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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은 존재하는가

1. 스피노자의 신, 자연의 의미와 생태 철학적 함의


전통적 세계관
첫째, 신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으로서 피조물을 초월한 존재이다.
둘째, 인간은 은총의 산물인 이성을 구비하고 있으므로 그렇지 못한 인간 바깥의 자연과 구분
된다.
셋째, 인간은 우월한 존재로서 열등한 자연을 이용하거나 정복하여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넷째, 인간은 사후에 물질의 세계인 지구를 떠나 영혼이 영원히 거주하는 천상으로 올라간다.
∴ 지구= 정거장, 인간은 피조물인 우주 자연과 구분되고, 은총에 의해 탄생한 특별한 존재이
므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여 스스로의 통치 아래에 두고 창조를 이끈다.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두 가지 접근
➀환경주의: 산업문명과 자본주의, 그리고 전통적인 서구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제
해결, 환경 관리주의 형태
➁생태주의: 문제를 위기로 인식하는 진보적 태도. 위기감이 고조되던 1970년대에 먼저 트로
이카의 형태로 출현했다. 심층 생태주의, 사회 생태주의(social ecology), 생태여성주의
(ecofeminism)
→ 위기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개념적이거나 사회적인 기원을 폭로하고 있고 문화 패러다임의
전환이나 혁명이 요구됨을 밝히고, 대안 제시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인(radical) 것으로 분류된
다.
이에 부응하는 철학이 스피노자의 철학

스피노자
* 정신과 물질은 서로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한 실체의 두 속성일 뿐.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두 개의 속성만 이해.
정신과 물질적 신체의 상태는 신에 의해 필연적으로 각각 그렇게 조성된 것인데, 서로 평행을
이루면서 대응하는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modes)일 뿐.

영향1) 근대에 조성된 인간중심의 기술적 세계관과 사회의 발전에 저항한 관점에 영향 줌.
형이상학적 일원론을 주창함으로써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붕괴시켰다. 생태주의 철학은 정
신을 지닌 인간이 물질 집합에 불과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서양 전통의 세계관을 비판하
면서 그 대안을 모색하였는데,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은 바로 그 비판적 논거를 제시한 것으로
활용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원론을 제시함으로써 그 대안을 제시한 것으로도 평가를 받을
수 있다(1997: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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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존재, 신이 어떤 무
엇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가 되려면,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다.” → 범신론

영향 2) 스피노자에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자연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이 성립하고 또 그런 이


유로 신은 자연의 어떤 존재에게도 편향적일 수 없다. 신은 자연에 내재하면서 자연 그 자체
와 동치인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적 존재는 신을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스피노자의
신은 정통 기독교의 신에게 귀속된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특성을 띠고 있지 않다. 이런 연유로
인간이 자연에서 특권적 지위를 갖는다고 볼 이유가 없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그 완전한 모
습이 파악될 수 없으므로 신비적인 영역으로 남겨진다. 자연에대한 재신성화(resacralization)
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바로 이런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심층 생태주의가 중시하는 것처럼 인
간은 숲과 강을 포함한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
자의 범신론은 인간에게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함으로써 환경위기 극복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다.

* 코나투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자연적 존재가 자기 존재를 보존하려는 경향성이나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수동적 정서에 이끌리
고 그에 따른 주관적 속견에 빠져서 예속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참된 인식의 결
핍과 정신적 무능력으로 인해서 비롯된다. 인간이 느끼는 희망과 공포, 슬픔이 모두 이런 것
에서 연유한 것이다.
반면 예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성이 인도하는 바에 따를 경우, 인간은 누구나 공포와 슬픔으
로부터 벗어나는 자유인이 된다.

영향 3) 코나투스는 각 존재가 자기 존재의 보전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을 갖는데, 이것이 모


든 생명체에게 적용한다고 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서 덕은 자기 보전의 경향에 부
응하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코나투스를 갖고 있으므로 어떤 존재도 덕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내재적 가치를 지닌 것이다.
서양의 주류 세계관은 자연이 도구적 가치(instrumental value)를 지닐 뿐이라고 간주하여
자연에 대한 수탈을 가속화한다. 이와 대립적인 자연의 가치는? 자연이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유지되어야 할 정당한 이유로 보는 관점, 자연의 내재적 가치
(intrinsic value)가 요구된 것이다.

