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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발칸학』제11권 2호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

이 호 창**

차 례

Ⅰ. 들어가는 말
Ⅱ. 루마니아인들이 믿는 영혼과 사후
1. 영혼을 뜻하는 루마니아어 단어들
2. 고인의 영혼, ‘수플레툴 모르툴루이(Sufletul mortului)’
3. 영혼의 새, ‘퍼서레아 수플레툴루이(Păsărea-Sufletului)’
Ⅲ. 루마니아의 원귀들
1. 처녀 귀신, ‘루살리에(Rusalie)’
2. 원귀(寃鬼), ‘스트리고이(Strigoi)’와 아기 귀신, ‘모로이(Moroi)’
3. 죽은 자리를 지키는 혼령, ‘스타피에(Stafie)’
Ⅳ. 맺는 말

<국문 개요>

인간의 존재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영육이원론은 아


주 오래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문명의 오지에서 고도로 산
업화된 도시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 인류의 공통된
관념이다. 이러한 영육이원론의 핵심은 인간의 육체는 현세의 직선
적 시간과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철저히 제약을 받는 유한한 존재이
지만, 인간의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초자연적 존재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


행된 연구임 (KRF-2008-327-A00834)
**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
『동유럽발칸학』제11권 2호

라는 생각이다. 영혼에 관해서 다양하고 복잡한 관념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한결같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과 문화
등에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증명될 수 있거나 감지할 수 있
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영혼이나 귀신의 존재
에 대한 믿음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사후를 믿지 않고
오직 살아 있는 동안만이 삶의 전부이고 생명이 다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세
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어찌해서든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온갖
물질적 욕망과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전전긍긍한다.
영혼과 귀신이 실재하고 사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그것
을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불멸하는 영혼
이 육신의 옷을 입고 잠시 이 세상을 살다가 더 나은 곳으로 간다는
믿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악행을 저지르면 육신의 생명이 다한 후
에는 그에 따라 영원 형벌을 받는다는 믿음, 다른 사람에게 한을 품
게 하면 그 사람이 원귀가 되어 자신에게도 똑같은 해를 입힐 수 있
다는 믿음, 등 영혼의 실재에 관한 많은 믿음들은 내세를 바라보며
현세의 고통을 위무 받을 수 있게 해주며, 공동체의 윤리적 장려 사
항들과 금기 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
다.
영혼의 존재와 사후에 관한 믿음에 얽힌 민속들 그리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근대 이후의 합리주의적 시각에서는 거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루마니아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 때문
에 이를 단지 전근대적인 저급한 사고의 산물로 여기고 소홀히 흘려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혼과 사후에 관한 믿음들은 해당 문화 공
동체의 모든 일원들을 결속시키고, 그들의 윤리관과 가치관에 결정
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성한 힘을 아직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
다. 그 신성한 힘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존재는 여타 물질들과 차이
가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주제어 : 루마니아, 영혼관, 사후관, 내세관, 영혼의 새, 귀신, 제사,


장례, 영혼의 심판관, 스트리고이, 루살리에, 컬루샤리, 모
로이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27

I. 들어가는 말

인간의 존재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영육이원론은 아주 오래된 고


대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문명의 오지에서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에 이르기까
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전 인류의 공통된 관념이다. 이러한 영육이원론의 핵심
은 인간의 육체는 현세의 직선적 시간과 한정된 공간으로부터 철저히 제약을 받
는 유한한 존재이지만, 인간의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초자연적
존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영혼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시대, 지역, 문화 등의 차이에 따
라 너무나도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심지어 같은 시대의 같은 문화권에서도 영
혼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카
(Ka)’와 ‘바(Ba)’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중국에서는 망자의 영혼은, 하
늘로 승천하는 ‘혼(魂)’과 땅으로 들어가는 ‘백(魄)’으로 나누어지고, 상황에 따
라 누구의 영혼은 ‘귀(鬼)’로 변하고 누구의 영혼은 ‘신(神)’으로 변한다고 믿었
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뜻하는 단어가 ‘혼’, ‘백’, ‘넋’, ‘얼’, ‘령’, ‘신’,
‘귀’, ‘손’, 등으로 다양하며, 무속에서는 영혼을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인 생령
(生靈)과 죽은 사람의 영혼인 사령(死靈)으로 나누고, 특성에 따라 이를 다시
‘조상신’, ‘객귀’, ‘잡귀’, ‘영산’, ‘처녀귀신’, ‘몽달귀신’, ‘아귀’ 등으로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영혼을 가리킬 때 ‘수플레트(suflet)’, ‘두흐(duh)’,
‘스피리트(spirit)’, ‘민테(minte)’ 등의 여러 단어를 사용하며, 스트리고이
(strigoi), 모로이(moroi), 스타피에(stafie), 판토머(fantomă), 루살리에
(rusalie), 비드머(vidmă), 수플레툴 퍼서레(sufletul-păsăre) 등 수많은 종류의
생령, 사령, 귀신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영혼에 관해서 이렇듯 다양하고 복잡한 관념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
은 그것들이 한결같이 인간의 삶과 가치관과 문화 등에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증명
될 수 있거나 감지할 수 있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영혼이
나 귀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도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동안
만이 삶의 전부이고 생명이 다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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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다. 이러한 생각으로 인해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어찌해서든지 이 세상


에 살아 있는 동안 온갖 물질적 욕망과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전전긍긍한
다. 영혼과 귀신이 실재한다는 믿음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
한 것이 아니다. 불멸하는 영혼이 육신의 옷을 입고 잠시 이 세상을 살다가 더
나은 곳으로 간다는 믿음,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악행을 저지르면 육신의 생명이
다한 후에는 그에 따라 영원 형벌을 받는다는 믿음, 다른 사람에게 한을 품게 하
면 그 사람이 원귀가 되어 자신에게도 똑같은 해를 입힐 수 있다는 믿음, 등 영
혼의 실재에 관한 많은 믿음들은 내세를 바라보며 현세의 고통을 위무 받을 수
있게 해주며, 공동체의 윤리적 장려 사항들과 금기 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본 논문은 영혼의 존재 유무를 과학적으로 밝혀보려는 시도도 아니며, 영혼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거창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도 없다. 단지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인간의 생령과 사령에 대한 믿음들과 그에 얽힌 풍습들을 소개하면서,
현대인들이 점차 잃어가고 있는 영혼에 대한 관념과 그 의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고자 한다.

II. 루마니아인들이 믿는 영혼과 사후

1. 영혼을 뜻하는 루마니아어 단어들

영혼을 의미하는 루마니아어의 단어들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수


플레트(suflet)’이다. 숨을 쉰다는 뜻의 동사 “a sufla”에서 온 말이다. 루마니아
인들은 사람의 숨결이 바로 영혼의 근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시 말해, 루마니아 인들에게 영혼은 곧 숨결이자 생명의 근원인 것이다. 성경
의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 넣어 생
기를 주셨다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루마니아 인들이 말하는 ‘수플레트’는 바
로 신이 인간에게 주신 그 숨결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수플레트’는 단순히
생명의 근원이 되는 영혼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본성처럼 흠이 없고 순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29

결한 영혼의 상태나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루마니아어 표현 중에서


‘om cu suflet mare’ 라는 말과 ‘om fără suflet’ 라는 말이 있다. 단순하게 직역
하면 전자는 ‘영혼이 큰 사람’, 후자는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오역이 된다. 그러
나 전자는 ‘이해심이 많고 남을 배려하는 온화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 후자는
‘무자비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suflet’는 단순히 생명으로서의 영
혼이 아니라 사랑, 자비, 온유함으로 충만한 마음씨를 지닌 영혼, 즉 신의 본성
을 간직한 영혼을 뜻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플레트’는 심성을 지닌 하나의 완전
한 인격체로서의 영혼을 뜻하기도 한다. ‘모든 정성을 다해’, ‘온 맘으로’, ‘신명
을 다 바쳐’ 라는 우리말 표현을 루마니아어로 번역할 때 가장 올바른 표현은
‘cu tot sufletul’이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 볼 때, 루마니아 사람들이 ‘수플레
트’라고 부르는 영혼은 생명과 마음과 인격의 통합체이자 성스러운 신성을 지닌
영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혼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로는 슬라브어에서 유래된 ‘두흐(duh)’가 있다.
‘두흐’는 인간의 영혼을 뜻하기도 하지만 창공을 떠다니는 무형의 기(氣)와 같
은 존재로서 자연물에 깃들어 있는 정령이나 초자연적인 기운 등을 뜻하는 경우
가 많다. 창세기 제 1장 2절에서 창세 직전에 깊은 흑암 위를 운행하던 하나님
의 영, 즉 성스러운 기운을 뜻하는 말로도 ‘두흐(Duh)’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
다. 인간의 영혼을 ‘두흐’로 표현하는 경우는 인격체로서의 영혼보다는 비물질적
인 성격의 기(氣)나 영태(靈態)로서의 영혼을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라틴어 spiritus에서 온 ‘스피리트(spirit)’라는 단어도 인간의 영혼을 의미한
다. 그러나 ‘스피리트’는 ‘물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정신’을 뜻하는 경우
가 훨씬 많다. ‘수플레트’가 생명과 감정으로서의 영혼을 의미한다면, ‘스피리트’
는 어떠한 활동을 지시하는 의지와 이성(理性)으로서의 영혼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한 ‘스피리트’는 마음속의 형상이 빚어낸 환영,
유령, 망령들을 뜻하기도 한다.

