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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타고 88 세까지 지구촌 돌며 남 돕고 싶다”

우리 나이로 올해 69 세인 대의그룹 채의숭 회장은 특이한 이력과 꿈을 지닌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가진 꿈 3 가지 중 2 가지를 이미 이뤘고 나머지 하나도 벌써 반쯤 달성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삶을
살고 있다. 50 대 후반에 과로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됐으나 브루나이에서 개척교회 봉헌 예배를 보고
난 뒤 완치되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화양리감리교회 장로이기도 한 채 회장을 인천 부평의
선엔지니어링 회장실에서 만났다.
채의숭 회장은… ▷1939 년 충남 보령 출생 ▷1964 년 건국대 전체수석 입학·졸업
▷1966 년 삼성그룹 공채 8 기 입사 ▷1976 년 화양 감리교회 장로
▷1981 년 대우아메리카 사장 ▷1984 년 건대 경제학과 경제학 박사
▷1985 년 대의테크(주)창업 대표이사 ▷1989 년 (주)MGS 대표이사
▷1995 년 건국대 총동문회장 ▷1996 년 (주)한산 대표이사
▷2001 년 건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현) ▷2003 년 (주)대의인티어 대표이사
▷2004 년 중국 대의기차부품(연대)유한공사 사장
▷2005 년 선엔지니어링 회장 ▷2007 년 대의그룹(6 개사) 회장
▷2007 년 자서전 ‘주께 하듯 하라’ 출간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반자본주의적인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말씀이다. 물론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부자들의 탐욕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고, 부유함에 취해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대의그룹 채의숭 회장은 성경 말씀 속의 그 부자일까.
전체 직원 수가 1060 명이고 연간 매출액이 4000 억원에 이르는 6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의그룹
회장이니 부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여느 부자와는 구별된다. 일생을 ‘주께 하듯 하라’는
골로새서 3 장 23 절의 구절을 모토로 삼고 살아온 기업인이기 때문이다.
지난 5 월 10 일 밤 10 시 CBS 의 ‘새롭게 하소서’(오미희 이일도 목사 진행) 팀이 취재, 방송한 바에
따르면 채 회장은 경영철학이나 직원들로부터의 평가도 인정받을 만하다. 채 회장은 대의그룹의
모체인 ‘대의테크’를 설립한 1985 년 이후 지금까지 22 년 동안 회사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경영철학을 지켜오는 것이다.
한 직원은 방송에 나와 “대우그룹의 부도 사태로 119 억원을 날리게 됐을 때 자신의 월급은 포기해도
직원들의 생계를 챙겨주었어요”라고 말했다. 또 어떤 직원은 “업무 면에서는 엄격하지만 온유하고
젠틀한 분입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비기독교 국가 여러 나라에 100 개 교회를 개척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 45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앞으로 10 년 내에 100 개의 교회개척의 꿈을 이루겠다고 한다. 10 년 후면 채
회장의 나이는 만으로 78 세다. 우리나라 남성 평균 수명에 해당한다. 이것이 본란-‘인물포커스’에
초대하여 그에 대해 상재하는 이유다.
화양리 감리교회에서 36 세에 장로가 되어 지금까지 초지일관 열정적이고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채 회장. 부유하게 살았던 솔로몬 왕을 연상케 한다.
미얀마 딱잘렉 교회 건축 기숙사 앞. 맨 왼쪽이 채 회장.
▶경영과 교회 사업을 왕성하게 하기에 피로를 느끼거나 지치지는 않는가?
나는 60 세까지는 목표가 이끄는 삶을 살고, 60 세 이후에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다. 60 세까지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줄기차게 달렸다. 60 세 이후에는 정열이
아니라 지혜와 경륜으로 살고 있다. 좀 더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나한테는 나이와 피로감은 해당사항이 아니다.”
▶자서전 ‘주께 하듯 하라’에 보면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그런 목표를 정했다. 농고 축산과를 다닌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꿈이었다. 아마
누구라도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했을 것이다. 첫째는 박사학위를 가지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고
둘째는 커다란 회사의 사장이 되어보는 것이었다. 마지막 꿈이 교회를 100 개 세운다는 꿈이었다. 두
가지 꿈은 이미 이뤘고 마지막 꿈도 지금 절반쯤 이룬 상태다.”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들었다.
“가당치 않은 큰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이 평가받은 것 같다. 사실 내가 살아온 세월은 ‘주께 하듯
하라’와 같은 작은 책으로는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하다.”
여기서 채 회장의 삶을 잠시 살펴보자. 그는 충남 서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자라나 일가족과 함께
교육을 위해 보령으로 이주했고, 여기서 신앙심과 젊은이로서의 꿈을 갖게 된다.
채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며 “항상 길잡이 역할만 해주고 무슨 일이든
결정은 내게 하도록 했지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른스러웠고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고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우수학생이었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그는 농업고등학교 축산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박사학위를 가진 교수, 큰 회사의 사장, 100 개의 교회를 세우겠다는 세 가지 큰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자신의 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건국대 경제학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해서는 삼성그룹 공채 8 기로 입사했다. 삼성그룹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대우그룹으로
스카우트 돼 CEO 지위까지 오르고 1985 년도에 퇴사하여 장난감회사인 ‘대의실업’을 인수,
자동차부품회사로 키워냈다.
하지만 창업 직후 피눈물을 쏟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당했다. 일껏 시설한 공장이 홍수로 침수돼
기계가 고철이 될 정도로 망했고, 간신히 재기하던 중에 다시 화재로 공장이 전소되는 참담한 일을
겪었다.
라오스 폰무앙 교회 봉헌예배 후 신도들과 함께. 왼쪽 키가 큰 사람이 채 회장.
채 회장은 “그런데도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었습니다”며,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던지 채권자인
은행에서도 빚 잔치를 하지 않고 기다려주겠다고 했지요”라고 했다. 그만큼 그가 살아온 삶이
신실했고, 가능성이 있어보였다는 얘기다.
▶책 출간 뒤 독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는가?
“역경을 딛고 일어나 오늘까지 온 이야기이기에 감동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된 모양이다. 많은
독자들이 얘기한다. 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 여러 번 읽은 사람도 있다. 내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인생을 새로이 시작하겠다는 사람, 목표에 재도전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계열사 수를 12 개로 늘리겠다고 했다. 잘나가던 대기업 CEO 출신이 20 년 동안 6 개의 기업체를
창업했다. 젊었을 때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70 이 다 됐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20 년 동안만 건강을 주시고 비행기를 탈 수만 있다면 국내외적으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남을 위해서 그러고 싶다. 나이가 많다고 했는가? 내 사업은 젊은
사람보다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분야다. 선택과 판단력은 젊은이들보다 나 정도의
경륜이 있는 사람이 낫다. 지식은 증가가 안 되지만 나이 들어도 지혜는 증가한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고 본다.”
▶창업주는 보통 자기 자신이 회사 안에서 가장 애사심이 많고 업무 지식도 해박하다고 생각한다.
회장께서는 어떤가.
“한 나라를 세운 왕이나 대통령, 재벌총수… 등 창업자는 자신의 손때가 묻어야 한다. 자기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이건 좋지 않다고 본다. 2 인자 3 인자를 기르고 믿어야 한다. 모든 일이 기능은
다르지만 똑같이 중요하다. 탤런트가 다를 뿐이다. 이걸 체득하는 데 40 년이 걸렸다. 회사는 혼자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오너는 방향을 정해주고 집행부서가 결정하게 해야 한다.”
▶‘주께 하듯 하라’는 말씀도 그런 연장선상의 경영철학인가?
“그렇다. 골로새서 3 장 23 절에 있는 말씀이다. 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를 참고로 했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독일을 부흥시킨 재상 비스마르크의 국가 경영 철학이 이것이었다고 한다. 퇴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았다’고 했다는 말은 너무
유명하다. 내가 그만큼 했는지는 모르지만, 품질관리, 생산, 개발, 영업... 어느 한 역할이라도 소홀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경비원에서부터 간부들에 이르기까지 주께 하듯 했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았다.”
올해 5 월 키르키스탄에서 우루무치까지 뻗어있는 천산을 배경으로 화양 교회 일행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5, 6 번 째가 채 회장 부부.
이렇게 의욕적으로 큰 꿈을 이루어가던 채회장은 50 대 후반인 1996 년에 뜻하지 않게 쓰러지는 변을
당하기도 했다. 기업경영, 모교인 건국대총동문회장, 학업, 신앙 활동 등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활동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채
경희의료원에서 4 개월여 동안 치료했다. 밝혔다가는 그가 벌인 모든 사업들이 혼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브루나이의 교회 개척예배를 위해 출국을 하게 됐다. 브루나이는 열대지방으로 반신이 마비된
채 회장한테는 무리한 여정이었다. 게다가 산 넘고 바다 건너고 다시 카누를 타고 강을 거슬러서
찾아가야 하는 험난한 길이기도 했다. 채회장은 “개척예배를 마치고 나니 도저히 귀국을 못 할 것
같았습니다”며 그때 일을 회상했다. 몸이 너무 지쳐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한국에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고 한다. 일행 모두가 찬송하고 기도하며 이틀을 머물렀다고 한다. 그런 뒤에야 기운이
나고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귀국 후에 기적이 일어났다. 채 회장은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니 놀랍게도 몸이 100%
정상적으로 회복돼 있는 것이었어요”라며 “신장도 좋아져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아팠던 사람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교회 개척하는 사업에 매진하는가?
“태국 등 몇 나라를 빼면 동남아가 공산권 국가들인데, 그런 나라들이 대상이다. 그래서 암약하듯
교회 개척을 하게 된다. 그만큼 위험하다. 올 초에도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체포될 위험에서
추방되듯이 빠져나왔다. 담당 목사가 당분간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5 월에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우루무치를 다녀왔다고 하던데….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우리 한인들이 많이 산다. 바로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울 계획이다. 이번에 다녀온 것도 그 일 때문이다. 키르키스탄이 현재 여건이 좋아서 우리
감리교, 성결교 등 교파가 연합하여 신학교를 세웠는데, 나는 그 학교의 채플실을 맡아 설치하기로
했다. 3 월에 있은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분들께도 화환 대신 그 채플실을 세우는데 필요한
선교헌금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1100 명이나 찾아주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성공하길 빈다. 끝으로 자녀들에게도 같은 길을 가라고 권하는가?
“아버지는 아버지 몫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몫이 있다며 짐 지우지 말라고 하던 딸이 지금은 그렇게
말한 것을 회개한다고 한다. 내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채의숭 회장은 글로벌한 중견그룹으로 회사를 키우면서 한편으로는 교회사업을 통해 아시아권
한류의 정신적인 외연을 넓히는 사업을 전개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흥미진진한 얘기는 많고 인터뷰
시간은 턱없이 짧았다.
출처 : 백세시대(http://www.100ssd.co.kr)맡기

