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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Ⅰ. 서론
Ⅱ. 본문 사역
Ⅲ. 소명의 모티브
Ⅳ. 소명 설화 속 모티브
Ⅴ. 예레미야 소명의 특징
Ⅵ. 결론

김 한 성
(영남신학대학교 구약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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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목회 제44집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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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31

Ⅰ. 서론

유다 왕국 말기 정치적 격변 가운데 예레미야는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요시


아 왕부터 시드기야 왕까지 유다 왕국 멸망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에 예언자로 활동
하며(렘 1:3), 그가 선포한 예언 말씀은 유다 왕국에 대한 심판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1) 이는 예레미야 동시대인들 대부분이 기대했던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에 정면
으로 배치되는 예언이었다. 남 왕국의 일반 백성들은 물론, 당시 유다 왕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 그룹의 입장에서 볼 때, 예레미야의 예언은 허용하기 어려운 내용을 담
고 있었다. 반-바벨론 정책을 추구하던 정치 지도자 그룹은 바벨론의 승리가 하나님
의 뜻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 말씀을 수용하지 않았다.2) 예루살렘 성전을 거짓으로
규정하는 소위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7장) 역시 종교 지도자 그룹이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같은 예언으로 인해 유다 왕국의 정치, 종교 지도자 그룹은 예레미야와 갈등하
였고, 그에게 실재적이고 심각한 위협과 박해를 가하였다. 그러나 이 갈등은 모든 예
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만이 겪었던 유일한 사건은 아니다. 신명기 역사서가 반복해
서 제시하는 주요 모티브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언자와 정치 지도자인 왕과의 갈등
이기 때문이다.3) 신명기계 편집자가 예레미야서 편집에 관여했음을 놓고 볼 때,4) 이
예언서가 예언자와 정치 지도자의 갈등을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로 다루리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5) 그러한 갈등은 예레미야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1) 예레미야서의 주요한 메시지는 유다의 죄로 인해 야웨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통해 그 땅을 멸하실 것


이라는 점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할 미래의 계획 역시 가지고 계심이
선포된다(렘 31장). J.D. Newsome, The Hebrew Prophets (Atlanta: John Knox Press, 1984), 101.
2)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말기 정치에 가장 깊이 관여했던 예언자이자, 유다 왕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적자
였다. Klaus Koch, The Prophets: The Babylonian and Persian Periods Vol. 2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16.
3) R.P. Carroll, From Chaos To Covenant: Prophecy in the Book of Jeremiah (NY: Crossroad, 1981), 136.
4) 예레미야서와 신명기 편집에 대해서는 Henri Cazelles, “Jeremiah and Deuteronomy,” in A Prophet to the
Nations: Essays in Jeremiah Studies ed. by L.G. Perdue and B.W. Kovacs, (Winona Lake: Eisenbrauns,
1984), 89-111; T.R. Hobbs, “Some Remarks on the Structure of the Book of Jeremiah,” CBQ 34 (1972),
257-275(= Perdue and Kovacs, A Prophet, 175-191); J. Bright, “The Date of the Prose Sermons of
Jeremiah,” in A Prophet to the Nations, 193-212. J.P. Hyatt, “The Deuteronomic Edition of Jeremiah,” in
A Prophet to the Nations, 247-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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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6)


반면 예레미야서는 그 같은 외적 갈등만을 수록한 것은 아니다. 다른 예언서들과
비교할 때,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 예언서는 그 예언자 내면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여과 없이 표현한다.7) 그 내면적 갈등은 탄식8)이라는 문학 장치를 통해 표현
된다. 그를 예언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향해 ‘아 여호와 하나님! 보소서 저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렘 1:6). 예언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
신의 삶과 관련해서도 탄식은 이어진다.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
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
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렘 15:10). 심지어
그의 탄식은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이라는 수위까지 나아가기도 한다(렘
20:14; cf. 욥 3:1, 3).
예언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자신과 관련해,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유혹을 받아(피
타, ‫)פיתה‬9) 그 유혹에 굴복한 자로 묘사하며 ‘나를 권유하시므로(피티타니, ‫)פתיתני‬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10)라고 말한다(렘 20:7). 예언자의 사명을 피할 수 없는
상태가 그 자신의 비극적 상황으로 묘사된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
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5) R.P. Carroll, From Chaos to Covenant (1981), 137.


6) 예레미야서의 독특한 특징 하나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 관한 자세한 언급이다. Christopher R. Seitz,
Theology in Conflict : Reactions to the Exile in the Book of Jeremiah, (Berlin, New York : Walter de
Gruyter, 1989), 11.
7) 예레미야의 심리적 갈등은 소위 ‘예레미야의 고백록’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레미야의 고백록’에 해당되
는 본문은 예레미야 11:18-12:6; 15:10-21; 17:14-18; 18:18-23; 20:7-13, 14-18으로서, 예언서 가운데 그 예언
자의 전기의 주요 구성 부분에 해당된다. 이 고백록은 예언 문학 가운데 예레미야를 다른 예언자들과 구별
짓는 독특한 특징에 해당된다. Kathleen M. O'Connor, Jeremiah: Pain and Promise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2), 81-91. 참조.
8) 예레미야의 기도는 탄식으로서, 시편의 탄원시편과 유사성을 보인다. Ibid., 81.
9) 칼 동사로서는 단순하다, 미숙하다, 속기 쉽다는 의미를 지니며, 니팔 동사로는 속아 넘어가다, 어리석게 행
동하다는 의미를, 피엘 동사로는 유혹하다, 설득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פתה‬,” Ludwig Köhler and Walter
Baumgartner,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Vol 2 (Leiden, New York, Köln:
Brill, 1994), 984a-985b.
10) 이 구절에서 예언자는 마치 유혹에 넘어간 시골 처녀로 비유되며, 수치와 조롱의 대상으로 규정된다.
Alexander Rofe, Introduction to the Prophetic Literature (She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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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직에 관한 이러한 탄식은, 한편으로는 그 예언자가 선포해야만 했던 예언


말씀이 파생한 외적인 갈등과 그 결과로 발생한 박해의 정도를 가늠하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 탄식은 자기 민족과 국가를 향해 심판을 선포해야 했던 예레미야라는
한 개인이 피할 수 없었던 내면적 고통을 표현한다. 그러한 표현은 예레미야서만의
고유한 특징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11)
다른 예언서에서 발견되지 않은 예레미야만의 이러한 독특한 특징은 이미 예언서
서장 속 그를 예언자로 부르시는 소명 설화(렘 1:4-10) 가운데 명확하게 나타난다. 할
러데이(Holladay)가 지적한 바와 같이, 소명과 관련해, 태어나기 전 예언자로 부름
을 받은 것은 다른 예언자의 소명 이야기 속에 나타나지 않는 예레미야만의 특징이
다.12) 그렇다면 이 소명 설화가 지닌 그 밖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 같은 특징들을 통
해 예레미야를 ‘독특한’ 예언자로 세우려는 이 소명 설화의 의도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며, 본 논문은 예레미야 1장 4-10절의 소명 설화가 지닌 독특
한 특징을 전승비평과 편집비평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예레미야를 다
른 예언자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소명의 주인공으로 묘사하는 표현들과 문학적 기
법이 무엇이 있는지 고찰하고, 그 각각의 의미를 구약성서의 전승에 비추어 제시할
것이다. 나아가 그 각각의 독특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이 예언서의 소명 설화가 제
시하고자 했던 편집 의도를 밝히고자 한다.

