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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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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말

이 책을 읽게 될 진리 탐구자들에게 그들의 진리를 향한 험한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제가 현재 형제
인도자로 있는 진리탐구단 모임의 일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진리는 그를 찾고자 하는 우리 모두를
반드시 바른 길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우리 진리탐구단 동지들은 진리를 배우고 몸소 체득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왔고, 그때마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발전과 진보에 더 없이 기뻐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하여 진정으로 사색하는 모든 이들이여, 이 지상의 물질 이면에 펼쳐진 더욱
드넓은 세계를 탐험해보지 않으실련지요.

이 책을 출간하는 데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책을


사랑하는 16 살 손자 스틸라노스 스피로우 파파키리아코와 그의 엄마 이렌
스틸리아노우 에테슐리에게 바칩니다.

스틸리아노스 에테슐리스

(다스칼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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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책이 설명하고자 하는 진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진리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직접 경험을 통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진리이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오직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진 것이기 때문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5) 진리는 무수한 면들로 이루어진 눈부신 다이아몬드와 같다. 이
보석이 내면에 머금고 있는 빛은 아름다운 색상을 띠며 수많은 면들을 통하여
발산된다. 우리 인간은 그 중 한 면으로부터 발산된 빛을 보게 되며, 그로부터 상대적
진리를 깨닫는다. 역대 모든 신비가, 현인, 성자, 스승들이 외쳐온 가르침과 사상은
보석의 서로 다른 면에 대한 묘사였을 뿐, 모두 본질적으로 하나의 영원불멸의 진리를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진리의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그저 호기심만 있는 무책임한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이것은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잘못하다간 도리어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흉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진실한 뜻을 품은 의사와 같은 자에겐 이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들에게 얼마든지 이 진리를 전해줄 것이다.

결코 우리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진리 탐구단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같은


목적지로 이어지는 수많은 도로와 보도가 존재하듯이, 우리 외에도 같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다른 진리 탐구단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웃집 정원의 꽃은 우리집
정원의 꽃만큼 아름답고 소중하다. 진리를 세상에 알려서 인류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써온 세상 모든 이들의 수고와 노고에 우리는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그 어떤
종교나 조직에게도 적대적이지 않다. 그들의 길 또한 신(절대적 영원무한성)을
향해가는 또다른 행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길들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며, 이 가르침 속에는 성스러운 지혜와 사랑이 가득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오직 우리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이들 또한


우리보다 더 많은 진리를 알고 있다고 섯불리 주장해선 안된다. 우리 모두는 갈 길이
아득히 멀다. 허나 우리가 이 물질계에 살아숨쉬는 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길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여 나아갈 것이다. 진리의 바다, 영원한 생명의 바다, ‘진정한 천국’,
그것은 우리 안에 있으며, 모든 곳에 있다.

인류가 진정한 물질의 주인이 되도록, 감정과 갈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선물인 신성한 ‘마음’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온 인류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해온
세상 모든 이들의 노력에 우리는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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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끝날 없는 검의 점설 (The Legend of the Unpointed Sword)---------------------- 9
1. 절대적 영원무한성 (Absolute Beingness)------------------------------------ 12
2. 로고스 (The Christ Logos)------------------------------------------------------- 20
3. 성령(Holy Spirit)------------------------------------------------------------------ 26
4. 인간(Humanity)------------------------------------------------------------------- 32
5. 대천사 품계(The Archangelic Orders)---------------------------------------- 50
6. 마음과 에테르생명력(Mind and Etheric Vitality)--------------------------- 58
7. 우주의 탄생(Creation)----------------------------------------------------------- 66
8. 시공간(Space-place-time)-------------------------------------------------------- 72
9. 다차원 우주(The Worlds)------------------------------------------------------- 80
10. 빛, 그리고 그 너머의 초월빛(Light and Superlight)------------------------ 88
11. 육신이 형성된 원리(How the human body is constructed)----------------- 90
12. 에테르 복체(The Etheric double)----------------------------------------------- 94
13. 우리의 세 육신(Our three bodies)-------------------------------------------- 104
14.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Temporary and Permanent Personalities) 110
15. 사념체(Elementals)-------------------------------------------------------------- 112
16. 잠재의식(The Subconscious)---------------------------------------------------120
17. 인과응보의 법칙(The Law of Cause and Effect)----------------------------126
18. 내면을 향하여(Looking Within)-----------------------------------------------130
에필로그 대신에…-------------------------------------------------------------------140
시(꿈 속을 해메는 여행자)--------------------------------------------------------- 142
용어해설집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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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없는 검의 전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를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는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라.’ (마테복음 2:1-2)

붓다께서는 그의 제자 아난다에게 500 년 뒤에 신이 직접 인간으로 환생할 것이라고


이르신 적이 있다. 그 존재는 여러 생의 윤회를 거치며 완성을 향해온 평범한 인간이
아닌, 신의 직접적 환생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붓다의 예시를 알고 있었던 동방의 선각자들은 조슈아(예수)가 태어나시기 이전부터


천리안을 사용하여 성모 마리아의 출생지를 알아내고 신의 환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하라자 람은 이 중 한 명인데, 그는 그의 동료이자 고문인 체키타나와 함께 그분이


태어나는 순간을 축복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환생하실 정확한 시간과 팔레스타인
내의 위치를 계산하였다.

정해진 때가 되자, 람은 그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그의 왕국에 대한 통치권을 맡기고


체키타나와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 그들은 아르메티아를 거쳐가야 했는데,
그곳에서는 당시에 두 왕국간에 전쟁이 진행 중이었다. 각 왕국의 통치자는 카스파와
디크렌으로, 그들은 본래 한 형제였다. 람이 그들을 화해시키자, 카스파는 디크렌에게
그의 왕국의 통치권을 넘겨주고 람과 체키타나와 함께 순례길에 동행했다.

남쪽으로의 여정 중 그들은 점성가 발 다스 머셔를 만났는데, 그가 함께 가기를


원하자 흔쾌히 승락하였다.

어느덧 일행은 팔레스타인에 당도하였다. 그들은 헤롯 대왕(잔악 무도한 유대의 왕)을


만날까 고민했다. 그들은 헤롯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당시 그가 무시무시한
계획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그를 찾아가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발 다스 어셔는 그래도 그를 찾아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혹시나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람과 카스파는 결국 승낙했다.

그 이후 그들은 베들레헴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를 보살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람이 여울통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망토를 벗어서 그리스도의 발 앞에 깔고 흰 상의만 입었다. 이것이 진리탐구단의
스승들이 흰 가운을 입게 된 기원이다. 이것은 청순, 정직, 헌신의 상징이다. 람은 그의
검을 뽑아서 끝 날을 부러뜨리고 아기 예수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그는 읊었다. ‘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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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e immaculate feet, O Logos, be all authority.’ (오 신이시여, 성스러운 당신의 전에
무한한 권능이 함께 하기를.) 이것이 입문의 검, 끝날 없는 검의 기원이다.

곧이어 다른 두 선각자들도 선물을 바치고 나자, 람은 ‘헴 엘 키오르!’ 라고 외쳤다.


‘나는 신을 보았다!’ 라는 뜻이다. 그로부터 그는 ‘멜키오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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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절대적 영원무한성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한 1 서 4:16)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니체아 신경)

태초에 신께서 당신의 거룩한 법칙을 펼치고자 하는 성스러운 뜻을 인간의 귀에


속삭였을 때, 그 영원한 분의 형언할 길 없는 초월성을 깊이 깨달은 인간들은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경건함으로 그분을 이렇게 불렀다. ‘이름
할 수 없는 분.’세상 그 어떤 이름이 최초이자 유일한 절대 무한의 존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분은 인간의 제한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턱없이 부족한 인간의 언어로써 당신의
장엄함과 성스러움을 이름하셨다. ‘I am Beingness.’(출애굽기3:14) (‘나는 영원하고
무한함이니라.’) 그 후 인간들은 깊고 깊은 숙고 끝에 그분을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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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 = 무한영원성 = 신(하나님) = 주님 = 아버지 = 가장 높으신 분(Absolute


Beingness = Infinite Beingness = God = The Father = The Lord = The Highest)

이들은 모두 동의어이다. ‘아버지’란 단어는 남성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지만,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비롯한 그의 순수한 화현물(절대영혼 Soul, 대천사 Archangel - 역주)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시작이자 결론이요,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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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신이다. 그는 온 만물을 탄생시킨 모든 덕과


생명의 원천이며, 세상을 빈틈없이 가득 메우며 천국과 지옥, 모든 다차원 우주를
품고 다스리는 영원불변의 절대권능이다.

영원무한성 Beingness 의 전능함과 거룩함은 세상 모든 곳에 깃들어 있다. 가장 작은


물질원자에서부터 끝없이 광활한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깊은 바닷속 밑바닥에서부터
구름으로 덮인 산꼭대기까지, 가장 낮은 지옥의 나락에서부터 가장 높은 천상의
옥좌까지, 영원성은 세상 모든 곳에 가득하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란 ‘절대적 초자아의식’의 경계이다. 이 경계는 세상 모든 것들이


탄생되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다. 이 경계 속에서 모든 만물은 본질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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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최초이자 유일한 신이다. 그는 절대적
자체완전성 Self-Sufficiency**의 경계에 거하며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를
통하여 스스로를 표현한다. 하늘과 땅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가
품은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pleasure**의 현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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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Divine)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순수한 화현물 앞에만 붙을 수 있는 고유한 단어이다.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Divine Self-sufficiency)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가장 근원적 본성.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모든것들로부터


홀연하여 스스로 완전한 끝없는 풍요로움과 축복으로 가득한 경지.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pleasure)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신의 이상. 이 속에는 창조 Creation 를 통하여 끝없이


베품으로써 얻는 신의 기쁨이 포함되어 있다.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성스러운 숙고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성스러운 이상을 품기 이전의 사색하는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조 Creation 를 하고자 하는 그의 영감은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속에서 떠오르게 된다.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Divine Self-sufficiency 과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pleasure 사이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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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에게는 자아의식이 있을까? 물론, 그는 ‘절대자아의식’을 지닌다.


표현되기 이전의 정적 경계에서부터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 경계(물질계)에
이르기까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절대자아의식은 세상 모든 곳에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스로를 표현해야 하는 일 점의 속박도 없다. 그는 절대적 자체완전성 Self-
sufficiency 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절대적 축복의 경계이다. 이 궁극의 경계에
들어서는 것은 우리 인간이 완성된 실재 Being**가 되어 진정한 삶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한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계단이다. 인간은 이 절대적 축복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다. (인간의 존재목적은 모든 것의 영원한 고향인 이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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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하여 절대적 축복과 하나되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본래의 영원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곳은 인간의 기나긴 여정의 출발지이자 최종 목적지이다.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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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existence) / 실재(Being)

존재(existence)하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 일시적인 것이다. 반면, 실재(Being)하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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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 Absolute Beingness 을 벗어나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


안의 그 어떤 영역도 말이다. 신은 스스로를 무한이라는 단어 속에 제한하지 않으신다.
신은 공간을 초월하여 절대하는 영원한 생명, ‘절대생명’Life 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스스로의 안에 자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특별한


매개물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Mind 이다. 그는 마음 Mind 이라는 원료를 사용하여
단절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자신을 삼라만상으로써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의
실상을 ‘성스러운 다중성’Divine Multiplicity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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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계 = 존재계 = 현상계 = 시공계=경험계 (world of separation = world of existence =


world of space-place-time = world of experience)

단절계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의 세 존재계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의 인격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의 경계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내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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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다중성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분의 초월적 일체성 Oneness 과 무한한 자비에 대하여 깊이 사색해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에 대한 한 점의 두려움 없이 깊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한다. 신은 세상의 모든 것이며, 그에게는 어떠한 제한도,
조건도 없다. 신의 본성은 끝없는 사랑, 절대사랑이다. 인간의 두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선천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의 일부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란 세상 모든 것이며, 절대적 일체성 Oneness 이다. 하지만, 그


일체성의 실상은 다중성 Multiplicity 이다. 즉, 일체성 속에 다중성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비록 태초의 하나 One 는 삼라만상 Multiplicy 으로
표현되었지만, 이 모든 표현물들은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서 본질적으로 서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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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일체성과 다중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바다가 있다. 바다란 산소와 수소 원자로 이루어진 방대한 양의 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다’를 연상할 때, 단순히 물만 떠올리지는 않는다. 바다를
이루어내는 요소들인 심해저, 파도, 푸른 빛, 물고기, 해초 등을 모두 함께 떠올린다.
바다에게 깃들어있는 다중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곰곰이
사색해 보라.

다중성 Multiplicity 은 비단 바다뿐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곳에서 엿볼 수 있다.


대자연은 꽃, 나무, 지렁이와 같은 미생물에서부터 거대한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명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생명체는 수백만 개의 세포들,
원자들이라는 다중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원자와 세포는 자신만의
고유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

삼라만상이 펼쳐져 있는 창조된 세계들 속의 다중성과 이들을 창조한 근원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를 이루는 다중성은 그 스케일에 있어서 엄연히 다르다. 비록
우리가 존재계 속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우리의 의식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까지 끌어올리면 그 차이를 느끼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지성은 여전히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다중성 Divine


Multiplicity 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단절계 속을 살아가는 인간은 모든 것을
단절된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중성을 이루는 세상의
모든 만물 속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가 로고스 Logos 와 성령 Holy
Spirit 을 통하여 빠짐없이 깃들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창조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뜻 Divine Will, 그리고 그의 두


팔인 로고스 Logos 와 성령 Holy Spirit 에 의하여 실현되었다. 세상의 모든 만물 속에는
로고스와 성령이라는 성스러운 두 주재자가 깃들어 있다. 이들은 우주의 모든 곳에
편재하여 매 순간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고 관리하며 다스린다.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갈 개념은 자체완전성이다. 이것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위대함에 대하여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자체완전성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가장 근원적인 본성으로써, 성스러운 이상을 낳은 경계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자체완전성을 지니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의 안에
담아낸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벗어나는 무언가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그의
안에 있으며, 그렇기에 모든 만물에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자체완전성과 절대지혜가 깃들어 있다. 자체완전성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뜻 속에, 그리고 그로부터 탄생한 모든 창조물 속에 깃들어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탄생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만물을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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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해나가다 보면 자체완전성은 모든 것의 가장 근원이자 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체완전성에 이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또 하나의 본성이 있는데, 그것은 성스러운


이상이다. 성스러운 이상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분신인 로고스 Logos 와 성령 Holy
Spirit 에 의해서 실현된다. 이 둘은 곧 절대적 영원무한성 자신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스스로를 로고스와 성령으로써 화현하는 순간은 성스러운
자체완전성과 성스러운 이상의 중간 경계이다. 물론 자체완전성은 성스러운 이상
속에도 깃들어 있지만 말이다.

창조 Creation 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이상의 실현이다. 그로부터 탄생된


모든 창조물 속에는 로고스(범우주적 자아의식)와 성령(범우주적 초의식)을 포함한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모든 본성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의 창조란 물질로 이루어진
물질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수많은 차원들, 영계들로 구성된 모든 다차원 우주를
포함한다. 온 우주는 로고스와 성령의 조화로써 설계되고 실현되었다.

성스러운 뜻이란 절대적 정적 경계에 거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근원적 본성이다.


여기서의 ‘정적’이라는 표현을 쓴 까닭은, 이 경계는 창조가 시작되기 이전, 즉 어떠한
창조의 진동도 일어나기 이전의 태초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곳은 아무것도
표현되지 않은 미동 하나 없는 정적 경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이미
창조의 진동이 잠재되어 있다. 장차 탄생되고 존재하게 될 모든 것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 속에 이미 잠재되어 있으며, 이들은
성스러운 뜻에 따라 로고스와 성령에 의하여 동적 경계 속에 표현되고 실현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창조를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여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을


실현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있어서 행복이며 기쁨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삼위일체의 원리에 의하여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이라는 세 얼굴을 지닌
신으로써 스스로를 화현한다. 로고스는 절대자아의식이며, 성령은 절대초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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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창조 Creation 의 완벽한 청사진. 우주 안의 모든 것,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성스러운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 무한한 지혜의 소산인 성스러운 계획에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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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자신을 로고스와 성령으로 화현하기 이전 경계인 자체완전성의
경계에서부터 이미 이 둘을 품어왔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 이 셋은 곧
하나이다. 이것이 신의 본성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근원적 본성인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사랑**을 염두해두자. 신은 인간을 탄생시키고 그에게 진아 Self 를 깨달아가는
성스러운 여정을 내려주셨다. 이것이 신의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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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사랑 = 절대사랑 / 전적지혜 = 절대지혜 / 전적권능 = 절대권능 (Total Love / Total


Wisdom / Total Power)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그 안의 모든 실재들이 지니는 근원적 본성. 이 셋은 성스러운


삼각형을 형성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온전하게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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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절대생명 Life 이다. 절대생명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기 위해선 그의 가장


근원적 본성 중 하나인 자체완전성과 더불어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이라는
그의 세 가지 본성에 대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스스로를 사랑할까? 물론이다. 그는 곧 절대사랑이기 때문이다.


만일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근원적 본성이 절대사랑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만물도,
차원들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절대사랑은 세상 모든 곳을 충만하게 가득 메운다.
절대사랑이라는 성스러운 본성 없이는 어떠한 물리법칙도, 물질계의 원자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심령계, 이지계는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인간이 깨달아야 할 가장
위대한 진리이다. 우리는 그대가 진리를 깨달아 신의 절대사랑과 절대자비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울 것이다. 이 경계를 한번이라도 체험해본다면 그 이후부터
그대의 여정은 더욱 쉬워진다. 더 이상 거칠고 고된 길이 아닌, 곧고 부드러운 길을
걸어나갈 수 있다. 인류여, 이제는 삶의 더욱 본질적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제까지 그대에게 설명해주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신의 사랑이다. 인간은 아마 이


성스러운 원동력이 이루어낸 천지창조의 장엄함과 완전함을 절대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경험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신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의


수준을 지니고 있다. 신이 무엇인지 더 깊게 알고자 하는 그대의 운명적 갈망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면,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에 대하여 깊고 진지하게 사색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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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색 끝에 얻는 깨달음은 우리의 내면이 그의 절대지혜 Wisdom, 절대권능 Power,
절대사랑 Love 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은 항상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항상 그의 안에 있듯이.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온유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예의가 바릅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남에게 기꺼이 양보합니다.
자비심이 강하고 선한 일을 즐겨합니다. 진심이 들어 있고 솔직하며 성실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평화의 씨앗을 심어서 선행의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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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로고스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니체아 신경)

오직 절대적 영원무한성만이 진정한 실체 Reality 이다. 그것은 절대진리이자 불멸의


생명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고 담아내는 전체성이다. 그의 본성인 자체완전성은
삼라만상에게, 그리고 그 근원되는 절대적 일체 Oneness 속에 모두 깃들어 있다.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무일한 신이다. 그는 창조의 성업을 실현해내기 위하여
스스로를 로고스 Logos 와 성령 Holy Spirit 으로 현현한다. 그리하여 이 둘을 통하여
끊임없이 만물을 창조하고 표현함으로써 성스러운 뜻을 펼친다.

신이 아닌 공간이란 없다. 세상 모든 것은 그의 자체완전성 안에, 다중성 안에 펼쳐진


성령과 로고스에 의한 창조적 표현물이다.

절대적 실체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에게는 두 가지 본성이 있다. 하나는 절대사랑이


담겨있는 절대지혜이며, 다른 하나는 절대사랑이 담겨있는 절대권능이다. 전자를
로고스라 하며, 후자를 성령이라 한다. 이 둘이 거하는 곳은 창조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정적 경계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스스로의 절대지혜를 표현함으로써 이
둘이 탄생하였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만약 그렇다면, 로고스와 성령은 창조물,
결과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니라.’ (요한복음 1:1). 로고스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였다. 로고스와 성령은 최초의 창조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아버지와 한 몸’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6)이라고 하셨다. ‘진리요


생명’이란 그의 내면에 있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뜻하며, ‘내가 곧 길’이라는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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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인도해주는 사명을 짊어진 인간으로써의 당신을 뜻하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표현된 세계, 창조된 세계 속을 살아가는 동시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성스러운 축복의 경계 속에
거하고 있다. 우리는 결코 이 근원적 경계로부터 분리된 적이 한 순간도 없다.

우주의 탄생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품은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pleasure 의


결실이다. 그는 우주를 빚어내기 위하여 마음 Mind 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였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물질원자, 영적원자 속에는 로고스와 성령이, 근원적으로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깃들어 있다. 그는 ‘모든 것이 말미암은’(요한복음 1:3) 근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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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최초의 표현물로써, 이를 원료로 하여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이


빚어졌다. 비록 마음 Mind 은 불멸의 실재는 아니지만, 이 속에는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사랑, 성스러운 권능과 창조주의 순결함이 온전히 깃들어 있으며, 창조 Creation 를 위하여
영원히 쓰이는 재료이다. 마음 Mind 을 탄생시킨 근원은 성스러움(Divine)이며, 그로부터
탄생한 마음 Mind 은 신성 holy**하다.

신성함, 신성한 (holy)

모든 창조물들은 신성(holy)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성스럽지(Divine) 않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의한 창조물들은 그의 직접적 화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영혼 Soul 과
대천사 Archangel 는 성스러운 Divine 반면, 초질료 마음 Mind 은 신성 holy 하다.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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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미술작품을 만드는 조각가가 있다. 그의


작품의 이름은 ‘우주’이다. 그는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오른손에는 조각칼을 쥐고
조각상을 다듬으며, 왼손으로는 조각상이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준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만드는 이는 조각가인가, 조각가의 양손인가? 이 우주를 창조한 이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인가, 로고스와 성령인가? 아니면 셋 모두인가?

로고스는 창조물이 아닌 창조주 Creator 이다. 그는 곧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다.


로고스는 인간에게 깃들어서 자아의식과 이성적 사고로써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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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로고스와 함께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뜻을 실현하는 사명을 맡은 또
하나의 사역자이다. 성령은 전적지혜, 전적전능, 전적사랑으로 충만하며, 그는
우주라는 장엄한 교향곡의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지휘자이다.

미생물에서부터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온 우주의


경이로운 질서와 조화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절대지혜와 절대권능이 탄생시킨
위대한 걸작이요, 로고스와 성령의 완전무결한 협력과 조화가 일구어낸 눈부신
결실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스스로를 절대적 영원무한성-로고스와 절대적 영원무한성-


성령으로 화현하여 다차원 우주를 창조한다. 하지만, 로고스와 성령을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아닌 다른 독립적인 무언가로 보아선 안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신이
셋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 셋은 본래 하나이다. ‘하늘에서 증언하시는 세 분이
계십니다.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십니다. 이 셋은 하나입니다.’ (요한 1 서 5:7)

온 우주의 탄생과 실현은 하나의 창조자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우주를


다스리는 것은 절대지혜가 탄생시킨 수많은 절대법칙들 Laws 이다. 이들에 의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의 완벽한 조화와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성스러운 법칙 Laws, 원칙 Principles, 원리들 Causes 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대근원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다.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로 이루어진 시공계라는 장엄한 무대 위에 그가 품어온 모든
이상을 펼치고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뜻으로부터 온 세상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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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계 / 물질체 (material world / material body)

가장 낮은 진동수를 지닌 마음 Mind 의 파동. 일명 고체화된, 형상화된 마음 Mind 으로써


우리의 물질체를 비롯한 온 물질계를 구성한다.

심령계 / 심령체 (psychical world / psychical body)

4 차원계이며, 일명 감정계라 불리운다. 심령계는 7 개의 차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차원은 7 개의 하위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심령계는 우리가 제 1 의 유체이탈을 할 때
들어서게 되는 곳이며, 죽음 이후에 들어서는 첫 번째 세계이다.

이지계 / 이지체 (noetical world / noetic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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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지성, 지혜를 뜻한다. - 역주) 5 차원 세계. 단절계 속의 가장 정교하고 높은
차원으로써, 우리의 이지체가 머무르는 곳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가 각 만물의
원형을 존재계 속에 표현할 때 가장 첫 번째로 이곳에서 이지체를 생성시킨다. 이는
은하군에서부터 단세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에게 적용된다. 이지계에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심령계나 물질계의 시공간과는 매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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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로고스와 성령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그들이 창조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장차


표현될 모든 만물은 이미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 속에 정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다.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Divine Self-sufficiency 과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
pleasure 에 의하여 창조된 모든 것, 또는 창조될 모든 것들은 본질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한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 속에 영원히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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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지금= 영원한 현재(Eternal Now = Eternal Present)

존재계와 실재계를 초월하는 영원성의 경계에는 영원한 현재, 영원불멸의 절대생명 Life 만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벽이 허물어지며 오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끝없는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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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성령을 비롯한 인간, 프린시펠리티 (군주 대천사), 도미니언 (통치의 대천사),
오버로드 (대군주 대천사), 그리고 그 외 다양한 품계 Order 의
대천사들 Archangels**은 그 종류를 떠나서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다중성을 구성하는 일원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이 이루어내는
완벽하고 절대적인 조화는 세상의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것에
이르기까지, 단세포에서부터 태양과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깃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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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 (Archangel)

대천사 Archangel 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신의 전령이다. 그들은 절대적


초의식**을 지니지만, 인간과 같이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을 인지할 수 있는 자아의식은
지니지 않는다. 대천사 품계 Archangelic Order 의 종류에는 원소의 대천사들을 비롯하여
어소리티 (Authorities, 권능대천사), 케라프 (Cherub, 지혜대천사), 도미니언 (Dominion,
통치대천사), 오버로드 (Overlord, 대군주 대천사), 프린시펠리티 (Principality, 군주 대천사),
세라프 (Seraph, 사랑의 대천사), 스로운 (Throne, 왕좌 대천사) 등이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7 개의 대천사 품계에 대하여 다룬다. 각 품계 Order 는 무한대에 가까운 대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을 하며 창조의 작업을 분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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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식 (Super-consciousness)

삼라만상과 하나되는 범우주적 전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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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이며, 질적으로 그와 동일하다. 한


인간의 영적 성숙도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수준이다.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다른 대다수의 인간들보다 성숙된 자세로써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받아들이고 탐구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찬 속에는 모든 해답이 들어있다. 예수께서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드리워진


무지의 어둠을 남김없이 밝히고 그들을 깨우쳐서 진리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그 당시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을 이미 내면에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그들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이들을 가르치셨다.
말씀으로써, 그리고 행동으로써.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한한 진리의 보고였으며,
그의 일거일동은 인류의 완성과 구원을 향한 초석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진리를 강조하시기 위하여 다양한 기적을


행하셨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세인들의 관심을 모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적은 인간들을 매혹하여 숭배를 받기 위함이 아닌,
순수하게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그리하여 그들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그들 내면의 영성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대중에게 둘러싸여 동경을 받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그분의 유일한 목표는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복음 10:30)라고 하셨다. 이 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임과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이다. 이 말씀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와 신 사이의
운명적 결속을 강조하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신이라는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하고자 하셨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요한복음 10:34)

나사렛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으로써 모든 인류가 성스러운 진리의 빛으로 화하여


우리 스스로가 깨달음과 구원의 햇불이 되도록 돕고자 하셨다. 예수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이라는 신의 참된 본성을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완성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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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크리스찬은 단순한 하나의 종교가 아닌 진리의 순수한 화현이며, 우리를
진정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훌륭한 이정표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절대영혼이신 예수는 우리 모두의 안식처이자 희망이다. 온


인류를 하늘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고자 하는 그의 사랑은 끝이 없다. 그의 일부는 곧
우리의 일부이다. 우리 모두가 그를 내면에 품고 있듯이, 그 또한 우리 모두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늘’ (고린도후서 12:2)로 승천한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만물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삶이나 죽음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21-23)

진리의 문을 두드리고 그곳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대에게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다면,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마테복음 17:20).

복음서의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은 무한한 영적 지혜의 보고이다. 이들은 성스러운


지혜와 성스러운 사랑 그 자체이다. 모든 진리 탐구자들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으니,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요한복음 1:1)

Chapter 3: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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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내 대신에 보내실 돕는 자이신 성령이 오시면 또다시 많은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또다시 일깨워 주실
것이다.’ (요한복음 14:26)

‘너희가 붙잡혀가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너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네게 일러주시는 말만 그대로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마가복음 13:11)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믿음에서 오는 행복과 평화를 넘치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성령의 능력을 통해 여러분이 희망으로 넘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서 15:13)

성령은 곧 신이다. 성령은 로고스와 함께 자체완전성의 경계에서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임과 동시에 그의 성스러운 뜻을 이어받아 실현하는 창조의
사역자이다. 로고스와 성령은 온 우주를 창조함으로써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뜻을
펼친다. 창조의 목적은 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성령은 세상 모든 곳에 있으며,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완전무결한 법칙 Laws 과


원칙 Principles 들로써 온 우주를 다스리는 만유생명의 원천이다. 성령은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와 함께 존재계 world of existence 속의 표현된 생명들과
실재계 world of Being 속의 영원한 생명들을 모두 다스린다. 다차원 우주를 창조하는
실질적 작업은 무수한 대천사들 Archangels 과 천사들 angels 에 의해 진행되며(천사란
대천사로부터 발산된 사념체다. - 역주), 성령은 이들을 총괄적으로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대천사들은 성스러운 이데아들 Ideas 속에서 절대지혜를
바탕으로 초질료 마음 Mind 을 재료로써 사용하여 만물의 원형 form 을 빚어낸다.
이데아 Idea 의 종류에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외에도 조화의 이데아, 움직임의
이데아, 통일의 이데아, 단절의 이데아 등과 같은 추상적인 이데아들이 있다.

성령과 그의 협력자인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수많은 차원들 속에서 절대지혜를


바탕으로 하여 초의식적으로 만유생명을 창조하고 다스리며 관리한다.

모든 만물은 로고스와 성령의 끊임없는 가호를 받는다. ‘무한’ 중 로고스와 성령이


아닌 영역이란 없다. 이 둘은 분리된 두 명의 신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모든 것의 근원이자 위대한 아버지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

로고스는 인체 내에서 두뇌와 심장으로써 표현되었고, 각각 논리적 사고와 사랑을


담당한다. 반면, 성령은 태양신경총(명치)으로 표현되었고, 이곳은 직관적 사고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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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로고스적 Logoic, 성령적 Holy Spiritual 성품이 모두 깃들어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은 이보다 더욱 위대하다.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근원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구성하는 성원소 Holy Monad**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원소가
아니었던 순간은 없다. 모든 인간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영원불변의
성원소이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시공을 초월하는 궁극적 의식의 경지인
테오시스 Theosis**를 성취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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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소 (Holy Monad)

가장 깊은 내면의 궁극의 자아. 성원소는 성스러우며(Divine) 영원불멸한다. 성원소가 거하는


곳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자체완전성의 경계이다.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라는
전체성을 이뤄내는 성스러운 원소들이라는 개념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성원소의 수는
무한하다.

테오시스 (Theosis)

신,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되는 궁극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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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소의 화현인 인간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가장 고귀한 표현물이다. 성스러운


숙고의 경계에서 성원소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함으로써 자신을
자아의식을 지닌 이성적 실재(Logoic Being), 즉 절대영혼 Soul**으로 화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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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영혼(Soul)

성원소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함으로써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다.


절대영혼은 창조되지 않았다. 스스로 화현한 것이다. 절대영혼이란 성원소 내부에
탄생한 조그마한 진주와 같다. 절대영혼은 무형 formless 이다. 훗날 절대영혼은
신에게로 귀환하여 성원소와 결혼함으로써 더욱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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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절대영혼 Soul 은 현상계를 살아가기 위한 육신을 창조한다. 이 육신은


물질체 및 고차원 육신들(심령체, 이지체)을 모두 포함한다. 육신이란 성령의 손길에
의해서 초질료 마음 Mind 으로 빚어진 완전무결한 작품으로써, 그 속에는 신의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이 온전히 반영되어 있다. 육신은 절대영혼과 인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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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계를 살아가기 위한 매개물이다. 소우주인 절대영혼과 인격은 대우주 로고스를
이루는 일원이자 그의 축소판이다. 로고스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복음 1:9)이다. 로고스적 표현물인 절대영혼과 인격은 성령의 표현물인
육신과 우주라는 장엄한 무대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잠재의식이란 인간이 지니는 의식의 일부로써, 그 속에서는 성령에 의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진다. 비록 성령은 비인격적이지만, 그는 인간의 육신을 창조할 때 그
속에 육신의 다양한 기능들을 직접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한 잠재의식 센터들을 함께
만든다. 성령에 의해 관할되는 인체기능들의 예로써, 정자와 난자의 생산, 그리고 이
둘의 착상과 같은 인간의 의식적 통제의 영역을 벗어나는 잠재의식적 신체활동들이
있다 (이러한 생식기능은 생명의 종의 지속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에겐 마치
당연하게 여겨지는, 하지만 실은 성령의 초의식에 의해서 관할되는 수많은 인체활동
및 우주적 현상들에 대한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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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 (sub-consciousness)

잠재의식은 크게 세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구획에는 우리의 현재인격을 구성하는


모든 사념체들이 보관되어 있다. 두 번째 구획에는 우리가 사용하기 위한 에테르 생명력이
저장되어 있다. 세 번째 구획은 가장 신성한 곳인데 로고스와 성령이 거하며 우리의 의식
속에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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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물질체는 특정한 모델을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그 모델은 바로


심령체이다. 모든 물질체는 심령체(감성체)와 이지체(이성체)를 지니고 있다. 이 세
육신은 모두 성령과 로고스에 의하여 인간 이데아 Human Idea(인간 원형의 설계도 -
역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성령에게는 인간의 육신인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를 만드는 작업 이외에도 또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다. 성령은 한 인간의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항상 함께 하며 그가
겪은 모든 경험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이 받은 느낌,
인상들을 그의 영구원자** 속에 하나도 빠짐 없이 기록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작업은
성령과 절대영혼 Soul 이 함께 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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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격 (present-day personality)

‘죠지’, ‘메리’ 등과 같은 이름을 지니고 각 생을 살아가는 인격. 현재인격은 단절계 속을


살아가는 영구인격의 표현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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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인격 (permanent personality)

단절계 속에 표현된 절대영혼의 자아의식. 영구인격은 현재인격에 의해 수집된 지식들을


걸러내어 지혜로 숙성시킨다.

