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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독서 (아우구스띠노의 저작에서)
영적독서 (아우구스띠노의 저작에서)
영적 독서
성 아 우구 스띠노 와 함 께 하는 영적독 서
목 록 (저작 순위)
제 1 장
설교집
8.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Sermo 171,1-3.5: PL 38,933-935)
20. 우리 안에 있는 주님 집의 건축과 축성
(Sermo 336,1.6: PL 38[edit. 1861], 1471-1472. 1475)
** 나는 수도생활을 선택한다.
(Sermo 355.2: PL 38,.... )
제 2 장
목자들 에 대한 강론
31.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20-21: CCL 41,546-548)
36. 바울로의 모범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4-5 CCL 41,531-533)
제 3 장
시편 주해
40. 신적 의사
(「시편 주해에」에서 Ps. 103,5-6)
제 4 장
요한복 음 주해
53. 완전한 사랑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84,1-2: CCL 36,536-538)
55. 새 계명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65,1-3: CCL 36,490-492)
56. 두 가지 생활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124,5.7: CCL 36,685-687)
57. 사랑의 이중 계명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17,7-9: CCL 36,174-175)
프로바 에게 보낸 편 지
63.주의 기도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Ep. 130,11,21-12,22: CSEL 44,63-64)
제 6 장
고백록
기타 저적
갈라디 아서 주해
신국론
파우스 투스를 거 슬러
73. 우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교자들을 공경
합니다.
「파우스투스를 거슬러」에서(Lib. 20,21: CSEL 25, 562-563)
성인들 에 대한 예정
설교집
1. 빈첸 시오 는 세상 을 쳐 이기 신 분 안에 서 승리 를 거두 었습 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라고
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을 슬기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와야 하고, 어려움을
당신의 군사들을 영적 무기로 무장시키시고 그들이 맞아야 할 투쟁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도와주시
고 상급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리라. " 하고 말씀하셨지만,
즉시 그들의 두려움을 해소시켜 주시고자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리라."고 하셨지만 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즉, 고난이
우리를 짓밟는다 해도 우리를 부서뜨리지 못하고 우리를 공격한다 해도 우리를 이겨내지 못한다는 점입니
첨을 부리고 또 우리를 부서뜨리고자 겁을 줍니다. 우리의 쾌락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잔
했습니다. 빈첸시오가 고난을 당할 때 고초를 당하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
을지 모릅니다.
께서는 복음서에서 당신의 증인들을 투쟁에 대비시키실 때 이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너희는 무슨 말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성령이시다. " 그러므로 육신은 고난을 당하고 영은 말씀
276,1-2 )
2. 내 양들 을 위해 서 고난 을 받으 라.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
셨습니다. "그분은 맡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셨습니다. " 즉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을 구속할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피와 죽음으로 말
미암아 죽음에서 해방되고, 그분의 겸손으로 말미암아 넘어져 있던 상태에서 똑바로 일어섰습니다. 우리
는 그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분은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몸의 지체
님의 모범을 본받도록 우리에게 촉구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
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
니다. 베드로는 "네,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
다.
한번 또 한번 그리고 세 번까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고 주님은 물어 보시고 베드로는 그때마다 "네,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했으며, 주님은 또한 세 번이나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
그리고 주님은 마침내 세 번째에 당신의 양들을 베드로에게 맡기신 후, 자신의 대답으로 사랑을 고백하
고 두려움을 전주하고 지워버린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제 손으로 띠를 띠고
" 예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죽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인가를 암시하신 말씀이
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가올 십자가를 알리시고 그가 받을 고난을 예언하신 것입니
다. 위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말씀하실 때 이 말씀은 "내 양들을 위해서 고난을
사도들의 으뜸이요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한 복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영예를 얻었습니
오지 않고 반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이름도 '베
를 대표할 책임을 맡은 베드로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을
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에게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
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한번, 두번, 세번까지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경솔한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게 된 이 축일을 경건히 지내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 그들의 수고와 고난, 그리고 그들의 증거와 복음 전파
입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그 사람들의 손에서 죽기까지 하셨다면, 신자들의 마음은 하느님의 은총에서 무엇인들
기대할 수 없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신 미래는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미 해
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말씀이 아니시겠습니까?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
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
다." 그분이 우리에게서 육신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을 취하셨기에, 불사불멸이신 분께서 죽으실 수 있었고 멸하고야 말 것에다 생명을 주실 수 있
었습니다. 그분은 먼저 멸하고야 말 인간의 것을 취하셨으므로 인간이 당신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
셨습니다. 우리는 본질상 생명을 얻을 능력이 없고 그분께는 본질상 죽음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와 놀라운 상호 교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
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록 사랑하셨다면, 우리를 의화 시키신 그분이 우리에게 의로움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약속하신 분
시지 않겠습니까?
으로서, 아직도 무엇을 향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언젠가 그 곳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게으름을 이겨내고 끊
네를 맞아들이듯 주님을 맞아들였지만, 사실은 종이 주인을, 환자가 구원자를, 피조물이 창조주를 맞아들
주님을 맞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종들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받기를 원하셨습니
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께서 당신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고 다만 사람을 생각해서 받기를 원하신 것이었습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
오. 실상 그분께서는 우리가 육신으로 계시는 당신을 볼 영예를 앗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
십니다.
마르타여, 여하튼 나는 당신이 시중을 들었기에 평화를 얻어 복되다고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수고에 대
한 보상으로 안식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인들의 육신이라 하지만 그래도 석어 버릴 육신에다 양식을
성될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주님의 부요한 식탁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부스러기만 모았을 뿐이었습니
론 103,1-2 .6)
6. 나는 여 러분 에게 있 어 주교 이고 여 러분 과 함께 그 리스 도인 입니 다.
러나 누구의 피로써 구속되었나를 되새길 때 이 생각은 우리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고 잔잔한 항구에 들
어가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직분에 진력하면서도 거기에서 나오는 공동의 혜택은 위로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지도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여러분과 함께 구원받았다는 생각은 내 마음을 더 즐
들을 잘 돌보아라." 주께서는 이 말씀을 한번, 두번, 세번까지 하심으로 먼저 그에게서 사랑을 구하시고 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말기를 간절히 권고합니다." "여러분
거룩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업적은 방방곡곡에서 교회를 꽃피게 합니다. 우리가 방금 노래한 시편의
다음 말씀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우리 눈으로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보배로운가." 그 죽음은 우리가 보기에 보배롭고 또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이므로 주님 자신이 보
시기에도 보배롭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죽음들의 대가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숱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 즉 우리 구원의 시각이 다가올 때 그분이 하신 말씀을 여러분이 들었습니다. "밀알
십자가상에서 주님은 엄청난 거래를 하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군인이 창으로 당신의 늑방을 펼치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들은 자신들 때문에 지불된 대가를 되갚아 요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성취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듯이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
야 합니다."
는 참으로 성대한 잔치입니다. 자기의 살로 손님들을 먹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
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그분은 초대하는 분이 되시고 또 음식과 음료가 되십니다. 순교자들은 자기들이
져다주는 잔입니다.
의사가 먼저 그것을 마시지 않았으면 병자는 두려워 감히 손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수난이 바로 이 잔
니다.
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고 하신
하늘나라의 임금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입을 지탱하고 계셨고, 그들을 통해 지상의 마귀를 정복하시어 하
늘에서 그들에게 월계관을 주셨습니다. 이 잔을 마신 이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고통을 다 마치고 영예를
8. 주님 안 에서 항 상 기뻐 하십 시오
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성서가 말해 주는 대로 "누구든지 이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의 기쁨이 승리를 거두어 세상을 두고 누리는 기쁨이 끝나 버리도
분이십니다. 멀고도 가까이 계시는 이분이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와 가까워지신 그분이 아니라면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악대로 갚지도 않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
171,1-3 .5)
9. 끝까 지 참는 사 람은 구 원을 받 으리 라.
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약속하지 않고 복음서도 우리에게 다가올 환난과 압박과 유혹을 숨기려 하지 않습
니다. 그러나 성서는 역시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리라." 고 말해 줍니다. 첫 사람이 죽음의 선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었습니까?
