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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양 철 학 연 구 제 76 집

동양철학연구회 / 2013년 11월 28일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양 승 권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 강사)

Ⅰ. 서 론

Ⅱ. ‘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자기
Ⅲ. 老子와 칼 융의 사상에 나타난 원형적
상징체계
Ⅳ. 老子의 ‘道’와 융의 ‘자기’에 나타난 대극
의 합일

Ⅴ. ‘ ’의식/무의식으로의 물러남, 그 ‘치유’
적 효과

Ⅵ. 노자의 ‘ ’에 나타난 ‘자기 변형적’ 경계
Ⅶ. 결 론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1-35C-A00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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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요약>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방법에 따라 수행되었다. (1) 老子의



‘ ’와 칼 융(C. G. Jung)의 ‘자기’(Self)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초월적

구조다. 연구자는 노자의 ‘ ’ 개념이 융의 ‘무의식’ 개념에 대응될 수
있다고 보았다. 노자에게 ‘道’는 ‘無’의 원리적 차원이다. 노자가 볼 때
‘道’의 실재는 인식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내면 깊숙이 내재
되어 있는 이 도를 잘 인식하여 현실에서 쓰임새가 있도록 해야만 한다.
이 경지는 여러 원형 상징들에 의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노자가 언급
한 원형의 실례로는 谷神⋅食母⋅樸⋅嬰兒⋅轂 등이 있다. 이는 융이
말한 원형 상징인 어린이⋅老賢人⋅어머니인 大地⋅자연계의 대상과 수
레바퀴 등에 대응된다. 그리고 노자가 말한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는
융의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개념과 일맥이 상통한다.
융에 따르면 모든 정신현상은 서로 상반된 영역이 갈등과 통합의 과정
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 남성성과 여성성,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정신과 신체, 내향성과 외향성 등 무수한 상반된
영역 사이의 갈등과 통합 속에서 살아간다. 노자에게 있어서도 無欲과
有欲, 道와 도를 잃은 것, 선함과 불선함, 남성성과 여성성, 화와 복, 영
혼과 육체 등, 상반된 영역간의 대립과 종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노자
가 말한 ‘ 和光同塵’은 곧 ‘자기’ 실현의 기본자세다. 이 ‘화광동진’에는
상반된 범주의 공존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간섭현상에 의해 노자의
‘도’와 융의 ‘자기’는 정신 내에서 대극의 합일을 이루어낸다. (2) 무의식
으로의 ‘물러남’은 새로운 원천을 불러오는 태도다. 아울러 다시금 생기
를 되찾기 위한 ‘치유’를 통한 재생이다. 노자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이 道의 움직임”이라고 말한다. 인류사에서 보이는 수많은 전설이나 신
화 또한 이러한 원형적 세계로의 물러남이 잘 표현되어 있다. 융이 말한
‘자기’의 발견과 노자의 ‘ 復歸’는 같은 맥락을 지닌다. 융에 의하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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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다른 모든 원형들을 아우르는 중심적인 원형이다. 이 ‘자기’란 의



식과 무의식을 포함한 ‘전체성’이다. 노자의 ‘ ’ 또한 융의 시각으로 바
라보면 중심적 원형이다. 노자는 ‘ 有無相生’을 언급하면서, 현실세계와
그 현실을 낳게 한 근원적 세계를 아울러 중시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 자신’이 되게끔 하는 능력이 바로 자기원형의 기능이다. 이는
自然’이다. (3) 자기 자신의 원형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면 이기
노자의 ‘
적 욕망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원형성과 교류하고 조
화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인간형은 끊임없이 ‘자기 변형적’이 된다. 연구자는 이 연
구에서 노자 사상과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접목하여 새로운 방법론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에 대해 고
민해 보았다. 이 작업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스스로의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道 無
주제어: 노자, 칼 융, , 자기, 자아, , 무의식, 의식, 치유, 원형, 대
극, 여성성, 남성성, 아니마, 아니무스, 전체성, 분석심리학, 조
화, 어머니,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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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이 연구는 道家 사상이 현대 메타심리학(Metapsychology)의 정수인 ‘분
석심리학’(Analytical Psychology)과 매우 유사하다는 기본 전제로부터 출발
했다. 이를 기반으로 老子 사상이 지닌 마음의 치유를 위한 ‘자기 증폭
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천착했다. 구체적으로 이 연구 주제는
老子의 ‘道’의 지평과 칼 융(C. G. Jung)의 ‘자기’(Self) 개념이 서로 갈마
들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노자의 ‘道’에 대한 인식 노력이 융이 강조하
는 ‘자기실현’과 함께 현대 사회의 문맥에서 ‘치유’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내고자 했다.
노자 사상을 융의 분석심리학과 같은 현대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분석
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내재화되어 있는 동양적 사유를 객관적
으로 인식하고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요컨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사유하는 것이 아닌,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사유하려는 방식이다.
전반적으로 동양 사상과 융 분석심리학의 비교는 단지 융의 도가를
비롯한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을 소개하거나, 단선적인 비교에 머물러
온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도 주로 불교나 요가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노자의 도를 융의 ‘중심’에 관한 이론이나 전일적
全一的) 통일성인 ‘자기실현’의 관점과 접목시킨 연구는 발견되나, 상당
(
히 제한적이다. 연구자는 이 연구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도 노자의

‘ ’의식을 융의 ‘무의식(Unconsciousness)’에 직접적으로 대응시켜 연구를
진행했다.
본 논문의 주제와 관련한 선행연구 가운데 이부영의 저서 노자와 융 - <도
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은 본 연구의 취지에 가장 가까운 연구물
이다. 이 책은 노자에 나타난 핵심 개념들과 문장들을 융의 분석심리학
방법과 연결 지어 분석하였다. 이 책은 분석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노자
를 직접적이고도 종합적으로 분석한 거의 유일한 연구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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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사유방식을 ‘심리학’과 연계한 연구는 주


로 ‘심리학’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방향성이 동양 사상의 입장
으로부터 ‘심리학’ 분야로 접근하는 연구는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
서 본 연구와도 같이 기존의 방향성과 반대인 동양 사상의 관점에서 출
발하여 이를 ‘심리학’과 절충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의 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道 無
비록 노자의 ‘ ’나 ‘ ’ 개념이 주로 외적 자연 세계의 불가해한 운
동성을 표현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측면과 아울러 노자

의 ‘ ’의식이 존재자 내부의 불가해한 심리적 영역을 상징화한 공간적
표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필자는 현대적 방법론인 융의 ‘원형
론’에 입각하여 노자 텍스트의 사유 문법을 지금 현실에서 도입 가능한

구체적인 ‘치유적 기능’으로 재( ) 계열화하고자 했다.
오늘날 ‘치유(Healing)’란 개념은 의학으로부터 외연을 넓혀 인간의 내
면적 불행을 걷어내는 철학적⋅종교적⋅심리학적 함의를 지닌다. 이러
한 사고는 기본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하나로 바라보는 전제로부터 출발
한다. 본래 전통사회에서는 ‘치유’가 이러한 의미를 지녔지만, 근대사회
가 시작된 이후 ‘치유’는 주로 육체적인 병을 치료하는 의학적 맥락으로
만 생각했다. 오늘날은 인간의 정신적 위기가 한층 중요한 과제가 되었
다. 오늘날에 ‘치유’라는 개념은 근대사회 이후 일반화되어 온 이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전통사회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육
체와 정신을 하나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다시 회귀해 가고 있다. ‘치유’
란 ‘전체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여러 심리
적 문제를 자기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집단무의식과의 단절에서
찾는다. ‘치유’란 단절된 집단무의식을 의식의 영역에 다시금 불러와 통
합하는 작업이다. 노자는 만물을 먹여주는 어머니상( )이자 모든 대 像
상을 하나로 엮어주는 道를 강조한다. 그것은 자연의 원리이자 인간의
전체정신이기도 하다.
노자와 융은 모두 참혹하게 진행되던 전쟁 상황을 겪었다. 그리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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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원인을 모든 것을 통합하는 도 혹은 ‘전체정신’의 결여에서 찾았
다. 융은 동양 사상을 끌어들여 새로운 심리학, 즉 분석심리학을 탄생시
켰다. 융은 특히 노자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노자가 말한 도를
전체정신의 상징인 자기(Self)에 대응시켰다.1) 융은 말한다. “나는 ‘자기’
라는 표현을 동양철학에 맞추어 적용하였다.”2) 노자에 나타난 도의
심급에는 ‘무의식’적인 상징이 풍부하게 나오며, 현실과 자연 그대로의
원형적 차원간의 아이러니한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융의 분석심리
학은 원형( 原型; Archetype; 무의식의 내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기
(Self)’ 실현의 인식지형도를 새롭게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융은 이
‘자기’의 상징을 이야기할 때 노자의 도를 제시했다.
노자의 사유문법은 대극의 차이와 조화를 모두 강조하는 ‘유기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개인의 내면적 조화를 외부세계와의 조화와
연동시키려는 ‘분석심리학’의 목적과 잘 부합한다. 이러한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노자와 융의 습합은 이 양자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정신구조
를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노자의 ‘ ’의식이 융의 ‘무의식’과 ‘간주관적(Intersubjective)’으
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를 바탕으로 노자의 ‘ ’에 관련한 언설 道
들과 융의 ‘자기(Self)’ 개념을 직접적으로 대비했다. 나아가 이러한 양자
간의 개념적 소통이 현재적 상황에서 어떠한 ‘치유’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을지 논구해 보고자 했다.

