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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춤(Tanz) 은유를통한철학적치유모색

김소영*·양대종**

[주제분류] 생철학, 예술철학


[주 제 어] 니체, 춤, 치유, 디오니소스, 비극적 사유
[요 약 문]
본 글의 목적은 니체 철학에서 춤의 은유가 비극적 사유의 회복을 함의하고
있음을 밝히고, 이를 통해 철학적 치유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데 있다. 비극적
사유는 니체의 초기 사유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 사유까지 지속 및 확장되는
개념이다. 비극적 사유는 비극의 탄생의 예술가-형이상학이 즐거운 학문의
예술생리학으로 변모하는 전 과정에서, 이성을 포함한 삶에 대한 총체적 긍정이
자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니체 철학 전체 기조를 이루는 핵심 사유이다. 비
극적 사유를 상징하는 춤은 디오니소스적 격정과 더불어 아폴론적 가상의 적절
한 개입을 요청하는 것으로, 어느 한쪽의 독단이 아닌 전체를 긍정하며 창조적
긴장과 조화를 이루는 행위로 드러난다. 니체 철학에서 춤은 디오니소스적 긍정
의 일환이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유연한 사고 주체로 기능하는 사유 양식의
상징이다. 이는 고통까지 삶의 자극제로 삼는 인식과 가치의 전환을 포함한다.
따라서, 춤의 은유는 다양한 관점을 자기 삶의 고양에 활용하는 실천적 행위로
이어지며 이로써 철학적 자기 치유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 제1저자 건국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 교신저자 건국대학교 철학과 교수
8 니체연구 제43집

춤 없이는 나에겐 어떤 회복과 행복도 없다1)


- 프리드리히 니체

1. 들어가며

니체 철학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디오니소스


적 긍정은 삶에 대한 유보 없는 총체적 긍정이며 이는 니체 철학 전체를 함의
하는 상징이다. 니체의 초기작인 비극의 탄생에서 처음 언급된 디오니소
스적인 것의 개념은 그의 후기 사유로 가면서 같은 맥락을 견지하되 더 확장
된다.
예술가-형이상학으로 불리는 니체의 초기예술론에서 춤은 분명히 생리
적 도취를 기반으로 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에서 발로된다. 하지만 비극의
탄생에서 춤은 도취를 통한 무분별한 분출이 아니다. 그의 초기 사유에서
춤은 어디까지나 아폴론적인 것의 적절한 개입이 있는 한에서만 긍정성을
가진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과 디오니소스적
야만인을 구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맹목적인 생
리적 분출은 인간이 범이나 원숭이로 퇴화하게 되는 광란과 방종으로 제시
된다. 춤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상보적 긴장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합을 통해 드러나는 비극적 정신의 상징이다.
춤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분출이 아폴론적 완성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로 시작되었다. 이후, 니체의 후기 사유에서 아폴론적인 것의 비중이 작아짐
에 따라 춤은 예술로 논의되는 것을 넘어 삶의 광학에서 디오니소스적 총체
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제시된다. 비극적-디오니소스적인 춤은 이제 디오니

1)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138쪽.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9

소스적 예술 행위에서 더 나아가 삶에 디오니소스적으로 마주하는 운명애


(Amor fati)이자, 영원회귀(die Ewige Wiederkehr)의 신성한 춤2)으로 이어
진다.
니체의 춤과 관련한 기존 연구를 살펴보면, 춤은 주로 디오니소스적 예
술 혹은 총체적 몸으로서의 사유와 연관되어 제시되거나, 무용예술과의 관
계에서 논의되어 왔다. 이상범은 춤을 반형이상학적 상징성과 몸의 복권을
나타내는 은유로 보았으며3) 원동훈은 춤(Tanz)의 어원을 ‘생명의 욕구’를 뜻
하는 산스크리트어 ‘Tanha’에서 찾고, 생명력의 발현으로서 춤을 풀이한
다.4) 이진우는 춤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 비극에 있음을 밝히고 춤이 어떻게
사유양식의 가능성을 가지는지 논의한 바 있다.5) 전예완은 니체의 춤을 미
적 실존의 최고 형식으로 보고 무용 예술과의 관계를 해명했으며6) 알랭 바
디우는 춤이 사유의 이미지인 이유가 몸의 충동들을 전적으로 표출하는 데
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동을 억제하는 것에 있다는 독특한 관점을 제
시한다.7)
본고는 역동적인 춤을 통해 드러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상보적 종합인 비극적 사유가 철학적 치유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에 주
목해 선행연구와 차별성을 갖고자 하며, 더 나아가 춤이 디오니소스적 긍정
이라는 니체 철학 전체의 기조를 탁월하게 드러내는 상징일 수 있음을 밝히
고자 한다.

2) 위의 책, 119쪽 참조.
3) 이상범, 「니체의 철학적 메타포 연구: 춤과 몸의 예술을 중심으로」, 범한철학 제103집, 범
한철학회, 2021, 88-110쪽 참조.
4) 원동훈, 「니체와 ‘그늘’의 사유」, 니체연구제26집, 2014, 254-276쪽 참조.
5) 이진우, 「니체, 몸 그리고 ‘춤추는 사유’」, 니체연구제25집, 2014, 8-38쪽 참조.
6) 전예완, 「춤추는 몸: 실존의 미적 정당화: 니체 사상에서 ‘춤’의 의미 분석을 중심으로」, 인
문논총제66집,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1, 67-96쪽 참조.
7) 알랭 바디우, 비미학, 장태순 옮김, 이학사, 2010, 114쪽 참조.
10 니체연구 제43집