형제 여러분, 불평하지 맙시다.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하다가 살육의 천사의 손에 멸망을 당했다." 고 사
고통들과 비교되는 것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옛날이 훨씬 더 좋았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이 시대를 불평하
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조상들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때에도 똑같은
불평이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과거 시대가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받았습니다. 다음의 성서 말씀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하신 저주입니다.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있었단 말입니까?
10. 그는 그 리스 도의 거 룩한 피 의 봉사 자였 습니 다.
지는 유혹의 미소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노리는 마귀를 패배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이 명백히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주님의 식탁에서 주님을 받았기에 그 보답으로 자기 자신을 주님께 제물로 바쳐 드렸습니다. 생활에서 그
형제들이여,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을 본받도록 합시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보
다 그분께 대한 사랑의 더 훌륭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발자취를 따르는 이들을 위해서만 고난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그분의 고난은 그런 사람에게만 효과를 미
친다고 말해 주는 듯합니다.
거룩한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본받아 피를 흘리기까지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순교자들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이 지나간 후에도 다리는 끊어지지 않았고 그들이 마신 샘도 마르지 않
았습니다.
형제들이여, 주님의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순교자들의 장미꽃만이 아니라, 동
정녀들의 백합화도, 기혼자들의 담쟁이 꽃도, 과부들의 제비꽃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명에 대해 실
야 합니다.
로는 덧붙여 말합니다. "오히려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11. 주님 은 우리 를 불쌍 히 여기 셨습 니다 .
우리가 듣고 노래하는 것을 또 실천에 옮길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듣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실천에
이렇게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
다. "실상 과거 우리 생활에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사랑하실 선행, 즉 "이 사람들의 생활은 선하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착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착한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악한 이들을 위해서, 의로운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롭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려
은망덕이 될 것입니다.
열어 주셨습니다. 불사불멸이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머무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있도록 또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멸하시기 위해, 불사불멸
에서 사멸성을 취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를 행하셨고 우리에게 이 은혜를 남겨 주셨습니다. 위대하신 그분은 자신을 낮추시고, 낮추심
임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겸손의 길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면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합당히 다음
12. 그리 스도 안 에서 의 새로 운 창조 .
새로이 태어난 유아들, 그리스도 안의 작은 자들, 교회의 새로운 자녀들, 성부의 선물, 어머니 태중의 풍
성한 열매, 거룩한 새싹들, 새롭게 된 무리, 우리 명예의 꽃, 우리 수고의 열매, 나의 기쁨과 화관, 흔들림
없이 주님 안에 있는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합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확실한 길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향하는 이 길은 여러분을 위해 사람이 되
다.
날입니다.
여러분은 실제로는 아니지만 이것의 표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확실한 희망 속에 성령의 보증을 받았습니
13. 요한 은 소리 이고 그 리스 도는 말 씀이 십니 다.
요한은 소리였지만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말씀이셨습니다. 요한은 지나가는 소리였지만 그리스도는
화시키지는 못합니다.
마음속에다 전달할 수단을 찾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미 있는 말에게 소리를 주어, 그 소리를 통해
말이 당신의 마음에 들어갈 때 소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는(말은) 더욱 커져야 하
고 나는(소리는) 작아져야 한다." 목소리는 그 말이 들리게 하도록 울립니다. 그리고 자기 임무를 마치고
말해 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말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이 소리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습
니다. 소리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며 예언자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러
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들 마음에 그분이 들어가실 수 있도록 외치고 있
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길을 곧게 하라." 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땅히 기도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
는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오류를 자기를 높이는 데 이용하지 않습니
다.
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요한은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보았습니다. 자신은 등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
"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 성도들의 모임에 그 찬송 울리어라."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리라
고 권고합니다. 새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알고 있습니다. 노래는 기쁨의 일이며 좀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
것은 사랑의 일입니다. 새 생활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할 줄 압니다. 새로운 노래는 생활
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노래, 새로운 계약, 이 세 가지 모두 유일하고 같은
하느님 나라에 속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노래를 부를 것이며 또 새로운 계약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이 사랑할 때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것이
바로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람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랑할 때 사
랑의 대상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선택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
습니까? 먼저 사랑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의 말을 들으십시오. "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합니다. " 과연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수 있는 원천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원천을 바울로 사도는 좀더 명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께
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셨습니다. " 그러면 그 사랑은 어디서 옵니까? 우리 자신에게서 옵
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 옵니까? 우리에게 부어 주신 성령을 통해서 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이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성 요한은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랑의 대상으로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나를
는지 생각하십시오.
목소리로 노래하십시오.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 입술로 노래하십시오. 여러분의 거룩한 생활로 노래하
십시오.'"주님께 노래하라.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려라," 여러분은 사랑하는 그분에 대하여 무엇을 노래해
야 하는지 물어보고 있습니까? 물론 사랑하는 분에 대해 노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께 노
노래하는 사랄 자신이 바로 찬미가의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찬미를 전하고 싶어 합니까? 노래하
15. 진리 가 땅에 서 움터 나 오고 정 의가 하 늘에 서 굽어 보았 도다,
사람이여,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하느님은 당신을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잠자는 이여, 잠에서 깨어나
간의 모습을 취하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결코 죄의 육신에서 해방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이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영원토록 불행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이 당해야 할 죽음을 맞지 않으셨다
면 당신은 생명을 다시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당신은 패배하고 말았
우리 구원과 구속의 오심을 즐겁게 경축합시다. 이 축제의 날을 경축합시다. 거대하고도 위대한 날에서
나오는 거대하고도 위대한 날이신 분이 이 짧고도 일시적인 우리 이날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정의가 되시고 우리의 성화와 구속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
"진리가 땅에서 움터 나왔습니다." 그것은 "말씀께서 육신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화된 우리는 하느님과의 평화를 누리도록 합시다." "정의와 평화가 함께 입 맞추었
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즉 "진리가 땅에서 움터 나왔기 때문입니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을 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바울로는 "우리의 영광" 이라 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 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의가 우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굽어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랑하
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진리가 땅에서 움터 나오고" 즉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태
어나셨기 때문이 아니라면 세상에 평화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
다." 우리가 마음 착한 사람이 되고 일치의 감미로운 유대로 묶이도록 "그분은 두 민족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 은총에 대해 기뻐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영광은 우리의 선한 양심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하느님께서는 그 외 아드님을 사람의 아들로 만드시고 이렇게 하심으로써 사람의 자녀들이 하느님의 자녀
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신 편에서 어떤 공로나 권리나 선행이 있어서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
마음을 두지 말고 천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십시오." 주께서는 승천하셨어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 것
있게 되었습니다.
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지상에 있으면서도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신성과 권능과 사랑으
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에 계신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과 우리와의 일치를 강조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이시고 우리
그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사람의 아들이 되시고 또 우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바울로 사도는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들이지만 한 몸입니다.
그분은 자비하셔서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그분만 스스로 올라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은혜로써 올
라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으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올라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머리가 몸 때문에 그 위엄을 잃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와 결합된 몸이 머리에
17. 말씀 을 뵈옴 으로 흡 족하 오리 다.
으로써 우리는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을 운명에 놓여 있는 육신을 취하여 죽음을 겪으셨을
하느님께서 당신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서 감추어 두시고 희망하는 이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인자하
심은 얼마나 큽니까! 우리의 현재 지식은 완전한 것이 나타날 때까지는 불완전하고 부분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으로서 아버지와 같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신분을 취하셔
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고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우리를 개혁시키십니다. 하느님의 외 아드님께서
는 몸소 사람의 아들이 되심으로 인간의 많은 자녀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보이는 종의 모
습을 취하심으로 종인 우리를 양육하시고 자유인의 신분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니다.
그리고 아버지 안에 계시는 외 아드님을 아직 보지 못한다면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을 기억토록 하고,
스도는 자유로운 의사로 역사에 들어오시어 오늘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이 되도록 하
되셨습니다.
오늘 그 옛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늘은 위로부터 이슬을 내리고, 구름은 비처럼 의인을 내리라. 땅
넘어졌지만 하느님은 자비로이 내려오셨습니다. 사람은 교만으로 넘어졌지만 하느님은 은총으로 내려오
셨습니다.
