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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라(bsDus grwa)의 연구
指導敎授 張 愛 順
崔境眞
2009
목차
서론
1. 연구목적 ……………………………………………………………………… 4
2. 선행연구 ……………………………………………………………………… 5
3. 연구방법 ……………………………………………………………………… 8
본론
1. 두라(bsDus grwa) 문헌의 역사와 승원에서의 교육……………………… 10
(1) 티벳불교논리학의 역사 ………………………………………………… 10
1) 상푸 승원을 거점으로 하는 후전기 불교 논리학 …………… 10
2) 티벳불교의 독자적인 논리학 발전 ……………………………… 11
(2) 근세의 두라 …………………………………………………………… 11
1) 두라의 학습 체계 …………………………………………………… 12
2) 두라의 교육효과 …………………………………………………… 15
3) 각 승원의 두라 …………………………………………………… 19
2
(2) 다른 주제를 세워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는 방법…44
1) 논쟁의 基體(rtsod gzhi)라는 개념 ……………………………… 45
2) 논쟁의 기체를 가정한 논증식 ………………………………… 52
결론
略語 및 参考文献
3
서 론
1. 연구목적
두라(bsDus grwa) 는 티벳 불교 겔룩파(dGe lugs pa)승원의 초등교육과정
1
4
두라 이외의 불교학 논서에도 두라에서 쓰이는 기술방식을 답습하는 논
서가 적지 않다.
그러나 두라의 기술방식은 그 기호적인 측면과 논리의 난해함 때문에
겔룩파 승려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이해되기 쉽지 않다. 때문에 두라를
연구하는 목적은 두라 특유의 표현형식을 해명하는 일이다. 두라에 관한
연구는 일본과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서 진전되고 있다. 레오나드 반 더
카입(Leonard van der Kuijp)교수, 톰 틸레만(Tom Tillemans)교수, 조지 드레
이퓨스(Georges B. J. Dreyfus)교수, 오노다슌조(小野田俊蔵)교수, 후쿠다요
이치(福田洋一)교수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활성되었고 최근에는 젊은
학자들 중 파스칼 위공(Pascale Hugon)씨, 네모토히로시(根本裕史)씨 등에
의해서 연구되고 있다.
2. 선행연구
두라문헌의 기원, 두라의 논리 구조, 승원에서의 두라 교육의 위치 등
에 관한 많은 선행연구가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자료를 연대순으로 제시
하면 이하와 같다.
・ Daniel Elmo Perdue, Debate in Tibetan Buddhist Education,
Snow Lion Publications, 1992.2
・ Leonard W. J. van der Kuijp, “An Introduction to Gtsang-nag-p
a’s Tshad-ma rnam-par nges-pa’i ṭi-ka legs-bshad bsdus-pa”, Ōtan
i University Collection No.137971, Rinsen, 1989.3
・ Shunzo Onoda, MONASTIC DEBATE IN TIBET, A Study on the
History and Structures of bsDus grwa Logic, Wiener Studien z-
ur Tibetologie und Buddhismskunde, Heft 28, Vien-na, 1992.4
・ Georges B. J. Dreyfus, The Sound of Two Hands Clapping, Unive-
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5
Perdue [1992]6 는 『용진두라』의 초급부분만을 취하여 여러 티벳인 게
2
이하 Perdue [1992]라고 표기한다.
3
이하 Kuijp[1989]라고 표기한다.
4
이하 Onoda [1992]라고 표기한다.
5
이하 Dreyfus [2003]라고 표기한다.
6
이 책은 저자가 버지니아대학(Virginia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서 제출한
것(1976)을 인도 다람살라에서 재출판(1980), 그것에 색인을 더하여 미국에서 출판한
(1992) 것이다.
5
셰 들로부터배운 두라의 이해를 서술하고 있다. 이 논서는 영어로 저술
7
7
현대의 대학에 학위가 있는 것처럼, 겔룩파의 대승원에도 소정의 학위가 있다. 첫번째
는 랍잠파(rab ’byams pa)이다. 현대의 학사학위(B.A.)에 해당한다. 논쟁으로 이루어지는 시
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된다. 반야학 1학년생부터 중관의 최상급생까지의 학생이 응모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도람파(rdo rams pa)이다. 현대의 석사학위(M.A.)에 해당한다. 이것도
역시 논쟁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구사학 이상의 학년의 학생이라면 누
구든지 지원할 수 있다. ‘rdo’라고 하는 것은 울타리 안의 정원을 뜻한다. 그리고 ‘rams’은
랍잠파와 마찬가지로 공부가 잘 된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도람파는 승원 안에서 행해
지는 시험에서 합격한 M.A.에 해당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도람파와 같은 레벨의 학위이지만, 티벳력으로 정월에 티벳의 수도인 라싸(lha sa)에서
행해지는 시험에 합격하면, 하람바(lha rams pa, ‘라람파’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라는
학위를 받는다. 그것은 자신이 속해있는 승원에 한하지 않고 전국의 겔룩파 승려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다른 승원의 승려와 함께 논쟁을 한다. 따라서 하
람파는 최상위의 학위이다. 현대의 박사학위(Ph.d. 또는 D.D.)에 해당한다. cf. 中根千枝
[1982: 35]
6
・ 福田洋一「初期チベット論理学におけるmtshan mtshon gzhi gs
umをめぐる議論について」『日本西蔵学会会報』49, 13-25.
