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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소설 망나니 악역은 능욕당하고 싶어!

1 권

목차

1. 원작 비틀기

2. 깨어진 순정

3. 편입생

4. 예쁜 복숭아

5. 충견

1. 원작 비틀기

“아. 으아. 아!”

발정한 오메가가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알파 페로몬에 질퍽해진 내부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그것을
받아 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게 들어와 미끄덩한 애액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수치심에 어깨가 붉게 물들었다. 가느다란 목선을 따라 촘촘하게 입맞춤이 쏟아졌다. 여우희는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심술이 난 여진우는 손바닥으로 여우희의 엉덩이를 강하게 때렸다.

“으아아. 아파. 흑. 아파.”

짐승끼리 흘레붙듯 엉덩이만 치켜세우고 있는 자세가 흐트러졌다. 여우희는 얼굴을 침대 시트에 문지르며
고통에 차 울었다. 매끈한 피부에 남은 손바닥 자국을 여진우가 움켜잡고 강하게 주물렀다.

“아! 형, 그만. 흑. 제발 그만해요.”

여진우가 움직일 때마다 무게가 실리면서 배 속 깊숙한 곳을 찔렀다.

“정말 그만둬? 뒷일을 감당할 수 있겠어?”

여진우가 그의 뒷머리를 붙잡고 고삐처럼 잡아당겼다. 눈물에 젖은 얼굴은 눈가가 새빨갛게 짓물러 있었다.
여진우의 입술이 여우희의 귓가에 다가왔다. 혀가 귓바퀴를 훑고는 귓구멍으로 파고들었다.

“부모님한테 가짜 아들이라는 걸 들키고 싶으면 그러든가. 난 상관없어.”

“흡. 흐. 흑.”

“이렇게 음란한 주제에 그동안 어떻게 알파 행세를 하고 다녔어? 응? 우희야.”

여진우는 여우희의 유두를 집게손으로 잡아 뜯었다. 좆을 물고 있는 구멍이 좁아 들면서 좆 기둥을


옥죄었다. 여진우는 눈썹을 찡그리고 여전히 좁은 구멍을 못마땅하게 내려다봤다.
그가 수없이 여우희의 구멍을 넓혀 주는데도 아직도 새것처럼 좁다. 이래서 어떻게 그의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아! 흐흐. 흐흣. 아파. 흑. 제발. 형,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내가 부르면 제때 달려와. 한 번만 더 문자 보고 무시하면 그땐 네가 내 좆을 뒤에 물고 애액을


질질 흘려 대는 꼴을 부모님이 보게 만들 테니까.”

말은 이렇게 해도 여진우는 여우희와의 섹스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자신만


보기도 아까운 모습을 누굴 보여 준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 순진한 여우희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는
절대 호출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땀에 젖은 여우희의 머리카락 끝에 입을 맞췄다.

“드디어…….”

여진우는 환희의 젖은 눈으로 여우희를 바라봤다. 그동안 막혀 있던 오메가의 페로몬 샘이 강물 둑이


터지듯 난초꽃 향을 쏟아 냈다. 정신이 아찔할 만큼 야하고 달콤한 향기였다. 잘록한 여우희의 허리를 손으로
붙잡고 강하게 좆을 처박았다.

“아!”

자궁 입구가 건드려진 여우희가 안쓰러울 정도로 바들바들 떨었다. 여진우는 이미 좆 뿌리까지 파고


들어갔음에도 허리를 붙잡고 최대한 몸을 가깝게 붙였다.

“으아아. 아니야. 아니야. 흐흑. 아니야. 거긴 안 돼.”

배 속에 있는 좆이 딱딱해지더니 자궁 입구에 파고든 귀두가 부풀기 시작했다. 여우희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으나 허리에 멍이 들 것만 같이 강하게 붙잡고 있는 손길 때문에 나아갈 수
없었다.

“안 돼. 흑. 형. 안 돼요.”

“왜 안 되는데. 내가 내 것 임신시키겠다는데.”

좆을 문 구멍이 움찔움찔 조여들었다. 반사적인 반응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진우는 그에게 노팅을 받은


여우희가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넌 절대 나한테서 못 벗어나.”

“흐흑. 흑. 임신. 흡. 임신하면 안 되는데.”

“아아, 하긴 형의 아이를 뱄다고 하면 큰일이지? 알았어. 너 내 동생 아닌 거 그냥 까발리자.”

품 안에 든 여우희가 오열하며 안 된다고 목 놓아 울었다. 여진우는 우는 그를 달래지 않았다. 어차피


그가 여진우의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여진우는 처음으로 노팅을 당한 탓에 기절한 여우희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우희야.”

***
클럽 안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여느 클럽과
다름없는 광경이지만,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정신없이 몸을 흔드는 클러버들이 다 남자라는 거였다.

댄스 플로어를 지나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우희는 괜히 알은척하는 남자들을 지나쳐 SM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룸으로 내려갔다. 한 마스터를 선택해 BDSM 커플을 맺으면 매번 상대를 찾지 않아도 될
텐데, 아직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을 수 없었다.

테이블에 앉아 술을 홀짝거리는 남자들이 은밀한 눈길을 보냈다. 어쩌면 우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죽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이라도 자신에게 다가올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이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남자를 발견했다.

키가 190 은 되어 보였다. 키만큼 페니스도 크겠지? 들뜬 마음을 안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혹시 오늘 플레이 상대 없으면 나랑 룸에 들어갈래요?”

“헉, 나. 나? 정말 나랑요?”

뭐지? 이 덜떨어진 놈은? 불길함이 엄습했지만, 남자의 굵은 팔뚝 근육을 믿어 보기로 했다. 저


헬스남이 힘껏 자신의 엉덩이를 때리는 상상을 해 보았다.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우희는 남자와 BDSM 계약서를
작성하고 함께 지하철처럼 꾸며 놓은 플레이 룸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쭈뼛거리며 플레이 룸을 두리번거렸다.

“뭐 해요.”

당장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벽에 몰아붙여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가 “네? 네? 네?” 하며 바보처럼 세


번이나 되물었다. 우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플레이 안 할 거냐고요.”

“아, 네. 할 겁니다. 해요.”

남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가 자신을 쳐다보고는 바짓단에 손바닥을 문질러 땀을 닦았다. 우희는
짜증을 참고 지하철 의자에 앉았다. 남자가 옆자리에 바짝 다가와서 자신 쪽으로 얼굴을 숙였다. 초면부터
키스하려고 들다니 엄청난 비매너다.

“아, 씹. 뭐 하냐고요.”

남자가 미안하다면서 고개를 뒤로 물렸다. 아무래도 SM 클럽은 처음 같았다. 골라도 하필 이런 상대를


골랐나 싶어 혀를 찼다. 오늘 하루 공친 것 같긴 한데 좀 더 참아 보기로 했다. BDSM 계약서에 강압적인
상황에서 지배당하는 걸 좋아한다고 표기했을 때, 남자가 자기랑 잘 맞겠다며 자신했으니 말이다.

“어떤 설정으로 할래요? 지하철 치한? 평소 따먹고 싶었던 부하 직원을 발견한 과장님?”

“지하철 치한이요.”

“그럼, 제가 문 앞에 서 있을 테니까 그쪽이 저 더듬으면서 뒤에서 하세요.”

남자가 뒤로 다가와서 우희의 바지 앞섶을 움켜잡았다.


“읏.”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고 싶어? 같은 남자한테 추행당했다고?”

멍청하게 굴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허리를 움켜잡은 그가 엉덩이골에 발기한
것을 문질렀다. 거구의 남자에게 가짜 지하철 문까지 밀려났다. 귓가를 간질거리는 헐떡임이 끈적거리고 뜨거웠다.

우희는 나쁘지 않네, 속으로 평가했다가 유리창에 비친 남자의 좆을 보고 바로 그 생각을 수정했다. 저게


좆이라고? 나머지 반은 어디 갔어? 진짜 저게 다야?

얼굴도 괜찮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플레이할 때 연기력도 나쁘지 않은데 좆이 정말 쥐만 했다. 그건


얼굴이 못생기고 키가 작고 배불뚝이고 플레이를 할 때마다 발 연기를 하는 최악의 상대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쌍벽을 이루는 최악의 요인이었다.

아무리 다른 것들이 완벽해도 좆까지 완벽해야 마스터로서 권위가 서는 것이다. 우희는 얼른 안전어를
외쳤다.

“고구마.”

“우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컨디션이 별로예요. 죄송하지만 이만 가 볼게요.”

우희는 얼른 플레이 룸을 빠져나왔다.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마스터가 될 인재가 없는 걸까? 완벽한


마스터를 찾아 영원히 종속되고 싶은 게 너무 큰 바람인 걸까?

깊은 한숨을 내쉬며 SM 클럽을 빠져나온 우희는 더 늦기 전에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지 싶었다.


핸드폰으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됐는데 차도에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우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미어캣처럼 살폈다. 그때였다.

“어? 어?”

난데없이 사거리에서 튀어나온 트럭이 버스 정류장을 침범해 들어오는 건 순식간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붕 떠올랐다. 우희는 데굴데굴 굴렀다. 사지가 산산이 조각나는 것만 같이 아팠다.
머리에서 흐른 피가 시야를 가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싫어. 더 살고 싶어.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신에게 살려 달라고 빌었다. 핸드폰에서 BL 소설 <가난이 죄는 아니잖아>의


기다리면 무료 알람이 떴다. 우습지만 죽는 와중에도 다음 화가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건드렸다.

우성 알파가 무슨 신인 것처럼 구는 세상 속에서 오메가를 알파의 소유물쯤으로 보는 소설. 평범한


사람은 굉장히 불평등하고 끔찍한 디스토피아로 느껴질 세계관이다. 그러나 특별한 성향을 가진 자신에게는 이
소설 속이 천국처럼 느껴지곤 했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가난이 죄는 아니잖아>에서 오메가가 되고 싶었다. 원래 자신이 태어나야 할


세상은 이곳이 아닌 저 활자 너머의 곳이었다.

피에 젖은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에필로그 화면이 나타났다.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자들이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헐. 대박 반전;;

진심 미친 결말이다. 에필로그 안 봤으면 나태준이 메인수라고 계속 착각했을 듯.

어쩐지 왜 악역수 시점으로 소설 진행하나 싶었는데 그래서였다니. 악역수가 주인공이었어.ㅎㄷㄷ

이딴 게 무슨 소설이야. 여태 진우태준 커플 좋아했는데 황당.

그동안 연재 본 돈 아깝다. 환불해 줘.ᕙ( ︡’︡益’︠)ง

작가님이 블로그에 여진우가 여우희 가지려고 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떡밥 정리해서 올려 뒀어요. 주소


올려 둡니다. http://blog.na5er.com/qekphfka/22268921930

미친 미친 미친.

혼란의 도가니탕.

절름발이가 지팡이 버리고 뛰어도 이제 놀라지 않을래.

***

정신을 잃은 그는 그렇게 낯선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아야 하는데 너무나 멀쩡했다. 뭔가 하고 손으로 몸을 만져 봤다. 조그맣고 하얀


단풍잎 같은 손이 보였다. 놀라서 방 안을 살폈다. 자신이 살던 원룸보다 큰 어린이 방이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찾다가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헉. 이게 뭐야.”

거울에서 귀여운 꼬마가 자신을 따라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환생? 그러면 말이 안 되는데. 갓난아기가 아니잖아. 빙의네, 빙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빙의야. 그래도 부잣집 같은데 잘된 건가? 아니야. 진짜 꼬맹이는 어쩌고 그 몸을 빼앗아.
나 악령이 된 건가?”

무슨 상황인가 추측하기 위해 화장실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도무지 모르겠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일단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 했다. 갑자기 잘 자던 아들이 일어나서 ‘기억상실에 걸렸어요.’ 하면 아이의
부모님이 당황할 거다.

화장실을 나와 책상을 뒤졌다. 의자 등받이에 걸어 둔 유치원 가방이 보였고, 일기장으로 보이는 게 책상


서랍 속에 있었다.

일기장 표지에는 ‘여우희’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설마? 한 가지 가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확신하긴 이르니 좀 더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해 줄 증거들을 찾아야 했다.

“미안하다, 꼬맹아. 형이 함부로 일기 읽어서. 그렇지만 이해해 줘.”


빠르게 꼬불꼬불하게 적어 놓은 일기를 읽었다. 그러나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여우희 어린이는 상당히
악필이었다.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젠장.”

부모는 자기 아이의 혀 짧은 소리를 알아듣고 괴이한 그림과 엉터리 맞춤법으로 적은 글도 알아본다는데


안타깝게도 자신은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일기장 해독을 포기하고 도로 서랍 속에 넣어 뒀다.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며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와! 대박. 여기가 진짜 가정집 맞아?”

끝없이 펼쳐진 복도에는 미술관에서나 봤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설마 진품은 아닐 거야, 싶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집 인테리어를 보자 ‘어쩌면 진품일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드복을 입은 사용인이 집
구경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더니 다가왔다.

“도련님, 일찍 일어나셨네요.”

살짝 긴장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회장님이 식사하고 계세요. 도련님도 함께 식사하시면 기뻐하실 거예요.”

역시…… 예상대로였다. BL 소설에서 흔하게 나오곤 했던 클리셰대로 악역 수에 빙의한 것이다. 빠르게


자신과 동명이었던 여우희의 캐릭터와 그 주변 환경에 대해 떠올렸다.

여우희는 침착하게 사용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으로 내려갔다. 한 번도 안 가 본 호텔 로비를


지나는 것 같았다. 층고가 높은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달려 있었다.

부엌이라고 해서 평범하게 밥 먹는 장소인 줄 알았는데 마법 학교에서 학생들이 만찬을 즐기는 식당 같은


곳이 나왔다. 침대보다 큰 식탁은 성인 남자 열 명이 누워 있어도 될 만큼 컸다.

그 위에 올라간 음식들은 단 한 종류도 겹치는 게 없었다. 호텔 조식 뷔페가 바로 여기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양복 입은 남자가 자신을 발견했다.

“우희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냐.”

어린아이가 듣기에는 차가운 말투였겠지만 대학생이 듣기에는 그냥 질문하는 거였다. 진짜 여우희였으면


겁에 질려 울었을 테지만, 자신은 뽀르르 걸어서 여 회장 앞에 섰다.

“아빠랑 같이 밥 먹으려고요.”

여 회장은 그렇게 말하는 여우희가 내심 기특했다. 겁이 많은 아이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자신과 함께


있을 걸 여진우에게 들킬까 봐 무서워했는데, 다시 용기를 내 줬기 때문이었다. 그는 첫째 아들의 방해를 피해
둘째 아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여 회장은 여진우가 없는 틈을 타 여우희를 번쩍 들어서 허벅지에 앉혔다.

“그래, 아빠랑 같이 밥 먹자꾸나.”

그는 자신이 수저로 밥을 떠 줄 때마다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받아먹는 여우희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누굴 닮아 이렇게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젖살 오른 두 뺨에는 장밋빛 생기가 돌았고, 커다란 눈망울은 별을
박아 놓은 것처럼 빛났다. 아이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 준 것 같아서 기뻤다.

과거, 여 회장은 갑작스러운 러트로 인해 사용인과 잘못을 저질러 버렸다.

그 이후 적당히 돈을 주고 집에서 내보냈다. 아내는 이게 다 각인을 하지 않은 탓이라며 뒤늦게 목덜미를


내 줬다. 여 회장은 그 일이 그렇게 끝난 줄만 알았다. 그러나 7 년이 지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그 사용인이
저택을 찾았다.

그녀는 여우희가 여 회장의 아이라고 했다. 유전자 검사를 위해 아이의 상피세포를 채취했고, 99.9%
부자 관계라는 결과지를 받아 들게 되었다. 갑자기 여섯 살이나 먹은 아들이 생겨 버린 것이다. 많이 당혹스럽고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친아들인 여진우는 여우희가 꽤 마음에 드는지 옆에 끼고 놀아 줬다.

아내는 여우희를 탐탁지 않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각인한 알파가 다른 오메가와 낳은 아들이었다.
아무리 천사같이 착한 그녀라도 아이를 사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 회장은 굳이 아내와 여우희가 친하게
지내길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아이만 집에 들이고 사용인에게는 20 억을 주는 대가로 영원히 이 일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게 했다. 사용인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우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아이가
안타까워도 그는 아내가 있는 집에 다른 오메가를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건 단 하룻밤의 실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우희는 잠에서 깨어났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여진우는 매일


등교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 여우희의 방에 몰래 들어왔다. 밖에서 데려온 동생이라 애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원작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 몰랐지만, 여우희에 대한 집착이 꽤 심했다.
이런데 어떻게 원작 소설에서 악역 수와 사이가 나빴을까 싶을 정도였다.

잠든 여우희의 뺨에 축축하고 말랑한 입술이 닿았다. 우희는 이불을 손으로 움켜잡으며 겁에 질린 척


눈을 질끈 감았다.

“우희야, 일어났으면 눈을 떠야지.”

“형, 형아.”

“그래, 잘 잤어?”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갈색 눈망울이 드러났다. 여진우는 겁에 질린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에 화살이 날아와 박히는 것 같았다. 여우희는 달콤하고 물렁물렁한 복숭아 같은 아이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알 수 없는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조그마한 손이 끈질기게 이불자락을 잡은 걸 지켜보던 여진우는 자신의 옷을 여우희에게 쥐여 보고 싶었다.


그는 억지로 여우희의 손을 잡아 자신의 소맷단을 붙잡게 했다.

겁먹은 아이가 커다란 눈으로 눈물을 우박처럼 떨궜다. 하도 울어서 부르튼 뺨은 빨갛게 익고, 코가
막혀서 입으로 쌕쌕 숨을 몰아쉬는데 이거 참 큰일이다 싶었다. 저렇게 예쁘게 우니 앞으로 자신이 얼마나 울리고
싶겠는가.
그는 우는 여우희의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 줬다.

“왜 일어나자마자 울까. 우희 아기구나?”

“흑, 흐윽. 우희 아가 아닌데요.”

“우희는 유치원생이니까 아직 아가거든. 형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으니까 토 달지 마. 알아들어?”

“네, 흑.”

여우희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을 베개에 파묻어 숨겼다. 여진우는 여우희의 옆에 누워 토끼처럼 작아


보이는 등을 쓰다듬었다. 그는 항상 여우희의 곁에 있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슬펐다. 오늘도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면 진료를 받아야 했다.

***

여진우는 여우희가 처음 이 집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친모가 돈 가방을 갖고 떠나자, 여우희가


물만두처럼 조그마한 주먹으로 거칠게 눈가를 문질러 눈물을 닦아 냈다. 그는 그런 여우희를 낑낑 들어 올렸다.
자신의 방에 여우희를 가져다 놓을 걸 생각하니 하나도 안 무거웠다. 엉거주춤하게 걸어서 그대로 방으로 들고
갔다.

여진우의 방에 들어온 여우희는 울음을 뚝 그쳤다. 가뜩이나 큰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손을 파닥거리며


놀라워했다.

‘우와. 우와. 우와. 왕자님 방이다.’

‘여기 마음에 들어?’

‘응.’

‘아가야. 형한테 반말하는 거 아니야. 유치원에서 존댓말 배웠지?’

시무룩해진 여우희가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대답했다.

‘네에.’

‘이제 우희는 내 동생이니까 형 방에서 같이 지내도 돼. 여기 누워 봐.’

여진우는 침대에 먼저 올라가 여우희에게 손짓했다. 여우희가 얼른 침대에 따라 올라왔다. 마치 침대를


처음 사용해 본 아이처럼 엉덩이로 콩콩 뛰면서 좋아했다.

‘형아. 구름 위에 올라온 거 같아요.’

‘마음에 들어? 그럼 앞으로 형이랑 같이 자면 되겠다. 침대 마음에 들지?’

‘히히. 네.’

그는 침대에 누운 여우희에게 이불을 덮어 주면서 애벌레처럼 꽁꽁 싸맸다. 팔다리가 묶인 아이는


답답하다고 칭얼거렸다. 여진우는 이불로 감싼 여우희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는 그때 처음 제 나이에 맞는
맑은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하늘을 붕붕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그네를 높게


타도 이보다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없으리라 싶었다. 그는 하루 종일 자신의 방에 있는 여우희를 상상하며
행복에 젖어 들었다.

이불 안에 숨겨 뒀다가 언제 어느 때고 그가 보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여 회장이 여우희를 데리러 왔다.

‘우희야, 이제 네 방에 가서 자야지?’

‘우희도 방이 있어요?’

자기 방이 있다는 소리에 이불에 싸여 있던 여우희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었다.

‘그럼, 아빠가 우희 온다고 해서 멋지게 꾸며 뒀어. 형 힘들게 하지 말고 얼른 네 방 가서 자자.’

여 회장이 여우희를 묶어 둔 이불을 풀어냈다. 여우희의 손을 잡고 데려가려는데, 여진우는 그 앞을


가로막았다.

‘우희는 나랑 같이 자기로 했어요.’

‘여진우. 이게 무슨 짓이야.’

‘내 거예요. 내 건데 왜 가져가려고 해요.’

그는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생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그렇지. 그딴 짓은 나중에 좋아하는 오메가가 생기면 해라.’

여진우는 여우희와 여 회장의 손을 때려서 붙잡은 손을 풀게 했다. 화난 여 회장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아버지한테 무슨 짓이야. 여진우! 너 안 그러던 애가 왜 이래. 혼나 볼래.’

‘우희 내 거라고. 내 거야! 내 거라고!’

여진우는 미친 사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매사에 집착하는 것 없이 차갑기만 했던 아들이 보인


행동에 여 회장은 당황했다. 여우희가 쪼그려 앉아서 머리를 손으로 감싼 채 울었다.

여진우는 풀리지 않는 분한 마음에 씩씩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주저앉은 여우희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들고, 낑낑거리며 도로 침대에 가져다 놓았다. 여 회장은 아들이 보이는 이상 반응에 머리가
아파졌다.

전보다 더 꼼꼼히 여우희를 이불로 돌돌 만 여진우가 새끼를 지키는 살쾡이처럼 사나운 눈빛으로 여
회장을 노려봤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한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여진우는 계속 방에 여우희를 가둬 둘 수
없었다.

이불로 묶은 아가한테 장난감을 줘도 울고, 밥을 먹이려고 해도 울었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살살 등을


토닥여 줘도 소용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여우희를 풀어 줬다. 자기 방에서 지내게 된 여우희는 그의 침대가 좋다고 해 놓고 자기
침대를 더 좋아했다. 그는 언젠가 여우희 방에서 침대를 없애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침대가 없으면 제 발로
자신의 방에 와서 같이 자자고 할 테니까.

그러기 전까지 그는 여우희가 잠든 시간에 방을 찾아가 코코 귀여운 소리를 내는 모습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 여우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혹시 아가가 침대 밑에 굴러떨어졌나
바닥에 엎어져서 살폈다. 옷장을 열어 보고 화장실도 확인했다.

‘어디 갔지? 너무 귀여워서 도둑이 훔쳐 갔나 봐.’

어서 여 회장에게 말해 여우희를 찾아야 했다. 자신의 귀여운 아가를 훔쳐 간 도둑놈은 경찰에게


체포하라고 하고 사형을 내릴 거다. 되찾은 아가는 앞으로 그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도록 작은 상자에 넣어 두고
자신만 몰래몰래 꺼내 봐야지.

그는 이 시간이라면 여 회장이 식당에서 식사 중이라는 걸 알았기에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으로


내려갔다.

‘이게 뭐야.’

충격적이게도 여우희가 여 회장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뱃속에서 뜨거운 용암이 폭발했다. 이성은


마비되고 여 회장이 스테이크를 썰기 위해 잡은 나이프를 빼앗아 그의 배를 찔러 버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나의 여우희’를 빼앗은 ‘다른 알파’에게 살기를 품고 다가갔다. 기대감을 품고 아가의 방에


들어갔는데 여우희가 없어서 얼마나 상심했는지 그 누구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 다른 알파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전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오물오물 고기를 먹고 있던


여우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진우는 눈알만 굴려 식탁 위에 있는 여분의 나이프를 쳐다봤다. 여우희의 손목을 잡아 다른 알파의


무릎 위에서 끌어 내리고, 다른 알파의 배에 나이프를 찔러 넣는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완벽하다. 식탁에 손을
뻗었다.

손에 나이프를 쥔 여진우를 본 여우희가 여 회장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식당에서 도망쳤다. 여 회장을


죽일 이유가 사라졌다. 여진우는 얌전히 손에 쥔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우성 알파인 여 회장은 아들이 방금
자신을 살해하려고 했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도대체 왜? 그는 화가 나다 못해 여진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미치기라도 한 걸까. 여우희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여진우는 이상해졌다.

유치원에서 여우희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밤마다 내일 아침을 걱정하지를 않나, 아내가 사 줘도
가지고 놀 줄 몰랐던 장난감을 마치 미끼처럼 들고 다녔다.

그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설마 아닐 거다. 여진우는 고작 열 살이다. 하지만 우성 알파로 발현한


아이다. 혹시라도 여우희를 자기 오메가라고 인식했다면 큰일이었다.

여 회장은 자신을 세상에 다시없을 적처럼 노려보는 여진우를 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진우야, 난 네 아버지다.’
‘그래서요.’

‘우희는 네 동생이야.’

‘맞아요! 내 동생인데 왜 무릎 위에 앉혀요! 왜! 우희는 내 동생인데 왜 무릎에 앉혀!’

당장이라도 나이프를 들고 그에게 뛰어들 것만 같았다. 동생이란 단어를 오메가로 바꿔서 부르면 불륜
현장을 잡아낸 알파의 외침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여 회장은 아닐 거라고 현실을 부정했다.

여우희가 오메가로 벌써 발현이라도 한 걸까? 하지만 아무런 페로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들은 왜 이렇게 바뀌었단 말인가. 왜 여우희를 자기 오메가라고 인지해 버린 걸까?

그는 여진우가 아직 어리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했다.
아니라면 여우희를 보육원에 보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완벽한 우성 알파 아들을 되돌려놔야 했다.

어디서부터 이 광증이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지독한 집착과 광기를 잠재울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다.

‘진우야, 알았으니까 진정해. 아버지가 다시는 우희를 무릎 위에 앉히지 않으마.’

‘걸리기만 해 봐요. 그땐 정말 가만 안 둘 테니까.’

여진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는 그때 자신을 향한 걱정 어린 아버지의


시선을 보고 깨달았어야 했다. 앞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질 일들을. 그랬으면 제 감정을 처음부터 스스럼없이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

초등학교 수업이 끝난 여진우는 그를 데리러 온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차는 집으로 가지 않고 낯선 길로


들어섰다. 설마 납치를 당하는 중인가 싶어 핸드폰으로 김민정에게 연락했다.

“어머니, 제가 지금 납치당하고 있어요.”

납치당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치고는 꽤 냉철한 태도였다. 친구네 놀러 간다고 말하는 거라 해도 믿을 만큼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깃들지 않았다.

-진우야, 납치 아니니까 걱정 말렴. 지금 병원에 가는 거야.

“네? 저 아픈 데 없는데요?”

-오늘 그냥 상담만 받고 올 거니까 의사랑 잠깐 이야기 나누고 와.

어머니와 통화를 끝낸 여진우는 차 문을 열자 보이는 정신병원 갑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미치지


않았다. 조금도.

정신과 의사는 갑자기 생긴 동생 때문에 여진우의 마음에 상처가 생겨 그 반발심으로 집착하는 거라고
했다. 완벽한 헛소리였기에 귀담아듣지 않고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그런데 여우희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로 볼 수 있게 현관 앞에 서 있으라고 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늦게 와서
그런 것 같았다. 여우희는 아직 아가이고 다리도 짧고 가느니까 오랫동안 서 있기 힘들 거다. 그가 이해하기로
했다.

그는 도련님을 마중 온 사용인에게 가방을 벗어서 던졌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 층으로 올라가


여우희의 방문을 열었다.

“뭐야. 어디 있어.”

여우희가 보이지 않았다. 내 작고 귀여운 아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고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먹고


싶은 내 동생이 없다. 침대 밑을 살피고, 옷장을 뒤집어엎고 방에 딸린 화장실도 확인했다.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자신의 방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가 있는지 몰랐다. 자신의 방까지 달렸다. 그러나 방에도
역시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어! 내 것 어디 있어! 으아아아. 내 거 내놔. 내 거 돌려줘. 내 것!”

산 채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낸 것 같았다. 여진우는 괴로움에 손톱으로 목을 긁으며 무너졌다. 페로몬


샘이 인두로 지지듯 달아올랐다.

“아니야. 아니야! 사라질 리 없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실을 부정하며 여진우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여


회장이다. 여 회장이 자신의 여우희를 빼돌린 게 틀림없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실성한 사람처럼 보이는 도련님의 모습에 놀란 사용인들이 사모님을 부르러 갔다. 김민정은 방에서 나온
아들의, 핏줄이 불거진 흰자를 마주했다. 섬뜩한 눈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여우희 어디 있어?”

여진우에게서 여우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공포로 가득한 페로몬이 새어 나왔다.

“말해!”

아들의 비명과도 같은 질문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답해 버렸다.

“보육원에 버리고 왔어.”

“…….”

쓰읍. 후우. 쓰읍. 후우. 여진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짧은


순간 깨달았다. 그가 본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자 부모가 여우희를 빼앗으려고 들었다. 여우희는 고작
사용인에게서 본 하룻밤의 실수이기 때문에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여진우는 감정을 가면 아래 숨기고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가 어른이 되어 완벽하게 여우희를 보호하고


가질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그 아이가 소중하다는 걸 티 내선 안 된다. 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영원히
빼앗길 것이다.
알파의 본능이 그리 말했다.

“아, 그렇구나. 알겠어요.”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당장이라도 여우희를 다시 데려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참아 냈다. 주먹을 말아 쥔 채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절대 초조해하면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속이고 다시 여우희를 이 집에 들여놔야 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라면 동생에게


집착하지 않는 형 역할을 연기할 수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사용인이 가져다 놓은 가방을 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듯 책상에 앉아 숙제하고 문제집을 풀었다. 식사 시간에는 식당에 내려가 얌전하게
부모님과 밥을 먹었다. 그들은 눈치를 보며 자신의 기색을 살폈다.

“왜요?”

“아니, 이제 괜찮은가 보구나.”

“안 괜찮을 건 뭐가 있겠어요.”

식사를 끝낸 그는 방으로 올라갔다. 여우희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수학 문제를 풀었다. 그


아이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 저택에 불을 질러 부모를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그래야 돌려받을 수 있다. 그의 눈은 검게 침전했다. 썩은 동태 같은 눈으로


연필을 움직여 답을 적어 냈다.

잠을 잘 수 없었다. 뜨거운 용광로에 자신을 밀어 넣은 것만 같았다. 혈관을 타고 피가 아닌 바늘이


흐르듯 괴로웠다. 사지를 버둥거리며 목을 손톱을 세워 벅벅 긁으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으으으. 으으으.”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희야, 여우희. 어째서 그 아이가 없으면 괴로운지 모르겠다.
아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우희는 그가 태어날 때 잃어버린 반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없는 줄 몰랐을 땐 괜찮았지만, 다시 만나서 하나라는 걸 깨달으니 그 아이의 부재를 참을 수


없는 거였다. 그는 밤마다 발작하느라 목덜미가 성하지 않아 목티를 입고 다녔다.

부모에게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고 여우희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관심 없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일이었음에도 그래야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텼다. 부모님이 여우희를 보육원에서 데려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은 나날이었으나, 이를 악물고 일주일 동안 평온함을 유지하는 척 연기했다.

***

여우희는 집사가 마시라는 토마토주스를 마셨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수면제 약 맛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강한 맛의 주스를 먹였던 것 같다. 눈을 뜨니 낯선 장소였다. 소설에 언급되었던 대로 버려진 것이다.

잠든 여우희를 둘러싼 채 구경 중이던 일곱 명의 아이들이 그와 눈을 마주치자 후다닥 떨어졌다. 약


기운에 몽롱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보육원에 버려진 게 이렇게나 어린 나이였구나 싶었다. 삐뚤게
살았던 ‘여우희’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이 사건 때문에 여우희는 여 회장 댁으로 돌아가서도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김민정은 자기를
적대시하는 여우희를 더욱 싫어하게 되었고, 여 회장은 아내가 미워하는 사생아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오직 여진우만이 그런 여우희를 보듬어 안아 줬다. 그런 형에게 여우희가 집착하다 못해 악역이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어차피 집으로 돌아갈 걸 알아 당황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뭐야. 자기가 버려진 걸 모르나 봐.”

“왜 안 울지? 우리가 가서 알려 주자.”

아이 셋이 우르르 몰려왔다.

“야, 너 지금 보육원에 버려졌어. 주제 파악 제대로 해라.”

어쩌면 이 녀석들, 인생 2 회차인지 모르겠다. 여우희가 만약 소설에 빙의한 대학생이 아니었다면


이렇게나 똑 부러지게 행동하지 못했을 텐데, 이 녀석들은 뭘 먹고 자라서 벌써 쓰레기 행세를 하나 신기했다.

여우희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들을 올려다봤다. 아이들이 크흠, 헛기침하며 볼을 붉혔다.


보육원에 있는 고등학생 형들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데 새로 들어온 아이가 너무 귀여웠다.

“이게! 그렇게 귀엽게 쳐다보면 봐줄지 아나 본데. 어림도 없어.”

“맞아. 신입이면 신입답게 굴어.”

“일어서. 차렷. 열중 쉬어!”

고작해야 여덟 살, 많으면 열 살 정도나 되어 보이는 그들의 행동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리가 없었다.


여우희는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와, 대박. 강적이야.”

“맞아. 우리 말 안 들을 것 같아.”

“어쩌지?”

바보 삼총사가 겁에 질리지 않는 여우희를 보고 당황해했다. 제일 만만한 녀석이나 계속 괴롭히면서


지내야겠다며 강도희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야, 강도 새끼. 네가 신입 좀 훈련해야겠다.”

여우희는 보육원에서 ‘강도 새끼’라는 별명으로 불린 아이를 쳐다봤다. 악역 수와 함께 나태준을


괴롭혔던 악역 조연이 맞았다.

본명 강도희. 그는 힘든 보육원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곳을 탈출해 훗날,
도희원이 된다.
어두운 술집 골목에 쭈그리고 있던 그를 양아버지가 줍는다. 소설에서 도희원은 그 술주정뱅이를
뒷바라지하느라 인간쓰레기가 되어 같은 학교 학생들한테 금품을 갈취하고 온갖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우희는 대학교 때 도희원을 만나지만, 강도희인 걸 몰라본다. 그에게 돈을 주며 나태준을 괴롭혀


달라고 사주하며 둘은 어울려 다닌다.

그렇지만 여우희를 알아본 도희원은 그의 부모가 보육원에 데리러 왔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다. 만일 그때 자신이 도망치지 않았다면 자신도 친아버지를 만났을까 하고. 그래서 수소문 끝에 도희원은
뒤늦게 자기 아버지를 찾는다.

도희원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자기가 아들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마약과 술에 찌들어 죽어 가는 중이었다.
그는 조직을 정비하고 보육원에 찾아갔으나 아들은 이미 사라져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행방을 찾지 못했다. 보스
노릇까지 내팽개치고 아들을 찾아다니다 그 지경까지 간 것이다.

도희원은 그 사실을 여우희에게 말하며 그때 자신이 보육원을 도망치지 않았어야 했다고 고백하며 자기
정체를 밝힌다. 여우희는 도희원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어쩌라고. 이 쓰레기 새끼야.’라고 말해
죽도록 얻어터진다.

그러니 소설에서 여우희와 강도희는 악연이라고 볼 수 있다.

강도희는 작은 몸을 둥글게 말고 오들오들 떨었다. 처음 보육원에 왔을 때만 해도 강도희는 아버지에게


사랑받으며 자라 밝은 성격이었다. 그러나 이젠 말이 없고 다른 친구들한테 반찬을 빼앗기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강도희의 아버지는 흑곰파 보스였다. 그러나 조직에 반란 세력이 생겨 목숨을 위협받게 되었다.

아버지는 강도희를 보육원에 데려다주면서 백 밤만 자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는 백 밤을 세기 위해


달력에 하루하루 X 자를 표기해 나갔다. 보육원 아이들이 괴롭혀도 반항하며 이곳을 떠나는 날만을 고대했다.

그러나 약속한 백 밤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네도


부모님이 버릴 때 백 밤만 자면 데리러 올 거라고 했다며 강도희를 비웃었다.

강했던 그가 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강도희는 아이들의 괴롭힘에 전혀 반항할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슬픔과 앞으로 쭉 보육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절망감 때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보육원에서 가장 덩치가 큰 셋은 강도희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선생님들은 이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묵인했다. 왜냐하면 이 세 아이가 여기 군기반장이기 때문이었다.

강도희는 매일 식사를 빼앗겨 뼈밖에 남지 않은 몸으로 신입에게 다가갔다.

“너 저 아이들 말 잘 들어야 여기서 살아갈 수 있어. 네 부모는 널 버렸어.”

“아니야. 난 집에 돌아갈 거야.”

신입은 과거의 강도희처럼 부모를 믿었다. 그런 여우희가 자신처럼 느껴져 미련하고 화났다. 그는
주먹으로 여우희의 머리통을 때렸다.

“아야.”

“네 부모는 절대 널 데리러 오지 않아!”


강도희는 자기가 때려 놓고 빽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여우희는 아픈 정수리를 손으로 문질렀다.

“내 부모님은 반드시 날 데리러 올 거야.”

소설에 그렇게 나왔으니 믿어도 됐다.

“너도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면 포기하지 마.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늦으시는 걸 거야.”

“아니야! 아니라고! 네 부모는 널 버렸어! 넌 이제 고아 새끼야!”

강도희가 주먹을 번쩍 들며 여우희를 때릴 것처럼 굴었다. 여우희는 겁먹지 않고 그를 올려다봤다.

“내기할래? 내 부모님이 날 데리러 오면, 너도 여기서 네 부모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내가 왜 그딴 걸 너랑 내기해.”

강도희가 친아버지와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운 건 순전히 여우희의 측은지심에 의한 일이었다. 그가


싫다며 소설에서처럼 이곳을 뛰쳐나가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자신을 때릴 것처럼 들어 올려진 주먹이 서서히 내려갔다. 바보 삼총사가 강도희에게 다가와 뭐 하는


짓이냐며 밀쳤다. 강도희는 셋에게 둘러싸여 이리저리 밀려났다.

