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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람) 음란한 바게트 빵
(양과람) 음란한 바게트 빵
지은이│양과람
펴낸곳│나인
투고메일│editor@studiod.co.kr
ⓒ 양과람, 2020
프롤로그
하지만 남자관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강한,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슬아는 중, 고등학교 때부터 늘 친구가 많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예쁘장한 외모와 쾌활하고 털털한 성격
덕에 늘 인기가 많았지만, 남자 친구를 만들어 본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참석한 개강 파티에서 신입생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지훈에게 수많은 신입생 여자아이들이 첫눈에
반했다. 그건 슬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유의 밝은 성격과 적극적인 모습으로 슬아는 수많은 신입생 중에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는 행운을 얻었다.
행운인 줄 알았다.
“슬아야, 오빠 믿지?”
‘이게 뭐지?’
저거, 저 작은 거. 설마 저게 고추인가?
“어….”
결국 그날, 슬아는 속이 안 좋다는 핑계로 고대하던 첫 경험의 순간을 미루었다. 꿈꾸던 순간인데….
저렇게 초라한 것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음란 영상에서 보았던 서양인 남자와 차이가 날 거라는 것은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차이가 나도 너무
심하게 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날 이후로 그렇게 멋있게 보였던 지훈이 꼴뚜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헤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섹스를 시도했던 그날의 일은 슬아에게 매우 커다란, 회생이 불가한 수준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아무리 키가 크고, 손이 크고, 콧대가 높고, 목소리가 낮고, 잘생겨도 거시기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노력은 해 보았지만, 줄줄이 실패였다. 소개팅에서 아무리 멋진 남자가 나와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냥 다… 꼴뚜기처럼 보였다.
놀랍게도 초심자용 딜도는 평균에 비해 작은 크기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으나, 지훈의 성기보다 훨씬 컸다.
그런데.
“으읏….”
“슬아 씨, 괜찮습니까?”
신은 자신을 버린 게 틀림없었다.
01
활달하고 다정한 성격의 슬아는 여직원들을 택시 태워 보내는 역할을 도맡았다. 기분이 좋은 까닭에
오늘은 더 적극적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간 듯했다.
“어….”
“조심하셔야죠, 슬아 씨.”
근데 지금 허리에 손 올라갔는데….
슬쩍 눈치를 주자 무진은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갑자기 놓는 바람에 슬아는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무진이 함께 넘어져 몸을 받쳐 주지 않았더라면.
“…….”
“으읏….”
“슬아 씨, 괜찮습니까?”
“네, 괜찮….”
‘어?’
그 순간, 슬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게트 빵이 떠올랐다. 뭔가 느낌이 비슷한데…? 그 사이에 빵집에
가서 바게트라도 사 왔나? 어처구니없지만 술김에 그렇게 착각했다. 하지만 무진의 허벅지 위에 빵 봉투
따위는 없었다.
그 뒤에는 주머니에 프링글스 같은 과자 통이나 텀블러 같은 것을 넣었나 싶었다. 하지만 바게트 빵도,
과자 통도, 텀블러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소, 손 좀….”
“아, 네!”
무진의 말에 슬아는 깜짝 놀라며 무진의 허벅지 위에 놓인 자신의 손을 끌어당겼다.
슬아는 몸을 일으키는 무진의 하체를 눈여겨보았다. 예상했던 그것 같았다. 귓가와 목까지 붉어진 것을
보니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네, 네.”
190cm 가 넘는 큰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진 무진은 대학교 때까지 아이스하키를 했다고 한다. 두툼한
가슴 근육과 허리 근육은 여사원들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른 팀의 여사원이 무진의 콧대와 턱선의 각도에 대해 찬사를 내뱉던 것을, 슬아는 아직도 기억할 수
있었다.
“고마워요, 무진 씨.”
“조심히 들어가세요.”
댓글
- 쓰레기 맞는 듯.
>>> 뭔 쓰레기래. 어그로 차단 좀.
- 뭘 망설여? 그런 대물이 흔한 줄 앎?
- 나 같으면 벌써 잤다.
- 외않자?
“하….”
물론 무진은 지훈과는 비교하기도 미안할 수준의 외모였다. 남자는 얼굴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키가 크고
잔근육이 많았던 지훈도, 무진과 비교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그만큼 무진은 훌륭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 대답했더라.
“미안합니다. 저는….”
‘어떡하지….’
그날 밤, 꿈속에서 슬아는 무진과 섹스하는 꿈을 꿨다. 무의식을 반영한 탓인지 꿈속의 자신은
성인용품을 사용했을 때보다 훨씬 커다란 쾌감을 얻었다.
솔직히 밑져야 본전이었다. 만약 아직도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고 하면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무진 씨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것이다.
추하긴 한데, 어쩔 수 없었다. 슬아의 인생에선 중요한 문제였다. 혹여 이무진 씨랑 잘되지 않더라도,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그 지긋지긋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려던 슬아는 누군가 뛰어오는 것을 확인하고 습관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어….”
“감사합… 아, 안녕하세요.”
고백을 거절한 이후, 무진은 최대한 슬아에게 거리를 두고 아무렇지 않게 대하고 있었다.
슬아는 무진의 오른쪽 허벅지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며 애꿎은 원피스 자락만 밑으로 당겼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습니까?”
“네.”
최대한 상냥하게 대답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단답형이었다. 슬아는 엘리베이터 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 그 옆의 무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슬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며 무진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층수가 올라가는 것만
지켜보고 있었다.
“아, 네.”
흘리듯 던진 말에 또다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전에는 다정하게 한마디씩 더 묻더니, 이제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무진 씨, 오늘 저녁 시간 되세요?
왜 그러십니까?
아, 그럼 안 되겠네요. 알겠어요.
‘이건 부메랑이다.’
그럴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정말 신은 자신을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대표님 조카.”
“아…. 하하….”
점심시간, 친한 직원인 혜진 씨와 식사를 하던 슬아는 충격적인 소식에 그만 식욕을 잃고 말았다.
“그… 그렇겠네.”
‘미치겠네….’
“나 아까 처리 못 한 일이 있어서, 바로 가 봐야겠다.”
슬아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노트북을 챙겼다. 도저히 이무진 씨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할 자신이 없었다.
포기해야 마땅했다. 여기서 이무진 씨한테 더 관심을 표했다간 정말 리얼로 쓰레기가 된다.
“하….”
맥시멈의 성욕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 제일 점잖은 사람. 그게 바로 슬아였다. 그래서 무진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또 그 성욕 때문에 쓰레기가 되고 싶진 않았다.
차라리 후회할지언정,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물론 슬아 혼자만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당장이라도 이무진 씨에게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라 당신 자지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싶었다.
아, 그런데 뱉고 보니 또 이상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무진과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퇴사는 단호하게
불가능했다.
자유로운 업무 환경, 능력을 인정해 주는 시스템, 직급 없이 모두가 이름을 부르는 체계, 야근도 의무가
아닌 데다, 휴가도 길고 빵빵했다.
‘젠장….’
다시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아니….”
맞은편에서 가만히 마우스를 달깍거리던 무진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무진이 슬아에 대한 마음을 접은
것은 모든 팀원이 전부터 알고 있는 상태였다.
“아니….”
“좋은 아침!”
마침 출근한 혜진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슬아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혜진을 바라보았다.
슬아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혜진과 재호에게 이끌려 카페로 향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무진의 나직한
발소리가 가슴을 난도질하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의 거기가 그렇게 대단한지 끝까지 몰랐다면, 이런 미안한 마음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쓰레기였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벌을 받을 수밖에….
“왜 별로였는데? 못생겼어?”
“키가 작았나?”
아니. 저기요…. 당신들은 진짜 인성이 없습니까? 슬아는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무진을 힐끗거렸다.
솔직히 대놓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무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철없는 커플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가진 탐험가 체질의 인간들이었다.
또 정작 무진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게 다야?”
재호의 의심 섞인 질문에 무진의 고개가 들렸다. 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슬아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라니까….”
“김슬아?”
재호와 혜진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고 있을 때였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슬아는 고개를 돌렸다.
와, 미쳤네.
“어머, 누구….”
제발 닥치라고….
‘젠장….’
***
슬아는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려 자리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야근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계속 눈치를
보게 되는 무진과 전 남자 친구에 대해서 조잘조잘 묻던 그 빌어먹을 커플이 없기 때문일까.
“슬아 씨.”
“엄마야, 깜짝이야!”
“어, 무진 씨? 퇴근 안 했어요?”
“네. 저도 좀 남아서….”
“그렇군요.”
“슬아 씨.”
“네?”
“저녁 드셨습니까?”
“안 먹었어요.”
“네? 아, 네! 좋아요.”
뒤태가 완벽했다. 왜 전에는 몰랐을까. 아니, 전에도 알긴 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기대를 안 했던
것이다.
슬아는 앞서 걷는 무진의 엉덩이와 긴 다리를 힐끔거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진이 차에 올라타자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이렇게 가까이 단둘이 있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때였다.
‘와, 미친.’
무진이 갑작스레 슬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는 바람에 슬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이렇게 갑자기 키스를? 하고 생각하며 입술을 움찔거리는데 무언가 주욱 당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떠 보니 무진은 보조석의 안전벨트를 당기고 있었다.
‘귀도 잘생겼네.’
무진이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안전벨트를 한 뒤에,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조절하는 것이 보였다.
속으로 박수가 나왔다.
오만 가지 착각을 하면서 무진의 뒤를 따랐다. 레스토랑의 조용한 룸으로 안내받은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주고받은 대화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슬아 씨.”
“네, 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올 무렵, 무진이 의미심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슬아는 긴장감에 떨리는 손을
숨기려 무릎 위로 올렸다.
무진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짙은 색으로 느껴졌다. 어딘가 위험하면서, 어쨌든 엄청나게 섹시했다. 슬아가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네?”
두 가지를 마음속 저울로 재며 고민하던 슬아는 그냥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변태라는 이미지는 아직
두려웠다.
“네, 조금은….”
말하고 보니 후회스러웠다. 비난이 밀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 당신은 그런 인간이었군요, 소름
끼칩니다. 무뚝뚝한 대답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다행입니다.”
“네?”
“…….”
뭐지, 얘.
“…….”
됐다. 이건 된 거다.
“그럴게요.”
침착하게 대답하자 무진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수줍게 웃는 모습이 끝내주게 잘생겼다. 초콜릿 광고에
나오는 핫한 모델 같았다.
“네…?”
뭐? 사귀자는 게 아니라?
“…….”
“그랬군요.”
