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碩士學位論文

티벳불교 승원의 논리학 입문서

두라(bsDus grwa)의 연구

指導敎授 張 愛 順

東國大學校 大學院 佛敎學科

崔境眞

2009
목차

서론
1. 연구목적 ……………………………………………………………………… 4
2. 선행연구 ……………………………………………………………………… 5
3. 연구방법 ……………………………………………………………………… 8

본론
1. 두라(bsDus grwa) 문헌의 역사와 승원에서의 교육……………………… 10
(1) 티벳불교논리학의 역사 ………………………………………………… 10
1) 상푸 승원을 거점으로 하는 후전기 불교 논리학 …………… 10
2) 티벳불교의 독자적인 논리학 발전 ……………………………… 11
(2) 근세의 두라 …………………………………………………………… 11
1) 두라의 학습 체계 …………………………………………………… 12
2) 두라의 교육효과 …………………………………………………… 15
3) 각 승원의 두라 …………………………………………………… 19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 ………………………………………… 17


(1) 논쟁의 기본설정 …………………………………………………… 18
1) 논쟁의 구성원 …………………………………………………… 18
2) 논증식의 구조 …………………………………………………… 21
(2) 논쟁의 진행 방식 …………………………………………………… 26
1) 답변 방법의 종류 ………………………………………………… 27
2) 답변에 따른 논쟁의 진행 방향 ………………………………… 29
(3) A yin par gyur pa’i B yin pa 의 의미………………………………… 31
1) 일반적인 이해 방식의 문제점…………………………………… 31
2) 변충관계에서 도출되는 의미 …………………………………… 31

3. 주제가 없는 논증식의 해명 …………………………………………… 34


(1) 논증식의 내용의 분석 ……………………………………………… 34
1) 논증식의 구조적인 변화 패턴 …………………………………… 34
2) 주제를 갖지 않는 논증인의 판단 ……………………………… 40


(2) 다른 주제를 세워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는 방법…44
1) 논쟁의 基體(rtsod gzhi)라는 개념 ……………………………… 45
2) 논쟁의 기체를 가정한 논증식 ………………………………… 52

결론
略語 및 参考文献


서 론

1. 연구목적
두라(bsDus grwa) 는 티벳 불교 겔룩파(dGe lugs pa)승원의 초등교육과정
1

에서 쓰이는교과서 중 하나이다. 겔룩파의 각 승원에서는 두라를 승원교


육의 첫 단계로 하고 있다. 두라의 학습기간은 학습자에 따라 다른데, 대
체로 4~5년 정도 걸린다. 그리고 학습자들은 이 과정에서 겔룩파 승원의
논쟁법을 익힌다. 겔룩파 승려들은 두라를 학습함으로써 동시에 불교 교
학의 기본적 개념과 학습 방법 등을 배운다. 그러한 트레이닝을 거치고
나서 다음 단계인 반야학, 중관학, 구사학으로 나아간다. 또한 그 과정에
서도 두라교육에서 익힌 논리적인 논쟁방법이 활용된다. 따라서 겔룩파
승려의 생각과 사상의 근저에는 두라의 시스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1
‘두라’라는 명칭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Kuijp [1989]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테르닥
링파 규메도제(gTer bdag gling pa ’Gyur med rdo rje, 1646-1714)는 bsdus라고 하는 것은 경전
의 중요한 서술을 이해하기 쉽도록 요약한 것을 의미하여 붙인 것이라고 한다. Kuijp [19
89]의 인용에 따르면,
Kuijp [1989: 13-14]:
gsung rab mtha’ dag gi snying po gces bsdus go bde ming don brda sprod kyi dbang d
u byas pas bsdus pa zhes btags par gnang ste/ sngon gyi kha skad du/
rgyal ba’i bka’ dang de’i ’grel bstan bcos kyi//
dgongs don ma lus legs par bsdus pas na//
bsdus pa zhes su mkhas pas mtshan du btags//
모든 성전의 진수를 선별하여 알기쉬도록 명칭의 의미를 설명한 것이라는 데서 모 ‘
은것 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다음과 같이 말해진
’(bsdus pa) . [
다 .]
勝者의 말씀과 그 주석과 논서의
眞意를 남김없이, 잘 모은 것이므로
‘모은 것’이라고 賢者가 이름 붙였다.
그리고 ‘grwa’라고 하는 것은 ‘요점을 모은 것’을 학습하는 院을 가리킨다.
ibid. :
grwa shes pa ni / de nyid slob pa’i sde tshan gyi grwa sde /
라고 하는 중에
[‘bsdus grwa’ 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것 를 학습하는
] ‘grwa’ (=bsdus pa)
그룹 으로서의 학급 을 의미한다
[ ] [ .]
또는 웨망 쿤촉겔첸
, 은 그것은 다르마키
(dBal mang dKon mchog rgyal mtshan, 1764-1853) ,
르티 의 인명학관계의 논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각각의 텍스트의 맹점을 하
(Dharmakīrti) 7
나로 모아놓은 것을 배우는 학급 을 말한다고 한다
(bsdus) (grwa) .
Kuijp [1989: 14-15]:
spyir bsdus grwa zhes pa tshad ma sde bdun gyi rigs pa’i ’gro lugs shes ched du gzhu
ng tshan so so’i rigs pa’i rnam grangs du ma phyogs gcig tu bsdus pa’i grwa yin..
일반적으로 두라 라고 하는 것은 다르마키르티의 因明 部論書의 논리체계를 알기
‘ ’ [ ] 7
위해서 텍스트의 각 토픽 에서 논리의 다양한 분류항목을 하나로
(gzhung tshan so so)
정리한 것[을 배우기 위한]학급을 말한다.


두라 이외의 불교학 논서에도 두라에서 쓰이는 기술방식을 답습하는 논
서가 적지 않다.
그러나 두라의 기술방식은 그 기호적인 측면과 논리의 난해함 때문에
겔룩파 승려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이해되기 쉽지 않다. 때문에 두라를
연구하는 목적은 두라 특유의 표현형식을 해명하는 일이다. 두라에 관한
연구는 일본과 서양의 학자들에 의해서 진전되고 있다. 레오나드 반 더
카입(Leonard van der Kuijp)교수, 톰 틸레만(Tom Tillemans)교수, 조지 드레
이퓨스(Georges B. J. Dreyfus)교수, 오노다슌조(小野田俊蔵)교수, 후쿠다요
이치(福田洋一)교수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활성되었고 최근에는 젊은
학자들 중 파스칼 위공(Pascale Hugon)씨, 네모토히로시(根本裕史)씨 등에
의해서 연구되고 있다.
2. 선행연구
두라문헌의 기원, 두라의 논리 구조, 승원에서의 두라 교육의 위치 등
에 관한 많은 선행연구가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자료를 연대순으로 제시
하면 이하와 같다.
・ Daniel Elmo Perdue, Debate in Tibetan Buddhist Education,
Snow Lion Publications, 1992.2
・ Leonard W. J. van der Kuijp, “An Introduction to Gtsang-nag-p
a’s Tshad-ma rnam-par nges-pa’i ṭi-ka legs-bshad bsdus-pa”, Ōtan
i University Collection No.137971, Rinsen, 1989.3
・ Shunzo Onoda, MONASTIC DEBATE IN TIBET, A Study on the
History and Structures of bsDus grwa Logic, Wiener Studien z-
ur Tibetologie und Buddhismskunde, Heft 28, Vien-na, 1992.4
・ Georges B. J. Dreyfus, The Sound of Two Hands Clapping, Unive-
rsity of California Press, 2003.5
Perdue [1992]6 는 『용진두라』의 초급부분만을 취하여 여러 티벳인 게
2
이하 Perdue [1992]라고 표기한다.
3
이하 Kuijp[1989]라고 표기한다.
4
이하 Onoda [1992]라고 표기한다.
5
이하 Dreyfus [2003]라고 표기한다.
6
이 책은 저자가 버지니아대학(Virginia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청구논문으로서 제출한
것(1976)을 인도 다람살라에서 재출판(1980), 그것에 색인을 더하여 미국에서 출판한
(1992) 것이다.


셰 들로부터배운 두라의 이해를 서술하고 있다. 이 논서는 영어로 저술
7

된 최초의 두라 해설서이다. 그러나 해설을 서술하고 있음에 지나지 않


기 때문에 연구논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평가되고 있다.
Kuijp [1989]는 오타니(谷大)대학 소장의 蔵外문헌 중, 창낙파(gTsang
nag pa brtson ’grus seng ge, 12세기~?)의 논리학서인『知識論決択広註善釈要
集』(Tshad ma rnam par nges pa’i ṭika lers bshad bsdus pa)에 대한 소개 및 개
요를 서술한 논문이다. 그 중에서 티벳 논리학을 시대별로 개관하고 두
라의 어원에 관한 연구결과를 밝히고 잇다.
Onoda [1992]는 저자의 두라에 관한 소논문을 집성한 것에 더하여, 두
라의 諸개념의 체계와 각각의 개념에 대한 정의를 표로 만들어 간략하게
한 것과, 로오 켄첸수남훈둡(gLo bo mKhan chen bsod nams lhun grub, 1456-
1532)의 논리학 綱要書(rTags Rigs)의 교정본을 더한 것이다.
Georges Dreyfus교수는 세계최초의 서양인 게셰이다. 그는 Dreyfus
[2003]에서 자신의 티벳불교 승려로서의 체험담과 함께 논쟁수행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연구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승원의 바깥에서는
얻을 수 없는 세세하고 중요한 정보를 남기고 있다.
두라의 논쟁에 관한 연구방법은 두라에서 사용되는 어떠한 특수한 개
념이나 논리구조에 대하여, 두라와 티벳논리학의 문헌을 다수 인용하고
분석함으로써 귀납적으로 그 개념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는 방법이다. 대
표적인 연구는 이하와 같다.
・ 福田洋一「ゲルク派論理学の実在論的解釈について」『東洋の
思想と宗教』17, 2000, pp.18-42.

7
현대의 대학에 학위가 있는 것처럼, 겔룩파의 대승원에도 소정의 학위가 있다. 첫번째
는 랍잠파(rab ’byams pa)이다. 현대의 학사학위(B.A.)에 해당한다. 논쟁으로 이루어지는 시
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된다. 반야학 1학년생부터 중관의 최상급생까지의 학생이 응모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도람파(rdo rams pa)이다. 현대의 석사학위(M.A.)에 해당한다. 이것도
역시 논쟁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구사학 이상의 학년의 학생이라면 누
구든지 지원할 수 있다. ‘rdo’라고 하는 것은 울타리 안의 정원을 뜻한다. 그리고 ‘rams’은
랍잠파와 마찬가지로 공부가 잘 된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도람파는 승원 안에서 행해
지는 시험에서 합격한 M.A.에 해당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도람파와 같은 레벨의 학위이지만, 티벳력으로 정월에 티벳의 수도인 라싸(lha sa)에서
행해지는 시험에 합격하면, 하람바(lha rams pa, ‘라람파’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라는
학위를 받는다. 그것은 자신이 속해있는 승원에 한하지 않고 전국의 겔룩파 승려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다른 승원의 승려와 함께 논쟁을 한다. 따라서 하
람파는 최상위의 학위이다. 현대의 박사학위(Ph.d. 또는 D.D.)에 해당한다. cf. 中根千枝
[1982: 35]


・ 福田洋一「初期チベット論理学におけるmtshan mtshon gzhi gs
umをめぐる議論について」『日本西蔵学会会報』49, 13-25.
・ Hiroshi Nemoto, “Three Kinds of vyavaccheda (rnam gcod) in Tibe-
tan bsdus grwa Literature” 14th World Sanskrit Conference (2009)
에서의 발표문

두라의 내용에 관한 연구는 두라 특유의 티벳어 표현법과 함축된


논쟁의 내용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 특히 오노다슌조
교수는 1980년대 초반부터 일본어 혹은 영문으로 발표한 십 수 편의
논문을 통해서 두라에서 쓰이는 독특한 표현법과 티벳논리학의 독특한
개념들에 대해서 논했다. 가능한 한 다양한 두라를 인용하면서 주제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명확한 이해를 제시했다. 대표적인 논문은 다음과
같다.
・ 小野田俊蔵「問答(rtsod pa)に於ける khyod の機能について」
『日本西蔵学会会報』25, pp.4-6.
・ 小野田俊蔵「ldog chos について」『印度学仏教学研究』57, p
p.98-101.
・ 小野田俊蔵「spyi(類) と bye-brag(種)について」『印度学仏教
学研究』60, pp.127-130.
・ 小野田 俊蔵「mtshan ñid と mtshon bya について」『印度学仏
教学研究』 65(33-1), pp.92-95.

