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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대하여.

프롤로그.

1. 우리는 이전 책들에서 많은 문제들 중에서 이방인들의 우상과 관련된 오류와 미신


들에 관한 몇 가지 문제점들을, 곧 어떻게 그들이 처음에 오류와 미신들을 우연히 발
견하게 됐는지, 인간들이 스스로 악의에서 우상 숭배를 의도했는지에 대한 문제점들
을 충분히 논구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의 말씀의 신성에 대하여 그리고 그분의
만들과 관련된 섭리와 권능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들도 역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좋으신 아버지께서 그분을 통해 만물을 배열하시고, 만물은 그분을 통
해 움직여지며, 그분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도 언급했습니다. 복된 자
(Macarius)1)이며 ,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여! 자, 이제부터 우리는 경건한
신앙에 따라 말씀의 인간되심도 설명하고, 그분이 우리 가운데 신적으로 현현하신 것
에 관해서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유대 인들은 비방하고, 그리스 인들은 조
롱하는데, 우리는 경배합니다. 이것을 위해 말씀의 외관상 낮아지심은 당신에게 말씀
에 대해서 더 크고, 더 높은 경외심을 갖도록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불신자
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면 될수록, 말씀은 자신의 신성에 관해서 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말씀은 인간들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가능
한 것으로 입증할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불쾌한 것이라고 조롱하는 것도 자신의 선하
심으로 존귀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인간들이 말씀의 신성과 권능
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외관상 낮아지심으로 우상에 관한 망상을 쳐부
수고, 조롱하는 자들과 불신자들을 부지불식간에 회심시킨다는 점에서 인간들이 자신
들의 지혜로 [성육신을] 인간적인 연약함이라고 조롱하는 것을 자신의 권능을 가지고
신적인 것으로 입증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아주 높고, 아주 위대한 아버지
의 말씀이 육체로 나타나심에 대한 이유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구세주
께서 육체로 태어나신 것이 그 자신의 본성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히려 당신은 그가 본성과 로고스에 따라서는 비육체적일지라도, 아버지
의 인간 사랑과 호의에 따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육체로 우리에게 나타나셨

1) '축복받은 자'라는 뜻의 마카리오스는 비록 그 이름이 다소 후대에 이집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드문


이름이 아닐지라도, 아마도 특징인은 아닌 것 같고, '이교도 독자'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것은 누가
복음의 데오빌로(Theophilus)라는 표기에서 암시된 바와 같은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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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주제를 다룰 때, 이 세상의 창조와 그 창조
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태
초에 만물이 회복됨은 세상을 만드셨던 바로 그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적
절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바
로 그 말씀 안에서 세상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세상을 만드시고 만물을 지으신 것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으며, 각자 자


기가 좋아하는 대로 법칙을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이 만물은 스스로 존재하
게 되었고, 우연히 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에피쿠로스학
파2)가 그 경우인데, 그들은 분명한 사실과 경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조적으로 우주
적 섭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야기한 대로 모든 것이 그
자체에서 그리고 목적과 무관하게 비롯되었다면, 모든 것들은 비슷하고 구별할 수 없
는 단순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체의 통일성의 측
면에서 만물은 태양, 또는 달이었을 것이며, 인간의 경우에는 전체가 손이거나 눈, 또
는 발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런 경우가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는
태양과 달과 지구의 차이점을 보며, 다시 인간의 육체의 경우에는 발과 손과 머리의
차이를 압니다. 자, 이처럼 서로 독립된 배열은 그들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만물을 지으시고, 정렬하셨던 하나님을
추론할 수 있는 원인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 인들 사이에서
판단된 바에 따르면, 플라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은 시작이 없이 선재(先
在)하는 질료로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좌우지간 목수가
일을 하기 위하여 그의 손에 이미 나무가 있어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들
은 그렇게 말할 때, 하나님에게 결점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
면 만일 하나님 스스로가 질료의 원인이 아니라 기존의 물질로만 사물들을 만들었다
면, 하나님은 물질이 없이는 어떤 것을 생산할 수 없기에 자신의 결점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목재가 없이는 요구된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는 목수의 결
점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령 질료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도 만
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 하나님이 창조 능력을 다른 어
떤 근원, 곧 질료에 의존하고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창조주요 조물주라고 부
를 수 있을까요? 그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론대로라면 하나님은 기계공
에 불과할 뿐이지, 무로부터의 창조주는 아닐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일 하나님
이 이미 존재하는 질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셨다면, 그 자신은 질료의 원인은 아닌 것
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은 창조된 것들이 번갈아 창조되었던 것의 질료를 만드
신 분이 아니라면, 어떤 의미로든 조물주라고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단

2) 에피쿠로스(대략 주전 342-272)는 철학 학파의 창시자로서 이 세상의 근원을 원자로 보았고, 신들은


세상의 창조나 유지, 또는 인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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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은3) 그들이 사용하는 말에서조차도 극심한 무지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
버지와는 다른 만물의 조물주를 상상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유대 인
들에게 "태초에 사람을 지으신 이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라"라는 것
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고 말씀하셨고, 또한 창조주를 언급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나님
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4) 그러면
그 인간들이 어떻게 창조는 아버지와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또는 예외를
두지 않고 말하는 요한[복음 기자]의 말대로, 만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
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5)면, 어떻게 조물주가 예수 그리
스도의 아버지와는 구별되는 다른 존재일 수 있겠습니까?

3.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런 쓸모없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가르침과 그리


스도에 대한 신앙은 그들의 어리석은 말들을 무신론이라고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모
든 일에는 사전에 고려된 계획이 있는 법이기에, 그들은 만물이 자발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는 하나님은 결점이 없으시기 때문에 선재하
는 어떤 것도 없이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최초로 모세를 통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6)고 말씀하셨듯이, 이 우주를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존재하도록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로 가장 교훈적인 헤르마스의 목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어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조성하셨으며,
무로부터 존재하도록 만드셨느니라."7) 그것에 대해서 바울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타나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8)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
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선의 근원이십니다. 또는 선하신 그분
은 어떤 것에서도 인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꺼리지 않는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무에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은 만물 중에서 지상의 모든 것보다 특별히 인간들을 긍휼히 여기셨을 때, 그리고 인
간들은 본래적인 조건들 때문에 하나님 안에 계속 머무를 수 없다는 인간들의 무능력
을 인지하셨을 때, 인간들에게 더 큰 선물을 주셨고, 지상의 모든 비이성적인 피조물
들을 창조하셨듯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말씀의 능력까지
도 할당해 주시면서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말씀의 그림자
를 갖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이성적인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인간들은 낙원의 성

3) 여기서는 영지주의자들과 미니교도들을 의미한다.


4) 마태복음 19:4-6.
5) 요한복음 1:3.
6) 창세기 1:1.
7) 『헤르마스의 목자』 26, 1(계명 Ⅰ). 아타나시오스는 『헤르마스의 목자』를 구약의 외경들과 『디다케』
등과 더불어 같은 목록에 넣는 일에 익숙했는데, 물론 성경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교훈적인 독본으로
그렇게 했다(참고 『아타나시오스의 부활절 편지』 39).
8) 히브리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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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에게 속한 덕스러운 삶을 살면서 항상 은총 속에 머무를 수 있을 것입니다.9) 그
러나 다시 한 번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양쪽으로 흔들릴 수 있는지를 알았
을 때, 미리 율법과 배정해 두셨던 장소에 의해서 인간들에게 주어진 은총을 확고히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을 자기 정원으로 데리고 오셔서 율법을 주셨
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만일 인간들이 은총을 유지하고 선에 머물러 있다면, 낙원에서
슬픔이나 고통이나 걱정이 없이, 게다가 천국에서 불멸에 대한 약속을 지닌 채 여전
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만일 인간들이 범죄하고 제자
리로 돌아가서 사악하게 된다면, 더 이상 낙원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죽음
과 사멸 속에 거하도록 쫓겨난 채 본성적으로 자신에게 속한 죽음에서 사멸을 초래하
고 있었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하는 경고입니
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
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10) 그러나 "반드시 죽으리라"
라는 말에서 그 밖에 단순히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사멸 속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도 의미할 수 있습니까?

말씀이 오심

4. 아마도 당신은 그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말씀의 성육신에 대해서 말


하는 것을 꺼낸 후에, 우리는 지금 인류의 기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적절하게 우리의 논고의 목적에 부합합니다. 왜냐하면 구세주께서 우리 가운데
현현하신 것에 대해서 말하려면, 우리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도 역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이유가 우리 때문이었음을, 그
리고 우리의 범죄가 말씀의 자비를 불러일으켰음을,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돋는 것과
우리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 이 두 가지를 서두르실 수밖에 없었음을 당신이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성육신에 대하여 말하자면, 우리가 목적이었고, 우
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은 나타나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태어나실 만큼 애정
을 기울여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이 불멸에 거
하기를 원하셨는데, 인간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을 경멸하고 거부하여 스스로 악을
꾸미고 획책함으로써(전에 다른 강론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습니다), 자신들을 위협하
는 죽음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들은 [원래] 창조된 상태에 머무르지
못하게 되었지만,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서 타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마
치 군왕처럼 그들에 대한 지배력을 지녔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위반은 인간들을 자
연적인 상태로 되돌려 놓아서, 예상하다시피, 인간들은 무로부터 비롯된 존재였던 것
과 똑같이 마침내 무(無)속에 빠져서 사멸을 찾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인간이
비존재라는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로부터 말씀의 현존과 자비로 존재로 부름을 받았다

9) 로고스(Logos)와 로기코스(Logikos) 사이에 친밀성이 있다. 신적 말씀, 또는 이성에 참여함으로써 인


간은 참으로 이성적으로 된다.
10) 창세기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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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빼앗겼을 때 그리고 없었던 상태로 되돌아갔을
때 - 악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선하기 때문에 - 인간들은 존
재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들의 존재가 비롯되었기에 영원히 자신들의 존재를 빼앗
긴 채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들은 붕괴되고 죽음과 사멸
에 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이상, 본
성상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하나님과 닮은 덕분에(그리고 만
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유지함으로써 이 유사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면),
인간은 자연적인 사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멸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서에서 "
계명에 주의하는 것은 불멸을 보장받는 것이다."11)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불멸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처럼 살 것이며, 내가 생각한 성경 구절은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
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12)

5.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무로부터 창조하신 것만이 아니라 말씀의 은총에 의해서 값


없이 하나님과 조화 속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영원한 것들을 거부
하고 사탄의 조언으로 썩어질 것들로 향했으며, 죽음에서 자기 자신의 타락의 이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곧 내가 전에 말한 바대로 인간은 본성적으로는 타락할 수 있지만,
말씀에 참여로부터 따라오는 은총으로는 자연 상태를 벗어나서 선에 거했습니다. 지
혜서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자신의 영원한 형상대로 지으
셨으나, 사탄의 시기로 말미암아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느니라"13)고 말하였듯이 인간
들과 함께하는 말씀 때문에 인간들의 자연적인 타락조차도 인간들에게 접근하지 못했
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가 버리고 인간들은 죽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간들의 계명
위반 때문에 타락은 인간들에게 더 많은 이익인 거서처럼 신성을 위협하기 때문에,
사멸성은 전 인류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지닌 지배권을 더 많이 취하면서 인간들을 압
도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악행을 어느 정도에서 잠시도 멈추질 않았기
때문이지만, 점점 급하게 서두르면서 모든 한계를 넘어 버렸습니다. 곧 인간들은 사악
함을 고안해 냈으며, 자신들에게 죽음과 타락을 불러들였습니다. 반면에 훗날 잘못된
길로 빠지며, 모든 무법을 능가하며, 어떤 악도 주저하지 않았지만, 연달아 모든 새로
운 악의 방식을 궁리하며, 죄를 짓는 일에 만족할 줄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
면 어디에서나 간통과 도둑질이 있었으며, 온 세상이 살인과 약탈로 가득 찼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타락과 부정을 위해서 율법에 조금도 주의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든, 전체적으로든 어디서나 모든 범죄가 이루어졌습니다. 도시들은 다른 도시들과 전
쟁을 했고, 민족들은 다른 민족에 대항했으며, 온 세상 사람들은 소동과 투쟁 중이었
으며, 각자가 무법적인 행동으로 동료들과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와 그리

11) 지혜서 6:18("불멸"은 문자적으로 '썩지 않음'을 뜻한다). 참고 지혜써 13:1의 "존재하는 하나님을
"(him that is).
12) 시편 82:6-7.
13) 지혜서 2: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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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도의 증인들이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
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14)고 말했듯
이, 도리에 어긋난 어떤 범죄도 그들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6. 이런 이유 때문에, 곧 죽음은 인간을 사로잡았고 타락이 그들 위에 머물렀던 것


때문에, 인류는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이성적인 인간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고, 하나님의 작품이 해체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이, 그때부터 불법적으로 얻은 죽음이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
이며,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율법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리고 실제로 그 결과는 곧바로 어처구니없었으며, 꼴사나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어처구니없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명령을 어기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규정하셨고, 명령의 위반 이후에 인간은 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파기되어
버렸을 때, 하나님은 잘못됨을 깨달으신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
간은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죽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진실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꼴사나운 것은 예전에 말씀에 참여하면서 이성적으로
창조된 피조물들이 파멸되며, 타락으로 인해서 비존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
다.
왜냐하면 사탄이 인간들에게 행한 속임수 때문에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들이 쇠약해지
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간들의 부주의 때문이
든, 악한 영의 속임수 때문이든 하나님의 솜씨가 인간들 사이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
다는 것은 최악입니다. 그래서 이성적인 피조물들이 약화되고 파멸의 과정에 있을 때,
선하신 하나님은 대체 뭘 하실 참이었습니까? 인간들에게 만연된 타락과 인간들을 강
력하게 붙잡고 있는 죽음을 그냥 견디고 계십니까? 그리고 첫째로 그들의 이익은 대
체 어디에서 생겨나고 있었습니까? 왜냐하면 인간들은 일단 피조된 다음에 무관심과
파멸에 방치되는 것보다 차라리 [처음부터] 창조되지 않았던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
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만일 예전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
을 때, 자기 피조물이 파멸되도록 하락하신다면, 차라리 인간을 전혀 창조하지 않았었
던 것보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훨씬 덜 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
님이 인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도 약함을 부여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고, 무로부터 창조하셨을 때, 피조물들이 파멸된
다는 것은, 그것도 창조주의 목전에서 파멸된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타락의 경향으로 인간이 내맡겨진 경향으로 인간이 내맡겨진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꼴사나우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 때
문입니다.