1) 융은 동양의 고전들과 수행체험을 섭렵하면서 인류공동의 원초적 상징을 발


견함으로써 서양과 동양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었다(이부영, 노자와 융 -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한길사, 2012, 6쪽). 융은 노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심리학설을 설명하는 가운데 자주 인용하고 있고 노자의 도
를 그의 심리학의 핵심개념인 자기, 즉 전체정신의 상징으로 제시했다(같은
책, 11쪽).
2)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11",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82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4, 솔출판사, 2008, 1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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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無’의식과 ‘무의식’(Unconsciousness), 그리고 자기(Self)


융의老子를 비롯한 道家/道敎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도교 경전 太
乙金華宗旨를 접하면서 시작된다. 융은 태을금화종지를 참조의 틀로
삼아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상징’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갈무리하기 시
작한다. 이 책은 융이 자신의 ‘집단무의식’ 개념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그는 태을금화종지에 대한 해설인 「서양인을 위한 심리학
적 해설」에서 동양의 철학자들을 ‘상징’을 강조하는 심리학자들로 간주
한다. 융은 말한다. “우리 서양인은 도가적 사고방식을 종교적인 표현에
서 생겨난 환상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적인
지혜를 곧잘 인용부 안에 집어넣고 신앙과 미신이 교차하는 애매한 영
역으로 몰아넣기가 일쑤다.”3) 융은 처음에 ‘집단적 무의식’을 단지 종족
본능과 같은 것으로 여기다가 도가/도교 및 인도사상을 심도 있게 연구
하면서 부터는 특정한 어느 종족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심성으로서의
‘원형론’의 가설에 확신을 가지게 된다. 특히 도가/도교가 말하는 내면과
외면의 조화, 陰과 陽의 조화는 상반된 측면들이 ‘자기(self)’의 발전에 필
수적이라는 융의 생각을 확증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4) 융에 의하면 도
가사상은 정신적 요소들 간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필수적으로
다른 한쪽의 강조에 의해 보상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3) 칼 융, 「서양인을 위한 심리학적 해설」,  太乙金華宗旨(呂洞賓 저, 이윤희


외 옮김), 여강출판사, 1992, 226쪽.
4) 융은 중국사상과 인도의 힌두이즘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카
워드(Harold Coward)에 의하면, 중국의 도가 사상이 인도의 힌두이즘보다 융
의 ‘Self’ 개념 형성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다(Harold Coward, "taoism and Jung:
Synchronicity and The Self", Philosophy East & West, Volume 46-no 4,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6, p. 477). 특히 외향성과 내향성의 조화에 대한 융의 관심은

그를 직접적으로 'Tao'[ ]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게 했다(같은 논문, p.
478). 카워드에 따르면 융은 노자를 비롯한 도가 사상을 ‘형이상학’이 아닌
‘심리주의(Psychologism)’로 보았다(같은 논문, p. 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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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 ’와 융의 ‘자기’ 개념이 상동성( 相同性; homology)을 지닌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는 노자의 ‘ ’의식이 융의 ‘무의식(Unconsciousness)’의
지평과 맞닿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서양에서
‘무의식(Unconsciousness)’ 개념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프로이트(S. Freud)에
의해 학문적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이후 융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의
지평을 더욱 확장시킨다. 동양에서 이러한 무의식적 지반에 관한 고찰은
고대시기에 이미 老子나 莊子 텍스트를 중심으로 핵심적인 사유의 대상
이 되었다. 융은 노자의 ‘無’의식적 지평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은 생명의 원천이고 창조적 가능성을 지닌 영역이며 적극
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의식’으로 동화해야만 한다. 노자에게도 인간 내면
에 ‘스스로 그러하게’( 自然) 깃들어 있는 ‘도’의 원형적 본질은 비록 무엇
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의식화되어야 한다.
有 無
노자에 의하면 ‘ ’는 ‘ ’로부터 나온다.5) 많은 나라의 창세기에서는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고 말한다. 심리학 용어로 치환하자면, “태초에
무의식이 있었다.” 이 무의식으로부터 자아가 싹튼다.6) 노자는 무를 만
물 생성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융도 무의식을 인간 정신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노자는 현상적인 밝은 면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세계’

즉 ‘ ’의식적 요소들에 주목하면서, 자아가 이 ‘무’의식을 어떻게 인식
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것이 인식될 때 오는 인격의 변이에 초
점을 둔 것이다. 그런데 융에 의하면 ‘무의식’의 내용은 온전히 의식하
는 것이 매우 어렵다. 여기에는 ‘무의식’을 의식해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의식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식’이라는 역설이 존재한다.

이는 노자 1장에서 “ 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변함없는 절대적인 도
일 수 없다( 道可道非常道)”라고 말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분되지 않는 궁극적 원리는 인식
할 수 없다는 맥락과도 통한다. 노자에 의하면 도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5) “ 有生於無.”(老子 「40장」)
6) 이부영, 자기와 자기실현, 한길사, 2002,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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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도 듣지 못하며, 손으로 찾아 만져보려 해도 잡히는 것이 없다. 융에


의하면 우리는 무의식을 충분히 의식화해서 ‘자기(Self)’를 실현해야만 한

다. 노자에게도 우리는 ‘ ’의식을 자기 내면에 잘 체현해야만 한다.
융에게 ‘자기’(Self)’와 ‘자아’(Ego)는 변별된다. “자아는 무의식의 그때
그때의 의식에서의 대변자다. ‘자기’는 ‘자아’를 이미 형성하고 있다. 내
가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나 자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7) 융에게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통튼 전체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 자신’이 되게끔 하는 능력이 바로 ‘자기’의 기능이다.
노자가 말하는 이상적 인간형도 ‘스스로( )’ ‘그러하게( )’ 자신의 본성 自 然
에 충만되어 존재하는 ‘자기조직체계(self-organizing system)’를 함의한다.
노자가 말한 ‘스스로 그러함[자연]’이란 있는 그대로의 본성이다. 이를
융의 용어로 치환하면 ‘자기’(Self)다. 노자에게 이상적 인간형은 현상 세
계의 내재적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통찰을 수행하는 주체이고, ‘자
기’를 체현한 자다.
융에 의하면 ‘자아’는 사회의 외적 요구와 무의식의 내적 요구 사이에
서 끊임없이 유동한다. 노자의 언급에서도 사회적 차별상을 함의하고
있는 ‘자아’와 정신의 중심점인 ‘자기’와의 변별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것은 내가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능히 大我를 이룬다.” 이 8)

모순적 어법에서 앞의 ‘나’는 ‘자아’에, 뒤의 ‘大我’는 ‘자기’에 배정할


수 있다. 원문에서는 이 두 경우 모두 ‘私’로 표현되어 있으나, 노자 사
상의 전체적 함의와 인용 원문의 문맥으로 볼 때, 앞의 ‘사’는 사회적 억
압과 관련된 자아를 의미하고 뒤의 ‘사’는 우리 내면 심층에 깊숙이 내
재해 있는 자연 그대로의 ‘자기’를 의미한다. 노자 「13장」에 나오는
吾無身’에서 ‘身’도 사회적 억압과 관련된 자아를 의미한다. 莊子 「齊

7)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11",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259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4, 솔출판사, 2008, 242-243쪽.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老子 「7장」)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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物論」에 나오는 “나는 나를 잊고 있었다.”의 ‘吾喪我’도 같은 맥락이다.
융에 의하면 무의식 과정은 의식에 대하여 보상적 관계에 있다. 의식과
무의식은 상호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성의 인격적 표현, 즉 ‘자
기’가 되기 위해 서로 보완한다.
하지만 이 영역을 우리가 분명히 인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
이다. 이런 심리학적 작업을 수행하려면 부분이 자기를 감싸고 있는 전
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자기’는 우리를 뛰어넘는
상위의 크기로 남게 된다.9) ‘자기’는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본체, 우리
의 파악 능력을 넘어서는 초월적 구조다. 융은 ‘자기’란 하나의 가설로
서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가 그 속에 포함된 하나의 상( )일 것 같다고 像
말한다.10) 융은 또 말한다.