2. 고인의 영혼, ‘수플레툴 모르툴루이(Sufletul mortului)’

루마니아어로 ‘수플레툴 모르툴루이(sufletul mortului)’는 고인의 영혼을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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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고인의 영혼은 생명이 다한 직후 입을 통해 육체에서 벗어나지만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3일 동안, 즉 장례 기간 동안에는 살아생전 자신의 육체 주위를
지키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을 모두 듣는다고 한
다. 또한 고인의 영혼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자주 가 보던 모든
곳을 돌아본다고 믿는다. 루마니아의 장례 풍습 중에는 시신의 발목을 끈으로
묶어 놓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고인의 영혼이 쓸데없는 곳을 배회하지 않고
오직 익숙한 장소들에서 충분한 시간동안 머물면서 생전에 가졌던 추억을 오래
되새길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함이다.1)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이동 속도는 화살
보다도 몇 배나 빠르다고 한다. 때문에 육체에서 갓 벗어난 고인의 영혼은 빨라
진 자신의 걸음에 익숙하지 않아서 원하지 않게 아주 멀리까지 가버릴 수도 있
다고 믿는 것이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생명이 다한 육체에서 이미 한 번 밖으로 나온 영혼은 자
신의 육체에 돌아 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영혼이 자신의 시신에 되돌아오는
것은 신성한 대자연의 법칙을 깨는 것이며, 이러한 일은 오직 악령들의 조종을
받은 원귀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긴다. 이런 이유로 장례 기간 동안에는
시신의 머리맡이나 관을 지지하는 탁자의 밑에 조그만 옹기 항아리를 놓아둔다.
이 때 항아리는 주둥이가 너무 크지 않고 사람의 입 크기와 비슷한 것으로 선택
된다. 이것은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돌아보고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 온 고인의
영혼이 자신의 시신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옆에서, 마치 생전에 몸 안에 있을 때
처럼,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배려이다. 이 옹기 항아리는 발
인(發靷)시 상여가 문 밖을 지날 때 문지방 위에서 깨뜨려 버린다. 이제 집 안에
는 쉴 곳이 더 이상 없으니 이 세상에 머물지 말고 천상낙원 ‘라이(Rai)’로 떠날
준비를 하라는 의미와 함께 갇혀 있던 상태를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또한 세상에 대한 미련을 깨뜨려 버리고 더 좋은 곳으로 홀가분하게 떠나
가라는 의미도 가진다.
그러나 시신이 땅 속에 안치된 후에도 고인의 영혼은 40일 동안을 이 세상에
더 머문다고 한다. 예수가 부활 후 승천하기 까지 40일 간을 제자들과 함께 했
다는 성경의 이야기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도 고인의 영혼이 40일간을 세상에

1) Ghinoiu, Ion, 2004, 170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31

더 머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기간 중에 고인의 영혼은 집 밖 처마 밑에서


쉬기도 하고 자신의 무덤 근처를 산책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 이승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영혼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갈증과 허기를 느끼기 때문에, 40일 동
안은 문 밖이나 창문 밖에 깨끗한 물이 담긴 잔과 ‘콜락(colac)’이라고 불리는
빵을 놓아두어야 한다. 그리고 물에 젖은 흰 천을 놓아두기도 하는데, 이것은 영
혼이 그 천에 의지해서 쉬라는 의미이다. 더 이상 집안에서와 같이 옹기 항아리
는 놓지 않는다. 옹기 항아리는 몸에서 갓 벗어난 영혼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때까지 몸에 있을 때와 비슷한 환경에서 머물라는 뜻으로 놓아두는 것이고, 흰
천은 이미 새로운 상태에 익숙해진 영혼이 갇히지 않은 상태로 쉴 수 있도록 놓
아두는 것이다.
임종 후 40일 째 되는 날에는 고인의 지인들이 교회로 가서 ‘포마너
(Pomană)’, ‘파라스타스(parastas)’, ‘프라즈닉(Praznic)’, ‘파나기아(Panaghia)’
등으로 불리는 추도미사를 드린다. 이 추도 미사에는 우리나라의 제사와 마찬가
지로 고인의 영혼이 흠향(歆饗)할 수 있도록 좋은 음식을 차려 놓는다. 이 때 참
석한 모든 사람들은 고인에게 조금이라도 서운했던 것이 있더라도 모두 다 벗어
버리고 고인이 이 세상에서 저지른 모든 잘못을 용서 받게 대신 기도해 주어야
한다.2) 이러한 의식은 고인의 영혼이 이 세상에 대한 후회와 미련을 완전히 떨
쳐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응당 베풀
어야 하는 도리인 것이다.
고인의 영혼이 이 세상을 떠나 창공을 넘어 하늘의 낙원인 ‘라이(Rai)’에 도
달하기 위해서는 99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각각의 관문들에는 성스러운 영혼
들(기독교 성자들인 경우가 많다)과 ‘바메쉬 버즈두훌루이(Vameşii Văzduhului
; 영혼의 심판관들)’3)가 지키고 서서 영혼들이 살아생전에 지은 죄를 한 가지씩
심판을 한다. 죄 없는 영혼들은 성스러운 영혼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다음 관문
으로 인도된다. 그러나 죄 지은 영혼은 ‘바메쉬 버즈두훌루이’에 의해 단호하게
땅이나 지옥으로 내쳐진다. ‘바메쉬 버즈두훌루이’는 일종의 악령으로 털끝만한

2) Ghinoiu, Ion, 2004, 170


3) Olinescu, Marcel, 2004, 388-390 ; Vameşii Văzduhului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창공의 세
관원들’ 또는 ‘창공의 관문 심사자들’이지만 역할로 보면 ‘영혼의 심판관들’로 번역하는 것
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132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자비심도 없어서 죄가 있는 영혼이라면 누구든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또 이들은


재물을 무척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죄가 없는 영혼일지라도 만약 노잣돈이
없어서 하늘 통관비를 내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그 영혼을 통과 시키지 않고 땅
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식구들이 장례 때 망자에게 저승 가는 노잣돈을 마련
해 주지 않았거나 망자가 저승길에 노잣돈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하늘의 관문에
서 ‘바메쉬 버즈두훌루이’에게 통과비를 지불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망자의
영혼은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스트리고이(strigoi)’4)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장례 때에는 망자에게 노잣돈을 충분히 준비해 주고 혹여 망
자가 저승 여정에 노잣돈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노잣돈을 망자의 입속
에 정성껏 꽃아 주기도 하고, 노잣돈에 구멍을 뚫어 망자의 새끼손가락에 끼워
주기도 한다.5)
천상낙원 ‘라이’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에는 ‘푼테아 라이울루이(Puntea
Raiului : 낙원으로 가는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아래는 ‘이아드(Iad :
지옥)’의 입구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다. 이 다리는 깊은 어둠으로 둘러 싸여
있고 항상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어서 한 번만 발을 잘못 디디면 그 즉시 그 아
래에 있는 지옥의 입구로 떨어져 버린다. 순결한 영혼만이 이 다리 앞에서 빛의
날개를 받을 수 있다. 그 날개를 달아야만 이 다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으며,
날개를 받지 못한 영혼은 아무도 이 다리를 통과 할 수가 없다.6)
루마니아에서 고인의 영혼이 가게 된다는 하늘의 관문에 관한 믿음은 말로써
전해지기 보다는 수도원의 벽화들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다. 특히 ‘천국으로 향
하는 다리’나 ‘천국의 계단’은 종교적 가르침을 담은 벽화들의 강렬한 주제가 되
었다. 루마니아의 북동부 부코비나 지역의 수도원들에는 이러한 주제를 담은 프
레스코 벽화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특기한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부정한
자들의 얼굴은 대부분이 루마니아를 침략했던 터키나 타타르 인들의 모습을 띄
고 있고, 천국으로 향하는 순결한 영혼들의 얼굴은 전형적인 루마니아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4) ‘스트리고이(strigoi)’에 관한 내용은 본고의 III장 2절에서 설명