14) 로마서 1: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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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러나 이런 결론은 반드시 효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편에서도 역시 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이의 제기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죽음과 관련해서
제정하셨던 율법에서 참됨을 드러내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아버지이신 하나
님이 우리의 유익과 보전을 위하여 거짓말쟁이로 드러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이 제기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가능한 경
로를 택하실 예정이셨을까요? 인간들에게 계명 위반에 대해서 회개를 요구하는 것입
니까?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합당한 것으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계명 위반으로 인해서 죽음을 얻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회개로 인해서 다시 한 번 물
멸의 길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로 회개는 하나님의 요구를 지키는 데 실
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일 인간이 죽음의 손아귀에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하나님
은 결코 더욱더 정직한 분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회개는 인간
을 본성적 상태로부터 불러내지 못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범죄 행위로부터 떨어져 있
게 할 뿐입니다. 이제 만일 필연적인 타락이 아니라 단순히 나쁜 행실이 문제였다면,
회개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인간들이 일단 범법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
의 본성이었던 타락에 관여하게 되었고,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에 있으면서 가지고 있
었던 은총을 박탈당했다면, 다음으로 어떤 단계가 필요했을까요? 또는 그러한 은총과
그런 철회를 위하여 태초에 무로부터 만물을 만드셨던 말씀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
엇이 요구될 예정이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다시 한 번 사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불멸하게 되며, 모든 인간들에 대한 아버지의 요구는 온전한 채로 남아 있을 예
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말씀의 존재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말씀만이
모든 것을 재창조하기에 자연적으로 적합했으며,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할
만하며, 아버지와 함께 모든 인간을 위하여 사자가 될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8. 그래서 이런 목적 때문에 무형의, 타락할 수 없는 그리고 비물질적인 하나님의 말


씀은 우리의 영역으로 왔지만, 이전에도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의 어느 부분도 말씀이 없는 곳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항상 존재하면서, 어디서든지 모든 것을 충만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를 보여 주기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방문하기 위하여 겸손하게 오십니다. 그리고
멸망하는 길에 들어선 이성적인 피조물들을 보는 것과 타락으로 인간들을 지배하는
죽음, 다시 말하자면, 계명 위반에 대한 위협이 타락에게 확고한 장악력을 주는 것을
보는 것도 역시, 그리고 율법이 완성되기 이전에 타락으로 끝내야 했던 것은 어처구
니없다는 점과 다시 한 번 사라지는 것의 부적당함을 보는 것, 곧 하나님 스스로 창
조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다는 점, 더 나아가 인간들이 지나치게 악하다는 것과 인
간들이 어떻게 조금씩 자신들에 대해서 관용할 수 없는 정도까지 악행을 증가시켰는
지를 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모든 인간들이 죽음의 형벌 아래 있게 되었
는지를 보면서, 말씀은 우리 인류를 긍휼히 여기셨고, 우리의 결함에 자애를 느끼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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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우리의 타락으로까지 자신을 낮추셨고, 죽음이 주인 노릇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
습니다. 혹시 피조물들이 멸망할까 봐, 아버지가 손수 지은 작품들이 무로 돌려질까
봐, 그는 스스로 육체를 입으셨고, 우리의 몸과 차이가 없는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말
씀은 단순히 몸을 입으려고만 했다거나, 단순히 모습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
다. 왜냐하면 만일 말씀이 단순히 모습을 드러내려고만 했다면, 어떤 다른 그리고 더
고상한 방식으로 신적 외관을 실현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15) 그러나 말씀은 우리
의 것과 같은 몸을 취하셨고, 단지 [외관상으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알
지 못하는 흠 없고 티 없는 동정녀로부터, 곧 청결하고 남자와의 성교로부터 정말 순
결한 몸으로부터 [왔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위대하시고 만물의 조물주이신 하나님
이 성전인 동정녀의 몸에 육체를 준비하셨고, 도구인 그 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셔
서 그 안에서 현현하셨고, 그 안에 머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
몸으로부터 취하신 것은 닮은 속성의 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죽음으로 인
한 부패의 형벌 아래 있기 때문에, 말씀은 죽음에게 모든 사람 대신에 육신을 넘겨주
었고, 아버지에게 바쳤습니다. 더욱이 그는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자애를 실천했습니
다. 첫째로 모든 존재가 말씀 안에서 계속 죽도록 되어 있었고, 인간의 파멸을 연루
시키는 율법은 원상태로 돌려질 것입니다(그의 힘이 주님의 육체 안에서 소진되는 한,
그리고 자신의 동료인 인간들에 대해서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는 한 그렇게 될 것입
니다). 그리고 둘째로 인간이 사멸로 향했기 때문에, 말씀은 인간을 다시 불멸로 되돌
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불로부터 지푸라기를 떨쳐 내듯이 인간들로부터 죽음을 떨
쳐 내시면서, 자신의 몸을 점유함으로써 그리고 부활의 은총으로써 죽음으로부터 인
간들을 소생시키셨습니다.

9. 왜냐하면 불멸의 존재인 그리고 아버지의 아들인 말씀은 죽음의 고통을 당할 수


없었던 반면에, 말씀은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인간의 타락이 취소될 수 없었을 것이
라는 사실을 지각하면서, 필수 조건인 죽음에 의한 것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말씀은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육체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있는대로
의 말씀에 참여함으로써 육체는 모든 사람 대신에 죽기에 합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
고 육체 안에 머무르기 위하여 왕림한 말씀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그런 까닭에 부활의 은총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오점으로부터도 정결한 제물이며 희생인 말씀이 취했던 육체를 죽음에
내줌으로써, 그는 곧장 동등한 것을 바침으로써 자신의 동료들로부터 죽음을 멀리 떼
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 위에 있는 존재인 하나님의 말씀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성전이며, 동시에 모든 생명을 위한 유형의 도구[=육체]를 바치면서 스스로 죽
음으로써 채무를 변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청렴결백한 아들은 모든
사람들과 유사한 속성으로 합류하시면서 부활의 약속을 통해 자연적으로 모든 이들에
게 청렴결백의 옷을 입히셨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으로 인한 실제적인 부패는 사람들

15) 말씀의 단순한 외관은 손쉽게 인간의 형태보다 더 한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 8 -
사이에 거하려고 왔던 말씀 때문에 사람들에 대해서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위대한 왕이 어느 큰 도시에 행차해서 어느 집을 거처로
삼았을 때, 그 도시가 왕의 높은 명예에 어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는 적군이
나 도적 떼들이 더 이상 도시로 내려와서 복속시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은 거기에 있는 외딴 집을 거처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권리가 주어진 생각입니다. 그래서 또한 모든 사람들이 왕과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의 영역에 왔고, 자신의 동료들 가운데 하나의 육체에서 거처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에 대한 원수들의 전 음모는 저지당했고, 이전에 인
간들에게 만연했던 죽음의 부패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파멸되었고,
주님이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이 없었기에, 죽음의 종국에 대처
하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입니다.

10. 이제 참으로 이 위대한 사역은 특별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잘 맞았습니다. 왜냐하


면 만일 어떤 왕이 집이나 도시를 지었을 때, 그곳이 동거자들의 부주의 때문에 도적
떼에게 포위당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동거인들의 부주의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고려하여, 복수하고 다시 자신의 것으
로 되찾아 옵니다. 지선(至善)의 아버지의 말씀인 하나님은 타락에 빠지는 자신의 작
품인 인류를 방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육체를 바침으로써 죽
음을 없애 버리는 동안에,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자신의 힘으로 회복시키시면서,
자신의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무관심을 바로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만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
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
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6)고 말하는
그들의 저작들을 우연히 발견한다면, 구세주 자신에 의해서 영감을 받은 저자의 손에
의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약간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맞보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고 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이신 하나님
이 필연적으로 성육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그러
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이 말을 가지고 히브리서 기자는 시작되었던 타락으로부터 인간을 되돌려 놓
는 것은 태초에 함께 창조하시기도 했던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
라는 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 자신이 육체의 외관을 취했듯이 자신의 육체처럼
다른 육체들도 희생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역시 성경

16) 고린도후서 5: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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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7)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그분은 우리에 대항하는 율법의
종부를 찍으셨고,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소망으로써 우리를 위하여 생명의 새로운 시
작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부터 인간들을 짓누르는 죽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반대로 인간을 만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죽음
이 파괴되었고, 생명의 부활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시는 것을 마음에 품었던 저 사람[사도 바울]처럼 말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18)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저주에 예속된 채로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일
어난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총괄적인 부활을 기다립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19) 하나님조차도 부활을 작업하셨고, 우리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구세주께서 인간이 되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서 우리 가운데 그분의 은혜로운 왕림하심이 발생
하는 것이 적합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11. 만물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인류를 지으셨을 때, 자신의
창조주를 스스로 알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어떤 생각도 가지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의 연약성을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은 창조되지 않았
던 반면에, 피조물들은 무로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비물질적인
반면에, 인간은 저급한 방식으로 육체에서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조
물들은 조물주를 이해하고 알 수 있는 능력에는 훨씬 못 미치면서 잘못을 했기 때문
입니다. [그런 창조주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인류에 대해서 연민을 가지고 계시
면서 혹시 인간들이 현재의 이익을 전혀 얻지 못할까 봐 자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인
간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피조물들이 창조주를 몰랐다면, 그들에게 어떤 유익
이 있었을까요? 또는 어떻게 그들이 자신들의 존재의 근원이었던 아버지의 말씀[과
이성]에 대한 지식이 없이도 이성적일 수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만일 인간들이 현세
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면, 인간들을 야수들과 전혀 구별할 수 없
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쎄, 그렇긴 하나, 만일 하나님이 인간들에 의해서 알려지
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도대체 왜 그들을 창조하셨던 것일까요? 그러므로 이것이 그
렇게 될까 봐 선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형상의 몫,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를 나눠 주셨고, 그들을 자신의 형상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형상을 감지
하는 은혜로, 곧 아버지의 말씀으로 인간들은 아마도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17) 히브리서 2:9, 10, 14, 15.


18) 고린도전서 15:21-22.
19) 디모데전서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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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조물주를 알면서 행복하고 참으로 축복받은 삶을 살 것
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완고함으로 자신들에
게 주어진 은총을 무시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했으며, 그래서 단지 하나님에 대
한 인식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꾸 하나씩 고안해 냈을 떄, 그들의 영혼을
흐리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진리 대신에 우상을 새겼을 뿐만 아니라
살아 계씬 하나님보다 나중에 생겨났던 것들을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을 조물
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20) 그러나 죄악의 경우는 인간들은 심지어 나무줄기와
바위와 모든 물질적인 대상들과 인간들에게조차도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양도했으며,
우리가 앞서 강론에서 말했을 때보다도 한술 더 떴습니다. 지금까지는 실제로 불경
(不敬)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면서 사탄들을 숭배하고, 신(神)들로 선언하는 데까지
진행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미쳐 날뛰는 신적 영감 아래 자
신들을 구속하면서, 마치 신들을 위한 화합이었듯이 야수를 바쳤고, 인간을 희생 제물
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들은 마술적 기교도 배웠으며, 몇몇의
장소에서 신탁은 인간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가시적이었던 것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출생과 존재의 영
향력을 별들이나 천체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릭 한마디로 말하면,
모든 것은 무신앙과 무법으로 가득했으며, 비록 하나님이 인간들의 시야에서 감추어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또
한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자신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인간
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와 방식으로 나타나셨습니다.

12.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의 은총은 그 자체로 말씀이신 하나님과 그 말씀을 통하


여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에 충분했었다는 사실에
서 보면, 인간들의 부주의를 위해서조차도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인간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면, 피조물들의 일들을 통하여 조
물주에 대한 무지를 모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주의가 서서히 더 저
급한 피조물들에게로 낮아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율법과 인간들이 알았던
선지자들을 보내심으로써 인간들의 연약성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비록 인간
들이 천국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을 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지라도, 인간들은 곧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인간들로부터 더 직접적으로 더
높은 것들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높은 곳을 바라봄으로
써, 그리고 피조물의 조화로움을 지각하면서 만물의 지배자, 곧 아버지의 말씀을 아는
것이 인간들에게 가능했습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섭리로써 만물들이 자신을 알도
록 하셨으며, 이것 때문에 말씀을 통하여 만물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만물을 고무시킵
니다. 또는 만일 이것이 인간들에게 너무 지나쳤다면, 그들은 최소한 거룩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만물의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배울 가

20) 로마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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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는 신성 모독이며, 온갖 무신앙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또는 율법을 앎으로써 온갖 부주의를 그치고, 덕스러운 삶을 살 수 있
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오로지 유대 인들만을 위한 것도 아
니었으며, 오로지 그들만을 위하여 예언자들이 보냄을 받았던 것도 아니라, 비록 유대
인들에게 보내졌고 그들에게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온 세상 사람
들을 위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알에 하는 거룩한 학교였으며, 영혼의 안내인이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애는 너무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의 기쁨으로 그리고 악령들이 보내 준 환영과 미혹으로 이겨 냈던 인간들은 그들의
머리를 진리로 향하지 않았고, 사탄들과 죄악과 더불어 충만해져서 더 이상 이성적인
것 같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13. 그래서 인간들은 야만적으로 변해 갔고, 사탄적인 미혹이 모든 곳을 흐리게 했으


며, 참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렸을 때,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할 참이었습니
까? 그렇게 큰일에서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것과 인간들이 귀신에 의해 미혹되어 하
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방치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원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던 인간의 용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왜냐하면 인간들은 일단 이성적으로 만들어진
다음에 야수처럼 살아가는 것보다 아예 야수와 같이 단순히 창조되었던 것이 더 좋았
을 뻔했기 때문입니다. 또는 우선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얻어야하는
필요성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또는 인간을 지으셨던 하나님에게는 무슨 유익이 있었
습니까? 또는 만일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던 인간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다
른 것이 자신들의 조물주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에게는 어떤 영광이 있을 수 있겠습
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서 인간들을 창조했
었음을 입증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단지 인간의 왕도 자신의 식민지를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양도하지도, 넘겨주지도 않습니다. 그
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서면으로 경고하며 종종 친구를 보내거나, 필요하다면 최후
의 수단으로 몸소 가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지 말 것과 자신의 일을 쓸데없이 소모하
지 말도록 자신의 면전에서 질책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미혹되지 않고,
쓸데없는 것을 섬기지 않도록 그들을 훨씬 더 아끼지 않아야 할까요? 특히 타락은 인
간들의 파멸과 영락의 원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에 하나님의 형상의 참여자였던
인간들이 사멸하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려고
했을까요? 또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인간들을 새롭게 하는 것은 별도로 치고, 인간
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 진행될 예정이었습니
까? 그러나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의 현존을 제외하고 어떻게 이
일이 일어날 예정이었습니까? 왜냐하면 인간들은 어떤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도 아니
고, 천사들조차도 [하나님의] 형상은 아니었으므로 천사들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
도 아니기에, 그것은 인간적인 수단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이었던 것처럼,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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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자기 백성에게 왔습니까?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 일은 달리 일어
날 수 없었고, 죽음과 타락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은 자연저인 타당성
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을 취했습니까? 죽음은 육체 안에서 단번에 사라질 수
있었던 반면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다시 한 번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형상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도 이런 필요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14. 왜냐하면 널빤지에 그려진 초상이 외부로부터 얼룩에 의해서 지워졌을 때, 그 초


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다시 동일한 나무[판]에 새롭게 그려질 수 있듯이, 그 위에 초
상이 그려진 나무조차도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윤곽이 새롭게 되는 것과 마
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의 형상인 아버지의 가장 거룩한 아
들은 자기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죄를 용서함
으로 잃어버렸던 자를 찾기 위하여 우리의 영역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은 아들이
복음서에서 말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
려 함이니라."21) 아들이 유대 인들에게도 역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이22)라고
말씀하셨던 까닭은 유대 인들이 가르쳤던 대로 여자로부터 출생을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영혼의 태어남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지음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친 우상 숭배와 불경이 세상에 가득 찼으며, 하나님에 대
한 지식은 가려져 있기 때문에, 누구의 편이 아버지와 관련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
것을 가르치기로 되어 있었겠습니까? [그것이] 인간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태양 아래에서 어디에나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힘에 달려 있지 않았습
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그렇게 멀리 움직일 물리적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으며,
이 문제에서 신용을 주장할 수도 없을 것이며, 혼자서 악한 영의 미혹과 기만에 견디
기에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악마적인 속임수에 의해서 영혼에게 매
혹당하고 혼란스러웠던 곳에서 그리고 우상의 헛됨이 있었던 곳에서 어떻게 인간들이
인간들의 영혼과 마음을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신들을 볼 수조
차도 없습니다. 또는 어떻게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변환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
나 아마도 사람들은 창조는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창조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면, 이처럼 대단한 악마들은 결코 생겨나지 않았어야 했습
니다. 왜냐하면 창조는 이미 있었고, 변함없이 인간들은 하나님과 관련해서 동일한 잘
못으로 인해서 비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영혼과 마음을 보시며, 창조에서 만
물들을 움직이셨고, 만물을 통하여 아버지를 알도록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
고 대체 누가 필요했겠습니까? 왜냐하면 자신의 섭리와 만물에 질서를 부여함으로 인
간들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셨던 분이 바로 이 돌일한 가르침을 새롭게 하
실 수 있었던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겠습

21) 누가복음 19:10.


22) 요한복음 3:3.

- 13 -
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동일한 수단들이 이전처럼 가능했었다고, 곧 말씀이 창조의
사역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아버지에 대한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했었다고 말할지
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이상 확실한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이것을 보는 것을 이전에 놓쳐 버렸고, 자신들의 논을 위가 아니
라 아래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기꺼이 인간들에게 이득이 되도
록 하기 위하여 말씀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육체를 취하심으로 인간처럼 여기에 머무
르십니다. 그리고 지상적인 것들로부터 육체를 취하심으로, 곧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 같은] 육체적 일을 통하여 여기에 머무르셔서, 그분의 섭리와 만물의 지배로부터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을 사람들은 바로 그분의 실제적인 육체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
들로부터 그분의 육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될 것이며, 그분을 통해서 아
버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15. 왜냐하면 만일 제자들 중에 어떤 사람이 더 고차원적인 주제들[을 가르치는 것으


로는] 이익을 얻을 수 없다면, 제자들을 돌보는 교사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의 수준까
지 내려와서 하여튼 단순한 강의로 가르치듯이, 하나님의 말씀 역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말한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3)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의도를 거부하면서,
마치 심연에 빠진 것처럼 자신들의 눈을 아래로 향하고,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
간의 신들과 악마인 체 가장하면서, 실제적으로도 그리고 감각의 세계에서도 하나님
주변을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총괄하
는 구세주, 곧 하나님의 말씀은 스스로 육체를 취하셔서, 인간처럼 인간들 사이를 다
니시며 모든 인간들의 감각에 감지되도록 양보하셨습니다. 이런 까닭에 나는 하나님
이 물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님께서 자신의 육체로 애쓰셨던 것으로부터 진
리를 감지할 것이며,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를 깨달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원래 상태대로, 그리고 온갖 생각에서 무슨 대상이든지 감각을 고정
시켰으며, 거기서 스스로 타협하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다방면에서 진리를 가르쳤습니
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피조물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봤을지라도 어떻게 그리스도가
주님으로 고백되는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는 만일 그들의 마음이 인간을 신
이라고 간주할 만큼 구세주의 사역으로부터 인간 쪽으로 기울었다면, 인간들과 비교
해서 오직 구세주만이 인간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냐하
면 특히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것 같은 그런 일은 어느 때
도 이루어진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만일 인간들이 악한 영에게 경도되어
있었다면, 아직껏 구제주의 부활을 보면서, 시가(詩歌)에서 말했던 신들을 숭배할 만
큼 이미 죽음에까지 몰락했을지라도 인간들은 그것들이 거짓 신들임을 그리고 오직
죽음의 주인이신 아버지의 말씀, 곧 주님만이 진리임을 털어놓을 참이었습니다. 이런

23) 고린도전서 1:21.