여우희는 보육원에서 제일 조그마한 아이에 불과했지만 대학생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집단따돌림을
보고도 겁먹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뭐 초등학생들이 괴롭혀 봤자 얼마나 하겠냐는 무시가 담긴 오지랖이긴 했다.

“여럿이서 친구 한 명을 괴롭히면 안 되지.”

“으하하하. 이 꼬맹이 봐라. 이 엉아들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야, 손봐 주자.”

강도희를 때리던 셋이 여우희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발로 여우희를 뻥 찼다. 여우희는 배를 끌어안고


데굴데굴 굴렀다. 쿨럭.

입으로 구토했다. 새빨간 액체가 흘러나왔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토마토주스였다. 셋은 당황해서 꼼짝


못 하는 여우희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설마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야, 저 녀석 이불로 덮어.”

그들은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이불을 가져와 여우희를 숨겼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강도희는 자기를 지키려고 하다가 여우희가 다쳐서 피를 뿜었다고 생각했는지


병아리를 지키는 어미 닭처럼 사방을 경계했다. 바보 삼총사가 무서워서 쩔쩔맸던 주제에 그들이 여우희를
건드리려고 하면 눈이 백팔십도 돌아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보육원의 식사는 언제나 부실했다. 힘 있는 아이들은 약한 아이들에게서 먹을 것을 뺏으려고 들었다.


이제 여우희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바보 삼총사는 여우희의 밥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강도희의 것은 건드려도 여전히 반항하지 않았기에 그의 식판에서 음식을 빼앗아 갔다. 여우희는
자기 건 지키지 않는 주제에 자신의 일에만 눈 돌아가는 강도희에게 약간의 부채감을 느꼈다.

식사가 끝나고 강도희가 여우희의 식판까지 챙겨서 반납했다. 여우희는 잽싸게 자신을 예뻐하는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선생님, 우희 빵 먹고 싶어요.”

여우희는 자신의 외모가 엄청난 무기라는 걸 알았다. 선생님의 소매를 붙잡고 그녀를 올려다봤다.
선생님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며 같이 슈퍼에 다녀오자고 했다.

원래 보육원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특별 취급 받는 여우희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그들은 씩씩거리며 자기네도 빵을 먹고 싶다며 여우희를 욕했다.

슈퍼에 도착한 여우희는 빵 앞에서 “우웅~ 우웅~.” 하며 예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왜 그러니, 우희야. 먹고 싶은 빵 없어?”

“우희는 친구들이랑 빵을 나눠 먹고 싶은데 빵이 너무 조그마해요.”

여우희는 크림빵 하나를 들어서 선생님을 빤히 올려다봤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일했으나, 그녀는
여우희에게 빵을 사 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럼 빵이 조그마하니까 보육원 친구들 개수에 맞춰서 사면 되겠다.”

“우와! 정말요? 선생님, 우희는 선생님이 너무너무 좋아요.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천사 같고
예쁜 분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여우희의 포로가 되었다. 슈퍼 아줌마는 여우희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렇게나 예쁘게 생긴
아이가 마음씨도 착하구나, 하고 감격했다.

“아줌마가 너 예뻐서 주는 거야. 빵이랑 같이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슈퍼 아줌마는 보육원에서 온 아이라는 걸 눈치채고 비닐봉지에 빵 개수에 맞춰 우유를 담았다. 여우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손으로 배꼽에 올리고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감사합니다. 친구들이랑 맛있게 먹겠습니다.”

“어머. 어쩜 이렇게 애가 똑똑하고 예의 바를까.”

여우희는 또 한 명의 추종자를 얻었다.

그는 선생님이 무겁다며 들어 주겠다는 말을 거절하고 우유와 빵이 든 비닐봉지를 자신이 직접 들었다.


끙차끙차 열심히 무거운 짐을 들고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여우희를 질투하고 있던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희가 나눠 먹으려고 선생님이랑 빵이랑 우유 사 왔어.”

“우와아아. 우희야, 고마워.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박. 맛있겠다.”
“크림빵 나! 나 크림빵 먹을래.”

“나는 초코빵 먹을 거야.”

보육원 아이들은 비닐봉지에 달라붙어서 빵과 우유를 뒤적거렸다. 선생님은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환호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작 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이었기에 앞으로 종종 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우희에 대한
아이들의 적의 또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 계산대로였다. 만일 여우희가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강도희에게 먹이기 위해 빵을 하나만 샀다면


아이들의 괴롭힘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우희는 직접 아이들과 나눠 먹으려고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났다.

바보 삼총사는 자존심이 상하는지 가까이 다가가지 않다가 인원수대로 샀음에도 자기들 몫이 없어질세라
뒤늦게 달려들었다.

여우희는 크림빵과 우유를 챙겨서 강도희에게 다가갔다. 그가 묘한 표정으로 여우희를 쳐다봤다.

“도희야, 아까 밥 제대로 못 먹어서 배고프지? 이거 먹어.”

강도희는 보육원에서 가장 약해 보이는 여우희가 이곳을 점령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폭력과 폭언을
사용하지 않아도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는 이 아이의 말을 들어줬다.

그는 여우희가 내뿜는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여우희의 부모님이 영원히 그를 데리러 오지 않아서


그와 함께하고픈 못된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강도희와 여우희는 보육원에서 가장 친한 단짝이 되었다. 빵과 우유를 사 온 여우희에게 홀딱


빠진 아이들이 잘 보이려고 엉겨 붙어도 말이다.

여우희가 식판에서 밥을 한술 떴다. 강도희가 얼른 그 위에 소시지를 올렸다.

“도희 너도 먹어야지.”

“아니야, 난 너 먹는 것만 봐도 좋아.”

“그래도 나 때문에 너 소시지 못 먹으면 마음이 안 좋단 말이야.”

여우희는 그 수저를 그대로 강도희에게 가져다 댔다.

“아, 해.”

“…….”

“어서.”

강도희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여우희는 속으로 이때쯤이면 집에서 데리러 오겠구나 셈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싸구려 소시지 따위 대기업 회장님 댁에 들어가면 먹을 일도 없을 반찬이었다.

여우희는 대외적으로 천사 같은 아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여우희와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았지만, 자신은 그럴 생각 없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재벌 부모와
사이좋게 지내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설령 가짜 자식이라는 게 밝혀져도 여우희를 아끼면 선처를 베풀 테고 말이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었겠는가. 다 탐욕스럽게 돈을 노린 친모의 잘못이지.

식사하고 있던 중 보육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내다봤다. 검은 세단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제 왔군.

여우희는 자신의 식판에 있던 소시지를 몽땅 강도희의 식판으로 옮겼다.

“우희야?”

“도희야, 내가 말했잖아. 나 부모님이 데리러 올 거라고.”

여우희는 앉은뱅이 식탁에서 일어났다. 강도희는 불안한 눈으로 그런 여우희를 쳐다봤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복도에서 보육원 원장과 대화하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도련님, 모시러 왔습니다.”

“엉? 도련님? 우희가 도련님이래.”

“신기해. 도련님이면 부잣집 아니야?”

아이들은 수군거리며 여우희를 부럽다는 듯 쳐다봤다. 분명 기뻐해야 하는 일인데도 강도희는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여우희가 소매로 그의 눈가를 닦아 냈다.

“걱정 마. 도희야. 네 부모님도 널 데리러 올 거야. 그러니까 꼭 기다렸다가 만나.”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부탁인 줄 알면서도 그는 여우희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여우희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흐으. 흐흑. 흐.”

억눌린 울음이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왔다. 여우희가 강도희의 등에 둘렀던 팔을 풀었다.

나는 달라. 너는 천사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절대 버릴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는 날 잊은 게


틀림없어. 가지 마. 네가 떠나면 난 혼자야.

강도희는 여우희를 붙잡으며 하고 싶은 말을 속에서 삭였다. 여우희가 양복을 입은 남자와 함께 보육원을


떠났다. 그는 창문에 매달려 고급 외제 차의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 아이가 없는 하루하루는 삶의 의미를 잃은 상실의 시간이었다. 그는 이대로 자신이 버려진 채 어른이


되어 보육원에서 쫓겨나게 될 거라고 믿었다.

강도희가 사용하는 요는 밤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물 자국으로 누렇게 변해 버렸다. 영원히 변치 않는


절망의 증표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병든 닭처럼 누워 있는 강도희를 누군가가 들어 올렸다.

“도희야, 강도희! 아버지가 늦어서 미안하다.”

“어?”
강도희의 죽은 눈은 익숙한 아버지의 냄새에 생생히 살아났다. 전율이 일었다. 여우희의 말처럼 계속
기다리니까 정말 데리러 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동안 나 같은 거 잊었죠?”

“아니야. 절대 단 한 순간도 널 잊은 적 없어. 도희야. 아버지의 일이 늦게 마무리되었어. 미안해.”

아버지가 눈물을 흘렸다. 이제 조직은 괜찮아진 걸까?

“됐어요. 이제 다시는 나 버리면 안 돼요.”

강도희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여우희의 하얀 얼굴을 떠올렸다. 그 아이가 보육원에 오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삼총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가 이곳에서 도망쳐 버렸을 거다. 그는 아버지의 양복을 꼭 움켜잡으며
생각했다.

우린 다시 만날 거야. 그리고 난 반드시 널 지킬 거야.

***

여 회장 저택에 도착한 여우희는 눈치를 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돌아왔음에도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불쌍한 척 좀 해 봐야겠다.

사용인들은 집 청소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여우희는 그들 몰래 조용히 손걸레를 찾았다.

무릎을 꿇고 거실 테이블을 닦았다. 그가 뭘 하든 말든 사용인들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테이블을 다


닦은 여우희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팔을 쭉 쭉 내밀어 바닥을 걸레질했다.

“바닥, 청소기 돌려야 하거든요. 저리 가세요.”

“죄송해요.”

사용인이 150 만 원이 훌쩍 넘는다는 스위스제 청소기를 가지고 나타났다.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보란 듯이 비싼 청소기 성능을 뽐내며 자신의 기를 죽였다. 어린아이가 청소를 해 봤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지만 여우희는 상처받은 척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대롱대롱 매달았다.

순식간에 사용인을 악당으로 만든 여우희는 손걸레를 들고 계단에 엎어져서 닦았다. 여 회장은 여우희를
보육원에서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잠시 집에 들렀다가 손걸레질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감히 누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일을 시킨 건지, 분노한 여 회장의 페로몬이 일렁거렸다.여우희는 등이


따끔거리는 걸 느끼고 뒤돌아봤다.

“아빠.”

맑은 뺨을 타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아이는 조그맣게 몸을 말고 계속 계단을 문질렀다.

“그만해. 이딴 걸 네가 왜 해!”
여 회장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아무리 반쪽짜리여도 그의 피가 흐르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무릎을 꿇고
걸레질을 한다니!

“누가 너한테 이딴 짓 시켰어.”

사용인들은 여 회장의 분노에 눈을 내리깔고 숨을 죽였다. 그 누구도 여우희에게 청소를 시키지는


않았으나 사모님의 미움을 받는 아이가 자발적으로 하는 청소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우희가 청소하고 싶어서 했어요. 우희 이제 쓸모 있죠?”

아이는 헤헤 웃으며 여 회장을 올려다봤다.

“아.”

여우희에게 집착하는 여진우 때문에 그는 아내가 아이를 버리는 걸 허락했다. 그러나 여진우는 곧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아이를 버린 게 마음에 걸려서 다시 데려오게 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몹시
짧았지만 여우희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안겨 준 것이다.

그는 여우희를 끌어안았다. 어떻게든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자 하는 아들이


안쓰럽고 마음 아팠다.

“미안해. 우희야. 아빠가 잘못했어.”

“흐윽. 우희. 흑. 무서웠어요. 보육원에서 우희 밥도 잘 안 주고, 아이들이 우희한테 고아 새끼라며 막


때렸어요.”

여우희는 여 회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과장된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했다. 삼총사에게


걷어차인 배를 보여 주기 위해 꼬물꼬물 움직여 여 회장의 품에서 벗어났다. 티셔츠를 걷어 올리니 보랏빛으로
멍든 배가 보였다.

생각보다 발차기가 아프지는 않았지만 어려서 그런지 쉽게 멍이 들었다.

“이게 무슨.”

“무서운 형아들이 우희 발로 빵빵 찼어요. 우희 다시 보육원 보내지 말아 주세요. 흑. 밥도 조금만 먹고


청소도 열심히 할게요.”

여우희는 아무리 짐승 같은 개자식도 넘어올 만한 열연을 펼쳤다. 무릎을 꿇고 조그마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여 회장을 올려다봤다. 여 회장은 심장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미안하다. 미안해. 우희야. 아빠가 잘못했다.”

우 회장은 눈물이 없는 알파였음에도 울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 깊이 이 아이를 잘 보살펴야겠다고


다짐했다. 방에 있던 김민정이 소란을 듣고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남편이 사생아에게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여 회장은 여우희의 손에서
손걸레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방에 데려다주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친절하게 살았던 그녀였지만 다른 오메가와 낳은 아이에게 잘해 주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과 각인을 한 알파였기에 더욱 그랬다.

김민정이 주먹을 꽉 쥐었다. 네일아트를 받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 들어가 기어이 피를 냈다. 분홍색
립스틱을 곱게 칠한 입술이 이 사이에서 짓이겨졌다. 머릿속에서 흉흉한 상상이 재생되었다.

여우희가 잘 때 베개로 코와 입을 짓누르거나 5 층 다락방에 데려가서 떨어트리는 상상을 하던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어린아이를 상대로 그런 끔찍한 상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미쳤다.

화초처럼 곱게 자란 김민정은 여우희가 미워도 미워할 수 없으며, 이제 자신의 아들로 키워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을 쥐어뜯었다.

“흐흐흑. 흐흑.”

사생아라니.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다.
그런데 얼굴에서 물이 흘러내렸다. 이마에 축축한 수건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엄마. 우희가 미안해요. 우희는 장난감 사 달라고 안 하고, 공부 열심히 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이마 위에 올려진 젖은 수건이 여우희가 해 놓은 거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수건을 가져가 찬물을 받아 놓은 대야에 담갔다. 문득 차가워서 빨갛게 물든 손끝이 보였다.

아직 어리기만 한 아이가 수건에서 물을 짜내며 낑낑거렸다. 제대로 물기를 짜내지 못해 수건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여우희가 김민정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렸다.

“엄마, 아프지 말아요.”

“……그래.”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아이를 미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녀의 벽이 무너져 내렸다.

여우희는 조금은 마음을 연 듯 보이는 김민정 몰래 씨익 웃었다.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라 그런지 약발이
잘 먹혔다. 김민정이 여린 성정의 오메가라 더욱 그런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렇게나 착한 그녀가 여우희를
미워했던 걸 보면 역시 소설에서처럼 문제아 노선을 타서는 안 된다.

감옥 따위 누가 갈까 봐. 흥! 어림도 없다. 재벌 집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다가 자신의 마스터를 찾으면


결혼하고 회사에는 얼쩡거리지도 않을 거다.

순조롭게 김민정을 자신 편으로 끌어들인 여우희는 물 받은 대야를 들고 나가다가 일부러 바닥에 엎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김민정의 눈치를 봤다. 그녀가 사용인을 불러서 젖은 바닥을 닦게 했다.

“죄송해요. 우희 버리지 말아 주세요. 우희가 잘못했어요. 우희가 다시는 안 그럴게요.”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얼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여우희는 금방이라도 주먹이 날아올 것처럼 겁에 질린


채 김민정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슬쩍 배를 붙잡고 아픈 척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가 놀라서 달려왔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우희가 배 아야 했어요.”

바보 삼총사가 큰일을 했다. 여 회장에게 보여 줬듯 김민정에게도 멍 자국을 자랑했다. 그녀는 보육원에


보냈던 아이가 커다란 멍을 매단 채 돌아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때린다는 건 그녀의 상식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서 닥터 불러. 애가 다쳤는데 도대체 치료도 하지 않고 뭘 하는 거야. 다들.”

“사모님, 주치의 선생님께서 도련님 상처 보고 가셨어요. 멍이 완전히 빠지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것


같다고 하셨고요.”

한 달? 그럼 엄청난 중상 아닌가?

김민정은 여우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자신의 알파와 러트를 보낸 사용인은 증오하지만, 이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녀는 평생 그 과거를 잊을 수 없겠지만 여우희만큼은 예외를 두기로 했다.

***

학교에서 돌아오니 기적처럼 여우희가 거실에 앉아 있었다. 여진우는 당장 여우희를 끌어안고 뽀뽀를
퍼붓고 싶었다. 다시는 사라지지 말라고 자물쇠가 달린 철창을 준비해 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또 여우희는 보육원에 버려질 거고 이번에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거다. 그는 격렬한


반가움을 드러내는 대신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우희야, 많이 걱정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여우희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보육원에서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의 아가가
이렇게 성숙해 버렸을까. 그는 손톱에 난 거스러미를 뜯어내 기어이 피를 냈다.

“형이랑 장난감 가지고 놀래?”

그를 사용인들이 일하는 척 주시하고 있었다. 여우희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문을 닫지 못하게 하며 사용인이 복도에 서서 안을 감시했다. 그는 철저히 다정한 형의 가면을 뒤집어썼다.

인내할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가질 거다.

***

이렇게나 여 회장 부부를 구워삶는 일이 쉬울 줄이야. 역시 나이 어리고 귀여운 게 장땡이다. 여우희는


김민정에게 초콜릿 쿠키를 얻어먹고 거실에 나와 여진우를 기다렸다.

아무리 진짜 형제가 아니라 한들 자신이 그 어린 것을 어떻게 해 먹겠다는 건 아니고 잘생긴 형이랑도


사이좋게 지내면 여러모로 좋지 않겠는가.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여진우가 여우희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그가 반갑지도 않은지 살짝 입꼬리만 들어


올렸다.
“우희야, 많이 걱정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형이랑 장난감 가지고 놀래?”

그가 상냥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갔다.

“형이랑 인형 놀이 하자. 토끼는 우희고, 곰은 형이야.”

여진우가 토끼 인형과 곰 인형을 손에 잡았다. 여진우가 인형들을 움직이는 걸 보고 여우희의 눈이


커졌다.

설마!

“우리 우희 얼른 자라야 해. 알았지?”

진짜 아이였으면 이 인형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통제해 줄 마스터를 찾아 헤매는, 좆물에 굶주린 하이에나 대학생이었다.

아아, 여진우에게서 엄청난 미래가 보였다.

이걸 어째. 가져? 말아?

“오늘 우희 거실에서 형 기다린 건 잘했어. 그런데 형이 말했지. 문 앞에 서서 기다리라고.”

“네에.”

여우희는 커다란 눈을 들어 올려 여진우의 눈치를 보는 척했다. 소설을 읽을 때도 나태준을 괴롭힌 악역


수를 매도하는 걸 보며 최고다 싶었지만, 자신에게 집착과 통제 성향까지 보일 줄은 몰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럼 거실에 앉아 있는 게 잘한 짓 같아? 잘못한 짓 같아?”

“잘못한 짓이에요.”

두 손으로 꼬물거리며 여진우를 봤다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벌받을 거야. 우희가 잘못했으니까 ‘형아 사랑해요.’라고 노트에 백 번 적어.”

여진우가 자기 책상에 가서 의자를 꺼냈다. 여우희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다. 미친. 이렇게 맛 좋은데
안 먹으라고? 어떻게 안 먹고 배겨.

악역 수가 여진우를 탐내서 나태준을 괴롭힌 탓에 감옥에 갔건만 이렇게 완벽한 이상형을 어떻게
놓치겠는가. 너무 떨려서 손까지 달달 떨렸다. 자신이 겁에 질린 줄 알고 여진우가 형 화 많이 안 났다며 등을
쓸어 줬다.

어떡해. 코피 날 것 같아. 그럼 진짜 화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가 펴 주는 노트에 삐뚤빼뚤 ‘형아 사랑해.’를 적었다. 여진우는 자신이 깜지를
쓸 동안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옆에서 감시했다.

여우희는 왠지 모르게 간지러운 엉덩이를 들썩이며 글씨를 썼다. 백 번이라는 엄청난 횟수에 연필을 잡은
손가락이 떨어질 것처럼 저리기 시작했다. 잠시 연필을 놓고 손을 흔들었다.

“손 아파?”
“네에.”

“그래도 벌이니까 적어.”

여우희는 솜털이 쭈뼛 섰다. 역시 이런 마스터 성향의 우성 알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그는 완벽하게


자신을 통제하고 굴복시켜 줄 분이다. 그에게 사로잡혀 능욕당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황홀하다.

온갖 망상을 하느라 깜지를 완성하기까지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한 시간에 걸쳐서 벌을 끝낸 여우희를


여진우가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는 만족스럽게 ‘형아 사랑해.’라고 적힌 노트를 서랍 속에 넣어 두었다.

“형도 우리 우희 많이 사랑해. 잘했어.”

벌이 끝난 뒤에 주어지는 확실한 보상.

여우희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에게 끌어안긴 채, 재벌 2 세로 인생 꿀 빨려던 계획을 변경했다. 조용히


스무 살이 되자마자 마스터를 찾아 이 집을 벗어난다고?

이쪽 세계에서도 SM 클럽은 있을 테니, 거기서 자신을 굴복시켜 줄 마스터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그건


가끔 만나서 플레이나 하는 것에 불과했다.

완벽하게 자신을 옥죄고 소유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거기다가 여진우는 자신을 이복형제로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만 만들면, 억지로 가지려고 드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에게는 잠깐의 플레이가 아닌 삶 자체가 종속되어 끌려다니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태준은 괴롭히지 않으면 그만이고 회사는 아예 발걸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런 매력적인 환경에서
순순히 물러나는 건 목줄을 보고도 개처럼 끌려다니고 싶어 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여우희는 전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반드시. 기필코 그가 자신을 정복하고 싶게 만들 거다.

2. 깨어진 순정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여진우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여우희는 웃으면서 두 팔을 뻗었다. 그가


자신을 소중하게 안아 주며 일으켜 세웠다.

“잘 잤니?”

“네, 형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얼른 씻고 나와.”

여진우가 여우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섰다. 아무런 일 없이 끝난 아침 인사에 입맛을 쩝


다셨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자신이 그동안 한 노력이 있는데 이렇게나 돌부처 같다니. 돌하르방이 여진우 보면
‘아이고, 형님’ 하겠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눈 뜨자마자 입에 좆을 쑤셔 박는 여진우를 볼 수 있는 걸까. 나 같으면 진작 했다.

속상한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했다. 거울 속에는 어릴 때 모습 그대로 자라 잘생긴 얼굴이


비쳤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가 세수하면서 약간 젖어 구불거렸다. 방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젖은 피부가 마르지


않게 에센스를 발랐다. 드라이어로 앞머리를 말린 뒤, 에센스를 흡수한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발랐다.

자외선은 피부 노화의 주범이었고 자외선 차단제만 잘 발라도 좋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악역 수의


친모가 여 회장에게 사기를 쳐서 자신이 스무 살이지, 사실 진짜 나이는 스물하나였다. 정체를 숨기려면 동안
유지는 필수였다.

피부에 한껏 공을 들인 여우희는 잠옷을 벗었다. 하얀 눈밭에 떨어진 벚꽃처럼 연한 분홍빛 젖꼭지가


눈에 띄었다. 이 몸은 유두도 크고 유륜이 통통해서 꽤 맛있어 보이는 편이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꾸준히 미백 크림을 바르고 마사지한 덕에 얻은 가슴이었다. 나중에 이 야한 가슴을 본


여진우가 걸레냐며 매도할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때까지는 얌전한 고양이인 척 꾹 참기로 하며 여우희는 괜히 두 팔을 교차해서 가슴을 봉긋하게 만들어


보고 하늘색 남방셔츠와 재킷, 청바지를 입었다. 학교 갈 준비를 끝낸 여우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으로
내려갔다. 사용인들이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일어나셨어요. 도련님.”

14 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여우희는 더 이상 이 집의 군식구가 아니었다. 여 회장은 물론


김민정까지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이 집의 막내였다. 물론 그를 가장 사랑해 주는 존재는 OL 그룹 여진우
전무였다.

그가 식당에 들어서자 김민정이 활짝 웃었다. 여우희도 따라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봉긋하게 뺨이


솟아오르며 옅은 생기가 맴돌았다. 색감이 더해지자 여우희의 미모가 한껏 돋보였다.

“전주댁, 우리 우희 홍삼 가져와.”

“예, 사모님.”

전주댁이 ‘키가 쑥쑥 어린이 홍삼’이라고 적힌 포장지를 뜯어서 유리컵에 담았다. 여우희는 이미 174
라는 평균에 가까운 가졌음에도 우성 알파라고 집에 사기를 쳐 놓은 탓에 부모님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여우희는 눈을 질끈 감고 쓴 홍삼을 들이켰다.

“우리 우희 키가 왜 이렇게 안 클까. 너무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거 아니니?”

“엄마, 걱정 마세요. 우성 알파는 스물다섯 살까지 키가 큰대요. 뒤늦게 키 크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그렇지만 어휴.”

김민정이 걱정스럽다는 듯 여우희를 보며 볼을 쓰다듬었다. 우희는 그녀의 부드러운 손바닥에 뺨을 비비며


어리광을 부렸다.
아무래도 같은 우성 알파인 여진우는 키가 188 이라 상대적으로 자신이 난쟁이 똥자루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우성 알파라고 속일 때만 해도 키 때문에 부모의 걱정을 살 줄 몰랐다.

우성이 아닌 보통 알파로 형질을 속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지속해서 가짜 검사지를 공급하려다 보니, 쉽게
얻을 수 있는 여진우의 형질을 따르게 되었다.

이곳은 14 세부터 1 년마다 학교에서 형질 검사를 했다. 19 세까지 계속 검사를 받는데 혹시 모를 오진을
걸러 내기 위해서였다.

피를 뽑거나 그런 건 아니고 리트머스 종이처럼 생긴 검사지에 침을 묻혀서 하는 페로몬 검사였다.


정확도가 95%나 되기 때문에 학생 때 알게 된 형질이 진짜 형질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같은 형질로 나오면 국가에서 형질 인증서를 발급해 주었다.

소설 <가난이 죄는 아니잖아>에서 악역은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우성 오메가로 살아갔다. 그러나 그는


형이 마시던 컵을 이용해 검사지를 조작하고 학교에 가져가서 새것과 바꿔치기해 기어이 우성 알파 형질서를 받아
냈다.

여우희는 완벽주의자라는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단 한 번도 전 과목 만점을


받지 않은 적 없었다. 이러한 완벽한 이미지 구축을 통해 왜 자신이 우성 알파라고 형질을 속이려고 하는지에
대한 뒷받침을 만들어 뒀다.

훗날 그가 가짜 동생이었다는 비밀과 함께 우성 오메가였다는 사실을 여진우에게 쥐여 주기 위해 말이다.


그 목줄을 쥐고 자신을 협박할 여진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멍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그렇지만 아침부터 팬티가 젖을까 하는 걱정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벌렁거리는 음란한 자신의 구멍


때문에 팬티에는 항상 오메가들이 히트 때 붙이는 패드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 패드는 페로몬 냄새를 없애 주는 특수 필름이 있어서 자신처럼 쉽게 발정하는 오메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페로몬만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여우희는 엉덩이에 힘을 줘 구멍을
조였다.

식사를 끝내고 형과 함께 같은 차에 올라탔다. 여진우는 매번 회사에 출근하기 전, 자신을 대학교에


데려다줬다. 차에서 내린 우희는 여진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고개를 살짝 45 도 각도로 숙이고 수줍게 볼을 붉혔다. 자신 같은 미인이 교태를 부리는데도 여진우는


담백하게 굴었다.

“그래, 공부 열심히 하렴.”

검은 외제 차가 대학교 입구를 떠났다. 여우희는 등에 메고 있는 백팩 끈을 손으로 꽉 움켜잡고 교문을


넘었다.

씨. 고자 새끼. 분명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한 번을 안 흔들렸다.

유혹에는 노출이 최고지만 아쉽게도 그 스킬은 사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지난여름에 짧은 반바지 좀
입었다고 온 집 안이 떠내려가라 여진우가 화를 낸 탓에 그 문제는 여 회장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자신이 핫팬츠를 입은 것도 아니고 고작 동그란 무릎이 드러나는 길이의 반바지를 입은 건데 말이다.
그걸 보면 또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해서 흡족하긴 했다.

목련이 핀 교정을 걸어서 인문대 건물로 들어갔다. 너무 공부를 잘한 탓에 명문대인 청하대학교에 입학해
버렸다.

원작 소설에서는 문제아였던 탓에 똥통으로 유명한 지하대학교에서 도희원과 나태준을 만났는데 학교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소설 내용대로 흘러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강의실로 들어서니 알파 친구들이 동시에 무슨 사자 앞에 나타난 토끼를 보듯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모른 척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우희 왔어?”

“우희 넌 오늘도 어쩜 그렇게 예쁘냐.”

발정 난 알파들이 군침을 흘리며 자신을 둘러쌌다. 입을 삐쭉 내밀며 토라진 척 굴었다.

“나 예쁘다는 말 싫다고 했지.”

“알았어. 알았어. 근데 예쁜 걸 보고 예쁘다고 하지 뭐라고 해. 역시 우성이라 그런지 우리 학과


오메가들보다 네가 더 예쁘다.”

오메가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저희들끼리 소곤거렸다. 그러다가 한 명이 일어나 버럭 짜증을 냈다.

“이 못생긴 알파 새끼들이 어디서 남의 외모 평가질이야. 이것들이 죽으려고.”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여우희는 친구들을 밀쳐 내고 앞으로 나섰다.

“미안해, 민철아. 경수랑 석진이가 일부러 나쁘게 말하려던 건 아닐 거야. 아마 속으로는 너희가 훨씬
잘생기고 예쁘다고 생각할걸. 어떻게 알파가 오메가보다 예쁘겠어. 그냥 나 놀리려고 그런 거야.”

아무리 페로몬을 숨기고 형질을 사기 쳐도 본능적으로 알파들은 자신에게 호감을 표했고, 오메가들은
질투를 느꼈다. 민철이가 기분 나쁘다며 한 소리 하고는 제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이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어깨에
팔을 올렸다.

가깝게 다가온 입술이 민철이 새끼 못생긴 게 성질 나쁘다며 험담을 늘어놓았다. 여우희는 대꾸해 주지
않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체육 강사가 들어오자 우희의 책상을 둘러싼 알파 친구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떠났다.

“여러분, 주말 잘 보냈어요? 오늘은 운동장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배구를 할 겁니다.”

“아, 교수님. 이론 강의해요.”

“자, 자. 다들 체육복 챙겨 입고 운동장으로 이동합시다.”

청하대학교는 다른 사립대와 달리 특이하게도 일주일에 한 번 필수 교양으로 체육 강의를 수강해야 했다.


청하 재단에 소속된 초, 중, 고등학교 모두 운동부가 유명한 탓인지 대학교까지 체육 수업을 학생들한테 강요했다.
오메가들이 체육복을 챙겨서 오메가 전용 탈의실로 떠났다. 대외적으로 우성 알파인 자신은 알파들과 베타
사이에서 재킷을 벗었다. 남방셔츠를 벗기 위해 첫 번째 단추를 푸는데 침을 꼴깍 삼키는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듣지 못한 척 표정 관리를 하며 남방셔츠 위에 체육복 티셔츠를 입었다. 티셔츠 안에서 단추를 풀고


남방셔츠를 벗어 냈다.

“야, 우리끼리인데 뭘 내외하냐.”

“맞아. 알파답게 벗으라고.”

여우희는 자신의 가슴을 보고 싶어서 환장하는 알파 친구들이 한심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다고
넘어갈까 보냐. 자신이 봐도 뭔가 음란한 구석이 많은 가슴인데 알파들이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거다.

이딴 허접한 알파들에게 주려고 구멍에 거미줄 치도록 지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협박하며 첫 개통을
시켜 줄 여진우가 먹어야 해서 미개봉으로 놔둔 거였다.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려 어떻게든 가슴을 보려고 드는
알파 친구들의 말을 무시하며 청바지 지퍼를 내렸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오싹 돋았다.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모른 척하며 뻣뻣한 손으로 청바지를 내렸다.
검은 드로어즈와 하얀 다리를 본 알파들이 앞섶을 두둑하게 부풀리고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얼른 체육복
바지를 챙겨 입었다.

이 새끼들이 모르고도 이러는데, 자신이 우성 오메가로 지냈으면 매일 집 앞까지 찾아오는 스토커가 한


무리는 됐을 것 같다.

친구들은 체육복을 다 입은 자신을 확인하고는 거칠게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자신과는 확연히 다른 가슴


근육과 복근이 선명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이렇게나 수컷 내 물씬 나는 몸이라니. 늘씬하게 팔다리가 쭉쭉 뻗고 허리는 가느다란데 엉덩이가


펑퍼짐하게 퍼진 자신과 너무 비교되지 않는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알파와 오메가의 체형 차이는 커져만 갔다. 중학교 때는 그러려니 했던


자신의 몸도 무르익어 어느새 친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지만 청하고를 다니는 내내 자신의 형질이 우성
알파로 나오는 걸 본 친구들은 이런 몸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았다. 역시 선입견만큼 무서운 게 없는 것 같다.

운동장에 도착한 영문학과 1 학년 학생들은 2 열로 줄을 섰다. 체육 강사가 준비 운동을 시켰다. 여우희가


무슨 동작을 해도 그의 친구들은 재롱부리는 아이를 보듯 칭찬했다.

“우리 우희 손목 돌리는 거 봐.”

음란마귀 여우희의 귀에는 그게 ‘핸드잡 잘하겠다’라고 들렸다.

“목 돌리기도 잘하네.”

‘펠라 잘하겠네.’

“뜀뛰기 엄청 높게 뛴다.”

‘구멍으로 좆 물고 잘 뛰겠다.’
큰일이었다. 구멍에서 왈칵왈칵 애액이 흘러나왔다. 아침에 이미 망상을 해 축축하게 젖은 패드였다.
애액을 잔뜩 흡수한 그것이 묵직해지는 게 느껴졌다. 알파 친구들이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발정 난 오메가 냄새 안 나?”

여우희는 재빨리 옆에 있던 김민철을 쳐다봤다. 아이들은 물론 체육 강사도 여우희를 따라 김민철을


쳐다봤다. 졸지에 김민철은 히트 사이클을 앞두고 학교에서 페로몬을 흘린 오메가가 되었다.

“나, 나 아니야.”

김민철은 수치심에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장경수를 살폈다. 장경수가 그를 깔보는 시선으로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누가 민철이 의무실 좀 데려다주고 와라.”

체육 강사가 말했다. 오메가 친구들이 울음을 터트리려는 김민철에게 와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하지만
정말 그가 아니었다. 히트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침에 억제제까지 먹고 왔다. 김민철은 그에게 누명을
씌운 여우희를 째려봤다. 우성 알파가 보낸 눈짓 하나만으로 김민철은 칠칠치 못한 오메가가 되었다.

“나 아니라고.”

“괜찮아. 실수할 수 있지. 나도 가끔 억제제 먹는 거 까먹고 학교 온 적 있어.”

오메가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자기 경험담을 늘어놨다. 김민철은 분위기에 휩쓸려 의무실에 가고


말았다. 정말 억울했다. 짝사랑하고 있는 장경수가 자신을 천박하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속상한 마음에
의무실에 오자마자 큰 소리로 울었다.

“정말 나 아니야. 흑. 씨발, 여우희 그 새끼. 왜 그때 날 쳐다본 거야.”

친구들이 김민철의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깜짝 놀랐다.

“정말 민철이한테 페로몬 냄새 안 나.”

“뭐?”

이은수가 하는 말에 다른 친구들도 김민철의 목덜미에 코를 들이밀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김민철은 울음을 그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그가 실수로 페로몬을 흘린 게 아니었다.

“전부터 여우희 이상했어. 걔 정말 우성 알파 맞아?”

“설마 오메가인데 알파인 척한다는 거야?”

“어, 청하고 출신 알파들이 여우희, 우성 알파 맞는다고 우기니까 그러려니 하지. 아니었으면 걔를 누가


알파로 봐.”

“맞아. 진짜 우리 학과 단체로 미쳤나 싶다니까.”

여우희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알파들 사이에 그 아이가 서 있는 걸 볼 때면 꼭


늑대에게 둘러싸인 양을 보는 듯했다.

거기다가 키 역시 알파라고는 믿기지 않게 작은 편이었다. 몸도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아니었으며 생긴


것부터 어딘가 야하면서 곱상했다.

“나 우희랑 같은 학생회 소속인데 억제제가 자꾸 사라지더라고. 민철이 말 들으니까 왠지 의심되네?”

“……말도 안 돼. 여우희가 오메가 억제제를 훔쳤다고? 그럼 어떻게 알파라고 형질 검사를 속였대?”

“그거야 나는 모르지. 재벌 집 아들인데 뭔들 못 해내겠어.”

학생회 소속 오메가들한테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오메가들이 억제제를 자주 잃어버린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면 매번 학생회실에 가방을 두고 나갔을 때, 그런 일을 겪고는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질투 나는 우성 알파가 사실은 오메가인 것 같았다. 아무런 증거 없이 단순히


의심만으로 하는 가정이었지만 그들은 그 의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씨, 감히 경수 앞에서 날 개쪽을 줘? 그 새끼 분명 경수 좋아해서 나 견제한 걸 거야. 걸레 새끼가


페로몬 흘려 놓고 누구한테 덮어씌워.”

김민철은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트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여우희! 그 여우 같은 새끼의 정체를 반드시
밝혀낼 거다.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두고 볼 거야?”

이은수의 물음에 김민철은 고개를 저었다.

“가만 안 둬, 그놈. 너희가 좀 도와줘. 억제제 훔쳐 먹는 도둑 새끼 잡자. 페로몬 흘린 걸 보면 곧


히트인 게 틀림없어.”

***

여우희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강당 화장실로 향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오메가 전용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 청바지를 내렸다. 드로어즈를 내리고 묵직한 패드를 떼어 냈다. 투명한
애액으로 범벅이 된 그것을 돌돌 말아서 휴지통에 버렸다. 끈적거리는 엉덩이골을 휴지로 닦아 내고 드로어즈에
새로운 패드를 붙였다.

