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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생활화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비판적·창의적 사고 역량 자료·정보 활용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대인 관계 역량 문화 향유 역량 자기 성찰·계발 역량
단원의 길잡이
우리는 왜 문학을 배우는 것일까? 『논어(論語)』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
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문학에 대한 지식도 중요
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매일 문학을 즐기
며 생활화하는 일이다. 우리는 문학을 내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 평생 즐기기 위해
배운다.
문학의 생활화는 나와 타인, 세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윤동
주의 「서시」를 읽으며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며 근대사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도 한
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자기 성찰·계발 역량과 관계가 깊고, 인
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일은 공동체·대인 관계 역량과 관계가 깊으며,
총체적으로 문화를 즐기고 문화 발전에 참여하는 일은 문화 향유 역량과 관계가
깊다.
이 단원에서는 문학 활동을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하며 상호 소통하
는 삶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또한 문학의 생활화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서도 생각
해 볼 것이다. 『문학』 과목에서 배우고 익힌 내용을 종합하여 문학을 생활화함으로
써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평생 독자로서의 자세를 갖춰 보자.

단원 학습 목표
•문학을
문학이 통하여
우리의 자신을
삶에서 돌아보고 타인과
어떤 의미를 교감하는
지니는지 태도를 갖춘다.
탐구한다.

•문학을
스스로 생활화하여
문학 작품을자신의 삶을 가꾸고
찾아 읽으며 문학의공동체의 문화 발전에
재미와 가치를 기여하는 태도를 갖춘다.
체험한다.

272 Ⅳ. 문학의 생활화


단원 한눈에 보기

성찰과 소통으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문학의 가치


해산 바가지 | 박완서
로서의 문학

버팀목에 대하여 | 복효근 문학의 생활화


삶과 문화로서
광문자전 | 박지원 문화 발전
의 문학

학습할 내용에 관해 질문 만들기


•이 단원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질문을 만들어 보자.
문학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단원의 길잡이 273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학습 ● 문학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교감하는 태도를 갖춘다.
목표

준비 활동  다음은 다문화 사회의 모습을 담은 시이다. 이 시를 읽고,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하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하는 몸짓 손짓을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바라본다

파파윈한 씨는 이주민이고 / 지한석 씨는 정주민이지만


같은 공장 같은 부서에 / 근무하는 노동자여서
손발도 맞고 호흡도 맞다

공장의 불문율에는
일하고 있는 동안엔 / 남녀 구분하지 않고
불법 체류 합법 체류 구분하지 않고 / 출신 국가 구분하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그녀도 안다
세계의 어떤 법령에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분을 따질 수 있다고 / 씌어 있진 않을 것이다

한국 청년 지한석 씨가 내는 숨소리에
미얀마 처녀 파파윈한 씨는 가만히 귀 기울인다
 - 하종오, 「신분」

 이 단원에서 학습할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떠올려 보자.

자아 성찰 소통 타자 이해

274 Ⅳ. 문학의 생활화


바 탕 학 습

문학과 자아 성찰
독자는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삶의 방향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

이었느냐”( 「너에게 묻는다」)라는 안도현의 시를 읽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몸을 불

태운 연탄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처럼 독자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정립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더욱 성숙한 인간

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문학을 통한 타자 이해와 소통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자기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독자는 작품 속 인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그들의 삶에 담겨 있는 생각을 알

아 가고, 그 인물들을 이해하고 평가하면서 더불어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폭넓게 이해하고, 삶의 다양성에 대해 성찰하는 동시에 풍부한 감수

성·예리한 통찰력·따뜻한 포용력·바람직한 가치관 등을 갖춘 깊이 있는 내면세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독자는 문학 작품을 읽으며 자신과는 다른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고, 타인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개성 있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을 함양하는 동시에 서로 조

화를 이루며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단원에서는

• 「쉽게 씌어진 시」를 감상하며 자아를 성찰하는 화자의 태도와 정서를 살펴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본다.

• 「해산 바가지」를 감상하며 작품 속 인물이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어떠한 가치를 깨닫는지 파악하고, 작품 감상의 결과를 친구

들과 공유하며 소통한다.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75


「쉽게 씌어진 시」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쓴 시이다. 화자가 자아를 성찰하는 내용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
해 보자.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육첩방(六疊房): 다다미 여섯
장이 깔린 작은 일본식 방. 일본
식 돗자리인 다다미는 보통 너비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석 자에 길이 여섯 자 정도의 직 시인. 간도 출신으로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45년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다. 한 자 옥사하였다. 자신을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작품들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 「서시」, 「별 헤는 밤」,
는 약 30. 3 cm에 해당한다. 「참회록」 등이 있고, 사후에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276 Ⅳ. 문학의 생활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이 작품은 1948년에 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되었다.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77


학습 활동

이해하기 「쉽게 씌어진 시」를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⑴ 시상의 흐름을 중심으로 이 시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

1연~2연

3연~6연

7연

8연~10연

⑵ 10연에서 첫 번째 ‘나’와 두 번째 ‘나’는 각기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지 말해 보자.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엮어 읽기 다음은 시인의 다른 작품이다. 이 시를 읽고 화자의 태도에 주목하여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윤동주, 「서시」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시
집 전체의 내용을 안내해 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는 역할을 한다. 이 시는 현 나는 괴로워했다.
실의 어둠과 괴로움 속에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순수
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화자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의 마음이 간결한 시어로 형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상화되어 있다.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서시」

278 Ⅳ. 문학의 생활화


⑴ 위 시에서 ‘하늘’, ‘바람’, ‘별’의 의미가 무엇일지 말해 보자.

하늘 바람 별

⑵ 위 시와 「쉽게 씌어진 시」에 나타난 화자의 자세와 그러한 자세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표현하기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시나 수필을 써 보자.

활동 방법

•자기 자신을 성찰해 보고, 그 내용을 어떠한 형태의 글로 표현할지 정한다.