위와 같은 선행논문에 의해서 두라의 난해한 논쟁에 관한 논문이


소개되어 왔다. 두라의 논증식에서 쓰이는 특수한 논술형태, 논쟁에서
쓰이는 용어는 일반적인 티벳어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한
점에 주목해서 두라의 연구자들은 티벳인이 아닌 외국인이 두라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도구’로서의 논문을 발표해 왔다.
여기에는 철학적 고찰이라기보다는 논증식에서 도출되는 결론으로서의
도식을 제시할 뿐이다. 불교학적인 의의를 찾기 보다는 두라의 논증식을
해독하기 위한 열쇠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결과는 단지 두라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라의 논술방식을 답습한 티벳의 논서에 대한 이해에까지 활용가치가
있다. 즉, 그러한 점에서 그들의 논문은 유용한 ‘도구’와 같다. 그렇게
해서 종래로 두라의 필수적인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도구는 거의
갖추어졌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소소한 문제가 잔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이제까지 논해진 바 없는 두라의 諸
개념, 혹은 諸 논증의 이치 중의 몇 가지를 취하여 논해 나가고자 한다.
3. 연구방법
본 논문에서 사용하는 1차자료로서 두라문헌에는 3종류가 있다. 잠양
셰바 촉라우세르(’Jam dbyangs mChog lha ’od zer, 1429-1500)의 『라뚜두
라』 , 푸르부촉 롭상참바 출팀걈초(Phur bu lcog blo bzang byams pa Tshul
8

khrim rgya mtsho, 1825-1901)의 『 용진두라 』 , 툭세 아왕타시(Thugs Sras


9

Ngag dbang bkra shis, 1678-1738)의 『세두라』 이다. 또한 필요에 따라 티


10

벳인 논사에 의한 논리학서를 참고하거나 티벳인 게셰 스승의 교설 등에


근거해서 논하기로 한다.
<본론>의 제3장에서는 두라 중에서 논리적인 난점을 취하여 그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고 하나의 해석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타당성을
검토해 나가겠다. 본 논문에서 취할 쟁점은, ‘주제가 없는 논증식’이다.
두라의 논증식은 대체로 主題(chos can/rtsod gzhi), 帰結(bsal ba), 論証因
(rtags pa)이라는 세가지(rtags bsal rtsod gzhi gsum)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에서 ‘주제’란, 논쟁자들이 논쟁을 하는 화제, 이슈, 대상을 가리키며, 문
법적으로는 귀결문과 논증인에 대한 주어로 간주된다. 따라서 ‘주제가
없다’라는 것은 ‘주어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논쟁을 하는 데에 있어서 주제가 없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이
야기를 하는 데에 있어서 주어가 없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대화를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반드시 주제, 또는 주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대해서 단순히 개념적인 판단을 내릴 때
조차, “B다”라고 서술하기 위한 대상인 “A”가 필요하다. “A는 B다”라고
하지 않으면 “이것, 저것 등 모든 것에 대해서 B다”라는 오해가 생기기
8
’Jam dbyangs mChog lha ’od zer, Tshad ma rnam ’grel gyi bsdus gzhung shes bya’i sgo ’
byed rgol ngan glang po ’joms pa gdong lnga’i gad rgyangs rgyu rig lde mig (Dharamsala,
1980)
9
를 사용했다.
Phur bu lcog blo bzang byams pa Tshul khrim rgya mtsho, Tshad ma’i gzhung don ‘byed
pa’i bsdus grwa dang blo rtags kyi rnam bzhag rigs lam ‘phrul gyi lde mig (Tshulkrims Kel
sang and Shunzo Onoda ed., Textbooks of Se-ra Monastery for the Primary Course of Studie
セラ僧院教科書集
s(
10
을 사용했다.
), Kyōto, Nagata-Bunshodo, Biblia Tibetica 1, 1985)
Thugs Sras Ngag dbang bkra shis, Tshad ma’i dgongs ’grel gyi bstan bcos chen po rnam
’grel gyi don gcig tu dril ba blo rab ’bring tha ma gsum du ston pa legs bshad chen po
mkhas pa’i mgul rgyan skal bzang re ba kun skong (Mi rigs dpe skrun khang, 1985) 을 사용
했다.

때문이다.
일반적인 대화에서뿐 만 아니라, 두라의 논쟁식에서도 ‘주제’는 논쟁식
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로서, ‘주제’가 없는 논쟁식은 특수한 경우이
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는 연구논문은 이제까지 발표된 바 없으나,
두라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임에 틀
림 없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주제가 없는 경우의 논쟁식의 형태와 원인을 분석
하고, 실제학습자인 겔룩파의 승려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밝
힘으로써 겔룩파의 논사들과 동등한 시점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고자 한
다.
본래의 주제에 들어가기 전에 두라 문헌에 관한 전체적인 개관과 두
라 논리학의 체계를 논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론>의 제1, 2장은 제 3장
의 전제로서 제시한다. 제1장에서는 두라 문헌의 역사적인 위치, 승원교
육과정에서의 두라의 위치를 확인한다. 제2장에서는 두라의 일반적인 논
쟁의 방법, 논쟁의 프로세스 등을 논하고, 두라에서의 논증식의 구조, 답
변 방식에 따른 논쟁의 전개 패턴을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본론>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치도록 한다.


본론

1. 두라(bsDus grwa) 문헌의 역사와 승원에서의 교육

(1) 티벳불교 논리학의 역사


티벳불교의 역사는 前傳期(snga dar)와 後傳期(phyi dar)의 두 시기로 구
분된다. 7세기에 티벳에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지고, 국가의 지지를 받으
며 융성했는데, 이 시기의 불교전파를 前傳期라고 한다. 그러나 통일왕조
의 최후의 왕이었던 다르마(Dar ma、841-846 재위)의 사후로 왕조가 망하
면서 불교도 쇠퇴했다. 여기서 前傳期의 불교역사가 끝나고, 그로부터 약
1세기 반동안 불교의 공백기가 지속되었다. 티벳에 다시 불교가 흥성하
게 된 것은, 10세기 후반에 인도의 비크라마쉴라(Vikramaśilā)승원의 유명
한 학승이면서 승원장이었던 아티샤(Atiśa, Dīpaṃkaraśrījñāna, 982-1054)를
초청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아티샤의 출현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된 티벳
의 불교를 後傳期의 불교라고 한다.
1) 상푸 승원을 거점으로 하는 後傳期 불교 논리학
카담派(bKa’ gdams pa)의 古刹인 상푸 네우톡(gSang phu sNe’u thog)승원
(이하 ‘상푸승원’이라 함)은 후전기 불교 논리학의 거점이 되었던 대승원
이다. 11

상푸 승원은 건립 이래로 유명한 학승을 다수 배출했다. 그 중에서 옥


렉페셰랍의 조카이며 대번역관(Lo tsa ba)으로서 유명한 옥 로덴계랍
(rNgog Blo ldan shes rab, 1059-1109)은『量決択 』 (Pramāṇaviniścaya, 이하

11
상푸 승원은 아티샤의 제자였던 옥 렉페셰랍(rNgog Legs pa’i shes rab, 생존연대는 알
수 없음)에 의해서 라사의 남서부에 위치한 ‘상푸’라는 토지에 11세기에 건립되었다.
Kuijp [1987]에서는 상푸 승원의 역대 좌주와 함께 그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Onoda [1989] [1990]에서는 각 컬리지(학당)의 좌주 계보를 보다 구체적으로 조사했다.
Kuijp [1987] Onoda [1989] [1990] 등은 모두 겔룩파와 사캬파에 전해지는 티벳불교의 독자
적인 논리학교육, 나아가서는 승원의 시스템과 체계의 모델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상푸
승원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상푸 승원과 초기 겔룩파의 학문사 간의 인적 교류에 대해서
는 小野田 [1989]를 참조바람.
10
PVin 이라 함)을 번역하고, 그에 따라 PVin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불교
12

논리학 연구가 유행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불교학의 몇몇 용어에 대하여 논의하는 術語學
(terminology)이 일부 논사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그 술어학은 ‘集
約’(bsdus pa)이라고 불리는 학문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집약’은 오늘날의
「두라」(bsdus grwa)라고 불리는 것으로 달했다. 13

2) 티벳불교 독자적인 논리학 발전


챠파 츄키셍게(Phy(w)a pa Chos kyi seng ge, 1109-1169, 이하 ‘챠파’라 함)
는 상푸승원의 6번째 座主를 임했다. 그는 두라의 창시자이며 두라 및
口頭논쟁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논증표현법인 타르치르방법(thal phyir
method) 을 개발한 인물이라고 전해져오고 있다. 옥 로덴셰랍도 티벳의
14 15

기존의 논리학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지만, 챠파의


논리학은 그 이후의 티벳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챠파의 논리학서인『바른 인식수단, 마음의 어둠을 불식시킴』 (Tshad
ma yid kyi mun sel, 이하 YKMS이라 함)은 ‘집약’이라고 불리는 문헌류에
서 주로 쓰이는 연구 과제 18가지가 하나의 논서로 정리된 것이며, 이것
이 두라문헌류의 원형이라고 추측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은 16

YKMS가 현존하지 않았던 시대의 추측이다. 17

2006년 출판된 『카담파 全集』 (bKa’ gdams sung ’bum phyogs sgrig
thengs dang po)의 vol.8에 챠파의 저작이 수록되어 공개되었다. 그 자료에
기초한 최근의 연구에 의해서, YKMS가 두라의 원류라는 설에 의혹이 생
기고 있다. 왕닥도제(dBang drag rdo rje)씨는 ‘집약’과 ‘두라’는 별개의 것
으로서 구별되어야 하며, 챠파는 YKMS에서 ‘집약’을 저술했을 뿐이며
12
Kuijp [1989]에 의하면 옥 로덴셰랍은『量評釈』(Pramāṇavārttika, 이하 PV라 함)은 번역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번역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PV의 연구보다 PVin
의 연구가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3
cf. Kuijp [1989]
14
Stcherbatsky는 “sequence and reason”라고 번역했다. 논증식 중에서 귀결문의 마지막이
“~par thal”라는표현으로 끝나고 논증인의 마지막이 “~pa’i phyir”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것
에 유래한다고 생각된다.
15
Kuijp [1979: 358, ll.3-6], Kuijp [1989: 13, ll.23-24]
16
cf. Kuijp [1989: 13], Onoda [1992: 59], Tillemans [1999: 13-14]
17
가 현존하지 않았던 시절 챠파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원전이 없었기 때
YKMS ,
문에 간접적인 방법론으로써 연구해 왔다 즉 챠파의 논리학에 대한 비난, 또는 챠파의 .
제자들의 논서 등에서 인용되는 챠파의 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사용하여 챠파의 사상
을 재구성하는 방법으로써 연구했다.
11
‘두라’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챠파가 두라의 창시자인 것 18

처럼 서술하는 롱둘라마(Klong rdol bla ma, 1719-94/95)의 기술에는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根本 [2008b]는 롱둘라마가 말하는 것이 사
19

실이라면, 챠파가 두라의 창시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


러나 『카담파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YKMS의 구성은 ‘현재 우리가 알
고 있는 두라 문헌의 구성과는 많이 다르며, 오히려 전통적인 프라마나
문헌의 구성과 가깝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20

한편, 13세기에 들어서서 샤캬슈리바드라(Śākyaśrībhadra)가 인도에서 티


벳으로 건너와, 『量評釈』 (Pramāṇavārttika, 이하 PV라 함)의 전통을 전
했다. 사캬派(Sa skya pa)의 사캬 팡디타(Sa skya paṇḍita Kun dga’ rgyal
mtshan, 1182-1251, 이하 ‘사팡’이라 함)은 샤캬슈리바드라에게 師事하여
PV를 배우고, 그 때까지 PVin 중심이었던 티벳불교논리학을 비판하고
스스로 논리학서, 『바른 인식수단, 논리의 寶庫』(Tshad ma rigs pa’i gter,
이하 RT라 함)를 저술했다. 그 결과 인도 불교 전통의 논리학의 텍스트
로서 PVin보다는 PV가 읽히게 되었다. 21

인도 불교의 전통적인 논리학의 체계와 티벳 불교의 특이한 논리학의


체계는, 함께 겔룩파에 전해지게 되었다. 겔룩파의 대승원의 교육과정 중
에 논리학 관계의 학습으로서 PV와 두라의 학습과정이 그것이다.
(2) 근세의 두라
1) 두라의 학습 체계
18
'dir gsal por nges dgos pa zhig ni "bsdus pa" dang "bsdus grwa" zhes pa'i tha snyad de g
nyis red/ bsdus grwa zhes pa'i go don ngos 'dzin gong du brjod zin pa ltar yin la/ msdus pa
zhes pa ni skabs 'dir gzhung 'grel rgas zhing go dka' ba rnams kyi gnad phyogs gcig tu bs
dus pa la go ste/(dBang drag [2008: 113-114])
19
cf. dBang drag [2008: 112]
20
cf.根本 現在我々が知っているドゥラ分権の構成とは大きく異なり、むし
[2008b: 28-29]“
ろ伝統的なプラマーナ文献のそれに近い ”
21
사팡의 논리학은 인도의 원전 특히 에 의거하는 것이었던 점에 비해 챠파의 논리
, PV ,
학은 티벳의 독자적인 논리학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던 점에서 양자는 목적을 달
리하고 있다(cf. Onoda [1986: 65], 小野田 [1982: 193-194]). 그래서인지 사팡은 RT 중에서
‘雪山派’(gangs can pa)라는 이름을 붙여서 對論者의 설을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 ‘설산파’
란, 챠파와 그의 YKMS의 사상을 계승하는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cf. 小野田
[1986: 342]). 사팡은 인도 불교의 전통적인 논리학의 체계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개념
을 도입시키고자 하는 챠파의 논리학을 비판했다. 나아가 사팡 이후의 사캬파 의 학승인
셀독 판첸 샤카촉덴(gSer mdog Paṇ chen Śākya mchog ldan, 1428-1507)과 고람 수남셍게(Go
ram bSod names seng ge, 1429-1489)는 RT에 대한 주석에서 챠파의 그의 제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YKMS등 챠파의 논리학 텍스트를 인용하여 비판하고 있다(cf. Kuijp [1978:
358]).