백두산 꼭대기의 빗방울 하나 떨어지면 1cm 차이로 동쪽으로 떨어진 것은 두만강을 거쳐서 동해를
거쳐서 태평양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근데 불과 1 센티 차이지만 1 센티 차이로 서쪽으로 떨어진 것은
압록강을 거쳐서 서해를 거쳐서 인도양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지 태어 났지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동쪽으로 갈 수도 있고 서쪽으로 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1 시간 동안 제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판단을 하시고 충만 이 시간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여러분이 되기에 도와주시고 지금부터 하나님이
함께 하지 여러분 일생 동안 가는 동안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서 우리가 먼 훗날 뭐 누난 하는
안에 갔을 때 진짜 잘했다 칭찬 받을 수 있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런 사람이 될 것을 바라면서
제 말씀은 시작하겠습니다 아 제 나이가 지금 84 살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부터 80 여년 전에 충청남도 서산군 태안면 이라는 아주 가난한 벽촌 중의 벽촌 중에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자녀가 여성 명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그 가난한
집안 이어 썼지만 은 평생을 가도 그것은 자동차 한 대를 구경할 수 없고 기차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일생동안 초등학교도 갈 수 없는 그런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뜨겁게 해빛이 비치는 날 아버님과 어머님이 밭에 나가서 일을 하시다가 그래도 우리한테는 6
명의 자녀가 있는데 한 사람도 50 가지 자동차를 구경 하지도 못했고 기차는 보지 못했고 앞으로
살아봤자 초등학교 갈 수 없는 그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생각하시고
아 벌떡 일어나서 집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시고 쉽고 있던 지팡이와 옷 한 벌을 입고 보지 무작정
자동차가 보이고 기차가 보이고 초등학교가 보이는 곳 그런 곳에 살기 위해서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을 했습니다 이틀 동안 산골 길을 걸어도 걸어도 특히 기차도 자동차도 초등학교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실망에 지쳐 있던 우리 아버님이 사흘째 된 날 아침 7 시에 산중에서 일어나서
오늘은 어디를 가야 자동차를 찾을 수 있고 기차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좀 하 심해서 일어 나기는
했지만 은갈 길이 너무나 막연했습니다 평생동안 한번도 기도를 해 보지 못했던 우리 아버님은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이 사랑해 주시면 저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 부 떨어져 주시고 우리들은 기차도 자동차도 발견할 수 있는 것 우리 8 식구가 살 수
있는 곳을 찾게 해 주세요 하고 평생에 한 번도 기도를 안 했었는데 그 기도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
기도를 마치고 벌들이 돌아서 당신이 이틀 동안 쉽고 당했던 지팡이를 하늘의 던지면서 하나님 저는
이 지팡이 끝을 향해서 걸어 가겠습니다 저희가 살 수 있는 곳을 한 번만 한 번만 보여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벌 떠요 라서 시작 지팡이를 하늘에 던졌습니다 하늘의 돈 이다 보니까 그 지팡이
끝을 향해서 우리 아버지 입은 사흘째 되던 날 걷기 시작했습니다 5 시간 30 분 동안을 걸었다 보니까
충청남도 보령군 대천이란 곳에 도착을 했고 거기에 가서 보니까 어쩌다 한 대씩 자동차가 볼 고
기차 다 보일 수 있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오언 어떤 초등학교가 눈에 보였을 때 별천지를 발견
하듯이 우리 아버지 온 너무나 기뻤습니다 거기에 저희 8 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을 초라한 집이
애썼지만 효과 짐을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랬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분 사놓고
보니까 그 앞에 조금 뒤 하나 있는데 그 길 건너편엔 우리가 우리 아버님이 샀던 4 배나 커보이는
초가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이 보령군 전체에서 교회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 있는 집이 대천
감리교회였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들이 책정에 의해서 장로교 도 성결교도 어떤 교회도 들어 가 수가
없고 감리교만 들어 갈 수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이 통치하던 그런 시절이 없기 때문에 태천 감리교회
딱 하나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도 안 했고 그래 썼지만 그렇게 간절히 게 한
기도하는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집을 사 놓고 보니까 바로 그 앞에 내려온 4 배로 커보이는 대천
감리교회가 있는 그 앞에 저희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게 어디 우연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까?

