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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흐마(Brah빼 와

브라흐만(Brahman) 에 대한 ‘

초기불교의입장
최 경 아 * 동국대학교강사

목차

I. 서론
II . 브라흐만 개념의 변천 - 브라흐만에서 브라흐마로
IlI. 브라흐만 개념이 니까야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
N. 붓다가 인지하고 있던 브라흐마
v. 결론
브라흐마(Brah叫 와
브라흐만(Brahman) 에 대한
초기불교의입장
최경아

불교를 무신론적(atheistic) 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봇다가 신에 관한 문제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하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초기불전 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의 이름과 그들의 역할을 과연 어떻 게 해명할 것인
가? 브라흐마{Brahma. 梵天)는 01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신 이 며, 또한 봇다
가 가장 극명하게 부정적 견해를 표명한 신이기도 하며, 봇다 일대기의 주요 장면

에 등장하여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댜 이러한 측면에서 봇다가 브라흐


D 壇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붓다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총체적 측면의 브라흐마가 아닌, 브라흐□ fOl떼 부여된 대표적인 두 가지 특

징인 최고신과 창조주 가운데서 후자였던 것이댜 더 나아가 붓다는 自我觀에 대


해서도 브라흐만(Brahman)적 요소를 거부하였다. 기존의 아뜨만(Atman}에서 브라
흐만의 초월적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자아의 경험적이며 실용적인 측면에 주목하
게끔하였던 것이다.
* 주제어 : 브라흐마, 브라흐만 창조주, 니까야

158 I 密敎學報第十四輯
I . 서론
니까야 (Nikaya) 에 나타나는 브라흐마는1) 그것이 특정 신의 명칭이

든 브라흐마니즘 (Brahmanism) 전통에서 전개된 종교관념이든 간에,

‘창조주’, 전지전능한 자’, ‘조물주’ 둥과 같은 신 (God) 의 개념에 적합

한 특성을 갖고 있다 이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붓다에게

는 수용될 수 없는 것으로 거부되었다. 그의 피조물들이 고통 받는다는


것은 결국 그 창조주의 사악함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2) 반

면 브라흐마는 삼천대천세계의 종주 또는 신 가운데 으뜸으로 붓다에

게 인지되었댜 실제적으로 브라마니즘에서 유일신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며, 붓다 또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흐마

는 다양한 고유의 이름이 붙은 인격신 브라흐마로 불전에 나타난다. 붓

다는 고의적으로 그 유일성을 무시했던 것인가?

브라흐마니 만따니까숫따 (Bralm1animantaJ]ikasutta) 에서 브라흐마 바

까 (Baka) 는 자신이 최고이며 영원한 존재라고 믿고 이 를 붓다 앞에서

뽐내다 결국 망신을 당하게 된다이 반면, 브라흐마 사함빠띠 (Saham-

pati) 에 관한 붓다의 언급에서 우리는 어떠한 비판도 찾을 수 없다.4) 브

라흐마 사함빠띠가 자신이 창조주며 조물주라고 주장했다면 아마도 다

1) Brahma는 Bralm1ai1의 남성형으로 B.gveda에서는 중성 Brahman의 인격화로 알


려진다 Gonda(1989). p.59. 이하 ‘브라흐마는 브라흐만의 남성 주격으로 梵天올
의미하고. ‘브라흐만은 중성으로 우주의 제일 원리 혹은 궁극적 실재 를, ‘바라문`
은 사제계급인 Brahman을, ‘브라흐마나 는 Br助ma!)a문헌을 의미한다 동일한 용
어로 다양한 표현 을 하는 범어의 특성상, 개념간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위와 같이
통칭 한댜
2) MN 101 / MN Il, p.222. 여기서 조물주는 issar쵸츠 명명되어 있다. 범어의 isvara를
말하는데 한역에서 주로 自在天으로 번역되지만, 창조주 곧 Bral1ma를 의미한다
3) MN 49 I MN I, p.330.

브라흐마(Brahma) 와 브라흐만(Bral1J1laJ1)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59


른 스토리가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 논고는 브라흐마에 관

한붓다의 이러한이중적인 태도를중심으로브라흐마니즘의 브라흐마

신관에 대한 초기불교의 수용과 변용을 살펴본다. 초기불교 니까야에서

브라흐마의 위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에 앞선 브라흐마니즘 전통에

서의 브라흐만 개념의 전개과정을 조망해 보는 것이 필수라고 할 수 있

댜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지 않았던 브라흐만의 또 다른 형태의

불교적 대웅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II . 브라흐만개념의 변천 - 브라흐만에서 브라흐마로

