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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강설(111)
범위: 3권 4장 8-11절
제목: 생명에 이르는 회개(2)
본문: 시편 32:5

8. 함께 주님의 종 된 사람에게 고백하지 말라

그런데 매우 많은 글 가운데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렇듯 고백이 폐지되었음을 분명히 입증한다. 그는 콘스탄


티노폴리스 교회의 감독이었으니, 정작 그들이 그와 다른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면 의아할 따름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의 죄를 말하여 지워 버리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지은 죄를 누군가에게 말


하는 것이 당황스럽다면 그것을 당신 자신의 영혼에 날마다 말하십시오. 당신을 비난할지도 모르는, 당신
과 함께 종 된 자에게 당신의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죄를, 그것을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그것을 당신의 침상에서 고백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양심이 매일 그 악행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371)1) 또한 "게다가 이제 증인들 앞에 서서 고백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죄를 당신 자신의
생각 가운데 심문하십시오. 이 심판은 증인이 없게 하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당신이 고백하는 것을 보게
하십시오. "372)2) 또한 "나는 당신을 극장으로 이끌어 당신과 함께 종 된 자들 앞에 세우지 않습니다. 나
는 당신을 재촉하여 당신의 죄를 사람들에게 폭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양심을 하나님의 앞에 데
려가 펼치십시오. 당신의 상처를 가장 뛰어난 의사이신 하나님께 보이십시오. 그리고 그에게서 처방을 찾
으십시오. 꾸짖지 않고 가장 자상하게 고쳐 주시는 그에게 그 상처를 보이십시오. "373)3) 또한 "분명히, 어
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누군가 당신을 책망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함께 종 된 자에게
아무것도 고백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그가 공중에서 그것을 퍼뜨리지 말게 하십시오. 당신의 상처를 주
님께 보이십시오. 그는 당신을 돌보시는 자상한 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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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니다."374)4) 그리고 이후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다. "나는 네가 극장 중앙에서 많은
증인들 앞에 서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너의 죄를 오직 나에게만 사적으로 고하여 내가 그 아픔을 고
치게 하라." 375)5)

우리는 이러한 글들과 또한 유사한 글들을 쓴 크리소스토무스를 경솔하다고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


다. 그는 사람들의 양심을 매고 있는 사슬을 하나님의 법으로 풀어 주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자기가 이
해하기로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명령되지 않은 것을 감히 필요한 것이라며 요구하지 않는다.
9. 주님 앞에 고백함

그러나 모든 것을 더욱 명확하고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어떤 종류의 고백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르쳐졌는지 충실하게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실로 그 고백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사

1) 371) "dicito Deo qui curat ea; peccata tua super stratum confitere, ut ibi sua mala quotidie conscientia tua recognoscat."
2) 372) "cogitatione tua fiat delictorum exquisitio, sine teste sit hoc iudicium, solus Deus te confitentem videat."
3) 373) "repete coram Deo conscientiam tuam, et explica; ostende Domino, praestantissimo medico, tua vulnera, et pete ab eo
medicamentum; ostende ei qui nihil opprobret, sed humanissime curet."
4) 374)"certe ne homini dixeris, ne tibi opprobret; neque enim conservo est confitendum, qui in publicum proferat, sed Domino, qui tui
curam gerit, et qui humanus est, et medicus, ostende vulnera."
5) 375) "non cogo te in medium prodire theatrum, ac multos adhibere testes; mihi soli dic peccatum tuum privatim, ut sanemulcus." 크
리소스토무스의 글로서 인용된 이 네 부분 가운데, 첫째는 Opera, ed. Erasmus에 수록된 시편 50편에 대한 설교의 it sec. 5가 출처이고 MPG
55, 580에 위작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둘째는 Sermon on Penance and Confession, 1530ed. V. 512; 1547 ed. V. 9061 출처이고 MPG에는 수
록되어 있지 않으며, 셋째와 넷째는 Incomprehensible Nature of God Against the Anomeans, hom, v. 7 (MPG 48. 746); Discourses on
Lazarus iv. 4 (MPG 48. 1012)가 출처이다. Quot. Battles tr., n, 18,
변들 전부가 아니라, 그중 단지 그들 자신의 고백을 아우르는 것들의 요체만을 덧붙여 설명할 것이다. 누
가 그 광대한 바다를 다 삼킬 수 있겠는가?

