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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집을 떠날 때
지은이:신경숙
펴낸이:김윤수
펴낸곳:창작과비평사
차례
작가의 말
감자 먹는 사람들
벌판 위의 빈집
모여 있는 불빛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빈 집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전설
깊은 숨을 쉴 때마다
해설/임규찬
작가의 말
1996년 초가을에
신경숙 씀
감자 먹는 사람들
운희언니.
나는 아무래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근친의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석회질말고 다른 병으로 자주 병원을 드나드셔도 나는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뜰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해봤어요. 그냥
아프시다, 고 만 생각했죠. 얼마간 병원에 있다가 퇴원할 거야,라고요.
심지어는 칠년 전, 그 한 해에 아버지는 네 번이나 의식을 잃었죠. 그때도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리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한번 의식을 잃으면 사흘
만에, 나흘 만에 깨어나셨고, 한번은 보름이 지나도록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의사에게서 임종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그냥 농담
같았죠. 늘 아버지께 불효했다고 생각하는 화 잘 내는 오빠가 중환자실 문
밖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여러날 이어졌어도 나는 염려하지
않았어요. 부친의 의식 없는 날이 길어지자 오빤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중얼거렸죠. 아버지, 살아만 주세요. 이젠 잘할게요. 살아만 주세요.
살아만 주세요.
윤희언니.
나는 처음엔 언니가 왜 그렇게 남몰래 우는지를 몰랐습니다. 언니가 겨우
서른다섯에 서른일곱의 남편을 여읜 사람이라는 걸 나는 뒤늦게야 알았어요.
비가 내리던 날이었던가요.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인데 뜻밖에 언니가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그 유명한 아리아 '아 나의
에우리디체를 돌려주시오'의 한 대목을 노래했지요. 절망과 비통이 섞인
오르페오의 노래 한자락을 부르다가 언니가 그랬습니다. 나, 성악과 나온 거
모르지요? 내가 놀라며 나도 성악과 나왔는데요, 했을 때 언니의 휘둥그래졌던
눈. 그런데 왜 가요를 부르려고 해요? 성악이 좋아서 어렵게 성악과에
들어갔지만 성악과는 사년 동안 내가 얼마나 성악에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만
일깨워준 셈입니다. 물러서고 물러서다 졸업을 할 즈음엔 무슨 노래든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괜찮다에까지 물러나왔죠. 하지만 지금 보세요.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마음껏 부르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바보 같은
질문이네. 언니는 피식, 웃으며 언니 얘길 했지요. 한때는 비가 많이 내린 밤의
새벽이면 북한산에 올라가곤 했었다고. 북한산은 돌산이잖느냐고. 비가 내리면
곧장 계곡에 물이 불어 콸콸거리며 아래로 급하게 흘러나온다고. 그 계곡 어느
틈에 앉아 목청 연습을 했다고 집에서 노래하면 마음껏 소릴 못 지를 때가
많아 그 물소리 속에 섞여서 노랠 부르곤 했다고. 콸콸거리며 쏟아져 흘러가는
물소리에 목소리가 묻혀 있었으므로 그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고.
그렇게 한 시간쯤 노랠 부르고 내려오는 그런 때도 있었다고. 나는 언니가
성악과 출신이라는 건 정말 몰랐습니다. 언니 얘길 들으며 나는 농담을
했지요. 좋은 성악가가 되려면 덩치가 크고 가슴이 풍만하고 숨소리도
거칠어야 되는데 언닌 자그맣고 가슴도 작아서 성악가가 못된 모양이라구요.
사실 언닌 발소리조차 가만가만 내는 그런 조용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날 언닌
남편 얘길 했지요. 나는 그때껏 언니의 남편이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같은 학교의 작곡과 선배하고
해했지요. 그 방면에서 상당한 명성이 있었고 음대 교수이기도 했다고요. 일찍
알고 지냈지만 스물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건 시어머니 되는 분이
언니를 탐탁치 않게 여겨서였다지요. 내가 키가 좀 작아? 언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는 듯 피식, 웃었어요. 다른 부부들같이 살아본 건 딱 육개월이었어.
문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 남편이 이상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운동을 따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는데 체중이 한달 사이에 4킬로그램이 빠져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위암이었다고 했어요. 언니 앞에 앉아 있던 제 눈앞으로 또 기차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철거덕철거덕 강철바퀴 소리를 내면서. 아이를 낳기
전에 남편 수술을 먼저 했고, 다행히 경화가 좋아 남편이 나가던 학교에 다시
나갈 수 있을만큼 회복이 되었는데, 다시 발병했다고 했지요. 그렇게 오년을
병상의 남편과 함께 살았다고 했어요. 사람들은,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어머니조차도 이제 남은 사람 그만 고생시키고 조용히 눈을 감아주었으면 할
정도로, 상황이 힘들었고 상태도 좋지가 않았다구요. 퇴원과 입원을 반복하며
살았다구요. 그래도 언니는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어요. 링거를
오래 꽂아 주삿바늘 자국이 수두룩하고 앙상히 메마른 손이었지만 언니가
출근할 적마다 남편은 그 손으로 언니의 손을 잡아 주곤 했었다고요. 그렇게
손을 잡히고 나면 하루분의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버틸 수가 있었다고요. 남편이 그토록 고통스러워할 적에도 이상하게
언닌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더라고 했어요. 평소 때보다 침착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세상 사람들이, 그의 어머니마저도, 자식의 희생을 믿지 않게
되었을 때, 남편이 언니에게 그랬다지요. 여보, 날 포기하지 말아줘. 당신마저
나를 포기하면 나는 정말 죽을 것 같아. 언니는 단 한번도 남편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어요. 언니는 겨우 서른다섯이었고 결혼한 지 여섯 해 동안
남들같이 살아본 건 육개월뿐이라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요. 성악을 포기하고 그 사람과 사랑을 시작할 때 내
꿈이 뭐였는 줄 알아요? 배시시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 언니의 얼굴은
해맑았습니다. 고통도 그리움도 지워진 얼굴이었죠. 나중에 나중에 말이에요.
내가 먼저 그 사람 품속에서 죽는 것이었지요.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출근할 때까지도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던 모습이었는데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구요. 다시 차를 몰고 왔던 길을
되돌아 갈 때 처음으로 남편과의 작별을 예감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지금
남편과 헤어지려고 가는구나, 싶었다고 했죠. 남편에게 급히 돌아가는 길목,
어느 횡단보도 앞에서 언니는 남편을 봤다고 했어요. 사람이 건너게 되어 있는
녹색등이 켜지지도 않았는데,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 속에서 남편이 환한 모습으로 손을 내밀며 언니의 차를 향해
가볍게 뛰어왔다구요. 병상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언니가 결혼해서 남들같이
살았던 그 육개월 중의 어느 하루 둘이서 강가로 소풍을 가던 날의
모습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언니의 차를 향해 너무나 가볍게 뛰어오는
통에 기겁을 하며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언니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작별인사를 하고 가려고 왔어.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바로
그때가 언니 남편의 임종시간이었다지요. 언니는 그랬지요. 그랬지요. 그
사람은 갔는데 언니는 출근할 때마다 문득 늘 남편이 누워 있던 곳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가 허망해진 빈손을 거두곤 했다지요. 퇴근해서 문을 열면
버릇대로 남편이 누워 있는 방문을 향해 문이 아빠! 하고 부른댔어요. 문이
아빠, 저 왔어요,라고요. 들이지 않는 대답. 그 사람이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깜박 잊고는 잠들었나, 싶어 조용히 방문을 열어본다고 했지요.
그러나 텅 빈 침대. 언니가 울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랬지요. 등을 받쳐
일으켜세워 약을 먹이고, 소변을 보게 하기 위해 부축해서 화장실에
데려가는... 일이 어느새 언니의 삶이 되어 언니의 몸에 배어 있었다고요.
