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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 6.75권
역시 내 청춘 러브코미디는 잘못됐다 6.75권
4-33)
껏해야 그게 전부다.
본디부터 관계성이 희박한 사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도 나와 그녀 사이
의 접점 같은 것은 아마 없을 터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찰해 보자면 지극히 단적인,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지극히 단
순한 감상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속물, 이라는 부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들에게는 그녀가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있는 발톱이든 엄니든 공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진짜 엄청 무섭다고요…….
따라서 그녀들은 둘 다 마찬가지로 무리를 짓고는 있지만, 전혀 다른 양식으로 그 무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는 말은 아니다.
물론, 양쪽 모두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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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카와우치 코우한(川内康範)과 분쟁이 있었던 중견가수 모리 신이치(森進一)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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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が集まるといっても元気玉的なことではなく、むしろみんな元気がない(나무가 모인다 하니 왠
지 원기옥 같은 느낌이지만, 오히려 다들 활기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나무(木, 키)와 기
(気, 키)가 같은 발음이고, 기를 모아 시전하는 기술인 ‘드래곤볼’의 원기옥(元気玉)의 원기(元気,
간다. 미우라도 이미 평소처럼 돌아온 상태로, 어딘가 권태로운 분위기를 흘리면서도 에비나 양과
유이가하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다음, 나는 교실 전체를 별 생각 없이 둘러보았다.
한편 사가미로 말하자면, 말없이 교실을 떠나간다. 오늘은 쉬는 시간이 되어도 함께 험담,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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ぼっちの半分は優しさでできてるどころか全部優しさまである. 진통제 버퍼린(バファリン)의 캐
은 자기 같은 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자아, 그리고 자의식이 존재하는 자는 어딘가에서 변화를 거부하게 되어 있다. 자기동일성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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マザー牧場. 치바현에 위치한 목장 테마파크.
고.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평가된다. 말, 행동, 습관. 그런 것들이 주위로부터 각 개인의 성
격과 인격으로 평가된다.
과연, 사가미의 행동의 변화는 무언가의 징조가 될 수 있을까.
× × ×
논의한다.
하지만, 이것도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그리 원만하게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나
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꺼림칙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다못해 내 머리털까지 꺼림칙한 예감
에 반응하여 까딱까딱 움직이는 듯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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ドーモ、ニンジャ=ヒキガヤーです。소설 ‘닌자 슬레이어(NINJA SLAYER)’의 인살어(忍殺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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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초평화 버스터즈(超平和バスターズ) 패러디인 듯.
“그러신가요…….”
그렇게 된다면, 이번 회의는 현장반에 대한 억지력이 하나 줄어들게 되는데……. 점점 더 꺼림칙
한 예감이 깊어지면서, 내 하치만 레이더는 이미 안테나 세 개 7가 된 상태다. 그러고 보니 안테나
세 개란 것도 이제는 듣기 힘든 단어로군. 요즘 스마트폰 전파 표시 막대는 다섯 개 정도 뜨니까.
“……그럼, 저는 이제 회의 가 볼게요.”
“아아, 잘 다녀와라.”
묘하게 낯간지러워지는 말과 함께 전송을 받으며, 서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엇갈리려던 참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툭 두드렸다.
“너도, 무리하지 않아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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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リ3. 빠릿빠릿한 모습(バリバリ)과 3의 합성어. 예전의 휴대전화는 안테나 세 개가 최대 상태.
× × ×
오늘은 고문인 히라츠카 선생님이 없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뇌부 측은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그저 현장반 무리들이 끝도 없이 계속 떠들
고 있을 뿐이다.
이게 만약 회의 전의 광경이었다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서로 만나서 잡담 한두 마디
쯤 나누는 거야 평범한 일이니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평범하게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이미 회의는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의욕이 없더라도 일단은 고등학생들이 모
인 자리다. 최소한 그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는 중이긴 하다. 하지만 마치 파도치듯 자그마한 소
리로 소근소근 주고받는 잡담은 그칠 줄을 모른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하루카와 윳코였다. 여전히 둘 다 조연스러운 스타일이라 누가 누군지
는 아니다.
제작물 관련 업무는 거의 대부분이 현장반에 할당되어 있었고, 책임자 또한 정해져 있었을 터이
다. 따라서 원래 여기서 손을 들어 보고해야 하는 것은 그 담당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수뇌부가 일을 거들기 시작하면서, 그들 사이에서는 제멋대로 권한 이양이 벌어지
고 있었던 모양이다.
뭐,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각자 부활동 중에 본의 아니게 일을 떠맡은 것도 사실이니까.
다.
수뇌부가 그것을 간과해버린 탓에, 그녀들의 주장에 정당성을 실어주고 말았다. 원래라면 그 순간
에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서라도 반박을 가해야만 했다. 한 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빌미로
더 많은 양보를 강요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딱 잘라 거절해야 할 것이다. 자칭・세계의 경찰도 자주 하는 말이다. 테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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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에스퍼 마미(エスパー魔美)’의 주인공 사쿠라 마미(佐倉魔美)의 패러디. 화가인 아버지를
을 돌린다.
아무래도 메구리 선배는 사가미에게 결정을 일임하고자 하는 눈치였다.
정작 사가미 본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결정된 사항이고……”
사가미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꼬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흘끗 쳐다본 다음
하루카와 윳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험담이란 것은 곱셈과 같다. 기하급수 9처럼 증폭되어 간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고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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倍々ゲーム. FX 마진거래나 룰렛 따위에서 승리할 때까지 판돈을 배로 늘려 나가는 전법을 가리
키는 듯.
