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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버지 최면일지 1

[BL]

제작일 | 2020.01.14
지은이 | 도도니스
펴낸곳 | (주)피플앤스토리
전자책값 | 2,200원
전자책_(주)블루마운틴소프트
www.ebook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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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 프롤로그

1. 악몽

2. 일상

3. 반려
[BL] 새아버지 최면일지 1
0. 프롤로그

서현과 서준은 갓 12살이 되던 해 여름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


다.
두 형제의 어머니는 미혼모였다. 거기다 쌍둥이들을 임신했을 때는 나이가
고작해야 스무 살이었다.
분명히 관계 전에 생리 주기도 꼼꼼히 계산했고, 콘돔도 사용했는데 임신
이라니.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임신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꽤 오
랜 시간이 걸렸다. 월경이 멈춘 것도, 입맛이 뚝 떨어져 버린 것도, 몸이 무거
운 것도 전부 피로로 인한 감기몸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렇게 어
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려 보니 3개월이라는 선고가 떨어졌다.
배 속에서 자라는 이물질을 지워 버리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
다.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불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
아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나, 현실은 썩 녹록지 않았다.
가뜩이나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월세와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
는데, 이제는 거기에 더해 두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충당해야
했다. 일을 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하다 보니 하루에 잘 수 있는 시간은 네 시
간이 채 안 됐다. 내가 너 하나쯤 못 책임질 것 같냐며 큰소리를 땅땅 치던 남
자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유학 핑계를 대며 해외로 도주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녀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아이
들을 내다 버리거나 만리타국으로 입양 보내지 않은 것이 마지막 양심이라
면 양심이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들들을 친모에게
덩그러니 맡겨 두고, 도망치듯 서울로 떠나 버렸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민아의 어머니라고 해서 아이들이 썩 마음에 들 리는 만무했다. 포대기에
싸인 두 아기를 노려보는 노인의 시선은 더없이 싸늘했다. 홀몸으로 귀하게
키운 딸이 어디서 천하의 쓰레기 같은 놈을 만나 죽도록 고생을 하게 되었다
며 중얼거리는 모습에서는 일견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인생을 망쳐 놓고 도주한 남자
에 대한 원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마음은 이내 사랑 쪽으로 조금씩 기울
어지기 시작했다.
오래 미워하기에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다. 다른 이의 피가 섞였
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딸을 쏙 빼닮아 말갛고, 예쁜 아이
들.
덕분에 두 형제는 외할머니의 손주 사랑을 듬뿍 받으며 평화로이 자라날
수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펼쳐진 논밭의 풍경. 오다가다 서현과 서
준이 보이면 외할머니 몰래 먹으라며 사탕이나 엿을 하나씩 쥐여 주는 동네
어르신들. 해가 가면 갈수록 주름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외할머니의 얼굴. 때
때로 울려 퍼지는 고라니 울음 소리와 이제는 용돈을 넣어 두는 낡은 동전
지갑 속 구겨진 사진으로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의 모습.
서준과 서현은 이 평화로운 일상이 평생 이어져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습관적으로 느그들도 때가 되면 서울에 올라가야지, 서울에 올
라가서 엄마도 만나고 학교도 다니고 그래야지. 원래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하는 기다, 라고 중얼거리며 쌍둥이들의 머리를 쓰다
듬었지만 그 말이 어린 마음에 썩 현실감 있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평생 이어질 것 같던 평화는 단 한 통의 전화로 깨졌다.

“ 아이고, 이 화상아! 내가 못 산다, 못 살어! 그렇게 남자한테 크게 데여 놓


고서는 뭐, 결혼을 하겠다고?! 이번에는 대관절 어떤 놈이-”
[엄마, 일단 내 말 좀 들어 봐. 재호 씨는 그런 사람 아니야. 응? 서준이랑 서
현이 데려다주면서 엄마도 한 번 만나 봐. 분명 엄마 마음에도 들 거야….]
“그 재호인지 수호인지 뭐시긴지한테 이놈들 얘기도 했냐?!”

서른 넘어서 애가 둘이나 딸린 여자에게 집적대는 남자가 괜찮은 놈일 리


없다.
필시 또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일지도 모르는 개뼈다귀에게 잘못 걸린 것
이리라. 그리 생각한 순옥은 필사적으로 딸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헛된 시도
였다. 민아는 어머니의 만류를 단호히 일축했다.
[얘기했어. 진짜 망설이면서 얘기 꺼냈는데 다 괜찮다고, 애기들도 엄마도
같이 살자고 해 주더라고.]

엄마, 미안해. 나 진짜 엄마한테 못할 짓 많이 한 거 알아. 그런데 나 이제 우


리 애들이 너무 보고 싶어. 같이 살고 싶어. 제발….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결국 순옥은 바닥으로 무너져
흐느꼈다. 서현과 서준은 그런 외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왼손과
오른손을 꼭 맞잡았다. 사진으로만 봤던 어머니를 실제로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과,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로부터 며칠 뒤, 서현과 서준은 자신들의 몇 안 되는 옷가지와 장난감을
작은 책가방 안에 바리바리 싸 들고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의 얼굴은 사리 분
간도 못 하는 아기였을 때 빼고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서현과 서준은 곧바로 그녀가 자기네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아차
릴 수 있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지갑에 들어 있는 빛바랜 사진과 너무도
닮은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예의 그 “재호 씨”로 추정되는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였다. 짙은 눈매와 수트로 감싸인 탄탄한 몸이, 또
뭔가를 발라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리가 꼭 액션 영화에서나 보던 비밀 에이
전트 같아서 서준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나 서현은 기묘한 두려움이 섞여 든 눈빛으로 서준의 소매를 붙잡았
다.
서준은 그것이 처음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덩치 큰 성인 남성을 보게 된 데
에서 기인한 두려움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겼다. 약 1분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난 형은 이상하게도 서준보다 조금 더 얌전하고 겁이 많은 편이었
다. 그 시골집에 찾아오는 남자라고 해 봤자 이미 환갑을 한참 전에 넘긴 할
아버지들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서준은 서현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고사리 같은 손 사이로 희미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서현은 네가 뭘 알아,
하는 눈빛으로 서준을 흘기면서도 손을 놓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서준과 서현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들을 껴안고 펑펑 울더니,
그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순옥을 붙잡고는 조금 더 오랫동안 펑펑 울었다.
어머니가 외할머니께 죄송하다고, 정말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동안 남
자는 무뚝뚝한 얼굴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아이를
돌보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듯했다.

“아저씨, 아저씨가 우리 아빠예요?”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서준이었다.
당돌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긍정의 뜻을 내비치자마자 광란의 흥분 상태에 빠진 서준과는 달
리, 서현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준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안 돼…….”
그리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곁에 있던 서준에게도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았
다.
이번에는 서준이 서현에게 눈을 흘길 차례였다.
안 되긴 뭐가 안 된다는 건지. 그는 제 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렇게 멋있는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기에 저토록 싫은 표
정을 짓고 있는 걸까. 서준은 서현의 손등을 살짝 꼬집어 준 뒤, 손을 놓고 재
호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남자의 딱딱한 얼굴 위로 살짝 난감한 빛이 서렸다. 그러나 그는 별말 없이
서준을 한 팔로 번쩍 안아 올려 주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재미있어, 서준
은 꺄르륵 웃으며 양팔을 남자의 목에 감았다. 외할머니도 옛날에는 자주 그
들을 안아 주었다지만, 서준이 아주 어릴 때도 할머니는 두 팔을 사용해야
간신히 서준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서준과 서현이 열 살을 넘기
고 나서부터는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단단하고, 굳세어 보이는 품에 안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준은 신
기해하며 자신을 들어 올린 팔을 조금씩 주물럭거려 봤다. 남자의 새하얀 얼
굴이 아주 조금 붉어진 듯도 했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간신히 대성통곡을 그쳤을 때, 서현과 서준의 손에는
각자 아이스크림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시골 구멍가게에서는 팔지 않는 맛
이었다. 거기에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해 봤자 너댓 가지밖에 들여놓지 않았
으니까.
단 것이 들어가자 그나마 조금 안심한 것인지 서현의 표정은 살짝 풀어져
있었고, 서준은 녹은 단물이 남자의 비싸 보이는 정장 위로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재호의 팔에 안겨 있기를 고집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사이좋게 재호에게 안겨 있는 광경을 퍽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서준이랑 서현이는 여기에서 사는 거야.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같
이 살면서 중학교도 다니고, 놀이공원에도 가 보고, 영화관도 같이 가 보자.
너희들이 하고 싶어 하는 건 다 하게 해 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어머니는 행
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서준과 서현은 정든 시골집을 뒤로하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더 이상 외할머니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
다는 사실은 안타까웠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은 전부 서준의 마음에 들었
다.
새로 만난 친구들은 친절했고, 놀 거리라고 해 봤자 바깥을 뛰어다니는 것
정도밖에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영화관이나 놀이공원 같은 곳에 놀러 갈 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군것질거리의 종류가 늘어난 것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많아진 것도, 텔레비전 화면이 세 배 정도 커진 것도 하나같이 마
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서준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아버지를 가장 좋아했다.
키가 크고, 몸이 탄탄하고, 하루 종일 커다란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덕분
에 잡티 하나 없이 희고 깨끗한 피부를 가진 아버지.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정장을 몸에 딱 맞게 걸친 뒤 다녀올게, 라고 어
머니와 자기네들을 향해 말해 주는 아버지. 서준은 그런 아버지가 마냥 좋아
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현은 서준과는 달리 재호를 볼 때마다 께름칙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렇
다고 해서 새로이 생긴 가족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서준
도 서현의 그런 태도에 관해 그리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낯을 많이 가려
서 그런 거니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며 넘길 뿐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눈앞의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안타까운 사고였다. 간만에 드라이브가 하고 싶어 차를 운전하던 어머니에
게도, 코너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검은색 승합차에게도 잘못은 없었다.
하필 그때 신호등이 고장 나 있었다고 했다. 거의 비슷한 속도로 서로를 들
이받았건만 하필 어머니는 즉사하고, 승합차의 주인은 살게 된 것도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다.
서준과 서현은 저들과 똑 닮은 얼굴이 담긴 영정 사진 앞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조용히 울었다.
빈말로라도 완벽한 어머니라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태어나 버린 그들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사는 것이 힘
들어 둘을 친가에 내버려 두고 갔을 때도 양육비와 함께 안부만큼은 꼬박꼬
박 물어봐 줬다고 했었다.
그때의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아마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함께
살았던 그 짧은 기간 만큼은 어머니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는 사실을 알았기에 쌍둥이는 더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흘 밤낮을 울고 나니 눈물조차도 전부 말라 버렸다. 힘없이 벽에 기대어
오다가다 사람들이 챙겨 주는 밥을 먹고, 그러다 가끔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잠이 오면 깜빡 잠들었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서준과
서현은 손을 꼭 붙잡은 채 서로에게 속삭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다시 할머니한테 가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겠지? 하지만 할머니께서 우리를 맡아 주실까?”

“글쎄….”

그러나 예상외로 재호는 쌍둥이들을 자신이 맡아 기르겠다고 나섰다.


순옥은 친부도 아닌 자네가 그럴 필요는 없다며 재호를 극구 만류했지만,
재호는 답지 않게 고집을 부렸다. 겉보기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
지 않은 사람이 뭐 그리 정에 이끌렸는지. 그는 민아가 데려온 아이들이면
곧 내 아들이기도 하다고, 마찬가지로 어머님도 민아의 어머님이라면 이제
는 제 어머님이나 다름없다며 열심히 순옥을 설득했다.
결국 순옥은 재호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준과 서현은 계속해서 재호와 함께 살게 되었다.
무뚝뚝하고 삭막한 아버지였다. 원래도 그런 성격이었지만 사랑하던 아내
가 죽고 나서부터는 특히나 더 그랬다. 부자간의 애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
는지조차 잘 모르는 남자는 가장 기본적인 양육조차 돈으로 해결하려 들었
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우수한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서 식사를 만들도
록 했고, 모르는 게 있다고 하면 과외 선생을 붙여 주고, 아빠랑 같이 놀이공
원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쓰면 둘이서 갔다 오라고 용돈을 주는 식이었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민아의 핏줄인 것은 제쳐 두고서라도, 제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아이가 방긋 웃으면서 아빠, 하고 안겨 오는 데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
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다만 그는 누군가와 가족이 되는 데 있어 너무도 미숙했다. 게다가 아이들
은 해가 가면 갈수록 잔인할 정도로 점점 더 아내의 모습을 닮아 갔다. 종래
에는 그 그리운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애정으로 뭉클해지는
동시에 심장이 지독하게 아플 정도로.
욱신거리는 가슴의 고통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재호는 더더욱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에는 잘 들어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처
음에는 재호에게 매달리던 서준도 그런 식으로 몇 달이 지나자 서서히 현실
과 타협해 가기 시작했다.
그래, 피도 섞이지 않은 우리를 이렇게 받아들여 준 것만 해도 어디야. 아빠
는 많이 바쁜 분이시니까 언제까지나 같이 시간을 보내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
거의 체념과도 비슷한 납득이었다. 그와 동시에 서준은 이번에는 필사적으
로 아버지의 눈 안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뭔가에 쓰이기라도 한 것처럼 공
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각종 대회에 나가서 상을 휩쓸어 왔다.
뭐든 좋았다. 뭐든 상관없으니 아버지가 자신을 봐 줬으면 했다.
그렇게 몸을 축내 가며 받은 상장이니 성적표 따위를 재호에게 가져가면
그는 한참 동안이나 말을 고르다가 결국에는 열심히 했구나, 한마디만 말하
면서 옅은 미소를 지어 주곤 했는데 서준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호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 아빠. 방금 뭐라고, 하셨…….”

서준의 손에 들려 있던 책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이 자신의


뇌로 차마 처리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으면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 버린
다는 사실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재호는 한숨을 쉬며 아들이 떨어트렸던 책들을 주워 그에게 건네주었다.
칠칠치 못하기는, 하고 엄하게 타박하는 낮은 저음이 비수처럼 서준의 가슴
에 꽂혀 들었다.

“너랑 서현이도 이제 성인이고 하니 슬슬 독립해야지.”

아들이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재호는 다시 한번 힘주어 제가 했던 말들을


반복했다.
다닐 학교도 대충 정해졌으니 그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하나 구해 뒀다, 원
룸도 생각은 해 봤지만 아무래도 둘이 학교도 같으니 서로서로 도우면서 같
이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월세나 생활비는 자동으로 이체되도록 했으
니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그냥 공부에만 집중하면서 살면 된다.
재호는 무뚝뚝하게, 마치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기계적으로 자기 할 말만
했다. 하지만 서준은 그 통보가 다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건가.
재호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 갔기에
마냥 서준의 대답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현관 쪽에서 평소처럼 문
이 탁, 하고 닫히는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오자 서현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서 일어났다.
서준은 힘없이 탁자 위에 얼굴을 묻었다. 격해진 감정의 파도가 한 차례 가
라앉자 이번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 차례였다.
서준은 아버지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본인은 너희도 이제 대
학생이니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느니, 학교 근처에서 사는 편이
통학 시간이나 교통비도 절약되고 편하기도 편해서 여러모로 너희에게 좋을
것이라느니 갖가지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그딴 게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아버지의 눈만 봐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과 서현의 얼굴에서 어머니의 그림자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
해서, 그래서 급기야는 서준과 함께 사는 것조차도 못 버티겠어서 도망치려
는 거다. 이 배신자!
잠시간 탁자 위에 이마를 쿵쿵 짓찧던 서준은 떨리는 눈으로 제 두 손을 내
려다봤다.
농구를 하느라 뼈대가 굵어지고, 힘이 실린 손이었다. 아직 키는 아버지 쪽
이 조금 더 컸지만 아버지는 나이도 든 데다 몇 년이나 과로로 인한 피로감
이 쌓이고 쌓인 탓에 몸도 영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이길 수 있다. 제압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제압할 수 있으니
까, 그래서 뭘 어쩌라고? 화가 났으니까 아버지랑 한 판 붙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하고 나면 뭘 어쩌라는 거지? 어디 가둬 놓기라도 하면… 아
니, 하지만….
서준은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던 서현은 곧 그릇 두 개에 시리얼을 나눠 담아서 들고 왔
다. 빨리 안 먹으면 지각하겠다, 라고 읊조리는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
려 오는 것만 같았다.
서준은 울컥하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빠가 우리보고 집에서 나가라는
데 넌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 있느냐고 소리라도 지를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이어지는 말들에 서준은 말문이 턱 막혀 왔다.

“서준아.”

우리, 아빠가 우리를 못 버리게 할래?


그렇게 해 줄까?
서현은 가라앉은 눈으로 시리얼 위에 우유를 부은 뒤, 그것을 단 1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 앉아 있는 쪽으로 밀어 주었다.
서준은 서현을 멍하니 쏘아봤다.
형제간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마치 두 명이서 한 사람인 것처럼
모든 행동을 함께했던 예전과는 달리 최근에 들어서는 조금 관계가 서먹해
진 것도 사실이었다.
공부에, 동아리 활동에, 거기에 학생회 업무 따위까지 도맡느라 눈코 뜰 새
가 없는 서준과는 달리 서현은 눈에 띌 만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성적은 무난했으며?서준이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대학을 서현은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갔다? 운동은 그다지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학
생회나 동아리같이 귀찮은 일은 죽어도 제가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서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버지를 볼 때마다 께름칙한, 그
리고 어딘지 묘하게 불쾌한 느낌이 드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솔직히 서준은 제 형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전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마 서현도 서준을 잘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피가 이어지
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한 번만 나 좀 봐 달라며 집착하고, 그에게 한순간만
이라도 좋으니 인정받기 위해 발악을 하는 서준의 심정을.

“서준아.”

서현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당초 그는 딱히 아버지를 좋아하지


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외려 꺼리는 것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평소에 그
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듯 서현 역시도 자신에게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굴었다.
서현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엮이게 된 법적인 보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최소한 서준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그랬던 놈이 왜 이제 와서.
서현은 다시금 나지막이 물어 왔다.

어떻게 할래, 서준아? 나는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에 서준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1. 악몽

“다녀왔다.”

현관에서부터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현과 서준은 그 목


소리를 듣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오늘도 자신들을 위해 온종일 열심히 일하고 왔을 아버지를 반겨 주기 위
해서였다.

“아빠.”

처음 쌍둥이들이 이 집에 들어온 지 근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그동안에도


재호는 크게 변한 점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그때 일하던 로펌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었으며?승진은 한 번
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워낙 자기 관리가 철저한 탓에 막 중년에 접어
들기 시작한 남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나이의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결 짙게 내려앉은 눈 밑의 그늘과, 시력이 안 좋아졌
다며 몇 년 전부터 착용하기 시작한 얇은 은테 안경만이 세월의 흐름을 알려
줄 뿐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들어오던 재호는 서준이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
리에 몸을 흠칫 떨면서 얼굴을 붉혔다. 서현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빙긋 웃었고, 마치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아빠, 다녀오셨어요.”하고 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영민하게 빛나던 잿빛 눈동자가 조금씩 혼탁해져 갔다.
재호는 잠시간 멍하니 현관에 서 있다가, 비틀거리면서 서준의 앞으로 다
가와 무릎을 꿇었다.
누군가 보기라도 했다면 아주 이상하게 여겼을 법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 부자 이외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서준과 서현은 재호의 이상
행동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서준은 아주 다정하게, 아버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애완용 동물을 대하는 듯
한 손길로 꿇어앉은 채 조금씩 떨고 있는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쪽으로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오늘도 아빠는 정말 음란한 모습을 하고 계시네요…. 인사만 하고 바로 공


부하러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래서야 제가 집중할 수 없잖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막 퇴근한 참이었기에 재호의 온몸은 고급스러운


은빛 수트로 꽁꽁 감싸여 있었다. 그 철두철미한 착장에서는 서준이 탓하는
난잡함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떠
나서 평소의 재호였더라면 절대로 그냥은 넘어가지 않았을 만큼 모욕적인
비하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죄송하다 빌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굴욕적인 순종의 자세에 서현이 킥, 하고 작게 비웃는 소리를 내었다. 세
련된 은테 안경 아래 새하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재호는 입술을 꽉 깨
물었다.
아이들이 자꾸만 아빠, 아빠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뱃속이 꽉 조여 왔다.
서현이 처음 재호에게 최면을 걸 때 못된 장난을 쳐 놓은 탓이었다.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특정한 키워드를 들을 때마다 그가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극점이 사내의 성기로 거칠게 뭉개지는 감각을 느끼도록 하는 암시.
지난 며칠간의 키워드는 “아빠”였고, 때문에 재호는 그동안 아이들이 저를
부를 때마다 은밀한 부위를 농락해 오는 쾌감에 자지러지며 몸을 떨어야 했
다.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는 그나마 억지로라도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억눌렀
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서현이 재호에게 신음은 참지 말고 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재호는 하아, 으응, 하고 평소라면 죽는 한이 있
더라도 내지 않았을 법한 천박한 소리를 내어 가며 서준의 발치에서 허리를
들썩였다.
서준은 한쪽 발을 살짝 들어 재호의 다리 사이를 살짝 쓸어주었다.

“아빠. 저희한테 뭐 할 말 없어요?”


“……흐으.”

재호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수치스러워하는 티가 나는 표정이


었다.
“아빠는 워낙 정신력이 강한 편이라, 최면을 걸어 놓았어도 가끔 원래 성격
대로 행동하실 수도 있어.”라고 속삭이던 서현의 음성을 기억해 내며 서준
은 느릿하게 웃었다.
그는 제 아버지의 그런 강인한 면모까지도 포함해서 전부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눈을 피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준은 재호의
턱을 잡은 채 손에 세게 힘을 주었다. 탁하게 풀린 회색 눈동자가 강제로 서
준과 시선을 맞춰 오도록.

“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해 주셔야죠, 아빠. 자꾸 그렇게 흘끔거리지만 말


고.”?

아까부터 재호의 시선이 계속해서 서준의 다리 사이로 갔다가 떨어지는 것


을 눈치채고서 한 말에 재호의 얼굴이 더더욱 달아올랐다.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을 보며 서현은 내일 낮 중으로 아
버지께 드릴 립밤이라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 , 서 서준아… 제발….”

재호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애교를 부리듯 서준의 허벅지에 뺨을


비벼 댔으나, 서준은 재호가 그러거나 말거나 더더욱 매섭게 재호를 채근할
뿐이었다.
가르쳐 준 대로 말하지 않으면 이대로 내버려 두고 방에 들어가 버리겠다
는 협박에 재호는 다급히 고개를 내저으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하나씩 끌어내려 속살을 내보여 주는 음란한 행태에 서준은 비
열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내려 핑크빛으로 도드라진 유두를 꼬집어 주자 입
술 사이에서부터 히익거리며 앓는 소리와 함께 미약한 애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 제발
“…… , …… 제 음란한 젖가슴으로… 서준이 자, 자지에 봉사하게
해 주세요
….”

맨정신이었다면 차마 수치스러워서라도 못 했을 “부탁”을 아무런 가감 없


이 내뱉으며 재호는 필사적으로 아들에게 애원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 가닥의 이성은 이 상황을 끔찍하다 느끼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눈앞에 있
는 사내의 성기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강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
다.
주인님이 자신의 쓸모없고 커다랗기만 한 젖을 마음껏 사용해서 만족해 주
셨으면 좋겠다.
혹시나 기분이 좋아지면 입에 좆물을 잔뜩 싸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비참
할 정도로 천박한 욕망이었다.
서준은 웃으면서 바지 버클을 풀고, 흉악하게 발기한 성기를 재호의 뺨에
다 살짝 가져다 대었다. 한참 전부터 흘러나오고 있던 쿠퍼액이 말끔한 얼굴
을 조금씩 더럽히기 시작했다.
“좋아요. 그렇게까지 봉사하고 싶으시다니 어쩔 수 없죠. 허락해 줄게요,
아빠.”