그날 처음으로 언닌 내게 눈물이 고인 눈을 감추지 않았지요. 시선을 내리거나
먼데를 보거나 저쪽으로 비키는 식으로 외면만 했는데. 남편이 죽은 후에야
언니가 그 사람을 지켜주고 있던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언닐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던가요. 병상에서의 모습으로라도 그 사람이 살아 있어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던가요.
벌판 위의 빈집
모여 있는 불빛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이 글을 그쪽이 읽게 될는지요.
한번은 그쪽이 이 빈집에 올 것이기에 나도 한번은 내 마음이 그쪽에게 읽힐
기회를 만들어봅니다. 그쪽이 선반 위에 놓여질 이 편지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만이고, 만약 발견한다면 내가 그쪽 몰래 이 집을 비우고 가는 것이, 언젠가
한번 그쪽을 떠난 여자 때문이 결코 아님을 알아주세요.
두통 때문이에요.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그 밤 이후
나는 냉장고 안의 식료품들이 거의 바닥이 날 때까지 침대 근처만을
맴돌았다. 같은 날들의 같은 되풀이가 열흘도 넘게 이어졌다. 침대에 너무
오래 누워 있어 등이 배기면 방바닥에 내려와 발을 꼬고 창을 향해 앉아
있다가 허리가 아파지면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가 멀거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KBS 제1에프엠에 맞춰놓은 라디오는 새벽 세시가 되면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 조용해졌다가 다섯시가 되면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베토벤의
"전원'이 귀에 잡힐 때도 있었고, 쇼뺑의 야상곡이 흘러들기도 했다. 메모라도
해놓지 않으면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내일인지 구분이 안 가는 그런
단조로운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 두
손바닥을 펼쳐 내 얼굴을 받쳐주었다. 내 몸속에 숨어 살고 있던 마당들이
일제히 수수수거리며 숨을 쉬기 시작했던 것이다. 수많은 마당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올랐다. 배꽃이 질 때의 봄 마당, 폭염이 쏟아지던 여름 마당,
뒤안의 감나무 잎새가 어지러이 휘날리던 가을 마당, 싸락눈이 사각사각 쌓여
가던 겨울 마당들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침대에 누워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던
마당들을 기억하다가 등이 배기면 바닥으로 내려와 따사로운 봄볕이 쏟아지던
마당의 숨소릴 들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으면 마당의 흙들은 깜짝 놀라
돌돌돌 말려지며 흙 냄새를 풍겼어. 담장 저편으로부터 밀려온 마당의 싸아한
체취가 내 동생들의 어린 손가락이며 발가락들을 감싸 주었지. 창밖엔 연일 비
올 바람이 불고 있었다. 양말을 신은 채 잠을 잤고 세수를 하지 않은 채
며칠인가가 더 흘렀다. 마지막 남은 식료품들로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쟁반에
받쳐들고 침대에 올라가 먹을 때였다. 나는 비로소 그 또한 살아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살아 있으면 된다고.
나는 내 목의 목걸이를 풀어 편지들이 들어 있는 봉투에 집어넣고 풀칠을
해서 봉투 입구를 막았다. 신발을 신고 나가 가게에서 분재용 삽을 하나 샀을
때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비를 맞으며 산의 능선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데까지 걸어갔다. 봄기운이 스민 폭삭폭삭한 땅을 파고 노란 봉투를 꽃나무
뿌리를 심듯이 묻었다. 묻혀라. 묻히고 묻혀서 다른 것이 되어라. 산을 내려올
때 빗속의 산비둘기들이 꾸루룩거려서 잠시 마음이 고즈넉해졌으나 뒤돌아보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눈에 비질비질 물기가 어리긴 했다.
나는 분재용 삽을 공중으로 휙 던졌다가 두 손으로 받아내면서 소릴 쳤다.
살아 있으면 된다.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그때 내가 그를 잊기 위해 편지를 쓰고 또 썼던 그 건물은 이 도시 안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거리 안에. 이따금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자연 걸음이 멈춰진다. 고독한 크림색 건물이 쌕색
숨을 쉬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밤, 닭을 안고 서 있던 그 소녀는 저 건물의
정령이었으리.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리. 한밤중 긴 복도에
쏟아지는 불빛은 여전히 괴괴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땡, 신호음을
울리며 출발하고 멈출 것이다. 그러다가 이따금 누군가에게 아주 낯선 체취를
실어나를 것이다. 나는 돌아서 오다가 꼭 다시 한번 몸을 돌려 그 건물을
담담히 올려다보곤 한다. 이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문을 따고 걸레질을
하고 바깥을 내다볼 608호의 유리창을. 한때는 저 창이 나의 창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1996, 문학동네 봄호)
전설
4월의 아침에,
여자는 저택의 뒤뜰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대문 밖으로 끌고 나와
저택으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사과나무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사과나무
건너건너에 유모가 살고 있고, 그는 그녀와 함께 유모에게 가기 위해 그 나무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밝은 웃음이 여자의 도톰한 입술
근처에 퍼져 있다. 이미 그가 그곳에 가 있다는 걸 한 때뿐인 자전거가
말해주었다. 여자의 이마에 흰 머리띠가 매여 있고. 보드라운 뺨엔 솜털이
보송하고,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는 꽃게 속처럼 흰 팔뚝엔 흰 손수건이 묶여
있다. 여자는 그 수건으로 이따금 이마에 돋는 땀을 닦는다. 자전거 타기는
오래된 듯 여자가 왼손으로 땀을 닦을 때면 핸들 위엔 오른손만 남아 있는데도
자전거는 안전하게 달린다. 여자의 풍성한 검은 머리가 바람에 헤적여질 때면
공기 속으로 여자의 땀냄새가 뒤섞인다. 사실은 제비꽃 향기일까.
저 만큼 사과나무가 보인다.
아홉 살 때 여자는 저 사과나무 아래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한번도 목에서
뗀 적이 없는 목걸이를 처음으로 벗어서 남자에게 보여주던 날이었다. 목걸이
가운데 달려 있는 장식 뚜껑을 열면 부친은 그 속에서 안타깝게 웃고 있었다.
남자는 그 목걸이를 한번만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딱 한번만이야. 아홉 살
여자는 열살 남자에게 처음으로 어머니가 남긴 목걸이를 걸어보게 했다.
남자의 손바닥에 목걸이를 건넬 때의 이상한 느낌을 여자는 기억하고 있다.
뭐랄까, 여기라고 생각되지 않는 아득한 곳의 땅속이 갈라지고 그곳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부라고 생각되지 않는 가슴속
깊은 데서 격렬한 아픔 같은 것이 솟구쳐오르더니 흰 배구공이 튀어올라와
통통거렸다. 여자는 서둘러 남자의 손에서 목걸이를 건네받았다. 그때 분명히
여자가 자신의 목에 목걸이를 걸고, 분명히 남자가 뒤에서 목걸이의 걸림쇠를
잠가 주었다. 그런데, 저택으로 돌아와보니 목은 목걸이를 잃어버린 텅 빈
공간이 되어 있었다. 여자는 부리나케 다시 달려나가서 사과나무 아래의 땅을
한 손바닥씩 짚어가며 목걸이를 찾았지만 다시 찾지 못했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는데 남자가 뒤따라왔다. 울지 마. 남자는 뒤에서 큰 손바닥으로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자라면,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그와 똑같은
목걸일 만들어 너에게 줄게.
사과나무 옆에 세워둔 남자의 자전거가 보이고 그보다 조금 멀리, 유모
집에서 걸어나오는 남자가 달려오는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인다.
여자는 페달을 더 힘껏 밟아 속도를 내서 남자 곁으로 달려간다. 막상 그 앞에
선 여자는 수줍고, 남자는 여자가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받치기도 전에 여자의 땀에 젖은 목덜미에 입술을 댄다.
여자는 열아홉, 남자는 스물.
"유모는 집에 없었어."
"어디 가셨나요?"
"전쟁이 터질 거라는 소문에 부산엘 갔다는군."
"부산은 왜요?"
"거기 유모의 동생이 살지."
