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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정 (七情) '에서 ‘감정 (感情) '으로 - 감정 관련 번역어의 수용과 사용
‘칠정 (七情) '에서 ‘감정 (感情) '으로 - 감정 관련 번역어의 수용과 사용
서호철 1)
한글요약
서호철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 논문은 2017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인의 가치변화와 감정양식’ 과제로 수행된 연구
임(AKSR2017 V01).
1.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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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왔다. 이성이나 감정이라는 말에 대응하는 실재가 과연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개의 언어는 기쁨·슬픔·분노·두려움 같은 개별감정을 가
리키는 어휘를 갖추고 있다.3) 추상적 어휘의 풍부함으로 말하자면 중국어
(한자)를 따라갈 언어도 없을 것이다. 또 동아시아에서 그런 개별감정들은
五蘊이니 七情이니 하는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체계 안에 자리매김되어 있었
다. 그런 가운데 굳이 감정·정서 같은 말이 번역어로 고안되어야 했다는
사실은, 서구發 근대의 도래 앞에서 동아시아인들의 세계 자체가 완전히
재구조화되어야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애초 번역어가 어떻게 고안되었는지는 우리한테는 별 의미 없는
물음이다. 서구와의 접촉과 근대화의 시도가 한 발 늦었던 조선에서는 중국
과, 압도적으로는 일본에서 고안된 번역어들을 거의 그대로 도입했다. 조선
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되었다. 근대의 번역어가
동아시아의 공통된 文語인 한자로 造語되었다는 사정도 한몫을 했다.4) 서구
근대와 맞붙어서 어떻게 씨름했는가 하는 물음이 누가 일본에 더 먼저 유학
했거나 일본에서 나온 번역서를 먼저 읽었는지로 해소되는 것은 맥이 빠지
는 일이다. 하지만, 번역어의 기원이 아닌 계보, 즉 그렇게 도입된 개념어들
이 어떻게 이해/오해되었고 어떤 의미·용도의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것은
문제가 다를 것 같다. 학문적 술어와 일상언어의 경계도 마찬가지다. 권
리·민주주의 같은 개념어가 정치학이나 법학 서적의 번역·소개를 통해
도입되었다 해도, 그런 말들은 곧 학문의 영역을 벗어났다. 다른 쓰임이
거듭되면 다른 의미를 낳았을 것이다.
3) 20세기 후반의 인류학은 (자아와) 감정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문화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Reddy, 2016: 62-85). 그러나 문화마다 개별감정을 가리키는 어휘의 유
무나 分化의 정도에 차이가 있다 해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 자체는 인간에게 보편
적인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4) 메이지 초기 일본의 번역어는 대개 한자로 造語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문장 역시 한자와
카타카나가 뒤섞인 訓讀文(‘文語體’)이었다(齋藤希史, 2010: 128-131). 그러나 情을 ‘なさけ’
라고 훈독할지 ‘じょう(당시 표기로는 じゃう)’라고 음독할지는 한국어의 고민은 아니었
다. 感情은 일본어나 중국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식 한자음으로 ‘감정’이라고 읽으면
그뿐이었다. 取締(とりしま)り나 請負(うけお)い 같은 일본어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었
고, 佛蘭西 같은 音借도 ‘후랑스’가 아니라 ‘불란서’로 읽었다.
Ⅰ. 메이지기 서구 철학·심리학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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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하되었다. 사정이 급변한 것은 19세기 후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이 본격화하면서였다. 아편전쟁 이래 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고,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尊王攘夷’에서 ‘脫亞入歐’로 돌아섰다. 서구 근대 문
명을 배우고 수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 되었다. 이후 본격화된
번역은 몇몇 서구어 텍스트를 번역하는 수준을 넘어, 동아시아를 새로운
세계 속으로 옮겨놓았다. 지금 우리는 번역된 서구 근대 안에 살고 있고,
理氣·性情·體用 같은 개념들로 이루어진 “과거는 낯선 나라다.”6)
메이지 초기 번역작업에서 큰 몫을 담당한 것이 니시 아마네(西周,
1829~97)다. 그는 네덜란드 유학을 거쳐 1873년 후쿠자와 유우키치(福澤
諭吉) 등과 함께 메이로쿠샤(明六社)를 설립하고 일본에 서구 학문을 번역·
소개하면서 哲学·科學을 비롯해서 知識·概念·演繹·帰納 등 많은 번역개
념어를 만들어냈다. 니시는 1878년 조지프 헤이븐(Joseph Haven)이 쓴
교과서 Mental Philosophy: Including the Intellect, Sensibilities, and
Will(1869년판)을 (奚般氏著)心理學이라고 옮겨서 문부성에서 간행했다.
