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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예화-아내의 빈자리
감동예화-아내의 빈자리
그 순간, 뭔가 느껴졌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릴려고 식지말라고 이불 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 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회사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너무 다급해진 마음
에 회사에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네를 이잡듯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나서 마구 때렸
습니다. 하지만 단 한 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 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얘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하지 않았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하면서 우는 걸 봤어.
그런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이 나지 않아....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약속해야 돼!!....
편지를 보고 또 한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제가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시간이 이렇게 흘
렀는데도....우리 아이는 사랑 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는데, 엄마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아픕니다.
혁수야.....아빠야....
우리 혁수한테 정말 미안하구나...
아빠는 그런 것도 하나도 모르고....
엄마의 빈자리를 아빠가 다 채워 줄 수 없는 거니?
남자끼리는 통한다고 하잖아...
혁수야, 너 요즘에도 엄마한테 편지를 쓰지?
혁수가 하늘로 편지 보내는 것을 아빠는 많이 봤단다.
엄마가 하늘에서 그 편지 받으면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서 울기도 하겠지.....
혁수야,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
그걸 잊지마.....
아빠가 널 때린다고.... 엄마가 혁수를 놔두고 갔다고 섭섭해 하지마...알았지?
끝으로 혁수야, 사랑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 향한 내 마음
내 안에서 물고기처럼 살아 펄펄 뛰는데
당신은 언제쯤 온 몸 가득 물이 되어 오십니까.
서로다 가져갈 수 없는 몸과 마음이
언제쯤 물에 녹듯 녹아서 하나되어 만납니까.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마음을 다지며
쓸쓸히 자리를 펴고 누우면
살에 닿는 손길처럼 당신은 제게 오십니다.
삼백예순밤이 지나고 또 지나도
꿈 아니고는 만날 수 없어
차라리 당신곁을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바람처럼 제게로 불어오십니다.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