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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 지원 사업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노원구
전래동화 우리 동네 옛날이야기

노원문화원
Nowon Culture Center
노원구
전래동화
우리 동네 옛날이야기
1. 벽운마을의 산신제
노원구 설화 지도

2. 소금장수의
행복 비법
1 상계1동

2 8
3
수락산 역 4 5
6. 솔개가 가르쳐준 상계3, 4동
신비한 우물
상계 상계9동
8동
당고개 역 9
마들 역 상계
5동
7. 대장장이를 살린 중계동
글한이의 장난 상계 6
7 상계 역
10동
상계
노원 역 2동
4호선 중계본동

중계
10
상계
14. 녹천대감의 현명한 판결 6, 7동 1동 11
중계
2, 3동
14 12
13 17 16
하계 하계1동
2동
월계2동
하계 역 공릉2동

15 공릉
1, 3동
15. 낙동대감의 쓸쓸한 굴참나무 무덤 월계1동 월계
3동 18

7호선

2 │
3. 수락이가 지키는 수락산

8. 선조 임금님의
효심이 깃든
덕릉고개

5. 복할멈 바위 이야기

4. 월이를 기다리는
호랑이 바위

9.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황당

10. 마을을 지켜주는


은행나무

11. 다툼을 해결한 시내의 돌동자승

12. 배미재마을의
슬픔

13. 기적을 일으킨


용두산 산신제

17. 조선을 움직인 16. 이대감의 지혜


문정왕후의 태릉

18. 이무기가 된 욕심쟁이 가짜 중


3 │
차례
노원구 설화 지도 2

상계동 벽운마을 이야기


1. 벽운마을의 산신제 7

상계동 샛말 이야기
2. 소금장수의 행복 비법 21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3. 수락이가 지키는 수락산 33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4. 월이를 기다리는 호랑이 바위 45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5. 복할멈 바위 이야기 57

상계동 원기동(원 터)마을 이야기


6. 솔개가 가르쳐준 신비한 우물 67

상계동 원기동(원 터)마을 이야기


7. 대장장이를 살린 글한이의 장난 77

상계동 덕릉고개 이야기


8. 선조 임금님의 효심이 깃든 덕릉고개 87

상계동 당고개 이야기


9.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황당 93


4 │
중계동 은행마을 이야기
10. 마을을 지켜주는 은행나무 103

중계동 광석마을 이야기


11. 다툼을 해결한 시내의 돌동자승 115

하계동 배미재마을 이야기


12. 배미재마을의 슬픔 123

하계동 용동마을 이야기


13. 기적을 일으킨 용두산 산신제 135

월계동 녹천마을 이야기


14. 녹천대감의 현명한 판결 143

월계동 벼루말마을 이야기


15. 낙동대감의 쓸쓸한 굴참나무 무덤 157

공릉동 능골 이야기
16. 이대감의 지혜 171

공릉동 능골 이야기
17. 조선을 움직인 문정왕후의 태릉 181

공릉동 새술막마을 이야기


18. 이무기가 된 욕심쟁이 가짜 중 189


5 │
누구에게나 친절한 새댁의 따뜻한 마음이
흉년이 든 마을을 구한 이야기

새댁 문둥병 남자 신령님


6 │
1
상계동 벽운마을 이야기

벽운마을의 산신제
벽운마을에 벌써 며칠째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폭우로 올가을엔 벼에 달린 낟알이 얼마 되지 않아요.
겨울이면 식량이 모두 떨어질 텐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8 │
마을 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앉았습니다.

올해 농사는 망했어요. 이러다 다 굶어 죽는 거 아니에요?

아직도 하늘에 구름만 가득하니 어쩜 좋아요.

어떻게 해야 비가 그칠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눠봐도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어요.


9 │
다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데, 지난봄에 시집온 새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요, 신령님이 나타나셔서 누군가


아끼는 나무를 베어갔다며 무척 화를 내셨어요. 그 때문에 벌을
주시는 게 아닐까요?

새댁의 말에 마을 사람들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신령님의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누가 베어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10 │
그 후 며칠이 지나, 신령님이 새댁의 꿈속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당장 우물가로 가거라. 거기에 귀한 분이 계실 테니 잘


모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벌을 받을 테니 명심해야 할
것이야.

새댁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우물가로 나가봤더니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남자가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답니다.


11 │
저기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 보다시피 나는 문둥병에 걸렸소.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몸이란 말이요.

괜찮아요. 여기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12 │
새댁은 문둥병 때문에 지금껏 혼자 지냈을 남자가
가여웠습니다. 신령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남자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새댁이 건넨 따뜻한 말에 문둥병 남자는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배가 고파요. 따뜻한 밥 한 그릇만 주세요.


13 │
새댁은 마을 사람들에게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면서,
산신제를 열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령님의 노여움이 풀려야 비가 그칠 테니까요.


14 │
그다음 날 모두들 팔을 걷어붙이고 산신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남자들은 청소를 하고 아주머니들은 커다란
솥을 걸고 고깃국을 끓였습니다. 아이들은 오순도순 모여
앉아 떡을 둥글게 빚었답니다.


15 │
산신제 준비가 끝나갈 무렵, 공짜로 밥을 준다는
소문에 배고픈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새댁이 우물가에서 만난 문둥병
남자는 보이지 않았어요.

새댁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습니다. ‘신령님, 아직

그분이 오시지 않았어요. 따뜻한 밥이 식기 전에 다시 뵐


수 있게 해 주세요.’


16 │
그러자 신기하게도 문둥병 남자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어서 오세요. 이리로 앉으세요. 고깃국과 떡도 있어요.

문둥병 남자는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준비한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왔을 때처럼 아무도 모르게
스르륵 사라져버렸죠.


17 │
산신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새댁은 꿈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는 신령님을 만났습니다.

너의 착한 마음과 정성이 마을을 살렸구나. 날이 밝으면


수락산에 올라 족두리 바위 밑을 보아라. 그곳에 선물이 있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족두리 바위에 가보니, 천년 묵은 산삼이 여러


뿌리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삼을 시장에 내다
팔아 식량과 옷을 장만했고, 그 덕분에 추운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답니다.


18 │
한 뼘 더 높이

여러분 문둥병이 뭘까요? 문둥병은 나균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


으로 지금은 한센병이라 부른답니다. 한센병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살이 썩고 문드러지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은 한센병을 하늘에서
내린 벌이라고 생각했죠. 차별도 심했어요. 한센병 환자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아기의 간을 꺼내 먹는다는 잘못된 소문도 있었답
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
지 마세요. 이미 좋은 치료
약이 개발되어 있으니까요.

✽1934년에 지어진 건물로 일본인들이 한


센인들을 데려다가 강제로 수술ㆍ해부하
던 곳입니다. 등록문화재 제66호.
소록도 한센인 수용시설(사진 출처: 문화재청)


19 │
지혜와 용기가 행복의 비법임을 깨달은 소금장수 이야기

소금장수 별이 젊은이


20 │
2
상계동 샛말 이야기

소금장수의 행복 비법
샛말에 사는 소금장수는 유명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죠.
왜냐하면, 외동딸 별이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는 소문이
시장에 쫙 퍼졌거든요.

소금장수는 사랑스러운 딸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나갈 때마다 별이를 방안에
가두어 두고 문을 밖에서 잠그곤 했어요.


22 │
귀한 내 딸 별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문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 방에 갇혀 지낼 수는 없어요. 저도 결혼하면


결국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하는걸요.

별이가 떠난다니요! 소금장수는 그럴 바에야 가까이에 사는


돈 많은 정씨와 결혼시키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늘 곁에서 볼 수 있을 테니까요.