누군지 몰라도 훌륭한 조언가는 아니었다. 저 훌륭한 자질을 가진 남자한테 재력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씁쓸함에 찬물을 들이켜는데 무진이 물었다.
“아까 그분은….”
“네?”
“전 남자 친구인가요? KM 에서 온 사람이요.”
슬아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 새끼가 워낙 확실하게 말하는 바람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렇습니까?”
“네.”
오, 그래그래. 맞아. 슬아는 무진의 대답에 옳다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수영장 데이트나 단둘이
하는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다 때려치우고 바로 침대로 가거나.
“그럼, 저희 오늘은….”
가자고? 지금?
“네?”
굉장히 아쉬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토끼가 그려진 속옷을 보이는 것보다는 심기일전하여 토요일을
노리는 것이 나을 듯했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을 들으며 슬아가 물었다. 클래식과 이무진 씨라니, 왠지 잘 어울렸다.
“저도 좋아해요.”
아, 꼭 연애하는 것 같다.
슬아는 미친 듯이 방망이질 치는 심장이 낯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담스럽던 남자가 이렇게 멋있게
보일 줄이야. 세상은 참 신비롭다.
“좋아하는 곡이 있으십니까?”
“어….”
“캐, 캐논이요!”
“피아노 치실 줄 아세요?”
“네, 어릴 때 배웠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무진을 떠올리자 무진장 섹시하게 느껴졌다. 그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뚜들기다니. 건반 대신 내 몸도 뚜들겨 줬으면….
그래서 지훈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여태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세월이 원망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어쨌든 무진과의 단순한 그 접촉으로 인해, 7 년간 봉인되었던 금사빠의 자질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다음에 한번 들려주세요.”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며 무진을 슬쩍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린 무진과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움이 밀려왔다.
“네, 알겠습니다.”
낮게 들리는 묵직한 대답이 꼭 그녀가 좋아하는 록 음악이 귓가를 때리듯, 심장을 때려 왔다.
“네. 무진 씨는요?”
“저도 혼자 삽니다.”
“그렇구나.”
어, 어쩌면 이거 찬스인가?
“저 혹시….”
“네. 말씀하세요.”
“네?”
“네?”
무진이 탄 차는 쌩하고 빠르게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슬아는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이사 오면 자주 마주칠 텐데. 또 기회가 오는 건가? 집들이라도 해 주려나?
02
“어, 나!”
“나도 갈래.”
“저도 가겠습니다.”
자기가 내겠다는 무진을 자리에 앉히고, 슬아는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며 그들이 앉은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그냥 마실게요.”
“아, 감사합니다.”
지금이 기회였다.
패고 싶다, 진짜….
눈치는 없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잘 살리는 커플이었다. 슬아는 무진을 힐끗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떡하지, 얼굴 빨개질 것 같은데….
하지만 마음의 속도는 줄인다고 해서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속력을 올리면 올렸지, 줄이는
법이 없는 성격인 슬아에게는 더욱 불가능했다. 폭주 기관차 못지않은 추진력이었다.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른 슬아는 그동안 바빠서 쓰지 못했던 통장의 잔고를 탕진했다. 카드를 긁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아, 역시 이 맛. 퇴사는 절대 불가능하다.
다음 날, 슬아는 바로 내일이 데이트를 약속한 토요일이라는 생각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떨렸다. 예상한 대로 무진을 향한 마음은 조금 더, 아니 많이 커진 듯했다.
“네, 방금 메일 전송했습니다.”
“아, 고마워요.”
메일함을 들어간 슬아는 ‘이무진’이라는 글자를 보며 숨을 고르게 내쉬었다. 어떻게 이무진 씨는 이름도
이무진이지? 멋있다, 진짜.
“저 무진 씨,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아, 네. 왜 그러십니까?”
“…네, 저는 좋습니다.”
***
하지만 돈이 아니라 성기 때문에 이러는 것도 어쨌든 속물적인 것에 해당하였다. 그러니 감당해야 했다.
“아, 그러시구나.”
“아, 그렇구나….”
분위기가 싸해졌다.
예전에는 대화를 나눌 때 늘 이무진 씨가 질문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관심의 차이겠지….
“아….”
벌써 집에 가자고?
“…….”
“…좋습니다.”
“…별명은 없었습니다.”
무진은 슬아의 주정 섞인 질문도 진중하게 대답해 주고 있었다. 슬아는 오늘 무진을 유혹할 생각으로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도수가 높은 술을 선택했다. 자신이 만취할 거라고는 계산하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무진 씨, 그거 알아요?”
“네?”
“네?”
말이 횡설수설했다.
“슬아 씨?”
“…….”
“슬아 씨.”
슬아는 지금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이무진 씨가 커다란 손으로 술잔을 막고 있었다. 원하는
행동을 막으니 자동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반말에 무진은 놀란 눈치였다. 저도 모르게 무진의 손에서 힘이 빠졌을 때, 슬아는 빠르게
술잔을 들이켰다.
“예?”
“무슨 말씀입니까?”
슬아는 뜨거운 술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눈앞에는 순진한
표정의, 엄청 잘생긴 무진이 있었다. 짜릿했다.
세상은 불공평했다.
똑똑.
“슬아 씨, 깨셨습니까?”
“아….”
***
어젯밤 바에서, 슬아는 무진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는 섹시하다는 둥 커서 좋다는 둥의 개소리를
떠들다가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었다.
당황한 무진은 슬아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동과 호수는 아는데,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진은 슬아의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마스터키를 찾아보려다 멈칫했다. 아무리 그래도 술에 취한 그녀를
더듬거나 가방을 뒤질 수는 없었다.
나랑 섹스, 당신 자지, 허벅지, 수납 등등. 슬아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하하….”
***
“씻고 나오시겠습니까?”
‘일단…. 기억 안 나는 척하자.’
“지, 직접 하신 건가요?”
근데 또 맛이 기가 막혔다.
만약 무진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었더라면…. 어젯밤 슬아가 섹스해 보자는 등의 개소리를 지껄였을 때
승낙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십니까?”
“저도 괜찮습니다.”
‘정말 정이 다 떨어졌나.’
그나저나, 평소와 달리 편하게 반팔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으니 정말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하키를
했을 때는 얼마나 멋있었을까…. 굵직한 팔뚝을 보자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술이 원수지.
“저…. 그럼 이따 연락드릴게요.”
“네.”
“어….”
“저, 설마 저거 저희 집인가요?”
“옆집으로 이사 오신 거였어요?”
“네, 우연히.”
끔찍했다.
“저, 슬아 씨.”
“네?”
“슬아 씨는.”
“…….”
무진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놀라, 슬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낮은 목소리로 성기라는 단어를
말하다니, 너무 야했다. 아니, 그것보다….
“그….”
“오, 오해예요.”
“오해입니까?”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
“그럼 슬아 씨에게는….”
“…….”
잠시간의 침묵이 길게 느껴졌다. 차 안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무진 씨의
눈빛이 조금 뜨거워서….
기분 탓인가?
“…….”
“조금 더러우시죠?”
“네?”
“어….”
무진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 아니, 좀 과장하자면 당장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것처럼
느껴졌다. 동공이 살짝 풀려 있는 게….
고개를 끄덕이다 무심코 무진의 허벅지로 시선이 닿았다. 유난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오른쪽 바지를
보자, 목구멍이 바짝 조여 왔다. 긴장감으로 인해 심장이 무섭게 쿵쿵거렸다.
***
‘이건 좀….’
그런데 이 살구색의 속옷을 입자니, 레이스가 상당히 과했다. 너무 신경 쓴 느낌이라 찜찜했다. 작정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들어오세요.”
막상 무진의 집에 들어오고 나서 거실을 거닐다 보니, 잘못된 선택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팬티는 입고 올 걸 그랬나….’
슬아는 머릿속으로 후회를 하며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이며, 치즈, 과일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게 준비가 꼼꼼한 이무진 씨와 달리 자신은 속옷도 입지 않고…. 여기 앉아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멍청한….
“슬아 씨.”
“아, 네네.”
“혹시, 후회되시나요?”
어떻게 알았지?
“아뇨, 그럴 리가요.”
“예?”
“그럼….”
직관적인 물음이었다.
뭐지, 방금 전에 쑥스러워했으면서….
이쪽에서는 바로 섹스할 생각으로 왔는데, 상대방은 단순히 보여 주고 매력을 어필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자위해 보셨어요?”
‘뭐지…?’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무표정한 모습에 슬아는 자신이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설마
자위가 뭔지 모르나…?
“네.”
“어…. 보, 보여 주세요.”
“그걸로 되겠습니까?”
“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내렸다. 팬티와 함께 쑤욱 내리는데 퉁! 하고
무언가가 튀어 올랐다.
슬아는 자신이 만졌던 허벅지의 일부는 정말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이런 걸 빙산의 일각이라고 하나….
커도 너무 컸다. 확실한 것은 가느다란 편인 그녀의 손목보다 굵었다.
‘혹시 술 드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진은 조금의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마치 혼자 있는 양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뭔 말 좆도 아니고….
너무나 흥분되는 상황에, 무진은 자신의 눈빛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만 갈무리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무진 씨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무진은 슬아에게
안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쑤욱쑤욱 잡아당기는 모습을 보니, 꼭 자신의 다리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애초에 들어가긴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좋아, 첫 경험 간다! 하고 야무진 마음으로 들어왔던 것과 달리, 슬아는 매우 소극적이고 하찮은 자세가
되었다.
무진은 능숙해 보였다. 투명한 프리컴이 줄줄 흘러내리자, 그것을 윤활제 삼아 굵은 기둥에 발랐다.
그리고 엄청나 보이는 악력으로 성기를 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슬아는 소심한 태도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이 보여 달라고 한 거라, 이제 와서 멈추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또 멈추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여전히 겁이 났지만, 슬아는 야동보다 음란하고 적나라한 그의 모습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하아….”
“하…. 읏….”
“하….”
“어떠셨나요?”
“아, 안 부끄러우세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의 성기는 민망할 정도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꺼떡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불에 덴 듯 머리가 어질했다.
“혹시….”
“예.”
“없습니다.”
“네?”
“경험, 없습니다.”
“어, 왜요?”
“네….”
“…그렇군요.”
“네?”
“어….”
“…….”
그렇다면….
***
솔직히 손목까지 묶을 생각은 없었는데, 무진이 묶어도 된다고 말하자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렸다.
“네….”
“슬아 씨, 혹시 옷을 벗으셨습니까?”
“아…. 네. 조금 더워서….”
“네.”
“네.”
“하….”
“만지셔도 좋습니다.”
“고, 고마워요.”
허락도 받았겠다, 슬아는 이제 당당히 그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성기를 이렇게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
“무진 씨, 저 혹시 한번 입에 넣어 봐도….”