최고신으로서의 브라흐마 (Brahma - Brahman의 남성 주격)는 베다


찬가에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곤다 (Gonda)5) 에 의하면 브라흐마

는 베다의 최고층 문헌에서는 역할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비교

적 신충의 베 다에서조차 고려할 만큼의 중요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한댜 그 대신 브라흐마나스빠띠 (Brahmauaspati) 또는 브리하스빠띠

(Brhaspati) 가 브라흐만 신으로서 이 들 찬가에서 언급되고 있다. 리그

베 다 (Rgvecla) 에서 중성의 브라흐만은 비인격적인 근원적 원리와 우주

의 제일원인을 의미한다. 리그베다에서 남성 브라흐만은 중성 브라흐

만의 인격화로 나타난다. 후기의 찬가에서는 쁘라자빠띠 (Prajapati) 가

창조주로 언급되는데6) 이 는 초기에 브라흐마나스빠띠에게 적용되었던

4) 브라흐마사함빠띠는 정각을 이 룬 후, 설법을포기하려는붓다에게 나타나 설법을


권청하는 중 대한 역할을 한다 Vm I, p.5.
5) 이하의 설명은 주로 곤다(Gonda, 1 989) 의 Prajapa/J's Reladons with Bra/1111an,
BrhaspadandBrahm짜서 정 리한 내용 들이다
6 ) Gonda(1985),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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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이댜 우리는 여기서 중성 브리흐만과 쁘라자빠띠가 서로 혼재되

어 쓰이고 있다는것을알수 있다.

곤다에 따르면 중성 의 브라흐만은 『따이 띠 리 야브라흐마나( Taittit1_Ya


BrahmaIJa).1 (2. 8. 8. 9 ff) 에서 신들을 탄생시키는 존재로 언급되고 있
으며, 『자이미니야브라흐마나(/aimimya Br祖maI)a) 』 (2. 369) 에서는 이

둘 사이의 최초의 존재에 대한 경쟁관계가 시사되어 있다고 한다. 『샤

따빠타브라흐마나 (Satapatha BrahmaI)a) 』 에 이르러 브리하스빠띠와 브

라흐마의 최초의 동일화를 볼 수 있다. 브라흐마나기(期 )에는 제사가

모든 이의 화두가 되었다. 제사를- 통해 우주가 존재하게 되고 또한 지


속하게도 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궁극적 실재
는 브라흐만 뿌루샤 (Pw1.15a), 위슈바까르만 (Visvakatman) 둥으로 불리

게 되며 , 베다기(期)보다 빈번하게 쁘라자빠띠로 표현되게 된다. 제사

는쁘라자빠띠와동일시 되었고,그는무형의 실재의 가시적 형태로간


주되었댜

붓다 재세시에 이르러 브리하스빠띠는 망각된 것으로 보인다. 초기

불교 텍스트에는 이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전시대에 보였던 브리

하스빠띠 · 쁘라자빠띠 · 브라흐마의 연계는각기 브리하스빠띠와쁘라

자빠띠의 투영이라 할 수 있는 최고신과 창조주라는 두 가지 주요 특징

으로서 브라흐마에 통합되었다.초기우빠니샤드시대의 철학적 테마는

주로뿌루샤 · 브라흐만 · 아뜨만이었다. 이 시기의 가장뚜렷한특징은

브라흐만이 아뜨만과 동일시 된다는 것 , 즉 梵我一如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빠니샤드 가르침의 주요 개념인 이들 둘이 불교문헌에는 함

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기불교 니까야 어느 곳에서도 브라흐


만은 나타나지 않는댜7) 오직 아뜨만 만이 언급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

7) Dialogues ofthe Buddha, Part I, Introduction to tl1e Tevigga Sutta, p.298.

브라흐마(B떠m버)와 브라흐만(Brahn,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61


는 리스 데이비즈 (Rhys Davids) 를8} 비롯한 선대학자들이 이미 의문을

제시했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안양규교수


가 창조주 브라흐마 (Bral1ma) 신에 대한 붓다의 비판'9) 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제닝스 Gennings) 는 그의 저서 『붓다의 베단타적 불교 (The


Vedantic Buddhism of d1e BuddJ마에서 떼비자숫따 (Tevijjasutta) 에
나타난 브라흐마의 개념을10} 베단타철학과 연계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경의 전반부는 남성형 브라흐마에 관한 논의이고 후반부는

중성 브라흐만에 대한논의라는이상한주장을하고있다.그는경의 전

반부에서 브라흐마의 본성에 대한 지식은 어떠한 종교지도자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후반부에서는 四梵住 (bral1ma-vihm·a) 를 행함으로써 브