의식 또는 자아 인격과 … 무의식과의 합일은 두 요소를 포괄하는 새로운 인


격을 산출한다. … 새로운 인격은 결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제3의 인격이 아
니고 둘 다이다. 그 인격은 … ‘자기’라고 불러야 한다. … 자기는 … 대극 합일
의 화신으로서 융합의 상징이다. … 그것은 … 오직 상징적인 형상으로 표현된
다. … 이 상징들은 꿈과 저절로 떠오르는 환상에서 … 발견된다. ‘자기’는 …

자연의 조작을 통해서 생긴 하나의 상( ; Bild)이다. 그것도 자연의 상징으로서
모든 의식적 의도 너머에 있는 상이다.11)

무의식을 의식화해서 ‘자기’를 실현한다고 할 때, 이것은 무의식이 모


두 완전하게 의식화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의식은 말 그대
로 ‘무의식’이므로 항상 남아있는 그 무엇이 있다. 노자에게 도의 지평
도 인간이 체현해야만 할 본질적인 그 무엇이지만 항상 미지의 영역으
로 남아있다.12)

9)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7",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175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3, 솔출판사, 2004, 80쪽.
10) 이부영, 앞의 책, 54쪽.
11) 칼 융, 앞의 책, 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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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은 비어 있는 중앙은 원형의 존재를 가리키는 근거이며, 중국식으



로 표현해서 원형이란 ‘ ’의 ‘이름’일 뿐 ‘ ’ 그 자체는 아니라고 말한 道
다. 따라서 ‘자기’는 우리가 이것이라고 포착할 수 없는 인식 불가능한
본체를 표현하는 하나의 초공리적 구조다.

노자에 의하면, 비록 ‘ ’의식의 원리적 차원인 ‘ ’의 실재는 만물의 道
깊숙한 곳에 존재하면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 손으로 쳐 보아도 잡
히지 않는 형상이 없는 것”13)이고 ‘ 惚恍’하지만, 반드시 이 “옛 道(깊은
곳에 있는 근원의 도)를 잡아 현실세계를 주재”14)해 내야만 한다. 계속
해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道라 하는 것은 흐리멍덩하여 알기가 어렵다. 흐리멍덩하여 알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 흐림 속에서도 ‘형상’은 있다. … 깊고 으슥하지만 그 속에는 영묘한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다시 없이 순수하고 진실된 확실성이 있다. 그 (도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결코 떠난 일이 없다.15)


융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 ’ 경계의 ‘불가시적 가시성’이 서양에
서는 ‘의식성의 어두운 배후’라고 배척된데 비해 동양에서는 오히려 ‘더
높은 의식성’으로 이해된다.16)

12) 이부영, 노자와 융 -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한길사, 2012, 104-105


쪽.
융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자기’로서의 우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
는 것은 우리의 상상 능력을 능가한다. 이런 심리학적 작업을 수행하려면 부
분이 전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자기’는 항상 우리를 뛰어
넘는 상위의 크기로 남게 되는 것이다.”(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7",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175쪽. 그리
고 칼 융, 앞의 책, 81쪽)
13) “視之不見 搏之不得 老子… .”(  「14장」)
14) “執古之道, 以御今之有.”(老子 「14장」)
15)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老子 「21장」)
16) C. G. Jung, 김성관 옮김, 융 심리학과 동양종교, 1995, 16쪽.
168 東洋哲學硏究 第76輯

Ⅲ. 老子와 칼 융의 사상에 나타난 원형적 상징체계



노자의 ‘ ’를 ‘더 높은 의식성’과 ‘창조성’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우리가 갖는 사고의 본질적인 측면은 우리가 그 사고의 주인이 아
닌 그 사고를 받아들이는 그릇이라는 점에 있다. 뛰어난 착상들은 내
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본성이 원형적
‘상징’을 통하여 나에게 발현된 것이다. 융에 의하면 ‘상징’들은 단순
한 은유가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본능 충동이 어떤 이미지로
변형되어 나타난 ‘원형’(Archetype)이다.17) 원형은 개체로 하여금 자신이
주로 터 잡고 있던 현실의 공간을 반성적 자세로 평가하도록 함으로
써, 지금까지 자명한 현실로 인식한 사태들을 재음미하도록 한다. 융은
圓의 상징체계로부터 대립하는 모든 측면들을 지양한 하나의 통일체
를 발견하였다.
水 川谷⋅현빈(玄牝; 검은 암컷)⋅곡신(谷神; 골짜
노자가 언급한 물[ ]⋅
기 신)⋅母⋅식모(食母; 만물을 먹여주는 어머니)⋅박(樸; 다듬지 않은 통
나무)⋅嬰兒⋅탁약(槖籥; 풀무)⋅곡(轂; 바퀴[통]) 등은 이런 원형적 상징들
이다. 이는 융이 말한 원형의 실례, 즉 재생⋅죽음⋅어린아이⋅老賢人⋅어
머니인 대지⋅물[水]/기타 자연계의 대상(나무; 태양; 달; 바람; 강; 불
따위)과 수레바퀴 등에 상응한다. 이러한 원형들은 현실의 인위적 의식
과 우리 모두의 근원이 되는 ‘그 무엇’(노자에게는 道; 융에게는 집단무
의식)을 매개한다.

노자는 어린아이를 ‘ ’의식이 잘 발현된 존재로 묘사한다. 노자가 설

파하는 ‘ ’에 대한 의지는 곧 전체성에 대한 사랑이다.

참된 無爲의 덕을 안으로 깊이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비교해서 말


하자면 어린아이와 같다. … 어린아이는 뼈가 약하고 근육은 부드럽지만 잡는

17) Calvin S. Hall 외, 최현 옮김, 융 심리학 입문, 범우사, 1989, 147쪽.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69

힘은 강하다. 아직 남녀의 사랑을 알지 못하지만 그 음경은 발기하는데, 그것은


정기가 지극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데, 음양의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이다.18)

융도 말한다.

‘어린아이’는 무의식의 탄생으로서 무의식의 품에서 나오고, 인간 본성의 근


원에서 혹은 생동하는 본성에서 태어난다.19)

어린아이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 혹은 분화되기 이전의 전체성을 상징


한다. 각 문화권의 신화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어린아이라는 이미지는
전체정신이 되게 하는 치유의 상징이다. 노자와 융에게 어린아이라는
상징은 의식적⋅무의식적 인격요소들이 통합된 전체정신이다.
또한 노자와 융은 모두 ‘여성성’이라는 상징을 중시했다. 노자는 말
한다.