“안 됩니다.”
“왜, 왜요?”
“해 보고 싶은데….”
“하….”
자신의 손길에 신음하고, 흥분해서 사정하고, 움찔거리는 무진의 몸을 보자 급격하게 흥분이 밀려왔다.
슬아는 무심코 자신의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흥건한 애액에 손가락이 푸욱 미끄러졌다.
“아….”
“하….”
“흐읏….”
“네…. 아, 앗!”
“슬아 씨는 제 좆이 상당히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이런 방식으로 매력을 어필할
걸 그랬네.”
“아, 아니에요!”
무진이 엄지로 클리토리스를 빠르게 비비며 말했다. 손으로는 음탕한 행위를 하고 있으면서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낮고 평이했다.
“하…. 으응!”
무진으로 인해 흥분한 까닭이다. 이전에 관심도 주지 않았던, 자신을 짝사랑하던 무진과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도 흥분으로 작용했다.
“아, 흐응….”
“아흣, 아!”
무진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찾듯이 내부를 뭉그적거렸다. 손가락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저 커다란 좆이 들어오면 어떨지 상상만 해도 아랫배가 아려 왔다.
“흐응…. 읏!”
“흐읏…. 응, 네….”
“네, 네?”
“네….”
“어….”
“저, 저기….”
무뚝뚝한 어조로, 그러나 어쩐지 다정한 목소리로 그는 자신의 얼굴 위에 앉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슬아가 머뭇거리자, 무진이 슬아의 양쪽 허벅지를 잡고 끌어당겼다. 슬아는 여전히 침대 헤드를 붙잡은
채, 무진의 머리를 두고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강하게 허벅지를 억누르는 힘에 의해 슬아는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아…!”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진의 높은 코끝이 자신의 음부에 파묻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이
지나치게 음란해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아, 앗!”
혀끝이 닿았을 뿐인데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했다. 손으로 해 줄 때와 마찬가지로 기분이 좋았다.
다만 시각적인 자극 때문에 지금이 더 흥분되었다.
무진은 입술을 모아, 혀끝으로 음순을 벌리고 비집고 들어갔다. 애액이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흘러내린 애액은 모두 무진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흐읏…. 아, 아읏….”
자신의 엉덩이 아래에 깔려서 음탕하게 혀를 움직이는 남자가, 얼마 전까지 자신을 내내 짝사랑하던
지고지순한 남자라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더, 더 자극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슬아의 바람이 들렸는지, 무진의 혀는 점점 더 강하고, 게걸스럽게 음부를 휘저었다. 중간중간 무진은
벌벌 떨리며 힘이 들어간 허벅지를 끌어당겨 편하게 앉게 만들었다.
완성되지 않은 말이지만, 알아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무진은 강하게 허벅지를 움켜쥔 채로, 혀를
움직이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오르가즘의 여파로 헐떡일 여유가 없었다. 무진의 혀가 질척이며 애액을 쏟아 내는 구멍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슬아는 또다시 자극적인 느낌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아, 안 돼.
투명한 물이 소변처럼 흘러내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무진의 얼굴에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영상에서만 봤지,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수치심이 강하게 밀려와 눈가가 시큰했다.
“슬아 씨.”
낮은 음성이 제 이름을 부르자 이성이 돌아왔다. 슬아는 어떡하지, 중얼거리며 무진의 젖은 티셔츠를
벗겨 냈다.
무진은 슬아가 하는 대로 얌전히 상체를 일으켜 티셔츠를 벗었다. 완벽하게 알몸이 된 무진을 바라보며,
슬아는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미안해요…. 그….”
슬아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무진은 눈물까지 흘리며 사과하는 슬아를 보다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당겼다.
“쉬이, 괜찮습니다.”
무진은 놀라 불안정한 슬아를 끌어안아 등을 고른 속도로 토닥여 주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슬아의 눈가에
닿았다. 무진은 쪽쪽, 입을 맞추며 흘러내린 슬아의 눈물을 빨아 먹었다.
커다란 손이 규칙적으로 주는 안정감에 불안한 마음이 급속도로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다만, 부끄러움은
여전했다.
“그런 말을….”
“그보다, 조금 더.”
“예?”
“이 이상 더, 해도 괜찮을까요?”
슬아는 무진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진의 검은 눈은 동공이 풀려, 위험하게 빛나고
있었다.
“…좋아요.”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2 차전으로 흘러갔다. 무진이 다가와 입을 맞추려던 순간, 슬아는 슬쩍 그의 얼굴을
피했다. 자신의 애액으로 잔뜩 젖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도 민망했다.
무진은 슬아의 뜻을 알아채고 세수를 하고 오겠다고 말했다. 그사이, 슬아는 자신의 애액으로 젖어 있는
시트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다가온 무진이 슬아의 몸을 돌려세웠다. 동시에 물기가 어려 촉촉한 입술이 급하게 다가왔다.
“음…!”
진득한 입맞춤이었다.
급하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혀를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무진의 반대쪽 손이 슬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정신없이 세수를 했는지, 무진의 젖은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그 점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져, 입술 사이로
피식하고 웃음이 흘렀다. 무진의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왜 웃으십니까?”
“그, 그냥….”
무진의 손이 가슴 위로 올라왔다. 무진은 동공이 풀린 눈으로 시선을 내렸다. 두껍고 커다란 그의 손바닥
안에 탄력 있는 가슴이 가득 들어찼다.
“흐읏….”
슬아는 슬쩍 무진의 어깨를 밀치며 눈을 피했다. 그러나 그의 어깨는 순순히 밀려나지 않았다.
무진이 집요하게 다가와 다시 입술을 쪽쪽거렸다. 검지는 여전히 유두를 빙글빙글 굴리며 만지고 있었다.
“그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구구절절했다. 속옷들이 전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아…. 읏!”
무진이 혼내듯 슬아의 유두를 가볍게 꼬집었다. 슬아의 시야에 흥분해서 꺼떡거리는 그의 성기가 들어왔다.
저 큰 걸 품을 생각을 하니, 흥분과 함께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흐으…. 아!”
무진의 손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커다란 손아귀에 가득 담겼다. 슬아는 신음을 흘리며 몽롱한 눈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
“아…!”
“으응…. 하, 네. 탐, 탐났어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
“…….”
밀려오는 흥분으로 숨이 가빠 올랐다. 그때였다. 강한 마찰음이 들려와, 슬아는 고개를 들었다. 버거울
정도로 벌어졌던 콘돔이 끝부분부터 시작해 찢겨져 버린 듯했다.
“어….”
다행히 이번에는 꽤 정상적으로 씌워진 듯했다. 뒷부분이 많이 모자라 보이긴 했으나 어쨌든 성공이었다.
“아니에요….”
무진이 슬아의 음부로 귀두 끝부터 조금씩 밀어 넣을 때였다. 쑤욱 압박하는 느낌과 함께 성기가 밀려들어
오는데….
“아!”
“괜찮습니까?”
“어…. 너무 아픈데.”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슬아는 살짝 상체를 일으켜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보았다. 무진의 성기가 과하게 컸다. 귀두부터 너무
굵어서…. 아래를 불로 지지는 것처럼 아팠다.
“처음입니까?”
“네에.”
“…….”
“너무 아픈데요.”
결론은 그랬다.
“미안해요….”
“흐아, 아! 아앗!”
버겁게 밀려오는 두꺼운 혀 때문에 신음 소리에 바람이 샜다. 손가락이 쑤시는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무진은 부들부들 떨며 신음하는 슬아의 뺨에 느리게 입술을 문댔다. 쪽쪽 입을 맞추더니 태연하게 물었다.
빠르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갑자기 멈추더니 느리게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손가락이 긴 탓에 쑤욱쑤욱
밀려들어 오는 느낌이 이상했다. 갈고리처럼 휜 모양으로 쑤셔 대니, 특정 부분이 더욱 자극되었다.
“흐응…. 아! 흐윽….”
귓가에 입을 맞추며 손가락을 쑤셔 대는 무진은 슬아의 한쪽 허벅지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고 있었다.
“흐앙! 아! 하읏!”
“흐으…. 아,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했는데….
쾌감의 여파도 있지만, 수치심 때문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연달아 실수한 기분이라 끔찍했다. 슬아는
너무나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흐느꼈다.
“괜찮습니다, 슬아 씨. 저 보세요.”
커다란 손이 슬아의 얼굴을 돌려세웠다. 다정한 눈빛을 마주하니 더욱 수치스러웠다. 무진은 슬아가 다시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뺨을 감싸고 눈가에 입술을 쪽쪽거렸다.
쪽쪽쪽. 눈가와 뺨에 잘게 입을 맞추는 무진의 행위는 꼭 참새가 입을 맞추는 것같이 느껴져 간지러웠다.
더불어 다정한 손길이 규칙적으로 등이나 허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덕분에 금방 진정이 찾아왔다. 무진의
말대로 정말 괜찮은 것만 같았다.
슬아의 흐느낌이 멈추자, 무진은 슬아를 똑바로 눕히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뭐 하는…. 이, 이제 더 못 해요.”
“괜찮은데….”
단정히 정리된 그의 손톱을 보자,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걱정과 달리 다행히
상처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민망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는 슬아와 달리, 무진은 혹시라도 슬아가 삽입을 실패해 만족하지 못했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기분 좋으셨나요?”
“…….”
그걸 뭘 묻지. 슬아는 입술을 깨물며 잔뜩 젖어 버린 시트를 황망히 바라보았다. 시선을 두기도 민망했다.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슬아 씨.”
“…네?”
“아, 아니에요.”
일 년 넘게 회사에서 마주쳤던 입사 동기와 이런저런 짓을 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이무진 씨는 내내 자신이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던 남자였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충분히 보여 주신 것 같은데요….
슬아는 민망함에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목 언저리에서 무진의 뜨거운 눈길이
느껴졌다.
무진은 슬아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며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슬아가 봤다면 기겁했을 만큼
음험하게 번들거리는 눈빛이었다.
“한 번 더, 보여 드릴 기회가 있을까요?”
“어….”
당연히 있죠. 슬아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대답에 무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변모해 있었다.
“어…. 네.”
사실 성인용품 사이트에서 가장 커다란 크기의 딜도를 구매해 적응한다 하더라도, 무진의 크기는 여전히
버거울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그보다 엄청난 오르가즘을 느꼈기 때문일까, 급작스럽게 졸음이 밀려오면서 허기짐까지 느껴졌다.
엄마
무진과 눈이 마주친 슬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아, 맞다.”
하필 이때….
- 그래, 방 좀 치워 놓고.