23 │
정씨로 말할 것 같으면 돈만 많을 뿐, 성격 급하고 이기적인
장사꾼입니다. 별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예의
바르고 웃는 얼굴이 정말 순수한 젊은이랍니다. 그러나
아버지께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처럼 소금을 팔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거든요.
아버지는 분명 싫어하실 거예요.


24 │
그러던 5월의 어느 날입니다. 오늘도 소금장수는 별이를 방
안에 둔 채 아침 일찍부터 마포나루에 나와 있습니다. 소금
배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소금을 빨리 받아서 서둘러
한탄강을 건너야 소금을 황태로 바꿀 수 있거든요. 배를
기다리며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을 때였어요. 등 뒤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셨어요?


25 │
별이가 사랑하는 바로 그 젊은이입니다.

아니 이 사람, 어디 갔었나? 왜 이리 뜸했어?

한동안 농사짓느라 장사를 못 다녔어요. 어르신,


원산으로 가실 거면 저랑 함께 가요.


26 │
소금 배가 도착하자 소금장수와 젊은이는 제일 먼저
소금을 받아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꼬박
하루를 걸어 한탄강에 도착했는데, 이게 어찌 된 거죠?
다리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정씨라는 사람이 불량배 여럿을 데리고 와서
다리를 끊어 놓았다지 뭐예요.


27 │
주막에 모인 장사꾼들은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정씨가 일부러 그런 거잖소. 우리들이 장사를 못 하게 하려고


말이오.

에잇, 천벌을 받을 놈. 어디 잘 먹고 잘사는지 보자.

모두들 술에 잔뜩 취해서 투덜거리고 있을 때, 젊은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주막 안으로 뛰어들어 왔습니다.


28 │
여기 계신 여러분들,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주위에 버려진
통나무가 많아요. 우리가 힘을 합하면 다리 하나쯤은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젊은이 말이 맞소. 이대로 있다가는 정씨가 원하는 대로 되고


말 거요.

얼른 다리를 만들어서 우리도 시장에 나갑시다.


29 │
소금장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앉아서 화만 낼 것이
아니라 다리를 만들어 건너면 되는 거였어요. 소금장수는
갑자기 젊은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젊은이를 옆에 두고 사랑하는 별이를 돈만 많은 정씨에게
시집보내려 했다니, 자신이 정말 어리석었다고 생각했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혜와 용기구나. 저 젊은이를 보니 이제


알겠어.


30 │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별이와 젊은이를 서둘러
결혼시켰습니다. 행복의 비법이 돈이 아님을 알았거든요.
그 후 이들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옛날 샛말 사람들은 마포나루에서
소금을 사다가 함경도로 가서 황태
와 바꾸었어요. 그러고는 다시 황
태를 동대문 시장에 내다 팔았지
요. 노원 지역은 남쪽과 북쪽을 잇
는 중요한 교통의 중심지였기 때문
에 장사꾼들이 많이 오갔대요. 활
기찬 노원의 옛 거리, 우리 함께 상
상해 봐요.

조선시대 소금장수,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e뮤지엄)


31 │
'수락아, 수락아!' 수락이를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수락산을 가득 채우게 된 이야기

수락이 아버지 어머니


32 │
3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수락이가 지키는
수락산
옛날 갈월마을에 가난하지만 부지런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호롱불 아래에서 짚신이나 광주리를 엮어 시장에
내다 팔았어요. 가끔은 산에 올라 나물과 약초를 캐기도
했답니다. 겨울이 되면 동네 어르신들께 땔감으로 쓸 나무를
베어다 드리고, 산길에서 다친 동물들을 만나면 치료하고
돌봐줄 만큼 마음씨도 고왔답니다.


34 │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딱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 거예요.
부부는 날마다 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산신령님, 제발 저희 부부가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산과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건강한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35 │
부부의 기도를 산신령님께서 들으신 걸까요? 마침내 아내의
배 속에 아기 씨앗이 살포시 자리 잡았습니다. 부부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기뻤어요.

이건 분명 산신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겠죠?

맞소, 이 아기는 산의 기운을 타고났으니 틀림없이 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날 거요.


36 │
열 달 후 진달래가 활짝 핀 어느 날,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목청이 어찌나 큰지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어요.

부부는 소중한 아기에게 수락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답니다.


37 │
수락이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 9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 들어
호랑이가 마을에 자주 나타납니다. 동네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지난밤에 대문 밖으로 불빛 두 개가 나란히 지나가는 것을


봤네. 호랑이가 틀림없어.

호랑이는 어린아이를 잡아간다는데, 정말일까요?

산 너머 마을에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있다지 뭐예요.


38 │
호랑이 이야기를 들은 수락이 아버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산에 올라가서 호랑이를 잡아야겠소. 하늘이 우리에게


수락이를 보내주셨으니,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지.

여보, 조심하셔야 해요. 해가 지면 산은 위험해져요. 꼭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셔야 해요.


39 │
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젯밤 부모님의 이야기를 몰래
엿들은 수락이는 아버지를 따라나서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수락아, 호랑이는 아주 위험한 동물이란다. 다칠지도 몰라.


아버지가 금방 다녀올 테니 너는 어머니와 집에 있거라.

아버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 하려 하세요? 아버지를


보내고 제가 어찌 편히 있을 수 있겠어요.


40 │
결국, 수락이와 아버지는 함께 호랑이를 잡으러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산속을 헤맸지만, 호랑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하늘까지
어둑어둑해지더니 큰 비가 세차게 내렸죠.

수락이와 아버지는 서둘러 동굴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고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깜빡 잠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깨어보니 수락이가 사라진 게
아니겠어요?


41 │
깜짝 놀란 아버지는 정신없이 산을 헤매며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수락아! 수락아!’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었죠. 그 뒤로 비만 오면 산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는 구슬픈 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래서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산을 수락산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42 │
수락이는 어디로 간 걸까요? 수락이는 곤히 잠든 아버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호랑이를 유인해
깊은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답니다. 산신령님이 부부에게
주신 선물, 수락산의 정령 수락이. 지금도 수락이는 수락산을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락산에 올라 ‘수락아, 수락아’
불러보세요. 수락이가 어디선가 보고 있을지 모르니까요.

한 뼘 더 높이

수락산은 돌이 많은 바위산입니다. 그래서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


지 않고, 바위를 타고 그대로 아래로 흐른답니다. 이런 특징 때문
에 물 수(水)와 떨어질 락(落)이라는 한자어를 합해 수락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수락산(사진 출처: 노원구)


43 │
다정한 친구 월이를 기다리다가
바위가 되어버린 호랑이 이야기

월이 호랑이 월이 엄마 동네 할머니


44 │
4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월이를 기다리는
호랑이 바위
월이는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산속
우물가에서 깨끗한 물을 떠다가 당집(신을
모셔두는 곳)에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마을에 큰 굿이 벌어지는 날이거든요.


46 │
월이가 찬바람을 맞으며 추수가 끝난 마들평야를 지날
때였어요. 갑자기 어디선가 ‘끄응’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살펴보니 길가 풀숲에 호랑이 한
마리가 심하게 다쳐서 쓰러져 있지 뭐예요.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퀄퀄 쏟아지고 있었어요.

아이 가여워라.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니? 내가 약을 가지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겠니?


47 │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월이는 창고에서 송진을 조금 꺼내
호랑이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고는 호랑이의 상처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줬어요. ‘끙끙’ 신음 소리를 내는
호랑이가 가여워서 월이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참 용감한 호랑이구나, 많이 아팠지? 오늘은 마을에 큰 굿이


있는 날이야.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렴.