라흐만에 근접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는 만약 경의 이 두 부분

이 완전히 상충하지 않는다면 후반부의 브라흐만은 보편적이고 비인격

적인 신적 정신으로서 베단타에 있어서의 빠라마아뜨만 (Paramatman,

최고아) 이지 힌두교의 인격신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11) 그러나

이는 제닝스가 문맥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떼비자숫띠-(Tevij­

jasutt:a) 에서 브라흐마와 함께 머물기를 원하는 자들은 삼베다에 능통

한 바라문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종교지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는 경의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브라흐마를 브라흐만이라고 칭

하며 전반부의 브라흐마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 경전 안에

서 동일하게 언급되는 명칭이 뚜렷한 이유없이 다른 의미로 쓰이는 일

은 일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베단타철학과 불교는 상당한 유사점

8) Ibid
9) 안양규 (2003) 참조
10) 최경아 (2011) 참조
11 ) Jeru1ings (1998) . x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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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지만 이는 좀더 후대의 상황으로 초기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초기

베단타의 본거지가 붓다 당시의 마가다국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는 점 또한 주지하여야 한다. 12) 필자는 이전 논문에서 떼비자숫띠의 형

성 연대를 니까야에서도 고층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13) 초기불교문

헌 그것도 고층으로 분류되는 경에서 베단타의 빠라마아뜨만이라는 개

념과 연계하여 브라흐만 개념을 유추하는 것은 인도문화사에 대한 몰

이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제닝스는, 떼비자~따에


나타나는 브라흐마사브야따 (Braluna-sahavyata)14) 라는 복합어 가운데

브라흐마를 중성 브라흐만으로 이해하였던 것 이다. 그렇다면 리스 데이

비 즈의 지적대로 중성 브라흐만 개념은 나까야에 남아있지 않은 것 인


가? 이 는 Braluna-sahavya떠와 같은 복합어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에

달려 있댜 여기에서 Brahma는 Brahman 일 수도 있고 Brahma 일 수도

있다 제닝스와 같이 중성 브라흐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댜 적어도 이 복합어가 브라흐마라는 신적 존재 자체를

부각하려 의도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흐만의 언급이라

12) 타파르에 따르면 베다 전통의 자료에서는 마가다 (Magadha) 와 앙가 (Anga) 등을 불


순한 지역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Thapai·(2002), p.138 참조. 브롱코스트 또한 빠
딴잘리 (Pata11jali) 의 작품을 통해 보더라도. 마가다국은 기원전 2세기까지는 브라
흐마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Bronkhorst(2007). p .84 참조.

13) 위제세케라는 떼비자숫따의 성립시기 를 기원전 5세기. 늦 게 잡아도 기원전4세기


경이라고 보고 있댜 Wijesekera0994). p.283 참조. “ 이 무렵은 우빠니샤드의 주
요 가르침이 완전히 정착하기 전으로 아마도 새롭게 전개된 가르침보다는 브라흐
마나와 같은 전대문헌에서 전수된 가르침이 주로 통용되었던 시기로 보인다. 그
는 초기 빠알리경과 브라흐마나 문헌의 연대기를 비교해 볼 때. 적어도 디가니까
야 가운데 오래된 숫따둘은 브라흐마나기 말엽, 즉 우빠니샤드가 아직 독자적인
문헌으로서의 성격을 인정받기 전에 성립되었던 것으로 단언한다. " 최경아 (2011).
p.166 각주 36.
14) 일반적으로 四梵住 (Brahma-vil1a1·a) 로 알려진 慈悲喜捨(P. metta. 區1.ma. mudi 떠
upe奭)의 네 가지 수행덕목을 통해 이르게 되는 ‘브라흐마와 함께 함’을 말한다

브라흐마( Brahma) 와 브라호만(Brahni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63


고주장할 만한용어가니까야에 오직 이러한복합어의 형태로만남아

있다면 이는 증거로 제시되기에 적합하지 않댜 브라흐만이 아닐 확률

도 그 절반이기 때문이다. 브라흐만과 브라흐마 모두 복합어로써 활용

이 가능한 상황에서 이는 차라리 브라흐마에 대한 불교적 수용으로 이

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베다의 여러 신들에 대해 기억하고

언급하고 있는 초기불교 니까야에서 베다의 고층에서부터 존재했던 중

성 브라흐만의 개념이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까?

m. 브라흐만개념이 니까야에 나타나지 않는이유


먼저 붓다 재세 당시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뜨만에 대

한사변은 이미 브라흐마나문헌에서 심화되어 감을볼수 있으며,초기

우빠니샤드에 이르러서는 철학자들의 관심이 아뜨만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댜 그들의 과도한 아뜨만에 대한 탐닉은 자연스럽게 非브