2. 춤(Tanz)이라는 은유

1) 몸(Leib): 비극적 사유의 단초

니체 철학에서 사유란 몸을 전제로 한다. 니체에게 있어 몸에서 분리된


이성 및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 이래의 형이상학이 육체와 영혼을
구별해 이성을 우위에 두고 육체를 폄하해왔다면, 니체는 이 플라톤적 형이
상학의 관점에서 이해된 이성을 작은 이성으로 지칭하고 육체와 영혼 모두
를 총체적으로 포괄한 ‘큰 이성(die große Vernunft)’인 몸을 내세운다. 니
체는 기존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논리, 개념의 체계가 하나의 독단으로 역할
하고, 육체가 하등한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을 비판한다. 따라서, 니체의 ‘몸
(Leib)’에는 이원화된 영혼과 육체를 전체로 포괄하는 총체적 시각이 담겨있
으며, 몸은 생성하는 삶을 구성하는 계기들인 정동, 본능, 감각과 사유 모두
가 발현되는 장이다. 니체는 정신적인 것의 뿌리에서 신체적인 것을 발견하
고, 그러한 한 신체적인 것은 승화된 정신적인 것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8)
추상적 이념과 근원적 충동의 필연적 연관을 강조하는 니체적 사유는 현대
생리학의 성취를 선취하고 있다.9) 총체적인 몸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사고와
감각이 유기적으로 관계하며 전체로서 통일성을 이루는 인식을 일컫는다.
몸을 구성하는 것은 다수의 힘들로, 니체 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는 생명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리이다. 몸은 매 순간 명령하고 복종하는
힘들의 투쟁이 일어나는 장이며, 이 운동이 바로 생성, 변화, 생기를 함축한
다. 하지만, 힘에의 의지가 혼란한 다수의 힘들 간 경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
니다. 이 힘은 혼돈까지 지배하며, 형식과 법칙의 필연성을 갖춘다. 슈리프

8)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01, 134쪽 참조.
9) 양대종, 「니체 철학에서 사랑의 의미에 대하여」, 철학연구제145집, 대한철학회, 2018, 319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11

트(Alan Schrift)는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을 설명하며, 힘에의 의지에는 준법


성이 따라옴을 말한다. 이는 필요에 따라 혼돈과 질서를 함께 전개하는 지배
력임을 의미한다.10) 무차별적인 힘의 투쟁이 아니라 질서와 규칙을 따르는
힘의 지배력이 힘에의 의지가 운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의식의 수준 아래에
서, 항상 관계 내에서 일어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의 역학을 통해 기존의
인과율에 따른 의식적 사고를 반박한다. 니체는 몸을 내세워 의식 이전에 이
루어지는 힘의 역학을 역설하고, 의식의 인과성을 전복해 의지와 행위의 관
계를 새롭게 분석하며, 자기 보존이 아닌 상승하는 삶을 요구한다.
이처럼, 니체의 ‘몸’이라는 철학적 개념은 ‘모든 가치의 전도’를 내세웠던
니체가 수행한 가치 전환의 일환으로 도입되었다. 니체는 주체와 객체, 존재
와 생성, 의식과 무의식, 영혼과 육체 등의 대립적 관계를 거부하고, 하나의
생명현상이자 모든 가치의 근원 조건인 몸으로 가치들의 통일을 이루고자
한다. 몸은 다양한 힘들을 그 긴장관계 속에서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하나의
통일체이다. 니체는 산발적인 힘의 분출이 아니라 이들을 전체로 통일할 수
있는 힘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한 민족의 문화가 민족의 행복이나 능력의 전
폭적인 발전이 아니라, 이들의 올바른 균형을 통한 통제를 목표로 하듯이,11)
국가조직과 유사하게 이해될 수도 있는 몸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충동
과 정동들의 긴장을 효율적으로 통일시킨다. 현대에 가장 주도적 충동이 돼
버린 인식욕 역시 몸의 필요에 의해서 드러나는 한 현상에 불과하다. 서로를
요청하면서도 견제하는 힘의 긴장 속에서 사유 역시 발현되며, 이것이 형상
과 해체의 긴장, 즉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상보적 승화 안에
서 발생할 때 그것은 바로 니체적 의미의 비극적 사유가 된다. 니체에게 있
어, 사유하는 주체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바로 몸이다. 인간은 몸을 실존

10) 앨런 슈리프트, 니체와 해석의 문제, 박규현 옮김, 푸른숲, 1997, 84쪽 참조.
11)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2년 여름~1874년 말), 이상엽 옮김, 책세상, 2002, 2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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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근거로 삼아 인식한다.

2)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

니체는 즐거운 학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서설에 해당


되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하며, ‘비극이 시작되다(incipit tragoedia)’라는 제
목을 붙인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디오니소스로 명명하고, 디오니소스적
인 것과 비극적인 것의 개념을 혼용해 쓰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니체가 두
개념에 동일한 위상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념은 디오니소스 신으로부터 확립된다. 디오니
소스는 태생부터 몰락과 재생을 상징하는 신으로서, 개별화의 원리를 파괴
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을 합일시키는 힘으로 나타난다. 니체는 삶과
세계의 근원적 고통과 생성하는 삶의 근본적 성격이 디오니소스를 통해 드
러난다고 생각한다. 비극의 또 다른 원리인 아폴론적인 것은 빛의 신 아폴론
으로부터 유래해, 개체의 구분을 통해 세계 존립을 장려하는 질서와 형상을
부여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니체는 후기에 이르러 비극적인 것과 디오니소
스적인 것을 같은 위치에 두고자 한다. 이는 디오니소스가 삶의 본질인 고통
과 함께 존재하고, 이를 극복하는 삶의 긍정이 곧 비극적 사유이기 때문이
다. 그래서 비극적 인식이라 함은, 실레노스의 지혜가 대변하는 삶의 염세적
태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 삶에 맞게 조형하는 행

12) 니체는 비극적인 것을 ‘디오니소스적 쾌락’으로 지칭하고, 비극적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신이
야말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철학적 파토스로 변형시켰음을 설파하고 있다. 이 사람을 보라
에서 비극의 탄생을 회고하며 디오니소스적 상태를 회복한 비극적 시대를 약속하고 우상
의 황혼에서는 비극 시인의 심리에 이르는 것을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명명한다. 정낙림 역시
그의 논문에서 비극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념이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며,
이 개념이 니체의 전 철학에서 발견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상세히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낙림, 「니체의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사유와 예술」, 철학논총 제37집, 새한
철학회, 2004, 148-170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 13

