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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예술학연구』 제64집 (2021.10), pp.

6-33
Journal of Aesthetics and Science of Art, vol. 64 (Oct. 2021), pp. 6-33
DOI http://dx.doi.org/10.17527/JASA.64.0.01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1970-1990년대 정체성 담론을 중심으로
The Issue of Mediums in Korean Contemporary Art:
Focusing on the Identity Discourse from the 1970s to the 1990s

한정민 / 상명대학교 강사
Jung-Min Han / Lecturer, Sangmyung University

Ⅰ. 들어가며
Ⅱ. ‘저항과 회고’: 예술과 삶의 지형에서 매체 이슈
Ⅲ. 사물의 세계 탐구와 ‘의식의 각성’
Ⅳ. 복귀와 쇄신: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
Ⅴ. 매체 분화와 ‘포스트-정체성’
Ⅵ. 나가며

*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21년 여름 특별학술대회 기획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


이며,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9S1A5B5A07110098).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7

국문 초록

본 연구는 1970-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 논의를 물질적 실천으로서의 ‘매체’를 중심으로 다시 살피는 것을 목


표로 한다. 해방 이래 한국 현대미술은 서구로부터 받아들여진 가치관과 전통의 지속·발전을 지향하는 가운데 역동
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미술 논의 또한 서구 문화 수용이나 민족·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정체성 담
론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다만 이처럼 계보화되거나 이데올로기적인 관심사를 바탕으로 기
술하는 미술사 쓰기가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과제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
대미술을 새롭게 읽어내고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은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미술의 실천을 매
체적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각 시기별로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가 서로 뒤섞이거나 충돌하는 가운데 문화적 오브제,
산업 오브제, 자연물 또는 비물질적 물질, 신체와 행위 등 각 시기의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사물과 물질들에 대
한 감성적 반응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적 스코프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지닌 예술적 에너지와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으리라 판단
된다.

핵심어|단색화, 매체, 민중미술, 실험미술, 정체성,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정체성, 한국 현대미술

ABSTRACT

This study aims to reexamine the discussion of Korean contemporary art from the 1970s to the
1990s, focusing on “mediums” as a material practice. Since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Korean art has unfolded dynamically while pursuing the continuation and development of values and
traditions accepted from the West. Discussion on art is also not much different in that it was carried
out centered on the discourse of identity based on the acceptance of Western culture or ethnic and
nationalist ideology. However, it is questionable how faithful the writing of art history, which was
based on genealogical or ideological concerns, was to the task of “what is art?” In this regard, it is
an urgent task to find the possibility to read and describe Korean contemporary art in a new way. If
we look into the practice of art from the point of view of mediums, we can confirm that while old
and new media were mixed or collided with each other in each period, there were various emotional
responses to objects and materials according to the conditions and environment of each period, such
as cultural objects, industrial objects, natural objects or immaterial substances, body and actions, etc.
By understanding the scope of mediums, it will be possible to open up new possibilities for getting one
step closer to the artistic energy and values of Korean contemporary art.

Keywords|Dansaekhwa, Experimental Art, Identity discourse, Korean Contemporary Art, mediums,


Minjung Art, Post-Modernism, Post-Identity
8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Ⅰ. 들어가며

한국 미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서구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이래, 해


방을 맞았으나 이내 한국전쟁에 휘말리는 가운데 또 다른 상황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 속에서 한국 미술은 전통과의 단절을 뼈저리게 경험하면서 한편으로는 서구 콤플렉스나
새것 콤플렉스에 휩쓸리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의 긴장 관계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펼쳐졌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에는 민족주의에 기초한 국
민국가 건립 프로젝트에 기여하면서 서구에서 비롯된 새로운 모더니티 획득이라는 목표가 동
시에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미술 실천은 다양한 각도로 서구로부터 새롭게 받
아들여진 장르 개념 아래 재구성되어 왔다. 지필묵에 기초한 서(書)와 화(畵), 생활 속의 민예(民
藝) 같은 전래의 예술 형식과 재료·기법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설 자리를 위협받게 된다. 그에
따라 미술계는 회화(동양화, 서양화)와 조각이라는 두 장르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며, 전통적
인 예술 세계는 해체되어 그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었다.
이 글의 목표는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 중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성격의
한 단면을 밝히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는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왜
대화하고 있는가?’1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매체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첼(W. J. T. Mitchell, 1942- )의 견해에 기대고 있다.
그는 ‘그림(picture)’을 산출하는 물질적 실천이자 이미지가 살아 움직이는 서식지 혹은 생태계
로서 매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나아가 그는 매체에 ‘말 걸기’를 통해 이미지를 탐구할 것을
제안하며 어떻게 이미지가 등장하고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고찰한다.
1970-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조명에서 매체적 관점과 더불어 고려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과제는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이다. 서구 현대미술의 수용이라는 시대적 요청 속
에 펼쳐진 1950년대 말 앵포르멜 운동,2 미니멀리즘이나 모노하(物派)와의 관계 속에서 펼쳐진

1.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미학예술학회와 일민미술관 공동 주최의 2019년도 특별기획심포지엄 <동시대 예술


과 미디어, 진실과 ‘탈-진실’>(2019.04.12, 일민미술관)의 기획자 이인범(李仁範, 1955- )의 시각에 크게 빚지
고 있다. 그는 본 심포지엄의 기조 발제에서 변화된 미디어 환경이 예술에 제기하는 이슈 그리고 어떻게 예술
의 역사를 다시 읽고, 쓸 수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이인범, 「역사, 진실 그리고 예술에 대하여: <동시
대 예술과 미디어, 진실과 ‘탈-진실’>에 붙여」, 『미학예술학연구』 57집 (2019), pp. 135-158 (DOI: 10.17527/
JASA.57.0.05), p. 143 참조.
2. 이경성(李慶成, 1919-2009)은 해방 이후 한국의 미술대학에서 교육 받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 태동한 한국 앵포
르멜 운동이 새로운 가치 수립을 위해 전통 부정의 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논한다. 이경성, 「전통미의식과 현대미
의식 - 문화의 종적(縱的)인 기점에서」, 『홍익미술』 제2호 (1973), pp. 84-92, p. 91.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9

1970년대 단색화(Dansaekhwa) 운동 그리고 이에 대립각을 세우며 전개된 1980년대 민중미


술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을 기술하는 데에서 서구 수용이라는 과제 이상으로 문화정
체성 이슈 역시 중요한 문제로 설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를 앵포르멜, 단색화, 민중미술 등으로 계보화해 기술하는 미
술사 쓰기가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과제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서구문화 수용이나 국가·민족문화 정체성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심사에 묶이게 되는 것은 아
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사를 새롭게 기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
색하는 일이야말로 절실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연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첫째, 1970-1990년대 한국 미술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문화적 기억을 담보해내고 있는 물질
적 실천들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둘째, 현대미술 전개의 각 시기마다 주목할 만한 매체 이슈는 무엇이며, 이를 통해 우리 미술
사는 어떻게 새롭게 조명될 수 있는가?

Ⅱ. ‘저항과 회고’: 예술과 삶의 지형에서 매체 이슈

오늘날 예술의 문제에서 매체 이슈는 인터넷 통신을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비약적
인 발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첼이 논한 바 있듯이 매체는 “이미
지가 살아가는 환경, 혹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가 다시 되받아 말을 건넬 수 있는 페르소나
혹은 아바타”3이자 인간이 무엇인가를 제작한 이래 “인간을 확장, 확대시키지만 동시에 인간의
능력을 여러 가지로 분할”4하는 ‘문화적 역사’의 한 부분으로 태고부터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논하고자 하는 ‘매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흔히 우리말 매체로 번역되
는 미디엄(medium)의 사전적 어원은 “매개(agency) 또는 무언가를 하는 수단(means)”을 뜻하
는 단수 명사이자 과학, 컴퓨터공학,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또한
미디어(media)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즉 매스미디어를 지칭하거나 멀티미디어, 뉴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예술 형식을 일컫곤 한다.5 다만 이러한 용례를 넘어 “그림이 살아

3. 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김전유경 옮김 (그린비 2010), pp. 304-305.