“어머니가….”
“네에.”
웃음기 머금은 대답이 다정했다. 슬아는 괜스레 가슴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무진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입꼬리가 근사하게 말려 올라간 무진과 눈이 마주쳤을 때, 새삼스럽게 이 남자의 미소가 이렇게
멋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03
다음 날, 슬아는 부모님과 함께 친척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슬아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척 언니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솔직히 결혼식을 보는
내내 이무진 씨랑 결혼하고 싶었다. 엄청난 김칫국이었다.
예식장에서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인근의 카페로 향했다. 직원이 커피를 내려놓고 돌아서자마자 슬아의
엄마는 물었다.
슬아는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을 보며 입술을 꾹 닫았다. 아빠의 저 대통령 타령은 익숙했다. 하지만 누가
듣고 비웃을까 봐 두렵긴 했다.
“…응, 아빠.”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꿈이 없는데, 대통령을 위해 내조해 줄 남자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의문이 들었으나
슬아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
슬아 씨, 결혼식은 잘 다녀오셨나요?
“여보세요?”
- 네, 접니다. 슬아 씨, 지금 집에 오신 건가요?
- 네, 먹었습니다.
- 결혼식은 잘 다녀오셨나요?
- 아, 잠시만요, 슬아 씨.
- 슬아 씨, 죄송하지만 이만 끊어야겠습니다.
“아, 네, 네. 괜찮아요.”
“그럼요.”
그리고 그날, 무진은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슬아 씨, 시간이 늦어서 주무시고 계실 것 같아 따로 전화드리지 않았습니다.
출근할 무렵, 연락을 해서 같이 출근할까 고민하던 슬아는 이내 마음을 접고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
“이무진 씨 오늘 월차래.”
“어?”
그런 생각이 드니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당장이라도 사귀자고 대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무진에게
사귀자고 대답하려니, 마음이 찜찜했다.
“푸읍.”
슬아의 변명에 지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식사를 이어 갔다. 하지만 호기심 충만한 혜진, 재호 커플은
이 먹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머, 진짜로?”
“어, 아무튼 그래서 그런 건가, 선본다는데? 임원진들 회의 때 대화하는 거 들었지. 말은 소개팅 어쩌고
하던데 선이지 뭐.”
“와, 대박이다. 이무진 씨 결혼하려나?”
결혼…. 선….
문득, 어제 보았던 친척 언니의 결혼식이 떠올랐다. 낯선 여자와 팔짱을 끼고 행진하는 이무진 씨라니….
안 돼…. 그 자지는 내 거야….
어떻게 선을 볼 수가 있지?
“미안합니다. 저는….”
자신이 했던 거절의 말들은 정중하긴 했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복수당하기 충분할 만한 말들이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대화의 주제는 슬아가 되어 있었다. 슬아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재호, 혜진
커플을 바라보았다. 저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인간들….
“어머, 설마 못 잊은 거?”
“아니야….”
“아니라고….”
줘도 안 가진다고, 그 새끼….
그만해라, 제발….
“그래? 그럼 소개팅할래?”
선도 아니고 소개팅인데….
이무진 씨한테 사실을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 판단한 것이 찜찜한 데다가…. 홧김에 소개팅 약속까지 잡아
버렸다.
슬아는 자신의 충동에 대해 변명하며 오후 업무를 마쳤다. 내내 이무진 씨에게 연락이 없는 게 불안하고,
불편했다.
슬아는 울적한 기분으로 빠르게 퇴근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우울감이 극에 치달았다.
저녁도 먹지 않고 씻은 뒤 빈속에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테이블에 올려 둔 핸드폰이 지잉 울며
진동했다. 무진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 슬아 씨, 지금 집에 계신가요?
“네. 왜요?”
슬아는 잠시 고민하며 물건이 널브러진 거실을 바라보았다. 쓰레기장 수준은 아니었지만, 무진을 초대할
수준도 절대 아니었다.
“네.”
그래, 물어보자.
띵동.
물론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내가 불순한 이유로 이무진 씨한테 관심을 가진 게 미안하긴 한데.
그래도….
“슬아 씨.”
“오늘 왜 월차 썼어요?”
“기다리셨습니까?”
“제 걱정을….”
“…….”
“걱정까진 안 했고요.”
“네?”
양심이 콕콕 찔려 왔다.
에이 씨. 뭐가 이렇게 복잡해?
진짜 환장하겠네….
솔직히 무진이 자신을 비꼬고 있는 것인지, 진심인지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저 순수한 얼굴을
보면 비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네?”
“선이요?”
“…진짜예요?”
“…….”
내일 7 시. A 호텔 커피숍. 소개팅.
이런 미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게 뭐예요?”
근데 웬 종이들이….
“첫 번째는 정관 수술 이후 검사 확인증입니다.”
“석 달 전이요?”
그 대답에, 슬아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사실 따지고 보니, 자신을 짝사랑하던 때라면 미리 생각했다 하더라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미혼 남자가 정관 수술이라니….
“어…. 그때 들었어요?”
아니…. 그럴 수가.
차갑게 무진을 거절하고 밀어 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슬아는 미안한 마음에 말을 돌리기로 했다.
“…이게 확인증이에요?”
“네. 자위요.”
슬아는 이틀 전, 무진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위했던 장면과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건 성병 검사 결과지입니다.”
“이건 또 왜….”
“네….”
슬아는 무진이 내민 서류들을 바라보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소개팅…. 어떡하지, 나?
“네….”
회사에서 알은척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에 사귀었다는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슬아는 다짐하며, 무진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을 따라 미소 짓는 무진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죄책감이 밀려왔다.
***
다음 날, 회사는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다.
“슬아 씨,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재호와 혜진이 떠드는 것을 들으며, 슬아와 무진은 조용히 음료만 마셨다. 평소에는 이 떠드는 분위기에
슬아도 포함되었을 텐데, 오늘은 유난히 조용했다.
하루 종일 슬아는 오늘 저녁의 소개팅을 이무진 씨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슬아는 오전에 영업 팀의 김채민 씨에게 오늘 약속을 취소하면 안 되냐는 메시지를 보내긴 했었다.
슬아가 머리를 굴리며 고민하는 사이, 혜진과 재호는 여전히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대화를 나누던 재호와 혜진은 이 대화의 핑퐁 사이에 슬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전한
듯한 두 사람의 눈동자가 슬아를 향했다.
“엉?”
“내가 그래서 슬쩍 물어봤더니 기다렸다는 듯 술술술 말하는 거야. 배기량은 얼마고, 마력이 얼마고,
가격이 얼마고 하면서 아빠가 취직 선물로 사 줬다는 둥….”
그때였다.
“어….”
슬아는 조심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재호와 혜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다른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다행히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낮은 목소리가 다시 꽂혀 왔다.
솔직히 이상하게 보일 만큼 적극적인 대화는 아니었으나 눈빛이 문제였다. 무진은 슬아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꼭 이 자리에 슬아밖에 없는 것처럼.
이러니까 진짜 꼭 비밀 연애 하는 기분인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엄마야!’
“슬아 씨, 왜 그래?”
혜진의 질문에 슬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재호와 혜진이 나누던 대화에 열심히
참여해 떠들었다.
슬아가 시끄러운 대화에 참여하니 분위기는 평소대로 돌아왔다. 네 사람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슬아와 혜진, 재호 커플이 신나게 떠들면 무진은 조용히 듣는 그림이었다.
무진은 테이블 아래로 슬아의 손을 잡았던 손을 몇 번 쥐었다 펴 보았다. 잠시 닿았을 뿐인데도 슬아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 있었다.
***
그리고 퇴근 직전, 무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슬아는 초조함에 손톱을 깨물며 확인했다.
슬아 씨,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되시나요?
네, 알겠어요. ^^
슬아는 빠르게 퇴근 준비를 마치고, 혹시라도 무진이 붙잡을까 엄청난 속도로 회사를 빠져나갔다.
분명 그럴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아니, 여기 왜….”
호텔 커피숍에 도착하자, 직원은 ‘김채민’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로 슬아를 안내했다. 그리고 슬아는
점점 테이블에 가까워져 올수록 표정이 굳어 갔다.
“뭐야?”
슬아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지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훈은 여유롭게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아닌데. 나 이제 시럽 세 번은 넘게 눌러 마시는데….
말대꾸하고 싶었으나 말하기도 짜증 났다. 어차피 커피가 나오기 전에 일어날 생각이었다. 일단 그 전에,
확실히 해 둘 것이 있었다.
“김채민 씨랑 무슨 사이야?”
짜증 나….
“너, 오빠 안 보고 싶었니?”
보고 싶었겠냐?
“전혀. 그리고 직원들 앞에서 그딴 식으로 말하는 게 어디 있어? 사람들 오해하게…. 매너 좀 지키자.”
“…뭐?”
가방을 챙기려는 슬아의 팔목을 지훈이 강하게 붙잡았다. 아까 무진이 잡았던 그 손이었다.
“놔.”
손을 빼내려 애썼지만, 힘없이 떨어져 나갔던 무진의 손과 달리 지훈의 손은 슬아의 팔목을 강하게
옥죄었다.
“아파. 이거 놓으라니까?”
“…진짜, 미쳤어?”
예전엔 이 정도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고추만 작을 뿐이지, 매너는 좋은 남자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
“…….”
커피숍 내부에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슬아는 수치심을 느끼며 지훈을 쏘아보았다. 붙잡힌
손목에는 여전히 강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슬아는 힘으로 잡힌 팔목을 빼내려는 것을 포기하고 힘을 빼
버렸다.
“…….”
“와, 진짜 대박이다.”
“뭐, 뭐라고?”
“으아악!”
“다시 나타나기만 해 봐. 너 고추 요만한 데다 발기 부전인 거 너네 회사에 다 소문내 버린다.”
“너, 너…!”
***
솔직히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도 클럽에서 만난 여자와 섹스할 때 슬아를 떠올리며 했었다. 덕분에 굉장히
흥분했고, 아주 잘 섰고, 척추가 저리도록 잘 느꼈다.
하지만 슬아의 입에서 좋은 감정으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욱해 버렸다.
슬아의 처음은 무조건 자신이어야 했다. 7 년 전 하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야 했다.
“큭큭큭.”
지훈은 능글맞게 웃었다. 자신이 짰지만 완벽한 계획이었다. 지훈은 자신을 힐끗거리는 한두 테이블의
사람을 째려보다가 호텔 커피숍을 나왔다.
그는 매일 퇴근할 때마다 이 골목에서 꼭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곤 했다. 지훈이 좋아하는 장소였고,
나름대로 명당이었다.
