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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情’에서 ‘感情’으로

— 감정 관련 번역어의 수용과 사용*

서호철 1)

한글요약

감정·정서 같은 말은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서구 철학·심리학 저작들을 번역


하면서 만들어졌다. 이성·의지와 구별되는 감정 개념은 동아시아에서는 낯설었지
만, 전통적 어휘 가운데 그나마 비슷한 것으로는 情이나 七情을 들 수 있었다.
조선에는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 이래 학회지와 논설을 통해 심리학의 감정
개념이 소개되었다. 감각적·감정적 존재로서 개인의 자각은 중요한 근대화의 과
제로 부각되었고, 1910년대 이광수는 (感)情의 표현을 근대문학의 핵심으로 내세
웠다. 그러나 그런 정이란 무척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한편 󰡔황성신문󰡕
이래 신문 기사에서 감정은 한 국가나 민족이 타자에 대해 갖는 태도를 가리켜
사용되기도 했다. 감정·정서 등의 신조어가 여러 종류의 辭典에 확실히 등재되는
것은 192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문학과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감정의 개념은 각기 달랐고, 심리학적 정의나 사전적 의미와도 맞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감정·정서라는 말의 의미는 그런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다. 우리는
사전적 의미를 익혀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그 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움으
로써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 개념어의 연구에서 사용의 문제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서호철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 논문은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인의 가치변화와 감정양식’ 과제로 수행된 연구
임(AKSR2017 V01).

사회와 역사 제118집(2018년) 한국사회사학회 39


주요어
감정, 정서, 情, 七情, 개념어, 번역, 사용

1. 들어가며

감정 일반을 일컫는 감정·정서·감성 같은 말들은 대개 서구 철학·심


리학의 개념어를 번역한 것이다.1) 물론 感情·情緖 같은 어휘는 옛 문헌에
서도 찾아진다. ‘한문’에서는 각 글자가 고정된 품사로 쓰이지 않으니까 그
때의 感情은 감격한 정일 수도 있고 정을 느꼈다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뒤져보면 오늘날과 비슷한 용례도 없지 않을 것이다.2) 하지만 그런 예외적
인 용례에 큰 의미를 두기는 힘들다. 감각·감성·감수성·감정·기분·
동정·정감·정서·정열·情操 등은 모두 일본어에서 온 말로 꼽히는데
(이한섭, 2014), 여기서 일본어란 19세기 후반부터 서구 개념에 대한 번역
어로 고안된 이른바 ‘和製漢語’를 말한다. 비단 감정·정서뿐 아니라 기차·
전보·학교·회사 같은 근대 문물제도의 명칭들, 국가·민족에서부터 권
리·자유·자연·과학·철학에 이르는 여러 개념어들이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 일본이나, 가끔은 중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감정은 활동사진·도서관·무정부주의처럼 말과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이 거의 동시에 동아시아에 舶來한 경우는 아니다. 이성과 함께 감정은 인
간을 인간이게 하는 자질로, 인간이면 동서고금의 누구한테나 있다고 여겨

1) 읽기에 성가실 것 같아서 작은따옴표는 대폭 생략했다. 이하 인용문은 가급적 현대식 표기


로 고치고 한자도 한글로 바꾸었지만, 제목인 경우는 그대로 두었다. 굵은 글씨 강조는
모두 글쓴이가 덧붙인 것이다.
2) 손닿는 대로 󰡔조선왕조실록󰡕 DB에서 검색해보면, 임금의 은혜·下賜에 대해 신하들이
“정을 느낌(감격한 정)이 망극하다(感情罔極)”는 인사를 올린 기록이 몇 차례 있다(세종20.
4. 26. 등). “어찌 주군에게 보답하려는 감정이 없겠는가(豈不知報主感情)” 하는 것은 분명
히 명사적 용법인 듯하다(선조32. 2. 19). ‘情緖’도 여러 차례 보인다. 대개 事情의 실마리
(緖), 사건의 단서라는 뜻이지만, “늙은 나이에 근심을 겪게 되면 정서가 흔들리기 쉽다(老
來遭慼 情緖易撼)”는 등의 사례도 있다(영조24. 윤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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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왔다. 이성이나 감정이라는 말에 대응하는 실재가 과연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개의 언어는 기쁨·슬픔·분노·두려움 같은 개별감정을 가
리키는 어휘를 갖추고 있다.3) 추상적 어휘의 풍부함으로 말하자면 중국어
(한자)를 따라갈 언어도 없을 것이다. 또 동아시아에서 그런 개별감정들은
五蘊이니 七情이니 하는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체계 안에 자리매김되어 있었
다. 그런 가운데 굳이 감정·정서 같은 말이 번역어로 고안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서구發 근대의 도래 앞에서 동아시아인들의 세계 자체가 완전히
재구조화되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애초 번역어가 어떻게 고안되었는지는 우리한테는 별 의미 없는
물음이다. 서구와의 접촉과 근대화의 시도가 한 발 늦었던 조선에서는 중국
과, 압도적으로는 일본에서 고안된 번역어들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 조선
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되었다. 근대의 번역어가
동아시아의 공통된 文語인 한자로 造語되었다는 사정도 한몫을 했다.4) 서구
근대와 맞붙어서 어떻게 씨름했는가 하는 물음이 누가 일본에 더 먼저 유학
했거나 일본에서 나온 번역서를 먼저 읽었는지로 해소되는 것은 맥이 빠지
는 일이다. 하지만, 번역어의 기원이 아닌 계보, 즉 그렇게 도입된 개념어들
이 어떻게 이해/오해되었고 어떤 의미·용도의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다를 것 같다. 학문적 술어와 일상언어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권
리·민주주의 같은 개념어가 정치학이나 법학 서적의 번역·소개를 통해
도입되었다 해도, 그런 말들은 곧 학문의 영역을 벗어났다. 다른 쓰임이
거듭되면 다른 의미를 낳았을 것이다.

3) 20세기 후반의 인류학은 (자아와) 감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Reddy, 2016: 62-85). 그러나 문화마다 개별감정을 가리키는 어휘의 유
무나 分化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해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 자체는 인간에게 보편
적인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4) 메이지 초기 일본의 번역어는 대개 한자로 造語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문장 역시 한자와
카타카나가 뒤섞인 訓讀文(‘文語體’)이었다(齋藤希史, 2010: 128-131). 그러나 情을 ‘なさけ’
라고 훈독할지 ‘じょう(당시 표기로는 じゃう)’라고 음독할지는 한국어의 고민은 아니었
다. 感情은 일본어나 중국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식 한자음으로 ‘감정’이라고 읽으면
그뿐이었다. 取締(とりしま)り나 請負(うけお)い 같은 일본어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었
고, 佛蘭西 같은 音借도 ‘후랑스’가 아니라 ‘불란서’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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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감정에 관한 몇 가지 번역어가 도입되어 한국어로 정착되어
간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희로애락이나 공포·우울·비
애 같은 개별감정이 아니라 그것들을 총칭하는 유개념, 특히 感情·情緖의
사용, 그리고 그에 따른 전통의 情·七情 같은 개념의 변화다. 일상의 구어
는 접할 길이 없지만, 당시의 신문·잡지와 몇몇 문학작품, 자국어·이중어
(對譯) 사전 등을 주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5) 학문적 논술, 개인의 내면
서술, 정치·경제·사회현상에 관한 보도는 이런 개념/어휘의 각기 다른
사용을 보여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그 어휘를 공인·합법
화할 사전은 수용·사용의 또 다른 중요한 영역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일본에서 서구의 감정 관련 어휘들이 어떤 말로 번역되었는지도 힘닿
는 범위까지는 살펴보았다.

2. 메이지기의 和制漢語로서의 感情·情緖

Ⅰ. 메이지기 서구 철학·심리학의 번역

동아시아와 서구의 만남은 16세기 후반 이래 중국에서 이루어진 ‘西學’과


일본의 ‘蘭學’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런 접촉은 청과 일본 국가가 통제
하는 아주 제한된 통로와 범위 안에서만 가능했다. 지동설·태양력·외과
의학·천주교 등이 번역되어 일부 지식층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서학이나
난학은 동아시아의 기존 세계관에 대한 보완물이거나 단순한 기예로 평가

5) 신문자료는 한국언론진흥재단(카인즈)의 뉴스라이브러리(고신문)를 주로 활용했다. 일부


잡지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국립중앙도서관의 디지털화 원문으로 이용
할 수 있다. 이중어사전 상당수는 황호덕·이상현에 의해 박문사에서, 식민지기의 字典·
玉 은 한국한자연구소 한국역대자전총서로 도서출판3에서 영인되었다. 일본의 근대 사전
류 중 󰡔和英語林集成󰡕 각판은 일본 明治學院大學圖書館 デジタルアーカイブス, 󰡔英和對譯袖
珍辞書󰡕 각판은 早稻田大學 古典籍總合データベース, 나머지는 (日本)國立國會圖書館 デ
ジタルコレクション의 원문자료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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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되었다. 사정이 급변한 것은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이 본격화하면서였다. 아편전쟁 이래 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고,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尊王攘夷’에서 ‘脫亞入歐’로 돌아섰다. 서구 근대 문
명을 배우고 수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 되었다. 이후 본격화된
번역은 몇몇 서구어 텍스트를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동아시아를 새로운
세계 속으로 옮겨놓았다. 지금 우리는 번역된 서구 근대 안에 살고 있고,
理氣·性情·體用 같은 개념들로 이루어진 “과거는 낯선 나라다.”6)
메이지 초기 번역작업에서 큰 몫을 담당한 것이 니시 아마네(西周,
1829~97)다. 그는 네덜란드 유학을 거쳐 1873년 후쿠자와 유우키치(福澤
諭吉) 등과 함께 메이로쿠샤(明六社)를 설립하고 일본에 서구 학문을 번역·
소개하면서 哲学·科學을 비롯해서 知識·概念·演繹·帰納 등 많은 번역개
념어를 만들어냈다. 니시는 1878년 조지프 헤이븐(Joseph Haven)이 쓴
교과서 Mental Philosophy: Including the Intellect, Sensibilities, and
Will(1869년판)을 󰡔(奚般氏著)心理學󰡕이라고 옮겨서 문부성에서 간행했다.
제목에서 보듯 知(智)·情·意 삼분법에 따라 인간의 정신작용을 논한 책인
데, 여기서 니시는 心理學이라는 말을 처음 도입했고 feeling을 感動으로,
emotion을 情·情緖, affection은 情愛·情款, sensibility는 感性·感動·
情, sentiment는 情思·情操로 번역했다(小泉仰, 1971; 宇津木成介, 2014;
2015). 情緖나 情操 등은 니시의 고안임이 분명하지만, 感動과 感情도 그가
만든 말인지는 알 수 없다.7)

6) 감정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보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가령 조선시대 性情論·四端