・ Hiroshi Nemoto, “Three Kinds of vyavaccheda (rnam gcod) in Tibe-
tan bsdus grwa Literature” 14th World Sanskrit Conference (2009)
에서의 발표문
9
본론
11
상푸 승원은 아티샤의 제자였던 옥 렉페셰랍(rNgog Legs pa’i shes rab, 생존연대는 알
수 없음)에 의해서 라사의 남서부에 위치한 ‘상푸’라는 토지에 11세기에 건립되었다.
Kuijp [1987]에서는 상푸 승원의 역대 좌주와 함께 그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Onoda [1989] [1990]에서는 각 컬리지(학당)의 좌주 계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Kuijp [1987] Onoda [1989] [1990] 등은 모두 겔룩파와 사캬파에 전해지는 티벳불교의 독자
적인 논리학교육, 나아가서는 승원의 시스템과 체계의 모델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상푸
승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상푸 승원과 초기 겔룩파의 학문사 간의 인적 교류에 대해서
는 小野田 [1989]를 참조바람.
10
PVin 이라 함)을 번역하고, 그에 따라 PVin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불교
12
2006년 출판된 『카담파 全集』 (bKa’ gdams sung ’bum phyogs sgrig
thengs dang po)의 vol.8에 챠파의 저작이 수록되어 공개되었다. 그 자료에
기초한 최근의 연구에 의해서, YKMS가 두라의 원류라는 설에 의혹이 생
기고 있다. 왕닥도제(dBang drag rdo rje)씨는 ‘집약’과 ‘두라’는 별개의 것
으로서 구별되어야 하며, 챠파는 YKMS에서 ‘집약’을 저술했을 뿐이며
12
Kuijp [1989]에 의하면 옥 로덴셰랍은『量評釈』(Pramāṇavārttika, 이하 PV라 함)은 번역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번역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PV의 연구보다 PVin
의 연구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3
cf. Kuijp [1989]
14
Stcherbatsky는 “sequence and reason”라고 번역했다. 논증식 중에서 귀결문의 마지막이
“~par thal”라는표현으로 끝나고 논증인의 마지막이 “~pa’i phyir”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것
에 유래한다고 생각된다.
15
Kuijp [1979: 358, ll.3-6], Kuijp [1989: 13, ll.23-24]
16
cf. Kuijp [1989: 13], Onoda [1992: 59], Tillemans [1999: 13-14]
17
가 현존하지 않았던 시절 챠파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원전이 없었기 때
YKMS ,
문에 간접적인 방법론으로써 연구해 왔다 즉 챠파의 논리학에 대한 비난, 또는 챠파의 .
제자들의 논서 등에서 인용되는 챠파의 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여 챠파의 사상
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써 연구했다.
11
‘두라’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챠파가 두라의 창시자인 것 18
12
대학문사의 커리큘럼 22
대승원
학당 1 학당 2
(grwa tshang)
학급
(’dzin grwa)
(khams tshan)
22
23
티벳의 대학문사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小野田 [1989], Onoda [1992: Ch.2]를 참조바람.
cf. Onoda [1992: 15]
13
과목 교과서
因明(tshad ma, Skt. pramāṇa) 『量評釈』(Pramāṇavārttika)
般若(phar phyin, Skt. prajñāpāramitā) 『現觀莊嚴論』(Abhisamayālaṃkāra)
中觀(dbu ma, Skt. madhyamaka) 『入中論』(Madhyamakāvatāra)
律(’dul ba, Skt. vinaya) 『律經』(Vinayasūtra)
俱舍(mngon mdzod, Skt. abhidharmakośa) 『倶舎論』(Abhidharmakośa)
2) 두라의 교육효과
티벳불교독자의 논쟁법, 및 두라 문헌의 불교철학적인 가치와 위치를
이상의 설명은 小野田 [1989]를 요약한 것이다. 두라 이외의 사용 텍스트에 관한 자세
25
한 정보는 小野田 [1989]를, 두라의 전체적인 구성에 관한 해설은 Onoda [1992: 28-29]를
참조 바람.
26
cf. Onoda [1992], dBang dag [2008]
27
thad = tha dad
15
평가하는 점에 대해서 이전의 두라 연구자들은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Goldberg [1985]에서는 두라 학습의 목적은 ①정확한 논리학 ②논쟁을 하
기 위한 구술규칙 ③추론식의 패턴과 일반적인 문법을 떠난 문법적 구조,
라는 세가지를 습득하기 위함이라고 서술한다. 또 겔룩파에서는 승려의
지적 레벨을 높이기 위한 훈련으로서 두라를 학습하게 하고, 그것은 난
해한 불교철학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고 전한다. 그리고 28
3) 각 승원의 두라
でおり、その難解さはチベット語に固有の表現法に起因するものであることが少なくない。
だが、それゆえにこそ、そのトリックを解き明かすことが「チベット人の思考法」を正し
く理解するための糸口になるのである”
17
본어로는 小野田 [2001], 福田 [2004], 그리고 영어로는 Sierksma [1964],
Jackson [1987], Onoda [1992], Perdue [1992], Dreyfus [2003] 등 충분한 연구성
과가 발표되었다. 이 장에서는 이들을 참조하면서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두라를 독해하기 위한 규칙에는 두가지의 관점이 있다. 한가지는 개개
의 논증식의 구조이고, 또 한가지는 논쟁의 진행 과정이다. 전자는 하나
의 논증식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와 그 역할 및 논증식 자체의 구조이다.
후자는 논증식을 반복하며 대론자들이 논쟁을 해가는 과정에 관한 규칙
이다.
