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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투스: 자살하는 꽃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다. 함께 꿈꾸는 꿈은 현실이다."

"하......아."

눈을 감은 채 차갑고 매마른 공기를 들이셨다.

초봄의 아침 공기는 언제나 이런 느낌이다. 목구멍은 싸늘하게 마르지만, 그 속에서 정신만은 개운하게
맑아온다.

나는 이 무렵의 새벽을 닮은 공기를 좋아한다. 남들보다 이런 공기를 마실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일지, 는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 이 공기를 즐기게 되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수년 전, 어렸던 내가 홀몸이 된 그날 이후로는 이 즈음의 상쾌함을 누리게 될


일이 잦아졌다는 것.

그래서 일부러 강의를 첫 교시에 등록해놓고, 걸어서 통학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맞춰 등교하려면 적어도 집에서 7 시에는 출발해야 하니까.

"일찍 왔네?"

"그러게 말이다. 오늘은 왠지 일찍 일어나고 싶더라."

"오. 신기하네. 나도 오늘 그랬는데. 왠지 아침 일찍 눈이 떠지더라고."

잡담을 나누면서 늘 앉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총원이 20 명도 안 되는 작은 강의다 보니 서로 전부


어찌어찌 알음알음은 있는 상태다. 중고등학교 때보다도 인원이 적다 보니 오히려 더 돈독하게 느껴질
지경이고.

그나저나 강의 시작은 분명 9 시일 텐데. 8 시 반도 채 안 된 지금 강의실은 이미 거의 꽉 들어차


있었다...

"뭐야? 오늘 무슨 일 있어?"

"한 명...... 인가? 한 명 빼고 다 온 거 같은데? 걔 말야. 수찬이."

"원래 걔가 맨날 1 등 아니었냐?"

"어. 저기 왔다."

문 경첩이 길게 신음을 토했다.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전수찬, 학생들의 시선은 모두
그리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관심에 놀란 전수찬이 눈을 뎅그렇게 떴다.

"오늘 8 시 반까지였냐? 나 혼자 공지 못 보고 그냥 온 거야?"

"아니. 공지 같은 거 없었는데."

강의 시간 30 분도 전에 전원 출석. 지극히도 신박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전원 출석만 해도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을진대, 30 분 이상의 여유를 두고 이런 일이라니.

물론 대부분은 이에 대해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다.

"와! 지각도 없고 결석도 없다니! 웬일이야!"

"이 정도면 교수님이 우리 성실성에 탄복해서 하루 정도 휴강해주고, 그런 거 아냐?"

홀로 정색하고 있던 나조차도 그 말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우리 교수님이 유하고


자상하시다지만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어쨌든 이 기현상의 원인이라면,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요새 지구 자기장이 뒤틀리고 있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고 있으니까. 지자기 폭풍 현상이 그렇게까지 드문


건 아니지만, 역시 이 정도 규모라면 이례적이다. 일반인이 체감하기에 생활패턴까지 뒤바뀔 정도까지
되어버렸으니.

만일 지자기가 역전되기라도 한다면 전력망 붕괴는 물론이고 자기장 약화로 인해 대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 파장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웃어넘길 수준은 아닐 거란 건 분명하다.

최근 들어 대지진이나 슈퍼태풍도 거의 달마다 발생하고 있으니. 지구 내부에서, 맨틀에서든 핵에서든,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야."

옆에서 들려오는 살가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강수아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혼자 왜 또 그렇게 심각해. 요즘 고민 있어?"

강수아.

볼 때마다 새롭고, 이상하고, 또 숨이 막히는 인물.

어쩜 저렇게 생겼는지, 이목구비는 단정하면서도 화려하고, 표정 하나하나는 명장이 연출한 것처럼


신비롭다. 대화할 때마다 인형이 말하는 것만 같아서 신기하기만 하다.

"아니 뭐. 별 거 아냐."

너한테 내가 자기장 얘길 해서 뭣하겠냐. 가만히나 있고 말지.

역시 정답이었는지, 강수아는 금세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화제에 골몰하고 만다.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어둑어둑해? 해도 아직 안 뜬 것 같아."

"에이. 그냥 구름이 좀 두껍게 낀 거겠지. 이런 날 가끔 있잖아."

"그렇다기엔... 하늘에 구름이 안 보이잖아? 별도 비치는데?"

"엥? 그게 말이 돼? 자전 주기가 바뀌지 않고서야 이 시간에..."

벌컥!

그때 문이 요란스레 열리며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역시 오늘은 다들 일찍 모였네요?"

교수님은 환한 웃음을 얼굴 한가득 띄운 채 경쾌한 발걸음으로 교단으로 향했다.

교수님... 오늘따라 뭔가 이상한데.