명당인 이유는 여고 근처이기 때문이었다. 지훈은 이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하교하는 근처 여고생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데 바로 지난주, 오랜만에 만난 슬아는 여전히 예뻤다. 아니, 솔직히 그때보다 더 예뻐졌다. 묘하게
색기가 풍기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아쉬움에 자꾸만 생각이 났다.
‘나 못 잊은 거 아니지?’라는 질문에 멍해졌던 슬아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설레서 미치는 줄 알았다.
‘차라리 약을 써 볼까?’
퍽!
“아악!”
씨발, 뭐지?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꿈틀거리며 몸을 돌렸다. 가로등 불 때문에 자신을 때린
사람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나타난 거지? 아마도 반대쪽 골목 입구에서 온 듯했다. 그런데 왜 나를? 의문이 가득했다.
그것도 모자라 눈앞의 남자는 구둣발로 지훈의 상체를 밀어 눕혔다. 지훈은 욱신거리며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변에 CCTV 가 있는지 눈을 굴렸다.
쓰러진 지훈의 앞으로, 남자가 몸을 굽혀 왔다. 가로등의 역광이 사라지자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분명히 어디서 본 얼굴이었다. 남자는 상당히 잘생긴 미남이었다. 게다가 보기 드물게 좋은 체격이었다.
지훈은 손을 뻗어 남자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멱살을 잡는 것은 시도만으로 끝이 났다. 남자는
강한 힘으로 지훈의 팔을 잡아 기괴한 모양으로 꺾어 버렸다.
“으아아악!”
남자는 정말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지금 이 상황이 거짓말인 것처럼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픈 와중에도 지훈은 어이가 없었다.
쯧. 무진은 잘게 혀를 차고 잡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으아아악!”
뚜둑!
지훈은 이렇게 소리를 질렀으니 금방 사람들이 몰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그럴 게 분명한데도
무진은 여유로웠다.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너무 심해, 지훈은 꺽꺽거리며 숨을 내뱉었다. 자연스럽게 눈가에서 눈물이 줄줄
샜다.
“임지훈 씨? 정신 차리세요.”
말하는 것만 보면 지나가다 도와주는 사람인 줄 알겠네. 지훈은 이 와중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이 새끼 뭐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불현듯 김슬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맞습니다.”
“씨발, 지금 또 뭐 하는….”
지훈의 오른손은 조금 전, 슬아의 팔목을 움켜쥐었던 그 손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른손인 것이다.
빠각!
“끄아아아악!”
지훈의 입에서 끅끅거리는 이상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무진은 그런 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으아아악! 씨발!”
미친 새끼, 사이코 새끼.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 새끼는 미친놈이었다. 슬아의 곁에 있어선 안 되는
놈이었다.
위험한 놈이었다. 심지어 이러고 있는 주제에 제 입으로 폭력이란 단어를 내뱉다니, 돌아도 보통 돈
새끼가 아니었다.
무진의 멱살을 잡으려던 지훈의 왼손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궈졌다. 무진은 날벌레처럼 발악하는 지훈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왼손도 필요 없습니까?”
지훈의 입에서 슬아라는 이름이 나오자, 무진의 한쪽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 구겨졌다. 무진의 감정
동요는 오로지 전부 김슬아, 그 여자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으으윽…. 씨발….”
***
경기는 압도적인 차이로 무진의 팀이 이기고 있었다. 기뻐하는 팀원들과 달리 무진은 담담했다. 그는 늘
감정 표현에 무덤덤한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타고나길 그런 것인지 아니면 무뚝뚝한 부모님
아래서 자란 환경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유독 감정 표현에 솔직한 슬아가 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그날은 면접을 보러 온 것인지 그녀는 단정한 정장을 입은 차림이었다. 정장을 입었음에도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모습이나 동그란 이마 때문인지 앳되어 보였다.
집안일로 작은아버지를 만나러 왔던 무진은 이곳에 온 목적을 잊고 슬아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온 슬아는 화장실 옆 자판기 앞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슴에 달린 면접자의 이름표가 눈에 띄었다. 무진은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치? 붙겠지? 그래, 내 성적이 얼마나 좋은데. 면접도 사실 그렇게 나쁘게 본 건 아닌데. 아,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여태까지 취업 준비했던 거 떠올라서 눈물이 다 나네.”
충동적으로 작은아버지에게 부탁해 그녀의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가 합격했다는 것을 알고는
충동적으로 입사를 시켜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왜 네 아버지 회사가 아니라 이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냐는 말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답이었다.
슬아와 같은 부서에 입사한 뒤로도 그는 늘 슬아를 관찰했다. 그렇다고 퇴근 이후의 행적까지 샅샅이
살피며 스토커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감정 표현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어쩌면 감정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는 길에 함박눈이 내렸다. 올해의 첫눈이었다.
그 뒤로 무진은 슬아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가 웃으면 따라 웃음이 났고, 인상을 쓰면
따라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신기한 변화였다.
비록 두 달 전에 차였지만.
고백하면 그녀가 당연히 받아 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무진은 당연히 거절을 예상했다.
슬아는 도통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조급하지 않았다.
역시, 힐링 그 자체인 남자였다. 무진의 매력을 알아채지 못하고 평생의 과오를 만들 뻔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
물론 자신이 딜도를 사용해 무진의 엄청난 크기에 적응하려 노력한 것을 알면, 무진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딜도는 무진의 것보다 훨씬 작았다. 그러나 이전에 슬아가 사용하던, 평균 사이즈라고 하지만
작았던 그 딜도보다는 확연히 컸다.
무진의 성기가 100 이라고 친다면…. 최대 사이즈라고 해서 구매한 이 딜도는 70, 예전에 사용하던
딜도는 30, 지훈의 성기는 5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물론 체감상의 비율이었다.
다만 생긴 것이 너무 적나라해서 민망했다.
슬아는 딜도를 사용해 볼 생각으로 빠르게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 딜도를 깨끗하게 소독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흡착력이 대단한데…? 딜도는 툭툭 건드려 보았음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흡착만큼은 확실한 성능을
보였다.
그때였다.
띵동. 띵동.
“슬아 씨!”
어, 어떡하지.
이게 말이 되나, 진짜 미칠 지경이었다.
“이런, 미친….”
환장할 지경이었다.
“슬아 씨….”
“슬아 씨가….”
“네?”
무진이 이렇게 무언가에 동요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서러운 것 같기도 한
미묘한 표정이었다.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이렇게 덩치 큰 남자가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잘생긴 얼굴이 순진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니…. 솔직히 좋았다. 역시 자신은 변태가 틀림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소개팅을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우는 거라지 않는가. 환장하게 귀여웠다.
“네?”
“아, 아니에요!”
서럽게 울면서 좆이니 섹스니 하는 말을 하는 무진을 보다가, 슬아는 일단 무진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한 층에는 두 집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슬아는 무진을 들여보내고 비상계단 쪽의 위, 아래층을
한번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 인적도 없었다.
아, 젠장…. 잊고 있었다.
“그게…. 아, 안 돼!”
“…….”
“아니요…. 진, 진정….”
무진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아는 진정하라는 손짓을 취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저를 버리시려고….”
“그런 게 아니….”
“아니라니까….”
“슬아 씨….”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꼭 덩치 큰 코알라에게 몸을 잡혀 버린 기분이었다.
이렇게 큰 남자가 자신의 품에 안기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조금 귀엽기도 하고…. 대형견 같기도
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자세가 불편했다. 슬아는 떨어지기 싫어 머리를 어깨에 비비적거리는 무진을 밀어 내고 소파에 앉혔다.
얌전하게 밀려난 무진은 여전히 서럽게 젖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
“…….”
“…….”
“그럼….”
후기에 혹평 남겨야지….
“…….”
“네.”
어떻게 그런 논리로 저걸 샀는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슬아는 이해되지 않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처럼 기계적으로 말을 이어 갔다.
“…….”
“…….”
“무진 씨를 위해서였어요.”
진짜 쓰레기 같지만, 슬아는 무진의 탓으로 돌려 버렸다. 그래, 너 때문에 그랬다는데 어쩔 거냐,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저 인공 좆은 잘 들어가던가요?”
“어…. 네?”
“사용해 보신 겁니까?”
“네?”
슬아는 얼떨떨한 얼굴로 무진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순진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눈빛이 조금
탁하게 변해 있었다.
***
“흐앗….”
그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은 소파에 앉은 채로 무진을 끌어안고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럴 리가요….”
그는 소파에 앉은 슬아의 다리를 M 자 모양으로 만든 채 아래로 내려가 그 사이로 자리를 잡았다.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여 다리 사이를 빤히 보는 무진의 시선이 따가웠다.
이렇게 밝은 데서 음부를 타인에게 낱낱이 내보인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흥분감으로
들뜬 것도 사실이었다.
“형편없었나요? 인공 좆을 구매할 만큼?”
“그, 그런 게 아니라….”
“…….”
“…….”
“마음에 드셨군요.”
“…….”
“네?”
이미 민망한 포즈로 다리 사이를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벌리라니.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는 자신이었다.
슬아는 입술을 깨물며 안쪽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젖어 든 음부를 빤히 바라보는 무진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무진이 낮게 속삭였다.
“으…. 네?”
“젤… 발라서….”
“아…!”
음핵을 빨아들이듯 가볍게 입을 맞추자 슬아의 입에서 참지 못하고 신음이 터졌다. 무진은 본격적으로
슬아의 음부를 벌리고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응, 앗!”
“하아…. 읏!”
“아…. 흐읏.”
“흐앗! 아!”
“하아, 아!”
기다란 손가락이 쑤욱 밀려왔다 빠져나가기를 느리게 반복했다. 그러다 입구를 늘리듯 둥글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거 절대 안 떨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딜도는 똑 하고 바닥에서 떨어졌다. 슬아는 배신당한 사람처럼 딜도와 무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엄마야!”
“아…!”
무진은 슬아의 음부 주변과 딜도에 젤을 정성스럽게 바르기 시작했다. 슬아는 살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무진을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도 직장 동료인 이무진 씨와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뻔뻔하게 흉물스러운 딜도를 만지는 무진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럼,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흐읏….”
“흐읏…. 네….”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딜도가 밀려들어 왔다. 무진은 작은 구멍이 벌어져 딜도를 삼키는 모습을 눈에
똑똑히 담아냈다.
“흐읏…. 아….”
“흐응…. 아….”
동시에 무진이 딜도를 깊게 밀어 넣으며 물었다. 입술이 가깝게 맞닿은 채로 두 사람의 대화가 오갔다.
“아프진 않나요?”
“흐응…. 네….”