옛날의 번역자들이 얼마나 자주 찬송한다'라는 말을 고백한다'라는 말로 번역했는지를 376)6) 상기하는 것


은 부끄러운 일이다(시 7:17; 9:2; 95:2; 100:4; 117:1),377)7)이는 가장 무식한 사람들에게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하나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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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찬양에 관해 기록된 말씀을 그들의 전제적인 법으로 바꾸어 놓은 이렇듯 생경한 무모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고백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유익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편 말씀을 기쁨과
고백의 소리(적용 시 424)라고 번역해서 끌어들인다. 이런 변형이 통한다고 치면 우리는 무엇이든 어떤 것
을 가지고 무엇이든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경건한 독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몰염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의로운 징벌을 내리셔서 그들의 유기된 마
음을 더욱 혐오스럽게 만드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성경의 간단한
가르침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속여 이러한 겉치레에 넘어가도록 할 수 없을 것
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규정된 것은 다음과 같이 한 가지 고백 방식만 있기 때문이다. 죄를 사해 주시고, 잊으시


고, 지워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므로, 우리는 그에게 죄를 고백하여 은총을 얻도록 하자. 그는 의사이시므
로 우리의 연약함을 그에게 내어놓도록 하자. 그는 상처를 입으시고 범법으로 인해 무례함을 당하셨으니
그로부터 화평을 구하자. 그는 마음을 판단하시는 분이시며(참조, 히 4:12),모든 사람의 생각을 아시니, 그
자신 앞에 우리의 마음을 부어 드리자. 끝으로, 그는 죄인들을 부르시는 분이시니, 그에게로 가까이 가자.
378)8)

다윗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5). 유사한 성격을 지닌 다윗의
또 다른 고백이 있다."하나님이여.....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적용 시 51:1). 다니엘
의 고백도 그러하다.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규례를 떠났사오며 "(적용,
단 9:5). 그리고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다른 고백들이 있다. 그것들을 다 채우면 족히 한 권의 책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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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에게 고백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 우리 죄를 사하
시며”(요일 1:9)라고 요한은 전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만일 우리가 상처 입고 겸손
한 마음으로 그 자신의 면전에 엎드린다면, 만일 그 앞에서 진심으로 우리 자신을 정죄하고 비난하면서 그
의 인자하심과 자비로 우리의 죄가 방면되기를 간구한다면, 분명 우리는 주님께 고백해야 한다.

10.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의 고백

의심할 바 없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고자 뜻하는사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6) 376) "verbum confiteri reddiderit pro laudare,"


7) 377) 예컨대 시 7:17에 나오는 찬양하다"(praise aloud)라는 말을 70인역(LXX)과 라틴어역(Vulgata)to에서는 '고백하다"(to confess)라는 뜻을 지닌
'Forokoynaareval'와 'confiteri'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Quot, Battles tr,, n, 19.
8) 378) "Illic enim una praescribitur confitendi ratio, nempe, quando Dominus est, qui peccata remittit, obliviscitur, delet: huic peccata
nostra ut confiteamur, veniae obtinendae causa. Ille medicus est: vulnera igitur nostra illi exponamus, Ille laesus est et offensus:
ab illo pacem petamus, Ille est cordium cognitor, et cogitationum omnium conscius: coram ipso corda nostra effundere
properemus, Ille est denique qui peccatores vocat, ad ipsum accedere ne moremur,"
자비를 선포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고백할 말이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어느 한 사람의 귓속에 한 차
례 심중의 비밀을 속삭일 뿐만 아니라 전 세상이 듣도록 더욱 빈번하고 공공연하게 자기 자신의 수치와
하나님의 장대하심과 영예를 모두 진솔하게 상기시킬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윗은 그가 나단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 양심의 가시에 찔려 자기의 죄를 하나님의 면전
과 사람들의 면전에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삼하 12:13) 라고 고백했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
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금 나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모든 사람이 나를 죄인이라고 판단하
지 못하도록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여호와 몰래 숨기려고 애썼던 것이 심지어 사람들에게조차
드러나게 되더라도 이를 막으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한 은밀한 고백에 뒤이어, 하나님의 영광이나 우리의 겸손에 관계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하는 자원적인 고백이 따른다. 379)9) 이러한 이유로 여호와는 옛날에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낭송한 다음에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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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불의를 모두 공적으로 성전에서 고백하라고 규례를 정하셨다(참조, 레 16:21). 왜냐하면 그는 그들 각
자가 그들 자신을 올바르게 성찰할 수 있도록 더 잘 인도하려면 이러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예
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비참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우리들
가운데와 전 세상 앞에 드러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11. 회중이 함께 통상적으로 하는 공적인 고백