4. 허버트 마셜 매클루언,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김상호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1), p. 163.
5. 미디엄(medium)이란 ‘감각적인 인상, 물리적 힘을 전달하는 매개’, ‘예술가, 작곡가 또는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
또는 형식’,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는 영매’ 등으로 정의된다. 미디엄에서 파생된 미디어(media)는 ‘방송, 출판
및 인터넷과 같이 집단적으로 간주되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주요 수단’을 일컬으며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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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게 되는 서식지 혹은 생태계”6이자 “단순히 물질적 재료가 아니라, 기술(technology), 기


량(skill), 전통, 습관을 수반하는 물질적 실천”7으로서 매체에 관한 인식론적 고찰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조형예술의 맥락에서 제작자의 의지·의식·의도를 결정하는 ‘물질적 현상’들이 지니
는 “변화의 법칙, 현상들의 발전의 법칙”8을 해명하는 일은 곧 작품을 둘러싼 ‘신비한 베일’9을
벗기고 이를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밝힌 몇 가지 질문으로부터 출발하게 된 본 논문의 연구적 관심은 한국 현대미술을 바
라보는 하나의 시각 혹은 스코프로 ‘매체’를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물감의 텍스처가 지니는 물
질성과 화면의 구도, 형식의 순수성을 탐구했던 1950년대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유영국
(劉永國, 1916-2002), 김환기(金煥基, 1913-1974) 등의 형식 실험, 미술의 내재적 형식뿐만 아
니라 환경, 시간과 공간으로 진출을 표방하며 오브제, 퍼포먼스, 비디오 등의 매체 확장을 시도
했던 1960년대 말의 실천들, 민속예술, 걸개그림 등 전통 매체와 판화, 만화, 대중적 미디어의
가능성을 재소환하는 1980년대 매체운동 등 한국 미술은 다양한 실천을 바탕으로 미술의 문제
에 대해 응답하고 있다.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E. Krauss, 1941- )는 매체란 “기억의 한 형태(a form of
remembering)”이며 이 다양한 형태의 매체들은 “회화, 조각, 사진, 영화와 같은 특정 장
르의 실행자들(practitioners)의 집단적인 기억에 내재된 ‘너는 누구인가’를 위한 발판(the
scaffolding for a ‘who you are’)”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다.10 다시 말해 각각의 서로 다른 예술
장르는 그것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하나의 지지대로서 미학적 매체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는 ‘기억의 형태’로서의 매체가 한국 현대미술을 탐구하는 하나의 단서로 고찰될 수 있는 가
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현대미술가들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반
향으로서 자신들의 언어로 다양한 질문을 던져왔음을 관찰할 수 있다.

체를 언급할 때, 그리고 예술가가 사용하는 재료나 형태’라는 의미에서 복수형 미디어(media)로 주로 사용된다.
Oxford Dictionary, https://en.oxforddictionaries.com/definition/medium 및 https://en.oxforddictionaries.com/
definition/media 참조 (2021년 8월 15일 최종 접속).
6.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p. 300.
7. Raymond Williams, “From Medium to Social Practice”, Marxism and Literatu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7), pp. 158-164;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p. 300에서 재인용.
8.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Ⅰ(상)』,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2020[1989]), p. 17 참조.
9. 마르크스, 『자본론 Ⅰ(상)』, p. 103.
10. Rosalind Krauss, Under Blue Cup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11), pp. 2-3 참조.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11

Ⅲ. 사물의 세계 탐구와 ‘의식의 각성’

한국 현대미술은 사회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가파른 변화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재현과 추상


논쟁, 동양화와 서양화 문제, 한국성과 국제성이라는 혼종적 이슈는 1970년대 미술계를 가로
지르는 주요 화두였다.
라파엘로의 작품을 향해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물감의 덩어리이냐!”11라고 외치는 르누아
르의 경탄을 인용하며, 서구 회화의 발전 단계를 서술하고 있는 미술비평가 이일(李逸, 1932-
1997)의 「현대회화를 이해하는 길」 (1976)은 순수 조형 언어로서 추상 이슈가 발단되는 흐름
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여기서 주관적 감정이나 색과 형의 특수성에 조건 지어지지 않는 궁극적
실재에 도달하고자 했던 예술가의 추구는 ‘항구적 요소로의 환원(還元)’이라는 그의 명제와 연
결되는 지점이다. 즉 2차원 평면의 편평함을 꿰뚫는 저항하는 물질(resistant matter)을 매개로
수많은 구상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공명했던 오랜 회화 시스템에 대응하여 특정한 재료,
기법, 물성, 형식 등 조형 언어로 재귀적(recursive)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연장에서
당대 한국 미술의 주된 관심 또한 각 장르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특히 단색화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전환기에 처하여 새로운 문화창조의 사명”12이라는 시대
적 화두 속에서 조선시대 문인 전통을 담보하는 모노톤을 조형 언어로 삼아, 한국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의식적인 집단운동을 선도했다. 그들은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캔버스, 천, 종이, 안료 등을 바탕으로 색채, 물성, 화면 구성과 질료의 형식화를 기조로 한 “무
(無)의 공간화, 반(反) 일류전격인 공간의 원초화에의 의지의 표명”13을 촉구했다. 즉 모더니즘
적 자기비판과 더불어 국가적·집단적으로 시도되었던 ‘한국적 정착’14 이슈는 전통, 향토성, 자
11. 이일, 「현대회화를 이해하는 길」, 『계간미술』 창간호 (1976), pp. 150-155, p. 150.
12. 박종홍, 박종화, 박목월, 곽종원, 조연현, 김형석, 「문예중흥 선언문」, 전국문화예술인대회 (1973년 10월 20일);
「문예중흥 선언문」, 『동아일보』 (1973년 10월 22일), 5면에서 재인용.
13. 이일, 「「70년대」의 작가들-「원초적인 것으로의 회귀」를 중심으로」 (1978), 『이일 미술비평논집: 한국미술, 그 오
늘의 얼굴』 (공간사 1982), pp. 128-145, p. 142.
14. 이일은 서구적 맥락과 구별되는 1970년대 한국 미술의 정체성 논의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50년경까지
의 우리의 현대미술이 어디까지나 서구적 콘텍스트 속에서 파악된 것이었다면 그 후의 미술은 이른바 ‘탈서구’
를 의식하면서 새로운 ‘한국적 정착’을 시도해왔다는 말이 된다.” 이일, 「현대미술과 오늘의 한국미술 -그 창조성
과 모방성-」 (1977), 『한국미술, 그 오늘의 얼굴』, pp. 120-127, p. 121. “일군의 ‘70년대’ 작가들 […] 의 개별성·
특수성을 묶을 수 있는 공통된 예술적 기조(基調)내지는 발상 […] 의 근원을 규정짓자면 그것은 ‘원초적인 것
으로의 회귀’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리라. […] 작가들에게 공통된 가장 두드러진 어법은 「단색주의(單色主意
: 모노크로미즘)」이다. […] 색채가 저네들에게 있어 물질화된 공간을 의미한다면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정신적
공간을 의미한다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이일, 「「70년대」의 작가들 - 「원초적인 것으로의 회귀」를 중심으로」, p.
131, p. 137, pp. 139-140.
12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연미, 백색담론, 선비정신 등의 논의와 궤를 같이하며 발전되었다.15 다만 전통, 한국성, 선비정


신 등으로 귀결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성 논의는 그 개념이 가지는 함의만큼이나 관념적이
고 모호한 실체로 닿는 듯하다.
다른 한편 국제주의와 산업화 및 경제성장 등 사회 변화에 따른 1973년 한국 미술가들의 상
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 조요한(趙要翰, 1926-2002)의 언설은 “순수하게 형식적인 실험”16만
으로는 귀결되지 않는 미술 현장의 상황을 대변한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 구조의 변화와 물질
적 토대의 변모로 야기된 세계 인식과 그에 따르는 예술적 자각이 기존의 정형화된 인식 틀을
재고하고 유예하는 실천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국제적 정보에 예민한 한국의 미술가들은 산업화의 과정에 있으면서도 일상생활의 기술화가 보

편화된 유럽 예술계의 고민을 앞당겨 경험하는 느낌이 있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 그리고 소득의

균등한 분배가 바람직하게 실시되지 못하였고, 기술화된 일상성에서 오는 고뇌 이전에 놓여 있으

면서도 우리의 미술가들은 산업화 이후의 예술의 속악성(俗惡性, Kitsch)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까닭은 국제주의 물결 때문이라고 직감된다.17

1960년대 후반을 거쳐 1970년대를 경과하는 동안 한국 사회에 불어온 국제주의의 물결은


예술을 둘러싼 관습적 재료와 기법을 넘어, 산업화 이후 생성된 사물의 세계나 새로운 기술적
토대로 관심을 확장한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현장에서 발표된 작품의 매체 유형은 다분화되었
으며 이는 크게 6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⑴ 근대적 미술 장르의 재료와 기법을 중심으로

15. 박서보(朴栖甫, 1931- )는 1973년 6월 무라마쓰(村松) 화랑에서 개최된 개인전에서 <묘법> 시리즈를 발표한
다. 이 작품과 관련해 그는 “나는 이조의 도공들이 아무 생각 없이 물레를 돌리듯이 캔버스 위에 직선을 무수히
그려보았읍니다”라고 언급하며 작품에 내재된 한국적 정체성을 조선 백자가 지니는 ‘무심성’과 연결지어 논하고
있다. 「전위화가 박서보 화전(畵展)」, 『경향신문』 (1973년 10월 9일), 5면. 그밖에도 “이조(李朝)의 문인화가 어
떤 물체를 종이 위에 옮겨 놓는 것보다 마음의 상태를 표현했듯이 묘법도 엷은 흰색의 바탕 위에 유희처럼 ‘그린
다’는 행위를 계속한다는 것”이라는 개인전 리뷰는 조선 시대 문인화의 미학적 특성을 서구 순수회화와 연결시
키는 한국적 모더니티를 전략적 태도로 취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단색화를 중심으로 하는 1970년대 미술 논
의의 지배적 현상이다. 「전시회 리뷰」, 『계간미술』 창간호 (1976), pp. 188-191, p. 191.
16. 서구 현대미술 읽기의 지배적 방식이었던 형식주의, 내용주의의 이분화된 계보를 넘어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가 창안한 ‘비정형(Informe/Formless)’을 바탕으로 이를 다시 읽어내고자 하는 이브-알랭 부
아(Yve-Alain Bois, 1952- )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아이디어는 모더니즘 미술의 총체적 구조들을 유예하고, 재
맥락화 하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브-알랭 부아, 로잘린드 크라우스,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정연심, 김정
현, 안구 옮김 (미진사 2013), p. 19.
17. 조요한, 「현대미술의 실험성에 대하여」, 『홍익미술』 제2호 (1973), pp. 55-60, p. 60.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13