라흐마나계 곧 슈라마나들의 거부감을 유발했다. 결국, 붓다는 아뜨만

을 부정하면서 다섯 스깐다는 아뜨만이 아니라고 설하게 된다. 스깐다


라는 용어는 이미 있었던 용어를 불교적 전문용어로 새롭게 혁신한 것

으로 베덕산스끄리뜨 의미론과 어원론을 다룬 『니루끄따 (N如Ikta) 』 에

따르면 베다에서 skandha의 의미는 ‘나무의 가지’, 또 다른 의미는 ‘어


깨이댜 15) 이는나무의 여러 가지들이 모두중심이 되는몸통과붙어있

는 형상에서 연유된 개념으로 우빠니샤드에서도 발견되는 용어이다.16)

15) NN 6.17, p.102; 최경아 (2010), p.96 참조


16) 이 용어는 Chandogya Upanisad 2.23.1 과 Mait.Jiiyaniya Upanisad 7.11 에서도 발
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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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뜨만에 대한우빠니샤드선인들의 천착은과도할지경에까지 이르 렀

다고 보여진댜 아뜨만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행해지며, 브라흐만과의

동일성, 뿌루샤 (pun1$a) 와의 관계 등이 연구되었으며 아뜨만의 유사개

념들이 나열되었댜 그런데 우빠니샤드에서 그렇게 탐닉되었던 아뜨만

이 붓다에 의해 집착의 당체로 단호하게 거부되었던 반면 , 당연히 이와

동일 선상에서 비판 받아야 마땅할 개념인 브라흐만에 대해서는 아무

런 언급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브리치 (Gombrich) 를 비 롯한 많은

학자들이 우빠니샤드와 불교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 우빠니샤드

에 빈번히 둥장하는 중성 브라흐만이 니까야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붓다 당시는

아직 우빠니샤드 사싱이 정착하기 이전일 것이다. 둘째, 붓다는 우빠니

샤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셋째 , 붓다는 브라흐만 개념을 다르게 이해

하고 있었거나알지 못했다.

첫번째 가설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것으로 위제세케라의 주장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 그는 니까야의 형성 연대를 우빠니샤드가 정착하


기 이전으로 보고 있다 17) 곰브리치의 경우, 우빠니샤드와 니까야에서

유사한 부분을 찾아 초기불교가 우빠니샤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


하나,18) 이에 대해 필자는 논문을 통해 그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한 바

가 있다 19) 반면 르누 (Renou) 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우빠니샤드가 불

교 이 전에 성립되었을 것이라고도 확신하지 않으며, 반대로 붓다의 사

상이 우빠니샤드철학의 핵심을 포함하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단

언한댜20) 또한 베일리 (Bailey) 의 경우는 빠알리 경전들이 브라흐마나

17) 위의 각주 13 참조 .
18) Gombrich(1996), pp.58-9.
19) 최경아 (2011), pp.1 61-2.
20) Renou(1 971), p.37

브라흐마(Brahma) 와 브라흐만(Bralmi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I 165


나 우빠니샤드 보다는 오히려 서사시와 뿌라나 쪽에 상응하~근 브라흐

마나 종교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고 추정한다.21) 실제로 니까야에는

우빠니샤드라는 명칭이나 우빠니샤드 선인의 이름이 명확히 언급된 곳

이없다

두번째 가설은 브롱코스트 (Bronkhorst) 의 주장으로 대표되는데, 그

는 붓다의 활약지인 마가다지역은 아직 우빠니샤드 사상의 영향을 받

지 않았다고 주장한댜 베다문화가 번영했던 근거지와 불교와 자이나


의 발상지는 지리적으로 너무 큰 갭이 있고, 고대라는 점을 감안하면22)

마가다지역까지 초기 베단타가 전파되는 데는 보다 긴 시간이 필요했

다는 것 이댜 그의 가설이 이목을 끄는 것 이 사실이지만 그와 반대되는

중거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의문이다. 예를 들면, 노만 (Norman) 은

그의 논문 「Alagaddupamasutta에서의 앗따 (atta) 에 대한 노트」 에서 초

기불교는 이미 아뜨만과 브리흐만의 관계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한


다. 노만은 브라흐마니즘 측의 제상은 아뜨만이다 (so loko so a曲)'23)

