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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강설(107)
범위: 3권 3장 22-23절
제목: 성령을 모독하는 죄
본문: 마태복음 12:21-23

22. 용서받을 수 없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결코 사람이 주어지지 않을 무서운 범죄의 특성을 파악해 보아
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딘가에서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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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은총에 대한 회의가 수반된 죽음에 이르기까지 꺾이지 않는 완고함이라고 325)1) 정의한다. 326)2)
그러나 이런 정의는 이 죄에 대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는 없을 것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마
12:31-32) 충분히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말씀이 헛되다고 하든지 아니면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이 세상에서 지을 수 없다고 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가 참되다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그 죄를 범하지 않으면 그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에게 부여된 은혜를 시기하는 사람은 성령에 거슬러 죄를 짓
는다고 유추한다. 327)3) 그들이 어디에서 이러한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확고한 증언들로 지지되는 참다운 정의를 주장해서 그 자체로 다른 모든 견해를 극복
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눈부셔 무지를 핑계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의에 찬 악의를 품고
그 진리를 거역하는 것은 성령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이라고 328)4) 나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자
기가 말씀하신 것을 설명하시면서 즉시 다음과 같이 덧붙이시기 때문이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
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329)5)....……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참조
눅 12:10; 막 3:29). 마태는 '영을 거스르는 모독'(blasphemia in spiritum) 대신에 '모독의 영'(spiritus
blasphemiae)이라고 기록한다(마 12:31)330)6)

그런데 아들에게 모욕을 퍼붓는 사람이 어찌 그와 동시에 성령을 왜곡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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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확실히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여 미련하게 부딪히는 자들, 무


지하게 그리스도께 악행을 일삼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제시되어 마음에 주어지게 되면 그것을 소멸시키려

1) 325) "obstinatam ad mortem usque pervicaciam cum veniae diffidentia,"


2) 326) Augustine, Unfinished Exposition of the Epistle to the Remans xxii (MPL 35, 2104);
Letters clooxv. 11. 49 (MPL 33. 814; tr, FC 12, 188f). Quot, Battles tr.. n. 44.
3) 327) Augustine, Sermon on the Mount 1, xxii, 73 (MPL 34, 1266; tr, NPNF VI, 30f.); Bede,
Exposition of Matthew's Gospel II. 12 (MPL 92. 63), Quot, Battles tr., n. 45.
4) 328) "in spiritum sanctum peccare, qui divinae veritati, cuius fulgore sic perstringuntur ut
ignorantiam causari nequeant, tamen destinata malitia resistunt, in hoc tantum ut resistant," ,"
5) 329) "qui autem blasphemaverit contra spiritum
6) 330) 이는 프로벤(Johann Froben, 1460-1527) 판(Basel, 1538) 마 12:31 의 본문과 일치한다. 한편
이에 대한 헬라어 본문은 TOO meat Bangula'인데, '성령 훼방하는 것'(blasphemy against the
Spirit.RSV)이란 의미다. Quot, Battles tr., n, 46.
하지 않는 자들, 그 아들이 기름부음 받은 주님이심을 알게 되면 한마디라도 이를 곡해하려 들지 않는 자
들, 이런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께 죄를 짓지만 성령을 왜곡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많은 사
람들이 복음적 가르침에 대해서 극악한 저주를 퍼붓고 있지만 만약 그것이 복음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준비가 되어 마음을 다하여 그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비난하고 헐뜯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양심에 확신하면서도 그것을 헐뜯는
것을 그치지 않는 자들은 성령을 모독하고 있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의 역사에 따른 조명
에 맞서 다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그러했는데 그들은 스데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에 대적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몸부림을 치며 거역하였다(행 6:10). 의심할 바 없이 그들 가
운데 많은 사람들은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사악한 불
경건에 빠져서 하나님 자신에 맞서 분노를 발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즉 그들이 맞선 대상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가르침이었다. 그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주님이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이 이러한 부류에
들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내팽개치고 주님을 "바알세불"(마 9:34 12:24)이라는 이름으로 비방했다. 그
러므로 사람의 무모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에 모욕을 가하는 일이 일어나는 곳에는 모독의 영이 있다. 바울
이 믿음 없어 알지 못하고 행하였으므로 끝내 그의 자비를 얻게 되었다고 가르칠 때(딤전 1:13) 이를 암시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일로 주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불신앙과
결합된 무지가 은총을 얻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면, 지식이 불신과 한편이 되는 경우에는 은총의 여지는 어
디에도 없다. 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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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고의로 거부하는 회개로 돌이킬 수 없는 죄