영구원자 (permanent atom)

영구인격의 일부로써, 시공계 속에서 수집한 경험들을 낱낱이 기록하는 책과 같다.


영구원자는 세 육신의 에테르 심장이 있는 곳에 포개져서 위치해 있다. 영구인격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에서 겪었던 모든 감정, 생각, 반응, 경험을 영구원자에 빠짐없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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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만유생명을 낳은 원천이다. 그러나, 그에 의해 탄생된 만물에게는 한계가 있다.


성령에 의해 탄생된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광대한 은하계, 행성, 수억만 종의 동물,
식물, 광물을 비롯한 이 모든 만물... 그들에게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의 숨결이
깃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과 같은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아의식 Self-consciousness 이란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인격적 의식 self-consciousness 과는 엄연히 다르다. 인격적 의식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되어 있는 의식의 경계이다.
세상 모든 인간은 깊은 내면에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대다수는 이를
활성화시키지 못하였다. 그들의 의식의 성숙도는 저마다 제각각인데, 이는 자신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한 암흑 같은 의식에서부터 참 나를 되찾아 ‘진아실현’Self-
Realization**을 성취한 끝없이 눈부신 빛의 경지까지 그 분포는 매우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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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영구인격이 진아 Self 를 깨달아 완성된 실재가 되는 것. 단절계 속에서 겪어온 수많은 경험


끝에 성취하는 궁극의 경지. 진아실현을 통하여 영구인격은 절대영혼과 재결합을 하게 되며,
이로써 성원소와 일체가 되는 테오시스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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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나 마음 속에서 마치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대부분의 작용들은


사실 성령에 의해 관할된다. 이를 두고 우리는 인간이 ‘성령적 잠재의식’을 지닌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는 성령적 잠재의식에 의해서 보살펴지며
관리된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이나 느낌 또한 성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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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인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들, 원자들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본능의식(비록 매우 단순하고 원시적인 의식이지만 - 역주)을
지닌다.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하는 성령은 인체 내의 모든 세포들과 원자들을
초의식적으로 통제하고 관할하며 끊임없이 인체의 전체적 조화성과 항상성을
유지한다. 성령의 이러한 창조 활동은 특정한 장기들 또는 세포들만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체 내의 모든 세포, 모든 원자, 그 안에 존재하는 무한대의
지점들을 중심으로 하여 동시에 이루어진다. (더 나아가 온 우주가 이와 같은
원리로써 성령에 의해 다스려진다.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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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식(Self-consciousness)

자신의 진아 Self 를 깨달은 의식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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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격은 참 나를 구성하는 일부로써, 오감을 통하여 삶 속에서의 경험, 느낌,


인상들을 수집하는 일을 담당하는 중심부이다. 각 인간의 현재인격은 주로 그의
잠재의식에 의하여 형성되며, 성령은 이를 간접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
현재인격이란 잠재의식적 나, 본능적 나를 뜻한다. 이곳은 흔히 우리가
아집 egoism 이라고 일컫는 불순물이 섞여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인격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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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Ego) / 현재인격(ego) / 아집(egoism)

우리가 사용하는 이 용어의 뜻을 오늘날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뜻과 혼돈하면 안된다.


아집 egoism 은 현재인격 속에 섞여있는 불순물이며, 그가 발생시키는 이기적 갈망과 비열한
감정, 욕심, 악의, 시기, 질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성한 마음 Mind 을 변질시킨다. 반면,
자아 Ego 는 실재하는 진아 Self 이자 우리의 절대영혼으로써, 그의 투영물인 인격 ego 이
지혜와 사랑으로 가득할 때 온전히 표현된다. 아집 egoism 은 우리의 인격, 사회, 전세계를
병들게 하는 화근인 반면, 진아 Ego 는 사랑, 자비, 진리적 사고, 이성적 행동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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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 식물, 광물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로고스와 성령의 두 손길에 의하여
탄생되었다. 그렇기에 만물은 로고스의 표현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의식을
지니며(인간의 경우는 자아의식), 성령의 표현물로써 잠재의식을 지닌다. 만물의
잠재의식은 성령의 초의식에 의하여 관리되고 다스려진다. (각 만물이 지니는
잠재의식은 성령이 그들을 다스리기 위한 손잡이와 같다. 성령은 만물의 잠재의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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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여 온 우주의 전체적 항상성과 조화성을 초의식적으로 다스리고 관리한다. –
역주)

잠재의식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성령이 관할하는 모든 활동이 비인격적으로,


비인칭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모든 창조 활동은
신의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물질체의 기능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성령의 활동은 우리의 의식 이면에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의 영구인격이 현재인격을 만들고 관리하며 다듬어가는 작업에 있어선 성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돕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적 성숙도의 분포는 본능적 욕구에게 지배받는 무지의


어둠에서부터 지혜로 충만한 테오시스 Theosis 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들
모두는 매 순간 성령과 로고스의 차별없는 보살핌과 가호를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계 속을, 그리고 그들만의 내면의 세계를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인간은 아직 진아 Self 를 되찾지 못하였다. 진아실현 Self-


Realization 을 이루어내어 자신이 본질적으로 영원불멸의 실재 Being 인
절대영혼 Soul 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 나아가 그 절대영혼을 탄생시킨 궁극적 근원인
성원소로써의 나를 깨닫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결코 떠난 적 없는 영원한 고향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에게 복귀하여 그와 하나되는 테오시스를 성취하는 것, 이것이
우리 모두가 향해가야 할 궁극의 목표이다.

Chapter 4: 인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26-27)

이 성서의 구절은 위대한 진리를 담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탄생하기 이전, 태초에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성스러운 숙고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탄생케 하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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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얻는다. 그리하여 그는 만물창조의 원리들 Causes 을 구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데아들 Ideas 을 탄생시킨다. 이데아란 신의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만물의 완전무결한 설계도로써, 이를 기반으로 하여 세상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차원 우주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말씀(=로고스, 절대지혜 – 역주)으로써 창조된 것이다.

만물 중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단 둘만은 예외이다.


그것은 인간 Humanity 과 대천사 Archangel 이다.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닌, 신의
직접적 화현이다. 진흙으로 인간의 육신을 빚으신 신은 이 육신에게 살아 움직이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대신, 그의 입김을, 그의 생명력을 이 육신 속에 불어넣으셨다.
그렇기에 인간은 신의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신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스러움이 깃들어간 신의 전신이요, 신의 자손이다. 신의 사랑으로써 탄생한 인간은
존재계 안에서 선과 악의 달고 쓴 맛을 보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삼가야 할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사명을 부여 받았다.

소우주 인간은 대우주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진정한 축소판이자 복사판이다. ‘하늘이


이루어져 있듯이 땅도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심오한 영적 지혜를 담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에메랄드 서판에 새겨진 명언. 에메랄드 타블렛이라고도 하며,
헤르메스학과 고대 연금술의 기원이다. - 역주)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한 성원소들로써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


하나하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다중성을 이루어내는 성스러운 일원이다.
성원소들은 절대영원자의 성스러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표현한다.
신의 이상은 곧이 우리의 이상인 것이다.

인간 Humanity 과 대천사 Archangel 들은 모두 성원소라는 동일한 근원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은 본질적으로 한 형제이다. 한 성원소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는 순간 그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 독립된 자신만의 고유한
의식(자아의식)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절대영혼 Soul 은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으로 충만한 새로운 차원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내면의 참 자아를 구성하는 두 기반을 지니게 된다. 하나는 가장 근원적인
성원소로써의 자아,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 화현된
자아의식을 지닌 절대영혼 Soul 으로서의 자아이다. 대천사 이데아를 통과한
성원소들은 스스로를 대천사로 화현한다. 인간 이데아를 통과하여 화현된
절대영혼 Soul 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으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을 인지하는 자아의식을 지니지만, 대천사들에게는 이러한 자아의식이 없다.
인간 이데아는 우리에게 대천사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선물을 선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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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at-one-ment)

일체란 다른 존재나 실재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초의식의 경지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가 되는 경계를 테오시스 Theosis 라고 한다. 테오시스는 내가 곧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본래의 자아 Ego 를 잃지 않는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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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소들은 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라는 주조틀을 거쳐감으로써 스스로를


자아의식을 지닌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한다. 이는 성원소 자체가 새로운 무언가로
바뀌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다. 성원소는 절대불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성원소로부터 발산되는 빛(성원소의 투영물)이 절대영혼 Soul 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절대영혼 Soul 은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통하여 자신을 하위 차원 속에
다시 한번 표현한다. 이 표현물이 바로 우리가 일컫는 ‘영구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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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 (Idea of Archangelic Man)

고차원 이데아의 한 종류이다. 성원소가 인간으로 표현되기 위해선 그로부터 발산된 한 줄기


빛이 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를 통과하고, 그 빛이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통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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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인격이란 절대영혼 Soul 의 시공계 속 투영물이다. ‘경험의 세계’로 내려온


영구인격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과 형상으로써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한다. 그는
시공계 속에서 윤회를 하며 수많은 이름과 성격을 지녀가며 다양한 종류의 삶을
살아간다. 영구인격은 무수한 윤회를 거듭하여도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영구인격은
불멸의 초질료 마음 Mind 으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절대영혼 Soul 이 자신을 시공계 속에


영구인격으로 표현하였듯이, 영구인격도 마찬가지로 시공계 속의 각 생마다 자신의
그림자를 투영한다. 이 영구인격의 그림자가 바로 현재인격이다. 영구인격 자체가
단절계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재계에서 절대영혼 Soul 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일부를 단절계 속으로 투영한다. 시공계로 투영된
영구인격은 각 생으로부터 경험, 감정, 느낌을 수집해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영구인격은 우리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를 구성하는 것과
동일한 재료의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들을 사용하여 자신이 머무르며 활동을
하기 위한 거처를 만든다. 이곳은 바로 우리의 에테르 심장인데, 이는 우리의
물질심장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영구인격이 머무르는 중심기관인
이곳을 ‘영구원자’라고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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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원자는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은
절대영혼 Soul 이 자신을 영구인격으로 표현하는 최초의 순간에 탄생한다.
영구원자란 영구인격이 삶 속에서의 모든 경험, 행동, 감정, 생각 등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책과 같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영구인격에 의해서


영구원자에 기록되며, 각 기록은 영구원자를 구성하는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들 속에 동시에 새겨진다. 인간이 물질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 영구원자에
기록하는 내용들은 그의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의 성숙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심령계,
이지계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호대천사**와 영구인격이 기록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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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대천사 (Guardian Archangel)

우리의 첫 환생이 시작되기 이전, 성원소의 빛이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


절대영혼이 된 순간부터 수호대천사는 우리와 함께하며 단절계 속에서의 기나긴 윤회의
여정 동안 우리를 항상 지켜주고 인도해준다. 수호대천사들은 스로운 품계(왕좌대천사 -
역주)에 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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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물질계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그의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은 심령계 속으로


환원한다. 심령계에서 영구인격은 영구원자 속에 저장해온 다양한 기록들을
되새기고 평가하고 공부하며, 그것들의 옳고 그름을 깨닫고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계는 ‘위대한 배움의 회관’이라고 불리운다. 심령계에
머물면서 필요한 만큼의 영적 균형을 충족해낸 후 영구인격은 이지계로 환원한다.
이지계는 영구인격이 전보다 더욱 보람 있는 다음 생을 준비하기 위한 교훈과 지혜를
습득하는 곳이다. 대개의 경우 이 모든 과정은 포근함 속에서 진행된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매 윤회마다 예외 없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적 발전을 해나간다. 하지만,
그 발전의 정도는 개개인에게 있어서 차이가 있다.

인간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다중성을 이루는 무수한 성원소들 중


하나이다. 대우주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지니는 본성인 다중성은 소우주인 각각의
성원소들에게 그대로 반영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인
인간성원소는 자신만의 진아단 Selfhood(성원소 + 절대영혼 + 영구인격 + 현재인격 -
역주)**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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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단 (Self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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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원의 성원소적 자아와 그의 표현물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일컫는 명칭.
진아단 Selfhood 이란 가장 높은 정점의 성원소로부터 절대영혼, 영구인격, 그리고 가장
낮은 현재인격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진아단을 구성하는 그 어떤 표현물도 그 가치를 우열로
가릴 수 없다. 각 표현물은 스스로가 속해있는 차원 속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모두
진아단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일원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을 스스로의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이상을 그대로 이어받은 우리의 성원소는 스스로의 안에
자신만의 고유한 진아단을 표현한다. 신께서 대창조를 하시듯 우리는 소창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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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물질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인간의 물질체 안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리고 광활한 심령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인간의 심령체에 안에
반영되지 않은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끝없이 넓은 이지계 안의 모든 것은 인간의
이지체 속에 온전히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확장이다.

티끌 하나에서부터 대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절대적 일체’로써 존재한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창조물일지라도 그 속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사랑이 온전히 깃들어 있다.

성원소로써의 인간은 영원하다. 인간 Soul 도, 대천사 Archangel 도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순수한 화현이다.

이제 영구인격에 대한 주제로 돌아오자. 경험과 지식을 수집하기 위하여 시공계로


내려온 영구인격은 자신의 투영물인 현재인격이란 옷을 걸치고 매 생을 살아간다.
윤회의 과정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를 향해가는 여정이다.

현재인격은 결코 우리의 전부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덧없는 욕망, 생각, 흥미 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의 이러한 것들을 ‘삶의
현상물’이라고 한다. 삶의 현상물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인간은 동물계의 다른
생명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영구인격과 현재인격은 어떠한 관계를 지닐까? 각 전생을 살아온 수많은


자신들과 영구인격으로써의 자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각 생의 현재인격이란
영구인격이 쓰는 가면과 같다.

우리는 그동안 시공계의 수많은 시대와 장소 속에서 다양한 현재인격의 가면들을


쓰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다. 만일 우리의 영구인격이 그의 첫 환생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수집해온 모든 경험들을 한꺼번에 회상한다면, 모든 기억은 단지 기쁨과
슬픔이란 두 가지 인상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그 기쁨과 슬픔을 느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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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생각하는 그 존재는 누구인가?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른가? 누가 어제를 살았는가?

우리 내면의 영구인격을 통하여 우리가 먼 과거에 겪었던 인상들과 오늘날 겪고 있는


인상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란 무엇인지
점차 깨닫게 된다. 우리의 영구인격에게 있어서 한 생 내지 특정한 시대와 장소
속에서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이름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긴다. 살다가 언젠간 죽음을 맞이할 영원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수도를 병행하며 내면을 탐구해나가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에 불멸의 실재 Being 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실재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렇다면 성원소와 절대영혼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절대영혼과


영구인격의 관계는 무엇일까?

우리의 영구인격은 현재인격이라는 옷을 걸치고 단절계 속에서 오늘날의 삶을


살아가면서 교훈과 지혜를 얻으며 완성을 향해간다. 이 과정은 마치 영구인격이라는
아주 조그마한 원이 자신의 테두리를 바깥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 원의 테두리가 자신을 머나먼 바깥에서 감싸온 절대영혼 Soul 이라는
거대한 원의 테두리와 합쳐질 때까지.

모든 인간은 두 개의 동심원을 지니고 있다. 이중 테두리가 큰 원은


절대영혼 Soul 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주 조그마한 또다른 원이 있는데, 이것은
절대영혼-영구인격이다. 왜 단순히 영구인격이 아니라 절대영혼-영구인격일까? 그
이유는, 작은 원은 거대한 원에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작은 원 안에는 큰 원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부분, 거대한 원의 일부가 아닌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원은 거대한 원의 테두리와 포개져 하나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해나간다. 그리하여 언젠가 작은 원이 큰 원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오면, 작은
원은 큰 원에게 흡수되어 사라져 버릴까? 작은 원이 스스로를 확장하는 과정동안
모아온 경험들이 소멸되어 버릴까? 절대 그렇지 않다. 작은 원은 거대한 원과 일체가
되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를 확장한다. 영구인격은 윤회와 경험들을 통하여 스스로를
확장해나가며, 궁극에는 자신을 품어온 절대영혼 Soul 과 일체된다. 그리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땅 위의 몸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하늘의 몸으로
변화’(고린도전서 15:53)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흔히 ‘내가 느낀다’, ‘내가 생각한다’, ‘내가 이해한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그 ‘나’가 내면의 영원한 진아단 Selfhood 의 작은
일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의 내면을 진지하게 관찰해보면, 과거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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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들에 의하여 형성된 오늘날의 나의 모습은 미래에 다가올 새로운 경험들,
생각들에 의하여 끊임없이 교체되고 변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 지녀온
생각, 욕망, 감정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변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의 나의 욕망, 생각, 감정들은 과거의 내가 지녔던 그것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사색했던 나 자신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사색하고 있는 나 자신과 동일한 나이다. 이로부터 영구인격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가? 영구원자는 우리가 겪은 모든 경험들과 지식들을 축적하는 저장고이며, 더
나아가 향후에 겪어나갈 경험들을 더욱 깊고 넓은 안목으로써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준다. 인간이 자신의 윤회의 과정 동안 지녀왔던 모든 행동,
사고, 감정, 삶의 방식들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곳이 바로 영구원자이다.

지상에서의 한 생이 마무리되면, 영구인격은 물질체를 버리고 현재인격과 함께


심령계로 떠나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현재인격의 질과 영구원자의
기록에 상응하는 심령계의 차원, 그리고 하위차원 속에 머물게 된다.

심령계로 들어선 영구인격은 바로 이전 생에서 지녔던 현재인격의 가면을 아직 쓴


채로 심령계를 살아가며, 그곳에서 겪어나가는 새로운 경험들을 영구원자에
계속해서 기록해나간다. 심령계 속에서 우리는 영구인격과 현재인격이라는 두 가지
존재성을 동시에 지니며 살아간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물질계적 관점으로는 이러한
양립적 존재성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심령체를 지니고 심령계에서
사는 순간 이것이 어떤 것인지 누구나 어렵지 않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현재인격은 물질계에 머물던 때와 마찬가지로 심령계에 살면서도 다양한 기쁨과
슬픔의 인상들을 느끼고 경험하는데, 이때 우리의 현재인격을 보살피는 역할을 하는
존재는 진리적 사고를 하는 참 나인 영구인격이다.

심령계에는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하는데, 이들은 모두 인간의 마음에 의해


창조된 세계이며, 둘 다 경험을 얻고 가치 있는 교훈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천국과
지옥이란 이름, 국가, 갈망, 생각, 욕구의 총체물인 현재인격 스스로가 창조하고
겪어나가는 환영의 세계이다. 영구인격은 수호대천사와 함께 현재인격을 지켜보고
감독하며, 현재인격이 배우고 깨달을 때마다 영구인격도 함께 성숙해나간다. 다만
명심해야 할 점은, 영구인격과 수호대천사는 결코 위에서 아래로 우리를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이다.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알 수 있으며, 그리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8:51).

심령계 안에 머물며 모든 필요한 경험들을 기록한 후에 영구인격은 자신의 심령체를


이지체에게 동화시킨 후 이지계로 환원한다. 그리하여 이지계에서 자신과
동조(공명)하는 차원과 하위차원 속에 머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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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계는 7 개의 차원과 49 개의 하위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지계 또한 이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지계에서 일정 기간을 머문 후 영구인격은 이지체마저 해체하여 모든 육신을


버리고 원형계**로 환원한다. 그리고 기존에 지녀온 현재인격의 정수는 영구원자
속에 흡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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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계 (Noetic State)

단절계를 초월하는 경계로써, 만물이 탄생되기 이전의 밑그림인 원형들을 담고 있다. 이곳은
우리가 생과 생 사이마다 쉬어가는 곳이자, 대천사들 Archangels 이 단절계 속에 표현하기
위한 만물의 원형들 forms 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번째 하늘에 해당되며,
고차원 이지계라고도 불린다. -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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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계의 인상들을 흡수하는 작업을 마치면 현재인격은 한 생을 온전히 마무리 짓게


된다. 이곳까지의 과정이 힘겹고 가혹했던 이들은 이제 그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당분간 이곳에 머무르면서 편안하고 행복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다음 환생, 새로운 삶을 위하여 바로 떠날 수도 있다.

환생을 위해 다시 이지계로 내려온 영구인격은 성령을 비롯한 창조의 대천사들과


함께 다음 생에서 사용할 새로운 이지체를 만들게 되는데, 이때 운명의 신령들과
인과응보(카르마)의 신령들**은 새 이지체를 만들기 위한 재료인 이지원소들을
영구인격에게 선사한다. 이는 영구인격이 자신이 사용할 이지체를 스스로가 직접
만들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기회는 가장 낮은 지옥에 머무는 인간의
영구인격에게조차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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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의 법칙 (Law of Cause and Effect)

이 성스러운 법칙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들, 작용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르도록 한다. 동방의 종교들은 이를 카르마의 법칙이라고 부르며 다소
운명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반면, 우리는 다른 이들이 진 카르마의 빚을 서로 나눠서
짊어질 수 있고, 회개**와 뉘우침을 통하여 소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여러 생에 걸쳐서 작용을 하며, 한 생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회개 ( rependence,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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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그리스어로 ‘마음을 개선하는 것’,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슬퍼하고, 뉘우치고, 후회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근본적으로 삶에 임하는 자세를 개선함으로써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계획에 더욱
부합하는 삶을 살아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신앙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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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지체를 완성하면 영구인격은 심령계로 내려오는데, 이곳에서도


이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운명의 신령들으로부터 새로운 심령체를 만들기 위한
심령원소들을 받는다. 그리하여 심령체를 만들고 나면 우리의 현재인격은 물질계의
에테르 복체(에테르계 - 역주) 속으로 진입한다 (현재인격은 이지체와 심령체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생성된다. 현재인격은 심령이지원소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 역주). 그리고 운명의 신령들은 사랑의 법칙, 동정의 법칙, 자비의 법칙을
바탕으로 하여 환생하는 현재인격에게 그의 카르마적 상태에 상응하는 삶의 환경을
내려준다. 그리하여 이러한 주어진 환경 속에서 태어남으로써 한 인간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높은 심령이지적 의식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대사들)은 위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성이 깨어진 의식을 지니고 이 모든 진행 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
과정에 대한 직접적 통제권을 지니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환생할 시공계 속의
시대와 장소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일부 대사들은 물질계보다 높은 차원에
환생하여 그곳 존재들의 완성을 돕는 길을 택하며, 다른 대사들은 우리와 같이
물질계에 환생하여 동일한 일을 한다.

자비의 신령들과 사랑의 신령들은 각각의 영구인격에게 그가 육신을 빚어내기 위한


재료로써 그의 영구원자의 질에 상응하는 심령이지원소들을 선사한다. 더 나아가
그에게 현재 준 것보다 더욱 정교하고 순수한 영적 질료를 얻고 사용할 수 있는
기회들을 새로운 생 속에 제공한다. 이는 우리가 이전보다 발전하고 성숙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며, 그 모든 결과는
우리가 스스로의 진보와 성숙에 대한 필요성을 얼마나 깊게 깨달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얼마나 간절한지에 달려있다.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자비**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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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자비 (Divine Mercy)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조 Creation 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 중 하나이다. 성스러운


자비는 기적을 가능하게 한다. 사도 야고보는 그의 서간에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서 3:13)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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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차원 법칙들 Laws 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회개하고 자신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전적인 자유가 있다. 진정한
자기정화와 진보를 이루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영구인격과 새롭게 탄생한
현재인격의 노력이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물질계 속 갈망들, 생각들의 총체물인


현재인격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 속에서 실재하는 절대영혼 Soul 의
차이를 분간할 수 있다.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를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영구인격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 영구인격이 품고 있는 지혜와 사랑을
탐구해나가다 보면 점점 확장되어가는 나, 절대영혼 Soul 에게 동화되어가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물의 세례가 아닌, 불의 세례,
뜨거운 성령의 세례를(누가복음 3:16). 이때의 느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이것이
정녕 인간이 추구하고 염원해온 진정한 해방이던가? 아쉽게도, 이곳은 아직 우리
여정의 종착역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주 포근한 곳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곳은 마치 아름답고


눈부신 무대의 단상과도 같다. 그리고 곧 이어 자신이 발을 내딛고 있는 길은 빛의
세계, 영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절계, 시공계를 뒤로
하고 끝없는 자유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아 Self 를 깨닫고 절대영혼 Soul 과 하나되는 그 순간까지 계속하여 그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추구하고 지향해야 할
진아 Self 가 이제는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가 향해가야 할 방향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걸어나가는 것은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의 몫이다.
인간으로써의 우리의 사명은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을 이루어내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되는 테오시스를 성취하는 것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간 안에 온전히 깃들어 있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은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신 분’(요한복음 14:28)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인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그의
화현인 성령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로고스이다. 아버지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 탄생한 로고스는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으로 가득하며,
그 외에도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수많은 성스러운 본성들을 지니고 있다. 로고스는
모든 권능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 모든 곳에 있으며, 모든 지혜를 지니고 있다. 그에
의해서 탄생한 표현물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로고스(절대이성)는 인지의
영역을 초월하는 신의 진정한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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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의 참 나는 무형의 성원소이다. 그것은 영원하고 무한하며,
그의 화현체인 절대영혼 Soul 과 인격에게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공급해주는 원천이다.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기 이전의 성원소가 작고
보잘것없다고 착각해선 안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성원소는 신이다. 그리고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한 성원소는 신의 이성이다.

이제 이데아 Idea 에 대하여 탐구해보자.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는 다른 고차원


이데아들과 함께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의 경계 속에
거한다. 이데아 Idea 란 정작 무엇일까? 그것은 성령과 로고스에 의해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 속에 표현된 성스러운 무언가이다. 그렇다면 인간
이데아 Idea 를 통과할 성원소들을 정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성원소 자신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결정은 다름아닌 우리 스스로가 내린 것이며, 그 자주적 결정을
내린 순간이 바로 인간이 지니게 된 절대적 자유의 기원이다. 우리가 자아의식을
지니게 된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며, 이 잃어버린 자아의식을 되찾는 것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 귀환하여 테오시스를 성취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수많은 고차원 이데아들을 창조하였는데, 그 중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한 성원소들은 스스로를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한다.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기 이전의 성원소는 영원한 절대생명 Life 이긴
하였으나, 절대영혼과 같이 자아의식을 가진 독립적 개체는 아니었다.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일원이었지만, 그 일체로부터 분리된 자신만의 고유한
개체성은 인지하지 못하였다.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거쳐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되어야 비로소 자아의식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자아의식의 경지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크게 잠재적 자아의식, 자아의식, 그리고


초자아의식으로 나뉜다.

화현되기 이전의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절대적 축복의 경계 속에 거한다.


이러한 그가 전체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개체가 되기 위해선, 그리고 현상계 속에
환생하여 표현된 생명 life 이란 무엇인지 직접 체험하고 깨닫기 위해선 그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야만 한다. 현상계로 내려온 성원소에게는 궁극적으로
절대적 영원무한성에게 다시 귀환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다. 인간이 진아실현을
하여 얻게 되는 자아의식은 인간 외의 그 어떤 창조물, 심지어
대천사들 Archangels 조차도 지니지 못하는, 오직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한
성원소들만이 지닐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 이유는 한 성원소가 진아 Self 를
인식하는 자아의식을 얻기 위해선 시공계로 내려와 표현된 생명 life 의 실상을 몸소
체험하고 깨닫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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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데아 Human Idea 속으로 들어선 성원소는 자신의 일부분을 자아의식을 지닌
경이로운 절대영혼 Soul 으로 표현한다. 성원소에게 있어서 절대영혼으로 표현된
부분은 그의 아주 작은 일부이다. 성원소를 태양에 비유한다면, 절대영혼 Soul 은
태양으로부터 발산된 한 줄기 빛에 해당된다. 한 성원소 전체가 절대영혼이 되거나
환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성원소로부터 발산되는 빛이 절대영혼으로 표현되어
경험계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은 그것을 발산한 성원소와 질적으로
동일하다.

인간을 탄생케 한 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인간에게 그 복잡하고 정교한 세 육신을


만들어주어 그 안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해준 그는 과연 누구일까?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안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인간을 창조한 이, 그는 바로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다. 그는 창조자인 자신을 그대로 반영하는 복사판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였다 (창세기 1:26).

원소의 대천사들은 인간에게 시공계 속을 살아가기 위한 육신을 선사하였다. 그들은


우리가 살아갈 육신을 만들고 관리해줌으로써 영구인격과 수호대천사가 단절계
속에서 일련의 현재인격들을 씨 뿌리고 경작해나가는 과정인 윤회를 가능하도록
해준다.

현재인격이란 영구인격이 쓰는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전에 말하였다. 현재인격은


매 생마다 새롭게 창조되며, 이것은 수호대천사와 영구인격의 공동작품이다.

현재인격은 자주적이면서 사고의 능력이 있으며, 에테르 에너지를 사용하여


사념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궁극적
임무는 영구인격에게 경험과 지식을 수집하여 전달해주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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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체 (elemental)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갈망은 사념체를 생성시키고 발산시킨다. 각각의 사념체는 고유한
존재성을 지닌다. 우리가 생성하고 길러내는 사념체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이
생각을 지배할 때 우리는 갈망적 사념체를 생성한다. 반면, 지혜과 사랑에 바탕을 둔 생각,
갈망, 감정을 품을 때 우리는 지적 사념체를 생성한다. 사념체는 절대로 소멸될 수 없다.
다만, 사념체에게 더 이상의 에테르 생명력의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무력화시켜 잠재울 수
있다. 비슷한 성질의 사념체들은 서로 모여서 강력한 사념체군을 형성한다. 어떤 개인이나
군중의 생각, 감정이 특정한 사념체군과 같은 진동수를 지닐 경우, 인격은 그 사념체군과
동조(공명)하여 그곳의 일부 사념체들을 끌어오게 된다. 대천사 Archangels 들 또한
사념체들(천사들 angels)을 생성한다. 그들은 인간의 발전과 성숙을 돕기 위해 온화하고
선량한 사념체들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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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격으로써의 우리는 덧없는 존재이다. 그 덧없음은 우리의 세 육신, 그리고 갈망,
생각, 욕구 등을 비롯한 현상계 속에서 우리가 지니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언젠간 우리의 현재인격과 물질체가 소멸되어 버리는 날이 올것이다. 심령체, 이지체


또한 시간이 흐르면 그렇게 사라져 버리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내면에는 잃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나’이다! 이 나를 찾는 순간 우리는
말하게 된다. ‘나는 나이다.’ 이 나는 이름을 초월하는, 밀물과 썰물과도 같이 수없이
교차하는 모든 감정과 갈망들을 초월하는 내면의 진정한 나이다.

생각과 갈망이란 놓아버릴수록 성숙하고 정교해지는 것이건만, 그렇지 않고


그것들을 움켜쥐기만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것들이 쓸모 없음을 알면서도
끝까지 쥐고 놓지 않은 적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삶 속에서 얻고 잃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 얻음과 잃음을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오늘날
우리가 지니고 있는 욕망, 생각,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한 채 물질체를 떠난다면
그것들은 심령계 속을 살아가면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 이후 이지계 속의
삶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이 투영된 삶의 영역은 물질계뿐만이 아닌 심령계와
이지계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는 사람을 보거나 물질체가 썩는 것을 보면 겁을 먹는다. 그러나, 정작


떠나가는 자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잠드는 것을 느끼지 못하듯, 죽는
자는 자신이 죽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잠자는 동안 물질체를
빠져 나오지만(무의식적 유체이탈**), 그 과정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매일 밤 곤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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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exosomatosis)

우리는 매일 밤 물질체로부터 분리되어 심령이지체를 지니고 잠재의식의 상태에서 다른


차원들로 여행한다. 우리의 목표는 유체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떠나있는 동안에도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제 2 의 유체이탈, 그리고 제 3 의 유체이탈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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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은 다른 이들이 죽어서 물질체를 떠날 때 ‘죽을 때 아플까? 고통을 느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육체적 고통이란 물질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죽어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필요 없는
육체를 버리고 떠나는 한 절대영혼의 성스러운 해방의 순간을 오해하면 안된다.

‘죽음’의 현상이 일어나면 영구원자는 더 높은 차원으로 환원하며, 그가 지녀온


물질적 요소들은 영적 빛으로 화한다. 지식이 지혜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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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예를 들어서 우리에게 불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불은 태울 무언가가 있는 한
계속하여 화염을 내뿜는다. 그러다가 태울 것이 모두 소진되면 불은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흔히 병든 사람들이 죽기 전에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수년간을


병에 시달리며 아파온 사람일지라도 죽는 순간에만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죽어서 물질체를 떠난 이후에는 몸이 더욱 가볍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며,
만일 그의 물질체가 훼손되었거나 부상을 당했었다면, 그의 심령체는 상처 하나 없는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 죽고 나면 지난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영구원자에 모아온 느낌, 인상들과


동조(공명)하는 심령계의 차원과 하위차원 속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영구원자와 영구인격을 구성하는 재료는 에테르 생명력이다. 우리의 낮은 차원의


육신들은 다양한 밀도의 에테르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육신은 성령적 Holy Spiritual
표현물인 반면, 영구인격과 절대영혼은 이성적 Logoic 표현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고스가 우리의 아버지인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셨다.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요한복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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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생명력 = 에테르 (etheric vitality = ether)

‘우리의 일용할 양식’인 에테르 생명력(마음 Mind)은 호흡, 식사, 수면, 그리고 수도를 통하여
얻어진다. 우리는 에테르 생명력으로 가득한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조화스러운 생활 패턴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할당된 에테르 생명력의 대부분을
탕진해버려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며, 그 결과 각종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우리의 육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존재물들은 에테르 복체라는 주형을 뼈대로 하여
창조되었다. 복체 속을 흐르는 에테르의 종류에는 네 가지가 있다. 각각 창조에테르,
감각에테르, 인상에테르, 동적에테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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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는 곧 신이다. 그리고 우리들 각각의 절대영혼 Soul 은 로고스(절대이성)를


이루어내는 원소인 ‘이성소’이다. 이성소의 수는 어느정도일까?
대천사들 Archangels 의 수만큼 많다. 각 품계 Order 의 대천사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그들은 모두 성령적이면서도 이성적이다.