“휴, 큰일 날 뻔했다.”

아무래도 곧 히트가 올 것 같다. 핸드폰으로 캘린더 어플을 켜서 확인했다. 역시나 일주일 뒤가 주기였다.
아직 억제제가 남아 있지만 다섯 알뿐이라 그것만으로는 히트를 버틸 수 없었다.

화장실 칸막이를 나와 세면대에서 손을 깨끗이 씻었다. 같은 강의를 듣고 있는 알파 친구들이 강의실로


들어온 여우희를 보고 우르르 몰려와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다.

“잠깐 형한테 전화 와서 통화하고 왔어.”


“하여간 네 형님도 어지간한 통제광이다.”

“맞아. 네가 무슨 오메가도 아니고 학교 보내 놓고 뭐가 그리 걱정이시래.”

알파 친구들이 여진우를 욕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여진우는 아주 별난 형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초중고
시절 내내 여우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형이 영상 통화를 걸었을 때
방 안이 아니면 엄청나게 혼나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우희는 그렇게 통제받는 게 너무 기쁘고 행복했지만, 자신의 알파 친구들은 여진우를 미친


사이코패스 폭군이라고 불렀다.

“우리 우희 불쌍해. 우쭈쭈. 형아가 위로해 줄게. 이리 온.”

장경수가 여우희를 안아 주려고 하니까 다른 알파 친구들이 꺼지라며 발로 엉덩이를 찼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며 여우희가 그 누구에게도 독점당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

점심시간이 되었다. 알파 친구들이 밥 먹으러 가자며 여우희에게 말했다. 여우희는 괜히 강의 시간에


녹음한 걸 재생하며 노트에 필기해 시간을 끌었다. 다른 학생들은 학생회실을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제야 고개를 든 여우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알파 친구들이 배고프다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서야


여우희는 아주 느리게 발걸음을 떼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 씨. 알았어. 그럼 빨리 와. 우리가 네 것까지 받아 둘게.”

“응. 고마워.”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화장실에 들어가는 척했다. 친구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학생회실로 빠르게 경보를
해서 돌아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우희는 총무 이은수가 놔두고 간 가방을 열어서 억제제를 찾았다.

‘하아, 다행이다.’

너무 많이 훔치면 티 나기 때문에 이은수에게 다섯 알 훔치고 다른 오메가의 가방을 열었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억제제를 훔쳐서 서른 알을 채웠다. 억제제 한 알에 이백 원이니까 천 원씩 지갑에 넣어주고 학생회실을
나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교 식당까지 뛰어갔다.

자신도 여진우의 감시만 아니었어도 다른 오메가의 억제제를 훔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 집, 학교만
오가야 하는 상황에서 제 형질을 아는 조력자 없이 억제제를 구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알파 친구들이 자신의 식판을 받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먹어도 되는데 손을 하나도 안 댄 게


기특했다. 식판을 놓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남들은 별로 받지 못하는 불고기 반찬이 자신은 국그릇에 따로 담겨
있었다.

“이거 왜 이렇게 많이 받아 왔어.”

“우리 여우 키가 아직도 쪼그마해서 그렇지. 많이 먹고 쑥쑥 크렴.”

여우희보다 키가 큰 알파 친구들이 정수리를 꾹 누르며 어린아이 취급했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 손을


치워 냈다.

“우성 알파는 스물다섯 살까지 키 크거든.”

풋. 어디선가 들린 비웃음 소리에 식당 안이 싸늘해졌다.

“야, 김민철. 너 미쳤어?”

장경수가 벌떡 일어나서 김민철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여우희를 비웃은 김민철의 멱살을
들어 올렸다.

“나는 내 마음대로 웃지도 못해? 그리고 세상이 여우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나도 내
친구들이랑 대화하다가 웃을 수 있거든.”

여우희는 오늘 아침부터 불거진 김민철과의 트러블이 불편했다. 더군다나 체육 수업에는 무려 그가 흘린


페로몬을 김민철이 흘린 거라고 뒤집어씌우지 않았는가.

“경수야, 그만해. 내 걱정 해서 화내 준 건 고맙지만 민철이 말이 맞아. 어서 그 손 놔.”

“아아, 천사 여우희 납셨네.”

“이 새끼가 정말 죽으라고 작정했나!”

김민철의 비꼬는 어투에 장경수가 싸움이라도 벌일 것처럼 굴었다. 여우희는 장경수의 팔뚝을 잡아당겨
간신히 둘을 떼어 냈다.

“그만해. 나 이런 분위기 불편하고 싫어.”

“미안.”

여우희의 말에 장경수는 바로 꼬리를 말고 순한 눈을 떴다. 김민철은 속상해 입술을 짓씹으며 눈꼬리에


눈물을 글썽 매달았다.

“얘들아, 가자.”

김민철 무리가 학교 식당을 떠났다. 여우희는 밥이 목구멍에 제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았지만, 알파


친구들이 하도 한 숟가락만 먹어 달라고 사정을 해 대는 통에 식사를 이어 나갔다.

“너 제대로 밥 못 먹고 어떡해. 편의점 들렀다가 가자.”

은석진이 여우희의 식판을 대신 들어서 반납하며 말했다. 알파 친구들이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여우희는 친구들이 사 준 초코우유와 크림빵을 먹고 후식으로 석류바까지 야무지게 해치웠다.

둥근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는 입술이 색소로 점점 빨갛게 물들어 갔다. 앵두같이 탐스러운 입술에서 혀가


나와 붉은 기둥을 핥아 올렸다.

알파 친구들은 야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우희를 보며 불편해진 바지 안 사정 때문에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여우희는 다음에는 핫바로 그들을 가지고 놀아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알람이 울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김민철이 새로 만든 단체 채팅방에 자신을 초대했다.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동영상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학생회실에서 오메가들의 가방을 뒤지는 자신의 뒷모습이었다.

[지금 당장 강당 화장실로 와.]

[오메가니까 오메가 화장실로 와야겠지?]

“애들아, 먼저 강의실 가 있어.”

“왜? 같이 가자.”

“어디 들릴 데 있어서. 미안.”

여우희는 알파 친구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달렸다. 어떻게 알았을까. 설마 이런 식으로 발목이 잡힐 줄


몰랐다.

이런 협박을 하는 건 항상 여진우일 거라고 상상했었다. 곤란한 상황이긴 한데 이참에 형한테 들켜서


지하실에 감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지은 죄가 있긴 했지만, 김민철 패거리도 생각이 있으니까
무려 OL 그룹 막내를 협박하려 부른 걸 거다.

우리 형의 지하실에는 뭐가 있을까? 머릿속으로 개 목걸이를 한 채 여진우에게 알몸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을 떠올려 봤다.

엄청 많이 화가 난 여진우가 자신을 채찍질하면 좋겠다. 아니면 구멍을 마구 때려서 퉁퉁 붓게 한 다음에


억지로 좆을 쑤셔 박는 거다. 회사도 출근 안 하고 자신을 안아 줬으면…….

그럼 자신은 너무 좋아서 비명을 지르며 ‘마스터,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라고 빌 거다. 야한


생각 좀 했다고 구멍이 뻐끔 벌어져 애액을 토해 냈다. 찝찝해서 달리던 걸 멈추고조심조심 걸었다. 강당에 있는
오메가 화장실에 들어가니 벌써 도착한 김민철 패거리가 보였다.

“야, 왔으면 꿇어.”

오메가 주제에 이렇게나 멋지다니. 여우희는 겁에 질린 척 어깨를 가녀리게 떨며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친구들이 당황해서 김민철을 쳐다봤다. 아무리 여우희가 우성 알파라고 형질을 사기 쳤더라도
그는 여전히 OL 그룹 자제였다.

나중에 회장님의 분노를 사서 그들의 집안이 다 망할지 몰랐다. 겁에 질린 오메가들은 여우희의 눈치를
보며 친구를 말렸다.

“민철아. 우희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맞아. 이러다가 우리 다 거지 되면 어떡해.”

김민철도 아차 싶었다. 아무리 여우희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여도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이제 됐어. 일어나.”

여우희는 속으로 줏대 없는 김민철을 욕했다. 어떻게 무릎을 꿇려 놓고 그냥 일으켜 세운단 말인가. 입에


좆을 물리든지, 발로 차서 넘어트리든지 해야지.

“너 오메가들 억제제 훔친 거 들키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휴학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았어. 아예 다른 학교로 편입 갈게. 그러니까 제발 그 영상 지워 줘.”

여우희는 협박을 받자마자 바로 굽히고 들어갔다. 울먹이며 두 손을 꼭 모은 채 김민철을 쳐다봤다.

앞으로 이 영상을 지우지 않고 자신을 협박해 줄 걸 생각하니 엔도르핀이 샘솟았었다. 그런데 이 멍청한
오메가들이 기껏 얻은 영상을 그 자리에서 지우고 핸드폰을 확인까지 시켜 줬다. 뭐 이렇게 착한 녀석들이 다
있나 한심했다.

“최대한 빨리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네가 오메가라는 걸 학교 게시판에 공개할 거니까.”

“으응.”

너무 시시한 결말에 여우희는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그가 겁먹어서 그런 줄 알고 오메가 녀석들이 오히려


위축되었다.

“집에 말하기만 해. 아주 가만 안 둘 거야.”

“그래, 알았어. 비밀 엄수할게. 그럼 이만 가 봐도 될까?”

좋다 말았다. 자신 같으면 그 영상을 가지고 바지를 벗으라고 시킨 뒤에 사진을 찍었을 거다. 그런


다음에 육체적으로 농락도 하고 돈도 빼앗고 화장실 변기에 얼굴도 처박았다. 어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어쩜, 이렇게 인재들이 없는 걸까.

하긴 부잣집 범생이들만 모인 사립 명문대학교에서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됐다. 원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 똥통 지하대학교에나 가야 쓰레기들이 자신을 괴롭혀 줄 터다.

편입은 무조건 지하대로 가야겠다. 지하대로 편입하려면 부모님은 물론 여진우를 설득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된다. 한국대처럼 청하대보다 좋은 명문이면 몰라도, 자신이 꼴통들 소굴인 지하대로 편입 간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할 게 분명했다.

왕따여서 편입하겠다고 하면 엄마 아빠가 학과장까지 소집해 난리를 칠 것 같고, 여진우는 가해자들을


찾아내 그 집안을 풍비박산 내겠지. 조용히 편입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아, 맞다. 강도희가 그 학교 다녔지!

보육원에서 자신을 구해 줬던 친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는 설정으로 가야겠다. 보육원 이야기를 꺼내면
엄마 아빠가 눈물을 펑펑 쏟겠지만 불효자는 원래 답이 없다. 가짜긴 하지만, 이미 형이랑 붙어먹기로 계획한
주제에 이런 걸로 부모님을 걱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영문학개론 강의를 듣기 위해 강의실로 들어갔다. 옆자리에 앉은 학생이 뭐 좋은 일


있냐고 물었다.

“아니, 왜?”

“얼굴에서 광채가 흘러서.”

“그래? 세수하고 와서 그런가?”

손으로 뺨을 매만진 여우희는 그에게 눈을 휘며 수줍게 웃었다. 베타 주제에 자신을 넋 놓고 바라봤다.


늦게 들어와 뒷자리에 앉은 알파 친구들이 질투심에 미쳐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뭐 이런 생활도 적당히 재미있긴 하지만 역시 양아치 무리에 던져져 그 녀석들에게 굴려지는 게 더


기대됐다. 학창 시절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지하대에서 첫날부터 괴롭힘당하기 딱 좋은 핫 플레이스, 인적 없는 교내 한구석에 불려 가는 상상을


했다. 허벅지 안쪽이 파르르 떨렸다. 좆 구경도 못 해 본 구멍 주제에 벌써부터 홍수가 났다.

자신이 오메가라 발기하는 것보다 뒤가 젖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강의실 한복판에서 시도 때도 없이


좆을 세웠을 거다.

구멍이 움찔거리며 또다시 패드가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마개를 사다가 틀어막을 수도 없고 이걸 원.


어서 빨리 이 음란한 구멍을 책망하며 혼내 줄 마스터에게 몸을 의탁하고 싶다.

아아, 형아. 도대체 날 언제 따먹을 거야. 자꾸 기다리게 하면 나 때려 주는 쓰레기 알파한테 가 버릴


거다?

***

여우희는 교수실에 들러 학과 교수님에게 상담할 게 있다고 했다. 교수님은 1 학년 학생회장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줬다. 여우희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왜 그러니, 우희야. 무슨 일이야. 혹시 공부하는 데 힘든 일 있니?”

“저…… 교수님. 사실 제가 편입을 하고 싶어서요.”

“그게 무슨 소리니. 부모님은 그 사실 아셔?”

“네. 이미 상담하고 허락받았어요.”

거짓말이었다. 부모님이 알면 무조건 반대할 거라 일단 저질러 보고 허락받을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형


방에 끌려가서 훈육을 당하면 좋고 말이다.

“혹시 학과가 적성에 안 맞으면 복수 전공 먼저 해 보는 게 좋지 않겠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렴.”

여우희는 자신을 말리는 교수님이 참 좋은 분이라 생각했다. 역시 편입을 하지 않고 개기다가 오메가인


걸 들키는 편이 나으려나?

자신이 세워 둔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그렇게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을 성실한 서브미시브로 만들어 줄 갈림길이었다.

새로 편입한 대학교에서 쓰레기들한테 괴롭힘당하는 행복한 나날도 좋고, 오메가라는 게 밝혀져


여진우라는 완벽한 마스터에게 매도당하는 것도 좋다. 적당히 교수님을 설득해 보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형질이
밝혀지도록 내버려 두자 싶었다.

“사실 제가 어렸을 때 헤어진 친구가 있는데, 지하대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소식을 들어서요. 제 목숨을
살려 준 정말 고마운 친구예요. 꼭 다시 만나서 학교를 함께 다니고 싶은데 교수님이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교수님은 학교 밖에서도 그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여우희를 설득했다. 여우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드폰을 보여 줬다. 형에게서 온 문자와 전화 통화 목록이었다. 1 시간마다 동생이 뭘 하고 있는지
캐물었다.

“우리 형이 무서운 분이라 저 학교 끝나면 무조건 집에 가야 해요. 그래서 학교가 아니면 그 친구랑 다시
만날 수 없어요.”

“하지만 청하보다 더 좋은 대학교로 가는 거면 모르는데 지하대가 뭐야. 그런 데 나와서 뭘 하겠다고…


….”

교수는 여진우 전무가 입학식 날 그를 불러서 한 명령을 떠올리며 말을 줄였다. 자신은 여우희에게
연애시킬 생각이 없으니,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말해 줄 수 있겠냐고 했지. 그 역할을 잘해 내면 보상을 줄
거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벌을 줄 거라며 현찰 1 억 원을 건넸다.

그 돈을 받은 대가로 매일 여우희 관찰 일지를 써서 여진우 전무에게 이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만일


여우희가 편입을 한다면 드디어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수는 심적으로 흔들렸다. 불쌍한 여우희의 앞날을 생각하면 절대 똥통 학교로 편입을 보내면 안 되는데,
여진우 전무가 일요일마다 불러 제대로 관찰 일지를 쓰지 못했다며 화풀이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우희가 강의를 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일일이 다 어떻게


알겠는가. 제 강의만 듣는 것도 아닌데. 이건 정말이지 사람의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돈을 돌려주고 싶어도
이미 아파트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느라 다 써 버려서 그럴 수도 없었다.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 몰랐다.

“교수님, 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OL 그룹 둘째인데 무슨 걱정을 하세요. 저 그 친구 꼭 만나고


싶단 말이에요.”

교수는 고작 그딴 이유로 똥통 대학교로 편입을 하겠다고 조르는 여우희를 더 이상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여진우 전무의 덫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 알았어. 학과장님께 말씀드려 볼게.”

“교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여우희가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교수실을 빠져나갔다. 그는 예쁘고 착한 학생인데 정말 형을


잘못 만나서 안됐다는 동정심을 품었다.

교수는 학과장을 찾아갔다. 어차피 거절당할 거 같긴 한데 말이나 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네? 정말요? 정말 여우희 편입하라고 해요?”

“그래요. 김 교수. 전무님께서 우희 학생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들어주라고 했습니다. 회장님과


사모님께도 허락받았다면서요.”

학과장은 놀랄 만큼 싱겁게 여우희가 내고 간 자퇴서를 수리했다.

***

지하대학교로 편입하는 일은 무척이나 쉬웠다. 학점은행제로 모자란 학점을 채우니 지하대학교 3 학년이
될 수 있었다. 청하대 출신인 여우희가 편입하고 싶어 하자, 직접 학과장이 그에게 전화해서 전액 장학생으로
모셔 가겠다고 했다.

학과의 특성상 3 학년은 실습을 해야 하는데 기초가 아예 없는 편입생이 잘 적응할 리 없었고, 그래서
학과장이 1 학년 수업부터 들으라며 배려해 줬다. 잘하면 지금 패션디자인과 1 학년인 나태준과 마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디데이였다. 평소보다 1 시간 일찍 일어나서 몰래 새 학교에 가려고 했건만 헉! 형이


잠자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더 자. 아직 일러.”

“형, 언제부터 있었어요.”

여진우가 여우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전에 왔어.”

혼자서 등교할 생각이었는데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우리 우희가 왜 그럴까. 형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저…… 형. 사실 제가요. 다른 대학교로 편입했어요.”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있던 여진우의 얼굴에서 금이 가는 환상이 보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췄다.
여우희는 꿀꺽 침을 삼켰다.

“난 모르던 소식인데? 누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네 자퇴서를 받아 줘.”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는 듯 확신을 담아 말했다. 여우희는 이불을 끌어 올려


눈만 가린 채 여진우의 눈치를 살폈다.

“예전에 보육원에 갔을 때 제 목숨을 구해 준 친구가 있어요. 근데 그 친구가 지하대학교에 다닌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서요. 저 꼭 그 친구랑 학교 다니고 싶어요. 형, 허락해 주세요. 네?”

여우희의 머리에서 여진우의 손이 떨어졌다. 그가 부드럽게 뺨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우희야, 허락은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받아야지. 지금 사고 다 쳐 놓고 말하는 건 통보라고 하는


거야.”

“죄송해요.”

“그리고 지하대학교는 너처럼 순한 아이는 다닐 수 없는 잡종들이나 다니는 더러운 데야. 내가 널 어떻게


그런 곳에 보내겠니. 편입 이야기는 내가 취소해 둘게.”

여진우가 입매를 굳힌 채 여우희의 양 볼을 아프게 꽉 쥐었다. 볼살이 손가락에 짓눌렸다. 여우희의


입술은 붕어처럼 동그랗게 벌어졌다.

“싫어요. 나 지하대 갈래요.”


“내 착한 동생이 왜 이럴까. 응?”

그는 어떻게든 자신을 타이르려고 했고, 자신은 혼나고 싶어서 고집을 부렸다.

“도희랑 같이 학교 다닐 거예요.”

낯선 이름을 들은 여진우는 내팽개치듯 여우희의 얼굴을 놓았다. 여우희의 인간관계에서 아무리


하찮더라도 그가 몰라도 되는 존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우희야, 형한테 혼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지?”

“형, 잘못했어요.”

겁에 질린 여우희가 절박한 표정으로 여진우의 팔에 매달렸다. 그는 동생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고


침대에서 끌어 내렸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형, 잘못했어요. 우희가 잘못했어요.”

여우희는 어떻게든 용서를 받으려는 사람처럼 그의 다리에 매달려 얼굴을 비볐다. 여진우는 귀여운 동생의
애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용인에게 1L 생수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여우희는 벌을 받기도 전에
세상이 끝난 것처럼 오열했다. 여진우는 사용인에게 생수병을 받으며 방문을 잠갔다.

그제야 그 누구도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달은 여우희가 얌전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입 벌려.”

여우희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을 벌렸다. 생수병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마시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다. 여우희. 제대로 안 할래.”

여진우의 다그침을 받은 여우희는 목젖을 크게 출렁이며 물을 마셨다. 금세 물배가 차올랐다. 입을 닫고


무릎걸음으로 형에게 다가가 다시 애원했다.

“형, 잘못했어요. 너무 배불러요.”

“여우희. 누가 벌받다가 자세 흩트리라고 했어.”

“흡. 용서해 주세요. 우희가 잘못했어요.”

생수에 젖은 예쁜 얼굴이 겁에 질려 여진우를 올려다봤다. 여진우는 오싹한 전율에 뇌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는 생수병 주둥이를 여우희의 입에 쑤셔 박았다.

“다 마셔. 너 이거 다 마실 때까지 절대 안 끝나니까.”

고개를 든 채 생수병을 입에 문 여우희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목구멍에 미처 흘러들지 못한


물줄기가 입 밖으로 나와 잠옷 상의를 적셨다. 상앗빛 실크 잠옷이 물에 젖어 상체를 휘감았다.

여진우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우리 우희가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된 걸까. 탐스럽게 여문 가슴과


젖꼭지가 젖은 실크 잠옷 위로 도드라졌다. 그곳에 시선을 빼앗긴 그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생수병 입구를 뱉어 낸 여우희가 콜록거리며 아픈 목을 손으로 붙잡았다. 심하게 기침하느라 잠옷을


제외한 온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이렇게나 야해 빠진 게 그의 동생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흣. 형아, 우희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불쌍하게도 여우희는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불쌍한 꼴이 그의 심기를 살살


거슬리며 발정 나게 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콧등, 광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도 울어서 코가 막혔는지 살짝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거렸다. 여진우는 우는 모습이 예쁘기 그지없는 동생을 보며 손으로 눈물을 닦아 줬다.

어렸을 때부터 알아봤다. 자신의 것이 울 때 얼마나 예쁜지. 그래서 앞으로 자신이 무진장 울리겠구나
싶었는데 결국 이리 되었다.

여우희는 벌써 오줌이 마려운지 무릎 꿇은 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우성 알파는 좆이 커서 사정도,


소변도 잘 참을 수 있는 편인데, 우리 우희 좆은 어떻게 생겼길래 이렇게 인내심이 짧나 궁금할 정도다.

“공부도 잘하는 녀석이 왜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할까. 설마 내가 너 잘못한 거 모를까 봐 그래?”

“아니, 아니에요.”

놀란 여우희의 어깨가 화들짝 튀어 올랐다. 고개를 내저으며 동그란 눈을 들어 여진우의 눈치를 살폈다.
착하고 순하고 공부도 잘하는 완벽한 동생이었다.

어릴 때 보육원에 보내진 기억 탓인지 그는 학교에 입학하고 모든 시험에서 100 점을 받아 왔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려 애를 쓰는 게 눈에 보였다. 이렇게 예쁜 여우희가 기를 쓰고 예쁨받고자 하는데 부모님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진우는 그런 여우희가 안타깝고 기꺼웠다. 본래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알파 형질과 달리 순종적인


오메가처럼 구니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런 동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돕는 게 아니라 더더욱 매몰되게 부추겼다. 예뻐는 해 주되


예쁨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버려질 거라는 암시로 끊임없이 주어 여우희의 기를 죽여 왔다. 그는 다정한 형인
동시에 무서운 주인님이었다.

그 누구도 여진우가 이 집에서 여우희를 혼내는 걸 말릴 수 없었다. 그는 생수병에 반이나 남은 물의


양을 확인했다.

“뭐 해. 형 출근 준비 해야 해. 얼른 마셔.”

“흡. 흣. 훌쩍.”

여우희가 생수병을 끌어안고 찔끔찔끔 마셨다.

“우희야. 형이 너 혼내는 거 싫어?”

“아니에요.”
싫은 주제에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거짓말이 들키지 않을 줄 아나 보다. 거짓말을 더럽게 못한다.
그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남은 거 다 마시는 데 5 분 준다.”

제한 시간을 정해 주니 여우희가 언제 홀짝이며 마셨냐는 듯 생수병을 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꾀를 부려 입가로 흘리는 게 거의 반이었지만 봐줬다.

그는 빈 생수병을 내밀며 칭찬해 달라는 듯 올려다보는 동생을 비난했다.

“네가 잘못해서 벌받는 건데 내가 칭찬까지 해 줘야겠니?”

“아니요.”

아니긴. 울먹이는 목소리부터 숨기지 그러니.

여진우는 고개 숙인 동생의 삐죽 내민 입술을 보며 몰래 웃었다. 고개를 숙이느라 길어진 여우희의


목덜미를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 줬다. 솜털이 곤두선 게 느껴졌다.

귀엽기도 하지.

“이리 올라와.”

여우희가 칭찬을 받는 줄 알고 활짝 웃으며 그를 다시 올려다봤다. 그는 다리를 벌리고 기다렸다.


여우희가 조심스럽게 그의 허벅지에 올라와 앉았다.

그는 여우희의 자세를 교정해 줬다. 등을 그의 상체에 기대게 하고, 다리는 M 자로 벌리게 하고 오금에
팔을 걸어 고정했다. 여우희가 불편하다며 칭얼거렸다. 여우희는 모르지만 앞으로 시도 때도 없이 침대 위에서
취해야 할 자세였다.

여진우는 동생이자 같은 알파인 여우희에게 발정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무리 방학
때마다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도 이 병증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다른 예쁘고 잘생긴 오메가를 보고 달라질 줄 알았으나 전혀 아니었다. 여우희가 아닌


오메가들은 그에게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생을 상상하며 발기하는 미친 새끼였지만,
돌멩이를 보고 발기하는 미친 새끼는 아니었다.

14 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광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니 여우희가 참고 그의 좆을 받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오랫동안 굴복하는


법을 익혔으니 좆물도 잘 받아 내게 되리라 싶었다.

“형. 흐. 나. 나 오줌 마려워요.”

이 자세로는 조금만 시선을 내려도 가슴에 찰싹 달라붙은 실크 잠옷이 한눈에 보였다. 젖어서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야한 꼴이었다. 잠옷 상의를 찢어 버리고 우리 우희의 젖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다.

여진우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가 이런 여진우의 머릿속을 알았으면 이번 겨울에는 한 달 동안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병원에 가뒀을 것이다.
‘그렇지만. 선생님. 내 것 좀 보세요. 그 어떠한 알파를 데려다 놔도 내 동생을 보면 좆을 세우고
구멍을 찢어 놓고 싶을 겁니다. 저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다만 내가 여우희에게 미쳤다는 것만큼은 인정하도록
하죠.’

여진우는 그의 품에 들어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여우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세게 결박했다.

“형, 형아. 나 화장실. 화장실 갈래요.”

“우희야. 너 아직 벌받는 거 안 끝났어.”

“으읏. 어떡해. 나 화장실. 화장실 갈 거야.”

여우희가 도망치려고 들었다. 여진우는 버둥거리는 다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쉬. 쉬.”

그는 여우희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백색소음을 들려줬다. 가뜩이나 오줌이 마려운데 배뇨를
부추기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오자 여우희가 엉엉 큰 소리로 울었다. 여진우는 말랑말랑한 귓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다시 ‘쉬~.’ 했다.

“으으응. 안 돼. 안 돼.”

다리가 M 자로 벌려진 채 여진우에게 사로잡힌 여우희가 결국 바지에 소변을 지리기 시작했다. 잠옷 바지


앞이 동그랗게 젖어 들었다. 얇은 천이 다 흡수하지 못한 오줌은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흑. 어떡해. 흑. 어떡해.”

바지에 오줌을 싼 오줌싸개가 창피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여진우는 소변을 지린 여우희를 드디어


풀어 줬다.

여우희가 바닥으로 내려가더니 마저 오줌을 싸기 위해 두 무릎을 꼭 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와, 씹.


이 녀석 왜 이렇게 야하게 오줌 싸는 거야.

“흐응. 읏. 으으.”

마치 뒤로 애액을 흘리는 오메가처럼 감미로운 콧소리를 냈다. 여진우는 오줌을 다 싼 여우희를 일으켜
세웠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눈물을 닦아 내는 게 영락없이 그의 보호를 요하는 오메가의 모습이었다.

그는 오줌에 젖은 여우희의 바지와 드로어즈를 한꺼번에 내렸다.

“그래, 그랬구나. 우리 우희가 아직 여기는 덜 자라서 오줌을 잘 못 참는 거였어.”

분홍색 성기가 그와 같은 물건이라는 게 믿기지 않게 작고 예뻤다. 털 한 올 없이 뽀얀 사타구니에


묻어난 오줌을 혀로 핥아 주고 싶은 정도였다. 이런 좆을 달고 그와 같은 우성 알파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우희에게만 서는 좆 때문에 다른 오메가들 좆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우리 우희 좆은 다른


오메가들보다 훨씬 말도 못 하게 예쁜 것 같았다. 이건 그가 팔불출이어서 그리 느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형, 보지 마세요.”
여우희가 허벅지 사이를 붙이고 분홍색 좆을 손으로 숨겼다. 여진우는 잠옷 상의를 들쳐서 보다 잘
보이게 했다.

“뭐 어때. 형한테 숨기는 거 있으면 안 돼. 우희가 형한테 숨기는 거 생겨서 혼났잖아. 그런데 아직도
숨기고 싶은 게 있어?”

“아, 아니요.”

여우희가 무릎을 비비며 곤란해했다. 여진우는 조심스럽게 좆을 가린 손을 치워 냈다.

“하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손에 넣고 마구 주물러 버리고 정액을 뿜어내는 걸 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이복동생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참아야 한다고 이성이 외쳤다. 하지만 그의 본능은 잠옷 상의
단추를 아래에서부터 풀어 올라가게 했다.

단추가 한 개씩 풀릴 때마다 잠옷이 벌어지며 뽀얀 우윳빛 피부가 드러났다. 잘록한 허리와 귀여운
배꼽이 보였다. 그가 좆을 넣어 주면 이 아래가 불룩해져 존재를 알릴 터다. 오메가들의 자궁이 위치한
자리이기도 하다. 손으로 그 소중한 부위를 둥글게 쓰다듬어 주고 단추를 마저 풀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탐스러운 가슴이 있었다. 여진우는 손으로 덥석 여우희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부드럽게 뭉크러지는 가슴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젖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오메가의 가슴처럼 말랑말랑하다.
이런데 알파일 리가 없다.

손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분홍색 유두를 본 순간 참을 수 없었다. 덮치듯 여우희를 바닥에
넘어트리고 그 위에 올라탔다.

“형, 형아!”

여우희가 발로 바닥을 파닥파닥 두드리며 반항했다. 여진우는 여우희의 가슴에 달라붙어 젖꼭지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침이 입 안 가득 고였다.

“읏. 형! 형 싫어요!”

여우희가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때렸다. 여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힘으로 여우희의 다리를 벌려 냈다.
그의 밑에 깔려 무기력하게 눈물만 흘리는 가여운 동생을 보며 바지 지퍼를 내리던 찰나였다. 잠가 둔 방문이
열렸다.

여우희가 그를 봐야 하건만 고개를 돌려 문틈 사이를 쳐다봤다. 감히 시선을 돌린 자신의 것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턱을 잡아 고정했다.

“흐흑. 무서워요. 형. 흑. 싫어요.”

“진우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이 미친 새끼가!”

여진우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여 회장이 올 줄은 몰랐다. 여우희가 얼른 벌어진 잠옷 상의를 여며 가슴을


가리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는 좋은 시간을 방해한 여 회장을 싸늘한 눈으로 노려봤다.

“아버지, 무슨 이상한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이건 그냥 벌주는 거였습니다. 우희가 제멋대로


지하대학교로 편입 절차를 밟았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동생 옷을 벗기고.”

“마치 좆질하려는 것처럼 굴 수 있냐고요?”

여진우는 차마 여 회장이 하지 못한 말을 매듭지었다. 그는 아쉽다는 듯 여우희를 한 번 더 눈에 담고


반쯤 발기한 물건을 갈무리해 바지 안에 넣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나 정신병원에 보내야겠죠?”

그는 활짝 웃으며 여 회장을 도발했다. 인생의 절반을 정신병원에 갇혀서 지냈다. 그곳은 그의 광기를
억누를 수 있는 치료소가 아닌, 온종일 여우희를 떠올리게 하는 생각의 방일 뿐이었다.

여 회장은 미친 아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겁에 질린 둘째를 챙겼다. 빈 생수병과 오줌 냄새, 헐벗은 둘째.


그 모든 게 여진우가 여우희에게 가한 학대를 알려 줬다. 여 회장은 씻으라며 여우희를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여진우의 뺨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이 미친 새끼야.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 거야! 우희 네 동생이다. 이제 마음 다잡을 때도 됐잖아.”

여진우가 찢어진 입가를 손으로 문질러 일부러 상처를 더 찢었다. 여 회장은 첫째의 반항심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 우희가 아무래도 오메가 같아요.”

더 이상 들어 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여 회장은 이 미치광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용인을 불러 여진우를 정신병원에 가두라고 했다.
여진우는 자동차 뒷좌석에 밀어 넣어져 눈 감고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정신병원 가는 길을 차창 너머로 바라봤다.

“하아.”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김을 서리게 하고 그림을 그렸다.

“우희야, 조금만 기다려. 형이 금방 돌아와서 네 배 속에 좆물 가득 부어 줄게.”

운전기사는 여진우 전무의 혼잣말을 듣고 소름이 돋아 얼른 룸미러를 향했던 시선을 치웠다. 여진우가
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

발정 난 오메가의 전신을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쫑긋 귀를 세운 토끼처럼 앙증맞은 젖꼭지를 세운


여우희는 차가운 물세례 아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심히 엉덩이를 샤워 부스 벽면에 문질렀다.

불투명한 유리에 동그란 분홍색 구멍이 들러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찐득거리는 애액이 쏟아져 나왔다.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린 점액질은 느릿느릿 안쪽을 기어가다가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 으으.”
밖에서 여 회장과 여진우가 싸우고 있을 거란 생각에 마음 놓고 신음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탐스러운
복숭아 같은 엉덩이가 연신 유리 벽에 짜부라졌다가 탄력 있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우희는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쭉 내민 채 헥헥 숨을 몰아쉬었다. 빨리 마스터가 좆으로 이 음탕한


구멍을 혼내 줬으면 좋겠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형도 자신을 좋아했던 거다.

여우희는 겁에 질린 척하는 자신을 몰아붙이던 완벽한 지배자를 떠올리며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손으로 구멍을 쑤시고 좆을 문질러서 어서 이 열감에서 해방되고 싶었지만, 감히 노예가 주인의 것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됐다.

아무리 구멍과 좆이 여우희의 몸에 붙어 있다고 해도 마스터를 위해 준비된 거지,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두 무릎을 꼭 붙인 채 비비던 여우희는 몸을 ㄱ자로 꺾었다. 상체 또한 좁은 샤워 부스에 문지르며
엉덩이를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가 버렸다.

좁은 공간 안으로 달콤한 난초꽃 향의 페로몬이 가득 차올랐다. 몸을 씻는 거야, 하는 핑계를 대며


보디워시 거품이 몽글몽글 맺힌 샤워 타월로 한껏 예민해진 젖꼭지를 문질렀다.

“흣.”

박박 젖꼭지를 문지르며 자극을 즐겼다. 여진우가 싫다고 하는 자신을 묶어 놓고 뒤로 엎어 놓은 채 좆을


박는 환상에 젖어 들었다.

‘형, 형아. 우희 아다 맛있어요? 형아를 위해 우희가 매일 허벅지를 찔러 가며 참았어요. 오이도 가지도


당근도 냉장고에 있어서 몰래 쑤셔 박고 싶었는데 형아 좆 먹으려고 미개봉으로 놔둔 거예요.’

물론 자신은 진짜 관계를 맺을 때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다. 여진우와 자는 걸 자신이 즐기는 걸 알면


강압적인 섹스가 성사될 수 없다. 평생 그에게 강압적으로 당하려면 사랑하지 않는 척해야 했다.

여진우는 그를 싫어하는 자신을 갖겠다며 협박과 벌을 일삼으며 괴롭히겠지. 아. 어떡해. 방금 갔는데


또 싸겠다. 이러다가 좆도 먹어 본 적 없는 주제에 시오후키를 해 버릴 판이었다.

재빨리 몸을 씻고 더러워진 샤워 부스 안을 청소했다. 열심히 노동하고 나니 이런 걸 해 본 적 없는


도련님 육체가 말을 안 들었다.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수건으로 몸에 남은 물기를 겨우 닦아 내고
샤워 가운을 걸쳤다.

여우희는 화장실 문을 살짝 열고 방을 살폈다. 벌써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여진우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자신이 싼 오줌도 깨끗이 닦여 있고 생수병도 없었다. 생수병은 기념으로 가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침대에 앉아 있던 여 회장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얼굴만 빼꼼히 내민 여우희를 보고 일어났다.

“우희야, 나와도 돼.”

“아빠, 형은 어디 갔어요?”

설마 진짜 정신병원에 보낸 건 아니겠지?

여우희는 불길함을 떨치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그 모습을 본 여 회장은 여진우와 마주칠까 봐


여우희가 겁내는 거라 착각해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는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지도 못한 둘째를 보며 ‘이렇게
어린 것을’ 하며 혀를 찼다.
착하고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순한 여우희와 달리 여진우는 정신병으로 부모 속을 지독하게
썩였다. 아무리 정신병원에 보내도 온갖 감언이설로 정신과 의사를 속이고 정상인인 척 집에 돌아왔다.

그럼 또다시 동생을 자기 오메가처럼 지독하게 통제하며 집착했다. 우성 알파의 무서운 성격과 흉포한
페로몬에 이 집안사람들은 꼼짝을 못 한 채 숨을 죽이며 살아갔다.

가끔 여 회장은 여우희가 사실 그의 아들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또한 우성 알파가 아닌 우성 오메가여서


첫째한테 쥐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오메가와의 사이에서 낳은 여진우와 사고로
일어난 끔찍한 결과에 불과한 여우희는 그에게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우희가 보육원에서 돌아온 뒤, 얼마나 그들에게 사랑받고자 노력했는지 알기에 여 회장과 아내도 불쌍한
둘째를 품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미움받을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샤워 가운 밑단을
만지작거리는 여우희다. 인간이라면 아무리 내 새끼가 귀해도 여우희를 내칠 수는 없었다.

“아빠. 형 저 때문에 정신병원 갔어요?”

커다란 눈에 눈물이 왕방울만 하게 고이더니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여 회장은 샤워 가운 밑단을


만지느라 드러난 뽀얀 허벅지 사이에 시선이 뒀다가 곧 혀를 찼다.