월이는 호랑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다시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48 │
월이의 어머니는 무당입니다. 월이의 친부모님은 월이가
아기 때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의 양어머니가 월이를
키워주셨어요.

그래서 월이는 5살 때부터 어머니의 무당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어머니가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칼춤을 추는 동안에도 전혀 굿판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월이의 머릿속은 온통 호랑이 걱정뿐이거든요.


49 │
굿이 끝난 다음 날 새벽, 우물가로 달려간 월이는 큰 소리로
호랑이를 불렀습니다.

호랑아, 호랑아! 어디 있니?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호랑이가 풀숲에서


뛰어나왔습니다. 월이는 호랑이가 너무나 반가워서 와락
껴안았어요.

상처가 많이 나았구나. 정말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다치지 말렴.


50 │
그 후부터 월이와 호랑이는 매일같이 우물가에서
만났습니다. 둘은 단짝 친구가 됐거든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답니다.


51 │
그런데 어쩌죠?
월이와 호랑이가 헤어져야만 한데요. 월이 어머니가 원인
모를 큰 병에 걸려 갑자기 돌아가셨거든요. 마을 사람들은
홀로 남겨진 어린 월이를 무당의 딸이라며 구박하고
받아주지 않았어요. 돌봐줄 친척 한 명 없는 월이는 어쩔 수
없이 절로 들어가게 됐답니다.


52 │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월이는 호랑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호랑아, 나는 절에 들어가 스님이 돼야 해. 너도 이제 우물가로


내려오지 말고 네 갈 길을 가렴.

갑작스러운 이별, 월이와 호랑이는 너무나 서글펐답니다.


53 │
그러나 월이가 떠난 후에도 호랑이는 우물가로 내려와 계속
월이를 기다렸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가여웠던지 동네
할머니 한 분이 호랑이를 달랬습니다.

호랑아, 왜 이렇게 슬피 울고 있니? 이제 그만하고 산으로


돌아가렴.

호랑이가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요? 그다음 날부터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산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어요.


54 │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월이를 기다리던 호랑이가 우물가에 앉아 돌이 되어 버렸지
뭐예요. 그래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겁니다. 수
백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물가에는 집채만 한 호랑이
바위가 월이를 그리워하며 꿈쩍 않고 앉아있답니다.

한 뼘 더 높이

호랑이 바위는 지하철 마들역과 수락산역 사이, 노원초등학교 뒤


쪽에 있습니다. 현재는 호랑이 바위의 신비한 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원을 빌거나 굿을 벌이는 장소로 이용된다고 해요.

호랑이 바위


55 │
자신의 목숨과 용이의 미래를 맞바꾼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 손녀 황부자 황부자 부인


56 │
5
상계동 갈월(갈울)마을 이야기

복할멈 바위 이야기
유난히 박쥐와 빈대가 많은 가재골 옛 절터 근처에 눈먼
할머니와 예쁜 손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먼 미래를 내다보는 신비한 능력을 갖고
계셨어요.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고민거리를 이야기하면
해결방법을 찾아주시곤 했죠.


58 │
이뿐만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매일 너른 바위 앞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기도를 드렸어요. ‘갈월마을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매년 풍년이 들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이죠.


59 │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어느 가을날,
꽹과리와 북소리가 요란합니다. 황 부자 집 아주머니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아들을 낳아서 동네잔치가
벌어졌거든요. 할머니도 손녀딸과 함께 황 부자 집을
찾았답니다.


60 │
그런데 잔칫집에 도착한 할머니는 아기를 잠시 품에 안아
어르시더니, 부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천 일 후에 날 꼭 찾아오시게나. 잘 키워야 하네. 큰


인물이 될 기운을 타고 났어. 나도 열심히 기도드리겠네.


61 │
세월이 흘러 황 부자 집 아들 용이가 태어난 지 천 일이
지났습니다. 약속대로 할머니를 찾아온 부부에게 할머니는
어렵게 말을 꺼내셨어요.

용이가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용이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야 합니다. 내가 그 불행을 가져갈 테니,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62 │
무슨 부탁입니까? 용이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아직 제 손녀가 어립니다. 할머니가


없어도 외롭지 않게 잘 보살펴 주세요.

황 부자 부부는 할머니께 손녀를 딸처럼 귀하게


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3일 후에 다시 만나자고
말씀하셨어요.


63 │
두 밤이 지나고, 부부가 할머니 댁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바위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기도드리는 자세 그대로, 용이의
불행을 대신 짊어 메고 세상을 떠나신 겁니다. 황 부자는
할머니의 희생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장례를
정성스럽게 치러드렸답니다.


64 │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가 기도드리던 바위에 복할멈 바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바위의 신비한 힘을 믿고 마음을 다해 섬겼다고 하네요.

한 뼘 더 높이

복할멈 바위가 있는 갈월마을에 가본 적 있나요? 이곳은 옛날부터


칡이 많이 나고 땅의 모양이 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자어 칡 갈
(葛)과 달 월(月)을 합쳐 갈월마을이라 불렀답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복할멈 바위 앞에서 소원을 빌어 봐요.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다면 꼭 이루어질 거예요.


65 │
솔개가 가르쳐준 우물물로 어머니의 피부병을 치료한
효자 대성이의 이야기

대성이 어머니


66 │
6
상계동 원기동(원 터)마을 이야기

솔개가 가르쳐준
신비한 우물
대성이는 노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지런쟁이입니다.
아침에는 산에 올라 나물을 캐고, 낮에는 남의 집에서
농사일을 거듭니다. 그리고 밤에는 버려진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들지요. 손끝도 야무져서 못 만드는 게 없답니다.


68 │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대성이지만 요즘은 좀처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 몸에 난 부스럼 때문에
몸져누우셨거든요.

가난한 형편에 의원을 부를 수도 없고, 대성이는 피부병에


좋다는 약초를 찾아서 온 숲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고 배고픔도 잊은 채 정신없이 돌아다녔죠.


69 │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산길을 몇 시간이나 걸었더니
피로가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잠시 앉아서 쉰다는 것이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죠.


70 │
꿈속에서 대성이는 커다란 솔개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솔개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대성이의 머리 위를 빙빙
돌더니, 한참을 날아가 어느 우물가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우물물을 마시라는 시늉을 했어요. 대성이는
솔개가 시키는 대로 우물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지칠 대로 지친 몸이 가뿐해지지 뭐예요!


71 │
이 신비한 물이라면 어머니의 피부병을 고칠 수 있겠어! 솔개야,
정말 고마워. 빨리 마을로 내려가서 물통을 빌려와야겠다.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대성이는 있는 힘껏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서두른


걸까요. 평소 달리기 대장인 대성이가 돌부리에 걸려서 꽈당
넘어졌어요. 그리고 그 순간 잠에서 확 깨어나고 말았답니다.


72 │
다음 날 아침, 대성이는 일어나자마자 솔개가 알려준 우물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물가 풍경이 낯설지 않았어요.

어디서 봤더라? 분명 내가 아는 곳인데. 혹시 그곳일까?

꿈속에서 솔개가 가르쳐준 우물은 대성이가 일을 다니면서


가끔 목을 축이던 바로 그곳이었어요. 대성이는 신이 나서
물통 가득 우물물을 담아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73 │
대성이는 어머니 입에 우물물을 조금씩 흘려 넣어 드렸어요.
그리고 우물물에 깨끗한 천을 적셔 부스럼이 난 몸을 닦아
드렸죠. 그랬더니 하루가 지나자 고름이 멎고 일주일째에는
부스럼이 깨끗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열흘 후, 어머니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셨답니다. 예전처럼 대성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시면서 말이에요.