라는 주장은 개인의 아뜨만과 세상의 아뜨만이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

으로, 그러한 주장에 대한 불교 측의 반박을 소개한다. 불교측은 만일

그렇다면 나는 세상의 아뜨만의 일부인 아뜨만이므로 세상의 아뜨만에

게 생기는 모든 일들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24) 그렇다

21) "it is probable that the Pali Canon 1油rors a stage ofBr獅函cal religion wllich
corresponds to that found in tl1e older parts of tl1e epics and PuraJ)as, rather
than to that of the Br師aJJas and old Upanisads." Bailey(l983). p.14.
22) 아리안의 동진은 단시간에 이 루어 진 것 이 아닌 점진적인 이동이었다. 불교가 발
생한 인도 동북부의 갠지즈강 유역의 신흥왕국과는 달리 브라흐마니즘은 여전
히 북서부의 베다문명의 중심지에서 막강한 영향을 발휘하고 있었다. Bailey and
Mabbett(2003), p.23. 브롱코스트 또한 가원전 2 세기 경의 바라문들은 간지즈강
유역을 낯설은 이국땅이라고 여겼으나. 기원후 2.3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신들의 땅
이라고 간주했다고 한다. Bronkhorst(2011). p.3.
23) Alagaddupamasutta. MN I. p.136.

166 I 密敎學報 第十四輯


면 개인의 아뜨만은 세상의 아뜨만의 일부이므로 세상의 아뜨만의 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통들이 모든 다른 세계의 아뜨만에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장작이 태워질 때 , 장작의 아뜨만이 느끼는 고통이

나에게도 똑같이 느껴질 것이다25) 라고 반박한다. 브롱코스트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는 먼저 이 경에서 정작 비판의 대

상인브라흐만에 대한언급은전혀 없으며,실제로붓다에 의해 비판받

고 있는 개념은 윤회와 업보와 관련된 것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이


경의 내용에 ‘ 항상하고, 계속되고, 영원하고, 불변하는'26) 아뜨만에 대

한 개념정의가 있음은 사실이지만, 이는 우빠니샤드에서 설하는 아뜨

만과는다른성격이라고주장한다.그는아뜨만의 성격 가운데 ‘불변성’

은 초기 우빠니샤드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 개념으로, 마가다국의 정


신문화에서 빌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7) 브롱코스트는 이 경의 존

재와 그 내용의 중대성을 인지하면서도 우빠니샤드의 유사 인용문28) 과

의 연대기적 선후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가운데 , 마가다 정신문명에서 자아 (self,

atman) 는 근본적으로 인간 내면의 부동의 핵심 (inactive core) 으로 간

주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뜨만에 부여된 ‘부동성 ’ 이라는 성격 때문에 업


보에 의해 결정되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제공되어야만 했다는

것이댜 반면 초기 우빠니샤드는이러한외부사상의 영향을받지 못한

체, 마가다문명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사상인 대우주 (macrocosm)

24) MN I, p.141.
25) Norman 0991), p.23 참조
26) MN I, p.136 ·so loko so atta, so pecca bhavissami nicco clhuvo sassato avipa-
r國madharruno, sassatisan禪 tl1at' eva ti1assamiti." 최경아 (2011), p.166 각주
33.
27) Bronkhorst(2007) pp. 216-7.
28) Brhad紅anyaka Upani$ad 4.3.23-30. 4.4.1 ; Chandoga Upani$ad 3.1 4.3-4.

브라흐마(Brahma) 와 브라흐만(Brahm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67


와 소우주 (microcosm) 의 합일이라는 베다적 사변에나 적합한 자아관

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이다.29) 그의 주장을 종합하자면 소위 범아일여

의 사상으로 알려진 소우주와 대우주의 합일이라는 사고는 베다의 근

거지인 인도의 서북부에서 형성된 入R}으로, 불교 발생시기의 마가다

국에는 아직 유포되지 못한 사상이고, 붓다는 당시 마가다국이 위치한


지 역의 토속사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근 초기불교와 우빠니샤

드성립 연대의 선후에 대해 ,초기불교가우빠니샤드의 영향을받았다

는 기존의 주장에 의문을 표하는 경향이 지배적임을 감안할 때, 붓다의

아뜨만관이 우빠니샤드보다는 마가다국의 토속 사싱에 대한 대웅이라

는 그의 지적은 홍미롭지만, 그러나 언급된 경의 다른 부분에서 보이는

세계와 아뜨만에 대한 동일시와 관련된 비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까?30) 노만의 예리한 지적대로 이는 세상 (loka) 과 아뜨만을 동일시하

는 사고에 대한 비판으로 볼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붓다는 브라흐만 개념 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거나 알 지 못했

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브라흐만에 대해 알고 있었든 아니 든 간에 붓다

는 당시 널리 유포된 아뜨만 개념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그 반대의

이유는 다름 아닌 아뜨만에 편입된 브라흐만적 요소였기 때문으로, 붓


다는 경험의 주체로서의 자아 개념에 더욱 비중을 두고 있었다. 붓다는

rupa, vedana, sarpjfui, sarps幽'a, vijfuina 의 다섯 스깐다가 인간의 경 험


과 인식을 총괄하는 매체이자 작용이지만, 이들 각각의 스깐다 역시 나

의 것이 아니다 (P. n'etam mama) , 내가 아니다 (n'eso aham asmi), 나

29) Bronkhorst(2007) , p.269; 최경 아 (20 11 ), p.165 각주 34.