무진이 슬아의 입술에 쪽 하고 입 맞추며 대답했다. 그 와중에 딜도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안쪽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하아…. 그, 그냥 하면….”
“…….”
순식간에 무진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표정은 그대로인데 눈빛만큼은 어딘가 모르게 화난 것처럼
느껴졌다.
“제 좆이 그렇게 탐나십니까?”
“으읏…. 그게 아니라.”
무진은 기어코 대답을 들을 셈인지 슬아를 재촉했다. 흥분에 취한 탓일까, 이제는 그렇게 부끄럽지도
않았다. 슬아는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콘돔도 없이요?”
무진이 확인하듯 물었다. 그의 눈빛이 노골적으로 슬아의 얼굴을 탐색했다. 속마음마저 꿰뚫어 볼 것
같은 눈빛이었다. 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 상관없어요….”
“아, 아뇨.”
그가 허리를 숙여 슬아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슬아는 긴장감을 숨기며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꼭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기 직전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무진은 자신의 성기로 슬아의 음부 위를 툭툭 가볍게 때렸다. 가볍게 때렸으나 슬아에게는 묵직하게
다가왔다. 저걸 끝까지 넣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샘솟았다. 명치까지 닿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흐읏….”
야릇한 접촉에 흥분감이 밀려왔다. 무진과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의 쾌감이 기대되었다. 지난번처럼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더욱 그랬다.
“아프면 말하세요, 슬아 씨.”
“네, 네….”
“흐아….”
“끊어지겠어요. 힘 빼세요.”
“흐…. 아, 아….”
“으아…. 흐읏.”
“처, 천천히….”
슬아의 말대로 무진은 천천히 나머지를 삽입하며 입을 겹쳐 왔다. 혀끝을 목구멍 쪽으로 밀어 넣자 슬아가
몸을 떨며 신음했다.
“괜찮아요, 슬아 씨?”
입술을 떼자 땀으로 젖은 슬아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빠듯하긴 했으나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았다.
“흐으…. 아….”
제 것의 모양대로 찢어지듯 벌어진 구멍이 야했다. 어쩌면 이렇게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구멍을 가졌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떤가요?”
“흐읏….”
“흐아앗!”
“으응, 아!”
안쪽에서 무언가가 왈칵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묘한 방뇨감을 느끼며 바르르 떠는데 무진의 성기가
빠지더니 퍽 하고 다시 박혀 왔다.
“침대로 가도 될까요?”
무진은 한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 들고는 다른 손으로 닫혀 있는 방문을 열었다. 그제야
정리되지 않은 방의 상태가 떠올랐으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느리게 빠져나간 성기가 다시 천천히 안쪽으로 삽입되었다. 어느 한 부분을 느리게
문지르는 감각이 미칠 것같이 좋았다.
이렇게 느리게 움직이는 것도 좋은데, 빠르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으로도 척추가 저려 왔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아니면 무진 또한 원하던 것인지 그가 물어 왔다.
“으응…. 네, 빠, 빨리….”
“흐읏….”
“하아….”
“못 참겠는데.”
“…….”
“그렇게 좋습니까?”
“아….”
“보고 싶어요?”
“…네?”
“아, 아아!”
그는 슬아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거울을 향해 각도를 맞췄다. 그 모습이 거울을 통해 고스란히 슬아의
눈에 들어왔다.
무진의 커다란 손이 슬아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머리가 어질할 정도로 음란한 광경이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찢어질 듯 벌어진 음부는 커다란 성기를 욕심껏 삼키고 있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음핵과 그 아래로 단단한 그의 기둥이 보였다.
“네?”
“으…. 아!”
그와 동시에 무진의 성기가 깊게 파고들었다. 무진은 한 손으로는 슬아의 허벅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는 직접 허리를 아래위로 움직이며 성기를 처박기 시작했다.
“흐아…. 아….”
사정했음에도 여전히 그대로인 크기인 무진의 성기도 보였다. 쾌감을 느끼며 흐른 눈물로 눈앞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전부 눈에 담았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질어질했다.
무진은 힘을 쭉 뺀 채로 벌어진 슬아의 다리를 오므려 안았다. 그러고는 슬아의 뺨과 귓가에 쪽쪽거리며
입술로 도장을 찍었다.
온몸에 기력이 다 빠져 꼼짝도 하기 싫었다. 슬아는 숨을 내쉬며 자신을 끌어당기는 무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제가 씻겨 드리겠습니다.”
무진이 다정하게 물었고 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뇌가 미쳐 버린 걸까, 피식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좋으셨습니까?”
“네…. 호, 혹시 무진 씨는 별로였어요?”
피식거리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나 싶으면서도 계속 웃음이 났다.
자위를 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쾌락이었다. 만족감이 엄청났다.
“…….”
손 하나도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애액과 땀으로 뒤덮인 몸을 깨끗하게 씻겨 주었고, 젖은 침대와 바닥도
그가 전부 해결했다.
심지어 무진은 자신의 몸을 씻은 뒤에도 슬아의 몸을 마사지해 주었다. 놀랐을 허벅지 근육부터 허리와
어깨까지 주물러 주는데 온몸의 피로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나란히 누운 상태로 슬아가 물었다. 문득 회사에서 재호, 혜진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런가요?”
‘집안이 좋다니까 태세 변환을 하고 이무진 씨에게 들이대는 김슬아’라는 타이틀은 사양이었다. 슬아가
툴툴거리며 말하자 무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무진은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행복’임이 분명했다.
자신의 침대에 무진과 함께 누웠을 때, 슬아는 이사 오면서 침대를 큰 것으로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목소리가 왜 이러지….”
“…네. 저, 근데.”
“네?”
“안 움직여져요.”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팔과 다리의 근육이 파들파들 떨리며 경련했다. 몸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근육통이었다.
결국 슬아는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무진의 도움으로 겨우 식사를 한 뒤에는 양치를 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반차 내고 올 테니 슬아 씨는 조금 더 자는 게 좋겠습니다.”
“네, 네….”
평소 같았으면 바쁘게 보냈을 오전 시간, 슬아는 모처럼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한숨 더 잔 뒤에는
그나마 몸을 움직일 기운이 생겨났다.
혜진의 전화를 받고 잠에서 깨어난 슬아는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다. 그러다 혜진의 말 한마디에 잠이 홀딱
깨 버렸다.
“어…? 왜?”
슬아는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몸을 녹이고 나니 근육의 통증이
한결 줄어들었다. 덕분에 잡생각도 사라졌다.
“슬아 씨, 몸은 좀 어떠세요?”
무진의 물음에 슬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새삼스럽게 어젯밤에 이 남자와 내내 뒹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기분이 미묘했다.
그가 차려 준 점심을 먹으며, 슬아는 은근슬쩍 무진을 관찰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과
단정한 옷차림. 저 옷 속에 있는 근육을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의 속살을 본 여자가 자신뿐이라는
생각을 하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 그랬구나.”
“네, 고마워요.”
“크흡…. 네?”
예고 없이 꺼낸 화제에 하마터면 무진의 앞에서 커피를 뿜을 뻔했다. 무진은 노골적인 눈빛으로 슬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네.”
***
또 분위기가 야릇하게 형성되면 어쩌나 고민한 것과 달리, 무진의 손길은 건조하고 성실했다. 마치
음란한 생각을 한 것은 자신뿐인 것처럼.
상쾌하게 출근길에 오르며 슬아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비록 미세 먼지에 뒤덮였으나 마음만큼은
구름이 선명히 보일 만큼 맑았다.
“슬아 씨, 몸은 좀 어때?”
“이제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무진 씨가 그랬어?”
슬아는 사과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재호와 혜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나저나 소개팅은?”
이 찰거머리들….
재호, 혜진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슬아는 혹시라도 두 사람이 따라올까 봐
서둘러 움직였다.
그나저나 이무진 씨가 이제 자신을 안 좋아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니 의외였다. 소개팅 이야기를 들으려고
거짓말을 한 건가?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물어보기가 모호했다.
찜찜하긴 했으나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소개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왔을 무진을 떠올리자 실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가 있나?
‘뭐지?’
“아, 안녕하세요.”
“어…. 네, 좋은 아침이에요.”
슬아는 애써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무진에게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까지 자연스럽게 올라가던 입꼬리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입니다.”
슬아는 커피를 내리며 무진을 힐끗거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피를 내리며 슬쩍 물었다.
“네?”
“어제 알려 줬던 걸 다시 물어봐서요.”
“…그래요?”
아무래도 신경이 조금 예민한 탓이 분명했다. 슬아는 어제 내내 다정했던 무진의 손길을 떠올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불안감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사소하게 시작된 불안은 적립금처럼 차곡차곡 쌓여 갔다.
“슬아 씨, 뭐 해. 잔 비었네!”
“어….”
“나 화장실 좀.”
“슬아 씨.”
“술을 좀 흘려서요.”
“아, 네….”
슬아는 가볍게 대답하며 무진을 지나쳐 여자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울 속의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무언가 촉이 왔다. 대개 여자의 이런 촉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슬아는 두 사람을 확실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온 신경이 그곳에 쏠려 있었다. 그 때문에
다음 날인 주말에 하기로 했던 데이트에서도 슬아는 탐정이 된 것처럼 무진을 관찰했다.
“그, 그래요?”
“그렇구나….”
이소미 씨 이야기를 하다가 왜 최대웅 씨 이야기로 넘어간 건지 모를 일이었다. 확실히 무언가 있었다.
며칠 내내 슬아의 머릿속은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데이트가 끝난 뒤, 무진은 슬아에게 자신의 집으로 가 술 한잔하지 않겠느냐 제안하려 했다. 검은 속셈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단숨에 몰아붙이면 토끼처럼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일 년이 넘도록 기다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알게 된 바로, 슬아는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것에 약했다. 충동적이고 약한 마음을
이용하면 더욱 쉬울 터였다.
무진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의 고백을 거절할 명분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그 대단한 성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 좋아졌다고. 어떻게 진심을 전해야 할까.
다시 생각해 봐도 애초에 당신의 성기가 마음에 들어요! 하고 접근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어쩌자고
그런 미친 짓을…? 하지만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그가 오해하지 않게 이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설령 오해한다고 하더라도 꿋꿋하게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워크숍 장소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슬아는 행복에 부풀어 있었다. 워크숍의 일정은 1 박 2 일이었다.
슬아는 모두가 잠든 밤에 무진을 불러내 진심을 담아 그에게 고백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저녁 이후에 터졌다. 밖에서는 바비큐 파티가 한창이었다. 다들 먹고 마시고 정신이 없었다. 재호,
혜진과 함께 신나서 술을 마시던 슬아는 문득 무진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이소미
씨도 없었다.