- 14 -
이유 때문에 말씀은 자신의 일로 이전의 모든 사람들이 했던 일들을 무의미하게 만들
고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태어났고, 인간으로 나타났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
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인간의 편향성은 있게 마련이고, 말씀은 거기서부터 인간들을
부르셨으며, 스스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24)고 말
한 바대로 인간들에게 참된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16. 왜냐하면 결국 인간의 마음은 감각적인 것들의 빠졌을 때, 말씀은 인간처럼 육체


로 나타나심으로 스스로 가장하셨고, 인간으로 변형되었으며25) 인간의 오감을 자신에
게 집중시켰고, 그때부터 자신을 인간으로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했던 사역으로 자
신이 단지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이며, 말씀과 참된 하나님의 지혜이기도 하다는 점
을 설득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한 바울이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
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
게 충만하게 하기를 구하노라"26)고 말할 때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되시는 것에서, 깊이에서는 지옥(=하데스)에서, 그리고 넓이에서는 이 세상에서 - 어
디에서나 자신을 계시하시는 말씀으로 만물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충만해졌습니
다. 이제 이런 이유 때문에도 역시 말씀은 자신의 오심과 동시에 바로 만인을 위한
자신의 희생을 수행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몸을 죽음에 내주심으로 그리고 다시 살아
나심으로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으로 말씀은 스스로 비가시적으로 되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육체 안에 머물면서 그리고 그러한 일을 행함으로
그러한 이적으로 행하시면서, 더 이상 인간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
으로 알려졌던 것처럼 충분히 자신이 행했던 것에 의해서 자신을 가시적으로 만들었
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인간이 되심으로써 구세주는 두 가지 사랑의 일을 수행하셨
기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우리로부터 죽음을 멀리 떼어 놓고 다시 새롭게 하시는 일
이며, 둘째로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으로서의 존재는 스스로 나타내 보이시고 아버
지의 말씀이며, 우주의 지배자이며 왕이심을 일을 통하여 알리십니다.

17. 왜냐하면 말씀은 상상하는 대로 육체의 제한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고, 육체로 있


는 동안에도 어느 곳에서도 부재하지 않았으며, 육체로 움직이는 동안에도 우주는 그
분의 일과 섭리가 없는 곳이 없었고, 가장 놀라운 일은 그가 존재했던 대로의 말씀은
어떤 것에 속하는 존재와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스스로 모든 것을 포함했으며, 마
치 피조물 전체 속에 잇는 동안에, 그분은 존재에서 우주로부터 즉시 구별되기 때문
이며, 만물에게 능력을 주시는 명령에 대해서 만물 안에, 만물 위에 그리고 그분의

24) 누가복음 19:10.


25) 이 표현은 자칫 잘못하면, 가현설(2세기 이단)적 성향을 나타내는 듯하다. 실제로 알렉산드리아 신학
의 극단이 가현설이나 아폴리나이오스주의(381년 콘스탄티노플 교회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됨) 등으
로 표출되었음을 감안하면,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26) 에베소서 3: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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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를 드러내는 만물 속에 계시며, 각각의 사물들과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시며, 포함
되지 않고, 전체를 포함하시며, 전적으로 자신의 아버지 안에만 존재하시기 때문입니
다. 모든 점에서27) - 이런 식으로 심지어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시며, 스스로 육체에
생기를 주시는 동안에도 모순됨이 없이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활력을 주시며, 모든 자
연 과정에도 계시며, 전체 밖에도 계시며, 자신의 일을 통하여 육체에 의해서 알려지
는 동안에도 역시 우주의 일을 통해서도 알려지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기 때
문입니다, 그렇지만 실은 자신의 육체적 일 밖에서 일하는 것 없이, 또는 육체로부터
먼 존재에 의해서 움직임 없이, 사고 작용에 의해서 자신의 육체 밖에 있는 것조차도
보는 것이 영혼의 기능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은 멀리서 어떤 것을 생각한다는 그 사
실만으로 그것을 결코 움직이거나 옮길 수는 없습니다. 또는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앉아서 천체에 대해서 추론한다면, 그 사실로써 태양을 움직이거나 하늘을 회전
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천체들에게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으
면서도, 그들이 움직이거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인간의 육체에 매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육체 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 안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만물을 소생시켰고,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셨을 때에도 인간처럼 걸어 다니고 계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
다. 이것은 처녀가 그분을 낳았을 때조차도 어떤 변화를 겪지 않기 위하여, 곧 육체
안에 존재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이 빛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분은 육체도 역시 만족해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주 안에 계실 때조차도 우주의 속성
에 참여하신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만물을 소생시키셨고 지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분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우리가 궁창에서 운행하는 것을 보는 태양
조차도 지상의 물체들과 접촉한다 해도 더럽혀지지 않기에, 또는 어둠에 꺼지지 않고,
반대로 스스로 물체들도 역시 비추며 정결하게 하기에, 태양의 창조장요 주인이신 하
나님의 가장 거룩한 말씀은 육체로 드러났다고 해서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입
니다. 오히려 반대로 타락할 수 없는 존재인 말씀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도 역시
소생시키셨고, 정결케 하셨습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
으시며"28)라고 이야기되기 때문입니다.

18. 따라서 이 사안에 대해서 영감을 받은 저자들이 그분이 먹었고 육체로 태어났다
고 말할 때, 만물을 정렬하셨던 동안 육체와 결합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자신은 사역
(使役)을 통하여 스스로 육체 안에서 인간이 아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이심을 보이시는
동안에, 육체대로 육체가 태어났으며, 자신의 본성에 맞게 음식물을 섭취함으로 존속
하셨음을 이해하십시오. 그러나29) 음식을 먹었던 실제적인 육체는 태어났고, 고통을

27) 말씀은 충만한 존재로 아버지 안에 계시며, 다른 경우에는 하나 또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28) 베드로전서 2:22.
29)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그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셨습니다"라는 문
구는 '짧은 교정본'에는 다음과 같이 읽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인의 찬미자로, 선하신 아버지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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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했고, 주님에게만 속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그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분이 외관상만이 아니라, 참으로 육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적절했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로부터 그분이 육체로 존재함이 알려졌듯이, 육체로 행했던
행위들을 통해서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리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
분은 믿지 않는 유대 인들을 향해서도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
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
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30)고
외치셨습니다. 그분은 비록 비가시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사역을 통하여 알려
진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되심으로 그리고 육체 안에 숨겨짐으로써 이러한 일들을
행하실 수 있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이라는 사실이 그분의 행
위들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악령들을 책망하셨고 쫓아
내셨던 일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분이 인류에
게 속한 질병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보았던 사람이 그분을 하나님, 아니 여전히 인간
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은 문둥병자들을 고치셨으며, 절름거리는 자
들을 걷게 하셨고, 안 들리는 자들의 귀를 열어 주셨으며, 보이지 않던 자들을 다시
보게 하셨고, 인간들로부터 모든 질병들과 병약함을 말씀으로 쫓아내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들로부터 가장 평범한 목격자들도 그분의 신성을 아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자들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 주셨고, 태어날 때부터 보이지 않
던 자들의 눈을 열어 주셨던 것을 본 사람은 인간들의 특성이 그분에게 복종되었음
을, 그리고 그분이 고안자요, 조물자임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태
어날 때부터 있어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었던 것을 회복시켜 주셨다는 주님도 인간의
자연적인 출생으로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
선 첫째로, 그분이 우리에게 내려오셨을 때, 그래서 이것을 만드셨던 이가 또한 모든
다른 것들의 조물주이시라는 사실에서, 그분의 신성에 대한 모든 작지 않은 증거를
주기 위하여 스스로 처녀에게서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남자가 없이 오직 처녀에게서
만 나오신 육체를 볼 때,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이가 우리의 육체의 조물주요 주님이
시기도 하다는 점을 추론해 낼 수 없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의 본질이 포도주로 변하고 변형되었던 것을 보았을 때, 이 일을 행하신 이가 모든
물의 본질의 주님이며 창조주임을 누가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그분은 만
물을 지배하는 주인이심을 보았던 자들에게 증거를 제공하기 위하여, 바다의 주인으
로서 바다로 가서 마른 육지처럼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군중들을 적은
것으로 먹이셨던 일에서 그리고 자기에게는 먹을 것이 조금이라도 없었던 곳에서 풍
성하게 만들어 내셨고, 그래서 떡 덩이 다섯개로 오천 명이 충분히 먹고, 그렇게 많

생자로 말씀은 스스로 결핌됨이 없으시며, 자신의 창조를 위하여 섭리를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가
시적 [능력]으로 알려지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분은 사람들에게 신성한 교훈들과 사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보여 줌으로써 자신의 육체를 통하여 아버지를 풍부하게 알리셨기 때문입니
다."
30) 요한복음 10: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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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겼던 일에서 모든 것에 대한 섭리를 가지셨던 주님과 다른 어떤 분이심을 보이
셨습니까?

19.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은 구세주께서 행하시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창조


에서 나타난 그분의 신성을 끝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적어도 그분의 육체의 행위
들로부터 시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전에 말했듯이 모든 것에 대한 그분의
섭리를 특별한 경우로 말하면서 그분을 통해서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받을 것입니다.
악한 영을 지배하는 그분의 능력을 봤던 사람은, 또는 악한 영이 그분이 주님이었음
을 고백하는 것을 봤던 사람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든, 지혜든, 능력이든 간에 자
기 마음을 더 이상 의심하여 망설이도록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은 피조물조차도
침묵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에서조차도 경이로운 것을 말하거나
차라리 죽음에 대한 실제적인 승리에서 - 십자가 말입니다. - 모든 피조물들은 육체
로 나타나셨고, 고난을 받으셨던 분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인
의 구세주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양은 가려졌고, 땅은 진동했으며, 산
들은 갈라졌으며, 모든 사람들은 두려워서 떨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것들은 십자
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그분에게 복종
했으며, 두려움으로 그분의 현존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들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스스로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단계로 그분이 육체적인 삶과 여정의 종국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육체의 죽
음의 속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야 합니다. 특히 이것은 우리의 신앙의 총합이듯이,
그리고 모든 이들이 빠짐없이 신앙으로 충만하듯이 말입니다.31) 그렇게 해서 당신은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승리.

20.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육체적 현현에 대한 이유를 가능한 한, 그리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었던 대로 부분적으로 진술해 왔습니다. 탈락할 수 있는 것을 탈락할 수
없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태초에 무로부터 모든 것들을 만드셨던 구세주 자신을 제외
하고는 다른 어떤 힘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인간을 위해서 아
버지의 형상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을 새롭게 창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참된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도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에 불멸을 선사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만물에 질서를 부여했고, 홀로
아버지의 참된 독생자였던 말씀이 아니면, 다른 어떤 것도 아버지를 가르칠 수 없었
으며, 우상 숭배를 타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미 말했듯이, 모든 사람들
이 죽어야 하므로, 모든 사람이 짊어진 채무는 다시 갚아져야 하다는 것도 필수 불가

31) 또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다.” - 신앙의 핵심 사항인 십자가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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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했기 때문에, 그의 사역으로부터 자신의 신성을 입증한 다음에, 우선 사람들이 옛
범죄로부터 청산하고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자기 몸이 타락할 수 없음을 나타내시면서 자기 자신이 죽음보다 저 강
력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자신의 성전[=몸]을 죽음에
게 내줌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한 희생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똑같은
주제에 대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놀라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어떤 것을 빠뜨릴까 봐, 그리고 부적절한
취급으로 비난을 야기할까 봐 동일한 의미를 한 가지 이상의 형태로 자세히 설명합니
다. 왜냐하면 기입해 두어야 하는 것은 빠뜨리는 것보다 반복으로 인한 비난을 감수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도 인간의 육체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과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는 [그리스


도의] 육체는 다른 사람들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도 비록 견줄 데
없는 기적으로 오직 처녀에 의해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육체와 말씀의 연합이라는 미덕에 의하여 그 육체는 더 이상 본성대로 타
락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머무르기 위하여 왔던 말씀 때문에 타락의 범위
밖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기적들이 한꺼번에 발생했는데, 주님의 육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성취되었으며, 죽음가 타락이 육체와 결합한 말씀 때문에 전체적
으로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필요했으며, 죽음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반드
시 고난을 받아서 모든 사람들이 진 빚은 지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전에 말했듯이 말씀 잔체는 불멸적이어서 죽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육체를 취하셔서 모든 사람 대신에 자신의 몸을 내주셨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이 육체와 연합을 통해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32)

21.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동의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에 대해 충실한 우리는 율법의 경고에 따라서 예전처럼 더 이상 죽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 [죽음에 대한] 유죄 선고가 취소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은혜로 썩어
짐이 없어지고 취소됐으며, 이제부터 육체의 죽을 수밖에 없는 본성에 따라서 우리는
오직 풀려났으며, 그때에 하나님은 각자를 위하여 우리가 더 좋은 부활을 취할 수 있
도록 결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땅에 뿌려진 씨앗들처럼 우리는 사멸(死滅)하여 사라
지지 않지만, 땅에 뿌려진 다음에 구세주의 은총으로 죽음을 무효로 만들면서 다시
일어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의 보증인이 되었던 복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
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32) 히브리서 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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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33)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자기 몸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했
다면, 왜34) 십자가에 달리는 데까지 인간으로서 개인적으로 죽음을 제거하지 않았겠
습니까? 왜냐하면 그가 이처럼 수치스럽게 죽음을 겪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육신을
명예롭게 포기하는 것이 더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구세주께서 행하신 일은
진정으로 신적이며, 많은 이유에서 신성에 알맞은 것을 보면, 그러나 첫째로 그분은
생명이며,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로 한편으로는 그분이 생명이며, 능력, 곧 그분 안
에서 힘을 얻는 육체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한 죽음이 완성되는 것이 필요했으
며,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이 반드시 발생해야 했을 때, 그분은 스스로 죽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신의 희생을 완성할 기회인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질병을 고쳐 주셨던 주님이 병든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그 육체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에 힘을 주는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배가 고프지 않았나요? 배가 고팠습니다. 그분은 육
체의 특질에 맞게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신을 입었던 주님이었기 때문에
굶어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속물로 죽었을지라
도, 썩음을 모르셨습니다.35) 왜냐하면 그의 육체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참된 생명
에 속했기 때문에,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다시 부활했습니다.

22. 그러나 유대 인들의 음모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분은 자기 몸을 죽음으로부터 보


호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것이 주님에게 너무 어울리지 않
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 자체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자신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 어울리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죽지 않으려고 도피하는 것도 부
적절하지만, 오히려 파멸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도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로 그분은 자진해서 자기 몸을 버리지도, 자신을 죽이려고 공모한 유대 인들로부터
도망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의 입장에서 약함을 보여준 것이 아
니라, 반대로 그분이 구세주요 생명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그분은 죽음을 파괴하
려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고,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바쳤던
죽음을 완성하려고 재촉하셨습니다. 게다가 구세주는 자기의 죽음을 완성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죽음을 완성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생명이었고,

33) 고린도전서 15:53-55.


34) 이 부분은 짧은 개정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의 죽음
에 내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가해진 죽음에 내주었습니다. 어째서 그분은 실제로 전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성전(=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음모로부터 피하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스스로 자기 몸을 죽이는 것은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울리지 않기에, 이러한 일
은 주님에게도 역시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온 것을 피하는 것도 어울
리지 않기 때문이며, 파괴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수행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로 그분은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았으며, 유대인들이 자기에 대해서 공모했을
때, 그들로부터 도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생명이 되시기 때문에 죽음이 자기 몸을 해치도록 허
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몸 안에서 죽음을 무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35) 참고. 사도행전 2:31.