(1) 논쟁의 기본 설정
1) 논쟁의 구성원
두라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두 입장으로 나누어
진다. 즉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하는 사람과, 그 주장명제의 是非를 판
단하는 논증식을 세우면서 논쟁을 주도해 가는 사람이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했던 사람(前者)은 상대(後者)가 제기
하는 논증식에 대해서 정해진 형식으로 대답해야 한다.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하고 나중에 오로지 대답만 할 수 있는 사람
은, 티벳어로 ‘담차와’(dam bca’ ba) 또는 ‘치굴’(phyi rgol, Skt. prativādin)
이라고 한다. dam bca’ 라는 것은 ‘선언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담차와’는 ‘주장명제를 선언하는 사람/立論者’라는 의미가 있다. 이 논문
에서는 ‘입론자’ 또는 ‘答論者’라고 칭하겠다. 두라 중에서 개개의 논쟁
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kha cig na re)이라며 시작되는데, 그 ‘어떤 사
람’(kha cig)은 입론자(또는 답론자)를 말한다.
입론자가 처음에 세웠던 주장명제에 대해서 논증식으로써 그 옳고 그
름을 검토하기 위해 논쟁을 이끄는 사람은, 티벳어로는 ‘츠바포’(rtsod pa
po) 또는 ‘아굴’(snga rgol, pūrvavādin)이라고 한다. rtsod pa po란, ‘논쟁
자’(disputant)라는 의미가 있다. 이 입장에 선 사람은 답론자에게 논증식
을 사용해서 질문하므로, 본 논문에서는 ‘질문자’라고 칭하고자 한다.
두라의 각 장은 他說의 부정, 自說의 설정, 論難의 배척이라는 세 가지
節로써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각 장의 테마에 대해서 잘못된 주장명제가
제시되고 그 타당성에 대해서 검토해 가는 것이 ‘타설의 부정’이다. 타설
18
의 잘못된 논리를 논파하면서 바른 명제와 개념의 이해가 확립된다. 그
것을 정리하여 한 곳에 모은 것이 ‘자설의 설정’이다. 마지막에 자설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논쟁이 ‘논란의 배척’이라는 절에서 다
루어진다. ‘타설의 부정’과 ‘논란의 배척’이 구두의 논쟁의 형식으로 기술
되며, ‘자설의 설정’은 대부분 단순한 서술표현으로 기술된다.
2) 논증식의 구조
주제:chos can
이라는 말은 dharmin(有法)을 의미한다. 이 논문에서는 ‘~을
chos can 33
kha cig na re /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ma
yin pa las log pa yin na /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yin pa las log pa yin pas khyab
zer na /
shes bya chos can / de(=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y
in pa las log pa yin pa)34r thal / de(=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33
와 Onoda [1992] 양쪽 모두 ‘chos can’이라는 어구에 대해서 dharmin 또는
Perdue [1992]
라고 설명하고 있다.
subject
두라 중에서도 특히 『용진두라』에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서술하는 번잡함을 피
34
後件: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主語> mtshon bya yin pa las log pa yin
pas khyab/<述部>
21
자가 각 논쟁에서 처음에 세우는 논증식의 귀결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
어서 답론자의 의견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답론자의
명제를 확인하면서 질문하고 있는 것이며, 질문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kha cig na re /
kha dog yin na dmar po yin pas khyab
zer na/
chos dung dkar po'i kha dog chos can/ dmar po yin par thal/ kha do
g yin pa'i phyir/ khyab pa khas/ (Yong ’dzin bsdus grwa: 1b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어떤 것이] 색깔이라면 [그것은]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한다면,
질문자 :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 색이라고 귀결
된다. [왜냐하면] 색깔이기 때문이다. 변충관계는 [입론자에 의해 이
미] 인정되었다.
입론자가 세운 명제는, 어떤 것이 색깔이라면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
된다는 것으로, 질문자가 세운 논증식은, 하얀 법고동의 색깔은 ‘색깔’이
므로 입론자의 명제가 타당하다면 이 색깔도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화살표로 다시 분석해 보자.
질문자: dmar po yin par thal/ kha dog yin pa'i phyir/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 색깔이기
때문이다.
질문자가 말하는 중에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라는 것은 질문자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이 세운 명제에 따라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22
후의 ‘색깔이므로’라는 논증인은 정확히 말하자면, ‘하얀 법고동의 색깔은
색깔이므로’라는 말이다. 이것은 질문자의 생각이다. 다른 예제를 보자.
kha cig na re /
gzhi grub na / rgyu 'bras gang rung yin pas khyab
zer na/
shes bya chos can / rgyu 'bras gang rung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Sras bsdus grwa: 83-8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어떤 것이]基體成立(gzhi grub)한다면, 因과 果 중 어느
한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한다면,
질문자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한쪽이라고
귀결된다. 기체성립해 있기 때문이다.
質問者: rgyu 'bras gang rung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한 쪽이라고 귀결된다. 기체성
[
립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질문자의 논증식은 귀류논증이다. 즉 귀결은 답론자의
명제에 따르고 있을 뿐, 질문자 자기 자신의 생각인 것은 아니다.
답론자의 주장명제가 잘못되고 있다고 알리기 위한 논증식이다. 한편
논증인은 질문자의 생각이다. 즉 질문자는 지식대상은 인/과 중 어느
한쪽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체성립 해있다(shes bya gzhi grub yin)라고
생각하고 있다.
23
이상과 같이 두라의 논쟁에서는 일단 입론자의 명제로 시작하며, 그
후에 질문자의 귀류논증이 이어져, 입론자의 명제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논증인:~pa’i phyir
인도 불교 논리학의 경우와 같이, 티벳 불교 논리학에서 말하는 바른
논증인도 因의 三相(tshul gsum, Skt.trirūpa)을 갖추어야 한다. 그 중에서
주제소속성은 두라의 논쟁식에서 파악하기 쉽지만, 두 필연적 관계 즉,
긍정적 수반관계와 부정적 수반관계에 관해서는 짧게나마 설명이 필요하
다고 생각된다.
