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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기독교강요 강설 (124), 3권 5장 3-5절, 그리스도의 공로로 충분함
(양재교회) 기독교강요 강설 (124), 3권 5장 3-5절, 그리스도의 공로로 충분함
기독교강요 강설(124)
3권 5장 3-5절
1) 515) Leol, Letters cxxiv. 4; clxv, 5 (MPL 54, 1064f; tr, NPNF 2 ser, XII, 107); clxv, 5 (MPL 54. 1163);
Leol. Sermons Ixv, 3 (MPL 54, 359f.). Quot, Battles tr., n. 6,
2) 516) Augustine, John's Gospel Ixxxiv, 2 (MPL 35, 1847; tr, NPNF VII, 350); Against Two Letters of the
Pelagians IV iv. 6 (MPL 44, 613; tr, NPNF V, 419), Quot, Battles tr.. n. 7.
3) 517) "martyres plus morte sua Deo praestitisse ac meritos esse quam sibi opus esset, tantamque illis
me ritorum largitatem superfuisse quae in alios redundaret, Ne igitur supervacuum sit tantum
bonum, commisceri eorum sanguinem sanguini Christi, et ex utroque thesaurum ecclesiae confici, ad
remissionem et satisfactionem peccatorum,"
4) 518) Cf. Acquinas, Summa Theol, III. Suppl, xxv, 1, 2; Eck, Enchiridion, ch. xxiv (1533); Fisher, Confir
tatio, pp, 304ff, Quot, Battles tr,, n, 8,
님의 진리를 입증함이, 현재의 삶을 경멸함으로써 자기들이 더 나은 삶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함이 자
기들의 한결같음으로 적들의 완고함을 깨뜨리고 교회의 믿음을 확증함이 진정 아무 열매가 없는 것인가?
분명 그들은 만약 한 분 그리스도만이 대속자시라면, 오직 그만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면, 오직
그만이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제물로 드려지셨다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
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그들의 침상에서 죽었을지라도 승리의 면류관을 받았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수고를 다 하였으므로 그 피가 그저 아무것도 배태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열매 맺을 수
없다면 이는 하나님의 의에 제대로 부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하나님이 자기가 베푸신 선
물의 분량에 따라 자기 종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방법을 알지 못하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다. 여
하튼 이러한 그들의 승리로 인하여 그들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게 되었으니, 이로 말미암아 교
회가 일반적으로 받은 혜택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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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울이 자기를 드려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의 육체에 채운다고 한 말씀을 얼마나 사악
하게 왜곡하고 있는가! (참조, 골 1:24) 519)5)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부족함과 그것에 대한 채움은 구속과
무릎과 속죄의 작용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모든 성도가 육체 가운데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감당해야 할 고난을 가리킨다. 520)6)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 안에서 한 번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께 이제는 자기 지체들 안에서 날마다 당하셔야할 고난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우리가 영예를 받을 가지가 있게 하신다. 그는 우리의 고난을 자기의 것으로 헤아리시고 그렇게 삼으신다.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골 1:24) 라고 덧붙였을 때 이것은 구속을 위한다거나, 화목을 위한다거나, 교회의
무릎을 위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세움과 진보를 위한다는 뜻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다른 곳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 2:10). 그리고 고린도 사람들에게 자기가 당한 환난을
무엇이든 다 참아낸 것이 그들의 위로와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고 썼다(고후 1:6).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자기가 “교회의 일꾼"(골 1:25; 참조 롬 15:19)이 된 것은 대속을 위함이 아니라
자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고 덧붙인다.
만약 나와 다투는 자들이 여전히 다른 해석자를 필요로 한다면 그들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듣게 하
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머리라는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안에만 있고 전체 몸
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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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회 안에 있다. 521)7) 이러하므로 바울은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이에 대해서 듣고 있는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지체에 속한다면 당신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닌 자들을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다." 참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른 곳에서 사도들이 교회를 위하여 겪은 고난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는 내가 당신에게 나아가는 문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리스도
의 피로 미리 준비된 그의 양이기 때문이다(참조 요 10:7). 나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에 의해서
선포된 당신의 값을 인식하라."522)8)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그리스도가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은 만큼 우
이러한 역겨운 것들은 넘어가자. 그렇다면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주님이 복음의 말씀으로 전해
지길 원하셨던 그 은혜를, 교황에게 가르쳐 납과 양피지에 담도록 했는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거나 아니면 면죄부가 거짓이라는 사실이다. 바울이 증인이 되듯이, 그리스도는 복음 가운데서 하늘
의 풍성한 은총과, 자기의 모든 공로와, 자기의 모든 의, 지식, 은혜와 함께 하나도 예외 없이 우리에게 주
어지셨다. 524)10) 바울은 화목의 말씀이 일꾼들에게 맡겨진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행하게 하
셔서 그를 대신하여 간청하게 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고후 5:18-21).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
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
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0-21).신자들은 그리스도와의 교제'(κοινωνια)의 가치가,
동일한 사도가 증언하듯이, 우리가 누리게끔 부여된 복음 가운데 나타남을 알고 있다. 반면에 면죄부는 할
당된 어떤 분량의 은혜를 교황의 보관 창고로부터 끄집어내서 납, 양피지, 심지어 어떤 장소에 부착시킴으
로써 그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찢어 낸다.
면죄부의 기원에 대해서 누가 묻는다면, 그것이 악용된 것은 이전에 통회하는 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
을 정도의 엄격한 보속이 명령되었던 때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부과된 회개가
너무나 과중하여 측량할 수 없을 만큼 중압감을 느끼게 되자 교회로부터 그것을 완화할 방도를 찾았던 것
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허락된 사함이 면죄(免罪)525)11)라고 칭해졌다. 그러나 그들이 보속을 하나님 쪽으
로 옮기고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스스로를 속하기 위해 치러야 할 보상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와
동시에, 면죄를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형벌을 우리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속죄의 처방으로 526)12)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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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버렸다.13) 그들은 수치를 모르는 그 뻔뻔함으로 우리가 언급한 부분에 대해 이러한 신성모독을 조
장했기 때문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