- 20 -
아무것도 없었던 것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왔던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스스
로 죽음으로 자기 몸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족음이 자신에게 임했을 때 죽음을 완전
하게 없애 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음에 말하는 것으로부터도 역시
사람들은 이러한 종국을 맞이하는 주님의 육체의 온당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특별히 완성하려고 노력했던 육체의 부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하
려고 했던 것은 부활을 죽음에 대한 승리의 기념비로 드러내며, 부패로부터, 그리고
그때 이후로 인간 육체의 썩지 않음으로부터 오점을 초래했었던 모든 것들을 확증하
려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만일 그분의 육체가 병이 났고,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병에 굴복 당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치유하
셨던 분이 자신의 도구가 질병으로 쇠약해지는 것을 겪어야 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
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만일 그분의 성전[=육체]이 병들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분
이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내쫓았던 것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질병
을 내쫓을 수 없는 것으로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거나, 만일 할 수 있었는데도 안 했
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무감각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3. 그러나 비록 그분이 질병이나 고통이 없이 몰래 그리고 스스로 "한쪽 구석에서


"36) 또는 광야나 집에, 아니면 다른 어떤 곳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가, 나중에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가 죽음에서 다시 부활했다고 말했을지라도, 그분 자신은 모든 사람들
로부터 사실무근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며, 그분이 부활에 대
해서 말했던 것은, 마치 죽음에 대한 증인이 한 명도 없었던 것 마냥, 더욱더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었더라면, 죽음이 먼저 있을 이유가 없었겠지
만, 이제는 죽음이 부활보다 먼저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만일 그분이 모처에서 비밀리
에 죽어서, 죽음 사실이 분명하지도 않고 그에 대한 증인도 없다면, 그분의 부활도
역시 숨겨져 있었고, 증거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분이 부활했을 때 부
활을 증명했으면서, 무엇 때문에 그분이 비밀리에 죽어야 했겠습니까? 또는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악령을 쫓아내셨고, 태어나면서부터 안 보이던 자에게 시
력을 되찾아 주셨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믿게 하려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
셨으면서도, 어째서 자신이 생명이심을 믿게 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보는 가운데
자신의 죽을 본성을 썩을 수 없는 것으로 입증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만일 그의 제자
들은 그분이 먼저 죽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부활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담
대했습니까? 또는 만일 제자들의 담대한 말을 들었던 자들이 그분의 죽음에 대한 증
인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그분은 먼저 죽은 다음에 부활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사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일어났을 때, 바리새인들은 믿었던 것이 아니라 부활을 목격했던 자들에게조
차도 그 사실을 부정하라고 강요했다면, 어째서,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비밀리에 발
생했다면, 어떻게 제자들은 불신에 대해서 많은 구실들을 고안해냈을까요? 또는 만일

36) 참고. 사도행전 26:26.

- 21 -
그분이 많은 목격자들 면전에서 시도하지 않은 채,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면, 죽음의 종국과 그에 대한 승리는 어떻게 입증될 수 있었을까요?

24.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말했을지도 모를 것에 대한 답변도 역시 예상해야


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부
활에 대한 이야기도 믿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이 모든 사람들 면전에서, 그리고 증인
들이 있는 데서 죽는 것이 필수적이었다면, 오직 십자가의 불명예를 벗어나기 위해서
라면, 하여튼 그분 스스로 영광스런 죽음을 꾸며 냈던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
러나 그분은 그렇게 했고, 자신에 대한 의혹에 대한 의혹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셨으
며, 모든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 고안한 죽음에 대해서만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리고 그렇게 다시 한 번 아무래도 부활을 불신하는 것에 대한 구실이 있
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공모로 인해서 그분의 육
체에 임했고, 그분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구세주를 어떤 식으로든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적수들 중에 몇몇을 두려워한다는 의심을 살지 몰라
서, 마치 기술과 용기에서 훌륭하고 숭고한 싸움꾼처럼 스스로 자기 적수들을 식별한
것이 아니라, 방관자들의 선택에 맡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만일 그들은 우연히
그분의 대적자가 되어서 누구든지 간에 그분과 맞붙게 했었다면, 그분은 상대방을 집
어던지고, 그들보다 뛰어남을 믿게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하
여 우리 주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어떤 사람들의 죽음에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
이지 않도록 하기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대한 죽음을 꾸며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다른 사람에 의해, 무엇보다도 적수들이 무섭고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해서 그
에게 가한 죽음을 십자가 위해서 허락하셨으며,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파괴적
인 이 일을 통해 그분은 스스로 생명이심을 [사람들에게] 믿게 했으며,37) 죽음의 권능
은 전적으로 무효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놀랍고 경이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왜
냐하면 그들이 망신을 주는 것으로 간주했던 죽음은 실제로는 죽음 자체에 대한 승리

37) 짧은 교정본에는 다음과 같은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느 누구라도 죽음이 완전히
무효가 되었고 생명이 죽음을 지배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비록
이렇게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인간들 사이에서는 두렵고 치욕적일지라도, 주님은 스스로 그것을 환영
했고 자진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이 일에서 죽음을 무효로 돌리셨고, 그분이 죽
음에 대해서 승리하셨던 때부터 전적으로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그분은 병으로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는 [본문이 훼손됨] 대문에,
자살하지도 않았습니다. 또는 불신자들의 비난 때문에, 그분은 스스로 궁리한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
았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몸은 적수들의 공모로 인한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십자가
에 높이 달리셨고, 자신의 죽음을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자신의 부활도 역시 모든 사
람들에게 말씀하셨듯이, 알리고 믿게 하시려도 들려 올려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육신은 육체의
본성에 맞게 고난을 당했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불멸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가 죽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함께 고
통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고난을 당
할 수 없었고, 썩을 수 없었으며, 불멸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성령이 “썩어짐을 알도록 당신의 거룩한
자를 견디지 마옵소서.” (시 16:11; 행 2:27)라고 말했을 때, 그분은 육체의 본성에 따르는 부패와 거
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인 육체는 내가 전에 말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고난을 당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이고, 말씀이며, 모든 사람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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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기념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머리가 잘려진 [세례] 요한의 죽음
을 겪으신 것도 아니고, 죽음에서조차도 자신의 몸이 나뉘지 않고 완전히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톱으로 켜져서 두 동강난 선지자 이사야처럼 죽지도 않았으며, 교회
를 나누려는 자들에게 어떤 구실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25. 그래서 이 많은 것들은 스스로 논박을 쌓아 놓은 자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답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논쟁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배
우려는 의도에서 어째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죽지 안 했는지 물어본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이 방법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우리
를 위해 좋지 않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잘된 일이라고 말
해 주어야 합니다. 만일 그분이 우리에게 내린 저주를 받으시려고 자진해서 오셨다면,
저주에 해당하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다른 어떤 방법으로 "저주가 되는 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리고 바로 그 일이 십자가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확하게 기
록된 대로입니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8) 다시
말하자면, 만일 주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속전(贖錢)이었다면, "중간에 막힌
담"39)이 허물어졌다면, 그리고 민족들이 부름을 받았다면,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은 채 어떻게 우리를 자기에게로 부를 수 있었겠습니까? 왜냐하면 사람이 두 팔을
벌린 채 죽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 위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일을 감당하셨고, 한 손으로는 당시 고대 사람들을,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
방인을 모으시기 위하여 두 팔을 펴셨던 것은 적합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속전이 되셨는지 암시하시면서, "내가 땅에
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40)고 스스로 말씀하셨던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만일 하늘로부터 떨어졌던 인류의 적 사탄이 우리가 사는 낮
은 하늘을 어슬렁거린다면,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불순종하는 패거리들인 추종하는
영들을 지배하고, 그들이 고안한 방식으로 인간의 환상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려고 한다면, 이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공중
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41)
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사탄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오셨으며, 하늘을 정화시키고, 우
리가 하늘로 올라갈 길을 준비하십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휘
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42) -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죽음으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자, 그러면 공중에서 발생했던 죽음, 곧 십자가에서의 죽음 말고 다른 어떤 방식의
죽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죽음을 겪으신 것은 매우 적절했습니

38) 갈라디아서 3;13; 신명기 21:23.


39) 에베소서 2:14.
40) 요한복음 12:32; 이사야 65:2.
41) 에베소서 2:2. 적대적인 세력에 의해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데 방해를 받는 영혼들에 대한 성 안토니
오의 환상(아타나시오스, 『안토니오스의 생애』 65-66)과 바울의 묵시록 14[M.R. James, Apocryphal
New Testament (Oxford, 1925). 531]를 참고하라.
42) 히브리서 10:20.

- 23 -
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들려 올려지는 동안에 그분은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43)고 말씀하셨듯이 사탄과 온갖 귀신들의 악한 공기를
정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오 황태자시여!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44)라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말씀 자신은 만군의 왕이
시기 때문에 문들이 열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어떤 피조물들이라도 자신들을
만드신 이에게 닫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육신이 올려지기 위해서 문
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를 죽음에게 내
주셨듯이, 그렇게 다시 한 번 천국으로 올라가는 길을 예비하셨기 때문이다.

26.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적절하고 알맞은 것으로 입증되었
으며, 그 이유는 모든 점에서 타당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
한 구원은 십자가에서 일어난 것과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점도 논증되
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조차도, 곧 십자가에서조차도 그분은 자신을 비밀리에 방
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딴 방법으로는, 그분은 피조물을 창조주의 현존에
대한 증거로 만드신 반면에, 자신의 육신의 성전을 오래 머무르도록 하신 것이 아니
라 죽음과 접촉을 통하여 단지 죽었음을 보여 주셨고, 죽음에 대한 승리와 정복의 표
시로, 그리고 자기 육체에 귀결된 부패 불가능성과 수난 불가능성의 표시로 삼 일 만
에 곧바로 부활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죽음 다음에 곧바로 자기 몸을 일으켜서
살아 있음을 보여 주실 수도 있었지만, 구세주께서는 현명한 선견지명으로 이렇게 하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분이 아예 죽지 않았다거나, 만일 곧바
로 부활하셨다면,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
면, 아마도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사이의 관격이 이틀이 아니라 하루에 불과했다
면, 그분의 부패 불가능성에 대한 영광은 모호해질 뻔했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죽었음
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중재하는 날로 하루를 지체했던 것이며, 삼 일
째에 육체가 썩을 수 없음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의 육체가 입증되기
위하여 그분은 자기 몸을 삼 일 만에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오랜 시간이 지
나서 완전히 썩었을 때 부활하시면, 자기 육체를 다른 사람의 육체와 바꿨다고 오해
를 받을까 봐 그랬던 것입니다. - 왜냐하면 사람들은 시간의 경과로 인해서 자신이
보았던 것을 불신하고, 일어났던 것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로 인해서 자신이
보았던 것을 불신하고, 일어났던 것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런 이유로 그분은
삼 일 이상 기다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부활에 대해서 말했
던 자들에게 마음을 졸이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하셨던 말씀은 계속하여
그들의 귓가에 울렸고, 그들의 눈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이 마음을 졸이고
있었던 동안에, 그리고 그분을 살해했던 자들은 여전히 땅 위에서 살고 있었으며, 현
장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의 육신의 죽음을 증언할 수 있었던 반면에,

43) 누가복음 10:18.


44) 시편 24:7. 시편에는 원래 “오 문들아”라고 되어 있는데, 아타나시오스는 “오, 황태자시여!”라고 바
꾸어서 인용했다. 물론 인용자에 의해 변형된 인용법은 고대 문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방식이다.

- 24 -
그분은 삼 일이라는 간격이 있은 다음에 한 번 죽었던, 불멸의 그리고 부패할 수 없
는 육신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었던 육신 안에 거했던 말씀의 어떤
연약한 때문이 아니라 육신 안에서 죽음이 구세주의 권능에 의해서 사라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을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보이셨습니다.

27. 그러한 죽음은 분쇄되었고, 십자가는 죽음에 대한 승리가 되었으며, 죽음은 더 이


상 힘이 없고, 진짜로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제자들이 죽음을 무시했고, 그들 모두
가 죽음을 공격했으며,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십자가의 표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을 무기력한 것으로 짓밟아 버렸다는 점은 작은 증거가 아니며 오히려
명백한 보증입니다. 예로부터, 구세주가 신적으로 오시기 전에는 죽음이란 성도들에게
까지도 두려운 것이었으며,45)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사라지기도 했듯이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세주께서 자신의 몸을 일으키셔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렵
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짓밟아 버리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기 때문입
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
로 [다시] 산다는 것과 부활을 통해서 부패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정말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때 죽음으로 악의에 차서 의기양양했던 사탄은, 이제 고통을 받
기 시작했으며, 오직 혼자서만 진짜로 죽은 채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증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는 죽음에서 공포의 대상을 발견하고 그 앞
에서 겁쟁이로 행동했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가르침으로 나아갔을 때,
그들이 죽음을 너무 결명해서 죽음을 열렬히 공격을 해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구
세주께서 죽음에 대항하여 이루셨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어린
사람들도 죽기를 재촉하고,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도 역시 죽음에 대해서 육체적 훈련
으로 대항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매우 약해져서 이전에 자기한테 기만을 당
했던 여자들까지도 이제는 사탄을 무기력하고, 마비된 듯이 조롱합니다. 왜냐하면 폭
군이 제대로 된 왕에게 패퇴당해서 수족이 묶였을 때, 그를 정복한 왕으로 인해서 지
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며 비웃고, 손으로 때리고 욕설을 퍼붓고, 그의 격
분과 만행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
죽음도 정복당했고, 십자가에서 구세주에 의해 폭로되었으며, 수족이 결박을 당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짓밟고,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죽음
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옛날에 사탄에 대해서 기록되었던 것을 말합니다. "사망아 너
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46)

28. 그렇다면 이것은 죽음의 연약성에 대한 빈약한 증거이겠습니까? 또는 젊은 남녀


들이 이생을 경멸하고 죽음을 따르려고 한다면, 이것은 구세주에 의한 죽음에 대한

45) “죽음이란 성자들에게까지도 두려운 것이었고”라는 절은 짧은 교정본에는 생략되었다.


46) 고린도전서 15:55(호 13:14).

- 25 -
승리로서는 가벼운 논증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죽음과 육신의
소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앙을 마려하셨던 분이 원래대로라
면 두려웠던 것을 경멸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놀
라운 사실입니다. 그리고 불이 자연적으로 태우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불에
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떤 물질이 있다고 말한다면, 인도인들 사이에서 그렇다
고 언급되는 석면처럼 오히려 반대로 불을 약하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이
야기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 그것을 시험해 보기를 원할 때, 재료를 불로 시험해 보
고, 불을 붙여 본 다음에는 적어도 불의 속성에 있는 연약함을 확신하게 됩니다. 또
는 만일 어떤 사람이 폭군이 결박을 당한 것을 보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정복자의 땅
과 영역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공포였으나 이제는 힘이 빠진 그 사람을 볼 것
입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아주 많은 증거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순교자가 되었던 아주 많은 사람들을 보여 준
다음에도 여전히 말이 없다면, 곧 그의 마음이 죽음이 무효로 되었고 종말을 맞이했
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면, 그렇게 엄청난 일에 완전히 놀랄 것이며,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불신 속에서 완고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렇게 단순한 사실에서 수치
를 모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석면을 가졌던 사람은 불이 그것을 태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그리고 폭군이 결박을 당했던 것을 보았던 사람이 그의
정복자의 제국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승리에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그리
스도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하며, 그의 가르침으로 전향하며, 죽음의 연약함과
죽음에 대한 승리를 보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이전에 불신했고 조소했던 많은 사람
들은 나중에 믿게 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스스로47) 순교자가 될만큼 죽음을 경
멸했습니다.