제목에서 보듯 知(智)·情·意 삼분법에 따라 인간의 정신작용을 논한 책인
데, 여기서 니시는 心理學이라는 말을 처음 도입했고 feeling을 感動으로,
emotion을 情·情緖, affection은 情愛·情款, sensibility는 感性·感動·
情, sentiment는 情思·情操로 번역했다(小泉仰, 1971; 宇津木成介, 2014;
2015). 情緖나 情操 등은 니시의 고안임이 분명하지만, 感動과 感情도 그가
만든 말인지는 알 수 없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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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지만(小泉仰, 1971: 180-182 그림 참조). 혹자는 유개념을 情緖라고 명명
하고 그것을 私情·同情·中情으로 나누었는가 하면, 感情을 感應·情緖·情
操로 나눈다거나 感動이나 情操를 유개념으로 두기도 했다(佐々木正昭,
1980: 44-49; 石塚正英·柴田隆行, 2003: 48-49).
Ⅱ. 일본의 근대 사전과 감정 관련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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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일영 이중어사전에 情緖·感情·情操 같은 어휘가 실리는 것은 니
시의 번역작업으로부터 10년쯤 지난 1880년대 후반이다. 일본에서 나온 사
전들에서는 emotion은 情·感情, passion은 情(七情의 총칭)이라는 식으로
번역되었다. affection은 거의 애정·정애라는 뜻으로 쓰였고, sentiment
는 1880년대 초까지도 감정보다는 주로 의견·인식의 뜻으로 이해되었음
을 알 수 있다.13)
여기 비하면 일본의 자국어사전은 이중어사전보다 늦게 등장하기도 했지
만, 새 번역어의 수용에도 좀 더 보수적이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자국어
사전으로 평가받는 言海(1889~91)에는 感情·情緖·情操 같은 어휘는 보
이지 않고, 感じ, 感ず, 感動, じょう(情), なさけ(情) 등이 다음과 같이 상
호참조의 순환구조로 설명되어 있다.
Ⅰ. 계몽과 감정
15) 碧朶(李晟煥), 1926, 「常識講座」, 新女性 4(2): 40-42. 카인즈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情操는 주로 1930년대 情操의 교육·도야라는 형태로 쓰인 30여 건의 용례가 있을
뿐이다. 정서와 잘 구별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16) 이광수, 1979[1916], 「文學이란何오」, 李光秀全集 1, 又新社: 547-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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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되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유적 속성으로서의 情이 아니라, 전통의 도덕
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개인의 감정, 남녀 간의 애정·정욕이거나,
그런 개인이 평등한 다른 개인 또는 사회 전체에 대해 갖는 동정이다.17)
1870년대 후반 일본에서 고안된 감정 관련 번역어들은 곧 조선에도 유입
되었다. 그 통로로 우선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은 철학·심리학·교육학
등 서구의 지식체계와 실천을 소개한 계몽적 저작과 번역이다. 유길준은
서유견문(1895) 제13편에서 (아마도 생리학이나 형질인류학을 가리키
는) 人身學은 “疾病의 緣起하는 根委와 感情도 微細히 說及(俞吉濬, 1895:
354)”한다고 썼다. 제한된 문맥 속에 놓인 낱말 한 개지만 심리학의 감정
개념으로도 충분히 읽힐 것 같다. 서유견문은 상당부분 기존 (일본어)
텍스트의 번역임이 밝혀지고 있는데, 이 대목도 혹시 거기에 해당할지도
모르겠다.18) 이 책은 시중에 판매되지 않고 초판 1천 부가 정부 고관과
유력자 등에게만 배포되었지만, 당시 여러 지식인들이 이 책을 탐독했고
일부 내용은 독립신문, 황성신문의 논설에 그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韓哲浩, 2000: 238-242).