변충관계 (khyab pa)
변충관계를 표현하는 문장은 이하와 같다.
A yin na / B yin pas khyab /
A 라면, B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 A와 B는 변충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遍充(khyab pa, Skt.
vyāpti)이란, 어떤 것 x가 만약 A라면, 그 x는 반드시 B라는 것이다. 그것
을 바꿔 말하면,
A인 것은 반드시 B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즉, ‘A라면’이라는 조건절은 ‘A인 것은’이라는 명사구
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인용했던 예제의 변충관계를 다시 고찰해
보자.
kha dog yin na dmar po yin pas khyab
입론자 : 색깔이라면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 색깔일 때에 그것은 반드시 빨간 색이
라고 말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색깔인 모든 것은 반드시 빨간 색이
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충관계는 이상과 같이 답론자의 명제에 있어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질문자의 논증식 중에서 귀결과 논증인의 관계에도 변충관
계가 있다. 복잡한 논증식에서 변충관계를 식별하는 것은, 기계적인 변
환방법으로 가능하다. 이하에서는 그러한 변충관게를 식별해 내는 방법
을 고찰하고자 한다.
24
chos dung dkar po'i kha dog chos can / dmar po yin par thal / kha do
g yin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1b f.)
질문자 :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색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변충식 40
:kha dog yin na / dmar po yin pas khyab /
색깔 이라면, 빨간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이와 같이 순서를 역전시킴으로써 논증식에서 변충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또한 ‘색깔이라면 빨간색임에 의해 변충된다.’라는 변충관계는 바
꿔 말하면, ‘색깔인 모든 것은 반드시 빨간색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shes bya chos can / rgyu 'bras gang rung ma yin par thal / 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84)
질문자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논증 전체의 주어인 것은 ‘지식대상’이다. 이것을 주어로 하여, ①인
이 부분의 논증식은 귀류논증이기 때문에 ①의 귀결은 질문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39
아니다.
福田 [2003]에서 제안된 것에 따라서, 변충관계를 표현한 문장을 ‘변충식’이라고 칭하
40
기로 한다.
25
과 중 어느 쪽도 아니다, ②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다, 라는
/
두 개의 서술이 있다. ①은 귀결이고 ②는 논증인이다. 따라서 지식대상
이라는 주어와 ②의 관계가 주제소속성이고, ①과 ②의 관계가 변충관계
이다. 그 중에서 ①과 ②의 변충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논증식에서 변
충식을 도출해 내면 이하와 같다.
논증식:rgyu 'bras gang rung ma yin par thal /
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pa'i phyir /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귀결된다.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遍充式: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na /
rgyu 'bras gang rung ma yin pas khyab /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라면,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의해 변충된다.
나아가 변충식을 바꿔 말하면,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닌 모든 것은
반드시 인/과중 어느 쪽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변충
관계가 성립하면, ‘어떤 것 x는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닌 것으로 귀결된
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이
타당한 것으로 된다. 위의 논증식에서는 그 x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지
식대상을 주제로서 제시했다. 즉, 지식대상은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니
므로, 필연적으로 그것은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논쟁의 진행방식
두라에서 보여지는 논쟁도, 티벳불교 승려에 의해 구두로 진행되는 논
쟁도 일정의 규칙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 중에서 논쟁의 방향을 결정하
는 것은 답론자의 답변이다. 또한 답변 방식은 그 수와 語句가 제한되어
있다. 답론자는 정해진 방식대로 제한된 선택지에서 답변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하에서
는 답변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답변에 따라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26
답론자 : 주장명제 질문자: 귀류논증
답론자-부정
(ma khyab)
27
질문자 : 形色(rūpa)을 주제로 해서, 그것(khyod) 의 因이 있음에 41
小野田 [1979] Onoda [1992: 49-57] 에서는 ‘khyod’라는 말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보통
41
31
42
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 yin pa'i phyir / (Sras bsdus gr
wa: 94)
自說(rang lugs) : 형색을 주제로 해서, 常住하는 것이 아닌 因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형색은] 상주하는 것이 아닌 것과 因의 양쪽
이기 때문이다.
에 대하여, 통상적인 티벳어 번역
‘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 yin pa’
법에 따라서 ‘상주하는 것이 아닌 인인 것’이라고 번역했는데, 因은 본래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상주하는 인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달
리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기 때문에)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충
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이 논증식에서 변충관계를 도출해 내보자.
논증식: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임에 귀결된다.
rta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이기 때문이다.
변충식:rta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이라면,
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 변충식을 일반화하면,
변충식:A yin pa dang B gnyis ka이라면,
A yin par gyur pa’i B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A yin par gyur pa'i B yin pa’는 변충의 前件에서 보
여지는것처럼, 동일한 주어에 대해서 병렬하는 두 가지의 술어이며, 단
순히 ‘A yin par gyur pa’가 B를 수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한 것’이라고
의역하고자 한다.
『세두라』의 다른 곳에서 ‘A yin par gyur pa’i B yin pa’를 이용한 논쟁
이 보인다.
kha cig na re /
dngos po yin par thal / ka bum gnyis ma yin pa dang dngos po g
nyis ka yin par thal / ka bum gnyis ma yin par gyur pa'i dngos po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185)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인용문에서는 yin pa가 아니라 그것의 부정형인 ma yin pa를 구사하고 있는데, 부정
42
33
3. 주제가 없는 논증식의 해명
34
문장의 가장 처음에 위치한 문장표현을 가리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경우에는, 무엇이든지 논증에 유리한 아무것 x 가 보어로서 yin
pa 의 앞으로 들어갈 수 있다(x yin pa).