저희 집은 너무나 감사해 뛸 듯이 기뻐한 는데 얼마 있다 보니까 8.15 해방이 되었고 우리나라도


일본 사람이 물러가고 우리나라 사람만이 살 수 있는 그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는 누가 먼저 교회를 가자는 그렇게 결정된 것은 없지만 은 여덟 식구가 똑같은 날 교회를 대천
감 교를 다니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것이 1945 년 9 월달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8 월 15 일 해방이
되었고 9 월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듀얼 을 그런 교회는 운동 연고
있었고 우리보다 더 커 썼고 처음으로 간 교회는 우리를 너무나 기쁘게 맞이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님을 그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그 곳에 우리는 우리가 사신을 영원한 집을 찾게
되었으니 얼마나 끼 봅니까 해방이 되고 나니까 우리만 기쁜 것이 아니고 일정 시더 에세대로 교회
한번 가 보지 못했던 그 대천 감리교회 교인들이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결정된 것이 우리
손으로 우리가 다닐 수 있는 대천 감리교회를 다시한번 우리 손으로 짓자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그
때는 주어 전부 농업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낮에는 때 논밭에 가서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은 우리 대천
감리교회 교인들은 밤이 되면 전부 모여서 교회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저 역시 6 살 밖에 안되는
저지만 강에 가서 놀다가도 자기의 그 돌을 쭉 주어서 담고 그것이 교회 쥘 수 있는 도리 라고
생각하면서 가지고 왔을 때는 무겁지도 않고 가볍게 3 보였던 그러한 교회 건수 너 어느 저희들의
기쁜 나머지 이념 만 의 대천 감리교회를 세웠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어떻게 할 줄 모르고 오늘은
우리 옷을 전부 빨아 입고 대천 감리교회 헌당 예배를 가자고 그 큰 기쁨을 가지고 헌당 예배를 보러
왔습니다 모두가 기뻐서 어찌 할 줄 몰랐습니다 드디어 헌당 예배가 드려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잘했던 우리 담임 목사 목사님의 설교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 담임 목사님이 무슨 설교를 하실까? 그것을 향해서 만 쳐다보고 있었던
오늘이 1 분이 가고 2 분이 가고 3 분이 가고 5 분이 가도 담임목사님은 무슨 말씀을 할 것 같은데
아무 말씀을 하질 못하는 거예요 결국 오려 5 분이 지나도 한 말씀하지 못하고 뭐라고 말씀을 할 것
같은데 하지 못하고 걸어 내려오고 있는 우리 목사님 얼굴에는 두 눈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무 감동이 되니까 설교 말씀이 안나오는 거야 그 모습을 봤던 우리 교인들은 담임 목사님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교인 모두가 울었습니다 8. 15 기쁨과 함께 헌당 옆면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고
저는 6 살 밖에 되지 않아 썼지만 은 그런 모습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세는 3 월이 나 4 월
달에 학기가 시작되지만 일본 사람들이 통치하던 그 시절에는 9 월이 학기의 시작 입니다 저는 그때
6 살이 먹었을 때 일본 사람들이 있었던 그때 저는 초등학교를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서
일생동안 초등 학교를 갈 수 없는 저희 신세였지만, 당당히 저는 해방이 된 그날의 대전 초등 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6 학년은 다 보내고 난 위가 초등학교 밖에 없었던 그것의 중학교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천 중학교 들어가게 됐고 대천 중학교 3 년을 지나다 보니까 대천
고등학교가 다시 생각했는데 공부를 위주로 하는데 가 아니고 농사를 위주로 하는 그 학교 대전 높고
닦여 색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고등학교를 들어간다는 그 기쁨이란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2 학년 되었을 때 지금도 몇 십 년이 지났지만 은 그날 설교를 하는 목사님은 단일 목사님