하는 ‘올드미디어’, ⑵ 새로운 기술 및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한 ‘뉴미디어’, ⑶ 문화적 기억을 담


은 사물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에 내재된 관념과 가치를 현재적 맥락 위에
소환하는 ‘문화적 오브제’, ⑷ 유리, 비닐, 고무, 파이프 등 산업 사회의 생산물 또는 폐기물을
통해 당대 시대적 단면을 암시하는 ‘산업 오브제’, ⑸ 인간과 자연의 관계, 우주의 본성과 원리
를 현현하는 ‘자연물 또는 비물질적 물질’, ⑹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의 몸 자체를 매개로 삼는
‘신체와 행위’가 그것이다. 이처럼 사회 변화로 말미암은 매체의 다층적 표명과 그에 따른 ‘일
상성’, ‘기술시대의 예술’ 문제를 논하며 조요한은 그것이 “예술의 무화(無化)가 아니고, 예술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까지도 예술로서 받아들이려는 “예술의 확대””18라고 논하고 있다. “풍부한
색채, 그것이 나아가 생생한 회구(繪具) 자체의 제시로, 종국에는 손으로 조형한다는 사고를 벗
어난 오브제의 탈표현성으로 전개”19되어 가는 매체 인식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를 경
과하며 복합적 양상으로 펼쳐진다. 실험미술로 대표되는 작가들은 격동적인 사회 변화와 대면
하며 일상적 오브제나 폐품의 설치, 해프닝과 이벤트, 사진, 영화 등 예술이 아니었던 어떤 것
을 통해 기존의 지배적 가치에 저항하거나, 현실과의 괴리를 타계하고자 한다.20
일찍이 한국의 민속 오브제인 장승을 모티브로 한 청동 조각상 <설화>(1956) [도 1]라든가 재
래 생활 용기인 옹기로 자연이 가지는 생명력을 형상화 하는 <새싹>(1963), <고드랫돌>(1960)
등에서 민속, 일상, 무속 등 인간 생활의 양태를
담지하고 있는 사물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는
이승택(李升澤, 1932- )의 예술 세계는 종래의
현대미술 논의에 틈입하는 ‘문화적 오브제’로
살펴볼만 하다. 이승택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통
해 그의 작품 세계와 미학·예술학적 가치를 발
굴해 온 이인범은 초기작부터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의 세계 특히 노끈, 철사 등 “‘줄’ 오브제에 [도 1] 이승택, <설화>, 1956, 청동, 사이즈 미상, 작품 소실

18. 조요한, 「현대미술의 실험성에 대하여」, p. 56.


19. 오광수, 「추상표현주의 이후의 한국미술」, 『홍익미술』 창간호 (1972), pp. 63-69, p. 65.
20. 이보다 앞선 시기 활동했던 제로 그룹(Zero Group),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네오다다(Neo-Dada), 플럭
서스(Fluxus), 미니멀아트(Minimal Art), 구타이(具体), 하이레드센터(Hi Red Center) 등 국제 미술 현장에서의
매체 실험과 1970년대 한국 미술의 매체적 양상은 형식적 측면에서 일견의 유사성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겠으
나, “한국의 사회라는 특정한 시공의 맥락에서 이들의 작품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김미경, 「실험미
술과 사회: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유신의 시대(1961-1979)」, 『한국근현대미술사학』 8집 (2000), pp. 123-152, p.
131 참조.
14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얽힌 문화적 기억”에 주목한다.21


이승택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기억과 그것에 내포
된 가치를 ‘노끈’이라는 이질적인 사물이자 ‘선’이라는 조형
의 기본 요소를 통해 엮고 접합시킨다. 그리고 1975년 제작
된 <매어진 백자> [도 2] 시리즈에서 그는 ‘예술’, ‘물건’, ‘형
상’이 가지고 있는 관습화된 정의를 모호하게 비틀어 내는
방식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수식하는 ‘비조각’ 개념을 다

[도 2] 이승택, <매어진 백자>, 1975, 백자,


시금 밝힌다.
33.5x34.5cm, 오바야시 소장 “1960, 70년대 한국을 지배했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상징으로 작동했던”22 백자, 그중에서도 가장 지배적
인 상징성을 띠는 달항아리를 노끈으로 둘러매고 형태를 왜
곡 시킨 이 작품에서 줄 사이로 삐져나온 항아리 표면은 끈
에 의해 변형된 신체의 한 부분처럼 짓눌려지고 한편으로는
부풀어져 있다. 이는 앞선 시기에 그가 서구 고전주의 조각
의 미학적 전통을 대변하는 균제화 된 인체 누드상 [도 3]을
노끈으로 엮고 이것을 석고나 청동, 플라스틱(FRP) 등으로
제작한 데에서도 표명된 바 있는 이슈이다. 그는 각 예술 장
르가 지니는 재료적, 기법적 특성을 자신의 독특한 예술 세
계를 구성하는 논리적 도구로 능란하게 활용한다. 특히 그가
[도 3] 이승택, <제2해부학(눌림)>, 1970, 석
고에 금박, 노끈, 151x36x25cm, 작가 소장 대학 시절부터 주물공장을 드나들며 제작의 프로세스로 활
용하기 시작한 주조(casting) 기법은 오래된 조소적 전통이다. 그는 점토로 제작한 본을 바탕으
로 석고, 청동, 플라스틱 등을 재료로 하여 원본과의 식별이 모호한 다수의 동일 형상을 생산한
다. 그밖에도 그가 작품의 재료로 끌어들이는 플라스틱, 비닐, 유리 등은 석기, 청동기, 철기 등
을 재료로 하는 조각의 역사를 비롯하여, 인류 역사를 담지하는 물질문명의 새로운 발명품이

21. “이승택에게 서구의 ‘미술’, 즉 파인아트만이 유일한 지향점은 아니다. <고드랫 돌>, <매어진 돌맹이>, <소불
알> 같이 일상의 기물들을 끌어들여 ‘조각’이나 서구의 조형 문법에 정면으로 거슬러 도발적 시도를 하고 있으
며, 남북 분단과 전쟁, 북에 홀로 남은 어머니와의 생이별 같은 난파된 고난의 현실 알레고리로 다가서는 <역
사와 시간>은 서구 앵포르멜 미술의 영향과 더불어 ‘줄’ 오브제에 얽힌 문화적 기억이 함께 교차되고 있다.” 이
인범, 「이승택 작품 연구: ‘비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미술사학보』 49집 (2017), pp. 249-272 (DOI: 10.15819/
rah.2017..49.249), p. 256.
22. 이인범, 「‘더불어 함께 하는 행복한 세상’을 향한 꿈-세라믹스 코뮌」, 『세라믹스 코뮌』(2012.01.21-02.26, 아트
선재센터), 전시도록 (홍지예술학연구소 2012), p. 6.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15

다. 이처럼 경량화되고 형태의 변형이 자유로운 실용적 재료를 사용해 문화적 형상으로 견고하
게 전승되어 온 사물이나 대상을 제작하고, 끈으로 묶어내고 있는 작업들은 우리 사고에 굳건
하게 위치해 있는 백색 전통이나 20세기 이래 수용되고 정의되어 왔던 예술 개념에 대한 계승
이라기보다 그것의 해체 또는 다시 쓰기에 가깝다. 다시 말해 매체의 특정성이나 순수성을 위
반하는 상호접합적 조치는 “예술이라는 과일 속에 현실이라는 애벌레를 집어 넣”23음으로써 진
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몸을 매개로 인간 존재의 시공간적 조건을 현상학적으로 탐구하는 이건용(李健
鏞, 1942- )의 이벤트는 모더니즘의 논점들을 다시 읽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예다. 그는 ≪75 오
늘의 방법≫(1975.04.12-04.20, 백록화랑)에서 <이벤트-현신(現身) Ⅰ·Ⅱ>(4월 19일, 오후 3
시, 약 20분 간)이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이벤트를 진행한다.24 너비 13cm의 노란 테이프로 갤
러리 면적을 길이 순으로 재며 가위로 테이프를 끊고, 끊어진 테이프를 동일한 공간의 가장 긴
면인 대각선에 연결하는 <실내측정> 이벤트, 백색 한지를 조각조각 찢고 이를 갤러리 바닥에
그려진 정사각형 그리드에 늘어놓음으로써 분절된 조각을 하나의 타블로로 제시한 후 모든 행
위가 완결된 지점에 빗자루로 이 모든 물질을 쓸어버리는 <동일면적> [도 4]을 수행한다.25 이
이벤트는 인간이 발 딛고 서 있는 장소이자, 인간을 조건 짓는 공간의 면적과 길이를 조형의 기
본 요소인 선(테이프)과 점(한지 조각)으로 분절시켜 측량함으로써 이를 시각화하고 있다. 이처
럼 조형의 기본 원리와 재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탐구하고, 신체의 행위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이를 모색하는 시도는 1975년 제4회 ≪ST(Space and Time)전≫(1975.10.06-10.14, 국립현
대미술관, 덕수궁)에서의 <다섯 걸음>, <건빵 먹기> 등의 이벤트, 제5회 ≪ST전: 사물과 사건≫
(1976.11.22-11.27, 출판문화회관)에서 선보인 <신체드로잉> 연작 (1976-1979) [도 5], <달팽
이 걸음>(1979) 등 다수의 이벤트를 통해 실행된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이벤트-로지
컬’이라고 언명한다.26

