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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망
시대의 소망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
New Covenant Publications International Ltd. Korean
출판 데이터의 카탈로그
편집 및 디자인: 뉴 언약 국제 간행물
영국에서 인쇄.
최초 인쇄 2020 년 5 월 26 일
게시됨: 뉴 언약 국제 간행물
웹 사이트 방문 : www.newcovenant.co.uk
시대의 소망
엘렌 G. 화이트
그리스도교가 출현했을 때 쇠약해진 세계는 그 기초부터 혼들리고 있았다. 선조들을
만족시켜왔었던 민족 종교들은 더 이상 그 후손 들에게는 층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섀로운 세대들은 오래 된 형식에 만족하면서 가안히 았옵 수 없었다.
다른 모든 민족들이 『로마에 의해서」 자신들의 자유를 잃어버렸던 것처럼. 로마로
옮겨 진 그 민폭들의 산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신틱 仍 「 【 峠 올 잃어버렸 다 로마
카피톨리노 CpIc 신전에서 서로 마주 보도록 세워진 신 듭은 서로틀 파괴했고, 그듭의
신성은 사라졌다논 이 세상의 종교에 거대한 공백 상태가 생겼다 1 ... 고대의 활발했던
우장숭배 행위들을 그 속에 삼켜버렸던 횬돈의 심연 위블. 정신과 생명이 함께 결여된.
1 세계는 그 자쳬의 법칙에 의해서 전개된다는」 알종의 자면신룁傀 i 幻 9 이 얼마 동안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부정적민 신념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그것은 세상의
종교클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민족들읔 먼협하게구별히는 것은 민폭들의
신들과 함께 사라졌고, 다먕한 민족들의 왕국들이 서로 융합되었다 유럽.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는 , 이 제는 하나의 거대한 로마 제국만이 있었고 . 안류는
사신들의 보편 성과 단일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이전 유럽의 정세
16 세기 종교개혁의 역사
종교개혁 이전 유럽의 정세
16 세기 종교개혁의 역사
International Inc.
개혁 된 책,변형 된 마음
Email: newcovenantpublicationsintl@gmail.com
헌정의 글
하나님께 바쳐진
서문
새 언약 출판물 국제 하늘과 땅을 바인딩 신성한 계획과 사랑의 법의 영속을
강화와 독자를 다시 연결합니다. 언약의 방주는 그리스도 예수와 그의
백성과 하나님의 법의 중심 사이의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사실,새 언약은
구속에 증명,줄어들지 않은 투쟁에 의해 탄생과 혈액에 의해 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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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망
목차
2장 선택된 백성 ................................................................................................................... 15
5장 봉헌식 ............................................................................................................................ 29
7장 유년 시대 ....................................................................................................................... 43
9장 투쟁의 시절 ................................................................................................................... 58
11장 침 례 ............................................................................................................................. 78
12장 시 험 ............................................................................................................................. 83
13장 승 리 .............................................................................................................................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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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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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제물도 되셔서 제사를 드리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사 53:5)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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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선택된 백성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속적 위대함에 그들의 소망을 고착시켰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던 때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 이방 사람의 풍습을 좇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를 보내셨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이방의
압제로 징계를 받았으나 그것도 무익하였다. 개혁이 있을 때마다 보다 더 큰 배도가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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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때가 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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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왕께서 자기를 낮추고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의 지상에서의 환경은 거칠고
험악하였다. 그분의 영광이 가려졌던 것은 외양의 위엄이 주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모든 외적 장식을 피하셨다. 재물, 세상의 명예, 인간적인 위대함은
결코 영혼을 사망에서 구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어떤 세속적 성질의 매혹물로 사람들을
당신의 편으로 이끌려고 하지 않으셨다. 오직 하늘의 진리의 아름다움만이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을 이끌어야 하였다. 메시야의 품성은 오래 전부터 예언되어 왔으므로,
그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에 기초해서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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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세상에 몰두한 심령들은 온 하늘을 진동시킨 기쁨으로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자 갈망하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보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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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봉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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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겸손한 경배자들은 예언을 헛되이 연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나라의 관원과
제사장의 직분을 가진 자들 또한 그들 앞에 귀한 예언의 말씀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주의
길로 행하지 않고 있었으며 저들의 눈은 생명의 빛을 보기 위해 열려 있지
않았다. 오늘날도 역시 그러하다. 종교 지도자들과 성전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온 하늘의
주의가 집중되어 있는 사건들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러한 사건들이 발생한 사실도 모르고
있다. 사람은 역사상의 그리스도는 인정하면서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에게서는 돌아선다.
1천8백 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아 희생을 요청하는 말씀을 하시고 구제를
요구하는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가난과 수고와 비난이 따르는 의로운
사업을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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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우리가 그의 별을 보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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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은 유전들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과 자신의 경건성은
높이면서 헬라 사람과 로마 사람은 이방인이요, 다른 민족들보다 더 큰 죄인들이라고
비난한다. 이 박사들은 우상 숭배자들이 아니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당신을
경배하노라고 공언하는 이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의 말씀의 수호자로 임명을 받은 자들
가운데서도 이들의 열렬한 물음에 동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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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유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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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들을 떠나서 천연계로부터 학문적 지식을 얻으셨다. 그분은 식물과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연구하셨다. 그분은 유년 시대부터 오직 한 목적에 사로잡히셨는데 곧 남을
축복하기 위하여 생애하셨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그분은 천연계 가운데서
발견하셨다. 식물과 동물, 생물의 생태를 연구하시는 동안 새로운 방법과 수단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번개같이 떠올랐던 것이다.
예수의 생애는 하나님과 조화된 생애였다. 그분이 어렸을 때에는 생각과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죄의 흔적도 그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께서 시험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악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받았던 낮은 평판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 1:46)는 나다나엘의 질문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품성이 시험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처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순결성을 보존하기
위하여 항상 경계하셔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싸움을 싸우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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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까지도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아이의 생애는 조용하고 단순할수록 곧 인위적인
흥분에서 떠나고 자연에 조화될수록 심신의 활력과 영적 능력에 더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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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유월절에 참여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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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은 엄밀히 순종하였으나 랍비의 의식과 관습은 따르지 않으셨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분이 학식 있는 랍비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요구 사항들에 더욱 더
유의하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성전 안에 계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셨다. 그분은 받으신 것을 곧 남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셨다. 그 당시에는 선지자
학교의 본을 따라 성전에 연결된 한 방이 거룩한 학교로 구별되었다. 여기에 저명한
랍비들이 그들의 문하생들과 함께 모였는데 소년 예수께서 이곳에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
위엄 있는 학자들의 발아래 앉아서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분은
지혜를 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선생들에게 메시야의 초림을 지적하는 예언의 말씀과
그때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질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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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은 일찍이 사람의 말로는 움직여지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빛을 주려고 하셨으며,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이 타인의 교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냉소하고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려는 태도를 보였더라면
그들은 듣는 것을 수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을 가르치고 있거나,
적어도 그분의 성경 지식을 시험하고 있다고 자위하였다. 예수님의 소년다운 겸손과
미덕이 그들의 편견을 제거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향하여
열렸고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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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요셉과 마리아가 묵상과 기도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머무르게 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에게 위탁된 직분의 신성성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며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를 등한히 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주를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흘 동안
근심하면서 그분을 찾으러 다녔다. 우리도 이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 우리는 쓸데없는
잡담과 험담과 기도의 등한으로 말미암아 단 하루 동안에 구주에게서 떠나가게 되며
잃어버렸던 평안을 다시 회복하려면 여러 날을 슬퍼하면서 그분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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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투쟁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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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침 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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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침례를 베풀어 주도록 요청하셨을 때에 요한은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하고 외치며 뒷걸음을 쳤다. 예수께서는 단호하고도
온유하신 권위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대답하셨다. 요한은 이에 허락하고 예수를 요단강으로 인도하여 그분을
물속에 장사지냈다.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예수께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의미로 침례를 받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죄인과 같이 되셔서 우리가 걸어야
할 걸음을 걸으시고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행하신 것뿐이다. 침례를 받으신 후의 그분의
고난과 오래 참으신 생애도 또한 우리에게 모본이 되었다.