독립신문 이래의 신문은 다음 장에 모아서 보기로 하면, 서유견문
다음에 올 것은 1900년대의 여러 학회지다. 1906년 대한자강회월보 3호
에는 장지연이 譯述한 량치챠오(梁啓超)의 「敎育政策私議」라는 글이 실렸다.
신체·지·정·의·自觀力이라는 항목별로 아동·청년의 발달단계에 따라
17) 「무정」의 무정한 현실에 반대되는 이상적인 사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평양에서
돌아오는 이형식의 자각에 주목해서 감각적·감정적·욕망의 존재로서의 근대적 개인의
등장에 주목하는 입장(김우창, 1995 등)과, 삼랑진 수해장면에서 부각되는 동정을 사회·
민족의 구성원리로 강조하는 김현주(2004), 손유경(2008) 등의 입장이 갈린다. 정병설은
「무정」의 무정이란 ‘인정 없음’이 아니라 ‘存天理滅人慾’의 유교 윤리에서 오는 감정의 억압,
‘감정 없음’이라고 보고(정병설, 2011), 방민호는 거기 동의하면서 서구식 지·정·의 3분
법과 전통적 性情論이 이광수에게서 어떻게 교차·접목되는지를 탐구했다(방민호, 2012).
18) 후쿠자와 유우키치가 쓴 西洋事情의 번역이 서유견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제19~20편 여행기가 상당부분 萬國名所圖繪의 번역임도 최근 밝혀졌다
(서명일, 2017). 앞서 보았듯이 이한섭(2014)는 감정·정서·정조·기분 등을 일본에서
온 한자어로 수록했고, ‘감정’ 항목에서는 (출처 표시가 부정확하지만) 서유견문의 이
대목을 사례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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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안확은 “문학은 美感想을 문자로 表顯하는 것”이라는 얼핏 이광수의
것 같은 말을 “大抵 人이 春風和氣를 乘하여” 경치 좋은 곳에 이르면 “감정이
격동하여” 술에 취한 것 같아진다는 고전적 비유로 풀어갔다.23) 반면 최승
구의 감정적/정감적 생활이란, 문맥상 (문학·예술의 경험을 통해서) 무기
력한 조선사람들의 삶이 깨어나고 활성화되는 상태를 말하는 듯하다.24) 그
런가 하면 “우리의 처지와 형편이 인격보다도 감정을, 이성보다도 감정을
앞세우고 나아가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김명식의 묘한 주장의 행간에는
식민지의 현실이 숨겨져 있다. 그는 유학생들에게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
“인격만 숭상하고 이성만 동경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선한 일이나 선하지
못한 일을 不拘하고 오직 폭발약이 터지듯하는 많은 원한을 억제치 못하여
분개한 마음”을, 그런 감정을 갖자고 호소한 것이다.25) 물론 김명식의 이런
주장 역시 지·정·의 삼분법을 遠景에 둔 것이기는 했다.
Ⅱ. 문학작품에서의 감정/情
23) 安廓, 1915, 「朝鮮의文學」, 學之光 6: 64. 그가 구사하는 어휘와 문체로 보아 이때의 ‘감
정’은 세종실록에 나오는 “感情罔極”과 같은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24) “五官은 다 가졌”지만 “작용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고통이며, 飢寒이 박두한 것을 도무지
모르고, 멀뚱멀뚱 비슬비슬할 뿐”인 상태를 고쳐, “이 사람들의 신경이 완전히 운전하여
작용하는” 날을 맞고 싶다는 것이다. 崔承九, 앞의 글: 17-18.