모되었습니다. 하느님은 탄생하십니다. 동정녀가 남자를 모르고 잉태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남자를 모
만 순결을 잃지 않으시고 동정녀가 아들을 가지고 있지만 남자를 모르며, 그 몸은 언제나 봉인되어 있지만
매요 어머니이다." 신덕의 힘으로 믿으시고 신덕으로 잉태하시며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구원을 낳게 해주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께서는 분명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있어서 그리스
더 큰 행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스승을 낳으시기 전 그분을 모태에 모시고 계셨기 때문에 정말 복되셨습
니다.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고 하셨습
니다.
리스도는 마리아의 마음속에서 진리이시며 마리아 태중에서 육신이십니다. 그러나 태중에 있는 것보다,
마음 안에 있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마리아는 거룩하시고 마리아는 복되십니다. 그러나 동정 마리아보다 교회는 더 그러합니다. 왜 그렇습니
까? 마리아는 교회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부분, 뛰어난 부분, 엄위로써 다른 모든 지체들보다
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
다.
형제들이여, 보십시오. 여기에서 형제 그리고 자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산은 같은 것이기 때
의 상속자, 그리고 당신과 더불어 공동 상속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강론 25, 7-8 )
20. 우리 안 에 있는 주 님 집의 건 축과 축 성.
오늘의 집회는 기도의 집을 축성한 축제를 지내기 위해서 입니다. 성전은 우리 기도의 집이지만 우리 자
신은 주님의 집입니다. 우리 자신이 주님의 집일진대 우리는 세말에 봉헌되기 위하여 현세에서 건축되고
믿음으로 산과 숲 속에서 나무가 잘려지고 돌이 캐어지는 셈이고,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을 때에 목수와
미장이의 손으로 나무와 돌이 다듬어지고 깎여지고 모습을 갖추어 맞추어지고 짜여지는 셈입니다.
신 것입니다.
라." 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새 노래" 라고 하였으나 주께서는 여기서 "새 계명" 이라고 하십니다.
로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기 바라며 여기서 나무와 돌로 완성된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여러분의 몸속에서
완성되기를 바랍니다.
21. 그리 스도 의 죽음 값 으로 구 원된 순 교자 들의 죽 음은 귀 중하 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귀중한 업적으로 어디서나 교회가 융성하고 있으니,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
리 구원이 임박했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
십자가에서 큰 매매가 이루어졌으니, 거기서 우리의 몸값이 치러졌습니다. 군사의 창으로 주님의 심장이
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
자신을 하객들에게 음식으로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주님이 초
청인이시고 몸소 음식이 되시고 음료가 되십니다. 순교자들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를 알았고 자신들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먼저 자신을 음식으로 제공하신 그분이 도와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갸륵할쏜 주님의 눈에, 성도들의 죽음이여," 라는 시편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망합니까?
하느님께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살펴본다면 전능하신 그분이 내리신 은총이 얼마나 고마운
22. 그분 은 우리 의 하느 님이 시고 우 리는 그 목 장의 백 성입 니다 .
방금 노래한 시편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양 떼라는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 너희는 알라.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는 당신의 것 당신 백성이어라. 기르시는 그 양 떼이어라. " 인간 목자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양들을 스스로 지어내지 않았고 자기가 기르는 양들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우리
는 것도 아닙니다.
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양들인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도록 합시다. 이전에 주님은 목자들에게 말
서 들었지만 여러분은 평온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제 이 시편에서 말씀하시는 것(즉
전과 반대로 우리는 평온한 마음으로 듣고 여러분은 떨면서 들어야 되겠습니까 ?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목자는 주님께서 목자들에게 하시는 말씀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도 떨면서 들어야 합니다.
만일 목자가 주님께서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평온한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목자는 양들에 대한 관심이
가지 점입니다.
우리는 지도자로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야만 목자의 반열에 들 것이지만 한편 우리는 역시 그리스
도인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양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목자들에게 말씀하시든 양들에게 말씀하
합니다.
을 약속하여 주시는지 들어봅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양들이다. "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하느님의 양 메 안에서 염소는 무엇을 합니까? 하느님의 왼편에 안기로 되어 있는 염소들은 하느님의 오른
염소와 양을 가르시어 하나는 왼편에 하나는 오른편에 두실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강론 47, 1.2 .3. 6)
23. 내가 사 람들 의 호감 을 사려 고 한다 면 나는 그 리스 도의 일 꾼이 아 닐 것입 니다 .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양심의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을 경솔하게 판단하고 멸시하며 말을
안 됩니다. 다만 그들의 구원만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길을 걸어간다면 그들은 우리를 따라오게 되
므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에 그들도 우리를 본받게 하고 우리가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익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나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바울로의 이 두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니다." 여러분이 착한 사람들이라면 모든 영예는 여러분을 선하게 지으신 하느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들 앞에서 훌륭히 처신하도록 합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거기에 더하여
24. 하느 님이 받 아들 이시 는 제물 은 뉘우 치는 마 음입 니다 .
그들은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 릴 줄 모르고 타인의 잘못을 곧잘 나무랍니다. 이것은 다윗이 우리에게 보
는지 알도록 하십시오. 같은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사는 당신이 즐기지 않으시고 번제를 드려
아닙니다.
을 들어보십시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
이다." 여러분은 이제 이전에 바친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바쳐야 할 것을 찾아냈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에
" 하느님께서는 이전의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고 어떤 새로운 제사를 원하고 계십니다.
러분이 제사를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
하느님이 즐겨 하시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낮추어져야 합니다. 그런
데 마음이 부서지면 그것이 소멸해 버리리라고 걱정합니까? 여기에 있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따라서 마음을 깨끗이 만들도록 먼저 불순한
25. 성덕 에로 의 보편 적 성소 .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끊어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당신을 따르려면 자신을 끊어 버
리라 하시는 주님의 명령은 가혹하고 무거운 것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명령하신 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와
럽게 만듭니다.
함께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협박이나 아첨이나 어떤 종류의 제지도 주님을 따르려면 그것을 십자가로 생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이미 거룩하고, 착하고, 화해하고 구원된 세상입니다. "희망으로 우리는 이미 구원되
유일한 온 교회는 비둘기처럼, 신부처럼, 신랑의 피에 젖어 구원된 신부처럼 따라야 합니다. 온전한 동정
자도, 과부의 수절도, 부부의 정절도 모두 이 속에 제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자리를 가지고 있
을 참아 받아야 합니다.
홀로 속이지도 않으시고 홀로 속지도 않으시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이 약속하신 것이 진실된 것이니 그
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이 당장 주지 못하고 뒤뚝거리고 있어도 기다리며 항구히 참으며 십자가를 지
루야를 노래합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걱정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땅 위에서의 인생은 시련에
소서." 하면 즉시 이어서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여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 하고 덧붙입니다.
까? 그럼에도 형제들이여, 우리의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는 선하신 하느님께 알
렐루야를 노래합시다.
"힘에 겨운 시련을 겪게 하지는 않으시고 시련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신다." 고 말합니다.
분은 옹기장이가 만드는 그릇처럼 말씀을 들음으로써 조형되고 환난의 불 속에서 단련되어야 합니다. 여
행에로 정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진한다면 발걸음을 계속하는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
나 덕행에로, 올바른 신앙에로, 거룩한 생활에로 정진하십시오. 노래하면서 걸음을 계속하십시오. (강론
256,1. 2. 3)
** 나는 수 도생 활을 선 택한 다.
서 살으렵니다." (시편 94,1 이. 교회의 지도자들의 무리에 속했으나 그들 중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과는 어
노력하며 성직자의 품위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은 그의 주인의 명령을 거스른 일을 해서는 안
을 선호하는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만만치 않은 가난한 사람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
은 것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주교가 되어 깨달은 것은 주교답게 모든 손님들과 나그네들에게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
제 2 장
목자 들에 대한 강론
27. 위로 의 붕대 를 주십 시오 .
성서는 주님이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 고 말하고 있지만, 당신은 이와 반대로 "여러분은
이 성서 말씀에서 제외될 것이요." 하고 신자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견책의 고통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느님 자녀들의 대열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당신은 다음과 같이 반응을 보일지
지의 본체에서 탄생하시고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하시며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된 말씀이시므
습니다.