12
대학문사의 커리큘럼 22

데붕(’Bras spungs), 간덴(dGa’ ldan), 세라(Se r(w)a)승원은 겔룩파의 대표


적인 승원이다. ‘세 개의 대승원’(ldan sa chen po gsum)이라고 불리며, 각
승원의 체계는 상푸 승원의 시스템과 비슷하다. 각 대학문사는 하나의 23

큰 대학과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어로는 Monastery보다는 Monastic


University이라고 번역된다. 하나의 대승원은 아래의 표와 같은 피라미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대승원

(ldan sa chen po)

학당 1 학당 2

(grwa tshang)

학급

(’dzin grwa)

학급 기숙사 1 학급 기숙사 2 학급 기숙사 3

(khams tshan)

각 학당(grwa tshang)은 적절한 사람 수로 나누어져, 각각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대학문사는 이러한 개개의 학당의 집합체이다. 학당에는 기숙
사(khams tshan)가 있다. 각 기숙사는 출신 지역 별로 나누어진다. 승려들
은 자신의 기숙사에 상주하면서 소속한 학당에서 공부한다.
또, 각 학당에는 학급(’dzin grwa)이 있다. 순서와 세세한 내용은 승원에
의해 다르지만, 대체로 5가지의 교과서(po ti lnga)에 의한 5가지의 학급으
로 나누어진다.

22
23
티벳의 대학문사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小野田 [1989], Onoda [1992: Ch.2]를 참조바람.
cf. Onoda [1992: 15]

13
과목 교과서
因明(tshad ma, Skt. pramāṇa) 『量評釈』(Pramāṇavārttika)
般若(phar phyin, Skt. prajñāpāramitā) 『現觀莊嚴論』(Abhisamayālaṃkāra)
中觀(dbu ma, Skt. madhyamaka) 『入中論』(Madhyamakāvatāra)
律(’dul ba, Skt. vinaya) 『律經』(Vinayasūtra)
俱舍(mngon mdzod, Skt. abhidharmakośa) 『倶舎論』(Abhidharmakośa)

단, PV는 통상적인 학당의 과정에서는 학습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겔


룩파의 대승원에서는 장군츄(’jang dgun chos)와 상푸야르츄(gsang phu dbyar
chos)라는 특정의 합숙 기간이 있어서, 그 기간에 배우게 된다. 24

한편, 학당 내에서 배우는 논리학(두라)은 위의 5가지의 학습과제를 연


구하기 위해서 기초학문으로서 배우게 된다. 그 텍스트가 두라 문헌이다.
두라를 학습하는 과목명은 ‘릭람’(rigs lam)또는 ‘두라’(bsdus grwa)라고 불
린다.
두라의 내용
두라는 ‘狭義의 두라’, ‘로릭’(blo rigs), ‘타릭’(rtags rigs)의 세 개의 장으
로 구성된다. 각각의 내용은 존재론, 인식론, 논리학(또는 논증인의 고찰)
에 상응한다. ‘협의의 두라(존재론)’는 경량부의 존재론 체계에 기초하는
존재개념체계를 도입하여 그것에 관한 논쟁을 한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
에서는 그 이후의 승원 학습을 계속해 나가면서 필수불가결한 논쟁(rtsod
pa)의 기술을 습득하고, 그리고 그를 위해서 논리적인 사고능력의 훈련
이 행해진다. ‘로릭(인식론)’에서는 인식주관의 모든 형태에 관한 고찰이
행해진다. ‘타릭(논증인의 고찰)’은 바른 인식수단 중의 하나인 추리에 대
24
‘장군츄’는 겨울(dgun)에 ‘장’(’jang)이라는 곳에서 三大승원의 모든 승려가 모여서 PV
를 공부하는 계절캠프와 유사한 것이다. ‘상푸야르츄’는 여름(dbyar)에 상푸 승원에 모여
서 PV를 공부하는 계절캠프와 유사한 것이다. 20세기 중반, 중국군이 티벳의 사원과 불
교전통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겨울에는 ‘장’에서, 여름에는 상푸승원에서 계절캠프가 열렸
다. 그러나 중국의 티벳 점령 후 티벳인들이 인도로 망명하고 티벳불교의 승원도 또한
인도의 남부에 건립된 후로는, 특정 지역을 지정하기보다는 三大승원을 차례로 돌며 매
년 행해지고 있다.
14
해서 세세하게 분류하고 고찰한다. 25

롱둘라마에 의하면, 챠파의 YKMS에서는 이하의 18가지의 과제가 집


성되었다고 한다. 이하는 그 18가지 과제를 나열한 것이다.
26

1) kha dog dkar dmar


2) rdzas chos ldog chos
3) ’gal dang mi ’gal
4) spyi dang bye brag
5) ’brel dang ma ’brel
6) tha dad thad27 min
7) rjes su ’gro ldog
8) rgyu dang ’bras bu
9) snga bcan bar bcan phyi bcan
10) mtshan mtshon
11) rtags mang gsal mang
12) dgag pa phar tshur
13) dngos ’gal rgyud ’gal
14) khyab mnyam
15) yin gyur min gyur
16) yin log min log
17) yod rtogs med rtogs
18) rtag rtogs dngos rtogs

오늘날 승원에서 사용되는 두라는 이상의 18가지 과제에 몇몇 과제를


더하거나 혹은 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두라의 교육효과
티벳불교독자의 논쟁법, 및 두라 문헌의 불교철학적인 가치와 위치를
이상의 설명은 小野田 [1989]를 요약한 것이다. 두라 이외의 사용 텍스트에 관한 자세
25

한 정보는 小野田 [1989]를, 두라의 전체적인 구성에 관한 해설은 Onoda [1992: 28-29]를
참조 바람.
26
cf. Onoda [1992], dBang dag [2008]
27
thad = tha dad

15
평가하는 점에 대해서 이전의 두라 연구자들은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Goldberg [1985]에서는 두라 학습의 목적은 ①정확한 논리학 ②논쟁을 하
기 위한 구술규칙 ③추론식의 패턴과 일반적인 문법을 떠난 문법적 구조,
라는 세가지를 습득하기 위함이라고 서술한다. 또 겔룩파에서는 승려의
지적 레벨을 높이기 위한 훈련으로서 두라를 학습하게 하고, 그것은 난
해한 불교철학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고 전한다. 그리고 28

예를 들면 체스게임에 룰이 있는 것처럼 겔룩파에서 행해지는 口頭의 논


쟁에도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은 논리적 판단력과 설득력과 같은 실천적
사고의 기술을 닦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29

이러한 두라의 교육효과에 관하여 小野田 [2001]에서는, “15세기 후반


에 겔룩파 승원교육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잠양 촉라우셀(’Jam
dbyangs mChog lha ’od zer, 1429-1500)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하(역자주 : 小野
田 [2001]의 다음 내용을 말함)에서 설명하는 추상개념의 분류 등이 불교문헌
연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하다, 라는 의미의
문장을 남기고 있다.” 라고 하고 있다. 30

3) 각 승원의 두라

오늘날 티벳 승원에서 사용되는 두라 텍스트는 승원에 따라 다르다.


주로 사용되는 것은 서문에서 언급했던 세 가지 두라, 즉 『라뚜두라』
『세두라』『용진두라』이다.
그 중에서 『라뚜두라』가 가장 오래됐다. 이 두라는 상푸 승원의 라
와뚜(Rwa ba bstod)학당의 학당장을 임했던 촉라우셀이 쓴 것이므로, ‘라뚜
두라’라고 약칭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두라의 원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라뚜두라』는 후대에 겔룩파와 사캬파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겔룩파의 라와뚜파(Rwa ba stod pa)승원에서 사용
하고 있다. 『세두라』의 저자인 툭세 아왕타시는 잠양셰바(’Jam dbyangs
bshad pa, 1648-1772)의 제자로, ‘정신적 후계자’(Thugs Sras)말이 이름 앞에
더해졌다. 그 ‘세’(sras)를 칭해서 그의 두라는 ‘세두라’라고 약칭되게 되
28
cf. Goldberg [1985: 154]
29
cf. ibid: 155.
小野田
30
“ 世紀後半にゲルク派の僧院教育の歴史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
[2001: 135] 15
ジャムヤン・チョクラウセル(’Jam dbyangs mChog lha ’od zer, 1429-1500)は自著の中で、
以下に説明する抽象概念の分類等が仏教文献の研究に直接は資さないけれども極めて重要
である、という意味の文章を残している”
16
었다. 『세두라』는 데붕 승원의 고망(sGo mang) 학당에서 사용되고 있다.
『용진두라』는 세라 승원의 체바(Byas pa) 학당에서 사용되고 있다. 저
자인 푸르부촉 롭상잠바는 달라이라마 13세의 개인교사(용진 yongs ’dzin)
으로 일했기 때문에, 그의 두라는 ‘용진두라’라고 약칭된다. 31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

이 장에서는 두라에서 사용되는 논증식의 기본적인 구조와 개념에 대


해서 정리해 두고 싶다. 두라는 불교에 입문한 승려가 논증의 형식을 배
우기 위해, 또한 불교에 있어서 기본적인 개념의 정의를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을 구사하여 논쟁을 하는 능력을 익히기 위해서 학
습한다.
그러한 두라의 독특한 논증방법과 개념을 다루는 방식, 정의하는 방식
등은 일상적인 티벳어 체계에서 떠나, 고도로 규칙화된 수학적 논증에서
구사할 법한 ‘문법’에 의해서 서술되어 있다. 根本 [2008b]에서도 “두라
의 논쟁은 초심자를 혼란하게 하기에 충분한 트릭을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 난해함은 티벳어 고유의 표현법에 기인하는 것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그 트릭을 명쾌하게 밝히는 것이 ‘티벳인의
사고법’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32

두라의 논쟁법에 대해서는 해설하는 텍스트가 따로 있지 않고, 스승으


로부터 직접 구두로 배워야 한다. 이 장에서는 본 논문에서 필요로 하는
범위에서 그 독특한 논증의 규칙을 제시해 두고자 한다.
두라 논증의 패턴에 관해서는 이미 다수의 논문에서 언급되었다. 일
두라의 계보에 관한 보다 자세한 해설은 Onoda [1996]을, 겔룩파의 각 대학문사에서
31

사용되는 두라를 포함한 논리학기초과정의 교과서에 관한 정보는 小野田 [1982]를 참조


바람.
根本 [2008b: 74] “ドゥラの問答は初学者を混乱させるのに充分なトリックを豊富に含ん
32

でおり、その難解さはチベット語に固有の表現法に起因するものであることが少なくない。
だが、それゆえにこそ、そのトリックを解き明かすことが「チベット人の思考法」を正し
く理解するための糸口になるのである”
17
본어로는 小野田 [2001], 福田 [2004], 그리고 영어로는 Sierksma [1964],
Jackson [1987], Onoda [1992], Perdue [1992], Dreyfus [2003] 등 충분한 연구성
과가 발표되었다. 이 장에서는 이들을 참조하면서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두라를 독해하기 위한 규칙에는 두가지의 관점이 있다. 한가지는 개개
의 논증식의 구조이고, 또 한가지는 논쟁의 진행 과정이다. 전자는 하나
의 논증식을 구성하는 구성요소와 그 역할 및 논증식 자체의 구조이다.
후자는 논증식을 반복하며 대론자들이 논쟁을 해가는 과정에 관한 규칙
이다.
(1) 논쟁의 기본 설정
1) 논쟁의 구성원
두라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논쟁을 하는 사람들은 두 입장으로 나누어
진다. 즉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하는 사람과, 그 주장명제의 是非를 판
단하는 논증식을 세우면서 논쟁을 주도해 가는 사람이다. 일단 논쟁이
시작되면,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했던 사람(前者)은 상대(後者)가 제기
하는 논증식에 대해서 정해진 형식으로 대답해야 한다.
처음에 주장명제를 선언하고 나중에 오로지 대답만 할 수 있는 사람
은, 티벳어로 ‘담차와’(dam bca’ ba) 또는 ‘치굴’(phyi rgol, Skt. prativādin)
이라고 한다. dam bca’ 라는 것은 ‘선언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담차와’는 ‘주장명제를 선언하는 사람/立論者’라는 의미가 있다. 이 논문
에서는 ‘입론자’ 또는 ‘答論者’라고 칭하겠다. 두라 중에서 개개의 논쟁
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kha cig na re)이라며 시작되는데, 그 ‘어떤 사
람’(kha cig)은 입론자(또는 답론자)를 말한다.
입론자가 처음에 세웠던 주장명제에 대해서 논증식으로써 그 옳고 그
름을 검토하기 위해 논쟁을 이끄는 사람은, 티벳어로는 ‘츠바포’(rtsod pa
po) 또는 ‘아굴’(snga rgol, pūrvavādin)이라고 한다. rtsod pa po란, ‘논쟁
자’(disputant)라는 의미가 있다. 이 입장에 선 사람은 답론자에게 논증식
을 사용해서 질문하므로, 본 논문에서는 ‘질문자’라고 칭하고자 한다.
두라의 각 장은 他說의 부정, 自說의 설정, 論難의 배척이라는 세 가지
節로써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각 장의 테마에 대해서 잘못된 주장명제가
제시되고 그 타당성에 대해서 검토해 가는 것이 ‘타설의 부정’이다. 타설
18
의 잘못된 논리를 논파하면서 바른 명제와 개념의 이해가 확립된다. 그
것을 정리하여 한 곳에 모은 것이 ‘자설의 설정’이다. 마지막에 자설에
대한 비판과 그것을 피하기 위한 논쟁이 ‘논란의 배척’이라는 절에서 다
루어진다. ‘타설의 부정’과 ‘논란의 배척’이 구두의 논쟁의 형식으로 기술
되며, ‘자설의 설정’은 대부분 단순한 서술표현으로 기술된다.

