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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화
726화
(1)
“흐으으음.”
“……대참사가 벌어졌겠지.”
응?
“운이 좋았지.”
“어디보자…….”
촤라라라락!
권력을 혐오하던 사람도 자신이 권력자의 위치에 오르면 그 달콤함에 취한다. 과거 아무것도 없
는 삼류 문파였던 화산의 장문인과 지금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화산의 장문인은 분명 다
른 자리다.
“장문사형도 못 했던 건데.”
- 이 개새…….
어쨌든, 고민할 문제가 있었다. 살짝 애매한 문제라 청명은 슬그머니 미간을 찌푸렸다.
“흐으으음.”
그래도 비교적 조심조심 훑어보던 자하신공 비급과는 달리, 자하강기의 비급을 훑는 청명의 손
길에는 조심성도 없고 무심함 기운이 역력했다.
“읏차.”
훌륭한 무학이다.
“……모든 정수?”
순간적으로 청명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 그의 손끝이 미미하게 느려지기 시
작했다.
터덕.
휘어진 두 눈이 빛을 뿜었다.
“무릇 고인 물은 썩고, 무학도 마찬가지일지니, 과거를 그대로 답습해서야 미래가 없다! 무학도
언제나 진일보해야 하는 법! 이것이 화산 십삼 대 장문인 청문의 가르침이니라!”
- 그런 말 한 적 없어! 야! 야, 인마!
“그럼 어디…….”
“낄낄낄낄.”
***
“……며칠째지?”
“글쎄요.”
현종이 걱정과 우려가 가득한 눈으로 청명이 꿰차고 들어간 매화동(梅花洞)을 응시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부, 불안하니 그러지 않느냐! 새로운 무학을 익힌다는 건 실로 어려운 일인데, 혹시 안에서 주
화입마라도…….”
“…….”
“괜찮겠지?”
“그야 그렇지만…….”
바로 그때였다.
쿠르르르르릉!
“뭐, 뭐야?”
“지진인가?”
“어어…….”
“저, 저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쿠웅!
“후우우우우.”
“……청명……아?”
쿠웅. 쿠웅.
“…….”
그때 청명의 입이 열렸다.
“자, 이제…….”
“……응?”
우둑. 우둑.
“시작하시죠.”
“여기요.”
“……이게 뭐냐?”
“아, 그거요?”
청명이 히죽 웃었다.
“……바스러져?”
“네.”
“…….”
“……미리 옮겨 적었다고?”
“네.”
“자, 잠깐!”
“네?”
“아, 그거요?”
청명은 이번에도 가볍게 헤헤 웃었다.
“그건 못 살렸어요.”
“뭐?”
현종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어…… 그러니까…….”
“나, 날아가?”
“어…….”
“어억!”
“자, 장문인!”
“뭐, 인마?”
뒤로 넘어갔던 현종이 별안간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청명에게 콱 달려들었다. 청명은 이크, 하
며 빠르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응?”
“…….”
“에라!”
“진정하십시오, 장문인.”
“놔라! 이거 놔!”
“끄으으으응.”
“포기하시면 편해요.”
“…….”
언젠가…….
“알겠다.”
어?
“……청명아.”
“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구결이 내가 전에 본 것이랑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기분 탓이에요.”
“……정말 기분 탓이냐?”
“…….”
‘왜 이렇게 불안하지?’
“아니지?”
“그럼요.”
“진짜 아니지?”
“…….”
“네네!”
“알겠다.”
“그런데 청명아.”
“네?”
“네, 그렇죠.”
“어떠하더냐?”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
현상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하다니?”
청명이 뺨을 긁적였다.
“으음.”
“정말 대성하게 되면 사람의 몸으로 하늘에 진짜 자줏빛 노을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말이 되는…….”
“예?”
현상이 당황한 얼굴로 현종을 돌아보았다.
“아…….”
“천하일절이라…….”
- 뭐? 뭐, 이 새끼야, 뭐?