七情論의 ‘情’이라는 말을 ‘감정’으로 옮길 수 있는지일 것이다(최기숙(2012) 등의 선구적
시도가 있다. 그 이전에 情을 ‘情’ 아닌 다른 말로 설명해야 한다. 김명석(2008) 참조).
옮길 수 없다면 더 이상 논의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옮기자니 한없이 망설여진다. 이런
번역에는 박람강기가 아니면 거의 만용에 가까운 용기가 필요하다. 전공과 연구대상 시기
의 구별이 편리한 탈출구를 제공하고, 결국 과거의 情은 情인 채로, 현재의 감정은 감정인
채로 머물러 있다.
7) 니시는 서구 심리학의 번역에 그치지 않고, 만년까지 서구 심리학·생리학과 일본 古學派
의 反주자학적 氣論의 결합을 추구했다. 그가 생각한 ‘性理學’(인간본성론)에 근거해서 생리
와 심리를 연결한다는 구상은 본격적 저술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心理說ノ一斑」이라는 강
연원고로만 남았다(西周, 1933[1888]). 여기서 니시는 19세기 서구 자연과학의 생리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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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니시의 번역은 긴 과정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서구어에도 감
정 일반을 가리키는 단일한 개념어 같은 것은 없었고, 나라마다 또 시대별
로 어휘 사용의 양상이 달랐다. 데카르트나 흄은 주로 passion이라는 말을
쓴 반면 18세기 후반의 아담 스미스는 passion과 sentiment를 거의 비슷
한 빈도로 사용했고, 19세기 윌리엄 제임스는 압도적으로 emotion, 다음으
로는 feeling을 많이 썼다고 한다.8) 어쨌든 이 어휘들 모두 또는 그 중
하나가 지성·의지와는 구분되는 정신작용을 가리킨다면, 가령 感과 情을
합쳐서 그것의 번역어를 만들 수 있었다.9) 그러나 感과 情은 感應이나 性情,
四端七情 같은 전래의 이론체계에서도 쓰이던 말이었고, 니시 역시 情이라
는 전통의 어휘도 그대로 사용했다. 이렇게 원천언어의 개념어도 고안된
번역어도 엄격한 정의나 분명히 구별되는 지시체에 의해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번역은 거듭 다시 이루어져야 했다. 다른 학문분야는 말
할 것도 없지만,10) 심리학 안에서도 원저자나 번역자의 입장에 따라 선택
하는 용어, 각 용어의 내포·외연과 상호관계는 바뀌었다. 니시는 번역서에
서 感性(sensibilities)=情(emotions)을 포괄적 유개념으로 두고 그것을 다
시 단순한 情(simple emotions)·情款(affections)·欲(desires)으로 나누

리학에 기대어 만든 틀 속에 喜·怒·哀·樂 같은 전래의 한자 개념어를 채워 넣었다(西周,


1933: 328의 표). 「心理說ノ一斑」을 중심으로 니시의 심리학을 다룬 연구로는 森下直貴,
2017: 15-19.
8) 데카르트의 󰡔정념론󰡕, 흄의 󰡔인간본성론󰡕 2권,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 25章에서 감정 관련 어휘들의 빈도를 센 것이다. 니시가 번역한 헤이븐의 Mental
Philosophy 2권(1857)에서는 emotion 51회, feeling 43회, affection 26회, sensibility
20회 순이었다고 한다(宇津木成介, 2015: 77의 Table 1).
9) 엄밀하게 말하면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범주나 술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번
역은 등가성 자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Liu, 2005: 24-32). 그렇게 보자면 주6)의 고민
은 허방을 짚은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민족’이라는 개념/어휘가 없는 시대에는
민족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식의 반문도 있을 수 있다(나인호, 2011: 63). 둘 다 대답하
기 어려운 질문이므로, 이 글에서는 번역어 자체에만 관심을 한정하기로 한다.
10) 마츠시마 코오(松島剛)는 허버트 스펜서의 Social Statics을 「社會平權論」(1881~84)으로 옮
기면서 moral sense를 道義感情, sense of security는 安寧の感情으로 번역했고, 나카에
쵸오민(中江兆民)은 프랑스 책을 옮긴 「維氏美學(L’esthétique)」(1883)에서 émotion을 感
情の眞なる(감정의 참됨), sentiment을 人情으로 번역했다(加籐周一·丸山眞男 編, 1991:
164-167, 178, 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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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지만(小泉仰, 1971: 180-182 그림 참조). 혹자는 유개념을 情緖라고 명명
하고 그것을 私情·同情·中情으로 나누었는가 하면, 感情을 感應·情緖·情
操로 나눈다거나 感動이나 情操를 유개념으로 두기도 했다(佐々木正昭,
1980: 44-49; 石塚正英·柴田隆行, 2003: 48-49).

Ⅱ. 일본의 근대 사전과 감정 관련 어휘

그렇게 ‘二轉三轉(石塚正英·柴田隆行, 2003: 48)’의 번역과정을 거친 여러


어휘가 일본어로 시민권을 얻어간 양상을 잘 보여주는 것은 당시의 사전이
다. 새로운 어휘가 등장하고 신문이나 서적 등에서 여러 차례 쓰인다고
해도, 결국 “최소한의 언중의 합의가 없는 한 어떤 그럴듯한 시도도 사전에
는 등재될 수 없기 때문이다(황호덕·이상현, 2012: 188).” 일본에서도 자
국어 사전보다 앞서 만들어져서 근대의 개념어들을 담아낸 것은, 영일·일
영사전 같은 이중어·다중어 對譯사전이다. 대역사전은 낱말의 뜻을 문장
으로 정의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원천언어의 어휘에 목적언어의 어휘를 일대
일, 一對多, 多對多로 대응시킨 경우가 많다. 1890년대 초까지 간행된 몇
가지 이중어사전들에서 감정 관련 개념의 번역어로 어떤 말들이 수록되었
는지 살펴보면 <표 1>과 같다.11) 미국인 선교사 J. C. 헵번(Hepburn)이
상하이에서 간행한 󰡔和英語林集成󰡕(「英和の部」)의 1~3판과,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번역된 중영 이중어사전인 永峰秀樹 訳, 󰡔華英字典󰡕(1881)도 비교
해보았다.12)

11) affection: 病이라든가 하는, 감정과 거리가 먼 대역은 제외했다. affection 외의 다른 개념


어들에 대해서는 애정·정애라는 해석은 제외했지만, 意思·意味·存念·感覺 등은 그냥
두었다. 지면관계상 몇 군데 こころもち→ 心持ち처럼 카타카나 표기를 한자병기로 바꾸
었다. 당시의 変体仮名는 현대의 표기로(ヿ→こと 등), 카타카나도 가급적 히라가나로 고
쳤다.
12) 點石齋主人의 序에 ‘영국 墨黑士 선생이 35년 전에 저술’ 운운한 것으로 미루어, 이 책의
저본은 W. H. Medhurst가 Robert Morison의 중영 이중어사전을 축약해서 낸 Chinese
and English Dictionary(1843)라고 추측된다. Medhurst는 1830년대 Batavia(자카르타)
에서 An English and Japanese, and Japanese and English Vocabulary(1830), 󰡔朝鮮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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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19세기 후반 영일·일영 이중어사전의 감정 관련 어휘

affection emotion feeling passion sentiment


感じ易き, 騷動
英和對譯袖珍辭書 情(好, 恐, 望, 悅,
贔屓(ひいき), 騷動心情 知覺, 感觸 感覺, 存寄
(1862) 哀, 怒, 恨 等)
懇ろ, 寵愛, 感動 (2판, 1866)
意思(おもひ),
英和字彙 感動, 慈情, 寵愛, 動(心の), 情(喜, 怒, 愛, 樂,
感動, 知覺, 慈心 感覺, 意見, 決意,
(1873) 懇篤, 偏愛 感動 哀, 惡, 欲), 嗜好
意味
情(情), seven --s
働, 心動者 情, 人情, 意, 意思, 心術,
英華和譯字典* 愛情(愛情, 恩愛)/ 七情(七情)/ the
(心が動く 胸懷(人情)/ 働, 意見(感覺, 了見,
(1881) 慈愛(慈愛, 親切) feelings 情, 物欲,
こと) 心動者(感動する) 思了, 存念, 意味)
人欲(情, 心)
愛情, 感動, 感動, 感觸, 感應,
(英和)
戀情(こいなさけ), 動(心の), 慈心, 知覺, 情(喜, 怒, 愛, 樂, 意思, 意味, 意見,
新國民大辭書
寵愛, 偏愛, 懇篤, 感動, 情緖 情(じゃう), 哀, 惡, 欲), 情慾? 感覺, 決意, 情操
(1888)
戀(こい) 感情
固有性, 意, 思, 意思,
情, 感情, 覺感, 感觸, 感應, 情(喜怒…七情を總
和譯英字彙 固有質(七情は人の 存意, 意見,
感動, 知覺, 意思, 情, 稱す), 情慾, 嗜好,
(1888) 性…と云が如き); 感情, 情操,
精神感動 人情, 意見 熱□, 憤怒, 愛戀
愛情, 戀慕? 感動, 慈悲, 憐愍
情(喜怒…七情を總 思想, 意志, 思意,
固有性(七情は心の 感觸, 覺知, 感覺,
雙解英和大辭典 情, 感情, 稱す), 情緖, 感情, 意見, 心術;
…), 感情, 意向; 意思, 情, 人情,
(1892) 感動 激情, 情慾, 嗜好, 感情, 感動,
愛慕 感想, 存念, 意見
熱望, 憤怒, 愛戀 慈悲, 憐愍
心持ち, 氣持ち, 量見, 意見, ここる,
1판
和英 情合, 情(なさけ) 情 氣分, 氣味, 知覺, 情, 意地, 意氣地, 氣 つもり, 存分, 存寄,
(1867)
語林 覺え, 性根 存意, 存念
集成 2판 情, 意地, 氣, 情合
1판+愛, 慈しみ -s 七情 1판+存寄 1판과 같음
(英和 (1872) the seven --, 七情
の部) 2판+
3판 2판+感動,
** 2판과 같음 2판과 같음 1판과 같음
(1886) かんぜん
じょうしょ
動心, 心懷,
永峰秀樹 訳, 人慾(the --s 情慾,
愛情 感動(心の感 人情(なさけある) 意見, 心術(了見)
華英字典(1881) 七情)
じ)
※ *는 love, 愛情, アイジョウ, aijō처럼 영어, 중국어, 일본어(카타카나·로마자) 순서로 표기된 것을,
중국어(일본어)로 표시했고 편의상 카타카나·로마자를 한자로 바꾸었다. **도 AFFECTION, Jōai;
nasake와 같이 본래는 일본어 대역어가 모두 로마자이다. □와 ?는 판독할 수 없거나 추측은 되지만
확신할 수 없는 글자다.

國字彙󰡕(1835) 등을 편찬한 인물이다. 그에 대해서는 윤영도(2016)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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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일영 이중어사전에 情緖·感情·情操 같은 어휘가 실리는 것은 니
시의 번역작업으로부터 10년쯤 지난 1880년대 후반이다. 일본에서 나온 사
전들에서는 emotion은 情·感情, passion은 情(七情의 총칭)이라는 식으로
번역되었다. affection은 거의 애정·정애라는 뜻으로 쓰였고, sentiment
는 1880년대 초까지도 감정보다는 주로 의견·인식의 뜻으로 이해되었음
을 알 수 있다.13)
여기 비하면 일본의 자국어사전은 이중어사전보다 늦게 등장하기도 했지
만, 새 번역어의 수용에도 좀 더 보수적이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자국어
사전으로 평가받는 󰡔言海󰡕(1889~91)에는 感情·情緖·情操 같은 어휘는 보
이지 않고, 感じ, 感ず, 感動, じょう(情), なさけ(情) 등이 다음과 같이 상
호참조의 순환구조로 설명되어 있다.