그러나 약한 자가 미래에 닥쳐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거짓된 희망으로 속이거나 두려움으로 산산
니다. 그들은 일반 신자들이 겪는 보통의 어려움을 하찮은 치료제로 여기고 순교자의 영광을 열렬히 찾습
니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인에게 당연히 닥쳐오기 마련이고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자
당신이 믿어 온 그분은 시련이 닥쳐올 때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오. 하느님께서는 신의가 있는 분이시므
예언자는 '견딜 만큼의 눈물을 마시게 한다.' 고 말하고 있소. 여하튼 당신은 당신을 꾸짖으시고 격려하시
28. 연약 한 그리 스도 인들 .
주께서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익이 아닌 제 이익만 찾고, 또 젖과 양털을 마음껏 즐기지만 양들을
리가 어떤 때 병자를 허약자라 하지만) 허약자와 병자를 잘 구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허약자는 튼튼하지
지게 하는 나쁜 욕망으로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만큼 어려움을 겪을 마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진정코 견고한 그리스도인
부에 마비증이 있다면, 의사께 도달하기 위해선 (그분이 숨어 계신지, 집안에 들어가 계신지, 확실한 의미
46,13)
29. 기회 가 좋든 지 나쁘 든지 꾸 준히 훈 계하 십시 오.
빨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위험들 앞에서 기도해 주기를 청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들마저 뺏뻣한 상태입니다. 그들이 방황하고 길을 잃어버려 우리가 찾으러 나가면 자기들은 오류와 파
국 상태에 빠져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들 말합니다. "왜 나에게 신경을 쓰는 거요? 왜 나를 찾아다니
잃었기 때문에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나는 방황하고 싶고 파국 상태로 있고
싶소."
려오지 않았다. "내가 그분보다 당신을 더 두려워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
에 나아가야 합니다."
워하는 주님께서 나에게 힘을 주시는 데까지 온 천지를 두루 돌아다닐 것입니다. 나는 헤매는 것을 되돌아
헤매지 말고 파멸의 지경에 빠지지 말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당신이 헤매고 파멸에 빠져 드는 것을 볼 때
양까지도 파멸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예언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살진 놈을 잡아먹었도
30. 교회 는 포도 나무 처럼 자 라나 온 세 상에 퍼 져 나갔 습니 다.
"내 양들은 산과 높은 언덕들을 이리저리 헤매고 온 세상에 흩어졌다." "온 세상에 흩어쪘다." 는 말은 무
들은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 " 지상적인 것을 사랑하고 길 잃고 헤매고 있기 때문에 온 세상에 흩어진
따라서 교만이 분열을 낳게 하는 것처럼 사랑이 일치를 낳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한 어머니
므로 그들 모두를 잘 알고 있습니다.
도나무에서 잘려진 쓸모없는 가지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포도나무를 모조리 잘라 버리기 위해서가
그렇지만 교회는 아직 헤매는 이들을 되부르고 있습니다. 바울로 사도가 갈라진 이 가지들에 대해서 "하느
의 말씀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증거로 삼아 맹세하십니다. 목자들
다."
니까? 분명히 있을 것이고 또 분명히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
"목자들아, 이 주님의 말을 들어라." 목자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그러나 네가 그 죄인에게 마음을 바로잡아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 주었는데도 그가 마음을 바로잡아 버
은 당연히 죽습니다. 자신의 죄과와 잘못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입니다. 그의 게으름이 그를 죽이는 것입니
신의 보초와 지도자로 임명된 사람에게서 아무런 경고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서 그를 칼로써 위협하실 때 당신이 그 죄인보고 "당신은 분명히 죽
구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무는 침묵을 지키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의무는 우리가
주시는지 보기로 합시다. 다음의 말씀에 의하면 주님 친히 양들을 악한 목자들에게서 빼내십니다. "목자라
주님은 어떻게 목자들에게서 양 떼를 빼내어 그들을 기르지 못하게 하십니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이것은 흡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듯 합니
(「목 자들 에 대한 강 론」 46,20-2 1)
32. 내 양 떼를 좋 은 목장 에서 기 르리 라.
스라엘의 산들에서 기를 것이다." 이스라엘의 산이란 성서의 저자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 안전한 데서
성서라는 산위에 모여 드십시오. 거기에는 여러분 마음의 기쁨이 있고 독성이나 해로운 것이 조금도 없습
니다. 그것은 가장 비옥한 목장입니다. 건강한 양들이여, 찾아가 이스라엘의 산에서 풀을 먹으십시오.
되리라." 즉, 그들은 "참 좋구나." 할 수 있고, "사실이다. 분명하다. 우리는 속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며 편
을 지으신"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을 그 좋은 산에다 걸지 않도록 주님은 "이스라엘
르리라," 고 하시는 그분의 말씀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께로부터 오기 때
문입니다.
때문에 그분만이 양을 제대로 기르실 줄 압니다. 자기 동료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
33. 모든 착 한 목자 들은 한 목 자 안에 있 습니 다.
실 주님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사람에게 맡기실 때에도 일치를 강
조하셨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많았지만 한 사람에게만 "내양들을 치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이
많이 보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있기 때문에 그분은 "내가 기른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양들을 맡기실 때 그것은
한 사람이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기신 것이었지만 그래도 베드로가 당신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습
니다. 주님은 목자들 안에서 홀로 양들을 기르시고 목자들은 한 목자 안에서 양들을 기르는 것입니다.
합니다. 그러나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친히 기르시므로
되어 한 목자 아래 있게 될 것이다. "
않고 그분 안에서 한목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모두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
하지만 목자로서의 직분 수행을 거부하는 목자들이 있기 때문에, 예언자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일러라. 목자들에게 그들을
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만을 말한다면 양 떼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이 되겠
지만,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바를 말한다면 그분은 당신이 원하시는 아무를 통해서라도 여러분을 당신 친
히 기르실 것입니다.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35. 자기 자 신만 을 돌보 는 목자 들.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이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목자들에게 어떻
것이 무엇인지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욕심내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젖이나 짜먹고 양털을 깎아
짜 먹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자신의 동반자들인 다른 사도들이 수탈
바울로는 더 나아가 응당히 자기 몫으로 받아야 할 것을 포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아야 할 것
36. 바울 로의 모 범.
바울로 사도가 한 번은 진리의 증거 때문에 감옥에 갇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형제들로부터 그 궁핍
을 돌보고 양 떼를 기르지 않는 목자들 틈에 끼어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형제들이 자기의 궁핍을
그러므로 바울로처럼 자기 손으로 벌어 생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목자들은 신자들한테 생계에 필요한 모
든 것을 받아도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양들의 나약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목자들은 자신
다음의 복음 말씀처럼 그들은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안에 있는
여러분이 집에서 등불을 켜놓으면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기름을 계속 부어 넣지 않겠습니까? 기름을 부
릴 것입니다. 생계에서의 어려움은 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고 사람은 그것을 줄 의무를 집니다. 그러나 복
누가 복음을 이런 식으로 판다면 가치로운 것을 헐값으로 파는 결과가 됩니다. 그들은 생계에 필요한 것을
랑 때문에 봉사하는 분들에게 제대로 보상할 수 없습니다. 목자들은 신자들이 구원을 받는 그 같은 원천에
37. 각자 는 자기 이 익을 찾 지 말고 그 리스 도의 이 익을 찾 아야 합 니다 .
나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로 사도는 이렇게 큰 영예를 얻은 후 그들을 꾸짖는다면 그 영예가
혹시 거부되거나 감소되지 않을까 두려워, 길을 잘못 들어선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었습니까? 만일 그렇게
했다면 자기 자신은 돌보고 양들은 제대로 기르지 않는 목자들의 부류에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각자가 제멋대로 하
그래서 바울로 사도는 그들한테 받은 영예를 잊어버린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그들에게서 받은 영접을
상기하면서 그들에게 자기를 하느님의 천사와도 같이 영접해 주었고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뽑아서
더 확대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제 내가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나를 원수로 여기는 것입니까?" 바울로는
7)
38. 신자 들의 모 범이 되 십시 오.
잘 먹는 양들은 드뭅니다. 악한 목자들은 이런 양들마저 아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허약한 양들이나
모범이 되십시오."
