는 원
인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토가 예술과 미를 구분하고자 한 것은 바로 그의 예
술정의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먼저, 외재주의적 예술개념이 미를 배제할 수밖
에 없는 이유는 모든 예술을 포괄하는 정의의 가능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
다. 말하자면 하나의 대상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예술이 될 수 있거나 안 될
수 있다. 또한 미나 어떤 미적 특질을 예술의 조건으로 취할 경우 그 밖의 것
은 배척될 수 있다. 다음으로, 단토는 오랫동안 유착관계에 있는 예술과 미를
구분함으로써 각각의 성격을 더욱 명료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단토
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예술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추할 수도 있다. 혹은 미
적 특질을 갖지 않고도 예술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천년(A Thousand Years)>(1990)은 죽은 소의 머리와 파리를 전시
하여 동물사체의 부패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이 작품은
머리에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과 충격을 줄뿐이다. 따라서 외관상 미
적 요소를 찾아볼 수는 없다. 개념미술에서는 개념이나 관념이 작품의 미학적
혹은 물질적 요소보다 우선시 된다. 미 또한 예술과 동일시되던 것에서 벗어
나면서 예술과 묶여있을 때 진부하게 여겨지던 인상을 극복하고 본연의 가치
에 대해 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단토는 바로 그의 저서 『미의 학
대』에서 이 작업을 수행한다.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닦듯 예술과 분리하여
미의 본연의 모습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단토는 예술의 의미론적 특질에 주목하던 것에서 나아가, 보편성을
지닌 미가 예술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재론한다. 그것이 바로 내재미와
외재미의 구분이다. 예술에서 작용하는 미 가운데 단토가 가치 있게 보는 것
은 내재미인 데, 이것은 작품의 의미에 미가 내재하여 예술적 탁월성을 성취
하게 돕는 미의 역할을 보여준다. 만일 미가 작품의 의미와 무관하다면 외적
으로 아름다운 외재미가 되지만, 그럴 경우 미는 예술의 의미와 크게 관련성
이 없으므로 단토에 따르면 예술적 탁월성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는 <샘>이
나 <브릴로 상자>는 ‘구현된 의미’에 방점을 둔 작품이고 미적인 요소를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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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뒤샹이 미를 학대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작가의중 한 명으로, <샘>의 경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
다는 입장이다.124) 따라서 단토는 <샘>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하는
일각의 견해들은 뒤샹 본인의 의도가 아닌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샘>에 대해 심미적 미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그 작품의 본질을 왜곡하
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단토는 뒤샹이 “미가 예술개념의 일부가 아니며, 미가
있든 없든 어떤 것이 여전히 예술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125) 그
래서 코스텔로의 주장처럼 단토가 <샘>이나 <브릴로 상자>에 대해, “완전히
개념적이어서 시각적으로 구성된 미적 특성이 전혀 없다고 보았다”126)라고
하기 보다는 그가 예술의 의미에 내재하는 미와 외재하는 미를 구분하여 사유
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술과 미의 구분은 두 개념 모두에게 필요
한 선제작업이었다.
단토의 예술정의가 의미의 구현에 있기 때문에 <브릴로 상자>가 작품으로
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작품인지 일반상자인지를 먼저 구분해
야 했다. 그렇기에 단토의 경우, 예술에서 미는 의미에 우선한다고 볼 수 없
다. 단토가 예술에서 미를 논한 것은, 아름답지 않아도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내재미를 통해 아름다운 작품이 전달하려는 의미와 미가 효과적으로
결합될 때 훨씬 감상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단토가 ‘내재미’의 설명을 통해서 단순히 형식적인 미와 의미가
결합된 예술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토의 경우 미가 작품의 의
미에 내재적일 때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줌으로써 예술적 탁월성에 기
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에 미를 타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며 변화를 이
끌어낼 수 있는 미의 실재적인 역할에 대해 주목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
다. 또한 내재미에서 나타난 미의 변화유도적 특성은 이후 제3영역의 미에 대
한 논증에서 보다 명료해진다.

12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93.


125) Ibid, p.ⅴⅹ.
126) 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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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

앞항에서는 20세기 이후 예술이 재현적 모방으로 미를 추구하던 것에서 벗


어나 의미를 구현하는 것으로 나아간 것을 살펴보았다. 해당 시기의 사회, 정
치적 환경은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예술이 이성적인 철학과 긴밀해지
면서 예술은 미와 구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미학의 영향력은 급격
히 약화되었다. 그러나 예술에서 일어난 변화 가운데 미의 배제는 제한된 시
기의 역사적 상황에 따른 것일 수 있기에 미에 대한 평가의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진, 선과 함께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미를 오늘날
예술에서 어떻게 재정립할지의 문제가 남는다. 단토는 이러한 고려점들을 염
두에 두고 미의 보편성을 상기시키면서 미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밝히려 한다.
따라서 이번 항에서는 미개념을 논하기 위한 선제작업으로 20세기 이후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 원인들을 고찰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따른 인식이 합당한
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단토 미개념의 당위성을 마련할 것이다.
먼저 미에 대한 인식 변화의 환경적 요인부터 살펴보자. 20세기 중반 이후
로 예술을 정의할 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미’는 그 중심적인 지위를 잃는
다. 단토의 예술정의에서도 60년대의 예술에 대한 모든 정의가 그러하듯 ‘미’
에 대한 적극적인 언급이 빠져있다. 세기 초 만해도 예술을 말할 때 당연히
포함되었던 미는, 1960년대 이후의 진보적인 예술과 예술철학의 기세로 자취
를 감추게 된다. 단토는 예술에서 미를 외면하는 태도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비공식적인 움직임에 머물지 않고, 예술과 관련된 공적인 문화기관들
에서도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에서 ‘미’라는 용어를 삭제한 것에서도 드러
난다고 지적한다.127) 그리고 60년대 이후 미를 정치화하는 현상들이 나타났
고 미가 용납되지 않는 시대적 상황과 당시의 유행이 있었음을 상기시킨
다.128) 단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세기(18세기)는 숭고를 제외하고 미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이 활발하게 고찰한 유일한 미

127)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05.


128)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예술을 대하는 몇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째 예술가를 냉전에서의 승
리하는 국가적 의제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 보는 경향이다. 둘째는 앞의 현상과 대조적으로 현대미술을
전복과 파괴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예술적 급진성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했던 것이다. 이
러한 것은 모두 미를 정치화한 사례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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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적 특질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미는 예술의 현실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매력이
어쩐 일인지는 몰라도 아둔한 상업적 의미를 지닌 일종의 결함이 돼버린 듯했다....그림을 ‘작
품’으로 만드는 요인들은 균형, 비례, 질서와 관련하여 미를 고전적으로 공식화했던 방법으로는
좀처럼 포착되지 않았다....따라서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미를 인식상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때에도 예술에 대한 담론에는 어떤 큰 손실도 발생하지 않았다.”129)

표면적으로, 미는 여전히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만나는 작품들에서 볼 수 있


고, 우리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관된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매일의 사유나 행위
에 관여한다. 그럼에도 20세기 중반 이후의 지금까지 현대미술에서 미와 미학
은 더 이상 중요한 대상이 아니다.
단토의 전반기 예술철학에서 미를 언급하지 않았던 이유에는 이러한 분위기
가 작용했다. 196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까지 단토가 몸담고 있던 시대적
상황은 미를 언급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구성과 표현의 극단주의로 내달리고 있었다. 단토가 “1960년대부터
미는 해체주의자의 비웃음을 동반하지 않고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
다.”130)고 적고 있듯이, 철학적으로 예술을 정의하는 문제가 시급하였고, 이
과정에서 미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정의로부터
배제되었다.
1980년대에 단토가 『일상적인 것의 변용』(1982)을 저술하던 시점에 이르
자 그에게 분석적 철학자에서 문화와 관련된 사변적 철학자로의 변화의 조짐
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까지도 미와 미학을 심도있게 검
토하지는 않았다. 단토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 4장에서 미학과 예술작품에
대해 다루지만 미에 대한 후기의 본격적인 논의와는 차이를 보였다. 전자에서
미와 예술은 해석에 따라 미적 반응의 특성을 달리하는 것으로 구별되었다.
예술에서의 미적반응은 심미적인 대상의 미적반응과 달리 ‘자신의 믿음에 따
른 것’이며,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것이었다.131) 따라서 이 시기까지의 단토는
예술계의 식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철학적 관점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그
러나 후반기에 와서 그는 미를 미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굴절인자’로
인식한다. 특히 이런 미를 예술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나 대

129)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7.


130) Ibid, p.25.
131) 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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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들에게로 확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제3영역의 미’로 명명하면서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
그리고 애초에 현대미술이 미를 배제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이 있다. 바로
예술에서 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미를 선이라는 진리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전통이 그것이다. 즉, 미의 높은 위상이 오히려 예술가로 하여금 미에서 멀어
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통적
으로 이해되어온 미와 오늘날의 미에 대한 인식을 비교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그 변화 과정을 요약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예술은 미를 목표로 해 왔
으며 미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는 선, 다시 말해 도덕과
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대철학은 예술을 정의하는 일에 다소 소홀하
긴 하였으나, 서구에서는 고대그리스 이후로 아주 긴 시간 동안 미와 예술이
긴밀한 연관성 속에 있었다.132) 철학에 속하는 미학적 사유는 거의 전적으로
미의 지배를 받았으며 단토가 위대한 미학의 시대라고 명명하는 18세기에 절
정을 이루었다. 인류는 오랜 시간 예술에서 미를 중심에 두었으나 20세기 이
후 예술에서는 미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가 작품에서 중심이 될 경

132) '미'는 현대 영어의 Beauty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에 대해 희랍인들은 칼론(χαλσν)이라 했


고, 로마인들은 풀크룸(pulchrum)이라 했다. 풀크룸이라는 이 라틴어는 고대와 중세 동안 계속 사용되
었고, 르네상스 때는 이 말이 사라지면서 벨룸(bellum)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같은 뜻의 이런
저런 단어들이 있긴 하지만, 현대어에는 이 벨룸을 이어받은 경우가 많다. 희랍의 미개념은 우리의 미
개념보다 광범위해서 아름다운 사물, 형태, 색채, 소리 등 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고, 관습까지를
포괄하고 있었다. BC5세기 아테네 소피스트들은 이 원래의 미개념을 좁혀서 ‘시각이나 청각에 즐거움
을 주는 것’이라고 한정함으로써 미의 개념을 선의 개념과 구별지워 정의했다. 그 후 스토아학파는
‘적당한 비례와 매혹적인 색채를 가진 것’이라고 소피스트의 정의만큼 그 범위가 좁았다. 반대로 플로
티누스는 아름다운 학문 및 아름다운 덕에 관하여 서술하면서 플라톤과 같은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
하였다. 중세 및 근대의 사상가들은 고대인들의 개념적, 용어적 장치들을 이어받은 동시에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서 보충하였다. 고대에는 보다 광범위한 개념이 더 보편적이었고, 오늘날에는 보다 좁은
개념이 지배적이라는 차이는 있으나, 그 의미의 이중성은 오늘날 까지 계속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타
타르키비츠는 미개념이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세 가지의 상이한 개념들을 사용해왔다고 한다. 다음
과 같다. 첫 번째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미로, 이것은 희랍 원래의 미개념으로, 여기에는 미학뿐만
아니라 윤리학까지 포함된다. 이와 비슷한 개념을 중세의 격언 '아름다운 것과 완전한 것은 동일하
다.(pulchum et perfectrum idem est)'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가 순전히 심미적 의미에서의
미로, 이 개념은 심미적 경험을 환기시키는 것에 한해서 적용되지만 색채와 소리뿐 아니라 정신적 산
물 등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포괄하는 것이다. 머지않아 유럽 문화에서 미의 기본적
개념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세 번째는 심미적 의미에서의 미이나, 시각으로 파악되는 사물에 한
정되는 경우로, 이 의미에서 보자면 형태와 색만이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스토아학파가 부분적으로
이 미개념을 채책하였다. 현대에는 대체로 일반언어에서만 사용된다.(타타르키비츠, W.,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개념사』, 미진사, 1992, pp.149-151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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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예술로서 부적절하게 보는 현상이 목도되었다. 단토의 고찰에 따르면, 랭보
가 자신의 시에서 ‘미를 학대’한다는 문구를 사용한 의도와, 전위예술운동이
미를 배제한 이유가 역설적이게도 그들 역시 미가 예술과 선험적으로 연결된
것이자 선과 동등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술에서 미를 제거해야
했다. 말하자면, 예술의 정의와 본질에서 미를 제외시켰던 전위예술은 미와 선
이 서로를 함의하던 기존의 전통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가 도덕적인
것과 관련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혹은 예술이 아름답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
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사회를 직면한 예
술가들은 미를 예술에서 분리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예술계에서의 변화는 세
계 1, 2차 대전, 산업화, 냉전시대를 겪으며 예술가에게 일어난 정치적이고 사
회적인 변화를 반영하였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은 예술과 묶여있던 미를 진
부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보아 능욕하였고 결국 예술에서 제거하는 과정을 진
행하게 되었다.
예술에서 미를 배제하게 된 두 가지 원인에도 불구하고, 미에 대한 관심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다시 제기된다. 즉 미는 예술에서 제외된 이후로 미학
과 더불어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가 1990년대에 얼마간 변화의 상황들
을 맞는다.133) 그렇지만 여전히 미와 미적 특질은 미온적으로 다루어지거나
불충분한 것이었다. 1990년대는 단토가 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또한 예술평론가 데이브 히키(David Hickey)는 미의 도래를 언급한
1993년의 논문에서 다소 성급하기는 했지만, 미가 다시금 화두가 될 것이라
고 주장했다.134) 그리고 1999년 워싱턴 허시혼 미술관(Hirshihorn museum)
에서 ‘미에 관하여:1950년 이후의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들’이라는 전시가 개
최되었다. 이 전시회의 실질적인 내용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재평가의
문제였지만, 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주목해볼 만하다. 단토는 허시
혼의 전시가 예술작품에서 미가 부차적인 것인지 필수적인 것인지에 대한 문
제제기 보다는, 오히려 작품이 세상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요소에 주목하게 만
들면서 미에 대한 논의를 제대로 전개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이 말은 미
가 지닌 본연의 특성과 역할에 주목하였다기보다, 미와 예술 사이에 형성된

133)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9.


134) 1990년대 초 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무엇이 90년대의 주요 쟁점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90년대의
쟁점은 미가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Ibid,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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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관계를 드러낼 뿐 여전히 예술의 의미론적 관점이 주도적이었음을 뜻
한다. 이처럼 20세기 말에도 미는 여전히 예술의 목적에 부수적인 것으로만
다루어진다.
실제로 작품의 아름다움이 예술적으로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경우가 있
다. 즉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ichael Mapplethorpe)가 성적 금기 대상
을 아름답지만 노골적으로 촬영했는데, 이 사진작품들이 그러한 예에 해당한
다. 단토는 1989년 메이플소프135)가 예술계로부터 외면당했던 것은 그의 사
진작품이 지닌 외설적 내용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움 때문이었다고 단언한
다.136) 메이플소프의 예술적 성취는 바로 그 자의식적인 아름다움에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의 외설성으로 인해 미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안드레스
세라노(Andres Serrano)의 <오줌예수(Piss Christ)>(1987)의 경우도 아름답
기 때문에 세상과 불협화음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137) 십자가의 예수상을 자
신의 체액에 담가 몽환적으로 표현했는데, 그의 위협적이고 논쟁적인 작품은
외견상 아름답게 표현하였다는 점이 더 불협화음으로 느껴졌다. 이 외에도 현
대미술에서 작품이 아름다울 경우 그 아름다움 때문에 하찮아진다는 막연한
의식이 팽배했다. 따라서 1990년대는 미에 대한 재고의 분위기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미는 부차적으로 취급되거나 보수적 관점으로 이해되는 것에 머물렀
다. 그리고 미와 관련한 또 다른 혼란스러운 인식의 사례는 의미론적으로 보
아야할 작품을 미적으로 보고자 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즉 뒤샹의 <샘>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들에 의해서 제기될 수 있는 내용인데,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예술작품을 미적인 것으로 인식하려는 관성적 태도를 보여준다.

135)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는 주로 탐미적인 정물 사진이나 섹슈얼리티를 실험한 사


진을 찍었다. 당시 미국사회에서 금기시되었던 흑인 남성의 누드와 사도마조히즘, 게이서브컬처 등 성
소수자들의 포르노그래피적 미학을 다룬다. 이는 사회적 관습과 윤리의식에서 벗어난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정교한 사진적 양식성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독자적인 사진 미학은 많은 예술가들
에게 영감을 주었다.
136)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26-27.
단토는 『경계와의 유희』(Playing with the Edge)라는 책에서 메이플소프에 대한 한 사진작가의 평가
를 기록하고 있다. “우아함에 경도된 나머지 자신의 매체가 가진 경계와의 접점을 잃어버린 예술가”라
는 것이다. 단토는 당시 그린버그의 정화 개념을 사진에 적용한 단순하고 화상이 거친 스냅사진을 순
수한 사진의 모범으로 규정한 경향을 지적한다. 또 “어느 작가는 만일 내가 섹스와 폭력을 그린다면
그건 괜찮지만 아름다운 것을 그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고
를 인용한다.
137) Ibid,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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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의도적으로 미적인 요소를 없애고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전복시키려
한 작품들에서 조차도 미적인 요소를 보려고 하는 태도이다. 단토는 <샘>에서
미는 의미에 외재적이며 부차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작품으로서의 <샘>이
만드는 불협화음에 주목할 것을 요청하는데, 그 불협화음이란 <샘>이 지닌 미
가 아니라 ‘의미’의 중요성을 말한다. 말하자면 시중에서 흔하게 구입할 수 있
는 남성소변기를 고상한 예술의 전당인 전시회에 선보이고자 한 것은 미를 보
려하는 기존의 예술적 전통이나 관습, 가치 등을 부정하는 정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위의 논의에서 우리는 1990년대 미를 재론하는 분위기가 나타났으나 미는
여전히 예술의 목적에 부수적인 것이었으며, 예술작품과 미가 불협화음을 이
루었다는 것을 몇몇 예를 통해 들여다보았다. 단토는 예술에서 미와 관련한
이러한 혼란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미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며 관련 강연이나 글을 발표한다. 2001년 단토는 미국철학회 카루스
강연에서, ‘미’에 대해서 다룬다.138) 당시까지도 미는 여전히 진부한 주제로
여겨졌기에 그의 결정에는 결단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단토는 그의 예술
철학 전반기에 예술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미를 배제시키는 데 일정부분 역할
을 했다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
다.139) 그리고 단토는 예술에서 미개념을 제외시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위기
라고 본다. 미가 예술과 분리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시각예술에
서는 덜 중요해졌다 하더라도, 예술의 정체성에서 미적 요소는 여전히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는 인간의 본성에 깊게 각인된 아름다움
에 대한 욕구와 관련되며, 일상의 삶 속에서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말년에 이르러서이지만 미의 보편성을 논의해보
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단토는 미를 효과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먼저 미의 종류를 크게 세 가지로

138) 카루스(Carus) 강연은 미국철학학회 모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C..I.루이스의 강연 <지식과 평


가의 분석>(An Analysis of Knowledge and Valuation), 존 듀이의 <경험과 자연>(Experience and
Nature) 등의 저명한 강연이 이루어졌다. 단토는 자신이 이 강연에 초대되었을 때, ‘정신의 표상의 개
념’과 같이 그가 고려했던 좀 더 주목받을 수 있는 주제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큰 ‘미’를 주제로 선택
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Ibid, p.14.) 단토는 ‘구현된 의미’로 현대미술계에서 예술을 정의한
것으로도 그의 예술철학적 성과는 성공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럼에도 말년에 다시금 그의 표현대로
‘유독한’ 주제인 미와 미학을 다룬 것은 그만한 논의가치를 방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139) Ibid,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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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였다. 즉 자연미, 예술미, 미화가 그것이다. 그는 1993년에 한 강의140)
를 준비하면서 ‘미에 대한 철학’에 있어서 헤겔로부터 두 가지의 자극을 받았
다고 밝힌다.141) 그 하나는 헤겔의 『미학강의』 서문에서 ‘자연미와 예술미
를 상당히 근원적으로 구분한 개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왜 예술미가 자연미
보다 ‘우월’해 보이는가에 대한 주석이었다.142) 헤겔에 따르면 예술미는 ‘정신
으로부터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는데143), 이 점이 단토에게 중요했
다. 헤겔의 문구는 그가 왜 워홀의 <브릴로 상자>와 수퍼마켓의 브릴로 상자
가 외관상 동일해 보이지만 서로 매우 다른 의미와 정체성을 갖는지에 대한
답을 마련해 준다. 이로부터 촉발된 생각은 단토로 하여금 “예술작품의 아름
다움이 작품에 속한 의미의 일부라는 뜻에서 그 속에 내재한다”는 생각에 이
르게 한다.144) 헤겔에게서 비롯된 그의 사유는 “예술작품의 의미는 지적 산물
로, 그 예술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해석을 통해 파악되고, 작품의 아름다움은
(정말 아름답다면) 그 의미에서 나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145)로 이어진다.
작품의 미가 의미에서 나온다는 헤겔의 관점에 힘입어 그는 처음으로 철학적
분석을 행할 수 있는 미개념의 구조물 일부를 발견한다.146) 이 무렵 단토는
“예술의 정의에 대한 나의 철학적 관심을 현대미술사와 연결시키고, 이 두 주
제를 외재미의 대립개념인 내재미와 결합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147) 단
토는 미를 논하기 위한 철학적 근거를 발견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시킨
다. 그러나 당시 그가 미를 언급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기도 했다. 단토는 그
의 경력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 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에 대한 소회를 다음
과 같이 밝히고 있다.

140) 1993년 단토가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교 예술사학과가 후원한 학회에서 처음으로 ‘미는 어떻게 되었
는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되고 예술의 종말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헤겔을 참조하게 된
다. 헤겔의 『미학강의』에서 그는 중요한 자극을 받게 된다.
141)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2.
142) Ibid, p.12
143) 헤겔 저, 두행숙 역, 『헤겔의 미학강의』, 은행나무 출판사, 2015, p.28.
14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3.
145) Ibid, p.13.
146) Ibid, pp.13-14.
147) Ibid, p.14.
단토는 『미의 학대』가 세 번에 걸친 카루스 강연을 약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며, 현대 예술철
학의 제3권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밝히고 있다. “제1권은 1981년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으로 예
술작품의 존재론이라 할 수 있는 책이며, 제2권은 1997년의 『예술의 종말 이후』로 내가 생각하는
예술철학사를 전개한 책이다.”(Ibid,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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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미에 대해 글을 쓰기가 다소 겁이 났다. 이는 초기에 분석철학을 할 때 나를 지배했
던 미학에 대한 태도, 즉 철학이 해야 할 진정한 연구는 언어와 논리 그리고 과학철학에 있다
는 태도의 여파였다. 나는 가끔씩 카루스 강연이라는 엄청난 기회가 왔을 때 주류에 더 가까운
철학적 주제–내 전문분야의 동료들이 더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를 다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하지만 1960년대와 이후에 예술에 일어난 일은 혁명이었고 나의 글들은 그 혁
명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간 기여했으며, 예술적 의식에서 미 개념을 제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위기라는 느낌이 있었다. 미가 철학 전통에서 당연시해온 것보다 시각예술에서 훨씬 덜
중요함이 밝혀졌다 해도, 인간의 삶에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철학자
로서 미에 대한 글을 쓸 때 가장 깊은 차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미는 범위가 대단히 넓은
미학적 특질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미학은 여전히 편협하게 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마비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미는 또한 진과 선처럼 하나의 가치이기도 한 유일한 미학적 성질
이다. 미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믿고 따라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충만한 인생이 무슨 의미인지
를 정의하는 가치에 속한다.”148)

단토는 자신의 미개념을 전개시키기 위해, 무엇보다도 일반적인 미적 대상


에 대한 인식과 예술작품에서의 미적 인식이 지니는 차이를 구분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별성은 예술에서의 미를 내재미로 정의하는 토대가
되었다. 단토는 실재사물과 모방된 예술품에 대해서는 두 범주의 미적 반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실재사물에 대한 생득적인 미적 지각을 갖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술품에 대한 미감이나 취미능력을 지니는 것이다. 하지
만 생득적인 ‘예술적 감각’의 존재는 없다. 다시금 단토는 단순한 대상의 인지
와 대상에 대한 감상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의 말을 인용한다. 산타야나는 ‘아무 감정도 없이 자
연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마음들은’149) 전혀 도덕감을 갖지 않는다
고 했다. 이 말은 예술적 미감과 비교되는 생득적 미감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
서 산타야나는 “어떤 형태로든 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의식뿐만 아니라 정서
적 의식도 필요하다. 관찰은 그럴 수 없고 감상이 필요하다.”150)고 하며 의식
과 정서적 의식, 그리고 관찰과 감상의 차이를 보여준다. 즉 예술에서의 미는
의미론적인 것과 관련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덧붙여 단토는 비트겐슈타인
이 가치란 세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을 때 가치가 의식 속에 있다

148) Ibid, pp.14-15.


149) Ibid, p.97.
150) Ibid,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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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는 산타야나가 말한 것과 유사하다.

“우리가 아름답게 보는 대상들에 대해 반응할 때 그것들이 우리 안에 환기시키는 쾌의 객관화


가 곧 미라고 산타야나가 생각했듯이, 가치는 우리 자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포함한다.”151)

단토에 따르면 반응성향은 오감과 같은 부류가 아니다.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


은 일반사물을 인식할 때와 다르다. 일상적인 지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
례들, 즉 유머감각, 성적 반응, 미적 반응이나 취미, 도덕적 행동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단토는 일반적인 미적 감각을 생득적인 것으로 보는 것과 비교
하여, 예술에서의 미적 감각을 생득적인 것과 차별한다. 생득적인 미와 관련해
서는, “대상에 대한 어떤 지식도 그것을 달리 보이게 만들 수 없으며, 어떻게
분류되든 혹은 어떻게 불리든 그 대상은 그것의 지각적 성질들을 그대로 보전
한다는 사실에 있다.”152)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기술(記述)이 달라진
다고 해서 감각 경험이 변화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술작품에 대
한 미적 반응은 특별한 인지적 과정을 전제한다. 단토는 미적 반응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결론짓는다.

“미적 반응은 그러한 구별을 전제함으로, 예술의 정의에서 무조건적으로 영입될 수는 없다.
....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감상은, 그것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리고 미적 감각이 생득적
인가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게 단순한 사물들에 대한 미적 감상과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생득
적인 미적 감각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이다.”153)

단토는 예술에서의 미적 반응이 갖는 특성이 일반사물이 갖는 미적 특성과 차


이를 드러내 보인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그의 예술철학 초기에는, 예
술을 정의하기 위해 미적 반응의 차이를 주목하였을 뿐 미의 특성에 대해 이
시기에는 더 깊게 접근하지 않았다.
위에서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감상은 의미에 대한 해석이 발생함으로 일반
사물의 미에 대한 인식과 다르다는 미적 반응의 차이를 보았다. 다음으로는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영향을 준 철학적 사유를 살펴보자. 미적 인식의 객

151) Ibid, p.97.


152) Ibid, p.98.
153) Ibid,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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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적 인식의 주관성을 제기한 철학자로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을 들 수 있다. 흄은 미의 주관주의를 표명했다. 미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으로부터 주관적인 파악으로의 변화는 소피스트에서부터 시작하
지만 근대에 와서야 유력한 주장이 되었다. 미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은 대상
안의 어떤 속성들이 미를 결정하는가에 있었다면, 주관적인 파악은 주관의 정
신 속에 있는 어떤 속성들이 결정하는 데 있다.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홉스도 흄과 같은 후자의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18세기 말의 칸트는
주관주의 원리를 받아들이면서도 미에 관한 판단의 보편성을 주장했다. 흄은
『시민적 자유에 관하여』에서 ‘사물의 미는 마음에 있다’라고 말하여 미는 단
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다고 받아들임으로써 미가 감각적 인식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흄은 “미는 사물들 자체에서는 아무 특질이 없다. 미란 사물들을 관조
하는 정신 속에 존재하며, 각 정신은 서로 다른 미를 지각한다”고 했다.154)
이는 미의 존재론적 근거를 약하게 하는 견해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흄은
“인간의 감각과 느낌에는 충분한 일정성이 있어서 이 모든 성질들을 예술과
추론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고 삶과 관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미의 보편성과 존재론적 특성을 보완하였다.155) 그럼에도 미를
추구하는 행위를 가볍게 보는 관점이 이러한 사유와 연관되어 남아 있었다.
단토 역시 이러한 철학적 사유의 전통을 익히고 이해했다. 그는 예술을 정
의하면서 의미와 정신성을 강조하였다. 물론 후기에는 미의 종류를 구분하여
미적 특질의 다양성을 제시하고 미적 특질들의 역할을 비중있게 조명하였다.
그리고 예술에서 미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작품의 내용에 내재해야하며, 생
득적인 미 자체만으로는 예술미와 관련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단토
에 의하면 예술에서 미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의 자리
는 어디이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 단토가 미의 본래적 가치회복을 꾀하면서
보편성을 재론하는 의도를 밝히기 위해, 전위예술에 의해 미가 왜곡된 시선을
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다.
단토는 예술에 대한 진정한 개념상의 혁명은 예술에서 미의 숙청이 아니라
미의 개념에서 도덕적 권위의 숙청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미와 도덕의 깊
은 연관성이 미에 대한 태도를 바꾼 중요 지점으로 본다. 20세기 초 전위적인

154) 타타르키비츠 저,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개념사』, p.169.


155)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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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작품 안에 미를 지니는 것이 도덕적으로 의심스럽다고 간주했던
상황은 미가 도덕적 권위를 지니는 것을 전제로 했다. 화가인 필립 거스턴
(Philip Guston)은 같은 이유에서 아름다운 그림 대신 악의 우화를 그리며 의
도된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의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치욕이라 느꼈다.156) 그렇다면 미에 일어난 이런
극단적인 변화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시대에는 예술의 아름다움에 존경을 표했다. 산타야나와 동시대
사람인 무어(George Edward Moore)는, 예술은 자신이 근본적으로 지닌 미
때문에 종교의 목적을 떠맡을 수 있을 정도라고 보았다. 단토 또한 ‘예술이 지
금도 계속 받고 있는 크나큰 존경은 미를 고귀하게 바라보는 이 관점의 유산
이기 때문’157)이라고까지 말한다. 단토는 “나는 빅토리아 시대 또는 에드워드
시대에 미를 숭배했던 태도가 미자체를 포기하는 흐름을 견디고 존속해 왔다
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오늘날 예술에 미의 자리가 있다면 인
간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이 존속과 관계가 있다고 추측한다.”라고 미의 권
위를 설명한다.158) 이는 단토의 미에 대한 인식이 산타야나와 무어처럼 미의
보편성을 인정하는 것과 관련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무어는 미가
인간의 상호 관계에 깊게 관여한다고 보았는데, 이후 단토가 제3영역의 미에
서 다루는 내용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므로 미를 존재론적으로 보고자하는 관
점은 미에 대한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입장을 역사적인 현상으로 객관화하고
미의 보편성이 역사성을 초월한 가치임을 재인식하게 한다. ‘미의 보편성’에
대한 단토의 주장을 살펴보자.
전위예술이 이미 예술의 정의에서 미의 자리를 제거했지만 그 제거는 단지
예술은 미적인 것이 아니라는 개념적인 결단이자 정치적인 결단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술 속의 미를 대하는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부정적인 자세에
는 미학적 정치화의 잔재가 남은 것이다. 그러나 미학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미 자체는 진과 선처럼 보편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다. 단토는 시인 빌 버크슨
(Bill Berkson)의 언급을 빌어와 예술에서 미개념은 ‘난도질당해 흐물흐물해
진 상태’지만 미 자체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159) 단토는 미의 가치

156) Ibid, p.28.