으로 알려짐으로써 그자들 역시 동조하게 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뇌부 쪽이 강렬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이 자리에서 철저하게 하루카
일당의 의견을 완전히 깨부술 필요가 있었다. 동물의 세계처럼 어느 쪽이 강한지를 확실하게 보
여줘야만 하였다.
또한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역시 기마전은 좀 위험하지.”
지경이었다.
그런 불만과 의혹의 도가니로 변해버린 회의실에 짝짝 손뼉 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자~ 주목!”
시선을 돌리자 메구리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현장반 인간들이 시선으로 압력을 가한다. 불만으로 가득한, 그리고 조소와 모멸이 뒤섞인 시선
이 우리들에게 박혀 온다.
이제까지 지시를 받기만 했던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제시
하지 못하는 수뇌부는 무능하게만 보일 것이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는 시시콜콜 간섭하는
들었다.
“유키노시타 양, 말씀하세요.”
메구리 선배에게 이름을 불리자, 유키노시타가 소리 없이 의자를 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리고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아가 마커를 손에 쥐었다.
“그래도……”
“그치.”
“하지만 뭐…”
그것은 의견의 교환이라기보다는 감정의 확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뉘앙스를 판독하고, 본인 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아니, 실제로는 몇 초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경직된 분위기는
그렇게 생각되기에 충분하였다.
딱히 시계를 보고 있던 것도 아니었을 텐데, 하루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시간이……”
그 한 마디가 계기가 되어 다른 멤버들도 시계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이, 일단은 대책도 세웠으니깐, 오늘은 그만…….”
수를 써도 기일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줄어든 덕분에, 열어놓은 창문에서는 선선한 가을 바람이 잘도 들어온다.
통풍이 잘 되는 직장이란 그냥 사람이 적다는 뜻이잖냐, 그런 생각을 하며 지금 나 자신이 처해
한숨을 쉬었다.
“그치만, 유키농이 설명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요…….”
제는 다루기도 힘들고 손쓰기도 힘들다. 때로는 감정의 대립이 비극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호
의 분위기를 정상화시키는 것.
아마도 이 정도로 상심한 사가미라면 앞으로 한동안은 얌전히 조용하게 지내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다음은 사가미가 사임한 후 전력을 다해 체육제 운영을 커버해 가면서, 어떻게든 대회를 성
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면 최소한 표면상으로는 의뢰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최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타당한 대안이 될 것이다.
“……어?”
고개를 든 사가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다음’도 ‘언젠가’도 이젠 없을지도 몰라.”
유키노시타의 말은 마치 차갑고 날카로운 가시 같았지만, 목소리 자체에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마니까.
차라리 가혹하게 대한다면 상대방의 몰이해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 테니, 그나마 마음만은 편
할 것이다.
사가미는 입술을 질끈 깨문다. 바로 그만두겠다고 대답하지 못한 그 시점에서, 사가미가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지금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벌써 오래 전에 지나간 상태다.
지금 여기서 사가미가 그만둔다고 한들,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안전 관리와 부활동.
별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긴 하지만 그녀들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던 증오심을, 그 감정론을 어떻
게든 조리 있게 설명하려고 한 결과 그런 기묘한 이론이 성립되고 말았을 것이다.
메구리 선배도 두 사람의 솔직한 반응에 조금 당황한 모양인지 손을 내저으며 급하게 덧붙여 말
한다.
“아, 그게, 있지…… 으, 음~, 사실 일 처리가 아주 훌륭한 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나도 딱
히 일을 잘 하는 편은 아니라 그런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눈에 다 보이는걸.”
넘버 원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보여주듯이 메구리 선배는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소질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간신히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뒤집어 보면 사가미에게는
그런 매력이 없는 셈이 되겠지만, 뭐, 지금은 그런 얘기는 접어두기로 하자.
“그러니까, 사가미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열심히 해 왔으니까, 좀 더 해 보는 게 어
때?”
당연하지만 내게 사가미의 결의에 훼방을 놓을 권리는 없다. 충고할 의무조차 없다. 사가미 역시
내 조언 따위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사가미는 이미 결정했다. 위원장의 교체는 없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철저하게 마련해야만 한다.
그런 문제 제기에 대해 곧바로 반응한 것은 유키노시타였다.
“이쪽에서 굽히고 들어갈 이유는 없으니까, 상대편 쪽에서 굽히고 들어오게 만들 수밖에 없겠지.”
여전히 멋지구나, 이 녀석은. 사가미가 내린 답을 존중할 방침인 모양이다. 서로 대립 중이고, 그
양보 또한 바라기 어렵게 된 이상, 남은 길은 상대방을 철저하게 쳐부수는 것밖에 없다.
그 방침에는 나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의 말에 사가미가 조심스럽게 표정을 찡그린다. 지금 와서는 언행도 제법 신중해진
메구리 선배가 그렇게 말하자 유이가하마도 납득한 것인지 우웅~ 하고 또 복잡한 표정을 하며
팔짱을 낀다. 하지만, 나는 왠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동기 부여라는 말이 심히 마음에 걸린다. 대체 어디에 동기 같은 게 있었다는 것일까.
원을 모을 만한 시간도 없어 보인다.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래도, 현재 이 인원 구성으로 진행해 봤자 어차피 기일에는 맞출 수 없다.
문득 유키노시타가 입을 연다.
“……새로운 전력을 투입할 필요는 있겠구나. 그렇다고는 해도 모든 일에 투입하는 건 어려울 테
니까, 몇 가지 항목으로 좁힌 다음 어디까지나 업무 지원이라는 형태로 한정시키지 않으면 현실
성이 희박하겠지.”