29. 이제 만일 십자가의 징표로,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이 무시되었


던, 죽음에 대한 승전 기념품과 승리를 보여 주었으며, 죽음으로부터 모든 능력을 빼
앗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점은 진리의 법정 앞에서 명백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죽음이 강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두려웠으며, 지금, 곧 구세주께서 머
무르신 다음에 그리고 그분의 육체가 죽고 부활한 다음에 죽음은 무시되었으며, 동시
에 죽음이 효력을 상실했고, 십자가에 내려오셨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정복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밤이 지나고 해가 떠오른다면, 이 땅의 모든 지역은 태양에 의해서 밝
게 비추이듯이, 적어도 우리는 빛으로 온 누리를 비추고, 어둠을 몰아냈으며, 만물에
게 빛을 비추었던 것이 태양이라는 점은 의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모욕을 당했고, 발아래서 짓밟혔으며, 구세주께서 육체로 나타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다음부터는 죽음의 효력을 빼앗아 버리셨던 분이, 그리고 자기 제자들에게 매
일 죽음에 대한 승리의 징표를 보여 주셧던 분이 바로 육체로 나타나신 구세주라는

47) “그 스스로”보다는 [원문에는] “그들 스스로”가 더 적합하다(더 양호한 사본들에는 autou 대신에
autos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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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은 매우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천성이 연약한데도 죽음으로 뛰어들며,
썩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데스48)로 내려가는 것도 겁내지 않으며, 열렬한 마
음으로 죽음에 맞서고, 고문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상에
서의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 돌진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볼 때, 또는 비록 어떤
사람이 남자들과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이 그리스도의 종교를 위하여 죽음으로 돌진하
여 뛰어드는 것을 목격하더라도, 마치 사람들이 목격한 그리스도 스스로 각자에게 죽
음에 대한 승리를 공급하시고, 부여하시는 것을 보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듯이, 그
리고 믿음을 지키고 십자가의 징표를 간직하는 능력을 각자로부터 박탈한 것처럼, 그
렇게 어리석지 않으며, 그렇게 의심스러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마음이 망가지지도 않
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뱀이 이전에 흉포했음을 잘 알고 있는데, 발아
래 짓밟혀 버린 것을 본다면, 마음이 왜곡되고, 육체적인 감각을 상실하지 않은 이상,
뱀은 죽었으며 더 이상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
면 아이들의 놀이감이 된 사자를 본다면, 사자가 죽었는지, 힘을 잃어버렸는지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눈으로 보듯이, 이제 죽음이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 의해서 놀이감이 되고 멸시를 당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효력을 빼앗
아 버렸다는 사실을, 그리고 죽음의 부패는 괴멸되었고 진압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라
도 의심하지 못하게 하며, 어떤 증거라도 불신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30. 우리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은 죽음이 효력을 상실했으며, 주님의 십자가는 죽음


에 대한 승리의 징표라는 점에 대한 작지 않은 증거입니다. 그 후 즉시 모두의 주님
이시며 참된 생명이신 주님이 이룩하신 불멸에 대한 육체의 부활로 인해서 진술할 사
실들에 의한 논증은 정신적 통찰력이 쓸모없게 되었던 자들에 대한 논박보다 더 분명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앞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죽음이 무효가 되었고, 그
리스도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발로 짓밟아 버린다면, 그리스도 스스로는 훨씬
더 먼저 자신의 몸으로 죽음을 밟았으며, 힘을 빼앗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
음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근절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그분이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과 죽음에 대한 승리의 기념으로 몸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제외하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주님의 육체가 다시 살아났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죽음이 무효가 되었는지 드러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부활에 대한 이런 시연이
어떤 사람에게 불충분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의 목전에서 일어나는 것들로부터 이야
기된 것을 확신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힘을 발휘하지 않으시며, 그의

48)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 전 3일간 "지하 세계에 내려가셨다"는 사상을 반
영하고 있는데, 초기의 고백문인 니케아 신조 및 칼케돈 신조에 없었던 "지옥에 내려가셨다가"(He
descended into hades)라는 구절이 추가된 것이다. 이 추가 문구는 갈리아(현, 프랑스)나 북아프리
카 지방의 역본들로부터 수집되었던 것으로서 7세기 이전 공인 몬문(Textus Receplus)에는 없었다.
결국 8세기에 현재와 같은 언어로 확정되었고, 12세기에 가톨릭교회에 의해서 공적으로 인준되었으
니, 종교 개혁 시대에는 주님의 고난과 동일시하면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아직도 미국장로교회
(PCA) 등에서는 이 문구가 있는 사도신경을 고백하지만, 한국 교회에서는 초대교회와 종교개혁전통에
따라 이 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 27 -
영향력은 단지 무덤가지 지속되고 나서 끝나며, 행동하는 것과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
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자에게 알게 하고, 보이게
나타나는 것으로 진리를 고백하는 자들을 판단하게 하십시오. 이제 구세주께서는 사
람들 사이에서 아주 위대한 일을 하시며 사방에서, 곧 그리스에 거하는 자들과 이방
지역에 사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을 매일매일 보이지 않게 신앙을 가지도록, 그리고
자신의 가르침에 순종하도록 설득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면, 누가 구세주께서 부활
하셨는지,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신지, 또는 생명 자체인지에 대해서 마음에 의
심을 품겠습니까? 아니면 죽은 사람이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서 사람들이
대대로 받은 율법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굴복하겠습니까? 또는 만일 그분
이 더 이상 행동할 수 없다면(이것은 죽음 사람에게 적합함으로), 그분은 어떻게 활동
하고 살아 있는 자들의 행동을 저지해서 간통했던 자들이 더 이상 간통하지 않으며,
살인자가 더 이상 살인하지 않고, 악행의 가해자가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으며, 세
속적인 것이 종교적인 것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만일 그분이 부활하지 않고 죽었다
면, 어떻게 불신자들이 살아 있다고 말하는 거짓 우상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귀신들을
몰아내고 추격하여 좌절시킵니까?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을
부르는 곳에서는 모든 우상 숭배가 철폐되고, 악령들의 모든 협잡(協雜)이 드러나며,
어떤 영도 그 이름을 견딜 수 없고, 아니, 들을 수조차도 없으며, 도망가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것, 특별
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특별히 주님에 의해서 추방되었던 악령들과 무효로 되었던 우
상들이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습지만, 그들을 쫓아 버렸고 권능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셨음에도 그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바로 그 주님이 죽었
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습니다.

31. 그러나 만일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그리스도를 버리고, 자기


들이 숭배하는 모든 악령들과 우상들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그들 모두가 죽었다고 입
증한다면,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뒤엎을 강력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는 반면에, 구세주께서는 매
일 사람들을 종교로 이끌고, 덕을 권고하시며, 불멸을 가르치시고, 하늘의 것들을 바
라도록 이끄시며,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드러내시고, 죽음을 직면하는 힘을 부어 주시
며, 각자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우상 숭배의 불신앙을 제거하시는 등 아주 많은 일을
하시며, 불신자들의 신들과 영들은 이런 것들 중 하나도 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리
스도의 현존 앞에서 자신들이 사망했음을 보여 주고, 그들의 허세는 무능력과 허무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징표로 모든 마술은 중지되었고, 모든 마
법은 무효로 되었으며, 모든 우상들은 돌보지 않고 버려졌으며, 모든 감당할 수 없는
욕구는 저지당했으며, 모든 사람이49) 땅으로부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 누가

49) 또는 “신앙”(pas tis 대신에 pistis). 그러나 아마도 [이것보다는 본문대로의] 독본이 더 적절하며, 짧
은 교정본(MSS)에 의해서 지지를 받는다.

- 28 -
그분을 죽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많은 이들을 하고 계십
니까? 그런데 일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또는 전혀 힘을 쓰지
않고, 말하자면 생명이 없이 누워 있는 자에게 [합당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특별
히 죽어 있는 우상과 영들에게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알아 있고, 활
동적"이며, 매일 일하시고,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매
일 능력을 상실했다고 입증되며, 오히려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상들과 영들이 죽은 것
으로 입증되므로 아무도 육체의 부활을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의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분이 스스로 육체를 취하셨다면, 그리고 우리의 논증이 보여 주듯이 합리
적인 일관성에서 육체를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다면, 주님이 그것으로 무엇을 하실 참
이었겠습니까? 아니면, 말씀이 육체에 내려앉았을 때, 육체는 무엇으로 끝나야만 합
니까? 왜냐하면 육체는 사멸하는 한 죽은 것밖에 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에게 바쳐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구세주께서 스스로 육체로 변
화되셨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생명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 죽은 채로 남아 있는 것
은 불가능했겠습니다. 그러므로 육체가 사멸할 곳으로 죽었지만, 육체는 육체 안의 생
명 때문에 생명에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육체의 부활에 대한 일들은 징표입니다.

32. 그러나 그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이 믿기지 않는다면, 신앙을 부
정하는 사람들이자연 과정을 부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것과
자신의 사역으로부터 알려지는 것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독특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역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사역들이 크게 외치며 분명하게 보여 준
다면, 어찌해서 그들은 부활로 인하여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준다면, 어찌해서 그들은
부활로 인하여 아주 분명하게 생명을 부인하는 것은 선택합니까? 비록 사람들은 지성
적으로 불구가 됐을지라도, 아직 외적인 감각으로 그리스도의 죄가 없는 권능과 신성
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눈이 먼 사람이 태양을 보지 못하지만 태양의 열
기는 감지한다면, 태양이 땅 위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반
대자들이 진리에 대해서 여전히 눈이 멀어서 믿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리스도의 신성
과 그분이 부활하셨음을 부인하지 않고 믿는 사람들로 인해서 그분의 권능을 알 것입
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었다면, 귀신들을 쫓아내지 못하며, 우상들을 망가뜨
리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영들을 복종시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분명
히 내쫓겼다면, 그분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틀림없이 명백한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께서 죽었고 어떤 순종도 전혀 거절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볼 수 있는 악령들처럼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악령들은
비종교적인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곧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며, 그래서 자
기들이 육체로 있었을 때 말했던 것을 말하면서 악령들은 날아와 그분의 발 앞에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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릎을 꿇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니다."50)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
롭게 하지 마옵소서."51) 그러므로 귀신들이 그분에게 고백을 하고, 그분은 매일 자신
의 사역을 통해서 입증됩니다. 그러니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진리에 대항해서 뻔뻔스
럽게 대처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구세주께서 자신의 육신을 부활시키셨다는 점과 그
분이 아버지 곧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라는 점,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지혜이고 권능이며,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
려고 육신을 취하셨던 분이라는 점은 틀림없이 명백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세상 [사람
들]에게 아버지와 관하여 가르치셨으며, 죽음을 무력화시키셨고,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자신이 부활하셨을 때, 부활의 약속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멸을 주셨으며, 죽음과 부
패에 대한 승리의 기념인 십자가의 징표로 부활을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이의 제기에 대한 응답

33. 그러한 것들과 육체의 부활과 구세주에 의해서 죽음을 이긴 승리는 분명하게 보
여 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이방인들의 조소를 비난하고자 합니
다. 아마도 이러한 것들은 이방인들이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부적당
함에서 오류를 찾아냈을 때 조롱을 하는 반면에, 유대인들이 의심을 드러낸 곳에서
핵심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논증은 특별히 그들에 대한 우리의 명령에
의해 정거들이 대낮처럼 분명할 때, 이 두 가지와 분투하는 것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
다. 왜냐하면 명문화된 단어들조차도 풍부하게 보여 주듯이, 본문과 영감을 받은 성경
전체가 이것들에 관하여 크게 부르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
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52)고 말하면서, 동정녀와 그녀로부
터의 출생에 관하여 사전에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위대한 자였던 모세
는, 진리를 말한다고 믿었고, 사람들은 그가 중요하게 이야기한 것으로 판단하면서 진
리임을 확신했는데, 이런 말로 기록했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
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53) 그리고 "이스라엘아, 네 거처들이,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어찌 그
리 아름다운고, 그늘진 골짜기 같고, 강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께서 세우신 장막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한 사람이 그 씨에게서 나오겠고, 만백성을 다스릴 주
가 되리라."54) 그리고 다시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이는 이 이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제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

50) 마가복음 1:24(참고 눅 4:34).


51) 누가복음 8:28(참고 막 5:7).
52) 마태복음 1:23(참고 사 7:14).
53) 민수기 24:17, 5-7.
54) 민수기 24:5-7과 비교하라. 이 구절은 있는 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뒷부분이 약간 변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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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옮겨질 것임이라."55)56) 그러므로 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이 앞에서와 같은 말들
로 이미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시는 이가 만인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선지자들
은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설교합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57) 왜냐하면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내
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58)이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부르셨기 때
문입니다.

34. 그분의 죽음은 침묵 속에 생략되지 않았으며, 그와 반대로 신성한 성경에서 굉장


히 자세하게 언급됩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사건들에서 교훈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영원히 실수해서는 안 되므로, 사람들은 죽음의 원인조차도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하
지 않았는데,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불멸과 구원을 위하여, 그
리고 유대인들의 획책과 저들의 손에 자신을 넘겨준 모육을 위하여 그랬습니다. 그러
므로 그들은 말합니다. "그는 간고를 많이 겼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
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
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
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9) 오, 놀랍도다! 말씀의
자애로움이여! 우리를 위하여 그가 멸시를 당했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을 받는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게
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라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러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
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하여 심판도 받지
못하였도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혹시 그의 고난을 보고, 그를 보통 사람으로 여길까
봐, 성경은 그분의 권능과 우리들의 비교한 특성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의 추측
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의 출생을 설명하리요? 왜냐하면 그의 생명은
땅에서 끓어졌기 때문이며, 백성의 허물 때문에 그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라. 그리고
나는 그의 장사 대신에 악인들을 주며, 죽음 대신에 부유한 자들을 주리라. 왜냐하면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구나, 그리고 주님께서 채찍으
로부터 그를 정결케 하시리라."

35. 그러나 아마도 여러분은 그분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들었을 때, 십자가를 무엇이
라고 설명할지를 배우기를 요청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조차도 생략되지 않았기

55) 이사야 8:4.


56) 원문에는 “권능”으로 되어 있는 것을 “재물”로 인용했다.
57) 이사야 54:1.
58) 호세아 11:1.
59) 이사야 53-3-5(칠십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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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입니다. 그것은 매우 솔직한 거룩한 사람들에 의해서 보였습니다. 우선 모세가 그
것을 설교하며, 큰소리로 말합니다.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60)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예언자가 이것을 증언합니
다. "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살아 있는 자의 땅에서 끊어
서 그의 이름이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61) 그리고
다시 말합니다. "그들이 내 수족을 찔렀고, 내 모든 뼈를 헤아렸나이다. 그들이 내 겉
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62) 이제 죽음은 높이 들렸고, 나무 위에서 발생
했다는 것은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자면, 십자가 위
에서의 죽음을 제외한 다른 어떤 죽음에서 수족이 찔림을 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러나 사람들 사이에 구세주께서 머무르신 이래로 산지사방에서 모든 민족들은 하나님
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항을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놔두지 않았지만,
성경에서도 역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서 만민을 다르실 것이요 그
는 모든 민족들에게 희망이 되리라."63) 그러므로 이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
한 작은 증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불신앙에 대한 반박들이 풍부
하게 있습니다. 신성한 성경에 기록된 의인들과 거룩한 예언자들과 믿음의 조상들 중
누가 동정녀에 의해 육체적으로 탄생했습니까? 또는 어떤 여자가 남자 없이 인간을
임신할 수 있습니까? 아벨도 아담에게서, 에녹은 야렛에게서, 노아는 라멕에게서, 그
리고 아브라함은 데라에게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서, 야곱은 이삭에게서 태어나지 않
았습니까? 유다는 야곱에게서, 모세와 아론은 아므람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사
무엘은 엘가나에게서, 다윗은 이새에게서, 솔로몬은 다윗에게서, 히스기야는 아하스에
게서, 요시야는 아몬에게서, 이사야는 아모스에게서, 예레미야는 힐기야에게서, 에스
겔은 부시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각자 자신의 존재의 창시자로 아버지
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누가 동정녀에 의해서만 태어났습니까? 왜냐하
면 예언자가 이러한 징표들은 엄청나게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는 누가 탄생할
때, 세상에 탄생을 알리기 위하여 하늘의 별들이 앞서 갔습니까? 왜냐하면 모세가 태
어났을 때, 그는 부모들에 의해서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전혀 몰라
서, 이새에게 다른 아들이 있는지를 물어봤던 것을 보면, 다윗의 출생은, 심지어 그의
이웃들에게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출생하자마자 이
웃들에게 위대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증인은 인
간이 아니라 그가 내려왔던 저 하늘의 별이었습니다.

36. 그러나 전에 살았던 어떤 왕이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를 힘을 갖기도 전에 다스렸


고, 적들에 대한 승리를 얻었습니까? 다윗도 30세에, 그리고 솔로몬은 청년으로 성장

60) 신명기 28:66.