157) Ibid, p.80.
158) Ibid,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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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강조하기 위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
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에 나오는 한 구절을 예로 든다. 그
소설의 화자인 마르셀은 기차를 타고 발베크로 가던 중에 이른 아침 역에 나
와 커피와 우유를 파는 시골 소녀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를 본 순
간 나는 우리가 미와 행복을 새롭게 자각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의 욕망을 느꼈다.”160) 단토는 미에 대한 이러한 자각을 행복감과 연결시킨
프루스트의 심리가 인간에게 근원적이라고 생각한다. 단토는 그 자체로 아름
답게 드러나는 심미적 미를 자연미와 연결시켜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말
하자면 전위예술 이후의 미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음을 지적한다. 자연의 생명
력과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체로 운동과 정지의 원리를 가지고 있
는 그런 것들이 자연에 속하는 것이라고 했다.161) 동식물은 자연에 속하며 따
라서 인간 역시 자연에 속한다. 그러므로 자연미는 이러한 자연의 성질을 가
진 대상이 지닌 미이다. 따라서 생명력과 미를 연결짓는 것은 자연스럽다. 단
토는 그의 글 ‘동시대미술에서의 칼리포비아: 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에서 죽음에 대비되는 살아있음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으로 본다.162)
단토는 좀 더 강력한 삶의 목표와 진리에 대해 진술하는 무어의 언급을 시
작으로 미의 보편적 가치를 세워나간다. 예술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고 아름다
운 대상을 향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는 무어의 관점은 우리 삶에서 미
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무어는 그의 저서 『윤리학 원리』(Principia Ethica)
에서 아름다운 것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떤 본래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
했다.163) 또한 가치있는 의식의 어떤 상태가 인간적 교제의 즐거움과 아름다
운 대상을 향유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였다. 즉 개인적 애정과, 예술이나 자연에
서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는 것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는 것은 아무도 의심
한 적이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무어는 이것이 도덕철학의 궁극적이
고 근본적인 진리라고 했으며, 인간 행동의 합리적인 최종 목적이자 사회적
진보의 유일한 기준이 된다고 주장했다.164) 단토는 오늘날에는 무어의 진리가

159) Ibid, p.29.


160) Ibid, p.29.
161) 타타르키비츠 저,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개념사』, p.338.
162)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63(2):25-35, College Art
Association, 2004, p.35.
163) G.E. 무어 저, 김상득 역, 『윤리학 원리』, 아카넷, 2018,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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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협하게 보여질 수도 있으나, 무어의 말처럼 미에 대해 ‘일반적으로 간과되어
온 진리’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어의 가치는 특히 블룸즈버리그룹
(Bloomsbury Group)165)의 예술과 인생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이 그룹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나의 초기의 믿음들’(My early
beliefs)이라는 글에서 무어의 사상을 “흥미진진하고 유쾌하며, 르네상스의 시
작이고, 새로운 지구 위에 새로운 천국을 여는 것이라 묘사했고....삶의 가장
높은 목표는 사랑과 미적 경험의 창조와 향유 그리고 지식의 추구였다.”라고
표현했다.166) 예술과 사랑은 블룸즈버리 그룹의 핵심 사상이다. 그들은 여기
에서 예술이 그 아름다움 때문에 가치있는 것167)이기에 미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예술에서 미가 의미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었던 단토의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무어가 주장한 두 가지의 삶의 목표는, 단토 전
기의 예술철학과는 차이를 갖지만, 후기의 미학개념으로 이어져 일상적인 삶
의 가치와 연결된다고 본다. 무어가 말하는 예술은 미적인 것을 의미하고 사
랑은 사람들 간의 미적 태도에서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회적 존재
인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표현하는 미적 행위는
단토의 제3영역의 미와 직결된다. 단토는 무어의 사랑과 예술이라는 이 두 가
지 핵심논의를 우리들의 삶에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가져와 조명한다.
무어는 극단적인 아름다움과 추함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데, 사람들은 아름
다움을 아름다운 것으로 느끼고 추함을 추한 것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였
다.168)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세계는 그 자체로 추한 세계보다 낫다”

164) Ibid, pp.341-348 참조.


165) 블룸즈버리 그룹(Bloomsbury Group 또는 Bloomsbury Set)은 버지니아 울프, 존 메이너드 케인즈,
E. M. 포스터, 리튼 스트레이치 등으로 구성된 20세기 전반 영국의 작가, 지식인, 철학자, 예술가 집
단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남성들과 킹스 칼리지 런던 여성들로 구성된 이 느슨한 친인척 집단의 구성
원들은 런던 블룸즈버리 근처에서 함께 거주하거나 공부했다. 그들의 작품과 사고방식은 문학, 미학,
비평, 경제학뿐 아니라 페미니즘, 평화주의 및 성에 대한 현대적인 접근에 있어 깊은 영향을 받았다.
(구글 위키백과 참조)
166)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30-31.
167) Ibid, p.31.
168) G.E. 무어 저, 김상득 역, 『윤리학 원리』, pp.175-177.
무어는 우리에게 두 세계를 비교해보라고 권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상의 나래를 펴 극도로 아
름다운 한 세계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이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운 세계이다.
우리가 최고로 감탄해하는 모든 것을 갖춘, 즉 가장 아름다운 산, 강, 바다, 나무, 노을, 별, 달 등을
갖춘 멋진 세계를 상상해보라. 이러한 것들은 황금비율로 조화롭게 구성되어 서로서로 부딪히거나 상
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체의 아름다움을 더욱 증진시키는 데 보탬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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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미의 보편성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와 추는 ‘객관적 실재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사유
의 대상들이 될 수 있으며 존재론적 논증의 토대를 획득한다.169) 그리고 존
버거(John Berger)에 따르면, 취미와 환경의 차이에도 공통된 좋음의 성질이
있다. 한 예로, 중앙아메리카 어느 게릴라의 증언은 추의 보편성을 말해주는
예로 인용된다.170) 인간이 극도로 추한 상태에 놓이면 인간성이 피폐해지고
나약해진다는 것이다. 단토는 미적임과 추함의 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
은 취향의 문제가 아닌 보편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필자는 단토가 미의 존재
에 대한 가치와 당위성을 짧게 정리하고 있지만 그 논증이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는 주관적일 수 있지만 보편적이라고 칸트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는 미를 선과 연결시킨 무


어나 미를 행복과 연결시킨 프루스트의 생각을 떠받치는 직관임이 분명하다. 이 직관은 인간
본성에 고유한 어떤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왜 미학적 실재가 그 자체로 중요한지, 그리고 왜
미학적 박탈-사람들에게서 미를 박탈하는 것-이 전위예술 운동의 예술적 의제에서 그렇게 중
요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171)

단토는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황금주발』(1905)에 나오는 주인공이


미를 박탈당한 미국 도시 시민들을 위해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있는 순수예
술 박물관을 짓겠다는 내용을 사례로 든다. 또한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의 동
의를 요구하는 쾌감을 준다.”는 칸트의 글을 인용한다. 이런 인용을 통해, 그
는 “마음은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쾌의 단순한 감성을 뛰어넘는 어떤 고상해

상상하자. 그리고 또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추한 세계도 한 번 상상해보라. 즉, 우리들로 하여


금 구역질나게 하는 것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지닌, 그래서 전체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런 불명예스러운 욕을 얻어먹지 않도록 해줄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 단지 하나의 쓰레기 더미에 불과
한 세계를 상상해보라.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이런 두 세계를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미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는 경우, 아름다운 세계는 훨씬 더 선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아름다운
세계는 그 자체로 추한 세계에 비해 더 선하다는 주장이 일단 인정되기만 한다면,...아름다운 세계는
우리의 목적에 대한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169)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32.
170) “중앙아메리카의 어느 게릴라의 말에 따르면, 포로들의 의지와 기백을 꺾고자할 때 그들을 빛이 완
전히 차단된 춥고 눅눅한 공간에 가두고, 벌레와 형편없는 음식만 주고, 그들 자신의 배설물에 둘러싸
이게 했다 한다. 가히 미적 고문이라 부를 만한 환경이다. 두 상황 중 어느 것이 좋은지를 선택하는
것은 취미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이 정글 지옥보다는 낙원을 선호할 테니
까.”(Ibid, p.33.)
171) Ibid,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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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과 고양됨을 의식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가치는 그들이 판단하는 비슷한
준칙에 따라 평가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172) 칸트는 “미를 판단하는 주
관적 원리는 보편성, 즉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성질이다.”라고 주장했다.173)
단토는 미의 보편성을 설명하면서 칸트의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
미가 보편성을 지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대예술에서 미는 예술과는 구
분하여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와 예술을 연결짓는 과도기적 태
도가 20세기 전후로 이어졌다. 미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모더니즘은 과도기
적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양식은 모방적 재현이라는 표현방식을 버렸다. 그
러나 여전히 예술은 미를 목표로 하였다. 무어의 제자인 로저 프라이는 ‘후기
인상파’ 전시에 대한 세간의 혹평에 맞서 “창조적으로 설계된 모든 새로운 작
품은 아름다워질 때까지 추하다”고 항변하였다. 그리고 미적 교육을 받으면
그 혼란이 사라지고 미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단토에 의하면 이것은
‘아름다움이 회화의 목적’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프라이는
모방적 측면이 부차적인 것이 되는 디자인의 막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형식
주의의 기초를 세웠다. 그러나 결국 아름다움을 볼 줄 알기만 한다면 문제의
그림이 실제로 아름답게 보인다고 함으로써, 미와 예술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
보는 기존의 전통적인 사유에 갇힌다. 그러나 단토는 감상의 역사가 미의 감
상에서 정점에 이른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본다. 그는 대신 예술적 우수성의
감상에서 정점에 이르러야 한다고 본다. 물론 프라이가 살았던 시대에는 전통
의 영향으로 이것을 알기에 역부족이긴 했겠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흄과 프라이의 실수는 예술적 우수성이 미와 동일하고 예술적 우수성에 대한
인식이 미에 대한 심미적 인식이라 믿는 것이었다. 단토는 에드워드시대에는
예술의 요점이 미였지만,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에서는 더 이상 미가 요점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날 어떤 것이 아름답지 않고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
각은 공인되었고, 미가 예술의 본질이나 정의에 속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고
해졌다. 예술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구성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기호 혹
은 상징체계라는 관점을 지닌 넬슨 굿맨을 시작으로 현대의 예술철학자들은
미학을 제쳐두고 재현과 의미를 논했다. 그러나 단토는 미가 ‘더 깊어진 이해
를 가지고 미학에 복귀할 거라고는’174) 1960년대 뉴욕예술계에서는 아무도

172) Ibid, p.40.


173) Ibid,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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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았다고 덧붙임으로써, 미와 미학의 가치가 재고되어야 함을 강조
하였다.
단토는 이러한 미와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미의 학대』에서 정리한
다. 말년에 저술한 이 마지막 저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
문에 다양한 반론이 제기될 여지가 적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영국의 미학자
코스텔로가 『미의 학대』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으로 전반적인 검토를 행한
다. 예술과 미적 특질, 특히 미와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보여주어 미
개념에 대한 논쟁점을 확인할 수 있다.175) 코스텔로는 『미의 학대』가 단토
의 후기 작품인 만큼, 그의 주장과 어조를 진지하고 철학적으로 받아들일 필
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 『미의 학대』에서 단토가 화용론적 특질로 예술의
미적 차원을 재구상하고자 하며, 의미에 내재된 미와 그렇지 않은 미를 구분
하려 한 것을 핵심 내용으로 파악한다. 그럼에도 코스텔로는 전반적으로 단토
의 이러한 주장들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한다.
코스텔로의 반론에 따르면,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비인지적 용어’를 사
용해 미학을 상상하려고 하며, 이전 입장과 상충한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그가 의도한 것들이 훼손된다고 본다.176) 코스텔로는 단토의 기존 철
학과 후기의 미개념을 비교할 때, 후기의 이 이단적인 성향이 일종의 철학적
고해성사와 같은 것이라고 평한다. 비교컨대,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이
“어렸을 때처럼 완전해지고 싶었다.”고 고백한 뒤 제작한 후기 회화의 특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177) 코스텔로에 따르면, 단토는 이 책에서 미가 삶에는 필
수적이지만 예술에서는 필수적이지 않다고 말하며, 예술의 경우에 아름다운
작품만이 의미가 있고 다른 미학적 특질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고 논
하면서 단토의 견해에 반론을 제기한다.178) 또한 코스텔로는 미에 대해 주목
한 단토의 이 책이, 전후(戰後)에 잘 알려진 일련의 미국 추상화가들인 로버트
마더웰,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 숀 스컬리(Sean Scully)에게 헌정된 것

174) Ibid, pp.58-59.


175) 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British
Journal of Aesthetics, Vol.44, No.4, Octover 2004. 디아뮈드 코스텔로는 영국의 철학자이며 워릭대
학교 철학과 교수이다. 그는 미학과 예술 철학에 관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코스텔로는 영국 미학 협회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레버헐메 선임 연구원이었다.
176) 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p.424.
177) Ibid, p.424.
178) Ibid,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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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단토 철학이 미로 회귀한다고 보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한다고 간주한다.
그는 『미의 학대』가 우리 시대의 예술과 관련된 미학 담론에 대한 재론이자
어느 정도의 회복을 의도하고 있는데, 단토의 이전 경력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것이 놀라운 지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단토가 이 책의 핵심적인 이
론적 혁신이라 소개한 내재미와 외재미의 구별을 언급하면서, 이것은 단토가
예술비평을 위해 미의 개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에 머문다
고 판단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단토가 그의 책을 예술의 체계적인 논리성을
보여주는 철학보다, 감각적이고 감성적 측면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예술
비평에 대한 기여를 의도했다고 평가한다.179) 단토의 전·후기 철학을 서로 모
순된 것으로 보는 코스텔로는, 단토가 한손으로는 부여하고자하는 것을 다른
한 손으로는 막으려하기 때문에 이 책이 모순되면서도 고백적이고 비가의 어
조를 준다고 말한다.180) 따라서 철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자전적인 문맥에서 발
생하는 긴장감이 『미의 학대』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고 논평한다.181)
코스텔로의 반론은 대략 네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단토의
이 후기 미 개념이 전반기의 철학적 태도와 모순되며 이단적 성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전반기 전위예술에 동의하며 미를 독성적인 것으로 보았던 단토가 후
기에 와서 다시 미를 회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예술에서 화용론
적 특질을 새롭게 제시하여 예술 작품의 미적 차원을 구성하고자 하였으나,
화용론은 미학의 형식에 머무르는 전통적인 미에 불과하기에 새로운 개념으로
는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단토가 칸트 미학을 오독하여 미
를 비인지적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예술과 미를 분리해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재미’ 개념은 칸트의 ‘부수적인 미(dependent
beauty)’와 상통함으로 결과적으로 미와 예술을 통합시키고자 한 칸트의 체계
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단토는 예술을 인식하는 데 미학이
무관하다고 보는 외재주의자라고 본다. 따라서 작품의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에 방점을 둠으로써, 뒤샹의 <샘>과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내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미적 속성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토의 태도는 모더니스
트 형식주의에 반대하는 당시 예술계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코

179) Ibid, p.425.


180) Ibid, p.425.
181) Ibid, pp.42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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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로의 주장이다. 코스텔로 외에도 단토의 미개념에 대해서는 전반기 예술
철학과 모순된다거나 전통적인 미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주어졌다. 이와 같은
평가에 대해서는, 앞선 논의에서도 단토의 의도를 검토한 바 있지만, 이후 그
의 미개념을 지속적으로 분석해 나가면서 관련한 답을 모색하고자 한다.
단토는 기존의 정의로는 현대의 예술까지를 포괄할 수 없었기에 이 모두를
충족시키는 정의를 찾고자 의미의 개념에 주목한 것이다. 또한 예술은 정의할
수 없다는 당시의 회의적인 입장에 반대하면서 여러 형태로 다원화된 예술을
포괄하는 정의를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아우르는 예술정의는 간
명해야 한다. 단토가 예술철학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하던 시점의 뉴욕 예술계
는 변화무쌍하고 전위적이었다. 분석철학자였던 단토는 그런 분위기에서 예술
을 정의하기 위해 자신의 사유방식에 따라 현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했
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960년대 예술계가 변화의 소용돌이로부터 벗어나
얼마간 객관적 시선을 갖제된 1990년대에 이르러 시선을 미로 돌린다. 필자
는 그가 예술의 본질로 다루어지던 미가 배제된 현대미술계의 상황에서 무엇
이 문제였는지를 직시하고 미의 실체와 가치를 예술과 삶에서 재발견한 것으
로 본다.

3) 미의 학대

지금까지 단토 미개념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미와 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미와 예술의 오랜 유착관계가 결국 역사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예술에서 미를 제거하는 이유가 되었음을 밝혔다. 이번
항에서는 미의 제거를 야기한 예술계의 요인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단토는 미개념 연구를 시작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미에 대한 학대 현상
을 분석하여 그것이 타당했는지를 재고했다. 미의 학대 양상은 전위예술과 혐
오미술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히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불러왔던 전위
예술가들의 태도에는 특이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미란 쾌의 조건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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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미를 학대하였다는 것은 병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당시 사회, 정
치적인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전위예술에서 파생한
혐오미술이 어떻게 미를 배제하였는지 확인하여 오늘날까지의 상황의 양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단토는 사회, 정치적 현상을 다루는 예술에
서 정말로 미가 적용될 수 없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미의 학대에 대한
당위성을 문제삼는다. 만일 미가 사회, 정치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미의 학대가 지속되는 것이 옳지 않다면 오늘날 예술에서 미의 위상이
낮아진 것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미를 학대하게 된 환경적
요인을 검토하는 일은 미의 약화 원인을 찾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단토가 차용한 용어 '미의 학대'는 자신의 예술철학 주요 3권의 마지막 권에
해당하는 저작의 명칭이면서, 동시에 미개념 고찰의 동기와 관련된다. 단토는
미가 학대당하게 된 미술사의 사건은 크게 두 가지라고 주장한다. 하나는 20
세기 초 1차세계대전 시기에 등장한 전위예술운동이다. 이들이 미를 학대하게
된 원인은 아름다움이 선한 것이며 예술을 미적인 것으로 여기는 전통 때문이
었다. 전위예술가들은 고통스러운 전쟁을 일으킨 사회에 저항하고자 상징적으
로 미를 학대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하나는 전위예술의 특징인 사회, 정치적
비판의 특성이 만들어낸 ‘혐오미술(Abject Art)’의 등장이다. 아름답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 있게 되자 세상의 문제적인 담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
역겨움'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다. 예술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지성
적인 측면을 부각시켰으며, 따라서 예술철학적 성과로 간주되었다. 또한 전위
예술가들은 심미적 미가 사회,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보
았다. 그러나 단토는 예술의 지성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심미적 미
또한 이같은 주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제시하면서 정치적인 이유
로 미를 학대한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러므로 필자는 미의 학대 원인과 양상을
살펴봄으로써, 미개념의 상실이 사회,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적합
하지 못하였다는 단토의 논증을 검토하고자 한다.
전위예술가들이 미를 학대하게 된 이유는 시기적으로 미가 예술의 목적이라
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에 가까웠다는 데 있다. 미가 선이나 도덕과 연결된
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쟁으로 고통스러웠던 상황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는 것은 힘든 일이 되었다. 『미의 학대』에서 단토는 20세기 반항적 전위예
술가들에게서 미가 제거되는 과정을 다룬 2장을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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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Rimbaud, 1854-1891)의 싯구절을 가져오면서 시작한다. 랭보는 그의
시182)에서 미를 의인화하여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쓰고 있는데, 여기
서 사용된 ‘욕설(Abuse)’183)이 단토의 책 제목이 된다. 단토는 전위예술가들
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랭보의 이 문장이 이후 다다 예술가들의 태도를 정확
히 표현한 것으로 본다.184) 하지만 랭보의 파격적인 용어에도 불구하고 다다
예술가들이 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은 고상한 취미이자 도덕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미의 힘에 대한 찬사’를 들어왔기에 이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것이다. 따라서 다다 예술가들의 미에 대한 인식은 칸트의 미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으며 미와 도덕을 연결하여 이해하는 기존의 미개념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미를 도덕적 훌륭함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아름다움의 이해는
쾌감을 얻는 것 이상이라는, 즉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하는 쾌
감을 준다는 것이다. 칸트는 미를 판단하는 주관적 원리는 보편적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185) 따라서 미의 보편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랭
보가 미에게 욕을 퍼붓는 것은 도덕성을 위반하고, 그럼으로써 사실상 인간성
을 위반하는 상징적 시연인 셈이다. 그리고 전위예술가들 역시 미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에 배제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단토
는 미가 예술과 결부되어 문제가 됨으로, 오히려 이들을 분리하여 사고할 필
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예술에서 미를 분리하여 예술에 대한 논리적 정의에 이르게 한 데
에는 전위예술가들의 기여가 크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미를 배제하고자 한 태도는 미가 예술과 묶여있다는 기존의 개념으로 이해하
는 것에서 출발한다. 랭보의 사유를 잇는 전위예술가들이 미를 도덕성과 관련
된 보편적 개념으로 본 이유를 알기위해서는 앞서 2항에서 검토하였듯이 예
술이 미를 목표로 하던 19세기의 예술로 되돌아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단토
는 이 시기 미의 개념에 크게 영향을 주었던 무어의 철학으로부터 시작하여

182)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Une Saison en Enfer), “어느 날 나는 미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런


데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Arthur Danto.,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63(2):25-35, College Art Association, 2004, p.25.)
183) 랭보가 자신의 시에서 사용했고 본 논문의 주저인 단토의 책 제목으로도 사용한 ‘Abuse’는 랭보의
경우에는 ‘욕설’로 단토의 경우에는 ‘학대’로 번역하였다. 이 외에도 번역자에 따라서‘남용’, ‘능욕’으로
쓰이기도 한다.
184)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25.
185)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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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보편성을 논한다. 무어는 “미는 그것을 감탄하며 관조하는 행위가 그 자
체로 선한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두 가치는 서로 대단히 밀접해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 선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정말
로 그것 자체가 선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선한 것의 필수 요소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은, 미
가 일부분으로서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전체가 진정으로 선하다는 것
을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무어는 예술과 미, 그리고 미와 선의
관계가 거의 서로를 함의한다고 본다.186) 무어는 “미는 그것을 감탄하며 관조
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두 가치는 서로 대단히
밀접해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든 선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아
름답다는 말은 정말로 그것 자체가 선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선한
것의 필수 요소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은, 미가 일부분으로서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전체가
진정으로 선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무어는 예술과
미, 그리고 미와 선의 관계가 거의 서로를 함의한다고 본다.187) 무어는, “우리
의 인식에서 인간적 교제라는 가치에 반드시 필요한 정신의 성질들이 무엇이
냐는 질문에, 우선 우리의 첫째가는 선들을 이루는 그 모든 다양한 미적 감상
이 분명 거기에 포함된다”고 답한다. 단토는 무어가 “미를 하나의 가치로 여
기고 그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인간적 교제와 미적 인식 사이의 어떤 관계를
찾고 있다”고 적고 있다.188) 그런데, 이 부분은 아마도 단토가 사람들 간의
관계 맺기에서 미적 태도와 제3영역의 미가 관련됨을 설명할 때 참조했을 것
이다. 미의 제3영역은 헤겔에게서 가져온 것이나 삶에서의 미적 가치에 대한
사유는 무어에게서 크게 영향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미를 도덕의 상
징이라고 본 칸트와 연관시킬 수 있다. 칸트는 미가 도덕 개념들에 생생함과
우아함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적 경험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무관심
성을 통해 고상해진 도덕적 훌륭함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고, 계몽을 인류의
성년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문화적인 단계라고 말했다.189)

186) Ibid, pp.46-47.


187) Ibid, pp.46-47.
188) Ibid, pp.46-47.
189) Ibid,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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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 따라 예술가와 예술이란 어떻게 이해되어야 했는지를 살펴보
면, 앞서 언급한 전위예술가들의 태도와 완벽하게 대립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러한 비교를 위해 단토는 프랑스 철학자 빅토르 커즌(Victor Cousin)이 1853
년에 펴낸 『아름답고 좋은 것(The true, the beautiful, and the good)』의
구절을 예로 들어 전위예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예술가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예술가는 무엇보다도 예술가이다. 즉 그를 움직이는 것은 아름다움의 감정이다. 그가 감상자의


영혼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채우는 것과 같은 감정이다. 그는 아름다움
의 미덕에 몸을 맡겼다. 그는 모든 힘과 모든 이상적 매력으로 그것을 강화한다. 그런 다음 자
신의 일을 해야한다. 예술가는 고귀한 영혼을 위해 절묘한 아름다움의 정서를 확보했을 때 그
의 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이상을 위해 모든 힘과 모든 매력으로 그것을 강화한다. 이 순수하고
무관심한 정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정서의 고귀한 동맹이다. 그것은 그들을 깨우고, 유지하
고, 발전시킨다. 따라서 예술은 이러한 감성 위에서 발견되며, 예술에 의해 영감을 받으며, 예
술을 확장시키는 것은 결국 독자적인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은 자연히 영혼을 숭상하게 하는 모
든 것, 즉 도덕과 종교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190)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미덕을 추구했던 예술에 이러한 변화가 온 이유는 무


엇이며, 전위예술가들이 미를 학대하게 만든 배경은 무엇인가. 1915년 전위예
술가들은, “무엇보다 개화된, 고상한 정신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 국가들
이 지금까지 알려진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고 장기적인 전쟁을 하다니 대체 어
찌된 일인가?”191)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들의 행보는 이런 의문에 의해 촉
발되었다. 인류의 역사에는 두려움, 욕망, 권력욕이 일으킨 파괴적이고 잔인한
전쟁이 이어져 왔다. 전쟁에는 항상 인간착취, 고문, 광범위한 폭력이 뒤따랐
다. 1914년 세계1차 대전 때 고도로 지성적인 인간의 두뇌는 내연기관의 발
명과 함께 폭탄, 기관총, 잠수함, 화염방사기, 독가스 등도 만들었다. 1918년
에 전쟁이 끝나자 생존자들은 남겨진 파괴의 잔해들과 천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팔, 다리가 잘려져 나간 채 불구가 된
모습을 공포 섞인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20세기말까지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전쟁, 집단학살, 인종청소 등으로 인간
에게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문인을 포함한 예술가들은 인간의 광기에 대한

190)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p.25-26.


191)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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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을 자신들의 작품 속에 담아내었다. 이러한 비판적인 태도는 고전시기부
터 이성과 함께 이어져온 견고한 미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점점 일반
화되어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18세기 소수였던 전위예
술가들이 예술계로부터 파문당했던 것과는 달리, 오늘날은 전위예술이 지배적
인 것이 되었다.192)
단토는 예술에서 미를 배제하고자 한 전위예술가들의 태도를 설명하기 위
해, 아름다움을 위협적으로 느끼는 일종의 공포증을 임상용어를 사용해 칼리
포비아(Kalliphobia)라 부른다.193) 그는 인간의 삶에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
름다움으로부터 위협보다 즐거움을 느끼기에, 이러한 증상은 진단이 필요한
상태로 간주한다. 1세대 전위예술 운동에 속하는 다다(Dada)의 멤버들은 세계
1차대전 당시 취리히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
이 서로를 학살하는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회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아
름다움을 학대하기로 결정했다.194) 다다는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던 예술가들
에 의해 행해졌다. 철학자들과 문인들이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에 기반하여 전
쟁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피력했던 것과 같이, 그들의 예술을 통해 행했다.
즉 예술작품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보다는 오히려 익살스러운 행위로 파업
과 같은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포병대에서 복무했고 전쟁이 끝난 후 다다운

192) 20세기 이후의 반항적인 예술가들의 무리를 ‘아방가르드’라 칭했는데 세 단계로 변화를 겼는다고 본
다. “첫 번째 단계는 관습적인 예술이 지배하던 19세기에 해당한다. 세평을 대수롭지않게 여기면서 선
동을 일삼는 고립되고 독자적인 작가 및 예술가들이 여기에 속할 것인데, 그들은 오늘날에는 유명하지
만 당시에는 ‘파문당한 자’들이었다. 포우, 보들레르, 로트레아몽, 랭보 등이 여기에 속한다. 19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이 반항자들은 숫적으로 더 늘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까지 이루게 되었다. 그 결과
상징주의와 인상주의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아방가르드는 당시까지는 아직 광범위한 인
식이나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점차로 예전만큼 패하지도 않고, 갈수
록 감탄을 받으면서 실로 돋보이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초현실주의와 미래파, 그리고 시각예술가들
중에서는 특별히 입체파, 추상주의, 표현주의, 또 문학과 미술 쪽에서도 집단움직임이 있는 등 탁월한
아방가르드 그굽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투쟁적인) 아방가르드는 자유가 예술에서 혀용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으로 되는 상황을 급속히 야기하였다. 말하자면 예술가들에게 가해졌던 여러 제약
들이 종말에 도달했던 것이다.
1차 대전 후, 특히 2차 대전 후 아방가르드는 승리했다. 인습을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사
람들이 추구하는 대상이 되어 명사대접을 받고 높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보수적인 예술가들은 수세에
몰렸으며 아방가르드를 모방함으로써 겨우 구제되었다. 그 이후로는 아방가르드만이 어엿한 예술로 대
접받았다. 투쟁적인 아방가르드를 모더니즘으로 이름 붙인다면, 양차대전 이후에 시작되는 시기는 포
스트모더니즘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아방가르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지금은 아방가르드밖에 없기 때문이다.“(타타르키비츠, 『미의 개념의 역사』, p.60.)
193)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25.
194) Ibid,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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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가담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다는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반응이었다. 우리의 분노는 완전히 전복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끔찍하고 헛된 전쟁이 5년간의 우리의 존재를 앗아갔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롭고 아름답게 표
현한 모든 것이 조롱과 수치로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 시기의 나의 작품들은 사람들을 끌
어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비명을 지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195)

자살을 시도했던 다다이스트 조지 그로스(George Grosz)는 자신이 모순된 정


신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밝히면서 작품에서 추하고, 병들고, 허위적인 것들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했다.196) 또한 군대에서 기관총 사수였던 오토 딕스(Otto
Dix)나 플랑드르에서 병원 잡역부로 일하면서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막스 베크
만(Max Beckmann)의 그림에서는 아름다운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
예술은 숭고함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들을 지옥에 몰아넣은 사회의 도덕적인
추악함을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197)
1922년 베를린 다다 운동에 의해 죽었다고 선언된 것은 성스럽게 여겨졌던
미의 그릇으로서의 예술이었다.198) 여기에서 미는 노골적으로 사소하게 취급
됨으로써 정치화되었다. 다다이스트들은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사회에 짜증이
났고 정부가 끔찍한 전쟁을 일으켜 정의를 악용했다고 보았다. 예술가들은 상
징적인 응징으로서 미를 학대했다.199) 그러나 단토는, 미가 전쟁에 대한 상징
적인 희생양이 된다는 사실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 주목하였다. 왜냐하
면 다다운동의 파급력이 현재까지도 사회,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강력한 예
술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는 아직도 그 본래의 가치에 대한 인
정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에 대한 전위예술가들의 태도는,
예술가가 당시에는 고귀한 존재로 간주되었기에 그들의 비판적 제스츄어가 인
정되었고 주목받았다. 또한 무엇보다도 미를 도덕적인 것이라고 존중하는 전
통이 있었기에 미의 학대가 상당한 박탈감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200)

195) Ibid, p.26.