현재인격을 쓰고 물질계를 살아가는 자신이 설령 고통과 욕망 속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결코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원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필수불가결한 일부이자 ‘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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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데아 Human Idea 가 숭배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귀의해야
할 대상은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를 통하여 모든 이데아들을 비롯한 온
우주를 창조한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다. 창조의 위대한 숨결은 물질계 속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심령계에서는 그것이 더욱 선명하고 명백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지계에서 그것은 더욱 더 확실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상 어떤 인간도,
대천사도, 그 어떤 존재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위대함을 누군가에게 전해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 모든 성원소들은 이미 그의 장엄함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의 쾌락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성스러운 축복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 것들이다.’ (고린도전서 2:9)

우리의 영구원자는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보다 위대하다. 영구원자는


영구인격의 일기장이다. 영구인격은 항상 이 일기장을 소지하며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겪어온 모든 기쁨과 슬픔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그렇다면, 영구인격은 과연 어떤 이름으로 불려야 할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의


영구원자 속에 전생들로부터 기록되어 온 이름만 수백 개가 넘기 때문이다. 또한,
매일같이 떠오르고 매 순간 바뀌는 우리의 무수한 갈망, 감정, 생각들 중 영구인격은
어떤 것을 지니고 있을까? 그가 취하는 것은 오직 경험뿐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인간이 원형계로 돌아갈 때 취하는 유일한 것은 시공계 속에서


겪은 경험들이며, 또한 그것들의 세부사항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구인격은 수집한 경험들 속에 깃들어 있는 진리적 인상, 진리적 진동만을 취한다. -
역주)

진아단 (Selfhood)

진아단이란 가장 높은 정점에서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인 성원소에서부터 가장


말단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재인격까지 한 진아 Self 의 모든 단계적 표현물들을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총칭이다. 절대영혼 Soul 의 가장 중대한 사명은 윤회의 굴레를 통하여
인격을 완성시키고, 그리하여 분리된 진아단 Selfhood 을 재통일하여 궁극적으로
테오시스 Theosis 를 성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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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표현물로 구성된 진아단 Selfhood 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축소판이요
복사판이다. 어떠한 원리로써 그러할까?

첫째로, 우리는 자체완전성을 지닌다. 대우주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그 무엇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완전하듯이, 소우주인 우리들 또한 내면에 이미 모든 것을
지니고 있다. ‘진정한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

둘째로,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우주(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이성적 Logoic 화현물인 인간을 표현하였듯이, 우리 인간 또한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을 창조하고, 그 속에 자신만의 고유한 진아단을 표현한다.

셋째로, 우리에겐 사고의 힘, 감성의 힘, 사랑의 힘이 있다. 우리는 환경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신을 뜻대로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자유의지를 지니고 있다.

넷째로, 우리에게는 출산의 능력이 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선물이자


책임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로고스, 성령과 함께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을
이어받아 실현하는 공동 창조자 Creators 이다.

진아단이란 스스로를 넷으로 펼치는 하나의 우산이다.

성원소 Holy Monad

우리의 가장 근원적 진아 Self 인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항상 일체이며, 그의


성스러운 다중성,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를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
성원소는 자신으로부터 한 줄기의 빛을 발산하여 스스로를 표현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은 성원소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절대영혼 Soul

성원소가 발산한 한줄기의 빛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는 순간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다. 이때부터 우리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인 동시에
자신을 그 전체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고유한 개체로써 인식하게 된다.

절대영혼 Soul 은 절대성과 실재성을 동시에 지닌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


속에서 절대하는 동시에 성스러운 이상에 의해서 표현되어 실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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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인격 permanent personality

일명 ‘절대영혼의 발’이라 일컬어지는 영구인격은 절대영혼 Soul 의 시공계 속


투영물인 동시에 절대영혼과 일체이다. 영구인격은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을
비롯한 모든 성스러운 법칙들 Divine Laws 을 담고 있다. 그의 임무는 현재인격이
겪어나갈 삶과 경험들을 결정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영구인격은
성숙하고 정교해지며 완전해진다.

현재인격 present-day personality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떠올리는 인격이다. 현재인격은 영구인격의 세


차원들로 이루어진 단절계(물질계, 심령계, 이지계) 속 표현물이다. 현재인격은
시공계 속을 살아가는 절대영혼 Soul 의 투영물이며, 그 속에서 만들어낸 감정, 취향,
갈망들의 혼합물이다. 현재인격은 자신이 수집한 경험들과 인상들을 해석하는 법을
배우면서 스스로를 개선하고 다듬어나간다. 이 과정이 진전됨에 따라 우리가 지녀온
번뇌와 고통은 점차 사라지고, 우리의 에테르 파동은 더욱 정교해진다.

진아단을 구성하는 단계적 표현물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정리를 해보자. 비록


우리의 진아단은 성원소, 절대영혼, 영구인격, 현재인격이라는 넷으로써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은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거대한 태양(성원소,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 한줄기 빛이 발산된다. 이 빛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한 절대영혼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빛은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선다. 창문을 통과하여 실내로 진입한 빛은 영구인격을 상징한다.
영구인격의 일부는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집의 외부)에 머무르는
절대영혼 Soul 과 일체이며, 나머지 일부는 단절계(집의 내부) 속으로 투영된다.

집 안으로 들어선 빛줄기는 마침내 마루 위에 닿는다. 마루 위에 펼쳐진 빛이 바로


현재인격이다. 태양으로부터 발산된 본래의 빛은 순수하며 눈부시다. 그 빛은
이데아 Idea 들과 다양한 차원들로 구성된 층을 거쳐 내오면서 분산될 뿐, 근본적으로
모두 동일한 빛이다. 성원소와 절대영혼의 빛이 궁극적으로 펼쳐지고 표현되는 곳은
마루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마루 위에 쌓여있는 먼지를 치우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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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 대천사 품계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누가복음 4:10-11)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누가복음 2:10)

대천사 Archangel 는 성령적이며 이성적인 실재 Being 이다. 그들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면서 자신들을 그 속에 표현한다. 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를 통과한
성원소는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인간-대천사의 품계 Order of
Archangelic Man 속에 속해 있는 대천사 Archangel 이다.

인간 Human 과 대천사 Archangel 를 비롯한 모든 실재들은 그 근원이 성원소라는


점에서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이루는 성스러운 일원이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심오한 영적 경지에 이르게 되면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란


세상의 모든 대천사 Archangel 와 절대영혼 Soul 의 근원인 성원소들이 이루어내는
범우주적 일체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절대지혜란 모든 절대영혼들 Souls 과
대천사들 Archangels 이 지니는 지혜의 본성이 범우주적으로 일체된 경계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이외의 무언가란 없다. 인간 Humans 과 대천사들 Archangels 이


겪는 경험들 중 그 어떤 것도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성원소에 본래
깃들어 있는 성스러운 본성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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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들 Archangels 도 일종의 자아의식을 지니고 있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자아의식과는 다르다. 대천사들이 지니는 것은 절대지혜다. 그들은 세상을
이루는 모든 절대법칙 Laws 과 절대원칙 Principles 을 알고 있으며, 그것들에 의하여
탄생한 세상의 모든 표현물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인간과 같은
단계적 자아의식은 없다. 대천사에게는 잠재의식도, 현재의식도, 초자아의식도 없다.
다만, 그들에게는 범우주적 ‘초의식’이 있을 뿐이다. 절대지혜는 절대지혜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빛은 빛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대천사들 Archangels 은 간혹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인간 이데아를 거쳐서 일시적으로


자신을 인간으로 형상화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특정 임무를 마치고 원래대로
돌아오면 그들이 인간으로 형상화하였을 때 겪었던 경험들에 대해선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대천사들을 탄생시키는 대천사 이데아 Archangelic Idea 는 최초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속에서 구상될 때 인간
이데아 Human Idea 처럼 성원소에게 시공간적 인상을 느끼게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현되기 이전 성원소로써의 인간과 대천사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현상계에 내려와 진아실현을 성취하고 돌아오면 대천사들과 엄청난 차이를 지니게
된다. 가령, 원소의 대천사들(불, 물, 흙, 공기/에테르)에게는 자아의식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무언가를 스스로 비교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불의 대천사는 절대지혜로써 불의 원소를 창조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그는 정작 불의 원소가 불러일으키는 생각과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느끼지
못한다. 불의 원소로부터 전해지는 인상을 생각과 감정으로써 느낄 수 있는 완전한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이렇듯 원소의 대천사들은 절대지혜를 지니고 있지만 인간과 같은 자아의식은


지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전체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개체로써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너와 나가 모두 동일하다. 내가 곧 전체이며, 전체가 곧 나인 것이다.

반면, 현상계를 살아가는 인간들 Souls 은 이러한 대천사들 Archangels 과 다르다.


인간은 성서 속 탕아(누가복음 15:11-32)와 같이 삶을 살아가며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진아실현을 이루고 귀환한 인간은 그 어떤 대천사도 가질 수 없는 의식의
경계를 성취하게 된다. 대천사들은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만,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탕아의 우화 속에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반지를 선사한다. 이 반지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성의 상징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초월을 뜻한다. 탕아의
동생(대천사)은 늘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의 곁을 지켜왔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한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탕아에게만 선물을 준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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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는 항상 일체계(모든 것이 하나인 세계, 실재계 world of Being - 역주)에
머물러온 반면, 인간은 단절계로 내려와 오랜 고통과 시련을 직접 겪어나가며 그것을
딛고 일어나 진아실현을 성취하고 실재계로 귀환함으로써 그는 진정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고 그 진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진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천사와 인간의 궁극적 본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의식을 특정 대상과 완벽하게


동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의식을 일체의 경계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이 시공간적 제한을 초월해야 함은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본성인 자아의식의 경계조차 뛰어넘어야 한다. 궁극의 경계로 들어서기
위해선 초자아의식을 지녀야 한다. 초자아의식은 다차원 우주를 구성하는 다양한
파동들을 섬세하게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형제인
대천사들 Archangels 과 의식적으로 접촉하고 교신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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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 = 공명 (attunement)

자신의 진동수를 다른 존재나 실재가 지니고 있는 진동수와 일치시켜 공명함으로써 그


대상의 본질, 특성에 대하여 깊게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다. 동조는 일체 이전의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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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가이자 사도인 바울은 말하였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으로 말을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3:1)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대천사들도 인간들처럼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언어와 다르다. 그들의 대화는
‘사랑’이라는 매질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공기라는 매질을 통하여 소리를 전달하여 의사를 주고 받는다.


인간의 언어는 시대, 장소, 관념의 차이에 따라 사용하는 어구, 단어가 다양하기
때문에 소통의 장애가 발생한다. 하지만 대천사들에게는 이러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든 교신은 ‘사랑’이라는 범우주적 언어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천사들의 언어는 다양한 빛깔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영적 빛, 영적 소리 - 역주).


그들이 내는 소리로부터 다차원 우주가 창조된다. 그들은 마음 Mind 이라는 초질료를
사용하는데, 이것을 진동시켜서 창조의 파동을 발생시킨다. 그 파동들은 시공계를
구성하는 원소들로써 표현된다. 그들의 모든 창조 활동은 절대법칙 Laws 을 바탕으로
한다. 우리가 이러한 다양한 파동들을 느끼는 법, 그리고 그것들과 공명, 동조하는
법을 익히면 그 파동들을 의식적으로 통제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대천사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들과의 교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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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닌, 마음 Mind 의 파동을 서로에게 동조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물질을 자유자재로 창조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물현**과 환원**의 영적 능력을 얻게 된다.

지상에 존재하는 진부한 언어를 사용하여 인간들에게 고차원 세계의 느낌과 인상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영적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릿속의 이론적 지식이 아닌, 아직까지의 삶을 통하여
체득해온 심령이지적 성숙도이다. 또한, 반대의 원리로 이러한 영적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그는 그만큼 내적으로 성숙하고 발전하게 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대천사 품계들 Archangelic Orders 이 있는데,
각 품계 Order 에 소속되어 있는 대천사들의 수는 수천억만에 이른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천사 품계는 열두 가지이다. 대표적으로 스로운 (Throne, 왕좌대천사),
어소리티 (Authority, 권능의 대천사), 도미니언 (Dominion, 통치의 대천사),
프린시펠리티 (Principality, 군주 대천사), 오버로드 (Overlord, 대군주 대천사), 세라프
(Seraph, 사랑의 대천사)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종류의 대천사들이 있다. 높은 차원 속에 머무르는 대천사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던 신비가는 역사상 거의 없다. 매우 극소수만이 그들과 동조하고 교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미니언(지배자), 오버로드(대군주)는 그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이 인간이 그들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거의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진동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거의
없다. 아마 그들이 머무르는 경계는 성스러운 이상의 경계조차 초월하는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수호대천사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자. 수호대천사란 대천사 스로운을 일컫는다.


그들은 우리가 윤회하는 동안의 모든 생의 과정을 우리와 함께 한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다른 모든 대천사들 Archangels 과의 일체성을 항상 유지한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는 성원소인 동시에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 독립적 개체인 것과 같다. 수호대천사는 항상 우리의
안에서 함께 하는데, 심지어 일부 진리탐구단에서는 ‘쌍둥이 절대영혼’이라고 일컬을
정도다. 하지만, 쌍둥이 절대영혼은 잘못된 표현이다. 수호대천사는 자아의식을
지니는 우리 인간과는 엄연히 다른 실재이기 때문이다. 수호대천사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간혹 인간과 동조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우리를 닮은 존재가 될 수는 있다.

깨달은 자들(신비가)은 수호대천사와 항상 의식적, 초의식적 교신을 하는데, 이로부터


느껴지는 환희는 지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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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장 많이 접촉하는 대천사들은 원소의 대천사들이다. 그들은 마음 Mind 을
광범위한 진동수의 범위로 진동시켜 물질계를 비롯한 수많은 고차원 세계들을
창조하며, 이데아 Idea 들을 통하여 그 속에 존재할 만물의 원형들 forms 을 표현한다.

원소의 대천사들은 대천사 스로운과 함께 각 인간에게 붙어서 그의 모든 윤회의


과정을 함께 한다. 원소의 대천사는 네 종류의 품계 Order 로 나뉘며, 각 품계 Order 에
소속되어 있는 대천사들의 수는 무한대에 이른다.

대천사들은 동서양을 망라한 모든 종교, 철학, 신비주의 속에서 메시아, 메신저, 신의


전령 등으로써 등장한다. 불교, 힌두교, 아즈텍인, 고대 이집트인들은 대천사들을
다양한 상징과 이름으로 불러왔다. 하지만 대천사들이 맡은 임무, 책임, 권한은 모두
동일하며 범우주적이다.

원소의 대천사

원소의 대천사들 중에는 불의 대천사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마하엘’이며, 위대한


신이라는 뜻이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마하’는 위대하다는 뜻이고, ‘엘’은 신이란
뜻이다 (고대 이집트어와 히브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원소의 대천사들은
특이하게도 모두 ‘엘’이라는 접미사를 지닌다.

다음으로는 물의 대천사인 ‘카비르엘’이 있다. 고대 이집트어에서 ‘카’는 갈망, 감정,


애정을 의미하고, ‘비르’는 원소를 뜻한다. 카비르엘은 물의 신, 액체의 신이다. 지상의
4 분의 3 을 덮고 있는 물을 주관하는 카비르엘은 온 물질왕국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비르엘과 마하엘은 서로 협력하여 인간 몸 속에서 붉은
피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다음으로 설명할 대천사는 ‘라파엘’이다. 고대 이집트어로 ‘라’는 태양을 상징하고,


‘파’는 파동을 뜻한다. 라파엘에게서 발산되는 파동은 다양한 밝기의 보랏빛 계통을
띈다. 보라색은 붉은색(마하엘)과 푸른색(카비르엘)의 혼합인데, 이는 마하엘과
카비르엘을 중개하며 돕는 라파엘의 역할을 그대로 반영한다. 라파엘은 에테르
생명력을 주관한다. 힌두교에서는 에테르 생명력을 ‘프라나’라고 불러왔으며, 그
외에도 지구의 각 종교권, 문화권들마다 이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에테르
생명력은 일종의 에너지 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치 대기와도 같이 행성의
내부를 가득 메우며 두껍게 에워싼다. 그렇기 때문에 각 행성은 온전히 라파엘의 관할
영역 속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또다른 대천사로 ‘유라엘’이 있는데, 그는 우리의 물질체 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대천사들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유’는 공간이며,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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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다. 유라엘로부터 발산되는 파동은 은백색이며, 그는 질서와 조화의 법칙을
주관한다.

위의 대천사들은 서로 협력하며 우리의 물질체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어내고, 더


나아가 우리의 심령체와 이지체를 관리하며 세 육신의 균형과 발전을 돕는다.

물질체 내에는 또다른 천사 angel 가 있는데, 그는 ‘샤마엘’이라고 불리우며, 흙의


원소를 주관한다. ‘샤마’란 여성, 물질을 뜻한다. 물질계의 창조는 모든 원소의
대천사들이 협력하여 일구어낸 결실이지만, 그 중에서 특히 샤마엘의 공로가 가장
크다. (샤마엘은 대천사 Archangel 가 아닌 천사 angel 로써, 그는 대천사 루시퍼의
사념체다. 루시퍼 밑 다른 대천사들에 대한 설명은 용어 해설편을 참조할 것. – 역주)

원형계보다 높은 차원에 머무르는 대천사들은 서로가 크게 분화되어 있지 않는 반면,


낮은 차원에 머무르는 대천사들일수록 서로간의 차이가 뚜렷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서로와의 끊임없는 동조과 교신을 통하여 항상 일체적 협력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써, 우리의 인체 내에서 활동하는 각 대천사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일을 분담하고 있지만, 그들의 개별적 활동은 결과적으로 온 인체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더 나아가 원소의 대천사들은 온 행성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행성의 사령탑인 태양과의 끊임없는 교신을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행성의 아름다운 자연은 수많은 대천사들의 완벽하고 절대적인 협력이 일구어낸
결실이다. 조그마한 아메바, 이끼에서부터 거대한 코끼리, 아메리카 삼나무에
이르기까지 이 행성에 존재하는 온 식물계와 동물계는 대천사들이 이루어낸
작품이다.

동물들과 식물들은 인간과 같은 영원불멸의 자아의식이 없다. 대신,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겪은 모든 경험들은 그들을 관리하는 대천사에게 곧바로 전달된다. 이 과정에
관한 세부사항은 신비가나 대천사들에 의해 누설되어선 안된다.

결론적으로, 대천사는 인간과 매우 다르다. 우리 인간은 대천사와 달리 개개인이 모두


고유하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 똑같은 현재인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높은 경지에 이른 신비가는 대천사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그들에 관한 특성을


탐구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가 대천사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내가 나 자신을
독립적 개체로써 인지하여 나를 다른 존재물들로부터 고유하게 구분지을 수 있듯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 분리된 독립적 개체로써 느낄 수
있는가?’ 그러면 그 대천사는 아마 그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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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마음과 에테르 생명력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테복음 6:11)

주기도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양식’이란 마음, 즉 에테르 생명력이다. 마음은


저마다의 영적 성숙의 단계에 속해 있는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아낌없이, 골고루
제공된다.

(이 책에서 쓰이는 ‘마음’Mind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마음 mind 의 뜻과 성격이 약간 다르다. 이 책에서의 마음 Mind 이란 온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고차원 파동으로써, 그 진동수에 따라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로써 다양하게 표현된다. 반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 mind 이란
심령원소, 이지원소들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념체들의 총체물, 즉 현재인격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단원에서 설명하는 마음 Mind 은 우리가 연상하는 마음 mind 이란
단어와 어느 정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 mind 은 ‘마음’Mind 으로
빚어졌기 때문이다 – 역주)

마음 Mind 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마음 Mind 은 우리가 탐구하는 다른 모든


주제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마음 Mind 이란 세상 모든 만물을 빚어낸 재료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본질적으로 신의 성스러운 뜻이 표현된 것이지만, 그것들을
실질적으로 빚어낸 원료는 마음 Mind 이다.

마음 Mind 은 ‘무한’ 속 어느 한 군데의 빈틈 없이 모든 곳을 가득 메운다. 무한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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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묘사하는 하나의 용어이다. 무한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모두 담아낸다. 반대로, 무한 안에서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아닌
영역이란 없다.

절대적 자체완전성과 성스러운 다중성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이다. 그가 품은


뜻은 창조를 통하여 성원소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은 곧 성원소의 본성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그러하듯이 그 안의 성원소들 또한 자체완전성과 다중성을 지닌다. 한 성원소가
자신을 다차원 우주 속에 표현하기 위해선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 중 가장 대표되는 본성은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이다. 이 셋은
절대하는 동시에 실재하며 존재한다. 즉, 이 셋은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 속에서
절대하는 동시에 성스러운 이상에 의하여 표현된 다차원 세계들 속에 투영되어
실재하며 존재한다. 하지만,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이상을 표현해내기
위해선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마음 Mind 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마음 Mind 이다. 모든 만물은 마음 Mind 의 다양한


진동수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과 대천사를 비롯한 성원소로부터 화현된 모든
실재 Being 들은 마음 Mind 으로 이루어진 우주라는 장엄한 무대 위에 자신을
표현한다. 그리하여 온 우주를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영광으로 가득 채운다.
찬송가에서는 수세기 전부터 이를 노래하였다. ‘하늘과 땅이 그분의 영광으로
가득하리라.’

그렇다면 마음 Mind 은 무엇으로부터 창조되었을까? 절대지혜일까? 아니면


절대권능이나 절대사랑일까? 그것은 이 셋을 모두 영광스럽게 하는 성스러운
이상이다.

마음 Mind 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표현물로써 영구히 사용되지만, 그것은 성원소와


같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영원불멸한 일부는 아니다. 마음 Mind 을 성령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가장 높은 진동수의 마음 Mind 일지라도 그것은 절대로 성령이
아니다. 마음 Mind 은 성원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 Mind 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의하여 표현된 움직임, 진동, 파동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마음 Mind 은 모든 현상계를 빚어낸 신성한 원료이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라!
마음 Mind 은 신의 도구이지, 신의 화현이 결코 아니다. 마음 Mind 이란 물질계를
비롯한 모든 고차원 세계들을 다양한 진동수로써 빚어낸 재료이다.

둘을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성스러운 자체완전성과 성스러운 다중성의


경계에 거하는 설계자, 부모, 창조자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사랑이 깃들어간 시공간적 표현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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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만물, 다차원 우주이다. 이 둘의 차이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귀의해야 할 대상은 창조물이 아닌 창조주란 것을.

많은 진리 탐구단은 마음 Mind 을 성령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그릇된 신격화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그 원인은, 많은 신비가들은 현상계 속에서 자신이
아직까지 지녀온 형체(육신=물질체+심령체+이지체)를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육신 없는 무형의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체를 비롯한 모든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깨닫고 모든 갈망과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어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빛으로 가득한 내면의 천국을 건설하여 한량없는 기쁨과 행복을
얻었다. 이는 현상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계, 빛의 경계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머물렀다… 그들은 자신이 아직까지 지녀온 형체조차 과감히 놓아버리고,
현재 머물러 있는 그곳조차 초월하는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로 들어서
테오시스를 성취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생각하였다. 해탈을 이루어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로 들어서면 그곳에


있는 것은 허무함일 것이라고.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해탈, 테오시스는
허무함(nothingness)이 아닌, 가득참 (everythingness)이요, 끝없는 무한함이다. 위와
같은 신비가들은 거울 속의 웃고 있는 자신의 상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해하는 자들과
같다. 그들은 거울을 깨부수지 못했다. 거울 속의 상이 깨져서 없어져 버리면 실제
자신도 그렇게 되버릴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거울을 산산조각 내더라도 자신은
그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실체인 참 자아를 한낮 환영에 지나지 않는 거울 속 이미지 속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궁극의 완성을 성취한 진리탐구자는 깨달을 것이다. 테오시스란 소멸과 허무함이


아닌, 끝없는 행복, 절대적 축복이라는 것을. 인간 절대영혼 Soul 의 가장 깊은 내면의
참 자아인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항상 일체이며,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뜻하는 모든 것을 무한히 표현하고 확장해낼 수 있다. 그에게는
초질료 마음 Mind 을 자유롭고 무한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성원소는 결코
소멸되지도, ‘나’를 잃지도 않으며, 그의 모든 경험과 이상은 그와 영원히 함께 한다.

마음 Mind 은 모든 만물을 낳아 길러내는 바다이다. 모든 것은 마음 Mind 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모든 것’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만은 포함하지 않는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탄생시킨 태초의 불이자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 초질료 마음 Mind 을 창조한 진정한
목적과 그 창조의 기쁨은 오직 신만이 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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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은 태초의 빛이자 영원한 빛이요, 모든 표현물들을 담아내는 무한히 큰 흰
도화지이다. 그 위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숙고로부터 구상된 성스러운
원칙들 Principles, 법칙들 Laws, 이데아들 Ideas 이 펼쳐진다. 그리고 성원소들은 그
위에 자신을 자유로이 그려내고 표현함으로써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위대한 지혜,
권능, 사랑을 실현하여 그의 영광을 더욱 빛낸다. 하지만, 대천사 Archangel 와
인간 Human 이 이해할 수 있는 이데아 Idea 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다. 원리계**의
이데아는 그 어떤 인간이나 대천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심오한 진리적 경계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물들에게는 저마다의 인지의 영역이 있다. 그 어떤 존재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장엄함과 위대함의 전부를 느끼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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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계 (Casual State)

원형계 위의 차원으로써, 순수한 이데아 Ideas, 절대법칙 Laws, 절대원칙들 Principles 이


거하는 곳이다. ‘다섯 번째 하늘’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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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은 성스러운 숙고 속의 구상물들을 실제로 빚어내어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


재료이다. 마음 Mind 은 그 진동수에 따라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 에테르원소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자신을
반영하는 다양한 이성적 Logoic 표현물들과 성령적 Holy Spiritual 표현물들을
창조한다.

우리에게는 마음 Mind 을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의 경계 속에서 절대하는 동안에도,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 자신의 일부를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하여 실재하는 동안에도, 그 후
자신을 단절계 속에 인격과 육신으로 투영하여 존재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끊임없이
마음 Mind 을 사용한다. 물론 그 사용은 좋은 쪽이 될 수도, 나쁜 쪽이 될 수도 있다.

마음 Mind(초월적 빛, 태초의 빛, 우주에테르)이 창조된 순간부터 진동은 시작된다.


다만 그것은 실제적으로 표현된 동적 진동이 아닌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원리계 속에
잠재되어 있는 정적 진동이다.

마음 Mind 의 동적 진동이 시작되는 순간 장엄한 파동의 물결이 퍼져나가 다차원


우주가 형성되었고, 그리하여 오늘날의 세상이 실현되었다. 이렇게 탄생된 차원들 중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 그리고 원형계이다. 원형계란
단절계를 구성하는 앞의 세 차원들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써 만물이
형체(물질원소+심령원소+이지원소)를 갖기 이전 단계이다. (원형계는 만물이
탄생하기 이전 단계로써, 만물의 순수한 원형들이 있는 곳이다. 원형이란 장차 그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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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밑그림이며,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는 그 밑그림 위해 칠해지는
물감이라고 할 수 있다. - 역주)

원형계를 포함한 더 높은 차원들에 대한 탐구는 지상의 인격적 존재가 아닌


절대영혼 Soul 으로써 다가가야 한다. 고차원 진리는 이론적 지식이 아닌 동조와
일체를 통하여 얻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초질료 마음 Mind 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 Mind 이 지니는 특성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마음 Mind 은 단순한
매개체일 뿐일까? 아니면 초질료 마음 Mind 속에도 어떤 특정한 의식이 존재할까?

마음 Mind 이 온 우주를 빚어내는 신성한 창조물인 이상, 그 속에는 어떠한 신적


의식이 반드시 잠재되어 있어야 한다. 이 의식은 성스러운 원칙 Divine Principle(사랑,
덕, 자비 등)과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s(인과응보의 법칙, 균형의 법칙 등)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둘은 천지창조를 이루어낸 절대적 기반이다.

마음 Mind 에 깃들어 있는 의식은 일종의 초지성적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지니는 현재의식이나 자아의식과는 다르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 인체의
피부에 벌레가 앉으면 뇌에 신경이 전달되어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피부는 이미
자체적으로 움찔하며 반응을 한다. 이러한 피부의 자체적 의식은 우리가 지니는
의식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초질료 마음 Mind 속에 내제되어 있는 의식은 성령적
의식(초의식)과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Mind 이 성령인 것은 아니다. 성령은 신의
직접적 화현이며, 다차원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마음 Mind 을 도구로써 사용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초질료 마음 Mind 은 원형계를 구성하는 파동으로써 인간의 현상계적 인지의 영역을


초월한다. 마음 Mind 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걸치는 눈부신 외투와도 같으며,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이미지를 온전히 담아내는 맑고 순수한 거울과 같다.

그러나, 거듭 강조해왔듯이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마음 Mind 을 포함하여 현상계 속의


그 어떠한 차원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모든 차원들이 필요하지 않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홀연한 자체완전성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자신의 일부를 절대영혼 Soul 과 대천사 Archangel 로
화현하지만, 이것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으리라!

신, 절대영원자는 그 어떤 차원의 세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절대적이며, 자체적으로 완전하다. 그는 자신의 성스러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초질료 마음 Mind 을 창조하였고, 그것을 사용하여 원리계를 창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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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성령은 그의 성스러운 뜻을 이어받은 사역자로써 창조의 성업을
이어나갔고, 그 결과 인간, 대천사 Archangel, 천사 angel, 그리고 그 외 모든 존재들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느끼는 오늘날의 경이로운 세상을 탄생시켰다. 게다가 그는
우리에게 마음 Mind 의 다양한 진동수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표현물들을 제한 없이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창조의 궁극적 이상이다.

진동수가 낮은 마음 Mind 은 물질로 표현되며, 진동수가 높은 마음 Mind 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령이지원소로 표현된다. 이 중 후자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심령이지원소란 인간 육신의 에테르 복체**로 알려져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테르 복체의 존재를 부정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공부와
함께 적절한 명상과 수도를 병행한다면, 에테르 복체의 존재 여부뿐만이 아니라 이
복체가 지니는 신성한 특성들까지 이해할 수 있다. 에테르 복체에 대하여
탐구함으로써 우리의 물질체의 조화를 다스리고 관리하는 성령의 실재를 비로소
깨닫게 되고, 더 나아가 성령과 함께 물질체를 관리하는 작업에 동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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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복체 (etheric double)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가장 단순한 구조(단세포, 광물질)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생물에


이르기까지 각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마다 그에 상응하는 에테르 복체를 지니고 있다.
복체는 육신의 내부를 가득 메우면서 육신 외부로 일정 거리만큼 확장되어 있다. 에테르
복체는 해당 육신이 살아있는 한 육신의 건강을 돌보며 함께 하다가 육신이 버려지면(죽거나
소멸되면) 해체된다. 에테르 복체는 육신을 짓고 관리하기 위한 주형틀이자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에테르 에너지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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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물질체 속에는 생명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에테르 생명력이라고 한다.


우리의 현재인격은 몸 속에 저장되어 있는 에테르 생명력을 재료로 사용하여
사념체를 생성해낸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주된 에테르 생명력의 공급원은 태양이다. 다른 일부는


실재계로부터 공급받고, 나머지의 대부분은 음식으로부터 공급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들은 본질적으로 마음 Mind 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파동이 각기 다른 진동수로 진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세포와 원자는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이들은 인체의


에테르 복체로부터 그 생명력을 공급받는다. 또한 에테르 복체는 인체 내의 오감
신경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줌으로써 우리가 외부로부터의 다양한 인상들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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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할 수 있도록 해준다. 더 나아가 복체는 심장의 박동, 기혈순환과 같은
자율신경계를 관리하며, 그 외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수많은 인체
활동들을 관할한다.

적절한 수련을 하면 몸 속의 에테르 복체로부터 에테르 생명력을 끌어다가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이것을 먼 곳으로 투사시켜서 ‘기적’이라 불리우는
일들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인체 내부에 있는 에테르 생명력의
일부를 끌어와서 몸 외부의 어딘가에 투사하여 형체를 빚어낸 후, 그 위에 심령이지적
이미지**를 입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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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적 이미지 (noetic image)

이지원소들, 또는 심령이지원소들로 빛어진 다차원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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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정형화된 작업은 우리가 지적 갈망(지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갈망)을 할


때 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반면, 갈망적 사고(갈망이 앞서는 무분별한 사고)를 할 땐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예수께서는 후자를 ‘벙어리, 귀머거리 귀신’(마가복음
9:25)이라고 하셨다. 이 두 종류의 생각은 모두 에테르 생명력이라는 재료로 빚어진
표현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품는 생각 하나하나는 모두 생명체화 되어 고유한
존재성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이들을 ‘사념체’라고 한다.

에테르 생명력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제공되는 ‘양식’이다. 우리는 이것을 사용하여


사념체를 생성하고 길러내는데, 이러한 수많은 사념체들이 모여서 우리의
현재인격을 형성해낸다. 에테르 생명력은 우리의 인격을 다듬고 정화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도구이기도 하다. 내면을 정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감으로써 우리는
점차 자신의 인격을 진아(Soul)에게 동화시켜나가게 된다.

뒤에 이어질 단원들에서 마음 Mind 과 사념체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배울 것이다.


