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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거리
중국인 거리
오정희
망할 놈의 탄가루들. 못 살 동네야.
할머니가 혀를 차면 나는 으례 나를 뒤엣 말을 받았다.
나는 커서 미용사가 될 꺼야.
이도 나도 빈속이었다.
공복감 때문일까, 산토닌을 먹었기 때문일까, 해인초 끓이는 냄새 때문일까, 햇빛도, 지나다
니는 사람들의 얼굴도, 치마 밑으로 펄럭이며 기어드는 사나운 봄바람도 모두 노오랬다.
제일 큰 극장이었대.
치옥이와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찍찍 침을 뱉아냈다.
회충이 약을 먹고 지랄하나 봐.
아까 그 소들, 다 죽었을까.
오줌이 마렵대요.
우리가 요란하게 가로질러 온, 그리고 트럭의 뒷꽁무니 이삿짐들 틈에서 호기심과 기대로
목을 빼어 바라본 시는 내가 피난지인 시골에서 꿈꾸어 오던 도회지와는 달랐다. 나는 밀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오색의 비누 방울 혹은 말로만 듣던 먼 나라의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우
리가 가게 될 도회지를 생각하곤 했었다.
애라고 조금 주세요?
고기로 달래요.
입덧이 심한 어머니는 매사가 귀찮다는 얼굴로 안방에 드러누워 있을 것이고 오빠는 땅강아
지를 잡으러 갔을 것이다.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막 젖이 떨어진 막냇동생을 업혀 내쫓을
것이었다.
이거 참 예쁘다.
이거 참 맛있다.
응, 미제니까.
먹어 봐. 달고 화하단다.
이건 비밀이야.
노오란 햇빛이 다글다글 끓으며 들어와 먼지를 떠올려 방안은 온실과도 같았다. 나는 문의
쇠장식에 달아오른 뺨을 대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중국인 거리의 이층집 열린
덧문과 이켠을 보고 있는 젊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알지 못할 슬픔이, 비애라고
나 말해야 할 아픔이 가슴에서부터 파상(波狀)을 이루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왜 그러니? 어지럽니?
난 양갈보가 될 꺼야.
이왕 깎은 걸 어떡하니, 다음 번에 다시 잘 깎아 주마.
짐승의 새끼야.
너도 동생이 있쟎아.
의붓동생인걸.
그럼 늬네 친 엄마가 아니니?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응, 계모야.
응, 아무도 없을 때면.
그걸 왜 갖고 왔니?
막대기를 가져와.
수녀가 죽었나 봐.
가을로 접어들어도 빈대의 극성은 대단했다. 해가 퍼지면 우리는 다다미를 들어내어 베란다
에 널어 습기를 말리고 빈대 알을 뒤졌다. 손목과 발목에 고무줄을 넣은 옷을 입고 자도 어
느 틈에 빈대는 옷 속에서 스멀대며 비린 날콩 냄새를 풍겼다. 사람들은 전깃불이 나가는
열두 시까지 대개 불을 켜 놓고 잠이 들었다. 불빛이 있으면 빈대가 덜 끓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열두 시를 기점으로 그것들은 다다미 짚 속에서, 벌어진 마루 틈에서 기어 나와 총
공격을 개시했다.
고아원에 가게 될 꺼야.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수달피 배자를 들어내고 밑바닥을 더듬었다. 그리고 손수건에 단단히
싼 조그만 물건을 꺼냈다. 어머니의 손길이 그대로 잽싸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형제들은 숨
을 죽여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의아한 얼굴로 눈쌀을 찌푸려 손수건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는 동강이 난 비
취 반지, 퍼렇게 녹이 슬어 금방 부스러져 버릴 듯한 구리 혁대 버클, 왜정 때의 백동전 몇
닢, 어느 옷에 달았던 것인지 모를 크고 작은 몇 개의 단추, 색실 토막 따위가 들어 있었다.
인생이란……
우리는 겨우내 화차에서 석탄을 훔치고 밤이면 여전히 거리를 쥐떼처럼 몰려다니며 소란을
떨었으나 때때로 골방에 틀어박혀 대본 집에서 빌려 온 연애 소설 따위를 읽기도 했다.
회충이 지랄을 하나 봐.
초조(初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