感(かん)じ 心に感ずること(마음으로 느끼는 것)


感(かん)ず ①喜、怒、哀、樂、等に付けて、情を動かす(희·로·애·락 등에 대해 정을
일으키다). 深に心に徹る(깊이 마음에 사무치다)
感動 甚しく感ずること(깊이 느끼는 것)
情(じゃ)う ① 喜び、 怒り、 哀み、 樂むなど、 人の 心に 觸れて 起るすべての 感動
(희·노·애·락 등 사람의 마음이 자극되어 일어나는 일체의 감동). ②情愛. なさけ

몇 년 뒤에 나온 󰡔日本大辭書󰡕(1892~1893)에는 情緖가 등장하지만, ‘화


목한 정(睦みの情)’이라고 설명되었고 용례로도 ‘情緖纏綿’이라는 표현이 실
려 있어서, 철학·심리학의 번역어와는 거리가 있다.14) 感情은 궁내성 간행

13) 반대로 Hepburn, 󰡔和英語林集成󰡕 「和英の部」에서 보면 지금의 감정이라는 뜻에 가장 가까


운 일본어 어휘는 jō라고 발음되는 情으로, emotion, passion, feeling, love, affection,
obstinacy에 대응되어 있다. kanji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感ずる)로 풀이되었고, to
admire, (…) to be moved, affected라는 풀이도 감정보다는 감동에 가깝다. kanjō(感情)
는 1886년 3판에 등장한다. 뜻은 mental emotion, admiration이다. 3판의 emotion 풀이
에 추가된 일본어 ‘jōsho’는 ‘情緖’라고 추측되지만, affection에 대해 추가된 ‘kanzen’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혹시 ‘感染(かんせん)’일까?
14) ‘情緖纏綿’은 한국어로 ‘정이 깊다’는 말에 가까운 표현이다. 이런 의미를 갖는 ‘情緖’는 마음
의 動的 측면을 강조하는 emotion과 맞지 않아서, 대신 한동안 情動이라는 번역어가 쓰이
기도 했다고 한다(石塚正英·柴田隆行, 2003: 49).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47


󰡔日本大辭林󰡕(1894)에서 こころもち, こころのうけとり라고 설명했는데,
마음·기분 정도의 뜻이다. 󰡔帝國大辭典󰡕(1896)은 󰡔日本大辭書󰡕의 情緖 풀
이를 그대로 계승했고 感情은 역시 おもはく, こころもち라고 풀었다. 다
만 感情의 용례로 제시한 “かんじゃうを害ふ(감정을 상하다)”, “かんじゃ
うに訴ふ(감정에 호소하다)”는 눈길을 끈다. 전자는 마음이나 기분이라고
바꿔 쓸 수 있겠지만, 감정에 호소한다는 표현은 지·정·의 삼분법이나
적어도 이성·논리와 감정의 구분을 배경에 깔고 있는 듯하다.

3. 감정 개념의 도입과 조선의 계몽적 산문

Ⅰ. 계몽과 감정

1926년 월간 󰡔신여성󰡕의 「상식강좌」는 “우리가 일상에 툭하면” 쓰는,


“상당히 넓은 범위에 적용되는 말”인 감정, 그리고 “흔히 쓰는” 정서·情操
라는 말의 뜻을 상세히 알려주겠노라고 나섰다.15) 이런 꼭지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은 이런 말(의 심리학적 의미)이 상식보다는 교양의 영역
에 속했음을 암시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신여성󰡕을 읽을 정도의 지식층
사이에서는 감정·정서 같은 말이 꽤 보편화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미
1910년대에 이광수는 (근대)문학은 “특정한 형식하에 人의 사상과 감정을
발표한” 것이며 독자가 “마치 자기의 心中을 讀하는 듯”이 공감하게 되는
“美醜喜哀의 (…) 감정이야말로 실로 문학의 특색”이라는 문학론을 발표했
고,16) 1917년 벽두부터 약 반년간 󰡔매일신보󰡕에 문제작 「무정」을 연재했
다. 제목부터 情의 문제를 언급하는 이 소설에서 무정한 것은 산천초목이나
세월이 아니라, 등장인물 중 누구이거나 당대의 조선사회다. 즉 여기서 문

15) 碧朶(李晟煥), 1926, 「常識講座」, 󰡔新女性󰡕 4(2): 40-42. 카인즈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情操는 주로 1930년대 情操의 교육·도야라는 형태로 쓰인 30여 건의 용례가 있을
뿐이다. 정서와 잘 구별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16) 이광수, 1979[1916], 「文學이란何오」, 󰡔李光秀全集 1󰡕, 又新社: 54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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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유적 속성으로서의 情이 아니라, 전통의 도덕
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개인의 감정, 남녀 간의 애정·정욕이거나,
그런 개인이 평등한 다른 개인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해 갖는 동정이다.17)
1870년대 후반 일본에서 고안된 감정 관련 번역어들은 곧 조선에도 유입
되었다. 그 통로로 우선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철학·심리학·교육학
등 서구의 지식체계와 실천을 소개한 계몽적 저작과 번역이다. 유길준은
󰡔서유견문󰡕(1895) 제13편에서 (아마도 생리학이나 형질인류학을 가리키
는) 人身學은 “疾病의 緣起하는 根委와 感情도 微細히 說及(俞吉濬, 1895:
354)”한다고 썼다. 제한된 문맥 속에 놓인 낱말 한 개지만 심리학의 감정
개념으로도 충분히 읽힐 것 같다. 󰡔서유견문󰡕은 상당부분 기존 (일본어)
텍스트의 번역임이 밝혀지고 있는데, 이 대목도 혹시 거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18) 이 책은 시중에 판매되지 않고 초판 1천 부가 정부 고관과
유력자 등에게만 배포되었지만, 당시 여러 지식인들이 이 책을 탐독했고
일부 내용은 󰡔독립신문󰡕, 󰡔황성신문󰡕의 논설에 그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韓哲浩, 2000: 238-242).
󰡔독립신문󰡕 이래의 신문은 다음 장에 모아서 보기로 하면, 󰡔서유견문󰡕
다음에 올 것은 1900년대의 여러 학회지다. 1906년 󰡔대한자강회월보󰡕 3호
에는 장지연이 譯述한 량치챠오(梁啓超)의 「敎育政策私議」라는 글이 실렸다.
신체·지·정·의·自觀力이라는 항목별로 아동·청년의 발달단계에 따라

17) 「무정」의 무정한 현실에 반대되는 이상적인 사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평양에서
돌아오는 이형식의 자각에 주목해서 감각적·감정적·욕망의 존재로서의 근대적 개인의
등장에 주목하는 입장(김우창, 1995 등)과, 삼랑진 수해장면에서 부각되는 동정을 사회·
민족의 구성원리로 강조하는 김현주(2004), 손유경(2008) 등의 입장이 갈린다. 정병설은
「무정」의 무정이란 ‘인정 없음’이 아니라 ‘存天理滅人慾’의 유교 윤리에서 오는 감정의 억압,
‘감정 없음’이라고 보고(정병설, 2011), 방민호는 거기 동의하면서 서구식 지·정·의 3분
법과 전통적 性情論이 이광수에게서 어떻게 교차·접목되는지를 탐구했다(방민호, 2012).
18) 후쿠자와 유우키치가 쓴 󰡔西洋事情󰡕의 번역이 󰡔서유견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제19~20편 여행기가 상당부분 󰡔萬國名所圖繪󰡕의 번역임도 최근 밝혀졌다
(서명일, 2017). 앞서 보았듯이 이한섭(2014)는 감정·정서·정조·기분 등을 일본에서
온 한자어로 수록했고, ‘감정’ 항목에서는 (출처 표시가 부정확하지만) 󰡔서유견문󰡕의 이
대목을 사례로 들었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49


필요한 교육을 논한 것인데, 유치원기는 “感情이 皆於感覺하여 恐怖之情이
甚强이요” 소학교기는 “情緖始動”, 중학교기는 “前半期는 雖動於情緖나 後半期
則情操가 漸發達”이라고 하여, 감정·감각·정서·정조를 일정한 체계 속에
배치하고 있다.19) 무술변법 실패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량치챠오가 그곳에
서 접한 교육론을 정리한 글이다. 물론 유치원·대학교·대학원까지를 염
두에 둔 단계별 감정교육이란 당시 조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담론이었다.
그래도 서구 학문의 소개는 꾸준히 이어졌다. “喜, 怒, 哀, 樂, 嫉妬, 怨恨,
謗 等을 心理學上 統稱 情緖”라는20) 대목을 읽는 독자는 정서란 전통의
七情과 같은 말이라고 이해했을 것이다. 이런 소개의 결정판은 1906년 12
월부터 8회에 걸쳐 󰡔대한자강회월보󰡕에 연재된 류근 譯述의 「敎育學原埋」
인데, 五官과 결부된 ‘감각의 감정’, 사상의 조화·진보 여부에 따라 희열과
고통, 歡心과 침울, 분노와 수치 등으로 구분되는 ‘想念의 감정’, 利己와 동
정, 윤리 감정, 종교 감정, 智力의 감정, 심미의 감정 등을 구분하고 그 각각
에 대한 情育의 방침을 처방하는 대목에서는 감정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멀미가 날 지경이다.21)
이런 기사들이 아마 번역자·譯述者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난삽한 용
어로 일본을 경유한 서구 심리학·교육학의 감정 개념을 소개했다면, 1910
년대 일본 유학생들이 낸 잡지 󰡔학지광󰡕은 다소 달라진 면모를 보인다.
“기꺼워하는 자와 같이 기꺼워하며 슬퍼하는 자와 같이 슬퍼하는 淸高한
감정을 가진” 독자에게 이 잡지를 내놓는다는 제3호 발간사나 같은 호에
실린 수필의 “먼저 감정적 생활을 하도록” 해야겠다는 언급에서,22) 감정이
라는 어휘가 안겨 있는 맥락은 필자 자신들의 일상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유학생 상당수가 문학·예술에 경도되어 있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물
론 생활이나 문예와 관련된 󰡔학지광󰡕의 감정 개념도 넓은 편차를 가지고

19) 梁啓超(張志淵 譯述), 1906, 「敎育政策私議」, 󰡔大韓自强會月報󰡕 3: 18-19.


20) 張膺震, 1907, 「心理學上으로觀察言語」, 󰡔太極學報󰡕 9: 6.
21) 柳瑾 譯述, 1907, 「敎育學原埋 育化 (續)」, 󰡔大韓自强會月報󰡕 10: 20-26.
22) 張德秀, 1914, 「學之光第三號發刊에臨야」, 󰡔學之光󰡕 3: 1-3; 崔承九, 1914, 「情感的生活의要
求(나의更生)」, 같은 책: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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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안확은 “문학은 美感想을 문자로 表顯하는 것”이라는 얼핏 이광수의
것 같은 말을 “大抵 人이 春風和氣를 乘하여” 경치 좋은 곳에 이르면 “감정이
격동하여” 술에 취한 것 같아진다는 고전적 비유로 풀어갔다.23) 반면 최승
구의 감정적/정감적 생활이란, 문맥상 (문학·예술의 경험을 통해서) 무기
력한 조선사람들의 삶이 깨어나고 활성화되는 상태를 말하는 듯하다.24) 그
런가 하면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인격보다도 감정을, 이성보다도 감정을
앞세우고 나아가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김명식의 묘한 주장의 행간에는
식민지의 현실이 숨겨져 있다. 그는 유학생들에게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인격만 숭상하고 이성만 동경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선한 일이나 선하지
못한 일을 不拘하고 오직 폭발약이 터지듯하는 많은 원한을 억제치 못하여
분개한 마음”을, 그런 감정을 갖자고 호소한 것이다.25) 물론 김명식의 이런
주장 역시 지·정·의 삼분법을 遠景에 둔 것이기는 했다.