"정말 전쟁이 터진다면."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여자의 붉은 뺨이 불안으로 창백해진다.
여자는 남자의 팔을 잡아당긴다.
"정말 전쟁이 터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우리는 변함없어.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여자는 겨우 안심이다. 이젠 무엇도 잃어서는 안된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아니, 잃지 않겠다고.
태어나서 세 살이 되었을 때 여자는 조모를 잃고 모친을 잃었다. 여자의
부친은 조부가 남긴 과수원과 상점을 정리해 칠흑 같은 밤에 만주로 떠났다고
했다. 남아 있는 여자들은 주재소로 끌려갔다. 형틀에 묶여 사지가 찢어지는
듯한 지독한 고문을 당했다. 남아 있던 여자들은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어린
그녀만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우, 세
살이었으니. 열다섯살 때 여자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히로시마 사람들 얼굴이 일그러지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철골이 열에
녹아내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돌벽에 날아가 박히고 만삭의 여자의 뱃속에서
태아가 튀어나왔다고 했다. 패전한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항복문을
읽는 목소리를 여자는 학교 강당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약간 톤이 높은
목소리였다. 태평양으로 끌려갔던 병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된 임시정부 사람들도 고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칠흑의 밤에 만주로 갔다던 부친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는
자신에게 젖을 물려 길러준 유모에게 나는 누구이며 왜 이 댁에 와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나라고 뭘 알겠어. 유모는 여자를 돌려세우고 여자의
검은 머리를 풀어서 다시 곱게 땋아주었다. 어르신이 너의 아버님과 정이
도타웠던 분이라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어. 어르신이 세 살배기 너를 강보에
싸서 이 댁으로 데리고 왔을 적에 도련님이 그때까지 내 젖을 먹고 있었지.
어린 너는 마치 네 처지를 알고나 있는 듯이 울지도 않고 내 젖만 빨았단다.
네 목엔 네 엄마가 남겼다는 목걸이가 걸려 있었지. 그 목걸이는 네게서 뺄
수가 없었어. 생전 울지도 않던 애가 누가 그 목걸이에 손만 대면 숨이
넘어갔으니까. 그걸 지금은 어디다 뒀니? 네가 이 집으로 오기 전에 너에게
생긴 일은 나는 모르지.
남자가 유모의 손에 길러지게 된 건 태어난 그 방에서 생모가 숨을
거둬서였다. 유모가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있었던 건 난산 끝에 유모만
살아서였다. 외로운 아기는 유모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핏덩일 놓쳐 마음이 사무친 유모는 아기의 외로운 살냄새를 가슴에 품어
아로새겼다. 그 가슴속에서 외로운 아기 또한 유모의 냄새들을
아로새겨나갔다. 유모의 손가락 움직임이나, 바람이 유모의 머릿결을 스치고
지날 때 쓸어가는 메마름이나, 유모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사무친 한숨
소리를. 그 유모의 손에 여자도 맡겨졌다. 핏덩일 잃어본 유모는 여자아기를
받아안자마자, 여자아기의 뺨에서 남자아기가 풍기던 외로운 냄새를 금세
감지해냈다. 유모는 남자아기는 안아서 여자아기는 업어서 길렀다. 마루에서
한 발짝 두 발짝 걷는 법을 가르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날짐승들의 이름을
일러주었다.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비빈 밥을 아기들에게 먹이려고 종종걸음을
쳤으며, 마루 밑에서 새끼를 낳은 개에게 물리지 않게 하느라 집집의 대문에
커다랗게 써있는 개조심이란 글자를 가르쳤다. 유모의 손에서 여자와 남자는
태어난 외로움을 벗고 늠름해지고 아름다워졌다. 남자는 점점 용모가 산맥
같아지고 여자의 고운 눈썹 밑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귀함이 어렸다.
남자는 유모를 엄마라고 불렀으나 여자는 유모를 어머니라 부르지는 못했다.
엄마라는 호칭이 어머니로 바뀔 무렵 유모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남자의
아버지는 사직동의 적산가옥 한 채를 사들이고 그곳으로 옮길 처지가 못 되는
유모 대신 밥을 해줄 할머니 한 분을 붙여 남자와 여자를 그 적산가옥으로
보냈다. 여자와 남자의 공부를 위해서였다.
여자와 남자는 올 때와는 달리 자전거를 끌고 저택으로 돌아간다.
"다시 한번 말해줘요."
"뭘?"
"전쟁이 터져도 우리는 변함없다고. 우리는 함께 있을 거라고."
"우리는 변함없어.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그들은 누가 봐도 어울리는 청춘의 한 쌍이다.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누구나 두 사람의 뛰어난 조화에 감탄의 소리를 내뱉게 된다. 남자의 명민함은
여자의 우아함과 함께 있을 때 더욱 빛이 나고, 여자의 방울꽃 같은 연약함은
남자의 짙은 눈썹 아래서 화사해진다. 보는 사람마다 그들의 나무랄 데 없는
조화에 감탄했지만 남자의 아버지인 저택 주인과 그들을 길러낸 유모만은
그들의 아름다움에 잠시잠시 아득해지곤 했다. 그들은 두 남녀의 완벽한
조화를 바라보며 각자 인생의 뒷면을 생각하곤 했다. 어떤 쓰라림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지나 않을까, 하는. 그땐 저들이 저렇게 아름다운 만큼 쓰라림이
관통해가는 자리 또한 꼭 저렇게 뚫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여자와
남자가 최고학부의 학생들이 되고,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남자가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여자가 남자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마을에서 처음으로
성악을 부른 사람이 되었을 때, 유모의 가슴속에서 이따금 고개를 들던
두려움은 거의 불길함으로 치닫기도 했다. 남자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때의 여자의 표정이 어떤 기다림을 이미 시작하고 있는 듯해서.
저택 주인이 그들의 혼사를 서둘렀던 이유도 어쩌면 그 두려움을 잊고자
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그들은 혼례식을 위해 마을에 내려와 있고, 혼례식
준비는 척척 진행되어가고 있다. 남자의 아버지, 저택의 주인은 여자를
포대기에 싸올 때부터 남자의 짝으로 생각해 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
아름다운 선남선녀의 혼례식은 누구에게나 사랑의 인사처럼 들렸다. 그들은
물려받을 저택이 있었고, 땅이 있었고, 포목점도 있었으며, 성악과의 여자는
피아노 치는 남자와 함께 학부 졸업 후에 태평양을 건너 유학을 갈 것이었다.
저택 주인의 꿈은 학교를 짓는 일이었고, 남자로 하여금 그의 꿈을 잇게 할
생각이었다. 남자 또한 그들의 젊음이 배울 수 있는 세상의 일들을 배운 후에
아버지의 꿈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음악학교를 세울 생각이었다. 햇살 같은
아이들을 받아들여 노래를 하고 피아노를 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4월의 이 아침에,
여자는 불안의 공이 통통거리는 것을 느낀다. 남자는 자라서 정말 그와
똑같은 목걸이를 여자의 목에 걸어주었다. 자신의 사진을 넣어서. 여자는
목걸이를 만져본다. 그러나 여전히 언젠가 제 가슴속에서 튀어올랐던 흰
배구공이 마음속에서 통통 튀고 있다. 공은 여자의 내부에서 붕 솟아올랐다가
떨어지고 다시 솟아올랐다가 굴러다니다가 통통거린다.