5) Ghinoiu, Ion, 2004, 198
6) Vulcănescu, Romulus, 1987, 350-351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33

루마니아 사람들은 고대 다치아 시대부터 잘목시스(zalmoxis) 신앙7)을 가지


고 자신들을 불멸의 존재로 여기며 살아 왔다. 이 후 기독교를 받아 들였으며,
자신들 스스로를 ‘신앙인(creştin)’이라고 불렀다. 그렇기에 살아생전에 동방정
교(Ortodox)의 모든 의식과 풍습을 지키며, 공동체를 위해 무난하게 살았으면
‘라이’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반면에 이교도들이나, 루마니아의 전통 풍
습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아드’로 떨어진다고 믿은 것이다.
루마니아의 장례 절차 중 하나인 ‘40일 포마너(Pomana de 40 de zile)’와 우
리나라의 장례 절차 중 불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 사십구재(四十九齋)8)는, 두
가지 모두, 영혼이 이승의 미련과 아쉬움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데에는 일정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에서는 고인의 영혼은 초상(初喪), 소상(小喪),
대상(大喪) 을 치르는 3년간 이승에 머물러 있다가 3년 탈상과 함께 저승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3년 탈상이 지나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천을 헤
매거나 이승에 남아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이 원귀가 되어 이승의 원한이 풀릴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믿어진다. 루마니아 사람들도 이와 비슷
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장례 후 40일이 지나면 보통 영혼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에 머무르지 않고 모두 ‘저승(lumea de dincolo)’으로 가지만 오직 ‘스트리고’,
‘모로이’, ‘루살리에’ 등의 원귀들만이 이 세상을 배회하는 것으로 믿는다.
루마니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고인의 모습이 자주 꿈에 나타나거나, ‘캅-데-
모아르테(cap-de moarte)’라고 불리는 나방이 집 안으로 자주 날아들면, 고인
의 영혼이 아직 이승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 있어 저승으로 가지 못했기 때문

7) 잘목시스(Zalmoxis) 신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졸고 (2007) “제토-다치아(Geto-Dacia)


의 잘목시스(Zalmoxis) 신앙과 불멸에 대한 관념”. 동유럽발칸학 제 9권 1호, 177-212
를 참조.
8)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칠칠일(七七日), 칠칠재(七七齋)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은 뒤 49일
동안은 중유(中有)또는 중음(中陰)이라 하며, 죽은 뒤에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기
간을 말한다. 사람이 죽으면 7일 마다 명부의 십왕들에게 심판을 받게 되고 그 7일이 일곱
번 되는 49일 동안에 다음 생을 받을 연이 정해진다고 한다. 이 동안에 망자의 죄를 소멸하
기 위하여 독경을 하거나 공양 등을 베풀고, 부처님께 예배하여 망자가 좋은 곳에 다시 태
어나기를 기원한다. 도교의 시왕(十王)사상과 불교의 윤회사상 그리고 유교의 조령숭배(祖
靈崇拜)사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제사의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장례의례로 볼 수 있다.
(출처 : 현대사회와 전통, 윤리, 도덕, 관혼상제 - http://www.ceremonial.co.kr)
134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이라고 여긴다. 고인의 영혼이 이승에 원한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승


의 생활이 너무 행복했다고 느끼기에 차마 아쉬워 저승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
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럴 때면, 특별히 ‘포마너’를 준비하고 제사 음식에 양
파와 마늘을 섞는다.9) 루마니아에서 양파와 마늘은 영적 존재들이라면 누구나
가 싫어하는 주술적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음식을 놓는 것은, 고인
의 영혼이 이 음식을 먹고 이승에 대한 정이 떨어져서 저승을 향해 발길을 돌리
도록 하려는 것이다.
루마니아의 ‘바메쉬 버즈두훌루이’와 같은 저승의 문지기나 저승의 심판관에
대한 믿음은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문화권에서나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
고 있다. 예를 들어, 도교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의 무속에서는 명부 십대왕10)
이 고인의 영혼을 심판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이집트 신화에서는 아누비스
(Anubis)11)가 같은 일을 맡고 있다. 저승의 심판관이 판결하는 보상과 형벌의
기준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는 문화권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각 문화권이 요구하는 윤리적 권장 사항들을 준수한 영혼에게는 영생과
지복을 약속했으며, 그렇지 않거나 사회적 금기 등을 어긴 영혼에게는 상상하기
도 힘든 잔혹한 형벌이 주어진다는 믿음은 공통적이다. 앞서 잠시 이야기한 바
와 같이 루마니아에서는 동방정교의 의식과 풍습을 따르던 사람이라면 고인이
된 후에 저승을 통과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고인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서 다시는 이승에 돌아오지 않

9) Pamfile, Tudor, 2006, 620-621


10)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살과 십대왕
이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열 명의 대왕, 즉 진광대왕
(秦廣王), 초강대왕(初江王), 송제대왕(宋帝王), 오관대왕(五官王), 염라대왕(閻羅大王),
변성대왕(變成王), 태산대왕(泰山王), 평등대왕(平等王), 도시대왕(都市王), 전륜대왕(轉
輪大王)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출처 : http://culturedic.daum.net)
11) 오시리스(Osiris)가 동생인 악의 신 세트(Seth)의 손에 살해되었을 때, 그 시체를 베로 감
아서 미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후로는 장의(葬儀)를 주관하는 신이 되었다. 아누비스
(Anubis)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을 감독하는 일이다. 아
누비스가 내린 판결은 토트(Thoth), 호루스(Horus), 오시리스(Osiris)가 받아들이기 때문
에 그의 결정은 다른 어떤 결정 보다 중요했다. 아누비스는 이시스(Isis) 여신과 동행하는
검은 표범 또는 개의 머리에, 피부가 검은 남자의 모습 또는 자칼의 머리를 한 남자의 모
습 등으로 표현된다. (심재훈 옮김 / Ions, Veronica (2003) 이집트 신화 , 서울 : 범우사
참조)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35

는다고 믿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인을 완전히 망각하는 것은 아니


다. 루마니아의 정교회 수도원이나 교회에 가면 건물 옆에 좌우 대칭형을 가진
작은 집모양의 구조물을 볼 수 있는데 어김없이 왼쪽에는 ‘비이(vii)’라는 팻말
이 붙어 있고 오른쪽에는 ‘모르치(morţi)’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이 구조물은
보통 양철로 되어 있는데, 그 안에 초를 밝혀 놓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비
이’는 살아 있는 사람을 뜻하며, ‘모르치’는 고인이 된 사람들을 뜻한다. 루마니
아 사람들은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이 장소로 와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나 고인
이 된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초를 밝혀 놓고 기도를 드린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기일(忌日)마다 제사를 지내지는 않지만, 돌아가신지 7년 까지는 매년 ‘파
라스타스(Parastas)’ 또는 ‘포마너(Pomană)’라고 불리는 추도미사를 지내며 고
인의 넋을 기린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나 루마니아나 고인의 영혼을 산 사
람과 마찬가지이신 한 분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에서는 고인의 영혼, 특히 조령(祖靈)은 하나
의 인격체로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조상신(祖上神)으로 숭배 된다는 점이다.
영혼이 천수를 다한 육체를 벗어나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갖은 능력들을 소유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상신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
로 가셨지만 주기적으로 이승을 방문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전능함으로 자손
들을 돌보고 복을 내려 줄 수도 있는 반면, 소홀한 대우를 받으면 도리어 자손들
에게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전통적인 동
방정교의 영향 때문에 조령이 조상신의 위치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단지 조령
들을 서운하게 하면 그 영혼들이 악귀로 변해 살아 있는 자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고 믿는 정도이다.