구주께서 기도로 당신의 심정을 토로하실 때에 그분의 시선은 하늘을 꿰뚫는 듯했다.
그분은 죄가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과 사람이 당신의 사명을 이해하고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아셨다. 그분은 그들의 불신을 정복하고
사단이 그들을 매어 둔 차꼬를 깨뜨리며, 그들을 대신하여 파괴자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안에서 인류를
받으신다는 증거를 달라고 간구하셨다. 천사들은 전에 이러한 기도를 들어본 적이 결코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하는 사령관이신 예수께 보증과 위로의 기별을 전해 주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친히 당신의 아들의 간구를 응답하실
것이다. 아버지의 영광의 빛줄기가 직접 보좌에서 흘러나온다. 하늘이 열리고 구주의 머리
위에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분에 대한 적절한 표상인 비둘기 같은, 가장 순결한 빛의
모양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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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시 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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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증오가 하늘과 땅 사이에 영원한 분리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과 사람과의 연결이 회복되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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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하늘에서 만나를 충분히 그리고 끊임없이 공급하여 주셨다. 이러한 공급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동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함이었다. 구주께서는 지금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쳤던 교훈을 실천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히브리 백성들에게 도움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 동일한 말씀으로 말미암아 예수께도 도움이 주어질 것이었다. 그분은
도움을 베푸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광야에 계셨으나
사단의 제안에 따라 음식을 얻지는 않으실 것이었다. 우주가 주목하는 가운데 그분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떠나는 것보다는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당하는 것이 더 가벼운 재앙이라는 것을 증거하셨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타락된 우리의 본성의 욕구를 물리칠 수 없다. 사단은 이 통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시험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각 사람에게 와서 인간의
선천적인 약점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거짓말로 올무에
빠뜨리려 할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서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땅을 먼저
통과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 사단과의 투쟁에서 우리가
불리한 처지에 놓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뱀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무서워하고 낙담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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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승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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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물었다. 사단은 즉시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그가 반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신성이 고난 받는 인성을 통하여 번쩍였다. 사단은
예수의 명령을 거역할 능력이 없었다. 사단은 수치와 분노로 몸부림치면서 세상의 구주
앞에서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아담의 실패가 완전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승리도
완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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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인용한 성경절은 이사야의 아름다운 예언이다.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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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교회의 기초는 요한, 안드레, 시몬, 그리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름으로
시작되었다.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 중
하나인 안드레가 그의 형제를 찾아 그를 불러 구주께로 인도하였다. 빌립은 부름을 받자
나다나엘을 찾으러 나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서 우리의 인척과 친구와 이웃에게
직접적인 호소를 하는 개인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배워야 한다. 일생 동안 그리스도를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주께로 이끌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해
보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일을 목사에게 맡겨 버린다. 목사는 자기의 부르심을
위해서는 자격을 잘 갖추고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교인들이 행하도록 맡겨 주신
일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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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그리스도는 사실상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요단강 언덕에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에게 내려왔다. 그 광경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유일한
표적이었다. 만일 너희가 나를 그렇게 믿는다면 너희의 믿음은 각성될 것이다. 너희는
장차 하늘이 열리되 결코 닫히지 않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을
열어 놓았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궁핍한 자와 애통하는 자들의 기도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가지고 올라가고 인간 자녀들에게 축복과 소망, 용기, 도움과 생명을 가지고
내려오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땅으로 항상 왕래하고 있다.
곤고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적은 천사들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하늘의 사자들의 봉사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갖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이르러 온다. 우리 구주께서는 친히 인성을
취하심으로 당신의 관심을 타락한 아담의 아들 딸들의 관심과 연합시키시는 한편, 당신의
신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붙잡고 계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하나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교통의 중개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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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혼인 잔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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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화된 사교적 능력은
영혼들을 구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이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우리 자신의
이익에 열중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우리의 축복과 특권을 나누어 갖기를 원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로 보게 하라.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무정하고 가혹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로 보게 하라. 그리스도를 찾았다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셨던 것처럼 봉사하라.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이란 우울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거짓된 인상을 세상에 주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눈이 예수께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인정 많은 구주를 볼 것이며 그분의 용모에서 빛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다스리시는 곳마다 화평이 머물고 기쁨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대한 평온하고 거룩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비록 인간이지만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임을 증거할 때에 기뻐하신다. 그들은
조상(彫像)들이 아니요 살아 있는 남녀들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로 소생된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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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국민을 위하여 하나님의 대표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성전 뜰에서 벌어지는 악폐를 시정했어야 했다. 그들은 성실과 동정의 모본을 백성들에게
보여야 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는 대신에 경배자들의 사정과 필요를 염려하고
필요한 제물들을 살 수 없는 자들을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탐욕으로 그들의 마음은 강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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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무리를 휩쓴다. 그들은 그분의 신성의 표시를 느낀다. 공포의 비명이 수백 명의
핏기 잃은 입술에서 새어 나온다. 제자들까지도 떤다. 그들은 예수님의 평상시의 태도와는
너무도 다른 언행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
69:9)라는 말씀이 그분에 대하여 기록된 것임을 기억한다. 곧 떠들썩하던 군중이 그들의
물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떠나간다. 성전 뜰에는 부정한 거래가 없어지고
무거운 침묵과 엄숙함이 혼란하던 광경 대신에 자리를 잡는다. 옛날 성별된 산에 임하였던
여호와의 임재가 이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성전을 신성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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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의 사자들이
되었으며 그분의 구원의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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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니고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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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그분과 더불어 토론할 생각을 하면서 주께로 왔었으나 예수께서는 진리의
근본 원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셨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론적인 지식보다 영적 중생이다. 그대는 그대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대가 하늘의 사물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먼저 위로부터 오는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대가 나와 더불어
나의 권위와 사명에 대해 토론할지라도 그것은 구원의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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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은 그에게 구주의 사명을 명백하게 해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서
죽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 뱀을 만들어서 회중 가운데서 높은 곳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전체 진중에 뱀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 것이라는 말이
전해졌다. 백성들은 뱀 그 자체에 그들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멸망시키는 뱀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표상이 그들의 치료를 위하여 들린 것같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 8:3) 나신
분께서 그들의 구주가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많은 사람들이 제사 그 자체에
그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리 뱀에
아무런 효능이 없는 것처럼 그 제물에도 아무런 효능이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셨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구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에나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크신 선물을 믿는 믿음을
보이는 것 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쳐다보고 살아야 하였다.
