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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제작일 | 2020.01.14
지은이 | 도도니스
펴낸곳 | (주)피플앤스토리
전자책값 | 2,200원
전자책_(주)블루마운틴소프트
www.ebookclub.co.kr
1. 악몽
2. 일상
3. 반려
[BL] 새아버지 최면일지 1
0. 프롤로그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서준이었다.
당돌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긍정의 뜻을 내비치자마자 광란의 흥분 상태에 빠진 서준과는 달
리, 서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준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안 돼…….”
그리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곁에 있던 서준에게도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았
다.
이번에는 서준이 서현에게 눈을 흘길 차례였다.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건지. 그는 제 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렇게 멋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기에 저토록 싫은 표
정을 짓고 있는 걸까. 서준은 서현의 손등을 살짝 꼬집어 준 뒤, 손을 놓고 재
호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남자의 딱딱한 얼굴 위로 살짝 난감한 빛이 서렸다. 그러나 그는 별말 없이
서준을 한 팔로 번쩍 안아 올려 주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재미있어, 서준
은 꺄르륵 웃으며 양팔을 남자의 목에 감았다. 외할머니도 옛날에는 자주 그
들을 안아 주었다지만, 서준이 아주 어릴 때도 할머니는 두 팔을 사용해야
간신히 서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서준과 서현이 열 살을 넘기
고 나서부터는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단단하고, 굳세어 보이는 품에 안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준은 신
기해하며 자신을 들어 올린 팔을 조금씩 주물럭거려 봤다. 남자의 새하얀 얼
굴이 아주 조금 붉어진 듯도 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간신히 대성통곡을 그쳤을 때, 서현과 서준의 손에는
각자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시골 구멍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맛
이었다. 거기에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해 봤자 너댓 가지밖에 들여놓지 않았
으니까.
단 것이 들어가자 그나마 조금 안심한 것인지 서현의 표정은 살짝 풀어져
있었고, 서준은 녹은 단물이 남자의 비싸 보이는 정장 위로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재호의 팔에 안겨 있기를 고집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재호에게 안겨 있는 광경을 퍽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서준이랑 서현이는 여기에서 사는 거야.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같
이 살면서 중학교도 다니고, 놀이공원에도 가 보고, 영화관도 같이 가 보자.
너희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건 다 하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어머니는 행
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서준과 서현은 정든 시골집을 뒤로하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더 이상 외할머니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
다는 사실은 안타까웠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전부 서준의 마음에 들었
다.
새로 만난 친구들은 친절했고, 놀 거리라고 해 봤자 바깥을 뛰어다니는 것
정도밖에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 놀러 갈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군것질거리의 종류가 늘어난 것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많아진 것도, 텔레비전 화면이 세 배 정도 커진 것도 하나같이 마
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서준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좋아했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하고, 하루 종일 커다란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덕분
에 잡티 하나 없이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아버지.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정장을 몸에 딱 맞게 걸친 뒤 다녀올게, 라고 어
머니와 자기네들을 향해 말해 주는 아버지. 서준은 그런 아버지가 마냥 좋아
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현은 서준과는 달리 재호를 볼 때마다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
다고 해서 새로이 생긴 가족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서준
도 서현의 그런 태도에 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낯을 많이 가려
서 그런 거니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며 넘길 뿐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행복이었다.
“글쎄….”
“서준아.”
“서준아.”
“다녀왔다.”
“아빠.”
“ , 서 서준아… 제발….”
제 제발
“…… , …… 제 음란한 젖가슴으로… 서준이 자, 자지에 봉사하게
해 주세요
….”
서 서현, 아……?”
“ ,
“……립밤?”
“착하다.”
“……!!”
서현이 사랑해요, 라는 말을 내뱉은 순간 뱃속을 휘저어 오는 강렬한 쾌감
에 재호는 두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었다. 아까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
발기한 상태였던 성기는 결국 서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진한 액을 왈칵 토정해 버렸다.
아버지가 사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리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어서 빨리 나가서 잘
준비를 하라고 채근하는 아버지를 보며 서현과 서준은 작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바지를 내려 속옷 검사를 받게 한 뒤 자기네들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가 버린 것에 대한 체벌을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이처럼 속옷을 잔뜩 적신 채 덜덜 떨면서 울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음
란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다음 날 재호가 출근하는 데까지 지장을 줘 버릴
가능성이 있었고, 서준과 서현은 둘 다 아버지를 끔찍이도 아꼈기에 이번에
는 얌전히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두 명이 안방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재호는 그대로 침대 위에 무너져 내렸
다.