3. 영혼의 새, ‘퍼서레아 수플레툴루이(Păsărea-Sufletului)’

루마니아에는 묘지에 묘비 대신에 우리나라의 솟대와 비슷한 장식물을 세워


놓은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장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장
식이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이 새를 ‘영혼의 새’라는 의미를 지닌 ‘퍼서레아 수플
레툴루이(Păsărea-Sufletului)’라고 부른다. 고인의 무덤 곁에 이러한 장식물을
136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세워 두는 것은 크리스트교가 전파되기 훨씬 이전부터 내려오던 민간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12) 일반적으로 장대는 천상과 지상 그리고 지하를 연결하는
세계수(世界樹, Arbore cosmică)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새는 고인의 영혼을 상
징하거나 고인의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파견된 신의 사자를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들은 비단 루마니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류 공통의 믿음이다. 하늘로 비상하는 새들을 보고 옛 사람들이 새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여겨 왔다는 점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루마니아의 어떤 지역에서는 새가 날개를 접은 채 고개를 숙이고 땅
을 향해 하강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하늘로 비
상하기 위해 막 날개를 펴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기도 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늘로 비상하는 새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동경을 표현하고 있을 것이라고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땅을 향해 하강하는 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현
대인의 사고 체계 안에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원이 되
는 신화적 사고를 우리는 이미 오래 전에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크리스트교나
고등 종교들이 유입되기 훨씬 이전에, 지모신(地母神 ; Zeiţa Mama)을 숭배하
던 고대인들은 땅 밑을 지모신의 모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땅을 향해 하강하
는 새의 형상은 지모신의 모태를 향한 영원한 회귀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사용되
었다. 즉, 시신뿐만 아니라 영혼 역시 이승에 머물지 말고 지모신의 품 안으로
되돌아가라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자연계의 주기적 순
환에 자연스럽게 동참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고대
인들에게 지모신의 품 안은 어두운 지하 세계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상과
지하 그리고 천계를 모두 포함한 바로 대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하강하는 새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수를 상징하는 기둥 위에 놓여 있다
는 점이 이를 추론하게 해준다. 크리스트교나 중세 이후의 각종 신비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하는 지옥이고 하늘은 천국이라고 단정 짓는 극단적인 분할과
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하늘로 비상하는 새는 영혼이 하늘로 승천하라는 바람에서 만들어 놓은 것이

12) Vulcănescu, Romulus, 1987, 198-199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37

라고 보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게 일반적인 발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장대


위에 하늘로 비상하는 새가 장식된 장례 기둥은 훨씬 더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
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것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일종의
기념비(trofeu)로 보는 것이 옳다. 즉, 이승에 살면서 감옥 같은 육신에 갇혀 온
갖 고통을 맞보아야만 했던 영혼이 죽음을 통해 육신을 벗어나 비로소 자유롭게
해방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잘목시스’ 신을 믿던 고대 다치아(Dacia)
인들은 죽음이란 지복을 누리는 곳으로 가는 것이라 여겼다. 루마니아 발라드의
정수인 ‘미오리짜(Mioriţa)’13)의 주인공 ‘몰도베안 목동’은 죽음을 자연과의 결
혼으로 여기며 기꺼이 맞아들였다. 이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혼이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 것, 다시 말해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지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승리의 사건이었다.
‘영혼의 새’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그 의미가 변형되어 지금은 영혼들을 하
늘로 인도하는 수호천사와 비슷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루마니아 북부 마라무
레쉬(Maramureşi) 지방의 서푼짜(Săpânţa) 마을에는 ‘즐거운 묘지(Cimitir
Vesel)’라고 불리는 특별한 묘지가 있는데 그곳의 묘비들에서도 ‘영혼의 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곳의 묘비들은 모두가 파란색 바탕의 굵은 널빤지 형태를 하
고 있으며, 그 위에는 고인의 생전 여정이 한 장면의 익살스런 그림으로 압축되
어 있고 그림 밑에는 고인의 행적을 기록한 짧고 재미난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그 묘비들의 위쪽 부분에는 어김없이 양쪽으로 마주보며 좌우 대칭을 이
루는 새가 두 마리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새들은 마치 고인의 영혼을
좌우 양쪽에서 부축하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수를 누리다 생을 마감하신 분들의 묘비에 그려져 있는 새들
은 어딘지 모르게 밝고 활기차 보이는데 반해서, 사고나 병으로 돌아가신 분들
의 묘비에 그려져 있는 새들은 힘이 없어 보이고 우울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조각가 중의 한 명인 루마니아 출신의 콘스탄틴 브른
쿠쉬(Constantin Brâncuş 1876~1957)의 작품 중에서 새를 주제로 한 것들이

13) 이 민요는 젊은 몰도베안 목동이 자신을 시기한 브른체안 복동과 웅그레안 목동에 의해
살해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예언자적 능력을 지닌 어린양에게 이 사실을 듣고 피하라는
충고도 받지만, 죽음의 운명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죽음을 통해 자신은 자연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유언을 남긴다는 내용을 가진 민요이다. (졸고 2002, 85-111)
138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유독 많은데, 그 새들은 바로 루마니아의 시골 마을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


혼의 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브른쿠쉬의 작품세계와 ‘영혼의 새’에서 얻
은 예술적 영감에 대해서는 추후 개별 논문을 작성할 예정이다.

III. 루마니아의 원귀들

1. 처녀 귀신, ‘루살리에(Rusalie)’

‘루살리이(Rusalii ; 루살리에의 복수형)’14)라 불리는 신화적 존재는 우리나


라의 처녀 귀신과 비슷한 존재이다. 우리나라의 무속에서 한을 품고 죽은 처녀
귀신을 가장 무섭고 비위 맞추기 힘든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루마니아의
민간에서도 ‘루살리이’를 무척 위험한 존재로 여기며 두려워한다.
‘루살리이’는 특히 ‘루살리일롤 주간(Săptămâna Rusaliilor)’이라고 부르는 기
간 동안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루살리일롤 주간’은 부활절 이후 50일이 지난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지역
에 따라 명절 기간에 약간씩 차이는 있으나 보통 3일에서 일주일 정도 지속된
다.
‘루살리일롤 주간’은 고대에 행해졌던 죽은 조상의 무덤에 장미를 바치던 풍
습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원래 ‘루살리(Rusali)’라는 말은 장미의 날을 뜻하
는 라틴어 'Rosae'(Rosae > Rosalie > Rusali)에서 왔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이 기간은 공교롭게도 예수 승천일과 성령 강림절을 지키는 시기이기도 하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예수의 승천과 더불어 죽은 혼령들이 무덤 밖으로 나와 하늘
로 승천한다고 믿고 있다. 그 혼령들 중에서 자살로 죽은 여자나, 결혼 전에 사
고로 죽은 여자, 혼인 전에 임심했다가 죽은 여자들의 혼령은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창공을 맴돌다가 ‘루살리이’가 된다고 한다.
‘루살리이’가 이 기간에 활동하는 것은 성령이 오시기 직전이 악령들이 가장

14) cf. Ghinoiu, Ion, 2001, 161-162 / Niculae, Cornel-Dan, 2005 109-115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39