없음이니라”(행 4:12).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믿음이 우리의
구주는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믿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잡고,
죄의 치료제인 그분의 공로를 힘입는 손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회개조차 할 수가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용서가 분명히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것처럼 회개도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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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공통된 결함과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거룩한 사랑의
접촉은 그를 변화시켰다. 그는 이기심과 야심에 물들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살았으며
시기의 독기(毒氣)에는 초연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의 제자들의 불만에 공감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메시야와의 관계를 자기가 얼마나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자기가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한 분을 얼마나 반갑게 환영하였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라고
말하였다. 요한은 자기 자신을 약혼한 양가의 사자로서 활동하는 혼인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는 친구라고 하였다. 신랑이 그의 신부를 영접하면 친구의 사명은 완성된다. 친구가
자기가 추진하여 오던 이들의 결합으로 얻는 행복을 기뻐하는 것과 같이 요한도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구주의 사업이 성공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그의 기쁨이었다. 그는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들의 부르심에 신실한 이들은 자신을 위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에 삼키어질 것이다. 경쟁심 때문에
귀중한 복음 사업을 망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침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선포하였던 것처럼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사업임을 인식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높일 것이며 인류도 그분과 더불어
높임을 받을 것이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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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찍이 세상에 파송된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 하나를 휩쓸어 갈 폭풍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해나 불화를 일으키는 모든 사태를 피하기를 원하셨으므로 조용히
당신의 사업을 중지하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우리도 진리에 충성해야 하는 한편 불화와
오해로 이끌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려고 힘써야 한다. 그 까닭은 언제든지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영혼들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분열을 일으킬 듯한 사태가 발생할
때는 언제고 우리는 예수님과 침례 요한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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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구주의 표정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존중과 친절의 태도를 회고하였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하러 갔을 때 베드로는 이와 같은 정신으로 자신의 사업을 하였다. 요한이
에베소와 서머나에 부르심을 받아 갔을 때에 그는 세겜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그들이
직면해야 할 역경들을 내다보시고 친히 모본을 보이심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셨던
하늘의 교사에 대한 감사한 생각으로 충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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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나사렛 사람은 당신의 참되신 고결성을 주장하신다. 그분은 인류보다 뛰어난
자로 죄와 수치의 옷을 벗어 던지고, 천사들의 존경을 받는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주의 창조주와 하나가 되는 분임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자들은
망연(茫然)해 진다. 이제까지 그분처럼 말하는 자는 없었으며 자신에 대하여 그와 같이 왕
같은 위엄을 가지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당신의 사명과 세상의 의무를 완전하게 선언하는
그분의 말씀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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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초림의 기별이 당신의 은혜의 왕국을 공포하였던 것처럼 그분의 재림의
기별은 영광의 왕국을 공포한다. 그리고 첫째 기별과 같이 둘째 기별도 그 예언의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다니엘에게 마지막 시대에 대하여 설명한 그 천사의 말은 마지막 때에
이해하게 될 것이었다. 그 때에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4, 10). 구주께서 친히 당신의 오심에 대한 징조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1, 34,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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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음에 사무쳐 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들이 이방인보다도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가치가 더 없다는 것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라고 묻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그분을
받아들이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들의 불신 때문에 구주께서는 그들 가운데서 많은 이적을
행하실 수 없었다. 단지 몇 사람의 심령만이 그분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열려 있었을
뿐이었으므로 예수께서는 마지못하여 그 곳을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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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그리스도의 시대에 인기가 없었다. 진리는 현시대에도 인기가 없다. 사단이
최초에 자고심으로 이끄는 거짓말을 제시함으로 진리에 대한 혐오감을 사람에게 심어 준
이래로 진리는 인기가 없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되지 않은 이론과 교훈에
접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마치 유대인들이 그들의 유전에 대하여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이론과 교훈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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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그리고 고난 가운데 처할 당신의 충성된 자들을 보셨다. 기쁨과 투쟁과 곤고의
갖가지 장면들이 그분 앞에 펼쳐졌다. 주위에 모여 선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중에 그분은
또한 그 말씀이 시련 중에서는 소망이요, 슬픔 중에서는 안위요, 흑암 중에서는 하늘의
빛이 되는 기별로서 임하게 될 다른 영혼들에게도 말씀하고 계셨다. 성령을 통하여 갈릴리
바다의 어부의 배에서 말씀하셨던 그 음성은 종말까지 인간의 마음에 화평을 말하여 주는
음성으로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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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장 가버나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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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부주의한 군중의 경탄은 그분의 정신에 거슬렸다. 그분의 생애에는 자기주장이
섞여 있지 않았다. 세상이 지위나, 부나, 재능에 표시하는 존경은 인자와는 관계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충성과 존경을 얻으려고 사용하는 방법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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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장 레위 마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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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은 이때에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이때는 그들이 요한의 기별을 가지고
예수님을 방문하기 이전이었다. 그들의 사랑하는 선생은 감옥에 갇히고 그들은 슬픈
나날을 보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그의 교훈을 불신하시는 듯이 보였다. 만일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다면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왜 그렇게 크게 다른 길을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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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장 안식일
안식일은 우리의 생각을 천연계로 이끌고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와 교제하도록 한다.
새의 노래 소리와 산들거리는 나무와 바다의 음악 소리에서 아직도 우리는, 날이 서늘할
때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담소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볼 때에 위안을 받는 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말씀이 곧
사람에게 생명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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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장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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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유대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자신의 국가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은 햇빛과 같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구원은 온
세상에 속한다. 성경을 신봉하는 종교는 책갈피 속이나 교회의 벽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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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고통을 당하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율법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분 자신의 순종의 생애로 율법의 교훈을 실증하기
위하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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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행하고 심령을 깨끗하게 하는 믿음의 증거이다. 그리고 영원한 상급은 우리의
공로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행하여진 행위에 비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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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장 백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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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아들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사업에 대하여 거의 공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분의
생애와 활동에 관하여 그들이 들은 소식은 그들을 놀람과 경악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분께서 온 밤을 기도로 새우시며, 종일토록 큰 군중에 둘러싸여 잡수실 만한
시간도 얻지 못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분의 친구들은 그분께서 끊임없는 활동으로
자신을 지치게 만들고 계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그분의 이성이 안정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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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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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인 그대를 지켜보신다. 그대는 시험을 당하고 있는가? 그분이 구원하실 것이다.
