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ional Documents
Culture Documents
성 경: [슥 1:2]
성 경: [슥 1:3]
성 경: [슥 1:5]
성 경: [슥 1:6]
성 경: [슥 1:7]
다리오 왕 이 년 십일 월 곧 스밧월 이십사 일에...말씀이 임하여 - 여기서부터는 하나님께서 밤중에
스가랴에게 보여주신 환상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모두 8 개의 환상으로, 이곳에서 17 절까지는 그 첫
번째 환상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계획을 보여주셨다. 한편, 이들 8 개의
환상들의 주요 항목들을 짚어보면 다음과같다. 우선 서론적 말씀이 나오고, 그런 다음 스가랴가 본
환상이 묘사된다. 그리고 선지자가 이 환상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장면이 등장하고 천사의 설명이
뒤따른다. 또한 이 환상들 중 네 가지에는 신탁의 말씀이 주어지고 있으며(1:14-17; 2:6-13; 4:6-10; 6:9-
15). 보다 상세한 메시지가 소개된다(Baldwin). 한편, 본절에는 다시 다리오 왕 이 년 이라는 연대가
언급하고 있는데, 이 '다리오 왕이 년 십일 월'은 B.C.519 년 2 월 15 일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앞서
언급된(1:1) 회개의 촉구가 있은 지 약 석 달이 지난 때였다. 본절에 언급되고 있는 스밧월 이십사
일에서부터 정확히 다섯 달 전 이십사 일에는 성전 재건이 재개되었다(학 1:14,15; 2:10). 아마 이날은
자기 백성이 순종한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특별히 기뻐하셨던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본절 하반절은
1b 절과 동일하다(Lange).
성 경: [슥 1:8]
성 경: [슥 1:9]
성 경: [슥 1:10]
성 경: [슥 1:11]
성 경: [슥 1:12]
성 경: [슥 1:13]
성 경: [슥 1:14]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여...크게 질투하며 - 본절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질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해 배타적 권리를 가지신 여호와의 언약 개념에 근거한
거룩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Baldwin).
성 경: [슥 1:15]
성 경: [슥 1:16]
성 경: [슥 1:17]
성 경: [슥 1:18,19]
성 경: [슥 1:20]
성 경: [슥 1:21]
스가랴의 질문과 천사의 대답이 이루어진다. 유다를 헤쳐서 - 70 인역은 '그리고 이스라엘을 산산조각
내버린'이라는 말을 첨가했다.
열국의 뿔을 떨어 치려 하느니라 -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열국들이 모두 하나님이 일으킨 세력에 의해
멸망당함을 의미한다. 이는 바사에 의해 열강이 정복당함으로써 성취되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성된다.
성 경: [슥 2:1]
성 경: [슥 2:2]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 여기서 스가랴는 그 척량사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고 있다. 이에 대해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을 척량하러 간다는 그의 대답은 그 경계를
재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분명히 이 도시를 회복시키고 또 약속된 축복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처음으로
취할 조치였을 것이다(겔 40:5; 계 11:1).
성 경: [슥 2:3]
성 경: [슥 2:4]
사람과 육축이...같으리라 - 예루살렘 성벽이 허물어질 정도로 도시가 번영할 것이라는 약속이다.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은 성벽이 없는 주변 촌락에서 살게 될 것이다(겔 38:11). 그러나 역사상 아직
이런 축복이 실현된 바 없기 때문에(느 7:4; 11:1-2) 어떤 주석가들은 이를 영적인 의미로 받아들여
교회나 새 예루살렘, 곧 천국의 예루살렘으로 확대 적용시키기도 한다(K.L.Baker, Feinberg).
성 경: [슥 2:5]
성 경: [슥 2:6,7]
성 경: [슥 2:8]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 본절은
해석하기 난해한 구절 중에 하나로서 여러 가지 번역과 사본들이 존재하고 있다.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란 어구는 '강권적으로 나를 보내셨다'로도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가 나를 보내셨다'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 백성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곳의 '나'를 스가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 곧 메시야 시대의 사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Baldwin, Feinberg). 그렇다면, 본절의 화자는 한글 개역 성경의 번역과 같이 만군의 여호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또한 여호와의 사자이며, 메시야 자신과 동일시된다. 아무튼 이 사람의 임무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한 것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상하게 한 것과
같기 때문에 유다인들을 학대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대한 반역인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눈동자는
바벨론 성에 거하는 시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을 소중히 여기며(신
32:10) 질투하기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수 24:19; 시 17:8; 마 25:34-45; 행 9:1,4,5).
성 경: [슥 2:9]
성 경: [슥 2:10]
성 경: [슥 2:11]
성 경: [슥 2:12]
성 경: [슥 2:13]
성 경: [슥 3:1]
성 경: [슥 3:2]
성 경: [슥 3:3]
성 경: [슥 3:4]
성 경: [슥 3:5]
본절은 죄과가 없어지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운 성도들이 그에 합당한 지위를 제공받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조치로 성도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의로운 모습이 나타나 성결되고 구별된 삶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성 경: [슥 3:6,7]
성 경: [슥 3:8]
성 경: [슥 3:9]
성 경: [슥 3:10]
8,9 절에 열거된 메시야적 행동에 대한 결과로 주어지는 소망스러운 약속이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제공되는 평강과 안정이다.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 '포도나무'와 '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영적으로 큰 은혜를 받은 상태를 말한다(K.L.Baker). 메시야 시대가
도래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평화가 이루어져서 하나님과 백성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성도들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질 것을 보여준다(롬 5:1; 고후 5:18). 메시야의 오심으로 인해 평강을
얻게 된 하나님의 백성은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며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계
20:1-6).