마음 Mind 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빚어낸 신성한 초질료인 만큼 어떤 주제에 대하여
배우든지간에 항상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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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우주의 탄생

‘만물이 그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의 안에서 존속합니다.’ (골로새서 1:1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창세기 1:3)

탄생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is’ 뿐이다. 절대계 속에 영원


전부터 있어온 성스러운 빛이 실재계 world of Being, 존재계 world of existence 속으로
표현된 것이다.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창조된 것이 아닌, 표현된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영원성의 경계 속에 항상 있어왔다. 그 무엇도 최초로 창조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영원히 ‘있을 is’ 뿐이다. 우리는 절대계와 실재계,
존재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인 절대권능은 만물을 통하여 다양하게 표현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에게는 절대권능이 있었기에 그가 품은 이상을 창조로써 실현할 수
있었다. 그의 절대권능이 표현되는 경계는 실재계인데, 이곳은 로고스와 성령이
거하는 경계이자 모든 품계 Order 의 대천사들이 표현되는 곳이다.

절대계의 신은 영원한 절대생명 Life 이며, 존재계의 신은 표현된 생명 life 이다.


존재하는 것이란 어떤 특정한 시점으로부터 탄생된 것이다. 존재계 속 모든 만물을
탄생케 한 최초의 시작, 그것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이상이다.

절대계에서 모든 것은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한 ‘있음’이다. 반면, 존재계


속의 표현물들은 그렇지 못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변화의 과정으로부터 비로소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이 탄생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에서는 시공간의 제약
따위란 없지만 말이다.

우리 자신을 예로 들어보자. 태초의 우리는 절대계의 순수한 성원소,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생명 Life 이었다. 이 시점은 우리가 스스로를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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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이며, 존재성과 실재성을 지니기 이전의 경계이다. 우리가 실재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성원소로부터 발산된 빛이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절대영혼 Soul 으로써 화현되어 실재한다. 절대계의 성원소가
스스로를 실재계 속에 절대영혼으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재계의
절대영혼은 존재계 속에 스스로를 영구인격, 현재인격으로 표현한다. 인격은
존재하며, 절대영혼은 실재한다. 그리고 성원소는 ‘절대’한다. - 역주)

성원소가 실재계와 존재계로 들어서면서 그가 본래 지녀온 영원성, 절대생명 Life 을


잃는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는 태초의 그 어떤 본성도 잃지 않는다. 성원소의
화현이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성원소가 자신의 작은 일부를 실재계, 존재계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일부란 그에게서 발산된 한 줄기의 빛과 같다.

인간 외의 다른 모든 생명체들이 탄생할 때에도 위와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 존재계란


이지계, 심령계, 물질계를 포함한다. 존재계 내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만물은
대천사들 Archangels 의 표현물이다. 이 행성 안에 존재하는 인간 외의 모든 생물,
무생물들은 대천사들의 투영물들, 그들로부터 발산된 사념체들인 것이다.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이러한 창조 활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삶의 무대를
제공하였으며, 앞으로도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이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공간적 제약을 초월하는 이름 없는 성원소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품 안에서 살아가며, 단 한 순간도 그로부터
벗어나거나 분리된 적이 없다. 바닷물의 표면에는 수많은 물결들이 굽이친다. 그
물결들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바다로부터 비롯되었고, 같은 바다의 일부이며, 동일한 성분의 바닷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분리되어 있는 다른 무언가가 아니다.
성원소로써의 우리는 너와 나가 결코 다르지 않으며, 서로 분리되어 있지도, 분리될
수도 없다. 무한한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비하하여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하나는 절대권능, 절대지혜, 절대사랑이 깃들어 있는 기적과도 같은 성스러운
표현물이기 때문이다. 시공계의 진흙구덩이 속을 살아가면서 다른 누군가가
추구하는 바가 우리의 이익과 충돌한다고 하여 그들을 적으로 대해선 절대 안된다. 눈
앞의 추구와 이익이란 존재계 속의 일시적 환영일 뿐, 결코 진정한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감정들로부터 비롯된 상대적 진실일 뿐이다.

상대적 진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존재계 속의 특정한 동기로부터 시작되어서


발전해나가다가 언젠가는 끝을 맞이한다. 어느 시점으로부터 탄생되었다가
일정시간이 흐르면 예외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못하다. 우리는
이러한 덧없는 환영들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서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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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덧없는 모든 것들을 필연적으로
거쳐가야만 한다. 이들은 우리의 성숙과 완성을 향한 여정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들은 애시당초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계 속의 그 어떤 것도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말아야


한다. 대신, 그것들이 왜 존재하는지,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우리 성원소들에 의해 현상계 속에 표현되었는지 이치적으로 헤아리고 깨달아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단순히 죠지, 메리와 같은 이름일까? 기쁨과 슬픔의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갈망, 생각, 욕구 덩어리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위대하다. 우리는 자아의식을 지닌 영원한 실재 Being, 지혜와 사랑을
표현하는 위대한 실재 Being 이다. 우리 모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존재계를 모험하는 탐험가이다. 이 탐험의 목적은 지식을 얻고 지혜를 깨닫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들에 대한 모든 판단과 결정은 전적으로 우리의
자유이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고 세심하게 탐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그대가
겪어온 모든 경험들을 두 종류로 나누어라.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으로. 그
이후에는 이들 중 어떤 것들이 나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고 갚진 경험이었는지
가려내라. 이때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이
훈련을 할 때는 기존에 지녀온 통념과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특히
물질 속에 깊숙이 얽매인 의식은 우리를 실체로부터 멀어지도록 유혹하기 때문에
이를 주의하여야 한다.

심령계의 원리도 이와 같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감정들은 천국을 건설하고, 이기적인


행동, 갈망, 욕심으로부터 비롯된 불쾌한 감정들은 지옥을 건설한다. 천국과 지옥, 이
두 세계 중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하다. 물론 근본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둘은
영원하다.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은 우주의식 속에 새겨져 영원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써 우리의 사명은 배우고 깨닫고 성숙하여 진아단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영구인격은 자신의 낮은 차원적 표현물인 현재인격을 창조한다. 현재인격에게는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과 인상들을 기쁨 또는 슬픔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적인 자유가 있다. 더 나아가 그것들의 본질에 대하여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궁극의 자유를 얻게 되는 순간은 그의 내면에 있는
무지의 어둠을 남김없이 환하게 밝혀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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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친애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물론 무지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들의 깊은 내면은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면에서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을 표면적으로 기쁘게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일시적이며 덧없음을. 속세의 덧없는 것들에 집착하는 갈망의 반복은 물질적
욕망을 키워나갈 뿐이다.

이 세상은 한 치의 빈틈없는 정확하고 명백한 법칙 Law 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그


법칙이란 인간은 항상 자신이 행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되돌려
받는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조화의 법칙 Law of Harmony 을 거스르는 행위를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은 물질체에 병으로 나타날 수도,
또는 심령체나 이지체에 정신적 고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차원의 세계(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를 다스리는 성스러운


법칙들 Divine Laws 에 대하여 하나하나 탐구해나가며 범우주적 원리들을
깨달아나가야 한다. 그리하면 언젠간 궁극의 진리를 깨닫게 될 날이 올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창세기 1:3) 여기서의


‘빛’이란 무엇을 뜻할까? 신께서는 왜 이 빛을 시공계 속에 표현하셨을까? 만일
우리가 사는 단절계 속에 이 진리의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물질의
환상, 키르케(마술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돼지로 만들어버렸던 마녀 - 역주)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영원불멸의 실재 Being 가 되어 본래의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겠는가.

물질이란 인간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와 같다. 반면, 인간이 물질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여 물질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발전과 성숙을 돕는
여신이 될 것이다. 모든 창조물의 근본적인 존재 목적은 성원소를 조력하기 위함이다.
한낮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현재인격의 욕망 따위를 충족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물질욕으로부터 초탈한 인간은 ‘주의 기쁨’(느헤미야 8:10)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인격 personality 이 아닌
절대영혼 Soul 으로써 자신을 시공계 속에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그의
인격은 시공계 속을 살아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배움의 과정을 완수해야만 한다.
‘작은 일에 정직하지 못하면 큰 일에도 정직해질 수가 없다.’ (누가복음 16:10)
성스러운 절대영혼이신 예수께서 내려주신 이 말씀을 되새겨 보자.

부, 안락, 쾌락과 같은 것들은 지금 당장 절실하게 있어야만 할 것만 같이 느껴지나,


결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의 목적은
그러한 일시적인 것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지속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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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내면의 가치를 탐구하고 계발하는 것이다. 이것을 추구하는 인생이 진정한
삶이요, 영원한 삶이요, 절대생명 Life 을 향한 삶인 것이다.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은 삶의 대전제들에 대하여 깊게 사색해야 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깨달음을 향해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한히 황홀하고 끝없이 영원한 참 진리와
하나되는 그 순간까지.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지혜의 말씀이다.

‘너희는 스스로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그러므로 너희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거나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마태복음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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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시공간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미 너희에게 일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요한복음 14:2)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위해선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질 속으로 최대한


깊숙이 다가서야 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가장 근원적 본성은 이제껏 누누이
설명해왔듯이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이며, 그 경계는 움직임, 진동, 파동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기 이전의 잠재적 경계, 정적 경계로써 이해될 수 있다. 그 뒤를 잇는 성스러운
이상의 경계는 비로소 움직임, 떨림, 진동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동적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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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한 속성이다.
움직임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는 자신을 범우주적 이성으로 화현하여 다차원
우주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을 역동적인 성령으로써 화현한다.

그가 창조의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탄생시키는 것은 ‘움직임’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 Mind 이다. 마음 Mind 의 진동은 성스러운 이상을 표현하기 위한
필연적 요소인 것이다.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의 경계 속에 정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마음 Mind 이


동적 진동을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만유 생명의 원천인 에테르 생명력으로 표현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인간에 비유한다면 그는 로고스와 성령이라는 두 손으로
마음 Mind 을 사용하는 것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이러한 양면적 화현은 ‘위대한
걸작’의 완성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위대한 걸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성스러운 숙고 속에서 구상한 모든 것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구체화된 영역 속에
표현해내는 것이다.

어느 미지의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선 ‘공空’의 개념을 빼놓을 수가 없다. 공이란 무엇일까? 그 누구도
공간을 떠올리지 않고는 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공이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지니는 본성의 하나로써 이것은 인간의 인지의 영역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공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할까? 물론이다. 그것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한다.
그러나 인간과 대천사 Archangel 를 비롯한 그 어떠한 지적 존재도 무한한 공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로지 신만이 그것을 아신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이 아닌 그 어떤 지적, 초지적 존재도 공의 본질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공의 표현물인 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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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Space, - 역주)

공(空)이란 무한히 텅 비어있음이다. 반면, 공간(빌 공空, 사이 간間)이란 공 속의 표현물이다.


공(Space)은 끝없이 무한한 반면, 그의 표현물인 공간(space)은 유한하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는 절대적 경계인 반면, 시간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으로부터 탄생된 유한한 표현물이다.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환영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에서는 공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만이 있을
뿐이다. 공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은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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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공 속에서 마음 Mind 이 진동을 시작하는 순간 다차원 우주가 탄생된다.
최초로 원리의 경계와 원형의 경계가 차례로 탄생하고, 그 이후에 이지계, 심령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계가 탄생한다.

마음 Mind 의 진동으로써 탄생된 원리계와 원형계는 실재하는 경계이지만, 이들은


아직 완전하게 표현되지 않은, 실질적 활동이 일어나기 이전의 경계이다. 이곳은 아직
단절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직 절대적 영원무한성으로부터의 분리가 일어나기
이전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
성스러운 숙고의 경계이며, 이곳으로부터 세상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 (원리계,
원형계는 실재계에 속하며, 이지계, 심령계, 물질계는 존재계에 속한다. – 역주)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최초의 표현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실재계가 창조된다. 이


순간부터 시간과 공간이 탄생한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지금’(Eternal Now)과 공으로
이루어진 절대적 경계를 떠나서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실재적 차원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실재계의 공간은 크게 두 경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절대원리 Causes,


절대원칙 Principles, 절대법칙 Laws, 이데아들 Ideas 을 담고 있는 원리계 Casual State,
그리고 이들을 바탕으로 탄생된 원형들 forms 을 담고 있는 원형계 Noetic State 이다.
실재계의 시간을 탄생시킨 근원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이다. 시간이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이 없다면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수억만 개의 은하계들을 담고 있는 우주공간을 연상해보자. 이 공간이 가히 얼마나


거대한지 느껴보라.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만 13 분이 걸린다. 우리
은하계는 이러한 무수한 태양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빛이 우리은하를 관통하는
데에는 수천 년의 세월이 걸린다. 이러한 은하계가 우주 안에는 수억만 개가 있다. 이
우주를 이루는 공간이 얼마나 광대한지 가히 느껴지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주
공간은 공 속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공 안의 모든 표현물들은 마음 Mind 의 파동,


진동, 움직임으로써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움직임이란 만물의 존재법칙이자
표현된 생명 life 의 특성이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물들을 통하여 공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공간을 공으로부터 탄생된 표현물로써, 그리고 그
표현물이 진행되고 발전해나가는 연속적 과정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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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은 ‘모든 것의 시작’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초질료 마음 Mind 을 탄생시켜서 우주의 창조를 시작한 태초의 그 순간
말이다.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려온 태초의 근원은 무한한 공이며, 그곳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절대적 초자아의식으로써 군림하고 있다. 그의 성스러운 뜻을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공계 속의 만물을 체계적으로 탐구해나가다 보면, 이 세상의 모든 표현된


생명 life 들은 조그마한 아메바에서부터 거대한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성스러운
지성이 깃들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절대권능과
절대지혜가 모든 창조의 기반을 이루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깊은 수도와 명상을 하며 각각의 존재물들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와 생명의


과정**을 세심히 탐구해나가다 보면 이 모든 것의 근원인 공이 무엇인지 차츰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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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주기 (circle of possibility)

각 원형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는 절대지혜를 기반으로 하는 성스러운 법칙 Laws 과


원리들 Causes 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현상계 속 모든 만물은 씨앗에서 나무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끊임 없이 발전하며, 그 과정 속에서 경험들을 수집한다. 만물의 각 원형 form 은
완벽하게 설계된 생명의 주기를 지니며 원형계 속에서 실재한다. 그 어떤 원형도 자신의
생명의 주기를 변경하거나 개조하여 다른 원형으로 바뀔 수 없다. 인간은 항상 인간으로
환생한다.

생명의 과정 (circle of probability)

생명의 주기란 한 생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 주기로써 임의로 바꾸거나 벗어날 수 없는


것인 반면, 생명의 과정은 같은 종의 생명체들에게 있어서도 제각각이며 가변적이다. 도중에
불상사로 목숨을 잃게 되어 정해진 주기를 온전하게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씨앗이 싹트지
않을 수도, 어린 나무가 약해서 일찍 죽을 수도, 아기가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다.
각 생명의 주기 속에는 수백만 개의 다양한 생명의 과정들이 있다. 삶의 도중에 죽어서
성장이 끊어질 수도, 또는 계속 성장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기의 성공적 완수
여부를 떠나서 모든 생명의 주기에는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 을 반영하는 위대한 지혜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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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속에서 아메바 한 마리가 차지하는 시간의 영역(생명의 주기와 생명의 과정)과
공간의 영역(장소, 위치)을 그릴 수 있는가? 심해저에 살고 있는 물고기, 또는
태양계의 특정한 행성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 차지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을
그릴 수 있는가? 모든 존재물은 공 속에서 특정한 시간의 영역(존재의 기간)과 공간의
영역(존재하는 장소)을 차지한다. 게다가 이들이 공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좌표는 매
순간 바뀐다. 정지되어 있는 물체조차도 그렇다. 그 이유는 동일한 공간 속에 머물러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이다.

물질계 속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삶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생명의 주기와 생명의 과정이다. 모든 생명체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생명의
과정(삶의 과정 - 역주)이 있으며, 그 과정은 가변적이다. 심지어 삶의 도중에 죽음을
맞이하여 그 과정이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 반면, 생명의 주기는 절대불변하는 신의
법칙 Law 이다. 모든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주기를
바탕으로 성장해나간다. 자신이 지녀온 생명의 주기를 변형시켜서 다른 생명체로
개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나무는 레몬나무나 오렌지나무가 될 수 없다. 소나무의
씨앗은 자라서 항상 소나무가 된다.

우리는 이 물질행성 속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의 주기들과


생명의 과정들을 쉽게 접하며 이해할 수 있다. 수천 개의 씨앗들이 바람에 실려와서
대지의 여기저기에 뿌려진다. 그 모든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
동일한 생명의 주기를 지니지만, 이를 이루어나가는 각 씨앗들의 생명의 과정은 모두
다르다.

이제 인간의 생명의 주기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 인간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는


정자와 난자, 수태, 출생,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그리고 죽음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생명의 주기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삶의 종결이 아닌, 더욱
큰 생명의 대주기 속의 일부분으로써 또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니는
생명의 대주기란 수없이 반복되는 탄생과 죽음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의식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며 궁극의 깨달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주기는 불변한다. 그러나, 정자와 난자가 수태에 실패하여
생명의 과정이 도중에 중단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거기서 끝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질계에서 흔히 일어나는데, 이는 생명의 과정이 생명의 주기를 온전하게
완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하나의 예이며, 이 또한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의
일부이다.

심령계에서는 (최소한 인간에게 있어선) 생명의 과정에 의해 생명의 주기가 방해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심령계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주기를 온전히 완수할
때까지 삶을 이어나간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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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죽게 되면, 그 아기는 심령계에서 삶을 이어나간다. 아기가 3 살 때 죽고
난 이후 10 년이 흘렀다면, 그 아기는 심령계에서 현재 13 살이 되어 있다. 부모는
아기가 죽었다고 해서 정말로 그 아기를 잃는 것이 아니다. 아기는 심령계에서,
그리고 이지계에서 생명의 주기를 이어나가며 성장을 계속 해나가기 때문이다. 마치
물질계 속을 살아가듯이 말이다.

심령계와 이지계에서의 삶은 생명의 주기를 예외 없이 온전히 채우게 되어 있다. 만약


물질계에서처럼 생명의 과정에 의해 생명의 주기가 끊어질 수 있다면, 우리의 인격의
성장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 되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3 차원 세계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3 차원계는 다양한 생명의


주기를 지닌 만물이 표현된 세계이다. 우리 모두 공간이란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공간 속에서 나날이 살아가며, 우리의 육체 또한 그 공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간의 크기를 측정하고 이해할 때 다른 대상과의
상대적인 비교를 거친다. 그 예로써, ‘방 안의 공간’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공간은 방의 크기와 연관지어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방 밖의 공간’은 쉽게
떠올릴 수 없다. 우리가 비교와 측정을 하기 위해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은 항상 상대적 비교에 바탕을 둔다. 만약 우리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을 만큼 엄청나게 거대한 공간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공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절대로 없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함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한함을 무언가에 비교하여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에 대한 가장 바람직한 이해의 방법은 그것을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질로써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이자 궁극의 경계로써 받아들인다면 공에 대한 이해가
한결 용이해질 것이다.

시간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다. 사건들, 인상들의 연속이 시간이라는 개념을 형성하는
것이다. 생명의 주기를 구성하는 각 단계들은 서로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모든 단계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해보면 그 차이가 한 눈에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연대기적 나열로부터 3 차원적 시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계의 시간은 심령이지계의 시간과 매우 다르다. 3 차원 물질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매우 느리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이 일어나서 전개되는 데에 며칠,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흐른다. 반면, 심령계에선 이 동일한 사건을 ‘생각’을 통하여 단 몇 초
안에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생생하게 겪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차이가 일어나는
원인은 각 차원마다 시간이 흐르는 패턴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각 차원을 구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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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 역주) 우리의 영구인격은 이러한 차이를 쉽게 감지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물질계 속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건들이 있는가 하면,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사건들도 있다. 또한, 똑같은 양의 시간이 흘러도 어떤 때는 시간이
번갯불처럼 순식간에 흘러버리는가 하면, 복장이 터지도록 시간이 안 갈 때도 있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행복 또는 고통으로, 심하면 천국 또는 지옥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모든 차이는 각기 다른 차원들을 지배하는 시간의 구조를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우리가 물질계 속을 살아갈 때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선 우리의


물질체를 그 장소가 있는 곳으로 물리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반면, 물질체가 없는
심령이지계에서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생각의 속도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게 된다. 심령계 속에서 행해지는 이동의
방식은 보행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물질계와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물질계와
심령계를 구성하는 시공간의 구조가 다른 데에서 비롯된다.

심령계 속에서의 이동은 생각과 집중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물질체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가령 유체이탈을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지구의 정
반대편으로 1, 2 초 내에 이동할 수 있다. 심지어 여기저기의 수많은 장소들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세계에 과연 고정적 시간의 관념이 존재할까?
유체이탈과 동조 앞에선 기존의 시공간적 통념이 무너져 내린다.

모든 존재물은 마음 Mind 의 진동이라고 전에 말하였다. 물질계를 구성하는


파동들만의 고유한 진동수가 있으며, 심령계와 이지계를 구성하는 파동들은 훨씬
높은 진동수를 지닌다. 적절한 수련과 집중훈련을 하면 누구나 높은 차원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사건들과 사물들이 동일한 공간 내에 여러겹으로
중첩되어 공존할 수 있으며, 그 세계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을 지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은 환영이 아닌 실체이다. 시공간을 빚어낸


재료는 마음 Mind 이고, 우리 또한 마음을 매개체로써 사용하여 다양한 대상들을
인지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공간이 마치 실체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우리가 시공간을 진실이라고 여기는 한,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진실이다. 만일 정말로 시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어떠한 경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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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깊이 사색해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우리 내면에 있는 불멸의 그것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하여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참 자아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곧
전지전능한 신,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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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다차원 우주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히브리서


1:10)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3)

‘주님만이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주께서 하늘을 지으시고 그 한없이 먼 하늘의 모든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땅과 바다를 지으시고 그곳에 사는 모든 생명을
지으셨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살리시오니 천군 천사들이 주께 경배합니다.’ (느헤미야
9:6)

마음 Mind 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선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권능, 성스러운


사랑의 위대함을 결코 깨달을 수 없다. 우리는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이
창조한 표현물들을 탐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영원성의 경계에 항상 거하며 그
일체성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는 진아(Self)와 그의 존재계 속 투영물인 인격(self)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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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이루어져 있듯이 하늘도 이루어져 있다’. 소우주가 이루어져 있듯이 대우주도
이루어져 있다. 인간성원소가 절대영혼 Soul 과 영구인격을 탄생시키고 세 육신을
창조하였듯이,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은 온 우주를 창조하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물은 그 규모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는 각각


대우주, 중우주, 소우주이다.

대우주

하나의 원자에서부터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은 대우주 안에


있다. 모든 소우주들은 대우주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대우주는 성스러운 자체완전성의 경계에 거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며, 이는 모든


창조의 모태가 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세상 모든 곳에 있으며, 모든 것이다. 이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성스러운 숙고의 경계 안에는 로고스와 성령이 잠재되어
있으며, 이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이다. 우리는 아직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대우주의
경계, 절대생명 Life 의 경계를 떠나지 않았다. 곧이어 그의 성스러운 숙고와 성스러운
이상으로부터 마음 Mind 이 표현되며, 로고스와 성령은 이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창조를 시작한다.

대우주는 모든 소우주를 포함한다. 소우주 안에는 물질체, 세포, 대기, 가스, 수증기
등의 창조물들이 있다. 그 중 인간의 물질체는 대우주를 온전히 반영하는 소우주이다.
세상의 모든 소우주는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표현물이며, 구체적으로는 3 원소와
4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흙, 물, 불, 바람의 4 원소와 에테르적 3 원소. - 역주)

성스러운 이성과 성스러운 성령이 마음 Mind 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온 우주가


시작되었다. 우주 안에서 마음 Mind 이 아니었던, 마음 Mind 이 아닌, 마음 Mind 이
아닐 공간이란 없다. 물론 절대적 영원무한성은 절대생명 Life 그 자체이며,
마음 Mind 이란 그에 의한 표현된 생명 life 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과거에 존재했었던, 지금 존재하고 있는, 그리고 장차 존재할 모든 것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의 경계 속 성스러운 숙고의 일부이다. 이 경계에는 시간의
개념이란 없다. ‘영원한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숙고가 실현되어 다차원 우주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원리계가


탄생한다. 초질료 마음 Mind 속에 가장 먼저 성스러운 원리들이 펼쳐지고, 곧이어 그
원리들은 이데아들 Ideas 로써 표현된다. (성스러운 원리 Divine Cause 란 창조의
기반이 되는 절대원칙 Principles, 절대법칙들 Laws 이며, 이데아 Idea 란 그 원리들을
바탕으로 구상된 만물의 설계도이다. – 역주) 그 이후에는 원리계의 이데아들 Ideas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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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으로 초질료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각 만물의 원형을 빚어낸다. 이로써 원형계가
창조되며, 탄생된 모든 원형들은 이곳에 머무르게 된다. 이렇게 하여 원리계와
원형계가 탄생되며, 둘 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계이다. (원리계와 원형계를 묶어서
실재계라고 일컫는다. - 역주)

그 이후에 마음 Mind 의 진동수는 더욱 낮아져서 존재계를 구성하는 원소들로


형상화된다. 가장 먼저 이지계가 탄생된다. 그에 이어 마음 Mind 의 진동수는 더욱
낮아져 심령계를 탄생시키고, 마지막으로 가장 낮은 진동수는 물질계를 탄생시킨다.

대우주의 경계에는 다양한 품계 Order 의 대천사들이 있다. 대천사들 Archangels 이


지니는 기본적인 의식은 성령의식, 즉 초의식이다. 우주를 창조하는 실질적 작업은
대우주의 경계 속 대천사들 Archangels 에 의해서 수행된다.

소우주 인간은 대우주의 일부라고 전에 말하였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쉬운 예를 들어보자. 물이 가득 담겨있는 물통을 대우주라고 가정하고, 그 물통 안의
밑바닥에 스펀지가 흠뻑 젖어서 잠겨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스펀지(소우주) 속의
물분자들은 동시에 물통(대우주) 속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소우주를
비롯한 그 안의 모든 것은 대우주의 일부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우주적 표현물들은 전적으로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이라는


대우주의 감독과 지휘하에 있다. 모든 인간은 육신으로써 성령적 표현물인 동시에
영구인격과 절대영혼 Soul 으로써 로고스적 표현물인 것이다.

중우주

우리가 사는 행성이 물질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략 알고 있을


것이다. 지구 행성을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요소들과 법칙들 Laws 은 우리의 육신
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행성의 자연계는 곧 지구의 물질체다. 우리 인간의
육신이 에테르 복체로 둘러싸여 있는 것과 같이, 각 행성의 물질체는 온 행성을
감싸는 거대한 에테르 복체로 둘러싸여 있다. 이것을 에테르계라고 한다. 우리 몸의
에테르 복체는 물질체 속을 빈틈 없이 가득 메우며 일부는 육체 밖으로 발산되어서
전체적으로 계란 형태의 빛의 띠를 형성한다. 같은 원리로써, 지구의 에테르 복체는
행성의 중심부인 내핵에서부터 대기권 밖 수키로미터의 영역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달과 같은 주변의 다른 위성이나 행성의 에테르 복체에게 닿지는 않는다.

물질행성은 7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셋은 에테르 복체를 구성하며, 나머지 넷은


물질을 구성한다. 전자의 3 원소는 전기와 자기를 비롯하여 전통과학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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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지 못한 다양한 장(場)들을 형성한다. 후자의 4 원소는 행성의 물질체를
구성하는 흙, 물, 공기, 불이다.

물질체에게 상응하는 에테르 복체가 있는 것처럼 행성의 심령체(심령계 - 역주)에게


상응하는 심령적 에테르 복체도 있다. 행성의 심령 복체는 모든 지상을 가득 메우는
것은 물론이요, 아득히 머나먼 대기권 밖으로 뻗어나가 달의 표면에 닿을 정도이다.
실제로 지구의 심령 복체가 달에게 닿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때는 지구가 특정한 정령들을 달로 추방하는 경우인데, 이는 인류의 평화로운 발전과
진보를 위함이다.

이렇게 추방되는 정령들은 외부 행성들로부터 지구 속으로 진입한 자들이다. 때때로


이러한 정령들, 또는 그들이 발산하는 사념체들은 인간의 장기 중 간에 위치해있는
에너지 센터를 통하여 심령체의 에테르 복체로 침투하여 일시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점령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빙의, 간질 등 그 외의 다양한 이름으로 고대적부터
불려왔다. 다행히도, 이러한 존재들은 지구상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달이 그들을 다시
끌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행성들간의 일종의 협정이다.

지구의 이지체(이지계 - 역주)에게 상응하는 에테르 복체는 심령적 에테르 복체보다


훨씬 멀리 뻗어나가서 태양계 안의 모든 행성들에게 닿는다.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발산되는 이지 복체는 태양계 전체를 온전히 담아내는 거대한 오오라 영역을
형성한다. 우리 은하계 내의 모든 태양계가 이러한 원리로써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든 태양계들은 은하 중심부의 중심태양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거대한 오오라의
영역 안에 담겨져 있다.

신비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행성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물질체를 지닌 채로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들의 심령이지체를 물질체로부터
분리시킨 후에(1 차 유체이탈), 이어서 심령체를 이지체에게 동화시켜야 한다(2 차
유체이탈). 이렇게 하여 이지체만을 지니게 되면 그들은 방문하고자 하는 행성을
선택하여 그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지구의 심령체, 이지체 안에는 지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보관하는 행성기억소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은하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은하적 규모의 대형 도서관이 있다. 이 우주의
도서관을 우주의식(아카샤 레코드 - 역주)이라고 한다. 우리가 겪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경험들과 인상들은 우리의 현재인격과 영구인격, 그리고 성령에 의하여 동시에
기록되며, 이는 우주의식의 일부가 된다. 우주의식이 은행이라면, 우리는 그 은행의
예금자인 것이다.

각각의 인간이 지니는 모든 갈망, 생각, 반응, 행동, 인상들은 물질두뇌에 저장되는
동시에 영구원자 속에 기록되어 우주의식의 일부가 된다. 우주의식은 초질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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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으로 만들어졌으며,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
천상의 도서관에 기록되고 보관된다.

하지만 우주의식이 단순한 기억 창고만은 아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지니는 인상, 생각, 감정, 갈망들이 합산되어 이루어진 총체물이다. 더 나아가
인간뿐이 아닌 천사들 angels 과 대천사들 Archangels 을 비롯한 모든 성령적, 이성적
표현물들이 우주의식의 형성에 참여한다. 로고스, 성령, 원소의 대천사들, 그 외
다양한 품계 Orfer 의 대천사들… 그리고 인간. 이 모두가 대우주를 이루어내는
성스러운 일원인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우주의 현상계는 물질원소, 심령원소, 이지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속을 살아가는 인간은 자신만의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사념체들을 생산하고 번식시킴으로써 천국 또는 지옥을 건설할 수 있다.
천국이 무엇인지는 대략 알 것이다. 지옥이란 눈부시게 밝은 램프(성원소)의 표현에
씌워진 어둡고 둔탁한 여러 겹의 램프갓들과 같다. 이들은 무지의 갓, 혼돈의 갓이다.

천국과 지옥을 비롯한 심령이지계 안의 다양한 차원들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통일된 시스템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차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상과 무지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인간에게 값진 지혜를
전해주고 진정한 실체를 깨닫게 해주는 필수불가결한 세계들이다.

심령계는 물질계와 같이 마음 Mind 의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심령계를


구성하는 진동수는 물질계를 구성하는 진동수보다 훨씬 빠르고 정교하다. 그리고
이지계는 심령계보다 더욱 빠르고 정교한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행성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3 차원


속에는 더 높은 차원들이 동시에 포개져서 공존하며, 그 속에는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다. 보통 인간은 3 차원 이상의 세계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곳은 공기보다도
가늘고 섬세한 마음 Mind 의 파동으로 이루어진 고차원 세계이며, 그곳에는 우리보다
완전하고 성숙한 존재들이 살고 있다.

수도와 명상을 통하여 유체이탈을 하면 물질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더 높은 차원


속으로 들어설 수 있다. 그곳에는 우리가 아직까지 알고 지내온 이 세계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 물론 이곳보다 더 추한 곳들도 있다.

친애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가노라.’ (요한복음 14:2) 신인(God-Man)께서 하신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자아의식을 지니고 말씀 속의 ‘그곳’을 다녀온
자들만이 어떤 세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상계의 낮은 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내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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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되어 있는 심령이지적 감각을 활성화하여 더욱 정교하고 완벽한 차원들을
구성하는 섬세한 파동들을 느낄 수 있도록 계발하는 것이다.

우리 진리 탐구단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인격의 완성이다. 영적 능력들을


계발하기 이전에 덕을 지닌 참사람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예수께서 항상
우리에게 그러하도록 가르치셨듯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 (마태복음 5:48)

우리가 사는 지구,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진 모든 만물은 본질적으로 선량하며 아름답다.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을 보라. 산과 바다를 비롯한 이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우리의 삶의 터전이자 수많은 생명을 낳고
길러내는 경이로운 대자연의 이면에는 대천사들 Archangels 과 그들의 전령인
천사들 angels 이 있어왔다. 그들은 성령의 성스러운 지혜와 함께 온 자연계를
다스리고 관리해왔다.

4 차원계는 3 차원계보다 더욱 역동적인 세계이며, 그곳에서는 모든 것들이 더욱


완전하게 표현된다. 심지어 지옥에서조차도 말이다. 4 차원 세계는 아무리
지옥이더라도 3 차원계에 비하여 공상, 유혹,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기가 훨씬
수월하다.

5 차원 이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할 것이지만, 이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심령계의 빛은 물질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빛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이러한 심령빛을 달빛에 비유한다면, 이지계의 빛은 지중해에 떠있는 정오의 태양과
같다. 이지계는 심령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고 눈부신 빛으로 가득한
세계이며, 그 빛은 그곳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더욱 큰 포근함을 제공한다.