25) 金明植, 1917, 「雁去鷰來」, 學之光 13: 34. 여기 대한 반대 입장은 당연히 “일시의 흥분으
로써 감정이 향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追하여 잠시의 만족을 取코자” 하지 말고 이성·감
정·의지의 고른 함양을 통해 인격의 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崔承萬,
1922, 「人格主義」, 개벽 2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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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감정은 아니 가졌다”고 할 때의 감정 역시 상대방에 대한 마음, 好惡나
평가다. “만세소리가 들릴 때의 형식의 감정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거
나 “혼잣몸으로 수만리 이역에 향하는 감정은 참 형언할 수 없”더라는 대목
의 감정은 기분이나 心情이라고 할 수 있겠다.30)
특히 情이라는 한자 어휘는 복잡한 간섭현상을 빚어냈다. 니시 아마네는
感情·情緖 같은 번역어를 고안해놓고도 희로애락 같은 개별감정은 그냥
情이라고도 불렀다. 이광수도 감정보다는 情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그
런데 情은 (1)性情論이나 서구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론적 개념·범주일 수
도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2)多情·愛情이나 (3)남녀간의 色情·慾情일
수도 있고, (4)事情·實情 같은 사태의 실상을 가리킬 수도 있다. 따라서
세월이 무정한 것과 (인간)세상이 무정한 것은 뜻이 다르고, ‘人情’이라는
말은 (2)의 뜻으로도 (4)의 뜻(人情世態)으로도, 또는 일본 에도시대의 ‘人情
本’에서처럼 (3)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
지만 조금씩 다른 의미다.31) 그리고 이런 의미와 쓰임은 감정이라는 말이
feeling이나 emotion, sentiment의, 또 무슨 서구어의 번역어로 만들어졌
다는 기원이 한정하는 범위를 뛰어넘는다. 물론 새로운 어휘의 새로운 용법
도 많은 부분 당대 일본어의 영향 속에 있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시기
일상의 한국어에서 감정이라는 새로운 말이 이렇게 쓰이게 되었다는 사실
이다. 꼭 감정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써도 되는 자리였을 수도 있지만,
쓰임이 거듭되다 보면 감정이라는 말이 아니면 안 되는 자리가 나타날 터였다.
30) 차례로 李光秀全集 8: 59; 이광수, 2003[1916]: 622-623; 626; 이광수, 1979[1917], 「어
린벗에게」, 李光秀全集 8: 81. 心情은 당시 일본의 사전에서는 꽤 늦게, 金澤莊三郎 編,
辭林(1911) 정도나 되어서 실리게 된다.
31) 「무정」의 해석 논쟁은 주17)에도 짧게 정리했지만, 하타노 세츠코는 이광수 문학론의 情이
①감정, ②인간 심리, ③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열정이라는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波田野節子, 2008: 135-136). 백지은은 이광수 문학론에서 情은 ①인간 본성이자
근원적인 감각인 性情, ②도덕감정으로서의 동정, ③사물·자연의 생태와 사람살이의 풍속
을 가리키는 人情(世態)의 세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고, ②는 善을, ③의 여실한 묘사는 眞을
지향하므로 情의 문학론이란 결국 지·정·의 삼분법의 틀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백지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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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ard to Korea(1896. 5. 16)”, “an ill feeling between Koreans and
Japanese(1896. 9. 26)”처럼 국가·민족 간의 관계나 태도를 feeling이라
는 말로 표현한 사례도 있다. sentiment도 “true patriotism is no narrow,
self-centered sentiment(1896. 7. 7)”처럼 쓰이기도 했지만, feeling은 감
정보다 더 넓은 뜻의 느낌, sentiment는 생각·의견·입장이라는 뜻으로도
쓰였다.33) emotion이 등장하는 소수의 기사는 대개 외신의 전재이거나 일
본인·외국인의 개인적 감상인데, 동학동민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관군의
위령제 때 군부대신의 연설에 “군인들 마음이 감동 아니할 리 없고”가 영어
로는 “causing profound emotion”이라고 되어 있다(1897. 1. 21).
독립신문은 1899년 12월초까지 나왔고 1898년 9월초부터는 황성신
문이 간행되었는데, 흥미롭게도 두 신문이 병존했던 시기 전자에는 없는
‘감정’이 후자에서는 종종 보인다. 순한글과 한자병기라는 다른 표기방식에
서 오는 감각의 차이였을까? 일시가 빠른 순서대로 몇 가지 용례만 들어보자.
