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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1 화
외전 3. 알 수 없이 홀러가는
그러니까 대체 이게 어찌 된 상 황인 걸까?
백리연은 제 앞에서 저를 매섭게 노려보는 자를 마주 보았다. 딱딱 하고 서늘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눈빛. 거기에 잔뜩 날이 선 경계심.
남궁류청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백리연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매만졌다.
아, 이게 꿈이라면 누가 좀 깨워
줬으면.
사고 이틀 전.
터벅, 터벅.
일정한 걸음 소리가 누군가 인위 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원형 모
“이건…… 목패?”
“이게 화무가 말한 그건가?”
남궁류청이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그렇다기엔 아무 힘도 느껴지지 않는데.”
백리연 또한 동의한다고 답하려 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목패에서 아주 희미하게 불길한 기운이 흘
러나왔다.
백리연은 재빨리 금안의 힘으로 기운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 다급히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이었다.
“목패에서 뭐?”
“아무 느낌 없었는데?”
백리연은 놀라 눈을 깜빡거렸다.
남궁류청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정말 괜찮아?”
“뭘 말하는 거야?”
“손이 따갑다든가, 어디 아프다든 가. 아니면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든가.”
“아무 느낌 없어.”
“그래? 줘 봐.”
낯이 이내 일그러졌다.
“속았네.”
“뭐?”
“이거 가짜야.”
“허?”
“응. 아무 능력도 담겨 있지 않 아.”
백리연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이곳에 천마의 유산이 있다는 정보 때문 이었다. 결국, 가짜였지만.
‘그렇다면 아까 보였던 그 불길하
“그럼 아닌가?”
* * *
U 으 애 흐.
리의강에게 맡겨 놓은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백리세화와 남궁 희는 엄마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 운다고 해도 외조부와 외증조부에 게
정신이 팔려 관심이 없었다.
배웅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백리 의강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배웅해 야 한다고 나무라자 그제야 잘 다
녀오시라며 인사했다.
백리연은 얌전하게 인사하던 세 화와 작은 손을 마구 흔들던 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혀 슬프거나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아니, 희는 오히려 아빠 엄마가 없다니까 반
기는 기색이었다.
백리연이 말했다.
“하여간 너무 오냐오냐해서 문제
라니까.”
“애들 얘긴 이제 그만 하지?”
“ 응?”
“여기 네 관심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갑작스러운 말에 백리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궁류청을 바라보 았다.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그의 뺨에
손을 올렸다.
“정말 너한테도 너무 오냐오냐해 주는 것 같아.”
그렇게 무사히 돌아와 달빛을 받 으며 산책을 하고, 밤을 보내고 다 를 것 없는 다음 날도 평범한 하
루였다.
“일어나!”
“뭐야……? 아침부터. 양심도 없 지 정말. 피곤해 죽겠어.”
“헛소리 말고 일어나지 못해!”
백리연은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 며 간신히 눈을 떴다.
네가 왜 여기 있어?”
“뭐?”
멀리 방의 벽에 붙다시피 선 남 궁류청은 새빨개진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옷…… 옷 좀 제대로 입어!”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2 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 다.
백리연은 머리를 짚고 있는 남궁 류청을 보았다. 태도, 자세, 표정. 모두 그녀가 알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을 뜬 남궁류청의 기억 은 회귀 전. 정확히는 그녀가 멍청 한 악역 조연처럼 사사건건 발목 을
잡았을 때의 시점에 멈춰 있었 다.
‘이걸…… 기억 상실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내가 할 소리야.”
가를 쓸어내렸다.
그때 목패를 살피던 남궁류청이 소리 나게 내려놓고 그녀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 이 목패가 네가 말한 대 로 천마의 조각이자 힘이 맞는다 면, 설마 이걸 찾으러 가는 걸, 네 가
따라왔단 말이야?”
“응. 같이 찾았으니까.”
“응? 응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위험한 곳에 따라 올 생각 말라고!”
가 맺혔다.
“그런데 내가 왜 너와 같은 침대 에서 이런 꼴로 일어나?”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지.
어떻게 말해야 할까? 대충 둘러 댈까? 하지만 언제 어떻게 돌아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거짓을 말해야 할 만큼 잘 못한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저 눈빛. 너무 오랜만이라서 면역 이 없어서 그럴까? 저 온기 없는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입술을 떼
기가 어려웠다.
‘아니, 내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 고.’
살짝 욱하는 마음도 치솟았다.
잠시 눈을 감았던 백리연은 고개 를 들고 남궁류청을 직시했다.
“그야 내가 너랑 부부니까.”
남궁류청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 웃음을 지었다.
“내가, 너랑 부부라고?”
u 으 카
흐 •
“진짜, 하……
“하!”
탄식한 남궁류청이 갑자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그러고는 저벅저벅 걸어왔다.
백리연 또한 안색을 굳힌 채 침 상 옆의 검을 쥐었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지긋지긋하군. 천마는 죽었다지 않았나? 물론 천마를 어떻게 쓰러 트렸는지 알려주지 않아 믿을 수
없지만.”
“잔당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그래도 최근엔 사리는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대낮에 숨 길
생각도 없는 습격이라니. 이건 마치 네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거 라고 확신하는 움직임인걸?”
남궁류청이 기이한 것을 바라보 든 백리연을 바라보았다가 말했다.
“넌……. 아무튼 허튼짓 말고 여 기 얌전히 있어.”
쾅-!
남궁류청이 문을 부서트릴 듯이 건물을 뛰쳐나갔다.
쿠콰콰쾅-!
그리고는 강력한 진기 흐름과 폭 발하는 듯한 소음이 터졌다. 이어 스각, 챙-! 섬뜩한 소리와 병장기
들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금안으로 벽 너머 그의 움직임이 보였다. 검을 다루는 움직임조차 전과는 달랐다.