2) 논증식의 구조
주제:chos can
이라는 말은 dharmin(有法)을 의미한다. 이 논문에서는 ‘~을
chos can 33

주제로 해서’라고 번역하기로 한다. 그리고 주제로서 제시된 명사는 기


본적으로 논쟁하는 화제, 토픽, 논증식 전체의 주어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는 논쟁의 기본적인 토대, 무대, 기본 바탕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
서 티벳어로는 rtsod gzhi(논쟁의 基體/주제), 또는 dpag gzhi(추리의 基體/
주제)라고 한다.
그러나 특정 논쟁에 있어서, ‘주제’라는 번역어나 이해가 타당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주제는 논쟁의 기본 전제를 가리키기도 한다고 위에서 서
술했다. 바로 그 의미에서 논쟁의 基體, 또는 논쟁의 槪念基盤(rtsod pa’i
gzhi)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kha cig na re /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ma
yin pa las log pa yin na /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yin pa las log pa yin pas khyab
zer na /
shes bya chos can / de(=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y
in pa las log pa yin pa)34r thal / de(=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33
와 Onoda [1992] 양쪽 모두 ‘chos can’이라는 어구에 대해서 dharmin 또는
Perdue [1992]
라고 설명하고 있다.
subject
두라 중에서도 특히 『용진두라』에서는,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서술하는 번잡함을 피
34

하기 위해서인지, 지시대명사 ‘de’(그것)로써 생략하는 서술방식이 빈출한다. 앞서 이미


말해진 내용을 기계적으로 배치하면 알기 쉽지만, 그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외국인
들에게는 구체적인 내용을 확실하게 판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그
19
yin pa las log pa mtshon bya ma yin pa las log pa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37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定義가 아닌 것이 아닌 것이 定義對象이 아닌 것이
아니라면, 정의가 아닌 것은 정의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의해서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智識對象을 주제로 해서(shes bya chos can), 定義가 아닌
것은 정의대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정의가 아
닌 것이 아닌 것은 정의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논의의 처음에 입론자가 세운 명제는 이미 <主語-述部>를 갖춘
완벽한 문장이다.
前件: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 yin pa las log pa<主語> mtshon bya ma yi
n pa las log pa yin na/<述部>

後件:
mtshan nyid yin pa las log pa<主語> mtshon bya yin pa las log pa yin
pas khyab/<述部>

위의 주장명제 다음으로 질문자가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shes bya


chos can)라고 하여 논증식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논증식의
주어로는 될 수가 없게 된다. 이미 <주어-술부>의 완벽한 문장을 구성
하고 있기 때문에 달리 주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경우
‘주제’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논쟁을 하는 개념적 체계를
지시하는 말일 뿐, 논증식의 ‘주어’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경
우의 ‘지식대상’(shes bya)은 논증문의 주어가 아니라, 논증내용의 개념론
적 설정기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chos can이라는 말은 주로 논증식에 있어서 주어처럼 작용
하는 경우가 많으나, 논증문에 <주어-술부> 구조를 갖는 완벽한 문장이
‘de’ 가 가리키는 내용을 괄호 안에 밝혀두고자 한다.
20
서술되는 경우에는 주어가 아니라 논쟁의 전제, 논쟁의 기반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귀결:~ r thal
두라의 티벳어 문장에서는 귀결문의 마지막에 ~r thal이라고 말한다. 그
리고 그 말은 본래의 구어적인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자면, ‘~인 것으로
되어 버린다’라고 번역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선행연구에 따라 , ‘~ 35

으로 귀결된다’라고 번역하기로 한다. 36

귀류논증 (thal ’gyur)


두라에서는 입론자가 처음에 주장명제를 제시하는데, 본격적인 논쟁은
질문자에 의한 귀류논증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답론자가 처음에 세
운 명제에 오류가 있는 경우, 그것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을 통해서 답론자 스스로 알아차리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논쟁한
다. 37

귀류논증은 상대방의 주장의 오류를 상대방 본인이 자각하도록 이끌어


간다. 그렇기 때문에 귀류논증에서 질문자가 처음에 말하는 귀결문은 의
도적으로 답론자의 의견에 따르고 있다. 물론, 질문자는 오류가 있다는
것을 숙지하고 있다. 38

무엇보다도 ~r thal이라는 말에 대해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라고 귀결


된다.’라고 번역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질문자의 생각이라고는 할 수 없
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히려, 답론자에게 확인하는 의미에서 질문을 던
지고 있는 것이며, 질문자 자신의 생각이 아닌 경우가 있다. 특히 질문
35
福田 [2003, 2004], 野村 [2000] 등 참조바람.
36
또한 게셰 참바에 의하면(2009/08/03의 강의에 의함), ‘~par thal’이라고 할 때에는 ‘~인
가? 아닌가?’라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논증인을 말할 때에 ‘~pa’i
phyir’이라고 할 때에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7
예를 들면, ‘한국인은 매운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에 대해서 부
정하려고 할 경우, ‘꼭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부정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 청량고추 알레르기를 가진 한국인인 홍길동 씨도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그는 한국인이니까.’라고 답변하는 것이 귀류논증이다. 처
음에 주장을 말한 사람은 이 것을 듣고 모든 한국인이 매운 김치를 아주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38
이 것을 구어적인 표현을 이용해서 말하자면, ‘~r thal’이라는 어구는 “당신이 말 한대로
라면, ~한 것으로 되어버린다.’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21
자가 각 논쟁에서 처음에 세우는 논증식의 귀결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있
어서 답론자의 의견에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답론자의
명제를 확인하면서 질문하고 있는 것이며, 질문자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kha cig na re /
kha dog yin na dmar po yin pas khyab
zer na/
chos dung dkar po'i kha dog chos can/ dmar po yin par thal/ kha do
g yin pa'i phyir/ khyab pa khas/ (Yong ’dzin bsdus grwa: 1b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어떤 것이] 색깔이라면 [그것은]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한다면,
질문자 :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 색이라고 귀결
된다. [왜냐하면] 색깔이기 때문이다. 변충관계는 [입론자에 의해 이
미] 인정되었다.
입론자가 세운 명제는, 어떤 것이 색깔이라면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
된다는 것으로, 질문자가 세운 논증식은, 하얀 법고동의 색깔은 ‘색깔’이
므로 입론자의 명제가 타당하다면 이 색깔도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고
한다. 이해하기 쉽도록 화살표로 다시 분석해 보자.

입론자: kha dog yin na dmar po yin pas khyab


색깔이라면, 빨강임에 의해 변충된다.

질문자: dmar po yin par thal/ kha dog yin pa'i phyir/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 색깔이기
때문이다.
질문자가 말하는 중에 ‘빨간 색이라고 귀결된다.’라는 것은 질문자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이 세운 명제에 따라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
22
후의 ‘색깔이므로’라는 논증인은 정확히 말하자면, ‘하얀 법고동의 색깔은
색깔이므로’라는 말이다. 이것은 질문자의 생각이다. 다른 예제를 보자.

kha cig na re /
gzhi grub na / rgyu 'bras gang rung yin pas khyab
zer na/
shes bya chos can / rgyu 'bras gang rung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Sras bsdus grwa: 83-8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어떤 것이]基體成立(gzhi grub)한다면, 因과 果 중 어느
한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한다면,
질문자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한쪽이라고
귀결된다. 기체성립해 있기 때문이다.

입론자와 질문자의 논쟁을 화살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입론자: gzhi grub na / rgyu 'bras gang rung yin pas khyab
기체성립한다면, 인/과 중 어느 한 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質問者: rgyu 'bras gang rung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한 쪽이라고 귀결된다. 기체성
[
립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질문자의 논증식은 귀류논증이다. 즉 귀결은 답론자의
명제에 따르고 있을 뿐, 질문자 자기 자신의 생각인 것은 아니다.
답론자의 주장명제가 잘못되고 있다고 알리기 위한 논증식이다. 한편
논증인은 질문자의 생각이다. 즉 질문자는 지식대상은 인/과 중 어느
한쪽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체성립 해있다(shes bya gzhi grub yin)라고
생각하고 있다.

23
이상과 같이 두라의 논쟁에서는 일단 입론자의 명제로 시작하며, 그
후에 질문자의 귀류논증이 이어져, 입론자의 명제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논증인:~pa’i phyir
인도 불교 논리학의 경우와 같이, 티벳 불교 논리학에서 말하는 바른
논증인도 因의 三相(tshul gsum, Skt.trirūpa)을 갖추어야 한다. 그 중에서
주제소속성은 두라의 논쟁식에서 파악하기 쉽지만, 두 필연적 관계 즉,
긍정적 수반관계와 부정적 수반관계에 관해서는 짧게나마 설명이 필요하
다고 생각된다.
변충관계 (khyab pa)
변충관계를 표현하는 문장은 이하와 같다.
A yin na / B yin pas khyab /
A 라면, B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 A와 B는 변충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遍充(khyab pa, Skt.
vyāpti)이란, 어떤 것 x가 만약 A라면, 그 x는 반드시 B라는 것이다. 그것
을 바꿔 말하면,
A인 것은 반드시 B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즉, ‘A라면’이라는 조건절은 ‘A인 것은’이라는 명사구
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인용했던 예제의 변충관계를 다시 고찰해
보자.
kha dog yin na dmar po yin pas khyab
입론자 : 색깔이라면 빨간 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어떤 것이 색깔일 때에 그것은 반드시 빨간 색이
라고 말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색깔인 모든 것은 반드시 빨간 색이
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충관계는 이상과 같이 답론자의 명제에 있어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질문자의 논증식 중에서 귀결과 논증인의 관계에도 변충관
계가 있다. 복잡한 논증식에서 변충관계를 식별하는 것은, 기계적인 변
환방법으로 가능하다. 이하에서는 그러한 변충관게를 식별해 내는 방법
을 고찰하고자 한다.
24
chos dung dkar po'i kha dog chos can / dmar po yin par thal / kha do
g yin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1b f.)
질문자 : 하얀 법고동의 색깔을 주제로 해서, 빨간색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이 논증식에는 하얀 법고동의 색깔이 주어가 되어서, ①빨간색이다. ②


색깔이다, 라는 두 가지의 술부가 있다. ①은 귀결문이며 , ②는 논증인이 39

다. 그리고 주제의 ‘하얀 법고동의 색깔’과 ②의 관계가 주제소속성이며,


①과 ②의 관계가 변충관계이다. ①과 ②에서 ‘②이라면 ①임에 의해 변
충된다.’라고 바꿔 말함으로써 변충관계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즉,
논증식: dmar po yin par thal / kha dog yin pa'i phyir /
빨간색임에 귀결된다. 색깔이기 때문이다.

변충식 40
:kha dog yin na / dmar po yin pas khyab /
색깔 이라면, 빨간색임에 의해 변충된다.
이와 같이 순서를 역전시킴으로써 논증식에서 변충식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또한 ‘색깔이라면 빨간색임에 의해 변충된다.’라는 변충관계는 바
꿔 말하면, ‘색깔인 모든 것은 반드시 빨간색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shes bya chos can / rgyu 'bras gang rung ma yin par thal / 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84)
질문자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논증 전체의 주어인 것은 ‘지식대상’이다. 이것을 주어로 하여, ①인
이 부분의 논증식은 귀류논증이기 때문에 ①의 귀결은 질문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39

아니다.
福田 [2003]에서 제안된 것에 따라서, 변충관계를 표현한 문장을 ‘변충식’이라고 칭하
40

기로 한다.
25
과 중 어느 쪽도 아니다, ②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다, 라는
/
두 개의 서술이 있다. ①은 귀결이고 ②는 논증인이다. 따라서 지식대상
이라는 주어와 ②의 관계가 주제소속성이고, ①과 ②의 관계가 변충관계
이다. 그 중에서 ①과 ②의 변충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논증식에서 변
충식을 도출해 내면 이하와 같다.
논증식:rgyu 'bras gang rung ma yin par thal /
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pa'i phyir /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귀결된다.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遍充式:rgyu ma yin pa gang zhig 'bras bu ma yin na /
rgyu 'bras gang rung ma yin pas khyab /
인인 것도 아니면서 과인 것도 아니라면,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님에 의해 변충된다.
나아가 변충식을 바꿔 말하면,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닌 모든 것은
반드시 인/과중 어느 쪽도 아닌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변충
관계가 성립하면, ‘어떤 것 x는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닌 것으로 귀결된
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이
타당한 것으로 된다. 위의 논증식에서는 그 x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지
식대상을 주제로서 제시했다. 즉, 지식대상은 인도 아니면서 과도 아니
므로, 필연적으로 그것은 인/과 중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 논쟁의 진행방식
두라에서 보여지는 논쟁도, 티벳불교 승려에 의해 구두로 진행되는 논
쟁도 일정의 규칙에 따라서 진행된다. 그 중에서 논쟁의 방향을 결정하
는 것은 답론자의 답변이다. 또한 답변 방식은 그 수와 語句가 제한되어
있다. 답론자는 정해진 방식대로 제한된 선택지에서 답변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그 외에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하에서
는 답변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답변에 따라 논쟁이 어떻게 진행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26
답론자 : 주장명제 질문자: 귀류논증

답론자-긍정: “인정한다.” (’dod) 논쟁이 끝남

답론자-부정: “왜?” (ci’i phyir) 질문자 : 논증식

논쟁이 끝남 답론자-긍정: “인정한다.”

답론자-부정

①“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 : 논증식(논쟁이 계속됨) (rtags ma grub)


②“ 변충관계하지 않는다.”