그들의 혼례식은 저택의 뜰에서 신식 반 구식 반으로 치러진다. 여자는
족두리를 쓰고, 남자는 사모관대를 입었지만 집사 대신 주례가 있다. 육수
위에 계란 고명이 얌전하게 떠 있는 혼례 국수 대신 미트볼이 만들어지고
마을사람들이 처음 보는 과일들을 잘게잘게 썰고 건포도를 뿌리듯 넣어서
마요네즈로 비빈 쌜러드가 탁자마다 놓였다. 서울에서 온 여자와 남자의
친구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로 합주를 한다. 그들이 켜는 현의 울림에
탁자 위의 과일 쌜러드들이 음표처럼 튀어나오려 한다. 여자는 폐백을 마친 뒤
귀밑에 패랭이꽃을 장식으로 꽂고서,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남자의 곁에
미소를 짖고 서 있다. 지금까지의 어떤 모습보다도 결혼 피로연 자리의 남자는
수려하고 여자는 맑고 향기롭다. 사진사가 분주히 그들의 수려함이나 맑음이나
향기로움을 필름에 담는 걸 지켜보는 가슴속으로 어떤 한탄이 괴어오려는 걸
저택 주인은 얼른 외면하고 돌아선다
밤에
사과나무 아래서 여자는 입술을 남자의 귓결에 대고 칸타타풍의
아델라이데를 부른다. 마음속으로 아델라이데의 자리에 남자의 이름을
새겨넣으며. 아델라이데여, 나는 봄날 혼자 방황하여보았네. 거울과 같은
냇가의 물을 보거나, 알프스의 눈덮인 산정을 보더라도, 석양의 황금빛 구름들
보아도, 하늘에 반짝이는 별 아래 서 있어도 아델라이데여, 그대의 자태가
빛나고 있구나. 남자도 따라 부른다. 언젠가 내가 죽은 후 나의 심장에서 꽃이
피리니 새빨간 그 꽃잎 위에서도 너의 얼굴은 똑똑히 빛나리라. 남자의 산맥
같은 육체가 따뜻하고 부드럽게 여자의 몸을 눌렀을까. 여자는 4월의 어느날
아침부터 내부에서 통통거리던 배구공을 처음으로 잊고 깊이 잠이 든다.
하늘에 총총하게 퍼져 있는 모든 별들과 손이 닿은 듯한, 조금의 불순물도
없이 세상과의 완전한 결합을 느끼며.
두 달 후, 여자는 방바닥에 소국이 담긴 항아리를 내던진다.
항아리를 내던지기 전의 여자는 결혼 전보다 한층 아름다움이 세련되어
보였다. 달밤의 백합같이 환하기도 했다. 소매 끝으로 나와 있는 손가락에조차
비 내린 뒤의 백합밭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밴 듯싶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그런데 항아리를 내던질 때의 여자의 내부엔 백합 같은 청순함이, 관능의
기름짐이, 싹 빠져나가고 언젠가 본 그 흰 배구공만 통통 굴러다닌다.
"그건 절대로 안돼요."
항아리는 깨지지도 남자를 다치게 하지도 꽃을 쏟아내지도 않고 공처럼
굴러가서 벽면에 붙어 있다. 항아리 속의 물만 흘러나와 남자에게로 흘러가고
있다.
"친구들은 다 떠났소."
여자는 무릎이 꺾인다. 그를 막지 못함을 느낀다. 그녀가 막아 안 갈
사람이었다면 말도 꺼내지 않았으리란 것을
문득 그녀는 알 수 없는 먼 옛날, 칠흑의 밤, 조부의 재산을 정리해 만주로
갔다는 부친이 떠오른다.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부친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남자처럼 똑같은 어조로 어머니에게
말하고 있었으리라. 친구들이 다 떠났다고, 이제 나도 가야 한다고. 역시
얼굴을 알 수 없는 어머니도 이랬을까. 방안의 둥근 무엇을 내던지며 그건
절대로 안된다고 했을까.
전쟁이 시작된 지는 벌써 며칠째다. 어느날 새벽 울려퍼진 공습 싸이렌은
하루도 그치지 않고 있다. 라디오는 전쟁이 남쪽의 승리라고 말하고 있지만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한강 다리가 끊기고 북쪽 사람들이 물밀 듯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이미 거리에는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의 아우성이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남자는 국군이 되겠다고 한다. 전쟁터로 가겠다고 한다.
"전쟁이 터져도 우리는 변함없다고, 우리는 함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
내부에서만 통통거리고 있던 흰 배구공이 이미 튕겨나가버렸음을 여자는
슬프게 깨닫는다. 여자는 항아리를 바로 세우고 헝클어진 소국을 다시 정리해
꽂고 남자에게로 흘러간 물을 닦는다.
"제게 시간을 주세요."
태연하게 말하지만 밀려드는 슬픔으로 여자의 눈엔 눈물이 흠뻑 고인다.
대답을 하지 않는 남자가 야속해진다.
며칠 동안 남자는 다정하게 여자를 보살핀다. 문턱에서 오를 때조차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아준다. 문득 여자는 자신은 신발이 벗겨질까봐 울고 있는 어린
딸이고 남자는 벗겨지려는 신발을 다시 신기고 있는 아버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의 다정한 보살핌 앞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
남자의 다정함은 자신에게만 베풀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남자는 폐허가
되어가는 거리에서 그들의 적산가옥 좁은 뜰로 기어든 도둑고양이에게조차
작별인사를 나누는 듯 다정해져 있다. 식료품을 쪼개 고양이에게 던져주고
고양이가 담을 넘지 않고 편하게 다시 거리로 나갈 수 있도록 샛문을
열어준다. 그러다가 남자는 말이 없어진다.
새벽에 깨어보니 곁에 남자가 없다. 보라색 색실로 제비꽃이 수놓아진
베갯머리가 차디차다. 마루나 부엌에서 남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귀기울였으나 적막하다. 불은 꺼져 있다. 여자는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온다.
좁은 뜰을 향해 남자가 서 있다. 폭격 맞은 하늘인데도 별이 떠 있다. 남자의
등, 처음 보는 등이 아닌데도 처음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거기에 남자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잠을 깨어 남자가 머리를 얹고 자던 베개를 만졌을 때,
베갯머리가 차디찼을 때, 여자는 남자가 전쟁터로 가버렸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더 주지 않고 가버렸다고.
'거기서 뭐 하세요."
남자는 말이 없다. 여자를 향해 얼굴을 돌리지도 않는다. 그는 마비되어버린
것처럼 좁은 뜰의 벽을 보고 서 있을 뿐이다. 그는 여기 있어도 그의 마음은
이미 가버렸다. 전쟁터로, 친구들에게로.
그토록 행복했는데,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토록 다정했는데,라고.
오래된 의자와 반짇고리, 커다란 재봉틀과 발판이 달린 오르간, 낡은
축음기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그들이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한 방이
떠오른다. 그 방이 남자가 태어난 방이라는 걸, 남자의 생모가 남자를 세상에
겨우 내놓고 숨을 거둔 방이라는 걸 여자는 뒤늦게 알았다. 그때, 남자와
여자가 그 방으로 숨어버리면 유모는 꼼짝을 못했다. 조금만 더 먹어야지,
유모는 그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밥그릇을 들고 쫓아다니다가도 그들이 그
방으로 숨어들면 더 이상 쫓질 못하고 문밖에서 안에다 대고 외쳤다.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나와 줘. 젊은 유모는 울먹였다. 그런 유모의 코맹맹이
목소리는 아득한 산을 넘고 넘어온 메아리 같았다. 안 먹어도 좋으니 그
방에서만 나와줘. 그때 유모의 심정이 이랬을까.
남자의 완강한 등이 당혹스러워 여자는 비틀거린다. 그 오래된 방의 의자나
반짇고리, 재봉틀이나 먼지 쌓인 오르간들이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옴을 느낀다.
이미 남자의 영혼은 그들의 보금자리 적산가옥 바깥으로 나가 서 있음도
느낀다. 사랑이 주었던 기쁨들은 그저 조각이불처럼 영혼 바깥에서 펄럭이고
있음을.
"가도록 하세요."
이윽고 여자는 문틀을 짚으며 말한다. 하지만,이라고 여자는 다시 말한다.
소식을 끊지 말아요. 꼭 돌아와야 해도. 나는 여기에서 한발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릴 거예요.
그때야 남자는 돌아서서 두 팔로 여자를 안고 등을 어루만진다. 순간,
얼굴도 모르는 부친이 돌아왔다고 여자는 느낀다. 모친은 어떻게든 살아남아
이렇게 돌아온 걸 보면, 부친은 마음속에 집을 품고 다녔었나보다. 그 칠흑의
밤에 떠난 집을 닭이 밑알을 품듯 품고 다녔었나보다.