왕성히 활동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혹자는 ‘루살리이’를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루살카(Rusalka)’와 비슷한 존재로 보기도 한다.
‘루살리이’의 가장 큰 특징은 눈부시도록 화려한 춤을 춘다는데 있다. 이들은
여름밤에 숲속에서 둥그런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서로 춤 솜씨를 자랑한다. 때
론 땅 위에서 때론 허공 높이 솟아올라 아주 화려한 춤을 선보인다. 마치 나비가
나풀거리듯이 공중을 유유히 날아다니면서 춤을 춘다. 속설에 의하면, 이들이
춤을 추고 지나갔던 자리와 둘러 앉아 있던 자리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풀이
말라죽는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난 후에는 그 곳에 전에 보지 못했던 화려한
꽃들이 피어나는데, 소와 양들은 이 풀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루살리이’들이 춤추고 즐기던 자리를 잘못 밟고 지나가면
아주 심한 중병에 걸린다고도 한다. 그리고 ‘루살리이’와 눈이 마주친 남자들은
혼을 빼앗겨 미쳐버린다는 말도 있다. 루마니아 시골마을에서는 누군가가 숲에
서 일을 하고 돌아왔는데 이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심한 병에 걸리면 ‘루살리
이’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걸린 병을 ‘루아트 데 루살리(Luat de Rusalii :
루살리에게서 얻어왔다는 뜻)’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에는, 언덕 위에 혼자 오르는 것, 숲에서 잠을 자는 것, 밤에 우물
물을 길어 마시는 것 등이 금지 된다. 밤에 ‘루살리이’가 혹시 우물물을 마셨다
면 그 다음 처음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병에 걸리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
면, 새벽에 처음 우물물을 길어 마실 때는 돌이나 죽은 나무 가지 등을 우물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병이 사람에게 가지 않고 그 돌이나 나무한테 간다고
한다.
그리고 ‘루살리일롤 주간’에는 들판과 숲의 약초들을 채집하는 것도 금기시
한다. ‘루살리이’가 부정한 기운들을 마구 뿌리고 돌아다니는 기간이기 때문에
혹시 약초들에도 부정한 기운이 옮아서 사람들에게 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루살리이’가 이 기간 중에 하는 사악한 일들 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일반 가정집까지 찾아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루살리이’는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만 골라서 찾아온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행실이 항상
올바르다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루살리이’에 대한 두려움에
140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떨 수밖에 없다.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루살리이’가 집안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방지하려고 문 양쪽에 말머리15)를 한 쌍 걸어 놓고, ‘루살리이’를
퇴치하는 액막이 주술 노래를 부르는 일을 잊지 않는다.
‘루살리이’에게서 얻은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컬
루샤리(Căluşari)’16) 놀이이다. 루마니아 민간에서 행해지고 있는 ‘컬루샤리’ 놀
이는 고대의 입문 의례, 액막이, 사자와의 소통, 주술적 치유 등, 다양한 동기들
을 복합하고 있는 종합적 성격의 민속 의례이다. ‘컬루샤리’ 놀이의 기원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컬루쉬(căluş)’가 작은 말(馬)을 의미하기 때
문에 ‘컬루샤리’ 놀이는 고대에 말을 숭배하던 의례에서 기원한다는 학자도 있
고, 태양 숭배와 연관 짓는 학자들도 있다. ‘컬루샤리’에 입단하고자 하는 동네
총각들은 ‘루살리일롤’ 주간이 오기 일주일 전에 마을에서 정한 신성한 장소로
모인다. 이 장소는 마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강가나 호숫가 등
으슥한 물가 근처로 정해진다. 이곳에서 총각들은 ‘컬루샤리’에 입단하는 서약을
하고 ‘루살리일롤’ 기간 중에 지켜야 하는 여러 의식과 규약들을 준수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컬루샤리’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컬루샤
리’의 일원이 된 총각들은 ‘루살리일롤’ 명절 기간을 신성한 주간으로 여기고 깨
끗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이 일주일간의 명절 기간 중에 이들
은 성적 접촉을 엄격하게 금해야 하며, 마을의 전통 도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행동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들은 명절 기간이 끝나기 전과 그 후에라
도 ‘껄루샤리’ 입단 의례 시에 서약했던 맹세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
는 절대 안 되며, ‘껄루샤리’의 신비스러움을 영원히 간직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껄루샤리’는 보통 9~11명 정도로 구성되며 ‘껄루샤리’ 단체의 구성원은 집단
안에서 각각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 이중 ‘버따프(Vătaf : 대장)’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이 우두머리가 되어 집단을 이끈다. 그리고 ‘무툴(Mutul : 벙어리)’

15) 루마니아 사람들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태양이 혼자 하늘 길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끄는 수레에 타고 여행한다고 믿어 왔다. 때문에 말이라는 짐승은 태양
을 도와주는 성스러운 영물로 숭배되기도 하였다. 태양이 빛이 비추면 악령들이 사라진다
고 믿었으며, 그 태양을 끄는 성스러운 말이 나타나면 악령들이 두려움에 떤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도 루마니아에서는 악령들을 퇴치하는 주술 재료로 말의 머리나 그 형상을
사용하기도 한다. (cf. Olinescu, Marcel, 2004, 44-47)
16) cf. Niculae, Cornel-Dan, 2005, 116-121 / Vulcănescu, Romulus, 1987, 375-379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41

이라는 명칭을 가진 단원은 춤판이 진행되는 동안 남근 모양의 나무 봉을 지니


고 돌아다니면서 아주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무뚤’은 직접 춤을 추지는
않는다. 이 사람은 춤과 익살극이 진행되는 동안,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역을
맡은 춤꾼, 외설스런 행동을 보이는 역을 맡은 춤꾼, 그리고 실수하는 춤꾼들을
벌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무툴’은 사람들 사이로 돌아다니면서 여자들을 남근
모양의 나무 봉으로 내려치기도 하는데, 루마니아 마을 사람들은 ‘무툴’의 남근
봉에 맞은 여인들이 이내 임신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컬루샤리’
의 허리춤에 메여있는 마늘을 빼앗을 수 있는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 절대로 바
람을 피울 수 없게 된다고 여기기도 하였다. ‘루살리일롤’ 명절 기간, 그리고 의
식을 행하는 동안에 ‘컬루샤리’ 단원들은 특별한 민속의상과 복장을 갖춘다. 다
리에는 마구에 다는 작은 종을 동여매고, 손에는 작대기를 쥔다. 그리고 이들은
마늘과 향쑥(Pelin)으로 장식된 긴 장대 깃발을 앞세운다. 이는 고대로부터 마
늘과 향쑥이 악귀를 물리치는 힘을 가진 신성한 식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다. ‘컬루샤리’ 단원들의 특별한 복장과 치유 식물을 매단 장대 깃발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춤은 단순한 유희적 성격의 춤이 아니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
고 초자연적인 힘들을 방어하는 주술적 성격의 춤이다. 공중으로 껑충 뛰거나
무릎을 꿇은 자세로 땅을 기는 동작들을 하며 다리에 달린 종을 울리고, 허공으
로 막대기를 휘두르며, 마늘과 향쑥으로 치장한 장대 깃발 주위를 맴도는 이들
의 춤은 원래 병든 사람을 고치는 샤먼적인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원래 이들은
춤을 추면서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실제로 병자들을 고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의 춤과 익살극은 치유뿐 아니라 대지의 풍요와 여인들의 다산을 기원하는 제례
의식의 일종이기도 하다.
‘루살리에’에 관한 믿음과 ‘컬루샤리’ 놀이는 루마니아 민속학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연구의 대상이다. 본고는 그 주제가 영혼과 사후에 관한 것이기에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데에서 그치지만 차후 좀 더 세부적으로 연구해 볼 가
치가 있다.
142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2. 원귀(寃鬼), ‘스트리고이(Strigoi)’와 아기 귀신, ‘모로이(Moroi)’

보통 귀신이라 함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의 한을 풀지 못해서 쉽게 저승


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나쁜 존재로 변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는 산 사람의 영혼도 귀신이 될 수 있다고 믿
는다. ‘스트리고이(Strigoi)’17)라고 불리는 존재들이 바로 그러한 부류에 속한
다.
‘스트리고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망령으로 주로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타난다
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친척들을 역병에 걸리게 하거나 다치게 할 뿐 만 아니라
포도밭과 양봉장에 우박을 뿌리거나 지독한 가뭄이 지속되게 하는 등의 각종 재
앙을 불러오는 부정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원래부터가 악령이나 자
연의 정령이 아니고 보통 사람의 영혼이 변해서 된 존재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능력은 다른 악령들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악한
기운은 다른 악령들에 못지않다. 심하면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스트리고이’가 생기와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피를 빨기도 하는 것으로 이야기 된다.18) 피를 빨린 사람은 몸에 바늘
로 찌른 뒤에 생기는 것과 같은 멍 자국이 남고 점점 야위어 가는데 주술로 즉
시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스트리고이’는 스스로 창공이나 물 위를 날아다닐 수도 없고 오직 땅 위를 걸
어 다닐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먼 곳을 갈 때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피
로를 느끼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자신과 별 관계가 없는 먼
곳으로는 가지 않고, 자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이웃 사람들에게 주로 찾아가는

17) cf. Pamfile, Tudor 2006, 569-620 / Olinescu, Marcel, 2004 381-386 / Ghinoiu, Ion,
2001 183-184
18) 루마니아에서는 ‘스트리고이’가 피를 빤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발견
되고 있다. 그래서 ‘스트리고이’의 신화들이 흡혈귀 드라큘라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는 루마
니아에서가 아니고 세르비아 등지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루마니아에서 발견되는 흡혈귀
의 이야기는 거의 세르비아 땅에 살던 루마니아 사람들이 세르비아 사람들에게서 전해들
은 흡혈귀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 이야기에 접목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43