정말이지 오메가 같은 아이였다. 이러니 내 아들이 갖고 싶다고 미치는 거 아니겠는가.

하나 아무리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결국 우성 알파였다. 절대 안 될 소리다. 오메가이기만 했어도 여


회장은 여진우를 위해 여우희에게 새 신분을 만들어 줘 둘을 결혼시켰을 거다. 여우희가 여진우의 무서운 성정을
견디지 못해 괴로워하겠지만, 그딴 건 사실 금쪽같은 첫째만 잘 지낼 수 있다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니야. 형 미국 갔어.”

“네?”

울먹울먹하는 눈이 여 회장을 올려다봤다. 자기 때문에 형이 미국에 간 줄 알고 우물쭈물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여우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축 늘어진 어깨에서 샤워 가운
한쪽이 흘러내렸다.

하얀 목덜미와 움푹 파인 쇄골이 나왔다. 각인한 알파인 여 회장은 덤덤하게 둘째의 샤워 가운을 고쳐


입혔다. 이 아이의 미색이 내 아들을 망쳤구나.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제가 잘못한 건데요. 제가 잘못해서 형이 혼낸 거였어요.”

어려서부터 여진우에게 폭력적인 집착과 벌을 받아 온 탓에 여우희는 그 상황이 엄청나게 잘못되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 회장은 ‘그렇지 않아.’ 하며 그걸 고쳐 주지 않았다. 여진우가 돌아오면
여우희가 계속 그의 장난감 노릇을 해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희가 엄마 아빠랑 형 몰래 편입했다며. 우희는 혼날 만했어. 그런데 형이 미국 간 건 일


때문에 간 거야. 형은 OL 그룹 후계자니까 미국에서 중요한 사람을 만나야 하거든.”

여우희가 정말 자신 때문에 미국 간 게 아니냐고 물었다. 여 회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여우희 때문에


여진우가 벌을 받는 거면, 여진우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의미밖에 안 됐다.

“다행이다. 난 또 나 때문에 형이 미국 간 줄 알고. 흑.”


안심한 여우희가 주먹 쥔 손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러서 눈물을 닦아 냈다. 여 회장은 미련할 정도로
착한 둘째가 안쓰러워서 꼭 안아 줬다. 어쩌자고 이 집에 들어와서 이런 고생을 하며 지낼까. 개인적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은 했다.

“형이 우희 미워해서 혼낸 거 아니야. 네가 잘못될까 봐 조금 과하게 혼냈는데 그건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알지?”

“네에, 흑. 알아요.”

“그래.”

여 회장은 여우희를 놓아줬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밥 먹게 내려오라는 말을 남긴 후 먼저 방을 나갔다.


여우희는 언제 울었냐는 듯 싸늘한 눈이 되었다.

‘기껏 기대했는데 갑자기 미국에 가? 그런 짓을 해 놓고?’

여진우는 어려서부터 여우희와 달리 OL 그룹 후계자 수업을 받기 위해 자주 외국을 오가곤 했다.


여우희는 그가 없는 방학 때마다 너무 심심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모두가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다뤄 주는 환경 속에서 슬레이브 성향인 그가 살아가는 건 척박한


사막에 물도 없이 떨어진 것과 같았다. 여진우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달력에 표시하곤 했다.
해외에 있는 형에게 보낼 편지를 쓰며 하루하루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니 여씨 집안의 유일한 적자인 그가 사업을 위해 떠난 걸 이해 못 한다는 게 아니다. 그저 말도 없이


가 버린 게 서운하고 배신감 드는 거였다. 자신의 가슴을 말랑한 복숭아처럼 베어 물었으면서 그냥 가 버리다니.

이건 자신의 순정을 짓밟는 짓이었다. 그를 위해 샤워하면서 구멍으로 자위하고 싶은 걸 열심히 참았는데


이렇게 배신할 줄이야. 두고 보라지. 마스터 성향을 가진 우성 알파가 여진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 한 명쯤은 나올 거다.

물론 여진우처럼 엄청난 부와 권력으로 힘없는 자신을 압박할 수 있는 존재는 다시없을 테지만, 아직


지하대학교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돈 많은 집안에서 버린 양아치들이 가난한 오메가들을 그렇게 괴롭힌다고 그러더라. 인터넷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 불쌍한 왕따들을 돕는 척하며 찍혀서 쓰레기 알파들의 노리개로 전락해 보겠다.

여우희는 샤워 가운을 벗어 던졌다. 화장대에 놓인, 진주 가루가 함유된 미백 에센스를 열심히 손에 짜서


젖꼭지와 구멍에 펴 발랐다. 분홍색 젖꼭지에 은은한 반짝임이 돌며 더욱 먹음직스러워졌다.

화장대 거울을 향해 뒤돌아서서 엉덩이 볼기를 두 손으로 벌려 구멍을 확인했다. 무언가를 넣어 본 적


없는 예쁜 구멍은 여우희가 봐도 군침이 돌았다.

참으로 예쁘게 가꿔 뒀다. 누가 자신의 주인님이 될지 모르겠으나 실컷 예쁨받겠다. 여우희는 거울에


비친 분홍색 구멍을 보며 히히 웃었다. 여진우가 사라졌으니 이제 마음 놓고 학교에 가야지.

자유롭게 옷을 입는 청하대학교와는 달리, 철저하게 사립인 지하대학교는 제복을 입었다. 조직폭력배


출신 기업가가 우수한 무력 집단을 양산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곳 출신 체대생이면
조폭들이 믿고 데려간다고 들었다.
알몸으로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원래 지하대에서 입는 제복과 같은 디자인이지만, 소재는 최고급을
사용해 만든 제복을 입었다. 옷 소재가 비싸지니까 확실히 달라 보였다.

지하대 와이셔츠에는 하늘색 체크무늬 칼라가 있었다. 디자인만 봤을 때는 촌놈 같다 싶었는데 자신이


입으니까 이온 음료 광고를 위해 코스튬을 한 모델처럼 청량해 보였다.

회색 제복 바지까지 갖춰 입고 하얀색 발목 양말을 신었다. 걸을 때마다 바짓단이 올라가 복숭아뼈가


살짝 보였다. 식당에 내려가니 이미 여 회장과 김민정이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김민정이 언제나처럼 전주댁을 불렀다.

“전주댁, 우리 여희 홍삼 가져와.”

“예, 사모님.”

여우희는 유리컵에 든, 키가 쑥쑥 자란다는 어린이 홍삼을 들이켰다. 김민정이 제복을 보고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여우희는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겁에 질린 척 어깨를 모았다.

“우희야. 응? 무슨 일이야. 엄마한테 말해야 알지.”

“엄마, 그게요. 사실 제가 엄마 아빠 몰래 지하대로 편입했어요.”

“뭐! 그게 무슨.”

놀란 김민정이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기가 어떤 데인지 알고 가려고 하는 거냐면서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항상 우아한 사모님이었던 김민정이 보인 과격한 모습에 여 회장도 놀라서 아내를 쳐다봤다.

“그딴 데 갔다가 다쳐서 오면 어떡해. 여보, 여보가 말려 봐요. 공부 잘하던 애가 왜 그런 데를 가!”

“엄마. 나 꼭 지하대 가고 싶어요. 거기에 나 보육원에서 구해 준 친구가 다닌대요.”

여우희는 제 발끝을 노려보며 눈물을 짜냈다. 여진우가 자신을 따먹을 것처럼 굴어 놓고 미국으로 떠난
걸 떠올리니까 금방 울 수 있었다.

“도희 아니었으면 저 그때 거기서 맞아 죽었을 거예요. 밥도 다 빼앗기고 아무것도 못 먹었을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민정은 보육원에 대한 충격적인 기억을 되살렸다.

여섯 살 여우희는 배에 커다란 보라색 멍을 매달고 집에 돌아왔다. 불쌍한 아이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에게 여우희가 있었던 보육원을 조사해 달라고 했다.

보육원 원장이 정부 보조금을 빼돌려 아이들은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선생들도 제대로 월급을
받지 못해 아이들을 방치하고 학대했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지낸 아이들은 약한 아이들한테 집단 폭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보육원 원장은 공금 횡령죄로 구속되었다. 선생들은 그동안 못 받은 월급을 돌려받았고 아동 학대를 한


것으로 밝혀진 선생은 징역형을 받았다. 그때 남편이 조사해다 준 자료에는 여우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보육원 입소 첫날 아이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후 피를 토했다고 했다. 강도희라는 아이가 그런
여우희를 돌봐 줬다고 했다. 그녀는 사례를 하기 위해 강도희의 행방을 찾았으나 아버지와 떠났다는 소식만
접했을 뿐이었다.

여우희에게는 강도희가 생명의 은인이기에 지하대학교 같은 쓰레기통에 들어가겠다는데도 선뜻 말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학교에 갔다가 여우희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아내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여 회장이 그녀의 손등을 두드려 줬다.

“여보, 내가 학교에 조치를 취해 둘게. 너무 걱정하지 마.”

“정말이죠? 정말 여보가 우리 우희 보호해 줄 거죠?”

“그럼. 감히 누가 OL 그룹 둘째를 건드려.”

여우희는 눈치 빠르게 부모님의 허락을 알아차렸다. 아무런 사고 없이 학교 잘 다녀오겠다며 활짝 웃었다.


여우희는 아침을 든든히 먹고 등교 차량에 올라탔다.

3. 편입생

여드름 자국 없이 피부가 깨끗하고 하얀 얼굴이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교수는 편입생의 등장에 어수선한 강의실을 조용히 시켰다.

그는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탈 것처럼 생겼다. 아니다. 우유를 난잡하게 입가로 흘리며 마실
음란한 오메가처럼 생겼다.

각기 다른 인상으로 봤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편입생이 무척이나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미인이라는 거였다.
강성태는 맛있는 먹이가 제 발로 기어 들어왔다며 입맛을 다셨다.

저것을 화장실로 끌고 가 발가벗기고 좆질을 하다가 부하들이랑 돌려먹을 거다. 동영상 촬영을 해 두면
그가 부를 때마다 달려와 정액받이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강성태의 아버지는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강간 따위로는 처벌받지 않았다. 수많은 오메가들이 그의 아이를
배고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책상 아래 넓게 벌린 다리를 달달 떨며 가운데를 불룩하게 세웠다.

“다들 주목. 너희도 알겠지만 우리 패션디자인학과에 편입생이 한 명 왔다. 너희와 같은 쓰레기일 거라


착각할까 봐 말한다. 이분은 OL 그룹의 도련님인데, 어릴 때 헤어진 친구를 찾으러 온 거다.”

교수가 교탁을 몽둥이로 강하게 내리쳤다.

“괴롭히면 안 된다. 폭력 및 폭언, 기타 등등 안 된다. 여우희 털끝 하나 건드리는 순간, 아무리


날고뛰는 집안 새끼들도 젓갈 담가 버릴 거다. 말도 걸지 마. 이 더러운 걸레 새끼들아.”

교수는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을 손에 들고 있는 몽둥이로 위협했다. 책상을 쾅, 쾅 내리치는 몽둥이


소리에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강의실을 한 바퀴 돌며 불순한 녀석들에게 경고를 내린 교수는 제자리에 돌아와 비굴하게 여우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언제든지 불편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 지하대학교는 전적으로 도련님을


서포트하겠습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 그러지 마세요. 저도 평범한 학생처럼 대우해 주세요.”

여우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겸손하게 대꾸했다. 교수가 손을 내저으며 어떻게 하늘과 같은


도련님을 막 대하겠냐고 거절했다. 여 회장이 김민정에게 호언장담하더니만 이럴 줄이야. 교수의 과한 편애에
아무래도 왕따를 당하게 생겼다. 생각지 못한 행운이었다.

설마 쓰레기들만 모여 있다는 쓰레기 학교 학생이 이딴 시시한 경고에 겁을 먹고 자신을 그냥 놔두겠는가.

“여기 제일 앞에 앉으세요. 야, 이 새끼야. 일어나. 꺼져! 꺼지라고!”

교수가 제일 앞줄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을 내쫓았다. 여우희는 이런 상황이 불편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도대체 교수 주둥이에 얼마나 처넣었기에 이러는 걸까.

여우희는 패션디자인 이론 강의를 마치고 패션 마케팅 강의를 듣기 위해 이동했다. 502 호 강의실로


교수가 들어왔다. 교수님이 깍듯하게 여우희에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도련님 안녕하십니까. 패션 마케팅 강의를 맡고 있는 이혜준입니다. 앞으로 도련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강의하겠습니다. 강의실 이동하실 때마다 학교 경비가 와서 지켜 드릴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여우희를 힐끔거리며 수군거렸다.

“쟤 건드리면 완전 좆 되겠다. 교수들 단체로 약 빨았네. 도대체 집이 얼마나 대단해서 저래.”

“OL 그룹이래잖아. 재계 서열 1 위. 그리고 쟤 할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이잖아. 여봉준 국회의원.”

“씨발, 좋다 말았네. 한 번 따먹으려고 했는데.”

“미친 새끼. 건드렸다가 국정원 끌려가게? 킥.”

책상 밑으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기대했던 학교생활과 너무나 다르다. 교수님이 잡소리 하지 말고


엎드려 잠이나 자라며 떠든 학생을 혼냈다. 이미 그들이 공부할 거라는 기대가 전혀 없는 말이었다.

‘안 돼. 쓰레기 새끼들이 왜 이렇게 간땡이가 작아. 목숨 걸고 날 괴롭히라고! 인생 살면서 나 같은


미인 만나기가 쉬운 줄 알아?’

여우희는 자신의 학교생활을 화려하게 망쳐 버린 여 회장을 속으로 욕했다. 모처럼 이런 똥통 학교에


편입해 왔는데 화장실이나 옥상, 교정 구석에 끌려가서 쓰레기들에게 두들겨 맞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강의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공강 시간이 되자 건장한 체구의 학교 경비들이 복도에서


강의실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지켰다.

‘이게 뭐야. 저 얼굴들. 우리 집 경비 서는 아저씨인데?’


학교 경비복을 입고 있지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한국 체대를 나온 유도, 태권도 유단자 알파들이
허리에 삼단봉을 매달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대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다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청하대학교에서 김민철 패거리에게 순한 맛으로 괴롭힘당했을 거다. 눈물을
머금고 화장실에서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 양아치를 만나 보기로 했다. 원래 이런 똥통 학교에 오면 괜히 못 본
뉴페이스를 오줌 싸던 불량배가 툭툭 건드리며 시비 거는 게 클리셰이니 말이다.

“도련님, 저희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덩치 큰 알파들이 삼단봉을 꺼내 들고 복도에 있는 학생들을 경계했다.

“다가오지 마! 떨어져!”

겁먹은 학생들이 홍해와 같이 갈라졌다. 여우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발 그만하세요. 전 학교에 공부하러 온 거라고요. 도대체 다른 학생들한테 얼마나 피해를 주는


거예요.”

“하지만 도련님. 사모님께서 걱정하십니다.”

“이쯤 했으면 학교에 이미 소문 다 났을 거예요. 돌아가세요.”

여우희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학교 경비로 위장한 경호원들을 올려다봤다.

‘그래, 제발 돌아가요. 아저씨들. 학교에서 추억 좀 만들자고요.’

경호 팀장이 머뭇거리다가 회장님께 연락을 드리겠다며 핸드폰을 잡았다. 여우희는 회장님이 통화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얼른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아빠. 이건 너무 과해요. 제발 경호원들 돌려보내 주세요.”

-우희야. 네 엄마가 널 많이 걱정해. 조금 참아 주면 안 되겠니? 지하대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야.

“여긴 학교예요. 전쟁터가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도 절 보호할 만큼 강하거든요. 저 우성 알파인 거


잊으셨어요?”

경호원들이 감시하면 쓰레기들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메가들 가방을 뒤져서 억제제도 못


훔쳤다. 여우희는 필사적으로 여 회장을 설득했다.

“학교에서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이런 식이면 제가 어떻게 이곳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겠어요. 아빠는


제가 왕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왕따라니. 누가 내 아들을 감히 왕따시켜. 네가 아이들을 왕따시키면 시키는 거지.

여 회장도 뜨끔했는지 대답하는 게 늦었다. 여우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만 경호원을 돌려보내겠다며


통화를 끝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경호 팀장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도련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얼른 가세요.”

여우희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복도를 빠르게 달려 나갔다.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위험하니까 강의실로 돌아가세요.”

“나 화장실 좀 가자고요.”

“도련님, 뛰지 마세요. 넘어집니다.”

아아, 이 좆같은 과보호!

그래도 따라오지 않는 걸 보면 포기한 것 같았다. 복도 끝에 도착해 숨을 쌕쌕 내쉬었다. 화장실에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들어가 봤다.

청하대학교와 달리 지하대학교에는 알파와 오메가 화장실이 따로 나뉘어 있지 않아서 그야말로 오메가들이


린치당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심정으로 오줌 지린내 나는 화장실을 두리번거렸다. 소변기 앞에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싸고 있던 불량한 알파들이 입에 담배를 문 채 여우희를 쳐다봤다.

“와, 씹. 존나 꼴리네.”

“이 뉴페이스는 뭐야.”

피우던 담배를 퉤, 뱉어서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린 그들이 싱글벙글하며 우희에게 걸어왔다.
우희는 겁에 질린 척 오들오들 떨며 발걸음을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예쁜아.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존나 형들 좆물 세례 받고 싶어서 기어 왔어?”

“죄, 죄송해요. 화장실인 줄 알고 들어왔어요.”

“여기 화장실 아니라 좆물 주유소거든.”

그래, 이 맛이야! 천재 언어술사가 자신의 뺨을 냄새나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


손길을 피해 냈다. 와이셔츠 목깃 사이로 드러난, 길고 가는 목에서 목빗근이 도드라졌다.

한 놈이 오줌 싸던 더러운 좆을 여우희에게 문지르려고 하던 찰나, 화장실 칸막이에서 쾅 발 차는 소리가


났다.

“뭐야. 거기 누구야!”

“나 유도부 주장 강도희 남친이다. 왜!”

화장실 칸막이 문을 열고 덩치가 작은 오메가 한 명이 나왔다. 여우희의 입은 오메가의 제복에 달린


명찰을 보고 떡 벌어졌다. 나태준이었다.

“씹. 더럽게 운 없네. 가자.”


쓰레기가 바지 지퍼를 올리더니 부하들을 끌고 화장실을 나가 버렸다. 나태준은 주인공을 보고 놀라 얼어
버린 건데 자신이 겁먹은 줄 알고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괜찮아?”

“아. 응.”

“난 나태준이라고 해.”

“어…… 나는 여우희.”

나태준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싱그럽게 웃었다.

“앞으로 저런 새끼들 만나면 강도희가 남친이라고 떠들어. 그럼 못 건드려.”

회색 바지에 젖은 손을 문질러 닦은 나태준이 와이셔츠에 달려 있는 명찰을 떼어 내서 건넸다.

“이거 달고 다녀. 나태준이 강도희 깔이라고 소문나 있어서 이거 차고 다녀야 해.”

“그럼 너는?”

“난 사물함에 또 있어.”

나태준은 여우희의 손바닥에 명찰을 올려놓고 가슴팍에 매달 때까지 기다렸다. 여우희는 할 수 없이


자신의 명찰을 떼어 내고 나태준의 명찰을 달았다.

“나도 하도 알파들이 괴롭혀서 거짓말한 거였는데. 울 학교 유도부 주장이 알파들한테 자기 애인이라고


해 줬거든. 얼굴도 모르는 사이인데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나 봐.”

여우희는 소설과 완전 다르게 진행된 강도희와 나태준의 관계가 신기했다. 여우희가 돈으로 도희원을,
그러니까 현재의 강도희를 매수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거였다. 강도희는 어릴 때도 남 챙기는 걸 좋아하더니
그대로 잘 자란 듯싶었다.

이름이 그대로인 걸 보면 보육원을 찾은 아버지와도 무사히 만난 것 같았다. 지하대에 편입하기 위해


강도희 핑계를 댄 것뿐인데 그의 이름을 들으니까 신기하게도 너무 반가웠다.

“그나저나 너도 참 앞으로 학교생활 하기 힘들겠다.”

“왜?”

여우희는 뻔히 자신이 예뻐서 그런 말을 한 걸 알았지만 모른 척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긴. 내가 본 오메가 중 네가 제일 예쁜 것 같아.”

“저 태준아. 나 오메가 아니라 우성 알파야.”

“뭐? 말도 안 돼. 아, 미안.”

실례라는 걸 깨달은 나태준이 입을 가린 채 배시시 웃었다. 특출 나게 잘생기거나 한 건 아닌데도 묘한


매력이 있었다.
“혹시 너 무슨 학과야?”

여우희는 나태준이 패션디자인학과 1 학년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나도 너랑 같은 패션디자인학과야. 아까 패션 마케팅 강의 들었는데 나 못 봤지? 너랑 강의 겹치는 거


많아서 난 너 계속 봤는데 교수들 제대로 미쳤더라. 너희 집이 그렇게 부자야?”

“으응. 그렇긴 한데 왜?”

나태준과 함께 나란히 복도를 걷는데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학생들밖에 없는 걸 보고는


여우희에게 살살 눈웃음을 치며 팔꿈치로 옆구리를 가격했다.

“보호받았으면 보호비를 내야 할 거 아니야. 돈도 많은 새끼가 왜 이렇게 돈 개념이 없어.”

맙소사. 놀란 여우희는 예상치 못한 반전에 멈춰 섰다. 나태준이 그런 여우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앞으로 학교생활 곱게 하고 싶으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상납금 준비해 둬라.”

아아. 형아. 어떡해요. 나 이러다가 좆도 작은 오메가 새끼한테 뒤를 대 주고 싶어질 것 같아요.

친한 척 여우희에게 어깨동무를 한 나태준을 보고 교수님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지나쳤다.

“야, 너 지금 얼마 있어.”

여우희의 바지 주머니를 확인하기 위해 손을 넣은 나태준은 알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패드가 부착된


브리프를 알아차렸다.

“흐응~.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우희야, 너 우성 알파라고 했지?”

나태준은 좋은 집안 출신인 여우희가 하는 거짓말을 눈치챘다. 여우희는 알파인 척하는 오메가였다.


앞으로 든든한 호구가 되어 줄 여우희에게 약 장사를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 듯싶었다.

“내가 오메가 억제제 공급해 줄게. 시중가 20 배. 살래?”

나태준이 여우희의 귀에 입술을 바짝 붙여서 속삭였다. 여우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도 말이


없어서 ‘20 배는 너무 심했나?’ 하고 가격을 낮추려던 참이었다.

“으응.”

여우희가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나태준은 환하게 웃으며 여우희를 꼭 끌어안았다.

“우리 앞으로 단짝으로 지내자.”

***

대학교 옥상은 원래 잠겨 있지만 강도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학교 측에서 열쇠를 내 줬다. 은박


돗자리가 깔린 자리에는 날고뛰는 학교 양아치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강도희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흑곰파 보스 강성회의 아들인 강도희는 우성 알파는
아니지만, 키가 190 이나 되고 유도부 에이스라 무시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조용한 성격이나 화가 날 때는 무섭게 돌변했다. 강도희는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지만, 1 년 중 딱 하루. 그가 우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이날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평생 병신으로 살 각오를 해야 했다.

강도희는 우울함이 짙게 내려앉은 눈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희야, 거기서 잘 지내? 나는 네가 아직도 가끔 생각나. 넌 거기서도 천사처럼 착해서 모두의 사랑을
받겠지?’

아버지는 약속대로 보육원으로 강도희를 데리러 왔다. 강도희는 여우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아버지에게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하길, 여우희가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죽나, 자신과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이럴 수는


없다 부정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강도희를 납골당에 데려갔다. 하얀 도자기와 함께 여우희의


사진을 놓여 있었다. 강도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이후 그는 감정을 잃었다. 죽고 싶었으나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아버지를 위해 그냥 마지못해 살았다.

오늘은 바로 그가 어릴 때 사랑했던 여우희가 죽은 기일이었다. 강도희는 제 앞에 놓인 초록색 술병을


집어 직접 잔에 따랐다. 그를 따르는 녀석들이 가난하고 백 없어서 표적이 된 오메가들에게 술집 작부처럼 소주를
따르게 했다.

“야, 왜 그렇게 울상이야. 우리가 직업 훈련 해 주는데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박보윤은 그의 옆에 딱 달라붙어 앉은 지선유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겁줬다. 여우희와 같은


패션디자인과 1 학년 지선유가 손을 벌벌 떨었다. 작은 잔에서 투명한 술이 넘쳐흘렀다.

“에잇 씨발. 이 좆같은 X 이 어디서 귀한 거 흘리고 지랄이야.”

박보윤이 주먹으로 지선유의 배를 때렸다. 배를 맞은 지선유가 바닥에 쓰러졌다. 박보윤은 지선유의


머리채를 잡아 얼굴을 넘친 술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처박았다.

“핥아 먹어, 새끼야.”

“으으. 못 해. 흣. 흑.”

지선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발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

여우희는 공강 시간이 생기자마자 옥상으로 올라왔다. 옥상이나 교정 구석이 양아치들의 아지트로


쓰인다는 건 <4 대 천왕의 얼음 마누라가 되었다>나 <알고 보니 서열 1 위에게 찍혔습니다> 같은 인터넷 소설에도
나와 있는 클리셰였다.
옥상 문에 귀를 대고 기회를 엿봤다. 저 왕따를 자신이 구하기 위해 등장하면 당연히 ‘저 새끼 족쳐!’
라며 양아치들이 달려들 테다. 그러면 자신은 살려 달라며 무릎 꿇고 엉엉 울면서 싹싹 빌어야지.

제발 그들 중에서 쓸 만한 마스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우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옥상 문을 열었다.


여진우가 미국에 가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이때가 아니면 결코 쓰레기들한테 예쁨받는 경험을 할 수 없었다.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지선유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던 박보윤의 눈이 커졌다. OL 그룹 둘째가 이런 곳에 나타날 줄


몰랐다. 그와 학과는 달랐지만, 지하대로 편입한다는 소식에 아버지가 사진까지 보여 주면서 골프채를 들고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씨발, 저 새끼 건드리면 카드 뺐고 호적 파 버린다고 했는데.’

박보윤은 지선유의 머리채를 놨다. 울고 있던 지선유는 자신을 구하러 나타난 천사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여우희는 왕따 자리를 노리고 있는 터라 학과 사무실에 붙어 있던 사진 속 강력한 라이벌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지선유를 모를 수 없었다. 그에게 다가가 먼지 묻은 제복을 털어 주며 걱정스러운 척
눈가를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괜찮아, 선유야? 다친 데는 없어?”

“내…… 이름을 알아?”

“그럼 당연하지. 우리 같은 학과잖아. 그리고 학과 복도에 있는, 상받은 네 옷 봤어. 너무 멋지더라.”

지선유는 자신같이 하찮고 볼품없는 존재를 아름답고 누구나 동경할 법한 여우희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심장이 뛰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옷 만드는 일을 그가 인정해 준 것도 감동 포인트였다.

지선유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여우희를 쳐다봤다. 우성 알파라고 했다. 혹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선유는 괜히 제 페로몬 냄새를 맡기 위해 코를 킁킁거렸다. 여우희가 그런 지선유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여우희는 그들이 무섭지도 않은지 쓰레기들을 쭉 훑어보다가 유도부 주장 강도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강도희?”

여우희는 곧바로 정신 차리고 당당한 눈빛으로 강도희를 보고 한마디 했다.

“도희야, 나는 네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아.”

“…….”

강도희는 넋 놓고 훼방꾼을 올려다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햇빛에 투명하게까지 보이는 하얀


피부에서 달콤하면서 매혹적인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안방에 두고 애지중지 잎사귀를 닦아 주는 난초와 같은 고고함이 그 녀석에게 있었다. 강도희는


그의 제복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살폈다. 나태준.

꼭 보육원에서 만났던 그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녀석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이름을 대고 알파들의 추파를
되받아친 맹랑한 오메가가 있다고 해서 어떻게 생겼나 했더니, 이렇게 생겼었구나.

이러니 알파 새끼들이 정신 못 차리고 추근거렸지 싶었다. 강도희는 과거, 자기 이름을 도용했던


나태준을 애인이라고 해 줬던 별거 아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다들 저 나태준과 자신이 사귄다고 여기고 있다는 거지, 지금?

처음 봤을 땐 멍든 얼굴이 퉁퉁 부어 있어서 이렇게 예쁘게 생긴 줄 몰랐다.

“도희야, 같이 선유 부축해서 의무실 좀 데려다줄래?”

헉!

장래 희망이 조폭인 체대생들이 숨을 집어삼키며 강도희를 쳐다봤다. 강도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아닌가. 강도희는 자신의 가슴 아래까지밖에 오지 않는 여우희를 내려다보다가 지선유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다.
학교 유도부 주장이 옥상을 벗어나자마자 그들은 봉해져 있던 입을 열고 수다를 쏟아 냈다.

“쟤가 그 유명한 나태준이야? 대박 꼴리게 생겼네.”

“씨팔, 도희 존나 부럽다. 저렇게 생긴 X 구멍 매일 따먹을 거 아니야.”

여우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를 마음에 두고 있던 강성태는 술병을 집어 던져 버렸다. 초록색 유리병이


바닥에 닿으면서 깨져 파편이 사방으로 날렸다. 둥글게 모여 있던 양아치들은 등을 돌려 피했다.

“으악. 이 미친 새끼야. 왜 지랄이야.”

“쟤 강도희 깔 아니고, 나랑 같은 학과 편입생이거든.”

“뭐? 그 OL 그룹 여우희? 근데 왜 나태준 명찰 차고 있대?”

“씨팔, 존나 알파 새끼한테 같은 알파 새끼들이 껄떡거려서 그러잖아.”

여우희에 대해 조사해 보니 우성 알파였다. 오메가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일까? 왠지 모르게 분한


마음에 강성태는 벌떡 일어나 옥상을 뛰쳐나갔다.

***

여우희는 오랜만에 만난 강도희가 신기해서 힐끔 곁눈질로 쳐다봤다. 호랑이 동굴에 뛰어들었는데 무사히
빠져나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아쉽긴 했지만, 자신이 며칠 다녀 보니 지하대는 기회의 땅이었다.

열심히 나대다 보면 쓰레기에게 찍혀서 어딘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나 기억해?”

여우희는 과연 14 년 전에 만났던 자신을 강도희가 기억할까 궁금했다.

“우리가 만난 적 있었나?”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까먹었구나. 하긴 그렇게나 어린 나이에 만나 얼마나 오래 함께


지냈다고 여태 기억하고 있겠는가.

여우희는 약간 서운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앞만 보고 걷는 여우희와 달리 강도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지선유는 두 알파를 번갈아 보며 큰 착각에 빠졌다. 설마 둘 다 자신을 좋아하는 걸까?


아아, 어쩌지? 강도희는 알파미 넘치는 유도부 주장이었고, 여우희는 명화에 그려진 소년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모범생이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의무실에 도착한 지선유는 침대에 누웠다.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선유야, 난 이만 가 볼게. 강의 들어야 해서.”

“응, 고마워.”

지선유는 이불을 콧등까지 끌어 올린 채 소심하게 대답했다. 여우희가 뒤돌아서 의무실을 나갔다.


꼿꼿하게 펴진 등과 잘록한 허리, 쭉 뻗은 다리까지 너무나 멋진 뒤태였다.

지선유는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의무실 문이 닫힐 때까지 여우희를 끈질기게 바라보다가 자신을 향한


뾰족한 시선에 움찔 떨었다. 강도희가 그를 무서운 눈빛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날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너 혹시 나태준에 대해서 잘 알아?”

“어? 나태준? 왜?”

지선유는 왜 강도희가 뜬금없이 나태준에 관해 묻나 싶었다.

‘왜 자기랑 사귀는 오메가를 나에게 묻지?’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 봐.”

‘혹시 자기 오메가가 다른 알파와 썸 타는지 알아내려고 그러나?’

지선유는 껄렁껄렁한 양아치를 떠올리며 차마 ‘내가 그 새끼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재수 없다는 것밖에


없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둘이 사귀는 사이이지 않은가. 무슨 보복을 할 줄 알고 강도희 앞에서 흉을
보겠는가.

“그냥…… 나태준은 강하고.”

오메가들 끌고 가서 삥 잘 뜯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 낼 수 있는 성격이고.”

할 말 못 할 말 구별 안 하는 무개념에 욕 잘하고.

“다른 알파들한테 완전 철벽 치지. 응. 맞아. 난 나태준이 혹시 알파를 싫어하나 싶었다니까. 하.


하.”

지선유는 어색하게 웃다가 말을 줄였다. 최대한 좋게 말한다고 한 건데 강도희의 마음에는 안 드는 것


같았다.

강도희는 그대로 의무실을 나왔다. 그는 아무도 없는 복도를 멍하니 걸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복도
끝에 도착해 있었다.

102 호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그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맨 앞줄에 앉은 채 교수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그런 여우희의 얼굴을 한참 구경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알파를 싫어한다고?”

간 크게 유도부 주장이 자기 남친이라고 거짓말을 한 나태준이다. 당연히 알파 따위 상대하기 싫어서 댄


핑계였다. 여우희를 나태준이라고 오해한 강도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때 보육원에서 지냈고,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지라 저렇게 예쁜 오메가가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았다. 강도희는 혹시 그가 어렸을 때 나쁜 일을 당한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는 한참 동안 복도에 서서 강의를 듣는 여우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시선을 느낀 여우희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쳤다. 강도희를 발견한 여우희는 활짝 웃으며 노트에 글을 끼적였다.

「오늘 고마웠어!」

강도희는 풋,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오랫동안 발바닥에 접착제를 발라 놓은 듯 벗어날 수 없었던


102 호 강의실 앞을 떠났다. 나태준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 할 듯싶었다.

***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놀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대학생이
아닌 흑곰파 차기 후계자인 강도희는 양복을 빼입고 클럽에 출근했다.

커다란 키와 덩치를 가진 그가 양복을 입으니 도무지 스무 살로 보이지 않았다. 강도희가 입구에


들어서자 가드들이 팔을 약간 굽힌 채 덩치를 부풀리고 구십 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강도희는 흑곰파 조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클럽으로 들어섰다. 그는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지만
벌써 이태원에 있는 클럽을 맡아서 관리하는 관리자였다. 사장실에 들어가 업무를 보기 전 연락을 넣었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편히 앉아.”

“넵. 감사합니다.”

강도희는 가운데 놓인 일인용 소파에 앉아 있었다. 김두협은 긴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주먹을 무릎 위에


올렸다.

“지하대학교 나태준에 대해 당장 알아 와.”

“넵. 알겠습니다.”
김두협은 우직하게 대답하고 슬쩍 강도희의 눈치를 살폈다.

“저 형님. 혹시 관심 있는 오메가입니까.”

“……뭐 그렇긴 하지.”

김두협은 몰래 속으로 웃었다. 여태 오메가에게 관심 없었던 강도희가 조사까지 해서 알고 싶어 하는


오메가가 생겼다는 건 아주 좋은 변화였다. 그는 얼른 알아 오겠다며 사장실을 나갔다.

강도희는 보고서를 기다리는 내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두 시간 뒤에 김두협이
나태준에 대한 완벽한 보고서를 들고 돌아왔다. 일반인에 불과한 오메가의 신상 정보를 알아내는 일쯤은 프로인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돈을 빌리고 아프리카에 도망간 채무자들도 찾아내는데 같은 학교 학생을 못 알아볼까. 김두협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내밀었다.

“정말 형님의 안목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도희는 옥상으로 불쌍한 왕따를 구하러 온 예쁜 얼굴을 떠올리며 괜히 뿌듯해했다.

보고서를 보니 할머니 밑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 거에 비해 귀티가 좔좔 흐르던데 참


생긴 걸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겠다. 달동네로 유명한 가윤동에 있는 월세 35 만 원짜리 반지하에서 산단다.

강도희는 이렇게나 힘든 환경에서도 밝고 착하게 자란 그 녀석을 떠올리며 마음 한편이 뜨끈해졌다.


보고서 다음 장을 넘겨 보던 참이었다.

“옛날부터 코에 있는 점이 미인 점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핫핫.”

“뭐?”

강도희는 김두협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었다. 김두협은 설마 자기가 관심 있는 오메가한테


찝쩍거리는 걸로 보였나 싶어서 얼른 손사래를 쳤다.

“오해 마십시오. 전혀 사심 없습니다. 형수님이지 않습니까.”

“그게 아니라 웬 코에 점이 있다는 거야. 얼굴에 점 있는 건 눈물점이 다인데.”

강도희는 커다란 눈 아래 작게 찍혀 있던 눈물점을 기억에서 곱씹었다. 울면 빨갛게 달아올라 그


눈물점이 무척 야해 보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우희도 눈 밑에 점이 있었는데…….

“네? 그게 무슨. 코인데요. 분명 코에 점이 있습니다.”

나태준에 대한 보고서를 빠르게 넘겨 봤다. 미행하면서 찍은 사진 속에는 전혀 모르는 오메가가 있었다.


오늘 그가 본 나태준이 아니었다.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걸까? 오늘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지 않았는데
취했었나?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퍼뜩 여우희 납골당에서 사진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희 납골당 갈 거야. 차 대기시켜.”


또래 오메가에게 관심을 가져 드디어 그 아이를 잊었나 싶었는데 강도희가 납골당에 가겠다는 소리를 한다.
김두협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 아이의 기일이니 강도희를 모시고 갈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겠습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세요.”

***

성남에 있는 납골당. 이미 운영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으나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관리인을 불러 문을


열게 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강도희는 귀여운 아이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앞에 섰다.

“그 녀석도 오른쪽 눈 밑에 점이 있었어.”

오늘 만난 그는 누구일까. 누구이기에 나태준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고 여우희를 닮은 것일까. 어째서


남의 신분을 훔쳐서 사는 걸까?

고작 둘의 공통점은 눈 밑의 눈물점뿐인데도 같은 사람일 거란 기대를 걸고 싶었다. 강도희는 과하게


흥분이 돼 손이 덜덜 떨렸다. 납골 항아리를 한 번도 열어 볼 생각을 안 했다. 당연히 여기에 자리가 있기에
여우희가 죽은 줄 알았다.

그는 그것을 열어 봤다.

“하. 하. 하.”

믿기지 않는다. 그동안 그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산 세월이 억울해 눈물이 났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으나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안 죽었잖아.”