Ⅱ. 본문 사역

예레미야의 소명을 다루는 예레미야 1장 4-10절 본문은 하나님과 예레미야 사이


에 주고받은 대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 대화의 주체와 그 내용을 구분하며, 히브
리어 원문 구조를 최대한 반영하며 본문을 다음과 같이 사역하였다. 논의의 편의상,
논쟁의 대상이 되는 본문 내용은 가능한 한 기존 성서의 내용을 따랐다.

11) Kathleen M. O'Connor, Jeremiah: Pain and Promise (2012), 84-85. James D. Newsome, The Hebrew
Prophets (Atlanta: John Knox Press, 1984), 115.
12) William L. Holladay, Jeremiah 1: A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Prophet Jeremiah Chapters 1-25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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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말씀하셨다.13)
5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 내가 너를 알았노라.
네가 자궁에서 나오기 전 내가 너를 성별하였노라.
여러 나라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노라.”
6
내가 말하였다.
“아 주 여호와여
보십시오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다만 내가 너를 보낼 곳이면 어디든지 가며
내가 네게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해라!
8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뻗으셔서 내 입에 대셨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나의 말을 네 입 속에 두었다.
10
보라 오늘 내가 너를 임명하였으니
곧 열방 위에 왕국들 위에 두어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기 위함이다.”14)

13) 예레미야서를 포함해 예언 문학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에게 임하였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예언 신탁의
선포를 나타내는 서론으로 기능하나, 본문에서 이 표현은 독특하게 신탁이 아닌 예언자의 경험을 묘사하
는 표현으로 기능한다. 소명 설화의 특성 상, 본문에서 예레미야가 중재자가 아닌 말씀의 수령자이다.
Peter C. Craigie, Page H. Kelley, Joel F. Drinkard, Jeremiah 1-25 WBC (Dallas: Word Books Publisher,
1991), 9-10.
14) 본문의 결론부에 등장하는 여섯 동사들은 멸망과 재건을 뜻하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처음 네 동사는 임
박한 멸망에 대한 예언으로 구성된 예레미야 1-25장 속 하나님의 계획에 해당되며, 마지막 두 동사는 멸망
이후의 삶을 다루는 예레미야 26-52장 속 ‘세우고 심기 위한’ 하나님의 의도를 예시한다. Kathleen M.
O'Connor, Jeremiah, 31-32. 이 동사와 예레미야 전체 구조의 관련에 대해서는 Louis Stulman, Order
amid Chaos: Jeremiah as Symbolic Tapestry, Biblical Seminar 57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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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소명의 모티브

본문은 네 개의 대화로 구성된다.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우셨다는 하나님의 말


씀(4-5절), 자신은 아이라는 예레미야의 대답(6절),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7-8절)
그리고 예레미야의 입에 말씀을 두셨다는 하나님의 말씀(9-10절)이 그것이다. 이러
한 구조 전체는 소명 앞에 주저하는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열방의 예언
자가 되었음을 명시한다. 본문의 일차적 목적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선택하셨고,
그에게 예언자의 직분을 부여하셨다는 선포에 있다. 이 선포는 타인들에 대하여는
예언자로 임명된 예레미야의 권위를 세워주며, 예언자로 임명된 인물 자신에게는 확
신을 주는 기능을 한다.
그 확신을 주기 위해, 소명 설화는 일반적으로 선택 받은 이에게 예언자 직분을 부
여하는 환상을 수록하고 있다. 모세는 불타는 가시덤불 가운데 하나님의 계시를 받
았으며(출 2장), 이사야는 성전 속에서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사 6장),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예언자의 직분을 받았던 것과 유사하
게, 본문 역시 여호와의 손이 예레미야의 입에 닿는 환상을 수록하고 있다.
예언자 소명과 관련된 이러한 환상들은 공통된 특징들을 지닌 동시에, 그 환상들
의 공통된 문학적 양식 역시 규명된다. 또한 각각의 환상들이 지닌 특징들은 각 예언
자들의 독특한 개성과 특징을 명확하게 제시해준다. 예레미야의 이 환상 속에서 한
편으로는 소명에 관련된 일반적인 이야기들과 공통된 모티브들을 언급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예레미야의 소명 속에 드러나는 독특한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명과 관련된 문학적 모델은 다음과 같은 주요 모티브들을 지닌
다.15) 첫째는 5절의 ‘내가 너를 성별하였으며, 여러 나라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
노라’와 같은 예언자 임명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임명을 받고, 예언자로 임명된 인물
이 보이는 주저 내지 반대의 반응이다. 본문 6절 역시 예언자 임명에 대한 예레미야
의 반응을 수록하고 있다. ‘아 주 여호와여 보십시오!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제가 아
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주저와 반대에 대한 하나님의 거부가 뒤따른다. “‘저는
아이입니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다만 내가 너를 보낼 곳이면 어디든지 가며 내가 네
게 명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해라!”(7절) 넷째는 새로 예언자로 임명 받은 이에 대