소우주

‘하늘이 이루어져 있듯이 땅도 이루어져 있다.’ 대우주가 이루어져 있듯이 소우주도


이루어져 있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로고스, 성령, 다차원 우주가 이루어져 있는
원리로써 성원소, 절대영혼, 영구인격, 육신들 또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영원자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이다. 질적인 면에선 그러하지만, 양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권능의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우주를 앎으로써 대우주를 알게 된다. 인간을 앎으로써 신을 알게 된다. 우리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를 앎으로써 다차원 우주를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마음 Mind 으로 빚어진 사념체들(지적 사념체, 갈망적 사념체)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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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으로써 로고스와 성령이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는
초질료로써의 마음 Mind 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나를 알지 못하고선 결코 우주를 알 수 없다.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보물을 찾아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되면 자신의 의식을 외부로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공명하는 그것이 바로 성원소, 즉
진아 Self 인 것이다. 이 진아는 ‘아버지와 한 본체’ (니체아 신경)이다. 이것이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다중성이다. 성원소가 곧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으로
가득한 자체완전성의 경계에 거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인 것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스스로를 다중성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그 안의 각각의


성원소들 또한 스스로를 자신만의 고유한 다중성으로써 표현한다 (스스로를
절대영혼, 영구인격, 현재인격으로 이루어진 진아단으로써 표현한다. - 역주). 우리
모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다중성을 이루어내는 성스러운 일원으로써, 온 우주와
만유생명을 다스리는 그의 성스러운 본성인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을
온전하게 물려받은 그의 성스러운 화현체이다.

로고스가 대우주라면, 인간 절대영혼 Soul 이 지니는 각각의 자아의식은 소우주이다).


성원소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함으로써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다고
전에 말하였다. 그렇다면 인간 이데아 Human Idea 와 성원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 이데아 Human Idea 가 성원소에게 명령을 하거나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성원소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강요도 있을 수 없다.
그에게는 절대자유와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성원소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 스스로를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대천사
이데아 Archangelic Idea 를 통과하여 우주의 창조에 협력하는 대천사 일원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자유는 소우주가 대우주를 구성하는 일원이기에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성원소는 소우주이다. 성원소의 최초의 자기표현은 그의 무한한


자유의지로부터 비롯되었다. 성원소에게서 발산된 한 줄기 빛이 천상으로부터
내려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는 순간, 그 빛은 비로소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다. 우리는 로고스의 표현인 ‘신의 아들’(요한복음 3:13-14)이 탄생하도록
도와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의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성원소의 화현인
절대영혼 Soul 이 소우주라면, 그에 상응하는 대우주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화현인
로고스이다.

우리의 영구인격은 이성적 Logoic 표현물인 동시에 성령적 Holy Spiritual 표현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 그리고 이 셋을 감싸는 에테르 복체들은
영구인격에 비해서 훨씬 더 성령적이다. 이들은 진아단 Selfhood 이 탑승하는
자가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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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계는 로고스와 성령에 의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절대영혼 Soul 은
이곳에서 로고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영구인격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가 현상계 속에서 사용하게 될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라는 소우주를
창조한다. 마치 로고스와 성령이 이지계, 심령계, 물질계로 이루어진 대우주를 창조한
것과 같이.

결론을 짓자면, 소우주란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한 성원소가 스스로를


표현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과 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소우주 성원소들은
대우주 신의 축소판이자 복사판이다.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지 않은 다른 성원소들(대천사)도 절대영원자의


축소판이지만, 그의 복사판은 아니다. 자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깨닫고 고향으로
귀환한 인간만이 그분의 왕국을 상속받는 탕아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얼굴을 가리는 수건이 없습니다. 거울처럼 주님의 영광을 환하게
비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우리 속에서 일하시므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 속에서 더욱더 주님을 닮아갑니다.’ (고린도후서 3:18)

Chapter 10: 빛, 그리고 그 너머의 초월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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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창세기 1:16)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한복음 1:5)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계의 빛이란 특정한 발원지로부터 발산되는 에테르 파동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서 빛의 가장 주된 발원지는 태양이다. 그로부터 발산된
에테르 파동들은 다양한 물체의 표면에 부딪혀 반사되는데, 이렇게 반사된 빛 속에는
해당 물체의 모양, 색깔, 크기 등과 같은 모든 세밀한 물리적 정보들이 기록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은 그 빛을 받아들여서 빛 속에 기록된 정보들을 재구성하여 완성된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물질빛 이외에도 심령빛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빛은 심령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차원들과 하위차원들 속에 가득하다. 심령빛은 두 가지 특성을 지닌다. 첫째는
심령계를 구성하는 모든 심령원자들 하나하나가 심령빛을 발산하는 발원지라는
것이다. 물질계에서는 매우 높은 에테르 진동수를 지닌 물질만이 빛을 발산할 수 있는
반면, 심령계에서는 그 안에 존재하는 차원들과 하위차원들을 구성하는 모든
심령원자, 심령분자들이 고유한 빛을 발산한다. 심령계의 빛은 물질계처럼 반사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심령빛의 또다른 특성은 그 빛의 진동으로부터 행복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질계에는 이러한 현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계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 느낌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감정들을 생성하며 발전시켜나가는 모든 과정은 심령빛 안에서 이루어진다.


심령계란 곧 감성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격은 밝은 심령빛을 쬐일수록 더욱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심령계에도 어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엄연히 말하자면 그


어둠조차 빛이지만 말이다. 어둠의 빛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지옥이라 불리는 곳이다.
지옥은 심령계의 가장 낮은 차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곳의 어둠빛은 불안정하고
불쾌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심령계의 어둠이란 빛이 있으되 빛나지 않는, 가장
낮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파동이다. 즉, 심령계에는 절대적 어둠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심령계에서 지옥과 같은 낮은 차원 속으로 들어서면, 그 곳은 어떠한 행복,
만족도 느껴지지 않는 불완전한 빛으로 가득한 환경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심령빛보다 한 단계 위에는 이지빛이 있다. 이것은 심령계보다 높은 차원인 이지계에


상응하는 빛으로, 심령빛보다 높은 진동수를 지닌다. 이지빛은 심령빛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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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로 이루어진 단절계를 초월하는 고차원에는 ‘마음빛’이라
불리우는 초월적 빛이 있다. 이것은 꺼지지 않는 빛, 불멸의 광명이다. 이 빛은 다른
물체를 비춰주거나 그 표면의 정보를 전달해주는 일 따위를 하는 빛이 아니다.
초월빛의 역할은 시각적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동조와 일체를 통하여
깨달음과 지혜를 전해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루는 사도들의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의심을 없애시기 위해서


그의 온 육신을 빛으로 화현하여 모습을 드러내셨다.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가
바가라드기타(인도의 힌두교 2 대 서사시 중 하나인 마하브라나타의 일부. ‘신의
노래’라는 뜻이다. - 역주)에 묘사되어 있다. 크리슈나는 아르쥬나 앞에 등장할 때
스스로를 ‘타오르는 태양’ (11:17) 으로써 화현하였다. 그때 크리슈나는 말하였다.
‘보라, 이 몸 안에 펼쳐져 있는 온 우주를.’ (11:7)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계의 빛은 특정한 물체를 보고 파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매개체로써, 우리의 현재인격은 물질빛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변 환경을 파악한다.
여기서 우리는 대상, 매개체, 관찰자라는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비단 물질계뿐만이 아니라 심령계와 이지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관계가 형성된다.

반면, 초월빛은 매개체이라기 보단 절대영혼(현재인격이 아님)이 지니는 본성이다.


(심령빛의 발원지는 심령원소이며, 이지빛의 발원지는 이지원소이다. 반면, 초월빛의
발원지는 절대영혼 Soul 과 대천사 Archangel 다. - 역주) 절대영혼 Soul 은 초월빛을
통하여 그가 원하는 그 어떤 것과도 동조하고 일체될 수 있다.

현상계(물질계, 심령계, 이지계) 안에서는 대상, 매개체, 관찰자라는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반면, 초월적 빛의 세계(실재계 - 역주)에서는 탐구의 대상, 초월빛,
절대영혼이라는 고차원 삼각관계가 형성되며, 절대영혼은 초월빛과 일체됨으로써
궁극의 지혜와 행복을 얻게 된다.

이지계 너머의 초월빛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더 이상 단절계, 존재계가 아닌, 일체계,


실재계이다. 이 경계에 들어서면 우리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되며, 그러면서도
‘나’와 ‘너’ 를 서로 다른 고유한 실재 Being 로써 구분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성스러운
독립성(자아의식)이 바로 우리가 존재계 속의 기나긴 여정 끝에 실재계로 귀환하면서
얻게 되는 선물이다. 소우주와 대우주가 하나되는 이 순간, 시공계를 지배해온
단절성과 존재성은 소멸되어 버린다. 영원한 고향으로 복귀한 우리는 이름과 성격을
초월하는 자아의식을 되찾은 성스러운 실재 Being 가 되는 것이다.

Chapter 11: 육신이 형성된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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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집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그것을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사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고린도전서 6:19,20)

가장 낮은 차원인 물질계에서부터 상위차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인간 창조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살펴보면, 신께서는 진흙(이 또한 그의 일부이다)을 이용하여
인간의 육신을 빚으시고, 그 속에 그의 숨결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절대영혼 Soul 을
창조하셨다. 이렇게 탄생된 생명의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는 절대권능과 절대지혜에 깃들어서 물질체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활동이 이루어진다.

대자연에게 생명 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자연계의 모든 곳으로부터 성스러운 지혜를 느낄 수 있다. 물질체는 절대법칙 Laws 에
기반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설계도가 바로 인간 이데아 Human
Idea(인간-인격의 이데아)이며, 이 이데아를 바탕으로 성령과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인간의 육신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창조 활동은 그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즐거움이다.
왜냐하면 이 일은 ‘신의 아들’을 탄생시키는 성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인체의 내부로부터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살, 뼈, 피, 뇌, 그리고 수많은 신경조직,


신경세포, 신경마디들이 이루어내는 경이로운 생명의 고동을. 그리고 그로부터
전해지는 절대지혜의 숨결을. 과학은 셀 수 없이 많은 인체 내의 조직들이 이루어내는
기적과도 같은 완벽한 조화를 설명해낼 수 없음을 인정하였다.

우리는 물질체의 구조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물질적 측면으로 본다면


물질체는 우리의 오관을 보관하고 있는 집과 같으며, 우리는 이 오감을 통하여
외부로부터의 인상을 전달받아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러한 수집된 정보들을
기반으로 하는 탐구법을 실증적 탐구라 하며, 이것은 오늘날의 과학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이와 더불어 ‘내적’ 지식을 바탕으로 물질체의 구조를
탐구해나야 한다.

인간의 몸은 일곱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넷은:

1) 흙 : 보이는 원소
2) 물 : 보이는 원소
3) 불 : 타오를 때에 보이는 원소
4) 공기 : 느껴지는 원소

나머지 셋은 전자기적 속성을 지닌 고차원 원소들로써 우리의 심령이지체와 에테르


복체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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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최초로 단절계로 내려오는 순간부터 수호대천사 스로운이 그와 동행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불의 대천사 마하엘, 물의 대천사 카비르엘, 그리고 고차원의 세
원소들을 주관하며 에테르 복체를 관리하는 대천사 라파엘이 동행한다. 그리고
이들을 총지휘하는 대천사 유라엘이 동행하며, 마지막으로 흙의 천사 angel 샤마엘이
그 뒤를 따른다. 샤마엘은 대천사 Archangel 루시퍼의 사념체다. 그는 대천사가 아니다.
(용어해설집 ‘대천사’ 참조. - 역주)

그리하여 모든 인간의 물질체 속에는 마하엘, 카비르엘, 라파엘, 유라엘, 샤마엘이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을 한다. 이들이 소속되어 있는 각 품계 Order 는 무한대에
가까운 대천사들 Archangels 로 구성되어 있다.

인체 내부에서 각각의 대천사들 Archangels 이 하는 일을 살펴보자. 샤마엘은 흙과


광물의 천사 angel 로써 우리 몸의 뼈와 근육을 비롯한 각종 장기들을 구성하는 물질을
생성해내고 관리하면서 다른 대천사들 Archangels 과 끊임없이 협력한다. 마하엘은
우리 몸의 체온을 유지해주며 붉은 피를 생성하고 관리한다. 카비르엘은 몸 속에
흐르는 다양한 액체들을 관리한다. 라파엘은 에테르 생명력을 제공하고 관리하며
우리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불의 대천사 마하엘이 발산하는 빛은 다양한 명암의 붉은색 계통을 띈다. 물의 대천사


카비르엘은 푸른색 계통의 빛을 발산하며, 그 색상은 하늘색에서 짙은 청색까지
다양하다. 에테르 에너지의 대천사 라파엘의 빛은 보라색 계통이다. 그리고 원소의
조합가 유라엘의 빛은 은백색이다.

한 인간이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니, ‘떠났다’고 표현하자. 시체에서는 어떠한


현상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가? 흙. 모든 것은 가스와 흙으로 환원된다. 이때
현재인격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체를 떠나가는 것이다. 인간이 죽으면 가장
먼저 대천사 라파엘이 물질체를 떠난다. 그 이유는 그는 에테르 생명력의 관리자로써
물질체와 심령이지체를 이어주는 은줄을 끊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령이지체가 물질체로부터 분리되면 인격은 비로소 물질체를 떠나게 되는데, 이때
대천사 마하엘이 그와 동행하면서 물질체에 남아있던 불기운을 모두 거두어 간다.
이것이 바로 육체가 죽으면 급속히 식어버리는 이유이다.

마하엘이 떠난 후에는 카비르엘이 떠나는데, 그는 그때 물질체의 물기운을 거두어


감으로써 체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액체활동이 정지된다. 그 후에는 원소의
조합가 유라엘이 떠난다. 흙의 천사 샤마엘은 끝까지 남아 물질체가 흙으로 환원되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는다.

마하엘, 카비르엘, 라파엘은 육신들을 엮어주는 에테르 복체를 통하여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 안에 동시에 머무르며 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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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체 안에서는 라파엘과 카비르엘이 주된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에테르 원소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마하엘보다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마하엘은
간접적 역할을 맡게 된다.

심령체가 버려지게 되면(‘제 2 의 죽음’), 대천사들은 이지체 속으로 옮겨간다.


이때부터는 순수한 상태의 마음 Mind 의 파동을 관할하는 라파엘이 가장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마하엘은 전보다 직접적 역할을 맡게 된다. 반면, 카비르엘은 간접적
역할을 맡는다.

물질체가 버려지면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는 어떻게 될까? 이때 라파엘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를 해체시킨 후 심령체의 에테르 복체 속으로
옮겨간다. 심령체가 버려질 때 또한 마찬가지로 심령체의 에테르 복체를 해체시킨 후
이지체의 에테르 복체 속으로 옮겨간다.

에테르 복체란 육신들(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을 서로 엮어주는 그물망이며, 해당


육신이 버려지면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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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에테르 복체

살아있는 생명체의 몸 속에는 ‘에테르’(특정한 진동수를 지닌 마음 Mind 의 파동)라고


불리우는 에너지 전류가 흐른다. 이 에너지의 흐름, 분배, 저장은 육체를 감싸고 있는
특정한 장(場)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이 장이 바로 에테르 복체이다.

모든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는 그의 대응물로써 에테르 복체를 지닌다. 물질체를


이루는 각각의 원자와 세포마다 자신만의 고유한 에테르 복체를 지니며, 이 수많은
복체들은 서로 결합되어서 몸 전체를 엮어주는 하나의 거대한 에테르 복체를
형성한다. 각 세포의 복체는 자신만의 독립적 업무를 수행하며, 주변 세포들의
복체들과 영향을 주고 받음으로써 다양한 장기들 사이의 전체적 균형을 유지하고,
그리하여 물질체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낸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 원자, 세포들 중 에테르 대응물을 지니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에테르 복체에 의하여 온 물질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속되고, 이로써
인체의 조화로운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테르 생명력이 물질세포 안에서 작용하는 현상적 측면을 보면, 이것은 소위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일컫는 전자기적 플라즈마와 유사한 속성을 지닌다. 우리가
흔히 일으키는 착각은 살이나 피, 신경조직이 에테르 생명력을 생산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마치 전선이 전기를 생산해낸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전선은
도체로써 전기를 운반해주는 역학을 할 뿐, 전선 자체가 전기를 생산해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물질체 자체가 에테르 생명력, 전자기적 플라즈마, 혹은 심령학에서
말하는 인격적 자기를 직접 생산해낼 수는 없다. 에테르 생명력이란 초질료
마음 Mind 의 한 표현물로써, 이것은 심령이지적 사념체를 빚어내는 재료이며, 이렇게
생성된 사념체들이 모여 우리의 현재인격을 구성한다. 에테르 복체는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 사이에서 에테르 생명력이 흐를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도관이다. 심령체와
이지체에게도 고유한 에테르 복체가 있으며, 각 복체는 자신이 감싸는 해당 육신을
관리하기 위한 독립적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세 육신을 전체적으로 엮어주는
그물망 역할을 한다.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는 심령체, 이지체의 에테르 복체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해당 물질체로부터 임의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육체의 죽음으로 인하여
분리되어 해체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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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복체가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다. 매우 기본적인 것들도 있으며, 적절한
수련을 통하여 에테르를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인간의 몸 속을 흐르는 에테르 원소들에는 네 종류가 있다. 각각 창조에테르,


감각에테르, 인상에테르, 동적에테르이다. 이것은 에테르가 애초부터 네 종류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초질료 마음 Mind 이라는 하나의 원료가 특정한
상황마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내기 위하여 그에 적합한 에테르적 형태로 변형되는
것이다.

창조에테르는 성령의 뜻에 따라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성령은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바탕으로 창조에테르를 사용하여 물질체 및
그 내부를 구성하는 다양한 장기들을 생성해내며, 물질체의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들을 매 순간 돌보며 관리한다. 우리 몸 속의 뇌신경망, 눈물샘, 감각기관,
내분비관, 폐, 간, 창자 등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의
끊임없는 가호를 받고 있다.

인상에테르란 에테르 생명력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에테르로써 우리가


시각화 수련을 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인상에테르를 통하여 다양한
이미지들을 저장하여 암기할 수 있다. 또한 인상에테르는 우리가 외부로부터 어떠한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그 대상의 크기, 색깔, 형상 등과 같은 다양한 시각적 속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감각에테르는 느낌을 주는 에테르로써 우리가 물리적 편안함 또는 고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은 보통 감각에테르와 인상에테르를 복합하여
사용하는데, 이로써 ‘기억’이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 기억은 참기억(Real
Memory)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참기억이 간직되어 있는 곳은 물질장기나
현재인격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천국’, 즉 우리의 절대영혼 Soul 이다.

동적에테르는 움직임을 돕는 에테르인데, 이것은 우리가 출산되기 이전인


뱃속에서부터 이미 사용되어왔다. 손과 발의 움직임, 눈동자의 움직임 등과 같은 모든
의식적 활동은 물론이요, 혈액순환, 호흡, 영양섭취, 세포생성, 노폐물 분비 등과 같이
모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율신경계의 작용에 이르기까지 인체 내의 모든
움직임은 동적에테르의 도움으로써 일어난다.

육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무의식적 작용들은 명백하게 성령적으로 이루어지며,


이로써 물질체 전체의 생명력이 유지된다.

위에서 언급된 사항들 외에도 동적에테르를 사용하는 또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인체 내에 저장되어 있는 에테르 생명력을 영적으로 끌어다가 사용하는 방법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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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영적 투사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투사를 하기 위해선 몸 속의 에테르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인체 외부로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높은 영적 경지에 이르러야만
할 수 있다.

우리는 물질체 속의 에테르를 사용할 때 성령의 창조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면서, 로고스적 표현물로써의 사명에 부합하도록 에테르를 자신의 인격
계발과 완성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으로써 사용하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에테르를 가장 값지게 사용하는 길이다.

꾸준한 수련을 병행하면서 삶의 패턴을 올바르게 개선해나간다면 언젠간 자신의


에너지를 동적에테르 속에 실어서 다른 사람의 몸 속으로 투사할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심리치료를 행할 때는 치유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자신의 뜻이 가득 담겨있는 에테르


생명력을 대상자에게 투사한다. 이 작업을 위해선 우리의 물질체와 심령체의 에테르
복체로부터 에너지를 끌어와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작업을 자아의식의 경계에서
행한다면 그 에너지 속에 이지원소들을 첨가하여 그것을 사념체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지적 사념체를 생성한 후 그 속에 네 종류의 에테르를 모두 실어 보낼 수 있다.
이 사념체를 초의식의 경계에서 투사한다면 그 전송된 사념체가 행하는 모든 일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전송된 사념체 속의 인상에테르를 통하여 그 사념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가 지시한 일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사념체 속에
투사된 감각에테르는 우리가 아픈 사람의 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체적 작용들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동적에테르는 사념체를 실어 나르는 수송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창조에테르는 우리가 의도한 치유의 작업을 실제적으로 수행한다.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의식적 에테르 전송법 이외에도 잠재의식적으로 에테르가


전송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에테르는 강한 곳에서 약한 곳으로 이동된다. 허약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회복하기 위하여 잠재의식적으로 주변의 자신보다 강한
사람들로부터 에테르 에너지를 끌어오게 된다. 이때 에테르를 제공하는 쪽이 충분한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엔 대부분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과도한 양의
에테르를 빼앗길 경우 제공자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행복감과 혐오감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테르 에너지의 무의식적
전송으로부터 비롯된다.

보통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잠재의식적으로 과도한 양의 에테르를 빼앗길 수


있으며, 또는 누군가를 향한 지나친 애욕으로 인하여 다른 이에게 막대한 양의
에테르를 쏟아 부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들에는 제공자의 심령체 안에서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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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들은 대부분 반감, 공포, 불안함과 같은 감정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에테르 복체들을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자칫 그들을 잘못 사용하다간 내면에 끔찍한 심령환경을 조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에테르 에너지를 제공하고, 또는 제공받으며 이를


치유를 위하여 사용한다. 이에 관련된 예수 그리스도의 한 예로써, 한번은 출혈로
고통 받는 한 미망인이 예수의 옷깃에 손을 대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가복음 5:30) 그가 말하시자 그의 사도들은 놀랐다. 그때 수많은
군중들이 사방에서 그를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계속 말하셨다. ‘내게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누가복음 8:46). 에테르 생명력을 일컬으신
것이다.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는 에테르 에너지의 보관과 원활한 흐름을 담당하며 인체의 각
부위에 고르게 분배되도록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입자,
모든 원자, 모든 세포, 모든 장기의 에테르 복체들이 육체 내의 전체적 에너지 흐름을
주도하는 데에 기여하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 물질체가 생성되고
유지되는 원리는 매우 복잡하다. 육체라는 소우주의 내부에서는 수백만 개의
지점들을 거점으로 하는 성령의 초의식적 지성에 의한 동시적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체 내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물질체 내부에서 성령과 대천사들 Archangels 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깊은 명상과 내적 탐구, 그리고 성스러운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는
로고스적 표현물인 우리의 인격을 이해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세가 수도를 통하여 그의 의식을 소뇌(꺼짐 없이 타오르는 들장미 덩쿨로 상징)까지


끌어올린 순간, 그는 처음으로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리도 언젠가 소뇌에
위치하고 있는 에테르 원반을 활성화하게 되면 내면의 진아 Self, 절대영혼 Soul 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이 얼마나 신성한지를. 우리는 성스러운 무대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의 육신은 신이 거하는 성전이다. 우리가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 또한 우리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안에서 우리는
절대영혼 Soul 으로써 실재(Being)하며, 인격 personality 으로써 존재(existence)한다.
우리의 절대영혼은 로고스와 함께 영구인격을 창조하며, 성령은 전능한 힘으로써 그
인격이 살아가기 위한 단절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수많은 생명들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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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말한다. ‘주님 안에 굳게 설지어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자신 안에 굳건히
서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육신은 신이 거하는 성전이자, 로고스와 영구인격이
거주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조화가 깨지면 신이 불균형하게 표현되는데, 이는 고통, 절망, 열등감과 같은


감정들로써 표현된다.

우리는 에테르 복체를 현명하게 다룰 수 있도록 수련에 온전을 기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과 함께 우리의 세 육신을 조화롭게 관리할 수 있도록 에테르 복체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성령이 깃들어 있는 에테르의 신성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인간들은 만유생명의


원천인 이것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이를 흥청망청 멋대로 사용한다. 집착, 난폭한
행동, 무절제된 감정, 고삐 잃은 갈망 등과 같은 불균형한 사념체들을 생성해내는
모든 행위는 신성한 초질료인 마음 Mind 을 헛되이 낭비해버리는 짓이다. 이것은
자신의 심령이지적 환경을 불쾌한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행위이며, 이것이
반복될수록 상황은 전보다 배로 악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각 육신들과 에테르 복체들 속에서 낮은 진동수의 파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한하는 법과, 그것들이 발생할 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가다듬고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항상 진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세 육신의 상호의존성을 한 여인이 세 종류의 밀가루를


이스트와 함께 섞어서 반죽하는 예로써 묘사하셨다(마태복음 13:33). 여인은
절대영혼 Soul 을 상징하며, 이스트는 절대영혼의 투영물인 영구인격을 상징하며, 세
종류의 밀가루는 세 육신을 상징한다. 그리고 반죽의 과정은 절대영혼과 영구인격에
의하여 세 육신의 온전한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상징한다.

육신들의 균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역할은 누가 맡고 있을까? 누가 이 사나운 전차에


올라타서 말들이 이리저리 무질서하게 날뛰지 않도록 길들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그것은 절대생명 Life 이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영혼 Soul 이다. 절대영혼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다스리며 세 육신의 질서를 관리한다. 이
절대영혼 Soul 은 물론 우리들 자신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간문에 이 세 육신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고린도후서 12:2) ‘첫 번째 하늘’은
성스러운 법칙들이 지배하는 시공계 속 물질계이다. ‘두 번째 하늘’은 다양한
차원들과 하위차원들로 이루어진 심령계이다. ‘세 번째 하늘’은 표현된 원형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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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 이지계이며, 이곳 또한 수많은 차원들과 하위차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네
번째 하늘’은 표현되지 않은 순수한 원형들의 세계, 즉 원형계이다.

7 개의 하늘 중 가장 높은 세 하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 경계는 인간의


제한된 언어를 사용한 그 어떠한 표현으로도 묘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목표는 의식의 경계를 세 번째 하늘과 네 번째 하늘까지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체계적 공부와 수련을 통하여 물질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높은
차원의 세계로 들어서야 한다.

이 말은 결코 물질적인 것들이 우리에게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내포하고 있는 지식을
초월하는 더 높은 차원들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표현된 생명의
세계(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의 주인이 된 이후, 더 나아가 이 세계들이 표현되기
이전의 근원 경계인 원형계와 원리계로 이어지는 생명의 바닷속으로 뛰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생명 Life 은 이 모든 다차원 세계들을 초월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 그 자체이다.

세 육신을 감싸는 에테르 복체들은 각 육신을 주조하고 관리하기 위한 거푸집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인간의 원형이 표현되기 위해선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의 세
육신이 필요하며, 각 육신의 에테르 복체는 육신들을 서로 묶어주는 뼈의 역할을 한다.

인간이 탄생할 때 가장 먼저 창조되는 것은 영구원자이다. 마치 씨앗 속에는 해당 꽃,


또는 나무의 설계도가 담겨 있듯이, 영구원자 속에는 인간 원형의 전체 설계도가
담겨있다. 이를 바탕으로 에테르원자가 탄생하며, 그로부터 물질체를 구성하는
최초의 물질원자가 생성된다.

각각의 에테르원자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물질원자, 물질세포들이 생성되며


성장해나간다. 인간 육신의 설계도는 최초로 인간-인격의 이데아에게서 물려받는다.
인간-인격의 이데아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성령과 다양한 품계 Order 의 대천사들은 이 이데아 Idea 를
바탕으로 지혜와 권능으로써 우리의 물질체를 창조한다. 가장 먼저 최초의 물질원자,
물질세포가 생성되며,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창조에테르에 의해 더 많은 새로운
세포들이 생성되고 장기들이 형성되어 물질체 전체가 완성된다.

세상의 모든 물질원자 속에는 창조력이 잠재되어 있다. 각각의 원자마다 에테르


복체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물질체 내에도 엄연히 창조력이 잠재되어 있다.
우리가 최초에 수태되었을 때부터 태아, 유아기, 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성장의 원동력은 이 창조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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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니는 에테르 복체의 형상은 우리의 물질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리고
물질체 주위에서는 영적 광채가 발산되는데, 이를 ‘생체 오오라’라고 한다. 육신의
에테르 복체는 항상 완전무결하다. 우리의 물질체는 이러한 복체를 본받아 언제나
완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에테르 복체와는 다르게, 생체
오오라는 육체의 현상태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발산하는데, 그 색깔은 해당 육신의
건강과 심리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오오라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신유가들은
다른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육체적 고통, 또는 심리적 고통은 그것으로 인한 아픔이나 불편함이 느껴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생체 오오라에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원인은 일상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 불안함, 공격적 감정 등으로 인하여 에테르 복체가 인체의
필요한 부위에 에테르 생명력을 충분히 전달해주지 못하게 되는 데에 있다. 이렇게
되면 육신은 에테르 복체의 완전성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게 되며, 이는 생체
오오라의 변질과 부패로서 나타나게 된다.

환자의 몸을 관찰해보면, 그의 아픈 부위의 에테르 복체 내에서는 창조에테르와


동적에테르의 활동이 저조한 것을 볼 수 있다. 대신, 감각에테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로 인하여 환자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문제의 부위를 알려서 그곳으로 더 많은 에테르를 보내도록 하기 위한 신호이다.

인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과 세포들은 절대지혜가 깃들어있는 완전무결한 에테르


복체에 의해 형성되고 관리되지만, 그 속을 흐르는 에테르 생명력의 결핍과 불균형은
종종 우리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를 병들게 한다.

‘통증’의 느낌은 에테르 복체 속을 흐르는 에테르로부터 전달되는 것이다. 이를


설명해주는 예로써, 인체의 특정 부위가 마취되면, 그 부위의 에테르 복체 속에서는
감각에테르의 흐름이 끊기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적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테르 복체 내에서 충분한 양의 에테르 에너지가 흐르지 못할 때 물질체


내에서는 각종 문제들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물질체에 일어나는
증상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며, 각 증상에 따른 치유법 또한 다양하다.

문제의 증상이란 무엇일까? 모든 증상의 근본 원인은 특정 부위의 창조에테르가


결핍되거나 과도하게 확장되는 것이며, 그 결과는 물질체에 다양한 병으로써
나타난다. 이러한 에테르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원인은 육신 속에 거주하는
현재인격이 혐오, 증오, 질투와 같은 통제되지 않은 감정들로 인하여 지나치게 많은
에테르 생명력을 탕진해버리는 데에 있다. 이러한 행위는 성령이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작업에 부담을 주고, 그럴수록 성령은 창조에테르의 사용을 더욱
제한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인체 내의 에테르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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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의 물질체를 관찰해 보면, 모든 장기들이 각자 맡은바 임무를 온전히
수행해내면서 다른 장기들과 함께 전체적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에테르 복체들로부터 눈부신 오오라가 발산되어 온 몸을 아름다운 빛으로
감싸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령은 대천사들 Archangels 과 함께 우리의 인격이 거주하기 위한 완벽한 물질체를


만들고, 그 내부를 구성하는 모든 에테르 세포들을 중심으로 하여 물질체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관리하는 작업을 한다.

물질체의 내부는 다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장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기들의


중심부마다 에테르센터**가 있다. 에테르센터는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하나는
자신이 속해있는 장기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물질체와 심령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함으로써 두 육신이 서로 다양한 에너지들과 감정들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중개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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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 센터 / 신성한 원반 (etheric center / sacred disk)

에테르에너지, 에테르 활동의 중심부로써 산스크리트어로 ‘차크라’라고 불리우며, 우리의


육신을 감싸는 에테르 복체들의 다양한 부위에 위치하고 있다. 각각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마다 고유한 센터들을 지니고 있으며, 각 센터들이 자리하는 곳은 인체 내의 장기들의
위치와 일치한다. 에테르 센터들을 다루는 수련을 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일부 센터들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계발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다른 센터들은 로고스와 성령,
대천사들이 머무르며 작업을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심장 센터’를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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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체의 에테르 복체 속에는 물질체의 에테르센터들보다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는


심령센터들이 있는데, 각 센터에서 발산되는 에너지의 형상이 마치 꽃잎이 피는
모습과 같아서 ‘화판’이라고도 불리운다. 심령센터들은 이지체의 이지센터들이
위치해 있는 동일한 지점에 포개져 있다.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 속에 있는 에테르센터들은 ‘신성한 원반’이라고 불리운다.


심령체의 에테르 복체 속의 있는 심령센터들은 더욱 강렬하게 진동하는데, 우리는
이들을 ‘신성한 구’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이지체의 에테르 복체 속에는
심령센터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진동하는 이지센터들이 있는데,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아 이들을 보았을 때 ‘별’이라고 표현하였다. (요한계시록 1:16,20)

첫 번째 신성한 원반은 척추뼈의 맨 아래 끝부분인 천골에 위치해 있다. 척추선상에


나열되어 있는 7 개의 신성한 원반들이 이루는 모습은 마치 붉은 뱀이 척추의 7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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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을 원반모양으로 돌돌 감으며 정수리 부분에서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형상과
같다. 뱀같이 보이는 이것은 사실 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물질체와 에테르
복체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여 생명력을 유지해주는 원시불이다. 성서에서는 이것을
대천사 마하엘이 최초의 인간들을 에덴동산에서 단절계로 추방할 때 사용했던
‘화염검’ (창세기 3:24) 이라고 표현한다. 첫 번째 센터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줄이겠다.
이 센터 속의 원시불을 잘못 건드리다간 에테르 복체 전체를 태워버려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직 높은 경지에 이른 신비가들에게만 이 센터를 다루는
일이 허용된다.