“네? 그게 무슨.”

김두협은 납골 항아리 안이 텅 빈 걸 확인했다.

“아버지가 날 속인 걸까.”

“말도 안 됩니다! 형님. 보스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맞아. 우리 아버지는 절대 나한테 거짓말할 분이 아니야. 그렇다면 누가 여우희가 죽었다고 그 당시에


조작했다는 뜻이겠지. 보육원에 왔었어. 그리고 별로 있지도 않고 누군가 데리러 왔고. 왜 그랬을까.”

강도희는 비싼 외제 차를 타고 나타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를 떠올렸다. 아직 여우희가 가짜 나태준과


동일 인물이란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는 둘이 같은 사람이란 가정하에 사건에 접근해 보기로 했다.

“다시 한번 여우희에 대해 조사해 보자. 그때는 놓쳤던 것들이 보일지 모르니까.”

“넵.”

“일단 지하대 패션디자인과 전원 신상 정보를 구해 와.”

“알겠습니다.”
강도희는 아무것도 없는 납골 항아리를 제자리에 뒀다. 그리고 액자에 들어 있는 여우희의 어린 시절
사진을 챙겼다.

“도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우희야.”

어릴 때는 그가 여우희를 지켜 줄 수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그에게는 힘이 생겼다.

“반드시 널 지킬게.”

강도희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

신상털이 전문가들 셋이 뭉쳤다. 이연두, 민설우, 김두협이었다. 컴퓨터로 지하대학교를 해킹한


이연두가 손을 들었다.

“패션디자인과 편입생 자료 넘깁니다.”

강도희는 이연두가 넘겨준 자료를 마우스로 클릭했다. 학생 명단에 있는 이름을 차례대로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패션디자인과 3 학년에서 그 이름을 발견해 냈다.

“여우희.”

다행이다. 정말 여우희는 죽지 않았어.

안심한 강도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여우희가 나태준의 명찰을 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진짜로 타인의 삶을 훔쳐서 사는 건 아니라는 거였다.

“여우희. 또 찾았습니다.”

민설우는 찾은 정보를 강도희의 컴퓨터로 넘겼다. 강도희는 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가를
일그러트렸다.

청하대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홍보 모델이 여우희였다. 그런 좋은 대학교에 다녔으면서 왜 지하대학교


같은 쓰레기통에 편입한 거지?

“여기도 여우희요”

이번에는 강도희의 컴퓨터로 신문 기사가 넘어왔다. 3 년 전에 나온 기사였다. 5 성급 호텔에서 창립


기념회 파티를 했는데 OL 그룹 여 회장의 첫째 아들 여진우가 전무로 취임하는 날이기도 해 언론사들이 찾은
듯싶었다.

「OL 그룹 창립 기념회에 참석한 오너 가문 자식. 우성 알파 아들들에 여 회장. 든든합니다.」

사진 속에서 여진우가 여우희를 자기 등 뒤에 숨긴 채 매섭게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형의 뒤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어 눈만 찍힌 사진인데 그걸 용케 찾아냈다.

이미 죽은 사람이란 생각에 이렇게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흔적을 찾아볼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OL 그룹이라고? 그런 대단한 집 아이가 보육원에 왜 와.”

도대체 이 집안에서 14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도희는 기사 사진에 찍힌 여진우의 살벌한


시선을 마주하며 생각에 잠겼다.

“여진우 전무에 대해 알아봐. 뭔가 나오나 보게. 그리고 여 회장 댁에 사람 하나 심어야겠어. 그 집에서


고용인 가족에게 불만 있는 사용인 있으면 알아봐.”

“넵. 알겠습니다.”

김두협은 대답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윗사람의 명령에 토 달지 않고 행동해 출세가 빨랐다.
이연두가 14 년 전 여우희의 사망신고서를 찾아보다가 그때 자료를 보고 강도희를 힐끔거렸다. 전자상으로 저장된
자료가 매우 수상했다.

“뭐야. 왜 그래.”

“저…… 그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거 어린아이 글씨 같죠?”

컴퓨터에 여우희 사망신고서가 넘어왔다. 글씨를 잘 쓰지 못하는 노인이 쓴 것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쓴 것 같기도 한, 글쓰기에 익숙하지 못한 글씨체가 눈에 띄었다.

“여 회장 부부가 쓴 것 같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연두 너도 여진우 짓 같지.”

“네. 도대체 이게 다 뭔가 싶긴 하네요. 뭔가 미스터리 사건을 조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14 년 전 여우희는 사망신고가 되었다. 사인은 교통사고로 인한 과다 출혈이었다. 병원에서 작성한


사망진단서 또한 있었다.

사망신고는 우편으로도 신청받기 때문에 아이가 썼다고는 생각 못 하고 처리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부모는 초등학교에 여우희를 입학시킬 때쯤 뒤늦게 알아차렸겠지.

유치원생이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동사무소에


방문하고 나서야 알 수밖에 없다.

여 회장을 위해 일해 줄 유능한 변호사들이 많으니 여우희의 사망신고는 금방 철회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진우는 자기 동생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던 걸까. 진짜 미친 새끼다. 돈 게 아니라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

“여진우 진짜 정신병자 아니야!”

민설우가 강도희와 똑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강도희는 여우희가 겪은 일에 분통이 터져서
욕하는 것이긴 하지만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고민해 봤다. 정말 여진우가 미친놈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설마 초등학생이 자기 동생한테 회사 지분 넘겨주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겠죠?”

이연두의 말에 민설우가 “재벌들 무서워서 살 수가 있나.” 하며 소름 끼쳐 했다. 강도희는 이런 집에서


과연 여우희가 잘 지내는지, 혹시 여진우가 동생을 해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여 회장 댁에 사람을 심어 둘 거니 앞으로 여진우를 경계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여우희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일단 여진우가 정신 병력이 있는지 알아보자. 혹시 있다면 뭐 때문에 무슨 치료를 받는지도. 폭력성이
강해서 치료받고 있다면 당장 그 집에서 우희를 구해 줘야 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여 회장이랑 김민정 인맥 파서 연결된 정신과 의사를 찾아낼게요. 여진우 이
새끼, 자기 이름으로 치료 안 받아요. 그랬으면 진작 소문났겠죠. 분명 아는 사람 도움받아서 몰래 치료받고
있을 거예요.”

“일단 여진우가 지금 어디 있는지 핸드폰으로 위치 추적부터 해.”

해커들이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밀실을 가득 채웠다.

***

드문드문 별장이 들어선 가평에는 아무도 모르는 정신병원이 있었다. 닥터 윤은 병원 갑판조차 달지 않은


채 일반적인 별장으로 위장한 그곳에 14 년째 거주 중이었다.

폐쇄된 공간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장소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건
아홉 살 아이가 이제 스물세 살 성인이 되었다는 것뿐.

그는 여 회장의 진술서에서 눈을 뗐다. 그것을 책상 서랍 깊숙이 넣은 후 잠갔다. 1 년을 넘기지 않고


이곳에 다시 돌아온 여진우는 이번에는 동생을 강간하려다가 들켜서 잡혀 왔다.

여 회장의 말만 들으면 여진우가 사회에 제대로 적응이나 할까 걱정되었으나, 회사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이며 이사진들의 신임을 얻었단다. 뛰어난 이 우성 알파의 흠은 오로지 ‘근친’밖에 없었다.

이제 여진우는 이곳에 와도 난동을 부리거나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 본인이 반항적으로 굴어 봤자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시간만 늘어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진료실로 들어온 여진우는 정신병원에 갇힌 환자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매끈한 얼굴로 싱글벙글 웃었다.
가볍게 콧노래를 부르는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전무님,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아, 동생에게 편지가 와서 말입니다.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우리 우희가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네요.”

여진우가 환자복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 내밀었다. 닥터 윤이 그 편지를 만지려고 하자 뒤로 물려서 못


만지게 했다. 그는 멀리 떨어진 편지를 읽기 위해 안경을 매만졌다.

「사랑하는 진우 형에게.

형, 안녕하세요. 저 우희예요. 그날 제가 잘못을 저질러서 형이 혼내 준 건데 제대로 벌을 받지 못해서


많이 화나셨죠? 형이 아무 말도 없이 미국에 가서 저는 무척 당황스럽고 서운했어요.

그렇지만 그동안 형이 한 훈육과 그날은 너무 달라서 저도 무지 무서웠단 말이에요. 형이 저를 절대


해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요.

아빠가 큰 소리로 형한테 화내서 저는 저 때문에 형이 미국에 간 줄 알고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내가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요.

그런데 아빠가 그건 다 제 오해래요. 형은 저 잘되라고 혼낸 거고, 그러니 형은 잘못한 게 없대요.


아빠한테 형이 일하러 미국에 간 거라고 들었어요.

형이 미국에 자주 들어가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헤어지기 전에 저한테 잘 다녀오겠다고 포옹을 해 주며


충분히 헤어질 시간을 줬는데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셨잖아요. 제가 형을 탓하는 건 아니고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어요.

내가 제대로 형한테 벌을 받았으면 형이 ‘우희야, 잘 다녀올게.’ 하고 절 끌어안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줬을까 싶어서요.

아무튼 저는 형을 잔뜩 화나게 해 놓고 편입한 지하대에 잘 다니고 있어요. 여기서 새로운 친구를 한


명과 사귀었고, 강도희랑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도희는 저를 까맣게 잊어버린 거 있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내가 누구 때문에 편입까지 했는데!

그 아이에게는 절 구해 준 게 별로 대단치 않은 사건이었나 봐요. 그렇지만 도희를 원망하지 않을래요.


이미 14 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우린 고작 일주일밖에 친구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형이 저를 걱정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하대에 간 첫날, 학교 교수님들이 우리


집을 언급하면서 학생들한테 단단히 경고를 해 주셨어요.

우리 집에서 경비를 서는 아저씨들도 찾아와서 무섭게 굴어서 그런지, 지하대에 있는 무서운 학생들도
저한테 꼼짝을 못 한답니다. 하긴 우성 알파인 저를 누가 괴롭힐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만 편지 줄일게요.

형이 보고 싶은 우희가.」

오랫동안 형의 통제 아래 체벌을 받아 온 여우희 또한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했다. 여 회장에게 분명


강간당할 뻔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런데 그걸 합당한 벌로 여기며 자기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형이 화났을까
걱정한다.

닥터 윤은 여진우뿐만 아니라 여우희 또한 함께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여 회장은 완벽한 우성 알파인 첫째에 대한 자긍심이 엄청났다. 그는 여진우가 여우희에게 벌을 내리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진우가 자기 오메가처럼 여우희에게 집착하는 것만 고치고 싶어 했다.

만일 여우희가 우성 알파가 아닌 오메가로 발현했으면, 여진우는 부모의 방관 아래 여우희를 강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진우의 정신병을 고치지 못하는 건 부모의 잘못도 컸다.

여우희에게 다정한 척 굴지만, 여 회장도 김민정도 ‘저 사생아만 없었어도’라는 생각을 품고 여진우가


집에서 독재자처럼 구는 걸 내버려 뒀다. 두 사람이 각인한 탓이 컸다.
여 회장 부부는 여우희를 아끼긴 하지만, 부부 관계에 위협이 되는 ‘실수로 태어난 아이’에 대한
미움을 그런 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래 놓고는 계속 자기 아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며 닥터 윤에게 고치라고
데려왔다.

이건 여진우 본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진우와 부모, 형의 학대를 당연하게 여기는 여우희까지
한꺼번에 심리 치료를 해 나가지 않으면 절대 고칠 수 없었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우리 우희가 이렇게 착하고 순하답니다.”

여진우가 편지를 곱게 접어서 도로 편지 봉투 안에 넣었다. 닥터 윤은 여진우의 말속에 숨어 있는 뜻을


알아차렸다.

“마치 오메가처럼요?”

“예.”

여진우는 방심하고 있던 순간에 훅, 하고 들어온 질문을 막아 내지 못했다. 당황해 풀어진 표정을 다잡고
얼른 말을 바꿨다.

“우성 알파에게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제 동생이 들었으면 슬퍼했을 겁니다.”

닥터 윤은 여진우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몹시나 매력적인 얼굴과 화술로 타인을 속이는 데에 능숙한


환자였다. 그가 이곳에 와서 하는 모든 말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초등학생 형이 동생의 사망신고를 했다. 부모는 동생을 초등학교에 보낼 때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 여
회장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다그치니, 여진우는 여우희가 자기 동생이 아니어야 결혼할 수 있다고 답했다.

여 회장은 직접 여진우의 손을 붙잡고 닥터 윤을 찾아왔다. 그러나 여진우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는


아버지의 진술과 달리 절대 자신은 그런 일을 저지른 적 없다며 잡아뗐다.

자신은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가 증거를 보여 주자 그때야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난삼아
해 봤어요.’라는 거짓말을 했다.

비범한 정도로 영리했다. 왜 자신이 정신병원에 갇히는지도,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여진우를 치료하는 건 치열한 전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전무님, 그날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으세요? 동생을 어떻게 벌주려고 했죠?”

“선생님, 제가 우희 얼굴을 안 보여 줬었죠?”

여진우는 닥터 윤의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 일단 그는 여진우가 꺼낸 말에 관심을 보이는 척했다.

“네. 전무님을 닮았으면 동생분도 무척 잘생겼겠어요.”

“맞아요. 우리 우희 보여 드릴게요. 제 핸드폰 좀 가져와 보세요.”

여진우는 그가 여우희를 알려고 들면 경계하며 화내곤 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여우희의 얼굴을 보여


주겠다고 하니 이상했다. 환자에게는 핸드폰을 주지 않는 게 병원 원칙이지만, 여진우의 의도를 알아내야 하니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어서요. 우리 우희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선생님도 두 눈으로 보시면 절 믿으실
거예요.”

여진우가 가볍게 재촉했다. 닥터 윤은 책상을 손으로 짚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기다려 봐요. 가져올 테니까.”

그는 진료실을 나와 환자들의 개인 소지품을 모아 둔 보관소로 걸어 들어갔다. 여진우 로커를 열어서


지퍼 백에 담아 둔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을 쥐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핸드폰을 받은 여진우가 전원을 켜고
지문을 입력하자 잠금 화면이 풀렸다. 그가 갤러리에 들어가서 사진을 클릭했다.

“오!”

닥터 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순간이지만, 이렇게나 미인이니 여진우가 미칠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여진우가 노린 바였다. 여진우는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이 미친 것에 대한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선생님이 보기에는 어때요? 우리 우희.”

“정말 미인이네요. 하긴 사모님이 미인이시죠.”

“에이, 왜 그래요. 이 녀석 사생아인 거 알면서.”

“…….”

여진우가 여우희의 사진을 넘기면서 말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러트가 와서 사용인이랑 붙어먹었다는데, 제 생각에는 그냥 핑계 같아요. 우리 우희


얼굴을 보세요. 알파라면 이런 오메가를 안 건드리게 생겼어요?”

닥터 윤도 알파인지라 여진우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우희 같은 오메가가 근처에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졌을 거다. 그게 알파의 본능이다.

그는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복숭앗빛으로 발그레하게 뺨을 물들인 소년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이건 몇 살 때인가요? 열세 살?”

우성 알파의 평균 체형을 고려했을 때, 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아니요. 스무 살이요.”

“하지만 우성 알파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선생님. 아버지 말이 아니라 제 말을 믿으라고 했잖아요.”

여진우가 사진을 찍은 날짜를 보여 줬다. 정말 우성 알파라면 스무 살에 가질 수 없는 체격인데 사진은


찍은 날짜는 분명 최근이었다.

그동안 같은 알파를 좋아하는 여진우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던 닥터 윤은 혼란에 빠졌다. 여우희는


상상하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아무리 봐도 오메가 같지 않은가.
여진우는 그동안 믿어 온 신앙이 깨져 버린 사람처럼 충격받은 닥터 윤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여진우의 눈은 거짓이 조금도 깃들지 않은 듯 맑고 까맸다.

“선생님, 선생님은 아버지한테 속고 계세요. 제 동생 여우희는 오메가고, 아버지가 절 계속 정신병원에


보내는 건 우희를 강간하려는 걸 제가 자꾸 막아서예요. 그날도 제가 아닌 아버지가 우희를 강간하려던 건데,
제가 막아서 여기 온 거고요.”

“헛소리 마세요. 여 회장님은 각인한 알파입니다.”

닥터 윤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그건 본인 입으로 말한 것뿐이잖아요. 아버지가 각인했는지 눈으로 직접 보셨어요? 애초에 어떻게


각인을 한 알파가 다른 오메가를 덮쳐서 아이를 만들죠?”

간악한 악마가 혼란에 빠진 인간에게 말하듯 여진우는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속삭였다. 닥터 윤은


여진우의 술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오늘 진료는 이만하겠습니다. 전무님은 오후에 있는 음악 치료 꼭 참석하세요.”

“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무리 잔잔한 클래식을 듣고 신나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고 여진우가 여우희를 포기할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치료를 진행하는 정신과 의사도, 여 회장도 어리석었다. 그는 도망치듯 진료실을 나가 버린
정신과 의사 덕분에 핸드폰을 환자복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1 인실 병실에 들어가 침대에 앉았다. 사랑하는 여우희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그냥 전화로 걸면 로밍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한국에 있는 걸 들켰다.

-형!

“우희 안녕.”

-형 어쩐 일이에요? 미국에 있을 땐 전화 사용 안 하잖아요.

“우희가 반성 많이 한 거 보고 형이 연락한 거야. 앞으로는 벌 잘 받는다며.”

-……네에.

편지에서는 자신만만하더니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여진우는 빨리 돌아가 여우희가 진짜


오메가인지 구멍에 좆을 넣어 보고 싶은 마음에 초조했다. 그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훑으며 말했다.

“금방 한국에 돌아갈 거야. 각오해 둬.”

-하지만 형. 저 학교 잘 다녀요. 그때 혼났으니까. 그러니까 저 혼 안 나면 안 돼요?

얼마나 마음이 다급한지 여우희가 숨을 헐떡였다. 꼭 흥분한 오메가가 내는 소리 같아서 여진우의 좆이


바지 안에서 부풀었다.

그는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이 강간당할 뻔했다는 것도 모르는 게 퍽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육을 해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희 자꾸 꾀부릴래? 네가 말없이 독단적으로 편입해 놓고 아무 잘못 없다는 거야?”

-아니에요. 제가 잘못한 거 맞아요.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말투조차 애교스럽게 들린다. 알파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타고났다.

“맞아. 그러니까 혼나야지. 형이 당분간은 한국에 없어서 우희를 못 혼내 주니까 미션을 내려 줄게. 강
집사한테 승마 운동기구를 구해 달라고 해서 이제 매일 한 시간씩 말 타는 연습 해. 형이 영상통화로 검사할
거야.”

-네? 승마 운동이요? 근데 그게 왜 벌이에요?

“왜냐니. 알몸으로 할 거니까. 하루라도 빠트리면 돌아가서 엉덩이 불어 터질 때까지 맞을 줄 알아.”

-히익! 싫어!

미션을 완수하지 못할 시에 받는 페널티를 들은 여우희가 기겁하며 겁냈다. 정말이지 매 앞에서 꼼짝 못


했다. 이러니 자신이 그를 길들이기 쉬울 수밖에 없다.

“싫으면 제대로 하면 될 거 아니야. 알겠어?”

여진우의 강압적인 물음에 여우희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네. 형아.

그는 동생과의 대화를 흡족하게 끝내고 통화를 종료했다.

“아아, 어서 빨리 집에 가서 우리 우희 구멍 먹고 싶다.”

***

여우희는 마스터에게 받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여진우와의 통화가 끝나고 방을 나왔다. 강 집사에게


준비물을 부탁하러 그의 방을 찾아 똑똑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강 집사는 S/S 시즌에 맞춰 저택을 어떻게 바꿀지 기획안을 작성 중이었다.

‘우리 우희 도련님 방은 분홍색 커튼을 달아 드리고, 전무님 방은 흰색 커튼을 달고…….’

그는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그 와중에 오너 가족들이 사용할 식기들도 밝은색 계열로 바꿔야 해서 각 브랜드에서 보낸 카탈로그를


뒤적거렸다.

“저…… 집사 아저씨…….”

강 집사는 향긋한 냄새를 맡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여우희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강 집사는 보고 있던 자료를 덮고 둘째 도련님을 친절한 미소로 맞이했다.

“무슨 일이세요? 도련님.”

“그게…… 아저씨…… 그게요.”

여우희가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소심한 여우희가 말하기 전까지 채근하지 않았다.

“어…… 그러니까 형이 승마 운동 기구를 집사 아저씨한테 구해 달라고 부탁하라고 했어요.”

정신병원에 갇힌 여진우가 여우희에게 연락하다니. 도대체 무슨 수로? 강 집사는 놀랐지만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했다.

그는 책상에 올려 둔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아랫사람에게 둘째 도련님 방에 승마 운동 기구를 가져다


두라고 지시를 내렸다. 도대체 여진우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혹시 이번에도 처벌한다면서 둘째 도련님을
잡으려는 건 아니겠지?

강 집사는 1 년 전 반바지 사건을 떠올렸다가 그 끔찍한 하루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여우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이만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숫기 없는 여우희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갔다. 강 집사는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바로 여


회장에게 전화했다.

“회장님. 전무님이 핸드폰을 사용해 둘째 도련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핸드폰을 무슨 수로 구해서?

“일단 병원 쪽에 연락해 보셔야겠습니다.”

-그래, 강 집사. 내 알아보지.

강 집사는 여 회장과 통화를 끝내고 턱을 매만졌다. 도대체 여진우가 왜 승마 운동 기구를 동생에게


구하라고 했을까. 그의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여우희의 방에 그것이 놓이게 되었다.

***

여우희는 저녁 식사를 하고 책상에 앉아 생소한 패션 용어를 공부했다. 여진우의 전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구멍에서 애액이 너무 많이 흘러나와 화장실에서 밑을 닦아 내고 억제제를 먹어야 했다.

용어 하나를 외우고 핸드폰을 보고, 용어 하나를 외우고 핸드폰을 보길 반복하던 중에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너무 바로 받으면 자신이 반기는 것처럼 보일까 봐 속으로 30 번까지 셌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핸드폰 화면에 잘생긴 우성 알파의 얼굴이 가득 찼다. 여우희는 그의 얼굴이 보자마자 얼굴이 펑 터져
버릴 것처럼 빨개졌다.

-뭐야. 우리 우희. 왜 그렇게 발정 났어. 형이 옷 벗고 말 타라고 해서 기대됐어?

“아니에요! 창피해서 그런 거예요.”

여진우가 그윽한 목소리로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여우희는 불안한 사람처럼 핸드폰 카메라를 보지
못하고 자꾸 산만하게 굴었다.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형에게 물었다.

“형아. 진, 진짜 옷 벗어요?”

-여우희.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여진우가 싸늘한 목소리로 힐난했다. 여우희는 겁에 질린 척 어깨를 옹송그렸다. 잔뜩 기죽은 표정으로


화면 속 여진우의 기분을 살폈다.

-방문 잠그고 와.

핸드폰을 필통에 받쳐서 고정했다. 여진우는 여우희가 충실한 개처럼 책상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잠그는
모습을 감시했다. 책상 앞에 돌아온 여우희는 어쩔 줄을 모른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는 여우희의 전신을 카메라 안에 다 담기 위한 명령을 했다.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나.

여우희가 뒷걸음질 쳤다. 여진우는 “벗어.” 했다. 여우희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잠옷 밑단을


만지작거렸다.

-벗으라고 했다.

손가락이 벼락에 맞은 듯 튀어 올랐다. 여우희의 커다란 눈에 바로 코앞에 여진우가 있는 것처럼 눈물이


차올랐다. 단추를 풀어내는 손길이 느려 터졌다. 여진우는 성질대로 버럭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자신의 순진한
동생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로 했다.

잠옷 단추가 풀릴수록 옷깃이 벌어졌다. 바스락거리는 움직임에 따라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가 숨겨지길


반복했다. 단추를 다 풀 때까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매끈한 실크 잠옷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동그란 어깨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우희의 가슴에는 그날
여진우가 잘못 본 게 아니라 말하듯 분홍색 젖꼭지가 있었다. 여진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여우희는 두 손으로 감싸면 다 쥘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는 허리에서 잠옷 바지 밴드를 내렸다. 잠옷 바지


안에 숨겨져 있던 늘씬하고 쭉 뻗은 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여진우는 여우희가 입은 검은 드로어즈가 참 멋없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면 여우희에게 예쁜 레이스 팬티를 입혀 줘야겠다.

-마저 벗어야지.

여진우는 다정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여우희가 눈을 질끈 감고 드로어즈를 내렸다. 여진우는 타이밍에


맞춰 한 손으로 환자복 바지를 내리고 커다란 좆을 꺼냈다.

혈관이 울퉁불퉁 돋아난 험악한 좆이 쿠퍼액에 젖어 더욱 흉흉한 도깨비방망이처럼 보였다. 물론 여진우의


좆이 도깨비가 들고 다니는 방망이 따위보다는 크고 두꺼울 테지만 말이다.

-가까이 와.

여우희가 교재를 펼쳐 놓은 책상으로 다가왔다.

-뒤돌아서 엉덩이 잡고 구멍 형한테 보여 주는 거야.

“네? 왜, 왜요. 흑. 왜요. 형아. 우희 구멍 왜 봐요. 우희 창피한데.”

-여우희! 그치지 못해! 자꾸 형 말 안 듣고 같은 말 반복하게 할래?

여우희가 뒤돌아서 뽀얗게 살 오른 엉덩이를 잡고 벌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구멍이 잘 보이지 않아,
여진우는 자세를 교정시켰다.

-앞으로 형이 구멍 보이라면 허리 굽히고 뒤돌아서 구멍 보이는 거야. 다시 해.

여우희는 “흐읏. 흑.” 입술을 비집고 나가는 발정 소리를 울음으로 가장했다. 여진우는 오밀조밀하게
닫혀 있는 분홍색 구멍을 보며 좆 기둥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우리 우희는 구멍까지 예뻤다. 하긴 형아 좆 받아먹으려고 태어났으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진우는 여우희의 구멍을 실컷 감상하다가 같은 자세를 유지하느라 힘들어하는 여우희를 일으켜 세웠다.

-핸드폰 들어서 젖꼭지에 가까이 대.

여우희는 절대자 여진우의 명령에 따라 젖꼭지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가까이에서 보니 연한


벚꽃잎처럼 고운 색과 달리 젖꼭지가 통통해서 음란했다. 여진우는 저런 젖꼭지를 여태 몰라보고 빨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분했다.

어서 빨리 집에 돌아가 여우희의 젖도 실컷 빨고 구멍도 너덜거릴 때까지 박아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형의 거대한 성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했다.

-승마 운동 기구 보이게 카메라 세팅해.

그는 일절 군더더기 없이 용건만 말했다. 여우희가 책상 위에 책을 잔뜩 쌓아서 그 위에 핸드폰을 놓았다.


여진우의 지시에 따라 여우희는 알몸으로 승마 운동 기구 위에 올라탔다. 딱딱한 안장이 몹시 불편했다.

-처음에는 1 단계로 강도 맞춰서 타.

시동 버튼을 눌렀다. 승마 운동기구가 천천히 움직였다. 여우희는 그 위에서 출렁출렁 움직이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 손잡이를 꼭 잡았다.

-허벅지로 말안장을 꽉 조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리듬을 타는 거야. 그렇게 뻣뻣하게 허리를 쓰면
어떡해. 똑바로 못 해!

매섭게 떨어지는 지적질에 여우희의 몸은 딱딱하게 굳었다. 승마 운동 기구와 엇박자로 몸이 튀어서


아프고 힘들었다. 그 위에 탄 여우희는 질질 짜며 형에게 용서를 구했다.

“형아. 흑. 우희 이거 싫어요. 못 해요. 몰래 편입해서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승마 운동 기구에 달린 손잡이 때문에 여우희의 좆은 핸드폰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잔뜩


발기한 채 지조 없이 쿠퍼액을 질질 흘리는 중인데, 여진우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여우희의 연기를 의심하지
못했다.

-여우희. 형 화낸다.

“흡!”

여우희는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도리질 쳤다. 여진우는 인내심 있게 허리를 쓰는 법을 가르쳤다.


여우희는 죽을 때까지 여진우의 좆을 뒤에 물고 살아야 했다. 처음 하는 훈련이라고 봐줄 생각 따윈 없었다.

“읏. 흣. 이렇게요? 이렇게 해요?”

납작한 배를 내밀며 여우희가 말을 탔다.

-그래, 하면 잘하잖아. 왜 못 한다고만 해.

그래도 재능이 있었다. 금세 말안장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리듬을 탔다. 여진우는 승마 운동 기구의
강도를 2 단계로 높이라고 했다. 1 단계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기구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흣. 읏. 흣.”

여우희는 유독 엉덩이에 살이 많은 편이었다. 부드러운 엉덩이 살이 안장에 뭉개졌다가 튕겨 오를 때마다


구멍에서 애액이 뿜어져 나왔다. 쩌억. 쩌업. 끈적이는 애액에 안장과 엉덩이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그 사정을 알 수 없는 여진우는 그의 성기와 손바닥이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라고 착각한 채 자위 행위에


몰두했다.

알몸으로 허리를 들썩거리는 여우희를 반찬 삼으니 최고로 맛 좋은 자위가 되었다. 눈가가 붉어진
여우희가 입술을 짓씹는 모습은 야하기 그지없었다.

“흐으, 흣. 으응.”

힘들어서 낸 소리가 좆 박힐 때 나는 소리처럼 음탕했다. 여진우의 좆 끝에서 쿠퍼액이 콸콸 쏟아져 나와


두꺼운 기둥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우희. 가슴 내밀어.

“흣. 형, 형아. 흑.”

-여우희, 젖통 내밀라고 했다!

큰 소리를 내고 나서야 여우희가 잔뜩 가슴을 내밀었다. 하얀 눈밭에 꽃잎이 떨어진 것처럼 자리한
젖꼭지 주변으로 물컹한 가슴살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진짜 알파였다면 가슴이 근육질이라 돌처럼 딱딱해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선이 발달한 오메가나 말랑한 가슴을 가졌다. 여우희는 분명 오메가였다. 그의 몸이 말해 주고 있다.

“이거 놔! 놓으라고!”

여우희를 보고 자위하던 여진우의 병실에 알파 간호사들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핸드폰 화면이 까맣게
물들었다.

여진우는 핸드폰을 빼앗겼다. 알파 다섯이 달려들어서 그를 침대에 처박고 팔을 꺾어 못 움직이게


포박했다.

“도련님, 강 집사입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여우희는 핸드폰 너머에서 형에게 벌어진 일도 놀라운데 자신의 방을 찾은 강 집사 때문에 깜짝 놀랐다.


얼른 기구를 끄고 애액이 묻은 말안장과 엉덩이를 휴지로 벅벅 닦아 뒤처리를 했다.

“어서 문 여세요. 안 그러면 열쇠로 열 겁니다.”

“잠깐만요. 아저씨. 나…… 나…… 옷 입어야 해요.”

문밖에 있던 강 집사는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여우희는 재빨리 페로몬 탈취제를 방 안에 뿌렸다.


정신없이 브리프와 잠옷을 챙겨 입고 방문을 열었다. 강 집사 옆에 여 회장이 서 있었다.

그가 방 안을 훑어보고는 여우희에게 물었다.

“네 형이 너한테 무슨 짓을 시켰어. 바른대로 말해.”

“……혼났어요. 제가 그때 혼나다가 말아서. 그러니까 멋대로 편입한 건 나쁜 짓이니까 형한테…….”

여우희가 횡설수설하는 말에 여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씨발, 여진우.’

그의 첫째 아들은 변태였다. 여 회장은 강 집사와 사용인들에게 방에 있는 승마 운동 기구를 거실로


옮기라고 했다. 사용인들은 무거운 기구를 들고 방 밖으로 날랐다.

“우희야, 승마는 근력 성장에 무척 좋아서 널 위해 형이 시켜 준 거야. 알지?”

“네에.”

여우희가 실망한 아이처럼 기운 없이 대답했다. 그가 자기편에 서서 형을 혼내 줄 거라고 여겼었나 보다.


여 회장은 둘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절대 그런 일 따위 없다는 말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거실에서 운동하렴. 그땐 옷을 입어도 돼.”

여 회장은 첫째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승마 운동 기구 또한 폐기하지 않는 거였다.

여우희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는 건가, 하고 불쌍하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여 회장은 이 일을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여우희에 대한 미안함으로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여 회장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분명 정신병원에 다녀오면 여진우는 괜찮아질 것이다. 여


회장은 수십 번도 넘게 했음에도 보답받은 적 없는 부질없는 기대를 이번에도 걸었다.
4. 예쁜 복숭아

강 집사에게 여진우가 핸드폰을 사용했다는 보고를 받은 여 회장은 바로 닥터 윤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겁니까. 어떻게 진우가 우희한테 연락한 거죠?”

-아…….

닥터 윤은 급하게 자리를 피하느라 핸드폰을 되찾지 못한 사실을 떠올렸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여 회장님도 저한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게 있지 않습니까. 바른대로 말해


보시죠. 회장님이 여우희를 강간하려다가 전무님께 걸려서 여기 보낸 거 아닙니까!

“하…… 돌겠네. 닥터. 계속 시골에 처박혀 있어서 미쳤습니까?”

여진우가 하는 교묘한 거짓말에 정신과 의사인 그가 넘어갈 줄이야. 이미 여우희라는 희생양을 보고도 여
회장은 여진우의 가스라이팅 실력이 믿기지 않았다.

-여우희 사진을 보니까 우성 알파라고 하기에는 몹시 체격이 작더군요.

“우희 형질 인증서 우성 알파로 나온 거 맞습니다. 지금 날 의심하는 겁니까?”

-예! 지금 절 속여서 여진우 전무 감금 행위에 동참시킨 거면 아무리 회장님이라도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여진우가 14 년 동안 끊임없이 일관적으로 한 말들을 믿지 않았던 그였지만, 여우희의 앳된 외모가 그를


흔들어 버렸다. 만일 진짜 여진우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멀쩡한 사람을 가두고 정신병자 취급한 거였다.

그 사실이 헌신적으로 여진우의 치료에 몰두했던 닥터 윤을 공황에 빠지게 했다.

“닥터 윤. 난 러트 사고가 있고 나서야 아내와 각인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

“진우가 뭐라고 하던가요.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선생께서 날 의심하는 겁니까.”

-여 회장님이 사실 각인을 한 알파가 아니고 오메가인 여우희를 계속 강간하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여 회장은 정신이 제대로 돌아 버린 여진우 때문에 아픈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래전 여우희가 그의 무릎에 앉았다고 식탁 위에 올라가 있던 나이프를 들고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고 들었지.

정말 아들의 광기는 고칠 수 없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단 말인가.

다 큰 여우희를 다시 보육원에 가져다 버릴 수도 없었다. 그런 일을 했다가는 여진우가 여우희를 몰래


빼돌려 어디 산골에 감금해 놓고 자기 오메가라며 데리고 살고도 남았다.

“그 말이 믿겼습니까?”
-…….

“그 말이 믿겨요? 예? 닥터 윤. 대답해 보세요! 그게 상식적으로 믿기는 말입니까. 미치광이를 14 년


동안 만나다 보니까 당신도 미쳤습니까? 그래서 진우한테 핸드폰을 쥐여 줬어요?”

윤 회장의 호통에 닥터 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핸드폰…… 그래, 맞다. 자신은 여진우가 핸드폰을 왜 가져오라 시켰는지 알아보려고 그에게 그것을
건넸다. 그런데 여진우의 말에 당황해 회수하지 못했다.

여 회장이 자신에게 연락을 한 그래서였다. 집에 있는 여우희에게 여진우가 전화로 뭔 짓을 했으니, 여


회장이 병원에 전화한 것일 테다. 그는 여진우가 친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었다.

-여우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하아. 나도 아직 잘 모릅니다. 큰아이가 둘째한테 승마 운동 기구를 구해 놓으라 했다더군요.


괴롭히려고 하는지 뭔지 지금 확인하러 갈 겁니다.”

여 회장은 피로에 젖은 목소리로 닥터 윤에게 여진우에게서 핸드폰을 회수하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정신을 차린 닥터 윤은 전화를 끊고 알파 간호사들과 함께 병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여진우가 침대에서 바지를
내리고 자위하고 있었다.

핸드폰에서는 믿기지 않게도 야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알파 간호사들은 여진우를 제압해 핸드폰을


빼앗았다.

닥터 윤은 완벽하게 여진우에게 속았다. 그는 이 악마 같은 사내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 젊음을 다


바치고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갇혀 외롭게 살았음에도 그는 여진우를 치료할 수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미친 새끼를 두들겨 패서라도 같은 우성 알파 동생에게 욕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는 간호사들한테 여진우에게 구속복을 입히라고 했다.

소매가 길어서 등 뒤에서 묶을 수 있는 구속복을 입으면 환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재벌을 이렇게
험하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닥터 윤은 여진우로 인해 그가 상실해야만 했던 모든 것에 분노했다.

저 녀석만 없었어도 그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반항하는 여진우를 알파 간호사들이 주먹으로 후려쳐 가며 억지로 구속복을 입혔다. 끈으로 칭칭 묶인


구속복을 입은 여진우가 가녀린 목소리를 내며 울었다.

“선생님, 도대체 왜 이러세요.”

그는 여진우를 휠체어에 태우고 진료실로 끌고 갔다. 반드시 여진우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14 년 동안 허송세월한 게 아니라고, 뜻깊은 일을 해냈노라 증명하겠다.

닥터 윤은 서랍 깊숙이 숨겨 둔 차트와 여 회장 진술서를 끄집어냈다. 빠르게 진술서를 넘긴 그는


여진우에게 질문했다.

“동생이 몰래 다른 대학에 편입했다고 물고문하고 강간하려던 걸 인정합니까.”


“아니요. 난 그런 적 없어요.”

“1 년 전 여우희가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었다고 학대했던 걸 인정합니까.”

“아니요. 그런 적 없어요.”

“거짓말 좀 하지 마! 여기 다 적혀 있어. 넌 동생한테 발정해서 학대하는 미친 변태 새끼야! 인정해!


인정하라고!”