(ma khyab)

이 그림은 口頭로 진행되는 논쟁의 일반적인 진행 방식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질문자-답론자>의 논쟁이 두 번 있는데, 두
번째와 같은 형식의 논쟁이 뒤로 반복되기 때문에 뒷부분은 생략했다.
답론자가 최종적으로 자신이 세운 명제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할때까
지 이러한 패턴의 논쟁을 계속한다. 한편, 두라에서 보여지는 논쟁에서
는 처음의 논쟁은 생략되고, 두 번째 논쟁을 주로 해 나가고 있다.
1) 답변 방식의 종류
위의 그림과 같이 답변방식은 긍정인가 부정인가로 나누어진다.
긍정하는 경우의 답변 방식
답론자는 긍정할 경우에 “인정한다”(’dod)라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질
문자의 논증식에서 귀결에 대한 긍정이다. 즉,
gzugs chos can / khyod kyi rgyu yod par thal / khyod skyes pa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84)

27
질문자 : 形色(rūpa)을 주제로 해서, 그것(khyod) 의 因이 있음에 41

귀결된다. [왜냐하면]그것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증식에 대해서 답론자가 긍정한다면, 그 정확한 내용은
<주제+귀결>에 대한 긍정이다. 즉, “색형은 그것의 인이 있다고
인정한다” (gzugs khyod kyi rgyu yod par ’dod)라는 것이다.
부정하는 경우의 답변 방식
질문자의 논증식에 대해서 부정하는 경우, 그 부정 대상은 논증인이다.
위의 예제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khyod skyes
pa yin pa’i phyir)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정이다.
또 논증인을 부정하는 경우, 논증인의 주제소속성을 부정하는지, 또는
변충관계를 부정하는 가에 따라서 답변 방식이 달라진다. 위의 그림에서
밝힌 것처럼, 주제소속성에 문제가 있을 때에는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rtags ma grub)라고 하며, 변충관계가 없을 때에는 “변충하지
않는다” (ma khyab)라고 말한다.
위의 예제의 논증식에 대하여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그 정확한 내용은 “그것이 생겨난 것이라고 하는 논증인은
성립하지 않는다” (khyod skyes pa yin pa rtags ma grub)라는 것이다.
그리고 “변충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그 정확한 내용은 질문자가
근거로 하는 변충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변충식은 앞의
<논증식의 구조>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논증식의 귀결과 논증인의
순서를 역으로 하는 것으로 도출해 낼 수 있다.
論証式:khyod kyi rgyu yod par thal / khyod skyes pa yin pa'i phyir /
그것의 인이 있음에 귀결된다. 그것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遍充式:khyod kyi rgyu yod na / khyod skyes pa yin pas khyab /
그것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의 인이 있다는 것에 의해 변충된다.

小野田 [1979] Onoda [1992: 49-57] 에서는 ‘khyod’라는 말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보통
41

는 ‘당신, 너’를 의미하는 2인칭 대명사인데, 두라에서는 미지항 x를 의미하며, 논증


khyod
식에서 khyod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내용은 주제이다. ‘그것’이라고 번역한다.
28
즉, 답론자가 “변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때, 그 내용은 “그것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것의 인이 있다는 것에 의해서 변충되지 않는다”
(khyod skyes pa yin na / khyod kyi rgyu yod pas ma khyab)라는 것이다.
또한 질문자가 논증식을 세운 후 “rtags khas” 또는 “khyab pa khas”라는
말을 하는 것은 “논증인의 주제소속성 또는 변충관계는 입론자가 벌써
인정한 그대로이기 때문에,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또는 변충된지
않는다라는 답변은 할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답론자
가 할 수 있는 부정하는 답변 중 어느 한 쪽을 금지하는 것이다.
2) 답변에 따른 논쟁의 진행 방향
질문자의 논증식에 대해서 답론자가 “인정한다”라고 긍정하면 논쟁은
끝난다. 그러나 부정을 하면 논쟁은 계속된다. 그 경우에 답론자의
부정내용-주제소속성을 부정하는 것인지, 변충관계를 부정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논쟁의 방향이 결정된다.
‘A 를 주제로 하여, B 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C 이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식으로써 논쟁의 프로세스를 생각해보자.
답론자가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을 경우 논쟁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질문자:A 를 주제로 해서. B 인 것으로 귀결된다. C 이기 때문이다.
답론자: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A 는 C 가 아니다)
질문자:A 를 주제로 해서, C 인 것으로 귀결된다. D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C 임이 부정되었을 때, C 임을 증명하기 위한 논증이
계속된다. 앞의 예제를 다시 살펴보면, 질문자의 논증식에 대해서
답론자는 “논증인이 성립되지 않는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gzugs chos can / khyod kyi rgyu yod par thal / khyod skyes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gzugs chos can / khyod skyes pa yin par thal / khyod dngos po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84)
질문자 : 형색(rūpa)을 주제로 해서, 그것(khyod)의 인이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29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면,
질문자 : 형색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생겨난 것이라고 귀결된다.
그것은 實在(dngos po)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질문자의 논증인에 대해서
답론자가 ‘그것이 생겨난 것이라는 논증인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것은 즉 답론자는 ‘그것은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답해졌을 때 질문자는 ‘그것은 생겨난
것이다’라는 논증인이 왜 성립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한편, 답론자가 “변충된지 않는다”라고 답변했을 경우에는 논증식이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질문자 : A 를 주제로 해서, B 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C 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변충되지 않는다.(=C 라면 B 인 것에
의해 변충되지 않는다.)
質問者:C 라면, B 인 것에 의해 변충된다. 왜냐하면 D 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답론자가 질문자의 논증식 중에서 귀결문과 논증인 간의
변충관계를 부정했을 경우, 그 후의 논쟁은 변충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bum pa chos can / dngos po yin par thal / don byed nus pa yin pa'i phyir /
ma khyab
na /
khyab pa yod par thal / don byed nus pa dngos po'i mtsan nyid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58)
질문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실재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効果的作用(Skt.arthakriyā)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변충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변충관계가 있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효과적 작용을
하는 것’은 ‘실재’의 定義이기 때문이다.
30
답론자는 이 예제 중에서 질문자의 논증식에서 변충식을 도출하고
그것에 대해서 부정하고 있다. 그 변충관계란, ‘효과적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실재임에 의해 변충된다’라는 것이다. 질문자는 이 변충관계가
왜 성립하는가를 증명하기 위한 논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상과 같이, 두라 및 두라의 체계를 기본으로 하는 티벳 불교의
논쟁은 극도로 제한된 규칙에 의해서 논쟁한다. 또 그러한 규칙이 있기
때문에 텍스트로서의 두라의 기술방식은 함축적일 수 밖에 없다. 본
논문에서는 두라를 논하기 위해서 기본 전제로서 이상으로써 두라의 몇
가지 규칙을 제시했지만, 다루지 않았던 부분도 물론 남아 있다.
(3) A yin par gyur pa’i B yin pa 의 의미
본 논제에 들어가기에 앞서, 주제를 도중에 상실하는 논증식에서 반드
시 사용되는 ‘yin par gyur pa’i B yin pa’라는 구문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일반적인 이해 방식의 문제점
일반적인 티벳어 번역 방식으로는, ‘A yin par gyur pa’i B yin pa’는, ‘A yin
pa’가 B를 수식,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취하여, ‘<A인 B>인 것’이라고 번
역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A yin pa’가 B를 수식, 제한하고 있다고 해석해서는,
두라에서 말하는 ‘A in par gyur pa'i B yin pa’라는 표현을 티벳의 논사들이
이해하는 방식과 동등하게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A yin pa’와 ‘B yin
pa’는 동격이며, 그것이 동일한 주어에 대해서 병렬로써 수식하고 있다
고 생각된다. 이하에서는 왜 이와 같이 해석되는가를 증명하고자 한다.
2) 변충관계에서 도출되는 의미
『세두라』에 다음과 같은 논증식이 있다.
gzugs chos can / 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 yin par thal / rta

31
42
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 yin pa'i phyir / (Sras bsdus gr
wa: 94)
自說(rang lugs) : 형색을 주제로 해서, 常住하는 것이 아닌 因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형색은] 상주하는 것이 아닌 것과 因의 양쪽
이기 때문이다.
에 대하여, 통상적인 티벳어 번역
‘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 yin pa’
법에 따라서 ‘상주하는 것이 아닌 인인 것’이라고 번역했는데, 因은 본래
상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상주하는 인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은 달
리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기 때문에) 이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충
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선 이 논증식에서 변충관계를 도출해 내보자.
논증식: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임에 귀결된다.
rta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이기 때문이다.
변충식:rtag pa ma yin pa dang rgyu gnyis ka이라면,
rtag pa ma yin par gyur pa'i rgyu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 변충식을 일반화하면,
변충식:A yin pa dang B gnyis ka이라면,
A yin par gyur pa’i B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A yin par gyur pa'i B yin pa’는 변충의 前件에서 보
여지는것처럼, 동일한 주어에 대해서 병렬하는 두 가지의 술어이며, 단
순히 ‘A yin par gyur pa’가 B를 수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한 것’이라고
의역하고자 한다.
『세두라』의 다른 곳에서 ‘A yin par gyur pa’i B yin pa’를 이용한 논쟁
이 보인다.
kha cig na re /
dngos po yin par thal / ka bum gnyis ma yin pa dang dngos po g
nyis ka yin par thal / ka bum gnyis ma yin par gyur pa'i dngos po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185)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인용문에서는 yin pa가 아니라 그것의 부정형인 ma yin pa를 구사하고 있는데, 부정
42

문이 된 것일 뿐, 기본적으로 yin pa의 경우의 논리와 구조는 같다.


32
입론자 : 실재하는 것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기둥과 항아리
의 양쪽이 아닌 것>과 <실재하는 것>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그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기둥과 항아리의 양쪽이
아닌 것>과 <실재하는 것>의 양쪽임에 귀결된다. <기둥과 항아
리의 양쪽이 아닌 것>이면서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
다.
이 논증식에서 성립하고 있는 변충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변충식 : ka bum gnyis ma yin par gyur pa'i dngos po yin pa이라면,
ka bum gnyis ma yin pa dang dngos po gnyis ka임에 귀결된다.
처음의 예제에서 보였던 변충관계의 역전된 모습이다. 즉,
변충식:A이면서 B이기도 하다면,
(A yin par gyur pa’i B yin na /)
A 인 것과 B의 양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A yin pa dang B gnyis ka yin pas khyab /)
따라서 ‘A이면서 B이기도 한 것’과 ‘A인 것과 B의 양쪽인 것’은 相互遍
充關係(yin khyab mnyam)에 있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A yin par gyur pa’i B yin pa’라는 구절에서 ‘A인 것’이라는 명
사구가 B를 수식/제한하고 잇는 것이라고 해석해 버린다면, B는 A의 주
어가 된다. 또는, B라는 주어에 A라는 술어가 이어진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dngos pa는 ka bum gnyis
ka ma yin’(실재하는 것은 기둥과 항아리의 양쪽이지 않다)라는 명제는 의
미가 없다. 여기서 논점은 ‘dngos po’가 기둥과 항아리의 兩者이지 않다
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에 대해서 ‘기둥과 항아리의 양자이다’라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어구를 이 논문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A이면서 B이기
도 한 것’이라는 의미로 취한다면, A라는 술어와 B라는 술어를 함께 동
반하는 주어 C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점을 ‘A인 것과
B의 양쪽이다’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고
생각된다.

33
3. 주제가 없는 논증식의 해명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chos can’이라고 하는 말은 뒤의


2.
논증식 전체에 걸친 주제를 나타낸다고 했는데, 논증식에 따라서는 ‘chos
can’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는 논증식도 있다. 한편, 하나의 43

논쟁에서 처음에 주어졌던 주제가 나중에 언급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


다. 이러한 논증식에 대해서 티벳불교의 논사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 알아보고자 한다.
(1) 논증식의 내용의 분석
논쟁의 도중에 주제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겔룩파의 논사들과
두라의 학습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러한
논증식을 그들과 동등한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節에서는 주제를 상실한 논증식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증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1)에서는, 논증식의 구조적인 변화를
분석해야할 것이다. 주제가 논쟁의 도중에 없어지는 일은 논증식의
구조적인 면에 기인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주제가
있으면서 단지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없기
때문에 주제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도 밝혀질 것이다. 또 주제가
없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주제가 없는 논증식의 논증인이 성립한다는
것도 확인하겠다.
그리고 다음으로 2)에서는 주제가 없어도 논증인이 제시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티벳의 논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논증식의 구조적인 변화 패턴
라고 말했을 때, A 는 ‘인 것’(yin pa)의 補語라고 할 수 있다.
‘A yin pa’
본 논문에서 ‘보어가 없는 yin pa’란, A 의 위치에 아무것도 없이, yin pa 가
주로 각 두라의 thal ’gyur의 설정(thal ’gyur gyi rnam bzhag)을 설하는 장에서 다루어진다.
43

그러나 이와 같은 경향은 두라라는 텍스트 위에 한정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口


46

頭로 이루어지는 논쟁에서는 yin pa앞에 들어가는 말을 보다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34
문장의 가장 처음에 위치한 문장표현을 가리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경우에는, 무엇이든지 논증에 유리한 아무것 x 가 보어로서 yin
pa 의 앞으로 들어갈 수 있다(x yin pa).

주제의 소멸
의 앞에 들어가는 것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기본이지만,
yin pa
보어가 없는 yin pa 가 귀결문의 선두에 왔을 때에는 논증식의 주제로서
제시된 명사가 yin pa 의 보어로 오는 경우가 많다. 46

일반적인 논증식은 다음과 같다.