것이다. 혹여 먼 곳을 갈 일이 있으면, 빗자루나 나무 막대기를 타고 날아가고


물을 건널 때면 나무통을 타고 간다.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다른 악령들의
등에 업혀 먼 곳까지 갈 수도 있다.
그리고 ‘스트리고이’는 초승달이 뜨는 밤을 제일 좋아해서 이날은 모두 다 밖
으로 나온다고 한다. 만약 마땅하게 해칠만한 사람들을 찾지 못하면 동구 밖 어
딘가 그들이 아는 장소에서 서로 모인다. 보통은 한적한 무덤 근처이거나 사람
이 없는 버려진 양우리 등이다. 거기서 그들은 각자 가지고 온 빗자루, 도리깨,
삽 등을 가지고 싸움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 중 누군가가 ‘우스투로이 로
슈(Usturoi Roşu :빨간 마늘)’라고 외치면 싸움이 시작되고 ‘우스투로이 알브
(Usturoi alb : 하얀 마늘)이라고 외치면 싸움이 끝난다. 싸움을 할 때에는 “다
우, 다우, 다르 누 타이.(Dau. Dau, dar nu tai.)”라고 외치면서 싸우는데, 이 말
은 “때린다. 때리지만 자르지는 않는다.”라는 뜻이다. 만약 지나던 사람이 몰래
숨어서 “다우. 다우, 쉬 타이.(Dau. Dau şi tai.)”, 즉 “때린다. 때리고 자른다.”라
고 외치면 서로 싸우다가 다 죽게 된다고 한다.
‘스트리고이’는 밖에서만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집 안으로 들어오기
도 한다. 보통은 자신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자주 찾아오는데, 어떨 때는 단지
생전이 그리워서 일수도 있고, 어떨 때는 생전에 안 좋은 일을 겪은 것을 복수하
기 위해서 일수도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 사람들은 ‘스트리고이’가 무슨 목적으
로 찾아 왔던지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가 같은
곳에서 함께 하는 것은 순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집 안으로 ‘스트리고이’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법은 집안의 모든 틈새, 다시
말하면, 문, 창문, 굴뚝, 쪽문 등에 마늘 즙을 바르고 칼이나 날카로운 쇠붙이를
꽃아 놓는 주술 행위이다. 이 방법은 비단 ‘스트리고이’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악
령을 막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그런데 ‘스트리고이’는 집 안의
모든 문이 다 잠겨 있으면 가재도구들을 조종해 문을 열게 만들 수도 있다. ‘스
트리고이’가 “솥단지야 문을 열어 다오”하면 솥단지가 굴러와 문을 열고, “숟가
락아 문을 열어 다오”하면 숟가락이 튀어 와서 문을 연다는 식이다. 그러나 가재
도구들이 제자리에 잘 엎어져서 정돈되어 있으면 아무리 강한 ‘스트리고이’라도
조종할 수 없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야만 비로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144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때문에 루마니아에서는 식기들을 모두 바닥을 향해 엎어 놓으며, 가재도구들을


제 자리에 잘 정돈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이들 ‘스트리고이’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스트리고
이 비이(Strigoi vii)’라고 불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혼령이고 또 다른 종류는 ‘스
트리고이 모르치(Strigoi Morţi)’라고 불리는 죽은 자의 망령이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원래부터가 부정한 기운을 받고 태어난 사람의 생령이다. 반면에 누군
가가 원한을 품고 죽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까닭에 그 영혼이 하늘로 승
천하지 못하고 지상을 맴도는 원귀가 된 사령은 ‘스트리고이 모르치’로 불린다.
그러나 두 가지 존재 모두 사람들에게 비슷한 해악을 초래한다는 점에서는 구분
을 두지 않는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낮에는 살아 있는 보통 사람의 몸 안에 있다가 밤이 되어
그 사람이 잠들면 그 사람의 몸 밖으로 빠져나와 돌아다니는 사악한 혼령이다.
‘스트리고이 비이’의 몸이 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데오키(deochi)’19)라고
불리는 흉안(凶眼)의 해악을 초래한다고 한다. 흉안은 악마의 힘을 지닌 눈을
뜻하는데, 흉안을 지닌 사람은 단지 째려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나 가축이나 농작
물들에 저주를 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흉안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몸에
병이 나거나 집안의 재물들이 축나는 등 재수 없는 일들을 줄줄이 겪게 된다. 그
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흉안의 저주를 방지하거나 풀어 주기 위해서 부적 등을
몸에 지니거나 각종 주술을 행하고 있다. 그 중 ‘스트리고이’가 원인이 된 흉안
의 저주를 푸는 데에는 특별한 주술 노래와 함께 마늘과 양파를 이용한 주술 방
법이 많이 이용된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징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알아
볼 수 있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머리에 대망막(大網膜 : tichie, căiţă)20)을 덮어

19) cf. Niculae, Cornel-Dan, 2005, 144-170 / 박정오, 2007, 94-95


20) ‘스트리고이’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루마니아 사람들은 갓난아기가 다른 징
후 없이 단지 머리에 대망막을 쓰고 태어나는 경우에는 행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하기
도 한다. 대망막은 송사에서 이기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루마니아
사람들은 갓난아기의 대망막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나중에 송사를 치르는 경우가 있으면
꺼내어 몸에 지니게 한다. 또한 대망막은 흉안의 저주를 푸는 주술 재료로도 사용된다. 말
려 놓은 대망막을 한 조각 잘라서 마늘 즙에 담갔다가 꺼낸 다음 그 위에 침을 뱉고 흉안
의 저주에 걸린 아이의 배꼽 주위를 문질러 주면 흉안의 저주가 풀린다고 한다. (cf.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45

쓰고 몸에는 얇은 막을 걸치고 털이 복슬 하고 꼬리뼈가 남들보다 길면 나중에


‘스트리고이 비이’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이런 아기가 태어나는 원인은 아
기 엄마가 ‘스트리고아이커(Strigoaică : 여자 스트리고이)’이거나, 악마와 관계
를 맺어 임신이 되었거나, 임신 중에 악마가 침을 뱉어 놓은 부정한 물을 먹었거
나, 혹은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고 밤에 돌아다니다가 악마를 만났거나 했기 때
문이라고 믿는다. 악마가 자신이 쓰던 빨간 두건을 임산부에게 빌려주고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다시 받으러 오기로 했기 때문에 아기가 머리에 대망막을 쓰고
태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마니아에서는 대망막을 ‘악마의 모자’라는 뜻
의 ‘티키에 데 드락(tichie de drac)’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아이가 태어나면
산파는 대망막을 즉시 벗겨 주는 것이 좋다. 만약 그 갓난아기가 자신의 대망막
을 먹게 되면 어떠한 살풀이 주술도 소용이 없게 되고 무조건 ‘스트리고이 비이’
가 된다는 미신이 있기 믿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스트리고이 비이’를 구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머리 정수리 부분이 대머리인 사람, 마늘과 양파를 전혀 먹
지 않는 사람, 미사 드릴 때 사용하는 향(tămâie)을 피하는 사람, 11월 30일인
성 안드레이(Sf. Andrei)의 날에 집 밖 야외에서 자는 사람, 척추 끝의 꼬리뼈가
돌출되었고 그 부분에 털이 많은 사람, 일곱 자매, 혹은 일곱 형제 중 막내, 아빠
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 등도 ‘스트리고이 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
나 더 중요한 것은 루마니아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 하거나 다
른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 붓는 못된 사람들, 평소 행실이 올바르지 않은 여자들,
부모를 원망하는 아이들 등과 같이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트리고이’로 의심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사냥개, 늑대, 고양이, 쥐, 등으로도 변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가지고 태어난 대망막을 잘 간직하거나 즉시 태우지 않고 함
부로 아무데나 버리면 그것을 들짐승들이 먹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나중에 ‘스
트리고이 비이’가 그 들짐승으로 변신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도
모르게 늑대나 사냥개로 변신하는 경우에는 자신이 원래 사람이었다는 것을 완
전히 잊어버리고 가까운 일가친척들을 잡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Ciauşanu, Gh. F., 2005, 278, 286)


146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스트리고이 비이’가 짐승으로 변신하고 또 다시 사람으로 변신하는 방법은 재


주를 세 번 팔딱 팔딱 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민담에 많이 등장하는 여
우나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신하는 방법과도 상당히 비슷하다.
‘스트리고이 비이’인 사람도 자신이 위험한 들짐승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
실을 알고 있을 경우가 있다. ‘스트리고이 비이’도 평소에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
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신이 변해서 된 위험한 짐승을
피하는 방법을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 짐승으로 변한 ‘스트리고이’에게 잡혀 먹
히지 않으려면 끝이 날카로운 도구나 무기로 대항하여 그 짐승의 몸에 상처를
내고 피가 흐르게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한다.
늑대로 변할 수 있는 ‘스트리고이 비이’는 종종 달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신화적 존재인 ‘브르콜락(Vârcolac)’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리고 ‘스트리고이 비이’는 흉안의 저주를 통해 가축과 사람들에게 해를 가
져다 줄 뿐 아니라, 비를 싫어해서 가뭄을 불러 온다고도 알려져 있다. 혹시 가
뭄 뒤에 갑자기 우박이 내리면, ‘둠네제울(Dumnezeul : 하느님)’이 ‘스트리고이’
를 혼내주려고 내리는 것이라 한다. 또 햇볕이 있는 날에 비가 내리면 ‘스트리고
아이커’가 악마에게 시집을 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마을에 흉안의 저주에 걸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가축과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고, 가뭄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에는
‘스트리고이 비이’가 마을 어딘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럴 때면 우선 ‘스트리고이 비이’를 가려내기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한 다음 모두에게 마늘과 양파를 먹게 한다. ‘스트리고이’는 마늘과 양파
를 싫어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늘과 양파를 극구 먹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스
트리고이 비이’로 의심을 받게 된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밤에 주인의 몸이 잠들어 있을 때에만 그 몸을 떠나 영혼
상태로 떠돌아다니면서 갖은 해악을 범하다가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주인의 몸
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인이 잠 들어 있을 때 그 몸을 잠
자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놓고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게 눕혀 놓으면 ‘스트
리고이 비이’가 해 뜰 때 까지 주인의 몸을 찾아 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다가 마침
내 죽는다고 한다. 때문에 루마니아 마을에서는 ‘스트리고이’로 의심 받은 사람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47