나긋하게 떨어지는 허락의 말에 재호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허


리를 조금 세우고, 제 가슴을 모아 두툼한 살집이 서준의 성기를 감싸도록
했다. 당연히 여성의 것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성기 밑부분을 감싸 오는 느낌에 서준은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뱉었
다.
서현은 소파에 앉은 채로 그런 서준과 아버지를 감상했다. 얼굴에 떠올라
있는 그 특유의 무표정은 여전했지만, 오직 새까만 눈동자 안에 조금씩 감돌
기 시작한 생기만이 그가 지금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재호는 제 양쪽 가슴 사이에 서준의 페니스를 끼운 채로 고개 숙여 서준의
귀두 끝을 물고, 마치 맛있는 사탕이라도 핥는 양 그것을 정성스레 빨아 주
기 시작했다. 서준에게 얇은 나무 회초리로 엉덩이를 맞아 가며 배운 “봉
사”였다. 하지만 그렇게 훈육을 당해 가며 배운 것 치고는 아직도 재호의 펠
라 실력은 형편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교육을 시켰는데도 실력이 늘지를 않는 거지.
아빠는 직업도 직업이니 머리가 나빠서 그런 건 아닐 텐데. 서준을 혀를 차
면서도, 또 내심 이런 건 오히려 못하는 편이 더 아빠 같다고 좋아하면서 재
호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 오늘따라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요, 아빠? 오늘은 정액이 안 받고 싶으신


가 봐요?”
“흐읍……!”
재호는 필사적으로 성기를 문 채 고개를 내저었다. 소중한 아들의 정액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를 입술로 감싸고, 버거울 텐데도 불구하고 그 큰 것
을 꾸역꾸역 목젖에 닿을 때까지 밀어 넣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대로 재호의 머리를 붙잡고 목구멍 안쪽 깊숙한 곳까지 거칠게 쳐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새 서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서현은 고개를 내저었
다.

“ 안 돼.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요즘 아빠 목도 좀 쉬었더라. 워낙에


맡은 일이 많으셔서….”
“……아빠는 내가 아플 때 집에 제대로 들어와 주신 적도 없는데.”

아빠는 내 몸 상태를 제대로 신경을 써 준 적도 없는데 내가 왜 그래야 하느


냐는 투정이 담긴 말이었다.
서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은 워낙 재호의 관심에 목을 매고 살아온 시간이 길어 그런지, 유독 옛
날에 쌓인 앙금을 무방비한 상태의 재호에게 화풀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해는 했고, 또 그래서 서현도 어지간하면 서준이 하는 일을 뜯어말리지는
않았지만 행위가 너무 심해지면 자제가 필요한 법이었다.
서현은 다시 한번 힘주어 “안 돼. 그리고 오늘은 평일이니까 삽입하는 것도
안 돼.”라고 단정지었다.
서준은 서현을 흘겨보면서도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최면을 배워 온 것
도, 그것을 재호에게 주입한 것도 서현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아버지를
독차지하려 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물론 서현이 소중한 동생
의 물건을 그리 함부로 빼앗으려 들지는 않겠지만? 서준은 순순히 한 발짝
물러나 주었다.
빠듯하게 벌어져 성기를 물고 있는 입 안쪽에서부터 난잡하게 쿨쩍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호는 서준의 사정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한결 필사
적으로 혀를 굴려 기둥을 핥고, 가슴 위에 겹치고 있던 손을 꼭 모아 쥐었다.
음란하면서도 귀여운 모습이었다.
성기를 감싸고 있던 살갗 사이가 조금 더 빡빡해진 것을 느낀 서준은 미소
를 지으면서 재호의 머리를 잡아 고정했다. 그리고 재호의 소원대로 입안 깊
숙이 자신의 것을 세게 쳐올려 주었다.
타액과 쿠퍼액으로 질척이는 입안에 따스한 액체가 퍼져 나갔다.
재호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면서 제 입에 든 것을 삼켰다가, 어디서 감히 허
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그런 짓을 하느냐며 서준에게 가볍게 뺨을 얻어맞았
다. 아프라고 때린 것은 아니었고 또 실제로도 그다지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
만, 무의식 속에서 이런 취급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재호
의 양쪽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서현은 혀를 차며 재호를 제가 앉아 있는 소파 쪽으로 불러들였다. 재호는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이렇게 하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꿇어앉은
자세 그대로 양손을 마룻바닥 위에 짚은 채 서현이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장 바지 안의 탄탄한 엉덩이가 꽉 조여진
채 흔들렸다. 그 비참하면서도 색정적인 움직임에 서준은 다시금 배 속에서
흥분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서현의 차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별말 없이 몸을 추스르고는 서현의 곁에 가 앉았다.
서현은 서준보다는 아버지에게 조금 더 다정한 편이었다. 재호가 소파 바
로 앞까지 기어오자 그는 웃으면서 재호를 끌어당겨 소파 위에 자리를 잡고
앉도록 했다. 저와 똑 닮은 얼굴 위로 피어오른 기묘한 미소를 구경하며 서
준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서준이 상대를 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제 건 그냥 손으로 해 주셔도 돼요.


자 이렇게….”
,

마치 초등학생 남자아이에게 처음 자위를 가르쳐 주는 듯한 상냥한 말투였


다. 서현은 재호의 한쪽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성기 위에 얹었다. 손안에 뜨
끈하게 살덩이가 쥐어져 오는 느낌에 재호는 당황하며 서현을 올려다봤다.

서 서현, 아……?”
“ ,

“왜 그러세요, 아빠? 그냥 잡고 흔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건데. 아빠가 혼자


있을 때 자위하던 거랑 똑같이 하시면 돼요. 아, 아빠는 자위 같은 것도 안 해
보셨으려나?”
“하지, 만…….”
재호는 뻔하게 안달이 난 눈길로 질금질금 쿠퍼액을 내뱉고 있는 성기를
흘끔거렸다. 하지만 서현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며 재호의 손등을 약하
게 내리쳤다.

“목 상태도 안 좋으시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니까 이걸로 끝이에요. 주말


이 되면 원 없이 박아 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세요.”

서현의 성기에 봉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재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입 근처가 정액으로 범벅이 된 채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사내의 정액이 받
고 싶다고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이 야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눈
살을 찌푸렸다.
어찌 보면 주도권을 서현이 잡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현
과는 달리 서준은 자제하는 법을 잘 몰랐으니까.
뼈대가 굵고, 굳은살이 조금씩 박였지만 그 외에는 대체로 깨끗한 손이었
다. 아버지의 손이 성기를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감각에 서현은 나른한 한숨
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재호의 뺨에 입을 맞춰 주자, 재호는 키스를 조르는
듯한 태도로 서현의 입가에 입술을 비벼 댔다. 그러나 서현은 재호의 얼굴을
가볍게 밀어냈다.

“나는 막 내 동생의 좆을 빨아먹은 입술에는 키스하고 싶지 않거든요.”

차갑게 거절하는 목소리에 재호는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으로 유도되는 사정은 느렸다. 재호의 손놀림이 워낙에 서툰 탓에 더더
욱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재호는 손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몇 번이고 입이
나, 혹은 그 아래 더 은밀한 부위로 성기에 봉사하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지
만 서현은 끝끝내 재호의 손 위에 사정했다.
재호는 손을 들어 그것을 핥아먹으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서현은
이번에도 재호를 강하게 제지했다.

“ 그게 뭐 그리 몸에 좋다고 먹으려 들어요. 닦아 드릴 테니 잠깐만 그대로


기다리세요.”
“……쯧.”

사실은 나보다 저 새끼가 훨씬 더 잔인한 거 아냐.


재호에게 아들들의 정액을 맛있게 느끼도록 하는 암시를 걸어 놓은 사람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서현이라는 사실을 상기해 내며, 서준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의 머리칼을 조금씩 쓰다듬어 주었다.

“주말이 되면 마음껏 박아 드릴게요, 아빠. 조금만 참으세요.”?

온몸이 저릿해질 정도로 달콤하면서도 가혹한 예고에 재호의 허리가 조금


씩 떨려 왔다.
그는 두 주인님에게 성심성의껏 봉사하면서 성기를 세운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사정하지 못했다. 몸은 슬슬 한계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서현이든 서준
이든 그 누구도 재호의 아랫도리 사정에 그다지 큰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손에 티슈 한 박스를 들고 돌아온 서현은 조심조심 재호의 손과 가슴께에
묻은 액체를 닦아준 뒤, 재호의 셔츠 단추를 꼼꼼하게 채워 올려 주었다. 무
릎 근처의 먼지를 털어내고 머리카락까지 다듬어 주자 어느샌가 재호는 들
어왔을 때 그대로의 냉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얇은 셔츠 아래 핑크빛으로 도드라진 유두를 제멋대로 세게 꼬집으며 서준
은 무신경하게 웃었다.

“ 시간 나면 니플패치라도 사 와서 붙여 드려야 하는 거 아냐? 이런 걸 내놓


고 다니는 건 좀 과한데.”
“내일 립밤이랑 목캔디 살 때 같이 사 올게.”

“……립밤?”

서현은 생긋 웃으면서 재호에게 소파에서 일어나도록 했다. 재호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얼굴로 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서현은 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재호를 거실 마룻바닥 위까지 이끈 뒤 손가락을, 가볍게 두
어 번 튕겼다.
재호는 두 눈을 깜빡이며 서현과 서준을 바라봤다.
어쩐지 가슴 언저리가 조금씩 쓰려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 왜 그러세요? 혹시 어디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건가요?”


“흐으, 윽……!”

갑자기 배 속 깊은 곳을 치고 올라오는 쾌락에 재호는 당황하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또 이 감각이었다.
몇 달 전부터 재호는 가끔 아무런 연유도 없이 집 안에서, 혹은 길을 가다가
몸 안쪽을 강타하는 성적인 쾌락을 느끼고 주저앉고는 했는데 최근 들어서
그 빈도가 유독 심해진 느낌이었다.
혹시 병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서 빠른 시일 내로 병원에 가 볼 예정이었는
데. 하필이면 아이들 앞에서 또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당혹스
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직 미약하게 열기가 남아 후들거리는 다리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리고 싶은 충동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억누르며, 재호는 고개를 두어 번 내저었다.

“아니다. 그냥, 피곤해서….”

피곤해서 그런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둘러댄 뒤, 재호는 비틀거


리면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몸 상태가 상태라 그런지 방문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큰 소리를 내며 닫힌 것
같기도 했다. 서현은 서준을 마주 보며 생긋 웃었다.
“ 진짜 꼴린다, 그치?”
“……으응.”

“최면에 걸려 있을 때도 좋은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참으려고


하는 게 더 좋아. 어차피 다 티 나는데. 귀엽긴.”?
“그래도 키워드는 좀 수정해 주면 안 되냐?”

“걱정 마. 나도 어차피 그럴 참이었어.”

서준이나, 서현이나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빠라고 부를 때마


다 자신들의 좆으로 안쪽이 범해지는 감각을 느끼면서 애써 쾌락을 눌러 참
는 아버지는 정말 귀여웠다.
하지만 아빠라는 단어는 평소 생활하는 도중에도 지나치게 잦은 빈도로 튀
어나왔다.
심지어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도 무심결에 아빠라고 부른 뒤, 아버지가
흥분해서 할딱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던 적도 종종 있었다. 자신의 약
한 모습을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드는 태생적인 성정 때문인지, 재호
는 항상 그렇게 쾌감을 느낄 때마다 서둘러 자기 자신을 방 안에 가둬 버리
곤 했다.
원래도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하다못해 뭐 필요한 건 없느냐, 저녁은 먹었느냐 간단하
게라도 물어봐 줬을 것을 저리 쏙 들어가서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제정신일 때 그를 조종하는 감각을 포기하
고 싶지는 않았다.
박는 건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키워드는 수정해 놓아야겠다, 서현은 그렇
게 생각하며 안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빠! 들어가도 돼요?”


“……흐으, 읍……!”

문 너머로 억눌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서현은 재호가 안 된다고 대답하기


도 전에 멋대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다녀오셨어요” 하고 낮고 느리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당황스러워하던 재
호의 눈동자가 점차적으로 혼탁해져 갔다. 재호는 서준이나 서현의 목소리
로 다녀오셨냐는 뜻이 담긴 말을 들을 때마다 자동으로 최면에 걸린 인형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서현은 멍하니 앉아 있는 재호의 곁으로 가서 재호를 꼭 안아 주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새 흥분을 못 참고 자위를 하려고 한 재호가 너무도 사랑스
럽게 느껴져서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형 주제에 뒷구멍이 아니라 좆으로 자위를 하려 드는 것은 정말
나쁜 버릇이니 나중에 교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현은 재호의 귓가에 작
게 속삭였다.

“아빠. 일주일 전에 제가 아빠한테 내려 준 명령, 기억하세요?”


으 으응…. 우리 서준이랑 서현이 목소리로 아빠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
“ ,
다 커다란 자지가 뒷구멍을 마음껏 쑤셔 주는 감각을 느끼, 라고…….”
,

“네. 그걸 조금 수정해야겠어요. 으음… 앞으로는 저나 서준이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희 자지에 박히는 감각을 느끼면서 질질
싸지르는 거예요. 아빠는 남자 좆에 환장한 걸레니까 이런 것도 좋죠?”
“네, 네에……. 감사합니다, 주인님.”

“착하다.”

서현은 부드럽게 웃으면서 재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습에 서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에 자기더러
아빠 좀 작작 괴롭히라고 혼내던 것 치고는, 아무리 봐도 저 새끼가 남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었다.
한참 동안이나 그 상태 그대로 재호를 귀여워해 주던 서현은 곧 서준과 함
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가에 기대어 딱 소리가 세게 날 정도로 손가락을 튕겨 주자 재호의 정신
이 서서히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재호는 두 눈을 조금씩 깜빡이다가, 문가
에 서 있는 쌍둥이들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 현아. 서준아, 왜 그래?”


“ …

“아…아빠, 아까 비가 와서 그런지 천둥이 치던데, 그게 무서워서… 번개도


치고….”
서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미리 생각해 놨던 변명을 줄줄 늘어놓았
다. 아직 잔존하는 쾌락의 잔재에 온몸을 움찔거리면서도, 재호는 황당하다
는 표정으로 서준과 서현을 노려봤다.
황당할 만도 했다. 나이가 스물씩이나 되는 건장한 청년 둘이 천둥이 무섭
다느니 번개가 쳤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불혹이 다 되어 가는 아버지의 방 안
으로 쳐들어 왔는데 어떻게 황당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나마 서준은 어릴
때부터 워낙 의존증이 심한 아이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서현까지 이럴 줄
은 정말 몰랐다.
재호는 한숨을 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 말고 가
서 잠이나 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몸짓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둘은 와! 아빠, 감사합니다! 하고 활짝 웃으면서 재호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
다.

“ 아빠아… 저 진짜 무서운데, 딱 오늘만 같이 자면 안 될까요? 네?”


“안 돼.”

“아빠… 너무 무서워서 잠이 안 오는데 어떡해요? 내일 1교시에 수업 있어


서 일찍 자야 하는데….”
“둘이서 같이 자면….”

“쟤도 천둥을 무서워하니까 같이 있어도 별로 도움이 안 된다구요!”

동시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재호는 한쪽 손으로


제 관자놀이를 꾹꾹 짚었다. 내 정말 이놈들을 어찌해야 하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비싼 침대를 사 줬더니, 정작 거기서 자야 할 당사자인
아들들은 최근 들어 매일같이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둥 아직 가족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둥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딱 오늘만! 을 외치면서 재호와 함께
자기를 고집했다.
덕분에 기껏 사 놓은 침대는 먼지만 쌓여 가는 형편이었다. 이래서야 굳이
아이들도 크고 나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할 거라며 민아와 함께 방이 안방
포함 네 개나 달린 집을 고른 의미도 없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준과 서현에게는 약한 편이었다.
잠시간 실랑이를 하던 재호는 결국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거라는 엄포
와 함께 ?서현이 조곤조곤하게 “아빠, 그 말 어제도 그저께도 하셨는데 결국
에는 같이 잤잖아요.”하고 지적해 주자 재호의 얼굴이 아주 조금 새빨개졌
다? 마음대로 하라는 허락을 내려주었다.
서현과 서준은 활짝 웃으면서 재호에게 안겨들었다. 민감한 가슴에 대고
이마를 비벼 오는 아들의 행태에 재호는 그 자리에서 몸을 굳혔다. 말랑하던
가슴 근육이 바짝 긴장해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
졌다.
서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베개 들고 올게요, 아빠!”


“진짜 사랑해요, 아빠!”

“……!!”
서현이 사랑해요, 라는 말을 내뱉은 순간 뱃속을 휘저어 오는 강렬한 쾌감
에 재호는 두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었다. 아까부터 끊임없이 자극을 받아
발기한 상태였던 성기는 결국 서현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진한 액을 왈칵 토정해 버렸다.
아버지가 사정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
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리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어서 빨리 나가서 잘
준비를 하라고 채근하는 아버지를 보며 서현과 서준은 작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바지를 내려 속옷 검사를 받게 한 뒤 자기네들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가 버린 것에 대한 체벌을 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이처럼 속옷을 잔뜩 적신 채 덜덜 떨면서 울먹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분명 음
란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다음 날 재호가 출근하는 데까지 지장을 줘 버릴
가능성이 있었고, 서준과 서현은 둘 다 아버지를 끔찍이도 아꼈기에 이번에
는 얌전히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두 명이 안방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재호는 그대로 침대 위에 무너져 내렸
다.
이상했다. 아무리 최근 들어 몸이 좀 안 좋았다고는 했지만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자꾸 제멋대로 흥분하고, 사정하고, 거기에 모자라서 뭔가
커다랗고 뜨거운 것이 차마 부끄러워 말로 다 하지도 못할 곳을 진탕 휘저어
오는 느낌까지 들 때도 잦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최근에 들어서는 정신 역시도 깜빡깜빡거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관에 서서 잠깐
졸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방 안에 들어와 있고, 침대에 앉아서 또 깜빡 졸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샌가 아이들이 방에 들어와 있는 식이었다.
재호는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로 때문에 제 몸이 완전히 미
쳐 버린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는 통 성행위도 자위도 하지 않았으니 ?꼭 수절을 지
킨다는 등의 거창한 이유에서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민아 외의 다른 사람과
도저히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욕구 불만인 건가. 하지만 욕구
불만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었다.
재호는 괴로워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행히 아들들은 제 어미를 닮
아 그런 건지 본디 어려서부터도, 또 커서도 그다지 눈치가 좋은 편은 아니
었다.
그나마 형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서현은 조금 나은 듯도 했지만, 서준은 아
직도 가끔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어린애같이 행동하곤 했다. 아무리 머리는
좋다지만 저래서야 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려나 싶어 항상 걱
정을 안고 살아가던 재호였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재호
의 몸에 생긴 이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간신히 차가운 물로 몸 안에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열기를 식힌 뒤, 재호는
벗어 놓은 속옷은 대충 물에 헹궈서 욕조 한쪽 구석에 던져두었다. 원래라면
빨랫감은 양말이든 속옷이든 바로바로 빨래바구니에 가져다 넣자는 주의였
지만 이런 것을 들고 거실로 나가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내일 하자, 내일.
재호는 애써 제 부끄러운 흔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는 얇은 잠옷을 걸쳐
입기 시작했다. 그새 잘 준비를 다 끝낸 것인지 서현과 서준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무리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라지
만, 밤에는 뛰어다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나무랐는데.
재호는 쌍둥이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침대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러자 서준과 서현이 서로 내가 아빠 옆에서 잘
거라며 싸우기 시작하는 통에 재호는 결국 반쯤 포기한 채 침대 한가운데 자
리를 잡았다.
남녀 한 쌍 전용으로 만들어진 2인 침대에 남자 세 명이 나란히 누워 있으
려니 비좁은데다 모양새도 우습기 그지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제게 안겨 오는 아들들의 체온이 썩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민아를 만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시고, 민아도 갑자기 떠나 버
린 데다 그 이후 병원에서 시름시름 앓던 장모님마저 몇 년 뒤 명을 달리하
셨으니 이제 재호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서현과 서준밖에 없는 셈이었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들이기는 했지만, 그때 장모님에게도 말했
듯 민아의 핏줄이라면 그건 곧 제 핏줄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자신이 썩 좋은 아버지가 못 된다는 사실은 재호도 알고 있었다. 그는 무뚝
뚝했고, 보호자답게 아이들을 챙겨 주기는커녕 외면하기만 했다. 머리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다. 가면 갈수록 사랑
하는 사람의 모습을 쏙 빼닮아 가는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가끔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애들을 좀 더 잘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사
람에게 입양이라도 보낼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
피 그러기에는 때가 늦었다. 그나마 한 가지 내세울 만한 점이라면 돈은 부
족하지 않을 정도로 줬다는 점이겠지만, 그게 ‘좋은 아버지’가 할 만한 짓이
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호의 부모도 재호를 어릴 때부터 그렇게 키웠고, 때문에 재호는
제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차마 그것을 고칠 엄두조차 내
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착하게 커 준 아이들에게는 고마운 마
음이 들었다.
비록 재호가 그 고마움을 내색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서현과 서준은 어느샌가 잠이 든 모양인지, 옆에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 왔다. 재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최대한 둘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잘 수 있도록 자세를 고쳐 누웠다.
그렇게 하자 이번에는 재호가 불편해질 차례였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
았다.
어차피 사무실에서 밤을 새면 책상에 엎드린 채 쪽잠을 자야 하는 일도 부
지기수였다. 거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불편한 축에도 못 들었다. 게다가 어
찌나 피곤한지 그렇게 불편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도 금방 졸음이 몰려 왔다.

***

뭔가 축축한 것이 성기를 감싸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리 사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재호는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끙끙 앓다
가, 결국 그 불쾌한 감각을 못 버티고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
다.
또 서현이나 서준이가 뭔가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거면 단단히 타이를 생
각이었다. 하지만….

“…… .아 아빠, 일어났어요?”

…… 뭔가 이상했다.
재호는 멍하니 제 허벅지 사이에 고개를 파묻은 서현의 얼굴을 내려다봤
다.
아니, 서현이가 아니면 서준이인가? 재호는 눈을 찡그리며 필사적으로 청
년의 얼굴을 알아보려고 했으나, 안경이 없어서 그런지 누가 누구인지 잘 구
별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소름이 끼쳐 왔다.
재호는 남자의 어깨를 잡고 밀어내려고 했다. 자신이 서현과 서준의 얼굴
을 구별하지 못하다니. 안경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이 세상에서 쌍둥이들 본인을 제외하고는 재호만큼 서현과 서준을
잘 구별해 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눈앞의 앳된 청년이 둘 중 어느 쪽인지는 알 수
가 없었다.
분명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쌍둥이들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남자는 생각만큼 잘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밀려나기는커녕 외려 재호의
양 손목을 거세게 잡아 침대 위로 억누르기까지 했다. 온몸이 짓눌리는 느낌
에 재호는 대체 뭘 하는 거냐고 소리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
았다.
꺽꺽거리는 소리만 내 가며 몸을 뒤트는 재호를 향해 서준인지 서현인지
모를 남자가 서늘하게 웃었다.

“아빠.”

남자가 재호를 불러 주는 것과 동시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 뒤로는 어떤 일들이 이어졌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남자는 재호의 허
벅지를 강제로 잡아 벌린 뒤 그 안에 뭔지 모를 뜨거운 것을 반강제로 쑤셔
넣었다.
최소한 재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반항을 해야
하는데, 남자를 밀어내 버리거나 하다못해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데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빠, 좋아요?”
“하아, 하응, 응… 좋아, 좋으니까… 제, 제발 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설마 내 입에서 나온 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저속하고 더러운 애원에 재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당황하며 입술을 짓씹은 재호와는 달리 남자의 입가에 걸려 있던 웃음은 더
더욱 짙어졌다.