23.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최봉림 옮김 (궁리 2003), p. 246.
24. “그때 당시에 퍼포먼스를 현신(現身)이라고 그랬어요. 작가에게 있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말하자면 자신의
몸이 예술의 미디어가 돼서 소통을 하는 것이죠. […]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게 뭐냐면 작가의 몸 그 자체도, 그
어떤 거보다도 더 직접적인 예술의 매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러면서 ‘현신’이라는 말도 쓰는 거죠.”
「이건용 인터뷰」(2019.04.19, 이건용 작업실), ≪이건용: 이어진 삶≫(2019.06.28-10.13, 부산시립미술관).
25. 이구열, 이흥우, 「순수 창작 설땅 좁아」, 『조선일보』 (1975년 4월 20일), 5면 참조.
26. “한국전쟁, 4·19, 5·16 등이 일어나고, 이후 모든 것을 근대화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정
서에는, 무언가를 논리적으로 파악하고 또 그런 관계에서 상호협조하면서 무언가를 한다는 의식이 부족했어요.
단지 감정만 앞설 뿐이었지요. […]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당대의 처방으로서 ‘논리’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
사실 ‘이벤트’와 ‘로직’은 서로 합성되기 어려운 단어입니다. […] 하지만 예술에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공존하고 있
습니다.” 류한승, 「작가와의 대화」(2016.07.26), 『이건용: 이벤트-로지컬』(2016.08.30-10.16, 갤러리현대), 전시
16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도 4] 이건용, <동일면적>, 이벤트, 1975.04.19, 오후 3시, 백록화랑 [도 5] 이건용, <신체드로잉 76-2>, 1979, 작가 소장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전쟁과 4·19, 5·16 같은 역사적 사건 이후 사회적으로 요구된 근대


화라는 이슈 속에서 여전히 팽배하고 있는 비논리성이나 정서적 지향에 대한 반성이 작업의 배
경이 되어주고 있으며,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와 비트겐슈타인
(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은 그 사상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철학자임을
밝힌다.27 즉 이건용이 세계의 구성 원리를 규명하고자 했던 이러한 시도는 우연성, 즉흥성, 비
결정성의 ‘이벤트’와 개념적, 언어적, 논리적 의미의 ‘로지컬’28을 결합하는 상황을 연출함으로
써 실현 가능했던 문제였으며 그 중심에는 인간이 놓여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건용의 매체로서 신체는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1888-1943)
가 바우하우스 무대공방(1923-1929)에서 시행하였던 무대실험이나 다학제 과정인 인간(Der
Mensch; The human being, 1928-1929) 수업에서 표방했던 관심을 연상시킨다. 오스카 슐레
머는 <막대 춤 Stick Dance>, <삼부작 발레 Triadic Ballet> [도 6] 같은 작품에서 신체와 그 존
재 조건으로서 공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작품에서 관찰할 수 있
듯이 오스카 슐레머는 신체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 시켜 외화하며, 빈 공간
에 공중선을 보탠다. 이처럼 공간적-선적 그물을 창조하는 과정은 그의 무대 작업이 지니는 형
식적 특징이다. 슐레머에 따르면 유기체/메커니즘, 감정/이성 등의 대립물로 이루어진 인간에
대한 이해와 합일은 “외부에서 모델을 복사한 예술적 형태로 인간 형상의 개념에 다가간 전통

도록 (갤러리현대 2017), pp. 129-135, p. 131.


27.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921)에서 세계를 사실들이 구성된 것으
로 본다. 이 사실은 현존하는 상황이며, 상황들은 차례로 대상의 조합이고, 이 대상은 논리적인 내부 속성에
따라 서로 결합된다. Anat Biletzki & Anat Matar, “Ludwig Wittgenstein”, i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18(2002), https://plato.stanford.edu/entries/wittgenstein/ (2021년 8월 15일 최종 접속).
28. 정연심, 「1960년대-19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와 미술가의 몸」, 『미술이론과 현장』 22호 (2016), pp. 86-119
(DOI: 10.11112/jksmi.25083538.2016.22.086), p. 109 참조.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17

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 인간 형상에 대한 형태상의 문제 ―


물리적 형상의 형태적 분석, 그것의 복잡한 구성과 형상화에 대
한 기하학적 단순화 ― 에서 출발”29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1970년대 미술 현장은 정치사회적 질곡된 현실 속에서 다양
한 매체와 그 운용을 다각도로 실험하며 예술에 대한 ‘의식의
각성’30을 촉구해왔다. 즉 예술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
제의식을 예술적 방법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실천은 환원주의
적 태도를 바탕으로 ‘한국적 모더니티’를 추구하는가 하면 이에
대한 균열을 시도하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앞서 살펴본 이승
택, 이건용의 매체적 실천 또한 ‘한국적 모더니티’ 문제와 일련 [도 6] 오스카 슐레머, <삼부작 발레를
의 관계를 지니지만 그 활동들을 총체적 구조나 공통의 척도로 위한 노트와 스케치 중, 와이어 코스튬>,
c. 1938, 종이 위에 타이프 인쇄, 연필,
만 읽어내기엔 한계가 있다. 그들이 냉정한 의식을 가지고 자각 색연필, 29.2x21cm, MoMA 소장

하고 모색하고자 것은 지배적인 관념을 유지하고 확인하는 일


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계의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이를 끊임없이 재고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활동했던 한국아방가르드 협회나 ST 그룹이 평면, 입체라는 장르 범주를 끌
어들임으로써 회화(동양화, 서양화), 조각으로 구조화된 미술 장르 경계 밖에 놓여 있는 개념들
을 재구조화하고 했던 시도들처럼 말이다.

Ⅳ. 복귀와 쇄신: 전통 매체와 뉴미디어

국민경제발전을 목적으로 1962년 1월부터 정부에서 추진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1977년


에 이르러 수출 1백억 달러를 돌파하고, 1인당 GNP 944달러를 달성하는 성과를 이룩했다. 다
른 한편으로는 10월 유신(1972)과 긴급조치 선포(1974)를 통한 정치 체제 구축의 상황 속에서

29. Oskar Schlemmer, Heimo Kuchling (ed.), Oskar Schlemmer Man: Teaching Notes from the Bauhaus, trans. Janet
Seligman (London: Lund Humphries 1971), p. 80; 이윤상,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의 ‘삼화음 발레
(Triadic Ballet)’에 나타난 공간 속에서 예술 형상(Art Figure)움직임 연구』, 동국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1), p. 9
에서 재인용.
30. 김용익은 1970년대 미술의 대표적 특성을 미술을 대하는 ‘의식의 각성’으로 논한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숱
한 시행착오 끝에 ‘질곡된 상황을 개선 내지 타파하기 위해 몸으로 나서는 실존주의적 태도’와 ‘더 냉정한 의식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본질주의적 태도’로 실천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는 후자의 ‘본질주의적 함정’을 벗어
나 조형·표현의 문제에서 또 다른 전망을 시도하고자 했다. 김용익, 「개념주의로 본 현대미술」, 『홍익미술』 제5호
(1983), pp. 24-30, p. 28.
18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1978년 무렵 미술계에는 새로운 세대와 민전을 필두로 한 복귀와 쇄신의 전조가 엿보인다.31
1980년대는 정치·사회적 격변기로서 뿐만 아니라 미술 현장과 시각상의 변화를 야기하는 상
황 위에 놓여 있었다. 먼저, 민족·민중운동의 한 갈래와 국가적으로 추진되어 여의도광장에서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던 국풍81 등의 문화정책, 1980년 12월 1일 컬러TV 시대의 개막으로 말
미암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발전은 대중문화의 확산과 광고 사진 붐 등 시각 문화의 지형
변동을 야기시키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1981년 9월 30일 개최된 제84회 IOC 총회에서 1988
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특별시가 확정되면서 세계화라는 이슈를 당면한 대한민국의 상
황은 미술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언어의 표명과 매체 실험의 추진을 가속화 시킨다.
한편 비평의 영역에서 1980년대 미술의 문제는 현실 인식과 실천, 시대정신, 투쟁과 저항,
제도 비판, 소통 등 민족·민중미술을 둘러싼 쟁점과 그 실천 가능성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이는 미학적이기보다는 정치·사회학적으로 읽혀지는 것이 사실이다. 앞서 논한 바 있듯 작품은
그것을 발화하게 하는 미학적 매체를 지지대로 삼고 있으며, 이념이나 사상의 베일 이면에 생
생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물질을 근거로 그 구조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후
반기 사실주의 회화의 약진으로부터 민족·민중 미술운동의 확산, 미술의 대중화와 매체 운동으
로 이어지는 1980년대 미술 현장의 과제는 무엇이었으며 그 미학적 가능성으로서 매체는 어떻
게 발언하고 있는가?
1970년대 미술의 거대 담론 속에서 ‘삶의 변주’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직된 현실’ 인식을 비
판하는 당대의 문제의식은 미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비롯된다.32 새로운 조형
언어와 시각의 문법으로 선회하고자 했던 작가들은 논리보다는 현실 세계의 이미지로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이야 말로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탐색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다.
이러한 관점은 일찍이 1969년 「현실동인 제1선언」에서 “형식주의 아류들의 조국 없는 조형언
어와 현실 부재의 정적주의와 낡은 화법에 속박된 무풍주의의 정체성을 반대”33하고 형상의 생