이 잠 잘 때 위와 같이 해 본다. 그래서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은 ‘스트리고


이 비이’였던 것이고 죽지 않으면 ‘스트리고이 비이’였다는 의심이 풀리게 된다.
‘스트리고이 비이’는 죽으면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되기 때문에 ‘스트리고이 비
이’로 의심 받던 사람이 죽으면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특별
한 주술 의식을 행하여야 한다.
죽은 자의 원귀인 ‘스트리고이 모르치’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생겨난다. 앞
서 말했듯이, 죽은 자가 살아있을 때 ‘스트리고이 비이’였다면 그 망자의 영혼은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되어 무덤 밖으로 나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 외에도
여러 원인이 있는데 특히 억울하게 살해되었거나 원인불명의 죽음을 맞이한 사
람,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사람, 임종 시 돌봐주는 이 없이 객사한 사람 등도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이유는 이들이 살아생전에 원
한을 품어 신과 사람들을 싫어하게 되었고, 어떻게든지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려
는 마음을 죽어서까지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영혼들에게는 악마가 다가
가기가 그만큼 쉬워지는 것이다.
시신을 돌보지 않아 시신의 몸 위를 개나 고양이나 쥐가 지나간 경우, 운구
도중 관 밑으로 개나, 고양이나 쥐가 지나간 경우 등도 그 시신의 주인이 ‘스트
리고이 모르치’가 될 수 있다. 개나 고양이, 쥐 등은 악마가 모습을 바꾸고 죽은
이의 영혼을 꼬드겨 지상을 맴도는 원귀를 만들기 위해 찾아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부득이 시신을 혼자 있게 방치해 두어야 할 경우에는
시신의 위에 낫과 반지를 올려놓는다. 그러면 악령들이 접근하지 못해서 그 시
신의 주인이었던 혼령을 함부로 ‘스트리고이’로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시신이 있다면,
그 시신의 모든 구멍을 향이나 마늘 즙으로 막아 놓고 입관 시킨다. 코를 막아서
숨을 못 쉬게 하고, 귀를 막아서 악령들의 달콤한 유혹을 들을 수 없게 만들고,
눈을 막아서 악령들을 볼 수 없게 하고, 입을 막아서 악령들에게 식구나 친척들
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트리고이’가 되지 않고 편
히 잠들 수도 있다는 믿음에서이다. 그렇게 해 두면 혹여 ‘스트리고이’가 되어도
힘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한다고 한다.
앞서 말했지만, 루마니아에서는 마을에 흉흉한 일들이 자주 발생하면, 혹시
148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스트리고이’가 생기지 않았나 의심을 한다. 마을에 ‘스트리고이 비이’가 없는 것


으로 생각되면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찾아본다.
‘스트리고이 모르치’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마을의 공동묘지와 버려진 묘지들
로 가서 무덤 주변에 구멍이 있거나 땅이 파헤쳐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본다. 또
는 검은 수말이나 검은 수탉을 데리고 가서 어느 무덤에 멈추는지 알아본다.
그런 무덤이 있다면 땅을 파서 관을 꺼내 시체의 상태를 확인한다. 시체가 썩
지 않거나, 혈색이 좋거나, 관 밖으로 발이 삐져나왔으면 그 시체는 ‘스트리고이
모르치’라고 의심 받는다. 지금도 루마니아의 일부 마을들에서는 망자가 ‘스트리
고이 모르치‘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어린 아이가 죽으면 3년 후, 젊은이
가 죽으면 5년 후, 어른이 죽으면 7년 후에 관을 열어 보는 것이 관습으로 남아
있다. ‘스트리고이 모르치’라고 의심되는 망자의 시신에는 그것을 멸하는 여러
가지 특별한 주술 의식을 행한다. 이 주술 의식들은 지역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
이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많이 사용된다.
시신의 얼굴과 배와 다리를 가시나무 줄기로 묶은 뒤에 얼굴을 밑으로 향하
게 엎어 놓고 다시 관에 넣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일어서기도 힘들고 다시 관
밖으로 나오려고 해도 가시에 찔려서 나오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시신의 배꼽
과 심장에 말뚝을 꽃아 놓는 방법도 사용된다. 자작나무로 만든 굵고 긴 말뚝을
시신의 심장에 꽂으면 피가 7 스튼제니(stânjeni : 목재의 길이를 재는 단위, 약
1.96~2.23m) 정도나 치솟는데, 그러면 ‘스트리고이’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사멸한다고 한다. 시신을 관에 넣을 때 시신의 머리를 잘라서 발밑에 놓고 관을
닫는 방법도 자주 사용된다. 머리가 발밑에 있으면 일어서지 못 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무덤 주위에 구멍이 있으면 삼 부스러기로 무덤의 구멍을 모두 메운
다음 불을 붙이기도 한다. 이것은 불과 함께 ‘스트리고이’가 타 죽길 바라는 의
식이다.21)
‘스트리고이’를 죽이거나 방지하는 주술을 행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덤 근처
에 조 알갱이를 몇 움큼 흩뿌려 놓은 다음, “스트리고이야 한 해에 조 한 알씩만
먹고 아는 사람의 심장은 먹지 말거라” 라고 크게 외치기도 한다. 이것은 ‘스트
리고이’가 조 알갱이에 정신이 쏠려 사람들을 해하는 일을 할 시간이 없었으면

21) Pamfile, Tudor 2006, 577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49

하고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의식이다.


공교롭게도, 루마니아에서 ‘스트리고이 모르치’를 방지하는 풍습들은 우리나
라의 처녀귀신 즉 왕신을 예방하는 풍습들과 매우 유사한 점들이 많다. 우리나
라의 ‘왕신’과 루마니아의 ‘스트리고이’는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점도 유사
하다. 왕신이 나면 집안일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고, 심하면 식구들이 왕신의 해
로 인해 죽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지역에서는 한
번 왕신이 나면 왕신이 노하지 않도록 지극 정성으로 모시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죽은 처녀가 왕신이 되어 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
해서 여러 가지 방편을 사용하는 것이 우선된다. 처녀가 죽으면 왕신이 되어 나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시신의 옷섶에다가 많은 바늘을 꽃아 놓는다. 시신을
엎어 묻는 방법도 사용된다. 참깨 세 되를 관속에 넣거나 화장품과 책 등의 잡동
사니를 넣기도 한다. 옷섶에다가 바늘을 꽃아 두는 것은 처녀의 혼령이 바늘에
찔려 관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다. 시신을 엎어 묻는 것은
그렇게 하면 혼령이 일어나기 힘들 거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관 속에 참깨를
넣은 것은 혼령이 참깨 세는 일에 정신이 팔려 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잊어버리
게 하기 위함이다. 관 속에 화장품, 책 잡동사니를 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
다.22)
많은 루마니아 사람들이 ‘모로이(Moroi)’23)를 ‘스트리고이’와 동일한 존재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모로이’는 원래 아기 귀신을 뜻하는 말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례 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의 혼령, 미혼모인 산모가 몰래 버려서 죽게 된 아기
의 혼령, 고의적 낙태에 의해 사산된 아기의 혼령 등이 ‘모로이’가 된다고 한다.
‘모로이’는 엄마 젖이 그리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혼령이기에 항상 엄마 젖
을 빨기 위해 지상에서 울며 배회한다고 한다. 또한 밤에 엄마가 막 잠이 드려는
순간에 찾아와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가위 누른다고도 알려져 있다. ‘모
로이’에게 눌리면 한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며
식은땀만 비 오듯 흘릴 수밖에 없게 된다.
‘모로이’를 편히 잠들게 하려면 죽은 아기의 친엄마가 7년 동안 매년 1월 6일