그 밤, 여자와 남자는 좁은 뜰에서 지금까지 하지 않던 방법으로 사랑을
했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묻고 한번도 들은 적 없는
저택, 그 방의 발판이 달린 오르간 소리를 듣는다. 먼지 쌓인 오르간은 처음에
타닥타닥 불협화음을 내다가 서서히 맑은 음 속으로 들어간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의 내부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쳐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얼굴엔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 미소 속에서 남아야 하거나 떠나야 하는 생각도
지워지고 어렴풋한 두려움도 지워지고 끝없는 광활한 벌판이나 깊은 계곡에
폭폭 쌓이고 있는 백설의 시원스러움이 자유롭게 펼쳐졌다. 사랑이 끝나고도
여자와 남자는 서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며 간간이
웃는다. 이제 그들의 자별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어 보인다.
그 밤 속으로도 이슬이 내리고 새들이 지저귀고 새벽이 왔다.
먼저 눈을 뜬 여자가 남자의 몸을 내려다본다. 다시 슬픔이 지나갔지만
여자는 행복한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고 고쳐 생각한다. 그 순간은 진짜
자신의 것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그 순간들이 이 남자와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도. 여자는 자신의 흰 목덜미 걸려 있던 목걸이를 풀어 그
속에서 남자의 사진을 빼고 자신의 사진을 넣어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남자의
목에 걸어준다. 조용히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무로 채를 썰어 무국을 끓이고
쌀을 씻어 이른 새벽밥을 지어 상을 보고 세수를 한다. 다른 날의 새벽이나
다름없이 여자는 움직이지만, 손을 떨지도 않고 아침의 일들을 착착
해나가지만, 이따금 마음속에 통통거리던 흰 배구공이 번갯불로 변해 내부를
치고 지나가는 고통을 느낀다. 방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화장을 하는 동안에야
여자의 손은 떨린다. 여자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화사한 빛깔의 옷을
꺼내 입는다. 여자의 치마 끝에 금색 나비가 백일홍 가지에 앉아 있는 걸 간혹
바라보며 남자는 여자가 지은 따뜻한 밥을 다 먹는다. 남자가 집을 나설 때는
막 동이 트려는 무렵이었고 세상은 아직 이슬로 축축하다.
폭격이 시작된 어느날 여자는 남자의 첫 서신을 대한다.
전쟁터는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평화롭다고 씌어 있다. 통신병이
되었고, 달빛을 받으며 쓰고 있다고. 전쟁은 곧 끝날 것 같고 그러면 곧 만나게
되리라고. 달을 보면서 당신과 이렇게 떨어지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소.
편지는 이어지고 있다. 세 살 적에 당신이 우리 집으로 온 이후로 말이오.
돌아가면 당신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생각났고.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게
됐느냐는 것이오. 그 전에 우리는 오누이 같았는데 말이오. 지금 당장 당신의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게 한이오. 이토록 궁금한데 왜 당신과 함께 있을 적에
물어보지 않았는지 의문이오.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보오. 당신은
알고 있소? 내가 언제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됐는지를? 당신이 열다섯살
때였다오. 해방이 되던 해, 당신이 유모에게 나는 누구이고, 왜 이 댁에 살고
있는가?를 묻는 걸 엿듣게 되었을 때부터였소. 유모는 당신의 머리를 풀어
다시 땋아주었소. 유모에게 머리를 내맡기고 가만히 있는 당신이 울고 있는 것
같았소. 그래서 유모에게 말해두었다오. 다시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달라고 말이오. 유모에게 물었다면 이미
알고 있겠군. 당신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부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아니 꼭 부친이 아닌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로서는 부친이라고 생각하오.
당신이 누구를 기다렸든간에 나는 다짐했었지. 나는 당신을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 말이오. 그런데 지금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있구려. 하지만 이
기다림은 곧 끝 날 것이오. 지금은 남자로서 할 일이 따로 있는 때이니 내가
어쩌겠소. 하지만 나는 곧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면 다시 당신을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남자는 쓰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하오. 편지를 읽으며
여자는 남자가 곁에 있는 듯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폭격이 심해지고 사람들은 피난을 떠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있다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옆집 여자가 문을 두드린다. 어서어서 서두르세요.
오늘밤에 다시 폭격이 시작된다는군요. 떠나지 않으면 죽게 될 거예요.
여자는 흰 가제에 물을 묻혀 처음 남자가 전쟁터로 가겠다고 했을 때
남자에게 집어던졌던 둥근 꽃병을 닦는다.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집을 비우면 그가 보낸 소식은 누가 받는단 말인가.
꼭 가야만 한다면 가고 싶은 곳이 한군데 있긴 있다. 남자가 있는 곳, 전쟁터.
하지만 그곳은 그녀로서는 갈 수 없는 곳이고 그곳은 피난지가 아니다.
피난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자는 대문을 깊게 잠근다. 그가 소식을
보내올 것이다. 어쩌면 그의 부대가 이곳을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는
잠깐이라도 행렬을 이탈해서 저 대문을 두드릴 것이다.
편지는 오지 않는다. 날마다 여자는 대문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아무 소식도
닿지 않는다. 폐허의 거리를 내다보며 남자의 편지를 기다리는 여자는 고뇌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다. 왜 이렇게 늦어지는 것일까. 처음에 남자가 마치
학교에라도 간 것같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가, 생각하던 여자는 이제 남자의
부재를 향해 마음의 분란을 느낀다. 여자는 생긋 웃으며 막 돌아온 그가
바깥에서 신발이라도 벗는 듯 화닥닥 벽장 속으로 숨는다. 소식을 보내지 않아
나를 애태운 만큼 나를 찾게 하리라. 하지만 여자가 좁은 벽장에 등을 세우고
있는 동안 들리는 건 어디에 있느냐는 자신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아니라
폭격 소리다. 벽장 안엔 낡은 옷가지며, 쓰지 않는 그릇들이며, 여름에 치고 잔
모기장이며, 얇고 두꺼운 책들이 쌓여 있다. 그는, 어디에 있어도 혹여 총을
맞아도 소식을 보내겠노라던 그는, 언제 오는가. 여자는 부재하는 남자를 향해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다. 뭐예요? 남자들이 할 일이라는 게 대체 뭐냔
말이에요. 여자는 벽장 안의 낡은 옷들을 집어던진다. 친구들이 떠났다구요?
거짓말이었어요.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려고 엄지손가락을 자른 친구도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구요. 쓰지 않고 쌓아두었던 그릇들을 집어던진다. 유리
파편이 여자의 흰 팔뚝에 박힌다. 모기장이 찢어지고 책들이 뒤집어진다
남자로서의 할 일이란 여자를 위험 속에 남겨두고 집 바깥으로 나가는
일들인가요? 오랜 옛날부터 전쟁은 다 남자들이 일으켰을 걸요. 남자로서의 할
일이란 적의 머리 껍질을 벗기고 칼로 찌르고 거리를 폐허로 만들고 강물 위에
놓인 다리를 부서뜨리고 불을 지르고 총을 쏘아 어린 병사를 죽이는 그런
것들인가요. 당신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여자와 함께 집에 남아 있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서 간 거예요. 집에서 여자와 함께 숨어 있었다고
할까봐, 그건 남자로서의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마음의 분란 끝에 여자는 그래도,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당신은 지금
내게 편지를 쓰고 있겠죠. 그 편지가 내게 도착하려면 열흘은 걸리겠죠,라고.
마음의 분란이 내던진 것들을 소리없이 정리하며 달력의 날짜들에 동그라미를
친다. 그 열흘 동안 폭격이 세 차례나 있었고, 적산가옥의 담이 무너져서, 이제
마당과 거리가 함께 있다. 밤이 되어도 더 이상 도둑고양이조차 오지 않고
사방이 적막하다. 아주 더디게 열흘이 지나도 전선에서의 소식은 없다.