•성찰의 과정과 내용을 글로 표현한다.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79


작품 감상

작 품 해제
쉽게 씌어진 시
「쉽게 씌어진 시」는 윤동주가 일본에서 유학할 때 쓴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 지식인의 현실 인식과 자신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1연에서 화자는 먼저 자신이 처한 시·공간적 상황을 인식한다. 화자는 ‘육첩방’에 있고, 밖
에는 ‘밤비’가 내리고 있다. ‘육첩방’은 화자에게는 남의 나라인 동시에 성찰의 공간이며, 성찰
의 방식인 시 쓰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2연에서 화자는 시인이 ‘슬픈 천명’임을 인
식하면서도 시를 적어 보겠다고 한다. 3연~6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회의감과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7연에서는 정작 살기 어려운 인생에 비추어 시 쓰기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화자의 이러한 부끄러움은 1연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8
연을 거치며 9연에서 그 부끄러움을 회복해 줄 또 다른 자아를 이끌어
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10연에 이르러 두 자아 즉, 현
실 속에서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 자아와 그것을 반성적으로
응시하는 또 다른 자아가 화해를 한다. 분열되어 있던 두 자아의 화
해는 시인으로서의 고뇌를 해소하는 근본적이면서도 문학적인 해결
방안이라 할 수 있다.

더 찾아 읽기
자신의 성장 내력을 배경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성찰한 시.
서정주
정서 부끄러움의 정서에 대해 화자가 보이는 태도의 차이를 비교하
「자화상」
며 감상해 보자.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떠올리며 문학과 인생을 노래한 시. 인


쉽게 씌어진 박인환
시상 생의 과정을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 살펴보며 작품을 감상해
시 「목마와 숙녀」
보자.

신연식 각본, 윤동주와 그의 사촌이자 유학 동지인 송몽규를 중심으로 하여


작가의
이준익 연출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 청년이 어떤 고뇌의 삶을 살았는지 그려
삶 「동주」 낸 영화. 윤동주의 시와 삶을 생각하며 감상해 보자.

280 Ⅳ. 문학의 생활화


「해산 바가지」는 서술자인 ‘나’가 시어머니를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작품 속 ‘나’가 시어머니를 통해 어떠
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지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해 보자.

해산 바가지
박완서

5 앞부분 줄거리

‘나’는 어느 날 친구의 부탁으로 친구의 며느리가 출산 후 입원한 병실에 함께 간다. 병실에서 ‘나’는 며느리
가 둘째 아이도 딸을 낳았다고 불쾌해하는 친구와 미안해하는 친구의 사돈 사이에서 어색한 위치에 놓인다.
‘나’의 경우는 딸을 넷이나 출산하면서도 그때마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사랑으로 손녀들을 돌보셨던 시어머
니가 계셨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어머
10 니를 존경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게 되면서 본능에 가까운 그분의 행동 때문에 ‘나’는
점점 지친다.

그 무렵 집에 드나들던 파출부가 어느 날 나한테 이런 소리를 했다.

“세상 사람들이 눈이 멀어도 분수가 있지. 왜 사모님 같은 분을 효부 표창에서

빠뜨리느냐 말예요. 별거 아닌 사람들이 다 효자 효녀 효부라고 신문에 나고

15 상금도 타던데.”

그 여자가 순진하게 분개하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완벽한 위선에 절망했

다. 나는 막다른 골목에 쫓긴 도둑이 살의를 품고 돌아서듯이 그 여자에게 돌아서

서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오늘 우리 어머님 목욕을 좀 시키고 싶은데 아줌마가 좀 도와줘야겠어요.”

20 “그러믄요. 도와 드리고말고요.”

“목욕탕에 물 받으세요.”

나는 벌써부터 내 속에서 증오와 절망적인 쾌감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걸 느

끼고 있었다. 아줌마 보는 앞에서 시어머님의 옷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조금도 인

정사정 두지 않고 거칠게 함부로 다루었다. 목욕 한번 시키려면 아이들까지 온 집

박완서(朴婉緖: 1931~2011)
소설가. 한국 전쟁으로 인한 비극적 상처, 여성으로서의 삶, 인간의 속물적 욕망과 중산층의 허위의식
에 대한 비판 의식 등을 작품에 담아냈다. 주요 작품으로 「나목」,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이 있다.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81


안 식구가 총동원되어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가며 아무리 참을성 있고 부드럽게

다루다가도 종당엔 다소 폭력적으로 굴어야 겨우 그게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엔

처음부터 폭력적으로 다루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분도 내 살기등등한 태도에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한 반항을 했다. 믿을 수 없을


‘나’가 증오심을 드러낸 까닭을 만큼 강한 힘으로 저항했지만 나 역시 거침없이 증오를 드러내니까 힘이 무럭무 5
짐작해 보자.
럭 솟았다. 옷 한 가지를 벗겨 낼 때마다 살갗을 벗겨 내는 것처럼 절절한 비명을

질렀다. 보다 못한 아줌마가 제발 그만해 두라고 애걸했다. 알지 못하면 가만있어

요. 이 늙은이는 이렇게 해야 돼요. 나는 씨근대며 말했다. 그리고 아줌마도 내

일을 도울 것을 명령했다. 노인은 겁에 질려 목쉰 소리로 갓난아기처럼 울었다.

발가벗긴 노인을 반짝 들어다 탕 속에 집어넣고 다짜고짜 때를 밀기 시작했다. 나 10

죽는다. 나 죽어. 저년이 나 죽인다. 노인은 온 동네가 떠나가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모질게 때를 밀었다.

“너무하세요. 그렇게 아프게 밀 게 뭐 있어요?”

아줌마가 노인 편을 들었다. 그녀는 이제 아무 도움도 안 됐다. 혼비백산한 얼

굴로 구경만 했다. 15

“알지 못하면 가만히나 있으라니까요. 아무리 살살 밀어도 죽는시늉할 게 뻔해

요.”

골치가 빠개질 듯이 띵하고 귀에서 잉잉 소리가 났다. 나는 남의 일처럼 내가

미쳐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골속에 아니 온몸에 가득 찬 건 증오뿐이었다. 그런

데도 나는 자꾸자꾸 증오를 불어넣고 있었다. 마치 터뜨릴 작정하고 고무풍선을 20

불듯이. 자신이 고무풍선이 된 것처럼 파멸 직전의 고통과 절정의 쾌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별안간 아찔하면서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그런 중에도 나는

냉혹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이래도 나를 효부라고 할 테냐고 묻고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몸져누웠다. 파출부도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몸살에

신경 안정제의 후유증까지 겹쳐 정신과 치료까지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집안 꼴 25

이 엉망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도 그런 귀띔을 했지만, 시어머님을 한동안 어디로