스피노자의 세계관
첫째, 신은 자연을 초월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와 동일한 유일한 실체이다. 즉 신은
자연에 내재하고, 인간이 분류한 정신과 물질의 속성은 신을 구성하는 것의 일부일 뿐이다.
둘째, 인간은 나머지 자연적 존재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인간이 특권적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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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를 갖고 있다고 볼 이유가 없다.
셋째, 인간은 자연이 지닌 완전성의 전모를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자연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일부로서 나머지 자연
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
넷째, 자연은 초월적 영혼을 지닌 인간이 거쳐야 할 일시적 정거장이 아니라, 인간에게 영혼
을 갖도록 한 신이면서 또한 나머지 자연물의 관념을 아우르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
의 존재뿐만 아니라 자연의 보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스피노자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태 중심주의(ecocentrism)이다.

스피노자 자신도 인간의 경우 이성적 특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른 존재로 파


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 철학 전반에 관통하는 기조는 비교적 분명하다. 신으로
부를 수 있는 전체로서의 자연만이 유일한 실체이다. 인간과 자연적 존재는 자연 안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포함되는데, 모든 존재는 자기 존재를 보전하려는 경향성으로서 코나투스를 갖
고 있고, 그것에 부응하는 생명 활동이 덕이며, 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
연적 존재는 차별 없이 평등하다.
지구촌 시민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생태주의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데도 한계가 있
다. 서양 이외의 지역은 나름대로 자연 친화적인 종교나 문화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서양적 이성의 지평에서 설정된 범신론을 수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동아시아는 이미
자연 친화적인 전통사상과 문화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자연을 신으로 설정하는
수선을 떨 이유는 없다.

2. 보편자는 존재하는가?
한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수련 제자가 스승 윌리엄에게 고민에 빠져서 묻는다.

"사람을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 같은 위인들을 존경하는 것 말고


말입니다." 그러자 윌리엄이 반문한다.
"넌 사랑과 욕정을 혼동하는 것 아니냐?"

대화에서 ‘사랑’은 구체적인 사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문제


는, 그렇게 보편적인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없는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만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해 보인다는 점이다. 새로운 이야기처럼 꺼냈지만 플라톤의 이데
아론 이야기와 뭐가 다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뿌리
를 두고 있다. 보편자는 이데아이다. 예를 들어 빨강의 이데아는 빨간 모든 사물에 관련될 텐
데 어떻게 빨강의 이데아가 여러 사물에 있을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여러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데아라는 보편자는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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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 문제는 포르피리오스에 의해 제기되었고 보에티우스1)에 의해 답변이 이루어졌다. 거
의 500년 뒤 이 문제는 토론의 대상이 된 후, 수세기 동안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보편자
문제는 중세 사상가들에게 근본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은 인
간 사유의 대상과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을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은 개별적이고 무수한 반면, 정신 내에 있는 대상은 단일하고 보편적이
다. 예를 들어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나무', '인간'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단어들은 우
리의 감관에 의해 관찰하는 현실적으로 개별적인 나무나 인간을 가리킨다. 나무를 '본다'는 것
과 나무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개별적인 사물을 보고 있지만 보편자를 생각한다.
우리는 '참나무', '존'을 보고, 나무와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보편자가 우리 정신에 존재하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과 정신 외부에 있는 현실의 개별 대상들 사
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보편자는 자연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정신의 구상물인가?

* 세 가지 견해
1. 유명론(nominalism): nom(nomen/nominis)은 이름이란 뜻이다.2) 유명론은 '오직 이름
일 뿐이다'는 뜻이다. 무엇이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당연히 보편적인 것들이 이
름일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오컴) 이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
반 상식과 잘 맞는 생각일 것이다.
universalis post res; 보편이 뒤따른다. 흰 것' 이 있다고 하는 것은 흰 의자나 흰 테이블
같은 개체가 있는 것이지, 흰 것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
는 세 가지 신 적 존재-성부, 성자, 성신-의 결합인데, 사실은 이 세 가지 신적 존재의 공통
특징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universalis in rebus; 보편은 개체 속에 존재한다. 보편자는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개념
일 뿐이며, 개별적인 사물이 갖는 특이한 요인을 생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2. 실재론: 여기 있는 모든 개인이 바로 인간 아닌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실재론자에 해당되는데, 그들은 신이 세
상을 창조한 것이며, 개별자들은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죽으면 다시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말
한다. 그래서 이들은 "universalis ante res, 보편이 앞선다."고 말한다.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 "신은 완전한 존재다. 존재라는 속성이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존재는 존재를 속성으로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를 속성으로 갖는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1) 중세 초기의 가장 탁월한 철학자 중 한 명, 480~523?, 어려서 그리스어를 익혔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들이 중세 초기 서구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그는 철학을 매우 섬세한 눈을 가진 고
상한 여인에 비유하여, 철학이 인간의 본성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다. 보편
자는 개별자로부터 추상된다고 말한 보에티우스는 유나 종이 개별 사물 속에 존재하며 그것들이 정신
에 의해 사유될 때, 곧 보편자가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보편자는 사물 안에 내재하고 정신에 의해
사유된다.
2) 로스켈리누스(1050~1125), 개체만이 자연 내에 존재하며, 종과 유는 실제의 사물이 아니다. '인간'과
같은 용어는 어떤 사물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문자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은 독립적인 존재며, 공통된 것은 한 단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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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878~942, 성 마르틴 수도원 건립, 캉브레 주교)- 원죄설을 설명하기 위해. 아담과 이
브가 죄를 범했을 때, 이미 인간성의 보편적 실체가 영향을 받고 오염되었고 그 행위의 결과
를 물려받았다고 설명한다. 실재론이 부정되면 아담과 이브의 행위는 그들 자신에게 끝나게
되며, 원죄설의 설득력을 상실한다.
-기욤(1070~1121)- 존과 제인이 차이나는 것은 단지 그들의 본질이나 실체가 우연히 변형
된 성질에 기인하지만, '인간성'(보편자)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자 문제는 ‘보편자란 실재하는 사물인가 아닌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보