Ⅱ. 문학작품에서의 감정/情

人情世態를 다루는 소설에서 감정이라는 말은 한층 구체성을 띠었다. 그


러나 소설과, 그것이 그려내는 일상에서의 감정이라는 말은 性之發로서의
情과도, 서구 심리학이나 교육학의 감정·정서와도, 또 희로애락 같은 개별
감정의 총칭과도 거리가 있었다. 물론 때로는 지·정·의론 비슷한 틀 속
에서 (감)정이 언급되기도 했다. 이광수의 문학론에서는 문예부흥 이래 인
간이 “知와 意의 요구를 만족케 하려는 동시에 그보다 더욱 간절하게 情의

23) 安廓, 1915, 「朝鮮의文學」, 󰡔學之光󰡕 6: 64. 그가 구사하는 어휘와 문체로 보아 이때의 ‘감
정’은 󰡔세종실록󰡕에 나오는 “感情罔極”과 같은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24) “五官은 다 가졌”지만 “작용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고통이며, 飢寒이 박두한 것을 도무지
모르고, 멀뚱멀뚱 비슬비슬할 뿐”인 상태를 고쳐, “이 사람들의 신경이 완전히 운전하여
작용하는” 날을 맞고 싶다는 것이다. 崔承九, 앞의 글: 17-18.
25) 金明植, 1917, 「雁去鷰來」, 󰡔學之光󰡕 13: 34. 여기 대한 반대 입장은 당연히 “일시의 흥분으
로써 감정이 향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追하여 잠시의 만족을 取코자” 하지 말고 이성·감
정·의지의 고른 함양을 통해 인격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崔承萬,
1922, 「人格主義」, 󰡔개벽󰡕 25: 14).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51


요구를 만족케 하려” 한다는 것이 문학을 정의하고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어
있다.26) 「무정」의 형식은 선형이 냉정한 이지적 인물인지 열렬한 情的 인
물인지를 궁금해 한다. 「少年의悲哀」의 문해는 이지적이지만 문호는 감정
적이다. 형식이 개인-주체-자아로서의 자각을 얻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서
술된다.27)

자기가 지금껏 「옳다」, 「그르다」, 「슬프다」, 「기쁘다」 하여 온 것은


결코 자기의 知의 판단과 情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온전히 傳襲을
따라 사회의 습관을 따라 하여온 것이었다.

여기에, “이경자는 실성한 것이 아니라 일시 감정의 변화가 심하여 (…)


우습지도 아니한 일에 우스워서 못 견디다가 홀연 까닭 없는 일에” 서러워
한다든가 하는, 정신이상을 다룬 드문 사례도 덧붙일 수 있겠다.28)
그러나 많은 경우 감정은 그저 마음이나 뜻과 같은 말로 쓰였다. 1910년
대 전반의 한 번안소설에서는 “속으로 대단히 불쾌한 감정이 있”다는 말과
“속으로는 대단히 불쾌한 뜻을 품고 있”다는 문장을 나란히 두었다.29) 쾌/
불쾌로 한정되기는 했지만 이때의 감정은 마음이나 뜻으로 바꿔 써도 무리
가 없다. “자기에게 대한 感情을 아주 모름은 아니”라든가 “형식에게 대하여

26) 이광수, 「文學이란何오」, 󰡔李光秀全集 1󰡕: 548. 서구 근대철학에서 지·정·의론의 전개와


일본에서의 번역양상 등에 대해서는 정병호(2004), 방민호(2012) 등을 참조. 이광수 본인
이 이해한 것과는 달리 그의 문학론은 지·정·의론의 틀을 벗어났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주31)을 볼 것.
27) 차례로 이광수, 2003[1916], 󰡔바로잡은 󰡔무정󰡕󰡕, 문학동네: 618; 이광수, 1979[1917], 「少
年의悲哀」, 󰡔李光秀全集 8󰡕: 108.이광수, 2003[1916]: 398.
28) 조중환, 2007: 146. 󰡔쌍옥루󰡕는 조중환이 키쿠치 유우호오(菊池幽芳)의 「己が罪(나의 죄)」
를 번안하여 󰡔매일신보󰡕에 연재하고 1913년 단행본(상·중·하)으로 간행한 것으로, 심
리·정신이상에 관한 다양한 어휘를 담고 있다. 感覺·感慨·感化·神經·精神 같은 말은
(번안)작가가 한자를 병기했지만 ‘감정’은 그저 한글로 표시했다(송명진, 2016; 정한데로,
2016). 이경훈(2006)의 ‘감정’ 항목에도 실려 있다.
29) [閔濬鎬], 1912: 14-15. 이 「行樂圖」는 중국소설의 번안으로 1912년 東洋書院에서 간행되었
다(李慧淳, 1980). 판권장에는 저작 겸 발행자가 閔濬鎬로 되어 있다. 이한섭(2014)의 ‘감정’
항목에 용례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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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정은 아니 가졌다”고 할 때의 감정 역시 상대방에 대한 마음, 好惡나
평가다. “만세소리가 들릴 때의 형식의 감정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거
나 “혼잣몸으로 수만리 이역에 향하는 감정은 참 형언할 수 없”더라는 대목
의 감정은 기분이나 心情이라고 할 수 있겠다.30)
특히 情이라는 한자 어휘는 복잡한 간섭현상을 빚어냈다. 니시 아마네는
感情·情緖 같은 번역어를 고안해놓고도 희로애락 같은 개별감정은 그냥
情이라고도 불렀다. 이광수도 감정보다는 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그
런데 情은 (1)性情論이나 서구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론적 개념·범주일 수
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2)多情·愛情이나 (3)남녀간의 色情·慾情일
수도 있고, (4)事情·實情 같은 사태의 실상을 가리킬 수도 있다. 따라서
세월이 무정한 것과 (인간)세상이 무정한 것은 뜻이 다르고, ‘人情’이라는
말은 (2)의 뜻으로도 (4)의 뜻(人情世態)으로도, 또는 일본 에도시대의 ‘人情
本’에서처럼 (3)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
지만 조금씩 다른 의미다.31) 그리고 이런 의미와 쓰임은 감정이라는 말이
feeling이나 emotion, sentiment의, 또 무슨 서구어의 번역어로 만들어졌
다는 기원이 한정하는 범위를 뛰어넘는다. 물론 새로운 어휘의 새로운 용법
도 많은 부분 당대 일본어의 영향 속에 있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기
일상의 한국어에서 감정이라는 새로운 말이 이렇게 쓰이게 되었다는 사실
이다. 꼭 감정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써도 되는 자리였을 수도 있지만,
쓰임이 거듭되다 보면 감정이라는 말이 아니면 안 되는 자리가 나타날 터였다.

30) 차례로 󰡔李光秀全集 8󰡕: 59; 이광수, 2003[1916]: 622-623; 626; 이광수, 1979[1917], 「어
린벗에게」, 󰡔李光秀全集 8󰡕: 81. 心情은 당시 일본의 사전에서는 꽤 늦게, 金澤莊三郎 編,
󰡔辭林󰡕(1911) 정도나 되어서 실리게 된다.
31) 「무정」의 해석 논쟁은 주17)에도 짧게 정리했지만, 하타노 세츠코는 이광수 문학론의 情이
①감정, ②인간 심리, ③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열정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波田野節子, 2008: 135-136). 백지은은 이광수 문학론에서 情은 ①인간 본성이자
근원적인 감각인 性情, ②도덕감정으로서의 동정, ③사물·자연의 생태와 사람살이의 풍속
을 가리키는 人情(世態)의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고, ②는 善을, ③의 여실한 묘사는 眞을
지향하므로 情의 문학론이란 결국 지·정·의 삼분법의 틀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백지은,
2012).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53


4. 신문 기사에서 감정·정서의 용례

Ⅰ. 타자에 대한 감정과 정체성 정치

󰡔서유견문󰡕이 간행된 이듬해인 1896년 창간된 󰡔독립신문󰡕에는 ‘감동’은


여러 번 보이나 ‘감졍’이라는 어휘는 없다. ‘칠졍’은 두어 차례 나오지만,
“귀천과 빈부는 같지 아니하나 (…) 다 각기 천부지성(天賦之性―인용자)이
있어 칠정七情의 발함이 조금도 다를것이 없(1899. 11. 22. 「론셜」)”다는
등 감정 자체를 논하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성·평등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
로 쓰였을 뿐이다. 하지만 󰡔독립신문󰡕 영문판인 The Independent는 양상
이 달라서, 감정·정서를 가리키는 영어 어휘들이 꽤 자주 눈에 띈다. 기사
건수로만 보면 가장 많이 쓰인 것은 sentiment(136건)와 feeling(명사로
쓰인 것은 90건)이고, emotion 5건, 흥분·분노를 가리키는 passion이 13
건, 호의·애정이라는 뜻의 affection이 8건 정도다. 어휘의 빈도로 보면
󰡔독립신문󰡕과의 격차는 놀라운데, 󰡔독립신문󰡕과 The Independent의 기
사가 한 문장 한 문장 대역으로 병행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32)
The Independent에서 feeling과 sentiment는 개인의 감정보다는 민
족·민중의 감정을 표현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가 편집을 담당한 1896년 말까지를 중심으로 보더
라도(채백, 2006: 145-150), feeling은 “the national feeling(1896. 5.
16)”, “their patriotic feelings and sentiments(1896. 9. 3)”, “Korean
feeling today(1896. 9. 8)” 등으로 사용되었다. “Russia’s feeling in

32) 가령 󰡔독립신문󰡕 1896. 4. 14. 잡보에는 남대문안 일본 순사청 앞에 화재경보용 종을


설치했는데, 그날 오전에 시험 삼아 그 종을 쳤다는 기사가 실렸다. 같은 날 영문판 BRIEF
NOTICE의 병행기사에는 사람들이 그 종소리에 놀라서 몰려나왔고, 일본군 8천 명이 남대
문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내용이 있다. 영문 기사의 “so long as the present
delicate state of feeling continues(현재의 미묘한 감정이 지속되는 한)” 같은 표현은
한글판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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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ard to Korea(1896. 5. 16)”, “an ill feeling between Koreans and
Japanese(1896. 9. 26)”처럼 국가·민족 간의 관계나 태도를 feeling이라
는 말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sentiment도 “true patriotism is no narrow,
self-centered sentiment(1896. 7. 7)”처럼 쓰이기도 했지만, feeling은 감
정보다 더 넓은 뜻의 느낌, sentiment는 생각·의견·입장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33) emotion이 등장하는 소수의 기사는 대개 외신의 전재이거나 일
본인·외국인의 개인적 감상인데, 동학동민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관군의
위령제 때 군부대신의 연설에 “군인들 마음이 감동 아니할 리 없고”가 영어
로는 “causing profound emotion”이라고 되어 있다(1897. 1. 21).
󰡔독립신문󰡕은 1899년 12월초까지 나왔고 1898년 9월초부터는 󰡔황성신
문󰡕이 간행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두 신문이 병존했던 시기 전자에는 없는
‘감정’이 후자에서는 종종 보인다. 순한글과 한자병기라는 다른 표기방식에
서 오는 감각의 차이였을까? 일시가 빠른 순서대로 몇 가지 용례만 들어보자.