고은애 목사님입니다 고온을 목사님의 단상에 서서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해에 고등학교 2
학년 시작하죠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꾸 분 이제 고등학교가 생겼기 때문에 우리의 꿈을 펼
수가 있는데 여러분은 어느 부터 꿈을 가지라는 그 말씀을 그렇게 크게 외치면서 말씀했습니다 꿈
올해는 꿈이란 게 없었습니다 왜 농업 고등학교를 나와 봐 때 취직도 될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써본
월 수 없는 그런 쳐져 있었기 때문에 담임 목사님은 그렇게 큰소리를 얘기 했었지만 은 아무
우리한테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도 크게 꿈을 가져 비전을 가져라 는 그 말씀을
듣고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서 별 생각을 다 해봅니다 꿈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꿈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러다가 우릴 집에로 들어가질 않고 이상하게도 우리 집에서 얼마 좀 떨어지지 떨어진 곳에
조금은 공동 묘지가 있었는데 제가 공동묘지를 걷고 있는 거예요 이상하다 어째 내가 집을 가지 않고
고놈 의리와 있을까 그러다가 이 유황이 여기까지 왔으니까 여기에 산 기도를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해서 여러분도 꿈을 가지신 분은 꿈을 가지신 대로 꿈이 온 농부는 지금이라도 제가 그
당시에 꿈을 가졌던 것처럼 꿈을 갖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저는 한 번 더 생각을 안해 봤지만 첫 번째 가진 꿈이 있었습니다 응원 그 꿈은 하나님! 할 수만


있으면 제가 박사가 되게 해주세요! 그 말이 제 입에서 튀어 나왔습니다. 한 번도 그런 꿈을 가져
보지 못했는데 하나님을 부르면서 저에게 박사가 되는 꿈을 갖게 해주세요! 하는 그 문제하고 두
번째는 그때 요새는 회사 회사 회사에 취직한다 했지만 은 그 당시에는 회사라는 말이 없어 뭐
없었습니다 회 사람 말은 자본주의에서 나온 얘기인데 그때는 회사 란 말이 없었는데 저는 어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저 도 고등학교를 졸업 맞고 나면 직업을 갖게 해 주세요 저도 회사에
다니는 영광을 갖게 해주세요 하고 큰 소리로 제가 기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하늘 앞에 큰소리로 외쳐서 응원군을 만난 것처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박사가 되고
회사에 다닐 수가 있고 그러면 돈을 벌어서 저는 전세계 예수 얘기하면 하나님이 얘기하면 손
잘라지고 발 잘라지는 그런 곳에 가서 저는 교회를 100 개를 세우게 해 주세요 꿈을 저는 하나님 게
진짜 억 목에 털어 라고 혼자 소리지만 왜 지시자 그랬습니다

그 세 가지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제까지 있었던 채의숭이가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고


회사의 사장이 되는 꿈 그리고 나 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큰 교회를 한국만이 아니고
전세계에 세워서 제가 100 개의 교회를 세워 수 있는 그런 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간절하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우빚이 많은 편은 그런 꿈을 갖고 나서
부터는 얼굴색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는 박사 야 나는 사장이야 나는 내 교회만 세우는 게 아니고 나는 영국의 가서도 독일에


가서도 미국에 가서도 훨씬 못사는 나라가 있어도 내가 가서 교회를 100 개를 세울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또 정말로 허황된 것 같지만은 그렇게 엄청나게 내가 결심을 하면서 어느 한 내가 그걸
이루어진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모여 계신 분 여기에는 제
나이가 되는 분도 있을 수 있고 젊은 분도 있을 수 있지 바랍니다그 당시 제 나의 16 17 살에 그
엄청난 꿈을 가지고 저는 기쁜 마음로 돌아왔을 때 저는 완전히 지금까지 의 채의숭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택한 채의숭이 될 수 있는 그런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온 여기 오래 사는 건지 모르지만 여러분 중에서 그런 꿈을 가지고 일어 섰을 때 여러분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는 여러분 자녀가 진짜 몰라 볼 수 있는 그런 꿈을 가질 수
있을 수 있습니다 겨 가지 농업 고등학교 아무런 꿈도 없는 저지만 은 고등학교 2 학년 때 그 세가 제
꿈은 지금도 생각하면 얘기만 들어도 힘이 벌떡 벌떡 날 수 있는 울고 그 꿈이 여태까지 저는 그
그것은 마음속에 넣어서 지금도 그 세 가지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 꿈이 그 세 가지 꿈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이루어 질 수 도 없는 반이 아니라 3 분의 1 에 내가 10 분의 1 도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지 많은 여러분 그때 제가 가진 꿈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항상 상상을 해 보세 상상을
해보세요