61) 예레미야 11:19.
62) 시편 22:16-18.
63) 이사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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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때 왕위에 올랐습니다. 요아스는 7세에 왕권을 잡았으며, 나중에 왕이 된 요시
야도 7세에 통치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이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를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거의 출생 이전에 통치했으며, 적들을 결판내버렸
던 자가 누구였습니까? 또는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했던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말할까
봐 두렵습니다. 언제 모든 민족들이 희망을 걸고 평화를 찾았던 그런 왕이 이스라엘
이나 유다에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도처에서 대적들을 발견하지 않
았습니까?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서 있던 만큼 오랫동안 그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었으며, 그들 모두는 이스라엘과 싸웠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사람들이 그들을 억압
했으며, 이집트 사람들이 박해를 했고, 바벨론 사람들이 공격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상한 말이짐나, 앗수르 사람들은 그들의 전쟁에서 동맹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다
윗은 모압 사람들과 전쟁을 치르지 않았으며, 앗수르 사람들을 강타하지 않았으며, 요
시야는 이웃들의 공격을 방어하지 않았으며,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허풍에 기가 죽지
않았으며, 아말렉 족속은 모세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고, 아모리 족속은 그를 대적하지
않았으며, 여리고의 거주민들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 대항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면, 열방들과 이스라엘 사이의 우정에 관한 보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
므로 열방들이 자신들의 희망을 걸 수 있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이것은 알아볼 가치
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이 잘못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거기에는 틀림없
이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예언자들 중에, 또는 초기의 조상들
중에 어느 누가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또는 누가 모든 사람
을 고치기 위하여 상처받고, 목숨을 빼앗겼습니까? 또는 어떤 의로운 사람이나 왕이
이집트로 내려가서, 이집트의 우상들을 부숴 버렸습니까?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거기
로 갔지만, 우상 숭배는 보편적으로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거기서 태어났
지만, 사람들이 미혹된 숭배는 조금도 덜하지 않았습니다.

37. 또는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 중에 누가 손과 발에 찔림을 당했으며, 나무에 매달


렸으며, 만인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침상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면서 죽었고, 이삭과 야곱도 침상에 발을 올리고 죽었습니다. 모세와 아
론은 산에서 죽었으며, 다윗은 사람들의 손에 음모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자기 집
에서 죽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사울의 핍박을 받았으나, 해함을 당하지 않았으며, 이
사야는 톱으로 쳐져서, 두 동강이 났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지는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는 모욕을 당했으나, 저주 아래 죽지는 않았습니다. 에스겔은 고난을 당했으나, 사람
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고난 받은 곳에서조차도 사람들은 모두 공통의 속성을 닮아 있었습
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고난 받으리라고 성경에 선언되었던 그 사람은
비록 그가 속성상 실제로 인간들과 같을지라도, 단순히 인간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
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명이라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볼 것이라."64) "누가 그의 출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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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것인가?" 왜냐하면 사람은 모든 성인들의 족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족보와 누가 누구로부터 태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인 그
분의 출생은 성경에 설명되지 않는 것처럼 언급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에 대해서 신성
한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까? 또는 누가 그렇게 위대해서 예언자들조차도 그를 그렇게
위대한 것으로 예언합니까? 이제 성경에서는 만인을 위한 공동의 구세주, 하나님의
말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동정녀로부터 나왔으며, 이 땅에서 인간으로 나타나셨으며, 육체적 출생은 설명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동정녀로부터 비롯되어서, 그의 육신
적 아버지를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다윗과 모
세와 다른 조상들의 족보를 그려 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인간으로부터 구
세주의 육신적 족보를 설명할 수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별을 통해
서 자신의 육체의 탄생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말씀이 하늘
에 자기의 성좌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적절한 것이었으며, 피조물들의 왕이 왕
림했을 때 모든 피조물들에 의해서 분명하게 인지되어야 하는 것도 적절한 것이기 때
문입니다. 왜 그분은 유대에서 태어났으며, 페르시아 사람들이 그분을 경배하러 왔습
니까?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기 이전에도 악마적 대적자들에 대한 승리와 우상 숭배에
대한 개가를 얻으셨습니다. 하여튼 각각의 종교로부터 나온 모든 이교도들은 자기들
의 이교적 전통과 우상의 불경을 포기하면서, 이제는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걸고 있으
며, 여러분들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그분에게 자기들의 이름을 등록시킵니다. 왜
냐하면 만인의 주님께서 구름 위에 있었던 것처럼 육체로 이 땅에 오셔서 우상의 망
상을 무효로 만드셨고, 모든 사람들을 자신에게 데려오며, 자기를 통하여 아버지에게
데려가셨던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때에도 이집트인들의 불경이 그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65) 그는 증인으로서 태양과 모든 피조물, 그리고 그를 죽게 만들었던 자
들 앞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음으로써 구원이 모든 사람에
게 임했고, 모든 피조물들은 속죄되었습니다. 그분은 만인의 생명이며, 비록 유대인들
은 믿지 않을지라도,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한 마리 양처럼 자신의 육체를 죽음에게
넘겨주었던 분입니다.

38. 만일 그들이 이런 증거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다른 예언


을 가지고 숙고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며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
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
들을 불렀나니."66) 그래서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나타났던 자가 누

64) 신명기 28:66; 이사야 53:8.


65)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에 방문했던 것과 그들 앞에서 우상들이 무너졌다는 전설에 대한 언급은
Gospel of Pesudo Matthew, 22-24장(M. R. James, Apocyphal New Testament, 75, 76)과 이집
트에 동시대에 만연했던 복음서를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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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니까? 만일 그것이 예언자라면, 언제 그가 숨었다가 다시 나타났는지를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호함으로부터 분명하게 나타났지만, 자기 손을 십자가로 뻗쳤
던 자는 어떤 종류의 예언자입니까? 본성상 비가시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면,
의로운 자들 중에 어떤 사람도 결코 우리를 위하여 육체로 나타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또는 만일 이것조차도 그들에게 충분
하지 않다면, 최소한 다른 증거들로, 곧 그것이 얼마나 분명하게 증언하는 힘이 있는
지를 알게 하여 침묵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성경은,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겁내는 다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드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쏟겠
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67)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또는 도대체 어떻게 감히 이것을 직면할 수 있
겠습니까? 왜냐하면 예언은 단지 하나님이 여기에 머무르시는 것만 지시하는 것이 아
니라 그분이 오시는 징조와 시간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징조들은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며, 절름발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말을 더듬는 자의 혀가 똑
똑히 들리는 것과 앞으로 일어날 그분의 왕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그런 징표들이 이스라엘에 일어났었는지를, 또는 유다 어디서 그런 것들이 발생
했었는지를 그들에게 말하게 하십시오. 문둥병자 나아만은 정결케 되었지만, 귀머거리
는 듣지 못했고, 절름발이는 걷지 못했습니다. 엘리야는 죽은 자를 일으켰으며, 엘리
사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대부터 소경인 자는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
다. 왜냐하면 정말로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구세주에 의해서 행
해진 이적과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이 문둥병자와 과부의 죽은 아들의
사례를 빠뜨리지 않았다면, 절름거리는 사람이 걸었고 눈먼 사람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 분명히 화자(話者)는 이것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결코 이전에 발생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친히 육체로 오셨을 때를 제외하고, 언
제 그런 일들이 발생했던 적이 있습니까? 또는 만일 절름발이가 걷고, 말을 더듬는
자가 또렷이 말하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태생 소경이 시력을 회복했을 때가 아니라
면, 도대체 언제 하나님의 말씀이 왔습니까? 이것은 참으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유
대인들은 누가 그때 그것을 목격했는지를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어떤 다른 시
간에 그런 일들이 발생했다는 것을 들었던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
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
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68)

66) 이사야 65:1-2(롬 10:20-21).


67) 이사야 35:3-6.
68) 요한복음 9: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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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그러나 아마도 그들조차도 기록된 것을 부정하지 않은 채, 그렇게 분명한 사실에
대항하여 계속해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들은 증거들을 찾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려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들이
분명한 사실에 대해서 뻔뻔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이 점에서 그들 모
두는 우리의 손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인 날짜와 구세주의 신적인 내주(內住)에 대해서
알아챘던 가장 지혜로운 다니엘과 같은 자의 손에 의해서 더 많이 반박을 당할 것입
니다. 다니엘은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가려지며, 불의가 끝나고, 불의가 속죄되며, 또
영원한 의가 드러나리라. 환상과 예언이 봉해지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
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말씀의 시작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오기까지 예
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는 것을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69)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들은 다른 예언들에 관해서 구실들을 찾을 수 있으며, [성경에] 기록된 것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것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도대체 그것에 직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되는
곳뿐만 아니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역시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그의 왕림 때까지 존속할 것이며, 그때부터 예
런과 환상은 예루살렘에서 그칠 것입니다. 다윗은 옛날에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솔로
몬과 히스기야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과 그 위치는 존속
했으며, 갓과 아삽과 나단 같은 예언자들은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사야, 호세아, 아모스 및 다른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기름 부음 받았던 현존했던 인간들은 거룩하다고 했지, '지극히 거룩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바벨론 유수를 구실 삼아 그것 때문에 예루살렘이
존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들은 예언자들에 대해서도 역시 무엇을 말할 수 있겠
습니까? 왜냐하면 사실 처음에 사람들이 바벨론에 내려갔을 때, 다니엘과 예레미야가
거기에 있었고, 에스겔과 학개와 스가랴는 예언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40. 그래서 유대인들은 헛된 말을 했으며, 그들이 미래에 대해서 언급한 시간의 문제


는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곧 지극히 거룩한 이가 오셨을 때를 제외
하고는 언제 예언과 환상이 예루살렘에서 중지됐습니까? 예루살렘이 더 이상 존속하
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의 오심에 대한 징표이며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어떤 예언자도 일어나지 못했으며, 그들에게 환상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매우 자
연스러웠습니다. 선포됐던 분이 왔을 때, 그분을 고지(告知)했던 자들은 대체 어떤 필
요가 있었던 것입니까? 진리[의 빛]가 있었을 때, 그늘이 대체 무엇 때문에 더 필요하
단 말입니까? 이것이 그들이 예언한 이유였으며 - 말하자면, 참된 의(義)가 올 때까지
필요했던 것이며, 그분은 만인을 위한 대속이 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루살

69) 다니엘 9:24-25.

- 36 -
렘이 여전히 존속했던 이유였습니다. 말하자면, 거기서 그들은 진리의 유형을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거룩한 이가 왔을 때, 자연히 환상과 예언은 봉인되었
으며, 예루살렘 왕국도 멈췄습니다. 왕들이 그들 중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은, 단
지 지극히 높으신 이가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까지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
곱은 유다 왕국은 그분의 때까지 서 있어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
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70) 그러므로 구세주께서
도 역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71)라고 큰소리로 외치셨습니
다. 그러므로 이제 유대인들 사이에서 왕이나 선지자나 환상이 있다면, 그들이 그리스
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만일 왕도 없고 환상도
없지만, 그때부터 예언이 봉인되었고 도성과 성전이 정복되었다면, 어째서 그들은 무
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고도,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리스도를 부정할 만큼
불경스럽고 심사가 꼬인 것입니까? 또는 어떻게 이방인들이 우상을 돌보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희망을 거는 것을 볼 때, 어째서 그들은 육
으로는 이새의 뿌리에서 나왔고, 그래서 왕이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입니까? 그러
므로 다시 말하자면, 만일 이방 민족들이 어떤 다른 신을 섬기고 있었다면,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의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오
지 않았다고 단언하여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방인들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
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그분의 말씀을 유대인들이 무시했던 것과 동일한 하
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들은 어째서 무지합니까? 아니 오히려 "주 하나님은 우리에
게 빛을 비추셨다."72) 다시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
서 건지시는도다."73) "사자도, 천사도 아니라 주께서 친히 그들을 구원하셨다"74)라고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어째서 그들은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빛나셨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까? 그들의 입
장은 마치 태양에 비춰진 땅은 보면서도, 정작 땅을 비추는 태양을 부정하는 정신이
나간 사람의 입장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오신 후에 더 많이 행할 것으로 기
대했던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방인을 부르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이미 부름
을 받았습니다. 예언을 하는 것과 왕과 환상을 멈추는 것입니까? 이것도 이미 밝혀졌
고 정죄되었습니다. 아니면, 죽음을 부숴 버리는 것입니까? 죽음도 이미 파괴되었습
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행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유대인들이 아무런 탈 없이 믿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 이것은 바로 우리가 실제로 아는 것이긴 한데 만일 내가 유대인들 중에
왕도, 예언도, 예루살렘도, 희생도, 환상도 없고, 온 땅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

70) 창세기 49:10.


71) 마태복음 11:13(눅 16:16).
72) 시편 118:27.
73) 시편 107:20.
74) 이사야 63:9(칠십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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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하고, 이방인들도 무신론을 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인 말씀을 통해 아브라함
의 하나님에게서 피난처를 찾는다고 말한다면, 몹시 완고한 자들에게조차도 그리스도
가 오셔서 자신의 빛으로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비추셨고, 아버지에 관해서 참되고
신성한 가르침을 주셨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들과 성경에서 나온 다른 논증들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유대인들


을 논박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의 이의 제기에 대한 답변.

41. 그러나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전혀 우습지 않은 것도 조롱하는 반면에, 자신들이


보지 못해서 막대기와 돌 모양으로 만들었던 자신들의 망신거리에는 무감각한 것에
완전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논증에 확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지 않은 것
처럼, 주로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좋은 이유들을 들어서 이방인들을 부
끄럽게 만듭시다. 우리 쪽에서 불합리한 것이나 조롱거리가 무엇입니까? 말씀이 육신
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은 단지 우리의 이야기일 뿐입니까?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것을
진리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이 일이 모순이 없이 일어났음을 그들조차도 인정하
려 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쨌든 말씀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모
르는 것을 조롱할 때, 쓸 때 없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
의 말씀의 존재와 그분이 우주의 지배자임과 그 안에서 아버지가 창조했으며, 하나님
의 섭리에 의해 만물이 빛과 생명과 존재를 받고, 그가 만물을 다스려서 그분의 섭리
의 사역을 통해서 그분이 알려지고, 그분을 통해서 아버지가 알려진다는 것을 고백한
다면, 그들이 무의시적으로 자신들을 조롱거리로 만들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요청합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하나의 큰 몸이라고 설명하는데, 정말 그렇습
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의 몸인 우주 안에 있다면, 그리고 스스로
전체와 연합되고 전체가 부분과 연합된다면, 우리가 그분이 스스로 인간과도 역시 연
합되셨다고 말한다면, 무엇이 놀랍거나 불합리합니까? 만일 그가 어쨌든 육신 안에
있었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분이 전체와 연합하는 것과 빛을 주고 섭리
에 의해서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것도 불합리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전체는 하나
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분이 우주와 연합하는 것과 전체에 알려지는
것이 그분에게 어울린다면, 인간의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도 역시 그분에게 어울려야
만 하며, 그분에 의해서 밝혀지며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나머지와 마찬가지로
전체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어느 부분이 인간에게 신성을 가르치기 위
한 도구로 채택되었다면, 그분이 전체 우주에 의해서 알려져야만 했다는 것은 분명히
가장 불합리합니다.