이상했다. 아무리 최근 들어 몸이 좀 안 좋았다고는 했지만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자꾸 제멋대로 흥분하고, 사정하고, 거기에 모자라서 뭔가
커다랗고 뜨거운 것이 차마 부끄러워 말로 다 하지도 못할 곳을 진탕 휘저어
오는 느낌까지 들 때도 잦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최근에 들어서는 정신 역시도 깜빡깜빡거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관에 서서 잠깐
졸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방 안에 들어와 있고, 침대에 앉아서 또 깜빡 졸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샌가 아이들이 방에 들어와 있는 식이었다.
재호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로 때문에 제 몸이 완전히 미
쳐 버린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는 통 성행위도 자위도 하지 않았으니 ?꼭 수절을 지
킨다는 등의 거창한 이유에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민아 외의 다른 사람과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욕구 불만인 건가. 하지만 욕구
불만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재호는 괴로워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행히 아들들은 제 어미를 닮
아 그런 건지 본디 어려서부터도, 또 커서도 그다지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니
었다.
그나마 형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서현은 조금 나은 듯도 했지만, 서준은 아
직도 가끔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어린애같이 행동하곤 했다. 아무리 머리는
좋다지만 저래서야 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려나 싶어 항상 걱
정을 안고 살아가던 재호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재호
의 몸에 생긴 이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간신히 차가운 물로 몸 안에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열기를 식힌 뒤, 재호는
벗어 놓은 속옷은 대충 물에 헹궈서 욕조 한쪽 구석에 던져두었다. 원래라면
빨랫감은 양말이든 속옷이든 바로바로 빨래바구니에 가져다 넣자는 주의였
지만 이런 것을 들고 거실로 나가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일 하자, 내일.
재호는 애써 제 부끄러운 흔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는 얇은 잠옷을 걸쳐
입기 시작했다. 그새 잘 준비를 다 끝낸 것인지 서현과 서준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무리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라지
만, 밤에는 뛰어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나무랐는데.
재호는 쌍둥이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침대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러자 서준과 서현이 서로 내가 아빠 옆에서 잘
거라며 싸우기 시작하는 통에 재호는 결국 반쯤 포기한 채 침대 한가운데 자
리를 잡았다.
남녀 한 쌍 전용으로 만들어진 2인 침대에 남자 세 명이 나란히 누워 있으
려니 비좁은데다 모양새도 우습기 그지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게 안겨 오는 아들들의 체온이 썩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민아를 만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시고, 민아도 갑자기 떠나 버
린 데다 그 이후 병원에서 시름시름 앓던 장모님마저 몇 년 뒤 명을 달리하
셨으니 이제 재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서현과 서준밖에 없는 셈이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기는 했지만, 그때 장모님에게도 말했
듯 민아의 핏줄이라면 그건 곧 제 핏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이 썩 좋은 아버지가 못 된다는 사실은 재호도 알고 있었다. 그는 무뚝
뚝했고, 보호자답게 아이들을 챙겨 주기는커녕 외면하기만 했다.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가면 갈수록 사랑
하는 사람의 모습을 쏙 빼닮아 가는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가끔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애들을 좀 더 잘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사
람에게 입양이라도 보낼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
피 그러기에는 때가 늦었다. 그나마 한 가지 내세울 만한 점이라면 돈은 부
족하지 않을 정도로 줬다는 점이겠지만, 그게 ‘좋은 아버지’가 할 만한 짓이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호의 부모도 재호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웠고, 때문에 재호는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마 그것을 고칠 엄두조차 내
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착하게 커 준 아이들에게는 고마운 마
음이 들었다.
비록 재호가 그 고마움을 내색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서현과 서준은 어느샌가 잠이 든 모양인지, 옆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 왔다. 재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최대한 둘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잘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렇게 하자 이번에는 재호가 불편해질 차례였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
았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밤을 새면 책상에 엎드린 채 쪽잠을 자야 하는 일도 부
지기수였다. 거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불편한 축에도 못 들었다. 게다가 어
찌나 피곤한지 그렇게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도 금방 졸음이 몰려 왔다.
***
…… 뭔가 이상했다.
재호는 멍하니 제 허벅지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서현의 얼굴을 내려다봤
다.