저는 그 농업 고등학교 그것을 다른 사람들은 똥통학교라고 그럽니다 너 먹고 난 테니까 똥통학교다


똥통 학교라 하지만은 저는 그 꿈을 가지고 나서 부터는 절대적으로 똥토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새벽 회도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전혀 4 오기도 했습니다
어 누 어떤 자리를 막론하고 오려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 봤을까 여러분 어디
됐어 같습니까 그 꿈이 결론부터 얘기하면 은 박사가 되게 해 달라고 했으면 법학박사 되던지 격려
박사가 되던지 뭐 국문학 박사 대들지 그렇게 하나 쯤 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저한테
박사를 세 개의 박사를 만들어 주신 거야 똥통 학교 출신이었던 제가 어디에도 이루어질 수 없는
제가 지금 저는 경제학 박사 경영학 박사 선교학 박사 그 다음에 회사의 사장이 되게 해 달라 말도
되지도 않는 회사 앞을 가보지도 않았던 저지만 저는 75 세까지 전 세계 12 개 회사를 경영했던 대의
그룹 회장인 채의숭 장로입니다 장로는 얘기를 여러 번 들어 줘 여러분 장로가 어디 말하고 봤습니다
제가 목사란 얘기를 우리 목사님은 저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장 놓이면서 저는 목사입니목 그럴 때
1000 원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여섯 개의 회사를 저런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해외
미국에도 카자흐스탄에도 중국에도 호주에도 저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말씀한 것을 젊은이는 젊은 이대로 주먹을 쥐고 연세가 많은 분들은 손자가 또 자녀가


그렇게 될 것을 여러분 기도하면 된다 그런 얘깁니다 저는 아닐거 같은데 그랬다는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저는 박사고 제가 돈만 그렇게 많이 벌 것이 아니고 저는 100 개의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100 개의 교회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저는 밭을 매고 삽질하고 도끼질 했던 그런 시골 청년이었지만 은 하나님이
저를 선택한 이후부터는 전연 다른 채의숭이가 되었습니까 그 어디로 해야 되실꺼예요 고단 장난을
중요한 더 하나님께 먼저 기도를 하는 거 싶다 먼저 끼도 하나님의 정말로 듣고 듣고 또 드렸을 또
그걸 기도라는 거야

그런 꿈을 가지고 나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이기 때문에 저는 고등학교


다니면 다니면서 아침에 5 시가 다 듯이 반해 이라면 소를 뭐 히려 풀을 뜯으러 학교 가기 원해 속
배를 채워주고 아니면서 덜 로 나와서 소를 먹입니다 저는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면 은 먼저 하는
것이 쟁기질을 하는 그 소를 몰고 들판에 나가서 산에 나가서 배 불리 먹일 수 있도록 소를 는
것이었습니다 서로를 먹인다고 하는 것을 한적한 시간이었고 그 때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제가 목도 긴 제가 하늘을 향해서 하나님! 하나님! 제가 지금
소를 먹이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소를 먹이고 있지만 저는 격려 의자는 대학을 갈 것이고 대학을
가서 박사가 되고 나에게 돈을 그렇게 많이 벌고 해가지고 엄청난 제가 될 것을 하나님! 하나님! 꼭
이루어 주세요! 이루어 주세요 그렇게 목동인 저는 아침 저녁으로 그런 기도를 하는 거야 저녁도
그럼 이 기도 하는 거야 저녁에 잘 때 그 그런 얘기도 하는거야 그 기도를 하나님께 보고 계십니다

고등학교 2 학년 8 월달 쯤 돼 가지고 우리 어머님과 다 태어나서 콩밭을 매고 있었습니다 저는 쿵


밭을 매고 있으면서 그날만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서울을 가고 싶었어요 여기서 서울 가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대천에서 서울 가는 것은 기차 2 시험 반만 타면 되는 건데 저는 다이어트 한 녹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저는 서울을 구경할 수 없어 그렇게 한 병 이었어요그러나 엄마는 하나님께
저는 서울을 가야 됩니다 하나님 서울가서 대학을 다녀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제 중학교 2
학년 때 짝지였던 이영묵이란 친구한테서 저한테 한 통의 편지가 왔어요 뭐라 왔느냐 내가 중학교 이
아이도 나오자 끼어 썼는데 내가 그렇게 배고플 때 정말 뭐 을 법사 갈고 쑤 사 가지고 갈 수가 없어
숙 수비 나고 물러서 도시라고 4 가지 봤던 나를 너는 배고프다고 나한테 도시락을 바꾸어 줬던 너
아니냐? 그것을 그런 고등학교를 서울 사범학교에 가 가지고 그걸 학교 그래서 졸업을 하니까
선생님을 할 수 있었고 그때 생각 났던 것이 내 도시락을 바꿨던 그 생각이 나니까 나한테 편지 당
거야 내가 올라왔으면 좋겠다 언제 무슨 피 차로 올랐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내가 홍범 해도 매 담
하고 우리 어머님한테 어머니 나 서울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블로 그랬더니 을 우리 어머니가 각오를
하고 있었는지 남자고 여자고 다른 것이 남녀 옷을 벗으면 아무 것도 없는 그 여자는 겉옷을 벗으면
옷이 또 하나의 쓰기에 고쟁이 라고 그런데 옛날에는 그곳 여행에는 주머니가 달려 있었고 비유한
것을 넣는데 우리 어머니가 각오를 하고 있었던 이 그 주머니 속에서 100 원짜리 5 개를
꺼내주었어요 아마 그것이 큰 주머니 전부인지도 몰라요 아마 걸고 서울을 갔다 오라는 거야 꽤 저는
집에 들어가 뛰어가서 해 모르는 물을 봐줘 손을 씻고 나서 옷만 갈아입고 대천역 기차 가 오는 곳을
야에서 죽어라고 뛰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 차로 오라는 것을 적어 줬기 때문에 그 차에 타 가지고
서울을 가는 기본 저는 ㅇ 2 3 4 4 뭐도 바꿀 수 없는 그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울 같더니 서울
야외 이영묵이란 친구가 나왔는데 그럴 서울 사범을 졸업하고 선생님을 하면서 내가 자기가 너무
배고플 때 도시락을 바꾸어줬던던 내가생각이 나서 나를 오라 했고 나테 제안을 하기를 내가 본
돈으로 삼 개월 반 동안을 내가 너한테 하숙비를 대 주겠다 그렇게 얘기하는거 3 개월 반은 그때
대학교 입학 시험이 있는 곳이 간이 3 개월 반 후에는 그 시간이에요 그러면서 사이가 돈을 다 해줄
테니까 그렇게 하라

