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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스터 하이스쿨.gba 1부
포켓몬스터 하이스쿨.gba 1부
gba 1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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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하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의 열렬한 성화에 힘입어 만들어진 텍본으로 작가 본인이 직접 만들어서 배포하는
것입니다.
불법 다운로드는 컨텐츠 제작의 의욕을 꺽고 웹소설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꼭 인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아라 : https://www.joara.com/book/962831
블로그 : https://dodostorybox.tistory.com/
이메일 : doyeon11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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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w. 도여은
나는 스마트폰으로 메일로 들어가 그 파일을 다운받았다. 포켓몬스터는 닌텐도 안 된다면 스마트폰이지! 차선의
차선이 컴퓨터 에뮬인 거라고. 그러고선 난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다이빙했다.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잠시
뒹굴다가 스마트폰을 천장 쪽으로 들어 다운되었는지를 확인했다. 내일은 내 생일이고 또 지금은 겨울방학이고
나른한 오후인 데다 방 안은 따뜻하니 딱 포켓몬을 할 때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파일을 열었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1-1. 웰컴 투 더 포켓몬 월드
2화
w. 도여은
없다.
“뭐...지...?”
없었다.
나는 털썩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한 세 번쯤 반복하고 나니까.
새로운 가정이 떠올랐다. 아, 닌텐도, 엄마가 치웠구나. 몰래 하기는 했었지만 이제 고 2 니까 공부하라고 치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났다. 휴... 놀래라. 놀랐네 정말. 새벽이라 정신이 예민해졌던 거였어. 나는 다시금 폰을
켜려고 했지만 폰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의자를 뒤로 최대한 젖혔다. 내 무게가 무거웠는지 의자는 끼기긱 소리를 내며 뻑뻑하게 굴었다.
발... 소리인가? 뭔가 사뿐사뿐 내 방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발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 우리 집에 아이가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그런데 그런 작은 소리를 내가 들을 수 있었던가?
내가 생각을 하는 와중에서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뿐사뿐하고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그 소리는
착각이 아니라 내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침입자인가? 나는 책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는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어차하면 먼저 문을 열고 책으로 선제공격을 하리라.
삼. 이. 일...!
modamodamodamodamodamodadadada!!!
나도 놀라 소리쳐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어... 엄마.”
“왜 새벽부터 소란이야. 모디는 왜 울고 있고?”
엄마는 부엌에 들어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엄마에 대답에 황당한 나는 어버버 하다가 다시 시도했다.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 나레기. 내 표현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속으로 절망하면서 다시금
설명하려는데, 설명하려는 나 자신이 웃겨서 웃음이 났다. 엄마가 닌텐도를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얼마나
졸라서 샀던 건데. 그리고 이번에 큰다수 장만할 때도 진짜 사정사정을 했었는데.
엄마는 나를 꼭 안았다.
모다피는 내 눈앞에서 덩굴로 접시를 나르고 있었다. 덩굴이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고 하면 이상하려나. 사실 게임에서야 어떻게 된다고 할지라도. 어떤 원리로 덩굴이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하는 건지 좀 궁금했다. 팽창과 수축인가? 그런데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있지. 쓰지 않을 때는 또
몸속으로 사라지는 듯한데, 저 가느다란 몸에 넝쿨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현실의 유사한
것을 생각해봤자 청소기 전기코드가 빨려 들어갔다가 꺼내지는 것밖에 생각이 안 난단 말이지.
“엄마... 있잖아.”
“응?”
“나 폰 고장 났어.”
“고쳐.”
아... 쿨한 우리 엄마.
.
.
.
안 돼, 안 돼. 정신 수습하자. 이지은.
“그렇게 포켓몬이 갖고 싶니? 아침부터 모다피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지나가는 포켓몬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죽일 듯이는 아니고...”
“왜?”
.
.
.
“피곤해.”
너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인 걸까. 엄마한테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고 숨겨서 그런 걸까.
그런데 진짜 믿을 만한 것은 아닐 거 같은데. 나는 이 이상한 상황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나쁘진 않아. 진짜
포켓몬이 현실에 나온다는 거. 정말 꿈같은 이야기니까. 너무 바라왔던 일이라 실감이 안 나고 의심스럽다고 해야
할까. 역시 너무 기뻐하면 꿈에서 깨겠지?
“...?!”
“뚜벅쵸 보고 있었어?”
“아, 응.”
엄마는 귀엽네 하면서 이파리를 쓰다듬어주니 뚜벅초도 기분이 좋은지 잎을 연신 흔들어댔다. 아무래도 화분을
신경 쓰는 건 나뿐인가. 나는 엄마와 화분과 뚜벅초를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하하.
3화
w. 도여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바로 발급은 안 되더라도 신청은 바로 되는 거니까.”
“뭐...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긴 뭐야. 주민등록증 신청하러 온 거지. 겸사겸사 트레이너 신청도! 이제 너도 포켓몬을 가질 수 있는 거야.
좋지? 오늘만 손꼽아 기다렸었잖아.”
주민등록 수속은 별로 어려운 일 없었다. 오른손 왼손 지장을 다 찍어야 한다는 것만 빼면. 화장실가서 지워도
잘 지워지지 않아서 애먹었었다. 근데 그곳에 있는 폼 형태의 비누가 꼬부기 모양이었어. 그런 포켓몬 굿즈가
일상에서 쓰이다니 이상하다, 라는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가 포켓몬을 가지게 된다니... 그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꿈이니까...?
밖에서 점심을 먹고 아, 물론 모다피도 엄마가 챙겨온 포켓몬 푸드를 먹었고, 차를 타고 또다시 어디론가
향했다. 방향은 교외 쪽인데.
“엄마, 또 어디가는거야?”
“후후. 아빠 연구실.”
“혹시... 설마...!”
나는 경악했다.
엄마는 웃으며 내가 경악한 이유가 포켓몬을 벌써 받느냐는 것으로 이해했겠지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긴 했지만
뭐랄까. 생물학자이셨던 아버지가 포켓몬 연구원이 되어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지은아, 왔니.”
“응. 아빠!”
속으로는 심란한 마음이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없는 양 평소처럼 아빠한테 매달렸다. 아빠의 행동은
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교외에 연구소가 있어서 주말에만 집에 오시는 건 그대로일 것 같은데... 음...
연구소가 더 커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 역시 생물학자와 포켓몬 학자의 대우가 다른 것 같은 건 내
착각인가요. 자연과학 대우가 안 좋은 한국이지만 그나마 좋은 연구소에 다니셨는데 그것보다 더 크고 최신의
시설이라니. 포켓몬 월드... 이구나.
응? 아빠는 연구원 입구에 카드를 대며 말했다. 자동문이 위잉 소리를 내며 열렸다. 오늘 이곳을 스캔해 본
결과 관동지방이라기엔 성도 포켓몬이 보이니... 성도지방인가? 그럼 스타팅이 치코리타, 브케인, 리아코일 게
분명한데! 나는 역시 브케인을 고르는 게 좋겠지? 리아코도 좋지만 아, 치코리타는 안 될 것 같아.
감당하기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떠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빠는 껄껄 웃으면서 분명 내 마음에 들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으으... 그러면
내가 평소에 포켓몬에 대해서 떠들고 다녔다는 건가. 왠지 좀 상상이 안 가는데, 포켓몬 좋아해요 라고 떠들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란 말이야. 대부분 포켓몬 전부 좋아하기는 하는데.
연구소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아는 연구원 아저씨들이 친근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뒤를 쫒아가는 건
꼬렛이라거나, 코일이라거나 작은 포켓몬이었다. 보통 포켓몬 받으러 왔니? 하면서 웃으시는 게 아빠가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닌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는 연구소와 달라진 구조에 얼떨결에 아빠를 따라가다가 한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걸 왜 저한테...?”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딸 자랑을 하던지,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단다. 포켓몬을 많이 좋아한다고? 너희
아버지를 닮았다면 분명히 포켓몬을 아끼고 사랑할거라고 생각했단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도 내일이면 보지 못하겠구나. 이 알도... 포켓몬도.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즐거웠으면 됐어,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알에 어떤 포켓몬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모다피나 삐삐나 뚜벅초나 여러 포켓몬을 보았는걸, 정말 꿈이었지만 현실감 있고 신기했어. 그러니까 자고
일어나면 진짜 생일을 맞게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4화
w. 도여은
“어...”
“진짜... 없어.”
있는 건 저 알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작게 축소된 채 알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몬스터볼 여섯 개. 나는
찬찬히 꿈이라고 생각했던 어제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이 알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고 엄마가 준비한 생일
선물이라고 몬스터볼 여섯 개를 받았다. 그리고 알을 품에 안고 모다피랑 놀다가, 아빠가 엄마 포켓몬 하고만
논다고 삐져서 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디를 꺼냈다.
헐, 미친 짱 귀여워. 하면서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고 하다가 저녁을 먹었다. 뒷발로 목을 긁는 가디를 뒤에서
껴안았다가 깜짝 놀란 가디가 불을 뿜는 것을 보았고. 아, 그렇게 많이 뿜은 건 아니라서 공중에서 사라지긴
했지만. 그리고 공부하라는 엄마의 말에 싫다고 개기다가 또 잔소리 듣고. 꿈인데 뭐 어때, 공부 안 하려다가
그래도 찝찝해서 알을 품에 안은 채 수학 문제 풀다가 영어 공부하다가, 인강 듣고 잤는데.
꿈이 아니었다.
나는 벌컥 문을 열고 부엌으로 가보니 엄마와 모다피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거실을 바라보니 가디가
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있고 아버지는 나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딸, 아빠 가는 거 마-”
“말도 안 돼.”
.
.
.
“말이라도 해봐.”
옆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뛰었다. 포켓몬을 만날 것만
같아서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계단을 울리는 발소리가 나를 뒤쫓아 왔다. 나는 그에 더
빨리 뛰다가 그만 쿠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마치 어제 쏟아져버린 책들처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다리가 욱신거리며 아팠다. 나는 한쪽 다리를 반쯤 끌면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거리로 나섰다. 추운 거리에는 사람들이 종종거리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옷 바지
사이로 에일 듯한 냉기가 스치고 들어왔다. 손이 차갑게 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걸었다.
“읏.”
.
.
.
부딪히자마자 반사적으로 안았던 바람에 제 품에서 놀라 바르작되던 여자애는 갑자기 스프링처럼 떨어져 나왔다.
여자애는 죄송합니다, 하면서 다시금 어디론가 가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애가 나를 보자마자 지었던 표정은,
“너... 그린...?”
“넌... 넌, 뭘 알고 있지.”
“어...?”
“나를, 나를 포켓몬이 없는 곳으로 데려다줘. 제... 발.”
오바람은 여자애를 들쳐 업고 집으로 향했다. 실소가 나왔다. 도대체 자신이 왜 모르는 여자애를 업고 가는
건지. 분명 연구소에서 알을 가져간 애였던 것 같은데, 혹시 포켓몬을 무서워하는 건가. 포켓몬에게 트라우마가
생겨서 쇼크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여자애한테 알을
맡겼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오바람의 표정이 조금 찡그려졌다.
오바람의 자취방은 학교 근방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했다. 일단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저는 의자를 끌어와 그
옆에 앉았다. 할아버지 댁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는 수준이 낮아 전학을 오게 되었는데, 역시 거기서 다니기엔
멀어서 얻은 자취방이다. 친구놈이랑 같이 살게 됐지만...
것보다 이 여자애는 연구소 직원의 딸이었다. 분명 알을 가져가는 것도 멀리서 봤었고. 그래서 업고 여기까지
왔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경찰서에 전화했을 거다. 나도 연구소에서 지나가면서 본 건데, 그 여자애는 알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을 못 봤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딱 보는 순간 그 눈동자는 아는 사람을
향한 눈동자였다. 표정이... 그래서 그렇지.
“아. 전화.”
그제서야 오바람은 이 애의 부모님이 얘를 걱정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상태를 보니까 아팠던 것
같은데, 갑자기 집 밖으로 튀어나온 건가. 아마 자신에게 한 소리는 열에 취해했던 말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
표정은 좀 충격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못 본 걸 본 듯한, 있어선 안 될 걸 봤다는 듯한 표정이었다고. 아,
전화 걸렸다.
“으음..,”
이지은이라는 여자애가 뒤척이자 바람의 눈길이 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곧 일어날 것 같은데... 얘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일어났으면 했지만, 지... 지금은 아닌데. 그는 괜히 긴장했다.
5화
w. 도여은
“그린...!!”
나는 끔뻑끔뻑 오바람이라고 말하는 그린을, 아니 오바람을 바라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베이지색 벽지에 파란
커튼 하며 책이 가득 꽂히다 못해 널브러져 있는 책들, 그리고 비행기 모형 등... 어딜 봐도 남자애 방이었다.
생각해보니 나, 포켓몬이 어쩌구 무슨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그도 휘청거리는 내 모습에 놀라서 일어났는지. 다시 나를 침대에 앉히고 자신도 의자에 앉았다. 나도 놀랐으니
오죽할까. 근데, 나 잠옷차림이잖아...! 분명 패딩을 입고 있지만.
“미, 미안.”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아니 똑바로 쳐다보려고 했으나 눈동자가 너무 흔들려서 다시 감았다 떴다. 일부러
포켓몬이라는 말을 꺼내고 있진 않았지만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 이 녀석은 내가 알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알... 맞아.
“무슨 일이야.”
“너 무슨 음식 좋아해?”
“어? 무슨...”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해줘.”
오바람은 한숨을 쉬더니 의자에 앉았다.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는 다시 한숨을 쉬는데, 일단 날 진정시킬
생각인 건지, 아니면 또 뛰쳐나갈까 봐 불안한 건지 내 말을 순순히 들어줄 생각인 건 같았다.
내가 일어서려고 하자 그가 말렸다.
“엄마!”
“지은아. 무슨 일-”
“엄마, 빨리 집에 가자. 빨리.”
나는 그의 말을 자른 채 엄마를 재촉했다.
내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며 엄마를 재촉하자 엄마는 알았다며 나를 이끌었다. 차를 타고 엄마가 운전하는 동안
나는 울었다. 손에 고개를 박고 울었다. 울음이 났다. 그냥 나는 막연히 깨달은 거다. 나는 이 세상에
들어왔음을. 살아 숨 쉬는 세상에.
차가 집 근처에 도착하자 나는 엄마에게 차를 세워달라고 하고는 차에서 급하게 내렸다. 뛰다가 한번 휘청했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서니 내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다시 한번 또렷이 떠올랐다. 문을
열고 현관에 신발을 벗고 뛰어가려는데 앞에 모다피가 보였다. 나는 살짝 웃어주고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랑 얘기도 나눴어. 걔... 나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물어봤어.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 혈액형,
추억, 기억...”
“게임의 데이터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너희도 살아가는 생명인데, 좋아하고 싫어하고 기쁘고 슬픈
그런 생명인데...”
“....아.”
나는 알을 두 손으로 감쌌다. 차가워, 차가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식어있어.
나는 그 알을 들어 안았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내가 그렇게 소리 질러서.
너는 이 존재하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해버려서.
“....아.”
“너 말을 할 수 없는 게 아니구나.”
나는 알을 더 꼬옥 안았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거였어.”
1-2. 알을 깨고
6화
w. 도여은
“엄마 나 다녀올게.”
“응, 조심해서 다녀오고.”
부엌에서 엄마의 배웅 소리를 들으며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지갑, 폰, 수첩. 오케이, 챙겼고. 그리고
알도 가방 안에 잘 넣었고. 내가 물건을 체크하는 동안 모다피가 쪼르르 달려와서 배웅해준다.
“모디, 나 갔다 올게.”
modamoda!
“응, 알았어.”
차가운 공기에 나는 입김을 훅 불었다. 흰 수증기가 몽글 생기더니 이내 흩어져 사라졌다. 지극히 현실적이야.
나는 아직도 머리 한 구석에는 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건 꿈이라고.
엔딩이라면 두 가지의 추측을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챔피언이 된다. 게임으로는 여러 번 딴 챔피언 칭호이지만
지금 이 현실로는 내가 챔피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리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금 가능성이
있는 결말인데, 이 게임의 제목, 포켓몬스터 하이스쿨, 그러니까 졸업을 하면 혹시 엔딩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넌 언제 태어나는 거야.”
“...어라?”
주변을 둘러봐도 도움을 줄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으어... 아니야, 난생은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다고.
오리를 생각해봐. 진정해라 이지은.
meeeeeeeee...!
“메...?”
새가 아니라 양이었다!
“이건 메리프...?!”
meeeee~
meeeee!
“아, 미안. 숨 막혔어?”
“일단 집에 갈까?”
mee~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포켓몬을 인간처럼 한 종류로 분류하는 이곳에서 포켓몬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꼭 이름을 붙이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았다. 그건 게임하고 비슷하기도 하고. 아, NPC 들한테
포켓몬을 교환하면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경우가 많으니 꼭 그런 건 아닌가? 예를 들면 덜덜이 같은...? 쨌든
포켓몬 종류가 워낙 많으니 어지간하면 종으로 불러도 상관없지만. 이건 애정의 문제라고!
“빨리 집에 갈까?”
7화
w. 도여은
집에는 금방 도착했다. 내가 문을 열면서 엄마, 알에서 메리프가 깨어났어! 소리치는데 거실 소파에 아빠와
가디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오늘 토요일이었지?
“아빠!”
“그렇게 좋아?”
아빠는 웃으면서 물었다. 나는 메리프를 소파에 내려놓고 “응!”하고 대답했다. 내가 가방에서 메리프를
꺼내려고 하는데 아빠가 주의를 줬다.
“메리프는 정전기가 잘 일어나니까. 조심하고.”
“앗, 따가.”
아빠가 꼼질거리며 나오는 메리프를 들어 무릎 위에 올렸다. 아빠의 가디가 킁킁거리며 메리프를 살폈다.
그리고 저 쪽에서 엄마와 모다피도 오고 있었다. 아빠는 메리프에 털에 박혀있는 알껍데기를 떼어내고 있고.
“너희 아빠가 이상한 거야. 어떤 사람이 포켓몬의 전기라고 내성을 가지니? 나는 그런 것 보도 듣도 못하다가
너희 아빠 보고 알았어.”
“에헤이. 당신도 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엄청 이상한 사람 같잖아.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그러니까 이상한 거죠. 그렇지 모디?”
modamoda!
나는 웃음이 났다.
내가 어물거리자 아빠는 웃으면서 천천히 지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리곤 알껍데기를 다 떼어냈는지 메리프를
나에게 넘겼다.
“자, 메리프, 엄마한테로 가야지.”
meeee~
“으아앗. 따가.”
파바박 튀는 정전기... 왜 너는 특성이 정전기인 거니...
.
.
.
하지만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고, 나는 이 아이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 방에서
알이었던 이 아이에게 했던 일을 이 아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혹시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메리프는 방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메리프. 이리 와 봐.”
“아...”
남은 몬스터볼을 잡자 조금 묵직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알과 같은 상태인 것 같아. 볼을 축소도
해보고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애니판 설정을 따르는 건가, 이건... 만화처럼 안에 포켓몬이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이 안에는 메리프가 들어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이었다.
8화
w. 도여은
엄마의 목소리가 부엌에서 들렸다. 나는 몬스터볼을 침대에 던져두고 방을 나갔다. 메리프는 종종 쫓아오고.
부엌에 엄마와 아빠가 식탁에 앉아있고 모다피와 가디는 식탁 옆에서 포켓몬 푸드를 앞에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아... 난생이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소형 포켓몬이니까 가디가 먹는 푸드 먹여도
되겠다고 말했다. 음... 소형 포켓몬인가? 나는 메리프 정도면 중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애기라서 그런
건가. 아니 가디도 그렇게 작은 편은 아닌데... 저 크기면 일반 대형 개 크기 아닌가... 하지만 나는
포켓몬들의 사이즈를 대략적으로 생각하고선 마음을 바꿨다. 암... 잠만보에 비하면 이건 정말 귀여운 사이즈지
일지도.
내가 애니메이션에서 본 기억의 가디보다는, 그리고 이곳에 인터넷으로 뒤져본 가디들의 사진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빠의 가디가 평균 사이즈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그에 한 가지 의문이 생겨서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왜 가디 진화 안 시켜?”
“음?”
“아, 완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걸? 아파트에는 대형 포켓몬을 풀어두기 힘드니까. 윈디가 되면 집안에 못 두지.
그리고 이제 아빠는 배틀할 필요도 없으니까.”
“너희 아빠 포켓몬은 그래서 다 연구소에 있는 집에 있잖아.”
나는 아빠가 어떤 다른 포켓몬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는 건 이상할 것처럼 보여서 모르는 척 아빠가
트레이너였음을 물었다.
“메리프. 먹을 만 해?”
meeee~
메리프가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연신 흔들며 푸드를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라서 그런 건가? 그런
것보다 몸집이 작은 것 말고는 갓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게... 역시 난생이라서 그런가?
.
.
.
아니, 역시 아무래도 아빠보다 엄마의 서열이 높으니까 포켓몬도 그것 따라가는 걸지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로 얘기하고 있는 녀석들 중에 메리프를 불렀다.
“메리프, 방해해서 미안한데 따라올래?”
meee~
“아, 메리프가 말을 잘 못 알아들을 테니까 완도 데려가. 따라가 완.”
wangwang
메리프가 갸웃거리자 옆에서 가디가 짧게 설명을 했다. 메리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야 그건 너무 적나라한
표현이잖아.
meeeee~
메리프가 변기에 오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직 어려서 점프가 안 되는지 낑낑거렸다. 가디가 변기에서
내려오더니 저기서 조그마한 세숫대야를 물고 오더니 받침대를 만들어줬다. 메리는 거기에 올라가려는데-
“안 돼!”
아, 정말 현실 세계인 거구나.
.
.
.
난 고등학생이니까.
“아우. 일단 공부하자.”
나는 메리프를 무릎 위에 올려 둔 채 책을 펼쳤다.
9화
w. 도여은
가디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짖었다. 레벨이 몇인지는 모르지만, 아빠가 맡길 정도면 꽤 강하겠지? 이 근방에
조금만 들어가는 거면 포켓몬 레벨도 많이 낮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나는 아빠한테 손을 흔들고 집으로 향했다. 연구소가 커져서 놀랐지만 그래도 마을은 그대로였다. 과수원이
많고 비닐하우스도 있고. 연구원 분들이 사시는 집들도 꽤 많아서 그렇게 교외 시골 느낌은 잘 안 나기도 한다.
연구소에서 10 분 정도 걷고 나면 집이 나오는데, 다행히 도착한 집은 마당이 넓은 주택 집으로 내가 알던 집과
다르지 않았다.
da...kko...?
dakkodakko!
magiii
“마기라스...?! 그리고 그 옆에는...!”
crooo
cro?
cro? cro?
장크로다일은 나에게 얼굴을 들이대면서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하는 표정이랄까? 어... 나 들키는 건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안녕. 오, 오랜만이네.”
crooo~
“응?”
mee!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하룻메리프 장크로다일 무서운 줄 모르는 거야? 메리프가 달려들 태세를
하자 장크로다일이 메리프를 보며 겁나는 얼굴을 시전 했다. 갑자기 인상을 쓰는데 옆에 있던 내가 쫄아서
스피드가 쭈르륵.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만큼 엄청난 박력이었다.
“메리프...!”
“메리프...”
메리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하지만 장크로다일께서는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으신
듯. 어디 모기가 무나 하는 정도일 거야.
“에구구. 이리 와.”
내가 맨바닥에 그냥 앉아서 메리프를 부르자 메리프가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와 안겼다. 다행히 정전기 특성은
발생한 지 않은 듯 멀쩡한 장크로다일은 애가 울어서 당황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을 했겠니.
meeeeee
jang~ jang~
meeeee
cro cro jangcro~
“응, 아빠.”
-집에는 잘 들어갔고?
“응응. 집에 포켓몬들 하고도 인사했어.”
-잘 왔네. 무슨 일은 없었고?
“음... 메리프가 내가 장크로다일 너무 예뻐해서 심통 났는지 싸움 걸었던 것만 빼면?”
-쟝한테 싸움을? 별일 없었고? 메리프는 괜찮아?
아빠의 뿌듯함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그나저나 마기라스 이름이 철인 건가. 조금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다꼬리 이름을 못 들었네. 장크로다일은 쟝이고, 마기라스는 철이...
철이라니... 아빠의 네임 센스 만만치 않은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름 때문에 저 마기라스 삐뚤어진 걸지도?
속으로 웃는데 메리프가 메? 하고 쳐다봤다.
나는 쿡쿡 웃었다.
mee?
10 화
w. 도여은
“일단, 들어가자.”
mee~ mee~
그렇게 메리프랑 노닥거리며 기운을 충전한 후 몸을 움직여 포켓몬 푸드를 살폈다. 자세히 보는 건 처음인데...
역시 포대 채로 있었다. 마치 집에 쌀 포대 하나쯤 있는 것처럼... 겉을 보니 곡류, 건과류, 과일류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했다. 음.. 한 번 먹어봐도 되나? 사람 몸에 유해한 것은 안 들은 것 같아서 한 번 먹어보니
단맛이 났다. 씹히는 맛은 오독오독이려나. 사료 같은 느낌? 집에서 모다피와 가디가 먹던 것도 이런 류였다.
신기한 마음에 하나하나 다 먹어보니 대형은 단맛과 떫은맛 두 개가 있었고 중형으로 쓴맛, 소형으로는
매운맛이었다. 내가 소형 먹고는 캑캑거렸는데, 메리는 맛있는 듯 하나 받아먹었다. 이거 가디가 먹는 푸드인가.
메리프와 입맛이 비슷한가 보네.
나는 계량도 잘 챙겨보고 각자 그릇에 적정량을 담아 쟁반에 올려 밖으로 나갔다. 대형은 두 포대가 맛이 달라서
각자 챙겨 왔는데 괜찮으려나? 분명 마기라스와 장크로다일 둘 중 하나일 거야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밥 먹자.”
뒹굴어서 먼지를 뒤집어쓴 마기라스와 가디의 몸을 좀 털어줬다. 가디는 내가 쓰다듬어 주는 것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지만 마기라스는 그러든지 말든지 라는 표정. 은근 나한테 관심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상처받고
있어, 나. 가디가 계속 집에서 봐와서 그런 걸까 생각하면서도 오늘 처음 본 다꼬리나 장크로다일을 생각하면
그건 아닌 것 갈은데... 성격 특성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포켓몬의 밥을 챙겨주고 마루에 앉아서 그 모습을 구경했다. 장크로다일은 평소에 네
발이 편한 듯 땅을 짚은 채 코를 박고 와구와구 먹고, 마기라스는 그냥 밥그릇을 들더니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러고는 다시금 저쪽으로 돌아서 버리는 게... 나 원래 마기라스랑 안 친했을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반면에 너무 친해서 내가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입에 먹기엔 은근 양 많을 텐데.., 얘도 대단하다
싶었다.
다꼬리는 조신하게 천천히 음미하듯 먹고 있었다. 장크로다일이나 마기라스랑 비교해보면 굉장히 차분하고
고상한 느낌? 가디랑 메리프는, 누가 빨리 먹나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먹어. 체할라. 역시 메리프
꼬마애라 그런가. 아직 숙녀는 아니지. 나는 속으로 웃었다.
“완아, 나가자.”
“쟝. 너도 같이 가게?”
장크로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나들이가 좋은 건가? 별로 나쁘지 않겠지 싶어서 세 포켓몬을 이끌고
대문을 나섰다. 겨울이지만 해가 쨍쨍하니 날도 덜 춥고 좋았다. 바람도 덜 불고. 메리프가 아직 어린 게
걱정되지만 가디랑 장크로다일이 있는 걸?
cro?
“아니, 든든해서.”
나는 장크로다일에게 웃어 보였다.
어느새 풀숲이 가득한 산의 초입이었다. 여기서 발 한 발자국만 들여도 특유의 브금과 함께 야생 포켓몬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meee~
“저, 우리 그냥 돌아갈까?”
meee?
메리프는 아쉬운 모양이었다. 메리프... 나는 아직 유혈이 튀는 싸움을 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미안,
이런 트레이너라.
11 화
w. 도여은
가까이에 있는 강은 산에서 내려온 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아주 깨끗하고 맑았다. 날씨가 날씨인 만큼 가장자리는
얼음이 얼어 있었고. 하지만 그것도 포켓몬을 말리지는 못하는지 신난 장크로다일이 우다다 뛰어가서 물에 풍덩
입수했다. 역시 물 포켓몬인 건가?
메리프도 처음 보는 강이 신기한 듯 강가로 다가가 발 한쪽을 담가보았다. 나는 추워서 멀찍이 떨어져 가까이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물이 싫은 건 가디도 마찬가지인 듯 나와 꼭 붙어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디의
털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는데,
분명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메리프는 대담한 성격인 것 같은... 대담한 성격은 매운맛을 싫어하니까.
아니면 용감한 성격인 건가?
춥지도 않은지 장크로다일은 깊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뭘 잡는 건가? 하고 자세히
보니 물고기를 잡아?!
배틀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서야 그것이 게임이기에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현실로 이것이 넘어오게 되면 뭐든 생각이 많아지는 법인가 보다. 그 꼬렛을 생각해도 아마 장크로다일의 물기 한
번이면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를 것이라는 게, 정말... 쉽게 상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거 마치 투견 같잖아.
잔인하고 야만스럽고. 메리프도 그런 걸 바라는 것일까. 야생 포켓몬은 인간에게 덤비고 잡히는 것을 원하고,
포켓몬들은 배틀을 빙자한 싸움이라는 걸... 하고 싶은 걸까?
wang!
내 웃음에 조금 기분이 상했는지 누워있는 내게 이불처럼 위로 올라와 누르는 녀석을 나는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장크로다일이 무언가로 입이 막혀있는 듯 킁킁하는 소리로 가까이서 나를
불렀다. 온 줄도 몰랐는데? 가디가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 내가 몸을 일으켜 처음 본 것은 장크로다일 품속에
안겨있는 기절한 물고기 세네 마리와 입에 물려있는...
“잉어킹?!!!”
“이것들 먹자고?”
끄덕끄덕
“이 잉어킹도...?”
끄덕끄덕
“...”
meeeeeeee!!
“메리프!!”
.
.
.
내 말에 아빠는 처음부터 악의는 없었기에 쉽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생선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또 신기하게 바라보고. 아빠는 손질한 생선 하나와 포켓몬 푸드들을 챙겨서 포켓몬들 밥을 챙기러
나갔다. 역시 생선 하나는 장크로다일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아빠의 뒷모습을 보는데, 순간 나... 아빠의 모습에서 완전한 낯설음을 느끼고 말았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아빠가 맞을까 하는 그런 생각.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갑작스런 충격에 조금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내 아빠가 아니면 누구 아빠겠어. 방금도 같이 이야기하면서 어색하지 않았잖아. 진정해,
요즘 예민해졌어. 나는 메리프를 꼭 안았다. 메리프가 갸웃하며 왜 그러냐며 메에 울었다.
사실... 이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산으로 가면 구구와 꼬렛이 보이고, 강에는 잉어킹이 있고, 그걸 먹겠다고
잡은 장크로다일이며... 그런 게 내가 살던 세계에는 없었으니까. 내가 숨을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아빠가 돌아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 안에는 어떤 혐오감도 담겨있지 않았다. 포켓몬 월드는 꿈과 희망이 넘치는
곳이었는데... 그러니까 일주일 전 닌텐도 속으로 보았던 그 세계는. 하지만 아빠는 이 세계는 약육강식이
살아있는 세상이라 말한다. 이상해... 하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기도 하다. 세상은 변해있다. 아빠는 트레이너였고, 포켓몬 연구원이 되었고. 나도
메리프를 만나고 트레이너가 되었다.
알을 깨기 위해서.
12 화
w. 도여은
며칠 전에 메리프와 TV 를 봤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포켓몬 배틀을 보았다. 이 세계는 포켓몬을 아주 사랑해서
해외의 포켓몬 콘테스트를 보여주기도 하고 포켓몬 강의도 한다. 포켓몬 강의만 다루는 채널도 있었는데, 마치
EBS 같았다. 그러니까 국가적인 지원이랄까? 그런 것 외에도 마치 1 박 2 일에서 상근이가 나왔던 것처럼 예능
프로그램에도 포켓몬이 나오기도 하고, 가만 보면 프로그램마다 전용 마스코트 포켓몬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현실세계에 포켓몬이 많은 만큼 드라마에도 영화에도 포켓몬은 빠지지 않았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 그래서
처음 TV 를 볼 때 많은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사실 원래 TV 를 안 보는 편이라 상관없기도 하지만. 만약 내가
TV 를 좋아해서 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보던 사람이었다면 정말 충격받을 정도로.
도전자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채널을 돌리다가 내가 본 부분은 최이슬 씨의 포켓몬이 하나 남은 그러니까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마지막 포켓몬은 아쿠스타였고 도전자의 포켓몬은 라이츄였다. 상성 상 라이츄가
유리했지만 경기장은 수영장이었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
아쿠스타가 물속에 잠수했기 때문에 당황한 라이츄에게 트레이너가 침착하게 지시하는 것은 참 인상 깊었다.
일단 빛의 장막을 걸고 공격할 때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을 노리는 전법인 것 같았다. 화면 속의 라이츄가 화가 난
듯 볼주머니에서 찌릿찌릿한 전기가 새어나가자 나도 옆에서 찌릿찌릿한 소리가 들리는 게...
"흥분하지마, 메리프으."
메리프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시합을 열중해서 쳐다봤다. 반면에 나는 그 모습에 시합보다는 자꾸 메리프를 보게
되더라.
"메리프. 배틀하고 싶어?"
mee?
.
.
.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아침의 찬 공기가 나를 맞았다.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4 일만 지나면 학교로 가게 된다.
그에 따라 메리프도 많이 컸다. 이제 가만히 서 있어도 머리가 무릎에 닿을정도. 아직 보통의 메리프 크기보단
작지만.
meee~
메리프가 아침 공기가 기분이 좋은지 얇고 가는 소리를 냈다. 마당에서 다꼬리가 어디가? 하며 나를 쳐다봤다.
“오늘도 산책!”
내 말에 다꼬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대문까지 열어줬다. 마치 어린데 열심히 하네, 라는
눈빛이었달까. 하긴 다꼬리도 나이가 있으니까.
커다란 느티나무에 닿았다. 느티나무 옆 절벽을 내려 보면 상류의 강물이 보였다. 나는 지쳐서 헉헉거리며
느티나무에 기대 주저앉았다. 그래도 꽤 오래 뛰었다. 집에서부터 과수원길을 지나 여기까지 쉬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힘들어...”
meeee
메리프도 마찬가지인 듯. 우리는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아빠한테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었을 때
아빠는 아침 조깅을 하는 게 좋다는 말과 또 이걸 줬다. 둥글고 말랑한... 고무공. 조금 쉬었다 싶어서 나는
메리프에게 눈빛을 보냈다. 메리프도 보내오는 눈빛.
“잘했어!”
전기를 강하게 방출하다가 점점 약하게 방출하다가를, 그리고 약하게 방출하다가 점점 강하게 방출하기를
연습했더니 부쩍 전기를 다루는 실력이 늘었는지 전기자석파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었다.
나는 공을 물어오는 메리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랄까 레벨의 개념이 없는 곳이다 보니 사실 얼마나 메리프가
강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좀 아쉬운 점이었다. 그래서 더 트레이너는 포켓몬에게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고.
기술도 자력으로 배운다기보다는 트레이너가 이런 기술이 있다는 걸 설명하고 연습을 해야 실전에 쓰일 수 있는 것
같았다. 음... 야생으로 따지면 어미새가 새끼 새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말이다.
“전기자석파!”
메리프는 바위를 향해 전기를 발사했다. 중간에 전기가 많이 날아가 보여도 상대를 마비시킬 정도의 전기는 받는
듯. 음... 실전에 쓰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빠, 출근은?”
“출근하러 가는 길에 들렸어. 메리프가 이제 전기를 다룰 수 있게 됐네. 전기자석파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겠어.”
“아, 정말? 실전으론 안 써봐서 난 잘 모르겠더라고.”
“그래도 아직 전기쇼크까진 무리인가보다. 겨울이라 그런가. 빨리 배우네.”
“겨울인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겨울에 가장 털이 많이 나기도 하고, 공기가 건조하니까 정전기가 많이 나거든.”
나는 메리프를 둥기둥기 해주었다. 메리프가 메에에 울면서 좋아하다가 갑자기 메? 하고 울었다. 갑자기
메리프가 귀를 기울이는 듯한 느낌에 나도 자연 숨을 죽였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meee~ meee~
“뭐길래 그래?”
그러니까 강에, 뭔가가, 걸려있다고?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강 쪽을 내려다봤다. 갈대로 가려진 곳쯤에서 뭔가
철퍽철퍽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메리프가 옆에서 내 바지 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구해주자고?”
mee~
그러다가 공격당하면 어떡하려고, 강한 포켓몬이면 어떡해, 라고 말하니 메리프는 자신만 믿으라고 했다.
절벽이라곤 했지만 가파른 언덕 수준이라서 내려가려면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은데...
meee!
“알았어, 알았어.”
13 화
w. 도여은
“갈대밭 쪽이었지?”
메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되니까 나에게도 소리가 들렸다. 가는 미성의 포켓몬 소리였다. 어린
포켓몬인가?
나는 갈대를 헤치고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물에 가까워 져서 갈대를 헤치고 다가가니 물속으로 무언가가
도망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대들 때문에 잘 안 보여. 내가 갈대밭을 헤치고 나오니 저 바위틈에 기대고 있는 건
그물에 칭칭 감긴 미뇽이었다.
미뇽이 기대고 있는 바위틈은 다행히 건너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바위가 너무 험난하다는 거? 그래도 저 큰
바위에 엎드려 팔을 쭉 내리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천천히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메리프를 목마를 태우듯 머리 위로 올린 뒤, 넘어지지 않게 이쪽저쪽 잘 중심 잡으면서 바위를 하나하나 건넜다.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는데 미뇽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듯 으르렁댔다.
다행히 메리프의 도움으로 미뇽은 경계는 했지만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 눈초리를 의식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뒤쪽 바위 위로 올라가 엎드리니 손을 뻗으면 금방 잡힐 것 같았다. 문제는 이 녀석이 나를
믿느냐 라는 문제랄까?
웬 피카츄죠?
“아, 거기 미뇽...”
“피카츄.”
pikapi!
“너...?”
“이지은...?”
“어? 나를 알아..요?”
“오바람한테 들었어.”
“아. 응...?”
뭐라고...? 여기서 오바람이 왜...?
“이름이...?”
“한지우. 동갑.”
나는 벙쩠다. 혹시 레드..? 레드인가요?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직모에 조금 삐죽한 머리... 픽시브 레드와
흡사하게 잘생겼... 아니, 그것보다 한지우의 탈을 쓴 레드? 아니 반대인 건가. 아니, 이름만 한지우? 왜 이리
무뚝뚝이야. 그린이 있으니까 레드가 있는 게 당연한 건데, 한지우가 있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이제 됐어.”
“이상해씨.”
이상해씨는 바위 끝으로 가더니 밑을 내려다보고는 덩굴을 꺼냈다. 휘리릭 나온 덩굴은 미뇽을 조심히 감더니
천천히 들어 올렸다. 미뇽이라고 해도 길이가 2 미터가 가까이 되기 때문에 무거울 텐데, 그것도 그물까지
감겨있는 걸 이상해씨는 가볍게 들어 올렸다.
이상해씨가 들어 올린 미뇽의 상태는 멀리서 봤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자잘한 상처는 물론이고 바위에
찍혔는지 큰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그리고 그물도 꽤 꼬여있는 듯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한지우는 조심스럽게 이상해씨에게서 미뇽을 건네받았다. 미뇽은 생각보다 엄청 커 보여서 나는 놀랐다. 둥글게
말린 몸은 마치 뱀 같기도 했는데 굵기가 남자 허벅지만 한 게... 이거 애니로 본 그런 귀여운 미뇽만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말을 걸자 한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뒤적거리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멕가이버 칼?
“너 칼 들고 다녀?”
“됐다.”
그러고는 그는 옆으로 맨 가방에서 스프레이형 상처약 하나를 꺼내서 상처난 부분에 골고루 뿌렸다. 신기하게도
자잘한 상처들은 약이 닿자마자 눈에 띌 정도로 회복되는 모양을 보였다. 바위에 찍힌 상처는 상처약이 닿으니
심각했던 것이 조금 덜 심각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모양이었다. 포켓몬 한정으로 엄청난 하이테크를 가지고
있는 건가. 나는 갸웃했다. 다행히 미뇽도 많이 괜찮아진 모양이었고.
