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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 Ⅰ. 전근대 한국사의 이해 중단원 5. 조선 시대 세계관의 변화 no.

학습 주제 2. 조선의 대외 관계와 전쟁 교과서 66-67

반 번호 이름

1.조선 전기의 대외 정책 : ( 사대교린 )의 원칙


대상 명 ▶ ‘사대’와 ‘교린’의 의미
·사대 : 유교적 세계 질서에 따라
⦁표면 : ( 조공-책봉 ) 관계 → 태종 때 명과의 친선 관계 회복
사대 중국을 의례적으로 받드는 것
내용 ⦁실제 - 조공 → 경제적‧문화적 교류, 선진문물 수용의 통로
·교린 : 중국 이외의 이웃 나라와
- 책봉 → 국내 정치 안정에 도움 서로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
대상 여진, 일본
⦁회유책 : 귀순 장려, 국경 부근에 무역소 설치 ▶ 4군 6진
여진
교린 ⦁강경책 : 세종 때 4군 6진 개척(압록강~두만강 국경선 확정),
⦁회유책 : 3포(부산포·제포·염포) 개항 → 제한된 범위 내에서 무역 허용
일본
⦁강경책 : 세종 때 ( 이종무 )의 쓰시마섬(대마도) 토벌

2.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① 16세기 잦은 왜구 침입 ↔ 조선 : 비변사 설치조선과의 제한된 교역에 대한 불만
배경
② 일본의 전국 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외 침략 욕구
⦁왜군의 침략 → 관군 패배, 선조의 의주 피란, 명에 원병 요청
임진왜란
⦁조선의 반격 : 수군(이순신)과 의병의 활약
(1592)
⦁명군의 참전 : 조‧명 연합군의 반격 → 휴전 협상(명-일본)
정유재란 ⦁휴전 협상 결렬 → 일본군의 재침략(1597) → 조‧명 연합군, 수군 반격
(1597)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이후 본국 철수

3. 왜란 후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변화
명 막대한 전쟁 비용 소모로 국력 약화
중국
여진 왜란 이후 명의 쇠퇴를 틈타 만주 여진족의 후금 건국 → 명‧청 교체로 이어짐
⦁도요토미 정권 몰락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 수립(1603)
일본
⦁조선에서 문화재 약탈, 학자‧기술자 납치 →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 발전
조선 지배층 중심의 명을 숭상하는 관념 확대, 여진의 성장으로 일본과 국교 재개

4.광해군의 정책
▶ 중립외교의 내용 ◑
⦁토지 개간, 토지 대장·호적 정리 : 광해군이 지휘관 강홍립에게 상황
전후 복구 ⦁성곽과 무기 수리 통한 국방 강화 을 보고 실리적으로 대처할 것 지시

사업 ⦁대동법 시행(경기 지역 한정) : 가호마다 공물(특산물) 징수 → 출병한 강홍립이 후금에게 항복

→ 토지 결수에 따라 쌀·포·동전 등 징수
⦁배경 : 여진족의 후금 건국 → 후금의 공격을 받은 명이 조선에 지원 요청
중립 외교 ⦁내용 : 국제 정세의 변화(후금↑,명↓)에 따라 명과 후금 사이의 중립
⦁결과 : 국가 안정 도모 but 일부 사림 반발 초래
⦁명분 : ① 중립 외교 → 명이 조선을 도운 은혜를 저버림
◑인조반정 ② 폐모 살제[인목 대비 유폐, 영창 대군 살해) → 유교 윤리에 어긋남
⦁내용 : ( 서인 ) 세력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즉위시킴
5. 호란의 발발
정묘호란 ⦁배경 : 서인의 (친명배금) 정책, 명과의 교역 중단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 친명배금 :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
(1627) ⦁과정 : 후금의 침략 → 화의 맺고 철수 을 배척
⦁배경 :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군신 관계 요구 → 조선의 거부
병자호란
⦁과정 : 청의 침략 → 인조의 남한산성 피신 → 청에 굴복
(1636)
⦁결과 : 청과의 군신 관계, 막대한 공물 부담)

6. 호란 이후 대외 관계의 변화
⦁에도 막부의 성장으로 국교 재개, 부산포에 왜관 설치 → 통신사 파견
일본
Q. 통신사의 역할? 외교 사절 + 문물 전파 → 일본 문화 발전에 기여
표면 사대 관계로 평화 유지
▶ 북벌 운동 ◑
⦁주장 : 청 정벌로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움직임
: 송시열을 등용하여 군비 확충(성
⦁주도 : ( 효종 )과 서인 집권 세력
곽 수리, 군대 양성)
↳ 의도 : 패전의 책임 회피, 정권 유지 목적
(북벌론)
송시열의 북벌론
대두
우리나라는 실로 명 신종 황제의 은혜를 입어 임진왜란 때 나라가 이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보존되고 백성이 거의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니, 우리나라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청 포기와 백성의 터럭 하나하나에도 황제의 은혜가 미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주장 : 청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문물을 적극 수용해 국가 발전을 이루자는 것
⦁주도 : 북학파 실학자(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론) 박제가의 북학론
등장 청이 천하를 차지한 지 1백년이 지났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을 모조리 오랑캐라 하고 중국
(18C) 의 법마저 폐기해 버린다면 크게 옳지 않다.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다면, 그 법이 비록 오랑
캐에게서 나왔다 하더라도 성인은 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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