주제의 소멸
의 앞에 들어가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기본이지만,
yin pa
보어가 없는 yin pa 가 귀결문의 선두에 왔을 때에는 논증식의 주제로서
제시된 명사가 yin pa 의 보어로 오는 경우가 많다. 46
根本 [2009: 6, 脚注17番]에서는 yin pa srid pa와 yin pa mi srid pa에 대해서 ‘叙述可能’과
47
이하와 같이 논쟁한다.
rtag pa kho na chos can / yod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dod
na /
rtag pa kho na med par thal / dngos po yod pa'i phyir / (Rwa stod bsdus gr
wa: 42 f.)
질문자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존재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인정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상주만’은 비존재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실재(dngos po)
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6
질문자의 첫 번째 논증식은 귀류논증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상주만’을
주제로해서, 존재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질문자의
두 번째 논증식의 귀결, ‘<상주만>은 없다’라는 것은 질문자의 주장이다.
즉 두라의 체계에서는 존재는 상주와 실재로 나누어지는데 , ‘상주만’이 49
49
gzhi grub la dbye na gnyis yod de / rtag pa dang / dngos po gnyis yod pa'i phyir /(Yong ’dzin bs
기체성립 하는 것 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왜냐하면 무상과 실재의
dus grwa: 67) [ ] . ,
두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
50
에서는 이러한 排除
Nemoto [2009] 개념의 관점에서 상주만
(rnam gcod, Skt.vyavaccheda) ‘ ’
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
37
또한 주제였던 ‘기둥’은 잠재적으로 논증식에 있으면서 생략하여 말하
지 않을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제가 귀결문에 종속되게 된 후에도
‘기둥’이 그대로 주제로서 있다면, 질문자의 두 번째 논증인인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모순이 되어버리기 때
문이다. 왜냐하면 ‘기둥’과 ‘기둥이 아닌 것’은 서로 모순관계에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처음의 주제는 일단 귀결문의 보어가 없는 yin pa의 앞으
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주제로서는 인정할 수 없다.
변충관계의 변화
주제의 어구가 귀결문에 들어감으로써 귀결문의 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이상에서 논한 바와 같다. 그런데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귀결과 논증인의 관계는 변충관계이다. 따라서 귀결
문에서 논증되는 것은 변충관계로써 논증되는 것이기 때문에 귀결문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논증인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rtag pa kho na chos can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yin pa dang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Rwa st
od bsdus grwa: 40 f.)
질문자1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인 동시에 상주임에 귀결된다. 왜
냐하면, 인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2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38
질문자3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이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내용을 보면, 질문자1이 논증하고자 하는 것과 질문자 2, 3
이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문자1의 논증인
은 ‘A yin par gyur pa’i B yin pa’라는 구의 해석을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주만’이 귀결문으로 흡수된 후의 질문자2의 논증인은 귀결문
의 내용에 대해서 논증하고자 하고 있다. 변충식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
다.
변충식1 : ‘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면, 인 동시에 상주임에 의해 변
충된다.
변충식2 : 상주라면,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3 : 존재인 동시에 실재가 아니라면, 상주임에 의해 변충된다.
이와 같이 주제가 귀결문에 연결되므로써 귀결문의 내용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논증인이 변충관계로서 논증하는 대상도 내용 쪽으로 흘러간다.
또, 『라뚜두라』에서,
ka ba chos can / de(=ma yin par gyur pa'i rtag pa)r thal /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 (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 )
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질문자 : 기둥을 주제로 해서, 이 아닌 동시에 상주인 것이라고 귀
결된다. 왜냐하면,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
하면, 기둥이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39
라고 한다면,
질문자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변충식만을 도출해 내면 아래와 같다.
변충식1 :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면, 이 아닌 동시에 상주
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2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라면, 기둥이 아닌 것
과 상주의양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3 : 상주라면,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도 역시, 변충식1은 귀결문의 구조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 변충
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변충식2 및 3은 귀결문의 내용에 관해서 변충관
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주제가 소실된 후의 논증식에서 보이는 변충관계의 변화를
분석했다. 티벳인 논사들은 주제가 없는 논증식도 논증식으로서 인정하
고 있다. 또한 주제가 소실되어, 귀결문이 변하므로써 논증인이 논증하
는 대상(bsgrub bya’i chos)도 변화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티벳의 두라에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일지라도 논증식으로서 인정하고,
변충관계를 인정한다면, 主題所属性(Skt. pakṣa-dharma)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以下에서는 3相 중에서 주제소속성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
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주제를 갖지 않는 논증인의 판단
푸르부촉 롭상잠바는 『용진두라』에서 논증인을 분류하고 있다.
rtags gsal rtsod gzhi gsum ka dang bcas pa'i thal 'gyur gang dang gang gi
yang bkod song gi rtags ngos 'dzin dang grub ma grub sogs 'di dang rigs 'dra
zhing / rtsod gzhi med cing rtags gsal gnyis ka dang ldan pa'i thal 'gyur
rnams la yang song tshod kyi rtags med kyang bkod tshod kyi rtags ngos
'dzin tshul dang grub ma grub sogs rigs 'dra ba yin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34)
40
논증인, 귀결, 논쟁의 基體[라는] 세 가지 모두를 갖춘 귀류논증은
무엇이든,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
(bkod song gi rtags)을 확정하는 일과 [논증인이] 성립하는지 안하는
지를 [결정하는 일] 등은 이것과 [결과적으로는] 같으며, 그와 동시
에 논쟁의 기체가 없어도 논증인과 귀결 두 가지를 가진 귀류논증
에서도 또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은 없지만, 제시했을 뿐인 논
증인을 확정하는 방법과 [논증인이] 성립하는가 안하는가를 [결정
하는 방법] 등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푸르부촉 롭상잠바는 논증인을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bkod tshod kyi
rtags)과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song tshod kyi rtags)으로 나누고 있다.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진 논증인을 말한다.