33) 1896년 5월 12일 The Independent는 학부대신 신기선의 반동적 상소를 비판한 독자
기고를 번역해서 실었다. 기고자는 자신이 양주지역의 여론을 전달하는데(I voice the
sentiment of the law-abiding and patriotic citizens of Yang Ju), 신기선의 sentiment
(의견/입장)은 의병의 것과 같다고 썼다. 6월 13일자 독립신문 잡보에서 병행구절을
찾을 수 있는데, 거기서는 “These are exactly the sentiments this “righteous army”
entertian and champion”을 “이것은 (…) 소위 의병의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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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전세계적으로 민족주의의 열기가 뜨겁고
국제관계가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으며,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과 “我와 非
我의 투쟁”이라는 민족 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감
정’으로 지칭된 타자에 대한 이런 태도는 많은 부분 특정 사건·국면과 연
관된 실제의 여론이나 집합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을 단
일한 주체로 묶어내(려)는 정치적 담론이나 국가·민족을 의인화하는 대중
매체의 문법에 따른 수사적 표현도 작용했을 것 같다.36) 또 이렇게 명명된
‘감정’과 행위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가령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反日·排日
의 감정이 먼저 일어서 일본인의 이민을 제한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러 원
인으로 생겨난 일본인 이민 제한, 일본인 차별, 일본상품 불매조치 등을
뭉뚱그려 ‘배일감정’이라고 불렀던 것일까?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시
대에 감정은 중요한 대중동원의 기제였고, 그런 동원을 위한 조작이나 책동
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 ‘감정’이 조금 더 지속되고
체계화되면 아마 반유대주의나 黃禍論(Yellow Peril)처럼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을 얻게 될 터였다.
감정이라는 말의 이런 쓰임이 어디서 왔을지를 추적하기란 불가능하겠지
만,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해보면 청일전쟁 이래 일
본인끼리의 통신에 이런 뜻으로 쓴 감정이라는 언급이 많이 보인다. 초기의
한두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37)
弱邦人が强國人の事業に對する感情、常に此の如し、(약한 나라 백성
이 강국 백성의 사업에 대해 갖는 감정은 늘 이와 같아서)
東派ハ內々大ニ支那人ヲ嫌フテ居レトモ日本人ニ對シテハ何等惡感情ヲ
38) 당시 感情과 憾情이 뒤섞여 쓰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憾情이라는 말이 나오는 황성신문
기사도 100건 가까이 된다.
39) 1907. 9. 26. 「警告日本當局諸公」; 10. 1. 「猜疑의 獘害」; 11. 26. 「警告當局諸公」; 12. 19.
「壓制時代論의 見」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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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투를 벗지 못한 황성신문에 비해 조금 더 나중에 창간된 대한매
일신보, 특히 한글판은 ‘감정’과 결합하는 용언을 훨씬 다양하게 보여준
다.40) 주어로서 감정은 있다(不無하다)/없다, 많다(多有)/적다, 생기다((不)
生하다), 되다, 충격되다 등과 결합하고, 목적어가 될 때는 (감정을) 表하다,
뵈다, 抱하다, 받다, 얻다/잃다, (損/沮)害하다, 손상하다, 풀다(慰解/和하
다), (불러)일으키다(起하다), 자아내다, 빚어내다, 訴請하다 등과 결합한다.
표하고 뵈거나 얻고 잃는 감정이란 “감정상 의리”나 “의리상 감정”과도 연
결되는 동조·지지였던 반면,41) 激動하거나 (惹)起, 忽生하는 감정은 대개
부정적인 빛깔이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 이후 동아시아에
서의 배일감정, 미국의 일본인 이민제한조치 등을 적극 보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식민지가 차츰 기정사실화되는 국면에서 대한매일신
보가 조선인들에게 모종의 감정을 적극 촉구하였다는 점이다. 일본 빈민
6백만 명의 한국 이민설에 대해(1908. 3. 14. 「嘆鵲巢鳩居憂時生」), 일본인
이 발행하는 잡지에서 한국인을 야만시하는 기사를 연재한 데 대해(1908.