74 │
그 후 우물물에 대한 소문이 퍼져 몸이 아픈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물물을 마신다고 해서 모두
병이 낫는 건 아니었어요. 솔개가 가르쳐준 우물물은
대성이처럼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사람에게만 신비한 힘을
보여주었답니다.

한 뼘 더 높이

대성이의 효심이 느껴지나요? 그러나 부모님이 여러분들을 사랑


하는 마음은 이보다 더 크답니다. 오늘 부모님께 ‘사랑해요’라고
말해보세요. 여러분들의 말 한마디가 우물물보다 부모님을 더 건
강하게 해줄 거예요.

솔개(사진 출처: pixabay)


75 │
장난꾸러기 글한이의 징 도둑질이
어려움에 놓인 대장장이를 살린 이야기

대장장이 글한이


76 │
7
상계동 원기동(원 터)마을 이야기

대장장이를 살린
글한이의 장난
조선시대 원기동(원 터)마을에 글한이라는 장난꾸러기 소년이
살았답니다. 얼마나 짓궂은지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이런저런 말썽이 끊이지 않았죠. 친구들과 자주 다투어
얼굴은 늘 상처투성이였어요.


78 │
글한이네 집에서 서당 가는 길목에는 대장간이 있습니다. 그
앞을 매일 오가는 글한이가 그냥 지나칠 턱이 없겠죠? 대장간
앞을 기웃기웃하더니 어느 날부턴가 징(말굽에 박는 쇠못)을
슬그머니 집어가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1개였다가
나중에는 3~4개씩 손에 잡히는 대로 신나게 훔쳐갔죠.


79 │
글한이의 장난이 갈수록 심해지자 보다 못한 대장장이는
못된 버릇을 고쳐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시치미를 뚝 떼고 징
한 개를 불에 달구어 글한이 앞에 살짝 놓아뒀죠. 아무것도
모르는 글한이는 슬그머니 뜨거운 징을 집어 들었습니다.

앗, 뜨거워! 내 손! 내 손!


80 │
그러나 이렇게 혼이 나고도 글한이의 장난은 멈출 줄
몰랐어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글쎄, 지난밤 대장장이 집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저런, 저런. 지금껏 아들이 어머니를 살리겠다고 얼마나 애를


썼나. 정말 안됐지 뭐야.

빚도 많이 졌대요. 이제 빈털터리인 거죠.


81 │
그 말을 들은 글한이는 대장장이를 찾아갔습니다.

대장장이 아저씨, 절 좀 따라와 보세요. 보여드릴 것이 있어요.

꼬마야, 지금 난 장난칠 기분이 아니란다. 저리 가렴.

저도 진지해요. 저를 한 번만 믿어보세요.


82 │
대장장이를 집으로 데리고 온 글한이는 창고 문을 열어
그동안 훔쳤던 징을 대장장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아 놓았는지 넓은 창고가 징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이건 징 아니냐.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83 │
어려운 일을 당하셨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이 징으로 빚도 갚고
대장간 일을 다시 시작하세요. 아저씨의 징 만드는 솜씨는 우리
마을 최고니까요.

대장장이는 그제야 글한이가 왜 징을 훔쳐갔는지 알게


됐어요. 어린아이의 장난인 줄만 알았는데, 앞으로 있을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 징을 미리 모아둔 거였어요.


84 │
이렇게 해서 대장장이는 대장간 문을 다시 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원 지역을 거쳐 가는 사람들이 먼 길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튼튼한 징을 만들어주었다고 해요.

한 뼘 더 높이

조선시대 노원 지역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쉼터인 ‘역원’이 있었습


니다. 글한이가 사는 원기동 마을의 ‘원’은 역원의 ‘원’을 가리키죠.
원기동에는 대장간이 참
많았어요. 당시 사람들은
주로 말을 타고 다녔는데
요, 말발굽의 징이 닳아
못쓰게 되면 새것으로 교
체해 줘야 했대요. 대장
간이 많았던 우리 노원
구, 대장간에서 주로 철
(쇠)을 다룬 까닭에 ‘쇠
재’라고도 불렸답니다.

김홍도의 대장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 출처: e뮤지엄)


85 │
덕흥대원군의 무덤이 '덕릉'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

선조 어린 선조 왕손1 왕손2


86 │
8
상계동 덕릉고개 이야기

선조 임금님의
효심이 깃든 덕릉고개
선조는 조선시대 열네 번째 임금님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습니다. 어느 날 명종 임금님께서 어린 왕손들을
모아놓고 엉뚱한 말씀을 하셨데요.

너희들의 머리가 큰가 작은가 알아보려고 하니, 익선관(왕과


세자가 머리에 쓰는 관)을 써보아라.


88 │
그런데 신이 나서 익선관을 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린 선조 임금님께서는 두 손으로 익선관을
받든 채 이렇게 말했어요.

전하께서 쓰시는 익선관을 어찌 제 머리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 나이는 어려도 나라의 법도를 압니다.


89 │
선조 임금님은 현명할 뿐만 아니라 효심 또한 매우
깊었습니다. 명종 임금님이 후손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오른 선조 임금님은 돌아가신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덕릉으로 높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강하게


반대했죠.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에만 ‘릉’ 자를 붙일
수 있었거든요.


90 │
그래서 선조 임금님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수락산 고개를 넘는 장사꾼들에게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어서, ‘덕릉을 지나왔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술과 밥을 넉넉히 대접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그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사람들이 앞다투어 덕흥대원군의
무덤을 덕릉으로 높여 부르게 됐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여러분, 수락산 덕릉고개에 오르면 덕흥대원군의 무덤인 덕릉을 만


날 수 있어요.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죠. 덕흥
대원군 무덤의 정식 명칭은 ‘덕흥대원군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를 향한 선조 임금님의 지극한 효심 덕분에 ‘덕릉’으로 불리고 있답
니다.

덕흥대원군의 덕릉(사진 출처: 노원문화원)


91 │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던 오누이가
서낭신의 도움으로 꿈을 이루게 된 이야기

선비 보름이


92 │
9
상계동 당고개 이야기

소원을 이루어주는
성황당
수락산 깊은 골짜기 오두막집에 가난한 선비와 여동생
보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마저 넉넉하지 않아서, 나물과 약초를 캐며 힘들게
생활하고 있어요. 하루하루 편할 날이 없지만, 선비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꼭! 급제해 보름이를 잘
보살펴야 하거든요.


94 │
선비와 보름이가 매일 넘어 다니는 고갯마루에는 성황당이
있습니다. 성황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신을 모시는
곳인데요, 서낭신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요.


95 │
선비도 재미 삼아 작고 예쁜 돌을 주워다가 탑을 여러 개
쌓았습니다. 그리고 여동생 보름이와 함께 소원을 빌었죠.

보름아, 너는 무엇을 빌었느냐?

오라버니 장원급제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잘생긴 신랑 만나게 해달라고 빈 게 아니고?

오라버니도 참. 자꾸 놀리지 마세요!


96 │
겨울이 지나고 개나리가 예쁜 꽃망울을 터트릴 무렵,
나라에서 과거시험을 본다는 방이 붙었습니다. 기다렸던
반가운 소식이긴 한데, 선비는 근심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시험을 잘 보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매일 먹을거리를 찾으러 다녀야 해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97 │
그러던 어느 날 밤, 보름이가 선비를
다급하게 흔들어 깨웠습니다.

