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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 겪어야 할 현실적 고통이자 역사적 시련’으로 인식함으로써,

님의 침묵(沈默)
일제의 폭압에도 결코 변절하지 않는 실천적 지성인의 자세를 보였
다.
한용운
『님의 침묵』의 머리말격인 ‘군말’을 보면, “님만 님이 아니라 기
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을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라고 하였다.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
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
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
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
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시집 『님의 침묵』, 1926)

* 한용운 : 한정옥(韓貞玉). 만해(萬海). 한유천(韓裕天). 충청남도


홍성 출생(1879), 동학에 가담하였으나 운동이 실패하자 설악산 오
세암에 들어감(1896),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
립 선언서」에 서명(1919), 신간회 중앙 집행위원(1927), 월간지 『불
교』 발행인(1930), 사망(1944).

◈ 해석
이 시는 인간 정서의 보편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별의
한’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정서를 ‘절망이 아닌 희망’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열어 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별은 만남을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생성의 존재 원리에 해당한다. 또한 심층적 역설이 쓰인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만남은 만남, 이별은 이별’이라는 평면적
사고가 만남의 배후에는 이별이 있고 이별의 배후에는 만남이 있다
는 입체적 사고로 전환되는 시상에서 읽을 수 있다.
1~6행은 ‘임의 부재’를 형상화하고 있다. 1행은 ‘님’이 떠난 사실
을, 2행은 ‘님’이 떠난 모습을, 3행은 더 이상 지키지 못하게 된
‘님’과의 약속을, 4행은 ‘님’과의 추억을 드러낸다. 5행은 ‘님’의 절
대적인 아름다움을, 6행은 ‘님’과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을 드러낸
다.
이러한 시상은 7행의 ‘그러나’에서 전환되어, 7행에서는 새 희망
을, 8행에서는 재회의 확신을, 9행에서는 ‘님’에 대한 한결같은 마
음을, 10행에서는 ‘님’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시상 전환의 사상적 기반에는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
者必反)’이 있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한’ 상태가 되
어, 임이 부재하는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재회에 대한 확신으로 사
랑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이별 – 슬픔·고통
– 희망·기다림 – 만남’, ‘소멸 – 모순·갈등 – 생성’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구조를 읽어낼 수 있다.
만해는 국권 상실 역시 일시적이고 현상적인 소멸에 불과한 것으
로 보았다. 국권 상실을 ‘더 큰 의미인 광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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