30)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따숲에 있는 풀과 줄기와 나뭇가지와 잎사귀
들을 가져와서 불태우거나 그것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한다면, 그 대 들은 ‘사람들
이 우리를 붙잡아서 우리를 태우거나 우리를 가지고 원하는 대로 한다.’라고 생각
할 것이 다 " MN I, p.141.

168 I 密敎學報 第十四輯


의 아뜨만아 아니다 (na m'eso a區)라고 설하며, 이러한 서술법은 무아
설30(anatmavada) 의 기본형식으로 정착한다 비나야(Vmaya) 의 마하

박가 (Mahavagga) 에 나타나는 초기 형 태의 무아설 이 래 무아설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방식은 오온의 각각의 요소들이 무상한지 고인지 또는

나의 아뜨만이 아닌지를 문답으로 이끌어 내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이


고 있댜32) 각각의 스깐다 (Skanclha) 에 대한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곧

바로 문답으로 넘어가고 있음에도 비구들은 각각의 스깐다에 관해 당

연히 주지하고 있는 듯 이 대웅하고 있다. 이는 브라마나전통의 문헌에


서 ‘다섯 층으로 이루어진 아뜨만’을 의미하는 빵짜꼬샤 (Paiicakosa)33)

와 같은 아뜨만에 대한 분석적 이해가 널리 유통되어 있었음을 시사하

31) 일반적으로 무아설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편의상 부득의 하게 이 용어 를


쓰지만 니까야에 나타난 여러 용례를 분석할 때, 무아설이라는 명칭은 적당하다
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안아뜨마바다 (anatmavada) 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복합어용법 tappurisa (Skt. tatpurusa) 에 적용할 때
anatta는 ‘not- self or 'non-self로 문맥에 따라 해석 가능하다. 형용사로 쓰일 때
ai1atta는 지시하는 대 상의 성격 을 의미하게 되어 bahubblhi (Skt. bahuvrlhi) 복합
어가 적용되는데 부정집두어가 첨가되어, atta ’ 를 소유하지 않은 자 또는 atta7} 없
는 것, 죽 atta ’ 의 결여를 의미한다. 이 경우 ‘self-less' 또는 ‘non-self 를 의미한
댜 결국 문법적으로 비아, 무아가 다 번역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Norman은 소유
를 의미하는 형용사로서 무아라는 번역은 적절치 않움을 지적하며 이 는 서술적 복
합어로 非我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Norman(1997), p.35.
32) n1p떠1 bhikkhave anatta, rupali caJ1'idam bhikkhave at떠abhavissa, na yid 禪
111pan1 abaclhaya sanivatteyya, labbhetha ca n1pe evamme n1p띠1 hot:1.1, evani
me n1p頭una ahosrti. Vm I, pp.13-4. 최경아 (2010), pp.92-5 참조
33) 아뜨만에 대해 가장 조대한 측면에서부터 분석한 것으로 (1) annamaya, (2)
prru:iamaya, (3) manomaya, (4) vij 油1amaya , and (5) anandamaya 의 다섯 kosa
로 이루어졌다는 설이다. 가장 조잡한 측면 이 움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호홉, 마
음, 지각, 지고의 환희로 심층화하며 분석하는 아뜨만관으로 따이띠리아아라냐
까 (Taittirrya Araoyaka) 에서 나타난다 국내외에 소개된 많은 개론서에서 이 학설
을 우빠니샤드의 대표철학으로 소개하지만, 아라냐까에 이미 나타나 있는 사고이
다 아라냐까는 우빠니샤드보다 성 립시기가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TaittirJya
Araoyaka 10.57.1.

브라흐마(Brahma) 와 브라호만(B떠1111al1)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I 169


는 것으로, 붓다 당시에 브라흐만 개념은 아난다마야 (ananclamaya) 라

는 요소로서 이미 아뜨만 개념에 병합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기존

의 아뜨만관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며,바로그요소때문에 거부하고있

는 아뜨만의 개념에 또 다시 브라흐만을 언급하며 비판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댜 게다가 중성의 브라흐만은 이미 구시대의 관념으로 더

이상통용되는개념이 아니었던 것으로보인다.