오라버니, 꿈에서 호랑이 뼈를 봤어요. 지금도 그곳이 어딘지


생생히 떠올라요.

아니, 그 귀한 걸 어디서 봤단 말이냐?

우리가 매일 지나다니는 성황당 근처에요.

당시 호랑이 뼈는 구하기 어려운 귀한 약재였습니다.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죠.


98 │
오누이는 곧장 호랑이 뼈를 찾으러 집을 나섰습니다. 어두운
밤길, ‘어우, 어우’ 산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달빛마저 붉게 물들어 으스스했지만, 용기를 내어
성황당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보름이가 말한 대로 성황당
근처 풀숲에서 호랑이 뼈를 발견했습니다. 선비는 성황당을
향해 큰절을 올렸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꼭


합격하겠습니다.


99 │
드디어 과거시험 날이 밝았습니다. 선비는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한번 성황당에 들려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더 쌓았습니다.

서낭신이시여, 과거에 급제하게 해주세요.

그러고는 힘차게 과거 시험장으로 출발했답니다.


100│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선비는 장원급제하여 자신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는
훌륭한 관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보름이는 덕릉 고개 너머
잘생긴 신랑을 만나 아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오누이의 소원을 이루어준 성황당은 안타깝게도 없어져 버렸어요.


지금은 성황당과 미륵당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당고개 유래비>만
남아 있죠. 성황당은 없어졌지만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신은 우리
주변에 늘 계신답니다. 그러니 소망하는 일이 있으면 간절히 기도
해보세요. 서낭신이 여러분들의 소원을 들어주실지 모르니까요.

당고개 유래비(사진 출처: 노원구)

101│

양평군 용문사의 부러진 은행나무 가지가
노원구의 수호신이 된 이야기

할머니 스님


102│
10
중계동 은행마을 이야기

마을을 지켜주는
은행나무
어머니의 품 같은 따스한 들판과 맑은 강이 흐르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신기하게도 가뭄이나 태풍 한번 없이
매년 풍년이 들었어요. 과일은 달콤하고 꽃은 탐스럽고
아이들은 씩씩하게 자라났죠.

그런데 요즘 들어 마을에서 지혜롭기로 소문난 큰할머니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합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104│

큰일 났군. 땅의 모양이 변하고 있어. 이러니 마을에
나쁜 기운이 몰려올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몇 해 전부터 마을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산짐승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공격하고, 작년에는 개구리
수천 마리가 떼로 이동하는 모습까지 목격돼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105│
예전에 없던 이상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자 큰할머니는
서둘러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양평군에
용문사라는 절이 있는데 진심을 담아 열심히 기도하면
부처님께서 보살펴 주신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산길을 따라
걷고 또 걷기를 열흘, 큰할머니는 겨우겨우 용문사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큰할머니는
뒤로 나자빠질 만큼 깜짝 놀랐어요.

106│

어이쿠, 이게 뭔가! 혹시 신령님이신가?

이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용문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지 뭐예요! 때마침 기도를 끝내고 나오신 스님 한
분이 허허 웃으며 다가오셨어요.


107│
할머니, 정말 용하십니다. 이 나무는 신라 마의태자가
심었다고도 하고,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라난
것이라고도 합니다. 나라에 나쁜 일이 생기면 며칠씩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답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나무임은 틀림없어요.

108│

큰할머니는 이 신령스러운 은행나무 가지 하나만 얻어
가게 해달라며 스님에게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저었어요.

할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나무를 베려고 톱을 대면 피가


줄줄 흐르고 어쩌다가 쓰레기라도 버리면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진답니다.

109│

그러나 마을을 걱정하는 큰할머니의 진심 어린 마음에
스님은 결국 지난번 폭우 때 부러진 바짝 마른 가지 하나를
건넸습니다.

큰할머니는 부처님 앞에 은행나무 가지를 놓고 매일같이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죽어있던
나뭇가지에 환한 빛이 돌더니 새싹이 고개를 쓱
내밀었답니다.


110│
큰할머니는 은행나무 가지를 소중히 안고 서둘러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여길 좀 보세요. 용문사의 신령스러운 은행나무


가지입니다. 우리가 정성껏 기르면 분명 우리 마을을 지켜주실
겁니다.

111│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은행나무 가지를 심고
살뜰히 가꾸었습니다. 깨끗한 물을 듬뿍 주고 주변을 항상
깨끗하게 돌봤어요. 10월이 되면 시루떡을 쪄놓고 제사도
지냈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112│

주원이 엄마가 또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과수원에는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렸고, 그 앞을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신명 납니다. 게다가 올해는 마을에 송아지가
열 마리나 태어났지 뭐예요. 풍년이 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한 뼘 더 높이

은행나무는 지금도 노원구를 지켜


주고 있습니다. 높이 26m, 둘레
6.5m에 나이가 무려 800살이고
별명은 ‘구릉대감’이죠. 서울시 보
호수로 지정되어 있답니다. 여러
분, 구릉대감의 은행잎이 살랑살
랑 흔들리는 것은 용문사에 있는
어머니 나무와 이야기를 주고받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무슨 이야기
를 하는 걸까요?

은행나무

113│

서로 나누고 양보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시내의 돌동자승 이야기

시내 시내 할머니 동자승

114│

11
중계동 광석마을 이야기

다툼을 해결한 시내의


돌동자승
광석마을에는 개울이 하나 있습니다. 아침 일찍 해님이
떠오르면 개울가의 돌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죠.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내는 개울가의 돌들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할머니, 이 돌 좀 보세요. 신비한 빛이 나요.

시내야, 또 개울가에 다녀오는 게냐? 이번엔 뭘 만들려고?

116│

동자승을 만들 생각이에요. 아버지가 하루빨리 돌아오실 수
있게 도와달라고 기도할 거예요.

시내의 어머니는 시내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고 돈 벌러


나가신 아버지마저 소식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시내는
벌써 10년 가까이 낡은 초가집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어요.

117│

동네 사람들은 시내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손재주가 있거든요.

어느 날 할머니가 꿈을 꾸셨는데요, 선녀가 던져준 조각칼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더니 조각칼이 순식간에 예쁜 여자아이로
변했대요. 그러고 나서 태어난 아기가 바로 시내랍니다.

118│

시내는 개울가에서 주워온 돌을 정성스럽게 깎고 다듬어
동자승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시내가 만든 동자승이 마을 사람들 꿈에
나타나 ‘조만간 가뭄이 들 테니 우물물을 사이좋게

나눠쓰세요.’라는 거예요.

119│

여름이 되자 정말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우물물이 점차 말라가자 사람들은 서로 물을 차지하겠다며
밤낮으로 싸웠어요. 가족같이 지내던 광석마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시내는 예전처럼 마을에 웃음소리만
가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죠. 그랬더니 며칠 후, 시내의
꿈속으로 동자승이 찾아왔습니다.

마을 앞 엄나무 밑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니, 앞으로는 다투지


말고 함께 사용하세요.

120│

마을 사람들은 동자승이 말한 대로 엄나무 밑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먹을 것을 양보해가며
모두 한 마음으로 일했어요. 그러자 이틀 후 마른 땅에서
시원한 물이 솟구쳐 올라왔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엄나무는 광석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입니다. 지금도 2년에 한 번


씩 음력 10월이 되면 엄나무 밑에서 굿판을 벌인다고 해요. 그러나
굿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
한 것이 있어요. 바로 이
웃끼리 서로 돕고 아끼는
마음이겠죠?