15) Schiff Yehuda, The book of Jeremiah, Olam Ha-Tanakh (Tel-Aviv: 1999) (Hebrew),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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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하나님의 격려와 강화이다.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8절) 마지막으로, 선택 받은 이가 그
순간부터 예언자가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적이 주어진다. ‘여호와께서 그 손을 뻗으
셔서 내 입에 대셨다.’(9절) 기본적으로 이러한 모티브들은, 하나님께서 예언자의 사
명을 자신에게 주셨다는 점을 갑작스레 깨닫게 된 사람의 내면 상태를 반영한다. 이
점을 감안하면 이 모티브들 전체 혹은 그 일부가 몇몇 예언서에 공통적으로 사용되
고 있음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모티브들은 예언자로서 수행해야 할 사명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 이와 함께 그 사명을 반드시 완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보여준다.
본문 속에서도 이 복합적 감정이 예레미야 자신만의 독특한 특징적 표현으로 제시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피할 길이 없으며, 더군다나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
직분을 수행하도록 임명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가 느낀 복합적인 감정
이 본문 가운데 자리한다. 그러한 개인적인 감정은 다른 예언자들의 소명 환상 가운
데 발견되지 않는 예레미야의 소명 설화만이 지닌 독특한 특징이다.16) 작은 촌락 아
나돗 출신으로서, 예루살렘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예언해야만 하는 이의 마
음속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염려를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아 주 여호와
여 보십시오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서의 여러
본문들은 그 예언자가 주변 인물들과 더불어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데(cf. 렘 11:19; 12:1, 3; 20:7-9), 이는 그가 예언자로서 선포한 예언 말씀이 초래했
던 실재적이고도 비극적 정황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일견 이 같은 소명 앞에서의 두려움은 모세의 소명 사건 속에서도 나타난다. 하나
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깊은 영적 사명과 함께 순간적으로 예레미야 속에 자
리 잡은 예언자 직에 대한 두려움은 예레미야만이 느꼈던 감정일 수는 없다. 그렇다
면 이 소명 설화는 의도적으로 모세의 소명 설화와 유사하도록 예레미야의 소명 설
화를 설정하고 있는가?

16) 예레미야를 다른 예언자들과 구분 짓는 가장 커다란 특징은 예언자 자신에 대한 관심이다. 이에 대해서는


Tymothy Polk, The Prophetic Persona: Jeremiah and the Language of the Self, JSOT Supp. 32 (Sheffield:
JSOT Press, 1984),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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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소명 설화 속 모티브

예레미야와 같이 구약성서 가운데 소명 앞에서 선택 받은 인물이 그 주어진 직


분과 관련해 두려움을 드러내는 모티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모세(출
3:1-4:17), 기드온(삿 6:11-24), 그리고 이사야(사 6:1-8)의 소명이다.
예레미야와 같이, 소명 앞에 자신의 어눌한 말솜씨를 언급하며, 그 직분에 대한 두
려움을 표하는 대표적 인물은 모세이다. 출애굽기 3장부터 4장 17절에 이르는 비교
적 상당한 양의 본문은 출애굽 지도자라는 소명을 거절하려는 모세의 여러 차례에
걸친 시도들을 수록하고 있다. 그 반복된 시도 가운데 모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어
눌한 말솜씨를 언급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
다.’(출 4:10)
모세는 ‘오 주여’라는 말로써 자신의 어눌한 말솜씨에 대한 변명을 시작한다. ‘오
주여’로 번역된 히브리어 ‫(בי אדני‬비 아도나이)는 일반적으로 자신 보다 높은 신분에
있는 이와 대화를 시작할 때 사용하는 완곡한 표현으로서, ‘죄송하지만, 실례지만’이
란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17) 즉, 어눌한 말솜씨를 구실로 하는 모세의 변명은 양해를
구하는 이 정중한 표현으로 시작된다. 그 말솜씨는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와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로 표현된다. 이 두 문장은 어
눌한 말솜씨에 대한 모세의 주장과는 달리, 몇 가지 점에서 시적 여운을 강하게 남기
는 특징을 보인다. 먼저 한글 성서에서는 ‘본래’로 의역된,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를
중심으로, 이 두 문장은 문장의 구조와 그 내용에 있어서 대구를 이룬다. 구문론적으
로 그 원문은 모두 명사문으로서, 주격 보어(말이 유창한 사람, 입이 무겁고, 혀가 무
거운)와 1인칭 인칭대명사로 구성되었다. 또한 동일한 내용을 세 차례 반복하며, 자
신의 어눌한 말솜씨를 강조하는 기교를 보여준다.

‫( לא איש דברים אנכי‬저는 말이 유창한 사람이 아닙니다.)


‫( כבד פה וכבד לשון אנכי‬저는 입이 무겁고, 혀가 무거운 [사람]입니다)

17) Ludwig Köhler and Walter Baumgartner, HALOT Vol. 1, 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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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이 세 차례 반복을 통한 강조는 한글 성서에서 ‘본래로


’ 의역된 원문 ‫גם מתמול גם משלשם‬
(감 미트몰, 감 미쉴숌)에서도 사용된다. 이 표현의 축자적 의미는 ‘어제도 역시, 그
제도 역시’로서, 일종의 두운을 형성한다. 그 두운은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로 번역된 원문 ‫(גם מאז דברך אל עבדך‬감 메아즈 다브레카 엘
아브데카)에도 이어져서 세 차례의 ‫(גם מ‬gam + m)라는 두운을 형성한다. 이러한 점
들을 살려 본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죄송하오나, 저는 말이 유창한 사람이 아니니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 당신께서 당신의 종에게 말씀하신 때에
도 그러하니
저는 혀가 무겁고, 입이 무거운 자이나이다.’

이 같이 정중한 표현, 대구, 세 차례 반복을 통한 강조, 압운을 지닌 시적 표현을 지


닌 그 문장의 형식 자체는 어눌한 말솜씨를 내용으로 제시하는 그의 변명과 부합하
지 않는다. 이러한 부조화의 원인은, 출애굽 지도자라는 직분을 거절하는 것이 모세
의 주된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실히 출애굽기 3-4장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상이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모세는 마치 그 직분을 거부하기로 단
호하게 결심한 인상을 자아낸다. 즉 속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모세보다는 주
어진 사명을 거부하는데 주력하는 모세의 모습이 부각된다.
예레미야나 모세와 유사하게, 소명 앞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 또 다른 인물이 기드
온이다. 기드온의 소명 설화는 몇 가지 점에서 모세의 소명 설화와 유사성을 지녔다.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서 구원하기 위해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라는 부르심
앞에(삿 6:14), 기드온은 ‘오 주여(‫בי אדני‬, 비 아도나이)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라고 반문한다. 모세가 사용했던 ‘죄송하오나’라는 의미의 정중한 표
현 ‫(בי אדני‬비 아도나이)를 기드온 역시 거절에 앞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모세와 기
드온의 부정적 반응 내지 거절을 다시금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유사성이
나타난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
리이까”라는 모세의 반문에,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אהיה עמך‬, 에히에 이마크)이
며, ‘내가 너를 보냈다’('‫'שלחתיך‬, 쉴라흐티카)라고 하나님께서 대답하신다(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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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39