A chos can / B yin par thal / C yin pa’i phyir
이러한 논증식에서는 A 가 주어, B 가 주제 A 에 대한 <서술 1>, 그리고
C 가 <서술 2>이다. 그러나 보어가 없는 yin pa 를 포함한 논증식에서는,
A chos can / yin par thal / B yin pa’i phyir /
이라는 논증식이 구성되고, 그것은 논쟁의 도중에서
A yin par thal / B yin pa’i phyir /
로 변형된다. 이 경우에 A 가 <서술 1>이 되고 B 는 <서술 2>로 된다.
즉, 논증식의 주어는 주제였던 이어야 하는데, A 는 yin pa 의 보어가 된다.
그렇게 해서 논증식의 주어는 소실된다. 그리고 귀결의 서술부에 대한
주어도 없어지므로, 주어가 알려지지 않은 서술문만이 논증식에 남게
된다.
『라뚜두라』에서 한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rtag pa kho na chos can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yin pa dang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
yir / (Rwa stod bsdus grwa: 40 f.)
질문자 : 常住만(rtag pa kho na)을 주제로 해서, 인 것 인 동시에 상 47

根本 [2009: 6, 脚注17番]에서는 yin pa srid pa와 yin pa mi srid pa에 대해서 ‘叙述可能’과
47

叙述不可’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서술’이라는 명사는 ‘문자를 쓰다’라는



의미보다는, ‘~이라고 서술하다’(predicate)라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쓰고 있다는 점에 주
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술존재’란, ‘X라고 서술할 수 있는 다르마x가 존
재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논문에 적합한 형식을 갖추며 본래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있는 좋은 예이지만,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yin pa의 보어의 有無가 유동적
35
주인 것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
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때문이다.
주제로서 제시한 말인 ‘상주만’(rtag pa kho na)은 질문자의 마지막 논증
식에서 귀결문의 일부에 yin pa의 보어로서 흡입된다. 즉 주제로서 제시
된 명사A가 yin pa 앞으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A yin pa를 형성하게 된 것
이다. 그로써 chos can이라는 말도 없어졌고, 주제를 표현하는 말도 없어
졌다. 즉 ‘주제가 없는 논증식’이 형성되었다.
또한 주제인 ‘상주만’이 없어졌기 때문에 질문자의 두 번째 논증인인
‘상주이기 때문이다’ (rtag pa yin pa’i phyir)가 성립하게 되었다. 만약, ‘상주
만’이 주어로서 논증식에 잠재되어 있으면서 말로 하지 않을 뿐이었다면,
주어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이 논증인은 성립될 수 없다. 즉, ‘상주
만’이라는 주제가 있을 경우에는 ‘상주이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인은 타당
하지 않다. 왜냐하면 두라에서는 ‘상주만’은 ‘상주’가 아니다(rtag pa kho
na rtag pa ma yin) 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촉라우셀은 『라뚜두라』에서
48

이하와 같이 논쟁한다.
rtag pa kho na chos can / yod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dod
na /
rtag pa kho na med par thal / dngos po yod pa'i phyir / (Rwa stod bsdus gr
wa: 42 f.)
질문자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존재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인정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상주만’은 비존재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실재(dngos po)
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인 것’이라고 번역하겠다.


왜 ‘상주만’이 ‘상주’이지 않은가에 관해서는 Nemoto [2009]을 참조바람.
48

36
질문자의 첫 번째 논증식은 귀류논증이기 때문에, 질문자가 ‘상주만’을
주제로해서, 존재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질문자의
두 번째 논증식의 귀결, ‘<상주만>은 없다’라는 것은 질문자의 주장이다.
즉 두라의 체계에서는 존재는 상주와 실재로 나누어지는데 , ‘상주만’이 49

라고 하면 ‘실재’를 완전히 배제해 버리는 것이 된다. 따라서 두라의 50

존재 체계에서 ‘상주만’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


한 의미에서 촉라우셀은 ‘상주만’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주제는 귀결문에 종속됨으로써 논증식에 있어서 주제로서는 작
용할 수 없게 된다.
ka ba chos can / de(=ma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질문자 : 기둥을 주제로 해서, 非敍述存在인 동시에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왜냐하면, 비서술존재와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
하면, 기둥이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
이 인용에서는 위의 인용과 반대로, ‘인 것’(yin pa)이 아니라, ‘이 아닌
것’(ma yin pa)이라고 하고 있지만, 그 이치는 동일하며 단지 긍정인가 부
정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 논쟁
에 있어서도 주제로서 주어진 명사 ‘기둥’은 ‘이 아닌 것’의 앞으로 삽입
되어, ‘기둥이 아닌 것’이라는 명사구가 되었고, 논증식의 주어가 되는 말
은 상실되었다.

49
gzhi grub la dbye na gnyis yod de / rtag pa dang / dngos po gnyis yod pa'i phyir /(Yong ’dzin bs
기체성립 하는 것 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왜냐하면 무상과 실재의
dus grwa: 67) [ ] . ,
두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
50
에서는 이러한 排除
Nemoto [2009] 개념의 관점에서 상주만
(rnam gcod, Skt.vyavaccheda) ‘ ’
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고찰하고 있다 .

37
또한 주제였던 ‘기둥’은 잠재적으로 논증식에 있으면서 생략하여 말하
지 않을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주제가 귀결문에 종속되게 된 후에도
‘기둥’이 그대로 주제로서 있다면, 질문자의 두 번째 논증인인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모순이 되어버리기 때
문이다. 왜냐하면 ‘기둥’과 ‘기둥이 아닌 것’은 서로 모순관계에 있기 때
문이다. 따라서 처음의 주제는 일단 귀결문의 보어가 없는 yin pa의 앞으
로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주제로서는 인정할 수 없다.
변충관계의 변화
주제의 어구가 귀결문에 들어감으로써 귀결문의 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이상에서 논한 바와 같다. 그런데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귀결과 논증인의 관계는 변충관계이다. 따라서 귀결
문에서 논증되는 것은 변충관계로써 논증되는 것이기 때문에 귀결문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논증인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rtag pa kho na chos can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yin pa dang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Rwa st
od bsdus grwa: 40 f.)
질문자1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인 동시에 상주임에 귀결된다. 왜
냐하면, 인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2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38
질문자3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이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내용을 보면, 질문자1이 논증하고자 하는 것과 질문자 2, 3
이 논증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문자1의 논증인
은 ‘A yin par gyur pa’i B yin pa’라는 구의 해석을 분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상주만’이 귀결문으로 흡수된 후의 질문자2의 논증인은 귀결문
의 내용에 대해서 논증하고자 하고 있다. 변충식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
다.
변충식1 : ‘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면, 인 동시에 상주임에 의해 변
충된다.
변충식2 : 상주라면,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3 : 존재인 동시에 실재가 아니라면, 상주임에 의해 변충된다.
이와 같이 주제가 귀결문에 연결되므로써 귀결문의 내용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논증인이 변충관계로서 논증하는 대상도 내용 쪽으로 흘러간다.
또, 『라뚜두라』에서,
ka ba chos can / de(=ma yin par gyur pa'i rtag pa)r thal /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 (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 )
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질문자 : 기둥을 주제로 해서, 이 아닌 동시에 상주인 것이라고 귀
결된다. 왜냐하면,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
하면, 기둥이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39
라고 한다면,
질문자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이 논쟁의 변충식만을 도출해 내면 아래와 같다.
변충식1 :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면, 이 아닌 동시에 상주
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2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라면, 기둥이 아닌 것
과 상주의양쪽임에 의해 변충된다.
변충식3 : 상주라면,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주어임에 의해
변충된다.
여기서도 역시, 변충식1은 귀결문의 구조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 변충
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변충식2 및 3은 귀결문의 내용에 관해서 변충관
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주제가 소실된 후의 논증식에서 보이는 변충관계의 변화를
분석했다. 티벳인 논사들은 주제가 없는 논증식도 논증식으로서 인정하
고 있다. 또한 주제가 소실되어, 귀결문이 변하므로써 논증인이 논증하
는 대상(bsgrub bya’i chos)도 변화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티벳의 두라에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일지라도 논증식으로서 인정하고,
변충관계를 인정한다면, 主題所属性(Skt. pakṣa-dharma)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以下에서는 3相 중에서 주제소속성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
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주제를 갖지 않는 논증인의 판단
푸르부촉 롭상잠바는 『용진두라』에서 논증인을 분류하고 있다.
rtags gsal rtsod gzhi gsum ka dang bcas pa'i thal 'gyur gang dang gang gi
yang bkod song gi rtags ngos 'dzin dang grub ma grub sogs 'di dang rigs 'dra
zhing / rtsod gzhi med cing rtags gsal gnyis ka dang ldan pa'i thal 'gyur
rnams la yang song tshod kyi rtags med kyang bkod tshod kyi rtags ngos
'dzin tshul dang grub ma grub sogs rigs 'dra ba yin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34)

40
논증인, 귀결, 논쟁의 基體[라는] 세 가지 모두를 갖춘 귀류논증은
무엇이든,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
(bkod song gi rtags)을 확정하는 일과 [논증인이] 성립하는지 안하는
지를 [결정하는 일] 등은 이것과 [결과적으로는] 같으며, 그와 동시
에 논쟁의 기체가 없어도 논증인과 귀결 두 가지를 가진 귀류논증
에서도 또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은 없지만, 제시했을 뿐인 논
증인을 확정하는 방법과 [논증인이] 성립하는가 안하는가를 [결정
하는 방법] 등은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푸르부촉 롭상잠바는 논증인을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bkod tshod kyi
rtags)과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song tshod kyi rtags)으로 나누고 있다.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이란, 일반적으로 알려진 논증인을 말한다.
즉 주제와 관련하여 주제소속성이 성립해 있는 논증인이다. 툭세 아왕타
시는 『세두라』에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을 아래와 같이 식별하고
있다.
kha cig na re /
thal 'gyur de'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s
khyab
zer na /
ri bong rwa chos can / med pa yin par thal / tshad mas ma dmigs pa yin pa'i
생략) / khyod kyi rtags grub par thal / r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
bong rwa tshad mas ma dmigs pa de khyod kyi rtags yin pa gang zhig / de
grub pa'i phyir / der thal / ri bong rwa tshad mas mi dmigs pa de khyod kyi
song tshod kyi rtags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22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답론자 : 그 귀류논증의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제
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토끼의 뿔을 주제로 해서, [토끼의 뿔은] 비존재라고 귀결
된다. 왜냐하면,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
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생략) [그러한 논증식]의 논증인
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토끼의 뿔은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논증인인 동시에, [그 논증인은] 성립하
41
기 때문이다.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토끼의 뿔
은 바른 인식에 의해 지각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주제와 관
련하는 논증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논증인의 是非를 논할 때에는 주제와 관계 없이 논증인만
으로 논할 수는 없다. 항상 주제와의 관계 위에서 논해지는 것이 일반적
으로 알려진 논증인이며, 푸르부촉 롭상잠바와 툭세 아왕타시가 말하는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논증인과는 다른 논증인으로서, ‘제시했을 뿐인 논증
인’이 설해진다. 툭세 아왕타시의 『세두라』에 아래와 같은 논쟁이 있
다.
kha cig na re /
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rtags grub pas
khyab
zer na /
sgra chos can / yod p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khyod kyi rtags grub par thal /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i phyir / khyab pa khas /
ma grub
na /
sgra chos can / yod p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chos can /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grub par thal / rtag pa de khyod
kyi bkod tshod kyi rtags yin pa gang zhig / de grub pa'i phyir / (Sras bsdus
grwa: 222-223)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그 귀류논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논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그것의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논증인은] 그 [귀류논증]
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기 때문이다. 변충관계는 [이미 입론자
에 의해 인정되었다.]
42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 :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
주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을 주제로 해서, 그것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다’
라는 것은 [그 논증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며, 그것은 성립
하기 때문이다.
질문자의 첫 번째 논증식은 귀류논증이므로, 소리가 상주라는 귀결에
질문자가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질문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나
타난 부분은 논증인이다. 즉 질문자를 통해서 툭세 아왕타시는 ‘상주이
다’라는 것이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며, 그리고 그것은 타당하다고 주
장하고 있다.
또한, 귀류논증으로써 부정되는 것은 입론자가 세운 변충관계이다. 즉,
‘그 귀류논증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면, 그 귀류논증의 논
증인이 성립함에 의해 변충된다.’(thal 'gyur de'i bkod tshod kyi rtags grub na /
thal 'gyur de'i rtags grub pas khyab)라는 것이 자설에 의해서 부정된다. 자설
로서는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 성립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논증인이 성립한다고는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에 대해서는, 주제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 그 시
비를 판가름 한다. 예를 들면 위의 ‘소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한다고 귀
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라는 논증식에서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은 ‘소리는 상주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타당하지 않으므로 바른
논증인으로서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은,
‘상주이다’라는 것인데 그것은 주제와 관계없이 홀로 성립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논증식에 주제가 없을 경우에는 주제와 관련하는
논증인도 없으므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으로서 논증인이 성립하는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위의 『용진두라』의 인
용에서 푸르부촉 롭상잠바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rtsod gzhi med cing rtags
gsal gnyis ka dang ldan pa'i thal 'gyur rnams la yang … bkod tshod kyi rtags ngos
'dzin tshul dang grub ma grub sogs rigs 'dra ba yin pa'i phyir /).
그러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이라고 해서, 주제와 관계없이 모든 개개
의 논증인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실재이다’(dngos po yin)라
는 것이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일 경우에, 겔룩파의 논사들은 성립하지
43
않는다고 판단한다.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을 주제와의 관계에서 떠나 판
단한다면, 그들은 무엇에 근거하여 논증인의 시비를 가르는 것일까. 각
두라에,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대해서 답변하는 경우의 규칙이 제시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세두라』에 아래와 같이 자설로서 설해지고 있다.
rang gi lugs la / khas len song tsul yod de / yod med gnyis kyi nang gi yod
pa dang spyi dang bye brag gnyis kyi nang gi bye brag dang / rtag mi rtag
gnyis kyi nang gi rtag pa dang / yin min gnyis kyi nang gi ma yin pa yin par
khas len dgos pa de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192)
자설로서 [다음과 같이 설해진다.] [정해진] 답변 방법이 있다. 존재
와 비존재중에서는 존재, 상위개념(spyi)과 하위개념(bye brag) 중에
서는 하위개념, 常住와 無常 중에서는 상주, ‘이다’와 ‘이 아니다’
중에서는 ‘이다’라고 답해야한다는 것이 [답변의 방법]이기 때문이
다.
겔룩파의 논사들은 이러한 규칙에 따라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파악
하고 있다. 또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도 이러한
규칙에 근거한다.
겔룩파 논사들에 의해 위와 같이 약속되어 있다는 것은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그에 더해서 또
한가지, 겔룩파 논사들이 제시하는 다른 이해 방법이 있다. 그에 대해서
이하에서 논하고자 한다.
(2) 다른 주제를 세워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는 방법
겔룩파의 게셰들은 위에서 말한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가
없는 경우의 답변 방식 등에 대해서 납득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에게는,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shes bya chos can)를 상정하여 읽을 것을 51

조언한다. 그러나 두라에서 그와 같이 보충되는 實例는 찾을 수 없었다.