여진우는 볼 안을 혀로 훑으며 흥분해서 눈이 시뻘게진 닥터 윤을 구경했다. 이렇게나 쉽게 정신이


무너질 줄이야. 하긴 우리가 꽤 오래 만나 오긴 했다. 그는 1 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이를 으득 갈았다.

회사에서 돌아오니, 여우희가 정원에서 복숭아를 짓이겨 물들인 것처럼 분홍빛을 띠는 팔꿈치와 무릎을 다
내놓고 있었다.

***

7 월이 되자 서울의 최고 기온은 38.7 도에 육박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뉴스에서는 밭일하다가 죽은 농부들의 소식을 전하며 바깥출입을 자제하라고 했다.

쨍쨍한 햇빛에 정원에 있는 나무들의 잎사귀들이 빠짝 말라 갔다. 병충약을 살포했는데도 매미가 온종일
찌르찌르 울었다. 저것들이 저렇게 시끄러운 까닭은 짝을 만나 짝짓기를 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여름이란
그토록 뜨겁고 야한 짓을 하고 싶은 계절인 게다.

스무 살의 여우희는 발정기를 맞이한 매미가 부러울 만큼 굶주린 상태였다.

다정하기만 한 여진우 때문에 여우희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유혹한다고 했는데 전혀 넘어오지 않는 탓에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나 걱정되기도 했다.

여름방학이라 학교에 못 가서 집에 처박혀야 하는 그는 소파에서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으로 <애니멀 킹덤>을 열심히 시청하면서 말이다. 완벽하게 통제된 퍽퍽한 삶 속에서 19 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자나 얼룩말이나 하마가 어떻게 짝짓기를 하나 엿보는 것밖에 없었다.

수사자가 암사자의 등에 올라타서 열심히 번식 활동을 했다. <애니멀 킹덤>을 보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깔려야 하나 머릿속으로 연구하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텔레비전이 꺼졌다. 강 집사가 손에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

“크흠. 도련님, 아직 이런 걸 보시기에는 어리십니다.”

<애니멀 킹덤>은 전체 연령가 다큐멘터리였다. 유치원생들도 보는 걸 못 보게 하다니. 이러다가


욕구불만으로 일찍 요절해 버릴지 몰랐다. 우희는 시무룩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던 수저를 입에 물었다.

“그럼 나는 뭐 봐요. 드라마도 못 보고, 연예인 나오는 연예 뉴스도 안 되고, 9 시 뉴스만 봐요?”

여진우는 교육상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여우희에게 연예인이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금지했다. 강 집사가
어린이 프로를 틀어 주겠다며 텔레비전을 다시 틀었다. 그러나 그가 어린이 프로 채널 번호를 몰라서 열심히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던 중, 드라마 장면이 나왔다.
알파와 오메가가 키스하고 있었다. 강 집사는 너무 놀라 리모컨을 떨어트렸다. 여우희는 처음 보는
광경에 자세를 잡고 남자끼리 열심히 키스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보지 마세요. 안 됩니다.”

강 집사가 얼른 리모컨을 들어 올려 텔레비전을 끄려고 했으나 떨어트릴 때 건전지가 빠져서 끌 수 없었다.


결국 여우희는 알파가 오메가를 데리고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드라마에서 나오는 베드신이라 이불 안에서 들썩거리는 모습만 나왔는데도 강 집사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그가 얼른 텔레비전 본체에서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전무님한테는 방금 본 거 말하지 말아 주세요.”

여우희는 강 집사를 올려다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나 반소매랑 반바지 입을래요.”

“……하지만 그건.”

“엄마한테 허락받을게요. 네?”

중요한 건 김민정의 의견이 아니라 여진우의 의견이었다. 강 집사는 곤란해서 식은땀만 흘렸다.

“종일 집 안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었더니 머리 아파요. 정원에 나가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산책할래요.
아빠한테도 허락받을게요. 네?”

여우희와 같은 또래의 그 어떠한 이도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게 해 달라고 부모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


그건 그냥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거였다. 강 집사는 여진우가 꽉 잡고 놔주지 않는 여우희에게 내심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기에 망설였다.

여우희는 자기 형 때문에 학교가 아니면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한 채 갇혀 살았다. 그런 여우희에게 고작


이런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게 하는 건 가여운 일이었다.

착하고 순하며 사용인들에게 친절한 둘째 도련님을 아끼는 강 집사는 큰마음을 먹었다. 그는 여 회장과
김민정에게 연락을 넣어 미리 허락을 구했다.

부모의 동의 아래 강 집사는 여름옷을 구해 왔다. 여진우에게 연락하지 않은 건 그가 절대 허락해 줄 리


없다는 걸 은연중 알았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받아 본 여름옷에 여우희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집사 아저씨!”

상큼하게 미소 짓는 여우희로 인해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사용인들도 밝게 웃는 여우희를 보고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를 덧그렸다.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간 여우희가 자기 방에 가서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내려왔다.

“너무 시원하고 편해요. 여름에는 맨날 입고 싶어요.”

“도련님, 그렇게 좋으세요?”


강 집사는 제 아들에게 최신 로봇 장난감을 사 줬을 때처럼 물었다. 여우희는 광대가 볼록해지도록
기뻐했다.

“네!”

여우희는 정원에 산책하러 나갈 거라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정원에서 호스로 물을 주고 있던 정원사가


둘째 도련님을 보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만 여우희가 직접 호스를 잡고 화단에
물을 뿌렸다.

햇살이 얇은 반소매를 통과하며 여우희의 실루엣을 비춰 냈다. 가는 목덜미에는 땀에 이슬처럼 맺혔고,


호스에서 나온 물이 허공에 떨어지며 무지개를 만들었다.

까르르. 옥구슬 굴러가듯 웃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강 집사는 여우희에게 여름옷을 가져다주길
잘했다며, 고작 이런 변화에 행복해하는 둘째 도련님을 불쌍히 여겼다.

그는 여진우가 돌아오기 전에 여우희의 옷을 갈아입히겠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업무로 돌아갔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여진우가 오후 3 시밖에 안 되었는데 저택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호스를 가지고 노느라 물에 젖은 반소매는 반쯤 투명해져 있었다. 여우희의 가슴과 배에 달라붙어 통통한
젖꼭지와 동그란 배꼽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였고, 하얀 팔뚝은 그대로 노출됐다.

반바지 또한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움직이면서 위로 밀려 올라가 뽀얀 허벅지 살이 드러났다.


여우희는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을 보고 얼어붙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우희는 손에서 호스마저 놓치고 말았다. 잔디에 떨어진 호스에서 계속 물이 콸콸


쏟아지며 물웅덩이가 고였다.

퍽. 둔탁한 타격음이 긴장한 여우희와 정원사가 만들어 낸 고요를 갈랐다.

“아아. 형! 하지 마요. 그러지 마.”

여진우가 여우희의 옆에 있던 정원사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정원사는 더러운 흙바닥에 넘어졌다. 완벽한
양복 차림의 여진우는 호수 위에 떠 있는 백조처럼 열심히 발길질하되, 얼굴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게 무표정했다.

정원사가 괴로워하며 살려 달라고 빌었다. 여우희는 여진우의 팔에 매달려서 죄 없는 정원사를 살리기


위해 애원했다. 콧대가 무너진 정원사의 얼굴이 온통 코피로 물들었다. 덜덜 떨며 여진우를 말리던 여우희의 손이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다.

혹시라도 그의 화가 자기한테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무기력하게 물러난 여우희는 큰 눈으로 눈물만
뚝뚝 떨어트렸다.

“우희야, 어떻게 수준 낮게 정원사랑 눈이 맞아. 응? 내 동생이 그렇게 가치 없는 녀석이었어?”

“흑. 아니에요. 정원사 아저씨랑 눈 안 맞았어요. 정말 그런 거 아니에요.”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한 정원사가 기절했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앞니가 보이지 않았다. 여진우는 계속
발길질하느라 양복바지 안에서 허벅지가 터질 듯 단단해진 것밖에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가 우는 여우희를 돌아보며 물에 젖은 가슴을 움켜잡았다.

“근데 왜 내 동생이 남창도 아닌데 젖꼭지 내놓고 구멍 파는 놈처럼 굴고 있었을까.”

“흡. 흑. 흑. 물놀이. 훌쩍. 물놀이 한 건데.”

“바지는 또 왜 그래. 어디에다가 잘라 먹었어.”

“앗!”

여진우는 무릎 위로 올라간 반바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여우희가 무릎을 꼭 오므려 그 손을


저지했다.

“반바지 입으면 이렇게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기 쉽다고. 그런데 우리 우희가 헤프게 입고 다니면 형이
걱정되겠어? 안 되겠어?”

다정한 목소리가 우는 여우희를 달래듯 물었다. 부채꼴처럼 길게 자란 여우희의 속눈썹이 눈물에 푹


젖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서로 달라붙어 엉키는 탓에 갓 태어난 사슴처럼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걱정돼요.”

“맞아. 그럼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겠지?”

여진우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가 여우희의 손목을


잡고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급하게 끌려가느라 여우희의 오른발에서 슬리퍼 한 짝이 벗겨져 정원을
나뒹굴었다.

“형, 형 나 손목 아파요.”

“닥쳐.”

여진우가 집 안에 들어오더니 적을 탐색하는 사자처럼 주위를 살폈다. 사용인들은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여진우와 그에게 끌려온 여우희를 보고 하얗게 질렸다.

“전원 거실로 집합해.”

여우희는 옷이 젖은 채 에어컨 바람을 맞아서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솜털이 일어서고 이가 달달 떨었다.

“그거 봐. 그렇게 천박한 옷을 입으니까 한여름에도 추워하잖아.”

반소매와 반바지 때문이 아닌 강하게 틀어 놓은 에어컨 바람이 문제였지만, 여기서 그런 걸 말했다가는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짓밖에 안 됐다. 여진우는 양복 재킷을 벗어서 여우희의 어깨에 걸쳐 줬다.

둘의 체격 차이가 큰 편이라 양복 재킷 소매가 여우희의 손등을 가리고 밑단은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본의 아니게 양복 재킷이 여우희가 입고 있는 반바지를 반이나 가려 더욱 짧게 느껴지게 했다.

상의만큼 짧은 하의라는 의식이 여진우의 뇌리에 바늘로 새기듯 강하게 박혔다. 그는 버클을 풀고 가죽
허리띠를 바지에서 뽑아냈다.

첫째 도련님의 부름에 집합한 사용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그는 천천히 사용인들을


지나치며 손으로 가죽 허리띠를 잡아당겨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시켜 줬다.

“누구야. 누가 내 거한테 저딴 옷 입혔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던 강 집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여씨 가문을 위해 15 년을 살아온


자신을 여진우가 때릴까 싶으면서도 이놈은 그러고도 남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조여들었다.

“말 안 해? 그럼 너희 다 오늘 맞아 뒈질 줄 알아.”

여진우가 바로 앞에 있던 사용인에게 가죽 허리띠를 내리쳤다.

“꺄악! 도련님. 저 아니에요. 집사님이에요. 강 집사님이요.”

가죽 허리띠에 한 대 맞은 사용인은 다친 뺨을 감싼 채 엉엉 울었다. 여진우가 씁, 숨을 들이켜고는


나머지는 꺼지라고 했다. 다들 여기에 더 있다가는 해코지당할까 봐 얼른 도망쳤다. 강 집사는 혼자 거실에 남아
마른침을 삼켰다.

“강 집사.”

“예, 전무님.”

“옛날에 머슴이 잘못하면 어떻게 했는지 알아? 멍석에 말아서 죽을 때까지 때렸어. 근데 현대에는 주인이
머슴을 때려서 죽이면 그게 죄래.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이긴 한데, 이 나라 법이 그따위이니 어째. 안 죽이고
살려야지.”

여진우가 머리 높이까지 팔을 치켜올렸다. 그러고는 가죽 허리띠를 채찍처럼 휘둘러 강 집사를 채찍질했다.

“아아악!”

강 집사가 비명을 질렀다.

여우희는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러다가 여진우가 강 집사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엉금엉금 기어서 여진우의 다리에 매달린 여우희가 애원했다.

“형, 형아. 집사 아저씨 때리지 마요. 내가 잘못한 거예요. 내가 여름옷 구해 달라고 했어요.”

여우희는 여진우의 허벅지 뒤에 얼굴을 파묻고 비볐다. 동생의 애교가 기꺼웠으나 여진우는 강 집사를
때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우희야. 네가 잘못한 건 당연히 알아. 너도 혼날 거니까 저리 가 있어. 이러다 다치겠다.”

“흣. 흑. 형아. 잘못했어요. 다시는 이런 옷 안 입을게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집사 아저씨 때리지


마세요. 차라리 제가 맞을게요.”

여진우가 손을 내렸다. 그는 볼품없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강 집사를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강 집사. 우리 우희가 널 대신해 혼나고 싶대. 넌 어쨌으면 좋겠어? 우희 대신 계속 허리띠로 맞을래.


아니면 우희를 배신하고 너 혼자 살래.”

강 집사는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무릎 꿇고 여진우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전무님…… 저는 둘째 도련님이 지시하신 대로 한 죄밖에 없습니다.”

“푸하하하하. 우희야, 네가 구하려고 한 저 늙은 아저씨가 한 소리 들었지? 넌 고작 저딴 새끼 구하려고


형한테 맞겠다고 한 거야.”

여진우는 강 집사와 여우희를 이간질해 놓고는 그게 다 강 집사의 탓인 것처럼 흡족해했다. 그는 목에


매고 있던 넥타이를 끌러 내리더니 여우희의 두 손을 등 뒤로 모아서 넥타이로 묶었다.

“강 집사는 내 서재에 가서 책 열 권만 뽑아 와.”

“네. 전무님.”

강 집사는 방금까지 그에게 맞은 적 없다는 듯 충실한 사용인의 얼굴로 대답했다. 여진우는 가져온 책을
차곡차곡 바닥에 쌓아 올렸다.

“여우희. 책 위에 올라가.”

책 열 권은 혼자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높이였다. 발을 올리자마자 쌓아 놓은 책 탑이 무너져 내렸다.


여진우가 다시 책을 쌓고 여우희를 번쩍 들어서 그 위에 올렸다.

“이제 넌 오늘 자정까지 이 위에 서 있는 거야. 네가 여기서 떨어질 때마다 강 집사는 형한테 맞을 거고.


잘할 수 있지?”

“흡흐흑. 흐흑.”

여우희가 우느라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이 뒤로 묶여 있어서 가뜩이나 균형을 잡기 힘든데
높은 책 탑은 조금만 움직여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거기다 아직 오후 3 시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홉 시간이나
서 있는 건 고문에 가까웠다.

이 책 위에서 소변이라도 보기 위해 내려오는 순간, 강 집사는 가죽 허리띠에 맞게 될 것이다. 식사도 할


수 없고, 잠도 미뤄야 했다.

여진우가 이렇게까지 무섭게 화낼 줄 몰랐던 여우희는 슬레이브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였다.

만일 그의 가학적인 플레이를 멈출 수 있는 안전어가 있다면 수없이 외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건


단순히 잠깐 침대에서 놀다가 끝나는 SM 플레이가 아닌, 노예로 살고자 해 선택한 여우희의 삶이었다.

충실히 벌을 받아서 마스터에게 예쁨받고 싶다는 생각에 여우희는 한 시간 동안 책 위에서 버텼다.


그러나 계속 서 있으려니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휘청이면서 떨어지려는 여우희를 여진우가 받아 냈다.

거실에 무릎을 꿇고 대기 중이던 강 집사가 여진우에게 가죽 허리띠로 맞았다.

“다시.”

여진우의 한마디에 여우희는 열 권이나 되는 책 위에 다시 올라갔다. 다리가 너무 저리고 발바닥이


아파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흑. 형. 으읏. 다리가 너무 아파요.”


“우희야. 내가 널 때리기를 했니, 뭘 했니. 고작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못 하면서 어떻게 네가 네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한다고 말할 수 있어? 넌 그렇게 내 보호가 없으면 안 되는 약한 존재야. 인정해?”

“네. 흐흑. 맞아요. 난 형 없으면 안 돼요.”

여진우의 표정이 부드럽게 이완되었다. 그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여우희는 이제 처벌이 끝나는 건가


싶었으나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이제 일곱 시간 남았어.” 했다.

사용인들에게 소식을 듣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여 회장과 김민정은 거실에서 벌어진 광경을 보고
기함했다. 귀로 들었던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여진우, 그만두지 못해?”

여 회장의 으름장에도 여진우는 주눅 드는 기색 없이 거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벌을 받는 여우희를


감상했다. 김민정이 여우희의 손목을 풀어 주려고 했다. 그러자 여진우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여우희에게서 떨어졌다. 여진우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평소 김민정이 차를 마실 때


모습을 흉내 내며 차를 마셨다. 계속 고상하게 살라는 조롱이 담긴 행동이었다. 찻잔에 가려진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머니.”

“여진우. 당장 그만둬! 도대체 네 동생이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 어? 이 미친 새끼야! 언제


정신 차릴 거야!”

여 회장은 자기 오메가를 등 뒤에 숨긴 채 첫째 아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진우가 어디서 개 짖나,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아버지. 우희가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었더라고요.”

“그게 뭐 어때서 그러냐. 고작 그딴 것 때문에 네 동생을 쥐 잡듯이 잡아?”

“아, 혹시 아버지가 허락해 주셨어요?”

여진우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 질문했다. 여 회장은 공격적인 알파 페로몬을 뿜어내며 첫째 아들을


압박했다.

“맞다. 내가 허락했어.”

“아버지, 맞으실래요?”

“뭐?”

패륜적인 아들의 말에 여 회장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착각했다. 여진우는 다리가 아프다고 낑낑대는


여우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형이 드디어 자신을 용서해 준 걸 알아차린 여우희는 얼른 책 탑에서 내려왔다.

오랫동안 서 있느라 굳은 다리를 쩔뚝거리며 여진우에게 걸어갔다. 여진우가 그의 허벅지에 여우희를 올려


앉히고 다리를 주물러 줬다. 여우희가 서 있었던 시간은 고작 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훈육 방식에 대한 충격이
커서 다들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희야, 앞으로는 절대 이런 옷 입으면 안 돼.”

“네, 형아.”

여우희는 순하게 대답하며 얼굴을 여진우의 가슴에 문질러 애교를 부렸다. 잘 교육된 개를 보는 것 같다.

“형이랑 같이 방에 올라가자. 종아리 주물러 줄게.”

여진우는 여우희를 자신의 방에 데리고 들어가 침대에 엎어 놓았다. 동그랗게 올라붙은 엉덩이와 커다란
골반 때문에 허리가 더욱 가늘어 보였다. 뒤치기 하면 기가 막히겠다.

그는 처음으로 동생이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은 기념으로 팔뚝이고 허벅지고 옷 위로 드러난 모든 부위를


주물럭거리며 사심을 채웠다. 맨살과 맨손이 맞닿는 감각은 황홀했다.

여우희는 관절마다 분홍빛으로 물들어서 팔다리가 무척 예뻤다.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간지러워하며


키득거리는 걸 보면 몸 또한 몹시 예민한 편이다. 아주 좋은 징조였다.

“우희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네? 뭐가요?”

“네가 내 사랑을 받아 낼 날이.”

“어…… 형 나 사랑 안 해요?”

여우희가 순한 소처럼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여진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을 보며 “사랑하지.”


하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무척 힘들었다고 칭얼거리는 여우희를 달래기 위해 진열장에서 초콜릿 박스를 꺼내
왔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는 그가 방 안에 보란 듯이 초콜릿 박스를 전시해 두는 건 다 여우희 때문이었다.


그것에 홀려서 여우희가 자신의 방에 자주 찾기를 바라며 설치한 일종의 트랩이었다.

여진우의 페로몬이 듬뿍 묻어난 침대를 뒹굴던 여우희가 초콜릿 박스를 열었다.

“우와! 맛있겠다. 나 헤이즐넛 초콜릿 완전 좋아하는데.”

여우희는 누가 빼앗아 먹을세라 급하게 초콜릿 포장지를 뜯어서 입에 넣었다. 연달아 다섯 개를 먹더니
그제야 여진우가 생각났는지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형도 드실래요?”

“아니야. 우리 우희 많이 먹어.”

“네. 헤헤.”

자기가 생각해도 부끄러운지 뺨이 복숭앗빛으로 발그레 달아올랐다. 여진우는 초콜릿 박스에 정신이 팔린
여우희의 얼굴을 얼른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 찍히는 게 일상이 된 여우희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초콜릿을 먹다가 초콜릿
박스를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렇게 좋아?”

“네. 형한테 혼나는 건 무섭고 힘든데 그러고 나면 형이 우희를 많이 예뻐해 줘서 좋아요.”

여우희는 처벌 뒤에 받는 달콤한 보상 때문에 여진우에게 길들여졌다. 그는 뺨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동생을 보며 생각했다.

내 예쁜 복숭아. 언제 다 익어 물 가득 차오른 걸 따먹을 수 있을까.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간다. 그러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 것이다.

***

구속복을 입은 여진우는 실실 웃음을 쪼갰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뭐가 말입니까.”

“선생님은 5 분 뒤에 죽을 거예요.”

닥터 윤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따지려고 했다. 그때 시끄러운 자동차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을 찾을 사람이 없기에, 그는 당황해서 창문을 내다봤다.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좋은 사내들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정신병원으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어떻게…….”

“그러게 왜 저 같은 놈을 믿고 핸드폰을 넘기셨어요. 설마 제가 핸드폰을 딸감으로만 썼겠어요?”

“전무님, 전무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세요.”

닥터 윤은 여진우 앞에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애원했다. 그가 자신의 환자라는 건 더 이상 그들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괴한들에게 공격당해 비명 지르는 소리가 진료실까지 들려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괜찮아요. 저 녀석들은 프로라 금방 죽여 드릴 거예요. 선생님, 그동안 미친놈 상대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닥터 윤은 문으로 달려가 잠금장치를 눌렀다. 그러나 문고리를 부수고 그들이 문을 열었다.

“으아! 아아아아!”

닥터 윤은 곧 여러 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이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여진우를 풀어 줬다. 여진우는


비명을 뒤로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그동안 얼마나 이러고 싶었는지 모른다. 14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며
통쾌하게까지 느껴졌다.
여진우는 길을 걷다가 걸리적거리는 시체를 발로 찼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불태워. 흔적 안 남게.”

“예, 알겠습니다.”

남자가 팀원들에게 무전기로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석유통을 가지고 와 정신병원 곳곳에 뿌렸다. 여진우가 그곳을 빠져나오자 불길이 피어올랐다.

등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거센 화염이 순식간에 모든 증거를 집어삼켰다.

***

여진우의 핸드폰을 위치 추적하니 가평이 나왔다. 강도희와 김두협은 함께 자동차로 이동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을 때였다. 김두협은 멀리서도 보이는 불길에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껐다.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한 그는 근처에 있는 줄기가 굵은 나무 뒤에 차를 숨겼다.

GPS 에 찍힌 장소가 불타고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온 여진우는 지그시 불길을 감상하다가 시선을
바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웃어? 갑작스러운 불길에 놀라서 도망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만족하는 것처럼 느긋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 앞에는 검은 차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는데, 여진우가 양복을 입은 사내들과 대화하고 자동차


뒷좌석에 올라타는 모습이 보였다. 강도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그 모습을 촬영했다. 여진우가 이곳을 불태운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약점을 잡았다. 이제 우희를 구해 낼 수 있다.

어두워서 낯선 차량을 발견하지 못한 검은 차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다행히 주변에 아무것도 불에 탈


게 없어서 건물만 태우고 불길이 사그라졌다. 강도희는 여 회장의 핸드폰 번호를 알아내 방금 찍은 동영상을
첨부해 보냈다.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너 누구야. 누군데 감히 내 아들을 가지고 협박해.

“안녕하세요. 회장님. 나쁜 뜻을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니 너무 노여워 마시죠.”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목소리에 여 회장은 기가 막힌 듯 ‘허, 참’ 하고 혀를 찼다. 협박하는


주제에 나쁜 의도가 없으니 화내지 말라니.

“회장님 첫째 아드님이 단단히 미치신 거 아시죠?”

-원하는 게 뭐야!

“그놈한테서 여우희 안전만 보장해 주시면 됩니다.”

-……네가 어떻게 우리 우희를 알아.


여 회장은 협박범에게서 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부탁에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방금 가평에서 여진우가 움직였으니 2 시간이면 도착할 겁니다.”

-정말 뭐 하는 놈이야. 너.

“……우희 친구입니다. 제발 우희 좀 지켜 주세요, 회장님. 14 년 전, 햇살보육원에 우희 보내셨죠?


그거 다 여진우 때문이었습니까?”

-너 강도희구나. 우리 우희가 같이 학교 다니고 싶다며 편입하게 한 놈.

여 회장의 말을 통해 강도희는 왜 여우희가 청하 대학교에서 지하대학교 같은 곳으로 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 아이가 자신을 잊지 않고 약속을 지키러 왔었다는 사실에 울컥한 그는 무릎 위에 올려 둔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그런데 자신은 눈앞에 두고도 몰라봤다. 의무실에 왕따를 데려다주면서 여우희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혹시 나 기억해?’

‘우리 만난 적이 있었나?’

아아, 젠장.

강도희는 후회로 가득한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 학교에 가면 여우희에게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할 거다. 네가 죽은 줄 알아서 몰라봤다고
사과하고 다시 그와…….

-둘째는 내가 알아서 지킬 거니 넌 빠져. 그리고 동영상 원본이나 넘겨.

“아니요. 우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여진우 숨통 조이기 위해 이 영상 써먹을 겁니다. 회장님은


최선을 다해 우희를 보호하세요. 그래야 첫째 아들 감옥 안 갑니다.”

강도희는 일방적으로 할 말을 다 쏟아 내고 전화를 끊었다. 여 회장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오지는 않았다.


김두협은 걱정스럽게 룸미러로 강도희를 지켜보다가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

여진우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들어섰는데도 여우희가 문 앞에 서 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그가 아직 미국에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새벽 2 시라는 늦은 시간이라 집 안의 조명이 다 꺼져 있었다. 여진우는 집 안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의 방이 아닌 꿈나라에 떠나 있을 여우희의 방문을 열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커다란 덩어리에게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갔다. 덩어리 위에 올라타 이불 안으로 손을
넣었다. 여우희의 바지를 벗겨 내고 구멍에 좆을 넣어서 오메가인지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상했다. 하얀 사슴의 다리처럼 쭉 뻗은 다리가 아닌 두툼하고 딱딱한 근육질 다리가 만져졌다.
여진우는 거칠게 이불을 벗겨 냈다. 여우희의 침대에 여 회장이 누워 있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라 여진우는 당황하고 말았다.

“진우야, 우희는 네 동생이다. 절대 건드리면 안 돼.”

“우희 어디에 있어요?”

“우희는 네가 건드리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다시 집에 데려오마.”

“지금 집에 없다는 거예요? 내 우희가?”

믿기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타락한 이의 눈은 검게 침전했다. 여진우는 여 회장의 목을 조르기 위해


손으로 감쌌다.

여 회장은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운 죄로 살인과 방화를 저질렀다는 자책에 꼼짝 안 했다. 주름진 눈가에
참담함을 담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 죽여요. 쫄긴.”

여진우는 조금 전까지 자기 아버지의 목을 조르기 위해 손으로 감싸 놓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 회장은 이미 14 년 전에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도 여우희를 버리지 못했고 여진우의


고장 난 머리를 고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자식들을 아꼈다고 여겼으나 제 손으로 지금의 괴물로 키워 냈다.

여진우를 막을 방법은 오직 감옥에 넣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여태 그러지 못해 이 사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아들의 허물을 감추는 데 급급해 뱀이 허물을 벗고 용이 되는 걸 막지 못했다.

여우희 책상에 간 여진우가 의자에 앉았다. 의자 등받이에 가방이 걸려 있었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요. 내가 진짜 흥분해서 죽였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여진우가 여 회장을 죽이지 않은 건 여우희의 가방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이 집에 아직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에 봐준 거지, 여 회장이 아버지라서 죽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 난 가끔 생각해요. 아버지가 천한 오메가와 떡을 치지 않아서 우리 우희가 태어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내 삶은 정말 끔찍했을 거예요. 고마워요. 우리 우희 태어나게 걸레 짓 해 줘서.”

여진우가 여우희의 가방을 애틋하게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자기 동생을 강간하고 싶어서 발정 난 아들을
보며 여 회장은 침음을 삼켰다. 정말 이 녀석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그에게는 강도희가 보낸 동영상이란 목줄이 생겼다.

여 회장은 핸드폰을 꺼내 여진우가 불타는 정신병원을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을 재생시켰다. 여진우는 ‘


어쩌라고.’ 비웃음을 날렸다.

“네가 사람을 죽이고 정신병원을 태운 걸 강도희가 알고 있어. 강도희가 이 동영상을 나한테 보내며 바란
건 단 하나다. 우희의 안전. 그걸 어기면 감옥에 가게 될 거다.”

여 회장은 간절한 마음으로 여진우를 바라보며 어르고 달랬다.


“진우야, 감옥 가면 너 우희 얼굴 전혀 못 봐. 통화도 할 수 없고. 거긴 정신병원과도 전혀 다르고, 네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어.”

사랑하는 오메가와 사이에서 낳은 우성 알파 아들이 비록 하자가 있다고 해도 여 회장은 멀쩡한 장기라도


떼어 줄 수 있을 만큼 아끼고 사랑했다.

만일 강물에 여진우와 여우희가 빠지면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첫째를 구할 거다. 첫째가 죗값을 받게


하는 게 마땅하나 그는 이 아픈 손가락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니 우희 건드리지 마. 우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집에 돌아와 여우희의 구멍을 따먹을 생각에 젖어 있던 여진우가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와, 어쩐지 그 새끼 이름 들었을 때 죽이고 싶더니만. 나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도 생겼나?”

여진우는 가벼운 말투로 말했으나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아냈고 하필 범죄를 저질렀을 때를 포착한 걸까.

계속 감시하고 있던 걸까? 왜?

여우희는 편지에서 강도희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강도희는 여우희를
알아봤고 지키려고 한다.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여우희가 거짓말을 한 걸까? 감히 자신에게?

그럴 정도로 배짱이 좋았다면 진작 그가 내리는 체벌에 한 번쯤은 반항했겠지. 이 집에서 내쫓길까 봐


부모님 눈치를 보며 형에게 대들지 못하는 가여운 동생이었다.

어렸을 때는 여우희를 보육원에 보냈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으나 그 덕에 제 것은 순종적으로


자라났다. 여우희가 편지에 거짓말을 적었을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면 강도희 쪽에서 모른 척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정말 몰라봤거나.

뭐 어쨌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설령 강도희가 당시에는 여우희를 알아보지 못했어도 지금은


알아봤다. 더군다나 여진우가 여우희를 취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자신의
흑심을 알아볼 정도면 눈치가 귀신같다. 절대 평범한 개새끼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동영상 입수할 때까지 얌전히 있어. 응? 진우야, 아버지랑 약속하자.”

여 회장이 여진우에게 다가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여진우는 여 회장과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제


사고를 치지 않을 것처럼 여 회장을 마주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강도희를 죽일까 고민했다.

“아버지가 알아보니까 강도희. 흑곰파 보스 아들이더라.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위험해지니까 나서지


말고.”

여진우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여 회장이 경고했다. 흑곰파라면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암흑


조직이었다. 현재 정치계와 밀접한 커넥션을 통해 양지로 나오려고 거대 리조트 사업을 추진 중이기도 했다.

제주도에 판타지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1 조 4,000 억 원을 쏟아붓고 있었다. 장장 8 년이 걸리는 개발


사업이었다.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까지 이용할 수 있는 카지노 사업 인허가가 나 있어서 판타지 리조트가
완공되면, 한국 재계 서열 순위에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물었구나, 우리 우희가.’

강도희를 홧김에 죽였다가는 아버지 강성회가 가만있지 않을 거다. 분하고 짜증 나지만 동영상을 처리하기
전까지는 여우희를 건드릴 수 없었다.

“진우야, 아버지가 너 믿는 거 알지.”

“씨발, 알았다고요. 좆같아도 참을게요.”

자신의 오메가인데 가지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진우는 뒤늦게 괜히 정신병원을 불태웠나


후회했다. 누가 알았나. 이렇게 덜미가 잡힐지.

“우희는 어디에 있어요?”

“안방에서 재워. 오랜만에 엄마랑 잔다고 좋아하더라. 가여운 녀석.”

여 회장은 우성 알파인 둘째와 자신의 오메가가 한 침대에서 자는데도 전혀 불쾌하거나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단지 여우희가 자신의 아들이니까, 라고 그 문제를 넘겼으나 여진우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각인한 알파가 자기 오메가와 아무리 자식이라도 알파를 한 침대에서 자게 둘 리 없었다. 만일 여진우가


김민정이랑 자겠다고 들면 아무리 그를 귀애하는 여 회장이어도 칼부림이 날 테다.

여우희가 형질 검사지를 조작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런 형질인의 본능까지는 속이지 못했다. 알파는 알파고
오메가는 오메가다.

“제가 우희, 방에 데려다 놓을게요. 아버지는 어머니랑 주무셔야죠.”

“……그럴까 그럼?”

여 회장이 반기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여진우는 그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 층으로 내려갔다. 안방


문고리를 돌렸다. 주홍빛 스탠드 불빛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김민정은 누가 보면 여우희가 진짜 자기 자식인 줄 알 만큼 품에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쌕쌕. 곤한


숨을 내뱉은 여우희의 분홍색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여진우는 여우희의 오금과 등을 받치고 들어 올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데려가도 되는데 일부러
오랫동안 안고 있고 싶어서 계단을 올랐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가슴에 닿아 심장이 간질거렸다.

우리 우희는 뭘 먹고 이렇게 예쁘게 자란 걸까. 분명 자신과 같은 밥, 같은 공기를 먹고 살았는데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문을 열어 둔 방 안에 들어가 여우희를 침대에 눕혔다. 꼼꼼하게 이불을 덮어 주고 얼굴을
들여다봤다.

온종일 구경하라고 해도 질리지 않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서 여우희 얼굴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여우희가 무슨 꿈을 꾸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형아.”

“우리 우희는 왜 이렇게 어려. 형이 뭐가 무섭다고. 난 너한테 절대 못 이기는데.”


그는 동생의 옆에 나란히 누워 등을 토닥여 줬다.

“내 예쁜 복숭아. 쑥쑥 자라라.”

***

그 시각, 꿈에서 여우희는 근육질 가슴에 와이셔츠 단추가 터질 것처럼 벌어진 여진우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알몸의 여우희는 구멍에 강아지 꼬리가 달린 플러그를 끼운 채 엉덩이를 들썩였다.

‘발정 난 암캐 같으니라고. 가만히 있지 못해.’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형아.’

현실의 여진우가 들었던 잠꼬대는 이거였다.

‘누가 네 형이야. 주인한테 건방지게 형이라고 부르는 개도 있나 보지?’

여진우가 목에 채운 목줄 끈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여우희는 목이 조여들어 입을 벌리고 혀를 쭉 내민 채


눈동자 흰자를 까뒤집었다. 내벽이 움찔움찔 요동치며 뒤를 막은 플러그를 씹어 먹었다.

구멍을 막아 둬도 애액이 뚝뚝 떨어져 내려 발바닥을 더럽혔다.

‘너 같은 노예 필요 없어!’

‘아아, 안 돼요. 주인님. 제발 버리지 말아 주세요.’

여우희는 자존심 따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스터의 다리에 매달렸다.

‘감히 주인 몸에 멋대로 손을 대?’

여진우가 여우희를 발로 뻥 찼다. 여우희는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으흑흑.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너무 좋아서 울었다. 몸을 웅크린 채 개 꼬리가 박힌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진짜 개가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재롱을 부리는 것 같았다.

‘일어서.’

여우희는 바로 벌떡 일어났다. 두 팔을 뒷짐 진 채 마스터의 명령을 기다렸다. 여진우가 손가락으로


여우희의 젖꼭지를 콕콕 찔렀다. 여우희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밀려났다.

‘누가. 멋대로. 사정하라고. 했지?’

스타카토 연주처럼 끊어 말하는 여진우에게 여우희는 가슴이 공격당했다.

‘흐읏. 죄송합니다.’

‘난 말을 타라고 한 거지, 네 그 쓸데없는 좆으로 사정하라고 한 적 없어. 주인의 명령 없이 사정한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깨닫게 해 주지.’

현실에서 여진우 몰래 사정한 여우희는 꿈에서 그 잘못을 혼나고 있었다. 여진우가 검은 가죽 케이스를
가져와 열었다. 붉은 벨벳이 깔린 가죽 케이스 안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스테인리스 카테터가 들어 있었다.

카테터 끝에 달린 빨간 루비가 반짝였다. 좆에 넣으면 백만 배쯤 예뻐 보일 수 있는, 주인이 노예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여우희는 감동한 얼굴로 여진우를 올려다봤다.

‘형…… 화나신 거 아니었어요?’

‘우희야, 형이 좆에 카테터 꽂아 줄게. 얼른 좆 가져다 대.’

여우희는 비루한 오메가 좆을 여진우 앞에 들이밀었다. 여진우가 손으로 좆을 잡고 마사지했다. 그의 큰


손에 갇힌 여우희의 좆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지 마. 이건 상이 아닌 벌이니까. 과연 음란한 노예에게 제대로 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기한 좆은 귀두가 커진 채 쿠퍼액을 흘렸다. 여진우가 카테터를 좆 구멍에 밀어 넣었다.

‘아앗. 형아. 하앙.’

여우희는 몸을 비틀며 교성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좆이 붙잡혀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한 번도 무언가


넣어진 적 없는 요도로 카테터가 밀려 들어왔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환상적인 오르가슴에 구멍이
미친 듯이 벌렁거렸다.

하도 입질하느라 구멍에서 플러그가 탈출하고야 말았다. 바닥으로 툭, 묵직한 개 꼬리가 떨어져


나뒹굴었다. 여진우가 단숨에 여우희의 요도에 카테터를 쑤셔 박았다.

‘흐아아앙.’

여우희는 젖꼭지를 발발 흔들며 신음을 질렀다. 여진우가 그런 여우희의 뺨을 때렸다. 바닥에 패대기가
치듯 넘어졌다. 구멍에 제대로 플러그를 담고 있지 못한 노예에게 분노한 마스터가 무릎에 여우희를 엎어 놓고
손으로 구멍을 때렸다.