“왜?”
“미뇽이니까.”
음... 아무래도 역시 보호종인데다가 미뇽을 노리는 사람도 많기 때문일까. 그래도 저 녀석 태도가 껄끄럽기
그지없다. 레드인가. 레드인 건가.
mi~
다행히도 미뇽은 기운을 차렸는지, 고맙다는 듯이 한 번 울더니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 버렸다. 나는 물속에서
빼꼼 머리를 들어 이쪽을 쳐다보는 미뇽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지우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서야 따라 일어났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어색하게 그를 봤는데 그 애도 어색한지 코를 긁더니 그냥 돌아섰다. 그 녀석이
몇 마디 하자 피카츄가 쫑쫑 올라와 그의 어깨에 자리 잡았고, 이상해씨도 몬스터볼에 돌아왔다.
“그럼.”
“아, 어. 잘 가.”
“하...”
14 화
w. 도여은
“메리프 챙겼어?”
“응!”
부엌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주머니 속의 몬스터볼을 생각하며 엄마에게 대답한 후 신발을 신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는 중이고 내 앞에는 나를 마중해주는 모다피.
그런데 일단 자각하고 나니까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린을 오바람이라고 부르고 레드를 한지우라고 부르다니.
이건 모욕이다. 모욕이야...! 그린이야 스페그린을 제외하곤 성격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부각되진 않다고
하더라도, 역시 레드와 한지우개는 다르다고! 라고 진성 포덕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발걸음이 학교에 다다를수록 교복 입은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교문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포켓몬을
꺼내고 다니는 것은 상관없는지 여러 포켓몬이 학생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저기는 구구고, 저기는 꼬리선, 저기
꼬렛을 들고 가는 남자애도 있고. 여학생들은 삐삐 계열이 많은 것 같았다. 니드런 들고 가는 애도 보여. 음...
흔한 짧은치마 기믹인 건가? 어 단데기 들고 가는 남학생도 보인다. 반바지 꼬마들이 생각나는 건... 으음...
“일단 들어가야지?”
mee...
어지간히 들어가기 싫은 듯 했지만 내가 엄한 표정을 지으니 그제야 스스로 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교문으로
들어갔다. 교문 앞에는 학생 주임 선생님이 계셨는데 역시 그대로셨다. 학교 안은... 포켓몬이 없으니 그냥
학생들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있던 세계 같다, 라는 기분.
나는 쿡쿡 웃었다.
“자, 지금 다들 포켓몬 받았다고 신났지? 그래도 수업시간에 꺼내면 벌점이다. 쉬는 시간도 안되...지만
걸리지만 마라. 배틀도 안 되고. 알겠지?”
“배틀도 안 걸리기만 하면 되나요?”
“일단 1 교시는 입학식으로 대체하고 2 교시부터 정상 수업하니까 준비들 하고. 아, 오늘 자리는 그대로 앉고
나중에 바꾸든지 하자.”
정상수업 부분에서 학생들 입에서 야유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입학식인데 7 교시까지 꽉
채운다니 너무하다. 담임은 반장 했던 경험이 있는 애를 임시 반장으로 시키고 몇몇 남자애들을 지목해
뒤따라오라고 한 뒤 나가셨다. 포켓몬이 있는 세계라 고등학교도 뭔가 다를까 했더니 별반 다른 건 없는 것
같았다.
15 화
w. 도여은
입학식은 강당에서 이뤄졌지만 방송부나 악대부 등 몇몇 학생을 제외하곤 다들 반에 남아있어도 되었다. 물론 TV
로 입학식의 모습이 생중계되고 있었지만 모두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나도 옆자리에 잎새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했다. 푸린의 이름이 크림이라던가, 나는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거나. 뒷자리 여학생 하고도
인사하고 친해지는 등등.
그리고 막간을 이용해서 나는 담임이 나눠준 프린트를 살펴봤다. 시간표랑 특활부 관련 공지, 주의사항 같은 게
적혀있었다. 주의사항 쯤이야 별 것 없었는데 인상 깊은 건 포켓몬 치료기기가 양호실에 배치되어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발규정이 파마, 염색과 혐오스러운 머리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통과될 정도로 자유로운 것이었다. 뭐,
혐오스러운 머리가 뭘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어깨를 조금 넘는 단발까지였던
것 같은데... 나는 오늘 느낀 위화감 중에 하나를 이제야 알아챈 것이었다. 왠지 여자애들 머리도 길고 남자애들
왁스도 바른다더니. 나는 잎새를 갸웃거리며 살피다가 물었다.
“너 머리 자연 갈색인거야? 염색 아니고?”
잎새는 다갈색의 긴 머리를 가지고 있기에 물은 질문이었다. 내 물음에 잎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잎새는 눈을 크게 뜨고 제 눈동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어두운 갈색이긴 하지만 갈색이긴 갈색이라 학주가
의심할 만도 했다. 일단 길이도 허리까지 오는 듯하니 더 눈에 띄겠어.
“너 무슨 부서 들 거야?”
“어?”
“일단 2 학년 때부터야 들어갈 수 있는 부서가 있잖아. 나 이번에 포켓몬 관찰부에 들어가려구! 너도 같이
들어가자!”
“다른 부서는?”
“너 부서활동에 전혀 관심 없었구나? 전에는 무슨 부했었는데?”
“일단 포켓몬 관찰부는 야생의 포켓몬을 관찰하는 거야. 철 따라 이동하는 포켓몬이라던가 물가에 사는
포켓몬이라던가. 낚시부도 비슷한데, 걔네는 낚시만 하는 거.”
잎새는 내가 포켓몬 관찰부에 들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눈빛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유기 포켓몬이라...”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여기서 동물의 개념이 포켓몬이라면 당연히 유기포켓몬도 있을 법하지만... 그래도
진짜로 그런 것이 있다고 하니까,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뭘로 할건데?”
“으음... 글쎄. 이거 언제까지 정해야 하는 거지?”
“아마 일주일 내에 정해야할걸?”
.
.
.
내 예상은 적중했고 오늘 담임을 따라갔던 남자애들이 가져온 교과서를 받았을 때도 확연히 드러났다. 입학식이
끝나고 2 교시는 국어였고 3 교시는 영어였다. 국어시간에 첫날이라고 쉬자고 했지만 결국 교과서는 나가지 않고
시 하나를 공부했는데, 그게 김동명의 [뚜벅쵸]였다.
“지은아, 이것봐봐.”
내가 엄청 귀여운 무언가를 본다는 표정으로 푸린을 보고 있으니 잎새도 기분이 좋았는지 푸린과 한 번 마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푸린도 허락했는 듯 큰 눈을 감고 머리를 들이미는데... 그게 어찌나 귀여운지...!
나는 손을 뻗어서 푸린의 이마에 살며시 얹었다. 보들보들한 이마의 털이 눌리면서 손에 감겨드는 감각은 마치
마시멜로같았다. 내가 살짝 쓰다듬자 그 귀가 움찔움찔 움직이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감상을 입으로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귀여워어어...!”
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니 잎새도 그제야 제대로 봤는지 내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프가 지금 엄청나게 털을 부풀리고 있는 건 내 착각만은 아닌 듯했다. 지금 만지면 감전당한다고.
잎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은 주인을 닮는다는데 포켓몬도 그런가. 여기를 보고 있는
푸린과 잎새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모양새에 웃음이 났다. 내가 웃자 잎새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차 싶었는지
말을 꺼냈다.
“우리 밥먹자.”
내가 마침 점심시간에 밥을 누구랑 먹어야 하나 고민했던 참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려는데, 그 뒷말이 나왔다.
이놈의 학교는 왜 이리 1 학년에 제한이 많아? 세계가 바뀌면서 생긴 변화에 나는 어리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2
학년이라서 다행인 걸까...
“응? 그러자아. 나 돗자리도 가져왔다구. 대형 포켓몬 키우시는 선배들은 야외에서 먹는다고 그랬단 말이야.
메리프도 전룡으로 진화하면 교실에서 못 먹을 걸? 선배들 포켓몬 구경도 하구 그러자...!”
16 화
w. 도여은
“오늘 영어 수업에 Machop?이라고 있었잖아. 그거 무슨 뜻이야? 포켓몬인 것 같던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나라마다 부르는 포켓몬 이름이 다르니까. 하긴 좀 통일했으면 좋겠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포켓몬은 빨리 외워지지 않아?”
“하긴...”
“그게 포켓몬의 이름붙이는 방식이 좀 달라서 그런 것 같아. 우리나라는 포켓몬 울음소리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에?”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뚜벅쵸는 뚜벅~ 하고 울어서 뚜벅쵸가 된 거지! 몰랐어? 하긴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니까 잘
모르려나?”
“우리가 뚜벅뚜벅 걷는다고 할 때 그 뚜벅이 뚜벅쵸가 뚜벅뚜벅 울면서 걷는 모습에서 따온 말이잖아. 그래서
여러 말의 기원이 포켓몬에서 왔다고 하니까. 뭐, 울음소리에서 본 따서 이름을 만든 게 아닌 포켓몬도 있지만.”
.
.
.
햇볕이 따뜻해서 그런가. 밖은 그렇게 춥진 않았다. 잎새가 일학년 때부터 찜해놨다는 자리를 향해 가면서 나는
혹시 포켓몬들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두리번거렸지만 그렇게 많은 포켓몬들이 나와 있진 않았다. 역시 아직
겨울이라니까. 그러다가 삼학년으로 보이는 한 선배가 리자몽에게 푸드를 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와...!”
“그거 알아?”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처음보는 리자몽의 모습에 엄청나게 감탄하고 있는데, 잎새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뭘?”
“우리 학교 학생들 드래곤 타입 좋아하는 거.”
“엥? 왜?”
“지금 챔피언으로 있는 사람 우리 학교 출신이잖아...! 김목호라고 드래곤 타입 엄청 좋아하시니까!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지?”
잎새의 의심스럽다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멍멍한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김목호라고... 내가 아는 그 용덕후가 그 사람이 맞는 건가요.
“리자몽은 드래곤 타입은 아니지만, 역시 알그룹이 드래곤이라는서 그럴까나? 목호 선배도 키우고 있다고
들었거든...!”
“...웬 피카츄?”
“역시...”
저쪽에서 낯익은 두 인영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눈이 마주쳤다. 금방 이쪽으로 달려온 두 사람은
역시 한지우와 오바람. 나는 순간 도망칠까 생각했다가 트레이너는 등을 보일...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서
일어나 도망치면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그저 가만히 있었다. 피카츄는 귀를 쫑긋거리며 뒤를 돌아보더니 자기
주인임을 알아채고 피카, 하고 울었다.
“...이리와.”
피카츄는 여기로 뛰어왔던 것처럼 다시 쫑쫑 그에게로 뛰어가 품에 폭 안겼다. 그리고 피카츄가 한지우의 귀를
잡아당기더니 뭐라뭐라 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한쪽 귀로는 피카츄의 말을 듣는 한편, 내게 말을 건넸다.
“미안.”
말을 건냈다고 하기에도 매우 민망할 정도로 굉장히 짧게 느껴지는 사과였다. 아마, 피카츄가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한 사과인 듯. 그리고 미련 없이, 내가 괜찮다는 말도 하기 전에 뒤돌아 가버리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저거 말도 섞기 싫다는 거 아니야?
“아... 응.”
“나도 그땐 진짜 미안.”
“이젠 괜찮냐?”
오바람의 시선이 내 옆의 메리프로 향해있는 것에 나는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어색하고 민망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색한 공기에 명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한지우가 그러든 말든, 내가 그의 눈빛을 피하든 말든 잎새는 내가 한 단촐한 소개에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현재 한국 아니, 세계 포켓몬의 권위자이자 오래되긴 했지만 전 챔피언을 지내신 오용호
박사님의 손자, 라고 소문이 파다하던걸?”
17 화
w. 도여은
“무슨 소리야?”
“야, 일어나.”
“뭐. 너도 밖에서 먹자고 그랬잖아.”
“같이 먹을 수도 있지.”
“맞아, 같이 먹을 수도 있지.”
pikapikapi!
결국 한지우는 한숨과 함께 자리에 착석했다. 오바람은 그 모습을 웃으며, 아니 명백하게 비웃으며 도시락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리곤 아차 싶었는지 나한테 물었다.
“이브이잖아?”
mee~
“아, 맞다. 미안.”
메리프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오바람의 포켓몬을 구경하는 것을 그만두고 메리프의 푸드를 챙겨주었다.
옆에 한지우도 이상해씨를 볼에서 꺼내 푸드를 챙겨주고 있었고. 나는 물론이고 잎새도 포켓몬이 하나였지만
한지우와 오바람은 각각 포켓몬이 2 마리, 3 마리이니 자리가 꽉 차 버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피카츄, 이브이, 이상해씨, 푸린, 메리프, 구구, 꼬렛의 모습을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 이 기분...
역시 포켓몬은 사랑이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우리 메리프가 젤 귀여운 것 같아. 라며 나는
푸드를 담은 도시락통에 코를 박고 있는 메리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리고 나도 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드는데, 나를 계속 보고 있었는지 한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잠시 꿰뚫어보기를 당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기분이 나쁘려는데 이번에는 오바람하고 눈이 마주쳤다.
잎새하고 얘기하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잎새는 푸린의 푸드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래도 한지우가 쳐다본 것과는
다른 눈빛이어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저 난 왜 쳐다봐? 하고 오바람을 보았을 뿐.
“메리프한테?”
혹시 저 꼬렛...
설마. 나는 속으로 하하 웃었다. 아무래도 한지우라고 하지만 픽시브 레드같이 생긴 저 녀석이나 이브이를 들고
있고 구구와 꼬렛을 들고 있는 오바람이나, 마치 게임 속에 레드와 그린 같잖아. 그리고 포켓몬스터 피카츄
버전에서 레드는 피카츄를 받고 그 다음에 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를 받는 걸 생각하면... 하... 나는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잎새는... 아, 나는 순간 당황했다.
“잎새야. 너...”
“응?”
리프니...? 한 자리에 두니까 알 것 같았다. 진한 갈색의 머리카락에 앞머리는 반으로 나눠져있고 허리까지
길게 내려는 머리에 예쁜 외모... 그러니까... 뭔가 배신감이 들기도 하고, 아니 진짜 이거 그런 거야? 게임에
의해서 이렇게 진행이 되고 있는 거냐고. 마치 적녹에서 풀숲에 발을 들이면 아무리 뒤져도 안 나오던 오박사가
튀어나와 납치해가는 것처럼... 그런 건가? 그런 거냐고...
숨이 막혔다.
“왜?”
전에도 봤지만 저 녀석은 한지우의 이름을 가진 레드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레드라는 이름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려나. 그래서 디폴트 네임이 한지우가 돼서 나타난 거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냉랭하고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도 않고, 오바람이랑 꼭 붙어 다니는 게 딱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쿨시크 레드라는 거냐, 라고 생각했달까? 하지만 그것도 아닌지 한지우는 어느새 밥을 다 먹었는지
도시락을 챙기더니 이상해씨를 볼에 넣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왜 또? 라는 표정으로 그를 보자
그는 그제야 말을 떼었다. 나지막하면서도 경계심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너 이상하다고.”
pikapi!
피카츄가 펄쩍 뛰면서 한지우의 말을 막으려고 하는데, 한지우는 피카츄 머리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한지우를 쫓아갈 생각인지 급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남겨진 피카츄는 가버린 한지우 들으라는 듯
피카피카 소리쳤다. 그러면서 나한테 다가와 미안하다며 피카 울었다. 나쁜 뜻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그렇게 내가 엉거주춤 대답하니 오바람이 한지우가 간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피카츄도 한지우를 쫒으러
가려는데 나는 잠깐 피카츄를 불렀다. 피카츄가 물음표를 띄우며 나를 돌아봤다.
“자.”
웃고 말았다.
18 화
w. 도여은
“왜 같이 먹자고 한 거야?”
나는 사과를 푸린에게 하나 쥐어주고 잎새에게 권하면서 말했다. 옆에서 메리프가 메에 거리기에 메리프에게는
챙겨온 고추 하나를 물려줬다. 매운맛이 그렇게 좋은지 사과보다 고추를 더 좋아하는 게... 내가 고추를 들고
있으면 무슨 빼빼로 먹듯이 맛있게 와삭와삭 먹는다.
“음? 뭐 말이야?”
“오바람하고 한지우한테 말이야. 점심.”
“잘 생겼잖아?”
“에?”
사실 오바람하고 한지우가 좀 잘생긴 편이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준연예인 급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리지널 설정에서도, 아니 픽시브 레드는 일단 잘생겼으니까 라고 생각하며 내가 어벙한 표정을 짓자 잎새가
농담이라면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너희가 너무 답답하게, 미안하느니 어쩌니 하니까 그랬지. 그대로 보내면 말도 안 할 것 같았는걸?”
정곡이었다. 나는 사실 오바람이 이 학교에 있을지 생각지도 못하긴 했지만... 만약에 잎새가 같이 밥 먹자고
안했으면 정말 한 학기 내내 그 녀석을 피해 다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첫 만남이 민망하기도 했고.
나는 푸후흐 웃어버렸다. 맞아, 사실 포켓몬들이 아무리 그렇다고 했도 그렇게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어떻게
이렇게 차원을 넘어갈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만약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거야.
나도 잎새도 도시락을 챙겼다. 손이 시려워 라고 혼잣말하자 잎새가 내일은 안에서 먹을까? 라고 묻기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너 뭐 아는 거 있어? 메리프?”
“응응. 그런 것 같아.”
“그런데 반면에 한지우라는 애는 정말 차갑던데? 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던데 너한테 그런 소리를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니, 스스로도 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려나.
잎새는 자기가 그런 소리를 들은 양 기분 나쁘다는 투였다. 내가 뭐라고 변호할 양으로 입을 뻥긋거렸다가 별로
할 말이 없어서 다시 닫았다. 내가 아는 레드는 게임 속 혹은 2 차 창작 속의 레드이지 이 한지우라는 녀석은
아닐 테니까.
.
.
.
애들의 물음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아버지 일 때문에 얼굴만 아는 거라고 둘러댔다. 오바람 인기 많은 걸?
확실히 집안 좋고 머리 좋고 잘생겼기도 하고. 완전 엄친아구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학 온 첫날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고 있는 걸 보면.
6 반이랑 체육시간이 겹친다더라 얘기를 들었을 땐 별로 생각지 못했는데 이제야 쟤네가 6 반임을 알았다. 6 반이
물생지였던가 화생지였던가... 아니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건가? 나는 잎새를 툭 치며 너도 알았는지
물었지만 잎새는 자기도 보고 나서야 생각났었다며 웃어 보였다.
나는 따라 웃었다.
“그럼 너도 잘 알겠네?”
“음... 어느정도는?”
한 남자애가 한 물음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그 이유로 빠지려는 듯. 하지만 선생님의 열외 없다, 안고
뛰어라는 말에 전체가 웃음바다가 됐다.
단데기는 물론이요, 캐터피를 가진 아이들까지 울상이었다. 더불어 뿔충이 딱충이들도. 그래도 그렇지 3~10
키로는 되는 애들을 들고뛰라니... 하지만 여러 아이들이 들고뛰더라. 나는 뛰기 시작하면서 옆에서 같이 달리는
메리프를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들고 달리라고 하면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이 세계로 온 다음 느껴진 변화이긴 했지만 말이야. 나 체력이 엄청 좋아졌음을 느꼈으니까.
19 화
w. 도여은
그리고 날개를 파라락 떨면서 날고있는 독침붕도 보이고. 노말로는 삐삐에 블루, 잎새의 푸린, 그리고 구구.
대체로 구구가 젤 많았던 것 같다. 풀 포켓몬들도 몇 보였는데 모다피나 뚜벅초 통통코 등이었다. 물 포켓몬도
크랩이나 셀러, 발챙이가 보였던 것에 비하면...
체육 선생님은 간단하게 타입별 상성이라거나 특징은 일학년 때 배웠으니까 다루지 않고 이제 2 학년이 되었기도
하고 포켓몬들도 하나씩 가졌으니 실전을 배울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 음... 나는 일학년 때 배우진 않았지만.
진성 포덕은 역시 그런 것쯤 다 외우고 있다는 말씀...!
그래도 배틀은... 좀 걱정이 되긴 했다. 수업의 일환으로 포켓몬을 배틀시키는 것이지만 야생 포켓몬도
잡아보지 못한 내가 배틀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실제로 살아있는 생물을 가지고 싸움을
붙인다는 게 정말 옳은 일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애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여기는 그런 것이 당연할 테니까. 나는 메리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켓몬들은 기본적으로 호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강함을 겨루는 것을 포켓몬들은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야생의 포켓몬들이 배틀을 걸고 잡히는 건 그들의 생존 방식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 옛날에는
포켓몬과 인간이 같이 살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서로의 생존을 위협해 왔었고. 하지만 인간의
무리에 포켓몬들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마치 인간이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듯 포켓몬을 길들여 같이
살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건 인간과 포켓몬이 서로 공존하며 적응한 결과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정말일까. 내 말에 메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포켓몬들은 모르겠지만 자기는 싸우고 싶다고
강해지고 싶다고. 진화하는 모습을 꿈꾼다고. 아빠는 말했다. 마치 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포켓몬들은 진화하고 싶어 한다고. 자연의 섭리이고 포켓몬의 본능이라고. 강해지면 진화하게 되는 포켓몬들이
강함을 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걸지도 몰라, 라고 아빠는 말했다.
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메리프의 앞발을 잡고 이리저리 장난치기도 하고, 흙바닥에 장난도 치고
있다 보니 체육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체육 선생님은 학생들이 운동장 바닥에 앉아 있듯이 내 앞에 털썩 앉으셨다.
그러고 보니 나 혼자니까 완전 일대일 면담이잖아.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이름이... 이지은이지?”
“일단 몸통박치기랑 울음소리 정도는 잘하는 것 같고 전기자석파는 얼마 전에 잘하게 됐어요. 전기를 다루는 건
이제 혼자 잘하구요 전기쇼크까지는 한 80 퍼센트 정도 맞추는 것 같아요.”
“이야, 벌써? 따로 훈련을 시켰어?”
“벌써 기술을 익히고 하는 건 좋은 일이지. 이 녀석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훈련은 어떻게 시켰어?”
“음... 처음에는 고무공을 던지면 물어오는 정도로 했구요. 나무에 몸통박치기 연습이라거나 바위에 전기자석파
연습이랑 전기 강도 조절하는 연습을 좀 했고... 최근에는 던진 고무공을 공중에서 전기로 맞춰서 떨어뜨리는
연습 정도랄까요.”
나는 몰랐던 사실에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프가 메? 하며 모르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자 선생님은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배지라는 건 체육관에서 짐리더라는 사람의 포켓몬과 배틀해서 이기면 주는 것이란다. 음... 어려우려나?”
메리프가 반쯤은 알아들었는지 고심하는 표정을 하자 체육 선생님도 말을 골랐다. 마치 애기를 대하는 아빠 같은
표정이야. 나는 좀 웃음을 참았다.
“그러니까... 포켓몬과 그 트레이너가 강하다는 의미로 주는 거야. 강하면 강할수록 많은 배지를 가지게
되지.”
“아버지가 트레이너셨어?”
나는 배지전이 가산점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는 몰랐던지라 고개만 끄덕였다.
20 화
w. 도여은
야생 포켓몬을 만났을 때의 행동 수칙
1. 포켓몬을 앞세우고 트레이너는 뒤로 빠진다.
2. 야생 포켓몬을 함부로 자극하지 않는다.
3. 강한 포켓몬으로 생각되면 될 수 있는 한 도망친다.
“이 세 가지 정도만 지키면 어느 정도 괜찮을 거야. 트레이너를 직접 공격하는 야생 포켓몬들은 거의 없거든.
빨리 진화하고 싶어 싸움을 거는 포켓몬이라거나 트레이너를 찾는 포켓몬이거나, 아니면 더 강한 상대를 만나고
싶은 포켓몬이 트레이너에게 싸움을 걸기 마련이야.”
“아니, 트레이너의 역량만 있으면 이론적으로 캐터피로도 챔피언을 잡을 수도 있어. 그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일단 트레이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필요가 있어. 트레이너가
감정은 그 포켓몬에게 그대로 전달돼. 트레이너가 흥분하면 흥분할수록 포켓몬들도 자제력을 잃기 쉬워.”
mee~ mee~
옆에서 메리프가 배틀~ 배틀~ 하면서 신이 났다. 나는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녀석을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아빠가 메리프에게 물었다. 메리프는 주저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니, 아니, 문제없어! 하며 큰소리를
쳤다.
“앗.”
meee!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사이, 니드런이 달려들어 메리프의 목덜미를 할퀴었다. 메리프는 그 충격에
뒤로 밀려났다. 메리프의 목 주변 털이 뜯겨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놀라 소리치며 메리프에게 향하려는 걸
아빠가 잡아 말렸다.
“빨리, 명령.”
“이때야!”
내 소리에 메리프는 안면을 싹 바꾸더니 니드런에게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몸통박치기 직격. 밀려나는
니드런을 보면서 나는 니드런이 마비에 걸렸음을 알았다. 굼뜬 행동에 나는 바로 지시했다.
메리프는 바로 니드런에게 달려들어서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곤 꼬리에서 미약하게 빛이 나면서 전기가 파르륵
튀었다. 괴로운지 몸부림치는 니드런 때문에 메리프가 도중에 떨어져 밀려났다.
meee~
그래도 전기가 잘 먹혔는지 니드런은 비척비척 되었다. 메리프도 기분은 좋은 듯. 메리프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려는데 아빠가 내 팔을 잡았다. 내가 아빠를 쳐다보니 아빠는 내게 몬스터볼을 손에 쥐어줬다.
“에? 잡으라고?”
“응.”
아빠는 가볍게 생각하라며 내 등을 밀었다.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게 이상한지 메리프가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나는 연습일 뿐이야, 라며 몬스터볼을 던졌는데,
“앗.”
“메리프...”
던진 몬스터볼을 메리프가 꼬리로 쳐낸 것이다. 그리고 제멋대로 빈사 직전인 니드런에게 몸통박치기를 날렸다.
결국 니드런은 까무룩 정신을 잃어버렸다. 메리프는 뒤돌아 나를 보았다. 어떻게 다른 포켓몬을 잡을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라고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화가 난 표정 같기도 했고 슬퍼하는 표정 같기도 했다. 아니,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지만 쉬이, 하는 소리를 내며 메리프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살펴보니 메리프 눈가가
보랏빛을 도는 게 독에 걸린 것 같았다.
메리프는 단호하게 싫어, 미워 라고 외쳤다. 나는 아빠를 바라봤다. 얘 왜 이러는 걸까? 아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서 하라는 듯. 한 발 뒤로 물러나는 걸 보고 나는 아빠를 짜게 쳐다봤다. 아빠 배신.
내가 조금씩 다가가면서 설득하자 메리프의 털의 부피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털이 일상의 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메리프를 안아 들었다. 메리프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가까이 다가온 아빠에게 해독제를 받아 메리프의 입안에 밀어 넣었다. 메리프는 약을 삼키면서도
엉엉 울었다.
메리프는 저 말만 반복했다. 그 사이에 버리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왠지,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그날이 떠올라버렸다. 메리프는 사실 알이었을 때도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메리프를 꼭 안아버리고 말았다. 차마 나 어디 안 간다고 말은 못 하고.
21 화
w. 도여은
피카츄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바람의 품에서 빠져나와 어깨를 타고 올라가더니 그 머리 위까지 올라와 서있는
한지우와 대충 눈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라고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 내가 잎새를 쳐다보며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고 속삭이자 잎새도
나도 잘 모르겠는데? 하며 나를 보았다. 그에 반해 오바람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막고 큭큭 거리고 있었고.
한지우는 점점 고개가 숙여지더니 마침내는 피카츄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pikapi!
피카츄가 나를 가리켰다. 내가 놀라서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피카츄를 보다가 한지우를 보니 한지우가
고개를 팩 돌렸다. 그에 또 피카츄가 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내가 이게 무어냐고 말을 하려는데
한지우가 뭐라고 우물거렸다.
“...안.”
“...뭐?”
“미.안.”
“뭐... 뭐야?”
어느새 오바람의 머리 위에서 내려온 피카츄가 내 앞으로 폴짝폴짝 뛰어왔다. 그리고는 조그만 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는데, 마치 나만 믿어라는 표정이었다. 귀여워, 라고 생각하며 내가 손을 내미니 피카츄가 만져도 된다는
듯이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손바닥에 닿는 짧은 털은 보들보들하고 따끈따끈했다.
pikapika!
“우아....”
“아니, 그게 아니라...”
.
.
.
포켓몬 게임 내에서는 하나의 룰이 있는데 그건 트레이너끼리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배틀!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포켓몬을 꺼내고 그 포켓몬과 트레이너의 재량으로 서로의 강함을 겨루는 그런 것. 지금 내가 닥쳐있는 상황이다.
나는 저런 눈동자를 모른다.
저렇게 쓰러뜨리겠다는 투지를 가진 눈빛, 그러니까 너와 나.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비는 그런 싸움. 그러니까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마주보고 있는 트레이너는 같은 반 남자애이다. 그 애도 장난인 눈빛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나도 진지하게 임해야겠지.
체육 선생님이 확인하듯이 말씀하셨다. 지금은 체육시간이니까. 아니, 체육시간에 포켓몬 배틀을 한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원래 여기는 그런 세계니까 하고 납득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야.
해너츠는 풀타입. 메리프는 전기 타입으로 상성 상 메리프의 전기 공격은 반감이다. 하지만 해너츠는 그렇게
종족값이 좋지 않아. 레벨 차이가 있다고 해도 메리프가 조금은 낫다. 해너츠의 특성은 뭐였더라. 일단 잘
모르겠지만 햇빛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던 것 같다. 오늘의 햇볕은 별로 강하지 않아. 날씨도 차가우니까.
여름이면 몰라도 지금은.
“해너츠. 풀피리.”
“안 돼, 메리프 몸통박치기로 저지해!”
해너츠의 풀피리소리에 달리던 메리프는 잠들어버렸고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지 못해 앞으로 뒹굴어 결국 해너츠를
깔아뭉개긴 했다. 대미지는 적었겠지만. 중요한 건...
“메리프! 일어나!”
메리프(은)는 잠들었다.
22 화
w. 도여은
메리프(은)는 눈을 떴다.
메리프가 전기를 모으는 동안 메리프의 도톰한 털에 씨앗이 박혔다. 그와 동시에 전기 그물이 해너츠를 덮었다.
지금 메리프는 체력이 반쯤 떨어졌을 거야. 성장을 한다고 메가드레인 시간이 좀 짧았지만 효과는 컸어. 스피드가
더 빠른 걸로 보면 레벨이 더 높다는 증거고. 지금 해너츠는 체력이 만빵이다. 그래도 마비에 걸렸으니 스피드가
떨어지고 25%의 확률로 움직이지 못해. 그러니까,
바로 코앞에서 메가드레인을 시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통박치기는 바로 적중했다. 그리고 밀려난 해너츠 위로
까만 그림자가 드리었다.
“해너츠, 피해!”
나는 숨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해너츠 개체치가 낮아서 다행이다 진짜. 그래도 전기는 반감이라
쓰기가 좀 그랬어. 마비 아니었으면 아이언테일 안 들어갔을 텐데 그것도 다행이고. 아니 진짜 그때 잠에서 안
깼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저기 해너츠는 땅 속에 박혀서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성장의 효과가 끝나는 듯 원래의 축구공 사이즈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옆에 메리프도 반쯤 뻗어서 헥헥거리고 있었고. 남자애는 하핫 웃으면서 져버렸네, 하고
중얼거렸다.
“우리도 빨리 가자.”
.
.
.
나랑 잎새는 양호실로 향하면서 얘기했다. 한지우가 사과하고 도망친 그날 이후로 피카츄는 점심시간마다
찾아오면서 메리프에게 아이언테일도 알려주고 전기 기술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알려주는 것 같았다. 지금 전기
쇼크에 누전의 양이 줄어든 것도 다 피카츄 덕분일 테니까.
잎새가 하는 말에 내가 웃고 말았다.
잎새의 말에 나는 좀 기분이 이상했다. 포켓몬은 튼튼하니까, 라... 만약에 쓰러진 게 해너츠가 아니라
메리프라면 어땠을까. 눈앞이 깜깜해지려나...
“그런데 아깝다.”
“에...? 돈?”
“체육 시간의 배틀에서는 돈을 안 거니까. 만약 이겼으면 3000 원은 받았을 거 아냐.”
“...와아.”
내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자 옆에서 잎새가 날 놀리듯 쳐다봤다. 내가 뭐, 뭐! 하니까 아니야,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게... 마치 그거 동생 보듯 이잖아..!
“이게 끝이에요...?”
내가 몬스터볼에서 메리프를 꺼냈다. 메리프는 땅에 닿자마자 팔짝팔짝 뛰면서 자신의 몸이 신기한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내가 몸을 숙여 메리프를 향하자 메리프는 자연스럽게 내 품으로 안겼다.
“이거... 만능인거에요?”
23 화
w. 도여은
“크흠. 일단 외상이 심한 경우에는 기기를 사용할 수 없어. 그러니까 대체로 포켓몬 센터로 옮겨지게 되지.
예를 들어 뼈가 부러졌다거나 내상이 심하다거나 라는 것들. 하지만 가벼운 상처나 체력이 떨어진 것이나 그런 건
간단한 기기로 회복이 가능하단다. 아, 물론 상태이상인 독이나 마비도 마찬가지고 가벼운 화상 동상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화상 동상이 심하다거나 독도 맹독일 경우에는 센터로 가서 치료받아야 해요. 알겠니?”
양호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옆에서 잎새가 한숨을 푹 쉬며 내게 귓속말로 이거
일학년 체육 시간에 다 배웠었잖아, 라고 말했다. 내가 민망해서 잎새를 보자, 다 잊은 거야? 하며 잎새는 웃어
보였다.
“상냥하네.”
나는 사실 무서운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프가 다치게 되면 어떡하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틀을 했던 걸 후회해야 할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것도 나 때문에 이 작은 녀석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옆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이 작은 아이가 다치지 않기를. 하지만...
mee!
괜찮아! 라고 말하는 이 녀석은 나보다 더 용기 있고 대담하고 강해. 나는 겁쟁이야.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도망치지 못해. 만약 내가 진짜 이 세계를 떠나고 싶었으면 이 아이를 받았으면 안 됐다. 계속 밀어내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잎새도 한지우도 오바람도 모두 밀어냈어야지. 하지만...
.
.
.
“3 월인데도 불구하고 그 해너츠 익힌 기술이 많았어. 전기는 풀에 반감이었고. 그래서 꽤 고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 아이 짐전도 생각하고 있었거든.”
“에... 그런데요?”
나는 좀 부담스러웠다. 별로 잘한 것도 없고 겨우 이긴 건데.
“그렇지 않아?”
체육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해하는 잎새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고 나는 동의를 구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잎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반문했다.
“그게 뭐?”
“아니, 그게 뭐냐니. 마치 학생을 상품 대하 듯하잖아. 기분 안 나빠?”
“왜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끄덕
“사립고등학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명문고가 되어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훌륭하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하지. 그런 의미에서 대외활동 같은 건 대내 활동에 비해 공인력이 있으니까 더더욱.”
“그런데?”
“그러니까 선생은 학교를 더 키우기 위해 학생을 이용하는 거고, 또 학생은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학교의 지원을 이용하는 거고.”
“그래도 뭔가 그건 너무 팍팍하지 않아?”
“그래.”
하면서 잎새는 후다닥 사물함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에서 거짓말이라는 걸 느꼈다. 잎새는 푸린을
좋아하니까. 포켓몬에게 해가 되는 일은 못할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
.
.
일주일 정도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 포켓몬 월드의 고등학교에 대해서 조금 적응하고 있었다. 7 교시가
마치면 나는 메리프와 같이 공원으로 가서 이것저것 연습을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한 일곱 시
정도가 되는데, 집에서 간단하게 씻고 저녁을 먹고, 공부를 시작한다.
meee~
난 돌아갈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고민은 과연 내가 메리프를 이대로 키워도 될까, 라는 생각으로 또 그 생각은
이 포켓몬 배틀이라는 것에 대해 흘러가고 그것은 또 체육관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오늘 체육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러면서도 같았다. 잎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래, 학교의 위신만 생각하고 자기 안위를 챙기는, 그리고
학생의 진로보다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선생들. 체육관전의 배지는 트레이너의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가산점에 불과하다.
24 화
w. 도여은
“후아...”
“망했어...”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OMR 카드를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아니, 카드를 다 걷고
선생님이 나가자 반은 금세 웅성웅성해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진짜 내가 살던 곳과 다를 것 없는 고등학교인데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책상에 엎어졌다. 다른 애들하고 답 맞춰보고 싶지 않아. 아니, 그럴 기운도 없다. 곧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답지를 나눠줄 텐데 뭐. 그런데 잎새는 또 생각이 다른 듯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잠깐이었지만. 곧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답지와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를 나누어 주셨다. 작은 종이에는
표가 하나 그려져 있는데 한 줄에는 과목명이 그 옆줄에는 빈칸이 적혀있는, 그리고 그 표 위에 3 월 모의고사
가채점이라고 적혀있다. 한숨이 나온다.
나는 반쯤 엎드려 가채점 점수를 적고는 어질러진 시험지를 정리해 번호순으로 앉았던 자리가 아닌 내 자리로
돌아갔다. 어디 갔다가 돌아온 듯 잎새가 쳐져있는 내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왜? 망했어...?”
“으엉. 망했어.”
“에이 망했으면 얼마나 망했다고 그래.”
“아, 진짜 망했어.”
나는 찢을 듯이 시험지를 구겼다가 다시 착착 폈다. 수리나 외국어는 그럭저럭 유지했는데, 언어에서 팍
떨어졌다. 아니, 비문학까지는 괜찮았는데... 문학에서 포켓몬들이 엄청 나왔다고...! 아니 시에 동식물이
나왔던 것이 포켓몬으로 바뀌는 것 까지는 어느 정도 괜찮겠는데 아니, 소설에 포켓몬이 나오는 건... 아무래도
읽었던 소설들이나 줄거리 봐놨던 소설들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나는 그저 가채점 점수를 제출하려 일어나 교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오려는데 어떤 여학생 무리가
들어오면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아?”
“글쎄~”
잎새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는 무슨 심각한 얘기를 한다는 듯 내게 바짝 붙더니 소곤소곤 말했다.
“그 녀석들 요주의 인물이라고.”
“...왜?”
“그야 잘생겼으니까?”
“뭐야, 또 농담이야?”
“에이 농담까지야. 잘생기긴 했잖아?”
잎새는 쯧쯧 하면서,
“여.자.의.감?”
“에...?”
“뭐랄까, 오바람이 엄청 뛰어나서 가려져 있지만 말이지. 한지우 그 녀석을 보니까 은근 뭔가 있단 말이야.”
“쨌든 그래서?”
내 말에 잎새가 깔깔 웃었다.
“너 뭐 좀 아는구나?”
분명 날 놀려먹은 게 분명했다. 내가 잎새를 째려보자 잎새는 웃느라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닦았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자 잎새는 말을 이었다.
“연구소에서 지원받는 트레이너라고. 몰라? 연구소에서 연구를 위해서 트레이너를 지원하곤 하잖아. 그런데
한지우가 포켓몬 받은 지도 얼마 안 된 녀석이 연구소 지원받는 트레이너라는 거지.”
“아? 그거?”
“비.밀.”
25 화
w. 도여은
“야자를 하는 게 좋으려나.”
두 가지 같겠지만 사실 그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전략인 것이겠지. 일단 8 배지를 딴 뒤 리그에 진출하면 리그자
전형으로 아주 쉽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일단 리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또 포켓몬
트레이너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트레이너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포켓몬
트레이너라는 것이 한 가지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에게 포켓몬 배틀이라는 것은 정말 최고의
스포츠니까. 그리고 리그라는 것은 일 년에 한 번뿐인 아주 커다란 대회이다.