“역시 아빠는 이러고 있는 게 가장 잘 어울려요.”?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꼭.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재호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소리를 들었는데도 여
전히 서준인지 서현인지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실패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일까. 뭘 실패했다는 거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해결할 사이도 없이, 서서히 숨이 막혀 가는 느낌에 재호는
두 눈을 감았다. 차라리 이대로 목이 졸려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이
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빠 아빠! 일어나셔야죠, 아빠! 출근 안 하셔도 돼요?”


“…… !

?익숙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2. 일상

재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 갈아입고 잤던 속옷의 안쪽 부분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 있었다. 그
것이 차마 무엇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재호는 괴로운 기분으로 머리를
감쌌다.
서현과 서준이 걱정스럽다는 눈길로 그런 재호를 지켜봤다.

“아빠, 괜찮으세요?”
“몸이 안 좋으신 거면 오늘 출근 못 한다고 연락할까요?”

“아, 아니… 괜찮다. 꿈자리가 좀 뒤숭숭해서….”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쌍둥이들에게 누차 괜찮으니 가서 학


교 갈 준비나 하라고 말한 뒤, 재호는 땀에 젖은 잠옷 셔츠를 벗어 던졌다. 맨
살에 찬 공기가 와 닿자 꿈속의 남자가 억지로 옷을 찢어발겼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 줄기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샤워라면 어젯밤에 이미
했지만,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하고 출근하는 편이 좋을 것 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몸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비척비척 샤워실이 있는 쪽으로 향한 재호가 막 화장실 문고리 위에 손을
올린 순간이었다.

“아빠! 아침은 황태국이 좋아요, 계란국이 좋아요?”

서준이 안방 문을 벌컥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재호는 당황하며 몸을 가리려고 하다가, 뒤늦게 그게 얼마나 우습고 민망
한 일인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팔을 내렸다. 한순간 익숙한 서준의 얼굴
이 꿈에서 나왔던 남자의 얼굴처럼 서준인지, 서현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등골이 서늘하게 식어 내렸다.
재호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 뒤 서준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어디든지 문을 열 때는 반드시 노크를 하라는 말에서부터 시작해서, 가사
도우미 분은 어딜 가고 네가 아침을 만들고 있느냐는 말까지 이어지는 일련
의 잔소리를 듣는 내내 서준은 재호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 시선이 지독하
게 불편해서 재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조금씩 움찔거렸다.

“그래서 아빠, 국은 어느 쪽이 좋으세요?”


“…전혀 안 듣고 있었구나.”?

재호는 한숨을 쉬면서 너랑 서현이 좋을 대로 하라는 말만을 남긴 뒤, 샤워


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째서 나쁜 예감이라는 건 틀리는 법이 없는 건지. 검은빛 속옷 안에 새하
얗게 말라붙은 자국을 보며 재호는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어린애들이나 하는 몽정을 이 나이가 되어서 또 하게 되다니. 심지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자에게, 그것도 아들과 똑 닮은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꿈
을 꾸면서. 아무리 꿈이라지만 그런 파렴치한 상황에서 흥분했다는 것 자체
가 재호에게는 극도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재호는 한동안 샤워 부스 안에서 찬물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차마 면
목이 없어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기에 마음 같아서는 하루 내내 그러
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서준이 아빠, 밥 다 차려 놨어요!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온 탓에 재호는 탄탄한 몸을 수건으로 벅벅 닦아 내렸다. 마치 그렇게 하면
더러운 것이 전부 물과 함께 닦여 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고 보니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정말 어디 가신 걸까.
아침을 아이들과 함께 먹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십 년 내내 밖에
서 밥을 먹다가 이제 와서 아들들과 밥상머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
으려니 아직도 영 기분이 어색했다. 하지만 서준은 재호가 떨떠름해 하거나
말거나 그저 행복하다는 얼굴로 재호의 앞에 갓 지은 밥과 황태국, 계란말이
같은 것들을 나열해 놓을 뿐이었다.
밥은 맛있었지만, 재호는 젓가락질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서준이 직접
만들었다며 차려 놓은 것들 중에는 손이 꽤 많이 가는 반찬도 두어 개 보였
기 때문이었다.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뭐 이런 걸 다.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재호는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한동안 거실 내에는 침묵이 이어졌다. 나물이 의외로 입에 맞아서 맛있다
고 해 주자 서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그 뒤로는 서준이 이것저것
말을 하는 통에 가라앉아 있던 밥상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나아졌다.

“아빠, 오늘도 늦게 들어오세요?”

재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외로운데.”
“……친구들이나 서현이랑 같이 놀지 그러니.”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요.”

다른 애들은 다들 대학 들어가면 방학 때 가족이랑 여행도 가고 추억도 만


든다는데 우리는 이게 뭐야, 하고 투덜거리는 서준의 입을 서현이 황급하게
틀어막았다.
곤란한 듯 웃으면서 “아빠는 바쁘시잖아, 네가 참아.” 하고 속삭이는 모습
을 보고 있자니 ?말하는 내용이 재호가 앉아 있는 곳까지 들린 것은 아니었
지만, 그 정도는 입 모양만 보고도 금세 유추할 수 있었다?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서준과 서현이 재호보고 일을 그만두라고 떼를 쓴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서준은 자주 ‘생활비 정도는 나랑 서현이가 알바로 벌어다
쓸 수 있으니 아빠가 모아 둔 돈으로 편하게 지내고 있으면 우리들이 취직해
서 아빠를 먹여 살려 주겠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곤 했다.
그리고 재호는 서준이 그럴 때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말라며 서준을 나
무라고는 했다.
지금의 직장에 딱히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돈은 벌 수 있을 때 벌어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민아가 자신과 만나기 전에 금
전적인 문제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가급적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
은 계속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일을 그만두는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아버지와 시간을 보
내고 싶어 이런 말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퇴직을 하면 지금보
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날 것 아닌가.
재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 이번 달에는 휴가를 좀 내보마.”



“ ?!”

“휴가라고요? 아빠, 로펌에도 휴가 같은 게 있었어요?”

처음 알았다는 듯한 투로 되묻는 서현의 태도에 재호는 기가 막혀 왔다. 도


대체 여태까지 얼마나 믿음을 주지 못했으면 휴가를 낸다고 하는데도 아이
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나 싶었다. 잠시간 거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
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서준은 활짝 웃으면서 재호에게 안겼다.

“ 놀이공원 가요, 놀이공원! 이번 달에 보고 싶던 영화도 개봉한다던데 그것


도 보러 가요!”
“아, 아니… 잠깐만….”

“수족관이랑… 유럽 여행도 갔다 오고… 또, 또….”

“……서준아.”

서현은 한숨을 내쉬면서 서준의 자리에 남아 있는 밥그릇을 가리켰다. 밥


이나 먹어. 다 먹은 거면 그릇 갖다 놓고. 수업 늦겠다, 하는 조곤조곤한 목소
리에 서준은 그제야 힘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재호는 조금 얼떨떨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저 한 뒤 나갈 채비를 했다.
대체 놀이공원이나 수족관 같은 데를 아버지와 함께 가는 게 뭐 그리 재미
있을 거라고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데는 내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이나, 아니면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데려가는 게 훨씬 낫지 않을
까.
의뭉스럽기는 해도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재호의 딱딱한 얼굴 위로
희미한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티가 난 것인지 출근을 하고 나서도 여기저기에서
“오늘 얼굴이 많이 밝으시네요?”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요?” 하는 소리
가 들려 왔다.
며칠째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고 있는데 좋은 일이 있으면 뭐 얼마나 있겠냐
싶어 물은 말이었지만 재호가 ‘아, 애들이 저랑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하고 운을 떼자마자 주변의 모든 변호사들이 그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 애들이요? 그, 아드님 두 분 말하는 거 맞으시죠?”


“예.”

“올해 대학 입학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예. 이제 1학년입니다.”

“그런데 아빠랑 여행을 가겠다고 해요?”

“와, 부럽다…. 우리 애들은 여행은커녕 방에만 잠깐 들어가도 나가라고 난


리도 아닌데….”
“그게 정상 아니에요? 그나마 정훈 씨 애들은 아빠 얼굴은 기억하나 보네.
저는 며칠째 새벽에 들어가다 보니까 아침에 애들이 저보고 이 아저씨는 누
구냐고 그러더라구요.”
“앗, 저도, 저도! 애들이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엄마인 줄 알아. 제가 들
어가면 아주머니보고 엄마 친구냐고 물어본다니까요?”
“우리 애들은 나보고 자취 좀 하게 해 달라고 얼마나 난리인지 몰라. 학교
가 집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인데 무슨 자취를 하겠다는 건지…!”

주변에 모여든 팀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우리 애는 속만 썩이는데, 재호


씨 애들은 대학도 장학금 받고 좋은 데 갔다면서요, 똘똘한 데다 훤칠하니
얼굴도 잘생겼으니 얼마나 좋아, 재호 씨 닮아서 그런가 보네, 하고 덧붙이
는 목소리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책맞게도 조금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미팅이 있었기에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재호는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는 다른 변호사 한 명과 사무실 문밖으로 나섰
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마자 팀원들은 재호의 앞에서는 미처 못 할 말
을 조금씩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그런데 팀장님 아직 나이가 서른여덟인가, 아홉인가… 그러지 않으셨어


요 그런데 어떻게 대학을 간 아들이 둘이나….”
?

“쉿, 미연 씨! 젊을 때 사고라도 치고 다녔거나 뭐 그런 거겠지. 팀장님 앞


에서는 그런 얘기 하지 마, 알았지? 다들 알면서 쉬쉬하는 거야.”
“팀장님이 사고를 치고 다녔다구요? 잘 상상이 안 가는데.”

그 재호 씨가 젊은 시절에는 혼전 임신 같은 사고를 치고 다녔다니. 갓 들어


온 신입의 얼굴 위로 의뭉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사무실 내에서도 일은 잘 하지만 너무 차갑고, 기계 같아서 인간미가 없기
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가는 술자리마다 사실 팀장님은 인간이 아니라 대표 변호사님이 우리를 감
시하기 위해 보낸 AI 로봇이 아닐까 하는 헛소리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오죽
하겠는가. 거기에 대고 “웃기지 마, 우리 집 로봇청소기도 팀장님보다는 인
간미가 넘치거든?!” 하고 소리친 정훈의 발언은 아직도 국제중재팀 팀원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 있었다.

“ 부인을 쏙 빼닮았다는 아들이 저런데 아내 되시는 분은 오죽 예쁘셨겠


어.”

“ 선남선녀끼리 잘 만난 거죠 뭐.”
“아, 진짜 부럽다! 우리 아들놈은 국내에 받아 주는 대학만 있어도 절을 해
야 할 수준인데, 재호 씨는 전생에 무슨 복을 심었기에…!”
“그런데 팀장님 아내분은 뭐 하고 계시길래 팀장님 혼자서 애를 둘이
나….”
“미연 씨, 쉿, 쉿!”

빨리 일이나 하자. 오늘은 새벽 세 시 전에 퇴근해야 하지 않겠어? 정훈이


다급하게 화제를 돌리자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자
리로 돌아가 작성하던 서면을 마저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곧 사무실 내에는 익숙한 정적이 감돌았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일은 고되었다. 법원에 몇 통쯤 전화를 넣고, 의뢰를 받
은 건설회사에서 일을 그따위로 해서 돈을 받아 처먹을 생각이냐는 폭언까
지 듣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은 채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자료를 긁어모아
야 할 처지에 처하자 재호 곁에 앉은 남자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
다.
그와 달리 재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태블릿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어차피 대충 예상했던 상황이었기에 그렇게까지 힘이 빠지지는 않았다. 이
대로 사무실에 돌아가서 서면을 다 쓰고 나면 대략 한 시 즈음에는 퇴근이
가능하지 않을까. 굳이 말하자면 평소보다는 조금 빠른 편이었다.
정작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사무실에서 따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서준아?”

재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게 달려드는 아들의 몸을 받아 안았다. 서


준의 뒤에서는 다른 팀원들과, 서현이 웃는 낯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
다.
시간도 많이 늦었는데 어째서 서준이랑 서현이가 여기 있는 걸까. 재호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길게 뻗은 시침과 분침이 각
각 “6”과 “11”이라는 숫자를 명백히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보니 사무실 팀원들의 책상 위에도 작성하다 만 서면 뭉치와 함께 낯
선 쿠키 박스가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선물도
하나씩 사 들고 온 모양이었다.
재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제 팔에 매달린 서준을 조심히 떼어 냈다.

“ 내일 1교시에 수업도 있지 않니? 시간도 늦었는데 이 먼 데까지 굳이….”


“에이, 팀장님, 왜 그러세요! 애들이 기껏 퇴근 시간에 맞춰서 아빠랑 같이
가겠다고 이런 데까지 와 줬는데, 기특하기도 하지. 빨리 들어가 보세요.”
“아니,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쓰읍! 그러는 거 아니에요, 팀장님. 서면은 집에서도 충분히 작성하실 수


있잖아요. 여기 일은 제가 대충 마무리할 테니까 빨리 가 보세요!”

오늘 하루 종일 재호와 함께 다녔던 남자가 재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좋


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고 눈을 찡긋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그 행태에 일순 서준과 서현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곧 서준과 서현은 생긋 웃으면서 재호의 팔을 잡
아 이끌기 시작했다.

***

“하아, 으응, 으, 흐읏, 으응……!”


“아빠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요.”
아무리 남자 좆에 박히고 싶어 안달이 났다지만 어떻게 저희 앞에서 그렇
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새끼랑 노닥거리는 꼴을 보일 수가 있어요? 네? 저
희가 이렇게 아빠를 사랑하는 걸 아시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진 사랑, 이라는 말 한마디에 재호의 몸이 한 번 크
게 흔들렸다.
서준은 그런 재호를 비웃으면서 얇은 셔츠 아래 두툼하게 올라온 가슴을
세게 움키고, 손에 힘을 주어 몇 번이고 주물렀다.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
는 난폭한 애무에 재호의 입술 사이로 아윽, 하고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용히 좀 해 주시겠어요, 아빠? 지하철 안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굴면 민


폐잖아요. 그도 아니면 이렇게 음탕하게 구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이고 싶기
라도 한 건가요?”

작은 목소리로 재호를 질책하는 동시에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지하철에는 빈 좌석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승객이라
고 해 봤자 어차피 반대쪽 끝에 앉아 드문드문 졸거나, 휴대폰 화면만 노려
보고 있는 사람 두어 명이 전부였다. 서현은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가 귓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칸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최면이 제대로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서현은 비로소 마음 놓고 서준의 괴롭힘에 동참했다.
서현은 재호를 억지로 일으켜 지하철 손잡이에 기대도록 한 뒤, 재호의 뒤
에 서서 바지 너머로 꽉 다물려 있는 입구 위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의도가 다분한 손길이었다.
흐 으으… 읏….”
“ ,

“제가 회사에서 퇴근하기 전에는 언제나 뒷구멍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오


라고 했었죠. 그 약속은 제대로 지키셨어요, 아빠?”
“흐, 읏… 네, 네에… 서준이랑, 서현이한테 예쁨받고 싶어서….”

“참 잘했어요. 가뜩이나 헐렁한 구멍이 더럽기까지 하면 박아 줄 맛이 안


나니까 앞으로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다녀야 해요, 알았죠?”?

다정하기 그지없는 투로 지껄여지는 능욕에 재호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


였다.
서준과 서현은 틈만 나면 재호더러 너무 사용을 많이 했더니 뒷구멍이 닳
고 닳아서 조이는 맛이 없다며, 더 노력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박아 주지 않
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협박을 하곤 했는데 재호는 둘이 그럴 때마다 벌벌 떨
면서 서현이나 서준의 옷자락을 붙잡고는 했다.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떨리는 목소
리로 빌어 오는 재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서준은 쓰게 웃고는 했다.
그것은 서준의 뒤틀린 심술이 반영된 능욕이기도 했다. 십수 년을 재호에
게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일념 하나로 발버둥치며 살아왔던 서준은, 처음 서
현이 이 정신 나간 제안을 해 왔을 때 가장 먼저 “아빠한테도 내가 여태껏 느
껴 왔던 감정을 똑같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서현에게 물었었다.
그리고 서현은 소중한 동생의 소원을 어렵지 않게 들어 줬다.
“아빠는 이제부터 저희에게 버림받는 것을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워하게
될 거예요. 이 야해 빠진 몸은 이제 저희에게 봉사하는 것 이외에는 쓸모가
없으니까. 저희한테 버려지면 아빠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알았죠, 아빠?”

서현이 처음으로 재호에게 걸었던 암시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말 그대


로 재호는 최면에 걸릴 때마다 서준과 서현에게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며
필사적으로 천박한 아양을 떨고, 허리를 흔들면서 제발 버리지만 말아 달라
고 애원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평소의 냉하고 쌀쌀맞은 재호와는 도저
히 동일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갭이었다.
서현은 그 극단적인 차이에 더없이 흥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해했다.
오래전부터 가져 왔던 의아함이었다. 의도했던 결과이기는 했지만, 단순히
최면 하나만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는 아버지가 보이는 불안감이 깊이를 가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아빠는 정말로 평소에도 내심 나랑 서준이가 떠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오셨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불안감이 최면에 걸려 있을 때도 이런 식으로 표출되는 게 아닐
까.
아주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지만, 서현은 그것을 굳이 서준에게까지 말해
주지는 않았다.
저와 똑 닮은 동생이 안달복달해 가며 아버지에게 목을 매는 모습을 구경
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랑 그 새끼, 엄청 친해 보이더라.”

서준은 재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채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렸


다.
서현은 느긋하게 웃으면서 재호의 바지 안으로 한 손을 집어넣었다. 미끈
하게 젖은 귀두 부근을 세게 붙잡고 쓸어내려 주자 재호의 입에서부터 히익,
하는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 별수 없잖아. 아빠랑 십 년 넘게 같이 일하셨다더라. 로스쿨도 같이 다니


셨대. 친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마음에 안 들어.”

“나도. 아빠, 듣고 계신 거예요?”

서준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데 어쩌면 좋죠.


귓가에서 낮게 속삭여 오는 목소리에 재호는 흠칫거리면서 서준의 눈치를
보다가, 서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입술을 지퍼 위에 가져다 대었다.
마치 이렇게 하면 그의 기분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서준은 재호를 싸늘하게 식은 눈초리로 내려다보며 밀어냈다.
명백한 거부의 손짓이었다. 재호의 말끔한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그러나 서준의 시선이 한순간 고개를 축 늘어뜨린 두어 명의 승객에게 향
했던 것을 눈치챈 서현은 낮게 웃었다.
동생은 재호의 흐트러진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물론 서현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 해도 서준의 독점욕에는
조금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아무리 저들은 최면에 걸려 있기 때문에 아빠가 뭘 하든 간에 전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말을 해 줘도 귓등으로도 처 듣지를 않으니 원.
공개 플레이도 그 나름대로 끌리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서현으로서는 서
준의 꽉 막힌 집착이 유치하면서도 안타깝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
끼는 동생에게 그 정도쯤은 뭐 양보를 해 주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서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재호를 바닥에서부터 일으켜 세웠다.

“똑바로 서.”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재호는 숨을 들이키며 가능한 한 허리를 뻣뻣하


게 세우려고 노력했다.
서현은 주머니 속에서 동그란 알 모양의 구체를 하나 꺼내든 뒤, 그것을 느
릿하게 재호의 은밀한 부위 위로 문지르다가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자
칸에 남아 있던 두어 명의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벌떡 일어나서 우
르르 내리거나,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이제 됐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거면 처음부터 진작 이러지 그랬어.”
서준은 서현을 매섭게 흘겨 봤으나, 서현은 그 비난 어린 눈빛에도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이었다.
그는 사람이 있는 편을 조금 더 선호했다. 재호와 자신들의 모습을 인식하
지는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은 공간 안에 타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최
면에 걸린 재호의 몸은 무의식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인형 주제에 사회적인 체면을 신경 쓸 만한 일말의 정신력이 남아 있다는
것이 항상 같잖으면서도 귀엽게 느껴져서 좋아했는데.
서현은 자기네들이 내려야 할 역이 앞으로 여섯 정거장쯤 남은 것을 확인
한 뒤, 에그를 들고 있는 재호의 손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 도착하기 전까지 아빠가 아빠 손으로 직접 뒷구멍에 넣는 거예요, 알았


죠?”

제대로 못 해내면 벌을 줄 거니까. 귓가에서 다정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재


호는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현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 에그는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재호가 끙끙거
리면서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쥐고 있던 장난감을 간신히 내벽 안쪽으로
밀어 넣자마자 서현은 두 번째를 재호에게 내밀었다.
두 개가 세 개, 그리고 세 개가 네 개가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타원형의 구
체가 제 손으로 하나씩 안쪽에 밀려 들어가 자리를 잡을 때마다 재호는 끙끙
거리면서 고개를 뒤흔들었다.
뱃속에서 단단한 구체가 서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어 가며 부딪히는 것
이 지나칠 정도로 생경하게 느껴졌다. 배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과, 맨 처음
에 넣었던 에그가 깊숙이 들어가 전립선을 배려 없이 뭉개 오는 쾌감이 겹쳐
졌다.
재호는 움찔거리면서 자신의 배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서현은 재호의 사정
따위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네 번째 알이 재호의 내벽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마자 재호의 손에 에그 하나를 더 놓아 주었다.

“마지막이에요. 그래도 다행히 도착하기 전에는 끝낼 수 있겠네요.”


“흐, 으으… 아, 안 돼……제발…….”

제발, 용서해 주세요, 흐읏, 하, 한 번만 봐 주세요, 더, 더 못 너어요, 힉, 넣


으면, 배가 아파서….
재호는 혀가 꼬여 뭉개진 발음으로 필사적으로 애원하며 서준의 옷깃을 붙
잡고 매달렸으나, 서준은 재호의 손길을 매정하게 내치고 자리에서 일어났
다.
곧 짜악, 하고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거센 마찰음이 좁은 칸 안에 선명하게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재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새하얗던 오른쪽 뺨이 조금씩 붉게 달아오르고, 얇은 은테 안경이 저 멀리
로 날아가는 광경을 구경하며 서현은 느릿하게 웃었다.

“더 못 넣어요? 지금 아빠한테 거부할 권리 같은 게 있는 줄 알아요?”


“흐, 읏… 으윽…….”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서 마저 넣으세요.”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허겁지겁 비틀거리던 몸을 바로 세우고,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 가며 허벅지 사이로 에그를 밀어 넣는 모습은 일견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둘 중 그 누구도 재호를 위로하거나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벌써부터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서현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아버지는 고통과 억압을 싫어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니, 굳이 어느 쪽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면 싫어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쪽에 훨씬 더 가까웠다.
최면을 걸면서 약간의 조정을 가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조정 이전에도 재호
의 몸은 엉덩이를 거세게 얻어맞거나, 얇은 가죽 목줄로 목이 졸리거나, 다
리 근육이 저릿저릿하게 아려 올 때까지 나체로 무릎을 꿇고 벌을 서는 것
따위의 도착적인 상황에 흥분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따귀를 때리는 것 역시도 일종의 플레이로 볼 수는
있겠으나, 아버지가 흥분감에 움찔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기색을 띠
고 있는 것이 뻔히 보였기에 서현은 서준을 살짝 흘겨봤다.
아빠도 내가 아빠를 사랑하는 만큼만 나를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니면서 이딴 식으로 대하면 대체 어쩌라는 건지, 원.
서현은 생긋 웃으면서 입구 위에서 배회하고 있는 재호의 손을 제 손으로
잡은 뒤 꾹 내리눌러 주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에그까지 안쪽을 비집고 들
어차는 버거운 감각에 재호는 히잇, 하고 천박한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움츠
렸다.
뺨을 얻어맞은 게 어지간히도 좋았던 건지, 아까부터 반쯤 서 있던 재호의
성기에서는 이미 투명한 액이 조금씩 울컥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재호가 그러
거나 말거나 서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재호를 추슬러 주기 시작했다.
반쯤 내려가 있던 정장 바지와 속옷을 올린 뒤 바지 버클을 채워 주고, 흐트
러진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고, 비뚤어져 있던 넥타이까지 바로잡아 주자
붉게 부풀어 오른 볼과 실종된 안경만 제외하면 대략 지하철에 올라타던 때
와 똑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누가 봐도 도저히 뒷구멍으로 장난감을 다섯 개
나 삼키고 있는 음탕한 남자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서
현은 낮게 웃었다.