아니, 서현이가 아니면 서준이인가? 재호는 눈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청
년의 얼굴을 알아보려고 했으나, 안경이 없어서 그런지 누가 누구인지 잘 구
별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소름이 끼쳐 왔다.
재호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려고 했다. 자신이 서현과 서준의 얼굴
을 구별하지 못하다니. 안경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이 세상에서 쌍둥이들 본인을 제외하고는 재호만큼 서현과 서준을
잘 구별해 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눈앞의 앳된 청년이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
가 없었다.
분명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쌍둥이들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자는 생각만큼 잘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밀려나기는커녕 외려 재호의
양 손목을 거세게 잡아 침대 위로 억누르기까지 했다. 온몸이 짓눌리는 느낌
에 재호는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
았다.
꺽꺽거리는 소리만 내 가며 몸을 뒤트는 재호를 향해 서준인지 서현인지
모를 남자가 서늘하게 웃었다.
“아빠.”
“아빠, 좋아요?”
“하아, 하응, 응… 좋아, 좋으니까… 제, 제발 더……!”
“아빠, 괜찮으세요?”
“몸이 안 좋으신 거면 오늘 출근 못 한다고 연락할까요?”
“외로운데.”
“……친구들이나 서현이랑 같이 놀지 그러니.”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요.”
“……서준아.”
“예. 이제 1학년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 선남선녀끼리 잘 만난 거죠 뭐.”
“아, 진짜 부럽다! 우리 아들놈은 국내에 받아 주는 대학만 있어도 절을 해
야 할 수준인데, 재호 씨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그런데 팀장님 아내분은 뭐 하고 계시길래 팀장님 혼자서 애를 둘이
나….”
“미연 씨, 쉿, 쉿!”
“아빠!”
“……서준아?”
***
“똑바로 서.”
“이제 됐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면 처음부터 진작 이러지 그랬어.”
서준은 서현을 매섭게 흘겨 봤으나, 서현은 그 비난 어린 눈빛에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그는 사람이 있는 편을 조금 더 선호했다. 재호와 자신들의 모습을 인식하
지는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공간 안에 타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
면에 걸린 재호의 몸은 무의식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인형 주제에 사회적인 체면을 신경 쓸 만한 일말의 정신력이 남아 있다는
것이 항상 같잖으면서도 귀엽게 느껴져서 좋아했는데.
서현은 자기네들이 내려야 할 역이 앞으로 여섯 정거장쯤 남은 것을 확인
한 뒤, 에그를 들고 있는 재호의 손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항상 제가 잠깐 책 한 권만 같이 읽어 달라고, 아니 다만 십 분이라도 좋으
니 공원에 산책이라도 함께 나가 달라고 울면서 매달려도 아빠는 일이 더 중
요하다면서 저를 내쳤죠.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일지 모르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서준은 자리에
서 일어났다. 저벅거리면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재호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더 빨라졌다.
입술 사이로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타액이 눈물과 뒤섞인 채로 주륵, 흘러
내렸다. 간신히 은빛의 안경이 떨어져 있는 곳까지 도달한 재호는 그 끄트머
리를 입으로 살짝 문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재호
의 잿빛 정장 바지 한가운데가 축축하게 얼룩진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 역시 이게 좀 더 낫네.”
한참이나 황홀하다는 듯 재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서준은 발꿈치를 살짝
들어, 재호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따스한 살결이 맞대어지고 아들의 혀가 잇새로 비집고 들어오는데도 재호
는 별다른 반항도 없이 간헐적으로 헐떡이거나, 팔을 들어 서준의 목에 두를
뿐이었다. 그 유순한 몸짓은 서준의 들끓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동시
에 끔찍한 허무함을 느끼게 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재호의 모습을 한 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재호의 애
정이었으니까.
열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멈춰 서는 것과 동시에 목표했던 역에 도착했음
을 알려 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현은 서준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내리
라며 손짓했다.
서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겹쳤던 입술을 떼어낸 뒤, 재호를 문 쪽으로 인도
했다. 여즉 휘청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현은 생긋 미소지었다.
“히이잇……!”
“아빠!”
“아빠, 괜찮으세요?”
***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근 삼십팔 년 동안이나 단 일 분, 일 초도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적 없이 기
계처럼 딱딱 움직여 주던 몸이었다. 그랬던 몸이 왜 하필 지금 이딴 식으로
반응하는 건지.