52

지식대상
51
의 정의가 있다 『세두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shes bya) . . shes bya'i
「지식대상」의
mtsan nyid yod de / blo'i yul du bya rung de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57)
정의가 있다 왜냐하면 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이라는 것이 지식대상의 정의 이기
. , [ ]
때문이다 .
52
세라 대승원 체바 학당 출신의 게셰 가와 스님의 강의
2008/6/17 데붕 대승원 , 2009/8/4
고망 학당출신의 게셰 하람파 참바 스님의 강의에 의함 .

44
그것은 단순히 두라를 학습하는 겔룩파 승원에 한하여, 또는 일부의
승원이나 학당에 한하여 관습적 구전으로 전해지는 해결방법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지식대상’을 주제로서 더하는 것으로 위의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과
주제가 없는 경우의 답변 방식 등 모든 점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문제까지 본 논문에서 다룰 수는 없다.
그러나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라는, 실제로는 문자로 쓰여져 있지
않은 다른 주제를 별도로 상정하는 것에 의해서, 적어도 본 논문에서
문제로 삼는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대한 의혹은 제거된다. 또 그것이
단지 구전일 뿐인 것은 아니며, 두라 중에서 散見되는 이론을 근거로
하는 합리적인 제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지식대상을 잠정적인 주제로 하여 가설하는 것의 논리적
근거를 두라 중에서 「歸謬論證」(thal ’gyur) 章에서 추출하여 열거하고,
그 후에 실제로 ‘지식대상’이라는 주제를 가설함으로써 주제가 없는 논
증식을 이해하고자 한다.
1) 논쟁의 基體(rtsod gzhi)라는 개념
논쟁의 기체와 주제(chos can)의 구별
주제가 한 개 있는 경우에는 논쟁의 기체(rtsod gzhi)와 주제(chos can)는
동일한 것인데, 주제가 두 개 이상 있는 경우에는 그 양자가 별개의 것
으로서 구별된다. 귀류논증(thal gyur)章 에, 주제(chos can)가 다수 열거되
53

는 논쟁이 실려있는데, 여기서도 rtsod gzhi와 chos can을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rang gi lugs la / rnam mkhyen chos can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sgra chos can / dngos po yin par thal / dngos po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di rnam mkhyen gyis rtzod gzhi byas pa'i thal 'gyur yin byas pa la /
(Sras bsdus grwa: 229)

『용진두라』의 上級編(rigs lam che ba)에「귀류논증 초급편」(thal ’gyur chung ba)과


53

「귀류논증 상급편」(thal ’gyur che ba)이 실려있다. 『라뚜두라』도 이와 동일하다. 『세


두라』에서도, chapter 16.「귀류논증 초급편」(thal ’gyur chung ngu)과 chap-ter 24.「귀류논증
상급편」이 있다.
45
自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一切智를 주제로 해서,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소리을 주제로 해서, 실재임에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은
일체지를 논쟁의 기체로 하는 귀류논증이다, 라고 말한 점에 대해
서……
위의 인용과 같이 복수의 주제가 제시되었을 경우, 그 중에서 첫 번째
주제인 ‘일체지’가 논쟁의 기체라고 구별된다.
kha cig na re /
shes bya chos can / ka ba chos can / bum ba chos can / dngo
s po yin par thal / dngos po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
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 shes bya chos can / ka ba
chos can / bum ba chos can / dngos po yin par ’dod ces rts
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 ka ba chos can / bum ba chos can / dngos po yin par
’dod ces rtsi rigs pa’i phyir /
de(=de ’dr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 ka ba
chos can / bum ba chos can / dngos po yin par ’dod ces rts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gyur de / shes byas rtsod gzhi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dngos pos gsal ba / dngos pos rtags b
yas pa’i thal ’gyur yin pa’i phyir /
de(=de ’dra’i thal ’gyur de / shes byas rtsod gzhi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dngos pos gsal ba / dngos pos rtags byas p
a’i thal ’gyur yin pa)r thal / chos can gnyis nas brgya’i bar du brts
egs pa’i thal ’gyur gang dang gang bkod kyang / chos can dang po
de rtsod gzhir bzhag nas / chos can lhag ma gang yod gsal ba la s
byor dgos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28-2b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
를 주제로해서, 실재임에 귀결된다. 실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
하는 귀류논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46
즉]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를
[
주제로 해서, 실재라고 인정한다’라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면,
자설:그것은 바르지 않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논
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기둥을 주제
로 해서,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실재라고 인정한다’라고 적용하
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러한 귀류논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라고 대답하는 것
은, ‘기둥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실재라고 인정한
다’라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
논증이란, ‘지식대상’을 논쟁의 기체(rtsod gzhi), ‘기둥을 주제로 해
서,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실재한다’를 귀결, [마지막의] ‘실재’를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귀류논증이란, ‘지식대상’을 논쟁의 기체(rtsod gzhi), ‘기둥
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실재한다’를 귀결, [마지
막의] ‘실재’를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주제가 두 개 내지 백 개까지 얼마만큼 축적된 어떠한 귀
류논증이 제시되었더라도, 처음의 주제가 논쟁의 기체라고 설정
하며, 남은 주제가 얼마만큼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귀결[문
의 일부]로서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설에서는, 논증의 마지막 부분에서 복수의 주제가 주어진다면 그 중
의 가장 첫번째 주제가 논쟁의 기체가 되며, 뒤에 이어지는 나머지 주제
는 모두 귀결부분으로 포함된다고 하고 있다. 즉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
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를 주제로해서, 실재임에 귀결된다. 실재
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논증식에서는 ‘지식대상’이 논쟁의 기체(rtsod
gzhi)가 된다. 또한 논쟁의 기체이므로 ‘지식대상’은 명제와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다. 두라의 존재 개념의 체계에 따르면 지식대상은 실재라
고는 할 수 없으므로 만약 논쟁의 기체가 귀결분의 주어라고 한다면
54

이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논쟁의 기체는 그 이름과 같이 논쟁


전체의 기본전제, 또는 존재론으로써 규정하는 것을 표시하는 것일 뿐,
54
shes bya chos can / dngos po ma yin par thal / dngos med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 chos can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실재인
de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7 f.) ,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비실재이기 때문이다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 .[ ] ,
지식대상 을 주제로 해서 비실재 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常住이기 때문이다
[ ] [ ] . .

47
일반적인 주제와 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 한편, 남은 주제인 ‘기둥’, ‘항
아리’는 일반적인 주제(chos can)이다. 그 주제에 대한 귀결은 ‘실재임’이
며, 내용면에서도 모순하지 않는다.
yang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
n par thal / khyod yod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 / de ’dra’i thal ’gyur de bum pas rtsod
gzhi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s gsal ba /
khyod yod pas rtags byas pa’i thal ’gyur yin pa gang zhig ……
(Yong ’dzin bsdus grwa: 29-3a)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
(khyod)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
이다.’라는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
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면,
자설 :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생략)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논재의 기체로 하고,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를 귀결로 하고,
‘그것은 존재임’을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며 또한 (생략)

이 논쟁에서도 주제는 ‘항아리’와 ‘존재’와의 두 가지가 제시되었다.


자설에서는 그 중 첫 번째의 ‘항아리’는 논쟁의 기체이며, ‘존재’는 주제
라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두 개 이상의 주제가 제시되었을 때, 가장 처
음의 것이 논쟁의 기체, 그리고 그 후의 것은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주제
라는 것이 ‘규칙’이라고 생각된다.
khyod 와 논쟁의 기체에 관한 규칙

48
이상과 같은 논쟁의 기체는 khyod를 사용한 논증식에서도 주제와는 구
별된다.
yang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
n par thal / khyod yod pa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 bum pa chos can / yod p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
an btab pa’i tshe /yod p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
n par ’dod ces rtsi rigs pa’i phyir /
de(=de ’dra’i thal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i tshe
/yod p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pa)r thal / de ’dra’i thal ’gyur de bum pas rtsod gzhi / yod p
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s gsal ba / khyod yod
pas rtags byas pa’i thal ’gyur yin pa gang zhig,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thal / zhes pa’i khyod gnyis po de rtsod gzhi bum p
a la sbyor dgos pa’i phyir / (Yong ’dzin bsdus grwa: 29-3a)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
(khyod)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
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
과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라고 한다면,
자설 :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
에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존재를 주제로 해서, 항아리는 항아
리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
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존재를 주제로
해서, 항아리는 항아리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류논증의 귀결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할 때, ‘항아리’를 논쟁의 기체로 하고, ‘존재를
주재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를 귀결로 하며, ‘그것은
49
존재임’을 논증인으로 하는 귀류논증이며, 또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고 말하는 [경우의] khyod 두 개 모두는 논
쟁의 기체인 항아리에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설을 정리하면,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존재를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존재이기 때문에’라는 귀류논증에
서 ‘항아리’가 논쟁의 기체이다. 그리고 ‘존재’를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주제로 함으로써 논쟁의 기체(rtsod gzhi)를 주제와 구분시키고 있다. ‘존
재’는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는 귀결과 함께 명제로서 취
급된다. 그러나 명제 중에 ‘그것’(khyod)에 적용되는 것은 주제인 ‘존재’
가 아니라, 논쟁의 기체인 ‘항아리’라고 하고 있다. 즉 주제가 다수 있는
경우에 가장 첫 번째의 주제가 논쟁의 기체이며, 남은 모든 주제는 통상
적인 의미에서의 주제인 것으로 된다. 그리고 만약 귀결문에 미지항 ‘그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것’은 논쟁의 기체를 가리킨다.
kha cig na re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hyod khyod dang gcig yin par thal /
khyod gzhi grub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a b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zer na /
de mi rigs par thal / de 'dra b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dan btab pas ka
ba chos can / bum pa bum pa dang gcig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hyod chos can / de la 'dod lan btab pas de ltar du rtsi rigs par thal / bum pa
chos can / ka ba chos can / khyod yod pa yin par thal / khyod gzhi grub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ka ba chos can /
bum pa yod pa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hyod chos can / de la 'dod lan btab pas de ltar du rtsi rigs pa yin par thal /
bum pa chos can / shes bya khyod kyi spyi yin par thal / khyod shes bya'i
bye brag yin pa'i phyir zhes pa'i thal 'gyur gyi gsal ba la 'dod lan btab pas

50
shes bya bum pa'i spyi yin par 'dod ces rtsi rigs pa gang zhig, de'i rigs 'gros
kyis shes pa'i phyir / (Sras bsdus grwa: 230-231)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과 동일하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gzhi grub) 해 55

있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기
둥과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다.
고 한다면,
질문자 :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귀
류논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기둥을 주제
로 해서, 항아리는 항아리와 동일하다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
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 : 그것(khyod=그 귀류논증의 명제)을 주제로 해서, 그것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답변하는 것은, 그렇게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귀결된다.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존
재라고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하고 있는 것이므로’라는 귀류논
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기둥을 주제로
해서, 항아리는 존재라고 인정한다’고 적용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
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 : 그 [귀류논증의 명제]를 주제로 해서, 그것에 대해서 ‘인
정한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그렇게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귀
결된다. 왜냐하면,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지식대상은 그것의 상위
개념(spyi)이라고 귀결된다. 그 ‘항아리’가 지식대상의 하위개념이기
때문이다’라는 귀류논증의 명제에 대해서 ‘인정한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지식대상은 항아리의 상위개념이라고 인정한다’고 적용하
는 것이 타당하고, 또한 그것의 논리(rigs gros)로 [처음의 논의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基體成立」
55
에 대해서『세두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다. gzhi
(gzhi grub)
기체성립’
grub kyi mtsan nyid yod de / tshad mas grub pa de yin pa'i phyir / (Sras bsdus grwa: 57) ‘
의 정의가 있다 왜냐하면 바른 인식에 의해서 인식대상으로서 성립한다 는 것이 [기체
. ‘ [ ] ’
성립의 정의 이기 때문이다
] .

51
위의 논쟁에는 모두 세 개의 논증식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後述하
는 논쟁이 각각의 前述의 논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다. 따라
서 전술의 논쟁보다는 후술의 논쟁이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각각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논증식1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그것
과 동일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2 : 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기둥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존재
한다고 귀결된다. 그것은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3:항아리를 주제로 해서, 지식대상은 그것의 상위개념(spyi)
이라고 귀결된다. 그 ‘항아리’는 지식대상의 하위개념이
기 때문이다
.