[형상은 없으나] 혼연히 일체가 된 무엇인가가 있어서, 천지 보다 먼저 생


겨났다. 그것은 소리가 없고 속이 비어 모양이 없으며, 홀로 서서 변하지 않
고, 사방으로 두루 돌며 지치지 않으니, 그것은 천하의 어머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20)

원형 상징으로서 ‘여성성’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기르는


능력이고, 자기의 무의식을 잘 응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무’라는 상징도 ‘여성성’과 관련이 깊다. 노자는 이를 ‘박( ; 다듬 樸
지 않은 통나무)’이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다듬

含德之厚, 比於赤子. …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䘒作, 精之至也. 終


18) “
日號而不嗄, 和之至也.”(老子 「55장」)
19)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170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2, 솔출판사, 2003, 260쪽.
20) “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老子
「25장」)
170 東洋哲學硏究 第76輯
지 않은 통나무’는 인간의 원형적인 사유 방식과 관련하여 여성적인 의
미로 사용되는 상징21)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구조와 관련하여 ‘ ’ 樸
의 함의를 엿볼 수 있는 사례도 발견된다. 대서양에 ‘마데이라(Madeira)’
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다. 이 이름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 섬을 발
견했을 당시 붙인 이름인데, 그 이유는 그 섬이 발견 당시에 숲으로 온
통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마데이라(Madeira)는 포르투갈어로 ‘목재’라
는 뜻이다. 이 마데이라는 ‘어머니’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것이다.22) 융에
게도 ‘생명의 나무’는 어머니의 상징이다.
또 하나의 원형적 상징으로 ‘배’는 영양학적으로 그리고 위생학적으
로 긍정적 가치가 부여된 최초의 ‘구멍’이다. 노자 「3장」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성인의 정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비게 하고, 그 ‘배’
를 채우게 하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강하게 한다.” 여기서 말
하는 배는 자연이고 원형적 힘을 불러오는 자리다. 도교나 禪宗에서는
가슴이 아니고 배로 숨 쉬어야 하며 의식을 배에 집중하라고 말하곤 한
다. 이 말은 무의식 영역에 도사리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힘을 끌어 와
야 한다는 의미다.
나아가 노자에게 ‘곡신( 谷神; 골짜기 신)’이라는 상징은 이쪽 지평과
저쪽 지평을 함께 아우르는 인격의 중심이고 ‘무’의식의 상징이다. 골짜
기는 항상 이쪽 산과 저쪽 산의 사이에 위치한다. 이 비어있는 공간은
이쪽 산과 저쪽 산을 모두 품는다. 융에게도 비어있는 골짜기는 ‘전체
성’ 및 무의식의 상징이자 상반된 가치들을 품어 안는 태도를 지칭한
다. 이쪽과 저쪽의 ‘사이’라는 지대는 복수의 ‘구체적 존재’를 전제한다.
예컨대 이것은 몸과 몸 사이, 너와 나 사이, 이 집과 저 집 사이 등 여
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이 일단 인식되면 상반된 여러 가
치들을 나의 의도에 따라 주도할 수 있다. ‘사이’는 각 개체를 인정하지

21) 프로이트, 임홍빈 외 옮김, 프로이트 전집 1 - 정신분석 강의 上, 열린


책들, 1999, 221쪽.
22) 같은 책, 226-227쪽.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71

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초월적 지평이다. 즉, 상반된 각 가치의 독


립성을 인정하면서, 이 가치와 저 가치를 함께 아우르는 폭넓은 자세를
불러온다.

특히 물[ ]이라는 사물은 노자의 ‘무’의식이나 융의 무의식에 매우
잘 대응되는 상징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있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23)

여기서는 물의 충만성을 통해 원형적 기층의 의미를 드러내고자 한


다. 분석심리학에서 물은 생명의 출발이고 무의식의 상징이다.

물은 가장 잘 알려진 무의식의 상징이다. 계곡에 있는 호수는 무의식이다.


神 谷神)’이며, 그 성질이 물과 같은 ‘도(道; Tao)’의 水龍
… 물은 ‘계곡의 신( ;
이며 陰에 흡수된 陽이다. 그러므로 물은 심리학적으로 무의식화된 정신이라
고 불린다.24)

23)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老子


. , . .”(  「8장」)

물이 아래로 내려가므로 에 가깝다는 노자의 언급은 우리 내면 깊숙이(융
의 표현을 빌자면 집단무의식의 영역) 깃들어 있는 도의 영역에 접근하는 태
도를 은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융의 다음의 심리분석 보고는 이를 이
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한 신학자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꾼다. 그는 언덕
에 서 있으며, 아래에는 깊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 안에는 어두운 호수가 있
다. 그가 … 물가에 가까이 가자 … 갑자기 돌풍이 물표면 위로 스쳐지나갔
다. … 이 꿈은 자연적인 상징의 내용을 보여준다. 꿈을 꾼 사람은 자기 자신
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 길은 그를 신비스러운 물에 이르게 한다. 그
리고 여기에서 베데스다 연못의 기적이 일어난다. 즉,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만지며, 그럼으로써 물은 치유의 힘을 갖게 된다. … 만약에 우리가 … 귀중
한 유산을 다시 찾으려면 항상 아래로 향해 내려가는 물의 길을 가야만 한
다.”(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17-18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 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2, 솔출판사, 2003, 122-124쪽)
24)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18-19쪽. 그리고 칼 융, 앞의 책, 125쪽.
172 東洋哲學硏究 第76輯
우리 안에 발견되지 않은 길은 심리적으로 살아 있는 것, 고전 중국 철학이
道라고 부르며 목표를 향해 계속 흘러가는 물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도 안에
있음은 완성, 전체성, 채워진 소명, 사물에 고유한 존재 의미의 시작이자 목표
이자 완전한 실현이다. 인격은 도다.25)

낮은 곳을 지향하는 물이라는 메타포는 집단적 무의식의 근원성을 가


리키며, 이러한 점에서 물도 모성적 함의를 띤다. “우리들의 의식은 스
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지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온 것이다.
그 의식은 어린이일 때 점차적으로 깨어나고, 매일 아침 무의식 상태의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난다. 의식은 매일 무의식의 모성적인 근원으로부
터 태어나는 어린아이 같다. … 물의 의미에 대한 명상은 정신의 근원,
바로 무의식 그 자체에로 하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26) 융에 따르면,
바다도 무의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원형이다.27) 노자도 말한다. “ 가 道
천하에 있는 것을 비유하자면, 시내나 골짜기의 물이 강이나 바다로 흘
러드는 것과 같다.”28)
노자가 말한 여러 원형 상징들 가운데 ‘바퀴’라는 원형상도 범세계적
인 보편적 원형을 보여주는 좋은 예증이다.

30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다. 그 비어 있는 공간에 수레의


유용성이 있다. … 존재하는 것이 사람에게 이익을 초래하는 것은 無, 즉 존재
하지 않으면서 은폐되어 있는 것의 유용성이 있기 때문이다.29)

25)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9, 솔


출판사, 2004, 33쪽.
26)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11",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569-570쪽. 그리고 칼 융, 같은 책, 216-217쪽.
27)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177-117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2, 솔출판사, 2003, 269쪽.
28)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老子
, .”(  「32장」)
29)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老子 「11장
」)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73

융에게 바퀴는 만다라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퀴는 전체성의 상징이며



그 중심은 텅 비어[ ]있다. 융은 말한다. “바퀴 … 는 … ‘순환과정’을
지칭한다. 그로써 한편으로는 상승과 하강, 예컨대 날아오르고 낙하하는
새다. … 바퀴는 또한 영원한 의지의 ‘인상’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본성,
또는 어머니의 정서다. … 바퀴는 … 만다라의 상징성에서 핵심을 나타
내고 있으며 … 전체성의 표상으로서 나타난다.”30)
기본적으로 볼 때 노자나 융에게 ‘바퀴’라는 상징은 ‘텅 비움’[ ]의 無
유용성을 나타낸다. 바퀴는 그 가운에 텅 빈 공간이 있어야 잘 굴러간
다. 노자에게 ‘텅 비움’이란 비움 자체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이라기보
다는, 새로운 요소를 다시 채우기 위해 비우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 ’의 지평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에서의 무가 아니라 “만물이 그것
에 의지해 생겨나는”31) 무한한 근원이다.

