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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강설(101)

범위: 3권 3장 5-8절

제목: 회심: 마음의 할례

본문: 예레미야 4:1-4

5. 회개의 정의: 하나님에 대한 경외로부터 나오는 그를 향한 참된 회심 

비록 이 모든 것이 참되다고 할지라도 내가 성경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본다면 '회개'라는


이름 그 자체는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을 회개 아래에 포함시키는 자들의 입장은 바울
이 사도행전에서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라고 전한 말씀과 충돌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서로 다른
두 가지처럼 헤아린다. 그렇다면 어찌된 일인가? 믿음이 없는 참 회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다만 이 둘은 분리될 수는 없으나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망 없는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소망이 다르듯이, 회개와 믿음은 서로 영구적인 고리에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합되어 있을지 언정 혼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정 '회개'라는 이름 아래 하나님을 향한 회심 전체가 포함된다.26 240) 나에게는 이에 대한 어떤 불명함


도 없다. 믿음은 회심의 마지막 끄트머리가 아니다.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그 의미와 본성
을 설명하게 되면 잘 밝혀질 것이다. 

'회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회심' 혹은 '다시 돌아옴으로부터27 241) 유래하고, 헬라어로는 '마음과
계획의 변화'로부터28 242) 유래한다. 회개의 실체 자체도 이러한 두 가지 어원 모두와 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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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이전 마음을 벗겨 내


고 새로운 마음을 입는 것에29 243) 회개의 총체적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판단에 의하면 회개는
다음과 같이 잘 정의될 수 있다. 즉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신실하고 진지한 경외로부터 나오는, 그를 향한
우리의 삶의 참된 회심으로서, 우리의 육체와 옛사람을 죽임과 성령의 살림으로 이루어진다.30 244) 

옛날의 어떤 선지자들이나 이후의 사도들이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했던 모든 설교를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쓴 이유는 한 가지, 즉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혼란
스럽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범법한 하나님 앞에서 엎어지고
낮아지며, 참 회개와 더불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데31 245)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께로 돌이켜
라" 혹은 “뉘우쳐라"라는 말씀과 "회개하라"(마 3:2)라는 말씀은32 246) 차별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같은 맥락에서 또한 (성경의) 거룩한 역사도, 자기 육욕을 좇아 하나님을 무시하고 방자하게 살던 사람들


이 그의 말씀에 복종하고 자기들의 지도자가 부르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고자 나그네 길을 나설 때 "하나
님을 향한 회개가 행해진다" (참조, 삼상 7:2-3)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한과 바울은 모든 행위에 있어서 이
러한 회개를 지향하고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눅 3:8 참조 행 26:20;
롬 6:4)라는 말씀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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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첫째 조목: 하나님을 향한 삶의 회심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기 전에, 우리가 내렸던 정의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회개
를 크게 세 가지 조목으로 고찰하여야 한다. 

첫째, 우리는 이를 "하나님을 향한 삶의 회심"이라고247)33 부른다. 우리는 외적 행위들에 있어서뿐만 아


니라 영혼 자체에 있어서도 변화를248)34 필요로 한다. 영혼은 자체의 낡음을 벗어 버리지 않고는 자체의
갱신에 상응하는 행위들의 열매를 끝내 산출할 수 없다. 선지자는 이를 표현하기 원하여, 그가 불러 회개
에 이르게 하는 자들이 새로운 마음을 그들 가운데 지니도록 명령한다(겔 18:31).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
엘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회개해야 여호와를 향하여 합당하게 돌이키게 되는지를 보여 주려고 그것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신 6:5:10:12 30:2, 6, 10) 해야 한다고 자주 가르친다. 

이 말씀이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렘 24:7). 모세도 그것을 "마음의 할례"(신
10:16; 30:6)라고 부르면서 깊은 정서까지 살펴본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4장에서보다 더 명확하게 회개의
본래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렘 4:1, 3-4). 보라, 무엇보다 먼저 가장 사악한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불경건을 걷어 내지 아니하
면, 의를 취하고자 하는 열의를 지니는 길과 효과적으로 무엇을 수행할 길이 전혀 없음을 선지자가 선포하
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으려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는 두 마음을 갖는 것을
싫어하시므로(참조. 약 1:8) 그에게는 어떤 계책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선지자가 경고하고 있다! 이사야는
이러한 이유로 위선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모아 불법의 꾸러미에 매이게 하고도 그 꾸러미를 풀어 주는 데
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단지 의식들을 통한 외적인 회개에만 힘을 쏟고 있는 그 터무니없는 노력을 조롱하
고 있다(사 58:6). 게다가 거짓 없는 회개가 본래 어떤 의무들을 수반하는지 여기에서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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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째 조목: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경외 