‘흐아. 아아.’

‘이 걸레 새끼야. 구멍 제대로 다물고 있으라고. 도대체 얼마나 굴러 먹었으면 허벌창이 나서 고작


플러그도 물고 있지 못해.’

‘흐읏. 흑. 죄송해요. 흑. 그렇지만 정말 저한테는 주인님밖에 없어요.’

‘그건 네 말이 아니라 구멍이 증명하는 거야.’

아직 현실에서 동정 탈출도 못 한 여우희는 꿈에서 형에게 구멍을 맞으며 매도당하느라 핸드폰 알람이
울려도 무시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맞고 일어날래.

“우희야. 일어나. 아침이야.”

“으으. 형아? 언제 미국에서 돌아왔어요?”

여우희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여진우가 “새벽에.” 하고 답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어나는 걸 힘들어할까. 얼른 일어나서 씻고 학교 가.”

“…….”

여진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방을 나가 버렸다.

분명 자신에게 전화해서 알몸으로 승마 운동 기구를 타게 한 건 꿈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형이 다시 예전처럼 담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건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떤 남자들이 형을 습격해 중간에 통화가 끊겼었다. 혹시 강도를 당한 충격으로 자신을 조교하기로 한


걸 잊은 걸까? 잠옷 차림으로 침대를 뛰쳐나간 여우희는 형을 따라잡았다.

“형! 형, 전화하다가 끊겼었잖아요.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니죠? 무사한 거 맞죠?”

여진우는 다정한 눈으로 여우희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친구들이 장난친 거였어. 그것 때문에 우리 우희가 걱정했구나.”

그가 먼저 식당으로 내려갔다. 여우희는 다리의 힘이 풀려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꿈도 희망도


없는 이 전개는 뭘까. 분명 고지가 눈앞에 보였는데 순식간에 리셋되어 버렸다.

혹시 미국에서 자신보다 잘생기고 말 잘 듣는 노예를 구한 걸까? 그래서 자신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걸까?
아니다. 그랬다면 집에 이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았겠지.

자신이 걸레처럼 행동해서 흥미가 식은 게 틀림없다. 하긴 열렬히 싫다고 거부했어야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승마 운동 기구에 올라탔다. 여진우 같은 성향은 상대를 찍어 누를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여진우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려고 하면 정복하기 위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태준이랑도 놀러 다니고 학교에 가서 공강 시간마다 전화로 보고도 안 해야 한다.

이러한 반항에는 형의 성적 학대가 싫었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면 된다. 자유로운 일상은 끔찍할
테지만 이대로 완벽한 마스터를 놓칠 순 없었다.

굳게 다짐한 여우희는 얼른 방에 딸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씻고 지하대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

독하게 마음을 먹은 여우희는 공강 시간에 여진우한테 문자도 안 하고, 하교 후 나태준이랑 디저트


카페도 갔다. 보통 간땡이가 부은 짓을 한 게 아니다. 그것도 모자라 형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현관 앞에 서
있는 짓도 그만뒀다.

예상대로 여진우가 잔뜩 화나서 공부 중인 여우희의 방에 쳐들어왔다.

“여우희, 뭐 하는 짓이야.”

“아…… 형…… 죄송해요. 공부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속눈썹을 내리깔고 겁에 질린 척 파르르 떨었다. 책상에 펼쳐 놓은 교재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자신에게


여진우가 다가왔다.
‘그래. 어서 바지를 벗기고 엉덩이를 흠씬 때려. 화났으면 벌을 내리라고.’

드로어즈 안에서 구멍을 움찔움찔 조이며 기대했다. 하얀 양말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여진우가 이를 악무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우리 우희는 공부를 워낙 좋아하니까.”

공부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다시 버려지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콘셉트를 잡기 위해 하는


거였다. 나중에 여진우가 부모님께 정체를 들키기 싫으면 순순히 안기라는 협박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수저로 밥을 떠먹여 줬는데도 그가 몸을 휙 돌려 나가 버렸다. 여우희의 동공은 흔들렸다. 설마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먹힐 줄 몰랐다.

더 이상 자신을 지배하려 들지 않는 여진우 때문에 속이 상한 여우희가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싫어하는 척할걸. 그렇지만 수치플이 너무 기분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다. 만일 다시 자신이 마스터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그땐 죽자 살자 맹렬히 거부할 것이다.

고작 이런 걸로 무너질 순 없었다. 여우희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었다. 인내심 있게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비 오고 천둥이 치는 날에는 겁에 질려서 형의 침실을 찾는 동생을 연기하고 있었기에 매일
핸드폰으로 날씨를 검색해서 알아봤다.

여우희가 베개를 들고 여진우의 침대로 들어갈 때마다 그는 자신을 품에 꼭 끌어안아 주곤 했다. 하늘이
자신을 도운 것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억수로 쏟아져 내렸다. 창밖을 적시는 굵은 빗줄기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랜만에 형의 침대에 들어갈 예정이라 억제제를 먹고, 샤워할 때 젖꼭지와 구멍을 깨끗이 닦았다.
드로어즈도 패드를 부착하지 않고 입었다.

여름이라 얇은 소재로 바뀐 잠옷을 입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렸다. 이불은 마법이라도 부렸는지


어서 빨리 알파 좆을 받고 싶어 안달 난 오메가를 천둥소리가 무서워 겁에 질린 것처럼 꾸며 줬다.

여진우가 먼저 제 방을 찾아 주길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숨쉬기 갑갑했던 이불을 내리고 베개를


챙겼다. 눈가를 손으로 마구 문질러서 붉게 만들었다. 코를 훌쩍이며 여진우의 방으로 향했다.

“형아. 흐. 형아. 우희예요.”

형의 방 문고리를 돌렸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뻔히 이런 날씨에는 자신이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


방문을 담그다니?

‘나 정말 버림받은 건가?’

“흐으윽. 흐흑. 흐엉어엉.”

연기에 불과했던 울음이 진짜로 바뀌었다. 그동안 들인 공이 얼마인데 갑자기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우희야.”

여진우는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 어서 이 방문을 열고 여우희를 침실에 들이고


싶었다. 자신의 침대에 눕혀서 꼭 안아 주며 달래 주고 싶은데, 여 회장과 강도희는 한통속이었다.
누가 모를 줄 아나. 그 뻔한 속내를.

여 회장은 강도희가 가진 여진우의 약점을 통해 여우희와 그를 떼어 놓으려는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여


회장이 여태 동영상을 회수하지 못할 리 없었다.

여우희가 천둥소리에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사슴 같은 눈이 겁에 질려


커졌을 테고, 어떻게든 몸을 숨기기 위해 콩벌레처럼 둥글게 웅크리고 있을 테다. 얼마나 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인지 알기에 참기 힘들었다.

우르르. 콰광!

하늘을 찢어 버릴 듯 커다란 소리가 잿빛 구름 사이를 가로질렀다. 여우희의 울음소리가 더욱 우렁차졌다.


주먹으로 방문을 두드리며 마치 사냥꾼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애원했다.

“형아. 무서워요. 문 열어 주세요. 우희 무서워요.”

동요의 구절이 여진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사냥꾼이 쫓아와요.’

여우희가 열리지 않는 방의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여진우는 바지를 내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끄러운 빗소리와 간간이 울리는 천둥소리에서 그 어떠한 클래식 음악보다 감미로운 여우희의 울음소리를 찾아내
귀를 기울였다.

좆을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만일 네가 지금 내 앞에 있었다면 난 네 얼굴에 좆물을 싸 버릴 거야. 네가 입을 벌리고 있게 하고


사정해서 붉은 입 안에서 굴러다니는 내 정액을 구경할 거고. 우희야. 조금만 기다려. 형이 동영상만 없애면 네
입이랑 구멍에서 좆물 마를 일 없게 싸 줄게.’

“흐. 으읏.”

여진우는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코를 킁킁댔다. 우리 우희 페로몬이 궁금했다. 여우희를 우성 알파라고


여겼을 때는 같은 형질끼리 거부감을 느낄까 봐 잘 숨기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우성 오메가여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페로몬을 숨길 수 없을 테니,


억제제를 달고 산다는 뜻이었다. 이러다가 자신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불임이 될까 걱정된다. 어서 빨리 우희가
억제제를 못 먹게 하고 노팅을 해 줘야 할 텐데…….

여진우는 여우희를 염려하며 빠르게 좆을 훑었다.

물론 불임이 되어도 그는 여우희를 자신의 오메가로 삼을 것이다.

“형아. 흐흣. 으응. 형아.”

발정 난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반응이라도 하듯 여우희가 문밖에서 달콤한 신음을 흘렸다. 여진우는


페로몬 샤워를 할 때처럼 페로몬을 풀어 버렸다.

“아아, 어떡해.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귀여워.’

여진우는 방문에 이마를 박고 귀두를 손으로 감쌌다. 좆 기둥에 돋아난 혈관이 꿈틀거렸다.

‘왜 그래, 우희야. 혹시 형 페로몬 맡고 구멍에서 홍수 터졌니?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해서 아깝다.


나중에 많이 봐 줄게.’

그는 손에 정액을 사정하고 바지를 끌어 올렸다. 방 안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 가서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따랐다. 손에 싼 정액을 싹싹 긁어서 주스에 섞었다. 그는 잔을 들고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여우희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우희야.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비가 올 때마다 형 방에 찾아올 거야. 얼른 이거 마시고 네 방에 가서


자.”

“흣. 읏. 네에. 죄송해요.”

얼굴이 붉어진 여우희가 간드러진 콧소리를 섞어서 대답했다. 눈가와 광대, 콧등이 빨개진 모습이
미치도록 야했다. 두 손으로 잔을 받은 여우희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윽. 이거 상했나 봐요. 맛이 이상해요.”

“형이 영양제 탔어. 몸에 좋은 거니까 그냥 먹어.”

여우희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욱욱, 헛구역질했다. 그가 서서 계속 감시하자 억지로 잔을 비워 냈다.


주스를 다 마시고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만 가. 늦었어. 내일 학교 가야지.”

“……네. 형아 안녕히 주무세요.”

방문을 열어서 자기를 들여보내 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 잔뜩 실망한 게 보였다. 여우희 또한 그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여진우는 너무 좋아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뒤돌아선 여우희를 끈질기게 지켜봤다.

얇은 잠옷 바지가 걸을 때마다 흐느적거렸다. 복도에 난 아치형 창문으로 하얀 섬광이 나타났다.


어두웠던 복도가 잠시 밝아졌다. 그 덕에 여우희의 엉덩이 쪽이 동그랗게 짙어진 것이 보였다. 여진우가
자위하면서 내보낸 페로몬 때문에 구멍으로 애액을 쏟아 낸 거다.

그는 여우희가 오메가라는 확신을 굳혔다.

‘역시 넌 날 위해 태어난 거였어. 그런 네가 우성 알파라니. 말도 안 되잖아.’

모든 과목에서 100 점을 받기 위해 기를 쓰고 공부하는, 여진우의 완벽한 동생께서는 오메가라는 형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역시 어렸을 때 여우희가 보육원에 버려졌던 건 여진우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는 살인과 방화에 대한 증거를 없애고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오메가라는 사실을 숨긴 여우희를


추궁하며 몰아붙이는 상상을 해 봤다. 겁먹은 여우희는 제발 부모님께 비밀로 해 달라며 예쁘게 울겠지.
부모님께 사랑받기 위해 완벽주의자로 자란 여우희에게 이 문제는 자기 생존과 직결된 큰 문제처럼 느껴질
테다. 부모님은 여우희가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면 놀라긴 하겠지만 알파가 아니라고 실망할 분들이 아니었다.

그걸 여우희만 몰랐다. 왜냐하면 한 번 버려지는 경험을 했으니까!

방금 사정을 해 놓고도 다시 발기했다. 무릎을 꿇고 제발 비밀로 해 달라며 두 손을 싹싹 비비는


여우희의 옷을 벗겨 내는 건 일도 아니다. 음탕한 젖꼭지를 비틀며 오로지 젖꼭지로만 가는 법을 가르칠 거다.

아침마다 발기하는 그의 좆을 구멍에 넣고 깨우라 시킬 거고, 밖에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구멍을 열고


다른 알파의 흔적을 검사할 거다.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관절들은 쪽쪽 빨아 먹을 거다. 어쩌면 복숭아 맛 사탕처럼 달게 느껴질지


몰랐다.

여진우는 여우희를 가지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인내했기에 당장 동생의 방에 쳐들어가 머리채를 잡고 옷을


찢어발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

여우희가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서 있던 그는 방문을 닫았다.

비가 쏟아졌다. 천둥은 잊힐 만하면 한 번씩 내리쳤다.

어두운 새벽, 탐해서는 안 되는 동생을 가지고 싶어서 그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침대 위에서 시트가
벗겨질 정도로 발을 찼다. 목덜미에 있는 페로몬 샘을 벅벅 긁으며 좆을 세웠다.

수천 번 그의 방에 여우희를 들였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발정이 잦아들 때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던 비가 잦아들어 갔다. 먹구름이 사라지고 희미한 안개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땅에 가라앉았다.

여진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침대에서 일어나 씻었다.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양복을 차려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사용인에게 복숭아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여우희를 가지고 싶다는 갈망에 끓어오르는 배 속을 진화하고자 예쁜 복숭아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단물이 잔뜩 차오른 복숭아는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과즙을 줄줄 흘렸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은 여우희와
눈이 마주쳤다.

여진우는 다정한 형을 연기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우희 안녕. 잘 잤어?”

소심한 동생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눈가가 도홧빛으로
물들었다. 제대로 자지 못한 얼굴이 수척해서 평소보다 가련해 보였다.

여진우는 여우희의 목덜미를 뜯어 먹을 것처럼 바라보며 팔뚝으로 흘러내린 복숭아 물을 혀로 핥아 올렸다.

5. 충견

강도희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에 강성회는 잔뜩 화가 났다. 여 회장 같은 권력자를 상대로 아무런 대비책


없이 협박하다니. 여 회장 정도 되면 강도희를 납치해 살해하고 여진우 동영상을 빼앗을 수 있었다.
물론 강성회가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 섣불리 그러지는 못할 테지만, 어젯밤 일은 아주 무모한 행동이었다.
강성회는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기 위해 식탁 앉은 채 사용인이 차려 둔 아침상에 손도 대지 않았다. 강도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여 회장한테 덤벼. 네 목숨이 서너 개야?”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우희가 그 집에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알고도 여진우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여진우를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여 회장밖에 없다 싶었고요.”

알파만 있어 적적한 집 안을 채우기 위해 거실에 틀어 둔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가 나왔다. 가평에 있는


정신병원에 불이 나 의사와 간호사가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소방 당국은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강도희는 뉴스에서 떠드는 거짓말을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강성회는 골이 아팠다. 진실을 은폐하는 여 회장의 솜씨가 기가 막혔다. 이제 아무도 가평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불난 이유 따위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아들이 어렸을 적, 그는 잠시 강도희를 보육원에 맡기고 조직을 배신한 반란 세력을 처단했다. 모든 걸


정리하고 보육원에 아들을 데리러 가니 아들은 여우희라는 아이의 충견이 되어 있었다.

여우희가 자기를 구하기 위해 힘센 형들한테 대들었다가 피를 토할 때까지 맞았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기가 지켜 줄 거라고 했지.

그런데 집에 돌아간 여우희가 교통사고로 죽어 버렸다. 아들은 그 아이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슬픔에


젖어 지냈다. 고작 일주일의 만남이건만 자기 몸통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 듯 괴로워했다.

그래서 죽은 줄 알았던 여우희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아들에게 전해 들었을 때 잘됐다고 생각했다. OL


그룹 둘째라는 걸 알기 전까지.

남의 후계자 싸움에 자신의 아들이 끼어들어 희생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강도희는 여우희를 지키기
위해 이미 마음을 굳힌 모양이지만 말이다.

여진우가 동생을 죽이고 회사를 차지하려는 걸 막아 봤자 여우희는 우성 알파였다. 아들과 결혼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우희가 회사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강도희가 OL 그룹에 들어가 일할 것도 아니었다.

사업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흑곰파의 후원으로 국회의원이 된 이들이 정치판에 쫙 깔려 있었다.


OL 그룹의 도움이 없어도 흑곰파도, 리조트 사업도 잘나갔다.

그러니 이건 그냥 친구라서 목숨 걸고 돕는 것뿐이었다. 여 회장이 두 아들 사이에서 누굴 후계자로


고를지는 모르겠지만, 그와 통화해서 강도희 뒤에 자신이 있음을 알리고 비호는 해 둬야지 싶었다.

어쩌겠는가. 아들이 아무짝에도 이득 없는 싸움에 뛰어들어 주인을 섬기는 개처럼 여우희를 지키겠다는 걸.
여우희가 죽었다고 믿으며 우울하게 지냈던 예전의 모습으로 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불을 지르고 집에 돌아가는 미친 새끼예요.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그냥 보내요. 여 회장을 협박한 건


잘못이지만 전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거예요. 절대 후회 안 합니다.”
강도희는 이미 주인을 섬기는 개의 눈을 하고 있었다.

***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 회장은 회사에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여 회장님. 처음 인사 올립니다. BB 그룹 회장 강성회라고 합니다.

BB 그룹은 아직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회사였으나 그 뒤에는 흑곰파가 있었다. 흑곰파 보스가


친히 그에게 전화를 건 건 어젯밤 그의 아들이 한 짓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 회장님.”

-어제 제 아들이 저지른 무례를 사죄하고자 전화했습니다.

여 회장은 건방지고 당돌했던 강도희를 떠올렸다.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집으로 돌아온 여진우가
여우희를 강간하는 걸 막지 못했을 것이다. 협박범이긴 하나, 어렸을 때 둘째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자
친구였다.

오죽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싶긴 했다. 이 노여움은 여진우가 방화 살인을 한 증거만 순순히 넘겨주면


웃으며 덮어 줄 수 있었다.

“동영상만 주면 눈감아 드리리다. 강 회장쯤 되면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겁니다.”

여 회장은 강도희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고도 상대를 협박할 줄 아는 노련한 사업가였다.

-여 전무가 회사 지분을 동생에게 어지간히 내어 주기 싫은 모양입니다. 욕심 많은 형 때문에 둘째가


죽어야 쓰겠습니까. 저희 아이가 우희를 지키는 가드가 되겠다고 합니다. 여 회장님께서도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강성회는 과연 조직폭력배 보스에서 한 회사의 대표가 될 만한 큰 그릇이었다. 여 회장에게 동영상을


넘겨줬다가 혹시 입막음으로 처리될지 모르니, 여진우의 약점을 계속 가지고 있겠다는 뜻이다.

대신 그들이 여우희 편이니 네가 둘째 아들을 버릴 생각이 없으면 한배에 타자는 제안을 한다. 여 회장이
한 말 또한 그대로 돌려줬다.

정말 영리한 사람이다. 그러나 흑곰파 강성회가 오해하는 게 하나 있었다. 여진우는 여우희를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 발정하고 있었다. 하긴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형이 동생을 취하고자 한다는
걸.

여 회장에게도 여진우의 목줄을 계속 쥐고 있으려면 강씨 부자가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편이 나았다.


그들이 그 동영상을 검찰에 넘기지 않는다고 약속만 해 주면, 동영상은 여진우가 여우희를 건드리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이 되어 줄 테니까.

그 때문에 강씨 부자가 여진우에게 위협당해도 여 회장은 알 바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우리 첫째가 흔적을 남길 만큼 그리 녹록한 녀석은 아닌데.”

-여우희가 어릴 때 교통사고로 사망 처리가 된 적 있었죠. 최근 학교에서 우희를 다시 만난 도희가 그


일을 알아본 모양입니다.

“아아.”

하긴 그 사건만 보면 동생을 죽이려고 한다고 오해할 만했다.

“동영상은 강 회장께서 잘 묻어 두리라 믿겠습니다.”

-네. 무덤까지 들고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들어가십시오.

강성회와 통화를 끝낸 여 회장은 여우희가 똥통 학교에 편입할 만했다고 생각했다. 배짱 좋고 주인에게


맹목적인 개를 얻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성회의 아들인 만큼 학교에서 한가락 할 테니 여우희의
학교생활 또한 걱정 없을 듯했다.

그는 어쩌면 정신과 의사도 해낼 수 없었던, 여우희에게서 여진우를 떼어 내는 일을 강도희가 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었다.

***

강의실로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이 여우희를 쳐다봤다. 익숙한 시선이었기에 무덤덤하게 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나태준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희야, 나 피자빵이랑 초코우유랑 감자칩 먹고 싶어.”

유도부 주장의 깔이 편입생을 빵 셔틀 시키려 한다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켜보고 있던 지선유가
용기를 내서 여우희 쪽으로 다가왔다.

“태, 태준아. 우희한테, 그런, 딸꾹, 심부름, 딸꾹, 시키지 마. 우리랑 동갑이어도 3 학년이래.”

“뭐래, 이 병신은.”

나태준이 지선유를 돌아보며 낄낄 비웃었다. 지선유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다. 여우희는 마땅히
자신을 향해야 하는 괴롭힘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의자를 끌며 일어나 나태준을
노려봤다.

“태준아. 선유한테 못되게 말하지 마.”

“응. 알았어.”

‘아니. 이렇게 순순히 인정하겠다고? 쓰레기이면 쓰레기답게 굴라고.’

여우희는 맥이 빠졌다. 하지만 나태준은 소중한 돈줄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여우희에게 팔짱을 끼며
잡아당겼다.

“우희야, 빨리 가자. 나 배고파.”

“아침 안 먹었어?”

“응. 나 피자빵 말고도 크림빵도 먹고 초코롤도 먹을래.”


“알았어. 얼른 갔다 오자. 수업 시작하겠어.”

둘은 다정하게 대화하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서 있는 지선유를 다른 학생들이 비웃었다.

“키키키. 야, 지빡유. 나댈 걸 나대. 무슨 오지랖이야.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봐.”

“근데 쟤네 언제 저렇게 친해졌냐.”

“전부터 같이 다니긴 하더라.”

“와. 나태준 완전 걸레 새끼네. 유도부 주장한테도 대 주고, 여우희한테도 대 주는 거냐.”

“여우희 쪽이 훨씬 낫지. 팔자 제대로 피겠네.”

지선유는 모두의 조롱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성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

중앙 도서관에 있는 편의점에 도착한 나태준이 간식을 잔뜩 집어 왔다. 빵과 우유, 과자를 계산하자마자


테이블에 앉은 그가 허겁지겁 포장지를 뜯어 마구잡이로 먹었다. 여우희는 초코우유에 빨대를 꽂아 줬다.

“존나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줄 알았네.”

어제 학교에서 학식을 먹은 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나태준이었다. 할머니가 밤늦게 알바하고 들어온 그를


위해 밥을 차려 주려고 했지만 먹었다고 거짓말했다. 그가 밥을 먹으면 할머니가 먹어야 하는 밥 한 공기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건강해서 굶어도 상관없지만, 할머니는 한 끼라도 안 먹으면 쓰러질지 몰랐다.
알바도 하고 꾸준히 오메가들한테 삥을 뜯긴 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다.

할머니 병원비, 월세, 학교 등록금, 교통비, 식비, 핸드폰비…… 아직 학생에 불과한 그가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었다.

“오늘 늦잠 잤어?”

“늦잠 같은 소리하네. 하긴, 재벌 새끼가 어떻게 내 마음을 알겠냐.”

나태준의 한숨에 여우희의 눈이 커졌다. 가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밥을 못 먹을 정도인지


몰랐다. 빵 두 개를 연달아 먹어 치운 나태준이 이제야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배 터지겠네.”

나태준은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서 부른 배를 두드렸다.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집에


있는 할머니가 생각난 거다. 자기만 배불리 먹어서 마음이 불편한 거겠지.

그런데 먹을 걸 더 사 달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리는 모양이었다. 그가 생김새와 행동거지와 달리


의외로 착하다는 건 이미 소설에서 읽은 바였다.
여우희는 빵 다섯 개를 더 집어 계산했다. 우유는 상온에 두었다가 괜히 상할지 몰라 음료수로 넉넉히
구매했다. 비닐봉지에 빵과 음료수를 잔뜩 담아서 나태준에게 건넸다.

“이걸 왜 줘. 너 내가 밥도 못 먹고 다녀서 불쌍하냐!”

자존심이 상한 나태준은 짜증을 내면서도 조심스럽게 비닐봉지를 건네받았다. 누가 빼앗을세라 품 안에


가득 끌어안았다.

“불쌍해서 사 주는 거 아니고 네가 잘 먹는 모습 보니까 좋아서 사 준 거야. 일종의 먹방 스타를 향한


팬의 조공질이랄까.”

“하여간 희한한 새끼야.”

편의점을 나오는 나태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어서 빨리 집에 가서 할머니에게 빵을


배불리 먹게 해 주고 싶었다.

***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할머니와 사는 반지하에 물이 들어찼다. 바가지로 새벽 내 물을 퍼내도 집을 지킬


수 없었다. 바닥에 깔고 자던 이불이 빗물에 잠겼다. 그뿐만 아니라 중고 거래로 산 냉장고, 할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해 왔다는 자개장, 나태준이 학번을 적어 넣은 교재와 제복까지 모든 살림이 흙탕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살기 위해서는 집을 포기해야 했다. 할머니를 먼저 지상에 올려보내고 바가지로 물을 퍼내 창문에 버리던


나태준은 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억울하고 서러워졌다. 그도 좋은 부모와 함께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돈 걱정 할 일 없고, 공부하기 싫다는 게 인생 최고의 고난인 평범한 학생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불운 속에서 태어나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유일한 터전인 35 만 원짜리 월세방마저
잃게 생겼다.

물이 턱까지 차올라 반지하를 헤엄쳐 나왔다. 삶의 모든 걸 잃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된 나태준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누가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걸까. 그 새끼를 잡으면 죽여 버릴 거다.

“아이고, 이를 어째. 이를 어째.”

할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나태준은 이 순간 도움을 청할 단 한 사람,


여우희가 생각났다. 그 녀석은 워낙 호구 같아서 자신의 상황을 보면 선뜻 도와줄 것 같았다.

아니다. 속으로 그를 엄청나게 싫어할지 모른다. 자기 약점을 잡고 억제제 가격을 20 배나 비싸게 받는


그를 좋아할 리 없다. 나태준이 무서워서 어울리는 거지 이런 꼴을 당한 걸 보면 ‘진짜 하늘이 있나 보네. 나쁜
놈 벌받는 거 보니까.’ 할지 몰랐다.

나태준은 애써 괜찮은 척 연기했다. 이대로 계속 비를 맞고 있으면 자신은 감기에 걸릴 테지만, 할머니는


폐렴에 걸릴 테다.

“할머니. 일어나. 일단 찜질방 가서 씻고 좀 자자. 여기서 이래 봤자 해결되는 거 없어.”

“그랴. 근데 할미가 집에 지갑을 두고 왔는데 우리 태준이는 지갑 가지고 나왔어?”


자다가 잠옷 차림으로 집에 들어오는 물을 퍼냈는데 그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나태준은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하며 할머니를 모시고 동네 찜질방으로 갔다. 사장이 쫄딱 젖은 그들을 보고 받기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나이 든 사람을 내쫓을 순 없었는지 그냥 받아 줬다.

“1 인당 만 원이에요.”

“아이고. 왜 이렇게 비싸. 태준아, 얼른 나가자. 할미는 비 그치면 집에 들어갈래.”

할머니에게는 2 만 원이 거금이었다. 나태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혼자였으면 날이 갤 때까지 버텼을


텐데, 노인네를 하수구 물에 빠졌다가 나온 것 같은 몰골로 계속 있게 할 순 없었다.

“됐어. 빨리 들어와. 나 장학금 받아서 돈 많아.”

“글치. 울 똥강아지가 공부를 억수로 잘해서 장학금 받았지. 할미가 깜빡했다. 우리 태준이가 효자야,
효자.”

카운터에서 목욕탕 키와 수건, 찜질방 옷을 두 개씩 받았다. 할머니와 나태준은 목욕탕에 가서 씻고


깨끗한 찜질방 옷으로 갈아입었다. 따뜻한 물에 더러운 몸을 씻고 나니 잔뜩 지치고 힘든데 배가 고파 왔다.

매점에 가서 식혜 두 개와 구운 달걀 두 줄을 샀다. 돈은 없었지만, 목욕탕 키로 후불 정산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시원한 식혜를 마시더니 나태준에게 건넸다.

“식혜가 겁나 맛있다. 우리 강아지 먹어. 요고는 입 안 댔으니까 환불받자.”

그놈의 돈 걱정 때문이었다.

“이미 산 걸 어떻게 환불받아. 난 내 거 먹을 거야. 할머니 많이 먹어.”

“찜질방 달걀이 얼마나 비싼데.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많이 사.”

할머니는 불안한 듯 찜질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나태준은 걱정하지 말라며 구운 달걀을 톡 깨서 까먹었다.

“할머니도 얼른 먹어.”

할머니는 많다고 해 놓고는 한 줄에 세 개가 든 구운 달걀을 다 먹고 식혜도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나태준은 이제 좀 자자며 매트 위에 드러누웠다. 할머니가 옆으로 누운 채 끙끙 앓았다.

“이제 우리 웃짠대.”

나태준은 잠이 든 척 대꾸하지 않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좆같은 세상. 망해 버려라.’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었다. 도박이라도 하다가 그랬으면


억울하지도 않다. 그냥 자다가 물벼락을 맞은 거니 스스로를 탓할 수도 없었다.

아침 7 시가 되자마자 옆자리에서 코를 골고 자던 아저씨를 깨워 핸드폰을 빌렸다. 아저씨가 성질을 내긴


했지만,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여우희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우희. 나 나태준인데 여기 가윤동에 있는 옥천 찜질방이거든. 지갑 가지고 튀어 와라. 안 오면
죽는다.”

혹시라도 여우희가 오지 않겠다고 말할까 봐 부러 사납게 겁을 주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설마 안 오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 녀석이 오지 않으면 경찰서에 가야 했다.

초조함을 숨기기 위해 찜질방에서 낱권으로 돌아다니는 만화책을 펼쳤다. 내용도 모르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데 읽는 척했다. 30 분이 흘렀다. 제복을 입은 여우희가 찜질방에 들어왔다.

나태준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만화책을 내팽개치고 여우희에게 달려갔다.

“야, 지갑 내놔.”

마치 그에게 지갑을 맡겨 놓은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여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입을 다문 채 나지막하게 복화술로 협박했다.

“돈 내놓으라고 했다.”

“찜질방 비용만 계산하면 돼?”

“……어.”

여우희의 질문에 나태준은 한풀 기가 죽어서 대답했다. 여우희가 카운터에 가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나태준은 무슨 이야기를 하나 엿듣기 위해 접근했다. 그러나 이미 대화가 끝나서 들을 수 없었다.

“태준아. 계산했어.”

“그래. 이제 가.”

“넌 학교 안 가?”

제복이 빗물에 잠겼다. 옷은 지금 입고 있는 찜질방 옷밖에 없었다. 그 사정을 여우희가 알 리 없었고


자존심 상해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난 오늘 자체 휴강이야. 너 이제 꺼져.”

찜질방에 있는 매트로 돌아가 드러누웠다. 등을 돌리고 있다가 여우희가 돌아갔나 확인하기 위해 돌아봤다.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눈앞이 깜깜했다.

팔을 눈두덩 위에 올리고 찜질방 비용이 없어서 불안한 탓에 잘 수 없었던 잠을 몰아 잤다.

***

학교에 도착한 여우희는 같은 학과생인 지선유를 찾았다.

“선유야. 부탁할 거 있는데 해도 될까?”

“뭔데?”
***

밤새 퍼부어 나태준과 할머니를 슬픔에 잠기게 한 비가 그쳤다. 찜질방 옷을 입은 채 반지하로 찾아가


봤다. 구정물이 가득 찬 방은 도저히 사람이 들어가 다시 살 수 없을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오메가니까 아저씨들 붙잡고 몸이나 팔아야 하나?

이 좆같은 팔자가 결국 더럽게 꼬이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일단 집에 들어가 바가지로 물을 퍼냈다.


목까지 차오른 물을 쉬지 않고 퍼내니까 가슴 밑으로 내려갔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물에 퉁퉁 부은
몸뚱이가 가려웠다.

할머니는 하지 말라고 말리지 않았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이곳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자기도 하겠다는
걸 온갖 짜증을 내며 돌려보냈다. 가난한 가윤동 사람들은 다 나태준처럼 강수 피해로 물에 잠긴 집을
복구하겠다며 힘든 노동을 해 나갔다.

자신만 불행한 게 아니라는 위안을 가지는 게 나태준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소방차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소방관들이 나서서 장비로 집에서 물을 빼 줬다. 빗물이 빠져나간 집 안은 토사로 뒤덮여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없었다.

노란 형광 조끼를 입은 공무원들이 와서 피해 지역을 돌아다녔다. 포대 자루에 흙더미를 담아서 버리는


작업을 해 줬다. 그런다고 집이 원상 복구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할머니는 망가진 집 안에 들어와 통장과 도장, 월세 계약서,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본인 영정사진을


챙겼다. 쌈짓돈을 숨겨 둔 이불은 아무리 찾아도 물에 떠내려간 듯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고 새로 이사를 가야 했다.

더러운 제복을 챙겨 가방에 욱여넣었다. 나태준은 어느 정도 짐을 챙기고 다시 찜질방으로 할머니와


돌아갔다. 물에 빠진 핸드폰은 깨끗한 물에 씻어 열심히 말리니 다행히 작동했다. OL 휴대폰은 정말 최고다.

집주인에게 전화해 방이 물에 잠겼으니 당장 보증금을 달라고 했다. 집주인이 어디 지낼 곳은 있냐고


물었다.

“그딴 거 없어요. 이제 찾아봐야죠.”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은행 어플에 200 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람이 떴다. 찜질방에 할머니를
두고 나태준은 혼자 부동산을 찾았다. 나태준처럼 월세를 살던 세입자들이 새로운 방을 알아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부동산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따뜻한 녹차 한 잔 얻어 마시고 거기에 1 시간을 앉아 있었다.


부동산 어플로도 월세방을 알아보기는 했는데 예산과 맞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차례를 기다렸다가
상담받았다.

“학생. 다른 동네 알아봐. 이 동네에서 멀쩡한 방은 다 지상층인데 이백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그럼 얼마부터는 가능해요?”

“지금 침수 피해 안 당한 데는 오피스텔밖에 없어.”

“오피스텔은 얼만데요?”
“1000 에 60.”

“헥.”

1000 만 원? 보증금이 1000 만 원이나 한다고? 인제 어쩌지?

나태준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런다고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고 싶었다. 이 엿 같은 인생 살고 싶지 않은데 자신이 할머니를 책임져야 했다.

그때 운명처럼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안 받을까 했다가 부동산 아저씨가 시끄럽다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받아 버렸다.

-이거 나태준 핸드폰이죠?

“뭐야. 너 누구야.”

-나 너랑 같은 학과인 지선유인데. 우리 학과에 침수 피해 당한 학생 있다고 성금 모았거든. 그거 학교


와서 받아 가라고.

“어? 뭐? 딱 기다려. 당장 학교 갈 테니까.”

찜질방 복장 그대로 학교까지 뛰어갔다. 그렇게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이놈의 학교를 왜 다니나
했는데 학생이라며 이렇게 도와줄 줄 몰랐다. 정말 지하대에 다녀서 다행이었다.

아직 강의 중이라 복도에서 서서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의실 문을 열고 지선유에게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어디 있어. 내 돈.”

“이휴. 진짜 싫다, 싫어.”

지선유가 환멸을 느끼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는 하얀 봉투를 건넸다. 나태준은 그 자리에서 돈 봉투를
열어 봤다.

“어…… 어…….”

전혀 생각지 못한 금액이었다. 수표는 머리털 나고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이렇게나 0 이 많이 있을


줄이야. 돈 봉투에서 꺼내 자신이 제대로 본 게 맞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다른 놈한테 빼앗길까 봐 꾹 참았다.

돈 봉투를 돌돌 말아 주먹에 꽉 쥐었다. 교수실에 들러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하기로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도움으로 살길이 생겼다.

교수가 찜질방 옷을 입은 나태준을 보고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기분 상했지만, 자신을 위해 성금을


했다고 해서 참았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 너 제복은 어디에다가 팔아먹고 이러고 온 거야.”

“저 침수 피해 당했다고 학교에서 성금 모았다고 들었습니다.”


“뭐라니.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너 집, 물에 잠겼어?”

“…….”

교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태준은 주먹으로 쥐고 있는 수표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가 자존심 상할까 봐 지선유를 동원해 거짓말까지 할 존재는 한 명밖에 없었다.

여우희.

그 망할 오메가가 자신을 감동하게 했다. 나태준은 교수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교수실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하고 욕하는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걷다가 강도희와
대화하고 있는 여우희를 발견했다.

“이제 나 기억난 거야?”

“응. 몰라봐서 미안해.”

“괜찮아. 우리 완전히 어렸을 때 만났었잖아. 그럴 수도 있지.”

여우희가 강도희를 보고 웃었다. 창문으로 들이친 바람이 여우희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강도희가 눈가를
접으며 그 모습을 따스하게 바라봤다. 그가 손으로 여우희의 앞머리를 넘겨 줬다.

“고마워. 도희야.”

“뭘. 이런 걸 가지고.”

심장이 찌릿찌릿 아파 왔다. 나태준은 둘 사이로 끼어들어서 갈라놓았다. 어쩌면 자신은 아주 힘겨운
짝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여진우의 속을 뒤집어 놓기로 작정한 여우희는 강의가 끝나고 강도희와 놀러 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왈왈
짖어 대는 나태준을 끌고 다니는 재미가 더 쏠쏠했지만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을 정리하느라 바쁘니 어쩔 수 없었다.

“우희야! 같이 가!”

강의가 달라서 떨어졌던 나태준이 복도를 달려와 자신에게 붙었다.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지선유가 자신의 반대쪽에 바짝 섰다.

“저 거머리는 왜 또 나타난 거야.”

지선유가 나태준을 경계하며 자신에게 팔짱을 꼈다. 나태준도 이에 질세라 자신의 반대쪽 팔에 매달렸다.

동기들 눈에는 이런 자신이 엄청 걸레처럼 좆을 휘두르고 다니는 우성 알파 같겠지? 좆이 작아서 그다지


달갑지 않은 오메가 녀석들이었지만 그런 오해를 받는 건 기꺼웠다.