7. 28. 「론셜」), 1910년으로 예정된 英日박람회 ‘식민관’에 한국도 포함된
다는 소문에 대해(1909. 6. 24. 「론셜」), 두 번째 통감이 부임하는 상황에
대해(1909. 6. 26. 「론셜」) 대한매일신보는 한국 동포는 과연 감정이
어떠한지를 따져 물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식물이 된 황제와 정부를 두고
국권을 잠식당해 “자기 땅에서 유배당”하게 된 민족이 가질 감정이란 크나
큰 수치와 분노,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대한매
일신보는 썼다. 이른바 을사보호조약과 정미7조약 때는 “미친 것 같이 뛰
고 어지러이 지껄이며 분하게 부르짖으며 슬피 우”는 이들이라도 있었지만,
1909년의 사법권 양도, 군부 폐지에 즈음해서는 조선은 이미 산송장 같다
40)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한글+영문판이 발행되다가 휴간, 1905
년 8월에 복간하면서 국한문판으로 바뀌고 영문판(The Korea Daily News)은 따로 발행
되었으며, 1907년 5월부터 한글판이 함께 발행되었다(채백, 2004: 268).
41) “감정상 의리를 표하였(1904. 9. 28. 「론셜」)”다거나 “영미 양국이 이번 전장(戰場)에 우리
나라를 방조하여 감정을 뵈일 뿐더러(1904. 11. 24. 「론셜」)”, “일본이 한국과 만주를 위
하여 싸운다 하여 세계의 감정을 얻었으니(1905. 2. 10. 「론셜」)”, “寄附日本赤十字病院하여
略表義理上感情而止矣(1905. 9. 7. 「媾和를 傍聽고 獨立을 鞏固케홈」)”라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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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는 언론의 암흑기로, 전국적인 한글 신문으로는 총독부에서
대한매일신보를 매수해서 ‘기관지’로 삼은 매일신보가 있을 뿐이었다.
매일신보는 1912년 이래 조금씩 지면이 변화해서, 1915년쯤에 이르면
사회면(3면)은 독립신문 이래의 ‘잡보’의 틀을 벗고, 사진과 함께 제법
긴 취재기사들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 신문기사도 감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1910년대의 몇 안 되는 사례들
은 대부분 중국의 남북감정, 러시아국민이나 중국국민의 (일본에 대한) 好
感情 또는 親日感情, 對日感情 등이다. 지·정·의 삼분법의 감정이란 어쩌
다가 가정·육아란에나 실리는 정도였다. 1919년을 지나면서 조선사회 내
부의 문제들을 말할 때도 감정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주로
3·1운동으로 표출된 바 있는 조선인의 팽배한 불만을 가리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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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은 情緖를 手足에 실어/ 失戀의 半生을 舞踊에 犧牲/ 熱情의 女性=舞踊
의 女王」 (1925. 11. 3.)
「劇塲婦人席에 激增된 朝鮮女學生// 挑發的 戀愛劇에 心醉하야/ 處女의 純眞
한 情緖紊亂」 (1926. 12. 15.)
「젊은 處女의 情緖/ 日本一의 民謠家/ 인연깁흔 조선을 찻는 민자양」
(1927. 5. 17.)
「짓히는 女性(三)// 업다든 本妻의 出現/ 同病相憐의 情緖」 (1928. 5.
25.)
Ⅰ. 영한·한영 이중어사전과 감정 관련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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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이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漢字-영어사전을 간행했다. ㈅1928년에 조선인
金東成이 편찬한 最新鮮英辭典이, ㈆1931년에 가서 ㈂~㈄을 잇는 게일의
집대성 한영대뎐이 나오게 된다. 외국어-한국어 대역사전은, 영어사전
이 (A)H. 언더우드의 한영뎐(1890) 제2부, (B)스콧(James Scott)의
영한뎐(1891), (C)존스(George Heber Jones)의 영한뎐(1914),
(D)(㈂~㈄을 보충하는 新語사전이어서 수록 어휘가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게일의 三千字典(1924), (E)언더우드 父子의 英鮮字典(1925)으로 이어
