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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셋이나 더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전송하고 난 다음, 우물가의 커다란 향나무 곁에서 무엇인가를 망설이며 오래도록 서
있곤 했다. 그 뒷모습은 내가 학교에서 배운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에 나오는 선녀처럼 어여뻤고 서글퍼
보였다. 물론 선녀의 하늘옷은 우리집 낡은 장롱 속에 없었다. 하늘옷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태어나는 아이들
아버지가 떠나고 난 후 우리가 느끼는 해방감은 밥솥에 숟가락을 들고 덤벼드는 동작에서 나타났다. 밥솥을
배를 어지간히 채우고 나서 어쩌다 어머니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다.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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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아, 저 아름답고 젊은 어머니가 없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누나들과 함께 동생들을 업고
일이 있어도 한구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곤 했다. 나는 불안과 무력감으로 꼼짝 못하고 어머니만
말했다.
그와 함께 우리의 불안은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고 방안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우리를 버리고 도망만
물어보곤 했다.
개 생기고 처녀로 도섭을 했어도 여러 번 했을 게다" 하고는 우리가 따라오지 못하게 겁을 주었다. 나는
초등학교 5 학년 시절, 내가 학교에서 유리창을 깨가며 친구와 싸워 나란히 코피가 터졌을 때, 그래서
친구의 어머니가 내 귀를 잡고 우리집에 와서 '애가 벌써부터 이렇게 주먹이 사나워서 어쩌려고 그러는지
나직했으며 얼굴은 따뜻한 미소로 차 있었다. 약방 할머니는 어머니의 양손을 부여안고 어머니가 눈물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 3 학년이 되면서 아버지는 더이상 집 밖으로 돌지 않게 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의 입에서 약방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 혼자서 방안에서 화투장을 떼고
한 대를 피워무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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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때 엄마가 마실가던 할머니 있잖아. 우리가 속 썩이면 저 위에 사는 약방 할매한테 간다고
그랬잖아요."
나는 누이들한테 동의를 구했다. 그러나 누이들은 둘러앉아 전을 부치고 떡을 썰며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머니는 천장을 쳐다보며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큰누이가 아내에게 내 험담을 했다.
아내가 대꾸했다.
구정물이며 뛰어노는 아이들, 시가지를 둘러싸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냇물, 둑에 듬성듬성 서 있는 소나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