그런데 몇 달 전에 이영무 하는 친구가 나한테 책을 두 번은 사서 보냈는데 책이 일만큼 든


책이었습니다 이 책이 연세가 많은 분들 기억이 날지 모르지만 영어로서 구문론이라는 책이고 또
육아 큰 2 공책이 삼위일체 라는 영어 책이 있었는데 꽤 참고서 입니다 그 책을 나한테 사서 보내기
때문에 15 일 학생이기 때문에 나는 공부할 때 아무 것도 없고 그 책을 영어책 2 번을 나한테
보냈는데저녁에 석유 등 양 볼 밑에서 새벽 3 시까지 나는 그 책을 보는 거야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회 않은 안될 지 모르지만 은 작문 하고 해석은 그 책만 보면 끝내 줄 수 있는 거야! 대학 시험을 끝내
줄 수 있는 거야.

또 하나는 우리집 내력이 공부는 학교 와서 공부는 안 했지만 은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가


초등학교 나온것이 전부였지만 은 뭘 잘하는 것이 1 있었냐 며 다른 공부는 잘 모르지만 수확만큼은
끝내 주게 잘해요 입이 우리가 수확하는 누구한테도 수학은 지질 않는 거야 그런데 대학 시험이라는
게 별 게 있습니까 영어 잘하고 수압 짜라고 부각하고 상식만 4 라면은 대학 시험 놓고 볼 수 있는
거예요 내 수학 만한 끝내 주니까 그건 무조건 얀은 100 점이 야 내 동생도 수학은 100 개 뭐야 근데
영어 삼위일체 구문론을 사서 보냈으니 그것을 6 번 씩이나 읽었으니 인어샌딩 하면 로드가 벗어나 5
나오 나온 요구에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3 개월 반 또한 저를 하 속 되는 돼야 되는 거야 수끼
하는 살기로 되는 공부해서 시험을 봤는데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전라남도 광주에 조선
대학이라 게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는데 조선 대학 의 특별 장학생 시험이 힘을 해놨고 두번째는
서울에 있는 흑석동에 있는 숭실대학이 게 그 이제 뭐 흑석동 있는데 얍 태아 그 대학 협의서 그
하나는 건국대학교 그런 종합대학인데 입학 시험이 그 세 군데가 장학생 시험을 특별히 본 거예요

그래서 상경을 반을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러 갔는데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명색이 목


쌓이면서 잘 안옵니다 장로교 목사가 거지 마라가 모자랄 땐 못 봤잖아 저는 조선 대학 강연 저항 3
송 실대학이 60 충신 대 송진 대학 유시 의자 학생 건국대학교 의 성신 의 장생그것이 공부 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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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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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욱 349 지금도 삼성그룹이 일대 이잖아요 정릉 삼성그룹 아 하고 배우 그룹에서다 합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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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 이후 에서도 그렇게 씁니다 해주신 가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나만 그런게 아니고
여러분도 자녀도 다 그렇게 할 수 있다 손자 설명도 할 수 있다 이거 내가 얘기하는 것을 집에 가서
자녀들은 데다 강철 실지 그랬으니까 어디를 찾아 봐도 돼 이름을 찾으면 그 경영은 다 나온다
이겠죠다 나온다 거지 그러니까 저는 천재도 아니고 수제 도 아닌 사람 했지만 저는 자신이 없어 너
없는 시골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누구 – 있어요 하나님 때입니다 나는 공부하고 공부할 때마다
하나님하는 거 내가설을 고등학교 다닐때 소를 머리는 것은 아침 햇볕이 위원 해 먹이는 거죠 그
다음에 또 학교 갔다 와서 소리를 못 하는 거죠 공부를 하진 못하지만 은나는 소를 먹는 목동 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야 되니까 2 그런데 그걸 하면서도 그걸 하면 서로 저능 다름을 할 수 없지만
손을 먹으면서 기도를 할 수 있잖아요 휴대를 하는 거죠 하는 게 해 놓은게 1 개의 기도하며 는
공부를 할 때도 그만큼 정신적 이 집중이 되고 그 저는목동을 하면서 다 위처럼 기도를 하는
사람이야 기도를 알바라고 대학을 가서 전부 모든 것을 0 지하로 반이니까저는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공원의 든 그래 겉에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 학교에 포 랜카드가 8 개가 붙였는데 3 군 될 다 깨어나야
은행도 학교 삼성동 학교은 한번 공무원도 합격 그렇게 우리나라의 큰 신문에 제가 전부 놨다 이거죠
내가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거 아니야 의자는 여기에 뒤 보면 젊은이들이 짧 게 아니었는데 예수 믿고
기도하며 는기도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은 1 위해서 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대학원도 전부 공짜로 공지 하러 다녔습니다