Ⅳ. 老子의 ‘道’와 융의 ‘자기(Self)'에 나타난 대극의 합일


노자 「28장」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남성적인 강함을 알고, 여성적인 유약을 지키면, 천하의 시내가 된다.32)

노자가 말하는 여성적 상징성과 남성적 상징성의 조화는 융의 ‘아니


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라는 개념적 장치와 잘 정합된다. 융에게
있어 아니마는 남성 속에 있는 여성성과의 조화를, 아니무스는 여성 속
에 있는 남성성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무의식의 인격화된 표현이다. 융
에 의하면 어떤 존재에게 있어 원형적 어머니의 내면적 이미지인 아니
마는 초월적인 전체성의 원형, 즉 ‘자기’(Self)로 향하고 있다.33)

30)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5, 솔


출판사, 2006, 208-211쪽.
31) “萬物恃之而生.”(老子 「34장」)
32) “知其雄, 守其雌, 爲天下谿.”(老子 「28장」)
174 東洋哲學硏究 第76輯
양성적인 근원적 존재는 문화가 발전하면서 인격의 통일, 즉 ‘자기’의 상징
이 된다. 대극의 갈등은 그 속에서 평온해진다. 그 근원적 존재는 처음부터 이
미 무의식적 전체성을 투사하면서 인간 존재의 자기실현이라는 멀고 먼 목표
로 향하고 있다. 인간의 전체성은 바로 의식적 인격과 무의식적 인격이 하나로
합일되어 이루어진다. 모든 개체가 남성적 유전자와 여성적 유전자를 동시에
갖고 창조되며 우세한 유전자로 성이 결정되듯이, 정신에서도 남성의 경우 의
식만이 남성의 징후로 드러나고, 무의식은 여성적 특징을 지닌다. 여성의 경우
는 그 반대다.34)

융에 따르면 모든 정신현상은 상반된 대극의 갈등과 통합의 과정 아


래에 놓여있다. 의식과 무의식, 남성성과 여성성,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정신과 신체, 높고 낮음, 내향과 외향, 합리와 비합리, 강함과 부드
러움, 어른과 아이 등 무수한 대극성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이 가운
데서 ‘자기’는 전체정신으로서 밝고 어두운 면을 그 안에 포괄하는 ‘하
나’다. 노자가 말한 ‘ 愚人之心’, ‘沌沌兮, ‘我獨若昏’, ‘我獨悶悶’ 35) 등은
모두 분별하는 마음을 초월한 통합의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들은 단지 ‘어두움’을 나타낸 말이 아니라 ‘ 知常曰明’ , ‘自知者明’
36) 37)


에서 말하는 ‘ ’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음의 두 대극 중 하나가 지나치게 억압되면 이 억압된 한 극은 자
신을 압도하게 된다. 도덕주의나 규범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자연 본능
은 무의식에 억압되어 비정상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노자는
말한다.

33)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8, 솔


출판사, 2006, 260쪽.
34)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275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2, 솔출판사, 2002, 266쪽.
35) 老子 「20장」.
36) 老子 「16장」.
37) 老子 「33장」.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75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세간에 통용되고 있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다움으로


여기는데, 이는[아름다움과 추함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모르는 것으로] 추한 것
일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세간에 통용되고 있는 선함을 선한 것이라고 여기는
데,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38)

노자의 이 언급은 두 대극의 차원을 모두 수용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마음을 지니라는 의미다. 王弼도 이 구절에 대한 설명에
서 “옳은 것과 그릇됨은 門이 같다. 그러므로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
다.”39)고 말하고 있다. 노자는 또 말한다.

大道가 없어지자 仁義가 나타났으며,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생겨났다. 40)

… [무위의] 도를 잃은 뒤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뒤에 仁이 있으며, 인을


잃은 뒤에 義가 있고, 의를 잃은 뒤에 禮가 있다. 41)

왕필은 바로 위 인용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무릇 禮가 시작되는


것은 … 겉 표면에서 갖추기를 따져 자잘한 일에 다투고 억누른다. 무릇
仁과 義는 내면으로부터 나온 것임에도, 그것을 행할 경우 도리어 거짓
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물며 바깥에서 꾸미기를 힘쓰는데 오래가겠는
가?”42) 노자는 이러한 도덕주의의 대극에 자연적 본능을 배정한다. 노자
는 세속적인 도덕적 가치에 대해 의문부호를 던진다. 하지만 이를 도덕
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노자의 언설은 도덕 자체
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도덕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자신의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상실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어떤 하나
의 가치 기준에 강박적 태도를 보이면 그로 인해 억압된 정신 에너지가

38)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老子 「2장」)


39) “是非同門. 故不可得而偏擧也.”
40) “大道廢有仁義, 智惠出有大僞.”(老子 「18장」)
41) “…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老子 「38장」)
42) “夫禮也所始, … 責備於表, 機微爭制. 夫仁義發於內, 爲之猶僞. 況務外飾而可
久乎.”
176 東洋哲學硏究 第76輯
비정상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 도덕 가치와 자연적 본능은 서로가 서로
를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라 대극의 융합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 융 또
한 과도한 도덕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도덕적인 성질을 잃게 한다고 말
한다. 도덕적 善에 지나치게 빠져 있기 때문에 악의 결과로 발전된다는
관점이다. 융에 의하면 무엇에 빠지는 것, 즉 중독이란, 그것이 알코올
중독이든, 약물중독이든, 이상주의의 중독이든 모두 나쁜 것이다.43) 일
방적으로 어떤 하나의 진리체계에 끊임없이 동일시되기를 원하면 ‘심혼’
의 발전이 정지된다.44) 융은 의식과 무의식이 조화롭게 병존해야만 한다
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내용의 합성과 원형의 의식 내용에
미치는 작용의 의식화가 의식적으로 수행되었을 때 그것은 심적 노력과
정신력 집중의 최고의 성취를 나타낸다.”45) 노자도 일관되게 의식적인
차원과 무의식적인 차원의 조화를 강조했다. 융은 말한다. “… 도덕적
대극의 정돈된 협력은 노자 철학이 가장 잘 보여주는 것처럼 동양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인정된 자연의 진리다.”46) 융은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
점을 ‘인격의 중심점’이라 표현했다. 이는 새로운 평형점이며 전체 인격
의 새로운 중심잡기로서 인격에 새롭고도 확고한 기반을 보장하는 어떤
잠재적인 중심이라는 것이다. 이를 융은 노자의 道의 상태와 비슷하다
고 언급하기도 한다. 융은 道를 중앙의 길, 만물의 창조적 중앙이라고
말한다.47)

43) A. Jaffé(herausgegeben), Erinnerungen, Träumen, Gedanken von C. G. Jung, 1962, pp.


331-332(이부영, 분석심리학 입문, 일조각, 2001, 363쪽에서 재인용).
44)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2, 솔
출판사, 2003, 87쪽.
45) 같은 책, 76쪽.
46)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9, Part I",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36쪽. 그리고 칼 융, 같은 책, 149쪽.
47)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7",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7, 219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3, 솔출판사, 2004, 138쪽.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77

노자는 無欲과 有欲, 묘(妙; 은미함)와 요(徼; 현상세계의 차별상), 道와


도를 잃은 것, 선함과 불선함, 남성성과 여성성, 화와 복, 영혼과 육체
등으로 상반된 영역들이 종합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반대 요
소들이 서로를 조건지우는 ‘절합( 節合; articulation)’의 관계로 원래 그들
이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도덕적 선이라는 ‘페르소
나’에 의하여 억제된 자연적 본능이 무의식에 과도하게 쌓이게 되면, 그
는 자기 자신의 전체성으로부터의 멀어지게 된다. 선과 악, 정신과 물질,
밝음과 어둠은 서로 공존하면서 전체를 이루어야만 한다. 노자 텍스트
는 「49장」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인은 “선한 자도 나는 선하다고 하고,
선하지 못한 자도 나는 또한 선하다고 한다.”
노자는 또 말한다.

道에 따라 행위를 하는 자는, 도이면 그 도와 한 가지가 되고, 德이면 그 덕


과 한 가지가 되며, 덕을 잃은 것이면 그 덕을 잃은 것과 한 가지가 된다.48)

선한 자는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며,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보탬이 된다. … 이를 가리켜 ‘요묘( 要妙; 심원한 진리)’라고 하는 것이다. 49)

융에 의하면 전체성이란 맑은 면만을 가져서는 안 되며, 그림자가 함


께 있어야만 한다. 노자가 말한 ‘화광동진( 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한다)’, ‘명도약매( 明道若昧;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음)’,
‘미명(微明; 은미한 밝은 지혜)’ 등은 곧 ‘자기’ 실현의 기본자세다. 이 과
정을 통해 노자적 인간형은 ‘자아’형태로 제한된 의식을 無我的인 ‘자
기’의 형식 속으로 돌파해 들어간다. 道의 대극성은 “그 상부는 밝지 않
고, 그 하부는 어둡지 않다.”50)라는 표현에도 잘 나타난다.