편자가 실재하는 사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장된 실재론자'로 불린다. 그들은 유나 종
이 실재 안에 존재하며 개체들은 이 보편자를 공유한다고 말한다. 보편자는 형상이나 이데아
며 개체와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보는 플라톤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보편자가 실재하며 구체적인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재한다는 입장에 왜
'과장된 실재론'이란 표현을 쓰는지 이해하는 것은 쉬울 것이다. 사실, 웬만큼 진지하게 생각
한다면 '빨간 사과'와 '빨강 그 자체'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
다. 그럼 과장된 실재론을 주장한 사람이 제시한 근거는 무엇일까? 그들은 생각의 질서와 존
재의 질서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일치는 적어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부
터 이어지는 사고방식이고 그 이전에 파르메니데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3. 온건 실재론: 유명론과 과장된 실재론의 양극단을 피하고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입장


이다. 토마스 아퀴나스3)라는 철학자가 이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온건 실재론의 근거를 다음
과 같이 말했다. 많은 경우 중간을 가는 사람이 가장 큰 지지를 얻는다. 아퀴나스 역시 중세
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다.

보편자는 그 자체적으로 이데아로서 존재한다. 모든 사물에서는 보편자가 본질로서 존재하


고, 이것이 개체로부터 추상화된 후에는 인간의 정신 안에 존재한다.

짧게 줄여 말하자면, 보편자가 실재 존재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사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 때 보편자가 존재하는 방식은 이데아와 본질로서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그 장소는 인간의 정신이 연결되는 특수한 곳이다. 이것이 아퀴나스의 주장이다. '인간다움'이
라는 개념은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속성을 추출해 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개별적인
사람들보다 먼저 존재할 수는 없다. 추상적 개념인 보편은 개체 뒤에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
간의 모습에 대한 관념을 신이 갖고 있지 않다면 인간을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이 갖는
관념은 모든 개별적인 사물이 존재하기 '전에' 존재해야 한다. 정리해 보면, 형상으로서 보편

3)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 중, 부동의 동자; 모든 피조물은 부모가 있고...계속 거슬러 올라


가면 다른 것을 만들어낸 원인이지만 스스로는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게 하는 최초의 원인이 곧 신이다. 이 창조주가 내린 은
총의 빛이 인간의 이성을 완성하는데, 이성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신으로 귀착하기 때문에 동일하
다. 철학자의 과제는 신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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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개별 속에 존재한다. 또 추상적 개념으로 보편은 개별 뒤에 존재한다. 그리고 신의 관념으
로서 보편은 개별보다 먼저 존재한다.

*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하게 많은 존재자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리이다. 짧게 표현
하자면 '간결성의 원리'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논의를 할 때, 오컴이 이 원리를 사
용하여 상대방의 주장을 비판했기 때문에 '오컴이 면도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컴은 왜 굳
이 이런 원리를 사용했을까?
그것은 논의를 할 때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해 노력해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철수와 나의
입장이 다른데 서로 어떤 것에 하의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철수는 영희가 착하다고 주
장하고 나는 영희가 나쁘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 서로의 입장애서 자기주장만을 해서는 결론
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러 어떻게 해야 할까? 보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원칙을 새워 그 원칙에
맞는 결론을 찾아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착한 사람이라면 결코 남을 해치는 사람이거나 위선
적인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원칙을 새우고 영희가 그러한지 보는 것이다. 이런 중립
적인 원칙을 가지고 입장 차이를 좁혀야 합의가 조금이라도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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