즉 주제와 관련하여 주제소속성이 성립해 있는 논증인이다. 툭세 아왕타
시는 『세두라』에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을 아래와 같이 식별하고
있다.
kha cig na re /
thal 'gyur de'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s
khyab
zer na /
ri bong rwa chos can / med pa yin par thal / tshad mas ma dmigs pa yin pa'i
생략) / khyod kyi rtags grub par thal / r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
bong rwa tshad mas ma dmigs pa de khyod kyi rtags yin pa gang zhig / de
grub pa'i phyir / der thal / ri bong rwa tshad mas mi dmigs pa de khyod kyi
song tshod kyi rtags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22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답론자 : 그 귀류논증의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제
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토끼의 뿔을 주제로 해서, [토끼의 뿔은] 비존재라고 귀결
된다. 왜냐하면,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
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생략) [그러한 논증식]의 논증인
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토끼의 뿔은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논증인인 동시에, [그 논증인은] 성립하
41
기 때문이다.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토끼의 뿔
은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주제와 관
련하는 논증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논증인의 是非를 논할 때에는 주제와 관계 없이 논증인만
으로 논할 수는 없다. 항상 주제와의 관계 위에서 논해지는 것이 일반적
으로 알려진 논증인이며, 푸르부촉 롭상잠바와 툭세 아왕타시가 말하는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논증인과는 다른 논증인으로서, ‘제시했을 뿐인 논증
인’이 설해진다. 툭세 아왕타시의 『세두라』에 아래와 같은 논쟁이 있
다.
kha cig na re /
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rtags grub pas
khyab
zer na /
sgra chos can / yod p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khyod kyi rtags grub par thal /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i phyir / khyab pa khas /
ma grub
na /
sgra chos can / yod p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r thal / rtag pa de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yin pa gang zhig / de grub pa'i phyir / (Sras bsdus
grwa: 222-22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그 귀류논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논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그것의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증인은] 그 [귀류논증]
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기 때문이다. 변충관계는 [이미 입론자
에 의해 인정되었다.]
42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그것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다’
라는 것은 [그 논증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며, 그것은 성립
하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첫 번째 논증식은 귀류논증이므로, 소리가 상주라는 귀결에
질문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나
타난 부분은 논증인이다. 즉 질문자를 통해서 툭세 아왕타시는 ‘상주이
다’라는 것이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며, 그리고 그것은 타당하다고 주
장하고 있다.
또한, 귀류논증으로써 부정되는 것은 입론자가 세운 변충관계이다. 즉,
‘그 귀류논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논
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rtags grub pas khyab)라는 것이 자설에 의해서 부정된다. 자설
로서는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논증인이 성립한다고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에 대해서는, 주제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 그 시
비를 판가름 한다. 예를 들면 위의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
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식에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은 ‘소리는 상주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바른
논증인으로서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은,
‘상주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주제와 관계없이 홀로 성립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논증식에 주제가 없을 경우에는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도 없으므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으로서 논증인이 성립하는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위의 『용진두라』의 인
용에서 푸르부촉 롭상잠바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rtsod gzhi med cing rtags
gsal gnyis ka dang ldan pa'i thal 'gyur rnams la yang … bkod tshod kyi rtags ngos
'dzin tshul dang grub ma grub sogs rigs 'dra ba yin pa'i phyir /).
그러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라고 해서, 주제와 관계없이 모든 개개
의 논증인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실재이다’(dngos po yin)라
는 것이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일 경우에, 겔룩파의 논사들은 성립하지
43
않는다고 판단한다.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을 주제와의 관계에서 떠나 판
단한다면, 그들은 무엇에 근거하여 논증인의 시비를 가르는 것일까. 각
두라에,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대해서 답변하는 경우의 규칙이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세두라』에 아래와 같이 자설로서 설해지고 있다.
rang gi lugs la / khas len song tsul yod de / yod med gnyis kyi nang gi yod
pa dang spyi dang bye brag gnyis kyi nang gi bye brag dang / rtag mi rtag
gnyis kyi nang gi rtag pa dang / yin min gnyis kyi nang gi ma yin pa yin par
khas len dgos pa de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192)
자설로서 [다음과 같이 설해진다.] [정해진] 답변 방법이 있다. 존재
와 비존재중에서는 존재, 상위개념(spyi)과 하위개념(bye brag) 중에
서는 하위개념, 常住와 無常 중에서는 상주, ‘이다’와 ‘이 아니다’
중에서는 ‘이다’라고 답해야한다는 것이 [답변의 방법]이기 때문이
다.
겔룩파의 논사들은 이러한 규칙에 따라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파악
하고 있다. 또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도 이러한
규칙에 근거한다.
겔룩파 논사들에 의해 위와 같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은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에 더해서 또
한가지, 겔룩파 논사들이 제시하는 다른 이해 방법이 있다. 그에 대해서
이하에서 논하고자 한다.