“그리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
“너희가 아무리 우리를 존중한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 너희의 존중만으로 문파를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예?”
“…….”
“……응?”
“사정을 봐줘요?”
“…….”
“왜요?”
‘내가 잠시 잊었네.’
“그럼 청명아.”
“예?”
“……좀 살살해라.”
“…….”
“저기…… 사숙.”
“응?”
“……그러다 피나겠습니다.”
까득.
“와, 씨!”
“윤종아…….”
“예?”
“……괜찮을까?”
“…….”
“진짜 괜찮을까?”
“머리는 달렸지.”
“불안하지?”
“……네.”
“응?”
“…….”
“…….”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아니. 이분들이…….”
“일리가 있네요.”
“그러게……. 확실히 그렇구나. 제아무리 청명이 놈이라고는 해도, 신공을 수련하는 사람을 갈아
댈 수는 없을 테니.”
“그럴까?”
“과연?”
“…….”
“……그 말도 맞네요.”
“……슬쩍 가 볼까?”
백천이 몸을 살짝 떨었다.
“……그것도 그런데…….”
“뭐?”
“비켜!”
“으악!”
“어디? 어디지?”
“저쪽입니다!”
“멀쩡한데?”
“이, 일단 가 보자.”
“예!”
“……어?”
“엥?”
“저, 저거…….”
“……자, 장문인?”
움찔.
‘피골이 상접했는데?’
‘무서워.’
아니, 되게 별거 같은데요?
“아우. 개운하다.”
“야, 이 새끼야!”
“헐, 씨. 뭐야.”
“끄으으……. 저 새끼가…….”
“에라, 진짜!”
퍼억!
청명이 벗어 날린 신발이 백천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비로소 조용해진 백천이 옆으로 스르륵 쓰
러졌다.
털썩.
“예!”
유이설과 당소소, 조걸이 재빠르게 장문인과 장로들을 부축했다. 윤종은 사색이 된 얼굴로 청명
에게 물었다.
“맞아.”
“그, 그럼 왜?”
“아아.”
“같아서?”
“응.”
“응?”
청명이 빙긋 웃었다.
뒤틀어?
“기혈을 뚫고?”
뚫어?
“……얼마나?”
“몸속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두께로 구멍을 파내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까? 기
혈을 따라서 꼬불꼬불하게?”
“히이이이이익.”
“괜찮으세요, 장로님?”
윤종이 다가가 장문인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초점이 사라졌던 현종의 눈에 희미하게 빛이 돌
아왔다.
“윤종아…….”
“……문적(門籍).”
“예?”
“……저 새끼 문적 파서 쫓아내.”
“…….”
“……썩을.”
“으아아! 장문이이이인!”
“쯧쯧. 이리 나약해서야.”
이 일 차.
“뭐가?”
“……흡성대법이라도 쓰나?”
“……말려? 무슨 수로?”
누가? 오검이?
“아는데…… 나도 아는데.”
“……예.”
사 일 차.
“……괜…찮다.”
‘안 괜찮은데?’
‘너무 안 괜찮은데?’
‘밥알 다 떨어지네.’
‘현실적이네.’
“……괜찮다.”
“……할 수 있다.”
촵촵촵촵촵촵!
“…….”
저 마귀 같은 새끼.
칠 일 차.
털썩.
화산 제자들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어?”
“으아아아아! 장문이이이인!”
“…….”
“아아…….”
“……사부.”
엥? 누구요?
“야, 이 미친 새끼야!”
“어?”
그게 그렇게 되나?
조걸과 윤종이 왁왁거리며 싸우는 와중에도 백천은 현종을 깨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으랏차!”
푸우우우욱!
그 거대한 대침이 현종의 정수리에 거침없이 꽂혔다. 백천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악했다.
“히이이이이이익!”
푸우우웃!
“……음? 내가 혹시 쓰러졌었느냐?”
“…….”