3:12-13). 이와 동일하게 기드온이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반문할


때,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אהיה עמך‬는 대답이 주어지며(삿 6:16), 그 보다 앞선 대
답에서는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הלא שלחתיך‬, 할로 쉴라흐티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삿 6:14).
소명 설화 속 모세와 기드온이 공유하는 또 다른 공통점은, 부여된 사명에 대한 그
들의 반복된 부정적 반응 - 거절 - 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가리켜 ‘여호와께
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큰 용사여’라고 부르자, 그는 ‘죄송하지만 여호와께서 우리와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라고 반문한다(삿 6:12-13).
기드온은 당시의 고난을 근거로 여호와의 현존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큰 용사’라는 소명을 일축하는 것이다. 다시금 주어지는 하나님의 명령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에 대해서도 ‘죄송하지만 내가 무엇으로 이스
라엘을 구원하리이까?’(삿 6:15)라고 반문한다. 그 반복의 횟수에 있어서는 차이18)
가 있으나, 거듭 반복된 거절의 형태는 모세의 소명 설화와 기드온의 소명 설화 가운
데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모세와 기드온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자질 부족을
근거로 제시하며 소명 앞에 부정적 반응을 보인다. 모세가 어눌한 말솜씨를 지도자
로서의 부족한 자질로 내세웠듯이, 기드온은 자신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그 자신 역시 그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는 그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 외에, 모세와 기드온의 소명 설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
역시 나타난다. 전술한 바 같이, 반복된 거부 뿐 아니라, 모세가 제시한 어눌한 말솜
씨라는 이유와 그 이유를 제시하는 모세의 세련된 표현 사이의 부조화는, 그것이 모
세의 실제 언명인지 아니면 편집자의 작품인지를 떠나서, 최종 형태의 본문 가운데
소명을 거부하려는 모세의 일관된 목적을 강조한다. 더욱이 세 가지 기적을 수행할
수 있는 표징이 주어진 후에 그 같이 소명을 거부했다는 점은 모세의 분명한 거부 의
도를 보여준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는 거듭된 모세의 거부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을 정도이다(출 4:14). 반면 표징의 측면에서, 기드온의 소명 설화
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미디안 족속을 칠 수 있
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기드온이 그 사자에게 구한 것이 바로 표징이었다(삿
6:17).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가 당신이심을 보여주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 같

18) 모세는 출 3:12-13; 4:10, 13에서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소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표현한다. 그러나 이스
라엘 백성들의 질문을 가정함으로써, 간접적인 방식으로 두 차례 더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출 3:13;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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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이 표징을 구하는 목적은 자신이 받은 소명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는데 있다. 그 표징


을 확인한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다’는 고백과 함께 그 소명 자체
에 대한 거부 의사를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표징을 구한다는 것은, 그 표징
이 주어질 경우,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을 수용하겠다는 암묵적 동의를 전제한다. 이
는 세 가지 표징 이후에도 거부 의사를 밝힌 모세와는 커다란 차이점에 해당된다. 소
명에 대한 암묵적 동의에 비추어 볼 때, 표징을 구하는 기드온의 이 자세가 암시하는
바는, 그가 앞서 제기했던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라는 반문이 소
명에 대한 거절보다, 자신의 부족한 능력에 대한 솔직한 고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는 점이다. 자기 가문이 므낫세 지파 가운데 극히 약하고, 그 자신 역시 집안에서 가
장 작은 자라는 점 역시 소명 거부를 위한 핑계라기보다는 자신의 현 상태에 대한 솔
직한 고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기드온의 소명 설화는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모
세의 소명 설화와 유사성을 보이는 반면, 소명의 수용 여부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지닌 기드온과 끝까지 거부를 견지했던 모세라는 대조적인 이
미지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모세와 기드온 가운데 주어진 소명에 대한 두려움을 보
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기드온이며, 그에 대한 완강한 거부 의사를 표명한 인
물은 모세이다.
소명 앞에서 두려움을 표하는 모티브에 있어서 예레미야와 유사성을 보이는 또 다
른 인물 이사야19)는 모세와 기드온과는 또 다른 특징을 지녔다. 이사야의 소명을 보
도하는 이사야 6장 역시 그 예언자의 입술을 통해 두려움을 표현한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
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사
6:5). 이사야의 이 언명은 소명에 대한 두려움이기보다는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
을 목격한 데서 기인한 두려움임은 명확하다. 비록 이사야의 소명을 다루고 있는 이
사야 6장의 맥락을 토대로, 그 두려움이 하나님을 목격한 데서 기인한 것만으로 국한
할 수 없으며, 결국은 소명에 대한 부담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할
지라도, 본문이 제시하는 그 두려움의 직접적인 원인은 모세나 기드온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가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그 자신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다(cf. 출 4:10). 단순히

19) 소명에 대한 두려움이란 모티브 외 ‘그가 내 입에 대시며’(‫ויגע על פי‬, 바야가 알 피)란 표현이 각각의 소명
설화에서 사용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cf. 렘 1:9; 사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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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41

그 자신이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 선 유한한 인간임을 깨달았기 때문도 아니다(cf. 삿


6:22-23). 그 두려움은 그 자신이 죄악된 인간이며, 자기 민족 전체의 부정을 공유하
고 있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특히 이사야 자신의 부정한 입술과 부정한 입술을 한
백성들이 병치되어 있는 문장 구조는, 그 강조점이 이사야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자
기 민족과 동일하게 부정한 상태에 있는 인물로서의 이사야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
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인식한 사람이 느끼
는 두려움이다.20)
그 가운데 이사야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את מי אשלח‬, 에트 미 에쉴라흐), 누가 우
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모세와 기드온에게는 ‘내가 너를 보
냈다’(‫שלחתיך‬, 쉴라흐티카)는 선언을 하신 반면, 이사야에게는 ‫את מי אשלח‬라는 질
문이 주어지고, 그 예언자는 ‘제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הנני שלחני‬, 히네니
쉴라헤니)라고 자원한다. 이같이 이사야의 소명 설화는 소명에 대한 거부 내지 거절
의 모티브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상의 세 인물의 소명 설화 속 소명에 대한 각각의 태도에 대한 간략한 검토가 제
시하듯이, 뜻밖에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갑자기 인식했을 때, 그에 대한 각각의 인
물들은 공통적인 요소와 함께, 상이한 반응을 보인다. 강력한 거절, 자기 능력과 상
황에 대한 반성과 사명 수행을 위한 표징의 요구가 공통적 요소에 해당된다면, 이사
야가 보여 준 적극적 자원은 상이한 요소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이 같이 소명 앞에서
의 공통적이고도 상이한 반응들이 구약 성서 속에 수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자신
에게 부여된 소명을 인식한 예레미야가 보인 반응은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또는 그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은 제4의 유형을 보여주는지에 관한 질문
을 제기할 수 있다.