42. 인간의 몸 전체가 사람에 의해서 움직이고 깨어 있는 동안에, 어떤 사람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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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힘이 발가락에도 들어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고 가정한다면, 바로 그 사
람이 어리석은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가령 그가 몸 전체에 골고루 스며 있으며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 그는 부분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체 우주 안에 있으며, 전체는 그분에 의해서 비춰지고
움직인다고 인정하고 믿는 사람은 인간의 몸이 그분으로부터 운동과 빛을 받는다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인류는 창조된 것이며,
무로부터 만들어졌고, 그들이 구세주께서 우리가 말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던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을 간주하기 때문이라면, 그들이 창조로부터도 역시 추방당하
기에 좋은 때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시 무로부터 말씀에 의해서 존재하기 시작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창조가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만일 말씀이 그 안에 있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다면, 말씀이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역시 모순되지 않습니다.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인간도 역시 전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창시
자들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둥하며 존재하느니라"75)고 말하듯이, 만물이 말씀
으로부터 빛과 운동과 생명을 얻는 동안에, 말씀이 인간 안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부적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일 말씀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을 스스로
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해 왔다면, 우리가 말한 것에서 조롱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
니까? 말씀이 육신 안에 없기 때문에, 육신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미 말씀이 전체와 그 부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면, 그분이 존재했던 방식
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던 것에서 무엇이 믿을 수 없단 말입니까? 왜냐하면 그분은 자
신의 능력으로 전체적으로 각각의 부분과 연합되었으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정돈하
셔서 아무도 원래 위치에서 불러낼 수 없기 때문이며, 태양을 수단 삼아, 만일 그분
이 원했다면, 달이나, 하늘이나, 땅이나 물이나 불을 수단 삼아 그 자신과 아버지를
알리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하나 속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붙잡고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사실 모든 것뿐만 아니라 부분도 역시 해당하며, 거기서 보이지 않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만일 그분이 전체를 행하시는 것으로 질서를 세우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있으며, 사람을 통하여 기꺼이 자신을 알리면서 아버지에 대한 지식과 진리를
드러내기 위항 인간의 몸을 도구로 사용하셨다면, 마찬가지로 불합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성도 역시 전체의 실제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체 인간에
스며드는 마음이 다른 어떤 것을 말하지 않고도 신체의 일부 - 혀를 의미합니다. -
에 의해서 판단되듯이, 마음의 본질은 그 이유 때문에 낮춰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일 모든 것에 스며 있는 말씀이 인간적인 도구를 사용했다면, 이것도 부적절한 것
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에 말했듯이, 만일 인간을 도구로 사용했
던 것이 부적절한다면, 그가 전체 안에 존재하는 것도 역시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

43. 자, 만일 그들이 왜 그분은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창조의 더 고상한 부분의 방식


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며, 단순히 인간으로 나타나기보다는 태양, 달, 별, 불, 공기 등

75) 사도행전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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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고상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는지를 묻는다면, 주님께서는 보여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자들을 치유하고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려주십시
오. 왜냐하면 보여주려는 하나의 목적을 위한 방법은 단지 나타나며 그것을 보는 이
들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지만, 치유하고 가르치는 것을 찾기 위한 방법은 단순히 여
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자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며, 자신을 필요
로 하는 자들이 그것을 견딜 수 있듯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고난을 당하는
자들의 과도한 요구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외양을 말하면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들
에게 고통거리를 줄 수 없습니다. 이제 창조에서 어떤 것도 오직 인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언급에 대해서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왜 태양도, 달도, 하늘도,
별들도, 물도, 공기도 그들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자신들의 창시자와 지배자,
곧 말씀을 알면서 그들은 만들어진 대로 남아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만이 좋았던 것
을 거절하면서, 진리 대신에 무로부터 어떤 것을 고안해 냈으며, 하나님께 합당한 영
광과 그분에 대한 지식을 돌 형상으로 악마와 인간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렇
게 중요한 일을 간과하는 것은 신성한 선함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인간들은 아직
전체를 질서 있게 하시고, 보호하시는 분을 지각할 수 없었던 반면에, 전체의 일부분,
곧 인간의 육신을 도구로 삼으셔서 인간이 그분을 전체적으로 지각할 수 없기 때문
에, 인간들이 자신을 부분적으로 알게 하시려고, 인간의 육신과 자신을 연합시키셨습
니다. 그리고 그들이 좌우지간 자신들을 자기에 대한 이성에 비유했던 것에서 자신의
비가시적인 권능을 알아볼 수 없기 떄문에, 그분을 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
면 인간으로서 그들은 그것들이 인간적인 일이 아니라 그분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하
나님의 사역임을 비교하여 판단하면서, 아버지를 동일한 본성의 육체로 그리고 그것
을 통해서 행해졌던 신성한 사역들로 더 빨리 그리고 더 직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했던 대로 하나님의 사역이 육체를 통하여 알려졌다는 점이
정말 불합리했다면, 우주의 사역을 통해서 알려졌더라도 마찬가지로 불합리했을 것입
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창조 안에 존재하시며, 지금까지 최소한의 정도라도 창조의 틍
성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물이 그분의 권능에 참여하듯이, 그분은 육체를
도구로 사용하셨던 동안에도 어떤 육체적인 특성에 참여하셨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스스로 육신조차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
인들 사이에서 그런 평판을 받고 있는 플라톤조차도 큰 소란을 일으키는 우주를 보면
서, 그리고 혼란한 곳으로 내려가는 위험 속에서 우주의 창시자는 영혼의 방향키를
잡고, 구조하러 가서 우주의 모든 불행을 수정한다고 말한다면,76)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인 우리가 말씀은 아래로 만물을 비췄으며, 인간으로 나타났고, 보호와 선함으로
온 우주의 혼란을 구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믿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44.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이것에 동의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만일 하나님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면, 말씀이 육신을 취하지 않고, 인간을 무로부터

76) Politicua 27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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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셨을 때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단순한 명령에 의해서 그렇게 하셨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이의 제기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
다. 예전에, 무가 존재할 때, 만물을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하나님의) 절대 명령
과 그렇게 하려는 사실 그대로의 의지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일단 만들어졌을 때,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게 되었던 것을 위한 구원이 필
요했을 때, 존재하고 있었던 것도 구원하기 위해서 의사와 구세주가 실존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했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으며, 자신의 육체를 인간적인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만일 이것이 올바른 방법
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말씀이 도구를 사용하면서 나타났겠습니까? 또는 어째서 그분
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제외하고 육신을 취했으며, 인간들과 닮은 인간적인 방편으로
신성을 취했겠습니까? 그것은 구원이 필요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실제의 명령은 충
족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했던 인간은 타락하고 파멸되고 있었습니다. 그
런데 말씀이 인간적인 도구를 사용해야 했던 것과 어디든지 나타나야 했던 것은 자연
스럽고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당신은 이것도 역시 알아야 합니다. 곧 예정
되어 있던 타락은 육체에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
락 대신에 생명이 그 안에 결합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육체 안에서 생
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도 역시 육체 안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육체
안에서 생겨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도 육체에 형식적으로 생겨났어야 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죽음이 육체를 꼭 휘감고 있고, 마치 육체에 연합되
어 있듯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다면, 생명도 역시 육체를 꼭 휘감고 있어야 하며,
죽음 대신에 생명을 줌으로써 육체가 타락과 인연을 끓어 버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심지어 말씀이 육체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나타났고, 죽음이 생명에 대해서
더 이상 지배력이 없기 때문에, 자연과의 완전한 일치 속에서 죽음은 실제로 말씀에
의해서 정복되었다고 가정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육체에 예속된 타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생명과 밀접하게 결부된77) 육
체가 죽은 것으로 더 이상 죽음 안에 있지 않고, 불멸에 붙여져서 다시 부활하여 불
멸적인 것으로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구세주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습니다. 일
단 육체가 타락에 놓이게 되었을 떄, 생명에 붙여지지 않았다면, 다시 부활할 수 없
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육신 안에서 죽음을 발견하
고, 죽음을 지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이심이 입증될 수 있었기 때문에, 사멸적
인 것을 소생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루터기는 자연적으로 불에 파괴되기 때문에, 누군
가가 불연 물질인 석면으로 그루터기를 두루 감싼다면, 그루터기는 불연 물질로 감싸
져서 안전하므로 더 이상 불의 위협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육체 및 죽음과 관련해
서 이런 방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죽음이 명령에 의해서 육체로부터 멀리 있
게 되었다면, 육체의 특성에 따라서 육체는 사멸하고 타락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육체
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붙여진다면, 죽음이나 타락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77) 또는 단순히, “생명에게.”

- 41 -
냐하면 육체는 생명을 의복으로 걸치고, 타락은 육체 안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
다.

45. 그러므로 시종일관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를 취했고, 인간적인 도구를 사용했습니
다. 이것은 육체에도 활기를 넣기 위함이며, 자신의 신성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
아무것도 상실됨이 없이 모든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나는 전에 말했던
것을 요약하며 반복합니다. 구세주께서 이 일을 행하셨던 것은 그분이 편재함으로 만
물을 채우시듯이, 성경에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78)고 말
하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만물을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만일 사람이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하늘의 질서를 알 수 있습니다. 또는 만일 인간이 하
늘을 향해 자기 얼굴을 들 수 없고 오직 사람들에게만 할 수 있다면, 사역을 통해서
알려진, 사람의 권능과 비교를 초월한 그분의 권능을 알고 있으며, 그분이 인간들 중
에 홀로 말씀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다시 말하자면, 만일 어떤 사람이 마
귀들에게 타락하여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분이 사탄들을 쫓아냈고, 그의 마음
을 수습하여 그분이 사탄의 주인이 되심을 알게 됩니다. 또는 만일 어떤 사람이 하천
에 빠졌었다면, 그리고 예를 들면, 이집트인들이 물을 숭배하듯이, 그 하천을 신으로
생각한다면, 그분에 의해서 물의 속성이 변화되었음을 알게 되며, 주님이 물의 창조자
이심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하데스로 내려갔고, 거기로 내
려갔떤 영웅들을 신들이라고 간주하면서 경외한다면,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과 죽음
을 이기신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그들 중에 그리스도만이 홀로 참된 하나님이며 주
님이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창조의 모든 곳에 관여했으며, 모든 사
람들을 온갖 망상으로부터 해방시키셨고,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
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
셨느니라."79) 그리고 그는 누구든지 혹시라도 속임을 당하지 않을 것과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발견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곳에서
패배했으며, 감추어진 곳에서, 곧 천국에서, 하데스에서, 인간 안에서, 땅 위에서 말씀
의 신성을 보기 때문이며, 하나님에 관해서 속이는 것은 더 이상 접하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만 홀로 경배하며,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수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논증들에 의해서 이성을 구실로 해서 이방인들은 교대로
우리에 의해서 당연히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논증들이
그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면, 하여튼 우리가 모든 이들의 눈에
분명한 사실들에 의해서 말하고 있음을 확인시키십시오.

46. 하나님, 곧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 인간들에게 온 다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인간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그만두기 시작했습니까? 또는 구세주께서 지상에 모

78) 이사야 11:9.


79) 골로새서 2:15.

- 42 -
습을 드러내셨던 때를 제외하면, 도대체 언제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어느 곳에
서나 신탁이 그쳤으며 공허하게 되었습니까? 또는 주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고, 자신
이 취하셨던 육신을 썩지 않게 보전하셨으며,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이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시가(詩歌)에서 신들과 영웅들로 불렸던 자들이 단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습니까? 또는 하나님의 권능, 곧 이 모든 것의 주인이신
말씀이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겸손하게 이 땅에 나타나셨던 때를 제외하면, 언제 귀
신들의 속임수와 광기가 수치를 당했습니까? 혹은 인간들 사이에서 말씀의 신적 현현
이 일어났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 주술적 기교와 그 양성소가 짓밟히기 시작했던 적
이 있습니까?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
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 그리스인들의 지혜가 어리석어졌습니까? 왜냐하면 예전에 전
세계와 모든 곳이 우상 숭배에 의해서 타락했으며, 사람들은 우상들을 신들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우상의 미신을 버리고 있으며, 그리
스도를 보호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면서, 그분을 수단으로
해서 자신들이 몰랐던 아버지도 역시 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예배의
대상이 다양하고 많았던 것과 장소마다 우상들이 있다는 것과 그들 중에 한 신도 인
접 지역의 사람들의 우상들에게 자신을 예배하도록 설득하기 위하여 인접한 지역으로
넘어갈 능력이 없었고, 오히려 자기 사람들에게서도 가까스로 섬김을 받았다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웃 신들을 경배하지는 않았고, 반대로 각자가 자신의 신을
만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며 동일한 분으로 예배를 받으셨으며, 우상의 연약함은 아주
가까이에 머무는 사람들조차도 설득할 수 없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한 분, 동일한 주
님과 그를 통해서 하나님까지도 가까이 예배하도록 가장 가까이에 머무는 자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설득하셨습니다. 47. 그리고 예전에 도처에서 신탁의 속임수가 가
득했고 델포이 [신전]과 도도네 [신전]에서의 신탁들, 그리고 보이오티아, 리키아, 리
비아 이집트 그리고 카배리와 피토네스의 여러 곳에서의 신탁들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때문에 좋은 평판을 얻었는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곳에서 선포를 시작하신 이래로, 지
금은 그들의 광기도 그쳤고, 그들 사이에 신성시하는 어떤 것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
습니다. 그러므로 요술로 단순한 자들을 감복시킨다고 인간의 상상력을 기만하곤 했
기 때무에, 말씀의 신성한 방문이 있은 다음인 지금은 그들의 기만이 멈췄습니다. 왜
냐하면 비록 인간이 그것을 사용할지라도, 십자가의 징표에 의해서 그분이 귀신들의
기만을 내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사람들이 시가(詩歌)들에서 언급된
제우스와 크로노스와 아폴론과 영웅들을 신이라고 간주했던 동안에 그들을 숭배함으
로써 타락했는데, 이제는 구세주께서 인간들 사이에 나타나셔서 다른 사람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임이 폭로되었고, 그리스도 홀로 인간들 사이에서 참된 하나님,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서 아주 높이 평가
되는 마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요?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기 전에 이집트인들과
갈대아 인들과 인도인들 사이에서 마술은 강력했고 실표가 있었으며, 그것을 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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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에게 경외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현존함으로써 그리고 말씀이 나타
남으로써 그러한 상황은 철저히 혼란에 빠졌고, 완전히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교도들의 지혜에 대해서처럼, 그리고 철학자들의 건전한 허세에 대해서처럼, 나는 어
떤 사람도 우리의 논증을 필요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모든
사람의 목전에서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지혜자가 그렇게 많이 기록했던 반면에, 그리
스인들이 불멸과 고결한 삶에 관하여 자기들의 이웃들 중에 단지 몇 명이라도 설득할
수 없었다면,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보통의 언어와 재주가 없는 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전 세계에 걸쳐서 사람들로 가득 찬 전체 교회80)가 죽음을 무시하며 불멸하는
것들에 마음을 쓰도록 했고, 일시적인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들의 눈을 영
원한 것으로 돌리고, 지상적인 영광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며, 오직 하늘의
것들을 추구하도록 설득했습니다.

48. 이제 우리들의 이러한 논증들은 단지 말싸움은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에서 진리


에 대한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자, 원하는 자들은 가서 그리스도의 동정성에서 그리고
거룩한 자선을 행하는 젊은 사람에게서 덕행의 증거와 아주 많은 일단의 순교자들에
게서 불멸에 대한 확신을 보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말했던 것을 경험함으
로써 시험해 보고자 하는 자를 오게 하십시오. 그리고 귀신들의 속임수와 신탁들의
사기와 마법의 경이로움 앞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조롱을 받았던 저 십자가의 징표를
사용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으로 인해서 귀신들이 달아났으며,
신탁이 그쳤고 모든 마법과 주술이 무효가 되었는지를 똑똑히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누가 자기 이름과 존재로서 각 방
면에서 모든 것을 자취를 감추며 무효로 만들고, 모든 것에 대항하여 홀로 강력하며,
전 세계를 자기의 가르침으로 가득하게 했습니까? 누가 기꺼이 웃으며,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말하게 하십시오. 만일 그리스도가 인간이라면,
어떻게 한 사람이 자신들조차도 신으로 간주되는지 자를 모두 보다 능력에서 우세하
며, 자신의 능력으로 무의 존재에 대해서 확신시켰습니까? 그러나 만일 그분을 마술
사라 부른다면, 어떻게 한 마술사에 의하여 모든 마술이 확고히 되는 것이 아니라 괴
멸되었습니까? 왜냐하면 만일 그분이 특별한 마술사들을 이겨 냈다면, 또는 한 사람
보다 우세했다면, 그들은 그분이 더 우월한 기술로 나머지를 내몰았다고 생각하는 것
이 적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분의 십자가가 절대적으로 모든 마술들
과 그들의 이름들을 이겨 버렸다면, 다른 마술사들이 주술로 불러낸 저 귀신들조차도
자기들의 주인이신 그분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을 볼 때, 구세주께서 마술사가 아니라
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오직 누구의 진지한 행동이
조롱거리인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말하게 하십시오. 아마도 그들은 그분도
역시 귀신이며, 그래서 힘이 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이것을 말하십시오. 그들은 귀신들을 조롱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

80) 이 단어는 비전문적으로 “회합”이라는 단어로 사용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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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의 이전 증거들로 인해서 다시 한 번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
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귀신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왜냐하면 그분
이 단순히 특별한 귀신들을 추방했다면, 마치 유대인들이 그분에게 모욕을 주기 원할
때 말했던 것처럼,81) 귀신들의 우두머리에 의해서 그분도 더 열등한 귀신을 지배했다
고 간주하는 것이 더 알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분의 이름으로 귀신들의 모
든 광기가 근절되며 추방당한다면, 여기서도 역시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우리 주
시며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떤 악마적인 능력이 있
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구세주께서 단순히 인간도,
마술사도, 어떤 귀신도 아니며, 자신의 신성으로 시가(詩歌)들에 기초한 가르침과 귀
신들의 망상과 이교도들의 지혜를 무효로 돌리고 자취를 감추게 하셨다면, 이분이 하
나님의 참된 아들이며, 태초부터 아버지의 말씀과 지혜와 권능이라는 점은 명백하며,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자체로부터 인간의 일이
아니며, 인간 위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지,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의 일인지
에 대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49.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동정녀로부터 스스로 육신을 형성하여 태어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는 어떤 인간이 만인의 주님으로 그런 질병들을 치유하셨습니까? 아니
면, 누가 바라고 있었던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회복시켰으며,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던
자를 보게 하셨습니까? 그들 중에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는 의술을 행했으며, 땅
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과학을 이용하여 추출해냈던 병든
육체에 유익한 약초들을 찾아냈기 때문에, 신처럼 공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
처를 치유하는 대신에, 인간의 본래 특성을 개조해서 전체 신체를 치유했던 것은 구
세주께서 행하셨던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헤라클레스(Heracles)는 인간들, 곧
동료들에 대항해서 싸웠고, 간계로 야수들을 격파했기 때문에,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부터 질병과 귀신과 죽음 자체를 내쫓았던
말씀이 하신 일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디오니소스는 사람들에게 술 취함을 가르쳤
기 때문에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참된 구세주이며 만인의 주님은 절제를 가르쳤
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서 조롱을 받았습니다.82)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냥
봐주십시오. 그 사람들은 그분의 신성으로 인한 다른 이적들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요? 어떤 인간이 죽을 때, 태양이 어두워졌고 땅이 흔들렀습니까? 보십시오. 지금까
지 사람들은 죽고 있으며, 그들도 역시 늙어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죽음의 경
우에서 언제 그와 유사한 이적이 발생했습니까? 또는 그분의 육체를 통하여 이루어졌
던 행위들을 건너뛰기 위하여 육체의 부활 이후의 행위들만 언급하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가르침이 도처에 만연되었으며, 짖구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하나의 그리고
동일한 세력을 얻었고, 그분에 대한 예바가 모든 곳에서 신속하게 촉진되었습니까?