“정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윽고 백리연의 검이 창문을 부 수고 날아가 남궁류청을 노리던 화살을 막아 냈다.
쏴아아아아—
요란한 빗소리 아래.
“객실이 하나밖에 안 남았다고 요?”
“두 사람이라고 했죠? 방 자체는 2 인실이니 함께 머무르기엔 불편 없으실 겁니다.”
“아……
“방 주시게.”
“예, 알겠습니다!”
다음 손님에게로 달려간 점소이 가 방이 모두 나갔다고 설명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백리연이 남궁류청을 향해 물었 다.
“괜찮겠어?”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 마구간 괜찮은 데 찾으려면 또 한참 걸릴 테고.”
“그건 그렇지……
다 똑같은 사람 아닌가?”
“그건…… 그렇지.”
“납득 못 하겠으면 그렇다고 말 해. 억지로 동의하지 말고.”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이상해서.”
“이상하다?”
남궁류청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 바쁘던 점소이가 드디어 주 문을 받으러 탁자에 다가왔다. 남 궁류청은 말을 멈추고 바로 주문 을
했다.
“술은요?”
“됐습니다.”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멀어지고 잠시 생각하 는 듯하던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 다.
“이 시점의 나는 회귀 사실을 알 고 있댔지?”
“네가 과거의 나도 모두 다 기억
하고 있단 사실도 알고 있고?”
유으 아
흐.
“그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라도 했 나 봐?”
백리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 정만으로도 이미 답을 한 거나 마 찬가지 였다.
“그걸 어떻게……?”
“회귀 후의 내가 현재의 나이기 도 한데, 당연히 내 생각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않겠어?”
“ 아.”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 다.
‘잠깐만, 근데 그러면……
그때 그들에게 다가와 조심스럽 게 말을 거는 이가 있었다.
“저기 손님들.”
고개를 돌리자 주문을 받고 물러 갔던 점소이와 옷자락이 다소 젖 은 강호인 둘이 보였다.
의뢰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마교와 무림맹의 싸 움이 잦아들며 그들의 일거리도
줄어들어 가고 있다며 한탄했다.
남궁류청이 속을 알 수 없는 표 정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천마가 죽었단 말입니까?”
“어디 동굴에서 수련만 하다 나 오셨소?”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껄 껄 웃은 사내가 남궁류청에게 술 을 권했다.
“아으}’!”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3 화
으로 눈을 깜빡였다.
녀가 스리슬쩍 챙겼다.
하지만 남궁류청은 자신이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도 기 억하지 못했다.
한참 침묵하던 백리연은 문득 떠
올랐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늦네.”
백리연은 금안으로 건물 안에 있 는 남궁류청의 기운을 확인했다. 남궁류청은 한 방에 두 개의 욕조 를
마련할 수 없어 따로 씻으러 간 참이었다.
침상 머리맡에 몸을 기대고 기다 리던 백리연은 어느새 저도 모르 게 수마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객실 문이 열리 고 남궁류청이 침실에 들어오다 멈칫했다. 곧이어 기척을 죽인 남
가 말했다.
있어 보이던데.”
드 J •
을 수도 없고.”
다고 했어.
남궁류청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 다.
“……그게 끝이야? 설명이 너무 건성인 거 아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데……
“어떤 상황에서 어쩌다 이렇게 관계가 발전하게 됐는지 알려 줘 야지. 그래야 나도 무언가 단서라
았어.”
“……일단 계속 말해 봐.”
백리연이 입을 살짝 비죽였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과거에 네가 날 안 좋아했 던 거 알았으니까 거절했지.”
“뭐?”
“왜?”
“아냐, 계속 말해봐.”
백리연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야?”
남궁류청이 태연히 말했다.
“뭐긴 뭐야? 나도 자야지.”
“얘기하다 말고 갑자기? 아니 그 리고 잘 건데 왜 여기 올라와?”
“그럼 어디서 자라고? 침상이 하 나뿐인데.”
이 당황해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잠깐만……!”
그리고 남궁류청은 그 당황한 표 정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남궁류청 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말을 이었 다.
“같은 방 쓸 때부터 예상하던 거 아니었어? 그래서 꺼린 거 아냐?”
“아니, 아니거든!”
“뭐가 문젠데?”
백리연이 입술을 달싹였으나 나 오는 말은 없었다.
당연히 할 말이 없겠지.
남궁류청이 말을 이었다.
“너한테는 똑같은 사람 아냐? 그 저 현재 기억을 잃고 과거의 기억 을 떠올린 거라며?”
남궁류청은 상대를 안심시키고자 말했다.
“손 하나 까딱 안 할 테니까 쓸 데없는 소리로 진 빼지 말고 그냥 누워. 손댈 생각도 없고 손대고 싶 은
마음도 없으니까.”
백리연은 처음에는 기가 막힌다 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나중에는
살짝 화가 난 듯싶었다.
“너, 나중에 다른 말 하기 없기 다? 어? 네가 괜찮다고 한 거야!”
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회귀 후의 자신은 전혀 그와 같 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백리연 을 적당히 속여 넘기기 위해 한
말이었다.
‘만약 회귀 후의 그놈이 이 일을 기억한다면 꽤 화가 나겠지만
다.
‘잘 땐 이런 모습이었군.’
그러고 보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서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 은 처음이니 다름없었다. 반듯한
콧날과 닫힌 눈꺼풀은 그늘 없이 평온했다. 이렇게 보면 거푸집에서 찍어 냈다고 해도 될 만큼 제 스 승을
닮은 얼굴이었다.