196) Ibid, p.26.
197) Ibid, p.26.
198) Ibid, p.26.
199) Ibid, p.25.
200) Ibid, p.25.
물론 미에 대한 오래된 신뢰를 무너뜨리는 전위예술의 움직임을 위협으로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단
토는 세 가지 경우를 예로 든다. 1937년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는 예술이 지닌 이전의 숭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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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미의 학대에 일조한 또 다른 원인으로 제기된 혐오미술의 등장
을 살펴보자. 혐오미술은 전위예술에 의한 미의 배제에 이어진 현상으로 보아
야 한다. 전위예술의 파급력으로 인해 예술가들은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선
을 견지하게 되었다. 미를 목표로 하던 예술은 제거되었다. 어떤 것이든 예술
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등장한 혐오미술은 심미적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역겨
움을 새로운 미학으로 제시하였다. 역겨움은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미학
적으로 구제할 수 없는 성질이며, 모든 심미적 만족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자
연에 부합되게 표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할만큼 미에 대립하는 특질이다. 칸트
는 예술의 목적이 쾌(快)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관람자에게 역겨운 것은 ‘자연
에 부합하는’ 쾌를 안겨주지 못한다고 보았다.201) 역겨움은 미에 상반되는 요
소이기 때문에 칸트는 아마도 ‘역겨운 예술품’이라는 것을 모순으로 여겼을 것
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는 혐오, 비천함, 공포, 역겨움 등의 요소는 새로운
미학적 범주가 되었다.202) 미적인 것과 가장 상반되는 작품의 ‘역겨움’이라는
요소에 대해, 현대미술가인 데미안 허스트( Damien Steven Hirst)의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허스트의 <천년>203)처럼, 역겨움은 오늘날 미국과 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예술의 ‘공통적인 특성이고 가족유사성’이다.204) 단토는
안드레스 세라노의 <오줌 예수>는 ‘수난’을 주제로 한 저항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역겨움이 인간에게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차용한 방식이라고 설명
한다. 즉 미를 조롱하는 듯한 역겨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몽환적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설치하여 이중적 요소의 상충을 의도한 작품이다. 이 외에도 한스
벨머(Hans Bellmer), 신디 셔먼(Cindy Sherman) 등은 인간의 신체를 변태적

위상을 되돌리고자하는 의도로 전위예술을 모아 퇴폐미술로 지목한 후 악명높은 대규모 전시를 개최


하였다. 또한 소련에서는 전위예술을 범죄시 했는데, 사회주의 사실주의 회화에서 노동계급을 아름다
움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정신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 지역주의 미술은 아방가르
드 예술을 전복적이고 생경한 것으로 보면서, 미국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하는 애국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단토는 20세기의 미술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선형적인 운동의 연대기보다 훨씬
더 경련적이었다고 평가한다.(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26.)
201)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50.
202) Ibid, p.52.
단토는 이 말을 보수적인 프랑스 평론가 장 클레르(Jean Clair)에게서 인용하고 있다. 장 클레르는 역
겨움이 오늘날 “미국과 유럽뿐 아니라, 서구의 근대성에 문을 연 중부 유럽의 나라들에서 만들어낸 예
술의 “공통의 특성이고 가족유사성”이라고 말한다. 장 클레르는 예술의 슬픈 퇴락을 “취미에서 ....우
리는 혐오로 넘어갔다”라고 말하면서 예술의 종말을 취미의 종말로 본다라고 단토는 말한다.
203) P.48 설명 참조할 것.
204) Ibid,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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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나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며 인간의 배설물이나 쓰레기를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이러한 예술은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 불렸는데, 현대의 평
론가들은 예술가가 적용한 이 역겨움의 용도를 비판하기보다 성원한다.205) 장
클레르(Jean Clair)는 이것이 지난 몇 세기에 걸친 예술의 슬픈 퇴락이라고
보지만, 단토는 역겨움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의 목적은 그들의 예술을 통해 ‘저
항’의 기분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토를 비롯한 예술계가 ‘혐오미술’을 받아들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
술에서는 역겨움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학적 특질들이 충분히 적용 가능한 것
이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가 전위예술가들의 성과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역겨
움’의 표현은 이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특히 17세기 생명체의 부패와 해체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한 바니타스(Vanitas) 주제가 역겨움의 표현을 보
여주었다. 이 주제의 그림은 썩은 과일, 부패한 동물 시신, 해골 등이 주로 등
장한다. 물론 현대의 혐오미술은 혐오스러운 대상 자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니타스 주제와는 차이가 있다. 단토 역시 혐오미술의 용도가 오래전부터 있
어온 것임을 지적한다. 헤겔은 비잔틴보다 르네상스의 고통묘사에서 ‘영혼의
승리’라는 개념을 보여 주었으나, 혐오미술이 해온 일은 사실상 인류의 이름으
로 울부짖기 위해 수모의 상징들을 활용한 것이다.206) 예술의 기능에는 혐오
미술이 담당하는 부분이 있었으나, 미가 중심이 아니게 된 오늘날의 미술에서
는 당연한 것이 되었을 따름이다. 앞선 전위예술과 전위예술에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간 혐오예술을 비교할 때, 단토는 1950년대 이후의 많은 미술이 냉정
하고, 이성적이고, 쌀쌀맞고, 추상적이라는 것이 놀랍다고 표현한다.207) 그는
오히려 초기에 다다이즘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자들의 심미적 감수성을
만족시키지 않기 위해 예술적으로 저항했다는 점은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단토는 다다이스트들이 전쟁을 불러일으킨 기득권을 향해 “그들에게
아름다움 대신 허튼소리를, 숭고함 대신 저능함을 선사했고, 응보의 성격을 띤
어릿광대짓으로 미를 훼손했다”고 정리한다.208) 그리고 이러한 반항적인 전위
예술의 유희정신은 오늘날의 예술에도 여전하다. 20세기 미술은 반항적인 전

205) Ibid, p.53.


206) Ibid, p.57.
207) Ibid, p.57.
208) Ibid,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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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예술인 다다이즘의 성향이 계속 이어져 여전히 예술과 미의 내적 관계를 약
하게 만든다. 그리고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불쾌한 비인간성이라는 주제를 다
루고 있어 혐오미술의 출현을 당연시 한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것처럼, 전위예술과 혐오예술은 예술이 미와 구분되면서
훌륭한 예술적 방식으로 수용되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예술에서 미는 선택
사항이 되었고 미와 예술은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단토는 미에서 자유로워진
예술에 등장한 다양한 미적 특질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한편으
로는 미와 예술의 구분 이후 예술로서의 미에 덧씌워진 오명을 벗기고자 한
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미술에서는 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 미의 학대 요인으로 전위예술가들의 예술제작 방식과 혐오미술의
등장을 살펴보았다. 전위예술가들이 미의 학대 이유로 제기한 또 하나의 주장
이 있다. 그것은 미가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데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토는 심미적 미가 사회, 정치적인 담론과 함께 갈수 있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전위예술이 정치적인 문제로 미를 배제한 것은 필연적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마라의 죽음
(The Death of Marat)>(1793)을 예로 든다.209) 이 작품에 대한 단토의 설명
은 심미적 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예술에 있어서
아름다움이 정치적 행동과 대립적일 필요가 없다는 점을 논증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토는 이 작품의 해석에서 사람들이 장 폴 마라(Jean-Paul Marat)와
프랑스 혁명에 대해 알아야 정치 그림으로 볼 수 있고 전제한다. 그러나 다비
드가 그림을 그릴 때,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알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고,
혁명의 상황을 이해했을 것이기에 의미의 전달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
다. 그리고 단토는 이 작품이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인 의미가 지닌 힘 또한
느껴진다고 부연한다. 그는 철학자로서 이 작품의 시각적 아름다움이 작품의
정치적인 효과에 내재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210) 전
위예술가들은 정치적 상황이 만들어낸 고통 때문에 예술작품을 아름답게 표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미를 버렸다. 그러나 <마라의 죽음>의 예에서처럼
미가 정치적인 것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은 쉽게 전복된다. 이 외에도 독
일의 현대화가 케테 콜비츠는 20세기 전반기의 인간 조건을 사실적이고 애틋

209)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35.


210) Ibid,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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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그려내었다. 전쟁으로 인한 가난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의 내용은 처절하
지만 몇몇 작품들은 노동자의 단순하고 솔직한 삶을 아름답게 드러내었고 사
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그 작품의 의도는 보는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이처럼 사회, 정치적인 내용을 아름답게 표현한 예는 많이 찾아볼 수 있고 전
위예술이 이런 주제에 미가 적합하지 않다고 본 것은 특정한 접근 방식에 따
른 것이지 일반화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반항적인 전위예술의 ‘공적’은 아름답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 있
음을 입증하여 예술의 정의에서 미를 제거한 것에 있다. 예술이 아름다움이라
는 한 가지의 가능성만 가진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혐오미술이라는 새로운 미학을 출현시키기도 했으나, 우리로 하여금 예술에는
다양한 미적 특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지금까지 미가 학대받게
된 원인과 학대 요인들을 살펴봄으로써, 단토가 잃어버린 미의 보편적 가치를
상기시키고자 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예술과 분리된 미는 그것 자체의 합당한
가치를 회복하여 다시금 예술을 포함한 삶 전반에 관여한다.

2. 미의 구분

1) 미의 세 영역

앞 절에서 논의한 미의 학대는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근저에는 미에 대한 혼재된 인식이 원인으로 깔려있다.
그러므로 미에 대한 인식을 명료히 하기 위해 미의 종류를 구분하고 각각이
지니는 특성을 밝히는 일과, 다원화 시대에 적합한 미개념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그간 미는 보편적인 진리로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서는 인식의 공백을 갖게 되어 적절히 평가되지 못했다. 이에 단토는 예술사
적 흐름 속에서 미의 배제 원인을 분석하여 미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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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다. 그의 미 구분에 있어 특이한 점은 역사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왔
던 자연미와 예술미 외에도 철학적으로 그간 등한시 해온 미화를 강조하였다
는 것이다. 미화를 부각시킨 것은 단토 미개념이 지향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
한 전제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번 항에서는 단토가 구분한 각각의
미에 대해 살펴본다.
미의 구분에 앞서, 미에 대한 개념의 변화를 간략히 언급해 보자. 고대 이래
이천년간 지속되던 미에 대한 주된 생각은 미가 객관성, 이성, 비례를 지닌다
고 본 대이론이었다. 하지만 대이론은 취미의 변화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18
세기 이후 철학자들과 저술가들로부터 비판받고 의문시되었다. 미개념에 대한
급격한 인식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계몽주의시대의 위기가 지나자 미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이 헤겔에 의해 다시금 논의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단
토가 또 한번 미개념의 보편성을 언급한다. 그러나 단토는 미의 대이론과 같
은 총합적 결과물을 도출하겠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미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접근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으로 의도한 바를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다. 미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로 시대마다 그 범주를 달리하며 적용되었기에
현재까지도 상당히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다. 시대별로 미를 정의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공존했다. 그 가운데 오랫동안 대이론이 우세했으며, 이 이론에서 예
술과 미가 밀접하게 인식되었다. 따라서 20세기까지 미와 예술은 명료하게 분
리되지 못했고 세기 이후 예술에서의 변화 가운데 미가 배제되는 일을 겪었
다.
단토는 미를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미화가 그것이
다. 단토가 미를 구분하고자 한 것은 우선 미와 예술의 개념을 구분하여 각각
의 고유성을 명료화하려는 의도와 관련된다. 특히 미화는 자연미와 예술미에
걸쳐있으면서도 일상적인 삶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미이다. 미화를 통해 미디
어의 발전에 따른 대중문화의 확산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문화 속에서 미의
역할과 가치를 재해석한다. 자연미에서는 심미적인 것으로서의 미의 특성을
논하여 미의 보편성을 거론한다. 그리고 예술미에서는 정신적 측면을 부각시
켜 예술의 의미론적 특성과 연결시킨다. 자연미와 예술미는 오랫동안 명료한
구분없이 혼재되어 인식되었다. 특히 미를 예술의 목적, 다시 말해 예술들을
한데 결합시키고 규정짓는 것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의 일이며,211) 그
이후 변화를 겪었음에도 미학사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술이 미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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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왔기 때문에 미와 예술이 선험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따라
서 단토는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을 통해 예술과 미의 차이를 드러내고 미의
용도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다. 단토가 ‘제3영역의 미’로 다룬 미화는
예술을 넘어서 삶의 영역으로 확대 적용된다. 그리고 그는 미의 가치가 근원
적으로 감정적인 존재인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미의 화용론적
특성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면서, 미가 우리의 삶과 예술에 필요한 이유를 존
재론적으로 규명한다. 미화에 대해서는 4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할 예정
이므로, 이번 절에서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주로 논하고 미화는 간략하게 다룬
다.
먼저 자연미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실제로 미개념의 변화에 나타나는 현
상 중 하나가 자연미 즉 세상의 미(판칼리아, Pankalia)로부터 예술미에로의
변화였다. 고대 희랍인들에게는 미가 자연세계의 한 속성이었다. 그들은 자연
세계의 완전함과 미에 대한 경탄으로 충만해 있었다. 세계가 아름답기 때문에
인간의 제작물도 아름답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212) 이러한 견해는 중
세까지 이어져 아우구스티누스의 믿음에서도 보이며, 알베르티, 몽테뉴, 베르
니니 등 많은 이들의 언급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예술미의
위상이 자연미에 비해 점점 강해졌다. 결국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연미와 예
술미를 이원적으로 보고 서로 다른 근원과 형식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
었다. 단토 또한 미의 두 가지 큰 축으로 자연미와 예술미를 설정한다. 이것은
미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예술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미의 특성으로 그의 미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의도와도 연동된다. 단토는 자연
미에 대해 칸트와 무어의 관점을 통해 설명한다. 단토는 칸트의 자연미가 미
개념의 단초를 제공하지만 그가 자연미와 예술미, 그리고 미화를 명료하게 구
분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와 달리 헤겔은 이 세 종류의 미에 대한 의미
있는 구분을 시도한 철학자로 인정한다. 헤겔은 『미학강의』를 통해 자연미
와 예술미를 구분하고 정신으로서의 예술미를 강조하였다. 그는 예술작품이라
는 감각적인 사물에 절대정신이 현현한 것이 미라고 보았다. 그러나 단토는
헤겔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미화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
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단토는 미화를 예술의 종말 이후의 문화철학적 사유로

211) 타타르키비츠, 손효주 역, 『미학의 기본개념사』, p.161.


212) Ibid,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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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기 위한 자신의 중요한 화두로 가져오는 것을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
한다. 즉 자연미와 예술미라는 미학의 두 축은 18세기 이래 관계의 변화를 겪
어왔으며, 이 두 영역과 겹치는 다소 방대하고 확정하기 어려운 중간 영역으
로서 미화가 단토의 후기 철학에서는 중요한 자리를 점한다는 의미이다. 단토
가 ‘제3영역의 미’라 부른 이 영역은 인간의 행동과 태도에서 훨씬 더 큰 역
할을 담당한다.
단토는 미개념 구분의 불명료함을 드러내기 위해, 우선 칸트의 자연미에 해
당되는 대상이 현대의 구분과는 달리 혼재되어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
다. 그리고 칸트는 자연미를 예술미에 비해 더 중요한 것으로 표현한다.213)
칸트는 미를 두 가지로 크게 나눈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미와 부수적인 미가
그것인데 자유로운 미의 사례로 자연대상이나 인공품을 들고 있다. 자유로운
미는 '순수한 미'를 뜻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에 있어서 스스로 미적인 호소를
해오는 형식으로 부수적인 미와 대조된다.214) '부수적인 미'는 대상이 무엇이
어야 한다는 어떤 개념을 상정하는 반면 자유로운 미는 그렇지 않다. 자연미
는 자유로운 미에 해당되며, 부수적인 미에 속하는 것이 바로 미화이다. 칸트
는 꽃들이 자유로운 자연미라고 보았다. 이 외에도 많은 새들(앵무새, 벌새,
극락새 등), 바다의 다양한 갑각류도 그 자체로서 미이며, 이 미는 그 목적이
개념에 의하여 규정되어 있는 대상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이 그리고
그 자체로서 만족을 주는 것으로 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풍의 도안들,
액자테나 벽지의 나뭇잎 무늬 등도 그 자체로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며,
그것들은 아무것도 표상하는 바가 없고, 일정한 개념 하에 있는 어떤 객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미로 보았다.215)
칸트의 자유로운 미에는 자연미와 예술미에 속하는 것이 함께 포함되기도
하며 옷이나 공예품이 해당되기도 하여 오늘날의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구분

213) “비록 형식의 면에서는 예술미가 자연미를 능가하는 일이 있지만, 유독 직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다는 점에서, 예술미에 대해 자연미가 갖는 우월성은 자기의 윤리적 감정을 교화한 모든 사람의 순화
되고 철저한 사유방식과 합치한다.”(Kant, I.,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아카넷, 2013, p.328.)
214) “미에는 두 종류, 곧 자유로운 미(pulchritudo vaga)와 한낱 부수적인 미(pulchritudo adhaerens)가
있다. 전자는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개념을 전제하지 않으며, 후자는 그러한 개념과 그 개
념에 따르는 대상의 완전성을 전제한다. 전자들은 이 또는 저 사물의 (독자적으로 존립하는) 미라고
일컬어지고, 후자는 한 개념에 부수하는 (조건적인 미)로서, 특수한 목적의 개념 아래에 있는 개관들에
덧붙여진 것이다.(Ibid, p.227.)
215) Ibid,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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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는 차이가 있다. 또한 칸트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평가할 때 서로 연관시켜
언급한다. 예술은 기예(Kunst)이지 결코 자연(Natur)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예
술의 산물인 예술작품은 순전한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
고 한다.216) 그러면서도 역으로 자연은 그것이 예술처럼 보일 때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자연을 미적인 것으로 판단할 때 칸트는 기예처럼 의식적으로
계획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칸트는 자연미가 대부분의 예술미에 비해
보다 자유롭고 보다 순수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도 예술미의 장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즉 문학을 포함한 재현예술들은 자연적으로는 추한 대상을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려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217) 요약적으로 말
하자면, “자연미는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이며, 예술미는 사물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표상이다."218) 그러나 칸트에 대한 단토의 지적처럼 그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명료하게 구분하지 않았다.219) 이러한 칸트의 자연미와 예술미에 대
한 관점에 대해 단토는 칸트가 자연미와 예술미를 구분하는데 있어 헤겔에 비
해 그 명료성이 떨어지며, 예술미보다는 자연미를 더 중요한 것으로 본다는
점을 지적한다.220)

216) "미적 기예[예술]의 산물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기예(Kunst)이고 자연(Natur)이 아님을 의식하지 않
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러한 산물의 형식에서의 합목적성은 자의적인 규칙들의 일체의 강제로부터 자
유로워서 마치 그 산물이 순전한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된다."(Ibid, p.337)
217) "예술은 자연에서 추하거나 적의하지 않은 사물들을 아름답게 묘사한다는 데에 바로 그 특장이 있
다."(Ibid, p.345)
218) Ibid, p.344.
219) “무릇 우리는 보편적으로, 자연미에 관해서든 예술미에 관해서든, 순전한 판정에서-감관감각에서도
아니고, 개념에 의해서도 아니라-적의한 것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Ibid, p.337)
220) “칸트의 관점은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할 근거가 있는 한 예술미보다 자연미에 훨씬 더 큰 중요성
을 부여했다. 그는 자연미에서 세계와 우리 사이에 심오하게 의도된 조화의 확신을 보았다.”(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02)
단토의 이러한 평가는 코스텔로에 의해 칸트의 미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코스텔로는, 단토가 칸트의 미개념을 오해하여 칸트가 미를 비인지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평가한
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단토의 내재미에 대한 주요개념들이 칸트의 예술미에 대한 사유와 유사하다
는 점이다. 이는 단토가 칸트에 대해 잘못된 관점으로 비판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주요개념을 칸트에
게서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토는 칸트의 미학이 미적 경험을 시각적 자극
에 대한 순전히 감각적이고 비인지적(쾌감적) 반응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스
텔로에 따르면, 칸트의 예술작품에는 미학적 개념을 포함한다고 설명하기 어려운 인지적 차원이 있다.
그럼에도 단토는 칸트의 이러한 인지적 차원을 과소평가하여 예술에서의 미학이 비인지적, 즉 감각적
인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토는 칸트가 예술미와 자연미를 구분하는 방식 역시 과소평가
한 것으로 본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 §45에서 예술이 자연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할 때, 예술이
말 그대로 자연과 닮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음에도 단토는 칸트가 자연미와 예술미를 구분
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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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를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심미적 미라고 볼 때, 형식으로서의 미와 관
련된다. 형식미를 강조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 생겨난 것으로, 샤프츠베리
(Shaftesbury, 1671-1713), 애디슨(J.Addisoon, 1672-1719), 허치슨(F.
Hutcheson, 1694-1746) 등 영국 취미론자들에 의해 발원되어 칸트에게서
완성된다. 칸트는 미가 자연과 예술작품에 실제로 들어 있는 객관적 성질이라
고 언급한다. 그러나 칸트는 반복적으로 미란 결코 객관적인 것이 아니며 취
미는 결코 인식적 의미를 지니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221) 미적 성질은 다만
느껴지거나 미적으로 직관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명확한 개념의 입장에서
파악되거나 개념적 원리에 의거하여 증명될 수 없다. 따라서 표상으로서의 미
는 인식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쾌감이며, 예술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라 외적인 형식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미적인
판단의 보편성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감적(ästhetisch)'인 것이어야 한다.
단토는 칸트의 미개념이 어떤 대상에 대해 다수가 흡족함을 느끼는 보편성을
갖더라도 취미판단에서 단지 주관적으로만 표상된다는 점에 주목한다.222) 따

그럼에도 코스텔로는 다음과 같이 칸트와 단토의 유사점을 지적한다. 칸트가 예술미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 보다 복잡한 미적 판단을 특징짓기 위해 대상의 성격이나 목적을 분명히 고려하는, 즉 ‘그 대
상이 의미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인 ‘부용미’개념을 만들 때, 코스텔로는 칸트의 ‘부용
미’에 대한 설명이 『미의 학대』에 나오는 단토의 미 개념의 중심논제와 일치한다는 것이
다.(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p.428.)
코스텔로는 칸트가 교회의 아름다움은 추가적인 제약이나 통제 하에 그 아름다움이 예배를 위한 장
소로서의 목적에 적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러한 칸트의 생각은 단토가 말하는 ‘내재적인 미’ 개념과
매우 가깝다고 한다. 즉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 그 의미에 내재적이거나 적절하다는 것이다.(Ibid,
p.428.)
코스텔로는 칸트가 예술작품은 중심에 미적 개념 즉 ‘개념’을 구현한다고 보고 있기에 불가해한 인
지적 차원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이러한 인지적 차원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단토는 흔히 사람들이
칸트를 오해하는 방식대로 미학을 비인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스텔로는 이처럼
단토가 ‘미학은 비인적’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술작품의 ‘예술적’ 특성은 미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고 보았다고 판단한다.
221) “하나의 규칙적인, 합목적적인 건물을 인식능력을 가지고(분명한 표상방식으로든 혼란한 표상방식으
로든) 파악하는 것은 이 표상을 흡족의 감각을 가지고 의식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어떤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서 표상은 전적으로 주관에만, 그것도 쾌 또는 불쾌의 감정이라는 이름을 갖는 주관의
생명감정과만 관계 맺어진다. 이 감정은 아주 특수한 구별능력과 판정능력의 기초를 이루되, 인식에는
아무것도 기여하는 바가 없고, 단지 주관에 주어진 표상을 표상들의 전체 능력에 맞서 세울 따름으로,
마음은 그의 상태의 감정에서 표상들의 이 전체 능력을 의식하게 된다. 한 판단에서 주어진 표상들은
경험적(그러니까 미감적/ 감성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표상들에 의해 내려지는 판단은, 저 표상들이
오직 판단에서 객관과만 관계 맺어진다면, 논리적이다. 그러나 거꾸로, 주어진 표상들이 심지어 이성
적일지라도, 판단에서 단지 주관과(그것의 감정과)만 관계 맺어진다면, 그것들은 그런 한에서 항상 미
감적이다.”(Kant, I.,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p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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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서 미 또는 취미가 경험적인 개념이라 하더라도 객관의 개념들에 의거해 있
지 않은 보편성은 전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감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판
단의 객관적 양을 함유하지 않고, 단지 주관적 양만을 포함한다.223) 단토는
칸트의 이러한 비인지적 측면을 제시함으로써 헤겔 예술미의 인지적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다시 말해 단토는 ”예술적 경험을 꽃이나 일몰이나 아름
다운 여성 등의 자연미를 경험하는 것과 매한가지로 봤던“ 칸트를 헤겔과 비
교하여 헤겔이 제시한 예술미가 자연미와 뚜렷하게 구분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칸트는 예술과 관련한 목록을 쾌와 고통으로 국한하고, 숭고를 중요
한 예외로 두었다.”224)고 요약함으로써 의미 즉 정신성을 결여시킨 점을 주목
한다.
그러나 단토는 그의 유작 『무엇이 예술인가』(2013)에서 칸트가 주관주의
와 객관주의의 관계성을 찾고자 한 철학자라고 말하면서, 『미의 학대』에서
간과한 측면을 재론한다.225) 칸트는 예술에서 미개념을 논할 때 형상적인 것
과 이념적인 것을 연결짓는 합목적성을 언급하였는데, 이 언급은 단토의 ‘내재
미’와 관련이 깊다. 코스텔로 역시 이 지점에서 칸트와 단토의 유사점을 지적
한다. 칸트는 예술미에 대한 판단을 포함한 보다 복잡한 미적 판단을 특징짓
기 위해 대상의 성격이나 목적을 분명히 고려한다. 다시 말해, ‘그 대상이 의
미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인 ‘부수적 미’ 개념을 만든다. 코스텔
로는 칸트의 ‘부수적 미’에 대한 설명이 『미의 학대』에 나오는 단토 미개념
의 중심논제, 즉 내재미와 일치한다고 말한다.226) 칸트는 교회의 아름다움은
추가적인 제약이나 통제 하에 그 아름다움이 예배를 위한 장소로서의 목적에

222) Ibid, p.206.


223) Ibid, p.207.
22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93.
225) 칸트는 로코코 예술에서 순수한 예술적 형식들은 미적으로 만족을 주는 장식으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 형상적인 것과 이념적인 것의 매개고리를 그의 합목적성 철학개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미적 판단에 있어서는 형식적이고 주관적 합목적성을 말하고 있으며, 목적론적 판단에 있어서는 실질
적이고 객관적인 합목적성의 개념으로 설명한다.(오병남, 『미학강의』, p.253.) 칸트는 자연의 대상은
현상적이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디자인이나 조화 그리고 합목적성은 사물들 자체의 세계인 본체적
인 것이 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칸트는 자연적인 영역과 이념적인 영역 간의 매개고리를 찾고자 한
다. 그의 『판단력 비판』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칸트에 따르면 자연은 그
심장부에 있어서는 목적론적이며, 한편으로는 자연미와 유기적 구조 속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미의 창조와 그 반응 속에서 그 내적인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그의 미학이론은
출발을 보고 있는 것이다.(Ibid, p.254.)
226) 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p.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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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코스텔로는 이러한 칸트의 생각이 단토가
말하는 ‘내재미’ 와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이
그 의미에 내재적이거나 적절하다는 것이다.227) 그러므로 칸트의 부수적 미와
단토의 내재미가 유사하다는 코스텔로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단토는 예술미에 비해 자연미에 방점을 두었던 칸트 외에도, 자연미를 본질
적인 것으로 보았던 사상가들로 무어와 산타야나를 언급한다. 이들에 대한 언
급의 목적은, 한편으로는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미이며, 미는 자연미로부터 온
것이라는 기존의 미개념에 대한 옹호의 이유를 확인하여 미의 보편적 가치를
제고(提高)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미의 정신성이 자연미와 다른 것임을
명백하게 하면서도, 자연미가 지닌 그대로의 가치를 부각하려 한다. 다른 한편
으로는 흄이나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을 언급하면서 미가 예술미로 드러날 때
의미론적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미를 더 본질
적이라고 보는 사상가들은 예술미의 정신적 측면은 주목하지 못했다고 여긴
다. 단토는 이러한 점에서 ‘예술미를 생각할 때 자연미를 모범으로 삼았’던 무
어 역시도 칸트와 유사한 입장을 가졌다고 평한다.228) 단토에 의하면, ‘그림이
훌륭하다면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말한 무어 역시 예술의 ‘정신’개념을 이해하
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단토가 두 미개념을 설명하면서 자연미나 예술미 중
하나를 옹립하기 위함이 아니라 각각의 미개념이 지닌 특성을 밝히고자 예술
과 미를 분리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럼 자연미에 대한 단토의 생각을 살펴보자. 단토는 자연미가 예술미와는
달리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존재의 미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생각은 자연미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에 대한 공감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공감은 『미
의 학대』에서 심미적 미의 가치와 역할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
난다. 그는 자연미에 대한 설명으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4권에 나오는 발베크의 사과나무에 대한 묘사를 예로 든다. 단토는 자연의

227) Ibid, p.428.


코스텔로는 칸트가 예술작품은 중심에 미적 개념 즉 ‘개념’을 구현한다고 보고 있기에 불가해한 인
지적 차원이 형성된 것이라 한다. 이러한 인지적 차원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단토는 흔히 사람들이
칸트를 오해하는 방식대로 미학을 비인지적인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코스텔로는 단토가
‘미학은 비인지적’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술작품의 ‘예술적’ 특성은 미적으로 분석할 수 없
다고 보았다고 판단하면서 단토 미개념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228)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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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프루스트의 묘사가 의욕과잉이긴 하나 자연미에 대한 적절한
예라고 생각한다. 프루스트의 묘사는 무어가 생각하는 미의 세계와도 연결되
는 것으로, 두 사람은 자연미에 대해 유사한 관점을 보여준다. 자연미는 말이
나 설명을 통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없는 것이
지만, 미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확실한 감동의 증거가 된다. 그러므
로 필자는 단토가 심미적 미는 감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미이며, 예술미는
통찰과 비평적 지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면서, 각각의 미가 가진 가치를 인
정했다고 판단한다. 말하자면, 칸트와 무어는 자연미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자
연미 속에서 예술미를 보았다. 반면 헤겔은 예술미의 정신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단토는 자연미와 예술미를 구분하여 각각의 가치를 밝히려 했다고 정
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미보다 예술미에 주목했던 헤겔의 입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
다. 헤겔은 칸트와 달리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헤겔은
『미학강의』가 미학 가운데서도 미적 예술(schöne Kunst)을 다룬다고 밝히
면서, 감각, 즉 감성(Empfinden)을 근거로 한 이 학문이 철학의 한 특수한 분
과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미학은 예술미에 관한 것이며, 특히 철
학적인 차원의 예술을 다루고 있다. 또한 그가 고찰하려는 미학의 범위에서
자연미를 제외시키고 예술미에 집중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술미가 자연미보다
우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헤겔에 따르면, “예술미라는 것은 다름 아닌 정
신(Geist)으로부터 탄생한 미, 정신으로부터 다시 태어난 미다. 정신과 정신의
산물이 자연과 자연의 현상들보다 우월하듯이 예술미도 자연미보다 우월한 것
이다.”229) 그 근거는 자연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관심(indifferent)하며 스스로
자유롭지도 못하고 자의식(selbstbewußt)도 갖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
는 자연미가 정신에 속해 있는 미의 반사에 불과한 것으로, 불충분하고 불완
전한 양태로 드러난다고 본다.230) 그렇기에 필연성(Notwendigkeit)과 법칙성
(Gesetzmäβigkeit)에 따르는 자연의 미를 다루는 것은 별로 흥미로운 일이
아니다.231)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술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학문적 고찰에 적

229)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저, 두행숙 역, 『헤겔의 미학강의. 1: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


상』, 은행나무, 2010, p.28.
230) Ibid, p.29.
231) Ibid,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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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예술은 현존하는 방식
이 효과적인 수단인 속임수와 가상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에, 외견상 학문적으
로 고찰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예술미 자체는 감각, 감
성, 직관, 상상력에 의해 드러나기 때문에 사상과는 영역이 다르다. 그러나 우
리가 예술미를 향유할 때 비로소 창조하고 형상화하는 자유를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미가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의 창조적
상상력은 규칙이나 규칙화된 것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념의 어두운 세
계와는 달리 밝고 힘찬 현실성을 추구한다고 높게 평가된다.232) 예술은 세상
의 모습을 다루면서 가상의 방식을 사용하지만, 자연처럼 그 현상하는 것들
속에 있는 본래의 참된 내용과는 다르게 좀 더 고차원적이고 정신으로부터 나
온 현실성(geistgeborene wirklichkeit)을 부여한다.233)
헤겔은 예술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데, 본래적인 예술과 종속적
인 예술이 그것이다. 종속적 예술은 일시적인 유희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쾌락과 여흥을 주고 우리의 환경을 치장해 주며, 외적
인 생활상태를 개선해 주고 다른 대상들을 장식적으로 부각시켜준다. 그는 종
속적 예술이 인간에게 유용한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예
술은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가 고찰하고자 하는 예술은 그 목적이나 수
단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예술’에 대한 것임을 내비친다.234) 단토는
이 부분에서 헤겔이 부차적인 미에 해당하는 예술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고 아쉬워한다.235) 헤겔과 달리 단토는 미화에 속하는 종속미의 의미를, 오늘
날의 대중문화와 관련하여 ‘제3영역의 미’라는 개념으로 중요하게 다룬다.
종속적 예술에 비해 본래적 예술은 “목적과 수단 양쪽 모두에서 자유롭다.”
이러한 예술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에 관련된다. 단토는 이처럼 헤겔
이 예술의 특성을 사유의 측면에서 구별하는 것은 “순수예술과 응용예술의 구
분과 완전히 유사하다”고 주장한다.236) 단토는 헤겔이 말한 사유 즉 내용으로
서의 미의 개념을 발전시키면서도 의미에 심미적 미가 내재하는 ‘내재미’를 이
끌어낸다. 물론 헤겔은 본래적 미에 집중하면서 종속적 미를 중요하게 다루지

232) Ibid, p.34.