배지를 3 개만 따는 방법도 있다. 배지가 가산점으로 인정되는 것은 3 개부터. 그것에서 하나씩 늘수록 가산점은
더 높게 책정된다. 그래서 3 배지전이 1, 2 배지전보다는 더 까다롭게 시합하게 되는 것이고. 대체로 이런
전략을 택하는 경우는 내신을 신경 쓰면서 2 년 동안 여유롭게 3 배지를 딴 뒤 수시로 가는 전략, 혹은 3 배지를
빨리 딴 뒤 수능에 올인해서 가산점을 업고 정시로 가는 두 경우로 나뉜다. 이런 방법은 은근 배틀에 자신감이
붙으면 조금 더 노력해서 배지를 하나씩만 더 따도 가산점이 계속 올라가니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3 배지를
아예 따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포켓몬 배틀을 좀 할 줄 알아야 하는 편이다.
배지를 따지 않고 공부에만 올인하는 경우도 많다. 일단 이 경우에는 가산점을 받을 수 없으나 남들이 포켓몬
훈련할 동안 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포켓몬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여유가 있게
된다. 특히 3 배지를 따려고 했으나 실패한 경우의 아이들보다는 더 앞서 나갈 수 있으니 그것도 하나의 강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아예 갈 수 없는 학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틀학과라든가 생물학과라든가
수의예과라든가 체육교육과라든가 등등... 대학마다 다르긴 하지만 배지가 없으면 내지도 못하는 과가 생긴다는
것. 그래도 그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과 즉 국문과와 같은 문과계열이라거나 경영학과,
경제학과라든가 공과대학이라거나 대부분의 학과는 그러한 제한이 없다. 가산점은 받아도.
그래서 문제이다.
mee
“왔어?”
아빠 목소리였다.
“아빠? 벌써 왔어?”
아빤 원래 주말에 집에 오기는 했지만 토요일 아침에야 왔지 금요일 저녁에 오지는 않았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서 프린트 뭉치를 보고 계셨다. 이것저것 자잘한 포스트잇 같은 게 붙어있는 게, 연구자료인가?
“3 월 모의고사 쳤다며?”
라고 물어본다.
“음... 사실 담임 선생님도 부모님하고 상의하고 오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음... 생각을 해봤는데.”
“해봤는데?”
나는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그러면 뭐가 그렇게 고민인 거야? 일단 생물학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배지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잖아.”
“그렇긴 하지만...”
“나 배틀이 싫은 건 아니야. 그리고 메리프도 그렇게 좋아하고, 강해지고 싶어 하고. 하지만 말이야. 짐전은
조금 다른 것 같아.”
“그러니까, 왠지 내 자신만을 위해서 배지를 따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다른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왠지 이 녀석을 내 사사로운 이익을, 가산점을 위해서 이용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게 좀 신경쓰여.”
“아니, 오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그렇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간다고 했던 말 말이야. 이제야
그게 이해가 가네.”
“짐전은 원래부터 가산점을 위한 건 아니었어. 정상을 추구하는 트레이너들이 리그전에 나가기 전 체육관에서
훈련하던 것이 유래가 되었지. 그때는 배지 없이도 리그를 나갈 수 있게 돼 있었거든. 아, 그러니까 아빠가
어렸을 때 말이야.”
품 안에서 메리프가 짐전, 나도, 좋아!를 반복해서 울어댔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끝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메리프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물었다. 괜찮겠어? 메리프는 당당히
대답했다. 응, 당연하지!
26 화
w. 도여은
[잎새] 그럼지금기차타고
[잎새] 가는거야??
[ㅇㅈㅇ] 엉엉
[ㅇㅈㅇ] 이제 한 사십분
[ㅇㅈㅇ] 정도면 도착할듯
[잎새] 생각보다
[잎새] 별로
[잎새] 안머네
[ㅇㅈㅇ] 그러게
[ㅇㅈㅇ] 나도 찿아보면서 놀랐어ㅋㅋㅋ
[잎새] 그래도강원도인데
[잎새] 학기중엔
[잎새] 별로안하지안아???
[잎새] 짐전??
[ㅇㅈㅇ] 그게;;;; 아빠때매
스토리 깨느라 바빴기 때문에 지나가듯 보았던 게임 속 체육관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이 세계에서는 체육관을 국가에서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국립대학교에서 하나씩 체육관을 맡고 있었다. 본래는
사적 체육관이 있었고 지금도 있는 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정이 되는 건 국립대 체육관에서 발급되는
배지들뿐이라고 하더라. 리그전에 출전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 내가 가는 곳은 강원도 춘천의 강원대.
황웅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짐리더로 있는 곳이다.
[잎새] 근데
[잎새] 강원대는바위타이
[잎새] 이자나
[ㅇㅈㅇ] ㅇㅇ
[잎새] 반이땅타이ㅂ이던데
[잎새] 갠찬겠어???
[ㅇㅈㅇ] ;;;;;[ㅇㅈㅇ] 그래서 아빠가
[ㅇㅈㅇ] 나고생좀하라고
[ㅇㅈㅇ] 여기로 신청한듯....
[잎새] 아...아버지가???
[ㅇㅈㅇ] ㅇㅇㅇㅇ...ㄸㄹㄹㅠㅠㅠㅠ
[잎새] ㅠㅠㅠㅠㅠㅠ
[ㅇㅈㅇ] ㅎ....
[잎새] 그건그러고
[잎새] 대다나다
[잎새] 벌써배지전이라니
[ㅇㅈㅇ] 엥ㅋㅋ 아직 따지도
[ㅇㅈㅇ] 안았는데
[잎새] ㅋㅋㅋㅋㅋㅋ그래돜ㅋㅋㅋ
[잎새] 떨리겠담ㅎㅎㅎㅎ
[ㅇㅈㅇ] ㅇㅇ... 좀떨려ㅎㄷㄷ
[잎새] 쨌든
[잎새] 힘내공
[잎새] 잘갓다오공
[ㅇㅈㅇ] 옹옹 그램~
[잎새] 파이팅!!!
[ㅇㅈㅇ] !!!!
[잎새] 갔다오ㅏ서얘기도
[잎새] 해조
[ㅇㅈㅇ] 엉엉 나중에 톡할게ㅎ
나는 그리곤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여전히 바깥은 나무들이 쌩쌩 지나가고 있었고 어느 부분은 여전히 눈이
남아있었다. 그 모습에 내리면 추울 것 같으면서도 지금 기차 안의 따뜻함에 바깥의 차가움이 허상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차가운 창문을 살짝 손으로 만져보는데, 따끈따끈 무릎을 데워주고 있는 메리프는 눈을
감은채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꼬리를 살짝씩 떨고 있었다.
언젠가 이 아이가 진화를 한다면 엄청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아니, 그 때가 되면 다르려나. 지금은 한
번도 진화라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일지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소형 포켓몬인 것이 좋은 것 같다. 아빠가
가디를 진화시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이려나. 기차도 같이 탈 수 있고. 아, 대형 포켓몬이 되었을 때도 자리
하나만 더 사면 상관없긴 하지만. 속으로 내 옆자리에 앉아있을 전룡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내가 못살아..."
휴으...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고 저쪽에서 오고 있는 버스를 탔다. 버스카드 꺼내다가 메리프를 떨어뜨릴
뻔한 것만 빼면 괜찮았다. 하하. 그때 메리프가 잠을 확 깼다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27 화
w. 도여은
하지만 그래도 진짜로 학교 때려치우고 진짜 게임처럼 모험을 다니고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으면 응... 진짜 적응 못했을지도.
그리고 비수기라 그 다음날 이렇게 오게 된 것도 그렇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강원대 교정을 걸었다.
메리프도 나와 같이 발을 맞추었다. 겨울이라 줄지어 서 있는 수목들이 황량해 보이긴 했으나 그런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대학이 많은 서울에서 자랐지만 실제로 진짜 대학에 들어와 본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다. 기분이.
그리고 데스크 옆으로는 커다란 문이 하나 있었다. 게임처럼 보이는 트릭 같은 걸 기대했는데 안으로 들어가야
하려나... 생각보다는 마치 잘 꾸며놓은 병원이라던가 회사 로비라던가 박물관 로비라던가... 그런 곳을
연상시키는 곳이었다. 저... 가이든씨는 어디에 있죠? 현실 보정으로 사라지셨다거나...? 아니,
체육관이라면서...? 가이든 씨... 또르르
“예약하셨나요?”
“아, 네.”
한 언니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자 이름, 나이, 전화번호를 묻더니 1 배지전이군요, 하면서 그 언니가 일어서며
나를 문으로 인도했다. 한 언니는 카운터를 지키는지 돌아보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아, 고등학생 도전자이구나. 나도 고등학생 때 문하생하고 배틀을 했었는데 말이지. 포켓몬은 한 마리?”
“디... 디그다?”
망했어요.
남자의 비꼬는 듯한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머리를 빼꼼 내밀고 있는 디그다를 보면서 나는 좀 당황을
숨길 수 없었다. 단일 땅 타입. 전기 타입에 두배이며 전기 타입의 공격을 무효화. 디그다는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
남자는 이번엔 제대로 지시했다. 메리프가 빠르게 달렸고 목화포자의 효과로 스피드가 줄었을 테지만 디그다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땅속으로 들어갔다.
“디그다 구멍파기!”
메리프는 사라진 디그다 때문에 당황한 채였다. 나는 허둥지둥하는 메리프를 보면서 다시금 머리를 굴렸다.
일단 디그다는 땅 타입이고 두더지 포켓몬 어두운 굴을 파고 지내고 빛을 싫어한다. 빛을... 빛?
“메리프 빛이야!”
mee?
“바로 아이언테일!”
“아이언테일로 찍어내려!”
“디그다! 피해!”
“디그다, 시합 불가능.”
“휴...”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데미지를 안 받아서 다행이다. 메리프는 조금 지쳐 보였을 뿐 끄떡없어 보였다.
마지막에 급소에 맞아서 쓰러졌을 거야... 아니, 그보다 유사 플래시가 도움이 되었던 걸까. 음... 게임
내에서는 메리프도 배운다면 플래시를 쓸 순 있던데, 그건 꼬리의 빛이려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메리프가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아직 팔팔하구나. 문하생 오빠는 쓰러진 디그다를
볼로 되돌려 보냈다. 그리곤
“한 마리 더 남았는걸.”
“너무해...”
나는 조금 막막해졌다.
28 화
w. 도여은
“그래도...”
그래서 체육관 주변이나 돌다가 들어가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메리프를 안고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는데 갑자기
메리프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mee! mee!
“풀어줘?”
“메리프...!”
메리프가 달려 나가는 방향에는 나풀나풀 날고 있는.... 나비...? 나비가 날아가고 있었고 그걸 메리프가 본
것이었다. 아니 이 시기에 나비가...? 그보다 쫓아가는 건 좋은데에에 메리프, 거기로 가면 어떡해?!
내가 놀라서 그 쪽으로 향하자 보이는 건 메리프가 앞발로 머리를 감싸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
아마 나무와 정면으로 박치기한 듯? 그리고... 음... 저건 새...? 포켓몬...? 처음 보는 새 포켓몬이
있었다.
“메,.. 메리프 이, 이리 와”
“메리프, 전기 쇼크.”
“기절... 한건가?”
나는 메리프와 함께 조심조심 그 포켓몬에게로 다가갔다. 까망과 회색의 깃털, 흰 배의 깃털. 주황색 부리...
그중에서도 가장 포인트는 살짝 위로 세워진 머리 깃이었다. 이건 바로...
“찌르꼬잖아?”
나는 잠시 충격으로 쓰러진 찌르꼬를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두 손에 가득찬 따뜻한 생명체는 다행히 심장이
뛰고 있었고 잠시 기절한 채였다. 그리고... 분명 찌르꼬가 분명했다. 하지만 찌르꼬는 분명 신오 지방
포켓몬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일본에서밖에 자생되지 않는데 어째서...?
jjirrrr
.
.
.
잎새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책상에서 일어나 복도로 향했다. 폰 위로 뜨는 것은 지은이? 지은이가
벌써 짐전을 마쳤나? 잎새는 말소리가 울리는 독서실 계단에서 전화를 받았다. 왠지 다급해 보이면서도
어리둥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뭐하고 있었어?
“아니, 뭐 공부하고 있었지. 너 강원도라며, 짐전은 끝난 거야? 벌써?"
지금처럼 이상한 질문도 하고 말이야. 잎새는 당연하지, 라고 말하면서 왜 그런 걸 묻느냐고 말하려는데 그다음
말에 어? 하고 지은이가 할 만한 어벙한 소리를 제가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찌르꼬가 여기에 서식하고 있는 것 갈다구. 그것도 십여 마리 정도.
"말도 안 돼..."
-진짠걸?
잎새는 한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벽에 몸을 기댔다. 에휴... 이 멋모르는 애기야.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모른다.
연구소네 집 딸이 맡는지 궁금할 정도로. 아니 그래서 더 모르는 거려나. 이 온실 속에 뚜벅쵸 같으니라고.
"일단 타국가의 포켓몬이 한국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포켓몬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고.
이건 외교문제가 엮여 있으니까. 여러모로 조금 신경 쓰이는 문제가 되긴 하지."
수화기 너머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지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잎새는 머리가 조금 아파졌다.
“나 말고 혹시 말한 사람 있어?"
-음? 너한테 젤 먼저 전화했는데?
"그럼 아무한테도 말 하지 않는 게 좋겠다. 혹시 잡을 생각은 아니지?"
-아니, 아직 포켓몬을 더 키울 생각은 아니라서.
meeee!
-아니 메리프 지금 통화중이야. 쉿쉿.
"쨌든 오늘 본 건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좋을 걸? 경찰서라던가 포켓몬 보호소라던가 일본대사관이라던가 왔다
갔다 하고 싶은 거 아니라면 말이야."
29 화
w. 도여은
어찌어찌 뛰어서 체육관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언니가 기다리고 있으셨는지 일어나셔서 나를 맞아주셨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고.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언니를 따라 들어갔다.
언니가 가르킨 곳은 처음 들어갔을 땐 보이지 않았던 긴 복도였는데 아마 문하생들의 시합장을 둘러가는 구조인
것 같았다. 조금 긴장되는 것도 있고 혹시나 길을 잘못 들까 걱정도 돼서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언니는 쭉 가다 보면 커다란 문이 있을 테니까 길 잃어버릴 염려는 없다고 내 등을 밀었다. 말은
존댓말을 쓰지만은 엄청 귀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마치 내가 중학생 아이들을 볼 때의 눈빛이
저렇지 않을까 하는.
“메리프 준비됐어?”
meee!
나는 양 손으로 커다란 여닫이문을 열었다. 열리는 문 사이로 보이는 것은 문하생 시합장 3 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시합장이었다. 조금 울퉁불퉁한 흙바닥에 솟아있는 바위들은 바위 타입 체육관의 위용을 자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사실 땅 타입 체육관인 줄 알았어요.
시합장 너머로 보이는 것은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였다. 나는 한 발작씩 시합장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그 남자의 모습은 점점 가까워졌다. 삐죽한 더벅머리에 가늘고 처져있는 눈은 애니메이션으로 보았던 헬렐레하는
웅이를 생각나게 했지만 그 위압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서있는 땅의 높이는 같을진대 트레이너의 자리에 서서
바라본 웅의 모습은 정말 짐리더의 모습을 보이는... 그러니까 표본이라는 느낌?
“미리 말해두지만 꼬마돌과 롱스톤을 내보낼 거야. 땅 타입도 섞여있기 때문에 전기 기술은 통하지 않는 것
알고 왔겠지?”
“네.”
“꼬마돌, 웅크리기!”
“몸통박치기!”
“오른쪽으로 빠지면서 피해! 그리고 아이언테일!”
롱스톤은 그 크기가 거대했다. 시합장이 넓은 이유가 롱스톤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역시 황웅이라는 사람의 포켓몬이라고 생각하기엔 역시 프레셔라든가 기합이라든가 그런 것이 부족한 느낌이야.
역시... 1 배지전이라 그런 걸까.
“다시 한 번 힘내 줘, 메리프.”
메리프는 커다란 몸집이 갑작스레 나타났음에도 겁먹지 않고 앞발로 바닥을 긁어대며 기합을 높였다. 그건 마치
싸움터 나가는 황소잖아. 너 양이라는 자각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목화포자야!”
롱스톤은 온몸에 달라붙은 털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메리프가 몸통을 올라가면서 털을 더
뿌려대자 롱스톤의 바위틈 사이로 털이 촘촘히 배어들었고 그에 따라 조이기는 빠르게 롱스톤을 타고 올라가는
메리프를 잡지 못했다. 그리고 머리에 도달했을 때,
“아이언테일!”
쾅, 하고 단단한 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롱스톤은 괴로움에 머리를 흔들었고 그 위에
있던 메리프는 떨어지면서도 다행히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쿵, 소리를 내며 롱스톤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하지만, 아직 쓰러지지 않았어. 롱스톤이 힘을 내서 고개를 들려는 순간 나는 지시했다.
“다시 한 번 더 아이언테일!”
.
.
.
나는 칭찬에 조금 쑥스러워졌다. 나도 짐리더가 멋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동영상을 찾다가 어쩌다가
보게 된 8 배지전에서의 웅의 모습은, 그 롱스톤은 엄청 멋있었다고 생각했다. 더 크고 더 강해 보였어. 1
배지전이라 지금은... 만약 하골소실에서의 웅은 재시합을 해주었을까? 그래도, 지금 내 실력이 안 되니까.
“감사합니다.”
“바위는 강한 의지와 인내를 나타내지. 그래서 나는 바위가 좋다고 생각해. 앞으로 트레이너로 도전을
계속하다보면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오게 돼. 승부에서 패배하거나 반복되는 훈련이 힘이 들 때 의지와
인내가 필요하다. 알겠니?”
웅은 내게 CD 를 건넸다.
“배지는 몸에서 떼지 않는 게 좋아. 그것 여러모로 기능이 많거든. 회색배지는 일단 배지가 가까이 있으면
자신의 포켓몬의 공격이 올라간다. 또, 승부 중에 쓰는 플래시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주기도 하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 유용하게 쓰이게 되지.”
“어찌 되었거나 수고 많았다. 오늘은 이상하게 아이언테일을 쓰는 전기 포켓몬을 둘이나 만나서 배지를 주게
되었군.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아, 아뇨. 일단 포켓몬센터에서 숙박한 뒤에 돌아가려구요.”
“어디 갈 곳은 정했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30 화
w. 도여은
버스를 타는 것이 삼십 분을 넘겼을 때부터 메리프는 자진해서 몬스터볼에 들어가고 말았다. 기차는 괜찮더니만
버스는 좀 멀미가 심한 듯. 원래 잘 들어가지 않는 몬스터볼에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니 참으로 별일이다.
짐전을 끝내고 서둘러 온다고 왔는데도 도착하니 세시였다. 일단 옥광산 체험 갱도에서 밤늦게까지 잠복,
달맞이 춤을 추는 삐삐를 보고 옥광산 찜질방에서 자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 여자애 혼자서 찜질방에서 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찾아보니 하도 포켓몬 배지를 위한 여행이 보편화되어있어서 수험생의 숙박시설에 대한
안전적인 대책이 잘 강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뭐랄까, 수험 강국 대한민국의 파워...?
입구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완전 옥천지였다. 바닥도 벽도 장식품도 옥이 보이는 복도를
지나다 보니 여러 설명들과 함께 옥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진짜 진품인 옥이다 보니 가격이 장난 아니긴
했지만 메리프와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가는 것은 재미있었다. 밤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느긋하게
옹기박물관도 구경했다. 메리프가 들어가도 넉넉할만한 옹기는 물론이고 키가 나만한 옹기까지. 이것저것 보다
보니 도착한 곳이 체험 갱도였다.
벽에 남아있는 돌을 만져보기도 하면서 메리프와 쉼터에서 살짝 쉬기도 하면서 관광하듯 정해진 코스를 걷다
보니 나왔다. 짐리더가 말했던 트레이너만 입장할 수 있다는 폐쇄 갱도. 방금까지는 인공적으로 갱도를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도록 닦아두고 전구도 켜놓고 안전을 보장해 둔 길이지만 이 앞은 다르다고 했다. 진짜 그렇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앞을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지키고 있었다.
안내원은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셨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신분증, 트레이너 카드, 배지까지 혹시 모조품이
아닌지 확실하게 검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곤 명함 비슷한 종이를 건네주셨다.
“아참, 그리고 앞의 내부에는 전등이 비치돼있지 않으니 포켓몬의 플래시를 사용하시거나 손전등을 사용하셔야
할 것인데 혹시 준비하셨나요?”
나는 그 말에 조금 당황했다.
내가 옆에서 걷는 메리프를 보면서 말하자 메리프가 빛나는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역시 칭찬은 메리프도
춤추게 하는 건가? 나는 속으로 쿡쿡 웃으며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으아악...!”
푸드드득 날갯짓 소리를 내며 빛 때문에 놀란 주벳이 날아갔다. 그리고 가끔 바닥에 꼬마돌이 박혀있기도 하고.
그에 나는 메리프를 아예 안아 들고 꼬마돌을 밟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모래두지라거나 파라스도 보였는데 전에 배틀했을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모래두지가 너무 귀엽게
보였다.
노란 몸뚱이에 검푸른 눈동자 짤막한 팔다리에 둥글게 말리는 몸통. 그리고 그 조그마한 삼각형의 귀는 정말
귀염사할 정도라고. 갑작스럽게 나타난 빛에 놀라서 눈을 꼭 감은 채 귀를 쫑긋거리다 도망치는 모래두지의
모습은 정말... 후... 심호흡 좀요.
그렇게 포켓몬을 만나기도 하고 여차하면 야생 포켓몬과 배틀을 하기도 했지만 삐삐는 만날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건지...! 달맞이 춤은커녕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삐삐를 볼 수 없어서 나는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냈다.
저녁을 먹으면 본격적으로 달이 뜰 텐데, 지금까지 숨어있던 녀석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나도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타났다.
“메리프! 저기 삐삐야!”
나는 먹다만 김밥을 다시 은박으로 싸면서 메리프에게 소리쳤다. 당황해서 친 소리가 동굴을 울렸기 때문일까.
삐삐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잘됐어. 삐삐가 가는 곳이 달맞이산 광장일 거야. 아닌가...? 그건 게임
한정일 지도? 아니, 쨌든 삐삐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동굴을 잘도 뛰어간다. 분홍색의 둥근 몸집에 짧은
팔다리로 뛰어가는데 날아다닌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사뿐사뿐 펄쩍펄쩍 뛰어가는 것이 마치 허공답보 같도다.
메리프와 같이 달리며 삐삐를 쫓고 있는데 삐삐가 갑자기 코너를 돌았다. 나도 따라 토너를 돌렸는데 갑자기
코너에서 빛이 비친다...?
“으...아...”
내가 달리고 있었기 때문인지 부딪힌 사람을 덮쳐버려 함께 구르고 말았다. 다행히도 벽에 머리는 부딪히진
않았는데... 누군지 모르겠지만 꽉 잡아버린 채로 굴러버려서 누군가에게 깔리고 말았다. 메리프는 코너를 잘
돌았는지 저 멀리 삐삐를 쫒다가 내가 없어 다시 돌아오는 듯 빛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저 멀리 손전등이 구르고
있는데...
“...이거 놓지 그래?”
“하... 한지우?!”
“아우으어으....”
나는 고통에 이마를 쥐고 다시 뒤로 벌렁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녀석은 내가 놓았기 때문인지 어느새
내게서 떨어졌다. 메리프가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주변이 밝아졌더니, 한지우 그놈도 대미지가 상당했는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턱을 쥐고는 끙끙거리고 있었다.
“어디가?”
아픔이 가셨는지 참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지우가 저쪽에 떨어진 손전등을 주우러 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난 다시 한번 어디 가냐고 물었는데 한지우 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으셨다.
여전히 묵묵부답.
w. 도여은
“뭐, 뭐지?”
나는 메리프를 꼭 안았다. 사이렌 소리가 앵앵거리며 귀를 울렸고 아무도 보이거나 하지 않았지만 소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당황한 건 한지우놈도 마찬가지였는지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아, 참. 전화”
망했어요.
“진짜 로켓단이라구요?”
pikapiii~
“피카츄우우우.”
“뭐야, 피카츄.”
“뭐긴 뭐야. 인질이다. 그렇지 피카츄?”
ppika!
사이렌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동굴을 울리고 있었지만 왠지 한지우가 내뱉는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후후
성공이다.
“그래서.”
“뭐가?”
“그래서 어쩔 건데.”
“어쩌긴 일단 레인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어디서?”
어... 일단 한지우놈을 잡아놓는다고 생각을 못하긴 했는데... 아니, 왜 그렇게 띠껍게 말하냐 기분 나쁘게.
그리고 위급상황이 닥쳤는데 만난 아는 여자애를 홀랑 두고 간다는 게 어디 나라 사람 발상이냐고. 일단 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는 노릇인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사이렌이 끊겼다.
“이쪽으로 가는 것 맞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그녀석이 제자리에 서버렸다. 갑작스런 멈춤에 내가 그의 등에 부딪힐 뻔한 걸 가까스로 멈췄다.
“뭐-”
“조용히.”
찢어졌으려나... 아무래도 갱도를 파다가 말아서 생긴 공간인 듯... 시간이 지나서 흙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그 틈 안에서 숨을 죽이자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역시 한지우 짐승의 촉.
그들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혹시나 들킬까 가슴이 뛰었다. 들키면 인질이려나... 험한 꼴을 당할지도. 하,
젠장.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틈 사이로 빛이 크게 들어왔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림자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방금 바로 앞을 지나갔나 보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차츰 멀어지고 목소리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들이 지나가며 보였던 모양새는 내가
게임에서 봤던 유치 찬란한 유니폼이 아닌, 진짜 영화에서나 봤던 조폭들처럼 까만 정장 차림이었다.
“길어야 한 달?”
“그럼 그 안에 이곳을 다 파내야 되겠구만.”
“겸사겸사 삐삐도 잡아가자고.”
“잘하면 달의 돌도 나오겠네.”
“아, 그거 짭짤하지.”
“레인저들은 다 잘 처리-”
32 화
w. 도여은
“안 가냐?”
잠금을 해제하니 보이는 건 여러 통의 문자였다. 레인저에게 현재 상황이 어떤지 문자가 와 있어서 그에 지금의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서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배터리가 5 퍼센트라는 것이랄까나. 그리고 이 상황이 지금
전국적으로 뉴스가 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자를 돌려보니 내가 강원도에 있는 걸 아는 사람들이 괜찮은지
물어보고 있었다. 거기에 엄마도 잎새도 오바람...? 오바람도 문자가 왔었네.
“...폰 없어.”
“뭐? 폰 없다고?”
“어.”
“피카츄, 너도 이리 와.”
pika~
이상해씨의 붉은 눈은 아무래도 게임 상의 레드를 떠올리게 하니까. 성격은 차분한 성격이려나? 아니면 냉정한
성격? 좀 친해지고 싶기는 한데, 저 주인놈 자체가 친하지 않으니 무리무리다. 그리고 포켓몬이라도 남자애들은
뭔가 다가가기 힘들다고 해야 할까요. 아, 피카는 성격이 밝아서 금방 친해지긴 했다만 처음 머리 만질 때는
조금 조심스러웠었지.
아니, 가자고 말이라도 하면 안 되나? 말하는 게 그렇게 쪼잔해서야. 나는 속으로 툴툴거리며 메리프를 안고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좁은 틈을 빠져나와 한지우의 뒤를 따랐다.
“...숨는 건 잘하니까.”
“어? 뭐라고?”
흐음...
“그래도 너 오늘 말 많이 하네.”
이것저것 대답도 해주고. 그런데 내 말에 정적이 흘렀다. 아씨, 괜히 말했나. 더 얘기 안 하잖아 저 녀석...!
그렇게 정적 속에서 나는 메리프와 소곤소곤 대화하면서 조금씩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로켓단이
보일라치면 한지우의 이상한 감으로 다른 길로 샌다거나 숨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야생 포켓몬도 몇 번 마주치긴
했었지만 배틀을 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한지우 저놈 포켓몬 언어 만렙 찍었나 봐. 미뇽 때도 느끼긴 했지만...
음, 중간에 길도 묻기도 하더라.
“수고했어. 이제 꺼도 돼.”
한지우는 피카츄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상해씨를 꺼냈다. 이상해씨도 은근히 주인의 무릎에 턱을 대고 누웠다.
그리고... 또 저런다. 저 부드럽게 풀린 눈매며 살짝 올라간 입꼬리며. 마치 포켓몬으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인간으로 태어나버린 가련한 생물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는 걸까. 그리고,
로켓단이 이곳까지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숨 막히게 답답한 건 내 옆에 앉아있는
저 녀석 때문일 거다. 메리프는 피곤한지 잠은 자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색색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시합도 두 번이나 했고 계속 플래시고 켜고 있었으니. 플래시라는 기술도 이렇게 오래 써본 적도 없었다. 배지가
조금 영향을 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리라.
나는 메리프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옆의 한지우를 힐끔 보았다. 손전등 불빛으로 보이는 그는 모자를 헐겁게 머리
위에 얹어놓고 조금 피로한 듯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자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포켓몬들은 그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
“너 내가 싫은 거지?”
“...어.”
33 화
w. 도여은
“메리프, 이리 와.”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래. 나도 사람인데. 온기가 필요한데. 내 과거가 없는 이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채로 이렇게... 이렇게 외로운데, 힘드는데... 오직 나만 바라보는 눈동자를 어떻게
외면해. 현실을 외면하고 나를 합리화하고 이게 최선이라고 속이면서 이 포켓몬 하나 마음에 둔다는 게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물에 빠진 사람은 엄청난 힘으로 주변에 아무거나 붙잡는대. 그래서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한 사람까지도 같이
죽게 만들고 말아. 하지만 그 기분을 알 것 같아. 어쩔 수 없었어.
포기해.
돌아가는 걸 포기해.
라고 그가 말하는 것만 같아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엉엉 울다가 메리프를 안고 울다가, 울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
.
.
“-은, 이지은.”
나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이 부었는지 잘 떠지지 않았다. 힘을 줘서 눈꺼풀을 깜빡깜빡 떠보니
갈색 머리카락...이 눈앞에 나풀거렸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얼굴...
“그...린...?”
“오바람이라니까.”
아... 맞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일으키는데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게...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서 잠들었나
보다. 메리프를 꼭 안고. 내가 가방을 베고 잤던가? 나는 머리맡에 있는 가방을 잡는데 뭔가 몸에서 스르르
떨어져 내렸다. 붉은색 패딩조끼. 한지우...? 나는 멍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뭔가 생각해내려고 노력했다.
메리프가 부스스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울었는데, 한지우가 막말해서... 그리고 로켓단이... 로켓단?
그리고 오바람?
“에....? 네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오바람을 보고 놀라서 소리쳐버렸다. 그는 웃으면서 내 옆을 가리켰는데 거기엔 피카츄가 있었다.
“조용히 해야 돼.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아... 응. 혹시 지금 몇 신지 알아? 그리고 넌 왜 여기에...”
내 물음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주위를 살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옥광산 폐쇄 갱도에 삐삐와 달의 돌, 그리고
포켓몬 화석을 노리고 로켓단이 갱도를 무력으로 불법 점거했다. 특히 로켓단의 경우에는 포켓몬을 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하기 때문에 더 진압하기 어려웠다. 왜냐하면 총과 같은 무기로 포켓몬을 살해하는 것은
불법일뿐더러 위험하기 때문이고.
“그 안에 나도 있었고.”
“새벽이 되도록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어. 그놈들도 알고 있었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의 동태가
이상해진거-”
내 말에 오바람은 웃어버렸다.
“무슨 일 있었지?”
“그 녀석 말 신경 쓰지 마. 무슨 얘기를 했는 진 모르겠지만.”
동굴은 플래시나 손전등 없이도 앞이 조금은 보일 정도로 밝아지고 있었다. 출구가 가까워지고 있는 거야.
“그... 괜히 온 거 아니야.”
“어?”
나는 말하면서도 민망해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오바람이 어떤 표정을 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내 손목을 좀 더 꽉 쥐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출구가 보였다.
하지만 제일 먼저 보였던 건 붉은색 모자를 쓴 소년도 청년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남자. 그가 뒤돌아서 이쪽을
바라봤다. 피카츄가 그에게 뛰어가는 걸 보고 다시 눈을 돌렸을 때 나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발치에서 달빛을
받고 있는 꽃봉오리. 이상해풀이었다. 어느새 피카츄는 그의 품에 안겼다. 또 저렇게 풀린 표정. 역시 포켓몬
한정이라니까. 미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자고 나니 밉기는커녕 웃음이 나버려서, 조금 놀랐다.
1-5.5 그런 일이 있었지만 다시 일상
34 화
w. 도여은
그리고 내게 친근하게 구는 꼬렛을 쓰다듬기도 하고. 어느새 구구가 피존으로 진화했는데 그럼에도 메리프와
피카츄 장난에 구워지기도 하는, 그리고 수업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에서 훈련을 좀 하고 집에
들어서서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드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혹시 네가 이지은이야?”
그날도 역시 평소와 같이 등교를 하는데, 등굣길에서 모르는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내가 당황하면서 그렇다고
하니 수줍게 작은 종이가방을 하나 건네면서 하는 말이.
하는 게 아니겠는가. 어... 응?
“저, 내 것도 좀 전해줄래?”
“내... 내것도.”
“저... 이거.”
“오바람한테 전해달라고?”
“아니, 한...지우한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 여학생을 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그 포장된
선물을 빤히 보다가 받아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여학생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했다. 계속 오바람 것만 받다가 한지우 것도 받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한지우도 인기가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애가 기폭제가 됐는지 어쨌는지 그 이후로
한지우 몫을 많이 받아버리고 있었다.
“잘 전해줄 수나 있으려나.”
“이게 다 누가 준거야.”
라고 말했다. 그에 오바람은 허,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포켓몬들은 와르르 쏟아진 처음보는 물건들을 보면서
이게 다 무언가 싶었는지 그 주위로 모여들어 킁킁댔다.
“아, 이것들은 한지우한테 전해달라고 하던데?”
“한지우도 선물 많이 받았으려나?”
“난 많이 받았는지 안 궁금하냐?”
“그건 별로 안 궁금한데?”
그 말에 내가 큭큭 웃자 잎새도 따라 웃었다.
오바람에 어설픈 허세에 나도 잎새도 푸하핫, 하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오바람은 멋쩍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었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콩라인이라서... 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진정한
레드의 라이벌은 그린밖에 없다고. 힘내라 오바람. 나는 속으로 응원도 해줬다. 불쌍하잖아...
“쨌든 간에 지긴 졌잖아?”
잎새에 말에 오바람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마지못해 “그래, 내가 졌다, 졌어.”하며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말을 돌렸다.
그렇게 도시락을 풀면서 포켓몬 푸드를 챙기는데, 속으론 한숨이 쉬어지긴 했다. 에휴 화이트 데인데 내 선물은
못 받고 남 선물만 챙겨주는 꼴이라니. 나는 메리프 밥이나 챙겨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메리프용 도시락을
꺼내 주었다. 메리프가 도시락에 코를 박고 먹기 시작하는데 어느 인기척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들자
눈앞에 작은 막대사탕이 보였다.
“일단은 화이트데이니까.”
“어... 어, 고마워.”
옆에서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동안 나는 조그만 막대 사탕을 내려다봤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 응. 화이트데이.
35 화
w. 도여은
오바람이 신기한다는 듯이 자기도 보자며 잎새에게서 돌을 받아들려고 하자 잎새는 싫다며 손을 멀찍이 떼었다.
놀라는 잎새에 표정에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말을 이었지만 그럼에도 잎새는 놀라 눈만 깜빡였다가 화드득 놀라
내게 달의 돌을 건네주었다.
오바람이 묻자, 옆에서 잎새도 맞장구를 쳤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잠시
달의 돌을 내려다보면서 이게 그렇게 비싼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들고 있는 달의 돌은 마치 뗀석기같이
울퉁불퉁한 모양새에 진한 회녹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말이 회녹색이지 회색의 가까운 이 돌은 달의 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 기운이라는 게 한지우처럼 감이 좋지 못한 나에게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거 최소가 40 만원이라는 거지 품질에 따라 값이 다르거든? 그건 좀 둥그런 모양새에 삐삐가 가지고 있었던
걸 주웠다고 했으니 돈이 더 나갈 거다. 아마.”
“맞아, 내가 왜 교실이 아니라 여기서 보여 달라고 했겠어.”
“그리고 불의 돌이나 물의 돌, 리프의 돌처럼 인공적으로 제작해 양산되는 진화의 돌과는 다르다고.”
“백화점 따위에서 파는 그런 돌 따위가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오바람은 거의 우리 학년의 연예인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애라고 하더라도
여자애들이 대놓고 좋다 싫다 하지 않지만 연예인이라는 건 얘도 좋아하고 쟤도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해볼까?
하는 느낌에 가까우니까. 왜냐하면 오바람은 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지만 오용호 박사님의 손자에 용모 출중, 공부
잘해, 희귀한 이브이를 소지하고 있고. 또 전략적인 배틀로 승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한지우 팬들로의 유입에 오바람 팬층은 운이었을 뿐이었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배틀
외의 체육시간에 오바람과 한지우가 다시 붙을 일이 없기 때문에 중간고사 이후의 체육대회를 다들 고대 중.
그러고 보면 잎새가 전에 말했던 여자의 직감이라는 게 그대로 실현된 셈이기도 했다. 소름...
변화기도 좋아라해서 목화 포자나 전기자석파도 열심히 수련했는데 둘 다 스피드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나중에
일렉트릭볼을 배우게 되면 연계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 변화기 하면 울음소리를 뺄 수가
없는데, 왠지 메리프의 울음소리는 뭐랄까, 암컷이라서 그런가 내가 메리프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초롱초롱한 눈에 반짝이는 뿔 흔들리는 꼬리. 인사하듯 앞으로 몸을 살짝 굽히면서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내는데...
왜지. 내가 공격력이 떨어져서 간식을 주게 돼버리는...
천성 파이터라는 아빠의 말답게 메리프는 물공, 특공, 변화기 가리지 않고 좋아라한다. 아빠 말로는 조금 더
크다 보면 자기 성향이 확실해진다고 하니까, 어느 쪽 위주로 갈지 기다리는 중. 하지만 아빠도 나도 걱정이
되는 건 왜 메리프가 진화하지 않을까 정도이다.
메리프도 초조해하는 걸 나는 꼭 안아주면서 진화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미 충분히 예쁘고 강하다고 했지만
만족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럴수록 더 수련에 몰두하고 진화하려고 애쓰고. 내 공부 시간은 뺏기고... 또르르.
36 화
w. 도여은
아침 날씨는 화창했다. 여전히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내리쬐는 햇볕에 오후가 되면 금방
따뜻해질 것 같은, 그런 봄 날씨였다. 오늘은 평소와 달리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문을 열었다.
나는 아빠에게 손을 한 번 흔들고 두 포켓몬의 머리를 와구와구 쓰다듬어 주고는 현관을 나섰다.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은 익숙했다. 왜냐하면 한 달에 한 번 있는 동아리 활동은 셋째 주 토요일, 사복을 입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부서 중에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 대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이 무거워졌네.”
mee!
“지은아!”
잎새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찬가지로 공터로 향하고 있었던 모양새로 잎새가 서
있었다. 내가 머리 위로 손을 흔들어 주었더니 마찬가지로 잎새도 손을 흔들다가 그에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내
쪽으로 뛰다시피 걸어왔다. 그에 따라 옆에 있던 푸린도 신나서 통통 뛰어왔다.
잎새가 짜증내도 오바람은 나는 모르오 하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나는 쿡쿡 웃으면서 오바람에게 손인사를
했다.
“부서활동?”
“뭐, 그렇지.”
오바람은 좀 귀찮아하는 모양새로 보였는데, 왠지 모르게 조금 설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넘기는 건 똑같은데... 음...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 아무래도 첫 부서활동이라 저 녀석도 긴장하고
있는 건 아닐까나.
어찌됐거나 나는 발걸음을 맞춰 왔는지 오바람 발치에서 어정거리고 있는 꼬렛에게도 인사했다. 꼬렛이 수염을
움찔움찔하며 눈을 맞추었다.
“이브이는?”
오바람은 주머니 속을 가르켰다. 나는 끄덕이고는 푸린에게 가려고 바둥거리는 메리프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수염을 씰룩거리는 꼬렛의 머리를 긁어주었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잎새가 그려려나 하고 따라 웃었다. 아무래도 귀여운 건 메리프뿐만이 아니라 모든 포켓몬인
것 아닐까?
“오히려 말이야.”
mee~
“질투하는 건 얘인 것 같은데?”
“에?”