전화벨 소리.
"여보세요?"
저택 주인이다.
"거기서 혼자 뭐 하고 있는 거냐?"
"..."
"피난을 떠나거라."
"..."
"저택으로는 가지 말아라. 그곳은 인민군들의 숙소가 되어 있다."
"아버님."
처음으로 여자는 저택의 주인에게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저택의 주인은
경상도 합천의 깊은 산속의 절 이름을 대고 노사 한 분의 법명도 댄다.
거기까지만 무사히 가라 한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그곳에서 지내다가
전쟁이 끝나거든 저택에서 만나자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이 끝나기 전에
저택으로 가서는 안될 것임을 당부한다. 다시 전화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자신도 지금 몸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저택 주인의 당부를 여자는 듣지 않는다. 더욱더 집의 내부로 스며든다.
마치 대들 수 없는 큰 존재로부터 그들의 보금자리였던 좁은 뜰의
적산가옥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말라는 주문을 받고 있는 듯.
마음의 분란 끝에 여자는 늘 침울해진다. 남자는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다. 상황이 남자로 하여금 약속을 지킬 수 없게 하고 있을 것이다. 남자가
서신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어떤 것일지를 여자는 생각해본다.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란 어떤 것이든 여자에겐 불길한 것들이다. 혹시 그에게?
여자는 소스라친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 남자, 태어나 한번도 어머니의 어루만짐을, 타이름을 받은 적 없다. 그의
어머니는 전쟁터로 나간 아들에게 어머니로서 못다 한 일들을 기쁘게 할
것이다 남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포탄으로부터 보호해주리라.
때때로 여자는 빈집에 홀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자신이 타인 같아져서
자신의 내부 속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육체가 무얼 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육체는 겨우 남자의 흔적들을 만져보고 있다. 결혼사진이나 남자의 체취가
묻은 옷가지들, 그들의 공동 수집품인 레코드와 여자 소유의 촛대들. 육체는
흘로 천진스럽게 이백 개도 넘게 수집한 촛대를 한 뼘 간격으로 방에서
마루까지 줄을 세우고 촛불을 켜보기도 한다. 그 불속에 앉아 있는 육체를
바라보는 여자의 내부는 무엇하나 의지할 곳 없는 쓸쓸함 속에서도 그들이
화촉을 밝힌 건 겨우 두 달 전이 아님을, 아주 오랜 옛날의 일임을, 알아내고
겨운 행복에 충만해지기도 한다. 이제 만난 사람들이 살아갈 시간들을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살기 시작했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서로 헤어져본 적 없이.
그리 생각하자, 애타는 기다림 속에서도 여자는 나날이 지금까지와 다른
수척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지금껏의 어느 때보다도 남자를 더욱 사랑함을
기다림이 가르친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나를 기다릴 수 없는걸. 여자는
슬퍼진다. 같은 하늘 아래서 이렇게 다른 상황에 놓이기는 처음이라고 여자는
생각한다. 다시는 이같은 일이 있어서도 안되겠다고도, 하지만 남자가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한 그는 오고 있는
거라고.
어느 날이다.
한 여인이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는 이미 폭격으로 무너진 담장을 타고
적산가옥으로 들어온다. 여인이 내는 바스락 소리에 방안에 있던 여자가
빠르게 방문을 열자, 여인은 뒤로 자빠질 듯 놀라며 품속의 포대기를 뒤로
감춘다.
"피난 가고 빈집인 줄로만."
여인은 도로 나가려 한다. 여자는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한다. 포대기 속에서
나온 여자아이는 조그맣다. 여인은 세살이라고 한다. 젖을 먹지 못해 울 힘도
잃었다고 한다. 가여운 애기씨, 여인은 조그만 아이를 다시 포대기에 싼다.
"어떻게 해얄지를 모르겠어요."
이제 여인은 울 듯하다. 나 혼자서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면서.
"저는 저 언덕 있죠. 그 집에서 마님의 일을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에요.
어르신은 경찰청에 근무하는 분이랍니다. 곧 지프를 보내마 전화를 했는데 그
사이에 폭격이 떨어졌답니다. 챙긴 짐을 뜰에 내놓던 마님이 폭격에 맞아
죽었어요. 부엌에 있던 내가 뛰어갔을 적엔 애기씨만 죽은 마님 등에서 울고
있었죠. 시체를 옆에 두고 지금껏 지냈어요. 지프가 곧 올 줄 알았지만
지금까지 오지 않았어요. 무서워서 더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거리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더군요. 혼자서 애기씨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헤매다가 이 집이 가장 깨끗해 보이길래 들어와본 거랍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어요."
여자가 포대기 속에서 여자아이를 안아내자, 여인은 눈물을 글썽인다.
아이는 흰 면셔츠 자락을 손에 꽉 쥐고 있다.
"마님이 집안에서 즐겨 입던 옷이랍니다. 엄마 냄새가 나나 봐요. 손에서
놓질 않네요."
여자가 셔츠를 빼내려 하자, 여인이 말린다.
"그러지 마세요. 셔츠를 빼내려고 하면 죽을 듯이 울어요, 잘 때도 손에
쥐고 자는걸요, 빨지도 못했어요. 손에서 놓질 않아서."
"..."
"죽은 엄마 젖을 빨아먹은 아이예요. 불쌍한 애기씨. 전쟁만 아니라면 온갖
귀여움 다 받을 텐데."
이제 적산가옥에선 세 사람이 산다.
어느날 라디오 소리가 끊긴다.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모든 통신망이
끊긴 것이다. 이제 편지도 오지 않을 것이다 어두워지면 그들은 지하 창고로
내려간다. 방에 불을 켰다간 안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가 되는
셈이라 그들은 지하의 방에 침구들을 날라다 놓고 초를 켜고 밤을 보낸다.
아이에겐 쌀을 물에 불렸다가 죽을 끓이고 다시 그 죽을 체에 걸러낸 걸
먹인다. 아이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아는 듯이 셔츠를 손에 꼭 쥐고는 우는
법이 없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 듯이.
여인은 시중드는 일이 몸에 밴 듯 여자의 시중을 들려 한다. 여자는 여인의
입에서 마님,이라는 말이 흘러나올까봐 조마조마하다. 여자보다 열살은 많아
보이는 여인의 움직임엔 공손함이 얼굴의 살갗처럼 배어 있다. 공손한 여인은
어느날 여자에게 왜 피난을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여자는 여인에게 남자의
얘기를 해준다. 그의 소식을 기다리기 위해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편지는 왔나요."
"그러믄요, 왔지요."
여자는 남자가 보낸 서신을 여인에게 보여주며, 읽어보라 한다. 여인이
수줍어한다.
"저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답니다. 내게 읽어주실래요?"
"읽어드리죠."
여자는 편지를 가지고 촛불 아래로 간다.
-- 이곳은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평화롭소. 나는 통신병이 되었고, 지금
달빛을 받으며 이 편지를 쓰고 있소. 전쟁은 곧 끝날 것 같소. 그러면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촛불 아래의 여자의 눈 속에 남자가 보인다. 달빛을 받아 편지를 쓰고 있는
남자의 콧잔등이나 손. 이렇게 오래 오지 않을 거면서 곧 만날 것이라고
하다니.
"더 읽어주세요."
여자는 다시 편지를 읽는다.
-- 달을 보면서 당신과 이렇게 떨어지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소. 세살
적에 당신이 우리 집으로 온 이후로 말이오. 돌아가면 당신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생각났소. 언제부터 나를 사랑하게 됐느냐는 것이오. 그 전에
우리는 오누이 같았는데 말이오. 지금 당장 당신의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게
한이오. 이토록 궁금한데 왜 당신과 함께 있을 적에 물어보지 않았는지
의문이오. 떨어져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보오. 당신은 알고 있소? 내가
언제부터 당신을 사랑하게 됐는지를?