사람만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 지도자가 그렇게 산다면 나인들 그가 하는
실행하고 지켜도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하는 주님의 말씀에 굳게 매달려 살아 있다 해도, 신자들
이처럼 자기가 지도하는 사람들 앞에서 악하게 사는 목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튼튼한 이들까지 죽이
39. 다가 올 시련 에 대비 하여 라.
이렇게 세우는 이는 바위이신 그리스도 위에다 세우는 것이 아니고 모래 위에다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의 역경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지만 네 마음을 주님에게서 멀리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거기서 너를 구
하여 주시리라. 주님은 수난 당하시려 오시고 죽으시려 오셨으며, 침뱉음 당하시려, 가시관을 쓰시려, 모욕
당하시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 나무에 못 박히시려 오셨는데 그것은 네 마음을 튼튼히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너를 위해 당하셨지만 네가 당한 것은 하나도 없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위해 당하신
님께서 세상에게 약속하지 않으신 이 세상의 행복을 약속까지 해주는 그네들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사람
들이겠습니까? 주님은 이 세상이 다 끝나는 순간까지 수고에 수고가 오리라고 예고하셨는데, 당신은 그리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경건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리리라.
자여, 이것이 당신의 건설 방법입니까?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에다 건물을 세우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세우고 있는 건물은 모래 위에다 세우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바람이 불
(「목 자들 에 대한 강 론」 46,10-1 1)
제 3 장
시편 주해
40. 신적 의 사
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인자를 받는 듯이 그분이 주시는
치료의 고통도 받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치료의 고통을 참을 수 있다면 앞날에 회복을 완전히 얻을 것입니
다.
건강을 약속하시는 신적인 의사는 여러분을 속아지 않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영혼조차 지어내 주셨는
여러분의 병세가 심각해도 불구하고 의사의 능력을 인정하십시오. 여러분을 건전한 형상대로 내셨으니
여러분을 다시 치유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분의 처방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스도는 "여러분의 모든 질병을 치유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유의지로 선태만 한다면 여러분이 회복할
아들이 십니 다.
말씀을 통해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말씀을 만물의 머리로 삼으신 것-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사람들
시어 당신의 아들이신 그 말씀을 사람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아버지와 같이 유일한 하느님이신 그분을 사
람들과 함께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를 할 때 아드님을 하느님과 분리시키
면 안 되고, 또 우리의 기도는 그분의 신비체로서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에 그때 우리 머리이신 그분과 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사제로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는 그것을 주저 없이 그리스도께 돌려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이 그분을 통해서 만들어져 만물의 주인이심
요한복음에 나오는 다음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그분의 위엄과 신성을 바라봅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
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그런데 우리 이성은 그분의 신성을 생각하는 나머지 그분이 자신을 낮추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데에
느려서 그런 말씀들을 그분께 돌리기를 주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선 당신 인성에 대해서 하시는 말
고 그. 뜻을 바꾸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서에 나오는 것은 그분과 잘 어울리는 것이고 그분의 본
그러므로 이제 잠에서 깨어나 신앙을 굳건히 보존합시다. 조금 전에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바라보았
던 그분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는 점에 주목합시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고 "인간의 모습으
주님은 하느님으로서 우리의 기도를 받아들이시고 종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처음 경우에
이 되시어 머리와 몸처럼 우리를 당신 자신과 하나로 결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 안에서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말하며 그분은 우리와 더불어 말씀하십니
다. (「시편 주 해」 에서 Ps 85, 1)
42. 그리 스도 의 고난 은 그리 스도 홀 로 받는 것 이 아닙 니다 .
하나의 육신 안에, 하나의 목소리 안에, 하나의 고난 안에 둘이시고 이 죄스러운 세상이 다 사라져 버릴 때
그리스도를 머리와 몸으로 생각한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역량에 따라, 그리고 어떤 일정한 고난의 규범에 따라서 일종의 공동 복
러므로 형제들이여, 악인으로부터 박해받은 의로운 사람들과 심지어 주의 오심을 미리 전하려고 주님에
리스도의 하나인 교회, 그리고 우리가 이루는 일치입니다. 무엇을 부릅니까? 위에서 말한 부르짖음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부르는 것입니까? "내 마음이 고뇌에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통해 주님은 세
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순례 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
고 유혹을 당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유혹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받지 못
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하며 원수가 없거나 유혹을 당하지 않으면 투쟁할 수 없습니다.
냐하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고 여러분은_그분에게서 구원을 얻었고, 즉 그분은 여러분
에게서 죽음을,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그분은 여러분에게서 모욕을,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명예를,
그분은 여러분에게서 유혹을,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승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시 편 주해」 Ps 60,
2-3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유혹을 당했다면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마귀를 쳐 이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44. 하느 님의 약 속은 아 드님 을 통하 여 우리 에게 성 취됩 니다 .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받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
하지 않으시고 글로써 약속이 묶이는 것을 택하시어 우리에게 일종의 약속 증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을 성취하기 시작하실 때 우리가 그 증서에서 성취의 순서를 볼 수 있게끔 하시기 위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구원, 천사들과 함께 누리는 끝없는 축복의 생활, 시들지 않는 유산, 영원한 영광,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 하늘에 잇는 당신의 거룩한 성소, 그리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로 인한
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사람들에게 신성을, 죽어야 할 이들에게 불사불멸을, 죄인들에게 의화를, 버림받은 이들
에게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멸성과 부패와 버림받은 상태와 연약성, 그리고 먼지와 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하느님
이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글로서 계약을 맺으시는 것뿐만 아니라 당신 충실성의 중재자로 어
그래서 하느님의 외 아드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오시어 육식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
해」In p s. 1 09,1- 3)
45. 당신 의 소원 이 바로 당 신의 기 도입 니다 .
울부짖음을 듣지 못합니다.
다.
당신의 소원이 바로 당신의 기도입니다. 당신의 소원이 항구하다면 당신의 기도도 항구합니다. 사도 바
려 한다면 계속해서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엎드리거나 또는 손을 쳐들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우리가
일이 무엇이든 그 영원한 안식일을 바라면서 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셈입니다. 기도를 중단하
됩니다. 누가 침묵에 빠져 들었습니까? 성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악이 늘어나 사랑이 식어진" 이들입니
다.
사랑의 냉각은 마음의 침묵이며 사랑의 불타는 열정은 마음에서 나오는 함성입니다. 당신 안에 사랑이
까?
따라서 시편 작가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울부짖음은 당신께 감추어지지 않나이다." 주님께는
기도입니다. 나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전체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께
생각합니까? 부르짖은 후에 이것으로 마음이 흡족함을 느끼면 안 되겠습니다. 환난이 끝나면 부르짖음도
끝납니다. 그러나 환난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마지막 날까지 계속된다면 "주여, 이 몸 당신께 부르짖
때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다시 얻으실 당신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생명을 바치신
것입니다.
셨는데 이는 어찌된 일입니까? "예전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고 한 사도의 말대로 우
에서 솟아오르는 기도는 거룩한 제단에서 향이 피어오르듯 순수하고 바르게 올라갑니다. 주님의 향기보다
47. 파스 카 축제 의 알렐 루야 .
기쁨의 영원한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현세 생활에서 그러한 묵상으로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
하고 또한 그분께 청원합니다. 우리의 찬미는 기쁨으로 표현되고 우리의 청원은 탄식으로 표현됩니다. 우
우리 삶의 역사에는 두 가지의 시기가 있습니다. 첫 시기는 이 생활에서 당하는 유혹과 시련의 현 시기이
를 노래합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 두 가지 시기를 모두 상징해 주고 표현해 줍니다. 주님의 수난은
현세 생활의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운명을 가리킵니다. 주님의 부활과 그의 영광은 우리가 받을 생명을 가
리킵니다.
여러분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입과 목소리로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양심과 생활과
께 대한 찬미를 중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한 생활을 중단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계속 찬미하는 것입니
다. 여러분은 정의와 하느님의 뜻에서 돌아설 때에만 하느님께 대한 찬미를 중단하게 됩니다. 만일 선한
느님의 귀는 여러분 마음의 박동을 듣습니다. 우리의 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지만 하느님의 귀는 우리
48. 주님 께 멋진 노 래를 부 르고 기 쁨의 노 랫가 락을 읊 으십 시오 .