그러나 만약 당신이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게 된다면 사도는 한 번 혹은 두 번 하는 특별한 타락에 관해서
가 아니라 유기된 자들이 구원을 버리고 멀어지는 보편적인 반역에 관해서 332)8) 말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자들에게 용서를 베풀지 아니하심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요일 2:19)라고 전한다. 즉 택함 받은 사람들
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요일 2:19).

여기서 그는 한때 기독교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상상하는 자들을 겨냥하여 말씀


을 전하고 있다. 그는 이 거짓되고 위험한 견해를 버리라고 권하면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대해서 알면서
도 그것을 자기 뜻으로 배척하는 자들은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333)9) 더할 나위
없이 참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배척하는 자들은 단순히 해이하고 방자한 삶을 살면서 주님
의 말씀을 어기는 자들이 아니라 고의로 그의 가르침 전체를 거절하는 자들334)10)이다.

그러므로 맹점은 '타락한다'는 말과 '죄를 짓는다'는 말(히 6:6 10:26) 자체의 이해에 있다. 노바티아누스주
의자들은 '타락한다'는 것을 훔치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율법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절도와
간음을 금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다. 335)11)

7) 331) "Si ignorantia cum incredulitate iuncta fecit ut veniam obtineret, hinc sequitur, non
esse veniae locum ubi scientia ad incredulitatem accessit,"
8) 332) "de particulari uno lapsu vel altero, sed de universali defectione loqui qua se reprobi
a salute abdicant,"
9) 333) "non patere lis reditum ad Christi communionem, qui eam scientes volentes
proiecerint."
10) 334) "qui totam eius doctrinam ex professo reliciunt."
11) 335) 키프리아누스(Cyprianus, 200-258)는 노바티아누스파가 배교나 타락을 성령을 모독하는 죄와
그러나 나는 이전에 언급되었던 것들과 반대되는 모든 것이 반복되어야 하는 무언의 대조가 근저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표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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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특별한 어떤 악에 대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전체적인 돌이킴, 달리 말하면 전인


(全)의 배교 336)12)이다. 그러므로 사도가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히 6:4-6)에 대해서 전할 때, 그들은 성령의
빛을 고의적인 불경건으로 질식시키고, 하늘의 은사의 맛을 내뱉어 버리며, 자기들을 성령의 성화로부터
소원하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짓밟는 자들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경건의 고의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하여 다른 본문에서는 “짐짓"337)13) (히 10:26)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진리에 대한 지식을 받은 후에, 원하여서 죄를 짓는 자들에게는 어떤 제물도 남아 있지 않
다고 말할 때(히 10:26),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불법을 속하기 위하여 영구적인 제물이 되신다는 사실이 부
인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서신 거의 전부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면서 이를 훌륭하게 선포하고 있
다. 사도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제물이 부인될 때 어떤 다른 제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나아가 복음의
진리가 고의로 거절될 때 그리스도의 제물도 용인되지 않는다. 338)14)

동일하게 여긴다고 비판한다(MPL 35, 2304), Cf. O. D. Watkins, A History of Penance 1. 17,
132-221. Quot Battles tr.. n. 47.
12) 336)"non particulare aliquod vitium, sed universalis aversio a Deo, et totius, ut ita loquar,
hominis apostasia."
13) 337) "voluntarie."
14) 338) "nullam aliam restare dicit ubi ab ea[hostia Christi] discessum est, Disceditur autem
abnegata ex professo evangelii veri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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