31. 이는 사실주의 경향으로 일컬어지는 단체들의 그룹전 개최를 비롯하여 ‘새로운 형상성’을 주제로 내건 제1회
≪동아미술제≫와 제1회 ≪중앙미술대상전≫ 등 민전을 통해 드러난다. 당시 발행된 각종 간행물에서는 당해
연도 미술 현장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극사실주의 회화의 대두를 관심 있게 다루고 있다. 「전시회 리뷰」, 『계간미
술』 7호 (1978년 여름), pp. 194-195, 「'78 문화계 분야별로 본 3대 이슈 (4) 미술」, 『동아일보』 (1978년 12월 20일),
5면.
32. “오랫동안 논리가 주축이 되어 작품 형성에 간섭을 해오던 70년대의 잔재는 그 진로를 바꾸게 될 것 같다. […]
다양한 삶의 변주를 미처 수용하지 못하는, 다소 경직된 현실 위에서 […] 형식논리에 의존하면서 작품의 외현적
(外現的)인 효과에만 매달리게 되는 유약한 감성이 탄생하고 전염병처럼 많은 작가들이 그것을 우리 현실의 진
정한 미학으로 오인하고 격려하고 자축하는 기현상을 낳는 것이다.” 장석원, 「미술의 현실과 현실의 미술」, 『홍익
미술』 제5호 (1983), pp. 6-13, p. 7.
33. 김지하, 「현실동인 제1선언」 (1969), 『김지하 전집 3 (미학사상)』 (실천문학사 2002), pp. 77-125.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19

동성을 통해 한국 미술을 가로지르는 모순을 타개하고자 하는 입장에서도 표명된 바 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은 자고로 개인, 민족, 사회의 정체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런 점에서 1982년 10월 결성된 미술동인 두렁(결성회원: 김봉준, 장진영, 이기연, 김주형)의 매
체 인식과 실천은 다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두렁은 마당극, 탈춤, 풍물, 판소리, 굿 등 연행
적 예술형식과 불화, 민화, 무속화 등 “우리겨레의 미술유산을 풍부하게 계승”34함으로써 살아
있는 조형성의 회복을 통한 미학적·사회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예술공동체였다. 이는 형식적으
로 민족, 전통으로의 복귀의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미술 개념에 대한 전복과 쇄
신의 의미로 발현되고 있다.
민중미술을 중심으로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해온 김동일은 두렁 그룹의 실천을 ‘공감
장’의 지형에서 논의하고 있다. “공감장은 기존의 예술장과 사회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획
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두렁이 “예술장과 사회공간 사이의 교차·변용을 가장 생산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35 그렇다면 두렁의 이러한 미학적, 사회적 교차·변용을 가능케 했던 조
형 언어와 그 매체는 어떠한가? 이를 검토함으로써 예술적 가능성을 다시 살펴볼 수 있지 않을
까? 잘 알려져 있듯이 두렁은 애오개소극장,36 시민미술학교 등을 중심으로 판화운동, 만화, 달
력 등의 출판 인쇄, 민속미술(탱화, 민화, 걸개
그림 등), 공동 제작의 작업 방식을 취하고 있
다. ≪두렁 동인 창립예행전≫(1983.07.07-
07.17, 애오개소극장)은 그룹이 지니는 예술
적 태도를 보여주는 공동 작업 <만상천하(萬
象天下)Ⅰ>(1983)를 비롯하여, 판화 작품 30여
점, 창작탈굿에 사용되는 탈바가지 30여점을
[도 7] ≪두렁 동인 창립예행전≫ 기념탈놀이, 문화아수라판, 애
전시하고, 부대 행사로 탈굿 <문화아수라판> 오개소극장, 1983.07

34. 라원식, 「다시금 새로이 시작하는 90년대 미술운동 - 원 미술운동을 모체로 하여」, 『홍익미술』 제10호 (1993),
pp. 80-85, p. 83.
35. 김동일, 양정애, 「감성투쟁으로서의 민중미술 - 80년대 민중미술 그룹 두렁의 활동을 중심으로」, 『감성연구』 제
16집 (2018), pp. 261-298 (DOI: 10.37996/JOG.16.10), p. 264.
36. 애오개소극장은 1983년 2월부터 1985년 2월까지 서울 마포구 아현동 372-23 기선약국 건물 지하에 있었던 문
화공간이다. 놀이패 ‘한두레’의 재건, 노래패 ‘새벽’의 생성, 미술동인 ‘두렁’의 태동, 풍물패 ‘터울림’의 결성, 민중
문화협의회 출범 등이 이 장소에서 벌어졌다. 이 작업에 개입했던 정희섭은 아현동 일대가 본바닥 탈춤 ‘애오개
본산대 놀이’가 펼쳐지던 장소라는 점에서 ‘애오개’라는 이름을 붙이기 적합했다고 밝힌다. 정희섭, 「1980년대 애
오개소극장을 아시나요?」, 『희망의 예술』 (솔 2008); 김종길, 「민중미술연대기 1979~1994 ⑯ 1983년, 애오개소
극장, 미술동인 두렁」, 『미술세계』 67호 (2018년 3월), pp. 156-161, p. 157 참조.
20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도 7]을 세 차례 시연하기도 하였다.37 또한 『산 그림』


(1983.07)이라는 그림책을 발간하며, 그룹이 지향하는
‘산 미술’, ‘산 그림’의 방향을 만들어가고자 했다.
이 가운데에서 불교 감로탱화(甘露幀畵) 양식의 공
동 작업 <만상천하> [도 8], <땅의 사람들과 사람의 아
들 - 끝내는 한길에 하나가 되리>(1983), <조선 수난민
중 해원탱>(1984) 등은 두렁 그룹의 독특한 제작 방식

[도 8] 두렁(김봉준 주필), <만상천하(萬象天下)Ⅰ>, 중 하나로 논의된다. 감로탱화는 “다른 불화들이 부처


1983, 비단에 먹, 단청, 90x150cm (슬라이드), 국립 를 중심으로 많은 권속들이 둘러싼 형식을 이루고 있
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최열 기증
는 데에 반해서 […] 상단의 불·보살보다는 중단의 천
도재와 하단의 천도대상인 서민들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이 매우 특이”하며 “조선시대 민
중의 종교관 및 세계관”38이 잘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고려 시대에 융성했던 불
화의 매체적 기억을 조선 후기 생활 세계 및 문화로 소환·변용하고 있는 감로불화와 그것의 화
면 구성, 재료와 기법, 제작 방식을 다시금 읽어내는 두렁 그룹의 작업은 오늘의 현실을 이해
하고 구현하는 가장 탁월한 실천 방법이었다. 이는 “민중의 기쁨·용기·꿈 등 주체적 심상까지
도 민중의 현실상으로 파악 […] 하여 있는 사실의 거울 같은 반영이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의
구현으로 나아가야 한다”39는 그룹의 이념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윤회(輪廻)적이고 순환
적인 세계관은 “삼계(三界)와 삼천(三天)의 시공 동시축약”40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된다. 그들은
불교의 우주관으로서의 삼계(三界)를 1980년대 만화경으로 등치시키며, 이를 탱화의 상단, 중
단, 하단의 삼단(三段)의 공간성과 과거, 현재, 미래의 수직적인 상승구도로 한 화면에 담고 있
는 것이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그들은 시각 피라미드의 한 단면을 통해 세계를 제시하는 서구
재현 회화의 원근법적 세계관, 나아가 사회주의 리얼리즘 페인팅과는 형식적으로나 시공간적
으로도 매우 상이하다. 굳이 그 연계성을 찾는다면 현실에 대한 초극이나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에 더 가깝다.41

37. 「「두렁」 동인 창립전 애오개소극장」, 『매일경제』 (1983년 7월 14일), 9면, 김종길, 「민중미술연대기 1979~1994
⑯ 1983년, 애오개소극장, 미술동인 두렁」, p. 159.
38. 박화진, 「조선시대 민중의 이국관과 풍속상 - 지옥계불화 감로탱화를 중심으로」, 『동북아문화연구』 제25집
(2010), pp. 27-49, p. 31.
39. 「산 그림을 위하여」, 『산 그림』 제1집 (1983년 7월); 김종길, 「민중미술연대기 1979~1994 ⑯ 1983년, 애오개소극
장, 미술동인 두렁」, p. 159에서 재인용.
40. 김종길, 「민중미술연대기 1979~1994 ⑯ 1983년, 애오개소극장, 미술동인 두렁」, p. 160.
41. 1980년대 민중미술과 초현실주의의 교차점을 ‘유토피아’에 대한 신념 표출로 관계 지으면서 그 형식적, 내용적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21