다만 표정이 풍부한 백리연과 진 중한 눈빛에 언사 하나도 무거운 스승이기에 깨어 있을 때는 닮았 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수 없을 지경이었다.
‘좀도둑을 잡을 때 보였던 금나 수, 분명 천산염제의 무공이었지.’
그는 좀도둑이 그들을 노리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어떤 반 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거기다 천산염제의 금나수뿐만이 아니었다. 마교도의 습격 시에 보 였던 무공 수위. 그는 오랜만에 자
신의 기감을 의심하고 두 눈으로 본 사실을 믿기 힘들었다.
준에 비해 훨씬 더 고강했다.
‘하지만 천마를 정말 백리연이 쓰 러트렸다고?’
전혀 믿기지 않았다.
왜 말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말했다고 한들 믿지 않 았으리라. 그리고 이야기를 들은
지금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등을 맞댄 몸은 익숙 했고 손발의 호흡은 몇 년을 함께 맞춘 듯이 완벽했다.
이렇게 누군가 제 속을 읽어 준 것처럼 딱딱 맞는 검을 펼쳐 본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4 화
이튿날 아침.
백리연은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 다.
밤새 과거, 회귀 전의 일을 꿈꿨 다.
을 잘 수가 있어야지.”
“뭐라고?”
“됐어.”
백리연을 훑어보던 남궁류청이 미간을 살짝 좁히고 물었다.
“안색이 왜 그래? 너라도 잘 잤 어야지.”
“아, 그냥 꿈을 좀 꿨어.”
“무슨 꿈?”
“옛날에 있었던 일들.”
“옛날? 표정은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것 같은데?”
딱딱딱.
기묘한 소리가 창가에서 들렸다.
백리연은 침상에서 일어나 창가 로 향했다. 나무 덧창을 열자 어느 새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이
새파랬다.
열린 창문으로 백리연이 손을 내 밀자 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손등에 앉았다. 제갈화무가 보낸
전서구였다. 백리연은 새 다리에 매여 있던 편지를 풀어 확인하고 는 인상을 찡그렸다.
“귀찮게 됐네.”
무림맹 본단.
근래 무림맹은 무척 평탄한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 라 거리에 나온 무인들의 수가 평
소와 달랐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은근히 무언가를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행사가 있는 것처럼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한 분 위기였다. 길거리의 노점상이 친한
무인을 향해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소?”
“예?”
“아니, 오늘 기웃기웃하면서 뭘 찾는 기색이잖소?”
“아, 티가 났습니까?”
“그려요. 궁금하게만 하지 말고 내도 알려 주시오. 행사라도 있 소?”
“행사까지는 아니고…… 아니, 행 사라고 해야 하나?”
“ 으음 2”
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기 무림맹을 방문한다고 한 것이 다.
“스승님, 대협들과 친하다면서 요!”
“아니 그건 또 누가……. 그냥 안 면이 좀 있는 것뿐이야.”
“그게 친한 거 아닌가?”
“그러게.”
중얼거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누 군가 물었다.
“장철?”
애들 귀엽네.”
“저놈이 무관 선생이라고?”
장철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남궁류 청의 시선이 싸늘하다 못해 살짝 살기까지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장철이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뭐야, 네가 지원해 보라고 한 거 잖아?”
“내가?”
“그, 그래!”
장철은 대체 왜 갑자기 시비인가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궁류 청을 바라보았다.
물러났다.
장철이 인상을 찡그리며 바라보 다 백리연을 향해 속삭였다.
“……둘이 싸웠어?”
남궁류청이 제 손목을 매만지며 매섭게 말했다.
“신경 꺼.”
“그냥 말 걸지 마. 지금 매우 예 민하거든.”
잠시 침묵한 공손월이 말을 이었 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어요.”
이를 여러 수완으로 잘 처리하고
“화무! 오랜만이야.”
남궁류청이 백리연을 돌아보았다.
눈빛만 보고도 의문을 알 수 있 었다.
“응, 맞아. 제갈 세가주.”
그들이 무림맹 본단에 온 이유였 다.
본래는 제갈 세가로 향하고 있었 다. 그러나 제갈화무가 무림맹 본 단에 있다는 소식에 경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제갈화무가 남궁류청을 보고 부
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남궁 소가주, 얘기는 들었습니 다. 이걸 오랜만에 뵙는다고 해야 할까요?”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5 화
군사부 별채.
그윽한 다향이 가득 찬 방 안에 서 나직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총사 대리는 너한테 무림맹주를 제안할 생각이었을 거야.”
순간 찻잔을 들던 백리연이 멍한 낯을 했다.
“……그걸 누가 동의해? 제정신
인가?”
꼭 천하 강자가 해야 한다는 규
이리저리 살폈다.
남궁류청은 상대하기 싫다는 듯 이 백리연을 돌아보았다.
“이 사람 믿을 수 있는 거 맞 아?”
“소가주의 믿음은 별로 중요치 않은걸. 연이가 믿느냐가 중요하 지.”
백리연은 또 시작이라는 표정으 로 끼어들었다.
“화무, 괜히 자극하지 마.”
제갈화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나야, 진심으로 은인의 행복을 바라지.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즐거움을 억누를 필요는 없잖아?”
“좀 억눌러 봐.”
“은인의 행복?”
“아, 그쪽은 기억 못 하시겠지 만.”
남궁류청이 서릿발처럼 차가운 눈빛을 했다. 이어서 탁자를 짚고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려는 순간 그를
붙잡듯 손등을 다독이는 손 길이 느껴졌다.
백리연이었다.
“그래서 뭐 때문인지 짐작 가는
바 있어?”
양이야.”
백리연이 인상을찡그렸다.