또 하나의 접근이 제한된 신성한 원반이 있는데, 이는 양 발바닥에 위치해 있다. 이


원반을 활성화시키면 매우 낮은 진동수를 지닌 파동에 인격을 동조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지옥과 같은 심령이지적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신비가는 심령계의 아주
낮은 차원 속에 갇혀 있는 존재들을 도울 때 이 원반을 활성화한다.

‘뿌리 차크라’라고 불리는 또다른 원반이 있는데, 이는 생식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성령과 대천사들 Archangels 이 머무르며 창조 활동을 하는 곳이다. 이 센터는
신중하게 사용되어야지, 절대로 함부로 쓰여선 안된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는 임무가 있기에 이런 점에서 우리는 대천사들과 한 동지이다. 출산은
위대하고 신성한 특권인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다.

태양신경총(명치)이 위치해 있는 약간 윗부분에는 또다른 원반이 있는데, 이 센터는


생명에너지의 저장고이자 심령계로 통하는 입구이다. 이 센터에는 많은
대천사들 Archangels 이 머무르며 인체를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적절한
지도와 가르침을 통하여 이 센터를 열고 계발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신유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고, 의식적 유체이탈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센터는 심장에 위치해있다. 이 센터는 인체 내에서 가장


신성한 원반으로써, 우리의 영구인격이 머무르는 곳이다. 로고스, 성령을 비롯한
대천사들 또한 이곳에 머무르며 영구인격의 성장을 위한 간접적 도움을 준다.

심장 센터**는 우리의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이 성숙함에 따라 로고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계발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심장에만 따로
집중하는 수련이나 명상을 해선 안된다. 하지만 이 원반을 부드럽고 천천히 정화하는
작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이 원반은 우리를 초의식의 경계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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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센터 (heart center)

심장은 단순한 물리적 장기일 뿐만이 아니라 육신 내의 가장 중요한 영적 센터이다. 이 곳은


우리의 영구인격이 머무르는 곳이다. 이 센터는 현세의 나와 성스러운 ‘나’를 연결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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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이자 성소이다. 심장의 중요성은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나 기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참 나로써 경건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는 심장(heart. 여기서는 인간의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 역주)을 정화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누가복음 16:15)는 성서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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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리에는 두 개의 센터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원반이 있다. 이곳은 사랑과 지혜를


겸비한 로고스의 초자아의식이 거하는 곳이다.

간과 비장의 약간 윗부분에도 두 개의 에너지 센터들이 있는데, 이들은 물질체에게


영향을 준다. 이 두 센터들을 활성화하면 특정한 물질적, 심령적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신비가는 이 능력을 올바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양 어깨에도 두
개의 원반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선 훗날 설명하겠다.

바빌로니아인들을 비롯한 많은 진리탐구단에서는 에테르센터들을 다양한 이름으로


불러왔다. 이 센터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다양한 힘들이
오가는데, 신비가는 이러한 힘들을 통제하는 법을 터득하여서 그의 성전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 힘들을 사용할 때는 항상 경계를 놓지 말아야 한다. 유익하게
쓰일 수도 있지만, 잘못 쓰이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명심하라. 그 어떠한 이로운 힘도 그것을 다루는 손이 깨끗하지 않으면 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선의의 편에 굳건히 설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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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 우리의 세 육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의 천막 집이 무너지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죽어 이


육체를 떠나면 하늘에 있는 새로운 몸, 영원한 우리 집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입니다.’ (고린도후서 5:1)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게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가 몸으로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고린도후서 12:2)

‘자연의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의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

인간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란 육신의 주기를 포함한다. 육신이란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이 단절계 속을 살아가며 경험을 수집하기 위하여 탑승하는 자가용이다.
우리는 단절계를 구성하는 각 차원에 상응하는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를 지니며, 이
육신들은 에테르 복체라는 생명망에 의하여 서로 묶여 있다.

깨닫지 못한 자들은 물질만이 이 세상을 이루는 전부라고, 그리고 물질적 존재성만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물질계에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더 높은, 더욱 정교한 차원들 속에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단절계 속에서의 우리의 삶이란 영원한
고향인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자체완전성의 경계를 단 한 순간도 떠난 적 없는
진아 Self 로부터 발산된 조그마한 빛 줄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은 물질계를 살아가는 동안 그의 세 육신 속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그러하고, 무의식적 유체이탈을 하는 수면 상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훗날 죽음을 맞이하면 물질체를 버린 후 심령체와 이지체를 지니고 심령계를
살아간다.

그 후 제 2 의 죽음을 맞이하면 심령체는 이지체에게 동화된다.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지체를 지니고 이지계를 살아간다. 그리고 훗날 이지체는 소멸되며, 그의
현재인격은 영구원자 속으로 흡수된다. 그 후 대부분의 인간들은 곧바로 지상으로
다시 내려와 환생할 준비를 한다. 그리하여 새 이지원소, 심령원소, 물질원소들을
이용하여 다음 생에서 입기 위한 새로운 이지체, 심령체, 물질체를 만든다.

우리가 물질계 속을 살아갈 때 우리의 심령체와 이지체는 물질체와 정확하게


포개져서 하나의 육신처럼 존재하지만, 적절한 수련을 하면 자아의식의 경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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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심령이지체를 물질체로부터 분리시킨 후 자신과 동조하는 심령이지계 속으로
진입하여 그곳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세 육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각기 속해있는 차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물질체는


다른 물질들과 함께 3 차원 세계에 머무른다. 반면, 심령체는 4 차원 세계에 있으며,
때문에 심령체에게는 물질계를 지배하는 시공간적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심령체는 4 차원계를 다스리는 고유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이지체는
심령체, 물질체와 함께 포개져 있는 동시에 5 차원계에 있다. 5 차원계 또한 전통적인
시공간적 법칙을 초월하는 세계이다. 하지만 이지체는 우리가 물질계와 심령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의 모든 삶의 과정을 함께 한다.

물질체 내에서는 여러가지 물질적 반응들과 현상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의


인격이 물질체를 떠나가는 순간 아직까지의 모든 생리활동은 중단되고 물질체는
흙으로 환원된다. 심령체나 이지체와 달리 물질체에게는 특별한 물리법칙이
적용되는데, 그것은 특정 물질체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녀온 본래의
물질체이든, 아니면 물현(초질료 마음 Mind 이 물질로 형상화 될 때까지 진동수를
낮추는 영적 능력 - 역주)을 사용하여 창조해낸 일시적 물질체이든 그에 상관없이
모든 물질체를 이루는 각각의 물질원자는 하나의 특정한 공간만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3 차원계의 법칙이다.

이제 심령체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자. 한 신비가가 자신의 사념체를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다른 신비가에게 투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념체는 심령원소들과
이지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에테르 복체에 의하여 하나로 묶여 있는데, 이는
우리의 육신이 이루어진 구조와 동일하다. 이렇게 사념체가 투사되면 그로부터
수천마일 떨어져 있던 다른 신비가가 이것을 받게 된다. 그가 받은 사념체는 그것을
창조한 주인의 심령체를 그대로 닮은 하나의 완전한 심령체이다 (사념체는 그것을
창조한 주인의 분신이다. - 역주). 이와 같이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념체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물질계의 시공간적 제한을 초월하여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텔레파시’라고 한다.

초자아의식을 지닌 신비가는 하나가 아닌 수많은 사념체들을 동시에 투사할 수 있다.


그는 각 사념체들에게 고유한 임무를 주어 수천마일 떨어져 있는 지구의 곳곳으로
한꺼번에 투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투사한 모든 사념체들을 동시적으로 감독할
수 있다. 투사된 모든 사념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의 창조자에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지원소들을 사용하여 위와 같은 사념체 투사를 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선


자아의식을 일정 수준만큼 계발하여야 한다. 5 차원계에서는 모든 것이 훨씬
명료해진다. 4 차원계와 5 차원계의 차이는 3 차원계와 4 차원계의 차이만큼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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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차원들의 구조는 판이하게 다르다. 4 차원계와 5 차원계를 물질계의 연대기적
관념과 같은 제한된 시공간적 통념으로 이해하려 해선 안된다.

우리의 심령체는 우리 스스로가 대천사들 Archangels 의 도움을 받으며 직접 만든다.


심령체는 영구원자 속의 전생의 기록들과 상응하는 심령원소의 재료로 빚어진다.
물론 절대영혼의 투영물인 영구인격은 항상 순백하다. 다만 그 영구인격이 입고 있는
옷의 청결도가 변할 뿐이다. 이 옷을 구성하는 성분은 이생과 전생들로부터
수집되어온 경험들이다.

영구인격은 세 육신 속에 현재인격을 창조한다. 현재인격이란 인간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수없이 발산하며 되돌려받은 지적 사념체들과 갈망적 사념체들이 합산되어
형성된 총체물이다. 한 인간이 지니는 현재인격의 질은 그의 심령이지적 성숙도를
그대로 반영한다.

‘죽음’이란 인간이 물질체를 버리는 현상이다. 인격이 물질체를 떠나가면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가 해체되기 시작한다. 보통 에테르 복체는 물질체가 부식하면서 서서히
해체되지만, 시체를 화장을 할 경우에는 급속히 해체된다. 해체된 에테르 복체는
우주의식 속으로 환원된다. 에테르 복체는 진아단 Selfhood 을 직접적으로 싣고 있는
육신들을 간접적으로 조력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복체는 해체되는데,
이는 마치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다. 반면, 우리의 영구인격은 수많은 생을 거쳐도
결코 해체되지 않으며 항상 완전하게 보존된다.

우리의 심령체는 어떻게 생성되었을까? 심령체는 성령과 영구인격, 그리고


수호대천사의 감독 하에 심령원소들로 빚어졌다. 심령체는 미세한 심령원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령적 에테르 복체를 주형틀로 하여 하나하나의 세포 단위로
생성되었다. 심령체의 형상은 물질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물질체의 모든 물리적
세부사항은 심령체에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이
심령체를 지니고 수면 중 무의식적 유체이탈을 하거나 죽음을 맞이하여 의식적
유체이탈을 하게 되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 또는 유체이탈을 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그의 심령체는 그가 지녀온 물질체와 완벽하게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물질체가 파손되었거나 절단된 부분이 있다면, 그의
심령체는 파손되거나 절단되기 않은 온전한 육신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심령체와 이지체는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이 옷은 우리가 지녀온 생각들과 갈망들로


짜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지체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내면에
조성해온 심령이지적 환경에 상응하는 부류의 옷을 입고 있다.

옷을 일일이 갈아입어야 하는 불편함은 물질계에서만 존재한다. 심령계에서는


이러한 수고가 전혀 필요 없다. 심령체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필요한 건 입고자
하는 심령옷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심령체는 그 생각과 상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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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원소들로 순식간에 갈아입혀진다. 물론 물질계에서도 옷을 갈아입는 작업은 새
옷을 입고자 하는 생각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실제로 그 옷을 구하고 입는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심령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물질계에 살고 있는 인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잠자고


있는 인간과 깨어있는 인간이 서로 다르지 않듯이 말이다. 심령계에서의 삶과
물질계에서의 삶을 구분짓는 잣대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젯밤 아주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잠자는 동안 꿈 속에서 겪었던


경험을 잠자기 이전의 깨어있는 동안 겪었던 경험과 비교해보자. 우리는 잠들기
이전에 겪었던 경험을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상대적 관념일 뿐이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여기는 모든 순간들은 시간이 흐르면 과거가 되어버리고, 결국 그
경험은 과거의 특정한 인상으로 남겨질 뿐이다. 마찬가지로, 생생한 꿈 속에서 겪었던
경험 또한 결국 하나의 인상으로 남겨진다. 그렇다면 결국 이 두 경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 없다. 꿈이었는가, 현실이었는가에 상관없이 이 둘은 우리 인격에게 있어서
과거에 겪은 특정한 시공간적 인상으로써 남겨질 뿐이다. 그렇기에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잣대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두 경험 중 무엇이 더 진짜일까?
그것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르다.

물질체는 절대원리 Cause 와 절대법칙 Law 에 의하여 설계된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물질체는 성령의 감독 하에
창조에테르를 사용하여 성장해나가기 시작한다. 비록 물질체 속에는 현재인격이
머물지만, 물질체의 성장은 현재인격의 도움 없이도 물질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인격이란 무엇일까?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의 육체적 성장


패턴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체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이상 그들의
육체적 성장은 모두 동일한 물리적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어째서일까? 인격은 섭취된 음식물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인격을 형성하는 근원은 수많은 전생이다.

새로 태어날 아기의 육신이 형성될 때는 그의 영구원자를 중심으로 하여 이지원자,


심령원자, 물질원자들이 차례로 생성된다. 그리고 운명의 신령은 새롭게 생성되는
육신의 모든 원자들 속에 아기가 장차 겪어나갈 삶의 운로를 새긴다. 동시에
아기에게는 그 운명을 바꾸고 개선하고 개척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자유가
주어진다.

인간이 타고날 운명은 그의 육신을 빚어내기 위한 재료로 쓰일 무형의 이지원소,


심령원소, 물질원소 속에 새겨진다. 더불어 그의 과거의 모든 빛, 모든 경험, 모든
베품과 받음의 정보들이 함께 기록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심령이지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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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하는 심령이지원소들은 그가 겪어온 모든 전생의 질을 그대로 반영한다.
절대지혜로 충만한 영구인격은 심령이지원소들 속에 기록된 정보들을 참조하여
성숙과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현재인격을 창조한다. 이렇게 하여
비로소 현재인격이 탄생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은 배우고자 하는 나(현재인격)와 이미 해답을 알고 있는 나(영구인격)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인격이 영구인격과 하나되고, 영구인격이 완성되어
절대영혼 Soul 과 일체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을 이루어낸
성스러운 실재 Being 로써 거듭나게 된다.

진아단이란 한 가닥의 밧줄에 비유할 수 있다. 한쪽 끝에는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의 경계에 머무르는 성원소가 있으며, 다른 쪽 끝에는 종종 고삐 풀린 채로
이리저리 날뛰며 고군분투하는 현재인격이 있다. 그리고 밧줄의 중간 지점에는
영구인격이 있다. 진아단은 본질적으로 하나이지만 여럿으로 표현되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밧줄의 분리된 양 끝을 붙여서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원을 만드는
것이다. 진아단을 이루는 일원들은 모두 원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그
가치를 우열로 가릴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자. 원이 완성되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땅 위의 몸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하늘의 몸으로 변화’(고린도전서 15:54)된다.

조각가는 양 손에 진흙을 쥐고 그의 창의력을 동원하여 작품을 빚어낸다. 이것은


우리가 무형의 심령원소를 재료로써 사용하여 심령체를 빚어내는 과정이다. 이
심령원소들을 사용하여 작품을 빚어내는 창의력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이지체이다.
심령원소는 이지적 모형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이지체는 심령체를 만들기 위한
모델이다.

우리가 심령계로부터 어떠한 인상을 받게 되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심령이지영역


안에서 심령이지적 진동을 일으키게 된다. 이 진동이 바로 우리의 생각, 갈망, 감정,
반응이다. 이것들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선 이러한 진동들을 이성적인
진리적 사고로써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갈망이란 강렬한 심령이지적 진동인데,
이것은 더욱 높은 차원의 지적 사고를 통하여 다스려질 수 있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큰 진보를 이뤄낼 수 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놓치면 안된다. 우리의 현재인격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통제해야 한다. 여기서의 통제란 자기학대가 아닌, 이치적 이해를 바탕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욕심과 집착의 본질을 이해하면 이성적 사고로써 그것들을 쉽게 길들이고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심령이지원소들을 사용하여 영구인격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고 성숙시켜 궁극적으로 절대영혼 Soul 과 일체될 수 있다.

성 조지(영국의 수호성인 - 역주)의 성화에는 백마를 탄 그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이 그림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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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는 우리의 물질체이다. 성 조지는 우리의 절대영혼 Soul 을 상징한다. 그의 창은
마음 Mind 의 진동으로써 지성, 사고, 의지력을 상징한다. 용은 욕망과 분노를
상징한다. 물은 에테르 생명력을 상징하는데, 창조를 위해서 필수적인 이 물은 분노와
욕망으로 가득 찬 용에 의해서 모두 증발되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주는
우리의 현재인격이며, 그녀는 우리의 절대영혼 Soul 에 의해서 구출된다.

Chapter 14: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의 관계

우리 물질체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세모, 물질원자는 심령원소, 이지원소의 상응물을


지니고 있다. 성령은 두 고차원 육신들을 창조한 후에 절대지혜를 바탕으로 물질체를
원자단위, 세포단위로 생성해나가는데, 이 과정 동안 심령적 에테르 복체와 이지적
에테르 복체를 주형틀로써 사용한다.

인간은 정형화된 세 육신 이외에도 또다른 무형의 두 소육신을 지닌다. 이중 하나는


심령원소들로 빚어진 작은 심령체이며,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하는 또 하나의 소육신은 무형의 이지원소들로 빚어진 작은 이지체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소육신 간의 상대적 성숙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슷하다. 물론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욱 진보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가령 위대한
예술가, 시인들을 보면 감성체가 극도로 계발되어 있는 반면, 이지체는 그에 못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대로 일부 과학자들은 이지체가 엄청나게 계발되어 있는
반면 감성이 거의 닫혀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사회 내에 존재하는
뛰어난 과학자들, 예술가들이 한 방면으로만 특출난 재능을 지니는 경우 그 원인은
그들의 심령적, 이지적 성숙도간의 차이로부터 비롯된다.

위의 두 소육신은 기본적으로 달걀 모양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강렬한 감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아 격렬하게 진동할 때는 다양한 형상으로 변한다. 그들로부터 발산되는
빛깔은 우리 인격이 지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반영한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 무형의 두 소육신이 바로 우리의 현재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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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격을 빚어낸 근본적인 원료는 불멸의 초질료 마음 Mind 이다. 비록 현재인격
자체는 유한하고 불완전하지만 말이다. 보통 사람들의 현재인격은 무형의
심령이지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인격은 세 육신 속에 거주하면서 성령과
영구인격, 수호대천사의 가호를 받는다. 현재인격은 진아단 Selfhood 의 일원으로써
신성한 표현물이며,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되는 것이다.

영구인격을 어머니에 비유해보자. 그녀는 자신의 아이가 성장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사랑으로 아이를 돌보며 키운다. 여기서의 아이란 물론 현재인격이며, 그
아이는 착한 어린이일수도, 말썽쟁이일수도 있다.

영구인격은 세 육신 속에 동시에 머무르면서 각 육신과 현재인격의 감독관 역할을


한다. 영구인격이 현재인격에게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때 그는
잠재의식을 통하여 현재인격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한다.

둘 중 누가 나일까? 현재인격일까? 아니면 영구인격일까?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특히 현재인격이 매우 낮은 발전 단계에 머무르며


물질계 속에서의 유혹, 아집, 부조화, 불만족 등에 의하여 강하게 영향받을 때 더욱
그러하다. 현재인격의 내부에서는 시공계적 대립물들과의 끊임없는 전쟁,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난다.

한편 우리의 영구인격은 현재인격의 전투현장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현재인격은 극도의 고통과 피로에 지쳐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데, 그곳은 바로 참 나인 영구인격이다. 현재인격은 영구인격의 품 안으로
피신하여 고요한 평화 속에서 한동안 안식을 취한다.

이 과정이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진리적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면 대립이 아닌 화해를


택하여야 한다. 우리의 현재인격은 종종 헛소리를 하며 반항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조만간 제 풀에 지쳐서 결국 영구인격에게 항복하고 그의 조언을 따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혼란의 순간들을 직면할 때면 자신의 현재인격 안에서 자욱이
일어나는 집착과 증오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들과 싸우는 대신에 화해와
이해를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잡고 자신에게 동화시켜야 한다.

내 안에 마치 두 명의 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한 편에는 경험들을 수집하고


해석하는 내가 있고, 다른 편에는 그것들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내가 있는 것같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영원한 진아단 Selfhood 이 있을
뿐이다.

지혜로운 영구인격은 주기적으로 현재인격을 잠재의식적 유체이탈을 시켜서


물질체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리고는 성령, 성스러운 대천사들 Divine Archangels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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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물질체의 손상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이 작업은 우리가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동안, 주로 잠자는 동안에 이루어진다.

지식은 인간에게 무언가를 향한 동기를 부여하고 뜻을 품도록 한다. 갓 태어난 최초의


뜻은 조그마한 무형의 심령이지원소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진리적 사고를 통하여
꾸준한 확장과 성숙을 거듭해나가며 궁극적으로 영구인격에게 동화된다. 그
순간부터 영구인격과 현재인격은 더 이상 분리된 둘이 아닌 하나의 통일체가 되는
것이다.

둘이 하나되는 이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자유롭게 의식적 유체이탈을 행할 수


있으며, 정교하게 통일된 우리의 심령이지체를 지니고 심령계와 이지계를 탐험할 수
있다. 그리고 더욱 높은 차원, 시공간적 제한을 초월하는 지혜의 세계(원형계 -
역주)로 들어섬으로써 물질을 자유자재로 빚어낼 수 있는 전적권능을 얻게 된다.

Chapter 15: 사념체

이 단원에서는 초질료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심령이지적 이미지는 무형의 마음 Mind 을 ‘사념체’라는
유형물로 빚어냄으로써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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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지적 (psycho-noetical)

모든 생각 속에는 감정이 섞여 있으며, 모든 감정 속에는 생각이 섞여있다. 때문에


심령계(감정)와 이지계(생각)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두 세계를 어느정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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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물질을 탄생시킨다. 존재하는 모든 물질, 초물질은 다양한 진동수의


마음 Mind 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전에 배웠다. 로고스, 성령, 그리고
원소의 대천사들은 성스러운 절대지혜 Wisdom, 절대사랑 Love, 절대생명 Life 을
머금고 에테르를 사용하여 광활한 대우주를 창조하였다.

전적사랑, 전적권능, 전적지혜의 화현인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우리에게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라는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용할 양식으로써 동물계, 식물계, 광물계를 제공해주었다. 또한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기 위해서 천사들 angels 과 자연의 정령들을 동반자로써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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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낙원은 우리의 형제인 대천사들이 발산해낸 의식적 사념체들의
결정체이다. 대천사들은 끊임없는 사색과 명상을 통하여 신성한 마음 Mind 을 물질로
빚어내고 결정화하여 오늘날의 물질계를 창조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리고 장차 알게 될 물질계의 모든 표현물들은 이러한 원리로써 탄생되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의식(Mind)이 물질의 어머니라는 위대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우리 내면의 정신세계는 어떠한 원리로써 형성되었을까? 우리는 과연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단지 물질사회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일까? 만일
사념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현재인격,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현상계 속을 살아가며 경험을


수집하고 해석하기 위해 탑승하는 이 자가용은 잠재의식적, 또는 자아의식적,
초의식적으로 생성된 다양한 사념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혼합물이다. 사념체는
최초로 생성되어 발산되는 순간부터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성을 지니게 된다. 각각의
사념체는 심령원소들과 이지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심령이지원소들은 그
사념체의 주인이 품고 있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물질계 속에서의 삶이란 자신이 속해있는 특정한 시대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초질료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자신을 치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자신만의 환경을 내면에,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조성해나가게 되는데, 이는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아니면 그 중간인 가톨릭에서 말하는 연옥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낸 껍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체가 수많은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들 각자의 활동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온 육신의 전체성이 유지되듯이, 우리의 현재인격 또한 수많은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의 상호의존적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품는 갈망, 두려움, 용기,
선으로부터 생성되고 발산되는 하나하나의 사념체가 곧 우리의 현재인격을 구성하는
세포인 것이다.

우리에게 스쳐가는 하나하나의 생각, 느낌, 아이디어들이 곧 사념체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사념체들을 생성해내며, 그 사념체들은
우리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또는 우리가 지녀온 다른 사념체들에게 영향을 준다.

발산된 각 사념체는 자신이 생성되었을 때 투여된 감정의 강도만큼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주인에게 복귀한 후 전보다 더욱
강한 힘으로 재발산된다. 현재인격이 지니는 사념체들은 이러한 발산과 복귀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해당 사념체가 진동수가 낮고 둔탁한 갈망적 사념체라면
결과적으로 끔찍하게 어두운 환경을 조성하게 되고, 반대로 진동수가 높고 정교한
지적 사념체라면 사랑이 흘러 넘치는 아름다운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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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로운 음식을 섭취하여 육체의 건강을 해칠 수도, 또는 몸을 조심스럽게
돌보고 관리하여 건강을 회복할 수도 있듯이, 우리의 현재인격 또한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타락할 수도, 정화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격이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체는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새로운 물질이 들어와 새


세포가 형성되고 기존의 세포는 죽어서 노폐물로 빠져나간다. 전통 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인체는 7 년의 기간이 지나면 단 하나의 세포도 남김없이 전부 교체된다고
한다. 인체는 끊임없는 생성과 교체를 통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인격도 이와 같다. 새로운 사념체가 생성되어 투입되고, 기존의 사념체는


버려지고 해체된다. 사념체들을 생산하고 번식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현재인격을 생성해내고, 또 새롭게 개조한다. 그 결과는 행복 또는 고통, 평온함 또는
불안함, 건강 또는 질병으로 나타난다.

우리들 대부분은 현재인격을 잠재의식적(무의식적)으로 관리한다. 대개 갈망과


감정에게 자신을 맡겨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신성한
초질료 마음 Mind 을 창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뜻대로 천국 또는 지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능력은
대천사들 Archangels 과는 독립적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권능이자
책임이다. 외부의 천국을 만드는 것은 그들의 몫이지만, 내면의 천국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념체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일부 사념체들은 현재인격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되고, 다른 일부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유입된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생성해내는 사념체는 갈망적 감정에 의해, 또는 지적 감정에 의해 생성된다.
외부로부터 사념체를 유입해오는 경우에는 우리의 현재인격이 외부의 특정한
‘사념체군’(비슷한 사념체들이 서로 모여서 형성된 사념체집단)과 동조하여
그곳으로부터 일부 사념체를 끌어온다. 사념체군은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고수해온 사회적 사상들과 행동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한
사념체군들 중에는 선한 것들도 있고 악한 것들도 있다. 우리의 현재인격이 약하던지,
강하던지, 사악하든지, 선량하든지를 떠나서 모든 현재인격은 항상 자신과 동조하는
특정한 사념체군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그 사념체군을 활성화하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사념체군은 자신과 동조하는 현재인격들의 감정, 생각, 행동들에 영향을
준다.

일부 공격적인 사념체군들은 우리 육신의 에너지 센터들을 장악하여 일종의 빙의와


같은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선량하고 사랑이 흘러 넘치는 사념체군들은
우리에게 영감과 큰 감화를 주고, 더 나아가 황홀경 Ecstasy 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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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경 (Ecstacy, 무아경)

확장, 동조, 일체를 통하여 마침내 들어서는 ‘진정한 천국’ 안에서 느끼게 되는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행복, 기쁨이다. 이곳은 세상의 모든 관념과 번뇌를
초월하는 궁극의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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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니고 있는 대다수의 사념체들은 매우 교묘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힘들다.


사념체들은 우리가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게끔 만들고 더 강렬한 진동을 발생시키게
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유혹하고 부추긴다. 만일 우리가 욕심,
질투, 혐오의 사념체들을 잔뜩 지니고 있다면, 이들은 우리의 심리를 장악하여서
반감을 갖게 하고 불화를 일으키도록 하여 내면에 지옥과 같은 불쾌한 환경을
조성하게끔 만든다. 반면, 선량하고 평화로운 사념체들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선을 베풀도록 유도한다.

물질체 내에는 우리가 직접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그렇지만,


현재인격만큼은 이를 만들고 다스리는 모든 것이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현재인격이 허약하면 불가피하게도 심령이지공간을 떠도는 다른 사념체들에게
표적의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에서조차도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왜냐하면 그 사념체들과 같은 진동수로 동조하여 그들을 끌어오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을 탓하여선 안된다. 외부의 사념체들과
동조하고 동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주변에는 무지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으며, 의식적으로 초질료


마음 Mind 을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심령이지공간 안에는 선한 사념체들도 있으며 악한 사념체들도 있다. 천사들도
있으며, 악마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자성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어떠한 악마도 자신과 같은 진동수로 동조하지 않는 인간은 괴롭힐 수 없다.

반면, 죄의식 속에서 괴로워하며 방황하는 사람은 천사에 의해서, 아니면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명상에 의해서, 또는 성스러운 자비의 손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도란 사랑의 사념체를 빚어내고 발산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대상자의 심령이지적 성숙도가 낮으면 이러한 도움은 일시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도움이 영구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도움을 받는 자는 자신이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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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사념체들을 바탕으로 하여 진리적 사고와 자기 계발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의 주변 환경을 탓해선 안된다. 우리는 수많은 사념체들 속에 둘러싸여서


살아간다. 가령 알코올 중독자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그러한 강렬한 사념체들을
생성해내거나 외부로부터 끌어온 것은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념체들을
해체하기 위해선 엄청난 의지력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사념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날 심리학에서는 잘못된 통념이 성행하고 있다. 많은 심리치료사들은 환자가


치유되기 위해선 그에게 고통을 주고 좌절시키는 특정한 감정들, 사건들, 기억들을
터뜨리듯이 분출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증기 폭발’의 방법을 사용하면 문제의
사념체들을 약화시키기는 커녕 그들에게 강하게 동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힘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치료법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우
역효과적이며, 대부분의 경우 사태는 전보다 더욱 심각해진다.

사념체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 한번 탄생한 사념체는 주인으로부터 에테르


생명력을 제공받으며 활동상태에 있다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리면 우주의식
속으로 환원되어 잠재상태에 머물게 된다. 우리의 현재인격은 일정량의 사념체들을
자신의 인격을 구성하는 세포로써 사용하기 때문에, 특정한 사념체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그 문제의 사념체와 교체하기 위한 새로운 유익한 사념체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한 사념체가 빠져나가면 그 자리에는 다른 새로운 사념체가 들어갈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긴다. 우리는 이러한 빈 공간을 전보다 더욱 건설적인 목적을 지닌
사념체들로 메우도록 해야 한다.

현재인격이란 수많은 사념체들의 상호의존적인 복잡한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격을 짧은 기간 안에 크게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많은 양의
사념체들, 또는 비슷한 부류의 사념체 무리들을 갑자기 제거해버리면 현재인격이
심각하게 불안정해지게 되며, 심하면 미쳐버릴 수도 있다. 사념체들을 해체하는
작업은 천천히 꾸준한 인내를 가지고 진행해나가야 한다.

사념체들과 전면전을 벌이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과거의 사슬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이성적 사고를 통하여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사념체들을 교체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미련을 두어도 그것들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를 홀연히 떠나보냄으로써 우리를 짓누르던 사념체들에게 더
이상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하게 되고, 그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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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되어 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떠한 속박도 없는 오늘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오늘을 오늘로써 받아들여라. 어제의 잔여물도, 내일의 예고편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심령이지공간은 과거로부터 인류가 저질러온 온갖 악취들로


가득하며, 그 만행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태고적부터
인류가 베풀어온 선의 향기 또한 가득하며,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신성한 초질료 마음 Mind 은 우리의 모든 주변에,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 가득하다.


이것은 현재인격이 스스로를 계발해나가도록 그의 손에 쥐어진 선물이다. 하지만
현재인격은 이것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종종 헛되이 낭비해버린다. 그리하여
청정수와 같던 마음 Mind 을 아집, 악의, 혐오, 거짓을 비롯한 온갖 해로운 공상으로
가득한 오물로 변질시켜 버린다. 이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남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내가 어떻게 나를 속이겠는가?

인간이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첫째로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하고, 둘째로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 대부분 인간의 의식은 거짓된 환상의 바닷속에 빠져 있다. 그리고는
종종 남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을 즐긴다. 그것이 곧 자신에게 두 배의 고통을 주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로.

우주의식 속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념체들이 보관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절대이성, 성령과 함께 공동창조자로써 다양한 생각, 갈망, 감정으로 이루어진
사념체들을 낳고 길러내면서 우주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비옥하고 생명력 넘치는 사념체들을 생산해냄으로써 온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고, 더
나아가 천지창조에 이바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완성을 향한 엄청난
도약을 하게 된다.

우리는 혐오와 갈등의 사념체 대신 사랑과 조화의 사념체를 낳고 길러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치유가이며,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동료들이다.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심령상처를 찾아주고 치유해주어
본래의 온전함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것, 이것만이 선의 사념체를 길러내는 유일한
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을 헤매인다. 이미 길을


잃어버린 상태에서조차 말이다. 심지어 독선적인 일부는 자신의 잣대로 세상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사고의 시작이 그릇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침묵의 가치를 알 필요가 있다. 침묵은 진리의 바탕이자 올바른
사고의 어머니이다. 말을 꺼내기 이전에 먼저 침묵 속에서 생각하라. 침묵 후의 말은
더욱 큰 무게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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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체를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물질계 속에서의 어떤 동기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는 어떠한 인상을 접하고 느끼면서 그로부터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감독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그 결과 무수히 많은 강렬한 사념체들이 생성되는데,
그들의 존재목적은 특정한 갈망과 감정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념체들은 갈망적 사념체라고 불리며, 아래와 같은 탄생의 과정을 거친다 :

물질적 대상  즉흥적 반응  갈망의 생성  갈망을 충족해내기 위한 환경 조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념체들을 ‘더러운 귀신’, ‘악마’(마가복음 5:2)라고


일컬으셨다. 이들은 인간의 삶의 질을 타락시킨다.

행동이나 내뱉은 말을 통하여서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심령이지적 활동은 주먹만큼이나 강력하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간음’에 대한 고대 율법을 예로 들으시며 이와 관련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음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마음속에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마태복음 5:27-28)

‘간음하지 말라’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다른 아내와 함께 하는 상상을 하는 것


조차도 이미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 을 위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잠자는
동안, 제재의 울타리가 모두 내려진 꿈의 세계 속에서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 을
위배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가? 꿈 속에서도 항상 이성적 사고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제껏 설명한 것은 사념체를 무절제하게 생산해내는 방법이며, 이는 자신의


카르마를 두껍게 얽어매어 물질계 속에서의 윤회의 기간을 연장시킨다.