22) 김태곤, 1993, 73


23) cf. Pamfile, Tudor 2006, 592-593 / Niculae, Cornel-Dan, 2005, 60-61
150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예수 세례 일에 일곱 곳의 수도원에서 성수를 얻어 그것을 입에 고이 담고 아기


의 무덤으로 가서 뱉어 주는 것으로 영혼을 씻겨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로이’가 ‘스트리고이 모르치’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모로이’의 해악은 ‘스
트리고이’와 별 차이가 없다.
‘스트리고이’에 관한 이야기들은 사회적 금기를 어기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악령들의 노예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거
나 극한 좌절을 겪은 사람 역시 악령들에게 쉽게 사로잡힌다는 사실도 일깨워주
고 있다. 그러나 ‘스트리고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이나
질병의 탓을 악령에게 조종 받는 사람이나 고인에게 전가시키려는 잘못된 태도
에서 비롯된다. ‘스트리고이’는 단지 악령들의 꼭두각시일 뿐, 그 스스로가 악
령은 아니라고 여겨지지만, 원래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악령들과 마찬가지의 취
급을 받는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대상은 신도, 자연도, 초자연적 존재도 아닌 바로 인간
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상실하고 원한을 맺으면 나는 그에게 악령의
꼭두각시로 비춰지고 그도 나에게 마찬가지로 비춰지는 것이다. 순전히 필자의
생각이지만, ‘스트리고이’를 퇴치하는 주술을 행하면서 상대방과 나의 과오를 자
성하고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던 사람은 아마 고통에서 해방 되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어떠한 주술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3. 죽은 자리를 지키는 혼령, ‘스타피에(Stafie)’

‘스타피에(Stafie)’24)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자기가 죽은 자리를 지키거나 자기


의 시신을 지키는 수호령으로 변한 존재이다. 특히 손수 집이나 건물을 지은 사
람이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을 경우에는 ‘스타피에’로 변해 죽어서도 자신이 만
든 집이나 건물을 돌본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집이나 장소에 악
령들이나 부정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방어해 주기도 하고, 집과

24) cf. Olinescu, Marcel, 2004, 387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51

건물이 무너지지 않게 보호해 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오래전 루


마니아 사람들은 집, 수도원, 다리 등을 지을 때면, 누군가가 ‘스타피에’가 되어
야 그 건축물이 무너지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건축 공들 사이
에는 건축물의 첫 벽돌이 올라가기 전에 누군가를 ‘스타피에’로 만들기 위해 그
림자를 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25) 사람이 서 있으면 갈대를 가지고 몰래
가서 그림자의 길이를 잰 후 그 길이만큼 갈대를 자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갈대
를 밑에 먼저 깐 다음 주춧돌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면 그림자를 도둑맞은 사람
은 40일이 지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건축물을 지키는 ‘스타피에’가
된다는 믿음이다. ‘스타피에’에 관한 믿음은 루마니아 구비문학의 진수 중 하나
인 명인 마놀레, Meşterul Manole 26)와도 연관이 깊다.
‘스타피에’도 ‘스트리고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혼령이 변한 존재이지만, 살
아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스트리고
이’와 확실하게 구별된다. ‘스타피에’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해악 중에 가장 나쁜
것은 단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정도이다. 현대에 와서 ‘스타피에’는 본래의

25) 루마니아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림자가 사람의 영혼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
가 없어지거나 불에 타게 되면 그 사람은 영혼을 빼앗겨 죽는다는 미신이 아직도 지켜지
고 있다. (cf. Ciauşanu, Gh. F., 2005, 138)
26) 운문으로 전해지는 명인 마놀레의 이야기 중 건축을 위해 산 사람이 희생된다는 내용이
담긴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문테니아 지방의 영주인 네그루-보더(Negru-Vodă)
가 석공 명인(名人)인 마놀레(Manole)를 비롯한 9명의 석공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
운 수도원을 만들라고 명령한다. 마놀레와 석공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도원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낮에 쌓아 올린 벽은 밤이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 이렇게 며
칠이 지난 어느날 명인 마놀레는 낮잠을 자면서 잠깐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은 계시의 꿈
이었다. 마놀레와 석공들의 아내들 중 누군가 한 명을 건축 중인 수도원의 벽 속에 넣고
돌을 쌓아 올리면 벽이 다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꿈이었다. 그 꿈을 믿기
로 한 마놀레와 다른 석공들은 다음날 아침 그들에게 음식을 가지고 처음으로 그곳에 도
착하는 사람을 희생시키기로 의견을 모으게 된다. 그런데, 처음으로 도착한 여자는 다름
아닌 명인 마놀레의 사랑스러운 아내 아나(Ana)였다. 절망에 빠진 마놀레는 신에게 기도
를 하여 그의 아내가 그곳에 도착하지 못하게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내리게 하지만 결국,
아나는 모든 역경을 이기고 수도원 건축 장소에 도착한다. 어쩔 수 없이 마놀레는 아나를
벽 옆으로 데려가 그냥 숨바꼭질 놀이를 하자고 하면서, 아나의 주위로 무거운 벽돌을 쌓
아 올린다. 아이를 가진 아나는 벽이 배를 누르자 아이를 걱정하면서 꺼내 달라고 애원하
지만 마놀레는 매정하게도 그녀의 몸 위로 벽돌을 계속 쌓아 올린다. 결국, 산 채로 벽에
갇혀 죽음을 맞이한 아나의 희생으로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수도원이 완성
된다. (cf. 박정오, 2007, 145-164)
152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의미를 거의 잃어버리고 그냥 유령이라는 의미만 가지게 되었다. 인간에게 특별


한 해를 끼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닌 평범한 유령을 총칭
하는 말로 바뀐 것이다.

IV. 맺는 말

이상에서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영, 혼, 귀 그리고 사후에 대한


믿음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루마니아에서는 본 논문에서 소개한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영혼관이 존재하며 그에 관련된 수많은 풍습들과
미신들이 지켜지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루마니아 시골 사람들은, 모
호하고 순간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여러 현상들에는 신비스러운 어떤 태초의 힘
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믿는 신화적 사고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영, 혼, 귀, 그
리고 사후의 세계에 관한 믿음에 있어서도 고대의 신화적 사고를 오롯이 계승하
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를 해 나갈 것
이다.
영혼에 관한 믿음과 그에 얽힌 민속들 그리고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현대인의
합리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거의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루마니아도 예외
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를 단지 전근대적인 저급한 사고의 산
물로 여기고 소홀히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영혼과 사후에 관한 믿음들은
해당 문화 공동체의 모든 일원들을 결속시키고, 그들의 윤리관과 가치관에 결정
적인 영향을 미치는 신성한 힘을 아직도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성
한 힘을 잃어버리면 인간의 존재는 여타 물질들과 차이가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53

참 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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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R
154 동유럽발칸학 제11권 2호

<Abstract>

Romanian traditional ideas about ‘human soul’ and ‘life after death’

Lee, Ho-Chang
Department of Romanian Studies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In this paper, I researched into Romanian traditional ideas about ‘human


soul’ and ‘life after death’. Beliefs and traditions in existence of soul and
ghost and the world of the dead are illogical and unscientific. In Romania
that is not exceptional. Romanians believe that after death human's flesh
return to dust but his soul reintegrate into mother nature ; someone who
accumulate evil conduct in life time, his soul goes to somewhere to receive
eternal punishment ; after death soul have to pass examinations of “Vameşii
văzduhului” in oder to enter the “Rai(paradise)” ; the souls of people who
have lasting regrets could become ghosts after death, etc.
But it is not important how we can prove if soul and ghost really exist
and belief about life after death could be verifiable. Also, it is not good to
ignore beliefs and traditions in existence of soul and ghost and the world
beyond the dead, because those beliefs still maintain sacred power which
have considerable influence on a village community's moral principles and
ethical sense of values. And this sacred power help us to keep taboos and to
promote ethical principles. If human beings lose this sacred power, maybe
we become worthless things.

Key words : Romania, idea about Human Soul, idea about Life after Death, idea
about Realms of Death, Vameşii Văzduhului, Parastas, Păsărea-
루마니아의 민간에 전승되는 영혼관과 사후관 155

Sufletului, Strigoi, Rusalie 27)

본 논문은 2009년 11월 18일에 투고되어 12월 18일에 심사완료하고 12월 19


일에 게재를 확정하였음.

이호창, 한국외국어대학교 루마니아어과, 루마니아문학박사,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산 89


(우)449-791, Tel: 031-330-4146 / e-mail : drleeh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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