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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인간의 잔인함을 맹수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는 동물을 욕보이는 생각이다”

-도스토예프스키-

그는 달린다. 숨통이 끊어지도록. 벌써 몇 시간째다. 이 빌어먹을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여명이 밝을 때부터 시작된 달리기. 그는 달리면서도 놀랍도록 민첩하게 장해물을 피한다.
그리고 초인적인 지구력으로 버티고 있다.
그는 달린다. 저녁놀이 숲에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숲의 속성을
모르는 이에겐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그에게 어둠 따위는 무섭지 않다. 그는 강하고 또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달린다. 사납게 짖어대는 사냥개 무리가 그를 쫓는다. 그를 옥죄며 따라오는 잔혹한
배경음악과 같은. 끝이 가까워진다. 놈들은 결국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
놈들은 즐기고 있었다. 단지 지루한 시간이나 때우기 위한 놀이. 기력를 모조리
소진하고서야 백기를 든다. 심장은 터지기 일보직전이고 근육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다.
그는 걸음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따라잡히고 포위된다. 그는 용맹하게 저항한다. 수적
우위에 단호함으로 무장한 적들을 향해.
야만이라는 본능에 취한 적들. 그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는다. 문명에 맞서고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남은 생명이 허락하는 한. 때가 온다. 종말의 때가. 도대체 왜? 그는 힘을 잃고
쓰러진다. 뜯기고, 찢기고, 비명을 지르고, 피를 흘린다. 살육의 현장. 사냥개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시간. 남자가 다가온다. 역사책에서 튀어나온 듯 기괴한 옷 차림이다.
소름끼치도록 잔혹한 미소를 짓는 걸로 보아 그는 인간임이 틀림없다. 그 미소 역시
옷차림만큼이다 기괴하고 이 상황만큼이나 부조리 하다. 남자가 손에 쥔 단검은 기세를
잃고 사라져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 반짝이고 있다. 쫓기던 이가 보게 될 마지막 태향.
어둑어둑해진 사위에서 보이는 거라곤 그림자뿐. 하지만 비명 소리만큼은 똑똑히 구분할 수
있다. 특히, 고통의 절규 같은 비명 소리는.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단지 야만적인 놀이일 뿐. 그는 그렇게 한참 동안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희희낙락거리는
웃음소리.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한 그 소리가 남자의 왕국처럼 지배하는 경기장으로
펴져나갈 때까지 심장이 마지막으로 꿈틀거린다. 그리고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반쯤.
최후의 일격이 닥치는 상황을 고스란히 지켜보려는 듯. 단검의 날이 지나간다. 눈동자에
빛이 사라진다. 희미한 동공에 맺힌 의미는 단 두가지.
의문
그리고 죽음.
(김병윤)
“사람을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죽어간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하루,
조금이라도 매일매일 특별한 변환점을 주는것은
어떨까?”
-로버트 오르크스-
여느때와 다름없이 평온한 하루. 늘 그렇듯 나는 따뜻한 녹차 한잔으로 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어제와 다름 없이 지나갈 하루, 난 조만간 무기력 해질 내 정신을 붙잡고 일을
하러 나선다. 하루하루 반복 되는 내 일상에 나는 점점 내 감정을 잃어간다.
내 하루 일과는 이렇다. 녹차 한잔으로 시작해 내 마당으로 나가 제초 작업을 시작한다.
지루 하지만,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다보면 시간이 조금은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 물론 라디오에서도 매일 똑같은 방송만 나오고 있지만. 하하, 이제는 대사까지 다 외웠을
정도라고.
제초 작업이 끝난 뒤, 집안으로 들어와 집안일을 시작한다. 설거지, 빨래, 등등. 그렇게
집안일 까지 마치면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지.
점심으로 간단하게 통조림 하나로 끼니를 때운다. 맛은 없지만 의외로 포만감이 있어서
말이야.
그 다음엔 조금은 휴식 시간을 가져.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지지. 만약 내가 지금 죽는
다면 과연 마음이 편해질까? 이제 이 일을 안해도 되는거니까. 물론 내가 안하고 싶으면
안해도 되는거지만, 이제는 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일 지경까지 왔으니깐 멈출래야 멈출수가
없지.
하루, 한달, 1년, 10년을 넘어 어느덧 50년 동안 이 일을 반복한니…
죽으면 드디어 이 일에서 해방 될테니 이제는 좀 진짜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 몸이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 다른 일을 마치려 가는 것이겠지. 내 정신은 이미 반쯤 나가 있지만 내 몸은 오히려
활발하다.
멈추고싶다.
이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지옥같은 일상에서 누군가 구원해주길.
그러다, 여태까지 없었던 일이 발생한다. 몸이 찌릿찌릿하고 급격히 호흡이 빨라진다.
50년동안 아무런 변환이 없었던 내 일상에 무언가 개입한 것이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려고 노력한다. 허나 너무나 오랜만에 색다른 경험이라 그런걸까?
마음을 가라앉힐 려고 노력 할때마다 숨은 더 가빠진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또한 희미해져 간다. 눈이 감기고 몽롱해진다.
정신 차려야 해.. 오랜만에 다른 일상이라고.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내일 또 다시 저
지옥같은 일상을 계속 반복해야 할지도 몰라.
이제는 서로 상반 되는 상황. 정신은 활발해 졌으나 몸은 급격히 기력을 잃어간다. 온도 또한
내려가는게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아, 설마 죽는 건가?
무엇을 망설이는가? 그토록 바래왔던 죽음이다. 내 지옥같은 일상에서 도망치게 해줄
유일한 탈출구.
그래. 내가 그토록 바래 왔던 죽음이야. 망설일 것 없어. 그냥 평온하게 받아 들이면 돼.
근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도 되는것일까? 난 50년 가까이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왔다. 근데
그냥 이렇게 죽으라는 건가? 너무 허무 하지 않은가?
살려고 발버둥친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건 내가 원하던게 아니었으니까. 난 내 일상에
변화를 원했던것이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것도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 왔기에
시시해서 그런거였겠지. 이제는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이더라도, 억지로라도 살아 가고 싶다.
내 몸이 원하는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대로.
허나 내 눈이 감겨간다. 도저히 다시 일어날 힘이 없다 . 천천히..눈이 감기고 정신을 잃어
간다.
허무하게 내 일생이 끝난다.
(백지환)