물론 평소에도 늘 웃는상이신 교수님이지만, 익히 봐온 그런 인자한 종류의 미소와는 달랐다.

그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얼굴 한껏 피어오른 웃음이었다. 입가는 당장에라도 귀밑머리까지 찢어질


것처럼 늘어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함께 빙그레해질 것만 같은 특유의 호선은 어디가고, 교수님의
웃음에서는 미묘한 불쾌감과 더불어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교실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착 가라앉아 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 안의 모두가 이 야릇한 이질감을
인지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교수님...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때 한 학생이 용기내어 질문했다.

김현재였다. 평소에 조용하던 녀석일 텐데, 갑자기 웬일이지. 설마 김현재 저놈, 평소에도 눈치가 좀
부족한가 싶었는데...

"아! 기분 좋은 일이라."
다행히 교수님은 마침 잘됐다는 듯 손뼉을 치며 답했다.

"일단 수업부터 하고 얘기해볼까요? 오늘은 좀 색다른 내용에 대해 알아볼 거니까."

잔뜩 신이 나셨는지 교수님의 손끝이 활개치듯 바삐 움직였다. 거미 다리와도 같은 기민한 움직임이었다.

"요새 과학계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어요. 그게..."

"지자기 폭풍."

나는 입을 턱 막았다.

소등하듯 교실 안의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꺼졌다. 동시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붙박혔다. 아주


잠시간의 침묵이었다.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입밖까지 나가게 된 거지.

나는 긴장한 채 교수의 표정변화를 살폈다. 내 답을 들은 그녀의 입술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좋아하는


건지, 비웃는 건지, 기분 나빠하는 건지. 도무지 분간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다만 교수의 목소리만은 활기찼다.

"맞아요! 잘 알고 있네요. 지구 자기권이 최근 들어 계속해서 요동치고 있어요. 만일 하지만 그 원인은


기존에 알던 것처럼 흑점 변화나 대규모 플레어 같은 것이 아니었죠. 과학자들이 그 원인을 규명하려
애쓰고 있지만 쉽지는 않은 모양인데...

...한심한 것들."

씨익 웃는 교수의 입이 더없이 크게 벌어졌다. 앞니가 전부 드러나고, 침이 뚝뚝 떨어지는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이를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는지 교수는 말을 멈출 생각을 않았다.

여학생들의 낯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외권이 그 원인이 아니라면, 내권이겠구나 하는 간단한 생각도 못 하나? 멍청하기 그지없는 무지렁이들.
지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교수의 얼굴은 이제 차마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흉측하기 그지없게 변해있었다. 송곳니가 가시처럼 줄줄이
박힌 끔찍한 구강, 오리 주둥이처럼 길게 늘어진 혓바닥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또각. 또각.

교수가 신은 빨간 하이힐이 바닥을 짓쑤셨다. 그녀의 눈동자가 들들 돌아가며 사방을 배회했다.


표적이라도 찾듯이. 그리고 그녀의 동공이 강수아에게로 붙박혔다.

"수아 양."

교수의 손아귀가 강수아의 턱을 움켜쥐었다.

"수아 양은 어떻게 생각하나?"

강수아의 눈동자는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네... 네?"
"쯧. 딱하긴. 이렇게 어벙해서야, 원."

교수는 곧바로 다음 표적을 찾아 눈알을 굴렸다. 그리고 다음은 역시...

"이이진?"

나였다.

"네?"

우리 교수님이 어쩌다 이런 꼴이 돼버렸는지, 여전히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설사 알게 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나는 교수가 건넬 질문에 대한 답을 알 것만 같았다.

"아까 보니 빠릿빠릿하게 잘만 대답하던데. 어떻게 생각하지? 오늘의 해는 왜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며,


지자기는 왜 이 모양 이 꼴이고..."

"지구의 핵이 보다 고밀도의 물질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관성력이 감쇠하며 자전 속도가


늦춰지고, 외핵 대류가 방해를 받으면서 지자기가 약화되고 있는 겁니다."

몇몇 친구들이 나를 어이없게 쳐다봤다. 나도 안다. 핵의 구성 물질이 변화하고 있다니, 허황되다 못해


터무니없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교수는 내 답을 듣고는 신명나게 웃어재꼈다. 침 몇 방울이 내 책상 위로 떨어졌다. 치이익.


살벌한 소리가 나며 책상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역시 그나마 가장 쓸만하군. 하지만 틀렸어.

이제는 핵뿐만이 아니니까."

킥킥킥.

그건 사람의 것이 아닌 웃음소리였다. 저게 우리가 알던 교수님이라고? 혹 다른 존재가 교수님의 껍질을


쓰고 변장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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