“차라리 우리 쪽을 보강하자 이건가.”
그 말에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턱에 손을 얹는다.
“그래. 이제까지 현장 쪽을 지원하느라 발생한 우리 쪽 업무 지연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으로 봐
야 하겠지.”
그렇다면 새로운 전력은 어떻게든 조달해 온다 치더라도, 기존의 전력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약점… 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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弱った様子. 弱る는 약해진다는 뜻과 난처해진다는 뜻을 가짐.
정당하지 못한 것은 질색이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질색이다. 거기에 이유를 붙여 가며 어떻
게든 납득해 보려는 내 모습 역시 질색이다.
저쪽이 이치에 맞지 않게 나온다면, 이쪽은 더 이치에 맞지 않게 나갈 것이다. 불의가 판치기 시
작하면 정의가 설 자리는 없는 법이다.
그녀들은 체육제 자체를 인질로 잡고 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체육제 준비를 진행하지 않
을 거라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이 자각적인 행위인지는 차치해 두더라도, 결과
만 놓고 보면 그런 상황이 되어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취해야 할 수단은 오직 하나.
“우리도 같은 수법을 써먹어 볼까…….”
“무슨 뜻이야?”
“그래서, 구체적으로는?”
그 물음에 나는 마침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어를 입에 올렸다.
“이른바 상호확증파괴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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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dade. 향수 등의 여러 정서들을 포괄하는 포르투갈어.
역시나. 난 또 여전히 남을 칭찬하는 센스가 형편없구나 싶었다고. 습관이란 무섭구만. 하지만
이 아이, 남을 칭찬하는 척 꾸미고 허를 찌르거나 남을 깎아내리는 스킬만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
하는군요. 그 성장을 조금은 다른 쪽으로도 돌렸으면 좋겠는데……. 절대 입에는 담지 않았지만 마
음속으로 험담을 퍼부으며 갚아 주고 있는데, 유키노시타는 피식 하고 무척 작은 소리로, 자칫하
볼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런 마당에 혼자만 불쑥 한 발짝 앞으로 나온 이가 있었다.
“……그,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야?”
유이가하마는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아니, 그렇게 잡아당기는 거 묘하게 부끄러우니까 하
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창피한 마음에 슬쩍 몸을 움직여 그 손에서 슬그머니 빠져 나온 다
음 설명을 시작한다.
모든 설명을 마치자 메구리 선배가 호와~ 하고 감탄한 듯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는 나를 말끄러
미 바라봐 온다.
“……어라, 왜 그러세요.”
하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아 물었더니, 메구리 선배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 × ×
“……….”
글쎄, “야~!” 같은 그런 느낌? 시원하게 재수없네……. “여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한
“……꺄악!”
카와사키는 나를 보자마자 무척 놀란 듯 짧게 비명을 지르고는 황급히 몇 발짝 뒷걸음을 쳤다.
마치 닌자라도 본 사람처럼 눈이 휘둥그래져 있다. 닌자!? 웬 닌자!?13 하고 말할 기세다. 아니, 너
무 심하게 놀라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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速きこと島風の如し. 소스는 ‘함대 컬렉션’의 시마카제(島風)의 자기소개 대사. 해당 대사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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ニンジャ !? ニンジャナンデ!? ‘닌자 슬레이어’에서 일반인이 닌자를 보았을 때의 반응.
“아, 아니.”
그렇게 노려보면 나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기보다 얘 그냥 무섭다고요……. 뭐, 아까
의 리액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성은 착한 아이겠지만요, 그럼요. 마음을 다잡고 나는 대화의 실
마리를 찾는다.
“벌써 가?”
그 물음에 카와사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더니 고개를 홱 돌리고는 작은 소리로 대
답한다.
“……그, 그럴 건데.”
“그래?”
“……으, 응.”
듯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인데?”
“아~ 그래, 맞아. 너, 지금 시간 있어?”
카와사키가 무슨 일인지 물어 준 덕분에 나도 어느 정도 말을 꺼내기 쉬워져서, 간신히 본론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말을 덧붙이기로 한다.
“아니, 내 거 말고. 체육제 경기에 쓰려고. 전부 다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좀 지도해 줬으면 싶은데.”
“──아아, 체육제. 무슨 말인가 했네…….”
카와사키가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은 왠지 안도하는 분위기처럼 보
였다.
“알고 있었어?”
내가 묻자 카와사키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대답한다.
“타이시한테 들었어.”
아무래도 저번에 코마치하고 이야기하던 중에 나왔던 말이 거기까지 퍼져 나간 것 같다. 여동생
“너 맞는다.”
“죄, 죄송합니다.”
엄청나게 험악한 목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사과
해버리고 말았다. 동생 이야기가 나오면 진지해지기 때문에 무섭다. 특히 그 브라콘 끼가 무섭다.
카와사키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어깨로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그 말에 카와사키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오늘이야?”
“아, 응. 시간 있다며?”
“그렇긴 해도……. 하아, 그래. 알았어.”
× × ×
“하로하로~”
정체불명의 인사와 함께 에비나 양이 유유히 회의실에 들어왔다.
“히나, 얏하로~!
인사로 화답하는 유이가하마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고, 에비나 양은 그대로 가까이 있는 의자에
여기까지는 예상대로다.
문제는 다른 한 명 쪽이다.
“다음은 홍팀 후보구나…….”
보고 있던 사가미가 입을 열었다.
“선배, 3학년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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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떴다! 럭키맨(とっても!ラッキーマン)’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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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툭하면 십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좋은 와인이라고 홍보해 온
탓에 나오게 된 말.