w. 붓다가인지하고 있던 브라흐마

초기경전을 보면 붓다는 그 당시 널리 믿어지던 브라흐마를 신격으

로서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는 다른 종교의 신들이 존


재하지 않는다던가 또는 날조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당대의 신홍종

교라고 할 수 있었던 불교는 기존의 종교적 관습이나 관례에 무리하게

도전하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도 후에 설법을 주저했던 붓

다의 모습도 비나야의 마하박가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붓다에게 설

법을 권청했던 존재도 다름아닌 브라흐마신이었다. 니까야에는 브라흐


마니즘의 신들이 규격화된 형태로 일정 빈도로 등장하기도 한다.34) 인

다 (Inda; Skt. Inch·a), 소마 (Soma), 와루나 (Vat1.ll)a), 이사나 (Isana) , 빠

자빠띠 (Pajapati; Skt. Prajapati) , 브라흐마 (Brahma), 마힛디 (Mahiddhi),

야마 (Yama) 가 그 대표적인 예이댜35) 브라흐마니즘 전통의 문헌에서

의 브라흐마 등장의 빈도라든가 인기는 의심의 여지도 없으며, 니까야

34) Bronk110rst(2011), p.29


35) ind amavhayama, somamahvayama, varuoamavhayarna, isanamavhayama,
pajapatimavh따ama, brahmamavhayama, mahiddhimavhayama, yaman1avhayama'ti. •
DN I, p.244.

170 I 密敎學報 第十四輯


에 나타난 가장 대중적인 신 또한 브라흐마였다. 마짓 마니까야 (Majjima

腦ya) 의 브라흐마니 만따니까숫따 (Brahmanimantanikasutta) 에서 마

라 (Mara) 는 브라흐마의 여러 異名을 열거한댜 마라는 붓다에게 바까

라는 브라흐마 (Brahma Baka) 를 비난하지 말라고 하며 , 그는 브라흐마

(Brahma, 梵天) 이고, 마하브라흐마 (Mahabrahma, 대범천 ) 이며 , 지배자


(abhibhu) 이며, 지배되지 않는자 (anabhibhota) 이고, 모든 것을 보는자

(vasavatti) 이 고, 신 (issaro) 이 며 , 조물주 (ka曲) 이 고, 창조주(따m떠떠) 이

며, 최고자 (setto) 이고, 주재자 (saj祖)이며, 통치자 (safljita) 이고, 존재하

는 것과 존재할 것들의 아버지 (pita bhutabhabyanarh) 라고 설명한다.36)

그러나 앙구따라니까야 (Ar'lgt,1ttara Nikaya) 에서는 沙門 ( Skt. sramana,


P. samana), 바라문 (br助mana), 천신 (deva), 마라 (mara), 브라흐마 조

차도 피할 수 없는 다섯 가지로 노 (jara). 병 (vyadhi) . 사 (marana), 무너

짐 (khaya) , 소실 (nassana) 을 열거하며 브라흐마라 할지라도 생류의 고

통을 피 할 수 없는 존재 로 설하고 있다.37)

베일리 (Bailey) 는 인도문학에서 브라흐마의 최초의 등장은후기 브라

흐마나와 초 · 중기 우빠니샤드라고 주장한다.38) 붓다 또한 브라흐마를

가장 대중적인 신으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그에 관해서는 긍정적이거

나 부정적인 양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면적 태도로 인

해 붓다의 제자들은 붓다가 과연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지 부정하는 지

에 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상가라바숫따 (Sarigaravasutta) ,에

서 붓다에게 한제자가직접적으로신 (deva) 들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이 발견된댜붓다는신들은 일반적으로존재한다고믿어지고 있다

36) MN 49 / MN I. p.330.
37) AN III, p.60.
38) Bailey(l983), p.33.

브라흐마(Braim터)와 브라흐만(Bralmi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I 171


고 답한댜 왜 처음부터 입장을 확실히 하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신의

존재는 당연시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39) 붓다는 브라흐마가 창조

주로묘사되었을 때는단오하게 거부하였으며, 그러한사고에 대해 비

판하였댜 그러나 최고신으로서의 브라흐마에 관해서는 불교적 우주관


의 최상의 계위에 배대함으로써 충분히 대접을 해주었다.40)

반면 초기 베다의 중성브라흐만의 개념은 브라흐마나를 거쳐 우빠

니샤드에 이르러 최고아 또는 초월아 (paramatrnan) 로 전개되어 아뜨만

(atrnan) 과 동일시 된다. 붓다는 아뜨만에 흡수된 이 러 한 중성 브라흐만

적 요소를 주목하고 당대에 널리 믿어졌던 이러한 아뜨만의 관념에 대

해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붓다는 소위 범아일여라고 하여 초

월아와 내재아를 포괄했던 당시 브라마니즘의 아뜨만관에서 초월적 요


소를 배제하고 오온으로 이루어진 경험적 자아를 실작용하는 자아로서

인정하였다. 따라서 기존에 널리 알려졌던 브라마니즘의 초월아적 아뜨

만관은 당연히 붓다에 의해 거부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v. 결론

붓다 재세시 브리흐마니즘 전통에서 브라흐마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

렀다 당연히 이러한 대중적 인기는 초기불교 니까야에도 고스란히 반


영되어 있으며, 브라흐마니즘을 대표하는 신으로서 불교측으로부터의

검증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붓다에게 신으로서의 브라흐마의 존재

는 인정되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불교를 무신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39) S頭garavasutta, MN II, pp.212-3.