그밖에도 애오개 미술학교(1983.06), 애오개 민속교실, 애오개 미술교실(1984.12.08-


12.11), 생활문화 큰학교(1985.01.14-01.26)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판화 전시, 달력 출판과
같은 판화보급운동의 매개로 활용되었던 판화는 두렁 그룹 뿐만 아니라 1980년대 민중미술 실
천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판화는 목판, 고무판, 지판 등 일상에서 취하기 어렵지 않은 그
라운드에 이미지나 문자를 새기고 지면 위에 다수로 찍어낼 수 있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단수
성과 원본성이라는 예술 작품의 존재론적 기반이나 주체 중심주의적 사고를 벗어나, 복수성
(plurality)과 공유와 소통을 중시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판화뿐만 아니라 공
동 벽화, 탈굿 놀이 등의 예술 실천 또한 특정 예술가의 독창성, 유일성을 부각하기 보다는 ‘공
동체적’ 활동을 기치로 삼는다는 점에서 유효성을 지닌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지향했던 ‘보통
의 말’42로 기능하는 매체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판화는 산업시대 물질문명 극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김봉준의 판화 [도 9]
는 거칠고 투박한 선, 흑과 백의 단순한 색채로 노동자의 거칠고 주름진 피부결과 질끈 둘러 맨
머릿수건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노동의 가능성과 수공의 가치를 동시에 소환한다. 그는 이러한
무기교의 기교, 작법 없는 작법으로서의 소탈한 그림에서 나타
나는 “촌스러움을 오히려 ‘푸지다’는 우리다운 가치로 이해하
고 자랑스럽게”43 고수하고 있음을 역설하기도 했다.
두렁 그룹은 의식(思), 행동(行), 생명(氣)을 지닌 인간 본성
의 긍정적 발현을 흥(興)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모두 포괄하는
본연의 미의식을 ‘신명’이라는 개념으로 논의한다.44 그런 연유
로 민속미술에 내재된 기운차고, 활달하며, 솟아오르는 생명력
은 그들의 걸개그림, 판화, 연행적 행위, 공동체적 실천을 통해
비로소 참되게 구현되는 것이다. 이처럼 삶의 긍정을 바탕으로
[도 9] ≪김봉준 목판화전≫(1985.03.06-
한 그들의 예술은 인간다움과 예술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 03.12, 제3미술관) 포스터

특성을 비교·검토하는 글로 김주원,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초현실주의적 문제」, 한국미학예술학회 2019년도


가을 정기학술대회(문화예술 수용과 번역의 가능성) 프로시딩 (2019.10.19)을 참조할 수 있다.
42. 성완경, 「「두렁창립전」, ‘산 미술’을 위한 전략」,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 (열화당 1999), pp. 72-76, p.
73.
43. 「미술운동의 새 기수들 <5> 김봉준」, 『매일경제』 (1985년 7월 19일), 9면.
44. “아름다움의 뜻은 늘 새롭다. 인간의 의식(思)과 행동(行)의 고양일 뿐 아니라 힘의 본질인 생명(氣)과 위 세요
소를 집단 속으로 밝게 틔우는 흥(興)을 모두 포괄하는 ‘신명’이야말로 아름다움의 본성이다.” 「산 그림을 위하
여」, 『산 그림』 제1집 (1983년 7월); 김종길, 「민중미술연대기 1979~1994 ⑯ 1983년, 애오개소극장, 미술동인 두
렁」, p. 159에서 재인용.
22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성을 매체적 실천을 통해 모색한 것이다.


두렁 그룹을 비롯하여 이 시기 미술 현장의 주요 이슈였던 공동체성은 사회 변혁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의 부상과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 1981년 한 매체에서는 새로운 전략시장으로 미디
어 기기 부문의 부각을 주목하고 있으며, 뉴미디어로 통칭되는 정보통신 시스템이 1983년부터
실용단계에 들어갈 예정임을 기사화하고 있다.45 이러한 지형 속 시각예술의 장에서 기술적 미
디어에 대한 관심은 유의할 만한 지점이다.46
일찍이 1970년 이래 새한현상소, 현대현상소, 스리세븐 등 사진업계가 컬러 필름 현상업
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1980년을 경과하며 컬러사진 즉석현상소가 도시 내에서 성업을 이루
게 되는 것은 하나의 사회 현상이다. 또한 1979년 10월 개최된 ≪상파울루비엔날레≫에 국제
전에서 처음으로 비디오(박현기), 이벤트(이건용) 분야의 참가가 이루어진 점이나, 사진, 영상
등 뉴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사진 전문 화랑 한마당의 설립(1983), ≪한국현대사진대표작전≫
(1983.05.16-05.25,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새 시좌전≫(1988.05.18-06.17, 워커힐미술관),
≪백남준 비디오 인스탈레이션 「다다익선」≫(1988.09.1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개최를 통해
서도 발현된다. 주로 퍼포먼스나 작품의 기록 차원에서 존재를 드러내던 사진과 영상은 독자적
인 작품으로서의 가능성과 이로 말미암은 예술 논의의 확대를 모색하는 창구가 된다. 또한 이
러한 매체 변환 현상은 88서울올림픽의 개최와 1990년대를 경과하며 일어나는 미술계 지형
변동의 전조라고도 할 수 있다.
사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빛이 인화지 위에 실현한 물리적 자국을 통해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표지한다. 이러한 사진의 특수한 기호학적 조건을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인덱
스(index)’로 파악하는데 사진에 관한 매체적 인식은 예술 이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단서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조각가이자 실험미술가로 수식되는 이승택은 1960년대부터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그것을 작업의 주요한 방법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오지, 비닐, 유리, 연기, 헝겊(바람) 등 오브
제와 비물질적 작업을 선보였던 첫 개인전 ≪이승택 작품전≫(1971.11.28-12.02, 국립공보
관 3실)에서 대부분의 작품들이 50x60cm 규격의 사진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그의 작
품 세계에서 사진의 위치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다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승택
의 사진의 의미가 꽤나 다층적이라는 점에 있다. 그의 사진은 사실을 보고하고 기록하는 르포

45. 「80년대 시장을 노리는 뉴미디어 선풍」, 『매일경제』 (1981년 9월 12일), 3면.
46. 정보화 기술사회라는 제3차 산업혁명기에 도달한 당대 상황에 따른 기술과 미술의 문제는 『계간미술』 (1985년
겨울) ‘특별기획: 텔리비전과 미술’, 『홍익미술』 제7호(1986) 특집 ‘미술과 과학기술’ 등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23

르타주나 사진의 조형성과 내재적 의미를 탐색하는 예술사진의 영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인범은 사진과 미술 장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작가의 독특한 사진 작업을 일컬어 ‘포토-픽
쳐(Photo-Picture)’라고 명명하며 그 특성을 논의한다.47 이승택은 1950년대에 데뷔한 이래 자
신이 제작해온 수많은 예술 실천을 사진을 통해 증거하고 기록으로 유지시키고 동시에 사진의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토-픽쳐라는 명칭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러
한 실천은 사진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전복시키고 있다. 즉 “자신이 구상하는
세계상이 만족스럽게 구현될 때까지 […] 프린트된 사진을 그라운드로 삼아 끊임없이 그 위에
다시 드로잉이나 페인팅, 콜라주, 혹은 숙련된 공예적 솜씨에 의한 몽타주, 때로는 세트 촬영을
통해 회화적 전환을 시도”48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택이 1980년대 이래 활발히 행했던 포토-픽쳐 작업 가운데 <모래 위에 파도 그림>(1987-
1988) [도 10]을 살펴보자. 1980년대 후반 한강 변에서 페인트 통이 연결된 스프레이건을 맨
작가는 모래 위에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붉은 색과 푸른 색의 파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작가
가 행위의 주체로 등장하는 이 작업은 1970년대 일본 니가타에서 활동했던 그룹 GUN(Group
Ultra Niigata)의 <눈 이미지 변경 이벤트> [도 11]처럼 이벤트가 완결된 후 사진을 통해서만 파
악할 수 있는 덧없는 행위의 일순을 포착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는 이일이 언급한 것처럼
자연을 소재로 삼아 무한히 열려진 대지와 대면하고, 작가의 개입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창출
하는 대지미술(대지작업), 환경미술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49
하지만 포토-픽쳐는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가로지르는 상호접합적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사건을 기록한 증거로서의 사진은 회화적 조작과 모종의 결탁을 시도하는데, 빼어난 숙련도로
사진 위에 그려진 이미지는 그것이 반영하는 대상이나 사건의 지시보다는 작가의 상상의 영역
과 호환된다. 즉 진실을 대변하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사진은 그림과 결합하며 지시물과의 동질

47.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원로작가 디지털 자료집 제작 지원 사업>(2015.08-2018.06)의 결과물로 발표된


연구 논문 「이승택의 삶과 예술」에서 그는 작가 특유의 사진 작업을 포토-픽쳐로 분류하고 이를 정의하였다. 이
후 「이승택 작품 연구: ‘비(非)-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2017), 「이승택의 ‘비(非)-조각’에 대하여 - 기록 사진과
‘포토-픽쳐’의 틈」(≪2020 창원조각비엔날레≫ 학술세미나 [2020.10.09, 성산아트홀대극장]), 「왜 이승택인가?」
(≪이승택 - 거꾸로, 비미술≫ 연계 학술세미나 [2021.03.06,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글을 통해 포토-픽쳐가 지
니는 미학예술학적 가능성과 그 특성을 살폈다.
48. 이인범, 「이승택 작품 연구: ‘비(非)-조각’ 개념을 중심으로」, p. 265.
49. “근자에 와서 이승택은 특히 대지작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지작업은 두말할 나위도 없
이 바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소재로 삼는 작업이다. 그리고 무한히 열려진 공간과의 싸움이다. 그것은 자연
을 하나의 독자적인 환경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연을 스스로 소유하고 자연으로 하여금 새로
운 체험의 마당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이다.” 이일, 「이승택의 「비조각」 또는 「형체없는 조각」에 대하여」, 『이승택』
(1988.05.18-05.22, 관훈미술관), 전시도록 (1988), n.p.
24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도 10] 이승택, <모래 위에 파도 그림>, c. 1987-1988, [도 11] 마에야마 다카시, <눈