“새벽은 늘 두려웠다. 수많은 별들은 마치 날


감시 하는것 처럼 느껴졌지 사실은 그저 밝고
예쁘게 빛나던 불빛이였지만”

-세타 로드리게스-

꼭두새벽. 모두가 잠에 들었어야 할 시간에 누군가 내 방문을 찾아와 방문을 두드렸다.


새벽종 나를 찾아온 손님은 다름아닌 세타였다. “안 자고 있었네?” 리며 자연스럽게 마중편
책상에 앉아 미소를 지었다.
정적이 찾아 오려던 찰나, 세타가 입을 열었다.

어둡고 아무도 없는. 그저 두려움만 가득할 뿐인 새벽. 해가 떠도, 언제나 새벽은 그녀를
따라 다녔다. 그녀에게 있어선, 새벽은 ‘피할수 없는 존재’ 였다. 날마다 혼자 외롭게 새벽을
버티고, 두려움이 찾아 와도 꿋꿋하게 버텨도, 그녀가 새벽을 피할수 없다는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혼자 밖을 돌아 다니다가, 어느 한 친구를 만났다. 비록 그
아이도 자신처럼 괴로워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새벽에 자신 말고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처음으로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을 때 였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괴로워
하는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마치 ‘괜찮아’ 라고 말 하듯이. 그런 토닥임에, 아이는 물론,
세타, 그녀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위로에 위로 받았다.

게텔버그에서 막 도망쳐 나온 그녀는 그 적막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밖을 바라보면 시커먼


집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그저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상인데. 넓은 곳에 혼자 밖에 없다는 두려움과 기댈 곳 없이 그 어둠을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 그것이 그녀의 첫 새벽 이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지내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창문 밖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그 별들의 반짝임은 마치 그런
그녀를 비웃는것 같았다. 그리고 수많은 별들의 시선을 느꼈다. 괴롭고 또 괴로운 시간을
보내며 항상 어두컴컴한 새벽을 보내야 했다.

끝날 기미가 안보이던 세타의 악몽 또한 끝을 맞이했다. 늘 두렵고 도망칠수도 없던 악몽은


나의 의해 끝나게 되었다. 두려움의 존재였던 새벽은 나와의 시간으로 인해 길게 느껴지던
새벽은 마치 이성을 잃은 시계태엽 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빠르고 빠르게 지나, ‘새벽’이란
시간대는 더이상 세타의 세상엔 없었다. 세타가 두려워 하던 별을 소재로 삼아, 그녀에게
별자리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 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세타가 ‘별’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차 달라져 갔다. 공포가 가득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젠 호기심과
존경의 눈빛으로 변했다.

아직은 새벽중 잠에 드는것이 불가능 하나, 세타는 더이상 괴로운 새벽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다. 세타의 새벽은 ‘괴로운’ 것이 아닌 ‘즐거운’ 것이 였다.