그대는 연약한가? 그분이 힘을 주실 것이다. 그대는 무지한가? 그분이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대는 상처를 입었는가? 그분께서 고쳐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또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 147:4, 3)신다. 그분의
초청의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이다. 걱정과 시련이 어느 정도이든지 그대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의 영혼은 참을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며 곤경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 것이다. 자신이 더욱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수록 그대는 그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대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지시는 그분께
맡김으로써 더욱 복된 안식을 얻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쉼에는 조건이 있으나 이
조건들은 명백히 설명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든 사람이 응할 수 있는 조건들이다. 그분은
당신이 주는 쉼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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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천국의 복락을 오래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더 풍성한 영광이 우리 앞에 열릴 것이며,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행복은
증대될 것이다. 우리가 이생에서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이요 그분의 임재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인성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이
땅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세의 영광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은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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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믿음으로 만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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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주위에 가까이 밀려다니며 경탄하던 군중은 생명의 능력에 접근해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그 여인은 고침을 받으리라고 믿고 손을 내밀어 그분을
만졌을 때에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영적 사물도 그와 같다. 신앙에 관하여 경박하게
말하거나 주린 심령과 산 믿음 없이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분을 단순히
세상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명목상의 믿음은 결코 심령에 치유(治癒)를 가져올 수 없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진리에 대한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다. 온갖 것을 알기까지
믿음을 활용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에 관하여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유일한 믿음은 곧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것, 곧 그리스도의 공로를 우리들
자신의 것으로 삼는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한 의견으로 여긴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언약 관계를 통하여 자신들을 하나님과 결합시키는
거래이다. 진정한 믿음은 생명이다. 산 믿음은 활력의 증가, 의지하는 신뢰를 의미하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영혼은 정복하는 능력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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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종들은 타고난 마음의 지시대로 행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도발을 받을
때 자아가 일어나서,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드는 식물을 소생시키는 이슬이나
가랑비와 같지 않은 말을 격류처럼 쏟아 놓지 않도록 하나님과 밀접한 교통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단은 그들이 바로 이렇게 행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곧 그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분노하고 있는 것은 용이다. 즉 분노와 비난 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사단의 정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늘에서 통용되는 것 곧 당신의 형상과 특징을 지닌 진리만을 다루기를 원하신다.
그들이 악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은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은 그들의
능력이다. 그들은 그들의 눈을 그리스도의 인자하심에 고정시켜야 한다. 그 때에야 그들은
하늘의 재치와 온유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도발을 받을 때 온유함을
지속하는 정신은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그 어떤 논리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진리를 옹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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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수치를 당하시고 복음은 배신을 당한다.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리석다. 세상의 지혜에 의뢰하는 자들은 분명히 과오를 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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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능력의 역사가 자연의 활동이나 인간의 수단으로 돌려지고 만다. 하나님 대신에
사람이 영광을 받고, 그분의 은혜로운 선물은 이기적인 사용을 위하여 악용되어 복 대신
저주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변경시키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우둔한 감각이 민감하게 되어 당신의 자비로운 은혜를 식별하고 당신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인하여 당신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선물을
통하여 당신을 깨달음으로 그 선물이 당신께서 의도하는 대로 우리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의 이적이 행해진 것은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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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장 호수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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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래할지를 아신다. 지금도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분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그들은
백성들을 그들에게서 떠나가게 한다고 그분을 비난한다. 그분을 왕위에 추대하려는
노력에 폭력과 폭동이 뒤따를 것이며, 그렇게 되면 영적 왕국의 사업은 방해를 받을
것이다. 이 운동은 지체 없이 저지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당신이
백성들을 해산시키는 동안 배를 타고 즉시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신다.
시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이 그들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유의되지 않았다. 이때는
제자들이 큰 축복을 받은 시기였으나 그들은 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그들은
요동하는 물 가운데 빠져 있었다. 제자들의 생각은 격동하고 분별력이 없었으므로
주께서는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차지할 다른 어떤 것을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무거운 부담과 근심을 자초할 때에는 때때로 이렇게
하신다. 제자들은 근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위험은 급히 접근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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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것이 저희의 죽음을 예시하는 유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서워서 소리를
지른다. 예수께서는 마치 그들을 지나쳐 버릴 듯이 앞으로 지나가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고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소리친다. 그들의 사랑하는 주께서는
돌아서시고 그분의 음성이 저희의 공포를 가라앉힌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그들이 이 기이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마자 베드로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기뻐하였다. 아직도 믿기 어렵다는 듯이 그는 소리지르기를 “주여 만일 주시여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께서 “오라 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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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제자들의 품성을 아셨다. 그분은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격심한 시험을 당할
것인지를 아셨다. 바다에서 일어난 이 사건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베드로에게 그의
연약함을 보이기를 원하셨다. 곧 그의 안전은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셨다. 시험의 폭풍 가운데서 베드로는 자신을 전혀 믿지
않고 구주께 의지할 때에만 안전하게 행할 수 있었다. 베드로가 약하였던 것은 자신을
강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연약함을 식별할 때까지는
그리스도께 의지할 필요를 깨달을 수 없었다. 만일 베드로가 바다에서 있었던 경험을
통하여 예수께서 가르치고자 하셨던 교훈을 배웠다면 큰 시험이 닥쳐왔을 때 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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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장 갈릴리에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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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성령의 증거와 그들의 심령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분의 능력에 대한 산 증거가 날마다 그들 앞에 나타났건만 그들은 여전히 다른
표적을 요구하였다. 설혹 표적을 준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이 이미 보고 들은 것으로도 확신하지 않는다면 더 기이한 이적을
보일지라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불신은 언제든지 의심에 대한 변명을 찾을
것이며 가장 확실한 증거라도 논박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이 완고한 심령에
호소하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그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을 영접한 자는 다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한 사람도 잃어버려질 수 없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장래의 생명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들은 죽은
자를 위한 절망적인 슬픔으로 더 이상 통곡할 필요가 없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그 시험은 너무나 컸다. 그분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던 자들의 열정은 식어갔다.
그들은 회당에서 하신 이 설교가 그들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이제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은 그분의 말씀은 당신이 메시야가 아니며 또한 그분과 더불어
관계를 맺는다 하여도 지상의 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이적을 행하시는 능력을 환영하였다. 그들은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자아 희생의 생애에 동참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신 오묘한 영적 왕국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전에 그분을 찾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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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과 자비의 교훈을 떠나서 불신의
흑암과 사악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구주께서 당신의 놀라운 이적을 목도하였던
많은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을 때에 베드로는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말함으로써 제자된 믿음을 표시하였다. 영혼의 닻을 잃는다는 생각만 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찼다. 구주를 잃는다는 것은 캄캄하고 폭풍우 치는 바다에
표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수께서 하신 많은 말씀과 행동은 유한한 인간의 생각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언행 하나하나에는 우리를 위한 구속 사업에 있어서 명확한
목적이 있었다. 각 언행은 그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행하여진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그분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중요하며 완전하고 그분의 사명과 일치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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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장 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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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게의 여인은 믿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쌓여진 장벽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그 여인은 자신에게 의심을 일으키게 하였을지도 모를 외관에 상관하지 않고 낙심을
떨쳐버리고 구주의 사랑을 신뢰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이와 같이
신뢰하기를 바라신다. 구원의 축복은 각 사람을 위한 것이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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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장 참된 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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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장 십자가의 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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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 존재하는 미신의 풍습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러한 것들을 봄으로
이방인에 대한 저희의 책임을 느끼게 되기를 바라셨다. 이 지방에서 유하는 동안
그분께서는 백성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물러나 더욱 전적으로 제자들을 위하여 봉사하려고
힘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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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예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모든 하늘 거민들 앞에서, 또 보이지 않는 음부의 군대
앞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산 반석 위에 세우셨다. 그 반석은 예수님 자신 곧
우리를 위하여 찢기고 상함을 받으신 그분의 몸을 의미한다. 음부의 권세가 이 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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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전파하는 자들의 사업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거나 또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 그들의 사업은 영원한 결과가 달려 있는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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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의 암담한 심정을 아시고
저희의 믿음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보증을 하심으로써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고자
하셨다. 열두 제자들이 다 그분께서 주기를 원하시는 계시를 받을 수는 없다.