Ⅴ. 예레미야 소명의 특징

자신을 예언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 예레미야는 간결하게 대답한다.


“아 주 여호와여 보십시오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예레

20) B.S. Childs, Isaiah,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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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미야서 속 반복해서 사용되는 이중 본문(doublet)과 표현들을 토대로 이 예언서의


형성을 재구성하려 했던 제프리(Geoffrey H. Parke-Taylor)는 이 대답의 서두 ‘아 주
여호와여’(‫אהה אדני יהוה‬, 아하 아도나이 엘로힘[YHWH])를 예레미야와 신명기 역
사서 그리고 구약성서의 다른 본문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표현21)으로 분류한다. 그
의 주장에 따르면, 예언자의 자서전적 본문 중에서 이 표현은 여호와께 응답하는 가
운데 반대를 표명하기 위한 전형적 문구로 정의된다.22) 이 정의에 따르면, 소명에
대한 예레미야의 응답은 부정적인 것으로 일단락될 수 있으며, 그러한 점에 있어서
예레미야는 모세의 전통을 따라, 자신의 소명을 거부하는 예언자로 묘사된다고 볼
수 있다.
일견 말솜씨의 어눌함을 이유로 자신의 소명을 완강히 거부한 모세의 이미지와 그
자신이 아이이기 때문에 말할 줄을 모른다는 예레미야의 대답은, 소명에 대한 공통
된 모티브, 즉 거절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모세, 기드온, 그리고 이사야
소명 설화 속에서 사용된 표현 ‫(שלחתיך‬내가 너를 보냈다)가 본문 가운데 ‘내가 너를
보내리라’는 뜻을 지닌 미완료형태 ‫(אשלחך‬에쉴라하카)로 사용되고 있다(7절). 또한
예언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אהיה עמך‬, 에히에 이마
크)이라는 표현 역시 유사한 의미와 형태를 지닌 ‫(אתך אני‬이테카 아니)로 사용되고
있다(8절). 이러한 동일하거나 유사한 표현은 예레미야를 모세처럼, 뜻밖의 소명을
거부하는 인물로 묘사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가 제시한 ‘말할 줄 모른다’는 이유와 모세가 제시했던 ‘저는 말이 유창한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이유는 내용상 유사성을 지녔다. 그러나 그 세부적 표현에 있
어서는 적지 않은 차이점 또한 보여준다.

모세: ‫( לא איש דברים אנכי‬저는 말이 유창한 사람이 아닙니다, 출 4:10)


예레미야: ‫( לא ידעתי דבר‬저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렘 1:6)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모세의 대답은 1인칭대명사와 연계형으로 연결된 하

21) 렘 1:6; 4:10; 14:13; 32:17; cf. 수 7:7 (여호수아); 삿 6:22(기드온); 겔 4:14; 9:8; 11:13; 21:5[한글성서 20:49]
22) Geoffrey H. Parke-Taylor, The Formation of the Book of Jeremiah: Doublets and Recurring Phrases,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2000), 271. 그의 이 같은 판단은 Meyer, Jeremia und die Falshcen
Propheten, OBO 13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7), 84에 기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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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43

나의 명사로 구성된 명사문이다. 반면 예레미야의 대답은 1인칭 완료형 동사 ‘알


다’(‫ידע‬, 야다)가 부정사 연계형 형태의 동사 ‘말하다’ (‫דיבר‬, 디베르)를 목적어로 수식
하는 동사문이다. 즉 두 문장에 사용된 단어들과 그 구문에 있어서는 공통점을 발견
하기 어렵다. 더욱이 각각 제시되는, 말이 유창하지 못한 이유와 말할 줄 모르는 이유
역시 차이를 보인다.

모세: ‫כי כבד פה וכבד לשון אנכי‬


(저는 입이 무겁고, 혀가 무거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출 4:10)
예레미야: ‫( כי נער אנכי‬저는 소년이기 때문입니다, 렘 1:6)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כי‬를 1인칭 대명사와 보어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구문론
적으로 두 본문이 공통점을 보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내용은 다시금 차이점을 보
인다. 모세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언급하는 반면, 예레미야는 소년(‫נער‬, 나아르)이
라는 자신의 신분을 그 이유로 제시한다. 즉 소명 앞에서 말과 관련한 모세와 예레미
야가 보여 주는 거부는, 상이한 이유와 용어를 통해 제시되는 공통의 모티브라고 잠
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자신을 아이로 규정하는 방식이 모세 소명 설화 속에는 사용되지 않는 반면, 그와
유사한 방식은 기드온 소명 설화 속에서 사용된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나
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대답한다
(삿 6:15). 자신의 집안을 표현하는 형용사 ‘약하다’(‫דל‬, 달)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수
가 많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또한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23) 기드온
자신을 수식하는 ‘가장 작은 자’로 번역된 형용사 ‫(צעיר‬짜이르)는 ‘보다 작은’, ‘보다
어린’ ‘수가 적은’ 상태를 지칭하며, 명사로 사용될 때에는 ‘젊은이’, ‘종’을 뜻한다.24)
그 가문과 자신을 수식하는 형용사의 의미를 토대로 볼 때, 기드온이 자신의 소명 앞
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주된 이유는 집안의 경제적 상태와 자신의 나이였다.
예레미야 역시 ‫צעיר‬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 단어를 사환, 어린
아이를 뜻하는 명사로 사용할 뿐(렘 14:3; 48:4), 자기 자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
지 않는다. 즉 소명 설화 속에서 예레미야는 자신을 ‫(נער‬나아르)로 표현하고 있다. 대

23) Ludwig Köhler and Walter Baumgartner, HALOT Vol.1, 221.