서준과 서현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배 속이 뜨거워졌다. 그
깨달음은 중간에 뚝 끊어진 기억보다도 훨씬 더 재호를 두렵게 했다.
일단 오늘은 푹 자고, 실례인 것은 알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표
님께 연락을 드려서 가능한 한 빨리 휴가를 낸 뒤 정신과든 뭐든 가 보는 것
이 가장 나을 것 같았다.
재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벽에 상체를 살짝 기대고, 몸을 꽉 조
이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고 보니 넥타이가 아침에 나갈 때 맸던 것보다 조금 더 꽉 조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감각이 개 혹은 고양이 따위의 목줄을 연상시켜서 재호는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에 출근한 뒤로 넥타이를 고쳐 맨 기억은 없는데.
하지만 지금이 이딴 하찮은 것에 신경 쓸 때는 아니라는 생각에 재호는 서
둘러 넥타이를 마저 풀고,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윽
“…… .”
“아빠.”
가 갑자기 그게 무슨…….”
“ ,
바보 같은 반문이라는 것은 재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가
족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타이밍이 필요하고 이유가 필요하
던가.
하지만 그 순간 가뜩이나 불편하던 배 속을 커다란 성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서, 느끼는 부분만을 엉망으로 찍어 누르는 감각이 온몸에 퍼져나가
는 바람에 재호는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간신히 쓰러지는 것만은 면했지만 눈가에 맺혀 있던 물기는 급기야 주륵
흘러내려 버렸다.
재호는 서둘러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아냈다. 옆에서 서현이 “그 정도로 힘드
시면 역시 응급실에 가는 게….” 라며 권유해 오는 목소리까지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재호는 제 팔 위에 얹어진 서현의 손을 조금 거칠게 밀어내고는 문이 열리
자마자 성큼성큼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랫배가 무겁고, 머리에 열이 올라서 어지럽고, 온몸이 자제할 수 없을 만
큼 떨려 와서 이제는 정말로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걷는 것이나 다름
없을 지경이라 봐도 무방했다.
서준과 서현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흐아아아악!!”
어
“…… ?”
***
“오늘은 내가 먼저 한다.”
“항상 네가 먼저 하잖아. 욕심이 과한 거 아냐?”
자 이건 아빠 드시라고 사 온 거예요.”
“ .
“ 하아아아앙!!”
“……뭐?”
“후우…….”
제 안에 몽글몽글하게 퍼져나가는 따스한 액체의 감촉을 느끼며 재호는 그
대로 쓰러질 뻔 했으나, 서준은 재호가 미처 매트리스 위에 기대기도 전에
그의 몸을 붙잡았다.
“아빠! 일어나셨어요?”
“아….”
“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괜…찮다. 어제도 말했지만 너희가 신경 쓸 문제가….”
“……아직 아침 안 먹었니?”
“먹었어요.”
먹었으면 가서 제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왜 여기 앉아 이러고 있는 걸까. 재
호는 죽을 한 숟갈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삼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나는
것이 제 입맛에 딱 맞았다.
서준이 요리를 한다는 것을, 그것도 이 정도로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쌍둥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아이들과의 거리도 조금 더 가까
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험생일 때보다 훨씬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은 될 수 있는 한 재호의 곁에
붙어 다니려고 했고, 거기다 등교 시간까지 늦어지고 나니 원래는 재호가 자
고 있는 사이 아이들끼리 해결하던 아침 식사도 자동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대체 언제부터 요리 같은 걸 하기 시작한 거지?
기억이 이리저리 뒤엉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재호는 수저를 내려놓고
서준을 훑어보았다. 잿빛 눈동자가 제 쪽을 향한 것을 눈치채자 서준의 입가
에 미소가 걸렸다.
“왜 그러세요, 아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하아… 어디 한번 보자.”
“네!”
“친구가 없는 걸 어떡해요!”
그게 대체 언제부터 저리도 당당한 얼굴로 할 만한 말이었던가. 하지만 서
준이 하도 징징거리는 통에 재호는 결국 가벼운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준과 함께 집을 나서게 되었다.
어차피 관리를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운동을 했으니 산책을 나가는 데에
딱히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준과 함께 공원에 나와 보는 것
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길게 펼쳐진 산책로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서준은 생긋 웃으면서 재호의 손
을 붙잡았다.