■종당(從當): 일의 마지막.
■씨근대며: 고르지 아니하고 거 보낼 수 있었으면 하는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그분의 친정 조카들로부터였다. 그
칠고 가쁘게 숨 쉬는 소리가 자
런 분을 잠시라도 맡아 줄 만한 아들이나 딸이 또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입원을 일
꾸 나며.
■혼비백산(魂飛魄散): 혼백이 어 단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의료 보험 제도는 없을 때고 쉬
지러이 흩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라 넋을 잃음을 이르는 말. 나을 병도 아니고 아직도 몇 년을 더 사실지 모르게 몸은 정정하시니, 우리가 부 30

282 Ⅳ. 문학의 생활화


자가 아니란 걸 아는 그들이 비용 문제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었으리라. 달리 여기

저기 수소문해 본 끝에 양로원과 정신 치료를 겸한 수용 기관이 꽤 있다는 걸 알

아내서 우리에게 권했다. 물론 유료였고 그게 그닥 싸달 수 없는 상당한 액수인

게 되레 우리를 솔깃하게 했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 한적한 시골, 정갈한 거처에


5 서 비슷한 처지끼리 가벼운 운동과 이런저런 이야기로 소일하며 적절한 치료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의 천국이 꼭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물론 자주 면회를 갈

테고 또 자주 그분을 가정으로 초대할 테고, 상태를 봐 가며 퇴원도 시킬 수 있으

리라. 이런 꿈을 꾸며 남편이 직접 일요일마다 그런 수용 기관 중 시설이 괜찮다

고 소문난 데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번번이 기대에 어긋나는지 남편은 일요일마


10 다 초주검이 돼서 돌아왔다. 어떻더냐고 캐물으면 몬도가네야 몬도가네, 하는 대

답이 고작이었다. 남편이 노인들의 천국을 단념하고 나도 십자가를 다시 질 만큼

건강을 회복해 갈 무렵 역시 시어머님의 친정 쪽에서 스님이 하는 아주 좋은 수용

기관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일러 주었다. 왠지 남편이 또 솔깃해했다.

“불교 쪽보다는 기독교 쪽에서 하는 기관이 안 낫겠어요?”


15 “그건 또 왜?”

“그냥요. 기독교 계통이 학교도 더 많이 짓고 경영도 더 잘하는 것 같아서요.”

나는 약간 근거가 희박한 소리를 했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여지껏 내가 다녀온 데가 다 무슨 기도원 이름이 붙은 덴

데 망령 난 노인이나 정신병자를 다 함께 마귀 들린 걸로 취급하면서 마귀 쫓는


20 기도를 하는데, 마귀 쫓는 기도가 왜 꼭 마귀 목소리처럼 소름이 끼치던지…….”

처음으로 남편한테서 그런 기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를 들은 셈이었다.


■초(初)주검: 두들겨 맞거나 병
“시설은 어때요? 살 만해요? 주위 환경은요?” 이 깊어서 거의 다 죽게 된 상태.
또는 피곤에 지쳐서 꼼짝을 할
“그렇게 궁금하면 같이 가 볼래?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지 당신도 어차 수 없게 된 상태.
■몬도가네(Mondo Cane): 이탈
피 알아야 할 테니까.”
리아어로 ‘개 같은 세상’을 의미
25 이렇게 해서 오래간만에 동부인해서 기차를 탔고, 완행열차나 서는 작은 역에 한다. 세계 각국의 기괴하고 엽
기적인 풍습을 찾아내어 이를 다
서 내린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포장 안 된 시골길을 한 시간이나 달렸다. 기도 큐멘터리 형식으로 표현한 이탈
리아의 다큐멘터리 제목이기도
원 대신 무슨 암자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은 거기서도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했 하다. 기괴한 것이나 징그러운
것들을 ‘몬도가네식’이라고 표현
다. 마침 가을이었다. 논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경운기가 겨우 다닐 정도
했던 것이 오늘날 ‘몬도가네’라
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
의 소롯가엔 코스모스가 한창 보기 좋게 끝도 없이 피어 있었다. 우선 코스모스
■동부인(同夫人): 아내와 함께
30 길을 말없이 타박타박 걸었다. 남편이 윗도리를 벗어 들었다. 알맞은 기온인데도 동행함.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83


그의 와이셔츠 등허리에 동그랗게 땀이 배어 있는 게 보였다. 나도 괜히 진땀이

났다.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어귀엔 구멍가게도 있었다. 구멍가게 좌판엔

비닐통에 든 부연 막걸리와 라면이 진열돼 있을 뿐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엔 막걸리가 먹고 싶다고 씌어 있었다. 나

는 너그럽게 웃었지만 속으론 까닭 없이 낭패스러웠다. 남편이 좌판에 털썩 주저 5

앉았다. 그리고 주인도 찾지 않고 막걸리 병마개를 비틀었다. 등허리뿐 아니라 이

마에도 번드르르 땀이 배어 있었다. 서늘한 미풍이 숲을 이루다시피 한 길가의 코

스모스를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색색 가지 꽃이 오색의 나비 떼처럼 하늘댔

다. 쾌적한 날씨였다. 그런데도 우린 둘 다 달군 프라이팬에 들볶이고 있는 것처

두 사람이 안절부절못하는 까닭 럼 안절부절못했다. 막걸리를 병째 마시는 그가 조금도 호방해 보이지 않고 조바 10


을 생각해 보자.
심만이 더욱 드러나 보이는 걸 나는 쓰라린 마음으로 곁눈질했다.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달랠까요?”

“당신 시장하오?”

“아뇨, 당신 술안주 하게요.”

“안주는 무슨…….” 15

나는 주인을 찾아 가게 터 뒤로 돌아갔다. 좀 떨어진 데 초가가 보였다. 초가지

붕 위엔 방금 떠오른 보름달처럼 풍만하고 잘생긴 박이 서너 덩이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가 ‘박’을 보고 ‘해산 바가지’ “여보 저 박 좀 봐요. 해산 바가지 했으면 좋겠네.”


를 떠올린 것이 사건 전개에 어
떠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보자. 나는 생뚱한 소리로 환성을 질렀다. 20

“해산 바가지?”

남편이 멍청하게 물었다.

“그래요. 해산 바가지요.”