잎새가 전에 얘기했듯 포켓몬 관찰부는 인기가 많아서 우리 반에서도 여럿 지원했었다. 그래서 담임은 공정하게
가위바위보로 정하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위바위보는 정당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해... 잎새는 이겨서
관찰부에 들었지만 나는 떨어지고 말았다.
공터에는 버스들이 줄지어 있었고 버스마다 가는 부서가 다른지 여럿 아이들이 그 주변에 모여 있었다.
아쉬워하는 잎새랑 헤어지고 나도 내가 타야 할 버스를 향해 발을 옮겼다.
‘포켓몬 봉사부’
그렇기 때문에 이 부서에 들어온 학생들은 진짜로 유기 포켓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거나 나처럼 다른 부서를
지원했다가 떨어진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있기는 싫고 그래도 봉사나 하자 해서 오게 된 학생뿐이었다.
한 친구의 말에 주변 아이들이 와르르 웃었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곳은... 뭐랄까, 고생할 것 같다 라는 느낌?
방금의 웃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조금 다운되어 있었다. 버스 내에서 포켓몬 관찰부 얘기를 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쌩뚱맞은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모여주세요!”
“... 그럼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말씀드릴게요. 첫째로 유기포켓몬들을 함부로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됩니다. 친근하게 맞이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상처받아서 인간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물리지 않게
조심하셔야 됩니다.
둘째로 위급상황이 아닐 경우에는 자신의 포켓몬을 꺼내면 안 됩니다. 다들 포켓몬을 소지하고 있지요? 위험할
경우를 대비해서 유기포켓몬보호센터에서는 포켓몬을 소지한 채 봉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아이들은
한 번 버림받았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주인 있는 포켓몬을 보고는 흥분할 수 있어요. 그러니 꺼내는 건
자제해주길 바라요.
셋째로 여기서 일하시는 봉사자들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함부로 어디를 간다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자 시끄러운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컹컹 짖는 소리 뭔가 퍼덕이는 소리 어떤 포켓몬의 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소리들이 섞여 들어
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만큼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유기 포켓몬은 주인에게 버려진 포켓몬을 뜻한다. 유기포켓몬보호센터는 그렇게 주인에게 버려진 포켓몬들을
국가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관리되는 곳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포켓몬을 한 마리씩 키울정도로 많은 포켓몬들이
사람들에게 길러지는 만큼 버려지는 숫자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유기포켓몬보호센터는 열악한 환경에서 유기
포켓몬을 보호한다.
알고 있었다. 버림받은 포켓몬, 열악한 환경. 하지만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열악한 환경이다,
버림받았다라는 말들을 그냥 그저 언어로만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반증으로 내가 직접 만난 그 단어들은 내
상상을 넘어선 심각함을 가지고 있었다.
37 화
w. 도여은
“꼬리가...”
“학대의 흔적이에요.”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안내를 해주던 수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언니였다. 주변을 살펴보니 학생 모두들
이곳에 처음 와본 것이기 때문에 나처럼 내부를 살피고 포켓몬을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처음이기 때문에
관계자들도 일부로 놔두고 있었다. 수정 언니는 나를 향해 싱긋 웃더니 내가 보고 있던 꼬렛에게 시선을 옮겼다.
“알이었을 때부터 인간에게 길러진 포켓몬들은 야생 포켓몬들과 다르게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죠. 오히려 따르는
편이라... 하지만 그건 버림받은 포켓몬들에겐 비극이 될 수 있어요.”
“그럼 이 꼬리는...”
“응. 아이들에게 잡혀서 잘린 거에요.”
“애완 포켓몬이 야생에 나오게 되면 적응하기가 힘들어요. 특히 도시에서 자란 포켓몬일수록 그렇지. 도시의
뒷골목에도 포켓몬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아나요? 그 안에도 서열이 있다는 것도?”
“너무 불쌍해...”
“아, 저기 봐!”
“siiiix~”
“식스테일이잖아?”
“와... 진짜 식스테일이야.”
“여기는 야생 불포켓몬이 드문데.”
“그러게. 꼬리 봐.”
“귀여워...!”
그래도 이녀석같이 인기가 많은 포켓몬인 데다가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른다면 주인이 찾지 못해도 금방 누군가가
데려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꼬리 잘린 꼬렛같은 건 아무도 데려가려 하지 않겠지만.
유기포켓몬보호센터는 꽤 넓었다. 미진화 포켓몬들이 모여있는 구역을 지나니 포켓몬들을 풀어놓고 뛰어놀게 할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여러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털도 날리고 있었다. 하긴 메리프는 은근 털이 많이
날리는 종이 아니더라. 가디는 털이 엄청 날려서 매일매일 청소하느라 바쁜데 말이야.
놀이공간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진화한 포켓몬들이 있었다. 설명에 따르면 진화했기 때문에
버려지는 포켓몬들도 있다고 했다. 진화하게 되면 외양이 바뀌게 되니까 그것에 실망해서 버려지기도 하고 혹은
크기가 커지게 되니까 기를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해서 버려지기도 한단다.
포켓몬도 내가 살던 세계의 애완동물과 비슷하게 어렸을 때부터 키우는 것이 선호되는 것 같았다. 같은 종류라고
해도 진화하기 전의 포켓몬이 입양이 잘 된다고 하니까...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아보크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렇게 내부 구경이 끝나고 우리는 이곳에 온 목적대로 봉사를 빙자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한
달에 한 번 올 때마다 대청소를 하는 듯하다. 몇 개의 조로 나누어졌는데, 조마다 맡아서 일을 하는 것이 달랐다.
힘든 일이 있는가 하면, 쉬운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불만이 나올 만했으나 한 번 오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한 달에 한 번씩 올 것인지라 일거리는 매달 돌아가면서 바뀌게 되어 있었다. 우리 조는 미진화 포켓몬 구역의
청소를 담당했다. 아직 날이 추운데 밖에서 철장 씻는 것보단 낫지만...
나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몬스터볼을 만지작거렸다. 따뜻한 느낌이 든다. 메리프 특유의 따뜻함이야.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것처럼 많은 메리프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녀석은 단 하나뿐인
메리프인 것이다.
그러니까 더 안타까웠다.
“하... 진짜 힘들다.”
어느새 냄새도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가 됐을 때, 나는 허리를 쭉 폈다. 장갑에 장화에 작업복까지
입고 봉사라니... 조금 벅찬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사실 이런 봉사라면 봉사시간 두 배로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길러져 버려진 포켓몬들의 모습을 보면서 찬찬히 하나하나 눈을 맞추게
되어버려서, 그런 구석진 곳까지 찾아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뭐랄까...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익숙해
보여서. 한 윈디의 불신의 눈초리라던가, 두코의 체념의 눈동자라던가, 혹은 매달리는, 애원하는... 그런
눈빛들이.
38 화
w. 도여은
“별 거 아니야. 그냥...”
내가 딱딱한 의자에 몸을 기대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잎새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나를 빤히 바라봤다.
체육시간에 항상 포켓몬 시합이라거나 포켓몬 관련 활동을 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본연의 취지인 체육시간처럼
피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그러니까 포켓몬 활동 한번 체육 활동 한번 이렇게.
“이거이거. 딱 그거야.”
“무...뭐..?”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반면에 뒷자리의 진예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지우라던가.”
“글쎄 한지우는 좀 지은이 싫어하던데?”
“그러니까 더 그럴 수도 있지.”
“속칭 나쁜 남자라거나?”
“엇 가능성 있는데?”
“사실 지은이 주변에 아는 남자애가...”
“반 남자애일수도 있지.”
“그럼 뭐 때문인데?”
“맞아, 뭐 때문이야?”
“그보다 어떤 포켓몬인데?”
“으음...”
내 말에 진예가 그 악취가 냄새꼬가 풍기던 악취였던 거냐고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뭔가 취향도
특이하다, 하는 눈빛이야. 그럴 거라 생각해서 말 안 하려고 했던 건데.
“그럼 그 냄새꼬-”
[입양할거야?]
나는 그 글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잎새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내 모습에 잎새는 의외라는 얼굴로 나를 봤다.
아무래도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걸로 내가 입양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더
이상 포켓몬을 늘릴 생각이 없었는걸. 게다가 메리프도 다른 포켓몬 들이는 걸 별로 반기지도 않을 것 같으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던가? 별로 시간이 안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수정 언니와 나는
다시금 정문으로 나가기 위해 뒷문을 통해 센터 안으로 들어왔고 그에 따라 악취도 약간의 자취만 남긴 채
사라졌다.
다들 밖에 모여 있는지 안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수정 언니는 센터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진화체 포켓몬들이 있는 곳을 지나 놀이공간을 지나고 또 미진화 포켓몬이 있는 곳을 지나갈
즈음에 내가 수정 언니에게 물었다.
‘저 냄새꼬는 왜 혼자 밖에 있던 거에요?’
39 화
w. 도여은
‘저 냄새꼬는 왜 혼자 밖에 있던 거예요?’
‘아마 나중에 볼 기회가 생기겠죠. 사실 그들의 악취는 트레이너와의 관계와 많은 상관이 있다는 걸 알아요?
야생의 포켓몬이었을 때는 악취를 그대로 내뿜고 다니지만 트레이너와 파트너가 되면 신기하게도 악취가 사라지게
된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포켓몬들을 키우기 어려웠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트레이너와의 관계가 악취의 영향을 끼치는 거라면... 나는 마치 쓰레기장에 서있었던
것 같던 그 냄새를 떠올렸다. 얼마나 트레이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면 저런 냄새를 풍기는 걸까. 버림받은
포켓몬인 걸까.
그리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기분이 처져있든 말든 시간은 지나가고 오늘의 수업도 끝이 났다.
아이들이 떠들면서 학교를 나서거나, 아니면 저녁 급식을 먹고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한다거나 하기 위해서
분주한 가운데 나도 가방을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니 잎새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더니 날 이끌었다. 학교를 벗어나 나와 잎새는 가까운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내가 어디로 가는 거냐고 계속 물어도 잎새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천국으로 가는 거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 몇 분 걸었을까. 잎새는 그제야 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2 층으로 올라온 우리는 HEAVEN 이라 적혀있는 유리문을 열었다.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내부를
완전히 볼 수 있었는데, 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이 컨셉인듯 목재를 사용해 꾸민 내부는 포인트로
올리브 그린색을 사용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그런 카페 인테리어였다. 평일에다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왔기 때문에 저녁시간이라 손님은 없었지만 그 대신에,
“정말 천국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 포켓몬 카페였던 거구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달려드는
덩쿠리와 치코리타가 보였고 창가에선 캐이시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델빌과 가디가 뒹굴며 장난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나옹이 털을 고르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잎새가 넋을 놓은 나를 흔들었다. 카운터로 향하는 우리를 덩쿠리와 치코리타가 바쁘게 따라왔다. 아무래도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 덩쿠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니, 저건 치코리타라고...!
역시 외모는 그래도 치코리타가... 끙... 시선을 빼앗기면 안...
“수정 언니?”
“안녕하세요, 이름이 지은이랬던가요?”
“아, 네. 맞아요.”
예상외로 따끈따끈한 치코리타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는 계산하고 진동벨을 받는데, 수정 언니가 물었다.
“포켓몬 좋아하죠?”
“네?”
“딱 보니까 포켓몬 좋아할 것 같이 생겼어. 좀 있다 음료 가져다 줄테니까 재미있게 놀다 가요.”
수정언니는 빙그레 웃어 보였고, 잎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 뒤 음료를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잎새는 내 팔을
잡고 자기 지정석이라며 한 테이블로 이끌었다. 잎새는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주머니에서 몬스터볼을 꺼내 푸린을
꺼내놓았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푸린이 탁자 위에 턱 하니 나타나더니 하늘색 눈을 반짝반짝하며 탁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meee~
“계속 멍하게 있는다니까.”
“하하... 그런가...”
메리프가 내 무릎 위에서 여기가 어디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푸린이 저 멀리서 다른
포켓몬들하고 노는 모습을 보더니 금방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에서 놀래, 놀래! 하는 상태로 바뀌었다.
mee, meee!
“귀엽지?”
“귀엽다. 포켓몬이란.”
“그렇지? 오길 잘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잎새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더니 어디서 났는지 고무공을 가지고 한 대 뛰어다니는
포켓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델빌 아이 이름은 제키고 저 가디는 켄, 저 덩쿠리는 쿠아. 치코리타 이름은 하치야. 그리고, 레빈~ 이리
와 볼래?”
잎새가 저 쪽의 나옹을 부르자 나옹이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에 잎새는 웃어며 머리를 긁적였다.
“엄청 잘 아네?”
“자주 오니까.”
내가 조금 수줍게 말을 걸자 캐이시는 바닥을 향하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보았다. 후라는 이름의 캐이시는
캐이시라는 포켓몬 자체가 그런 것인지 이 포켓몬이 특별한 건지는 몰라도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그리고 뭐랄까
어떤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진화의 돌을 봤을 때만큼의 신기한 느낌이었다. 마치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것같이 느리게 흘러가고 나 또한 그 시간에 동화되는 그런 느낌. 그래서 그 캐이시가 나를 쳐다보았을 때 순간
꿰뚫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잠시 모든 게 멈췄다는 느낌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꺼내
들었다.
40 화
w. 도여은
캐이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가까이 다가온 수정 언니가 있었다.
수정 언니는 쟁반에 가지고 왔던 아메리카노와 자몽에이드를 각각 앞에 올렸다.
웃으면서 말하는 수정 언니의 모습에 나는 언니는 밝게 웃으면서 되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돌아서는
수정 언니를 부르자 그 언니는 나를 되돌아봤다. 그 냄새꼬는 잘 있는 걸까. 날씨가 아직 차가운데. 밥도 잘 못
먹고 있던 것 같은데. 악취는 어떻게 됐으려나. 악취가 사라져야 안으로 데려올 수 있을 텐데.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아니에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멀리서 함께 뒹굴면서 뛰어노는 아이들 하며, 잎새의 품에 안겨있는 캐이시며 또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는 나옹도 모두 여느 포켓몬과 다름없어 보였다.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하며
작게 말하자 잎새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 수정 언니가 애들을 엄청 사랑하니까. 그런 게 엄청 느껴지거든. 정말이야. 난 여기 자주 오니까
알아. 아, 그리고 이 카페에서 저 언니가 사장님인데, 나오는 수익들 중 일부는 유기포켓몬센터에 기부하고
있거든. 매주 주말이면 가게는 알바에게 맡기고 봉사활동도 꼬박꼬박 하시고.”
“사장님이셔?”
“그렇게 안 보이지? 나도 처음에 엄청 놀랬다니까.”
kei~
“아, 언니 얘기하는 건 어떻게 알고. 아, 이 캐이시가 일 년 전에 들어온 막낸데, 사실 캐이시는 희귀해서
입양도 잘 된단 말이야. 그런데 후는 이상하게도 매번 입양이 돼도 그 보호소로 돌아오더래.”
“대부분 사람이 포켓몬을 선택하지, 포켓몬이 사람을 선택하진 않잖아? 뭐랄까. 에스퍼 타입 포켓몬들은 아주
똑똑하다고 하니까 다른 포켓몬들하곤 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잡기 어려운 만큼 같이 살기도 어려운
걸까나.”
잎새가 무릎 위의 캐이시 머리를 마구 쓰다듬자 캐이시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니
저쪽에 다른 창틀로 자리를 옮긴 듯했다. 잎새는 순간적으로 허공을 휘저었던 손을 머쓱하게 갈무리했다.
솔직히 난 메리프만으로도 벅차...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잘 모르겠어. 사실 어떻게 원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학교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가면서 또 이 포켓몬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면서... 사실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포켓몬이란 닌텐도 속에 게임으로 밖에 만날 수 없는 곳을 살았던 꿈. 아니면 진짜
이곳이 꿈은 아닐까. 깨고 나면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진짜 이곳이 꿈같은
곳이니까. 포켓몬이 살아있는 그런 곳이니까.
“말 안 해도 돼.”
어색한 침묵에 먼저 잎새가 말을 뱉었다. 내가 잎새를 쳐다보자 잎새는 민망한 듯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뭔 소리를 한 거람. 미안미안. 몰아붙이듯이 말해서. 그냥 네가 계속 망설이는 것 같아서 물어본 거야.
화내는 것 같아 보였다면 미안해,”
41 화
w. 도여은
그러고도 잎새는 델빌인 제키, 가디인 켄과 덩쿠리 쿠아는 물론 새침한 나옹인 레빈까지 모두 소개해주었다.
델빌이나 가디나 개과답게 맞아 주는 편이었다고 해야 할까.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아직 강아지라서 그런 걸까?
사실 강아지라고 했지만 델빌을 조금 인상이 무서운 편이었기 때문에 사실 첫인상은 조금 겁먹었었다. 잎새가
먼저 델빌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보고 만져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터였다. 언뜻 거칠어 보이는 짧은
털이 엄청나게 보들보들하다는 걸! 누구라도 만져보면 금방이라도 빠져들 만큼 부드러웠다고나 할까.
나옹은 잎새가 하도 부르니 귀찮아서 인 듯 느릿느릿 다가왔다. 진짜 네발로 걸어왔는데, 애니에서 두발로 걷는
나옹이 너무 뇌리에 박혀서일까나, 조금 어색했다고 해야 할까. 컬쳐쇼크라고 해야 할까. 쨌든 금화가 박혀있는
머리를 손에 문대며 애교 부리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그렇게 포켓몬들 간식도 주고 놀아주기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집에 돌아왔다. 방 안에서 가방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이제 저녁밥을 먹으려는데... 어라? 어라라...?
지갑이 없..다...?
meee?
“아니... 메리프 지금 지갑이 없어.”
나는 주머니며 가방 속이며 허둥지둥 뒤져봤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아침에 지갑을 챙기지 않았는지
고민했지만 분명 카페에서 음료를 산다고 돈을 썼으니까, 그때까지는 있었던 건데... 메리프에게 혹시 보았냐고
물어보았지만 고개를 갸웃댈 뿐이었다. 지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개념 자체를 모르는 듯.
흐아, 나는 한숨을 쉬며 일단 잎새한테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연결음이 지나더니 여보세요, 소리와 함께 잎새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응. 집엔 잘 도착했어? 웬 전화?]
“아, 그게 말이야... 나... 지갑을 잃어버린 거 같아.”
[뭐? 어디서?]
“오늘 카페에서 놔두고 온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
“다행이다.”
나는 조그맣게 속삭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식탁 밑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잎새에게 고맙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럼 내일 찾으러 가면 되겠다. 찾으러 가면...
“찾으러...”
“왜 그래?”
.
.
.
“왠 지갑?”
“아, 어제 포켓몬 카페에 갔었는데... 거기에 지갑을 두고 갔었거든.”
meee? mee?
“왜 보기 좋구만.”
대체로 게임에서는 레벨만 맞으면 기술도 배우고 진화도 하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메리프를 내려다보았다. 메리프의 동글동글한 얼굴이 보였다. 하긴 열심히 수련도 하고 먹기도 잘 먹고 자기도 잘
자는데 왜 진화를 하지 않는 걸까? 메리프 스스로도 빨리 진화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B 버튼을 누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감이랄까.”
정적.
“헐... 야, 진짜 믿음직하다.”
다시금 그 아이 생각이 났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늘은 날씨가 많이 풀렸으니까 좀 덜
추우려나. 푸드는 좀 먹었으려나. 전에 하나도 안 먹는 것처럼 보였는데. 잎도 많이 말랐었고. 반점이 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잠깐 봤던 거라 잘 기억이...
“-은, 야, 이지은.”
“아...? 어.”
오바람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물고 있던 젓가락을 입에서 떼고 바라보자 오바람은 눈썹을 조금 찡그린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잎새의 말을 막았다.
42 화
w. 도여은
캐이시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의 사진을 보면서 아, 이때는 조금 덩치가 작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디가 뛰노는 모습이라거나 나옹이 쿠션에서 몸을 말고 잠들어 있는 모습에서 그 상황이 상상이 가는 것이...
역시 알게 되면 관심 갖게 되고 관심 갖게 되면 더 주의 깊게 보게 되고, 그렇게 점점 사랑하게 되는 걸까. 나는
액자 속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어서오세요.”
나는 언니가 카운터 너머로 지갑을 건네주었다. 지갑에 없어진 건 없는지 찾아보라는 언니의 말에 지갑을 살폈다.
지갑을 살피면서 나는 사실 궁금증을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 아이는 잘 지내나요? 버스를 타고 오면서
계속 들었던 궁금증. 하지만 계속 억누를 수밖에 없는 건... 물어봐서 뭐. 뭐 어쩌려고.
나는 대답하고 다시 가게를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은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했던가. 조금 우물쭈물했던 게
보였던 걸까. 돌아서서 가려는 날 수정 언니가 붙잡았다.
.
.
.
“엄마.”
“왜?”
엄마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뚝배기에 끓인 김치찌개의 맛을 보면서 내 물음에 답했다. 나는 모다피와 메리프의
푸드를 챙겨주고 있었고. 후두득 그릇 위로 푸드가 쏟아져 나왔고 나는 모다피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식탁 의자에 다리를 끌어안은 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엄마는 한 손에 국자를 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아니, 뭐 그냥.”
“뭐야, 싱겁게.”
음... 뭐랄까. 아주 간단한 질문임에도 조금 망설여졌던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단 말이야. 엄마가
포켓몬 얘기를 하는 것이. 뭐랄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첫째론 엄마에게 엄마의 옛 이야기를 물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려나. 엄마는 내가 나서부터
엄마였으니까. 엄마의 결혼 전 이야기 같은 거. 물어볼 기회도... 아니 기회는 많았지만 그것에 대해서 궁금했던
적도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꼬렛이나 구구나, 가끔은 꼬리선을 보기도 했고. 몬스터볼은 하나라서 망설이고 있었지. 그렇게 몇 번 허탕을
치고 돌아왔었어. 사실 그 주변에 포켓몬들은 다 거기서 거기라서 말이지. 별 것 없었는데 말이야. 뭔가 특별한
포켓몬을 잡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특별한 포켓몬?”
“으음...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는 거지. 하긴... 그래도 특별한 포켓몬이긴 하지. 그렇지
모디?”
눈을 마주쳤는데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야.”
눈을 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아 저 아이를 잡아야겠다, 생각이 들었지. 갑자기 나타나니까 놀랐는지 모다피가 도망가려고 했는데,
노라키가 펄쩍 뛰어서 그 앞길을 막아버린 거야. 그래서 내가 모디한테 달려들었었지. 아, 모디도 그때
당황했었을걸?”
“에, 엄마가 달려들었다고?”
“멋몰랐던 거지. 지금은 그럴 경우에 야생 포켓몬이 놀라서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땐 뭐랄까.
더 살기 좋았다고 해야 하나. 덜 경계했다고 해야 할까.”
모다피는 순간 당황한 눈치로 엄마를 보더니 부끄러운지 얼굴을 폭 가리고는 뛰어가 버렸다. 나는 크게
웃어버렸다.
“엄마 차인거야?”
“잘 먹었습니다.”
개수대에 그릇과 수저를 담그고 밥을 다 먹고 거실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메리프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왜 내가 엄마에게 그 질문을 하기 어려웠는지. 왜 결심이 조금 필요했는지 두 번째 이유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져 버린 게,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가 내가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버려서.
그래도 조금 익숙해 진걸까. 전보다는 조금 충격이 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기분 탓에, 부엌을
나가면서 충동적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그 냄새꼬 신경 쓰이지?’
‘에?’
‘어떻게 알았어요? 하는 표정 짓지마. 눈에 금방 보이니까.’
나는 얼굴을 살짝 쓸었다. 내가 그렇게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나 생각하면서. 그 모습에 언니는 작게 웃었다.
‘나랑 많이 닮은 것 같아.’
‘네?’
‘아니 그냥...’
죽어야 할지도...?
‘냄새꼬를 보호하고 있다고 공고를 올렸지만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어. 그리고 최소한의 보호기간이
끝나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요한 방에는 시계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내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 메리프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숨소리가
색색 하며 들렸다. 자세히 귀 기울이다 보면 메리프의 심장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리프.”
me?
나는 메리프의 눈을 피했다.
meeeee. meeee.
라고.
43 화
w. 도여은
그러다 눈이 마주쳐버렸는데,
마치 세찬 바람이 내 이파리와 꽃봉오리를 마구 휘졌고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 마치,라고 말했던 것은 바람은
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었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뭔가 좋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나와 그 여자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나는 철장을 내리쳤던 덩굴을 회수했다. 그저 덩굴을
꺼냈던 것뿐인데 나는 생명이 한 움큼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만족스런 느낌에 짜증이 가라앉았다. 그 여자도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나는 신경을 끄고 내 일에 집중했다.
내 일이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었다. 죽기는 귀찮지만 살기는 더 귀찮았다. 그래서 죽기로 한 거다.
죽음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나는 죽기위해 무언가 하는 것도 귀찮았기에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러면
언젠간 죽으리라. 내 예상은 맞았다. 점점 나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다.
하지만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햇빛이다. 햇빛은 내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찬 바람이 몸을
에워싸고 굶주림이 나를 뒤덮어도 해가 뜨면 내 몸은 스스로 그 한 줌 빛에 의지해 영양분을 쥐어 짜낸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죽음의 냄새가 짙어지고 있었다.
‘더 큰 세상이 있을 거야!’
누군가에게 팔린 것이다. 그걸 시작으로 해서 속속들이 한 마리씩 상자에서 사라져 갔다. 그들은 커다란 손에
의해서 상자 밖으로 나가 졌다.
나는 조금 탁했지만 상자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좋았고 가끔씩 찾아오는 바람이 좋았다. 그뿐이었다. 의욕도
없고 호기심도 없고.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아니, 나빴던 걸까, 어찌 되었건 나도 팔려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사실 조금 달갑지 않았다. 내 주변에 있던 뚜벅쵸들은 내가 귀염성
없는 성격이라고 했었다. 맞다. 사실 나는 그 집 아들의 생일 선물이었던 것 같지만 뭐, 곧 잊혀지고 말았다.
조용했기 때문에 그들이 가끔 내 밥을 잊기도 했지만 뭐, 햇볕만 있으면 충분했으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저건 신경 쓰여.
적응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렇게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나에게 있어서 흔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언가 핀트가 어긋나고 있었다.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건 편했다. 하지만 그만큼 졌다. 뭐가 또 문제인 건지 그 집 아들놈은 성깔만 늘어났다.
그 발길질에 얻어맞기도 했다. 가끔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는 말했다.
‘소름끼친다고, 그 눈깔.’
그는 내가 뚜벅쵸같지 않다고 했다. 뚜벅쵸 같은 게 뭔가. 하지만 그렇게 배틀에서 지는데도 어느 날 진화를
하게 되어 냄새꼬가 되었다. 이제는 뚜벅쵸 같지 않다는 소리 안 들어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별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쓸모없는 새끼.’
.
.
.
쏟아진 흙 사이에서 깨어진 화분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집 아들은 돌아온 나에게 화를 퍼부었다. 중년 여자가
그를 말렸고 깨진 화분을 치웠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몇 일 머물지 못했다. 내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이었다.
중년 여자가 나를 씻기고 씻겨도 없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금 버려졌다. 뭐, 몬스터볼이 깨어졌던 밤부터
나는 버려졌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여자는 나에게서 무엇을 봤던 걸까. 왜 나에게 웃어주었던 걸까. 왜 닷새간 나를 찾아온 걸까.
나는 눈을 감았다.
왜.
왜 나를 찾아오는 거지?
왜 나를 보러 오는 거야?
왜 나에게 웃어주는 거야?
어째서?
나는 남아있는 에너지를 모아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여자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면서
뛰어오던 그녀는 항상 멈추던 그 자리에 섰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그녀도 나에게 눈을 맞췄다. 그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웃어 보였다.
그녀는 잠시 뭄을 숙인 채 숨을 정리했다.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나는 한 발자국 내밀었다. 그녀는 잠겼던 철장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기억의 첫 장면처럼 햇빛이 그녀의
뒤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다시금 한 발짝 내밀다가 휘쳥였다. 넘어지는 걸까 생각하는데, 그녀의 손이 날 받쳐
들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나를 품에 안았다.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하다. 갑자기 움직여서 그런 걸까. 시야가 점점 흐려지는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식 뒤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44 화
w. 도여은
.
.
.
“메리프. 이제 거의 다 왔어.”
엄마가 날 보고 웃어주었다. 그리곤 엄마는 씩씩하게 걷기 시작했다. 내 꼬리가 엄마가 걷는 속도에 맞춰서
달랑달랑 흔들렸다. 내 기분도 점점 좋아졌다. 엄마가 날 안아주면 온 세상이 두둥실 한 것 같아.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토닥토닥한 걸. 그러면 저 굴러다니는 상자를 몇 번을 타도 괜찮을 것 같아. 엄마가 언제나 내 옆에서
꼭 안아준다면 말이야. 하지만,
.
.
.
meeee...!
“메리프!”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나는 부표 위에서 조금 밀려났지만 다행히 물에 빠지진 않았다. 눈을뜨고 보이는
별가사리는 리타이어였다. 관장이라고 불리는 여자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별가사리를 다시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meeeeeeeeeee
“아쿠스타, 고속스핀”
“메리프 목화포자로 막아!”
“뒤를 조심해!”
“아쿠스타 이번엔 물의 파동이야!”
“메리프!”
눈물이 핑 돌았다. 피카츄는 말했다. 하나는 약하다고. 배틀이건 그 어떤 것이건. 처음에는 부정했다.
아니라고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나 혼자서도 배틀에서 이길 수 있어. 그리고 엄마도 떠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 라고.
그래서 나는 강해질 필요가 있었고 또 배틀에서 이겨야만 했던 거야. 그리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거야. 냄새꼬를 데려오는 것에 대한 엄마의 물음에. 데려오자고... 그것이 엄마를 이 땅에서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
전기가 바닥이 날 때까지 전기를 내뿜고 나서야, 그래서 내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나서야 나는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앞이 흐려졌지만 확실히 보이는 게 있었다. 엄마가 필드에 뛰어들더니 내가 있는 부표로 헤엄쳐오고
있었다. 힘이 없어. 내가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엄마가 부표 위로 올라와있었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아줬다.
엄마의 품이 축축하면서도 뜨거워.
45 화
w. 도여은
별로 원치 않았는데...
.
.
.
그러고 나니 시간이 오후를 훌쩍 넘기고 말아서 그 날이 일요일만 아니었으면 학교도 못 갈 뻔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사실 메리프가 아니, 이제는 진화해서 보송송이지, 참. 쨌든 보송송이 먼저 데리고 오자고
했었지만 과연 둘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수정언니 말로는 둘째를 들일 때 첫째를 예뻐해야
한다고 조언했었지만 아무래도 냄새꼬가 아픈 상황이니 또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복잡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는데...
내가 몬스터볼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냄새꼬를 불러내자 보송송은 한껏 냄새꼬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킁킁 냄새를
맡기도 하고 건드리기도 하고 주변을 빙빙 돌면서 탐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냄새꼬는 처음 보는 낯선 공간이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마치 보송송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보송송이 건드릴 때마다
표정이 찡그려지는 것 같긴 했지만...하하...
쨌든 그렇게 험한 첫 대면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냄새꼬의 시선이 무언가에 향하고 있는게 보였다.
화분...?
moda?
songsong!
“차, 참아. 보송송...!”
자기를 무시한 게 분한 듯 본때를 보여줄거라는 듯이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걸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song!! songsong!
앞치마에 손의 물을 닦으며 등장한 엄마는 모다피와 대화를 하고 있는, 아니 일방적으로 모다피가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냄새꼬를 보더니 딸내미보다 더 반기며 맞아주었다. 인사도 하고 소개도 하다가,
아빠는 그 때 연구소에 일이 많아서 집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차차 다음에 인사시키도록 하고, 일단 첫 대면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엄마가 집에 있는 흙과 상자로 내 방에 임시 화분을 만들어줬고 냄새꼬는
하루가 고단했는지 그 위에서 금방 잠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보송송은 학교에 갈 거라고 떼를 쓰긴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대신에 집에서 쉬거나 아빠네 연구소
쪽으로 전송시켜 거기서 놀거나 훈련하게 끔 했다. 실은 짐전 대비를 하면서 내가 냄새꼬를 만나러 가는 동안
아빠에게 메리프를 전송시키곤 했었기 때문에 금방 적응한 것 같다. 내 생각에도 그 편이 더 보송송에게 좋았던
것 같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물포켓몬 체육관까지 가서 배지를 받아오게 되었지만 그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왠지 아빠에게 낚인 것 같기도 하고.
쨌든 생각보다 보송송과 냄새꼬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다. 아니, 뭐... 소 닭 보듯 하다는 것이 썩 나쁘지
않다는 뜻이라면 말이다. 한동안 냄새꼬는 수의사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햇볕 잘 쐬고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하니
조금씩 푸석푸석했던 피부도 조금씩 매끈하면서도 부드럽게 변하고 있었고 상하고 말라붙은 이파리는 떨어져
나가고 새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쭈글쭈글 쪼그라들던 꽃봉오리도 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서 얼마나
안도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물론 냄새꼬를 사랑의 라이벌 쯤으로 생각하는 보송송의 방해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냄새꼬랑 있으면
중간에 끼어든다거나 칭얼거린다거나 하는 것 같은?
으음...
현관 앞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냄새꼬를 어떻게 데려갈 것인가 하는. 아무래도 보송송을 키우면서 계속 안고
다녔더니 습관화되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아직 냄새꼬와 신체접촉에 있어서 그렇게 친해지지 않은 것 같아서...
볼에 넣고 가는 것도 좀 그렇고 하니 같이 걸어서 가기로 했다. 물론 냄새꼬의 걸음 속도에 맞춰야 했지만.
보송송은 그렇게 막 무거워진 건 아니라서 거뜬히 들 수 있지만 왠지 냄새꼬 눈치가 보여서 대체로 지양하게
되더라. 물론 본인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4 족 보행을 하던 메리프에서 2 족 보행으로 진화하다 보니
초반엔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꽈당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었다.
큼큼... 쨌든 천천히 걸으면서 시장으로 향했다. 오른쪽엔 보송송의 손을 잡고 왼쪽으론 냄새꼬가 쫑쫑거리며
따라오고. 아무래도 냄새꼬 덩치가 작다보니 가볍게 걷는 모습이 답지 않게 귀엽다고 해야 할까. 아니 모든
포켓몬이 귀엽지만 말이지... 내 새끼는 더 귀여워 보인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랄까?
하지만 귀여운 점도 있는데 침을 안 흘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어찌나 귀여운지.
하지만 자는 동안에는 침을 흘려버린다는 게 더 귀여운 점! 아침에 일어났을 때 허둥지둥 침을 닦는 모습은 더더
귀엽다...! 마치 내가 스토커 같은 기분인데, 사실 맞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다가갈 수 없는 선이 있으니 더
애닳는다고!
그러니 이번에 화분을 사면서 좀더 가까워지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보송송 vs 냄새꼬의 발단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니까 그게 오늘 아침의 일이다.
46 화
w. 도여은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혹시나 냄새꼬를 잃어버리진 않을까 조심하면서 화분을 파는 가게로 갔다. 색색깔의 예쁜
화분들이 많이 있었다. 단색에 깔끔한 화분들부터 투박한 모양의 화분들까지 다양한 화분들이었다. 나는 어떤
화분이 괜찮을까 고민이 됬다. 냄새꼬 성격에는 아무래도 단색의 심플한 화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차라리 예스러운 것도 은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니 진화하면 아르꼬나 라플레시아처럼 화려하게 될
테니까 안 어울릴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모양은 외국종이니까. 으음... 또 색은 어떤 게 좋을까. 모양은?
둥근 게 좋으려나 각진 게 좋으려나.
어때? 하고 내가 냄새꼬를 향해서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냄새꼬가 어느 것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을 향해 나도 시선을 돌리자 한 화분이 있었다. 갈색의 도자기
화분이었는데 무늬는 마치 얽어서 만든 둥근 나무 바구니 느낌이 났다. 냄새꼬에 비해 조금 큰 화분이었지만 내
방에도 냄새꼬에도 어울릴만한 화분이라는 느낌이었다.
“그 화분이 좋은 거야?”
나는 냄새꼬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아 키를 맞추며 물었다. 화분을 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듯 묻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냄새꼬는 나를 봤다가 다시 화분을 봤다가 다시 나를 봤다가
이번엔 땅을 쳐다봤다. 한동안 고민을 하는 모양새에 나는 내가 질문을 잘못한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저 화분이 싫어서 바라본 건지 아니면 맘에 들어서 본 건지 그것도 아니면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거나...
쨌든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냄새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다시금 올려다봤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연락을 넣었고 일찍 잔업을 끝난 아빠가 오후에 화분을 가져다 주었다. 내 방에
두었던 임시 화분이었던 상자를 치우고 나와 엄마는 마주 앉아 화분에 흙을 알맞게 담고 내 방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마치 햇볕에 말린 이불이 기분 좋은 것처럼 냄새꼬도 뽀송뽀송한 새 흙이 좋은지 금방 화분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오후의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햝... 아니 냄새꼬에게 내려앉는 모습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새 흙냄새와 함께 냄새꼬 특유의 향이 조금씩 퍼지는 느낌이었다.
sooong?!!
song! song!!
“알았어. 큭.. 크흠... 안 웃을게. 안 웃어.”
songsong, bosong?
“아아... 맞아... 갑자기 잊고 있었던 게 생각나서.”
“곧 중간고사니까.”
song song?
“아, 그러니까... 시험치는 거라고 해야 할까나. 요즘 같이 학교에 못 간 것도 그거 준비하느라 그랬던
거야.”
bosong! songsong!
“응응. 그래그래. 시험 끝나면 같이 학교 갈 수 있는 거지.”
내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으니 화분에서 냄새꼬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고개를 돌려서 냄새꼬를 바라보니
녀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날 보고 있었다. 으음... 학교에 대해서 궁금한 건가?
“그러니까 학교라는 건... 으음...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내가 평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있는 곳이라고나
할까. 이것저것 배우는 곳? 체육시간에는 포켓몬을 데려가야 하거든.”
seakko
“응?”
song?!
어느새 보송송을 무시하던 냄새꼬도 거슬렸는지 보송송에게 약하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아아... 어쩌지.
이런 저런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
.
.
그러니까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간단히 말하자면 냄새꼬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고 보송송은 학교에 가는 건 나야! 하면서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 뒤 중간고사다... 마지막이
제일 슬픈데...?
돌진인가? 은근히 보송송은 성격이 급한 기질이 있어서 먼저 선공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돌진이라. 괜찮으려나.
냄새꼬는 어떻게 대처하려나? 돌진은 일단 명중률이 낮으니까 피하려나, 아니면 공격? 냄새꼬 공격기술이 뭐가
있더라. 데려온 후에 배틀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물어보지도 않아서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냄새꼬가
덩굴을 꺼냈다. 덩굴채찍?
“아...”
아니었다. 냄새꼬가 덩굴로 보송송의 발을 걸었다. 역시 아직 2 족보행이 익숙지 않았던 보송송은 꽈당 넘어져
바닥에 몇 바퀴 구르고 말았다. 냄새꼬는 그 상태로 꽃봉오리 털어내듯 흔들더니 꽃잎 사이에서 어떤 가루들이
흩어져 나왔다. 뭘까, 독가루? 저리가루? 수면가루?
보송송은 가루를 뒤집어씀과 동시에 데굴데굴 굴러 냄새꼬와 부딪혔다. 냄새꼬는 주저앉았지만 데미지는 없는 듯
보였다. 그 상태에서 냄새꼬의 몸에서 초록색의 빛이 나왔는데, 아 이거 본 적이 있다. 전에 해너츠와 시합했을
때, 아, 이거 기가드레인인가? 아니지 진화한 직후에 버려졌다면 아직은 메가드레인일 터였다.
정신을 못차리던 보송송에게서 초록빛의 덩어리가 나와서 냄새꼬에게 흡수되자 보송송은 몸을 뒤채며 급히
냄새꼬에게 떨어져 나갔다. 그제야 보송송의 상태를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눈 밑이 보라색으로 변한 것이
냄새꼬가 뿌린 가루가 독가루였나 보다. 조금 비틀거리는 보송송과 다르게 대미지를 별로 받지 않은 냄새꼬는
툭툭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송송 몸에서 초록 구체가 떠오르며 냄새꼬에게 흡수되는 와중에도 보송송은 꼬리에 빛을 내뿜으며 냄새꼬에게
휘둘렀다. 냄새꼬도 메가드레인을 멈췄지만 뺨에 스치듯 상처가 났다. 대부분의 대미지는 다 땅에 꽂히고 말았다.