“…….”
그냥 지나쳐 갔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확인하길 잘했던 걸까. 전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불안감은
존재감을 뽐내며 슬아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슬아는 천천히 말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비밀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였다면 아주 잘 선택한 장소였다.
확실히 인적이 없었다.
“…….”
“그래서 뭐 어쩌자고.”
무진은 짜증이 어린 말투로 대꾸했다. 슬아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벽을 짚었다. 무진의 목소리가
확실했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만 내밀어 두 사람을 확인했다.
대화에 열중한 탓인지, 평소보다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피차 들키면 곤란하니까 입 다물잔 소리야. 그나저나 그 여자랑은 무슨 사이야? 김슬아? 오빠가
짝사랑했다느니 하면서 다들 떠들던데. 진짜야?”
“네가 관심 가질 일 아니야.”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슬아는 그대로 몸을 돌려세웠다. 이 와중에 들킬까 봐 발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무진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복수할 마음이었던 게 분명했다. 언젠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진짜 이렇게 될 줄이야.
어쩌면 무진의 목적도 그것이었을지 몰랐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임지훈과 똑같은
놈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슬아 씨, 어디 갔다 왔어?”
“그냥, 산책.”
“왜?”
“응….”
“…아니야.”
“뭐? 진짜야?”
“나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
슬아는 더 이야기해 달라며 붙잡는 혜진을 밀어 내고 숙소로 향했다. 혜진이 제조한 폭탄주가 효과가
있는지 다시 술기운이 밀려왔다. 술기운에 의존해서라도 잠을 자는 편이 나을 듯했다.
“슬아 씨!”
카드 키를 대고 숙소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복도 끝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이무진 씨가 달려오고 있었다.
“하, 슬아 씨….”
“산책 좀 했어요.”
“…….”
“슬아 씨.”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무진이 다시 슬아의 이름을 불렀다. 애틋한 감정이 실린 목소리였다. 그게
슬아는 짜증스러웠다.
“그만 하죠.”
“…….”
“슬아 씨.”
“…….”
“…알겠습니다.”
05
“뭐라고?”
출근하자마자 혜진과 단둘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들은 충격적인 소리에
슬아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물었다.
“…….”
이런, 미친….
세상에 이씨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성을 가지고 어떻게 알아….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 몰라.”
입을 열 때마다 소리를 빽 지르고 싶어졌다. 너무도 속이 시끄럽고 괴로웠다. 둘이 사귀는 사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럼 그 대화는 뭐야?
“그래서 뭐 어쩌자고.”
당연히 두 사람이 몰래 연애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해하기에 충분한
대화였다.
“피차 들키면 곤란하니까 입 다물잔 소리야. 그나저나 그 여자랑은 무슨 사이야? 김슬아? 오빠가
짝사랑했다느니 하면서 다들 떠들던데, 진짜야?”
“네가 관심 가질 일 아니야.”
“어? 재호 씨, 무진 씨!”
이 와중에 멀리서 무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슬아는 일어서서 도망가야 하나,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하나 우물쭈물했다.
무진과 함께 카페로 들어온 재호는 신이 나서 혜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남은 자리는 슬아의
옆자리였다.
“둘이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아니야, 아무것도.”
슬아는 옆자리에 앉은 무진의 눈치를 살피며 앞의 재호와 혜진만 바라보았다. 그들이 구원줄이라도 되는
양.
“어어. 왜?”
“…네.”
“네.”
‘퇴사할까.’
“예. 에?”
무진의 나직한 음성에 슬아는 유독 화들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반면 무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셔서요.”
“그러게. 슬아 씨,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그러게요.”
혜진과 재호는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내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진은 도망치는 슬아의
뒷모습을 즐거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
텅 빈 사무실로 돌아온 슬아는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후회스러웠다. 철면피를 깔고 무진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솔직히 고백해야 하나?
“뭐 하세요?”
이무진 씨였다.
“…….”
지하에 주차하고 온 걸까. 슬아는 무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올라탔다. 오늘도 이무진
씨는 여전히 멋있었다. 늘 그랬지만.
“…….”
“저, 무진 씨.”
슬아는 용기를 내 무진을 불러 세웠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뻔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 저기….”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너무나 차가운 반응에 코끝이 훅 시큰해졌다. 네가 무슨 오해를
하든 아무 상관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니까….”
슬아는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평생 낼 법한 용기를 쥐어짰다.
“좋아해요….”
“잘 안 들립니다.”
“무슨 오해를요?”
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온 뒤, 슬아가 자신과 소미의 관계를 의심해서 그랬다는 것은 금방 눈치챘다.
이유가 뭘까 내내 고민하던 것이 허무할 정도였다.
워크숍에서 슬아가 자신을 거절했을 때, 그는 수많은 충동을 억제해야 했다. 여태까지 꾹 참아 온 것들을
모두 짓뭉개고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야속한 말만 내뱉는 저 작은 입에 좆을 물려 놓고 괴롭히고 싶을
지경이었다.
저 작은 머리로 어찌나 생각이 많은지, 하루 종일 가둬 놓고 아무 생각도 못 하도록 좆질을 하고 싶었다.
내내 그런 생각뿐이었다.
슬아를 대할 때는 늘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겁을 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예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은 달랐다. 확실할 때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편이 나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워크숍에서 돌아온 뒤, 슬아는 눈에 띄게 자신과 소미를 힐끔거렸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소미를 보다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소미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무진은 무표정하게 화가 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소미를
지켜보았다. 소문을 내는 건 쉬웠다. 그저 재호에게 ‘이건 비밀인데요.’ 하고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어떡할까.’
슬아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진심이 전해지도록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무진은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슬아를 내려다보았다.
“…….”
“…….”
“그게….”
“무슨 확답을….”
“네, 네?”
슬아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자각하기도 전부터 그녀와
함께 살고 싶었다. 매일 그녀가 웃고, 울고 하는 것을 제일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다. 다소 멋없는
청혼이지만, 이왕이면 기회가 있을 때 확답을 받아 두는 편이 안전했다.
들어오라는 뜻일까? 슬아는 그의 생각이 바뀌기 전에 쪼르르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나? 서러운 와중에도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기쁜 것도 잠시.
문이 철컥 잠기고, 무진은 현관에 서서 움찔거리는 슬아를 지나쳐 들어갔다.
빗물이 뚝뚝 떨어져서 함부로 들어가기가 애매했다. 슬아는 안쪽으로 들어간 무진이 수건을 가져다줄 거라
생각했다.
슬아는 잠시 무진을 기다리며 소주가 든 봉지를 내려놓았다. 무진은 예상대로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하지만 수건보다 먼저, 그의 손이 옷 위로 올라왔다.
“벗어요.”
“네?”
아니, 그건 아는데…. 무진은 의아함 가득한 슬아의 표정을 보았음에도 태연하게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제, 제가 할게요.”
너무 당황해 목소리가 쉬어서 나왔다. 그러자 무진은 수건을 들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그래, 네가
벗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저…. 등 좀, 돌려 주면 안 돼요?”
“왜요?”
무진은 뻔뻔하게 되물었다. 아니, 왜냐니, 이 사람아…. 너무나 당당한 태도에 슬아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
슬아는 입술을 꽉 깨물며 등 뒤로 브래지어의 호크를 풀었다. 얌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진은 브래지어
컵이 가슴에서 떨어지자 그대로 손을 뻗었다.
“아….”
“…읏.”
무진은 입으로는 감미로운 말을 내뱉으면서도 손은 그렇지 못했다. 젖꼭지를 살짝 꼬집는 손길에 슬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팬티만 남았네요.”
마저 벗으라는 은근한 압박이었다. 슬아는 천천히 팬티를 끌어 내렸다. 이다음에 무슨 행위가 벌어질지
예상하니 숨이 가빠졌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았다.
내내 무진을 그리워하는 동안, 그와 한 섹스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다정한 태도가 그리웠던
만큼 그의 몸도 그리웠다.
“엄마야!”
욕조에서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샘솟고 있었다. 아마도 수건을 가지러 가면서 물을 받아 놓은 듯했다.
“고, 고마워요.”
“…네.”
“몸은 괜찮습니까?”
“네.”
“…….”
“오늘 밤은 안 재울 생각이라.”
“네?”
“…….”
“…….”
“아, 알겠어요!”
“네?”
슬아의 애원에 무진이 피식 웃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는 모습이 심장 떨리게 멋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슬아의 입꼬리도 자연스레 말려 올라갔다. 무진과 마주 보며 웃는 지금 상황이 슬아는 꿈처럼
행복했다.
“아, 안 했어요!”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무진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무진이 시키는 대로 침대에 엎드리고 나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그동안 그녀가 딜도로 했건 말건,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었다. 물론 하지도 않았지만.
“으….”
그 말을 끝으로 무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슬아의 엉덩이를 잡고 그대로 얼굴을 파묻었다.
“으응, 아! 아, 흐읏….”
“여기가 좋아요?”
“아읏!”
혀끝으로 클리토리스를 건드리자 자지러지는 신음이 들려왔다. 무진은 바르르 떠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혀를 움직였다. 도톰한 음핵을 빠르게 혀로 굴려 대자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흐으….”
고개를 파묻어 흐느끼고 있던 슬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쾌락 때문인지 수치심 때문인지 눈물이 줄줄
흐른 모습이 지나치게 색정적이었다.
“읏….”
“슬아 씨.”
“흐…. 네, 네.”
이름을 부르며 무진은 슬아의 다리를 잡아 들었다. 슬아는 자신의 양쪽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무진을 보며
곧이어 이어질 삽입을 예상했다.
어차피 정관 수술을 했으니 피임에는 문제가 없었다. 온전히 무진과 맨살로 이어지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해소될 것 같았다.
“아…. 흐읏….”
“간지러워요…. 아!”
무진은 단호하게 슬아의 다리를 양옆으로 찢어 벌렸다. 그러고는 노골적으로 구멍 주변에 꼼꼼히 바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젤의 감촉에 슬아는 몸을 비비 꼬았다.
무섭게 발기한 성기에도 꼼꼼히 젤을 바른 뒤, 무진은 다시 구멍 입구에 귀두를 맞췄다.
“아아!”
그리고 슬아가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급하게 찔러 넣었다. 단숨에 안쪽까지 파고든 탓에 슬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벌벌 떨렸다.
“흐으…. 아, 흑….”
“하….”
“흐응, 아!”
“흐앗, 아! 아, 아아!”
폴더처럼 몸이 구겨진 상태로 무진의 성기가 쿵쿵 안쪽을 찍어 눌렀다. 쩍쩍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한참이 지났다.
“흐앗! 아! 아, 아!”