233) Ibid, p.42
234) Ibid, p.37-38 참조.
235)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64.
236) Ibid,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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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않는다. 그러나 단토는 제3의 미적 영역이라고 칭한 ‘인간의 삶과 행복에
깊이 관련된 영역’을 헤겔이 확실히 알아보았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단토는 미
화의 영역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리고 헤겔을 비롯해 앞선 철
학자들이 간과한 미화를 재해석하여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미화의 영역은 인
간의 삶의 형식들 중 대부분과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단토는 여기에
서 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전개시키고자 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단토는 자연
미, 예술미, 그리고 미화를 구분함으로써 미의 용도를 보다 선명하게 할 수 있
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2) 내재미

지금까지, 미의 종류를 구분하여 각각의 미가 지닌 특성을 이해하고 철학자


들의 자연미와 예술미에 대한 이해의 양상을 검토했다. 이러한 검토에 따르면,
과거 전통적인 예술이 미적 추구를 목표로 하던 것에서 변화하여 미가 없이도
예술로 정의하는 데 문제가 없게 된다. 따라서 미와 예술은 현대에 이르러 서
로 구분되었다. 그렇다면, 예술에서 나타나는 미는 무슨 의미를 지니며 예술작
품 감상에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단토는 예술작품을 ‘의미의 구현’이라
정의하면서, 미적 특질의 유무가 예술로서의 가부에 필수적인 사항이 아님을
논증하였다. 그렇다면 왜 다시 예술에서 미의 역할을 재고하는 내재미의 개념
이 필요했던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 예술이
삶의 표현 가운데 하나이고 미가 삶의 전반에 관여하는 것이라면 분명 예술에
서도 미가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미의 보편적인 가치는 예술에도 예
외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토는 이러한 미의 역할을 화용론을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단토는 예술미에서 내재미와 외재미를 구별하였는데, 내재미는 심미적 미
와 의미가 결합한 구조를 갖는다. 이때 미가 예술작품의 의미에 내재하여 예
술작품의 탁월성을 높인다면 미는 보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 굴절인자로 작
용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미적인 요소가 예술작품의 우수성에 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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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면 예술에서의 미의 역할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또한 내재미의 구조는
단토 미개념 전반에 적용된다. 다시 말해, 외적으로 드러나는 심미적 미와 정
신적인 차원의 의미가 결합하는 구조는 제3영역의 미가 지닌 내적 구성에서
도 유사하게 반복되어 단토 미개념의 틀을 이해하게 한다. 말하자면, 양가적
특성을 띠는 내재미의 논리적 구조는 예술에 머물지 않고 일상의 삶으로 이어
지는 미의 역할과 가치를 논할 때에도 규범미와 내면미의 결합이라는 이상미
의 구조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내재미는 명백히 의미와 관계하는 미의 기능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때의 미는 심미적 미로 머물지 않고 마음의 변화를 불러
올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그러므로 미가 예술의 목적으로서의 자리는 내어놓
았으나, 감정적 존재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여 의식적인 경이에 이르게 하는
화용론적 특질을 갖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이
번 항에서는 단토가 ‘내재미’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바를 확인하고 그 의의를
밝힐 것이다.
단토는 미가 예술작품의 의미에 내재할 경우는 ‘내재미’로, 의미와 상관없을
경우에는 ‘외재미’로 본다. 이는 예술에서 미를 재조명한다는 의의가 있지만,
의미와의 관계를 통해 미를 구분하려는 것이기도 하다.237) 단토의 내재미는
예술미와 관련하여 언급된 것으로, 헤겔의 개념으로부터 길어온 것이다. 헤겔
의 관점에서 미는 정신에서 태어나며 예술적 경험의 일부가 된다. 단토의 내
재미는 예술작품을 살아있게 하는 많은 양상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만, 내용과
형식의 결합에서 나타난 미라는 특징을 갖는다. 또한 예술의 ‘정신성’에 주안
점을 둔 헤겔과 달리, 단토는 ‘내재미’를 통해 20세기 이후 예술에서 배제되었
던 감각적인 미의 무게를 예술 속에 다시 가져왔다. 내재미는, 단토가 『미의
학대』에서 미를 세 영역으로 구분하고 예술과 미를 분리한 후 굴절인자로서
미의 역할을 논증한 이후에 다시금 예술과 결부시킨 미이다. 무엇보다도 내재
미는 기존의 예술미에 대한 이해에서 나아가 단토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개념
이다. 필자는 이러한 그의 성과가 예술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
한 물음에 답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는 굴절인자의 하나로서 우리를 의
식적으로 어떤 변화 혹은 경이로운 상태에 이르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

237) “감각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심미적인 미(aesthethic beauty)다. 예술미는 통찰과 비평적 지


성을 요구 한다.”(Ibid, p.92.)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단토는 예술에서는 정신성을 중심에 놓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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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미 이외의 다양한 미적 특질이 이러한 굴절기능을 수행할 수 있지만, 미적
특질 가운데 미가 가장 강력한 굴절기능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단토는 미를 화용론에서 다루지만, 식자들은 수사학에서 오랫동안 비
중있게 다루었다. 따라서 단토는 ‘자연미’에서 우리에게 명료하게 와 닿았던
심미적인 미가 ‘예술미’에서는 작품의 의미와 결합하여 내재미가 되는 과정을
다루면서 미의 화용론적 특질에 대해 부연한다.
단토는 『미의 학대』의 소제목에 해당하는 ‘발베크의 사과나무’라는 글에서
자연미와 예술미에 대해 언급한다. 양쪽 모두는 미가 경험의 중심인데, 자연미
는 결국 심미적인 미이고 단순하고 분명해서 누구에게나 명료한 미다. 그러나
예술에 관해서 근대 이후 불거진 몇 가지 선입견, 즉 인상주의에서 시작되어
전위예술에 이르러 확산한 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예술미에는 거부감
이 들 수 있다.238) 필자는 단토가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동시대 예술에서 심
미적 미를 언급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 간주한다. 단토는 심미적인
미에서 고차원적인 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대신에, 예술미에서는 “심미적
인 미가 작품의 의미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239)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술에서의 심미적 미가 수용자의 마음을 움직여 우수
한 예술감상에 이르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단토에 따르면, 내
재미에서는 미가 작품의 의미와 내재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가 정신
에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미는 예술적 경험의 일부가 된다.240) 이
렇게 되면 미는 뒤샹이 비난한 단순한 ‘망막의 전율’, 즉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의 결합을 통해 훨씬 더 풍부한 것이 된다. 단토의
언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점은 그가 예술에서는 의미론적 특질을 중심에
두고 미를 논한다는 것이다.
단토는 내재미와 외재미 중 예술작품의 우수함에 관여하는 내재미에 집중함
으로써,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가 그 실재성에 비해 얄팍하고 그릇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을 바로 잡고자 한다. 그러므로 내재미는 심미적 미의 용도를 되
살리는 논리적 구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미가 전통적으로 선이나 도덕과
관련되어 있다는 인식은, 20세기 초 전위예술이 미를 학대하는 이유가 되었

238) Ibid, p.96.


239) Ibid, pp.96-97.
240) Ibid,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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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단토는 이들이 미를 왜곡한 원인이 당시의 고통스러운 사회·정치
적 상황과 미를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미의 본질 자체가 변형되거나 사
라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미가 학대당한 원인을 살펴, 미에 새겨
진 낙인을 제거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빅토리아, 에드워드 시대의 미학이 미에
부여했던 도덕적 무게를 어느 정도 되살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토 스
스로 이러한 일의 목적이 예술의 정의나 본질에 미를 복구하고자하는 것은 아
니라고 덧붙이고 있다. 미개념을 재론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나 회귀가
아니라 예술에서 잘못 취급된 미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 그 보편적 가치를
다시 향유하고자 함이다. 그는 예술이 다원화된 오늘날의 상황에 맞도록 새로
운 미개념을 개진 한다.
내재미 개념은 주요 미론들과 비교 논의될 때 내재미만의 차별화된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단토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연미를 비중 있게 다룬 칸트의 미
학과 대비시켜 예술미에 대한 헤겔의 선지적인 사유를 높게 평가한다. 그리고
단토는 칸트의 경우 자연미와 예술미의 구분이 명료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헤겔로부터 ‘구현된 의미’로 나아간다.241) 예술은 정신에서 태어난다는 헤겔의
사유에서 미가 의미에 내재한다는 내재미 개념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내재미
의 구조인 의미와 심미적 미, 즉 내용과 형식의 결합은 칸트가 예술의 미적
특성에서 언급한 것과 유사성을 지닌다. 단토는 내재미와 관련한 칸트와의 유
사성에 대해 『미의 학대』를 집필하면서는 드러내지 않지만, 이후 그의 유작
에서 비중 있게 다룬다. 그러므로 칸트의 예술개념과 단토의 내재미의 관련성
을 살펴보는 것은 단토의 미개념을 인식하는 데 유용하다.
칸트는 기계적 기예(mechanische kunst)와 예술(schone kunst)을 구분하
며, 예술에는 천재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작용하는 것으로 말한다. 그럼에도 예
술은 규칙의 작용이 본질적인 조건임을 강조한다. 칸트는 기계적 기예와 미적
기예[예술]를 구분한 후, 전자는 근면과 학습에 의한 순전한 기예이고 후자는
천재의 기예로서 서로 다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규칙들에 따라서 파악되고
준수될 수 있는 어떤 기계적인 것이, 다시 말해 어떤 모범적인 것이 기예의
본질적 조건을 형성하지 않은 미적 기예란 없다고 한다.242) 예술의 정신성에,

241) 그러나 유작인 『무엇이 예술인가』에서는 칸트의 미학에 대해 재조명하면서 보다 세부적으로 칸트


의 미학적 성과를 언급한다. 이는 코스텔로의 리뷰에서 지적한 부분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242) Kant, I.,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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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보완하는 기예 즉 규율이나 관례로 드러나 있는 기술이 함께 작용한다
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칸트는 예술에서 규율이나 관례보다 정신성에 해당하
는 상상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더 나아가 예술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
은 인간성 즉 도덕적 요소임을 말한다.243) 이로써 예술에서 미의 형식적 기술
이 도덕적 이념을 반영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도덕적인 이념과 관련한 상상력
에 방점을 찍고 있다. 따라서 칸트가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을 결합하고, 도덕
적 이념을 발견하여 감정의 도덕적 도야를 강조한 것은 단토가 심미적인 미와
의미를 결합하여 내재적 미로 나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것은 규범미
와 내면미의 결합으로 이상미에 이르는 제3영역의 미와도 연결된다.
칸트는 ‘의미있는 형식(significant form)’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 부분 역
시 단토 내재미의 개념과 상통하는 유사성을 지닌다. 칸트는 형식이 의미없이
존재할 때 허식이며 진정한 미를 해치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칸트는 형
식이 의미있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장식물(Zieraten)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다시 말해 대상의 전체 표상에 그 구성요


소로서 내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적으로 부가물로서 속하여 취미의 흡족함을
증대시켜주는 것조차도 이것을 단지 그 형식에 의해서만 하는 것이다. 가령 회화의 틀, 또는 조
상에 입히는 의복 또는 장려한 건축물을 둘러싸고 있는 주랑과 같은 것이 그러하다. 그러나 장
식물이 그 자신 아름다운 형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 장식물이 황금의 액자처럼 한갓 자신
의 매력[자극]에 의해서 회화가 박수를 받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 그럴 경우에 그러
한 장식은 치장물이라 일컬어지고, 진정한 미를 해치는 것이다."244)

칸트의 ‘의미있는 형식’의 개념은 예술에서의 미가 장식의 하나로 외재적 형상


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체가 유기적으로 관련될 수 있도록 하며 미적 통
일성에 기여하는 예술적 구성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칸트는 ‘의미있는 형식’

243) Ibid, p.405.


"미적 기예의 완전성의 최고도가 목표인 한, 모든 미적 기예를 위한 예비학은 지시규정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인문적 교양(Humaniora)이라고 부르는 소양에 의해 마음의 능력들을 교화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측하건대 인문[간]성은 한편으로는 보편적인 참여의 감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가장 진솔하게 그리고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속성들
이 함께 결합하여 인간성에 적합한 사교성을 이루며 이 사교성에 의해 인간성은 동물의 제한성과 구
별된다.....그러므로, 취미를 정초하기 위한 참된 예비학은 윤리적 이념들의 발달과 도덕 감정의 교화
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이러한 도덕 감정과 감성이 일치하게 될 때에만 진정한 취미가 일정불변의 형
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244) Ibid,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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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아름다운 형식’이라고 명명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토가 내재미에서 미의
역할을 강조한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 칸트의 ‘의미있는 형식’은 미의 형
식적 기술에 도덕적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고, 단토의 ‘내재미’는 예술작품의
미적인 요소가 의미에 내재하는 것이다. 사실 단토는 그의 저서에서 헤겔과
달리 칸트의 철학과 미학개념에 대해서는 체계적이거나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
하지 않고 지엽적으로 다루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미의 학대』에서 빈약했
던 칸트의 예술미에 대한 언급은 이후 『무엇이 예술인가』에서 보다 적극적
이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여기에서 칸트에 대한 단토의 재평가는 내재미와
제3영역의 미 개념이 칸트의 사유와 연관성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칸트에 이에 단토의 내재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헤겔의
미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단토는 예술의 정신적 측면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밝
히고 있듯이 헤겔에게서 영향을 받는다.245) 헤겔은 진정한 예술작품의 특징이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결합에 있는 것이며, 특히 정신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헤겔은 자연미보다 예술미를 우위에 놓는다. 예술의 지적인 측면을 강
조한 헤겔의 사유는, 단토가 예술미에서 의미를 주된 것으로 보는 것에 영향
을 준다. 애초에 단토는 예술의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오늘날 다원화된 현대
미술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가 예술에서 다시 미의 용도를 되살리고자 할 때,
작품의 아름다움은 그 의미에서 나온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사유는 헤겔로부
터 온 것이다. 단토는 헤겔의 미학에서 철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미 개념의
구조물을 발견한 것이다.246) 헤겔은 예술이 지적 생산물이고 그래서 예술미
역시 그 예술이 구현하는 생각의 표현이라고 한다. 이것은 바로 단토의 예술
정의에서 ‘구현된 의미’와 닮아있으면서도 심미적인 미를 작품의 의미에 내재
하는 것으로 보는 토대가 된다.
헤겔은 예술이 정신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자연미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감각에 호소하는 매체의 제약 때문에 제한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헤겔의 ‘예술의 종말’ 개념에 따르면, 더 이상 우리의 생각이 감

245) 단토는 『미의 학대』 전반에 걸쳐 그의 예술철학적 사유가 헤겔을 참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12-13.) 또한 『무엇이 예술인가』의 마지막 문단에서도
평론가로서 자신의 역할은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한 다음 그 의미를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것
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예술의 종말을 다룬 헤겔의 논의에서 배웠다는 말
로 끝내고 있다.(Danto, Arther., What Art is, p.156)
246)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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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에 호소하는 형식으로 전달될 필요가 없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예술은 종말
에 이른다. 이러한 예술의 종말은 철학적으로 절대자인 보편자의 등장에 의한
것으로, 예술 없이도 우리의 ‘가장 높은 욕구들’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된다. 그
것은 “일반적 숙고를 고수하고 이를 통해 특수자들을 규제하며, 그 결과 보편
적 형식, 법칙, 의무, 권리, 격률이 결정적 이유로 우위를 점하고 주된 조정자
가 되었”기 때문이다.247)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예술은 영예로울 수는 있으나
정신의 보행기에 머물게 된다. 헤겔은 예술을 정신의 발달단계의 하나로 위치
시키며 이성이 무르익은 시대에서 예술의 역할은 끝난다고 보면서 예술의 종
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단토는 예술이 철학으로 대체되지
않는다고 본 점에서 헤겔과의 차이를 드러낸다.248) 헤겔의 절대정신은 예술의
종말을 가져왔다. 하지만, 단토는 인간사의 중요한 일들에 철학의 역할이 제한
적임을 강조하면서 감정의 변화를 이끄는 예술은 논리적 인과관계를 요하는
철학이 대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단토는
헤겔의 사유로부터 자신의 ‘내재미’에 대한 단초를 얻는다. 헤겔이 예술의 종
말을 선언한 것은 예술의 감각적인 측면에 대한 인정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
으로 미와 예술의 특성으로 간주해온 감각적 요소는 헤겔 자신이 제시한 예술
의 정신성과 통합을 이룬다. 단토에 따르면, 헤겔의 미학에서 감각적이라고 이
해되는 미가 어떻게 정신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때 단토는 ‘예술이 이성적인 동시에 감각적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헤겔의 사유로부터 인식하게 된 중요한 지점이라고 설명한다.249)
그러므로 단토는 헤겔로부터 예술의 인지적 측면이 동시에 감각이라는 비인지
적 측면을 가질 수 있다는 철학적 사유의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내재미
는 여기서 태어난다.
그러나 단토의 내재미에 깊은 영향을 준 헤겔의 예술미 개념을 오늘날 그
대로 수용하는 것은, 대중문화의 확산과 다원주의로의 진입으로 예술미의 제
한성과 미화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헤겔의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예
술작품은 미나 재현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또한 외관상 일상적인 사물과 구분
되지 않을뿐더러 전통적인 예술 판단의 기준을 따르지도 않는다. 이에 단토는

247) Ibid, p.94.


248) Ibid, p.94.
249) Ibid,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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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역할을 예술의 내재미에서 부분적으로 밝히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그는
미의 화용론적 특질을 재조명하고 제3영역의 미를 통해 삶에서의 미적 가치
로 인식의 확장을 도모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미개념으로 나아간다. 미가 예
술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인간 정신의 고양 및 도덕과의 연관성으로 예술작품
이 감상자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이었다.250) 오늘날 예술에서 미의 입지가 희
미해진 “이 지점에서 주요 문제는 무엇이 예술작품인지 묻는 예술 정의 문제
에서 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묻는 역할 문제로 전환된다.”251)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예술작품이 수용자에게 불러일으키는 반응이 예술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예술에서 수용자의 위치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감안할 때, 단토가 미적 특질이 수용자의 마음
을 움직이는 굴절인자로 작용한다는 관점은 설득력이 있다. 필자는 단토가 예
술의 정체성에 대한 두 번째 조건으로 화용론적 특질을 강조한 이유가, 이처
럼 예술에 대한 질문의 변화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예술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은, 기존에 그가 예술 정의를 위해 사용하던 틀을 토대로 하면서도 미와
미학의 문제로 관심을 옮기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에서 미의 필요성은
‘내재미’ 개념으로 제시된다. 어떤 아름다운 작품이 있다면 그 아름다움은 작
품의 의미에 내재하는 것일 수 있으며, 그 아름다움이 예술적으로 옳은 것일
때 예술작품으로서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
이다.
단토는 예술의 내재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3영역의 미로 확장된 자신의
미개념을 논하기 위해서도 화용론의 소환이 필요했다. 단토가 예술이 지닌 정
체성의 하나로 제시한 화용론적 특질은, 예술가가 감상자에게 전달하려는 바
를 적합하고 효과적인 것이게 한다. 이처럼 화용론은 예술적 훌륭함을 판단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예술가가 작품의 의미를 적합
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감상자는 예술가가 보여주는 대로

250) “고전 논의에서 아름다움은 도덕과 진리를 향해 갈 수 있는 주요 통로이다. 이미 플라톤은 아름다움


경험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룬 바 있다. 그는 정체의 수호자 양성교육에 아름다움의 경험이 필수적이라
주장한다. 이때 아름다움의 경험은 아름다운 대상으로 둘러싸여 있는 환경에서 이뤄진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단순한 향유의 쾌락 때문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경험은 도덕적 심성과 지성을 발휘하는데 굳건
한 내면적 토대를 마련한다.”(Plato, Republic, trans. Paul Shrey, Harvard Univ. Press, 1946,
401b~e), 유성애, 「예술, 의미, 아름다움 : 단토의 내적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pp.125-126에서 재
인용.
251) 유성애, 「예술, 의미, 아름다움 : 단토의 내적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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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볼 수 있으며 상호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단토는 머더웰의 작품
에서 표현된 ‘애가’의 감정을 미의 화용론적 사용의 하나이자 내재미의 올바른
사례로 들고 있다. 단토는 마더웰의 <스페인 공화국을 위한 애가>를 보는 즉
시 아름답다고 느꼈으나 이후에 그 작품의 의미를 알고 나서 그 아름다움이
예술적으로 올바르다고 표현하고 있다.252) 이는 형식에 이끌렸으나 형식에 내
용이 결합됨으로써 온전한 예술적 탁월성에 이를 수 있었음을 말한다. 이 점
은 예술에서 의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으나 미적 요소의 역할을 함께 부각하
는 것이다. 그리고 단토에 의하면, 애가의 감정은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슬픔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미의 도덕적 역할을 성공
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작품의 형상이 가진 아름다움과 작가의 ‘생각’이 반
영된 도덕적으로 아픈 사건의 결합은, 슬픔으로 인한 아픔을 비애로 변화시키
고, 그렇게 해서 배출될 수 있는 형태로 만든다. 단토에 의하면 아름다움을 창
조하는 것은 상실을 표현하는 적합한 감정이다. 미가 촉매 역할을 해서 노골
적인 비통함을 평온한 슬픔으로 변화시키고 눈물이 흐르도록 도와주는 동시
에, 그 상실감을 어떤 철학적인 관점으로 흡수시킨다.253) 나아가 비애감 중
애가의 효과는 사람들을 공동체에 흡수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행위나 작
품이 철학적인 동시에 예술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철
학적인 숙고를 통해 애가의 감정을 보편화한다.
단토는 미가 예술적으로 올바른 내재미의 사례를 애가에만 집중하고 있어,
좀 더 다양한 예시를 통한 설명의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애가와 반대
의 감정이나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경우를 한 가지 제시하긴 하였다. 그것은
마티스의 현란하게 아름다운 니스 시기의 작품들에서도 미는 그 의미에 내재
적이라고 덧붙인 것이다.254) 마티스는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파리를 떠나 자신
이 진정으로 원하던 미술을 위해 니스로 온다. 니스에서 만들어낸 작품들은
고통없는 세계를 창조하려는 마티스의 의도에 잘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그의
니스시대의 그림들은, 세상의 가혹함과 거리두기이며 그러한 점에서 <스페인

252) 단토는 뒤샹의 <샘>과 워홀의 <브릴로 상자>처럼 미가 작품의 의미에 외재적인 경우라고 해도 예
술적 탁월성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미는 예술의 정의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그럼에
도 그가 미에 주목하고자 한 것은 미가 우리의 감정에 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단토
의 표현처럼 미가 예술감상의 올바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53)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11.
254) Ibid,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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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에 바치는 애가>와 마찬가지로 외적인 아름다움이 작품의 의미에 내재
하는 것이다. 단토는 마티스의 경우에서처럼 니스시대 그림들, 머더웰의 <스
페인 공화국에 바치는 애가>, 마야 린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사람들이
만들어낸 9.11테러 이후의 성소들처럼, 미에는 미에서 기인하는 위로와 완화
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감상자들이 고통이
나 기쁨 등을 일종의 철학적 관점에서 표현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255) 단토
는 컨템포러리 아트의 역할이, 예전에 미가 행하던 ‘위로’의 역할을 본질적 정
의로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가 예술작품의 의미에 내재적일 때 그
작품은 내재미를 지니게 되며 비애나 그 밖의 미적 감정을 통해 감동과 위로
를 준다. 그리고 미가 우리 삶의 변화요인이자 힘이 될 수 있다.
작품의 미적 특질은 감상자가 어떤 감정이나 느낌이 들게 한다. 단토는 화
용론적 특질을 중요하게 부각한 근거로, 인간이 감정적인 존재임을 제시한다.
특히, 미나 숭고와 같은 강렬한 감정을 통해 의식의 경이를 경험하는 존재라
는 것이다. 단토는 예술을 감상하는 데 있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계
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예술의 화용론적 특질을 주목한다. 예술은 우리 삶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을 감각을 통해 드러낸다. 단토는 헤겔이 이미 지시했던
것처럼 예술은 감각적이면서도 동시에 지성적일 수 있으며 형식과 내용의 결
합으로 나타난다. 마더웰 그림의 내용은 고통과 슬픔이다. 그러므로 단토가 느
낀 아름다움은 고통의 상황을 승화시킬 수 있도록 감정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미에 대한 인식을 인간의 삶에서 작동하는 방
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확장할 수 있다. 애가의 경우처럼 우리는 상실과 고통
의 순간에 노래를 부르는 등의 미적인 행동을 통해 고통을 경감시키거나 극복
하려는 태도를 흔히 경험한다.

“아름다움과 도덕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의 결합은 슬픔으로 인한 비탄을 비애로 변형시킨다.


그리고는 하나의 배출시킬 수 있는 형태로 변형시킨다. 애가의 상황은 공식적이기 때문에 그
비애는 공유된다. 비애는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애도 자들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그 애가의 효과는 철학적인 동시에 예술적이다. 즉 애가는 나와 상실 사이에 거리를 둠으
로써, 그리고 같은 상실에 빠진 이들 사이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그 상실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
문이다.”256)

255) Ibid, p.115.


256) Ibid,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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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는 애가에 대한 설명을 통해 그 효과가 사람들 간의 공감대 형성과 관련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애가가 주관적인 감정상태에 그치지 않고 타인과
공유 가능해지는 순간을 말한다. 정확히 칸트가 시도하고자 했던 미의 보편화
없이도 단토는 아름다움이 공동의 역할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미의
보편성을 말한다.257) 칸트는 미적 경험이 모두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오는
이유를 공통감(일반타당성 Geminegultigkeit)을 통해서 설명한다. 그는 이러
한 보편성이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미감적(ästhetisch)’인 것으로 본다. 그것
은 공통감으로 드러나는 이상적인 미로써 도덕성과 관련된다.

“미적인 것의 이상은 미적인 것의 규범이념과는 구별된다. 미적인 것의 이상은 이미 언급한 이


유에서 오로지 인간적 형태에서만 기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형태에서 이상은 윤
리적인 것의 표현에서 성립한다. 윤리적인 것 없이는 대상은 보편적으로도 적극적으로도 (모범
적인 현시에서 소극적으로뿐만 아니라) 적의하지 못할 터이다. 인간을 내면적으로 지배하는 윤
리적 이념들의 가시적인 표현은 경험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는 하다.”258)

이와 같이 단토가 말하는 애가의 아름다움은 공통감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예술은 애가의 아름다움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삶의 문
제들을 극복해 나가는 하나의 특수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미적 가치를
탑재한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이며 단토가 설명하고자 하는 ‘내재미’의 특성에
속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내재미에 대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미는 제3영
역에서 말하는 이상미와 연결된다. 내재미를 예술미에 국한하여 해석하지 말
아야 하는 이유는, 단토의 미개념 연구가 보편적인 미의 가치회복에 있으며,
이럴 때 미가 가지는 변화시키는 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재
미는 예술의 범주를 넘어서서 미를 사유하게 하는 단초가 된다.

257) 유성애, 「예술, 의미, 아름다움 : 단토의 내적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p.142.


유성애는 단토의 내재적 미에 대한 논구를 통해 동시대 예술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 안에서만 인간
삶에서의 역할을 찾을 수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내재적 미에서 아름다움은 삶의 가치로서 아름다
움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며, 예술작품의 아름다움, 훌륭함을 판단내릴 때, 작품의 의미 안에서 공
동성과 소망 관점을 투영하고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름다움이 예술의 하나의 선택적 양태를
넘어 삶의 기치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단토의 언급에서 제3영역의 미나
미화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고 전개시킨 것으로 비약의 요소가 짙다.
258) Kant, I.,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pp.236-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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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의 ‘내재미’와 관련한 연구로는 장민한의 관련 논문이 이 개념에 대한
단토의 의도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장민한은 미개념에 대한 소논문259)을 통
해 미술비평에서의 미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단토의 미술비평
에서260) 미의 역할을 분석하여 미술의 해석에서의 역할과 예술적 탁월성의
관련성을 살핀다. 그는 단토가 기본적으로 ‘서사’와 ‘미적 속성’으로 작품의 의
미와 가치를 설명한다고 간주한다.261) 미적 속성은 해석과 관계없이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는데, 미는 이러한 미적 속성의 하나이다.262) 그는 단토가 작품
의 ‘서사’에 적용되는 미를 ‘내재미’로 보며 예술적 탁월성에 기여하나 언제나
탁월하게 하는 것은 아니며, 도덕적, 정치적 판단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요약
한다.263) 장민한은 단토가 칸트와 달리 미술비평에서 형식과 내용을 분리하지
않고 미가 작품 내용의 일부이며 우리로 하여금 미의 의미에 반응하도록 한다
는 점을 강조한다.264) 그는 미가 여전히 우리 삶에서 중요하며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265) 그러나 그의 논의에서는
단토가 후기에 미 개념을 재고하게 된 의도가 충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
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필자는 지금까지 논의한 내재미가 미의 기능적 측면에서 제3영역의 미와 밀
접하다고 판단한다. 단토의 두 가지 미개념은 모두 미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먼저 미의 가치가 예술에서 발현되는 것이 내재미이다. 그리고 일
상에서 발현되는 것이 제3영역의 미다. 후자에서 언급되는 미의 보편적 가치
는 헤겔의 객관정신과 연결되며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제3영
역의 미는 예술과 삶에 걸쳐있기 때문에 공동의 삶과 그 속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단토는 단순히 예술에 다시 미를
불러오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발견하기

259) 장민한, 「아서 단토의 미술비평에서 미의 역할」, 『미학』, pp. 215-241.