지고, 프랑스어사전으로 (F)알레벡(Charles Alévêque)의 법한
뎐(1901)이 있다. 조선인이 낸 ㈅을 제외한 모든 사전의 편찬자는 전문적
언어학자나 조선학자가 아니라 선교와 성서 번역, 외교 업무를 위해 한국어
를 배워야 했던 선교사·외교관이고, 이런 사전들이 목표로 한 독자층 역시
일차적으로는 서구인이었다. 일찍부터 조선에 진출한 프랑스인 신부들에
의해 불한·한불 이중어사전 편찬작업이 더 먼저 이루어졌지만, 20세기 들
어서면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한 영한·한영사전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표 1>에서 본 영어 어휘들이 조선의 영한사전에서는 어떻게 옮겨졌는
지 살펴보면 <표 2>와 같다. <표 1>과 비교하면 조선의 사전들이 시기적으
로 더 나중의 것인데도, <표 2>에 빈칸이 많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A)와 (E)를 제외하면 사전마다 편집자가 모두 다르고 (B)와 (C) 사이에
20년이라는 간격이 있어서 정확한 변곡점을 알 수 없기는 하지만,
(A)·(B)와 (C) 이후의 차이는 커 보인다. 사전의 표기 자체가 (A)와 (B)
는 한글, (C)부터는 한자병기로 되어 있고, (A)에서 시도했던 ‘··
결이’ 같은 순한글 번역어, (A)와 (B)에서 명사 emotion에 ‘감동다·
감격다’라는 동사를 대응시키거나 ‘감동것’이라고 풀어쓴 사례 등은
(C) 이후로는 거의 볼 수 없게 된다. 感情이라는 어휘는 1910년대 들어
emotion과 sentiment의 번역어로 등장한다. (A)에서는 affection의 대역
어로 정분·애정과 함께 따뜻한 정이라는 뜻을 가졌을 情도, (C) 이후로는
感情과 같은 뜻으로 등재되었다. 표에는 싣지 않았지만 sense에 대해 感覺,
sympathy에 대해 同情·同感이라는 번역어가 등장하는 것도 (C)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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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라도 적극 수록했던 것이다(황호덕·이상현, 2012: 158-163). 이렇
게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또 사전 속에서, 메이지기의 번역어
를 비롯한 일본어 한자 어휘는 한국어 속으로 섞여들었다. 게일 역시 ㈂·
㈃·㈆에 걸쳐 한영사전을 확장해가면서, 매일신보 등을 통해 당시 조선
에서 쓰인 어휘들을 채집하는 한편, 일본에서 나온 일영·영일 사전을 참고
했다(같은 책: 40-41; 86-87). 매일신보를 비롯한 당시 조선의 신문·잡
지 기사 역시 당대 일본어의 어휘와 문법, 문체의 강한 영향 아래 있었으므
로, 증보된 어휘란 대개 일본에서 만들어진 한자어였다.
여기서 반대로, 당시의 한영사전에는 감정과 관련해서 어떤 어휘들이 어
떤 순서로 수록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표 3>). ㈂·㈃·㈄·㈆은
모두 게일의 사전이다. ㈄은 자전·옥편처럼 漢字 한 글자씩을 나열한 것이
지만 ‘情’에 대해 흥미로운 점이 있어서 함께 실었다. 한불사전이어서 직접
비교는 곤란하지만, 실제 한국어 구어의 채록을 통해 이후의 한영사전들에
感受性 感情 情 情緖 七情
affection, amour, coeur,
㈀
- - sentiment∥ passion, - les sept passions
(1880)
convoitise
㈁
- - affection, love, heart - -
(1890)
㈂ the seven
- - affection; love; lust -
(1897) passions
a feeling of
㈃
- admiration; a 〃 - 〃
(1911)
sentiment of wonder
the passions; emotions;
㈄ affection; lust;
(1914) circumstances; the
feelings; kindness; pity
feeling; passion; emotion;
㈅ feeling; emotion; an emotion;
sensibility* sympathy; sentiment; -
(1928) sentiment; passion a feeling
affection; heart
㈆
sensibility feeling, emotion affection; love; lust 〃 ㈂·㈃과 같음
(1931)
※ ㈅에서 sensibility는 感性, 感受性 두 어휘에 대한 대역어로 실려 있다.