“부장 대결이라…….”
흐음. 컨셉을 갖추고 경기를 하게 된다면 다소 무리한 선발도 자연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직책
개념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과연 유이가하마. 폼으로 걸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일을 재미있게 기획하는 능력이
“오~ 과연. 토츠카라면 문화제에서 하야토 파트너도 맡았으니까, 커플링으로는 나쁘지 않을지도?”
커플링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방금 전력을 다해 반대하고 싶어질 뻔 했거든.
애써 냉정을 가장하며 그렇게 말했지만,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제기해 온다.
“어째서?”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토츠카가 수많은 남자들에게 노려진다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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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기숙사를 분류하는 마법의 모자. Sorting Hat.
않은데. 나하고 토츠카가 함께 테니스를 친다면 피프틴 러브17가 아니라 폴인 러브가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아니, 없거든. 없다고?
그렇게 내가 끙끙 앓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메구리 선배가 난처한 듯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얼
굴을 들여다본다.
고자 하는 거니까.”
유키노시타의 말도 지극히 옳긴 하지만, 그건 뒤집어 말하면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경우 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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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teen love. 테니스에서 서비스 쪽이 1점, 리시브 쪽이 득점이 없는 경우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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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엔딩 ‘3분의 1의 순수한 감정(1/3の純情な感情)’ 이야기. “부서질 정도로 사랑해도 1/3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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イイネ! 페이스북의 그것.
“그럼, 토츠카에게 부탁하기로 하자.”
“찬성~!”
유이가하마가 명랑한 분위기로 말한다. 다른 이들도 이의는 없는 듯 박수 치는 소리가 훈훈하게
짝짝 울렸다.
아마 이것이 체육제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대규모 회의가 될 것이다. 궤도를 수정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쟁점이 되고 있는 메인 이벤트는 여기서 최종적인 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 시간적인 측면에서 보
아도 더는 실현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만약 여기서 또 수뇌부 쪽이 굽히고 들어가게 된다면, 현장반 인간들은 그 누구도 이쪽
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
힘들다.
“하아, 제가 나설 자리가 딱히 없으니 뭐라 말하기 힘들죠.”
미 본인에게도.
솔직히 말하자면 불리한 도박이다. 배당금 하나는 엄청나게 높을 것이다. 오만하고 세심하지 못
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주제에 큰 무대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아무리 보아도
위원장 자리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봉사부가 받은 의뢰를 둘 다 달성시키려면 이 과정은 필수적이다. 조금
이라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해 왔다고 생각한다. 과정이야 어떠하든, 마지막까지
나도 내 자리에 가서 앉는다.
앞쪽에 앉아 있는 것은 수뇌부 멤버들이다.
“슬슬 시작인가.”
“그렇네.”
그때까지 자료를 확인하고 있던 유키노시타가 문득 고개를 들고 시계를 확인한다. 나도 뒤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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細工は流々、あとは仕上げを御覧じろ(세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 법이니 끝날 때까지
지켜봐 달라).
시시콜콜한 것까지 하나하나 챙기고 있는 나에게 유키노시타가 언짢은 분위기로 시선을 던진다.
“나를 뭘로 보는 거니?”
“하긴.”
너무나 유키노시타다운 그 대답에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여 보인다.
“……그럼, 정각이 되었으므로 전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사가미의 다소 잠긴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린다. 최후의 회의가 막을 올린다.
× × ×
회의는 먼저 진행 상황 확인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번 회의로부터 그리 오래 지나
지 않은 시점이다. 이렇다 할 특별한 보고 없이 담담하게 진행되어 간다.
딱히 들을 내용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장반의 반응은 해도 너무한 수준이었
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잡담은 기본이고, 한술 더 떠 책상 위에 엎드려서 휴대전화를 만지작
대거나 잠을 자는 등, 태만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 그들이 수뇌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이젠
전혀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보여주려고 저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바로 이 태도가 그들이 가진 반항의 의사를 체현한 것이며, 또한 이러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실
뜻은 아니긴 하지만.
사가미가 말을 끝내자 하루카와 윳코가 얼굴을 마주본다. 서로 확인하듯 작게 끄덕이더니 손을
들었다.
예측 범위 내의 일이다.
“좀 있으면 대회라니까~”
“아니, 위원장 쪽은 저번이랑 똑같은 말이나 하고, 너무한 거 아냐?”
“그러게. 일 좀 하지 그래?”
그러나, 이 들으란 듯 떠드는 불평불만은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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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個人の感想です. 뭔가 잘못될 때를 대비해 상품 소개나 리뷰 등에 흔히 붙이는 면피성 멘트.
사가미는 역시 불안해진 것인지, 메구리 선배와 유키노시타 쪽을 힐끔 확인한다. 아무리 사전에
설명을 들었더라도 막상 눈 앞에서 수많은 인간들에게 불만을 들으면 기가 죽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메구리 선배도 유키노시타도, 사가미를 안심시키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그것을 믿고, 사가미는 가만히 기다렸다.
사가미는 선생님이 무언가 물어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손을 들었다.
“아니, 잠깐만. 참가를 희망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하려는 거지? 설마 집에서 그냥 놀게
내버려 둘 수도 없을 테고”
“수학여행 같은 거하고 똑같이 다루면 되지 않을까요. 그거 안 가는 애들은 등교시켜서 자습 같
은 거 하고 그러는 거 같던데.”