260) 장민한은 단토에게 비평이란 의미와 가치를 규명하여 관객에게 작품의 힘에 반응할 수 있도록 도움
을 주는 것이라 하였다.(Ibid, p.225.) 가치규명은 ‘이유의 담론’으로 구성된 예술계를 이해해야하는데,
예술계가 비평을 정당화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의미는 서사의 형태로 이해가능하며 미는
의미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내적인 미는 의미 강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본다.(Ibid,
p.226.)
261) Ibid, p.215
262) Ibid, p.215
263) Ibid, p.215
264) Ibid, p.217,
265) Ibid,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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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는 미의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미의 가치는 인
간의 삶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다음 항에서는 미와 숭고의 개념을 통
해 마음을 움직이는 힘으로서의 미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미와 숭고

단토는 『미의 학대』 마지막 장에서 미와 숭고의 개념을 다룬다. 숭고는


그의 미개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먼저 미와 숭고는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미적 요소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숭고 개
념은 인간이 놀라움과 경이와 같은 강력한 감정을 품을 수 있는 존재임을 드
러낼 수 있다. 그리고 미 또한 숭고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동요시켜 이와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결국 숭고는 미가 마음을 움직여 변
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미와 비교되는 중요한 특질이다.
한편, 18세기 이래로 미와 숭고는 예술의 가장 주요한 범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 숭고가 미와는 대조적인 특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266) 단토는 이 두 개념의 대조적인 측면을 비교 서술하면서도, 정신을
고양시키고 의식의 경이로움에 관여하는 숭고를 미와 긴밀히 연결한다. 말하
자면 본인이 미개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는 데 숭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항에서는 단토가 미개념 고찰의 의의
를 강조하기 위해 숭고를 미와 비교한 내용의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단토가 숭고와 미를 비교한 의도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
째 의도는 계몽주의 시대 이후 미와 함께 미학의 보편적인 공식으로 받아들여

266) 숭고의 개념은 고대 수사학에서 나타난 것으로, 웅대하고(grandis), 근엄한(gravis) 양식이라고 칭해


졌다. 이처럼 고대인들은 숭고가 수사학에 관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17세기에 와서 미학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숭고가 미의 한 범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견들
이 있었다. 일부의 학자들은 숭고가 미를 변종시킨 독특한 종류라고 보면서도 미와 하나의 범주로 이
해했다. 그러나 “버크, 칸트, 졸거 등에 의하면 숭고나 미는 상호 배타적이기 때문에 숭고한 것은 아
름다울 수 없고 아름다운 것은 숭고할 수 없다”했으며, 숭고는 미와 현저하게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타타르키비츠, 『미학의 기본 개념사』, pp.205-20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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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던 숭고가 의식적 경이와 관련된 측면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숭고는 사고의
웅대함 및 정서의 심오함과 결합 되어 정신을 도취시키고 고양할 수 있는 능
력으로 정의된다.267) 많은 학자가 다양한 내용으로 숭고의 개념을 다루었지
만, 일반적으로 우리를 황홀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이자 찬탄과 놀라움을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칭송되었다. 단토는 이러한 숭고를 미의 하나로 보면서 이
둘의 공통지점을 조명한다. 특히 미와 숭고는 미적 특질의 화용론적 기능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임을 그의 글을 통해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미와 숭고는 감정적인 존재인 인간의 마음에 호소하여 의식의 경이로움을 맛
보게 하는 놀라운 가치를 공유한다. 무어가 말하였듯이 미적이거나 숭고한 대
상들을 의식하는 경이는 가장 큰 행복이며 가치이고, 예술이 인간에게 의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와 숭고는 예술이 인간에게 유용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숭고는 미와 더불어 전위예술에 의해 배제되었던 미학적 요소였
으나, 단토에 의해 전위예술의 학대를 극복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공조를 하
게 된 셈이다.
단토가 숭고를 언급한 두 번째 의도는 숭고가 추상표현주의라는 미국의 현
대미술을 특징짓는 의미있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그는 숭고를 통해 미국 추상
미술의 주요한 예술가들과 미학적 특징을 언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두 번
째 의도는 첫 번째 의도에 비해 그리 중요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토가 『미의 학대』에서 숭고를 하나의 장으로 비중을 두어 다루었다는 점은,
미국의 주요 미술흐름에 대한 고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입장들에 힘을 실어
준다. 실제로 단토는 헤겔의 『미학강의』 이후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미적
특질인 숭고를 추상표현주의와 연관하여 새롭게 조망한 것이다. 숭고는 유럽
중심의 미술이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이전되어 주목받았던 미국 미술의 특
징으로 이해된다. 영국의 미학자인 코스텔로는 단토의 『미의 학대』가 전후
에 잘 알려진 일련의 미국 추상화가들인 머더웰(Robert Motherwell), 리드
(David Reed), 스컬리(Sean Scully)에게 헌정된 것이, 모더니즘 미술과 관련
된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코스텔로는 단토가 우리 시대의 예술과 관련된
미학 담론에 대한 재론이나 미학에 대한 회복을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한
다.268) 단토가 미국인으로서 자국의 빛나는 미학적 성과에 대해 경의를 표하

267) Ibid, p.205.


268) Costello, Diarmuid., ‘ON LATE STYLE : ARTHUR DANTO’S THE ABUSE OF BEAUTY‘, Brit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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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고 할지라도, 필자는 코스텔로가 모더니즘에 대한 재론을 단토의 주된
관심사로 보는 것은 오독으로 판단한다. 단토가 칸트를 대표적인 철학자로 수
용했던 모더니즘 이론에 반론을 제기하며 자신의 예술철학적 구조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이 책에서는 모더니즘의 주요 개념인 숭고를 자신의 포
스트모던 이후의 미학을 위한 비교도구로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
다.
그렇다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숭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자. 단토
는 숭고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이며 미와 숭
고를 철저하게 분리했던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사유로부터 시작한
다. 뉴먼은 미와 숭고 개념을 확연히 분리하여 미국 미술에서 숭고가 중요성
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예술의 미학적 투쟁의 역사에서 한쪽을 차지하는
미가 ‘완전한 형식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 고양’이며, 다른 한쪽인 숭고는 형
식, 즉 ‘미를 파괴하려는 현대예술의 충동’으로 판별한다.269) 바넷 뉴먼은 자
신의 작품 <하나임1(OnementⅠ)>(1948)을 숭고 개념이 시사하는 ‘굉장함’으
로 설명한다. 뉴먼은 미와 숭고의 대립적 성격을 유럽과 미국이라는 현대미술
의 거점들이 지닌 상반되는 특징들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유럽은 미적 이상을
추구하느라 숭고에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대신 미국이 미에 대한 집착을 버리
고 예술에서 숭고에 이르게 된다.270) 로버트 머더웰은 자신을 포함하여 폴록
(Paul Jackson Pollock), 스틸(Clyfford Still), 로스코(Mark Rothko), 뉴먼 등
으로 대표되는 대형회화의 미국 현대예술이 “초현실주의의 분위기와 문학적
성질들이 떨어져 나가고 예술은 조형적이고, 신비하고, 숭고한 어떤 것으로 변
형”되었다고 한다.271) 단토는 이 시기의 사례를 볼 때, 수많은 미학적 특질
가운데 숭고처럼 미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은 없다고 평가한다.
숭고 개념은 18세기 유럽 계몽주의 정신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미를 초라
하게 보이게 만들었다.272) 미는 계몽운동 시기에 취미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Journal of Aesthetics, p.424.


269)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45.
270) Ibid, p.145.
271) Ibid, p.146.
272) 숭고는 로마시대 수사학자인 롱기누스(Longinus, 213-273)의 숭고에 대한 글을 부알로(Boileau)가
번역한 책과, 아일랜드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숭고와 미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탐구(A Philosophical Enuquiry into the Origin of the Sublime and the Beautiful』를 통해, 숭고 개
념이 계몽주의 정신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한다.(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47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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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고 세련된 취미는 심미적 교양을 나타내는 징표에 불과했다. 여기에 숭고
개념이 등장함으로써 단순한 취미인 미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숭고
의 개념은 미와 달리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웠기에, 학자들은 숭고를 다양하
게 정의 내렸다. 숭고가 불러일으키는 경외감은 높게 평가되었는데, 고대 그리
스 철학자들의 글에도 경외감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경외감의 개념
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장 속에서도 발견되지만, 플라톤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명문화되었다. 경외감은 삶의 거대한 질문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별칭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경외감이라는 단어와 감정은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왔
고 주로 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의가 뒤섞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 되었다. 근
대에 이르러 버크(Edmund Burke)는 그의 글에서 숭고는 두려움과 관련된다
고 하였다. 그리고 칸트는 숭고를 경탄과 경외의 감정과 연관하여 다룬다. 칸
트는 미에 대한 반응보다는 숭고한 것에 대한 반응이 더 문화의 산물이라고
보았으며, 숭고에 이끌리는 것은 인간본성의 일부라고 말했다. 칸트가 ‘우리의
내면에서 본성이 행사하는’273)힘이란 말로 숭고의 특징을 묘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단토는 숭고 개념을 다룬 칸트철학과 자신의 사유를 비교한다. 사실 칸트는
숭고를 미와 날카롭게 구분하여 이성의 이념들에 관계하는 것이면서도 주관성
의 입장에서 다룬다. 이 점은 단토가 숭고와 미의 공통점을 묶어내는 방식과
는 차이를 지닌다. 칸트는 미와 숭고 사이에 현저한 구별지점이 있음을 다음
과 같이 쓰고 있다.

"....자연의 미적인 것은 대상의 형식에 관련이 있고, 대상의 형식은 한정에서 성립한다. 그에
반해 숭고한 것은, 무한정성이 대상에서 또는 그 대상을 유인동기로 해서 표상되고 또한 무
한정성의 전체가 덧붙여 생각되는 한에서는, 무형식의 대상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미적
인 것은 무규정적인 지성개념의 현시이지만, 숭고한 것은 무규정적인 이성개념의 현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흡족이 전자에서는 질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지만, 후자에서는 양
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다. 또한 후자의 흡족은 그 방식의 면에서도 전자의 흡족과 매우 다
르다."274)

췌.)
273)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49.
274) Kant, I., 백종현 역, 『판단력 비판』, pp.248-2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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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미는 그 형식에 있어서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고 판단을 위한 객관적
인 성질을 지니지만, 숭고는 반목적적이고 주관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다. 따라서 칸트는, “우리가 자연의 많은 대상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은 전적
으로 옳을 수 있지만, 여느 자연 대상을 숭고하다고 부른다면, 우리는 일반적
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릇 그 자체가 반목적적인 것
으로 파악되는 것이 어떻게 찬동의 표현으로 지칭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대상이 마음속에서 만날 수 있는 숭고함을 현시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 이상을
말할 수 없다.”275)고 하였다. 미가 사물의 형식과 관련 있는 것과 달리 숭고
는 “무형적인 대상에서 발견되는데, 그 대상 안에서 또는, 그 대상으로 인해
무한함이 표상된 한에서 그러하며, 그 총체성 또한 사유 앞에 모습을 드러낸
다.”276)고 하였다.
단토는 『미의 학대』 ‘미와 숭고’라는 장의 서두를 미에 가장 위협적인 논
의대상으로 숭고를 선택했다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은 반어적인 문구로 미와
숭고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칸트는 『미와 숭고의 감정
에 관한 고찰』(1764) 제2장에서 미와 숭고를 서로 대조되는 성질의 것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단토가 미와 숭고에 대한 논의를 이러한 대립 구도로 시작
한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본심과는 거리가 있는 접근으로 간주된다.
이는 단토가 미에 대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의 강력한 협력자로 숭고를 효과
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서술상의 반어법적 장치로 보인다. 필자는 단토가 차이
점에서 시작하나 결론적으로 숭고와 미의 공통점을 찾고자 하였다고 생각한
다. 또한 단토는 우리가 추가 아닌 아름다운 것을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미가 곧 숭고라고 하였는데, 필자는 이 점 역시 숭고와 미의 공통점을
강조한다고 판단한다. 단토는 위의 글에서 칸트가 말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보는 ‘즉시 나의 존재와 연결’되는 즉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러한 즉시성으로 인해 밤하늘을 숭고하게 볼 수 있음으로 미학에 속한다고
언급한다.277) 이처럼 칸트 숭고 개념의 주관성과 즉시성에 주목하면서, 단토
는 미와 숭고의 대립적 입장보다는 유사성을 부각한다. 숭고가 ‘즉시 그것을
나의 존재와 연결시킨다’는 말이 뜻하듯 인간 본성과 관계있고 어떤 개념적인

275) Ibid, pp.249-250.


276)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50.
277) Ibid,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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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에 앞서는 것이기 때문에, 숭고는 미적 경험의 상태와 유사한 구조를 갖는
다. 미와 숭고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단토는 이 둘의 유사점을 강조함으로써
미의 용도가 지닌 가치를 숭고와 함께 논할 수 있게 하며 이를 극대화한다.
단토는 숭고의 개념을 통해, 우리가 ‘순수한 지성적 존재’가 아니라 감정의 동
물이고,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외 같은 강력한 감정의 동물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 한다.278) 근본적으로 미와 숭고를 포함한 미적인 요소들이
갖는 이 감정적 성질들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굴절인자로 작용하
기 때문에 삶에 가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토는 미와 숭고의 공통된 역할을 설명한 후에 숭고에 대한 자신만의 성과
를 칸트의 숭고 개념과 비교하여 제시한다. 그것은 예술에서의 숭고 개념에
대한 것이다. 칸트가 시종 일관된 관심을 보였던 것은 무한한 크기의 자연이
나 무한한 힘의 자연이었지, 숭고함을 표현한 예술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토는
<로도스 거상(Colossus of Rhodes Memorial)>의 사례를 들어 칸트의 숭고
개념에서는 내놓지 않았던 숭고의 예술적 표현의 예를 보여준다. 칸트에게 숭
고의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도덕적 의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칸
트는 예술의 경우에 ‘숭고한 것들도 재현될 수는 있지만 숭고하게 재현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미와 숭고의 차이점이라고 말한다.279) 단토에 따르면, 칸트는
“예술의 숭고는 [예술이] 자연과 일치해야 한다는 조건들에 의해 항상 제약된
다”280) 이에 대해 단토는 이것이 칸트가 속한 시기의 예술이 모방이론에 따
른 것이었기에 갖는 한계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숭고가 인간의 본성과 관계있
다고 보았으나 ‘예술적 경이’에 대해서 고려해보지 못했다는 점을 단토가 지적
한 것이다. 단토는 뉴먼의 그림이 관객에게 장소에 대한 인식을 제공하고 그
림 앞에선 감상자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 도달해 숭고한 상태가 되는
것을 유도한다고 평한다. 뉴먼이 요구했던 개념은 ‘거기 있음’과 거기 있음의
인식이며, 이것은 하이데거의 현존재의 개념을 말한다.281) 여기서 단토는 우
리가 스스로를 의식하는 존재라는 점에 방점을 둔다. 그러나 숭고 개념은 거
대한 크기 이상의 어떤 것을 수반해야 한다. 단토는 다시 칸트의 말을 빌어

278) Ibid, p.156.


279) Ibid, p.150.
280) Ibid, p.150.
281) Ibid,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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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는 단지 생각만 해도 감관의 모든 척도를 초월하는 어떤 마음의 능력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282)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바로 이 마음의 능력이 미
와 숭고와 같은 미적 특질에 의해 야기된다.
단토는 러시아 소설가 나보코프의 말처럼, 인생에서 놀라운 것은 ‘의식의 경
이’라고 다시 한 번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한편 나는 나보코프가 끝내 참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부신 풍경-을 의


식의 대상으로서 얘기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일 의식이 끊임없이 역겨운 것들만 드러낸다면,
우리 인간은 왜 그런 재능을 타고 났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앞에
서 고찰했던 G.E. 무어의 두 세계로 되돌아가게 된다. 순전히 역겨움으로 가득한 세계는 우리
가 오랫동안 의식하고 싶어할 세계가 아닐 것이며,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햇빛이 사라진 의미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햇살이 비치는 풍경화를 가리키면서 숭고하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사람이 내 잘
못을 지적하고는 내가 미와 숭고를 혼동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나보코프를 인용해,
‘비존재의 한밤중에는’ 아름다움이 곧 숭고라고 대답하고 싶다.“283)

단토는, 인간 오성이 지닌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머리로는 그릴 수도 없


고 어쩌면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인식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인간은
의식의 경이를 통해 세계에 내적으로 외적으로 열려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단토는 숭고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으로 보면서 숭고가 바로
의식의 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고자 하는 세계는 역겨운 세계
가 아니라 아름다운 세계이며 아름다움이 곧 숭고라고 할 수 있기에 미와 숭
고가 미적 요소로서 관련된다고 생각한다.284) 필자는 단토가 미와 숭고를 통
해 설명한 의식의 경이가 가능할 수 있고 또 중요한 이유는 인간인 우리가 감
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의식의 경험이 예술과 삶에 주는
가치를 인정할 때, 그러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미적 특질인 미
가 오늘날 재고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갖는다.

282) Ibid, p.155.


283) Ibid, pp.159-160.
284) Ibid,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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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술의 변화시키는 힘

앞의 항에서 살펴본 미와 숭고에 대한 논의에서 감정적 존재인 인간의 의식


에 감동 혹은 경이로움을 불러오는 미의 화용론적 측면을 확인했다. 예술이
변화시키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상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
어야 한다. 이때 감각이라는 단편적인 지각만으로는 의식의 높은 단계에 이르
지 못한다. 어떤 대상이 감각적인 것의 도움 없이 의미에 대한 인식만으로 수
용자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할 때 그 힘은 약하다. 그러므로 미적 특질이 예술
의 의미에 내재하여 예술감상의 탁월성을 높일 때, 감상자들의 변화를 효과적
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단토 미개념의 핵심적 내용을 이룬
다. 따라서 이번 항에서는 예술에서 미가 굴절인자로 작용하면 미의 화용론적
기능이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단토 주장의 특징과 타당성을 살
피고자 한다.
단토는 예술의 정의에서 ‘의미’를 중심에 두었다. 그럼에도 형식을 통해 감
각에 호소하는 미가 의미에 내재하는 경우인 ‘내재미’를 후기 미개념의 주된
내용으로 다루었다. 그 이유는 구현된 ‘의미’가 예술의 정의는 될 수 있지만,
형식과 내용이 결합한 내재미가 마음의 변화를 불러오는 데 더 용이하기 때문
이다. 이처럼 단토가 ‘마음의 변화’에 주목하게 된 까닭은, 전위예술이 미를
배제한 이후, 미술관들의 역할이 관람객의 바람을 적절히 충족시키고 있는지
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담론을 다루는 작품들이 의미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형식에 비중을 두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단토
는 현대의 미술관들이 제시하는 예술교육 모델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가 제시한 대안적 모델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형식과 내
용이라는 두 측면에서의 미를 논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때 미는 단순한 아름
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의미를 빛내면서도 미 자체로도 빛나
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미가 예술의 의미와 만날 때 변화시키는 힘으로 기
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힘의 가치로 인해 미개념을 재고하
고 그 역할과 의의를 밝히는 일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필자는 단토가 미의 화용론적 역할을 깨닫고 체계화시킴으로써, 동시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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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관들이 잃어버린 미의 가치를 재정립할 것을 제안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먼
저 오늘날 미와 예술의 현주소를 파악한 후 미술관의 역할과 방향성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예술에서 미가 배제된 상황이 빚어내는 문제점
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미개념 연구의 성과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
를 고민한다. 단토는 예술정의에 근거한 ‘구현된 의미로서의 예술감상의 모델’
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미가 그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를
화용론 즉 ‘굴절인자’들의 기능에서 찾아낸다. 물론 미는 많은 굴절인자 가운
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단토의 견해에 따르면 가장 강렬한 굴절인자이다. 따라
서 예술계의 현황을 미술관의 역할을 통해 분석하고, 예술의 구현방식에서 미
적 특질을 재고하는 단토의 논리는 설득력을 갖는다.
필자는 예술과 삶에서 미의 화용론적 가치에 주목한 단토의 미개념 연구가,
미를 배제한 미술관의 상황을 개선할 대안적 성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285)를 예로 들어, 예술계를 규정하는 중심인물로
큐레이터들이 대두되어 전시할 수 있는 작품과 아닌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선정한 작품을 보면 예술을 정치, 사회적 의제를 부각하
는 수단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큐레이터들은 작품의 미적 특성과는 무관
하게 의미와 해석을 통해 사회적 담론을 제시하고 관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런데 단토는 이러한 의도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원하는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지적한다. 단토는 큐레이터들이 전위예술 등 60
년대 예술의 정의에 일어난 변화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들이 성장한 이후 활
동하던 1990년대에도 여전히 그러한 관점이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핀다. 파괴적이고 잔혹했던 세계대전에 대한 기억은 당시 어린 세대였을 큐
레이터들의 뇌리에서도 쉽게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기억은 사람들에
게 깊이 각인되어 지속적으로 사회, 정치, 그리고 인간존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 그리고 비판의식의 표현은 문화예술에서 하나의 중요한 태
도로 자리하며 큐레이터들의 전시기획에서도 지배적인 방식이 된다. 미술관의

285) 미국 휘트니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개최한 1993 휘트니비엔날레는 당시 미국


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이민의 급증, 냉전체제의 붕괴, 인종 분열, 동성애자 커밍아웃 등 '다문
화주의'에 주목하였으며, 계급과 지배문화, 젠더, 인종의 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
다. 특히 예술가의 창작물이 아님에도 전시가 되었던 <조지 홀리데이의 로드니 킹 구타 비디오테이
프>와 흑인의 인권문제를 다룬 스파이크 리(Spike Lee)의 <말콤 X>, 성 소수자의 문제를 풍자한 로버
트 고버(Robert Gober)의 <신문> 등이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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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일반인이 촬영한 로드니 킹(Rodney King) 구
타사건 비디오를 권위있는 예술의 전당이라 생각되어온 미술관 전시에 출품시
킨다. 이런 태도가 의미하는 바는, 큐레이터들에게 그것이 예술인가 아닌가보
다는 그것이 보여주는 진실의 성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비디
오는 정치적 참여예술의 한 모델이 된다.286)
단토는 1993년의 비엔날레가, “지식에 바쳐진 기관으로 여겨지던 미술관이
변질되었다”287)는 이유로 관객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던 것은 납득되는 일이라
고 수긍하면서 미술관의 역할은 재고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기존의 박물
관이나 미술관은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소설 『황금주발』에서처럼
심미적 박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유익하도록 아름다운 작품들을 전시해 인
생의 선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288) 물론 미술관의 역할이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위예술운동 이후에 미술관이 공
급한 지식은 갈수록 심미적 미와는 거리를 둔 예술의 정신적인 활동, 즉 의미
에 집중하는 경향을 띤다. 이에 대해 단토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예술적 표현
에 미가 관여하지 못함에 따라 예술감상이 불완전해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20세기 중엽부터 미술관이 제시하는 예술모델은 화용론적 기능을 중요하게
보지 않기에 관객을 변화시키는 힘이 약하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미를 선택의 문제로 확정한 현대예술은 일반적인 감상자가 알고 있고 기대
해온 예술이 아니다. 단토는 헤겔의 예술개념으로부터 깊게 공감한 ‘자아의 심
원한 실재에 대한 자아의 인식’을 위한 예술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
하려면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여 감동을 줄 수 있어야 심원한 자아의 인식에도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단토는 굴절인자인 미와 미적 특질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이 부분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의
역할에 사람들이 주목하길 바란다. 여기서 현대미술에 제기할 수 있는 또 하
나의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단토가 예로 들었던 1993년 비엔날레에서 드러
난 것처럼, ‘예술을 보호하던 역할’을 하던 큐레이터가 ‘그 자체로 예술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문화의식의 확대를 위해
현재의 자아를 비춰주는 거울들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으고, 전시회의

286)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104-105.


287) Ibid, p.105.
288) Ibid,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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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을 창조한다. 단토는 예전의 왕과 추기경이 예술의 형태를 결정하던 역할
을 오늘날 큐레이터들이 대신한다고 보고, 이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내비친
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객들이 큐레이터가 만들어가고 있는
전시에 만족하지 못함을 넌지시 암시한다. 단토는 미를 통한 감동이나 위로가
더 이상 미술관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예술감
상의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다원화된 예술의 내용이 바뀌었음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제 미는
예술의 본질에 속하지 않으며 의미가 예술의 필수조건이 되었다. ‘과거에 아름
다운 예술을 보겠다는 문화적 결정은 사실상 예술이 무엇을 내용으로 삼을 것
인가에 대한 결정’289)이었고, 20세기에는 과거와 그 결정의 내용이 달라졌다.
예술에서의 미는 아름답게 보이기에 분명히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세계로만 한
정되었다.290) 그렇다면 지금까지 논의해온 미술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이와 결부된 해결지점을 논해볼 필요가 있겠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현대의 미술관들이 보여주는 예술은 어떤 복잡한 관
계성을 가지더라도 미적 특질과 의미의 조화에 대한 고려 없이 ‘객체’로 다루
어진다. 그렇기에 마음을 움직이는 ‘변화시키는 힘’의 개념은 희미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이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같은 예술계에 속한 사
람들에 의해 전문적인 담론으로 다루어진다는 점이 관람객을 변화시키는 힘의
약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의 미술계가 보여주었듯이
“미가 능욕당하고 그 결과 미학이 예술적 담론과 단절되면서 미술관의 역할이
불확실해진 결과”291)라 할 수 있다. 단토에 따르면, 이제 미술관은 두 종류의
지식을 얻는 장소가 되었다. 그 한 종류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이다. 이
지식은 예술작품을 사실상 부분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과 별다르지 않은
내적 조직성을 가진 객체로 다룬다.292) 다른 한 종류는 예술을 문화적 산물로
보고 그것에서 발현시킨 지식으로이다. 이 지식은 인류학 박물관처럼 다양한
문화의 예술이 그 문화의 생활방식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293)
첫 번째 종류의 지식을 다루는 효과적인 이론은 형태에 대한 형식주의 이론이

289) Ibid, p.120.


290) Ibid, p.120.
291) Ibid, p.125.
292) Ibid, pp.125-126.
293) Ibid,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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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 이론은 디자인의 원리 하에 내적으로 구성된 대상을 보는 방식을 다룬
다. 이는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요인과 무관하게 모든 작품을 이해하는 보편
적인 방식을 낳을 수 있다. 형식주의는 예를 들어 문화와 역사를 뛰어넘는 아
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형식에 주목함으로 의미를 다루지는 않는다. 따
라서 보는 이들은 그것이 내재적 미인지 외재적 미인지를 해명할 수 없다. 두
번째 모델은 미술관 전시회에 예술가에 의한 예술작품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도 어떤 문화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이 모델은 예술을 인류학으로 변
환시킨다. 뒤샹은 구 유럽의 수도들이 수백 년 동안 무엇이 좋은 취미인지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정점을 발견했지만, 그 정점이 지루하다고 말한
다.294) 오히려 뉴욕 마천루와 현대적인 배관설비를 예술작품이라고 치켜세운
다. 단토는 현재 그가 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모델은 모두 충
분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이 미술관의 요점이
라 할 수 있으며 왜 고가의 미술품들이 미술관에 존재해야 하는가를 물을 수
있다.295) 미술관이 인류에게 가치 있는 곳이라면 예술감상 모델과 문화통찰
모델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정리해 본 것처럼 예술의 두 가지 모델이 가진 한계가 명백하다면,
대안적 모델은 무엇인가. 그러면 먼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단토는 그 이유가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변화를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
한다.296) 우리는 인류의 문화적 궤적의 탁월한 결과인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어떤 식의 감흥을 기대한다. 만일 이러한 기대가 적절하다면, 예술이 실제로
이러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이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
게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단토는 “예술이 자신과 마주친 사람들에게 이
따금 변화 또는 그에 버금가는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는 점
을 꼽는다.297) 우리는 감정적인 존재이고 어떠한 굴절인자가 그러한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관여한다. 여기서 단토는 감정의 변화가 형식이나 내용의
한 측면만이 아니라 이 둘의 결합에서 효과적임을 말하고자 한다. 단토는 예

294) Ibid, p.129.


295) Ibid, p.130.
296) Ibid, p.131.
297) Ibid,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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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변화시키는 힘의 사례로 먼저 마야 린(Maya Lin)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를 예로 든다. 단토 자신도 프루스트나 헨리 제임스의 소설을 통해 많
은 변화를 겪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예술작품들의 틀 안에서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변화’를 겪게 된다.298) 예술이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사실
은 많은 예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우리 개개인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작품의 구성을 단어의 나열만으로 제시한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작품에서처럼, 사람들은 예술품을 단지 객체로 보고 연구하길 원하
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매개를 통해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고 우리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생각한다. 크루거의 작품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품은 될 수 있으나 미적인 요소가 의미에 내재한 경우로 보기엔 약한다.
사람들은 예술에 비롯된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더 좋은 삶을 영위하고 서로를
더 품위 있게 대하는 것을 추구한다. 단토는 미를 통해 변화시키는 힘을 설명
하며, 예술의 변화시키는 힘에 미적 특질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내재미를 들어
논증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의 변화시키는 힘은 예술에 머물지 않고 삶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임을 조명한다.
단토는 대안적 모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헤겔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예술의 목적들을 헤겔의 객관정신과 연결하면서도, 철학과 예술에 대한
헤겔과의 입장 차이를 밝혀 철학이 충족시킬 수 없는 예술의 가치를 강조한
다. 그리고 그는 그 가치가 바로 감정의 변화를 유도하여 의식의 높은 단계에
도달하게 하는 역할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토는 헤겔의 객관정신으로서의 예
술 모델이 곧 자신의 세 번째 예술감상모델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생각
한다. 헤겔은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을 구분했는데, 객관적 정신은 실
제의 생활 형태를 규정하는 모든 물건, 관습,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들은
자연이 아닌 정신의 산물이고, 교육받은 자들에 의해 삶이 행위로 내면화된
것이다.299) 인간의 복잡한 삶 속에는 반드시 우리가 예술이라 간주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여기서 순수예술이 절대정신과 관련된다면 제3영역의 미
는 객관정신과 연결된다. 객관정신으로서의 예술은 규범적인 미에 인간의 내
면성이 반영되어 나타난다. 단토는 이 ‘객관적 정신이 그 개념상 다문화주의에
적합한 만큼이나 문화적 지표로서의 예술 모델’에도 적합하다고 본다. 예술의

298) Ibid, p.132.


299) Ibid, pp.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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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들은 어떤 문화적 결정 즉 객관적 정신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단토
가 객관정신을 통해 미술관에 바라는 바를 주장한 것은, 제3영역의 미에서 대
중문화로 확대된 미적 효과를 설명하는 것과 관련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예
술의 목적이 문화적 결정에 따라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는 세
상의 모습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단토는 헤겔의 절대정신과 관련한 서술로 나아간다. 실용예술인 미
화가 객관정신과 관련되며, 순수예술인 예술미가 절대정신과 관련된다. 헤겔에
따르면 형식은 문화마다 다르지만 예술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어떤 경우 문화
의 차이를 초월한다. 절대정신은 한 문화의 예술을 가장 큰 의미에서의 인간
성과 연결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절대정신에는 예술, 종교, 철학 이렇게 세
가지 계기가 있다. 예술은 인간정신의 가장 높은 가치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인간이 이 가치의 담지자임을 보여준다. 예술은 또한 종교적 믿음을 감
각적 이미지로 변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예술은 각 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포괄하는 세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예술은 이러한 방식에 의해 철
학적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철학의 대체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이 실례가 되는 이미지 없이도 철학적 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으로 대체되고 예술은 종말을 맞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토는 이 부
분에 있어 “나는 예술이 철학으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
가 주장하는 예술의 종말은 헤겔의 종말과 다르다”300)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는, 큰 인간사를 다룰 때 철학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즉, 숭고와 미에서처
럼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각이나 감정과 관련한 자리가 철학에는 없다는
것이다. 단토에 의하면, 철학은 실제로 보편성을 갈망하는 것이나, 예술은 ‘철
학이 노력하거나 노력해야만 하는 일을 그러나 철학과는 달리 구체적으로, 헤
겔이 감각적 대상이라 비하한 것들을 통해’ 하고 있다.301) 다시 말해, 단토는
예술이 직감적으로 참된 것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고 부연한다. 이러한 관
점은 정신과 함께 감각적 성질인 미적 요소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단토가 대안으로 제시한 세 번째 ‘구현된 의미(embodied meanings)’의 모
델은 헤겔의 객관정신의 산물로서 정신이 행위로 내면화된 것이다. 이 세 번
째 모델은 첫 번째 모델이 형식에, 두 번째 모델이 의미에 치우쳐 예술의 감

300) Ibid, p.137.