자 이제 아까 전에 떨어뜨렸던 안경을 주워 오셔야죠, 아빠. 아빠는 눈이


“ ,
나빠서 안경이 없으면 업무를 못 보시잖아요?”

어서, 하고 재촉하는 목소리에 재호는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하지만 그 필사적인 몸짓조차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잠시간 재호가 지하
철 손잡이에 몸을 기대어 가며 걸어가는 꼴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며 킥킥
대던 서현은 곧 주머니 속에서 각자 작은 리모콘 하나씩을 꺼내 들었다.
맨 아래 위치한 빨간색 전원 버튼을 누르자마자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재호는 자지러지면서 그 자리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흐으윽……!!”

이번 역은 선릉역, 선릉역입니다, 하는 기계적인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내려야 할 역이 두 정거장밖에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서준은 그 역시도 서
현을 따라 진동의 세기를 최대치로 올렸다. 하필 민감한 부위를 딱 짓누르고
있던 에그의 움직임이 더 심해지는 바람에 재호는 속절없이 몸을 웅크린 채
로 벌벌 떨었다.
거센 진동이 몸 안쪽 깊숙한 곳의 내장까지 들쑤시고 다니며 망가뜨리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고, 그 착각은 가뜩이나 이지러져 있던 재호의
머릿속을 한층 더 진창으로 밀어 넣었다.
도저히 이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해
도 후들거리는 다리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을 이 이
상 화나게 만들 수는 없었기에 재호는 어쩔 수 없이 손과 무릎을 이용해서
하루 종일 몇 명의 사람들이 밟고 지나갔을지 모를 더러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짐승 이하의 비참한 몰골이라고 생각하며 서준은 비뚜름하게 웃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시면 도착하기 전까지 못 가져오실지도 몰라요, 아빠.


그러면 큰일 아니에요? 주말 동안 아빠가 그렇게 좋아하시는 일을 못 하게
되잖아요.”

항상 제가 잠깐 책 한 권만 같이 읽어 달라고, 아니 다만 십 분이라도 좋으
니 공원에 산책이라도 함께 나가 달라고 울면서 매달려도 아빠는 일이 더 중
요하다면서 저를 내쳤죠.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것일지 모르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서준은 자리에
서 일어났다. 저벅거리면서 다가오는 발소리에 재호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
더 빨라졌다.
입술 사이로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타액이 눈물과 뒤섞인 채로 주륵, 흘러
내렸다. 간신히 은빛의 안경이 떨어져 있는 곳까지 도달한 재호는 그 끄트머
리를 입으로 살짝 문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재호
의 잿빛 정장 바지 한가운데가 축축하게 얼룩진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런 꼴로 대체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려고 이러시는 걸까. 밝히는 데에도


정도가 있어야지….”

질책하는 듯한 중얼거림이었지만 그런 것 치고 서준의 표정은 아까보다 한


결 풀어져 있었다.
서준은 바닥에서 바르작거리고 있던 재호를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얇은
입술 사이로 물려 있는 안경을 빼내어 재호의 얼굴 위로 씌워 주었다.
그렇게 하자 서준은 금방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버지의 모습과 다시금
마주할 수 있었다.

“…… 역시 이게 좀 더 낫네.”
한참이나 황홀하다는 듯 재호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서준은 발꿈치를 살짝
들어, 재호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따스한 살결이 맞대어지고 아들의 혀가 잇새로 비집고 들어오는데도 재호
는 별다른 반항도 없이 간헐적으로 헐떡이거나, 팔을 들어 서준의 목에 두를
뿐이었다. 그 유순한 몸짓은 서준의 들끓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서도 동시
에 끔찍한 허무함을 느끼게 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재호의 모습을 한 인형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재호의 애
정이었으니까.
열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멈춰 서는 것과 동시에 목표했던 역에 도착했음
을 알려 주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현은 서준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내리
라며 손짓했다.
서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겹쳤던 입술을 떼어낸 뒤, 재호를 문 쪽으로 인도
했다. 여즉 휘청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현은 생긋 미소지었다.

“걱정 마, 곧 원하는 대로 될 거니까.”

서준은 서현에게 그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


다. 서현 역시도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호를 품에 꼭 껴안았다.
붉은 기 도는 입술을 요사스럽게 휘어 가며 서현은 재호의 귓가에 어투만
다정한 말들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에요, 아빠. 정신이 돌아와도 아빠는 안쪽
“ ,
에 뭔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는 없어요. 장난감을 물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 그것이 주는 쾌감만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
리고 집에 가는 동안 그 야해 빠진 뒷구멍은 열심히 조이고 있어야 해요, 알
았죠? 더러운 액이 묻은 알이 길가에 갑자기 떨어지기라도 하면 민폐잖아
요.”

혹시나 떨어뜨리시면 입으로 주워서 집으로 가는 내내 물고 있도록 할 거


예요.
서현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마지막 한마디 협박을 중얼거린 뒤, 재호가
두려운 눈빛으로 수긍의 의사를 보이자마자 제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꾹 눌
렀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정신을 되찾은 이후로도 재호는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얇은 안


경알 너머 잿빛 눈동자가 혼란스러운 듯 플랫폼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꼴을 구경하며 서현은 음산하게 웃었다.
혼란스러울 만도 했다. 분명히 회사 근처 역에서 간신히 막차를 잡아 올라
탔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자택이 코앞인 상황이라니, 그런 상황에서 대체 누
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재호를 조금만 더 세심하게 조정한다면 기억 간에 생기는 공백이나, 자신
의 몸에 생긴 이상 현상 따위를 못 감지하게 하는 것 정도야 일도 아니겠지
만 서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
었다.
게다가 원래 재호같이 완벽한 남자일수록 일상에서 조금만 뜻대로 흘러가
지 않는 상황이 생겨도 극심하게 망가지고, 무너지는 법이다.
시간의 흐름에 공백이 생기고, 정신을 차려 보니 갔던 기억조차 없는 낯선
장소에 도착해 있고, 일상 속에서 시시때때로 차마 입에 담기도 파렴치할 정
도인 성적 자극이 찾아온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정신이 나가 버리고도
남았을 법한 일들이었지만 재호는 자신에게 찾아온 영문 모를 불운을 끈질
기게도 버텨 냈다.
하지만 버텨 낸다고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재호의 정신은 아주 조
금씩, 하지만 그만큼이나 착실하게 꾸준히 갉아 먹히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개인 PC의 검색기록에는 간혹 정신질환의 초기 증상 혹은
몽유병 증상 따위의 어울리지 않는 검색어가 띄워지곤 했고, 하루는 쌍둥이
들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는 틈을 타 근처의 정신과에 조심스레 전화로 상담
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현은 그러한 붕괴의 조짐들이 보일 때
마다 재호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오랫동안 버텨 줬으면 했다. 더 사랑스럽게 굴어 줬으면 했다.
최면에 걸렸을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완전히 줄이 끊어진
채 자기들 쌍둥이에게만 의존하는 재호를 보고 싶었다.
불쌍한 아버지 같으니라고. 어쩌다 나 같은 놈에게 걸려서 이런 고생을 하
게 되신 걸까.
어쩌다 하필 우리 엄마랑 재혼을 하신 걸까.
그러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을.
서현은 느릿하게, 마치 정말로 재호를 위해 주기라도 하는 척 비틀거리는
재호를 부축해 주며 한쪽 손으로 부러 재호의 아랫배 위를 꾹 눌렀다.
정장 재킷과 셔츠를 갖춰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 탄탄하게 갈라져
있는 복근의 감촉이 서현의 손바닥에 선명하게 닿아 왔다.
서현은 그 감촉에 변태적인 흥분을 느끼며 다시 한번 손에 세게 힘을 주었
다.
그 안에 품고 있는 음탕한 장난감들이 내벽에 한층 더 엉망으로 짓뭉개질
수 있도록.

“히이잇……!”

급작스러운 혼란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낯선 압박감과 공포, 그리고 지독


할 정도로 저릿한 흥분이었다.
마치 벼락이 내리치는 것처럼 뱃속을 강타해 오는 쾌감에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재호는 그 자리에 꼴사납게 쓰러지
듯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자 양옆에서 걱정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빠!”
“아빠, 괜찮으세요?”

“흐, 윽……아, 아니, 흐윽, 흣, 하윽!”


뭐라고 말이라도 해서 애들이 안심하게 해 줘야 하는데, 몸이 도저히 제 뜻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조금만 다리에 힘을 주려고 해도 온몸이 덜덜 떨
려 와서 버틸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야 할 터인 은밀한 곳을 동그랗고, 딱딱한
무기질의 구체가 잔뜩 채우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안에 뭔가 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버거운데, 거기에 더해서 개중
두세 개가 내벽 안쪽 극점을 짓누른 채로 밭게 진동하는 통에 재호는 그야말
로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군가가 툭 튀어나온 민감한 전립선 부
근을 마구잡이로, 아무런 배려 없이 단단한 손바닥으로 내리쳐 가며 벌을 주
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치 한계의 한계까지 팽팽하게 당겨 있던 실이 한 번의 가위질로 끊어지
는 것과도 같이, 재호의 사고는 거기에서 툭 끊겨나갔다.
극심한 쾌감이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는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쾌감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어째서 이렇게 배 안쪽이 가득
들어차서 버거운 느낌이 드는 것인지 재호는 알지 못했다.
제 몸 안에 정체 모를 이물질이 들어와 있는 것 같으면 당장 역 내부의 화장
실에라도 달려가서 확인을 하는 게 상식이겠지만 지금의 재호에게는 그런
최소한의 상식조차도 없었다.
제정신인 채로, ‘아버지’인 채로도 바닥에 널부러져 음란하게 헐떡이는 재
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서준과 서현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움찔거리는 단단한 몸을 바닥에 처박은 뒤
엉덩이 안쪽을 엉망으로 범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서준은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 , 흐 읏… 괘, 괜찮… 그냥, 흐윽, 조, 조금 피곤해서…….”

그러한 와중에도 괜찮냐고 물어본 자기네들의 물음에는 성실하게 대답하


는 것이 어찌 보면 대단할 정도였다.

‘ 척 보기에도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제 속으로만 작게 중얼거리면서 서현은 킥킥 웃었다.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은 짙게 스며든 쾌락 때문에 노곤하게 풀어져 있었
고, 눈가는 잔뜩 붉어진 채 물기를 품고 있었으며,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끈적한 액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창에게나 어울릴 법한 헤픈 얼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준은 짐짓 다정
한 척 재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재호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손과 응급실에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양


쪽 다 완강하게 거부하고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했다. 제 몸에 무슨 일이
있던 간에 거의 스무 살이나 어린 아들들에게 의지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축해 드릴까요, 아빠?”

재호는 다시 한번 약하게 고개를 내저었으나, 둘은 재호의 의사 따위 별반


상관없다는 듯 간신히 서 있는 재호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실수인 양 꾸
며내어 손으로 재호의 두툼한 가슴이나 허벅지, 그리고 드물게도 재호가 성
감대로 느끼는 손목 안쪽 부근을 쓸어내려 주자 재호가 자지러지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재호는 한쪽 손을 들어 흘러나오는 신음을 틀어막은 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실수로라도 에그를 흘리지 않도록 입구를 잘 조이라고 명령했던 것이 각인
된 탓에 재호는 걷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구멍을 오므리려 애썼다. 그 때문
에 엉덩이가 단단하게 조여진 채 움찔거리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서
재호의 뒤를 걸어가던 서현은 애써 웃음을 참아야 했다.

***

재호는 뒤늦게 자신의 바지 안쪽이 정체 모를 액체로 축축하게 젖어 있다


는 사실을 눈치 챘다.
미끈거리는 천이 반쯤 발기한 성기에 들러붙어 오는 감각이 끔찍했다. 정
체를 모르겠다고는 했지만, 그 익숙한 질척임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머리
로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절망감은 더더욱 심해져 갔다.
대체 의식이 없는 사이에?재호는 애써 자신이 열차 안에서 잠이라도 들었
겠거니,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 기억이 없는 거겠거니 생각하고 있었
다?얼마나 싸질러 댄 것인지 정장 바지 한가운데가 마치 소변을 지리기라도
한 것처럼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재호는 황급히 들고 있던 서류 가방으로 자신의 앞을 살짝 가렸다. 어두워
서 누가 지나간다 하더라도 잘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모습으로 개방
된 길거리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재호에게는 수치스러운 일로 다가왔다.
어째서 몸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대체 지하철에 탑승해서 돌아오는 그 짧은 시간 사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신의 기억에도 없는 기분 나쁜 사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재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개중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이 재호를 한층 더 절망스럽
게 했다. 내가 정말로 미쳐 버린 거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상념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것
조차도 버거운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다가는 다리가 풀려 버
릴 것만 같았다.
재호에게는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다. 그는 더러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싶지도 않았고, 그 꼴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까 역에서 했던 것만으로도 족했다.
재호는 이를 악물었다. 평소에는 오가는 데에 많아 봤자 십 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짧은 거리가 더럽게 멀게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걷는 것이 아까
보다 한층 더 힘들어진 것 같았다.

“혹시 열이라도 나시는 거 아니에요, 아빠?”


그렇게 물으면서 몸에, 이마에 달라붙어 오는 쌍둥이들의 손이 너무도 갑
갑했다. 몸 안을 치고 올라오는 부덕한 흥분을 참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양옆에서 쌍둥이들이 말까지 걸어 오니 정말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걸어오는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재호는 비틀거
리는 와중에도 꾸준히 대답을 해 주었고, 그 사이마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
닌 것만 같은 달뜬 소리가 섞여 나왔다.
제 입에서 흘러나오는 추잡한 소리가 듣기 괴로웠다. 귀를 틀어막아 버리
고 싶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서준과 서현에게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재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누구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부정의 몸짓을 내비쳤다.
그런 것은 천하의 파렴치한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잠시나
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냥, 조금…윽, 피곤한 것뿐이니까… 괜, 찮…….”


“역시 열이 좀 나는 것 같은데.”

“다 왔어요, 아빠. 엘리베이터만 기다리면 되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근 삼십팔 년 동안이나 단 일 분, 일 초도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적 없이 기
계처럼 딱딱 움직여 주던 몸이었다. 그랬던 몸이 왜 하필 지금 이딴 식으로
반응하는 건지.
서준과 서현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배 속이 뜨거워졌다. 그
깨달음은 중간에 뚝 끊어진 기억보다도 훨씬 더 재호를 두렵게 했다.
일단 오늘은 푹 자고, 실례인 것은 알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대표
님께 연락을 드려서 가능한 한 빨리 휴가를 낸 뒤 정신과든 뭐든 가 보는 것
이 가장 나을 것 같았다.
재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벽에 상체를 살짝 기대고, 몸을 꽉 조
이고 있던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고 보니 넥타이가 아침에 나갈 때 맸던 것보다 조금 더 꽉 조여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감각이 개 혹은 고양이 따위의 목줄을 연상시켜서 재호는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아침에 출근한 뒤로 넥타이를 고쳐 맨 기억은 없는데.
하지만 지금이 이딴 하찮은 것에 신경 쓸 때는 아니라는 생각에 재호는 서
둘러 넥타이를 마저 풀고, 달뜬 한숨을 내쉬었다.


“…… .”

평소에는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고 넘어갔던 엘리베이터 벽면의 거울이 오


늘따라 유독 불편하게 느껴졌다. 매끈한 표면 위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훑어
보던 재호는 무의식적으로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땀에 젖어 반쯤 투명해진 셔츠 아래로 부풀어 오른 유륜과, 달아오른 피부
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한두 번 봤던 자신의 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 광경이 지독히도
외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버린 탓에, 재호는 다급히 정장 자켓의 단추를 꽉
채워 올렸다.
양옆에 있던 서준과 서현이 동시에 덥지 않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 왔지
만 재호는 별 대답 없이 그 물음을 무시했다.
가족, 그것도 동성 가족 앞에서 이렇게 몸을 가리는 게 얼마나 웃긴 짓인지
는 재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이런 꼴을 계속 보이고 있
을 수는 없었다.
서준은 아버지가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을 보며 재호의 손
을 꼭 잡았다.

“아빠.”

저희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아무런 예고 없이 속삭여 오는 목소리에 재호는 작게 숨을 들이켰다. 흐윽,
하고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미약하게 새어 나왔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 ,
바보 같은 반문이라는 것은 재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가
족이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에도 타이밍이 필요하고 이유가 필요하
던가.
하지만 그 순간 가뜩이나 불편하던 배 속을 커다란 성기가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서, 느끼는 부분만을 엉망으로 찍어 누르는 감각이 온몸에 퍼져나가
는 바람에 재호는 헐떡이며 엘리베이터 손잡이를 부여잡았다.
간신히 쓰러지는 것만은 면했지만 눈가에 맺혀 있던 물기는 급기야 주륵
흘러내려 버렸다.
재호는 서둘러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아냈다. 옆에서 서현이 “그 정도로 힘드
시면 역시 응급실에 가는 게….” 라며 권유해 오는 목소리까지 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재호는 제 팔 위에 얹어진 서현의 손을 조금 거칠게 밀어내고는 문이 열리
자마자 성큼성큼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아랫배가 무겁고, 머리에 열이 올라서 어지럽고, 온몸이 자제할 수 없을 만
큼 떨려 와서 이제는 정말로 정신력 하나만으로 버티면서 걷는 것이나 다름
없을 지경이라 봐도 무방했다.
서준과 서현은 그런 아버지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갔다.

“ 들어가면 바로 푹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병원에도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일 같이 가는 게 어때요, 아빠?”
됐 다… 흐읏… 혼자, 갔다 올 테니, 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 ,

재호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다 상관없으니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 이건 피곤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가서 하루만 푹 자고, 내일은 일어
나서 감기약이라도 한 알 먹은 뒤 상담을 받고 적절한 약을 처방받으면 이
상황도 분명 끝날 것이다. 억지로 합리화를 해 가며 재호는 문고리 위로 손
을 뻗었다.
도어락 패드를 누르는 손이 자꾸만 덜덜 떨렸다.
0,9,2,1.

땀이 흘러 그런지 손가락이 자꾸만 미끄러졌고, 재호는 답지 않게 짜증을


내면서 키패드를 리셋한 뒤 다시 한번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를 악물고 자기
네들의 생일을 눌러 가는 재호를 지켜보며 서준과 서현은 주머니 속 리모콘
을 꾹 쥐었다.
삐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그들은 진동의 세기를 최대치로 올려
버렸다.

“흐아아아악!!”

그와 동시에 사랑이라는 저주스러운 단어를 속삭여 오는 목소리에 재호는


현관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거세게 진동하는 에그가 그대로 전립선에 콱, 틀어박히는 감각이 재호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 감각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남자에게 박혀 본 적도, 그렇게 당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으며 필
연적으로 그에 대한 지식도 전무했다.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인지, 왜 이것 때문에 성감이 증폭되고 쾌락이 느껴지
는 것인지. 제 몸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쌍둥이들의 뜻대로 개발당해 왔다는
것을 모르는 재호는, 알지 못하는 감각에 몸을 말고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머릿속에서 새하얗게 폭죽이 터졌
다. 아까부터 바짝 열을 올리고 있던 성기의 끝에서부터 끝끝내 묽은 정액이
주륵거리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바지 속이 한층 더 척척하게 젖어 가는
것을 느끼며 재호는 자괴감에 빠졌다.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서 하다못해
침실까지라도 가야 하는데….


“…… ?”

거기까지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커다란 손이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현


관 바로 앞의 바닥에 내리눌렀다.
땀과 눈물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 바닥에 비벼진 탓에 마룻바닥이 정체 모
를 액체로 질척하게 젖어 들어갔다. 제가 흘린 더러운 체액 위로 단정한 이
목구비가, 곧게 뻗은 콧날과 살짝 갈라진 입술이 엉망으로 뭉개지는 느낌이
소름 끼쳤다. 재호는 당황하며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
다.
귓가에서 잔혹한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시야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재호의 눈은 완전히 혼탁해져 있었다.


서준과 서현은 신발을 벗고 현관 안에 들어섰다. 재호는 그 뒤에서 꿇어앉
은 채 둘이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을 내려 주기를 기다렸다. 차갑게 굳어 있
던 얼굴이 유순하게 풀려서 안절부절못해 하는 그 나약한 모습이 너무도 마
음에 들어, 서준은 웃으면서 검지를 두어 번 위쪽으로 까닥였다.
일어나서 따라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현과 서준은 침대 위로 재호를 밀어 눕혔다.
둘은 이 집 안의 수많은 공간 중에서도 침실에서 재호를 범하는 걸 제일 선
호했다.
드넓은 집에서 부엌이나 거실 등의 공용 공간을 제외한 방 네 개 중 두 개는
각각 서현과 서준의 방이었고, 하나는 쌍둥이들의 공부방 겸 서재로 사용되
고 있었기에 한쪽 구석에 작은 업무용 책상이 놓여 있는 이 안방만이 오로지
온전하게 재호 하나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깔끔하고, 단정하고, 잘 정돈된, 그야말로 재호라는 남자 그 자체를 8평짜
리 방으로 빚어낸 듯한 공간.
쌍둥이들은 그러한 공간을 엉망으로 짓밟고 더럽히는 데에서 진심 어린 희
열을 느꼈다. 재호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신과 아들들의 정액이 섞여 얼룩
졌던 시트 위에서 잠을 청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준과 서현은 마치
사정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는 했다.
매트리스 위에 쓰러진 채 열기 어린 숨결을 내뱉는 재호의 모습에 서준의
얼굴 위로 조금 안달 난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오늘은 내가 먼저 한다.”
“항상 네가 먼저 하잖아. 욕심이 과한 거 아냐?”

동생을 타박하면서도 서현은 순순히 몸을 틀어 재호의 얼굴이 제 다리 사


이에 위치하도록 자리를 잡았다. 서준은 침대 위에 올라가서 재호의 허벅지
를 가볍게 때렸다. 갑작스레 닿아 온 따가운 자극에 재호의 몸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자세 제대로 잡아요, 아빠. 이 이상 혼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재호는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혼나는 것은 싫었다.


서현과 서준의 성기 봉사해서 정액을 받아먹고, 상으로 둘의 위에서 허리
를 흔드는 것은 언제나 온전히 쾌락만을 안겨 줬지만 훈육은 쾌감과 공포를
동반했다.
음란하기 그지없는 재호의 몸뚱이는 그 본능적인 두려움조차도 기꺼이 손
가락 끝이 아려 오는 열락으로 치환해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나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그 지경까지 몰렸을 때의 이야기였다. 양날의 검 같
은 자극적인 흥분을 위해 일부러 서준의 화를 돋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
었다.
때문에 재호는 얌전히 입을 서현의 지퍼 위에 가져다 대고, 엎드린 자세로
허리를 들어 뻣뻣한 천으로 꽉 감싸인 둔부가 서준에게 최대한 잘 드러나도
록 했다. 분명 저번에 가르침을 받은 그대로 했건만 서준은 버릇이 없다며
재호의 엉덩이를 거세게 내리쳤다.

“ 저번에도 가르쳐 줬는데 영 발전이 없네. 분명 대답할 때는 네, 아니오로


똑바로 소리 내서 대답하라고 했잖아요. 저희 말이 말 같지 않았나 봐요, 아
빠?”
“죄, 죄송합니다…흐, 윽….”

