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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정책의

추진과 반발
10502 고경민
개화 정책의
추진과 반발
10502 고경민

NEXT- 주어 용어 정리
개화 정책의
추진과 반발
10502 고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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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정리

양무운동 : 서양의 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이루려 한 청나라에서 일어난 근대화 운동

통리기무아문 : 해외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의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업무를


관장하던 정 1 품아문관청
임오군란 : 고종 친정 이후 지위를 잃은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

제물포 조약 : 임오군란으로 빚어진 양국 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 .
위정척사 운동 : 보수적인 유학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침략 · 반외세의 정치사상 ,
성리학적 세계관 , 지배체제를 강화해 일본 , 서구 열강 침략에 대응한
운동
척화 주전론 : 서양과 화의하지 않고 싸우자는 의미의 개화 반대 주장
개화정책의 추진과 반발

서구 열강이 강한 이유는 오로지 산업이 번성한데 있다 .


우리가 부국강벽을 이룰 것인지 타국의 모욕을 받을 것일지는
오직 상업 발전 여부에 달려있다 .

백성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물건을 가지고


유길준 서구 열강의 사치 , 기이한 물건과 교역한다면
몇 년 안 지나 땅 , 집이 모두 황폐해지고 나라도 망할 것이다 .

최익현
청의 근대화 추진 방향

중체서용을 내세워 중국의 전통을 유지하며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이려는 양무운동 전개

금릉 기기국
청이 양무운동을 추진하며 근대적
무기공장인 금릉 기기국을 설치해 대포와
화약을 생산하는 모습
일본의 근대화 추진 방향

막부체제를 붕괴하고 천왕 중심 신정부를 수립


그리고 이후에 문명 개화론에 따라 서양의
근대적 과학기술 , 정치 제도 적극 수용

일본의 제국 의회
메이지정부는 1889 년 대일본 제국 헌법 을
제정하고 , 이듬해 제국의회를 설립해
근대국가의 제도적 틀을 갖춤
조선의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확대

조선에는 박서규 , 오경석 등이 개화를 적극 주장하고


그 주변에는 양반 자제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세계정서 , 서양 문물 이해도를 높혔고
관직에 진출해 개화의 뜻을 펼치고자 했다 .

개화파들을 촬영한 모습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개화추진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제 1 차 수신사 김기수를 파견하고
조선은 개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 ,
그 아래 실무를 담당하는 12 사를 설치 , 또 개화파 인사 등용

일본에 파견된 김기수


통리기무아문은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군사 제도를 개편
신식 군대를 양성하기위해 별기군 창설과 일본인 교관 초빙
청에 유학생과 기술자를 파견해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을 배우게 함

별기군의 모습
조사 시찰단

정세 파악과 행정기구 운영 , 개화정책의 정보를


얻기 위해 조사 시찰단 파견
일본 조사 시찰단은 일본의 정부 기관 , 산업 군사 등
근대적 시설을 살펴봄

수교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


미국 귀국 후 작성한 보고서는 개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조사 시찰단의 모습
뒷받침이 됨
위정척사를 외치는 보수적 유생층

정 사
19 세기 후반 보수적 유생들은 서양과 일본을
정학 사학 조선의 유교문화를 무너뜨리려는 존재로 인식하고
위정척사 운동으로 맞섬 이들은 조선 전통의 질서를
유교 서양 지키기 위해 천주교 , 서양문화 , 서양세력의
문화 문화
경제적 군사적 침략을 물리쳐야 한다고 주장
문명 야만
서양 ,
조선의
일본의
전통 질서
침략
이항로 등은 통산 반대론을 주장하고 서양의 침략에
맞서 싸우자는 척화 주전론을 펼침
1880 년대 정부가 미국과 수교하려 하자 이항로 척화 주전론을
만인소를 올리며 반발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
위정척사 운동은 1890 년대 이후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항일 의병으로 계승됨
임오군란 , 구식 군인과 민중의 분노 폭발

구식 군인 , 도시 하층민은 정부의 개화정책에 불만을 드러냈고


개항 후 많은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어 값이 폭등하자 생활이 어려워졌다
열악한 대우를 받던 구식 군인의 불만도 높았다
이 상황에서 13 개월 밀린 급료가 모래 섞인 쌀로 지급되자
분노가 폭발한 구식 군인이 임오군란을 일으켰다

임오군란 중 일본 공사관 습격 장면

구식 군인은 흥선대원군에게 지지를 요청하고


일본 공사관 , 궁궐 등을 공격
고종은 사태 수습을 위해 흥선 대원군에게 정권을 맡김
흥선 대원군은 통리기무아문 , 별기군을 폐지
그러나 민씨 일파의 요청을 받은 청이 군대를 파견 -> 군란을
진압하고 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 대원군을 납치 납치되는 흥선 대원군
청의 내정 간섭

군대를 파견하여
일본 피해를 입힌 군란의 책임을 물었다
정부는 제물포 조약을 체결해
배상금 지불 , 일본군의 주둔을 허용하였다

군대를 계속 주둔 시키며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규정한


체결된 제물포 조약
청 조 - 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아울러 마건상과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고문으로 파견해
조선의 내정과 외교에 간섭하였다 .
확인 문제

1. 정부에 불만을 드러낸 구식군인이 일으킨 군란은 ?

임오군란

2. 조선이 개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것은 ?

통리기무아문
독서활동 <1 일 1 페이지 조선사 365>- 유정호

들어는 봤지만 몰랐던 임오군란에 초점을 두어 읽었고


1800 년대 후반 일본이 조선이랑 맺은
강화도 조약 , 제물포 조약과 청과 조선이 맺은
조 · 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

비변사 폐지 , 의정부 부활 , 서원 철폐 등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들을 이해했다 .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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