“움직임을 보고 일이 묘하게 돌 아간다 싶었는데, 보아하니 이 목 패로 너희를 붙잡아 놓고 뭔가 다 른
일을 처리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어.”
“……당했네.”
“미안. 내가 좀 더 알아볼 걸 그
랬어.”
“그쪽은 내가 뭘 찾는지 알고 있
“당시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서. 어차피 떠올린다 하더라도 보통 꿈처럼 흐리고 쉽게 잊어버리지. 그래서
현재에 아무런 영향도 미 치지 못해. 너처럼 선명한 건 극히 드물어.”
백리연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제갈화무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떠올리고 어째 서 잊어버릴까? 정말 시간을 돌린 거라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지 않나?”
유으 애
“천기로 인한 문제가 가장 컸겠
말했다.
워지는 게 아니더라고.”
“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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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화무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 다.
“괜찮을 거라고 너라면 대충 예 상하지 않았어?”
였다.
천마 무공에 대한 지식 대부분은 잃어버렸지만, 그런데도 대충 남아 있는 감각과 비슷한 것들은 꽤 있
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느껴졌다, 남궁류청의 이 상태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그게 아니었다 면
이 정도로 태연할 수 없었으리 라.
제갈화무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걱정돼서 어쩔 수가 없 구나? 기다리지 못하고 무림맹까 지 찾아온 걸 보니.”
“류청!”
가운 낯을 했다.
“서……!
대로 그들을 지나쳐 건물 뒤로 사
라졌다.
뭐야?”
잠시 후에야 두 사람 모두 상황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6 화
그들을 발견한 청년이 반가운 기 색으로 말했다.
“류청, 무림맹에 왔다는 소리는 들었네. 오랜만일세.”
“……문겸. 오랜만이네.”
남궁류청을 향해 인사한 청년이 백리연을 향해서도 인사했다.
남궁류청과는 길에서 만나 의기 투합하여 마두를 쓰러트린 적 있 는 가까운 지인이었다. 회귀 전에 도
회귀 후에도, 장철과 달리 똑같 이 이어진 남궁류청의 인연이었다.
사람들과 달랐는데…….
“혹시 오늘 수향문의 서 소저 만 난 적 있나?”
그들이 아니라 서하령에게 관심 이 있었다.
남궁류청의 입매가 살짝 일그러 졌다. 문겸은 알아채지 못하고 백 리연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남궁류청이 사람에게 믿음을 절 로 주는 낮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 했다.
“우리는 본단에 도착하여 지금까
“뭐가?”
“내가 무슨 말을 했냐니?”
청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령아.”
그러자 서하령이 질겁하며 백리 연을 바라봤다.
“뭐야? 쟤 왜 저래?”
‘하령아’라니. 남궁류청은 단 한 번도 그렇게 가까운 어조로 서하 령을 부른 적 없었다.
백리연은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입술을 꽉 물고 참아 냈다.
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
지만은 않았다.
“예?”
그때 백리의강이 백리연을 향해 전음했다.
잠시 듣던 백리연의 눈이 점차
“세화야, 정말 엄마 보고 울었어?”
싶어서
“아니야. 나 안 울었어.”
“하지만••••••”
“아냐, 누나 울었어. 내가 봤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어!”
“남궁희!”
“아이고, 귀야.”
이내 아이들이 백리연의 품 안에 서 밀치고 당기며 투닥투닥 싸우 기 시작했다.
백리의강이 서둘러 백리세화를
얼떨떨하게 받아 든 남궁류청에
그때 남궁류청의 날카로운 기감
에 작게 낮춘 목소리가 들렸다.
“전 괜찮아요, 어머니. 모르시겠 어요? 저 옥피리, 희아가 천방지축 으로 뛰어다니니까 무슨 일 생기
면 불라고 준 거잖아요. 전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순간 남궁류청은 웃음이 터질 것 같아 턱에 힘을 주었다.
대화를 듣지 못한 남궁희는 신나 게 계속 삐-익 삐-익, 옥피리를 불었다.
웃음이 터지고 행복한 가운데 아 른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아빠, 왜 그래?”
“무엇이?”
“어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응? 집 말하는 거야? 같이 가!”
“글쎄. 너는 올 수 없을 거다. 아 니면……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 르지.”
고개를 갸웃하는 남궁희를 보고 남궁류청이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의아
한 눈길이 남궁희를 향했다.
남궁류청이 미간에 힘을 주고 말 했다.
“ 희아?”
“웅. 왜 불러?”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7 화
“상태는 어때?”
“최악이야.”
백리연은 걱정스럽게 남궁류청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남궁류청은 그간 있었던 일을 전 혀 기억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목 패를 집은 순간부터 기억이 모두
날아가 있었다.
“의원을 불러올까?”
“아니. 몸은 멀쩡해. 다만……
“ 다만?”
“다른 놈이 내 몸을 쓰고 간 느 낌이야. 더럽고 찝찝하군.”
남궁류청은 당연히 백리연이 이 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해한다는 눈빛
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돌아와서 다행이야.”
“화아는 어디 갔지?”
“정원을 둘러보고 싶대서 보모가 데려갔고 백리 세가주는 손님이 찾아와서 그분을 따라가셨어.”
제갈화무가 무르팍에 올라와 있 던 남궁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보모가 아이를 이끌자 남궁희는 눈치껏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 다는 걸 알고 아쉬운 표정으로 보 모를
따라갔다.
백리연이 말했다.
“희아가 얌전히 있을 애가 아닌 데 무슨 얘길 한 거야?”
“제갈 세가에 대해 궁금한 게 많
은 모양이더라고.”
“이상한 질문은 안 했길 바랄 게……
“아니야. 귀여웠어.”
“그럼 다행이고.”