여기에서 보듯이 이런 종류의 고백은 교회에서 통상적으로 380)10)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백성이 어떤
범죄에 모두 함께 연루되어 있을 때마다 비상적으로 특별한 방식을 좇아 381)11) 행해져야 한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보호와 감독 가운데 모든 백성이 행한 저 공적인 고백은382)12) (느 1:7; 9:1-2) 두 번째 종류
에 속하는 예이다.

모든 백성이 함께 범한 반역에 대한 형벌은 오랜 유배 생활, 도시와 성전의 파괴, 종교의 전복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사전에 자기들이 죄인들이라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았다면 해방의 은총을 있는 그대
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회중 가운데 몇몇은 때로는 무죄하겠지만 문제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들은 연약하고 병든 몸의 지체들인 이상 자기들의 건강을 자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더욱이 어떤 오점
에 감염되지 않을 수 없고 심지어 죄 자체로 인한 어떤 책임을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염병, 전쟁, 가뭄, 혹은 다른 종류의 재난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애통과 금식과
우리의 죄책에 대한 다른 표징들로 피난처를 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이
기인하며 의지하고 있는 고백 자체를 조금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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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고백을 주님이 자기의 입으로 권하셨다는 사실에 더하여 그것의 효용을 헤아려 본 건전한 마음
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것을 감히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거룩한 모임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
과 천사들의 면전에 서게 되므로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식하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어
디에 있겠는가?

9) 379) "Arcanam ergo illam confessionem, quae Deo fit, sequitur voluntaria apud homines confessio, quoties id vel divinae gloriae, vel
humiliationis nostrae interest."
10) 380) "ordinarium."
11) 381) "extra ordinem singulari,"
12) 382) "in solenni illa confessione,"
이와 관련해서 당신은 우리는 은총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게 되므로, 이러한 고백은
모든 기도로 말미암는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이를 인정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혹은 우리의 자만심, 혹
은 우리의 둔감함,혹은 우리의 오만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깊이 돌아보게 된다면,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공적인 예식에 따른 고백을 통하여 겸손에 이르는 훈련을 받는것이 유익한 제도가 될 것이라는 나의
입장을 용인하게 될 것이다. 383)13) 비록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령하신 의식이 율법의 교육으로부터 나
온 것이라고 해도여전히 그 실체 자체는 어떤 방식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관계된다. 384)14)

실로 우리는 이러한 관습이 잘 규율된 교회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즉 매 주일마다
목사가 자기와 백성의 이름으로 고백의 공식을작성함으로써 그것으로 모든 불법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
정죄하고 주님께 은총을 간청하게 된다. 385)15) 요컨대 이 열쇠로 기도의 문이 개인들에게 사적으로도열
리고, 모든 사람에게 공적으로도 열리게 된다. 38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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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383) "si consideres quanta sit nostra vel securitas, vel somnolentia, vel socordia, concedes mihi salutare fore institutum, si solenni
aliquo confitendi ritu christiana plebs ad humiliationem exerceatur,"
14) 384) "Tametsi enim caeremonia quam Dominus Israelitis praecepit ex legis paedagogia erat, res tamen ipsa aliquo modo ad nos
quoque pertinet." 이는 구약의 의식법에 따른 의식 자체는 폐지되었지만그 뜻은 완성되어 실체적으로 존속됨을 말한다. CF. Institutio. 2.7.2.
15) 385) 칼빈이 제정한 스트라스부르(1539)와 제네바(1542)의 예식서는 다음에 여러 판본으로 수록되어 있다. CO 6,173ff; tr. B. Thompson,
"Reformed Liturgies in Translation it, Calvin": Bulletin of the Theological Seminary of the Evangelical and Reformed Church XXVIII
(195 52f, Cf. W. D. Maxwell, Outline of Christian Worship, pp. 112-119. Quot, Battles tr., n. 22.
16) 386) "Denique hac clave tam singulis privatim, quam omnibus publice aperitur ad precandum ian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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