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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여러 형태의 우정에 대해-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하는 노인이었다.”

고독해 보이는 노인이 있다.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살라오(스페인 말로


가장 운이 없는 사람)’라고 불리는 노인.

노인은 제대로 먹지 못해 깡마르고 여윈 데다 목덜미에는 주름이 깊이 패어 있고 두 뺨에는


양성 피부암의 갈색 반점들이 나 있다. 그 반점들은 얼굴 양쪽의 훨씬 아래까지 번져 있고 두
손에는 깊은 상처들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두 눈만은 바다와 똑같은 빛깔을 띠었으며 기
운차고 지칠 줄 몰랐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책의 초반부에 노인을 묘사하는 글을 읽으며 노
쇠한 노인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우호적임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노인의 신체는 늙고 볼
품없이 그렸을지라도 노인의 정신을 보여주는 눈에 대한 묘사는 반짝거렸으니 말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막연히 바닷가에 홀로 사는 고독한 노인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책의 첫 문단부터 등장하는 이가 있다. 바로 소년이다. 소년은 노인에게 고기 잡는 법
을 배웠다. 그러나 노인이 40일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자 소년의 부모가 노인
은 이제 ‘살라오’가 되었다며 소년을 다른 배로 옮겨 타게 했다. 소년은 그러고 싶지 않았지
만, 아직 어려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고 말한다. 다정한 소년은 노인을 매일 돌본다.
노인의 심부름을 하고 말벗이 되어주고 함께 식사하고 잠자리도 봐 드린다. 노인과 소년이 도
란도란 나누는 다정한 대화를 엿보는 게 좋았다.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화였다. 십수 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이란 얼마나 귀한가. 노인을 향한
소년의 공경, 소년을 향한 노인의 존중과 겸손한 마음. 소년이 노인을 선생님으로 모시는 것
만이 아니라 동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우정으로 느껴졌다. 노년의 삶에 꼭 필요한 우정이리
라. 소년의 삶에서도 귀중한 배움일 것이다. 나는 바로 이 관계에 이끌려 책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목만큼 책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내 나는 멕시코만에
자리 잡았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이른 새벽 소년과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난 후 홀로 조각배를 타고 바


다로 나아간다. 어둠 속에서 노를 저어 나아가며 수면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 소리를 듣는다.

“그는 날치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날치를 바다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했다. 그러나 새들


은 가엾다고 생각했는데, 그중에서도 언제나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지만 얻는 것이라곤 거의
없는 조그마하고 연약한 제비갈매기를 특히 가엾게 생각했다. 새들은 우리 인간보다 더 고달
픈 삶을 사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노인은 자연 친화적 인물이다. 바다를 사랑하고 날치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며 새를 가엾게
생각한다. 조각배를 타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가며 바다를 여성형으로 부른다. 모터보트를 타
고 다니는 젊은 어부들은 바다를 남성형으로 부른다. 바다를 “경쟁자, 일터, 또는 심지어 적대
자인 것”처럼 부른다. 그에 반해 노인은 바다를 친구처럼 느끼는 것 같다. “큰 은혜를 베풀어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설령 바다가 무섭게 굴거나 재앙을 끼치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하고 생각한다. 바다를 공격하고 착취
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인격체처럼 너른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설령
나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바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다니. 이러한 노인
의 자연 친화적인 자세가 현대사회의 환경 파괴적인 행태와 대비되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얻기 위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가. 사흘 밤낮으로 몇백
킬로그램이 넘는 청새치와 맨몸으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모습이 경이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작가는 인간의 삶이 기본적으로 고통스러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고통을 인내하는 과정이


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인생이 인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갈 만한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손에 쥐가 나고 상처가 깊어 피가 흘러도 포
기하지 않는 노인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소설 속에 문장으로 나
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인간이 거대한 운명 앞에 육체적으로 무너질 수는 있을지라도 운명이 인간을 정신적으로 패배


시킬 수는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인간은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 무턱대고 희망차기만 했다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노인에게도 인간


적인 면모가 보인다. 노인은 낚시하며 힘에 부칠 때마다 반복해서 후회하곤 한다. 몇 번이나
“옆에 그 애가 있으면 좋을 텐데.”라고 혼잣말하는 노인을 보면서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나
왔다. 노인은 연륜과 경험이 충분하지만 홀로 다 해낼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지만은 않는다.
소년의 도움을 거절하였다가도 이내 기꺼이 받기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소년을 떠올
리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제 늙고 지친 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노화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인상 깊었다. 노인이 낚시를 나가기 전 소년이 노인에게 함께 고기잡이하자고 말했을
때 노인은 “그건 안 돼. 네가 타는 배는 운이 좋은 배야. 그러니 그 사람들하고 그냥 있어라.”
라며 거절한다. 하지만 노인이 청새치와의 사투를 끝내고 돌아온 후, 소년이 다시 제안하자
이번에는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네 가족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라며 말이다.
배에서 소년을 여러 번 떠올리기도 했고, 낚시하며 자신의 노화에 대해 더욱 체감했을 것이
다. 이제 혼자 낚시를 하기에는 힘이 많이 부친다는 것을 말이다. 노년기의 삶은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부
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인의 자세가 본받을 만했다.
이러한 노인의 겸허한 태도와 더불어 소년의 태도 역시 소설 전반에 걸쳐 모두 인상적이었다.
소년은 노인에게 도와드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젠 할아버지하고 같이 나가서 잡기로 해요.”


“전 아직 할아버지한테 배울 게 너무 많으니까요. 또 할아버지는 제게 모든 걸 가르쳐 주셔야
해요.”

소년은 노인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로만 도움을 주고, 같이 하자고 말하며, 또 가르쳐달


라고 말한다. 소년과 노인의 관계는 아래에서 위로, 수평적으로, 또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나
이와 경험의 차이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이용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도움을 주
고받는 관계이다. 여러 사람이 섞여 사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형태의 우정이 아닐까?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관계의 지표라고 생
각한다.

노인은 야구를 좋아하며 꿈을 꿀 때면 사자 떼가 나온다. 야구는 여러 선수가 협력하여 경기


하는 게임이고, 사자도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동물이다. 노인은 부인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
고 판잣집에서 홀로 살고 있지만, 사실은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이다. 노인도 젊었을 적에는 시
끌벅적하게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관계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배
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동년배들도 하나둘씩 떠날 것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관계를 맺고 다양한 우정을 나누어야 한다. 계속해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새로운 취향
을 발견해야 한다. 자연, 취미, 사람 등 여러 가지와 관계를 맺으며 마음을 쏟을 대상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이 바다, 새, 물고기와 교감하고 소년과 우정을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잘 늙
어가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도 저렇게 자연과 교감하고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
는 노인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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