보송송이 독이 너무 퍼졌는지 균형을 못 잡고 발이 꼬여 넘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냄새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냄새꼬는 도리어 시선을 피했다. 잘못한 아이처럼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이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알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냄새꼬의 생각을 조금 엿본 기분이랄까.
나는 해독제를 먹고 숨이 편안해진 보송송을 몬스터볼에 넣었다. 그리고는 냄새꼬에 몸에 난 상처에 상처약을
꼼꼼히 발라주었다. 그리고 꼭 안아주었다.
“수고했어. 너 정말 강한 포켓몬이구나.”
손 안에 들어온 두 개의 몬스터볼이 묵직했다. 센터를 들려서 아이들을 치료한 뒤 돌아오니 저녁밥 먹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온 보송송은 냄새꼬를 견제하긴 했지만 시비를 걸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도 한 수 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외에는 다른 점이 없어서 일단은 안심했다. 물론 냄새꼬는 원래가 보송송을 신경 쓰지 않았었고.
아빠 말로는 원래 포켓몬들끼리 서열을 정리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처럼 한 번의 배틀로 우열이 결정되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자주 싸움판을 벌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배틀로 우열을 정하게 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고.
이성을 잃고 싸우게 되면 더 많이 다친다는 모양이다.
47 화
w. 도여은
중간고사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처음 보는 시험이었지만 수업을 충실히 듣기도 했고 모르는 부분은 잎새랑 같이
공부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생뚱맞게 들어앉은 포켓몬들이었지만 그래도 큰 차이는 없었던 것 같다. 아, 특히
체육은 엄청 달랐는데 거의 포켓몬학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포덕력을 측정하는 시험 같은 느낌이었다.
수행평가가 반을 차지해서 그렇게 지필이 큰 비중은 아니었겠지만 이전의 포덕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해야 할까. 하핫. 물론 체육 책에서 다 적혀있는 내용이지만.
잎새가 웃으면서 말하자 나는 별로 숨겨둔 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잎새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선생님이 올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나는 냄새꼬는 볼로 되돌렸다.
“그러니까 말이야... 쨌든 결국 그렇게 되어서 어찌어찌 냄새꼬만 데려오게 됐어. 나랑 냄새꼬만 있는 시간도
없었고.”
“보송송이 많이 질투하나 봐?”
“그렇지 뭐. 그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헤헤...”
“왜?”
“너 오바람한테 숨기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잎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를 하려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담임이 조례를 하러 들어왔다. 나는 노트에 작게 좀 있다가 얘기해줄게,
하고 적어 잎새에게 보여주었다. 잎새는 궁금한 눈초리였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조례는 오늘따라 길었고 금방 1
교시 2 교시가 지나 체육시간이 다가왔다.
진짜 싫다는 듯이 나는 밍기적 밍기적 체육복을 갈아입고 몬스터볼을 챙겨서 잎새와 같이 운동장으로 향했다.
“진짜로 왜 숨기려고 하는 건데? 오바람이 뭐라 그랬어?”
“아니...”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말해버렸다.
냄새꼬는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는지 여기저기 둘러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배틀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멀리 떨어져 운동장 일부를 쓰고 있는 다른 반에 흘끗 눈길이
가기도 했다.
아니야. 신경 쓰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마음이 편안해져서 잎새의 배틀을 지켜보았다. 잎새의 푸린은 상대와 친해지기로
공격력을 떨어뜨리고 막치기나 연속뺨치기로 상대를 때려눕혔다. 어어... 뭔가 엄청 웃는 낯으로 때리는 게...
엄청 친하게 굴어서 상대 포켓몬을 방심시킨다고 해야 할까. 그러다가 태연하게 막치기나 연속뺨치기를 하는
모습은 뭐랄까... 무시무시했다.
다른 아이들의 배틀도 구경을 했는데 그 모습에 옆에 냄새꼬도 뭔가 근질근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뭐랄까
움찔움찔한다고 해야 할까? 아쉽지만 참으렴, 하고 나도 모르게 잎사귀를 쓰다듬었는데 올려다보는 모습에 조금
움찔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 고개를 돌린 채 꼼지락거리는 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흐으 너무
귀엽다.
체육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잎새는 나에게 이번에 했던 배틀에 대해서 얘기했다. 연속뺨치기를 새로 배웠는데
이번에 잘 쓸 수 있었다는 그런 얘기. 잎새 품속에 안겨있는 푸린은 조금 상처가 나고 지친 기색이었지만
씩씩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손으로 잘했어요! 하는 것처럼.
48 화
w. 도여은
“야, 나랑 얘기 좀 해.”
그러고는 녀석은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나는 갑작스런 행동에 엉겁결에 몇 걸음 끌려가는데
뒤에서 잎새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잎새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푸린을 안고 서 있었다.
수돗가 주변이라 사람도 많았다. 이 녀석의 돌발 행동 때문에 이목이 몰려있었다. 그리고 은근 이 녀석
인기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녀석의 행동이 이상한지 저쪽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있던 오바람도 눈을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옥광산에서 있었던 일을 이어서 얘기할 생각이면 아무래도 단둘이 얘기하는 게 편했다. 들어봐야 믿어줄 사람도
없을 테지만.
녀석은 나를 학교에서도 사람이 적은 곳으로 끌고 갔다. 체육이 끝나자마자 냄새꼬를 볼 속에 넣어놨었기 때문에
방금 보지는 못했을 거고... 아마 체육시간에 내가 냄새꼬와 있는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나를
끌고 가는 건가?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녀석은 나에게 포켓몬을 거두는 것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녀석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 녀석도 내 말에 정곡이 찔렸는지 말이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생각했었던 녀석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곳에서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다 낯설게 느껴질 때...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네가... 알기나
해?”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울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숨을 색색거리며 참았다. 녀석은 아무 말도
없었고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점심시간 쓰레기 처리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배틀하자”
“...?”
“으으....”
그리고 여기서 물러나기엔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교칙을 어기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냄새꼬가 들어있는
몬스터볼도 자기를 꺼내 달라는 듯이 흔들렸다.
“진짜... 배틀만능주의냐.”
pul pul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질책하는 듯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바닥을 내리쳤다. 냄새꼬가 덩굴로 바닥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일단 포켓몬을 내보낸 이상 집중하자. 나는 대치하고 있는 두 포켓몬을
바라봤다.
머릿속에는 냄새꼬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순식간에 촤라락 지나갔다. 달콤한 향기, 용해액, 가루기술 3
종세트, 메가드레인. 풀타입은 가루기술에 면역이 있기 때문에 안 되고 메가드레인도 같은 독, 풀타입 때문에
반감... 덩굴로 공격을 해봤자 풀타입으로 반감이 들어갈 테고 더불어 덩굴 자체가 냄새꼬는 강하지 않아.
그나마 있는 건 용해액이 1 배로 들어가... 일단 밀어붙여야...!
“이상해풀, 돌진.”
젠장... 나는 속으로 욕지기가 나왔다. 이상해풀이 먼지를 일으키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왔다. 리얼 대전에
턴제 따위. 그리고... 달달한 냄새...? 어찌 되었거나 냄새꼬!
“피해!”
“메가드레인으로 흡수해!”
벌써 눈을 떠버리고 거리를 벌려 다시금 돌진을 준비하는 이상해풀에게서 초록빛이 방울방울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해풀은 다시금 냄새꼬에게로 돌진해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맡아지는 단내... 아, 이런.
계속해서 느껴지는 것은 달콤한 향기였다. 회피율을 떨어뜨리는 기술. 그래서 돌진을 못 피했던 걸까. 그렇다면
이번엔 피하기보단 버티기로... 제발 걸려 넘어져라.
바람과는 다르게 이상해풀은 냄새꼬의 덩굴을 우지끈 짓밟아버렸다. 그러고는 어마 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모습.
그럼에도 냄새꼬는 계속해서 떠오르는 초록빛을 흡수했다. 제발 버틸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흡수되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터벅터벅 발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일어나서 꽃과 잎을 파르르 떨며 먼지를 떨어낸 이상해풀을 그
녀석이 몬스터볼로 회수하고 있었다. 나는 체육복을 입고 있겠다 무슨 상관이야 싶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냄새꼬의 상태를 보았다. 힘이 빠져 축 늘어져있는 냄새꼬는 돌진을 두 번 맞은 것 치고는 그렇게 큰 상처는
없었다. 다행히 메가드레인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런 생각에 빨리 양호실로 가야지하는 생각에
몬스터볼에 냄새꼬를 회수하는데, 어느새 그 녀석이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었다.
“...”
“...?”
49 화
w. 도여은
거실에 남은 나에게 보송송은 왜 날 안 데려갔냐며 자기가 갔으면 이길 수 있었다며 누구랑 배틀했냐며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종알거렸다. 내가 그전에 냄새꼬에게 무슨 말을 했냐며 척 보기에도 비꼬는 것처럼
보였던 터라 볼따구를 잡아 늘리며 혼냈다. 그랬더니 보송송은 반성은커녕 엄마 미워 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에구 내 팔자야.”
“왜 그래?”
moda?
“오늘 냄새꼬를 데리고 처음으로 배틀을 했는데 졌어... 근데 보송송은 또 삐져버리고. 나도 져서 속상하고
분해 죽겠는데에에에.”
내가 엄마 허리를 불잡고 징징거리자 엄마는 으이그 하면서 내 머리를 토닥토닥해주었다. 덩달아 모다피도
손처럼 쓰는 잎으로 내 무릎을 토닥토닥했다.
“뭐 질 수도 있지.”
moda!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라니까. 1 배지도 따고 2 배지도 따고 지금까지 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 더
속상하고. 아 배틀 건 녀석도 짜증 나는 녀석이라서 더 짜증 나고.”
“누군데?”
“있어. 그런 남 이해라는 건 못하는 놈.”
솔직히 말하면 무슨 미친 소리냐고 잡아떼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녀석한테 보인 반응들이 많아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누구한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그래도 배틀은 배틀, 분한 건 분한 거였다.
엄마랑 모다피는 내 뒷말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나는 말을 돌렸다.
sae?
song! sooong!!
[잎새] 냄새꼬는갠차나??
쨌든 반으로 돌아왔을 땐 잎새가 다리를 동동 구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오바람도 있었는데 오바람은 가끔
점심을 같이 먹으러 찾아오는 것에서 발전해서 어쩌다 보니 아예 점심 팟 정규 멤버가 되었기 때문에 잎새와 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잎새는 내가 복도에 보이자마자 쿵쾅거리면서 뛰어와서는 무슨 얘기를 했느니, 그놈이 해코지는 안 했느니, 왜
이렇게 늦었느니 캐물어댔고 어느새 쫓아온 오바람까지 가세해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기를 부추겨댔다. 아무래도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란 오바람한테도 그 한지우의 모습이 낯선 모양이었다. 일단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는 말로
엉거주춤 넘겼다.
보건실까지 들렀다 오느라 반 가까이 지나가버린 점심시간 덕분에 밥을 빨리 먹느라 얘기를 자세히 하지는
못했지만,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얼버무리며 넘어갈 수 있었다. 대충 새 포켓몬을 들인 것 때문에 말다툼을
했었는데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배틀을 하게 되었고 져버렸다는 정도? 그것에 대한 추가 질문이 나왔지만
대충 스킵.
그렇게 잎새와 카톡으로 메시지를 몇 번 주고받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아빠인가? 생각해서
문을 여니까 달려오는 가디가 보였다. 무릎을 굽혀서 반겨주는데 그대로 가디가 돌지이이인 해서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찍어버렸다.
wangwang!!
“에고고 그래그래 완아. 나도 반가워.”
꼬리를 세차게 흔드는 가디의 뜨끈뜨끈한 털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드니 아빠가 신발을 벗고 들어오시고 계셨다.
“오늘 집에 왔네?”
“응. 좀 두고 온 것도 있고 얘기할 것도 있고.”
“에? 무슨 얘기?”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아빠가 앉은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 어느새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도 나와서 아빠를
반겨주었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티비에서 보았던 순천만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분명 정말 아름다웠던 것 같은데!
흐드러지는 갈대와 빛을 뿌리며 떨어지는 해. 그리고 날아가는 철새들! 가보지는 못했지만 영상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그런 곳이 다른 세계가 된 지금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 우파라니... 누오라니...!
“정말 가도 돼?”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냄새꼬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다. 냄새꼬나 보송송이나 습지도 갈대도 우파도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에 컴퓨터를 틀어서 보여주었다.
대략 이렇게 저렇게 얘기를 하며 설레는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바람한테 톡해서 가는지 물어봐야지.
아, 다담주 주말이라니. 어떻게 기다리지. 빨리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50 화
w. 도여은
언제나 그랬듯이 학교에 가고 단련을 좀 하다가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자습하고. 아, 보송송이 삐져서 같이 안
간 날 냄새꼬가 져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보송송은 냄새꼬는 믿을 수 없다면서 꼭 자기도 같이 가야 한다며 떼를
썼기에 둘 다 같이 학교에 데리고 다니고 있다. 체육시간에는 번갈아 나오고. 둘이 사이가 좋다곤 할 순 없지만
–주로 보송송이 시비 걸고 냄새꼬가 무시하는 구조- 크게 싸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다.
“여어.”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바람의 포켓몬은 이브이, 피죤, 그리고 중간고사 치기 직전에 진화한 레트라. 전에 잎새가 오바람하고 꼬렛이
언제 진화할 것인가에 대해서 내기한 적이 있었는데 딱 열흘 하고 하루 뒤에 진화해서 오바람이 잎새한테 왕창
뜯겼었지.
“잉어킹은 다른 포켓몬보다 진화시키기 힘들지만 조금만 더 애정을 쏟는다면 곧 진화할 게다. 야생의 갸랴도스는
흉폭하지만 잉어킹 때부터 손에서 길러진 갸랴도스는 진화시키기 힘든 만큼 주인을 잘 따르니까 말이야. 내 친구
중에서도 잉어킹을 길렀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 그것보다 지은아. 아빠는 이제 박사님에게 가 봐야 하니까 바람이랑 같이 있으렴. 그럼, 바람아
부탁한다.”
“아니, 아빠 부탁이라니...!”
아빠는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쌩하니 가버렸다. 아아. 아빠. 그래도 버스는 같이 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오바람이 있어서 안심하고 간다는 느낌이었어 그거. 부탁은 무슨.
그리고 개구쟁이처럼 웃는데 그것이 퍽 믿음직스러워 보이긴 했다. 하지만 역시 성격은 오키드-그린... 허세콩.
그나저나 저 멀리서 버스에 타라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는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빈 창쪽에 앉고
오바람과는 어쩌다 보니 버스 옆 좌석에 앉아서 같이 가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하고 같이 타는 것보다는 나은가?
순천까지는 네 시간은 넘게 타고 가야 할 테니까. 나는 은근슬쩍 궁금증에 대해서 물었다.
가볍게 물은 질문에 깜짝 놀라서 대답하는 게 내가 뭘 잘못 물었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말끝을 흐리더니 이마를
긁적거리면서 눈길을 피한다?
오바람의 말 끝에 뭔가 섭섭함이 들렸다면 착각인 걸까. 나도 모르게 말끝을 흐리게 되어버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느새 버스는 출발해서 덜커덩 거리는 소리나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아니, 일부러 말 안 한 건 맞긴 한데... 마치 속인 느낌이라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색한 느낌.
아아아 여기 잎새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나을 뻔 했을까. 괜히 잉어킹 얘기를 꺼냈나?
아, 오바람 조금 기분 상한 것 같지? 아니 자기도 말 안 했으면서... 아니 그전에 내가 물어본 적도 없었지만.
전에 잎새가 얘기하려는 거 내가 일부러 말 돌렸던 적도 있었지. 오바람 눈치 빠른 것 같던데 내가 말 돌린 거
알고 있었으려나? 전에 냄새꼬 처음 데려온 날은 한지우하고 싸운다고 눙쳐 넘어가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고.
그나저나 무슨 말이라도 해야 돼. 이거 너무 어색하다고. 그래서 내가 아무 말이라도 꺼내려고 입을 열었는데,
“있잖아 너...”
“너 말이야...”
“너 먼저...”
“너 먼저...”
“그래도 냄새꼬가 있어서 다행이네. 우파나 누오는 땅 타입을 겸하고 있어서 보송송 공격이 안 통할 것 아냐.”
나는 그 말에 툴툴댔다.
51 화
w. 도여은
“거기서 얘기를 좀 들어봤는데 거기에는 모든 이브이의 진화체들이 있어서 내 이브이한테 도움이 됐지. 도움이
될 거라면서 연구자료도 받았고. 이브이는 에브이나 블래키 쪽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뭐, 친밀도 진화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야.”
분명 원작은 쥬피썬더, 샤미드, 부스터만 알려주겠지만 아무래도 정보가 달라서인가. 그리고 연구 자료뿐만
아니라 진화체가 다 있다니... 이수재 씨, 정말 이브이를 좋아하시나 보다. 진화 얘기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오바람은 말을 잠깐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몬스터볼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한 포켓몬을 꺼냈다. 덜커덩 거리는
버스 안에서 오바람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포켓몬은...!
“캐이시잖아?”
“이수재 선생님의 첫 포켓몬은 캐이시였대. 자기가 고등학생일 때도 여행을 다녔었다면서. 그리고 그때
할아버지한테 신세를 졌다고 지금 후딘의 세 번째 아이라고 주시더라고. 얼른 받아왔지.”
그보다 오바람 포켓몬이 피죤, 레트라, 이브이, 잉어킹, 캐이시까지. 점점 스토리에 맞춰서 포켓몬이 저절로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토리를 따라가는 걸로도 모자라서 이런 것까지...
설마설마 이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나는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고개를 푸르르 털었다.
괴담일 뿐인 걸. 그저 괴담일 뿐이니까...
“잘 있지. 지금도 데려왔는걸. 남들은 꼬렛이 쉽게 잡히니까 무시하는데, 은근 이 녀석 제 몫을 톡톡히
하니까.”
“특히 필살 앞니는 꽤나 위협적이라고. 그리고 이 레트라 스피드도 빠르고. 그리고 따르기도 잘 따르고. 꼬렛
때부터 애교도 많았지. 좀 똑똑한 것 같기도 하고. 생긴 것도 다른 사람들은 무섭다고 하지만 보면 볼수록
귀엽다고.”
내가 좀 빤히 쳐다봤나. 오바람은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돌렸다. 뻔뻔한 오바람도 스스로 멋쩍었나 보다. 나는
그에 고개를 갸웃하며 얘기했다.
“지난번에 보니까 거부감 같은 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냄새꼬 그 자체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그래서 더 사랑해주고 좀 더 안정된 다음에 진화시키고 싶어. 그런데 보송송은...”
52 화
w. 도여은
미룰 수 없는 시간이 계속 다가올수록 겁이 났었다. 따라오지 않으면 어쩌나. 강제로 데려가야 하나. 거기서
죽임 당하는 걸 볼 수 없는 걸... 나는 잠기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결국 짐전을 갔어. 가서 문하생들을 이기고 짐리더의 아쿠스타를 상대로 하는데 그만 메리프가 물의 파동으로
혼란에 빠진 거야. 계속 공격을 맞았고... 이대로 지는 건가 눈앞이 깜깜했는데...”
“했는데?” 오바람이 말끝을 따라하며 말을 재촉했다.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메리프가 방전을 써버린 거야.”
“방전을?”
오바람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놀랄 만도 했다. 아무래도 방전을 배우기에는 나이도 경험도 부족했으니까.
방전이라는 기술이 게임으로 치면 레벨 30 후반에야 배울 수 있는 걸.
그런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침내 메리프가 체내의 전기를 다 쓰고 쓰러지고 나서야,
그제야 나는 쓰러지는 메리프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아니 나도 모르게 물속에 뛰어들어서 눈을 뜨니 메리프 앞에
다다라있었다.
“괜찮아?”
“보송송이 쓰러지기는 했지만 안정시키고 나니까 금방 일어났어. 그렇게 큰 상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리타이어라서-”
“-아니, 보송송 말고.”
내 말을 끊으며 말하는 오바람의 말에 나는 의아해져서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내가
바라보자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했다.
“너 말이야. 너. 괜찮냐고.”
“...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아. 트레이너라면 포켓몬이 강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게 당연하니까. 진화를
했다면 너처럼 생각하기보다는 기뻐하고 축하하고 하는 거라고.”
“하지만-”
“-실수할 수도 있고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를 수 있어. 하지만 그런 것으로 잘못 키웠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고
보는데, 난.”
“...”
“넌 냄새꼬를 데려와서 확실히 네 포켓몬으로 만들었고 보송송도 밝고 강하게 잘 자라고 있잖아. 내가
지켜보기론 그리고 네 말을 듣기로도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잖아.”
“최선...”
나는 그 말을 입으로 곱씹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악몽을 꾸고 울어버리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거야?
불안한 모습을 포켓몬들이 느끼고 있지만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괘씸해.”
“엥. 뭐가.”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건 괘씸하다고.”
웃음이 났다. 창밖에는 햇빛이 초목들을 감싸고 있었고 그것은 쌩쌩 달리는 버스 밖으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몬스터볼 안에서 잠자고 있는 두 아이들을 꺼내서 꼭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는 달리고 또 달렸다.
금방이라도 순천에 도착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53 화
w. 도여은
버스는 달려서 순천에 도착했고 나도 사람들이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보이는 파란 하늘.
정말 쾌청한 날씨였다. 굳이 쾌청을 쓰지 않아도 불 타입 포켓몬들이 마구 날뛸 수 있을 것 같은 날씨!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이 포켓몬 월드에 적응했다는 증거이려나... 어쨌든 성수기를 피해 잡은 날짜에 연구 목적으로
잠시 생태공원은 폐장해 두었기에 이런 좋은 날씨에도 사람은 없었다.
“나는 먼저 가볼게.”
“연구 일을 돕는 거야?”
“알겠어, 알겠어.”
보송송을 무릎에 앉히자 신기한 듯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감탄인 듯 송송거리다가 다리를 파닥파닥
거리기에 바닥에 내려놨더니 주변 풀숲에 관심을 보이면서 킁카킁카 냄새를 맡기도 하고 이리저리 뛰기도 하고 참
바쁘다. 반면에 냄새꼬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기는 했지만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낯설은
걸까? 나는 냄새꼬를 들어 올려 벤치에 앉혔다.
“응...?”
“윽... 보송송.”
내가 얘기하자 냄새꼬는 덩굴을 스르르 풀었다. 보송송도 얼른 가자며 벤치에서 뛰어내려 앞장을 선다.
“냄새꼬, 안아줄까?”
내가 변명하자 보송송은 냄새꼬를 보면서 우앙우우웅 으르르릉 하더니 막 속이 답답한지 주변을 마구 돌면서
뛰더니 그제야 속이 풀리는지 뾰로퉁하게 다시 앞장을 섰다. 이걸 보면 진짜 냄새꼬 데리러 가자고 했던 메리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아니, 진화하면 성격이 바뀐다고들 하니까. 그것보다는 진화하더니 더 에너지가
넘치고 질투도 심해진 것 같은... 내 착각이려나.
아무래도 박물관 내부이기도 해서 그런 제한이 있는가보다. 적어도 포켓몬 못 들어가게 하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일단 진화했어도 둘 다 소형 포켓몬이긴 한데.
내부에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커다란 켄호로우 모형...! 암수의 모습에 깜짝 놀랬다. 밑에는 포켓몬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켄호로우는 암수 성별에 따라 깃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라던가, 콩둘기는 어리기 때문에
여기까지 날아올 수 없어 볼 수 없다거나 그런 설명들.
아,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 세계의 인간들은 체력이 내가 살던 세계보다 더 높다는
것이었다. 포켓몬과 지내서 그런 걸까. 생태적인 역사가 달라서 그런 걸까. 내 몸도 이전에 나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걸 느낀다. 그걸 알 수 있는 게, 내가 냄새꼬든 보송송이든 충분히 안고 다닐 수 있다는 점? 그런 것으로
보았을 때 정말로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이 세계로 영혼이 뒤바뀐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그럼 진짜 이 몸에 살던 영혼은 어디로 간 것일까.
54 화
w. 도여은
더 좋았던 것은 역시 갈대! 5 월이라 키가 그렇게 크진 않지만 푸르른 갈대가 높이 높이 자라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아 하고 청량한 소리가 들려왔다. 갈대 사이사이 늪에는 조그마한 게나 망뚱어가 보이기도 했다.
걸으면서 보이는 예쁜 풍경을 배경으로 보송송이나 냄새꼬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이것저것 살펴보기도 하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이게 바로 사람이 없어서 좋은 점!
걷다보니 야생의 우파를 만나기도 했다! 배틀!은 아니고 얼른 도망가 버렸다. 도망가는 쪽을 보니 저 멀리 우파
여럿과 누오 몇 마리가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 역시 포켓몬 세계. 그 외에 흔히 보이는
포켓몬들이 잠깐 보였다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등 뒤로 부스럭 소리가 들려다. 야생 포켓몬인가?
하고 뒤돌아봤는데,
“어?”
이렇게 나무다리를 열심히 걷다보면 표지판과 함께 전망대로 오르는 산길이 나온다. 산속으로 들어와 산길을
올라가는데 캐터피도 보이고 뿔충이도 보이고 꼬렛, 구구 등 평소에 산에서 자주 보이는 포켓몬은 물론 커다란
버터플도 보았다...! 멀리서 그냥 지나간 것이긴 하지만 야생 버터플은 처음 봐! 최종 진화 형태가 보일 정도로
생태공원이 잘 조성되어있다는 것이려나.
“으음....”
나는 옆의 냄새꼬와 시선을 교환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냄새꼬는 자기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으음... 나는 가만히 쭈그려 앉았다.
“저... 안녕?”
“왜 따라오는 거니?”
upapapapa
어? 진화하는 걸 도와달라고...?
.
.
.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다. 자기는 요 주변에 사는 우파인데 자기 친구 우파가 누오로 진화했다. 질 수 없어서
자기도 진화하고 싶은데 노력해도 혼자 진화하는 건 힘들더라. 주변 포켓몬들 얘기를 들어보니 포켓몬 트레이너
옆에 있으면 진화도 빨리 하고 강해진다더라. 내 트레이너가 되어줘! 우파를 품에 안고 얘기를 들으며 올라오니
벌써 전망대였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보송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너... 상성이...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차라리 그럴 거면
냄새꼬가 배틀하는 게 승률이 높긴 한데... 뭐, 이기려고 하는 배틀이 아니니까 상관없으려나? 진화시키려면
져줘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뭐 여긴 게임이 아니라서 지는 것뿐만 아니라 배틀을 구경 만해도 진화에
가까워지는 것 같긴 하다. 강해지면 진화한다는 그런 느낌? 그런 의미에서 포켓몬 트레이너 옆에 있으면 빨리
진화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긴 하겠다.
보송송이 알겠다며 길게 울었다. 나는 적당해 보이는 공터에 자리를 잡고 조금 떨어진 벤치에 냄새꼬와 같이
앉았다. 보송송도 우파도 적당한 거리를 벌려 섰다. 보송송이 뒷발로 땅을 긁는 반면 우파는 좀 신나서
통통거린다. 아무래도 자기가 상성 상 우위인 걸 아는 걸까나.
“시작!”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송송이 달려든다. 아무래도 돌진은 아니고 몸통박치기인가? 하지만 대놓고
달려오는데 가만히 있을 우파가 아닌 듯 마주 달리더니 꼬리를 크게 휘두른다. 아, 저게 힘껏치기인가? 힘과
힘이 만나서 둘 다 밀려났다. 아무래도 보송송이 조금 유효타를 맞은 듯.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밀려난 후에도
머리를 흔들어댔다.
“진흙 폭탄인가...!”
“그만!”
더 하다간 적당히가 아닐 것 같아서 여기서 말렸다. 나는 찬찬히 다가가서 우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솜씨가 대단한데?”
“보송송, 이리 와 봐.”
“잘했어.”
55 화
w. 도여은
냄새꼬와 한번 붙자는 건가. 냄새꼬도 오는 싸움 안 막는다는 듯이 앞으로 나왔다. 으음... 우파가 미진화체라
이기기 힘들 텐데. 보송송 같은 경우에야 상성이 높아서 선점한 거지. 냄새꼬는 상성으로도 힘으로도... 음...
우파가 밟혔을 때 꼬리로 발버둥 쳤지만 역시 팔이 없으면 일어나기 힘들구나, 라는 것을 느꼈 달까. 그리고
냄새꼬 성격이 냉정한 성격이라는 것도 느꼈다. 기어오르면 가만히 안 두겠다는 느낌? 이 중에서는 냄새꼬가 제일
세려나?
뭐, 내가 그만 두라고 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슬그머니 발을 떼고는 내게 안기는 모습을 보면... 뭐
어떠냐 싶기도 하고. 헤헤.
.
.
.
쨌든 잠이든 보송송을 안고 모이기로 한 곳으로 걸어갔다. 사람들과 합류하기 위해 포켓몬을 몬스터볼에 넣어야
해서 우파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깐 맡고 있을 뿐이지만 빈 몬스터볼이 가득 차는 느낌은 그 언제든 신기한 것
같다.
아무래도 제일 어리니까 잡다한 것만 시켰겠지 싶었다. 오박사님이 손자라고 봐주실 것 같지도 않고. 지난번에
뵈었을 때가 처음이긴 했지만 아빠 말 들어보면 엄청 일을 많이 시키는 것 같던데. 주말인데 가끔 아빠도 급하게
나갈 때도 있었고.
쨌든 순천만 생태공원 담당하는 현지 연구원들과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은 한정식이었고 순천의
특산물도 잔뜩 먹을 수 있었다. 해산물 너무 좋아. 포켓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푸드는 방에 가서 줘야겠더라.
사람이 너무 많아. 꺼낼 수가 없어.
“분명 경험이나 기술이나 다 진화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왜 진화하지 못하는 걸까? 으음... 메리프가
보송송으로 진화할 때에도 진화할 때가 됐었는데도 꽤 늦게 진화했었잖아.”
내가 아빠에게 묻자 아빠는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일단 지켜본 바로는 보송송은 외로움을 타는 성격인 것 같고, 냄새꼬는 냉정한 성격인 것 같더라. 그래서 같은
소형 포켓몬 푸드를 주지만 보송송은 매운맛, 냄새꼬는 떫은맛 푸드다. 흐음 그 외에도 조금은 영양 성분이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쨌든 내가 우파에게 보송송과 냄새꼬의 푸드를 맛보게 해 봤더니 떫은맛보다는 매운맛이 더 낫다는 듯. 그렇게
애들 밥을 먹이고 더러워진 보송송을 씻기고 나도 깨끗하게 씻었다. 그런 뒤 나는 머리카락을 대충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버스 타고 걸어 다니고 했더니 몸이 막 쑤셔. 내가 침대에 누우니까 나를 따라 보송송도
냄새꼬도 침대에 엎어졌다. 씻고 나니까 더 피곤한지 보송송은 금방 잠에 빠진 듯 도롱도롱 소리가 났다.
“윽.”
upapa!
“산책이라도 갈까?”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우파가 꼬리를 홱홱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야생의 우파라는 것인가 아니면 진화가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인가. 반면에 보송송은 베게 한 귀퉁이를 베고 있었는데 마치 여름철 아스팔트에 붙은
껌딱지처럼 녹아있는 모습이었다. 흐물흐물해. 냄새꼬는 내가 일어나자 몸을 일으켰지만 졸린지 눈을 부비고
있었다. 아앗, 사진. 사진이야. 나는 우파를 서둘러, 그렇지만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그
모습들을 찍었다. 수정 언니가 말하기를 미진화 포켓몬 시절은 한 때라고 많이 찍어 놓으랬단 말이지! 냄새꼬의
뚜벅쵸 시절을 못 본 게 너무 한이야! 또륵또륵.
우파와 함께 복도를 터벅터벅 걸어서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온도는 서늘한 게 밤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더불어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오늘 천문대에서 보았던 큰고... 아니
링곰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별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이구나. 금세 포기하고 로비 앞 계단을 내려왔다. 우파가
통통통 튀면서 날 따라 계단을 내려왔다. 정말 미진화 포켓몬은 너무 귀여워. 물론 누오도 당연 귀엽지만...!
“어?”
56 화
w. 도여은
upapapa
“웬 우파야? 잡았어?”
우파가 통통거리며 벤치에 올라와 내 무릎까지 점령하니 오바람이 물었다. 왠지 물어볼 것 같다고 생각한 그대로
얘기해서 웃음이 났다.
“앗, 이 녀석아...!”
eveee
물린 손가락이 아프진 않은지 오바람은 으이그 하면서 이브이의 털을 헝크러트렸다. 이브이는 오바람과
투닥투닥하다가 고개를 팩 돌리며 무릎 위에서 내려와 벤치 빈자리에 몸을 말아 누었다.
“진짜로 친한 거 맞아?”
이런 거 보면 진짜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열 살 때, 한지우를 처음 만난 거야?”
오바람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지만 웃음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말하곤 달라서 역시 둘은 친하긴 친한 친구구나
싶었다.
“열 살 때부터이면 거의 8 년 동안 친구인건가?”
“어, 볼 꼴 못볼 꼴 다 보고 또 모르는 건 없을 정도로 지냈지. 작년까지만 해도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훤히
보였다고.”
아... 지나가던 포켓몬한테는 안 그러는 거구나. 나는 그런 한지우의 시선을 뺏어간 그 사람이 누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켓몬하고 비슷한 사람이려나...?
오바람이 물었다. 혼잣말 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버려지는
포켓몬은 많다. 그만큼 버리는 사람도 많다는 거겠지. 나는 그걸 유기포켓몬센터에서도 느꼈고 냄새꼬를 보면서도
느꼈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한지우가 나를 신경 쓰는 건 나한테서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었을까. 그 이질적인
느낌. 포켓몬들이나 알아차리던 그런 것을 한지우는 똑똑히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예의
주시하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럼 난 간다.”
녀석은 터덜터덜 돌아갔고 나는 벤치에 남았다. 녀석이 멀리 떨어지자 나는 참았던 한숨을 뱉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포켓몬이 없는 세상에서 왔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처음보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남아있다고. 그래서 한지우가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메리프 때도,
냄새꼬를 새로 들였을 때도 나에게 그렇게 날 서게 굴었던 것 같다고. 포켓몬을 버리지 말라고 했었지.
나는 내 무릎 위의 우파에게 물었다.
paaa upaa
그러고보니 갑자기 세상이 바뀌고 포켓몬이 생겼다고 정신이 없어서 연락 한 번 안 했다. 물론 평소에 연락하고
살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인데...
“너도 무리가 있어서 잘 알겠구나. 응응. 맞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그런데 내가 들인
애들은 아니잖아. 보송송이나 냄새꼬나. 요즘은 그냥... 이곳에서 지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upapa!
1-8 서로의 세계
57 화
w. 도여은
“인천대로 가려고?”
수업이 다 끝나고 학교를 나서면서 잎새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포켓몬 게임
스토리대로 체육관을 진행하고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아빠가 신청해버려 간 강원대는 회색시티였고, 급하게
체육관을 깨기 위해서 물 포켓몬 체육관인 부산대로 갔었지. 아마 게임 상으로 치면 블루시티 체육관이었을 거다.
그러고 나니까 왠지 순서대로 진행해야 할 것 같은 기분... 한때 포켓몬스터 시리즈 스토리를 정복한 자로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
기본적으로 남성이 군대에 의무 복무하는 것은 같지만 예외적으로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지어야 할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3 배지 이상 가지고 있는 여성 트레이너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포켓몬
트레이너는 국가에서 관리하며 군인 중에는 트레이너가 많다고 들었다. 포켓몬이 전쟁에 쓰인다는 반증이랄까.
마티스도 비행기를 몰면서 전기 포켓몬을 사용했었다고 하니까... 뭐랄까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전쟁은 영화로밖에는 모르지만... 사람이나 포켓몬이나 모두에게 끔찍한 거겠지.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세계적으로 포켓몬 시합을 스포츠라고 포장하지만...”
잎새는 미간을 찌푸렸다. 나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부에서 포켓몬 체육관을 운영, 지원하고 포켓몬
센터를 운영하여 포켓몬 트레이너의 숙박과 포켓몬 치료를 무료, 혹은 값싼 가격에 제공하는 것도 사실은 다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포켓몬은 전쟁에서도 큰 전력으로 작용한다고 하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평균적으로 어린아이의 지능 수준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공할만한 파워를 가진 포켓몬을 군사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지.
사실 정부에 신청을 하게 되면 받는 스타팅 포켓몬도 포켓몬 트레이너 양성의 일부이다. 신청만 하면 무료로
강하고 희귀한 스타팅 포켓몬을 받을 수 있지만 스타팅 포켓몬을 받고도 기간 안에 3 개 이상의 배지를 따지
못하면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는 여성과 달리 의무적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기 때문에 어차피 가야 할 군대, 포켓몬 마스터의 꿈을
이루겠어! 하고 열성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일반 군인하고 트레이너 하고 대우가 다른 점도 있고.
여성들도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반이 분분하다. 실제 체육관 제도하고 트레이너 제도가
정착이 될 때 만들어졌으니 여성 트레이너들이 군 복무를 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랄까.
“근데 아직 그런 건 먼 얘기 같은걸.”
고등학교 2 학년생인 나에게는 눈앞의 공부나 수능만 보이지 대학생이니 군대니 하는 얘기는 다 까마득히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그럼 이번 주 잘 다녀오구.”
58 화
w. 도여은
강원도나 부산에 갔던 걸 생각하면 인천은 가까운 거리였다. 지하철을 타고 인천대입구역에서 내리니 그것이 꽤
실감이 났다.
인천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은 풀과 나무가 많은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어서 걷기에 보기 좋았다. 평소 같으면
여름이 가까워져 뜨거운 햇빛을 막아줘서 더 좋았겠지만 오늘은 곧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아주 흐릿한 날씨였기
때문에 얇게 입은 옷이 조금 서늘했다.
그때 보송송이 귀를 쫑긋했다.
“어, 보송송!”
보송송이 무언가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풀숲을 뛰어넘어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보송송의 뒤를
허겁지겁 따라갔다. 나무와 덤불을 지나 조금 달리니까 가로막힌 그늘진 벽이 나왔고 그 아래 웅크리고 있는
주황색 무언가가 있었다.
“파이리...?”
파이리였다. 학교에서 스타팅으로 파이리를 받았던 학생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 파이리는 야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보송송이 갸웃거리며 가까이 가자마자
웅크리고 있던 파이리는 고개를 들며 으르릉 거리기 시작했다. 먼지투성이에 무언가에 공격당했는지 온 몸에는
긁히고 물린 상처가 가득했다. 파이리의 건강을 상징한다는 꼬리의 불꽃은 위태위태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탓에 상처라도 봐주려고 했지만 파이리는 으르릉 크르릉 거리는 소리를 더 크게
낼뿐이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불이라도 뿜을 기세에 나는 파이리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또한 책임지지
못할 야생 포켓몬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119 에 구조 신청이라도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도 만약 구조가
된다고 하더라도 마치 냄새꼬같은 처지가 될까 봐 선뜻 전화할 수 없었다.
“어쩐다...”
soong...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치하는 시간만 길어졌다. 체육관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결단은 내리지 못하고
결국 체육관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보고 그때 다시 연락을 해보거나 상처를 치료해 보기로 했다.
.
.
.
“이지은 씨.”
“네.”
우파의 등장에 문하생들은 전기 기술은 쓸 엄두를 못 냈고 대체로 물리기를 사용했는데 스피드가 상대적으로
느린 우파에게는 상대가 먼저 다가오는 것이 유리했다. 안정적으로 진흙 폭탄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머드숏을
이용해서 쓰러뜨리기! 물론 지진을 배우고 있었으면 광역기 공격을 할 수 있었겠지만. 뭐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았다. 이제 곧 배울 수 있을 거야 우파. 아니 이제 누오지.
“쓰레기통을 조심하세요.”
...?! 나는 갈색시티, 마티스, 쓰레기통...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진짜로 쓰레기통을 뒤져야 된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트레이너를 가장 많이 만나는 포켓몬 센터 간호사의 말은 믿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 세대 쓰레기통을 뒤지던 빡침이 벌써부터 마음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았다.
.
.
.
진짜로 쓰레기통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커다란 철문과 그 안을 절대로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의지가 보이는 전기가 세 줄로 파지직
튀고 있었다. 역시 전기타입 체육관이라 이건가. 전기를 아주 펑펑 써대는구만!