사념체를 만들어내는 또다른 방법은 지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갈망을 품는 것이다.


인간은 삶 속에서 직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느긋하고 여유있게 반응하는 법을 매
생에 걸쳐서 조금씩 배워나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서로 비슷한 삶의 환경, 삶의 패턴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동일한 환경, 동일한 사건을 직면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반응하는 양상이 모두 제각각이다. 격렬한 감정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분한 이성으로 대처해나가는 사람도 있다. 전자에 의해 생성된 사념체를
갈망적 사념체라고 하며, 후자가 생성하는 사념체를 지적 사념체라고 한다. 후자의
사념체는 우리의 내면을 비롯한 주위의 환경을 깨끗하게 정화하며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어 내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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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과 쾌락에 중독된 인간은 유감스럽게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게 주체성을
빼앗겨 버린다. 불결한 심령이지적 환경들 대부분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타락한
감정들과 갈망들이 뭉쳐져서 생성된다. 우리는 단순한 시공간적 환경의 노예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뜻하는 대로 얼마든지 스스로를 창조하고 계발해나갈 수
있는 무한한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념체에 대하여 매우 강조하셨다. 부정적인 사념체들을 ‘벙어리


귀머거리 귀신’(마가복음 9:25) 이라고까지 말씀하시며 공개적으로 꾸짖으셨다.
이러한 심령이지적 찌꺼기들 자체를 질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분께서는
그릇된 공상을 일으켜서 해로운 갈망적 사념체들로 발전하게 하는 갈망 자체를
애초부터 품지 않도록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반면, 우리에게 유익한 지적 사념체들을 꾸준히 생성해내도록 격려하셨다. 지적


사념체는 인간을 물질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해주고 진아실현 Self-
Realization 을 향한 참된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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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6: 잠재의식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마태복음 5:8)

인간의 잠재의식은 사념체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분야이다.


사념체와 함께 잠재의식은 그 탐구의 영역과 깊이가 끝이 없다. 잠재의식은 개개인에
따라서 구성 성분과 질이 다양하며, 우리가 삶 속에서 겪어나가는 모든 경험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바탕이 된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최악의
적이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잠재의식은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며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잠재의식의 구조를 완전하게 이해하여 이
‘내면의 정글’을 정화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인체 내에 잠재의식이 위치해 있는 곳은 주로 명치 안쪽이며, 크게 세 구획으로


나뉜다. 각 구획의 크기는 개개인의 심령이지적 성숙도에 따라 다양하다.

첫 번째 구획은 생체 에너지(에테르 생명력)의 저장고이다. 우리 생명의 원동력이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인 에테르 생명력은 이 구획 속으로 흘러 들어가 저장되고,
이곳으로부터 온 인체 내부와 외부로의 에테르 분배가 이루어진다. 건전한
생활패턴을 유지하며 삶을 둘러싼 환경들을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그리하여 다른
이들을 돕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즉 진정한 진리탐구자가 됨으로써 우리는 이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우리가
지배당하게 된다! 우리는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도 다른 목적을 위하여, 가령 다른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에테르 생명력을
다양한 형태의 에테르(창조/ 인상/ 감각/ 동적)로 변형시켜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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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 나올 것이다.’ (요한복음 7:38) 에테르 생명력을 물에 비유하신 것이다.

잠재의식 속의 또다른 구획은 우리의 현재인격이 생성하고 길러내는 수많은


사념체들을 보관하는 곳으로써, 일명 정글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의 사념체들은
우리의 잠재의식적 활동에 의해서 생성되는데, 그들은 이 구획 속에 머무르며
대기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 전 단원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이
대다수의 사념체들은 우리에게 적대적이지만, 그 중 일부는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는
유익하고 건전한 사념체들이다. 우리는 이 정글 속의 잡목을 제거해내면서 유익한
사념체와 해로운 사념체를 가려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두 번째 구획은 우리의 현재인격이 머무르는 곳이며, 무절제된 감정과


갈망들의 총체물인 아집(egoism)이 자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반면, 우리의 참
자아 Ego 는 심장에 거한다.) 이 구획은 우리가 노력하여 청결하게 닦아내지 않는 한
계속해서 우리를 속박하고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도록 할 것이며, 이러한 비극은
여러 생이 거듭되어도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분은 더욱더 위대해지고 나는
더욱더 작아져야 한다’(요한복음 3:30) 친애하는 사도 요한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아집, 이기적 사념체들을 제거하고, 신의 사랑을 향하여 마음을 열 것을
당부하셨다.

세 번째 구획은 성령과 로고스가 거하는 곳으로써, 그들은 우리에게 감화를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한다. 이 구획은 우리가 성령적 초의식을 어느정도 본능적으로 지닐 수
있도록 해준다. 한 예로써, 운전하는 내내 골똘한 생각에 빠지면 2 톤짜리 쇳덩어리를
수십마일 몰아오고서도 운전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기이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다른 예로써, 우리는 위급한 상황 속에선 더욱 신속하고 현명하게 판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또한, 우리가 직관적으로 선이 무엇인지 알며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 또한 이 신성한 구획으로부터 비롯된다. 만일 잘못을 저지르면
순간적으로 이곳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게
된다. 우리 육신 속의 고차원 센터들에도 성령과 로고스가 머무르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도 엄연히 이들이 머무르며 우리의 발전과
성숙을 돕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물질성분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들은 모두 언젠가


소멸되어 버릴 영원하지 못한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이 물질체가 나라고
착각한다. 또는 현재인격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진아 Self 의
그림자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우리의 현재인격의 4 분의 3 은 잠재의식(마음 Mind 의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 Mind 으로 빚어진 표현물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가장 낮은 진동수를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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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 의 파동 속에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 전적권능, 전적사랑의
숨결이 온전히 깃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놀랄 것이다.

인간의 현재인격은 독자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자신의


내면 또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전해지는 인상들에 대하여 우리의 인격은 다양한 생각,
갈망, 욕망 등으로 반응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잠재의식으로부터 튀어 오른다.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우리의 잠재의식과 현재인격은 세 육신(이지체, 심령체, 물질체)


속에 동시에 자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이들이 물질체 속에만 머무른다면,
우리의 물질체가 소멸되는 순간 우리는 인격을 잃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유체이탈을 하여 물질체를 떠나가는 순간 우리는 개체성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현재인격의 4 분의 3 을 구성하며, 이지체와 심령체, 물질체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세 육신이 포개져서 존재한다. 비록 이지체는 다른 두 육신들과는


다른 형상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반면, 영적 능력을 계발한 자들은 심령체와
이지체를 물질체로부터 분리시켜서 각 육신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리하여
더 높은 차원들 속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인간의 인격은 시공간적 인상을 수집하는 수신기로써, 물질체를 버린 이후(제 1 의


죽음)에도, 그리고 심령체를 이지체에게 동화시킨 이후(제 2 의 죽음)에도 여전히
인격을 지니고 현상계 속에서 표현된 생명 life 으로써의 삶을 이어나간다.

무의식적으로 삶을 사는 인격은 대체로 불결한 감정들의 격렬한 진동으로 가득하며,


심령계의 가장 낮은 차원들과 동조하여 부정적인 인상들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인상들은 유입되고 중단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심령계로부터 받았던 인상들이 스스로의 환상이 지어낸 공상인줄로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의식적으로 시공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야만 심령계에 떠다니는 잡다한 인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상응하는 심령계의 차원 속에 굳건히 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전에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의 에테르 복체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고, 이들


각각은 에테르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이 복체들은 인상에테르,
동적에테르, 감각에테르, 창조에테르를 보유하는 저장고이며, 이 모든 것은
대천사들 Archangels 과 성령, 그리고 우리의 영구인격에 의해 관리된다는 것을
배웠다.

118
태초에 성원소였던 우리는 경험을 수집하기 위하여 진아 Self 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내려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양한 시공간적 법칙의 지배 하에 살아가게
되었다. 그 법칙은 비단 물질계 뿐이 아닌, 심령계, 이지계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들을
포함한다. 이들 중 많은 법칙들은 서로 닮은 반면, 일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시공간적 법칙들의 근본목적은 현상계 속의 만유생명을 ‘공평무사하게’
창조하고 길러내는 것이다. 수없이 강조하지만, 그 어떤 것도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을 벗어나지 않는다.

단절계 속의 물질적, 심령적, 이지적 진동들이 이루어내는 수많은 격돌과 부조화를


극복하며 우리의 영구인격은 현재인격과 함께 성숙해나간다. 인간 절대영혼 Soul 이
최초로 탄생되면 그는 환생을 위하여 단절계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예정된 부모의
에테르 복체 속에 머문다. 만일 이 환생이 첫 번째가 아니라면, 그는 전생들로부터
수집해온 모든 기록들을 함께 소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면, 그가
받는 최초의 인상은 호흡과 젖의 필요성이다. 아기는 첫 숨을 들이쉰 후 울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한 인간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기의 심령체의 원소들은 아기에게 이러한 느낌을 품도록
한다: ‘원한다.’ ‘갈망한다.’ 이때 아기의 원함, 갈망은 우리 성인들이 무언가를 원할 때
느끼는 감정과는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아기가 최초에 품은 이 감정은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필사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원함, 갈망이라는 인상에 대하여
연구해보자.

우리에게 갈망들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우리의 오감인데, 메이슨들은 이를 ‘다섯


살인자’라고 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인간은 단절계 속으로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진아 Self 를 잃는다. 그 후 우리는 태어나서 눈을 통하여 다양한 사물들을 보게 된다.
마음 Mind 의 표현물인 물질빛이 다양한 물체들의 표면에 부딪히고 반사되어 그
표면의 물질적 정보를 싣고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면, 그 정보는 우리 두뇌의 특정
부분으로 전달된다. 이때 우리는 수집된 정보들을 해석하면서 ‘나는 본다’, ‘나는
안다’ 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나’란 누구일까? 물론 현재인격이다. 그의 해석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종종 오역을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갈망에게 지배된
상태에서는 특히 그렇다. 반면, 갈망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는 대상의 단순한
외면적 요소들을 초월하여 그것의 내면적 본질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본다’ 라는 느낌에 이어 일어나는 또 하나의 감정이 있다. 그것은 ‘나는


원한다’이다! 하지만, 모든 만물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 우리의 것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왜 무언가를 원하고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할까? 성스러운 일체성으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떠나온 인격이
지니는 본능적 불안함 때문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진실에 대한 무지이다.

119
단절계 속에 들어선 순간부터 현재인격은 영구인격을 위하여 인상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현재인격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삶의 바닷속으로 능숙하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의 파도들에게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허우적댈
뿐이다. 그 갈망들은 충족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절망,
즐거움, 싫증, 또다른 갈망과 같은 수많은 감정들이 일어난다.

우리의 내면에는 감정 이외에도 또다른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생각이다. 생각은


심령체와 이지체가 제공하는 에너지에 의해서 생성된다. 생각과 감정이 섞여서
사념체가 탄생되며, 이러한 사념체들은 우리의 현재인격과 잠재의식을 구성하는
주성분이 된다.

자신이 사념체들로 조성해온 내면의 세계는 자신에게 마치 궁전인 것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자신의 성격, 잠재의식, 현재인격을
만드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며,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잠재의식적으로 사념체들을 생성해내며, 그 사념체들 속에 갇혀 살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본성을 깨달으면 잠재의식을 통제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심령체와 이지체의 온전한 주인이 됨으로써 자신의 잠재의식을
정화할 수 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작업은 항상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서 낮은 단계로 내려가며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질병이란,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두 불안정한 잠재의식 속에서 파괴적인


심령이지적 에너지가 발생되고 증폭되는 데에 원인이 있다. 반대의 원리로, 이러한
병은 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념체들을 약화시키고 해체시킴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병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고
그것을 치유하는 법을 배워나가게끔 유도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유의 작업은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 속에서만이 아니라 심령체와 이지체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에테르 복체 속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인격은 이 모든 것의 총체물이기
때문이다.

현재인격이란 갈망, 욕망, 생각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이 갈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폭군과도 같은 난폭한 사념체들에게 지배되어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되어버릴 때도 있다. 반면, 이성이 주도하는 경우에는 진리에 바탕을 둔
사고로써 갈망을 다스릴 수 있으며, 내적 성장을 향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잠재의식적으로 생성해내는 사념체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그리고 그렇게 생성된 사념체들이 자신의 잠재의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유감이지만, 우리가 생성해내는 사념체의 80%는 우리의
잠재의식을 오염시키는 갈망적 사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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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잠재의식, 성격, 현재인격을 다듬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과 갈망들을 완전하게 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사고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세상을 더욱 지혜롭고 건설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언젠간
심령계와 이지계 속에서도 생생하게 깨어있는 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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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7: 인과응보의 법칙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만일 자신의 악한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악한 씨앗을 심은 셈이 되어 그 결과 죽음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좋은 것을 심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실망도 포기도 하지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면 복을 거두어 들일 날이 올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

‘카르마’. 일명 인과응보의 법칙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용어는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운과 불운을 단순히 카르마의
좋고 나쁨으로써 받아들이려고 한다. 이 성스러운 법칙 Law 이면에 있는 위대한
지혜를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이유는 아마 동방이 지녀온 카르마에 대한
제한되고 운명론적인 시각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카르마란 인과응보의 법칙을 구성하는 영적 원소이다. 이 법칙은 단순한 상과 벌의


개념 정도로 이해되어선 안된다. 과학자들이 최근 수세기동안 배워왔고, 신비가들이
항상 알고 있어왔듯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이면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하고, 모든 원인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는 그에 상응하는 질의 진동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단절계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성향이 있으며, 이러한 단절계적
측면으로써 인과응보의 법칙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에겐 이 법칙이 마치 상과
벌의 법칙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떠한 심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카르마는 현재인격에게 작용한다. 하지만 영구인격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다.


사실, 인과응보의 법칙으로 현재인격을 관리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영구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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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인격은 현재인격이 적절한 경험을 수집하도록 하기 위해서 다음 생에 그가
살아갈 환경과 장소, 그리고 겪게 될 기쁨과 슬픔을 결정한다.

이 위대한 법칙 Law 의 주인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인 것이다. 이 법칙은 영구인격과


수호대천사가 지니고 있는 본성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위로를 받는
것은 다 그 때문입니다.’(로마서 2:15)

우리의 현재인격은 개구쟁이와 같아서 정기적으로 우리의 영구인격과 수호대천사에


의해서 따끔하게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린다. 수호대천사는 영구인격에 비하여 처벌에
있어서 관대하긴 하지만 말이다. 이 회초리는 때때로 매우 따끔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잘못한 만큼의 정당한 댓가이며, 궁극적으로 현재인격이 잘못을 뉘우치고 깨닫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회초리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로써 탄생된 모든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청순함과


조화로움을 가득 머금고 있다. 그 중 수호대천사는 그가 함께 할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 원형의 설계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단절계를 살아가면서 종종 그 이상형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의
육신을 수호대천사가 지니고 있는 이상적인 설계도의 모습에 동화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영적 진화이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 진보의 과정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카르마의 법칙은 우리의 의식을 더욱 성숙시켜서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없어서는 안될 사랑의 손길이다.

괴로움, 질병을 비롯한 현생의 모든 열악한 환경들은 우리가 이생, 또는 전생들로부터


짊어온 빚의 결과물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해로운 에너지들을 정화하고 부정적
에너지의 생산량을 줄이며 우리의 내면을 선량하고 정교한 사념체들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른 생각과 행동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제까지 지녀온 과거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고 참다운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카르마적 결과물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것들보다
더욱 위대한 자유의지와 이성을 지니고 있는 그들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과거의 쇠사슬을 끊고 미래를 향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기회, 신성한
초질료 마음 Mind 이 주어졌다. 우리가 부정적 에너지들을 계속해서 생산해낸다면,
훗날 그들과 부딪혀야만 한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마태복음 26:52)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카르마의 밭을 경작해 나간다. 이 밭의 수확물들은 진아 Self 와


인격 self 사이에 벌어진 격차, 진실과 환상 사이의 거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한 인간의
카르마란 곧 그가 지니고 있는 의식의 질이다. 우리가 오늘날 지니고 있는 기호,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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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 경향, 생각, 행동, 품격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카르마적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한다. 질병, 혼란, 비운은 우리 인격 내의 부조화로부터 비롯되며, 이들은 현재의
자신과 진리, 사랑, 지혜 사이에 발생하는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인 것이다.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선천적, 후천적 불행들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찰, 환상, 그릇된
사고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 속에서 직면하는 역경들의
강도는 우리가 본래의 조화로움을 회복하기 위하여 배우고 깨달아야 할 교훈의
깊이와 비례한다. 카르마란 우리가 메꾸어나가야 할 인격 self 과 진아 Self 사이에
벌어진 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응보의 법칙은 우리를 고향으로 인도해주는
아버지의 가장 지혜롭고 사랑 가득한 손길인 것이다.

그러나 카르마의 법칙을 결코 과대평가하거나 신봉해선 안된다. 신인 God-Man 께서


가르치셨듯이, 농부가 밭을 한결같이 곧게 뻗어나도록 경장하기 위해선 손에 쟁기를
잡고 오직 앞을 주시해야 하며 도중에 ‘뒤’를 돌아보아선 안된다. (누가복음 9:62)
우리는 삶 속에서 댓가를 지불하며, 또는 받으며 매 순간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배우고
깨달아나간다. 그 속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댓가는 신의 성스러운 자비에 의해서
우리가 감당해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진다. 사도 바울이 말하였듯이, ‘그 분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로마서


15:1)라는 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예수께서는 진정 인류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써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짐을 당신의 어깨 위에 짊어지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랑하는 누군가가 무거운 카르마의 짐으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를 돕기
위해 기꺼이 그의 카르마를 나누어 함께 짊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카르마의
법칙조차 초월하는 신의 성스러운 자비이며, 이 또한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의
일부이다. 이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강조하는 다른 종교나 진리탐구단은 그리 많지
않다.

카르마를 단순한 신의 심판이나 벌로써 받아들여선 안된다. 이는 곧 무한한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낮은 차원 속 우리의 나약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과 같다.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란 단순히 ‘작용’이란 뜻이다. 이는 마치 중력의 법칙과 같이
카르마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과도 같다. 하늘로 던져 올린 돌이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그 누구를 탓하겠는가. 인과응보의 법칙은 절대지성의
일부이자 절대사랑의 표현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여러분 각자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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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8: 내면을 향하여

내면을 탐구하는 훈련은 물질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아의식에


집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것이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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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우리의 물질체와 에테르 복체의 다양한 부분에 집중하는 훈련부터
시작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의식을 집중하여 인체 내부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세포들을 비롯하여


물질체의 모든 부분을 느낄 수 있게 되면, 이때부터 우리는 인체에 어떠한 이상이
생기더라도 해당부위에 우리의 의지를 투사하는 것만으로 완전하게 치유할 수 있다.
물론 인과응보의 법칙으로부터 비롯된 카르마적 질병이 아니라면 말이다.

더불어 우리는 초물질 마음 Mind 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눈부신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태까지 우리 인격은 사나운 갈망들과
통제되지 않은 욕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며 해로운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을
생성해왔다. 이러한 자신의 과거 경험들을 곰곰이 되새겨보면서 그 동안 자신의
내면세계와 사념체들을 얼마나 서투르고 잘못되게 관리해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아름답고 완전하다. 창조주에 의해 탄생된 모든 만물,


특히 살아숨쉬는 생명체들은 놀랄 만큼 경이롭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만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왜곡된 관점으로 해석하려 하며 그것들이 자신의
소유라고 착각한다. 집착은 인간을 길을 잃게 하고 방황하게 만든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무엇이 우리의 진정한 자산이며, 어떻게 하여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지
배워나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 모든 것을 빚어낸 질료인 에테르


생명력에 대해서 배워나가는 과정은 크나큰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심령원소, 이지원소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의
진아 Self 를 되찾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한다. 이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
속에서 자기정화와 내적 성장을 향한 간절함은 더욱 지극해진다. 이는 곧
절대영혼 Soul 이 장차 입게 될 눈부신 의복의 재료를 한 올씩 모아가는 과정이다. 이
옷은 절대영혼 Soul 이 ‘주님의 앞’ (사도행전 3:19)에 서기 위해 입게 될 ‘혼인 예복’
(마태복음 22:11)이다.

우리의 자기계발은 단순한 이론적 지식에서 그쳐서는 안되며, 꾸준하고 인내있는


수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수련은 다양한 차원의 세계 속에서 함께 병행해나가야
한다 .

이지계와 심령계는 서로 직접적인 연관관계를 지닌다. 우리는 종종 ‘심령이지적’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는데, 그 이유는 이 두 세계를 서로 분리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령계와 이지계는 모두 표현된 원형들이 살아가는 세계이다.
심령이지계를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익숙한 물질계의 시공간의 구조와
판이하게 다르다. 이지계는 생각들이 일어나는 차원이고 심령계는 감정들이
일어나는 차원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왜 이지계와 심령계가 뗄래야 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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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관계를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 결여된 생각, 또는 생각이
결여된 감정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두 세계를 종종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물질계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절대지혜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질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입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심령이지원소가 있다. 우리는 수련을 통하여 이러한 심령이지원소를 다루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인간은 ‘아버지의 아들’이자 우주의 공동창조자로써, 마음빛을 사용하여 심령이지적


이미지들을 형성하여 심령계 속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러한 이미지들을 물질계 속에 물질로써 형상화할 수 있으며, 그 형태 또한
다양하게 빚어낼 수 있다 (물현 - 역주). 이것이 바로 절대적 초지성을 지니신 만유의
아버지께서 마음 Mind 을 사용하여 다차원 우주를 빚어내신 원리이다. 인간은
아들로써 ‘그분의 일’ (요한복음 4:34)을 관찰하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배워나가야
한다. 아버지가 물질계를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들 자신의 물질체를
창조한다. 그 설계도는 물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다.

우리는 가장 먼저 동적에테르와 인상에테르를 사용하는 심령이지적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물질체를 감싸는 에테르 복체의 특정한 부위에 의식을 집중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감정에테르를 모아라. 곧 그 부위 안에서부터 인체 밖까지 에테르로
가득 찬 느낌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의지력으로써 동적에테르를 사용하여
에테르 복체의 다른 부위로 집중점을 옮길 수 있다. 처음에는 에테르들이 집중점을
주위로 하여 동그랗게 운집되며, 훈련을 거듭할수록 그 원의 운집 영역은 더욱
확장되어서 나중에는 그 영역이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 전체를 가득 메우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에테르 복체 속의 모든 에테르의 흐름을 느낌만으로 자연스럽게
통제할 수 있게 되며, 육신 전체가 매우 평온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장미 한 송이를 예로 들어보자. 그 장미가 지니는 모양, 크기, 형태, 색깔 등의 특성을


유심히 관찰하라. 장미를 한 손에 쥐고 꽃의 외관적 세부사항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외워라. 이제, 눈을 감고 인상에테르를 이용하여 반대쪽 손 위에 완벽하게
똑같은 모양을 한 장미의 심령이지적 이미지를 연상하라.

동적에테르를 투사하여 장미의 이미지를 이리 저리 돌리며 움직여 보라. 이미지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집중하라. 일정한 양의 강한 집중력을 계속
유지하는 한 심령이지적 움직임의 느낌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장미의 시각적 영상과 움직임을 유지한 채로 감각에테르를 가미하여 장미의 이미지


속에 투사해보라. 그러면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살랑거리는 꽃자루가 손가락
끝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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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붉은 장미 대신에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가진 하얀 장미를 연상해 보라. 장미의
기존의 특성들을 똑같이 유지한 채 색깔만 바꾸는 것이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하얀 장미를 꺼내와서 그 중 색깔만 취하여 전에 생성했던
장미의 이미지에게 이를 적용시켜라. 그러면 우리의 손에는 순백색의 장미가
놓여있을 것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이번에는 색깔만 그대로 유지한 채로 다른 종류의 꽃으로 바꿀 수도


있다. 가령, 흰 장미 대신 흰 카네이션으로 말이다.

의지력을 강력하게 집중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것들은 잠시 제껴두고, 오직 우리가 원하는 소망만 취하라. 선택된 소망을 난폭한
환상들과 비교하여 둘의 차이를 느낀 후, 신중한 사고를 통하여 조화로운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라.

내면을 탐구하는 훈련 또한 이와 같은 원리이다. 사용하는 에테르의 종류만 다를 뿐,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진행해 나간다. 인체의 다양한 부위, 또는 잠재의식 속에
집중을 하여 그곳에 어질러져 있는 심령이지적 찌꺼기들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고,
복체의 특정부위에 저장되어 있는 에테르 에너지를 끌어다가 쓸 수도 있다.

우리가 내면을 탐구하는 가장 주된 목적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함이며, 그리하여 자신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이론적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험이다.

우리는 절대영혼 Soul 이다. 절대영혼이란 무엇일까? 고통과 갈망의 짐에 허덕이는


우리의 물질체 이면에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절대영혼 Soul 이다. 우리는 그 동안 단순한 물질적 쾌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과 우를 범하여 왔는가. 이제는 우리가 절대영혼 Soul 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때다. 우리가 이제껏 저질러온 실수들에 대한 카르마의 빚은 엄연히
값아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결코 두려움이나 열등감을 갖지 말고 이 모든
것을 밝고 행복하게 받아들여라. 완성을 향해가는 소중한 과정으로써.

절대영혼 Soul 은 성원소로부터 발산된 한 줄기 빛이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함으로써 탄생되었다. 사실, 진리탐구자인 우리들에게 조차도 이 개념은
체험적이라기보단 이론적 이해에 가깝다. 우리의 목표는 선각자들에 의해서
탐구되어온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만의 탐구와
체험으로 이어나감으로써 진리를 향한 자신의 고유한 길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마치 의사들이 인체를 탐구하기 위해서 해부학에 대한 기초 지식과 다양한 장기들의


기능에 대하여 끊임없이 연구하듯이, 진리탐구자인 우리는 자신이 영적으로 어떠한

128
존재인지 깨닫기 위하여 진실한 노력과 정성을 들여 자신의 내면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무언가가 체험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에 대한 믿음을 재촉하여선


안된다. 대신 그것을 하나의 탐구분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믿음이란 그 대상에 대하여
하나씩 알아가며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32) 우리의 선조들께서도 ‘너 자신을 알라’고 말씀하셨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다스칼로스가 살고 있는 싸이프러스는 오랜 세월 동안 그리스의 문물적, 문화적
영향을 받아온 이웃나라이다. - 역주)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하여 태연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이미 물질체 너머의 사후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사도 도마는 예수의 손에서 ‘못자국’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예수께선 그를 꾸짖으시는 대신 그에게 손의
못자국을 직접 보여주시며 만져서 확인하도록 하셨다 (요한복음 20:25-27).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만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신비가들은 모든 시대를 걸쳐 인류에게 진정한 자유를 얻는 법을
가르쳐왔으며,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 중 한 분이시다. ‘육은 무익하니라.’ (요한복음
6:63) 이 말씀은 물질의 존재성 자체가 무익하다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물질계는 애초부터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의 청사진에서 제외되어야 했다. 다만,
물질을 숭배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말씀이며, 해로운 동물령들의 유혹을 조심하도록
경고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화적 인물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는


성스러운 실재이다(요한복음 1:9). 그는 인간으로 화현하셔서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과
지혜가 무엇인지 말씀으로써, 그리고 행동으로써 가르쳐주셨다. 우리의 진아 Self 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위에 다른 옷들을 잔뜩 끼어입고 그 옷들이
자신이라는 그럴듯한 환상 속에 빠져 있다. 하지만, 진아는 여전히 그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던지고 그 속에 항상
있어온 참 나에게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원한 진아가 곧 자신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내면의 진아를 되찾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있으며, 이를 이루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성령과 함께 우리가 사는 집인 육신을
정화하고 가꾸는 일에 힘써야 한다. 육신은 우리의 집인 동시에 신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대천사들 Archangels 또한 우리의 육신을 관리하는 일에 동참한다. 이들
모두는 우리가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을 하는 순간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게

129
기뻐한다. 우리가 진아 Self 를 되찾는 것이 곧 그들이 임해온 모든 작업의 궁극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탐구 Looking-within**란 우리의 물질적 이미지를 비추는 거울을 깨부수고 그


이면의 우리의 심령적, 이지적 이미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정진하여
이들조차도 초월하는 더욱 근원적인 내면의 ‘나’를 찾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나아가 그것의 진정한 주인이 됨으로써 물질을
본래의 존재목적에 부합하도록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내면과 자신을
둘러싼 심령이지적 환경을 맑고 투명하게 정화하고, 더 나아가 주변 이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줌으로써 진정한 천국을 건설해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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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탐구 (Looking-within)

진정한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내면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작업. 내면의 탐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리탐구단에게는 물론이요, 진아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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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탐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분석이다. 자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왜 그때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곰곰이 확실하게 되짚어보며 그
원인을 숨김없이 밝혀내야 한다. 어떠한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난 후 나중에 우리
자신에게 그때 왜 그랬는지 물으면, 우리의 교묘한 현재인격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유창한 변명을 할 것이다. ‘사탄도 빛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 이때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은 사색을 하며 그때 그 행동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현재인격은 항의를 멈추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부정적 생각, 감정,
행동들을 일으켰던 존재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고 가정하라. 이렇게 제 3 자의
위치에 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라. 내가 행한 일이 진실한 목적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현재인격의 가벼운 욕구를 채우기 위함이었는지를. 우리의 인격과
행동을 분석할 때에는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모든 상황을 이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현상 이면의 원리를 곰곰이 파헤쳐야 한다. 이러한 탐구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솔직해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론 어렵게
느껴질 테지만, 궁극에는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반항하는
현재인격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는 진아 Self 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끊임없이 돕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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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대부분은 잠재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언젠간 이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단계가 온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옳은 결정을 내리는 데에 능숙해지며, 비로소 ‘의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렇게 옳은 생각을 하는 훈련을 계속 해나가면 어느 순간
난생 처음으로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내면의 자아를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영원한
참 나를 되찾는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을 성취하는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나는
나다.’ 진아 Self 를 되찾은 이 순간은 단절계 너머의 더욱 위대한 깨달음의 경계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된다.

진아실현을 이루어낸 순간부터 우리는 물질체의 에테르 복체를 비롯한 우리 주위를


둘러싼 환경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절대영혼 Soul 에게는 이 모든 권한이 주어진다.
반면, 허약하고 갈망뿐인 현재인격에게는 이러한 권한이 없다. 우리는 자기분석을
함으로써 진리에 바탕을 둔 사고와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며, 그로부터 얻게 되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우리의 내면은 수많은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있는 잡탕과 같다. 이를 정리정돈하고


질서정연하게 다스리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하다. 각각의 갈망들이
지니는 강도를 정확히 측정하여 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불필요한 일시적 갈망들을 잠재움으로써 자신이 더욱 위대한 발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기반을 다져나가게 된다.

갈망이란 심령이지원소로 구성된 사념체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시공계 속을 살아가는 동안 사념체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는다. 우리가 이 사념체들에게 동조하면 할수록 이들은 더 많은 심령이지원소들을
모아가며 전보다 더욱 강렬해진다. 이같은 과정은 그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된다. 반면, 우리가 갈망이 아닌 진리에 바탕을 둔 사고를 한다면 이들에게
동조하지 않고 무시해버릴 수 있다. 우리가 받아주지 않으면 처음엔 사념체들도 몇 번
계속해서 반복하여 시도하지만, 매번 그들의 힘은 조금씩 약해지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자연스럽게 내면의 진아 Self 를 반영하는 올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애시당초 초기에 품은 갈망이 사념체화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한번 생성된 사념체는 해체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가게 된다.

현재인격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이 타고난 주특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내면의


절대영혼 Soul 을 향한 경외심을 놓지 말며 그를 통하여 현재인격의 통제와 감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시작은 가까운 주변을 밝히는 조그마한 횃불과 같다.
하지만 그 불은 점점 커지게 되며, 우리는 서서히 내면과 주위환경을 다스릴 수 있는
심령이지적 주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러면서 불가능하게 여기던 일들을 실제로

131
행할 수 있는 심령이지적 능력들을 얻게 된다. 가령 다른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읽어내는 것이 가능해지고, 아무 힘 들이지 않고 그가 거짓말하는지 순식간에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능력들을 다른 이들의 인격의 성장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방해하는 일에 사용하여선 안된다. 그러한 능력은 지닐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행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더욱 더 경계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큰
힘을 얻을수록 그만큼 유혹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샛길로 빠지지 않고 오직 곧은 진리의 길만을 걸어가겠다는 굳은 신념을
지녀야 한다.

인격 personality 이 절대영혼 Soul 을 향하여 스스로를 확장해나갈수록 절대영혼의


손길은 인격에게 더욱 가까이 닿게 되며, 서로 점점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현재인격의 진리적 사고 이면에는 항상 진아 Self 가
있어왔다는 사실을.

여기까지의 설명이 수도법에 대한 대략적 개요이다. 더 깊은 세부사항들을 다루려면


그 분량이 너무 방대해진다. 사람들의 인생은 제각각이고 그들이 진리를 바라보는
안목 또한 영적 성숙도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참된 스승은 절대로 모든
제자들에게 획일적인 수련법을 내려주지 않는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들을 현재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분류하여 그룹짓고, 개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가르침을 내려준다.