48) “從事於道者,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老子 「23장」)


49) “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 是謂要妙.”(老子 「27장」)
50) “其上不皦, 其下不昧.”(老子 「14장」)
“무의식은 단지 야생적이고 나쁠 뿐만 아니라 또한 최고의 선의 샘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고 밝기도 하다. … 무의식의 인격화된
178 東洋哲學硏究 第76輯
특히 ‘화광동진’에는 상반된 범주의 공존과 이 공존이 가능하게 하는
모질( 母質; Matrix)에 대한 불가해성이 잘 드러나 있다. 노자는 말한다.
道는 “만물의 빛을 부드럽게 하여 만물의 티끌과 나는 하나가 된다. 깊
은 곳에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51) 이런 간섭현상에 의해
노자의 道와 융의 ‘자기’는 정신 영역 내에서 상반된 두 대극적 요소들
로 하여금 약점을 보상하도록 한다. 노자의 도나 융의 ‘자기’는 정신 내
에서 불가지한 영역이면서도 구체적인 활동상으로 대극의 합일을 이루
어낸다. 융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식 또는 자아 인격과 아니마로서 인격화된 무의식과의 합일은 두 요소를


포괄하는 새로운 인격을 산출한다. ‘둘이었던 몸이 마치 하나처럼 된다!’ 새로
운 인격은 결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제3의 인격이 아니고 둘 다이다. 그 인격
은 … ‘자기’라고 불러야 한다. … 그것은 전체적 대극 합일의 화신으로서 융합
의 상징이다.52)

노자는 자연 그대로의 원형적 본능을 잘 선양해야만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리고 현상적인 차원[ ]이 규정할 수 없는 불가지한 심급

[ ]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53) 이 주장을 현대적인 맥락
에서 풀어보면 인위적인 혹은 도덕적인 태도와 자연적인 혹은 도덕을
초월한 태도가 자기 내면에 사이좋게 공존하도록 해야만 한다. 노자나
융이나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체현한 ‘조화로운’ 존재가 되어야만 정신
병리학적 위기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메르쿠리우스(Mercurius)는 바로 본질적으로 복합적인 모순된 이중 성질이며,


마귀, 거인, 짐승인 동시에 치료제 현자의 아들, 신의 지혜, 그리고 성령의 산
물이다.”(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
집 3, 솔출판사, 2004, 201-202)
51)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老子 「4장」)
52) 칼 융, 앞의 책, 287-288쪽.
53) 老子 「1장」 및 「2장」 참조.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79

Ⅴ. ‘無’의식/무의식으로의 물러남, 그 ‘치유’적 효과


무의식으로의 ‘물러남’은 새로운 원천을 불러오는 것을 통하여 다시
금 생기를 되찾는 ‘치유’를 통한 재생이다. 초연함을 통하여 ‘자기’의 깊

은 내면(‘ ’의식)에 침잠하면 새로운 경험이 정신 속에 들어와 현실 세
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새로운 균형을 도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자가 말하는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54)이라는 것, “돌
아감을 본다( 觀復)”
55)는 好還)” 는 것 등과 같은
것, “돌아감을 좋아한다( 56)

언급들은 이러한 의미를 잘 드러내 준다. 노자의 ‘無’의식으로의 물러남


이나 융의 ‘무의식’으로의 ‘퇴행’은 단지 여러 가지 문제로부터 도피하
라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혹은 ‘무의식’의 저장소에서 새로운 에너지
를 찾아낼 기회를 가지라는 뜻이다. 이 새로운 힘은 순수한 ‘자기’의식
을 확보하게 함과 동시에, 현실을 발전적으로 새롭게 재구성하게 하는
원천이 된다. 노자는 말한다.

텅 비움을 이루어내면 지극해지고, 고요함을 지켜내면 독실해진다.57)

노자의 이 언급에 대해 王弼도 “텅 비움을 이루어내면 사물이 지극하


고 독실해지고, 고요함을 지켜내면 사물이 진실 되고 바르게 된다는 말
이다.”58)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속적인 번잡함을 비워내 ‘자기’의 깊은

내면(‘ ’의식)에 고요하게 침잠하면, 혹은 ‘무의식’에 회귀하면, 현실은
나의 참모습을 북돋아주는 방향으로 재조정된다. 그런데 이 의미는 ‘죽
간본’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죽간본’을 보면 ‘ 守靜’[고요함을
54) “反者, 道之動.”(老子 「40장」)
55) 老子 「16장」.
56) 老子 「30장」.
57) “致虛極, 守靜篤.”(老子 「16장」)
58) “言致虛, 物之極篤, 守靜, 物之眞正也.”
180 東洋哲學硏究 第76輯
지켜냄]이 ‘ 守中’[가운데를 지켜냄]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中’은 어떤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반된 가치들을 모두 수용한 씩씩하고 폭넓은

자세를 가리킨다. 노자가 말하는 ‘ ’의식이나 융이 말하는 ‘무의식’으로
의 돌아감은 단지 돌아감 자체가 목적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원형적 힘
을 끌어와 사물을 독실하고 바르게 만들고자 하기 위해서다. ‘ ’의식이 無
나 ‘무의식’으로의 돌아감을 반복하는 것은 곧 새로운 탄생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과 같다. ‘ ’의식 및 ‘무의식’이라는 혼돈의 세계는 낡은 인
격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격을 창출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우리가 생활세계의 모순적 상황의 반영인 상반된 정신 영역 간의 갈
등(예컨대 의식적 차원과 무의식적 차원간의 갈등)을 없애고 균형을 이
루기 위해서는 일상으로부터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현실의 삶 속에
서 새로운 경험이 정신 속에 들어오면 기존의 정신적 균형은 무너지게
된다. 균형을 회복하려면 정기적으로 일상사에서 초연해지는 것이 바
람직하다고 융은 말한다.59) 융에 의하면 무의식은 개인적 및 종족적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포함한다. 융은 조화와 통합을 달성하는 수단으
로서 세상에 소란으로부터 벗어나 조용히 명상에 잠길 것을 강력히 권
고한다. 창조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무의식의 방대한 자원을 활용함으
로써 생기를 되찾고자 정기적으로 은거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밤에 수면 속으로 은거하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사
에 보이는 여러 재생의 전설은 이러한 ‘물러남’의 이점을 신화적인 형
태로 표현한 것이다.
융에 의하면, 정신이 완전히 열려 있으면 혼돈만 있을 뿐이고, 완전히
갇혀 있으면 정신은 침체된다.60) 따라서 이러한 ‘자기’로의 발전적 지향
성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구도를 지닌다. 노자의 ‘ 復歸’도 마찬가지의 맥
락이다.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곱셈(엔트로피의 확산)에서 어떤 숫자가
‘0’이외의 숫자를 만나면 자기 자신이 되거나 적분으로 퍼져나가지만,

59) Calvin S. Hall 외, 최현 옮김, 융 심리학 입문, 범우사, 1989, 73쪽.


60) 같은 책, 73쪽.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81


‘ ’의 숫자표기라고 볼 수 있는 ‘0’을 만나면 ‘ ’라는 근원적 자리로 無
돌아간다.61) 현상세계와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엔트로피의 확산과 ‘0’점
이라는 본질적 영역으로의 귀환은 서로 반복되어야만 한다.