24) Ibid.,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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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부분의 번역본25)과 주석서에서 이 소명 설화 속 ‫נער‬가 ‘아이’, ‘소년’ 또는 ‘젊은이’로


번역되는 것과는 달리, 구약성서 자체에서 이 단어는 여러 의미를 지닌 복합적 용례
를 보여준다. 그 단어는 ‘아이’나 ‘소년’과 같이 미성년자를 지칭하기도 하며26), 전쟁
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젊은이들이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27) 종이나 신
하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28) 그렇다면 예레미야의 소명 속 ‫נער‬는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레미야는 그
자신을 기드온처럼 묘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를 그 속에 함축하고 있는
지에 대한 대답은 본문의 정황 속에서 밝혀져야 한다. 그 정황은 다음과 같이 예레미
야의 소명만이 제시하는 독특한 특징들에 비추어 보다 명확히 이해된다.
먼저 예레미야의 소명의 독특한 특징으로 눈에 띄는 것은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친
밀한 관계를 나타내는 5절 내용이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이 첫 번째 말씀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 한 편의 시이다. 히브리어 원문의 그 세 부분은 모두 동일한 음으
로 끝나고 있으며, 원문이 지닌 리듬은 한글 번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 내가 너를 알았노라(예다티카, ‫)ידעתיך‬
네가 자궁에서 나오기 전 내가 너를 성별하였노라(히크다쉬티카, ‫)הקדשתיך‬
여러 나라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노라(네타티카 ‫)נתתיך‬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 이미 그를 예언자로 임명하는 일이 결정되었음


을 강조한다. 그 결정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아셨다(야다, ‫)ידע‬는 선포를 통해 강

25) 한글 역본들은 공통적으로 ‫נער‬를 명사 ‘아이’로 번역하거나 형용사 ‘어리다’로 번역하였다. 개역 개정은
‘나는 아이라’, 공동번역 개정판 역시 ‘저는 아니라서’로 번역하였다. 한편 ‘새번역’은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로 ‘표준 새번역’은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로 번역하였다. 영역본 역시 젊은이(RSV, NKJV)
와 아이(KJV, ASV)로 번역하고 있다. LXX의 ‘νεώτερος ἐγώ εἰμι’에서 νεό ς의 비교급인 νεώτερος가 사용
되는 것은 ‘너무나 어리다’는 번역에 가까우며 VUL의 ‘quia puer ego sum’는 ‘아이’, ‘젊은이’라는 번역에
해당된다.
26) 창 19:4; 욥 29:8; 창 22:12; 삿 8:20; 삼상 20:21; 22:35; 왕상 11:17; 왕하 2:23; 5:14; 대상 22:5 등
27) 창 14:24; 삿 8:14; 삼상 25:5; 30:17; 삼하 2:14; 18:5; 12 왕하 19:6 등. 특히 대상 12:28의 젊은 용사 사독
(‫וצדוק נער גבור חיל‬, 베짜독 나아르 기보르 하일)이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נער‬는 전사
이다.
28) 아브라함의 종(창 22:3), 발람의 종(민 22:22), 기드온의 종(삿 7:10), 갑옷을 든 자(삿 9:54; 삼상 14:1), 왕
의 신하(스 2:2). 이와 유사하게 ‫ ילד‬역시 왕의 신하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12:8,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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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45

조된다. 히브리어에서 앎이란 인식 작용에 국한되지 않고, 역동적 관계 형성을 포함


한다29). 즉 ‘내가 너를 알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결정과 그 실행을 위한 적극적이고도 구체적인 활동이 그의 출생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내가 너를 성별하였노라’(히크다쉬티카 ‫)הקדשתיך‬와 ‘내가
너를 세웠노라’(네타티카 ‫)נתתיך‬는 두 동사는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임명하는 종교
적이고, 제의적 토대를 강조한다. 이 동사들은 레위인들을 그 직무를 위해 임명하는
과정 속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민수기 8:16-17에서 그 두 동사가 사용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나
탄, ‫ … )נתן‬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히크디쉬, ‫)הקדיש‬.’ 또한 쌍을 이루는 이 동
사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물품에 대한 묘사 속에서도 나타난다. 그와 같은 경우는 레
위기 27:22-23에서도 나타난다. ‘만일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드
렸으면(히크디쉬, ‫)הקדיש‬, … 그는 네가 값을 정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나
탄, ‫ )נתן‬성물로 삼을지라.’ 이와 같은 용례는 느헤미야에서도 나타난다. ‘스룹바벨 때
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나탄, ‫ )נתן‬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히크디쉬, ‫ )הקדיש‬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히크디쉬, ‫)הקדיש‬.’ 즉 성서
속에서 이 두 동사가 함께 사용되는 용례에 비추어 볼 때, 본문 가운데 이 두 동사는
예레미야가 특별히 예언자로 거룩하게 구별된 인물이라는 점, 또한 그가 하나님께
바쳐진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동사들을 통해 묘사되는 예언자의 성별됨은 예레미야서만의 독특하고 유일한
특징인 동시에, 이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구약 성서 가운데 예언자의 임명
에 성별을 의미하는 동사 히크디쉬(‫)הקדיש‬를 사용하는 경우는 오직 예레미야뿐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를 제외하면, 구약 성서 전체 속에 예언자 자신을, 혹은 그의 사
명을 거룩한 것이라는 이해를 시사하는 경우는 없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평가되는 모세조차도 단지 평신도였을 뿐이다.
본문이 예레미야를 구약성서 가운데 유일한 ‘거룩한 예언자’로 제시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 아니라면, 동사 히크디쉬(‫)הקדיש‬를 통해 제시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이

29) 일예로 ‘알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야다(‫)ידע‬는 때때로 성관계를 지칭한다.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의 동침
이나(창 4:1),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천사들에게 요구했던 상관(창 19:5)은 모두 이 동사를 번
역한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 앎이 지닌 역동적 의미를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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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동사가 성막이나 제사장, 레위인 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수식하지 않고, 예언