실로 오래간만에 기쁨과 평화와 삶에 대한 믿음이 샘물처럼 괴어 오는 걸 느꼈

■호방(豪放)해: 의기가 장하여 다. 25

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어.
내가 첫애를 뱄을 때 시어머님은 해산달을 짚어 보고 섣달이구나, 좋을 때다,
■환성(歡聲): 기쁘고 반가워서
지르는 소리. 곧 해가 길어지면서 기저귀가 잘 마를 테니, 하시더니 그해 가을 일부러 사람을
■해산(解産)달: 아이를 낳을 달.
시켜 시골에 가서 해산 바가지를 구해 오게 했다.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
“잘생기고, 여물게 굳고, 정한 데서 자란 햇바가지여야 하네. 첫 손자 첫국밥
■첫국밥: 아이를 낳은 뒤에 산
모가 처음으로 먹는 국과 밥. 지을 미역 빨고 쌀 씻을 소중한 바가지니까.” 30

284 Ⅳ. 문학의 생활화


이러면서 후한 값까지 미리 쳐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의 그분은 너무 경건해

보여 나도 덩달아서 아기를 가졌다는 데 대한 경건한 기쁨을 느꼈었다. 이윽고 정

말 잘 굳고 잘생기고 정갈한 두 짝의 바가지가 당도했고, 시어머니는 그걸 신령한

물건인 양 선반 위에 고이 모셔 놓았다. 또 손수 장에 나가 보얀 젖빛 사발도 한


5 쌍을 사다가 선반에 얹어 두었다. 그건 해산 사발이라고 했다.

나는 내가 낳은 첫아이가 딸이라는 걸 알자 속으로 약간 켕겼다. 외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흔히 그렇듯이 그분도 아들을 기다렸음 직하고 더구나 그분의 남다른

엄숙한 해산 준비는 대를 이을 손자를 위해서나 어울림 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원한 나를 맞아들이는 그분에게서 섭섭한 티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 그 잘생긴 해산 바가지로 미역 빨고 쌀 씻어 두 개의 해산 사발에 밥 따로 국 따로
■보얀: 빛깔이 보기 좋게 하얀.
퍼다가 내 머리맡에 놓더니 정성껏 산모의 건강과 아기의 명과 복을 비는 것이었
■켕겼다: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다. 그런 그분의 모습이 어찌나 진지하고 아름답던지, 비로소 내가 엄마 됐음에 황 탈이 날까 불안했다.
■인줄: 금줄. 부정한 것의 침범
홀한 기쁨을 느낄 수가 있었고, 내 아기가 장차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착하게 자라
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문이나
길 어귀에 건너질러 매거나 신성
리라는 것 하나만은 믿어도 될 것 같은 확신이 생겼다. 대문에 인줄을 걸고 부정을
한 대상물에 매는 새끼줄.
15 기(忌)하는 삼칠일 동안이 끝나자 해산 바가지는 정결하게 말려서 다시 선반 위로 ■기(忌)하는: 꺼리거나 피하는.
■희색(喜色): 기뻐하는 얼굴빛.
올라갔다. 다음 해산 때 쓰기 위해서였다. 다음에도 또 딸이었지만 그 희색이 만
■만면(滿面)하고도: 얼굴에 가
면하고도 경건한 의식은 조금도 생략되거나 소홀해지지 않았다. 다음에도 딸이었 득하게 드러나 있고도.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85


고 그다음에도 딸이었다. 네 번째 딸을 낳고는 병원에서 밤새도록 울었다. 의사나

간호사까지 나를 동정했고 나는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의 그 경건한 의식을 받을

면목이 없어서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희색이 만면했고 경건했다. 다

음에 아들을 낳았을 때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똑같은 영접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분은 어디서 배운 바 없이, 또 스스로 노력한 바 없이도 저절로 인간의 생명을 5

어떻게 대접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분이었다. 그분이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

그분의 여생도 거기 합당한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나는 하마터면 큰일을 저지를

뻔했다. 그분의 망가진 정신, 노추한 육체만 보았지 한때 얼마나 아름다운 정신이

깃들었었나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금 빈 그릇이 되었다 해도 사이비 기도

원 같은 데 맡겨 있지도 않은 마귀를 내쫓게 하는 수모와 학대를 당하게 할 수는 10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이 막걸릿병을 다 비우기도 전에 길을 재촉해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암자 쪽을 등진 남편은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았다. 시어머님은 그 후에도 삼 년

을 더 살고 돌아가셨지만 그동안 힘이 덜 들었단 얘기는 아니다. 그분의 망령은

여전히 해괴하고 새록새록 해서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효부인 척 위선을 떨 15

‘나’의 태도가 변한 근본적인 원 지 않음으로써 조금은 숨구멍을 만들 수가 있었다. 너무 속상할 때는 아이들이나


인은 무엇인가?
이웃 사람의 눈치 볼 것 없이 큰 소리로 분풀이도 했고 목욕시키거나 옷 갈아입힐

때는 아프지 않을 만큼 거칠게 다루기도 했다. 너무했다 뉘우쳐지면 즉각 애정 표

시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위선을 떨지 않고 마음껏 못된 며느리 노릇을 할 수 있고부터 신경 안정제가 필 20

요 없게 됐다. 시어머니도 나를 잘 따랐다. 마치 갓난아기처럼 천진한 얼굴로 내

치마꼬리만 졸졸 따라다녔다. 외출했다 늦게 돌아오면 그분은 저녁도 안 들고 어

린애처럼 칭얼대며 골목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곤 했다. 임종 때의 그분은 주름

살까지 말끔히 가셔 평화롭고 순결하기가 마치 그분이 이 세상에 갓 태어날 때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그분의 그런 고운 얼굴을 내가 만든 양 크나큰 25

성취감에 도취했었다.
■노추(老醜): 늙고 추함. * 이 작품은 1985년 『세계의 문학』에 발표되었다.

286 Ⅳ. 문학의 생활화


학습 활동

이해하기 「해산 바가지」를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⑴ ‘나’를 중심으로 사건을 정리해 보자.

‘나’는 시어머니를 거칠게 목욕을 시키며 증오심을 표출함.

‘나’는 시어머니를 모실 기관을 알아보기 위해 남편을 따라나섬.

⑵ ⑴과 같은 과정 속에서 ‘해산 바가지’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말해 보자.