제갈화무가 멀어지는 남궁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남궁희가 폴짝폴짝 뛰면서 마주 흔들다가 넘어질 뻔하고 보모에게 안겼다.
“그래서 말인데, 나도 이제 슬슬 혼인하려고.”
“••••••뭐?”
“별일 없으면 같이 와.”
그러고는 붉은색의 명첩을 내밀 었다. 청첩장이었다. 그 말은 혼인 이 결정된 건 한참 전부터란 얘기
였다.
백리연은 제갈화무의 표정을 보 았다. 미소 짓는 표정에는 아무런 미련도, 그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또한 어떠한 답을 얻은 것이다.
백리연은 마음을 가다듬고 어처 구니 없다는 듯이 타박했다.
“별일 있어도 가야지. 아니, 왜
이걸 이제 말해?”
남궁류청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 다.
“잘됐군. 썩 혼인해 버려.”
과거에 안주해서는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없다. 비록 여기까지 도달 하는 길이 힘겨웠을지언정, 앞으로
나아갈 미래가 똑같이 힘들지언정 그래도 펼쳐질 희망찬 미래를 위 해서 계속해 나아가는 것이다.
〈외전 3 마침〉
외전 4. 생에 후회가 남는다면
“사, 살려 주시오.”
고작 한 명에게 무공을 익힌 무 사들이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 한 채 몰살당했다.
전신을 옥죄는 공포 속에서 무사 가 중얼거렸다.
“우, 우리가 어디 사람인지 아시 오? 만약 이 일이 알려진다면 분 명, 분명 가만히 있지……
“백리 세가.”
“헉!”
철벅, 철벅.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어두운 그림자가 사신처럼 다가왔다. 드러 난 얼굴을 확인한 무사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너, 너는……! 아니, 왜 그쪽 이……?”
눈꼬리에 눈물점을 매단 시선이 벌레를 보듯 내려다보았다. 핏물처 럼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서 백리연은 찾았나?”
무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걸, 그걸 어떻게……?”
“왜?”
“예?”
“백리연을 왜 찾았지?”
“그, 그야 가주님의 손녀이니
“그래서 찾았나?”
무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사내는 처음부터 다 알고 온 것이 었다. 마교의 고위직이 왜 백리연
을 찾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면…….
무사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차, 찾았소. 알려 준다면 사, 살 려 주는 것이오? 오, 오늘 일은 아 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이
자리 를 벗어나면 쥐 죽은 듯이 살겠 소.”
“그래.”
“천주의 무양표국에……”
말을 이어 가던 순간이었다.
툭. 몸을 잃은 머리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물웅덩이를 나뒹구는 머리가 어 째서냐고 이유를 갈구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수십 수백을 죽이는 동안 본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표 정.
백리연 또한 똑같았기에 뒤돌아 선 순간 기억 속에서 지워졌다. 그 때의 그 표정을 기억했다면 달라 질
수 있었을까?
덜컹, 쿵, 쿵, 쿠쿠쿠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거운 것이 밀리는 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돌바닥을 내려치는 소리와 불규칙 한
발소리가 이어지고 어둠 속에 서 말소리가 들렸다.
“교주님.”
빛이 꺼진 눈과 표정이 없는 얼 굴이 목소리의 주인을 향했다.
있었다. 무사가 그 안에서 일어난 이의 어깨에 옷을 걸쳤다. 시중을 받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무심한
눈길은 이 모든 일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나, 혈성군은 그가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걸 장담했다.
“드디어 마지막 조각을 찾았나이 다. 다시 한번 무뢰한 이들에게 마 도 천하를.”
혈성군은 목발을 짚은 채 다리를 꿇고 목패를 두 손으로 받들어 올 렸다. 역시나 반쪽짜리 천마가 반
응했다.
라보았다.
“드디어……
천마의 힘을 흡수하여 죽어 가던 야율을 가사 상태로 만들어 성지 로 데려온 것은 혈성군이었다. 그
와중에 다리 한쪽을 잃기는 했지 만 이건 그가 당연히 해야 할 일 이었다.
언젠가 이룩할 천마의 마도천하 를 위해서.
그에게 천마는 신이었고 마도천 하는 신앙의 실현이었다. 그 자신 의 목숨조차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 반쪽짜리 천마 가 제게 협조하려 들지는 않았다. 몇 번이나 방해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무양표국을 이용하여 천마의 성물을 빼돌려 소멸시켰고, 무림맹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위지백을
필두로 한 사파 연맹 계 획을 망가트리기까지 했다.
고작해야 친모의 복수라는 하찮 은 이유로 대업을 어그러트렸을 때는 정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천마의 혼을 가진 큰 조각이 아니 었다면 제가 나서서 찢어 죽였을
터다.
복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 컥.”
숨통이 틀어 막히고 우드득 부러 지는 소리가 귀가 아니라 머릿속 에서 울리듯 들려왔다.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으니 손 쓸 틈도 없었다. 목이 붙들린 혈성 군의 하나만 남은 발이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이미 마비된 몸뚱어리 는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제 안의 모든 기운 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천마에게 진기를 홉수당
하여 죽는 것은 그냥 죽음이 아니 었다.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8 화
어릴 적 기억은 아주 희미했다. 시시때때로 열병을 앓았고, 커서 돌아다닐 만하게 되었을 때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그렇다고 바보는 아 니었다.
그의 기억 속 모친은 멍청한 여 인이었다. 저를 노리던 벽가에서 무사히 도망쳐 놓고는 양모가 숨
넘어가기 전에 보고 싶어 한다는
고 서로 죽이게 했다.
“사, 살려 줘.”
“살고 싶으면 네가 날 죽이면 돼.”