위이자 염세주의를 반박하는 가치 전환이다. 삶의 비합리적 성격과 고통의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과 긍정을 통해 현실과 실재 속에서 이를 상승하
는 삶의 요소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디오니소스적-비극적 삶의 긍
정 양식이 된다.
비극적 사유는 이처럼 삶의 긍정이라는 니체 철학 전체를 함장한 맹아처
럼 도입된다. 질서, 절도, 형상으로 대표되는 아폴론적 충동과 도취, 비형상
으로 설명되는 디오니소스적 충동을 전체로서 향유하고 긍정하는 유연한 사
고가 비극적 사유의 방법으로 제시되며, 찢겨진 디오니소스를 다시 짜맞춘
것이 아폴론 신이라는 디오니소스 신화처럼, 그리스인이 가진 감수성은 여
기서 특별한 빛을 발휘한다. 이 모순되는 것들의 통합과 대립적인 것들의 조
화를 부르는 니체의 개념이 바로 춤이다. “이렇게 그리스적인 것은 외면적으
로 하나의 아름다운 춤이다.”13) 니체가 아폴론적인 것으로만 연극을 구성하
려던 에우리피데스를 비판하고 음악하는 소크라테스의 탄생을 바랐듯 어느
한쪽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힘과 유희하는 정신, 즉 예술과 학문
이 서로를 보완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 공존하는 상태가
니체가 회복하고자 한 비극적 정신이 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비극적 사
유는 기존 서양철학의 이원화된 가치를 하나의 생명력으로 포괄하고 이를
자기 삶의 변화로 이끌어 내는 것이며, 이로써 “새롭고 더욱 차원 높은 실존
의 수단”14)이 된다.
분명, 니체의 초기예술론인 예술가-형이상학과 후기예술론인 예술생리
학에서 비극적 사유는 삶의 긍정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니체
가 초기 사유에서 그 수단으로써 아폴론적 가상을 활용하는 것 역시 사실이
다. 삶과 세계의 미학적 정당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사유는

13)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69년 가을~ 1872년 가을), 최상욱 옮김, 책세상, 2005, 211쪽.
14)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0년~1873년),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1, 72쪽.
14 니체연구 제43집

예술생리학으로 넘어가면서 아폴론적인 것을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는 확


장된 개념 안으로 통합한다. 이제 예술은 삶에 봉사하는 삶의 자극제로서 해
석의 성격을 지니게 되며, 그러한 한에서 디오니소스적이며 동시에 아폴론
적인 예술로 이해된다.15)

“비극적 예술가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의심스럽고 끔찍스러운 것을


모두 긍정한다. 그는 디오니소스적이다.”16)

3) 춤의 두 가지 갈래

니체적 의미에서 춤은 신경체계를 기반으로 한 생리적 도취의 발현으로,


인간은 춤을 출 때 도취(Rausch)를 통해 온몸으로 충동을 발산하며 힘이 증
대됨을 느낀다. 니체는 비극이 “아폴론적 형상의 세계 속에 스스로를 늘 새
롭게 표출시키는 디오니소스적 합창”17)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상을
통한 삶의 구원인 아폴론적인 충동과 도취를 통한 세계와의 합일인 디오니
소스적 충동 두 가지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비극의 기원이 디
오니소스적 합창에 있으며,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사티로스 합창단이 관객과
무대 사이에서 춤추며 비극을 창출한다는 점은 춤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며, 비극 역시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을 근원으로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니체
역시 비극에 있어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아폴론적 세계에
서 비극이 울려 퍼질 수 없음을 언급하며18) 아폴론적인 것에 대한 디오니소
스적인 것의 우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명이 아폴론적인 것에
대한 경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5) 백승영,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 책세상, 2005, 654쪽 참조.
16)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백승영 옮김, 책세상, 2002, 102쪽.
17)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107쪽.
18) 위의 책, 160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15

디오니소스 제의로 펼쳐지는 비극에서, 무대와 관객과의 경계가 허물어


지는 이 축제의 중심에 디오니소스적 춤이 있다. 춤은 중간세계적 성격을 띠
며, 이는 춤의 위치가 디오니소스적 충동과 아폴론적 충동의 종합 아래 위치
함을 시사한다.19) 따라서, 니체에게 있어 춤은 생리적 도취의 무분별한 표출
이 아닌 오직 아폴론적인 것의 적절한 개입 하에 긍정성을 가진다. 디오니소
스적 그리스인과 디오니소스적 야만인은 이러한 지점에서 구분된다. 그리스
세계는 로마나 바빌론 등의 고대 세계에서 디오니소스 축제의 중심이었던
성적인 방종, 음욕과 잔인함이라는 위험한 힘으로부터 아폴론의 견제를 통
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것으로 설명되는데, 저급한 충동이 조야한 형
태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아시아의 자연의식이 그리스인들에게 세계 구
원의 축제로 변용된 것은 이와 같은 디오니소스적 충동과 아폴론적 충동의
상보적 긴장과 통일에 의해서 가능해진다.20) 디오니소스적 제의의 주신찬
가가 격정과 함께 아폴론적 영혼의 고요함을 동시에 상징하는 사실 역시 아
폴론적 정신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함께 발전한다는 상호보완의 성격을 강
조한다.