81) 마태복음 9:34(12:24; 눅 11:15).


82) 동일한 인물들에 대한 서로 다른 대우에 관해서는 순교자 유스티노스의 『제일 변증론』 21과 비교하
라.

- 45 -
또는 만일 그리스도가 그들이 말하는 대로, 일개 인간이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면, 어째서 그분에 대한 예배는 그들이 섬기는 신들로 인해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들
어가지 못하게 방해를 했습니까? 아니면, 그와 반대로 어째서 여기에 머무르는 말씀
은 스스로 그들이 [신들을] 섬기는 것을 교훈을 통하여 제지했으며, 그들의 속임수를
부끄럽게 하셨습니까?

50. 이 사람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왕이었고, 전제 군주였던 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은 갈대아인들과 이집트인들과 인도인들 사이에서 현인이며 마술사였던 것
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들 중에 누가 - 내가 말하는 것은 그들의 사후가 아니라 = 살
아 있는 동안에 그러한 능력을 펼쳐서 온 땅이 그분의 가르침으로 충만했고, 구세주
가 우상에서 자신에게 회개시켰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우상의 미신으로부터 돌아
오게 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럴듯하게 그리고 언변으로 많은 말들을
지어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셨던 거처럼 그렇게 위대
한 어떤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가르쳤던 세련됨은 그들이 죽을
때까지 그럴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가지고 있는 것 같았던
영향력조차도 상호 경쟁 관계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경쟁심이 강했
으며,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한 사실이기는 했지만, 평이한 말투로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은 까다로운 궤변론자들을 잊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
든 것을 자신에게로 이끌면서 그들의 학파를 무효화시켰던 반면에, 자신의 교회를 가
득차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그분이 인간으로서 죽으시기까지 낮아지
셨다는 것인데, 이는 우상과 관련하여 현인들의 건전한 발언까지도 무효로 만드셨습
니다. 누구의 죽음이 귀신들도 쫓아냈습니까? 왜냐하면 구세주의 이름이 불리는 곳에
서 모든 귀신들은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연적인 인간의 정욕으로부터 인간
을 해방시켜서, 색골들을 추방했으며, 살인자들이 더 이상 길을 지니지 않으며, 예전
에 소심해서 억눌렸던 자들이 남자답게 행동합니까? 그리고 간단히 말하면, 만일 그
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십자가의 징표가 아니라면, 누가 야만스런 나라의 사람들과 여
러 곳에 사는 이교들에게 광기를 내버리고, 평화를 마음에 품으라고 설득했겠습니까?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불멸과 육체
의 부활에 대한 그 정도의 확신을 주었습니까? 왜냐하면 비록 그리스인들이 온갖 종
류의 거짓된 이야기들을 말했을지라도, 아직 자기들의 우상의 부활을 꾸며 내지는 못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다음에 육체가 다시 존재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
나 한 것인지가 그들의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어떤 사람은 이런
의견에 의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우상의 연약성을 폭로했던 까닭에 그리스도에 대한
열린 가능성을 남겨 두면서 그들의 증언을 가장 특별하게 받아들여서 그분은 모든 사
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졌을 것입니다.

51. 다시 말하자면, 어떤 인간이 죽음 다음에, 또는 살아 있을 동안에 동정성에 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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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그리고 덕행이 인간들에게 불가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쳤습니까? 그러나
우리 구세주이며 만인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아직 법정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아
이들조차도 율법을 초월한 동정을 서약할 만큼 동정성과 관련한 가르침에서 그런 능
력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어떤 사람이 스키타이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 또는 페르시아
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 또는 그트족들, 또는 우리가 바다 건너에 있다고 들었던 사람
들, 또는 히르나티아인들이나 이집트인들과 갈대아인들, 그리고 마술을 마음에 두고
초자연적인 미신을 믿는 자들과 꽤 야만스런 자들 사이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덕행
과 절제를, 그리고 만인의 주님이며 하나님의 권능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
셨듯이 우상 숭배를 근절하도록 설교할 수 있었겠습니까? 왜냐하면 예전에 우상 숭배
를 하는 동안에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인들(Baebarians)은 서로 전쟁을 하곤 했으며,
실제로 자기 종족에게 잔혹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싸움 때문에 검으로 무장하지 않은 바다나 땅을 가로질러 가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의 전 과정이 무기에 의해 점철되었으며, 검은 그들의 권
표가 되었고, 온갖 위급한 상황에서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에
말했듯이 여전히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귀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자
신들의 우상 숭배적 미신 때문에 이런 [악]영으로부터 개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들이 그리스도파로 넘어왔을 때, 기묘하게도 사람들이 정말로 양심에 찔림을 받았듯
이, 살인이라는 야만성을 내버렸고, 더 이상 전쟁과 관련된 것들을 마음에 두지 않았
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들과 평화로웠고, 이제부터는 우정을 쌓는 일이 그들에게
취미가 되었습니다.

52. 그러므로 이런 일들을 수행했던 그분은 누구입니까? 아니면, 사랑에 의해서 우리


의 구원 때문에 모든 것들을 겪으셨던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 만인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기도 한 그분이 아니라면, 도대체 서로 반목하던 사람들을 평화롭게 연합
시켰던 그분은 누구입니까? 왜냐하면 옛날부터 성경에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
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83)고 기록된 대로 그분
이 인도할 평화에 대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적어도 믿을 수 없
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풍습이 선천적으로 야만적인 비그리스인들조차도, 자기네 나
라의 우상들에게 여전히 희생 제물을 바치는 동안에, 서로에 대해서 광기를 부리며,
잠시라도 무기가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을 때 싸우는 대
신에 곧장 농업으로 전환하며, 자기들의 손에 무기를 쥐는 대신에 기도하기 위하여
손을 들고,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부터 자제와 영혼의 덕목으로 이런 것을 억제하면서
자기들 사이에 전쟁을 하는 대신에 사탄과 악령들에 대항해서 무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분으로부터 배웠던 것을 우상들에게서는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들로 하여금
서로 전쟁을 하도록 했던 귀신들은, 만일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그친다면, 자신

83) 이사야 2:4(미 4:3).

- 47 -
들에게 대항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서로 싸우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어째서 습관과 덕행으로 귀신들을 반대하며, 패주시키고, 우두머
리인 사탄을 조롱합니까? 그래서 그들은 젊어서 자제심이 많고, 유혹을 잘 견디며,
노동을 버텨 내고, 모욕을 받을 때 인내력을 발휘하고, 강탈당할 때 자기의 것을 취
하지 않으며, 실상은 훌륭하고, 죽음조차도 경멸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53. 그리고 구세주의 신성에 대한 하나의 그리고 실제로는 완전히 놀랄 만한 증거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어떤 단순한 인간이 또는 마술사나 지배자나 군왕이 혼자 힘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으며, 우상 숭배와 전체 귀신들의 주인과 모
든 마술에 대항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인들이 아주 강력하여 여전히 번창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을 감복시킬 때, 그들의 온갖 지혜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고, 그들 모
두를 한 번에 저지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참된 말씀인 우리 주님처럼 말입니다.
곧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실수를 보이지 않게 드러내시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이제 우상들을 짓밟고, 마술을 호평하는 자들이 자기 책들을 불태우며, 지혜로운 자들
은 복음의 해석을 연구하기를 즐거하도록 그들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빼앗아 오십니
다. 그분은 자신들이 숭배하곤 했던 우상들을 버리고 있으며, 십자가에 달렸다고 조롱
했던 분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면서 그리스도로 경배합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신들로 불리는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께서 온 세상에 하나님으로, 그리고 하
나님의 아들로 선포되는 동안에, 십자가의 징표에 의해서 패주(敗走)되었습니다. 그리
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그들보다 더 자비로운 삶을 사는 동안에,
그리스인들이 숭배했던 신들은 그들에 의해서 수치스런 존재라는 나쁜 평판에 떨어지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것들과 이와 유사한 것들이 인간적인 일들이라면, 원하
는 자들에게 이전에 인간들 편에서 유사한 일들을 지적하게 하고, 우리에게 확신시키
게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인간의 일들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며, [실제로도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 어째서 불신자들은 그런 일을 수행했던 주인
을 못 알아볼 만큼 신앙이 없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경우는 마치 인간이 창조
사역으로부터 하나님을 자신들의 조물주로 알아채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
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우주에 대한 그분의 지배력으로부터 그분의 신성을 알
았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통한 일도 역시 인간의 일이 아니라 만인의 구
세주, 곧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임을 알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울
이 말한대로, "그들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84)는 것을 알았
습니다.

54. 그러므로 만일 한 인간이 본성상 비가시적인 그리고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기를 바란다면, 그분의 사역으로부터 알고 이해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해력
으로는 그리스도를 아는 데에 실패한 사람에게 최소한 그분의 육체적인 사역을 통해

84) 고린도전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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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알도록 하고, 그것들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조롱하라고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그
일들이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면, 그것을 인정하게 하고, 어떤 경우라
도 조롱거리로 비웃게 하지 마시고, 오히려 그러한 보통의 방법으로 신적인 일들이
우리에게 나타났었다는 점과 죽음으로써 불멸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했다는 점과 인간
이 되시는 말씀에 의해서 우주의 섭리가 알려졌다는 점과, 우주의 증여자와 창시자가
하나님의 참된 말씀임에 감탄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분이 인간이 되신 것은 우리
가 하나님이85) 되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알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스스로 육체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불멸을 물려
받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들의 모욕을 견디셨습니다. 왜냐하면 수난 불가한 그리고 타
락 불가한 존재이며, 참된 말씀이며, 하나님의 그분은 스스로 결코 손상을 받지 않으
신 반면에, 인간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었으며, 그분은 그 인간들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셨고, 자신의 수난 불가능성을 유지하고 보전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되심으로 비롯된 결과인 구세주의 성취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며, 만일 누군가가 그 성취들을 헤아리기를 원한다면, 그는 바다의 광활함을 응시
하며, 그 파도의 수를 헤아리기를 바라는 사람에 비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파도의 전체를 눈으로 파악할 수 없듯이, 시도하는 사람의 감각이 수포로 돌
아가기 때문에, 그의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그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부분조차도 판단할 수 없고, 오히려 감탄하기 위해서 전체를 남겨 두
는 곳에서 전체를 말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마
찬가지로 감탄할 만하며, 인간이 눈길을 돌리는 곳에서 말씀의 신성을 보게 될 것이
며, 엄청나게 큰 경외심에 부딪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55.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 다음에, 당신이 이것을 깨닫는 것과 우리가
이미 진술했던 것들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과 엄청나게 경탄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
니다. 말하자면,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래로, 우상 숭배는 더 이상 증가했던 것
이 아니라 감소하고 있었으며, 점차 끝나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지혜
가 더 이상 증진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들도 환각들과 예언들과 마술들을 가지고 더 이상 속이질 못하며, 만일 그들이
그런 시도를 감행한다면, 십자가의 표징으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
를 총체적으로 보기 위하여 우상 숭배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
이 매일 축소되고 있으며, 힘을 잃어 가고 있고, 쇠약해지고 있는 반면에, 어떻게 구
세주의 가르침이 모든 곳에서 중대되고 있는지를 보십시오. 그러므로 자, "만물 위에
계신"86) 그리스도를 예배하십시오. 그리고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하십시오. 그

85) 문자적으로 "신성하게"이다. "우리가 신성화되도록 그가 인간이 되셨다."


86) 로마서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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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그분에 의해서 패배당하고 있으며, 없어지는 것들을 저주하십시오. 왜냐하면 태
양이 떠오르면, 어둠은 더 이상 효과가 없고,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려 해도 쫓
겨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신성한 나타나심이 있으면, 우상 숭배의 어둠은
더 이상 효력을 갖지 못하며, 사방에서 세상의 모든 부분들이 그분의 가르침으로 비
춰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군왕이 어떤 나라를 자기 집에 머무르면서 나타나지
않고 다스리고 있을 때, 종종 어떤 무법적인 사람들이 그의 첩거를 오용하면서 자신
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사람들 중에 각각은 인품을 뽐내면서 단순한 사람들
에게 왕이라고 속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만일 다른 이유가 없다면, 그 집에
들를 수 없기 때문에 왕을 볼 수는 없지만,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들을 때 그 명성으
로 미혹됩니다. 그러나 진짜 왕이 [밖으로] 나와서 [그들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진
짜 왕을 보면서 전에 자기들을 미혹했던 자들을 버리며, 그 무법적인 사기꾼들은 자
신들의 정체가 폭로됩니다. 동일한 방식으로 예전에 악한 영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자
신들에게 부여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곤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을
떄, 그리고 우리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 줬을 때, 드디어 악령들의 협잡질이 사라
지고 멈추었으며, 동시에 사람들은 아버지의 말씀이신 참된 하나님에게 눈을 돌리면
서 우상을 버리고, 이제 참된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것이 그리스도가 참
된 하나님이라는,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라는 정거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것들은
멈추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래 지속하기 때문에, 멈추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지
속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고,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합니다.

56.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여, 이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제공하는 그리스도
를 믿는 믿음에 관한, 그리고 우리에게 나타난 신성한 현현에 관한 기초적인 밑그림
이고 간결한 개요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까지 기회를 엿보아, 만일 당신에 마음을
성경에 적용시키고, 성경 본문 위에 빛을 비춘다면, 성경으로부터 우리가 말해왔던 것
에 대한 세부 사항들을 더 완전하고 더 분명하게 배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
나님에 의하여 이야기되었고,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
을 지키려고 순교자가 되었던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 왔던 영감 있는 교사들로부터 배
운 바를 차례로 배우려는 당신의 열의에 전수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또한
그분의 두 번째 영광스럽고 참으로 신성한 현현에 대해서도 배울 것입니다. 그때에
그분은 더 이상 비천하지 않고 영광 중에, 더 이상 천한 모습이 아니라 자시의 장엄
함으로 오실 것이며, 더 이상 고난 받기 위함이 아니라 그때부터 자신의 십자가의 열
매, 곧 부활과 불멸을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
상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몸으로 행한 것에 의하여 선한지 악한지 모든 사
람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는 천국이 마련되어 있지만, 악한
것을 행한 자들을 위해서는 영원한 불과 바깥에서의 어둠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스스로도 역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나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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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87)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그날을
준비하도록 하는 구세주의 말씀도 또한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88) 왜냐하면 복된 바울이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
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89)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57. 그러나 성경을 연구하기 위하여 그리고 성경에 대한 참된 지식을 위하여 선한 삶


의 변화가 필요하며, 순수한 영혼과 그리스도에 합당한 덕행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하
나님의 말씀에 관하여 배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접근 가능한 한에서 지성이 추구하
는 길에 도달하여, 취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마음
이 없이, 그리고 성인들의 삶을 본받음 없이, 누구라도 성인들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
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만일 인간이 태양빛을 보기를 원한다면, 자기
가 원하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정화하면서, 좌우지간 자기 눈을 닦고 밝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이 밝아져서 태양빛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는 마치
어떤 사람이 도성이나 나라를 보기를 원한다면, 좌우지간 보고자 하는 곳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 자기 영혼을 닦고 청결하게 하는 것을 시작할 필요가
있으며, 성인들의 행동들을 모방함으로써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래서 공통된 삶의 행위에서 그들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에 의해서 성인들에게 계시되었
던 것도 역시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성인들에게 바짝 결합할 때, 죄인들
의 위험과 최후의 심판 날의 불도 모면하여, 성인들을 위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한"90) 천국에 놓일 것을 받을 것입
니다. 거기서는 무엇이든지 덕스러운 삶을 사는 자들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서 하나님과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에게, 아들과 함께, 성령 안에서, 명예와 권세와 영광이 세세
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87) 마가복음 14:62(마 26:64).


88) 마태복음 24:42.
89) 고린도후서 5:10; 로마서 14:10.
90) 고린도전서 2:9(사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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