“시, 싫어. 어떻게 사람을……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라 듣기 귀찮았다. 손을 뻗어 그대로 아이 의 입을 막았다. 이내 아이는 영원 히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보며 천귀조는 때때로 광소했다.
“으하하하하! 아주 이거 괴물이로
군!”
다른 아이들을 죽이더라도 아무 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내 가 죽이지 않아도 천귀조에게 죽 었다.
이 세상은 약하면 죽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천귀조의 소굴에서 살아 남았다. 그리고…… 백리연 그 아 이를 마주했다.
마주치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백리 연 그 아이가 자신을 무척이나 싫 어한다는 것을. 그가 가장 잘 아는
것이 바로 적의였다.
백리의강은 넋이 나간 낯이었다.
중얼거렸다.
“왜 네 녀석을……?”
그러게. 그도 궁금했다.
“아니, 대체 왜……! 아니, 네놈 들만 아니었다면……!”
바닥에 내동댕이치다시피 한 충 격에 기침이 나왔다. 핏발 선 눈으 로 기침하는 그를 내려다보던 남
궁완이 분노에 찬 신음을 토하며 맨손으로 바위를 깨부쉈다.
만하게. 힘든 일도 견뎌
낸 아이니
그는 기침하며 생각했다.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서산의 오월궁.
외부인을 받지 않는 폐쇄적인 오 월궁은 매일매일이 똑같고 단조로 웠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들뜬 분
위기에 심지어 아랫마을에서 꽤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하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오월궁의 가장 깊 숙한 내원에 갑자기 긴 머리를 풀 어 헤치고 피 칠갑을 한 사내가
나타났다.
주가 말을 이었다.
“흥미?”
“원한 게 아니었단 말인가?”
하필 대공자를 향해 흡성마공을
“그러니 살아 있지 않나?”
1기 머
만한 것도 아니었다.
침묵하던 오월궁주가 입을 열었 다.
혹시 천마신교의 교주로 앞
으로 다른 길을 모색할 생각 이……
말을 이어 나가던 오월궁주는 그 의 눈빛을 보고 허탈하게 중얼거 렸다.
“……있을 리 없지.”
그가 재미있는 소리를 한다는 듯 이 말했다.
“쓰레기는 한곳에 모아 둬야 구 린내가 퍼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겠나.”
“그 쓰레기들의 꼭대기에 있는 자가 할 말은 아니군.”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9 화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 날.
“왜?”
“엄마가 하지 말란 거 하다 가……
“연이가 부러트렸나?”
아이는 사내가 부른 연이라는 이 름이 제 엄마를 말하는 것이란 걸 뒤늦게야 알아들었다.
이 위험해 보이는 매력의 사내가 대뜸 제 어머니의 성함을 다정하 게 불렀고,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문장과 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엄마가, 제 팔을요?”
아이의 손에 힘이 빠진 틈을 타 흰 매가 다시 날아올랐다. 다만 이
“그놈과 닮은 건 낯짝뿐인가.”
“네?”
것도 모르니
P1 계신 걸 발설치
못할 겁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
그가 그의 말을 무시한 오월궁의
“남궁희! 너, 어딨어!”
사내아이가 재촉했다.
“빨리요. 세화 누나까지 여기 왔 으면 좋겠어요?”
오월궁의 여인이 사내아이를 보 고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내 이를 악물고 바들바들 떨리 는
몸을 일으켜 세워 떠났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한들 오월궁 여인의 태도를 보면 문제가 있음을 깨달 았을 터.
그런데도 침착하다는 건…….
“아뇨.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던 아이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응시했 다.
“낙락이는 악(惡)를 싫어해요. 대 인은 악인이시죠?”
“알면서도?”
그때 그의 눈에 바들바들 떨리는 아이의 손끝이 보였다.
아이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아니었으면 낙, 낙락이를 죽 였을 테니까.”
보질 않고.”
그가 중얼거렸다.
“역시, 그래도 똑같지 않아.”
그는 입을 열어 아이에게 말했다.
“네 어머니께 전하거라.”
아이에게 말을 전한 그가 손을 뿌리쳤다.
“악;”
“희아야!
“엄마! 흐아아아앙!”
진이 빠진 듯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던 아이가 비틀비틀 제 어미의 품에 안겼다.
“왜 이제 와! 허어어엉!”
백리연이 아이를 소중하게 껴안 으며 고개를 들었다. 금색 눈동자 가 그가 있는 곳을 단번에 짚어 냈다.
하지만 그가 자리한 곳은 일방적 시야를 지닌 곳. 서로의 눈이 마주 치되 마주치지 않았다.
이어서 여자아이를 품에 안은 남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10 화
“아버지.”
백리세화의 밝은 갈색 눈동자가 애답지 않게 차분히 제 아비를 바 라보았다.
그 눈빛에 남궁류청이 퍼뜩 정신 을 차리고 말했다.
“남궁희,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만약 큰 문 제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느냐?”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 남궁희 가 입술을 깨물며 억울한 눈으로 누나를 슬쩍 노려보았다. 하지만
백리세화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남궁희가 제
아비에게 매달렸다.
“히잉, 아빠. 나 팔 부러졌는데, 아픈데.”
남궁희의 코맹맹이 소리에 백리 세화가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왼손으로 써. 양손을 쓰는 건 무공에도 도움이 될 거야.”
“아, 누나!”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 높이지 마. 넌 반성해야 해. 낙락 이는 결이랑 달리 어리니까 네가 더 잘
관리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렇지만
낙락이 내려와 백리연의 왼팔에 앉았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는 듯이 남궁희의 팔에 부리를 문질렀다.
남궁희가 혼내듯 손가락으로 정수 리를 콕콕 찔렀다.
“너 때문에 혼났잖아! 가법 네가 써!”