광석마을 엄나무

121│

마을에 퍼진 헛소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은실이네 이야기

은실이 엄마 은실이 할아버지

122│

12
하계동 배미재마을 이야기

배미재마을의 슬픔
옛날 배미재마을에 아들 삼 형제를 둔 할아버지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자는 아니지만, 이웃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씨 따뜻한 분이셨어요. 또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당이며 골목길을
청소하셨답니다.

124│

그런데 며칠 전부터 누군가 할아버지보다 먼저 나와서 집 앞
골목길을 쓸어놓고 가는 거예요.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아주 깨끗하게 말이죠.

125│

도대체 누굴까요? 할아버지는 담장 아래 숨어서 몰래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요, 은실이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와 조용히 골목길을 청소하지 뭐예요!
어두운 얼굴로 비질하는 모습이 정말 슬퍼 보였답니다.

126│

은실 어멈이군. 얼마나 배가 고프고 힘들었으면 그랬을꼬.

할아버지는 혼자서 몸이 아픈 딸을 키우는 은실이 엄마가


가여웠습니다. 그래서 셋째 아들을 시켜 은실이네 방문 앞에
쌀과 돈을 놓고 오게 했어요. 예전에는 가난한 사람이 부잣집
대문 앞을 쓸어주면 아무도 모르게 쌀을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127│

할아버지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고 꼭
갚을게요.

은실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등이 굽은 곱사등이인 데다가


몸이 약해서 자주 아픕니다. 집에 쌀이 떨어진 지도
오래지만, 은실이 약 살 돈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덕분에 은실이를 살릴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128│
그 일이 있고 난 뒤 은실이 엄마는 이불빨래, 김장,
대청소, 가을 추수까지 할아버지네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은혜를
이렇게나마 갚고 싶었던 거죠.

129│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은실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쁘게 말했어요.

은실이 엄마가 할아버지를 이용한다며?

그러게 말이에요. 그 집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지 뭐예요.

어쩐지 이상하더라고요. 얼굴만 예쁘면 뭐해요. 심보가


못됐는데.

130│

이렇게 은실이 엄마에 대한 헛소문이 온 마을에
퍼져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은실이 엄마에게
손가락질했고 아이들도 등이 굽은 은실이를 놀려댔죠.

너 도둑이지? 우리 마을에 뭘 훔치러 왔니?

등에 혹 난 못난이는 저리 꺼져버려!

131│

은실이 엄마는 할아버지께서 은실이를 살려주셨으니, 그저
감사한 마음에 집안일을 거들어드린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일로 사랑하는 딸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어요. 은실이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132│

참다못한 은실이네는 결국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 작은 가방
하나만 든 채 정든 마을을 뒤로했습니다. 떠나는 은실이네의
쓸쓸한 뒷모습을 감추려는 것일까요? 그날따라 새하얀 눈이
소리 없이 펑펑 쏟아졌다고 합니다.

한 뼘 더 높이

누구보다 착한 은실이네가 마을에 퍼진 헛소문 때문에 배미재마을


을 떠났으니 어쩌면 좋죠? 무사히 살 곳을 찾았을까요? 여러분은
친구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슬픈 일이 일어날
수 있답니다.

133│

아픈 연희 누나를 일어서게 한 용두산 산신제의 기적

돌배 연희 누나 연희네 아빠 연희네 엄마


134│
13
하계동 용동마을 이야기

기적을 일으킨
용두산 산신제
부드러운 햇살이 초가지붕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입니다. 은개 늪에 모인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네요.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솥을 걸어놓고 생선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마을에 잔치가 벌어질 모양이에요.


136│
9살 돌배는 윗집에 사는 연희 누나가 참 좋습니다. 동글한
얼굴도, ‘돌배야’ 불러주는 목소리도 너무 예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옆 마을로 시집간 누나가 갑자기 다리를 못 쓰게
돼서 돌아왔지 뭐예요.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뭔가 나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137│

아니, 다리가 왜 저렇게 됐대?

아기를 낳다가 잘못된 모양이에요.

그렇다고 사람을 이리 내쫓나? 못된 사람들 같으니라고.

연희 누나는 더 이상 웃지 않습니다. 몸은 앙상하게 마르고


눈빛은 흐릿합니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어요.

138│

용동마을 사람들은 매년 용두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제사를
지내는데요, 연희 누나네 부모님은 아픈 딸을 위해
산신령님께 값비싼 소머리를 바치기로 했습니다.

여보, 이번 용두산 제사 때 쓸 소머리는 우리가 사야겠어요.

그럽시다. 이번에 농사지은 곡식을 다 내다 팔면 될 거요.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우리 연희를 살립시다.


139│
용두산 제삿날이 밝았습니다. 연희 누나네 부모님은
소머리를 제사상에 올린 후 몸을 깨끗이 하고 산에 올랐어요.
그리고는 열심히 기도를 드렸죠.

산신령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딸 연희의


다리를 낫게 해주세요.

140│

늦은 밤, 용두산 산신제가 모두 끝났습니다. 아픈 딸 걱정에
서둘러 산에서 내려온 연희 누나네 부모님은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연희 누나가 수줍게 웃으며 두 다리로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달 같이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죠.

한 뼘 더 높이

지금도 하계동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용두산 제사를 지내고 있


습니다. 넓적한 바위 아래 음식을 차려 놓고 마을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한답니다. 누구나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수 있어요. 그럴 때
마다 남을 탓하거나 희망을 잃지 말고 산신령님께 기도해 보세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용두산 산신제 터

141│

녹천대감의 지혜로운 판결 덕분에
행복한 가족을 꾸리게 된 돌이네 이야기

돌이 녹천대감 망쇠 누나

142│

14
월계동 녹천마을 이야기

녹천대감의
현명한 판결
마을 공터에 아이들이 모여 앉아 심각한 얼굴로 속닥거리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볼까요?

한양에서 녹천대감이 내려오신다며? 들었니?

녹천대감이 누군데?

넌 그것도 모르니? 아주 높으신 대감이지!

144│

돌이는 그렇게 대단한 분이 뭣 하러 가난한 시골 마을로
오시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녹천대감은 돈만 많을 뿐, 성격이 고약한 심술쟁이
할아버지래요. 왜 하필 돌이네 동네로 온다고 해서 이
난리일까요?

145│

봄부터 초여름까지 으리으리한 기와집을 떡 하니 지어놓고,
드디어 녹천대감이 이사를 왔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구경 나와 봤더니 끝없이 이어지는 이삿짐 행렬이 얼마나
장관인지 모릅니다. 녹천대감은 인자한 얼굴로 동네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답니다.

146│

누나,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녹천대감님과는 전혀 다른걸.
왠지 마을에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지 않아?

녹천대감을 뵙고 온 돌이가 한껏 들떠 있네요.

147│

그런데 어쩌죠? 돌이의 기대와 달리 녹천대감이 이사를
오자마자 마을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농작물이 비바람에
쓰러지고 내년에 심을 씨앗마저 빗물에 쓸려가 버렸어요.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뭣 하겠어요.

148│

녹천대감은 굶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곡식 창고를 털어 배고픈 이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기로 했어요.

녹천대감님은 역시 훌륭하신 분이야.

이제 살았네, 살았어. 대감님, 감사합니다.

149│

그런데 며칠 후, 녹천대감님 댁 하인 망쇠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쌀을 도로 걷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자네들이 쌀을 너무 많이 가져가서 녹천대감님께서


곤란해하시네. 그러니 두 바가지씩 다시 내어놓으시게.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답니다.


