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 ) (101), 3 3 5-8
( ) (101), 3 3 5-8
기독교강요 강설(101)
범위: 3권 3장 5-8절
'회개'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회심' 혹은 '다시 돌아옴으로부터27 241) 유래하고, 헬라어로는 '마음과
계획의 변화'로부터28 242) 유래한다. 회개의 실체 자체도 이러한 두 가지 어원 모두와 상응한다.
129
옛날의 어떤 선지자들이나 이후의 사도들이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했던 모든 설교를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쓴 이유는 한 가지, 즉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혼란
스럽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범법한 하나님 앞에서 엎어지고
낮아지며, 참 회개와 더불어 올바른 길로 돌아오는 데31 245)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께로 돌이켜
라" 혹은 “뉘우쳐라"라는 말씀과 "회개하라"(마 3:2)라는 말씀은32 246) 차별 없이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130
이 말씀이 선지자들에 의해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렘 24:7). 모세도 그것을 "마음의 할례"(신
10:16; 30:6)라고 부르면서 깊은 정서까지 살펴본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4장에서보다 더 명확하게 회개의
본래 특성을 보여 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렘 4:1, 3-4). 보라, 무엇보다 먼저 가장 사악한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불경건을 걷어 내지 아니하
면, 의를 취하고자 하는 열의를 지니는 길과 효과적으로 무엇을 수행할 길이 전혀 없음을 선지자가 선포하
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으려고 일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는 두 마음을 갖는 것을
싫어하시므로(참조. 약 1:8) 그에게는 어떤 계책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선지자가 경고하고 있다! 이사야는
이러한 이유로 위선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모아 불법의 꾸러미에 매이게 하고도 그 꾸러미를 풀어 주는 데
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단지 의식들을 통한 외적인 회개에만 힘을 쏟고 있는 그 터무니없는 노력을 조롱하
고 있다(사 58:6). 게다가 거짓 없는 회개가 본래 어떤 의무들을 수반하는지 여기에서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다.
131
둘째, 우리가 가르친 바와 같이 회개는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경외로부터 나온다.249)35 왜냐하면 죄인의
마음은 회개로 기울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생각에 자극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참한 인간
은 하나님이 언젠가 심판좌에 오르셔서 모든 말과 행위의 이유를 답변하도록 요구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게 될 때, 끊임없이 자기를 다그쳐 그 심판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설 수 있는 삶의 다른 양식
이 없는지 묵상하지 않을 수 없는바, 틈을 내서 쉬는 것도 한순간 한숨을 돌리는 것도 그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자주 회개를 촉구하며 심판을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
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라고 전하는 예레미야
의 말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행 17:30-31) 라고 아덴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울의 말씀, 그리고 다른 많은 본문들에서 보듯이 그러하다.
132
하는 근심'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형벌을 무서워할 뿐만 아니라 죄 자체를,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가운데, 미워하고 가증스럽게 여길 때를 가리킨다. 이는 전혀 의아스럽지 않
다. 만약 날카로운 찔림이 없다면 우리 육체의 게으름은 교정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자기의 막
대기를 휘두르셔서 더욱 깊이 파고 들어오시지 않는다면 이러한 찔림은 우리의 무감각과 우매함에 맞서기
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오만이 있으니, 이는 망치로 때려눕히듯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천
성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위협을 가하고자 엄격함을 보이신다. 왜냐하면 잠자는 자들에게는 좋은
말로 어르는 것이 헛되기 때문이다.
133
이후에 그 선지자들은 갱신을, 그것으로 말미암아 귀결되는 열매들인 의, 정의, 자비로써 지시한다. 이러한
의무들을 충분히 올바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정신 자체와 마음이 의, 정의, 자비의 정서를 옷
입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그 거룩하심 가운데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정서 두 가지
모두에 물들게 될 때 마땅히 새롭게 여겨질 수 있게 된다. 확실히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돌이켜
멀어져 있으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부인이 앞서지 않으면 결코 올바른 것을 향하여 펼쳐 나갈 수 없
다.253)39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자주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세상과 육체를 포기하며, 우리의 악한 정욕
을 떠나며, 우리 심령이 새롭게 되게끔 명령을 받는다(엡 4:22-23).
실로 '죽임'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이전의 본성을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경고해 준
다. 왜냐하면 '죽임'으로부터 우리는, 성령의 검으로 잔인한 살육을 당하여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게끔 빚어질 수도 없고 경건의 기본 원리들을 배울 수도 없다고 경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가 그의 자녀로 헤아림을 받으려면 우리의 일반적인 본성을 죽이는 일이 있
어야 한다고 선포라도 하신 듯이 말이다!
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