301) Ibid,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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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형태에 못 미치는 것을 바로 잡고자 한 것이다.
단토가 예술의 세 번째 모델을 헤겔의 객관정신에서 가져왔다는 것은 형식과
내용이 적절히 만나는 지점에 대안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사
유는 그의 미개념의 토대를 이룬다. 다시 말해, 단토는 내재미에서 형상에서
온 미와 정신에서 온 의미를 결합시키고, 제3영역의 미에서 통상적인 규범미
와 인간의 내면미를 결합시킨다. 사람들은 미술관을 찾아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을 맛보고, 간혹 심원한 자아를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정신
과 감각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객관정신에 해당
하는 세 번째 모델을 제시한 단토 논의의 성과는, 한쪽으로 치우친 현대예술
의 경향성을 바로 잡고자 의미와 형식의 결합이 갖는 균형을 대안으로 제시한
점이다.
헤겔에 따르면 예술과 철학은 둘 다 절대정신의 계기로, 자아의 심원한 실
재에 대한 자아의 인식이다. 그는 예술이 내용을 감각적 매개로 표현하기에
정신적인 차원의 철학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단토가 중요하다고 지
목한 사실은, 예술이 스스로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이며,
세상에 대한 거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302) 1993년 비엔날레에서 미술가
들은 사람들의 도덕적 태도를 의미를 통해 변화시키고자 했기에 미의 굴절 효
과에 무관심했으며, 아름다움이 그러한 내용들과 양립할 필요가 없었다. 따라
서 전시회장은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기 위한 공간과도 같았다. 이러한 예술계
의 상황은 단토가 화용론적 관점에서 미개념을 연구하고자 했던 중요한 계기
가 되었을 것이다.

5) 굴절인자로서의 미

단토가 『미의 학대』에서 미개념의 성과로 명료하게 제시한 것은 예술에서


의 내재미이다. 그는 내재미가 헤겔 철학으로부터 그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한

302) Ibid,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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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단토는 헤겔이 적시한 것처럼 예술이 이성적인 동시
에 감각적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는 미적 특질과 의미의 결합이라
는 내재미의 구조에서 비롯된 미의 효과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심미적 성격
의 미가 담당하는 역할을 분석한다. 이때 미의 기능은 화용론으로 설명된다.
또한 미는 감성적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굴절인자가 된다. 앞의 항들에서
미와 숭고가 의식적 경이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며, 미가 예술에서 감상자
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미의 기능, 즉 역할을 재조명하는
것은 단토의 미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항에서는
굴절인자로서의 미의 기능에 대해 검토한다.
단토는 변화를 야기시키는 요소를 ‘굴절인자(inflector)’라 칭한다. '굴절인자
'는 '화용론(pragmatics)'303)적 특질 가운데 미의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
명하기 위해 그가 새롭게 도입한 용어이다.304) 화용론은 언어학 분야에서 가
져왔지만, 화용론적 특질의 범위는 표준적인 미학 저작들에 포함된 어떤 특질
보다 광범위하다.305) 그러나 단토가 『미의 학대』에서 사용한 화용론적 특질
은 미를 설명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로 미의 역할을 부각시키고자하는
의도가 반영된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굴절인자는 이러한 화용론의 기능
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만들어진 용어다. 예를 들어 그림의 내용에
대한 어떤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미’라면 바로 그 미가 굴절인자가 된다.
그러므로 화용론은, 단토가 전반기의 철학에서 예술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수
사법, 스타일, 그리고 표현 같은 개념들을 언급했던 것과는 다르게, 후기 미개
념을 다루기 위해 사용된다.
단토는 예술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두 가지로, 의미론적 특질과 함께 이
화용론적 특질을 말한다.306) 필자는 단토가 예술에서나 일상의 삶에서 미가

303) 화용론은 상황과 맥락에 따른 의미를 연구하는 언어학의 분야로 언어철학에서 연구되었던 용어이다.
단토의 예술철학은 과학철학 및 언어이론의 영향 하에 있었기에 그가 친숙하게 이끌어낼 수 있었던
용어로 보인다.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사용했던 수사학이라는 명칭 대신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러한 영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화용론과 수사학의 유사성에 대해
언급하지만, 필자는 단토가 전반기 예술의 철학적 정의와 관련하여 수사학을 언급했던 것과 달리, 후
기에 이르러 미의 용도를 설명하기 위해 ‘화용론’이 ‘수사학’보다 더 적합하다고 본 것으로 간주한다.
그는 화용론이 미적특질을 지닌 대상의 내용에 대한 어떤 태도를 이끌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의
특징을 잘 담아낸다고 보았다.(Ibid, p.121) 그리고 다시 화용론에서 미적특질을 ‘굴절인자’로 좀 더
구체화하여 명명함으로써 화용론의 굴절기능을 특화하여 사용한다.
30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21.
305) Ibid, p.ⅹ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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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는 이유를 이 화용론적 특질로 본다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그가 화용론적 특질에서 드러나는 미의 실질적인 기능을 재조명한 것
은 하나의 성과라고 간주한다. 사실 다원화된 현대미술에서 미는 예전처럼 논
의의 주체가 되지는 못하지만, 미가 배제된 오늘날의 미술관이 예술감상을 위
해 대중들에게 제시하고 있는 상당수의 내용들은 결코 관람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단토는 미술관을 방문한 이들이 원하는 변화와 감동을 줄 수 없는 이
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현재의 문제 상황에서 어떤 변화를 원한다면, 미
의 역할을 설명하는 '굴절인자'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굴절
인자는 관람자들에게 어떤 효과나 경험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생산된 것이
다. 우리가 대상의 미나 미적 특성을 의식할 때 굴절인자가 감정의 변화를 불
러와 종국엔 감상자들이 심원한 자아를 마주하도록 이끌어준다.307)
화용론은 이전에 수사학이라 명명되었던 것과 같은 맥락을 지니는데, 수사
학은 감성을 이용한 설득으로 고대로부터 잘 알려져 있던 방법이다. 소크라테
스와 플라톤은 아테네 사회에서 이런 설득의 기술이 만들어내는 소피스트들의
폐해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감성이나 이에 근거한 논변에 대한 불신은 근대
철학을 열었던 데카르트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토의 화용론에서
다루는 미감적 설득은 그런 현혹의 기술과는 차이가 있다. 최초로 미학개념을
제시한 바움가르텐은 미감적 설득은 진실을 지향하며 우아한 풍취를 지닌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미학이 수사학이나 시학보다 더 넓은 영역을 다룬다고 보
면서도 기본적으로 수사적 특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본다.308) 유사이성으로서
의 감성자체가 착각과 오류의 근원이 아니듯, 감성에 근거한 설득 또한 외연
적 명석성을 지닌 표상이기에 진리를 전달하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
다. 단토는 이 화용론으로서의 미의 역할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예술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것으로 확장시켜 사유할 수
있다.
화용론은 이미 예술에서 비중있게 인식된 정체성이다. 단토는 『미의 학

306) Ibid, p.121.


307) Ibid, p.121.
“굴절을 필요조건으로 만들기 위해 예술의 정의를 확장해야 하는가는 이 자리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하지만 굴절 개념은 적어도 애초에 왜 인간에게 예술이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인간인 우리가
감정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308) 알렉산터 고틀리프 바움가르텐 저, 김동훈 역, 『미학』, 도서출판 마티, 2005, pp.28-3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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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서문에서 예술의 정체성을 명시하는데,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화용론
적 특질’로 언급한다.309) 예술개념에는 미적 특질 외에도 ‘18세기에 널리 거
론되었던 또 다른 특질인 숭고를 비롯해 다른 많은 특질을 포함한다. 단토는
예를 들어 모방(mimesis)과 같은 의미론적 특질들과 대조해 이것들을 임시로
화용론적 특질이라 부르고자 한다.310) ‘화용론적’ 특질은 논리실증주의 전성기
에 중요한 역할을 한 찰스 모리스(Charles William Morris)의 기호이론에서
빌린 용어이다.311)

“모리스는 지나가는 말로, 자신이 화용론이라 부르는 것은 이전 시대에는 수사학이라 불렸고,


수사학은 고전시대에 중요한 학과 중 하나였다고 덧붙인다. 예술작품 속에 묘사된 것을 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의 화용론적 기능이고, 경외심을 고취하는 것이 숭고의 화
용론적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불쾌감을 고취하기 위한 혐오스러운 것, 경멸을 고취하기 위한
익살스러운 것 등 다른 경우들도 많이 있다. 또는 성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호색적인 것도
있다. 어떤 면에서 화용론적 속성들은 프레게(Frege)가 그의 의미론에서 ‘채색(Färbung)’이라
불렀던 것들에 상응한다.”312)

단토는 예전부터라도 ‘예술가들이 불러일으키라고 요청받은 감정들은 매우 다


양’했으나 이러한 성질들을 지칭할 특정한 용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313)
초기의 기호론에서는 통사론, 의미론, 화용론을 구분했는데, 의미론은 그림
이 무엇에 대한 것인가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대개 의미론적인 측면에서 그림
을 생각해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해준다. 단토가 이런 의미론과 대비해서 사
용한 ‘화용론’은 ‘실용주의(pragmatism)’에서 차용한 말이기에 제한적으로 인
식될 수 있는 부담의 요소가 있다. 그러나 그는 ‘미화’가 확실히 화용론적이라
고 한다. “미화는 어떤 것이 미화하는 자의 도움이 없을 때보다 관람자에게

309) “이 서문에서 나는 그 정체성을 명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조건을 언급했다. 그중 하나는 예


술이 되려면 어떤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 즉 어떤 의미론적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책
『일상적인 것의 변용』 중 많은 부분은 이 점을 입증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나는 앞에서 화용론
적이라 불렀던 특질들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에 대해서는 확
신이 없다. 이는 화용론적 속성들이 오늘날의 예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화용론적 속성들은 지금까지의 예술에서 압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예술의 요점이 무엇이
냐는 질문에 답해준다고 여겨졌다.”(Ibid, p.ⅹⅴ.)
310) Ibid, p.ⅹⅴ.
311) Ibid, p.ⅹⅴ.
312) Ibid, p.ⅹⅴ.
313) Ibid, pp.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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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매력 있게 보이게 할 의도로 행해진다.”314) 화용론이 미화와 긴밀하다는
점이나 실용주의에서 온 용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일상적인
삶과의 관련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단토가 화용론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그 범위가 더 본질적이고 포괄적이라는 것이다.315) 그는 그간 특별히 논의 되
지 않았던 미의 용도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단토가 말하고자 하는
미의 용도는 예술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인 삶인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단토의 미에 대한 논의는 미화의 영역에 방점을 두고 있다. 화용론적 기능이
순수예술에서는 내재미로 거론되었으나 대중문화에서는 미화에 해당하는 제3
영역의 미로 논의되며 훨씬 방대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단토는 미화를 ‘제3영
역의 미’라 칭하면서 이것이 일상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상호 관계성
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설명한다.
단토는 화용론을 언급하면서 미의 기능과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굴절인자’라는 용어를 가져온다. 굴절인자는 해석자에게 어떤 효과나 경
험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생산된 어떤 것이다. 그는 굴절인자를 통해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어쨌든 지금 내가 제기하려는 문제는 단지, 만일 어떤 것이 굴절되어 그 내용에 대한 어떤 태


도를 이끌어낸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다라는 것이 예술의 정의에 포함되는가의 여부다. 굴절인
자 중에서 미가 단연코 가장 중요하지만 역겨움도 포함되고 극악함도 포함될 것이다. 레디메이

314) Ibid, p.121.


315) Ibid, p.ⅺⅹ.
“나는 앞에서 화용론적이라 불렀던 특질들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라고 말하고 싶지
만, 이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이는 화용론적 속성들이 오늘날의 예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신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용론적 속성들은 지금까지의 예술에서 압도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예
술의 요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해준다고 여겨졌다.
내가 나 자신의 역사적 순간에 속한 존재라면, 바로 그것이 왜 내가 이 문제에 답을 구하려는 시도는
물론이고 이 문제를 제기조차 않았고 그래서 예술을 분석할 때 미나 그 비슷한 것들의 역할을 거의
고찰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해준다. 나의 예술철학이 시작된 역사적 환경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를 설명할
것이다. 1960년대의 전위 철학이 계몽에 등을 돌렸듯이 그 시대의 전위예술도 그만큼 단호하게 미학
에 등을 돌렸다. 둘 다 ‘클’해지기를 열망했다. 나는 이 경향이 예술철학에는 건강한 움직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예술철학이 항상 지리멸렬했던 미학에서 분리될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충분히
면역력을 기른 탓에, 결국 무엇이 예술을 인간의 삶에 그렇게 의미 있게 만드는지를 다시 고찰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자 지금 내가 내놓고 있는 의제다. 지금까지 알아낸 것이 보호해주는 덕에 나
는 다시 한 번 분석철학의 긴 겸자로 미, 숭고 등과 같은 유독한 속성들을 집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미가 예술사에서 전형의 지위를 가진 화용론적 속성으로 자리해온 데에는 충분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
며, 또한 미가 예술사의 담론 속에 깊이 틀어박혀 있는 상황은 내가 이 책에서 미에 부여할 중요성을
정당화하는 것 이상의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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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단지 공산품으로 나온 발견된 오브제가 아니라, 미에 무관심한 태도를 이끌어내도록 굴절
된 오브제다. 나는 굴절인자가 무한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미가 제아무리 신임이
두텁다 해도 가까운 미래에 예술을 규정짓는 인자로 군림하리라는 가정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다.
그럼에도 미를 예술의 한 굴절인자로 간주한다면, 헤겔의 경이로운 생각 - ‘예술미는 정신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난다’-은 완벽히 이치에 닿는다.”316)

단토는 물론 미의 현상학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미 창조의 핵심이 관람자를


미적 관조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미가 작품의 생각에 내재적임을 파악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가 강력한 굴절인자로서의 미를 예술의 정체성 속
에 다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단토의 굴절개념은 애초에
왜 인간에게 예술이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왜냐하면 인간이 감정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단토는 기호론을 발전시킨 찰스 모리스(Charles Morris)가 수사학
을 초기의 제한된 형태의 화용론이라 한 것과 논리학자 프레게(Gottlob
Frege)가 시인들이 단어를 굴절시키는 방식을 가리켜 “채색”이란 용어를 사
용한 것을 연관시킨다. 그래서 ‘굴절’이 예술작품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수사학자들은 특히 법정에서 유리한 판결을 얻기 위해 또는 적어도 고객에게서 호감을 얻기


위해, 듣는 사람의 감정을 조작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마찬가지로 화가들도 초상화를 그릴 때
보는 사람에게서 그 주인공에 대한 적절한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강인하게, 친철하게, 공
정하게, 현명하게, 무섭게 그렸다. 또는 그들을 성인으로, 영혼이 순수한 사람으로, 동정할 만한
사람으로 그렸다....적절히 굴절된 예술작품은 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감정을 부추기거나, 어
떤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특성이 그 주인공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317)

그러나 예술이 모방적 속성을 지녔던 과거와 달리, 전위적인 미술에서는 미가


결정적인 굴절인자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미의 효과를 축소시킨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예술체계에서 미는 절대
적 지위를 상실했지만, 미는 여전히 인간에게 중요한 속성임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미는 삶에서 사라질 수 없고 아무도 그러길 바라지도 않는다는 점이, 이
개념에 대한 재해석과 재조명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316) Ibid, p.121.


317) Ibid,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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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용론은 과거로부터 논의되어온 수사학적 개념으로, 단토가 이 개념을 사
용하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이자 현대 예술계의 첨예한 주제가 아니라는 평가
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화용론의 문제점을 제기한 코스텔로
의 논의를 살펴봄으로써 주요 논쟁점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코스텔로
는 단토가 예술과 삶의 미적 차원을 재구성하기 위해 『미의 학대』에서 중요
한 개념으로 채택한 화용론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단토가 예술
의 조건으로 화용론적 특질에 대해 언급한 것을 내재미와 함께 중요하고 새로
운 제안으로 파악한다.318) 그러나 코스텔로는 단토의 ‘내재미’가 전혀 새롭지
않다고 평가한다.319) 코스텔로에 따르면, 단토가 미를 화용론적으로 개혁하려
는 이 프로젝트가 갈등이 국면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단토가 예술의 정의에
서 미를 제거하기 위해서 아방가르드에 동의했던 전적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
시 말해 코스텔로는 단토가 전반기에 전위예술의 관점에서 미를 배제했으면서
도 후반기에 다시 미를 옹호하려는 것이 모순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단토의 화용론이 문제가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내재미에서
의 미는 전통적인 형식미에 속하는 것일 뿐 화용론으로서 차별화된 미가 아니
라는 점이다. 둘째, 단토가 미를 배제하고자 한 전위예술가들과 같은 입장에
있었기에 미에 대한 후기의 태도가 모순적이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
다. 그러므로 코스텔로는 단토에게 나타난 이러한 사유의 변화가 모순적이라
고 본다. 그리고 코스텔로는 단토의 ‘화용론적 특질’에 대해서는 그의 글에서
더 이상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는다. 단지 “‘변용’과는 다른 어휘로 친숙
한 주제”라고 간략하게 덧붙이는 데 그친다.320)
단토의 화용론에 대한 코스텔로의 평가는, 예술작품을 감상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화용론으로 미학을 재구축하려는 의도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는 관점에 해당한다. 또한 단토 자신이 미적 특질을 의미와의 관련

318) Ibid, p.426.


“그는 서문에서 예술(예술작품들이 의미를 지니고, 그러한 의미들을 구현하는)에 대한 자신의 핵심 조
건에 '좋아함'을 추가할 것을 주장하며, 예술 작품에도 '화용론적인' 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의하면 단토는 수사학의 모델에 의해 해석된 미학적 특성들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감상자의 특정 응답
이나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된 작업의 의미(테마, 또는 주제-물질)에 대해 설계한 특성이다.”
319) Ibid, p.427.
“단토는 미학이 화용론적으로 해석되면 맞다고 말하고, 형식으로 해석된다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하지
만, 아직 그는 전자를 후자로부터 해방시키지 못했다.”
320) Ibid,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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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속에서만 보려하기 때문에 미에 대한 관점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단토가 언급한 화용론의 핵심은 미의 기능이다. 미가 정서를 변화시킨다는 점
이다. 미는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녔지만,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고 활용된다. 미와 예술을 분리하여 사유하게 된 이후의 다원주의 시대
에서, 미는 이전과 달라진 예술이나 대중문화 속에서 새롭게 읽혀야 한다. 그
러므로 단토가 『미의 학대』를 통해 논의하고자 한 대상은 1960년 이래 예
술계에서 언급조차 조심스러웠던 ‘미’이다. 따라서 그는 ‘미’가 어떻게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과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지를 고찰한다. 그의 예술철학 연구
의 전반부가 예술의 존재방식이라면, 후반부는 의식의 경험을 위한 ‘미’의 역
할이다. 따라서 그는 예술의 정체성에 의미와 해석 이외에 ‘굴절인자’인 화용
론적 특질을 추가한다. 인간의 감정이 예술작품을 살아있게 하는 생각들과 연
결된 미를 통해 나타날 때, 그 예술작품은 미를 지니게 되고 우리들에게 감정
적인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321) 그리고 미는 인간의 경험에서 감동을 이끌
어내는 가장 강력한 ‘굴절인자’가 된다.
다음으로는 단토의 미개념에서 예술의 수사적 특성과 관련한 국내 연구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면서 화용론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장민한은 단
토의 유작인 『무엇이 예술인가』에서 그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322)으로 칭
한 이유를 분석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예술적 수사로서 은유, 양식, 미적 속
성을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깨어 있는 꿈’은, ‘생생한 꿈처럼 웃거나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여 예술가의 주제를 성공적으로 전달한
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323) 다시 말해 그는 단토가 '깨어 있는 꿈'을 언급
한 것은 예술작품이란 예술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다양한 수
사적 장치를 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본다.324) 장민한은 단토가 제

321) Danto, Arthur., What Art is, pp.84-85.


322) Danto, Arthur., What art is, p.48.
“나는 예술가의 기술을 담아내는 또 다른 조건을 추가하여 나의 초기 예술 정의-구현된 의미-를 풍부
하게 하겠다고 결정했다. 나는 데카르트와 플라톤에 기초하여 예술을 ‘깨어 있는 꿈’(wakeful derams)
으로 정의하려 한다.”
323) 장민한, ‘단토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미학』, 제83권 2호(2017년6월),
p.130.
324) 장민한은 논지를 세우기 위해 단토 저서에서 수사적 장치를 찾아서 분석하였는데, 예술적 재현의 고
유한 속성을 보여주는 은유와 양식을 검토하여 이것이 '깨어 있는 꿈'을 위한 수사적 장치로 이용된다
고 주장한다. 장민한은 단토가 추가한 '깨어 있는 꿈'이 칸트의 '미감적 이념'(aesthetic idea) 개념과
유사하다고 본 점에 주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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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 기존의 예술정의인 '구현된 의미'에 ‘깨어 있는 꿈’이 뜻하는 바를 추가할
수 있는지 고찰한다. 단토는 자신의 예술정의에 대해서 외연이 너무 넓다거나
좁다는 비판을 마주하고, 그의 정의가 함의하는 바를 보다 명료화하려는 의도
로 ‘구현된 의미’ 이외의 미적 특질의 수사적 요소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장
민한은 ‘깨어 있는 꿈’이 다원주의 예술상황 때문에 제3의 예술정의로 추가될
수는 없고 단지 '구현된 의미'의 개념을 보다 명료하고 풍성하게 한다는 입장
이다. 이는 미적 특질을 예술정의에 추가할 수 없다는 단토의 기본입장을 재
확인하는 견해이기도 하다. 즉 예술정의는 모든 시대의 모든 문화를 포용할
수 있는 공통의 조건이어야 하는데, 수사적 특질은 미를 포함하여 그 수가 너
무 많기 때문에 예술정의의 추가적인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단토 또한 미적 요소를 그의 예술정의의 제3요소로 추가한다는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의 정체성에 대한 두 가지 조건으로 의미론적 특성과 화
용론적 특성을 들고 있다. 단토 스스로 이에 대한 논증이 조심스러울 뿐만 아
니라 미완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다원주의로 인해 모든 예술을 포괄해야하
는 정의에 미를 포함하지는 못하지만, '의도된 미적 요소'가 해당 예술의 핵심
에 도달하는 수단이라고 본 것은 확실하다.325) 장민한은 단토가 말하는 예술
적 재현의 특징은 감상자에게 특정한 태도를 취하게 하는 수사적 장치임을 지
적한다.326) 그는 '깨어 있는 꿈'이 예술의 정의에 대한 제3의 조건은 아니지
만, 예술을 누구나 공유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해석한다.327) 결
론적으로 장민한은 단토가 예술은 단순히 의미가 구현된 사물이 아니라 꿈과
같이 생생하게 경험하기 위한 다양한 수사적 장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부
각하기 위해 '깨어 있는 꿈'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술
가가 의도한 의미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을 수사
적 장치를 지닌 대상으로 본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28)

325) Danto, Arthur., What art is, p.151.


326) 장민한, ‘단토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p.130.
327) Ibid, p.130.
328) 장민한, ‘단토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p.147.
장민한은 의미의 구현에 추가 설명되어야 하는 '깨어 있는 꿈'으로서 세 가지의 수사적 장치들을 제시
한다. 먼저 단토에 따르면 예술작품은 항상 은유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일상적인 재현과 예술적
재현의 차이점이다. 또한 양식은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사적 장치로 사용된다. 미를
포함한 다양한 미적 속성들도 예술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해당 작품을 바라보게 만드는 수사적 장치
로 작동된다. 이로써 장민한은 결론적으로 예술이 다양한 수사적 장치를 담고 있는 대상이라면, 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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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장민한은 단토가 자신의 '구현된 의미'를 칸트의 '미감적 이념'과 유사
하다고 보는 대목에 주목한다.329) 칸트의 미감적 이념은 감각을 통해 감각에
주어지는 이념이고, 그러므로 추상적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그리고 감각에 의해 경험되는 이념이다. 사실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칸트
를 지속적으로 인용하고 있으면서도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그러나 『무
엇이 예술인가』에 와서는 자신과 칸트의 유사점을 찾으면서 감각을 중심에
두는 미감적 이념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형이상학적이고 인지적인 측면에
대립되는 감성적 측면에서 예술의 효용성을 말한다.330) 단토가 칸트의 미감적
이념을 자신의 의미의 구현과 비슷하게 본다면, 작가가 의도한 바를 효과적으
로 제시하는 수단으로서 은유 및 양식을 언급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토가 전반기 예술철학에서 수사학으로 다룬 개념들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단토가 『미의 학대』에서 언급한 화용론은 수사법에 속하는 것
이다. 그는 이미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수사법의 하나로 은유를 들었다.
그리고 예술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은유를 파악하는 것으로 보
았다. 단토는 작품이 생기를 얻는 것은 은유 안에 응축된 작품이 힘이라고 말
했으며, 그 힘은 기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로 느껴야 하는 어
떤 것이라고 하였다.331) 따라서 예술에서 보여주는 재현을 변용적 재현
(transfigurative representation)이라고 하였다.332) 그리고 제시하고 있는 은
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예술작품의 내용과 관련된 것들을 먼저 알고 있어
야 한다. 그러나 단토는 전기에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의 설명과는 달리
후기에는 미의 즉시성을 언급한다. 『미의 학대』에서 화용론적 특질은 자연
미에서와 마찬가지로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바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또
하나의 수사적 장치인 양식(style)은 재현에서 그 내용을 제거할 때 남는 것을

적인 예술상황에서도 개별 작품의 수사적 장치의 효과를 통해 작품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그 의의를 규명하였다.
329) Danto, Arthur., What art is, p.129.
330) 장민한은 단토가 칸트의 미감적 이념을 자신의 의미의 구현과 비슷하게 본다면 이는 작가가 의도하
는 바의 효과적인 전달을 포함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한다.(장민한, ‘단토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이라
고 정의한 이유는?’, p.133.) 그는 예술에서 작가가 의도한 바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수단으로서 은
유와 양식을 든다. 이는 관객이 예술작품의 주제에 대해 받아들이는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장치이다.(Ibid, p.133.) 그리고 수사법은 환기되어야 할 적합한 감정들을 유도하는 수단이
다.(Ibid, p.135.)
331) Ibid, p.173.
332) Danto, Arthur., The Transfigyration of the Commonplace,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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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한다. 어떠한 대상이 무엇인가를 표상하는 방식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의 종말 이전에 양식은 세계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고유한 재현 방식을 의
미하였으나 종말 이후에는 다양한 양식을 자유롭게 차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양식도 예술적 수사 장치 중 하나가 된다.333) 마지막으로, 예술적 수사로서
다양한 미적 속성들을 검토한다. 화용론과 관련되는 ‘깨어있는 꿈’은 단토 미
개념에 대한 연구가 기존 예술의 정의에 촛점을 맞추고 있던 것에서 나아가
말기의 유작에서 언급된 용어이다. 이 용어의 사용은 예술의 수사적 특성과
그 효용성에 주목한다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단토는 예술의 수사학적 측면이
예술의 정의에 추가될 수는 없다고 보며 이러한 입장은 후기의 미개념에서도
번복하지 않는다.
미가 예술에서 의미있는 수단이 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가
치가 있다.334) 의미있는 수단이라는 것은 곧 미가 굴절인자로서 변화를 유도
하는데 기여함을 지시한다. 인간의 의식 활동에서 이러한 미의 변화시키는 힘
은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할 수 있기에 그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러므
로 단토가 오늘날 미를 재론하면서 화용론적 특질로 설명하는 미의 실질적인
기능은 현대미술이 안고 있는 수용자와의 소통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들 간
의 일상적인 관계 속에 진실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관계한다. 이로써
단토는 현대미술의 방향성은 이런 굴절인자를 가진 미술에서 발견할 수 있다
는 점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의 표현처럼 우리는 감정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데, 이것이 종국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된다.

333) 장민한, ‘단토가 예술을 ’깨어 있는 꿈‘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p.138.


334) “예술에 어떤 의도된 미적 요소가 있다면, 그 예술의 요점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의도된 미적 요소는
예술의 요점을 위한 수단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미적 가치가 예술의 정의의 일부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는 분명 철학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만
일 미적 가치가 정말로 예술의 수단이라면 예술사는 미학에 주의를 기울일 때 예술이 정치적인 면, 경
제적인 면, 사회적인 면, 혹은 다른 어떤 면에서 어떻게 그 목표를 달성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요컨대, 철학에서든 미학에서든 미적 가치에 대한 재고는,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든 간에, 사회
적 세계 즉 객관적 정신으로서의 세계에 관해서뿐 아니라 예술에 관한 앎에 가치 있는 많은 것을 말
해줄 수 있다.”(Danto, Arthur., What Art is,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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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단토의 제3의 영역의 미

단토는 그의 예술철학 전반기에 철학과의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예술을 의


미론적으로 정의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의 예술정의인 ‘구현된 의미’는 모더니
즘 예술론이 해당 이론에 속하지 않는 예술들을 제외시켰던 것처럼 편협함에
빠지지 않기 위해 모든 예술을 포괄할 수 있는 정의를 찾고자 한 결과에서 나
왔다. 따라서 단토는 이 정의의 외연이 너무 넓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나
미적 특질 등을 제3의 조건으로 추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철학 여정 후
반기에 미개념을 논하면서 예술과 삶에서 미의 역할을 논증하고 그 보편적 가
치에 주목하였다. 즉, 심미적 미와 의미를 결합시킨 ‘내재미’로 미와 예술의
관련성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에 대한 논의를 예술에 제한하지
않고 일상적 경험으로까지 확대하여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그는 ‘제
3영역의 미’라는 개념을 통해 미의 기능 범위가 일상과 대중문화에까지 미친
다는 점을 논증적으로 제시하려 했다. 이러한 단토의 시도는 제3영역의 미를
통해 그간 진부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미개념에 대안적 사유 지점을 마련했다
는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이때 단토가 미를 언급하지 않았던 초기 입장과 달리, 제3영역의 미
를 제시하게 된 이유를 확인해야 한다. 이 작업은 그의 미개념이 기존에 주장
했던 의미의 철학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예술정의에서 배제되
었던 미와 미적 특질을 포함하는 보완적인 설명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3장 2
절 4항에서, 미가 감정적 존재인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굴절인자로서 예술
과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이 어떻게 대중문
화와 연결되며 윤리적인 특성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따라서 4
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제3영역의 미’의 출발점인 ‘미화’에 대한 단토의 이해를
토대로,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제시한 ‘제3영역의 미’가 행동의 미학이며 변화
시키는 힘과 윤리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점에 대해 검토한다. 또한 일상적인
경험과 만나는 제3영역의 미가 다원주의 시대에 필요한 대안적 미개념이 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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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화

단토는 미의 종류를 자연미, 예술미, 미화로 구분하고, 그 중 기존의 철학자


들에게 실용적인 목적의 비순수성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했던 미화
(beautification)를 부각시킨다. 미화는 자연미와 예술미 각각의 특성을 부분적
으로 공유하는 미의 한 종류이다. 헤겔은 미화가 예술이 삶의 향상을 위해 응
용되는 경우로 자유로운 예술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335) 다시 말해, 미화
는 순수예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응용예술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토
의 관점에서 미화에는 미적 판단만이 아니라 인식적 판단이 따르는 경우가 있
기 때문에336), 단순히 장식적인 미의 종류로 보지 말고 도덕적 태도와 연관하
여 고려해야 한다. 단토는 미화를 ‘제3영역의 미’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여
대중문화와 연결된 미학적 요소로 재해석한다. 이렇게 한 이유는 ‘미화’가 전
통적인 분류에 따라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장식미술이나 공예에 머무른다는
기존의 관점을 강하게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새로운 용어로 미의 문제
를 삶으로 확대하여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으로 다루면서, 자신만의 문화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
단토는 ‘미화’와 ‘제3영역의 미’를 명료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미화’가
실용적인 목적을 지닌 장식미술이나 공예 등을 포함하며, 어떤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하는 행위의 결과로 하나의 대상이 미를 소유하게 되는 그런 종류의
미라고 설명한다.337) 비록 그가 ‘미화’와 ‘제3영역의 미’에 대해 의미의 차이
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사용되
던 용어인 미화는 기존의 의미를 반영한 개념으로, 제3영역의 미는 단토가 새
롭게 제시하고자하는 개념을 반영한 용어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단토가
식자들의 관심밖에 있었던 미화를 심도 있게 다루고자 한 점은 미학적으로 주
목해볼 만한 일이다. 자연미와 예술미는 미학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지
만, 미학의 역사에서 미화는 자연미나 예술미와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철
학적으로도 주목받지 못했었다. 헤겔에 이르러 비로소 자연미와 예술미 사이
에 다소 방대하고 확정되기 어려운 중간 영역이 있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그

335)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64 참조.