저는 삼성의 들어갈 때 대우의 들어갈 때 그 어려운데 여러분 아시아나 내가 삼성 5 대회 에 들어갈


때는 암만 공부 잘해도 암만 공부 잘해도서운 데 본회의 연대 이 외에는 절대 력으로 합격을 안
시킵니다 그때는 절대 역으로 한상동 시키지 알아서 그런 내 건국대학교 나오고 나서 삼성의 더 라고
대회 더라면 나가라 뵙게 없어요 우리 1 회 장님의 중인 이야 나무 나비 없어요 왜 지금도 나만
합격해 놓은 이건 나도 모르세요 그러나 나는 당당히 합격해 도 후에 다녔던 망고 대웅의 상성
다니면서 20 년 강해 가지고 내가 마운 사례 삼성 대우 에서 사장을 한 사람이야 왕 살의 삼성과
대회에 사랑했던 사람 한번 흔들어 보세요 웃다 이 거지 아무도 없다 이거죠 나는 삼성 나 대회에서
오늘 경로 물론 학교인지 바로 그랬다 이게 그것이 목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는 존나 벽 나오지도 안하고 지금 고 답해 나온데 똥도 학교다니고 있는데 하나님 저한테
기회를 주 의사 하나님의 그릇으로 쓸 수 있도록 저를 승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쉬엄 을 봐서 떨어지는 게 없어 하등 떼러 재능이 없어요
캐리가 결제와 엄청나게 성공할 수밖에 없다 이거죠 그런가 정운 40 세까지 대개 맨 화장을 하고 그
다음 보다는 내가 왜 나 만든 여쭙니다 이라는 사냥이 됐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끝에
뭐뭐라고요