나는 거듭하여 대충 적당한 소리를 떠든다. 견강부회도 유분수지. 수학여행과 체육제는 아무 상
“여러분 모두에게 백 퍼센트의 안전을 약속할 수 없는 이상, 그렇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수뇌부도 현장반도 그보다 상위에 있는 존재인 학교의 의사에는 거역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것
을 역이용하여 배려라는 이름 아래 제약을 가한다. 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이쪽이 생각하는 대로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어? 이거 반대하면 체육제 못 나간단 소리야?”
“아니, 희망하면 괜찮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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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やその理屈はおかしい. 도라에몽이 태클 거는 짤방으로 유명한 말이기도 함.
“그래도, 여기서 기마전 반대하면 전부 못 나간다는 소리잖아.”
현장반 무리들은 아직 무언가 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근데, 그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냐?”
“들을 필요 없어.”
고자 합니다.”
사가미가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천 장이 넘어가는 종이 뭉치를 가리킨다.
“전부, 하겠습니다…….”
“뭐?”
그 대답이 상당히 뜻밖이었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멀뚱멀뚱 눈을 깜빡인다. 거기서 유키노시타
가 보충 설명에 들어간다.
“사정을 전부 설명하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요. 일부 부활동으로부터 위험성을 지적받
다수파라고 거드름을 피우는 놈들에게 가르쳐 주마. 네놈들이 믿는 가치가 얼마나 공허한가를.
있는지 없는지도 분명치 않은 더 많은 다수파 앞에 겁먹는 공포를.
졌다고요.”
“이미 결재된 사항이 뒤집혔다는 그런 불상사가 외부에 드러난다면 위원회의 책임 문제로도 이
어질 수 있겠구나……, 하아…….”
사가미의 설명에 이어, 유키노시타가 심각한 분위기로 말했다. 사실 이 녀석도 어디까지가 연기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인격과 도매금으로 취급된다. 직위와 인격은 본디 별개의 것이기
“사가미, 지금 네 발언은……”
“시끄러!”
허나, 사가미는 전혀 듣지 않은 채, 이번에는 유키노시타에게도 같은 말을 하면서 아까 전의 하
루카와 윳코가 그랬던 것처럼 쉴 새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일당 쪽을 향한 공격이기도 하였다.
“이번엔 정말 꾹 참고 열심히 하려고 하잖아! 왜 다들 안 알아주는 건데? 사과도 하고, 반성도
했는데……”
고개를 떨군 사가미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얼굴 아래로 떨어지는 물방울만
은 제대로 보였다. 점점 흐려져 가는 목소리는 도중에 잠시 끊기고 만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아
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사가미만이 마치 참회하는 것처럼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졌다.
없는 것이다.
분노에는 분노를, 공격에는 공격을. 히스테리에는 히스테리로 되갚는다.
그런 진흙탕 싸움은 먼저 냉정해지게 되는 쪽의 패배다. 사가미는 이미 퇴장해 버렸고, 반면에
하루카와 윳코는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만큼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 또한 빨랐다. 모두가 쳐다
보는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낀 듯, 말없이 자리에 앉는다.
× × ×
“에?”
내 물음에 유이가하마는 눈을 깜빡거린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뺨을 붉힌다.
그런 거 의외로 좋을지두.”
“멍청아, 일도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냐는 뜻으로 한 말이라고.”
뭐라는 거야, 이 녀석……. 깊이 생각하면 쑥스러워지니까 그런 애매한 소리 하지 말아 줄래?
그 말에 유이가하마가 멈칫 굳어진다.
“……어, 그랬어?”
“그래.”
“그렇구나…….”
이번에는 눈에 다 보일 정도로 어깨가 축 처진다.
“왜 그래?”
“에~!?”
“에는 무슨 에야. 쓸데없는 일 늘릴 필요 없잖냐.”
“조, 조금 있어 봐!”
그렇게 말하더니 유이가하마는 블레이저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는 전화
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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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ばかりのお礼. 감사의 선물을 건넬 때 쓰는 말로, 직역하면 ‘마음뿐인 사례’가 된다.
“미우라가 도와주러 온 거구나…….”
미우라에 대해서는 어딘가 복잡한 마음도 있을 테니, 사가미는 조금 당혹스러움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미우라의 대답은 냉랭하다.
“그러니까~ 딱히 도와줄 거라고 결정한 적 없거든?”
“그, 그렇구나…….”
사가미는 미우라의 찌르는 듯한 시선에 기죽은 듯 약간 몸을 움츠린다. 그 태도가 미우라를 또
짜증스럽게 만들었는지, 미우라는 짧게 한숨을 쉬면서 팔짱을 꼈다.
언젠가 교실에서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 다음이 그때와는 달라져 있었다.
사가미는 아직도 어색한 미소 그대로이긴 했지만, 뜻밖의 말을 입에 올린다.
“……흐응~ 글쎄.”
그리고 무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걸 들은 유이가하마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통역해 준다.
“도와줄 거래.”
육복 차림의 여자들과, 여자들이 전력으로 달리는 모습, 혹은 체육복 차림의 토츠카를 바라보며
유유히 즐길 수 있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불가능하다.
역시 일하면 지는 것이구나.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연설에서 언급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된 말
“또 시작이네.”
그 목소리에 돌아봤더니, 나와 마찬가지로 텐트까지 와 있던 유이가하마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만 입 밖으로 나와버린 모양이다.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인데도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는 만큼 더 악질이구나.”
유키노시타도 함께 온 것인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유키노시타의 체
메구리 선배는 체육제 당일을 맞이하여 기분이 들뜬 듯, 가벼운 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있다.
그리고는 안고 있던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어깨를 더 꼬옥 끌어안았다. 유이가하마는 약간
의 놀라움과 부끄러움에 뺨을 붉히고, 유키노시타는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듯 몸을 꼼지락거리고
있다.