“나의 인생을 바꿔준게 바로 너야. 난 그런 너를 정말 고마운 은인 이라고 생각해’’. 세타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단 한번도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 하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이야기 하던 순간 이였으니.“아직도 새벽에 잠에 들지는 못하지만, 너 덕분에 이제 나의
새벽은 공포의 존재가 아닌, 즐거움의 존재야. 정말 고맙게 생각해’’. 이 말을 들은 난 직감
했다. ‘아… 작별인사 하러 왔구나’. 그녀는 그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
갔다.
“아직 밖은 많이 어두워? 알지?”. 그녀에게, 아마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세타는 뒤를 돌아, 별들의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근데 저 밖에 수많은 별들은 참 밝으니까 괜찮아. 내가 갈 길을 비추어 주거든.’’
(이강현)

“인생이란 소설은 끝가지 가 보지 않으면


희극인지 비극인지 알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인지, 조연인지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처음 몇 쪽 읽고 별로라며
덮어 버리기에는 인생이란 소설에 흥미로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현-

이것은 질풍노도 시기를 사는 소년, 소녀들의 자살, 범죄, 그리고 사회의 관한 이야기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살아있음을 무감정하게


강조하는 사회는 오히려 그들을 더 죽이려 든다. 특히나 감정 변화가 심한 청소년들에게는
더 독이 될수 있음을 사회는 모른다.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 자살, 범죄 예방에 대한 노래나 프로그램이 나가도 화면 밖 누군가는


자살하고 또 누군가는 한탄하며 메시지를 만들고, 감성이 풍부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사회현상으로 인해 삐뚤어져 다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복잡한 청소년의
내면을 보여준다.
반어법. 타인이 죽든 말든, 어떻게 되든, 누군가를 싫어하든, 이러한 부정적인 것도 만연한
세상에서 늘 ‘평화롭게 살자’를 강조 하는 사회.

생명경시.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하면 슬퍼지는 여린마음과 평범한 사고를 지니고 있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다지 슬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은 남을 아프게 하는 죽음을 선택할수 있어도 자신이 슬프니까 너는 죽지말라는
아이러니한 본인의 이기주의을 뜻 하기도 한다

자아와 생명. 자아로 부터 경시받는 생명은 자아를 미워하고 그로 인해 생명은 자신또한


경시 한다. 자살이나 생명경시를 부추기는 문화가 아직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비판한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모순된 행동들이( 돈이 없기에 하루 종일 게으르게 잠만


추구하는 삶) 생명경시, 자살로 이어지게 되고, 소중한 자신의 생명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살아갈 의미따위 찾아내지 못하고, 그것을 자각 했을때 한숨을 내쉰다).

많은 청소년들은 본심을 숨긴다. 때문에 힘들어도 힘들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혼자라는 사실에 우울감은 더 커져만 간다. “외롭다” 라는
말로 상처를 드러내도 괜찮은걸까.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무기력의 대표적인 증상; 앞으로도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 같고


그냥 똑같이 늙어가다 죽을 것 같은 느낌. 불사가 되지 못한다면 차라리 지금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을 키운다.

자신의 생명을 경시하고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남들에게는 폐를 끼치는게 싫어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혼나는건 더 싫어서 살아간다. 어리고 순수한 청소년이기에, 더 깨지기 쉬운
청소년뜰의 마음을 나타낸다.

행복의 의미를 찾지 못하자 고립감을 느끼는 청소년들. 그런 고립감과 박탈감으로 인해


생기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원망.

작별은 곧 이별을 뜻하고, 곧 혼자가 된다는 의미. 그런 혼자가 되는 것이 좋아서 자살도


비슷하겠지 라고 생각 하는 마음. 어린마음들은 세상과 작별하는 외로움과 무서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세상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부질없어도 ‘목숨만 유지 되고 있다면 어쨌든 기회는 있고


희망은 있다’.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이 들이닥쳐 자살로 이뜰어도, ‘생명’이라는 존재와 함께 끌어안고


살아 가라. 그 무슨일이 있더라고 살아남아라. 그러면 너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너를
좋은 곳으로 이끌었다 줄 것이다. 그냥 깨지고 부딪혀도 살아만 있어다오.
(임나연)

“죽음은 한순간의 고통이지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버나드 조지프 소린-

이별은 고통이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건 그리 쉽지 않다. 함께한 시간이 더 많을수록,


고통의 크기 또한 커진다. 만남 또한 고통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는건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거나 즐거운 시간이겠지. 허나 그 새로운 사람에 대해, 우린 잘 모른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혹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무것도 모른다. 만남과 이별이 동시에
존재하는 ‘죽음’. 살아있는 자들과 ‘이별’하여 죽은 자들을 ‘만나’는 ‘죽음’. 삶은 기나긴
고통이다. 이별과 만남이 교차하며 나에게 찾아 오는 삶. 그런 기나긴 고통을 받는 삶과는
달리, 죽음은 죽음으로 끝난다. 더이상 이별도 만남도 없는. 딱 한순간의 고통만 버티면
된다. 늘 겪어오던 고통과 다를 바 없는 딱 한순간의 고통으로 오늘 난 삶과 이별하고 죽음을
만나러 간다.
(유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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