낙락이 모른 척 부리를 돌리자 남궁희가 부리를 잡고 다시 돌리 려고 들었다. 그렇게 한창 낙락과
손장난을 치던 남궁희가 갑자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맞다, 엄마.”
니까 괜찮을 것이다.
남궁희가 사내의 말을 전했다.
“‘이번 생에 후회가 남는다면 나 를 찾아와라’라고요.”
순간 어머니가 걸음을 멈췄다. 그 러고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산등 성이를 올려다보았다. 몸은 이곳에
있으나 어딘가 아주 먼 곳으로 떠 난 듯한 시선이었다.
남궁희는 왠지 초조한 기분에 어 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엄마, 엄마, 그게 무슨 뜻이에 요?”
어머니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오 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마주하 자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딘가 씁쓸해 보이면 서도 개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 다.
“또 반복될 일은 없을 거라는 뜻 이란다.”
“네?”
“그러니까 궁주께서 널 위해 준 비한 간식을 누이가 다 먹어도 다 시 안 만들어 준다는 뜻이야.”
“앗, 안 돼! 내 간식!”
“미안하구나.”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는 손길이 매서웠 다.
남궁류청이 어두운 낯으로 말했 다.
이 손을 얹었다.
“말씀하지 못하실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아마…… 그가 말하지 말라 했을 거야.”
남궁류청은 불만스러운 낯으로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했으나 이 내 입을 꾹 다물고 바라보다가 고 개를
돌려 버렸다.
백리연은 희미하게 웃었다.
확실히 성격 꽤 죽었다. 예전이었 다면 닥치는 대로 쏘아붙인 다음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버렸을 텐 데.
오월궁주가 말했다.
M | 하
남궁류청이 옆을 돌아보고 물었
다.
“알고 있었어?”
“아니, 하지만 짐작은 갔어.”
“어떻게?”
백리연은 그저 미소로 답했다.
얼굴을 쓸어내린 남궁류청이 벌 떡 일어났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돌아가서……”
“소가주, 진정하게.”
그런 그를 오월궁주가 말렸다.
“이것도 짐작했어?”
백리연은 오월궁주를 향해 질문 을 이어 갔다.
“예전에 궁주님, 예전에 혹시 그 를 도와준 적 있었나요?”
“……있네. 마교의 내부는 악귀들 의 소굴이지. 힘이 있는 자라고 해 도 한순간의 방심이 죽음을 부르 고
그를 짓밟은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 그 아이는 잘 버텼지만 모든 암수를 피할 수는 없었지.”
“그것 때문이겠네요.”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11 화
“그래.”
“나 궁금한 거 있는데, 있잖아. 왜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랑 같이 안 살아? 친할머니는 친할아버지 랑
살잖아. 아빠도 엄마랑 살고.”
백리연과 남궁류청 둘 다 어찌 설명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 시 뒤 따라온 백리세화가 남궁희를 향해
말했다.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왜? 난 궁금한데.”
“ 그건
“ O 方
흐.
“엄마, 엄마 나도 볼래!”
휴, 백리연은 속으로 안도하며 백 리세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다만 함부로 연주하려 들 지 말거라. 음공용으로 만들어져서 위험해.”
“ 뭘?”
“가법 베껴 쓰는 거.”
“그럼 뛰지 마.”
정말 괜찮겠어?”
“그 녀석에 대해 잘 아네.”
백리연은 남궁류청을 빤히 바라
보다가 물었다.
“ 질투해?”
“음, 질투하네.”
“그런데?”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 때문에 차마 못 돌리겠군.”
백리연이 잘 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그러니 앞으로도 후 회 없이 살도록 해야지.”
“그래.”
백리연의 눈이 먼 허공을 향했다.
그녀는 바랐다. 그가 후회가 없으
〈외전 4 마침〉
특한 가정사가 있긴 했다.
일단 첫째인 언니는 백리 세가에 입적되어 성이 백리였고, 둘째인 오라비는 남궁의 성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셋째인 그녀는 백리의 성 을 물려받아 백리세란이 되었다.
연년생 남매인 언니와 오라비와 달리 무려 일곱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딸인 그녀를 두 가문 의
모두가 목숨처럼 아꼈다.
그녀도 가족을 사랑했고 두 가문 을 사랑했다. 하지만…… 허전했 다.
채워지지 않는 그 목마름에 백리
“현령님께서 부르십니다.”
“예?”
백리세란은 의아함을 감추지 않 고 물었다.
“저를 왜요?”
‘백리세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
은데?’
이우가 눈치를 보다 끼어들었다.
“이름이 익숙한 듯한데, 장사의 백리 세가와는 어떤 관계이오?”
현령 옆의 호위 무사 같아 보이 는 자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제 외가입니다.”
“외, 외가?”
“모친의 성함이 백리 성에 연 자 되십니다.”
그 말에 이우는 순간 숨이 턱 막 혔다.
그는 현실을 부인하며 다시 물었 다.
“호, 혹시 혀, 현 무림맹주 백리 대협을 말하는 것이오?”
“백리 대협이라니?”
이우는 현령을 향해 몸을 숙여 귀엣말했다.
“정파 무림 연맹의 대표입니다. 현령님, 이자는 그냥……”
그러나 현령은 이우가 말을 마치 기도 전에 태사의 손잡이를 내리 치며 말했다.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12 화
에서 내려와 사람을 잡아먹으며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고 있노라! 이미 마을 하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정도지!”
그 호랑이는 현령이 부른 사냥꾼 들을 되레 농락할 정도로 똑똑하 고, 또 매우 잔인하다고 했다.