사진 위에 물감, 50x60cm, 작가 소장 이미지 변경 이벤트(걸음의 궤
적)>, 1970

성이나 합의된 의미로부터 탈주하는 것이다. 또한 포토-픽쳐는 “다양한 미디어의 내용과 기술


을 결합해 새로운 미디어 ‘종’을 만들어”50 낸다는 점에서는 ‘혼종적 미디어’51의 속성을 예견하
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이승택의 포토-픽쳐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미
디어에 구현된 “‘미디엄’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문화적 역사
의 한 부분”52이라는 것이고, 이는 역사적 단절을 통해 창조되는 것이라기보다 매체적 복귀를
통한 자기 쇄신에 가깝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Ⅴ. 매체 분화와 ‘포스트-정체성’

1987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한 이불(李昢, 1964- )은 자신의 첫 개인전 ≪점점 더 -


그, 그것은≫(1988, 일갤러리)에서 솜으로 채워진 검고 붉은 색의 채색된 천, 스테인리스 스틸
을 재료로 한 소프트 조각 <무제(갈망)>(1988) [도 12]를 선보인다. 이는 1970년대 무렵 이승
택, 김광우(金光宇, 1941-2021), 전국광(全國光, 1946-1990) 등이 대리석, 화강암, 시멘트, 석
고 등 조각 장르의 견고한 재료를 정으로 쪼거나 글라인더로 갈아 그 본연의 물성을 시각적으
로 전유시키는 매체적 실천을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 이불의 소프트조각은 조각의 정체성을 담

50. 레프 마노비치,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이재현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2014), p. 212, p. 218 참조.
51. “미디어 혼종물의 경우는 인터페이스들, 기술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각기 다른 미디어 형식과 전통의 가장 근
본적인 가정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미디어 게슈탈트(media gestalts)를 만들어 낸다. 즉, 이것들이 함께 결합되어
통일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데, 이는 이 모든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마노비치,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p. 217.
52. 마노비치,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 p. 294.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25

지하고 있는 재료마저도 흐물흐물하고 연약한


것으로 재전유하며, 역설적 지점을 탐색한다.
조각의 형태 또한 균제, 비례, 육체의 아름다
운 외형이나 이상적 인간상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가 한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바 있듯이 벌
레, 촉수, 동물, 내장기관, 괴물이 혼종된 듯한
형태는 인간의 육체와 기관, 인간성과 비인간
성, 미와 추, 정지와 움직임, 삶과 죽음이라는 [도 12] 이불, <무제(갈망)>, 1989, 야외 퍼포먼스, 장흥, © Studio
Lee Bul
이원화된 ‘인간 조건’의 체계 틈에서 표류하는
존재를 표상한다.53

우리가 ‘인간 조건(human condition)’이라고 부르는 본질적인 부조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

전하게 파악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존재한다는 여전히 전통적인 문화의 가

정 사이에 우리의 삶은 항상 불안한 틈새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삶의 이해에 대한 접근 한 가지 방식은 공간-시간적 프레임워크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시

각 예술의 제약 조건 내에 있다. 예술이 그 일에 관련된 매체인지 아닌지는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의 무의식적인 필요성에서 내가 하는 일이다. 그것은 베케트 풍의 옛 후

렴구인 것 같다: 계속 할 수 없어, 계속 할 거야.54

인간의 현실에 대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며 이불은 공간-시간적 프레임워


크 또는 시각 예술의 제약 조건 속에서 그저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끊임없이 되뇌어야만 하는 예
술가의 숙명적 과업을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오브제의 설치 방식이나 행위 과
정에 맞닿아 있다. 그가 만들어 보여주고 있는 조각은 일반적으로 작품이 제시되는 방식과는
상이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것은 좌대 위에 올려 세워진 수직성의 인간 모습이 아니라, 바닥
에 놓여지거나 천정에 부유하고 있는 형상으로 제시된다. 나아가 이러한 조각은 작가 또는 행

53. “내 작품의 몬스터적 요소는 분류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감(魅感)을 느끼면서, 기존의
다양한 경계를 초월하는 것에 있다.” 카타오카 마미, 사사키 히토미 편(片岡真実, 佐々木瞳 編), 『이불: 내게서
당신에게, 우리들에게만(イ·ブル展: 私からあなたへ、わたしたちだけに Lee Bul: From Me, Belongs to
You Only)』(2012.02.04-05.27, 모리미술관), 전시도록 (東京: 森美術館 2012), p. 44.
54.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ニコラス·シャフハウゼン), 「이불 인터뷰(イ·ブルへのインタビュー)」, 『이불:
내게서 당신에게, 우리들에게만』, p. 185, p. 191.
26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위자의 외피로 걸쳐져 바닥을 기거나, 꿈틀거리는 동작을 통해 생명력을 부여 받는다. 이불의
수평성을 띤 동물 되기, 불완전성의 지점은 어떻게 인간이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
가?’” 다시 말해, “유용성에 못박힌 종속적 성찰을 벗어나, 본질이 없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의
식하는 자아의식으로 미끄러져갈 것인가?”55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이해의 지점에 도달하고자
했던 조르주 바타유의 사유를 떠올리게 한다.

정신을 소유한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동물의 육체를 가진다는 것은, 즉 사물처럼 존재한다는 것

은 비참이며, 반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정신적 기층을 갖는다는 것은 영광이다. […] 죽음이

그를 완전한 사물의 상태로 만들 때까지는 결코 사물이 아니다. […] 육체는 정신에 봉사할 때보

다도 정신을 배반할 때 오히려 정신을 더 잘 계시한다. 어떤 의미에서 시체는 정신의 가장 완전한

긍정이다.56

영광을 거역하고 비참을 선택한 이불의 작품 세계는 주체-대상의 관점에서 이탈한다. 그리


고 이렇게 전치된 인간 조건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소인 육체와 움직임을 통해 비로소 구현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정치적 투쟁 이후에 태어난 젊
은 세대들은 정체성이라는 딱지를 벗어나 훨씬 넓고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작업”57하기를 갈망
하는 새로운 세대들에 의한 포스트-정체성적 경향을 대변하는 듯하다. 고정불변한 존재가 아
니라 던져진 존재, 그저 분투하며 살아가는 인간상은 국가정체의 확립이라는 사명으로 발전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교차점, 현실 인식과 공동체 정신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했던 앞선 시기
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명된다. 즉 개별적 존재가 지니는 문제의식과 사건을 탐구하는 방향으
로 변모되는 것이다. 이 시기 개인의 분화와 포스트-정체성적 현상은 의미를 규정하지 않고 미
끄러지거나 경계를 넘어선다는 의미의 ‘트랜스(trans)’, ‘크로싱(crossing)’, ‘크로스오버(cross-
over)’, 재료나 의미의 상호결합과 혼융을 통한 새로운 종의 창조를 의미하는 ‘퓨전(fusion)’,
‘하이브리디티(hybridity)’, ‘컨버전스(convergence)’를 이슈로 한 작품이나 전시의 등장을 통
해서도 관찰할 수 있다.58

55. 조르주 바타유,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조한경 옮김 (문예출판사 1999), p. 19.
56. 바타유,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p. 52.
57. 진 로버트슨, 크레이그 맥다니엘, 『테마 현대미술 노트: 1980년 이후 동시대 미술 읽기-무엇을, 왜, 어떻게』, 문
혜진 옮김 (두성북스 2013), p. 95.
58. 김영나,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미진사 2020), p. 291 참조.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27

이불이 “인간이 이성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전통적인 문화의 가정”59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


듯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미술계는 탈장르, 혼합매체라는 이름을 내세워 “매체에 대한
고정관념의 타파”를 피력한다. 문혜진은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며 “매체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며 “주제에 따라 가변적으로 매체를 선택”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 고정관념처럼 미술계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이념-매체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이분화된 구조를 이탈하고자 하는 실천이었음을 논한 바 있다.60 또한 ‘혼합(Mixed)’이라는 용
어가 주지하듯이 이러한 양상은 단색화 또는 리얼리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탈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 같은 이념적 틀로 범주화하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개별적이고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1982년부터 1994년까지 다문화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지형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 문제에 천착했던 박이소(朴異素, 1957-2004)의 작업적 전회와도 맞닿는
지점이다. 그는 약 12년간의 미국 활동을 마치며 관념적이고 허구적인 미몽과 같은 ‘정체성 이
슈에의 졸업’61을 선언한다.