여린 살갗 위로 퍼져나가는 저릿한 고통에 재호는 헐떡이며 무거운 몸을


뒤틀었다. 몇 번이고 교육을 했는데도 재호는 유독 제 목구멍 밖으로 소리를
내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마치 굴욕적인 순종의 표시가 적나라하게 공기 중으로 드러나 귓가에 닿아
오는 것이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 제 목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끙끙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모양새는 깜찍했지만 또 그만큼이나 건방지기도 했다.
그래서 재호는 보통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것을 통해 의사를 전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서준이 틈날 때마다 버릇이 없다며 질책을 하고 벌을 준 탓
에 요즈음은 아주 조금이나마 상태가 나아진 참이었다.
사실 버릇이 없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고, 실제 이유는 단순히 아버지
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는 것뿐이었지만.
다시 한번 재호의 볼기를 매섭게 내려친 뒤 서준은 재호더러 옷을 벗고, 구
멍을 벌려서 제게 드러내 보이라고 명령했다.
거만하게 떨어지는 지시를 듣자마자 재호는 기다렸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바지를 끌러 내렸다. 완전히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속옷과 함께 바지를
벗어 한쪽에 곱게 밀어 둔 뒤, 질척하게 젖은 회음과 붉게 부풀어오른 구멍
을 보여 주는 꼴이 음란했다. 있는 대로 힘을 줘서 꽉 다물린 분홍빛 입구를
매만지며 서준은 희미하게 웃었다.

“제가 벌리라고 했잖아요, 아빠. 야한 구멍을 벌려서 안쪽에 있는 걸 보여


주셔야죠. 이제 이런 것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해지신 거예요?”

그게 아니라는 것은 서현도, 서준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에그를


흘리지 말라는 아까의 명령은 아직도 유효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한계를 맞
이했던 내벽을 손으로 벌려 버리면 입구까지 꽉 들어차 있던 에그가 밀려 나
올 것이 뻔했기에 재호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서현은 다정하게 재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허락하는 말을 내려 주었다.

“이제 그건 뱉어 버려도 좋아요. 뱉고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지 않아요? 아니


면 알을 계속 품고 있는 게 더 좋아요? 하기야 이렇게 많이 싸지를 정도면 정
말 어지간히도 좋기는 좋았나 봐요.”
장난스레 젖은 속옷을 흔들면서 “이걸 대체 어쩌지. 기저귀라도 차고 다니
게 해야 하나? 그러고 싶어요, 아빠? 응?” 하고 나른하게 능욕해 오는 목소리
에 재호는 필사적으로 애교를 부리듯 턱을 서현의 고간에 문질렀다.
이런 장난감만 계속 물고 있는 것은 싫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조교로 인해
천박해진 몸뚱이는 무기질적인 플라스틱이 내벽에 부딪히는 감각조차도 좋
다고 흥분했지만 몇 번의 사정이 지나고 나서도 허전함은 계속되었다.
뜨겁고 커다란 것으로 엉망이 될 때까지 범해져 자지러지고 싶었다. 사랑
하는 아들들의 온기를 느끼면서 절정에 오르고 싶었다. 때문에 허락의 말을
들은 순간 재호는 간신히 벌벌 떠는 손을 들어 올려, 제 엉덩이를 활짝 벌렸
다.
하지만 재호의 손가락 마디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에그의 전선을 잡으려
고 하자마자 서준은 재호의 손등을 가볍게 찰싹, 내리쳤다.

“누가 알을 손으로 낳아요? 멍청한 거 티 내지 말고 제대로 하세요. 시간


은 십오 분 정도면 되려나.”

전선은 어디까지나 에그를 자력으로 못 빼내게 되었을 때의 대비책에 지나


지 않았다. 뒤에 밀어 넣은 네 개는 평범하게 무선 리모콘으로 진동을 조절
하는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맨 안쪽에 밀어 넣은 하나만큼은 전선까지 달려
있는 장난감이었다. 그것만 잡아당기면 앞에 자리한 나머지 것들까지 주륵
빠져나올 수 있도록.
물론 만에 하나 몸 깊숙이 자리한 에그를 못 빼내서 병원에 가게 되는 사태
가 생긴다 한들 그 때문에 수치스러워하는 얼굴조차도 꽤 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재호의 몸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서준의
강력한 의사표시 끝에 합의를 본 결과가 이것이었다.
재호는 잠시간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다가, 시간 내에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이대로 알아서 장난감이랑 놀게 내버려 두고 방에 가 버릴 거라는 서
현의 협박에 얼굴을 붉히며 배에 힘을 주었다.
애당초 입구에 거의 걸려 있다시피 했던 첫 번째와 두 번째 에그는 쉽사리
투둑, 하는 추잡한 소리와 함께 시트 위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재호의 성기에서 떨어진
반투명한 쿠퍼액이 깨끗한 시트를 척척히 적시는 것을 구경하며 서현은 낮
게 웃었다.

“ 이제 여기서 애가 나오면 우리 동생이 되는 거네요. 좋아요, 아빠? 우리 동


생 만들어 줄 수 있어서?”
“히잇……! 네, 네에……!”

동생, 만들고 시퍼요, 으응, 응. 아랫배를 꾹꾹 누르면서 쓰다듬어 오는 손


길에 재호는 울면서 더듬더듬 내뱉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
는 주제에 풀린 혀로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꼴이 아니꼬워 서준은 싸늘한 얼
굴로 새하얀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도록 갈겼다.
아릿하게 몰려오는 고통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입구가 움찔거리면서 오
므라들었다. 기껏 고개를 디밀기 시작했던 바이브레이터가 다시 쏙 들어가
버리는 모양새에 서준은 작게 혀를 찼다.
“ 동생을 만들긴 뭘 만들어. 만들어 봤자 아빠 같은 사람이 제대로 키워 주
기나 하겠어요? 우리한테 했던 꼬라지를 보면 뻔하지.”
“죄, 죄송해요, 제송, 흐아앙, 앙, 아흑……!!”

간격을 거의 두지 않고 매섭게 떨어져 오는 매질에 재호는 한껏 몸을 움츠


렸다. 히익, 힉, 하고 앓는 소리 사이로 간헐적인 애원이 흘러나왔다.
다음에는 열심히 할게요, 죄송해요, 제송해요, 하고 비는 목소리에 서준은
한층 더 험악하게 눈살을 찌푸렸으나 서현은 싱긋 웃으면서 그런 동생을 나
무랐다.

“너무 그러지 마. 우리한테 그렇게 했으니 다음부터는 좀 더 잘하시겠지.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죠, 아빠?”

서현은 재호의 머리를 조금 세게 헝클어뜨렸다. 말로는 동생을 나무란다지


만 사실은 재호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나 진배없는 능욕이었다.

“흐으, 으응, 응, 네, 네에…….”

재호는 옅게 흐느끼면서 복근이 움푹 패일 정도로 항문에 힘을 주었다.


한껏 시달린 입구가 움찔거리면서 느리게 개폐를 반복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새하얀 구체의 끝이 입구에 걸릴 때마다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던
주름이 팽팽하게 벌어졌다. 붉게 손자국이 난 채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구경
하며 서준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손을 뻗어 곧은 손가락으로 근육이 잘 짜인 등을 쓸어내려 주자 그 사이로
재호의 떨림이 선명하게 전해져 왔다. 시중에 떠돌아다니는 여느 어중간한
포르노보다도 훨씬 더 외설적인 광경이었다.

“오늘은 박아도 되지?”


“마음대로 해. 주말이잖아.”

마치 주말이면 아버지의 안에 성기를 처박아 넣고 흔들어도 괜찮다는 양


태평스러운 말투였다.

자 이건 아빠 드시라고 사 온 거예요.”
“ .

서현은 느긋이 중얼거리면서 재호의 벌어진 입 안으로 뭔가를 넣어 주었


다. 서준은 그게 뭔가 의아해하면서도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 새끼 하는 짓이야 뻔했다. 보나 마나 이상한 약 같은 거겠지, 서
준은 그리 생각하며 마지막 하나 남은 에그의 전선을 붙잡았다. 손에 힘을
주고 확 당겨 빼내 버리자 배설감과 동시에 재호가 하앙, 하고 야한 소리를
내며 서준이 앉아 있는 쪽으로 기대감 어린 시선을 돌렸다.
서준은 느긋하게 재호가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아까부터 알을 낳으려고
아둥바둥하던 재호의 치태를 구경하느라 바짝 발기해 있던 성기의 끝을 재
호의 입구에 맞췄다. 어차피 재호가 바라는 것이라고 해 봤자 하나밖에 없었
기 때문이었다.

‘ 시키는 대로 다 했으니까 박아 주세요.’?

어쩌면 이렇게 야하고, 멍청하고, 원래의 아빠와는 무엇 하나도 닮은 점이


없는 걸까. 서준은 이를 악물면서 단번에 제 것을 박아 넣었다.

“ 하아아아앙!!”

갑작스럽고, 거친 삽입에 무너지려 하는 재호의 허리를 억지로 붙들어 올


린 채 서준은 난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빠듯하던
내벽은 한참 동안이나 두꺼운 바이브를 몇 개씩 물고 있었던 탓에 딱 기분이
좋을 정도로 눅진해져 있었다.
좆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흉기에 가까운 서준의 물건도 무리 없이 받아들인
채, 달라붙어 오는 내벽의 움직임에 서준은 재호를 비웃으며 단단하게 근육
이 오른 허리를 세게 움켰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거세게 쥐어 오는 악력에 재호가 밭은 숨을 들이켰
다.
커다란 것이 안쪽을 꽉 채워 오는 그 느낌만으로도 온몸이 찌릿찌릿하게
절정으로 치달았다. 붉게 달아올라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 아, 하는 백치나
낼 법한 소리와 함께 정신이 없어 미처 삼킬 생각조차 하지 못한 침이 흘러
내렸다. 집에 오는 길에 길바닥에서 몇 번이고 절정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
고 재호의 성기는 수치도 모르고 묽은 정액을 울컥울컥 뱉어내고 있었다.
점성이 낮은 새하얀 액체가 흘러내려 시트 위로 얕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음란함을 탓하면서, 서준은 봐주는 것 없이 제 성기를 재호의 안에 욱여
넣었다.

큿 벌써 갔네요, 아빠? 어지간히도, 크윽, 아들한테 쑤셔지는 게 좋으신


“ …
가 봐요…?”
“조, 조아요, 으응, 하앙, 서, 서준이 자지, 조아서, 흐응, 으응!!”

“어떻게 좋은 건데요, 윽… 알려 줘야, 아빠가 좋아하는 대로 해 줄 거 아


냐…네? 아빠, 아빠…….”

혹시나 서준이 성기를 제 안에서부터 빼내기라도 할까 봐 재호는 필사적으


로 엉덩이를 들썩여 가며 서준이 가르쳐 준 저속한 아양을 내뱉었다.

“서준이 자지, 아앙, 크고, 두꺼워서, 조아요, 하응, 쓸모없는 구멍을, 마음


껏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듣기라도 한다면 절로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난잡한 말들과 함께, 살


기둥이 질척이는 내벽과 마찰하면서 나는 찌꺽거리는 소리가 방 안 한가득
울려 퍼졌다.
거의 기절할 듯 몸을 경련하면서 재호는 붉어진 눈가로 서현을 올려다보았
다. 구해 달라는 건지, 그도 아니면 더 괴롭혀 달라고 하는 것인지 모를 물기
어린 눈빛에 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재호의 입술을 엄지로 쓰다듬어 주었다.

“ 가르쳐 준 것처럼 벌리시면 넣어 드릴게요, 아빠. 목구멍까지 열어 보세


요.”

야 크윽, 읏, 나보고는, 안 된다며, 윽…….”


“… ,

“방금 목캔디 드렸으니까 괜찮아.”

“……뭐?”

그럼 설마 아까 먹였던 그게 이상한 환각제도, 최음제도 아닌 목캔디였단


말인가.
대체 저게 무슨 개 논리인가 싶어 서준이 황당해하는 사이 서현은 재호의
머리칼을 붙잡고, 단숨에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입 안에서 버거울 정도
로 부피를 키워 가는 성기의 존재감에 약하게 기침을 하면서도 재호는 서현
의 것을 꾸역꾸역 끝까지 머금었다.
목구멍이 틀어막혀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인지 후으, 읍, 하는 막힌 소리가 한
계까지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서현은 마치 재호의 머리통이 제 전용 오나홀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리를
뒤로 뺐다가, 다시금 재호의 목구멍 안쪽을 깊숙이 범하기를 반복했다. 그와
동시에 한껏 풀어진 뒷구멍을 헤집고 들어오는 성기의 움직임에 재호는 속
절없이 흔들렸다.
“ 후읍! 흐읍, 흐윽, 흡, 크읍!!”
“흣… 하아. 엄청 익숙해 보이시네요, 아빠. 다른 데서 연습 좀 하셨나 봐
요? 저희 말고 다른 남자 좆도 물어 보신 거예요? 네, 아빠?”
“흐으읍……!”

재호는 제 입 안을 채우는 성기를 뱉어낼 생각도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제 나름대로는 대답을 하려고 입술을 우물거렸지만 입이 막힌 탓에 아이
오, 같은 이상한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좆을 받아들이느라 튀어나온 목젖 부근을 쓰다듬었다.
재호가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그러면 왜 이렇게 잘하는 건데요?”

재호에게 목구멍을 성기처럼 사용해서 사내에게 봉사하는 법을 가르친 것


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현이었다.
그 본인이 재호에게 그런 식의 힐난을 던지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했지만,
재호는 일말의 항의조차도 할 생각을 못한 채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혹시
나 그렇게 하면 기껏 오랜만에 물게 된 자지를 빼 버릴까 봐, 이 극상의 열락
을 빼앗기기라도 할까 봐.
이런 나이든 몸을 사용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감히 항의를 한다
니, 정말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자비 없이 몸속 깊숙한 곳에 있는 극점만을 노리고 쑤셔 오는 거친 움직임
에 재호는 울면서 필사적으로 허리를 흔들고, 목구멍을 조여 가며 서현과 서
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썼다.

“흐아, 아앙, 힉, 조아, 기분 조아요, 하응, 아, 더, 더 해 주세요, 제발, 서준


아 서현아……!”
,

교태 어린 목소리로 자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더 해 달라고 애원하는 그 모


습이 가증스러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성감을 동하게 했다.
가뜩이나 배려 없던 허리짓이 한층 더 거칠게 변하고, 심지어 그것마저도
좋다고 호응해 오는 몸짓에 서현과 서준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잠깐 재호에게 숨 쉴 틈을 주었던 서현이 다시 성기를 재호의 입 안에 처넣
는 것과 동시에 서준이 허리를 뒤로 물렸다가 제 것을 뿌리 끝까지 박아 넣
었다.
바짝 발기한 성기로 극점을 흉포하게 짓찧어 오는 감각에 재호는 입이 막
힌 채로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질렀다. 그 짓거리를 몇 번이고 반복하자 이내
서준 역시도 사정해서, 가뜩이나 척척하던 내벽 안쪽이 음란한 액으로 가득
적셔졌다.

“후우…….”
제 안에 몽글몽글하게 퍼져나가는 따스한 액체의 감촉을 느끼며 재호는 그
대로 쓰러질 뻔 했으나, 서준은 재호가 미처 매트리스 위에 기대기도 전에
그의 몸을 붙잡았다.

“이제 서현이 상대도 해 주셔야죠, 아빠. 아빠가 그렇게 없어서 환장하는


자지를 더 먹게 해 드릴게요. 고맙죠?”

하고 묻는 목소리에 재호는 힘없이 네에, 라고 대답하며 입꼬리를 살짝 끌


어올렸다.
미소를 짓는 데에 텅 비어 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아마 지금의 아버지
에게 사용해야 할 거라 생각하며 서준은 눈을 감고,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
다.
3. 반려

재호가 정신을 차린 것은 다음 날이 되고서도 오전 여덟 시를 넘어가는 시


점에서였다.
식은땀에 흠뻑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재호는 미간을 좁혔다. 어제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도어록 번호를 누르고, 현관 안에 발을 들였다가 넘어진 것까지는 기
억에 남아 있었는데. 아무래도 누적된 피로 때문에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정
신을 잃은 것 같았다.
퇴근하던 때의 착장이 그대로 입혀진 채 넥타이와 정장 재킷만 벗겨져 있
다는 것을 눈치챈 재호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하기야 아무리 다 컸다지만
아이들이 제 옷을 갈아입혀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귀찮기도 했을 거고.
평소라면 밖에서 입고 다니던 더러운 옷으로 침대에 눕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짜증을 냈겠지만, 지금은 그저 아직도 척척하게 남아 있는 다리 사이
의 젖은 흔적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데 감사할 따름이었다. 더불어
지독히 부끄러운 심정이 들기도 했지만.
물론 서현이 그 수치조차도 의도하고 부러 정액으로 젖은 속옷과 바지를
탈진한 상태의 재호에게 꼼꼼하게 입혀 주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
하는 재호였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몸을 일으키자 바깥에서 큰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걸
어오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 재호는 황급히 얇은 이불을 몸 위로 끌어올렸
다.

“아빠! 일어나셨어요?”
“아….”

벌컥 열어 젖혀진 안방 문 너머에서는 서준이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 채 환


하게 웃고 있었다.

“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괜…찮다. 어제도 말했지만 너희가 신경 쓸 문제가….”

“와, 다행이다! 그러면 아침 준비하고 있을게요. 아마 샤워하고 나오시면


딱 맞게 준비될 거예요!”
“아니?”

재호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서준은 그대로 문을 닫고 가 버렸다.


황당하다는 얼굴로 닫힌 문을 노려보던 재호는 곧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
서 일어났다.
아침을 먹든, 일을 하든, 그도 아니면 조금 더 쉬든. 뭘 하든 간에 일단은 찝
찝해진 몸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땀과 정액으로 젖은 옷을 매섭게 노려보던 재호
는 애써 저것들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이겨 내고는 그것들을
들고 부엌 쪽으로 나갔다.
빨래바구니 안에 옷더미를 던져 넣으려니?사실은 세탁기에 넣을 게 아니
라 손빨래를 하거나 세탁소에 맡겨야 했지만, 재호는 마음 같아서는 빨래통
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옷을 그대로 처박아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서준이
아침이 다 됐다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서준이 식탁 위에 소고기야채죽과 간단한 밑반찬 몇
개를 차려 놓고는 재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바깥에서 사 온 건 아
닌 것 같았다.
재호는 서준에게 시험 기간인데 이런 걸 만들 시간에 책이라도 한 번 더 들
여다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포기하고 식탁에 자
리를 잡았다. 그런 가벼운 잔소리를 하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재호의 심신은 지쳐 있었다.
서준은 재호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 앉았다. 재호는 벽 한쪽에 걸려 있는 시
계를 흘끗 곁눈질했다.

“……아직 아침 안 먹었니?”
“먹었어요.”
먹었으면 가서 제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왜 여기 앉아 이러고 있는 걸까. 재
호는 죽을 한 숟갈 떠서 입 안에 넣었다. 삼삼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나는
것이 제 입맛에 딱 맞았다.
서준이 요리를 한다는 것을, 그것도 이 정도로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었다.
쌍둥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아이들과의 거리도 조금 더 가까
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험생일 때보다 훨씬 시간이 많아진 아이들은 될 수 있는 한 재호의 곁에
붙어 다니려고 했고, 거기다 등교 시간까지 늦어지고 나니 원래는 재호가 자
고 있는 사이 아이들끼리 해결하던 아침 식사도 자동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대체 언제부터 요리 같은 걸 하기 시작한 거지?
기억이 이리저리 뒤엉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재호는 수저를 내려놓고
서준을 훑어보았다. 잿빛 눈동자가 제 쪽을 향한 것을 눈치채자 서준의 입가
에 미소가 걸렸다.

“왜 그러세요, 아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요? 그럼 말고… 아, 참.”

뒤늦게 뭔가 할 일이 생각났다는 듯 서준은 일어나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


다.
하기야 이런 데 죽치고 앉아 재호가 식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게 뭐 재
미있다고 계속 그러고 있겠는가.
재호는 그릇에 반 넘게 남아 있는 죽을 마저 떠넣었으나, 어쩐지 아까까지
만 해도 맛있던 죽이 입 안에서 모래알처럼 까슬까슬하게 느껴져 영 쉽게 넘
어 가지가 않았다.
서현은 어디 약속이라도 있어 나간 건지 집 안에는 서준과 재호밖에 없는
듯했다. 그 서준마저 방 안으로 모습을 감춰 버리자 적막함이 몸 위로 서늘
하게 내려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근 몇 달간 좋든, 싫든 간에
시끌벅적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 괜히 속이
불편해졌다.
재호가 막 한숨을 쉬며 수저를 내려놓은 그때였다.

“아빠, 저 이것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서준이 방 안에서부터 두터운 책을 들고 와서 식탁 위에 턱, 얹어 놓았다.


아무래도 아예 들어가 버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서준이 다시금 자리
를 잡고 앉는 동안 재호는 두 눈을 깜빡여 가며 표지 위에 적혀 있는 글자들
을 천천히 읽어 내려 갔다.
민법학입문, 저자 임성훈 교수. 의도치 않게 아는 이름이 나와 버린 탓에 재
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 민법학입문?”
“네. 2주 뒤에 시험인데 모르는 문제가 좀 많더라구요.”

재호의 얼굴 위로 서려 있던 황당한 기색이 한층 더 짙어졌다.


2주 뒤가 시험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에서부터 시작해서 더
쉽고 편한 교양강의도 많을 텐데 왜 하필 민법 강의 같은 걸 듣고 있나, 나보
다는 교수님에게 메일이라도 보내서 물어보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 안을 맴돌았지만 재호는 결국 뭣 하나 말로 만들어
내지도 못한 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으로 꾹꾹 눌러 진정시켰다.
고등학생 때라면 과외 선생이라도 붙이겠지만, 대학생한테 모르는 게 있다
고 해서 과외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재호는 한숨을 쉬면서 서
준더러 모르는 부분을 펼쳐 보라고 손짓을 했다.

“하아… 어디 한번 보자.”

조금 신경질적이기는 해도 명백한 허락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에 서준의


표정이 화악, 밝아졌다.
그새 식어 가기 시작한 죽을 한 숟갈씩 입 안에 떠 넣으며 재호는 서준이 기
출문제랍시고 내밀어 준 페이지와 프린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자
신이 대답을 못 해 줄 만한 문제들은 아니었다.
천천히 죽을 삼키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고, 서준이 문제를 푸는 동안 또
식사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서준은 계속 재호
의 곁에 선 채 선지 위에 줄을 즉즉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렸다.
펜을 척척 움직여 나가는 모양새가 재호의 도움 따위는 없이도 잘만 해 나
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본인이 하도 아빠의 도움 없이는 하나도 모르겠다
고 아득바득 우겨 대니 별수 있나.
결국 재호는 서준에게 져 줄 수밖에 없었다.

“ 원래 태아에게는 권리능력이 없는 게 원칙이지만, 상속 문제가 생겼을 때


는 듣고는 있는 거니, 서준아?”

“네!”

얘가 혼자서 이런 걸 못 알아낼 머리는 아닐 텐데.


하지만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는 걸 덮어 놓고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인지
라 결국 재호는 삼십 문제짜리 프린트가 전부 끝날 때까지 서준에게 붙잡혀
있어야만 했다. 덕분에 식사 시간이 평소보다 한 시간은 더 걸렸다.
서준이 만들어 준 죽은 식어도 맛있었다.
다 먹은 그릇과 수저를 씻으려고 하려니 뒤에서부터 “나중에 알아서 할 테
니까 한 번 헹궈만 두세요!” 하고 쾌활하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정말로 어디 가신 걸까.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역시도 최근의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이 무슨 옷을 입든, 아침으로 뭘 먹든, 여가 시간을 어떻
게 보내든 간에 자신이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재호의 역할은 돈을 벌어 와서 민아가 남기고 간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
지 착실히 경제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
지,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몇 년이나 일했던 사람이 언제부터 집에 오지 않
았는지도 기억이 안 나다니.
개인 사정 때문에 그만두신 건가? 어쩌면 나이가 많았으니 아예 퇴직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재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새로 사람을 알아봐야 한다는 성가신 상황이 썩 내키지는 않았기 때문이었
다.
두어 시간 동안 사무실에서 가져왔던 서면을 훑어보고, 빨래바구니에 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나니 벽시계의 시침이 오전 열한 시를 가리키
고 있었다.
해야 한다던 과제는 다 한 것인지 서준이 활짝 웃으면서 재호에게 달려들
었다.