336) Ibid, p.43 참조.
337) Ibid, p.68 참조.

- 135 -
영역이 바로 미화이다. 단토는 이 영역을 제3영역의 미라 부르며 인간의 행동
과 태도가 큰 역할을 담당하는 미의 영역으로 분류한다.338)
자연미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존재의 미이며 심미적인 것이다. 칸트는 예
술미와 자연미 그리고 미화의 차이를 인지하고 있었으나, 특별히 구분하여 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미를 감각의 만족 이상의 작용
을 하는 것으로 확연히 구분하였다. 예술은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들과 정신
의 가장 포괄적인 진리들을 인식하게 하고, 최고의 실재마저도 감각적으로 드
러내준다.339) 따라서 예술미는 정신에서 태어나며 ‘어떤 것에 관한 것’으로 이
해할 필요가 있다. 예술미는 정신의 현현으로 보기 때문에 목적과 수단에서
자유로운 것이며 절대정신과 관련된다. 반면 미화에 해당하는 예술은 ‘종속적’
이며 외재적인 목적에 응용된다. 헤겔은 감각적 표현에 의존하는 예술의 특성
을 사유의 측면에서 다루고 순수예술의 정신성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예술이
삶의 향상을 위해 응용되는 경우는 응용예술로 구분한다.340) 이 때문에 단토
는 헤겔이 제3영역의 미를 명확히 인식한 철학자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헤겔
은 순수예술에는 내용이 있지만 응용예술에는 내용이 없다고 보았다. 단토는
헤겔이 철학적으로 다룰 가치가 있는 자유로운 정신에 해당하는 예술에 대해
서는 깊이 있게 논하지만, 헤겔 자신이 예술의 영역에는 포함시켰으나 다시
구분해낸 ‘예술이 삶의 향상을 위해 응용되는’341) 이 제3영역의 미에 대해 거
의 탐구하지 않았다고 아쉬워한다.
미화는 칸트와 헤겔의 생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이
유로 철학적인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보통의 도덕과 달리 홉스가 ‘작은 도
덕’이라고 부른 예절처럼, 미와 미화에 대한 구분에도 이러한 차별이 존재한
다. 미와 미화에 대한 인신의 차이는 오래된 철학적 구분에 따르면 ‘실재와 현
상’의 구분과도 연결된다. 미화에 대해서는, 현상인 겉모습의 변화에 천착하여
그 참모습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사실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어 실용적인 미화행위를 정신적이거나 본질적인 내면을
다루는 순수예술과 다르다고 여긴다. 더 나아가 단토는 이러한 인식이 철학차

338) Ibid, p.61 참조.


339) Ibid, p.62 참조.
340) Ibid, p.63 참조.
341) Ibid,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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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 미학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즉 전위적인
예술이 미를 단순히 장식하는 어떤 것으로 여겼던 것이 그 예다. 따라서 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미학과 혼재되어 미적인 것 전체가 하나로 평가되는 양상을 보
였을 것이다.342) 단토는 미화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도덕적인 분류학의 한계
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한다.343)
그리고 철학자들이 미화를 견제하려는 태도의 근저에는, 지나치게 장식에 기
우는 행동을 규제하고 사치와 낭비에 이끌리는 성향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있
다. 이는 미화가 순수예술과 실용예술의 성격을 모두 지니며 사람들의 행위에
내재한 윤리적 인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철학자들의 미화에 대한
견제는 미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기 때문에 생겨난 태도이다. 미화가 미적
태도에 관여하는 예는, 우리가 화장을 하거나 옷을 고르고 상대방과의 대화에
서 목소리 톤과 표정을 관리할 때도 상호 관계성에 주안점을 두어 그 수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개인들의 자율성이 반
영된다. 말하자면, 미화는 도덕적 자의식의 양상을 띨 수 있다. 단토는 외형적
인 규범미와 인간의 적합한 내면성이 결합할 때 이상적인 미에 이른다고 주장
한다. 이처럼 미화는 형식적인 미 외에도 자아에 대한 복잡한 인식론과 형이
상학을 전제한다. 그래서 단토는 이러한 특징이 미화를 주목하게 만든다고 본
다. 그러므로 미화가 행동의 미학 측면을 지니는 것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측
면을 지니는 것으로 고찰될 필요가 있다면, 단토의 숙고는 당위성이 있고, 독
자적인 미개념을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화는 실용예술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의 취향 즉 문화와
관련된다. 단토는 미화가,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성장과 함께 문화연구라
는 새로운 분야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음을 지적한다. 헤겔의 절대정신
에 속하는 ‘최고의 소명’을 띤 예술미나 자연미와 달리, 미화에 해당하는 예술
은 인간의 본성을 얼마간 부드럽게 하듯 도덕에 대한 고려와 내재적으로 연결
된다.344) ‘미화 행위 자체는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도덕적 명령과 매 순간 교
차’하고 취미의 경계라 할 만한 것을 갖는다.345) 즉 “어떤 것을 놓고 너무 수

342) Ibid, p.69.


343) Ibid, p.69.
34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68.
345) Ibid, p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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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다, 혹은 너무 장식적이다 등등으로 명시한다.”346) 미화는 홉스의 작은
도덕인 예절처럼, 어떤 행동을 미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인간의 자율성에 토대
를 두고 표현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미화에 대해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관련하여 도덕적인 판단이 작용한다.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타인에게 어
떻게 보일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단토는 종교적인 감사의 마음 때문에
지나치게 화려한 장식을 하여 좋은 취미를 벗어나기도 하고, 종교적 특성에
따라 취미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시시한 경우도 있다고 한
다. 이처럼 취미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느냐의 문제나 의
례와 관련된다. 그래서 단토의 말처럼 종국에는 예술미 또한 삶과 밀접한 미
화에 연결되며, 절대정신도 제3영역인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실습되는 것이
다.347) 그는 “모든 실습은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전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348) 따라서 미화는 일상적인 삶과 관련되며 도덕적 이
상을 드러낼 수 있는 미이다.
단토는 미화에 대한 철학적 요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취미의 실행은 사
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취미는
판별력과 세련된 안목의 단순한 적용이 아니라, 취미는 의례( ceremony,
rite, ritual)에 속한다.”349) 단토는 미화를 인간의 삶이 실제로 펼쳐지는 영역
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미화에 해당하는 이 취미이론은 행동과 삶에 대한
총제적인 철학을 요구한다.350) 그리고 미화라기보다 문화로 접근하는 것이 더
가까운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바디페인팅이나 메주자(mezuza)와 같
이 상징이나 주술같은 중요한 기능에 기여하는 의미의 장식은 거기서 나오는
힘을 얻기 위한 시련과 관계되기 때문에 엄밀하게 미화로 볼 수 없으며, 해당
문화와 관련된다.351)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미의 기준도 각 민족이나 문화마
다 기준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화와 유사한 취미이론은 단순한 취
미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철학을 요구하며 ‘미학자체만의
문제를 뛰어넘는’352) 것이다. 미화는 문화접변메커니즘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346) Ibid, pp.70-71.


347) Ibid, p.72.
348) Ibid, p.72.
349) Ibid, p.72.
350) Ibid, p.73.
351) Ibid,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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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생활방식의 객관적 구성요소이다.
다음으로는 미화의 구성적 특질을 살펴보면서 어떠한 요소가 도덕성을 띠게
만드는 것인지를 확인해보자. 단토에 의하면, 미화의 이상미는 규범미와 내면
미가 결합된 것이다. 이때 규범미는 표준적인 기준이 되는 유형의 미이다. 그
리고 내면미는 무형의 미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마음의 상태와 관련된다. 규
범미의 표준적인 특성과 관련하여, 칸트는 아름다운 사람의 “표준적인 개념
(normal idea)이란 그 인종 전체에 대한 상(image)이다.”라고 말했다.353) 물
론 오늘날처럼 세계화되어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인종을 경험한
후로는 그 표준적인 상도 변화를 겪고 있다고 봐야한다. 단토는 그러나 이런
표준화된 규범은 내면성이 느껴지지 않을 경우 지루해질 수 있다고 말하면서,
칸트의 말을 인용해 ‘미의 표준적인 상과 이상을 구별’하고 ‘이상’이 인간에게
만 유일하게 있는 ‘도덕적 성질들의 표현’임을 강조한다. 단토가 말하는 이상
은 ‘선한 마음씨, 순수함, 강인함, 평온 등’ 도덕적 덕목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는 이 성질들이 ‘신체적 표현을 통해, 즉 내면에 있는 것의 효과로 드러
난’354)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미화는 결코 순수하게 미적이기만 할 수 없
고 이상에 따른 판단은 단순한 취미판단이 아니다. 실재로 외부 세계는 내적
세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내면은 그 감정과 일치하기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단토는 내면성이 부재한다면 규범미가 완
전하게 갖추어진 고대 그리스의 아름다운 조각상조차도 지루해질 수 있다고
본다.355) 따라서 내면성은 어떤 행동을 드러내고 생동감 있게 하는 주요한 동
기이자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면미가 없다면 아름답다할지라도 이상
적인 미가 될 수 없다. 내면미의 부재는 오늘날의 예술가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한 예로 자신의 몸을 작품으로 활용해 외형적인 변화만을 보여주
는 현대미술가 오를랑(Orlan)356)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오를랑의 작품이 지닌
특성을 보면, 외형적으로는 규범미의 기준을 사용할 수 있지만 내면미의 기준

352) Ibid, p.73.


353) Ibid, p.74.
354) Ibid, p.75.
355) Ibid, p.75.
356) 오를랑(ORLAN)의 본명은 미레유 포르테( Mireille Porte)로 프랑스의 현대미술가이다. 1990년대 초
중반에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성형수술한 자신의 몸을 작품으로 제시하는 카날 아트(Carnal Art)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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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알 수 없다. ‘내면미의 기준은 어떤 사람이 잔인하거나 멍청하거나 또
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깨우쳐 줄 수’357)있다. 아름답기만 한 그림이 짧은 감
미로움과 즐거움을 줄 수는 있으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기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 내면미는 그 사람의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차
원과 연결된다. 미화에서 이상미와 규범미의 구분은 예술에서 내재미와 외재
미로 나눈 것과 유사한 형식을 취하는데 미화의 이상미가 곧 예술의 내재미와
같은 맥락에 놓인다.
단토는 이상미와 내면미에 대한 설명을 통해, 전통적인 규범미와의 차이를
강조하여 행동과 삶에 대한 철학과 연결시킨다. 이처럼 미화는 기존의 관념처
럼 단순히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의례와 문화적 심미성을 반영한다. 그리고
미화는 내면성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이상미로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미화가
취미를 넘어서 우리의 삶과 문화 속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미
는 사람들의 사려깊은 행동과 도덕성에 관여하는 내면성과 외적인 규범미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인간의 삶과 문화에서 중요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
이다.358) 그러나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단토가 미화에서 규범미와 이상미를
통해 규범미를 가치절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단토는 규범미가
굴절인자로 역할한다는 사실에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가 내
면성, 즉 도덕적 덕목에 해당하는 것과 결합되어 드러날 때 이상적인 아름다
움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미가 예술에서 의미와 만났을 때는 ‘내재미’가 되
어 작품이 의도한 방향으로 감상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일상적인 행동
과 삶에서 규범미와 내면미가 결합될 때 이상미 즉 제3영역의 미가 되는 것이
다. 그렇다면 단토가 의미하는 제3영역의 미는 이상미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
다. 특히 내면미는 도덕성과 긴밀하다. 따라서 이상미는 규범미와 도덕적 덕목
을 지닌 내면성이 결합된 형태이므로 윤리성과 연관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
다.
이처럼 미화의 구성적 특질을 분석하여 이상미가 도덕성과 관련된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어서 미화가 문화철학과 관련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357)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76.


358) 단토는 전통적인 미술의 재현적인 그림도 거장의 그림에는 흥미로운 우아함을 지각하게 하는 ‘내면
의 빛’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내면의 빛은 ‘내재적인 미’와도 연결되는 지점
이다. “위대한 그림을 평가하는 나의 개인적인 기준은 부분적으로 그러한 빛의 신비와 연관된 것”이라
고 하였다.(Danto, Arther., 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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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음을 알아본다. 말하자면,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들
이 정치적 지배계급이 부과한 미의 규범을 자신이 따르고 있다는 것을 각성하
면서 미화가 정치적 고려와 관련됨을 인식하는 것이다. 기존의 미화에서 추구
해온 미의 이상은 정치적인 지배계급이 부과한 미의 규범에 의한 경우가 많
다. 이 부분은 역사적 정황에서도 명백하게 발견된다. 고대의 문헌에서는 미화
와 정치와의 연관성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으나 오랜 역사 속에서 귀족
의 문화가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여자의 경우는 남자, 흑인의 경우는 백인이
부과한 미적 기준을 따랐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359) 20세기 이후 우리는 이
러한 정치적인 역학관계에 대해 급속도로 각성했고 미화의 관행 역시 빠르게
변화했다. 단토는 서구 유럽백인의 규범을 따르던 흑인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인식하면서 문화에 대한 자의식이 “화장의 변화에서 시작해 아프리카식 이름
짓기, 아프리카식 의복 입기,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하기에 이르기까지
방사상으로 퍼져나갔다”고 지적한다.360)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이 부분에 대
한 감각이 훨씬 민감하고 자유롭다. 미화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태도를 반영
하는 문화적 해석코드로 작동할 수 있다. 실제로 현대미술은 사람들의 사회적
인식과 해석의 문제를 드러내 보이길 좋아한다. 단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어느 누구의 규범을 적용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투쟁은 의심의 여지 없


이 칸트가 설명한 취미를 훨씬 넘어서고, 그가 취미와 인접해 있다고 느낀 도덕적 심리상태의
표현을 훨씬 넘어선다. 내가 후에 기회가 왔을 때 살펴볼 어떤 측면에서, 외부로부터 자기 인식
이 주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는 칸트가 자율성으로 간주한 것과 대단히 가까워서 제3영역의
미학과 윤리학의 영역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암시한다. 외부에서 주어진 자기 인식을 허
락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와 관련해서 정언명령을 거부하는 것이고, 인종과 성
gender의 관점에 국한해서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명령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
로 부상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또 다른 현사실성(facticity)361)”-을 승인하는 것이다.362)

필자는, 단토에게 가치는 개인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진실한 관계가 외부로


부터 주어지는 인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정에 의한 자율성에 기

359)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76 참조.


360) Ibid, p.77.
361) “faciticity. 내가 세계 속으로 피투된 채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해왔다는, 나의 현재완료적(기재적,
기존적) 존재의 사실을 가리키는 하이데거의 말이다. 현사실성은 눈앞에 있는 현전자의 사실성과 구별
되는 현존재의 시간적-역사적 존재 성격이다.”(『미를 욕보이다』, p.162. 주 22에서 재인용)
362)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p.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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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미화는 미의 보편성과 관련된 차원 또는 도덕적
경험의 차원으로 드러난다.
이번에는 미화에 해당하나 매력적인 외모를 위해 성형을 추구하는 대중문화
에 대해 말해보자.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완벽한 외형으로 아름다움을 추
구하는 사람들의 동기에 대해 쓸 때 외적인 미에 주목하는 사례를 제시한 바
있다.363) 성형수술로 외모를 아름답게 바꾸려는 노력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매력의 측면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보
다 완벽한 성격의 외적 신호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도한 성형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이 부족한데서 비롯하는 것으로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364) 외형적으로 미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 내면의
외적 표현으로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지나치다면 미적 인식의 다양성 중 부정
적인 측면에 기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꾸밀 때 도덕성에 근
거하여 서로 구속력 있는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문화와 외모의 관계에 대
한 철저한 윤리 철학을, 그리고 그것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예술철학을 탐구하
는 것은 이 논문의 논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미화는 사람들의 상호 관계에서
미적 태도가 일상적으로 반영되는 사회의 윤리적인 측면과 관련됨을 잘 보여
준다.
미는 도덕적 특징을 띠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또한 미는 문화적 관행의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단토의 전반기 예술철학은 정신과 관
련되어 지성적인 부분에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후기의 문화철학은 외재적으
로 드러난 미적 요소와 내면의 정신적 요소가 결합되어 행동의 미학으로 나타
나는 윤리적인 특성을 띤다. 그리고 미화는 칸트나 헤겔이 언급한 것과 달리
현대에 이르러 대중의 자율성이 반영된 새로운 개념의 제3의 영역의 미로 이
해되어야 한다.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수차례 이러한 관점을 피력하고 있
으나, 다소 혼재된 용어와 언급으로 불명료한 측면이 있다.
요약하자면, 미화는 자연미나 예술미보다 인간의 행동과 태도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하는 일상에서 접하는 미이다.365) 또한 현재의 미적 어휘는 철학적 미
학의 전통적인 담론보다 넓다는 생각에서 이러한 미개념의 확장에 대한 당위

363) Ibid, p.74.


364) Ibid, pp.75-76 참조.
365) Ibid,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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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갖게 된다.366) 그리고 미화는 이상미를 추구한다. 단순히 대칭과 균형을
통한 표준적인 상으로서의 규범미와 달리 자신의 이상에 따르는 미적 태도는
외부로부터 자기인식이 주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이며 칸트가 자율성으로
간주한 것과 매우 가깝다. 단토는 제3영역의 미학과 윤리학 사이에 깊은 관계
가 있음을 암시한다.367) 단토는 이상미가 사람들의 사려깊은 행동과 도덕성에
관여하고 내면성은 행동의 수위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동일한 역사
적 맥락 속에 놓인 상호 간의 관련성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그 이해한 것을
표현하며 또 그 표현에 반응함으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인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
에 따라 결정하는 자율성에 의해 행동함으로써 윤리적일 수 있다. 단토의 제3
영역의 미를 문화 및 윤리성과 연결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이상미의 도덕
적 특질에 있다. 따라서 이상미는 내면에서 느끼는 것을 아름답게 표현할 때
이를 수 있는 미의 형태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
의 행동에 반응하거나 나를 표현하는 경우, 이러한 내면이 반영되어 이상적으
로 드러나기를 의도한다. 또한 이상미로 나타나는 행동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대감과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기 위해 성형
을 하거나, 혹은 친절하게 행동해도 그 자율적인 내면의 감정을 담아내지 않
는다면 이상적인 미로 이어질 수 없다.
단토는 현대미술에서 일어난 미의 실종을 추적하고 사회·정치적인 원인을
파악하여 미의 보편성과 기능을 되살리면서 다원주의 미술에 적용 가능한 미
개념을 제시한다. 미는 예술의 정의에서 예전과 달리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과 별개로 미 본연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치정립이 요구
되어야 한다. 단토가 미를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 미화는 자연미
의 심미적 특질과 인간의 내면성이 결합된 이상미가 될 수 있다. 이를 단토는
제3영역의 미라 칭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제3영역의 미는 행동의 미학으로 나
타날 수 있다. 우리는 슬픔을 노래로 승화시키고 애도의 장소를 꽃으로 장식
하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미적 태도로 마주하고 극복하려 한다. 단토에게 그
것은 연민과 보살핌의 미덕에 대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 사이의 일상적인 관
계에서 구성되는 가치를 통해 역동적인 문화를 본다. 따라서 다음 절에서는

366)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p.30-31.


367) Ibid, pp.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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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가 ‘제3영역의 미’를 통해 행동의 미학을 강조하고 도덕성을 부각시켜 그
의 미개념이 지향하는 바를 밝힌 것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2. 제3영역의 미

앞 절에서는 단토가 분류한 세 종류의 미 가운데 미화의 특징을 검토하고


오늘날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를 다루었다. 단토는 지금까지 미학에서 중요하
게 인식되지 않았던 미화에 주목함으로써 ‘제3영역의 미’라는 용어를 만들었
다. 그렇다면 『미의 학대』에서 제3영역의 미라는 개념을 제시한 의도는 무
엇일까. 단토에 따르면, 제3영역의 미는 일상적 삶에서 표현될 수 있는 미의
보편적 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이 개념은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미가 삶
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미는 그가 예술에서 강조한
‘내재미’보다 넓은 범주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또한 단토는 제3영역의
미를 통해 다원주의 시대의 예술과 삶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고 간주한다. 따라서 이번 절에서는 제3영역의 미가 대중문화와 관련하여 행
동미학으로 연결된다고 보는 그의 관점을 검토한다. 그리고 제3영역의 미와
윤리적 연관성을 보다 심도 있게 고찰하여 단토 미개념이 지향한 바를 모색하
고자 한다.
본 논의를 위해 먼저 제3영역의 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이
개념이 등장하게 된 근거를 그의 예술철학적 사유의 배경이 되었던 당시 뉴욕
의 문화적 환경 때문으로 보고, 대중성을 강조하는 경향과 연결시킨다. 이어서
문화적 관점에서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 부르디외의 미개념을 검토하여 단토와
비교한다. 또한 단토의 미개념을 문화철학 및 대중적 행동주의와 연결한 파리
나스의 연구 내용을 고찰한다. 이로써 단토의 제3영역의 미적 특성을 명료화
하고 그 특성이 예술과 일상적인 삶에서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주장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전반기 예술철학에서 예술을 정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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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조건의 추가를 거부했음에도 미를 다시금 예술의 정체성에 놓고자 할 뿐
만 아니라 미의 보편성을 되찾고자 한 의도를 추론해 볼 수 있다. 필자는 단
토의 미개념이 그의 예술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예술계의 전반적인 인식에서 배
제되어 있거나 미흡하게 다루어졌던 것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것이며, 그에
따른 보완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제3영역의 미는 그가 말년에 이르러 제기한
의미있는 개념이나, 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완의 문제들
이 남아 있다. 그러나 단토의 미개념은 향후 추가적인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
필자는 이를 제3영역의 미를 통해 단토가 입증하였다고 생각한다.
단토의 미개념은 ‘예술’과 ‘문화’라는 두 측면에서 논의된다. 다시 말해, 예
술에서의 미는 작품의 의미에 내재하여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감상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작품의 예술적 탁월성에 기여하는 내재미로 설명된다. 문화에서
의 미는 사람들의 일상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행동에 내면성을 담아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의도한 바를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제3영역의 미
는 후자에 속하는 미개념이다. 그러나 단토에게 예술과 일상적 삶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사실 미가
예술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것과는 달리, 일상적인 삶인 대중문화에서 말하는
미와 미적 태도의 역할은 1990년대 문화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예술계에
서 주의 깊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는 예술의 틀 안으로 제한하기에
는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보편적 특질이다.
단토는 제3영역의 미의 가치를 미화의 윤리적인 차원에서 찾아냄으로써 행
동의 측면에서 가치의 타당성을 구축한다. 그리고 미화가 자연미와 예술미에
걸쳐있는 것처럼, 내재미와 외재미, 규범미와 내면미 등 양가적 가치의 균형을
도모한다. 무엇보다 제3영역의 미로 나타나는 행동에서 중요한 점은, 외부로
부터 자기인식이 주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인 ‘자율성’을 갖추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성찰을 통해 자율성에 토대를 두고 행동할 때 획일화되지
않은 주도적 관점을 확보할 수 있으며 타인의 삶 역시 존중하게 된다. 제3영
역의 미는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자기 성찰적 비판을 통해 행동으로 표현할
때 보여지는 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적인 행동은 주의 깊게 행해지며, 이에
대한 인식으로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개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
서 이러한 행동은 공동체 속에서 사회변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단토는 제3영역의 미를 일상적인 행동에서의 표현에 연결하면서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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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ular culture)와의 관련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큰 틀에서 보면 예술작품이
라는 하나의 객체로 표현되는 예술도 문화와의 관련성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형성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예술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의미와 성찰을 나누고자하는 것이며, 사람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는 것
이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 제시하되 해당 상황을 깨달음
으로써 표현하려는 것을 구체화한다. 그리고 감상자들은 작품의 표현에 반응
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자기성찰적인 비판을 통한 표현이며, 예술작품 수용자
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표현된 예술작품의 수용과 비평을 위한 미학적
과정은 예술창작 작업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토에게 미학은 예
술과 문화적 습관을 통해 표현되는 태도와 성향을 형성하는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368) 제3영역의 미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단순하게
대중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획일화된 엔터테인먼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중문화로서의 미학은 사람들 사이의 창조적이고, 표현
적이며, 의미가 풍부한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토의 예
술 정의가 ‘구현된 의미’라면, 이것은 예술가가 세상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
현한다라는 의미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문화의 미학적 특징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제3영역의 미는 예술을 넘어 삶 전체에 관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
리고 예술은 대중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미적 태도와 표현 가운데 하
나다.
제3영역의 미를 문화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단토 스
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미화를 헤겔의 객관정신과 연결하여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고 언급한 것에 있다.369) 그리고 미화는 그 실용성 즉 일상적인 삶의

368) Danto, Arther., Connections to the World: the Basic Concepts of Philosophy, p.xxiii.
369) 단토는 그의 후기 개념이 헤겔의 영향 하에 있음을 밝힌 바 있는데, 대중문화는 헤겔이 말한 객관정
신과 관련된다. 헤겔의 객관정신은 정신의 산물로 삶의 행위로 내면화된다. 단토는 이 객관정신의 결
과 중에 예술도 포함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적 정신은 그 개념상 다원주의에 적합한 만
큼이나 문화적 지표로서의 예술 모델에도 적합하다고 본다. 단토는 파노프스키(Panofsky)가 도상학으
로 객관정신을 설명한 것을 예로 드는데, ‘모자에 가볍게 손을 대는 행위가 하나의 인사법’과 같은 것
이다. 따라서 도상학자인 파노프스키에게 “예술은 그 문화의 언어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이고 예
술의 목적은 그런 기능에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이르렀다.”고 말하면서 객관적 정신을 대중문화,
그리고 행동미학과 연관시킨다. 즉 예술적 표현에 대한 문화적 결정에 객관정신이 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 정신은 열린 관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며, 미의 능동적 역동성이므로 단토의 제3
영역의 미와도 이어진다. 왜냐하면 미적 작용과 객관적 정신의 움직임은 사람들의 상호관계를 통해 나
타나는 가치와 관련하여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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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와 교차한다는 점에서 사람들 간 감정의 공유 및 사회적 연관성 속에 고
찰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미의 세 번째 영역이 지시하고 있는 문화는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문화는 세상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감수성
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3영역의 미라는 매체로서의 미학은 ‘의사
소통’과 ‘해석의 정신’에 관여한다. 또한 우리는 삶의 방식인 표현을 통해 삶
에 대한 확신과 목적을 표현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미적 인식
을 증진하며 상호 신뢰와 연민을 가질 수 있다. 단토는 이에 대한 예로 911테
러 당시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추모행위를 이야기한다. 당시 뉴욕시민들이 공
유했던 공포와 고통은 서로 간의 연대의식과 죽은 이들을 위한 애도행위를 통
해서 완화될 수 있었다.370) 단토는 미가 현대미술에서 예술의 정의를 위한 필
수요건은 아니지만 인간의 삶을 위해서는 필수요건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
로 그는, 예술을 삶의 표현방식 중 하나로 보고 더 큰 관점에서 미적 태도를
다룬다. 그는 제3영역의 미가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의 종류가 아
름다움이라는 목적을 가진 행동을 통해 그것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라고 한
다.371) 미의 영역은 공동의 경험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단독적인 세계가
아니다. 사람들은 상호관계를 생각하면서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거나 윤리적
인 덕목을 생각한다. 이러한 미의 의도적인 측면은, 사람들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며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부여해 준다. 단토는 미를 대중문화의 힘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미는 개인적으로나 문화적으
로 소통하고 관계맺는 부분들을 점차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제3영역의 미
는 사람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기준이나 제도적 구조에 따라 수용되어야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반적인 일상적 경험 속에서 미의 기량을 펼치는 것이다.
연관된다고
단토의 제3영역의 미가 대중문화와 연관된다고 보는 관점은 이미 그의 예술
철학 초기에 형성된 것이다. 2장 1절에서 예술과 철학의 관계를 검토하면서
언급하였듯이, 1960년 전후의 사회·정치적인 운동들은 예술을 기존의 관점에
서 이해하려던 것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사고하려는 개인들
이 상호 연대하고 이해하면서 문화에 깊게 영향을 준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제3영역의 미는 단토의 이러한 문화철학적 관점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370)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11.