둘째, 우리가 가르친 바와 같이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경외로부터 나온다.249)35 왜냐하면 죄인의
마음은 회개로 기울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에 자극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참한 인간
은 하나님이 언젠가 심판좌에 오르셔서 모든 말과 행위의 이유를 답변하도록 요구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게 될 때, 끊임없이 자기를 다그쳐 그 심판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설 수 있는 삶의 다른 양식
이 없는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는바, 틈을 내서 쉬는 것도 한순간 한숨을 돌리는 것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자주 회개를 촉구하며 심판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
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라고 전하는 예레미야
의 말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0-31) 라고 아덴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울의 말씀, 그리고 다른 많은 본문들에서 보듯이 그러하다. 

한편 성경은 이미 부과된 형벌들로 하나님이 심판관이심을 선포함으로써, 죄인들에게 때맞춘 회개가 없으


면 더 큰 형벌들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위협하며 이를 생각하게 한다. 당신은 그 한 예를 신명기
29장에서 만날 수 있다(신 29:19-29). 

죄에 대한 공포와 미움으로부터 회심이 시작되는 만큼 사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고후 7:10)을


회개의 원인으로 삼는다. 그가 '하나님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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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근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형벌을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죄 자체를,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미워하고 가증스럽게 여길 때를 가리킨다. 이는 전혀 의아스럽지 않
다. 만약 날카로운 찔림이 없다면 우리 육체의 게으름은 교정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자기의 막
대기를 휘두르셔서 더욱 깊이 파고 들어오시지 않는다면 이러한 찔림은 우리의 무감각과 우매함에 맞서기
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오만이 있으니, 이는 망치로 때려눕히듯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천
성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위협을 가하고자 엄격함을 보이신다. 왜냐하면 잠자는 자들에게는 좋은
말로 어르는 것이 헛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증언들은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나는 이를 하나씩 열거하여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비록 사람


의 삶이 모든 덕성을 다 채워 완전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무관하다면 그것은 실로 세상으로
부터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하늘에서는 그저 가증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의주요한 부
분은 하나님께 그 자신의 권리와 영예를 돌리는 데 있기250)36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복종시켜
그의 권세 아래 놓여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에게 속한 이러한 것들을 불경건하게 사취하게 될 것이다. 

8. 셋째 조목: 육체를 죽임과 영을 살림 

우리가 설명해야 할 것으로 남은 셋째 자리는 회개가 두 부분, 즉 육체를 죽임과 영을 살림으로251)37 이


루어진다는 사실에 할애된다. 선지자들은 이를 육체가운데 있는 백성의 수준에 맞추어 가급적 단순하고 가
급적 꾸밈이 없이 표현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힌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시 37:27 참조 시 37:38).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사 1:16-17). 왜냐하면 그
들은 악에 대해 상기시키면서 악과 부패가 가득한 전체 육체의 파멸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벗
어 버리고 우리의 타고난 성향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취한 모든 것을 다 지워 버리기 전에는 육체가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육체의
모든 정서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적의가 되므로(참조, 롬 8:7) 그의 법에 대한 순종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길은 우리 자신의 본성에 대한 부인에 있다. 2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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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그 선지자들은 갱신을, 그것으로 말미암아 귀결되는 열매들인 의, 정의, 자비로써 지시한다. 이러한
의무들을 충분히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정신 자체와 마음이 의, 정의, 자비의 정서를 옷
입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 거룩하심 가운데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정서 두 가지
모두에 물들게 될 때 마땅히 새롭게 여겨질 수 있게 된다. 확실히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멀어져 있으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부인이 앞서지 않으면 결코 올바른 것을 향하여 펼쳐 나갈 수 없
다.253)39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자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세상과 육체를 포기하며, 우리의 악한 정욕
을 떠나며,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게끔 명령을 받는다(엡 4:22-23). 

실로 '죽임'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이전의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고해 준
다. 왜냐하면 '죽임'으로부터 우리는, 성령의 검으로 잔인한 살육을 당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게끔 빚어질 수도 없고 경건의 기본 원리들을 배울 수도 없다고 경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그의 자녀로 헤아림을 받으려면 우리의 일반적인 본성을 죽이는 일이 있
어야 한다고 선포라도 하신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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