“ 아빠!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같이 산책 나가요, 네?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


으면 몸에 안 좋아요!”
“서현이랑 같이 가지 그러니.”

“걔는 저 버리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나갔단 말이에요!”

“너도 친구들이랑 같이 나가는 건?”

“친구가 없는 걸 어떡해요!”
그게 대체 언제부터 저리도 당당한 얼굴로 할 만한 말이었던가. 하지만 서
준이 하도 징징거리는 통에 재호는 결국 가벼운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서준과 함께 집을 나서게 되었다.
어차피 관리를 위해 매일 조금씩이나마 운동을 했으니 산책을 나가는 데에
딱히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준과 함께 공원에 나와 보는 것
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길게 펼쳐진 산책로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서준은 생긋 웃으면서 재호의 손
을 붙잡았다.
거구의 남자 둘이 손을 마주 잡고 산책이라니. 부끄러워서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서준이 “어릴 때는 자주 이러고 다녔죠.”라고 선수를 쳐 버리는 통
에 재호는 결국 손을 빼내지 못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껴 오는 손이 제 손만큼이나 자라 버렸고, 제 손
만큼이나 굳은살이 박여 있다는 사실에 재호는 새삼스레 뭐라 형용할 수 없
는 감정을 느꼈다.

***

어릴 때부터 그랬었다. 혼자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며 노는 것을 좋아


했던 서현과는 달리 서준은 유독 재호가 어디 외출이라도 할 때마다 그를 따
라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재호는 그런 서준을 차마 내치지 못했다. 서준이 왜 그러는지 대충
은 짐작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불편해요.”

민아는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끔씩 자신의 앞에서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리 중얼거리곤 했다.

“싫어하는 건 아니에요. 분명 사랑하는데… 하지만, 그 애는 변덕스러운 것


도 화를 잘 내는 것도, 그 사람이랑 너무 닮아서, 도저히…….”
,

그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내의 얌전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을 쏙 빼닮은 서현과는 달리 서준은 외
양은 몰라도 성격은 무엇 하나 민아와 닮은 것이 없었다.
격정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장난감이든 동화책이든 뭐든 간에 쉽게
싫증을 내 버리는 아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서준은 민아보다 민아를 잔인하게 버리고 외국으로
떠나 버린 제 친부를 훨씬 더 닮은 게 아닐까.
그 때문인지 아내는 서준을 조금 꺼렸다. 대놓고 티를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 나이대 어린아이들은 의외로 그런 것에 예민한 법이었다.
서준이 민아의 무릎에 앉아 방긋방긋 웃다가도 재호가 퇴근하면 곧바로 재
호에게 달려오는 것도.
분명 친모는 민아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민아보다 재호를 훨씬 더 마음
에 들어 하는 것도.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버렸다.
그런 아내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차마 서준을 모르는 척 내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재호는 굳이 잘 대해 주지도 못하는 아이를 한 팔로 안아
올린 채,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녔었다.
이걸로 뭔가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이, 그저 민아가 어쩔 수 없
이 그런 기분을 느낀다면 이 아이에게는 그만큼 자기가 조금 더 잘 대해 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어린 서준은 공원에서 뛰어노는 것을 가장 좋아했기에 둘의 목적지는 주로
공원이었다.
오랜만에 와 보는 곳이었지만 어릴 때 서준이 타던 그네도 산책로도, 뭣 하
나 변한 게 없어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서준은 재호의 손을 잡고 가는 길
에도 내내 조잘거렸지만 딱히 대답을 바라고 그러는 듯한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간만에 재호와 둘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주 마음
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아 저기 아직도 하고 있나 보네.”
“ !

서준이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작은 빙수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재호는 눈을 느리게 두어 번 깜빡였다. 8년 전에는 자주 서준을, 그리고 가
끔은 서현까지 데리고 갔던 곳이었다.
솔직히 재호의 입맛에는 지나치게 달아 맛은 별로였지만, 당시에는 지금만
큼 빙수 전문점이나 프랜차이즈가 기승을 부리던 때가 아니었던지라 근처에
서 몸을 식히고 싶다면 별수 없이 저 가게에 가야만 했었다.
아이들이야 워낙에 단것을 좋아했으니 저기 가는 것도 좋아라 했지만.
그 사이에 진작 망했을 줄 알았는데. 그때보다는 한결 손님도 줄고, 간판도
낡아 버렸지만 서준의 말대로 아직 영업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 볼까?”

조심스레 말을 꺼내자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빙수는 재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대로의 맛이었다. 한마디로 맛이 없
다는 소리였다. 어쨌든 가게 안에 들어왔으니 예의상 아무 메뉴나 시키기는
했지만, 도저히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재호는 조심스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 대신 이번에는 재호 쪽에서 서준에게 시답잖은 질문을 조금씩 물어 왔
다. 공부는 잘 하고 있느냐, 학교는 어떻냐, 용돈이 부족하지는 않나.
산책을 할 때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해도 됐지만, 앉아 있는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팥과 뒤섞여 녹아내리는 얼음을 구경하는 것도
고역이었기에 재호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야만 했다.
분명 어색해하는 것이 티가 났을 텐데도 서준은 그저 좋다는 얼굴로 방긋
방긋 웃으면서 재호의 질문에 대답을 해 주었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말씀이세요? 그분 얼마 전에 은퇴하고 고향으로 내


려가셨잖아요. 하기야 나이가 환갑이 다 되어 가셨으니. 허리도 아프다고 하
셨고.”
“ 그러면 새로 사람을 구해 달라고 말을 했어야지.”
“집안일은 저랑 서현이가 반반씩 나눠서 하면 되니까 상관없어요. 어릴 때
라면 모를까 다 컸는데 굳이 돈 주고 사람을 쓸 필요도 없잖아요?”
“그래도….”

집이 넓으니까 둘이서 관리하기에는 불편할 텐데. 하지만 서준이 하도 완


고하게 사람을 고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통에 재호는 하는 수 없이 고개
를 끄덕였다.
하기야 나중에 서준이든 서현이든 나가서 자취를 하려면 지금 미리 집안일
을 하는 습관을 길러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서준에게 그대로 말해 주자, 서준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꼭 집에서 나가야 하는 거예요, 아빠?”


“나가야지.”

단호하게 대답을 하며 재호는 다 먹은 트레이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서준


과 함께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서준이 재차 조금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물어
왔다.

“그냥 아빠랑 같이 여기서 살면 안 돼요?”


“서준아.”

재호는 서준이 왜 이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집안일이라도 아직 도우미 아주머니가 맡아서 하는 상태였다면
조금은 이해가 갔을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고 있어도 누군가가 알
아서 청소와 빨래를 하고, 식사를 만들어 주는 생활에서 벗어나는 게 썩 내
키는 일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집에 있든 자취를 하든 어차피 집안일은 서현과 서준, 둘이서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립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였다.
생활비는 재호가 넉넉하게 대 줄 것이고, 계속 넓은 집에서 살고 싶은 거라
면 학교 근처에 원룸이 아닌 아파트를 구해 줄 의향도 충분했다.
왕복으로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통학 시간도 줄어드니 어디를 봐도 자취
를 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일 터였다. 무엇보다 저 나이대 애들은 다들 하나같
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게 정상 아니던가.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데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망할 아들놈이
자취방을 구해 달라고 징징거리는 통에 아주 미치겠다고, 보나 마나 친구 새
끼들 불러서 술이나 마시려고 그러는 게 뻔하다고 죽는소리를 내던 영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재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어찌 됐건 간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어차피 지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언젠가는 떠나야 할 테고, 또 재호도
이제는 슬슬 민아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집에서 떠나고 싶었다.
아내를 잊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아내의 그림자에 계속 갇혀 지내는 것은
힘들었다. 서현과 서준을 내보내고 나면 혼자 살기 딱 알맞은 소형 아파트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
사실은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어
째서 아직도 같이 살고 있는 걸까. 분명 그때 바로 계약할 수 있는 소형 아파
트를 보러 다니던 기억도 나는데.
재호는 미간을 좁혔다.

“방학하고 나면 학교 근처에 집을 보러 가자.”?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산책로를 따라 걷는 내내 재호와 서준 사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

아 망했네, 망했어.”
“ .

부엌 식탁에 앉아 필기 노트를 뒤적이던 서현은, 곧 한숨을 쉬며 노트를 죄


다 탁자 저편으로 밀어 버렸다.
한 학기 내내 아버지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탓에 공부가 조금이나마 제대
로 되어 있는 과목이 단 한 과목도 없었다.
그래도 중간고사를 망쳤으니 기말고사나마 잘 보면 재수강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꼴을 보아하니 재수강은커녕 삼 수강, 사 수강을 해도 대차
게 망할 각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이게 다 아빠가 너무 야한 탓인 걸 어쩌겠어. 매일같이 그렇게 유혹을 해 대
는데 그럼 안 참고 배겨?
말도 안 되는 책임 전가를 해 가며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공부를 해도 학사경고를 면하기는 글러 먹었으니 남는 시간에 점심
이나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서준이랑 아빠도 돌아왔나 보네.
문 쪽에서 삐빅거리며 울리는 도어록의 전자음에, 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나갔다.
그래도 제가 약간의 조정을 해 준 이후로는 아빠와 서준의 사이가 좋아 보
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현은 어릴 때부터 언제나 단란하고 화목
한 가족의 모습을 꿈꿔 왔으니까. 단란하고, 화목한?

“으음?”

…… 하지만 이건 그다지 단란하지도, 화목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서현은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과 아버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척 봐도 재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울 것 같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어디서 운동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거세
게 헐떡이는 숨결. 거기다 재호의 입가에 진득하게 묻어 있는 새하얀 흔적에
까지 눈길이 미쳤을 때 서현은 쯧, 하고 작게 혀를 찼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펼쳐진 자극적인 광경 때문에 성기가 조금씩 욱신거려
왔다.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냐. 난 들어가서 좀 쉰다.”

서준은 겨우겨우 서 있는 재호를 거의 밀치다시피 서현이 서 있는 쪽으로


끌어다 놓은 뒤, 들고 나갔던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 놓고서는 방 안에 들어
가 버렸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힐 때까지 잠시간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서현
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 가방을 가져다가 의자 위에 놓아두었다.

“이리 오세요, 아빠.”

서현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채로 재호에게 느긋하게 손짓을 했다.


이리 오세요, 하고 달콤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재호는 우물쭈물하면서도 홀
린 듯이 서현이 앉아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게 닫혀 버린 방문 안
에서 짜증 섞인 욕설이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는 또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 서준이가 저렇게 화가 난 거예요?
네 아빠? 말 좀 해 보세요.”
,

제 허벅지 위에 앉은 재호를 다정하게 질책하며 서현은 유려하게 뻗은 손


가락 하나를 재호의 뒷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밖에 나가서 대체 무슨 짓
거리를 하고 다니다 온 것인지 부드럽게 손가락을 감싸 오는 내벽 틈새 사이
로 덩어리진 하얀 액체가 주륵, 흘러내렸다.
이렇게 안에 계속 담고 있으면 배탈 나는데. 하여간 서준이는….
일 분 터울인 동생의 무성의함을 탓하면서도,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은밀
한 곳에 제 아들들의 정액을 잔뜩 품은 상태로 배앓이를 하는 외설적인 광경
도 썩 볼 만할 것이라는 생각에 서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한 번 생각이 그쪽으로 흐르고 나니 덩어리진 채로 손가락에 딸려 나오는
허연 액체조차도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혀 내밀어 보실래요, 아빠?”

서현이 무엇을 위해 그런 요구를 하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한 채, 재호는 입


을 벌리고 혀를 살짝 내밀었다.
서현은 웃으면서 질척하게 액이 묻어 나온 손가락을 재호의 혀 위로 아무
렇게나 문질러 닦았다. 마치 담뱃불을 지져 끄는 것과도 비슷한 손짓에 혀가
엉망으로 뭉개져 가는데도 불구하고 재호는 얌전하게 앉아서 서현의 손길을
받아 냈다.
급기야는 입술을 모아 질척거리는 천한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빨아 오기
까지 하는 모양새가 발칙해서 서현은 애써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그만. 그렇게 좆물을 받아먹는 게 좋아요, 아빠? 자기 뒷구멍으로 물고 있


던 것까지 받아먹을 정도로?”

천박하긴. 나른하게 중얼거리면서 허벅지 사이의 여린 살을 은근하게 쓰다


듬고, 엉덩이를 두들겨 오는 손길에 재호는 끙끙거리면서 뺨을 서현의 어깨
위로 비벼 댔다.
거의 스무 살이나 연상인 아버지가 강아지처렴 부려 오는 애교를 온전히
받아 내며 서현은 제 바지 버클을 풀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서준 혼자서 재호를 데리고 재미를 봤다는 사실 자체
는 눈꼴 시렸지만, 덕분에 지체 없이 곧바로 아버지를 탐할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어디인가.

“서준아, 고마워. 네가 먹다 남긴 건 내가 마저 먹을게!”

부러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큰 소리를 내자 꽉 닫혀 있던 방문 너머로 쿵쿵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준은 씩씩거리면서 서현과
그의 품에 안겨 있는 재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 ,

“내가 뭘? 먼저 잘못한 건 너잖아. 분명 아빠를 괴롭힐 때는 둘이서 같이 괴


롭히기로 했으면서.”
“그러면 그냥 얌전히 하던 짓이나 마저 처 할 것이지 나한테는 왜 지랄인
데?!”
“이걸 혼자 보기는 아까워서. 너도 같이 구경하면 좋잖아.”

아직껏 타액으로 질척이는 손으로 재호의 턱을 붙잡아, 억지로 서준이 있


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자 서준의 얼굴이 한층 더 못마땅하게 일그러졌
다.
정말 어지간히도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서현은 한숨을 쉬면서 재호의
하체를 끌어다 반쯤 발기한 성기 위로 비비적거리게 했다.

“아빠가 알아서 넣고 흔드는 거예요, 알았죠?”

낮게 속삭여 오는 목소리에 재호가 네에, 하고 말꼬리를 길게 늘여 대답하


며 엉덩이골 사이로 서현의 귀두를 맞춰 왔다. 그런 재호의 머리칼을 한 번
쓰다듬어 준 뒤 서현은 다시금 서준에게 집중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왜 그러는 건데?”


“아빠가 우리보고 독립하라잖아.”
짓씹듯 내뱉어 오는 한 마디에 서현은 아, 하고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정말?”
“어. 방학 시작하면 자취방 알아보러 가자던데?”

서준과 서현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재호는 서현을 제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안달을 내가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질척하게 풀어진 내벽이 바짝 발기한 성기를 따뜻하게 감싸 오는 느낌이
가뜩이나 높아져 있던 성감을 극도로 자극해 와서, 서현은 잠시간 말하는 것
을 멈추고 재호가 하는 양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비어 있는 한쪽 손을 올려 도톰하게 도드라진 분홍빛 유두를 붙잡고, 세게
잡아당겨 주자 재호가 흠칫거리면서 허리를 내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이제
보니 새하얗던 살결도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짓씹은 흔적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나 참.”

서현은 그런 재호를 부드럽게 책망하며, 유두를 꼬집고 있던 손에 조금 더


세게 힘을 주었다. 짜릿하게 전해져 오는 고통에 재호가 비명과도 비슷한 소
리를 내며 서현의 손목을 붙잡아 왔지만 서현은 이번에는 재호를 봐 줄 생각
이 없었다.
서현은 지금 아주 약간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저랑 서준이를 여기서 내보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들들 볶
아 가면서 암시를 걸어 놓았는데도 몇 달 지나지 않아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
다니. 그건 그만큼 재호의 무의식이 아내와 조금이나마 닮은 얼굴을 보는 걸
꺼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항상 그랬다.
서현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라 주는 것 같다가도, 정신을 차려 보면 아버지
는 어느샌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새삼스레 제 위로 드리워진 어머니의 그림자에 숨이 막혀 오는 것만 같았
다. 그리고 그 분풀이는 온전히 무방비한 상태의 재호에게로 향했다.

“ 나중에 끝나고 나면 한 번 더 걸어 놓을게. 저번에도 이걸로 속을 썩이더


니 설마 또 이럴 줄은… 크윽.”
“……저번에도?”

다소 위화감이 느껴지는 단어 선택에 서준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최면이 걸린 이후로 재호가 불완전하게나마 그 암시를 깨 버린 것은 이번
이 처음이었다. 거기에 대고 저번이고 나발이고 할 게 어디 있단 말인가. 하
지만 서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서준의 위화감을 가볍게 웃어넘겨 버리
고는 다시금 제 눈앞의 재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제 허벅지 위로 실려 오는 따스한 무게감이 묵직하면서도 기분 좋았다. 천
천히, 아주 느릿하게 서현의 것을 품어 가며 재호는 간헐적으로 우는 소리를
냈다.
서현이나 서준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는 삽입은 언제나 그렇듯 지나치게
속도가 느렸다. 차라리 허리를 붙들고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
창으로 범해 줬으면 좋겠는데.
무정하기 그지없는 아들은 아버지더러 “그만큼 교육을 시켰으면 알아서
봉사할 줄도 알아야지.”라며 재호를 도와주는 대신 뻣뻣하게 세워진 젖꼭지
를 짓이기거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 가면서 그를 괴롭힐 뿐이었다.
간신히 몸을 열어 서현을 전부 받아들이고 난 뒤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
지 않았다.
핏줄까지 튀어나와 보일 정도로 흉흉하게 발기한 좆을 끝까지 받아들였는
데도, 조금만 더 세게 처박아 주면 그 끝부분이 재호가 자지러지는 극점에
와 닿을 것 같은데도 서현은 꿈쩍도 않은 채 턱을 괴고 재호를 감상할 뿐이
었다.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벌어진 입구가 거대한 살덩이를 욕심껏 뿌리 끝
까지 삼킨 채로 오물거렸다. 그 외설적인 광경을 샅샅이 훑어보며 서준은 다
시금 힘을 얻기 시작한 제 성기를 꺼내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미 서현의 것을 물고 있는 구멍을 찢어지기 직전까지 벌
려서 제 것을 억지로 쑤셔 넣고 싶었지만?딱 한 번이지만 저번에 실제로 둘
이 함께 넣어 본 적도 있었기에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먼저 약속을
위반한 것은 제 쪽이었기에 지금은 별수 없이 이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제 눈앞에서 저와 똑 닮은 남자가 아버지를 범하는 광경을 반찬 삼
아 자위를 하는 것도 꽤 색다른 자극이 되어 주었다.
의자에 기대앉은 서준의 얼굴 위로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기다리다
못해 드디어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라 버린 재호가 결국 아응, 아
앙, 하고 아양을 떨어 가며 서현의 위에서 허리를 들썩였기 때문이었다.

“아빠, 왜 그러세요? 싸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도와 드릴


게요.”

저가 먼저 나서서 움직이지 않을 뿐이지 딱히 재호가 자기 스스로 움직이


는 것까지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소중한 아버지가 제 위에서 보이는 추태를
마음껏 감상하기로 다짐한 서현은, 그 대신 바짝 발기한 재호의 성기를 한
손으로 천천히 감싸 쥐었다.
뻐끔거리는 요도구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장난스레 틀어막았다가도 손아귀
에 힘을 주어 선단을 세게 쓸어내리는 몸짓에 재호는 아아, 하고 힘없는 탄
식을 내뱉었다.
온몸이 경련하듯 덜덜 떨렸다. 재호는 서현의 무릎 위에 앉은 채 필사적으
로 무릎을 세웠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내벽 깊숙한 곳의 예민한 점막을
서현의 성기로 긁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부터 힘이 풀려 버린 지 오래였던 다리는 도저히 재호의 뜻대
로 움직여 주질 않았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요분질으로 얻어낸 얕은 쾌락은
몸속의 열기를 잠재우기는커녕 한층 더 거세게 할 뿐이었다.

흐 흐앙, 아… 서, 서현아… 서현아….”


“ …
재호가 양손으로 서현의 어깨를 붙든 채 서현의 이름을 부르며 애교를 피
웠다.
하지만 서현은 재호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도 없다는 듯 한 손으로는 재
호의 성기를, 그리고 다른 쪽 손으로는 재호의 가슴을 지분거릴 뿐이었다.
쿠퍼액으로 젖어 미끈거리는 회음부를 꾹, 꾹 눌러 가며 애무하는 손길에
재호는 자지러지며 발버둥을 쳤다. 그에 따라 탄탄하게 근육이 짜인 허벅지
가 덜덜 떨려 왔다.
쾌락이 부족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좀 더 강렬한, 머리가 휘발되어 아무것
도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 버릴 정도의 자극을 원했다.
재호는 제가 무얼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비어 있는 양손을 들어 올려
두툼하게 올라온 가슴을 꼬집고, 애무해 가며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기 시작
했다.
자꾸만 손 위로 흘러내려 버리는 셔츠가 방해되었지만 지금의 재호에게는
셔츠를 벗어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힘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서준이나 서
현의 허락 없이 옷을 입거나, 벗는 것은 금지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권리들 중 하나가 박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형이 된 재호는 그러한 상황에 아무런 참담함도 느끼지 못했다.
옷을 벗지는 못하지만, 방해가 되니까 어딘가에 고정은 시켜 둬야겠다. 그
렇게 생각하며 재호는 스스로 셔츠 끝자락을 끌어 올려 입에 물었다. 그렇게
하니 졸지에 제가 원해서 젖가슴을 아들에게 드러내 보인 채로 유두 자위를
하는 천박한 모양새가 완성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깜찍하게 흘러가는 행동거지에 서현은 잠시간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웃으면서 멍하니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재호의 머리
를 쓰다듬어 주었다.
“ 착하네요, 아빠. 이제는 이런 재롱도 피울 줄 알고… 그렇게 가슴을 만지
는 게 기분 좋아요? 그러면 제가 박아 주지는 않아도 되겠네요?”
“흐으읍……!”

막혀 있는 셔츠 사이로 미처 흡수되지 못한 타액이 뚝, 뚝 흘러내려 서현의


청바지를 적셨다.
재호는 다급하게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차마 손가락 사이에 제 유두를 끼우
고, 잡아당기거나 꼬집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만큼은 멈추지 못했다.
서현은 그런 재호의 음란함을 탓하면서 재차 재호를 질책했다.

“하지만 아빠, 제가 움직여 주지 않아도 아빠는 알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있


잖아요. 봉사를 하라고 했는데 봉사는커녕 혼자 가슴 자위나 하면서 기뻐하
는 주제에. 그러면 제 자지는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어투는 나긋나긋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비난의 목적이 담겨 있었다. 재


호는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나 서현이 정말로 재호에게 자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몸 안에 들
어 있는 것을 빼내 버릴까 봐, 그나마 몸 안을 채워 주고 있는 작은 만족감조
차도 하릴없이 빼앗겨 버릴까 봐.
타액으로 흠뻑 젖은 셔츠 자락이 힘없이 툭, 떨어지면서 재호의 상체를 다
시 가렸다.
재호는 마치 키스를 조르기라도 하듯 자유로워진 입술을 서현의 입가에 비
벼 가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떻게 애원을 해야 서현이 화를 풀어 줄지 짐
작조차 가지 않은 탓에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 올랐다.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 이렇게 좆이 받고 싶어서 안달을 내고 있는데.
물론 제 몸뚱이가 그저 서현과 서준의 욕구 풀이를 위한 생체 오나홀일 뿐
이며, 두 사람이 재호를 어떻게 사용하든 간에 제게 허락된 일은 그저 감사
하다고 말하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은 재호도 이미 알
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서러운 것은 또 별개였다. 단정한 이목구비 위로 숨
길 수 없이 서린 초조함과 서운함에 서현은 낮게 웃으면서 재호의 입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해 주었다.