겟세마네에서의 그분의 고뇌를 목도할 세 제자들만이 그분과 함께 산에 올라가도록
택함을 받았다. 이제 그분의 기도의 요지는, 당신께서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하늘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제자들에게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과 당신의 왕국이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제자들이 그 나라를 봄으로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신성의 나타나심을 봄으로 당신이
확실히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당신의 치욕적인 죽음은 구속의 경륜의 일부라는 것을
앎으로써 당신의 극심한 고뇌의 시간에 저들이 위로를 받게 되기를 간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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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은 하늘에서는 사랑과 정의(情誼) 속에서 거하였으나 당신이
지으신 세상에서는 고독하셨다. 이제 하늘은 그 사자들을 예수께 보냈다. 그들은 천사가
아니요 고통과 슬픔을 당한 사람들, 그러므로 지상 생애에서 시련을 당하시는 구주를
동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엘리야는 그리스도의 동역자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갈망에 동참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렇게
탄원하였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도말하옵소서”(출 32:32). 엘리야는 삼년 반의 기근
동안 민족의 증오와 그 재앙의 책임을 져야 했으므로 고독감을 맛본 사람이었다. 그는
홀로 갈멜산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섰다. 그는 홀로 고뇌와 절망 속에서 광야로
도피하였다. 이 두 사람이 보좌를 둘러 선 모든 천사들 위에 특별히 택함을 받아 고난의
광경에 관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의논하고, 하늘이 동정한다는 보증으로 그분을 위로하기
위하여 왔던 것이다. 세상의 희망, 곧 각 사람의 구원이 그들의 면담(面談)의 요지였다.
그들이 여전히 산 위에서 벌어진 광경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에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인도하던
것보다 더 빛난 영광의 구름을 보았을 때, 그리고 산을 진동하게 한 두려운 위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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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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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제자들은 아직도 저들이 실패한 쓰라린 사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다시 한 번 그들하고만 계셨을 때에 그들은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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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죽음을 가리킨 그리스도의 말씀은 슬픔과 의혹을 일으켰다. 그리고 예수께서 세
제자를 선택하여 산으로 동행하게 하신 것은 아홉 제자의 시기심을 일으켰다.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명심함으로써 믿음을 굳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낙담과 사사로운
불평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와 같이 어두운 상태에서 그들은 사단과의 투쟁에
들어갔다. 그와 같은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들은 다른 정신으로 그 일을 대해야
한다. 그들의 믿음은 열렬한 기도와 금식과 마음의 겸비로 힘을 얻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을 비우고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움을 입어야 한다. 믿음 곧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의 사업에 아낌없이 헌신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열렬하고도 꾸준한
탄원만이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맞서
싸우는 전쟁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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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분께서 무엇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토록 똑똑히 말하였는데도
그분이 곧 예루살렘에 올라가리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왕국이
건설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다시금 불타올랐다. 이것이 그들로 누가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 하는 물음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베드로가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그에게 구주께서 하신 질문에 대해서 말했다. 마침내 한 제자가 감히 예수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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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장 초막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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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켜놓은 불빛으로 성전과 그 마당이 찬란하게 빛났다. 음악, 종려나무 가지의
물결, 기뻐서 외치는 호산나라는 부르짖음, 큰 무리를 이룬 백성들, 그 위로 매달린
등불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성장(盛裝)한 제사장들 그리고 장엄한 예식들이 다 연합하여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장면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절기 중 가장 큰 감명을 주며,
가장 큰 기쁨을 불러일으킨 예식은 광야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첫날 동이 틀 무렵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길고 드높게 불면, 화답하는
나팔소리와 저희 장막에서 외치는 백성들의 즐거운 환호성이 들과 골짜기에 메아리치며
축제일을 환영하였다. 그 때에 제사장은 기드론 시내의 흐르는 물에서 항아리에 물을 담아
높이 들고 나팔이 울리는 가운데 음악에 발맞추어 천천히 조심스럽게 넓은 성전 계단을
올라가면서 “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시 122:2)라는 노래를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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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장 함정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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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그들을 짓눌렀다. 그러나 사단은 곧 의심을
불어넣었다. 메시야와 그분의 임하심에 대한 그들 자신의 그릇된 생각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길이 준비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나 얼마 후 사라질
것이며 두 번째 나타날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었다. 메시야는 인성과는 생래적(生來的)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메시야의 영광에 대한 일반 백성의 관념이 나사렛 예수님에게는 들어맞지
않은 까닭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는 암시에 유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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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꾸며낸 존경에는 그분을 해하기 위하여 교묘하게 짜놓은 음모가 가려져 있었다.