“아폴론적 요소가 얼마나 격렬하게 디오니소스의 비합리적 초자연성을 억


제했는가를 제대로 보고자 한다면, 고대 음악의 주종인 바쿠스 찬가 디티람부
스(genos dithyrambikon)가 동시에 고요한 찬가(hesychastikon)로 불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된다.”21)

19) 이상엽은 그의 논문에서 니체가 춤을 중간세계에 위치시키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나, 간략


히 언급하는 것에 그친다.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의 위상과 작용방식에 대해서
는 서술하고 있지 않으며, 춤이 어떻게 허무주의의 극복 방안으로 제시되는지를 더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상엽, 「니체, 허무주의와 춤」, 동서철학연구제49호, 한
국동서철학회, 2019, 292-294쪽 참조.
20)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0년~1873년), 60쪽 참조.
21) 위의 책, 61쪽.
16 니체연구 제43집

니체에게 있어 디오니소스적 격정과 광란성은 정동의 방출을 통해 아폴


론적 형상을 관조하고 영혼의 고요함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배경이다. 이것
이 바로 아시아가 제공하지 못했던 아폴론적 절제력이며,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사이에 존재하는 비극이 도취와 형상화 양자 모두와 적
절한 긴장관계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세계는 도취와의 유희 속에서
드러나지, 도취에 완전히 탐닉한 상태에서 드러나지 않는다.”22) 디오니소스
적인 노래와 춤은 이제 무의식적으로 방출되는 정동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
라, 아폴론적 가상 아래 상징화된다.

“가상의 예술은 이 비극적 예술 속에 완전히 흡수되었다. 아폴론과 디오니


소스는 통합되었다. 아폴론적 삶 속으로 디오니소스적 요소가 침투한 것처럼,
한계로서의 가상이 여기서도 뿌리를 내린 것처럼 디오니소스적-비극적 예술
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노래와 춤은 이제 더 이상 본능적인 자연 도취가
아니다. 디오니소스적으로 흥분된 합창대 무리는 더 이상 봄의 충동에 무의식
적으로 사로잡힌 민중이 아니다. 진리는 이제 상징화된다.”23)

도취와 가상, 사유와 열정은 함께 공존하는 상태에서 그 효용이 드러난


다. 디오니소스적 충동의 생리적 조건인 도취가 환각적 도취와 삶을 고양시
키는 힘 상승의 느낌인 도취로 나뉘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아침
놀에 등장하는 야만인들의 도취는 하나의 마취제로 작용할 뿐,24) 진리를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충동과는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은 과도함의 위험성은
아폴론적 형상화 작업에도 해당된다. 아폴론적 가상 역시 병리적으로 작용

22) 같은 책, 74쪽.
23) 같은 책, 79쪽.
24) [도취에 대한 믿음] “지금 야만인들이 화주로 인해 급속도로 타락하고 멸망하고 있는 것처럼,
인류 대부분은, 도취하게 하는 정신적인 화주와 그것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존속시켜왔던 사
람들에 의해 서서히 그리고 철저히 타락하게 되었다. 아마 인류는 그것 때문에 몰락하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박찬국 옮김, 책세상, 2004, 63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 17

하지 않기 위해서는 꿈의 환상이 넘어서서는 안 될 부드러운 경계선을 필요


로 한다.25)
삶에 디오니소스적-비극적으로 마주한다는 것은 고통을 직시하고 이를
삶의 고양에 활용하는 것, 즉 고통이라는 세계 근원의 본질을 직시하며 이를
자신의 힘에의 의지의 발현으로, 춤추는 행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
라서, 니체에게 있어 춤이 삶에 기여하고 긍정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디오니
소스적 힘의 분출뿐만 아니라 아폴론적 조형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춤추
는 자의 사유는 모든 측면을 자기 삶의 고양에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것이다.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주목했던 것은 기존의 그리스적 명랑
성이 아폴론적 우위 아래서만 해석되어 온 것에 대한 가치전환의 일환이지,
학문과 이론의 성격을 파기하고자 한 시도가 아니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
의 복권을 통한 생명의 도취와 조형력의 긴장된 조화를 이루어내고, 이를 통
해 드러나는 절제된 힘을 향유하는 일이 바로 춤이 함의하는 바이다. 이로써
춤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비극적 사유와 궤
를 같이 하게 된다. 니체가 기존의 형이상학에서 지배적이었던 목적론적, 인
과론적 세계관을 전복하고 비극적 사유방식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은 어느 한
쪽의 맹목적인 독단을 타개하기 위함이지, 이들 사이의 우열을 가르는 것에
있지 않다. 니체에게 있어 춤이 “목적이 없는 움직임”26)이라는 점은 춤이 총
체적 사유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며, 절대화된 기존 가치체계로 규명할
수 없는 “생성에 대한 영원한 기쁨”27)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삶을 조형하는 데 심지어 대립하는 모든 것조차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힘과 유연성이야말로, 위대한 문화에까지 이를 수 있는 다리가 될 것이다.

25)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0년~1873년), 58쪽 참조.


26)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76년~1877/78년 겨울), 강용수 옮김, 책세상, 2005, 215쪽.
27)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백승영 옮김, 책세상, 2002, 393쪽.
18 니체연구 제43집

“어떤 사람이 인식할 때는 순수하고 엄격하며, 또한 다른 순간에는 시, 종교,


형이상학에 백 걸음의 여유를 주고 그들의 위력과 아름다움에 공감할 수 있는
힘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늘날 위대한 문화의 결정적인 표시라
고 간주될 수 있다. (…) 우리는 여러 충동들 사이에서 지쳐 이리저리 휘청거리
는 것과 똑같은 것이 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높은
문화는 과감한 춤과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많은 힘과 유연성이 필요하니까.”28)

4) 춤추는 비극적 사유의 회복

니체는 소크라테스의 이성중심주의가 도래하면서 아폴론적인 것이 논리


적 도식화로 이어지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방종으로 이어져 비극이 몰락했
다고 본다. 세계는 합리적이며 개념에 의해 구명될 수 있다는 낙천적 믿음의
소유자, 소크라테스는 니체에게 있어 결함으로 인해 생겨난 괴물로 여겨지
며, 창조적 본능과 비판적 의식의 관계를 그 뿌리에서부터 전도시킨 이론적
인간의 전형을 대변한다.

“모든 생산적인 인간에게 본능은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힘이 되며, 의식은


비판적이고 경고하는 태도를 취하는 반면, 소크라테스에게 본능은 비판자가
되고 의식은 창조자가 된다.”29)

니체에게 있어 이성중심주의의 합리적 개념과 논리의 도식화는 세계를


오직 부분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
과 결별한 아폴론적인 것은 생기의 반쪽만을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니체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몰락한 비극적 정신을 회복해 인간이 다시 춤추듯 생각

28)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Ⅰ, 278쪽.