“ 제가 가르쳐 준 대로 애원해 보세요, 아빠. 혹시 모르잖아요. 예쁘게 울면


서 빌면 들어줄 마음이 생길지도.”
“……아주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그런 재호와 서현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서준은 쯧, 하


고 혀를 찼다. 하여간에 지독한 새끼 같으니라고.
말은 저리 여유롭게 하지만 아마 서현 역시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는 오
래일 것이다.
거의 절반 넘게 재호의 안에 집어 삼켜진 상태에서도 아플 정도로 부풀어
있는 게 너무도 잘 보이는 성기며 말려 올라간 입꼬리와는 반대로 서늘하게
식어 있는 서현의 두 눈이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서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서현은 질리지도 않고 재호를 채근할 뿐이
었다.
다정하게 아빠, 어서요. 정액이 받아먹고 싶지 않으신 거예요? 하고 달래
주는 목소리에 재호가 몸을 한껏 움츠리며 뒷구멍을 조여 왔다. 어찌나 험하
게 사용했던 것인지 허여멀건한 정액과 함께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는 입술
이 달싹거려 왔다.

“ , 주 주인님…… 재호는, 주인님 자지가 먹고 싶어요…머, 먹게 해 주시


면….”

“ 이미 먹여 줬잖아요.”

잔혹하게 일갈해 오는 목소리에 재호가 고개를 푹 떨궜다. 누가 보면 최면


에 걸린 게 아니라 제정신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온전하게 수치를 느끼는
모습이었다.
사실 완전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서현이 재호에게 새겨 넣은 암시는 어
디까지나 서현과 서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는 수치를 느끼는 쪽이, 속된 말로 더 꼴렸기 때문에 서현은 딱히 재호
를 다시 조정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것도 저번보다는 많이 나아진 셈이었다.
재호가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와중 제정신을 되찾아 버렸던 달콤한 악
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며 서현은 재호의 한쪽 볼기를 짜악, 소리가 나도록
느릿하게 갈겼다. 짜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의 감각에 취해 바르작거리며 재
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조, 좀 더 세게… 쑤셔 주셨으면, 해서….”
“제대로 말 안 해요? 제가 아빠를 그렇게 가르쳤어요?!”

매섭게 다그쳐 가며 벌어진 허벅지 안쪽의 여린 살을 세게 내려치자 재호


가 아악, 하고 신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서현은 재호의 새하얗고 탄탄한
허벅지가 붉게 부푼 손자국으로 엉망이 될 때까지 연이어 매질을 하며 재호
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봉사 하나도 제대로 못 해, 예의 바르게 부탁하는 법도 몰라. 그럼 아빠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예요?”

감히 제 아비에게 지껄이는 말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노골적인


비난에는 노기와 함께 원색적인 흥분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저 새끼도 이제 완전히 한계점을 넘어버린 모양이구나. 저런 놈이 대체 지
금까지는 어떻게 참고 살았담. 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성기를 흔드는 손에
박차를 가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재호의 입에서부터도 달뜬 신음성과 함께 서현이 가르쳐
줬던 저속한 애원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아, 앙, 제발, 제발 제 음탕한 뒷구멍을, 흐긋! 주, 주인님께서, 히익, 성


에 찰 때까지 마음껏 사용해서, 하으, 응, 제발, 부탁드려요, 자, 잘할 수 있어
요, 잘할 테니까……!!”?

제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듣기만 해도 진저리를 칠 만큼 상스러운


애원이었다. 나락까지 떨어져 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며 서현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합격점은 줄 수 있지 않
을까.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제 아버지의 추잡스러운 모습에 점수를 매
기며 서현은 재호를 제 성기에 꿰뚫려 있는 상태 그대로 들어 올렸다.
가뜩이나 안쪽 깊숙이 틀어박혀 있던 성기가 제 무게에 짓눌려 내장 안쪽
까지 밀고 들어오는 감각에 재호는 몸을 자지러뜨리면서 벌벌 떨었다.
이대로 불안정하게 매달려 있다가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던 탓
에 다급하게 팔을 내밀어, 서현의 목덜미를 세게 끌어안자 서현이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이대로 박히는 게 좋아요?”

하기야 이 자세로 해야 더 깊이 들어가기는 하지. 서현은 한참 동안이나 양


다리를 제 허리에 꽉 휘감은 채 벌벌 떨고 있는 재호를 내려보다가, 이내 아
쉽다는 듯 작게 입맛을 다시며 재호를 소파 위에 눕혀 주었다.
이걸 애들이 뭐라고 하더라. 대면좌위 자세라고 하던가?
재호가 눈을 까뒤집고 바르작거리면서 제 품에 매달려 오는 모습이 동하기
는 했지만, 몇 년간의 운동으로 팔이 단단하게 다져진 서준이라면 모를까 서
현이 그 자세로 오랫동안 아버지를 들고 버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
다.
서현은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재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서준은 제 형을 향해 킥, 하고 작게 비웃음을 날렸
다.

“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고 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안 듣더니.”


“그래도 기본은 하면서 살고 있거든? 네가 이상한 거라는 생각은 못 해봤
어?”

거의 80킬로 가까이 되는 성인 남자를 아무렇게나 턱턱 들어서 처박을 수


있는 네 쪽이 훨씬 더 이상한 거지.
입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정작 서현은 썩 기분 나쁜 기색을 내비
치지는 않았다. 다음에는 서준더러 화장실 거울 앞에서 아빠를 들어 올려 박
게 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천인공노할 생각을 하며 서현은 느릿하게 아버
지의 안으로 성기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입구를 빠듯하게 벌리며 안쪽을 채워 오는 살덩이의 감각에 재호는 하아,
하고 달뜬 숨을 내뱉으며 다리를 들어 서현의 허리 위에 감았다. 그 발칙한
유혹에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 서현의 추삽질은 조금씩 더 거칠어졌다.
두껍고 커다란 것이 풀어진 내벽에 빠르게 마찰하고, 극점을 우악스럽게
짓뭉개 오는 쾌감에 재호의 고개가 한껏 젖혀졌다. 바짝 발기한 거대한 성기
가 허공에서 힘없이 덜렁거리는 꼴이 우습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며, 서현은
손을 내려 재호의 것을 꽉 쥐여 주었다.
“ 하아 아앙, 조, 조아요, 하윽, 가, 갈 것 같아요, 가고 싶어, 히끅, 흑, 히이
,
익!!”

“가면 안 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오늘은 마음껏 가 버려도 돼요, 아빠. 저도


도와 드릴게요… 큭.”

질척하게 성기를 조여 무는 내벽의 감각에 서현은 이를 악물며 재호의 내


벽 안에 제 것을 꽂아 넣었다.
점점 더 거칠어져 가는 추삽질과는 달리 재호의 성기를 붙잡고, 쓸어내려
주는 손길은 마치 성인 남자가 갓 자위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의 수음을
도와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몰려 오는 사정감에 재호는 입을 헤, 벌린 채 난잡한 비음과 함께 침을 뚝뚝
흘려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기해 있던 귀두 끝에서부터 허연 백탁액이
주륵, 허망하게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서현은 재호가 사정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전혀 움직임을 멈춰
주지 않았다.
아니, 멈추기는커녕 외려 가뜩이나 난폭하던 허리 짓에 더더욱 박차를 가
해 가며 성기를 주무르는 손길에 재호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뒤에서는 바짝 발기한 성기가 두툼한 전립선을 마구잡이로 짓누르고 뭉개
왔고, 앞에서는 서현의 섬섬옥수가 재호의 것을 쥐고 흔들며 귀두부를 마음
껏 문질러 주고 있었다. 막 사출을 끝낸 탓에 예민해진 요도구 안에서부터
질척한 액이 왈칵,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을 느끼며 재호는 진저리를 쳤다.
“ 아악 아, 자, 잠깐만, 저, 방금 가써요, 히익, 방금, 갔는데, 흐윽, 으극, 히
,
잇!!”

“ 방금 간 게, 크읏,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제가 오나홀이 사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까지 신경을 써 가면서 박아야 해요? 건방지긴…으윽.”
“아응, 아, 안 대, 만지지, 마아, 히익, 안 대, 제송해요, 하윽, 자, 잠깐만, 흐
아악…!!”

민감해진 허리가 재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제멋대로 튀어 올랐다. 섬세하


기 그지없는 긴 손가락이 반쯤 발기한 좆을 세게 붙잡고, 쓸어내려 오는 감
각은 마치 전기충격을 당하는 것과도 유사한 고통과 쾌락을 재호에게 안겨
다 주었다.
재호는 발작하다시피 비명을 내지르며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사출을 바
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괴로움을 겪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현의 손길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재호는 아랫배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거세게 밀려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시 시러, 잠깐만, 서, 서현아, 화장실, 화장실 가고 시퍼요, 제발, 잠깐만,


“ ,
히극 흐악, 아앙!!”
,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의도치 않게 소변을 지려 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재호의 온몸을 엄습해 왔다.
발기한 귀두가 서현의 손에 의해 애무당하면 애무당할수록 아랫배가 무겁
게 뭉쳐 오는 그 느낌은 실제로도 급하게 소변이 마려울 때의 그것과 꽤 닮
아 있었다. 하지만 서현은 재호가 그러거나 말거나 제 아버지를 비웃으며 빈
정거릴 뿐이었다.

“ 하아… 걱정 마세요, 아빠. 아마 아빠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닐 테니까…


크윽!”
“흐아, 아앙, 아, 시러, 흑, 안대, 싫어, 시러……!!”

쾌락에 젖어 배배 꼬여버린 혀로는 가장 단순한 발음조차도 제대로 형성할


수가 없었다.
제 것을 끊어낼 듯이 물어 오는 내벽의 조임에 서현은 윽, 씨발, 하고 짤막
한 욕설을 내뱉으며 재호의 안에 사정하기 시작했다. 재호의 성기에서 차마
정액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맑은 액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도 그와 거
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히이이익……!!”

성기가 고장 난 것만 같다는 착각이 일었다. 재호의 성기에서부터 사정없


이 픽픽 쏘아져 나오기 시작한 물줄기는 이내 탄탄하게 복근이 자리잡힌 배
와, 아직껏 서현의 성기를 물고 있는 접합부를 넘어서 그 밑의 가죽 소파와
마룻바닥까지 흥건하게 적시기 시작했다.
맑은 사정액이 찰박거리는 웅덩이를 만들 정도로까지 고인 것을 확인한 서
현은 미소를 지으면서 제 것을 재호의 안쪽에서부터 뽑아냈다.
그렇게 양껏 쑤셔 줬는데도 불구하고, 재호의 내벽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빠져나가는 성기를 물어 붙들려고 용을 썼다. 선단을 오물오물 조여 오는
움직임에 서현은 한순간 휴식이고 뭐고 이대로 재호를 뒤집어서 다시 제 것
을 쑤셔 넣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한 번만 더 하면 재호가 정말로 탈진해서 쓰러져 버릴지도 모른다.
치밀어 오르는 욕구를 애써 억누르며 서현은 재호를 다정하게 일으켜 앉혔
다.

“이 나이가 돼서 아직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리면 어떡해요, 아빠. 덕분에


바닥이랑 소파가 다 더러워져 버렸잖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계시
죠?”

아빠가 더럽힌 건 아빠가 알아서 청소해 주세요. 그렇게 말한 서현은 소파


에서 일어나려다가, 문득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서준이 앉아 있는 쪽으로 고
개를 돌렸다.
마침 한참 동안 둘이 섹스하는 것을 지켜보느라 서준의 성기도 거의 한계
에 도달해 있는 듯했다. 서현은 서준에게 잠시 이쪽으로 와 보라고 손짓을
하며 왼쪽 검지로 재호를 가리켰다.

“기왕 할 거면 여기다 싸.”


“…뒤처리는 어쩌고?”
“마개로 막아 둬야지. 우리 정액 때문에 아빠가 하루 종일 끙끙거리면 엄청
귀여울 것 같지 않아?”

저 새끼는 진짜로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대체 어쩌다 저런 변태 같은 새


끼가 내 형으로 태어난 거지?
서준은 혀를 내두르면서도 딱히 서현의 의견에 토를 달지는 않은 채, 사정
직전까지 내몰린 성기의 끝을 재호의 입구 위에 맞춰 왔다. 가뜩이나 진한
백탁액으로 가득 들어찬 채 뻐끔거리는 구멍 안에 서준의 정액마저 더해지
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윽 야, 나도 한 번만 하고 밥 먹으면 안 되냐?”
“ ……

“안 돼. 그럴 거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아빠한테 그러지를 말았어야지. 그


리고 이미 점심시간 지났으니까 밥 먹고 해. 나 배고파.”

서현은 여상한 말투로 동생을 나무라면서 주머니에서 소위 애널 플러그라


고 불리우는 검은색 마개를 꺼내, 벌써부터 허연 액이 질금질금 흘러나오려
고 하는 입구를 꽉 틀어막아 버렸다.

“흘리면 안 돼요.”?

재호에게 작게 경고한 뒤, 서현은 바지춤을 추스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폈다. 시간이 늦었으니 곧바로 점심을 만들러 가는 것도 괜찮겠
지만, 그 전에 재호가 ‘청소’를 하는 광경을 조금이나마 지켜보고 싶다는 생
각에 서현은 잠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곧 가죽 소파에서 기다시피 바닥 위로 내려온 재호는 혀를 내밀어, 제가 더
럽힌 마룻바닥 위를 천천히 핥기 시작했다.
재호가 철퍽거리는 웅덩이를 따라 혀를 움직일 때마다 츄웁, 츕, 하는 적나
라한 소리가 거실 안을 채웠다. 정액 같기도 하고 그냥 밤꽃 향기가 나는 맹
물 같기도 한, 입안을 가득 메우는 기묘한 맛에 재호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렇다고 해서 제게 주어진 명령을 소홀하게 하지는 않았다.
마치 짐승처럼 제가 싸지른 흔적을 핥아서 치워 내는 음란한 광경을 마음
껏 관람하며 서현은 아주 잠깐 동안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었다.
지금 이 순간 손가락을 튕겨서 아버지가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면 얼마나 좋을까!
뒷구멍에서 울컥울컥 새어 나오려 하는 아들의 정액을 마개로 틀어막은 채
자신의 성기가 절정에 치달아 뱉어낸 사정액을 자신의 혀로 치우는 꼴이라
니. 아마 제정신인 상태의 재호가 이런 제 모습을 봤다면 진작에 목을 매달
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서현은 아쉬운 마음을 느끼면서도, 결국 맞붙이고 있던 엄지와
검지를 조심히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치욕에 몸
을 떨면서 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아버지가 그 치욕을 못 견뎌 아파
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는 꼴을 구경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치기 어릴 때 저질렀던 실수를 또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상
스러운 소리를 내며 개처럼 바닥을 핥아 내리는 상태의 재호를 그대로 내버
려둔 채 서현은 서준과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싱크대 위 선반에서부터 밥그릇 세 개를 꺼내 든 서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개중 하나를 다시 원위치에 올려놓은 뒤 부엌 한쪽 구석의 찬장을 뒤지기 시
작했다.
잠시 후 서현은 척 봐도 사람이 쓸 법한 물건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릇 두 개
를 나란히 꺼내든 뒤, 흥얼거리면서 그것들을 흐르는 물에 씻기 시작했다.
서준은 정말로 질렸다는 표정으로 재호를 흘끔 흘겨봤다.

“ 그건 또 어디에 쓰게.”
“어디 쓰긴. 아빠도 점심은 드셔야 할 거 아냐. 좆물 좀 받아 마신 걸로 끼니
를 대신할 수는 없지 않겠어?”

서현이 찬장에서 꺼내 든 개밥그릇은 약 1년 전, 서현이 충동적으로 해외의


고급 쇼핑몰에서 구입해 뒀던 물건이었다. 저번에 재호가 보고서는 “혹시
개가 키우고 싶은 거니? 여기는 반려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 개를 키우
려면 이사를 해야 할 텐데,” 하고 조심스레 물었던 그릇이기도 했다.
다행히 재호가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서현은 개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게 개를 키우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며, 무엇보
다 서현이 생각해 둔 밥그릇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쓸 만한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서현은 휘익, 휘파람을
불어 가며 그릇을 뽀득뽀득하게 닦아 놓았다. 서준은 떨떠름한 얼굴로 서현
이 도마 위에 내놓은 연어 토막과 밥솥에 안쳐 놓은 쌀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 대체 뭘 만들려고 내놓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걸 저기에 담아서 먹게
하겠다고?”
“……아.”

그러고 보니 수저가 없으면 밥이랑 반찬은 좀 먹기 어려우려나. 게다가 밥


그릇도 하나밖에 없고. 두 번째 그릇은 물을 담기 위한 거니까.
아버지에게 간만에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는 계획이 일그러져
버린 탓에 서현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준 역시도 그에 따라 한숨을 내
쉬었지만, 서현과는 달리 서준은 실망이라기보다는 안도의 의미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다행히 비싼 연어를 태워서 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겠구나, 하는 의미의 한
숨.
서준은 서현이 내놓은 연어와 야채를 조심스레 정리해서 다시 냉장고에 넣
어둔 뒤, 싱크대 한쪽의 바구니에 담아 뒀던 시리얼 박스를 꺼내 들었다. 서
현의 표정이 실망스럽게 일그러졌다.

“…… 오늘은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드릴 생각이었는데.”


“아빠도 네가 만든 숯덩이보다는 이쪽을 더 선호하실걸.”

“숯덩이가 아니라 연어 스테이크?”

“네가 만들면 그게 그거지. 그냥 오늘 점심은 이걸로 때우자. 어차피 뭐 만


들어 먹기에는 시간도 너무 늦었으니까.”
대신 저녁때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면 되지, 뭐. 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
릇 안에 콘플레이크를 와르르 부어넣었다. 서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냉
장고 안에서부터 우유 팩 하나를 들고 나왔다.

“가서 아빠 데려올 테니까 수저 좀 놓고 있어.”

서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거실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어나도 된다는 허락을 내려준 적이 없었기에 재호는 아직껏 천박하게 엎
드린 채로 젖은 바닥을 열심히 핥고 있었다. 서준은 그런 아버지에게 다가가
생긋 웃으면서 “그만”이라고 자비롭게 말해 주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치밀어 오르던 분노는 어느샌가 가라앉아 버렸다.
그래, 재호가 아무리 쌍둥이들을 제 곁에서 떨어뜨려 놓으려고 한다 한들,
그건 이제 서준이나 서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서현이 있어
주는 한 절대 아버지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거니까.
서준은 뒤틀린 웃음을 지으면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양손을 내뻗어
재호의 새하얀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서현이 찬장에서 저놈의 그릇을 꺼낼
때까지만 해도 대체 이게 무슨 개지랄인가 싶었는데, 이렇게 보니 서현의 매
니악한 취향도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아빠한테는 무슨 색이 어울릴까.
통상의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개목걸이의 이미지는 대부분 빨강으
로 대표되지만, 재호라면 잿빛 목줄을 채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
다. 그렇게 생각하며 서준은 재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마치 재호가 직전까지 그 입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하등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로.

“서준아! 다 차렸으니까 빨리 와.”


“어, 어. 알았어!”?

이제 밥 먹으러 가요, 아빠. 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재호더러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반쯤 벗겨진 셔츠 하나만 걸친 채로 무방비하게 제 뒤를 따라
기어오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서준은 서현의 맞은편에 자리
를 잡고 앉았다.
잠시간 탁해진 잿빛 눈동자로 제 앞에 놓인 그릇과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내려다보던 재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서현과 눈을 맞춰 왔
다.
서현은 웃으면서 재호의 등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저녁때는 더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요, 네?”

마치 아버지에게 개밥그릇에 점심을 담아 먹이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부실한 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되기라도
한다는 듯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내용물이 시리얼이라서 저러시는 건 아닐 텐데. 서준은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며 제 몫의 시리얼을 떠먹기 시작했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곧 서현의
말뜻을 알아들은 재호 역시도 혀를 내밀어 우유에 잠긴 콘플레이크를 할짝
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아빠는 똑똑하시다니까. 셔츠 아래 촘촘하게 잘 짜인 등 근육이
비참하게 떨려 오는 광경을 기분 좋게 감상하던 서현은, 서준이 “그러다 다
눅눅해질라.”라고 핀잔을 주고 나서야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숟가락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서현은 기분이 내킬 때마다 한쪽 발
을 들어 마개로 막혀 있는 재호의 구멍 위를 지분거리거나 축 늘어진 성기를
발가락 끝으로 쓸어 가며 발장난을 쳤다. 재호는 그런 식으로 서현의 신체
일부가 제 몸에 와 닿을 때마다 흐응, 소리를 내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현은 턱을 괸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애완동물을 키운다면 이런 기분일까.”


“진짜 개를 이렇게 대하면 동물 학대로 신고당할걸.”

서현의 꿈결 같은 중얼거림을 간단하게 한마디로 일축한 서준은,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들고 가서 하나하나 정리해 놓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아빠가 좋아하는 좆물도 위에 뿌려 드릴게요.”라고 황홀하다
는 듯 재호를 향해 속삭이는 서현의 목소리는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하면서.

***
“애완동물이라고 하면 안 되지.”

서현 앞에 앉아 있던 동기가 불쾌한 얼굴을 하고는 빨대로 음료수를 쪽 빨


아 먹다가, 이내 오만상을 찡그리며 흐물해진 빨대 끝을 입에서부터 떼어 냈
다.

“아오, 이 개좆 같은 종이 빨대……!”?

갖은 쌍욕을 내뱉으며 투덜거리는 여자를 지켜보던 서현은, 생긋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대 새로 가져올까?”
“됐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빨대 없이 마시지 뭐.”

하여간에 어디 가서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는 쓰지 마. 요즘은 다들 반려동


물이라고 그런다고. 나가는 길 내내 그녀의 잔소리를 주의 깊게 들으면서 서
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아빠는 곧 서준이랑 내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줄 예정이니 애완동
물보다는 반려동물 쪽의 어감이 훨씬 더 나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이었다.
아 참. 너 다음 시간 공강이지? 같이 이학관 도서관 가서 공부할래? 수연
“ ,
이랑 승현이가 자리 잡아 뒀다더라.”
“나? 아냐, 난 됐어. 어차피 이번 학기 학점은 던졌거든. 그리고 동생이랑
약속도 있고 해서.”
“동생? 아아….”

서현과 똑 닮은 얼굴에 덩치만 조금 더 큰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윤정은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그럼 나중에 봐. 혹시 도서관에 자리 필요하게 되면 언제든 연락하고.”


“고마워, 윤정아. 공부 열심히 해.”

생긋 웃으면서 윤정을 배웅해 준 뒤, 서현은 서둘러 서준이 앉아 있을 카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흘끗 확인해 본 폰 화면 위에는 ‘빨리 와’라는 짤막
한 문자 하나만이 도착해 있었다.
대체 아빠가 이번에는 또 무슨 깜찍한 짓을 하고 계시길래 빨리 오라는 문
자까지 보내 놓은 걸까. 서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금치 못하며 발걸음을 조
금 더 빨리했다.
서준은 서현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그가 좋아하는 아이스 초코를 시켜
놓은 상태였다.
“고마워, 잘 마실게.”

환하게 웃으면서 뻔뻔스레 말해 오는 목소리에 서준은 기가 막힌다는 듯한


얼굴로 서현을 노려봤다.

“ 내가 사는 거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뭐 어때. 어차피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내 돈인데, 뭘. 그래서? 아빠는
지금 뭐 하고 계신데?”
“……하여간에 변태 같은 새끼.”