신 귀에 거슬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기쁨의 노랫가락은 마음이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출하게 하는 가락입니다. 말로써 표현할 수
로써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은 표현 불가능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로써 표현은 못해도 가만히
"주님께 멋진 노래를 부르고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시편 주 해」 Ps 32, s erm o 1 ,7- 8)
49. 양 우리 밖 에 있는 사 람들 도 그들 이 원하 든 원하 지 않든 우 리 형제 들입 니다 .
들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중지하게 되면 그때에만 우리 형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형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아니
입니까? 아닙니다. 성서와 교회 관습에 따라 외교인들을 형제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지
인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수 있으며 멸시할
우리를 보고 "너희는 우리 형제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외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
문에 자기네들이 베푸는 세례가 우리에게는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다시 세례를 베풀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자기네들의 형제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또 그들의 오류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베푸는 세례를 우리가 반복하지 않는 세례와 같은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은 우리
세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형제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한편 우리는 그들의 세례를 반복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찾고 왜 우리를 원하느냐 ?" 고 묻는다면 우리는 "너희가 우
는 너희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비를 두고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위대한 사랑과 풍성한 자비
그들에겐 반감의 약점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반감이란 강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약합니
들입니다. 그들의 성사는 우리와 함께 거행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거행하는 성사와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50. 어서 와 , 주님의 산 에 올라 가세 .
"우리가 들은 그대로 우리가 보았노라. "복된 교회여! 너는 듣기도 하고 보기도 했도다. 약속을 들었고 이
라. "하늘들 위에, 하느님, 나타나소서. 온 땅에 빛나소서, 당신의 영광." 이라는 예언자의 청원이 성취된
땅 위에 거니실 때 사람들이 멸시했던 그가 하늘에 좌정하시고 계심을 보라. "땅이란 땅 끝마다 돌이켜 주
하신다. "내 모르던 백성이 나를 섬기고 내 말을 듣자마자 복종했도다." 그들이 "듣자마자 복종했다면" 먼
저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는 저희에게 일일이 이야기해 준 일이 없었던 것을 그들이 보겠고 그들이
었으나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계약의 조문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유산을 얻지 못했기에 뒤에 처져 있었습
"만군의 주님의 도성에서, 우리의 하느님의 도성에서" -바로 거기서 우리는 듣고 또 보았습니다. "하느님
이 도성을 영원히 굳히셨습니다." 아무도 "보라, 여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보라, 그가 거기에 있다." 고 뽐
내면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분열을 일으킵니다. 이 시편에서 하느님께서는 교회
에 일치를 약속하셨습니다.
을 영원히 굳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기초를 영원히 굳히셨다면 이 기초가 무너질까 두려워 할 필요가
요한 복음 .서간 주해
51. 한 사마 리아 여 인이 물 을 길러 왔 다
"한 여인이 왔다. "이 여인은 아직 의화 되지는 않았지만 의화 되려고 하는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
로 오늘 복음 내용입니다. 그 여인은 무심코 와서는 예수를 만나고 주님은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우리를 표시하는 그 여인 안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인식하며 하느님
마리아 여인은 예수께 '당신은 유대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결핍 상태를 표시하시고 만족할 정도로 줄 의향이 있는 사람처럼 풍요를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선 말씀하
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네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하
있나이다. 그런데 "당신 진미의 강물을 마시게 된" 이들이 어떻게 목마르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풍족한 음식과 성령의 충만함을 주겠다고 제의하시지만 그 여인은 아직 깨닫지 못
만 나약하기 때문에 그 수고를 피하려 했습니다. 그 여인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52. 그리 스도 는 빛과 진 리와 생 명에 로 인도 하는 길 입니 다
약속하신 것을 주십사고 우리가 요청할 때 하느님이 우리를 염치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시지 않도록 먼저
주님이 명하시는 것을 따르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 날에 주님이 이렇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실 것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명했노라." 여러분은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시작합시다. 그분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사슬들을 부숴 버리도록 합시
이를 일으켜 주시도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얼굴을 서로 맞대고 바라볼 때 그 진리를 누리게 될
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불완전하게 알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그리고
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
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놀
라운 약속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은 이렇게 물어 볼지 모릅니다. "나는 그분을 사
랑합니다. 그런데 어떤 길로 그를 따라야 합니까?" 여러분의 주 하느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진리를 갈망하며 생명을 열렬히 원하는 여러분은 틀림없이 진리와 생명으로 가는
길을 다음과 같은 말로 구했을 것입니다. "진리는 얼마나 위대하며 얼마나 귀중한가! 내 영혼이 거기에 도
달할 길만 있다면!"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진리와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주님은 먼저 걸어야
시지 않습니다. 게으른 사람이여! 일어나시오. 길 자체께서 여러분에게 오시어 여러분을 잠에서 깨우셨습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절름발이까지 고쳐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보라, 나
는 튼튼한 발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길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은 맹인에게 시력을 되찾아 주기까지
53. 완전 한 사랑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가 서로 그렇게 사랑하여야 하는 완전한 사랑을 주님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
셨습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그리고 요한은 서간에서 다음과 같
들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즉 우리를 위해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
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솔로몬의 잠언이 이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능한 분
과 식탁에 앉게 되거든 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라. 그리고 너도 그만한 식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겠습니까? "그 식탁에 앉게 되는 것"이란 그 곳으로 겸손히 다가가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아라."는 말은 위대한 은총의 가치를 올바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너도 그만
한 식탁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라."는 말은 내가 이미 말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생
도 이것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위해서 고난을 받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
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만한 식탁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복된 순교자들은 불타는 사랑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의 기념제를 공허하게 거행하지 않으려면, 또 그분들이 영하여 충족한 잔
갈 수 있도록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사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완전한 사랑에 도달했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식탁에서 받은 똑같은 사랑의 증거를 형제
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순교의 피까지 흘린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주 그리스도와 동등한 자들이
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원하는 만큼 살 수 없으며 원치 않는다 해도 죽어야 합니다. 그분은
그분의 육신에는 부패가 없었지만 우리 육신은 부패된 후 세말에 가서 그분을 통하여 불멸을 입을 것입니
습니다. 형제들이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해도 순교자의 피는 형제들의 죄 사함을 얻도록 흘리는
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표양이 아니라 즐거워해야 할 기쁨의 연유를 주셨습니다. 순교자들이 형제들을 위
총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사도, 첫 사도였습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
놓을 수가 없습니다."
다. 이처럼 교회도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름으로써 악에서 구출되고 죽기까지 진리를 위해 투쟁하는 이
55. 새 계명 .
로 사랑하여라."
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것을 육적인 사랑과 구별하십니다. 이 사랑
그러한 사랑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사랑은 심지어 옛 의인들과 성조들 그리
니다. "하얀 옷으로 단장하고 치솟는 그 여인이 누구인가?" 라는 아가서의 말씀은 이 사랑을 두고 하는 말
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라. 서로 사랑하여라." 는 말씀을 듣고 그것을 잘 지키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명하시
는 사랑은 서로에게 해가 되는 더러운 사랑이 아니고, 사람이 사람에게 단순한 인간으로서 베푸는 그런 사
이 사랑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고 말씀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교회는 계시를 통해서 알려지고 권고된 두 가지 생활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을 통한 생활이고, 다
활입니다. 하나는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휴식의 생활입니다. 하나는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
고 다른 하나는 본향에서 실현되는 생활입니다. 하나는 행위와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관조라는 보
상을 받는 생활입니다.
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시고, 반면 요한에게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
다.
한 축복을 가지고 올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좀 더 상세히 말하자면, "완성을 지향하는 활동은 내 수난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죽음의 땅에서는 세상
그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라는 말을 "남아 있다" 또는 "살아 있다." 라
도 그러합니다. 온 교회는 내세의 기쁨을 이루려고 현세 생활의 유혹을 견디어 이겨 나가야 합니다. 베드
묶고 풀 권리를 받아 이 현세의 폭풍우 속에서 그들을 인도해 나갈 책임을 맡았습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상에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거울처럼 희미하게 들여다보고 하느님 나라에서 눈으로 직접 바라볼 그 신비
57. 사랑 의 이중 계 명.