法國(프랑스―인용자)은 俄國(러시아―인용자)에 대하는 感情이 如何


할는지 (1899. 4. 11. 「英俄協商成立」)
남방인의 志를 助하면 張之洞의 感情을 害할 것이요 (1899. 5. 22. 「別
報」)
한국인에 대하여는 感情의 융화를 最務하여 紛議를 互避케 하여 (1899.
5. 27. 「韓海日漁」)
兩國의 感情을 害하는 것이요 (1899. 7. 11. 「支那人雜居運動」)

이 사례들에서 감정이란 모두 어떤 국가·국민(민족)·정치세력이 다른


인간집단에 대해 갖는 판단·태도, 대립·갈등·경쟁의 관계나 동맹·지

33) 1896년 5월 12일 The Independent는 학부대신 신기선의 반동적 상소를 비판한 독자
기고를 번역해서 실었다. 기고자는 자신이 양주지역의 여론을 전달하는데(I voice the
sentiment of the law-abiding and patriotic citizens of Yang Ju), 신기선의 sentiment
(의견/입장)은 의병의 것과 같다고 썼다. 6월 13일자 󰡔독립신문󰡕 잡보에서 병행구절을
찾을 수 있는데, 거기서는 “These are exactly the sentiments this “righteous army”
entertian and champion”을 “이것은 (…) 소위 의병의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55


지와 관련된다.34) 누구/무엇에 대한 이런 식의 ‘감정’이란 그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가치판단, 이해관심(interest)과 구별되는 것도 아니다. 好惡나 親
疏, 질투·분노·모욕일 수는 있어도, 기쁨이나 슬픔, 행복·외로움 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누구/무엇에 대한 누구의 감정이라는 이런 표현은 󰡔황성신문󰡕 이후로는
거의 정착되었다. 1910년 8월까지 약 11년의 간행기간을 통틀어 󰡔황성신
문󰡕에서 感情이라는 말이 등장한 기사는 215건으로, 1년에 20건 꼴이니까
잦은 빈도는 아니다. 그 가운데 국가나 국민, 집단 간의 감정에 대한 것이
137건(64%)이다. 같은 시기의 학회지와는 달리 심리학이나 지·정·의론
소개 따위는 거의 없다. 1906년까지는 감정 관련 기사 95건 가운데 집합적
감정에 대한 것이 75건(79%)이었다가, 1907년부터는 추세가 변해서 그 비
중이 52%로 떨어진다. 1904년 창간된 󰡔대한매일신보󰡕도 한글판·국한문
혼용판을 통틀어 기사 수로 210여 건의 용례를 보이는데, 역시 국가·민족
간의 감정·태도에 대한 기사가 전체의 2/3 가량을 차지한다. 물론 여기에
는 타블로이드판 정도 크기에 4호 활자로 4단 4면이었던 당시 신문의 지면
이 넉넉하지 않았고 나중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할 雜報도 누가 어쨌다더라
는 짧은 傳言 형식이어서,35) 연재소설 정도를 제외하면 사사로운 감상이나
내면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타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나 감정이란 결국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일면이다. 지금도 역사와 이해관계가 얽힌 동아시아의 인접국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反日이니 嫌韓이니 하는 집합적 감정이 들끓는다. 하

34) 당시 신문기사에서 ‘同情’의 쓰임으로 가장 많은 것도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에 ‘동정’한다는


기사들이다. “淸國 浙江省에 伊國(이탈리아―인용자)의 讓地要求를 對하여 同情을 表(󰡔황성
신문󰡕 1899. 3. 20. 「다이므스와 伊國獲地」)”하였다던가 “덕국(독일―인용자) 황제가 트국
(터키―인용자)과 동졍(同情)이 되어 영국을 저애(沮碍)할까(󰡔독립신문󰡕 1899. 11. 11.
「영토건시발」)” 하는 등인데, 국제관계에서 상대국을 지지한다든가 하는 정도의 입장
표명이다. “나의 몸과 맘을 그 사람의 처지와 경우에 두어 그 사람의 心思와 행위를 생각하
여 줌이니, 실로 인류의 靈貴한 특질 중에 가장 영귀한 자(이광수, 1979[1914], 「同情」,
󰡔李光秀全集 1󰡕: 580)”라고까지 가치부여된 이광수의 동정 개념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35) 당시의 신문지면 구성과 잡보에 대해서는 󰡔대한매일신보󰡕의 경우를 분석한 채백(2004)가
참조가 된다.

56
물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전세계적으로 민족주의의 열기가 뜨겁고
국제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으며,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과 “我와 非
我의 투쟁”이라는 민족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감
정’으로 지칭된 타자에 대한 이런 태도는 많은 부분 특정 사건·국면과 연
관된 실제의 여론이나 집합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을 단
일한 주체로 묶어내(려)는 정치적 담론이나 국가·민족을 의인화하는 대중
매체의 문법에 따른 수사적 표현도 작용했을 것 같다.36) 또 이렇게 명명된
‘감정’과 행위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가령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反日·排日
의 감정이 먼저 일어서 일본인의 이민을 제한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러 원
인으로 생겨난 일본인 이민 제한, 일본인 차별, 일본상품 불매조치 등을
뭉뚱그려 ‘배일감정’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시
대에 감정은 중요한 대중동원의 기제였고, 그런 동원을 위한 조작이나 책동
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감정’이 조금 더 지속되고
체계화되면 아마 반유대주의나 黃禍論(Yellow Peril)처럼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을 얻게 될 터였다.
감정이라는 말의 이런 쓰임이 어디서 왔을지를 추적하기란 불가능하겠지
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보면 청일전쟁 이래 일
본인끼리의 통신에 이런 뜻으로 쓴 감정이라는 언급이 많이 보인다. 초기의
한두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37)

弱邦人が强國人の事業に對する感情、常に此の如し、(약한 나라 백성
이 강국 백성의 사업에 대해 갖는 감정은 늘 이와 같아서)
東派ハ內々大ニ支那人ヲ嫌フテ居レトモ日本人ニ對シテハ何等惡感情ヲ

36) 당시 신문·잡지의 만화(만평)는 각국을 여러 가지 인물이나 동물로, 국제관계를 주먹다짐


이나 힘겨루기, 도박, 연애, 추파 등으로 희화화했다. 등장 인물·동물은 웃고 울고 놀라고
화를 내거나 겁에 질리기도 한다.
37) 위의 것은 󰡔二六新聞󰡕 1894. 4. 28. 如囚居士, 「朝鮮雜記」(󰡔동학농민혁명사료총서󰡕에서 인
용); 아래 것은 1894. 5. 16. 在仁川 二等領事 能勢辰五郞→ 臨時代理公使 杉村濬, 「京製21號
東學黨에 관한 報告」에 딸린 聞取書의 한 부분이다. 번역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것을 조
금 고쳤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57


有セズ却テ親切ノ方ナリ(동학파는 속으로 청국인을 매우 싫어하지만 일
본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친절한 편이다)

물론 앞서 보았듯이, 일본에서도 感情이란 생겨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말로, 이 무렵 처음으로 사전에 등재되었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니시
아마네 이래의 심리학적 의미로가 아니라, ‘こころもち, こころのうけと
り’, 마음이나 기분 정도로 설명했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Ⅱ. 분노와 수치의 감정: 민족의 생체반응

주로 국가·민족이 타자에 대해 갖는 것으로 상정된 그 감정은 어떤 빛


깔이었을까? 그런 감정이 기사거리가 되는 것은 대개 양자의 관계가 나빠
지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때일 것이다. 국가·민족·집단 간 感情을 보도한
󰡔황성신문󰡕 기사 137건 가운데 惡感情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기사가 29건,
불쾌·불만·불량·不好·불평한 감정이 15건, 감정을 害/(損)傷한다는 표
현이 18건, 排日·排俄感情 등이 6건이다. 감정의 융화·친화·소통을 말한
기사 12건도 사실이 그렇지 못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특히 1906년까지
이런 부정적인 어휘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이후로는 감정의 날씨가 조금
맑아졌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령 “洞會의 결점이 不無함에 피차간 감정
을 招한다더니” “無論何人하고 此境遇를 당한 이상에는 감정이 自起”(1908.
3. 3. 「洞議完全」)하겠다는 기사에서는, 꼭히 부정적 수식어 없이도 感情이
라는 말 자체가 차라리 ‘憾情’이라고 할 만한 나쁜 감정을 가리키고 있다.38)
또, 1907년 하반기에 감정이 ‘激起·激昻·激生·衝激·觸激’된다는 기사들
이 반짝 등장했던 데서도 보듯이,39) 그런 감정이란 대개 강하고 뜨거운,
격렬한 것이었다.

38) 당시 感情과 憾情이 뒤섞여 쓰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憾情이라는 말이 나오는 󰡔황성신문󰡕
기사도 100건 가까이 된다.
39) 1907. 9. 26. 「警告日本當局諸公」; 10. 1. 「猜疑의 獘害」; 11. 26. 「警告當局諸公」; 12. 19.
「壓制時代論의 見」 등.

58
한문투를 벗지 못한 󰡔황성신문󰡕에 비해 조금 더 나중에 창간된 󰡔대한매
일신보󰡕, 특히 한글판은 ‘감정’과 결합하는 용언을 훨씬 다양하게 보여준
다.40) 주어로서 감정은 있다(不無하다)/없다, 많다(多有)/적다, 생기다((不)
生하다), 되다, 충격되다 등과 결합하고, 목적어가 될 때는 (감정을) 表하다,
뵈다, 抱하다, 받다, 얻다/잃다, (損/沮)害하다, 손상하다, 풀다(慰解/和하
다), (불러)일으키다(起하다), 자아내다, 빚어내다, 訴請하다 등과 결합한다.
표하고 뵈거나 얻고 잃는 감정이란 “감정상 의리”나 “의리상 감정”과도 연
결되는 동조·지지였던 반면,41) 激動하거나 (惹)起, 忽生하는 감정은 대개
부정적인 빛깔이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 이후 동아시아에
서의 배일감정, 미국의 일본인 이민제한조치 등을 적극 보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식민지가 차츰 기정사실화되는 국면에서 󰡔대한매일신
보󰡕가 조선인들에게 모종의 감정을 적극 촉구하였다는 점이다. 일본 빈민
6백만 명의 한국 이민설에 대해(1908. 3. 14. 「嘆鵲巢鳩居憂時生」), 일본인
이 발행하는 잡지에서 한국인을 야만시하는 기사를 연재한 데 대해(1908.
7. 28. 「론셜」), 1910년으로 예정된 英日박람회 ‘식민관’에 한국도 포함된
다는 소문에 대해(1909. 6. 24. 「론셜」), 두 번째 통감이 부임하는 상황에
대해(1909. 6. 26. 「론셜」) 󰡔대한매일신보󰡕는 한국 동포는 과연 감정이
어떠한지를 따져 물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식물이 된 황제와 정부를 두고
국권을 잠식당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게 된 민족이 가질 감정이란 크나
큰 수치와 분노,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대한매
일신보󰡕는 썼다. 이른바 을사보호조약과 정미7조약 때는 “미친 것 같이 뛰
고 어지러이 지껄이며 분하게 부르짖으며 슬피 우”는 이들이라도 있었지만,
1909년의 사법권 양도, 군부 폐지에 즈음해서는 조선은 이미 산송장 같다

40)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글+영문판이 발행되다가 휴간, 1905
년 8월에 복간하면서 국한문판으로 바뀌고 영문판(The Korea Daily News)은 따로 발행
되었으며, 1907년 5월부터 한글판이 함께 발행되었다(채백, 2004: 268).
41) “감정상 의리를 표하였(1904. 9. 28. 「론셜」)”다거나 “영미 양국이 이번 전장(戰場)에 우리
나라를 방조하여 감정을 뵈일 뿐더러(1904. 11. 24. 「론셜」)”, “일본이 한국과 만주를 위
하여 싸운다 하여 세계의 감정을 얻었으니(1905. 2. 10. 「론셜」)”, “寄附日本赤十字病院하여
略表義理上感情而止矣(1905. 9. 7. 「媾和를 傍聽고 獨立을 鞏固케홈」)”라는 등.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59


는 것이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가 노래를 부르는가 우는가 웃는가


어떠한 감정으로 이 소식을 대하는지 (…) 나라가 이미 망하였다 하며 일
이 이미 지났다 하여 그 마음이 이미 재가 되며 그 담이 이미 떨어져서
(…) 시국의 참혹한 경상(景狀―인용자)이 날마다 닥쳐도 피가 없는 동물
과 같이 심상히 다니는 것이 이곳 한국 인심의 추세가 아닌가 (1909. 07.
18. 「론셜」)