논증식 1과 2는 귀결이 다르지만 그 외의 것은 일치하고 있다. 논증식


3은 그것(khyod)을 이해하는 방법을 보이기 위해서 세운 논증식이라고
생각된다. 주제, 귀결, 논증인이 하나씩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이 세 개
의 논증식이 전제로 하고 있는 미지항 ‘그것’(khyod)이라는 말에 관한 규
칙이 두 가지 보인다. 먼저 논증식3에서 ‘그것’(khyod)이 가리키는 것은
주제라는 것이 첫 번째 규칙이고, 두 번째는, 주제가 다수 있을 경우에는
‘그것’(khyod)이 가리키는 것은 반드시 논쟁의 기체라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두라에서는 한가지 논증식에 복수의 주제가 제시되었을
경우, 가장 첫 번째의 주제를 논쟁의 기체로 하며, 그것은 직접 명제에
관계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귀결문에 미지항 ‘그것’(khyod)이 언급될 때
그것이 가리키는 정확한 내용은 논쟁의 기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논쟁의 기체를 가정한 논증식
이상과 같이 논쟁의 기체라는 개념은 논증식에서 주제가 하나 이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주제가 하나일 경우에는 그것은 논쟁
의 기체이면서 또한 일반적인 개념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논
쟁의 기체 개념의 특성에 의해서, 논증식에 별도의 주제를 설정하는 것
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이하에서는 ‘지식대상’을 논쟁의 기체로 세워,
주제가 없는 논증식을 이해하고자 한다.

52
kha cig na re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na / rtag pa yin pas khyab
zer na /
rtag pa kho na chos can / rtag pa yin par thal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chos can /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par thal / yin pa dang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ma grub na /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Rwa st
od bsdus grwa: 40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인 동시에 상주하는 것이라면, 상주임에 의해 변충된
다.
고 한다면,
질문자1 : ‘常住만’을 주제로 해서, 상주인 것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인 동시에 상주인 것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2 : ‘상주만’을 주제로 해서, 인 동시에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
다. 왜냐하면, 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자 1, 2에서 질문자 3, 4로의 논증식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난 이유
에 관해서는 <본론>의 2. 두라에서 보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검토한 ‘A
yin par gyur pa'i B yin pa’ 구문의 변화를 고찰하면서 다루었다. 여기서는
질문자 3에서 4로의 논증식의 변환에 주목해 보자.
53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질문자3 :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
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ma grub na /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r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질문자4 :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존재인 동시에 실재
이기 때문이다.
보통 답론자가 질문자의 논증식에 대해서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고 말 할 때는 논증인의 주제소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 56

나 여기에서는 직전의 논증인의 ‘상주이기 때문에’라는 논증인에 주제는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통의 의미에서 주제소속성을 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증인의 주제소속성에 대해서 ‘성립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에는 논쟁 상의 어떠한 약속이 있다는 것
이 예상된다.
그러한 점에서, 앞에서 제안한 바와 같이, 지식대상(shes bya)을 주제로
가정해 보자. 변충관계는 주제와 상관없이 논해지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주제소속성만을 고찰하겠다.
질문자3, 4는 다음과 같이 바꿔말할 수 있다.
[shes bya chos can] rtag pa kho n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
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질문자3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상주만인 것과 상주의 양쪽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ma grub na /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shes bya chos can] tag pa yin par thal / yod pa gang zhig / dngos po ma
yin pa'i phyir /
질문자4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상주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
하면, 인 동시에 실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56
이에 관해서는 <본론> 제2장을 참조바람.
54
질문자3의 논증식에 있어서 주제소속성은 ‘지식대상은 상주이다’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dharmin인 지식대상은 상주라는 dharm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답론자의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의
구체적인 내용은 ‘지식대상은 상주이다’라는 논증인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식대상이 상주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답변에 대하여, 질문자는
‘지식대상은 상주이다’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질문자4의 논
증식에서 주제소속성은 ‘지식대상은 존재인 동시에 실재이다’라는 것이
다.
이와 같이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를 논증식에 대입하여 생각하는
것은 논증식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kha cig na re /
ma yin par gyur pa'i rtag pa yin na / rtag pa yin pas khyab
zer na /
ka ba chos can / de(=rtag pa yin pa)r thal / de(=ma yin par gyur pa'i rtag pa)
'i phyir /
ma grub na /
ka ba chos can / de(=ma yin par gyur pa'i rtag pa)r thal /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i phyir /
ma grub na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 (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 )
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이 아닌 동시에 상주라면 상주임에 의해 변충된다.
고 말한다면,
질문자1 : 기둥을 주제로 해서, 상주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이
아닌 동시에 상주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55
질문자2 : 기둥을 주제로 해서, 이 아닌 동시에 상주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기둥이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라고 귀결된다. 왜냐
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이 전의 인용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질문자 3, 4가 ‘주제가 없는
논증식’이다. 여기에 주제로서 지식대상을 가정해 보자.
[shes bya chos can]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 gnyis ka yin par thal /
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de(=ka ba ma yin pa dang / rtag pa'i gzhi mthun yin
pa)r thal / rtag pa yin pa'i phyir /
질문자3: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양쪽
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
항이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상주이기 때문이다.
질문자3의 논증식에서 주제소속성은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
주의 공통항이다’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
이기도 하고 상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답론자가 ‘논증인
이 성립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지식대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다’라는 논증인이 옳지 않다는 말이다. 질문자는 따라서, ‘지식대
상은 기둥이 아닌 것과 상주의 공통항이다’라는 논증인이 타당하다는 것
을 증명하기 위해 질문자4의 논증식을 세운다.
또한,
kha cig na re /

56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na / yin pas khyab
zer na /
dngos po chos can / yin par thal /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de(=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r thal / khyod yod pa gang zhig / shes bya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gnyis pa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kyi gzhal bya
yin par thal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Rwa stod bsdus grwa: 41 f.)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입론자 : 인 일체지의 지식대상이라면, 임에 의해 변충된다.
라고 한다면
질문자1 : 실재를 주제로 해서, 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2 :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khyod)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3 : [그것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다]라고 귀결된다. 왜
냐하면, 그것은 존재인 동시에 지식대상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두 번째[의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다.왜냐하면, [지식대상은]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57
질문자5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
다. 왜냐하면,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증식을 분석하기 전에 티벳어를 번역하는 문제에 대해서 잠시 언급
해 둘 필요가있다.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와 같이, 조사
gyi가 명사구의 후반부에 올 때, 그것을 기준으로 속격조사의 앞까지를
수식구로 본다. 그러한 규칙은 복잡한 명사구를 구사하는 두라의 대부분
의 논증식에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또한, 이렇게 조사를
기준으로 해서 수식, 제한하는 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본론> 제2장에
서 제안한 것처럼 병렬구조로 해석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의 정확한 의미는 ‘인 일체지의 파
악대상’을 말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이제, 질문자의 논증식에서 처음의 주제가 귀결문에 흡입되는
시점부터 다시 살펴 보겠다.
[shes bya chos can]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de(=khyod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r thal / khyod yod pa gang zhig / shes bya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gnyis pa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dngos po yin par gyur pa'i rnam mkhyen kyi gzhal bya
yin par thal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i phyir /
ma grub na /
shes bya chos can / rnam mkhyen gyi gzhal bya yin par thal / gzhi grub pa'i
phyir /
질문자2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인
것으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khyod)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58
질문자3 :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그것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
상이다]라고 귀결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재인 동시에 지식대상은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두 번째[의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4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 실재인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다.왜냐하면, [지식대상은] 일체지의 파악대상이기 때문이다.
답론자 : [논증인이] 성립하지 않는다.
질문자5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 일체지의 파악대상임에 귀결된
다. 왜냐하면, 기체성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자2, 3의 논증식에서는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 가정함으로써 논증
인의 주제소속성의 구체적 내용도 명확해 졌다. 그리고 질문자3에서는
앞서 가설한 ‘지식대상’이 실제로 논증인의 주어가 되었다. 더욱이 질문
자 4, 5의 논증식에서는 ‘지식대상을 주제로 해서’라는 말이 가설이 아니
라 두라의 서면상에서 실제로 말해지고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논쟁의 도중에 주제가 사라지고 없는 논
증식에서 지식대상을 임의로 주제로서 가설하는 것은 유효하다고 생각된
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서 반드시 적용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59
결 론

이상, <본론>의 3장에서는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대해서 고찰했다. 1, 2


장에서는제3장을 논술하는 전제로서 두라의 티벳 불교 내에서의 위치를
검토하고 두라의 논쟁의 방식과 규칙을 논했다.
두라의 논증식 또는 티벳 불교에서 사용되는 논증식은 먼저 논쟁을
하는 두 입장, 즉 입론자(답론자)와 질문자의 입장이 있다. 그리고 논증
식은 반드시 주제-귀결-논증인이라는 세 가지의 구성요소를 기본으로 한
다. 두라 논리학의 특수한 점은, 이 중에서 주제(chos can)가 논증식의 구
조에 따라서 논쟁의 기체로서의 개념과 일반적인 주제로서의 개념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논증인은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주제
와 관련하는 논증인’과 이와는 달리 주제와는 관계 없는 ‘제시했을 뿐인
논증인’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논증식의 모든 법칙은 간혹 인도불교
논리학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특수한 형식의 논증식을 가능케한다.
즉 논쟁을 하는 도중에 주제가 사라지고 논증식에 귀결-논증식만 남게
되는 형식의 논증식이 제시될 수 있다. 이것은 『 라뚜두라 』 , 『 세두
라 』 , 『 용진두라 』 의 세 가지 모두에서 보여진다. 주제-귀결-논증인을
기본 요소로 규정하지만, 주제를 제외한 두 가지 요소만으로 구성되는
논증식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본 논문은 그러한 논증식에 대해서 티벳의 논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
고 해결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티벳의 논사들은 두
라에서 규정된 규칙과 정의에 입각하여 논쟁한다. 따라서 주제가 없는
논증식에 주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논증식으로서 인정되고, 논증인의
주제소속성 여부가 논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에는 어떠한 규칙
이 전제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러한 규칙에는 위
에서 언급한 바 있는 ‘제시할 뿐인 논증인’의 규칙과 ‘답변 방식’의 규칙
이 있음을 밝혔고, 그와 연관해서 논증식을 고찰함으로써 티벳의 논사들
과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이해하려고 했다.
또, 두라를 교과서로 삼는 겔룩파의 스승들은 서면으로는 규칙으로 정
해져 있지 않지만 구전으로 내려오는, 주제가 없어진 논증식에는 별도의
논증식을 세운다는 또 다른 이해의 방식을 제시한다. 이에 근거하여, ‘지
식대상을 주제로 해서’라고 임의로 주제를 세움으로써 주제를 상실한 논
증식을 고찰했다.
60
그러나 본 논문에서 제시한 이해방식이 모든 주제가 없는 논증식, 혹
은 주제를 도중에 상실하는 논증식에 적용된다고는 할 수 없다. 논쟁의
내용과 논증식의 구조에 따라서 제한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 경우에 대
해서는 다른 각도에서의 고안이 필요할 것이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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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ABSTRACT

Study on the bsDus grwa literature, the primary text of Tibetan Buddhist
Logic.

Choi, Kyeong jin


Department of Buddhist Studies
Graduate School
Dongguk University

The works of the bsdus grwa logic have provided an efficient perspective for
reading bsdus grwa literature what is constructed by unusual syntaxes. As they are
instrumental to foreign readers of bsdus grwa, I expect this treatise has any simple
service to read them doubtlessly.
We are concerned here with the demonstration form what lacks a subject(chos
can). A number of demonstration form used in bsdus grwa literature and some of
texts related with it consist of 3 essential elements – a subject(chos can, rtsod gzh
i), a consequence(bsal ba), a reason(rtags pa). Basically it is not allowed to omit
even one of them from an argumentation. Especially the subject is the basis with
respect to which one is seeking to learn something. And it is the subject word for a
consequence and a reason by their specific syntax.
Although there is such like a rhetorical principle, some of the demonstration
forms do not respond with the rule. One of them doesn’t have a subject at all.
Another one doesn’t function as a subject word or as a topic of the debate even
giving the subject. And some subjects are missing in the middle of a debate so only
a consequence and a reason remained on the demonstration form.
The question to be explored here is how the third exceptional type of
demonstration form can occur on bsdus grwa logic and how we can accept it as
Tibetan logicians did.
As there are two types of the subject – the theoretical conceptual condition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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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sod gzhi and the conventional subject means a topic and a subject word of a
sentence or chos can, there are two types of the reason – the conventional reason
what is related with the subject or song tshod kyi rtags, and independent reason
what is free from the subject and just presented or bkod tshod kyi rtags. And when
a subject doesn’t work as a topic of the debate or there is no subject on the
argumentation, we can judge the reason is right or fault through the rule of
answering or khas len song tsul.
Although there is no subject on a demonstration form, the dGe lugs pa’s bsdus
grwa authors are considered it to be theoretically valid because these plausible
attributes of subjects, reasons, and even of answering are valid. With these points in
mind we can look at the syntax of demonstration form missing a subject in bsdus
grwa.
In addition, the dGe lugs pa’s masters provide a tip for a beginner who is just
started to read bsdus grwa. It is conveyed to students not in writing but in orally. It
says we can establish another subject for an argumentation. I examine the
hypothesis supposing another subject, for example shes bya chos can.
Before moving on to the main task, I summarized about the history and the
function of bsdus grwa literature, and formulated the bsdus grwa’s logical princ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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