저는 아픈 역사나 힘들게 살아온 과거, 또는 한국 문화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소재나 주제를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구태여 말하자면 월디즘입니다. 글로발리즘은 힘센 사람들

이 약한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질서이고, 월디즘이란 것은 […] 약한 사람이 자기 힘들게 산 이야기

한참 하다가 지겨워진 다음에 넓은 세상에 대해서 지 맘대로 지껄이고 횡설수설하는 것입니다.62

한국 귀국을 앞둔 1994년 작가노트에서 그는 “작품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통


로, 도구일 뿐이다. 내가 나를 본다(play하는 자신을 관조)”63라는 메모를 남긴다. 이는 주체 중
심주의적 창조성에서 무작위의 작위성으로의 전환에 가깝다. 이를 비롯하여 ‘덜 만든 것 썰렁한
것’, ‘비참해 빠진 삶 약한 것에 대한 애증’, ‘참을 수 없는 삶의 공허함과 살아 있음의 당황스런
놀라움’, ‘약해 빠진 사람들의 일상’ 등의 문구는 예술이 지니는 위대함, 교훈, 순수성과 같은

59. シャフハウゼン, 「イ·ブルへのインタビュー」, p. 185, p. 191.


60. 문혜진은 탈장르, 혼합매체의 실천 사례로 ≪MIXED-MEDIA: 문화와 삶의 해석-혼합매체≫(금호미술관,
1990), ≪미술과 테크놀로지≫(예술의전당, 1991), ≪가설의 정원≫(금호미술관, 1992) 등을 언급한다. 문혜진,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 동시대 미술의 기원을 찾아서』 (현실문화연구 2018[2015]), p. 132 참조.
61. 정헌이, 「박이소의 즐거운 바캉스」, 『탈속의 코미디: 박이소 유작전』(2006.03.10-05.14, 로댕갤러리), 전시도록
(삼성미술관 Leeum 2006), pp. 27-33, p. 29 참조.
62. 이소영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 자료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박이소 컬렉션); 이소영, 「우리는 지금
베니스 비엔날레로 간다」, 『Haute』 (2003년 3월 15일), pp. 140-145.
63. 박이소, 『1994년-1995년 8월까지의 작가노트』, n.p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박이소 컬렉션).
28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예술 정의로부터의 해방이자 무관심을 표방한다.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화두가 ‘불가능성’이
라는 것을 역설하듯 그의 작품 세계와 서술의 면
면에는 이러한 입장이 표명되고 있다.64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1998) [도
13]은 미술 역사에서 오랜 시간 몰두했던 재료와
는 차별되는 나무 패널, 각목, 콘크리트, 고무용
[도 13] 박이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 1998,
기 등을 사용하여 임시 가설물처럼 보이는 설치
콘크리트, 고무용기, 제소, 나무, 120x75x400cm
작업으로 제시된다. 이는 좌대나 액자 등 기념비
적 형태로써 “형식을 지탱하는 일련의 공통된 집합을 가정”65하기보다는 관객의 눈높이 아래나
지면에 설치됨으로써 미술 관념의 존재론적 기반을 흔든다. 이러한 특유의 제작 방식은 “주류
미술계에 대한 거부적 태도”이자 “반형식과 반미학을 주장했던 개념미술적 전제와 상통”66한다
고 해석되거나 “일상 오브제의 전유를 통한 작가만의 새로운 미감”67으로 파악되곤 한다.
그의 작품은 창의성에 대한 갈망과 걸작(master piece)을 만들고 싶은 욕망과, 실은 미술이
라는 관념은 아무 것도 아니며(<미술 무상(美術無常)>[c. 1998]), 그저 행할 뿐이라는 이중적 언
설로 표상된다. 즉 작품과 작품 아닌 것의 혼란을 야기하는 양가성의 전략은 미술에 대한 부정
과 거부이기보다는 영속화되고 고정된 관점을 유예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물질적 실천
이다.

64.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토론할 때도 (코끼리를 더듬는) 맹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의 일상이나 평생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 자신만의 시각에 따라 단 한 가지 측면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을 본다. 그러나 그것은 한 사람의 해석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 한 맹인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옳거나 더 그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괄호 속 내용은 필자 추가). Cheol-
ho Park, A Photographic Record of An Exhibition of Painting with a Corollary Statement, Thesis of master’s degree,
Pratt Institute, New York (May 1985), p. 1.
65. 제임스 E. 영, 「기억/기념비」, 『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 로버트 S. 넬슨, 리처드 시프 편저, 정연심 외
옮김 (미진사 2015), pp. 281-197, p. 284.
66. 진휘연, 「권력해체의 권력적 의지: 권력의 상대적 위상을 해체하기」, 탈속의 코미디_박이소 유작전 심포지엄 프
로시딩 (2006.03.22), n.p.
67. 김선정, 김장언, 『박이소 - 개념의 여정』(2011.08.20-10.23, 아트선재센터), 전시도록 (SAMUSO: Space for
contemporary Art 2011), p. 14 참조.
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29

Ⅵ. 나가며

지금까지 1970-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를 물질적 실천으로서 매체의 관점에서 어


떻게 다시 읽어낼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해방 이래 한국 현대미술이 서구로부터 받아들여진 가치관과 전통의 지속·발전을
지향하는 가운데 다양한 매체적 실천을 통해 역동적으로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70년대 미술이나 1980년대 민중미술은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하는 정체성 담
론을 중심으로 근대 이래 전래되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각 시기별로 매체의 변
화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매우 커다란 차이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가 서로 뒤섞이거나 충돌하는 가운데, 문화적 오브제, 산업 오브제, 자연물 또는 비물질적 물
질, 신체와 행위 등 각 시기의 시대적 조건과 환경에 따라 사물과 물질들에 대한 감성적 반응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매체의 역사는 과거와 단절적이고 독자적으로 발현
되기 보다는 끊임없이 회귀하고 스스로를 갱신하며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 매체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살펴보면 그것은 과거의 단순한 반복이나 단절의 구조를 취하기보다는 “장갑
처럼 뒤집어서 세계를 전도시키는”68 역전된 상상의 장소를 만들어주며 미술에 대한 우리의 시
각을 전환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 수용이나 국수주의적인 전통 논의 같은 이슈들은 한국 현대미술 논의에서 여전히 중요
한 과제이다. 하지만 그러한 틀에 박힌 시각만으로 한국미술사 기술은 예술적 에너지가 무엇인
지를 밝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글은 매체적 관점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이 지닌 예술적 가
치가 무엇인지에 한 걸음 더 다가서고자 했다. 1970-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개를 예술
일반의 논의에서 핵심적인 과제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매체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지금
까지 단지 헤게모니적 관점이나 이데올로지컬하게 바라보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국 현대
미술사 기술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판단된다.

논문투고일: 2021년 8월 15일


심사기간: 2021년 8월 16일-2021년 9월 5일
최종게재확정일: 2021년 9월 11일

68. 이브-알랭 부아, 「특성 (없는)」, 『비정형: 사용자 안내서』, p. 204.


30 미학예술학연구 64집 (20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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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에서 매체 이슈 / 한정민 33

도판목록

[도 1] 이승택, <설화>, 1956, 청동, 사이즈 미상, 작품 소실 (출처: 『국도신문』, 1958.06.26)


[도 2] 이승택, <매어진 백자>, 1975, 백자, 33.5x34.5cm, 오바야시 소장 (출처: 『1회 서울현대미술제』
[1975.12.16-12.22,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도록, 1975)
[도 3] 이승택, <제2해부학(눌림)>, 1970, 석고에 금박, 노끈, 151x36x25cm, 작가 소장
[도 4] 이건용, <동일면적>, 이벤트, 1975.04.19, 오후 3시, 백록화랑 (출처: 이구열, 이흥우, 「순수 창
작 설땅 좁아」, 『조선일보』, 1975년 4월 20일, 5면)
[도 5] 이건용, <신체드로잉 76-2>, 1979, 작가 소장
[도 6]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 <삼부작 발레를 위한 노트와 스케치 중, 와이어 코스튬
Wire Costume from Notes and Sketches for the Triadic Ballet>, c. 1938, 종이 위에 타이프 인쇄,
연필, 색연필, 29.2x21cm, MoMA 소장
[도 7] ≪두렁 동인 창립예행전≫ 기념탈놀이, 문화아수라판, 애오개소극장, 1983.07 (출처: 『미술세
계』 67호, 2018년 3월, p. 160)
[도 8] 두렁(김봉준 주필), <만상천하(萬象天下)Ⅰ>, 1983, 비단에 먹, 단청, 90x150cm (슬라이드), 국
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최열 기증
[도 9] ≪김봉준 목판화전≫(1985.03.06-03.12, 제3미술관), 포스터 (출처: 「민중판화 3연전」, 『매일경
제』, 1985년 3월 7일, 9면)
[도 10] 이승택, <모래 위에 파도 그림>, c. 1987-1988, 사진 위에 물감, 50x60cm, 작가 소장
[도 11] 마에야마 다카시(Maeyama Tadashi), <눈 이미지 변경 이벤트(걸음의 궤적) Event to Change
the Image of Snow(Trajectory of Steps)>, 1970 © 하나가 미츠토시, 이소 토시카즈(Hanaga
Mitsutoshi And Iso Toshikazu)/Courtesy 예술생활사(Geijutsu Seikatsu-Sha)/Photo By 호리카
와 미치오(Horikawa Michio)
[도 12] 이불, <무제(갈망)>, 1989, 야외 퍼포먼스, 장흥, © Studio Lee Bul (출처: https://
awarewomenartists.com/en/magazine/lee-bul-topographie-des-utopies/)
[도 13] 박이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 1998, 콘크리트, 고무용기, 제소, 나무,
120x75x4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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