명예와 긍지까지는 못 가더라도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고 주권의 침


탈·상실에 모욕과 수치를 느끼는 것이 국가·민족의 최소한의 생체반응
(vital reaction)일 것이다. 그러나 1908, 09년 무렵의 조선 민중은 여전히
자기 역사의 주인이 아니었고,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체념과 무기력, 무감
각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의 진술인 동시에, 계몽의 담론이기도 했다.42)
“그네에게는 아무 방책도 없었다 그네는 다만 되어가는 대로 되기를 바랄
뿐이다 (…) 그네의 얼굴을 보건대 무슨 지혜가 있을 것 같지 아니하다
모두 다 미련해 보이고 무감각해 보인다(이광수, 2003[1916]: 702-703)”는
식으로 조선 민중의 무기력·무감각함을 묘사하는 것은 1910년대 논설·
소설의 단골 메뉴가 된다. 그런 현실 앞에서 지식인들은 민족을 계몽·지
도할 사명을 자임했다. 특히 정치·경제·사회의 현실적 개혁과 동떨어진
문학·예술의 쓰임은 바로 그런 무기력·무감각을 극복하는 감정교육에 있
었다. 최승구는 “누가 자기 먹던 밥을 뺏아서 간다 할지라도, 다만 「배고프
겠네」 할 뿐이지, 그 밥을 찾아 먹을 생각 아니하는” 조선사람들의 생체반
응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때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불러주기 원”한
다고 했다. “情育을 其勉하라.”는 이광수의 외침도 마찬가지다.43)

42) 유선영은 수치·모욕·분노가 식민지 피지배민족의 당연한 반응인 듯이 서술하면서도, 서


재필(과 󰡔독립신문󰡕)이 그런 반응을 촉발시키는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유선영, 2017:
38-51). 1910년대 문학을 지배했던 슬픔과 연민의 감정이 식민지 현실에서 자연스레 촉발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곱씹어볼 만하다(박숙자, 2006)
43) 崔承九, 앞의 글: 17-8; 이광수, 1979[1910], 「今日我韓靑年과情育」, 󰡔李光秀全集 1󰡕, 又新社: 526.

60
191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로, 전국적인 한글 신문으로는 총독부에서
󰡔대한매일신보󰡕를 매수해서 ‘기관지’로 삼은 󰡔매일신보󰡕가 있을 뿐이었다.
󰡔매일신보󰡕는 1912년 이래 조금씩 지면이 변화해서, 1915년쯤에 이르면
사회면(3면)은 󰡔독립신문󰡕 이래의 ‘잡보’의 틀을 벗고, 사진과 함께 제법
긴 취재기사들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신문기사도 감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910년대의 몇 안 되는 사례들
은 대부분 중국의 남북감정, 러시아국민이나 중국국민의 (일본에 대한) 好
感情 또는 親日感情, 對日感情 등이다. 지·정·의 삼분법의 감정이란 어쩌
다가 가정·육아란에나 실리는 정도였다. 1919년을 지나면서 조선사회 내
부의 문제들을 말할 때도 감정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주로
3·1운동으로 표출된 바 있는 조선인의 팽배한 불만을 가리켜서였다.

감정이란 심리의 평정을 失한 것을 말하오 (…) 감정이란 사람의 사람됨


을 파괴하는 (…) 병합 이후로부터는 국가가 없어졌다는 불평을 가진 것이
큰 감정의 원인이 된 듯합니다(1919. 11. 7. 「協成 樂部의 時局講演會(4)/
感情과 思想(1)󰡕).
감정이 격동될 時는 心□에 도리인지 무엇인지 顧念 여지가 無하며
又는 感情에 被囚야 무모한 事를 행하는 자가 多한 고로 (1920. 10.
18 「獨立運動의 眞相/ 感情에 被囚인가」)

아마 귀스타브 르 봉 등의 군중심리론에 입각했을 이런 기사들에서 감정


이란 흥분으로 이성을 잃게 만들고 “사람됨을 파괴하는” 격정(passion)이
나 충동이었다. 그런 격정에 휘말렸다고 매도당하는 것은 당연히 식민지민
이나 하층·노동계급이었다.

Ⅲ. 정서: 미묘한 감정 또는 분위기

‘감정’과 ‘정서’라는 말의 교통정리는 지금도 힘들다. 연구자들은 제각기


“감정(affect, feeling)은 다양한 개별적 감정이고, 정서(emotion)는 여러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61


가지 감정들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김경희, 1995: 12)”이라거나 “‘emotion’
을 감정으로 (…) ‘sentiment’를 정서로 옮겨 사용한다(김홍중, 2016: 471)”
고 하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합의가 없다. 앞서 보았듯이 영어 개념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감정적 대응”과 “정서적 안정”이라는 말에서 ‘감
정’과 ‘정서’를 상호교환해서 쓰기가 곤란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감정’은 짧고 강한, ‘정서’는 지속적인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앞서의 󰡔신여성󰡕 기사에서처럼 식민지기에도 두 말의 관계는 이런저
런 학설로 규정되었고, 사전은 사전대로 (지금과는 반대로) ‘緖’라는 말의
의미 때문인지 情緖를 하나의 감정, 감정의 실마리라고 설명했지만, 일상의
어법은 거기에 따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신문기사에서는 情緖를 미묘한
감정이나 분위기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갔다.
情緖는 󰡔독립신문󰡕에는 역시 보이지 않지만, 󰡔황성신문󰡕이나 󰡔대한매일
신보󰡕에서는 간혹 나타난다. 그저 情緖라고 한 것을 자꾸 다른 개념으로
치환시켜 보는 일 자체가 혹시 의미의 왜곡을 가져오지 않나 싶기도 하지
만, 대충 마음·회포 정도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면,

積阻하였던 舊友를 逢하여 (…) 積年 穩討치 못한 情緖를 一言으로 暢敍


(󰡔황성신문󰡕 1899. 2. 22. 「求仕忘友」)
新聞懇親會를 翠香舘에 開하였는데 情緖가 歡洽하다가 (󰡔황성신문󰡕 1899.
12. 11. 「新聞懇親會」)
無限風煙이 惱人情緖하는데 (󰡔대한매일신보󰡕 1906. 03. 24 「風流如夢」)

그런데 식민지기 󰡔매일신보󰡕에 이르면 조금 다른 의미의 용법이 나타난


다. 한 가지는 주로 여성과 관련된 쓰임이다. 1920년대가 되면 기사 제목
자체가 길어지면서 거기서부터 ‘情緖’라는 말을 노출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
에, 제목만 모아서 봐도 충분할 것이다. 실연의 아픔을 딛고 무용에 전념한
무용수의 춤에서 애달픈 정서가 느껴진다거나 유독 젊은 처녀의 마음(만)
을 가리켜서 정서라는 말을 쓴 것은, 이 ‘정서’의 주체가 어쩌면 그 여성들
이 아니라 기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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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은 情緖를 手足에 실어/ 失戀의 半生을 舞踊에 犧牲/ 熱情의 女性=舞踊
의 女王」 (1925. 11. 3.)
「劇塲婦人席에 激增된 朝鮮女學生// 挑發的 戀愛劇에 心醉하야/ 處女의 純眞
한 情緖紊亂」 (1926. 12. 15.)
「젊은 處女의 情緖/ 日本一의 民謠家/ 인연깁흔 조선을 찻는 민자양」
(1927. 5. 17.)
「짓히는 女性(三)// 업다든 本妻의 出現/ 同病相憐의 情緖」 (1928. 5.
25.)

또 하나의 경우는,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아는, 분위기·情調라고 할 만한


쓰임이다. ‘조선정서’라는 말은 이후 자주 나오게 되는데, 두 번째 조선호텔
기사의 본문에서는 ‘조선기분’이라는 말도 쓰고 있다. 朝鮮色·향토색의 오
리엔탈리즘과도 관련될 이런 식의 쓰임은 1930년대 이후 부쩍 증가한다.
네 번째와 같이 조선정서를 가미해서 교과서를 개정한다는 기사도 여러
번 보인다. 세 번째 ‘자아의 정서’라고 한 것은 각 지방의 향토적 정서를
말하고, 마지막의 ‘어촌정서’도 같은 쓰임이다.

「森林情緖가 넘치는/ 大公園建設計劃/ 十五年度에 一部實現」 (1926. 2. 1.)


「長竹, 唾口도 놋코/ 妓生과 歡談도 自由/ 죠선호텔의 새계획/ 朝鮮情緖의
溫突設備」 (1926. 7. 16.)
「鄕土敎育의 實現으로/ 劃期的發展企圖/ 標本부터 自我의 情緖를 表現/ 西崎
內務部長談」 (1932. 6. 11.)
「朝鮮情緖실린/ 朝鮮語及漢文新讀本/ 권二도 새로히 편찬을 마처/ 明年度부
터 使用」 (1933. 12. 2.)
「江原道漁村情緖와/ 名勝地를 撮影紹介/ 道에서는 撮影備를 整齊」 (1934. 5.
16.)

물론 드물게는 아동교육과 관련된 情操·情緖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신


문기사에서 感情·情緖라는 말은 대개, 2장에서 살펴본 철학·심리학의 뜻
으로는 쓰이지 않았다. 감정은 “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정”이고 정서는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63


“마음. 생각. 생각나는 대로 일어나는 情의 단서”라는 식의 사전적 정의는
워낙 막연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겠지만, 위에서 본
기사의 용례들은 사전의 그런 설명과도 잘 맞지 않는다.

5. 사전적 뜻풀이의 정착, 막연하고 밋밋한

Ⅰ. 영한·한영 이중어사전과 감정 관련 어휘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 관련 어휘들이 한국어로 완전한 시민권을 얻게


되는 과정을 사전을 통해 살펴보자.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조선에
서 사전 출판은 일본에서만큼 활발하지는 않았다. 근대의 번역어는 물론이
고 다른 개념어의 구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한자지만, 조선에서
는 그 한자의 사전적 뜻풀이(訓)는 무척 빈약했다. 식민지기에 간행된 字
典·玉 이라는 이름의 한자사전들은 18세기 말의 韻書인 󰡔全韻玉 󰡕의 수
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全韻玉 󰡕에서 情의 뜻은 ‘뜻(意)’이라고만 되
어 있다. 그러나 意도 志도 ‘뜻’이라는 같은 훈을 갖지만, 실제 意·志·情의
뜻과 용례는 크게 다르다.44) 최초의 조선어사전은 1938년에야 나오고, 조
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상황 아래서도 일한·한일 사전 역시 한손에 꼽을
정도밖에 간행되지 않았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편찬한 이중어사전이 그 빈
틈을 메꾸었지만, 이 역시 많은 양은 아니다.
개항 이래 한국어를 외국어로 풀이한 이중어사전의 계열은 ㈀리델(Félix
Clair Ridel) 신부의 󰡔한불젼󰡕(1880),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의 󰡔한영뎐󰡕(1890) 1부, ㈂게일(James Gale)의 󰡔한영
뎐󰡕(1897)과 ㈃그 증보판(1911)으로 이어진다. ㈄1914년 게일은 󰡔韓英字