자와 관련해 사용된 또 다른 예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제의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을 때, 이 동사가 사용되는 중요한 의미 하나는 전쟁 준비이다. 예를 들
어 예언자 미가는 거짓 예언자를 가리켜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키데슈, ‫’)קדשו‬라고 비판한다(미 3:5). 예레미야 역시 전쟁
을 준비하는 의미로 이 동사를 사용하였다(렘 6:4; 22:7; 51:27-28; cf. 요엘 4:9; 사
13:3). 이 용례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구별하셨다는 것은, 특별한
전쟁을 준비하도록 구별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이후 예레미야가 수행하게 될 예언
자 직무가 지닌 무게를 가늠케 한다. 그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하나님을 위해 싸우
는 전사이어야만 했다.
다음으로 하나님과 예레미야의 친숙한 관계와 그 막중한 사명을 언급하는 5절이
제시하는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은 그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았던 시기이다. 태어나
기 전에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는 일은 다른 예언자들의 소명 가운데 필적할 것이 없
는 유일한 사건이다. 그 같은 자기 이해나, 설명은 예레미야서를 제외하면, 주로 성
서 후대 전승 속에서 나타난다.30) 이와 유사한 모티브는 단지 ‘그 소년이 태어나면서
부터 하나님께 나실인이 될 것’이라고 삼손의 어머니에게 천사가 한 말과(삿 13:5),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운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하는 아기 시절 모세와 사무엘에
대한 이야기들(출 2; 삼상 1:1-2:10)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예레미야의 예언자로 성별된 시기 즉 소명 시기와 유사성을 공유하는 아기 모세의
이야기는 아카드의 사르곤 이야기 속의 요소들과 유사하다.31)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소명을 다루고 있는 특별한 조어법은 메소포타미아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몇
몇 왕의 자기 묘사와 공통된 요소를 지녔다. 우르 제3 왕조의 슐기(Shulgi) 왕(주전
약 2050년)은 왕실 찬양시의 서론 속에서 자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는 왕이
다, 태로부터 나는 영웅이었노라.”32) 이런 표현은 고대 근동의 문화 속에서는 왕의
임명이라는 중요한 사건을 묘사하는 전형적 방식이기도 했다. 이집트 제 12왕조의

30) 제2 이사야에 의해서 이스라엘과 야웨의 종에 대해(사 44:4, 24; 49:5), 신약에서는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
해(갈 1:15), 마태와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마 1:18-25; 눅 1:26-38)서 말이다. 그 문제는 지혜의 자
기 묘사 가운데 세상의 기초로 소급되기도 하며(잠 8:22-3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요한복음의 서언(요
1:1-18)에서도 나타난다.
31) ANET, 119를 참조하라.
32) Samuel N. Kramer, “The Oldest Literary Catalogue,” BASOR 88 (December 1942) 14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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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47

파라오 세소스트리스 1세(Sesostris I : 주전 1971~1926년 재위)는 자신의 왕권에 관


해, ‘그(태양신 라)가 자신의 뜻을 행하도록 나를 낳았으며… 내가 모친에게서 나오
기 전 나를 왕으로 임명하였다’고 말했다.33)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주전
1479~1425년 재위) 역시 이와 유사하게 ‘그(태양신 아몬)이 아직 내가 둥지에 있을
때에… 그가 나를 복중에서 지어, 그의 왕좌에 앉게끔 내게 명했다’고 말했다34). 또
한 제 25왕조의 피안치(Pianchi: 주전 751-730년 재위) 역시 이와 유사하게 아문 신
이 그의 왕위를 그 모친의 배속에 있을 때 이미 정했다고 언급하였다35). 앗시리아
왕 에살핫돈(Esarhaddon, 주전 681~669년 재위)은 ‘위대한 신들이 … 아직 내가 나
를 낳은 어머니의 복중에 있을 때, 모든 나라들을 다스리도록 나를 불렀다’고 말했
다. 예레미야와 동시대 인물이자, 앗시리아의 마지막 왕이었던 아슈르바니팔
(Ashurbanipal, 주전 669~627년 재위) 역시 자신의 연대기를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나 아슈르바니팔은 … 아슈르 신과 신(Sin) 신이 아득한 옛적부터 왕으로
불렀으며,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 나를 지어 아슈르를 치리하게 했다.36)’ 바벨론의 마
지막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주전 556~539년 재위)도 ‘그를 위해서 신(Sin)과 닌
갈(Ningal) 신이 그의 어머니 복중에서 왕의 운명을 그의 운명으로 결정했다’37)고 말
한다.
이와 관련해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임명하는 가운데 사용된 문체는 앗시리아와 바
벨론의 왕궁 문서들의 영향 가운데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유다의 서기관들과 예언자들은 그 문체를 알고 있었음이 확실하며, 특히 앗시
리아와 바벨론 그리고 유다 사이의 정치, 외교적 접촉이 있었던 시대에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 문구 속에 내포된 사상 속에 또 다른 의미를 주입
했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그 문구가 왕에게는 명예를 그리고 그의
통치에는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반면, 예레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영적

33) Schiff, Yehuda, The book of Jeremiah, Olam Ha-Tanakh (1999), 24에서 인용.
34) Ibid.
35) 이에 대해서는 M. Gilula, “An Egyptian Parallel to Jeremiah I 4-5,” VT 17 (1967), 114를 참조하라.
36) Daniel D. Luckernbill, Ancient Records of Assyria and Babylonia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1927), 291, sec. 765.
37) Paul-Alain Beaulieu, “The Sippar Cylinder of Nabonidus,” in W. Hallo, et al eds., Context of
Scripture:Canonical Compositions Monumental Inscriptions, and Archival Documents from the Biblical
World Vol. 2 (Leiden, Boston, Köln: Brill, 2000),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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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직분을 수행하도록 임명되었음을 제시하기 위해 그와 같은 문구가 사용되고 있는 것


이다. 즉 예레미야는 ‘열방에 대한 예언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임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 나타나는 왕의 임명 방식이란
이미지와 유사하게, 그에 대한 예레미야의 대답 역시 유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
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을 아이(‫נער‬, 나아르)로 규정한 또 다른
유명한 인물이 바로 솔로몬 왕이다.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언급하는 가
운데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작은 아이(‫נער‬, 나아르)라 출입할 줄을 알
지 못하나이다’(야다 ‫ידע‬, 왕상 3:7). 이 고백 가운데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내
용은 예레미야의 ‘말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고백과 구문론적으로 일치한다. 그 두 문
장에서 모두 동사 ‘알다’는 다른 동사의 부정사 연계형을 목적어로 취하고 있다. 출생
전 임명이 고대 근동의 왕의 임명 방식과 관련된 것을 고려하면, 솔로몬의 고백과 예
레미야의 고백 사이의 유사성은 우연으로 처리할 수 없는 편집적 의도를 지닌 것으
로 보인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예레미야 소명 이야기 속에 사용된 독특한 표현들은
전쟁을 준비하라는 명령으로 이해될 수 있는 동사 히크디쉬(‫)הקדיש‬의 사용, 그리고
왕의 임명 방식이란 모티브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형성하는 본문의 맥락
은, 예레미야가 자신을 가리켜 사용했던 ‘나아르’(‫)נער‬를 해석할 수 있는 방향을 설정
해준다. 즉 본문 가운데 그 단어는 단순히 어린 소년으로 해석될 수 없다. 역대상 12
장 28절에서 이 단어가 전사로 번역된 것 같이 예레미야의 소명 가운데 ‘나아르’(‫)נער‬
는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전쟁을 준비하는(히크디쉬, ‫ )הקדיש‬강력
한 용사로 해석되어야 한다38). 이러한 결론을 토대로, 에스터(Ester H. Roshwalb)가
제시한 바와 같이, ‘제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는 고백은 ‘제가 전사입니까?’라는 의
문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39) 이에 따라서, 하나님의 대답 역시 “너는 ‘제가 전사입니
까?’라고 말하지 말아라!”로 번역될 수 있다.