371) Ibid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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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토의 미개념을 대중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먼저 단토의
사유에 영향을 준 당시의 문화적 환경과의 관련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
토가 1960년대 예술철학에 관심을 갖고 예술계를 언급할 당시 미국 문화는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문화가 일상의 미학적 삶의 강렬
한 측면으로 부각되었으며, 다원적인 문화는 미국사회의 문화적 원동력으로
부상하여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증강시켰다. 단토는 사람들이 자기 성찰적
태도로 인해 점점 더 자율성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관점을 표현하고
자 하는 이러한 문화적인 활력을 인식했다. 그리고 자신의 예술철학적 관점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는 예술에서 중시되었던
독창성과 예술성을 존중하면서도 예술을 통한 비판적 표현과 반응, 그리고 정
치적 행동에 주목하였다. 다시 말해,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을 없애고 일
상적인 것을 예술로 받아들여 재해석하는 분위기의 건전성에 동조하였다.
그는 당시 미국의 문화운동에서 사람들이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것에서 벗어
나 함께 행동하도록 고무하는 가치관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 의미있게 보았다.
그는 사람들의 스타일 감각이 놀이분야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
을 나타내는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다양한 색깔의 옷, 긴 머리, 노메이커업,
나체주의는 자기 자신의 가치와 의미에 따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한 반체제뿐
만 아니라, 예술, 종교, 역사, 과학, 정치, 철학의 분야에서 오는 급진적인 운
동이었다. 다원주의 문화의 이념적 표현은 새로운 문화 영역을 형성하는 개인
적, 사회적 방식으로 행해졌다. 이것은 단토에게 존재론적 문제로서 미와 진실
에 관계되는 것이다. 인간은 표현적인 존재이며, 미의 세 번째 영역은 사람들
이 자신의 삶의 진실을 나타내는 세계와의 연결성에 기반한다. 단토가 미학을
삶의 한 방법으로 되찾고자 한 것은 아마도 동시대 사람들이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사회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나
타낸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율성에 기반한 미적 태도로 상호 간에 공통감
을 형성하고 행동으로 표현한다. 단토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의 다원화된
관점을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는 구체적인 문화와의 연관성을
잃지 않고도 서로 다른 시각에서 상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
른다. 따라서 단토는 이 시기, 의미를 구현하고 인간관계의 가치를 표현하는
어떤 것으로서 예술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며, 자유로운 개인성과 서로 존중하
는 공동의 관계를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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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중문화의 활력과 자율성은 그의 예술철학적 관점에 영향을 주었
다. 단토는 대중문화를 자신의 예술에 반영한 예술가로 워홀을 언급했다. 워홀
은 평범한 것은 이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미적으로도 충만하다고 여겼다.
단토는 워홀이 철학적 이해가 깊었던 작가가 아니었음에도 예술에 대한 주관
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대중문화의 현실주의로 옮겨가려 했기에 선구적인 태도
를 지녔으며 물질성을 형이상학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
다.372) 따라서 워홀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한 수프캔과 브릴로 상자는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삶에 대한 의식적인 태도와 관련되며, 대중문화와 연관
된 예술의 현대적이고 객관적인 궤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해석했다. 단토
는 1960년대 미국의 문화적 상황에 따라 예술이 대중문화와 갖는 긴밀성을
고려했고, 이러한 예술계의 현상이 기존의 예술개념과는 다르다는 점을 수용
하여 그의 예술 정의인 ‘의미의 구현’에 반영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러
한 그의 예술철학적 사유를 토대로, 예술과 일상적인 삶에서 미의 역할을 재
고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미는 사람들이 자율성을 발휘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데 직
접적으로 관여하는 미적 특질이자 태도이다. 이와 같이 당시의 문화적 환경은
단토가 미개념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을 갖는 데 주요한 동인이 되었다. 그
러므로 제3영역의 미를 통해 문화와 관련한 행동의 미학을 전개시킨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의미의 미학과 예술의 미적 표현에 관련된 글을 쓰면서
감정과 태도가 활발해지는 것이 어떤 개념들에 대한 사람들의 사려 깊은 표현
과 평가를 통해서임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된다.373) 공동체 내의 관계 속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며 상대방의 표현을 이해하고 반응하게 된다. 이때 표면적인 것
이 아니라 내면성을 반영한 사려 깊은 표현과 평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쉽게
움직이고 활성화시킨다. 단토는 예술가의 표현뿐만 아니라 수용자의 반응 또
한 중요한 표현으로 보았듯이 표현을 비중 있게 보려한다. 단토가 표현을 강
조한 의도를 제3영역의 미와 연결할 때, 미적 표현은 대중의 행동에 의해 구
축된 것이며, 문화적 상호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미
적인 표현을 통해 사회 내의 존재로서 스스로를 살핀다고 봐야 한다. 단토는

372) Danto, Arther., What Art is, p.45, pp.149-151 참조.


373) Danto, Arther., “Embodied Meanings, Isotypes, and Aesthetical Ideas,”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 65, no.1 (2007): pp.126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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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가 더 좋은 삶을 영위하고 서로를 더 품위있게’374)
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제3영역의 미는 사람들의 자율성이 윤리적인 태도 속에 드러날 때
나타나는 것이며, 대중문화와의 관련성 속에 고려되는 것임을 살펴보았다. 그
러나 단토의 제3영역의 미가 제기한 미와 문화와의 긴밀성에 대해서는 현재
까지 연구가 미흡한 편이다. 그 이유는 우선 제3영역의 미 개념이 단토의 후
기철학에 해당하여, 단토 자신이 이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하고 작고함에
따라 이론적인 체계화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에 대한 관심 역시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화 된다. 또 하나는 서론에서도 밝혔듯이 20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위적인 경향을 띠는 사회통찰적 예술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미를 다루는 작업은 전통으로의 회귀이며 진부하다는 인식이 강하
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를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몇
몇 학자들에 의해 논의된다. 특히 부르디외(Bourdieu)는 문화연구의 일환으로
미개념을 다루고 있어 단토의 개념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단토의 제3영역
의 미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한 파리나스의 견해를 함께 검토하고자 한다.
미와 관련한 부르디외의 미학을 살펴보자. 부르디외는 대중문화를 문화자본과
연결지어 사유하였다. 그의 문화자본은 습관화 즉 아비투스를 통한 관계와 지
식의 축적을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에 따라 감정, 인식 및 지
식을 적용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내재된 문화자본
이 사회적 실천의 논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부르디외는 아비
투스 개념을 통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문화 또는 미적
감성을 구현하는데, 이것은 지역 사회를 결속하거나 문화적 정체성을 띤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부르디외가 예술의 생산과 수용 둘 다에 '의미'를 포함시키
고 있다는 점이며, 세계와의 연관성 속에서 예술 이론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
이다. 문화적으로 의미들을 구현하는 예술은, 자신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의미와
성찰을 나누고자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부르디외
와 단토는 미학을 예술과 문화적 습관 혹은 관행을 통해 표현되는 태도와 성
향을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이해한다. 부르디외는 자신의 문화이론에서 문화자
본의 중요한 측면은, 사람들이 미적 감각과 명예와 개인적 존엄성을 지니고

374) Danto, Arther., The Abuse of Beauty,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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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부분들을 주고받는 것에서 나온다고 한다. 부르디외에게 문화는 개인
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실천의 논리에 의존한다. 그러나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을 비판적인 관점으로 해석한다. 그는 문화적 자본에서 발생하는 상징적
인 폭력을 사람들이 인식하기를 바란다. 다시 말해 개인이 보여주는 취향은
사회적 ‘계급’의 지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375) 이는 일부 개인들이 환경
적 빈약함으로 부족감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하고, 그런 환
경이 되게 한 구조적인 폭력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부르디외에게, 예술이
행해지는 장은 정적인 형태가 아니며, 단토가 말한 예술계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구조로서 관계적이고 반응적이다.376) 따라서 부르디외는 예술이 펼쳐
지는 장이 예술계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넓은 의미의 역사적이고 관계적인 것
이라고 보고 단토의 예술계 개념을 비판한다. 하지만, 예술이 문화와 상호 관
련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단토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
단토의 문화철학은, 문화가 사회구조의 한계를 반영한다는 부르디외의 부정
적 관점보다 긍정적인 특징을 띤다. 공동체 속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어떠한
의도를 지닌 채 행해지는 행동은 단토에게 의미 있는 사회 변화의 한 방법으
로 인식되며 예술적인 행위를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가는 자신이 속한
역사 속에서 삶을 이해하고 비판적인 자세로 작품의 의미를 구현하기 때문에,
단토가 생각하는 예술은 예술가와 감상자의 생각과 행동의 힘에 깊이 관여하
는 것이다. 이러한 단토의 생각들은,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의 행동을 동적인
미학으로 연결시켜볼 수 있게 한다. 단토는 표현과 진실이 연관성이 있는 것
으로 이해하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신념, 언어, 예술 및 사회과학을 통해 공유
된 물질문화를 해석한다고 본다.377) 이미 언급한 대로 이러한 생각은 제3영역
의 미에 대한 그의 사유로 집약되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제3영역의 미가 이상
적으로 나타날 때 외적인 규준미와 내면미의 결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때
표현은 진실성을 지닐 수 있다. 단토가 말하는 개별예술가들의 독창성은 부르
디외의 미학에서 입증된 행동미학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
로 문화에 있어서도 단토는 대중문화를 다양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375) 삐에르 부르디외 저, 최종철 역, 『구별짓기上』, 새물결출판사, 2006, p.22.


376) Bourdieu, Pierre., Johnson, Randal, The Field of Cultural Production : essays on art and
literature, Cambridge :Polity, 1993. p.224.
377) Danto, Arther., Connections to the World, p.xx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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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고, 무수한 아이디어들이 관여하며, 어떠한 유행이나 관행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본다.378) 따라서 단토의 미에 대한 견해는, 사람들이 대중문화와 공통
의 문화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감정을 표현하는 감각의 상호관계
속에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과 주변을 목적에
맞게 아름답게 표현함으로써 도덕적인 가치를 강조한다.379) 나아가 단토는 제
례나 결혼 등의 의식(儀式)은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사람들의 태도와
기질로 가득 차 있고, 의식이 사람들의 개성과 공동체 정신을 대표할 수 있다
고 생각하며,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나타낸다고 본다.
단토는 부르디외가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미적 존재론을 객
관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을 제시한다고 보고, 그가 미학을 사회적 관계의 지평
에서 논한 점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부르디외와 단토의 이론은 문화적 수단
을 이용하는 강하고 역동적인 미학적 행동을 설명함으로써 사회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이끌어낸다. 부르디외와 단토에게서 ‘미학’은 대중문화의 맥락에
서 재구성되어야 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사상가는 모두, 대중
문화가 저급한 기준에 맞춰진 가볍고 실용적인 목적을 띠는 것이 아니라, 창
조적이고 방향성을 지닌 의식임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미학을 사람들의 감정
과 인식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묘사하기 위한 구체화된 의미로
이해하며, 태도와 성향도 이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다음으로는 파리나스의 제3영역의 미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단토의 ‘제3
영역의 미’는 현재까지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파리
나스가 제3영역의 미를 고찰한 내용은 단토의 문화와 관련한 미개념을 비교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380) 파리나스는 단토의 미학이론이 문화를 통한 행

378) Farinas, Rebecca Lee., ‘THE AESTHETIC AGENCY OF POPULAR CULTURE IN THE WRITINGS
OF PIERRE BOURDIEU AND ARTHUR C. DANTO’, p.8.
379) Ibid, p.9.
380) ‘제3영역의 미’라는 단토의 개념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3영의 미를 직
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연구는 레베카 파리나스의 학위논문이다. 디아뮈드 코스텔로는 『미의 학대』에
대한 서평에서 단토 미개념 전반에 대해 검토하였으나 제3영역의 미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
서 현재까지 필자가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는 단토의 제3영역의 미는 비교하여 언급할 수 있는 논의가
제한적이다. 파리나스는 부르디외와 단토의 미학이론을 비교한 자신의 논문 마지막 장에서 ‘제3영역의
미’라는 제목으로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파리나스는 단토의 제3영역의 미에 대한
논의에서 대중문화가 사회변화의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측면임을 제시하며 대중문화에서의 미개념
에 대해 단토와 부르디외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논증하였다. 파리나스는 사람들이 문화에 참여하는 것
이 예술과 철학을 통합시키는 일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 단토의 미학 개념이 문화와 관련하여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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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과 지식에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고찰해 세 가지로 정리한다.381) 첫째, 어떠
한 개념을 구현하고 제시하는 행동과 지식이 통합된다는 점이다. 이는 단토가
팝아트에 경도되었던 1960년대 당시 예술을 철학적으로 논하면서 예술 본래
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하였음에도 예술의 비판적인 반응과 정치적 행동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둘째, 예술에서 표현이 지니는 주요한 특성이 문
화전반에 걸쳐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단토가 처음 예술계에 대해
언급할 당시 미국에서 문화는 대중성이 강조되면서 일상의 미적 측면이 부각
되었고, 보다 다원적이고 다양한 문화는 서구 문화의 원동력으로 부상하고 있
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레디메이드나 플럭서스 미술처럼, 예술적 표현과 일
상적 표현이 문화 속에 함께 놓이게 했다. 셋째, 예술과 표현은 행동하는 지식
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리나스는 자신의 핵심 주제로 ‘미학이 사회 변화
의 가장 강렬한 힘’382)이라는 점을 다루면서, 단토가 미학의 근본적인 부분에
신체적이고 인지적인 행동을 포함시킨다는 점에 주목한다.383)
파리나스는 단토가 심미적 미에 천착하는 전통적인 미학을 의미의 미학으로
변경한 점을 주요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384) 예술의 지성적인 개
념이 단토에게는 사람들의 감정과 이념들을 대표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보이
는 반응은 해석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리나스는 단토 미개념의
지성적인 측면인 의미에 방점을 두어 조명하는 데에서 논의를 끝내고 있다.

과 지식을 어떻게 관련시키는지를 연구한다. 이를 통해 예술의 표현은 행동하는 지식임을 결론적으로


주장하며, ‘미학이 사회변화의 가장 강렬한 힘’이라는 자신의 중요한 주제의 논지를 정립시킨다. 이처
럼 미학이 예술과 문화, 개인과 공동체 간의 상호 관계성 속에 있다는 관점은 행동, 지식, 역사, 예술
에 대한 단토의 철학과 연결된다. 이 모두는 사람들의 표현 속에서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창의적인 의
도들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본다.
381) Farinas, Rebecca Lee., ‘THE AESTHETIC AGENCY OF POPULAR CULTURE IN THE WRITINGS
OF PIERRE BOURDIEU AND ARTHUR C. DANTO’, p.83.
382) Ibid, p.83.
383) Ibid, p.83.
384) 파리나스는 『미의 학대』에서 미보다 미학에 중점을 두어 고찰하는데, 미적 개념들과 예술작품들은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자기 성찰적인 문화 속에서 나타나기에 현상에 대한 개방성을 가
지고 있다고 하였다. 파리나스는 기존의 미학개념과 차별화된 단토의 미학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
의 미학에 대한 관점은 미의 개념, 우리가 시각적 감각으로 사물의 색채를 의식하게 되면서 사물의 미
적 자질이 의식으로 전달되는 길을 통해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고 지적한다. 그리
고 계몽주의 감성에 대한 이론가들과 블룸스버리 직관론자들에 이르기까지 미적 감상은 어떤 직관을
전제로 한다고 받아들여졌으며 미학적 술어에는 선함이 도덕적 감각에 의해 직관된 것으로 포함된다.
그러나 파리나스에 따르면 단토에게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이해는 감각자극이나 열정의 모드보다는
지적 작용에 훨씬 더 가깝다. (Rebecca Lee Farinas, 앞의 논문, pp.103-104.)

- 153 -
이는 파리나스 역시 단토의 미개념이 기존의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철학적 방
식에 따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단토 연구자들이 그의 후
기 미개념을 해석할 때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태도 가운데 하나이다. 단토는
그간 경시되었던 미의 역할을 재규명함으로써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예술을
의미있게 만드는지에 대해 재고한다. 단토 예술의 정의인 ‘구현된 의미’가 예
술만을 지시하기에는 그 외연이 너무 넓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3의
조건을 추가하기를 거부하면서 예술의 정의에 미적특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미는 분명 예술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주요한 특질이기 때문에 말년
의 저서에서 이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즉 미가 감정의 변화를 이
끌어 의식의 다양한 경험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보편개념임을 직시하게 된 것
이다. 제3영역의 미 또한 문화를 통해, 일상적인 삶의 미적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미화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단토는 이미 1960년대부터 예술과 문화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인지하고 사람들 간의 상호관계 속에 나타나는 태도는 예
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봄으로써 표현과 그 표현에 대한 해석의 문
제에 관심을 둔다. 단토는 자신의 예술철학 제3권인 『미의 학대』가 지닌 철
학적인 기여가 내재미와 외재미의 구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이라는
객체의 속성이 의미를 구현하는 작품의 속성으로 전달되는지를 구분한 것이라
고 한다.385) 이 말은 심미적 미가 작품의 의미와 만나는 지점에서 ‘내재미’가
생겨난 부분을 설명한다. 그러나 단토는 제3영역의 미에 대한 논증을 철학적
기여라고 확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필자는 미화를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재
해석 한 제3영역의 미가 이 저서의 핵심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미화의 규범미
와 내면미가 만나 ‘이상미’가 되면서 미가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지니게 된
다는 점은 미가 예술과 삶에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미의 보편적 가
치는 심미적 미의 역할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단토의 미개념에 대한 최근
의 연구에서조차 심미적인 미에 대한 조명은 간과되거나 의미에 종속되면서
중요하게 분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우리는 단토가 전반기 예술철학에서 미를 배제했다가
뒤늦게 미개념을 논하게 된 이유에 대한 물음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토는 예술의 정의에서 제시한 두 가지 조건인 ‘어떤 것

385) Danto, Arther., 'Kalliphobia in Contemporary Art', Art Journal.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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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관한 것(aboutness)’과 ‘그것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embody its meaning)’
이외에 제3의 조건을 추가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므로 단토의 예술정
의는, 어떤 대상이 의미를 구현하고 있지만 예술작품이 아닌 경우를 포함할
수 있다. 따라서 정의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조건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단토는 미를 포함한 예술작품
의 특질은 그저 구현의 한 양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의미의 구
현’으로 이루어지는 예술 이외의 양상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 예술계의 이
론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가 우려했던 것처럼, 그 이론에 포함되지
못하는 대상은 배제해야하기 때문에 애초에 모든 예술을 포괄할 수 있는 정의
를 찾고자 했던 의도와 어긋나게 된다. 단토는 그의 예술정의에 대한 비판을
일부 인정했음에도 이러한 이유로 제3의 조건을 추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런데 단토가 추가할 수 없다고 말한 제3의 조건에는 미나 미적특질이 고려되
어질 수 있다. 만일 미가 예술의 정의에 포함된다면 이론의 틀을 갖게 되고
다른 종류 혹은 다른 문화의 미를 소외시키거나, 의미 외에 외연적인 것을 인
정해야함으로 기존의 정의와 모순된다.
따라서 단토의 미개념은 예술을 정의하기 위한 이론이 아니다. 그는 예술과
삶에서 미가 하는 역할을 확인하면서 그 보편적인 가치를 재고하고자 한 것이
다. 이를 위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의 화용론적 특질에 주목하였던 것
이다. 그는 화용론적 특질을 의미론적 특질과 함께 예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로 보고자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결론을 내
리지 않는다. 그러나 단토는 『미의 학대』에서 미가 마음을 움직여 변화시키
는 힘을 지닌 미적 특질로서 예술과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핵심
내용으로 삼았다. 이것은 예술이 문화적 중요성을 유지하면서도 객관적 제약
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알려져 온 예술의 종말을 예측하게 한다.
그리고 예술의 종말 이후에야 비로소 오게 된 다원주의에서는 미와 예술의 구
분 역시도 모호해진다. 그는 결국 예술계의 제도와 예술과 일상의 경험을 구
별하는 이론은 ‘약간 시들어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386) 단토는 예술과 문화
가 함께 움직이는 순간을 설명함으로써 미가 사람들의 이해를 바꾸고 자기 성
찰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본다. 이제 사람들은 예술을 자신에 대한 것으로 생

386) Danto, Arther., The Philosophical Disenfranchisement of Ar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6, p.115.

- 155 -
각하고 점점 더 대중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에 대해 사유한다. 이러
한 관점에 의해 단토는 예술에서의 미를 예술의 의미와 관련된 내재미로 국한
하고 외재미의 경우는 예술과 별개로 본다. 그리고 미적 태도가 일상적인 삶
에 관여하여 문화로 드러나는 제3영역의 미를 창안하였던 것이다. 단토는 제3
영역의 미가 다원주의 시대를 위한 대안적인 미개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다. 다원주의는 사람들의 삶을 서로 의미 있게 만드는 상호적인 관계망에서
다원적 견해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패권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라기보
다는 문화자본의 개방적 관계와 공정한 분배를 보여주는 것이다. 삶의 방식으
로서의 미의 의미는 어떤 것에 결합된 미의 작용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심
미성은 예술가가 은유와 분위기를 통해 표현할 때, 예술작품의 감상자와의 소
통을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심미성을 토대로 한 사람 간의 열린 관계는 사
회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지형을 만들어낸다.
단토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예술을 이해하고자 하는데, 감상자들은 예술작품
이 표현한 것을 해석하고 그 가치를 인식함으로써 세계 즉 문화에 참여한다.
그리고 예술가의 표현에서 미는 중요한 굴절인자로서 예술가의 의도를 전달하
는 데 기여한다. 이때 예술은 문화의 부분이면서도 개별적인 관점을 보유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관련한다. 관객의 수용과 참여는 그의 예술철학과 연관하여
자주 논의되지만, 덜 주목을 받았던 부분이다. 단토의 미개념은, 대중적이면서
진보적인 면을 지니며, 문화와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은유나 심미적 자극
으로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미는 인간 의식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의 구조와 수사학의 구조가 하나의 조각이라 보는 것은 가능하다. 단
토는 예술가의 독창성에는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힘이 내재되어 있고, 다양한
세계와 통합되는 과정이 제시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단토가 미학을 사람들
의 비판적 태도와 사회행동주의에서 보여주는 자율성으로, 그리고 그와 관련
하여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가치 있는 관계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고찰한다고
본다. 즉 예술에 국한해 사유하던 미가 사회문화적인 측면으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단토는 문화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하는 심미적 역동성에 주목하
여 미의 보편적 가치가 예술과 인간의 삶에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3영역의 미는 미학과 사회적 행동에 관한 포괄적이
고 다원적이며 생산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단토는 제3영역의 미가 예술의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제3영역의 미는 특정

- 156 -
예술작품에 관한 것이 아니라 문화에 관한 것이며,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미적 요소이다.

- 157 -
Ⅴ. 결론

단토의 미개념에 대한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그의 예술철학 전기의 성과,


즉 의미론적 관점에서 개진된 ‘의미의 미학’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러
나 적어도 그의 후기 예술철학에서는 미개념이 예술과 일상적 삶이라는 두 측
면에서 전개되었다. 이때 필자는 단토가 화용론을 통해 미의 역할을 조명하려
했다는 것에 주의하면서 그 의미를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단토의 미개념이
오늘날의 예술상황과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데 갖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도출
해내었다.
첫째, 단토가 예술에서는 내재미, 즉 의미에 내재하는 미를 제시하여 20세
기의 시작 이래 예술에서 배제된 미의 자리를 다시 마련한 것이다. 단토는 미
와 예술이 서로를 함의하는 선험적 유착 관계라는 견해로부터 생겨나는 혼란
을 해소했다. 그리고 전위예술에 의해 미가 학대당한 이유를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 의한 것임을 논증하여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단토는 미가 지닌 본래의 보편적 가치에 다시금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
고, 예술에서 미의 역할을 내재미로 밝혀냈다. 둘째, 단토가 일상적 삶에서는
표준적인 규범미와 내면성의 만남에서 비롯된 이상미를 곧 제3영역의 미로
제시한 것이다. 단토는 미에 대한 논의를 예술에 제한하지 않고 일상적 경험
으로까지 확대하여 문화철학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필자는 제3영역의 미가 행동의 미학이 될 수 있고 윤리적 특성을 띨 수 있다
는 것을 논증했다. 셋째, 단토가 예술에서 내재미와 일상적 삶에서 제3영역의
미는 모두 심미적 특성과 의미론적 특성이 결합된 구조임을 제시한 것이다.
단토는 자신의 미개념 구조에서 심미적 특성이 화용론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필자는 단토가 전기 철학에서 예술개념을 위해 수사법, 스타
일, 표현 등과 같은 개념들을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387), 후기 철학에서 미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화용론을 도입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화용론
에서 미적 특질의 굴절기능은 예술이 어떤 점에서 유용한지, 미가 삶에서 어
떤 가치를 지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와 같은 단토의 미개념이 갖는 세 가지

387) 이에 대해서는, The Transfigyration of the Commonplace, p.165 참조.

- 158 -
의의를 고찰하면서, 나아가 미가 예술과 일상의 삶에서 내재미와 이상미로 드
러나는 지점을 검토하면서, 단토가 20세기 이후 위축된 미의 입지를 확장시켰
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때 필자는 미가 마음을 움직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
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힘을 지닌다는 단토의 주장에 생각을 같이 했다.
여러 단토 연구자들은 단토가 후기 철학에서 미를 다룬 것이 전기 입장과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단토가 예술을 정의할 때 미를
거론하지 않았던, 아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가
예술철학을 시작했던 당시 뉴욕의 분위기는 예술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의미
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담론을 끌어내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위예술
이 지향한 사회비판적인 태도가 계속되었고 예술에서 미가 들어설 자리가 없
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단토 자신의 예술철학적 관점 때문이다. 다시 말
해, ‘구현된 의미’라는 하나의 정의에 미나 미적 특질과 같은 다른 조건을 추
가할 경우, 그의 예술철학이 모더니즘과 같은 배타적 이론이 될 가능성이 있
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토의 초기 관점은 후기 미개념에 대한 논의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여기서 미의 기능인 화용론적 특질이
우리 안에 모종의 변화를 일으키는 동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한다. 내재
미와 제3영역의 미에서처럼, 외재적이거나 규범적인 미가 의미나 도덕적 이상
과 결합할 경우, 그것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통해 진리와 연
결되면서 단순한 감각적 경험이나 표현 이상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토가 예술의 영역에서 삶의 영역으로 확대한 제3영역의 미는 미
의 실질적 용도인 굴절기능을 통해 매 순간 우리 내면과 행동에 적용될 수 있
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미적 가치의 효용성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필자
에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보였다. 그럼에도 대중문화나
일상과 관련한 제3영역의 미에 대해 단토가 생존 시에 언급한 내용은 예술에
서의 미에 비해 인색했다. 필자가 지금까지 단토가 제3영역의 미에 관해 제기
한 주장에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필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토가 후기철학에서 예술을 정의할 때
미를 거론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일반인은 자연세계의 완전함을 표현하는 미
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20세기 이후 현대미술계는 전위예술의
영향으로 미의 배제라는 사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사회·정치적 관심이 현대미
술의 핵심적 주제로 자리 잡으면서, 미를 논하는 것 자체가 진부한, 아니 심지

- 159 -
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60년대 이후 예술은 철학적으로 사유되었고 의미가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절대적 요소로 간주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예술 환경 속에서 미의 부재가 가
져온 공백을 단토가 직시했다고 보았다. 또한 1960년대 그리고 그 이후는 예
술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요구된 변혁기였고, 단토의 초·중기 철학은 그 변화
의 정체성 이해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나아가 예술에 대한 단토의 초 중기
의미론적 정의는 자연히 예술에서 미와 미학을 배제하는 시대의 흐름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반해 그의 후기 철학은 미의 문제와 씨름했다. 필자는 그 이
유를 단토가 예술과 삶에서 미가 온전한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미에 대한 우리의 본래적 욕구에 주목하고 의미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예술적
경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이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단토가 화용론이라는 변화 유도성 용어로 설명하는 미의
용도, 즉 미가 어떻게 예술과 우리 삶에 작용하고 의미를 가지는지를 밝히는
대목이라고 판단했다.
고대 이래 2000년간 미의 객관성을 모색하고 확보하려는 거대이론이 있어
왔고, 여기에 맞서는 관점들 또한 여러 방식으로 공존해왔다. 18세기 이후로
는 미를 어떤 하나로 정의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눈길이 보내지곤 했지만, 그
럼에도 식자들은 미를 정의하는 작업에서 손을 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우
리는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예술행위 및 미적 태도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적 특질의 의미를 해석할 방법이 우리에게 딱히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미적 인식을 통해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의식을 경
험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미는 오랫동안 시련을 겪었지만 이러한 역할을 묵묵
히 해왔으며, 앞으로도 이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
다.
실로, 필자는 예술계의 일원으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습관적으로 미를
예술 안에서 사유하려 했고, 이로 인해 예술과 미를 분리하여 일상과 연결시
키는 방식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갖는 것에 소홀히 했다. 그러나 필자는 단토
에게서 미의 보편성이 예술에 우선하는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미의 필
연성을 통해 다시금 예술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술은 삶에 속하는 것이고,
미는 예술과 삶을 빛내는 주된 가치라는 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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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tudy of Arthur Danto's concept of beauty

Kim, Eun-Jung
Department of Philosophy
The Graduate School
Hanyang University

This paper considers Arthur Danto's aesthetic concept as a pluralistic


interpretation that appropriately explains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artworks and their aesthetic attitudes in everyday life, and aims to clarify
and defend the structure of behavioral aesthetics through the universal
values of beauty. There are two cores of arguments in Danto regarding
the concept of beauty. First, when beauty is inherent in the meaning of a
work of art, it leads to artistic excellence. Second, beauty is a value that
can be discussed in a wide range of areas of culture as a way of life and
symbolic system. The concept of beauty raised by Danto contributes to
interpreting diversified modern art and popular culture and prospecting the
future. He argues that beauty has the power to change something by his
focusing on two concepts, intrinsic beauty and the third realm beauty in
order to express his own opinion. This perspective makes us reconsider
the role of beauty, which has not been treated as important in art since
the 20th century and helps to clearly define the structure in which beauty
acts as an aesthetic attitude in everyday behavior.
The starting point of the discussion is to figure out the motivation of
discussing the concept of beauty by finding out the reason why he
emphasizes the universality of beauty and claims that beauty leads to
change in art and life in his second half, beyond Danto's focus on defining
art from a semantic point of view in his first half of the philosophy of art.

- 169 -
In addition, he paid his attention that today's art museums are indifferent
to aesthetically reproducing works according to social and political changes
and that they do not meet visitors' expectations by presenting works that
adopt the shaping social discourse and realization of meaning as their main
method of art production. It is also good point for him to find the cause
and find a solution.
As a result, the achievements of his aesthetic consideration could be
summarized in several ways. First, it was to expand the position of beauty
that has become insignificant in modern art by arguing that the abuse of
beauty in art by avant-garde artists is a temporary phenomenon arising
from a social and political standpoint. In other words, the long-standing
customary thinking that art has aimed at beauty has formed a confused
perception of beauty. Beauty is only one of the various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art, but the tendency to equate beauty with art has led
to the point of exclusion of beauty by avant-garde artists. Next, Danto
classified the types of beauty and secured a logical structure that relatively
clarified the characteristics of natural beauty & artistic beauty and explains
the spiritual aspects of artistic beauty. In this process, while highlighting
the aesthetic characteristics of natural beauty, the semantic characteristics
of art beauty are separated from this. And by presenting the intrinsic
beauty of aesthetic beauty revealed through the meaning of works of art,
he once again secures the position of beauty in art. Lastly, unlike natural
beauty and art beauty, which have been mainly discussed traditionally, it is
a re-examination of the beautification that has been lightly treated due to
its practical use. He reinterprets beautific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cultural research in the term "Third Realm Beauty" to reveal the value of
the concept of beauty that explains the diversified era after the end of art.
Danto argues that beauty is the most powerful refractive factor that brings
about the tremendous surprise of human consciousness. The reason for this
is that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elements that move the mind
because humans are emotional beings. To argue this, he first organize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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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used perceptions of beauty and clearly distinguishes beauty and art.
The reasons for Danto's separation without including beauty in the
definition of art are as follows. That is, his art definition can be another
art theory and is likely to be an exclusive theory if other conditions such
as beauty or aesthetic characteristics are added extra to one definition of
'implemented meaning.' Instead, Danto reconsiders beauty from a cultural
point of view, including art, through the concept of beautification. While
partially sharing the characteristics of natural and artistic beauty, it is
noted that beautification is close to everyday life, so that it can be newly
established as the 'Third Realm Beauty'. In addition, as interest and
research on popular culture become active due to changes in consciousness
and media development today, he considers the aspect that the universality
of beauty separated from art is revealed in everyday life and popular
culture. I think this concept of beauty of Danto pays attention to the
dynamics of beauty and sheds light on the ethical aspects of behavioral
aesthetics. The existence of the power that beauty changes is possible
because humans are beings of emotions and autonomy, and aesthetic
consciousness can represent people's individuality and community spirit, so
it can represent certain values. Therefore, Danto contributes to showing
the virtuous cycle of beauty by arguing that beauty becomes a refractive
factor that moves the mind in combination with meaning or innerness.
Danto takes the intrinsic beauty and the third realm beauty as two axes
explaining the function of beauty in art and daily life, and builds a new
role of beauty with a pragmatics that has traditionally existed. As such,
the concept of beauty he presented becomes a key element and driver of
change that elicits the excellence and valuable behavior of art. As Danto
emphasized again, beauty is an important aesthetic element with
universality like truth and goodness. In this regard, although the concept of
beauty of Danto is relatively poor in relation to popular culture or daily life
compared to artistic-philosophical discussions, it has the justification to
further study his arguments or the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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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 words: Beauty, Aesthetic characteristic, Intrinsic beauty, Third realm
beauty, Refractive factor, Pragmatics, Behavioral aesthetics, The concept of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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