그들은 그분께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실지라도 고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분을
정죄할 구실을 확보하기 위해 이 기회를 이용하였다. 그분께서 이 여인을 정죄하시지
않는다면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마땅히 죽어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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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녀에게 순결과 평화의 생애,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바쳐진 새 생애의
시작이 되었다. 이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가장 흉악한 육체적 질병을
고칠 때보다도 더 큰 이적을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영적 질병을
고치셨다. 이 회개한 여인은 그분을 가장 신실히 따른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아
희생적 사랑과 헌신으로 그녀는 예수님의 용서하여 주신 은혜에 보답하였다. 이 여인을
용서하고 고상한 생활을 하도록 격려하신 이 일 가운데서 예수님의 성품은 완전한 의의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그분께서는 죄를 가볍게 여기거나 죄책감을 경감시키지 않는
동시에 정죄하지 않고 구원하려고 노력하신다. 세상은 곁길로 나아간 이 여인에게 멸시와
조롱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위안과 희망의 말씀을 하신다. 무죄하신 분은
죄인의 연약함을 동정하고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신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은
비난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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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장 “생명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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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네가 누구냐”란 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대답하셨다(요 8:25). 그분의 말씀 가운데서 계시되었던 것이 그분의 성품에도
나타났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가르치신 바로 그 진리의 화신이었다. 그분은 계속해서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메시야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자신의 하나 됨을 보이셨다. 만일 그들의 마음의
눈이 하나님의 사랑에 열려 있었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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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구주의 희생의 사명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에 그토록 반갑지 않은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청중들에게 아무런 깊은 의미를 심어 주지 못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에서 새로운 트집거리를 보았을 뿐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마치
예수께서 미치광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조소하는 태도로 “네가 아직 오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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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군중들 가운데 침묵이 감돌았다. 갈릴리 출신의 이 랍비가, 영원한 존재의 관념을
표현하기 위하여 모세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의 이름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자존자(自存者),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었던 분,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미 5:2)인 분으로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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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장 거룩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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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장 선한 사마리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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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하셨다. 그들의 마음은 짐 나르는 짐승보다 그에게 얼마나 더 동정을 쏟아야 했던가!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이 주어졌다. 하나님 여호와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신 10:1719; 레 19:34)고 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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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장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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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로 그들의 어려운 일들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가게 하라. 그들은 아이들을
다스리는 일에 충분한 도움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의 수고를 구주의
발아래 놓고자 하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 문들이 열려 있다.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분은 당신에게서 복을 받도록 저희 어린것들을
데리고 오라고 어머니들을 초청하신다. 어머니의 팔에 안긴 영아일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할 수 있다. 침례 요한은 날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산다면 우리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라도 성령께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꼴 지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과 접촉한 어린이들 중에서 당신의 은혜의 후사요, 당신의 나라의
시민이 될 남녀들을 보셨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당신을 위하여 순교자들이 될
것이었다. 그분은 이 어린이들이 세상적으로 현명하고 마음이 완고한 장성한
사람들보다도 매우 쉽게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들을 가르치실 때 그분은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오셨다. 하늘의 왕이신 그분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동심의 이해력에
맞도록 중대한 교훈을 단순하게 하셨다. 그분은 후년에 돋아나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을
진리의 씨를 그들의 마음속에 심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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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상호간에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라. 이 세상에 그토록 마음이
강퍅한 남녀들이 많은 이유는, 참된 애정을 연약으로 간주하여 막고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더 좋은 본성은 어린 시절에 짓눌려 없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그들의 냉혹한 이기심을 녹여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행복은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님의 부드러운 정신과 천사들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동정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어린 시절의 관대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북돋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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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장 제사장들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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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이
권고를 따랐다. 그들이 그 당시 행사하고 있었던 권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어떤 결정을 내릴 충분한 이유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감히 저희 마음의 생각을 말하지
않은 몇 사람을 빼놓고는, 산헤드린 회원들은 가야바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 공회는 어려움에서 벗어났고 불화는 끝났다. 그들은 가장 유리한 기회에
그리스도를 죽이기로 결정하였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예수님의 신성의 증거를 거절하고
꿰뚫을 수 없는 어둠 속에 저희 자신들을 가두었다. 그들은 전적으로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서 영원한 멸망의 낭떠러지 끝으로 나아가도록 그의 재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얼마나 기만당했던지,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민족의
구원을 도모하고 있는 애국자처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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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장 새 나라의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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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열렬한 사랑으로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과 가장 가까이 있기를 열망하였다. 가능한
한 모든 기회에 요한은 구주의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였고 야고보는 구주와 가까운
연결로써 영예를 누리고자 갈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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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이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를 판단하거나 그의 의무를 규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신다.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자신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과 합칠 권리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든 문제에는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12, 5)는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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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장 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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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헌신을 불신하게 하였다. 식탁 주위에는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 줄 수 있었겠도다” 하는 불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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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는 자신의 사랑의 행위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녀는 비난자들의
말에 답변할 수가 없었다. 왜 그녀가 예수님에게 기름을 붓기 위하여 그러한 기회를
선택하였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성령께서 그녀를 위하여 계획하셨으며 그녀는 성령의
강권하심에 순종하였던 것뿐이다. 영감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으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정신과 마음에 말씀하시고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한다.
이것이 이 일 자체의 명분을 세우는 주장이다.
마리아의 행위는 유다가 취하려고 하는 행동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비평의 종자를
떨어뜨리고 제자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일으키려고 한 자에게 예수께서는 얼마나
날카로운 교훈을 주실 수 있으셨던가! 비난자가 얼마나 정당하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가! 모든 마음의 동기를 알고 모든 행동을 이해하시는 그분께서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 유다의 경험 가운데서 어두운 장면들을 공개하실 수도 있었다. 변역자가
내세우는 말의 공허한 가면도 적나라하게 폭로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그는 가난한 자를
동정하기는커녕 구제에 요구되는 돈을 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과부와 고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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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은 손님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자기를 책망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친절로 인하여
감동되었다. 그는 마리아가 받게 되기를 바랐던 것처럼 대접받지 않았다. 그는 예수께서
그의 잘못을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기를 원하지 않으시며 사실을 진실하게 말함으로 그의
마음에 죄를 깨닫게 하고 동정어린 친절로써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호한 책망은 시몬의 마음을 굳게 하여 회개할 수 없게 하였을
것이지만, 참을성 있는 훈계가 그로 하여금 그의 잘못을 깨닫도록 하였다. 시몬은 주께 진
빚의 크기를 보았다. 회개함으로 그의 교만은 겸손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거만한
바리새인은 겸손하고 자아를 희생하는 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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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장 “네 왕이 임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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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령관이 고뇌의 눈물을 흘리는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승리의 함성을
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분이 통치하시기를 기쁨으로 희망하면서 영광스러운
도성으로 그분을 호위하던 기쁨의 무리들도 이 광경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재난을 동정하는 경건한
슬픔에서였다. 그러나 이 갑작스런 슬픔은 어떤 장엄한 승리의 합창에 삽입된 통곡의
곡조와도 같았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던 그 기쁨의 장면에서
이스라엘의 왕은 조용한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억누를 수 없는 고뇌의 눈물을 흘리며
신음하고 계셨다. 군중들은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들의 만세 소리는 잠잠해졌다. 이해할 수
없는 슬픔에 동정하여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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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제자인 우리는, 이분은 예수요 메시야요 생명의 왕이요 세상의 구속주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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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장 운명 지어진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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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나 믿음은 없다. 그들이 말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나 순종은 부족하다. 그들은
말은 하나 행하지는 않는다. 무화과나무에 내리신 형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허식이 당신의 눈에 얼마나 가증한가를 예증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면서 당신의 영광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 자보다는 공공연한 죄인의 죄가
가볍다고 선언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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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장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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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기능을 빼앗아 사람을 노예의 위치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류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더욱 큰 세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살도록
버려두셨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였다. 그들은 인류가 스스로의 생애를 지배하고 세상의
사건들을 계획할 자유가 있으며 인류의 운명은 사람 자신의 손에 놓여 있다고 믿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람의 힘과 자연의 법칙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부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연의 능력을 적당하게 활용함으로 인류는 향상하고 계몽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엄격한 강요를 통하여 그의 생애가 순결하게 될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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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장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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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부유한 동포들과 분담하기를 매우 원한다.