둘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더니 메구리 선배는 눈을 감으며, 이 순간을 천천히 음미하듯이 느
긋한 어조로 말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 너희들에게 상담한 덕분에 무척 즐거워질 것 같아.”
들떠 있던 목소리도 지금은 차분해져 있다.
원래 이 의뢰는 메구리 선배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마지막 체육제, 아마도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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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갓챠맨 크라우즈(ガッチャマン クラウズ)’의 베르크 캇체(ベルク・カッツェ) 이야기.
회장으로서 관여하게 될 마지막 큰 행사. 그 분위기를 북돋고 성공시키는 것.
벌써 감개무량한 모습이지만, 그 팔에 안겨 있는 유키노시타는 메구리 선배의 팔을 부드럽게 걷
어내며 냉정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직이에요, 메구리 선배.”
“어?”
메구리 선배는 뜻밖이라는 듯 되묻는다.
“하긴, 받은 의뢰는 아직 절반밖에 안 끝났으니까.”
확실히 아직 의뢰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의뢰에는 마지막에 한 마디 더 붙어 있었을 것이다.
유이가하마가 아리송한 표정인 메구리 선배의 팔을 꼬옥 붙잡는다.
“맞아요! 이왕 하는 거니깐 꼭 이기자구요!”
짝 빛나는 것이 보인 것 같았다.
“……응, 열심히 하자!”
× × ×
개회식을 이래저래 끝내고, 겨우 한숨 돌리고 있으니 곧바로 경기가 시작된다. 드디어 체육제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출장하는 종목은 뭔가 달리는 것뿐이었고, 그 한 종목 말고는 안 나갔기 때문에 남은 시간
은 구호반 텐트에서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기로 생각했는데, 어쩐지 홍팀 쪽이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보고 있었지만, 오후에 접어들자 점점 홍팀이 현저
하게 열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패배가 패배를 부르는 것인지, 패전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다들 사기도 떨어진 것 같다.
일부러 대충 해 놓고 “진지하게 안 했거든~. 아니~ 나 진짜 하나도 진지하게 안 했다니까~” 같은
즉 백팀 사람들뿐이다.
홍팀 남자들로부터는 원한 어린 시선이 날아들고 있었다. 특히 자이모쿠자가 심각하다. 나 정도
는 가뿐히 뛰어넘을 수준의 썩은 눈이다.
이건 이미 틀렸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떨어진 득점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자, 옆에서 마찬가지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했
더니 유이가하마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뭐,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게 큰소리 쳐놓고 이래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군…… 그런 생각
을 하는데, 우리 이상으로 진지한 눈빛으로 스코어보드를 노려보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유키노시
× × ×
“아아.”
간결하게 대답하고 즐겁게 감상하시라는 양 손으로 가리킨다. 나머지는 입장을 기다리는 것뿐이
다. 이쪽은 문제없다. 단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그걸 확인해 두기로 하였다.
“……근데, 그 복장은 뭐냐?”
“……내가 묻고 싶을 정도야.”
있다.
이상하네……, 내가 봤던 디자인 러프는 분명히 약간 일본식이었을 텐데, 어느 틈에 이렇게 된 거
지……. 이거 제작하는 동안 제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손길이 엄청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만…….
유키노시타도 어쩌다 이런 차림이 되고 만 건지 모르겠다는 분위기로 토시나 빌밑, 옷깃 따위에
신경을 쏟고 있다.
이거,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에 유이가하마의 모습을 찾는다.
하긴, 전교생 앞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셈이니 뭐……. 그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보
고 있는 것은 에비나 양이다. 옆에는 똑같이 옷을 갈아입은 카와사키도 있다. 아, 카와사키도 이
“……왜?”
목소리에도 분노가 배어나는 것이 겁난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해 본들 카
와사키의 기분이 나아질 리도 없고……. 일단 적당한 말로 때우기로 한다.
“……지금 시비 걸어?”
카와사키는 아까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목소리로 대답해 온다. 칭찬인데……. 아니, 알았다고, 미
안하대도, 이제 안 볼 거니까 제발 그만 좀 노려보십쇼…….
무섭도록 노려봐 오는 탓에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 앞에는 에비나 양이 있었다. 에비나 양 본인
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카와사키가 각자의 의상을 다 체크한 다음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유키노시타가 몸을 빙글 돌려 본다. 편한 움직임을 중시해서 점검하는
걸 보니, 얘는 정말 이기고 올 생각으로 꽉 차 있나 보네……. 한편 유이가하마는 아직 익숙하지
다.
기반하여 일정한 통제하에 결과물을 구현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의 취향을
반영시킨 결과 생각지도 못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딱히 비관적으로 볼 것까진 없지만, 그걸 입어야 하는 쪽은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영 떨떠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것인지 같은 의상을 입은 메구리 선배가 둘에게 다가왔다. 그 생글생글한
“아니, 그야 그렇지만…….”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 한들 다음 경기에서도 꼭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백팀이 압
도해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승률은 낮을 것이다.
하물며 상대편의 대장은 하야마다. 본인의 스펙은 물론이고 그 카리스마성 덕분에 백팀의 사기
“……약속은, 지킬 테니까.”
× × ×
결정됩니다.』
오오오카의 간단한 규칙 설명이 이어진다. 기마대장은 각각 3기. 이들을 지키면서 상대의 기마를
무너뜨리거나 머리띠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양 진영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자 긴장감이 고조된다.
괴성의 주인은 에비나 양이다. 꽤 다부져 보이는 여자들로 짜여진 기마를 타고 모래먼지를 일으
키며 돌진해 온다.