“하...”
그렇게 몇 번을 삽질을 한 후에야 나는 비로소 철문이 드르륵 하는 거친 소리를 내면서 양쪽으로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계속 쓰레기통 바닥을 뒤져야 해서 허리가 빠질 것 같다고 생각할 때였다.
죽을 것 같은데요. 라고는 말하지 못했지만 내 표정이 의미를 담고 있었던 듯 마티스는 핫핫핫핫 하고 웃었다.
생각보다 큰 덩치에 장난 아닌 근육을 가진 금발 외국인이었다. 마티스는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이쪽으로
걸어왔는데,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봐 눈빛만은 엄청 매서웠다. 나는 내심 겁먹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지우가 째려보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59 화
w. 도여은
마티스가 심판에게 눈짓을 보내자 심판이 호루라기를 삑! 불면서 깃발을 내렸다. 배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와 마티스의 몬스터볼이 동시에 던져졌다. 마티스의 첫 포켓몬은 찌리리공이었다. 나는 당연히
누오를 꺼냈다. 목표는 누오로 체육관전에서 이기는 것이다. 적어도 냄새꼬까지만으로 이기는 것!
“굴러라! 찌리리공!”
찌리리공이 구르기 시작했다. 혹시 구르기 공격인가 생각했지만 그저 찌리리공이 굴러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래도 쓰레기통이라는 장애물이 많아서 구르기를 사용하기에는 꽤나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꽤
스피드가 빨라 쓰레기통 사이를 누비는 찌리리공의 모습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그래도 땅타입인 누오니까
전기기술을 사용하지 못해 공격은 한정적일 테니까. 역시나!
“몸통박치기!”
“누오!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려서 힘껏치기!”
꼬리로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중률은 떨어지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둔하진
않았다. 찌리리공과 누오의 꼬리가 마주치는 순간 펑, 하는 작은 폭발음 소리와 함께 찌리리공이 강하게 날아가
쓰레기통 2 개를 연속으로 쓰러뜨리고 멈췄다.
“소닉붐!”
“진흙폭탄!”
나는 대미지는 약하지만 대신 명중률이 높은 머드숏을 쓰라고 했다. 가까스로 맞은 찌리리공이 진흙을 뒤집어쓴
채 뒤로 밀려났다! 찌리리공은 꽤 힘들어 보이는데도 마지막까지 소닉붐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소닉붐을 맞고
버틴 누오는 머드숏을 한 번 더 뿜었고 결국 찌리리공, 리타이어. 역시 상성 공격 두 배 효과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고 회수하는 시간을 그냥 둘 순 없지. 가뜩이나 누오는 스피드가 느린 걸?
“흙놀이야!”
심판의 깃발이 내려가자 마티스는 찌리리공을 회수했다. 중앙에 있는 쓰레기통은 다 쓰러져 널부러졌고 안에
들어있던 종이들은 진흙과 같이 굴러다니고 완전 난장판이었다. 그 사이 누오는 공중을 향해 진흙물을 뿌렸다.
필드가 진흙으로 질척질척해졌다.
마티스의 피카츄는 나오자마자 눈 깜짝할 새에 누오에게 달려들었다. 체력이 간당간당했던 누오는 결국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누오를 회수하며 몬스터볼에서 냄새꼬를 내보냈다. 찰팍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흙 위에 냄새꼬가
섰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흙내음 때문인지 배틀 필드에 서서인지 냄새꼬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으음, 미묘한
차이지만 항상 옆에서 보는 나는 알 수 있지!
그래도 흙놀이의 여파로 당분간 전기기술은 약화될 뿐만 아니라 상성상으로도 전기 공격은 반감.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냄새꼬에게는 한 방을 먹일 공격기는 없다. 이럴 때는...!
“독가루야!”
“그림자 분신술”
냄새꼬의 꽃봉오리가 파르르르 떨리면서 보라색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카츄의 잔상이 흔들렸다.
그러고는 열 마리의 피카츄로 증식했다! 독가루는? 나는 피카츄를 살폈다. 피카츄들의 눈가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됐다. 독이 먹혔어.
“피카츄, 적을 교란시키거라!”
“냄새꼬, 집중해서 공격해오는 녀석을 노려!”
피카츄들은 작은 몸집으로 냄새꼬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몸집이 작아서 쓰러져있는 쓰레기통 뒤에도
숨어가며 움직이는 모습에 본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노랗고 귀여운 몸짓으로 장난꾸러기같이 진흙이 묻은 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자못 깜찍한 모습이었지만 내 눈에는 얍살스러워 보일 뿐이었다.
“전광석화!”
저쪽이다! 달려드는 피카츄의 모습이 보였다.
“용해액을 뿌려!”
saekko...!
냄새꼬의 등 뒤로 노란 물체가 퍽 부딪혔다. 페이크였던 건가! 이러한 바뀐 공격은 예상치도 못했다. 분신체로
시선을 교란시키고 본체로 공격한다는 거지? 어쩐다...
이런 시간에도 피카츄는 빙글빙글 돌면서 전광석화를 계속했다 잡을까 싶으면 펑 사라지면서 분신이고 옆에서
본체가 공격해오고 중간중간 그림자 분신술을 반복해 일정한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 냄새꼬도 실체를 눈으로
뒤쫓아도 금방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저 쓰레기통만 없으면 될 것 같은데...! 쓰러지고 쏟아지고 엉망인 쓰레기통 필드 때문에 자꾸 피카츄를 놓치게
되니까. 저 쓰레기통을 없애버리면, 아니, 아니야. 그거다...!
“쓰레기통으로 덮어버려!”
냄새꼬는 내 명령에 당황하는 듯하더니 피카츄가 뒤에 숨으려 했던 쓰러진 쓰레기통을 덩굴로 먼저 들더니 바로
피카츄를 덮어버렸다.
잡았다!
“호오.”
“놓치면 안 돼! 꽉 잡고 메가드레인!”
“피카츄! 전기쇼크다!”
마티스의 명령에 덜컥거리는 것이 멈추고 전기가 노랗게 쓰레기통을 덮으면서 번쩍대기 시작했다. 냄새꼬가
찌릿찌릿한 듯 눈을 찡그리는 것이 보였다. 아, 진흙이 거의 말라있었다. 흙놀이 효과가 끝난 것이다.
메가드레인은 계속 되고 있었고 전기 공격도 깜빡깜빡 거리며 계속되고 있었다. 피카츄가 얼마나 버틸까. 독에
걸린데다가 메가드레인까지 당하면서 전기 쇼크라. 내구가 강하지 않은 피카츄니까, 이제 곧.
전기 공격이 그쳤다 이어지기를 조금 반복하다 마지막이 가까스로 한 마지막 공격인지 안에서 아무런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다. 초록빛들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피카츄, 시합 불가!”
심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냄새꼬는 지쳤는지 덩굴을 회수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광석화를 몇 차례
피하기도 했었지만 공격도 많이 받았고. 또 전기쇼크를 받느라 메가드레인으로 회복도 많이 못했을 터였다.
빨피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마티스가 피카츄를 몬스터볼로 돌려보냈다. 지금 교체를 할까?
“냄새꼬, 돌아올래?”
실제로 라이츄는 처음 봤다. 생각보다 큰 몸집에 노란 뺨에서는 파직파직 전기가 튀고 날카로워 보이는 귀를
잔뜩 위로 올린 채였다. 피카츄는 한지우의 피카츄를 자주 봐서 익숙했지마는 역시 라이츄. 박력이 다르다.
전기포켓몬은 특히 애정하는 편이지만 역시 나는 피카츄보다는 라이츄파니까.
“냄새꼬.”
“전광석화!”
“잡아! 그리고 독가루.”
“라이츄! 십만볼트!”
“뭐?!”
RaiiCHUUUUUU!!!
“냄새꼬, 시합불가능.”
“부탁해, 보송송.”
“돌진!”
w. 도여은
마티스는 어설프게 웃는 나에게 오렌지 배지를 건네주었다. 내 손바닥 위에 올라온 배지는 태양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꽃처럼 보였다. 주황색인 중앙을 중심으로 노란빛이 뻗어나가는 것이 마치 십만볼트를 사용하는
전기포켓몬 같았다. 보송송도 십만볼트를 사용하면 그렇겠지?
목표는 누오로 이기는 것이었지만 사실 냄새꼬에게도 미리 지시를 해놨었다. 만약에 보송송까지 나서게 된다면
달콤한 향기를 사용하라고. 분명 한지우에게 당했던 수법이었지만 같은 전기포켓몬끼리의 배틀에서 전기기술은
반감, 보송송의 아이언테일은 또 강철타입이라 반감, 노말기로는 몸통박치기나 돌진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달까.
진짜로 보송송까지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3 배지전을 내가 너무 얕보고 있었나보다.
라이츄는 강했지만 라이츄가 등장하기 전 눈치로 깔아둔 달콤한 향기는 회피율을 2 랭크나 떨어뜨리는 기술인
데다가 혹시나 하고 걸어둔 독가루가 통해서 다행이었다. 돌진을 사용하려면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마비가루가
좋았겠지만 전기포켓몬은 마비에 걸리지 않으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파이리...!”
나는 급하게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폈다. 혹시나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챙긴 노랗고 작은
접이식 우산이었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얼마나 비가 세차게 오는지 우산을 뚫어버릴 기세였고 바닥은 벌써
웅덩이가 드문드문 생겨있었다. 센터에 들려서 포켓몬을 맡기고 난 뒤에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벌써 바짓단은
흠뻑 젖었고 우산을 썼음에도 옷이 벌써 눅눅했다.
포켓몬도 없이 파이리를 설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생각지 않고 일단 발걸음을 향했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데리고 갔어야 했나. 이렇게 비가 많이 쏟아질 줄 몰랐지. 나는 나를 자책하면서 다리를 움직였다. 내가 거두지
않더라도 일단 비를 피하게 하고 치료시켜야지, 혼자서 할 수 없다면 센터로 연락하거나 경찰에 연락을 해야지,
뭐, 그런 생각도 한 줌 없이 발이 저절로 움직였다. 마지막엔 반쯤 뛰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의 그 장소에 도착했다. 빗물에 몸을 떠는 덤불을 넘고 물소리가 나는 잔디를 밟으며 나무가 높게
드리우고 있지만 물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그곳에,
파이리는 없었다.
“흐아...”
나는 빠르게 오느라 차오른 숨을 한숨과 함께 뱉었다. 그 한숨에는 걱정, 불안, 허탈이 묻어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안도가 있었다. 아니, 안도라니.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이면서 도리어 내가 놀라고 말았다. 누가 조치를
취했을 거야, 안전한 곳으로 피했을 거야, 무사할 거야, 라는 나를 속이는 안도감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돼.
몸을 돌려보니,
Pika?
비에 젖은 피카츄와
“한지우?”
그나저나 녀석은 우산은 어디에 팔아먹고 왔는지 모자부터 발끝까지 푹 젖어있었다. 뛰어와서인지 숨도 거칠었다.
녀석은 나의 눈을 피하더니 무언갈 찾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파이리...?”
“봤어?”
“아니, 나도 찾고 있었어.”
녀석의 미간이 찡그려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가깝지 않은데도 촘촘히 내리는 비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데도
눈에 그려지듯이 선했다. 역시 포켓몬 때문이구나. 주변 여자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지우는 무표정하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아마 그건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은근히 꽤 표정이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포켓몬 한정일 때만.
Pikapi!
“엄청... 뜨거워.”
“여기 우산 좀 들어봐.”
안에 반팔을 입었던 터라 찬바람에 소름이 돋았지만 품에는 불덩어리가 안겨져 있는 것처럼 뜨거웠다. 나는
파이리 꼬리를 조심하며 몸을 일으켰고 그에 한지우도 우산을 들어줬다.
내가 얘기하자 한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작은 불꽃을 들고뛰었다. 그렇게 긴 거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천리길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61 화
w. 도여은
그녀는 럭키를 불러 이동식 침대에 파이리를 눕히면서도 기다리는 동안 씻으라며 각각 방 열쇠와 수건 그리고
담요를 챙겨주었다. 물론 한지우에게는 여분의 옷까지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야 처음부터 우산을 쓰고
있었고 파이리를 데려오는 과정에서도 비를 덜 맞았지만 녀석은 처음부터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비를 맞고
있었으니까.
간호사가 이동식 침대를 끌고 럭키와 함께 센터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도 그는 제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걸까. 그래도 그렇지...
절대 걱정돼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물을 빗물을 뚝뚝 흘리면서 바닥을 더럽히면 쓰나.
그렇게 2 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복도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힘이 쭉
빠졌다.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파이리가 다시 건강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
.
포켓몬은 강하다.
마른 땅에서 물이 솟아올라 파도가 치고, 발을 한 번 구름에 대지가 깨어진다. 흐린 하늘을 쾌청하게 하고,
쾌청한 하늘에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날리게 한다. 손도 대지 않고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리는 것은 물론,
하늘에서 유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포켓몬의 힘?’
‘흐음... 과학과 물리학의 영향 밖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하긴 아직까지 포켓몬을 과학적으로 밝혀내지 못했지. 이렇게 옆에 같이 살아가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옆에 다가온 가디, 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켓몬은 선사시대 때에 포켓몬과 인간이 어울려
살았다는 증거가 남아있지만 선사시대 이후, 즉 인간이 언어를 넘어 글자를 사용하고 그것을 남기게 되었을
때부터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간과 포켓몬의 반목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아빠는 웃으면서 테이블에 흩어져 있는 종이들 중에 하나에 그림을 그렸다. 물이 담겨져 있는 컵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구불구불한 선을 그어서 김이 나고 있는 것을 표현했다.
나는 그때를 생각했다. 언뜻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메리프가 어려서 정전기가 잘 난다고 했었고.
조금씩 메리프가 자라고 보송송이 되면서 전기를 잘 다루게 되더니 이제는 시합 때만 정전기 특성이 나타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급하게 손을 대거나 끌어안아도 전정기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아빠는 그려진 물잔을 가리켰다. 다른 세계에서 생물학자였던 아빠도 이렇게 그림으로 기발하고 이해하기 쉽게
지식을 가르쳐 주었었다.
‘아직 학계에서 하나로 통일된 명칭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음, 이 잔에 들어있는 뜨거운 물을 기력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이 뜨거운 김을 기운이라고 부른다고 하자. 포켓몬은 이 기운으로 힘을 사용하는 거야.’
‘기운?’
내가 아빠와 이야기하고 있으니 보송송도 소파에 다가와 내 다리에 치댔다. 모다피도 와서 무슨 얘기를 하나
기웃기웃 거렸고.
‘보송송은 전기타입이고 모디는 풀하고 독타입, 완이는 불타입이지. 이 각각의 타입이 물잔에 들어있는
티백하고 같아.’
‘그럼 향이 나겠지? 이렇게 다양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고유의 속성에 맞는 기술을 다른 속성의 기술을 사용할
때보다 더 강하고 지속적으로 쓸 수 있게 되는 거야.’
‘또 기술을 무한정 사용할 수 없다는 것 알지? 보송송이 전기쇼크를 몇 번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전기를
사용할 때마다 이 물잔이 식어간다고 생각하면 편해.’
‘그럼 이 물은 기력라고 했었나? 그건 어떤 건데?’
‘기력은 배터리 같은 거야. 포켓몬은 공격을 할 때, 그 힘에 물리적인 힘만 실리는 게 아니야. 이 기운이
실리게 되지. 그 공격을 받게 되었을 때 포켓몬의 기력이 줄어든다. 그런 식이랄까.’
‘그럼 물이 바닥을 보이면?’
‘그럼 기절하게 되는 거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메가드레인이나 기가드레인같은 흡수기술이란다.’
‘아...!’
‘그렇다면 센터에 치료기기는 이 물을 차오르게 하고 뜨겁게 해줘서 기력과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거야?’
‘그렇지. 똑똑하네. 누구 딸 아니랄까 봐.’
아빠는 내 머리를 완이 쓰다듬듯 쓰다듬었다. 보송송이 보송송송 거리니 아빠는 보송송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대체로 시합이란 이 컵의 물을 누가 먼저 비우게 하느냐 인 거지. 포켓몬이 야생이든 어디든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 이러한 룰이 있어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기력과 기운은 휴식을 취하면 자연적으로
회복되거든.’
아... 그래서 배틀을 스포츠라고 하는 것이구나. 무작정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는 투견 같은 것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쨌든 포켓몬의 힘이 물리력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고 했지? 그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거야. 모디,
잎날가르기를 잠시만 보여줄래? 약하게.’
아빠가 모다피에게 말하자 모다피는 테이블 위에 올라오더니 공중에 잎사귀를 여러 개 만들어냈다. 그리고
날리려고 하는 순간
‘아, 그만.’
모다피가 힘을 빼니까 공중에 생겼던 잎사귀들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그중에 아빠가 하나를 잡아채더니 내게
보여줬다. 나는 그 잎사귀를 쥐었다. 음? 그냥 나뭇잎인데...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이파리가 스르륵 사라졌다.
‘사라졌어...!’
나는 물타입 체육관을 떠올렸다. 수영장 필드를 사용하면 물포켓몬의 이동뿐 아니라 기술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나저나 잎날가르기를 배울 정도면.
‘그런데 모디가 잎날가르기를 배우고 있을 정도로 강한지 몰랐어. 그런데 왜 진화를 안 하지?’
‘거기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져 있지. 모디, 보여줘.’
‘뭘...?’
‘돌?’
‘변함없는 돌이지. 모다피는 어릴 때부터 진화하기를 싫어했거든.’
‘여튼간에, 처음에는 포켓몬이 물건을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결국에는 포켓몬이 기운으로 실체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실체를 기운 즉, 에너지로 만들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거야. 물론 그 양은 손바닥만 한
크기만 가능하지만.’
‘헐... 대단해.’
‘모든 것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케이시의 텔레포트 연구와 함께 차차 비밀을 알아나가고 있는 중이지.
그 결과가 이거야.’
‘전송시스템과 몬스터볼이지.’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나는... 와... 비정상적인 과학의 발전에 대한 힌트를 알게 되었다. 포켓몬이 없는 세상과 포켓몬이
있는 세상은 과학의 발전이 다른 게 당연하지. 이게 포켓몬에 의해서 비롯된 거니까.
‘쉽게 깨질 수 있는 육체지.’
62 화
w. 도여은
“파이리는?”
“아직.”
그때, 처음의 간호사 분이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성큼성큼 그쪽으로 향했고. 나도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간호사의 시선은 자연히 우리 쪽을 향했고 다행히도 그 얼굴은, 밝았다.
간호사와 시선이 마주쳐 나도 다행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한지우에게로 향했다.
한지우는 평소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간단히 대답했다.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것으로도 모자라서 한지우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둘 다 트레이너군요. 혹시 둘 중 아무나 파이리의 임시 보호 트레이너가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센터에서 하룻밤 포켓몬을 맡기려면 등록된 트레이너나 기관이 있어야 해서. 아, 물론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주변에 유기포켓몬보호센터에 연락을 하면 되니까. 그래도 데려온 트레이너가 파이리를 데려갈 것이면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니...”
“제가...”
즉, 죽음인 것이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야. 이건 정말 파이리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의 순수한
안도였다. 처음 손이 닿았을 때는 너무 뜨거워서 곧 죽을 것만 같아서, 생명의 불꽃이라는 그 불꽃이 사그라질
것만 같아서 철렁했었다고.
“언제부터 서있었어?”
“방금.”
병실은 어두웠고 복도는 환했기 때문에 한지우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피카츄가 어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려
파이리의 침상 쪽으로 다가와 조용히 그리고 살며시 침상 위에 올라섰다. 한지우도 그제야 침대 쪽으로 가까이 와
섰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파이리를 내려다보는 표정이 상상이 갔다. 평소의 모습은 깊은 바다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모르겠지만 포켓몬을 향한 모습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냇물 같았다.
Chuuu...
시무룩한 피카츄의 소리에 녀석은 피카츄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그건 마치 다 괜찮다는 듯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보송송!”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는 건...
다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3 화
w. 도여은
‘엄마.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보송송하고 냄새꼬를 잘 부탁해. 아, 우파는 순천만 생태공원에 친구들이
있으니까 다시 돌려보내면 될 거야.’
보송송은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엄마 어디 있냐며 난장판을 피울 수도 있겠다. 아니, 삼일 밤낮을 울지도 몰라.
집에 놔두면 더 울고 찾을 것 같은데 차라리 오바람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거기에는 포켓몬도 많을 테고
오바람도 메리프가 알일 때 맡고 싶어 했다고 했으니까. 보송송은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그곳이 좋겠다.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지.
찬찬히 쓰다듬자 다시금 잠이 든 냄새꼬를 두고 뒤척이는 보송송에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환한 복도에 눈을 찡그렸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환한 빛에 적응해나가듯, 나도 처음엔 한껏 찡그렸었고... 벌써
이렇게 적응해버렸다. 같이 싸우고 같이 기뻐하고. 말은 이해할 수 없어도 서로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깨면 같이 깨고 잠든 서로의 이불을 덮어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발걸음은 저절로 파이리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버림받았던 걸까. 그 파이리.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면서
공원을 떠돌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면서 상처 입고 비를 맞고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병실 안에는 한지우가 있었다. 피카츄는 어디에 갔는지 혼자 덩그러니 침상 옆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유독
이 병실 안에는 빗소리가 더 잘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파이리가 누워있는 침상을 가운데 두고 녀석의
맞은편에 의자를 꺼내 앉았다.
파이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들렸을 때 간호사 언니에게 열이 내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그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나서야 걱정이 가라앉았다.
한지우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왜일까. 새벽의 마법에 걸린 걸까. 전혀 불편하지도 않았다. 마치 빗물이 넘쳐
이곳이 물속에 잠긴 것처럼 고요하고 평안했다. 물론 물이 가득 차면 파이리에게 위험하겠지만.
“어떻게 알았어?”
한지우의 평소의 습관처럼 주어를 빼고 말해보았다. 아무 말 없이 뒷말을 기다리는 모습에 나는 다시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부터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얘기할 여건도 그럴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우연히 만들어진 이 시간, 지금이 아니면 물어보지 못할 것 같았다.
한숨과 함께 뱉은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듣고는 있는 걸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고해성사하듯
말을 뱉었다.
“여기는 멸종되어서 찾기 힘든 것이 동물이지만 그곳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어. 마치 여기의 포켓몬처럼.
그래서 처음 여기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 무섭고 놀랐고... 혹시 내가 미친 건 아닐까 자문하고... 그런
세상에서 왔으니까 포켓몬들이 내가 다르다는 걸 알 수밖에 없던 걸까?”
“나는 여기의 나의 기억이 없어. 여기에 나라는 존재가 어릴 적 부모님의 포켓몬과 어떻게 지냈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의 내 꿈이 포켓몬 연구원이라는 것도 겨우 알게 되었어.”
“...”
“그러다 보니까 다른 사람처럼 보이더라. 분명 엄마, 아빠인데 타인처럼 느껴지더라. 심지어 그전까지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내가 알던 친구들이 아닌 것 같아서. 어느새 보니 거리를 두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많이
힘들었어. 외롭고... 진짜 내가 미친 것만 같았지.”
그게 다섯 달 전이었다. 뛰쳐나간 곳에서 오바람을 만났고. 갑자기 뒤집힌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던
시간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한지우를 바라봤다. 녀석은 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인지 시선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날도 이런 비가 오는 날이었어.”
그날이 어떤 날인 걸까. 빗소리에 섞인 목소리가 아주 낮으면서도 작았다.
나는 저절로 숨을 죽였다.
“내 모습 같았거든.”
“메리프의 모습도.”
“그래서 알 수 있었던 거야. 떠날 것 같은 사람의 모습도 남겨지는 포켓몬의 모습도.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으니까... 물론 포켓몬들이 말해준 것도 있지만.”
“나도...”
나도...?
잠결에 빗소리가 잦아들었다 싶더니 아침에는 비가 왔었냐는 듯 쨍쨍했다. 방에서 나와 내려왔을 땐 한지우도
파이리도 이미 가고 없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제 일은 혹시 꿈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새벽이었다. 그 한지우와 남들에게 하지 못했던 얘기를 서로 나누었다는 게.
1-8.5 동류
64 화
w. 도여은
역시 오박사님의 손자네.
갑판에 기대 바닥의 출렁이는 바닷물을 내려다본다. 출항하지 않은 배의 선상 파티였기 때문에 물결은 파도에
맞춰서 흔들릴 뿐이다. 바다의 시원하면서도 비릿한 냄새. 뺨을 스쳐 지나가는 소금기 묻은 공기. 바닷물 표면에
바람의 그림자가 비쳤다가 흐트러지기를 반복한다. 딱 맞춰 지은 정장이 불편하다. 넥타이가 목을 조르는 것 같아
풀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바람은 잘 알고 있다.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바람은 이수재 박사의 억양 있는 부산사투리를 바람은 거절할 수 없었다.
이수재가 할아버지인 오박사와 친분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이브이 연구자료를 받은 것이나 여러 가지 팁을
들은 것이나... 또 캐이시를 받아버려서 아주 잔뜩 빚을 져놨기 때문이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이런 파티에
오지 않았을 테고 어울리지 않는 이런 옷을 입지 않아도 됐을 테고 또...
사실 옷 때문에 답답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바람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얘기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답답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한껏 빼입은 자신의 모습이 불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어제 공부하던 중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한지우 그놈이었다. 갑자기 내린 폭우에 뛰쳐나간 게 이상하다 했더니만
공중전화로 전화해서 하는 말이 인천대애? 쫄딱 젖어서어? 옷을 가져오라고오? 어디 뛰쳐나갔다가 얼토당토않는
곳에서 전화하는 것이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라지만... 우산은 쓰고 가지. 게다가 다음날 인천에 선상파티
있다고 했는데.
원래 이런 녀석인지 몰랐나. 새삼스럽게. 바람은 지우가 선선히 건네는 열쇠를 받았다. 일단 로비에 뒀던 짐을
옮기고 얼른 자고 내일 아침에 가면... 계획을 생각하며 올라가려는데 놈이 말을 걸었다.
‘그 녀석이 여기 있어.’
‘그 녀석? ...이지은?’
작은 목소리였지만 내용을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바람이 들은 그녀의 얘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뒤에 그놈이 하는 얘기에 더 놀랐다. 한지우 그놈이 누군가에게 할 거라곤 절대 생각하지 못했던 말.
어릴 적 그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신도 알음알음 주변에서 들어서만 알고 있었던 그 이야기.
그리고 사과.
의자를 끄는 소리에 바람은 놀라 반대편 복도로 몸을 숨겼다. 다행히 그녀는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소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병실로 들어갔다. 한지우놈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곤 물었다.
‘어디부터 들었어?’
‘비오는 날부터.’
‘글쎄...’
65 화
w. 도여은
상념이 깨진 건 아이들의 소리 때문이었다. 바람이 그쪽을 돌아보자 갑판 뒤에서 아이들 네다섯 명이 와르르
뛰어나왔다.
“야, 잠깐.”
“앗!”
아이의 작은 손에서 미끄러진 몬스터볼이 바다로 떨어졌다. 바람은 그걸 보자마자 그쪽으로 뛰어가 손을
뻗었지만 잡지 못했고 결국 바다로 퐁당, 떨어졌다. 빈 몬스터볼은 물에 뜬다. 포켓몬이 들어있는 몬스터볼은
가라앉는다. 가라앉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떡해. 빠졌어.”
옆에서 한 아이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 바람은 하는 수 없이 난간에 매달려 그의 포켓몬을 불렀다.
“갸라도스!”
그러자 바다 속에 커다란 그림자가 위협적인 몸집을 언뜻 비치더니 선체가 잠시 흔들렸다.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이 옆에 있는 물건을 아무거나 잡는 사이 촤아아 물소리가 나며 바닷속에서 고개를 든 갸라도스가 그
위협적인 얼굴을 나타내 보였다.
“히익, 갸라도스야!”
“갸라도스, 물어와!”
아이들과 사람들이 술렁거렸지만 바람은 침착하게 몬스터볼을 물어오라고 할 뿐이었다. 갸라도스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잠시 선체가 술렁거렸다가 금방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날카로운 이빨에
몬스터볼을 물고서.
바람이 몬스터볼을 받자 주변에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 “갸라도스 신기해!”, “처음 봐!”, “안 위험해?”
“무서워!” 등등 떠들어댔다.
“안 물어. 얌전하거든.”
“와아! 형! 잉어킹 때부터 진화시킨거야?”
언제부터 제 형이었는지 모르겠네. 바람은 아이들은 참 친화성이 좋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이 몬스터볼 주인이
누구냐고 갑판에서 함부로 장난치면 어떡하냐고 혼을 냈다. 아이들은 찔끔한 표정을 지었는데 다행히도 저 멀리서
한 아이가 머리가 삐죽삐죽한 아저씨를 데려왔다. 몬스터볼을 뺏길 만큼 허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어찌어찌 인사를 하고 몬스터볼을 돌려주고 감사인사를 받았다. 아이들의 부모도 와서는 사과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몬스터볼은 높은 수압에서 깨지게 되는데 안에 든 포켓몬이 물 포켓몬이라면 상관없지만
불 포켓몬이면... 땅 포켓몬이면...
끔찍한 상상에 몸을 떨고는 바람은 갸라도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마 전에 진화시킨 갸라도스였다.
물어와라니. 잉어킹 때 잔뜩 시켰던 훈련이다. 잉어킹은 머리가 똑똑하지 않으니까 시합을 보거나 공을 물어오게
하거나 같이 수영을 한다거나 몬스터볼에 넣고 데리고 다니거나 해야 했는데. 그런 훈련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잉어킹 키웠었어?’
바람은 지은이 그렇게 물었을 때 당황했던 제 자신을 생각했다. 물론 숨길 이유까지는 없었지만 말하기는
쪽팔렸다. 그리고 그날을 다시 이야기하긴 좀 그랬으니까.
로켓단이 옥광산을 점령하던 날. 바람은 체육관 전에서 가볍게 승리하고 첫 배지를 챙기던 중이었다. 갑자기
체육관이 술렁거리기에 물어보니 로켓단이 옥광산을 점령했다고 얘기를 들었다.
한지우 그놈 또 사고 친다는 생각에, 혹은 그놈이 누군지 알지마는 혹시나, 만에 하나, 불행히도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향하는 관장의 차를 얻어 타고 그곳으로 향했었다. 포켓몬과 총을 앞세워 옥광산을
불법 점거하던 로켓단은 다행히 한지우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듯했다. 알았으면 분명 인질극을
벌였을 테지. 하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은이 그 안에 아직 있다는 얘기였다.
‘몰라.’
‘뭐?’
‘모른다고.’
잔뜩 날선 독가시 니드런처럼 구는 그놈을 보고 허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도대체 그 여자애의 어디가 이처럼
녀석을 자극하는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건 또 뭔지, 그런 흥미가 들었다. 그렇게 같이 점심을 먹기도 하면서
예의 주시하고 있던 여자애. 바람이 살펴본 바 포켓몬을 좋아하는 그냥 평범한 여자애일 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처럼.
66 화
w. 도여은
짜증나게 잘생긴 놈. 방금의 소란에 한지우가 무슨 일인가 갑판으로 나와 이쪽으로 다가왔다. 까만 정장에 까만
머리칼이 소름 끼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는 이렇게 어색한데도. 저놈 또 타이는 반쯤 풀어놨다.
답답하다고 그랬겠지.
이놈이 뭐가 좋다고 친구 먹어서는. 바람은 저놈과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살가운 저와 말이 없는 그, 계획적이고 꼼꼼한 저와 막무가내에 저돌적인 그, 선천적으로 색이 옅은 저와
니로우처럼 까만 그.
머리가 하얗게 세기 전 할아버지 사진에는 자신감에 찬 까만 눈동자와 새까만 흑색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지금도
할아버지의 희끗희끗 센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머리가 드믄드믄 보이니까...
그러니까 저와 그가 갓 오박사님 댁에 지내게 되었을 때, 한지우를 오박사의 손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분한 것은 별개라고. 그때마다 저는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할아버지의
손자라고.
처음에 그와 저는 정반대편에 서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붙어서 지내온 건 마침내 그와 저는 정반대
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등을 맞대고 서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저의 쌍둥이 형제였다. 빛과
그림자였다. 제가 빛이고 그가 그림자일 때도 있었고, 그가 빛이고 제가 그림자 일 때도 있었다. 그래, 그와
저는 신에게 버림받아 낯선 바다 위를 표류하다 같은 부표를 잡고 의지하는 동류였다.
‘이지은은?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안에.’
‘안에에? 이 자식 버리고 왔냐?’
‘버리고 온 거 아냐. 두고 왔을 뿐...이야.’
‘두고?’
‘숨겨두고...’
그런 의미였다. 숨겨뒀다는 건.
‘찾으러 가자.’
‘...못 가.’
‘너 없으면 어떻게 찾아. 멍청아.’
‘피카츄. 부탁해.’
pikapi!
분명 가기 귀찮아서 저러는 게 아니다. 왜 저렇게 난처한 표정이야? 남들이 보면 무표정해 보이겠지만 바람의
눈에는 안 보이는 게 이상할 정도로 확실히 보였다.
‘뭔 일 있었냐?’
‘울렸냐?’
‘...’
‘울렸구만.’
바람은 그놈의 어머니를 모른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매정한 여자라고 잠시 생각했을 뿐. 당사자에게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 이번에 처음 들은 것이었다. 그놈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말을.
저 소녀를 깨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한지우의 붉은색 패딩조끼를 가만히 덮고서
잠들어 있는 까만 단발머리의 소녀. 저 붉은 패딩. 왠지 겉옷이 없더라니. 미안했던지 덮어준 건가. 아니면...
이상한 여자애에서 이제야 포켓몬을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애라고 정정했건만 이제 한지우에게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여자애로 변하게 되었다.
어느새 바람은 쪼그려 앉아서 소녀를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그놈의 어머니였으면 분명 미인이셨으리라. 빤히
쳐다본 결과, 객관적으로 그렇게 미인도 아니고 진짜 평범한 외모였다. 미인이라면 김잎새 쪽이 더 그렇긴 하지.
그놈이 괜한 소리를 해서 엄한 애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에 바람은 소녀를 깨우기로 했다. 그러자,
‘그...린...?’
‘오바람이라니까.’
한지우가 숨겨둔 공간, 한지우가 덮어둔 패딩. 괜히 짜증이 나서 뺏어 들고 손목을 끌고 나왔다. 그러곤
생각했다. 왜 너는 나를 그린이라 부르나. 그렇게 정정해 줬건만 다시 이상한 여자애로 돌아오고 말았다.
오바람인 저를 그린이라 부르는 이상한 여자애로.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뭐가.”
“너를.”
그놈은 피식 웃었다.
“네가?”
“...그래.”
“신경쓰이냐?”
“그래.”
“그래서 지켜보고, 울리고, 화내고?”
“뭐... 그런 셈인가.”
“그 녀석 좋아하냐?”
“...글쎄.”
“나도 모르겠다.”
“뭐가?”
“너에게 있어서 그 녀석.”
아아. 그 말이었나?
“나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동류일까.
.
.
.
“아, 너 봤냐?”
“뭘.”
“내가 몬스터볼 건져준 남자.”
“국제경찰이라던데.”
“뭐?”
“좀 예상 밖이지? 엄청 헐렁해 보이던데. 아이들한테 몬스터볼도 뺏기고. 그거 엄청 큰일 날 뻔한 거 아닌가.”
“...”
“그리고 이름도 알려주던걸. 아 이름이 아니라 코드네임이지만. 그런 것 막 알려줘도 되나?”
“코드네임이... 뭐랬더라.”
아, 생각났다.
“핸섬.”
“...?”
“웃기지 않냐?”
바람은 킬킬거렸다.
1-9 전쟁과 평화
67 화
w. 도여은
“으음...”
[ㅇㅈㅇ] 살아있음?
[ㅇㅈㅇ] 난 살아있는데
[ㅇㅈㅇ] (보송송이 바닥에 앉아 두 손으로 사과를 든 채 한입 깨물려고 하는 사진)
[ㅇㅈㅇ] (냄새꼬가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진)
[ㅇㅈㅇ] (누오가 배를 내놓고 만세 자세로 방바닥에 뻗어있는 사진)
[ㅇㅈㅇ] (보송송을 안고 양 옆에 냄새꼬와 누오를 끼고 셀카로 찍은 사진)
[ㅇㅈㅇ] 내 포켓몬지롱
[ㅇㅈㅇ] 예쁘지? 예쁘지!!!
[Jihan] 응 너빼고
[Jihan] ㅎ
[Jihan] 잘 살아있는ㄷ
[Jihan] 아버지한ㅔ 얘기는 잘 들었다만
[Jihan] 왜 이제 연락하냐
[Jihan] 이 오빠 섭섭하다
참나. 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타지에서 외롭나 이 인간?
“지랄...”
[ㅇㅈㅇ] 됐고
[ㅇㅈㅇ] 올해는 한국 옴?
[Jihan] 여름방학에?
[Jihan] 잠시?
[ㅇㅈㅇ] ???
[ㅇㅈㅇ] 진짜?
[Jihan] 왜
[Jihan] 반응이 떨떠름?
[ㅇㅈㅇ] 아니 그냥? 왜오는데?
[Jihan] 와... 진짜 너무ㅅ하네
[Jihan] 오빠 진짜 운다
오빠가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어렸을 때부터 오빠라는 놈 때문에 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 리그. 나는 포켓몬 리그가 막연히 겨울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름에 있더라. 아무래도
스포츠라는 게 동계나 실내가 아니면 여름이 시즌이긴 한데 뭐랄까... 놀랐다. 겨울이 아닌 여름이라니!
[ㅇㅈㅇ] 아, 응 알겠ㅇ
[ㅇㅈㅇ] 그럼 ㅃㅃ
[ㅇㅈㅇ] 곧 더워지는데
[ㅇㅈㅇ] 더위머거
[Jihan] ㅇ... 너도
나는 앱을 껐다. 이제 미안한 마음도 가셨다. 아니 친오빠 동생 사이에 뭔 정이 있다고.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나는 죄책감을 털어버리며 헤헤 웃었다.
친오빠 이름은 이지한이다. 나이는 나와 일곱 살 터울. 현재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지질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중에서 세부 전공은 암석학이던가. 아닌가... 광물학이던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ㅇㅈㅇ] 아
[ㅇㅈㅇ] 나 달맞이산 갔다가
[ㅇㅈㅇ] 돌 주웠는데
[ㅇㅈㅇ] (책상 위에 놓여있는 달의 돌 사진)
[ㅇㅈㅇ] 달의돌이지롱
[ㅇㅈㅇ] 삐삐 쫓다가
[ㅇㅈㅇ] 삐삐가 흘림
[Jihan] 뭐야
[Jihan] 포켓몬 괴롭히지
[Jihan] 마라
[ㅇㅈㅇ] 안 괴롭혔거든?
[ㅇㅈㅇ] ㅂㄷㅂㄷ
[Jihan] 쨌든 그거 쓰려고?
[ㅇㅈㅇ] 아니
[ㅇㅈㅇ] 으음...
[ㅇㅈㅇ] 달의 돌로 진화하는
[ㅇㅈㅇ] 포켓몬도 없는 걸?
[Jihan] 쓰기엔 좀 아까운데
[ㅇㅈㅇ] ??
[Jihan] 잠시만
[Jihan] 아ㅂ녀ㅏ우ㅁㅊ여ㅏ
[Jihan] ㅊㄱㅅ죄ㅅ
뭐지?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가득 담아 톡을 보냈다
[ㅇㅈㅇ] ?????????????
뭔 소리야 갑자기...?
[ㅇㅈㅇ] 그래도
[ㅇㅈㅇ] 언젠간 쓸수도있고?
68 화
w. 도여은
삑- 휘슬 소리가 경쾌하게 파란 하늘을 갈랐다.
“지은아아! 수고했어!”
“이겼다아아아!”
“다음은 2 반에 애인가?”
“아니 아직 6 반이랑 안 붙었대.”
애들이 이렇게 우승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게 바로 반 대항전 포켓몬 시합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반끼리
붙여놓으면 축구든 피구든 발야구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으으, 시합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런 부담감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에에? 나, 나 말이야?’
‘그럼 여기에 이지은이 또 있겠어?’
학급회의를 진행하는 반장인 잎새가 교탁 앞에서 태연히 말했다. 지지난주에 학급회의 주제는 체육대회였는데...