무진의 커다란 성기는 여전히 작은 구멍을 제집 드나들듯 빠르게 쑤셔 박았다. 슬아는 옆으로 누워 한쪽
다리가 들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으응, 아.”
“흐응, 아! 흐, 천, 천천히….”
슬아의 말대로 무진은 천천히 삽입하며 안쪽에서 달라붙어 대는 느낌을 즐겼다. 슬아 또한 가장 자극되는
부분을 긁어 대는 귀두를 느끼며 신음했다.
오르가즘을 느낄수록 쾌락이 통증처럼 느껴졌다. 계속할수록 감각이 무뎌져야 맞는 것인데 이상하게 점점
더 선명해졌다.
***
“슬아 씨, 일어나셨나요?”
“언제 일어났어요?”
“6 시에 일어났습니다.”
“네….”
“…그래요?”
죄책감을 좀 느껴 보라는 의미에서 한 소리인데 별 소득이 없었다. 슬아는 얌전히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꿈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다짜고짜 자신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달려들던 무진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재생되었다.
“무진 씨.”
“네?”
“저 혹시….”
“네, 말씀하세요.”
“무진 씨는 혹시 음… 그러니까.”
“네.”
“네?”
“슬아 씨.”
“네.”
슬아는 긴장한 모습을 티 내지 않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무진의 입에서 어떤 취향의 이야기가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척추가 뻣뻣해졌다. 설마 옥상에서 하자고 하진 않겠지?
“뭐라고요?”
“변태적이고.”
아니, 무슨 그런…. 슬아는 세상 억울해졌다. 물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조금 조숙하여 남들보다 빨리
성기 크기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사실이다.
“괜찮습니다. 제가 다 받아 드릴 테니.”
“아니….”
“다만,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본다면 슬아 씨의 평판에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아니….”
“…….”
결국, 슬아는 입을 다물고 밥만 먹기 시작했다. 무진은 귀엽다는 듯 슬아를 바라보다가 물이며 반찬을
챙겨 주었다.
***
대부분의 준비는 무진이 알아서 처리했기에 슬아는 할 일이 없었다. 그렇기에 딱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진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러 갈 때가 되니, 자신이 누구와 결혼하려 하는지가 실감 나기
시작했다.
무진의 부모는 간혹 뉴스에서 보았던 재벌가 경영자 부부였다. 각자 대단한 집안의 사람인 두 사람은
연애결혼이었으나 남들은 전부 정략결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쇼윈도 부부처럼 보였다.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었다.
“…….”
“…….”
“…….”
“…….”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보며, 슬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중에서 무진만 따라 웃었다.
“그래.”
“그래.”
어쨌든 드라마처럼 격한 반대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한 것과 달리, 무진의 부모님은 결혼을 흔쾌히
승낙하셨다.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아빠는 자신의 꿈을 짓밟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슬아는 이 남자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조금 우기자 금방 허락이 떨어졌다.
또 그쪽 부모가 환영한다고 하니 슬아의 아빠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오히려 무진을 직접 만나고
나서는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대환영을 하기 시작했다.
“뭐 그런 얘기를….”
슬아가 무진을 슬쩍 찌르며 말하자 아빠의 입꼬리가 대번에 올라갔다. 아이고, 그랬어? 무슨, 무슨
협업이라고? 하면서 자세히 묻자 무진은 아빠가 알지도 못할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했다.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박수까지 치는 모습에 슬아는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그랬다. 정말 그랬는데….
“어머, 슬아 씨, 본사 발령 뭐야?”
“슬아 씨, 축하해요!”
“축하드려요!”
슬아는 가장 먼저, 당연히 무진을 의심했다. 아니면 무진의 어머니라든가, 아버지를 의심했다.
슬아의 의심에 무진은 억울함을 토로했다.
“…….”
그렇긴 했다. 애초에 아이디어가 호평받아 회식비를 지원받았을 당시, 최종으로 채택되면 본사로 옮기게
될 수도 있다고 예상한 상태였다. 시기상의 문제였다.
무진과의 관계 때문에 이 결과를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하지만 애초에 계열사인 이 회사에 잘
다니고 있는데 굳이 자신을 그쪽에 꽂아 넣을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자의식 과잉일지도 몰랐다. 무진도 상당히 억울한 얼굴이었다. 무진의 말대로 반년 전에 결과가
난 문제였다. 슬아는 오롯이 이 기쁨을 즐기기로 했다.
“아, 그건….”
무진은 슬아와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녀가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이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 기뻤다.
에필로그 01
- 아빠는 슬아 너 믿는다, 응?
대충 아빠와의 전화를 끊은 뒤, 슬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대통령 타령, 이제는 지겹지도
않았다. 왠지 진짜 꿈꿔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기도 했다.
결혼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슬아는 본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팀의 팀장이었다. 팀원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사실 무진은 아파트를 내놓지 말고 그곳에서 지내다 옮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굳이 저택으로 들어오겠다
한 것이 슬아였다.
“그래.”
“그렇군.”
솔직히 시집살이를 자처할 때는 불편함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푸흡….”
“큼….”
“주말에 불러 미안하구나.”
“그래.”
“그러니?”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무진은 짧게 혀를 차더니 정리를 시작했다. 무진은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싫어했다.
슬아는 하나하나 정리하는 무진의 옆에서 도로 어지르며 물건들을 구경했다. 이게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집에 전시하기 위한 물건들 같았다.
“이건 무진 씨 선물이에요.”
어머님의 카드로 결제했지만 슬아가 고른 선물이었다. 슬아가 선물을 건네자 무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님과 비슷한 표정이었다.
“제 것도 있습니까?”
“당연하죠.”
다음 날 아침, 슬아는 식사를 마친 후에 아버님에게 선물을 건넸다. 세련된 디자인의 넥타이였다. 금액이
눈 돌아갈 정도로 비싸긴 했지만, 어머님이 계산한 거라 그저 선물을 전달하는 전달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렴.”
신나서 떠들다 보니 배가 고팠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식당이 아니라 외제 차 브랜드의 매장이었다.
“네가 탈 것 골라라.”
“네?”
“골라 봐라.”
***
본사의 팀원들은 대부분 무진과 슬아의 사이를 알고 있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슬아의 아이디어가 워낙
좋았기에 낙하산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다. 애초에 팀 자체가 분리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일이
많지 않기도 했다.
“좋아요!”
그리고 얼마 뒤, 슬아는 재호와 혜진을 만나러 전에 다니던 회사를 방문했을 때 이소미 씨와 마주쳤다.
차라도 한잔하자며 먼저 제안한 것은 이소미 씨였다. 전에는 슬아가 그녀의 사수였지만 이제는 소미가
사촌 시누이가 되었다.
“네?”
어쨌든, 소미와의 대화에서 슬아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애초에 무진이 이 회사에 들어올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사를 앞둔 어느 날.
“…네.”
무진은 조잘조잘 떠드는 슬아를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비록 표정은 딱딱했으나 눈빛만큼은 다정했다.
“…….”
대충 던진 낚싯대에 대어가 낚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들었다.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는 일이었다.
슬아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무진이 침묵을 유지하자 혹시나 싶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진짜예요? 이때 나 봤어요?”
“…….”
“그런 거 아닙니다.”
무진은 허리를 둥글게 움직이며 가장 느끼는 곳만 제외하고 찔러 댔다. 분명히 의도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으응, 흐읏….”
느리게 성기를 삽입했다가 마찬가지로 느리게 뽑아내자 자지러지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박을 때도
좋아했지만, 슬아는 유독 이렇게 성기를 느리게 뺄 때의 반응이 격렬했다.
짓무른 눈가를 볼 때마다 가슴에 기이한 충동이 일었다. 더 몰아세우고 싶고, 더 울리고 싶었다. 잔혹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무진은 슬아의 몸에 더 깊게 자신을 새기며 해소하고는 했다.
자신을 충동질하는 슬아의 행위에 무진은 이내 쪽쪽거리던 발을 내려놓고 가느다란 다리를 옆으로 벌렸다.
작은 구멍은 한계까지 벌어져 커다란 제 성기를 삼키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슬아는 입술을 깨물며 참으려 했으나, 무진이 찌를 때마다 저절로 나오는 터라 소리를 참기가 불가능했다.
“흐읏, 아! 흑….”
동시에 슬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도 마찬가지로 속도를 높여 갔다. 이윽고 슬아의 몸이 잘게
경련했다.
늘 무진보다는 슬아가 먼저 절정에 도달했다. 슬아가 쾌락에 경련하며 떠는 동안에도 성기를 처박는
속도는 그대로였다. 무진은 제 욕심껏 성기를 깊게 박아 넣으며 사정했다. 사정이 끝날 때까지 박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무진은 퓨즈가 나간 사람처럼 집요하게 성기를 쑤셔 댔다.
“으응, 흐으….”
에필로그 02
“무진 씨, 무진 씨는 내가 왜 좋았어요?”
“글쎄요.”
“그런 게 아니라….”
“나한테 왜 반했는데요?”
“…음.”
슬아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남자가 진짜…. 무진은 슬아의 반응을 의아한 듯 지켜보다가
말했다.
“예뻐서요.”
오늘 슬아는 노란색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다. 병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또 삐약거리는
병아리처럼 혜진의 옆에 붙어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무진은 의아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위로를 해
주는 건가 싶었다.
“고마워, 슬아 씨.”
혜진이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제야 슬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슬아가 웃을 때마다 이상하게
그녀의 눈가 옆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무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보이는 걸까.
아마 심리적인 효과일 것이다. 무슨 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진은 슬아의 위로를 받는 혜진을 보며 어쩐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부러운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랬다. 그래서 바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이무진 씨 미쳤습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의 슬아와 마주했다. 다른 팀원들은 회의에 들어갔는지 사무실이
비어 있었다.
“많이 혼났어요?”
“…네.”
슬아는 눈썹을 구긴 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무진은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짓을
했으나 결국 원하는 상황을 얻어 냈다. 이제 자신이 왜 혜진을 부럽다고 느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
“…….”
“그런가요?”
“…….”
슬아는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가 다시 웃는 얼굴을 했다가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무진을 위로했다. 무진은
그런 슬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가슴 안쪽이 간지러웠다. 가슴 한쪽을 시작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도 같았다.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지만, 왜 슬아의 위로를 받던 혜진을 부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타인에게 호기심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첫 대상이 슬아 씨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예뻤어요.”
“…….”
“뭘 또 그렇게까지….”
“사랑합니다, 슬아 씨.”
“나도 사랑해요.”
무진은 이 감정이 사랑임을 확신했다. 슬아의 곁에 있으면 그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