어린아이부터 성인 남녀 구분 없 이 그 호랑이가 죽이고 다치게 만 든 사람의 수가 300 을 넘어갈 정
도였다. 심지어 먹으려고 죽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고 놀려고 죽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 전 현령 옆 에서 질문을 던지고 안색이 하얗 게 질렸던 관졸이었다. 대충 주워
듣기로는 훈련대장이라 했다.
그녀의 눈을 피한 훈련대장이 그 녀를 붙잡은 관졸들을 향해 말했 다.
“이자는 내가 안내할 테니 너희 들은 가서 쉬어라.”
“어, 형님이 웬일입니까?”
“됐다. 가서 쉬어라.”
떠나게나.”
rn 5 1 그 •
만해서는 관군과 척을 지지 않았
면 남은 인생이 고달파지기 때문
이었다.
훈련대장이 말했다.
“보면 알다시피 여긴 자네가 있 을 만한 곳이 아닐세.”
훈련대장은 자신했다. 귀하게 자 란 아가씨일 터인데 이 꼴을 보고 도 저 사이에 같이 있겠다고 답하 지
못할 거라고.
“정말 저 치들 사이에서 함께 부 대끼겠단 말인가? 고집부리지 말
소년이 말을 이었다.
“전멸한 산골 마을부터 현령에, 이 산의 사냥꾼까지 모두 한패지.”
훈련대장이 기겁해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헛소리야!”
소년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백리 세란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안 놀라네.”
“응. 예상했거든.”
훈련대장이 놀라 말했다.
“뭐, 뭐라? 알고 있었다고?”
그 순간 백리세란은 번개같이 손
백련정강으로 만든 단검인가?”
주었다.
“벌써 다 봤어?”
u o 카
“어떤 것 같아?”
“그냥 겉으로는 평범하네.”
백리세란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가 재밌다는 듯이 작게 웃었다.
“그런데 신기하네. 이 단검의 이 야기는 아는 사람이 드문 얘긴 데……
무림세가 천대받는
손녀 딸이 되었다
특별 외전 13 화
“도망치세요.”
“아는 이요?”
그 자를 제치고 다른 이가 앞으
“ 영단이라고?”
몇몇 사람들의 낯이 붉어졌다.
백리세란은 혐오 어린 눈빛으로 슬쩍 비웃듯 미소짓고 말을 이었 다.
“게다가 당신들도 얘기 들었잖 아? 여기 사람들이 먼저 산군을 건드린 거라고.”
그녀는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
기며 말을 이었다.
사라졌다.
가문과 이름이 알려진 순간.
사람들은 늘 제멋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실망했다.
수십 번씩 반복되던 지긋지긋한 상황이었다.
백리세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 했다.
“오류문의 막고성, 그 입 닥쳐. 당신이 뭔데, 내 어머니의 이름을 언급하지? 그만한 대가를 치룰 각
오는 있나?”
그때 그 잔소리쟁이였다.
던 현령이었다.
소년이 말했다.
“이제 끝났어.”
백리세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산군의 아이를 잡아 죽이고 팔아먹은 자는 바로 현령이었다.
본래 이곳의 산군은 숲속의 넓은 영역을 누비며 조용히 지내고 있 었다.
그리고 근방 마을의 사람들은 산 군을 거의 반신령처럼 여기며 산 군의 영역에서 조심스레 약초를
그러나 이번에 부임한 현령의 생 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현령은 산군의 이야기를 듣고, 잡아 팔 생
각을 했다.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반대하 였으나 어느 순간에는 동조하게 되었고…… 비극이 찾아온 것이었 다.
산군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현령 을 꼼짝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숨 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콰쾅-!
그리고 백리세란은 황급히 수풀 사이를 뛰쳐나갔다.
“잠깐!”
그녀의 등장에 산군이 집채만 한 몸을 날렵하게 틀어 소년에게서 물러났다. 그러고는 몸을 낮추며 당장
둘에게 달려들 것처럼 경계 했다.
“너는••••••?”
소년이 놀란 목소리를 뒤로하고 백리세란이 말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백리세란은 산군을 자극하지 않 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여 펼치고 있던 기막을 풀었다. 그리고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의 행동을 어찌 해석했는지, 다시 덤벼들려던 산군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뒤쪽 수풀이 흔들리는 움 직임은 무언가 다가오는 모습이었 다. 산군은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내 수풀 사이로 아직 다 자라
백리세란이 펄쩍 뛰었다.
“뭐라고?!”
그녀의 반응과 달리 소년은 태연 하게 답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
백리세란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직접 마주한 산군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산군의 자식 을 되사오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 었지만, 현령을 끝내지 않는 한 결 코
끝날 분노가 아니 었다.
만약 현령의 목이 없는 채 산군 의 아이만 가져다 줬더라면 산군 의 분노에 당하는 건 그녀였으리 라.
‘동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고민하던 백리세란이 말했다.
“이렇게 하자.”
“너랑 나랑 같이 현령을 죽인 거 로.”
소년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백리 세란을 바라보았다.
미친놈인가
백리세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시 바라보던 백리세란이 다른 질문을 했다.
“네 이름이 뭐야?”
“ 없어.”
“……뭐? 이름이 없다고?”
“응, 없어.”
“아, 어쩐지……
백리세란이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녀에게는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날 때부터 있던 능
그 능력 덕에 그녀는 그녀와 말
을 섞은 이들을 저절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인지, 어떻게 자랐는지, 거짓말 을
하는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하지만 이 녀석만큼은 안개가 낀 듯이 뿌옇게 아무것도 알 수 없었 다.
“그래도 스승님이 계신다며? 널 부르는 호칭이 있을 거 아냐?”
“제자야.’’
“사문이 대체 어디야?”
“비밀이야.”
“왜 따라오는데?”
“네 사문이 궁금해서.”
알려 주면 안 따라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