“우와와, 뭔가 오고 있어~!”
비명의 주인은 유이가하마다. 실로 즐거워 보이는 에비나 양의 표적이 되고 만 모양이다. 집요하
심이겠지.
기마대장이 솔선하여 개별 격파로 움직이는 전개는 겉보기에도 알기 쉽고 화려하였고, 관중들은
그 광경 앞에 소리 높여 응원하고 있다.
『각 대장끼리의 격렬한 전투가 계속됩니다. 오오, 또다시 벌어지는 대장끼리의 전투!』
오오오카의 실황 중계와 함께 높아지는 함성 소리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관중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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違うな! 間違っているぞ! ‘코드 기아스’ 시리즈의 를르슈 람페르지의 대사.
이목은 남은 기마대장들로 옮겨 간다.
유달리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유키노시타의 기마다.
앞길을 가로막는 다른 기마들을 중간중간 거쳐 가며, 정확하게 상대의 머리띠를 노려 민첩하게
빼앗아 간다.
졌다.
쟤네들, 진짜로 이겨버린 거냐…….
놀람 반, 납득 반으로 나도 손뼉을 친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유키노시타 일행이 돌아왔다. 유키노시타는 이제서야 뒤늦게 피로가 몰려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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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気投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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暁に死すの? 기동무투전 G건담 45화 제목이 ‘さらば師匠!マスター・アジア、暁に死す(사부여,
“난들 어쩌라고…….”
두 사람이 운영 텐트로 향하는 것을 눈으로 좇으며, 나는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았다.
× × ×
이제부터 시작할 ‘장대 눕히기’는 지극히 단순한 규칙으로 진행되는 경기다. 양팀의 진지에 장대
가 세워져 있고, 상대방의 장대를 쓰러뜨리는 쪽이 승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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ぐ腐腐腐.
“글쎄, 앞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 아니겠나.”
“흐응~”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일단, 하도 사람이 많아 짜증스럽던 탓에 얼른 앞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나아간 끝에 도착한 인파의 중심부는 공터처럼 훤히 트여 있었다.
꼈다.
“토츠카, 그 차림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확인해 둬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
히고 말았다. 뭐야 이거, 진짜 이 조합 생각한 녀석 천재 아냐? 남자인 토츠카에게 가쿠란을 입히
토츠카는 불안한 모양새로 남아도는 소매를 손끝으로 쥐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살짝 몸
을 움츠렸다. 급하게 준비한 탓인지 가쿠란은 무척 헐렁해서 슬림한 체형의 토츠카에게는 지나치
게 커 보였다. 허나, 그게 매력이다.30
“잘 어울려. 하나도 안 이상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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円環の理. ‘마법소녀 마도카☆마키가’에 등장하는 개념.
30
だが、それがいい. 인터넷 유행어. 원 소재는 만화 ‘꽃의 케이지(花の慶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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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う、変じやなく、これは恋だ……. 이상함(変)과 사랑(恋)의 한자가 비슷하기 때문인 듯.
홍팀과 백팀은 각각 정렬을 마치고 입장한다. 드디어 ‘장대 눕히기’가 시작된다.
『먼저 양팀의 대장 소개가 있겠습니다. 백팀은 축구부 부장 하야마 하야토 군. 홍팀은 테니스부
낌이다.
한편 홍팀 남자들은 어떤가 하면, 뚜렷하게 의욕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우중충한 분위기까지 함
께 어우러져 심히 나약해 보인다.
의욕이 있는 건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뭔가 중얼중얼거리며 망상을 쏟아내는 중인 자이모쿠자
“……엥? 그거 내가 해야 돼?”
단숨에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 버렸지만, 여기서 멀쩡한 상태로 돌아와도 곤란하다.
“너 말고는 없잖냐. 지금 네 포지션은 삼국지로 치면 관우야. 토츠카가 유방32. 그렇다면, 이럴 때
격문을 띄울 수 있는 것도 군단을 이끌 수 있는 것도 너밖에 없어.”
모두가 좋아하는 삼국지 이야기를 들고 나오자 자이모쿠자도 끄으응 신음한다. 그리고, 무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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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邦. 유비(劉備)의 오기일 수도.
탁 쳤다.
“오냐, 알았다. 본관에게 맡겨만 다오.”
아무래도 자이모쿠자의 중2병 스위치를 켜는 데 훌륭하게 성공한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자이모
쿠자에게 두려울 것은 없다. 사기안 계 중2병 환자는 때때로 묘하게 강한 멘탈을 발휘하는 경우
가 있다. 애초에, 본인의 망상을 남에게 떠벌린다거나 한여름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다니는 그런
행위는, 때때로 상식조차 박살낼 정도의 강렬한 자의식이 없다면 불가능한 짓이다.
자이모쿠자는 홍팀의 대열 앞으로 나서더니. 요란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친다.
“들어라, 제군들, 우리 군의 총대장 행차시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자이모쿠자를 멍하니 쳐다보던 토츠카였지만,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본
인 이야기임을 깨닫고는 당황한 모양새로 앞으로 나갔다.
“오, 오오……”
그리고, 띄엄띄엄 들려오는 찬동의 목소리.
“그렇다면 어찌 할 것이냐! 이기는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이 눈떠야 할 때이다! 일어나라, 현민
들이여!”
“오~!”
쓸데없이 열이 오른 자이모쿠자의 연설에 홍팀 남자들은 조금 의욕이 생긴 것 같다. 특히 토츠
카의 인사가 최고였다. 그래, 이건 이미 모두가 토츠카를 위해서라도 진심을 다해야만 한다는 마
음이 된 것이다.