이런 영혼들을 거절하지 말 것이다. 그들의 푼돈을 하늘 금고에 넣게 하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바친다면 겉으로는 보잘것없는 적은 금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하시는 귀중한 재물, 성별된 예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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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진리는 무시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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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장 바깥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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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서 그분은 신성과 인성의 고통으로 인하여 참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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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서서히 우리에게 덮쳐오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비치며 여전히 궤도를 따라
돌며 하늘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다. 상인들은 여전히 사고팔고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 밀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전히 극장과 경마장과
도박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고조의 흥분이 편만해 있는 반면 은혜의 시간은 속히
마쳐지려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려고 한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안다. 사단은 은혜의 때가 끝나고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힐 때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현혹시키고, 마음을 사로잡아 도취시키려고 그의 모든 대리자들을
일하게 하였다. 다음과 같은 우리 주의 경고의 말씀이 감람산으로부터 수세기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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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하게 전하여 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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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장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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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땅으로 향하여 표현된 것이다. 영광의 왕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신 것은 이 사랑을 심어 주어 우리로 한 가족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는
그리스도의 고별의 말씀이 성취될 때 곧 그분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세상을
사랑할 때 우리들을 위한 그분의 사명은 성취된다. 우리 마음속에 하늘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에 적합한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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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장 종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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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만찬 예식은 슬픔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것은 그런 목적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식탁 주위에 모일 때에 그들은 그들의
결점을 기억하고 슬퍼하지 말 것이다. 그것이 향상시키는 것이었든지 저하시키는
것이었든지 간에 그들의 과거의 종교적 경험에 얽매이지 말 것이다. 그들은 그들과 저희
형제들과의 차이점을 생각해 내지 말 것이다. 준비 예식에 이 모든 것이 다 포함되었다.
반성, 죄의 자복, 의견 충돌에 대한 화해 등 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오는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설 것이 아니요 구원의 빛
가운데 설 것이다. 그들은 의의 태양의 밝은 빛에 심령을 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장
귀중한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마음으로 비록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그분의 임재하심을
충분히 인식하는 가운데 그들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는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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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주재께서 이루신 희생이 얼마나
크고 의미심장한지를 더욱 충분히 깨닫게 된다. 구속의 경륜은 우리 앞에서 영광스럽게
빛나고 갈바리의 사상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있는 신성한 감격을 일깨운다.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돌리는 찬양이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 있을 것이니 이는 갈바리의 장면들을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간직하는 영혼들에게는 교만과 자아 숭배가 번성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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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장 겟세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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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패권을 잡으려던 희망은 좌절될 것이며 세계는 마침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 자신도 실패하고 내어쫓길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께서 실패하신다면
지구는 사단의 왕국이 될 것이며 인류는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 있게 될 것이었다. 당신
앞에 놓인 투쟁에서 그리스도의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사단은 그리스도에게, 만일 그분이 죄된 이 세상을 위하여 보증인이 된다면
하나님과는 영원히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분은 사단의 왕국에 동화될 것이며
다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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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다. 그분은 자신의 사명에서 돌아서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스스로 범죄한 인류의
화목 제물이 되실 것이다. 그분의 기도는 이제 복종하시겠다는 말씀뿐이다.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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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뒤섞인 확신이 가야바로 하여금 그처럼 행동하게 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격분했다. 그는 진리에 대한 깊은 자각으로 자기의 마음을 찢고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고백하는 대신에, 그것을 결정적으로 거절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제사장 예복을 찢었다. 이 행위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가야바는 이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재판관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리스도를 정죄케 한 이 행위로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을 정죄했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그는 제사장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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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주님의 심문에 대하여 관심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분에게 퍼붓는
잔인한 욕설을 듣고 그분이 당하는 학대와 고통을 보고 그의 마음은 슬픔에 짓눌렸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그가 놀라고 분개한 것은 예수께서 그 같은 취급을 당하고 계심으로
그분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치욕을 안겨 주고 계신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기 위하여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들의 얼토당토않은 조롱에 가담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는 거짓을 행하고 있었으며 태연하게
이야기하려고 했으나 주께 퍼붓는 욕설을 듣자 분개한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추억의 조수가 그에게 밀려들었다. 구주의 부드러운 자비, 그분의 친절과 오래 참으심,
과오를 범한 제자들을 대하시는 그분의 부드러우심과 인내…, 이 모든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는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눅 22:31, 32)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그는 자신의 배은망덕과 거짓과 거짓된 맹세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였다. 베드로가 한 번 더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한 괘씸한 손이
주님의 얼굴을 치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그는 비통한
마음으로 재판정에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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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장 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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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선고를 내렸으나 그들의 정죄를 유효하게 하기 위하여 빌라도의 선고를 얻어야
한다고 했다. 그대들의 선고가 무엇이냐고 빌라도는 물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그것이
사형 선고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면 그것은 불법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리스도가 유죄하다는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내린 선고를 집행하도록
요청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들이 지겠다고 하였다.
위하여 음흉한 음모를 꾸몄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그가 물었을 때에 구주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다. 그분이 말씀하실
때에 그분의 용모는 마치 햇빛이 비추고 있는 것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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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까지 빌라도는 예수님을 정죄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유대인들이 증오와 편견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소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공의는 그리스도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으나 빌라도는 백성들의 악의를
두려워했다. 그가 예수님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기를 거절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갈릴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그 지역의 통치자 헤롯에게 그리스도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빌라도는 심문의 책임을 헤롯에게 전가시키려 했다. 그것은 또한 자신과 헤롯
사이의 오랜 분쟁을 종식시킬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그 일은 예상한 대로 되어서 두
장관은 구주의 심문을 계기로 서로 친구가 되었다.
다룬다고 그분의 원수들을 책망하였다. 세상의 구주의 침착한 얼굴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그는 그 얼굴에서 지혜와 순결만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빌라도와 같이 그도
그리스도가 적의와 질투에 의하여 고소당했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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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린양은 불완전한 제물이 되었을 것이며 인류의 구속은 실패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명령으로 하늘 군대를 불러와 자기를 돕게 할 수 있고 신성의 위엄을
번쩍이심으로 공포에 싸인 폭도들을 당신의 시야에서 몰아내실 수 있는 분이 가장 비루한
모욕과 폭행을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하게 감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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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선택을 결정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고 말하였다. 강도요 살인자인 바라바는 사단의 대표자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표자였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거절당하시고 바라바는 선택되었다. 그들은 바라바를
갖고자 했다. 이와 같은 선택을 통하여 그들은 태초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인 사단을
받아들였다. 사단은 그들의 인도자였다. 민족적으로 그들은 그의 명령을 실행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지배도 받아야만 한다.