29)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73쪽.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19

하길 바란다.
춤은 결국, 도취를 기반으로 한 몸의 놀이로,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
스적 충동의 대립과 조화가 비극을 산출하듯 팽팽하게 긴장된 균형을 이루
는 몸짓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유방식은 비극적 정신
을 회복한, 대립하는 긴장 속에서 균형을 잡는 사유방식이다. 춤추는 자의
사유방식은 이성을 포함한 총체적 몸으로서의 사유이며, 어느 한쪽에 치우
치지 않는 조화로운 몸짓과도 같다.

“우리가 춤을 배우려고 하듯 생각하는 것도 배우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생


각이 춤의 일종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희미하게라도 상기시켜주지 않는다 (…)
춤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이든 고급 교육과 분리될 수 없다. 다리를 가지고 춤출
수 있지만, 개념들과 말을 가지고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 펜을 가지고서도 춤
출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아직도 말해야 할까?”30)

생각 또한 춤의 일종이며 개념들과 말을 가지고 춤을 출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은 소크라테스를 시작으로 독일 관념론까지 이어져 온 개념적 사유방
식을 겨냥한 비판이며, 니체는 이를 통해 충동과 개념을 균형 속에서 아우르
는 새로운 사유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성을 포함한 총체적 몸을
근거로 사유하는 자는 자신을 가치 척도로 삼아 춤을 추듯 개념들 및 충동들
과 유희하며 세계를 인식한다. 춤추는 자는 다르게 사유하며, 세계는 온 몸
을 동원한 새로운 상징체계에 의해 해석된다. “새로운 상징의 세계가 필요하
다. 우선 입, 얼굴, 말의 상징적 표현뿐만 아니라 몸의 모든 부분을 율동적으
로 움직이는 춤의 몸짓까지도.”31)
춤추는 자의 인식은 하나의 관점만을 진리로 여기는 경직된 사유와는 다

30)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139쪽.


31)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39쪽.
20 니체연구 제43집

르다. 춤추는 자의 사유방식은 대립하고 모순되는 사고 전체를 긍정한다. 니


체는 몸을 근원으로 힘에의 의지에 따라 관점을 설정하는 행위 자체를 생명
력의 발현으로 여긴다. 니체에게 있어 인간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힘들이,
다양한 내용을 가진 하나의 작은 존재를 통해 움직여질 수 있는가에 관한 증
언”32)이다. 이는 다양한 충동들의 투쟁의 결과로 나타나는 상이한 관점들까
지 포용하는 사유로 이어진다. 힘에의 의지 현상이 벌이는 모든 모순과 대립
을 끌어안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일이 바로 생성하는 삶 전체에 대한 긍정이
다. 따라서, 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정립되는 충동들의 위계질서를 긍
정하는 몸의 은유이다. 춤추는 자가 바라보는 진리는 관점적 진리, 삶에 봉
사하는 진리, 몸을 긍정하고 대지를 따르는 진리이다. 니체에게 있어 기존의
편협한 형이상학적 진리는 그것을 따를 경우, 어떤 발들도 춤출 수 없는33)
것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위해서는 파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절대성을 참
칭하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부정하고 삶의 근본 조건에 맞게 되돌린 진리의
모양은 춤추는 움직임에 가깝다.34) 진리의 증명이 되는 춤은 일견 모순적으
로 보이는 다양한 변주 아래서도 필연성의 길을 걷는다. “너의 발걸음은 네
가 아직도 너의 궤도 위를 걸어가고 있지 못함을 폭로하고 있다. 사람들은
네가 즐거워 춤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아야만 할 것이다. 춤은 진리의 증
명이다.”35)

5) 영원회귀와 운명애

니체의 후기 사유로 가면서 춤은 니체 철학의 핵심개념인 위버멘쉬, 영

32)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47쪽.


33) 위의 책, 226쪽 참조.
34) 양대종, 니체: 현대성의 위기와 미래철학의 과제, 이른비, 2021, 120쪽 참조.
35)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2년 7월~1883/84 겨울),박찬국 옮김, 책세상, 2001, 82쪽.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 21

원회귀, 운명애의 은유로 사용된다. 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이 똑같이 반복된


다는 무거운 전제 하의 삶을 제시한다. 이는 우주론적 해석에 따르면, 새로
운 삶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단지 파괴와 재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의미이
며, 인류학적 해석에 따르면, 기독교적 이해에서 비롯된 다른 삶, 더 나은 삶
을 바라는 불멸에 대한 인식을 가치 전환해 매 순간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
다.36) 이와 같은 대립되는 해석의 측면은 자연의 순환 법칙이라는 허무주의
를 완성하는 극단적 양식이면서 동시에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삶의 양식으로
제시된다.
영원회귀 사상의 핵심이 ‘동일한 것의 반복’이라는 점은 니체가 필연성을
말하는 지점과 결부된다. 니체는 세대를 거치는 시간 속에 필연성이 있음을
말하는데,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필연성은 세계가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
다는 폐쇄적 세계관이 아니라, 생성의 극단적 긍정인 무구한 생성의 필연성
을 의미한다. 지배와 명령 체계로서의 생명 현상, 스스로 명령하고 스스로
복종하는 힘의 필연성, 힘과 의지의 회귀이다. 니체에게 있어 필연성과 의지
는 하나가 된다.37)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해 이미 조건 지어졌으며, 이는 시간
이 지남에 따라 소멸하고 영원히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니체는 무한히 존재
해 온 만물이 회귀한다는 전제를 두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넘어 춤을
추는 것을 가르친다.38) 춤은 이제 삶이 되돌아온다는 필연성 속에서 유희하
고, 이를 감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창조하는 주체로서 기능할 역량을
일컫는다.
이처럼, 영원회귀 사상은 단순히 동일한 사물과 사건이 돌아온다는 이해
를 넘어 삶을 긍정하는 윤리적 양식으로 제시된다. 만약, 차이를 두고 회귀