40) EB vol. ill. p.292.

172 I 密學報 第十四籍


잘못된 시각이다. 붓다는 브라흐마니즘을 대표하는 최고신으로서의 브

라흐마는 수용하였다. 그러나 최고신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다수의 브라흐마를 불전에 등장시켜, 브라흐마의 유일신적 지

위를 격하시켰다. 반면 창조주로서의 브라흐마의 지위는 가차없이 바

판 부정되었다. 리그베다에서부터 전개되었던 궁극적 원리로서의 중성

브라흐만 개념은 브라흐마나 (Brahmal)a) 에 이르러 남성주격으로 활용

되어 인격신적인 모습으로 투영되어, 최고신인 브리하스빠띠의 특성과

창조주인 쁘라자빠띠의 특성을 포괄하게 된다. 붓다는 브라흐마의 신적

대표성은긍정했으나창조주라는측면은부정했던 것이다. 반면 브라마


니즘에서 아난다마야 (anandamaya) 라는 요소로서 이미 아뜨만 개념에

병합되어 있었던 브라흐만 개념은 초기불교가 상정하는 경험적, 실존

적 자아의 범위에서 배제된다. 다시 말하자면 뻔짜꼬샤로 대표되는 브

라흐마니즘의 아뜨만의 다섯 층의 구성요소 가운데 아난다마야는 다름

아닌 브라흐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초기불교의 새로운 자아에

대한 이해인 다섯 스깐다[五羅]의 개념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기존의

브라흐마니즘의 아뜨만관에 이미 포함되어 있으며, 바로 그 요소 때문

에 거부하고 있는그아뜨만의 개념에 초기불교도측은또다시 브라흐

만을 언급하며 비판할 필요성을 못 느꼈올 것이다. 붓다가 인정하지 않

은 것은 총체적 측면의 브라흐마가 아닌, 브라흐마에게 부여된 대표적

인 두가지 특징인 최고신과창조주가운데서 후자였던 것이다. 더 나아

가 붓디는 自我觀에 대해서도 브라흐만 (Brahman) 적 요소를 거부하였

댜 기존의 아뜨만 (Atman) 에서 브라흐만의 초월적 요소를 배제함으로

써 자아의 경험적이며 실용적인 측면에 주목하게끔 하였다 당장 경험

할 수 없는 지고의 환희보다는 내 눈앞의 현실, 곧 苦 (dubkha) 를 직시

하라고 경종을 울렀던 것이다.

브라흐마(Brahma) 와 브라흐만(Brahm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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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osition of the early Buddhism between Brahma and Brah-


man
Choi, Kyung-ah

브라호마(Bral11l버)와 브라호만(Brahman) 에 대한 초기불교의 입장 | 175


Early Buddhism has been regarded as atheistic. A cursory study of early
Buddhism agrees with it since there is no room for God in the fundamental
doctrines ofthe Buddha. It is a well-known fact that the Buddha firmly rejects
and criticizes the conception ofCreator God tliat has a close connection witli
the conception ofBrahma. On the contrary, we come across an instance where
the Buddha approves Brahma. In tliis case, it is not the Brahma as Creator God,
but as the chief of gods, or as the suzerain of three thousand world-systems.
This paper deals with acceptwce and adaptation ofthe conception ofBrahma
in the Nikayas. It starts witl1 a brief outline of the conception of Brahma in
the Brahmanical tradition before the emergence of Buddhism. Then, it tnes
to make clear about two different attitudes oftl1e Buddha towards Brahma as
shown in the Nikayas. Besides, some doubts can be raised: Why does the Bud-
dha never mention the neuter Brahman wh ich is already seen in the earliest
Upani~ads? Does this mean that he did not know it, or is it that this concept
itselfdid not exist at that period? Rhys Davids asserts that the neuter Brahman
is entirely unknown in the Nikayas, and that the Buddha's idea ofBrahma re-
ally differs widely from that of the Up미1isads . It is also possible to think in
this way: the concept ofneuter Brahman has been already assimilated into the
concept of Atman, and since the Buddha was strongly against the concept of
Atman additional mentioning ofBrahman became redundant.

*Keywords
· Brahma, Brah man, Creator God, Nikaya

176 I 密敎學報 第十四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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