(2) 다른 주제를 세워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는 방법
겔룩파의 게셰들은 위에서 말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가
없는 경우의 답변 방식 등에 대해서 납득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에게는,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shes bya chos can)를 상정하여 읽을 것을 51
지식대상
51
의 정의가 있다 『세두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shes bya) . . shes bya'i
「지식대상」의
mtsan nyid yod de / blo'i yul du bya rung de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57)
정의가 있다 왜냐하면 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이라는 것이 지식대상의 정의 이기
. , [ ]
때문이다 .
52
세라 대승원 체바 학당 출신의 게셰 가와 스님의 강의
2008/6/17 데붕 대승원 , 2009/8/4
고망 학당출신의 게셰 하람파 참바 스님의 강의에 의함 .
44
그것은 단순히 두라를 학습하는 겔룩파 승원에 한하여, 또는 일부의
승원이나 학당에 한하여 관습적 구전으로 전해지는 해결방법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식대상’을 주제로서 더하는 것으로 위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가 없는 경우의 답변 방식 등 모든 점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문제까지 본 논문에서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라는, 실제로는 문자로 쓰여져 있지
않은 다른 주제를 별도로 상정하는 것에 의해서, 적어도 본 논문에서
문제로 삼는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대한 의혹은 제거된다. 또 그것이
단지 구전일 뿐인 것은 아니며, 두라 중에서 散見되는 이론을 근거로
하는 합리적인 제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지식대상을 잠정적인 주제로 하여 가설하는 것의 논리적
근거를 두라 중에서 「歸謬論證」(thal ’gyur) 章에서 추출하여 열거하고,
그 후에 실제로 ‘지식대상’이라는 주제를 가설함으로써 주제가 없는 논
증식을 이해하고자 한다.
1) 논쟁의 基體(rtsod gzhi)라는 개념
논쟁의 기체와 주제(chos can)의 구별
주제가 한 개 있는 경우에는 논쟁의 기체(rtsod gzhi)와 주제(chos can)는
동일한 것인데, 주제가 두 개 이상 있는 경우에는 그 양자가 별개의 것
으로서 구별된다. 귀류논증(thal gyur)章 에, 주제(chos can)가 다수 열거되
53
47
일반적인 주제와 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한편, 남은 주제인 ‘기둥’, ‘항
아리’는 일반적인 주제(chos can)이다. 그 주제에 대한 귀결은 ‘실재임’이
며, 내용면에서도 모순하지 않는다.
yang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
n par thal / khyod yod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 / de ’dra’i thal ’gyur de bum pas rtsod
gzhi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s gsal ba /
khyod yod pas rtags byas pa’i thal ’gyur yin pa gang zhig ……
(Yong ’dzin bsdus grwa: 29-3a)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
(khyod)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
이다.’라는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
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면,
자설 :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생략)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논재의 기체로 하고,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를 귀결로 하고,
‘그것은 존재임’을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며 또한 (생략)
48
이상과 같은 논쟁의 기체는 khyod를 사용한 논증식에서도 주제와는 구
별된다.
yang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
n par thal / khyod yod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
an btab pa’i tshe /yod p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
n par ’dod ces rtsi rigs pa’i phyir /
de(=de ’dra’i thal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yod p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gyur de bum pas rtsod gzhi / yod p
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s gsal ba / khyod yod
pas rtags byas pa’i thal ’gyur yin pa gang zhig,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thal / zhes pa’i khyod gnyis po de rtsod gzhi bum p
a la sbyor dgos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29-3a)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
(khyod)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
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
과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면,
자설 :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
에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존재를 주제로 해서, 항아리는 항아
리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
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존재를 주제로
해서, 항아리는 항아리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논쟁의 기체로 하고, ‘존재를
주재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를 귀결로 하며, ‘그것은
49
존재임’을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며, 또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고 말하는 [경우의] khyod 두 개 모두는 논
쟁의 기체인 항아리에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설을 정리하면,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에’라는 귀류논증에
서 ‘항아리’가 논쟁의 기체이다. 그리고 ‘존재’를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주제로 함으로써 논쟁의 기체(rtsod gzhi)를 주제와 구분시키고 있다. ‘존
재’는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는 귀결과 함께 명제로서 취
급된다. 그러나 명제 중에 ‘그것’(khyod)에 적용되는 것은 주제인 ‘존재’
가 아니라, 논쟁의 기체인 ‘항아리’라고 하고 있다. 즉 주제가 다수 있는
경우에 가장 첫 번째의 주제가 논쟁의 기체이며, 남은 모든 주제는 통상
적인 의미에서의 주제인 것으로 된다. 그리고 만약 귀결문에 미지항 ‘그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은 논쟁의 기체를 가리킨다.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thal /
khyod gzhi grub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a b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de 'dra b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dan btab pas ka
b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hyod chos can / de la 'dod lan btab pas de ltar du rtsi rigs par thal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hyod yod pa yin par thal / khyod gzhi grub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ka ba chos can /
bum pa yod pa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hyod chos can / de la 'dod lan btab pas de ltar du rtsi rigs pa yin par thal /
bum pa chos can / shes bya khyod kyi spyi yin par thal / khyod shes bya'i
bye brag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50
shes bya bum pa'i spyi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gang zhig, de'i rigs 'gros
kyis shes pa'i phyir / (Sras bsdus grwa: 230-231)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gzhi grub) 해 55
51
위의 논쟁에는 모두 세 개의 논증식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後述하
는 논쟁이 각각의 前述의 논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다. 따라
서 전술의 논쟁보다는 후술의 논쟁이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각각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논증식1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
과 동일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2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존재
한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3: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지식대상은 그것의 상위개념(spyi)
이라고 귀결된다. 그 ‘항아리’는 지식대상의 하위개념이
기 때문이다
.