36) Karl Löwith, Nietzsche's Philosophy of 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 trans. J. Harvey
Lomax,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7, 156-157쪽 참조.
37)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김정현 옮김, 책세상, 2002, 193쪽 참조.
38)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367쪽 참조.
22 니체연구 제43집

하는 삶이라면 현재의 자신은 다른 자신일 것이다. 이는 현재의 자신을 긍정


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못한다. 현재를 긍정하는 것은 전체 과거를 인정하
고 다시 한 번 의욕할 만큼 그것을 바라는 일이다. 니체는 이와 같은 반복을
사랑하는 일이 운명애라고 말하며, 필연적인 반복을 적극적으로 껴안는다.
“필연성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운명애는 내 가장 내적인 본성이다.”39)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돌아가고 이 되돌아옴을 사랑하는 일이 바로 니체가
말하는 운명애(Amor Fati)이다. “어떤 사람이 이미 자신의 궤도를 걷고 있는
지의 여부는 걸음걸이가 말해준다. 내가 걸어가는 것을 보라! 그러나 자신의
목적에 다가서는 자는 춤춘다.”40)
자신의 삶을 전체로서 빠짐없이 긍정하는 강인한 힘, 이것이 가장 먼 것
에 대한 사랑이며, 춤추는 자의 정신과 의지는 모든 과거를 자신이 그것을 바
라온 것으로 여긴다. 우연을 필연으로, 모든 요소를 전체로서 긍정하는 태도
가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움직임이 된다. 모순은 해소되고 해결되어야 할 것
이 아니며, 생성하는 삶 속에 부정적인 것과 불필요한 것은 없다.

3. 철학적 치유의 가능성

치유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치유가 무엇으로부터의 치유인지


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치유를 통해 건강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라
면 그 전제는 인간이 병들어 있고 아직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공허감,
우울, 불안, 권태 등은 현대인이 겪는 대표적인 질병들이다. 현대 소비자본
주의 사회는 인간을 도구화해 인간 스스로를 소외시켰고, 이로써 인간은 실

39)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454쪽.


40)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4년 가을~1885년), 김정현 옮김, 책세상, 2004, 145쪽.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23

존적 공허감을 느끼며 의미상실을 겪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는 공허


감, 우울, 불안 등을 제거해 건강한 인간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데 방점을 찍
어왔다. 하지만, 본고는 삶의 부정적인 측면을 제거하는 방식이 건강한 인간
을 기른다는 주장에 의문을 가지며, 현대 사회가 표방하는 과도한 긍정성이
오히려 인간을 착취적 구조에 놓이게 한다는 한병철의 의견에 공감한다. 이
장은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일환인 춤의 은유가 철학적 치유의 가능성을 내
포하고 있음을 보인다.
한병철은 그의 책, 고통 없는 사회에서, 현대사회의 우울과 권태 등의
질병의 원인으로 진통사회를 말한다. 그는 고통을 인정하여 제대로 느끼지
않고 진통제를 통해 고통을 마비시키는 것이 현대사회가 선택한 전략이라고
파악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긍정성이 과도하게 넘치는 사회이
다. ‘행복’이라는 새로운 지배공식이 대두했고, 사회가 고통을 약함의 신호이
자 부정하고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긍정이 만연한 사회
에서 인간은 최대한 부정적인 것을 피해 행복한 성과주체로 역할한다. 고통
을 회피하고 더 이상 이에 대해 얘기하지 않게 되면서, 고통은 의미를 상실해
사물화되었고, 고통이 의미를 상실하자 삶 자체가 의미를 상실했다. 한병철
은 이처럼 과도한 긍정성 또한 사회적 폭력으로 작용한다고 본다.41)
주지하다시피, 일생을 병마의 고통 속에서 산 까닭으로 니체에게 건강이
란 중요한 화두였다. 니체는 병든 상태를 철학적으로 풀이하며 병을 일종의
데카당스 유형으로, 힘에의 의지가 약화된 “생리적 퇴행”42) 현상으로 보았
다. 니체는 병의 원인을 기존 서양 철학을 지배해 온 형이상학을 포함한 모
든 종교적, 도덕적 가치에서 찾고 삶에의 유용성을 기준으로 가치들이 생성
된 기원과 조건을 탐색한다. 인간이 습관적으로 따르는 가치들이 삶의 빈곤

41) 한병철, 고통 없는 사회, 이재영 옮김, 김영사, 2021, 9-42쪽 참조.
42)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책세상, 2002, 232쪽.
24 니체연구 제43집

과 퇴화의 징조인지 혹은 삶에 힘과 확신을 가져다주는지는 개인의 평가가


필요하며, 가치들은 이 평가를 통해 자기 삶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여
기서, 고통 역시 가치전환의 대상이 되며, 고통까지 인간 삶의 고양에 필요한
것으로 전환하는 태도가 디오니소스적 긍정이 된다. 고통을 단지 제거의 대
상으로 여기는 것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가치 평가 능력의 부재
를 드러낼 뿐이다. 건강한 인간은 삶의 부정적 측면들마저도 자신의 삶을 개
선하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태도가 철학적 치유의 가능성을
가진다. “냉철하게 바라보는 만성적 고통을 인간이 겪게 될 때 특히 그 고통
이 인간을 개선한다.”43)
따라서, 니체의 철학적 치유 방식은 자신에게 유용한 삶의 의미와 가치
를 설정하고, 삶의 조건인 고통마저 긍정하는 비극적 정신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니체의 관점변화와 가치전환이 병과 건강의 관계에도 적용되며, 삶
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까지 끌어안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으로 이어진다. 여
기서, 상징과 은유로서의 춤이 치유의 역할을 하는 것은 첫째, 춤이 몸을 긍
정하는 사유양식이라는 점, 둘째, 관점적 인식을 통해 자기 삶과 세계를 해석
한다는 점에 있다. 춤이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조형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춤을 통해 철학적 자기 치유와 니체가 말한 위대하고 유쾌한 건강으
로 나아갈 수 있다.