내면을 탐구하는 수련을 해나갈수록 수면하는 동안의 무의식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물질체가 잠자고 있는 동안 의식적 유체이탈을 하여 절대영혼 Soul 으로써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언젠간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심령계를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속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의식을 초자아의식의 경계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되면, 물질계에서 특정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에도 다른 멀리 떨어져 있는 수많은 장소들 속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그곳들로부터 다양한 인상을 수집하거나, 또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초월적인 힘과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초자아의식을
지닌 상태에서는 물질체를 지니고 현장에서 어떠한 일을 하면서도(강의를 한다고
예를 들어보자) 그 일을 하는 데에 전혀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동시에 수마일 밖의
다른 존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두 가지 다른 상황을 마치 하나의 상황
속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 같이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인격이 영구인격의 지도 하에 이루어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그가


생각과 감정을 창조할 수 있는 성스러운 선물을 받은 만큼 그에 걸맞는 존재가 되도록
이 능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시공계 속을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는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 곰곰이 사색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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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나운 욕망과 본능이 현재의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무질서로 가득한 그 어떤 광란의 도가니도 고요하고 평화로움이 흘러넘치는 눈부신
낙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이러한 기적을
이루어내는 순간 현재인격은 진정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천지창조에 있어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그리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갚진
선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스러운 능력을 헛된 갈망,
애착, 욕망 따위를 만들어내느라 그 동안 얼마나 무분별하게 사용해왔는지 자중해야
한다. 그리고 시공계 속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격을 지혜와 사랑을 통하여 내면의
진아 Self, 절대영혼 Soul 에게 동화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궁극적 사명이다.

내면의 탐구가 깊어짐에 따라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아니라 절대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사랑, 그것은 만유 생명을 낳아 길러내는 근원이자, 만물이 지향해가는
목적지이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 그보다 우월한 관점에 서서 내려본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의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로써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주고
그를 치료해주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가져라.

진리탐구자로써 우리는 제자이자 스승이다. 현재인격이자 영구인격인 것이다.


우리의 궁극 목표는 이 둘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이다.

진리적 사고와 명상을 통하여 우리가 아직까지 지녀온 제한된 사랑, 개인적 욕구를
향한 사랑을 무제한적인 사랑, 초월적 사랑, 범우주적인 사랑, 불멸의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할지어다. 그리하면 그대의 ‘죽을 수밖에 없는 땅 위의 몸은 멸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하늘의 몸’ (고린도전서 15:53)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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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대신에…

에필로그 대신에 시 한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는 방황하는 한 인간과 그의


수호대천사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에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메세지가 담겨 있다.

시 속의 대화는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원하기만


한다면 그 힘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진리에
바탕을 둔 사고를 한다는 것은 비록 쉽지 않으나, 그것은 그만큼 가치있는 일이다.
진리적 사고를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만의 진실한 이상을 품게 되고, 그 이상을
향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진정한 힘을 되찾게 된다. 그리하여
궁극에는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과 테오시스를 성취하게 된다.

인간이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세상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으며, 우리가 겪어나갈 모든 경험들은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의 일부이자 진아실현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리에 바탕을 둔 자유의지로써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해나야 한다. 경험을 통하여
깨닫고 성숙하며 진리를 향하여 매 순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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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적 사고는 우리를 이 세상을 가득 메우는 진정한 성스러움 Divine 과 하나되도록
인도해주는 길잡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성스러운 일체를 이뤄내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경외심을 품게 된다. 이 경외심은 두려움의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세상을 이뤄내는 근원적 경계의 장엄함과 아름다움으로부터 전해지는 끝없는
감동, 그로부터 솟구치는 인간의 성스러운 본성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언 9:10)이라는 성서 말씀의 진정한


뜻이다. 인간의 궁극적 사명은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절대영혼 Soul 속에 거하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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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을 헤매는 여행자

폭우 속의 어두운 밤,
비구름에 파묻혀 달빛 잃은 밤,
어둡고 축축하고 차디찬 밤,

온 대지가 괴음으로 신음하며,


천둥 번개에 온 세상이 진동한다.
정원 앞마당에는 매서운 북풍이 불어온다.
그 기세는 싸이프러스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릴 것만 같고
모든 꽃들을 태워버리고 얼려버릴 것만 같다.

비구름에 파묻혀 달빛 잃은 밤,
어둡고 축축하고 차디찬 밤.
어두운 조명이 드리워진 헛간 안의
흔들리는 촛불 앞에 놓여진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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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나는 그의 앞에 있다.
문득 밖에서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묵묵히 그곳을 바라보았다.
나의 심장은 놀라 두근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누굴까,
이 가혹한 천둥번개 속에서 날 찾아온 사람이?
달려가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여는 순간
내 앞에 서 있을 그는 정녕 누구일까?

순간, 번갯불과도 같이 그는 내 앞에 나타나서


온 헛간을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웠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의 머리를 감싸안고 눈에 키스를 해주었다.
내 손발의 긴장은 풀렸고, 머리는 환해졌다.

나는 깊은 절대영혼으로부터 따스함을 느꼈고,


그는 마치 언제나 그랬다는 듯 내 옆에서 웃음을 짓고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나시다니, 그것도 이 폭우 속에서…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당신을 꼭 아는 것만 같아요.
당신은 마치 그리스도 같으시군요.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답하였다:
나는 그대의 천사입니다.
영원히 당신 곁을 함께 하는
그대의 수호자이자, 인도자이지요.

나는 말하였다:
그렇다면 그 동안 어디 있으셨나요,
제가 병들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고통 속을 헤매는 동안…
이렇게 오랫동안 어디 있으셨나요?

그는 답하였다:
저는 그대의 천사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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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수호천사입니다.
영원히 그대와 함께 하며
그대를 지켜주고 인도하며
… 그리고 항상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대에게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대의 상처를 감싸주고, 그대의 눈물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대 안에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플 때면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대는 언제나 물질적인 것들에게 취해 있었습니다.


선로 없이 무한히 펼쳐진 대지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꿈 속을 헤매는 여행자여,
수없이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그 속에서 당신이 그토록 찾아헤맨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산과 같은 거대한 뭉덩이일 뿐입니다.
신께선 그대가 입을 옷인 흙, 소금, 물을 내려주셨지만,
그대는 그 속에 깊숙이 파묻혀 깊이 잠들었습니다. 매우 오랫동안.

그대의 동지들은 그대를 도우려 애썼습니다.


진흙 속에 파묻힌 채로 깊은 잠에 빠져 꿈을 헤매는 그대를 깨우려고.
그러나 그대는 더욱 더 진흙들을 모으며 그것을 자기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것들을 모으며 축적했고, 그러면서 그대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대가 모은 진흙, 명예와 부에 사로잡힌 포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대는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그리하여 크나큰 슬픔 속에 빠졌습니다.

그대는 진흙을 끝도 없이 쌓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꿈꾸어온 집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죠.
더러운 물질로 만든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나간다는 것을 모른 채로.

하지만 그대의 내면에선 항상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촛불이 있습니다.


그대는 본래 불멸의 혼, 진아입니다.
지금의 그대는 진흙으로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이 모습은 그대가 아닙니다.

다른 이들 또한 당신처럼 지상의 진흙 속을 허우적이고 있지요.


그대를 사랑했고 배신했던 자들,
그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심한 말로 상처 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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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가혹하고 고통스럽게 때린 자들,
그리고 그대가 진실로 사랑하는 자들,
이들 모두는 인간, 당신과 같은 인간, 사랑받는 절대영혼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과 똑같은 꿈 속을 헤매는 여행자들이지요.
그들은 모두 신의 아들들(gods), 사랑받는 성원소들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이제 진흙을 버리세요.


지상의 것들을 놓아버리고 휴식을 취하세요.

지상의 것들, 인간의 것들은 그대 뿐 아니라 그들 또한 어지럽혔습니다.


그들도 내면의 영원한 실재성을 망각한 채 덧없는 것들에게 중독되어버렸지요.
이제 앞을 보고 그대의 길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얻으세요.

그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자, 같이 가요.

나는 말하였다:
가자고요? 어디를요?

그는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곳의 모든 이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가며, 모든 이들이 사랑받습니다.
그곳의 꽃들은 수만 가지 색의 빛으로 만발하며 영원히 지지 않습니다.
그곳을 가득 메우는 불멸의 빛과 하나 되는 순간
진정으로 살아있는 행복, 살아있는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궁극의 행복이요, 우리 여정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나는 말하였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고 잊어야 하나요?
저 홀로 그 빛과 행복 속에서 살아가야 하나요?

그는 말하였다:
그대가 사랑해왔고, 사랑하게 될 모든 이들과 함께이지요.
그대가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하게 될 모든 이들과 함께.
진흙으로 가득한 이 지상의 것들은 그림자,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절대영혼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들도 절대영혼이요, 그대도 절대영혼입니다.
모든 이들이 그대와 함께 갈 것입니다.
그 빛의 낙원에서 우리 모두가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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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나갔다:
저는 그대의 천사요, 수호자요, 인도자입니다.
저는 항상 그대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대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그대가 겪어온 지상의 모든 진흙, 어둠, 그릇됨, 고통 속에서도
저는 항상 그대의 안에 있어왔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대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대는 신입니다.

제가 그대를 홀로 내버려두고 떠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대는 신의 아들이며, 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빛입니다.
생명의 빛, 정직의 빛, 청순의 빛.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의 모든 형제들은


세상의 시간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사랑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탕아이며,
‘잃었다 다시 얻게 된’ 그분의 소중한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141
142
용어 해설집

우리 진리 탐구단에서는 특별한 용어들을 종종 사용한다. 어떠한 용어를 사용할 때


우리가 그 단어를 통하여 의미하는 뜻은 다른 진리 탐구단에서 사용하는 뜻과 다를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의 용어들을 접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혼돈을 방지하고자 이와
같은 용어 해설집을 만들기로 하였다.

로고스 (Logos, 절대이성)

로고스란 ‘말씀’이란 뜻이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 또는 그리스도 로고스란 ‘독생자’


그분을 일컫는다. 그리스도 로고스의 화신인 예수는 ‘가장 사랑받는 로고스’라
불리시기도 한다. 우리는 그분을 종종 성스러운 로고스, 신인(God-Man) 예수
그리스도,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완전하고 순수하고 직접적인 로고스적 표현물이라고
부른다. 로고스들(Logoi) 이란 로고스의 복수형이며, 로고스적(Logoic)이란 로고스의
형용사형이다.

143
내면의 탐구 (Looking-within)

진정한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내면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작업. 내면의 탐구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진리탐구단에게는 물론이요, 진아실현을 이루고자 하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훈련이다.

단절계 ( = 존재계 = 현상계 = 시공계=경험계) (world of separation = world of existence


= world of space-place-time = world of experience)

단절계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의 세 존재계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의 인격은


절대적 영원무한성과의 일체의 경계로부터 분리되어 단절계로 내려오게 된다.

대천사 / 천사 (Archangel / angel)

대천사 Archangel 는 온 우주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신의 전령이다. 그들은 절대적


초의식을 지니지만, 인간과 같이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을 인지할 수 있는 자아의식은
지니지 않는다. 대천사 품계 Archangelic Order 의 종류에는 원소의 대천사들을
비롯하여 어소리티 (Authorities, 권능대천사), 케라프 (Cherub, 지혜대천사), 도미니언
(Dominion, 통치대천사), 오버로드 (Overlord, 대군주 대천사), 프린시펠리티
(Principality, 군주 대천사), 세라프 (Seraph, 사랑의 대천사), 스로운 (Throne, 왕좌
대천사) 등이 있다. 이 책에서는 주로 7 개의 대천사 품계에 대하여 다룬다. 각
품계 Order 는 무한대에 가까운 대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을 하며 창조의 작업을 분담한다. 천사 angel 란
대천사들 Archangels 의 사념체다.

“대천사 세라프는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을 이루어 실재계로 진입한 인간들을


안내하며 돕는 역할을 한다. 대천사 케라프는 존재계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경험들을 볼 수 있는 초의식적 천리안이 있으며, 그의 역할은 존재계의 모든 인상들을
빠짐없이 수집하여 우주의식(초질료 마음 Mind 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도서관)에
기록하는 것이다. 원소의 대천사들은 이지계, 심령계, 물질계 속에 직접적 물현을
하여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 반면, 케라프와 세라프는 존재계 속에
물현하는 경우가 없이 오직 실재계에만 머무른다.

144
대천사 루시퍼는 악과 고통을 주관하는 대천사로써 라파엘, 카리브엘과 종종
충돌한다. 물론 이 ‘악’이란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루시퍼의 존재목적은
인간에게 선의 대립물을 비교대상으로써 제공함으로써 그것을 통하여 진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어둠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빛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선과 악은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의 일부이다.”
(다스칼로스의 저서 Symbol of Life 중에서)

동조 = 공명 (attunement)

자신의 진동수를 다른 존재나 실재가 지니고 있는 진동수와 일치시켜 공명함으로써


그 대상의 본질, 특성에 대하여 깊게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다. 동조는 일체 이전의
경계이다.

마음 (Mind)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최초의 표현물로써, 이를 원료로 하여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이


빚어졌다. 비록 마음 Mind 은 불멸의 실재는 아니지만, 이 속에는 성스러운 지혜,
성스러운 사랑, 성스러운 권능과 창조주의 순결함이 온전히 깃들어 있으며, 창조를
위하여 영원히 쓰이는 재료이다. 마음 Mind 을 탄생시킨 근원은 성스러움(Divine)이며,
그로부터 탄생한 마음 Mind 은 신성(holy)하다.

물질계 / 물질체 (material world / material body)

가장 낮은 진동수를 지닌 마음 Mind 의 파동. 일명 고체화된, 형상화된


마음 Mind 으로써 우리의 물질체를 비롯한 온 물질계를 구성한다.

물현 / 환원 (materialization / de-materialization - 역주)

물현이란 초질료 마음 Mind 의 진동수를 가장 낮게 낮추어서


이지원소심령원소물질원소로 응결시켜 형상화하는 영적 능력이다. 환원이란
물현의 반대로 물질의 진동수를 높여서 물질원소심령원소이지원소로 되돌리고,
진동수를 더욱 높여서 무형의 초질료 마음 Mind 으로 환원시키는 영적 능력이다.
물현과 환원은 의식의 경계를 초자아의식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자가 시연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다.

145
생명의 과정 (circle of probability)

생명의 주기란 한 생명의 가장 이상적인 성장 주기로써 임의로 바꾸거나 벗어날 수


없는 것인 반면, 생명의 과정은 같은 종의 생명체들에게 있어서도 제각각이며
가변적이다. 도중에 불상사로 목숨을 잃게 되어 정해진 주기를 온전하게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씨앗이 싹트지 않을 수도, 어린 나무가 약해서 일찍 죽을 수도, 아기가 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는 것과 같다. 각 생명의 주기 속에는 수백만 개의 다양한 생명의
과정들이 있다. 삶의 도중에 죽어서 성장이 끊어질 수도, 또는 계속 성장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기의 성공적 완수 여부를 떠나서 모든 생명의 주기에는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 을 반영하는 위대한 지혜가 깃들어 있다.

생명의 주기 (circle of possibility)

각 원형이 지니는 생명의 주기는 절대지혜를 기반으로 하는 성스러운 법칙 Laws 과


원리들 Causes 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현상계 속 모든 만물은 씨앗에서 나무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끊임 없이 발전하며, 그 과정 속에서 경험들을 수집한다. 만물의
각 원형 form 은 완벽하게 설계된 생명의 주기를 지니며 원형계 속에서 실재한다. 그
어떤 원형도 자신의 생명의 주기를 변경하거나 개조하여 다른 원형으로 바뀔 수 없다.
인간은 항상 인간으로 환생한다.

성령(Holy Spirit)

비인격적 초의식의 경계. 성령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절대권능을 표현하며, 온


우주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 성령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역동적 화현이다.

성스러운 (Divine)

절대원리 Causes, 이데아 Ideas, 절대법칙 Laws, 절대원칙 Principles, 그리고


실재 Being(절대영혼, 대천사)와 같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순수한 화현물 앞에만
붙을 수 있는 고유한 단어이다.

성스러운 계획 (Divine P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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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완벽한 청사진. 우주 안의 모든 것,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성스러운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 무한한 지혜의 소산인 성스러운 계획에
부합하는 생각과 행동으로써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존재목적이다.

성스러운 법칙 (Divine Law)

온 다차원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바탕으로써, 인과응보의 법칙, 조화의 법칙,


균형의 법칙, 진보의 법칙 등이 있다. 균형잡히고 심층적인 영적 성장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선 지혜와 사랑을 통하여 이러한 법칙들을 깨닫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성스러운 숙고 (Divine Meditation)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의 내부에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이상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성스러운 숙고란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성스러운 이상을 품기
이전의 사색하는 단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조를 하고자 하는 그의 영감은 성스러운
숙고 속에서 떠오르게 된다. (성스러운 이상과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사이의 경계라고
할 수 있다. – 역주)

성스러운 은총 (Divine Grace)

우리가 육신을 지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성스러운 은총이 내려주신 값진


선물이다.

성스러운 이데아 (Divine Idea)

원리 (원칙 Principles, 법칙 Laws, 이데아 Ideas) 참조

성스러운 이상 (Divine Will-pleasure)

모든 것을 탄생시키고자 하는 신의 이상. 이 속에는 창조를 통하여 끝없이 베품으로써


얻는 신의 기쁨이 포함되어 있다.

147
성스러운 자비 (Divine Mercy)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창조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 중 하나이다. 성스러운 자비는


기적을 가능하게 한다. 사도 야고보는 그의 서간에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서 3:13)라고 하였다.

성스러운 자체완전성 (Divine Self-sufficiency)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가장 근원적 본성.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모든것들로부터 홀연하여 스스로 완전한 끝없는 풍요로움과 축복으로 가득한 경지.

성원소 (Holy Monad)

가장 깊은 내면의 궁극의 자아. 성원소는 성스러우며(Divine) 영원불멸한다. 성원소가


거하는 곳은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자체완전성의 경계이다. 성원소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이라는 전체성을 이뤄내는 성스러운 원소들이라는 개념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성원소의 수는 무한하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이상은 곧 우리의 성원소적 자아가 스스로를 진아단 Selfhood 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과 동일하다.

수호대천사 (Guardian Archangel)

우리의 첫 환생이 시작되기 이전, 성원소의 빛이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하여


절대영혼이 된 순간부터 수호대천사는 우리와 함께하며 단절계 속에서의 기나긴
윤회의 여정 동안 우리를 항상 지켜주고 인도해준다. 수호대천사들은 스로운
품계(왕좌대천사 - 역주)에 속해있다.

신성함, 신성한 (holy)

모든 창조물들은 신성(holy)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성스럽지(Divine) 않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에 의한 창조물들은 그의 직접적 화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절대영혼 Soul 과 대천사 Archangel 는 성스러운 Divine 반면, 초질료 마음 Mind 은
신성 holy 하다. - 역주)

148
심령계 / 심령체 (psychical world / psychical body)

4 차원계이며, 일명 감정계라 불리운다. 심령계는 7 개의 차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차원은 7 개의 하위차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심령계는 우리가 제 1 의 유체이탈을
할 때 들어서게 되는 곳이며, 죽음 이후에 들어서는 첫 번째 세계이다.

심령이지적 (psycho-noetical)

모든 생각 속에는 감정이 섞여 있으며, 모든 감정 속에는 생각이 섞여있다. 때문에


심령계(감정)와 이지계(생각)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 두 세계를 어느정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신앙심 (faith)

신앙심이란 특정 종교의 교리를 향한 개인적인, 이론적인 믿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향한 마음과 사랑을 모두 포함한다. 신앙심이 결실을
맺어가는 과정은 곧 현재인격과 영구인격을 완성시켜나가는 과정이며, 그 최종
목적지는 테오시스 Theosis 이다. 믿음의 진정한 가치는 행함에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26)

심장 센터 (heart center)

심장은 단순한 물리적 장기일 뿐만이 아니라 육신 내의 가장 중요한 영적 센터이다.


이 곳은 우리의 영구인격이 머무르는 곳이다. 이 센터는 현세의 나와 성스러운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이자 성소이다. 심장의 중요성은 말로 다 형언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나 기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참 나로써
경건하게 드리는 기도이다. 우리는 심장(heart. 여기서는 인간의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 역주)을 정화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너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누가복음
16:15)는 성서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에테르 복체 (etheric double)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가장 단순한 구조(단세포, 광물질)에서부터 가장 복잡한 생물에


이르기까지 각 육신(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마다 그에 상응하는 에테르 복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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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고 있다. 복체는 육신의 내부를 가득 메우면서 육신 외부로 일정 거리만큼
확장되어 있다. 에테르 복체는 해당 육신이 살아있는 한 육신의 건강을 돌보며 함께
하다가 육신이 버려지면(죽거나 소멸되면) 해체된다. 에테르 복체는 육신을 짓고
관리하기 위한 주형틀이자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에테르 에너지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에테르 생명력 = 에테르 (etheric vitality = ether)

‘우리의 일용할 양식’인 에테르 생명력(마음 Mind)은 호흡, 식사, 수면, 그리고 수도를
통하여 얻어진다. 우리는 에테르 생명력으로 가득한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조화스러운 생활 패턴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할당된
에테르 생명력의 대부분을 탕진해버려 복구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며, 그 결과 각종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우리의 육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존재물들은
에테르 복체라는 주형을 뼈대로 하여 창조되었다. 복체 속을 흐르는 에테르의
종류에는 네 가지가 있다. 각각 창조에테르, 감각에테르, 인상에테르, 동적에테르이다.

에테르 센터 / 신성한 원반 (etheric center / sacred disk)

에테르에너지, 에테르 활동의 중심부로써 산스크리트어로 ‘차크라’라고 불리우며,


우리의 육신을 감싸는 에테르 복체들의 다양한 부위에 위치하고 있다. 각각의 물질체,
심령체, 이지체마다 고유한 센터들을 지니고 있으며, 각 센터들이 자리하는 곳은 인체
내의 장기들의 위치와 일치한다. 에테르 센터들을 다루는 수련을 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일부 센터들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계발해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다른
센터들은 로고스와 성령, 대천사들이 머무르며 작업을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심장 센터’를 참조할 것.

사념체 (elemental)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갈망은 사념체를 생성시키고 발산시킨다. 각각의 사념체는


고유한 존재성을 지닌다. 우리가 생성하고 길러내는 사념체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감정이 생각을 지배할 때 우리는 갈망적 사념체를 생성한다. 반면, 지혜과
사랑에 바탕을 둔 생각, 갈망, 감정을 품을 때 우리는 지적 사념체를 생성한다.
사념체는 절대로 소멸될 수 없다. 다만, 무력화시켜 잠재울 수 있다 (사념체에게 더
이상의 에테르 생명력의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비슷한 성질의 사념체들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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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서 강력한 사념체군을 형성한다. 어떤 개인이나 군중의 생각, 감정이 특정한
사념체군과 같은 진동수를 지닐 경우, 인격은 그 사념체군과 동조하여 그곳의 일부
사념체들을 끌어오게 된다. 대천사들 또한 사념체들(천사들)을 생성한다. 그들은
인간의 발전과 성숙을 돕기 위해 온화하고 선량한 사념체들을 발산한다.

영구원자 (permanent atom)

영구인격의 일부로써, 시공계 속에서 수집한 경험들을 낱낱이 기록하는 책과 같다.


영구원자는 세 육신의 에테르 심장이 있는 곳에 포개져서 위치해 있다. 영구인격은
물질계, 심령계, 이지계에서 겪었던 모든 감정, 생각, 반응, 경험을 영구원자에
빠짐없이 기록한다.

영구인격 (permanent personality)

단절계 속에 표현된 절대영혼의 자아의식. 영구인격은 현재인격에 의해 수집된


지식들을 걸러내어 지혜로 숙성시킨다.

영원한 지금= 영원한 현재(Eternal Now = Eternal Present)

존재계와 실재계를 초월하는 영원성의 경계(절대계 - 역주)에는 영원한 현재,


영원불멸의 절대생명 Life 만이 있을 뿐이다. 그곳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벽이
허물어지며 오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끝없는 이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절대영혼(Soul)

성원소는 인간 이데아 Human Idea 를 통과함으로써 절대영혼 Soul 으로 화현된다.


절대영혼은 창조되지 않았다. 스스로 화현한 것이다. 절대영혼이란 성원소 내부에
탄생한 조그마한 진주와 같다. 절대영혼은 무형 formless 이다. 훗날 절대영혼은
신에게로 귀환하여 성원소와 결혼함으로써 더욱 완전해진다.

우주의식 / 우주기억 (Cosmic consciousness / Cosmic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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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사건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우주의식 속에 기록된다. 신비가는 자신의 의식을 우주의식에 동조시킴으로써 이
기록들을 읽을 수 있다. 우주의식 속에는 우주의 기억 Cosmic Memory 이 보관되어
있다. 이것은 ‘천상의 도서관’이이라 불리우며, 그 속에는 세상의 모든 존재, 실재들의
행동, 생각, 감정, 갈망, 인상들이 빠짐없이 보관되어 있다.

원리, 이데아, 원칙 (Causes, Ideas, Principles)

모든 것의 시작, 모든 창조의 원동력인 최초의 원리는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이상이다. 이로부터 수많은 하위 원리들이 탄생하며, 이들을 바탕으로 만물의
설계도인 이데아들이 탄생한다. 각 이데아는 해당 원형 form 의 생명의 주기를 담고
있다. 대천사들 Archangels 은 이데아들 Ideas 을 통하여 만물의 각 원형을 창조하며,
탄생된 각 원형들 속에 절대지혜를 투영한다. (탄생되는 모든 만물은 이 과정 속에서
절대지혜가 투영되기 때문에 조그마한 지렁이의 소화기관 속에 조차도 정교한
법칙이 깃들어있는 것이다. - 역주) 절대원칙은 절대원리가 시공간 속에 탄생시킨
표현물들을 다스린다.

원리계 (Casual State)

원형계 위의 차원으로써, 순수한 이데아, 절대법칙, 절대원칙들이 거하는 곳이다.


5 천이라고도 불린다.

원형계 (Noetic State)

단절계를 초월하는 경계로써, 만물이 탄생되기 이전의 밑그림인 원형들을 담고 있다.


이곳은 우리가 생과 생 사이마다 쉬어가는 곳이자, 대천사들 Archangels 이 단절계
속에 표현하기 위한 원형들 forms 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 번째 하늘’에
해당되며, 고차원 이지계라고도 불린다. - 역주)

유체이탈 (exosomatosis)

우리는 매일 밤 물질체로부터 분리되어 심령이지체를 지니고 잠재의식의 상태에서


다른 차원들로 여행한다. 우리의 목표는 유체가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떠나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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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에도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제 2 의 유체이탈, 그리고 제 3 의 유체이탈 또한
존재한다. (각각 이지계로의 유체이탈, 원형계로의 유체이탈. – 역주)

이지계 / 이지체 (noetical world / noetic body)

(이지란 지성, 지혜를 뜻한다. - 역주) 5 차원 세계. 단절계 속의 가장 정교하고 높은


차원으로써, 우리의 이지체가 머무르는 곳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전적지혜가 각
만물의 원형을 존재계 속에 표현할 때 가장 첫 번째로 이곳에서 이지체를 생성시킨다.
이는 은하군에서부터 단세포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에게 적용된다. 이지계에도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심령계나 물질계의 시공간과는 매우
다르다.

이지적 이미지 (noetic image)

이지원소들, 또는 심령이지원소들로 빛어진 다차원 이미지. 한번 생성된 이지적


이미지는 사념체가 그러하듯이 소멸되지 않고 우주의식 속에 영원히 남겨진다.

인간-인격의 이데아 (Idea of Heavenly Man)

절대영혼은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통하여 자신을 영구인격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육신 또한 인간-인격의 이데아 속에 담겨있는 절대법칙, 절대원칙들을 바탕으로 한
설계도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 (Idea of Archangelic Man)

고차원 이데아의 한 종류이다. (‘인간 이데아’, ‘원칙 / 원리 / 이데아’ 참조) 성원소가


인간으로 표현되기 위해선 그로부터 발산된 한 줄기 빛이 인간-절대영혼의 이데아를
통과하고, 그 빛이 인간-인격의 이데아를 통과하여야 한다.

인과응보의 법칙 (Law of Cause and Effect)

인과응보의 법칙은 많은 신비가들과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이 성스러운


법칙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행동들, 작용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뒤따르도록 한다. 동방의 종교들은 이를 카르마의 법칙이라고 부르며 다소
운명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반면, 우리는 다른 이들이 진 카르마의 빚을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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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서 짊어질 수 있고, 회개와 뉘우침을 통하여 소멸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여러 생에 걸쳐서 작용을 하며, 한 생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일체 (at-one-ment)

일체란 다른 존재나 실재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초의식의 경지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일체가 되는 경계를 테오시스 Theosis 라고 한다. 테오시스는 내가 곧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되는 것이며, 그와 동시에 본래의 자아 Ego 를 잃지 않는
경계이다.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

자신의 진아 Self 를 깨달은 의식의 경계.

잠재의식 (sub-consciousness)

잠재의식은 크게 세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구획에는 우리의 현재인격을


구성하는 모든 사념체들이 보관되어 있다. 두 번째 구획에는 우리가 사용하기 위한
에테르 생명력이 저장되어 있다. 세 번째 구획은 가장 신성한 곳인데 로고스와 성령이
거하며 우리의 의식 속에 절대지혜, 절대권능, 절대사랑을 전해준다.

전적사랑 = 절대사랑 / 전적지혜 = 절대지혜 / 전적권능 = 절대권능 (Total Love / Total


Wisdom / Total Power)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그 안의 모든 실재들이 지니는 근원적 본성. 이 셋은 성스러운


삼각형을 형성하며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온전하게 표현된다.

절대적 영원무한성 = 영원무한성 = 신(하나님) = 주님 = 아버지 = 가장 높으신


분(Absolute Beingness = Infinite Beingness = God = The Father = The Lord = The
High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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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두 동의어이다. ‘아버지’란 단어는 남성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지만, 절대적
영원무한성을 비롯한 그의 순수한 화현물(절대영혼 Soul, 대천사 Archangel -
역주)에게는 성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시작이자 결론이요, 모든 것이다.

존재(existence) / 실재(Being)

존재하는 것은 시작과 끝이 있는 일시적인 것이다. 반면, 실재하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것이다.

진리탐구단 (system of researchers of Truth)

우리는 전통 크리스찬 탐구단으로써 모든 위대한 역대 종교들에게 알려져 온 동일한


불멸의 진리를 추구하며,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신약성서에 두고 있다.
우리는 이론적 공부, 내적 탐구, 수련이 서로 조화되는 균형 잡힌 계발을 추구하며,
진리를 향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체계적이고, 안전하며, 확실하다.

진아(Ego) / 현재인격(ego) / 아집(egoism)

우리가 사용하는 이 용어의 뜻을 오늘날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뜻과 혼돈하면


안된다. 아집 egoism 은 현재인격 속에 섞여있는 불순물이며, 그가 발생시키는 이기적
갈망과 비열한 감정, 욕심, 악의, 시기, 질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신성한
마음 Mind 을 변질시킨다. 반면, 자아 Ego 는 실재하는 진아 Self 이자 우리의
절대영혼으로써, 그의 투영물인 인격 ego 이 지혜와 사랑으로 가득할 때 온전히
표현된다. 아집 egoism 은 우리의 인격, 사회, 전세계를 병들게 하는 화근인 반면,
진아 Ego 는 사랑, 자비, 진리적 사고, 이성적 행동의 원천이다.

진아단 (Selfhood)

가장 근원의 성원소적 자아와 그의 표현물들을 모두 하나로 묶어서 일컫는 명칭.


진아단 Selfhood 이란 가장 높은 정점의 성원소로부터 절대영혼, 영구인격, 그리고
가장 낮은 현재인격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진아단을 구성하는 그 어떤 표현물도 그
가치를 우열로 가릴 수 없다. 각 표현물은 스스로가 속해있는 차원 속에서 고유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모두 진아단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일원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이 자신을 스스로의 안에 표현하고자 하는 성스러운 이상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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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받은 우리의 성원소는 스스로의 안에 자신만의 고유한 진아단을 표현한다.
신께서 대창조를 하시듯 우리는 소창조를 하는 것이다.

진아실현 (Self-realization)

영구인격이 진아 Self 를 깨달아 완성된 실재가 되는 것. 단절계 속에서 겪어온 수많은


경험 끝에 성취하는 궁극의 경지. 진아실현을 통하여 영구인격은 절대영혼과
재결합을 하게 되며, 이로써 성원소와 일체가 되는 테오시스를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된다.

초의식 (Super-consciousness)

삼라만상과 하나되는 범우주적 전체의식이다.

카르마 (karma)

‘인과응보의 법칙’ 참조.

테오시스 (Theosis)

신, 절대적 영원무한성과 하나되는 궁극의 경계.

공(Space, - 역주)

공(빌 허虛, 빌 공空)이란 무한히 텅 비어있음이다. 반면, 공간(빌 공空, 사이 간間)이란


공 속의 표현물이다. 공(Space)은 끝없이 무한한 반면, 그의 표현물인 공간(space)은
유한하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초월하는
절대적 경계인 반면, 시간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으로부터 탄생된 유한한
표현물이다. 시간과 공간은 본질적으로 환영이다.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경계에서는
공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만이 있을 뿐이다. 공과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은
모두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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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인격 (present-day personality)

‘죠지’, ‘메리’ 등과 같은 이름을 지니고 각 생을 살아가는 인격. 현재인격은 단절계


속을 살아가는 영구인격의 표현물이다.

황홀경 (Ecstacy, 무아경)

확장, 동조, 일체를 통하여 마침내 들어서는 ‘진정한 천국’ 안에서 느끼게 되는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절대적 행복, 기쁨이다. 이곳은 세상의 모든 관념과
번뇌를 초월하는 궁극의 경계이다.

회개 ( rependence, 참회)

회개란 그리스어로 ‘마음을 개선하는 것’, ‘사고를 전환하는 것’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슬퍼하고, 뉘우치고, 후회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근본적으로 삶에 임하는 자세를 개선함으로써 절대적 영원무한성의 성스러운 계획에
더욱 부합하는 삶을 살아나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신앙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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