그래, 이제 곧 다가올 체육대회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즉 누가 반대표로 줄다리기, 줄넘기, 계주, 축구,
피구, 발야구 등등에 주전으로 나갈까 정하는 자리였다. 나는 대충 줄다리기나 피구에 나가려고 했었지만...
‘지은이 배틀 잘 하니까!’
‘맞아. 다른 반 애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는 거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 진예를 포함해서 주변 여자애들도 나보고 나가라고 성화였다. 체육대회의 꽃은 원래
세계만 같았어도 계주였지만... 이곳에서는 역시나 포켓몬 시합이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인 동시에 가장 경쟁적인
종목이었다. 그래서 체육대회 반 대항 포켓몬 시합을 학생들은 이렇게 부른다.
전쟁!
전쟁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넌지시
잎새 목소리가 즐거워보였다면 착각일까... 쨌든 여기가 포켓몬 세계인 이상 포켓몬 배틀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체육대회 종목으로 있을 줄이야. 거기다 예선을 나눠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체육대회를 기다리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며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의 최대의 관심사가 된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긴다는 건 우리 학교에서 2 학년 중에서 가장 강한 트레이너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시합의 대상은 2 학년들인데, 1 학년은 아직 포켓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3 학년은 학생들 사이에
격차가 너무 많이 난다나. 게다가 고 3 은 건드리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으니... 게다가 3 학년 중에는 리그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곧 여름방학이니까 지금은 더 그렇지...?
“수고했어. 지은아.”
“이번에는 진짜 질 뻔했어.”
“에에, 이겨놓고는 엄살은.”
지난번에 인천대 체육관에서 받은 10 만볼트 기술머신을 보송송에게 사용했었다. 포켓몬 센터에서 기계를 사용할
수 있었는데 동그란 홈이 파여져 있고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가 있는 기계였다. 작동법은 생각보다 간단해서
놀랐다. 보송송이 들어있는 몬스터볼을 동그란 홈에 얹고 덮개를 덮은 뒤, CD 룸에 기술머신 CD 를 먹이고
기다리면 끝이었다...!
그러니까 그 힌트를 가지고 단련을 했을 때야 비로소 그 기술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모양이다. 마치
유전기가 가만히 있으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포켓몬에 비해 쉽게 습득된다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기술머신이라고 해서 모든 포켓몬이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초기에 3 회 이상 사용한 기술머신을 누군가 중고장터에 팔아서 피해자가 속출했었기 때문에...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의 기술머신을 사는 것 말고는 대체로 체육관에서 받거나 정품 회사에서 비싸게 사는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암암리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일부러 3 번 이상이 표가 안 나게 한다고
하기도... 진짜로 그렇다면 좀 무섭겠지만.
쨌든 기술머신을 사용한 다음에 몬스터볼에서 꺼냈을 때, 보송송이 얼른 훈련하러 가자고 얼마나 보채던지.
빨리 무언가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다행히 10 만볼트는 전기쇼크와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인지 빨리 습득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술머신의 힘이란 대단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기 사용 능력이 확실히 늘었다고 해야
하나. 마치 만화책에 보면 기혈을 뚫어서 막 짱짱쎄짐! 이런 느낌? 이래서 큰 돈 주고 기술머신 사는구나 싶었다.
나는 잎새의 재촉에 발을 빨리했다. 그리고 보건실에 가서 포켓몬을 맡기고 나왔다. 생각보다 배틀이라는 건
팍팍 파바박 하면 끝나는 느낌도 조금 있는 것 같다. 오늘의 누오처럼... 또륵... 뭔가 좀 비슷해야 어찌어찌
할 수나 있을 텐데. 역시 상성과 레벨이 최고라는 건가. 포켓몬스터 게임의 본질은 역시 어디 가지 않는 걸까.
예선전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치러졌기 때문에 배틀이 끝나고 나면 보건실에 맡기고 밥을 먹으러 가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배틀을 하면 기술 폭이 늘어난 것과 비례해서 예전과 다르게 애들이 많이 다쳐서 슬픈 기분이야.
좀 더 과격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치료받는데 시간이 꽤 걸리게 되었다.
떨어지기 싫다고 보송송이 칭얼댔지만 잘 달래서 맡기고는 보건실을 나왔다. 이정도면 진짜 장족의 발전이야.
메리프가 태어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거의 옆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려고 했으니까. 다행히 아빠의
마기라스와 훈련하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꽤 떨어져 있을 수 있게 되었다.
69 화
w. 도여은
좀 싸웠다고 하긴 애매하고... 음... 오해가 있었긴 했지만 그날 어물어물 잘 마무리되었기도 했고. 사과도
받았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잎새가 반대했었다. 그것도 대놓고.
‘싫은데.’
‘엑, 왜.’
나와 잎새는 반에 들어가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서 나왔다. 교실을 나오자마자 밖으로 향하면서 오바람이 배틀
얘기를 꺼냈다.
“초반엔 운이 안 좋더라?”
“속았다.”
“속았군.”
“4 반 애들까지 끌어들이다니!”
치밀해져? 여기서 더 어떻게... 나는 더 치밀해지는 잎새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우리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지은아, 너는 내가 지켜줄게...!”
“에, 왜, 뭐...! 진짜 이게 뭐라고 그래.”
“전쟁이니까.”
“전쟁이지.”
“전쟁이고말고.”
w. 도여은
우리는 자리를 깔고 포켓몬을 꺼냈는데 나만 아무도 없어서 외로운 느낌이었다. 보건실에 맡겨놓은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많이 다친 건 아니었지만 이젠 조금만 옆에 없어도 허전하다니까.
나는 그런 자조를 하면서 도시락을 꺼냈다. 오바람은 오늘은 옆에 블래키만 대동했다. 이브이 얼른 진화하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블래키로 진화할 수 있었다.
한지우는 대체로 포켓몬을 다 데리고 다니는 편이라 오늘도 와글와글했다. 물론 아직 다 최종 진화는 하지는
않아서 크기가 크지 않은 것도 있겠지만.
지난번 한지우와 화해하게 된 계기가 되어준 파이리는 다행히도 회복이 잘 되었다. 한지우가 고개 숙여 사과한
그날 점심을 먹으면서 파이리를 볼 수 있었는데, 상처투성이에 먼지 투성이었던 파이리는 상처가 아물고 깨끗이
씻겨두자 참으로 어여쁜 모습이었다.
하지만 성격은 내가 봤던 첫인상과 다르지 않아서 잎새가 ‘예쁘다아.’ 하면서 손을 뻗자 휙 고개를 돌리면서
그 손길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낯가림이 심한 새초롬한 소녀 같은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 파이리가 쭈뼛쭈뼛 다가와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그때 그 느낌은...! 진짜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느낌이었다.
그랬던 파이리가 그 날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진화를 했었다. 리자드로 진화를 했지만 그 예쁨은 어디 가지 않았다!
위험함을 강조하는 듯한 꼬리 불꽃과 목부터 꼬리까지 잘 빠진 옆태도 그러했지만, 저 요염한 눈매가...!
포켓몬을 보면서 조금씩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예쁘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라 좀 놀랐었다. 마치
고양이는 다 귀엽고 예쁘지만 그중에서도 미묘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물론 성깔이 있어서 그림의 떡이라는 것도 닮았다! 그래도 내 앞에선 좀 으르렁대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행복하지만. 헤헤. 쨌든 한지우와는 사이가 많이 좋은 모양이었다. 리자드가 한지우를 올려다보는 모습에는
신뢰와 애정이 가득해 보였으니까. 상처받았던 것이 많이 회복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리자몽이 되면 인기 엄청 많아지지 않을까.”
참으로 신기하다면서 잎새가 말하자 오바람이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었다.
‘미쳤어.’
‘네가 진정 미친 건 알고 있었지만...’
나와 잎새가 그렇게 말하자 피카츄가 한숨을 내쉬더라. 사실 피카츄가 진짜 보모일지도 몰라. 트레이너 잘못
만나서 얼마나 고생이 많니. 저 녀석 막무가내인 줄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지우 말을 들어보니 반쯤은 어니부기가 리자드한테 반해서 라는 것 같더라. 리자드로 막 진화했을 때 예쁘긴
했었지. 쨌든 ‘주변에 관심은 없지만’이라는 말에는 안타깝게도 저 어니부기가 들어간다고 할 수 있지만.
녀석에 말에 내가 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배북. 자신의 HP 의 반을 써서 공격을 최대로 올리는 기술. 싸늘한
눈빛으로 한지우가 쳐다보는데도 오바람은 움츠리는 기색도 없이 킬킬거렸다.
“역린일지도...!”
“싸움이냐! 배틀이냐!”
“뭐든.”
“바라던 바다!”
오바람이 우쭐거리며 말하고 잎새는 짜게 식은 얼굴로 쳐다봤다. 나는 그 모습을 웃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잎새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바람이 끼어들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이번에 한지우랑 오바람 둘 다 체육대회에 반대표로 나가니까. 6 반 A 전
예선에 한지우가 나가고 B 전 예선에는 오바람이니까... 체육대회 때 붙는다는 건 둘이 결승에 올라가겠다는 거고
내가 준결승전에 올라가게 되었으니까...? 나 오바람이랑 시합하는 건가!
71 화
w. 도여은
“흐아아아차!”
“이게 마지막이야!”
잎새와 다른 애들 몇몇이 바구니를 들고 왔다. 주변에서 한숨과 탄식이 쏟아졌지만 그래도 이내 손을 움직여서
두 명씩 짝을 맞춰서 털고 널고 펴주고를 반복하니 곧 끝이 났다.
“힘들었다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스리슬쩍 무리를 빠져나왔다. 애들이 찾으면 잎새가 얘기해줄 테니까. 하지만 이유는 정원
구경에 있지는 않았다. 물론 이 시설 자체가 산속에 있는 데다가 어르신들이 산책을 많이 하시는지 정원이 잘
꾸며져 있긴 했지만 말이지.
“분명 뭔가 지나갔었는데?”
빨래를 하던 도중에 뒤쪽에 숲에서 바스락거리면서 무언가가 쉭- 하고 지나갔던 것 같았단 말이다. 포켓몬이
아니었을까? 애들도 쉬었다가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조금 호기심을 충족하다 들어가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포켓몬이 움직였을 것으로 보이는 산 입구 근처에 어슬렁거리니 부스럭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튀어나왔다?!
보라색 몸집에 뾰족한 뿔, 커다란 귀, 날카로운 눈을 가진, 니드리노다!
Niiiiiid
니드리노는 실제로 처음 봤다. 2 학년 중에 니드런을 진화시킨 애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론 보지 못해서
말이지...!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태평한 생각을 할 때가 아닌가?!
니드리노가 땅을 긁으면서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배틀인가...! 나는 급하게 뒷걸음쳐 거리를 벌리면서
주머니에서 몬스터볼을 꺼내는데 아차, 갑작스런 공격태세에 당황해서 몬스터볼을 셋 다 떨어뜨려 버렸다.
Niiiid nidnidnid
뭐라고 하는 말이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 니드리노는 냄새꼬에게 뭐라고 더 말하는 것 같았는데 냄새꼬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엄청 열받은 모습인데? 뭐지, 니드리노가 뽐내기라도 사용한 건가? 도대체 뭐라고
말한 거야?
발끈할 만한데?
나는 그 때 냄새꼬가 그렇게 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주변에 냄새꼬를 키우는 애들이 별로 없었기도 했고.
아무래도 뚜벅쵸는 귀엽지만 냄새꼬는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쨌든 평균이 80 이라면 많이 쳐봤자 65
간당간당한 우리 냄새꼬는 작은 편이긴 하지...?
‘역시 진화하고 초반에 영양공급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심각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으음,
선천적으로 작을 수도 있지만.’
흐음... 냄새꼬가 신경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저렇게 냉정한 냄새꼬가 발끈할 정도면, 게다가 저
니드리노 시비 거는 스킬이 만만찮은걸?
그래도 배틀은 배틀. 저것도 기술이다. 아마 ‘부추기기’가 아닐까. 상대방을 혼란시키고 특공을 올리는
기술이지. 그러니까 완전 혼란까지 아니니 조금은 특공이 올랐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열받아서 올랐을지도...
쨌든 일단은
“수면가루야!”
“앗!”
“기가드레인!”
최근에 메가드레인을 기가드레인으로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니드리노의 몸에서 초록 구체가 떠올라 냄새꼬에게
흡수되고 있지만 생각보다 그 양이 적었다. 역시 반감인가. 그에 기분은 좋지 않은지 니드리노가 몸을 한 번
푸르르 떨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단일 독타입인 니드리노에게 풀/독 타입인 냄새꼬의 기술은 둘다 반감이야. 하지만 독타입은 냄새꼬에게 1 배,
그리고 니드리노가 사용하는 마구찌르기나 뿔찌르기가 노말 타입이긴 해도... 벌써 냄새꼬는 지친 모습이고.
“기가드레인!”
니드리노는 기가드레인에 조금 괴로워하면서도 다시금 달려들 태세를 갖추었다. 달려들기 전에, 그래, 특성이야.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괜찮다니까! 얼른!”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사실 나는 그 전까지 냄새꼬의 특성이 엽록소인 줄 알았다. 일반적으로 뚜벅쵸 계열은
특성이 엽록소니까. 하지만 수정 언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었다.
생각해보니까 날이 쨍쨍한 날에 발걸음이 빨라지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특성이 엽록소가 아니면...
드림 특성, 숨특, 드특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아주 적은 확률로 포켓몬에게 나타나는 일반 특성이 아닌 특성을
말한다. 그러니까 나는 냄새꼬가 숨겨진 특성을 가졌다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 확률 상 적으니까.
언니는 아무래도 특성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테니까 한 번 알아보라고 했었다. 특성은
보송송의 정전기 같이 대체로 배틀 상황에서 발생시키는데 아무래도 얘기를 들어보니까 배틀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그 말에 나도 걱정이 되서 특성을 확인하려고 아빠의 가디를 데리고 공원으로 나갔었다. 아빠 가디 쾌청까지
배우고 있을 줄이야. 쨌든 가디는 하늘을 향해 불꽃이 섞인 숨을 뱉었고 갑자기 주변 온도가 후끈해짐이 느껴졌다.
내 말의 의도를 알았는지 숨겨진 특성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 냄새꼬는 열심히 뛰었지만... 아무래도 특성이
악취가 맞는 것 같았다. 스피드가 별로 다르지 않은 걸? 나는 기뻐하면서 특성의 발견을 얘기했지만 냄새꼬는
싫어하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쾌청을 쓰면 불 포켓몬이 날뛰기 때문에 위험하기 때문이지... 쨌든 내 말에도 냄새꼬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소리쳤다.
“달의 불빛!”
에, 냄새꼬가 뒷걸음질 친다? 당황한 내가 앞으로 발을 내딛으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고개를 도리질
치면서 두 걸음 뒤로 물러났어...?
도리도리
도리도리도리
아, 차갑다.
72 화
w. 도여은
“으에에에...?!”
흐아아앗. 다 보셨어...! 나는 다시금 얼굴이 화끈화끈 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고 왜 이렇게 덥냐. 내가
손부채질을 하는데 할아버지가 말했다.
니드리노는 여전히 지척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자기 얘기가 들린 건지 인상을 찡그리더니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푸드득 털더니 이쪽으로 터덜터덜 다가왔다. 온몸에 힘이 없는 듯 할아버지 발치에 풀썩
드러누웠지만.
할아버지는 발치에 엎드려있는 니드리노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할아버지 말처럼 니드리노가 여기에
찾아오는 게 한두 번이 아닌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학생은 트레이너인가?”
“에, 네... 이제 막 배지 3 개를 땄어요.”
“몇 학년인고?”
“2 학년이에요.”
내 말에 할아버지는 순수하게 감탄하시며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며 칭찬해주셨다. 그리고 훈련은 어떻게 시키는지
포켓몬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물었고 나도 그에 우리 애들 얘기에 신나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애들 성격은 어떻고 특성은 어떻고 기술은 어떻고 이런저런 점이 고민이고 얘기를 하니 할아버지도 이것저것
조언을 해주셨다. 그에 덧붙여 말했다.
“할아버지도 트레이너세요?”
“그랬지. 지금은 이 녀석밖에 남지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나인테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인테일은 할아버지의 손길이 좋은 듯 갸르릉 거렸다. 루비같이
붉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레몬빛 나는 금색 털들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우아한 몸짓에 크고 탐스러운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였다.
“나인테일이 너무 예뻐요...!”
“고럼. 우리 나인테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말고.”
naaain~
잎새가 나를 찾으러 나왔나 보다. 그리고 내 옆에 있으시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잎새가
이쪽으로 오기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나는 내 포켓몬들 눈치를 봤다. 누오나 보송송은 별로 상관없다는 느낌. 냄새꼬는 귀찮다는 표정이지만 별로
반대는 안 하는 느낌. 결국 니드리노를 데려가게 되었다아...?
“아, 이거 좋을 수도 있겠다...!”
“응? 뭐가?”
“이 타이밍에 새로운 포켓몬이면 아무래도 허를 찌를 수 있겠지?”
“체육대회 말이야! 준결승 때! 아무래도 포켓몬이 셋이니까 3 대 3 배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편이었잖아.
그러니까 상대방이 대비하기도 편하고. 아마 내일 누가 이기든 그 셋을 대비해서 준비해올걸?”
“아...! 그러니까 히든 카드로 니드리노를 쓰면 되겠다는 거네? 하긴 갑자기 포켓몬 엔트리가 바뀌어서 나오면
당황스럽기는 하겠다.”
“일단 이틀 뒤에 누가 준결승에 올라오는지 보면 알겠지. 그때부터 준비해도 안 늦으니까.”
“응!”
배틀을 할 생각을 하면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당연했지만, 지금은 조금 설레는 기분도 느껴. 이상한 기분이다.
우리 아이들이 멋지고 강하고 든든해서 어느덧 이런 배틀에 점차 적응해가고 있는 모양이다. 냄새꼬와도 오늘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고.
73 화
w. 도여은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는 놀라면서도 괜찮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새 포켓몬의 등장에도
엄마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건 무슨 뜻이지. 역시 아빠 닮아서
트레이너라 이 말인가?
“다녀왔습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가 집에서 반겨주었다. 옆에서 모다피는 물론이고 엄마도 새로운 포켓몬이
궁금한지 기웃댔다.
“어디 한 번 보자.”
“으음... 일단 씻겨야 될 것 같아.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기는 하는데 야생에서 살았거든.”
“니드리노. 목욕하자.”
Nid?
목욕이 뭔지 모르는 모양새에 나는 그냥 웃으며 니드리노를 번쩍 들어서 욕조에 담궜다. 20 키로는 힘들지만
잠시는 들 수 있다고! 역시 포켓몬 월드 신체 강화.
쨌든 니드리노가 커서인지 몸집이 욕조에 가득 찼다. 발만 잠깐 담가진 건데도 멍하던 니드리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뒷걸음질쳤다. 물론 욕조가 좁아서 뒤로 갈 수 없어 헛발질이긴 했지만.
“에? 설마.”
“엄마! 잡아!”
당황한 엄마는 니드리노를 놓쳤고 니드리노는 풀쩍 욕실을 벗어나 물을 튀기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모다피에게 잡혀왔다...?
“아 니드리노하고 냄새꼬가 붙었는데, 냄새꼬가 이겼지 뭐야. 상성도 불리한데 장하지 않아?”
니드리노가 반항하기 시작했다. 사실 맞잖아! 평균이 1.4 미터면 나보다도 작다고? 리자몽이 평균 1.7
미터인가? 우리집 마기라스는 2 미터가 훌쩍 넘는 걸? 그래도 팩트 폭력은 나쁘니까 순순히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게다가 나도 녹초가 됐다고. 잠시 니드리노는 엄마에게 맡겨두고 나는 욕조도 씻고 엉망이 된 욕실과 거실을
치웠다. 후아. 목욕시키는데 애쓴 적은 처음이네. 보송송은 전기를 조절할 수 있었던 때부터 같이 목욕하기도
하고 누오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물론 냄새꼬는 뜨거운 물은 싫어해서 찬물로 따로 씻겨주긴 하지마는. 음.
이렇게 고생은 처음이다.
나는 그런 생각에 웃으면서 얼른 냄새꼬도 라플레시아로 진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정보정으로 솔라빔,
꽃잎댄스를 날리거나 혹은 맹독 걸고 달의 불빛으로 회복하며 깔짝으로?
74 화
w. 도여은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보니 니드리노도 야생파라 그런지 누오처럼 바닥에서 자더라. 파란 누오랑 보라색인
니드리노랑 바닥에 합체할 듯 축 늘어져서 자고 있는데 그게 또 얼마나 귀여운지. 게다가 누오 지느러미 부근
색은 보라색이니까 은근 색 조합도 괜찮고?
엄마와 나는 먼저 센터에 들러서 수의사 선생님에게 니드리노의 상태를 보았다. 센터에는 수의사가 따로 있고
수의 간호사가 따로 있었다. 보통 접수를 받고 안내를 하는 간호사 분들이 수의 간호사였다. 부르기는 포켓몬
의사, 포켓몬 간호사라고 하지만 정식 명칭은 그렇다고 하더라. 음, 접수와 간호, 간단한 치료는 포켓몬
간호사들이 하고 진료와 치료, 수술 등은 포켓몬 의사들이 하는 식으로 되어있는 모양이다.
한 가구에 적어도 포켓몬 한 마리씩은 키우니까 어쩔 수 없이 이 분야도 같이 컸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포켓몬
트레이너도 많고. 그제야 나는 파이리가 아팠을 때 분주히 들어왔던 사람들이 포켓몬 의사였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낯설고 신기한 포켓몬 월드라니까.
니드리노의 상태는 아주 좋다고 했다. 피부병도 없고 상처도 없고. 자잘한 흉터는 있지만 문제없다는 듯.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기생충 약을 먹이고 나왔다.
그리고 주변 프렌들리 샵에서 상처약이나 해독제 등을 사고 할아버지의 조언대로 몬스터볼용 벨트도 하나 샀다.
바지 벨트 겸 허리에 착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샀다. 눈에 띄는 건 싫으니까 겉옷 안에도 착용할 수 있는 것으로.
뭐, 여름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계산하려는 엄마를 만류하고 내가 트레이너 카드로 계산을 했다. 트레이너 카드로 계산하면 포켓몬 관련
용품은 할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배지 수에 따라 할인 가격도 달라진다. 높은 등급 트레이너일수록 더 지원해주는
것이려나?
트레이너 카드로 계산을 하는 건 좀 생소하긴 한데, 여기의 트레이너 카드는 통장하고 연결이 되어있었다. 처음
트레이너 카드를 발급받거나 배지를 딸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배지를 따면 나라에서 돈을 준다고.
엄마는 운전을 하면서 물었다. 하기야 마당이 있는 집이 애들 훈련하고 마음껏 뛰놀기에도 좋고. 특히 어제는
목욕시킬 때 니드리노가 마구 울어대서 주변 이웃들에게 정말 민폐였지... 니드리노 좀 쿵쾅거리면서 뛰기도 하고.
으음 조심시키긴 했는데 아무래도 걱정되긴 한다.
“고맙다, 희야.”
엄마의 말에 다꼬리는 수줍은 듯 웃었다. 하... 숨멎. 포켓몬들의 귀여움은 죽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대문을 넘었다. 니드리노는 문 앞에서 킁킁거리며 긴장한 기색으로 대문을 넘었다.
그리고 집 옆에서 다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오는 장크로다일이 보였다. 나도 마주 달려가 폭 안겼다.
장크로다일은 나를 번쩍 들더니 빙글빙글 돌았다.
“우와아아앗. 어지러워어어어.”
“왔어?”
내 말에 아빠는 알겠다는 듯이 웃더니 니드리노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반갑다며 인사했다. 니드리노는
조금 긴장이 풀린 모양새였는데, 아빠의 마기라스의 등장에 펄쩍 뛰더니 온 몸에 가시를 세우더라. 그 모습에
나와 엄마, 아빠는 크게 웃고 말았지만.
75 화
w. 도여은
니드리노와 이것저것 시도해보니 주말은 후딱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월요일 점심시간. 오바람이 이번 시합에서
이기게 되면 준결승 진출이다. 그런데,
“엄청 강하잖아.”
“날개치기!”
“거품광선!”
“피죤, 시합 불가능.”
휘청거리며 서 있는 슈륙챙이와 달리 피죤은 마지막 일격을 성공시키고는 흙바닥을 구르며 리타이어. 하지만
사실 슈륙챙이는 두 번째로 나온 포켓몬이었고 피죤은 오바람의 첫번째 포켓몬이었다는 것. 오바람은 빠른
손놀림으로 피죤을 회수하고 몬스터볼을 던졌다. 가까스로 서 있던 슈륙챙이는 튀어나간 전광석화에 바로
쓰러졌다.
“레트라다.”
2 반 남자애는 입술을 깨물더니 마지막 포켓몬을 꺼냈다. 어니부기. 하지만 상대의 포켓몬이 나오자마자 나는
레트라에게 무언가 파직, 튀는 것이 보였다. 설마...!
“10 만볼트.”
세상에. 레트라에게서 나온 전격이 어니부기를 향했다. 그 눈부신 일격에 나도, 구경하는 학생들도, 심지어
상대도 놀랐다. 그렇게 어버버 하는 순간, 레트라는 잔류하는 전류를 흩어버리듯 빠르게 어니부기에게 달려들었다.
“껍질에 숨어!”
레트라의 이빨이 닿기 전에 어니부기는 껍질에 숨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레트라의 이빨이 껍질을 물었을 때,
시합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들을 수 있었다.
레트라는 꽉 깨문 껍질을 몇 번 흔들더니 옆으로 휙 던졌다. 운동장 바닥을 구른 등껍질에서 어니부기의 머리와
팔다리가 나왔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경기를 보고 있었고 그만큼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레트라는 한 번 수염을 움찔거리고 앞발로
귀를 털더니 뒤를 돌아 오바람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오바람도 레트라를 안아 들었는데, 기쁜 듯 환하게 웃는
모습이 여기에서도 훤히 보였다.
“와. 진짜. 피죤으로 마릴이랑 슈륙챙이 두 마리를 쓰러뜨린 것도 대단했지만... 10 만볼트는 깜짝 놀랐어.”
“나도. 아마 전 체육관이 인천대여서 그랬지 않을까.”
“기술머신?”
“응응. 그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깨물어부수기 같은 필살앞니.”
“먼저 가 있으래.”
이미 돗자리와 도시락을 챙겨서 내려오길 잘했나 보다. 우리는 항상 점심 먹는 곳으로 향했다. 매번 그랬듯이
커다란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펼치고 포켓몬들을 꺼내고 있으니 저 쪽에서 오바람이 레트라와 함께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냄새꼬와 같이 돗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오바람보다는 레트라가 더 눈에 빨리 들어왔다.
“레트라!”
“아, 네, 그러세요?”
“세 번째 포켓몬은?”
“안 데려왔는데?”
“응?”
나와 잎새의 잎에서 어이가 없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잎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쉽게 지진 않을 거니까.”
내 말에 그는 대답했다.
.
.
.
“그 때는 꼭 이길 거라고 얘기했어야지!”
“에?”
나는 다음 말을 뱉으려다 도로 입을 닫았다.
“그야...?”
나는 잎새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샤샥- 빠져나와 자리로 돌아갔다. 잎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 내 옆자리로 돌아왔지만 선생님이 와서 더 말을 못 하는 듯했다.
76 화
w. 도여은
“시작하겠습니다.”
“오야.”
할아버지는 아무 지시도 없었지만 나인테일은 매번 그랬던 것처럼 도깨비불인 눈치. 니드리노의 첫 기술은...!
“헤롱헤롱!”
“호오.”
헤롱헤롱을 사용한다고 도깨비불에 화상을 입긴 했지만... 걸렸다. 나인테일의 꼬리가 흐늘흐늘 움직이면서
새초롬하게 눈을 피한다아아!
그 때 생각난 게 헤롱헤롱이었다.
투쟁심이 동성의 포켓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이성의 포켓몬은 마성의 매력으로 녹여서 승리해버리자. 그런
생각으로 아빠에게 물어보니 아빠네 다꼬리가 헤롱헤롱을 사용할 줄 안다고 했다. 그래서 주말에 찾아갔던
것이었다.
“보지 않으면 혼란하지 않지. 기척으로 무생물을 노리듯 상대방을 노리는 거야.”
갑자기 공격 상대가 사라지는 바람에 바닥에 코를 박은 니드리노와 달리 나인테일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둥글게
곡선을 이루던 아홉 개의 꼬리를 부채처럼 앞으로 펼치고 미간을 찌푸린다.
“신통력.”
사르륵 떠지는 눈꺼풀 사이로 붉은 빛이 스몄다. 니드리노의 공격을 받아 먼지를 먹었지만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꼿꼿이 세웠던 꼬리를 다시 둥글게 내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쓰러진 니드리노만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착각할 뻔했다.
“우으... 저버렸네요.”
“아깝겠구나. 니드리노.”
niiiiiiddddd
“전쟁 때였지.”
.
.
.
그렇게 살아남았다.
‘포켓몬이라는 이 듬직한 괴수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트레이너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긴다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아이들이 내 목숨을 나눠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괴수들이 그 자신을 살렸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반대항 포켓몬 시합을 전쟁이라 부르며 시시덕대는 이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나는 내 허릿춤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했다.
1-10 포기할 수 없는 것
77 화
w. 도여은
‘그 녀석 좋아하냐?’
좋아하냐고?
이지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지은. 처음 들었던 것은 바람이 내게 푸념했을 때였다. 할아버지의 보송송 알을
다른 애가 가져갔다고. 연구원 아저씨의 딸이 데려갔다고. 그 말을 바람은 불만인 얼굴로 말했다. 발로 책상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던 것 같다.
‘그 애, 좀 불안불안해 보이더라.’
‘누구?’
‘지난번에 알을 가져갔다는 그 애 말이야. 이름이 이지은이랬는데.’
아저씨는 연구원 아저씨들 중에서도 강한 트레이너에 속했다. 매번 출근할 때마다 옆에 있는 가디도 그랬지만
연구소 내 친목 포켓몬 배틀 대회가 열리게 되면 항상 일이위를 다투던 아저씨의 마기라스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왔다.
피카츄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에 도움을 청하는 미뇽의 소리를 따라간 곳이었다. 바위에 엎드린 채 작은
메리프를 어깨 위에 올려둔 여자애가 있었다. 메리프를 봤을 때 문득 바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무서워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일까. 하지만 그 애가 몸을 일으켜 나를 보았을 때 첫눈에 알아봤다.
아저씨 딸이구나. 분명 닮았으니까.
pikapika pi~
거슬렸다.
엄마 엄마
나를 봐줘
나를 사랑해줘
나를 떠나지 마요
‘엄마.’
자그마한 손으로 옷깃을 잡았던 날. 작은 빌라의 삐걱거리는 창문도, 더러운 방충망도 활짝 열어둔 채. 난간을
잡고. 건물에 갇힌 네모난 하늘을 바라보던 엄마를 보았을 때. 마치 사라질 것만 같아 그 옷깃을 잡았을 때.
그때에 어리고 낮은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던, 박제되어 흑백 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오버랩 되었을 때
아, 꼭 내가 그런 표정을 지었던가.
아주 작았던 손으로 엄마의 부은 뺨을 만졌을 때,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당겨 안았다. 엄마는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나도 함께 울었다. 엄마는 울음을 그치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꼭 메리프처럼.
‘꼭 돌아올게.’
그 말을 믿었던 때가 있었다.
무서워서 그랬다.
78 화
w. 도여은
pikapi!
-여기야!
아이들을 보건실에 맡기고 나오니 피카츄가 저 멀리서 나를 부른다. 피카츄가 운동장이 잘 보이는 계단 위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쪽으로 가니 금방 품속으로 안기며 어깨 위로 올라온다.
계단에 앉으니 운동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기는 하지만 사람이 바글바글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는 가기 싫었기
때문에 딱 좋은 장소다. 곧 두 번째 시합이 시작한다.
거리가 조금 있는지라 명령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행동은 잘 보였다. 아, 역시 처음부터 달려드는
레트라. 누오는 지진을 쓰려는 듯 발을 들었다. 하지만 벌써 가깝다. 땅이 울리기 전에 바람의 지시에 따라 도약.
지진의 효과 범위 안에 있지만 대미지는 줄어든다.
누오의 팔에 레트라의 이가 박혔다. 누오는 머드숏으로 레트라를 떼어낸다. 누오 체력도 방어도 좋고 급소도
막았지만. 방금은 분노의앞니니까 남은 체력의 반이 훅 빠져나갔을 테다. 머드숏도 상대의 스피드를 줄이니까
좋은 선택이고.
“아무래도 피하는 게 좋겠지만. 맞붙게 된다면 속도전으로. 그림자분신술로 회피율을 높이고 전광석화나
아이언테일로 싸워야겠지.”
갈색 짐 리더는 여러 형체를 만들어 내서 회피율을 높이는 분신형 그림자분신술을 썼지만 지진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우리 피카츄는 주로 잔상을 만들어내는 그림자형 그림자분신술로 사용하는 편이고.
pika...
달려드는 중 바닥을 흔드는 지진에 휘청하지만 흔들림 없이 목표물을 향해 돌진한다. 특성의 얘기가 아니라 저
레트라는 정말 근성 있다. 눈빛이 살아있다고 늘 생각하게 한다.
이지은은 지난번에 비해 회수와 교체가 빨랐다. 손을 허릿춤에 가져다 대는 것이 지난 시합과 다르게 벨트를
쓰기 시작했나 보다. 몬스터볼을 손 안에서 바꾸는 것이 연습을 꽤나 했나 보네. 저거 은근히 손에서 헛도는
감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공모양이라. 손에 익숙해지도록 손 안에서 자주 굴리는 수밖에 없다.
“아.”
바람이 불자 독한 향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냄새꼬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도 알고 있었다. 보통의 냄새꼬들과 다른 냄새가 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너랑 무슨 상관인데?’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상처받은 포켓몬을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 하지만 너는 달랐다. 피나는 서로의
상처를 핥을 줄 밖에 모르는 나와 달리 너는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살을 돋게 하는 것 같다.
제발.
그렇게 달려간 곳에
해가 떠있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새벽. 작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불꽃을 태우는 파이리를 보면서. 여전히
차갑기만 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그때 우연처럼 네가 나타났고 마법처럼 네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내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건.
79 화
w. 도여은
그러니까 너는 행복해질까.
‘왜?’
‘지은이가 괜찮다고 하니까.’
‘...의외네.’
‘뭐가?’
‘악! 왜!’
‘너 자꾸 나 마녀라고 부를래?’
‘그래, 왜 자꾸 잎새한테 마녀라고 그래!’
‘와아, 너희들...! 내가 무슨 틀린 말 했냐?’
‘맞는 말 했지. 쳐 맞는 말.’
훅-
끼치는 더운 바람이 내 정신을 다시 계단 위로 올려다 놨다. 함성이 들리는 떠들썩한 체육대회 속으로.
그런데 거기에 이지은은 냄새꼬에게 독가루를 쓰게 했다. 저주 중이라 피하지 못해 그대로 독가루를 뒤집어 쓴
블래키의 눈가가 보라색으로 변했다. 하긴 단단한 블래키에게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주는 독이 좋을 수 있겠다.
하지만 블래키 특성은 싱크로. 물론 냄새꼬는 독타입을 겸하기 때문에 독에 걸리지 않겠지만... 냄새꼬로
블래키를 해치우지 않으면 다음 포켓몬인 보송송이 독 대미지를 받게 될 텐데.
자신 있다는 걸까.
하지만 블래키는 속전속결로 끝내지 않으면 힘들다. 냄새꼬는 블래키를 빨리 보낼 만한 공격기는 없을 텐데.
어찌되었거나 블래키는 땅을 박차고 뛰어나간다. 블래키의 몸에서 방울방울 체력이 냄새꼬에게 흡수되지만 조금
비틀거릴 뿐. 날카로운 이가 냄새꼬의 몸통을 노린다.
“아.”
보송송이 아니다. 블래키가 머리를 터는 사이 몬스터볼에서 보라색의 포켓몬이 튀어나왔다. 달의불빛을 지시한
듯 빛이 블래키를 감쌌지만, 스피드가 느려. 니드리노는 기다려주지 않고 달려든다. 주로 네 발로 뛰는
포켓몬임에도 유연하게 몸을 틀어 뒷발로 차고, 한 번 더 차고.
두번치기다.
운동장 모래 바닥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밀려난 블래키. 다행히 조금이나마 달의불빛 덕을 봤는지 격투기술을
받았음에도 리타이어는 아니다. 하지만 체력이 얼마 남지 않았어. 이 상태에서 역시나.
바톤터치.
블래키가 잔상을 남기며 사라진다. 그리고 다른 포켓몬이 나오는 그 짧은 틈에 뛰쳐나가던 니드리노를 멈추게
하고 바로 독압정인가. 바닥에 깔리는 날카로운 가시들. 하지만 나타난 건.
PIIIIIIIIIGYOOOOOORRRRN ㅡ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른 피죤은 바닥에 검은 그림자를 남겼다. 마치 독압정이 우습다는 듯이. 니드리노가 10
만볼트를 쓸 줄 알면 어떡하려고. 아. 비자속 10 만볼트는 우습다 이거냐, 오바람.
NIIIIIIDDDDDDDD ㅡㅡㅡ!!!
고속이동.
높이 뛰어오른 만큼 바닥으로 떨어지는, 제대로 착지하지 못한 채 바닥을 구르는 니드리노. 바닥으로 활강했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피죤. 그러나 날갯짓이 휘청거린다. 날아오르는 궤도로 잘린 깃털이
피와 함께 후두둑 떨어졌다. 왼쪽 날개가 상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냄새꼬가 빠른 스피드로 하강하는 피죤을 향해 뛴다. 덩굴을 꺼내더니 왼쪽 날개를 칭칭 감아?
그리고 방금 달렸던 것은 도움닫기라는 듯 뛰어올라 매달린다. 아, 방금 다쳤던 왼 날개...!
눈 깜짝 할 새에 일은 일어났다.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삐이이이익ㅡㅡㅡㅡㅡ
오바람이 몬스터볼을 낮게 던졌다. 그 안에서 바톤터치를 했던 블래키가 뛰어나왔다. 독에 중독된 채로, 체력도
바닥임에 조금 휘청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잠깐 사그라들었던 함성이 방금보다 더
크게 공간을 메웠다.
바람의 승리였다.
80 화
w. 도여은
이지은과 오바람은 심판 앞에서 악수했다. 둘 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어느 때이든 승자의 얼굴에는
승리의 달콤함이 패자의 얼굴에는 패배의 씁쓸함이 서려있기 마련이다. 심판에 의해 시합의 승패가 결정 나고
각자 반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환호를 받거나 위로를 받는다.
남자애들이 몰려들어 그를 뭉개듯이 어깨동무하고 누르고 난리다. 주변에 여자애들도 수고했다며 꺅꺅 거린다.
물론 나도 당했었지만 나보다 더 격한 환영인 건 그만큼 인기를 반영한다는 거겠지. 뭐, 대충 고맙다고 한 뒤
빠져나온 나와 달리 오바람은 환한 얼굴로 하나하나 답하며 마주 헤드락 걸며 웃는다.
녀석이 내미는 주먹에 나도 주먹을 내밀어 툭 치며 응했다. 그는 나를 지나쳐 보건실로 향했고 나는 나무 그늘이
있는 바닥에 그냥 앉았다. 반에서 두 명 다 결승에 올랐으니 체육대회는 우리 반이 당연히 일등이라며 경사
분위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 덥다.
이제 축구하고 줄다리기, 계주만 나가면 된다. 날씨는 더워서 목깃을 흔들어 바람을 넣어보지만 여전히 덥다.
왜 반티를 검은색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저기 보이는 민트색이나 연분홍색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반
반티는 앞면에는 ‘앞’ 뒷면에는 ‘뒤’라고 크게 적혀있었다. 상대방을 앞뒤도 모르는 놈으로 매도하기
위해서인가. 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니부기가 꼬리와 귀를 파닥파닥 흔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나는 알겠다는 뜻으로 어니부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시원하다.
“시원하다.”
-시원해.
“포켓몬은?”
“별로 크게 다친 데는 없는 편. 오후 끝에 있을 시합에는 아-무런 지장 없을 테니까 말이야. 네가 방금 전
시합에서 압도적으로 이겼다지만 나한테는 못 당할 거다!”
“아니, 내 포켓몬.”
들켰다.
“쨌든 가만히 있어. 줄다리기 때는 따로 부를 테니까. 아, 그런데 이지은이 이번에 데려온 니드리노
특성이...”