깊이 읽기 다음 글을 읽고, 문학 작품을 통한 타자 이해와 상호 소통에 주목하여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소설 속 인물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지닌 채 작품 속 다른 인물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한다. 다른 인물의 삶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기도 한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설 속 인물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타자’이다.
즉 독자는 소설의 인물이라는 ‘타자’와 만나고, 그의 삶을 이해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갖는다. 또한 독자는 다른 독자와 의견을 나누면
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의미를 새롭게 얻기도 하며, 자신이 발견한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구성하기도 한다. 여기서 대화를 나누는 ‘다른 독자’ 역시 ‘타자’가 된다.
결국 소설 읽기는 다양한 타자와 소통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이다.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87


⑴ 이 작품의 ‘나’가 타자인 시어머니를 통해 깨닫게 된 점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⑵ 이 작품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을 선택하여, 그 인물에게 공감한 점과 그 인물을


통해 느낀 점을 말해 보자.

⑶ 이 작품을 읽은 감상을 친구들과 공유해 보고, 공유한 결과를 정리해 보자.

‘나’의 감상

친구의 감상

친구들과 감상을 공유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작품의 의미
또는 변화된 생각

표현하기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은 경험을 간략히 써 보자.

288 Ⅳ. 문학의 생활화


작품 감상

작 품 해제
해산 바가지
「해산 바가지」는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경건하게 손주의 탄생을 맞이한 ‘시어머니’의 삶
의 태도를 통해 생명 존중 사상을 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남아 선호 사상이 만연해 있던 사회의 모습과는 다르게, 성별과 관계없이
손주들의 탄생을 기쁘게 맞아주셨다. ‘나’는 그런 시어머니를 존경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시
어머니가 치매 상태에 놓이게 되자, ‘나’는 그분을 모시는 것에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결국 목
욕을 시키며 시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한 ‘나’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실 수용 기관
을 알아보러 가는데, 길에서 본 ‘박’은 ‘나’로 하여금 ‘해산 바가지’가 환기하는 시어머니의 소중
한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시어머니가 정성껏 해산 바가지를 준비하시고 첫국밥을 말아
주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생명의 고귀함’이라는 가치를 깨닫고, 갈등을 해소한다.
‘나’가 타자인 시어머니를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소중한 가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이다. 그 가치는
성별에 따라 구별되어 작용하지 않으며, 정신이나 육체가 온전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구별되어 작용하지 않는다. 또한 ‘나’가 시어머니를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독자 역시
시어머니의 정신과 그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나’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더 찾아 읽기
아버지를 증오했던 아들이 그의 삶을 이해하며 그를 연민하는
김소진
인물 과정이 나타난 소설. 대상에 대한 인물의 태도 변화를 중심으
「쥐잡기」
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 중절 수술을 했던 여성이 자신의 상처


박완서
와 마주하며 각성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 소설. 남성 중심 사회
해산 바가지 배경 「꿈꾸는
에 대한 문제의식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에 주목하여 작품
인큐베이터」
을 감상해 보자.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초등학생 서술자의 시각으로 그린 소


타자 김재영
설. 문학을 통해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음을 생각하며 작품을 감
이해 「코끼리」
상해 보자.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289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학습 ● 문학을 생활화하여 자신의 삶을 가꾸고 공동체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갖춘다.
목표

준비 활동 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학 활동들을 떠올려 보고, 그러한 활동이 우리의 삶


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해 보자.

▲ 독서 토론을 하는 모습 ▲ 학생들의 작품이 실린 교지

▲ 문학 강연에 참여한 모습 ▲ 문학 답사 때 갈 만한 ‘심우장’의 모습

 이 단원에서 학습할 내용과 관련하여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떠올려 보자.

문학의 생활화 문화 발전

290 Ⅳ. 문학의 생활화


바 탕 학 습

문학 활동
문학 활동은 작품을 수용하는 활동과 창작하는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문학 작품에 담긴 타인

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활동, 그러한 이해와 수용을 자신의 가치로 판단하고 비판하는 활

동, 그리고 이를 재구성하거나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활동 등이 그것이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

이나 동아리 활동 시간에 독서 토론을 하는 것도 문학 활동이며,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쓴 작품

이나 서평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도 문학 활동이다. 또한 지역 사회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이나 시 낭송회와 같은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문학 활동이다.

문학의 생활화와 문화 발전
우리는 앞에서 문학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타자를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았다. 일상생활에서

꾸준히 문학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봄과 동시에 타자를 이해하고, 자아와 세계의

관계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활동의 생활화는 공동체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문학 작품에는 공동체 구성원

의 다양한 삶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문학 작품을 수용하고 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공

동체 구성원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일상의 삶에서 도외시했던 공동체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공

감할 수 있다. 그러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원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상호 존중

감과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문학 활동을 적극적으로 생활화한다면 바람직한 인성을 형성하고 개개

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화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이 단원에서는

• 「버팀목에 대하여」를 감상하며 바람직한 인간적 가치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공동체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태도

를 기른다.

• 「광문자전」을 감상하며 실존 인물인 광문을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 살펴보고, 자신의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을 골라 이야기를

만들어 보며 일상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문학 활동을 실천한다.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291
「버팀목에 대하여」는 ‘버팀목’을 통해 깨닫게 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에 주
목하여 작품을 감상해 보자.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복효근(卜孝根: 1962~ )
시인. 교사.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 관찰의 섬세함과 진실성이 돋보이는 시를 주로 썼다. 주요 작품으
로 「춘향의 노래」, 「버팀목에 대하여」, 「토란 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등이 있고, 시집 『당신이 슬
플 때 나는 사랑한다』, 『마늘 촛불』, 『따뜻한 외면』 등이 있다.

292 Ⅳ. 문학의 생활화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 이 작품은 2000년에 발간된 『새에 대한 반성문』에 수록되었다.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293
학습 활동

이해하기 「버팀목에 대하여」를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⑴ 이 시에서 ‘나무’와 ‘버팀목’의 관계를 생각하며 대응이 되는 시어를 정리해 보자.

나무 ‘나’

버팀목 ‘나’

⑵ 다음 시구의 의미를 화자인 ‘나’와 관련지어 풀이해 보자.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읽기 다음 글을 읽고, 「버팀목에 대하여」의 화자가 발견한 삶의 의미가 무엇일지 말해 보자.

화자는 죽은 나무가 쓰러진 나무의 버팀목이 된다는 발견으로부터 삶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발견에 도달한다. 비록 죽은 나무이지만, 살아 있는 나무의 버팀목
이 되어 줌으로써 그 존재 가치를 실현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발견
은 사람의 인생사에 투사되어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라는 시구로 귀결된다.

표현하기 ‘나무’와 ‘버팀목’의 관계처럼 공동체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을 찾고, 그 대상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자.