45) the passions, emotions, the feelings를 모두 복수형으로 제시했고, 두 단어에는 정관사
까지 붙인 것도 흥미롭다. circumstances는 實狀이라는 뜻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46) 그런가 하면 ㈅에는 “졍(戀) love (예문) 졍든님; 졍든사람 a lover; a sweetheart”라는
기묘한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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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부정관사로 한정한 것과 편집자가 다른 ㈅·㈆이 같은 풀이를 해놓은
것은, 아마 일본에서 나온 사전을 공통으로 참조했기 때문일 것이다.47) 부
정관사 a(n)를 붙인 것이 感情이나 情은 감정 일반, 情緖는 그런 감정들
중 하나라는 뜻이라면, 이것은 2장 Ⅰ에서 살펴본 심리학 체계와는 다른
구별법이다. 비슷한 시기 신여성에서 정서는 “간단한 감정이 시간적으로
연속하여 일어나서 그것이 한데 뭉치어 (…) 의식에 강한 감정이 되어 나타
나는 것”이라고 한 ‘상식’과도 다르다.48) <표 2>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
만) 용례로만 수록되었던 七情은 한불·한영사전에는 거의 내내 항목으로
등장하고, 대개 (seven) passion(s)으로 풀이되었다.
Ⅱ. ‘조선어사전’ 류에 실린 감정 관련 어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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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황호덕·이상현, 2012: 105). 이 사전 간행 직전
에 (鮮譯)國語大辭典(1919)이 나오면서, 일본에서 만들어진 和制漢語까지
‘조선어사전’에 넣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최경봉, 2017:
14-15). 표에는 넣지 않았지만, 感慨·感傷·感受性·冷情·同情·有情도
문세영사전에 가서야 등장한다. 신문기사나 문학작품에서는 분명히 쓰이고
있었던 이런 말들은, 당시에는 굳이 나누자면 조선어가 아닌 일본어로 분류
되었던 모양이다. 몇몇 항목에서는 문세영사전이 총독부사전과(위 표의 밑
줄친 부분), 표에는 제시하지 않았지만 (鮮譯)國語大辭典에 많이 의존했음
도 알 수 있다. 심리학 용어를 (心)이라고 따로 표시한 것도 (鮮譯)國語大辭
典과 비슷하다. 모든 사전은 수록어휘나 그것의 뜻풀이에서 선행하는 사
전을 베끼면서 확장해가는 것이고, 결국 오늘날의 한국어가 만들어진 것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였던 것이다. 표에는 싣지 않았지만, 총독부사전과 문세
영사전 모두에 실린 ‘情’으로 시작하는 낱말로는 情近·情到(애정이 깊음)·
情理·情分·情緖·情疎·情熟·情誼·情懷 등이 있다. 情近·情到·情疎·
情熟 같은 서술적인 개념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낱말이라기보다는 ‘정
이 어떻다’라는 문장일 것 같다.
내용상으로는, 情의 뜻이 문세영사전에 와서 ‘감정’이라는 뜻을 포함하면
서 많이 확장된 것, 情緖에서 여전히 ‘端緖’가 강조되는 것 등이 주목된다.
문세영사전의 풀이를 보면 결국 감정 관련 어휘들의 뜻은 情과 ‘느끼다(感)’,
마음이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귀착되는 듯하다. 하지만 고유어 ‘느끼다’는
문세영사전에 와서야 비교적 다양한 뜻으로 정의되고 있을 뿐, 앞서의 한영
이중어사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에는 이 말 자체가 없고,50)
㈂에는 ‘늣기다’가 흐느끼다(欷, to gasp; to catch for breath; to weep
silently)라는 뜻으로만 설명되어 있으며, 심지어 ㈅에서도 ‘늣겨우름(泣)·
늣겨울음·늣겨운다(呻吟)·늣겨움(嗚咽)’이라고만 되어 있다. 아마 당시
6. 나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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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으로 환원되지 않고, 가리킴보다는 쓰임에서 결정된다. 중국과 한국에
서 이 말은 다르게 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번역어에 대해서도 기원에 대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사용(오용도 포함해서)의 계보를 뒤져볼 수 있지 않
을까? 그런 관심을 가지고 이 글에서는 서유견문(1895) 이래 식민지기까
지 감정·정서 같은 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주먹구구식 방
법 말고 더 완벽한 말뭉치와 더 세련된 분석도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지
만, 나로서는 아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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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pt words.
Key words
emotion, sentimen, Jeong(情), severn emotions(七情), concept word,
usage,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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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사 일 : 2018. 6. 27.
게재확정일 : 2018.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