38) Ester H. Roshwalb, “Jeremiah 1.4-10: ‘Lost and Found’ in Translation and a New Interpretation”
JSOT vol. 34 (2010), 359-363.
39) Ibid.,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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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49

Ⅵ. 결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소명 설화 가운데 예레미야는 소명 앞에서 주저하


며 ‘나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는 고백을 통해 모세와 같은 이미지와 연결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손을 대신다는 모티브 역시, 이사야
의 소명과의 연관성뿐 아니라, 신명기 18장 18절의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
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라는 하나님의 약
속과의 관련성을 지녔다. 이러한 관련성은 예레미야를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묘사하
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40) 그러나 현재 형태의 소명 이야기 가운데, 예레
미야는 여러 차례에 걸쳐 소명을 거부하려 했던 모세의 모습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
인다. 열방을 향해 예언자로서 거룩한 전쟁을 수행해야만 하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왕의 임명과 같은 권위를 그 소명과 함께 그
에게 부여하셨다. “내가 너를 배 속에 짓기 전 내가 너를 알았노라. 네가 자궁에서 나
오기 전 내가 너로 거룩한 전쟁을 수행케 준비하도록 하였노라.” 편집자는 예레미야
에게 주어진 사명의 중대성을 감안해, 그의 대답 역시 솔로몬의 겸손한 대답과 유사
한 형태로 제시한다. “저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이어지는 대답은 그 형태 상 솔로몬
의 대답을 연상시킨다. 그 대답은 일면 ‘저는 아이이기 때문입니다’로 해석될 수 있으
나, 다른 한편 ‘제가 전사입니까?’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형태는 예레미야를 열
방에 대한 예언자로 세우려는 편집자의 이중적 의도를 반영하는데서 기인한다. 한편
으로는 예레미야를 모세와 같은 권위를 지닌 예언자로 제시하려는 의도를 보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소명과 관련된 모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제거하는 동시에, 예레미
야는 왕과 같은 권위를 지닌 예언자, 또한 전사와 같은 능력을 지닌 예언자로 제시하
려는 것이다. 그는 열방의 예언자로 임명 받았기 때문이다.41) 즉 그는 열방을 향하

40) J.A. Thompson, The Book of Jeremia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0), 149-150. 한편 하나님께서 예언자의 입에 말씀을 두는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예언자의 일부
가 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Peter C. Craigie, Page H. Kelley, Joel F. Drinkard, Jeremiah 1-25, 권대영
역 예레미야 상 (서울: 솔로몬, 2003), 83.
41) 열방에 대한 예언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선포 역시 예레미야서의 독특한 점이다. 사실 열방에 대한 예언이
라는 현상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열방의 심판에 대한 예언들은 예레미야뿐만 아니라(렘 46-51장),
이사야(13-23장), 에스겔(25-32장), 아모스(1-2장), 나훔, 스바냐(2:4-15)에도 나타나며, 더욱이 요나서는
이방 민족에 예언하도록 파송된 예언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만을 유일하게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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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여,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있는 기존의 모든 입장과 맞서야 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모세가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제도와 법률을 정비했던 왕과 같은 이미지와, 모압
평지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민족들과 전쟁을 벌여야 했던 전사의 이미지를 지녔던 것
같이, 이제 예레미야는 왕과 전사의 권위와, 예언자의 사명을 지닌 열방의 예언자로
홀로 그 고독한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엄청난 사명을 지칭
하며,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신다(8절). 그가 홀로 해야 수행해야 할
일 곧 과거의 모든 잘못된 점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미래를 위해 ‘건
설하고 심는 일’(10절)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유다 왕
국 멸망 이전과 이후 불확실하고, 가늠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래를 긍정하면서 또 다른 모세, 그러나 부정적인 모습을 제거한 보다 강화된 모세의
이미지로 정화된 예레미야를 통해, 그 미래를 개척하려는 편집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체적으로 ‘열방에 대한 예언자’(나비 라고임, ‫)נביא לגוים‬로 정의한다는 점에 바로 그 독특성이 있다.

주제어*
예레미야, 예언자 소명, 모세, 소년, 성별하다
Jeremiah, prophetic call, Moses, lad, to sanctify
∙ 접수일: 2015년 9월 4일 ∙ 심사완료일: 2015년 10월 7일 ∙ 게재확정일: 2015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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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성 예레미야 소명 설화의 의도 51

<Abstracts>

On the Redactional intention in the Call of Jeremiah

Han-Sung Kim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show the redactional intention of Jer. 1:4-10
which describes Jeremiah as a Moses-like prophet, from the perspective redaction
criticism and tradition approach. on the one hand, Jeremiah's call to the prophetic
office shares similar motifs - for examples, vision confirming the call, the divine
appointment of the prophet, the hesitant response of the chosen, and God's
rejection to the hesitant response - with Moses, Gideon, and Isaiah, on the other
hand, its own characteristics make Jeremiah a warrior-like figure with kingly
authority as well as a prophet to the nations. This study shows that the
characteristics in the call of Jeremiah were composed in order to bring hope to the
people of Judah after the fall of Judah. In this respect, Jeremiah was sanctified
Jeremiah by God before he came forth out of the womb. That means Jeremiah
was ordained to prepare holy wars as a kind of kingly figure who was chosen in
his mother's womb. The motif that Jeremiah was consecrated to his office before
his birth, has several parallels in Ancient Eastern texts dealing with the legitimacy
of the kings. Moreover the answer, ‘I am a lad’ that Jeremiah confessed can be
understood in this regard. In the Old Testament, the Hebrew term ‫ נער‬translated
into lad in Jeremiah's confession, has various meanings, one of which is to be a
'warrior'. For the redactional intention to describe Jeremiah as the Divine
warrior-like figure, the prophet is presented as accepting God's calling humbly
but deliberately, in contrast with Moses who repeated the hesitant response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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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신학과 목회 제44집(2015)

God's calling. Thus Jeremiah's call to prophetic office in Jer. 1:4-10 provided a
powerful warrior-like prophet against the nations for the readers of post-exilic
community who had sought new hope for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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