294 Ⅳ. 문학의 생활화


작품 감상

작 품 해제
버팀목에 대하여
「버팀목에 대하여」는 버팀목으로부터 연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와 인생사의 의미를
성찰한 작품이다.
이 시에서 ‘나무’는 태풍으로 쓰러졌던 나무이지만 ‘죽은 나무’인 ‘버팀목’에 기대어 서서 싹을
틔우고 잔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지만 이제 나무는 큰바람이
불어와도 눕지 않는다. 이제는 사라진 것, 즉 버팀목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인은 나무와 사람의 인생을 연결 짓는다. 화자가 길을 가며 ‘죽은 아버지’, ‘사라진 이웃들’을
버팀목으로 느끼는 것이 그 부분이다. 버팀목이 살아 있는 나무의 온전한 성장을 도왔듯, 죽은
아버지와 사라진 이웃들이 자신에게 버팀목 역할을 해 주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이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른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는 삶에 가치를 두며, 자신
역시 ‘아버지’나 ‘이웃’과 같은 삶을 살 것임을 드
러내는 것이다.

더 찾아 읽기
자식을 잃은 슬픔을 종교적 차원에서 승화시켜 발견하게 된
김현승
시어 본질적 가치를 노래한 시. ‘꽃’과 ‘열매’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
「눈물」
는지 두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해 보자.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냉정한 세상을 향해 사랑과 관용의


정호승
버팀목에 노래를 부르는 맹인 부부 가수를 통해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주제 「맹인 부부
대하여 않는 민중의 삶을 노래한 시.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의 내용을
가수」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해 보자.

고재종 나무를 통해 느낀 뜨거운 생명력과 감동을 표현한 시. 자연물


소재 「나무속엔 을 관찰한 바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어떠한 감
물관이 있다」 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해 보자.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295
「광문자전」은 신분이 비천하지만 정직하고 소탈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광문의 이야기를 담은 고전 소설이다. 현실의 인물을 작가가 어떻
게 형상화하였는지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해 보자.

광문자전 廣文者傳
박지원

광문(廣文)이라는 자는 거지였다. 일찍이 종루(鐘樓)의 저잣거리에서 빌어먹고 5

다녔는데, 거지 아이들이 광문을 추대하여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소굴을 지

키게 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날이 몹시 차고 눈이 내리는데, 거지 아이들이 다 함께 빌러 나가고 그

중 한 아이만이 병이 들어 따라가지 못했다. 조금 뒤 그 아이가 추위에 떨며 숨을

몰아쉬는데 그 소리가 몹시 처량하였다. 광문이 너무도 불쌍하여 몸소 나가 밥을 10

빌어 왔는데, 병든 아이를 먹이려고 보니 아이는 벌써 죽어 있었다. 거지 아이들

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애를 죽였다고 의심하여 다 함께 광문을 두들겨 쫓아내

니, 광문이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다가 그 집 개를 놀

라게 하였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다 꽁꽁 묶으니, 광문이 외치며 하는 말이,

광문이 밤에 마을의 어느 집으 “나는 날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온 것이지 감히 도적질을 하러 온 것이 아닙 15


로 들어간 까닭은 무엇인가?
니다. 영감님이 믿지 못하신다면 내일 아침에 저자에 나가 알아보십시오.”

하는데, 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집주인이 내심 광문이 도적이 아닌 것을 알고서 새

벽녘에 풀어 주었다. 광문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떨어진 거적을 달라 하여

가지고 떠났다. 집주인이 끝내 몹시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밟아 멀찍이서 바라보

니, 거지 아이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수표교(水標橋)에 와서 그 시체를 다리 밑으 20

로 던져 버리는데, 광문이 다리 속에 숨어 있다가 떨어진 거적으로 그 시체를 싸


■종루(鐘樓): 오늘날 종로 네거
리에 있는 종각. 서 가만히 짊어지고 가, 서쪽 교외의 공동묘지에다 묻고서 울다가 중얼거리다가
■저잣거리 :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 거리.
하는 것이었다.
■거적: 짚을 두툼하게 엮거나,
새끼로 날을 하여 짚으로 쳐서 박지원(朴趾源: 1737~1805)
자리처럼 만든 물건.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소설가. 호는 연암(燕巖). 실학을 강조하였고, 문체를 혁신하여 당대의 사람
■수표교(水標橋): 조선 세종 때 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으로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호질」, 「양반전」
에, 서울 청계천에 놓은 다리. 등의 한문 소설과, 조선 각 방면의 개혁을 논한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가 있다.

296 Ⅳ. 문학의 생활화


이에 집주인이 광문을 붙들고 사유를 물으니, 광문이 그제야 그전에 한 일과

어제 그렇게 된 상황을 낱낱이 고하였다. 집주인이 내심 광문을 의롭게 여겨, 데

리고 집에 돌아와 의복을 주며 후히 대우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광문을 약국을 운

영하는 어느 부자에게 천거(薦擧)하여 고용인으로 삼게 하였다.


5 오랜 후 어느 날 그 부자가 문을 나서다 말고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다, 도로 다

시 방으로 들어가서 자물쇠가 걸렸나 안 걸렸나를 살펴본 다음 문을 나서는데, 마

음이 몹시 미심쩍은 눈치였다. 얼마 후 돌아와 깜짝 놀라며, 광문을 물끄러미 살

펴보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다가, 안색이 달라지면서 그만두었다. 광문은 실로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날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지냈는데, 그렇다고 그만두겠다


10 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 부자에게 돌려주며,

“얼마 전 제가 아저씨께 돈을 빌리러 왔다가,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아서 제

멋대로 방에 들어가 가져갔는데, 아마도 아저씨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이에 부자는 너무도 부끄러워서 광문에게,


15 “나는 소인이다. 장자(長者)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니 나는 앞으로 너를 볼 낯 약국 부자가 광문에게 사죄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 없다.”

하고 사죄하였다. 그러고는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들과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

에게 광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두루 칭찬을 하고,

또 여러 종실(宗室)의 빈객(賓客)들과 공경(公卿)


20 문하(門下)의 측근들에게도 지나치리만큼 칭찬을

해대니, 공경 문하의 측근들과 종실의 빈객

들이 모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밤이 되
■천거(薦擧): 어떤 일을 맡아 할
면 자기 주인에게 들려주었다. 그래서 두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

어 달이 지나는 사이에 사대부까지도 모 록 소개하거나 추천함.