“쉬셔야 합니다!”
“그러다 죽어요!”
“허허허허.”
아니, 죽는다고!
그러다 진짜 죽는다고!
“허허허허.”
“네?”
“빨리 저 침 좀 뽑아 드려라.”
“……네.”
‘화산은 망했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십오 일 차.
“……아무래도.”
“동의합니다.”
“동의합니다!”
“혁명을!”
“서 계시기만 해도 옷이 줄줄 흘러내리던데…….”
“……진짜 등선하시겠던데.”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청명이 놈도 워낙에 똥고집이라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는데.”
“응? 사매?”
스르르릉.
“진정하세요, 사고!”
“장문인의 원수!”
“전 침착해요.”
“그럼 검 좀 넣어!”
“……걔가요?”
“조걸!”
“……네?”
“…….”
“뭐? 왜?”
“……아닙니다.”
***
평상에 길쭉하게 누워 술이나 홀짝이던 청명은 우르르 몰려온 오검과 ‘여긴 어디? 나는 누
구?’를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혜연을 물끄러미 보았다.
“왜?”
“……아니.”
‘개새끼들.’
“크흠. 청명아.”
“왜.”
“그런데?”
“그래. 너무 심하다.”
“……아니, 뭐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응?”
청명이 피식 웃고는 술을 꼴깍꼴깍 들이켰다.
“카아.”
“……그게 무슨 소리냐?”
“……응?”
‘저 새끼가 또 뭘 하려고…….’
십육 일 차.
“끄으으으…….”
“이상하다.”
“예.”
십칠 일 차.
“끄으…….”
우드드득!
“끅.”
‘우는소리를 할 수는 없지.’
“후우우.”
‘늦지는 않았겠지.’
‘기운을 잃지 말자.’
“가자!”
그리고.
콰드드득!
“엥?”
“……아니, 이게 왜……?”
“으응?”
어느새 채비를 마치고 온 현영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부서진 문과 현종을 번갈아 보았다. 현종은
그런 그를 가만 바라보다 물었다.
“표정이 왜 그러냐?”
“……뼈마디가 쑤셔서요.”
“…….”
“…….”
“……그렇지.”
뭐?
“……욕은 할 만해?”
“…….”
“……일단은 가자꾸나.”
“그래.”
이십 일 차.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
“애들 있는 데서 체면 상하게.”
“예?”
“…….”
하지만 한번 입이 터진 현상은 도무지 정신이 잡히질 않는다는 얼굴로 뭔가를 끊임없이 중얼거
렸다.
“귀 막아! 귀 막아 이놈들아!”
“……그런데 현영아.”
“예?”
“제가…….”
“에잉, 됐다니까.”
“으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어?”
듣고 보니…….
“……그러게요?”
이십오 일 차.
“조금 변한 것 같지 않으냐?”
“아니, 나 말고!”
“네?”
“저분들 말이다.”
“네 눈에도 그러냐?”
“으음.”
“살이 조금?”
“역시 그렇지요?”
“좋은 징조 아닐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표정에 살짝 놀라움과 안도가
스쳤다. 초를 치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그 분위기가 오래 갔을 것이다.
“……거 티도 안 나는구만.”
“확 그냥 주둥이를!”
“…….”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청명이처럼 대하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청
명이 취급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건 사람이 할 짓……. 아아아아악!”
쿠우웅!
“뭐, 뭐야?”
“습격인가?”
밥을 먹던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그들 중 절반은 벽에 처박혔다가 스
르륵 흘러내리는 조걸을 바라보았고, 나머지 절반은 정확하게 반대편에서 젓가락을 쥔 채 넋을
놓은 현상을 보았다.
“아, 아니…….”
현상은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조걸과 제 젓가락을 번갈아 보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
“이 새끼 거품 물었는데요?”
“아니! 애를 왜 패고 그러십니까?”
“정말 아니라니까!”
“서, 설마…….”
백천의 두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