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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아내가 어이 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가 크기만 합니다. 


어느날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침대에 벌렁 누워 버렸습니다.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이 이불에 퍼질러진 게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린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릴려고 식지말라고 이불 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 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려고 많이 노력 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회사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너무 다급해진 마음
에 회사에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네를 이잡듯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나서 마구 때렸
습니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날 부모님을 불러 놓고 재롱잔치를 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 날은 크리스마스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


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에 우체국 업무가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아이가 또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받은 후 아이를 불러 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개졌습니다. 아
이에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내냐고... 그러니까 아이는....

그동안 우체통에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 손이 닿아서다시 돌아와 다 들고 갔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고, 다음부터는 편지를 써


서 태워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터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굼해 하나의 편지를 들


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 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하면서 우는 걸 봤어. 
그런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이 나지 않아....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편지를 보고 또 한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흘
렀는데도....우리 아이는 사랑 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는데, 엄마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정말이지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기만 합니다. 

혁수야.....아빠야....
우리 혁수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는 그런 것도 하나도 모르고....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가 다 채워 줄 수 없는 거니? 
남자끼리는 통한다고 하잖아...
혁수야, 너 요즘에도 엄마한테 편지를 쓰지? 
혁수가 하늘로 편지 보내는 것을 아빠는 많이 봤단다. 
엄마가 하늘에서 그 편지 받으면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서 울기도 하겠지.....
혁수야,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 
그걸 잊지마.....
아빠가 널 때린다고.... 엄마가 혁수를 놔두고 갔다고 섭섭해 하지마...알았지?  
끝으로 혁수야, 사랑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잔을 찾듯
목마르게 당신이 그리운 밤이 있습니다.
 
절반은 꿈에서 당신을 만나고
절반은 깨어서 당신을 그리며
나뭇잎이 썩어서 거름이 되는 긴 겨울동안
밤마다 내 마음도 썩어서 그리움을 키웁니다.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 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예순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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