주님은 넘치는 사랑으로 사랑의 교사로서 세상에 오시어, 예언의 말씀대로 "요약된 말씀을 하시면서" 모
알아야 하는 계명들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언급할 때만 그것이 마음에 떠오르면 안 됩니다. 사랑의
계명은 우리 마음에 항상 새겨져 그 마음에서 없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어디서나 하느님과 이
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열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그러나 우리는 아직 하느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한다면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는 약속을 받
"제 눈으로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랑이 어디서 나오는지 여러분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사랑할 수 있는 그만큼, 여러분은 이 지상에서 하느님
을 뵙게 될 것입니다.
목적이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열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는 주 하느님이 아닙니까? 우리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당신을 억지로 끌어들
인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음은 사랑의 힘으로도 이끌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서 말하는 사람
법이오."
기호로 말미암아 이끌리는 게 무엇입니까? 시편은 말합니다.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네 마음이 구
했다면, 하물며 그리스도를 뜻하는 진리와 축복과 정의와 영원한 생명을 즐거워하는 이는 그리스도께로
니까? 영혼이 기호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시편 작가는 어떻게 다음 말씀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여, 인
것입니다.
체의 강박도 엄이 마음의 기호로 인해 이끌립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지닌 기호에 의해서 이끌린다." 는
말은 사실인데, 지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누구에게 보여 줄 때 그것이 참으로 사람을 이끈다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끄시지 알겠습니까? 영혼이 진리보다 더 열
서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그러한 것입니
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세에서 그럴 것입니다.) "나는 그가 사랑하는 것을 주고 그가
부활할 때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 주해 」Tract . 26, 4-
6)
59. 생명 자 체께 서 육신 으로 나 타나 셨습 니다 .
"우리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그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육신이 되신 이 말씀께서 육신을 취하신 것은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사가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라고 말할 때 표현하는
대로 말씀의 존재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방금 들은 서간의 말씀은
다음의 복음서 말씀으로 확증됩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느님
과 함께 계셨다."
여기에는 "생명의 말씀"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말씀" 이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손으
니다. 그래서 요한은 덧붙여 말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은 육신의 눈으로도 봅니다. 우리가 육신을 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말씀을 볼 능력이 없었습니다.
열렸습니다.
복음사가는 또 말합니다. "우리는 그 생명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선포
하는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가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분명히
니다.
는 말씀을 실제로 들어 그것을 우리에게 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듣기는 했지만 보지는 못했습니다.
라면 복음사가는 다음 말씀을 덧붙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과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
"우리의 친교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입니다." 그리고 복음
사가는 다음 말씀으로 끝마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1,1. 3)
60. 우리 마 음은 하 느님 을 갈망 합니 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숙고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을 실재와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요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전 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
용량을 늘리십니다.
형제들이여, 언제나 갈망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언제나 채워질 것이기 때문
하지 않습니다."
것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꿀도, 황금도, 포도주도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이름붙이고 싶다면 "하느님" 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실재보다 부족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우리를 채우실 수 있도록 그분께로 우리 자신을 펼칩시다. "우리는, 그분의 참 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분
제 5 장
프로바 에게 보낸 편지
61. 우리 의 욕망 이 기도 안 에서 수 련되 도록 합 시다 .
기도할 때 우리가 응당치 않은 것을 청할까 두려워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마음이 흐트러진
다면 유익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그만두고 오히려 다음의 시편 말씀으로 기도함이 좋겠습
니다.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
하는 것입니다.
선물은 크지만 그것을 받으려고 하는 우리 마음은 작고도 협소합니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
의 진동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마음은 그것에로 올라가야 합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시들지 않는 욕망으로 늘 기도하지만 일정한 시간과 때에 어
떤 선택된 말을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릴 때도 있습니다. 이는 그러한 말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권고를
받고 우리의 욕망이 얼마나 진전했는지 깨닫게 해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더욱 강렬히 이 욕망을 증대시
62. 일정 한 시간 에 우리 마 음을 기 도하 는 일에 로 되돌 이키 도록 합 시다 .
그러기 위해선 이 열망을 냉각시켜 버리는 분주한 일과 걱정거리를 떠나 일정한 시간에 우리 마음을 기도
하는 일에로 되 돌이키고 기도의 말로써 우리가 욕구하는 것에다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식어지는 열망
따라서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라는 사도의 권고 말씀은 우리가 그 소원을 하느님께 알
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소원을 더 잘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
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해 보이는 것이 되기보다 하느님 면전에서 인내심에
느님께 "우리의 애통은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프로 바에 게 보낸 편 지」 Ep . 1 30,9, 18- 10, 20)
63. 주의 기 도.
그래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소서." 할 때, 하느님의 이름은 항상 거룩하지만, 사람들도 그러한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하소서." 할 때 그 나라가 우리에게와 우리가 거기에서 다스릴 수 있기를 청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할 때, "오늘" 이라는 말로 이 현세를 뜻하고 "양식" 이라는 말로
현세의 행복이 아닌 영원의 행복을 얻기 위하여 믿는 이들이 현세에서 필요한 성사를 청한다고도 볼 수 있
습니다.
애통을 드러내고 눈물을 쏟으며 그것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하고 그것으로 계속해야하며 그것으로 기도를
끝마쳐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기도문에 나오는 말들로써 그들이 뜻하는 실재 자체들을 우리 기억에다 새
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아니겠습니까?
서 구하소서."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니다.
자들이 이에 대해 장황하게 토론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그렇게 많은 저자들과 저술들
그 주님이신 백성은 복되어라." 그리고 우리가 그 백성의 무리에 속하여 하느님을 관조하고 그분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에 다다르기 위하여, "계명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우
희망과 사랑은 기도하는 사람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믿고 희망하고 갈망하며 또 주의 기도에서 주
65. 우리 는 무엇 을 응당 히 청해 야 하는 지 모르 고 있습 니다 .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물어 볼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왜 사도는 '우리가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
그런데 사도는 자기 자신도 이런 모르는 상태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울로
신을 가시로 찌르는 병을 얻었을 때, 그는 자기가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
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은 언제나 무겁고 짜증스러우며 인간의 허약감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기 때
문에, 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공통 심리에 따라 그것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리에게서 거두지 않으신다 해도 그분이 우리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생각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을 경건한
바울로 사도가 위의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사람이 청하지 않으면 더 좋을 것을 애타게 청함으로써 자
그래서 우리에게 청하는 것과 반대되는 어떤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내로이 견디고 만사에서 감
사드리면서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 우리에게 더 적합한 것임을 조금도 의심치 말
취하신 인간의 의지를 바꾸시고는 덧붙여 즉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의 뜻대로 하소서." 바로 이 때문에 "한 사람의 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된 것입니다." (「프로 바에
청해야만 타당한 청원이 됩니다. 이 복된 삶을 얻은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 전부를 갖게 되며, 따라서 타
당치 않은 것을 얻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의 상태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 속에 그것을 청할 지라
도 우리는 무엇을 응당히 청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실제 그대로 생각해 내지 못
할 때 그것에 대해 분명히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모두 실
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는 우리의 나약성을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영께서 가르쳐 주신 일종의 "유식한 무지" 가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령께서 하느님이 아니신 것처럼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
서 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 하신다." 라는 말씀은 성도들이 기도하게끔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도 있는데, 이 말씀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시험해 보시려 하는 것은 당신께서 사람의 마음을 " 아시기 위해
서' 라는 의미가 아니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알게끔"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르고 있는 것을 욕구할 때 어떻게 그것에 대하여 기도 속에서 이야기 할 수 있
겠습니까? 그것이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면 틀림없이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을 보았
고백록
67. 영원 한 지혜 를 찾읍 시다 .
그녀가 이승을 하직할 날 - 우리는 모르는 채 당신만이 아시던 그날 - 이 가까워 왔을 때, 정녕코 그것은
당신의 그윽한 손길로 마련된 줄 아옵니다만 우연히도 그와 나는 단 둘이서 창문에 기대고 서 있었습니다.