1) 몸의 긍정: 춤의 조건

상술한 바와 같이, 의식과 본능은 대척점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미친다. 춤이 몸의 감각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 몸이 통합된 가
치들의 장이라는 점은 결국 니체의 사유양식이 생기현상의 긍정을 바탕으로

43)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5년 가을~1887년 가을), 215쪽.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25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식하는 자는 동시에 자신의 생명현상을 긍정


하는 자가 된다. 몸은 힘에의 의지에 따라 충동을 표출하며, 이는 몸이 가진
자연스러운 생기현상이다. 반면에 정동의 기초인 생명이 흔들리고 이로 인
해 본능이 기저에서부터 위협받아 통일체가 되지 못하고 무정부 상태가 되
어간다는 증후가 부패이다.44) 본능을 폄훼하는 것은 힘에의 의지가 쇠퇴한
병약한 상태이자 인간이 자기 삶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의 몸과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기 위해서는 몸의 가치를 긍정하고 이
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춤은 몸으로 존재하며 생기 현
상을 발현한다는 점에서, 삶의 본능을 긍정하며 회복하는 자기 치유의 과정
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니체 철학의 핵심은 삶의 조건을 빠짐없이 긍정하는
것이며, 인식을 포함하여 인간이 가진 지각과 정서의 모든 측면의 움직임을
그 총체성 안에서 파악하고 긍정하는 일이다.45)
주의할 점은,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양자와의 유희
와 이를 통한 창조적 긴장 관계를 지향했듯, 삶의 총체성을 긍정하는 일이 충
동과 감정을 무질서하게 표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니
체가 감각과 몸을 강하게 긍정하는 것은 그동안 본능에 대적해 온 가치체계가
야기한 병증을 고발하는 의미를 갖는다. 니체는 충동의 종합을 한 인간이 가
진 전체 힘의 표현으로 이해하며,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인간의 성취를 가늠한다. 즉 니체는 감각을 긍정하되, 이를 조절하
고 관리할 수 있는 한에서의 인간의 모습을 바랐을 뿐이다. 또한, 니체가 좋음
과 나쁨,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이분법적 도식으로 나누지 않듯 건강과 병 또한
상이한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니체는 관점적 해석
에 따라 병과 건강을 바라보고자 한다. 니체에게 있어 건강은 질병을 매개로

44)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272쪽 참조.


45) 양대종,「관점변화를 통한 영혼의 치유」, 철학논집제39집,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2014,
47쪽 참조.
26 니체연구 제43집

하며, “불행을 짊어지고 감내하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독창성과 용


기”46)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병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
는다. 니체적 의미에서 병든 상태는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
는 가치 전환의 대상이다. 이와 같은 태도를 가지는 것이 니체가 바라는 힘에
의 의지가 충만한 인간의 모습이 된다. 따라서, 춤추는 자의 정신은 고통을 제
거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병이 삶의 조건임을 받아들이고, 삶의 자극제로
삼아 이를 극복해나가는 몸짓으로 이어져야 한다. 힘에의 의지가 충만한 인
간은 대립된 것을 인정하는 춤추는 사고를 통해, 몸이라는 생명 본능을 자신
의 삶을 고양시키는 데 활용하며 자기 자신을 치유하고 회복해나갈 수 있다.

2) 관점적 인식과 창조적 해석: 춤추는 유연함

춤추는 자가 병든 상태일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세계를 이분해 온 기존 철


학의 육체에 대한 해석과 오해47)를 풀고 ‘큰 이성’으로서 관점적 세계 해석이
가능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춤이 독단을 경계하고, 다양한
관점과 힘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극적 정신을 함축한다는 점을 고려
해보면, 춤은 주체적으로 삶과 세계에 반응하는 자기치유적 행위이다. 첨예
한 긴장, 서로를 요청하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어울림처
럼, 경계를 넘나들며 유희하는 사고를 가지는 일이 바로 철학적 치유의 방식
이 된다. 고통 역시 제거와 외면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직시와 긍정, 이
와 유희하는 태도로써 해소될 수 있다. 생성하는 삶의 구성요소를 전체로서
긍정하고 고통 역시 삶의 재료로 삼아 자기 삶의 고양에 이용할 수 있는 강인
한 힘이 바로 춤추는 자의 사유를 가능케 한다. 이분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빠른 속도로 달리는 대담하고 분방한 정신성과 한 치 착오도 없는 변증법적

46)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210쪽.


47)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책세상, 2005, 30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27

인 엄격성, 필연성이 진정 철학적으로 공존한다는 것”,48) 즉 자유와 필연성


이 그 절정에서 만난다는 사실이야말로, 학자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예술가
의 경험에 주어지는 인식의 비밀이라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비극적 사유로서의 춤이 가진 관점적 태도는 니체의 인식론으로 종합된
다. 다양한 힘들이 위계를 겨루는 결과로 관점들이 나타나고, 인간은 자신에
게 유효한 관점을 채택해 자신의 삶을 해석한다. 여기서, 하나의 관점의 독단
은 삶과 세계를 일면적으로 수용하는 것일 뿐, 생성하는 삶의 다양성을 포착
하지 못한다. 사건들을 다각도에서 접근하고 조형하는 힘, “스스로 고유한 방
식으로 성장하고, 과거의 것과 낯선 것을 변형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며, 상처
를 치유하고 상실한 것을 대체하고 부서진 형식을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힘”49)이 필요하다. 자기 삶에 맞게 재구성하고 재조직하는 관점적 인식이 가
능한 주체가 바로 춤추는 자이자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자기입법자가 된다. 고
정된 이해관계를 벗어난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자신을 규정하는 힘이 춤추는
자의 정신과 의지를 표현한다.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복종하는
힘에의 의지의 주체가 되며, 세계의 의미를 주체적으로, 주관적으로 창조해나
간다. 이제 대상을 겨냥한 질문이 아니라 “그것은 나에게 무엇인가?”50)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인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관점적 인식은 단순히
사건과 사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발명하는 일이다.
주목할 점은, 니체가 다양한 관점과 가치들을 인정하면서 이들과의 유희
를 강조한다 해도, 모든 관점과 가치의 무분별한 수용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
라는 점이다. 익숙해진 관점을 탈피해, 사건들의 다양한 맥락을 파악하는 일
은 인식하는 자의 인생에서 의미심장한 일이다. 니체는 모든 다양성과 관점
들을 위계 없이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관점들 사이에는 위계가 존재하며,

48)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192쪽.