촛불 아래서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남자가 오면 말해주리라.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 건, 사랑하게 된 건, 잠시 쉬었다가 말해주리라. 세살
때부터였어요. 유모의 젖을 나눠 먹을 때부터였지요. 나는 그때 들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내가 유모를 차지할까봐 소리쳐 울던 사내아이의 질투 어린
울음소리를 말이에요. 어머니를 모르는 사내아이의 애정이 결핍된 울음소리
말이에요. 그때부터 사랑했죠. 나는 아름답게 자라서 여자가 가진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어야지, 생각했지요. 나는 당신의 어머니마저 되고 싶었어요.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여인은 이제 촛불 아래의 여자 곁에 바짝 와 있다.
"궁금해요?"
"예"
여인은 자신의 궁금함이 여자에게 누가 될까 싶은지 어깨를 옹송거린다.
--당신이 열다섯살 때였다오. 해방이 되던 해, 당신이 유모에게 나는
누구이고, 왜 이 댁에 살고 있는가?를 묻는 걸 엿듣게 되었을 때부터였소.
유모는 당신의 머리를 풀어 다시 땋아주었소. 유모에게 머리를 내맡기고
가만히 있는 당신이 울고 있는 것 같았소. 그래서 유모에게 말해두었다오.
다시 당신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거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해달라고
말이오. 유모에게 물었다면 이미 알고 있겠군. 당신이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부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아니 꼭 부친이 아닌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로서는 부친이라고 생각하오. 당신이 누구를 기다렸든간에 나는
다짐했었지. 나는 당신을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 말이오. 그런데 지금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있구려. 하지만 이 기다림은 곧 끝날 것이오. 지금은 남자로서
할일이 따로 있는 때이니 내가 어쩌겠소. 하지만 나는 곧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면 다시 당신을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끝인가요?"
"한마디 남았어요."
여자는 한마디를 가만히 여인에게 읽어준다.
--당신을 사랑하오.
여자는 또 남자가 곁에 있는 듯 속으로 대답한다. 알고 있다.고.
여자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는 그림자가 지하실 방 벽면에 어른거린다.
편지를 다 들은 여인은 잠시 말이 없다. 여자가 편지를 안섶 주머니에 넣고
나자 여인은 편지를 잘 쓰시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글을 쓸 줄 알면 나도
편지를 쓸 텐데,라고도.
"누구한테요?"
"글쎄, 그건 모르겠어요."
자신의 대답이 우스운지 여인은 호오, 웃는다.
"편지를 쓰고 싶어요?"
"네."
"그러면 내일부터 제가 글을 가르쳐드릴게요."
"글을요?"
"네"
"내게 글을 말인가요?"
"그렇다니까요."
지하실 안에서 공손한 여인의 얼굴이 해바라기밭처럼 환해진다.
여인의 떨리는 목소리가 해바라기 밭을 헤치고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난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기도하는 법?"
"네."
공손한 여인은 여자의 손을 잡아 모아준다. 손바닥끼리 모아진 여자의 손은
촛불 아래서 복숭앗빛이다. 거칠고 투박한 여인의 손은 연장 같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손을 통해 말을 하죠. 어디서나 기도할 수 있는 이 두
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한때는 영영 내게서 떠나가는 사람한테까지 아꼈던
손이지만 기도를 하기 시작한 뒤로는 한번도 아끼지 않았어요. 내밀고
거두기를 쉬지 않았어요."
공손한 여인의 뼈가 드러난 손목은, 넓적하고 두툼한 손가락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만나고 알게 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사람의 일들을.
다음날, 여자는 여인의 손에 색연필을 쥐어준다. 백지에 칸을 치고 자은
모음을 써놓고 여인에게 본떠 쓰게 한다. 색연필을 쥔 여인의 연장 같은 손은
글씨 쓰는 일에 서툴다. 여자는 여인이 움직이는 자리마다 같이 따라 움직이며
그 자리에 글씨를 써 보인다. 방. 아기. 쌀. 지하실. 촛불. 창문. 어느밤. 공습
싸이렌 소리가 나더니 아침에 보니 바로 앞집이 폭삭 주저앉아 있고,
적산가옥의 왼편도 무너져 집은 반쪽이 되어 있다. 여자는 폭격,이라고 쓴
다음 여인에게 따라 읽게 한다. 폭격. 따라 읽는 여인의 목소리를 기다렸으나
여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른 말이다.
"여기 있다간 언제 죽는지도 모르게 죽겠어요. 나는 아기 때문에 못 가지만
피난을 가세요. 밤을 타고 이곳만 무사히 빠져나가면 어떻게든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겠어요."
여자는 얼굴을 젓는다.
공손한 여인은 여자에게 다그치듯 다시 말한다.
"여기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그를 기다리는 일이 남았어요."
"전기도 안 들어오고 라디오도 끊겼어요. 전선에서 이곳으로 오는 통신망도
다 끊겼다잖아요. 이 상황에서 무얼 기다리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 여자는 말한다. 통신이 정상일 때가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그땐 왜 소식이 오지 않는지 불안했다고. 편지도 쓰지
못할 만큼 그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 것만 같아서 마음이 지옥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모든 통신망이 끊긴 지금은 기다림이 불안하지 않다고. 그는 약속대로
무사하다는 편지를 써서 내게 보냈을 거지만 통신망이 끊긴 탓에 내게 도착을
못하고 있는 거라고, 곧 통신망은 복구 될 테고 그러면 지금 어디에선가
머무르고 있는 그가 보낸 소식이 올 거라고.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누구나 죽을 수 있는걸요."
여자는 누구나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여인에게 하면서 슬퍼진다. 그렇다.
지금은 어디에 있으나 누구나 죽을 수 있다. 그는 전쟁터에서 나는 여기에서.
죽는다 해도 내게 남아 있는 일은 그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여자는 여인에게
말한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가져보았지요.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요. 그 순간들은 더이상 내 인생에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선량하게 살아가게 할거예요. 그 순간들이 앞으로의 내 생애를
지켜줄 거예요."
그때야 공손한 여인은 여자의 말을 따라 한다. 폭격.
어느날 공손한 여인은 여자에게 말한다.
"집안에 먹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며칠 후, 공선한 여인은, 다시 말한다.
"이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어요. 내가 마님 댁으로 올라가서 쌀을
가져와야겠어요."
여자는 말린다. 그러다가 점령군의 눈에 띄어 끌려가기라도 하면 어쩌려
하는가,고 이틀 후, 공손한 여인은 다시 말한다.
"이렇게 굶어죽으나 끌려가서 죽으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어두워지면
다녀오겠어요."
밤에 기어이 여자에게 세살배기 여자아이를 맡겨놓고 마님의 시체가 있다는
집으로 떠난 공손했던 여인은 돌아오지 않는다. 새벽이 오고 다시 밤이 와도
공손했던 여인은 오지 않는다. 점령군들에게 들킨 것일까. 아니면? 아직
편지를 쓰기에는 익힌 단어들이 모자라는데,라고 생각하다가 여자는
비참해진다. 전쟁이 나고 적산가옥을 떠나간 사람은 남자도 여인도 다
돌아오지 않는다.
울지 않던 여자이이가 공손했던 여인이 사라지자, 칭얼대기 시작한다. 조금
남은 쌀을 절약해서 아이에게만 죽을 끓여 먹인다. 그렇게 아꼈어도 얼마 안
가 아이에게 먹일 게 적산가옥엔 남아 있질 않다. 여자는 공손했던 여인이
가르쳐준 기도하는 법을 생각한다. 여인 앞에서는 어색해서 따라 하지 못했던
성호 긋는 일을 여자는 혼자서 해본다. 두 손을 모으고 얼굴을 수그린다. 내
겸손히 주를 모실지니... 밤에 여자는 품속의 아이를 지하실 창고 방에
눕혀놓고 적산가옥을 빠져 나온다. 남자가 가고 처음으로 적산가옥을
나와본다. 언덕 위의 집이라고 했지. 거기에 무사히 가기만 하면 식량을
얼마나 구해 올 수 있을는지.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하다. 어디선가 저벅저벅
군화발 소리가 나는 것도 같다. 호각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고 느닷없이
총소리도 나는 것 같다. 그때마다 여자는 내 겸손히 주를 모실지니...
