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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

전등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두운 실내.


그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뿜어내는 작은 모니터 속에서는 하나의 단어를 띄우고 있었다.
"으아아... 드디어 깼다!"
최근 3 개월 간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었던 1 인용 RPG 게임 '엘레이스 전기'.
나는 지금 막 이 게임의 최종보스를 잡아냈던 것이다.
"하아......"
긴장이 풀림과 함께 터져나오는 한숨.
이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반복해야했던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다시 하고싶지
않은 경험이다.
처음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설명란에 적혀있는 '이 게임은 상당한 난이도를 지닌 게임입니다' 라는 문장을
보고 그래봤자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코웃음쳤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
나는 게임창을 창모드로 변경해놓은 채 인터넷창을 새로 열었다.
곧 있으면 엔딩이 나오겠지.
엔딩을 준비중인 게임창 위로 로딩이 완료된 인터넷에 게임명 '엘레이스 전기'를 검색했다.
"흐음... 이상하단 말이야."
이러한 내 물음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닐 것이다.
언제 오픈을 했는지는 몰라도 내가 게임을 플레이를 한 것만 해도 약 3 개월이다... 그런데.
"게임 공식사이트를 제외하고 리뷰라던가 공략이라던가 아직도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망겜이라해도 출시된 지 몇 달 이상 지났다면 공략은 아니더라도 리뷰글... 하다못해 광고라도
검색이되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공식사이트 외에 검색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니... 내 생에 이런 게임은 처음이다.
"덕분에 그 개고생을 해가면서 꾸역꾸역 해나갔단 말이지......"
몬스터와 캐릭터의 밸런스부터해서 함정은 자비란걸 몰랐으며, NPC 는 무슨 조울증이라도 있는듯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데다가 수틀리면 내 캐릭터를 무썰듯 썰어버린다.
아이템?
무조건 드랍으로만 구할 수 있다.
솔직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중요한건 장비류를 일반 몬스터를 잡는다고 드랍해 주는게 아니란 것이다.
안그래도 안드로메다로 보내진 듯한 밸런스에 장비템 드랍을 네임드와 보스한테서만 가능하게
만들어놓다니, 제작자들의 악랄함에 치를 떨어댔었다.
가끔 맵로딩중에 팁이라고 적혀있었던 - 당신이 사는 현실세계에서는 없었던 장비가 죽으면 생기기라도
하나요? - 라는 문장은 수백번의 리트라이를 경험하는 중에 눈에 띄게 될 때면 내안의 파괴본능을
참지못할 정도.
내 캐릭 스텟은 망캐인지 아닌지 알 방법도 모르고 그냥 자동분배로 키웠다.
"뭐, 이제 다 지난 이야기지만."
나는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런데.
"어라? 아직도 엔딩이 시작 안됬어?"
아직도 검은 화면만을 출력하는 게임창.
"설마 버그는 아니겠지?!"
안된다.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
최종보스 그 한 놈을 잡기위해 꼬박 일주일을 투자했다.
지금의 내 머리속으로 주마등을 보는 듯, 놈과의 추억이 스쳐지나간다.
한대맞으면 골로가는 데미지를 가진것도 모자라 모든 스킬이 광역기고 장판까지 깔아대는 미친놈.
아, 안된다.
다시 도전하라고 하면 절대 못깨......
"씨발! 진짜 안된다고!"
나는 다급한 마음에 광속으로 마우스를 클릭해댔고.
"뭐야! 방금 그 건!!"
갑작스럽게 나타난 알림창 하나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고 '네'를 눌러버렸다.
설마 엔딩 스킵이라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아아아아아악! 스토리 게임의 엔딩을 못보는게 말이되냐!!!!!!"
그런 나의 머리속에 울려퍼지는 누군가 목소리.
'본인의 동의 확인. 술식을 가동합니다.'
왠지 모르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의 대사를 들음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라는게 바로 내 평범했던 일상의 마지막 기억인 듯 하다.
"씨발......"
나는 원래 입에 이렇게 욕을 달고 사는 인간이 아니었는데......
편의점 알바 중에도 그 어떤 악질 손님들과 점장님의 갈굼속에서도 거짓웃음과 예의를 잃지 않았던 나다.
'그런데... 황당하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공간에 홀로 버려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정한다.
낯선 공간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감옥이다.
"진짜... 하아......"
네모난 공간에 철장으로 막혀있는 탈출구.
그 어떤 기구도 없는 이 공간의 바닥에는 모피같은게 깔려있는데 잘 때 덮고 자라고 둔 것 같다.
그래도 양심은 있... 기는 개뿔.
침대같은 거라도 넣어주면 배가 아파 뒤질 것 같기라도 한건가?
입고있던 옷도 다 가져간 모양이다.