44) 1915년에 나온 󰡔新字典󰡕이 그나마 뜻풀이가 조금 상세해서, 情의 뜻은 ①性의 움직임, 뜻


(性之動, 意也)으로 󰡔漢書󰡕에 ‘董仲舒曰, 人欲之謂情’이라는 구절이 있고. ②실제(實)라는 뜻
으로 󰡔論語󰡕에 ‘上好信, 則民莫敢不用情’이라는 용례가 있다고 되어 있는 정도다(朝鮮光文會,
2017[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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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이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漢字-영어사전을 간행했다. ㈅1928년에 조선인
金東成이 편찬한 󰡔最新鮮英辭典󰡕이, ㈆1931년에 가서 ㈂~㈄을 잇는 게일의
집대성 󰡔한영대뎐󰡕이 나오게 된다. 외국어-한국어 대역사전은, 영어사전
이 (A)H. 언더우드의 󰡔한영뎐󰡕(1890) 제2부, (B)스콧(James Scott)의
󰡔영한뎐󰡕(1891), (C)존스(George Heber Jones)의 󰡔영한뎐󰡕(1914),
(D)(㈂~㈄을 보충하는 新語사전이어서 수록 어휘가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게일의 󰡔三千字典󰡕(1924), (E)언더우드 父子의 󰡔英鮮字典󰡕(1925)으로 이어
지고, 프랑스어사전으로 (F)알레벡(Charles Alévêque)의 󰡔법한
뎐󰡕(1901)이 있다. 조선인이 낸 ㈅을 제외한 모든 사전의 편찬자는 전문적
언어학자나 조선학자가 아니라 선교와 성서 번역, 외교 업무를 위해 한국어
를 배워야 했던 선교사·외교관이고, 이런 사전들이 목표로 한 독자층 역시
일차적으로는 서구인이었다. 일찍부터 조선에 진출한 프랑스인 신부들에
의해 불한·한불 이중어사전 편찬작업이 더 먼저 이루어졌지만, 20세기 들
어서면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한 영한·한영사전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표 1>에서 본 영어 어휘들이 조선의 영한사전에서는 어떻게 옮겨졌는
지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표 1>과 비교하면 조선의 사전들이 시기적으
로 더 나중의 것인데도, <표 2>에 빈칸이 많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A)와 (E)를 제외하면 사전마다 편집자가 모두 다르고 (B)와 (C) 사이에
20년이라는 간격이 있어서 정확한 변곡점을 알 수 없기는 하지만,
(A)·(B)와 (C) 이후의 차이는 커 보인다. 사전의 표기 자체가 (A)와 (B)
는 한글, (C)부터는 한자병기로 되어 있고, (A)에서 시도했던 ‘··
결이’ 같은 순한글 번역어, (A)와 (B)에서 명사 emotion에 ‘감동다·
감격다’라는 동사를 대응시키거나 ‘감동것’이라고 풀어쓴 사례 등은
(C) 이후로는 거의 볼 수 없게 된다. 感情이라는 어휘는 1910년대 들어
emotion과 sentiment의 번역어로 등장한다. (A)에서는 affection의 대역
어로 정분·애정과 함께 따뜻한 정이라는 뜻을 가졌을 情도, (C) 이후로는
感情과 같은 뜻으로 등재되었다. 표에는 싣지 않았지만 sense에 대해 感覺,
sympathy에 대해 同情·同感이라는 번역어가 등장하는 것도 (C)부터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65


<표 2> 조선의 영한사전에 실린 감정 관련 어휘

affection emotion feeling passion sentiment


(A) 감동것, 셩픔, 결이, 분,
졍, 졍분, 졍 - -
(1890) 심회 노, 원, 욕심

(B) 감동다, 심, , 인졍, (lust) 음욕, 졍욕//


졍, 우 의견, 뜻, 의향
(1891) 감격다 인 (anger) 분, 셩, 노
愛情; (tender feeling)人情,
感情 the (perception by
(C) (attachment)多情; (anger) 忿怒… ; 感動; (rational
seven -s, touch) 感覺,
(1914) (kind feeling)友愛; (emotion) 情, 心 feeling) 感情, 意量;
七情 自覺, 感觸
(love)랑(愛) (opinion) 意向, 意見
(D)
- 感激 感受性 - -
(1924)
(1)感覺, 自覺, (1)感動, 激動
(1)情, 感情 (2),
(E) 感動, 情緖, 感動, 感觸 (2)情, (2)忿怒, 情慾
情, 情分, 愛情 意見, 意向, 感想,
(1925) 感情 同情 -s. 感情, (3)熱情 , 熱心 , 愛慕
存念
感受性 the seven -, 七情
※ 지면관계상 사전에서 한글과 한자를 병기한 것은 한자로만 표시했다.

情緖는 1925년 emotion의 번역어로 등장하고, 感受性은 1920년대 중엽쯤


에 feeling의 번역어로 등장한다. 感性은 식민지기 영한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B)와 (C) 사이에는 엄청난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이래 여러 사건과 국면을 거친 끝에 마침내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
다. 당장 전국민에 대해 조선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가 강제되지는 않았
지만, 행정·교육의 공식 언어는 일본어가 되었다. 언어민족주의, 민족어
문학, 표준어의 제정 등은 근대 국민국가 건설의 전제조건이자 국가가 해야
할 중요한 기획인데, 한국어의 근대적 전환은 중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
다. (B)와 (C) 사이의 거리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1890년대까지 외국인
선교사들이 더 필요로 했던 것은 영한사전이 아니라 한영사전이었다. 따라
서 ㈀도 물론이지만 ㈁과 ㈂에서 언더우드와 게일은 문어(한문)와 구별되
는 한국어 구어를 채집하는 데 주력했다. (A)·(B)는 일종의 보완물이었
다. 그러나 (C)는 (영어)교육현장에서 쓰기 위한 영한사전으로 영어에 대한
한국어 등가어를 찾는 데 치중했으며, 한국어 어휘가 없다면 중국·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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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라도 적극 수록했던 것이다(황호덕·이상현, 2012: 158-163). 이렇
게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또 사전 속에서, 메이지기의 번역어
를 비롯한 일본어 한자 어휘는 한국어 속으로 섞여들었다. 게일 역시 ㈂·
㈃·㈆에 걸쳐 한영사전을 확장해가면서, 󰡔매일신보󰡕 등을 통해 당시 조선
에서 쓰인 어휘들을 채집하는 한편, 일본에서 나온 일영·영일 사전을 참고
했다(같은 책: 40-41; 86-87). 󰡔매일신보󰡕를 비롯한 당시 조선의 신문·잡
지 기사 역시 당대 일본어의 어휘와 문법, 문체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으므
로, 증보된 어휘란 대개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였다.
여기서 반대로, 당시의 한영사전에는 감정과 관련해서 어떤 어휘들이 어
떤 순서로 수록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표 3>). ㈂·㈃·㈄·㈆은
모두 게일의 사전이다. ㈄은 자전·옥편처럼 漢字 한 글자씩을 나열한 것이
지만 ‘情’에 대해 흥미로운 점이 있어서 함께 실었다. 한불사전이어서 직접
비교는 곤란하지만, 실제 한국어 구어의 채록을 통해 이후의 한영사전들에

<표 3> 한영사전에서 ‘感’과 ‘情’을 포함하는 감정 관련 주요 어휘

感受性 感情 情 情緖 七情
affection, amour, coeur,

- - sentiment∥ passion, - les sept passions
(1880)
convoitise

- - affection, love, heart - -
(1890)
㈂ the seven
- - affection; love; lust -
(1897) passions
a feeling of

- admiration; a 〃 - 〃
(1911)
sentiment of wonder
the passions; emotions;
㈄ affection; lust;
(1914) circumstances; the
feelings; kindness; pity
feeling; passion; emotion;
㈅ feeling; emotion; an emotion;
sensibility* sympathy; sentiment; -
(1928) sentiment; passion a feeling
affection; heart

sensibility feeling, emotion affection; love; lust 〃 ㈂·㈃과 같음
(1931)
※ ㈅에서 sensibility는 感性, 感受性 두 어휘에 대한 대역어로 실려 있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67


큰 영향을 미친 ㈀리델의 󰡔한불자전󰡕(1880)도 참고삼아 포함시켰다.
예전부터 사용된 한 글자짜리 개념어 情의 뜻을 보면, 일찍이 리델이 ㈀
에서 (프랑스어지만) sentiment, passion 같은 대역어를 포함시켰음에도
㈁언더우드나 ㈂·㈃·㈆의 게일 모두 affection, love, heart, lust로 풀이
하고 있다. 애정·다정·정욕 정도의 뜻이다. 언더우드나 게일 모두 한국
어 어휘 추출에 ㈀을 많이 참조했고, 특히 애초 선교사들 중에서 게일이
사전 편찬을 맡게 된 것이 그의 프랑스어 실력, 즉 ㈀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황호덕·이상현, 2012: 132, 138-139),
이것은 조금 묘한 선택이다. 프랑스어 sentiment과 영어 sentiment의 의미
차이도 있겠지만 언더우드와 게일은 일상생활에서 실제 사용되는 한국어
구어를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아마 그들이 접한 범위 안에서 情이 감정이라
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재미있게도 게일은 일종의
字典인 ㈄에서는 情에 대해 감정(들)을 가리키는 the passions, emotions,
the feelings 같은 영어 대역어를 추가로 제시했지만,45) ㈆에서는 ㈂·㈃
로 되돌아갔다. ㈅의 1928년 김동성 사전에 가서야 감정을 뜻하는 feeling,
emotion, sentiment 등의 대역어가 情의 뜻풀이 앞쪽에 등장한다.46)
感情은 1911년 게일의 사전에 처음 등장하지만 이때의 뜻은 차라리 감동
에 가깝고 그것도 영어 한 단어가 아니라 句로 풀이되어, 게일에게는 이
용어가 썩 익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역시 ㈅에 가서 감정 일반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情의 경우와 달리 게일도 ㈆에서는 feeling, emotion
이라고 풀이를 바꾸었다. 감정보다 더 이해하기 힘들었을 sensibility는 ㈅
에서 感性과 感受性, ㈆에서 感受性의 대역어로 등재되었다. (B)에서는
sensible의 뜻을 ‘지혜롭다’로 풀었고 1924년의 (D)에서는 感受性을 feeling
의 번역어로 수록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였다. 같은 무렵 등장한 情緖는
㈅에서 an emotion, a feeling으로 풀이된다. 다른 항목들과 달리 여기서

45) the passions, emotions, the feelings를 모두 복수형으로 제시했고, 두 단어에는 정관사
까지 붙인 것도 흥미롭다. circumstances는 實狀이라는 뜻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46) 그런가 하면 ㈅에는 “졍(戀) love (예문) 졍든님; 졍든사람 a lover; a sweetheart”라는
기묘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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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부정관사로 한정한 것과 편집자가 다른 ㈅·㈆이 같은 풀이를 해놓은
것은, 아마 일본에서 나온 사전을 공통으로 참조했기 때문일 것이다.47) 부
정관사 a(n)를 붙인 것이 感情이나 情은 감정 일반, 情緖는 그런 감정들
중 하나라는 뜻이라면, 이것은 2장 Ⅰ에서 살펴본 심리학 체계와는 다른
구별법이다. 비슷한 시기 󰡔신여성󰡕에서 정서는 “간단한 감정이 시간적으로
연속하여 일어나서 그것이 한데 뭉치어 (…) 의식에 강한 감정이 되어 나타
나는 것”이라고 한 ‘상식’과도 다르다.48) <표 2>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
만) 용례로만 수록되었던 七情은 한불·한영사전에는 거의 내내 항목으로
등장하고, 대개 (seven) passion(s)으로 풀이되었다.