다만 둘이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잊고, 눈앞의 일에만 열중하고
우리는 진리이신 당신의 어전에서 더듬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 성자들의 영생, "눈에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고,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르지 않은" 그 미래의 생활을 우리는 차라리 마음의 입을 벌리고 당
내 할일이 또 무엇이겠느냐."
이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런지 닷새가 다못가서 아니, 더래야
다. "보아라,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어서 또 우리 둘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몸뚱이사 어디다 묻든
지 그 일로 해서 조금도 걱정들 말거라. 한 가지만 너희한테 부탁한다. 너희가 어디 있든지 주님의 제단에
68. 오, 영원 한 진리 여, 참스 런 사랑 이여 , 사랑스 런 영원 이여
당신을 누리기에 알맞은 힘을 기르고자 방법을 모색하여 보았으나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 만물
나이다.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부르신 그분께서 - 말씀이 살이 되심으로써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69. 그리 스도 께서 는 모든 이 를 위해 죽 으셨 습니 다.
참다운 중개자는 은밀한 당신의 자비로써 겸비스런 자들에게 보내 주시고 보여 주신 그분! 우리로 하여
을 죄인들과 아니 죽으시는 거룩한 님과의 사이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인간과 더불어 죽으시되 하느님과
같으심을 강탈로 여기지 않으신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시었으니." 그
기에 사제! 당신께로 조차 나시사 우리를 섬김으로써 우리를 종에서 자식으로 당신께 바치신 분이 그분이
치소서, 낫우어 주소서. 당신의 외 아드님,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있는" 그분께서 그 피
제 7 장
기타 저적
70. 하느 님의 은 총을 깨 달읍 시다
바울로 사도가 갈라디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그들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을 율법
의 죄를 드러내 주기만 하고 없애 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하여 활동하는 신앙의 은총만
대교 예배의 외적 예식의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복음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습
니다.
이 때문에 유대교에서 개종한 이들은, 사도 바울로가 이방인들이 개종할 때 그들에게 유다의 관습을 따
들인 이방인들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서는 그들에게 복음은 아무 유익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인 것
처럼 행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편지에서 말해 주고 있듯이 바울로 사도는 베드로 사도더러 이중적인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합니다.
마서에서는 이 문제에 있어 뚜렷한 결정을 내리면서 유대교에서 개종한 신자들과 이방출신의 신자들 간에
서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하느님을
이 서두의 말씀은 이 문제점을 간단한 말로 넌지시 비쳐줍니다. 앞에 나오는 인사의 말씀에도 자기가 사
에서 (P raef atio )
71. 여러 분 안에 그 리스 도가 형 성되 기를 기 원합 니다
사랑을 상기시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잘못한 일은 조금도 없습니다." 말하자
이어서 바울로는 그들을 "나의 자녀들" 이라고 불러 그들이 바울로 자신을 그들의 아버지로서 본받게 합
니다. 또 계속하여 말합니다.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은 은총의 자유로 부름 받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업적이 이
룬 무가치한 공로를 자랑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공로는 하느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그런 영적인 사람
스도께 결합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
인간 존재들은 형성되기 위해서 어머니의 모태에서 잉태되고, 일단 형성되면 해산의 고통을 겪는 가운데
태어납니다. 그래서 바울로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근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해산의 고통은 그들이 유혹이라는 위협으로 미혹될 위험이 있는 동안 계속됩
니다. 그리고 바울로가 그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느끼고 있는 이 해산의 고통은 "그들이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서 벗어나 성숙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래서 바울로가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가 형성될 때까지 나는 또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겠습니다."
참된 제사란 하느님과 거룩한 친교를 이루게 하고 또 우리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는 그 최고의
선에로 향해진 온갖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웃을 돕고자하는 자선 행위도 하느님을 위해서 하지 않는다면
참된 제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사란 사람이 거행하거나 바치는 것이지만 신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옛
라틴 저술가들은 제사를 "신적인 일" 이라는 명칭으로 불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성되고 자기 자신
봉헌이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행하는 자선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네 자신을 하느님의 마음에
가 됩니다. 자선 행위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비참에서 건져내고 이로 인해 우리를 행복에로 이끄는 일입
십자가에 바쳐지신 대사제께서는 보편적 제사로서 속량된 온 도시 곧 사도들의 공동체를 하느님께 바치십
배로서" 바치고, 현세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뜻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과대평가
합니다 .
그리스도교 백성들은 순교자들을 본받을 마음을 북돋우고 그들의 공로를 함께 나누며 그들의 기도가 주
는 도움을 받고자 순교자들을 기억하면서 경건한 예식으로 그들을 경축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무덤에다
제대를 세울 때 그것을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에 대한 기념으로 하느님에 바치는 것입니
다.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 중 누가 "이 제사는 베드로 당신께, 바울로 당신께, 또
음으로 그들을 공경합니다. 그러나 모든 투쟁을 이겨내고 승리자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그 순교자들에
니다. 그리스어로 "라트리아" (경배)라고 하는 흠숭은 하느님께만 바치고 또 하느님께만 바쳐야 한다고 우
미사에서 바치는 제물은 "라트리아" 즉 경배로서 바치는 제물입니다. 그래서 우상들에게 바치는 제사는
말하면서 그들을 납득시켜 제사를 바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지만 참아 주어
슬러」 에서 (L ib . 2 0,21)
74. 예수 그 리스 도는 인 성으 로 말하 면 다윗 의 후손 으로 태 어나 신 분이 십니 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이신 인간 그리스도 예수",우리 구세주는 하느님의 예정과 은총의 찬란한
빛이십니다. 인간 예수가 지니신 그 위대한 지위는 그분이 과거에 행하신 어떤 선행과 또 그분이 지니신
신앙의 공로로써 얻은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성부와 함께 영
원하신 말씀께서 한 위격 안에서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는데 그 사람은 무슨 공로로 하느님의 외 아드
님이 되셨습니까?
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 예수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외
우리는 은총의 원천이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은총은 지체들에게 그
예수는 같은 은총을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게 하는
느님의 아들이 되시기로 예정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하
말씀께서 취하신 인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아들이시고 인성을 취하신 그 하느님의 외 아드님으로 말미암
입니다.
인성이 이렇게도 위대하고 높게 이렇게도 탁월한 위치로 예정되었으므로 그보다 높은 위치로 드높여질
수 없습니다. 한편 신성은 나약한 인성을 위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자신을 그 이상 더
낮추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로 예정되신 것처럼 많은 수효의 우리도 그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의 공로는 여기서 머리를 숙이고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시고 홀로 주님이
스도의 독특한 탄생이 그분이 이미 지니신 공로에 의한 것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
체들인 우리도 그분께서 이미 지니신 공로로 인해 재생했다는 것을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인 들에
대한 예정 」Cap. 1 5,30-3 1)
목 록 (주제 순위)
대림 (강생 )
40. 신적 의사
(「시편 주해에」에서 Ps. 103,5-6)
사순기
부활
1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창조
(Sermo 8, in octava Paschae 1.4: PL 46,838-841)
싱앙 생활
8.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Sermo 171,1-3.5: PL 38,933-935)
20. 우리 안에 있는 주님 집의 건축과 축성
(Sermo 336,1.6: PL 38[edit. 1861], 1471-1472.
1475)
** 나는 수도생활을 선택한다.
(Sermo 355.2: PL 38,.... )
53. 완전한 사랑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84,1-2: CCL 36,536-538)
참회
55. 새 계명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65,1-3: CCL 36,490-492)
56. 두 가지 생활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124,5.7: CCL 36,685-687)
57. 사랑의 이중 계명
「요한복음 주해」에서(Tract. 17,7-9: CCL 36,174-175)
기도
63.주의 기도
「프로바에게 보낸 편지」에서(Ep. 130,11,21-12,22: CSEL 44,63-64)
교회
순교
73. 우리는 사랑에서 나오는 존경심과 그들의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순교자들을 공경
합니다.
「파우스투스를 거슬러」에서(Lib. 20,21: CSEL 25, 562-563)
섬김
** 나는 수도생활을 선택한다.
(Sermo 355.2: PL 38,.... )
31.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아라.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20-21: CCL 41,546-548)
36. 바울로의 모범
「목자들에 대한 강론」에서 (Sermo 46,4-5 CCL 41,53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