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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교회 금요말씀

기독교강요 강설(118)
범위: 3권 4장 28-29절
제목: 모든 죗값을 치르심
본문: 골로새서 1:14, 20

28.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소죄와 대죄의 구별

여기에서 그들은 어떤 죄들은 용서할 만한 죄(小)이며, 어떤 죄들은 죽을 죄라는 어리석은 구별로 도피처
를 삼는다. 448)1) 대죄를 위해서는 중한 보속이 필요하다. 소죄는 주기도, 성수를 뿌림, 미사를 통한 사면
과 같은 좀 더 용이한 처방들에 의해서 깨끗하게 된다고 한다. 449)2) 이와 같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장
난을 하고 어리석은 말을 주고받고자 한다. 그들은 소죄와 대죄를 끊임없이 입에 올리고 있지만 여전히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구별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마음의 불경건과 불결을 소죄로 삼고 있을 뿐이다. 450)3)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의와 불의의 규범으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겔 18:20)라고 선포한다. 성도들의 어떤 죄들이 용서할 만한 이유는 그것들이 죽음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적
용 롬8:1) 때문이다. 즉 그들에게 죄가 돌려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참
조 시 32:1-2).

나는 그들이 얼마나 왜곡되게 이런 우리의 교리를 비방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죄들의 동등함을 말
하는 스토아주의자들에게 451)4)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452)5) 그러나 정작 그들을 쉽게 논박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입이다. 그들이 대죄라고 인정하는 그 죄들 서로 간에는 경중이 없는가? 그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묻고자 한다. 만약 대죄라고 해서 다 동등한 것은 아니라고 그들이 말한다
면 대죄라고 해서 다 한꺼번에 죽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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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결론이 즉시 따를 것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며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
요(참조, 레 18:5; 겔 18:9; 20:11 13: 갈 3:12; 롬 10:5; 눅 10:28),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사망이라고 규
정한다(롬 6:23 겔 18:420). 그들은 이 선고를 피해 갈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대단한 죗더미에서 그들은
보속하는 탈출구로 무엇을 찾고 있는가? 만약 어느 보속이 하루에 지은 죄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을 꾀하
는 그 하루 동안 더 많은 죄에 연루된다. 453)6)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라해도 하루도 넘어지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참조, 잠 24:16). 그들은 자기들이지은 죄에 대해 보속을 받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더 많은 아니 무수한 다른 죄를 짓게 된다. 이렇듯 보속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이미 끊어졌음에도 왜 그
들은 지체하고 있는가? 어찌하여 여전히 속하는 것에 대해서 감히생각하고 있는가?

29. 죄가 사해지면 형벌 면해짐.

1) 448) Cf. Institutio. 2.8.58-59:3.4.1.


2) 449) "pro mortalibus gravem satisfactionem deberi, venialia facilioribus remediis purgari: oratione dominica, aquae
benedictae aspersione, absolutione missae."
3) 450) Cf. Lombard, Sentences IV. xvi, 4 (MPL 192. 879); Aquinas, Summa Theol, III, boxxvii, 3: 1 llae. booxviii, Quot.
Battles tr., n, 57.
4) 451) Cf. Cicero, Pro Murena xxix, 6 (LCL ed.. p. 222): "Omnia peccata esse paria"(모든 죄는 동일하다. Quot, Battles
tr.. n. 58.
5) 452) Lactantius, Divine Institutes III, xxiii 8 (CSEL 19, 253; MPL 6. 427; tr. ANF VII. 93), 여기서는 이와 관련하여 헬라
철학자 제논(Zenon 490-430 BC)이 거론된다. Quot, Battles tr.n, 58.
6) 453) "si unius diei est satisfactio peccati unius, dum illam meditantur, pluribus se involvunt."
죄사함과 방면이 동시에 일어남