52
kha cig na re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na / rtag pa yin pas khyab
zer na /
rtag pa kho na chos can / rtag pa yin par thal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chos can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yin pa dang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Rwa st
od bsdus grwa: 40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인 동시에 상주하는 것이라면, 상주임에 의해 변충된
다.
고 한다면,
질문자1 : ‘常住만’을 주제로 해서, 상주인 것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인 동시에 상주인 것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2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인 동시에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
다. 왜냐하면, 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자 1, 2에서 질문자 3, 4로의 논증식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 이유
에 관해서는 <본론>의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검토한 ‘A
yin par gyur pa'i B yin pa’ 구문의 변화를 고찰하면서 다루었다. 여기서는
질문자 3에서 4로의 논증식의 변환에 주목해 보자.
53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질문자3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
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ma grub na /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질문자4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이기 때문이다.
보통 답론자가 질문자의 논증식에 대해서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고 말 할 때는 논증인의 주제소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 56
55
질문자2 : 기둥을 주제로 해서, 이 아닌 동시에 상주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기둥이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이 전의 인용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질문자 3, 4가 ‘주제가 없는
논증식’이다. 여기에 주제로서 지식대상을 가정해 보자.
[shes bya chos can]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de(=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질문자3: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
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
항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질문자3의 논증식에서 주제소속성은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
주의 공통항이다’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
이기도 하고 상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답론자가 ‘논증인
이 성립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다’라는 논증인이 옳지 않다는 말이다. 질문자는 따라서, ‘지식대
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다’라는 논증인이 타당하다는 것
을 증명하기 위해 질문자4의 논증식을 세운다.
또한,
kha cig na re /
56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na / yin pas khyab
zer na /
dngos po chos can / yin par thal /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r thal / khyod yod pa gang zhig / shes bya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gnyis pa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kyi gzhal bya
yin par thal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인 일체지의 지식대상이라면, 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1 : 실재를 주제로 해서, 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2 :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khyod)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 [그것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다]라고 귀결된다. 왜
냐하면, 그것은 존재인 동시에 지식대상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두 번째[의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다.왜냐하면, [지식대상은]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57
질문자5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
다. 왜냐하면,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을 분석하기 전에 티벳어를 번역하는 문제에 대해서 잠시 언급
해 둘 필요가있다.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와 같이, 조사
gyi가 명사구의 후반부에 올 때, 그것을 기준으로 속격조사의 앞까지를
수식구로 본다. 그러한 규칙은 복잡한 명사구를 구사하는 두라의 대부분
의 논증식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또한, 이렇게 조사를
기준으로 해서 수식, 제한하는 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본론> 제2장에
서 제안한 것처럼 병렬구조로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의 정확한 의미는 ‘인 일체지의 파
악대상’을 말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제, 질문자의 논증식에서 처음의 주제가 귀결문에 흡입되는
시점부터 다시 살펴 보겠다.
[shes bya chos can]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de(=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r thal / khyod yod pa gang zhig / shes bya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gnyis pa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kyi gzhal bya
yin par thal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질문자2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khyod)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58
질문자3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다]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인 동시에 지식대상은
59
결 론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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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ABSTRACT
Study on the bsDus grwa literature, the primary text of Tibetan Buddhist
Logic.
The works of the bsdus grwa logic have provided an efficient perspective for
reading bsdus grwa literature what is constructed by unusual syntaxes. As they are
instrumental to foreign readers of bsdus grwa, I expect this treatise has any simple
service to read them doubtlessly.
We are concerned here with the demonstration form what lacks a subject(chos
can). A number of demonstration form used in bsdus grwa literature and some of
texts related with it consist of 3 essential elements – a subject(chos can, rtsod gzh
i), a consequence(bsal ba), a reason(rtags pa). Basically it is not allowed to omit
even one of them from an argumentation. Especially the subject is the basis with
respect to which one is seeking to learn something. And it is the subject word for a
consequence and a reason by their specific syntax.
Although there is such like a rhetorical principle, some of the demonstration
forms do not respond with the rule. One of them doesn’t have a subject at all.
Another one doesn’t function as a subject word or as a topic of the debate even
giving the subject. And some subjects are missing in the middle of a debate so only
a consequence and a reason remained on the demonstration form.
The question to be explored here is how the third exceptional type of
demonstration form can occur on bsdus grwa logic and how we can accept it as
Tibetan logicians did.
As there are two types of the subject – the theoretical conceptual condition or
66
rtsod gzhi and the conventional subject means a topic and a subject word of a
sentence or chos can, there are two types of the reason – the conventional reason
what is related with the subject or song tshod kyi rtags, and independent reason
what is free from the subject and just presented or bkod tshod kyi rtags. And when
a subject doesn’t work as a topic of the debate or there is no subject on the
argumentation, we can judge the reason is right or fault through the rule of
answering or khas len song tsul.
Although there is no subject on a demonstration form, the dGe lugs pa’s bsdus
grwa authors are considered it to be theoretically valid because these plausible
attributes of subjects, reasons, and even of answering are valid. With these points in
mind we can look at the syntax of demonstration form missing a subject in bsdus
grwa.
In addition, the dGe lugs pa’s masters provide a tip for a beginner who is just
started to read bsdus grwa. It is conveyed to students not in writing but in orally. It
says we can establish another subject for an argumentation. I examine the
hypothesis supposing another subject, for example shes bya chos can.
Before moving on to the main task, I summarized about the history and the
function of bsdus grwa literature, and formulated the bsdus grwa’s logical principle.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