그리스도 대신에 바라바를 선택한 백성들은 시간이 계속하는 한 바라바의 잔인성을
느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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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장 갈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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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은 즉시 이르러 왔다. 예수께서는 사랑과 동정과 능력이 충만한 부드럽고 선율적인
음성으로 “내가 진실로 오늘 네게 이르노니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고민의 긴 시간 동안 예수님의 귀에는 욕설과 조롱의 말만 들렸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는 조롱과 저주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예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의 제자들에게서 저들의 믿음을 나타내는 어떤 말을 듣기 위하여
귀를 기울이셨다. 그분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는
비통한 말밖에는 듣지 못했다. 죽어 가는 강도에게서 믿음과 사랑의 말을 들으셨을 때에
구주께서는 얼마나 고맙게 여기셨을까!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분을 부인하고 그분의
제자들까지도 그분의 신성을 의심하였으나 영원의 벼랑 가장자리에 선 불쌍한 강도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시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셨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서슴지 않고 그분을 주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실 때에는 제십일 시에 구원받은 회개한 강도 외에는 어느 한 사람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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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정적이 갈바리 언덕에 내린 듯하였다. 십자가 주위에 모였던 무리들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저주와 욕설은 도중에 멈춰졌다.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땅에 엎드렸다. 때때로 밝은 번개가 구름 속에서 번쩍여 십자가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환히 비추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과 사형 집행자들과
폭도들은 모두 다 저들이 보복을 받을 때가 이른 줄로 생각하였다. 잠시 후에 어떤
사람들은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것이라고 속삭였다. 어떤 이들은 가슴을
치고 무서워 울부짖으면서 더듬더듬 도성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제구시에는 어둠이
백성들에게서는 걷혔으나 아직도 구주를 덮고 있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고민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도 십자가를 둘러있는 그 어둠을 꿰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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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은 말없이 그 무서운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양이 비치고 있었으나
십자가는 여전히 어둠에 싸여 있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니 빽빽한
구름이 도성과 유대 평야를 덮고 있었다. 의의 태양이시요 세상의 빛이신 그분은, 한때
은총을 받았던 예루살렘 도성으로부터 그분의 광선을 거두고 계셨다. 하나님의 진노의
맹렬한 번갯불이 운명지어진 도성에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어둠이 십자가에서 걷혔다. 그
때 예수께서는 삼라만상을 울리는 듯한 나팔 소리 같은 맑은 음조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부르짖으셨다. 한줄기 빛이 십자가를
둘렀으며, 구주의 얼굴은 해와 같은 영광으로 빛났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머리를
가슴 위로 떨구고 운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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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장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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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쟁투의 초기에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으며, 공의가 자비와 조화되지
않으므로 율법을 파기하지 않고는 죄인이 용서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모든 죄는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만일 하나님이 죄의 형벌을 면제해 준다면 그분은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사단은 주장하였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분의 뜻을
대항할 때 사단은 기뻐 날뛴다. 사람은 율법을 순종할 수 없으므로 용서받을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고 그는 선언하였다. 사단은 자기가 반역한 후에 하늘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영원히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아직도 죄인들에게 은혜를 나타내고 계심으로 그분은 공의로우실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키려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의 의가 평화의 적이 된다는
것을 밝혀 보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것들이 서로 분리될 수 없도록
단단히 결합되어 있으므로 전자는 후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시
85:10)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의 자비를
손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율법은 의로우며 온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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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하기 위하여 그들의 율법을 제정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고자 애쓸 것이며 그들의 율법을 시행하려는 열심으로
저희 동료들을 압박할 것이다.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전쟁은 세상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는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과 사람의 율법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분리(分離)의 선은 그어질 것이며 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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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어둠 속에서는 희롱의 말이나 조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둠이 걷히자
그들은 입을 꼭 다문 채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제사장들의 고소는 거짓이었고 예수님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일 후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리스도께로 개종한 수천 명 가운데 그들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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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처럼 연약한 인간이 의논하고 계획을 세웠다. 이 살인자들은 저희의 노력이 헛됨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행동으로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막으려고 한 그같은 노력이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는 가장 확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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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이 되었다. 무덤 주위에 배치된 군사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분이 부활하신 증거는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기 수백 년 전에 성령께서는 시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1~4). 로마인의 파수꾼들과
그들의 무기는 생명의 주님을 무덤 속에 가두어 두기에는 무력하였다. 예수께서 놓임을
받으실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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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흐려진 저들의 눈이 그분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나
저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 숙인 머리가 들려지고 눈이 열려 그분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귀가 열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살아나셨다”고 하라는 그분의
음성을 분간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에게 큰 돌로 막고 로마의 인으로 인봉한
요셉의 새 무덤을 들여다보지 말도록 명하라. 그리스도는 거기 계시지 않는다. 빈 무덤을
바라보지 말라. 희망도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살아
계신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까닭에 우리 역시 살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거룩한 불로
정결케 된 입술로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다는 노래를 즐거이 부르라. 그분은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 소망을 굳게 붙잡으라. 그러면 그것이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 닻과 같이 영혼을 붙잡을 것이다.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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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장 엠마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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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앞으로 성취될 사건을 그분께서 예언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마지막 부분도 첫
부분처럼 확실히 성취되어 제삼 일에 그분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것은 저희가 반드시 기억했어야 할 부분이다. 제사장들과 관원들은 그 말씀을 잊지
않았다. 그날은 “예비일 다음날이라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마 27:62, 63)라고 하였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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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던 일들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 사건들을 가리킨 예언들, 하나님의
율법의 신성성, 구속의 경륜의 신비,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능력 등 저희가 목격한 이
모든 것을 온 세계에 알려야만 하였다. 그들은 회개와 구주의 능력을 통한 평화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해야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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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죄인의 회개를 감사에 넘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라. 회개한 사람을
불신의 어둠에서 인도해내서 믿음과 의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라. 그의 떨리는 손이
예수님의 사랑의 손을 붙잡도록 하라. 이와 같은 용서는 하늘의 인정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만 교회는 죄인을 용서할 권세를 가진다. 죄의 용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에도 영혼들을 죄로부터 자유롭게 할 권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명하여 모든 민족 중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전파하도록 하셨으나 제자들 자신은 한 점의 죄도 사할 수 있는 권세를 받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름만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이름”(행 4:1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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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장 다시 한 번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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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제자들은 놀라운 능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증언은 표적과
기사들로 뒷받침될 것이다. 이적들은 사도들뿐 아니라 저희 기별을 받은 자들을 통해서도
나타날 것이다. 예수께서는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잡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고 말씀하셨다. 이 때에는 독살(毒殺)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무법한 사람들은 그들의 야망을 가로막는 자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제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생명이 이런 위험을 당하리라는 것을 아셨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그분의 증인들을 죽음에 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위험에서 보호하시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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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시는 거룩한 분에게서 교회를 분리시키고 있다. 영원한 실체를 붙잡는 교회의 힘이
약하다. 교회가 믿음이 부족하므로 하나님께서 실망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빼앗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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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왕이 뉘시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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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분이 영광의 관과 왕복을 받으실 수 없다. 그분은 아버지 앞으로 들어가신다.
그분은 당신의 상한 머리와 찔린 옆구리와 상처난 발을 보이시며, 못 자국 있는 손을
드신다. 그분은 자신의 승리의 증거품들을 가리키며 당신이 재림하실 때에 무덤에서
일어날 큰 무리의 대표자로서 그와 함께 부활한 자들을 요제(搖祭)의 단으로 하나님께
바치신다. 그분은 회개하는 한 죄인을 인하여 즐거워하시고 한 영혼을 인하여 기뻐
노래하시는 아버지께 가까이 나아가신다. 땅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은 이미
합의하셔서 인류가 사단에게 정복당하게 될 경우에 인류를 구속하기로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 그들은 손을 굳게 잡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보증인이 될 것이라는 엄숙한
서약을 하셨다. 이 서약을 그리스도께서 성취시키신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셨을 때에 그분은 아버지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던 것이다. 계약은
완전히 이행되었다. 이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아뢴다. 아버지여, 다 이루었나이다.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당신의 뜻을 이루었나이다. 나는 구속 사업을 완성시켰나이다. 만일
당신의 공의가 충족되었다면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옵소서(요
19: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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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