그렇게 홍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자이모쿠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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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りたい、この笑顔. 인터넷 유행어. 확산 계기는 ‘침략! 오징어 소녀’로 알려진 듯.
“흐음. 이 정도면 어떠냐.”
“아아, 괜찮아 보이네. 찌질스러운 게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 이 다음도 잘 부탁하마.”
“찌, 찌질?”
자이모쿠자는 살짝 충격받고 있었다. 아니, 그야 평범하게 생각해 보면 당연히 찌질해 보이지…….
× × ×
신호탄이 울리자, 양 진영에서 남자들이 뛰어나간다. 솟아오르는 환호, 그리고 남자들의 우렁찬
포효.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어 간다.
그 중에서도 실황 중계를 하고 있는 에비나 양의 고조된 분위기는 실로 대단했다.
다). 토츠카가 돌파당하면 장대를 지킬 사람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러던 차에, 근처에 있던 홍
팀 남자들이 구원에 나섰다.
그 중 한 명이 토츠카와 대치하고 있던 백팀 남자를 어떻게든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수
비대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고 토츠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근처로 달려간다.
“미, 미안해.”
“끄흐아아아아!”
뭔가 했더니 자이모쿠자가 너덜너덜해져서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빌빌 걸으며, 장렬한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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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이타가키 다이스케(板垣退助)가 죽음 앞에서 남긴 말 ‘板垣死すとも自由は死せず(이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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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의 권’의 라오우의 명대사 ‘내 생애에 한 점의 후회도 없다(わが生涯に一片の悔い無し)’.
나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붕대를 꺼내서 빙글빙글 머리에 감았다. 이걸로 얼핏 봐서는 마치 백
팀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다른 백팀 녀석들 사이에 뒤섞여 적진을 돌파, 라기보다는 통과해 지나간다.
아직도 자이모쿠자가 괴성을 지르고 있기 때문에, 주위의 반응은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이대로
“하야마…….”
하야마 하야토는 상쾌하게 웃는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비굴한 웃음으로 답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은 이미 하야마 일당에게 둘러싸인 상황이다.
자기의 머리띠를 손가락으로 톡톡 가리키면서, 하야마가 질문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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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의 하리 오드(ハリー・オード)가 쓰는 감탄사.
분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행동의 의미를 헤아리지 못한 듯 하야
마가 물어봐 온다.
“항복이야?”
하긴, 이 상황에서는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아니……. 자이모쿠자!”
들어올린 그 손을 장대를 향하여 힘차게 내리꽂았다.
“오오!”
그 부름에 주변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방황하던 자이모쿠자가 벌떡 일어나 장대 쪽으로 돌진해
간다.
“그쪽이 물량으로 나온다면, 이쪽은 중량으로 승부해 주지.”
“여긴 못 지나가지!”
“어디 갈 수 있으면 가 보라고!”
“해치워 드리지요!”
세 명이서 단단히 스크럼을 짜고 자이모쿠자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자이모쿠자는 멈추지도
× × ×
가을도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했는지, 부실에 들어오는 바람도 쌀쌀한 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따뜻한 MAX 커피가 맛있다.
책상 위에는 티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
이렇게 부실에서 보내는 방과 후의 일상도 무척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의 체육제로
부터 며칠이 지나고, 봉사부는 정상영업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요컨대, 나와 유키노시타는 책을
읽고, 유이가하마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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剣呑(켄농).
그러나, 이 반칙 행위의 존재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어쨌든 그 경기 내내 누
가 어떤 행위를 취하고 있었는지 전부 다 알지 못한다면 쉽게 단언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건 유령이나 UMA 38 같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해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에 가깝다. 본디 입증 책임은 반칙을 감독하는 쪽인 위원회에 있겠지만, 그 위원회가 밝히지 않
손가락을 세운다.
“아니, 제대로 보고 있다구?”
38
Unknown Mysterious Animal, 미지의 생물.
“그, 그래도 뭐! 메구리 선배두 좋아해 주셨으니깐!”
유일한 위안은 그거다.
홍팀이 지기는 했지만, 메구리 선배에게는 즐거운 추억이 되었던 것 같다. 가능하면 이기게 해
주고 싶었지만, 뭐, 모든 일이 그렇게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축제라는 특수한 상황이 지나
계단을 내려와 복도로 돌아들어 가려고 하는데, 하마터면 사람과 부딪칠 뻔했다.
누구야, 위험하게스리 하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더니, 거기에 있던 것은 사가미 미나미였다.
사가미는 무언가 종이 뭉치를 떠안고 있고, 그 중 한 장에는 체육제라는 글자가 들쭉날쭉 보였
다. 아무래도 아직 운영위원회의 사후 처리가 남아있는 것 같다.
“……….”
“……….”
나는 말없이 길을 양보했다.
그 뒤에는 단지, 떠나가는 발소리만이 들려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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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の祭り.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사후 약방문이라는 뜻. 직역하면 ‘뒤의 축제’.
후기 (pp.144-147)
다.
학생 생활, 그리고 사회인 생활을 거치며, 저도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시험이라거나, 일 같은 그런 것들.
혹은 인생의 기로에서의 선택 그 자체라든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실패는 인간관계
분위기가 잘 배어나오고 있었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BD & DVD 제작 담당자 분께는
메구리>하루노: 하루 상(はるさん)
메구리>하야토: 하야마 군
메구리>하치만: 히키가야 군
메구리>유키노: 유키노시타 상
메구리>유이: 유이가하마 상
메구리>사가미: 사가미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