그렇게 다하고 나서 전세계 내 교회의 100 개를 뒤 있는데 3 즉 가련하고 어렵고 힘든 그런 곳에 갈


수 있는 교회를 지어 볼 수 있다 국민 화력이 목사님들 목사님께 지지 많은 우리나라의 큰 교회가
교회가 교회를 그렇게 많이 세운 사람이 있지만 1 개 있는 한 사람이 100 개를 세운 걸 알 세운 것은
아 신문에 났어 누가 1 그런 것은 뭐한 3 아우 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 나는 75 세까지 100 개 이끌
좋습니다 75 세 10* 꾸게 널 크기를 그래서야 사장을 악사를 새 것 하나님이 할 수 있다 이거죠 내
얘기는 혈 묘시 맞는 양희뭐 이 회장이 뭐 우리 목사님의 한 번 꼭 이 교회의 우리자녀들 한데 제
육아 육성으로 그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저한데 몇 번 말씀에서 기회가 여길 와 왔다구요 헬 솔지
된다 이렇게 귀여운 교회나 바버 정리한 표 국내 봤어 내 무시한라 그런게 아니구나 한국의 녹색 내
우리는 제 1 편 교회가 어떤 예 여유도 순간 께 나는 숙명 순복음교회만 8 번 을 초청 받아 한 사람이
거기 기드온은 2 번이 를 조정하도록 그 다음에 큰 교회 달다 얘기하면 아그건 나 한다 방법 맞다
어딜 난 앱 아갔다여름 목사가 꺼짐 말하고 장모가 거리 말한 거 봤어요 라는 35 세에 만감 10 월에
장로가 된 사람걍 우리 목사님이 목사님 내외와 70 세가 됐을 때 목사님 난 만나자 그랬어요 제가
갔을 때 27 수지가 70 테니까 50 년 동안 많은 횡 밤이 결정했습니다 화양 반면 잔이었는데 목사들이
날 보고 하는 얘기가 최 가질 나한테 얘기 했어요세 가지를 나보고 한 얘기가 제일 첫번째가 3
장로님은 설훈 5 살에 장로가 될 텐 는데 장모는 데 제가 이제 실세 은퇴를 할 때 담임 목사님이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우리에게 50 년 다는 다녔는데 서론 태서 쌀의 잘못했다 이야 우리나라의
우리나라를 35 살의 잘 노는 사람 여러분 봤어요 나는 그때 하도 밀고 경우로 출장 만약 이대로 갔다
와서 보니까 목사님 일본어를 모르시는 2 혐오 고 # 못해 쓰이게 휴 콰 6 화 한다는 걸 축하한다 그런
무식 말씀이며 나노를 와이프한테도 못 하 무슨 말씀 아버지 장로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운다 쌀의
무슨 장로 될 수 있습니까 및 항목을 했다는 거야그런데 한 표 한 표 만 반해 가장 누가 3 번씩
떨어지고 다가 그런데 장로 안 해요 그럼 나는 한 번에하부 싶지 와 그런데 또 않은 장파 가 와서 뿐
자자 응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장롱과 기장 오라는 거예요 꽤삼십 년 동안 나는 그 목사님의 말씀
된다 로행 사람이 장로 토 패가나를 반대 냈다는 거야 그래서 다 잊어먹고 있다가 극 목사님 30
년후에 이제 은퇴를 날라와서 그때 누가 나 안 찍음 어업 씨앗의 나간 애모 를 봤어요 그건 모른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고민이 새 이상에서 투칸 a 로마 안찍어서 가지 그건남자의 집에
와서 우리는 식구들 전부 있는데 음 관해 목사님 말씀 하는데 장로 아내가 될 때 35 세 내가 별 맛을
이렇게 못하겠다고 해야 된다 1 가나안 찍었다는 데 그 두가지 버스가 앞에 궁에서 궁에서 내가
물어봤더니 와이프가 운 우리 있더라구요 그래서 외우 생각하고 봤더니 자기라는 죽었단 말이야
그럼 왜 안 지원했던 n 경로와 30 가 사례 장롱 돼 가지고 작물 하면 안되잖아 근데 자의 맛 안 져 안
찍는데 위한 하다 그래도 미아를 해야 그 미 안 하 게 아니라 내가 웃으면서 지만 은행 아니고 이건
싫어하다 이거 dc 와 이것은 어떤 세계 소득 그거 일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할까 rr 걸 근데 내가
퇴원 날 목사님이 나한테 그걸 얘기하는 거야한 사람 말고 그랬는데 넌 하아 아한 사람 때려 고정
무장 를 딱 그것이 아 첫번째 두번째는 내가 시골에서 있다가 올라갔으니 님 다른 건 다 아 수 있지만
은 다른 다할 수 있는데 말이 이 헌 언급을 할 수 없는가 돈이 없습니다 헌금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그런 내가 오늘 사진 단어 하고 많았는데 헌법 넣어서 어떻게 한 줄 몰라서 되는 사실을 안
했어 내 돈이 없어다는 건 아니고 안에는 아 그렇게 얘기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그런데 와 일부 한테
욱 원저 얘기했고 우리 아들 딸들이 그 보통 제비 대로 웃더라구요 그런데 목 우리 다지 목사님
말씀도 후보로 니까 그 와이프가 그랬다고 올해가 그런데 내가 와 일보를 야단친 것은 나는와이퍼
결혼한 지 54 년 이랬어 나는 다른데 가서 한 번 더 있느냐 얘기할 했는데 뭘 하다 보니까 우리 뭐 김
목사님 하도 훌륭하게 보면서나 이것까지 바 타로는 거야 들어오는데 으[음악] 54 넣는데 미끼는
밉지 날 안 줬으니까 그런데 난 54 년 동안 왔다고 한 번도 안 써보세요 여긴 우림회장도 달아나는
한문 날 싸우세요 그것은 어디 가서도 얘기야 라고 얘기하는데 다른 내 가설 그러니까 안에서 내가 6
와서 하도 김 목사님하고 서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하다 보니까 그런 얘기 하고 싶어서 그런데 넌
진짜 한번 낭성 했다니까요 우리가 우리 젊은이들의 공군 그렇게 었어 가지만 아 안 싸우는 것은 경
좋은 경우보다 이거죠 안 싸우는 것은 이게 그 얘기는 하나님을 밑에 이와 m2 들라면 그렇게 믿어야
된다 e 그런 얘기를 그런데 그래서 최소 에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다른 내가 다할 수 있는데 이 길
유년 주일학교 선생님 너 내가 만들어야 했죠 중문화 그 선생님도 내가 했죠 형 연부 내가 만나고
청년회 당 했죠 나는 똥통 학교 나왔기 때문에 음악 선생이 없었는데 나느 얼게 높은음자리표 낮은
여기서 몰라도 그거 내 경우에는 그저 성가대 담 난 형과 대장도 그런 것은 몰라서 당선과 대략 한
사람이야 상 노도한 사람 빼고 다 찍어 준 정도를 그러니까 우리 교회의 조직 이라고 한조직이 은 바
내가 만들어 가지고 그래춤 부 교회가 천막 교회 경막외 그거 내가 50 년 동안 하면서 그교회 할 거다
했는데 제일 침에 더 가서 돈 육수가 못하였다는 가요 위험 목 자 하나님 앞에 나 솔직히 얘기해서
하나님 나 환공 중 허브 음대를 돌리는데 나 홍국 못하더라 아 챔피언 죽겠는데 그동안 없으니까
못하잖아요 그 대신 조금만 기다리세요 내가 돈을 벌어 가지고 우리 교회 이교회는 장로가 지금
셋인데 그때는 우리교회가 50 년을 쪼끔 해가지고 장로 동백이 없었어요 양로 노래 없었는데 내가
쭉빵 쓰는 저 자 무엇보다 2 장 놈보다 내가 흠통한 할 거예요 내가 어떤 면서어항을 그리 말해서 안
되잖아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 거다 듣구 계셔 써듣고 허들이 아삼 주 합격하고 대우 학교가고 하니까
대한 배에 오르고 젤 말 인자 냈으니 m 그러면 3 월 하려면 지금은 내가 험한 내가 못하지만 은
조금만 있음 1 저두 장로님 보다가 방법도 많이 할 거에요 틀림없어요 다한 하겠어 하느냐 그러나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동대문 시장에 포목점 사람이 오더니 자문 님보다 험 더 많이 한다는
거예요 내가 서 장로는 물론 그 좋고뭐 걍 사저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할 거야 내가 하는 흡 옆을
해서 그런데 음 후에 은퇴로 가 뜨린단 목사님이 최 번째 얘기가 최장 놈이 우리 교회에서 헌법
많이하는데 압도적으로 이루라는 거야 나는 헌법을 않으면 안 했지 헌금을 십의 일조를 한 자 역사
11 나는 10 의료법 한 적 없어올 부분 그렇게 많이 받아도 제일 조금 1 변하는 10 의 3 저야하나님이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에요흐 대신은 하느냐 뱃전을 지금은 돈 없어 못하지만
했다면 나는 끝내주게 할꺼예요 햇더니 10 의 3 조 이상 했으니 삼성의 태우가 월 고
얼마나말해주는데 목사님은 다 알죠 그러니까 목사 니 흥행은 나한테 얘기 했는데 그것은 나 여러분
차마 얘긴알수 없고 그러나 내가 압도적으로 확 십일조를 말했다 건 틀림없어 10 의 1 조 2 조 이런게
아니고 그렇게 했다니까요 라는 2 하나님은 다 꼴 보고 계신 안료 1 맞는 전문가 믿는 것 같아요 우리
눈이 쪽도 있네요 2 하나님은 다 알고 있어요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평생 동안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아 삼성을 시험으로 하는데 그때도 삼성이 제일 좋아할 회사에서 누구냐 아침에 전체를 타고
하는데 너무 p1 해가지고 책을 볼 수가 없어 신동화 를 그 전날 차가 적 신동아 늘 이렇게 보고하는
데 1 호 휴 법을 걸려서 그런데 거기에 최희 샥 연계 개발 오해 중의 회계 전제 조건을 8 개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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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뿐만 n 악연 세계 다니면서 간증 설교를 했어요 그런데 온 여유 와서 여러 벌이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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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어요 그건 뭐 틀림없어요 그런데 어느 교회를 간 것보다도 여기 와서 예배 볼은 여러
벌의 뭐 숨이 천사도 보면은 칭찬한 수 있을 정도의 올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다시
초대하면 다시 한번 오고 싶다 그 얘기 하나로 남기는 것으로 떠ㅇ나겠습니다 으 으[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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