■장자(長者): 덕망이 뛰어나고
25 두 광문이 옛날의 훌륭한 사람들과 같다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
른.
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에 서
■종실(宗室): 임금의 친족.
울 안에서는 모두, 전날 광문을 후하게 ■빈객(賓客): 귀한 손님.
■공경(公卿): 삼공(三公)과 구경
대우한 집주인이 현명하여 사람을 알아
(九卿)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여기
서는 ‘높은 벼슬아치’라는 뜻.
본 것을 칭송함과 아울러, 약국의 부자를
■문하(門下): 문객이 드나드는
30 장자(長者)라고 더욱 칭찬하였다. 권세가 있는 집.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297
사람들이 광문을 대하는 태도를 이때 돈놀이하는 자들이 대체로 머리꽂이, 옥비취, 의복, 가재도구 및 가옥·전
파악해 보자.
장(田庄)·노복 등의 문서를 저당 잡고서 본값의 십분의 삼이나 십분의 오를 쳐서

돈을 내주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광문이 빚보증을 서 주는 경우에는 담보를 따지

지 아니하고 천금(千金)이라도 당장에 내주곤 하였다.

광문은 외모가 극히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입은 5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하고, 만석희(曼碩戱)를 잘하고 철괴무(鐵拐舞)를 잘 추

었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서로 욕을 할 때면, “니 형은 달문(達文)이다.”라고 놀려

댔는데, 달문은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광문이 길을 가다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역시 옷을 홀랑 벗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뭐라고 시부렁대면서 땅에 금을 그어 마치 누가 바르고 누가 틀리다는 10

것을 판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늉을 하니, 온 저자 사람들이 다 웃어 대고 싸우던

자도 웃음이 터져, 어느새 싸움을 풀고 가 버렸다.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머리를 땋고 다녔다. 남들이 장가가라고 권하면,

하는 말이,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 15

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옥비취(玉翡翠): 옥(玉)과 비취 생각을 하지 않는다.”
(翡翠).
■전장(田庄): 밭과 그 근처에 농 하였다. 남들이 집을 가지라고 권하면,
사짓는 데 편리하도록 간단하게
지은 집.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가져 무엇하리. 더구나 나는 아침이
■노복(奴僕): 사내종. 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20

■만석희(曼碩戱): 주로 개성 지
방에서 음력 4월 8일에 행해졌 자는 게 보통인데, 서울 안에 집 호수가 자그마치 팔만 호다. 내가 날마다 자리
던 놀이. 만석중놀이라고도 함.
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
■철괴무(鐵拐舞): 중국 전설상
의 팔선(八仙) 중 하나인 이철괴 하였다.
(李鐵拐)의 모습을 흉내 내어 추
는 춤. 서울 안에 명기(名妓)들이 아무리 곱고 아름다워도, 광문이 성원해 주지 않으
■우림아(羽林兒): 궁궐의 호위
면 그 값이 한 푼어치도 못 나갔다. 25
를 맡은 친위 부대 중의 하나인
우림위(羽林衛) 소속의 군인들을 예전에 궁중의 우림아(羽林兒), 각 전(殿)의 별감(別監), 부마도위(駙馬都尉)의
말함.
■별감(別監): 궁중의 각종 행사 청지기들이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운심(運心)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운심은 유
및 차비(差備)에 참여하고 임금
명한 기생이었다. 대청에서 술자리를 벌이고 거문고를 타면서 운심더러 춤을 추
이나 세자가 행차할 때 호위하는
일을 맡아보던 하인.
라고 재촉해도, 운심은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선뜻 추지를 않았다. 광문이 밤에
■부마도위 (駙馬都尉): 임금의
사위에게 주던 칭호. 그 집으로 가서 대청 아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마침내 자리에 들어가 스스로 상 30

298 Ⅳ. 문학의 생활화


좌(上座)에 앉았다. 광문이 비록 해진 옷을 입었으나 행동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의기가 양양하였다. 눈가는 짓무르고 눈꼽이 끼었으며 취한 척 구역질을 해

대고, 헝클어진 머리로 북상투〔北䯻〕를 튼 채였다. 온 좌상이 실색하여 광문에게

눈짓을 하며 쫓아내려고 하였다. 광문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치며 곡조에


5 맞춰 높으락낮으락 콧노래를 부르자, 운심이 곧바로 일어나 옷을 바꿔 입고 광문 광문이 오고 나서야 춤을 추는
모습에서 운심의 어떠한 면모를
을 위하여 칼춤을 한바탕 추었다. 그리하여 온 좌상이 모두 즐겁게 놀았을 뿐 아 알 수 있는가?

■북상투〔北䯻〕: 여자의 쪽머리


니라, 또한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를 모방하여 뒤통수에 상투처럼
* 이 작품은 『방경각외전』에 수록되어 있다. 묶은 머리 모양을 가리킴.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299
학습 활동

이해하기 「광문자전」을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⑴ 광문이 유명해지기 전의 사건을 정리해 보자.

거지 아이 사건

약국에서의 사건

⑵ 다음 발언에 나타난 광문의 생각과 가치관을 말해 보자.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


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가져 무엇하리. 더구나 나는 아침이
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자
는 게 보통인데, 서울 안에 집 호수가 자그마치 팔만 호다. 내가 날마다 자리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

깊이 읽기 다음 글을 읽고, 「광문자전」의 특징과 의의에 주목하여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가) 일반적으로 ‘전(傳)’은 도입부에서 입전 인물의 신분, 가계, 내력 등을 밝히고,


전개 부분에서 인물의 행적을 서술한 뒤, 마지막으로 인물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를 제시한다. 그런데 박지원은 「광문자전」 서두에 인물의 가계나 내력을 제시하
지 않고 바로 행적을 서술했으며, 이야기 끝에 인물에 대한 논평을 붙이지도 않았
다. 대신 「광문자전」 바로 뒤에 「광문자전 뒤에 쓰다」라는 글을 붙여서 「광문자전」
을 쓰게 된 경위와 인물에 대한 논평을 적었다. 곧, 박지원은 인물의 행적과 관련
된 일화 위주로 「광문자전」을 구성하고, 그 외 요소는 생략하거나 별도로 제시하
는 방식으로 ‘전’의 형식을 개성적으로 변용하였다.