'무슨 누더기를 입혀놨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범죄자 인권도 챙겨주는 아름다운 시대이지 않던가.
나는 범죄자도 아니고 일반 소시민인데.
영문도 모르고 기절한 새에 납치당한 것도 억울한데 인권보장도 못받고있다.
가축들도 이런 취급은 안받을 것이다.
그렇게 궁시렁대면서 얌전히 앉아있으며 시간을 조금 보내니.
"케인 엘디스... 식사다."
라며 중세갑옷처럼 보이는 철제 갑옷을 입고 허리엔 검 한자루를 차고있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 한명이
식사랍시고 철장 사이로 빵 몇개를 휙 던져주고는 가버린다.
포장지에 싸여있지도 않은 빵 두덩이가 더러운 흙바닥에 떨어졌다.
...씨발. 진짜 사람새끼가 맞는 것인가?
하긴 저런 중 2 병에 걸린 듯한 놈한테 상식을 바라는 것도 무리인 듯 싶다.
거기다가 왜 날 보면서 케인 엘디스라 부르는건데?
나한테 멋대로 중 2 한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응? 케인 엘디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데 싶다.
'으으으음......'
아, 하나 생각나는게 있었다.
분명 내가 플레이했던 '엘레이스 전기'의 최종보스 이름이 케인 엘디스......
"...아니겠지?"
설마 했던 흔한 이세계 전생 판타지 같은 이야기?
...그럴리가 없지.
자, 정신줄을 잡고, 심호흡도 좀 하고.
나는 날 가두고있는 철장으로 다가가......
"야! 이 개새끼들아! 너네 이거 범죄야 범죄! 빨리 풀어줘! 풀어달라고! 부모님이 니 새끼들 낳으실 때
이런 짓을 할꺼라고 생각은 하셨겠냐?!"
라고 열심히 소리쳤다.
...조금 흥분해서 심한 말까지 한 것 같지만 나는 지금의 내 상황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소용이 있을리가 없다.
아니... 너무나도 당연히 악효과만 났다.
주변에 나와 같은처지의 사람들은 날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고, 아까 내게 빵을 던져주고 갔던 놈이 다시
돌아와서는 말 한마디도 없이 날 마구 패기시작했으니까.
그 와중에 맞는 곳은 더럽게 아프다.
'...이 새끼, 부위 안가리고 패는데?'
얼굴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아주 골고루 패고 있다.
아니 이런 생각이나 할때가 아니지.
씨발... 진짜 뒤지겠는데?
얼마나 힘줘서 패고 있는건지 머리가 울리고 눈앞이 핑핑돌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가 않는다.
그렇게 서서히 아픔은 느껴지지가 않았고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할 무렵.
그런 내 상태를 알아챘는지 주먹질이 멈춘게 느껴졌다.
'ㅈ같은 새끼... 넌 나중에 내가 꼭 죽인다.'
물론 윗 대사는 속으로 삼켰다.
잘못하다가는 진짜 골로가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이를 갈고 있는 내 귓 속으로 녀석의 말이 꽃혔다.
"웃기는 새끼군. 대역죄를 저지르고 수감되어있는 놈이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놈의 얼굴에는 틀림없는 비웃음이 서려있었다.
저 새끼가 진짜 중 2 병 말기의 사이코패스들만 모아놓은 집단의 일원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래도 일단 말할 건 말해보도록 하자.
"...내가... 무슨 죄... 를 지었는데......?"
말하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이런 내 말을 들은 놈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한다.
씨발... 웃기냐?
"하하하하! 농담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농담 아니라고 이 새끼야......
"그래... 정말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빛 속에 경멸가 혐오가 서렸다.
"고위 신관님들을 살해하고 감히 성녀님을 겁탈하려하였으며 어린아이들을 납치하여 잔인한 실험에
이용했던것들도 모자라 마족과 손을 잡고 인류를 배신하려했던 네 죄를 정말 모르겠단말이지?!!!!!!!!!!
마치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이 공간 내에 울려퍼졌다.
'아니, 저게 다 뭔 개소리야......'
물론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없던 죄까지 만들어내는 정신병자들의 생각까지 이해할 수가 있단말인가.
나의 이해범주를 뛰어넘은 황당한 상황에 말문이 막혀있는데.
"흥.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라며 지멋대로 내 죄를 결정짓고 뒤돌아 나가던 놈이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아, 그리고 네 놈의 사형집행일이 결정됬다. 내일 정오에 실행한다고 하니 마음의 정리를 해두는 편이
좋을거야. 하하하하핫!"
라며 나를 잔뜩 비웃고는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오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납치당한지 하루만에 다음날 사형까지 당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아?
그것도 말도 안되는 황당한 죄목으로.
씨발. 진짜 한번이라도 해봤으면 억울하지나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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