거구의 남자 둘이 손을 마주 잡고 산책이라니. 부끄러워서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서준이 “어릴 때는 자주 이러고 다녔죠.”라고 선수를 쳐 버리는 통
에 재호는 결국 손을 빼내지 못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껴 오는 손이 제 손만큼이나 자라 버렸고, 제 손
만큼이나 굳은살이 박여 있다는 사실에 재호는 새삼스레 뭐라 형용할 수 없
는 감정을 느꼈다.
***
아 저기 아직도 하고 있나 보네.”
“ !
“가 볼까?”
***
아 망했네, 망했어.”
“ .
“으음?”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냐. 난 들어가서 좀 쉰다.”
“정말?”
“어. 방학 시작하면 자취방 알아보러 가자던데?”
“나 참.”
“ 이미 먹여 줬잖아요.”
“히이이익……!!”
윽 야, 나도 한 번만 하고 밥 먹으면 안 되냐?”
“ ……
“흘리면 안 돼요.”?
“ 그건 또 어디에 쓰게.”
“어디 쓰긴. 아빠도 점심은 드셔야 할 거 아냐. 좆물 좀 받아 마신 걸로 끼니
를 대신할 수는 없지 않겠어?”
***
“애완동물이라고 하면 안 되지.”
“아오, 이 개좆 같은 종이 빨대……!”?
“빨대 새로 가져올까?”
“됐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빨대 없이 마시지 뭐.”
“ 내가 사는 거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뭐 어때. 어차피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인데, 뭘. 그래서? 아빠는
지금 뭐 하고 계신데?”
“……하여간에 변태 같은 새끼.”
***
‘ 말할 수 있을 리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파렴치한
비밀이었다.
누군가 바닥에 흘린 물을 개처럼 핥아 마시는 꿈을 꾸면서 발기해서 바지
를 적시고, 서현이나 서준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몸이 이상
할 정도로 흥분하는 것 같다는 그런 말을 대체 눈앞의 노의사에게 어떻게 털
어놓을 수가 있겠는가.
재호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전문가가 저렇게 말하니. 어쩌
면 정말로 단순한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으면 조
금 나아지려나. 재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꿈이요?”
“넌 이게 웃겨?”
“아니, 웃긴다기보다는…… 귀엽기도 하고, 꼴리기도 하고. 너는 안 그래?”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양서현!”
“……어?”
“진짜 미친 건 아니지?”
“미치긴 누가 미쳐? 엄한 사람 모함하지 마.”
미친 게 맞는 것 같은데.
서준은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필기 노트와 필기구를 책가방
안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현이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간에 그건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아버지한테 이런 짓을 저질러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서준 역시 이미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서준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
게 버림받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서현처럼 아버지의 정신이 천천히 붕괴
해 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관찰하고자 하는 비정상적인 욕구는 추호만큼도
없었다.
물론 서준도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흥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저를 그렇게 무시하던 아버지가 제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오는 뒤틀린 정복욕 때문이었지, 그 비참함 자체에 흥분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정말로,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서
로 사랑하고 다정하게 애정을 퍼부어 주는 부자 관계와 지금의 비정상적인
관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 별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제 와서 재호에게 사랑받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서준은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서준과 서현을 받아
들여 준 것은 어머니가 남기고 간 유산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거라면, 눈앞에 들이 밀어진 차선책이라도 선
택해야 할 거 아닌가.
몰
“…XXXX ?”
***
‘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건가?’?
***
“ , 아 됐다.”
역시 메일 사이트에서 쓰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계셨구
나. 사이트에 접속이 되자마자 서현은 곧바로 “내 주문 내역”이라고 되어 있
는 링크를 클릭했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았을 줄 알았는
데. ‘소형 진동 딜도’라고 화면 위에 선명하게 적힌 글씨를 읽자마자 서현은
미친 듯이 끅끅거리기 시작했다.
“서준아! 이리 좀 와 볼래?”
“또 뭐!”
“…… 딜도?”
응 이거랑 이거, 둘 중에 어느 게 더 나을 것 같아? 둘 다 진동 옵션은 있는
“ .
데 첫 번째는 돌기가 달린 대신 무선 조종이 안 돼. 두 번째는 돌기는 없는데
,
무선 리모콘이 딸려 오고. 둘 다 되면 좋을 텐데 20cm짜리 중에서 괜찮은 건
이거 두 개밖에 없더라.”
“네가 사려고?”
“ 우리 게 몇 센치 정도 되더라, 서준아?”
“몰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아냐.”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