그새 서현에게 신경질을 내려고 했던 것은 까먹었다는 듯, 서준은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이면서 에어팟 한 짝을 서현에게 내밀었다. 껴 보
라는 뜻이었다.
혹시나 남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단순하게 “형제끼리 에어팟으로 음악이라
도 듣고 있나 보지, 뭐.” 하고 넘어갈 법한 광경이었지만, 자그마한 기기 속
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섞여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 소리 사이로 드문드
문 섞여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서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
다.

[…… 해서, 혹시 제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상담하러 가신다는 날이 오늘이었나 보네.”
“어. 아직 시작한 지는 반 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

아무래도 재호는 자신이 정신과에 간다는 사실을 쌍둥이들에게 감추기 위


해 제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듯했지만, 어차피 그래 봤자 서현과 서준의
손안이었다.
불쌍하고, 또 그런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우리만의 아빠.
최대한의 평정을 가장하고 있는 단정한 목소리 속에 숨길 수 없이 묻어나
는 불안감을 눈치챈 서현은 작게 쿡쿡거리면서 웃었다.

[재호 씨.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겪고 계시는 증세를 하나씩 얘기해 보세


요. 우선 일상생활에서 가끔 기억이 끊긴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끊기는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노련하면서도 다정하게 던져 오는 노의사의 질문에 재호는 잠시간 고민을


거듭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사 근처 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집 앞까지 와 있었습


니다. 분명 현관에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안방 침대 위에 누워 있었
던 적도 있었고… 그리고 저번 주 토요일에는,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는데
이상하게 포만감이 들어서….]
띄엄띄엄 이어지는 고백에 서현은 내심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재호가 나
열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서현이 재호더러 일부러 당황하라고 파 놓은 함정
이었지만, 개중에 몇 개는 ‘대체 얼마나 신경이 예민해야 저런 사소한 것까
지 알아차리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재호가 말을 이어가는 내내 참을성을 가지고, 간혹가다 짧은 물음
도 하나둘씩 던져 가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 동
안 대담을 나눈 결과 의사가 내린 결론은 지극히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

“…… 우울증, 말입니까?”

재호의 대답에서 못마땅한 기색이 뻔하게 느껴졌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의


사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 물론 다른 문제가 없다고 장담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인간의 정신이라는


게 워낙에 복잡하다 보니 일단은 검사를 몇 가지 따로 해 봐야겠지만… 그래
도 그럴 가능성이 꽤 있다고 봅니다. 방금 재호 씨께서 말씀해 주신 두통, 수
면 장애, 불안감 등등이 전부 우울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거
든요. 그리고 식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포만감이 느껴진다고 하셨
죠? 그것도 우울증으로 인한 식욕 감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작해야, 우울증 같은 것일 리가. 그런 게 아닌데. 재호는 납득할 수 없다
는 듯 미약하게 중얼거렸지만, 의사는 그런 재호를 부드럽게 달래 주었다.

“‘고작해야’가 아닙니다, 재호 씨. 우울증이라고 하면 그걸 별 것 아닌 증상


처럼 보고 넘기시는 분들이 의외로 꽤 많으신데, 제가 보기에는 정말로 위험
한 행동입니다. 이렇게 상담을 하러 찾아오신 것만 해도 아주 잘 해 주고 계
신 거예요.”

다정하게 위로해 주는 것은 정말로 고마웠지만, 안타깝게도 의사는 재호가


말하는 포인트를 조금 잘못 짚은 듯했다. 재호는 딱히 우울증을 겪는 환자들
이나 그 증세 자체를 무시하는 의미에서 “고작”이라는 어휘를 쓴 것이 아니
었다.
다만 의사가 말한 대로 식욕이 감퇴하는 것이나 기억이 중간중간 끊어지는
것뿐이라면 모를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성감을 느끼며 주저앉는 것까지 우
울증의 증세라고 보기에는 조금 심한 무리가 있지 않나. 재호는 그렇게 생각
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지만 의사가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은 아니었다.
그것은 온전히 재호 혼자만의 잘못이었다. 노의사에게 제가 겪고 있는 증상
중 일부를 숨기기로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재호 본인이었으니까.

‘ 말할 수 있을 리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파렴치한
비밀이었다.
누군가 바닥에 흘린 물을 개처럼 핥아 마시는 꿈을 꾸면서 발기해서 바지
를 적시고, 서현이나 서준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몸이 이상
할 정도로 흥분하는 것 같다는 그런 말을 대체 눈앞의 노의사에게 어떻게 털
어놓을 수가 있겠는가.
재호는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전문가가 저렇게 말하니. 어쩌
면 정말로 단순한 우울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으면 조
금 나아지려나. 재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 혹시 또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신가요?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


라면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지만, 가능하다면 오신 김에 털어놓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예… 별 건 아니지만, 꿈자리가, 좀.”

“꿈이요?”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재호는 애써 붉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식


히려 노력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예전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즈음 들어 가끔 자다가 몽정을 합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재호는 이쯤에서 혹시나 의사가 자신의 말을 끊어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
만, 노의사는 온화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계속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결국 재호는 볼 안쪽의 살을 잘근잘근 짓씹어 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골
라야만 했다.
말을 고르는 데에도 어려움이 뒤따랐다. 당연하지만 몽정을 하면서 꿈에서
아들들의 얼굴을 봅니다, 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그 곤란함을 한데 뭉뚱그려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보입니
다.”로 압축하자 의사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흔이 다 되어가
는 유부남에게 있어 몽정할 때 꿈에서 보이지 않아야 할 상대라는 것은 의외
로 그 범위가 꽤 넓을 터였다.

“하지만 재호 씨, 그건 결국 꿈일 뿐이지 않습니까.”

노의사는 어깨를 가볍게 한 번 으쓱했다.

“ 가령 제가 오늘 밤 재호 씨를 살해하는 꿈을 꾼다고 해도, 그 때문에 재호


씨에게 죄책감을 가져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몽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
시면 편합니다. 어차피 그건 재호 씨가 의지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
잖아요. 꿈을 안 꾸고 싶다고 해서 안 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아… 아니, 그 사람에게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거기까지 말하고는 재호는 다시금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의사의 말에는 무엇 하나 틀린 게 없었다. 어차피 아무리 전전긍긍해 봤자
자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꾸는 꿈을 어찌할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지금의 재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꾸준하게 먹으면서 이 모든 증세가 하잘것없는 우울증의 산물이라고
바라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쩐지 불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오랫동안 금욕 생활을 이어온 성인 남성이 몽정을 하는 것 자체는 지


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 걱정이 되신다면 평소에 성적인 욕구를 조금 더 자주 해소해 주시면 되


는 일이고요. 의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재호는 멍하니 의사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 약은 우선 아침, 저녁 약으로 2주분 정도 처방해 드릴게요. 옆에서 뇌파 검


사받으시고… 혹시 더 궁금한 건 없으신가요?”
“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약은 1층 로비에서 받아가 주시면 됩니다. 2주가 지나고 나서 시간이 나면


한 번 더 와 주시고요. 혹시 그 전에도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오셔도 됩
니다.”
그 뒤로도 의사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재호에게 알려 주었고, 재호는 고개
를 끄덕여 가며 그것들을 꼼꼼하게 새겨들었다.
처음 재호가 상담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약 한 시간 정도 이어져 나간 일련
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서현은 재호가 “그러면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
다.” 라고 인사하며 일어설 때 즈음이 되자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고
는 탁자 위에 엎드린 채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였다.
서준은 그런 서현을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넌 이게 웃겨?”
“아니, 웃긴다기보다는…… 귀엽기도 하고, 꼴리기도 하고. 너는 안 그래?”

“내가 너랑 같은 줄 알아?”

서준은 진심으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현은 생긋 웃으면서 왼쪽 귀에서 에어팟을 빼냈다. 미리 재호의 옷 속에
넣어 둔 도청 장치와 연결해 둔 폰 전원을 끄고, 에어팟까지 빼내서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는데도 불구하고 몸 안에 남아 있는 희열이 도저히 사라지지
를 않았다.
답지 않게 부끄러운 듯 말을 더듬으며 “꿈에서 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보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서 맴돌
았다.
서현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바지 안쪽이 갑갑하게 당겨 와서 돌
아버릴 것 같았다. 아버지가 상담을 받을 때 내가 바로 곁에 있어 줄 수만 있
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존심 강한 아버지가 그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을 억지로 뭉개고, 짓눌러
가면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타인에게 보여 주는 그 순간을 목도할 수만 있었
다면?

“양서현!”
“……어?”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서현은, 귓가에서 누군가 저를 불러


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준은 한심하다
는 얼굴로 서현을 바라보면서 그의 이마에 딱, 소리가 나도록 작게 딱밤을
때렸다.

“ 아야야! 야, 뭐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이긴? 그러는 넌 뭐 하는 짓이야? 밖에서 그딴 변태 같은 얼굴
이나 하고 있고.”
“……변태 같은 얼굴?”

서현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페 한 편에 걸려 있던 거


울에 제 얼굴을 비춰 보았다. 새하얀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꼬리는
주체할 수 없이 살짝 말려 올라간 채로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어 내고 있었
다.
이게 뭐가 변태같다는 건지, 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서현은 서준에게 이건 변태 같은 게 아니라 섹시하
다고 하는 거라며 동생을 타박했다. 서준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진짜 미친 건 아니지?”
“미치긴 누가 미쳐? 엄한 사람 모함하지 마.”

미친 게 맞는 것 같은데.
서준은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펼쳐져 있던 필기 노트와 필기구를 책가방
안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서현이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간에 그건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아버지한테 이런 짓을 저질러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서준 역시 이미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서준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에
게 버림받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서현처럼 아버지의 정신이 천천히 붕괴
해 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관찰하고자 하는 비정상적인 욕구는 추호만큼도
없었다.
물론 서준도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보며 흥분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저를 그렇게 무시하던 아버지가 제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는 데에서
오는 뒤틀린 정복욕 때문이었지, 그 비참함 자체에 흥분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은 정말로, 아버지와 떨어지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서
로 사랑하고 다정하게 애정을 퍼부어 주는 부자 관계와 지금의 비정상적인
관계.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는 아마 별 망설임 없이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이제 와서 재호에게 사랑받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서준은 자신의 아버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서준과 서현을 받아
들여 준 것은 어머니가 남기고 간 유산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 때문이지,
그들을 사랑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거라면, 눈앞에 들이 밀어진 차선책이라도 선
택해야 할 거 아닌가.

“나는 잘못한 게 없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서준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잘못한 것이 많았다.
다만 그 누구라도 서준이 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그가 했던 것과 똑같
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얄팍한 믿음 하나만이 그에게 다소나마 위안
을 안겨 주었다.
서현이 흐응, 하고 작게 코웃음을 치면서 폰으로 이런저런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서준은 책과 노트를 전부 욱여넣은 책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럼 난 다음 교시 수업 있어서 이만 간다.”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한 학기 내내 공부는커녕 수업에 얼굴조차 제대로 들이밀지 않은 서현에게


서 그런 말을 듣고 있으려니 울화통이 터졌다. 하지만 서준은 별말 없이 성
큼성큼 카페 밖으로 나섰다.
서준과 헤어지고 나서도 서현은 한동안 방금 녹음했던 아버지의 상담 내용
을 돌려 듣거나, 폰 게임을 하거나, 몰래 빼내온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아버
지의 메일 내역을 확인하는 등 지극히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공부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기에, 시험 기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따위는 서현에게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 그 수많은 업무 메일 중 [XXXX몰 회원가입
안내]라는 제목의 다소 이질적인 메일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에 가까웠
다.


“…XXXX ?”

어쩐지 이름이 좀 성인용품점 비슷한 것 같은데. 서현은 흥미롭다는 얼굴


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메일을 클릭했다.
곧 자그마한 휴대폰 화면은 [안녕하세요, 박재호 고객님! XXXX몰 인터넷
사이트 가입을 환영합니다.]로 시작하는 텍스트의 나열로 빼곡하게 채워지
기 시작했다.

***

몰려 오는 자괴감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재호는 수십, 수백 번씩이나 자신의 카트 안에 담겨 있는 물건 내역을 확인
했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또 잠시간 시간이 지난 후 시선을 흘끗 들어올려
화면을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한들 카트에 담겨
있는 “소형 진동딜도(10cm)(남성용)”이라는 물품명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정말로, 정말로 미친 짓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미친 짓인 한편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재호의 상담을 담당했
던 의사는 재호에게 “성적인 욕구를 제때제때 해소하면 몽정을 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 거다”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재호 역시도 의사가 해 주는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그날 귀가하자
마자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방에 틀어박혀 제 손으로 수음을
시도했다.
기계적으로 손을 성기 위에 올리고, 두어 번씩 흔들 뿐인 지극히 단순한 행
위였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흥분이 되지 않았다.
뭘 하든 간에 꿈에서 또다시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재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위 야설이라고 불리는 포르노 소설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대학 시절에 했었던 성관계의 경험을 떠올려 가며
손을 움직였지만 그래 봤자 축 늘어진 성기는 도저히 사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은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왜, 대체
왜 백주 대낮의 환한 길거리에서도 잘만 발기하는 성기가 마음을 다잡고 수
음을 할 때는 전혀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며칠 동안 그 문제로 집에서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하던 재호는, 어느 날
문득 야외의 화장실에서 저와 덩치가 비슷한 남자에게 박히는 꿈을 꾸고는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뜩이나 새하얀 편이던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하게 질려 갔다. 어쩌면 자신
이 여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 왔던 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꾸기 시작한 꿈에서 재호는 언제나 남자에게 박히고 있었다.
장소와 때는 언제나 달라졌고, 또 남자들의 얼굴도 가끔씩은 아이들의 얼
굴로 보이거나 가끔은 아예 그림자가 드리워져 안 보이는 등 달라져 갔지만
자신이 남자와 관계를 맺으면서 흥분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언제나 동일했다.
재호는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지독한 자괴감을 느끼면서 남성용 애널 자
위기구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무슨 수치스러운
짓거리를 하든 간에, 꿈에서 서현과 서준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야 나을 것처
럼 느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0cm면 크기가 대충 어느 정도지.

30cm 자에 대고 엄지와 검지를 벌려 가며 10cm를 가늠해 보던 재호의 안


색은 곧 서서히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가입한 사이트에서 파는 자위용 장난감 중 가장 작은 것이 10cm였
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제발 저 흉측한 것의 크기가 제가 상상하는 것보다
는 작기를 빌면서, 재호는 눈을 딱 감고 주문 버튼을 눌렀다.

[가능하다면 다음 주 수요일 오전 10시~12시 경에 배달해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다행히 품목이 품목이라 그런지 배송 시간대를 정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


다. 재호는 조심스레 배송 요청 사항에 원하는 시간대를 적어넣은 뒤, 한숨
을 쉬면서 노트북 화면을 꺼 버렸다. 메일함에 도착한 주문 확인 메일은 확
인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삭제했다.
재호가 지정해 준 시간대는 아이들이 둘 다 시험을 치느라 집을 떠나 있는
유일한 시간대였다.
물론 쌍둥이들이 집에 있을 때 배달이 와도 딱히 상관없기는 했지만?어쨌
든 물건이 담겨 오는 상자 자체는 평범한 택배 박스였으니 말이다?그렇다
하더라도 서현이나 서준 앞에서 애널 자위용 딜도를 받게 되는 상황만큼은
죽어도 피하고 싶었다.
재호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면서 닫아 놓은 노트북을 책상 한쪽 구석으로 밀
어 놓고, 침대 위에 누워 애써 잠을 청했다.
그래도 휴가를 낸 뒤 조금 푹 쉬고 나면 몸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
지기는커녕 온몸을 엄습해 오는 불안감은 외려 더 심해지기만 했다. 차라리
눈코 뜰 새 없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때가 훨씬 더 나았던 것 같았다.
“… 하아….”

몸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재호는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시트 위에 조금씩 비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호를 붙들고 괴롭히던 아이들이 최근 들어서는 근 며
칠째 시험이다, 뭐다 해서 재호에게는 손도 대지 않았으니 안달이 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재호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 당황스럽게 다가왔다.

‘ 감기 기운이라도 있는 건가?’?

재호는 애써 그리 생각해 가며 진통제 한 알을 까서 입안에 털어 넣고,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였다. 아이들은 둘 다 시험을 보는 동안 근처 친구네 집에
서 외박을 하고 온다고 했기에 오늘 집에 있는 것은 재호 혼자뿐이었다.
이 넓은 집 안에 저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역시 하루라도 빨리 더 작은 집을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재호는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

“ , 아 됐다.”
역시 메일 사이트에서 쓰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계셨구
나. 사이트에 접속이 되자마자 서현은 곧바로 “내 주문 내역”이라고 되어 있
는 링크를 클릭했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아직은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았을 줄 알았는
데. ‘소형 진동 딜도’라고 화면 위에 선명하게 적힌 글씨를 읽자마자 서현은
미친 듯이 끅끅거리기 시작했다.

“서준아! 이리 좀 와 볼래?”
“또 뭐!”

서준은 짜증스레 역정을 내며 제게 손짓을 하는 서현에게 다가갔다.


가뜩이나 팔자에도 없는 외박을 사나흘씩, 그것도 하필 다른 장소도 아닌
학교 근처 호텔에서 하게 된 통에 있는 대로 심기가 불편해진 서준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 모든 일의 원흉인 서현이 저리도 태평한 얼굴로 “서준아.”
하고 불러 대니 화가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또 물 좀 가져다 달라거나, 저기 가서 불 좀 꺼 달라는 따위 시답잖은 부탁
이기만 해 봐라.
그때는 정말로 혈육 간의 정이고 뭐고 반 죽여 버리겠노라고 이를 박박 갈
던 서준은, 그러나 서현의 폰 화면에 띄워진 창을 보고는 한순간 멈칫했다.

“…… 딜도?”
응 이거랑 이거, 둘 중에 어느 게 더 나을 것 같아? 둘 다 진동 옵션은 있는
“ .
데 첫 번째는 돌기가 달린 대신 무선 조종이 안 돼. 두 번째는 돌기는 없는데
,
무선 리모콘이 딸려 오고. 둘 다 되면 좋을 텐데 20cm짜리 중에서 괜찮은 건
이거 두 개밖에 없더라.”
“네가 사려고?”

이미 성인용 장남감은 집에 많… 지는 않더라도 충분할 정도로는 있지 않


던가. 서현의 매트리스 밑 비밀 공간에 숨겨져 있는 상자를 떠올려 내며 서
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서현은 그런 서준의 물음에도 환하게 웃을 뿐이었다.

“아니. 아빠가 사는 거야.”


“뭐?”

이 새끼가 이번에는 또 무슨 짓거리를 벌이려고 이러는 거지.


저를 향한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무시한 채 서현은 멋대로 “아, 이것도 괜찮
다. 크기가 좀 작기는 한데.”라며 천연 흑요석 딜도까지 위시 리스트에 담고
는 세 개를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서준은 한숨을 쉬며 서현에게 설명을 요
구했다.

“뭘 하고 다니는지는 알아야 내가 도와줄 거 아냐.”


“ 딱히 도움이 필요한 일까지는 아니긴 한데…… 아빠가 우리가 모르는 사
이에 꽤 깜찍한 짓을 벌이고 다니셨더라고. 이런 걸 카트에 넣어 두고 주문
까지 하셨더라. 엄청 귀엽지 않아?”
“……확실히, 귀엽게 생기긴 귀엽게 생겼네.”

고작해야 10cm밖에 되지 않는 미니 딜도의 샘플 샷을 넘기며 서준은 혀를


찼다.
서현은 입을 가리고 작게 킥킥 웃었다. 아버지가 몸이 달아서 뭐라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까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애당초 서현이 굳이 친구네
집에서 외박한다는 거짓말을 해 가면서까지 서준을 이런 곳까지 끌고 나온
것도 전부 그놈의 ‘아빠에게 사랑하는 두 아들들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기’라
는 별 웃기지도 않은 유치한 계획 때문이 아니던가.
서준은 그래 봤자 아빠는 우리가 없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었지만, 서현은 막무가내였다.

“시험 기간 동안만 이러고 있자, 응? 응? 제발!”?

그렇게 사흘 밤낮으로 귀찮게 구는 데에야 서준이 버텨 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해져 오던 성적 자극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힘
들 만도 했다. 게다가 의사에게서 원치 않는 몽정을 그만하고 싶으면 일단
성적인 욕구를 자발적으로 해소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까지 들은 판국이
다. 재호가 언젠가 자위를 시도하게 된다 한들 그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
일 것이다.
하지만 욕구 해소라고 해 봤자 고작해야 집에서 가볍게 손으로 수음이나
하고 끝내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일부러 성인용품 전용 쇼핑몰에 가입해서
딜도까지 주문하는 적극성을 보일 줄이야.
이딴 콩알만 한 걸 넣는다고 해서 간에 기별이나 가려나? 서현은 의아스러
운 표정을 지으며 서준에게서 폰을 돌려받았다.

“ 우리 게 몇 센치 정도 되더라, 서준아?”
“몰라.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아냐.”

“자 없어? 재보고 싶은데.”

“호텔인데 그런 게 어딨어. 집에 가서 재 봐.”

“아빠가 이렇게 작은 걸로 만족은 하실는지 모르겠네. 역시 하나 새로 주문


해 드리는 게 낫겠지?”

서현은 그리 중얼거리면서 일단 재호가 넣었던 주문 내역을 취소했다.

“ 배송 요청 사항은 수요일 오전 10시라고 해 놓으셨네. 딱 너랑 나랑 시험


보고 있을 때야.”
“다른 시간대로 바꾸려고?”
“바꿀 수는 있지만… 으음.”

서준과 서현이 집에 있을 때 저런 것이 도착해서 당황스러워하는 재호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별미일 터였다. 아니면 몰래 택배를 가
로채서 재호의 눈앞에 그 내용물을 들이대며 추궁을 할까.
재호의 이름으로 배달온 상자를 뜯어내고, 우둘투둘한 돌기가 달린 커다랗
고 음탕한 장난감을 그 잿빛 눈동자 앞에 들이밀면서 “이거, 혹시 아빠가 주
문하신 거예요?”라고 묻기라도 한다면 정말 볼 만한 표정을 해 주시겠지.
황홀경에 빠진 아름다운 얼굴 위로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서준은 그런 형
의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역시 아무리 봐도 변태 같은 얼굴인데.”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서현이 서준을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변태


같은 게 아니라고 이전부터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도 도통 말을 들어 먹질
않았다.

“역시 이건 그냥 내버려두자. 아빠가 안쓰럽잖아. 우리가 집에 있을 때 저


런 게 도착하면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겠어.”

서현은 재호가 작성했던 배송 요청 사항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카트에


20cm짜리 딜도를 집어넣었다. 거기에 최음 성분이 든 튜브형 러브젤까지 하
나 추가한 뒤 결제를 하자 곧바로 결제 완료를 알리는 메일이 아버지의 계정
으로 날아왔다.
주문 내역을 확인한 뒤 메일을 삭제하고 있으려니 옆의 침대에 드러누워
폰을 만지작거리던 서준이 문득 생각난 게 있다는 목소리를 냈다.

참 그러고 보니 그 약은 괜찮은 거냐?”


“ ,

“약?”?

서현은 의아하다는 기색으로 눈꺼풀을 깜빡이다가, 몇 초가 지난 후에서야


서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알겠다는 듯 두 눈을 살짝 휘었다.

“ 아아, 아빠가 병원에서 처방받아 오신 그거?”


“어. 진짜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걸 먹으면 위험하지 않나?”

“그래서 이 형님이 진작에 조치를 취해 놓고 나왔지. 똑같이 생긴 비타민제


를 찾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건강이 망가지면 큰일이니까.”라고 말하면서 생글


생글 웃어 오는 서현을 잠시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서준은, 결국 아무
말 없이 폰을 내던지고는 시트를 제 위로 끌어올렸다.
건강은 망가지면 큰일이지만 정신은 망가져도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묻지
못한 한마디가 입안에 쓰게 맴돌았지만, 어차피 이제 와서 제가 서현에게 뭐
라 할 자격이 있을 리 없었다.
아빠가 보고 싶었다.

<2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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