49)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이진우 옮김, 책세상, 2005, 293쪽.
50)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1885년 가을~ 1887년 가을), 171쪽.
28 니체연구 제43집

자기 삶의 고양에 따른 힘을 가진 관점이 상대적으로 유약한 관점들보다 우


위에 자리한다. 니체는 관점들 사이의 가벼운 이동이 때로는 위험함을, 모든
관점을 수용하는 일이 자신의 생명력을 오히려 소진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
음을 지적한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성급한 관점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산 속에서 한 젊은이를 만나 이
야기를 듣는다. 젊은이는 계단을 비유로 들어, 빠르고 자주 계단을 뛰어넘어
도달하는 곳이 결국 고독임을 토로한다. 이는 섣부른 관점의 변화가 인간을
오히려 고립시킨다는 지적이다. 이 이야기는 합당치 않은 관점의 건너뜀이
인간을 파괴할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51)
개인의 삶을 유지시키는 관점을 함부로 포기하는 일은 오히려 자기 삶을
해칠 수도 있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니체가 표명하고 있는 관점적 인식이
라 함은, 관점의 가벼운 전환이 아니라, 관점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유희하
고, 때에 맞게 자기 삶을 고양시키는 관점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는 일이다.
총체적 긍정은 모든 관점의 무분별한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에 맞게 유연하게 그것을 활용하는 일이다.

4. 나가며

니체 철학의 핵심 중 하나는 그가 허무주의와 데카당스로 진단한 자신의


시대를 타개하기 위해 인간과 삶에 대한 적극적 긍정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죽은 신이 더 이상 권위를 발휘할 수 없는 시대에 니체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복권하고자 했다. 니체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조형하고, 능동적으로 세
계를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건강한 인간의 육성을 바랐다. 니체 철학의 핵심

51)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66-70쪽 참조.



니체의 춤(Tanz) 은유를 통한 철학적 치유 모색 | 김소영 양대종 29

개념들, 즉, 형이상학적-종교적-도덕적 가치체계를 극복하고 매 순간 자신을


넘어서는 위버멘쉬, 삶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다시금 삶을 요청할 만큼 자기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영원회귀, 의지를 바탕으로 자신의 운명을 필연으로
만드는 운명애 등은 이처럼 자신과 자기 삶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
는 한 가지 목표로 귀결된다. 춤이 근본적으로 몸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사
실은 니체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포괄해 총체적 몸으로 제시했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니체 철학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춤이라는 은유는 몸을 조건
으로 한 새로운 사유 양식을 일컬으며, 니체 철학에서 핵심적인 디오니소스
적-비극적 사유 양식을 함의한다. 춤은 어느 한쪽의 독단이 아닌, 다양한 힘
들과의 상호 긴장 속에서 유희하고, 삶의 모든 요소를 자기 삶의 고양에 적극
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일환을 의미한다. 춤은 무분별
한 디오니소스적 도취도 아니며, 아폴론적 절제도 아니다. 춤추는 자의 정신
과 의지는 양자와 유희하는 유연한 힘을 일컫는다. 이렇게 춤이라는 은유는
생명 현상을 전체로서 이해하고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스스로
를 소외시키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에 맞게 가치를 재정립하며
자기 치유에 이를 수 있다. 삶의 필수적 조건인 병과 고통마저 삶의 고양에
활용할 수 있는 강인한 힘을 기르는 일이 바로 철학적 치유의 방식이 된다.
인간으로 하여금 형이상학적-도덕적-종교적 위안 및 치료와 결별하고 자
기 자신을 치유하는 의사로 기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춤이다. 이처럼 춤이라
는 은유는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들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며 춤을 춘다
는 것은 니체 철학 전체를 상징하는 은유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춤 한 번 추지 않은 날은 아예 잃어버린 날로 치자! 그리고 큰 웃음 하나 함께


하지 않는 진리는 모두 거짓으로 간주하자!”52)

52) 위의 책, 348쪽.
30 니체연구 제4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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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니체연구 제43집

【 Abstract 】
Exploring Philosophical Healing through
the Metaphor Dance(Tanz) of Nietzsche
Kim, So Young (Konkuk Univ.)
Yang, Dae Jong (Konkuk Univ.)

This study aims to reveal that the metaphor of dance in Nietzsche’s


philosophy implies the recovery of tragic thought, and to explore the possibility of
philosophical healing through this. Tragic thought is a concept that persists and
extends not only from the early Nietzsche’s thought but also to his last thoughts.
Tragic thought is the core of Nietzsche’s thought that forms the overall basis of
Nietzsche’s philosophy - full affirmation and Dionysian affirmation of life
including reason. This is well indicated in The Birth of Tragedy which has the
character of artist-metaphysics as well as in the process of transforming to
Physiology of Art in The Gay Science.
The dance symbolizing the tragic thought asks for the appropriate
intervention of Apollonian virtuality along with Dionysian passion, which is
revealed as an act that affirms the whole, not one side’s dogma, and harmonizes
with creative tension. In Nietzsche’s philosophy, dance is a symbol of thinking
that functions as a flexible thinking subject that is not biased toward one side and
is part of Dionysian affirmation. This connotes a shift in perception and value that
even uses pain as a stimulant in life. Therefore, dance leads to practical actions that
utilize various perspectives to enhance one’s life, thereby implying the possibility
of philosophical self-healing.

Key Word]
[ Nietzsche, Dance, Healing, Dionysus, Tragic thought

■ 투고일: 2023.02.13. 심사일: 2023.03.24. 게재확정일: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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