150│
다음 날 아침, 녹천대감은 재물에 눈이 먼 망쇠가 마을
사람들을 속여 몰래 쌀을 거두어 들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무척 화가 난 대감은 ‘나무에 묶어 두고 어떤 음식도

주지 말며 이야기도 나누지 말라.’며 망쇠에게 무서운 벌을


내렸죠.


151│
캄캄한 밤, 돌이는 망쇠 아저씨가 걱정됐습니다.

누나, 아저씨가 잘못하긴 했지만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까? 우리 잠깐 아저씨한테 다녀오자.

돌이가 계속 졸라대는 통에 할 수 없이 누나는


주먹밥을 싸 들고 돌이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누가 볼까 조심조심하면서 말이죠.

152│

그러나 영원한 비밀이란 없나 봅니다. 얼마 후, 망쇠
아저씨에게 다녀온 일이 녹천대감에게 딱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내 명령을 어기고 어째서 망쇠 놈에게 간 것이냐?

이 어린아이가 뭘 알겠습니까. 다 제가 한 일입니다.

아니에요. 누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저에게만
벌을 내려 주세요.


153│
한참을 말없이 오누이를 지켜보던 녹천대감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러나 잘못은 잘못!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것이야. 잠시 어리석은 생각을
품었을 뿐, 망쇠는 본래 성실하고 착한 사내란다. 그러니 네가
망쇠와 결혼하여 평생 바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거라.

154│

이렇게 해서 돌이에게 매형이 생겼습니다. 두 달 후면 귀여운
조카도 태어날 겁니다. 현명하고 마음씨 고운 누나가 곁에
있으니 이제 매형도 실수하지 않겠죠? 녹천대감님의 현명한
판결 덕분에 돌이네 집은 언제나 행복했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여러분 녹천대감이 어떻게 생


겼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국립
중앙박물관에는 <기해기사계
첩>이라는 장부가 소장되어 있
는데요, 여기에 녹천대감의 초
상화가 그려져 있대요. 돌이가
본 것처럼 인자한 표정인가요?
여러분들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기해기사계첩 중 이유초상, 보물 제929호, 국


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 출처: e뮤지엄)

155│

트집쟁이 낙동대감의 무덤이 굴참나무로 뒤덮이게 된 이야기

낙동대감 송이 아빠 엄마

156│

15
월계동 벼루말마을 이야기

낙동대감의 쓸쓸한
굴참나무 무덤
옛날 옛적 벼루말마을에 낙동대감이라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땅이 얼마나 많은지 낙동대감에게 논과 밭을
빌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죠. 그런데 낙동대감은 욕심쟁이에
트집 잡기 선수였어요.

158│

어느 날 무영이네 식구들이 밭에서 새참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낙동대감이
팔자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네요.
무영이네 할아버지는 대감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이고 대감님,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날씨도 더운데 막걸리
한잔하고 가세요.

159│

지금 나보고 이걸 먹으라는 게냐?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싸구려 술을 건네는 것이냐!

낙동대감은 막걸리가 담긴 항아리를 발로 힘껏 차서


넘어트리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답니다.

160│

무영이네 뒷집에 사는 송이는 아버지께 드릴 새참을 챙겨서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좁은 논두렁길을 따라 한
10분쯤 걸었을까요? 저 멀리서 송이를 발견한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주시네요.

우리 똥강아지, 아빠 보러 왔구나?

161│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고구마가 담긴 바구니를 아버지께
건넵니다.

여보, 쌀이 없어서 고구마를 좀 가져왔어요. 힘들게 일하는데


정말 어쩌면 좋아요.

그런 소리 말아요. 당신과 송이를 보면 힘이 저절로 솟는다오.


162│
우연히 이 모습을 지켜본 낙동대감은 갑자기 심술이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송이네 가족이 행복해 보여서 배가 아픈 거죠.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낙동대감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깜짝
놀란 송이 어머니는 고구마 바구니를 등 뒤로 숨겼습니다.
무영이네가 낙동대감에게 당한 이야기를 일찌감치 들었기
때문이에요.


163│
대감, 안녕하십니까? 두루 평온하시지요?

송이 아버지가 공손히 인사를 건네자마자 낙동대감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무영이네처럼 음식을 권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164│

이놈들아, 지금 너희가 누구 덕분에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데
괘씸하게 먹을 것을 숨겨? 당장 내 땅에서 썩 나가거라!

송이 아버지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낙동대감은 먹을


것을 권해도 화를 내고, 권하지 않아도 화를 내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165│

그 뒤로도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낙동대감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매일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꾸고 억울한
누명을 씌워 매질까지 했습니다. 안 좋은 일을 당한 사람을
보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죠.

166│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니, 낙동대감 역시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내가 죽어 땅에 묻히면 마을 사람들이 내 무덤을 가만두지


않겠지? 혹시 모르니 가짜 무덤을 하나 더 만들어 둬야겠군.
누가 파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167│

그런데 어쩌죠? 낙동대감은 무덤을 두 개나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낙동대감이 죽고 나자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왔어요. 아무도 낙동대감의 무덤에 관심을 두지
않았죠.

168│

결국,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 낙동대감의 무덤은 수십 년 후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렸어요. 지금은 잡초와
굴참나무만 무성한 동산으로 변해버렸답니다.

한 뼘 더 높이

옛날 광운대역 북쪽에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요, 연못의 모양이 벼


루처럼 생겨서 마을 이름을 ‘벼루말’이라 했대요. 여러분, 벼루말마
을에서 우리 함께 굴참나무를 찾아볼까요? 굴참나무는 키 크고 잎
이 넓은 참나뭇과 식물이에요. 9월 즈음 둥근 열매가 익는데요, 햇
볕에 잘 말려 가루를 낸 뒤 죽처럼 쑤면 맛있는 묵이 된답니다.

굴참나무 열매

169│

능골과 사노리 마을 사람들을 화해시켜 준 이대감의 지혜

이보국 대감 외아들 진 돌개

170│

16
공릉동 능골 이야기

이대감의 지혜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사노리 마을에
이보국이라는 대감이 살고 있었습니다. 대감은 왕족의
후손으로 행동이 바르고 마음 씀씀이가 너그러운
분이셨어요.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대감의 외아들 진은
온갖 장난을 다 치고 다니는 말썽쟁이였답니다.

172│

8월의 어느 날, 말을 타고 능골 앞을 지나는 장난꾸러기 이진
도령의 얼굴이 살짝 굳어있네요. 긴장한 모양입니다.

왜냐고요? 사노리와 이웃한 능골 입구에는 ‘하마비’라는 돌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요,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관아로 끌려가서 무서운 벌을 받았죠.

173│

그래서 사노리 사람들에게 능골은 무서운 곳입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괜히 주눅이 들거든요.

이진 도령이 주막에 다다랐을 때였어요. 능골에 사는 돌개가


술이 잔뜩 취해서는 도령을 말에서 끌어 내리지 뭐예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말을 타고 있는 것이냐?

174│

소란이 일어나자 순식간에 사노리와 능골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돌개에게 닥칠 일을
걱정했죠.

돌개 녀석 큰일 났군. 이대감집 도령을 건드렸으니 어쩌누.

술이 웬수지, 언젠가 큰일을 칠 줄 알았다고요.


175│
잠시 후 이대감이 사건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돌개 이놈! 평소에도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지? 술 때문에 빚도


지고 마을 청년들과 싸움도 여러 번 했다 들었느니라.

돌개는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며 이대감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176│

엄한 표정으로 돌개를 바라보던 이대감은 술 한 동이를
가져오게 하더니, 돌개에게 한 바가지 가득 떠주었습니다.
그러고는 주위에 모여든 사노리와 능골 사람들에게도 한
모금씩 나누어 마시게 했죠.