괜히 학생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젖꼭지가 곤두섰다. 티셔츠 위로 젖꼭지를 마구 문지르며 발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자신을 돌려 먹는 상상을 했다. 알몸으로 책상 위에 엎드려 좆을 받아 낼
때마다 자신의 엉덩이에 바를 정(正)에 획이 더해졌다.

상상 속 자신은 엉덩이와 허벅지에 빼곡한 낙서의 흔적들을 달고 있었다. 하얀 정액들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하도 사용해 망가진 구멍으로 살려 달라고 외쳤다. 학생들은 물론 교수님들도 강의 때마다 들어와서 자신에게
좆을 박았다.

무지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진짜 그랬다가는 부모님이 가만있지 않을 테다. 여 회장 성격이면 김민정이


우는 걸 보고 자신을 따먹은 가해자들을 살해해 버릴지도 몰랐다.

자신이 즐기자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건 안 될 일이었다. 마른침을 살피며 허한 구멍을 조였다.

“뭐야. 넌. 죽을래?”

나태준의 껄렁한 말에 뜨끔한 여우희의 어깨가 솟아올랐다. 나태준은 자기 때문에 여우희가 겁먹은 줄
알고 입을 얼른 닫았다. 지선유가 고자질하듯 여우희를 쳐다봤다. 나태준은 자신을 향한 촉촉한 여우희의 갈색
눈동자에 숨이 멎었다.

“태준아, 친구끼리 왜 그래. 친하게 지내야지.”

나태준은 그를 다정하게 타이르는 목소리에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저 왕따 새끼가 왜 우리 친구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우희는 너무 착하고 오지랖 넓어서 탈이었다. 물론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거긴
하지만…….

복도 끝에서 동굴 입구를 지키는 곰처럼 서 있던 강도희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가 천천히 걸어와 자기가 낄 자리를 살폈으나 나태준과 지선유는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미안. 도희야,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나도 방금 연습 끝났어. 그런데 나태준. 너 오늘 바쁘다고 하지 않았냐?”

강도희의 질문에 나태준이 우희의 팔을 더욱 꼭 잡아당겼다.

“교문까지는 같이 갈 수 있거든.”

흥, 하고 코웃음 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말투였다. 강도희에게 괜히 적대감을 표한 나태준이


여우희를 보고는 순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같이 못 놀아서 너무 아쉽다.”

“너 집 정리하고 다 같이 놀면 되지.”

“그래도. 너랑 강도희랑만 놀 거 생각하니까 짜증 나. 오늘 저 새끼랑 놀았다고 나보다 친해지지는 마.


알았지?”

“하하. 알았어.”

여우희는 자신에게 치대는 나태준을 묘한 눈으로 힐끔거렸다. 자신이 돈을 준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굳이 ‘내가 너한테 3,000 만 원이나 줬으니까 너 이제 내 딜도 해.’라고 하지는 않았다.
지선유가 나태준에게 질세라 여우희에게 오늘 자기도 함께 놀아도 되냐고 물었다. 여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나태준이 지선유의 가슴에서 명찰을 떼어서 던져 버렸다.

“이게 죽으려고 어디서 껄떡대고 지랄이야.”

지선유가 울면서 날아간 명찰을 찾기 위해 뛰어갔다. 여우희는 자신에게 팔짱을 낀 나태준의 팔을 풀어


버렸다. 자신에게 해야 할 짓을 괜히 엉뚱한 지선유에게 푸는 원작 수라니.

그에게 패악질을 당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꿈꿔 왔던 대학 생활을 위해 착한 척 학과 왕따의 편을


들었다.

“정말 너한테 실망이야. 이제 나한테 말 걸지 마.”

“……씹. 왕따 새끼 때문에 나랑 절교하겠다는 거야?”

나태준이 발로 맨땅을 헛발질하며 화풀이했다. 강도희는 표정을 굳히고 여우희가 짊어진 가방을 가져가
한쪽 어깨에 멨다.

“야, 너나 여우희한테 껄떡대지 마. 여우희는 네가 오를 수 있는 나무 아니니까. 괜히 알파 잘 잡아서


팔자 피고 싶으면 딴 녀석 알아봐. 가자, 우희야.”

강도희가 여우희의 팔목을 잡고 끌고 가 버렸다. 이대로 완전히 나태준과 관계가 틀어지면 지독하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강도희는 나태준이 걱정되어서 그런 줄
알고 자신에게 “저런 놈 더 이상 신경 쓰지 마. 쟤 사람 안 돼.” 했다. 꼭 자기는 착한 모범생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태준이 나쁜 얘 아니야. 홧김에 말실수한 거야.”

“하여간 못 말리겠다. 어떻게 어릴 때랑 하나도 안 변했냐. 사람이 아니라 천사라니까.”

강도희에게 나태준 편을 들어 주는 척하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트리기 위해 화난 나태준를 말리러


돌아가는데 복도를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하는 말을 들었는지 나태준이 자신과 얼굴을 마주하자
멈칫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유순하게 내려갔다.

“미안해, 우희야. 이제 지선유랑도 친하게 지낼게. 우리 계속 친구 하자? 응?”

“으응. 태준아, 이제 진정해.”

좋다 말았다. 이렇게나 쓰레기가 맹탕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지선유가 명찰을 찾았는지 자신을 쫓아왔다. 나태준에게 “너 몰랐냐? 우희가 나 좋아하는 거.” 하며
비싼 밥 먹고 신소리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건 오로지 무서운 마스터 성향의 좆 큰 새끼밖에 없는데 말이다.

실좆들이 자꾸 자신에게 엉겨 붙어서 머리가 아팠다. 비틀거리며 이 고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린 여우희를 부축하기 위해 세 사람이 달려들었다.

“우희야!”

“여우희.”
“우, 우희야.”

강도희가 떡대로 오메가 둘을 막아 내고 여우희를 끌어안듯 부축했다. 넓은 가슴에 잠시 기댄 우희는


덤덤하게 걱정하는 시선을 받아 냈다.

“어디 아파? 병원 갈까?”

“아니야. 요즘 시험공부 하느라 밤에 잠 못 자서 그래.”

강도희의 커다란 손이 여우희의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저 손으로 뺨을 맞으면 코피 터지면서 별이


보이겠다 싶었다. 성격만 빼면 강도희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피지컬이라 자신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지배해 주기에는 너무 다정했다. 여도희는 팔을 풀어내고 제 발로 땅을 딛고 섰다.

“지선유. 나 너 안 좋아해. 네가 왜 그런 오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이 학교에서 오메가 만날 생각


전혀 없어.”

“…….”

여우희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어깨 뽕을 넣은 것처럼 지냈던 지선유가 “미안. 나 바빠서 먼저


갈게.” 하며 줄행랑쳤다. 강도희는 여우희의 철벽 방어에 기분 좋아졌다. 나태준은 도망치는 지선유의 등에 대고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푸하하하. 누가 누굴 좋아하냐! 엉? 지빡유. 어디 가. 이 도끼병 말기 환자야.”

***

강도희와 학교 근처에 있는 파스타집에 들어갔다. 사이좋게 나눠 먹는 그들을 보고 가게 주인이 너희처럼


예쁜 커플은 개교 이래 본 적 없다며 서비스로 음료수를 줬다.

같은 알파인 그들에게 커플이라고 한 가게 주인 때문에 강도희가 어버버 말을 더듬으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커플이구만. 저 예쁜 학생, 학교에서 인기 많지? 알파 친구가 속 좀


썩겠네. 잘해.”

강도희는 큰 덩치 때문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뜨끈하게 김이 나는


것처럼 붉어진 목덜미를 손으로 매만졌다. 여우희는 달콤한 복숭아에이드를 마시며 테이블 밑으로 강도희의 발을
툭툭 때렸다.

“왜? 도희야? 나랑 사귄다고 오해해서 창피해?”

“아니…… 그냥 어서 먹자.”

그가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키득키득 웃었다. 여우희가 파스타를 다 먹고 가방을 챙기려는데


강도희가 잽싸게 가로채 자기 가방이랑 들어 버렸다.

“야, 이리 줘. 무겁단 말이야.”


“맞아. 이 무거운 걸 왜 네가 들고 다녀.”

“이게 뭐 대수라고. 얼른 이리 줘.”

파스타 가게 앞에서 여우희는 강도희에게 자신의 가방을 돌려받겠다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가 “이제
어디 갈까.” 하며 말을 돌려 버렸다. 모른 척 대꾸했다.

“제복 사러 가야 해.”

“그럼 요 앞 사거리에 있는 데 들르자.”

여우희가 가방을 달라고 할까 봐 강도희는 긴 다리로 먼저 성큼성큼 앞서갔다. 그는 여우희가 포르르


따르는 발걸음에 맞춰 나란히 걸었다. 교문 앞에 자란 벚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분홍색 꽃비를 내렸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잘 따라오는 줄 알았던 강도희가 안 보여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으니까, 그가 멍하니 서 있었다.

“뭐 해? 안 오고.”

강도희가 여우희에게 바짝 다가섰다.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눈을 떴다. 눈가에 있는 눈물점에 꽃잎이 달라붙어 있어서 그걸 떼어 낸 것뿐이었다.

착각한 게 창피해서 여우희의 뺨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우희야. 넌 알파가 알파 사귀는 걸 어떻게 생각해?”

“그건 왜 물어?”

“아니다. 얼른 가자.”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제복을 판매하는 의류점에 들어갔다. 마네킹에 입혀 놓은 하복과 춘추복,


동복이 보였다.

“아저씨, 지하대 제복 사려고 하는데요. 혹시 배달되나요?”

“그럼 되지. 학생이 입을 거야?”

“아니요. 친구네 집이 빗물에 잠겨서 제복을 새로 사야 하거든요.”

“이야, 얼굴만큼 착한 학생이네. 아저씨가 특별히 할인해 줄게.”

“감사합니다.”

여우희는 하복을 포함해서 나태준의 춘추복과 동복을 구매했다. 오늘 보니까 흙탕물에 빠진 걸 비누로
빨아 입었는지 누렇게 색이 변해 있었다. 구김도 많아서 엄청 꼬질꼬질해 보였다.

그가 이사하게 된 오피스텔 주소를 택배 용지에 적었다. 보내는 사람에 ‘지하대학교 학생회 일동’
이라고 적었다. 강도희가 자신의 어깨 너머로 그걸 보더니 계산할 때 자기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 녀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멋있게 보이려는 기질이 있었다.

“이걸 네가 왜 내.”
“그럼 너는 왜 내는데. 여우희.”

“난 태준이 친구니까.”

“난 공식적인 남친이다. 이럴 땐 남친이 돈 써야지.”

“너희 진짜 사귀는 거였어?”

“설마 그 성격 나쁜 치와와랑 내가 사귀겠냐. 아저씨, 이 카드로 계산해 주세요. 네가 그 녀석한테 돈


쓰는 게 싫어서 그런다, 왜.”

두 개의 신용카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던 아저씨가 강도희의 신용카드를 받아 갔다. 이상한 데서 빚을


져서 찜찜해하며 의류점을 나왔다.

“대신 네가 오늘 오락실 쏴.”

“그치만 가격이 다르잖아.”

“그럼 오늘만 오락실 쏘지 말고 내일도, 내일모레도 쏘든가.”

“그래. 그럼. 앞으로 너랑 놀 때는 내가 다 살게.”

“이야. 이거 든든한데.”

강도희가 웃으면서 여우희의 정수리에 손을 넣고 헝클어트렸다.

“씨. 그만해. 나 머리 다 망가지잖아.”

입을 삐죽 내밀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어서 정리했다. 그와 인도를 걷고 있는데 강도희가 안쪽에


들어가라며 팔을 잡아당겼다. 그가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 주듯 차선 쪽으로 섰다.

‘뭐야. 이 설레는 짓은. 이 새끼 완전 꾼으로 자랐구만.’

그래 봤자 다정다감한 연인은 자신에게는 맛없어서 안 먹는 감일 뿐이었다. 입으로 ‘치치’거리며 머리


모양을 만졌다.

“여우희. 안 그래도 너 예뻐. 그만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췄다.

‘뭔가 이 분위기 데이트하는 거 같은데? 이걸 여진우한테 보여 줘야 하는데…… 형은 뭐 하고 있으려나.


회사에서 일하고 있겠지? 어쩜, 내가 일상 보고 한 번도 안 하는데 연락도 안 하냐. 진짜 마음이 뜬 건가?’

“어어…… 도희야, 피해!”

검은 헬멧을 쓴 라이더가 오토바이를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괴한이 야구방망이를 꺼내더니 차도에 서 있던 강도희를 향해 휘둘렀다. 머리로 향하는 야구방망이를 막기 위해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흐윽.”
강도희가 팔을 움켜잡고 주저앉았다. 오토바이는 빠른 속도로 달려서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런 범죄는
영화에서나 봤던 거라 실감 나지 않았다.

어딘가 현실감이 없는 채로, 여우희는 침착하게 핸드폰으로 119 를 부른 다음, 경찰서에 신고했다.

“여기 지하대 앞에 있는 사거리인데요. 제 친구가 퍽치기당해서 지금 쓰러졌어요.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야구방망이로 사람 때렸다고요. 빨리 CCTV 로 이동하는 거 추적해 주세요. 오토바이 번호는 가 ○○○○
이에요.”

전화를 끝낸 여우희는 팔을 붙잡은 채 식은땀을 흘리는 강도희 때문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는 사람이 다쳐서 너무 걱정됐다.

“도희야, 함부로 팔 움직이지 마. 뼈 어긋나면 수술할 때 힘들어. 잠깐만 기다려 봐.”

SM 플레이를 하다 보면 종종 다치는 일이 있어서 간단한 응급처치 방법을 배워 뒀다. 여우희는 나태준의


제복을 산 의류점에 뛰어 들어가 택배 포장을 할 때 사용하는 투명 테이프를 빌렸다. 그런 다음, 인도 위에
떨어진 가방을 열어서 가장 두꺼운 토익 문제집을 꺼냈다. 다친 팔뚝을 교재로 감싼 다음에 테이프를 감아서
고정했다.

“많이 아프지. 걱정하지 마. 구급차 금방 올 거야.”

“우희 너 진짜 멋지다.”

“야, 이럴 때 농담이 나오냐!”

“그렇지만 정말 멋진걸. 또 반할 것 같아.”

여우희는 손수건을 꺼내 강도희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줬다. 구급차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오는 게 보이자, 우희는 두 손을 번쩍 들어서 외쳤다.

“여기예요. 여기!”

구급대원들이 구급차에서 내려서 강도희에게 이동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네. 걸을 수 있어요.”

강도희와 함께 구급차 뒷문으로 들어갔다. 여우희는 구급대원들과 구급대원석에 앉았다. 강도희는


침대처럼 놓여 있는 들것에 누워 진통제를 맞았다.

통행을 도와주는 차주들 덕분에 빠르게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사가 강도희의 팔뚝에서
테이프로 감아 놓은 토익 문제집을 가위로 잘라 냈다. 간호사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며 그를 데려갔다.

얼마나 당황하고 긴장했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여우희는 와이셔츠 단추 두 개를 풀고 옷을


들었다가 놓았다, 하면서 몸을 식혔다. 한 김 열을 빼고 강도희를 기다렸다.

다른 환자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팔에 깁스를 한 강도희가 응급실로 걸어왔다. 멀쩡해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팔은 어떻대?”
“의사 선생님이 응급조치를 잘해서 수술은 안 해도 될 것 같대. 금 갔는데 어긋난 게 없고 깁스 한 달만
하면 된다네.”

“휴우. 다행이다.”

강도희가 싱글벙글 웃으며 안도하는 여우희를 내려다봤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고마워. 우희야.”

“나한테 고마울 게 뭐 있어.”

“네가 아니었으면 나 팔에 철심 박았을걸.”

“누구나 그 상황이었으면 그랬어.”

“아니. 그 누구도 그런 일이 닥치면 당황해서 시간만 낭비했을 거야. 넌 역시 너무 멋져.”

자꾸 사람을 비행기 태워서 부끄러웠다. 강도희가 핸드폰으로 운전기사를 불렀다. 자신도 불러야 하나
전화를 드니까 그가 말렸다.

“당연히 너 먼저 데려다주고 가지. 날 뭐로 보는 거야.”

“아…….”

“나 병원비 수납하고 약만 타면 돼. 가자.”

병원 내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타고 응급실로 돌아오니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와 있었다. 그들이


강도희가 베드에 올려 둔 가방을 챙겨 들었다.

“도련님 모시러 왔습니다.”

강도희가 여우희를 힐끔거렸다. 뭘 걱정하는가 싶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가드야. 우희 너희 집에도 있지?”

강도희는 자신에게 자기네 집이 조폭 집안이라는 걸 숨기고 싶나 보다. 친구한테 조폭 아들이라는 걸


들키면 좀 그렇겠지 싶어 눈치 없는 사람인 척 굴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원작의 독자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응. 우리 집에도 있어.”

강도희와 검은 외제 차를 탔다. 집에 가는 동안, 강도희가 자기 때문에 버려진 토익 문제집을 걱정했다.


필기를 열심히 한 건데 치료하며 혼란스러운 틈을 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내 토익 문제집 내일 줄게. 나도 그 교양과목 들어.”

“아니야, 됐어. 그럼 넌 뭐로 공부하려고.”

“난 필기한 거 복사해서 보면 돼. 문제집은 새로 사면 되고.”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여우희는 굳이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자신은 학교 성적에 진심이었다. 만점이 아닌 성적이란 완벽한
설정 플레이를 하는 데에 있어서 심각한 오점이었다.

OL 그룹 총수 일가가 사는 저택 앞에 차가 멈췄다. 여우희는 자신이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쭈뼛. 솜털이 일어났다. 어쩌면 강도희 이 녀석…… 착하고 다정한 가면 아래 엄청난 모습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가방을 챙겨서 내리자 그가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었다.

“여우희. 오늘 고마웠어. 잘 들어가.”

“너도 몸조심해.”

검은 차량의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으로 얼굴을 확인한
사용인이 대문을 열어 줬다.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손으로 잡았다. 그런데 문고리를
돌리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 형?”

“우희야. 늦었네.”

“네. 오는데 사고가 있었어요.”

“지금 시간이 몇 시야.”

“7 시요.”

여진우가 살벌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봤다.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눈앞에 들이밀고 말했다.

“7 시 10 분인데.”

“……네. 7 시 10 분요.”

“내가 지금 시간을 몰라서 너한테 물었을까? 방에 올라가 있어. 형은 이렇게나 대학생이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니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이런 대학생은 세상천지에 우희 너밖에 없을 거야.”

아침 7 시도 아닌 저녁 7 시였다.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자격증 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밤 11 시에 집에 들어오기도 하는데.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애들도 부지기수인데. 여진우에게
그런 말을 해 봤자 변명 취급만 당하겠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느라 아픈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화는 났는데 자신이 무거운
걸 드는 꼴은 못 보는 여진우가 가방을 빼앗아 갔다.

“사용인은 뭐 하러 있어. 네가 왜 이런 걸 들어. 그 새끼들 일 안 하는데 다 잘라? 그래, 여우희?”

“아니에요. 해고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학교 끝나고 딴 데 들러서 그런 거예요.”

“그럼 이것도 네 잘못이네. 사용인들이 자기 일 못 하게 딴 곳으로 샌 네 잘못.”


사용인이 여진우에게서 얼른 우희의 가방을 받아 갔다. 고개를 숙인 채 뒷걸음질 쳐서 물러가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마치 폭군이 무서워서 설설 기는 내시가 떠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여진우가 자신의 가슴을 밀쳐서 안에 밀어 넣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자신은 그에게 짓눌렸던 젖꼭지의 감촉에 전율을 느꼈다. 어서 벌을 받고 싶다. 역시 이 방법이 먹힐 줄 알았다.

기대감으로 열리는 구멍이 울컥울컥 애액을 뱉어 냈다. 안에 CCTV 만 없었어도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음란한 엉덩이를 엘리베이터 벽에 문질렀을 터였다.

여우희는 3 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내려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형이 오기 전, 빠르게 책상


서랍 속에 숨겨 둔 억제제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등으로 식혔다. 페로몬이
날뛰지 않게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곧 여진우가 매끈한 보라색 기둥을 들고 방으로 따라 들어왔다. 끝이 둥글었고 두께가 상당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설마 여진우가 벌써 딜도를 꺼내 드나 기대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아니었다. 따가운 가시가
돋친 꼭지를 떼어 낸 가지였다. 얼마나 튼실한지 어린아이 팔뚝만 했다.

“여우희.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겁에 질린 척 눈을 내리깔고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여진우를 올려다보니 그가 손으로


여우희의 턱 관절을 마사지했다.

“입 벌려.”

여우희는 살짝 입을 벌리고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 가득한 눈망울로 여진우를 봤다.

“더 크게 벌려.”

턱 관절 마사지를 끝낸 그가 은쟁반에 올려 둔 가지를 들었다. 자그마한 입으로 두꺼운 가지가 밀려


들어왔다.

“으읍.”

여우희는 괴로워하며 목을 울렸다. 여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지로 여우희의 혓바닥을 문질렀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기 위해 여우희는 후르릅 소리를 냈다.

여우희는 정말 이런 쪽으로 재능이 많았다. 가지조차 게걸스럽게 먹는 예쁜 오메가를 여진우는 눈이


부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내려다봤다. 가지가 입 안을 휘저을 때마다 볼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그는 여우희의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겼다. 목을 일직선으로 늘이고 가지를 목구멍 너머로 처넣었다.

“으으으으. 으흐흥.”

여우희가 고통스러워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여진우는 붉어진 눈가에


콕 박혀 있는 눈물점을 맛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었다. 혀로 눈물에 젖은 속눈썹을 닦아 주고 눈물점을 쭈웁
강하게 빨았다.

“으으읏. 으으.”
그는 깊게 쑤셔 넣었던 가지를 입 안에서 뽑았다가 다시 처넣었다. 머리채를 붙잡힌 여우희가 도망치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의 벌은 이제 시작이었다.

***

여진우가 오늘 여우희에게 시킬 훈련은 목구멍과 성감을 연결시키는 거였다. 반사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식을 먹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고,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면 눈을 감는 것처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무조건 반사’. 다른 하나는 별도의 학습을 통해 후천적으로 나오는 ‘조건 반사’다.

파블로프라는 러시아 생리학자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개에게 밥을 주기 전에 종소리를 들려주는 거였다.


처음에 개는 종소리를 들어도 침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먹이를 주기 전 종소리를 들려주는 걸 반복하자
나중에 개가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렸다.

이는 ‘조건’에 따라 반복 학습을 이어 가면 무조건 반사가 일어난다는 걸 알아내는 아주 위대한


실험이었다.

여진우는 부러 새 양말을 챙겨 신은 발을 여우희의 가랑이 사이에 올렸다. 좆을 지그시 밟으며 입 안으로


가지를 피스톤질했다.

“으으. 흐흣.”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여우희의 얼굴이 온통 젖어 들었다. 분홍빛으로 맛있게 익은 뺨을


손가락으로 꾹 짓눌렀다.

“목구멍을 열어야지. 이러다가 성대 상하겠어.”

“흐흑. 흐윽.”

우느라 정신없는 여우희의 입에서 가지를 빼냈다. 겨우 가지 가지고도 버거워하니 나중에 어떻게 그의
좆을 빨까 걱정되었다. 이러니 그가 미리부터 훈련을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결한 몸을
열려고 하면 여우희가 크게 다칠 테니 말이다.

“형, 잘못했어요. 흡. 다시는. 다시는 학교 끝나고 친구랑 놀지 않을게요.”

“우희야. 그건 너무 당연한 건데 뭘 잘하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그래. 너 숨 쉬는 거 잘하겠다고


맹세해?”

“흑. 아니요.”

여진우는 숨을 헐떡이며 우는 여우희가 그치길 기다렸다.

“다시 할 거야. 이번에는 목으로 잘 빨아. 알았지?”

“네. 흑. 네에.”

왜 이런 일을 겪는지도 모른 채 순한 동생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입을 잔뜩 벌린


모습이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가지런한 하얀 이를 넘어 붉은 입 안으로 보라색 가지를 침입시켰다.
찢어질 듯 늘어난 여우희의 입술에서 설탕을 녹여 낸 듯 투명한 침이 흘러내렸다. 잘하겠다고 해 놓고는
바로 귀엽게 콧잔등을 찡그린 채 괴로워했다. 그래도 무릎을 손으로 움켜쥔 채 고통을 참아 내는 게 기특했다.

여진우는 가볍게 가지를 흔들었다. 발로 좆을 밟는 일도 잊지 않았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말랑한 좆을


가지고 놀았다.

“흐응. 으으응.”

목구멍에 가지가 쑤셔지고 있는데 좆이 건드려진 여우희가 간드러진 비음을 냈다. 고개를 내려 단추를 두
개나 푼 와이셔츠를 눈에 담았다. 칼라 꽃처럼 우아하고 긴 하얀 목덜미가 봉숭아 물을 들이듯 색을 입어 갔다.

물을 쏟으면 고일 것 같은 쇄골은 자로 그린 듯 완벽했고, 좁지도 넓지도 않은 어깨는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잔뜩 벌어진 와이셔츠 옷깃 때문에 여우희는 조금만 몸을 숙여도 분홍색 젖꼭지와 말랑한 감촉일 게
분명한 하얀 가슴이 보였다. 여진우는 입맛을 다시며 발바닥에 힘을 줬다.

“으으. 으으흐흥.”

입이 틀어막힌 채 좆을 자극당해 내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게 너무 야한 소리가 나왔다. 괴로움이라고는


티끌 하나 묻어나지 않는 것 같은 울음이었지만 여우희의 청순한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무님, 지시하신 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는 여우희의 하체에서 잠시 발을 뗐다. 이렇게 야한 몰골을 아무에게나 보여 줄 수 없었다.

“침대로 올라가.”

여우희가 후들거리는 몸짓으로 침대로 기어 올라갔다. 여진우는 꼼꼼하게 이불로 자신의 것을 감싸서
숨겼다.

“들어와.”

사용인이 수세미 열매를 들고 방 안에 들어왔다. 처음이라 가지처럼 가늘고 작은 걸로 목구멍을 쑤셔


줬을 뿐, 익숙해졌으면 여진우의 좆과 비슷한 크기의 걸로 연습해야 했다.

사용인은 눈을 내리깐 채 심부름 받은 물건을 넘겼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도망치려는 걸 불러서


붙잡았다.

“거기.”

“……네?”

“네 입이 얼마나 무거운지 볼게. 가벼우면 누가 알아. 바다에 던졌을 때 입만 동동 떠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죽을 때까지 함구하겠습니다.”


“그래, 가 봐.”

사용인이 겁에 질려 움츠러든 어깨로 후다닥 방을 벗어났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이불을 내려 여우희를


꺼냈다. 도토리를 품은 다람쥐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숨어 있던 그가 고개를 들어 여진우를 올려다봤다.

“우희야, 어서 나와.”

사용인이 무엇을 가져왔나 확인하려는 눈짓이 다급했다. 수세미 열매 크기를 보고는 도로 이불을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잘 키운 수세미는 20cm 도 넘어 보였다. 마침 여진우의 좆 길이와 같고 둘레도 그럭저럭 두꺼워


연습용으로 사용하기 최적이었다.

“형, 형. 싫어요. 무서워요. 저 절대 저거 입에 못 넣어요.”

“우희야. 이건 중간 과정에 불과해.”

“무슨. 무슨 중간 과정이요?”

“네가 해내야 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밟아야 하는 디딤돌. 넌 나중에 저거보다 두껍고 긴 걸
입에 넣고 빨아야 해.”

“……흑. 흣. 싫어요. 흑. 목 아파요. 흑흑. 내가 왜, 흑, 왜 저거보다 큰 걸 빨아야 해요?”

여진우는 이불째 여우희를 끌어안고 그 위에 입을 맞췄다. 불쌍하고 가여운 내 오메가. 하지만 이 집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자신의 것이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안 하면 이 집에서 내쫓길 테니까.”

“흡.”

놀란 여우희의 몸이 굳은 게 느껴졌다. 여진우는 이불 안으로 손을 넣어서 단단하게 경직된 몸을


더듬었다.

“우희야, 넌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어. 이 집에서 내쫓기면 또 보육원 가면 되겠다. 이제 거기 있는


아이들도 덩치가 커져서 많이 무서워졌겠는걸?”

“흐잇. 안 돼요. 형아. 우희 버리지 마세요. 우희가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울게요.”

“왜 그래. 공부도 잘하는 녀석이 멍청하게.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그딴 것만으로 이 집에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불을 내린 여우희는 눈물에 푹 젖은 처량한 몰골로 그의 눈을 피했다. 여진우는 여우희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우희야, 형이 우리 우희 혼내서 싫어?”

“아, 아니요. 딸꾹. 딸꾹.”

거짓말에 서툰 동생이 딸꾹질을 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런 어리숙한 모습마저도


바보 같긴커녕 사랑스러웠다. 그는 여우희를 끌어당겨 허벅지 위에 앉혔다. 겁에 질린 얼굴을 들여다보며
손으로는 여우희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었다.

“형이 우리 우희 겁먹게 했구나.”

“네에. 조금 무서웠어요.”

조금 잘해 줬다고 여우희가 긴장을 풀고 몸을 맡겼다. 잘게 하던 딸꾹질이 멎었다. 여진우는 그의 상의를


완전히 벗겨 내고 바지에 손을 댔다.

“어? 어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여우희가 멍청하게 굴고 있는 동안 바지 지퍼를 내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멋없는


회색 드로어즈를 입고 있었다. 정말 날 잡고 오메가 속옷을 사러 백화점에 들러야 할 듯싶다.

바지를 잡아당겨서 밀가루를 발라 놓은 듯 뽀야면서 가래떡처럼 탄력 있는 긴 다리를 꺼냈다. 드로어즈를


내리니 분홍색 말랑거리는 성기가 축 늘어져 있었다.

“형아?”

고개를 갸웃하는 여우희가 귀여워 여진우는 볼에 뽀뽀를 해 줬다.

“우희야, 바닥에 무릎 꿇고 입 벌려.”

“하지만. 하지만 벌 끝났잖아요.”

“누구 멋대로 벌이 끝나. 어서 내려가지 못해?”

다정했던 여진우가 돌변해 바닥으로 밀어 버리자 여우희가 꼼짝을 못 했다. 그의 눈치를 보며 무릎을
꿇고 얌전히 입을 벌렸다.

여진우는 수세미 열매를 손에 들고 자그마한 입에 가져다 댔다. 끝만 살짝 머금을 뿐 여우희는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일단 혀를 쓰는 법을 연습해 보자.”

여우희는 수세미 열매를 입에 넣지 않는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며 휴, 숨을 내뱉었다. 여진우는 그 꼴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어가 줬다.

붉은 혀가 수세미 열매 기둥을 할짝할짝 핥았다. 이게 맞나 여우희가 동그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여진우는 계속해 보라는 듯 수세미 열매를 잡고 기다렸다.

고양이가 앞발에 달린 분홍색 젤리를 핥듯 요염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혀 놀림으로 여우희가 초록색


기둥을 핥았다.

여진우는 그 미숙한 혀 놀림에 저 혼자 흡족해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지만 속마음과 달리 냉엄한


목소리로 여우희를 추궁했다.

“제대로 못 해? 최대한 혀로 기둥을 감싸듯 핥아 올려야지.”


알몸으로 무릎 꿇은 여우희가 울먹이며 그를 올려다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여진우는 발끝으로 여우희의
좆을 건드렸다.

“힉.”

“우희야. 너무 어려워? 못 하겠어?”

“아,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그럼 이렇게 하자. 형이 백번 양보해서 네가 이거 빨면서 사정하면 봐줄게.”

“네? 사, 사정이요?”

당장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듯 여우희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여진우는 그럴 수 없게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런데 네가 사정 못 하면 매일 자기 전, 형 방에 찾아와서 빠는 연습을 하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어?”

여진우는 여우희가 당연히 처음부터 목구멍이 쑤셔지면서 사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 내건 조건이었다.
그러나 음란한 몸으로 시도 때도 없이 애액을 쏟아 내는 여우희에게 그건, 오히려 사정하지 않는 쪽이 난도 99
짜리 체벌이었다.

딥 스로트를 하는데 발정하지 말라니. 지금도 구멍이 벌렁거리며 애액이 나와 엉덩이가 찝찝했다. 만일
여진우가 여우희의 뒤를 살펴볼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가짜로 싫어하는 척한다는 걸 들켰을 거다.

“왜 이것도 못 하겠어? 그럼 넌 할 줄 아는 게 뭐야!”

‘흑. 형아. 제발 펠라 훈련 받으면서 사정하면 형 방에 가서 계속 혼나는 걸로 바꿔 주세요. 제가 진짜


자신이 없어서 그래요.’

혹시라도 자신이 사정해서 그의 방에서 펠라 훈련을 받지 못할까 봐 눈물이 났다. 여진우가 표정을
굳히며 손에 들고 있던 수세미 열매를 바닥에 던졌다.

“주워 와.”

여우희는 일어나서 걸으려고 했다. 그런데 발로 오금을 차였다.

“윽.”

바닥에 넘어진 여우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애액을 흘리지 않기 위해 구멍을 단단히
오므리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네발로 기어서.”

네발로 엉금엉금 기어 수세미 열매 앞에 도달했다. 그러나 지금 여우희는 개라 손을 쓸 수 없었다.


애처롭게 여진우를 쳐다봐도 그는 굳게 입을 닫은 채 노려보기만 했다. 여우희는 고개를 내려 입으로 수세미
열매를 물었다.

그것을 입에 문 채 네발로 걷는 여우희의 분홍색 좆이 아래로 축 늘어져 달랑거렸다. 여진우는 동생을 개


취급해 놓고 자길 위해 재롱을 부린다며 화를 누그러트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우희의 동그란 엉덩이가 알파의 애간장을 녹이듯 흔들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화낼 알파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여진우는 확신했다.

여우희가 여진우의 다리 사이에 도착했다. 여진우는 공포로 땀이 배어 나와 끈적거리는 여우희의 등을


쓰다듬어 줬다.

“우희야, 정말 잘했어. 근데 도착했을 때 포즈만 다시 하자.”

여진우가 여우희의 어깨와 등을 만지며 자세를 교정해 줬다. 상체를 앞으로 쭉 내민 채 두 팔로 땅을


짚으니 가슴살이 가운데로 모였다.

“흡. 형, 흑. 형아. 흐흑.”

여우희는 여진우의 허벅지에 수세미 열매를 뱉어 내고 울었다.

“네가 사람이 아니라 개 취급 받고 싶어서 형이 하는 말에 대답 안 했잖아. 그래 놓고 뭘 울어. 여우희,


그래서 이거 빨면서 사정할 거야? 안 할 거야?”

“흡. 흑. 흐흑. 안 할래요. 흑. 사정 안 할래요.”

여진우는 하얀 가슴에 달려 있어 더욱 눈에 띄는 여우희의 젖꼭지를 손으로 덥석 잡았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형 방에 매일 잠자기 전에 와서 혼나는 거다.”

여우희는 비틀린 젖꼭지가 아파서 비명을 질렀다.

“아앗.”

여진우는 강하게 젖꼭지를 꼬집었던 손을 놓았다. 한쪽만 빨갛게 부어올라 짝가슴이 되었다. 그는 옷을
입을 때마다 한쪽 젖꼭지만 쓸려서 아파할 여우희를 떠올리며 당장 해야 할 일을 실행했다.

여우희의 허리를 한쪽 팔로 휘감고 미세하게 크기가 달라진 오른쪽 젖꼭지를 입으로 물었다. 앞니로
젖꼭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미인도처럼 선이 고운 몸에서 유일하게 포동포동하고 커다란 엉덩이를 빈손으로
움켜잡았다.

“으읏. 싫어! 싫어!”

여우희가 등을 뒤로 젖히며 발버둥 쳤다. 여진우는 게걸스럽게 젖꼭지를 쭙쭙 빨아 먹었다.

“흐아. 형, 흣. 형아. 그만해요. 싫어요.”

여우희가 발을 동동 구르며 팔로 그를 밀쳐 냈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는 젖꼭지가 불쌍할 정도로


괴롭혔다.

“아니야. 아니야! 이거 싫어요!”

여진우는 여우희의 반항 때문에 가슴에서 떨어졌다. 대신 여우희를 번쩍 들어 침대에 던져 놓았다. 그는


동생의 두 다리를 벌리려고 무릎을 붙잡았다. 여우희가 허벅지를 딱 붙인 채 고개를 도리질 쳤다.
“제발. 흣. 형 제발 안 돼요.”

“내가 뭘 할 줄 알고 안 된대.”

다리를 벌리려는 여진우와 다리를 좁히려는 여우희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여우희는 이대로 그가 자신의
다리를 벌리면 흠뻑 젖은 구멍을 보고 그동안 해온 연기를 들킬 거란 생각에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둘의 힘 차이가 너무 컸다. 서서히 무릎 사이가 벌어졌다. 침대 시트를 손으로 움켜쥐고 힘을


냈지만 막아 낼 수 없었다.

“전무님. 강 집사입니다.”

“씹. 야, 죽을래. 나 지금 바쁘니까 꺼져.”

“수의사가 개 죽이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여우희의 다리를 벌릴 것처럼 굴었던 여진우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손을 뗐다. 살짝 벌어진


여우희의 다리를 친절하게 닫아 주고는 미련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발가벗겨진 채 엉망진창으로 굴려진 여우희와 달리 양복 차림의 여진우는 방금까지 회사에서 서류 작업을


했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말끔했다.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그가 침대에서 어안이 벙벙해 있는 여우희에게 웃어
보였다.

“나중에 마저 하자.”

여진우가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여우희는 그가 사라지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소름이 쫙 돋았다.

설마 여진우가 오늘 강도희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괴한을 보낸 건가? 아니다. 아닐 거다. 자신의


형이 왜 그러겠는가.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건 그냥 사고였다. 이래서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 거다. 여우희는 고개를


휘휘 저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떨쳐 냈다.

2 권에 이어서.

BL 소설 망나니 악역은 능욕당하고 싶어!

저 자 | 3 월의고양이

발 행 처 | BLYNUE 블리뉴

출판신고 | 제 2018-000089 호
연 락 처 | 문의 및 투고 blyn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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