그가 말을 하던 중 반 애들 중 한 명이 그를 불렀다.
“그렇다네.”
-우우, 아쉬워. 에어컨.
그 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리니 이리저리 바쁜 오바람이 눈에 잡혔다. 더운 와중에 땡볕에서 이것저것 바쁜
모양이다. 매년 있던 일이라 반장이 아닌 오바람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지만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녀석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즐거운 듯이 웃고 떠든다.
나는 턱을 괴고 그 모습을 지켜본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항상 승리를 불러온다는 비크티니, 어느 나라의 환상의 포켓몬을 생각나게 한다. 녀석의
주위에는 그만큼 사람이 모이니까. 나는 딱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귀찮아. 하지만 그런 나를 끌고
다닌 게 저 녀석이다.
‘오바람! 축구하자!’
‘에? 으으, 귀찮은데. 한지우 하면 할게.’
피카츄는 말하곤 했다. 지우. 넌 너무 사교성이 없어. 나는 말했다. 사교성이라는 게 꼭 필요한 걸까. 그 말에
대답한 것은 바람이었다. 너 이 새끼, 포켓몬하고만 살 거냐? 나는 대답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랬다가
녀석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피카츄도 번개모양 꼬리로 불만이라는 듯 탁탁 때렸다.
81 화
w. 도여은
한참을 머리를 식히다가 물을 잠그고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벅벅 털었다. 승부라는 건 참 이상해서 사람을 열심히
하게 만든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이 개인을 속이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의미로 발바닥에 땀나게 뛰었고.
이겨버렸다.
나는 걸음을 옮겼다. 점심시간을 맞이한 매점은 북적북적했고 체육대회 날이라서 그런지 더 어수선했다. 나는
피카츄와 어니부기를 세워두고 학생 틈바구니를 헤치고 들어가 나와 오바람 몫의 빵과 우유를 샀다. 나나
오바람이나 체육대회를 핑계 삼아 도시락을 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왔어?”
“아, 응.”
“웬 빵? 도시락 안 쌌어?”
“귀찮아서.”
“데덴네?”
“응. 귀엽지? 우리반 단체로 맞췄다고.”
“오바람은?”
“보건실에.”
“그럼 지은이랑 같이 오겠네.”
“아마도.”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저 멀리서 오바람과 이지은이 오는 게 보였다. 발치에 포켓몬들도 함께. 이상해풀은
몬스터볼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리자드의 모습은 보였다. 어느새 친해진 건지 이지은의 니드리노가 옆에서
말을 걸고 있는 듯했다.
리자드... 내가 리자드를 내려다보자 리자드는 나는 모른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돗자리가 있는 쪽으로 가버린다.
오히려 김잎새와 포켓몬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둘 다 그만하는 게 어때.”
-꼬리 쳤다니. 말이 이상하잖아? 나는 아가씨랑 얘기한 것 밖에 없는데 말이야. 네가 아가씨의 뭐라도 되냐?
-뭐, 뭐?
“어니부기. 너도 진정해.”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진정 못 하는 게 당연하지. 아가씨 뒷꽁무늬만 졸졸 쫓아다니고 있는데. 안 그래?
“니드리노!“
“잠... 잠깐.”
“어-니-부-기-!”
-저어, 바람형님...?
하아. 나는 한숨을 뱉었다. 눈앞으로 물벼락 맞은 오바람이 보였다. 가까스로 오바람이 나와 이지은 사이로
끼어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결국 물을 맞은 건 오바람.
“다행이다.”
“뭐라고? 한지우 개놈아?”
턱 아래로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웃는 얼굴의 오바람이 나에게 다가왔지만 나는 무섭지 않았다. 아마도...?
82 화
w. 도여은
“니드리노. 너도 빨리 사과해.”
이지은은 허둥지둥 무언가 닦을 것을 찾았지만 바람은 괜찮다는 듯 내 목에 걸려있는 축축한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었다.
“나도 미안...”
나는 사과 대신 엄지를 들어올렸다.
“잘했다. 인간방패.”
“이자식이.”
오바람이 손으로 내 머리통을 꾹꾹 눌렀다. 아, 아프다고. 어찌 되었던 나는 오바람의 응징을 받으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포켓몬 푸드를 챙기고 니드리노가 밥을 먹으러 몬스터볼에 나왔을 때 어니부기와 니드리노가 으르렁 거렸지만
다행히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잘 지나갔다. 어니부기가 저 녀석 하고 배틀해야 한다고 졸라대자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지은이 물었다.
“지금?”
“지금은 안 되지.”
“나...?”
“뭐? 너지 그럼 누가 해.”
“뭐어어어? 3,4 위전이 있었다고? 나는 준결승이랑 결승전만 하는 줄 알았지...!”
“처음부터 날 이기고 결승전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냐?”
김잎새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얘기는 점점 이지은이 3,4 위전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상대방 포켓몬들의 특성, 전략, 성격에 대해서나 첫 포켓몬은 누구로 꺼낼 것인가 기타 등등.
오바람이라든가 나같은 사람은 그런 게 좀 있다. 눈치를 보고 사람을 분석하려 하고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상황을 파악해서 오바람은 끼어들고, 나는 피한다는 면에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다. 심지어 김잎새도 비슷한
부류다. 선을 그어두는 타입. 누구한테는 여기까지. 다른 누구한테는 여기까지. 그런 선들을 그어두고 사람을
대하는 것.
“오바람, 너도 배지?”
“당연하지! 이 몸은 내년도 리그 챔피언이 목표다!”
또 저런다.
오바람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지난번에 체육 시간에 나에게 진 이후로 칼을 갈고 있었으니까.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녀석은 내 친구고 형제고 라이벌이니까. 나도 궁금했다. 이번 배틀이.
“한지우, 너도 4 배지 따러 가겠네.”
나도 김잎새와 바람의 말에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바람하고 배틀에서도 그렇고. 분명 기충전으로
인해서 급소 맞추기에 성공했었다면 전세가 역전되었음은 물론 이번 결승에서도 붙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이런 반응에 이지은은 화드득 놀라는 눈치다.
두 사람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축 쳐졌다. 그에 김잎새는 뭐, 쟤네들은 쟤네들끼리 바쁘겠지! 우리끼리
놀자 얘기하는데 오바람이 끼어들었다.
“에어컨 틀고.”
“나는 찬성!”
“나도...!”
83 화
w. 도여은
“갑작스럽네.”
“뭐가?”
“왜? 싫어?”
“아니, 뭐...”
싫지 않다. 얼마나 같이 있었다고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얘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해진 걸까. 그리고 그건
녀석에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묻고 싶었다. 한 번도 누군가를 집에 들인 적 없었잖아? 우리.
뭔가 변하고 있다.
그는 늘 자기 자신을 통제하려 한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잘해내려고 한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놓치는
법이 없다. 그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버린다. 책상 앞에는 외워야 할 것들로 잔뜩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으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작은 쪽지 하나 들고 가지 않는다.
장난처럼 챔피언이 되겠다고 하지만 그는 정말로 챔피언이 되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훗날 위대한 포켓몬
연구자가 되고자 한다.
그의 할아버지처럼.
‘야.’
‘내가.’
‘이지은한테.’
‘...’
‘그, 지난주에 순천에 연구 따라갔었잖아. 걔도 왔었고. 얘기하다가 포켓몬 얘기가 나왔는데. 걔가 그러더라고.
포켓몬을 키우면서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뭔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최선?’
‘어... 최선을 다하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몰아세우지 말라고. 그리고...’
녀석은 습관적으로 머리를 왕창 헤집었다. 하기야 평소에 그런 말들을 비웃었던 당사자였으니. 최선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최선이라든가 세상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결과로만 따진다고 말하던 게 바로 며칠 전의
그였다.
나에게 답을 구하려던 건 아니었는지. 녀석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당시만 해도
굉장히 녀석 답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84 화
w. 도여은
내 나이 열 살 때, 박사님 댁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비가 쏟아지던 날이 있었다. 사정없이 빗소리가
지붕을 때리고 창문을 두드렸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아보지만 마치 그 작은
방에 있는 것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방문이라도 열어둘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나에게 말했다. 너도 봤잖아. 그 사람은 죽었어. 그래. 그 사람은 죽었다. 비에
잡아 먹혔지. 여기는 그 작은 방이 아니다. 나는 되뇌었다. 여기는 그 방이 아니야. 여기는 나를 가둔 그 작은
공간이 아니야.
pipit
‘피츄.’
‘나도 잘 모르겠어.’
소년이 한 팔에는 배게를 끼고 한 손에는 이불을 끌며 얼굴에는 졸음을 묻힌 채 나왔다. 이불을 질질 끌면서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소년이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 날 이후로 비가 세차게 유리창을 때리는 날이면 소년은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아직도 여전히 거실에 이불을
펴는 녀석에게 내가 말한 적이 있었다.
‘비 오는 날, 별로 신경 안 써도 돼.’
그는 완벽주의자에 신경질적인 사람이다. 결벽적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포켓몬이나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는 것을 쓸데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지. 물론
최소한의 바운더리를 만들어서 시간을 쓸 대상과 쓰지 않을 대상을 나눈다는 문제점은 있지만.
‘박사님.’
‘오박사님.’
‘할아버지라고 부르래도?’
‘오박사님.’
그 당시 나에게는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들, 나에게 주어진
나만의 방, 깨끗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화장실, 그리고 누군가 차려주는 밥.
아무 생각 없이 버려지지 않을까.
포켓몬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가치가 없다. 하지만
연구를 보조하는 데는 사용할 수 있었다. 포켓몬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포켓몬이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연구소의 포켓몬들은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많다. 포켓몬에 대한 기본권이 있어서 일차적으로는 포켓몬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절차도 까다롭고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것은
연구였기 때문이다.
85 화
w. 도여은
‘진짜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순간에야 나는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오박사님과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 오박사님의 손자라는 오해를
받았을 때, 포켓몬을 돌보기 위해 연구소에서 살다시피 할 때, 항상 옆에서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녀석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저 녀석보다 뛰어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바람은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기도 했다. 학업,
운동, 사교성 등등 반장부터 학생회장까지, 대내 활동이며 경시대회 같은 대외활동까지.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목숨 건 듯 달려가는 그 뒷모습을 따라 달렸다.
‘넌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해?’
골목길에서 녀석은 내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쳤다. 벽에 부딪힌 등이 아팠다. 하지만 그 녀석은 더 아픈, 더
상처받은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래, 그 때는 도장에서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날은 대련이 있었고 나는 녀석에게 졌다.
그뿐이었다.
공포.
서늘한 골목의 바람이 우리 사이에 머리카락을 흔들고 지나갔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를 악물고
나를 쳐다보는 네가 보였다.
‘그 때, 전력으로 붙자.’
“절대 안 질 거다.”
우리는 운동장 한 가운데에 마주 서있다. 흰 선으로 구분해 놓은 시합장 밖으로는 결승전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하늘은 그들의 함성소리에 멍들은 듯 파랗기만 했다. 시합하기 좋은 날씨.
“나야말로.”
절대 지지 않을 거니까.
처음은 이 녀석으로. 나는 허리춤의 몬스터볼을 손으로 훑다가 하나를 선택해 공중으로 던졌다. 가자, 리자드.
필드에는 리자드와 레트라가 섰다. 나오자마자 전광석화로 거리를 좁히는 레트라. 스피드를 줄일 필요가 있지.
전광석화로 밀려난 리자드의 겁나는 얼굴에 주춤하는 레트라.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려고 하지만 늦다. 리자드는
입 한가득 불꽃과 함께 레트라를 물어 던진다. 공중에서 한 바퀴 뱅글 돌아 착지한 레트라. 바로 달려들 준비를
한다. 그리고 화륵 타오른다. 필드 너머 바람의 씩 웃는 모습이 보인다.
젠장. 화상.
“화염방사!”
“전광석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화염방사라 위력은 약하지만 불꽃세례나 불꽃튀기기는 너무 범위가 좁아. 하지만 광범위한
화염방사 사이를 뚫고 레트라가 빠져나왔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부딪히는 전광석화.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리자드의 배에 박혔다.
“고속스핀!”
“10 만볼트!”
빠르게 회전하는 껍질이 가까스로 서 있던 레트라의 10 만볼트를 가르고 정통으로 부딪혔다. 물타입에게
전기타입 무섭지만 껍질은 마치 바위타입 같거든. 대미지는 받지만 물타입이 받는 위력까지는 아니다. 레트라를
쓰러뜨린 어니부기가 껍질에서 팟 튀어나와 자신만만하게 선다.
UNNIIII ㅡ!
상대방에게 줄 시간은 없다는 듯 빠른 교체로 레트라 자리에 윤겔라가 섰다. 바로 사이코키네시스를 난사하는
윤겔라. 보이지 않는 공격이 운동장 바닥을 푹푹 헤집지만,
“-물어!”
“리플렉터”
윤겔라가 숟가락을 휘두르자 반짝이는 막이 생겼다. 윤겔라의 팔을 물어뜯었지만 데미지가 부족해. 윤겔라는
팔을 흔들어 떨쳐낸다. 그래도 타입 상성은 무시 못 하지만.
“사슬묶기.”
“물의파동.”
“사이코키네시스!”
어니부기가 있던 곳에서 다시금 폭발 소리가 들렸다. 흙먼지가 일어나기 전에 잠깐 윤겔라의 신형이 흐트러진 게
보였거든. 분명 이 상황에서 순간이동. 같이 살다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다. 예를 들면 윤겔라가 순간이동을
한다면 확실한 뒤를 노린다는 것 정도?
쾅, 울렸던 소리 이후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운동장의 흙먼지가 내려앉자 보이는 것은 바닥에 쓰러진 두
포켓몬.
후-
“피카츄.”
분명 시작할 때는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먹구름으로 뒤덮여간다. 흉포한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거세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으악, 갑자기 날씨가 왜 이래!”
“얼른 스피커 옮겨!”
Pikapi!
“윽, 이게 뭐야.”
쏴아- 쏟아지는 빗소리와 나무가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지르는 비명 사이로 오바람의 물음이 들렸다. 나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건,
난데없는 폭풍이다.
1-0 어둠의 블랙칩 & 1-Epilogue
86 화
w. 도여은
그런데 졌다.
“으으.”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었던 날 보았던 인트로. 포켓몬과 배지를 순서대로 얻어가는 두 주인공들. 달맞이산에서
만난 로켓단과 그 이후 퍼진 소문들. 단신의 포켓몬 트레이너가 로켓단을 물리쳤대. 그리고 이수재를 만난 두
사람. 인터넷 상에 찾아보았던 상트앙느호, 분명 존재하고 있었던.
“글쎄. 운명이라는 게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음... 만약에 그게 존재한다고 해도 우린 모르니까 상관없는
것 아닐까. 사실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다음에 아, 이건 운명이었구나 하는 게
대부분이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그런 것 보고 싶지 않았다.
“뭐야...”
나는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을 때, 학교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 무언가 있다.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있다고 기이한 확신이 전신을 감쌌다. 나는 뛰어올라갔다. 계단을 허겁지겁 올랐다.
옥상으로 오라고 무언가가 부르고 있었다. 숨이 차도록 계단을 오르고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천천히 걸어가 옥상 철문을 열었을 때,
“읏...!”
푸든 돌기가 달린 하얗고 미끈한 꼬리가 언뜻 먹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길쭉한 다리가, 사람의
손과 닮은 매끈한 날개가 보였고. 결국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괴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루기아.”
“이지은!”
세상이 뒤집혔다.
-아...
-돌아가고 싶은가.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어.
-알고 싶은가.
-말해줄 수 있어?
대신?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87 화
w. 도여은
-뭔가 이상해.
-저기 봐.
“포켓몬이 있어.”
“뭐? 포켓몬? 저 폭풍 치는 먹구름 안에 포켓몬이 있다 이거야? 미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돼.”
신이라고 불리는 포켓몬. 폭풍을 불러오는 포켓몬. 저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포켓몬이라면 단 한 마리밖에
없다. 폭풍과 함께 나타난다는 포켓몬.
“루기아.”
“미친, 나는 그냥 신화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존재하는 거야 그거? 와... 그런데 그런 포켓몬이 왜...
잠깐만.”
녀석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눈치채곤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삐 교실 안으로 피하는 학생들, 천막을
해체하고 집기를 들고 들어가는 선생님들. 그 사이에 누군가를 찾고 있는 김잎새에게로 바람은 달려갔다. 나 또한
강풍에 날아갈 것 같은 피카츄를 볼로 돌려보내고 그 뒤를 쫓았다.
김잎새의 물음에 바람이 답했다. 김잎새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분명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에는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다고.
설마.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그 말.
3 층을 넘어가자 학생들 틈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빠르게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옥상의 철문은 열린 채로
강풍에 휩쓸려 쾅쾅거리며 벽에 제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 짧은 수 초간 머릿속을 지나간 생각 때문에 멈칫한 사이. 그 광풍을 헤치고 문턱을 넘는 바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한 번 거부당했었던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미치도록 비현실적이었다.
그 비현실을 헤치고 들어가 그 이름을 부르면 이 모든 것이 다시금 현실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이름을 불렀다.
환상처럼 사라졌다.
깨끗하게.
“이지은ㅡ!”
다시금 내가 그 이름을 외쳤지만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찰박찰박 소리와 함께 김잎새와 한지우가
뒤에서 다가왔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방금 그 포켓몬은 뭐고! 지은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나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말에 대답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간 걸까.
영영 돌아가기로 한 걸까.
“지은아!”
“진짜... 이게 뭐야.”
온몸으로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에 나는 그제야 이 모든 게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축축하게 젖은 주황색
티셔츠에 체육복 반바지, 비바람에 휘날려 엉망이 된 머리카락에, 그리고...
그냥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오바람과 한지우를 따라서 올라간 옥상에는 지은이가 있었다. 뭐야, 저게. 하얗고 거대한
포켓몬은. 그리고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오바람을 보고 경악했고, 그것보다 더 놀랐던 것은
오바람의 부름에 지은이가 돌아보는 순간,
사라졌던 것이었다.
뭐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현대 과학으로 가능한 일인가? 순간이동인가. 포켓몬과 함께 사라진 건가?
내가 한지우나 오바람을 닦달하며 물어봐도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지은이가 나타났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암담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살면서 친구가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보겠는가. 응급실에 눕히고 얼른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보건
선생님 대신 누워서 땀을 뻘뻘 흘리는 지은이 옆을 지켰다.
‘잎새구나...’
‘나 아직 여기에 있는 거구나.’
아주 작은 말이었지만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이 다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다는 것 말이다. 내 손을 잡으면서 아주 다행이라는 듯이 웃는데.
그런 얼굴을 보는데. 누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구.
그 날로부터 지은이는 꼬박 이틀을 앓았다. 월요일이 되어서야 연락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화요일에는 학교에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 없었다. 많이 아팠다고 광고라고 하듯 핼쑥한
모습으로 나타났는걸. 오바람이나 한지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번 어물쩍 넘어가고 나니 다시금 물어볼 기회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언젠가는
얘기해주겠지, 하면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간을 보냈다. 6 월 모의고사를 치고 기말고사를 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88 화
체육대회 날 루기아를 만나고 쓰러진 나는 엄마 아빠에게 대략적인 얘기를 들었다. 다행인 점은 엄마 아빠는
체육대회 날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옥상에
있었다는 사실도 루기아를 만났다는 사실도 모르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애들은? 사실 루기아와 헤어진
이후로는 아예 생각나는 점이 없지만 그 하얀 공간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언뜻 그 셋을 본 기억은 났다.
사실 눈물이 핑 돌아서 점심시간에 조금 울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아팠으면 우냐면서 아직도 아픈 것 아니냐고
걱정해주는 애들이 너무 고마웠다.
song~ song!
보송송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마루에 앉아 있던 나는 보송송에게 시선을 옮겼다. 보송송은 다다다 도움닫기를
하더니 풀쩍 뛰어 마기라스가 내민 손을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거기서 몸을 둥글게 말고 한 번, 두 번, 세 번
덤블링 후 바닥에 탁, 착지.
“보송송 엄청 멋졌어!”
“응?”
냄새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놓아주었다. 사실 내가 갑자기 쓰러진 것 때문에 애들이 얼마나 놀랬는지
한동안은 내 주변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더랬다. 특히 아이들이 없는 동안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인지 더 그런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보송송을 선두로해서 누오하고 니드리노까지 품에 안겼었지. 그런데 냄새꼬가 안 보여서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자 냄새꼬가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냄새꼬는 나 안 안아줄거야?’
그러니까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다. 진짜로 어디든지 졸졸 쫒아 다녔었다니까. 사랑받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지만.
하지만 냄새꼬가 원했다. 나를 꺼내달라고 나는 싸울 수 있다고 몬스터볼이 진동했다. 그리고 냄새꼬를 꺼냈을
때, 눈앞에 자신을 노리는 비행포켓몬이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음에도 당당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 앞에 견딜 수 없는 신의 장난이 있더라도.
후ㅡ 하ㅡ
그러니까 나는 모른다.
나는 선택했다.
과거를 잃어버렸다.
89 화
번외. 아르꼬 괴담
90 화
w. 도여은
1 부 완결 기념 썰풀이 & 후기
91 화
의식의 흐름기법주의
아무말대잔치 주의
필요 없는 잡담주의
시작합니다.
1 부 제목 : 세계
지은이가 트립했을 때 포켓몬 게임 관련된 것들은 다 사라졌다. 컴퓨터는 아예 복구가 불가능. 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포켓몬 게임 관련되어있는 모든 것들이 없어졌다.
이 세상에서 닌텐도가 사라진 것은 설정 오류다. 포켓몬 월드에서 주인공 방에는 항상 닌텐도가 있다. 작가는
코멘트를 보다가 알아서 이사하면서 내용을 조금 수정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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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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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 이후에는 친구들하고 얘기도 하고 했는데 실제로 친구들 인적 사항도 많이 바뀌었다. 친구들이 안다는 전제
하에 말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고 친구가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가 모르는 이야기인 경우가
있어서... 겉으로는 멀쩡한 척했지만 아니, 멀쩡한 척해야 덜 멘탈 깨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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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치마가 모티브라서 뚜벅쵸, 니드런(수)가 엔트리로 들어왔다. 물론 본작에서는 진화하고 들어오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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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기타입 포켓몬 트레이너로 만들고 싶었는데 땅타입 견제할 자신이 없어서 기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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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관동 성도 포켓몬 중에 다른 주인공들 엔트리와 겹치지 않게 짰지만 꽤 마음에 들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특히 냄새꼬는 연재하면서 애정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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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이름은 대체로 종으로 불러도 이상하지는 않다. 얘네가 진화하면 인상이 확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 최종
진화 후에 이름을 붙여주는 편도 많은 편. 게다가 포켓몬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건 현실로 따지면 강아지를
멍멍아라고 부르거나 고양이를 야옹아 라고 부르는 것 같이 보편적인 부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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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포켓몬 울음소리가 종 이름하고 비슷하다 보니 엄마의 모다피 이름이 모디인 것처럼 이름에 주안을 둬서
짓기도 많이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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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배틀 할 때에는 포켓몬의 종으로 부르는 것이 암묵적 매너이다. 특히 타지방 포켓몬과 시합을 할 때.
그래서 트레이너의 경우에 이름을 나중에 익숙해지면 짓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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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사이즈는 보통 사람 허리만 하거나 그보다 작으면 소형 사람만 하면 중형 사람보다 크면 대형으로 분류한다.
좀 더 자세한 기준은 있지만 대체로 그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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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소설은 메리프 때문에 쓴 게 맞다. 왜 포켓몬 패러디에 메리프는 없는가..! 이 귀염둥이 생명체를...!
왜 매번 피카츄냐 이 말이다! 나는 메리프의 귀여움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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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문제일 뿐...! 작가는 피카츄보다 라이츄파이긴 하지만.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포켓몬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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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좋아한다고 어필하는 포켓몬은 한 번쯤 출연 고려의 대상이 된다. 안타깝지만 못 나오는 애들도 있고.
루카리오 같은 경우가 독자님의 성원에 힘입어 등장할 예정이다. 2 부에서 까메오로 등장하고 외전도 한 번
다뤄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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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방 포켓몬은 대체로 안 나온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작가가 1,2 세대(포.하) 이후에 계속 쓴다면 3 세대, 4
세대 등등 계속 쓸 생각이기 때문에 잠시만 기다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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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대의 경우에는 현실판은 아니고 게임판. 환생물인데 로맨스로 생각하고 있다. 중편정도. 포하와는 별개의
작품. (아마도) 여주의 남주 스토킹물 로코. 남주는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다. 작가가 좀 마이너
취향이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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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조련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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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대는 빙과와 크로스물. 초절약주의 호타로가 (어쩔 수 없이)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 이것도 포하나 끝내고...
아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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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내에는 동물이 존재한다. 벌레나 산짐승, 들짐승, 물고기 등등. 상위포식동물은 대부분 오랜 옛날
멸종하기는 했다. 현재는 포켓몬들과 세력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편. 포켓몬은 번식이 느리기도 하고. 하지만
애완동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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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그것도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생각하는 동물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동물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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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아버지를 닮아서 다타입 트레이너. 엔트리 남은 두 마리도 지금 애들과 타입이 다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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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의 수명은 포켓몬마다 다른데 평균은 50 년 정도. 그러니까 한 번 키우려고 할 때 잘 생각하고 들여야 한다.
지은이의 니드리노나 누오같은 야생 포켓몬은 다시 돌아가서도 잘 살지만 처음부터 집에서 키운 애들은 잘 적응
못하고 대체로 죽거나 유기동물보호센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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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냄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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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게임 레드를 기반으로 하고 픽시브 레드의 성격을 빌려왔다. 사실 게임 레드의 성격은 모르겠다. 아무래도
대사가 ... 뿐이기도 하고. 그래도 또래 남고생 같도록 노력하는 중. 외모는 잘생긴 게임 레드 같은 느낌.
직모이긴 한데 픽시브 레드처럼 찰랑찰랑한 직모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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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포켓몬과 대화를 할 정도로 잘 알아듣는데 내 상상 속 게임 레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지우가 극도로
포켓몬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은 현실 패치된 극도로 폐쇄된 어린 시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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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되는 학교는 전에 밝혔듯이 모교를 반영했다. 작가의 모교는 좀... 특이하다. 저 봉사활동 가고
클럽활동하고 그런 것들 진짜 한 달에 한 번씩 했다. 이게 이련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학교 다닐 때는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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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패치 은빛산은 설악산이 맞다. 코멘트에 정확히 지적해줘서 놀랐다. 설악산인 이유는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중에 흙산인 지리산보다는 바위산인 설악산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서울하고 더 가깝기도 하고.
설악산을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큰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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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대를 배경으로 다른 글을 쓴다면 게임 트립물이지 않을까. 파트너는 꼬렛/레트라. 엔트리는 흔하고 귀엽지
않게 생겨서 홀대받는 포켓몬들. 깨비참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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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네 포켓몬들은 애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파이리라거나 소방단 꼬부기라거나. 파이리가 암컷인 이유는 매번
파이리는 수컷으로 나오니까. 아주 예쁘고 섹시하고 멋있는 리자몽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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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가 애들을 볼 때
지은 : ♡ㅅ♡
지우 : ㅇㅅㅇ
바람 : ㅍㅅㅍ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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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얌전한 모범생...이지만 일코하는 포덕. 공부는 꽤 하는 편인데 트립되고 공부에 혼란이 왔다. 게다가
포켓몬 훈련하랴 적응하랴 바빠서 성적은 떨어지고... 하지만 덕질하던 시간이 사라져서 쌤쌤인 셈. 일상이 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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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자체가 좀 수준 높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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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람이는 천재가 아니다. 영재 정도. 머리가 좋은 것도 있지만 거기에 플러스해서 노력파다. 게다가 센스가
있어서 요령을 좀 아는 편. 쉽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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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그냥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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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설정처럼 여기도 체육관이 많아서 배지도 많다. 관동+성도+기타. 국립대학 수만큼 있으니까. 물론 올콜렉터
하려는 사람도 있다.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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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배틀. 어렸을 때 봤던 것을 빼고 애니를 못 봐서 기술이 상상 안 될 때가 있다.
대체로 게임의 애니메이션을 따라가는 편이긴 한데 섞이기도 한다. 분신형 그림자분신술은 애니판 그림자형
그림자분신술은 게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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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관장들은 도전을 받으면 도전자의 역량에 따라 봐주거나 더 세게 나가거나 한다. 사용하는 포켓몬도
도전자의 배지 수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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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체육관은 대학 이름을 따서 OO 대 체육관 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냥 별명처럼 갈색짐, 상록짐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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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대체로 6 세대 지식까지 있다. 페어리 타입이 막 밝혀진 정도? 아직 메가진화는 나오지 않았다.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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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우
성별 / 남
타입 / 불, 격투
특성 / 둔감
성격 /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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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람
성별 / 남
타입 / 풀, 에스퍼
특성 / 정신력
성격 / 냉정
95
96
김잎새
성별 / 여
타입 / 노말
특성 / 헤롱헤롱바디
성격 /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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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성별 / 여
타입 / 물
특성 / 하늘의은총
성격 / 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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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쓰면서 생각하는 것.
9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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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휴대폰은 없지만 도감이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다. 전화는 안 되지만 카톡은 된다. 카톡을 안 열어보는
관계로 묵묵부답. 바람도 도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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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별명은 미친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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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가의 로망의 집합체. 레드와 그린의 주먹질이라던가. 고등학생 레드와 그린이라던가. 체육 대회하는
레드와 그린이라던가. 수돗가에서 머리에 물 부어 축축이 젖은 레드라던가. 고의는 아니지만 같이 젖어버린
그린이라던가. 교복, 정장, 일상복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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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대 애들도 나오는데 그건 나아아중에. 그것도 목격자님의 포켓몬스터 폭풍같이 진행하는 만화에서 이름을
가져올 예정. 허락받았었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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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동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귀엽달까. 정감 간달까.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을 것 같은...! 쓰면서 지우만큼
괴리감이 있어 초반에 적응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절대 싫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밑에 코멘트로 대안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사실 대안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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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는 주로 손금이나 타로카드 점을 봐준다. 꽤 잘 맞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가끔 타학년들도 찾아오기도 한다.
타로를 보다 보면 속내를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잎새의 정보의 원천은 대체로 거기. 그래도 비밀은 꼭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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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파는 돌들은 양산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한 돌들. 그래도 가격은 비싸다. 자연산 돌들은 완전 천차만별.
최소가 40 만원이라지만 억대까지 치솟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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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월드에서 트레이너는 거의 스포츠 스타급 인기를 누리는데 그런 의미로 연예인처럼 바람과 지우를 좋아하는
애들이 많다. 그래서 잎새가 가끔 사진을 팔거나 궁합을 봐주거나 하는 편. 바람이나 지우도 암묵적으로 허락했다.
별로 신경 자체를 안 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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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눈치 못 채고 있지만 꽤 인기가 있다. 바람이 눈이 높아서 별로 안 예쁘다고 했지. 일반인이 보기엔
예쁜 편. 배틀도 굉장히 잘하고. 그런데 성격은 얌전하고. 뭔가 갭이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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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호 박사님은 챔피언이었다. 현역 은퇴한 뒤 연구에만 매진. 한창 포켓몬 연구가 시작될 때라 기류를 잘 타서
엄청나게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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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성공은 운이다.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배틀도 운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켓몬이라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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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재는 오박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캐이시도 오박사에게 받았다. 그 캐이시가 진화한 후딘의 아이를
바람이 받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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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은 전학 전에는 나리 누나가 싸줬지만 자취하는 지금은 둘이 번갈아가면서 싸고 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지금은 괜찮은 편. 이 경험 덕분에 기본기가 생겨서 지우는 훗날 설악산에서 살 때 먹을 걱정
덜하면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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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은 주말에는 좀 늦잠을 자는 편인데 우파는 지은과 놀고 싶다. 장난기가 발동 침대에 자고 있는 지은에게
뛰어든다. 윽, 무거움에 깨는 지은. 그에 일어난 냄새꼬가 덩굴로 바닥으로 던지고 찰싹찰싹 때린다. 냄새꼬
덩굴은 약한 편이지만 우파는 풀에 4 배. 바닥을 뒹굴며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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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주말. 우파는 냄새꼬의 눈치를 본다. 자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이불 밑으로 기어들어가 지은을
눌러 깨운다. 이번에는 안 맞겠지? 하면서 이불속에서 머리를 빼내는데 눈앞에 버티고 서있는 냄새꼬. 우파는 또
바닥을 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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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는 누오로 진화했다. 느긋한 성격이 종특이기 때문에 누오는 느긋하게 장난을 친다. 지난번에는 자는 지은의
얼굴에 물을 뿌려 깨웠다가 지은이한테 뺨을 잡아당겨지며 혼쭐이 났다. 이번에는 물 스프레이 형식으로 뿌렸다.
지은은 으으, 하면서 일어났지만 냄새꼬한테 또 맞았다. 진화했지만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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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의젓한 성격의 우파를 데려오려고 했었다. 지은이의 엄마 같은 멘탈케어 담당으로. 그런데 장난꾸러기
우파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직전에 바뀌었다. 바뀐 게 더 재미있고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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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격은 우파의 친구에게 더해졌다. 순천만에서 누오를 기다리고 있는 먼저 진화한 친구 누오. 수컷에 의젓한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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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포켓몬들
메리프 - 보송송
성별 / 암컷
타입 / 전기
특성 / 정전기
성격 /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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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꼬
성별 / 수컷
타입 / 풀, 독
특성 / 악취
성격 / 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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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 누오
성별 / 암컷
타입 / 물, 땅
특성 / 저수
성격 / 장난꾸러기
133
니드리노
성별 / 수컷
타입 / 독
특성 / 투쟁심
성격 / 건방짐
134
지우의 포켓몬들
피츄 - 피카츄
성별 / 수컷
타입 / 전기
특성 / 정전기
성격 / 의젓함
도구 / 전기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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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씨 - 이상해풀
성별 / 수컷
타입 / 풀, 독
특성 / 심록
성격 / 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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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리 – 리자드
성별 / 암컷
타입 / 불꽃
특성 / 맹화
성격 / 겁쟁이
137
어니부기
성별 / 수컷
타입 / 물
특성 / 급류
성격 / 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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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포켓몬들
이브이 - 블래키
성별 / 수컷
타입 / 악
특성 / 싱크로
성격 / 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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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 - 피죤
성별 / 수컷
타입 / 노말, 비행
특성 / 날카로운눈
성격 / 고집
140
꼬렛 - 레트라
성별 / 수컷
타입 / 노말
특성 / 근성
성격 / 명랑
141
잉어킹 - 갸라도스
성별 / 수컷
타입 / 물, 비행
특성 / 위협
성격 / 고집
142
캐이시 - 윤겔라
성별 / 수컷
타입 / 에스퍼
특성 / 싱크로
성격 / 차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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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의 포켓몬
푸푸린 – 푸린 (크림)
성별 / 암컷
타입 / 노말, 페어리
특성 / 헤롱헤롱바디
성격 / 개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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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루트 (+서브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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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을 이길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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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코멘트로 팬아트 그려줄 것처럼 얘기하는 분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아직도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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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는 덥다고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는데 그 여름 특유의 눅눅하고 뜨거운 느낌을 별로 안 좋아한다. 차라리
쾌청이면 습기는 없어져서 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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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포켓몬이나 환상의 포켓몬은 벽화나 그림, 전설과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 일반인들은 타지방 신화까지는
모르지만 포덕들은 다 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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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의 주도 하에 준결승 진출하는 지은이를 응원하자며 전기 포켓몬 머리띠를 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결국
데덴네로 결정되었다. 어쩌다 보니 반 남학생들도 휩쓸리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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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지은이는 그 머리띠를 보자 조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뭔가... 피식자가 될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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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이라는 말이 없었던 옛날에는 포켓몬을 마수 혹은 괴수라고 불렀다. 어르신들 중에는 아직도 그렇게
부르시는 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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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감에 따르면 루기아는 바다의 신령님. 가이오가는 바다의 화신. 루기아는 에스퍼/비행이다. 물/비행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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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에서 지우와 바람이의 승부는 무승부로 끝났다. 어차피 같은 반이기도 하고.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결판을 못 내서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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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모다피의 모다모다모다 가 무다무다무다 로 읽힌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작가가 죠죠러는 아니라서
뭔지는 모르는데 패러디해서 넣은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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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와 바람이 잎새가 포켓몬이 없는 세상으로 간다면 아마 천애 고아로 시작해야 한다. 지은이 세상에는
실존인물인 저 주인공들이 없기 때문에. 기억은 다르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있고 살던 집이 있고 했던
지은이보다는 더 힘든 상황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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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쓴다면 셋 다 보내진 않고 한 명만 주인공으로 잡아서 현실 세상에 떨구겠지. 그러면 주변에 둘러봐도
포켓몬이 없는 세상에 패닉. 바람이나 지우라면 연구소를 찾아갔는데 포켓몬 연구소가 아니라 일반 생물학
연구소가 있겠지. 갈 곳 없이 방황하다가 연상의 연구원(어른판 지은이)에게 주워지고 연상/고딩 키잡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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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새라면 오도카니 산에 떨어진 잎새를 지은이 오빠인 지한이가 데려오고 지은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고등학교도
다니고... 이것도 키잡...?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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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이쪽 세상에 남기로 결정한 건 6 개월동안의 시간이 한몫했다. 어느 정도 적응하고 체념하고 있기도
했고. 친구 먹은 셋 하고도 많이 친해지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포켓몬들을 많이 들여 버려서. 더 이상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떠나갈 수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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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드림물을 써야겠어! -> 주인공은 이케이케 -> 엔트리는 이렇게 -> 주제는 이것으로 -> 플롯을 짜자! ->
????
왜 너는 서브남주가 되어있니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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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쯤 다른 2 차창작물처럼 루트 밝히고 가려고 했는데 뭐랄까... 한 쪽 편을 들면 독자님들이 실망할 것
같아서 완결까지 이 비밀은 나만 간직하고 가야겠다.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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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내에서는 한국을 관동+성도 포켓몬으로 구성. 일본 남쪽 지방이 호연, 북쪽 지방이 신오. 하나 = 미국,
칼로스 = 유럽, 알로라 = 하와이를 비롯한 열대지방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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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이나 강철톤 같이 조건에 의한 진화 설정도 그대로 가져간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게임을 따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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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교환을 할 때는 교환 기기를 사용해야 한다. 몬스터볼은 사용자의 트레이너 정보와 연동되어있고
국가적으로 관리하기 때문. 그래야 PC 박스도 사용이 가능하다. 그냥 주고받는 것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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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포켓몬들은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교환을 할 때, 상대방 포켓몬의 에너지나 가지고 있는
물건의 에너지가 영향을 미치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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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제목 : 성장
93 화
1 부 후기
1. 1 부 제목은 세계
이 소설에서 초반부 너무 조울증같다. 감정과잉이다 얘기도 있었고 그것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좋다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니, 트립했는데 사람들이 저렇게 정신이 멀쩡할 수 있을까. 생각에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또 트립으로 인한 혼란을 다룬 글들을 몇몇 보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도 있구요.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작가의 경험이었습니다.
두번째 경험은 포하를 쓰고 난 뒤었습니다. 앞의 이야기와 좀 비슷한데. 이번에는 거실형 기숙사에서 살았던
때의 일입니다. 방으로 들어가려면 1 층 입구 통로에서 혈관인식하고 자기 층수 집(거실)으로 들어가는데 또
비번입력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려면 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아주 보안이 철저한 시스템입니다.
3. 현재의 위치
1 부 쓰는데 2 년이 걸렸네요. 90 편 가까이 썼는데... 이제 프롤로그가 끝났군요(농담) ㅋㅋㅋ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기승전결이면 이제 기가 끝났달까. 5 단계로하면 발단-전개 까지입니다. 2 부가 위기, 3 부가 절정,
4 부가 결말 순으로 진행되고 남은 이야기들은 5 부로 뭉뚱그려서 에필로그로 적을 예정입니다. 몇몇 생각해 둔
게 있는데 길어질 것 같은 건 썰로 풀거나 따로 글을 파거나 할 듯 합니다.
4. 포켓몬 고
돌아온 후에도 연재주기는 작가가 한 챕터를 다 쓰고 돌아와서 일주일동안 왕창 달리고 사라지는 패턴을 반복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글 완결성도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더라구요. 그러니까 비축분 쌓아서 돌아올게요♡
6. 감사 인사
안녕하세요. 도여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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