중얼거린다. 내게 살아갈 힘을 주소서. 기도의 끝엔 남자의 얼굴이 있다. 그를
은혜 하여 그가 어디에 있으나... 어둠 속을 더듬는 여자의 눈에 눈물이
글썽해진다. 그를 향해 일었던 제 마음의 분란을 용서하시고, 그를 살피시어
그를 무사히 집으로 귀가시키소서.
폐허의 거리엔 파편 조각이 사방에 널려 있다. 저 집인가. 여자가 간신히
언덕 위로 올라왔을 때 폭격 맞은 언덕 위의 집이 어둠 속에 괴괴하게 놓여
있다. 여자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재빠르게 폭격 맞은 언덕 위의 집으로
스며든다. 언덕 위의 집은 폭격을 정면으로 맞은 것 같다. 넓어 보이는 들에
닿는 뭉클한 것에 소스라친다. 시체다. 여인은 폭격에 맞은 마님을, 여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는 마님을, 뜰의 흙을 파고 말뚝을 박아 묻힌
자리를 표시해두었다고 했는데. 누구의 시체일까. 기도가 끊기고 여자의 몸은
공포로 오그라든다. 차라리 점령군이라도 나타나주었으면 싶다. 겨우
오그라들었던 몸을 펴고 안으로 한발짝 옮기려다가 여자는 흰 물체에 걸려
다시 넘어진다 .넘어진 손끝에 흰쌀이 만져진다. 여자는 처음에 소금인가 한다.
분명히 쌀의 감촉이다. 쌀은 흰 부대에서 흘러나와 흩어져 있다. 여자는 얼른
흰 분대를 추슬러 일어서려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시체는
여인이었던가. 여자는 기어이 시체 가까이로 가본다. 공손했던 여인은 엎어져
있다. 쌀을 퍼 가지고 나오다가 가슴에 총을 맞은 것 같다. 여자는 공손했던
여인의 뜬눈을 손바닥으로 쓸어 감긴다. 여자가 쌀이 담긴 흰 부대를 끌고
뜰로 나오는데 삽이 발에 차인다. 공손했던 여인이 마님을 묻은 삽인 것 같다.
여자는 삽을 잡고 한참을 망설인다. 사방은 조용하다. 결국 여자는 공손했던
여인을 저대로 두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저렇게 두면 먹을 것이 없는 고양이와 쥐들이 공손했던 여인의 발가락에
이빨을 대고, 파리가 죽은 얼굴을 뒤덮고 개미들이 손가락을 파먹으리라.
썩어도 파먹혀도 흙속에서 썩게 하고 흙속에서 파먹히게 하자고 생각한다.
여자는 삽을 들고 들의 흙을 판다. 처음에는 조심했으나 나중에는 조심하지
않고 철겅철겅 소리를 마음껏 내며 땅을 판다. 여자의 목덜미에 가슴에 땀이
고인다. 두 시간쯤 판 다음 여자는 여인을 끌어다가 구덩이에 넣는다. 잘
가세요. 여자는 판 흙을 구덩이 속의 공손했던 여인 위에 밀어 넣는다.
공손했던 여인을 묻고 나서 얼굴을 들어보니 새벽 하늘에 그믐달이 떠 있다.
쥐벼룩이 기어가는 소리 하나 잡히지 않는다. 여자는 자신이 몇시간에 걸쳐서
무슨 일을 간 것인지 어렴풋하다. 적산가옥의 지하방에 눕혀놓고 온 세살배기
여자아이가 그믐달 속에 비쳤다가 사라진다. 여자는 쌀이 담긴 흰부대를 끌고
조심하지도 않고 터벅터벅 걸어서 적산가옥으로 돌아온다. 아기는 자고 있다.
여자가 셔츠를 입술로 빨고 있는 아기를 안고 적산가옥에서 이제는 무너지고
흔적만 남은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 여자가 그 청일한 아름다움을 흠씬 풍기며
노래를 부르던 그 여자라는 걸 저택의 주인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도톰한
입술에 퍼져 있던 따뜻하고 밝은 미소가 사라진 여자의 얼굴에서, 저택의
주인은 여자와 남자의 아름다운 결합을 보며 남모르게 느끼던 두려움의 실체를
확인한다. 결혼사진 속 수려한 용모의 남자곁에 화사하게 서 있던 미녀는
사라지고 여자는 주름투성이의 60대 늙은 여인이 되어 있다. 저택 주인은
여자에게 남자의 실종통지서를 보여준다. 중공군에 포위되어 후퇴하다가 생긴
일이라는구나. 전쟁은 저택 주인에게도 의족을 달게 했는데 자전거만은 전쟁을
몰랐던 듯 옛날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여자는 그중 한 대를 대문 밖으로
끌고 나와 면셔츠를 손에 꼭 쥐고 있는 여자아이를 바구니에 담아 앞에 걸고
저택으로부터 500미터 떨어진 사과나무를 향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위의
여자의 뺨은 움푹 파이고,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는 주름투성이 노쇠한 팔뚝에
웃옷이 끌려 내려와 있다. 여자는 웃옷 자락으로 이따금 이마에 돋는 땀을
닦는다. 자전거 타기는 오래된 것 같은데 땀을 닦을 때 잠시 핸들 위에 한
손만 남게 되면 자전거는 사정없이 비틀거린다. 그때마다 바구니 속의 아이는
놀라서 셔츠를 쥐고 있는 손을 뺨으로 가져간다. 여자의 메마른 검은머리가
바람에 날리고 나면 한줌의 모래가루인 양 여자의 퍼석한 땀냄새가 공기
속으로 섞인다. 여자는 사과나무를 지날 때 슬픔에 잠겨 노래를 부른다. 나는
봄날 방황하여보았네... 언젠가 내가 죽은 후 나의 심장에서 꽃이 피리니
새빨간 그 꽃잎 위에서도 너의 얼굴이 똑똑히 빛나리라... 청일함과 기름짐과
황폐함과 기다림이 우거진 여자의 목소리는 멀리 퍼져나가 하늘 밑의 것들이
귀를 기울인다. 사과나무 건너건너의 유모에게로 달리는 동안 울적하고 외로운
웃음이 여자의 메마른 입술 근처에 퍼진다. 그는 언제 오는가? 언제 와서
저택에 남아 있는 자전거를 탈 것인가. 여자가 자전거에서 내려 유모 집
대문을 밀었을 때 유모는 여자를 향해 걸어왔다. 유모만이 여자를 알아본다.
오랜만이야. 네가 강보에 싸여 나에게 왔을 적하고 똑같은 얼굴이야. 처음엔
누군가 했지. 이런 얼굴로 나를 보러 오다니. 유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여자의
메마른 머리에 빗질을 해준다.
여자는 묻는다.
"유모! 나는 누구지?"
"도련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지."
유모는 여자의 얼굴 피부 속에까지 두껍게 말라붙어 있는 눈물자국을
닦아준다. 도련님과 너는 저 사과나무아래서 처음 만났지. 내가 저 사과나무
밑에 걸터앉아 도련님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어르신이 널 데리고 온 거야.
도련님에게 먹이던 젖꼭지를 빼서 네 입에 물렸을 때 도련님이 말이지 기가
넘도록 울었지. 너는 끄떡없었어. 울지도 않았다구. 나도 들었어, 유모 나는
그때부터 그가 오랜 짝처럼 느껴졌어요. 유모는 빗을 든 채 여자아이의 품으로
몸을 기울여 셔츠를 손에 쥐고 있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이 애가
누구냐고 묻는다. 여자는 대답한다. 나예요, 유모, 기억 안 나요?
깊은 숨을 쉴 때마다
해설
마음의 육신이 짓는 문학의 집(임규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