300 Ⅳ. 문학의 생활화


(나) 조선 후기가 되면 한양을 중심으로 중앙 관서의 낮은 하층 관료들, 지방 관
아의 아전들, 서리, 건달, 노비, 기녀, 거지, 상인 등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이 두
드러진다. 이러한 계층의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면서 ‘전’에서도 이들을 주
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생겨났다. 기존의 ‘전’이 재자가인(才子佳人)으로 표방되
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 것이다. 조선 후기의 작가들은
‘전’을 통해 이러한 인물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으며, 그러한 인물들에 의해
변화되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⑴ (가)를 참고하여 이 작품이 일반적인 ‘전’과 다른 점을 알아보고, 이로 인해 나타


나는 표현 효과가 무엇일지 말해 보자.

⑵ 이 작품에는 (나)에서 설명하고 있는 비주류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러한


인물들을 그려 낸 것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

표현하기 자신의 주변 인물 중 한 사람을 골라 ‘전’을 지어 보자.

활동 방법

•학급 친구들, 부모님 등 주변의 인물 중 한 사람을 고른다.


•선택한 인물의 여러 가지 면모를 떠올려 보고, 어떠한 면모를 부각할 것인지를 정한다. 그리
고 그러한 판단에 부합하는 일화나 사건을 떠올려 본다. 생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
해 보고, 한 편의 ‘전’을 쓴다.
•자신이 쓴 글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서로의 감상을 나눈다.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301
작품 감상

작 품 해제
광문자전
「광문자전」은 박지원의 연암집 제8권 별집인 『방경각외전』에 「마장전」, 「예덕선생전」, 「민옹
전」, 「양반전」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방경각외전』의 작품들은 조선 후기 사회와 인물의 모
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지원은 열여덟 살에 병을 앓아, 밤마다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을 불러 시정(市井)에서 일어
나는 일을 듣곤 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시정에서 유명했던 인물인 광문의 이야기를 들었고, 또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박지원은 자신이 들은 광문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는 묘사와 현
장감 넘치는 대사, 그리고 극적인 사건을 안배하여 다소 파격적인 전으로 형상화했다.
한편, 광문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광문은 영남
지역 역모 사건에 얽히게 되어 유배되었다고 하고, 광문과 같이 나이가 많은데도 머리를 땋아
내린 자는 잡아 다스리라는 왕명이 내렸다고 한다. 당시의 지배 계층에게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광문’과 같은 시정의 인물을 택하여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 데서, 당시의 다양한 삶의 모습
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용 어·개념 정리 전(傳)
사마천의 『사기』로부터 출발한 ‘전’은 본래 역사적 교훈 공들도 전의 대상이 되어 전에 등장하는 인물이 크게 확
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역사적으로 자취가 뚜렷한 실존 장되었다. 이러한 이야기 속의 인물 중에는 실존 인물이
인물이 전의 주된 대상이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허구적인 인물도 많다. 우리나라의 고전 소설이
다. 그런데 평범한 인물의 삶에서도 긍정적인 가치를 발 ‘전’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전통에 기인하
견하면서 시정에 떠도는 이야기 속의 다양한 사건의 주인 는 바가 크다.

더 찾아 읽기
1910년대 중국의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자아도취에 빠져 혁
루쉰 명가인 척하다 총살된 아큐라는 인물의 삶을 그린 소설. 격
인물
「아큐정전」 변하는 시기의 독특한 인물을 통해 낡은 사상과 풍조를 비
판하는 방식에 주목하여 작품을 감상해 보자.
광문자전
다소 모자라지만 순박한 인물의 삶을 통해 쇠락해 가는 농
성석제
촌 현실과 이기적인 세태를 풍자한 소설. 전통적인 ‘전’의 형
형식 「황만근은
식이 현대 소설에서 어떻게 변용되었는지에 주목하여 작품
이렇게 말했다」
을 감상해 보자.

302 Ⅳ. 문학의 생활화


단원의 마무리
정리 자신이 만든 질문을 떠올리며, 이 단원에서 학습한 내용을 정리해 보자.

1 성찰과 소통으로서의 문학

• 문학 작품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 ) 수 있다.


• 문학 작품에 들어 있는 다양한 등장인물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 )의 삶을 이
해할 수 있다.
• 문학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과 ( )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2 삶과 문화로서의 문학

• 문학 활동은 작품을 수용하는 활동과 ( ) 활동을 모두 포함한다.


• 문학 활동은 자신의 삶을 가꿀 뿐만 아니라 ( )의 문화 발전에도 기여한다.
• 문학 활동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 구성원과 정서적으
로 교류하며 상호 존중감과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

점검 이 단원에서 학습한 결과를 스스로 점검해 보자.

결과
점검 항목
충분 보통 미흡

문학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교감하는 태도를 갖췄다.

문학을 생활화하여 자신의 삶을 가꾸고 공동체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태도를 갖췄다.

단원을 마치며
• 이 단원을 배우면서 알게 된 점이나 느낀 점을 정리해서 발표해 보자.

•이
 단원을 배우고 난 후 더 알고 싶은 내용이나 하고 싶은 일 혹은 하게 될 일을 자유롭게

말해 보자.

단원의 마무리 303


창의·융합
생활 속 문학 활동
이 단원에서 우리는 문학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고 사회·문화가 발전한다는 점을 중점
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문학을 생활화함으로써 이런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다는 점도 배웠
다. 문학을 생활화하기 위해서 문학 작품을 연극으로 공연해 볼 수도 있다. 희곡을 바탕으
로 연극을 해 볼 수도 있고,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한 다음 연극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등장인물이 되어서 무대에 서 본다면 희곡을 읽을 때와는 작품에 대한 몰입도
가 다를 것이다. 또한 작품을 각색하면서 글을 창작하는 능력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 고등학생들이 희곡 「보도 지침」을 공연하는 모습

보도 지침
공연 의도
군사 정권의 서슬이 퍼렇 생했던 언론인의 이야기다.
던 그 시절, ‘보도 지침’이라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와 열
는 미명 아래 언론의 자유는 망, 그 과정에서 그들이 느꼈
유린되고 있었다. 을 고뇌와 고통, 그리고 정의
오세혁의 「보도 지침」은 의 실현……. 이러한 것들을
언론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 관객들이 느껴 보길 바란다.

304 Ⅳ. 문학의 생활화


▼ 영국의 학생들이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각색하여 공연하는 모습

생활 속 문학 활동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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