Ⅱ. ‘조선어사전’ 류에 실린 감정 관련 어휘

조선인이 편찬한 최초의 한국어사전은 1938년에 나온 文世榮의 󰡔조선어


사전󰡕이다. 그보다 훨씬 앞서, 조선총독부는 1910년대초부터 총독부 取調
局→ 參事官室의 舊慣制度調查事業의 일환으로 기획했던 󰡔조선어사전󰡕을
1920년에 간행했다(이하 ‘총독부사전’). 이 사전은 한국어 어휘를 일본어로
풀이한 것인데, 애초 기획 단계에서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가지 뜻풀이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일본인들이 중심이 된 조선어연구회
의 󰡔鮮和新辭典󰡕(1930)이 있었고, 일한사전으로는 󰡔辭林󰡕(1911)을 번역한
󰡔(鮮譯)國語大辭典󰡕(1919)이 간행되어 있었다. 이 사전들에서 감정 관련 어
휘는 어떻게 설명되었는지, 몇 가지 사례를 보이면 <표 4>와 같다. 맨 왼쪽
열의 「朝鮮辭書原稿」는 총독부사전의 중간단계 원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한
국어·일본어 두 종류의 뜻풀이가 시도되었음을 보여준다.49)

47) 井上十吉(1909)에서도 情이나 感情에 대해서는 feeling, emotion이라고만 했지만, 유독 情


緖(jōshō)에 대해서는 an emotion, a feeling이라고 해놓았다. 情緖를 감정 중 하나, 즉
한 실마리(緖)로 보았기 때문일까? 아무튼 井上十吉(1909)은 1920년대까지 여러 차례 개정
되면서 가장 많이 읽힌 사전으로, 조선의 사전 편찬자들도 많이 참조한 사전이었다(황호
덕·이상현, 2012: 86-87).
48) 碧朶(李晟煥), 1926, 「常識講座」, 󰡔新女性󰡕 4(2): 41.
49) 지금 기준으로 보면 문세영사전과 󰡔鮮和新辭典󰡕은 한국어사전, 총독부사전은 한일사전,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69


<표 4> 식민지기 ‘조선어사전’에서 感과 情을 포함하는 주요한 어휘

朝鮮辭書原稿 朝鮮語辭典 鮮和新辭典 文世榮


(1914?) (1920) (1930) (1938)
外觸으로 因하야
①알고 깨닫는 것. ②(心)신
心覺하는 意//  心に感して覺るこ 경 끝에 닿은 자극이 뇌의 중
感覺 -
外部の刺戟によりて と. 추에 이르러 일어나는 단일한
覺る心のはたらき 의식 현상.
事物을 因하야
感動 心動하는 意// 深に感すること. - 마음에 깊이 느끼는 것.
感じて心の動くこと
①사물에 느끼어 일어나는
정. 마음. 생각. ②(心)의식
안에 있는 쾌·불쾌에 관한
感情 - - 강렬한 현상 또는 知·意를
따라 일어나는 쾌·불쾌의 마
음의 현상.
情愛. -다웁다 親し、懷
①애욕의 마음. ②서로 사귀
し. 略、정답다. -어 는 정의. ③느껴서 일어나는
情 愛戀の心. 愛戀の心. 진다 氣がなくなる. 情
がなくなる. -든다 懷 마음의 작용. ④생각. 뜻. ⑤
(心)快苦의 감정.
(なつ)く. 馴染(なじ)む.
情이 發現한 端緖// ①생각나는 대로 일어나는 情
情緖 情の動く端緖. - 의 단서. ②(心)관념을 따라
情のいとくち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
氣分 心地. 心地. - 마음에 느끼는 상태. 생각.
①밖의 사물의 영향이 깊이
느끼다 ①感す. ②感歎す. ③ 마음 속에 들어오다. ②감각
感歎す. 咽び泣く. 感歎す. 咽び泣く. 이 일어나다. ③마음이 움즉
(늣기다) 咽び泣く.
이다. ④감동하다. ⑤목이 메
어 울다. ⑥슬프게 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총독부사전과 󰡔鮮和新辭典󰡕에는 感情·同情 같은


낱말이 실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마 이것은 총독부사전의 편찬 의도
자체가 이미 일본어가 조선의 공용어(‘國語’)가 된 현실에서, 한국어를 현재
의 살아 있는 어휘로서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과거의 유산으로서 정리하는

󰡔(鮮譯)國語大辭典󰡕은 일한사전이지만, 식민지의 이중언어 상황을 생각하면 모두를 묶어서


‘조선어사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또 앞 절에서 본 여러 이중어사전들이 대개 한국어와
외국어 대역어를 일대다나 다대다로 대응시킨 정도였다면, 이 사전들은 짧게라도 항목 낱
말의 뜻을 문장으로 풀이해놓았다. 「朝鮮辭書原稿」(1914?)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디지털
원문을 볼 수 있다. 󰡔조선어사전󰡕과 이 원고의 관계에 대해서는 안예리(2017), 󰡔(鮮譯)國語
大辭典󰡕에 대해서는 최경봉(2017), 문세영의 사전 편찬 작업에 대해서는 박용규(2011)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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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황호덕·이상현, 2012: 105). 이 사전 간행 직전
에 󰡔(鮮譯)國語大辭典󰡕(1919)이 나오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和制漢語까지
‘조선어사전’에 넣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최경봉, 2017:
14-15). 표에는 넣지 않았지만, 感慨·感傷·感受性·冷情·同情·有情도
문세영사전에 가서야 등장한다. 신문기사나 문학작품에서는 분명히 쓰이고
있었던 이런 말들은, 당시에는 굳이 나누자면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로 분류
되었던 모양이다. 몇몇 항목에서는 문세영사전이 총독부사전과(위 표의 밑
줄친 부분), 표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鮮譯)國語大辭典󰡕에 많이 의존했음
도 알 수 있다. 심리학 용어를 (心)이라고 따로 표시한 것도 󰡔(鮮譯)國語大辭
典󰡕과 비슷하다. 모든 사전은 수록어휘나 그것의 뜻풀이에서 선행하는 사
전을 베끼면서 확장해가는 것이고, 결국 오늘날의 한국어가 만들어진 것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였던 것이다. 표에는 싣지 않았지만, 총독부사전과 문세
영사전 모두에 실린 ‘情’으로 시작하는 낱말로는 情近·情到(애정이 깊음)·
情理·情分·情緖·情疎·情熟·情誼·情懷 등이 있다. 情近·情到·情疎·
情熟 같은 서술적인 개념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낱말이라기보다는 ‘정
이 어떻다’라는 문장일 것 같다.
내용상으로는, 情의 뜻이 문세영사전에 와서 ‘감정’이라는 뜻을 포함하면
서 많이 확장된 것, 情緖에서 여전히 ‘端緖’가 강조되는 것 등이 주목된다.
문세영사전의 풀이를 보면 결국 감정 관련 어휘들의 뜻은 情과 ‘느끼다(感)’,
마음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귀착되는 듯하다. 하지만 고유어 ‘느끼다’는
문세영사전에 와서야 비교적 다양한 뜻으로 정의되고 있을 뿐, 앞서의 한영
이중어사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에는 이 말 자체가 없고,50)
㈂에는 ‘늣기다’가 흐느끼다(欷, to gasp; to catch for breath; to weep
silently)라는 뜻으로만 설명되어 있으며, 심지어 ㈅에서도 ‘늣겨우름(泣)·
늣겨울음·늣겨운다(呻吟)·늣겨움(嗚咽)’이라고만 되어 있다. 아마 당시

50) ㈁에서 feel의 뜻은 “소, 지오”다. 문세영사전에서도 ‘느낌’이라는 명사 항목은 없다.


‘느낌씨: 감탄사’가 있고, ‘느껍다’의 뜻이 ‘느낌이 일어나다’로 되어 있다. 문세영사전에서
‘마음’은 ①정신. ②뜻. ③시비·선악을 판단하는 힘. ④생각. ⑤智·情·意의 전체. ⑥사
물의 도리로 풀이되어 있다.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71


사람들에게는 고유어 ‘느끼다/느낌’보다 ‘感’이 더 쉽게 이해되고 와 닿는
어휘/개념이었던 것 같다.

6. 나가며

하늘 천, 따 지 󰡔천자문󰡕을 읽다 보면 “悚懼恐惶”이라는 묘한 구절과 마주


치게 된다. “두려워할 송, 두려워할 구, 두려워할 공, 두려워할 황”하고 혀
가 꼬이도록 더듬거리노라면, 서늘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어느 날 문득 가
는귀가 먹었음을 깨달을 때처럼, 혹시 다른 누군가는 누리고 있을 세계 앞
에서 나만 거부된 것인가 하는 느낌. 이 네 글자는 마치 聲調처럼 중국인에
게는 몸에 배어 있지만 한국인은 구별하기 힘든 섬세한 차이를 갖는 것일
까? 󰡔천자문󰡕을 百讀하면 文理가 트일까?
이성이든 감정이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정신작용은 개념
으로 포착하기 힘들다. 거기에, 내가 느끼는 슬픔과 다른 사람이 느끼는
슬픔이 같은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남의 감정을 인
식·이해하는가 하는 문제가 겹쳐진다. 초기의 ‘언어-그림’ 이론을 버린 비
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에서 지속적으로, 우리가 나/남의 고통을 어떻
게 알/표현할 수 있는지, 언어가 없는 곳에 고통이 있을 수 있는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Wittgenstein, 2006: §244 이하; 제2부). 그가 새롭게 다
듬은 ‘언어-놀이’ 이론은, 낱말의 의미는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아니라
언어에서의 낱말의 쓰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전을 보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그 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움으로써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된다.51) 悚·懼·恐·惶 네 글자의 뜻을 사전적으로 구별하지 못해도, 우리
는 이것들을 조합해서 송구·황송·황공·恐懼 같이 서로 뜻이 다른 말들
을 만들어 쓴다. 悚懼나 罪悚이라는 말의 뜻은 그 말을 이루는 낱글자의

51)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이론을 감정에 적용시켜 본 흥미있는 연구로 하홍규(2013)이


있다.

72
조합으로 환원되지 않고, 가리킴보다는 쓰임에서 결정된다. 중국과 한국에
서 이 말은 다르게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번역어에 대해서도 기원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사용(오용도 포함해서)의 계보를 뒤져볼 수 있지 않
을까? 그런 관심을 가지고 이 글에서는 󰡔서유견문󰡕(1895) 이래 식민지기까
지 감정·정서 같은 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주먹구구식 방
법 말고 더 완벽한 말뭉치와 더 세련된 분석도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지
만, 나로서는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참고문헌

(1차 자료)
사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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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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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77


Introduction and Use of Translated Terms
of the Concept of Emotion

Seo, Ho-Chul (Academy of Korean Studies)

The words ‘感情 (gam-jeong)’ and ‘情緖 (jeong-seo)’ meaning


‘emotion’, were coin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the Japanese
started to translate Western philosophical and psychological works.
The trichotomy of ‘reason’, ‘emotion’ and ‘will’ were rather unfamiliar
in East Asia. Such words as ‘情 (jeong)’ or ‘七情 (chil-jeong, seven
emotions)’, among traditional lexicon, can be viewed to be close to
‘emotion(s)’. The word ‘感情’ was introduced to Joseon through
academic journals and articles since Yoo Kil-jun’s Seoyugyeonmun
(1895). In 1910s, Lee Gwang-soo claimed that realistic descriptions
of emotions should be the core of modern literature. Meanwhile,
in other areas, such as newspaper articles, ‘感情’ was often used to
mean the (negative, in many cases) attitude of one nation or ethnic
race toward another. It wasn’t until the late 1920s that such new
words as ‘感情’ and ‘情緖’ were entered into dictionaries of various
kinds. However, the exact connotations of ‘感情’ used in the area
of literature and international politics was slightly different and did
not correspond to psychological definitions or dictionary meanings.
This may be due to the polysemic characteristic of the Chinese
character ‘情’. This might also be attributed to the traditional system
of thought interfering with the imported one, or to the Japanese
impact on the Korean language during the colonial rule. The
meanings of ‘感情’ and ‘情緖’ used now in our daily lives seem to
be settled in such a way. As Ludwig Wittgenstein pointed out, we
learn the meanings of a word not by referring to the dictionary but

78
by learning how and when to use them in our daily lives. More
attention should be paid to the problems of use in the study of
concept words.

Key words
emotion, sentimen, Jeong(情), severn emotions(七情), concept word,
usage, translation

투 고 일 : 2018. 5. 29.
심 사 일 : 2018. 6. 27.
게재확정일 : 2018. 6. 27.

서호철 / ‘七情’에서 ‘感情’으로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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