그들은 여전히 스스로 그들 자신을 건져 내려고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듯이,“물이 그들을 두르고 있
다."454)7) 그들은 형벌과 죄과를 구별함으로써 455)8) 스스로를 속인다. 그들은 죄과는 하나님의 자비로 사
해진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죄과가 사함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의에 의해 요구되는 지불해야 할 형벌
이 남아 있으므로 죄사함이 보속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4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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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신 하나님이여, 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정박한 일입니까! 그들은 죄과를 사하여 주심을 값없이 누린다
고 인정하면서도 기도와 눈물과 모든 종류의 다른 준비를 통해서만 그것이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반복해
서 가르친다. 그러나 죄사함에 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모든 것은 이렇게 구별을 짓는 것을 정면으
로 거부한다. 나는 이미 이를 완전히 확정하기 위하여 더할 나위 없이 상세한 고찰을 하였다고 믿지만, 어
떤 다른 증언들을 여기에서 더하여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이 꿈틀거리는 뱀들이 다시는 그것들의 꼬리 끄
트머리도 감아올리지 못하도록 잡아매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맺으신 우리의 죄악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으리라는 새 언약이
다(렘 31:31.34).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을 또 다른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을 통해 가르친
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 행하면 …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 18:24)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 행하면 … 그 범죄한 것이 하나
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적용, 겔 18:21-22).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기억하지 않으시리라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은 그 일을 어떤 인과관계에 비추어 헤아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이 그
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리라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은 그 죄에 대한 형벌을 인과관계에 비추어 요구하
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뜻을 지닌 말씀이 다음 여러 곳에 나타난다.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사
38:17) 빽빽한 구름같이 없이하였으니”(사 4422).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9). "죄가 가려진 자"
(시 32:1).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시 32:2).

성령은, 만약 우리가 그에게 맞추어 우리 귀를 가르침 받을 만하게 했다면 이러한 여러 양식의 말씀들을
통하여 자기의 뜻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설명하셨을 것이다. 확실히 만일 하나님이 죄를 벌하신다면 그것을
계산에 넣으실 것이고, 죄를 복수하신다면 그것을 상기하실 것이며, 죄를 심판하신다면 그것을 숨기지 않
으실 것이며, 죄의 무게를 재신다면 그것을 자기의 등 뒤로 던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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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실 것이며, 죄를 낱낱이 살피신다면 그것을 구름과 같이 지워 버리지 않으실 것이며, 죄를 공중에 날
려 드러나게 하신다면 그것을 바다 깊은 곳에 던져넣지 않으실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다음과 같
이 분명한 말로 설명한다. "만약 하나님이 죄를 감추셨다면 그는 그것을 바라보기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
다. 만약 그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기를 원치 않으셨다면 그는 그것을 벌하기를 원치 않으셨을 것이다. 그
는 죄를 인정하기를 원치 않으셨고 오히려 간과하기를 더 좋아하셨다. 그렇다면 왜 '죄가 가려졌다'라고
그는 말씀하시는가? 이는 죄가 보이지 않게 하려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보셨음이 벌하고자 하심이
아니라면 무슨 이유였겠는가?"457)10)

7) 454) Cicero. On Duties III. xxxiii, 117 (LCL ed.. p. 398). Quot, Battles tr.. n. 59.
8) 455) "distinctionem poenae et culpae."
9) 456)"culpam remitti fatentur Dei misericordia; sed culpa remissa poenam restare quam persolvi Dei iustitia postulat,
Ad poenae igitur remissionem proprie spectare satisfactiones." Cf Aquinas, Summa Theol. III. Loxxvi, 4; III. Suppl,
xv, 1. Cf. I Ilae bxxxvii. 4. 다음 입장은 이와 상반된다. Bonaventura. Commentary on the Sentences IV, xviii, part, 1,
art, 2, qu, 2: "Poena inseparabilis est a culpa...... Dominus dum remittat culpam, remittat poenam totam "(형벌은 죄
과와 분리될 수 없다.... 주님은 죄과를 사하시면서 모든 형벌을 사하신다. Quot, Battles tr., n, 60.
10) 457) Augustine, Psalms, Ps, 32 (Latin, Ps, 31), ii, 9 (MPL 36, 264; tr. LF Psalms 1, 288). Quot, Battles tr., n, 61.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가 어떤 법으로 죄를 사하시는지 선지자가 전하는 다른 본문을 통하여 들어 보도록
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
라”(사 1:18) 예레미야서를 통하여서는 다음 말씀을 우리가 읽는다.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이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렘
50:20).

당신은 이 말씀들의 뜻을 간략하게 이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또 한편으로 다음의 표현들이 무엇을 말하
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욥 14:17). "불의가 봉합되었고 그 죄가 저장
되었나니"(호 13:12) "금강석 끝 철필로…………새겨졌거늘”(렘 17:1). 의심할 바 없이 여기 본문들은 여호
와는 죄에 대해서는 징벌하심으로 대갚음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가 죄
인이 마땅히 대갚음받아야 할 형벌을 모두 사해 주는 분이시라는 것 역시 의심할 나위 없이 확정하고 있
다. 이러하니 나는 독자들이나의 주해를 주의해서 듣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먼저 자리를 내어 주기를 간
청할 수밖에 없다. 4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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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458) "Hic mihi obtestandi sunt lectores, non ut glossis meis auscultent, sed tantum ut verbo Dei locum
aliquemesse si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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