노자의 ‘ ’의식의 치유적 기능도 근원적인 지평인 道를 인식하려는
노력에 의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려는 의도에서 찾을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자기’는 여타 모든 원형들을 아우르는 중심적인 원형이다. 노자

의 ‘ ’는 융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중심적 원형이다. 노자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 大象[道]을 잡고 천하에 가면, (그 어디를) 가도 해가 없다
.”62) 이 문장에서 ‘大象’을 글자 그대로 새겨 ‘거대한 코끼리’로 보아도
좋다는 주석이 있는 것을 보면, 비록 고대적 사례이긴 하지만 노자 또한
융과 마찬가지의 의도 아래 여러 원형들의 중심이 되는 근본적 원형을
정식화했다.
필자가 보기에 ‘의식’의 차원과 ‘무의식’의 차원을 함께 아우른 전체
성에 대한 담보는 “항상 無欲으로 그 묘(妙; 궁극적인 은미함)를 살피고
항상 有欲으로 그 요(徼; 현상세계)를 살핀다.” 라는 노자의 언설에서 63)

가장 적절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무욕’은 ‘無’의식적 지향에, ‘유욕’은


‘의식’적 지향에 각각 배당 가능하다. ‘有無相生’(有와 無는 서로를 낳
음)64)을 통해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노자는 현상세계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근원적 지평을 아울러 중시하였다. 노자는 이러한 논법을 통해 현
상세계의 언어적 규정을 통한 억압과 차별상을 강하게 비판한다. 언어
적 규정은 현실 속에 제한된 사태만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구멍’을 만들

61) 그리고 ‘0’은 ‘바퀴’라는 원형적 상징성과도 통한다. “중동과 아시아를 널리


여행한 떠돌이 학자 벤 에즈라(1092-1167) … 는 자신이 쓴  數書
(Book of
Number)에서 인도 셈법을 소개했다. 0에 대해서는 인도 기호에 따라 조그만
동그라미로 나타냈고, ‘바퀴’라는 뜻의 히브리어 ‘갈갈(galgal)’로 불렀다.”(존
無 眞空
배로, 무0진공( 0 ), 해나무, 2003, 72쪽)
62)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老子 「35장」)
63) “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老子 「1장」)
64) 老子 「2장」.
182 東洋哲學硏究 第76輯
며, 이 구멍은 우리의 응시 범위를 제한하도록 한다. 융 또한 다음과 같
이 말한다. “형태가 이루어지고 압인이 찍히고 가치가 정해지는 것은 …
진부한 일이다. … 형태가 이루어지고 명칭이 붙여짐으로써 심적인 존
재는 가치가 매겨진 주화 단위들로 분해된다.”65)
융에 의하면 일의적인 규정성을 넘어선 다양체의 인정이야말로 ‘자기
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66) 부분적 측면으로 분열된 존재가 아닌
합일된 인격만이 삶을 총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융은
노자의 道를 ‘전일성’ 그 자체로 이해하였다. 융에 의하면, 동양적 태도
에서 보면 대극 뒤에, 그리고 대극 속에 저 참된 현실이 있으며 이것이
전체를 인식하고 포괄한다.67) 같은 맥락에서 노자에 따르면 “도는 만물
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한다. [그것은] 善人의 보배인 동시에, 不善人이
자신을 보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68)
사람으로 하여금 ‘그 사람 자신’이 되게끔 하는 능력이 바로 자기원형
의 기능이며, 이는 노자의 ‘자연’이다. 이 ‘자기’는 모든 원형의 표현 형
태를 자신에게 끌어들여 조화시킨다.69) 융에 따르면 노자를 비롯한 동양
사상의 여러 ‘자기’ 달성을 위한 프로그램들은 서양인보다 쉽게 ‘자기’를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심급은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

65)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5, 솔


출판사, 2002, 105쪽.
66) 같은 책, 105쪽.
67) C.G. Jung, Trans. R. F. C. Hull, "The Collected Works of C.G. Jung volume 10",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0, 463쪽. 그리고 칼 융, 한국융연구원 C.G. 융 저
작 번역위원회 옮김, 융 기본 저작집 9, 솔출판사, 2004, 144-145쪽.
68) “ 道者, 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老子 「62장」)
69) 노자에게 ‘자기’라는 경계는 “현상 세계의 내재적 근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통찰을 수행하는 주체”(맹주만, 「칸트와 노자: 경계와 사이의 철학 - 사이의
존재론과 경계적 자아」, 칸트연구 24집, 한국칸트학회, 2009, 209쪽)이고, 노
자가 말한 ‘스스로 그러함[ 自然
]’이란 … 자연 그대로의 나다. 이는 분석심리
학 용어로 ‘자기’에 해당된다(이부영, 노자와 융 - 도덕경의 분석심리학적
해석, 한길사, 2012, 297쪽).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83

함으로써 활성화되는 것이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


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남에게 투영하여 괴롭히며, 노자에게도 ‘ ’의식을 無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필요하게 사회적 갈등 관계를 심화시킨다.
각 개체들이 자신들의 단점을 상대로부터 바라보게 되면서 개체 상호
간의 갈등 관계가 생겨난다. 노자에게서도 우리는 비슷한 관점을 찾을
수 있다. 노자에 의하면 도의 지평에서는 옳고 그름이 함께 동거한다. 이
관점을 기저에 깐 상태에서 노자는 각 단위들 간의 다툼을 조소한다. 불
가시적이면서 모든 심급을 포함한 도의 심층적 지평을 억압하면 그 억압
의 부산물들은 상대에게 투사되어 무의미한 다툼을 불러일으킨다. 하지
만 道와 ‘자기’의 문맥은 ‘자아’의 영역을 떠나 있기에, 각 개체들 간에
벌어지는 단가(單價)적 발상을 벗어나게 해준다. 노자는 말한다.

자기 몸을 천하와 같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 자기


몸을 천하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의탁할 수 있다.70)

내 처소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간다.71)

여기서 말하는 ‘자기 몸’이나 ‘내 처소’란 곧 융이 말하는 ‘자기’(Self)


의 심급과 통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통틀어진 인격인 ‘자기’를 잘 인
식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의 ‘자기’의 지평을 존중한다. 비록 상대가 스
스로의 ‘자기’의 지평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내면에는 분명히 ‘자기’의 지평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Ⅵ. 노자의 ‘道’에 나타난 ‘자기 변형적’ 경계



노자의 ‘ ’ 사유는 신화적 내용과 합리적 규격화가 범미주의적으로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새로운 영지주의( 靈知主意; Gnosticism)라는 측면이
70) “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老子 「13장」)
71) “不失其所者久.”(老子 「33장」)
184 東洋哲學硏究 第76輯
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본능적 에너지를 창출하는 근원적 원형들에
의해 지배받는 ‘어머니’상에 적응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유토
피아식 미래적 도안을 아울러 도모할 수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서로 상
응하는 거울과 같은 구조다.
대극의 합일을 표현하는 구체적인 상징체인 원형의 역할에 대해 융은
다음과 같이 비유하기도 한다. 자연물인 폭포는 그 자체로는 효용성이
없지만, 폭포의 물을 터빈과 연결시키면 전기가 발생한다. 자연에너지인
본능도 사회적 효용성을 위해서는 변용이 필요하며 이는 원형의 상징에
의해 이루어진다.72)
자기 자신의 원형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면 이기적 욕망으로부터 초월
한 상태에서 타인의 원형성과 교류함으로써 서로 간에 본능적 차원에서
의 조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노자에게 이 조화는 나의 마음 안의 배열
이 나의 마음 밖의 배열과 일치하는 경계이며, 이는 개체의 ‘치유’적 내
면공간을 더욱 확충시킨다. ‘분열’된 것은 하나로 ‘합치’시켰을 때 비로
소 치유된다는 관점은 노자나 융 모두에게 핵심적인 사상이다. 융의 관
점에 의하면 인간은 이미 ‘전체성’을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은 이 타고난 전체성을 최고도의 분화와 조화로 발전시켜
야 한다는 점에 있다. 노자에게 대극을 하나로 합치는 내재적 초월 기능
의 목적도 본래 잠재해 있던 전체성을 어떻게 개화시킬 것인가 하는 점
에 가로놓여 있다. 이러한 인간형은 ‘무한대’의 원형 공간을 끊임없이
활용하면서 ‘무한히’ ‘자기 변형적’(Self-transformation)인 경계를 창출할
수 있다. 융은 도가를 비롯한 동양사상이 이러한 전체성을 잘 담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자의 무위는 무한한 창조성이 흘러나오는 태도다. 노자는 말한다.
“도는 항상 하는 것이 없지만, 그러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73) 여기
서 무위란 그저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

72) Calvin S. Hall 외, 최현 옮김, 융 심리학 입문, 범우사, 1989, 97쪽.