177│
지금 너희들은 술을 나눠 마셨다. 이제부터는 모두 한
식구이니라. 사노리 사람들은 나를 믿고 능골 사람들을
무시하지 말고, 능골 사람들은 태릉을 믿고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거라.


178│
이대감의 지혜로운 판결에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노리와
능골 사람들은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불만과 미움을
모두 털어버렸다고 합니다.

한 뼘 더 높이

알고 있나요? 능골에는 태릉과 강릉, 두 기의 왕릉이 있습니다. 그


래서 옛날부터 마을 분위기가 엄숙했어요. 왕릉 앞에는 하마비가
있어서,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말에서 내려야 했고 근처
에 함부로 집을 지을 수도 없었다고 해요.

✽광 릉은 세조 임금
님과 정희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으
로, 유일하게 하마
비가 남아있는 왕
릉이랍니다.
광릉의 하마비, 사적 제197호(사진 출처: 문화재청)

179│

어린 명종을 대신해 8년간 조선을 다스린 여장부,
문정왕후의 태릉 이야기

문정왕후 승려 보우

180│

17
공릉동 능골 이야기

조선을 움직인
문정왕후의 태릉
1501년 12월 2일, 윤지임의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어쩜 이리 코가 오뚝할까?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아요. 분명 큰일을 할 거예요.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야무진 입, 새까만 눈썹이 정말 총명해


보이는 아기였답니다.

182│

모든 이들의 기대 대로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17살이
됐습니다. 정원을 거니는 걸음걸이는 나비처럼 사뿐하고
말하는 모습에는 기품이 넘쳤습니다. 결국, 궁궐에까지

‘윤지임의 딸이 아름답고 지혜롭다.’는 소문이 돌더니, 마침내


아이는 1517년 중종 임금님의 세 번째 부인, 문정왕후가
됩니다.


183│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12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한동안 나랏일을 대신 돌봤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발을 내렸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수렴청정이라고 부르죠. 수렴청정(垂簾聽政)의

수(垂)는 ‘드리우다’, 렴(簾)은 ‘발’을 뜻하는 글자랍니다.

184│

명종이 20살이 되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도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문정왕후는 승려 보우에게
마지막 부탁의 말을 남깁니다.

마지막 소원일세. 내가 죽으면 중종 임금님 옆에 묻어주게.


자네가 신경 좀 써주게나.

185│

보우는 중종 임금님의 무덤인 정릉 옆에 문정왕후의 능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어요. 그런데 비만 오면 무덤에 물이
고이지 뭐예요. 땅을 아무리 높여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1565년 숨을 거둔 문정왕후는 정릉 옆이 아니라 공릉동의
태릉에 잠들어 계신답니다.

186│

한 뼘 더 높이

공릉동에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두 기의 왕릉이 있습니다. 하나는


문정왕후의 태릉 이고요, 다
른 하나는 명종과 인순왕후
가 나란히 묻힌 강릉입니다.
태릉과 강릉은 국가 사적 제
201호일 뿐만 아니라 2009
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 문정왕후의 태릉(사진 출처: 문화재청)

재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
화유산이랍니다.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사진 출처: 문화재청)

187│

욕심쟁이 가짜 중이 하늘의 벌을 받아 이무기가 된 이야기

가짜 중 나무꾼 할머니


188│
18
공릉동 새술막마을 이야기

이무기가 된
욕심쟁이 가짜 중
옛날 옛적에 불암산에서 나무를 잘라 동대문 시장에 내다
파는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동대문까지
가려면 산과 들을 몇 개나 지나야 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어요.

190│

그러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중랑천을 건널 수 있는 돌다리가 생겼다지
뭐예요! 다리를 건너면 동대문까지 곧장 갈 수
있으니 정말 편하겠죠?

그런데 돌다리를 만든 욕심 많은 가짜 중이 다리를


건너려면 통행세를 내야 한다며, 다리 앞을 가로막고
있네요.

191│

어이, 거기 나무꾼! 이 돌다리를 건너려면 세 푼을 내시오.

여기 통행세는 한 푼 아니오?

그렇지만 당신은 세 푼이야. 이 다리 주인은 나니깐 통행세도


내 마음이지.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까요?

192│

제발 한 푼 드릴 테니 건널 수 있게 해주시오. 이
나무를 팔지 못하면 우리 식구들은 굶어야 하오.

나무꾼의 간절한 부탁에도 가짜 중은 단호히


거절했어요. 결국, 나무꾼은 먼 길을
돌아다녀야 했고 매번 시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나무를 팔지 못하는
날이 많았답니다.

193│

그렇게 몇 달이 흘렀습니다. 나무꾼이 돌다리 앞을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가짜 중 앞에서 쩔쩔매고
계시네요.

할멈, 공짜는 안 되오. 돈이 없으면 그 광주리에 담긴 떡이라도


전부 내어놓으시오.

스님, 한 번만 봐주세요. 이 떡을 팔아야 우리 손주들 저녁밥을


지어줄 수 있어요.


194│
나이 많으신 할머니한테까지 통행세를 내라고 하다니요!

할머니는 그냥 건너게 해주오. 내가 대신 한 푼 드리리다.

나무꾼은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돈을 꺼냈습니다. 곧 있을


막내딸 생일 선물로 모아둔 것이지만 할머니를 위해 기꺼이
내놓기로 했어요.


195│
할머니는 나무꾼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떡을 조금
떼어 나무꾼에게 나눠주었어요. 이 모습을 본 중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죠?

할멈, 어찌 그 나무꾼한테는 떡을 내준단 말이오? 그렇게


성격이 고약하니까 늘 가난한 거요. 손주들이 굶는 건 할멈
때문이구먼! 할멈 탓이로세~할멈 탓이로세

196│

그만하시오. 할머니와 어린 손주들이 불쌍하지도 않소?

나무꾼은 할머니를 놀리는 가짜 중이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껏 뒤로 밀쳐버렸어요. 나무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짜 중은 중심을 잃고 잠시 휘청이더니 자기 발에 걸려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답니다.


197│
나무꾼은 깜짝 놀라 가짜 중을 구하려 했어요.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세찬 물길이 가짜 중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버렸답니다. 그 후로 가짜 중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됐고,
돌다리 역시 무너져 내렸다고 해요.

198│

한 뼘 더 높이

여러분, 가짜 중은 어디로 갔을까요? 물길에 떠내려간 가짜 중은


하늘의 벌을 받아 이무기로 변했어요. 그리고 먹골에 있는 붉은 연
못에 영원히 갇혔답니다. 이무기는 연못에서 잘못을 반성하고 용
서를 빌었을까요?
욕심쟁이 가짜 중이 만든 돌다리는 무너졌고, 남겨진 돌들은 시구
문을 만들 때 다시 쓰였다고 해요. 시구문이란 죽은 사람을 도성
밖으로 내보낼 때 사
용하던 문이랍니다.
왠지 기분이 으스스
하지 않나요?

시구문으로 사용된 광희문(사진 출처: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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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옛날이야기 노원구 전래동화
ⓒ 노원문화원 /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발행일 2018. 1.
발행처 서울특별시문화원연합회
발행인 김태웅
기획 노원문화원
글·취재 김현아
그림 이유경
출판 ㈜컬처플러스
ISBN 979-11-962789-0-8 (65090)
[비매품]

※ 이 책은 [한국문화원연합회 “지방문화원 원천콘텐츠 발굴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이 책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비매품
비매품/무료

ISBN 979-11-962789-0-8 (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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