73) “ 道常無爲而無不爲.”(老子 「37장」)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85

라, 도에 따라서 자연 그대로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융의 용


어로 치환해 표현해보면, ‘자기’에 충실한 태도다.
노자에게 인간 내면 속의 道라는 虛한 공간에는 원리에 대한 제거, 무
시간성, 합일성의 감정이라는 원형적인 특징적 징후가 존재한다. 이러한

‘ 의식’의 영역에서는 개별자들의 모든 구별이 사라진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궁극적 지점[ ]의 영향 속에 있다는 점에서 나와 타자는 ‘합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나와 세계의 합일은 도( )/자기(Self)의 총체성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함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보다 조
화된 생활을 할 수 있다. 자기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의식의
억압된 요소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영한다. 융에 의하면, 인간이 외적 세
계와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내면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
다. 또한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외적 세계의 여러
가지 조건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 둘 중 하나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노
자에게도 이러한 상반된 영역의 통합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노자는 현
有 無
상적 측면[ ]과 본질적 측면[ ]를 모두 중시한다. ‘유’와 ‘무’는 서로
가 서로를 낳는다.74) 이는 비유하자면, 우리가 걸어가는 행위와 비슷하
다. 우리가 걷기 위해서는 땅으로부터 허공으로 발을 들어 올려야 하고
無 有
[ ], 그 다음에 다시 땅에 발을 디뎌야만 한다[ ]. 이 동작의 교체와
연속에 의해 우리는 전진한다. 노자가 말한 道란 이러한 상호모순의 통
일이다. 도를 잘 체득한 마음은 허공과 땅, 다시 말해 본질세계와 현상
세계를 모두 즐긴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격리된 격실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열층 사이
에 존재하는 두 개의 정신공간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삼투성’에 의해 그
정신적 요소들이 서로 섞이면서 통하는 두 개의 용기라고 볼 수 있다.
‘자기’는 이 두 용기를 아우르는 위상학적인 정신적 범주다.

有無相生”(老子 「2장」)
74) “
186 東洋哲學硏究 第76輯

Ⅶ. 결 론
이 논문은 동양 사상 가운데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노자 사상을
‘분석 심리학’이라는 ‘현대 심리학’의 방법에 의해 새롭게 담아냄으로써,
인간관계의 올바른 거리 조절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심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자연적 ‘본능’의 건강한 승화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노자 사상과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접목하는 방법론 창출을
통해, 단순히 과거(전통)-현재(현실) 간의 이론적 소통 뿐 만이 아니라,
한 인격체 내부에 존재하는 지금의 사태 속에서의 ‘심리적 현실’(전통사
유 및 현재적 사태가 그 인격의 의식/무의식에서 혼합되어 있는 넓은
의미의 현실)에 주목하고자 했다. 우리가 전통 사상을 접하더라도 그것
은 지금의 문화심리구조에서 내면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내면화되어
야 할 전통 사상의 내용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구체적인
현실적 지형과 맞물려 어떻게 내면화되는지 그 총체적인 심리구조 자
체를 천착하는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노자 사상을 비롯
한 동양 사상이 지금의 현실 속에 보다 더 손쉽게 안착되도록 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즉, 우리의 내면에서 복류하고 있는 동양의 전통적 사
유와 어떤 방식의 ‘살림살이’를 도모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
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과잉된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필자가 이 논문에서 노자사상의 특징을 융의 심리학과 접목해 발전적
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이유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대적 정신 상황의
문제점들을 염두에 둔 것이다. 현실적인 문제에 매몰되어 힘겨운 사람
에게는 현실로부터 뒤로 물러나 고요하게 자기 내면에 침잠해보는 태도
가 필요하다. 노자는 정적( 靜寂)의 세계에 자신을 맡길 것을 권고한다.
자신의 무의식을 관조해 의식에 동화시키려하는 융의 문제의식은 노자
가 말한 ‘화광동진’과 통한다. 빛과 티끌을 같은 지층에 놓아두려 하는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87

‘화광동진’이란 맥락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일, 현상세계와 본질세계의


종합을 시사한다. 그리고 의식성의 과잉으로 인해 발생한 정신의 난맥
상을 무의식의 원질적 힘에 의해 치유하고자 하는 태도다.
현대사회는 내적인 적응이 없이는 외적인 적응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외적 적응에만 중점이 놓여 있다. 이 내적인 적응에

노자의 도( )에 관련한 언설들은 도움이 된다. 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실천은 타인들과의 조화를 함축한다. 넓은 의미의 자아, 즉 ‘자기’는 자
아와 타자를 포함해 모든 이원성을 통찰함으로써 자연에 따라서 행위한
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 내면에서 치유의 공간을 확장함과 아울러 나와
세계의 올바른 관계 정립, 다시 말해 자연환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접수일 : 2013.10.21 / 심사개시일 : 2013.10.28 / 게재확정일 : 201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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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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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東洋哲學硏究 第76輯

Abstract
Lao-tzu’s Internalized ‘Tao' category and C.G.Jung’s ‘Self’ / Yang, Seung
Gueon(Sungkyunkwan University)

This study was carried out in accordance with the following contents and
methods.
(1) Lao-tzu’s ‘truth’ and C.G.Jung’s ‘Self’ are the structures beyond our
understanding. The researcher considered that Lao-tzu’s ‘nothing’ concept can
correspond to Jung’s ‘unconsciousness’ concept. From the perspective of Lao-tzu,
the reality of ‘truth’ is impossible to be recognized. However, by well recognizing
this ‘truth’ inherent in deep inside us, we must use it in reality. This stage is
expressed metaphorically by several archetypal symbols. The archetype makes
people view the reality where they belong reflectively. The examples of the
archetype mentioned by Jung are children⋅old wise men⋅Mother Land⋅targets
of nature and wheels etc. (These correspond to Goksin (God of valley)⋅Sikmo
(Mother feeding all things)⋅Bak (Unfinished gourd)⋅Younga (Child)⋅Gok
(Wheel) etc. mentioned by Lao-tzu. These archetypical symbols set by Lao-tzu
have a relation with several symbols set by Jung. The harmony of femininity and
masculinity mentioned by Lao-tzu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concept of
Jung’s ‘Anima’ and ‘Animus.’ According to Jung, all mental phenomena are
formed through the course of the conflict and integration of the conflicting areas.
We live in conflict and integration between numerous conflicting areas such as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masculinity and femininity, good and evil,
beauty and ugliness, mind and body, introversion and extraversion etc. Also for
Lao-tzu, conflict and synthesis between conflicting areas are well described such as
unselfishness and selfishness), truth and losing truth, good and bad, masculinity
and femininity, misfortune and fortune, soul and body etc. ‘Hwagwangdongjin
((the life of a wise man) mingling with the world by hiding the light of his
wisdom and virtue)’ etc. mentioned by Lao-tzu are the basic attitude for ‘self’
老子의 내재화된 ‘道’ 범주와 칼 융(C.G.Jung)의 ‘자기(Self)’ 191

realization. The coexistence of the conflicting categories are well expressed in this
Hwagwangdongjin. And incomprehensibility on Matrix that enables this
coexistence is revealed well. With this interference phenomenon, Lao-tzu’s ‘truth’
and Jung’s ‘Self’ achieve the unity of the opposites. (2) ‘Retreat’ into
unconsciousness is the attitude that calls a new source. In addition, it is
regeneration through ‘healing’ to regain vitality again. Lao-tzu says, “Going back
to the origin is the movement of truth.” Such retreat to the archetypal world is
well expressed in numerous legends or myths shown in human history. The
discover of ‘self’ mentioned by Jung and ‘comeback’ of Lao-tzu have the same
context. According to Jung, ‘self’ is the central archetype that encompasses all
other archetypes. This ‘self’ is ‘allness’ including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From the Jung’s perspective, Lao-tzu’s ‘truth’ is also central
archetype. Mentioning ‘Yumusangsaeng (To be and not to be create each other)’,
Lao-tzu regarded both real world and the underlying world causing the reality as
important. The function of self-archetype is the ability that makes a man become
‘the man himself.’ This is Lao-tzu’s ‘nature (it exists as it is).’ (3) By
harmonizing with his own archetypical world, a person is able to transcend from
selfish desires. And he can exchange and harmonize with the archetype of others.
This helps to ‘heal’ our wounded inner side. Such human type is constantly
‘self-transformational.’ In this study, the researcher attempted to create a new
methodology by combining Lao-tzu’s thought and C.G.Jung’s analytic psychology.
And based on this, the researcher thought about the spiritual crisis of modern
men. By this work, the researcher finally reflected his own identity “not betraying
his own existence.”

Key words: Lao Tze, C.G.Jung, Tao, Self, Ego, Mu;Wu, Unconsciousness,
Consciousness, Cure, Archetype, Opposite Poles, Feminity,
Masculinity, Anima, Animus, Generalness, Analytic Psychology,
Harmony, Mother,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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